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벽선사(黃檗禪師)의 게송(偈頌)이여. 진로형탈(塵勞逈脫)이 사비상(事非常)이다. 이 사바세계, 이 오탁악세(五濁惡世), 이 몸뚱이는 부모한테서 얻어 나왔다마는, 늙어 병들어 죽어서 삼악도(三惡道)에 들어갈 일을 생각해 봐라. 세 가지 악도(惡道)에, 지옥도(地獄道) · 아귀도(餓鬼道) · 축생도(畜生道) 그놈의 악도에 들어갈 것을 생각해 봐라. 보통 그럭저럭 생각할 일이 아니다. 참으로 진실로 그것을 한번 생각해서 삼악도(三惡道)가, 그놈의 감옥이라는 것은 사람 죽이고 지금 우리 이 사바세계(娑婆世界) 이 현대 현실 감옥, 거다가 비교헐 것이 아니다. 그놈의 이 우리 시방 사는 이 세상에서 현범(現犯) 죄수가 되어 가지고는 감옥에 들어가서 몇 달, 몇 해, 일생 징역, 고것 살고 나온다든지 죽는다든지 그렇다마는 거다가 비교헐 것이냐? 거다가 어떻게 비유를 혀?
그럴 거 같으면 그 뭐 잠깐 한 평생 그놈의 지옥 살고 징역 살고 또 나올 때가 있으려니와, 이놈의 삼악도에 들어갈 거 같으면 그놈의 원대한 그... 뭐 있기야 있지. 끝이 나올 때가 있지, 없을 리가 있나마는 겁수(劫數)다, 겁수. 일 겁(劫)이라 하는 것이 6억7천만 년을 꼽쳐야 둘이래야 일 겁인데, 그놈의 일 겁을 감옥 그놈의 삼악도에 있다가 나와도 지긋지긋헐 텐디 무량겁을, 세아릴 수 없는 겁을 들어앉아서 죄고(罪苦)를 고취(苦趣)를 받고 있을 것을 생각을 한번 해 봐라. 그 무서운 포구(怖懼)를, 무서운 두려운 것을 새겨서 심부(心府)에 새겨서 그걸 한번 생각해 봐라. 어떠헌가 좀 생각해 봐!
사비상(事非常)이다. 그럭저럭 보통 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이 법문 식으로 '법문, 법문이다. 법문 그거 뭐 법문에는 뭐 그런 말도 있을 거고, 성불도 있을 거, 별일도 있을 거' 그런 그럭저럭 법문 식으로, 지내가는 무슨 왕담설로 그렇게 알지 말아라. 비상한, 참! 보통 그렇게 생각지 마라. 그러허니 긴파승두주일장(緊把繩頭做一場)이니라. 그 면허는 방법이라는 것은 꼭 한 가지 있다. 한 가지는 뭣이냐? 승두(繩頭), 참선법, 법머리, 승두를 잡아 가지고, 큰스님한테 화두를 타 가지고 화두 해 나가는 방법밖에는 없다.
화두 하나 그놈 타 가지고서는 주삼야삼(晝三夜三)에 시애(厮睚)다. 밥을 먹으나 옷을 입으나 그저 '이뭣고?' 화두면 이뭣고뿐이고, 판치생모(板齒生毛)면 판치생모뿐이지, 외(外)에 뭐가 있겠나? 무얼 생각할 것이 있겠나? 그 무서운 죄, 죄수가 되어 가지고 삼악도에 들어갈 걸 생각해 보아라. 깨닫지 못허면은 죄수 아니냐? 무량겁에 지어 나온 죄도 있거니와, 금생 죄도 얼마냐? 이놈의 죄, 죄수가 되어 가지고서는 닦지 않고 무엇을 뭐 무슨 다른 생각을 헐 것이냐? 알 수 없는, 내가 나를, 내가 내 마음 내가 나를 찾는 것인디, '이 뭐냔 말이다? 도대체 뭣고?'
그저 그날부텀은 해탈학자니, '이뭣고?'만 친절허게 참 참되게 참 해 나갈 것 같으면 하우(何憂), 뭐 하우(何憂)냐? 무얼 근심헐 것이냐? 지옥을 누가 잡아다 넣을 것이냐? 그 삼악도를 누가 끌고가 넣을 거냐? 그 갈 필요가 뭐냐 말이여? 도(道) 닦고 앉어 있는디. 무량겁에 지은 죄업이 있다한들 그 승두(繩頭)를 잡아 가지고 닦아 나가는 사람을 그 과거 죄를 또 갖다 뭐 씌울 거 뭐 있나? 천겁 만겁 과거 제대죄업(諸大罪業)이라도 붙지 못혀. 설사 지어놨닥 하더래도 씌우들 못혀. 이러헌 승묘법(勝妙法)이다. 묘한 법이여. 다시 이상 없는 법이여. 그걸 반야법(般若法)이락 한다. 반야학자(般若學者)다. 이렇게 학자가 되어 버리란 말이여.
근심헐 것 없어. 늦게 만나는 한탄할 것 없어. 늙었다는 한탄도 헐 것도 없어. 조문도(朝聞道)면 석사가의(夕死可矣)요. 아침에 듣고 저녁에 죽드래도, 믿고 죽드래도 한(恨) 없다. 공자님 말씀에도 그러헌 말씀이 있고. 우리 부처님 법에도 찰라에, 중생성불(衆生成佛)이 찰라간(刹那間)이요, 찰라 사이에 있는 법이요. 또 초발심시(初發心時)에 변정각(便正覺)이니라. 처음 마음 발(發)헐 때 곧 정각(正覺)이니라. 그 마음만 갖춰라. 승두(繩頭) 잡아 가지고 알 수 없는 화두(話頭)만 거각(擧却)해라. 근심 걱정 말아라.
불시일번한철골(不是一飜寒徹骨)이면, 차운 것이 뼈에 사무치지 않거드면—한번 내가 공부를 허되 차운 것이 사무쳐야 한다. 죽을 고비가 있어야 한다. 결정심(決定心)이 있어야 한다. 한바탕 용맹심(勇猛心)이 있어야 한다. 날카로운 마음으로써 퇴타하지 말고 한바탕 그렇게 해야지, 그렇게 믿다가 또 말다가, 좀 들어 가지고 들을 때는 좀 어째 해볼 마음을 두었다가 그만 스르르르륵 풀어져 버리고. 그래서는 소용없다. 한번 결정심을 일으켜서 용맹심을 일으켜서 불퇴전(不退轉)해라. 물러가지 말고 그대로만 나가거라. 그러헌 뼛속에 한번 차운 용맹심을 갖추어 다뤄라.
쟁득매화박비향(爭得梅花撲鼻香)가. 어찌 매화가 코에 닥쳐서, 매화 탁! 피면 매화꽃 향기가 콧속에 후르르르 들어올 수가 있냐? 그렇게 그 맹렬헌 마음으로써 퇴전치 않고 도를 닦아 나갈 것 같으면은 차운 매화 향기가 코에 들어올 때가 있으리라. 그 말은 그 설리(雪裏)에 한매(寒梅)가, 눈 속에 차운 매화가 극도(極度)이 추워야 아주 대한(大寒)보담도 이상 간 추위가 있어야 그 추울 때, 그 차운 공기에 탁! 피어. 그런 매화가 있어. 찹지 않으면 못 피고 말아. 피면은 그놈의 향내 나는 것은 말로 헐 수 없다. 그러니 그런 극한에 탁! 피는 매화가 있으니, 그 퇴전(退轉)하는 마음이 없이 용맹심으로써, '이뭣고?'를 화두를 잘 다루어서 한바탕 하면은 탁! 깨달을 때가 있을 것이니라.
차어(此語)해야 최친절(最親切)이다. 이 법문을 가져 가지고 가장 친절히 닦아 나가거라. 약장차게(若將此偈)해야 시시경책(時時警策)해라. 요 게(偈)를, 이 법문을 가져 가지고는 때때로 거각(擧却)을 해라. 공부(工夫)에 자연득상(自然得上)하리라. 너 화두에 상(上)에 오를 것이다. 결코 깨달을 시절이 있을 것이며, 깨닫지 못하고 이 몸을 버리고 임명종시(臨命終時)가 오드래도 삼악도는 없다. 인자 삼악도(三惡道) 없고, 그대로 철저히 닦다가 이 몸뚱이를 수유(須臾)에 내번지고 잠깐 동안 내던지고 가드래도 어디 가서 몸을 얻어 나드래도 정법 신심가(正法信心家)에 가서 옳은 몸뚱이, 견고헌 몸뚱이, 도 닦을 몸뚱이를 얻어 가지고 나와서 또 들어와서 도를 닦을 것이니라.
그렇지 않으면은 도솔천 내원궁(兜率天內院宮)으로 바로 갈 것이고. 도솔천 내원궁에 여기 가만히 앉아서 그만 화생(化生)헐 것이여. 불신력(佛神力)이요 반야력(般若力)으로. 올라가서 상생(上生)해서 몸뚱이 얻어 버리면은 거기서 몸뚱이 얻어 가지고 미륵존불(彌勒尊佛)의 설법 듣고 언하(言下)에 대오(大悟)해 가지고는 그다음에는 하강(下降)을 허는디, 이 세계에 내려오는디 자유자재(自由自在)로 내려와. 업(業)으로 내려온 것이 아니여. 내 신력(神力)으로 도솔천에서 상생 도솔내원궁에서 얻어 증(證)해 가지고 내려온 것이니까. 뭐 하나 근심 걱정헐 것이 없다. 뭣이 뭐, 무엇이 걱정이냐?
여기 보살님네들 몇 분들 여기 있지. 오늘이 오늘이 기도회향, 기도가 이것이여. 이렇게 기도혀, 아침에 다 모아서 이렇게 깨끗이 세수허고 부처님께 이렇게 기도를 모시는 것이 이것이 경허 스님, 도인 경허 스님 일원일배(一願一拜) 기도고, 만공 큰스님께서도 이렇게 기도를 허고, 우리 이사(理事) 참선허는 대중은 아침에 이렇게 허고서는 낮으로는 참선 화두 해 나가는 거, 기가 맥힌 기도, 작법(作法)기도여. 만무일실(萬無一失)이지. 만(萬)에 기도해서 하나 성취 안 하는 법이 없지. 여기 내 이렇게 기도해주고 그랬지마는, 얼마가 올해 입학 다 했네, 올해. 저번에 입학 모도 들어온 모도 보고, 여 우선 무슨.. 무슨.. 어저께 왔다갔든 그 뭐 그 아들 입학 못할까 두려워서 야단치더니 입학 다 했지. 무슨 원장이락 했나? 아 저 모도 아 들었다고 다 말 않더라고.
대감님, 집에 든 놈의 대감, 3백년 동안을 집안 풍파를 일받고, 왼통 집안에 춤을 추고 야단난 놈의 대감 갖다가 여그 놓고 다 일 없었지? 지금 일 없다고 보고 다 들어왔지? 온양인쇄소 같은 디는 영 절단나고 죽게 되고, 지성병원 뭐 보피법으로다 망해 버렸다가 여기 와서 해 가지고 다시 복흥되어서 인자 큰 집 짓고 됐지. 인쇄소 그놈 염전 사고, 뭐 주차장 저 무슨 술도가인가 뭐 사 가지고 금방 영 망하게 되었다더니, 영 그만 복흥되어 버렸지? 모두 들어왔네. 뭐 별로 기도를 뭐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이래 주었는가? 이렇게 꼭 해 주었지. 이렇게 해 주었으되 꽉 “그 기도가 천하제일이다”고 믿는 사람 다 성공했지. 또 믿지 않는 사람도 이상스럽게 되었다 그 말이여.
밥 안 해 주지, 떡 안 해 주지, 과일도 안 올려주지, 돈만 갖다 주면 그대로 갖다 뭐든지 사중(寺中)에 그래 버리고는 안 해 주지. '뭔 놈의 기도냐?'고 아! 그랬는디, 그 기도헐 사람 병 기도를 헐라는디 돈만 갖다 주었지 허사(虛事)라고 그러고는 '에이 소용없다'고 들어가다 갔는디, 가서 본께 곧 병은 나았네. 그만 병 낫아 버렸네. '아이고, 기도헐 마음만 내도 병이 낫는다'고 지금 야단이여. 그 사람이 신도를 수십 명 끌어들였네, 지금.
그런 것이여. 믿으면—아! 그렇게 비방해도 또 되네. 그런닥 해서 또 비방을 혀? 비방하면 또 죄, 비방죄가 있지. 기도라는 것이 여러 가지지마는 이 작법기도, 우리 부처님 법 그대로 기도, 우리 부처님 기도 당시의 무슨 당시에 기도헐 때 '석가모니불 석가모니불' 불렀나? 재식(齋式)이 그거 곧 기도고, 그 절에 들어와서 부처님한테 참회 기도허고, 그거 모도 기도지.
부처님 당시에 그때에 어디 무슨 뭐, 전단향.. 저 무슨 우전왕(優塡王)이 아! 부처님 조성을 해서 모셔놓고, 보고 싶어서 아침마다 절을 허고 아! 그래—부처님이 어머니 제도허러 저 천당에 갔다가 오시니까 당신 상(像)을 그려 놓고는, 나무로 모도 맨들어 놓고는 절을 허고, 그래 수기(授記)를 해주었지. 그게 기도, 기맥힌 기도지. 수기를 주어. "허! 네가 장차 큰 대복전(大福田)을 이루었구나" 그게 그 그래 기도헌 것이지. 부처님한테 그렇게 해서 다 복 받는 것이고.
어느 양반은 자식을 못 낳는데, 어디 중이 떡 그것을 알고서는, “댁에 아들 하나 빌어 드릴라고 왔습니다” “어떻게 허면 되겄는고?”
“백일기도를 모십소사” “그래라. 백일기도허면 아들 난다면 내가 기도허고 말고야”
돈 백 냥을 내주었다. 돈 백 냥을 떡 받아 가지고 이놈이 가서는 기도헌다고 해 놓고는 술 퍼먹고, 괴기 사 먹고, 계집질허고, 뭣 아무 소용없네. 그때 돈 백 냥이면 한량도 없는 놈의 돈인디, 막 써버렸다. 그 종이 그걸 보고서는 그 양반한테다 가서 “아! 그 중이 돈 백 냥 갖다가 계집질허고 술 먹고 고약한 행동을 다 합니다” “아! 이놈 같으니, 고얀 놈! 나는 부처님한테 백일기도헌다고 드렸는데, 그 중이야 술을 먹거나 제야 그 돈 갖다가서 잘 쓰거나 못 쓰거나 내가 그거 관계할 거 뭐 있으며, 네 그런 걸 보고서는 나한테 와 보고헐 게 뭐 있노?” 단단히 나무래고는 백일기도, 아무 날 회향한 날만 그저 그대로 아무 절 부처님만 생각을 했어. 그날 밤에 꿈에 부처님이 "오냐 네 정성이 지극허니 동자(童子)를 받아라" 동자를 받아 가지고 떠억 그 꿈을 깼는데, 아! 그때부텀 아들을 하나 척 얻어 가지고, 아들을 얻어 가지고는 천하 부귀를 했어. 그 뭐 뭐인가, 그 벼슬도 정승 벼슬 가운데 그 무엇을 했고, 당시에 제일이었다 그 말이여.
그것이 그 생각는 거, 염(念), 이렇게 아침에 이렇게 오늘 아침 회향(廻向), 잘했단 말씀이여. 3일 동안 절에 있어서 안 가시고 뒷방에 계셔도 속으로 부처님을 생각하셨고, 죽 모두 작법, 마음으로써 그렇게 기도 잘했지. 얼마나 잘헌 거여? 괜히 다리가 피 터지게 서서 무슨 뭐 왼통 차운 법당에 서서 감기 들어가면서 병 들어가면서 “관세음보살 관..” 이런다고 기도, 입으로만? 구피변(口皮邊)으로만? 그 같은 건 소용없어. 마음 한번 먹는 데 가서 그만 기도 성취가 있는 법이지.
여기에 모도 뭐 저 여여궁 원만궁, 저 원만궁은 그 삼동(三冬) 내 그 사십 명 대중, 삼사십 명 대중(大衆), 공양을 해 올리고, 그 그렇게 큰 복을 짓고 있다가 아! 여까장 또 왔단 말씀이여. 그 여까장 왔으니 우리 절에서 그 잘 좀 어떻게 또 좀 해주었으면 좋겄구마는, 우리 절에는 꺼떡허면 한 백 명 이상, 뭔 뭐 확 들이 모아서 야단치면 거그 한번씩 겪고 나면 약해서 못혀. 몸이 원청 약하고, 심장화(心臟火)가 있어서 그런 병이 있다니까 있들 못하니까 내가 그래서 권허들 못허고, 여기 있기만 있으면은 안 헐래야 안 헐 수가 없거든. 보고는 안 헐 수 없거든. 만약 쳐냈다가는 그 큰 병을 도리어 역효과를 얻을 것이니까 조용한 곳으로 가시도록 내가 엊저녁에 말을 했고.
여여궁 보살님은 여기 와 조금 과거에 좀 계실라 하다가는 어디 집안 일이 모도 그 헐 수 할 수 없는 일에 헐 수 없어 그만 가셨다가 이번에 잠깐 댕기러 오셨는데, 그래 오셨으니깐 내일모레 관음기도 회향이 있으니 관음기도 회향까장 다 보고 가십시오. 뭐 거 그동안에 별일 없을 것이고. 저 원만궁도 가드래도 뭐 한 이틀 더 있어 가면 어쩌까? 또 기도 오늘 회향허신 불명(佛名)이 뭣이지요? (고불궁입니다) 응? (박고불궁입니다) 박? (고불궁입니다)
고불궁! 고불궁 보살님도 오늘 회향했으니까 오늘밤 또 주무시고, 내일 주무시고 모레 회향허고 가십시오. 관음재(觀音齋), 관음재에 보는 것이 그 와서 역부러 기도헌 것보담 더 헌 것입니다. 염라대왕 생일날이여. 재일(齋曰) 날이, 다른 게 아니여. (저 재일 날 안 옵니다. 그전에는 왔습니다만 요번에 가서는 또 올라나 모르.. 갔다가 오드래도 가야지요)
아따 그날 채우고 가셔. 뭐 모도 오셨으니까 모레 회향 보고 가십시오. 고불궁도 그러시고, 원만궁도 그러시고, 여여궁도 그러시고, 그렇게 하십시오. 뭐 아 이 집안을 한번 그 좀 모도 살림살이 뭐, 애집(愛執) 애착집(愛着執) 뭐, 아이고 손자 뭐, 며느리 뭐, 그런 것 좀 잠깐 여의고 떠억 그 부처님을 생각하고 그래 가는 것이 참 좋은 것입니다. (처음~23분31초) (끝)
여기는 행자(行者)라도, 아! 뭐 행자라도 이만저만한 거 모도 한 30살 넘어, 인생의 사람의 그 이모지년(二毛之年)이 있는데, 이모, 이미 저물다 그 말이여. 이모지년, 이미 저문 해. 이모지년(二毛之年)이라는 것은 서른 세 살이면 이모지년이여. 서른세 살까장은 인생이 사람이 몸뚱이 받아 가지고 다 커. 자라. 자랄 대로 자라. 다 살가죽도 다 클 대로 다 늘어져 크고, 뼉따구도 다 크고, 골절도 다 차고, 다 커 가지고서는 서른세 살만 먹으면은 인자 이미 저물어져. 다 커져 가지고는 늙어진 쇠운(衰運)이다 그 말이여. 조금씩 조금씩 인자 어디가 백발(白髮)이 나던지 백발이 나는 거여.
그 서른세 살까장, 요새 대학을 졸업허자면은 근 삼십까장 대학원까장 이렇게 허자면은 한 삼십까장 되어야 되거든. 아! 그렇게 해 가지고 세상에 배울 것 다 배우고, 헐 것 다 하고 척 들어왔으니 그 도학자(道學者)인디, 그 도학자한테 시간도 없이 때도 머무를 것도 없이 도(道)를 가르켜야 할 것 아닌가? 대번 그만 들어오기만 옳게 들어와서 행자(行者)로만 된다면은 그만 법복(法服) 같이 입혀서 화두(話頭), 화두 가르켜서 도(道)를 닦게 만들아. 그 즉시의 그만 도학자를 만들아 가지고 그래 인자 행자 노릇을 그대로 그만 선객(禪客), 활구참선(活句參禪) 선객이 되어 가지고서는 행자 노릇을 막 그저 그만 병행(竝行)해 다뤄 간다 그 말이여. 그렇게 지금 해 나가거든.
무상(無常)이 신속(迅速)혀. 오늘 어떻게 될는지 알 수 없는 몸뚱이가 들어왔는데, 언제 행자 노릇 따로 가르켜 가지고 그다음에는 사교입선(捨敎入禪)을 시켜? 그러헌 것 없어. 여기에는 들어오면 그저 즉시의 시간도 거다가서 붙일 것도 없고, 때도 기대릴 것도 없고, 화두(話頭)부텀 가르켜 가지고서는 그만 그대로 본분학자(本分學者)가 되어 가지고 인자 행자 겸해서 인자 해 나간다 그 말이여. 서른 몇 살씩 모도 먹은 사람이 들어와서 공양주(供養主) 한 철 다 지내고, 또 하나 들어와서 지금 공양주 시방 허는 판이고. 대학 졸업허고 아! 모도 대학원까장 다 나온 사람들이 지금 가서 판사나 검사나 뭐 처음에는 이래 되어 가지고는 아! 그다음에 차츰 인자 장관 되어 가지고 모두 아! 이렇게 해 나갈 사람들인데, 이 문(門)에 들어와서 이 도문(道門)에 들어와서 도학자가 되었다 말이다.
그러면은 그렇게 훌륭허게 배운 그러헌 사람들을 갖다가서 저 정지에, 부엌에 공양주(供養主) 채공(菜供)을 시킨다? 그것 참 기가 맥히다 그 말이여. 공양주 채공 거기에서 위덕(偉德)이 생기는 것이고, 그렇게 높은 지위에 있고, 배울 것 다 배웠지마는, 거기에 들어가서 참 공양을 짓고 반찬을 장만해서 올리고 대중공양 모도 해 올리는 위덕 공덕(功德)이라는 것은 말로 헐 수가 없어.
합천 해인사 그 스님이 뭐냐? 오래되어서.. 백운 스님! 백운 스님이 아! 처음에 들어와서, 세상에서 헐 짓 다 하고 아주 훌륭한, 백낙산 스님 은사 스님이여. 양반으로서 그 지위 굉장해 가지고 사람 하인 다 부리고 허던 그런 분이 나이 사십이 넘어 중이 되어 가지고 들어와서, "첫째, 중 배우는 것이 무엇입니까?" 허니까 "첫째, 중이 배우는 것이 음식해 먹을 줄을 알아야 하고, 밥 짓는 법을 알아야 하고, 그다음에 반찬 하는 법을 다 알아야 하고, 대중 시봉(侍奉)허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냐"고.
그 양반, 다리 딱 동게고 “에헴!” 하던 고러헌 습관성, 없제. 그만 들어와서는, 그 중이 될라고 중의 집안에 아! 들어왔으면은 불가(佛家)에 들어왔으면은 불가에 허는 법식(法式)을 배워야 허는 법이지, 불가(佛家)의 법식도 배우지 않고 양반의 무슨 뭔 식(式), 인간 속습(俗習)을 가지고 와서 양반 노릇 헐라고 내가 왔나? 쏴악 양반 행동허던 짓을, 그 버릇데기 짓을 행여나 나올까 무서워서 쏵쏵 비벼서 종이 비벼서 불에 태워 버리듯기 마음으로써 그만 그 없애 번지고, "그 정공은 그 백운 스님 알지?" (예!) 그 스님 봤을 터이니까.
그래 번지고서는 아주 초생.. 초학자(初學者)로 무이(無二)여. 아무것도 모른 사람이 되어 가지고는 아! 그만 그길로 공양주(供養主)를 했어. 공양주를 허되 아무리 못허게 해도 “내가 그저 좀 해야겄습니다” 두말 할 것 없고. 공양주를 어떻게 했던지 한 철 혀, 두 철 혀, 세 철 혀, 여섯 철을 했다 그 말이여. 여섯 철일 것 같으면은 그 철이 그것이 겨울철이 있고, 하철 여름철이 있는디, 그 한 3년 되아. 3년 공양주를 허되 어떻게 지극한 정성으로써 밥을—쌀을 똑 처음에 가려. 돌 같은 거, 뉘 같은 것만 가려버리고 수택미(水擇米)를.. 밥을 이렇게 일어서 이렇게 이렇게 쌀을 씻거서 일면은 우게 모도 올라오거든, 뉘 같은 것은. 돌 같은 것은 처지고. 그 수택미(水擇米)로 또 가린다 그 말이여. 암만 가렸어도 혹 뉘가 있을 수 있으니 뉘를 떡 가려내고 흔들 흔들 흔들, 그래 해놓고는 쏴악 쌀을 깨끗이—손을 이래 참 몇 번 깨끗이 씻고는 거기다가 손을 넣고, 손을 안 넣으면은 솔괭이를 주먹처럼 깨끗한 솔을 닦아 가지고 그놈을 가지고는 뒤적거려 가지고 이렇게 민다 그 말이여. 그 깨끗헌 솔.
사람의 손에는 그 땀 같은 것이, 그 구녁이 사람 손에 그 땀구녁이 그 말할 수 없거든. 거기서 항상 흘러나오는 것이여. 부정유출(不淨流出)이 늘 있거든. 그런 것 안 넣을라고 솔괭이를 갖다가 이렇게 넣어서 꼭 이래 닦아 가지고는 따르고, 또 씻거 따르고, 뜨물을 한 댓 번 척 빼버린 뒤의 맑은 물을 잘 일어서 맑은 물을 따악 붓고. 그 물 붓는 그 양수가 다 그릇으로 붓는 것도 있고, 바가지로 대중헌 것도 있고. 그놈 딱 붓어서 넘길 때에 벌써 불 때서 넘기면은, 불도 그놈이 싸게 때는 불이 있고, 마치 맞게 때는 불이 있고, 흐지부지 때는 불이 있다 그 말이여. 그것도 그 여러 가지가 있으니까. 그 넘길 때에는 풀풀풀풀 넘는 것도 있고, 푹푹 넘는... 나중에 그 짐(김)이 푹푹 나오고 물 안 나오면 물이 없는 것이고, 풀풀풀풀 넘으면서도 나오면 물이 있는 거거든. 그 너무 물이 많이 풀풀풀 나올 때는 조금 넘기고, 푹푹 짐이 셀 때는 그대로 딱 두어 가지고는, 딱! 또 솥을 싸.
솥 안 싸고 밥 잘한다는 것은 당최 방목원중(方木圓中)이여. 된 법 없어. 아주 두터운 그 푸대나 뭐 그런 디다가서 그 헌 솜 같은 걸 뭉쳐 넣어 가지고 솥을 딱 우게 덮어서, 맞게 딱! 덮어 가지고 씌워 놓고, 밥 끓여 넘길 때보담도 그 뜸 돌릴 시간이 조금 더, 한 10분 이상 되어야 혀. 밥 끓어서 넘을 동안은 한 30분 될 것 같으면은 밥 풀 동안은 한 40분 이상 되어야 하거든. 그래 꽉 덮어 놨다가 그놈을 열고 솥전을 딱 둘러 가지고서는, 깨끗이 둘러 가지고는 밥을 써억 푸면은 그 구순 맛이 기가 맥혀. 구시한 밥이 기가 맥히제.
내가 이번에 여기 어디 좀 갔다올 때, 여그 밥이 내 죽 같은 밥을 해 먹다가 그걸 여기.. 없으니까 큰절 밥을 좀 가져오라고 해서 그 밥을 좀 먹어보니 참! 잘됐어. 아! 인자 금방 들어온 우리 선행자가, "정선 행자가 했나?" 헌께 그랬닥 해야. 배운 겨를도 없는데, 이 밥이 합격적인디, '참 잘되었다'고 한 그릇을 거지반 다 먹고 갔어. 뱃속이 편안하기를 한량이 없고 목적지까장 잘 갔다 그 말이여. 우선 그런 놈을 먹을 것 같으면 뱃속이 편안해서 도학자(道學者)가 절로 도(道)가 들어와. 뱃속이 편안하니까. 밥이 이놈이 뜸이 안 돌아서 잘못되어 놓으면은, 들어가 놓으면은 그만 창자를 헤벼 파네. 그건 꼭 그러니까. 질어도 못쓰고, 되아도 못쓰고, 그놈이 뜸만 잘 돌 것 같으면 뱃속에 들어가서 한량없이 그 벌써 혈부(血腑)를 모두 도와주고, 양위(養胃) 위를 어질게 맨들고, 기가 맥힌 것이여. 밥 잘허기 참 좋은 것이다 그 말이여. 참, 사람께 이익이 있다 그 말이여.
백운 스님 역시 그렇게 똑 해서, 한 철 두 철 해서 여섯 철을 공양주를 했어. 그저 그러고는 항상 복혜(福慧)니까, 복과 혜가 있어야 도(道)도 닦는 것이여. 복(福)이 없으면 도(道)를 못 닦으니 복은 지으면 오기 마련이여. 잘 지으면 오기 마련이여. 공양주 허는데 가서 제일 복이 많이 오는 것이여. 그다음에는 도량(道場) 청소여. 도량을 깨끗이 허는데 가서 승복수(勝福壽)여. 복수(福壽)가 더 혀. 내 몸뚱이 애끼지 않고 깨끗이 깨끗이 쓸고 훤허니 해 놀 것 같으면은 자신도 청정(淸淨)허고, 내 마음도 그 경계 따라서 깨끗하고, 일체사람이 다 볼 때 깨끗한 마음이 나고, 도량신(道場神)이 강차지(降此地)하고, 좋다고 모도 깨끗이 모도 신장(神將)이 모도 와서 모도 보호를 허는 법이여. 도량 소지(掃地)하는 공덕품을 내가 한번 인제 새겨줄 것이니 들어 보라 그 말이여.
공양주가 일급(一級)이거든. 제일이거든. 그렇게 깨끗이 허고 밥을 그렇게 잘 짓고 그래야사 또 복이 되지. 손도 씻지 않고, 오줌 똥 누고 손도 씻지 않고 그대로 갖다 손 집어넣어서, 그 더러운 손으로 쌀을 주물럭거려서 씻거서 아무때나 해서, 밥이 잘 되었나 안 되었나 뚝 떠 가지고 그만 먹다가 질질질질 흩치고 들리기도 허고, 모두 이렇게 허는 수가.. 맛본다고. 그렇게 해서는 그놈의 죄(罪)는 주체할 수가 없다. 어따가 쟁일 수가 없어. 하도 많이 지은 죄(罪)라. 똑 그렇게 큰 죄를 짓네. 그렇게 큰 복(福)을 짓는디, 더럽게 부정(不淨)허게 헐 것 같으면은 그러헌 또 죄를 짓는다 그 말이여.
백운 스님은 그렇게 여섯 철을 어떻게 깨끗이 해 가지고는 그 마지(摩旨)를 똑 지어서, 그때는 한국은 모도 밥을 지어서 부처님한테 올리니까, 그렇게 마지를 지어서 밥을 지어서 깨끗이 담아서 입으로는 속으로는 늘 작법(作法)을 허고, 그 작법을 헐 줄 모르면은 천수(千手) 같은 걸 외우고, 불 때면서도 “나모라 다나다라 야야 나막알약 바로기제...” 그 천수(千手)를 외우면서 그렇게 지어 가지고는 마지를 그 불기(佛器)를 씻고 또 씻고 깨끗이 해 가지고 밥을 담아 가지고는, 어디 밑에다 이렇게 들고 가? (어깨 위로 받들어) 이렇게 들고 가서 부처님께 올리고 이렇게 다 했거든.
그것은 부처님 당시에 없는 거지마는 한국에 와서 그것이 신라 때 신라 말엽에 그게 되아 가지고는 그런 식이 나왔지. 지금은 인도(印度)도 없어. 가져오면 신도가 가져오면 가져온 대로 싼 채 그대로 놓는 것이여. 여기 시방 그대로 놓았다 그 말이여. 똑 놓고. 부처님이 잡숫나? 부처님은 선열위식(禪悅爲食)인데, 확철대오를 해서 도(道) 선열(禪悅)로 위식(爲食)인디 무슨 놈의 인간 음식을 잡숫나? 무슨 잡수고 안 잡숫는 것이 어디 있어? 생사도 없는데. 부처님은 다맛 중생의 정성(精誠)을 관하고 계시는 거여. 가만히 관찰하는 법이지. 그렇게 허라는 것이여.
그래 여기 한국불교 중간 당시에는.. 중간에는 모도 밥을 지어 올렸기 따문에 백운 스님은 그렇게 갖다가 지어 올리고 절을 무수배례(無數拜禮)를 따악 허고는 가지고 내려와서 대중공양(大衆供養)을 시키고. 남저지 밥이 있는 놈은 또 깨끗헌 바가치든지 그런 디다가 잘 퍼 가지고 조왕단(竈王壇)에다 또 올려놓고서는 조왕님한테 절을 지극히 허고, "복덕(福德)이 구족(具足)허게 해 주십소사. 복과 덕이 있게 해 주십소사" 이렇게 기도를 드렸다 그 말이여.
세 철 만에 꿈에는 허연 백수 노인이 나오더니 쇳대를 이만한 놈 한 뭉치를 주면서 “이 쇳대를 가지면은 너 일생에 넉넉헐 것인께, 아나 이놈 받아가져라” 쇳대를 주어. 아! 그 쇳대를 받았다. 받고서는, 인자 여섯 철을 했으니 공양주를 더, 여섯 철 아니라 '또 여섯 철을 허라' 하드래도 마음에 무슨 뭐 염심(厭心)이 없고 더 헐 마음이 증대(增大)한디, 헐 수 없어 그만 어떠헌 인연에 못허게 되어서 공양주는 사면(辭免)을 해 번지고 쇳대는 그것을 꿈에 얻어 가지고 몸에 지녔는데, 그때부텀 아! 유명한 스님이 제자를 떡 만드는데 그 제자 한번 되기 어려운 것이여. 제자 되자마자, 그만 법답(法畓)이 생겼네. 아! 법답이 그만 생기면서 그 법답 가지고는 아! 이리저리 그저 허다, 그때는 승려들도 다 헐 수 없어 어디 돈벌이 뭐 뭐—시주(施主) 뭐 그런 것이 있나? 없으니까 그놈 가지고서는 이리저리 늘리기도 허고, 어떻게 해 가지고는 당대에 아마 근 천석(千石) 했구만.
14통! 해인사는, 합천 해인사는 열 너 말통이 한 섬이여. 14통일 것 같으면은 소두(小斗)로는 28말이여. 대두(大斗)로 14통이니까. 그렇게.. 사람이 못 지어. 그러헌 벼를 근 천석을—중 천석이면 얼마여? 권속이 있나? 무엇이 있나? 그러헌 천석꾼 참 부자가 되었으며, 부자도 되었지마는 덕(德)이 장(壯)해. '백운 스님' 허는 덕(德)이 줄줄줄줄줄 흘러. 거그서 그 공양주 해서 그러헌 복덕을 얻어 가지고는 그렇게 되었다 이 말이여. 처음에 들어와서 천지평이 노장 같은 지평(持平) 벼슬을 허고 들어와서도 사미중한테도 “예” 허고, 벼슬을 불거(拂去)해 번지고 그래 가지고서는 그렇게 큰 지위를 다 얻는 것이여.
행자 노릇 잘못하면은 아무것도 아니여. 그거 어디 가도 평생 손그락질 밖에.. '저건 저 뉘 상좌여?' 앉을 줄도 모르지, 설 줄도 모르지, 뭐 반찬 하나 뭐 헐 줄 모르지, 밥 하나 헐 줄 모르지, 거 아무것도 아닌 것이 가만히 앉아서 해다 준 밥이나 얻어먹고, 높은 자리 앉아서 “에헴!” 허고, 밑에 사람 아! 저 아주 밑에 저런 사람을 갖다 하대(下待)해서 하천(下賤)하게 보고, 천하에 박덕(薄德)허기는 그만이고, 그것 참 못쓰는 것이여.
대번에 그만 '밥 잘헌다' 하니 위덕이 생기네. '아! 그리여. 그 잘한다' 밤낮 뭐 밥이나 지어서 멕일라고 무슨 헌 건가? 벌써 그 행자 허는 법식을 다 알려서 가르킬라고 그런 것이지. 그래 가지고 행자 노릇 잘해 가지고서는 그러헌 복덕을 얻어 가지고 터억 그 인자 도를 닦아 보지. 그게 도학자여.
주공부(做工夫)허되, 참선을 허되—참선 법문 조금 더 해 주고—최파비량(最怕比量)이다. 장심주박(將心湊泊)이다. 참선을 떡 잡아 하되, 참선 화두를 떡 가지고서는 비량(比量)해서 주박(湊泊)한다. 비량주박(比量湊泊)이 뭣이여? 요리저리 비교해 보고, 저리요리 비교해 보고, '되는 건가, 안 되는 건가? 이것이 이런 건가 저런 것인가?' 비교를 해 가지고는 주박(湊泊)을 해 본다. 어따 비교해 대본다. '될 것인가 안 될 것인가?' 측량허듯기 요리 재 보고 저리 재 보고, 고러헌 비량주박(比量湊泊)을 혀?
그만 믿어 가지고 와서, 큰스님을 믿어 가지고 와서 믿었으면은 큰스님이 화두(話頭)를 주거들랑 화두 하나 받았으면 고대로 해 나가는 거여.
"어떤 게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냐?"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판치(板齒).. 판때기 이빨에 털 났느니라"
응, 그런 어디 이치가 있겠냐 그말이여? 무슨 이치가 그런 이치가 있어? 판때기 이빨에 털이 뭣이여? 뭔 소리여? 원 원 이사(理事)나, 이치나 사상사나 당헌 말이래야지 그거 뭣이여? 그것이. 무슨 도리냔 말이다.
'어째서 조주 스님은 서래의(西來意)를 묻는디, 서래의(西來意)가 생사 없는, 죽고 사는 생사(生死)가 없는 그 이치다. 생사 없는 그 이치만 깨달으면은 성불(成佛)해서 부처가 되어 가지고는 아정락을, 생사 없는 그 낙(樂)을, 죽고 사는 낙을 얻느니라. 증(證)허느니라. 받느니라' 아! 어떻게 이렇게 일러줄 턴디, 그런 것 저런 것 뭐 아정락이니, 생사 없는 낙이니, 해탈락이니 뭐 그런 건 꿈에도 없고, '판때기 이빨에 털 났느니라' 그 뭐여? 그거 도무지 대체. 그 무슨 도리냔 말이다.
그 공안(公案) 참 거 우습지. 아무것도 당최 어디 이치(理致)에도 당치 않고 사(事)에도 맞지 않으니까, 이치 길도 없고 사상(思想) 길도 없어. 사(事)에도 없고, 사상 이치도 없고, 이치 길도 없다 그 말이여. 거다 이치를 붙이고 사상 이치를 뭐 붙일 수 없으니 말 길도 없지. 뭐 말헐 건 뭐 있나 어데? 비량주박(比量湊泊)이 어디 있나? 이리저리 비량(比量)해 주박(湊泊)할 수 있나?
꽉 맥혔다. 맥힌 놈 하나, 조사관(祖師關) 하나, 큰스님이 이렇게 주거들랑 받아 가지고는 그놈 하나 가지고는 주삼야삼(晝三夜三)에 시애(廝睚)다. 밤이고 낮이고 이놈 하나,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어째서?' 헐 때, 그놈의 사량 · 중생 사량(思量) · 중생 망담 · 망념, 그 일어나는 망념 어디가 붙어? 계(戒)를 가지느니, 범(犯)하느니, 파(破)하느니, 가지고 범하고 파한 것이 어디 있어? 계상(戒相)도 없지. 그대로 본분계(本分戒), 그대로 본분학자여.
화두 하나만 따악 있다. 알 수 없는 공안(公案) 하나만 내 품속에, 저 밑에 배꼽 단전(丹田)에 가서 따악 거 자리를 잡고 주(住)해졌다. 그놈만 또 생각하고. 또 이놈이 천만겁(千萬劫) 중, 무량겁(無量劫) 중에 밤낮 중생짓, 그 숭악한 망념 망담만 가지고 죄지어 가지고 죄받던 놈의 그놈의 번뇌망식만 퍼 일어나는데, 판치생모(板齒生毛)만 가서 떡 하면은 그놈이 당최 아무리 다생겁 아니라 억다생겁(億多生劫)을 익혔.. 모도 그 숙습(宿習)해 나온 망상번뇌라도 거기 와서는 헐 수 없어. 반야 공안(般若公案)에 와서는 내 마음 내가.. 내 화두한테 와서는 헐 수 없어. 척 생각할 때, 돌이킬 때, 모가지 다 떨어져. 없어.
그래서 당장 본분학자한테는 그걸 본분학자, 판치생모를 해 나가는 본분학자한테는 당장 일체업(一切業)이—그 분별사량 망념이 업(業)인데, 업 짓는 업인데, 일체업이 부득(不得)이여. 얻들 못혀. 거가 붙들 못혀. 알 수 없는 공안 하나만 딱! 그 물 달, 수월(水月) 같이, 물에 달 그림자 같이 거가 백혀져 있어. 그놈이 그놈이 매(昧)허지 않고 없어지지 않고 늘 있을 것 같으면은, 그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허다' '의단독로(疑團獨露)헌 지경, 그 지경이 타성일편(打成一片)이다' 그런 거여.
그 타성일편(打成一片) 의단독로(疑團獨露) 지경이 그 잠깐 와서 있을 수도 있고, 백만 년 해도 없을 수가 있고 그려. 단도리허는 데, 잘 거각(擧却)하는 디, 철저히 믿는 디 그 분심(憤心) 가운데에서 잠깐 오는 것이여. 일일(一日), 하루 만에도 될 수 있고, 7일 만에도 될 수 있는 것이고, 석 달 만에도 될 수 있는 것이고, 의단독로(疑團獨露)가 타성일편(打成一片) 지경이 어디 그것이 무슨 뭐, 몇 억 만년에 되나? 그까짓 거 무슨 뭐 당장 되는 것이지. 언하대오(言下大悟)가 있는 것이고, 언하(言下)에도 되는 것이지. 지재당인(只在當人)의 신심(信心)과 분심(憤心)과 당인(當人)의 결정심(決定心)에 있는 것이여.
비량(比量)과 주박(湊泊)을 말아라. 그것 공부하는 학자한테 제일 두려운 것이다. 그 못쓴 것이다. 요리 장심주박(將心湊泊), '참말로 견성법이 있나?' 요리 주박(湊泊), 이까짓 허다가 안 되니 '이거 안 되는 것이다, 되는 것이다' 그런 것 저런 거, 저런 것 이런 것이 다 똑같여. 여도(與道)로 전원(轉遠)이다. 도 닦는 학자는 이러헌 마음 가지고는 점점 멀어지지. 소용없어. 그래 보다가 그 과학, 요새 현대 학자들은 과학적으로 따져 보기도 허고, 철학적으로—뭐 철학인가 이것이? 비철학이여. 철학도 아니여. 무슨 철학이여? 비종교여. 무슨 종교인가, 또 이것이? 종교도 아니여. 나 하나 딱! 그저 깨닫는 법인데, 참선법(參禪法)이여.
주도미륵하생(做到彌勒下生)이라도, 요렇게 정신을, 요렇게 그 화두를 헌다든지 요러헌 생각으로 도문(道門)에 들어와서 공부헌다고 비량주박(比量湊泊)을 했다가는 미륵하생까장 이르러 봐라. 미륵하생 시절이 지금으로부터서 6억7천만 년이다, 그만. 6억7천만 년까장 해 보아라, 무슨 도(道)가 되는가? 도가 될 거여 그게? 소용 하나 없어.
도(道)를 만약에 못 닦으면은, 내가 도(道)를 깨닫지 못하면은, 내가 나를 깨닫지 못하면은 이것 뭣이여, 이거? 이거 이 몸뚱이 있으면 사람이고, 이 몸뚱이 없으면 귀신인데, 사람인들 그거 무슨 사람인가 그녀러 것이? 사람이면 사람이 사람이지, 사람 노릇 못하는 게 사람이여? 밤낮 살생이나 허고, 도둑질이나 하고, 거짓말이나 하고, 추담망담이나 하고, 십악중죄(十惡重罪)나 짓고 있는 것이 그게 사람이여? 사람케니는 짐승.. 짐승은 개 같은 것은 오히려 그런 죄나 안 지어. 사기 협잡도 할 줄 모르고, 주는 밥이나 먹고 똥이나 마음대로 싸고 살지마는, 사람으로써서는 왼갖 몸의 그 흉칙헌 가슴속에 그 모도 도둑질, 그저 살생허고, 넘의 유부녀 간통허고, 그저 모략 중상이나 하고, 협박 공갈이나 치고 죄만 퍼짓는 거, 그 사람인가? 사람으로서 나와서 요따구 짓만 허는 건데? 그 뭐 사람이여?
이 몸뚱이 또 내던져번질 것 같으면은 그 죄짓는 놈의 귀신이 그 중음신(中陰身)이 되어 가지고는 별놈의 죄를 다 짓네. 혼(魂)으로써서도. 꿈에 있는 몸뚱이 같은 것이. 꿈에 있는 것도 아니지, 그것은. 중음신(中陰身)이 되어 가지고는 지옥고(地獄苦) 어디 제 자유가 있나? 지옥고 인자 받고 나와서 또 어디 가서 인자 짐승 몸뚱이를 좀 받아 가지고 나와서는 막 때려 호랭이 같은 놈이 되어 가지고 나와선 남의 목숨이나 짤라 집어먹고, 이렇게 도네. 중생이라는. 이 문제, 이 문제가 이게 중생(衆生) 참 인생 문제다 그 말이여. 이따구로 되어 버리는, 도(道)를 못 닦으면 이 지경 되어 버린다 그 말이여. 그 뭐겄냐 그 말이여? 좀 잘 생각해 봐야 혀.
미륵하생까장 이르드래도 주박(湊泊) 참선, 비교 참선, 요리조리 허다 말다 소용없어. 한 자리 정허거들란 그만 우리 부처님처럼 열두 해 만에 나왔다. 달마도 그렇게 다 깨달라 가지고 권행(權行)으로 나왔지마는 왜 소림(少林)에 가 9년을 면벽(面壁) 했나? 일체 도인이 다 그랬지. 삘삘삘삘 요새 뭐 조금 지내면 그만 해제(解制)날이 바빠. 걸망 싸 짊어지고 그 돌아댕긴다. 그 돌아댕긴 그 거래 고통은 어쩌 허며, 어디 들어가서 밥 한 숟갈 빌라면은 어느 절에 들어가면은 눈치 보이고, 한 숟갈 얻어먹고 자고, 또 이리 가고 저리 가고 그 짓이 뭐여? 언제 화두 챙길 겨를이 있나, 하근기(下根機)가? 상근(上根)은 또 뭐 그런 데 안 끄달리나?
관취몰교섭(管取沒交涉)이다. 아무리 해 봐라, 무슨 참선이 되는가? 고렇게 되어 가지고 무슨 참선이 되나? 앉으면 잠이나 자올고, 서면 산란 망상이나 하고, 비량주박(比量湊泊)이나 하고, 허다 좀 말다 뭐 그 무슨 뭐 뭐이여 거... 그 무엇이겄냐 그 말이여? 도 닦는 마음이 고래 가지고 되겄나 말이여? 관취몰교섭(管取沒交涉)이니라. 천하없이 고렇게 해 가지고는 된 법이 없어. 도(道)는 안 되아.
약시의정(若是疑情)해야, 약시의정(若是疑情)이 돈발적한자(頓發的漢子)인대는, 그 공안에 의단(疑團)이 탁! 들어와서 알 수 없는 그 의심(疑心)이 독로(獨露)되어 가지고는, 그 떠억 판치생모가 자리가 잡힌다. 자리가 딱 잡혀! 그만 부모 때려죽인 원수 마음 나듯기, 그 부모 때려죽인 원수가 복(腹) 중에 백혀 있으면은 어디 없다 있다 하나? 그놈이 점점점점 더 분심이 증강되지. 화두(話頭) 역시 자꾸 거각(擧却)할수록 자꾸 증대된다. 의단독로(疑團獨露)가 점점점점 그거 한정이 없어.
돈발적한자(頓發的漢子)인대는 여좌재철벽은산지중(如坐在鐵壁銀山之中)이다. 저 철벽은산(鐵壁銀山) 가운데에 있는 것 같다. 쇠벽이 딱! 되아 있는디 거기에 무슨 뭐 뚫을 재간도 없고, 은산(銀山)에 가서 무슨 마음 날 도리가 있나? 꽉 맥혔으니. 은산(銀山) 맥힌 것 같여. 산 꽉 맥힌 것 같어. 알 수 없는 의단(疑團) 하나뿐이다.
지요득개활로(只要得個活路)니라. 거그서 활로(活路)를 요득(要得)헌다. 확철대오(廓徹大悟)가 있는 법이여. 그렇게 되면은 대오(大悟) 없는 법이 없어. 깨닫는 길밖에는 없어. 다른 게 아무것도. 알 수 없는 데 가서는 툭! 터지는 법이여. 알 수 없는 놈이 아니면은 일체 번뇌 중생 망념이 어디 그놈이 없어지는 법이 없어. 중생 망념이 알 수 없는 데 와 타버리지. 알 수 없는 건 불 같으면은 망념(妄念)은 나무와 같여. 불에 와서 나무 타듯기 다 녹아버리는 거여. 그놈이 아니면 안 되아. 그래 의단(疑團)이 제일 중요헌 거거든.
여하득안온거(如何得安穩去)냐. 만약 이와 같은 활로(活路)가 없으면, 활구참선법이 아니면, 알 수 없는 의단(疑團)이 아니면은 어떻게 안온(安穩)을, 확철대오를 얻겠느냐? 확철대오는 얻들 못한다.
변변치 못헌 말인 거 같지마는, 수수께끼도 아닌 거 같지마는, 알 수 없는 의단독로(疑團獨露)만 갖추어라. 거기서 무슨 비량주박(比量湊泊), '요런 것이다 저런 것이다' '아! 내가 대답하면 되겄다' '옳지! 고 고런 것이다' 고따구로 대들면은 틀려, 그것은. 그건 못된 이견(理見) 학자라는 건 못쓰는 거여. 그건 쓰도 못혀. 벌써 그런 짓을 허면. 여지없이 그를, 그거는 축출 그건 말 것도 없는 것이여.
꼭 그 아무리 거기서 무슨 이치가 생겨 나오고 뭣허드래도 그런 것을... 도무지 의단독로(疑團獨露)만 갖춰야 하는 법이여.
단임마주거(但恁麽做去), 이렇게 지어. 알 수 없는 의단독로만 지어 시절(時節)이 도래(到來)하면, 그렇게 탁! 맥혀서 알 수 없는 의단(疑團)만 독로(獨露)해서 이러헌 지경만 갖춰 나갈 것 같으면은 자유개도단(自有箇倒斷)하리라. 결정코 깨닫지 못허는 법이 없으리라. 요까장 한 대문(大文)이여. (처음~38분5초) (끝)
일장피운삼보립(一杖披雲三步立)이요... 허! 원 이렇게 맥혀서 원. 수명석백고인루(水明石白古人樓)라 나무~아미타불~
똑같이 해야지. '아~' 되야? 넘 똑같이 송(頌)을, 창(唱)을 높여야지. 헤! 그거 참, '아~' 그 되아? 그것 참! 원 허는 짓이 모도가... 똑같이 그 하는 거여.
약사화공모차경(若使畵工摸此景)인댄 기어임하조성하(其於林下鳥聲何)오 나무~아미타불~
창(唱)을 맞춰서 해야지. 게송 창을 맞추고 다 그래 대중창을 맞춰서 해야지. 넘은 ‘어~’ 허고 있는디, 나는 ‘아~’ 그러면 쓰는가? 허! 그것. 그런 걸 다 내가 인자 들어온 사람들을 안 알려주면 못쓰니까. 내가 아침마다 한마디씩 해주는 것은, 그 설법을 들어야사 알지. 설법 안 듣고 될 수가 있는가? 퇴타(退墮)가, 그만 들어왔다가 그만 퇴타하는 것이여. 그만 물러가는 것이여.
뭐 뭐 아무것도 없으니 들어와서 배울 것도 없지. 닦아 보니 참선 화두(話頭)라고 해 보니 천하에 도무지 못할 것은 화두여. 오늘 해 보나, 내일 해 보나, 일 년 해 보나, 십 년 해 보나, 깨닫기 전에는 똑같고. 또 깨달은 뒤에는 뭐가.. 뭐 크드란헌 무슨 물건을 봤나? 뭣을, 무엇을 깨달랐나? 하 이것! 세상에 도(道)라니.
아 신선도(神仙道) 같은 것도 공이여, 공(空)! 모두 있는 유상(有相), 모도 제견(諸見), 모든 견(見) 해(解) 그런 것 없는 허공, 공(空)이여. 공을 보고 앉었는 것이 선법(仙法)인디 신선법(神仙法)인디, 우리 불법(佛法)은 공(空)도 아니여. 공이 뭣이여? 그 같은 공(空)이 거 뭣일 것이여? 그 공(空) 밖에 무슨 거 모냥이 있을 건가? 좀 생각해 보면 알 것 아니여? 뭐 뭔 뭔 물건이 있을 건가? 그러니 그것은 도무지 향상도 못허고, 들어와 보니 참 우습지. 맨 중생견(衆生見)으로써 그 모도 보는 거, 듣는 거, 맛보는 거, 그저 육근(六根) 육식(六識)으로써 모도 그 아는 거 그런 것 그 뭐. 악각악식(惡覺惡識), 악하게 알고, 악하게 죄 짓고, 모두 아는 걸로 죄 짓고 그 뿐이지. 그 밖에 어떻게 헐 수가 있나? 들어와 보니. 물러갈 수밖에 없지.
그러니 이 도문(道門)에 들어와서는 첫째, 설법(說法) 듣는 것이다. 설법을 듣는디 신(信)이 아니면 못 들어. 절대 신(信)이래야 들어. 신심(信心)이 아니면은 설법을 듣는 법이 없고, 설법이 귀에 들어오는 법이 없어. 그래서 신위도원공덕모(信爲道源功德母)다. 신(信)이란 건 도(道)에 근원(根源)이요, 공덕(功德)에 어머니다. 제일 신근(信根)이여.
척 믿고 들어오는디 옳은 스승이 아니면—인자 신(信)도 여러 가지인디 정법학자(正法學者)가 바로 정법을 믿는 신(信)이 있고, 그다음에는 사견학자(邪見學者)가 사견을 믿는 신(信)이 있는디, 사견(邪見)도 역시 철저허게 안 믿으면은 그것도 못 배워, 사견도. 외도법(外道法)이지마는. 그래서 그 즈그는 사견인 줄 어디 아는가? 사견이 사견인 줄 알면사 정견학자가 되지마는, 사견(邪見)이 정견(正見)인 줄을 알거든. 저 계룡산 같은 디 모도 병이나 낫우고 뭣허는 거 모도 그런 거, 축지법이나 하고 뭐 능견천리지사(能見千里之事)하고, 능히 천리 일이나 모도 알고 보고 요런 행동허는 거, 기합술 같은 거, 모두 마구니술 같은 거, 그러헌 디 빠져 가지고서는 그것도 기가 맥히게 모도 믿어. 그 사견학자.
우리 정법(正法)이라 하는 것은 참 그건 기가 맥히지. 한번 믿어 들어왔으면은 그 정법학자가 물러갈 곳이 있나? 이 신(信) 하나 좋다. 여지없이 믿어 가지고 들어와서 정법을 자꾸 들어야 하지. 정법을 안 들을 것 같으면은 어떻게 닦아 갈 수가 없어. 어디 의지해서 닦아 갈 수가 있나? 신심이 있어야 닦지. 뭣인지 알 수가 있나? 오늘 해 보나, 화두 하나 얻어 가지고는 스승도 없이 믿는 곳도 없이 해 볼라 하니 되어야지. 그걸 갖다가서 방목원중(方木圓中)이라 그려. 모난 냉기[나무]로, 구녁은 모난 구녁이면은 모난 구녁을 뚫고, 둥근 구녁이면은 둥근 냉기를 박고, 딱딱 그렇게 추문낙구(推門落臼)가 되어야 하는 것이지. 안된 법이다 그 말이여. 아침마다 법문 한 대문씩을 내가 이렇게 해 주는 것이거든.
그런데 대번에 그만 뭐 그러헌 무슨 뭐 인과설(因果說) 등등 뭐 그런 것 제외해 놓고 바로 참선법(參禪法)이네. 십중대계, 『범망경』 십중대계(十重大戒) 설헐 때 바로 심지법문(心地法門)을 설해 버렸거든, 부처님께서. 계(戒)를 설할 때 계가 그대로가 십중대계가 그대로가 그만 심지법문 활구법문(活句法門)이여. 그렇게 막 다루아 버렸는데 막 가르켜 버렸는데, 뭔 계종(戒宗)이 따로 생겨나? 계만, 그놈 계만, 술 안 먹고, 담배 안 먹고, 고기 안 먹고, 무슨 술 안 먹고, 무슨 계집질 여편네 않고, 뭐 전부 그만 계만 닦을 것 같으면은 그거 인천 과보(人天果報) 밖에는 못 받는 것인데. 인천 과보만 받아 가지고 복(福) 다하면 떨어진 놈의 거, 그것이 어디 구경법(究竟法)인가? 그 어디 심지법(心地法)인가? 그게 어디 참선법인가? 허니 그 참선을 막 해 나가는 것이 그것이 그대로 그대로 계(戒)여. 그대로 학자계, 본분계(本分戒). 늘 말하는 거, 이거여. 이걸 내가 여의고 헐 것이 어디 있나?
그저 화두 하나, 날마다 화두(話頭) 하나 매(昧)하지 않고 거각(擧却) 잘 해서 의단독로(疑團獨露)만 갖추면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요놈 하나만 참 분명허게, 전념(前念)이 없어지기 전에 후념(後念)이 일어나서 판치생모가 또 일어나고, 알 수 없는 놈이 또 일어나서, 뒤를 자꾸 물방울 똑똑똑똑 떨어지듯기, 시계 딸깍딸깍딸깍 가듯기, 요렇게 연속부절(連續不絶)을 혀. 항상 속(續)을, 후념(後念)을 속(續)해. 이어. 그렇게 해 들어갈 것 같으면은 그 뭐 거가 모양다리도 없고, 해 봤자 해 논 것도 없고, 뭐 나무 쟁이듯기 쟁여 놓은 것도 없고 아무것도 없다마는, 그 알 수 없는 의단(疑團) 그놈 독로(獨露)해 나가는 데 가서 그 무서운 기가 맥힌 신심(信心)과 분심(憤心)이 생기고 의단이 독로허고, 거기에는 그만 계정혜(戒定慧) 삼학(三學)이 모도 갖추어져 있고, 일체 팔만사천 계행(戒行)이 거기에 그대로 갖추어져 있고. 파(破)하고 범(犯)할 것도 없고, 계상(戒相)도 없이—밤낮 내 이 소리 허지 않어? 의단(疑團)만 갖춰. 알 수 없구나.
천담만설(千談萬說)과 일체백가(一切百家), 별놈의 그 망상번뇌와 그 무슨 이(理)와 사(事)와 별놈의 경계가 거가서는 안 녹아질 수 없고, 안 없어질 수 없고, 그놈은 다 물러가는 것이여. 제대로 물러가 버리는 것이여. 물러갈 것이나 무엇이 있나? 있어야 물러가지. 판치생모 하나만 거각(擧却)해 봐라. 뭐가 있는가? 없는 그곳에 가서 무상(無相)인들 붙어 있나? 그러니 그 그대로가 계행, 근본계행 아닌가? 본분계행(本分戒行) 아닌가? 이렇게 닦아 나갈 것 같으면은 그게 본분학자(本分學者)여.
공부를 짓되 불가재고인공안상복탁(不可在古人公案上卜度)이다. 고인공안상(古人公案上)에 가서 복탁(卜度)하지 말아라. 공안에 가서 점(占)허지 마라. 점치지 마라. '요런 것인가, 저런 것인가?' 그런 짓 허지 말아라. 그 알 수 없는 뜻만 하나 챙기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조주 스님 뜻, 어째서 조주 스님.. 조사서래의가, 판치생모가 그 뭐 '어째 판때기 이빨에 털 났다 했나?' 말이여. ‘어째서 판때기 이빨에 털 났다 했는고?’
그 망가해석(妄加解釋)이다. 해석을 더허지 말아라. 내가 헌 놈 또 허는 것이여. 어저께 헌 놈 또 허는 것이여. 해석허지 말어라. 망령되이 해석허지 말아라. 이 공부허는 사람에게 제일 긴요헌 법문이여. 그 해석과.. 도저히 이건 말아라. 점쟁이 점치는 것 같이, '그 무슨 뜻인가?' 그 이상스럽게 모도 그 따지는 거, 분석하는 거. 일일영해득과(一一領解得過)라도, 낱낱이 그렇게 해석을 해서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뭣이다'고 이치를 붙여서 알아 놓드래도, 여자기(與自己)로는 몰교섭(沒交涉)이다. 제 생사(生死)로는 교섭헐 수 없다. 어저께 여까장 헌 걸 내가 도로 헌다 그 말이여.
자, 그다음에 인자 그 공안에 나아가서 무슨.. 자! 어떤 건 제일구(第一句)다, 어떤 건 제이구(第二句)다, 어떤 건 제삼구(第三句)다, 요런 것을 모도 그 학자가 모도 따지는 분별허는 걸 따라서 그런 것을 다 고인(古人)네가 갈라서 말을 해 놓았다 그 말이여. 상신실명(喪身失命)에 대해서는 뭐라고 했는고 하니, 어떤 게 상신실명? 상신실명이... ‘제일구(第一句)는 상신실명’이라고 했거든. 제일구는.
그 제일구(第一句) 상신실명(喪身失命)이라는 게 뭔 소리여? 상신(喪身)은 '몸뚱이 죽는다'는 말이고, 실명(失命)은 '명 잃는다'는 말인디. 명 잃는 것 다르고, 몸뚱이 죽는 것 다른가? 그 왜 둘을 말해 놓았어? ‘상신(喪身)이니 실명(失命)이여’ 왜 그래 놨어? 그것 제일구가, ‘그 제일구니 양구(良久) · 방(棒) · 할(喝)이니라’ 해 놨는디. 양구(良久) 아니면 방(棒) 아니면 할(喝)이란 말이여. 아! 이래 놓았는디. 왜 그래 놓았어?
그러면 제이귀(第二句)는 미개구착(未開口錯)이다. 입 열기 전에 그르쳤다. 벌써 ‘입 열기 전에 그르쳤다’ 하는 놈이 하나가 그 붙어 있다든지, 그러헌 소견을 갖다 거다 멈춘다든지, 그거 어떻게 될 것이여? 뭣 될 것이여? 중생 어디 그 애착에 집착한, 무슨 여편네한테 집착했거나, 자식한테 집착해 가지고, 그거 애집(愛執)이나 똑같지 뭐. 미개구착(未開口錯)에 집(執)허나, 자식한테 애착하나, 여편네한테 애착하나, 뭐 뭐 똑같지 뭐 다를 게 뭐 있나? 제이귀(第二句) 미개구착(未開口錯)은 무엇이여? 숭악한 놈의 소리, 제이귀(第二句) 입 열기 전에 그르쳤다는 게 뭣이여?
제삼구(第三句)는 분기소추(糞箕掃箒)다. 제삼구(第三句)는 빗자루로 똥을 쓴 것이다. 왼통 빗자루에 똥 묻고, 마당 그 똥자루에 똥 처묻고, 그 똥 천지네? 그런 더러운 것 천지다 그 말이여. 요렇게 모도 그 학자들한테, 따지는 분석허는 학자들한테 그 모도 말해 주는 것이지, 본분학자(本分學者)에게야 어디 그런 거 뭐 있나? 뭐 그런 것이 본분학자한테 있어? 막 갖추어서 들어가는 본분학자, 바로 깨달라 버렸으면은 뭐 부처인들 그 앞에 가서 본분학자의 방(棒)을 어떻게 면(免)혀? 부처님이 본분학자 방(棒)을 면할 수 있나? 어떤 것이 본분학자의 방(棒)인가 말이여?
깨닫지 못했으면은 알 수 없는 의단독로(疑團獨露)해 나가는 것이 그게 활구학자(活句學者)여. 그 바로 본분학자 되어갈 활구학자여. 확철대오(廓徹大悟)헐 학자다 그 말이여. 이렇게 들어갈 것 같으면은 발심(發心)한 그날부터, 바로 믿고 닦아 나간 그날부터 분심뿐이요, 신심뿐이요, 분심뿐이요, 의단독로뿐이니, 하우하희(何憂何喜)냐? 뭐 즐거울 것이 뭐 있으며, 근심헐 것이 무엇이 있느냐? 늦게 왔다는 한탄할 것이 무엇이 있느냐? 늦게 들어온 걸 한탄하면 뭣하냐? 오늘을 와서 해서 이렇게 신심 학자, 분심 학자, 의단 학자가 되어 버렸으면 그뿐이지, 다시 다시 여기에 더 족할 게 뭐 있어? 뭘 근심허고 무엇을 기꺼허고 헐 것이 있어?
그러헌 무슨 조금이라도 분석선(分析禪), 해석선(解釋禪), '안 된다, 된다' 요렇게 무슨 따짐서 어쩜서 그런 참선은 그건 자기(自己)로 몰교섭(沒交涉)이여. 생사(生死)를 면(免)허는 디는 아무 소용없어.
고인(古人)의 일어일언(一語一言)이, 고인의 한 말씀과 한 말씀이 그것이 무엇이여? 생사 없는 해탈법(解脫法), 생사 없는.. 생사가 없는디 무슨 놈의 해탈인가? 해탈도 없는 법이지. 바로 견성성불법이여.
공부인은, 참으로 참선허는 학자는 불가심문축구(不可尋文逐句)여. 가히 문(文)을 찾고 구(句)를 찾지 말아라. 문(文) 찾고 구(句) 찾아? 무슨 책 속을 더듬어? 책참선이여? 뭔 놈의 책참선을 혀? 참선허는 학자가. 교외(敎外)에 별전학(別傳學)인디, 교(敎)밖에 별전학을 따악 화두(話頭) 하나 들고 나가. 화두 하나 그것 하나뿐이다! 다시 아무것도 없다. 판치생모 하나뿐, 천하에 보배다. 내가 나 깨달을 보배, 내가 나 찾는 보배, 이게 해탈 보배요, 생사 없는 보배다. 이놈을 해 나가는구나.
무슨 놈의 책장을 더듬어서 고인(古人)의 뭐 말해 논 걸 봐, 뭣혀? 고인 맘 아무리 해 놨다 한들 고인의 말에 말에 붙어 있나, 생사해탈법이? 내게 갖추어져 있는데. 뭐 뭐 업력(業力)도 죄지은 것도 부처님도 대신 못허고 천하에 대신할 사람이 없는데, 내가 나 깨닫는 법을 부처님이 깨달라 주어? 부처님이 어떻게 깨달라 주어? 제 일 제가 하는 거지. 이렇게 학자가 되어 가지고 그 공안.
참선(參禪)은 수투조사관(須透祖師關)이다. 참선은 조사관을 뚫는 것이다. 조사관(祖師關) 탁! 깨닫는 것이여. 알다니, 뭘 알아? 탁! 깨달라 놓으면은 묘오(妙悟)인디, 묘오에 가서는 심로(心路)가 없어. 그 심로(心路)라는 건 마음 길—그저 이 생각 저 생각, 저 생각 이 생각 그저 육근문두(六根門頭)에서 퍼 일어나는 중생 번뇌망상, 그놈이 없어. 그러면 아무것도 없으면은 중생의 그 육식(六識)이 다 없으면은, 아! 저 냉기나 돌이나 무정(無情) 같지, 그 뭐 있나? 아무것도 없겄네? 응, 그런 거 아니여.
확! 깨달라서 중생 심로(心路)는 끊어졌는데 그 경계가 전부가 밥 먹자, 옷 입자, 중생(衆生) 그대로 범부(凡夫) 그대로 그놈 깨달랐지마는, 깨달은 그 각경계(覺境界)에서 중생 경계 그놈이 낱낱이 묘용가풍(妙用家風), 묘용 인자 가풍이여. 그놈이 심로 끊어진, 묘오(妙悟)는 심로(心路) 끊어진 도리여. 없어. 쓰되 없어. 밥 먹자, 안 허는 게 아니여. 밥 먹자, 옷 입자, 가자, 오자, 그놈이 생사 없는 도리 그대로라. 이치가 그만 그대로 되어 버렸는디, 그놈을 또 이치가 그대로 못 되었으면 증(證)해야 되아. 각(覺)을 증(證)해 버릴 것 같으면은 중생의 그 억상분별(憶想分別)이 낱낱이 그만 그대로가 생사 없는 해탈법이여.
그 부처님은 왜 그렇게 깨달라 성불(成佛)해 가지고는 팔만사천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을 막 드리 설(說)했냐 말이여? 중생보담도 백배나 더 설했냐 그 말이여? 부처님은 원증묘각(圓證妙覺) 도리야, 그거. 원증묘각 속에서 그대로 설법해 논 거여. 그대로가 법(法)이여. 그놈 여의고 있는 거 아니여. 중생은 말로는 성불보담도 더 이상하게 했지마는 깨닫들 못했기 따문에, 근본무명(根本無明) 속에서 더군다나 제칠식(第七識) 제육근으로 죄업만 퍼 짓기 따문에 소용없어. 아무리 부처님이 묘해탈(妙解脫) 경계라도 중생은 망식(妄識)이여, 망법(妄法)이여. 개시망법(皆是妄法) 망담(妄談)이여.
이러헌 절대, 학자가 대학자(大學者)가 화두 하나 이외에 공부한다 하면서 꺼떡허면 문(文)이나 찾고, 글 그 고인의 글이나 찾고, 축구(逐句) 뭐 글귀나 좋은 놈 보면 그 글귀 속에서 뭐 찾고. 그게 뭣이여? 고거 무슨 그런 게 뭐 학자냐 그 말이여? 기언기어(記言記語), 뭐 말이나 모도 요리조리 말해 가지고 이치나 붙여 놓고 부단무익(不但無益)이라. 다만 그 아무 이익도 없고 공연히 들어와서 허송만 하고 시은(施恩)만 녹여 버리고, 배암 개구락지 잡아먹듯기 산목숨이나 씹어 먹고 죄만 퍼 짓는 게지, 그 뭐여? 그거 뭐 아무 소용없는 것이다 그 말이여. 도학자라고 들어왔자 큰일난다.
다맛 알 수 없는 의단독로(疑團獨露)뿐이다.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노?’ 이것 참 기가 맥힌 간택법(揀擇法)이여. 간택이 없는디 진간택(眞揀擇)이여.
여공부(與工夫) 작장애(作障碍), 공부만 장애될 것이 아니여. 공부도 못헌 것뿐만 아니라 반여연려(返如緣慮)하야, 도리어 그만 들어와서 불법이나 비방 반대하고 정법을 도리어 그만—옛날에는 믿기나, 좀 듣고 그래도 아! 불법이나 어쩐가 했다가, 밑 근본까장 모두 박멸해 버려. '에잇! 그놈의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욕득심행처멸(欲得心行處滅)인대는, 그 심행처(心行處)가 멸(滅)해 버리고 아주 생사 없는 해탈정법을 바로 깨달을라거들란 기가득호(豈可得乎), 깨달을 도리는 기가득호(豈可得乎)아? 요래 가지고 어떻게 깨달을 수가 있겠느냐? 주의(注意) 주의라. 아! 크게 주의를 헐 것이니라. 박산무이(博山無異) 선사(禪師)의 설(說)이여.
이거 봐, 이렇게 모아 지내다가 여 학자들이 무엇을 못헐 것이여? 똥이 찼으면 똥 쳐다가 밭에 어따 내서 심어서 먹고, 밥헐 사람이 없으면 밥해서 같이 나눠 먹고, 불 땔 사람이 없으면 가서 불 때... '나는, 나는 헐 것 아니라'고 편안허니, 다른 사람 해준 것만 가만히 앉아서 얻어먹고 퍼 앉어서 제가 뭣 헌다고 앉아서, 인자 뭐 뭐 아직 나이도 무슨 뭐 60도 안되고 70도 안되었는데, 고러고 앉아서는 오독하니 얻어 퍼먹고만 앉아서 저는 무슨 제 장헌 체허고, 그것 다 소용없다 그 말이여. 확 벗어 놓고서는 막 같이 그저 애써서 같이같이 서로서로 이렇게 해 나가면서 낮으로는 그런 것 저런 것 다하고, 도량도 깨끗이 깨끗이 해 놓고, 밤정진도 좀 되게 해 제끼고.
아! 우리가 이래야 그 용맹정진 학자요, 고행 학자요. 도학자가 고행이지, 뭐 편안하고 투한(偸閒) 생활, 한가한 걸 도둑질.. 도둑질이나, 차라리 도둑질헌 것이 낫지, 무엇이여? 그것이. 그런 것을 밥을 멕여서 갖다 대중 중에다 두어? 아까와 못혀. 팍! 들입대 그만 막 닦아 나가야지. 행(行)해 나가야 하고.
아! 이건 이건 뭐 말세(末世)라고 그만 들어와서 머리 깎고 중이 되아 들어와 가지고는 그만 이놈 깡패들 돌아댕기면서 그만 인자 한 철 겨우 지낸다. 한 서너 달 떡 지내고는 그만 나가서는 돌아댕긴다. 한 철 겨우 지내, 한 철 지낼 동안에 화두(話頭)인가 무엇인가 한 번씩 생각하다가는, 화두가 그저 들렸다 말았다 망상 속에 그저 잠 속에 이럭저럭 지내다가, 해제(解制)만 지내면은 그만 걸망 하나 짊어지고는 돌아댕긴다.
사방 돌아댕기니 돌아댕기면서 산산수수(山山水水)에 다 팔려버리고 조금 그 자리잽힐라 말라 헌 것도 화두 어디 간 곳 온 곳 없고. 돌아댕기면서 모도 보고 듣고 모도 잡경계에 모도 이래 가지고는 돌아댕긴다, 산철에는. 그러다 또 철 살림에 와 앉어서 좀 또 허다가, 이것 되아? 어디 고인이 그랬어? 견성(見性)허드락까장 일어나는 법 없어. 한자리에서 10년 20년, 그저 부처님도 12년, 부처님 같은 어른이 다 그 후래(後來) 중생 모범으로 권행(權行)을 헌 거 아닌가? 달마선사도 구 세(九歲)를 가만히 그러고 앉아서 공부허신 것 좀 보란 말이여.
삥삥, 그만 뭐 모아서 떠억 공부헌다고 한 서너 달 허다가는 삥삥 돌아댕기는 것뿐이여. 그런 놈의 참선. 차라리 견성(見性)을 했으면은 인자 견성해 가지고 보림(保任)을 해 가지고 증(證)해 가지고 나와서 두타행(頭陀行)을 하는 것이여. 일체처에 불리지 않고, 천하경계에 뭐 조인중(稠人中)이라도 광중중(廣衆中)이라도 조금도 마음이 흩어지지 않고, 그대로 흩어진 법이 어디 있어? 일체 경계가 그 그대로인디. 그래 가지고 한번 두타행을 허는 것이여.
그 이외에 무엇으로 무슨 돌아댕기면서, 지랄허고 돌아댕기면서 사방 돈이나 뜯어 가지고는 시주것이나 모도 소비하고 그러고 돌아댕겨. 참! 나, 말을 허기도 그렇고, 그러나 저러나 그 안 헐 수도 없는 것이지. 맨 그뿐이니까. 지금 그렇게 말세에 그래 되아. 글안허면 그만 그 깡패 중 돌아댕기면서 그만 즈그들이 작당해 가지고서는 그만, 어디 가서 그만 어떤 주지한테 협박 공갈이나 쳐 가지고는 돈 뜯어 가지고 돌아댕기면서 그저 한잔 마시고, 그저 그 뭐 어디 가 한잔 마시기도 허고, 뭐 지랄도 다하고 이러고 댕긴다 그 말이여. 맨 이뿐이란 말이여. (처음~31분29초) (끝)
주공부(做工夫)허되, 공부를 참선을 허되, 불파사부득활(不怕死不得活)하고, 죽어 가지고 삶을 얻지 못할까 두려워허지 말라. 그 말은 무슨 말이냐 하면, 죽어 가지고 살지 못할까 두려워허지 말라. 한번 참 고비를 넘겨야 한다 그 말이여. 이 중생 지경을 중생 경계를 한번 여읠라면 죽어야, 한번 죽을 고비가 있어야 한다 그 말이여. 그런닥 해서 이 몸뚱이가 무슨 죽는 것은 아니지마는 한번 그런 공부를 넘겨야 할 것이니라.
그저 편안하고 안락하고 무슨 그런 좋은 경계, 그럭저럭 좀 해보다가—넘 허니께 좀 해 보고, 넘 장에 가니께 좀 나도 장에 가 보고, 그러헌 식으로 해서는 안 된다. 철저히, 죽어 가지고 살지 못할까 두려워허지 마라. 한번 그러헌 고비가 있어야 하리라. 그저 오늘 이럭저럭 좀 허다 말다 이리 끌리고 저리 끌리고, 이 중생 세계에서 이 중생의 애집(愛執) 속에서 그거 뭐 참선 좀 해 본다고 혀? 그거.
지파활부득사(只怕活不得死)니라. 다맛 살아 가지고 죽음을 얻지 못하는 것을 두려워해라. 한번 죽는 지경 있는 것을, 살아 가지고 죽을 지경 한번 당한 것을 그것을 원해라 그 말이여. 그런 고비, 무척 중대한 그 고비 넘기기를 요구할 것이다 그 말이여. 어디 이럭저럭 해 가지고 되나? 안 되거든. 그 용맹심(勇猛心)도 한량이 없고, 신심(信心)도 한량이 없고, 분심(憤心)도 양이 없으니, 내 한량없는 신심, 갓없는 그 분심을 좀 내서 한번 고비를 넘겨라.
과여의정(果與疑情)으로, 과연 의정(疑情)으로 더불어서—맨 의심(疑心)뿐이여. 이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은 의심뿐이여. 의심 없으면 그건 선(禪)도 뭣도 아무것도 아니여. 그러면 그 의심은 따지는 데는 의심이 없어. 요리 따지고 저리 따지고 분석허고 아는 것이 있고, 뭐 떼고 붙일 거 있으면 의심이 아니여. 의심 속에는 그런 것이 없어. 따지고 무슨 뭐 분석허고 해석허고 알고 뭐 그런 것이 붙어 있지를 않어. 다맛 알 수 없는 '이뭣고?'뿐이다.
'이뭣고?' 하나, 그놈 하나 가지고 그만 참 그 의단(疑團)을 하나 가지고 더불어서 시결재일처(厮結在一處)허면은, 그놈을 그 다루어서 잡드리해서 일처(一處)에다가 따악 두어. 단전(丹田), 배꼽 밑에 단전, 그 일처에다 딱 두고서는 알 수 없는 의단 뭉테기가 그 뭐 어디 뭐 파(破)해지나? 항상 알 수 없는 놈 하나뿐이지. 그 아는 놈은 아닌디 뭐. 그 지(知) 자를 붙여 봤자 소용없는디 뭐. 부지(不知)도 소용없는디 뭐 뭐 거기다 뭘 붙일까 보냐? 알 수 없는 놈 하나뿐이다.
동경(動境)은 부대견이자견(不待遣而自遣)이다. 그 그렇게 화두만 일처(一處)에다가 딱 두고 온당하게 이렇게 의단(疑團)을 갖추어 지어 들어갈 것 같으면은, 동경(動境)은 없어지기를 기다리지 아니해도 스스로 간다. 무슨 놈의 동경이, 그 뭘 나를 동(動)하게 만드는 시끄럽게 만드는 외경(外境)이 들어올 것이 없어. 바깥 경계가 들어올 것이 하나도 없어. 아무리 밖에서 별 요동을 다 한들 들어올 것이 없어. 똑 내 다잽이허는 디, 의단 하나 다잽이허는 디 가서 그렇게도 도무지 힘이 있어. 천하 없는 동경(動境)이 나를 그 끄집어... 나를 끄집지 못해. 나를 동(動)허게 못혀.
망심(妄心)이 부대정이자정(不待淨而自淨)이다. 망령된 마음이, 망상심이 없앨라고 안 해도 절로 거기서 없어지는 거여. 화두를 그렇게 해 보란 말이여. 의단만 착 갖추어 나갈 것 같으면, 항상 알 수 없는 놈만 또 거각(擧却)하고, 또 알 수 없는 의단 의정이 그놈이 없어지기 전에 또 뒤에 연속해 붙여서 또 일으키고 또 일으키고, 한 번 혀 두 번 혀, 천념만념(千念萬念) 그놈만 자꾸 그저 거각(擧却)해 나간다 말이여. 망심(妄心)이 뭐 어디가 뭐 망념을 없앨라고 하니 공연히 망심이 있지, 뭔 망심이 거그 들어오나? 그 망심(妄心)이 어디 붙어 있을 것이냐 말이여? 이렇게 되어 가는 것이여, 화두라는 것이.
육근문두(六根門頭)가 자연허활활지(自然虛豁豁地)해야, 그렇게 될 것 같으면은, 화두만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면은 육근문두(六根門頭)가, 이 내 몸뚱이에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육근문(六根門)이 허(虛) 비어서 활활(豁豁)해서 아무것도 없으니까, 눈으로 보는 놈이 아무리 봐서 무슨 뭐 경계가 있다한들 그 경계에 뭐 뭐 뭣이 있나? 안 보는 건 아니여. 봐서 경계는 뵈인닥한들 거기에 무슨 어사(於事)에 무심(無心)이지. 아무 무엇이 그 붙을 것이 걸릴 것이 없어. 귀에 들린들 귀에 들리는 것이 무엇이 거기에 걸리며, 쎄(혀)로 맛본들 맛에 가서 무엇이 걸리며, 육근문두에 걸릴 것 하나도 없이 비어서 활활(豁豁)허다. 점착즉도(點着卽到)허고, 점착(點着)하면 그만 부딪치면 곧 이른다. 그렇게 의단(疑團)만 독로(獨露)헐 것 같으면은 그 모도 부딪치는 곳이 곧 이르는 곳이다.
양춘탄일곡(陽春彈一曲)이요. 양춘(陽春)에 거문고를 탄다. 거문고를 탄, 거문고 곡조가 다른 가풍이 아니여. 다른 도리가 아니여. 그 바로가 바로 그 탄일곡(彈一曲) 그 거문고 곡조 “등 등” 나는 그놈이 해탈곡(解脫曲)이요, 그 생사 없는 곡(曲)이요, 그게 그 견성성불 도리란 말이여. 송월만창시(松月滿窓時)다. 솔 달이 올라와서 창에 가득헌 때, 그거 거 다 그 무슨 다른 도리인가? 비타(非他), 비타물(非他物), 다른 도리 아니여. 모도 자개도리(這箇道理)다.
개창견정수(開窓見庭樹)요. 문을 열매 정수(庭樹)를 본다. 문을 척 열면 저 정수(庭樹)가 모도, 나무가 모도 있다. 그것도 다른 도리인가? 그게 모도 무비해탈도리(無非解脫道理)요, 무비견성도리(無非見性道理)요, 아! 무슨 뭐 다른 것이 뭐가 있나? 만엽일추성(萬葉一秋聲)이니라. 일만 이파리가 냉기에서 일만 잎사귀가 그 모도 달려서 바람이 불면 드리 뒤흔들거리는 소리가 우쉬쉬 나는 놈이, 아! 그놈이 모도 한 가을 소리, 가을 소리 그 그 도리가 시(是)라. 뭐 다른 도리가 어디 있나? 이렇게 호착즉응(呼着卽應)이요, 부르면 바로 응하고. 하수불활야(何愁不活也)냐, 뭐 살지 못할까 근심할 것이 무엇이 있느냐? 확철대오(廓徹大悟)가 거 있을 것이다.
의단독로(疑團獨露)만 갖춰 나가 봐라. 의단독로헌 지경, 그 여지없이 철두철미헌 지경, 곧 죽어 가지고 살지 못헐까 두려워하지 말아라. 한번 그 지경을 가 보아라. 화두가 타성일편(打成一片) 지경 한번 가 봐라. 한 덩어리 꼭 되어 가지고는 의단독로 지경 한번 가 봐라. 한번 깨달을 지경이 없는가 있는가 보란 말이여. 확철대오가 없을까 염려 말라 말이여.
공부를 짓되, 또 공부를 허되 거기화두시(擧起話頭時)에, 화두를 들어 일으킬 때, '이뭣고?' 한다든지, '판치생모(板齒生毛)' 한다든지, '판치생모'라든지, 그 내 본참화두(本參話頭)를 들어 일으킬 때에, 요역력명명(要歷歷明明)해야, 역력(歷歷)하고 명명(明明)헌 것을 요구해라. 깨끗해서 일체 잡념이 흐리헌 잡념이 거기 안개 끼이듯기, 산에 안개가 끼어서 산인지 돌인지 냉기인지 분간 없이 흐리헌 그러헌 경계가 없이 해라. 깨끗이 아주 맑은 가을 하날 안개 한 점 없이 확 벗겨져서 깨끗헌 추천(秋天)같이 그렇게 한번 해라. 그래서 여묘포서상사(如猫捕鼠相似)다. 괴양이란 놈이 쥐 잡듯기 똑 할 것이다.
고소위(古所謂), 고인이 이르되 불참이노(不斬黧奴)면은 서불휴(誓不休)니라. 고인이 이르기를 이노(黧奴)를 베지 못허면은 맹세코 쉬지 않는다. 이노(黧奴)를 베지 못한 것은 항상 화두가 침미(沈迷)해서, 망상 번뇌 속에 있어서,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지 않고 깨닫지 못하고 늘 흐리헌 그렇게 되어 있을 것 같으면은 맹세코 쉬지 말고 화두를 맹렬히 역력명명(歷歷明明)허게 자꾸 잡드리를 해 나가거라. 이게 공부허는 법이다.
안 된다고, 흐리해서 안 된다고, 의심 안 난다고 내던져 버리고 어떻게 헐래? 그렇게 안 되면은 안 된다고 참선 안 해 버리면 어떻게 헐 테냐? 무량 만겁(萬劫)을 백천만겁(百千萬劫)이나 생사죄에 빠져서 생사죄업(生死罪業)만 받을 터이니 어떻게 할라고 그래? 안 헐 것이 따로 있고, 허다 말 것이 따로 있지, 참선을 허다가서 내던져 버리고 말 것이냐? 그런 법 없다. 안 될수록에 허는 법이고, 더 철저허게 신심을 갖추어라. 서불휴(誓不休)니라. 맹세코 쉰 법이 없고 퇴타(退墮)하는 법이 없느니라.
불연즉좌재귀굴리(不然則坐在鬼窟裏)해야, 만약 그렇지 못헐 것 같으면은 귀신 굴속에 들어앉아서 혼혼침침(昏昏沈沈)해서, 공부도 좀 헐까 말까, 그저 허다 말다가, 좀 해볼까 하다, 공연히 참선헌다고 선방에 와 앉아서 귀굴(鬼窟) 속에 앉아서 잠도 아니요, 망상도 아니요, 무슨 번뇌도 아니요, 그럭저럭 앉으면은 자고. 혼혼(昏昏)허니 침침(沈沈)허니 이렇게 있어서 과료일생(過了一生), 일생을 과료(過了)혀? 헛되이 지내버려?
후(後)를 여하(如何)오? 만약 이렇게 지내다가는 뒤에 어떻게 할 테냐? 이후는 어떻게 헐 테여? 이 몸, 이 몸 내버린 뒤에 이까짓 몸뚱이 가지고 있든 거 이것 뭐, 뭐 언제 내 몸뚱이인가 싶어. 내던져 버리고 돌아가는 날, 귀하처(歸何處) 어디 가서 어떻게 처백혀서 그 지은 죄업 업신(業身)을 어떻게 헐 테냐 말이여?
날마다 이렇게 단속을 해 나가기를 부탁하고 법문을 마쳐. 뭐 쪼끔씩 그저... (처음~16분47초) (끝)
마상공명(馬上功名)도 부득한(不得閑)이다. 마상(馬上)에서 공명(功名)을 허고 아무리 높은 지위 권리를 다 가지고 참 경북 경남허는 세력을 가졌다마는 한(閑)이 아니여. 아무 한가함이 없어. 그 다사분주(多事奔走)허고 벼슬허고 부귀영화(富貴榮華) 한 것이 그놈의 것이 한(閑)이 아니여. 복잡다단혀, 인생사가.
그것 해봐. 그 뭐 아무리 헌다한들 사십이 못 되아서 얼굴만 가죽살이 사방 쭈글쭈글해지면서 노쇠해서 늙어서 그만 다리도 삐뚤어지고, 눈도 틀어져 번지고, 고개도 모도 뒤로 자빠져 번지고, 등도 굽고, 팔도 모도 이상스레 돌아가고, 다리도 쩔름쩔름허고, 이래 되아 버리는 것이다. 아무리 공명(功名)이 좋다한들 그것이 사십도 못 되아 그 지경 된다.
고향만리추천원(故鄕萬里秋天遠)이다. 그거 뭐 그래 가지고는 그거 무슨 뭐 그 몸뚱이 내던져 번지고, 고향이고 무엇이고 다 내던져 번지고 추천(秋天)만 멀어져. 어디로 갈는지 부지거처(不知去處)여. 갈 곳을 알 수 있나? 어디로 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 길이여? 인생사가. 이걸 한번 생각해 보지. 무엇을 해야겄는가? 꼭 그 내 본래(本來)의 내 본래 몸뚱이, 늙지 않고 죽지 않고 그 본래 갖춰져 있는 아! 그 몸뚱이, 그 내 아신(我身)을 반다시 찾아야 할 거 아닌가?
일발청산낙조간(一髮靑山落照間)이다. 한번 머리를 깎고 중이 되아서 도 닦는 것도 낙조(落照) 사이다. 그것도 잠깐 동안이니 그 잠깐 동안이라도 도문(道門)에 들어와서 도(道)를 닦거들랑 잘해라. 어떻게 해야 잘허는 것이냐? 참! 그것 거 말만 '헌다 헌다' 하고 그러지를 말고 실참(實參), 실질로 한바탕 해봐야겠다. 맨 그 소리지 뭐. 천 번 만 번 우리 부처님 49년 설법이 모도 그거지. '거 중생들 어서 어쨌든지 발심출가(發心出家)해서 도 닦아라'
주공부(做工夫)허되, 공부를 짓되—참선(參禪)허되, 참선이여! 요중정경정(要中正勁挺)이다. 중정(中正)과 경정(勁挺)을 요구하는 것이다. 중정(中正)은 '가운데 중(中)' 자, '굳셀 정(正)' 자, 아주 중정해야 되아. 여지없이 한번 참선을 믿고 참선을 허거들랑 타락 변태 없이 그 한번 그 믿으면은 믿음이 그만 좀 먹어서는 못써. 중간에 그만 퇴타해서는 못쓴다 말이여. 그밖에는 없으니 어쩌다가 정법(正法)을 내가 들어 가지고 믿었냐 말이다. 참 기가 맥히지. 그 정법 한번 믿어 가지고, '이뭣고?' 찾는 법, 그대로 견성(見性)해서 전해 준 우리 부처님의 정법, 그밖에 더 있어? 뭔 교를, 교외(敎外)에 별전선지(別傳禪旨)라고 했지, 교전(敎傳)이라고 어디 어디 있나? 교전 없어. 참선(參禪) 전(傳)하는 것이 교(敎)여. 참선허라는 것이 교(敎)여.
그 참선허라는 것이 교(敎)인디, 뭐 교(敎)를 따로 전헌 디가 어디 있어? 또 어디 계행(戒行)을 따로 전한 디가 있나? 계(戒)만 닦아 뭣혀? 계(戒)만 닦아서 뭣 할 것인가 말이여. 꼭 참선을 해사 그대로 계(戒)가 닦아지지. 참선허는 법이 그대로 계(戒)인디, 참선은 계(戒)가 저절로 따라 있어. 참선법은 그 어디 계(戒) 없이 되나? 그대로 계(戒)인디. 참선해 나가는 것이 계(戒)인디, 따로 무슨 계를 지켜? 참선허면은 그만 계(戒)다.
대승계, 범망경 십중대계, 아침에 예불 저수는 계(戒), 딱! 내가 옳게 해 놓았지. 요렇게 해 나가야 되아. 이대로가 그만 기가 맥힌 진짜 기도고, 불법이고, 참선법이고, 일체업이 갖춰진 아! 이 참선법이여. 아침마당 모아서 이렇게 떠억 십악참(十惡懺) 기도 모시고, 법문 듣고, 아! 참선해 나가는 것이여. 이게 부처님 우리 정법 닦아 나가는 본법이여.
그러니 턱 그만 불교거들란 불법이거들란, 불법(佛法)답게 부처님 정법답게 해 나가야 할 텐디, 아! 이건 중앙에다가서 척! 그만 참선 선원(禪院)부텀 척 만들고, 조계사를 선방도량(禪房道場) 탁 맨들어 가지고는 거다가서 또 그 가르켜야 할 것이니까, 교당(敎堂) 하나 저 강당(講堂) 하나 만들고, 두 가지 맨들어 놓고 내 넉넉허지 그 터에다가. 척! 그 해놓고설랑은, 대교(大敎)까장—처음에 중 되면은 사미과(沙彌科) 해서 사집과(四集科) 해서 그다음에 사교과(四敎科)로 해서, 대교과(大敎科) 터억 가르켜 가지고는 대교 마치면은 사교입선(捨敎入禪)허고, 교는 놓아버리고 참선방에 척 들어와서 5안거(五安居) 응, 5안거는 해야 혀. 안거 턱! 시켜 가지고는 그때 가서는 포교사 자격은 포교사로 내보내고, 또 절대 그만 재입임만(再入林巒), 다시 산에 들어가서, 5안거를 했지마는 산에 들어가서 어디 혼자 가서 어디 조용헌 처소에 가서 입정(入定)허고 그만 도를 닦을라는 사람은 또 그렇게 해주지. 그렇게 해주고.
아 이렇게 따악 순서(順序)이 순서적으로 이렇게 해 나갈 것 같으면은, 강당에서 사미과 · 사집과 · 사교과 · 대교과를 마쳤으니 그 중의 행동이 원만하고, 또 참선방에 들어와서 5안거를 했으니 그 자격이 훌륭허고, 그래 가지고 나올 것 같으면은 어디 가서 있든지 그 문풍(門風)이 진동헐 것이고, 가르켜 나가는 게 질서정연할 것이고, 아 참! 스님답고, 선사(禪師)답고, 기가 맥힐 것이다 그 말이여. 이건 하나 허지 않고, 맨 지방에 모두 각 조그만한 사찰 사찰에 그 돈, 모도 그 분배금 모도 거둬다가서는 중앙에서 뭣허고 다 소비해 버리고 빚만 자꾸 지냐 그 말이여. 이게 종단이여 뭣이여? 뭔 말라빠진 것이여? 이것이. 암만 말 안 헐라고 해도 내 한 말헌다 그 말이여.
지금 종회(宗會)니, 그렇게 무슨 종회 안을 어떻게 해다 놓은, '인자는 종회도 그만 두어 번지고, 대본산 30본산도 그만두어 번지고 다시 새로 모도 맨들자. 꾸며 다시 꾸며서 맨들자' 어쩌고 허니, 거기에다가 어떻게 좋은 안(案)을 내달라고 하니, 좋은 안이 뭣이여? 내 안은 나는 이뿐이여. 첫째, 선종(禪宗) 사찰 맨들어 가지고는 거기에 가리키는 강당(講堂) 만들어 가지고 그렇게 떡 해 가지고서는 자격을 떡 맨들아 내놓을 것 같으면 가나오나 어디든지 가면은 스님답고 행동답고. 이것 마구잽이 그만 그저 엊그저께 온 사람도 사미과니 뭣이니 사집과니 대교과는 그만두고, 뭐 세상에서 대학을 졸업했다한들 뭣혀? 어디 불교에서는 택이나 당한가? 모도 세상에서 익힌 것밖에 없지. 세상에서 학교나 댕기면서 뭐 세상사 익혀 논 건 뭣이여? 그저 절에 들어와서 그 행동을 다 배워 가지고서는 척 나서 놓으면은 참 정연허지.
아! 그것부텀 어떻게 만들어야 되는 것이지. 자격자부텀 맨들어야 되는 것이지. 마구잽이 그만 주먹치기나 하고 깡패 행동이나 헌 걸 막 그만 「정화(淨化)」해 머리 깎아서 중을 맨들어 놓으니, 그만 가고 오는 전체 행동이 다 삐뚤어지고 하나도 올바르지 못혀. 가도 어디 처억 화두를 들고 가는 경행(經行)도 하나도 없고, 그저 고갯짓을 사방 위로 알로, 종횡(縱橫) 묘유(卯酉)로 막 드리 허고 돌아댕기니, 세상사람들이 뽄볼 거 있어야지. '저거 비구승이냐?'고 야단들이지. 그 세상에서 치고 패고 허든 그런 짓이나 해 가지고는 잘해주느니 잘 못해주느니 모도 그만 방바닥을 파느니, 뭐래. 아! 이거 되겄냐 그말이여. 이거 이래 되아?
이걸 한바탕 어떻게 좀 조직적으로 해 나가야 헐 텐디, 지금 종회라고 헌들 무슨 종회를 어떻게 헌지 모르지. 날 보고 무슨 안을 써서 좀 해 달라고. 내 이런 말밖에 헌 일 없어. '이래야 될 것이다'
중정경정(中正勁挺)하야, 중(中)으로 경정중정(勁挺中正)해서 불퇴전(不退轉), 퇴전치 아니헐 그 자격이 여기서 나온다 그 말이여. 대교(大敎) 졸업허고 그다음에 5안거(五安居) 헌 뒤에 참선학자가 되드래도 인자 그때 가서 정식 학자가 되아.
불근인정(不近人情)이다. 인정에 끌리들 말아라. 참선허는 학자가, 정법 믿는 학자가 인정(人情)에 끌려서는 안 된다. 그놈의 인정(人情), 인정이라 하는 것이 그게 애정(愛情), '사랑 애(愛)' 자 애정, 인정 거지반 같은 것인디, 인정은 좀더 광범하고, 애정! 애정은 내 가족들 모도 '사랑 애(愛)' 자 애정, 그다음에는 모도 또 친구 반연(攀緣) 모도 인정. 요놈의 인정에 끌려? 학자가? 도(道) 닦는 도학자(道學者)가 인정에나 끌려서 그 인정에 끌려 말 것인가? 자식이 하도 예쁘고 사랑하니까 고놈 들여다보다가 말 것인가? 남편이 제일 좋으니까 남편 그러면 들여다보다가 말 것인가?
어림도 없는 짓이여. 애(愛)를 끊고 애착(愛着)을 끊고 출가해서 도(道) 닦아란 말이여. 도를 안 할 것이여? 다 안 해도 괜찮아, 도(道)는 안 해서는 안 되아. 뭐 천담만담(千談萬談) 소용없어. 왕궁, 그 무엇이여? 정반왕위, 정반왕위(淨飯王位)를 들여다보고 우리 부처님이 계셨드라면은 어찌될 뻔 했어? 확 한번 끊어 버리고 설산(雪山) 들어와서 그 애착 끊어 버린 것이 어때? 조복(朝服)을 벗어 번지고 머리를 착 깎아서 궁성(宮城)에 돌려보내니까 그만 야수다라 부인은 앙천대곡(仰天大哭)을 했고, 정반왕은 낙담(落膽)이 떨어져서, 어쨌냐 말이여? 그렇게 인정을 사정없이 끊어 베 번지시고 터억 견성성불(見性成佛)을 했다.
견성성불을 해 가지고, 당신만 견성성불을 해 가지고 그만 그 견성성불의 복락(福樂)을 혼자만—그 복락이, 그놈이 견성성불한 복락이 어떠헌가? 생로병사(生老病死)가 거 붙어 있나? 무슨 그 무엇이 고(苦)가 거기 있나? 그 견성성불이라니! 마음속에서 내가 내 면목(面目)에서 그러헌 복락이 해탈복락이 있다 그 말이여. 그 내 어디가 뭐 다시 무슨 뭐, 병들어 죽는 것이 있어야지. 아정락이여. 그게 생사(生死) 없는 아정락이여. 내 마음에 있어. 내게 있어. 그지만 '나'여! 그놈이. 보들 못했으니 깨닫들 못했으니 이 지경을 허고 있거든. 그저 일어나는 마음, 번뇌 마음, 그저 산란 마음, 애정 마음, 뒤끓는 놈, 이놈 뒤끓는 놈, 이놈의 그 고(苦) 받니라고 몸뚱이 늙어 아파 죽는 것보담 더 헌다. 심(心), 그 마음 그 괴로운 고(苦)가. 일어나는 마음 그 여러 가지 그놈에 죽을 지경이여.
중정경정(中正勁挺)해서 그 인정에 끌리들 말어라. 중정(中正)이라는 것은 다시는 그만이여. 한번 믿었으면 불(佛) 되아 버리는 것이고, 견성해 버리는 것이지, 퇴타(退墮)가 없는 것을 중정경정(中正勁挺)이라 햐. 알아듣기 쉽게 말하자면. 누가 말긴다고 안 허며, 천하에 보배를 다 준다고—참선 안 허고 내 말 들으면 천하 보배를 다 준다고 허면은 참선 내번지고 그래 인정에 끌려가? 그것이 도(道)여?
못된 사견 학자(邪見學者)라는 것은 들어오면 벌써 사견을 장만해 가지고는 고약하지 그거. 사견 같이 못쓸 것은 없어. 뭐 보이는 거, 뭐 제 소견 가지고 '알았다'고 '견성했다'고 주뎅이 벌릴라 햐? 어디서? 어디라고? 제가 제 지견(知見) 다 아는 것이여. 그 몰라? 알면서 그따구 짓 허거든. 그런 그 못된 행동을 헌다 그 말이여. 일시의 무슨 뭐 그 뭐. 아! 이놈 억지로 인가(印可) 받을라 하면 뭣하며, 아닌 것을 그까짓 걸 가지고서는 견성했다고 하면 뭣할 것인가? 그런 법이 세상 어디 있을 것이냔 말이여?
중정경정(中正勁挺)해서 인정에 끌리지 말아라. 구순정응대즉(苟循情應對則), 그 모도 정(情)에 끌리고 응대(應對)를 헌즉, 애정이나 인정이나 모도 그러헌 디 가서 인정에 끌린즉은, 공부(工夫)가 주불상(做不上)이라. 공부는 올라가지, 되지 아니헐 뿐만 아니라, 참선은 된 법도 없고 안될 뿐만 아니라, 무서운 놈의 해독(害毒)이여. 참 독해(毒害)여. 그 인정 애정이. 부단공부(不但工夫)라. 공부뿐만 아니다. 공부뿐만 올라가지 아니.. 되지 아니할 뿐만 아니다. 그것 한번 혀, 두 번 혀, 월심(月深)허면은 날 깊고 달 가면은 필수류속아사(必隨流俗阿師)다. 그만 아무리 참선헌다 해도 아사(阿師)가 되고 만다. 퇴속허고 말아. 조금허다가 퇴속허고 마는 것이여. 여지없이 참 믿으면은 그저 퇴타가 없어야 되아. 퇴타 틀려. 유속아사(流俗阿師)가 무의야(無疑也). 아사(阿師)가 의심 없다. 그거 뭐 틀림없이 퇴타한다.
주공부인(做工夫人)은, 그러기 따문에 공부인은 대두불견천(擡頭不見天)이요, 머리를 들어도 하늘 쳐다볼 겨를이 없다. 그 내 공안(公案) 화두(話頭) 그거 거각해서 화두 반관(返觀)허니라고, 화두관(話頭觀) 허니라고, 어디 머리 들었자 하늘 볼 겨를이 없어. 그렇게도 틈사구니가 없어야 되아. 저두불견지(低頭不見地)니라. 머리를 숙여도 땅 볼 겨를이 없어. 이렇게 급혀. 간산불시산(看山不是山)이요. 산을 봐도 '이게 산이다' 그게 뭐 어디 가서 그 마음이 나겠나? 화두해 나가는 학자가? 알 수 없는 공안 하나 다루어 가는 학자가 '산이다. 저거 산이다' 뭐 허고 돌아댕겨? 그러면은 고개를 추켜들어 휘휘휘 돌아댕겨? 다만 그 화두 하나를 관(觀)하고 처억 가는데 얼마나 정직.. 얼마나 그 정다워. 얼마나 그 바른 곧은 행(行)이, 화두 학자가 그 얼마나 청정한 고등한 행(行)이냐 말이여. 넘 보기도 완연히 다르지. 천진(天眞)으로 그렇게 공부를 허고 나가니까. 요사적(妖邪的)으로 그거 뭐 꾸며대서 허는 건 또 알 수 있는 것이지. 백지(白地) 그 허도 않는 것이 또 요사로 헌 것이 있지.
산을 봐도 산이 아니며, 물을 봐도 물이 아니며, 모도 일체 경계가 어사(於事)에 무심(無心)이다. 보고 듣는디 다 무심(無心)혀. 화두 하나만 해 나가니까. 가도 간 줄을 몰라. 안 간 게 아니여. 행(行)해도 행(行)한 줄을 모르고, 이렇게 갈 때나, 산 볼 때나, 물 볼 때나, 일체 경계에 다맛 알 수 없는 화두 하나다. '어째서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를 물으니까, 판치생모(板齒生毛)라고 했는고?' 뿐이다.
좌부지좌(坐不知坐)여. 앉어도 앉은 데 끌리지 안 해. 앉아도 그놈으로 앉고, 알 수 없는 놈 그놈으로 앉고. 천인만인(千人萬人) 가운데에 내가 들어가서 있드래도 불견유일인상사(不見有一人相似)다. 한 사람도 없다. 그 조인광중(稠人廣衆)에 있건마는 하나도 없어, 내 경계가. 화두 하나뿐이기 따문에 통신내외(通身內外)가 지시일개의단(只是一箇疑團)이다. 왼 몸뚱이 안팎이 전체가 지시(只是), 낱 의단(疑團)뿐이다.
의심(疑心) 봐. 활구참선(活句參禪)에 의심 보란 말이여. 이렇게 의심이 독로(獨露)되아 버린다. 철저허게 중정경정(中正勁挺)만 갖추면 이렇게 되는 것이여.
의단불파(疑團不破)하면, 그 의심을 파(破)하지 못허면, 화두 공안에 의심을 타파(打破)하지 못허면은 서불휴심(誓不休心)이다. 쉰 법이 없다. 마음을 놓은 법이 없어. 화두를 없는 법이 없어! 화두 하나 해 나가는 학자가. 차위공부긴요야(此爲工夫緊要也)니라. 이것이, 공부해 나가는 법이 이러허느니라.(처음~23분23초) (끝)
공부를 짓되, 최파탐착정경(最怕耽着靜境)이여. 화두를 척 헐 적에 자꾸 정경(靜境)만 찾아. 고요헌 디만 찾아서 조용한 디서만 화두를 자꾸 익힌다. 아무 사람도 없고 무인(無人) 경계, 나 혼자 적적한 경계, 조금만 사람이 옆에 있어도 그 화두는 내던지고, 그만 공연히 자작(自作)을 이루어서 무슨 경계에 불려서 그러면 안된다.
어떤 곳을 향하든지 아무리 분다(紛多)한 경계라도 그 분다한 분주헌 경계가 내게 있는 것이지, 경계(境界)에 있는 것이 아니여. 경계에 붙은 것이 아니여. 내가 공연히 그 시끄러운 경계를 따라서 내 마음이 공연히 분다(紛多)한 것이지, 천만 경계가 분다한 경계가 온다한들 내가 거기에 무슨 조금치나 내가 묻을 것이 뭐 있나? 거 가서 간섭헐 것이 무엇이 있나? 분다하거나 말거나, 제 시끄럽거나 말거나, 경계가 아무리 뒤흔들거리거나 말거나, 따악 항상 챙겨라. 세상에 조사관(祖師關)이라니! 어째서 조주 스님은 판때기 이빨에 털 났다고 했냐 말이여? 도대체 무슨 도리냔 말이여, 그게?
네 지견(知見)으로 무엇을 붙이냐? 거그서 붙일까 보냐? 붙여서 따져서 '오! 그런가 보다' 해놔 봤던들 그것이 조사관(祖師關)일 까닭이 있나? 그만 알 수 없는 놈이 저절로 툭 터져 번지면은 백천공안(百千公案)이 일관도천(一串都穿)이다. 한 뀌엄지에 그대로 뀌어져 버렸어. 언제 무슨 다른 도리, 다른 공안을 생각할 여지도 없어. 뭘 생각혀? 그대로가 내 근본 진법신(眞法身), 생사 없는 해탈신(解脫身)인디. 허! 어떻게 요리 생각허다가 알아? '오! 그런 겐가?' 그러다가 뭐 따져서 세상사 알듯기 '오! 그런가 보다'고 알아? 그거 소용없다.
아무리 어려운 경계, 분다한 경계가 온다한들 내가 관계하지 아니할 것 같으면 그 내 그대로 항상 화두(話頭)는 독로(獨露)되어 있으니, 어떠헌 분다한 경계에 가서 화두가 어디 그 잽히니, 거기에 그놈 분다한 경계에 무슨 끌리지 아니허니, 조용헌 경계는 제대로 그대로 화두가 독로될 것 아니냐? 왜 시끄러운 것을 공연히 장난을 이루어서, 공연히 내가 거기에 장애를 이루어서 왜 화두를 분실헐 것이 뭐가 있나? 가만히 화두를 조고(照顧)해라. 화두를 항상 돌이켜 비추어라.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아! 그 하나, 그 염(念) 하나 갖추기가 천하에는 그렇게 쉬운 것이 없는데, 어째서 그렇게도 안 되느니 되느니 거다가서 공연히 저 혼자 제대로 공연히.. 되고 안 되는 것이 어디 있어서? 안 될 것이 어디 있으며, 뭐 '된다'는 상(相)이 또 어디 붙어 있나? 그대로다.
세상에 해탈 정법이라니! 거그서 나오고, 해탈 정법을 거그서 이루고, 거그서 내가 견성성불(見性成佛)허는 그 참 기가 맥힌 근본 도리여, 화두(話頭)가!
사인(使人)이, 사람으로 하여금 곤우고적(困于枯寂)허다. 모도 사람이 고적(枯寂)헌 디, 곤(困)헌 디가 딱 들어앉아 가지고는 그만 고적해서, 고적(枯寂)은 잠 오고 만다. 잠이 딱 들어와서 그만 뒤덮어 버린다. 일월을 구름이 덮어버리듯기 화두를 망념 망상 그놈이 이불 덮듯기 뒤덮어버려. 아! 이런 꼴이 있나? 왜 그 소소영령(昭昭靈靈)한 그 알 수 없는 기가 맥힌 의단독로(疑團獨露) 도리를 그놈이 와서 탁 덮어버리도록 그대로 고적(枯寂)한 데가 잠겨 있나? 가만히 앉아서 잠잔다고, 잠이나 자고 그러고 앉았나 말이여. 앉은 잠이 더 맛이 있고 더 좋지. 그 왜 앉어 잠이나 잘라 하면은 뭣할라고 참선헌다고 공연히 흉내만 내고 있느냔 말이여.
불각부지(不覺不知)로구나. 잠이 와서 화두를 덮어버리면 화두 언제 거각(擧却)할 때가 있으며 거기에 그만 덮여져버렸으니, 이 홑이불 같은 이불에, 딱 잠 그놈 위에 그놈 위에 딱 덮여져버렸으니, 그놈아 잡혀버렸으니 무슨 각(覺)이, 화두 거각할 각(覺)이 있으며, 화두를 언제 챙길 겨를이 있나? 없지. 그거 한 번 해봐, 두 번 해봐, 앉으면 고적(枯寂)헌디 체해서 희수(喜睡)헌디, 잠 다 자는디 뭔 놈의 도(道)가 되겄냐 생각해 봐라.
그놈의 그 잠 무섭다. 잠 같이 무서운 놈이 없어. 차라리 잠이 아니고 망상 그놈이 일어날 때는 산란심 망상이 일어나다가도 화두를 챙길 때가 있지마는, 잠 그놈은 그럴 겨를도 없다. 한번도 챙길 때가 없다. 딱! 잠한테 잽혀가지고 거 못쓸 지경이여.
동경(動境)은 인다염(人多厭)하고, 조금만 시끄러우면, 뭐 밖에서 시끄러운 경계라든지, 어디 옆에서 시끄러운 경계라든지, 조금만 그런 경계가 있다면 그만 인다염(人多厭)헌다. 모도 싫어한다. 참선헌다고 허면서 그걸 싫어해서 얼른 화두는 내버리고 그 싫어헌 생각 가운데 가서 '에이!' 시끄러운 데 가서 공연히 그만 제대로 화두는 언제 내던져 번지고는, 화두는 간 곳 없고는 분다(紛多)한 놈만 가지고는 싫어헌다. 숭악허게 그만 장애가 되아 불린다.
정경(靜境)은 인다불염(人多不厭)이다. 고요헌 경계는 '아따! 여가 참 조용허고 좋다' 한 놈이 '조용헌 것이 좋다' 한 놈이 따악 또 들어와서 화두에 설찬히 그놈이 방해가 된다. 공연히 좋은 생각을 가지고 있으니 좋은 생각 그놈이 들어서 화두가 어디로 도망가게 맨들아 버린다 그 말이여.
그래 정경(靜境)이나 동경(動境)이나 그놈이 내 마찬가지로 방해한 놈이란 말이여. 화두만, 그저 알 수 없는 화두만 정경(靜境)이고 동경(動境)이고 기타 무슨 경계가 온다한들 두어버리고, 그놈만 따악 챙기는 법이지. 틀림없지. 그러면은 정경(靜境)이고 동경(動境)이고, 고 같은 놈의 경계가 뭐 악한 경계나 선경(善境)이나 다 같이 모도 화두에 방해인디, 좋은 마음이나 나쁜 마음이나 그놈이 두 가지가 다 그놈이 화두를 해롭게 하는 놈이란 말이여. 화두만 챙겨라. 기타 제경(諸境)에 화두만 들어라. 염기(念起)를 불파(不怕)하고, 일어나는 모든 반연경계(攀緣境界) 두려워허지 말고, 무서워허지 말고, 화두만 챙겨라. 당장 해 보란 말이여.
양이행인(良以行人)이, 진실로써 도 닦는 사람들이 일향처훤료지장(一向處喧鬧之場)하다가, 항상 저 분다(紛多)한 경계를 피해버리고 도를 닦을라는 마음을 가져.
인자 '방선(放禪)했으니깐 일없다. 그것 뭐 방선' 화두 턱 내던져 버리고는 시끄러운 경계를 향해서, 바깥 외경을 향해서 공연히 허댄다. '아직 방선 시간도 멀었거니 그까짓 거 뭐' 아무 화두 챙긴 마음이 없이 아무 무관심허고 그럭저럭 그럭저럭 또 그만 화두, 그 방선 시간을 보내 버린다.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그 방선 시간 그 시간을 그만 헛되이 보낸다 그 말이여. 이럴 수가 있나? 그런 시간 저런 시간 다 떼번지면은 세상에 일생(一生)이 얼마 되나? 도 닦는 시간이 얼마일 것인가? 그 방선 시간에 더욱 주의해서 화두를 들고, 경행(經行) 경보를 해라.
좌(坐)와, 앉으나 서나 화두를 조고(照顧)해라. 화두를 늘 돌이켜 항상 거각(擧却)해라. 그 시간이 얼마냐? 방선 시간이 참선 시간보담도 오히려 방선 시간이 더 많으니 그 시간이 얼마냐? 그 시간을 온당하게 해 놓을 것 같으면은 그 얼마나 그 광음(光陰)을 옴뽁 내가 그 참 허비 허송허지 않고, 그 광음을 온당히 잘 참 받아들여서 하나도 공부에 뭐 어디 실패가 있나? 그러헌 방선 시간에 잘해라.
일여정경상응(一與靜境相應)하면, 한번 정경(靜境)을 떡 상응(相應)허면은, 좋은 조용한 경계에 내가 찾아들어서 그 정경(靜境) 속에서 화두를 처억 추켜들고 공부를 헌다고 허면은, '고 정경(靜境) 좋다' 한 놈이 들어와서 거기서 또 별놈의 념(念)이 다 일어난다. 똑 좋은 엿 먹는 것 같고, 좋은 꿀 먹는 것 같고, 뭔 경계가 시원허고 좋고, 모도 이러헌 지경이 또 그 정경(靜境)에서는 일어나는 것이다. 벌써 정경이 좋다 하면, 정경(靜境)에 착미(着味)를 헐 것 같으면, 이놈의 심착(心着)이라는 게 무섭다. 아무리 좋다 허지마는 좋은 경계가 그놈이 착(着)이 들어와서 화두에는 무척 방해가 되는 법이여. 그러니 그런 정경(靜境)만 상응(相應)해 가지고는 자꾸 도(道)만 닦을라 하고 그러지를 말아라.
정경(靜境)이고 동경(動境)이고 막 잡아 나가거라. 막 닦아 나가거라. 그저 그놈만 그저 챙겨라. 네 챙길 것은 공안 화두다. 그저 항상 주삼야삼(晝三夜三)에 여타상응(與他相應)이다. 화두 그놈으로 더불어서 꽉 그만 응해져서 내외가 어디 있으며, 거기에 무슨 잡교가 있을 것이냐?
여인(如人)이 권구희수(倦久喜睡)라가, 어떠헌 사람이든지 도를 닦는다고 들어와서 그 희수(喜睡)허다가, 잠잔 디 요렇게 잠만 자고 있는 디 가서 칩거(蟄居)허다가, 그 재미가 있다. 한 번 해봐, 두 번 해봐, 참선 시간이 오면 돌아앉아서 안벽관심(眼壁觀心)헌다고 화두를 해보지마는, 그놈이 그만 잠에 반해서, 잠에 그만 꽉 그만 습관성이 거기에 그만 되어 가지고는, 습관이 딱 되어 가지고는 항상 그렇지. 앉으면 자지. 뭐 틀림없지. 앉으면 잘라고 헌 것이지. 그게 뭐냐 하면은 권구희수(倦久喜睡)여.
그 권태(倦怠) 경계 일어나서 몸은 곤(困)허고 앉어 자는 것 그거 희수(喜睡), 기껍다 말이여. 따악 자고 있구나. 안득자지야(安得自知耶). 어찌 자지(自知)를 얻을까 보냐. 언제 견성성불(見性成佛)을 헐까 보냐? 고렇게 네가 허송허고 소비해 버리고 광음을 허송해 버리고 언제 네가 도를 닦아서 너를 깨달라서 생사해탈을 할까 보냐?
기맥힌 말이지. 그 공부해 들어가는 데 모두 여러 가지를 그 단속해 주는 것이여. 일체 처소에서 그렇게 화두를 여지없이 다루어 독로(獨露)를 해라. 시간 허비치 말어라.(처음~16분59초) (끝)
일성초운안(一聲楚雲雁)이여. 한 소리 초(楚)나라로 가는 기러기다. 저 초나라로 날라가는 창공에 기러기여. 만사(萬事)가 이렇게 그만 그저 가 버린다 그 말이여. 흘러가 버리고 가 버리고 모도 그저 왔다갔다 이렇게. 무상(無常)한 것이고, 또 그 도리를 바로 보면은 그 무상한 도리가 바로 제일구(第一句)고. 그 다시 여지없이 갖추어져 있는 도리고. 또 그놈을 범소유상(凡所有相)이 개시허망(皆是虛妄) 경계로 볼 것 같으면은 한 소리 초나라로 날라가는 기러기지. 인생이 왔다 가는 것도 역시 마찬가지고. 부귀영화도 잠깐 허다가 가는 것이 초운안(楚雲雁)이고. 또 제일구(第一句), 바로 생사 없는 해탈 그대로 갖춰진 도리고.
고범원객주(孤帆遠客舟)다. 외로운 돛대 저 배 타고 가는, 아물아물허니 가 버린다. 배 타고 가는 고범(孤帆)도 아 그놈이 그대로 아닌가? 가만히 그대로 보란 말이여. 뭐 거가 뭐가 여의고 떼고 붙이고, 무슨 방편(方便) 이환(離幻)이 있는가? 이놈을 모도 무상으로 허망으로 볼 것 같으면은 유유만고사(悠悠萬古事)가, 유유(悠悠)한 만고사(萬古事)가, 일체 만고 이 세상사가 성하수동류(城下水東流)다. 성하(城下)에, 성 아래 물 흘러가는 것이다. 이렇게 무상하고 이렇게 허망하다.
이 가운데서 우리는 이 법을 믿어 가지고 이 법을 닦고 있으니 그 얼마나 수승허고도 이 묘(妙)헌 일인가? 다행하고도 만행(萬幸)한 일이다. 날마다 날마다 두수정신(抖擻精神)이다. 머리를 가다듬어서 정신차려라.
주공부(做工夫)허되, 공부를 짓되 귀재기의정(貴在起疑情)이다, 귀한 것이 의정(疑情) 하나뿐이다. 의단(疑團), 의정(疑情) 그 말이—그 모도 고인(古人)들이 전부 이 말세 중생들은 의단 의정이 아니면 안 되아. 말세뿐만 아니라 부처님 당시부터 관(觀)이 그대로가 의정(疑情)이여. 관(觀)이라는 게 벌써 중생 경계를 가지고는 관이 없어. 처억 그 바로 보는 그 도안이 바로 각(覺)이여. 의정(疑情) 의단(疑團) 그놈, 알 수 없는 놈 바로 봐 버리면 그게 관(觀)이여. 관심(觀心)이여. 마음 관하는 법이여.
생사 없는 법, 정법, 그놈을 바로 보들 못혀? 그 관(觀)이 그대로가 본각(本覺), 내 본래 갖춰져 있는 본각 바로 보는 것이여. 그 의단이 툭 파(破)해 버리고 의단이 거기에 그만, 어디 가서 인자 의단이 어디 있어? 바로 봐 버렸는데. 확철대오(廓徹大悟)인데.
'대체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에 판치(板齒)가 뭐여?' 날마다 이렇게 내가 묻는데, 판치가 뭐여? 판치생모(板齒生毛)가 뭐여? 그놈은 바로 보지 못허면은 의단(疑團)뿐이여. 알 수 없는 놈뿐이여. 알 수 없는 것 하나뿐이다.
‘어째 판치라고 했노?’ ‘어째 판치에 생모라 했노?’ 알 수 없지. 그놈이 묘(妙)혀. 그놈이 의단이고. 그놈이 화두고, 공안이여. 알 수 없구나.
하위의정(何謂疑情)이냐? 무엇을 의정(疑情)이라, 의심(疑心)이라 하느냐? 인자 요놈을 좀 더 알려줄라고. 여생부지하래(如生不知何來)인댄, 네가 너 온 곳을 아지 못헐진댄.
아는가? 온 곳을 다 아는가? 뭐 전생에 소가 되었다가 왔고, 개가 되었다 왔고, 무슨 축생이 되었다 왔고, 그것을 말한 것 아니여. 뭐가 왔냐 그 말이여. 도대체 뭐냔 말이여? 네 온 네 물건이 그 무슨 물건이냔 말이여? 제가 왔건마는 제 낯빤대기 저를 모르니 그거 의단(疑團)이여. 밤낮 법문이라는 것은 이게지, 뭐 다른 것 아무것도 없어. 참선 법문이라는 것은 밤낮 엎쳤다 뒤집었다 한 것이지, 다른 거 아무것도 없어.
뭐고? 뭐가 왔나?
여생부지하래(如生不知何來)인대는, 네가 나온 놈을, 네 가지고 온 놈을, 가지고 온 곳을 알지 못할진대는 부득불의내처(不得不疑來處)다. 온 곳도 의심 안 할래야 안 할 수 없어. 무슨 물건이 왔는지 물건도 모르니, 의심 안 할래야 안 할 수 있나? 이 무슨 물건이 왔느냐? 말이여. 그것이 판때기 이빨에 털 났다는 놈이나,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는지 모른 놈이나, 뭐 조금도 다를 것이 없어. 조사관(祖師關)이라는 것은 어디 틀린 법이 있나? 똑같지.
사부지거처(死不知去處)인댄, 네 몸뚱이는 이건 죽을 몸뚱이, 버릴 몸뚱이니 네 몸뚱이 이거 죽어 번지고 없어져 번지고 가는디, 뭐가 가노? 뭐가 가? 가는 물건이 무슨 물건이냐? 부득불의거처(不得不疑去處)다. 그 가는 곳도 몰라, 가는 물건을 모르니, 의심이 안 헐래야 안 헐 수가 있나? 어떻게 의심을 안 혀? 저절로 의심만 일어날 것이다.
눈 꿈적꿈적허고 몸뚱이 눈깔, 이거 몸뚱이 이걸로, 그 어디 네 몸뚱이냐? 요까짓 것이 몸뚱이며? 곧 내버릴 건디. 그 뒤집어쓰고 댕기는 주인공, 대체 오는 놈, 가는 놈, 심마물(甚麽物)고? 그 무슨 물건이냐? 의심을 안 헐래야 안 헐 도리가 있나? 이게 정법(正法)이고, 이게 삼세제불(三世諸佛)이 모도 깨달은 법이고. 아! 이런, 이 법 내번지고 무슨 방편에, 무슨 환(幻)에 가서 야단쳐.
맨 사교(邪敎)만 일어나 가지고 지금, 인자는 또 지리산에 가서 법화종이 나와 가지고, 그 무슨 묘찬인가 그것이 본래 성철수좌 밑에서 모도 그 똥 먹고 그렇다는... 똥을 먹으란께 똥을 먹었다는구만. 어떻게 믿었는가 안 믿었는가 볼라고 똥을 먹으라고 헌게 똥을 먹었데야. 아! 그러고 또 생고기를 먹으라고 헌게 생고기를 뭐 생전 뭐 고기도 안 먹는 사람인데, 먹으라고 헌게—신심을 보이기 위해서 생고기를 먹으라고 헌게 먹었다 하드구만. 그런 말이 다 있드구만. 그래 가지고 그 밑에 댕긴다 하더니, 요새는 법화경을 가지고는 무슨 실상사가 실상묘법연화경이니깐 거기 들어와서 뭐 7명이 오백 일 기도를 헌다나? 그러면서 그 모도 민간(民間)를 속이고 돌아댕긴다 그 말이여.
그 굉장한 일이 이렇게 퍼 일어나네. 이 말세에는 그 사교, 사교(邪敎)에 빠져 있는 것이 그만 그만이여. 전부 사교라는 것은 그 모냥 상견(相見)과 그 빛깔 사견(邪見)과 모도 이런 것으로써서 모도 인도허거든. 아주 못된 짓만 해서 재산이나 끌어모을라고 허거든. 자꾸 재산이나 끌어모으는 모두 그러헌 방편을 쓴다 그 말이야.
이것 하나뿐인데. 가는 물건은 무슨 물건이며, 온 물건은 무슨 물건이냔 말이다. 알 도리 없구나.
생사관규(生死關竅)를, 이 몸뚱이 받아 나왔다가 이 몸뚱이 또 죽어버린 내버린 그 관규(關竅)를 생사관규를, 죽었다 살았다 하는 그 과구(窠臼)를, 불파즉(不破則) 파하지 못한 즉, 우리는 생사뿐 아닌가! 나왔다마는, 나와서 이 몸뚱이 가지고 산다마는 이 몸뚱이 내버리고 갈 곳 밖에 없으니, 이놈의 과구(窠臼)를 이놈의 규(竅)를 면치 못하면은, 파하지 못한 즉은 의단(疑團)이 돈발(頓發)이다. 의심이 절로 난다.
의단(疑團) 안 날 수가 있나? 무엇이 생(生)이고 무엇이 사(死)냐? 생사가 어디 있나? 이까짓 몸뚱이 요것이 무엇인디, 요 몸뚱이에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주인공이 이놈을 뒤집어쓰고는 살았다고 이렇게 꿈적거리고, 이게 뭐냐? 도대체. 이놈의 몸뚱이 생사 가지고 있는 주인공, 죽었다 살았다 하는 생사를 가지고 있는 이 허망하고 무상한 요까짓 것을 내 몸뚱이라고 가지고 있는 주인공, 그 근본 자체를 한번 깨달라 보아라.
결재미첩상(結在眉睫上)해라. ‘알 수 없는 이것이 무엇인고?’ 도대체 알 수 없는 이 물건을 미첩상(眉睫上)에다 두어라. 눈썹 사이에다가 두어라. ‘그 대체 무슨 물건이냐?’ 그 의심(疑心)이 돈발(頓發)해서 안 날래야 안 날 도리가 어디 있나? 의단(疑團)이 이렇게 중(重)허다고 했어, 의심이.
방역불하(放亦不下)하며, 놓아 내던져 버릴라고 해도 없어지지 아니허며. 저절로 있지, 알 수 없는 이 물건이. 그 소소영령한 주인공, ‘이뭣고?’ ‘이뭣고?’ 헌 그놈이 판치생모(板齒生毛)란 말이여. 판치(板齒), 판때기 이빨 털 났느니라. ‘어째서 판치생모라고 했는고?’ 그놈 하나뿐이다.
추역불거(推亦不去)다. 밀어도 가지 않는다. 제발 떼내 던져 번지고 없애 버릴라고 해도 ‘알 수 없는 의단’이 가들 않고, 놓아도 놓아지지를 않고 항상 눈썹 사이에, 눈썹 사이라고 해도 거다 두지 말고 제하일촌(臍下一寸), 배꼽 밑에다 두어라. 의단을 꼭 그놈을 항상 잡드리해서 그놈을 항상 관(觀)해라.
홀연일조(忽然一朝)에, 홀연 하루 아침에, 그렇게만 자꾸 해나갈 것 같으면은 홀연일조(忽然一朝)에, 홀연 하루 아침에 타파의단(打破疑團) 의단을 타파할 것이다. 그 의단타파할 때, 때가 잠깐 온다. 그렇게 성의껏 정성스럽게만 할 것 같으면 그 화두 의단이 잠깐 들어와. 뭐 오래가들 안 혀. 잠깐 그 들어오는 시절이 있을 것이다.
생사이자(生死二字)가 시심마(是甚麽)냐? 죽었다 살았다 하는 그까짓 것이 이 뭐고? 어디가 생사가 있나? 그놈의 생사 따문에 중생고(衆生苦)뿐인디, 전부 고(苦)가 거기 있는디, 왜 생사이자(生死二字)를 그것을 타파(打破)해 버리지 못하냐? 생사 껍데기, 죽었다 살았다 하는 놈의 업(業) 껍데기, 중생 껍데기, 그 중생 껍데기, 죄 뭉테기, 왜 그것을 한번 타파해 버리지 못하냐?
그것이여. 다른 거 아무것도 아니여. 죽었다 살았다 하는디, 도무지 그놈의 고(苦) 봐라. 깨닫지 못한 고(苦), 미고(迷苦)! 미(迷)해 놓으니 괴로운 고(苦)뿐이니, 이것을 맨 송장을 짊어지고 이렇게 깜깜하게 살 수가 있나? 이게 사는 것이냐? 이게 인생 살림살이여? 인생사여?
한가구(閒家具)니라. 그 참, 한가구(閒家具)는 무엇인지? 이 몸뚱이 생사이자(生死二字) 뭐고? 생사이자(生死二字) 그것이 뭐냔 말이여? '한가구(閒家具)다' 그랬어. '한가할 한(閒)' 자, '집 가(家)' 자, '갖출 구(具)' 자여.
고 밑에는 뭐라고 했는고? '악(噁)!' 이래 놨어. 그 도리는 깨달으면 다 대오(大悟)를 해놓고 보면 알 일이지, 지금 중생 소견으로는 헐 수 없어.(처음~18분53초)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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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일성초운안~’ ; 『청허당집(淸虛堂集)』 (서산휴정 著, 朴敬勛 역, 동국대학교 역경원) p134 ‘철성(鐵城)의 성루에 올라’ 게송 참고.
도학자(道學者), 우리 도 닦는 도학자, 참 고행자(苦行者)다. 고(苦)를 행(行)한다. 그 좋은 고향 · 부모 · 형제 · 친척 · 벗들을 다 이별해 버리고 여의어 버리고 홀로 척 나와 사방 그 모도 운산(雲山) 첩첩한 산으로 이렇게 댕기면서 집도 절도 없이 족답천간수(足踏千澗水)허고, 천간수(千澗水)를 모도 밟아. 신파만산운(身破萬山雲)허고, 몸뚱이로는 만산(萬山) 구름을 모도 헤치고 이러고 댕기면서 도를 닦는다.
어디 무슨 티끌만 한 것도, 고향에 무슨 뭐 부모 은혜 무슨.. 모인 것이 그것이 뭣이여? 부모니 처자니 자식이니 그것, 이 몸뚱아리 이것 모도 모아져 가지고는 생사죄업(生死罪業)만 짓는 놈의 악연(惡緣)이여. 그 수악한 놈의 악연 속에서 그 안 여읠래야 안 여읠 수가 없어. 살아 보면은 저절로 그만 악연이여. 그것이 악연이라. 어머니니 아버지니 자식이니 손자니 친구니 뭣이니 맨 그저 모아 봤던들, 세상에 그저 모도 그만 죄업만 퍼 짓는 놈의 악연이여. 그놈을 안 여윌래야 안 여읠 수가 있나? 그거 한번 헤쳐 여의어 버리고 척 나서서 만산운(萬山雲)을, 몸뚱이로 만산 구름을 헤치면서 도학자(道學者), 닦아 나가는 도학자. 천상천하에 어디 걸리며, 그 얼마나 참 청빈(淸貧), 가난한 것을 즐거워하면서 도를 닦는 학자다.
심사귀거로(尋師歸去路)다. 스승을 찾아서, 나를 위해서 도(道) 바로 일러줄 스승을 찾아서 사방 댕긴다. 그래, 스승 찾아댕기는 것은 몰라 그러허되, 도학자가 스승도 안 찾고 돌아댕기면서 제멋대로 댕기면서 그 소용없어. 뭣허는 것이여? 쓰잘데없이 산중(山中) 그 투한(偸閒) 생활을, 한가한 것이나 도둑질허고 한가한 것이나 모도 오입허고 그러고 댕기면 그 뭣할 것이냐 그 말이여. 항상 갔다왔다한 곳에 나를 위해서 정법(正法)을 일러주는 스승, 참 꼭 찾아야 한다.
계자낙분분(桂子落紛紛)이다. 그 스승은 또 그러헌 학자, 제자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어쨌든지 옳은 학자, 옳은 제자 만나기를 참 기가 맥히게 기다리고 있다. 철두철미하게 도를 믿어서 도 배우러 나온 학자, 자연히 서로 그러헌 옳은 스승을 만날 수 있는 것이다. 스승 못 만나면은 큰일이여. 스승 없이 허는 참선은 아니여. 여지없는 스승을 찾아서 스승께 배워야 활구학자(活句學者), 활구는 확철대오를 허지. 못혀. 암만 자기 혼자 그렇게 애를 써봤자 그거 안 되야. 활구(活句)라는 것이 이상스러워. 그래서 만고(萬古) 역사 유래(由來)로 스승 없이 깨달은 자는 생이지지(生而知之)는 있지마는 스승 없이 활구참선(活句參禪) 깨달은 자는 없어.
그 뭐 스승 없이 저 혼자 해 들어가다가 그 뭐 처백혀서, 모도 그 공(空)에 떨어져서 해 들어가는 것은 제가 모두 작가하고 집을 짓고 앉아서, 그 또 의리(義理)에 떨어지고, 사선(邪禪)에 떨어지고, 묵조(默照)에 떨어져서 그건 선(禪)이 아니여. 생사해탈도 못허고 각(覺)도 없고 안 되는 법이다 그 말이여. 되는 것을 된다 하지, 안 된다고 헐 것이여?
어림도 없어. 중 되어 가지고서는 걸망이나 짊어지고, 운파천간수(雲破千澗水) 해 나가면서 무슨 돌아댕김서 이럭저럭 지내면 그것 같이 이것 참 헛된 허두한(虛頭漢)이라 했어. 허한(虛漢)이여, 그거 쓸데없는 것이여. 공송세월(空送歲月)을 허며, 시은(施恩)만 지으며. 오히려 고향 부모 여의고 떠난 것이 잘못이여. 뭣이여 그거? 차라리 부모나 모시고 있는 것이 옳고, 세상에서 자식이나 낳아서 세상 전통해 주는 것이 옳지, 혼자 몸뚱이 척 나와 가지고는 그만 산수(山水) 간에 돌아댕김서 그럭저럭 그럭저럭 뭣할 거여? 그게. 그것 참 크게 주의해야 할 것이다.
이것도 좀 설(說)해 보고 저것도 좀 설(說)해 봐야지, 한 가지만 가지고 헐 수 없어. 시처(施處)라, 여러분들이 이렇게 모여 있는디, 근기(根機)가 다 달른디 한 가지만 확철대오(廓徹大悟)헌 법만 가지고 설할 수 없어서 이번 또 법문은 거 무슨 순치황제 모도 중된 거, 뭐 이럭저럭헌 거, 횡설수설 가지고 했지마는, 오늘 아침에는 똑 참 도학자에게 적절한 법문이여. 도 닦는 도학자에게는 적절헌 법문을 좀 헌다 그 말이여.
선경어(禪警語)라! 선(禪)을, 확철대오(廓徹大悟)하게 헌, 깨우쳐 주는 법문이다. 참선에 중요헌 설법이다 그 말이여.
공부를 짓되, 참선 공부해 나가는 사람이 참선법문 들어야지, 참선법문 밖에 뭘 들을 것인가? 인과(因果) 등어(等語)가 뭣이여 그거? 죄 지으면 죄 받고, 선(善) 지으면 선(善) 받고, '장차 부자 된다' 소리만 허면 뭣혀? 그녀러 것. 그것 가지고는 어디 뭔 아무 소용이 있어야지. 죄 짓는 사람은 '죄 지으면 못쓴다'는 말 듣고 죄 안 지으니까 착한 일을 허니까 무척 참 좋지마는, 착한 일 좀 해 가지고서는 선과(善果)를 받으면은 선업을 받으면은 그거 무슨 그거 구경법(究竟法)이래야지, 필경에 선보(善報) 받고는 또 타락하는디. 복보(福報) 받고는 복 다 받고 타락하는디. 그 소용이 없어.
똑! 타락 없는 법은 참선법 밖이여. 그러기에 참선 설법을 많이 들어놔사 타락이 없는 법이여. 견성(見性)은 못허드래도 참선 설법을 잘 들어. 옳게만 들으면은 그만 그 참선법 언하(言下), 듣는 데서 중생업이 다 녹아져 버려. 그거 뻘로 들으면 안 된다 그 말이여. 잠이나 스르르르 자면서, 설법 들으러 와서 잠 잘라고 설법 듣냐 그 말이여. 참, 설법 들을 때 자울지 말란 말이여.
공부(工夫)를 짓되, 최초(最初)에 요개파생사심(要箇破生死心)이니라. 생사심을 파(破)하기를 요구헐 것이니라. 생사심(生死心). 이 몸 꼭 죽어서 생사가 아니라, 이 몸뚱이 가지고도 밤낮 생사심 뿐이여. 난 것은 생(生)이고, 멸(滅)헌 것은 죽는 것이여. 내 마음이 났다가 없어졌다 한 것이 그것이 생사(生死)여.
이까짓 몸뚱이가 무슨 생사가 있나? 아! 몸뚱이는 송장인디, 아! 물질 물건인디, 이까짓 몸뚱이가 무슨 뼉따구 살이 어디 죽었다 살았다 한가? 이 몸뚱이 가지고 댕기는 주인공, 주인공이, 그 내 자성(自性)이, 내 마음이, 그놈이 뭔 마음이 일어나든지 일어날 때는 생(生)이고, 또 일어날 때는 멸(滅)헐 근본이 없어지는 것은 사(死)다 그 말이여. 그 생사심(生死心)이 파(破)해지기를 요구할 것이다. 그놈의 마음 따문에, 중생 생사심 따문에 무척 한량없는 죄를 퍼 짓고, 생사죄를 퍼 짓고, 생사 악취(惡趣)에 떨어지는 것이다 그 말이여.
견경(堅硬) 간파세계신심(看破世界信心)이, 굳게 굳게 세계와 신심이—이 세계, 모두 나열된 건설된 이 세계, 하늘과 땅과 우주만물 삼라만상 건설 세계, 또 그 가운데에 내 마음 몸뚱이, 내 몸뚱이가 있고 내 마음이 있지 않는가, 그 세계 우주 속에. 그 우주 세계에 일체 산하대지와 만상삼라(萬象森羅)와 정여무정(情與無情) 다 전부 합하고, 그 가운데 내 몸뚱이 그 전체가 실시가연(悉是假緣)이다. 그 거짓된 것이다. 그대로 그 거짓 모도 이루어진 것이다.
색(色)과 상(相)으로써 이렇게 이루어져 있다마는 어디 그 본래 있는 것이냐? 거다가 상(相)으로 보고 색(色)으로 모도 빛깔로 보고 애착을 허는 것이 중생이다. 어디가 그 모양다리가 본래 있는 것이며, 거가서 무슨 빛깔이 푸르다 누르다 흰 것이 있다 한들 어디 그 본래 있는 것이냐? 본래 그대로 봐라, 어디 있나? 아무것도 없는 가연(假緣)이다. 거짓된 것이다 그것이.
무실주재(無實主宰)다. 주재(主宰)가 없어. 영원불멸한 주인공이 없어. 몸뚱이니, 내 마음이니 헌 것도 그 무슨 그것이 어디 무슨 실재가 있어? 마음도 이놈 일어난 놈, 멸한 놈, 일어났다 멸했다 일어났다 멸했다 어디 그 자취도 어디 있어? 일어났다 멸했다 허는 것이 어디 있어? 이 몸뚱이는, 이거 사대색신(四大色身)은 어디 뭣이 있어? 본래 있어? 없지. 왜 그대로 못 봐?
그대로 척 본래 없는 것을 척 보는 놈은 그놈이 무슨 놈이여? 그놈도 없는 놈인가? 왜 그놈이 응, 전연 없어. 무상(無相)까장도 없는 놈이여, 그놈도.
허지마는 제법개공지처(諸法皆空之處)에, 일체법이 다 공(空)헌 곳에 가서 영지불매(靈知不昧)라는 것이, 그 영지불매라는 게 그게 신령스럽게 아는 놈이, 아! 그놈이 무엇이냐 말이여? '없다'고 영원이 없다고 볼 수 있나? 또 어디 '있다' 하니 거 뭣이 어디가 있어? 상(相)이 있어? 뭣이 빛깔이 있어? 원 참! 그러니 있는 놈도 거기는 붙들 못허고, 없는 놈도 붙들 못혀. 있고 없는 그 중간도 거가 다 거다 붙이들 못혀. 일체 제상(諸相)을 여의고 떼고도, 여의고 뗀 상(相)도 거그는 없어.
아! 그러니 그 자체가 무슨 자체냔 말이여? 허공 자체인가? 허공도 역무허공지양(亦無虛空之量)이지. 허공이 어디 허공이란 양(量)이 있나? 텅 빈 허공도 허공지양(虛空之量)이 없지. 허공 자체에 들어가 보지. 우리가 들어서 '허공'이라고 '비었다'고 거다가서 무슨 이름을 지어 붙였지. 허공 자체에 가서 그 무엇이 붙어 있나?
'허공'이라고 벌써 터억 허는 그 주인공은 그것은 유(有)도 아니요, 무(無)도 아니요, 뭐 상(相)도 아니요, 비상(非相)도 아니요, 거 덧붙일 것도 없고. 묘(妙)가, 그 영묘(靈妙) 진각묘성(眞覺妙性)이 그놈이 '없다'고 헐 수가 있나? 그놈이 '있다' 하니 어디가 있나? 묘(妙)하지. 거 각(覺)이 있드라 그 말이여. 제9백정식(第九白淨識) 각(覺)이 있어. 그놈을 깨달라 증(證)해야 되지, 증(證)치 못하면 설사 깨달랐다 해도 그거 소용없네.
이 근본 도리, 내 본래불성, 부증생(不曾生) 부증멸(不曾滅) 도리, 그걸 본구(本具)락 햐.
본래 갖춰져 있는 본구(本具) 대리(大理)를 깨닫지 못한즉, 그 내 본래불성, 내 견성, 내 성품을, 내가 나를 깨닫지 못한즉, 생사심(生死心)이 불파(不破)니라. 생사의 마음이 파(破)한 법이 없어. 그게 중생(衆生)이지. 생전 깨닫지 못허니깐 생사심밖에 없지. 금방 났다 멸했다 났다 멸했다 이것밖에 더 있는가?
생사심(生死心)이 불파(不破) 즉, 생사심이 파하지 못한즉, 우리 중생이 이 생사심만 가지고 이렇게 있은즉 말이여. 무상살귀(無常殺鬼)가 염염부정(念念不停)이다. 이 떳떳함이 없는 무상한 귀신이, 사람 잡아가는 귀신이, 염라대왕 귀신이 염염부정(念念不停)이다. 생각생각이 머물러 주지 않고 내 뒤를 쫓는다. 잡아갈라고.
죄만 퍼 진 중생이, 아! 이놈의 죄 안 지을 수도 없고, 중생이면 죄 짓기 마련인디 그 어떻게 해? 안 잡혀갈 수가 있나? 기가 맥히지. 그것 참! 중생 이놈의 사건 기맥혀. 우리 뒤에는 창칼을 가지고 창검을 가지고 쫓아와. 곧 찍어갈라고 잡아갈라고. '너 이놈 죄만 퍼 지었으니 너 갈 데는 어디냐? 염라대왕국(閻羅大王國)에 가서 심판 받아 가지고 지옥, 아비지옥(阿鼻地獄) 밖에는 들어갈 곳 없다' 아! 이러고 시방 뒤에 쫓아와. 참! 기가 차지. 헐 수 없어. 면부득(免不得)이여.
이걸 생각해 본다면 이까짓 허망한 몸뚱이 하나 얻어 가지고 일순간인들 헛되이 보내는 것, 참 기가 맥힐 일이여. 어떻게 허송(虛送)할 수가 있나? 그 허송한 속에서는 그럭저럭 지내고 모도 놀고 지내는 것뿐인데, 그 속에서 얼마나 그 유한(有限) 속에서 시은(施恩)과 업(業)과 죄(罪)만 퍼 짓냐 그 말이여.
응, 안 갈 수 있어야지? 도둑놈이 사람 죽이고 돈을 몇천만 원 뺏어 갔으면은 그놈 잡을라고 뒤에 순사가 워~ 일어나듯기. 안 일어나? 그러면은 우리 중생이 중생심으로써 그 놀고먹고 그럭저럭 지내고 모도 그만 그 죄업 짓는 데는 없어? 살인강도 마찬가지지.
그 죄를 짓고 있으니 그 죄는 염라국에서 담당이거든. 십대왕(十大王)이 앉아 가지고는 '인간에 아무개 놈 잡아오니라, 아무개 놈 잡아오니라' 차례가 다 있어서, 이렇게 무상살귀(無常殺鬼)가 뒤를 따라. 염염부정(念念不停)허다. 생각생각이 머물러 주지 않는다. '너 죄를 지었으니 이놈 어서 가자' 하고 창검으로써 뇌통을 찍어서 끌고 가지. 면(免)해주들 없어. 그건 피할래야 피할 수도 없고. 어떻게 피하나? 못 피허지. 환허니 그 죄업, 업력(業力) 중생이 피헐 곳이 있어야지? 살인강도는 어디가 어떻게 피해서 용케 허지마는, 그 못 피해.
여하배견(如何排遣)이냐? 그때를 당해서 너 어떻게 배견(排遣)을 헐래? 배척을 헐래? 잡으러 온 그 숭악한 무상귀신을, 살귀(殺鬼)를, 죽이는 귀신을 네가 어떻게 대접해서 보낼래? 안 잡혀갈래? 안 잡혀가고 안 끌려갈래? 소용없어.
장차일념(將此一念)해야, 이 한 공안(公案) 일념을 가져서 참선해 나가는 법, 그 내가 나 찾는 법.
그 판치가 뭣이여? 그 판치에 털 났다? 그거 원 천하에 도무지... 뭐 생각할 것이나 뭐가 있어? 벌써 찾으면은 찾는 것은 아닌디. 판치생모(板齒生毛)라고, 글쎄 뭔 이견(異見)을 붙일라고 허면 안 되아.
'어째서 판치생모라고 했는고?' 헌 것은 화두 의단독로(疑團獨露)인디, 의심은 어쩔 수가 없어. 그놈은 의단독로가 되어야 되니까. 하지만 거다가서 '오! 그것이 무슨 도리' 라고 따져서 분석허면 틀려. 안된 법이여. 무조건 여하약하(如何若何)하고 알 수 없는 의단(疑團)만 갖춰라. '어째 판치생모라고 했는고?' 이 한 생각을 가져서, 화두 일념을 가져서 작개고문와자(作個敲門瓦子)해라. 낱 문 두드리는 기왓장이 되어라. 아주 일체 상량(商量)을 붙이지 않는—저 문 두드리는 기왓장이, 문에 들어갈라면 기왓장을 달아 놓고 그 기왓장만 탁 때리면은, 그 기왓장이 문을 툭 두드리면은 문을 열어주는 무슨 그런 법이 있는가 부여. 그 문 두드리는 기왓장이 '내가 문 두드리는 기왓장이다. 내가 문을 두드린다' 뭐가 있어?
아무것도 없는 그러헌 그 무심, '도무심(道無心)이 합인(合人)이다. 도(道)가 무심(無心)해서 사람에게 합(合)한 도리가 있고. 인무심(人無心)이 합도(合道)라. 사람이 무심해서 작개왈(作箇曰) 그 기왓장 같으면은, 도에 또 합한 법도 있어. 욕식개중의(欲識箇中意)인댄, 이 소식을 알고저 헐진댄 일로(一老)요 일불로(一不老)니라. 하나는 늙고 하나는 늙지 안 했느니라' 허는 그런 도리가 있어.
고문와자(敲門瓦子)처럼 아주 일체 뭔 따지는 분석허는 마음이 없어야 그 화두 해 나가는 학자다.
그래 가지고도 여좌재열화염중(如坐在烈火焰中)해라. 저 열화염중(烈火焰中) 가운데, 맹렬히 사방에 불이 타 들어오는 그 불 가운데 있는 것 같다. 그러 안혀? 무상고화(無常苦火)가 중생의 고화(苦火)가 사면에 붙어 오지 않어? 우리가 지금 이만큼 살아 있으니깐 아주 제법 뭐... 아무 뭐 편안하고 태평하고 무척 참 안락한 세계 같지마는 이 사바세계(娑婆世界)에 사방 지금 불 타 들어오는 것이여. 우리 중생의 고화(苦火)여. 중생의 고통 불이 사면에서 붙어 온다. 어느 문이 불 안 붙어 오는 문이 없어. 동서남북 사유사방(四維四方)이 다 불이 붙어 들어와. 뭐여, 가만히 있어도 광음(光陰)은 자꾸 가니 늙고, 또 이놈 적환(賊患)이 있고, 화재가 있고, 삼재팔난(三災八難)이 있고, 관재구설(官災口舌)이 있고, 뭔 세상에 등등 모도 여러 가지 전체가 위험허기 불 가운데 있는 몸이여.
그 불 가운데에서 구출상사(求出相似)다. 불 가운데에서 나갈라고 허는 것이다. 불 가운데 나갈라는 것이 뭣이여? 이 중생 고통 속에서 일체 번뇌망상과 일체 모도 위험한 이 세계에서 뛰어나가는 곳이 그 맹렬히 타 들어오는 불 가운데니, 그 불 가운데에서 나가는 도리가 무슨 도리냔 말이여? 그놈의 불무더기를 헤치고 나가는 도리는 참선법(參禪法)이다 말이여. 생사해탈법(生死解脫法)이여. 생사해탈법이 아니고는 그 불을 뚫고 나갈 도리가 없어. 몸뚱이도 그 불에 들어가면 타고, 뭐 영혼이나 마음이나 안 탈까? 그 몸뚱이 그까짓 녀러 것 타 버리니 어떻게 불속을 뚫고 나갈 거 있나?
몸뚱이니 마음이니, 중생심이니 번뇌니 일체가 본래 없는 곳을, 불도 없는 곳을 바로 깨달라야사 아! 그거 생사해탈하는 거 아닌가? 그 불 속에서 사바세계 이 고통세계에서 척 공안을 깨달라야사, 그 방편 없는 도리, 부처님이 바로 들어가 깨달은 도리, 아! 부처님이 그것 밖에는 바로 안 보였건마는, 엉뚱한 데가 모도 떨어져 가지고는 그만 팔만사천 다라니문(陀羅尼門)에 거꾸러지고, 거 모도 상견(相見)에 찾고, 사견(邪見) 중생이기 따문에 그런 것을 부처님이 모도 중생심 맞춰서 설(說)허는 것이, '내가 가설(假說)을 했다. 내가 느그를 위해서 거짓 설한 것이 모도 실(實)답지 못하다' 부처님이 말씀 다 했지.
'권이미실(權而未實)이요, 권(權)이 실답지 못하고 추위미묘(麤而未妙)다. 더러운 것이 묘(妙)하지 못했다' 저 마지막 『법화경』에 가서 '급호제분(及乎諸糞)을 기제(旣除)허고, 및 똥 같은 거 더러운 걸 이미 다 제(除)해 번지고, 느그들이 다 인자 믿은 뒤에사 심상체신(心相體信)커사, 네가 네 마음을 참 믿은 뒤에사, 내시실상(乃示實相)이라. 이 내가 인자사 느그를 이 실상(實相)을 보인다' 생사 없는 참선법, 화두법, 공안법을 느그한테 인자 보인다. 안 그랬어? 없어? 그 무슨 품(品)인가? 품도 잃어 버렸구마는, 그거 다 있는 말을...
그 불무더기 속에서 난행일보부득(亂行一步不得)이며, 한 걸음도 나갈 수 없어 불무더기 속에, 어떻게? 정지일보부득(停止一步不得)이며, 가만히 있자니 안 타나? 자꾸 타 들어오는디. 타져 죽지. 별생일념부득(別生一念不得)이며, 별 마음 다 내 봤던들 나갈 수 없어. 그놈의 불무더기. 망별인구부득(望別人救不得)이며, 옆에 어떠헌 사람이 구해 주기를 기달라 봐. 어떻게 구해 줘? 그 누가 들어와서 날 끄집어내 줄 것이냐 그 말이여? 거가서.
당임마시(當恁麽時)에, 이러헌 때를 당해서 어떻게 헐 것이냐 그 말이여? 맹화(猛火)도 소용없고, 그 맹렬스런 불도 타 들어오는 놈 그놈을 어떻게 헤치고 나가며, 신명(身命)이 그만 거기서 타져 죽는디 어떻게 나갈 거냔 말이여? 사람이 구해 주기도 소용없고, 일념도 얻을 수가 없고, 잠깐 머물 수도 없어. 그러니 이때를 당해서 어떻게 해야 하겠느냐? 사방 불무더기 막 타 들어오는 데는 어떻게 해야만 그 면(免)하겄냐? 이걸 면해야 할 거 아닌가? 우리가 지금 어디 있느냐 그 말이여? 우리가 이러헌 불무더기 속에 처해 있는디, 어디 있는 줄 알어? 아주 뭐 요만큼 배부르고, 요만큼 살고, 몸뚱이가 요만큼 있으니깐 아주 '내 세상이다'고 까불고 돌아댕기고, 뭐 고갯짓하고 돌아댕기고, 어쩌고.
뭣이여? 뭐 말할 것이 뭣이 있어? 틀림없는 것이거든. 어떻게 할 테여, 한번 어디 일러봐. 거기서 어떻게 해야 되아?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해뻔지면은 뭐가 있나? 뭐 불이니, 무슨 뭐 삼계화택(三界火宅)이니, 무슨 뭐 생사니, 뭐가 있어? 이 면(免)허는 법이, 이것 면허는 법이 공안(公案) 깨달은 법밖에는 없어. 그 공안 깨달은 법밖에 없으니 공안 하나 깨달은 도리를 일러봐. 하나 못 일러?
확철대오를 해서 생사가 없는 도리, 참선법, 이 도리 밖에 어디 있느냐? 이러헌 법을, 이러헌 참선법을 믿는 학자야, 어찌 철두철미하게 안 믿으며, 어찌 용맹심이 없으며, 어찌 한 일순간이라도 그 용맹 가용맹(加勇猛)허고, 정진 부정진(復精進)해서 확철대오를 어서 해야 하지. 어찌 이럭저럭 이럭저럭 저럭저럭 이럭저럭 이렇게 임마(恁麽) 일생을 해서야, 이렇게 그렇게 일생을 해서야 어찌 되겄느냐? 주의할지어다. 「선경어(禪警語)」... 한 대문.. (처음~34분9초)(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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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족천천간수~’ ; 『청허당집(淸虛堂集)』 (서산휴정 著, 朴敬勛 역, 동국대학교 역경원) p76 ‘혜기장로(慧機長老)를 이별하면서’ 게송 참고
*선경어(禪警語) ; 「박산선경어(博山禪警語)」, 「참선경어(參禪警語)」라고도 한다. 박산무이 선사(1575~1630)가 참선 할 때 생길 수 있는 문제와 그 대치방법 그리고 선학자(禪學者)를 경책(警策)하기 위하여 지은 글을 성정(成正) 스님이 엮은 것이다. 상하 2권. 용화선원 간행 [몽산법어(蒙山法語)] 부록에 있는 ‘박산무이선사선경어(博山無異禪師禪警語)’는 상권에 있는 ‘示初心做工夫警語’에서 중요한 부분을 정리한 것.
*무심(無心) ; 모든 마음 작용이 소멸된 상태. 모든 분별이 끊어져 집착하지 않는 마음 상태. 모든 번뇌와 망상이 소멸된 상태. [참고] 『선문염송·염송설화』 (혜심·각운 지음 | 월운 옮김) 제 699칙 ‘무심(無心)’ 〇洞山云 道無心合人 人無心合道 欲識箇中意 一老一不老
동산(洞山)이 말하였다. “도(道)가 무심(無心)해서 사람에 합하고, 사람이 무심해서 도에 합한다. 그 속의 뜻을 알고자 하는가? 하나는 늙고 하나는 늙지 않느니라”
*권이미실(權而未實)이요 ~ 내시실상(乃示實相) ; 이 구절은 구마라집이 번역한 『묘법연화경』에 해설을 덧붙인 중국 송나라의 계환(戒環) 스님이 1126년에 저술한 『묘법연화경요해妙法蓮華經要解』에 나오는 구절. [참고] 〇妙法蓮華經要解卷第一 ... 但以衆生垢重根器未純 先說三乘假名引導 故權而未實麤而未妙 及乎諸糞旣除心相體信 乃示實相會歸一乘 則妙而無麤矣 諸佛能事終畢於是也...
개가 달아나는데 매화가 떨어지기도 허고, 3월 달에 매화가 떨어지기도 허니, 어떤 낙매화(落梅花)가 시(是)인가? 개 달아난 길 위에 떨어진 매화가 옳은가? 3월 달에 떨어진 매화가 옳은가?
오후(悟後)에 만약 옳은 스승을 만나지 못허면 오후사건(悟後事件)을 마치지 못한다. 깨달은 뒤에야사 정말 공부가 있는 것이다 그 말이여. 정말 깨달라 가지고야사 우리 참선법은 마친다. 깨달라만 가지고는 안 되는 법이고, 깨달라 가지고는 스승을 만나지 못허면 안 되아. 그 해(害)가 비일(非一)이다. 이 선후를 알아야 하거든. '화두만 해 가지고는 나 혼자 견성해 가지고는 나 혼자 어디 들어가서 하리라' 그 안 되아. 그 되지를 안 해. 만약 깨달라 가지고서는 오후(悟後)에 바로 스승을 만나지 못허면은 오후사건(悟後事件)을 면(免)허지 못한다. 그 해(害)가 하나뿐만 아니다. 어째 그러냐?
혹어불조기연상(或於佛祖機緣上)에 유애처(有碍處)나, 불조기연상(佛祖機緣上) 부처님이 말씀해서 놓으신, 부처님의 말씀 가운데 무슨 이치가 맥히든지 또 그 깨달은 바가 옅든지, 깊이 깨닫지 못허고 엷어. 안 깨달은 건 아니여. 엷어. 바로 깨달라 여지없이 깨달라 버리지 못허고 옅게 깨달른다 그 말이여. 그래서 미진현묘(未盡玄妙)다. 현묘(玄妙)가 다하지 못했어. 현(玄)이나 묘(妙)나 묘오(妙悟)나 모도 무슨 천하 없는 불조(佛祖)에 지내간 이치가 있드래도 안 된다 그 말이여. 그런 이치 가지고는 된 법이 없어. 현묘가, 현묘(玄妙)가 다하지 못했어.
이미 현묘(玄妙)가 다하지 못했을진대는 벌써 고러헌 그 사상고가 있어서, 이치를 모도 붙이고 따지고 허는 고런 거도 모도, 그 뭔 사선(死禪), 모도 의리선(義理禪) 고런 것이 조금이라도 붙어 있으면은 퇴보(退步)헌다. 깨달라 가지고도 '내가 깨달랐다'는 각견(覺見)이나 고런 것이 붙어 있으면은 퇴보를 헌다. 물러가 버려. 그건 결코 그건 못혀. 그래 처음에 들어와서 무슨 소견(所見) 났다고 어쩌고... 그건 곧 퇴보허는 것이여. 그러니 학자가 들어와서 화두(話頭)를 하나 떠억 가지거든 참, 화두에서 판단을 내야 한다 그 말이여.
'어서 깨달고, 뭔 깨달은 이치를 보고, 무슨 그 뭣이 무엇이 나오고' 그거 그건 선(禪)도 아니고, 뭣도 아니고 도깨비선도 아니고, 그건 귀신선도 아니란 말이여. 그걸 알아야 한다 그 말이여. 원 분수가 있어도 까닭이 있어도 뭔, 뭐여 그게? 도무지 도(道)는 그런 법은 없거든, 참선법이라는 것은?
화두 하나를 가지거든 참 옳게 가져야 한다 그 말이여. 퇴보(退步)를 헌다. 물러간다. 회적보양(晦跡保養)해야 옳은 스승을 만나서 탁마를 해 가지고서는 인가를 바로 받고. “옳다! 다시 너는 내가 더 헐 수 없구나” 하고 인가해 버린 뒤에는 회적보양해야, 자취를 그믐해 버리고, 자취를 감촤번지고 말이여. 뭐 이름도 낼 것도 뭣도 낼 것도 없고, 자취를 그믐해 버리고 보양(保養)해라. 잘 깨달은 바를 기루어라.
역량(力量)을 전비(全備)하면, 그 깨달은 역량을 온전히 갖추아서 참 아주 대증을 오증(悟證)을 해버려. 오(悟)를 해 가지고는 증(證)을 해야지. 깨달은 바를 그대로 딱! 증(證)해야지. 그런 그 역량이 온전히 갖추아지면 그때 가서는 간과장교유도제서(看過藏敎儒道諸書)해라. 부처님의 장경(藏經), 부처님의 일대소설(一代所說), 유도(儒道) 유가(儒家)의 모도 무슨 일체 무슨 말이든지, 모든 제서(諸書)를 다 갖추아 봐도 좋다.
증(證)해버렸는디, 확철대오해서 깨달라 증해버렸는디, 뭐 뭐 다시 말할 거 있나? 깨달라 증헌 사람이 무슨 장교(藏敎)니—부스럼 닦아 내버린 종이 같은, 무슨 술 짜서 먹어버린 찌꺼기 같은 그런 것 볼 것이 무엇이 있나? 허지마는 깨달라 증(證)해 가지고도 교화 문중에 나가 중생 교화를 헐라면은 알 건 알아야 한다 그 말이여. 제일 급헌 것이 생사대사(生死大事)니 어서 생사대사부텀 면해 놓고, 그다음에 가서는 인자 일 마친 뒤에는 중생을 교화할라니까, 부처님의 말씀과 유도(儒道)의 모도 유가(儒家)의 무슨 교과서든지 다 배와서 다 알아라, 봐라 그랬어.
그러고 소마다생습기(消磨多生習氣)해라. 다생습기(多生習氣)를 소마(消磨)해 버려라. 아 깨달라 버렸는데, 증해버렸는데, 무슨 놈의 습기(習氣)니 뭣이니, 확철대오해서 증(證)해버렸으면은 그 대오(大悟)요, 대도견성(大道見性)이요, 다생습기를 제(除)헐 것이 무엇이 있나?
청정무제(淸淨無際)해야 청정(淸淨)해서 쬠이 없으며, 원명무애(圓明無碍)하야 원명해서 걸림이 없어서 시가고비원거(始可高飛遠擧)해야 한다. 비로소 가히 높이 날고 멀리 난다. 멀리 한번 높이 등등임운(騰騰任運) 임운등등(任運騰騰) 훙~ 날아버린다. 일 마친 경계지.
삼개정절(三箇程節)에 올라가서 이렇게 깨달으면은 서득광명(庶得光明)이 성대(盛大)해야, 그 깨달은 광명이 가장 크고 성대해서 불욕선종(不辱先宗)하리라. 선종(先宗)에 욕되지 않을 것이니라. 선종(先宗)에 욕되지 않는다는 것은 우리 부처님이 이렇게 깨달라 가지고 생사해탈을 해서, 이 무상정법(無上正法)을 우리한테 이렇게 가리켜 주었으니 우리가 부처님 깨달은 바와 같이, 부처님이 깨달라 증헌 바와 같이, 확철대오해 깨달라야 할 것 아닌가?
부처님 깨달은 바를 나는 흐지부지 깨달라 가지곤 옳도 못허고 생사도 해탈 못허고 고래 가지고는 선종(先宗)에 욕(辱)이 된다 그 말이여. 허니 선종에 욕이 되지 않도록 해야 허지 않겠는가? 선종(先宗)에 욕이 되지 아니해사—내가 확철대도해, 대도견성(大道見性)을 확철히 해서, 아! 그 생사해탈 저걸 증득해서 아! 부처님 법과 똑같이 중생을 모도 제도헐 것 아닌가?
깨달라 가지고 견성해 가지고—견성도 못헌 것이 견성해 가지고, 이거여. 구시행리처(舊時行履處)를 바꾸지 못혀. 구시행리처(舊時行履處)가 다하지 못혀. 제가 깨닫지 못했으니 그 뭣이여? 아무리 제 뭐 뭐 별소리 다해 봤던들 깨닫지 못허고 앉어서 '깨달았다'고 앉었으니 제 그 숭악헌 망상 속에서, 뉘기짠 심리 속에서, 제가 저도 알면서 그러헌 죄를 짓고 앉었거든? 구시행리처(舊時行履處)를 바꾸지 못허고, 구시행리가 다하지 못했으면은 변타상류(便墮常流)요. 그냥 그래서 모도 물러가 버리고 퇴타(退墮)하고 마느니라.
설시(說時)에는 사오(似悟)다마는, 뭐라고 가서 말헐 때 즈그끼리 말헐 때에는 깨달은 것 같다마는, 그 대경환미(對境還迷)여. 경계(境界)에 대(對)해면은 그만 미(迷)해버려. 아는 것이 어디 있어? 아는 그것 가지고 뭣혀? 탁! 깨달라 버리면 공안(公案)이 천칠백 공안이 환허니! '잘 일렀다 못 일렀다' 고인(古人)의 『전등(傳燈)』도 보면은 아! 그 환허니 깨달은 바가 명백간이(明白簡易)지.
경계(境界)를 대(對)해면 미(迷)해 버려. 그래 가지고는 출어(出語)가 여취인(如醉人)이여. 뭔 말허든지 말허는 것이 조리도 하나 없지마는 미친 것이여. 거 '미친것'이라고. '도 닦다가 미쳤다'고. '미쳤다'고. 그러헌 그저 못된 그 속한(俗漢)이 되아 버린다. 작위사속자(作爲似俗子)니라. 그다음에는 이거 뭐 중도 아니요, 뭣도 아니요. 도인도 아니요, 뭣도 아니요. 속자(俗子)만도 못혀.
기불식은현(機不識隱顯)하고, 그 기틀이 은현(隱顯)을 알들 못하고. 어부지정사(語不知正邪)하고, 무슨 사(邪)인지 정(正)인지를 알들 못혀. 그래 가지고는 그만 '발무인과(撥無因果)다. 인과도 없다. 그까짓 것 뭐 도(道)라는 게 천하 쉬운 것이고, 이게 도(道)인디 발무인과(撥無因果)여. 인과도 없다' 혀. 그건 도 닦다가 그만 그렇게 된 것은 암작에도 뭐.. 속자(俗子)도 아니여. 속인도 아니고. 속인이 어디 그런 법이 있나? 이건 뭔 예행도 모르고, 무슨 뭐 범절도 아무것도 모르고, 돌아댕김서 '내가 도 닦았다' 하고는 인과도 없이 그저 막행막식 막하고 돌아댕긴다 그 말이여. 견성은 또 허거나 말거나, 공부헌 수좌가 되아 가지고 화두를 옳게 거각하지 않고서.
항상 화두를 들고서는 그저 밤이나 낮이나 주야 없이 의단독로(疑團獨露)만 갖추어 나갈 것 같으면, 다른 번뇌 망상이 조금도 화두에 오들 못허게 다루어 나가면은, 아 그 뭐 일동일정(一動一靜) 행동이 그대로 정일허지. 그렇지 못허고는 화두도 못허면은 그것도 그 아무것도 아니여. 밤낮 돌아댕기면서 그만 그저 그 제대로 멋대로 자행(恣行) 자유 그대로만 허면서, 무애(無碍) 막행막식에 발무인과(撥無因果)에다가 천하에 그렇게 죄를 지을 수가 없다 그 말이여.
중 되아 가지고 죄 지어서, 그 중이 지옥 간 것이 그렇게 많닥 했어. 도 못 닦고, '견성했다'고도 거짓 견성허고. 이것 참 도문(道門)이라는 게 어려와. 말만 닦는닥 하고. 이러헌 대유양자(大有樣子)하니, 요러헌 모도 버릇, 이런 짓을 허고 돌아댕기고 이렇게 도문을 이렇게 흐리고 이렇게 헛되다 그 말이여.
이런 짓을 허니 요사자(了事者)는, 일을 마친 자는 생사안두(生死岸頭)에—일 마친 자! 바로 도를 닦아서 일을 마친 자는 생사안두(生死岸頭)에 능(能)히 추위세(麤爲細)하고, 능히 머트러운 것 더러운 것을 바꾸아서 자세헌 것이 되아. 자세헌 사람이 되아서 자세허기를 그 이상 없어. 앉을 때 앉고, 설 때 서고, 행할 때 행하고, 그 존엄헌 법이 보통이 아니여. 아! 바로 깨달은 이 참선법이 세상사(世上事)를 여의고 있나? 세간사(世間事)를 여의고 있다면은 대체 추허게 행동도 허고, 더럽게 행동도 허고, 막행막식도 허고, 없는 행을 하지마는, 세상사 그대로가 참선법이니, 아 참선법의 격외선법(格外禪法)이니, 격외선법이라는 것은 '큰 놈은 크다, 적은 놈은 적다, 때가 되았으니 밥 먹자' 아 이것이 모도 격외(格外)여. 인간사(人間事) 그대로가 격외 아닌가?
그놈을 행헐 놈을 행허지 않고, 갈 놈을 가지 않고, 와야 헐 텐데 오지 않고, 먹어야 할 텐데 먹지 않고, 그러면 그것 다 그 세상사 여의고 있나? 아 똥 눌 때 똥누고, 오줌 쌀 때 오줌 누어야지. 똥 쌀 때 똥 안 싸면 그것 쓰겄어? 똥 못 싸는 놈의 경계가 쓰겄어? 오줌 안 싸는 놈의 경계가 쓰겄냐 그 말이여? 그 병신 병들어 죽지. 그것이 법(法)이 아니여. 그 금강경(金剛經)에 가면은 금강경에 가서 '문문(聞聞)이요 불문불문(不聞不聞)이라' 그랬어. 문문이요 불문불문이라 한 것을 어떻게 새겨야 하까? 그것 거 글, 문문(聞聞) 불문불문(不聞不聞), 글 여섯 자여. 그 금강경 대의(大意)여. 그거 한번 새겨봐.
그러니 세상사가 곧 불법이고, 중생 환화(幻化)가 중생의 그 모도 생노병사(生老病事)에, 나와서 늙어 병들어 죽고 모도 이것이 개시생사해탈법(皆是生死解脫法)이니라, 이랬단 말이여. 그러니 일 마친 자는 생사안두(生死岸頭)에 능(能)히 추(麤)헌 걸 바꾸어서 자세허게 허고. 그 이거 참 묘헌 소리여. 우리 학자가 참 그 행해(行解)가 단정혀. 아는 거와 같이 법다이 여법(如法)히 행(行)을 잘 가지고 오후사(悟後事)를 잘 마친 사람이면은 그렇게 추허게, 그렇게 행동이 못쓰게 헐 이치가 없다 그 말이여.
그 중 되아 가지고는 그만 화두(話頭)헐 때부텀 화두는 커니는 내던져번지고 맨 잡담, 맨 잡식(雜食), 그저 잡행(雜行) 이래 가지고 한평생 지낸다면은 출가 안 헌 것만 못허고, 출가해서 죄짓는 거 참 대단하다. 언제 그놈의 죄를 다 받고 나올 것인가? 인자 앞으로 말세가 참 극도(極度)헌 말세가 닥쳐와 십세정명(十歲定命)이 들어오는디, 십세정명(十歲定命)에 들어와서는 열 살 먹으면 죽는 시절이 때가 오는디 그때에는 그 뭔가 그 삼재팔난(三災八難)이라고, 삼재가 들어오는디 삼재팔난이 들어오는디, 그 속에 빠져번지면은 언제 나올는지 당최, 언제 인자 정법시대(正法時代)가 올는지.
6억7천만 년 후에사 미륵존불(彌勒尊佛)이 출세허지마는 지금 그렇게 허망하게 못쓰게 행동을 허고, 도(道)도 닦지 않고 도문(道門)에서 시주 업(業)만, 잔뜩 그만 돌아댕김서 맨 시주것만 먹고 죄업만 퍼 지었으니, 그놈 죄 받으러 들어가서 업신(業身)이 되어 가지고는 죄를 받고 있는데. 인자 그놈 그 어디 어느 지옥에 들어가서 그놈의 죄를 받고 있을라는고? 6억7천만 년 후 그 정법시대 때에 미륵불이 출세허면은 그 미륵불 출세헐 때, 나올 수가 있는가? 업 뭉테기가 되아 가지고 죄를 받고 있는데, 업을 둘러쓰고 죄를 받고 있는디, 어떻게 나올 수가 있어야지? 벗을 능력이 있어야지? 무슨 무슨 능력이 있어서 그 죄보(罪報)를 진 죄업을 그때 벗고 나와? 몇 6억7천만 년켕이는 백억칠천만 년을 지내가도 죄를 아직 벗들 못허고 둘러쓰고 앉어 자빠져서 죄고(罪苦)를 받을 것인데. 그 한번 생각해 봐.
항호난조지상(恒乎難遭之想)이면 도업(道業)이 항신(恒新)이니라 나무~아미타불~
그러허니 항상 난조지상(難遭之想)을 지어라. 난조지상(難遭之想), 만나기 어려운 상(想). '이 몸뚱이 사대육신(四大肉身)이라도 이 사대육신 몸뚱이를 얻었다. 다행히 또 그런 그 병신 몸뚱이, 벙어리나 귀먹고 벙어리고 눈멀고 그런 모도 육근(六根)이 갖추들 못헌 그러헌 몸뚱이도 안 받고 이만한 건강한 몸뚱이, 성한 몸뚱이 받아 가지고는 도업(道業), 이렇게 도문에 들어와서 도를 닦고 있으니 얼마나 항신(恒新)이냐? 얼마나 새롭고 얼마나 다행하고 만행하냐?' 이러헌 만행(萬幸)한 마음을 항상 품으면은, 끔찍허고 무섭고 어서 도를 닦아야겄다는 마음이 자꾸 가슴속에서 퍼 일어나서, 항상 새로와. 그러헌 마음을 갖추면은 무슨 퇴타(退墮)가 있으며, 무슨 타락이 있으며, 어디로 물러갈 것이냐? (처음~23분54초) (끝)
우리 부처님께서 그 사구게(四句偈)를, 고 법문을 들으실라고 인행(因行) 시에, 성불허시기 전 인행 시에 그 사구게 법문을 들으실라고 몸뚱이를 바쳤어. 위법망구(爲法忘軀)라. 그 법을 듣기 위해서 망구(忘軀)라, 몸뚱이 바쳐, 몸뚱이 죽는 것을 잃어버렸다 그 말이여. 그때에 그 몸을 안 바쳤으면 그 사구게 법문을 얻들 못했거든.
제행(諸行)이 무상(無常)하야, 모든 행(行)이 무상(無常)해서—모든 행이 무상혀. 뭐 전체가 다 무상혀. 죽는 것밖에, 죽었다 살았다 하는 것밖에 없으니 죽었다 살았다 하는 그것이 모도 제행(諸行)이지 무엇인가? 그 제행 속에, 죽었다 살았다 하는 속에 모도 제행(諸行)이, 모든 행(行)이 들어 있지. 우리 중생의 제행(諸行), 모든 행이 죽었다 살았다 하는 것밖에 없거든. 그 죽었다 살았다 헌 것밖에 없으니 그거 생멸법(生滅法) 아닌가?
생(生)해 죽었다 멸했다 죽었다 멸했다, 이거 멸(滅)허는 것이 어디 아주 멸헌 것인가? 그까짓 몸뚱이 얻었다가 내버리고 또 얻었다 내버리고 허는 가운데에, 공연히 이놈의 중생 생(生), 일어나는 마음으로써 죄만 퍼짓는 생! 그래 가지고 죽어서 또 죄 받는 죄! 하! 이거, 그 생멸법이 무상해서 참 아무것도 아니여. 없는 거, 공연(空然)헌 거. 그 중생, 중생 업(業) 지어 죄 받는 사(死)가 아! 이거 뭐 아무것도 아니지 무엇이여?
그 생(生)과 멸(滅)이 생(生) 없어지고 멸(滅)만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생(生)도 없어져 번지고 멸(滅)도 없어져 번져. 어디 생(生)이 있으며 멸(滅)이 있을 것인가? 우리 마음자리가 우리 성품자리가 어디 생(生)이 있고 멸(滅)이 있는가? 생멸(生滅)이 본래 없는 건데. 생멸 본래 없는 고놈만 깨달라 아! 증(證)해 버리면, 생멸멸이(生滅滅已)면, 그 생멸이 다해버렸다 그 말이여. 그곳에 나아가서는 생사 없는 해탈 정법이라, 해탈 본각(本覺)이여. 본각법, 고 법(法) 하나를 얻으실라고 부처님은 몸뚱이를 바쳤다 그 말이여.
그 법(法)을 가졌으되 생멸(生滅)이 멸이(滅已)해 버린, 생(生)도 없고 멸(滅)도 없는 그러헌 큰 대도인(大道人)이, 천상천하에 없는 도인이 나찰(羅刹) 귀신이 되아 가지고, 나찰 귀신 몸뚱이를 받아 가지고, 이놈의 귀신 몸뚱이가 얼마나 컸던지 말도 헐 수 없이 큰 귀신인데, 사람 같은 걸 그저 그 가로 삼켜 버려. 가로 집어삼켜 버린다 그 말이여. 왜 그런 큰, 천하에 없는 대도사가 도인이 왜 사람 잡아먹는, 사람을 먹고 사는 나찰 귀신이 되았을까? 그 이상하지? 이상하지 않어? 아! 왜 사람을 죽을 사람도 살리와 주는 좋은 선신(善神) 행이 되든지, 귀신이 되드래도 착헌 귀신 행이 되든지, 아 무슨 그럴턴디 어째서 해필 사람 잡아먹는 귀신이 되었냐 그 말이여. 그 악헌 귀신이 되아 가지고.
그래도 그 사구게 법문을 떠억 가지고 중생을 제도허는 데에, '제행(諸行)이 무상(無常)혀 시생멸법(是生滅法), 생멸멸이(生滅滅已)해야사 적멸(寂滅)이 위락(爲樂)이니라' 아 그 법을 가지고 있으니, 어째 그렇게 악헌 귀신이 되아 가지고는 사람을 모도 잡아먹고 있음서도 그러헌 법문을 가졌다고, 아! 우리 석가모니불 인행(因行) 시에 그 나찰 귀신한테 가서 생사 없는 법이 있단 말을 듣고는 믿고 가서, 그 법을 물으니께,
"아 내가 지금 배가 고파서 설법헐 수가 있나? 너를 내가 먹어야 되겄다" "아 세상에 그 몸뚱이 없으면 도(道)도 못 닦고, 귀 없으면 법문도 못 듣는데, 저를 잡아 잡수시면은 귀도 없고 몸뚱이도 없고 법문을 뭐가 들으리까?"
"아 이놈아 네 귀도 없고 몸뚱이도 없는, 네 생사도 없고, 죽고 사는 생멸도 없는 네 법신(法身)이 있는데 법신이 듣지. 귀 없는 법신. 그까짓 지수화풍 사대(四大)로 된 몸뚱이 거기에 뚫버진 구녁 그 귓구녁 그것으로 듣는 것보담도 네 향상(向上) 법신으로 듣지. 그러니 네 육신 몸뚱이 그건 바쳐라"
그렇게 해서 "그러면 그렇게 헙소사" 하고, 그 몸뚱이를 바쳤지. 안 바쳐? 그 몸뚱이 아까운 줄은 다 알고, 죽기 싫은 건—뭐 누가 없어? 암만 뭐 해탈도 아니라 무슨 정법을 믿었기로이, 아 이 몸뚱이는 더 애끼지, 누가 그렇게 바치겄어?
"잡숩쇼" 그 바쳤다 그 말이여. 아 그러니께 아 그만 입에다 그만 넣고서는, 입에다 넣고서는 일러주었지. 아 입에다가, 그 큰 입으로 꽉 물고는 일러주었단 말이여. 그게 위법망구(爲法忘軀)여. 법을 위해서 몸뚱이를 그렇게 바친 거여. 그만큼 믿어야사 선객(禪客)이고, 도 닦는 학자고, 그렇게 믿는 학자래야사 불퇴전(不退轉)이다. 정법(正法)에 물러가는 법이 없어.
조금 와서 '참선법이 생사 없는 법이라, 해탈법이라, 정법이라, 인생 죽고 사는 인생 문제가 붙지 못헌 법이다' 이렇게 어떻게 듣고 와서 한 철 좀 허다가, 두어 철 좀 허다가—한 철이나 뭐 허나? 그만 달아나 버리고, 그만 퇴전해 버리고, 그런 것이여. 천(千)이면은 구백 명쯤 타락하고 열 명이나 될까? 이런 거여.
신심(信心)만 물러가지 아니하면은 꼭 되는 것이 이것이여. 이 참선이라 하는 것은 열이면 열 다 실패헌 법이 없어. 퇴타(退墮)를 허기 따문에 실패를 허지. 퇴타만 없으면 실패한 법이 없는 거여. 참선법이라 하는 것은 그 자리에 있는 법이니까. 그 찾는 그 자리에 있는 꼭! 있는 법이니까. 없는 법이란 말이지, 꼭 있는 법이거든.
이렇게 소소(昭昭)허고 이렇게 역력(歷歷)헌 고명헌 형단(形段) 없는, 형단이 없고 모냥이 없고, 이까짓 몸뚱이에서 기계에서 나온 것이지, 그 진신 향상 이 법신은 어디 그 그 소리가 나나, 뭔 눈이 있나, 귀가 있나, 입이 있나? 아무것도 없지마는 천하에 신령허고. 아 그놈, 그 가지고 있는 놈 그놈 툭 봐버리는 것인데, 그게 실패가 어디 있어? 실패가 무슨 실패 있어?
땅을 파 가지고 금(金) 같은 거 발견헌 것 그런 것은 땅속에 있는지 없는지, 없는 디도 있고, 암만 파도 없는 디 있고, 어쩌다가 있는 디 있고 허지마는, 바닷속에 그렇게 마니보주(摩尼寶珠)가 많이 들어 있지마는 그놈은 꼭 들어 있는 데를 발견해야 하지, 그렇지 않으면 평생 못 찾고 마는 것이지.
허지마는, 아 가지고 있는 놈이여. 진상수(鎭相隨)헌 놈이란 말이여. 항상 나를 따라댕기는 놈, 항상 나를 그놈이 동용(動用) 전부 그놈이 들어서 가지고 있는 놈 이놈, 이놈 하나를 왜 모르고 이렇게 미(迷)해 깜깜해 가지고 중생으로만 이 고(苦)를 받고. 중생고(衆生苦), 중생은 고(苦)밖에 없고 생사고(生死苦)밖에 없는데 생멸고(生滅苦)밖에 없는디, 왜 왜 깨닫지 못허고 왜 믿었다가도 퇴타(退墮) 타락해 버리고 마냐 그 말이여.
화두를 해 나가는 가운데 화두 현전(現前)이, 저번에 이렇게까장 했지? 화두(話頭)가 현전(現前)하는 것이 따악 앞에 독로(獨露)해 나타나는 것이, 뭣 같이 비유허자면 뭣 같으냐 하면은 깨끗헌 물에 달이 떡 달그림자가 비춘 것 같다. 물속에 달빛이 환하니 비춘 그와 같이 화두가 현전독로(現前獨露)를 해야 한다.
탄랑중(灘浪中)에 있지마는, 물이 그놈이 항상 그 깊은 깨끗헌 바닷물이라도 바람도 없지마는 자체가 그대로 있는 법이 없어. 아무리 바람이 없지마는 풍정(風停)하야도 파상동(波尙動)이다. 바람은 없다마는 바다 물결은 항상 동(動)헌다. 일렁일렁 일렁일렁. 우리 중생의 마음이 바닷물과 같여. 가만히 있을 때가 없어. 어느 때라도 무슨 망상이 있든지 항상 망상 있는 것이 바다 물결 동(動)헌 거와 똑같다. 그 묘하지. 그냥 있을 때가 없어. 한 일념 일순간도 그냥 있을 때가 없어. 뭔 마음이 일어나든지 일어나 가지고 있지. 그걸 중생 생, 일어나는 마음이여.
그 아무리 물이 출렁거리고 흔들거리고 야단쳐도 거기 물달은, 물달 달빛은 물속에 그대로 있어서, 그대로 있지 이리 갔다 저리 갔다 간 법이 없어. 고 자리 암만 흔들거리는 그 속이라도 달은 고대로 꽉! 백혀 있다. 그러허니 우리가 화두(話頭) 하는 마음이 설령 바닷물 같이 뭔 마음이 일어난닥 하드래도 고까짓 일어나는 마음 그까짓 건 관계를 허지 말고 알 수 없는 화두 의심(疑心)만, 알 수 없는 걸 의심이라 하니까 의심이 다른 게 아니라.
알 수 없는 것만 있어 가지고 그만—그냥 그대로 알 수 없는 거 근쳐버리고 말아버리면 그걸 의심이라고는 허지 않는데—알 수 없는 그놈이 또 알 수 없고, 또 알 수 없고 자꾸 의심이, 알 수 없는 놈이 자꾸 일어나는 걸, 그걸 의심(疑心)이락 해야. 알 수만 없이 뿐이면 아무것도 아닌데, 알 수 없는 그놈이 또 알 수 없고, 또 알 수 없고, 뒤집어 봐도 알 수 없고, 거각(擧却)해 봐도 알 수 없고, 들입대 이놈을 그만 자꾸 그 자리에서 거각을 혀. 들어서 알 수 없는 놈을 자꾸 챙겨. '어째 판치생모(板齒生毛)라고 했는고? 판치생모여? 판자 이빨에 털 나?' 판자 이빨에 털 나는 것이 어디 있겄는가 말이여?
그 수수께끼처럼만 알아버린다면은 그 참선도 아니고 뭣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지. 또 거기에서 뭔 해석을 붙여 놓으면 또 그 아무것도 아니지, 죽은 참선이고. 모도 거다 분단을 내고, 그런 건 선(禪)이 아니거든? 그 뭔 선(禪)이여? 거기서 주먹이나 뿔끈 들어 가지고 그 도리(道理)락 하고, 모도 그저 그만 파설(破說)이나 해서 모도 전허고, 가리킨다고 허면서 그러고 앉었네. 선(禪) 가리킨다고 허면서. 그게 그게 제일 무서운 것이여.
미득위득(未得謂得)허고, 얻지 못헌 걸 얻었닥 하고, 미증위증(未證謂證)허고, 증(證)치 못헌 걸 증했닥 하고, 그래 가지고서는 수수께끼처럼 해석을 붙여서 알았닥 해 가지고, 조실노릇 허면서 남 가르키는 거, 그러기에 스승 가리기가 그렇게 어려워.
참 '이금차도(而今此道)에 난득기인(難得其人)이다. 이 도문(道門)에는 사람 얻기 어렵다' 참 어려와. 옳은 스승 만나기가 그렇게도 어려와. 해석이나 해주는 스승, 알려주는 스승, 그래 가지고 인가해 주는 스승, 그것 참! 원수라도 그런 원수는 없네. '원수 원수' 해도 깨닫지 못헌 사람이 앉어서 인가해 주는 원수 같은 게 없어. 그러니 인가(印可)한 것을 참 진(眞)원수로 알아야 한다. 참 옳은 인가(印可)야 왜? 참으로 옳은 인가를 말허는 거 아니여. 가짜 인가(印可) 말이여. 자기도 보지 못했는데 남을 어떻게 인가헐 것인가? 참 그것이 진짜 원수여.
촉불산(觸不散)이요. 활발해, 활발발(活潑潑)해서 물속에 딱! 나타난 그 달은 아무리 물결이 흔들거려도 깨끗헌 물결이 아무리 출렁거려도 그대로 있는 것이 활활 발발하다. 활발발(活潑潑)해서 그대로 꽉 있다. 촉불산(觸不散)이다. 아무리 대질러서 그 물달을, 물에 비춘 달을 건질라고 해도 건질 수 없고, 조리질을 해 봐도 소용없고, 거다가서 물이나 우게다 판자나 뭐로 덮어버리면 안 나타날란가 모르지마는, 세상없이 그놈을 퍼내도 있고, 뭐 그대로 백혀 있다.
화두가 아무리 천하 없는 저 장(場) 가운데를 가도, 장꾼들 뭔 얘기를 헌지 즈그끼리 헌 소리가 귀에는 와각와각와각 들린다마는 화두(話頭)는 그대로 현전(現前)허다. 그걸 촉불산(觸不散)이라고 혀. 대질러도 흩어지지 않는다. 탕불실(蕩不失)이다. 아무리 끓여도 잃지 않는다. 끓는 것은 아 물이 펄펄 끓으니 그 얼마나 퍽퍽퍽퍽 끓으니 그 위에 더 급허고 무섭고 그 뭐 이상스러운 놈의 시끄러운 그 경계 아닌가? 그러헌 지경 경계도 잃지 않어. 화두가 도망가지 않어. 화두를 얼마나 철저히 이놈을 참 거각(擧却)해 다루어 놨던지 화두가 그렇게 현전해 가지고는 잃어지들 안 혀.
이렇게 된 이가 있어? 이렇게 된 화두래야 참으로 활구(活句)다. 활구참선법이여. 무슨 거다가 해석, '된다 안 된다' 된다 안 된다는 것도 그만두고 깨달을 마음, '어서 왜 안 깨달아지는고?' 이런 제기! 그저 헐 따름이지 깨달아지지 않는 것을 한탄혀?
그래서 그 경계가 중적불요(中寂不搖)허고, 중(中)으로 고요해서, 중적(中寂)이란 건 '가운데 중(中)' 자, 중(中) 자는 사람 몸뚱이 가운데도, 몸뚱이도 이 가운데 이 배꼽 그 가운데거든. 한복판 가운데, 가운데를 제일 중요허다 해야. 그러니 화두를 항상 중적불요(中寂不搖)허게 중(中)에다 두어라 이게여. 배꼽 밑에 그 제하일촌(臍下一寸) 거다가 가만히 화두염(話頭念)을 두면은 화두가 미끄러지기도 않고, 울로 올라와서 상기(上氣)도 되지 않고 중(中)에 따악 있거든. 저울대 딱 놓으면은 저울대 따악 그대로 딱! 몇 근이 나타나듯기. 화두가 중적(中寂)해서 불요(不搖)헌다. 가운데 가서 딱! 화두가 백혀 가지고는 흔들거려지들 안 해. 아무리 화두를 내버리고 흔들래야 흔들어지도 않고, 그대로 따악.
외감부동의(外撼不動矣)다. 밖에서 아무리 별짓을 다 해도 그 화두 마음이 동(動)허지 않는다. 어떠헌 경계가 있다 한들 무슨 경계에 동(動)헐 것인가? 그까짓 놈의 동(動)이 내 화두 하나뿐인데. 이것이 이렇게 된 때가 어떤 지경이든지 화두가 그대로 현전(現前)허는 것이 그것이 타성일편(打成一片)이라고도 허고, 그 지경이 제삼개정절(第三箇程節)이다. 정절(程節)이라는 것은 한 층 올라가, 한 층 밟아 올라가는 것, 또 한 층 밟아 올라가는 것, 또 한 층 밟아 올라가는 것, 그 세 번째 정절이다. 그러헌 경계 시험을 해 보시란 말씀이여.
법문을 이렇게 잘 듣고 화두 다루는 법을 이렇게 잘 알아 가지고는 항상 이놈을 공부허는 것이여. 화두 하나 매(昧)허지 않고 현전(現前)해 나가는 거, 앞에 딱 나타나는 거. 그 앞에 나타나는 그놈이 앉었으면 나타나고 서면 없어지고 그건 아무것도 아니여. 그런 게 아니여. 앉어서 화두가 현전(現前)헌 놈이 밥 먹을 때도 들어와서 현전허고, 옷 입을 때도 현전허고, 일체처에 현전허고, 행주좌와 어묵동정에 현전헌 경계가 제삼개정절(第三箇程節)이여.
이렇게 화두만 잘 잡드리해 나갈 것 같으면은 이게 참선법인데. 글쎄 거기서 무슨 잡생각이 일어나 가지고는 견성도 못헌 것이 견성헌 체해 가지고는 넘한테 '견성했다'는 말 들어서 선지식 노릇헐라고 그런가? 그 뭣할 것이여? 그거. 아! 이러헌 마음을 갖추어야사 이게 본분학자(本分學者)지.
삼개정절(三箇程節)만 들어갈 것 같으면은 삼개정절에 가서는 의단(疑團)이 파(破)하네. 알 수 없는 의단이 의심이 삼개정절(三箇程節)까장 올라갔으니 삼개정절 올라가서는 그 의단이, 알 수 없는 의단(疑團)이 안 파(破)해질래야 안 파해질 수가 없어. 닭이란 놈이 알을 품고 있으면은 그놈이 제때가 되면은 '따르르르' 소리가 나면, 그 소리 듣고 있다가 탁! 쫏으면 병아리가 폭 나오듯기 고런 시절이 있어. 뭉테기가, 알 수 없는 뭉테기가 극칙 극칙 극칙 3번 이놈이 극칙(極則) 되아 가지고는, 아 그만 그 뭉테기가 알 수 없는 뭉테기가 툭! 터져. 안 터질 수 없어. 그놈이 터지면은 중생견 중생 창자가, 생멸(生滅) 창자가 툭! 불거진다 그 말이여.
그놈의 그 뭐 뭐 의단 파(破)하니까, 무슨 그 의심(疑心) 알 수 없는 놈 파(破)하는 그것이 뭣이여? 그 중생견, 모도 중생 색상견, 중생의 그저 그 기멸, 중생의 일어났다 멸했다 하는 그 번뇌 고름 사발 같은 주머니가 푹! 터져.
그것 참! 그 선하자(禪荷子) 스님이 하도 도(道)를 닦아도 도가 안 닦아지니까, 공부가 하도 안 되니깐 관음기도나 헌다고 관세음보살님한테 백일기도를 올리는데, 뭐 쌀이 있나 뭣이 있나, 한번 쌀 갖다가 올려 가지고는 찐 놈을 되쪄서 올리고 되쪄서 올리고, 백일기도를 허되 다른 원(願)을 허고 헌 게 아니라, 대도견성(大道見性)허기를 원(願)을 허고 백일기도를 했다. 대도견성(大道見性) 원(願)을 허고 백일기도를 마친 날, 아 그만 대체 그만 웬 포수가 나오더니 총을 한방 탕! 놓은디 툭 깨버렸네. 그 지나(支那)의 종남산이, 중국의 종남산이 드르르르 허고 우니까 그 때 천자(天子)가 있어서, 아마 천자가 참 큰 도인 천자가 있었든 것이여.
"하! 이 종남산(終南山)이 우니 이 웬 일입니까?" 하니까 "응, 그 소국(小國)에" 우리나라를 소국이라고 했다 그 말이여. "그 소국(小國)에 선하자라는 중에 아만통 터지는 소리다" 이랬거든. 그 아만통이락 했어. 견성이 그것이 아만통 터진 것이다 그 말이여. 중생의 아만통, 중생의 아만통이 망상 가운데 큰 망상이지. 뭣이여? 모도 거만, 아만, '내가 제일이다', 아소심(我所心)에서, 내가 제일이라는 아상(我相) 가운데에서 퍼 일어나는 망상이지.
그 중생의 그 모도 번뇌장 터진 의단이여. 의단(疑團)이 파(破)하면은 정안(正眼)이 개(開)한다. 내 바른 눈이 열린다. 우리가 지금 어디 눈이 바른 눈인가, 이것이? 맨 눈으로써 색(色)이나 보고 '좋다 나쁘다', 상(相)이나 보고 상이 모도 상 덤벵이 그것이 '옳다 긇다', 모도 이러고 앉었지? 어디 그 눈이 바른 눈인가? 생사 없는 해탈 정법을 바로 보는 눈인가?
정안(正眼)이 개(開)할 것이다. 정안(正眼)이 개(開)한 것이 근의(近矣)리라. 삼개정절(三箇程節)만 올라갈 것 같으면은 이러헌 지경이 꼭 있는 것인데, 허다 말다, 공연히 들어와서 '화두를 허면은 견성헌다, 성불헌다, 생사해탈헌다' 그런 것만 껍딱으로 봐 가지고 들어와서 실질로 앉어서 실지로 한번 해보니 안 되거든. 그 말과 다르고. 대번 들어와서 그만 견성(見性)해서 성불(成佛)헐 줄 알았더니, 해 보니 더 망상이 나고, 더 번뇌가 나고, 더 분별이 나고, '아! 이건 아무것도 아니다' 허니까, '에! 그거 뭐 소용없다. 그만 해 봐도 안되더라. 우리보덤도 더 먼첨 들어간 그 선객들 모도 공부헌다고 앉었는 거 맨 잠만 자고 앉었더라. 그까짓 짓 천하에 헐 거 아니드라' 도리어 정법(正法)에 더 멀리 물러가는 것이여. 전부 그렇지.
그 물러가지 않고, 넘이야 잠을 자거나 똥을 싸거나, 넘이야 믿거나 말거나 않거나, 그저 내 규칙 내가 딱 세워 놓고, 그 한바탕 해보지? 추지임타황엽낙(秋至任他黃葉落)이요. 가을이 반다시 올 때가 있어. 새파라던 그 냉기 잎사귀가 누래짐서 떨어질 때가 와. 춘래의구초자청(春來依舊草自靑)이니라. 봄이 와 봐라. 봄날이 뜨뜻허면 그 멀쩡헌 땅에 시퍼런 백초(百草)가 일백 꽃이 다 나오고, 일백 풀이 다 나오고, 그런 때가 있어.
홀연축착(忽然築着)이요, 합착(磕着)하리라. 이렇게만 똑 닦아 나갈 것 같으면은 축착합착(築着磕着)이라. 축착(築着)이라는 건 대쪽, 그 지나(支那)의 어록 말인데, '대쪽 맞듯 맷돌 맞듯 헌다' 그 말은 뭔 말이냐 허면은 대쪽을 큰 대, 왼통 통대를 딱! 빠개 놨다가 고대로 딱 맞추면 틈도 잘 보이지 않고 맞촤지거든. 그대로 딱! 짜개 가지고 있다 딱 맞추면. 고걸 축착(築着), 대가 그대로 딱 맞는다 그 말이여. 합착(磕着)이라 하는 것은 맷돌, 웃짝 아랫돌 갖다 딱! 맞추면 고대로 딱 맞아 돌아가는 걸 합착이락 햐.
축착합착(築着磕着)이란 말은 왜 놨느냐? 고렇게 고인(古人) 공안에 가서 대쪽 쪼갠 놈 딱 맞추듯기 딱 맞아버려. 맷돌 갖다가 웃짝 아랫짝 딱 놓듯이 딱 맞아버려. 고걸 축착(築着)이고 합착(磕着)이라 그려. 그러면은 공안이 있는디, 도인(道人) 천(千)이 있으면, 천 명이 다 공안 한마디씩 말씀을 해 놨으면 고놈이 딱 딱 이사(理事)에 다 들어맞아. 이(理)와 사(事)가 들어맞는 것을 격외(格外)락 햐. 격외가 다른 게 아니라, 없는 걸 격외라 하는 게 아니라, '뜰 앞에 잣냉기다' 저기 있는 놈 그대로 갖다 논 거여. 그걸 격외락 햐.
그게 일체 공안이 다 격외(格外)거든. 격외(格外)라도 다르거든. 이놈 학은 학대로, 까마구는 까마구대로, 구렁이는 구렁이대로, 독사는 독사대로, 일체 그 격외가 고 세상에 있는 고놈 고대로 딱딱 맞아야 되지, 엉뚱헌 놈 갔다 붙여놓으면은 되들 안 혀.
구렁이 꼬랭이에는 구렁이 꼬랭이를 이어야지, 구렁이 꼬랭이에다가서 독사 꼬랭이를 이으면 그 구렁이 꼬랭이가 아니여. 구렁이 대갈빡에다가서 독사 대가리를 갖다 붙여놓으면 구렁이도 아니고 독사도 아니여. 고런 것이 그 공안이 아니다 그 말이여. 공안법이라는 건 딱 딱 있어서, 딱 일러놓으면 변통 없는 것이거든. 들어보면 또 아는 것이고. 견성은 못해도 알기는 허거든. 내 늘 말했지마는 묏자리를 생전 모르다가 딱 써놓고 묏자리 땅 가 딱 해서 포장 딱 해 놓으면은 들 나. '하따야! 그 명당(明堂), 참 명당이로구나!' 뭔 그 와(窩) 겸(鉗) 유(乳) 돌(突), 사상(四像) 가운데에 16도장법 같은 거, 뭐 그런 것은 몰라도, 봐도 '아 명당 명당자리가 저렇구나' 이렇게 안단 말이여. 그건 안닥 해야, 그것을.
봐, 내가 저번 날 혜봉 스님한테 법문답(法問答) 잘못하고 큰 일.. 내가 그걸 참 그 뒤에 발견 못 했으면은 영원히 나는 그 공안에는 매장 당한 공안이고, 그 노장님의 뜻은 꿈에도 보지 못했고, 내가 그래 이 뭐 법문집에라도 불가불 일러놔야 되겠길래 내가 그놈 일러놨지마는 두고 보란 말이여, 인제 두고 봐 어떠헌고. 거기서 그놈 여의고 있는가 두고 봐. 그 어디 파설(破說)인가? 파설 아니여. 그건 설파가 아니여. 아 무(無)가 어디 없어서? 맨 무(無)인디. 조주 무자가 어디에 없어? 맨 무(無)인디.
무(無), 그놈을 어떻게 해석을 해 놓아사—뭐 오직 해야 그 무(無)를 갖다가 대혜 선사(大慧禪師)는 무(無)! 불시진무지무(不是眞無之無)며, 이 참으로 없다는 무(無)도 아니며, 불시유무지무(不是有無之無)며, 있다 없다는 무(無)도 아니며, 불시허무지무(不是虛無之無)며, 비어서 없다는 무(無)도 아니다. 오히려 이것은 파설이지. 그러나 필경 그 무(無), 그놈 무슨 도리냐 그 말이여, 무(無)가? 무(無)가 무슨 도리여? '없다'는 무(無)도 아니지, '있다'는 무(無)도 아니지, '있고 없다'는 무(無)도 아니지, '허(虛) 비어서 없다'는 무(無)도 아니지, 그 뭔 무(無)여 그러면? 그거 파설(破說)인가? 파설 아니여.
그때에 참으로 그 물은, 그 물은 조대가 조리가, 조리도 그렇고 조대도 그렇고 이사(理事)도 그렇고, 그 두고 보란 말이여. 그놈을 딱 일러놓아사 후래에 감(鑑)이 되지. 귀감((龜鑑)이, 선(禪)에 선감(禪鑑)이 되아. 내가 그래서 해 논 것이지, 뻘로 해 논 거 아.. 이태까지는 않다가 내가 해 논 거여. 여기에 여기에 이렇게 모아 있지마는. 이거 봐, 내가 그건 뭐 세상없이도 안되니까. 견성 못헌 것이 견성헌 체허고 발을 듦서 “양말 한 짝이요” 어쩌고 무슨 뭐 “내가 일렀소” 그런 건 다 쫓겨나지 않어? 그런 걸 뭘라고 여다가 밥을 멕여 길러. 왜 길러, 그것을? 차라리 아무것도 아닌 것은 법문이라도 듣고 차츰 법문이나 들어서 정법이나 믿을 그런 소질이 있지. 그 뭣해? 뭣헐 거여? 그거. 아무작에도 못쓰는 것이여.
이렇게 되면 의단(疑團)이 독로(獨露)만 되아서 삼개정절(三箇程節)만 올라가면 아무리 하근선이라도 하근(下根)이 이렇게 정절(程節), 하나 둘 셋 정절에 올라가서 의단만 탁 파(破)해버리면은 정안(正眼)이 열려 버릴 것이다. 그래서 축착(築着)이요, 합착(磕着)이니라. 천칠백 공안에 하나도 맥힘이 없어. 맥혀도 또 자기가 다 발견하고. 조주 스님 같은 이도 말 배때기, 나귀 배때기를 세 번 들어갈 뻔.. 그렇게 밝은 어른도 법(法)을 쓰다가 세 번 말 배때기에 들어갔다고, 나귀 배때기에 들어갔다고, 면치 못했다고 했어. 허니 그래도 혹 실수가 있다 그 말이여, 공안에. 허지마는 그거 뭐 뭐 그거 가다 오다 혹 실수 하나가 있을 수 있지, 없을 수는 것이여.
낱낱이 천칠백 공안이 이치야 어디 다르고, 뭣허고 헐 것이 있나? 낙처(落處)야? 허지마는 그 격외(格外)에 딱 나가서—격외라도, '판치생모다. 판치(板齒)에 생모(生毛)다' 하는 것은 그 자리에 격외인디, 참 그 자리서 그대로 격외여. 저 '뜰 앞에 잣냉기다' 그게 아니여. 그 자리에 격외인디, 참 견성(見性), 바로 깨닫지 않고는 도저히 못 봐. 못 볼 놈이거든.
시방 한국에 처억 그 퍼트려 놨더니, 말만 내놓으면 저 죽는 거여. 벌써 알아. 허어! 내놓으면 알거든. 또 아무 말도 안 해도 알지, 몰라? 그거 환하지. 경계에 들나는디. 뭐 통이빨이니, '공자님 이가 통이빨이다, 성현 이빨이가 통이빨이다, 이빨이가 이 32개 아니고 통 하나 한 통이빨이다' 고런 놈의 소리가 어디 있어? 또 '앞 이빨이다' 그 뭐 뭣이여? 입 열기 전에 그르쳤다 그 말이여?
내가 내가 그 판치생모를 그 판때기 이빨에 털 났다고 헌다고, 조한천인가 어떤 박사가 막 한 번 내놨다가, 내 법문 네 번인가 세 번인가 내 얼매나 반박을 내 놔. 『염송(拈頌)』에 「설화(說話)」도 불에 태워버리라고 헌 건데, 세계대전에 '앞 이빨 털'이라고 해 논 고것이 조주의(趙州意)여? 고것이 판치생모의(板齒生毛意)여? 막방여래정법륜(莫謗如來正法輪)하라. 무간 아비지옥에 (안) 들어갈라거든 정법륜(正法輪)을 비방치 말라고 얼매나 해 놓았어? 어디 뒤에 말이나 한마디 있어?
그 판치생모의(板齒生毛意)가 세상에 그거 무슨 의(意)냐 그 말이여? 내 그 사람들한테 물어 놨으니 세계의 불교학자들이 세계의 큰스님네가 모도 모여서 지도자 대회를 헌닥 해서 거기에 물을 때에 판치생모를 하나 물어놓고 내가 답 안 할 수 없어서, 아니 그 답에는 안 해.. 거기는 안 했지마는, 거 저 달마바란가 누가 나와서 겨울날에도 한전허고, 잠 눈 속에서 자고 그런 도인이 나왔닥 해서, 내가 그 '나도 이렇게 물었으니 한마디 답해야 할 것 아니냐?' 그러고, 내가 그거 답허되, '여하시 판치생모(如何是板齒生毛)냐?' 내가 답을 허되 '무수호손도상수(無鬚猢猻倒上樹)니라. 수염 없는 늙은 원숭이가 냉기를 거꾸로 올라가느니라' 내가 고렇게만 해 놓았어. 그것이 고 거다가 얼푸시 내가 하나 해 놓았지. 제 눈이 있으면은 바로 볼 것이고.
못 봐. 그걸 일러 놓았자 소용없어. 내가 갖다가 그걸 파설(破說)로 내가 막 일러놀까? 안 되아.(처음~39분54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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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연축착합착(忽然築着磕着)이다. 이러헌 견성시절이 오리라. 왜 이러헌 때가 앞에 반다시 곧 올 턴디, 사량분별 계교 망념만 가지고 참선헌다고 앉었냐 그 말이여. 왜 '사(死)' 자도 아니고 죽은 참선도 아니여 그것은. 무슨 참선인가? 사량 참선인가? 망상 참선인가? 글안으면 무슨 잠자는 참선인가? 왜 한바탕 용맹심을 가다듬아서 왜 한바탕 못혀?
내가 언젠가 어저께도 법문했지마는, 어째? 이런 때가 어디 있어? 이만큼 그래도 이 말세에. 전장(전쟁) 다 없어. 그 참 우리 백성을 우리나라 백성을 이렇게 생각해서 어쩔 수 없으니 세금도 좀 모도 좀 덜 내든 것 더 내게 맨들아 가지고는, 또 갖다가 그대로 새마을 사업을 이렇게 해주고, 농촌이 이렇게 부흥허게 맨들고, 우리 참선허는 학자가 산간(山間)에 앉어서 도 잘 닦게 맨들아 주고 허는 이러헌 대통령 외호헐 때 해줄 때, 한번 닦아야 혀.
아따 그놈의 육이오(六二五) 때 우리 그 전장 당시에 안 지내봤는가? 그때 어떻게 참선혀? 공중에서는 자꾸 쏘아 죽일락 하는디 숨기가 바쁜디 어떻게 해? 그때에도 참말로 참선허는 이는 옳게 헐 수 있지. 나는 그때 우게서 기총소사(機銃掃射) 한다고 팡팡팡팡팡팡 하얀 것이 총 속에서 퐁퐁퐁퐁 나와서 막 터지면은 그 바닥이 막 벌건 철알이여. 아! 그런 놈의 디서 똥깐으로 들어가 숨었네. 똥싸는 디는 그놈이 안 들어올 겐가, 그 총알이? 아! 똥 싸는 데 가서 정랑(淨廊) 구녁에 들어가 숨었어. 안 들어올 줄 알고 숨었을까? 급헌께. 같이 또 있든 김한섭이는 새암, 저짝 새암 고지 밑에 가서는 엎져서 묻고. 그러면 거그는 안 떨어지나? 그렇게 위급헌께 별놈의 짓이 다, 땅속에 가서, 저 저 뒷간에 가서 다 숨어봤다 그 말이여.
숭악한 놈의 디서 피난하는디, 아 그런 시기에도 “에라 이놈 참선만 되게 허면은 안 죽을 수도 있다. 넨장 칠” 아 이런 생각이 다 난다 그 말이여. 백지(白地) 인자 그 길 급헌께. 그거 헌다고 소용이 있어? 죽을 놈 죽고, 맞을 놈 맞지, 별수가 있어?
대통령 장모님이 여기를 오셔서 "어쨌든지 그저 우리 딸 병만 낫우아 주면은 내가 신심을 다 허겄소. 꼭 그렇게 허시오" 허고 부탁하고 갔는디, 아 그 따님은 병이 낫지 못허고 죽었네. 아 병나면은 자기 죄업으로 병이 나 가지고 죽는 것을 기도 드린다고 어떻게 면허나? 그러면 부처님이 어찌 중생 업(業)을 대신 못헌닥 했어? 「중생 업을 대신 못헌다. 제가 생사 죄를 지었으면 제가 생사 죄를 받는 법이다」 이렇게 알려는 주었을지언정 부처님이 대신 다 갖다 받든 못혀. 암만 부처님이 천하에 능(能)이 있지마는 아무리 신통 변화에 능(能)이 계시지마는 중생 업을 대신 못혀. 그러면 왜 중생 죄 못 짓게 한목 다 안락세계(安樂世界)로 인도허고, 생사 없는 해탈세계로 보내지, 이래 두어?
그 하나도 달리, 「너 어서 견성혀. 너 어서 너 찾아. 어서 성불해서 생사해탈해라」 이것이 제도 아닌가? 이 한 말씀 가르켜 주시는 것이 천하에 은혜여. 이것을 알아야 할 거 아니여. '에따, 기도 드린다고 해서 병 낫어 준다니, 병도 못 낫어 주니 그까짓 게 뭔 도인(道人)인가?' 이렇게 불법(佛法)을 믿어서야 되겠는가? 이렇게 상견 외도(相見外道)가 되아 가지고는 안 되거든. 그 상견 모도 그렇게 불법을 믿는 건 상견(相見)이여, 사견(邪見)이고. 「약이색견아(若以色見我)커나 색(色)으로 날 보거나, 이음성구아(以音聲求我)하면 음성이 좋아서 부처다 하면 시인(是人)은 행사도(行邪道)」라고 부처님이 사견 외도(邪見外道)라고 안 해 놓았어? 그러니 그렇게 믿어서는 안 되거든.
'자기 죄를 자기가 짓고 제가 제 병 앓다가 죽었구나. 오냐, 그래 너는 그 생사 죄를 짓고 네 죄로 네가 죽었다마는, 네 죽지 않는 네 본연 네 대각(大覺)을, 네 본각(本覺)을, 어서 본래 네가 너를 깨달라서 본각 성취를 해라' 아 그저 이렇게 해야 하는 것이고. 실상(實相)을 믿어야 하는 것이지, 가(假)를 가짜를 믿어 가지고는 그만 중간에 퇴타(退墮)해 버려. 그걸 누가 '퇴타해라' 한 게 아니라 자기가 퇴타한 것이여. 그 자기 허물밖에 안 되고, 자기는 영원히 정법에 물러가는 것밖에는 안 되거든? 그러니 사견(邪見)과 상견(相見)을 보고서는 물러가는 것은 제가 속고 제가 거기서 그만 아비지옥(阿鼻地獄) 들어가고, 무간지옥 들어가고, 소 배때기 들어가는 것이여. 그걸 알아야 혀. 뭐 그거 믿어 주거나 말거나, 그 뭐 그거 하나 믿는다고 무슨 뭐 장하고 나쁠 것이 무엇이 있나?
졸지절(啐地絶)하며 폭지단(爆地斷)하야 통명자기(洞明自己)하야, 아 그만 졸지절(啐地絶)이라는 것은 아까 내나 미리 말했지마는 닭이 알을 품고 있다가 쪼르르 소리 나면 탁! 쫏으면 폭 나오는 것이여. 고걸 견성(見性) 지경에다 툭! 깨는 지경에 비유했거든. 폭지단(爆地斷)이라, 한번 대포를 팍! 쏘면은 그 바위가 맞으면 바위가 툭 갈라지고, 땅이 맞으면 땅이 툭 벌어지고 그러헌 지경이단 말이여. 그러헌 지경이 와. 번천복지(飜天覆地)라, 그만 땅이 뒤집어져서 그 툭! 터지는 그러헌 지경이 온다 그 말이여. 폭탄 한번 떨어지면 툭 터지듯기.
그래서 통명자기(洞明自己)다. 자기를 통명헌다. '고을 동(洞)' 자를 '통'허면은 '밝을 통(洞)' 자거든. '고을 동(洞)' 자가 '통(洞)'허면 '밝다'고 허는 거여. 통명자기(洞明自己)다. 내가 나를 통명(洞明)해 버린다. 내가 나를 아는 것보담도 더이상 통명(洞明)혀. 탁! 그만 뭐 밝다고 헐까, 너룹다고 헐까, 크다고 헐까, 이놈이 그만 그 뭐 통명(洞明)이여. '밝을 명(明)' 자가 그 붙었어! 그 지경은 깨달라 보아야 알지, 깨닫지 못헌 사람이 알 수 있나?
자기(自己)를 통명(洞明)헌다. 세상에 제를, 저를 저가 통명헌 것이여.
"나 견성했습니다. 스님께 견성 탁마(琢磨)를 헐라고 왔습니다" "일러봐라"
"서식묘아반(鼠食猫兒飯)입니다" 견성헌 경계가 "쥐가 괴(고양이)밥 먹었습니다"
아! 그거 말이지, 뭐 다른 것이 무엇이 있어? 뭐 견성했다고 다른 겐가? 그래 쥐가 괴(고양이)밥인디 괴밥이 쥐를 먹었으니, 제가 저를 집어삼켰다 그 말 아닌가? 생각해 봐. 쥐가 괴(고양이)밥 먹었으니께.
"쥐가 괴(고양이)밥 먹었습니다" 괴밥이 쥔디, 쥐가 괴밥 먹었거든. 제가 자기한테서 제한테서, 하늘도 제한테서 하늘이 생겨 나왔고, 땅도 제가 맨들아 내놓았고, 삼라만상(森羅萬象)도 제가 맨들아 내놓았고, 화화초초(花花草草) 두두물물(頭頭物物)이 다 제가 맨들아 놓았지. 내가 이름 지어놓고, 내가 만들아 놓고, 내가 상(相) 붙여 놓고 했지, 누가 했어? 우주 삼라만상이 내게서 일어났다 그 말이여.
내 마음 하나 없으면, 내가 '하늘이다 땅이다' 하는 마음 하나 없으면, 아무것도 없는 것 아닌가? 이치가 그렇지 않는가? 뭐 하늘이 하늘이락 했나? 땅이 땅이락 했나? 만물이 내가 만물이닥 했나? 꽃이 내가 꽃이다 하나? 일체 제상(諸相)이 뭐 명상공(名相空)에 들어가보면 똑같지 않는가? 이름과 상(相)이 본래 공(空)했는데, 내가 모도 들어 붙인 거 아닌가? 중생 아상(我相)으로 중생심으로 모도 맨들아 내논 거 아닌가?
그러면 내가 나를 집어삼켜 버렸다 그 말이여. 쥐가 괴(고양이)밥 먹었으니 괴(고양이)란 놈의 쥐니까 쥐가 괴(고양이)밥 먹었으니, 내가 고양이(쥐)가 지 몸뚱이 집어삼켰으니, 내가 우주 삼라만상을 맨들아 냈으면 맨들아 낸 내 자체, 중생 번뇌장을 집어삼켜 버렸다 그 말이여. 중생 번뇌장 터져 버린, 없어져 버린 그곳이다 그 말이여. 그것 가지고는 그걸 견성이라고 못혀. “아니다!” 그거 그거 이거 “아니다. 다시 일러라” 한게 “반기(飯器)는 이파(已破)입니다. 밥그릇은 이미 깨졌습니다” 벌써 다 장만해 놓고 헌 소리여. 환해버려. 바로 깨달른 사람이거든.
"반기이파(飯器已破)입니다. 밥그릇은 이미 깨졌습니다" 그 뭔 소리여? 반기이파(飯器已破)를 가서 한번 해봐.
반기이파(飯器已破) 알겠어? 알면 안다고 소리를 치고 나와서 한번 일러봐. 뒈진 놈의 소리 말고. 뒈진 놈의 소리 헐라거든 애초에 어서 물러가 속가에나 가! 작대기로 냅대 그만 한번 쏠 테니까, 그따구 소리 말고 나와서 일러봐. 웃음서 삐끗삐끗 웃음서 그 가짜 짓 말고. 행동머리를 고치라고 해도 입을 벌리고 있어. 저런 놈의 소리를 헐라면은 차라리 중 옷을 입지 말아야지.
통명자기(洞明自己)라. 자기를 통명해서 착패불조(捉敗佛祖)의 득인증처(得人憎處)다. 불조(佛祖)의 인증처(人憎處)를 착패(捉敗)해야 한다. 그건 무슨 소리지? 내가 이 법문 내가 오랜만에 허는 갑만? 불조(佛祖)가 사람 미워헌 곳 얻은 것을 감파(勘破)한다. 그건 불조패궐처(佛祖敗闕處)여. 여까장은 알아두어. 불조패궐처가 있어. 부처님 패궐처, 패궐(敗闕)이라는 것은 허물이여. 누여. 불조패궐(佛祖敗闕)이라는 것을 볼 줄 알아야 하는데, 그거는 그만 둬. 그렇게만 알아둬. 네가 너를 깨달라 놓고 처꺽 깨달라 놓고 보면, 불조패궐처를 착패(捉敗)해라.
그러고 나서, 그 지경 가서, 그만큼 바로 깨달라 가지고는, 뭐냐? 우의견대종장(又宜見大宗匠)해라. 또한 마땅히 큰 대종사(大宗師)를 봐야 한다. 바로 견성허신 큰스님을 찾아가야 한다. 그 사람 잡아먹는 나찰(羅刹) 귀신이라도 견성도인(見性道人)이면은 모냥 보지 말고 가거라. 몸뚱이를 가서 바치드래도 찾아가야 한다. 모냥 없어. 모냥 없어. 모냥다리 보지 말고, 상(相) 보지 말고.
왜 문수보살 보현보살 같은 이가 우리 부처님 당시에는 양족(兩足) 제자인데, 그다음에는 모도 거리 노상에 가서 거지가 되아 가지고 댕기면서 쌍림부대사(雙林傅大士)로 나와서 생고기 장사를 했으며, 왜 왜 포대화상(布袋和尙) 개뼉다구를 지고 댕김서 개뼉다구 장사를 했으며, 거지한테 거지 떼 중에 들어가서 뭇 거지가 모도 모가지를 홀켜 가지고, 하도 우습게 생겼은게 뒤끌면은 "잉~" 울다가 또 "히히" 웃다가, 가서 어디 가서 동냥이나 해 다가서는 모아놓고 갖다가 놓고는 “나는 이렇게 허고 있다. 봐라” 그러면 이놈이 뺏아가고 저놈이 뺏아가고 모도 이러헌 보시를 했으며. 왜 그랬어? 왜 그렇게 세상에 볼 수 없는 거지 행동을 나투었으며, 볼 수 없는 그러헌 비린내 나는 생고기 장사를 엮어 짊어지고 댕기면서 팔았으며, 그 썩어진 개뼉다구를 약이라고 팔고 돌아댕김서 “사시오” 그랬으며, 왜 그랬어?
그것은 상견 중생(相見衆生) 사견 중생(邪見衆生)을 위해서 그렇게 헌 것이여. 그러헌 대도를 증(證)해 가지고는 다시 나와서 그 천신(賤身)을 얻어 가지고는 사견 중생, 한바탕 또 그 사견중생 따문에 그렇게 사견 상견을 보인 것이거든. 그래서 모도 중생 교화를 해 나가는 가운데 상수(相隨)중, 같이 되아 가지고, 노름쟁이한테 가서는 노름쟁이가 되고, 한량한테 가서는 한량이 되고, 뭐 백정 놈한테 가서는 백정 놈이 되고, 개고기 개 잡아 파는 놈한테 가서는 개 잡아 파는 사람이 되고, 그래서 그렇게 모도 우리 부처님이 각색(各色)으로 다 나투어서 중생교화 하는 것이 그렇다 그 말이여.
그러니께 우의견대종장(又宜見大宗匠)하야 또한 큰 대종장, 참말로 바로 깨달라서 교화하시는 종장(宗匠) 그런 대종사가 있거든 찾아가 단련(煅煉)을 구(求)해라. 옳은가 그른가 낱낱이 법을 탁마(琢磨)를 해라. 그 탁마 안 하면 안 된다. 암만 첫째가 견성 하나, 공안 하나 봤다고 아무개가 아무개 헌다고 그래 가지고 입을 열어서 중생 교화 못한다. 공안 공안이 다 그래도 탁마를 해야 하는 것이다. 공안 경계 다르고, 이치 달라? 그것 틀려, 안 돼. 모도 그만 '없는 도리'로만 막 가리켜버려? 그거 안 되아. 그런 눈을 멀리고 앉었어?
큰! 큰 단련(煅煉)을 구(求)해라. 탁마(琢磨)를 크게 해라. 그래서 성법기(成法器)니, "옳다!" 모도 인증해 주고, 참으로 옳은 스승이 되고 옳은 법을 바로 가리키고 그런 법기(法器)를 이룰 것이니. 불가득소위족(不可得少爲足)이니라. 설사 옳게 공안 하나 깨달랐닥 하드래도 조금 탁마(琢磨)도 없이 저 혼자 조금 깨달랐다고 해 가지고 조금 얻은 것이 있어 가지고 고것으로 족(足)을 삼아서 중생 교화나 하고, 그렇게 위족(爲足)허지 말아라.
오후(悟後)에, 깨달은 후에 약불견인(若不見人)이면, 만약 이러헌 큰스님을 서로 만나서 그 단련(煅煉), 그 탁마를 못허면은 미면불요후사(未免不了後事)니라. 오후사(悟後事)를 바로 마치들 못허고, 법이 이렇닥 해가지고 제가 고것 옳게 되도 못허고, 탁마도 못허고 앉어서 저 혼자 도인노릇 허고 있다가 오후사를 면치 못허고, 도로 오후(悟後)에 재미(再迷)해 버리니라. 오후(悟後)에 미(迷)해 버려. 견성했다고 “에이! 아무 데라도 가서 인자 나는 견성했으니 그대로 지내겄다”고 그러고서는, 가서 그만 그럭저럭 그저 그 제멋대로 지내다가 매(昧)해 버리고, 도로 그만 마찬가지여.
기해(其害)가 비일(非一)이니라. 그 해(害)가 참 적지 않다. 도문(道門)에 들어왔다가 조금 얻어 가지고 얻었닥 해 가지고 뒤에 그만 도로 미(迷)해 버리고 그만 타락해 번지면은 참 그 해(害)가 비일비이(非一非二)다. 남이 보드래도 모도 그걸 보고서는 많이 타락하고 남까장 모도 타락시키는 법이다. 여까장 해 두지.
이게 참 많은디, 편이 많은디 이거, 여러 날 허겄네 인제 또.. 해제 안에 다 해 줘야겠는데.. 저 대중이 두 시간씩 보청(普請).. 보청을 그걸 안 혀? 우리가 보청을 해야 살지. 아침때 저녁때 한 시간씩 해야, 아 우리가 그저 삼시(三時) 먹고 사는 일도 허지. 그거 우리가 모도 은혜 갚는 것이고. 이런 일을 다 해야 하는 것이지. 조금 조금씩 해서 대중이 서로서로 살아 나가면서 도 닦는 거 아닌가? 남의 일 어디 해 주는가? 이 모여 있을 때 행자(行者)들도 쏵 나오고.
앉아서 가만히만 앉었다고 공부허는가? 그것이 가행정진(加行精進)이지. 그거 이 모도 팔 것 파고 일허면서 화두허는 것이 그것이 참 가행정진이여. 앉었다고만 가만히 돌아만 앉었으면 되는가? 잠 안 자올고 좋지. 인자는 채소 갈 시기가 돌아왔는데도 아무도 뭐—아 뭐 많이 해 봤다고 그래서, 그런 것이나 좀 봐줄 줄 알고, 좀 어떻게 이렇게 저렇게 허자고 허면 다 헐 터이니 해놨더니, 암말도 안 허고 보니께 뭐 아무것도 아니야. 그래 가지고 어떻게 선방에 지낼라고 머리 깎고 중이 되아. 그래 가지고 중 될라면은 뭐 천하 쉽게? 가만히 앉어서 그만 와 선방 밥이나 먹고? 소용없어. 한 철 지내면 두고 보면 알지. 천하 없이 해도 못 지내는 것이여. 여기서는 지낼 수가 없어. 옷 벗고 퇴속해야지 안 돼.
행자(行者)들도 와서 그저 가만히 와서 뭣허는 거여? 그런 거 저런 거 있어도 일도 살살 빠지고 도피해, 행자 뭣 혀? 한 철 겪어 봐서 안 되면 그대로 가는 것이여. 입든 옷 고놈 입고 가는 거여. 어디 가서 도문(道門)에 들어와서 도학자가 안 되고 그냥 그냥 어디 그럴라고 해서는 되들 안 혀. 다 겪어 보는 것이여.
아 그래서 입문(入門)이여. 문에 들어와서 저 용화 스님 매니로 참 늦게 중이 되었지마는 천지평 노장님처럼 그 뭐 그 눈치가 빨라서, 아 행자헐 도리를 다 허구만, 그 노인들이. 기가 맥혀. 그래서 '용화 스님!' 소문이 나, 이 도문에는 그러헌 소문이 나야 하는 것이지. 뭔 일을 하나 뒤로 살살 도피험서, 알고도 그러는가 모르고도 그러는가 모르지마는, 아 공자님 말씀에도 오비성현(吾非聖賢)이여. 내가 성현이 아니여 견사구의이라고 했으니, 견사(見事)가 다 있으면은 아 그런 일을 능히 좀 안(案)을 내서 이렇게 이렇게 허자고 그러면은 다 따라서 헐 것이란 말이여.
아는 이가 헌디 왜 안 따라서 혀? 뭐 거기에 아만(我慢)을 두고 '내가 머냐(먼저) 중 되았으니, 머냐 들어왔으니 내가 제일이고, 뭐이 그까짓 가리킬 것 뭐' 그래서 되아? 어저께 들어왔닥 하드래도 아는 이의 지휘를 지도를 받아야 하는 것이고, 아는 이가 옳게 시키면 그대로 해야 하는 것이지. 그게 원융산림(圓融山林)이요, 평등산림이요, 네 산림이 아니고 내 산림인디, 나는 왜 가만히 앉어서 밥 해다 주면 그놈 떡 밥만 받고 막 그만 그놈은 막 먹으면서 배끼(배꼽)에 푹푹 나오게 막 드리 퍼먹고서는 앉어서 졸기나 헐라고 험서 허기 싫어서 도피허고. 그런 것을 뭐라고, 뭐라고 그런 것을 갖다가 여그서 둘 것이냐 그 말이여. 되들 안 해.
시방 시기가 돌아와 중복(中伏) 시기면 여그서는 다 배차(배추) 같은 거, 무수(무) 같은 거 가는데, 갈 생각도 않지. 저 무시(무) 저놈 내가 “갈아 가지고 덮어라” 그래 가지고 그때 갈아 가지고 덮어선 씨를 내려 가지고 저만큼 키워 놨으니 요새 인자 저놈 그래도 먹게 되았다 그 말이여. 배차 저놈도 고렇게 심어 가지고 고렇게 내.. 그 가문디 났거든. 나 저래 길렀거든. 아 이러헌 원융산림, 어디 누가 따로 있나? 아 그런 소견도 내 가지고 길러 가꿔서 모도 여러 스님네가 먹고 도 닦게 만들면 그 자비심(慈悲心)이 약하(若何)오? 그 얼마나 좋은 마음이며. 뒤로써 그저 독사 같은 놈의 몸뚱이 좀 더 못 놀리워서 한(恨)이고, 좀 더 나 혼자 한가롭게 못 지내서 한이고. '나는 그거 알 것 없다' 그러헌 사람이 그러헌 몰자비(沒慈悲), 그러헌 무자비(無慈悲)한 사람이 참선해서, 도 닦아서, 견성성불해서, 일체 중생 교화를 혀? 그러지, 그래서는 안되아.
때가 되았으니 인자 무시(무) 갈 생각도 좀 허고. 아 책임 하나 가졌으면 책임도 이행해야 하고, 감원(監院)이니 별좌(別座)니 해 주었으니 감원 별좌가 그런 것도 좀 해야 한디, 뭐 어떻게 감원 별좌여? 또 말이라도 주지(住持)면, 주지면 주지지, 아! 주지도 그런 소견을 좀 내야 하는 것이고. 뭐 맨 이름만 떠억 가지고는 내비 놔두고 시기를 실시(失時)혀? 시기가 다 넘어갔는디 벌써. 이게.. (오늘 허겠습니다)
오늘이 뭣이여? 오늘이 며칠인데, 오늘 뭣이여? 오늘만 헌다고 혀? 네모 빤뜻허게 탁 해 가지고는, 거름 갖다가 우에 촥 흩여 가지고는, 퐁퐁 파 뒤집어서 딱 엎어놓았다가, 또 며칠 후에 또 한바탕 뒤집었다, 한 서너 번 그놈을 갈이를 해야 하는 것이여. 그놈 거름과 거름이 한데 섞여서 거름 독소가 다 빠져나가 버린 뒤에, 그래 인자 다시 파서 골라 가지고 골 탁 쳐서, 그 골 친 디다가 요새 그 디디티(DDT)인가 뭔 틴가 그런 거 벌거지, 땅에 그 못쓸 벌거지 있는 거 다 뒈지게—그놈 헐 수 없는 놈의 벌거지는 할 수가 있나?—사르르르 헡친 뒤에 씨를 거그다 헡고는 하! 이래야 헐 것 아닌가? 나 하나 잘해서 대중이 잘 먹고 살고 삼동산림(三冬山林)을 헐라면 지금 잘해야 할 것 아닌가? 나는 벌써 씨갓이는 다 사 뭐 그런 것은 뭐, '나는 씨갓이 다 사 다 저 신장에 다 놨으니, 좋은 씨 다 해 놨으니, 그래놓고 보자' 하고 내 시방 가만두고 볼라는 것이여.
인자 중복(中伏) 지내가면은 여그 음력은 다 그런 것부텀 가려야 한디, 중복이 지내가도 아무 소용.. 내비둬버려, 나 병들어서 밥도 못 먹는 사람이.. 어저께도 두 때만에 먹었어. 하도 배가 고파서 오늘밤에 오늘밤 새벽 한 시쯤인가 되아서 아 저놈 하나 깨어났길래 “야 국 좀 데도라. 나 좀 뭣 좀 먹어야겄다”고 해서 메밀국수를 삶아 논 것을 엊저녁에도 먹지 못허고 아까사 먹었어. 그놈 먹고 나니까 배가 조금 고픈 기는 없어져서, 그래 내가 올라와서 우리 대중께 우리 대중 모도 공부인들 공부 좀 허게 법문 좀 해 줘야겄다고 올라온 거여.
내가 이만저만허게 아파서 죽을 뻔 헌 사람이 아니여. 이티 동안에 그만 작년 올, 아! 내가 죽어 가지고는 따로 나와서 송장, 내가 나를 보고 법문을 했네. 그때에 의사가 와서 그 '숨 떨어졌다'고까장 다 다 듣고, 그 '임종 법문(臨終法門)을 백힐라면 녹음기를 갖다가 백히라'고 그 말 다 들어, 내가. 다 들었어 그 혼백이, 그 앉어서.
그렇게 아파 가지고 배가 이만헌데, 배가 이렇게 들어가 버리고 이렇게 말랐는데, 어저께도 가서 헐 수 없이 가서 법문 아침때 해 주고 점심때 해 주고 왔어, 그저껜가 칠석날. 그러고도 그날 되짚어 와서, 아! 내가 돈푼이라도 그저 어떻게 한푼이라도 아! 어디서 그저 또 주면 그놈 갖다가서는 씨갓이 사 오고, 내가 어저께 가 씨갓이 다 사다 놓았어. 아! 서로서로, 나도 내 자랑 같애서 좀 미안하지마는 나도 대중을 위해서 내가 헌 것인께, 이 말 한마디를 자랑이거나 말거나 뭣이거나 대중께 헌다 그 말이여. 대중도 듣고 다 그러헌 역량을 갖추라는 그거지.
낱낱이 다, 내가 내 몸만 위(爲)허지를 말고, 내가 내 몸만 위헌 것은 좀 많이 자고, 좀 많이 놀고, 좀 많이 게으름 부리고, 내 혼자 살살 도피주의, 그거 영사영겁(寧似永劫)을 침륜생사(沈輪生死)언정, 생사 지옥고(地獄苦)를 받을지언정 소승심(小乘心)은 발(發)허지 말어라. 너 혼자만 살고, 네가 제일이고, 너만 편안하고, 그러지 말아라. 부탁 안 했어?
자! 내가 뭐 시비도 아니고, 오늘은 아침에 운력 시간에 조금 시간 두 시간씩 연장했다니 한 시간 20분이더니.. 네모 반뜻하게 요짝을 딱 맨들아 가지고는 거름 갖다가 촥 헡여. 행자들이 똥지게 짊어지고 3년 살어야 하는 것이고, 육조 스님 방애 찧어서 7천 명 대중 날마당 쌀 다 대주고, 땡초 절에 가서 15년을 공양주 노릇했어, 견성해 가지고도. 그 몸뚱이가 다 닳도록. 그것이 보살심이고, 그것이 행자가 도(道) 배우는 도(道) 마음이여.
내가 대중 흩어지기 전에 요편을 내가 다 설해줄 터니까, 각기 정념(正念)해서 각기 정념을 다 가다듬아서 설법을 잘 들어. 설법이라니! 천하에 설법, 안 뒤에는 허는 법이여!
모르면은 지옥 아비지옥에 들어가도 모르는 것이여. 곧 가도 아비지옥인지 뭔지 몰라. 문 탁! 닫히고 지옥고 받을 때, 그때도 아비지옥인지 모르고 받는 것이여. 소 배때기에 들어가 소가 되아 가지고 '내가 소 되았다'고 해 알아? 그러니 그것이 분허지. 참 원통허지. (39분59초~1시간9분8초)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