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산무이선사선경어(博山無異禪師禪警語) (10/18) 박산무이선사의 선경어.

**전강선사(No.381)—박산무이선사 선경어(10) (갑인.74.01.24.새벽) (전381)

 

약 17분.


백운천만리(白雲千萬里)에  방초고향춘(芳草故鄕春)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낙일등루망(落日登樓望)허니  동해만리파(東海萬里波)니라
나무~아미타불~

내가 나를 깨달라 놓고 보면,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해 놓고 볼 것 같으면은 어디 가서 맥힘이 있으며, 어디 가서 걸림이 있으며, 어디 가서 생사고(生死苦)가 있으며, 뭐가 있나?
그렇게도 일이 없거니와 그렇게도 상락아정(常樂我淨)이여. 항상 생사 없는 아정락(我淨樂)밖에 없어. 즐거운 낙(樂)밖에 없어.

깨닫지 못하면은 항상 중생(衆生) 그 번뇌 지경, 중생 그 망상 지경, 중생의 그 생사 지경, 기가 맥히다. 모도 맥혀. 모도 그만 형극(荊棘), 가시 형림(荊林)이여. 뚫고 나갈 곳이 없어.
전생도 깜깜혀. 후생도 깜깜혀. 금생에도 이놈 몸뚱이 하나 짊어지고는 모도 걸려. 애착(愛着) 애연(愛緣)에 걸려. 애착 애연이 하나도 내 것이 아닌디.

허! 모도 번뇌 망상에서 건립된 것이지 내 물건이 아니여. 그 내 소집(所執)이 조금도 아니여.
'남편이니, 자식이니, 손자니' 헌 것이 내 눈앞에 모두 있건마는, 그게 남편이나 자식이나 그런 것이 내 소집(所執)이, 내 애집(愛執)이 그렇게 애착할 집(執)이 못되아. 그만 갈려 버리면 그만인 것이여.
어디서 서로 만난 것도, 인연 모도 만난 것도 어떻게 소집(所執)된 것이여, 그것이? 공연히 이 몸뚱이 하나 받아 가지고 나와서 무슨 남편이니, 뭐 남편 속에서 남편 하나 만나 인연 만나 가지고 자식 하나 낳았어. 그것을 내 자식이니 내 손자니 허지마는 그까짓 그 몸뚱이 그녀러 것이 그 무슨 뭐 나무토막 하나 얻었다가 태워버리고 내버린 것 같지, 그것이 뭐 내 거냐 그 말이여? 실소집(實所執)이냐 그 말이여? 생각을 좀 해보지. 아무것도 아닌 것이여.

인생 일생이라고 해 봤던들 칠팔십 년 못된 놈의 것인데, 칠팔십 년은 그건 장수자(長壽者)에게 한(限)헌 말이고. 그저 금방 어머니 뱃속에서 나오자마자 목숨 내버리기도 허고, 조금 크다가 내버리기도 허고. 아! 이것 뭐 뭐 이놈의 몸뚱이라는 것이 어디 일순간인들, 눈 한번 꿈적거릴 사이인들 믿을 수가 있는가? 이렇게 무상(無常)하고 허망(虛妄)한 놈의 몸뚱이를 가지고는 내 것이락 햐?
내 몸뚱이도 이렇게 무상하고 허망헌 건대, 거다가 남편이니 무슨 자식이니 손자니 고따구 놈의 애집(愛執)을 가지고는 그저 일생을 못 견뎌서 죽다가, 왼통 그만 ‘어쩌까?’ 허고 근심 걱정허다가, 내 정말 목숨 뚝 끊어진 뒤에 내 목숨 내버린 내 주인공(主人公), 내 소소영령(昭昭靈靈)헌 나는 갈 바 올 바도 모른다. 그놈의 애집(愛執) 속에서 죄만 퍼지어 놓고서는 나 홀로 돌아선 놈의 황천(黃泉)길이다.

자식이니, 남편이니 자식이니 뭐 권속이니, 무슨 천만 지위 권리니 그것 와각공명(蝸角功名)이여. 달팽이 뿔때기같이 되어 번지고. 나 혼자 돌아선 놈의 길, 참 고독헌 놈의 길이다. 향하처거(向何處去)냐? 어디로 갈 것이냐? 가는 곳이 어디냐, 도대체?
흥! 혼자 고독허게 가는 길, 혼자 마음대로 고독허거나 따나 외로우나 따나 마음대로 어디 갔으면 허련마는 마음대로 못 가.

고독헌 놈의 길인디, 외로운 놈의 길인디, 거다가 또 창칼이 들어오고 내 몸뚱이 모도 얽을 쇠사슬이 들어오고, 염라국(閻羅國)에서 막 나와서 뭐 꼼짝달싹도 못허게 묶어 가지고 끌고 들어간 놈의 삼악도(三惡途). 이놈의 몸뚱이 내버린 뒤에 괴로운 것이 이런 무서운 것이 있어. 변시신후지고마(便是身後之苦麽). 몸뚱이 내버린 뒤에 고(苦)를 아느냐?
이런 것을 깨달라야 혀. 무상헌 걸 깨달고, 허망헌 걸 깨달고, 이렇게 포구(怖懼), 두려운 걸 깨달라 가지고는 내가 나를 찾는 법이여.

내가 나를 어서 깨달라야지. 응! 나를 가지고 나를 깨닫지 못하다니, 그게 될 말이여? 결코 내가 나를 깨닫는 것이여.
나를 깨달을 사람이, 내가 나를 찾는 사람이 얼마나 그 참 귀중한 사람이며 독보건곤(獨步乾坤), 홀로 건곤(乾坤)에 걸음허는 사람이여. 참 귀엽고 잊지 못헐 드문 사람이다. 이런 사람이 되었으매 행동인들 얼마나 정직허며, 세상에 꼭 헐 일만 허고, 안 헐 일은 안 허는 것이여. 이게 도학자(道學者)란 말이여.

백운천만리(白雲千萬里)에  방초고향춘(芳草故鄕春)이다.
백운(白雲) 터억 떠서 천만리에 자취 없이 갔다 왔다 허는 경계든지, 방초처처(芳草處處)헌 그 모도 봄 경계, 그 모도 그 기가 맥힌 '내'의 그 가풍, 묘용가풍(妙用家風) 깨달라 놓을 것 같으면은 자재가풍(自在家風)이여. 한량도 없는 걸림이 없는 가풍. 어디가 걸려? 생사죄에 걸려? 지옥이, 무슨 지옥이 내게 관계가 있어?

낙일등루망(落日登樓望)한디, 해는 떨어졌는디 저 높은 누각에 턱 올라앉았다. 바람은 스르르르르 부는 봄바람에 동해만리파(東海萬里波)로구나. 동쪽 바다를 보니 만 리 물결이다.
일체경계가 도대체 무슨 걸릴 것이 뭣이 있으며, 그것이 모도 열반경계(涅槃境界), 생사 없는 해탈경계(解脫境界)니라.

깨달라 놓으면 모든 경계가, 중생 전체 경계가 그대로 각경계(覺境界)여. 묘용가풍(妙用家風) 각경계여.
깨닫지 못하면은 모도 걸린 놈의 경계, 모도 나를 모도 꼼짝 못허게 맨든 놈의 경계. 게송(偈頌).


어제 아침 절지(切之), ‘간절 절(切)’ 자 법문을 했지마는 오늘 아침에 또 나온다 그 말이여.
절지일자(切之一字)가, 간절(懇切)헌 자, 공부에 간절헌 그 절지일자(切之一字), 내가 나를 깨닫지 못했으니 나를 깨달라야 하겠다는 간절헌 마음.
그 간절헌 마음이—저 남편에다가, 그 남편 보고 싶어 죽을 지경 된 간절한 그 글자에다 댈 것이며, 남자가 마누라 보고 싶어서 간절헌 거그다 댈 것인가? 어린 자식을 금방 낳아 놓았는디 보고 싶은 절(切) 자 거다 댈 것인가? 내가 나를 모르는 마음이.

나를 내가 꼭 알아야 할 거 아닌가? 내가 나를 몰라 가지고 이렇게도 도무지 전후좌우 사면이 흑(黑) 먹통 칠통(漆桶)인디. 깜깜혀. 이렇게 깜깜해 가지고 어떻게 사는고?
봉사가 보들 못허니 참 답답하지. 귀먹은 놈이 듣지 못허니 참 답답허지. 앉은뱅이가 걷지를 못하니 참 앉어 탄식 기맥히지.
우리 범부(凡夫) 중생이 나를 깨닫지 못했으니 깜깜 칠통(漆桶)인디 그걸 알지 못허고는 눈깔을 뜨고 뭐 본다고 돌아댕기고, 듣는다고 뭐 듣고 야단치고 댕기지마는, 우리가 뭐여? 먹통 칠통, 그 참 어두운 밤중이지. 어서, 어서 속히 내가 나를 깨달라야 할 것 아닌가?

허니 나 깨달을 마음이, 나를 찾을 마음이 얼마나 간절해야 할 것인가? 간절(懇切)허다. 참으로 간절허다. 뼛속에 사무친 '간절 절(切)' 자다. 간절헌 그 글자만 하나가 떡 간절헌 마음이 있으면은 일순간인들 광음(光陰)을 허송헐 까닭이 있으며, 어디 헛된 말헐 택이 있으며, 못된 일을 헐 필요가 있나 말이여?
흥! 또옥 그 화두(話頭) 하나를 가지고는, ‘판치생모(板齒生毛)’나 ‘이뭣고?’나 그 화두 하나를 가지고서는 주삼야삼(晝三夜三)에 밤이나 낮이나 그놈 하나 시애(厮睚), 겨루어야 한다 그 말이여. 그놈 딱! 가지고는 그저 일념도 딴마음 없이 그놈만 꼭 다루어 나가야 혀. 그것이 절지일자(切之一字)여. 간절(懇切), 한 글자여.



당하(當下)에 초선악무기삼성(超善惡無記三性)허리라. 마땅히 아래에 무기 삼성(三性), 선(善)이나 악(惡)이나 무기(無記), 삼성(三性)에 뛰어나 버릴 것이다.
무기(無記) 삼성(三性), 무기(無記)라는 것은 고 잠이 들어오는 무기(無記), 또 산란심(散亂心)—무기(無記)도 아니고 산란심(散亂心)도 아닌 중(中), 이놈의 무기도 잠도 안 옴서 또 산란심도 없음서 먹먹헌 놈의 경계가 있다 그 말이여.

선(善)이나 악(惡)이나 무기(無記)나 산란(散亂)이나, 그 세 가지에 뛰어나 버린다. 간절헌 일자(一字)가 있을 것 같으면은.
그놈이 없기 따문에 그저 잠이 들어와서 꾸뻑꾸뻑, 그저 산란심 산란심. 이렇게 도를 닦고 앉었다 그 말이여. 그 도 닦는 법이 어디 그럴 수가 있나? ‘간절 절(切)’ 자 하나가 꼭 있어야지! 절지일자(切之一字) 소중허다.

용심(用心)이 심절즉(甚切則), 마음을 가지는 공부허는, 화두를 가지고 공부허는 마음이 심히 간절헌 즉—오직 깨달을 마음, 어서 깨달라야겄다는 그 깨달라야겄다는 마음이 아니여.
화두 허는 마음, 화두 똑 드는 마음이 간절헌 즉은 불사선(不思善)이다. 선(善)도 거그는 붙들 못헌다. 아무리 좋은 선(善)이지마는 선(善)도 붙들 못혀. 선행이고 뭣이고 그것도 붙지 못혀.

용심(用心)이 심절즉(甚切則), 그 마음이 간절헌 즉은 불사악(不思惡)이다. 악(惡)도 붙들 못한다. 무슨 놈의 악(惡)이 가 붙어?
용심(用心)이 심절즉불락무기(甚切則不落無記)니라. 무기(無記)에도 떨어지지 않느니라. 선(善)에도 떨어지지 않고, 악(惡)에도 떨어지지 않고, 무기(無記)에도 떨어지지 않고, 아! 이런 거여.

그런데 앉으면은 그만 그 간절헌 마음이 없으니, 나를 내가 깨달라서 생사해탈(生死解脫)헐 마음이 간절헌 마음이 없으니 그저 시주것이나 뭐 그저 마음대로 퍼먹고 그저 그만, 그 기가 맥힌 시은(施恩)을 제멋대로 퍼먹고는 앉으면 졸기나 하고, 앉으면 그만 그저 산란 망상이나 하고. 이래 가지고 무슨 놈의 도(道) 닦는다고 들어와서 도문(道門)에 와서 광음만 허송하고, 이게 무슨 짓이냔 말이여.

화두(話頭)가 심절(甚切)이면은, 화두가 간절헐 것 같으면 무도거(無掉擧)다.
도거(掉擧)라는 것은 기가 맥힌 모도 번뇌 망상인디, 도거(掉擧) 뿌럭대기인디 그러헌 도거(掉擧)도 없다. 망상 가운데도 고약한 망상이지, 도거(掉擧)라는 거? 도거도, 그 망상 뿌럭대기도 없다. 항상 앉으면은 화두 하나뿐이지. 알 수 없는 활구참선(活句參禪).

화두(話頭)가 절(切)이면은, 화두가 그와 같이 간절해서 자리가 잽혀서 딱 들어와 있으면은 무혼침(無昏沈)이여, 무슨 놈의 혼침이 있어? 무슨 놈의 잠이 와?
부모 때려죽인 원수 그놈 꼭 내가 원수를 갚아야 잠이 오지, 원수 갚지 못하고 잠이 와?

오늘 낮에 법문이 있을 테니까 조금 허고. (처음~17분11초) (끝)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