대중 생활2019. 4. 2. 06:41

§(124) 절 생활 전부가 바로 수행이다 / 남 공부 피해 주지 말고 오직 묵묵히 정진하라 / 전강 조실스님의 말이많거나, 시비 · 잡담한 사람에게 관(冠)을 씌운 방편.

 

좋으면 좋은 대로 하고, 조금 불편하면 불편한 대로 그 불편한 것을 자기의 정진력으로 극복하면서 정진을 해 나갈 때에 그 사람이 도업(道業)을 성취할 것이고, 불보살(佛菩薩)이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손으로 이마를 만져 주실 것입니다.

 

**송담스님(No.124)—1980년(경신년) 하안거 결제 법어(80.05.28) (용124)

 

약 12분.

 

금년 여름 안거[夏安居]가 오늘부터 시작이 됩니다.

보살님네들 결제 들으시면 오래하신 분이나 새로 오신 분이나, 서로 부처님의 제자로서 도반으로서 겸손하고 조용하고, 맑고 깨끗하고 인자로운 마음으로써 오직 '생사 무상(無常)하다'고 하는 그 생각으로 일분일초도 헛되이 보내지 말고.

 

입선(入禪)할 때는 말할 것도 없으려니와 방선(放禪)을 하고서도 이 방 저 방에서 잡담으로 세월을 보내고 무슨 '며느리가 어떻고, 아들이 어떻고, 손자가 어떻고, 뭐 미국을 가고 어디를 가고' 그 쓸데없는 소리를 주거니 받거니 주거니 받거니 해 가지고 옆 다른 사람 공부 좀 할려고 하는 사람까지 못하게 해서 큰 죄를 지을 것이 아니라.

 

입방선(入放禪) 죽비(竹篦)는 사실은 칠 필요가 없습니다.

여기에 오셔서 아침에 일어나서 예불(禮佛)을 하고 십악참회(十惡懺悔)를 하고, 그리고 들어가서 입선을 하고 방선을 하고 아침 공양을 하고 그러한 여기 생활 자체가 전부가 바로 수행인 것입니다.

 

죽비 치고 앉은 그 시간만이 수행이 아니고, 세수할 때 그때도 그 화두(話頭)가 역력(歷歷)한가?

화장실에 가서 용변을 할 때 그때도 화두가 역력한가?

숟갈을 들고 젓갈을 들고 밥을 떠 놓고 찬을 뜨는 그때도 화두가 역력한가?

일분일초도 헛되이 시간을 보내지 아니하고 그렇게 알뜰히 단속을 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편안한 집안을 놔 두고 무엇 하러 이 좁은 방에 이렇게 며느리 아들딸들이 효성으로 받드는 것을 버리고서 여기 와서 이 고생을 하고 있는 것입니까?

 

저 백 리 밖에, 몇만 리 미국에서까지 이 용화사로 공부를 하러 오신 보살님이 계십니다.

그런 보살님은 미국이라고 해서 거기도 절도 있고 거기서도 뭐 편히 지내실라면 얼마든지 지낼 수 있지만 여기에 와서 첫째, 전강 조실 스님 법문을 듣고 또 조실 스님이 계시던 그 도량에 와서 조실 스님을 믿는 여러 불자(佛子)들과 같이 공부를 하고 싶어서 오셨습니다.

 

그분은 그러한 신심을 가지고 큰 사업을 하고 계심에도 불구하고 그걸 문을 닫어 놓고 여기를 오셨습니다. 우리는 설사 국내에서 오신 분도 그만한 신심으로 모다 오신 것입니다.

그랬을진대는 그 최초의 그 신심, 그 마음이 석 달 동안 한결같이 중단함이 없이 그 생각으로 한 생각 한 생각, 일분 일분, 하루 하루가 이어져 나가야 할 것입니다.

그러한 마음가짐으로 공부한다면 어느 누구라서 득력(得力)을 못할 것입니까? 어느 누구라서 깨닫지 못할 것입니까?

 

죽비 치면 형식적으로 앉었고, 방선하면 잡담으로 세월을 보내고, '자리가 이 자리가 내 자리다, 내가 더 나이가 많고 내가 먼저 절에 들어왔으니까 여기가 내 자리다' 세상에 그러한 철이 안 든 부끄럽기 그지없는 그러한 일이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용화사에 오신 보살님네 가운데는 그런 분이 한 분도 안 계실 줄 생각하지만, 비단 용화사에서 뿐만 아니라 어디를 가시드라도 자리를 가지고 문제가 될 것이 없고, 무슨 앉은 순서가 문제가 될 것이 없고,

아무데라도 그때 형편 따라서 앞에 앉게 되면 앞에 앉고, 옆에 앉게 되면 옆에 앉고, 뒤에 앉게 되면 뒤에 앉고, 인연 따라서.

 

나만 좋은 자리에 앉고 다른 사람은 나쁜 데에 몰아넣을려고 하는 그러한 생각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좋으면 좋은 대로 거기에서 하고, 조금 불편하면 불편한 대로 그 불편한 것을 자기의 정진력으로 극복하면서 정진을 해 나갈 때에 그 사람이 도업(道業)을 성취할 것이고, 불보살(佛菩薩)이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손으로 이마를 만져 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불보살이 우리를 눈여겨보고 계시는 것입니다. '으음, 네가 정말 발심(發心)을 했나, 못했나. 네가 진실한 마음으로 공부를 하고 있냐, 못하고 있느냐'

속으로는 진실하게 공부를 못하면서 겉으로 남 보기에 진실하게 한 척 아주 그렇게 뽐내는 그러한 사람이 있다면, 어리석은 중생도 그러한 모습을 보면 대번에 아는 것입니다.

 

하물며 불보살이 그것을 모르실 까닭이 없습니다. 제석천왕(帝釋天王)과 도량 신장(神將)이 그것을 모르실 까닭이 없습니다.

자기도 참되게 공부를 못하면서 남까지 공부를 못하게 방해를 친 사람이 어찌 성현의 귀여움을 받으며, 신장의 벌을 받지 않고 베기겠습니까?

 

그동안에 선방에 여러 철을 다니시면서 행여나 그러한 문제로 해서 자기도 신경을 쓰고 남에게 폐를 끼친 일이 있으신 분은 금년부터서는 아주 깨끗하게 그런 것을 청산하고 석 달 동안 거의 말 한마디도 한 바가 없을 정도로 묵묵히 정진을 해 주시기를 부탁을 드립니다.

 

억지로 묵언표를 목에다 걸고 벙어리 흉내를 내라는 것이 아닙니다.

꼭 필요할 때는 간단히 한마디해 버리고, 한마디 끝났으면 당장 '이뭣고?' 이렇게 닦아 가는 것입니다. 묵언을 안 해도 저절로 열심히 정진하다 보면 저절로 묵언이 되아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 용화사에 초창기 그때 전강 조실 스님께서 하도 보살님네들이 말을 많이 하고, 시비를 많이 하고, 잡담을 많이 하고 해서 종이로 관(冠)을 만들어 가지고 누구라도 입만 뻥끗했다 하면 그 사람 머리에다가 그 종이로 만든 관을 씌웠습니다.

다른 사람이 그걸 보고는 주춤해 가지고 입을 다물고 한 30분이고 한 시간 말을 안 합니다. 그 사람은 계속 그 관을 쓰고 입선도 하고, 관을 쓰고 밥도 먹고 그러다가 누가 뭐라고 자기도 모르는 가운데 풀쑥 한마디하면 그 사람에게 그 종이로 맨든 관(冠)이 이양이 됩니다.

 

또 그 사람이 또 그 관(冠)을 쓰고 또 다음에 누가 말을 한 사람이 나올 때까지 잘 머리에다가 보관을 하고 있다가 또 누가 다른 사람이 말을 하면 또 관(冠)을 그렇게 하고, 그런 식으로 해서 그런 방편(方便)으로 잡담 시비를 못하게 하신 일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에 남고.

그때 계시던 정광명 보살님이라든지 몇몇 보살님네들은 아마 그 관을 써 본 경험도 있으실 것이고 알고 계실 줄 생각합니다.

 

이건 참 전강 조실 스님의 우리 그 사부대중(四部大衆)을 친손자나 어린 자식처럼 생각하신, 귀엽고 귀여워서 그런 방편을 쓰신 줄 생각을 합니다마는.

 

금년 여름에도 가만히 내가 밖으로 둘러보고 혹 내가 정진하는 데 들어가 보기도 하고 여러 가지 방법으로 이 공부를 정말 알뜰히 하신가, 안 하신가를 살펴봐 가지고 정 잡담하는 사람이 많으면 또 그런 종이로 만든 관을 한번 시험해 보기도 하고.

그래도 효과가 없으면 조실 스님께서 맨들어 놓으신 법칙 제 1호, 시비(是非)를 일바시거나 싸움하거나 자기도 공부 아니하면서 남 공부를 방해치는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보따리를 쌓여서 추방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금년 여름에 한쪽에서는 불사(佛事)에 여념이 없고 또 법당은 또 금년 철 가운데에 혹 언제 또 철거가 될는지 안 될는지도 알 수가 없고, 설사 철거가 안 된다 하드라도 조실 스님께서 지으신 이 선방에서 공부하는 것은 금년 여름이 마지막이 될 것 같습니다.

그러니 그 조실 스님의 법력(法力)과 도력(道力)과 조실 스님의 자비가 지금도 도량에 훈훈히 남아 있다고 하는 것을 몸으로 느끼면서 정말 알뜰히 공부를 해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을 합니다.(28분30초~39분54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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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거(安居 편안할 안/있을 거) ; (산스크리트) varsa 원뜻은 우기(雨期). ① 인도의 불교도들은 4월 15일(또는 5월 15일)부터 3개월 간 우기(雨期)때에 외출하면 풀이나 나무, 작은 곤충을 모르고 밟아 죽일까 두려워했고 그래서 동굴이나 사원에 들어가서 수행에 전념했다. 이것을 우안거(雨安居)라고 한다.

② 선종(禪宗)에서는 음력 4월 15일부터 7월 15일까지를 하안거(夏安居), 10월 15일부터 다음해 1월 15일까지를 동안거(冬安居)라고 해서 각각 90일간 사원에 머무르면서 외출을 금지하고 오로지 좌선을 중심으로 한 수행에 전념한다. 안거의 처음을 결제(結制), 끝을 해제(解制)라 한다.

*무상(無常) ; 모든 현상은 계속하여 나고 없어지고 변하여 그대로인 것이 없음. 온갖 것들이 변해가며 조금도 머물러 있지 않는 것. 변해감. 덧없음. 영원성이 없는 것.

세상의 모든 사물이나 현상들이 무수한 원인(因)과 조건(緣)의 상호 관계를 통하여 형성된 것으로서 그 자체 독립적인 것은 하나도 없고, 인연(因緣)이 다하면 소멸되어 항상함[常]이 없다[無].

*입선(入禪) ; 참선 수행(좌선)에 들어가는 것, 좌선(坐禪)을 시작하는 것. 참선(좌선)수행.

*방선(放禪) ; 좌선을 하거나 불경을 읽는 시간이 다 되어 공부하던 것을 쉬는 일. 몸을 쉬는 가운데서도 마음은 항상 본참화두를 들고 있어야 한다.

*죽비(竹篦 대나무 죽/빗치개·통발 비) ; 예불이나 참선 정진할 때 이 죽비를 손바닥에 쳐서 소리를 내어 시작과 끝을 알리거나, 공양할 때 공양순서를 알리는데 쓰는 불교 용구.

*예불(禮佛) ; ①경건한 마음으로 부처님에게 절함. ②절에서 아침·저녁 두 차례에 걸쳐 불·보살(佛·菩薩)에게 예배하는 의식.

*십악참회(十惡懺悔) ; 몸[身]과 입[口]과 마음[意]으로 짓는 10가지 죄—살생(殺生), 투도(偸盜), 사음(邪婬), 망어(妄語), 기어(綺語), 악구(惡口), 양설(兩舌), 탐욕(貪慾), 진에(瞋恚), 사견(邪見)—를 지은 자기의 잘못에 대하여 깨닫고 깊이 뉘우치며, 다시는 같은 잘못을 짓지 않겠다고 결심함.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화두(공안)에는 '이뭣고?' '판치생모' '무자' '정전백수자' 등이 있다.

*역력(歷歷 겪을·지낼·수를 셀·가릴 력) ; ①뚜렷한 모양. 분명한 모양. 똑똑한 모양. ②사물이 질서정연하게 늘어선 모양.

*전강선사 녹음법문(錄音法門) ; 전강 스님께서 후학을 위해 참선법(參禪法)을 핵심으로 설한 법문이 칠백여 시간 분량이 녹음되어 있다. 이 중에는 『전강선사 일대기』 『몽산법어』 『초발심자경문』 등이 있다.

용화선원(녹음실)에서 전강선사 및 송담스님의 모든 법문을 mp3 파일로 구할 수 있습니다.

*불자(佛子) : 부처님의 자녀라는 뜻이다. 불법(佛法)을 믿는 이면 모두 불자가 된다. 그것은 부처님 법에서 새로운 생명을 얻었기 때문이며 부처님의 혜명(慧命)을 이어가고, 법(法)의 집과 법(法)의 재산을 상속받게 되는 까닭이다.

또한 모든 중생을 다 불자라고 하는데, 그것은 어떤 중생이나 모두 부처의 성품(佛性)이 있어서, 그것이 부처의 씨가 되고, 지혜는 어머니가 되며 부처님은 아버지가 되어, 필경에는 반드시 성불(成佛)하게 된다.

<섭대승론석(攝大乘論釋)>에는 불자에 다섯 가지 뜻이 있다고 하였다. ①믿음이 종자가 되고 ②지혜는 어머니가 되고 ③선정은 태(胎)가 되고 ④자비심(慈悲心)은 유모가 되고 ⑤부처님은 아버지가 된다.

*득력(得力) ; 수행이나 어떤 기술 · 운동에서 자꾸 되풀이해서 하면, 처음에는 잘 안되던 것이 할라고 안 해도 저절로 잘 되어질때 득력(得力)이라 표현. 수월하게 되어 힘이 덜어지는 것을 다른 표현을 쓰면 그것을 ‘힘을 얻었다(得力)’하는 것.

참선 수행에서는 화두에 대한 의심을 할려고 안 해도 저절로 의심이 독로(獨露)하게 되는 것을 ‘득력’이라고 말한다.

[참고] 『서장(書狀)』 (대혜종고 著) ‘증시랑(曾侍朗)에게 답함(여섯 번째)’

苟念念에 不退初心하고 把自家心識이 緣世間塵勞底하야 回來抵在般若上이면 雖今生에 打未徹이라도 臨命終時에 定不爲惡業所牽하야 流落惡道하고 來生出頭에 隨我今生願力하야 定在般若中하야 現成受用하리니 此時決定底事라 無可疑者니라.

 

참으로 생각생각에 초심(初心)에서 물러나지 말고 자기 자신의 마음이 세간의 번뇌와 반연하는 것을 잡아 돌이켜 반야(般若) 위에 이르게 하면, 설령 금생에 (이 일을) 타개打開하여 사무치지 못하더라도 임종시에 결정코 악업(惡業)에 이끌리는 바가 되어 악도(惡道)에 흘러 떨어지는 일은 없을 것이며, 내생에 태어나면 나의 금생 원력에 따라 반드시 반야 가운데에 있어 수용(受用)을 현전 성취(現前成就)할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결정적인 일이라, 의심할 게 없는 것입니다.

 

衆生界中事는 不著學하야도 無始時來로 習得熟하며 路頭亦熟이 自然取之에 左右逢其原하니 須著撥置니이다.

出世間學般若心은 無始時來로 背違라 乍聞知識의 說著이어도 自然理會不得하나니 須著立決定志하며 與之作頭抵하야 決不兩立이니다.

 

중생계의 일은 배우지 않더라도 아득한 옛날부터 익혀서 무르익어졌으며, 인생길에도 역시 익어져서 자연스레 취하여 그 중생계의 일 속으로 들어가니, 마땅히 이 습기를 없애 버리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이에) 세간을 나와서 반야(般若)를 배운다는 마음은 시작을 알 수 없는 때로부터 등지고 어겨왔으므로 잠깐 선지식의 설법(說法)을 듣는다 해도 쉽사리 이해되지 않습니다. 모름지기 결정(決定)한 뜻을 세워서 더불어 머리를 맞대고 겨루어 나가야 합니다. (습기와 반야는) 결코 양립되지 않습니다. 

 

此處에 若入得深하면 彼處는 不著排遣하야도 諸魔外道가 自然竄伏矣니이다. 生處는 放敎熟하고 熟處는 放敎生이 政爲此也니 日用做工夫處에 捉著欛柄하면 漸覺省力時가 便是得力處也니이다.

 

이 곳[般若心]에 깊이 들어가게 되면 저 곳은 (습기를 굳이) 물리쳐 보내지 않아도 모든 마(魔)와 외도가 자연히 항복해 숨을 것입니다. 설은 곳[生處]은 익게 하고, 익은 곳[熟處]은 설게 함이 바로 이 때문이니, 일용에 공부하는 곳에서 요점을 잡고[欛柄] 차츰 힘이 덜어진다고 느낄 때가, 바로 그때가 힘을 얻는 곳입니다.

*도업(道業) ; 도(道)는 깨달음. 업(業)은 영위(營爲 - 일을 계획하여 꾸려 나감). 불도(佛道)의 수행. 진리의 실천.

*'불보살(佛菩薩)이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손으로 이마를 만져 주실 것입니다' ; 마정수기(摩頂授記 문지를·쓰다듬을 마/정수리·이마 정/줄 수/기록함·기억함 기), 마정기(摩頂記), 마정수기별(摩頂授記莂)이라고도 한다. 손으로 정수리(이마)를 만져주면서 기별을 주는 것.

어떤 사람이 수행을 철저히 하거나, 염불 또는 기도를 정성스럽게 봉행하거나, 남들이 도저히 할 수 없는 인간 세상에 모범이 될 만한 훌륭한 일을 하였을 때, 불보살(佛菩薩) 또는 천지신명이 그의 앞에 나타나 그의 정수리(이마)를 만져 주면서 ‘훌륭한 일을 하였다. 그대는 이 공덕으로 성불을 성취하리니, 그때 얻은 결과는 이러이러 하리라’고 예언해 주는 것을 말한다.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을 일으킴[發].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보리심은 모든 부처님이 부처님이 될 수 있었던 바탕이 되는 종자이고 청정한 법이 자라날 수 있는 좋은 밭이기 때문에 , 이 마음을 발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면 속히 위없는 보리를 증득한다.

*제석천왕(帝釋天王) ; 불법(佛法)을 지키는 수호신. 신[天神]들의 제왕[帝]인 샤크라〔釋〕라는 뜻. 제석(帝釋), 석제(釋帝), 제석천(帝釋天), 제석왕(帝釋王), 제석태자(帝釋太子), 천주(天主)라고도 한다.

산스크리트어 이름은 샤크라 데바남 인드라(Śakra-devānām Indra). 석제환인다라(釋提桓因陀羅) · 석가제환인다라(釋迦提桓因陀羅) · 석가제바인다라(釋迦提婆因陀羅) · 석가제바인달라(釋迦提婆因達羅) 등으로 음역하고 줄여서 석제환인(釋提桓因, 釋帝桓因) · 제석천(帝釋天)이라 한다.

『법화현찬(法華玄贊)』에서는 “범어 석가제바인달라(釋迦提婆因達羅)에서 ‘석가’는 성(姓)씨이며 ‘능(能)이라 한역하고, ‘제바’는 ‘천(天)’이라 한역하며, ‘인달라’는 ‘제(帝)’라 한역하니 곧 ‘능천제(能天帝)’라 한다” 뜻으로 보면 ‘석가(능히) 제바(하늘의) 인달라(제왕)’

 

불교의 세계관에 의하면 세계의 중앙에 수미산이 있는데 그 수미산 정상에 있는 도리천의 왕으로, 사천왕(四天王)과 32신(神)을 통솔하면서 불법(佛法)과 불제자를 보호한다. 도리천에는 33신이 있는데, 제석은 그 중앙에 있는 선견성(善見城) 안의 수승전(殊勝殿)이라는 궁전에 살고, 나머지 32신은 그 성(城) 밖의 궁전에서 각각 산다.

제석천은 본래 인도 성전 《리그베다》에 등장하는 천신 중 벼락을 신격화한 가장 강력한 힘을 지닌 신이었으나 불교에 수용되어서는 범천(梵天)과 함께 호법선신 역할을 맡게 되었다. 그리하여 항상 부처님의 설법 자리에 나타나 법회를 수호하고 사바세계 인간의 번뇌와 죄를 다스리는 역할을 담당한다.

 

한국에서는 단군의 할아버지를 석제환인(釋提桓因)이라고 하여 하늘의 주인과 제석천을 동일시하여 숭배하였다.

<잡아함경>에는 제석천이 본래 사람이었으나 수행자에게 음식과 재물, 향과 와구(臥具)·등불을 베푼 인연으로 제석천이 되었다고 한다. 제석천왕은 신중탱화(神衆幀畵)에 한 손에 금강저(金剛杵)를 들고 머리에 보관(寶冠)을 쓰는 모습으로 많이 등장한다.

*신장(神將) ; 불법(佛法)을 보호하는 신장. 또는 《화엄경》을 보호하는 신장.

*관(冠 갓 관) ; (검은 머리카락이나 말총으로 엮어 만든) 머리에 쓰는 쓰개의 종류를 통틀어 이르는 말.

*방편(方便 방법·수단 방/편할 편) ; 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그때마다의 인연에 적합하게 일시적인 수단으로 설한 뛰어난 가르침. 중생 구제를 위해 그 소질에 따라 임시로 행하는 편의적인 수단과 방법.

곧 불보살이 중생의 근기에 적절하게 응하여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하여 법을 펼쳐 보임으로써 그들을 교화하여 이익되게 하는 것을 말한다.

*사부대중(四部大衆) ; 불문(佛門)에 있는 네 가지 제자. 곧 비구(比丘), 비구니(比丘尼) 등 출가 제자와 우바새(優婆塞), 우바이(優婆夷) 등 재가 제자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사중(四衆)과 같은 말. 줄여서 사부(四部)라고도 한다.

[참고] 우바새 : upasaka의 음역. 삼귀의(三歸依)와 오계(五戒)를 받아 지니는 남성 재가신도.(같은 말=靑信士,靑信男,信男,信士,居士,近事男,近善男,善宿男) 원래의 말뜻은 모시는 사람. 받들어 모시는 사람. 출가자와 승단을 가까이에서 돌보고 보호하며 한편 가까이 배우는 사람이라는 뜻을 지닌다. 선숙(善宿)은 선(善)을 품어 그것에 머물기[宿] 때문에 선숙이라고 한다.

우바이 : upasika의 음역. 삼귀의(三歸依)와 오계(五戒)를 받아 지니는 여성 재가신도. (같은 말=靑信女,信女,近事女,近善女,善宿女)

*시비(是非) ; ①옳음과 그름. ②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것. 또는 옳고 그름을 따지며 하는 말다툼.

*일바시다 ; '일으키다'의 사투리.

*불사(佛事) ; ①불법(佛法)을 알리는 일. 법회, 불공(佛供), 재(齋)의 봉행, 경전의 간행과 유통, 사찰의 중창과 전각 중수, 불상·탱화·불구(佛具)·가사(袈裟) 조성 등의, 불가(佛家)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가리킨다. ②부처님께서 중생을 교화(敎化)하시는 일.

*법력(法力) ; ①체득한 달마(法)의 힘. ②가르침의 힘. 불법의 공덕. 불•보살의 위신력(威神力)을 중생에게 떨쳐 이익을 주는 것. 불법수행의 결과 얻은 힘. *도력(道力) ; ①도의 근본에서 생기는 힘. 도를 얻음에 의하여 나타남. ②지혜의 힘.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