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8)•§• 박산무이선사선경어(博山無異禪師禪警語) (18/18) 박산무이선사의 선경어. (끝)

**전강선사(No.392)—박산무이선사 선경어(18), 달마바라점검(전달마냐 후달마냐) (갑인.74.02.05) (전392)

 

(1) 약 40분.

 

(2) 약 21분.


(1)------------------

홀득자가저(忽得自家底)요  두두지차이(頭頭只此爾)니라
나무~아미타불~
천만금보장(千萬金寶藏)이  원시일진공(元是一眞空)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여(余)가 이르되, 화두(話頭) 해 나가는 분상(分上)에 별념(別念)이, 어제도 별념을 말했지마는 별념이—별념 뿐이거덩. 금방 그놈이 염(念)이 그저 금방 멸허고 또 일어난 놈이 그놈이 별념(別念)이고, 또 별념 그놈이 또 일어나면 또 별념이고.
밤낮 이 중생에 염(念) 일어나는 거, 그 망상념(妄想念) 일어나는 거, 망상이 일어나 가지고 망상 그놈이 오래 무슨 그놈이 늘 있는 것이 아니라 그놈이 꺼지데기—물위에 버큼 일어나데끼, 일어났다가 꺼지고 또 버큼이 이 뒷물결에 또 일어나고 또 꺼지고 또 일어나고, 밤낮 일어나는 중생의 별념이 바다에 파도에 물결 일어나데끼 일어나는 것이여. 그걸 별념(別念)이라 해야.

이놈의 별념 따문에 망상념—화두(話頭)만 추켜들면은 화두 역시 공안법(公案法)이니까 그 화두 공안만 바로 깨달라 버릴 것 같으면은 깨달라 버린 그 당처(當處)는, 내가 그 깨달라 얻은 당처(當處)는 그 뭐 그거 어디 무슨 뭐 그거 망념이니 별념이니, 무슨 뭐 진념이니 진공이니 뭐 묘유니 헐 것이 뭣이 있나? 어쩔 수 없어 그걸 갖다 뭐 진공(眞空)이니 묘유(妙有)니 허제. 진공이니 묘유니, 별념이니 비별념이니 뭐가 있어?
아 이만 했으면 다 해석해 주는 것인데, 다 알려주어 버린 것인데, 이런 말 부처님이 그 팔만법장(八萬法藏) 속에 다 해논 말씀 아니여?

진공이니 묘유니, 중생념이 다하고 역무별념(亦無別念)이니 별념이 없느니, 단진범정(但盡凡情)이요 범정(凡情)은 다했다. 별무성해(別無聖解) 성해(聖解)도 없느니라.
다 바로 일러준 거여. 바로 설파(說破)해 준 거여. 그러지마는 그걸 바로 보덜 못허고 그만 별념(別念)밖에 없어.

별념, 중생의 별념, 그 고약한 별념이다. 그저 앉었으면은 일순간에도 눈 한번 깜짝 사이에도 별놈의 생각이 다 퍼 일어나니 그거 중생심(衆生心)이여, 그게 모도 망상심(妄想心)이여, 그 별념이여.
아 이놈의 것 따문에 당최 내 그 홀득자가저(忽得自家底), 홀득자가저, 문득 자가저(自家底)를, 내 집, 내 본래면목(本來面目)을, 내가 나를, 바로 말허자면 내가 나를 얻었단 말이여. 내가 내 면목을 바로 얻어 버렸어. 내 눈깔 내가 봐 버리고, 내 마음 내가 얻어 깨달라 버리고 나를 바로 얻어 버렸단 말이여.

두두지차이(頭頭只此爾)라, 그 별념 망념, 별별 생각 다 내고 일어나는 놈이 그놈이 다 이(爾)라. 아! 그것이 망상념, 망념인 줄 알았더니 그것이 낱낱이 그만 내 근본 도리(根本道理)네. 내 본래면목 도리네.
그놈 여의고 망상 떼 번지고 있는 줄 알았더니 망념 그놈이여. 뭐 그놈이 지어 무슨 뭐뭐 세상사, 무슨 뭐 추담망담, 고약한 무슨 욕설도 다 아님이 없어. 낱낱이 그 내 본래면목(本來面目)이라. 이놈을 증(證)해 버린다. 아 그러니 뭐 그렇게 증해 버렸으니 지옥 간들 무슨 관계 있으며, 지옥에 가 지옥고(地獄苦)를 받는들 지옥고가 내게 무슨 관계 있나 그 말이여.

받제, 받아 보제, 역부러 받아 봐. 응 받고 앉었다마는 무슨 놈의 그까짓 지옥고가 아픈들, 이렇게 증해 버렸네. 하나도 냉길 것이 없고 하나도 버릴 것이 없이 모도 다 내 면목(面目)이라.
그 깨달지 못했을 때에는 진공묘유(眞空妙有)까지라도, 불법중(佛法中) 수승묘리(殊勝妙理)까장이라도 다 그게 모도 망념 망상 그 번뇌더니, 아 이놈의 깨달아 놓고 보니까 이놈이 모도 자개차사(這箇此事)라. 내 면목이여. 내 코빼기고, 내 아정(我淨)이고.

천만금보(千萬金寶) 보장(寶藏)이, 천 가지 만 가지의 보물보장(寶物寶藏)이 뭐 모도가 원시일진공(元是一眞空)이여, 그대로가 뭐 진공묘유 도리여. 깨달라 놓고 보니 생사 없는 그 도리여. 이것을 진법이라 하고, 이것을 참 견성이라 하고, 이것을 성불이라 해야. 이것이 활구참선법이고, 이 법밖에 더 있어?
무슨 법문(法門)허면은 무슨 얘기나 잘허면 '그 법문 잘 헌다' 얘기 소리는 귀에 잘 들어오제. 못된 그런 뭐 얘기 소리, 뭐 얘기 소리라도 그 이상스러운 그러헌 그 연애담 같은 거 무슨 그런 건 귀에 풍풍 잘 들어오제. 그 참선법(參禪法) 그 해탈 정법(正法)은 생전 가야 들어오지 못하네, 들을 수가 없고. 그러니 무슨 얘기나 잘허면 '법문 잘 헌다'고. 그것 참 기맥히제.

부처님이 뭐라고 해놨어.

사언마담(邪言魔談)은 긍수청(肯受聽)이요  성교참선(聖敎參禪)은 고불문(故不聞)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사언마담(邪言魔談)은, 삿된 말과 마구니 말은, 그 뭐 견성(見性) 못헌 말은 외도(外道)거든. 견성이 없이 법문(法門)허면 외도법이라고 했어. 내가 헌 말인가? 부처님이 말했제.

나 이렇게 말을 해 놓으면은 '아 이 전강(田岡) 스님은 맨 법문허면은 남만 비평헌다. 자기 법만 제일이고 남만 비평헌다' 아 이런 말을 한다고 혀. 아 참 나 기가 맥힐 소리여.
부처님이 해 논 말씀, 내가 고대로 헌 거제. 내가 누가 견성 못했느니, 누가 견성했느니, 누가 마구니니, 누가 외도니, 나 원 그런 말 일평생 한마디 안 해봤어.

사언마담(邪言魔談), 삿된 말과 마구니 말은 모도 즐거이 듣고, 그 견성 못헌, 인가도 없는 사람 모도 올라가서 법문헌 말은 얘기 잘허니까 왼통 잘 듣고 좋다고 허제. 그 얘기 같은 거, 뭐 인과법 누가 몰라서, 그까짓 죄지면 죄 받는다는 거 그거 뭐 그것이 무슨 인과법 그것이 얘기 같은 것이제. 맨 소설 잡지에, 맨 텔레비죤에, 맨 저 뭐 극장에, 맨 나온 거 그것 아니여?
그러헌 마구니 마담(魔談) 뭐 얘기 같은 것은 기가 맥히게 듣제. 왼통 간이 옴족옴족험서 좋아서 듣제. 성교(聖敎) 선법은, 바로 우리 부처님이 가르켜 주신 참선법, 나를 깨달으라는 법, 날 깨달라 생사 없는 법, 이것은 당최 못 듣네. 생전 일러 줘도 못 들어. 믿도 않고.

꼭 믿어서 닦을 것이 이 법뿐인데, 어림도 없다. 이것 해볼 수 있나? 오직 해야사 우리 부처님이 사바세계(娑婆世界)에 하강(下降)허셔 가지고는 이 법을 깨달라 가지고 설허니 약맹여롱(若盲如聾)해서, 듣는 자가 누구여, 누가 들어?
부처님같이 천상천하에 제일가신 그 육신통(六神通)이 낭발(朗發)하신 아 부처님 말씀도 안 듣는데 그 이외 뭐 뉘 말을 들을 거여. 이것 해 볼 수 없는 것이다 그 말이여.

그런디 인자 차츰차츰 이렇게 부처님이 출세해서 이렇게 설허신 후에 차츰 조사(祖師)들이 그저 일인전(一人傳)해 가지고 당대에 하나 전했거나 못 전허면은 그 별별 짓을 다 했단 말이여.
전해 내려오다가, 아 그래도 지금 이 말세(末世)라고 해도 지금 이 계법(季法), 말세에 와서는 참 참선을 많이 믿어. 영판 많이 믿는다 그 말이여. 이 참선 모도 헌다고 인자 모도 이렇게 와서 애를 써. 이렇게 그 오욕락(五欲樂) 다 버리고 그 어려운 것이다 그 말이여. 오욕락 그놈의 거 참 버리기 어려워.

저 짐승, 동충(動蟲), 저 벌레 같은 것까장이라도 그 즈그 내외간이 있고 자식이 있고 그 오욕락이 모도 있어. 그런 것도 오욕락이 다 있다 그 말이여. 즈 가족찌리 재미나고.
우리 사람은 더군다나 그놈의 오욕(五欲) 속에 쟁겨 있어서 오욕락 따문에 못혀. 그 잠깐 꿀 겉은 그놈의 오욕락, 달콤헌 오욕락 그놈에 애착되어 가지고는 못허는 거여.
그러니 애욕(愛欲)을 한번 칼로 써서 그 일악사(一握絲), 한 주먹 쥔 실을 끊어 버리데기 끊어야 욕(欲)을 끊어 버려야 도문(道門)에 들어오는 법이다 그 말이여. 이놈의 애욕 따문에 못 들어오네. 기가 맥히제.

성현(聖賢)이, 바로 우리 부처님이 가르켜 준 참선법은 이렇게 믿고 이렇게 닦을 줄을 모르고, 참 이런 법인데 시방 우리 시방 이때에 와서는 아 참 많이 인자 참 선객(禪客)이 나오고, 애욕을 모도 이렇게 끊어 버리고 이렇게 와서 도(道) 닦는 학자, 참 귀여운 학자여.

그거 못허는 법이여. '곧 끊는다'고 말은 허지마는 못 끊어. 그놈의 애욕 한번 그놈 몸뚱이 타고 나오면은, 벌써 어머니한테 몸 받아 나오고 아버지한테 유체를 받아 나오고, 인자 그다음에는 부부지간 있고 자식 낳아 놓고 손자 낳아 놓고 이리 얼거져 놓아 노면 '곧 끊는다'고 해도 도로 들어가고, 도로 끌려 들어가고 헐 도리가 없다 그 말이여.

그러고 그놈 애욕 중에서 그저 부귀영화허고, 부모한테 효자 허고 충신 노릇허고 뭐 그저 자손들 포자농손(抱子弄孫)허고 (참선법) 해 나가면은 그 대근기(大根機)여.
'그 그렇게 해 나감서 헐 수 있제' 허지마는 그놈이 그렇게 쉽게 되들 안 허기 따문에 우리 부처님께서 우리 중생을 위해서 시현(示現)으로, 권행(權行)으로 하강을 허셨기 따문에 중생한테 불가불 연극을 해서 보여야겄다 그 말이여. 배우가 되어 가지고 보여야겄다 그 말이여.

그래서 그 정반왕궁(淨飯王宮)을 내던져 버리고, 처자를 버려 버리고, 자식을 한번 여의여 버리고 야반출성(夜半出城)해서 그 들어가서 그 깨달라 가지고, 6년 동안 잘 참 좌부동(坐不動)혀. 또 6년 혀, 12년을 허셔 가지고는 깨달라 이렇게 해 가지고는 출세(出世)를 했다 그 말이여. 보이니라고. 헐 수 없어, 그놈의 애욕 경계에 있어서는 헐 수가 없으니까 이렇게 한번 보였어.

그랬지마는 어디 부처님이 영원히 그만, 그대로 그만 왕궁 부귀 지위 다 떼 번지고 들어가서 영 그렇게 헌 것이 아니고, 그렇게 한번 깨달라서 증득해 가지고는 그만 출세해 나와 가지고는 그 아버지도 제도(濟度)허고 어머니도 사왕천 저 천국에 있는 이를 가서 어머니 제도를 허고—그 깨달지 못허고 생사고해(生死苦海)에만 파묻혀 고(苦) 받는 부모를 제도 안 헐 수 없으니 가까운 인연부텀 제도 쏵 들입대 허고, 아 그러고 인자 그때는 적극적 주의(主義), 임운(任運) 주의로 어디 가서 그러헌 그 무슨 여의고 떼 번지고 출가 그것도 없이 그저 그만 일생을 어떻게 허셨냐 그 말이여.

허지마는, 처음에는 이것 대번에 그만 그 세상 그 부귀영화 권리 속에서 애욕 속에서는 헐 수가 없기 따문에 처음에는 정중선(靜中禪)이래야 된다 그 말이여. 이렇게 모도 우리 선객(禪客)이 모여서 지금 정중선(靜中禪).
이렇게 모도 장개갈, 또 여기 여 모도 어떤... 아! 대학을 모도 그 허니라고 얼마나 애를 썼어? 국민학교로부터 중학교로 고등학교로 대학을 졸업한 뒤에 학부를 다 졸업허고는 아 인자 그만 거 무슨 뭐 뭐 또 해 가지고 합격되면은 아 모도 인자 판검사에다가 지어 그만 장관들에다가 모도 이렇게 될 턴데 아! 그만 발심(發心)이 되았네. 그 몰라서 못 했다가 듣고 알아보니 믿어 보니 참 참선밖에 없네.

이건 나를 내가 깨달아 놓고야사 뭐 헐 일이제, 이래 가지고 이 모냥 되어 가지고 이것 뭣할 거여?
오늘 실념(失念)헐는지 내일 실명(失命)헐는지 알 수 없는 놈의 목숨, 바람 가운데 등불 겉은 놈의 목숨, 뭣헐 거여? 이슬 같은 놈의 목숨, 여관 생활 같은 놈의 목숨, 아 이걸 가지고는 뭐 대학이니 뭣이니 해봤던들 생사(生死)를 면(免)헐커니는, 뭐 생사 뭘 그걸 가지고 면(免)혀? 어디서 배왔던 대학 가지고 면(免)혀? 아무리 외학 지식이 33천 세계의 지식을 다 가졌다 하면은 그 지식 가지고서 생사를 면혀?

'생사 면허는 법은 첨선법(參禪法)밖에 없구나. 나 깨닫는 법밖에 없구나' 아 이걸 믿어 가지고 들어와서는 공양주(供養主)를... 공양주 한 철 또, 아 여그 우리 목사 선사가 시방 들어와서—아 떠억 화엄사에서 석 달 동안 공양주를 허는데 기가 맥혀. 그 깨끗이 해 가지고 대중공양(大衆供養) 시키니라고 70명 대중이 그때 그 되었나, 뭐 한 80명 대중 되았나? 그 대중공양을 다 해 올리고. 그렇게 나중에는 인자 차츰 재무국장이 되어 가지고는 아 그렇게 계셨단 말이여. 그러더니 또 왔어.

그 4.19가 일어나고 비구 대처가 싸워 제껴싸니, 그 교당 목사로 계시다가 그런 꼬라지를 보니 참—'그저 산중에, 참 깨끗헌 산중에 명산 속에, 도 닦는 도찰 속에 얼매나 도인(道人)들이 깨끗하고 서산 도사 같은 분이 다 나오고, 원효 국사 같은 이가 나오고, 보조 선사가 나오고 이러헌 기가 맥힌 도찰에서 도 닦는 게 얼마나 고상하고. 내가 이 목사로 있어서 하나님 아버지나 부르고, 무슨 뭐 에덴 동산이나 찾고, 뭐 선악과수나 맨들아 놓고 따먹지 말라는 해와 아담 뭐 이런 것 그 뭐 선도 아니고 뭣도 아니고. 에라, 우주 만물을 창조허는 창조신이 전지전능헌 신이 하날이라고 허지마는 하날이 내다, 내가 하날이지. 일체(一切)를 유심조(唯心造)제, 하날이다 땡이다 우주 만물을 창조헌 원천 조화옹(造化翁)이 내다, 나부텀 깨달자' 아 이러고는 참 들어왔다 그 말이여.

척사현정(斥邪顯正)을 턱 해번지고, 그런게 들어왔제 글안하면 들어오겄어? 종교와 종교를 바꾸겄어? 그 신도가 얼맨디, 왼통 그만 '목사님' 헌디.

아 들어와 가지고 본즉 아 이놈의 정화(淨化) 싸움이 일어나 가지고는 그 가운데 도 닦는 도학자(道學者)는 하나도 볼 수 없고 맨 그만 그저 서로 치고 때리고 주먹 권투를 허고 이래 가지고는 피투성이가 되고 이러니 있을 수가 있어야지.
그만 그만 왔다가 기대에 어긋지고, 그놈의 짓을 보니 '아이고 출가케니는 이것 큰일났다' 그래도 퇴타(退墮)는 않고 그 이치, 참선해서 생사해탈허는 이치, 내가 나 깨달는 참선법은 그대로 믿고, 그대로 없는 줄 천상천하에 없는 줄 알았지마는 임시에 들어온 것들이 세상 모도 그저 그 악습 악배(惡輩)들이 들어와서 모도 저렇게 모여서 그렇게 되아 있구나. 이렇게 알았기땀세 그동안에 그래도 그 마음을 버리시지 않고는 그 교회 정리를—나와 버린게 오직 헐 것이여.

그 교회 정리를 다 해 놓고서는 그 저 진불암 들어가서, 토굴에 들어가서 도를 닦다가 '혼자 닦을 수밖에 없다'고 그 좋은 도반 한 분 해 가지고는 도를 닦다가 나오셨다 그 말이여.
인자 이만해서 정화 싸움도 일어나 가라앉어 번지고 조계종도 다 새로 모도 종단이 되아 있고 건립되아 있고 허니 옛날에 내가 입산했던 우리 스님을 다시 찾어야겄다고 아 정전강(鄭田岡), 나 같은 것을 또 찾아왔단 말이여.

하 고맙기가 짝이 없어. 감사하기가 짝이... 그래 여기 와 계신단 말이여. 시방 있어. 여기 이 방 여기 참선헌 제일 나이 많허고 나이 50이 다 되어 간 분이 그래 와서 시방 도(道)를 닦는데, 그 보란 말씀이여. 무엇이 부족해서—부귀가 없어? 지위가 없어? 권리가 없어? 그만헌 큰 목사시로서 '호귀득도난(豪貴得道難)이다' 호귀(豪貴)를 한번 버려 버리고 도를 닦아야 하겄다. 호귀 속에서는 도를 얻기 어렵다. 아 이러고 들어와.

그다음에 또 여기 대학 졸업 떡 허고 들어온 사람이 아 뭐 뭣이 지금 판검사가 그만 앞에—'그까짓 거 판검사 그것이 무엇이냐? 내가 그것을 해 가지고 생사(生死)를 면헐 거냐? 그놈 판검사 허다가 이 목숨 죽어버리면 또 도 닦겠나? 좀 해보고 닦아?' 때려치와 버리고 부모한테 '없는 자식으로 압시오' 허고는 나와서.
여기 나와, 여그 나오면은 편안하게 가만히 앉아 도 닦는 데 아니니까 '공양주를 해라' 공양주 한 철 허고는 시방 정각사 가서 한 철 또 참선허고 시방 와서 도 닦고 있단 말씀이여.

아 또 한 분이 법학대학을 졸업하고는 큰 회사 과장이 되아 가지고 모도 회사 하다가 장가들어서 마누라 있고 따님 있고 다 있단 말이여. 시방 바로 털어놓고 얘기하제 있는 걸 왜 없다 햐? 쏵 정리를 해 버리고는 이혼해 번지고 따님까장 거다 맽겨 번지고는 그만 홀홀단신으로 나와서 지금 공양주를 허고 있단 말이여.
이 목사님도 지금 그만 부부지간에 살다가 '내가 도를 닦으로 갈참이니 부부지간으로 내가 있을 수가 있어? 허니 서로 이별허자'고 서로 이별 딱 해 번지고 가 번지고는 자식, 한 서너 개 있는 자식을 하나는 군인으로 있고, 한 놈은 들으니까, 와서 말씀하는데, 이놈은 당최 어떻게 가르킬 수가 없게 되었대. 이놈이 어떻게 된 놈인고 모르제. 그놈은 그까짓 제대로 내비나 둬 번지고는, 따님 하나 있는 것은 어머니가 인자 그만 책임져 번지고 이혼해 번지고 그러고 나왔단 말씀이여.

홀홀단신으로 이렇게 한번 애욕을 끊어 번지고 척 나와서 정중선(靜中禪), 일체가 도무지 무슨 처음에 인자 이놈을 할라니까 정중선(靜中禪)이 아니면 안 되니까, 정중(靜中)에서 인자 도를 닦는다 그 말이여.
정중(靜中)에 들어왔거들랑 정중선을 옳게 닦아야 하지, 또 그래 가지고 정중(靜中)에 들어왔어도 공연히 마음이 분다해져. 갔다왔다 갔다왔다 여 갔다 저 갔다 무엇 때문에 그 짓을 혀? 무엇 볼라고, 산 볼라고 갔다왔다 혀? 물 볼라고 갔다왔다 혀? 물이니 산이니 그 같은 것이 뭣이여? 내 볼 것이 따로 있는데.

공안(公案), 알 수 없는 공안 '여하시조사서래의(如何是祖師西來意)냐. 어떤 것이 조사(祖師)가 서(西)에서 온 도리냐?' '판대기 이빨에 털 났느니라' 간단한 것이여. 세상에 글 한 귀보담도 간단허고.
'판때기 이빨에 털 났다' 꼭! 판때기 이빨에 털 난 도리가 있어. 판때기 이빨에 털 난 도리만 바로 봐 버리면은—아는 것 아니여. 아는 건 따져서 아는 것이여. 뭐 수학 풀데끼 뭐 숫자 요리 생각하데기 그런 것 아니여.

처꺽 봐 버리면은 일체 공안이—원상(圓相)을 턱 그려 놓고 '들어가도 너를 때리고, 나와도 때린다. 일러라' 그까짓 것 문제 아니여.
그놈 다 해야제. 그 살불살조(殺佛殺祖)허는 공안인데 일없어. 원상을 그려 놓고 '입야타(入也打)요 불입야타(不入也打)허다' 고것은 첫 화두 첫 공안 하나지마는 고것 또 대번 이를 수 있어, 그거.

그까짓 거 하나 고런 거 일러 가지고 또 되야? 그거 하나 이르길래 '어떠냐?' 한게 끄떡끄덕허길래 그냥 두었더니 뒤에는 또 딴소리가 있어. 요새 딴소리가 있어서 여까지 질문 왔어.
'부채를 밀었다' 그래여. 나 그래서 요새는 '하! 이것 참, 공안 하나 가지고 만약에 어떻게 점두(點頭)해 주었다가는 큰일나겠구나' 내 이밖에 없어. 말 인자 한마디 안 해.

그 밑에 가서, 원상(圓相)을 그려 놓고 "들어가도 치고 나와도 친다" 하니까, 웬 학자(學者)가 원상(圓相) 속으로 들어갔다. 그래 쳤다.
들어가도 치고 나와도 쳤다고 했은게 원상(圓相)에 들어갔은게 쳤다, 딱! 때렸단 말이여. 뭐 이거 친 것이, 시방 이 법(法) 쓰는 것이 그리여.

아 스님께서 마조(馬祖) 스님한테 "큰스님께서 학자를 못 때렸습니다" 맞고도 그리여.
맞고 "학자를 바로 못 쳤습니다" 그러니께 그만 그 끝에 아무 말씀이 없어. 아무 말이 없다 그 말이여. 그것이 무슨 도리냐 그 말이여. 그만 아무 말이 없다는 건 무언 도리일까?
'들어가도 치고 나와도 친다'는 그놈은 일렀다 해 두고, 탁! 친게 "학자 못 때렸습니다" 헌게 그 스님이 아무 말이 없어, 그 뭔 도리일까?

기가 맥히네, 기가 맥혀. 공안 도리가 그리여, 이건 공안(公案)이라 하는 것이여. '입야타(入也打) 불입야타(不入也打)' 한마디 딱 해 놓은 건 화두(話頭)라 하고, 고 밑에 연속해서 딱! 들어가니까, 탁! 치니께 "학자를 못 쳤오" 헌게 그 큰스님이 아무 말이 없다. 고걸 다 연속하면 공안(公案)이라 해야.
공안은 화두보담도 백 배나 더 어디가 맥히면 안 되야. 오(悟)가 맥히면은 오(悟)가 아니여. 철벽(鐵壁)이 다시 있으면 되야?

고러헌 무슨 처음에 소견(所見) 하나, 빼꼼 하나 화두 하나 어떻게 옳게 또 일렀다고 헌들 탁마(琢磨) 없이 제대로 견성(見性)했다고 돌아댕겨? 제대로 견성했다는 소견을 가지고 '에헴, 내가 그...' 그러고 댕겨? 천하 덜 죽은 놈의 송장이 더 더럽다.

택도... 뭔 왜 그렇게 말이 없어? 마조 스님이 아무 말이 없다. 기맥히다. 그건 진공(眞空)도 묘유(妙有)도 아니여. 진공묘유니 그런 것 붙여서는 그까짓 것은 선(禪)이 아니여.

정중선(靜中禪)이라는 것이 참으로 묘헌 것이여. 정중(靜中)에서 부처님도 12년 동안 설산(雪山)에 들어앉아 계셨고, 달마(達摩) 같은 이도 소림굴(少林窟)에서 9년 면벽(面壁)헌 것이 후래인(後來人)을 모도 보인 것이여. 그렇게 정중선을 한바탕해라.
경허 큰스님 같은 이도 칼을 따악 팍! 칼을 바싹 대 놓고서는 따악... 요러면 가 콕 찔러 그만 상신(喪身)이다, 그만 실명(失命)이고. 그런 지경을 해 놓고 도를 닦았어.

뭐 멋없이 들어와서 한 철 지내곤 이리 휘딱 저리 휘딱 수용 좋은게 가고, 경계 좋은게 가고, 모냥 좋은게 가고, 어쩐게 가고 그것 틀렸어. 거 산중 오입, 오입 중에는 산중 오입 그것 천하 천하 못쓸 것이여. 벌써 한 철 지내면 그만 귀신, 걸망 귀신이 앞을 가자고 너 따라가, 그 귀신에 따라댕기는 것이여.

좀 주(住)해서, 좀 주해서 옳은 스승 밑에서 옳은 법문을 듣고, 자꾸 뒤적거려 줘야 되야. 옳은 스승이 자꾸 이놈을 해 줘야 되야. 가만둬서는 안 되야. 나락 곡식 꽂아 놓고 내비두면은 지심(잡풀) 모도 고것이 딱 절려서 되도 안 해여. 파 주고 해서 매 주고 가꿔 주고 자꾸 해야 되는 법이제.
화두를 가르켜 줘 놓고는, 화두 법문을 늘 해 주고 자꾸 이놈을 운거(運去)를 해 주어야 되야. 틀림없어. 그래서 '불급심사(不急尋師)면 공과일생(空過一生)이라, 급히 스승을 찾지 아니허면 일생을 헛되이 보내느니라. 불인사오자(不因師悟者)는 만중희유(萬中希有)니라, 스승 없이 깨달은 자는 만(萬) 가운데에 희유허다' 없다는 것은 아니제. 하나나 혹 있을 수가 있다는 건가, 희유(希有)는. 희유허다 그 말이여. 바로 달마 스님이 말씀을 해 놓았제. 만중희유(萬中希有)니라

오후(悟後)에도 불급심사, 오후에도 또 스승을 만나서 인가 받지 아니허면, 그것 오(悟)했지마는 그놈의 오(悟)가 재미(再迷) 되아 버려. 탁마(琢磨)가 없어 그냥 재미(再迷) 되아 버려. 도로 미(迷)해 버리면은 그거는 더 못써. 재미(再迷) 되어 버리면 더 깨달을 수가 없어. 이러헌 법이다 그 말이여.

그래서 내가 오늘 아침 법문이 또 여까장 해 준 것이여.
내가 석상 스님 법문을 해서 그 석상 스님 법문—사견(邪見)에 모도 엎어지고, 모도 사리(舍利) 나면은 '도인(道人)이다', 방광(放光)하면은 '도인이다'
고까짓 놈의 것을 도인이라 하면은 개똥불이 도인이고, 전복 같은 것이 모도 사리가 속에 들었어. 가재도 들었고. 그러니 그게 도인이제? 그까짓.

부처님이 우선 뭐라고 했어? 약이색견아(若以色見我)커나, 음성으로 나를—'부처님의 음성은 원음(圓音)이니까 일체 짐승도 다 들으니까 부처님이다. 부처님은 32상에 80종호가 구족허고 육신통이 낭발했은게 부처님이다' 사견 외도(邪見外道)라고 했어. 부처님이 바로 했어.

그까짓 것이 뭣이여? 왜 그러면은 야부(冶父) 스님 같은 이가—참 야부송(冶父頌)이 제일이여. 야부 스님 같은 도인이 없었어, 당시의. 야부 스님은 어째 죽을 때에 똥을 막 드리 싸 가지고는 왼 몸뚱이에다 바르고는 '아이구' 하고는 왼통 그저 똥 싸 가지고 그저 벽에다 냅대 때리고, 그만 수망각란(手忙脚亂)하고 왼통 숨이 가빠 '훅 훅' 하다가 돌아가셨냐 그 말이여.
거 모도 이놈의 상견 중생(相見衆生) 중생들, 사견 중생들이라는 것은 그만 그걸 보고서는 '저게 뭔 도인이냐?'고. '에 거 도인 아니라'고 쏵 자빠져 버려. 당시에 믿었든 학자들도 쏵 물러가 버렸단 말이여. 그래서 영 야부는 매장되아 버렸지.

그다음에 야부 스님 그 결집헌 경, 야부 스님 모도 송(頌) 결집(結集)헌 책, 그것도 불질러 버린다고 갖다 불을 지르니께 불이 타야지? 아무리 질러도 안 타네. 책이 안 타. 아 부르르 연기나 좀 노라니 끄슬려 안 타. 다른 경을 갖다가 넌게 막 타 버린디, 야부 스님만 안 탄다 그 말이여.
그 안 탄다고 해서, 그 책이 안 타니까 그 또 신통변화, '그 책이 안 탄게 신통이 그렇게 장하니까 도인이다' 또 그리여? 그까짓 것도 마구니 경계여. 그 뭐여, 그까짓 것이.
허지마는 그것은 그 책이 안 탄 것은 그대로가 그대로가 사사무애(事事無碍)의 증(證)이여. 그거 뭐 신통으로 볼 것 없어. 그대로 증(證)으로 볼 수 있는 거여.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증(證)이여.

중생의 환화(幻化)가, 중생의 구백생멸(九百生滅) 번뇌 망상이 그대로가 낱낱이 깨달라 놓고 보니 증(證)이여. 그 증(證)으로 바로 봐야제.
그때부텀 야부 스님이 그만 뭐, 그저 상견(相見) 중생이 또 그리 돌아오제, 또 인자 그때 가서는 또 인자. '하이고, 그 경이 안 타니, 다 타도 안 타니 참 도인이다' 그 또 이래 믿어.
그 야부 스님이 제일이여. 모도 야부송(冶父頌) 좀 가 봐, 법문이 어떤고? 그 법문 보면은 기맥히제. 모도 격외(格外) 법문인데 그 법문이 모도 활구(活句)지, 모도 산 법문이여.

이 법문이라는 것을, 두두(頭頭)가 지차이(只此爾)인데, 머리머리가 다 깨달라 놓고 보면은 망상 번뇌가 다 깨달은 도리인디, 천금만보장(千金萬寶藏)이 원시일진공(元是一眞空)이여. 다 생사 없는 도리여. 그 진공(眞空)은 바로 생사 없는 도리를 말해 놓은 거니까. 진공묘유(眞空妙有)여.
말허자면 진공묘유라고 했지, 깨달지 못한 분상에는 진공묘유가 뭣이여? 망상에는 더 망상이제. 바로 깨달라 증허면은 개똥도 진공묘유여.(처음~39분43초)





(2)------------------

이러헌 참선법, 정법(正法). 이 말세에 와서는 인자는 더 차참차참 모도 발전이 되아 가지고는 미국도 지금 발전이 되아서 많이 지금 발전헌데야. 우선 들어가서 모도 참선법 포교허고 있제. 경보 스님도 허고.
세계가 참선법, 내가 한번, 모도 세계 지도자 대회가 모인다고 재작년인가 언제 서울서 모도 헌다 해서—그까짓 무슨 세계 사람이 세계 중이 다 와, 눈깔 다르고 코 다르고 입 다르고 그런 것 볼라고 왼통 갈라고 야단쳐. 난 그까짓 놈의 눈 다르고 코 다르고 입 다른 거, 뭐 뭐 구렝이도 다르고 뭐뭐뭐뭐 토깽이도 다르고 뭐 말도 다른디 그까짓 거 보나 마찬가지제, 그것 보러 갈 것 뭐 있나? 나는 그거 갈 생각도 안 냈어.

달마바라가 와서 왼통 그만 조계사에서 눈 온 밤에 추운 밤에도 그대로 벗고도 가만히 정진만 하고 있다고 '부처'라고 야단났어. 내 여그 가만히 앉어서 뭐 갈 것 뭐 있나? 내가 공안만 물었지. 달마한테도 내가 묻지 않았어?
그렇게 그 밤이 긴긴밤이, 그 추운 밤이 거 기가 맥히게 한설(寒雪)이요 얼음덩어리지마는 그 속에서 정진만 하고 있다고, 왼통 모도 조계사 신도가 그 앞에 가서 돈을 갖다놓기를 굉장하게 뭐 놓고. 뭐 돈도 안 받고는 고아원에 주어 번지고 돈도 모르고 그런다고 왼통 절을 허고 야단났단 말이여.

돈 안 받고 뭐 밤새드락 눈 속에서 무슨 뭐 방광(放光)을 놓고 있으면 그것이 도인(道人)이여? 고런 디 가서 미치고 꺼꾸러져?
그 너무 야단침서 자꾸 날 보고 '시험 좀 해 달라'고 여그 여 본각이 그랬구만, 여기 시방 댕기는 그 사람이.
그래 쌓아서 내가 물었어. 내가 내가 갔나? 내가 그만 공안만 하나 물었제. '여시달마(如是達摩)니, 네 이름이 달마니 전달마(前達摩)냐, 후달마(後達摩)냐?' 하나 물었다 그 말이여.

아 이놈의 달마를, 저대로 그 한문도 좀 하고 그려. 답을 해 놨는디 그놈의 답은 원 무슨 놈의 답인지 그 대체 외국놈인가 그런가 어쩐가 알 수도 없네. '천상에서 무엇이 어쩌고 무엇이 어떻게...' 나 보도 안 했어? '아니다 기다' 할 것도 없고 또 외국서 나와서 그렇게 도인 노릇허고 있는 사람을 '아니다 기다' 쳐 버리면은 그거 못쓸 것이고.
내비놔 두어버리고 '당신도 한마디 그렇게 일렀으니 내가 한마디 이른다' 하고, 내 점검으로 '여하시(如何是) 전달마(前達摩)냐 후달마(後達摩)냐?' 그렇게 내가 자문자답(自問自答)으로 물어 놓고 답을 허되 ‘가가문전(家家門前)에 장안문전(長安門前)에 명월백(明月白)이니라. 장안문앞에는 명월이 밝니라’ 내가 그렇게 한마디 대답해구만. 그거 또 몇 마디 또 또 내가 대답했고.

또 만국(萬國) 그 지도자 대회에 모여서 내가 문답 셋을 억지로 영어를 번역해서 이거 인자 누구한테 모도 보내서 해 가지고는 여러 장을 맨들아서 만국이니까 만 명이나 올란가 싶어서 여러 장을 해서 베겨서 그래 내가 보냈지.
거 한마디 답 없어. 한마디 대답이 없고는 그 무슨 뭔 나라에서... 또 잊어버렸네. 뭐 대답 하나 한데 그 승정인가 승정이 대답을 했는디, 근데 그 나라에는 승정이 임금이라는구만. 승정이 대통령이라는구만.

그 승정이 답을 했으되 무슨 '무답(無答)이 시답(是答)이다. 답 없는 게 이 답이다' 한마디 고렇게 했어. '무답 시답이다' 한 것이 그게 강사(講師)의 소견은 되야. 제일 그래도 그 그래도 그런 말 한마디라도 허고는, 다른 나라 사람은 하나도 못허고 '돌아가서 답헌다'고 허드니 한마디 안 돌아와.
한국 가서, 이런 공안을 물어서 아조 한국에는 선이 있다, 이것이 전파되았데야. 이것이 한마디 묻는디 그런 전파가 되야.

우리 부처님의 정법이 참선법이 그대로 조~옥 달마 스님까장 와 가지고 달마 스님이 동토(東土)로 건너오고는 저 다른 나라로 안 갔거든. 맨 소승법만, 계행이나 닦아서 천당 가고. 모도 월남도 그런 법, 그것 뭣혀? 계행 닦아서 천당만 가 가지고는 천당에 가서 몇억만 년 복(福) 받다가 그놈의 복 다하면 또 떨어져서 죄 지으면 지옥 가고 그 뭣혀? 확철대오허는 법, 타락 없는 법이래야 그게 법 아닌가?


오늘 아침에 내가 시방 별념(別念), 별념 가지고 시방 얘기하다가 이렇게 까장 나왔어.
별념(別念)은 비단세간법(非但世間法)이라. 구경심(究竟心) 외에, 구경심이라 하는 것은—구경심 여의여 놓고, 구경심이라 하는 것은 견성성불(見性成佛)허는 법, 그 법이여.
'견성성불허는 법 밖에는[除究心之外]' 그 말이여. 구경법, 구경심. 구경심 밖에는 불법중(佛法中) 일체호사(一切好事)가 다 별념(別念)이다 그 말이여.

뭐 불법중에, 부처님 정법문중에 '제일구다, 제이구다. 무슨 향상이다, 향하다. 조(照)다 용(用)이다' 뭐 다 있어. 고런 것, 삼현이니 삼요니 극칙, 이치로는 극칙헌 이치를 말헌 거여. 깨달은 분상에 그 그런 이치가 있다 그게지, 깨닫지 못한 분상에는 소용없는 것인데. 그런 것도 별념이여. 소용없어.
구경심 이외에는, 내 마음 탁! 깨달라 증해 버린 밖에는 다 별념 망념 아니여? 뭐 공부해 나가다가 무슨 무슨 놈의 마음이 나? 뭣이 뭔 마음이 나? 알 수 없는 놈 '어째서 판치생모?'인고 뿐이제, 거다가 뭔 좀 질게 헌게 어쩌고 짜룬게 어쩌고 그려? 그 무슨 사견(邪見) 사견심이 일어나서 그런 놈의 소리를 허고 있어.

한마디 들었으면은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허면 '했는고?'가 조주(趙州) 뜻 찾는 것인디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자꾸 허면 자주 허면, 한 철 허면 두 철 허면 나중에는 '어째 판치'도 없어. 그냥 그대로 앉으면은 반조(返照) 뿐이여.
염(念), 알 수 없는 놈이 들어와서 딱 들어붙어 가지고는 뭐 내외(內外)가 있나, 무슨 뭐 안팎이 있나, 뭐 어디로 나가나 들어가나, 뭐 추역불거(推亦不去)허고 밀어도 나가지 않고 따악 독로(獨露)되아 가지고는 깨달을 것밖에는 없어. 거 안 깨달른 법은 없어, 그 지경 되면은 깨달은 법이제. 그대로만 있는 거 아니여.

아무것도 일체 번뇌 망념도 없고, 알 수 없는 놈만 하나만 따악 있으면은 제8뢰야식장(第八賴耶識藏)이나 같으라고. 뢰야식장, 잠 꼭 들어 가지고 그 지경 같으라고. 그러면 소용없어 그거 안되야. 깨는 법이여.
제8뢰야식장은 알 수 없는 놈을 연속헌 것이 없으니까 그것은 그건 무공(無孔)이지, 무공 젓대여.

비단 별념(別念)이라는 것이 일체가 다 별념이다.
또 불법중사(佛法中事)뿐이리요. 저 심체상(心體上)에, 내 마음 가운데에서 무엇을 취(取)허고 버리고, 집(執)허고 화(化)허고 다 별념이여. 내 마음속에서 뭐 뭐 이리저리 작정해서 지정해서 '옳다, 요런 것이다, 저런 것이다' 허는 건 다 별념이여.

공안 하나밖에는 다시 없다.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아 이러헌 법을 바로 듣고 바로 믿고 아 그래야사 법문이제, 그 무슨 얘기 소리나 뭔 소설 소리나 이런 소리를 듣고는 '아 법문 잘 한다' 거 뭐 어떻게 해서 잘했다 허는고 몰라.

달마 스님이, 세상에 우리 달마 스님이 뭐락 했어? 그 관심일법(觀心一法)이, 마음 관허는 법이, 관심일법(觀心一法)이 총섭제행(總攝諸行)이니라. 일체 다 거기 관심일법밖에 없어. 관심일법밖에는 없어.

단지(但只) 알 수 없는 놈 하나만 갖추면은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이다. 수참활구(須參活句)언정, 모름이 활구(活句)를 헐지언정 막참사구(莫參死句)니라. 사구는 말어라.
별념(別念)이여, 사구(死句)라는 것은. 모도 일체 모도 망상 번뇌여. 인자 이렇게 다루어 나가야제. 참학자가 되어야제. 견성(見性) 만약 해서 터꺽 공안을 깨달라야사 인자 참 그 옳은 스승이요, 그 옳은 스승을 만나야사 인자 참 불급심사(不急尋師)면 공과일생(空過一生)인데, 공과일생이 없제. 바로 깨달라 생사해탈을 증해 나가야 하는 거 아니냐 그 말이여.

견성 못헌 자가 만약에 불법(佛法)을, 법을 가리킨다고 앉아서 설법을 헐 것 같으면 견성 못한 자가 설법을 허는 그자는 마구니의 왕이고, 그 밑에 설법 듣는 자는 마구니의 백성이다. 마구니의 제자다.
견성 못헌 자가 미득(未得)을 위득(謂得), 미증(未證)을 위증(謂證)해 가지고는 모도 일체 사람을 속여서 영입마계(令入魔界)라. 영히 마구니의 굴에 들게 만드느니라. 이것이 『혈맥론(血脈論)』에 있는 법문이여. 어디 내가 없는 말을 해여?

나 이렇게만 말을 해서 어쨌든지 정법 간택(揀擇) 설법허니라고 허제, 누가 '견성했네 못 했네, 그 마구니니' 아무개는 이러면, 나는 이런 소리허는 법 없어. 이렇게 해 놓으면은 견성 못헌 것이 부끄러운게 '나를 두고 했다' 요런 놈의 소견을 가지고 말을 허는 것이다 그 말이여. 내가 누구를 지명(指名)을 했나?
과거에 용성 큰스님도 항상 올라가면은 간택 설법을 이렇게 했고, 만공 큰스님도 항상 올라가면은 이러헌 법문을 했고, 부처님은 일생에 정법을 설허기 따문에 그런 간택 설법을 '어떤 것은 마구니 경계고 어떤 것은 정법이요' 아 이렇게 허지 안 했냔 말이여?

내가 우리 대중을 위해서 참선해 나가는 화두 설법을, 별념 가지고 오늘 아침에 설법을 마쳤어.

저 모도 그 깊은 저 지리산 정각사까장 가셔서—선방이 된다 하니까 아 그만 거까장 모도 산고수활(山高水濶)을 끄리지 않고 오셔서 아 그만 그 애써 모도 공양주를 그렇게 넉 달 동안이나 하고 아 이렇게 있다가 다 치우고 그렇게 참 오셔서 대단히 고맙습니다. 그만헌 참 신심이 있어야 되아. 그만한 신심이 있기 어려워. 그래야제.
그 아들이 없나, 영감이 없나, 딸이 다 대학 출신이 없나, 헌데 '나는 붙잡지 마시오, 나 좀 용서하시오, 내가 도를 닦으러 갑니다' 헌게 아 영감님도 그만 허락을 해서 '도 잘 닦고 있은게 고맙다'고 편지를 다했고. 아 안 돌아온게 '한번 댕겨나 가지 그러냐'고 이런 편지가 왔드라는구마는.

다 마치고 대중은 다 나간 뒤에 그 뒷수습 다 해놓고 와서 또 인자 나한테 와서, 내가 거 조실(祖室)이라 하니까. 가들 못하고 병중에, 인자 병은 다 낫았오. 뭐 내가 인자 괜찮은게 낫었제 뭐. 또 또 날는지, 병 뭐 낫었자 그놈의 몸뚱이라는 것은 조석지간(朝夕之間)에 뭐 위태허지 소용이 있소? 팔십이나 된 것이. 허지마는 우선 인자 곤란 받은 병은 낫았단 말이여. 그래도 의사한테 댕기고 밤낮 댕기니까 아 그 낫았어.

내가 늘 뭐 뭔 자랑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여러분들 내가 그렇게 헌 얘기해서 여러분들도 그런 말을 듣고 밤정진도 허고 다 그러라고 내가 헌 것이지마는, 누차 얘기했지마는 걸상에 앉아서 자고 걸상에 앉아서 그만 그대로 지내는데, 아 그 오래오래 그냥 한 삼사십 년을 그 지경을 허고 앉았은게 뒤에 가서 꾸득살이 백혀 가지고는 꾸득살이 그놈이 터져 가지고는 벌어져 가지고 자꾸 개렵고 아픈디 암만 약을 다 칠해도, 도립병원에 가서 그렇게 해도 안 되야. 약을 사다가 발라도 안되고.
헐 수 없어 그냥 그놈을 견디고, 아프면 이렇게 지대고 앉고 이랬는데, 인자 점점 더 아파서 못허고. 그래 내가 병원에 댕기면서 그런 말을 의사한테 했더니 '그 안 낫는 것입니다. 좀처럼 안 낫는 것입니다' 고백분을 한 덩어리를 주어. 고백분을 갖다가 자꾸 잠 밤잠, 침을 묻혀 가지고 바르라고 해서 아 그놈을 한 일주일 이상 발랐더니 다 낫아 버렸어. 참 그런 병까장 다 낫았어.

그 병까장도 다 나았고, 여기 뭉텅이 매달린 놈도 없어져 버렸고, 변비가 꽉 맥힌 놈도 없어졌고, 잠은 언제든지 밤으로 안 잘라고 애쓴게 밤에는 안 잔게 안 잔 것이—내 해 나가는 뭐 참선해 나가는디 잘라고 있는가—그놈은 습관이 되어서 잠은 안 오는데, 아침 저녁 자야 헌디 아침 저녁 잠을 못 자. 아 인자는 못 잔게, 밤새드락 못 자거든. 아 그래 정신이 좀 흐리고 안돼. 안되야서 그 약을 지어다가 먹고 지금 인자 잠은 좀 잔디, 그놈을 허다가서는 내던져 번지고 잠을 잘라고 허면 또 안 오거든.
이거 습관성이 되아서 약을 꼭 먹어야만 한숨씩이라도 다만 10분씩이라도 자는가 싶어서 물으니까 인제 '그 한약이니까 습관성 없어지고 병 다 낫으면 괜찮허다'고.

아 병은 다 낫았는디, 인자는 뭐 매달린 것도 없고 변비도 그대로 잘 나오고 헌디, 좀 좀 아직 부시부시헌 기운이 여가 뻑뻑험서 있는 것이 남아 있어. 인제 고놈이 낫으면은 잠도 올라는가 싶습니다마는 아직 고것이 좀 남아 있제. 매달린 것도 없어졌고. 저녁으로는 좀 부시부시한 기운이 저녁때로만 있고 아침으로는 없어지고 그런 것이 좀 있습니다. 허지마는 그것도 다 인자 낫을 줄 나 자신해 했구만. 여까장.

그러니라고, 그 병을 치료허니라고 내가 중대한 그 조실을 정각사 조실을 떠맡아 놓고는, 그 억대(億臺)로 억대나 지어 들여서 안 지었습뎌, 거. 탑(塔)까장 다 억대를 뭐 해서 지었다고 그러드구만. 억대(億臺)—그 대밭이며, 그 감나무 밤나무 천 주(千株)를 심었으며, 그 땅 샀으며, 그 건물 다 지었으며 억대 더 들었제, 뭐.
그렇게 지어논 절을 아무도 안 주고, 줄 마음도 안 가지고—아 뭐 전강(田岡)이 무엇인디 정전강을 그렇게 알아 가지고, 별로 나 즈그 알도 못허고 지내도 못했는디, 이리저리 들었던지 어쨌던지 나를 갖다 이렇게 '맽깁니다' 허고, 아 그 고맙기도 하고. 한 번 두 번이제, 몇 해를 두고 그랬다 그 말이여. 8년을 두고 그랬어.

그래서 가서 그러면 가서 그저 뭐 조실(祖室)이라고—조실이면은 그만이지, 조실이면 조실 스님 어디 부처님 당시부텀 영도권(領導權)이 조실이제 뭐 다른 것이여?
조실로 떡 들어가 놓으니까 아 그만 그냥 자연히 그만 책임이 되아서 거그서 결제해 가지고 해제까장 회향을 다 해야 할 텐데, 아 그 병이 그거 있어서 헐 수 없어 올라와 가지고는 또 내려갈라 하니 천사백 리나 된디, 비행기를 타고 한 시간을 간다 하드래도 비행기에 가서 공기가 나빠서 귀가 드리 꽉 먹고 또 거기서 한 삼백 리나 얼매를 타고 들어가야 되고, 아 이래서 못 갔습니다. 못 갔더니 조실 스님 회상이라고 그렇게 마음을 굳게 가지고는 그 끝까장 다 마치고 여기를 인자 또 나를 보러 인사를 허러 왔으니 참으로 고맙습니다. 더 고마울 수가 없어.

학자(學者)라는 게 참 그러헌 진실헌 그러헌 신의가 있어야 학자제. 그런 신의가 없으면 학자여?
고마워서 내가 여까장 말씀을 헌 겁니다. 그리허고 우리 시방 여기에 모아 있는 대중도 다른 데 가서 또 좋은 데 가서 공부 잘 하고는 꼭 와서 이렇게 댕겨서, 한 번이라도 나한테 댕겨서 그래 또 인사라도 허고 가는 것도 다 대단히 고마운 일이요. 그래야 하제.

허지마는 그 물 좋고 산 좋고, 거 옳은 좋은 스승 간택해서 가서 공부 잘하고 또 와서 댕겨가는 것도 좋고. 또 갔다가 와서 여그 잘 와서 방부(房付) 들이고 또 지낸 것도 좋고. 다 여러 가지 참 고마운 일이여. 여까장 법문을 마쳐. (39분44초~60분37초) (끝)

Posted by 닥공닥정

 

•§• 박산무이선사선경어(博山無異禪師禪警語) (17/18) 박산무이선사의 선경어.

**전강선사(No.391)—박산무이선사 선경어(17), 별념, 선요 (갑인.74.02.04.새벽) (전390)

 

약 34분


동풍일취과(東風一吹過)하니  낙화만계유(落花滿溪流)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산출백운외(山出白雲外)하고  승귀석양중(僧歸夕陽中)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동풍(東風)이 턱 한 번 불어 지내가니 낙화(落花)는 만계유(滿溪流)다. 떨어진 꽃은 물에, 흘러 내려가는 물에 모도 꽃이 떨어져서 점점이 흘러가는구나.

산출백운외(山出白雲外)요. 백운은 벗거지니 산은 그대로 모도 들나서 산산이 그대로 백운 밖에 서 있구나. 승귀석양중(僧歸夕陽中)이다. 중은 석양으로 돌아가는구나.

그 무슨 그 동풍(東風) 불어서 꽃이 떨어지니 강수(江水)에 모도 흘러가는 도리, 구름 벗거져 산이 모도 그대로 서서 있는 도리, 중은 바랑을 짊어지고 석양으로 가는 도리, 그게 모도 무슨 도리냐 그 말이여. 바로 봐봐. 바로 그 보란 말이여. 그 그거 거 꽉! 맥힌 중생의 눈으로 볼 것 같으면은 바로 보이들 않지마는, 한번 툭 깨달라 버린 눈으로 훤헌 눈으로 봐봐. 그게 다른 도리인가?
그 모도 참 그 도리뿐인가? 명명백초두(明明百草頭)가 명명조사의(明明祖師意)인디? 밝은 모도 꽃, 꽃 모도 피는 그 꽃 꽃 꽃 그놈이 그 모도 무엇이여? 백초두(百草頭)가 조사관(祖師關)이요, 깨달은 각경이지. 그놈 여의고 있나? 여의고 뭐가 있어?

부지런히 그저 어쩠든지 깨달지 못했으면은 화두 일념으로 떠억 그 알 수 없는 활구선(活句禪)이로구나. 활구선이, 알 수 없는 거 한 자(字)여. 부지일자(不知一字)여. 뭐 다른 거 아무것도 없어. 아무것도 없는 다만 모르는 그놈이여.
조사(祖師)가 서(西)로 온 뜻을 물으니 조사, 달마(達摩) 선사가 서(西)에서 온 의지(意旨)를 물으니까, 조주 스님, 고불(古佛) 조주(趙州) 스님 허! ‘판때기 이빨이에 털 났니라’ 판치생.. 그 조사가 뻘로 뭔 말을 혀? 뻘소리를 했을 것이여?
격외(格外), 격외라도 그러헌 격외가 없어. '판치생모(板齒生毛)다. 판자 이빨이에 털 났다' 판치생모를 따져서 보드래도 바로만 봐 버리면 그만이여. 따졌자 그 되들 안혀. 아무리 분석을 해 따져 봤던들 그 판때기 이빨이에 털이 뭣이여? 판때기 이빨이에 또 털 나는 게 뭐냐 그 말이여? 도대체.

격외(格外)는 그러헌 격외가 없어. 그렇게 가깝고 그 자리에 있어.
용 대그빡을 쳐서 용 대그빡 그대로 붙여야지, 용 대그빡 떼 번지고 배암 대가리 붙이면 될 건가? 딴 놈 갖다 붙여 봤던들 소용없어.

'판치(板齒)에 생모(生毛)다. 판치에 털 났다' 따져 가지고도 바로만 보면 그만 되야. 안 될 것 없어.
우리나라에 유명허신 혜월 큰스님께서는 학자(學者)가 와서 물으면, 그 격외만, 손 툭 든다든지 그런 무슨 격외선(格外禪) 쓰면, "그 건방진 놈의 소리 때려치우고 네 이놈 의리(義理)로 일러봐" 의리로 이르라 했어.
의리가 바로 맞으면 더 좋다 그 말이여. 말로도 다 맞는 것이여. 판치(板齒)를 말로도 따져서도 될 수 있어. 뻘소리 아니여. 아침마당 내 하지마는 뻘소리가 아니여. 아무때나 벌로 헌 소리가 아니다 그 말이여.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알 수 없으면은 그뿐이지, 다른 것 소용없어.
천하 없는 이치를, 이치가 무슨 소용이 있나? 뭔 세상에 없는 이치를 갖다 붙여 봐도, 세상에 있는 뭔 이치 마찬가지 더 못하지 뭣이여? 추어망담(醜語妄談)만도 못하지, 뭣이여? 뭐 별 지견을 천상천하에 없는 지견을 갖다 때려 붙여 놔도 추담망담만도 못해. 그 뭣 그까짓 소리 했자 소용이 있어? 생사에, 생사(生死) 없는 도리에.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판치(板齒)에, 판때기 이빨이에 털 났느니라.
그 몰랐으니, 꽉 맥혔으니 그놈 가지고 깨달드락까장—그저 하루 만에 깨달을는지, 이틀 만에 깨달을는지, 사흘 만에 깨달을는지, 한 철에 깨달을는지, 두 철에 깨달을는지, 대체 거 뭐 일언지하(一言之下)에도 있고, 뭐 그 깨달은 그 시간이 공백 기간이 뭐 잠깐에도 있고 수유간(須臾間)에, 깨달은 그 시간을 알도 못혀. 언제 깨달랐는지도 몰라. 깨달은 그 시간, 언제 얼마나 그 사이가 없던지. 없어, 사이가.
중생 성불이, 중생이 그만 툭! 깨면 성불(成佛)인디 부처인디 그 사이가 없어. 얼마나 가까워서 사이가 없을 것이여? 그걸 찰나라 해야. 찰나가 무슨 사이가 있나? 하! 무슨 찰나를 어디 무슨 그 시간이나 무슨 일 분이라도 거 거다가 뭐 뭐 헐 수 없어. 그런 도리여.

어쨌든지 대의지하(大疑之下)에 필유대오(必有大悟)다. 크게 의심헌 데서 깨달는다. 의단(疑團), 의심(疑心) 없으면은 깨는 법도 없고, 의심 없는 것이 제일 허물이여. 도문(道門)에 들어와서는 의심 없는 게 제일 허물이여.
활구참선(活句參禪)이 아니면 선(禪)이 아니여. 무슨 거다가서 의리선(義理禪)이니 무슨 별별 무슨 선(禪)을 다 붙여 놨지마는 그건 선(禪) 아니여. 그저 활구선이래야 되지. 알 수 없는 것이 활구(活句)여.

주공부(做工夫)허되, 공부를 터억 허되 착부득일사호별념(着不得一絲毫別念)이니, 사호별념(絲毫別念)도 거 붙어서는 못써. 사호(絲毫)란 건, 터럭끝만큼이라도 기중 가는 적은 터럭끝이니깐 그 터럭끝보담 더 가는 것도 있겠지마는, 그러헌 가는 터럭끝만 헌 별념(別念)이라도 화두(話頭)에 가서 붙으면 못써.
그런디 하물며 거다가 뭘 만들어 장만해 가지고는 '공(空)이다, 비공(非空)이다' 뭘 해 가지고 들여다보고 앉았으면 되야? 그게 될 거냐 그 말이여? 맨 모도 선(禪)이라고 해도 그런 선뿐이거든. 그 외도선(外道禪)뿐이거든.

대혜 스님이 뭐라고 했어? 대혜 스님께서 뭐라고 했어? 모도 허무선 그 모도 그 대혜 『서장(書狀)』이 전부, 그 전부 모도 그 못된 선, 허망한 선, 그 모도 그 사선(邪禪) 쳐부순 것 아닌가?

조금이라도 별념(別念)이 붙으면은, 알 수 없는 밖에 별념이 붙으면은 거 화두 아니여. 이것을 그 간택(揀擇)이 없는디 간택이거든. 이게 간택이여. 무엇이 붙어 있어? 붙어 있는 것만 없다면은 그만 병(病) 하나 없는 것이여. 화두병 하나 없어. 모도 화두 병통, 병이라는 것은 뭣이 모도 병인고? 뭘 때려 붙여서 거다 알음알이를 붙여서 뭔 제 지견(知見)을 붙여서 그건 모도 그 병이여.
모도 상량을 붙이고 그것이 없어. 상량을 처음에 화두 헌 우리 화두선객이 처음에 화두를 허는데 무량 다생겁중(多生劫中)에 망상만 가지고 살아왔지, 어디 저를 제가 봤나? 저를 제가 보들 못허고 망상만 가지고 평생 억만 생겨남이 없이 오면서 그 짓만 해 놨으니 처음 공부를 헐라 함에, 화두를 하나 타 가지고 헐라 함에 맨 그놈만 나오지. 나온 것이 모도 그만 그 망념 망상만 나오지. 뭐 화두가 나오나?

알 수 없는 놈 그놈을 챙길 수밖에 없어. 거각(擧却)할 수밖에 없어. 안 되드래도 또 그놈을 찾고 찾고. 참 몰랐다가 인자 참 참선법, 이 정법 생사해탈법을 알았으니 이 법밖에 뭐가 있냐 그 말이여? 이 법 내놓고 법이 있을까?

그것 좀 이까짓 몸뚱이, 송장 몸뚱이, 색상 색신 몸뚱이를 가지고 한 칠팔십 년 좀 살아봤던들 뭣혀? 도로 악도(惡道)에 빠지고, 그놈 사는 동안에 업(業)을 지어 가지고는 가 업(業) 받고 또 나와서 또 죄업(罪業) 지어 가지고 또 들어가 업 받고, 그놈의 죄업 지어 가지고 죄는 한 칠팔십 년 지었으면 그 삼악도(三惡道)에 들어가서 죄업 받는 것은 팔백억 년이나 될란가 원, 뭐 거다 역사를 붙일 수가 있나? 얼매를 받는지 모르지.

목숨 하나 죽인 죄업이, 나는 한 번 죽였건마는 내 목숨은 백 번이나 천 번이나 받게 되니 그놈의 이자가 얼마여? 못 당할 일이여. 당할 수 없어. 시방 당허지? 과거사를 미(迷)해서 알 수 없으니, 그렇게 받고 온 것을 모르니까 그렇지, 한번 그 가만히 생각해 봐도 알 일이지. 그 삼악도(三惡道) 고(苦) 그 못혀.
그 삼악도 고(苦)만 면하는 것이 아니라 생사죄업이 없는 이 참선법 견성법, 이 법이—몰랐으면, 내가 그거 몰랐은게 못 허지마는 알아 가지고 믿었으매 안 할 도리가 있나? 안 할 도리가 어디 있어? 그 화두 일념 밖에 무슨 생각을 헐 거냐 그 말이여?

그 일념 그 참 연속(連續)해서, 자꾸 상속(相續)해서 해 나갈 것 같으면은 그 그것 처음에 그렇게 희미헌 것 같고, 처음에 아무 힘대가리 없는 것 같지마는 한 번 거각하고 두 번 거각하고 또 생각하고 또 붙여. 그 힘이 굉장해서 번뇌 망념, 한량도 없는 망념이 도무지 뭐 시간도 공간도 없이 없어져 버려. 없어져 버려, 그 본래 없어, 근본이 없는 것이 그렇게 야단스럽게 일어난 것이니까. 그놈만 생각해 보지.
그저 나거들랑 나는 놈 그까짓 것 어쩔 것이여? 내비두란 말이여. 염기(念起)를 불파(不怕)하고, 일어나는 놈을 무서워하지 말고 유공각지(唯恐覺遲)라. 화두 하나 얼른 챙겨, 화두만. 화두만 드리 챙겨.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판때기 이빨에 털이라니 그 뭔 소리냔 말이여?
알아 버리면, 바로 알아 버렸으면 그만 그 견성(見性)했지 뭐. 바로 견성해서 알아 버렸을 것 같으면은 아는 것도 돈오돈수(頓悟頓修)가 있으니, 다 알아 가지고 다 닦아 버리는 것이 있으니 돈오돈수 해 버렸으면은 다시 일 없지 뭐. 일 마쳐 버렸으니 뭐 다시 일 있나?
허지마는 깨달라 가지고도 그 깨달은 도리는 불(佛)로 더불어서 다름이 없다마는, 부처님이나 다름이 없다마는, 일초(一超)에 직입여래지(直入如來地)다마는 그렇게 되지 못했으면은 할 수 없어. 또 오후(悟後)에 깨달은 후에 보림(保任)이 있어. 성불을 해야 되아.

깨달라 가지고 또 보림 안 허면 뭣헐 것인가? 그밖에는 헐 것이 없지.
그 이러헌 좋은 참선법 우리가 만났으니 얼마나 참 경행(慶幸) 다행(多幸)한가? 경행도 허고 다행도 허고.

아! 오늘 아침에 아! 우리 여기 이 참 이... 아! 거 목사(牧師)로 계시던, 목사로 참 여태까장 있는 오십이나 다 된 아 저 목사 선사가 와서, 목사가 와서 아침에 헌 소리여. 아침에 내가 뭐라고 말 한마디허니깐 '늦게 들어온 것이 한탄이라'고 아! 그런다 그 말이여.
15년 전에 출가를 참 했는데 재무국장까장 했구만. 전남(全南) 종무원에 허나 못허나. 재무국장 안 했는가? 재무국장까장 허다가 하도 그놈의 싸움 통에, 그 세상에 세상에서 못된 것만 모도 배운 것들이 아! 모도 들어와서 머리를 깎고는 중이라고 해 가지고 비구승(比丘僧) 옷을 입고 대처승(帶妻僧) 패를 들어 가지고서 싸우고 들어오고 야단치니까, 아! 들어와 보니 그 참 답지 않단 말이여. 세상에 그럴 수가 없어.

도문(道門), 도문같이 청정하고 깨끗허고 도인(道人)만 있는 줄 알았더니 와 보니 참 개똥만도 못허고 헐 수 할 수 없으니 뭐 갈 수 밖에. 도로 물러가셔서 그 도로 그 허던 그 목사를 허시고 이래 계시다가는 암만 생각해도 그거 그거 구경법(究竟法)이 아니고.
그 또 이 참선법을 알았겄당, 허는 법을 다 알고, 서산(西山) 도사라든지, 원효(元曉) 국사라든지, 우리 부처님이라든지 생사해탈 정법을 깨달라 가지고 자아(自我)를 자각해 가지고 했다는 것을 알았겄당 그게 정법이고 옳은 법인 줄을 믿었다 그 말이여.
믿어 놓으니 아! 헐 수 없어. 도로 또 해야겄다고 토굴에 또 들어가서, 대흥사 진불암까장 들어가서 홀로 공부를 도(道)를 닦다가, 결국 과거에 스님 정했던 스님을 다시 찾아가야겄다고 아! 나를 찾아오셨다 그 말이여. 그래서 아! 반갑게 참 이렇게 이렇게 반가울 수가 없지. 그래 내가 말을 뭔 말을 좀 허니까 늦게 들어온 게 또 탄식 한탄을 헌단 말이여. 그럴 것이 아니여?

행주좌와(行住坐臥)에, 그 행하고 앉고 좌와(坐臥)에 고러한 때에도 화두를—그 화두가 앉고, 화두가 일어나고, 화두가 가고, 화두가 와야 혀. 그걸 알아? 알 수 없는 놈이 일어나고, 알 수 없는 놈이 앉고, 알 수 없는 놈이 가고 오너라 그 말이여. 똥도 그놈이 누고, 오줌도 그놈이 누어라 그 말이여. 오줌 눈 놈 따로, 따로 있지 말아라 그 말이여. 밥 먹는 놈 따로 있지 말어!
그렇게 한번 틈이 없이 다루어봐. 안 되는 법이 있는가? 그같이 쉬운 것이 없고 중생성불(衆生成佛)이 찰나간(刹那間)이요, 거짓말을 했어? 찰나라는 것은 어디 시간 공간 있는가, 그것이?

행주좌와(行住坐臥)에 단단지제기본참화두(單單只提起本參話頭)해라. 가고 오고 앉고 누움에 본참화두(本參話頭)가 해라. 화두 고놈이 앉고 눕고 가고 오고 그래라. 가고 오고 하면서 화두를 생각해 찾은 것보담도 화두 그놈이 그만 가고 오고 앉고 행주좌와를 해라. 좀 더 가까이 말을 해 보자.
틈사구니 없이 좀 한번 해 봐. 그렇게 기계적으로 그저 그만 좀 자리 잽힐라고 허다, 말라고 허다, 일어났다 앉았다 할 때 일어난 놈 일어나고, 앉을 때 앉고, 화두는 간 곳 없고, 갔다 왔다 그저 산 보고 물 보고 모도 불탄산고수활(不憚山高水闊)에 모도 속고, 일체 경계에 속고 이게 뭐여? 이거 이따구로 해 가지고 공부인이라고 헐 수 없어.
가고 오는 놈이 있고, 참선은 인자 생각하면 있다가 그만 없어져 번지고, 혼자 그만 그러다 앉아 자 번지고 글안허면 망상 내 번지고, 언제 각(覺)이 와? 각(覺)은 거그 그대로 있는디 어디 그놈이 그렇게 왜 그렇게 안 와?

발기의정(發起疑情)해라. 그 알 수 없는 의정(疑情)만 일으켜라. 알 수 없는 의정만 일으키는 것이 그게 활구선(活句禪)이다. 서산 스님 말씀도 활구학자라는 것은, 뭣을 별것인가? 활구가 별것이여? 무이로(無理路)허고, 이치 길도 없고, 무어로(無語路)허고, 말 길도 없고, 무문해사상고(無聞解思想故)니라. 무문해사상고다. 듣고 알고 뭐 그런 것이 없어. 아무것도 없어. 알 수 없는 공안 하나, 알 수 없는 거 다시 이뿐이여. 알 수 없는 그놈이여.

분연요토개하락(憤然要討箇下落)이니, 분허게 분연(憤然)히, 우째 이걸 내가 깨달지 못하고 알덜 못하고, 이것이 내가 낸디, 내가 내 아정을 내가 나를 이렇게도 몰랐으니 분허고도 원통허고 무량 다생겁 역사가 없이 생사고(生死苦)를 받아온 거 참 지긋지긋허다.
어째여? 어째? 이렇게 그만 그럭저럭 그래? 분허다. 그 화두 낙처(落處)를, 알 수 없는 곳을 한바탕 생각 더 생각 더 염념상속(念念相續), 상속 안 헐 수 있나? 이게 활구(活句)다.

약유사호별념(若有絲毫別念)이면, 만약 터럭끝만큼이라도 거기에 별념(別念)이 붙어 있고, 붙은 그 별념 그놈을 가지고는 화두라고 허고, 거다 더군다나 이치를 붙여 가지고 제가 장만해 가지고 앉어서 들여다 비춰 보고 앉었어? 그걸 뭔 선(禪)이라 했지? 그 대혜 스님이 뭔 선이라고? 묵조사선(默照邪禪)이라 했지.
묵묵히 비추는 거, 아무것도 없는 적적허고도 아무것도 없는 곳을 비춘 것을 묵조(默照)라 해야. 없는 놈까장도 없는 그 자리를 비추는 걸 묵조라 해야. 그 묵조가 무엇이여? 고까짓 놈의 것이 참선법이여? 묵조라는 것이 그 뭔 말라빠진 것이여? 그 묵조사선(默照邪禪), 그 뒈진 참선이라 그 말이여.

별념(別念)이 있을 것 같으면은 고소위(古所謂), 고인(古人)이 이르되 잡독(雜毒)이 입심(入心)이로구나. 잡독이 화두에 들어왔구나. 그 알 수 없는 화두를 파먹는 잡독이 들어왔구나. 좋은 나락이 한참 커나다가 도열병(稻熱病) 들었구나. 그 되아? 잡독(雜毒)이 입심(入心)이면 되냐 그 말이여?
화두 해 나가는 학자가 좀 요만큼 좀 좀 챙겨야 할 것 아닌가? 한 철 해도 그만, 두 철 해도 그만, 이것 글안허면 구두 선객(口頭禪客), 입으로나 한마디 대답허고. 한마디 대답헌 게 뭐여? 그놈의 주뎅이 그 참 부끄럽지 않는가? 무엇을...

상호혜명(傷乎慧命)이여. 그놈이, 그 잡독이 그놈이 쪼끔만한 게 뭐 들어올 것 같으면은 알 수 없는 놈은 지해(知解) 길로 막 들어가는디 혜명(慧命)을 상호(傷乎)아. 그놈을 쪼아 먹어번져, 큰일난다 그 말이여. 큰일나. 활구(活句)라는 게 뭐 알 수 없는 놈 하나 은산철벽(銀山鐵壁)이지 다른...

자, 우선 고봉(高峰) 스님 말씀 내가 늘 말했지. 「대한(大限)은 구순(九旬)이요, 크게 한정허면 구순에 있고, 소한(小限)은 칠일(七日)이다. 적게 한정허면 이레 동안에 있다」
아! 그만 했으면 그 뭐 참선법, 대한(大限)은 구순(九旬)이여. 한 철 만에 견성하는 거여. 소한(小限)은 칠일(七日)이여. 좀 더 가깝게 한정허면 이레 만에 헌다 그 말이여. 칠일(七日) 만에. 이레 만에 대번 견성(見性)헐 수 있다 그 말이여. 알 수 없는 그 의단(疑團)만 독로(獨露)해 나갈 것 같으면은, 그 타성일편(打成一片)만 되면, 간단히 의단(疑團)만 독로(獨露)허면은 일주일 만에 바로 다 봐 버린다. 아! 이런.

그놈이 그놈이 해 나가는 방법을 고 밑에 얘기했는디 어떻게 해야 그렇게 되노?
추중(麤中)에 유세(有細)하고, 추중 가운데 세밀(細密)헌 것을—추중에, 추중(麤中)이란 건 '더러울 추(麤)' 자, (녹음 끊김) 거각한다. 추중에 유세다. 추중에...
세중(細中)에 유밀(有密)이여. 그 화두를 거각한 가운데는 밀밀(密密)헌 놈이 있어서, 알 수 없는 놈이 있어서 밀밀이, 빽빽해, 알 수 없는 놈이 있어야 일체 망념이 들어오지 못한 놈이지. 밀밀이 있어.

촌초불생(寸草不生)이요. 촌초, 마디만 한 풀도 나지 않아. 비유니까. 마디만큼 헌 쪼그만한 망념도 거 붙들 못해. 미세한 디 가서 밀밀헌 놈이 화두가 들어와서 뭐 힘쓸 것 뭐 있나? 뭔 힘써? 육단(肉團) 동(動)할 게 뭐 있나? 공연히 간이 모도 동허게 야단치게 허지. 밀밀헌 놈이 있어.
밀밀헌 놈이 사이가 없어 무간(無間)해서, 밀밀무간(密密無間)해야 그 촌초(寸草) 같은 것이 거그 붙들 못혀. 쪼그만헌 망념이 어디 거기 붙어? 뭐이 붙어?

여타만장심갱(如墮萬丈深坑)이다. 만 길이나 된 깊은 꾸렁이에 처백힌 것 같여. 올라올 수도 없고, 그놈의 디 앞뒤가 다 그 철벽이 꽉 맥혔다. 알 수 없는 놈만 하나 있는 것이여, 그 경계가 만장심갱(萬丈深坑)에 떨어진 것이다 그 말이여.
지의(遲疑)허면, 거기서도 더디 의심, 조금이라도 별념(別念) 더디 의심을 헐 것 같으면은, 지의(遲疑)허면, 더디 의심, 의심이 없으면은 불역구이부득(佛亦救你不得)이여.
부처도, 부처님 같은 도무지 부처님 같이 천하에 다 달해 버리신 능술 능력이 있어도 소용없어. 부처님도 대신 못하고 구허지 못혀. 제가 의단(疑團)해서 툭! 깨달을 일이지, 부처님도 대신 못혀. 중생 어떻게 깨달라 줄 것인가? 불역구이부득(佛亦救你不得)이여.

산승(山僧)은 불관한비월례(不關閑非越例)다. 산승은 한비월례(閑非越例)를 관계치 않는다. 한비(閑非)라. '막을 한(閑)' 자, '아니 비(非)' 자, 월례(越例). '넘을 월(越)' 자, 예라는 예(例) 자.
산승은 한비월례(閑非越例)를 관계치 않는다. 한비(閑非), 비(非)를 막고 예(例)에 넘친 걸 그렇게 새겨야 혀. 거 새기도 못해.

한비(閑非)다. '비(非)를 막는다'는 건 뭣이여? '아니 비(非)' 자를, 비(非)를 막고 예(例)에 넘친 것을, 예 예 예에 떡 넘친다 그 말이여. 좀 더 고등허게 넘친다, 이보담 더. 그걸 관계 않는다 그 말이여. 그거 뭐 아무것도 별말 아니여.
비(非)라는 것은 일체 허물 비(非) 자여. 이사구절백비(離四句絶百非)허는 비(非) 자여. 사구(四句)를 여의고 백비(百非)를 끊는 뭐 그런 거. 뭐 비(非)를 막고 불법 중 뭐 모도 여러 가지 그 병든, 참선 해 나가다가서 거 모도 그 병든 그런 거, 비(非)를 막고 잘못 걸린 거, 잘못된 거, 비(非)를 막고 또 예(例)에 넘쳐, 조사관에 막 뛰어나, 넘쳐. 그런 것을 통 나 막관(莫關)하고, 관계치 않고 통개소식(通箇消息)이다. 이 소식을 보인다.

그래 놓고는 이렇게 이렇게 이렇게 주르르르 해서 찍어 놓고, 둥글뱅이 딱 그려놓고, 요렇게 요렇게 요렇게 옆으로 쭉 두르르르 찍어 놓고, 삼점(三點) 요렇게 요렇게 요렇게 찍어 놓고, 두르르르 해 놓고. 그거 있지.



그놈을 또 갖다가서 뭐 뭐 별소리를 다 붙이지. 뭐 삼구(三句)니, 뭐 삼구 외에 뭐 삼현(三玄)이니, 삼현 외에 삼요(三要)니, 뭐 별 소용없는 소리여. 하나 안 된 소리여.
예(例)에도 넘치지 않고, 비(非)도 막지 않고, 내가 한 소식(消息) 헌다 해 놓았어. 확철대오를 못허면은 별소리 다 했자 소용없는 것이여. 저 죽는 것이지. 안 된 것이여.

잡독(雜毒)이 입심(入心)해서, 마음에 들어와서 혜명(慧命)을 모도 상(傷)허는 것이 조그만헌 못된 망념이라도 붙으면 안 된다 그 말이여. 요새 화두학자가 화두 간택을 이렇게 해 가지고 앉았어야 하지.
화두(話頭)가 좀 가고 와야 혀. 알 수 없는 놈이 가고, 알 수 없는 놈이 오고, 그놈이 밥 먹고, 그놈이 옷 입고, 좀 해야 혀. 언제는 밥 먹고 언제는 화두하고 그럴 수가 없다 그 말이여. 잘 알아듣겄어?

학자(學者)가 불가불근(不可不謹)허냐? 가이 삼가치 아니할까 보냐? 한번 이걸 삼가해사 깨달을 분(分)이 있고, 확철대오헐 시절이 도래허리라. 이리 않고는 안 돼.

산철이라도 내가 올라와서 이렇게 한마디씩 해주는 것을 잘 깊이깊이 듣고. 화두학자가 어디 산철이 뭣이 있나? 철이 뭐 따로 있고 뭐 어디가 있나?

일체 공안이 확철대오해서 천칠백.. 왜 천칠백 공안(千七百公案)이라 했는가? 천칠백 공안이 명백가내(明白簡易)해야 되지. 어떤 건 좀 그럴듯허다 해 가지고 대답허고, 고까짓 놈의 선(禪)이 무엇이여? 천하 없는 그 공안이라도 뭐 어디 가서 어디가 맥히고, 어디가 터졌어? 그런 것 없어. (처음~34분15초) (끝)

Posted by 닥공닥정

 

•§• 박산무이선사선경어(博山無異禪師禪警語) (16/18) 박산무이선사의 선경어.

**전강선사(No.390)—박산무이선사 선경어(16) (갑인.74.02.03.새벽) (전390)

 

약 38분.


유유만고사(悠悠萬古事)여  성하수공류(城下水空流)니라
나무~아미타불~
수지삼척토(誰知三尺土)가  매각아전신(埋却我全身)고
나무~아미타불~

유유만고사(悠悠萬古事)가, 그 유유(悠悠)헌 일만 일이, 이 세상에 모든 일이 성하수공류(城下水空流)로구나. 성(城) 아래에 속절없이 흐르는 물이여. 물같이 그만 바다에 써억 가버린다 그 말이여. 일체 만고사(萬古事)가, 뭐 뭐 뭐 그저 이 몸뚱아리까지 우리 가지고 있는 이 전체의 모도 인생사가, 인생사뿐만 아니라 그저 세상사 출세간사(出世間事) 막 전부 다 통틀어서 그 만고사(萬古事)가 성하수공류(城下水空流)여. 성 아래에 물 흘러간 것이여.
뭣이 응, 본 원소(元素)야 불멸(不滅)이지마는 뭣이 모도 그 변천 변태, 그저 이놈의 사람 몸뚱이도 생로병사가 있거늘, 무슨 일체 물질도 어디 그놈이 그대로 그대로가 온전히 어디 있는 겐가? 맨 변천 변류가 모도 천류(遷流)가 있고.

수지삼척토(誰知三尺土)가, 누가 삼척토(三尺土), 석 자 흙이 내 몸뚱이를 갖다가 거다가 파묻어 버릴 줄을 아냔 말이여? 그 벌써 이 몸뚱이 나오면은 삼척토가 갖다가 어디 땅에다 파묻어 버려도, 인자 요새는 화장법(火葬法)이 있지마는, 갖다 파묻어 버릴 거라 그 말이여. 이렇게 허망하고 무상한 것을 말한 것이다 그 말이여.
이렇게도 무상하고 허망한 이러헌 몸뚱이 하나를 추켜들고 내 몸뚱이라고 이것을 믿고. 허! '이것이 무슨 뭐 한 70년 살아 주리라. 한 80년 살아 주리라' 4~50년, 어쩌다가 4~50년, 한 10살 그저지. 막 나오다가 핏덩이 같은 것이 그저 ‘빽!’ 허다 가버릴 녀러 것, 내버릴 놈의 몸뚱이. 얼마나 무상하고 허망한 놈의 몸뚱이, 요까짓 것을 믿고, ‘내’다 하고 아주 믿고, 이러고 아주 뭐 내둘르고 살아?

허니, 모르는 사람 분상에는, 믿지 못헌 사람 분상에는 뭐 생사해탈(生死解脫) 문제, 내가 나 깨닫는 법을 어디 아나? 그 모르는 거야 말할 게 뭐 있나? 돼지나 개나 소나 말이나 축생 같은 것들은 생전 해줘도, 듣도 못허고 믿도 못허고, 어리석어서. 그저.
이것 참! 이 인생이 천지만물중(天地萬物中) 유인최귀(唯人最貴) 인생 사람으로서야, 사람 몸뚱이를 그래도 얻어서 사람이래야 이 정법을 듣고 믿을 줄을 알고, 믿어서 참선헐 줄을 알고, 아! 그렇지.

그런 가운데 세상에 내가 나를 이렇게 깨닫지 못했으니 이놈부텀 깨달라 믿어야지, 그밖에 무슨 뭐 저 뭐.. 그 바로 우리 어저께 내가 언제 말했나?

목불(木佛)은 부도화(不度火)요. 불상 조성해 놓은 부처를 믿어? 목불(木佛)은, 나무로 맨들어 놓은 부처는 불에 집어넣어 버리면 타 버리고, 쇠불은 녹아 버리고, 이불(泥佛)은 흙덩이로 맨든 것은 물에 집어넣어 버리면은 녹아 번지고. 뭣이 뭐 그거 어디 그거이 부처인가? 그 색상 모냥으로 맨들어 논 것이 부처여?
그것은 그 그런 거 그런 거, 그 운문(雲門)이 오직해사—부처님께서 ‘천상천하(天上天下)에 유아독존(唯我獨尊)’이라고 해 놓았... 막 나면서... 막 나오되 어머니 뱃속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어머니 옆구리를 트고 나와 가지고는 주행칠보(周行七步) 일곱 걸음을 사방 걷고, 지천(指天)허고 지수(지지指地)하고, 한 손으로 하날, 한 손으로 땅 가르치고, ‘천상천하(天上天下)에 독존(獨尊)이라. 내가 제일이다’

(운문이) '내가 그때에 있었으면, 부처님 당시에 있었으면 일방타살(一棒打殺)해서 끽구자(喫狗子)리라. 구자(狗子), 개를 주어서 씹히리라' 아! 이래 놓았다 그 말이여.
부처님 허는 일을, 천하에 제일가는 부처님한테다가 그러헌 언사(言辭)를, 어디가 있어? 그 운문끽구자(雲門喫狗子), 천하에 운문끽구자 설법을 제일 치네! 그 왜 제일 쳐?

그 부처, 뭐 모냥 상(相)뎅이 그것이 부처며,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이라고 하늘과 땅 가리키고 내가 제일이라는 그것이 무슨 부처인가? 그것 부처 아니여. 막 나서 걷고, 막 나서 건곤(乾坤)을 집어샘킨다고 해서 그게 부처 아니여. 그것은 숭악한 그 상(相) 덤벵이, 숭악한 명상(名相) 그것을 부처라고 허는 법 없어. 생사를 면허는 참으로 도리는 그거 거기에 붙어 있들 안 해.

옳은 진불(眞佛)을 나투어 내는, 참 부처를 찬(讚)허는 것이여. 생사 없는 본각(本覺) 부처를 그대로 탄생시킨, 부처를 그때 운문(雲門)이 탄생시킨 것이여.

아! 그 뒤에 또 법안(法眼)이, 운문(雲門) 뒤에 법안이 나와서 아! 그 말을 듣고, '내가 당시에 부처님 탄생 당시에 있었으면은 부처님을 일방타살(一棒打殺)해서 개 준다'는 말을 듣고, 통신유한(通身流汗)혀. 왼 몸뚱이 땀이 주욱...
'원! 세상에 천상천하에 부처님밖에는 없는데, 부처님한테다 갖다가 때려 일방타살을 해서, 한 방맹이로 때려죽여서 개를 주어 씹히겠다 그래? 대소운문(大小雲門)이, 요까짓 운문이 부처님을 이렇게 방불(謗佛) 방법(謗法)을 해서 이것 써? 큰일났구나' 하고는 왼 몸뚱이 땀이 주욱 나면서 기가 맥혔다 그 말이여. 부처님을 방불(謗佛)했다고.
20년 후에 처득(覰得)허고, 20년 참선을 해 가지고는 20년 만에 깨달랐다. 확철대오를 해서 깨달라 놓고 보니, 이름과 상(相) 없는 도리, 이름에 붙어 있지 않고 상(相)에 붙어 있지 않는 그 생사 없는 그 내 본각을, 내 나를 아정, 내 상락아정(常樂我淨) 도리를 바로 봤다. 깨달라 봤다 그 말이여.

참! 운문(雲門)이 비로소 부처님을 살렸구나. 아주 아주 그만 부처님을 살렸다. 하지마는 운문도 한 방맹이, 운문이 또 한 방맹이 맞을 방(棒)이 있구나. 운문방(雲門棒)! 운문이 부처님을 그렇게 바로 살린 도리지마는 운문도 일방(一棒)이, 큰 방(棒) 하나가 있구나. 법안(法眼)이 그렇게 말했다 그 말이여.

금산(金山)이 또 나와서, 금산선사(金山禪師)가 나와서 뭐라고 염(拈)을 헌고 하니, 그 도리를 들어서 염(拈)헌고 하니.
당랑(螗蜋)이 전두주(前頭走)허니, 당랑(螗蜋)이라는 것은 쇠똥 끌고 가는 벌거지여. 쇠똥을 뭉쳐서 몰고 가는 벌레가 있어. 당랑(螗蜋)이 전두주(前頭走)허니, 당랑이 앞길로 쇠똥을 몰고 가니, 공작(孔雀)이 속후수(續後隨)로구나. 공작새란 놈이 쇠똥벌거지를 잡아먹을라고 쫓아가는구나.
동산[園中]에 협탄자(挾彈者)가, 동산에 탄환 낀 자가, 동산에 총을 가지고 그 탄환을 총에 넣어 가지고 꼬누고 있는 협탄자(挾彈者)가 불각노습의(不覺露濕衣)로구나. 제 옷 젖는 것을 아지 못하는구나. 동산 협탄자는 공작을 잡을라고 총을 꼬누고 있지마는, 총 꼬누고 있는 저는 제 옷 젖는 것을 모르는구나.
금산이 그래 놓고는 금산이 말을 허되, '금산도 야유삼십방분(也有三十棒分)이니라. 금산도 30방(棒) 맞을 방맹이를 짊어지고 내가 이 말을 헌다' 그랬다 그 말이여.

이것이 이 본분학자(本分學者)들 도학자(道學者)들, 여그는 들어오면은 도학자가 들어오지 딴 사람이 없어. 도학자 행자(行者)니까. 모도 그만 학부들 다 최고 학부 다 대학 졸업허고 들어와서 참선법 믿어 들어온 사람들한테다가서 뭐 뭐 뭔 딴소리가 뭐여, 도(道) 가르킬 것이지.
대번에 그만 도(道), 이렇게 들어와서 참선 그만 화두 배워 가지고는 도 닦는 학자들이다 그 말이여. 그러기 따문에 척사현정(斥邪顯正) 도리부텀 이렇게 내가 설(說)해 주는 것이다 그 말이여.

참선허는 법! 그러니 무슨 사견(邪見) 상견(相見)이 거그 붙어 있을 것인가? 화두 이외에.
‘여하시조사서래의(如何是祖師西來意)냐?’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판때기 이빨에 털 났느니라’ 어디 알거든 말해 봐? 아는 걸 거다 붙여 가지고 말해 보면 저 죽어.

별 소리를 다 갖다 붙여 가지고 색상을 따져 가지고 해 봐, 이치를 붙여 봐, 소용 있는가? 없어. 그 공안이 그렇게 그 쉬운 공안이 아니여.
그러니 알 수 없는 놈밖에는 없거든. 알 수 없는 그놈이래야 일체 중생 번뇌 망식이 거기에서 다 절단나지. 거기에서 필경 녹아져 버리지. 일체 망상 번뇌가 녹아질 때 업상(業相)이 다 녹아져 버리지. 이 중생 업 때문에, 중생 번뇌 업 때문에 콱! 때려 맥혀서 전겁(前劫) 일과 후생(後生) 일이 이렇게 맥혀 버렸지. 오늘 있어도 내일 일도 꽉 맥혔고, 전부 맥힌 것이여. 이게 무엇인데? 이렇게 맥혀 가지고 있어.

허니 이 맥힌 놈, 알 수 없는 놈, 알 수 없는 고놈, 그 알 수 없는 고놈이 업(業)인디, 아주 꽉! 맥힌 놈이 이게 중생 업인디, 중생 업이 그놈이 툭! 터지면은 아, 그 제구백정식(第九白淨識)이지.
꽉 맥혀서 알 수 없는 그놈은 알 수 없는 놈까장도 붙지 못헌 놈이 그것이 제팔뢰야식장(第八賴耶識藏)인디, 뢰야식장(賴耶識藏) 그놈이 툭 터져 버려야 제구백정식(第九白淨識)이 푸욱 나와서, 참! 인생, 무슨 인생 중생, 인생 중생 문제가 어디 있어? 맥힘이 어디 있어? 뭐 무슨 이(理)에 걸리고 사(事)에 걸릴 것이 있어?
아 임마출세(恁麽出世)해사 이래 가지고 참, 자아를 자각해서 나를 깨달라야사 아! 그 각존(覺尊)이고. 이것이 우리 학자들, 본분학자(本分學者)들 시방 해 나가는 참선법이란 말이여. 이런 참선법이기 따문에 참선법부텀 내가 이렇게 설해 주는 것이여.

내가 어저께 언제 이걸 똑 설해 논 것 같는데, 잊어버려서 당최 원.

공부를 허되 불가심문축구(不可尋文逐句), 글 보고, 뭐 들어와서 고인(古人)네 모도 그 뭐 그 써 논 글, 뭐 어록(語錄) 같은 거, 법문 같은 거, 그런 글이나 보고 글귀나 보고, 고런 디서 요리조리 따져 보고, 요리조리 붙.. 하나도 소용없는 것이여. 아무리 봐 보지. 그거 따져서 알아 놔 보지. 뭣이여 그거 뭣헐 것이여? 그거 어따 쓰는 것이여?
생사! 생사 없는 그 도리를 바로 깨달라 증(證)허는 것이 그것이 참선법이지, 그 글 같은 것 봐 가지고 해석만 더 번식되지. 한 가지 알아, 두 가지 알면 뭣할 것이여? 어따 쓰는 거여?
심문축구(尋文逐句) 기언묘구(奇言妙句), 기이헌 말이나 기억하고, 이리저리 기록하고. 모도 부단무익(不但無益)이라. 그런 짓이 아무 이익 없을 뿐만 아니라, 아무 이익 없어!

여공부(與工夫)로 더불어서 장애(障礙)를 지어. 그 참선허는 데는 큰 장애라 그것이.
다맛 알 수 없는—한 번, 또 한 번, 또 한 번, 염(念) 그놈을 자꾸 상속(相續) 상속해 나가야, 자꾸 상속해 나가야 그놈 따문에 그 분비(粉飛) 같이, 가는 가루 같이, 밀가루 저런 가루 같이 모도 그 일어나는 망념(妄念)이 들어오들 못하지, 알 수 없는 의심이 없으면 그 틈을 타서 맨 망상뿐이다. 꽉 차 버려. 그저 일어났다 멸했다 하는 놈이 꽉 차 버려. 언제 꺼질 때가 없어.
한 번이라도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를 터억 해 가지고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그놈이 의심이 항상 뒤에 또 일어나고, 또 일어나고 해서 아! 이놈이 그만 덩어리가 자꾸 되어야지. 이 말세에는 이것 아니면 헐 수가 없어. 중생 성불이 없어. 도(道)에 장애가 되어서 못쓴다 그 말이여.

진실공부(眞實工夫)가 반성연려(返成緣慮)해야, 도리어 그만 화두헌다고 하면서 세상 연려(緣慮)를 이루어. 세상 모도 분별 번뇌를 이루어. 연려(緣慮)! 모도 인연 된 생각 인연을 모도 이루어.
욕득심행처절(欲得心行處絶)인댄, 그 일체 망념이 툭, 근본이 툭 물러 빠져 버리고 오도 못혀. 없어. 그 그렇게 다잽이를 공부를 해 갈진대는 기가득호(豈可得乎)아! 그렇게 될 수.. 그런 무슨 망상 그런 무슨 심문축구(尋文逐句), 글 같은 거이나 보고, 그 책참선이나 하고, 그럴 수가 있겠느냐?

공부를 짓되 최파비량(最怕比量)이다. 고런 비량(比量)을 두려워해야 한다. 장심주박(將心湊泊)이다. 마음을 가져 가지고 주박(湊泊)을 해서 모도 여러 가지 그런 무슨 이치를 따져 보고 이리 따져 보고 저리 따져 보고 그런 짓 말어라. 그건 여도(與道)로 전원(轉遠)이다. 도(道)로 더불어서 점점 멀어진다. 미륵하생까장 간다 한들 조금도 소용없다. 참선이 된 법이 없어. 참선이 아니여.

약시의정(若是疑情)이 돈발적한자(頓發的漢子)인댄, 만약 의심이 돈발(頓發)해서 잘 항상 의단독로가 된 그런 잔대는, 저 은산철벽! 은산철벽(銀山鐵壁) 같이 해야 한다. 철벽이 딱! 앞에 그 나갈 틈이 없이 콱! 맥혔는데, 나갈 수가 없는디 거그서 뭐 별 마음, 어디 철벽을 언제 뚫겠나? 그놈을 어떻게 밀겄나? 어떠겄나? 나갈 수가 없는 거기에 부닥친 것 같이 아무 다른 망념이 없이 의단(疑團)만, 알 수 없는 놈만 딱 이렇게 잡드리를 해 나갈 것이다.
요득개활로(要得個活路)니라. 그러면 반다시 그 뚫어 나갈 길이 있느니라. 없는 게 아니여. 활로(活路)가 거기 있다. 살아 나가는 길이 거기 있어. 확철대오헐 길이 거기 있지.
의정(疑情) 없이는 깨달은 법이 없어. 말키 사자(死字) 참선이니까. 거 이치를 장만해 가지고 모도 요리조리 들여다보고 앉었던지, 그것 편안한 걸 보고 앉었던지, 그 그거 그것 선(禪) 아니다. 숭악한 잡독이 모도... 그게 모도 못쓸 선(禪)이란 말이여. 사선(死禪)이여. 죽은 참선이여.

부득개활로(不得箇活路), 이렇게 활로(活路)가 없을 것 같으면 여하득안온거(如何得安穩去)냐? 어찌 거 뭣헐 것이냐? 활로가 없이. 툭 깨달라야지, 깨달음이 없이 그러고 앉었으면 뭣할 거냐 그 말이여?
백억만 년을 편안허니 ‘생사도 없다’ 제가 장만해 가지고는 그 ‘진공(眞空)이다’ ‘진공까장도 없다’ 그러헌 디 가서 들어앉어 가지고는 사선(死禪)을 허고 앉었으면은 언제 활로(活路)가 있겠냐? 깨달은 방법이 없는디. 그렇게 가 가지고 뭣헐 것이여? 백만 년을 간들 뭣할 것이여?

그러니 옛날에 그 멸진정 외도, 멸진정(滅盡定) 외도(外道)여. 멸진정(滅盡定)!
그 아무것도 없고 공공적적(空空寂寂)해서, 없는 놈까장 없는 데 가 떨어져 가지고는, 거가 정(定)이 들어 가지고는 가만히 생사도 없고, 아! 그래 있는디 산이 무너졌다. 산에 파묻혔다. 산에 파묻혔으니 그 큰 산이 무너져 가지고 그만 산이 그만 파묻어 버렸으니 생전 나올 수도 없고. 혼자 산중에 도 닦다가 큰 산이 무너져서 묻어 버렸는디 나올 기약이 없어.

차츰차츰 몇백 년, 몇천 년이 지났던지 산이 차츰 무너져서 인자 다 흙이 무너진 뒤에, 그 산태 밭 속에서, 산 무너진 속에서 어! 유리 같은 것이, 뭐 조개 전복 같은 것이 하나 나온다 그 말이여. 하도 묘허다 그 말이여, 그놈이. 어떻게 생기기를 묘허게 생겼던지 이상허다 그 말이여. 세상에 무슨 보물로도 비유헐 수가 없어, 껍데기가 어찌 고운지.
고거는 왜 그리 되었냐 하면은, 그 산 속에 묻혀 가지고는 그 손톱 발톱이 길어나 가지고 왼 몸뚱이를 뒤집어 쌌는디, 손톱 발톱이 길어 가지고는 그놈이 그렇게 그 좋은 빛깔을 모도 그 영롱헌 그 빛을 모도 맨들어 갖추어 가지고 아! 그 속에 들어앉어 가지고, 그 속에 있었어.

그 정(定)에 들 것 같으면 범정(凡定)이라도, 깨닫지 못했어도 제팔뢰야식장(第八賴耶識藏) 정(定)에 들어서 번뇌 망상만 없이만 딱 들어앉았으면은 죽는 법이 없어. 천만년 가도 죽는 법이 없어.
일체 범정(凡定)이, 저 개구리 같은 것도 한번 입 붙어 버리면 몇 달씩 안 먹고도 사는 거 보지. 구렁이 같은 것도 그렇고, 배암 같은 것도 그렇고, 저 무슨 새 같은 것, 제비 같은 것도 그렇고. 제비 같은 것도 고목낭기 속에 한번 들어갔다가 봄에 고목냉기를 패면은 죽어 가지고 있거든. 그러니 날이 차츰 따뜻허면 해동(解凍)허면 그놈 살아난다 그 말이여.

제팔뢰야식장에 들었지마는 그것이 언제든지 뢰야식장(賴耶識藏) 속에서 번뇌 망상이 없이 공(空).. 뭐 낙도 없고 죄도 없고 뭣도 없고 그대로가 정(定)에만 들어앉았으면은 무정(無情) 같이 되어 있지마는 그놈이 그렇게 되어 있들 안 해. 언제든지 깨어나지. 그대로 있들 못하거든.
그놈이 유리 독으로 나와 가지고는 차츰차츰 그만... 유리 독을 갖다가, 이놈을 유리 같이 된 놈을 갖다가서 나라에다가 진상(進上)을 했다. 하도 보물이 이상하다고 진상을 했다 그 말이여. 임금님이 상에다 놓고는 아! 대체 하도 이상스럽게 생겼으니깐 아! 보고 보고, 늘 한 번씩 만져 보고 보고, 세상 바람도 쐬고 만져도 보고.

이래 차츰차츰 아! 그 속에서 벌어져 가지고 사람이 나오는디 참! 기맥힌 사람이 나온다 그 말이여. 하나도 몸뚱이 축도 안 나고 깨끗허고, 먹지를 안 허고는 그 정(定)에서 정 속에서 그런 좋은 몸이 되어 가지고 나와서 무엇을 물어보니 세상사를 환하니 다 안다.
심재정즉(心在定則), 마음이 정에 들어 있은 즉, 능지세간요요지사(能知世間了了之事)라. 능히 세간요요지사를 다 안다고, 정에 나오면. 인자 그 정에 나오면 다 알거든. 깨면 다 알아. 잠 꼭 들었다가 잠을 턱 깨면 알듯기. 잠자는 경계도 알고 다 알잖어? 그와 같은 것이여.

세상사(世上事)를 모르는 것이 없다. 천만사를 다 알아. 그래 왕자로 모셔.. 저 저 국사(國師)로 모셔 놓았다. 환허니 다 아니까. 그러고 있으면서 인자 그 국사로 있으면서도 그 알기는 그렇게 알지마는 잡된 짓을 다한다. 궁녀는 다 간통허고, 못된 짓은 다한다. 사기 협잡도 별것 다하고 그런다.
그 백정식(白淨識) 바로 깨닫들 못했으니 범부(凡夫)로서 정(定)에 들었으니, 도리어 범정(凡情)이 일어나 가지고는 별짓을 다해. 그러니 필경에 그 사형선고 허지 않았어? 그거 다 역사에 다 모다 있는 것 아니냐 그 말이여.

그러니까 어쨌든지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이라는 것은 각(覺)이여. 각(覺)! '어째?' 의단 아니면 의심 아니면 못 깨야.
이거 여 아침마당 예불(禮佛)허고는, 그다음에 따악 참회(懺悔)허고. 예불에 축원(祝願), 우리 축원 그 옳은 축원이지. 그렇게 축원 딱 속성대각(速成大覺) 광도중생(廣度衆生) 뿐이지, 뭔 놈의 축(祝)이 있을 거이 있느냐 그 말이여.
인도에는 ‘마하반야바라밀(摩訶般若波羅蜜)’ 그게 축원 아니여? 그뿐이지 뭐 다른 거 뭐 있어? ‘마하반야바라밀’ 큰 지혜로, 큰 지혜로 도피안(到彼岸) 저 언덕에 이른다 그 말이여. 저 언덕은 각(覺)이여. 중생이 깨달은다, 깨달라야겠다 이 말이여. 그뿐이여.

어찌 안온거(安穩去)냐? 단임마주거(但恁麽做去) 시절(時節)이 도래(到來)허면은 자유개도단(自有箇倒斷)이라. 화두만 잘해서 은산철벽 같은 디서 의단만 독로해 가지고 그 도리만 갖추어서 자꾸 해 나갈 것 같으면 도단(倒斷) 시절이 있을.. 깨달을 때가 올 것이니라. 이 공부만 똑 이렇게 해 나가야 할 것이다 그 말이여.

황벽선사(黃檗禪師)가 말씀을 허되 진로형탈(塵勞逈脫)이 사비상(事非常)이다. 이 진로형탈(塵勞逈脫)이 보통 일 아니다. 진로형탈이라는 건 우리 중생이, 이 중생이 사바세계에서 이 몸뚱이 받아 가지고 나와서 형탈(逈脫)하는 것이, 깨달은 것이, 나를 턱! 깨달른 것이 보통 일 아니다. 보통으로 그냥 알지를 말아라.
도학자가 되었거들랑 참! 의단독로(疑團獨露)허는 법을 갖추어라. 바로 믿어서 똑 화두(話頭) 의단독로허는 법을 갖추어라. 그러고 나서 그러헌 학자가 되어 가지고는 못된 일을 헐 것이 뭐가 있나? 화두학자라니! 화두학자라는 것은 못된 일을 헐 것이 없어, 세상사에. 그 사기를 혀? 협잡을 혀? 거짓말 헐 것이여? 뭘 헐 것이여? 어쩠든지 그저 똑 그 헐 일을 꼭 해야 한다.

도학자(道學者)의 헐 짓이라는 거는 무엇이냐? 그저 그 가운데 인자 여러 가지가 다 있지. 남을 제일 공경히 해야 하고, 내가 항상 하심(下心)을 해야 하는 법이고, 내가 나를 낮추고 하심하는 것이 제일 그것이 올라가는 지위를, 저 향상 지위로 올라가는 것이여. 제가 '제일이다' 하면은 그것 천하에 못쓴 것이 제 자찬(自讚)이고, 제 자랑이고 못쓴 것이여.
허지마는 또 그것도 헐 때가 있어. 제 자랑도 헐 때가 있고, 제 찬성도 헐 때가 있고, 부처님의 방편설(方便說)로 헐 때가 있다 그 말이여. 그런데 가서는 한바탕 방편에 가서는 뭣을 못 허리요, 부처님 방편이 모두 그것인데. 부처님이 별별 방편을 다 한 것은 중생을 위해서, 일체중생을 이익허게 위해서 생사해탈하게 위해서 쓰는 것이 방편이다 그 말이여.

못된 거짓말, 내 몸뚱이를 위해서 내 사기 협잡, 나를 위해서 넘을 모도 죽이고 사기 협잡 그런 못된 짓은 그거 방편이 아니여. 숭악한 못된 것.
방편이란 거짓말도 좋은 거짓말을 해야 그것이 방편이고, 남 살리우는 거짓말을 해야 방편이고, 도둑질도 남 살리는 거짓말을 해야 방편이고, 그게 방편이여. 좋은 부처님의 정법을 포교허기 위해서 또 무슨 거짓말을 한번 헐 때 가서는 그런 거짓말을 해서 헐 수도 있는 것이여.

황벽선사가 이렇게 말을 했다. 진로(塵勞)에 형탈(逈脫)하는 것이 보통 일 아니다. 이 몸뚱이 이거 진로(塵勞)에 우리가 나오지 않았는가? 숭악한 세상.
긴파승두주일장(緊把繩頭做一場)이니라. 긴절(緊切)허게 간절하게 참! 정말 참! 승두(繩頭)를 잡아서, 화두를 잡아서 공안을 가지고는 한바탕 지어라. 참말로 공부를 한바탕 해라. 기계적으로 좀 허다 말다, 아이 조금 때짝때짝 말다, 그거 공부 아니다. 그렇게 해 가지고는 된 법이 없어. 한번 해 봐라.

불시일번한철골(不是一飜寒徹骨)이면, 이 차운 것이 한번 뼈에 사무치지 않거드면.
한매(寒梅)가, 차운 눈 속 매화가 기가 맥히게 추워사 핀다. 춥지 못허면 못 피고 말아. 썩어부러. 한매가 그렇게 추워야 피는 것이니 '차운 것이 한번 뼈에 사무쳐야 한다'는 것은 차운, 참으로 차워야 차운 매화가 피듯기, 너도 한번 그러헌 지경을 넘겨야 한다. 네가 너를 깨달을라면 그런 지경이 없으면 안 된다 그 말이여.

쟁득매화박비향(爭得梅花撲鼻香)이냐? 그 매화가 차운 때 탁! 피어사 그 매화 향내라는 것은 천하에 없다. 그 향내를 맡아 볼 수 있지 않느냐? 네가 한바탕 그렇게 해서 너를 툭 깨달라야사 각(覺)! 생사 없는 각(覺)을 네가 증득(證得)헐 것 아니냐 그 말이여.
각(覺)만 증득해 버리면 그거 인자 인생 문제가 어디 있나? 뭐 뭐 있나? 일 다 마쳐번졌지. 천하에 그 일보덤 더헌 일이 어디 있냐 말이여? 무슨 놈의 어디 가서 무슨 딴것을 믿고 딴것을.. 뭐 딴것이 있나? 어디가 딴것이 있어? 일체가 마음이고, 나 깨달라야 하는 것이지.

차어(此語)가, 이 말이 최친절(最親切)이다. 제일 가장 중대하고 친절헌 말이다.
약장차게(若將此偈)하야, 이 게(偈)를 항상 가져서 시시경책(時時警策)해라. 때때로 경책을 해라. 때때로 경책을 해서 공부를 지을 것 같으면은 자연득상(自然得上)이다. 자연 그만 깨달을 지경밖에는 없다. 이러헌 공부가 어디 있나?

『초발심(初發心)』을, 꼭 초심을 해석해서 모두 가리켜서 처음 들어온 사람을 가리켜서 좀 해야 할 것인디, 내가 아직까장 아직까장 기운을 타지 못하고 늘 기운이 없어서 그건 못하고, 내가 한마디씩 내가 허고 그저.


앉으면은 그냥 자꾸 잠이 그렇게 와? 요 자꾸 그놈이 그렇게 와?
발심(發心)을 허면은 그놈이 온 법이 없는데, 법문 들을 때 그놈이 자꾸 와? 발심을 못허면은 여기 있어야 소용이 없는 것이라고 그래도, 앉으면은 자꾸 여 자다가도 눈뜨고, 놀래 가지고 눈떠. 그거 그거 법문 듣는 게 그래 되아? 잘 들어야지.

웃방에 저 웃방에 와서 모도 공부를 허면은 모다 모도 병이 나는 모냥이여? 정귀도 조금 거그서 허다가 밤으로는 일어나. 내가 일어나지, 어디 '일어나라'고 했나? 그대로 일어나지 말고 다섯 시간 자라고 했지. 공연히 일어나서 공부허다가는 몇 번 허더니 그냥 모도 '담이 붙었다'고. 일어나 앉은께 담이 붙지.
담이 붙었다고 인자 저 알로만 갈락 하니 그럴 수가 있나? 누가 좀 일어나라 하는가? 아! 거그서 모도 다섯 시간 잘 자고 공부했으면 좋지마는, 일어나서 앉으니까 그 바람이 센 디서 바깥바람이 들어와 가지고 담이 붙은 것이지.
그렇잖으면은 꾀를 쓰거나, 그 잠 온당히 못 자니까 한 시간 덜 자고, 또 앉어서 공부허기가 안되었으니깐 '에이! 그 저 아래 편안한 디 가 좀 자야겠다'고 꾀쓰고 내려가는 것이지. 꾀 아니면은 뭐허러 괜히 그러다가 일어나 가지고 그 병들었다 그 말이여. 그래 가지고 내려가 버리니 이 웃방에는 인자 사람이 없으니 어떻게 헐 것인가 말이여. 같이 나눠서 지내야 할 것인데, 그거 큰일인데?

들어와서 행자(行者)로 들어와서, 시방 모도 행자거든. 시방 육조(六祖) 스님 마냥으로 적어도 한 20년 지나야 행자를 면(免)혀. 대도(大道)를 통해 가지고 들어와서 행자 노릇을 했어. 18년 땡초한테 가 시봉헌 것도 그 행자 노릇이여.

행자 노릇을 야물딱지게 참 해야사, 견고허게 해야사, 천만담 다해도 그 행자 노릇 해야사 중노릇을 허고 욕도 얻어먹지 않고 참 공부인이지, 그것 못허면 안되아. 절대 안되아.
거그 그 아프다고 해 내려가라고 했지마는, 인자 여그 웃방에 사람이 있어야지? 나 혼자 있어야겄어. 다 편안할 데로 내려가고, 다 갈 데로 가고, 나 혼자 인자 그저 웃방에는 있어야겄구만. (처음~37분32초) (끝)

Posted by 닥공닥정

 

•§• 박산무이선사선경어(博山無異禪師禪警語) (15/18) 박산무이선사의 선경어.

**전강선사(No.387)—박산무이선사 선경어(15) (갑인.74.01.29.새벽) (전387)

 

약 31분.


환자의원구(患者醫員求)요  억모영해심(憶母嬰孩心)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친절주공처(親切做工處)에  홍일동령상(紅日東嶺上)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병이 들어서 꼭 죽게 되었을 때, 아주 꼭 죽게 된 급한 지경에 다달라서 그 목숨 뚝 끊어질 때 그때가 참 설찬히 괴로운 것인가 부여. 고통이 그때가 아마 제일인가 부여. 어디 어디 해도 아무리 몸뚱이에 별 병이 있어 아파도 목숨 뚝 끊어질 때가 아마 제일인가 부여. 그 목숨 똑 잘라질 때, 그 급할 때 그 지경에 낫아 줄 의원이 누군가?
그 의원이, 확철대오(廓徹大悟)허신 큰스님이 중생 그 꽉 맥혀서 알 수 없는 지경, 깨닫지 못헌 그 지경을 깨게 해 주는 것이여. 목숨 뚝 끊어질 때에 어진 의원이 그 사자(死者), 꼭 죽게 된 사람을 변성활(變成活) 시키듯기.

편작방중(扁鵲方中)에 구유영약(具有靈藥)인디 여조규이기사(如刁圭而起死)라. 편작방중 가운데, 편작(扁鵲)의 의술 가운데 영약(靈藥)이 있는디, 신령스러운 약이 있는디 조규이기사(刁圭而起死)라. 숟구락만 갖다가 대도 살아난다.

이 선법(禪法)이라는 거, 활구참선법이라는 것은 스승이 없이는 도저히 헐 수가 없네. 그 별일이여. 혼자는 혹 생이지지(生而知之) 혼자 깬 사람도 있을런지 모르지마는, 불법(佛法)이 생겨난 이후 위음왕불(威音王佛)이 최초 불(佛)인디 위음왕불 이후에는 없다 했으니 그 없단 말이나 같애.
그렇게 그 쉽지 못혀. 꼭 그 선각자(先覺者)가 참 바로 터억 일러주는 언하(言下)에 대오(大悟)가 있는 법이여. 그 벌로 알아서는 틀려.

'내가 그저 용맹정진만 그저 철저헌 정진만 하면 되지, 안될 리가 있나?' 그것도 참 옳은 학자의 그 옳은 뜻이여. 그 그르다는 건 아니여. 그렇게 철저히 알 수 없는 의단(疑團)만 갖추어 간다면은 그저 실패는 없지마는 그런 학자한테 병들어서 꼭 죽게 되는 지경, 같거든. 그 알 수 없는 지경만 가지고 있는 학자한테 언하에, 말 한마디 언하(言下)에 턱! 대오(大悟)를 허는 법이니까, 같여.
혼자만 헌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여, 이 활구(活句)라는 것이. 거 참 우리가 옳은 스승을 만난 것이 참 천겁(千劫) 만겁(萬劫)에 기가 맥혀. 그 귀헌 희귀헌 법이여.

어린아이가 어머니 그 금방 낳아 놓은 어린아이가 어머니 없이 살 두구서가 있나? 어디 금방 어머니 뱃속에 나온 것이 어머니 젖을 여의고 살 수가 있으며, 어머니 품을 여의고 살 수가 있나?
비단 사람뿐만 아니라 일체 동물도 마찬가지니. 막 알속에 나온 일체 모두 그 비금 주수(飛禽走獸)라든지, 모도 그 태(胎)로 나온 짐승이라든지, 연비충(蜎飛蟲)이라든지, 그 어머니 없이는 헐 수 없지. 꼭 그 어머니가 있어야 돼. 그 지경이다, 스승을 만나는 법이. 틀림없거든.
그걸 여지없이 믿어야 되지. 나 혼자만 아무때나 해서 된 거 아니여. 그렇게 된다면 된닥 하지, 왜 안 된닥 해?

왜 그렇게 달마 스님이 척! 동토(東土)에 나와서 첫 말씀이 뭐라고 했어? '불급심사(不急尋師)면 공과일생(空過一生)이다' 공과일생이락 했어. 공과일생(空過一生), 아무리 애를 쓴 사람도 공과(空過)라고 했어. 그 뭐 뭐 혼자 되야? 그러니 그 참, 이 대오(大悟)허는 법이 그렇다 그 말이여.
왜 그럼 그런 말을 해 놓았어? 달마 스님 같이, 그대로 해 버렸어. 달마 스님은 방편도 없어. 양무제(梁武帝)한테 말 한마디만 했으면 양무제한테 여섯 번 그 사약(死藥)을 받을 이치가 없는디, 여섯 번 사약 받은 것 보지. 6번을. 꼭 죽일라고 작정을 해. 그놈의 중생의 왕이라는 게, 왕이라도 중생이 그렇다 그 말이여.

그 자기, 한번 ‘거 일체 불상 조성허고 모도 사찰을 짓고 그 공덕이 장하다’고 한마디만, ‘장합니다’고 한마디만 해 주었으면은 그만 달마 스님이 저 꼭대기에 올라앉을 턴디, '소무공덕(小無功德)입니다. 그 공덕 없습니다'
그 공덕 없지 뭐여? 그 까짓게 무슨 공덕이여 그까짓 녀러 것이. 불상 그 뭐 모냥 상(相) 조성, 모냥으로 나무로 깎아서 맨들어 놓고 불(佛)이라고 허고, 절 좀 지어준 것이 그것이 뭔 놈의 공덕이 그까짓 거 필경 무너져 버리는 놈의 거. 그거 좀 짓고 했다고 해서 좀 복 좀 받다가, 복 좀 받다가 타락해 버리는 놈의 거, 그 뭐 그거 유상법, 유위법(有爲法) 뭣 뭣할 거여? 그거 그러고는 진짜 법을 일러줄라고 헌 것이 실패지.

아니라고, '거 공덕 아닙니다' 허면 아! 왕이 ‘아 그러면 어떤 것이 공덕이냐?’고 한번 물을 것 같으면 인자 거기서 척 그 무위(無爲) 정법을, 위없는 정법을, 바로 정법을 일어줄 턴디. 정법을 믿지 않는 거다가서 일러주니 뭣혀? 그 중생 귓구녁이 꽉 먹어서 콱! 철통 같은디, 거다가서 정법을 아무리 송곳으로 뚫고 넣어준들 될 수가 있나? 그 소용없어.
그러니 믿지 않는 중생한테는 아무 소용없는 것이여. 믿지 않는 중생에게는 아무리 백억만 년을 설해 줬자 소용이 없는 이 참 정법이네. 참선법(參禪法)! 참 기가 맥히제. 그러기에 신(信)이라. 처음에 믿어야사 인자 믿는 학자한테 법(法)을 설해 주는 거여.

억모(憶母)가, 어린아이가 어머니 없으면 못 사는 것이, 그것이 스승 없으면 정법을 못 깨달라. 이걸 바로 믿어야 혀.

친절주공처(親切做工處)에, 친절히 공부허는 곳에, 참으로 절대 공부를 허는, 참선 공부를 허는 법에는 이렇게 스승을 옳게 믿고 옳게 참 항상 앉아서라도 정처(靜處)에서 앉어서...
뭐 지금 학자들이 하근 학자(下根學者)지 상근 학자(上根學者)가 누가 있는가? 상근 학자 없어. 돌아앉어서도 망상만 일어나고, 돌아앉기만 하면 잠만 퍼 오는 놈의 하근(下根)들이 앉으면 그만 응... 흥! 앉으면 그만 망상, 그게 하근이여.

상근대지(上根大智)는 처억 앉으면 그만 그 뭐 태산(泰山), 큰 산 같여. 바다 같고. 화두가 처억 그놈이 그만 독로해 가지고,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해 가지고는 흩어진 법이 없어. 정경이 그 꽉 정해진 그 정경(定境)이 어디로 물러갈 거여? 뭐 천하 없는 무슨 뭐 세상 무슨 애교풀로 가지고 막 때려 붙여 논 뭔 그런 것보담도 더 정경이 화두(話頭)한테 뭉쳐져 가지고는 그대로 독로 되어 있어.
글안허면은 그 정경 그 같은 것도 그만두고 바로 봐 버리고, 툭 깨 버리고. 그런 상근대지라는 것은 지금 없어. 이 말세에 없다고 헐 수 있어. 거 모르지마는 지금 어디 시방 있나? 없지.

최상, 아주 상근대지는 확 언하(言下)에 대오(大悟)허면은 이즉돈오(理卽頓悟)? 이치만 깨달라? 사(事)까장 이사(理事)! 이치(理致)나 사(事)나 그만 그대로, 어디 이(理) 다르고 사(事) 달라? 막 증(證)해 버리지.
증(證)해, 증오(證悟)를 해버려. 언하에 증오를 해버려. 오해(悟解)만 헌 것이 아니라 증오를 해버린다 그 말이여. 그렇게 되지 못헌 학자는...

또 상근도 여러 가지니까, 한번 듣고 의단이 턱 들어와서 독로 되면은 그 정경(定境)이 흩어져? 뭐 흩어져? 그대로 화두 하나 따악.
아! 그거 그거 그 좀 그렇게 좀 갖춰. 좀 정처(靜處)에서 좀 그런 학자라도 정처에서 이득영험(易得靈驗)이고, 정처(靜處)에서 해 가지고는 필경 요중(鬧中)에 가서 쓰는 것이여. 요중 공부, 요처(鬧處)에 가서도 막 그저 그만 별 세상 무슨 뭐 험악한 경계에 가서도 쓰는 것이여. 난중(亂中)이라도 흩어지지 않고 그대로 있는 것이여.

그 좀 공부를 좀 작정을 허고 좀 앉어서, 처중(處衆)이 제일 좋아. 밥 해 주겠다, 옷 해 주겠다, 불 때 주겠다. 왜 앉아서 못해서, 아 뭣이 뭐? 뭣을 찾으러 댕겨? 공연히 고(苦)롭게 뚱뚱한 짐 짊어지고는 산, 불탄산고수활(不憚山高水闊)을 허냐 그 말이여.
불탄산고수활 허고, 뚱뚱 걸망을 짊어지고 댕기는 것은 스승을 찾아댕기는 것이여, 처음에는. 처음에 스승 찾아야지. 스승을 찾아 정해야지. 아! 스승 찾아서 스승이 있는 디 가서는 한바탕 그렇게 해야 혀. 거 행각(行脚)이라는 것이 처음에 허는 거 아니여.

옳은 스승을 찾아서 확철대오헌 뒤에 인가(印可) 맡고 모암토동(茅庵土洞)에 들어가서 고락수연(苦樂隨緣)해서 증오(證悟)해 가지고는, 깨달라 증해 가지고는 무사인(無事人)이 되어 가지고 아무 일 없는 사람이다. 가나오나 일체경계에 인자 동사섭(同事攝)밖에는 없다.
동사섭(同事攝)! 같이 가서 술 먹는 놈이 있으면은 술도 같이 먹으며, 무애행(無碍行) 헌 놈이 있으면은 무애행 헌 디 가 같이 무애행 허면서, 그대로 인자 제도(濟度)를, 뭐 도를 깨닫게 허는 것이여. 사섭(事攝)을 허는 것이여. 같이 해줘야 되거든. 그래야 내 말을 듣거든. 그놈 노름헌 놈 노름을 같이 해줘야 인자 서로 더 심지가 서로 상통(相通)되어 가지고는 뭔 말허면 듣고 그래 가지고 되는 법이여.

친절주공처(親切做工處)에 가서는 홍일동령상(紅日東嶺上)이라. 바로 깨달을, 그 깨달은 경계밖에.. 깨달을 것밖에는 없어. 뭐 다른 것 아무것도 없어. 이렇게 스승 믿고 화두를 철저히 해 가지고는 이렇게 확철대오를 허는 법이다. 게송(偈頌).


공부를 짓되 주도무가용심처(做到無可用心處)허며, 공부를 지어가다가 용심(用心)헐 곳이, 가히 용심처(用心處)가 없어. 어떻게 헐 용심처가 없어. 화두 하나뿐인디 무슨 마음을 써? 어따가 마음을 허비헐 곳이 있나 그 말이여.
용심처 없는 것이, 이놈의 우리 중생념이라 하는 것은 항상 화두를 들어도 그 미세헌 놈의 망념(妄念)이 붙어 있어서—없는 것 같지마는, 홑 화두를 거각(擧却)해서 고 단도리를 그 잡드리를 해도 그 사이사이 당최 미세헌 분(粉)가루 같은 망념이 들어붙어서 말로 헐 수가 없어.

마음이 심무이념(心無二念)이다. 마음이 둘이 없다 하지마는, 둘이 없는 놈의 마음이 천억 만념(萬念)이 있어. 그놈의 염(念)이라는 게. 그 ‘생각 념(念)’ 자가 그려. 그놈이 드립대 그만 모도 붙어 있는 것이 그 한량도 없어.

용심처(用心處)! 가히 용심헐 곳이 없는 디 이르며, 그 경계가 만인현애처(萬仞懸崖處), 만 길이나 되는 현애(懸崖), 그 절벽이 만 길이나 되는 디 거기 가서 어디 손을 댈 수가 있나? 발을 붙일 수가 있나? 몸뚱이가 거 붙어 있을 수가 있나? 그 어디 그 감히 거그 아무 도무지 손, 발, 몸뚱이 뭐 하나 붙이도 못할 만인현애처(萬仞懸崖處), 똑 그와 같다 그 말이여. 용심(用心) 없는 것이. 일체 마음이 없어.

수궁산진처(水窮山盡處)다. 물도 다하고 산도 다했으니, 산 경계도 다하고, 물 경계도 다했어. 가다가 보니 물도 다허고 산도 다했으니 더 나갈 곳이 있나? 물 다하고 산 다한 곳이 있으니.
결각나문처(結角羅紋處)다. 저 나문(羅紋)을 결각(結角)한 곳이다. 나문(羅紋)이라 하는 것은 그림을 그리다가는 마지막 다 그리고 뿔때기 그리면 마지막 그린다는 것이여. 마지막 그리는 곳이다. 뿔다구 그리면 다 그리는 것이다.
이런 곳에 이르러 화두가 극미묘, 극지경, 그 큰 지경. 아! 일체 용심처(用心處)가 없고, 현애절벽처(懸崖絶壁處)와 같고, 그림 그리는데 뿔때기 인자 그리면 한 점 찍으면 다한 것, 그러헌 절정(絶頂) 구경처(究竟處), 그러헌 곳이 이른다.

똑 그 지경이 또 노서(老鼠)란 놈이 쥐집에 쥐덫에 들어갔는디, 그 쥐를 잡는 법이 큰 뿔따구를 따악 놓아 놓고 뿔따구 저 안에다가 그 고소헌 냄새 난 그 좋은 물건을 넣어서 놔두면은 고놈 먹으러 들어갔다가, 그놈의 곳에는 대글빡이가 꽉 찡겨 버리면은 나오들 못혀. 뒤로는 못 나오게 되어 버렸단 말이여. 그 노서입우각(老鼠入牛角)이라. 노서(老鼠)가 우각(牛角)에, 소 뿔따구에 든 것 같다. 꼼짝할 수 없는 지경이 있어.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허면. 알 수 없는 지경이 극도해서 거기에 조그만한 망념도 없어.

항상 망념이 들어붙어서, 화두해 나가다가도 그저 이놈이 그저 금방 일어났다 또 멸했다, 일어났다 멸했다 한 놈이 화두는 허지마는 붙어 있기 따문에 그 독로(獨露)가 못 되다가, 인자 그러헌 지경이 있어. 소 뿔다구에 쥐란 놈이 들어갔다가 대갈빡 꼼짝도 못헌 지경이 있어. 그러면 그만 그 쥐는 그러면 거그서 거그서 제 생명 잃는 것이여. 다 된 것이여. 나오도 들어가도 못허니까.
그런 나문처(羅紋處), 그러헌 지경에 들어갈 것 같으면은 자유도단(自有倒斷)이리라. 도단(倒斷)할 때가 있어. 그런 때, 그런 때 가서 살아나는 곳이 있어. 쥐란 놈은 그대로 거기서 나문처(羅紋處)에 가서 죽어버릴는지 살란지 모르지마는, 그러헌 지경이 있어.

그런 지경을 왜 한 번 어쨌든지 갖추어야 하지. 이렇게 다루어야 하지. 허다가 또 조금 놔두고, 허다가 또 말고, 망상 좀 부리고, 잠 좀 자고, 이렇게 허고. 그러고 허다가 또 그만 이리저리 그만 한바탕 산도 넘고 물도 건네고 돌아댕기고 나면은 아! 그만 그 해산정경(解散定境), 정경(定境)이 해산(解散)되어 번지고 자리잽힌 화두가 어디로 간 곳이 없거든.
정처(靜處)에 공부헌 사람들이 한 번 정중(靜中)에서 도를 잘 닦아야 한번 요중선(鬧中禪)이 되지. 시방 요중선 허는 사람이 없어. 돌아댕기면 모도 경계(境界)에 팔리지, 안 팔릴 수 있나? 그 귀중헌 시간을 모도 해산정경(解散定境)해 버리고, 아! 이래 될 것인가 말이여?

부처님 12년 동안 계시듯기, 달마 스님 9년 동안 소림(少林)에 계시듯기, 아! 그런 증(證)해 가지고도 그랬다 그 말이여. 그 후래 후인들 모도 모범 보이기 위해서, 경허 큰스님 같은 그런 분들도 그 수십 년씩을 다 그 참 공부했고, 만공 스님 들어앉아서 공부허신 것도 참 한량도 없이 했다 그 말이여. 저 봉국사 가서.
또 용성 큰스님 같은 어른도 저 무슨 양주 뭔 절에 들어가셔서 하도 안 되아서 육자주(六字呪)를 기가 맥히게 허다, 육자주 기도허다가 또 화두를 허다가 이렇게 해 가지고 견성을 허셨으며, 한암 스님 같은 어른도 그 함흥 희천 금선대인가 들어가셔서 몇십 년을 안 나오시고 계셨다 그 말이여. 그래 이렇게 다 공부를 다 허는 건데, 원 요새는 그만 한 철 지내면은 가기가 바빠. 아! 이런 법이 있나?


주공부(做工夫)허되, 공부를 짓되 최파일개영리심(最怕一箇伶俐心)이다. 가장 처음에 한 낱 영리심(伶俐心)을 두려워헐 것이다.
영리심(伶俐心)은 처꺽 들으면은 ‘옳다! 이것이다’ 고래 따지는 알았다는 성격. 그 영리심이니까 알았다 해도 제법 그럴듯허니 알았다 그 말이여. 아무따나 안 게 아니여. 고것 못써. 그 영리심, 얼른 퍼떡 아는 거. 천하에 화두에는 공부에는 그게 망량이라. 제일 못된 심(心)이여. 들으면 터꺽 아는 아상을 내. 아는 해(解)를 붙여. 영리심을 붙인다 그 말이여. 천하에 못쓴 것이다 그 말이여.
영리심(伶俐心)이 위지약기(爲之藥忌)라. 영리심 그것이 약그릇이여, 약그릇. 독약 그릇이다 그 말이여. 독약을 대려서 사람 죽일라면 약기(藥忌)에다가 붓어 가지고 사람을 멕이니까 약기(藥忌)여 그것이. 약그릇이 없으면 뭐 독약을 어떡헐 수 있나? 천하에 못된 것이여.

범착사호(犯着些毫)하면, 요 터럭끝만큼이라도 영리심을 내 가지고는 요래 영리심(伶俐心)으로 떠꺽 그 아는 심리로 공안(公案)을 만약에 뭐 분석헌다든지 깨달은다든지 요렇게 어떻게 헐라 헐 것 같으면은 그것 수진약(雖眞藥)이여. 그것이 차라리 죽이는 진약(眞藥)이여. 약그릇보담도 진약(眞藥)이여 그놈이. 천하에 참선법은 그런 법 없어.
거다가 공(空)이나 뭣이나 일체 무슨 불법 중 이치나 뭘 붙여 가지고 들여다보고 앉었는 것은 그건 죽은 참선, 사참선(死參禪) 더 말할 것 없고, 영리심도 그렇다 그 말이여. 거 분석해서 알아? 어림도 없다. 그걸 알아야 혀.

약진시개참선한(若眞是個參禪漢) 자인대는, 참으로 진실로 참선허는 자인대는, 참선 공부를 허는 자인대는 안여맹(眼如盲)이요, 눈이 먼, 눈 봉사 같여. 꽉 하나 보이지 안혀. 이여롱(耳如聾)이라, 귀도 꽉 먹었다 그 말이여. 그 무엇인고? 알 수 없는, 참 좋다! 참 알 수 없는 그 한 도리(道理)다.

사사는 무슨 무슨 무슨 도인이, 그 무슨 장에서 고기 팔고 있는 그 도인 한 분이 안 있었어? 어디 법문 허러 갔다가... 뭔 뭔 그런 법문 있는디, 그 잊어버렸구만. 무엇은 사사요... 어디 있다고 거 그 안 나와서 못허겠구마는. 진기여, 진약(眞藥)이여. 죽이는 약이여. 참선에 독해(毒害)라는 것은 영리심(伶俐心)! 뭘 분석해서 아는 거, 기가 맥혀. 그것 소용 하나도 없어.

불능구이(不能救耳)니라. 이 사람은 영리한 사람 뭐 파딱팔딱 해서 그 해석 붙여서 아는 고런 사견학자(邪見學者)라는 것은 구헐 수가 없어. 아무리 구헐래야 구헐 수 없어. 그거 못쓴 것이여. 천하에 못쓸 것이 그것이여.

눈 멀고 귀 먹은 놈이 되어서 은산철벽(銀山鐵壁)이요. 철벽에 나가는 것이요. 물러가면 죽는 것이요. 아주 알 수 없는 진실헌 화두 일념뿐이다. 이걸 갖춰라. 천하에 화두 간택이 이렇게 쉬운 것인디, 뭐 그 어디 어려운 건가?

‘어째서 조주는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조주 스님은 어찌 판치생모?’ ‘조주 어째 판치생모?’ 허면 그만이지. 알 수 없는 놈뿐이지. 그거 다른 달리 헐 것이 무엇이 있어?
‘판때기 이빨에 털이 무엇인고?’ 그렇게 말고. ‘조주가 어째 판치생모라고 했는고?’ 조주 뜻 찾아내는 거여.

약재참선한자인대는 이렇게 귀먹고 눈먼 놈이 되어라. 심념(心念)이 재기시(纔起時)에, 그 마음에, 마음 뭐 조금이라도 그 망상념이 일어난 때에 겨우 일어날 때에 그놈을 도무지 간섭허지를 말어라. 나거나 말거나, 그까짓 거 뭐 옆에서 무엇이 나거나 말거나 내비두어 번져라.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그 의단(疑團)만 갖추어라. 흥! 갖출 것 같으면 철벽(鐵壁)같여.
여차즉(如此則), 이와 같이 공부(工夫)를 철벽같이만 여지없이 항상 해 나갈 것 같으면은 시득상응이(始得相應耳)라. 견성밖에는 헐 것이 없다. 그 견성처가 그곳이다. (처음~30분21초) (끝)

Posted by 닥공닥정

 

•§• 박산무이선사선경어(博山無異禪師禪警語) (14/18) 박산무이선사의 선경어.

**전강선사(No.386)—박산무이선사 선경어(14) (갑인.74.01.28.새벽) (전386)

 

(1) 약 25분.

 

(2) 약 24분.


(1)------------------

사언마어(邪言魔語)는 긍수청(肯受聽)이요  현장성교(賢章聖敎)는 고불문(故不聞)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무인선도(無因善道)허니 수여도(誰汝度)오  악취장륜고전신(惡趣長淪苦纏身)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세상에 와서, 이 세상에 와서, 내가 온 거 아니여? 어머니 뱃속에서 이 몸 하나를 얻어 가지고 와서, 어디 있다가 왔는고? 어디 있다가 왔으며, 온 놈이 무엇인가? 무슨 물건이 왔냔 말이다. 그 무슨 물건이여?
어머니 뱃속에서 이러헌 무슨 탈바가지 하나를 얻어 뒤집어쓰고 나왔는데, 뒤집어쓰고 나와서, 그 기계 하나 얻어 가지고 뒤집어쓰고 나와서, 보고 듣고 알고, 행주좌와를 허고 어묵동정을 허고. 거 뭐 '내'라 하고, '사람'이라 하고, 이러고 돌아댕기는 이 물건이 무슨 물건일까?

그거 한번 대체 생각할 필요가 있는 거 아닌가? 그놈 이외에 생각난다는 것은 거 우(愚)다. 우학(愚學)이다.
내가 나를 가지고 좀 생각해 봐야지. 내가 나를 좀 찾아봐야지. 다시 말하면 내가 나를 좀 깨달라 봐야지. 엉뚱헌 저 밖에 거, 저 밖에 무슨 내 몸뚱이 내 마음 밖에 것, 그것 생각해 보면 뭣혀? 그것 찾아보면 뭣허며, 그거 알아보면 뭣헐 것이여?

아무리 생각해도 내 마음 밖에 뭣을 생각하고, 뭣을 알고, 뭣을 배우고 해 봤던들, 그것은 우(愚)다. 어리석은 짓이여.
이까짓 놈의 몸뚱이 가지고 있을 때, 이 몸 가지고 배와 가지고 설사 알아 놨다한들, 이 몸 내버릴 때 다 내버리고, 다 내버려. 뭐 부유만덕(富有萬德)이니 지위 권리니 무엇을 안 내버릴 것이 있는가?

쏵 내버리고 나 혼자 돌아선다. 나는 내버릴 수가 없거든. 내가 나를 버릴 수가 있나? 내가 나를 버릴 수 없으니 내가 나를 가지고 돌아서지. 뭐 가질 것이 뭐 있나? 가질 것이 뭐가 있나? 내가 낸디. 내가 돌아서지.
이것 그 돌아선 놈 그놈, 내가 나를 바로 그놈을 깨달라 봐 버려야사 그게 지혜학(智慧學)이지. 지혜스럽게 배운 것이지. 나를 내가 찾지 않고, 내가 나를 보지 않고, 알지 않고는 우학(愚學)이여. 어리석은 학(學)이다 그 말이여.


‘주인공(主人公)아!’ 그러기에 내가 나를 한번 불러 본다.
‘주인공아!’ 주인공은 내가 날 부르는 말을 주인공이락 혀. '청아언(聽我言)하라. 내 말을 좀 들어봐라' 내가 나를 불러 가지고 내 말을 들어보라 하네. 거 어디 그런 말이 어디 있나? 내가 나를 불러서 내가 내 말을 들어봐란 말이 어디 있는고?

기인(幾人)이 득도공문리(得道空門裏)다. 과거 모든 부처님과 현재 모도 부처님과, 그 과거 · 현재 부처님이 석가모니불 같은 성현이 공문(空門) 속에서—공문(空門)은 내가 이렇게 말하고 이렇게 보고 듣고 알고 허는 그놈이 공문(空門)이여. 뭐 멀리 가서 붙일 것 없다 그 말이여.
뭐 이 산중 절을 갖다 공문이니, 뭐 산중을 공문이니, 빈 골짜구니를 공문이니 헐 것이 없어. 이 말하는 내가 공문(空門)이여. 그 공(空)했어.

아무리 모냥을 찾아볼래야 모냥이 없으니 그걸 공(空)이락 햐. 모냥이 없으니 공(空)은 공이다마는 모냥 없는 공 가운데에 그대로 갖추어진 놈이다. 묘유(妙有)가 갖춰져 있다.
그렇게 볼 줄 알고, 그렇게 알 줄 알고, 그렇게 밥 먹을 줄 알고, 갈 줄 올 줄 알고, 별 성숙시위(成熟施爲)를 다 내가 하지, 마음 이놈이 허지, 몸뚱아리 기계, 송장 몸뚱이 요것이 허는 거 아니다 말이여.
이까짓 놈의 송장 몸뚱이는 어머니 뱃속에서 기계처럼 얻어 가지고 나왔지, 어머니 뱃속에 들어가기 전에 어디 이 몸뚱이 있었나? 아무것도 없는 몸뚱이, 즉 공문 그 내가 들어갔지.

내가 그놈이 모냥으로 아무리 찾아볼라니 모냥이 없기 때문에 공(空)이다 그 말이여. 빛깔도 없고, 모냥도 없고, 그건 아무것도 없어. 아무리 거다가서 뭔 이치를 들어대 가지고서 말해 놔 봤던들 맞지 않해.
공(空)도 아니여, 그 공도. 비공(非空)도 아니여. 공도 아니지마는 비공도 아니여. 뭐 공(空), 비공(非空), 뭐 철학, 비철학, 종교, 비종교 거 소용없어.

뭐냐 그 말이여? 아무것도 없어. 그러니 진공이라고 허지마는 진공(眞空)도 그 한 이름이 하나 붙어 있지 않는가?

진공이라고 하자. 진공 이름까장 붙일 것도 없이 막도무사(莫道無事)이 호(好)타. 일 없다고 말자. 일 없는 것을 뭐 일 없다고 헐 게 있나? 일이 없다고도 말자.
허공이 허공이다마는 역무허공지양(亦無虛空之量)이다. 허공지양(虛空之量)도 붙이지 말자. 그러면 그 뭐 뭐겄냐 그 말이여?

그러헌 자리인데, 그놈이 그대로 갖추어져 있는 놈이다. 갖추어져 있어.
그놈이 묘유(妙有)여! ‘묘할 묘(妙)’ 자, ‘있을 유(有)’ 자, 묘유여. 진공(眞空)인디 묘유(妙有)여. 참 기맥힌 놈이다.

그렇게 알고 그렇게 보고 제위성숙에 뭣을 모르는 것이 있으며, 뭣을 그놈이 아닌 것이 뭣이 있으며, 기인 것이 무엇이 있냐 그 말이여?
‘옳다’는 놈이 어떤 것이 옳으며, ‘그르다’는 놈이 어떤 놈이 그른 놈이냐 말이여? ‘옳다’ ‘그르다’ 뭐 다 알지. 천하에 어질기는 그렇게 어질 수가 없고, 악하기는 그렇게 악한 놈이 없고. 세상에 살인 강도질도 고놈이 허고, 그 천하에 어질어서 성현 노릇도 그놈이 허고. 원 세상에 그렇게 갖춰질 수가 있나?

그러니 거 진공(眞空)으로만 봐 버리면 되나? 또 진공, 또 묘유(妙有)로만 봐 버리면 되나? 형상(形相)이 뭣이 있어야지, 없으니 진공이고 또 이렇게 있으니 묘유고.
그놈을 좀 한바탕 그 깨달라 봐야 그 허지. 내가 낸디. 내가 나를 좀 찾아봐야 그것이 혜학(慧學)이지. 옳은 학(學)이지. 그놈 내던져 번지고 딴 것을 배워 알아? 천문이니 지리니 무슨 호풍환우(呼風喚雨)니 무슨 신통변화니, 그다음에는 백가외도(百家外道)니 철학이니 뭣 그것 뭣이냔 말이여, 그것이?

우리 부처님께서 석가모니불께서는 그만 왕궁에 나와 가지고서는—왕궁에 태어나서 아! 한 20살 먹드락까장 계시는디 암만 생각해 봐도 내가 나를 알 수가 없네? 원 천만 가지, 저 내 밖에 내 마음 밖에 천만 가지 그 같은 것은 생각해 볼 필요도 없고, 생각해 보도 안 했고. 내가 나를 알 수가 없어? 내가 나를 알 수 없는 것이 내가 뭐라는 것이냔 말이여?

태자(太子)가 되어 가지고, 정반왕궁(淨飯王宮) 태자가 되어 가지고는 태자 그 지위를 내가 정반왕궁한테 물려받으면은 뭣헐 것이며, 그걸 가지고.
이렇게 말할 것 같으면은 무슨 소극적이요, 무슨 염세주의(厭世主義)요, 무슨 비관주의요, 뭐 이렇게... 그건 염세도 아니고, 비관도 아니고, 적극적 주의여.

참으로 내가 나를 깨달라 바로 알아야만 그 왕궁 부귀도 그대로고, 지위도 그대로고, 권리도 그대로고. 참 언제는 그 지위 권리를 가지고 있다가, 언제는 그놈 복진타락(福盡墮落)이 되어 버릴까? 다 받으면은 그만 되어버리는 거, 먹고 똥 싸버리면 그만이고, 살다가 죽어버리면 그만인 거.
그러헌 그 꼬리가 그렇게 허망해서는 못쓰겄다 그 말이여. 꼬리 꼬랭이, 꼬리가 없이 영원히 지위면 지위, 권리면 권리, 부귀면 부귀, 아! 그놈이 끝이 없어야 할 것이지, 언제라도 끝이 있으면은 그건 복진타락(福盡墮落)이다. 다해 버리면 그만이다 말이여.

그러니 내가 나를 깨달라서 내가 나를 알아 가지고는 모두 갖춰져. 부귀도 갖추고, 지위도 갖추고, 권리도 갖추고, 무슨 지식도 갖추고, 다 갖출 것이다 그 말이여. 나 깨닫는다고 못 가질 게 뭐 있나?
그러니 그놈 지위 · 권리 · 명예 · 부귀 쓸데없으니 내버리고 없애버리고 허자는 게 아니여. 그 우선간 지위 · 권리 · 부귀영화보담도 나부텀 깨달라 놔야겄다 그 말이여. 나부텀 이 속에서 어서 속히 확철대오(廓徹大悟)해야겠다 이거여. 그 적극적 아닌가? 대(大) 적극적이지.

그래 가지고는 그 왕궁 부귀를 여읜다 해서 그 여읜 것인가? 조금 떠나서 한가한 디 조금—너무 분다(紛多)하면은 헐 수가 없으니깐 설산(雪山) 들어가서 잠깐 동안 6년 동안 12년 동안 있으면서 그 도리를 깨달랐지. 확실히 깨달랐지. 확연히 깨달랐단 말이여. 그 어떻게 그 깨달을 줄을 알았겠나 말이여. 그 가서 스승을 만나서, 옳은 선생을 만나서 그 깨달랐지.

바로 깨달라 가지고 나와서 49년 설법허시는 것이 뭐냐 그 말이여. 순전히 '깨달라라'
"내가 시성정각(始成正覺)을 해 놓고 보니, 내가 이렇게 깨달라 비로소 정각(正覺)을 이뤄 놓고 보니, 깨달라 놓고 보니" 보는 건 뭘 봐?
"보관일체중생(普觀一切衆生)하니, 널리 일체중생을 보니 일체 모든 저 중생들, 깨닫지 못한 중생들, 인생들, 사람들을 보니 구유여래지혜덕상(具有如來智慧德相)이로구나. 나와 똑같은 각(覺)이 있구나. 깨달라 놓고 보니 나만 있는 줄 알았더니 느그가 낱낱이 다 나와 같은 각(覺)이 있다. 확철대오허는 각(覺)이 있어"

그 각(覺)만 헐 것 같으면은, 네가 너를 깨달을 것 같으면은 그 너 깨달은 곳에 참 인생 만족이 있다. 불생불멸(不生不滅)이 있다. 본구저대리(本具底大理)가 있다. 본각원만과(本覺圓滿果)가 있다.
모도 그것이 뭐냐 하면은 영원히 인생의 생로병사, 나서 늙어 병들어 죽어 버리고, 어디로 갈 곳을 모르고, 어디서 온 곳을 모르고, 그러헌 처백힌 곳이 없어.
너 나온 곳이든지, 너 가는 곳이든지, 너 사는 곳이든지, 너 일체처에 네가 네의 본래면목을 네가 너를 깨달랐으니, 도무지 그 각(覺)은 얼마나... 그게 참 정말 지위, 정말 권리, 정말 부귀영화다. 없어지는 영화(榮華)가 아니고, 끝이 있는 부귀(富貴)가 아니여. 세세생생(世世生生)에 받는 부귀영화다.

네가 너를 깨달라 버릴 것 같으면은 네 온 곳이—너는 어디 생겨난 때가 있나? 생겨난 때가 없는 영존 자리, 진리영존(眞理永存) 자리. 진리는 네 마음을 네가 깨달은 걸 진리(眞理)라고 한다. 그게 진리인디, 진리영존,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 대각(大覺)을 너는 이루어 가지고는 아! 실패가 뭐여? 인자 그때 가서는 없어졌다 있어졌다 한 놈의 법은 그건 뭐 아무것도 아닌 놈의 법이지.

꽉 미(迷)해서, 없는 것이 아니라 본래 갖추어져 있는 네 본래각을 네 본각을 네가 지금 미(迷)해 가지고 모르는 것이니—구름 속에 든 달 같은 것을 구름 벗겨지면 보는 건디 그걸 못 봐 가지고 중생이 되어 가지고는, 백천억만 겁에 미(迷)해 가지고는 이렇게 많이 미(迷)해 가지고는 온 곳도 모르고 갈 길도 모르고, 이렇게 세상에 와서 업(業)만 짓다가, 퍼 짓는 것이 죄업(罪業)만 짓다가 이 목숨 내버리면은 또 그 업 진 놈만 가지고 미(迷)했으니까, 깜깜 미(迷)헌 놈이 업만 짊어지고 퍼 짊어지고.

바다 같은 업, 산 같은 업, 업상(業相)이 없고 죄상(罪相)이 없으니 그놈이 형상이 없으니 그렇지, 형상이 있다면 바다보담도 크고, 산보담도 클 것 아니냐? 그놈을 퍼 짊어지고는 가는 곳이 누가 무슨 염라대왕(閻羅大王)이 쇠까꾸리로 너를 찍어 염라국(閻羅國)으로 가는 것보담도, 네 업으로 네 자업(自業)으로 자연히 들어가게 되아.
그게 어디 무슨 뭐 역부러 죄를 줄라고 헌 게 아니여. 죄를 퍼 지어 놓으면은 그놈의 죄가 제대로 가게 되는 거여. 업(業)도 염라대왕이 찍어 가는 것도 그놈의 죄를 지어 놓기 따문에 찍어 가기도 허고.

소라는 놈이 남의 것을 퍼 많이 먹고는 소가 되어 가지고 논만 갈아주다가, 그 다 갈아주고 늙으면 살 뚱뚱 찐 놈의 몸뚱이 괴기를 주어야겠으니, 그놈의 괴기를 주기 위해서 도살장으로 들어가는 것이여. 그놈이 다른 데로 갈 데가 없거든. 내버릴 수도 없고, 죽는 놈 어디다 파묻을 수도 없고, 때려잡아서 괴기 그놈 점점이 먹는 것이다 그 말이여. 그거 지은 죄업이여.

우리 인생이라는 것도 맨놈의 업(業)만 죄업(罪業)만 짓다가 그것밖에 없어. 나 온 곳도 모르고, 갈 길도 모르고, 내가 나를 모르고, 이 사는 것 좀 봐라. 이게 사는 것이냐?
무엇을 배워 가지고 생사해탈(生死解脫)을 헐 것이냐? 생사해탈법이라는 것은, 생사를 면허는 법이라는 것은 참선법(參禪法)밖에 없느니라. 내가 나 깨닫는 법밖에 없어.

네가, 주인공(主人公)아! 네가 내 말을 들어라. 몇 사람이 공문(空門)에서 도를 얻었을까? 내가 나를 깨달라서 도(道)다. 내가 나 깨달라 가지고서는 견성성불(見性成佛)이라 한다. 뭐 그밖에 다른 것이 없어.

여하장륜고취중(如何長輪苦趣中)이냐. 너는 어째서 여태까장 깨닫지 못해 가지고 깨닫지 못한 그 고취(苦趣). 고취가 시방 이 몸뚱이 가지고 있지만 깜깜해서 오늘 있지마는 내일 일을 알들 못허고, 알들 못허는 그곳이 곧 고취중(苦趣中)이다.
알들 못허는 그곳이지마는 그곳에 무슨 놈의 관재(官災)가 일어날란지, 구설(口舌)이 일어날란지, 무슨 화재(火災)가 일어날란지, 무슨 도둑놈이 날 죽일는지 살릴는지, 병란이 난리가 나서 죽을런지, 이거 알 수 없는 놈의 속이 그 얼마나 무서운 고취중(苦趣中)이냐? 네가 너 깨닫지 못한 그것이 중생업이다. 그러헌 고취(苦趣) 가운데만 있느냐?

'주인공아!' 나를 불러 헌 소리여. '주인공아! 네가 비롯함이 없이 왔다, 금생까장. 처음이 없이 왔다. 생겨난 때가 어디 있느냐?'
일체 무슨 과학이니 철학도 물질도 고(固) · 액(液) · 기(氣) 삼체, 고체 · 액체 · 기체 물질도 어디 난 때가 있나? 처음 생겨난 때가 있어? 다 배와 봤으니 알지? 일체 물질이 어디 생겨난 때가 있나? 항상 그대로 있는 놈이지, 그놈이 화학 윤회부절(輪廻不絶)이지. 자꾸 돌지. 어디 가서 그 없어지는 법이 있나?

더군다나 신령(神靈)스럽고 소소(昭昭)한 내 주인공, 내 마음, 내가 없어져? 언제 없어져? 언제 생겨났어? 생겨났으면 생겨난 때를 어디 말해 봐? 언제 생겨났으며, 언제 없어져?
없어지는 법 없고, 생겨난 때가 없어. 세상에 그런 놈을 왜 미(迷)해 가지고 있냐 그 말이여. 왜 미(迷)해 이렇게 알들 못하고 있어?

충분히 깨닫고, 충분히 알고, 생사해탈을 왜 왜 왜 성현네는 왜 했나? 그 우리 부처님은 어떻게 그렇게 깨달라 가지고 발써 언제부텀 깨달라 가지고 생사 없는 해탈 상락아정(常樂我淨)을 받고 있냐 그 말이여. 상락아정(常樂我淨)! 항상 아정락(我淨樂)을 받고 있냐 그 말이여.
생사 없는 낙(樂)을 아정락(我淨樂)이락 햐. 그런 낙을 받고 있는데, 우리는 이렇게 어떻게 미(迷)해 가지고 있나? 깜깜해 가지고 있나 말이여. 생각해 보아. 얼마나 문제인가? 얼매나 이게 인생 문제인가 생각해 봐.

금생까장, 이렇게 금생까장 이 몸뚱이까장 배각합진(背覺合塵)을 했느냐? 각(覺)은, 깨달은, 내가 나를 깨달을 줄은 모르고 띠끌 세상에 죄에만 파묻혀 있냐? 깜깜헌 암흑 티끌 속에만 파묻혀 가지고 있냐 말이여, 왜? 왜 이러고 있는가?(처음~25분2초)





(2)------------------

타락우치(墮落愚癡)해야, 그래 가지고는 우치심(愚癡心)밖에 없지. 어리석은 마음밖에는 없지, 깨닫지 못했으니. 깨닫지 못한 것이 전생(前生) 금생(今生)도 깜깜, 이 맘 이 몸 늘 가지고도, 이 마음을 가지고 있어도 깜깜해 가지고는 어리석어서 밤낮 인자 그놈의 육적(六賊)! 몸뚱이 이놈의 몸뚱이는 맨 육적심(六賊心)밖에 없네. 육적(六賊), 여섯 도둑놈밖에는 없어.

눈으로 봐 가지고는 넘의 것을 모도 돌라올 마음, 탐할 마음. 귀로 들어 가지고서 아! 그 참 그놈을 가져올 마음. 입으로 맛봐 가지고 맛이 좋다 그놈 가져올 마음. 코로 냄새 맡아서 좋다고 가져올 마음. 뜻으로 생각해서 원증회고(怨憎會苦)를 모도 생각해 가지고 취(取)해 올 마음, 원수 갚을 마음. 맨놈의 몸뚱이로 만져봐서 ‘부드럽다’ ‘좋다’ 촉식(觸識) 그놈이 모도 넘의 것을 모두 돌라올 마음. 요러헌 마음밖에는, 어리석어서.
안(眼) · 이(耳) · 비(鼻) · 설(舌) · 신(身) · 의(意), 눈 · 귀 · 코 · 혓바닥 · 몸뚱이 · 뜻, 요놈의 것이 어리석기 따문에 남의 것만 돌라오고, 취해 올라고 허고, 요것밖에는 못혀. 어리석기 따문에.

그놈을 가지고서는 넘의 것을 취해 올라고 말고, 돌라올라고 말고, 오히려 내가 내 것이 있으면 넘을 도와주고, 보조해 주고, 넘의 것이 어디 떨어져 있드래도 찾아서 임자를 찾아주고. 아! 요런 행을 했으면은 좋으련마는 그런 사람은 성현이 어쩌다가 있지. 어쩌다가 없을 수도 없어. 있지.

생명도 죽일 놈이지마는 살려 준다. 죽일 놈 꼭 죽여 버릴 놈, 아! 그놈 왜 죽여? 잘 살아가게 해 주지. 아! 그러니 반대적으로 퍽 좋은 일을 허면은 성현 일이고 좋은 일이언마는 나쁜 행동을 허지. 아! 그런 놈의, 그 어리석지.
그렇게 모도 하나를 들어서, 그 도둑질 안 할 놈을 넘을 보시를 헐 것인디, 베풀어 줄 자선사업을 헐 것인데, 도둑질을 허지. 유부녀 간통, 유부녀 간통을 절대 하는 법이 없고, 오히려 유부녀 간통허는 사람이 있으면은 그러헌 법이 없다고 말리고. 유부녀 잘 부부지간에 잘살게 맨들어 주어야 할 것이거늘, 그걸 유부녀 간통을 모도 허고, 같이 허고, 허게 허고, 이런 행동을 허지. 몸뚱이로 그놈을 헌다 그 말이여.

말로 입으로는 또 이놈 입이 이놈이, 아! 그놈이 그 좋은 참된 말을 해서 모도 좋은 교육을 모도 시키기도 허고, 넘한테 좋은 말을 해서 이익을 주어야 할 턴디, 거짓말을 해서 못쓸 말을 해서 넘을 상(傷)하고, 두 가지 말을 해서 속이고, 양설(兩說)! 꾸며대서 남을 모도 속이고, 두 가지 말로써 이 사람을 해(害)하게 맨들고, 저 사람을 해(害)하게 맨들고, 두 사람을 모도 원수 되게 맨들고, 그놈 공갈 협박 쳐서 남을 모도 그만 망치고, 주뎅이 입으로는 고런 행동을 허지.
뜻으로는 모도 가만히 욕심을 내 가지고 탐심을 내고, 진심(瞋心)을 내 가지고 남을 몰리 이놈을 해(害)해서 죽이기도 허고. 어리석은 마음이다.

오늘 죽을는지 내일 죽을는지 모르는디, 왜 내가 나를 한번 찾아보지 못하냐? 왜 내가 나를 한번, 세상에 이 소소영영(昭昭靈靈)헌 주인공, 이 보배 나를, 자보(自寶)를 아보(我寶)를 왜 이렇게 찾지 않냐? 왜 한번 공부를 해보지 못하냐? 하면 되는디 왜 못하냐? 그걸 못허기 따문에 어리석다 그 말이여.
이런 육적(六賊)이 있어. 이놈 가지고 죄만 퍼짓는 것을 '어리석다' 한다 이 말이여.

그 여섯 가지를 안 허고, 육적(六賊) 놈이. 나를 깨닫고 참 모도 그렇게 몸뚱이로는 살생허지 말고, 도둑질허지 말고, 사음행을 허지 말고, 온당한 옳은 일만 계행(戒行)만 잘 닦아 나갈 것.
입으로는 정어(正語)만 정다운 말만 하고, 두 가지 말할 것도 두 가지 말도, 두 가지 말은 꾸며대도 양쪽 원수를 풀어주고, 꾸며대는 놈도 좋은 놈이 있거든. 두 가지 말도 양쪽 원수진 놈을 풀어서 좋게 맨드는 놈이 있거든. 거짓말도 거짓말을 해서 사람 살리우는 말이 있거든. 요런 것을 헐지언정, 그건 그것은 거짓말이 아니여. 그건 방편설(方便說)이라 하지.

또 죽일 놈도 그놈도, 죽일 놈도 한 놈 죽일 놈은 죽여. 한 놈이 열 사람을, 악한 놈이 도둑놈이 죽이게 되면 그놈 한 놈 죽여서 열 사람을 살리란 말이여.
도둑질도 사람이 배고파 굶어 죽게 되면은 돈 좀 돌라고 해서 안 주면, 돌라다가라도 밥을 사다가라도 쌀을 팔아다가라도 밥을 좀 멕여서 살리와. 그거 도둑질 괜찮여, 그런 도둑질은. 허지마는 그렇게 안 허는 건 안 된다 그 말이여. 그런 건 이 개차법(開遮法)이니까.

세상에 이 몸뚱이 얻어 가지고는 참 좋은 요런 일만 해 나가면서 나를 찾는 것이, 내가 나를 꼭 깨닫는 것이, 이것이 지혜행(智慧行)이고 혜행(慧行)인디, 어리석지 않는 행인디, 어디 그려?
이 몸뚱이 받아 가지고는 그런 못된 악업(惡業)만 짓고 공연히 늙어 버린다. 늙어 가지고 늙어 가지고 뒈져버린다 말이여. 늙으면 뒈져야? 젊어서는 안 죽나? 곧 죽는 거. 오늘 있다 내일 죽을는지, 시간에 죽을는지, 알 수가 있나? 그러니 시간적으로 닦아야지. 곧 내가 나를 찾아야지.

이렇게 어리석은 데 떨어져 가지고 항조중악(恒造衆惡)이로구나. 항상 중헌 악(惡)만 악업(惡業)만 짓는구나. 이게 인생이냐? 이 죄업만 짓는구나. 중생이 이렇구나. 이걸 좀 생각해 봐라. 어떠허냐?
악업만 지으니 그놈이 어디로 갈 것이냐? 죄 받으러 가지. 살인 강도헌 놈이 감옥소에 들어가지, 안 갈 수가 있나?

삼도지고륜(三途之苦輪)이다. 삼도(三途)의 고(苦)에 들어간다. 지옥 · 아귀 · 축생 삼악도, 세 가지 악한 도(途)로 빠진다. 삼악도가 어디 지옥이 있고, 아귀도가 있고, 축생도가 있어.
지옥도(地獄途)는, 지옥이라는 데는 저 철위산(鐵圍山)이라는 산이 있는디, 철위산 밑에를 들어갈 것 같으면은 그 지옥이라는 게 말할 수도 없어. 모도 지옥 성(城)이 철로 모도 되고, 뚫을래야 뚫을 수도 없고, 넘을래야 넘을 수도 없고, 거그는 한번 들어갈 것 같으면은 쇠문이 잼겨번지면 끄를 수도 없는 것이고. 굉장한 놈의 철산 철옥(鐵獄)이 있는데, 요새 저 「해왕성(海王星)」에 보면은 요새 감옥이 그 쇠로 모도 맨들아 놓은 감옥이 있었지.

허지마는 이 감옥은 말할 것도 없어. 천 명이 들어가도 차고, 만 명이 들어가도 차고, 억만 명이 들어가도 차고. 업신(業身)이니깐. 이 유신 색신(色身)이 아니니까. 꿈에 있는 몸뚱이 같은 것이 있어. 여러 가도 와도 걸림이 없어. 걸림이 없어도 몸뚱이는 다 있네.
배고파 죽겄고. 고(苦)를, 모가지를 베면은 아프기를 이 몸뚱이 백 배가 더 아프다 했어. 그 썰어 죽이고, 태와 죽이고, 삶아 죽이고, 기름에 태워 죽이고, 톱으로 썰어 죽이고, 기가 맥힌 놈의 지옥이 있다. 그리 들어가. 이 어리석은 이놈의 몸뚱이로 죄만 퍼 지었기 따문에.

또 그다음에 아귀(餓鬼) 지옥에 들어가. 아귀 지옥이라는 건 배고파 죽는 지옥이 있는디, 막 배가 고파서 죽는다. 또 살아난다. 또 살아나 가지고 또 죽는다. 공연히 제 몸뚱이에서 불이 나 가지고 타져 죽고 또 생겨. 그런 놈의 참! 누가 뭐 그렇게 맨들어 주나? 모두 어리석어서 죄(罪)진 과보(果報)로. 이 세상에서 죄진 과보로.
무슨 죄를 지었나? 부모한테 불효허고, 나라 임금님한테 충성 않고, 제멋대로 험서 살생 · 도둑질 · 사음질헌 그 과보가 그런 과보가 모도 그 죄여.

될 수 있으면 이 몸뚱이를 받아 나왔으면은 첫째에 우리가 국민이 되었으니 나라에 충성해야 되아. 어쨌든지 충성심을 가져야 하고. 그다음에는 부모 자식이 되었으니 부모한테 효도를 허고.
내의 이 몸뚱이를 참 잘 가져서 좋은 행은 다 가지고, 좋은 행동만 가지고 나쁜 행은 절대 버려야 한다. 못쓸 행은 다 버려야 혀. 살생 · 도둑질 · 사음질 같은 거, 거짓말 · 꾸며대는 말 · 두 가지 말 · 악한 말 같은 거. 넘의 것 탐심 내고, 성을 내고, 그 모도 어리석어서 죄만 퍼짓는 거. 그러헌 것은 다 보내버리고 버려버리고.

항상 십선(十善)! 그걸 내던져 번지면은 열 가지 선행(善行)인디, 십선(十善), 열 가지 선행을 닦아야 한다 그 말이여. 그래야 인생이고 사람이지, 그것 없으면은 사람 가치라는 건 아무것도 없네.

이렇게 삼도고(三途苦)밖에는 들어갈 곳이 없네, 이 죄를 퍼 지니까. 이런 죄업만 지니까. 이것을 깨달라야 할 거 아닌가? 이렇게 일러주면은 듣고, 그만 언하(言下)에 그 말 듣고, 그 행(行)을 갖출 것 같으면은 참 사람이 되고, 참 혜학자가 지혜학자(智慧學者)가 아닌가? 듣고도 행치 않으면 소용없어.
삼도고에, 이 세상에서 도둑질허고 죄 퍼 지으면은 감옥에 들어가듯기, 인자 우리 이 몸뚱이 가지고도 이 몸뚱이 그런 죄는 세상에서 짓는 현범(現犯)은 아니니깐 세상에서 잡아가던 않지마는, 이 목숨 이 몸뚱이 내던져버린 즉시의 바로 가는 것이여.
그 내가, 소소영령(昭昭靈靈)한 주인공이 내가 가지, 뭔 내가 받지, 뭔 딴 사람이 못 받아. 이 몸뚱이 이까짓 게 받나? 몸뚱이 이거 뭐 송장이 되아 물질로 돌아가버리는디 뭐 받아? 몸뚱이 이까짓 거 소용없지.

이러헌 말이 한량이 없어 여까지만 해 두고. 그만 지혜 있는 사람은 들으면 다 아는 거, 거그 그 밑에까장 다 아는 것이여.


공부를 해 들어가는디, 참선 공부여. 공안을 하나 따악 선지식한테 조실 스님한테 탄다.
“여하시조사서래의(如何是祖師西來意)인고?”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판때기 이빨에 털 났느니라”

그 뭔 소리여 그게? 그 공안(公案)인데. '판때기 이빨에 털 났다' 그 판때기 이빨에 털 난 거 뭐여, 그게?
‘어째서 판때기 이빨에 털 났다 했는고?’ 따지지 마라. 분석해서 따지면은 저 죽어. 소용없어. 수수께끼처럼 산술처럼 그 따져 풀이하면 소용없어.

알 수 없는 꽉! 맥힌 그것을 활구(活句)라 햐. 알 수 없는 놈이 하나 나와사 일체 망상 번뇌가 거기 붙들 못허지. 타져 버려, 불에 띠끌 타듯기 타져 버려.
알 수 없는 놈 밖에 쬐끄만한 상량(商量), 생각, 뭔 사량(思量) 그런 것만 있으면은 망상 때문에 못혀. 화두가 된 법이 없어. 거다가서 망상도 없는 것을 붙여서 가만히 보고 관(觀)하고 있어도 묵조사선(默照邪禪)이라 못써. 선(禪)이 아니여.

‘어째서 판때기 이빨에 털 났다 했는고?’ 알 수 없는 놈 고놈 하나뿐이다. 단(單)이다 단(單)! 없어, 거 다른 거 없어.

요렇게 공부를 허는디 별념(別念)이 있으면 안 된다. 별념! 별별 것을 다 때려 붙여도 그건 선(禪) 아니여. 거다가 별놈의 상(相)을 봐서 모냥을 봐서 선(禪)이라고 허든지, 빛깔을 봐서 선이라 하든지, 이치를 봐서 선이라 하든지, 소용없어. 그건 선(禪)이 아니여.

알 수 없는 놈 하나가 나와야 한다.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내가 참선허는 법, 법상(法床)에 올라와서 이렇게 해 주는데 왜 못 들어? 왜 못 배우고? 나는 앉어서는 안 해 주어. 나는 사석(私席)으로는 사람 대허들 안 허니까.
부처님도 사석 설법 없었어, 평생에. 사석 설법도 못하게 했고. 평상화가 되아 못써. 떠억, 부처님도 좌(座)에 올라서 항상 설(說)을 허셨지. 사석으로 있는 법이 없어.

어저께 저 학생이 한 분이 와서 정전강(鄭田岡)을 찾지마는 ‘정전강은 지리산 갔다’고 내가 그래 버렸어. 뭐 천하없는 사람이 와도 면회 안 허니까. 어찌 마침 하룻밤을 여그서 자고 오늘 참 이 설법상에 참여했구마는. 이렇게 배와. 이렇게 이렇게 나를 대하고.
아침이면 여기에서 이렇게 나를 본 뒤에는 못 봐. 나를 봤자 소용없어. 내 코빼기 내 눈깔 봤자 뭐, 뭐 면회가 그거 안 되야. 뭔 면담도 없고. 나이 80에 뭐 면담허니 앉아서 주고받고 허니 기운만 모자라고 혈압만 올라오고 머리가 아파 죽을 지경인께 안 되아.


별념(別念)이면 못써, 별념이면. 화두허는 사람이 별념이면 못쓴다 그 말이여. 잘 들어야 혀.
별념 따문에 안 되는 거여. 하다가 ‘옳은가? 그른가?’ 뭐 옳은가 그른가 따져? 아! ‘어째서 판치생모라고 했는고?’ 뿐인데.
‘어째 판치생모라 했는고?’ 참! 화두(話頭), 판치생모(板齒生毛)는 참 무서운 화두여.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를 물으니께 ‘판때기 이빨에 털 났다’ 세상에 말 그 있는 말이지, ‘판때기 이빨에 털 났다’는 말, 뭐 그 뭐 천하에 뭐 우스운 말이지, 그 뭐여? 허지마는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여.

거 그놈 바로 깨달으면 내 본래면목(本來面目), 내 낯반대기, 내 마음 낯반대기, 내 마음 얼굴, 그대로 봐 버리는 것이여. 묘한 말이지. 그 화두 나온 뒤에는 꼼짝달싹 못허네, 지금. 못혀.
알아야지? '그 별 수 있는가?' 이러고는 시방 있어. 선지식(善知識)들이 그려.

흥! 화두를 턱 내놓으면은 학자들이 그 화두를 허는데, 가서 만약 깨달라 가지고 물으면 뭐라고 헐 테여? 인가(印可)를 해야 할 턴디, 어떻게 인가를 혀? 못하는 것이여. 그러고 선지식(善知識) 노릇 못하는 것이여. 조실(祖室) 노릇 못혀. 어떻게 헐 것이여? 깨닫지 못하고는.
분명히 인가(印可) 받은 공안이 있어야 할 턴디, ‘무슨 공안에 어떻게 답했소?’ 물으면 어떻게 뭐라고 거짓말을 헐 테여? 천하에 그 선지식 가리기가 쉬운 것이여. 허지마는 옳은 스승 만나기라는 것은 천하에 어렵다. 만고(萬古)에 어려와. ‘불급심사(不急尋師)면 공과일생(空過一生)이니라’ 해 놓았지?

별념(別念) 없다. 별념 말아라. 별념은 못써. 다맛 알 수 없는 의단독로(疑團獨露)뿐이다. ‘어째 판치생모라 했는고?’ 밤이나 낮이나 그저 일념(一念)을 계속해라.
‘어째 판치생모라 했는고?’ 해 놓고, 또 일념을 ‘어째 판치생모라 했는고?’ 그놈을 자꾸 일으켜서 자꾸 뒤를 이어. 속념(續念)을 혀. 염(念)을 이어야 하는 거여.
일념(一念)을 이어 들어가야지, 하루 동안 헌다? 한 시간 동안 헌다? 그건 소용없어. 일념 단속(一念團束)을 해라. 일념 일념 염염단속 염염상속(念念相續)을 해야 한다.

비단세간법(非但世間法)이라, 비단(非但) 세간뿐만 별념이 아니다. 세간(世間)에 무슨 별별 걸 생각해도 그것도 다 별념이지마는 세간뿐만 아니여.
심외(心外)에, 마음 밖에, 세간법(世間法) 말고 이 마음 밖에 불법중(佛法中)에 일체호사(一切好事)도 실명별념(悉名別念)이여. 불법중(佛法中)에 별별 이치를 다 때려 갖다붙여도 그 별념이여.

금방 들어와서 ‘견성했다’고, ‘내 대답헌다’고, 고런 놈의 소리가 어디 있어? 고게 학자(學者)여? 학자라는 것은 참으로 진실해야 학자인디, 거 뭐 벌써 보면 환한 거, 환헌 거여.
그런 별념, 별념을 벌써 하면 그건 아니여. 벌써 그 학자는 개벼와서 못쓸 뿐만 아니라, 거 벌써 그거 사견학자(邪見學者)여. 뭣을, 뭣을 알아 붙여 가지고 견성했다고 허면 그건 사견학자밖에 안 되거든. 실명별념(悉名別念)이여. 다 별념이여.

우기단불법중사(又豈但佛法中事), 또한 불법중사만 뿐이여? 불법중사(佛法中事)만 별념(別念)?
어심체상(於心體上)에, 내 마음에, 마음에 들어가서 취지사지(取之捨之)가 집지화지(執之化之)가 다 별념(別念)이여. 뭘 취(取)허고, 버리고, 집(執)허고, 분별—마음에, 내 마음속에 들어가서도 쬐그만한 뭣이라도 다 별념이여. 화두라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다. 어쨌든지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알 수 없는 의단(疑團)만 갖춰 나가거라.

하수불활야(何愁不活也)냐? 어찌 살지 못할까 두려워허냐? 어찌 견성 못할까 두려워허냐 그 말이여.
견성 못허는 법이 없다 그 말이여. 견성을 해논 뒤에는 ‘내 답할라우’ 소리도 나올 것도 없어.

벌써 견성(見性) 따악 해 가지고 보면은, 방아 찧다가 육조 스님이—(동자가 신수 스님의) 글 읽고 다녀.
“신시보리수(身是菩提樹) 심여명경대(心如明鏡臺) 시시근불식(時時勤拂拭) 물사야진애(勿使惹塵埃)라”
“아! 그거 뭔 소리냐? 무슨 말이냐?”

“방아나 찧지,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 그 뭔 소리여?” 헌께,
“아니 좀 들어보자”

그래, 아! 그 해석을 뜩 말을 한 번 해준께, (육조 스님이) 얼른 그놈을 짓는다. 대번 벌써 그렇게 그렇게 되어야지.

"보리(菩提)도 본무수(本無樹)요 명경(明鏡)도 역비대(亦非臺)니라.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인데 하처야진애(何處惹塵埃)냐" 아! 그렇게 처억...

아, 그 벌써 보면 알아. 뭣 ‘답 허시오’ ‘물으시오’ 소리헐 것이 없어.
건방지게 ‘물으시오. 내 답허께’ 그거 건방져 못쓴 것이여. 그런 짓을 해서는 안돼. 저 몰라서 헐 수도 있지마는 그런 법 없어.(25분6초~49분15초) (끝)

Posted by 닥공닥정

 

•§• 박산무이선사선경어(博山無異禪師禪警語) (13/18) 박산무이선사의 선경어.

**전강선사(No.385)—박산무이선사 선경어(13) (갑인.74.01.27.새벽) (전385)

 

약 30분

 


청원연우리(靑原煙雨裏)에  비진기쇠의(費盡幾衰衣)냐
나무~아미타불~
경구무멱처(經求無覓處)에  원소시진비(猿嘯시진비)냐
나무~아미타불~

청원연우리(靑原煙雨裏)에, 그 푸른 언덕 연기와 안개와 비가 자꾸 모두 퍼붓어 내리는데,
비진기쇠의(費盡幾衰衣)냐. 얼마나 그 삿갓과 옷을 찢겼느냐. 그 머리에는 삿갓을 쓰고 몸에는 떨어진 옷을 입고, 그 험악한 청원리(靑原裏)에 소를 찾으러 댕기면서 얼마나 그 모도 찢겼느냐. 한량없이 몸도 씻기도 옷도 찢기고 삿갓도 다 모도 없어지고 비는 맞고 안개 속에서 천신만고를 겪었느냐.

그것은 학자가, 도학자(道學者)가 도를 닦는데 얼마나 고생을 허는 그것을 비유헌 말이여. 도학자, 도 닦으러 나온 학자가 편안허고 안락하고 무슨 잘 먹고 잘 입고 뭐가 있나? 세상에 도무지 가장 그 가난헌 청빈객(淸貧客)이여. 가난허고 깨끗헌.

그래 만공 스님 회상에서, 만공 스님께서 “납자(衲子)는 가장 깨끗허고 가난헌 것이 납자의 본분이니, 납자(衲子)라 하는 것은 부귀가 없는 것이고, 권리나 지위나 명예나 무슨 세상 공명 같은 거, 뭐 부(富)니 아무것도 없는 청한(淸閑)이다, 청빈(淸貧)이다. 그 가난허고 깨끗헌 도리를 한마디씩 일러라. 학자의 본분 도리다. 본분 도리를 일러라” 그렇게 해제(解制) 때에 물으셨단 말이여.

그런데 그때에 나는 처음 들어왔어. 처음 들어와서 그런 말이 무슨 말인지 듣도 알 수가 없고. 뭔 말인지 그 청빈 도리, 가난한 도리를 이르라 하니, 그 가난한 도리 그 뭐 그 뭐 어떻게 그 가난한 도리를 어떻게 이르는 것인가? 원, 나 원, 하나 못 알아듣고. 대중께서는 한마디씩 이른 이가 더러 있는디.

그 여러 사람 이른 가운데에 그 들어보니 한 학자(學者)는 양구(良久)를 했다. 아무 말이 없어. 청빈 도리를 이르라 하니까 양구(良久)를 했네.
양구도 근사하지. 뭐 가난허고 뭐 뭐 뭐 청(淸)허고 뭔 뭐 말헐 것도 없지. 어디 가서 무슨 말, 말인들 있을 수가 있나? 가난허고 깨끗헌 속에 가서 그 양구 그럴듯혀.

또 한 학자는 “나, 밥 좀 주십시오” 이렇게 일렀거든. 흥! 또 그 학자도 그럴듯허다 그 말이여. 뒤에 생각허건댄 그럴듯혀.
“밥 좀 주십시오. 밥 한 숟갈 없으니 배고파 죽겄으니 밥 좀 주십시오” 가장 빈한(貧寒)한 도리, 가난한 도리에 “밥 좀 주십시오” 학자 하나는 양구(良久)를 했다 그 말이여.

요런 말을 듣고 '양구(良久)는 어떤 것이다. 밥 달란 건 어떤 것이다. 그 무슨 일물(一物)인들 뭐가 있으며, 쌀 한 냍기도 밥 한 숟갈도 없으니 비는 것이여, 그 청빈 도리요. 양구요, 말헐 것도 없으니 말 한마디도 있을 것도 없으니 청빈 도리여'
고다가서 무슨 지견(知見)을 붙여 보면은 그것이 다 법누(法漏)여. 법(法)의 누(漏)여. 법 때여. 그렇게 소견을 갖다 뭔 지견을 갖다내서 붙여 보면은 선(禪)은 아니거든. 잘 알겄어?
선(禪)이라는 것은 그러헌 도리를 뭔 수명생해(守名生解)를 혀? 말을 듣고 알음알이를 내서 붙여? 그것 선(禪) 아니여. 그것 다 틀린 것이여.


도무심(道無心)이 합인(合人)이여, 도(道)가 무심(無心)해서 사람에게 합(合)허고, 인무심(人無心)이 합도(合道)다. 사람이 무심(無心)해서 도(道)에 합(合)헌다.
욕식개중의(欲識箇中意)인댄, 이 낱 가운데 뜻을 알고저 헐진댄 일로일불로(一老一不老)니라. 하나는, 일(一)은 노(老)요, 하나는 늙고, 하나는 늙지 않았다.

그러헌 도리를 바로 봐야사 진(眞)가난 도리, 청빈 도리를 이른 것이다 그 말이여.
그건 무슨 도리일까? 그거 얼른 쉽게 헌 말이지마는 거 안 돼. 아까 저것은 양구(良久)도 말도 없는 곳, 이치 길, 말 길도 말할 것도 없는 곳, 그거 뭐 티끌만큼도 거기에 무슨 뭐 언어가 뭐 어디 붙을 것이 없는 곳, 모도 고러헌 지견(知見) 지해(知解)를 붙이면은 고게 사구(死句)요, 고게 화두선(話頭禪)은 아니거든. 모도 의리선(義理禪)이고, 똥 발라 논 것이지.

“밥 좀 주십시오” 아주 가난한 도리니까, 밥 한 숟갈 없으니 좀 달라고 비는 거, 그 지경이 그 깨끗허니 일물(一物)도 없는 지경, 거다가 뭘 붙이자면은 쌀 한 냍기도 없는 지경, 그런 것 다 틀려. 그러헌 도리를 붙인 것이 그 선(禪) 아니여.
유무(有無)를 붙였다, 유무를 뗐다 한 것도 유무를 떼버리면 아무것도 없지. 공(空) 하나 나오지. 그것이나 그것이나 다 똑같은 거여. 신선(神仙)의 공도리(空道理)나 똑같은 거여. 공(空)도 무슨 뭐 어디 공(空)이 붙어 있나? 공(空)까장도 다 붙들 못허지, 진공(眞空)도 없지. 그렇게 떼 놓고 붙이고 봤자, 그건 선(禪)은 아니거든.

도무심(道無心)이 합인(合人)허고 도가 무심해서 사람에게 합허고, 인무심(人無心)이 합도(合道)다, 사람이 무심해 도에 합헌다.
욕식개중의(欲識箇中意)인댄 일로일불로(一老一不老)다. 이 낱 가운데 뜻을 알고저 헐진댄 일(一)은 늙고 일(一)은 늙지 않았다.
이게 오종가풍(五宗家風)인디 무서운 가풍이여. 오종가풍은 꼭, 꼭! 하나 그대로 일러야 되지, 백천 말 소용없어. 천 마디가 소용없어. 하나 따악 일러야 맞는 것이여.

돌아가신 혜월 큰스님이 항상 묻되, “공적(空寂)에 영지(靈知)를 일러라. 공적한 가운데에 신령허게 아는 영지를 일러라. 영지(靈知)에 공적(空寂)을 일러라”
공적에 영지를 이르면은, 영지에 공적을 또 물으면 영지에 공적을 일러. 이르면은 “그러면 공적영지(空寂靈知), 영지공적영지(靈知空寂靈知), 고놈 등지(等持)를 한 번 일러봐라” ‘같을 등(等)’ 자, ‘가질 지(持)’ 자여. 등지(等持)를 일러봐라.
등지를 일러야사 “옳다!” 인가(印可)를 허거든. 그 다 조사선(祖師禪)이여. 활구선(活句禪)이여.

아까 이 오종가풍 가운데에 이 석상 스님 법문인디 그 물컹허니 해놨지마는, 참! 뭐 그... 일로일불로(一老一不老)니라. 일(一)은 늙고 일(一)은 늙지 않았다.
그건 그 무슨 그 없네 있네, 없고 있는 사이니, 틈이니, 뭐 틈사구니니, 일물(一物)도 없느니, 고런 놈의 지해(知解) 가지고는 소용없는 것이다 그 말이여.

청원연우리(靑原煙雨裏)에, 얼마나 옷을 찢기며 삿갓을 찢기며 이 고생을 했느냐. 참 무척 학자의 고생이... 내 마음 소를 찾을라고, 내가 내 근본 도리를 찾을라고 그 고생을 헌다. 우리 학자의 이 지경이다 그 말이여.
기도경구무멱처(幾度經求無覓處)냐. 몇 번이나 돌고 또 돌고, 돈 디를 또 돌고 밤낮 도는디, 아! 그 가운데 소는 있건마는, 아! 어째 그렇게도 못 찾느냐 말이여? 거기에 그 조금도 뭐, 뭐 어디 여읜 곳이 없는데, 왜 그렇게 못 찾는고 말이여. 그거 별일 아닌가?

그 뭐 언하(言下)에 대오(大悟)여. 무슨 뭐 조금도 거 “이” 헐 것도 없어.
이놈의 중생 소견머리가 그저 찾아. 그저 그만 뭐가 있는 줄 찾는다 그 말이여. 뭐가 있는 줄 찾는 것이, 그것이 벌써 사견(邪見) 상견(相見)에 모도 거꾸러지는 것이여. 찾을 것이 뭐가 있나 그 말이여.
판치생모(板齒生毛)다? 아! 판치에 털 났다 그 말이여. 그 찾을 게 뭐 있나?

참 그러기 따문에 터꺽! 깨달라 놓고 보면 웃어. 대오가 나온다 그 말이여. 웃음이 나와. “허허” 웃지마는 참말로 그 웃음도 무서운 웃음이지. 거 그렇게 그거 비웃는 웃음이 아니여. 진소(眞笑)지.

꼭! 봐야 하고 꼭 깨달라야 하거든. 아! 보지 않고 깨닫지 못하고야 어떻게 증(證)헌가?
증(證)이래야, 꼭 깨달라 증(證)이래야 참말로 인자 용무생사(用無生死), 생사 없는 도리를 막 쓰는 것이여. 다시는 거기에는 인생 고(苦)가 붙을 것도 없고, 인생 문제가 붙을 것도 없고, 여지없어.

헌디 보들 못허고야 어떻게 그 증(證)헐 수가 있는가? 그러기 따문에 깨달라 가지고야사 비로소 도(道)를 닦는 것이여. 깨닫지 못허고는 도를 닦는 게 아니여. 도리어 그만 깨닫지 못헐 것 같으면은 무명(無明)만 더 기룬다 그랬어. 무명만 더 기루어. 확철대오(廓徹大悟)헌 후에야사 비로소 깨닫는 것이다.

몇 번을 돌아도 아! 거그 있는 놈을 못 보네.
유문원소만선음(唯聞猿嘯晩蟬吟)이다. 그 원숭이 휘파람 불고 매미 우는 소리만 밤낮, 그 시끄러운 그 중생 번뇌 경계, 매미 울고 잔나비 모도 울고 그 시끄러운 곳 항상 그곳에만 있지. 아! 그놈 그 본래 갖춰져 있는 놈을 터꺽 보들 못한다.


주공부(做工夫)허되, 첫째, 공부를 짓되 부득장심대오(不得將心待悟)니, 시러금 마음을 곧 그 찾는 놈이 그놈인디, 그놈을 가지고 오(悟)를 구허지 말아라. 오(悟)허지 못헌 것을, 깨닫지 못헌 걸 구허지 마라.
그것 벌써 깨달라 구허는 것이 그게 무슨 마음이냐? 다맛 알 수 없는 놈만 다룰지언정, 아! 왜 깨달을라고 허냐 그 말이여? 왜 각심(覺心)을 두냐 그 말이여? 그것이 우선 그 병통 아닌가?

여인(如人)이 행로(行路)에 주재노상(住在路上) 대도가(待到家) 종부도가(終不到家)니, 어떠헌 사람이 노상(路上)에 있어서 길 가운데 앉어서, 행로(行路)에 앉어서 집에 가지 못헌 것을 걱정을 허고 있는가? 앉어서 있음서도, 집에 가지 못헌 것을 걱정허고 있네.
가면 가야 할 것인디, 왜 가지 못허고 집에 가지 못헌 걸 걱정하고만 앉었냐? 대오지심(待悟之心)이 그렇다 그 말이여. ‘아! 깨달지, 어찌 깨달지?’ 그것 천하에 못쓴 것이다 그 말이여.
길 가는 놈인디, 아! 길을 갈지언정 왜 대오지심(待悟之心)을 가지냐? 그거 이거 학자들이 이런 걸 다 크게 알아야 헌다 그 말이여.

종부도(終不到)허니, 마침 그 깨닫들 못혀. 깨달을 마음만 자꾸 두고는 화두는 내던져 번지고 고러헌 주각상(註脚想)을 지으면, 그런 의작상(擬作想)을 가지면 대오(大悟) 못혀. 고것도 큰 마장(魔障)인디, 하물며 그밖에 다른 무슨 망념이 항상 이놈이 화두에 붙으면 될 것인가?
깨끗헌 마음으로써 옳은 신심(信心), 옳은 분심(憤心)으로써 의단독로(疑團獨露)다. 알 수 없는 놈만 갖추어 보아라. 그 때꼽재기 하나 망념이 거그 붙어 있지 않는 곳에 뭐 뭐... 뭐 무슨... 알 수 없는 놈 하나만 가지고 나갈 때, 무슨 병통이 있나? 화두에 무슨 병(病)이 있어? 병이 붙을 디 어디 있어?

지수영오(只須令悟)니라. 그 이렇게만 해 들어갈 것 같으면은 뭐 병(病)도 없고 깨끗허고 학자가 도무지 무슨 학자병 하나도 없다. 선병, 불병, 조병, 조사병, 선병, 불병, 견성해서 깨달았다는 병, 아무것도 없어. 알 수 없는 지경만 갖춰 나가라.
비대오야(非待悟也)니라. 절대로 오(悟)를 기다리지를 말 것이니라. 이것이 화두 학자의 근본 도리다.


공부를 짓되 착부득일사호별념(着不得一絲毫別念)이니, 한 사호(絲毫), 터럭끝만큼도 별념(別念)을 그 두지 말 것이니. 아! 공부헌 사람이 별념을 둘 것이 뭐겄냐 말이여. 부처 못된 걸 두어, 조사 못된 걸 두어? '원 도무지 아무 소식이 없으니 이거 아무것도 아니다'는 생각을 두어? 그런 생각이 다 못써. 그러헌 비렴(非念)을, 아닌 것을 도무지 두지 말아라.

어쨌든지 그저 알 수 없는 놈만 자꾸 챙긴디 힘도 쓰지 말고, 힘쓸 것도 없고 그저 단전(丹田)에다 따악 두고, 한번 숨을 가만히 내쉬었다가 스르르르 들어간 숨을 단전에다 멈춰두고는 조금 멈춰두고, 숨 쉴 때나 내쉴 때나 들어쉬고 내쉬는 디 조금도 관계 말고 화두만 관(觀)해라.
알 수 없는 놈만 관(觀)하면은 숨은 그대로, 그 숨은 항상 쉬는 것이니 뭐 그대로 가만히 나왔다 스르르르 들어가니. 그 가만히 나왔다 스르르르 들어간 놈이 울로 올라온 기운을 스르르르 내루어.

그 뭐 요새 모도 숨 쉰다는 사람들, '숨을 그 내루어 가지고 척추로 올려서 윤회를, 왼 전신(全身)을 윤회를 시켜서 내놓는다' 그것은 모도 외도(外道)들 허는 것이고.
화두 막 그 저 상기(上氣) 올라오지 않게. 그 혈압, 그 혈압이여. 그 혈압 상기 올라오지 않게 가만히 터럭끝도 안 흔들리게 내쉬었다가 스르르르 들어쉬는 데 가서 기운이 스르르르 내려가 가지고는 그 단전(丹田), 배꼽 밑에 가서 응(應)해.

가만히 기운이 응헌 디 가서 화두(話頭)는 그대로 물달 떨어져 있듯기, 물빛 속에 달빛 있듯기 그대로 있는 거여. 그거 없고 허면 안 되아. 그것이 없으면 된 법이 없어.
그놈이 의단(疑團)이 그대로 따악 독로(獨露)되아야 그 숨이 그렇게 잘 통해져. 뭐 그까짓 것 무슨 뭐 한 시간, 두 시간, 댓 시간 앉었기가 문제 아니지. 그놈만 잘, 그 화두를 그렇게만 잘 잡드리를 헐 것 같으면은.

그러헌 조금도 별념(別念) 두지 마라. 화두(話頭)해 나가는디, 이게 진간택(眞揀擇)이다.

행주좌와(行住坐臥)에 단단지제기본참화두(單單只提起本參話頭)해라. 가나오나 일체처에 내 화두 하나 얻은 놈, 내 화두 하나 탄 놈, 고놈만 어쨌든지 다른 화두는 그만두고—이놈 저놈 해보고, 요것도 좀 떼짝떼짝 해보고, 저놈도 좀 딸끄닥, 그러지 말아라. 꼭 그 본참(本參)을 돌이켜서 그렇게 해 나가거라.

발기의정(發起疑情)해야, 그 의정(疑情)을 발(發)해 일으켜서. 의심이, 알 수 없는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허게 일으켜.
일으켜서 분연요토개하락(憤然要討箇下落)할지니, 아주 극도헌 분연(憤然)히 절대 신심껏 그 낙처(落處)를, 알 수 없는 곳을 그놈을 항상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고놈 하나만 단속을 헐 거 같으면, 고놈 하나만 자꾸 헐 거 같으면, 세상에 요(要)다. 그 요(要)는 화두해 나가는데 더 없다.
알 수 없는 밖에 뭐가 있겠나? 알 수 없는 놈이 있으면은 무슨 망념이 나겠나? 그러니까 알 수 없는 그 의심(疑心)이니까 의심 속에는 망상(妄想)이 붙들 못혀. 망념이 도저히 붙지 못혀. 그거 활구(活句)여. 꽉! 맥힌 활구여.

뭣이 알면 아는 틈새기에서 별것이 다 나오거든. 알기는 제가 뭘 알아? 뭐 뭐 월세계(月世界)를 발견해서 보면 뭣허며, 월세계 들어가서 무슨 뭐 월세계 도리를 다 알면 뭐를 헐 것이며, 없는 속에 들어가서 별걸 다 맨들아 보면 뭣허며, 유(有) 속에 있는 속에 들어가서 별 경계를 다 맨들아 보면 뭣허며, 과학이니 철학이니 철학 비철학이니 그 같은 거 뭐 뭐 따져 분석해 보면 뭣 할 건가 말이여? 그것이.
그거 아는 것이 뭣혀? 중화지문(衆禍之門)이여. 모두 화(禍)의 문(門)이지. 그것 이 참선법에는 그런 거 소용없어.

그러기에 혜가(慧可)가 당시에, 혜가 선사가 당시에 문무(文武) 기술이니 뭐 천하에 모를 것... 입만 열면 모르는 게 없어, 입 떼면. 그러니까 달마(達摩)가 서쪽에서 나왔다 하니 시험을 한번 헐라고 갔지? 시험을 한번 해볼라고 갔지? 달마가 나와서 무슨 소림(少林)에서 들어앉어서 무슨 선(禪)이니 참선이니 그 뭐인가 싶어서 가봤다 그 말이여.
가보니 아무것도 없고 말도 없고, 무슨 뭐 지부지(知不知)니 무슨 뭐 없지. 아! 그래노니께 거기서 그만 차츰차츰 믿어져 가지고 아! 그만 그 알 수 없는 도리에 들어가서, 천하에 그 아는 것 다 분쇄되아 버리고. 그까진 거 자기 아는 것은 그것 무슨 뭐 가루처럼 모도 그만 썩어져 번지고는, 아! 모르는 놈에 가서 신심이 퍼 일어나 가지고는 아! 그래 가지고 그 도(道)에 들어오지 않았는가?

약유사호별념(若有絲毫別念)이면, 터럭끝만큼이라도 별념이 있으면, 별념(別念)이라는 게 ‘다를 별(別)’ 자, ‘생각 념(念)’ 자, 별념이라는 게 천 가지 만 가지 억만 가지 아는 것 다 거기에 다 들어 있는 거 아니여? 별념 속에? 별것 다 아는 거, 그거 뭐여?

고소위잡독(古所謂雜毒)이 입심(入心)이니라. 조그만헌 무슨 제가 지해상량(知解商量), 알았다는 거 뭐 그런 거. 배와 아는 거, 들어 아는 거, 생각해서 아는 거, 고런 것 가지고는 입독, 잡독(雜毒)이 입심(入心)이여. 잡헌 독해(毒害)가 마음에 들어온 거여. 그것 뭐여? 그것. 잡독(雜毒)이 입심(入心)이지.

상호혜명(傷乎慧命)이여. 잡독 그놈이 들어와서 내 활구선(活句禪)을 그걸 모도 상(傷)해 버려. 알 수 없이 닦아 나가는 활구참선을 고놈이 쪼사 먹어 버려. 좀먹어 버려. 잡독이 입심이여.
학자(學者)가 불가불근(不可不謹)이니라. 가히 삼가하지 아니헐 수가 없다. 이렇게 간택(揀擇)을 해서 화두를 잘 해 나갈 것이니라. 앉으면은 어쨌든지 의심만 챙겨라. 알 수 없는, 일어나도 알 수 없는 놈, 가도 그놈. 이렇게 해 나갈 것 같으면은 도 못 닦는 사람이 누가 있겠나?


차신(此身)을 불향금생도(不向今生度)허면 갱대하생도차신(更待何生度此身)고
나무~아미타불~

금생에 제도 못허면 쓰겠나? 금생에 꼭 해야 한다. 금생에 꼭 해야 할 문제는 참선법이여. 다시 미룰 수가 없는 법이여. (처음~29분37초) (끝)

Posted by 닥공닥정

 

•§• 박산무이선사선경어(博山無異禪師禪警語) (12/18) 박산무이선사의 선경어.

**전강선사(No.384)—박산무이선사 선경어(12) (갑인.74.01.26.새벽) (전384)

 

약 37분.



한안척진몰(寒雁尺盡沒)이요  영락백운간(影落白雲間)이니라
나무~아미타불~
호호하처거(乎乎何處去)오  월침서해흑(月沈西海黑)이니라
나무~아미타불~

감찰원장이 나한테 “전강 스님은 돌아가시면은 어느 곳으로 가실랍니까?” 이래 물어서, 내가 송구(頌句)로 답을 했어. 정각사에서 저 정각사에서 지리산. 송구로 답을 허되 이렇게 했다 그 말이여.

한안(寒雁)은 척진몰(尺盡沒)이다. 차운 기러기는 재질을 허다가 빠져 버렸다. 저 허공에 날라가다가 빠져 버려. 그 날래를 훨훨 재질을 허다가는 그 빠져 없어져 버렸지.
영락백운간(影落白雲間)이로구나. 그림자는 백운(白雲) 사이에 떨어졌구나.

호호하처거(乎乎何處去)오. 호호(乎乎)야 어느 곳으로 갔느냐? ‘온 호(乎)’ 자여, ‘온 호(乎)’ 자. 호호하처거(乎乎何處去)오. 호호야 어느 곳으로 갔느냐?
월침서해흑(月沈西海黑)이니라. 달은 침(沈)했는디 빠졌는디 서해(西海)는 검다. 그렇게 일렀어. 잘 들어 둬야지.

주공부(做工夫)허되, 참선 공부를 허되 최파사유(最怕思惟)다. 가장 사유(思惟)를 두려워해야한다. 사유(思惟)라 하는 것은 화두를 들고 앉았으면 판치생모, ‘어째 판치생모(板齒生毛)라고 했는고?’ 벌써 조주(趙州) 뜻, 알 수 없는 뜻, 알 수 없는 의지, 그놈 하나가 척 나와 가지고 관이 관(觀)이 따악 관(觀)! 알 수 없는 관.
관(觀)이 즉 알 수 없는 놈이고, 알 수 없는 놈이 관(觀)이지. 그 알 수 없는 관(觀) 가운데 무슨 사유가 붙어 있을 것인가? 거기는 사유가 붙어 있들 못혀.

불, 불꽃에 무슨 놈의 그 먼지 같은 거, 진태미 같은 거, 뭐 그런 티끌 같은 것이 어디 붙나? 꼭 같지.
조주 공안에는, 참선 공안에는 사유가 붙들 못혀. 사유(思惟)라는 것은 벌써 ‘생각 사(思)’ 자, ‘생각 유(惟)’ 자. 무슨 생각이든지 조그만한 생각만 일어나면 그만 그 화두에는 독해(毒害)여. 화두(話頭)는, 알 수 없는 의단(疑團)은 어디로 도망가는 것이여. 그걸 알아야 혀.
사유(思惟), 그 사유심(思惟心)이 있기 따문에 사유에서 왼갖 장애가 일어나고, 별별 마구니가 일어나고, 그게 못쓴 것이다 그 말이여.

활구학자(活句學者)가 그것 무슨 뭐 전생 · 금생 · 후생, 삼세사(三世事)에 무슨 뭐 잘잘못이 어디 있으며, 무슨 죄 짓고 안 지은 것이 어디 있나? 죄니 무슨 무간업(無間業)을 지었다 하드래도 발심(發心) 떡 해서 화두 공안 타 가지고 공안(公案)허는 학자가 되어 있으면은 다시는 거기에 사유가 없어야 할 것이다 그 말이여. 무슨 사유가 붙어 있나?
왜? 벌써 그 사유심(思惟心)이 생사심(生死心)이고, 사유심이 망상심(妄想心)이고, 사유에서 모든 마구니 제경(諸境)이 퍼 일어나는 것이여.

그러기에 활구학자라는 것은 변동, 무변리거여. 변동이 없어야 혀. 뭐 별거 있나?
말산요연(末山了然) 비구니가, 여자 비구니인데, 여자 비구니가 견성을 했다고 학자를 거느리고 설법을 허고 있으니까, 관계(灌溪) 스님이 관계 스님은 유명헌 제방 선지식인데, 관계 스님이 “이까짓 놈의 말산요연 같은 것이 학자를 접(接)헌다고, 제가?” 비구니를 업신여겼다 그 말이여. 여자라고. 여자는 성불 못헌다고.
여자가 왜 성불 못했나? 여자는, 무슨 남녀가 어디 거기에 구별이 있나? 남녀가 무슨 뭐 무슨 놈의 구별이 있어서 여자는 성불 못햐?

관계(灌溪)가 “말산요연 같은 비구니 요까짓 것이 성불을 했어? 그만 내가 가서 이것을 그만 벼락을 내서 출세를 못허게 만들어야, 요런 것을 출세를 시켜 놓을 것 같으면 학자를 모도 버리고 불법을 망칠 것이니 이걸 없애야겄다. 외도(外道) 마구니다” 이래 가지고는 들어갔다.

말산의 회상(會上)을 떡 들어가서 대번 묻기를, 법담을 하되
“여하시말산(如何是末山)고? 어떤 것이 말산이냐?”
“불노정(不露頂)이니라. 정(頂)이 들나지 않았느니라” 그만 그렇게 들어 두어.

“여하시말산주(如何是末山主)냐? 어떤 것이 말산주(末山主)인고?”
“비남녀상(非男女相)이니라. 남녀상(男女相)이 아니니라”

관계 스님이 할(喝)을 냅대, 벽력같은 고함을 한번 질렀다. “하불변거(何不變去)야? 어찌 변해 가지 않느냐?” 관계가 그렇게 허니까,
말산이 “불시신(不是神)이요, 불시귀(不是鬼)다. 신(神)도 아니고 귀(鬼)도 아니다. 변개십마(變箇什麽)냐? 변개(變箇)가 뭣이냐?”

그 그 말 한마디에 관계가 답 못허고 거기서 관계가 죽었네. 거기서 죽었어. 그 언하(言下)에 죽었어. 그만 거기서 말산(末山)이한테 항복허고 3년 시봉을 했다. 3년을 꼭, 그런 법이여. 3년을 시봉..

꽉 맥혔어. “불시신(不是神)이요 불시귀(不是鬼)허니 변개십마(變箇什麽)냐?” 변해간 낱[箇]이 뭣꼬?
'어찌 변해 가지 않느냐?' 자기가 만들어 놓고 자기가 죽지. 제가 사유를 만들어 놓고 제가 죽지. 제게서 모도 나온 것이지 어디 딴 데서 나오나?

"신(神)도 아니고 귀(鬼)도 아니거니 변개십마(變箇什麽)냐? 변개(變箇)는 십마(什麽)냐? 무엇이냐?" 묻는디 답 못해, 그 3년 시봉을 했어. 3년만에사 깨달랐다 그 말이여, 관계(灌溪)가 말산요연(末山了然)한테. 법(法)이라 하는 것이 그렇게 미끄럽게 그대로 써 나가는 것이여.


공부를 허되, 가장 처음에 화두를 처음 타 가지고는 사유(思惟)를 두려워해라. 그 무슨 사유, 조그만헌 무슨 마음이라도—이치, 무슨 이치든지 이치를 붙이거나, 무슨 그 말을 붙이거나, 무슨 뭐든지 사유 그 사유에 다 들어가 있는 거여. 사유(思惟)치 말아라.

주시(做詩), 또 거다가 시를 짓고 주시(做詩), 주게(做偈) 무슨 게송(偈頌)을 짓고, 주문부등(做文賦等)이다. 문부(文賦) 등을 또 짓지 말아라. 요런 것 고런 것이나 모도 짓고, 거다 모도 붙이고, 거다 이치를 붙여서 견성했다고, 모도 고런 알음알이를 붙이고 요따구 짓, 견성이 그런 것 아니다 말이여.
시도 짓지 말고, 참선허는 사람이 무슨 놈의 시(詩)인가? 게송(偈頌)도 짓지 말고, 아무리 글이 훌륭하다 하드래도 문부(文賦) 등도 짓지 말고, 문부(文賦) 글 짓고 모도 문부(文賦) 등을 짓고.

시게성즉(詩偈成則), 시(詩)를 짓고 게(偈)를 짓고 문부(文賦) 등을 모도 짓고 고런 짓을, 공부허다가 공부는 그만 내던지고는 화두는 저버려 버리고, 그런 짓을 하다가는 시승(詩僧)밖에 안 된다. 글허는 중밖에 안 되아. 그 시승(詩僧)이 거 뭣허는 거여? 글만 허는 중이지, 중인가 그것이? 참선해서 견성성불(見性成佛)을 해야 중이지. 시승(詩僧)밖에 안 되고.
문부공즉(文賦工則), 문부를, 모도 글을 짓고 문부(文賦)를 공부헌 즉 칭문자승(稱文字僧)이여. 문자승(文字僧)이라고 밖에는 헐 수 없다 그 말이여. 그 무슨 뭐 뭐 그 중이 그런 것인가? 문자승(文字僧)이나 시승(詩僧)이나 그 뭐 글 잘하는 것이 뭐 중이여?
여참선(與參禪)으로는 총몰교섭(總沒交涉)이다. 참선허는 학자는 그런 법이 없다. 참선허는 학자가 언제 시(詩) 짓고, 게(偈) 짓고, 문부(文賦) 등을 지을 수가 있겠느냐?

오직 참선이다. 오직 견성(見性)해서 성불(成佛)허는 법이다. 견성해서 보림(保任)허면 사사무애(事事無碍) 증(證)허면 부처 안되어 버리는가?
암만 견성을 했닥 하드래도 옳게 했지마는 보림을 안 할 것 같으면은 미(迷)해서 도로 그만 처백혀 버리니 되아? 오후재미(悟後再迷)니. 오후(悟後)에, 깨달은 후에 도로 미(迷)해 버리니 되아? 이런 것을 선후를 분명히 알아야사 되는 것이여. 그런 것도 아지 못하고 선후를 아지 못허고는.

보조(普照) 스님 『수심결(修心訣)』에 그런 말이 있지?
'어찌 요새 요새 그 견성헌 사람들이, 견성해서 모도 공부해서 견성했다는 사람들이 무유일인(無有一人)도 신통변화(神通變化)하오이까? 한 사람도 신통변화가 난 사람이 없습니까?'
'견성을 헐 것 같으면은 하늘도 올라갈 수 있고, 땅도 땅속에도 들어갈 수 있고, 은신도 헐 수 있고, 호풍환우(呼風喚雨)허고 바람도 이룰 수도 있고. 승천입지(昇天入地) 호풍환우, 그 무슨 별별 짓을 다 신통변화를 헐 수 있으며, 능히 능살능활(能殺能活)도 헐 수, 능히 죽기도 허고 살 수도 있으며, 아! 뭐 별짓을 다 해야 그 견성인데, 그 그런 짓 하나도 없는 것이 무슨 견성입니까?' 물으니까.

보조 스님이 말씀을 하사대, '여부득경발광언(汝不得輕發狂言)하라. 네가 그 개벼히 그 미친놈의 말을 말아라. 네가 미친놈이지, 그 옳은 놈이냐? 공부를 허되 선후(先後)를 알덜 못허고 본말(本末)을 알덜 못헌 놈이 무슨 놈의 그 네가 공부헌 사람이냐? 네가 무슨 숭악한 미친놈이로구나.
거기 답(答)을 허시되, 아무리 견성을 했닥 하드래도 여불(與佛)로 무수(無殊)허게 부처님으로 더불어서 부처님과 같이 깨달랐닥 하드래도, 이즉돈오(理卽頓悟)다마는 이치는 몰록 깨달랐다마는, 사비(事非)를 돈제(頓除)다. 사상사(事象事)는 그대로 돈제(頓除)여. 몰록 제(除)헐 수가 없어.

그러면 그 비유해서 말을 허자면 식빙지이전수(識氷池而全水)인디, 얼음 못이 얼음이 온전히 물이다마는 차양기이용소(借陽氣以鎔消)허고, 양기(陽氣)를 가자(假藉)해사 그 얼음을 녹히고.
구름이 한 점 없어 볕이 나사 얼음이 녹고, 날이 더워야사 얼음이 녹고, 빙소즉수류윤택(氷消則水流潤澤)이다. 얼음이 녹아야사, 볕이 나서 해가 나와서 얼음이 녹아야사 수류윤택(水流潤澤)이다. 물이 윤택허다.
방정개척지공(方呈漑滌之功)이니라. 바야흐로 척지(滌之)의 공(功)을 이룬다, 물이 얼음이 녹아야사 마음대로 쓰고 마시기도 허고 밥도 짓고 마음대로 쓰지 않나?

아! 그러헌 것이니 오범부이즉불(悟凡夫而卽佛)이다마는, 범부가 곧 부처인줄은 깼다마는 대번에 그만 그 깨달라 가지고는 얼음, 얼음같이 되어 가지고 쓸 수가 있나? 얼음 녹히듯기 보림(保任)을 해서 인자 그 물 다 녹혀서 마음대로 쓰는 거와 같느니라.
어린 자식을 막 낳아 놓았는디 그놈이 어디 그 눈 · 코 있고, 입 · 귀 다 있지마는, 그놈이 눈으로 온당하게 보고, 귀로 온당하게 듣고, 입으로는 온당하게 말을 하나? 막 낳아 논 것이? 다 이목구비는 갖추어져 있지마는 말도 못허고, 듣도 못허고, 그렇게 모도 포복(匍匐) 방자(放恣)허기만 하지?

같다. 견성(見性)허면 그와 같다마는, 이놈이 차츰 세월이 방기허면은, 바야흐로 세월이 이르면은 차츰 자라 커서 말도 허고 가기도 허고 오기도 허고. 한 20살, 한 30살 먹으면 인자 그때 가서는 성인(成人)이 되는 법이니, 마음대로 허지 않나? 사람 일을.
그와 같애서 견성(見性)도 역부여시(亦復如是)니라. 견성해 가지고는 그렇게 보림을 잘해서—참! 견성헌 후에 보림(保任)이 어렵다. 견성은 일언지하(一言之下)에도 헐 수 있고, 눈 한번 깜짝 사이에도 터꺽 볼 수 있다마는, 보림이라 하는 것은 자식 막 낳아, 푹 나 놓지마는 키울 때가 얼마냐? 10년 20년을 모도 기른 거와 같고, 얼음도 그놈이 물이 어디 대번 녹나? 차츰차츰 볕이 또 쬐이고, 또 쬐와 녹듯기 이래야 되는 법이니라. 그런 차서(次序)를 알아야 하는 법이다. 공부인이.

그런 차서를 알지 못하고는 푹! 그만 언하(言下)에 대오(大悟)란께 얼른 툭 깨 가지고는 부처님과 똑같애 가지고 그만 마음대로 구름도 타고 제멋대로... 고따구 놈의 사견심(邪見心), 고따구 놈의 못된, 그거 써? 그게 아무것도 아니여. 저 미쳐 버리고 마는 거여. 도문(道門)에 들어와 다 미쳐 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 말이여.

화두를 배왔으면은 사유(思惟)를 두려워혀. 사유, 못된 망상이나 막고, 망상 안 나는 방법은 얼른 관(觀)을 돌이켜. ‘어째서 무(無)라고, 조주 스님은 판치생모(板齒生毛)라고 했는고?’ 요놈만 딱! 해버려. 그러면 딱! 고놈만 나와번지면은 그 무슨 사유가 어디 붙어 있고, 어디 나올 곳이 있나?
심무이념(心無二念)인디, 마음이 두 마음이 없는디 어디 가서 나와? 그 온당한 마음으로 철저헌 마음으로써 화두만 돌이키면은, 공안만 떠억 ‘어째 판치생모라고 했는고?’ 없제.
요 하나를 온당하게 이루지 못하고. 그러니 망상이 퍼 일어나면은 이 우게서만, 입에서만 밤낮 돌면 구피변(口皮邊)으로만 하면은 망상 따문에 못헌다. 도를 못 닦아.

가만히~ 사유(思惟) 없는 마음으로써, 숨을 가만히~~~ 내쉴 적에 저 단전(丹田) 밑에 화두를 두고는 화두부텀, 사유 없는 화두(話頭)부텀, 알 수 없는 의단(疑團)부텀, 딱 단전 밑에다가서 화두를 떠억 거각(擧却)하고는. 가만히 화두 관허는 철두헌 마음이 철저헌 마음이, 알 수 없는 마음이, 단전 배꼽 밑에 손그락 한 마디 두 마디 밑에, 두 마디 거가서 마음이 따악~ 알 수 없는 놈이 있어 가지고는 가만히~ 홍모(鴻毛)가, 기러기 털이 코에다 대도 흔들거리지 않게 쉬라고 했어.

가만히~ 내쉴 것 같으면 배꼽이 저 등에가 붙는다. 등에가 붙으면은, 얼른 또 숨을 내쉬어야지 안 쉬면 안된께 조금 멈춰 가지고는, 화두 알 수 없는 거다가 딱 멈춰 가지고 가만히 내쉬면은, 가만히 내쉬는데 홍모(鴻毛)도 흔들거리지 않게 가만히 내쉬는데 가서, 화두는 온당하니 관(觀)해져 있다.
물달, 물에 달 떨어져 있듯기, 물빛 가운데 달 있듯기 온당하니 있다. 온당하게 있는 그 화두는 조금도 어디 가고 오고, 무슨 뭐 자리를 옮기고, 없다.
자리가 잡혀서 그 자리 꽉! 있으면서 들이쉰 숨은 스르르르 또 제대로 들어가 가지고, 그 화두 있는 디까장 가서 화두에 가서 그 숨이 그대로. 뭐 그 마음을 내서 있는 것이 아니여. 저절로 숨이 들어가서 또 거가서 잠깐 멈추어 있다가, 또 가만히 사르르르 내쉬고.
요렇게 그 아주 묘하게, 너무 힘을 되게 쓴다든지, 자꾸 자주 헌다든지, 억지로 헌다든지 큰일난다 그 말이여. 제대로 가만~히 그저 해 보면은 묘재기중(妙在其中)이여. 묘헌 것이 그 가운데 있어.

그렇게 야단치게—그 급허지도 않고 되지도 않고, 되면 또 그 좀 늦추고 이래 가지고 기운을 이렇게 내려버릴 것 같으면은 상기(上氣)가 올라오는 법이 없어.
억지로 그만 자꾸 숨만 들이쉬고 안 내쉬면 여가 배에 가서 기운이 몽쳐 가지고 안 나오면 큰일나고. 또 그 잘못하면은 역효과가 일어나서 화두가 되도 않고, 그 못되아.
이게 달마 스님 태식인디, 달마 스님 태식(胎息) 이렇게 해서 9개월만 헐 것 같으면은—그 걸음도, 그게 공부허는 사람은, 그놈을 전력(全力)헌 사람은 걸음을 걷는 것 봐도 알아. 우디디디디 그런 법도 없고. 9개월만 할 것 같으면은 일체 신유경모(身猶輕毛)다. 몸이 경모(輕毛)같다.

나도 이렇게 말만 설허지 그렇게 해보들 못허니까, 나도 허지 못허고 넘을 가르키는 것 같지마는, 나는 달마태식경을 보았다 그 말이여. 봤어도 낮에로는 그저 이것저것 모도 이것도 시키고 저것도 시키고 뭣도 허고, 밤으로는 전공을 헌다 그 말이여.
허지마는 아직 득력(得力)은 그 태식 득력은 못했으니까 말할 것도 없지마는 그렇게 허라고 한 거 있어. 그래, 그렇게 해보면은 망상(妄想)은 대번 안 일어나니까. 한 4~5시간 댓시간씩 앉었어도 망상 하나... 마음대로 허니까. 그 화두가 거가 따악 있어서 자리가 잽히면은 망상이 없어. 나오도 안 해. 그 그렇게 그 늘 허던 못허드래도 가끔 익혀서 그렇게 해보란 말이여. 내가 늘 헌 말이여.


참선학자가 그 사유(思惟)를 해 가지고 글 짓고, 무슨 게(偈) 짓고, 문부(文賦) 등 짓고 허면 시승(詩僧)이요, 거 무슨 뭐 문자승(文字僧)이요, 무슨 그 그런 것이지, 무슨 참선으로는 몰교섭(沒交涉)이여. 거그 빠져 가지고 글이나 짓고 그렇지. 뭐 중이면 다 중인가?
뻘로 돌아댕기면서 밤낮 그만 그저 그 절이나 맡을라 하고, 어디 가서 넘 절이나 뺏을라 하고, 무슨 행동이나 그렇게, 그거 뭐여? 그것이. 그 사람이여, 그 중이여? 뭣이?

거 도 닦는 도학자라는 것은—요새 선객이라고 돌아댕기면서 절이나 뺏을라고 금방 중이 되어 가지고 와서는 뭐 비구승이라 해 가지고는 돌아댕김서, 금방 또 뺏어 맡아 가지고는 주먹이나 쓴 놈이 맡아 가지고는, 해 봤나?
절이라는 것은 맡으면 어떻다고. 그 도량 청소도 헐 줄 알아야 할 것이고, 신도 오면은 그 신도 제접(提接)허는 법도 그 참 점잖하게 개볍지 않게 잘 헐 줄 알아야 하고, 주인노릇 얼마나 하기가 어렵다고.

이놈 툭탁거리고 돌아댕기고 꺼덕허면 그만 주먹이나 쓰고 헌 놈이 헐 줄 알아야지? 자꾸 뺏을라고만 하니, 그 어릴 때부텀 잘 배워서 도량 깨끗이 해서 해 나가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 허물을 잡아 쫓아낼라 하니 되나?
모도 쫓아내 가지고는 맡아 가지고는 그만 팔아먹네. 돈이나 얼마 받고 팔아먹어, 못허니까. 이러고 돌아댕기니까 지금 세상에서 비구승 비평이 굉장해. 말로 헐 수 없고.

선객으로도 또 들어와서 선방에 참선헌다 하면서 괴상스러운 그런 모도 사유를 해 가지고 사유심(思惟心) 가운데에서 일어나는 마음을 불기심(不起心)을 억제허지 못허고는, 그만 이기지 못허고, 그저 장난이나 내고 왔다갔다하고, 조금 있다가 그만 픽 달아나고, 무슨 제멋대로 하고, 그것 뭣헐 거냐 그 말이여. 그런 것 하나를... 이번에 숙청 다 된다 그 말이여. 그 감찰원에서도 시방 그러지마는 서울서 그걸 연구를 무척허고 요새 모도 중된 거, 절이나 뺏고 돌아댕길라고 헌 거, 싹 다 숙청을 해.
그러고 선방에도 돌아댕김서 그 모도 그 그런 못된 행동이나 하고, 옛날부텀 거 무슨 칼수좌니 아라사 병정이니 그런 것들이 들어와서 선방에 그만 장난을 내 가지고 참선을 못허게 허고 모도, 대중이 모도 갈리게 맨들고, 그런 것들 지금 있을 수 없어.
고런 것들은 발끈 묶어서 한 댓새 단식을 시켜 굶겨 놨다가 쫓아버려. 내쫓가버린다 그 말이여. 다시 가 행동머리 못허게, 옷 탁! 벳겨서 쫓아내 인자. 그런 것을 옷을 입혀 보내면 딴 데 가 또 그러게? 인자 이러헌 법칙이 나와 있어. 지금 다 있어.
참선승이라는 것은 그런 법이 없다.

범우착역순경연동인염처(凡遇着逆順境緣動人念處)에 변당각파(便當覺破)해. 무릇 일체 역순경계(逆順境界) 동(動)헌 염처(念處) 일체처에, 그런 처(處)를 만나서 변당각파(便當覺破)해라.
문득 탁! 화두를 처꺽 들어 버려라. 천만경계가 어디 화두 하나, 공안 하나 처꺽 들어 단도리허면은 거각(擧却)하면은 그만 천하 없는 경계가 어디 가 붙어 있을 거냐?
마음에서 일어나는 건데, 마음이 그만 공안인디, 알 수 없는 공안만 찾아가는구나. 알 수 없는 공안이 낸디, 내가 나를 찾는 곳에 가서 뭐 그런 것이 있겠느냐?

좀 도학자(道學者)다워라. 학자답게 좀 해 보아라.
뻘로 학자니, 뻘로 돌아댕기면서, 일생을 미륵하생까장 고러헌 학자답지 못헌 행을 해 보아라, 뭣 되는가? 뭐가 되느냐? 업(業)만 퍼짓고, 미륵하생까장 고따구 학자 되나? 밤낮 들어가 죄만 받지?
그만 각(覺)으로 파(破)해 버려라. 얼른 깨달라. 제기화두(提起話頭)해라. 화두만 들어라. 항상 화두만, 알 수 없는 놈만. 화두 하나뿐 아닌가?


못된 것 받아 놓으면은 못된 것 하나 따문에 대중이 흔들거려서 안되니까 그걸 안 받는 것이여. 받아 그런 것을? 대중이 꽉 묶아버리란 말이여. 나 혼자 받고 안 받아? 나는 내가 뭐 인제, 대중이 절대 꽉 그래 가지고 틈새기도 없이 받지 말란 말이여. 그러고 그런 건 당최 받아들이지 말어! 어림도 없다. 여기 그런 거 시방 받나?

그 불량한 놈들 나한테 와, “네 이놈들 불량한 행동해 봐. 네 이놈 뭣이 옷 아니고 뭣이 뭣이, 뭐 써봐 이놈아!” 대갈빡을 착 치면은 이놈이 나한테 대들던 못하네. 내가 어디 그놈들 뭔 이길 능력이 있나? 뭣 유도가 4단이니, 무슨 뭐 당수가 몇 단이니 헌 놈들, 나 그놈들 보면 역부러 “이놈의 자식! 주먹으로 모가지를 쳐버려. 느그가 뭐 써 그걸? 왜 써?” 내 그놈들 다 다룬다 내가. 내 다 다루아. 내가 한 놈도 그놈들 나한테...
한 놈 뭐 모가지 떨어.. 인가해 달라고 모가지 떼서 “이놈의 자야...” 그놈이 여기 와 하면 뭐 어디 어떻게 헐 수가 있나?

“그 이리 이래도 안 해 줄라느냐?”고.
“아! 이 자식아, 모가지 떼 가면 그만이지, 이놈아 인가가 뭐 너한테 인가가 뭐여? 이놈아! 목 떼 가!” 내 그래버렸지 뭐.


꼭 그 각(覺)으로 파(破)해라. 화두 각(覺), 알 수 없는 각(覺)으로 파(破)해라. 그 각(覺)만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고 했는고?’만 해 봐라. 지극히 해 봐라. 안 되는가? 안 될 리가 없으니께 해 봐.
께을코 그만, 잠이 오면 그만 께을고 뇌곤허고 잠잘라고 허는 마음이 게으른 놈이 들어와서 그만 잔다. 역부러 자 주는 거이 잔다.
(잠이) 들어오거들랑 일어나던지. 깨우는 방법을, 일어나. 일어나서 정중(靜中)에도 나갔다 오고. 잘 만큼 잤는디 뭐. 자 주었는디 뭐.

불수경연전(不隨境緣轉)해라. 그 경연전(境緣轉)에, 그 일어나는 마음 요러니 전(轉)허지 말아라. 고놈 수용해 주지 말아라. 잠 온다고 잠에 수용해 주고, 게으른 마음 들어온게 고놈 수용해 주니라고 자올고, 망상 내고, 사유허고, 이러고 있다 그 말이여. 그런 짓 없이 한번 좀 다루어 봐라. 좀 학자다와 봐라 말이여. 못혀? 뭐 학자(學者) 법문이여. 이것 뭐 신도들한테 허는 법문이여?

그래사 꼭 올리라. 이래서 고인(古人)도 다 부처님도 견성성불 했지, 이렇지 않고는 못한다.

뻘로 밥 먹고, 옷 입고, 놀 때가 있고, 무슨 얘기헐 때가 있고, 수군축대(隨群逐隊)할 때가 있고, 한가히 뭐 이러고저러고, 고러고 나서 인제 앉으면 허다가 잠 온다고 자 주고, 망상 난다고 사유해 주고, 되아? 그게 그게 학자여? 그 도학자(道學者)여? 참 밥 먹이기 아깝고, 참 그런 것 기룰까 무섭다. 모도 그 모양이지. 참 그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혹(或)이 운(云)허되 불타긴(不打緊)이락 하니, 긴(緊)을 치지 안 해야 한닥 하니, 긴(緊)을 치지 않는닥 하니, 자삼개자(這三個字)가 최시오인(最是悞人)이다.
불타긴, 불타긴(不打緊)이라는 석 자(字), 긴(緊)을 치지 않아. 아주 긴절히 허지 안 해야 한다. 너무 긴(緊)허면 못쓰니까 긴절(緊切)히 허지 안 헌닥 하니, 그러면 긴(緊)을 안 허면은 긴절히 안 허면 어떻게 헐 것이여?

아주 긴허게 간절허게—긴(緊)이라는 놈은 급(急)헌 거 아니고 꼭 허는 마음. 그 긴(緊)헌 마음, 참 요긴한 오묘한 마음, 꼭 화두를 거각(擧却)하는 마음, 화두를 잘 관수(管守)허는 마음, 그것이 있어야지, 어디 없어 되야?
그거 그것이 소용없다고 이러는 사람이 있다 그 말이여. '급허면 안 된다'고. 허니 이 그 오인(悞人)이다. 이 석 자가 그르친 것이다. 사람을 그르치게 맨든 것이여.

학자(學者)가 불가불심(不可不審)이냐? 어찌 긴(緊)허지 안 헐까 보냐? 간절(懇切)히 긴허게 참 다루어라. 그러니 '긴절히 안 헌다'는 그런 말은 사람 버리는 말이니 믿지 말아라.(처음~36분54초) (끝)

Posted by 닥공닥정

 

•§• 박산무이선사선경어(博山無異禪師禪警語) (11/18) 박산무이선사의 선경어.

**전강선사(No.383)—박산무이선사 선경어(11) (갑인.74.01.25) (전383)

 

약 32분.


송명경숙조(松鳴驚宿鳥)요  운파노청산(雲破露靑山)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일납청한객(一衲淸閑客)이  장년독엄문(長年獨掩門)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송명경숙조(松鳴驚宿鳥)다. 솔이 울어서—솔바람이 부니, 솔이 휘이~ 솔바람이 부니 자는 새가 놀랜다. 저 솔바람 부는 산중이란 말이지. 적적(寂寂)헌, 인간 떨어진 저 산중에 가서 솔바람 부는디 자는 새는 놀래고. 운파노청산(雲破露靑山)이다. 구름은 흩어지니 청산이 들나는구나.

청산 속의 일납청한객(一衲淸閑客)이, 한 납자(衲子), 도 닦는 도학자(道學者), 청한객(淸閑客)이—청한(淸閑)이지. ‘맑을 청(淸)’ 자, ‘한가할 한(閑)’ 자.
깨끗헌 참선허는 우리 학자가 장년독엄문(長年獨掩門)이다. 길게 긴 해에 홀로 문을 닫고 앉었구나.

좀 궁둥이에 땀이 푹 젖게, 궁둥이가 좀 땅에 좀 붙게, 그 좀 자리가 잽히게 이렇게 앉어서 도를 닦아야 하는 것이지, 도문(道門)에서 들어갔다 나왔다 들어갔다 나왔다, 거 안되아. 누구를 막론하고 여기는 있다 갔다, 왔다갔다, 간단 말도 안 하고 갔다왔다 안 되아.
될 수 있으면은 항상 도좌(道座)에 앉어서 도를 닦아야 하는 것이고, 어쩔 수 없이 몸이 아파서 가게 될 때에는 간단 말허고 무슨 일에 갔다온단 말하고 갔다와야 하는 법이지, 그저 왔다갔다 왔다갔다 거 안 되아. 누구든지!
그렇게 간단 말, 온단 말도 없이 그냥 내 집보담도 더 출입을 그렇게 그만 무상하게 아무때나 그래서는 도문(道門)이라는 건 안 되는 것이여.

산철이라고 해서 그만 오늘 왔다갔다 왔다갔다 그 안 돼. 차후부텀은 절대 없어. 차후부텀이 아니라 그전부텀도 그래 나오지마는. 그 내 집, 내 집에도 말이여, 너무 그렇게 출입이 잦으면은 뭐 필요가 있나? 아무 필요 없는 것인데.
도문(道門)에는, 도 닦는 법이라는 것은 그렇게 출입이 너무 그 갔다왔다 분요(紛擾) 분다(紛多)하면 된 법도 없고, 옆에 사람들도 모도 공연히 모도 마음이 따라서 나왔다 들어갔다 하면 모도 뽄보고 모도 습관 되고 안 되는 것이거든.
장년(長年)을 독엄문(獨掩門)이다. 길게 문을 닫고 앉어 도 닦는 것인디, 도문(道門)에 도찰(道刹)에 들어와서 그 안 된다 그 말씀이여.

절대로 우리 학자들도 그저 너무 그렇게, 너무라니! 너무 보담도 아주 없어야지. 꼭 갈 일에는 간단 말 승낙 얻고 나가고, 그래야지. 또 그 시일 내에 시간 내에 돌아오고, 그래야지.
마구잽이 돌아댕김서 도학자(道學者)가 고만 세상에 나가서 무어 뭐 헐 일이 뭐여? 뭘 헐 일이 있냐 그 말이여. 그 또 세상에 헐 일이 많이 있는 사람이 뭣허러 들어오냐 그 말이여? 여그 들어와서 공연히 분다(紛多)를 피우고 왔다갔다하냔 말이여.

한 대중이, 옛날에 큰스님 대중이 있는디, 큰스님께서 조실(祖室) 스님께서 규칙을 짜놓고 학자를 똑 도(道)를 가르키는디, 학자 하나가 늘 나가. 그 쓸데없이 그만 가만히 휙 나가고, 휙 나가고. 자기집도 그렇지 못할 것이어늘 하물며 그 도 닦는 선원에서, 이렇게 모도 시주(施主)가 집 지어 주어서, 시주가 집 지어 논 도문(道門)에서 그저 제 마음대로 마음껏 왔다갔다 왔다갔다. 아! 이거.

그래 싸니 대중이 그만 공사(公事)를 허고는 “아! 그 아무 학자가 그렇게 출입이 자재하니 너무 많이 나갔다 들어갔다 해 싸니, 산문출송(山門黜送)을 시켜야 허겄습니다. 쫓아내 버려야겄습니다. 그 사람을 집에 두면은 여러 사람이 다 모도 뽄보기도 허고, 또 세상에 나가서 어디 나가서 무슨 짓을 헌지 알 수도 없고, 아무 디 도학자가 나와서 그 함부로 행동헌다는 그런 말 나기도 쉽고, 불가불 산문출송을 시켜야겄습니다” 허니까. “그래야지. 쫓아내야지” 그러고는 안 쫓아내아.

또 그다음에 대중이 또 공사를 해 가지고는 “아무개를 쫓아내야겄습니다. 그 사람 두어서는 안 되겄습니다”
“쫓아내야지” 그러고는 또 안 쫓아내. 큰스님 명령이 있어야 쫓아낼 턴디. 조실 스님 명령에 대중이 어디 안 쫓아내는 법이 있나? 조실 스님 명령 하에 선방(禪房)이 다 되어 나가는 것인디, 안 되지.

세 번 만에는 “그래 쫓아내야겄네” 그래 놓고서는 조실 스님이 연구를 했다.
그 어떻게 해야만... 아! 그 사람을 쫓아내면—밤낮 선방에 있다가 자기 볼 일, 제 볼 일, 뭔 일, 사사(私事) 볼 일, 어디가 못된 일, 별일 다 나가서 헐 것이고. 안 쫓아내자니 대중이 당최 다 싫어허고. 아! 이것, 그 할 수가 없다.
이거 선원(禪院)이라는 건 달러. 다른 절과 달러서 그렇게 마음대로 자기 혼자 무슨 일 있으면 출입이 어디 있나? 그 없어. 출입이 없는 법이여. 따악 대중이 묶아서 한 다발 묶어 가지고는 그래 규칙 지키고, 아! 똑 죽비(竹篦) 치고 돌아앉고 또 방선(放禪)하고, 밥 같이 먹고, 이래야.

지나(支那)에 총림(叢林)에도 어림도 없어. 개인주의가 없어. 그런데 들어와서, 남의 절에 들어와서 괜히 개인주의로 왔다갔다 왔다갔다, 금방 있다 금방 없다, 거 절대 안 되는 거여. 뭐 우리 선객(禪客)이고, 뭐 신도고, 신남(信男)이고 안 되야. 그런 사람 여 받을 필요도 없고, 이다음에 받으면은 받는 사람이 벌을 당한다 그 말이여.

그래고 지금 어디 그렇게 난잡허게 어디 그럴 수가 없는... 세상이 어떻게 밝아지던지, 도복(道服)을 입고 그만 마구잡이 거리에 댕기면서 그 고갯짓을 허고, 그것까장 다 숭보고 있어. 숭 안 본 줄 알어? 도복을 입고 댕기면서, 그 중 옷을 입고 댕기면서 함부로 모도 고갯짓허고 손 내젓고.
"팍! 썩어버렸다"고, 저 인천 감옥소에 그 소년 감옥에 포교허는 대지라는, 대지(大志), ‘큰 대(大)’ 자, ‘뜻 지(志)’ 자, 대지라는 청년이 거기에 포교사로 있는데, 그 포교사가 저 창제의원 병원에 와서 말을 허는디 들을 수가 없다 그 말이여.

누구한테 그 말허냐 하면은 청와대에 있는 비서, 청와대에 있는 저번에 내가 말을 했는데, 무슨 비서? 민원비서? 뭐 뭐 비서가 그 사람이, 그 사람 아버지가 무여 선생의 친구인디, 그래 '친구 아들'이라고 허면서 나한테 소개를 헌다 그 말이여. 그래서 인사를 다 허고 났는데, 거그 앉어서 그 얘기를 허는데, 그 중의 비평을 그렇게 헌다 그 말이여.
'그 중의 옷을 거 입고는 그저 나댕김서, 그 거리 노상에 댕기면서 허는 행동이 거 기가 맥혀, 폭! 썩었다'고, '불교는 폭 썩었다'고 이렇게 그만 악평(惡評) 평판을 허는디 참 듣기 어렵드구만.

내가 그래서 그 말 대답에 뭐라고 헌고 하니, “자 세계적으로 세계 만방에 불교가 지금 태국이든지, 저 몽고든지, 저 버마로든지 저 모도 사방 전체에 그 불교가 얼마나 퍼졌든지 말할 것 없고. 또 신라 때 불교가 어떻게 왕성했든지 말할 것 없고, 일본도 불교가 지금 얼마나 흥왕했는지 다른 교는 번식을 못허고 맨 불교뿐이고, 세계가 불교가 그렇게 굉장하게 발전된 이때인디, 해필 한국불교 한국 중만 가지고 논평할 것이 없다. 그 개인적으로 볼 일이지, 한 개인이 그런 것이지, 그 전체적으로써 그렇게 갖다가 막 때려 '폭 썩었다'고 그래서야 될 것인가?
우리 부처님의 그 문화가 지금 한국에 얼마나 쌓여 있으며, 팔만대장경이 한국에 있으며, 한국불교가 그래도 활구참선법이 있어서 세계에 자랑할 만한 법이 있고 헌디, 그런 좋은 것은 들내지 않고, 한 개인 중이, 하나둘이 인자 엊그저께 들어와서 세상에서 무슨 대학이나 졸업허고 세상에 있다가 들어와서 금방 중이 되어 가지고는 중 옷 좀 입고 고갯짓허고 돌아댕긴다고, 아! 그 사람 하나를 가지고 그런 전체를 집어넣어서 걸어넣어서 몰아서 막 악평을 허면 거 쓸 것이냐?”고, 내가 그랬다 말이여.

"그런게 전체, 세계 전체를 보고 우리 불교 가운데에 주욱 그 한국 또한 그 신라시대라든지 그거 다 그런 것을 봐 가지고 불교 전체를 진비판을 헌다는 것은 몰라 그러허되, 그러지 말라"고 한마디했더니 그 쑥 들어가 버렸지. 내가 이기기는 이겼지. 그 민원비서한테 내가 얼굴을 들게 되었지. 얼굴 까딱하면 못 들게 되었는데.
참 이랬지마는, 너무 그렇게 그 왔다갔다 왔다갔다, 그 이런 선원(禪院)에 있으면서 그 출입 자재, 그거.

꼭! 볼 일은 헐 수가 없는 것이다 그 말이여. 가령 무슨 지금 모도... 무엇인가 군인에 예비군에 모도 해당된 사람들 이런 사람들은 그걸 해놔야 되니까 그런 거 허는 거. 승적(僧籍)도 다시 인자 모도 허니까 승적 같은 거 허는 거 이런 일, 와서 딱 말허고 가고 그래야지. 그런 것도 말이 없이 그만 그저 왔다갔다 왔다갔다 절대 그래서는 못쓴다 그 말이여.
똑 그렇게 알리고 가고, 알리고 들어오고. 고주지인(告住持人)과 급관중자(及管衆者)한테 그 영지거처(令知去處)라. 거처(去處)를 다 알리는 법이라, 본래 법이. 그런 법을 모도 ‘뭐 그까짓 것 뭐 내 멋대로 하지’ 그래서는 안 된다 그 말이여.

그 대중 가운데에도 '그 사람을 쫓아내자'고 하니까, 세 번 만에는 그 조실 스님께서 “저 놈을 저 사람을 내가 쫓아내면은 저렇게 행동이 온당치 못헌 사람을 쫓아내놓으면은 간 곳마다 그 짓을 헐 터이니, 내게 있다가 간 사람이 다른 데 가서 모도 그 그러헌 행(行)답지 못한 짓을 해놓으면은 내 가풍(家風)만 상하고, 내 문풍(門風)만 상할 것이고,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하고 생각허다가는.
거 늘 월장(越牆)을 해서 밤에 넘어와. 어디 갔다가 똑 밤에 들어와. 가만히 미안하니께 밤에 들어오고 모를 때 들어온다 그 말이여. 그 그래 쓰는가 말이여.

밤에 들어오는 틈을 타서 고 담 넘어오는, 그리 넘어오는 디를 따악 알고 계시다가 그 밑에 가서 가만히 쪼그리시고 앉었었다, 그 조실 스님이.
이놈이 거 어디 가서 인자 술도 먹고 그럭저럭 모도 지내고 허다가는 휘딱 넘어오다가 아! 그 큰스님, 조실 스님 모가지를 콱! 밟아버렸단 말이여. 아! 그냥 조실 스님이 팍 엎어지면서 “꽉!” 험서 고개를 그만 땅에다 부비고는 돌아가신 시늉을 했다 그 말이여. 돌아가시지는 안 했겠지마는 그런 그 돌아가신 흉내를 이렇게 냈다 그 말이여.

아! 이놈이 그렇게 온당하지 못헌 행동을 허고 댕기다가도 그렇게 밤에 넘어오다가 그 조실 스님을 한번 차버리는 바람에, 아! 그만 그 간담이 떨어지고 '내가 조실 스님을 갖다 이렇게 차버렸구나. 조실 스님을 차서 돌아가실 지경에 이르게 맨들었구나'
깜짝 놀래 가지고는 간이 그만 벌떡 뒤집어져 가지고는, 그래도 제 양심은 있든가 조실 스님을 꽉! 보듬고는 끌어안고 들어와서 조실방에다 갖다 뉘여 놓고 물을 끓여서 잡숫게 허고, 모도 사방을 주무르게 허고 이래 가지고는 눕혀 놓고 기다리고, 가만히 앞에서 울고 앉었다 그 말이여. 과연 잘못해... 양심에 인자 이놈이 놀랬던 것이여. 평생에 그걸 모르고 지내다가.

그래 나중에 조실 스님이 깨어나 가지고는 “내가 네 발에 꼭 밟혀서 죽을라고 내가 거기 앉었었는디 왜 나를 이렇게 살렸노? 나를 살게 맨들었노?” 하! 이래 놓으니까, 아! 이놈이 그만, 그 그만 “잘못했습니다. 차후는 다시 이런 짓이 있으면은 모가지를 바치겄습니다” 참 진참회(眞懺悔)를 했어. 진참회를 허고서는 그다음부텀은 출입이 없고, 꼭 그 참 어떻게 잘했던지 아주 훌륭한 학자가 되었다, 이런 말씀이 있어.

도학자(道學者)라는 것은 도(道) 닦는 학자(學者)인디, 도학자가 그렇게 왔다갔다 왔다갔다 밤낮 그래서는 미륵하생(彌勒下生)까장 가도 도업(道業)을 이룰켕이는 마구니 업(業)도 못 이루는 것이여. 그걸 알어야 혀.
참선허는 학자가 한철 지내면 밤낮 돌아댕긴다고 돌아댕기기만 하지. 밤낮 돌지. 그것이 그 오입 그것 길들여 놓으면 참 고약한 것이여. 그거 안 된 것이여.

본래 해제(解制) 후에 댕기라는 것은 도(道)를 얻어 가지고, 도를 증득(證得)해 가지고는 인자 두타행(頭陀行)을 허는 것이여. 동사섭(同事攝)으로 댕기면서 포교도 허고, 사방 댕기면서 인연 찾아 댕기면서 인연도 맺고.
그때 가서는 헐 일이 있나? 도를 깨달라 증(證)했으니, 아! 도인이 인자는 가만히 있으면 뭣혀, 중생 모도 제도(濟度)를 해야지. 사방 댕기면서 모도 인자 참 제도허는 것이란 말이여. 그래 댕기는 것이지.

오전(悟前)에도, 깨닫기 전에도 여상부모(如喪父母)처럼 부모 죽은 것 같이, 내가 나를 깨닫지 못했으니 꼭 깨달라야 하겄으니 그저 어디 돌아댕길 겨를이 있나?
정중(靜中)에 득력(得力)이 최다(最多)한디, 정력(靜力) 가운데에서 도를 성취허는 법이지, 요중선(鬧中禪)이라는 것은 정력(靜力)에서 득력(得力)해야 되는 것이여. 시끄러운 가운데, 분다(紛多)한 가운데에서는 못혀. 처음에는 헐 수 없어.

부처님 같이 상근대지(上根大智)가 없는데, 부처님이 하강(下降)허셔 가지고 설산(雪山)에 6년 좌부동(坐不動)헌 것은 후래(後來) 중생을 모범.. 중생을 위해서 그렇게 허라고 설산에 들어가서 왕궁 부귀를 버려 버리시고, 처자 권속(妻子眷屬)을 이별해 버리시고 설산에 들어가셔서 그렇게 계신 것이 후래 중생을 보라고, 뽄보라고 그렇게 헌 거 아닌가?
달마(達摩) 선사도 소림굴(少林窟)에 들어가서 소림에서 9세(九歲)를 면벽(面壁)헌 것이 그 후래 중생을 위해서 헌 것 아닌가? 왜 그런 고인(古人)의, 부처님과 조사(祖師)의 해 논 그 모범을 안 받을 수..., 뽄 안 받을 수가 있나?

좀 좀 답게 주(住)해 가지고는 도학자(道學者)가 되야 혀. 참말로 좀 닦아 봐야 혀. 이 말세(末世)인디, 참 말세 극악한 말세인디. 이 말세에, 말세라도 인자 이 말세(末世)에 이거 헛되이 보내 버릴 것 같으면은 이 뒤에 점점 더 말세(末世)가 와서 도(道)를 닦들 못혀. 심의식(心意識)이 고식지(姑息至)해서, 마음이 말세일수록에 점점점점 더 그 모도 번뇌 망상이 더 더 끓고 더 많고 허들 못혀. 참선을 못허는 법이라.
지금 이때가 그래도 참 참선헐 때거든. 지금 '한양 말세에 도인(道人)이 콩 튀듯 한다'는 말도 있고 허니까 좀 잘 주(住)해서 도를 닦고, 보살님네도 여기에 인자 그 왔다갔다 그저 그만 그저 질서 없이 그런 이는 방부(房付) 영 인자 이런 안 받아. 받들 않고. 비구니도 안 받고.
도문(道門)인디, 도 닦는 선방(禪房)에 아무나 그런 사람 받아 놓고서는 밤낮 자기네 일이나 보러 왔다갔다 왔다갔다 인자 그럴 수가 없으니까. 그러고 부디 규칙이 그런 줄을 다 알고. 내가 그래서 오늘 아침에 여까장 말허는 것이여.

‘간절 절(切)’ 자가 많이 나와. 참선허는 디는 ‘간절 절(切)’ 자가 참 제일이다 그 말이여.
절지일자(切之一字)가 시최친절구(是最親切句)다. 가장 제일 중요헌 글귀다. 간절헌 자, 간절헌 것이 없으면 잠도 오고, 망상도 나고, 별 마음이 다 일어나고.
용심(用心)이 친절즉(親切則), 공부허는 마음이 간절헌 즉 무간극(無間隙)이다. 간극(間隙)이 없어. 틈이 없어. 뭔 틈이 있나? 무슨 틈이 있어야사 망상이 일어나고 그런데, 간절한 마음, 내가 나를 깨닫지 못했으니 오늘 일이 어떻게 될는지, 내일 일이 어떻게 될는지, 명년 일이 어떻게 될는지 모르고 앉어서, 중생으로 앉어서, 이래 깜깜허게 앉어서, 간절헌 마음이 없이 잠이나 자고, 망상이나 내고, 틈이 생겨서 별별 그 틈, 그 틈 틈난 사이에 별 유작상(有作想)을 짓고 무작상(無作想)을 짓고, 별별 모도 사기 협잡심을 모도 내고 별것이 다 나오지. 그놈의 간극(間隙) 속에서.

그 간극이 없어. ‘간절 절(切)’ 자라는 거는. 고(故)로 마불능입(魔不能入)이여. 마구니가 그놈이 공부허는 디는 모도 들어와서 못허게 허는 건디.
망상심도 마구니요, 잠도 그놈이 잠 마구니요, 거기에 무슨 마음 들어온 것도 선(善)이나 악(惡)이나 들어온 것도 마구니요, 모도 이런 마구니여 그것이. 다른 게 아니여. 세상 애착심과 애욕심 같은 것도 마구니여. 부모도 도(道)를 못 닦게 헐 것 같으면 마구니요, 부부지간도 도(道)를 못 닦게 허면 마구니요, 자식도 도를 못 닦게 허면 마구니여.
어쨌든지 내가 나를 깨달른 법이, 마구니란 놈이 들어오면 쓰겄는가? 틈이 없으면은, ‘간절 절(切)’ 자만 있어서 틈이 없으면은 그런 마구니가 어디 올 곳이 있나? 내 마음에서 들어온 건디.

심극마침(心隙魔侵)이지. 마음이 틈이 있으니깐 마구니란 놈이 들어오지. 심(心), 마음이 틈이 없는데 무슨 마구니가 들어올 것이냐? ‘간절 절(切)’ 자라는 것은 마구니를 막는 절(切) 자다.
일체 선악 그저, 일체 애욕경계 그저, 일체 부귀경계 그저, 일체 지위경계 그저, 모든 망상을 막아주는 ‘간절 절(切)’ 자다. 절(切) 자라는 게 중요허다. 최친절구(最親切句)다.

용심(用心)이 친절(親切)허면, 이렇게 공부허는 마음이 간절헐 것 같으면은 불생계도유무등(不生計度有無等)이다. 뭐 계교유무등(計較有無等), '뭐 견성했네, 무슨 뭐 이치를 알았네, 뭐 깨달랐네' 고까짓 것도 그 붙들 못헌다. 그까짓 것이 어디 있는 거냐?

어제 어떤 놈 뭐, 나한테 무슨 질문헌다고 어떤 놈 그러데. 그 어떤 놈이여? 뭘 질문을, 법상(法床)에 있는데 질문헌다고 턱 불러서 제 사사(私事) 말허듯 그려? 그 어떤 놈이 그런 놈이 있어?
그 도산이 그 닥트렸다면서 뭐여? 뭐 어떤 놈이냐? ( ... ) 뭣헌 놈이여? ( ... )
주장자 들고 있는디 어쩌? ( ... ) 참! 별.. ( ... ) 그만둬. 별놈이 다 있지. 그놈, 아! 공석 법상에 앉았는디 제 사사(私事)로 질문이 있다고, 그런 호래아들 놈.

용심(用心)이 친절(親切)이면, 용심(用心)이 공부허는 마음이 간절헐 것 같으면은 불생계도유무등(不生計度有無等)이다. 유무등(有無等)이니, 뭐 일체니, 무슨 뭐 별별.. 없어. 무슨 마음속으로 일체 이치도 없어. 견성했느니, 뭐 내가 알았느니, 뭐 그따구 놈의 소.. 어디서 고런 것이 나와? 어디 견성이 고런 것인가?

즉불락외도(則不落外道)니라. 외도에 떨어지지 않는 법이다. ‘간절 절(切)’ 자만 있을 것 같으면은 ‘간절 절(切)’ 자 속에서 알 수 없는 의단독로(疑團獨露), ‘이뭣고?’ ‘이- 헌 놈이 뭣고?’ ‘뭣고? 헌 이놈이 도대체 뭐냔 말이여? 뭐가 내냔 말이여?’ 뭐가 내길래 나를 이렇게 몰라?
이래 가지고도 '사람'이라 그러고, 이게 이래 가지고 눈 뜨고 뭐 보고 허니까 살았닥 햐? 뭘 살아, 살기는? 그 산 것이여? 송장이 그저 좀 보고 돌아댕기는 것이 아무것도 아니여.

어쨌든지 내가 나는 깨달라야 되아.

내가 나 깨닫는 거이 참선법인디, 내가 나 깨달은 법을 그렇게도 믿지 않고, 그렇게도 허지 않고, 이 송장덤뱅이 하나 멕여 살릴라고 돌아댕김서 야단을 피우고 왔다갔다 왔다갔다하고, 별짓 다 하고.

척 들어앉어서 도(道)만 닦아 보지. 누가 도 양식 안 주며, 누가 도 닦는디 옷이 없으며, 옷 주고 밥 주고 제석천왕(帝釋天王)이 부담을 했어. 천하에 제석천주(帝釋天主) 같은 임금이 없는디, 제석천주가 일체 우리 도(道) 닦는 학자(學者)의 의복을 담당 부담을 했다 그 말이여.
앉어서 도 닦으면 저절로 모도 갖다 주네. 헌디 무엇 때문에 공연히 그 모도 불려서 왔다갔다 왔다갔다 그러냔 말이여? 좀 지긋허니 앉어서 좀 닦아 봐야 혀.

이 또! 또 절(切) 자가 있어. 박산무이선사(博山無異禪師)의 법문인데, 내가 여태까장 이걸 안 했구만. 한량없어. 이거 나가면서 절(切) 자가 한량이 없어.
『초심(初心)』을 좀 새길라고 해도 아직 기운이 좀 없어서, 여 모도 학자들 『초심(初心)』을 가르켜야겄고. (처음~31분59초) (끝)

Posted by 닥공닥정

 

•§• 박산무이선사선경어(博山無異禪師禪警語) (10/18) 박산무이선사의 선경어.

**전강선사(No.381)—박산무이선사 선경어(10) (갑인.74.01.24.새벽) (전381)

 

약 17분.


백운천만리(白雲千萬里)에  방초고향춘(芳草故鄕春)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낙일등루망(落日登樓望)허니  동해만리파(東海萬里波)니라
나무~아미타불~

내가 나를 깨달라 놓고 보면,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해 놓고 볼 것 같으면은 어디 가서 맥힘이 있으며, 어디 가서 걸림이 있으며, 어디 가서 생사고(生死苦)가 있으며, 뭐가 있나?
그렇게도 일이 없거니와 그렇게도 상락아정(常樂我淨)이여. 항상 생사 없는 아정락(我淨樂)밖에 없어. 즐거운 낙(樂)밖에 없어.

깨닫지 못하면은 항상 중생(衆生) 그 번뇌 지경, 중생 그 망상 지경, 중생의 그 생사 지경, 기가 맥히다. 모도 맥혀. 모도 그만 형극(荊棘), 가시 형림(荊林)이여. 뚫고 나갈 곳이 없어.
전생도 깜깜혀. 후생도 깜깜혀. 금생에도 이놈 몸뚱이 하나 짊어지고는 모도 걸려. 애착(愛着) 애연(愛緣)에 걸려. 애착 애연이 하나도 내 것이 아닌디.

허! 모도 번뇌 망상에서 건립된 것이지 내 물건이 아니여. 그 내 소집(所執)이 조금도 아니여.
'남편이니, 자식이니, 손자니' 헌 것이 내 눈앞에 모두 있건마는, 그게 남편이나 자식이나 그런 것이 내 소집(所執)이, 내 애집(愛執)이 그렇게 애착할 집(執)이 못되아. 그만 갈려 버리면 그만인 것이여.
어디서 서로 만난 것도, 인연 모도 만난 것도 어떻게 소집(所執)된 것이여, 그것이? 공연히 이 몸뚱이 하나 받아 가지고 나와서 무슨 남편이니, 뭐 남편 속에서 남편 하나 만나 인연 만나 가지고 자식 하나 낳았어. 그것을 내 자식이니 내 손자니 허지마는 그까짓 그 몸뚱이 그녀러 것이 그 무슨 뭐 나무토막 하나 얻었다가 태워버리고 내버린 것 같지, 그것이 뭐 내 거냐 그 말이여? 실소집(實所執)이냐 그 말이여? 생각을 좀 해보지. 아무것도 아닌 것이여.

인생 일생이라고 해 봤던들 칠팔십 년 못된 놈의 것인데, 칠팔십 년은 그건 장수자(長壽者)에게 한(限)헌 말이고. 그저 금방 어머니 뱃속에서 나오자마자 목숨 내버리기도 허고, 조금 크다가 내버리기도 허고. 아! 이것 뭐 뭐 이놈의 몸뚱이라는 것이 어디 일순간인들, 눈 한번 꿈적거릴 사이인들 믿을 수가 있는가? 이렇게 무상(無常)하고 허망(虛妄)한 놈의 몸뚱이를 가지고는 내 것이락 햐?
내 몸뚱이도 이렇게 무상하고 허망헌 건대, 거다가 남편이니 무슨 자식이니 손자니 고따구 놈의 애집(愛執)을 가지고는 그저 일생을 못 견뎌서 죽다가, 왼통 그만 ‘어쩌까?’ 허고 근심 걱정허다가, 내 정말 목숨 뚝 끊어진 뒤에 내 목숨 내버린 내 주인공(主人公), 내 소소영령(昭昭靈靈)헌 나는 갈 바 올 바도 모른다. 그놈의 애집(愛執) 속에서 죄만 퍼지어 놓고서는 나 홀로 돌아선 놈의 황천(黃泉)길이다.

자식이니, 남편이니 자식이니 뭐 권속이니, 무슨 천만 지위 권리니 그것 와각공명(蝸角功名)이여. 달팽이 뿔때기같이 되어 번지고. 나 혼자 돌아선 놈의 길, 참 고독헌 놈의 길이다. 향하처거(向何處去)냐? 어디로 갈 것이냐? 가는 곳이 어디냐, 도대체?
흥! 혼자 고독허게 가는 길, 혼자 마음대로 고독허거나 따나 외로우나 따나 마음대로 어디 갔으면 허련마는 마음대로 못 가.

고독헌 놈의 길인디, 외로운 놈의 길인디, 거다가 또 창칼이 들어오고 내 몸뚱이 모도 얽을 쇠사슬이 들어오고, 염라국(閻羅國)에서 막 나와서 뭐 꼼짝달싹도 못허게 묶어 가지고 끌고 들어간 놈의 삼악도(三惡途). 이놈의 몸뚱이 내버린 뒤에 괴로운 것이 이런 무서운 것이 있어. 변시신후지고마(便是身後之苦麽). 몸뚱이 내버린 뒤에 고(苦)를 아느냐?
이런 것을 깨달라야 혀. 무상헌 걸 깨달고, 허망헌 걸 깨달고, 이렇게 포구(怖懼), 두려운 걸 깨달라 가지고는 내가 나를 찾는 법이여.

내가 나를 어서 깨달라야지. 응! 나를 가지고 나를 깨닫지 못하다니, 그게 될 말이여? 결코 내가 나를 깨닫는 것이여.
나를 깨달을 사람이, 내가 나를 찾는 사람이 얼마나 그 참 귀중한 사람이며 독보건곤(獨步乾坤), 홀로 건곤(乾坤)에 걸음허는 사람이여. 참 귀엽고 잊지 못헐 드문 사람이다. 이런 사람이 되었으매 행동인들 얼마나 정직허며, 세상에 꼭 헐 일만 허고, 안 헐 일은 안 허는 것이여. 이게 도학자(道學者)란 말이여.

백운천만리(白雲千萬里)에  방초고향춘(芳草故鄕春)이다.
백운(白雲) 터억 떠서 천만리에 자취 없이 갔다 왔다 허는 경계든지, 방초처처(芳草處處)헌 그 모도 봄 경계, 그 모도 그 기가 맥힌 '내'의 그 가풍, 묘용가풍(妙用家風) 깨달라 놓을 것 같으면은 자재가풍(自在家風)이여. 한량도 없는 걸림이 없는 가풍. 어디가 걸려? 생사죄에 걸려? 지옥이, 무슨 지옥이 내게 관계가 있어?

낙일등루망(落日登樓望)한디, 해는 떨어졌는디 저 높은 누각에 턱 올라앉았다. 바람은 스르르르르 부는 봄바람에 동해만리파(東海萬里波)로구나. 동쪽 바다를 보니 만 리 물결이다.
일체경계가 도대체 무슨 걸릴 것이 뭣이 있으며, 그것이 모도 열반경계(涅槃境界), 생사 없는 해탈경계(解脫境界)니라.

깨달라 놓으면 모든 경계가, 중생 전체 경계가 그대로 각경계(覺境界)여. 묘용가풍(妙用家風) 각경계여.
깨닫지 못하면은 모도 걸린 놈의 경계, 모도 나를 모도 꼼짝 못허게 맨든 놈의 경계. 게송(偈頌).


어제 아침 절지(切之), ‘간절 절(切)’ 자 법문을 했지마는 오늘 아침에 또 나온다 그 말이여.
절지일자(切之一字)가, 간절(懇切)헌 자, 공부에 간절헌 그 절지일자(切之一字), 내가 나를 깨닫지 못했으니 나를 깨달라야 하겠다는 간절헌 마음.
그 간절헌 마음이—저 남편에다가, 그 남편 보고 싶어 죽을 지경 된 간절한 그 글자에다 댈 것이며, 남자가 마누라 보고 싶어서 간절헌 거그다 댈 것인가? 어린 자식을 금방 낳아 놓았는디 보고 싶은 절(切) 자 거다 댈 것인가? 내가 나를 모르는 마음이.

나를 내가 꼭 알아야 할 거 아닌가? 내가 나를 몰라 가지고 이렇게도 도무지 전후좌우 사면이 흑(黑) 먹통 칠통(漆桶)인디. 깜깜혀. 이렇게 깜깜해 가지고 어떻게 사는고?
봉사가 보들 못허니 참 답답하지. 귀먹은 놈이 듣지 못허니 참 답답허지. 앉은뱅이가 걷지를 못하니 참 앉어 탄식 기맥히지.
우리 범부(凡夫) 중생이 나를 깨닫지 못했으니 깜깜 칠통(漆桶)인디 그걸 알지 못허고는 눈깔을 뜨고 뭐 본다고 돌아댕기고, 듣는다고 뭐 듣고 야단치고 댕기지마는, 우리가 뭐여? 먹통 칠통, 그 참 어두운 밤중이지. 어서, 어서 속히 내가 나를 깨달라야 할 것 아닌가?

허니 나 깨달을 마음이, 나를 찾을 마음이 얼마나 간절해야 할 것인가? 간절(懇切)허다. 참으로 간절허다. 뼛속에 사무친 '간절 절(切)' 자다. 간절헌 그 글자만 하나가 떡 간절헌 마음이 있으면은 일순간인들 광음(光陰)을 허송헐 까닭이 있으며, 어디 헛된 말헐 택이 있으며, 못된 일을 헐 필요가 있나 말이여?
흥! 또옥 그 화두(話頭) 하나를 가지고는, ‘판치생모(板齒生毛)’나 ‘이뭣고?’나 그 화두 하나를 가지고서는 주삼야삼(晝三夜三)에 밤이나 낮이나 그놈 하나 시애(厮睚), 겨루어야 한다 그 말이여. 그놈 딱! 가지고는 그저 일념도 딴마음 없이 그놈만 꼭 다루어 나가야 혀. 그것이 절지일자(切之一字)여. 간절(懇切), 한 글자여.



당하(當下)에 초선악무기삼성(超善惡無記三性)허리라. 마땅히 아래에 무기 삼성(三性), 선(善)이나 악(惡)이나 무기(無記), 삼성(三性)에 뛰어나 버릴 것이다.
무기(無記) 삼성(三性), 무기(無記)라는 것은 고 잠이 들어오는 무기(無記), 또 산란심(散亂心)—무기(無記)도 아니고 산란심(散亂心)도 아닌 중(中), 이놈의 무기도 잠도 안 옴서 또 산란심도 없음서 먹먹헌 놈의 경계가 있다 그 말이여.

선(善)이나 악(惡)이나 무기(無記)나 산란(散亂)이나, 그 세 가지에 뛰어나 버린다. 간절헌 일자(一字)가 있을 것 같으면은.
그놈이 없기 따문에 그저 잠이 들어와서 꾸뻑꾸뻑, 그저 산란심 산란심. 이렇게 도를 닦고 앉었다 그 말이여. 그 도 닦는 법이 어디 그럴 수가 있나? ‘간절 절(切)’ 자 하나가 꼭 있어야지! 절지일자(切之一字) 소중허다.

용심(用心)이 심절즉(甚切則), 마음을 가지는 공부허는, 화두를 가지고 공부허는 마음이 심히 간절헌 즉—오직 깨달을 마음, 어서 깨달라야겄다는 그 깨달라야겄다는 마음이 아니여.
화두 허는 마음, 화두 똑 드는 마음이 간절헌 즉은 불사선(不思善)이다. 선(善)도 거그는 붙들 못헌다. 아무리 좋은 선(善)이지마는 선(善)도 붙들 못혀. 선행이고 뭣이고 그것도 붙지 못혀.

용심(用心)이 심절즉(甚切則), 그 마음이 간절헌 즉은 불사악(不思惡)이다. 악(惡)도 붙들 못한다. 무슨 놈의 악(惡)이 가 붙어?
용심(用心)이 심절즉불락무기(甚切則不落無記)니라. 무기(無記)에도 떨어지지 않느니라. 선(善)에도 떨어지지 않고, 악(惡)에도 떨어지지 않고, 무기(無記)에도 떨어지지 않고, 아! 이런 거여.

그런데 앉으면은 그만 그 간절헌 마음이 없으니, 나를 내가 깨달라서 생사해탈(生死解脫)헐 마음이 간절헌 마음이 없으니 그저 시주것이나 뭐 그저 마음대로 퍼먹고 그저 그만, 그 기가 맥힌 시은(施恩)을 제멋대로 퍼먹고는 앉으면 졸기나 하고, 앉으면 그만 그저 산란 망상이나 하고. 이래 가지고 무슨 놈의 도(道) 닦는다고 들어와서 도문(道門)에 와서 광음만 허송하고, 이게 무슨 짓이냔 말이여.

화두(話頭)가 심절(甚切)이면은, 화두가 간절헐 것 같으면 무도거(無掉擧)다.
도거(掉擧)라는 것은 기가 맥힌 모도 번뇌 망상인디, 도거(掉擧) 뿌럭대기인디 그러헌 도거(掉擧)도 없다. 망상 가운데도 고약한 망상이지, 도거(掉擧)라는 거? 도거도, 그 망상 뿌럭대기도 없다. 항상 앉으면은 화두 하나뿐이지. 알 수 없는 활구참선(活句參禪).

화두(話頭)가 절(切)이면은, 화두가 그와 같이 간절해서 자리가 잽혀서 딱 들어와 있으면은 무혼침(無昏沈)이여, 무슨 놈의 혼침이 있어? 무슨 놈의 잠이 와?
부모 때려죽인 원수 그놈 꼭 내가 원수를 갚아야 잠이 오지, 원수 갚지 못하고 잠이 와?

오늘 낮에 법문이 있을 테니까 조금 허고. (처음~17분11초) (끝)

Posted by 닥공닥정

 

•§• 박산무이선사선경어(博山無異禪師禪警語) (9/18) 박산무이선사의 선경어.

**전강선사(No.380)—박산무이선사 선경어(9) (갑인.74.01.23.새벽) (전380)

 

약 29분.


청원연우리(靑原煙雨裏)에  비진기쇠의(費盡幾衰衣)요
나무~아미타불~
낙양춘색다(洛陽春色多)하고  가무만창시(歌舞滿窓時)니라
나무~아미타불~

청원연우리(靑原煙雨裏)다. 푸른 언덕 연기와 빗속에서,
비진기쇠의(費盡幾衰衣)냐. 힘을 허비해서 얼마나 옷과 삿갓을 찢기고 그 천신만고(千幸萬苦)를 겪었느냐.

우리 학자(學者)가 고향, 부모처자 다 이별해 버리고 도(道)를 닦으러 나서서 고향땅은 생전 인자 멀어져 버리고 버려 버리고, 타향 객리(客裏)에 나와서 도(道) 닦는다고 댕기면서, 밥도 빌고 저 별별 짓 다하면서 그 고행 다해 가면서 얼마나 삿갓을 찢기고, 머리에 쓴 모도 의관을 찢기고, 옷을 모도 떨어진 옷을 입은 놈도 모도 다 쇠진해 버리고 파(破)해 버리고 그 얼마나 고진(苦盡), 고진 괴로운 짓을 다했느냐 말이여.

참선해서 도 닦는 도학자의 그 고생, 괴로운 고행이여. 이걸 한번 생각해 봐라.
보통, 좋은 집에서 좋은 밥 먹고 아주 그 무슨 편안하게 안락하게 진락(趁樂) 좋은 낙(樂), 그 좋은 즐거운 낙, 일기진락(一期趁樂)이 고인(苦因)이냐? 그 낙 받고 좋은 고놈이, 먹고 놀고 광음(光陰)을 소비허고 시주것 먹고 그럭저럭 지내고 노는 놈이 그놈이 그대로가 무간지옥(無間地獄)인 줄을 왜 깨닫지 못하냐? 그대로 지옥이여. 지옥밖에 갈 것 없고.

중 되면은 고진(苦盡), 고(苦)를 다하고. 애를 무척 써서 그 백억천만 겁(劫)에 보지 못했던 알지 못했던 나를 내가 찾을라고 나서서 그 어떻게 그 먹여 주어야 하니, 이놈 목숨을 구해 주어야만 허니 먹여 주기 위해서 밥도 빌면서 그 이놈 공부를 헐라매, 그 얼마나 괴로운...
고행(苦行)에 발도심(發道心)이고, 괴로운 것을 행하는 데서 도(道) 마음이 발(發)하고, 아소심(我所心)이 모도 없어지는 곳에서 도가 되는 것이여. 고행이 아니면은 아소심이, '내가 제일이다' 하는 마음이 즐거운 데서 항상 떠나지 않고 아소심(我所心)이 길어나는 법이여.

그 고행을 막 하고, 천행(賤行)을 막 하는 데서 무슨 놈의 아소심(我所心)이 길어나겠느냐? 항상 하심(下心)만, '내가 아무것도 아니다'는 하심만 항상 길어난다. 그게 그게 도학자(道學者), 도행자(道行者)다.
아주 호귀(豪貴), 호걸스럽고 귀여운 것이 도학자여? 거 도학자 아니여. 멀쩡헌 것이여, 그건. 아무것도 아닌 것이여. 호귀 속에는 아무것도 여망(餘望)이 없어. 호활스럽게 잘 먹고 잘 입고 호사하고 놀고 지랄하는 것은 지옥고(地獄苦)밖에 갈 것이 없어. 아무것도 여망이 없는 거여.
괴롭고 그 모도 난행(難行) 능행(能行)하는 것이, 어려운 행(行)을 능히 행(行)하고 그것이 그 도(道)가 그 속에 들어 있고, 그 속에서 지지망(至之望)이, 도를 이룰 그러헌 참 여유가 그러헌 원력이 그 있는 것이지.

낙양춘색호(洛陽春色好)다. 낙양(洛陽)에는 춘색(春色)이 좋구나. 그 그렇게 터억 공부를 해 들어갈 것 같으면은 어렵고 또 어려운 지경에 이르러서 한번 고비를 넘겨서 툭! 깨달라 놓고, 확철대오(廓徹大悟)를, 대오를 해 놓고 보아라. 그 경계가 어떻드냐? 낙양춘색다(洛陽春色多)다. 낙양에는 춘색이 많구나. 봄빛이 많다.
낙양, 낙양(洛陽)이라 하는 것이 어디냐? 내 근본 고향, 내 깨닫지 못했던 근본 고향에 들어가 봐라. 춘색(春色)이 많으니, 춘색 많은 가운데에는 봄빛에 일체 화발(花發), 꽃도 피고 잎도 피고 새도 울고 얼마나 좋은 시절이냐. 그 좋은 시절 가운데에 얼마나 그 풍요한 건설적이냐 말이여. 아무것도 부족한 것이 없이 모도 갖추어져 있는 춘광(春光), 춘색다(春色多)다. 봄빛이 많다.

가무만창시(歌舞滿窓時)니라. 그 가무(歌舞)! 참 그대로 춤추어. 춤을 추면서 아무, 일 마쳤으니 뭔 일이 있나? 생사(生死) 일이 제일 무서운 일인디 생사 일을 마쳤으니, 죽고 사는 일을 마쳤으니 뭔 일이 있나? 아무 일 없다. 그저 검무나 일 없는 춤이나 추고, 그 가무만창시(歌舞滿窓時)다. 노래 부르고 춤추는디 명월(明月)은 창(窓)에 가득한 때로구나.
얼마나 부귀(富貴)며, 얼마나 그 부귀가 보통 부귀냐? 보통 행락(行樂)인가? 아! 이러헌 시절이 확철대오할 것 같으면은 저절로 도래해서 생사 없는 시절이 온다 말이여. 그러니 도 안 닦고 뭘할 것이냐?


주공부(做工夫)허되, 공부를 짓되 최요긴절(最要緊切)이다. 가장 신심 가운데에서 긴절(緊切)이 있어야 한다. 최요긴(最要緊)이다. 그 절대 믿는 가운데에서 긴절(緊切)헌 것이 있어. 아주 기가 맥히게 그 친절(親切)헌 것이 있어.

시개절자(是個切字)다. 그 친절이라는 것은 뭐냐? ‘간절 절(切)’ 자다. 간절(懇切)한 것이 있어야 한다. 간절허다.
내 자식을 어린것을 내가 낳아 가지고서는 어따 두고서 애미 찾는 걸 두고서 뚝 떼 버리고 나왔는데, 한시도 그것이 눈앞에 보이어 그 마음이 떠나지 않고 간절하다, 보고 싶은 마음이. 불쌍하고 처량한 마음이. 내가 낳아 놓고 그걸 떼놓고 왔으니 간절한 마음이 항상 거가 붙어 있다. 어린 자식 생각나는 마음.

그러헌 화두 역시, 내가 날 찾는 ‘이뭣고?’가 ‘이뭣고?’ 헌 이 화두가 그와 같이 간절해야 할 것이다. 항상 어린 자식 떼어놓은 것처럼 간절한 마음이 복장에 우회(憂懷)해서, 복장에 가서 그만 맺혀져 있어서, 풀어버릴래야 풀어버릴 수 없는 지경이 그게 간절한 지경이다. 간절(懇切)한 마음이 있어야만 그것이 공부허는 사람에 갖추는 마음이다.

절자(切字)가 최유력(最有力)하다. 그 ‘간절 절(切)’ 자는 가장 힘이 있는 것이다. 잠도 그놈이 쳐 없애 번지고, 망상도 그놈이 쳐 없애 번지고, 일체 해태심(懈怠心)도 쳐 없애 버리는 놈이다. 모도 해태심과 그 망상심과 잠이 어디서 오냐?
절(切)자 없는 디서—생사(生死) 무서운, 그 험악한 무서운 죽고 사는 생사(生死), 그놈을 두고서는 그럭저럭, 그저 그만 그럭저럭 시주것이나 마음대로 그만 먹고 싶은 대로 잔뜩 퍼먹고는 잠이나 잘라고, 구석구석이 잠이나 잘라고. 그것이 어디서 오는 것이냐? 게을고 ‘간절 절(切)’ 자 없는 디서 오는 것이다.

‘간절 절(切)’ 자가 있고 참말로 생사가 두렵고 무서워 봐라. 그 감옥이 무서워 봐라. 그놈의 감옥은 지옥 감옥이라는 것은 이 현대 감옥과 얼매나 그 거리가 있나 말이여. 기가 맥히지. 그러헌 무서운 감옥이 네 눈감으면, 영 눈감아 번지면, 송장 되아 버리면은 그놈의 감옥 속에 들어갈 걸 생각해 봐라.
송장 이까짓 놈의 것은 몸뚱이 내던져 번지고 송장 끌고 댕기는 주인공, 네 보든 놈, 눈깔로 보든 놈. 눈깔이 봤나? 내가 봤지. 그놈이 감옥에 들어가서 다시는 나올 기약이 없이 갇혀 가지고서는, 그저 죄고(罪苦)만 받을 것을 한번 생각해 봐라. 어찌 ‘간절 절(切)’ 자가 없을 것이며, 어찌 해태심(懈怠心)이 날 것이냐?

해태(懈怠)가 생즉(生則), 그러헌 ‘간절 절(切)’ 자가 없으면은 게으른 마음이 난 즉은 방일종의(放逸縱意)허다. 방일허는 법이며, 그럭저럭 노는 법이며, 뜻을 놓아버리고 여기저기 돌아댕김서 그저 얘기나 하고 그럭저럭 지내는 법이다. 틀림없다.
그놈 ‘간절 절(切)’ 자가 없기 따문에 그런 거다. 아주 바로 믿어서 진절(眞切)이 없기 따문에 그런 것이다. 그저 그만 꺼떡 그만 어디 백지(白地) 돌아댕김서 그만 아무 일도 없이 어디 갈라고나 하고, 밤낮 그 마음뿐이지, '어디를 갈꼬?' 휙휙 돌아댕겨.
‘간절 절(切)’ 자로 도 닦을 사람은 행여나 어디 갈까 싶지? 뭣허러 가냐 말이여? 거 앉어서 그저 되파야지!

서불휴(誓不休)지. 이놈을 깨닫지 못하고 그럭저럭 방일(放逸)혀? 종의(縱意)를 혀? 뜻을 놓아 버려? 절대 안 된다. 미소부지(靡所不至)지. 인자 그래 가지고는 그만 방일종의(放逸縱意)할 것 같으면은 절(切) 자, ‘간절 절(切)’ 자가 없기 따문에 무소부지(無所不至)여.
돌아댕김서 그저 이럭저럭 지내는 거기에, 씨잘데없이 이놈의 그 절지, ‘간절 절(切)’ 자, 긴절(緊切) 자, 긴절헌 ‘간절 절(切)’ 자 그놈 그놈이 없기 따문에 무소부지(無所不至)여. 안 간 곳이 없이 돌아댕김서 종의(縱意)를 허고 놀기나 하지.

약용심(若用心)이 진절(眞切)즉, 만약 화두허는 마음이 간절헌즉, 그 간절해서 알 수 없는 마음, 내가 나 깨닫지 못헌 그 참 그 마음 하나가 우회(憂懷)를 해 가지고서 화두가 따악 품에 들어와서 있으면은, 방일해태(放逸懈怠)가 하유득생(何繇得生)가? 무엇이 어디 어디 날 것이냐, 어디부터 나? 어디서 나와? 놀기나 허고 해태심이 어디서 나올 것이냐 그 말이여.

당지(當知) 절지일자(切之一字)는, 마땅히 알거라, 간절헌 이 한 글자는 불수부도고인전지(不愁不到古人田地)니라. 고인전지(古人田地)에 이르지 못할까 두려워허지 말아라.
고인전지(古人田地)라는 건 깨달은 곳인디, 깨닫지 못할까 두려워허지 말아라. 네 ‘간절 절(切)’ 자만 가지고 항상 공안만 자꾸자꾸 거각(擧却)해 봐라. 생각해 봐라. 어디를 가는가? 고인전지(古人田地)밖에는 갈 곳이 없어. 여래지(如來地)밖에는 갈 곳이 없어. 확철대오허는 그것밖에는 없다 말이여.

왜 그걸 그렇게 한바탕 안 하고, 그럭저럭 그럭저럭 방일(放逸)허고 종의(縱意)를 허느냐 말이여. 그 헐 배냔 말이여? 그놈의 방일종의(放逸縱意) 따문에 그 어디 가고 싶고, 가면 꺼떡허면 그 나가고, 꺼떡하면 가고 싶고 그저 마음을 놓고 지내고 그만 그러다 보니 일생 휙 가버리지.
탄식 밖에는 나올 거... 마지막 안광낙지지시(眼光落地之時)에, 눈 광명 땅에 떨어질 때 탄식밖에는 없어. 그놈의 탄식 뭐 헌들 소용이 있나? 묶어가고 잽혀가고 끌려가고 쇠꼬쟁이에 쇠갈구리에 끌려가지 뭐 소용이 있나? 염라국(閻羅國) 밖에는 갈 게 제가 어디 있어? 살인강도 헌 놈이 잽히면 그만 감옥 밖에 갈 것 더 있어?
살인강도 해 놓고는 한때도 마음 쉴 때가 없이 가슴 가운데 공포, 안 잽힐라고 두근두근 두근두근 뛰고 있지. 그런 거, 그런 고생을 헌다 그 말이여. 그러헌 살인강도켕이는 살인강도를 살릴 마음이 항상 있는 어진 사람은 간 곳마다 그저 그 안락(安樂)하지. 뭐, 뭐 두려울 것이 뭔고?

불수생사불파(不愁生死不破)니라. 생사를 파(破)하지 못헌 것을 근심허지 말아라. 절지일자(切之一字)만 가지고 간절히만 해 나갈 것 같으면 고인전지(古人田地)에 이르러, 바로 고인전지에 이르며, 생사를 두려워헐 것이 뭐가 있나? 뭐 생사가 있어야지? 어찌 그러헌 도를 왜 안 닦을까 보냐?
왜 그런 도를 닦지 않고 일순간(一瞬間)인들, 한 일향간(一餉間)인들, 잠깐 동안인들, 해태심(懈怠心) 그 방일종의(放逸縱意)헌 마음을 가지고 그래 지내갈 것이냐? 한바탕 금옥(金玉) 같은 광음(光陰)을 그놈을 참 조금도 허비허지를 말고 한바탕 해봐라. 꼭 그렇게 해야 할 것이니라.


『초심(初心)』을 좀 모도 해 줄라 하니 아직 기운이 부대껴서 못허겄어. 『초심(初心)』을 알아야 혀. 초심행(初心行)을 알아야 혀. 처음부텀 들어오면은 이 행자(行者)들이 초심행을 알아야 하는디, 『초심(初心)』을 가르키도 않고 막 그만 더러 세워 놓으니까, 그것을 모르면은 안 되아.
그저 그만 도문(道門)에 들어올 것 같으면은 들어옴서부텀 그 최상, 이 최상설이거든 이게 최상승설(最上乘說)이여. 최상 설법, 참선(參禪)허는 법이여. 참선부텀 배워 알려 놓고 차츰차츰 행자 행은 그 가운데... 그 어서 왜 그러냐?
아! 생사(生死)가 급한디 생사가... 행자는 안 죽나? 금방 난 놈이 금방 난 어린아는 안 죽나? 금방 난 어린 자식이 금방 낳았지마는 금방 죽을 수 있으니, 그거 도부텀, 알릴 거부텀 알려 놔야 하지, 별수없단 말이여.

이 참선법은 검은 것, 흰 것만 알면은 참선허는 법인디, 그 뭐 행자인들 못 가르킬 게 뭐 있나? 요새 행자라는 것은 모두 배울 것 다 배워 가지고는 아! 모도 대학까장 졸업해 가지고 들어왔는데. 뭐 그런 대학생 같은, 뭐 말해서 못 알아들을 것이 뭣이 있으며, 가르켜 주면은 못 닦을 것이 어디 있는가 말이여. 그런게 대번에 그만...
저 인도(印度)도 그렇데. 인도도 가사(袈娑)가 무슨 차별 없어. 대종사 가사가 있고, 비구승 가사가 있고, 25조가 있고, 그거 하나도 없데. 그대로 오조가사(五條袈裟), 오조뿐이여. 오조뿐이고, 또 무슨 차별 차등 없어. 계(戒)도 5계뿐이고. 250계니 500계 그것도 없고. 그대로 따악 되어 있다 그 말이여.

모도 중간에 나와서 모도 그만 이놈의 법식이 천 가지 만 가지 모도 변경되어 가지고 한국에 와서는 '무당 불법'이 되어 가지고는, 그만 그저 재(齋)나 재법(齋法)헌다고, 재 들면은 재(齋)한다 하고는...
부처님 당시에 우전왕(優塡王)이 불상(佛像)은 조성했는데, 불상 조성해 놓고는 다맛 부처님께 절했지, 거다 뭐 채려놓고 뭣헌 것 있나? 부처님은 참 부처님은 저 사왕천에 가서 어머니 제도허러 올라갔는데, 사왕천에 가 계시니까 당최 부처님을 뵐 수가 없으니까 하도 보고 싶으니까, 우상(偶像)을 조성, 나무로 조성을 해 놓고 부처님 앞에 절을 했어. 그것이 불상(佛像)을 조성헌 법이고.

당시에 무슨 부처님 당시에 뭐 채려놓고 무슨 음식 맨들어 놓고 그것도 없고, 없어. 돌아가신 뒤에는 우상(偶像)은 숭배를 했는데, 우상 앞에 무슨 갖다가 놓는 건 있되, 정성으로 갖다가 쌀이면 쌀, 돈이면 돈, 그대로 놓아. 그대로 놓으면은 그 돈을 그대로 갖다가서 사중(寺中)에 쌀 내루아다가 밥해서 그 대중이 먹고 도(道)를 닦아. 그것이 재공(齋供)이고 재미(齋米)여.
그래야 공(功)이 된다는 거여. 공덕이 한량없어. 기도 들어오면 기도 돈 그놈 갖다가서 쌀 팔아서 대중이 먹고 도 닦고. 그럼 복이 기가 맥히지.

또 돈 그놈을 갖다가서 부처님 모시는 집 같은 디, 어디 떨어지면은 기왓장도 이고 우새(雨塞)도 허고. 비 새면 비도 못 새게 맨들고 벽도 바르고, 그러니 그것이 한량없는 복이여. 땅도 사 가지고는 절 땅 모도 맨들아서 거다가서 건설허고 그것이 공덕이여.
철물(鐵物)이 없으면은 그런 그릇 같은 거 모도 사서, 철물 같은 거 사면은 유기철물(鍮器鐵物)은 신견고(身堅固)다. 철물을 모도 사서 들여서 부처님 앞에 쓰면은 세세생생(世世生生)에 몸뚱이 병이 없이 견고헌 몸을 받는다고 그랬어.
창호도배(窓戶塗褙)는 면팔난(免八難)이다. 창호(窓戶), 종이를 사다가서 벽을 모도... 기도 돈 가져온 놈 그 성금 가져 온 놈을 가지고는 애껴서 창호지를 종이를 사다가서 벽지를 모도 바르면은 면팔난(免八難)이다. 8가지 난(難)을 면한다. 밖에 바람이 모도 못 들어오게 모도 막아 잘 발라 놓았으니 그 공덕으로써 창호도배(窓戶塗褙)는 면팔난(免八難)이다.

아! 그 바로 모도 말씀을 해 놓았거든. 그런데 공연히 이건 무슨 일시에 무슨 갖다가 과자나 뭐 떡이나 뭐 사다가 그냥 벌려 채려놓았다가 나눠 먹는 것을 그것을 불공법(佛供法)인 줄 안다 말이여. 그걸 기도법인 줄 알고. '잘 차려놓았다' 하고. 이렇게도 까마득 모르는 놈의 그 사람들을 갖다 속이는 것이지, 그 무엇이여?
잔뜩 퍼 채려놓고는, 왼통 부께미를 모도 채려서 늘어놓고는 그래 놓고는, “으 아~ 뚱땅 뚱땅” 절이나 하고 춤추고, 건달바(乾闥婆)가 한 거. 중이 어디 그런 거 헌 건가?

가만히 갖다 올려놓고서, 가져 온 대로 갖다 올려. 쌀이면 쌀, 배차(배추)면 배차, 가지면 가지 같은 거 농사지은 것이니께 갖다 논다고 갖다 놔. 갖다 놓으면 그놈 그대로 내루아다가, 반찬을 장만하고 밥을 지어서 대중이 먹고는 그 대중이 도(道)를 닦아.
그 대중이 도(道)도 닦지 않고 허송방일(虛送放逸)이나 허고, 그럭저럭 그만 돌아댕기면서 놀기나 하고, 시주것이나 씨잘데없이 모도 그만 허비허고는 돌아댕김서 죄나 퍼짓고, 그런 것은 그건 절대 참 아무것도 아니지!

그러기 따문에 참선방 참선허는 그 원융대중(圓融大衆)에 모도 공양(供養)할라고 애쓰지. 의미가 그런 것인디 그런 것부텀 알아 가지고 신도가 되어야 하고. 또 그 그러헌 법을 절에서 그 잘 알아서 모도 복(福)을 지어 주어야 한다 그 말이여. 시주(施主)를 복을 지어 주어야 한다 그 말이여.
그렇게 창호도배(窓戶塗褙)와 유기철물(鍮器鐵物)과 우새(雨塞)허는 법, 아! 이렇게 모두 잘 써 주고, 그 돈을 갖다 남을 것 같으면 남은 돈을 또 갖다 인자 보시바라밀(布施波羅蜜)도 허고, 방생바라밀(放生波羅蜜)도 생명도 살리고, 이러니 그 기도 복이 한량없다는 것인디, 그 돈을 갖다 그렇게 써 주는 것이 복이 무진장(無盡藏)이여. 세세생생에 그만 군왕(君王) 대신(大臣)도 되고 허지마는.

군왕 대신 같은 거, 임금 같.. 뭐, 그런 부귀 백만장자 부귀만 되면은 그것은 복진타락(福盡墮落)이여. 복 많이 지어 가지고 복 받다 도로 타락이 있으니까 무루복(無漏福)을 지어야 하는 것이거든. 이건 무루복이거든!
부처님 정법문중(正法門中)에 들어와서 도 닦는 도학자한테 공양을 올렸고, 부처님 집을 모도 중수(重修)허고, 땅을 사게 만들고, 창호도배를 허게 되었으니, 이거는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니 그 무주상보시라는 건 타락이 없어. 복을 한번 지어 놓을 것 같으면은 끝없이 타락 없이 그만 정법을 해탈(解脫)하는 무루복이여.

아! 여그 오늘 기도님, 따님 기도를 드리시더니, 고불궁이 또 인자 당신 기도를 드린다는 것이 그 기도 의미가 그런 것이여. 그 오늘 아침, 어저께 입재(入齋)해 놓고 오늘 아침에 정식 기도를 한번 이래 드린 거, 일원일배(一願一拜)지. 뭐 밤낮 뚜들면 뭣혀?
이러고는 인자 기도 드린 대중은 아! 나가서 인자 도(道) 닦을 것 아니여? 지금 늘 화두(話頭) 허니까. 어째?

내일 회향(廻向)헌다고 허지마는 설판(說辦)을 해 놓았으니 인자 여름 공부에 항상 아침마다—인자 설판재주(說辦齋主)니까 ‘법보재자(法寶齋者) 정법문중(正法門中) 신심견고(信心堅固) 영불퇴전(永不退轉) 화두순숙(話頭純熟) 의단독로(疑團獨露) 확철대오(廓徹大悟) 광도중생(廣度衆生)’ 아! 그래 주면 그거 그게 복이 안 될까? 그렇게 알으셔야 한다 그 말이여. (처음~28분33초) (끝)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