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공스님'에 해당되는 글 12건

  1. 2017.12.11 •§• 전강선사 일대기(田岡禪師 一代記) (제6호) 안수정등, 한암스님과 법거량.
  2. 2017.04.16 §(086) 전강 스님의 선지식 정화 / 전강 스님에게 마지막 관문을 통과시키게 하는 법을 쓰신 만공 스님의 지도 / 공안은 이론으로 풀 수 없는 진리의 수수께끼 / 사교입선(捨敎入禪).
  3. 2016.10.17 •§•(015) (게송)문진행객편응급~ / 만공 큰스님 수행기 / 만공 큰스님 30본산 주지회의 일화 / (게송)참선수투조사관~ / 포구발심(怖懼發心).
  4. 2015.12.14 §(026) 바른 스승이란? / 전강 스님의 용맹정진, 만공 스님과의 법거량, 인가 / 추호도 의심없이 공안을 바로 봐야 / 진실로 시간을 아껴서 정진해라.
  5. 2015.06.11 •§• 몽산화상시고원상인(蒙山和尙示古原上人) (4/5) 몽산화상이 고원상인에게 주신 말씀.
  6. 2015.05.12 §(119) 마조원상(馬祖圓相) 공안 / 경봉 스님과의 일화 / 참선은 결정코 내가 나를 깨닫는 유일한 길 / 이 세상 어떠한 일보다 우선해서 우선 나부터 깨달라야.
  7. 2014.10.09 •§•(275) 화엄경—일사천하미진수품(一四天下微塵數品) / 비로자나불은 오케스트라 지휘자 / 신심 / 조실스님의 첫 설법 / 만공선사의 인가, 전법게.
  8. 2014.07.09 §(455) 불방일(不放逸) / (게송)수행수시용심진~ / ‘용심(用心) 하나 참되게 한다’한 것은 불방일(不放逸) / 모든 것은 변화하느니라. 불방일(不放逸)하여 정진하라.
  9. 2014.07.02 §(436) 만공 스님, 금봉 스님, 고봉 스님 / 임종게(臨終偈), 후사(後事) / 우리 용화사는 영원히 전강 스님을 조실로 모시고 공부를 해가자.
  10. 2013.11.18 §(099) 상(相)에 집착없이. 척사현정(斥邪顯正) / 재송도인 / 만공스님, 보월스님 / 상(相)없이 베풀어야 / 본참화두를 들고 행동하면 자연히 상에 안 떨어져.
전강선사 일대기2017. 12. 11.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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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강선사 일대기(田岡禪師 一代記) (제6호) 안수정등, 한암스님과 법거량.

 
**전강선사(No.013)—전강선사 일대기 제6호(경술1970년 12월 9일 음)

(1/3) 약 22분.
(2/3) 약 22분.
(3/3) 약 17분.


(1/3)----------------

금조상별후(今朝相別後)다  소식기시문(消息幾時聞)고
나무~아미타불~
명일(明日)은 추운격(秋雲隔)이다  사군불가견(思君不可見)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금조상별후(今朝相別後)다. ’이별 별(別)‘자를 딱 붙여져 가지고 있어.
우리가 다생 겁 중에 얼마나 정법에 인연을 심어 놨길래, 같은 세계에 같은 이 몸뚱이를 얻어 가지고 같이 정법문중(正法門中)에서 서로 도반(道伴)이 되아 가지고 같이 도를 닦는 이러헌 지중헌 인연이 있는가.

허지마는 이렇게 모아진 것은 원인이 갈릴 원인이니라. 어쩔수 없이 갈려.
서로 상별(相別)이 앞에 있어서, 인연(因緣)이라 하는 것은 모여졌다가 흩어지는 것이 인연이여. 인연은 취산(聚散)이다. 인연이라 하는 것은 취해졌다가 흩어지는 것이여.

비단 우리 이렇게 모인 우리 정법문중 도반만 두고 헌 말이 아니여.
속가의 가정도 부부가 서로 만나고, 부자가 서로 만나고, 손자 그저 고손자 그저 며느리 그저 모도가 서로 만난 인연이라는 것은 취산헐 장본(張本)이여. 흩어지고 갈려 버릴 장본인데.

사별(死別)이라 하는 것은, 이 몸뚱이 요녀러 것 죽어 버린 뒤에 갈린 것이란 것은 몸뚱이 보고 서로 부부지간이니 자식이니 손자니 며느리니 몸뚱아리, 콧빼기, 눈깔, 고것 보고 알았제. 고놈 와서 받아가지고 내버린 뒤에는 추운격(秋雲隔)이니라.

무엇으로 그놈 증거해서 알 것이냐? 이 몸뚱이 가지고 있는 주인공(主人公) 그 자체는 서로 서로 보지 못헌 것이다.
그 본래면목(本來面目) 낯반대기는 저도 제 낯반대기를 모르고, 제 면목을 모르는디 어찌 하물며 아버지, 어머니, 부부지간이 알리요? 몰라!
추운격(秋雲隔)이니라. 도대체 알 길이 없는 것을 추운격이락 햐.

허니 사군불가견(思君不可見)이요. 아무리 아무리 생각해도 가히 볼 수 없어.
시방 이렇게 된 것이니, 그 무상허고 허망헌 몸뚱이 요까짓 것으로써서 서로 모여 있다가 서로 갈리게 된 것이 도대체 참 인생의 허망이다.

그러면 용성 스님한테 가서 이렇게 여러 그 법문 모도 답 물어서 내가 답헌 것도 있고, 또 내가 모도 다 해 논 법문을 듣고 묻는 것도 있고 헌 가운데,
지금 요리 늘 헌 법문, 저 고승집(高僧集)이고 늘 헐 때 모도 헌 법문, 그 법문 원인을 또 아침에 얘기...

그 용성 스님께 물어서 내가 또 답헌 것이 있으니깐, 그거 늘 그 전부 몇 번 들은 거지마는 오늘 아침에 인자 이놈을 이 불가불 이번 이 일대기(一代記)에는—뭐 일대기인가, 원 내 역사기인가, 거다가 넣어 달락 하니 이놈을 안 넣을 수가 없어서 원인부텀 얘기를 허는 것이여. 원인도 천 번 들어도 또 듣는 것이여.

이게 우리 불가(佛家)에도 있는 법문이지마는 유가에도 있고, 저 천주교에도 있고, 예수교에도 있고, 다 있어, 이 비유가. 우리 불가에만 있는 것이면 허지만, 전부 다 있어. 공자 공문(孔門)에도 있고.

그러니 뭐, 허지만 오늘 아침에 또 이놈을 또 처음부텀 우리 불가에 갖다 맨들아 논 원인부텀 말을 허게 되니 잘 들어야겄어.


사미과(沙彌科)에, 우리 중 되면은 인자 사미과에 있는 건디, 『치문(緇門)』에.
부업계수신(夫業繫受身)은, 업으로써 이 몸을 받는 것이다. 지은 대로.
금생에 지으면 지은 놈 가지고 내생에 받아 나온다. 금생에 받은 몸뚱이는 전생에 지어서 받아 온 것이다.

여자 될 몸을 지었으니, 여자 될 업(業)을 지었으니 여자 되아 온 것이고, 남자 몸 받을 업을 지었으니 남자 몸 받아 온 것이고, 축생 몸 받을 업을 지었으니 축생 몸 받아 오고, 아귀 될 업을 지었으니 아귀 몸이 되아 오고, 지옥 업을 지었으니 지옥죄 몸을 받아 오고, 전부가 이것은 원인이 업계수신(業繫受身)이다. 업으로써 받아 온 우리 몸뚱이니라.

그러니 업이 다 똑같이 짓지를 못허고 천 사람이면 천 사람, 만 명이면 만 명, 다 달러. 똑같이는 못 짓거든. 그러니 똑같이 못 나와.
업으로 대체 받은 몸뚱이기 따문에 명(命)도 질게 받아 온 사람도 있고, 짜룹게 받아 온 사람도 있고, 하루 있다 죽는 사람도 있고, 한 시간에 죽는 놈도 있고, 뱃속에서 내 버리는 놈, 맨 그 업이니라.
왜 그러헌 그 차별이 있는 업을 모도 지었길래 업으로써 이 몸뚱이를 받았느니라.

미면형루(未免形累)니라. 업으로 또 받은 몸뚱이기 따문에 업도 다 달라서 명한(命限)도 다 그렇게 고르지 못허지마는 얼굴조차 모도 생김 생김이 전체가 다 달라. 구랭이 된 놈이 있고, 그저 소 된 놈이...
똑같은 자리인디. 그 주인공 영(靈) 자리는 똑같은디, 준동함령(蠢動含靈)이 똑같은 것인데, 아! 이렇게 그 짓는 업보(業報) 그놈이 달라.

그래서 얼굴이 진 놈도 있고 짜룬 놈도 있고, 큰 놈도 있고 적은 놈도 있고, 모도 못쓰게 된 것도 있고 잘된 것도 있고, 몸뚱이라도, 사람 몸뚱이라도 그저 그만 문둥이 출추신(出醜身)도 있고, 그걸 형루(形累)락 햐.
형루를 면치 못허느니라. 똑같이 좋은 몸을 가지고 오들 못혀, 업 따문에.

품부모지유체(稟父母之遺體)로구나. 부모의, 허나 못허나 그런 몸뚱이라도 또 부모한테 가서 그 유체(遺體)를 받아. 어머니 아버지한테 가서 그러헌 몸뚱이를 받아 온다 그말이여.

가중연이공성(假衆緣而共成)이로구나. 여러 인연이 또 가자(假藉)해 된다.
이 몸 하나 얻을 때 인연(因緣)이, 몇 인연이 들어? 아버지 인연이 있어, 어머니 인연이 있어, 내 혼백 그놈이 마침 적당헌 어머니 아버지한테 가서 어떻게 의탁(依託)혀야 되아.

아! 이놈 그 인연이라는 것이 아버지여, 어머니여, 내여.
또 그런 때 인연이 있어. 꼭 적당헌 때에 이 몸을 가서 어떻게 얻어야 되는디, 그놈이 그 인연이라는 게, 여러 가지 인연이 들어 간다. 중연(衆緣)이 아니면 이 몸을 받들 못혀. 그래서 받아 왔는데.
솔찬히 그 어려와. 이 몸뚱아리, 그 추헌 몸뚱이 이나따나 받아 오기가 쉽지 못혀. 균일치 못혀. 어렵단 말이여.

수내사대부지(雖乃四大扶持)로구나. 그러나 저러나 그 가운데에 그 몸뚱이, 한량없는 몸뚱이 가운데에 사람 몸뚱이, 사대색신(四大色身) 몸뚱이 받아 온 것이 무척 또 다행하다. 보통 문제 아니다.

받아오기는 왔다마는 상상위배(常相違背)다. 어긴다.
이놈 몸뚱이가 사대(四大) 가운데 물이 많아도—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로 된 몸뚱이인디 물, 또 그 화(火) 기운, 또 바람 기운, 그 땅 기운, 그 네 가지로 되았는데,
이 몸뚱이에 물, 수대(水大)만 물이 너무 많아도 습기가 많아 못쓰고, 화기가 너무 많아도 홧병 따문에 못쓰고, 그놈 그 토(土)성만 너무 많아도 비대해서 아주 그만 숭악해 메주 단지처럼 못쓰고, 바람 많아도 풍(風)이 막 들입대 풍증이 있어서 못쓰고. 아! 이놈이 모두 이런 어기는 것이 있다.

그래 가지고는 그놈의 몸뚱이는 무상(無常)헌 병이 그만 들어오기 시작할 것 같으면은 몸뚱이는 어떻게 어떻게 이리저리 받아 왔다마는, 그놈 여러 가지가 서로 어겨서 병이 모도 이놈이 몸뚱이 모도 얽히게 된다 그말이여.

조존석망(朝存夕亡)이로구나. 아침에 있다가 저녁에 죽기도 허고, 밤에 있다가 새벽에 죽기도 허고, 이놈의 몸뚱이 생사라는 것은 누가 알 수가 있나. 참 믿을 수 없는 것이로구나.
찰나이세(刹那異世)니라. 잠깐 동안에 이 세상이 그만 죽어버린 뒷세상이 된다. 후세(後世)가 와 버려.
이 몸 가지고 있을 때에는 금생이더니 이놈 턱 내버리면 후생(後生)이 된다. 아! 이런 꼴이 있나.

변시내생(便是來生)이여, 찰나이세다. 찰나, 잠깐 동안 이 몸뚱이 그만 이별해 버리고는 내생이 오는데, 그때 가서는 인자 몸뚱이는 내던져 버렸으니 혼만, 영혼만 내생 떠억 되아 가지고 나타난다.

비여춘상효로(譬如春霜曉露)로구나. 비유컨댄 봄에 서리가 와 가지고 볕 나면 녹아 버리는 것이나 같구나. 새벽 이슬 끝에 맺혀 있는 풀 끝에 달려 있는 이슬같구나. 이 몸을 얻어 와 가지고 이 몸을 내 버린 그 무상한 것이 여차(如此)허다.
숙홀즉무(倏忽卽無)로구나. 금방 이 몸을 받아 왔다마는 금방 그만 내버리게 되는구나.
그만 그거 이것 참, 이놈을 믿다니. 요거 요까짓 것을 믿다니. 숙홀즉무다.

안수정등기능장구(岸樹井藤豈能長久)냐? 새암(샘) 언덕에 칡이 어찌 오랠 수가 있나?
‘새암 언덕에 등칠기(등나무) 줄이 하나 있는디, 그 등칠기 줄이 얼마나 오래 되겠나?’헌, 그 등칠기 줄을 가지고 인자 요거 얘기인디.

웬 사람이 탄탄대로(坦坦大路) 길을 가는데—요거 자세히 이렇게 알어야 되아—뒤에서 뭐가 쫓아온다.
돌아보니까 엄청나게 큰—지금 서울에 그 쾨코리란 놈 키우제 왜, 동물원에—그런 큰 놈이 입을 떡 벌리고 오는디, 입을 떡 벌리고 그 진(긴) 코를 가지고 쫓아오는디, 아 그놈이 그 엄청나게 큰 놈이 그 힘센 놈이 쫓아오는디, 사람이 그놈한테 안 잡혀 먹을 수가 있나.

헐 수 없이 잡혀 먹게 되아서, 잡히게 되아서 급허기는 허고 도저히 전주헐 달아날 근력도 없고,
그때 마침 보니 짚은(깊은) 못이 하나, 샘이 하나가 있는데, 몇백 질 가량 되는 샘이 있는디, 아 새암가에서 등칠기 하나가 써억 거그서 뻗어 새암으로 들어갔다.

그 새암으로 들어간 칠기를 딱! 잡고는 딱 달어 매여 있다. 달려 있다.
아! 이놈 쾨코리란 놈이, 그 미련헌 놈이 칠기를 이렇게 코로 잡아댕겨도 그까짓, 콧심이 약간 세니까 사람 하나 달려 올릴만 하지마는, 그런 꾀가 없어. 허니까, 올라오기만 기다리고 있다.

허니, 사람이 거그 일시에 위급헌 지경을 피해서 있지마는 오래 어떻게 달려 있을 수가 있나?
팔이 그만 달려 있는 팔 힘이 차츰차츰 그만 그 적어져, 힘이 빠져 그 등칠기 줄을 오래 못 잡고 있게 될만 하다. 그 몸뚱이 달려 있으니까.

그러나 못 밑으로 보니 백 질이나 되는 놈의 못 밑에는 독사가 있고, 독룡이 있고, 그 악어가 있고. 사람 꼭 잡아먹는 것, 무서운 그런 모도 물건들이 있다 그말이여.
그놈들도 그저 사람이 달려 있으니깐 이놈들이 어서 떨어지면 먹을라고, 서로 다 따먹을라고 야단들이지.

독룡, 악어, 다 독헌 놈들이 아! 서로 잡어먹을라고 뛰고 있는데, 그 밑에 들어갈 수는 없지.
올라올라니 쾨코리란 놈이 입을 벌리고 있제, 먹을라고. 하! 이거 사람 죽는다.

그때에 마침 못가에 냉기 하나가 나 가지고 그 천년 고목이 있는데, 고목 냉기에다가서 속 빈 고목 냉기에다가 꿀을 잔뜩 실어 놨는디, 벌이란 놈이 꿀을 실어 놨는디, 꿀이 뭉텅뭉텅 떨어진다.
꿀이 떨어지되 그 방울 수가 다섯 방울이 떨어진다. 오적(五滴)이!

한 방울 먹어. 또 한 방울 먹어. 다섯 방울을 받아 먹고 나니 그 배가 불러서 기운이 새삼스럽게 나고, 그래 그만 등칠기를 더욱 붙잡을 만헌 힘도 있고. 족(足)허제.

그러나 흰 쥐 검은 쥐, 두 마리는 나와서 그 칠기를 썰고 있어. 톱으로 썰데끼 아! 이놈을 툭툭 입으로 막 쪼사 떼고 있으니 잠시인들 있을 수가 있나.
그놈만 안 끊으면 좀 어느 지경까장 있겠는데 그놈을 썰고 있으니까 도리 없다.

“그 지경 되아 있을 적에 어떻게 했으면은 살아가겄느냐?” 요렇게 물었어.

그것이 무엇인고?
갓없는 너른 들에 시방 사람이 가다 그랬거든. 갓없는 너른 들은 생사광야(生死曠野)에다가 비유했고, 사람이 났다가 죽었다가 하는 생사광야에다가 비유했어.

우리가 어디 그 생사가 어디 한 번인가? 한 번 나왔다 한 번 살다 죽으면 그만인가?
몇 몇억만 번을 했을까? 고걸 좀 생각해봐.

잠, 눈을 좀 뚝 뜨고 들어! 눈 지긋이 감고 자올지 말고!(처음~21분35초)

 



(2/3)----------------

도문(道門)에서 도학자(道學者)라고 해 가지고, 뭘 할라고 법문 들어!
법석(法席)에서 눈 지긋이 감고 꾸뿌덕 꾸뿌덕 허면서 자올고 있어.
어느 지경에 있는 걸 좀 알어야지. 사형 무대에서 칼로 탁! 쳐가는 지경이여 이것이.

요까짓 몸뚱이 요걸 믿고 앉어서. 그렇게 업이 중해 가지고, 무거워 가지고 무슨 도를 닦고 있으며, 법문 들어 뭣 혀.
원! 해도 너무허지. 내가 다 보고, 가만히 여그서 다 보이니까 깜박헌 거 다 안다 그말이여.

‘또 본심을 탁 뜨고 그 내 법문 듣고 고대로 똑 닦아야겄구나’하고는, 법문 딱! 듣고는 잘 이대로 똑 예불(禮佛) 젓수고, 이대로 똑 닦아 나가야사 도솔내원궁(兜率內院宮)에 가 피난했다가 내려오는 것이여. 지금 당초에 사바세계(娑婆世界)에 다시 났다가는 큰일나니까.


갓없는 너른 들은 생사광야다. 죽었다가 살았다가 이 중생(衆生)이, 우리 미(迷)헌 이 깨달지 못허고 이 미헌 우리가... 우리, 시방 우리여. 우리를 비유헌 거여.

전생에 어디서 또 살다 또 죽어서 금생에 왔다. 무변광야(無邊曠野)는 생사광야에 비유했고, 쾨코리는 우리를 잡으러 오는 무상살귀(無常殺鬼) 귀신에다 비유했어. 우리 뒤에 시방 이렇게 잡으러 쫓아와.
그 새암이는 삼악도 지옥이여. 지옥에 들어가면은 지옥고(地獄苦) 받는 형상이여. 나찰(羅刹) 귀신이 모도 칼로 찔러다가서 불에 집어넣고, 쇳물에 집어넣고 태우고 찔르고 헌 거다가 비유했어.
독룡 · 독사는 나찰 귀신, 지옥 귀졸(鬼卒)들한테 비유했어. 거그 빠진다 그말이여.

그런데, 그 새암(샘) 언덕에서 등칠기(등나무)가 나서 그 지옥으로 뻗어 들어간 놈은 그건 우리 생명이여. 우리 명(命)줄.
우리가 지금 며칠이나 살란지 몇 해나 살런지, 고 등칠기 줄이 우리 명줄에 비유헌 것이여.

그 냉기(나무)에서 꿀 다섯 방울 떨어진 것이 오욕(五慾)이여. 부부지간, 아들, 돈, 명예, 여그다 비유했어.

얼마나 묘허게 비유해 놨어.
우리 인생의 우리 사는 이 고해(苦海)에 지금 살고 있는 오탁악세(五濁惡世), 악헌 이 세상에서 이렇게 험악헌 데 지금 걸려 있는 것을 그것 비유헌 것이여.
우리가 그런 악몽을 꾸고 그런 악경(惡境)에 처해 있는 것을 비유해서 말해 놓은 것인데.

딴말 아니여, 이것이! 다! 시방 이렇게 되아 있어. 누구나 막론허고 이렇게 되아 있어.

그러면 그 오욕, 다섯 가지 그 좋은... 꿀이 오직 단가! 부부지간이 좀 좋은가! 아들, 손자, 며느리, 돈, 쌀, 명예가 좀 좋은가!
요놈에 딱 얽혀져서 애착되아 가지고 도(道) 한번 닦지 못헌, 도 못 닦고 무간아비지옥(無間阿鼻地獄)에 이렇게 있다 뚝 떨어져 버리고마는 우리 인생을 비유해서 헌 말이여.
얼마나, 누구 뭐 따로 헌 줄 알어, 이것이?

그러면 그 꿀 딱! 받아먹고 있을 적에 “어떻게 했으면 살아가겄느냐?”

오욕에 꽉 애착된 그 경계를 한번 떼 버리고, 한번 부수어 버리고 애착이 없이 툭! 뛰어 나서 처자고 자식이고 무엇이고 그 불고(不顧)해 버리고.
정반왕궁(淨飯王宮) 모후(母后)니, 뭐, 정반왕궁 아버지니, 정반왕궁 노비 권속이니, 재산, 무슨 싹 한번 내버리고 성(城)을 넘어 설산(雪山)에 들어간 것이, 그것이 모도 애착 애욕을 때려 부수어 버리고 도 닦으러 들어간 장면.

참선(參禪) 하나 척! 해서 대도(大道)를 통해야사만 면(免)허는 것 아닌가?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해야만 생사를 면허는 것인데.
성을 넘어 가거나 말거나, 왕궁을 떠나거나 말거나 이것은 거기에는 관계없어.

그 꼭, 꿀 먹고 있을 적에 그렇게 위태로운, 매달려 있는 그 사람이 곧 우리인데.
“어떻게 했으면은 살아가겄느냐? 해탈허겄느냐?”

그것이 공안(公案), 그 공안 하나 탁! 깨달라 버리면은, 생사 없는 지경을 툭! 깨버리면은 툭 뛰어 나는 경계 아닌가. 그러니 거기에 붙어 있는 공안이여, 그것이.

꽉 매달려 있는데 “어떻게 했으면 살아가겄느냐?” 물으니깐.
응? 그, 공안 아니여?

그 공안에서 그래, “말키 참선허는 선객(禪客)들은 한마디씩 일러라” 용성 스님이 전국에다 그 공안을 펴 놨어.

그 등칠기 줄에 매달려 있을 적에 올라가도 쾨코리란 놈이 잡아먹고, 가만히 있어도 흰 쥐 검은 쥐가 그놈 끊고.
흰 쥐, 검은 쥐는 일월(日月)이여. 밤 가면 낮 오고, 낮 가면 밤 가고. 그 그렇게 몇 해 가다 인자 뚝 떨어지면 죽는 것 아닌가.

말키 이렇게 비유해 놨는디, 그보담도 더 위험헌 지경(地境)이 없다 그말이여.
우리 인생이 얼마나 위험헌 지경인가! 이 지경이. 거그서 뭣을 헐 것인가, 생사를 두고!
이러헌 무서운 생사, 죽음을 앞두고 뭘 헐 것이냐 그말이여.

잠깐, 살인 강도가 그만 죄는 지었다 그만 붙잽혀 가지고 사형 무대로 죽으러 가는 길이 우리도 똑같어!
더 무서운 우리 사형선고(死刑宣告)여, 이것은 기한(期限)도 없다.
그건 어느 때 죽는다는 기한이나 있지마는 우리의 사형선고 기한이란, 기한도 없다.

참으로 때없이... 아주 오늘 내일이 있고, 금년 내년이... 아주 그 세월을 다 살 줄 아는구나!

딱! 달려 매여 있을 적에, 꿀 딱! 받아먹을 적에, “어떻게 했으면 살아가겄느냐?”
공안이 거그 있지 않는가. 그 공안 아닌가. ‘어떻게 했으면 살아가겄느냐’는 공안이 거그 들어 있어.

그런데 아! 거그서 대체 모도 큰스님네가 다 답 안 했어?

만공 큰스님은 “꿈이니라”
그 다 이(理)와 사(事)가 딱딱 들어맞어야 되니까, 답이라는 게.

“꿈이니라. 꿈에 그런 지경이 있제, 생사야 어디 있느냐” 그 평상화(平常話)제. 이렇게 답해.
좀 잘허셨제. 답이야 아, 그 이상 더 어떻게 해. “꿈이니라. 작야몽사(昨夜夢事)니라”

또 보월 큰스님께서는 “하시(何時)에 입정(入井)가? 언제 누가 새암에 들어갔나?”
새암에 아직 안 들어간, 본래 생사 없는 경계를 답헌 것이여.

다 잘허셨제, 못했어?

고봉 스님은 거그 달려서 그대로 받는 것이다 그말이여.
“아야, 아야!”
그놈 뭔, 뚝 떨어지면 지옥 귀신이 집어 먹는 경계를 그대로 써 버렸다 그말이여.

그거 무슨, 시법(是法)이 주법위(住法位)해서, 이 법이 법위(法位)에 주해서 세간상상주(世間相常住)헌 도리가 그대로 법인디,
중생의 “아이고! 대고!” “아야! 아야!” 생노병사, 중생 환화(幻化)가 개시묘체(皆是妙體)인디, 개시해탈법(皆是解脫法)인디, 뭐 어디가 걸리고 안 걸릴 것이 있나?

달인분상(達人分上)에, 깬 분상에는, 깨달은 분상에는 소도 역득(亦得)이고 개도 역득이고, 수류인득성(隨流認得性)이면 무우역무희(無憂亦無喜)인디, 뭔 걸림 있어?
“아야! 아야!” 해탈경계 그대로 써버렸제. 좀 잘 일렀어!


이 법문을 들었다고, ‘밤낮 들은 법문이니깐 또 들어?’ 그런 소리 말어! 그러헌 그 푸딱진 용이심(容易心) 붙이지 말어!
그런게 모도 들은 것 또 헌다 싶어서 용이심이 나고 푸딱진 마음이 나니까, ‘그까짓 것’허는 마음이 나니까 그만 자올고 그러지.
업이 꽉 차 가지고 그놈의 업에 무량겁을 생사고(生死苦)만 받고 와 가지고 법석에서도 졸고 앉었지.

그 얼마나 다행하고 얼마나 만행(萬幸)한가. 척! 집을 여의고 들어와서 이러헌 참, 떠억 그 법보선원에 들어와서 도 닦고 있는 이 지경이 얼마나 다행하고 만행헌 것이여!


자, 그 다음에 왼통 뭐 뭐 한국 혜봉 큰스님으로 훌륭헌 큰스님인데, 그 큰스님은 답을 허시되 “불불능갱작불(佛不能更作佛)이다”

아! 불(佛)이 무슨 다시 부처 되나? 본래 부처가 어떻게 부처가 또 되아? 뭔, 부처가 부처가 되아?
부처도, 본래 부처라 해도 그 패궐(敗闕)이 불소(不少)인디, 거다 또 부처 되아? 그 뭐, 거다 뭘 이를 게 있어?
본래 부처가 어디 무슨, 생사가 무슨 하관(何關)고? 뭐, 어찌 살아 나가는 도리가 무슨 소용이여.
떡! 본분불(本分佛)로 딱 대답을, 본각불(本覺佛)로 딱 대답해. 다, 그 이상 더 이를 수 없어.

용성 큰스님은 그냥 격외(格外), 격외. “표화(瓢花)가 천리출(穿籬出) 와재마전상(臥在麻田上)이니라”
바가지 그 박꽃을, 박씨를 울타리 밑에 심어 놨는디, “그 박이 나 가지고 울타리로 뀌고 울타리 밖에 나가서, 저 밖에 나가 삼밭에 박이 열어 가지고 누웠느니라”
그랬은게 그건 그대로 격외,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 도리로 격외 딱 한마디 일러 버려.

다 초월생사여. 생사도 없어! 거그 뭐 죽고 사는 그—안 맞는다는 게 아니여! 다 잘 일르셨어. 그 이상 더 이를 수 없어.

허지마는 나는, 그 쬐끄만헌 내가, 이 용잔허고 조잔헌 그 그때 어린, 아! 내가 말이여,
“큰스님네가 다 이른 법문이 거 용 대가리를 베 버리고 배암 대가리를 이어 붙였고, 용 꼬랑댕이를 모도 베고서는 거다가 모도 딴 꼬랭이를 모도 붙였고, 발을 모도 오리발을 베 버리고 닭발을 이었고,
암만 천하없이 공안이라는 것은 딱딱 그대로 붙어 있는 공안을 그대로 찾어다가 딱 일러야 하는 것이지, 엉뚱헌 놈 갖다가 척척 일러 놔 봤던들 그것이, 아무래도 그것이 큰스님네가 다 암만 잘 일르셨지마는 아닙니다!”
이랬네 내가. 내까짓 것이 이랬단 말이여.

그때 그 법문, 시대 법문해 논 거를 내가 딱 다 했기 따문에 여그 올라와 이런 법문을 허는 거제, 없는 법을 내가 지어서 이렇게 말헐 수가 있나. 생각해 보지. 그건 절대로 못허는 법이여!
그 얼마나 내가 해 논 것이 역사적으로 전통해 왔는디, 내가 여그서 무슨 뭐 변명을 헐 것인가, 뭣헐 것인가. 그때 헌 놈인데.

“그러면 어디 영신(永信) 신수좌는 어떻게 헐텐가?” 내가 그때 영신이니깐.

그래 글쎄, 그렇게 미쳐 가지고 글쎄 옳은 견성인가 그른 견성인가, 글쎄 곡성 동리재 넘어가다가 그 호랭이가 사람 잡아먹은 그놈의 재를 내가—재는 별로 높으지 않는디, 아! 그놈의 재를 바라보고 물 건너 노디를 뛰어 가다가 그만,
“담 너머에 외 따 오니라”

“운무중(雲霧中)에 소를 잃었으니 어떻게 했으면 소를 찾겄는냐?”
그만 그놈이 느닷없이, 내 화두 간 곳 없이 그놈이 들어와 가지고 툭! 그만 무슨 그 견성 경계가 나오는데, 참말로 그 지경을 설향수(說向誰)오. 누구한테다 말헐 꺼여.

그래 가지고는 “이때에 조주의(趙州意)를 묻거드면은...” 무자(無字)를 돌아보니까... 무자에 걸음을 노디를 뛰는디,
“이때에 유인(有人)이 문아서래의(問我西來意)하면, 어떠헌 사람이 나한테 이때 서래의(西來意)를 묻거드면, 각하(脚下)에 녹수(綠水)는 암전거(岩前去)로구나. 내 다리 발밑에 흐르는 물은 다리로 지내가는구나”

아, 이놈을 하나 해 놓고는 그날 그 재를 넘어가서 호랭이, 사람 처녀 먹은 재를 내가 넘어가서 동리산 가서, 태안사 들어가서 그 오도송(悟道頌)을 지었다고 내가 그렇지 않아 저번 다 얘기했지. 저번에 다 헌 놈이제.


“다 아무리 큰스님네가 이렇게 일렀지마는, 거기에 옳은 공안을 이르들 못했습니다”

얼마나 내가 그 견성(見性)을 내가 그때 했다고 했으니, 옳은 견성인지 그른 견성인지 내가 견성했다고 그랬지, 언제 뭐 내 견성(見性)이 진짜로 했다는 거 아니여!

그래 가지고 혜봉 스님한테 찾아가서 탁마(琢磨)했고, 여지없이 인가 받았고.
인가를 받았는디, 그 끝에 가서 그것 참!

“거년(去年) 가난은 비(非)가난인데 송곳 꽂을 땅이 없더니, 금년 가난은 참말로 가난해서 송곳조차 없구나”
세상에! 여기서 “능각(菱角)이 첨첨(尖尖)이나 불사타(不似他)입니다” 아! 이러니 인가해 준다 그말이여. 인가해 주어!
“능각(菱角)이 첨첨(尖尖)이나 타(他)와 같지를 않습니다” 인가를 해.

아니여! 절대 아니라 그말이여! 아, 그런 밝은 어른이 나를 왜 인가해 주었든고 몰라. 그것!
내가 그 뒤에사 아닌 줄을 발견했거든. 아니란 말이여!

“송곳 꽂을 땅이 없더니 금년에는 송곳조차 없어졌구나. 여래선(如來禪)이라고 여래선밖에는 못되니, 여래선 경계밖에는 안되니, 어떤 게 조사선(祖師禪)이냐?” 아! 묻는디,
내가 그래, “능각(菱角)이 첨첨(尖尖)허지마는 타(他)와 같지는 않습니다”
아! 옳다고, 내가 여지없이 인가를 받았네!

그것 아니라. 거, 아닌 도리인디 ‘거기에서 시방 바로 한마디 일러라’
이것은 내가 이를 수가 없어.

학자(學者)를 위해서 안 일른 공안이 내가 무척 있어.
초당파(燒堂婆 소당파) 법문 내가 죽어도 안 이르고, 이것도 내가 안 일러 주고, 원상(圓相) 법문에 답을 했으되 그 안 일러 주고. 못 혀.

부중선사(不重先師)의 도덕(道德)이요. 선사(先師)의 도덕을 내가 중히 여기지 않고, 불위아설파(不爲我說破)다. 나를 위해 설파치 맙소사. 이러헌 법이여. 설파(說破)해 버리면 법이 아니여.

이것도 지금 큰스님네 답헌 게 다 나왔기 따문에 헐 수 없어 내가 일렀제, 이거 안 일르는 공안이여. 나, 이른 놈은 다 기히 듣고 다 아는 거.
다 용 대가리를 떼 버리고, 왜 배암 대가리를 이어 놔? 왜 용 꼬랑댕이를 떼고, 무슨 뭔 닭 꼬랑댕이같은 걸 붙여 놔? 오리발을 베고 닭발을 붙여 놓고. 그렇게 공안이란 된 법이 아니여.

“여하시조사서래의(如何是祖師西來意)냐?”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판대기 이빨에 털 났느니라”

깨달라 보아! 그거 어떤 공안이 나왔는가 보라. 그 꼭 조사의(祖師意)에 들어맞는 게 딴 디는 안되아. 조사서래의에 꼭 들어맞어.

조사가 누구인가? 그래 거그 송(頌)에 뭐라고 나왔냐 허면, ‘구세소림자허엄(九歲少林自虛淹), 아홉 해 소림에서 허엄했다’
그 아홉 해 소림은 누가 했어? 그 다 가르쳐 논 말이여. 기여니 딴 놈 갖다가 해 논 법 없어.


나는, 자! 큰스님네가 다 법이 잘못됐다는 게 아녀. ‘잘못했다’ 이 말은 “그 공안을 그대로 찾아 거다 일러야제, 된 법 없습니다”

“어떻게 허겄는가?”
“달다!”

그 뭔 말이여? ‘달다’
“달다!” 아! 꿀 먹어, 꿀 빨아 먹은게 달제. 꿀.
“달다!” 오욕에 꽉 취헌 사람이, 오욕락(五慾樂)에 꽉 취헌 사람이, 꿀 빨아 먹는 놈이 그 “달다!” 

‘달다’ 무슨 도리인가? 응? 공안이 그 어떻게 된 도리인가?(21분35초~43분12초)

 

 




(3/3)----------------

그놈 뚝 떨어지자, 제방(諸方) 벌써 선지식(善知識) 스님네가 다 벌써 이렇게 쫙 돔서—아, 수좌(首座) 집안에 잠깐이면 전 주소에 빽 돌아 버리는데—“정영신이가 ‘달다’고 일렀다”
인가 나왔네. 누가 거기에 큰스님네 누가 ‘잘못 일렀다’는 소리 없어.

“옳다!” 한목 인가여. 육대 선지식이고 그때 당시의 수백 명 도 닦는 학자들도 들으면 몰라?
“달다!”헌 데 가서 한목 인가여! 그 통해 버린 것이여.

금봉 스님은 돌아가시드락까장 “그 참말로!”
그때는 인자 ‘전강(田岡)’ 때인게, “전강, 그 ‘달다’는 법문 참, 기가 맥혀!”
아, 늘 평생에 그 “내가 합천 해인사 가서 조실로 가는 것은 똑 전강, 조실 내가 시킬라고 간다!” 이 말 다 했고. 평생 그랬지.

그 공안, 내가 용성 스님이 물어서 용성 스님 묻는 공안을 내가 답했으니까, 여다가 이놈을 넣어 놓아야 허거든, 또.
기위 이거 뭐 내 뭘러도 넣어서, 뭔 책을 하나 만든다니까 여다가 다 넣을 밖에 없어.
아직 멀었나? 어떤 거여? (한 10분, 한 15분 남았읍니다)

그놈 내가 그 답해서, 그 뭐 턱! 그만 육대 선지식한테 한목 인가 다 받아 버렸으니 다시 무슨 내가 어디 뭐 조금이라도 무슨 내가 어디 딴 디 가서, 어디 가서 다시 무슨 법 탁마허고, 뭐 인가 탁마허고 헐 것이 없다 그말이여.

‘인자는 나는 참말로 확철, 내 견성이 진짜 견성이요 옳은 견성이로구나!’ 딱, 그러지마는 그랬다 해서 법 탁마 안 허는 법이 없어.
또 다시 내가 안 본 선지식이 있으니깐, ‘한암 스님 한테를 갈 밖에 없구나’ 한암 스님한테를 갔다 그말이여.

한암 스님으로 말허면은 한국에 참 유명한 선지식인데, 그래도 법은 그 투철치 못허다고 다 이런 평판을 듣고 있는 어른이지마는, 참 계행이 청정하고 동자삭발(童子削髮)로 들어오셔서 강(講) 한번 해서 강사가 되아 가지고 이력(履歷) 다 마치시고,
그런 출가해 가지고는 은사 스님이 석담 스님인디, 석담 스님 앞에 상좌가 되아 가지고 이력 한 벌 다 마치고서는 그러고 평안도로 들어가서, 묘향산 들어가서 희천, 그 무슨 쪼끄만헌 암자에 똑 혼자 사실 데가 들어가서, 바우 틈새기 같은 디서 좁쌀 그저 쬐금씩 뭐 이런 것 생기면 잡숫고, 초기의(草其衣) 목기식(木其食)을 허고 참, 기가 맥히게 토굴 살림을 허되, 그렇게 거룩허게 청정허게 헌 이가 없어.

당시에 한암 스님 유명헌 선지식이여. 그래도 그 법은 학자 가르치는 법이 훌륭허다고는 못 들었어.
그러고, 오도송을 보면은 법량(法量)을 아는디, 그 어른 오도송이 그려. 저번에 내 말씀했지마는.

착화주중안홀명(着火廚中眼忽明)이다  종차고로(從此古路)가 수연청(隨緣淸)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착화주중안홀명(着火廚中眼忽明)이다. 내가 정지에 들어가서, 토굴에 사시니까 밥을 해 잡술라고 부섴에서 불을 부르르르 불다가 눈이 확연히 밝았다. 견성을 했다 그말이여.
종차(從此)로 고로(古路)가 수연청(隨緣淸)이다. 일로 쫓아서 옛길이 인연따라 맑다.

이렇게 했어. 고 밑에,

약인(若人)이 문아서래의(問我西來意)허면  암하천명불습성(岩下泉鳴不濕聲)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불을 부엌에서 때서 밥해 먹을라고 불을 불다가 눈이 활연히 밝았는데, 종차(從此)로 고로수연청(古路隨緣淸)이다. 일로 쫓아서 옛길이 인연따라 맑다. 생사가 없다 그말이제. 생사가 통 생사에 관계없다 이말이여.

이때에 만약 서래의(西來意)를 묻거드면, 불법대의(佛法大意), 서래의를 묻거드면은 암하천명(岩下泉鳴)인디 불습성(不濕聲)이라. 바우(바위) 아래 샘이가 울었는디, 바우 아래 샘이가 젖지 않는 소리로 운다. 요렇게 새기드구만.

당최 그 견성구(見性句)가 아니여! 영, 아니여!

그래도 그래도, 그런 도인이기 따문에 참, 이름이 그렇게 나셨제.
나셨는데, 인자 거그 계시다가는 금강산으로 나와서 금강산 지장암에 계신다 해서 우리가 모도 쫓아 가서, 학자가 많이 쫓아가서 한 40명 학자가 모여 지내는디, 내가 쫓아 들어갔다. 절을 척 허고는,

“어디서 온 수좌인고? 이름이 누구인고?”
“예! 그저 소승 이름이 정영신입니다”

“허! 정영신이여. 하! 거, 많이 들었는디”
아! 듣고 말고, 그건 뭐 말할 것 없어. 한암 스님도 우리도 기맥히 듣지마는 아, 남방에 그 야단치고 돌아댕기는 정영신을 모를 리가 없거든.

처억 그 나한테 공안을 묻는데—정영신이 발써 그 육대 선지식이 한목 인가 법문 다 나왔고, 마곡 혜봉 스님한테 그 조사선, ‘어떤 게 조사선이냐?’는 거 다 대답했고, 혜월 스님한테 가 공적영지(空寂靈知) 다 대답했고,
지금 쏴악 다 들어가서, 다 벌쎄 다 소식이 그만 다 알고 계시니까, 정영신이라고 헌께 “허, 그렇겄다” 고 허더니 법을 묻는디,

어디 보통 그러헌 그 『염송(拈頌)』 같은 디 물으면은 내가 다, 그 어디서 다 언제 내가 염송을 봤어? 염송이 그 대교(大敎)인디 새파란 젊은 스물세 살 먹어서 경신년에 갔는데, 그때 경신년이 네 살인가?
아, 그러니 어떻게 내가 그 무슨 답이 어떻게 알 것인가 그것을? 기중 어디 『속전등(續傳燈)』인가 어디 있다는 법문을 묻는데, 그 처음 들었지, 누가 알았나?

‘육조 스님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이라고 한디 바리때를 전헐 수가 없으니 대중은 어떻게 했으면 바리때를 받겠느냐?’ 바리때, 그 바리때가 인가니까 그때는. ‘어떻게 일렀으면 인가를 받겠느냐?’ 이런 법문이 있어.
그래, 그런 공안이 있으니 “그 영신(永信)이 신수좌(信首座), 그놈 한마디 이르게”

“육조 스님 본래무일물이라고 헌 디도 바리때는 전헐 수가 없닥 했고, 어떻게 그러면 일러야 바리때를 받겄느냐? 이렇게 물은 공안이 있으니 거, 답하소”
문제가 있나! 어, 그런 데가 무슨 문제가 있냔 말이여!

아! 그런 데가 걸리면은 뭔 놈의 그 ‘달다!’ ‘달다!’ 답헌...
그 꿀 딱! 먹고 있을 때 ‘달다!’ 그 답 나왔지. 그 이 답이 그렇게 공문에도 있고, 석문(釋門) 우리 부처님 석문에도 우리 불가에도 있고, 예수교에도 있고, 천주교에도 있고, 유교에도 있고, 장자교에도 있고, 다 있대야!
다 있어 답이 나왔는디, 천 답 만 답이 나왔어도 ‘달다!’ 답은 없어. 그러면은 ‘달다같이 그대로 그만 그 나온 답이란 건 없다’ 그때 당시에 내가 답해 논 뒤에 그런 논평이 다 있었어.

아, 그런 답, 거 ‘육조 스님 본래무일물이라 한 디는 인가할 수가 없으니, 어떻게 답을 해사 인가를 받겠느냐?’ 그 답이 당시에 칠백 명이 그렇게 수천 답을 했어도 인가 안 했어. 인가 못 받았어. 그러니 그 공안이 기가 맥힌 공안이여.

그러면 거가서 하나가 인가 받은 공안이 있는디, 인가 받은 공안 답이 딱 붙어 있어.
그러니 딱! 당신이 알고 묻는데 응, 어쩔 것이여?

당장 묻자, 대답을 처커덕 헌게—오히려 더 밝게 했네, 거그 문답보담. 똑, 문답이 더 밝아!
그놈 또 내가 안 일러 주제. 어떻게 했다는 것 못 혀. 내가 답해서 인가 받았단 말만 하지, 뭔 어떻게 답헌 건 내가 안 혀.

물팍을 탁! 치면서 “참! 듣든 말과 같구나! 남방에 정영신이라고, 듣든 것과 같구나!” 그만 그대로 쾌허를 혀.
인자 그래 놨으니 다시 무슨 일이 있나? 일 없어.

그리 허고 그해 여름 그만 거그서 한암 스님 모시고 그해 여름을 떠억 지나고 인자 가을에는—자! 다 보았으니 선지식 스님은 내가 다 인자 한암 스님까장 다 찾아뵙고 내가 탁마 다 했고, 인가 다 받았으니 이제는 만공 큰스님을 찾아갈 밖에 없구나. 인자 만공 큰스님을 찾아 나오는 판이여.

그동안에 한암 스님한테 지낸 것도 다 아시고—내가 인자 만공 큰스님께 처음에 그 도 닦아서 거그서 인자 도 닦고, 두 철만에 닦고는 그러고는 인자 하직허고 나갔었는디 그 안에는 한번도 온 예가 없거든.

만공 큰스님은 정영신이가 발써 거그서 두 철만에 나가더니 견성했다고 해 가지고는 혜봉 스님한테로, 혜월 스님한테로, 제산 스님한테로, 서울 용성 스님한테로, 한암 스님한테로 다 발써 지내서 인가 다 받고 내려온다 소문을 다 듣고 앉어 계셔.

허어! 그래 척 들어가서 만공 큰스님한테 가서 절을 척—그전에 늘 모시고 있던 큰스님인께 가서 척 앞에 가서는 대번에 그래 절을 척 허니, “심마물(甚麽物)이 임마래(恁麽來)인고?”
그래 다시 턱 일어나 절을 처억 했지. 좀 잘했나! 참, 기가 맥히지!

“심마물이 임마래인고?” 절을 헌게, “심마물이 임마래냐?” 절을 했는데, 또 “심마물이 임마래인고?”
절을 떡 했다 그말이여.

허니까, 또 세 번 “심마물 임마래냐?”
절헌 것은 본체만체허고, 세 번을 묻는다 그말이여.

세 번만에는 주먹을 그냥 꽉! 들어 댔단 말이여, 이렇게. 아!
“허어! 실패로고! 갱유야행인(更有夜行人)이냐, 누가 다시 밤 사람 있는 것을 알 수가 있겠느냐?”

아! 그러시더니 영, 그만.
“허! 그동안에 네가 왜 그렇게 분다히 돌아댕기고 야단치고 댕기느냐? 뭣 따문에?” 방맹이를 처내리는디, ‘공연히 나를 꺾을라고 그러신다’ 이 곧이 하나 안 듣켜.
그 망하는 것이여. 큰스님이 옳게 봐 가지고 학자를 다루는데 거그서 믿지 않고 제대로 뿌지러 나가면 그놈 아주 뒈진 것이여. 창자도 못쓴 것이여.

거그서 그만 세 번째.
절 한번 떡 했지. 또 “심마물이냐?” 절 다시 했지. 거까장은 더 헐 수 없는 것이여.

또 “심마물고?” 세 번 묻는디, 주먹을 척!—이것이 죽었다 그말이여.
응, 이것이 말 배때기 바로 들어가고, 나귀 배때기 바로 들어간 것이여!

눈 밝은 학자, 바로 들어! 내 공부헌 학자들은 바로 들으란 말이여!
그놈의 짓을 왜 했냔 말이여, 이거 왜? 저 죽는 놈의 응, 제 모가지 친 거여 그게.

다 했제? 녹음 넣기 위해서... 그렇지마는 이 법문을 들어야 허는 것입니다.

대중 다 법문 듣니라고 애썼소마는, 꼭 들어야 헐 것 아닌가!
꼭 들을 것이 무엇인고? 꼭 듣고 믿어서 헐 것이 무엇인가? 이 법 밖에 또 있어? 부탁합니다.(43분13초~60분28초) (일대기 6호 끝)

 

 



----------------(1/3)

*(게송) ‘금조상별후~’ ; 『청허당집(淸虛堂集)』 ‘送芝師(지사를 보내며)’ 참고.
*정법문중(正法門中) ;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을 따르는 집안.
*도반(道伴) ; 함께 불도(佛道)를 수행하는 벗. 불법(佛法)을 닦으면서 사귄 벗.
*인연(因緣) ; ①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분 또는 관계.  ②어떤 상황이나 일, 사물과 맺어지는 관계(연줄). ③인(因)과 연(緣)을 아울러 이르는 말. 곧 결과를 만드는 직접적인 힘(因)과 그를 돕는 외적이고 간접적인 힘(緣).
*장본(張本 어떤 일을 벌이다 장/근본·뿌리 본) ; ①어떤 일이 크게 벌어지게 되는 근원(根源). ②장본인(어떤 일을 꾀하여 일으킨 바로 그 사람).
*주인공(主人公)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청정한 부처의 성품을 나타내는 말. 주인옹(主人翁).
*본래면목(本來面目 밑 본/올 래/낯 면/눈 목) ; ①자기의 본래(本來) 모습(面目). ②자신이 본디부터 지니고 있는,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의 성품.
본지풍광(本地風光), 본지고향(本地故鄉), 본분전지(本分田地), 고가전지(故家田地), 천진면목(天眞面目), 법성(法性), 실상(實相), 보리(菩提), 부모에게서 낳기 전 면목(父母未生前面目), 부모에게서 낳기 전 소식(父母未生前消息) 등이 모두 같은 맥락에서 쓰이는 말이다.
*낯반대기 ; 낯바대기('낯—눈·코·입 등이 있는 얼굴의 앞쪽 면'을 속되게 이르는 말). 낯판대기.
*사미과(沙彌科) ; 우리나라 전통강원의 수학 과정 중 처음으로 배우는 과목이다.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 · 『사미율의(沙彌律儀)』 · 『치문경훈(緇門警訓)』 · 『선림보훈(禪林寶訓)』 등을 배운다.
*치문(緇門 검다·검은 옷·스님 치/문·집안·문벌 문) ; 치문경훈(緇門警訓). 불문(佛門)에 처음 든 어린 사미(沙彌)가 공부하는 데 경책(警策)과 교훈(敎訓)으로 삼을 만한 중국 역대 고승(高僧)들의 글을 모아 엮은 책.
치문(緇門)은 치의(緇衣 : 스님이 입는, 회색에 가까운 괴색의 색깔로 물들인 옷)를 입은 스님의 일문(一門)이라는 뜻으로 불문(佛門)을 말한다.
*업(業) ; 업(業)은 행위(行爲)이다. 우리의 행위, 행동에 의해 일어나는 일종의 세력(勢力) 또는 형성력(形成力)을 말한다. 그리고 이 세력에 의해 하나의 행위는 반드시 그 때가 이르면 그에 상응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〇업의 종류 ; (1)중생이 행하는 모든 행위를 3가지로 나누어, ①몸으로 행하는 모든 행위를 신업(身業) ②입(口)을 통해 말로 하는 행위를 구업(口業) ③생각으로 짓는 모든 것을 의업(意業)이라 한다.
이 3가지 업(業)을 신·구·의 삼업(三業)이라 하는데, 삼업(三業)은 결국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우리의 일상생활’이다
(2)업에 의하여 과보(果報)를 받는 시기에 따라 ①금생(今生:지금 살고 있는 생)에 업을 지어 금생에 과보를 받는 순현업(順現業) ②금생에 업을 지어 다음 생에 받는 순생업(順生業) ③금생에 업을 지어 삼생(三生) 후에 받는 순후업(順後業)이 있다. 위의 삼시업(三時業)은 갚음을 받는 시기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정업(定業)이라 하고, 여기에 대해서 시기가 정해져 있지 않은 것을 부정업(不定業)이라 한다.
(3)업의 성질(性質)에 따라 ①선심(善心)에 의해서 일어나는 선업(善業)과, ②악심(惡心)에 의해서 일어나는 불선업(不善業, 악업(惡業))과, ③선악(善惡) 어떤 것도 아닌 무기심(無記心)에 의해서 일어나는 무기업(無記業)의 셋을 삼성업(三性業)이라고 한다. 그 과보도 선업은 좋은 과보를 받고, 악업은 고(苦)의 과보를 받는다.
*명한(命限) ; 목숨의 한도.
*준동함령(蠢動含靈 꿈틀거릴 준/움직일 동/머금을·품을 함/신령·신령할 령) ; 꿈지럭거리며 움직이는 함령(含靈, 심령心靈을 가지고 있는 것). 모든 생물. 중생(衆生).
*업보(業報) ; 자신이 행한 선악(善惡)의 행위에 따라 받게 되는 과보(果報).
*질다 ; ‘길다’의 사투리.
*짜룹다 ; ‘짧다’의 사투리.
*형루(形累 형상·모양·몸 형/묶다·괴롭히다·근심 루) ; 형(形)은 중생의 형태, 루(累)는 거기에 따르는 고달픈 삶을 말한다. 중생의 몸이 전생의 업에 묶여 고달픈 삶을 살아야 하므로 ‘형루(形累)’라고 한다.
*유체(遺體 남길 유/몸 체) ; ①’부모가 남겨 놓은 몸’이라는 뜻으로, 자기의 몸을 이르는 말이다. ②‘시체(屍體)’를 달리 이르는 말.
*가자(假藉 임시·일시/깔다·빌리다 자) ; 임시로 빌림.
*솔찬이 ; 솔찬히. ‘아주 많이. 상당히. 제법’의 사투리.
*몸뚱이 이나따나 ; 몸뚱이 이것이나마.
*사대색신(四大色身) ; 지 · 수 · 화 · 풍(地水火風) 사대로 이루어진 몸.
*사대(四大) ; ①지(地) • 수(水) • 화(火) • 풍(風)을 말함. 대(大)란 원소란 뜻. 일체의 물질을 구성하는 네(四) 가지 원소(大).
(1)지대(地大) : 굳고 단단한(堅) 것을 성(性)으로 하고, 만물을 실을 수(負載) 있고, 또 질애(質礙)하는 바탕. 질애(質礙)란 일정한 공간을 점유하여 다른 존재와 서로 융화하지 못한다는 뜻.
(2)수대(水大) : 습윤(濕潤)을 성으로 하고, 모든 물(物)을 포용(包容)하는 바탕.
(3)화대(火大) : 난(煖)을 성으로 하고, 물(物)을 성숙(成熟)시키는 바탕.
(4)풍대(風大) : 동(動)을 성으로 하고 물(物)을 성장케 하는 바탕.
②신체를 말함. 원래, 신체는 지•수•화•풍의 4대 원소로 이루어졌다고 보는 데에서 연유함.
*들입다 ; 세차게 마구.
*뒷세상 ; 내세(來世). 죽은 뒤에 다시 태어난다는 다음 세상.
*후생(後生) ; 내생(內生). 죽어서 다시 새롭게 태어나는 삶.
*안수정등 기능장구(岸樹井藤 豈能長久) ; ‘언덕 위의 나무와 우물가의 등(藤)나무가 어찌 오래 갈 수 있겠는가’
[참고] [치문경훈(緇門警訓)] 《위산대원선사경책(潙山大圓禪師警策)》에서.
夫業繫受身 未免形累  稟父母之遺體 假衆緣而共成 雖乃四大扶持 常相違背 無常老病 不與人期  朝存夕亡 刹那異世 譬如春霜曉露 倏忽卽無 岸樹井藤 豈能長久 念念迅速  一刹那間 轉息 卽是來生 何乃晏然空過

대저 업(業)에 얽매여 받은 이 몸은 형상과 근심을 면치 못한다. 부모가 내려주신 유체(遺體, 父精母血)를 받아 여러 인연을 임시로 빌려 함께 이루었다.
비록 다만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四大)가 모여 견디어내나 항상 서로 어기고 등져 무상(無常)하게 늙고 병들어 가는 것이 사람으로 더불어 때를 정하여 약속하지 않아서, 아침에 있다가 저녁에 죽어 찰나에 세상을 달리하게 된다.
비유하면 봄날의 서리 새벽이슬과 같아 갑자기 없어지니, 언덕 위의 나무와 우물가의 등(藤)나무가 어찌 오래 갈 수 있겠는가. 순간 순간 빠르고 빨라서 일찰나 사이에 숨이 떨어지면 곧 내생이니, 어찌 편안히 헛되게 지내리요.
*새암 ; ‘샘, 우물’의 사투리.
*등칠기 ; 등칡(등藤나무). ‘칠기’는 ‘칡’의 사투리.
*탄탄대로(坦坦大路 평탄할·평평할 탄/큰 대/길 로) ; ①험하거나 가파른 곳이 없이 넓고 평평하게[坦坦] 큰길[大路]. ②아무런 어려움이 없는 순탄한 장래를 이르는 말.
*쾨코리 ; ‘코끼리’의 사투리.
*족하다(足-- 충족하다·가득 참 족) ; 모자람이 없이 넉넉하다.
*갓없다 ; ‘가없다(끝이 없다)’의 옛말.
*생사광야(生死曠野) ; 생사의 넓은 들판. 중생이 벗어나지 못하는 고통스러운 윤회의 세계를 광야(曠野)에 비유한 말.

 

 



----------------(2/3)

*도문(道門) ; ①도에 이르는 문. 부처님의 가르침. ②불문(佛門). 부처님의 법문(法門). 불교(佛敎)라는 문. 부처님의 가르침에 들어서는 문. 깨달음으로 들어서는 문.
*도학자(道學者) ; 도(道)를 닦는 사람. 수행자(修行者).
*도(道) ; ①깨달음. 산스크리트어 bodhi의 한역. 각(覺). 보리(菩提)라고 음사(音寫). ②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그 방법. ③무상(無上)의 불도(佛道). 궁극적인 진리. ④이치. 천지만물의 근원. 바른 규범.
*법석(法席) ; 대중이 둘러앉아서 설법, 독경, 강경, 법화(法話) 따위를 행하는 자리.
*예불(禮佛) ; ①경건한 마음으로 부처님에게 절함. ②절에서 아침·저녁 두 차례에 걸쳐 불·보살(佛·菩薩)에게 예배하는 의식.
*젓수다 ; ①궁중에서 ‘잡수다’를 이르던 말. 잡수다-->‘먹다’의 높임말. ②신과 부처님께 소원같은 것을 비는 것. ③(사람이 제사를)차려 올리다.
*도솔내원궁(兜率內院宮) ; 도솔천내원궁(兜率天內院宮). 욕계 육천(欲界六天)의 넷째 하늘. 불교의 우주관에 따르면 우주의 중심은 수미산(須彌山)이며, 그 꼭대기에서 12만 유순(由旬) 위에 도솔천이 있는데 이곳은 내원(內院)과 외원(外院)으로 구별되어 있다.
내원은 내원궁(內院宮)으로 불리기도 하며 석가모니가 보살일 당시에 머무르면서 지상에 내려갈 때를 기다렸던 곳이며, 오늘날에는 미래불인 미륵보살(彌勒菩薩)이 설법하면서 지상으로 내려갈 시기(석가모니가 입멸한 지 56억 7천만 년 뒤에)를 기다리고 있는 곳이고, 외원은 수많은 천인(天人)들이 오욕(五欲)을 충족시키며 즐거움을 누리고 있는 곳이다. 도솔(兜率)의 뜻은 지족(知足).
*사바세계(娑婆世界) ;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이 세계. 현실의 세계. 인토(忍土) · 감인토(堪忍土) · 인계(忍界)라고 한역.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중생들을 교화하는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가 모두 사바세계이다.
*중생(衆生) : 참 성품을 잃어버리고 망녕된 온갖 생각이 분주하게 일어났다 꺼졌다 하기 때문에, 온갖 세계에 돌아다니면서 났다 죽었다 하는 무리들, 곧 정식(情識)이 있는 것들을 모두 중생이라 한다.
그러므로 사람뿐 아니라 모든 동물과 귀신들과 하늘 사람들까지 합쳐서 하는 말인데, 유정(有情) • 함령(含靈) • 함식(含識) • 군생(群生) • 군맹(群萌) • 군품(群品) 같은 여러 가지 말로도 쓴다.
부처님은 구제의 대상을 인류(人類)에게만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와 같은 중생 전부를 가르치고 건지시는 것이다.
*미(迷) ; 미혹(迷惑), 미망(迷妄), 미집(迷執)의 준말. 진리에 어두움. 마음이 흐리고 혼란함. 깨달음(悟)의 반대. 무명번뇌로 인하여 사리를 밝게 깨치지 못하고 전도몽상(顚倒夢想, 바르게 사물을 볼 수 없는 미혹함)하는 것.
*무변광야(無邊曠野) ; 끝없이 넓은 들판.
*무상살귀(無常殺鬼) ; ‘무상(無常)’이라고 하는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殺] 귀신(鬼神)이라는 뜻. ‘인간존재가 무상하다’는 것의 무서움을 비유한 말.
*나찰(羅刹) : 신속하게 땅이나 공중으로 다니면서 사람을 잡아 먹는다는 무서운 악귀(惡鬼). 나중에 불교의 수호신(守護神)이 되었다.
*귀졸(鬼卒) ; 염라국(閻羅國 저승)에 살면서 염라대왕의 명령을 받아 죄인을 다루는 옥졸. 염라졸(閻羅卒), 염마졸(閻魔卒), 염라인(閻羅人)이라고도 한다.
*명줄(命-) ; ‘목숨의 길이’를 속되게 이르는 말.
*오욕(五欲,五慾,五欲樂) ; ①중생의 참된 마음을 더럽히는—색,소리,향기,맛,감촉(色聲香味觸)에 대한—감관적 욕망. 또는 그것을 향락(享樂)하는 것. 총괄하여 세속적인 인간의 욕망.
②불도(佛道)를 닦는 데 장애가 되는 다섯 가지 욕심. 재물(財物), 색사(色事), 음식(飮食), 명예(名譽), 수면(睡眠).
*고해(苦海) ; 중생이 태어나서 죽어 윤회하는 영역으로서의 세 개의 세계, 삼계(三界 : 욕계欲界 · 색계色界 · 무색계無色界)에서 생사의 괴로움이 무한하므로 바다에 비유함.
*오탁악세(五濁惡世 다섯 오/흐릴 탁/악할 악/세상 세) ; 명탁(命濁), 중생탁(衆生濁), 번뇌탁(煩惱濁), 견탁(見濁), 겁탁(劫濁)의 다섯 가지 더러운 것으로 가득찬 죄악의 세상.
[참고] ①명탁(命濁) : 말세가 다가와 악업(惡業)이 늘어감에 따라 사람의 목숨이 점차 짧아져 백년을 채우기 어려움을 이른다.
②중생탁(衆生濁) : 중생이 죄가 많아서 올바른 도리를 알지 못하는 것을 이른다.
③번뇌탁(煩惱濁) : 번뇌로 인하여 마음이 더럽혀지는 것을 이른다.
④견탁(見濁) : 그릇된 견해나 사악한 사상이 만연해지는 것을 이른다.
⑤겁탁(劫濁) : 기근과 전쟁과 질병 등의 재앙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시대.
*무간지옥(無間地獄) ; 아비지옥(阿鼻地獄)이라고도 함. 아비(阿鼻)는 산스크리트어 avīci의 음사(音寫)로서 ‘아’는 무(無), ‘비’는 구(救)로서 ‘전혀 구제받을 수 없다’는 뜻. 고통이 끊임없으므로 무간(無間)이라 함.
아버지를 죽인 자, 어머니를 죽인 자, 아라한을 죽인 자, 승가의 화합을 깨뜨린 자, 부처의 몸에 피를 나게 한 자 등, 지극히 무거운 죄를 지은 자가 죽어서 가게 된다는 지옥.

이 지옥에 떨어지는 죄인에게는 필파라침(必波羅鍼)이라는 악풍(惡風)이 있는데 온몸을 건조시키고 피를 말려 버리며 또 옥졸이 몸을 붙잡고 가죽을 벗기며, 그 벗겨낸 가죽으로 죄인의 몸을 묶어 불 수레에 싣고 훨훨 타는 불구덩이 가운데에 던져 넣어 몸을 태우고, 야차(夜叉)들이 큰 쇠 창을 달구어 죄인의 몸을 꿰거나 입, 코, 배 등을 꿰어 공중에 던진다고 한다. 또는 쇠매(鐵鷹)가 죄인의 눈을 파 먹게 하는 등의 여러 가지 형벌로 고통을 끊임없이 받는다고 한다.
*불고(不顧 아니 불/돌아볼 고) ; 돌아보지 않음.
*설산(雪山) ; 인도 북부에 솟아 있는 히말라야 산맥을 가리키는 말. 눈[雪]을 품은 곳이란 뜻. 설령(雪嶺) · 동왕산(冬王山) · 대설산(大雪山) 등이라고도 한다. 부처님의 탄생지인 카필라바스투 역시 설산의 기슭에 위치하고 있다. 석가모니가 수도한 산.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공안(公案) : 화두(話頭)。①정부 관청에서 확정한 법률안으로 백성이 준수해야 할 것。②선종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이것을 화두라고도 하는데 문헌에 오른 것만도 천칠백이나 되며, 황화취죽 앵음연어(黃花翠竹鶯吟燕語) — 누른 꽃, 푸른 대, 꾀꼬리 노래와 제비의 소리 등 — 자연현상도 낱낱이 공안 아님이 없다.
화두에 참구(叅句)와 참의(叅意)가 있다。이론적으로 따져 들어가는 것이 참의요 사구(死句) 참선이며, 말길 뜻길이 끊어져서 다만 그 언구만을 의심하는 것이 참구요 활구(活句) 참선이다.
*말키 ; ‘말끔(조금도 남김없이 모두 다)’의 사투리.
*선객(禪客 참선 선/손님·사람 객) ; 참선 수행을 하는 사람.
*지경(地境 땅·장소·처해 있는 형편 지/지경·경계·경우·상태·장소·처지 경) ; ‘어떠한 처지’나 ‘형편(일이 되어 가는 상태나 경로 또는 결과)’, ‘정도(程度)’의 뜻을 나타내는 말.
*사형선고(死刑宣告 죽을 사/형벌 형/밝힐 선/알릴 고) ; 공판(公判)을 행하는 법정(法廷)에서 사형에 처한다는 판결 내용을 알리는 일.
*기한(期限 때·기간·기한 기/한정 한) ; 미리 일정한 한도(限度)로 정해 놓은 시기(時期).
*때없이 ; 정해진 시간이 없이 아무때나.
*이(理) ; ① 본체. 본성. 원리. ②진리.
*사(事) ; ①현상. 차별 현상. 사물. 대상. 사태. ②분별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파악된 대상. 직관으로 파악된 대상.
*시법주법위(是法住法位) 세간상상주(世間相常住) ; 『법화경(法華經)』 권1 제2 방편품(方便品). ‘이 법이 법위(法位)에 주해서 세간상(世間相)이 상주(常住)니라’
*법위(法位) ; 진여(眞如 궁극적인 진리. 깨달음의 지혜. 부처의 성품)의 다른 이름. 진여는 모든 법이 안주(安住)하는 자리이므로 법위라고 한다.
*세간상(世間相) ; 세간(世間 이 세상. 변하면서 흘러가는 현상계. 미혹한 세계)의 다양한 차별상.
*세간상상주(世間相常住) ; 세간의 차별상이 변함없이 제 자리에 머문다는 말. 세간상주(世間常住)라고도 한다. 법이 법(法)의 자리[位]에 자리잡고 있듯이 세간의 차별상도 그렇다는 뜻이다. 진여가 상주하듯이 다른 모든 법도 그러하여 그들 법은 있는 그대로 진여와 다르지 않다는 도리이다.
[참고] 『백운어록(白雲語錄)』 (上) ‘흥성사입원소설(興聖寺入院小說)’
是法住法位 世間相常住 則一切諸法 當處自眞 當處解脫 當處寂滅
‘이 법이 법위에 머무니 세간의 차별성도 변함없이 머문다’라고 하니, 모든 법은 현재 있는 그대로 진실할뿐이고, 현재 있는 그대로 해탈이며, 현재 있는 그대로 고요한 것이다.
*환화(幻化) ; 환(幻). ①허깨비. 모든 사물은 여러 가지 인연(因緣)이 모여서 생긴 것으로 실체가 없는 것에 비유함.
환(幻)을 실(實)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중생의 미혹한 생각이다. 환(幻)을 무(無)라고 생각하는 것은 이승(二乘 : 聲聞, 緣覺)의 공(空)에 얽매인 견해, 단공(但空 : 단지 空만을 집착하는 것)이다. 환(幻)은 또 화(化)와 거의 같은 뜻이므로 환화(幻化), 꿈과 비슷하므로 환몽(幻夢)•몽환(夢幻)이라고도 한다.
②신기루, 아지랑이 같은 것.
*묘체(妙體) ; 묘한 진리의 체(體).
*해탈법(解脫法) ; 해탈의 법. 해탈에 이르는 방법. 번뇌에 묶이는 것에서 해방시켜, 미혹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함.
*달인(達人) ; 진리나 이치에 통달(通達)한 사람[人]. 불법의 도리에 통달한 사람. 깨달은 사람. 달자(達者)와 같은 뜻.
*분상(分上 분수 분/윗 상) ; 자기의 신분이나 처지에 알맞은 입장.
[참고] 분(分) : 분수(分數 - 자기 신분에 맞는 한도. 자기의 신분이나 처지에 알맞은 한도).
상(上) : ①‘그것과 관계된 입장’ 또는 ‘그것에 따름’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 ②‘추상적인 공간에서의 한 위치’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
(예) 정진하는 분상에는 ---> 정진하는 수행자에 알맞은 입장에 따르자면.
*수류인득성(隨流認得性) 무우역무희(無憂亦無喜) ; ‘그 흐름을 따라서 성품(性品)을 인득(認得)을 하면, 성품을 봐 버리면, 기쁨도 없고 근심도 없을 것이다’
『직지(直指)』 (불조직지심체요절 佛祖直指心體節) (白雲和尙 抄錄 | 조계종출판사) 63쪽 마나라(摩拏羅) 존자 게송 참고.

[참고] 송담스님(No 165) - 82년 3월 첫째 일요법회(82.03.07)
심수만경전(心隨萬境轉)이요 전처실능유(轉處悉能幽)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수류인득성(隨流認得性)하면 무희역무우(無喜亦無憂)니라
나무~아미타불~

심수만경전(心隨萬境轉)이요 전처실능유(轉處悉能幽)다.
마음이 경계에 따라 굴르는데, 마음이 모든 밖에 경계에 따라서 마음이 따라서 일어나는데, 전처실능유(轉處悉能幽)다. 마음 굴르는 곳에 다 능히 그윽하다. 깊숙하다. 유수(幽邃)하다.
마음은 분명히 경계 따라서 일어납니다. 마음 자체에 성인이 아니라 경계에 따라서 일어나는데, 그 경계에 따라서 굴르는 곳마다 다 능히 유현(幽玄)하다.

수류인득성(隨流認得性)하면 무희역무우(無喜亦無憂)니라.
그 흐름을 따라서 성품을 인득(認得)하면, 우리 중생은 경계에 따라서 마음이 일어나고 경계에 그 흐름 따라가서 같이 그 경계와 같이 휩쓸려서 넘어가는데,

우리 최상승법을 믿고 실천하는 참선하는 사람은 어떠한 경계가 나타나더라도, 그 경계에 따라서 어떠한 생각이 일어난다 하드라도, 그 생각에 따라가지 말고 그 생각을 돌이켜서 화두를 턱 들어나가면 아무리 경계가 일어난다 하드라도 그경계가 나를 끌어갈 수가 없어.
바로 그 경계로 인해서 나는 나의 본성으로 돌아오는 것이니까. 이렇게 살아가고 이렇게 공부를 해가면 무희역무우(無喜亦無憂)여. 기쁨도 없고, 근심도 없는 해탈경계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55분35초~60분6초)
*용이심(容易心 담다·받아들이다·쉽다 용/쉬울 이/마음 심) ; 어렵지 않고 매우 쉽다고 생각함. 경솔한 마음. 등한한 마음.
*만행(萬幸)하다 ; 아주 다행(多幸)하다.
*패궐(敗闕 실패·패할 패/모자람·잘못함·빠뜨림 궐) ; 실패. 결함. 실패하였다. 잘못되었다. 부끄러움을 샀다.
*하관(何關) ; 무슨 관계.
*격외(格外 격식 격/바깥 외) ; 규정되고 고체화된 세간적(世間的)인 척도를 초월하는 것. 즉 분별로는 헤아릴 수 없는 것. 불가사의(不可思議)한 실상을 가리키는 말이다. 격(格)은 격식(格式) · 규격(規格) · 법칙 · 규정 등을 말하지만 넓은 뜻으로는 세간(世間)의 척도라는 뜻이다.
*용잔하다(庸孱-- 보통·어리석다 용/나약할 잔) ; 못생기고 연약하다.
*조잔하다 ; 사람의 마음 쓰는 폭이 좁다.
*노디(노지) ; '징검다리(개울이나 물이 괸 곳에 돌이나 흙더미를 드문드문 놓아 만든 다리)'의 사투리.
*서래의(西來意) ;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 중국 선종(禪宗)의 초조(初祖) 달마대사가 인도에서 중국으로 와서 불교의 대혁명을 일으켰는데, 경(經)이나 모든 글이 소용없다 하여 「불립문자(不立文字)」를 표방하였고, 계율이나 염불이나 송주(誦呪)를 죄다 부인하고 오직 「마음을 지키는 한 가지 공부에 모든 법이 들어 있다(觀心一法總攝諸行)」하고, 「바로 마음을 가리켜서 대번에 성품을 보고 부처가 되게 한다(直指人心見性成佛)」고 하였다.
실로 그의 문하에서 많은 성인이 나왔었다. 그리하여 사람마다 다투어 묵은 불교를 버리고 이 새 법, 참선법(參禪法)을 배우려고 하였다. 그러므로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이란 것은 달마조사가 전하여 온 특별한 법, 비밀한 이치 곧 「불법의 똑바른 이치(佛法的的大意)」란 말과 같은 말이다.
*오도송(悟道頌) ; 불도(佛道)의 진리를 깨닫고 그 경지 또는 그 기쁨을 나타낸 게송.
*견성(見性) : ‘성품(性品)을 본다[見]’는 말인데 ‘진리를 깨친다’는 뜻이다. 자기의 심성(心性)을 사무쳐 알고, 모든 법의 실상(實相)인 당체(當體, 본체本體)와 일치하는 정각(正覺)을 이루어 부처가 되는 것을 견성성불(見性成佛)이라 한다.
*탁마(琢磨 쫄 탁/갈 마) ; ①학문이나 덕행 따위를 닦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②옥이나 돌 따위를 쪼고 갊. ③옥을 갈고 돌을 닦듯이 한결같이 정성껏 애써 노력하는 것. ④선지식에게 자기의 공부하다가 깨달은 바를 점검 받는 것.
*학자(學者) ; 학인(學人). ① 아직 번뇌가 남아 있어, 아라한(阿羅漢)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더 수행해야 하는 견도(見道)·수도(修道)의 성자. ② 수행승. 선(禪)을 닦는 수행승. ③ 배우고 익히는 과정에 있는 스님.
*초당파 법문 ; 소당파(燒堂婆) 법문.
[참고] 『선문염송(禪門拈頌)』 제30권 1463칙 ‘고목(枯木)’ 『선문염송 · 염송설화(禪門拈頌拈頌說話) 10』 (혜심·각운 지음 |김월운 옮김 | 동국역경원) p428~429.
昔有婆子 供養一庵主 經二十年 常令女子 送飯給侍 一日令女子抱定云 正伊麽如何 庵主云 枯木倚寒嵓 三冬無暖氣 女子歸擧似婆 婆云我二十年 只供養得箇俗漢 遂發起燒却庵
옛날에 어떤 노파가 한 암주(庵主)를 20년 동안 공양하였는데, 항상 딸에게 밥을 보내 시봉(侍奉)을 하곤 했다. 어느 날 딸로 하여금 꼭 껴안고 물어 보게 하였다. “이럴 때, 어떠하십니까?”
암주가 말하였다. “마른 나무가 찬 바위에 기댔으니, 삼동에 따사로운 기운이 없도다”
딸이 돌아와서 노파에게 이야기를 전하니, 노파가 말하였다. “내가 20년 동안 겨우 속한(俗漢)을 공양했구나” 그리고는 벌떡 일어나서 암자를 불질러 버렸다.

[참고] 『언하대오(言下大悟)』 (전강 선사 법어집 | 용화선원刊) p45~47.
만공 스님 당시 각 회상(會上)에서 논란된 바 있는 ‘소당파(燒堂婆)’라고 하는 공안이 있는데, 어떤 암주(庵主)가 공부를 하는데 시주 노파 한 분이 그 스님을 20년간 양식을 정성껏 대어드렸다.
20년이 다된 어느 날, 그 노파는 암주 스님의 공부가 얼마나 되었는지 시험해 보려고 자기의 예쁜 딸을 보내면서 말하기를, “네가 가서 그 스님을 꼭 껴안고, <스님!  이러한 때 어떻습니까?>라고 물어보아라” 하였다.

딸은 어머니가 시킨 대로 하였더니 그 암주가 답하기를, “고목이 찬바위에 의지하니 삼동에 따뜻한 기운이 없다.(枯木倚寒岩 三冬無暖氣)”라고 하였다.
딸은 그대로 어머니께 전했다.  노파는 그 말을 듣고는 바로 암주의 패궐(敗闕)을 알아차리고 토굴로 가서 “내가 저런 속한(俗漢)이한테 20년간 양식을 대었구나!” 하고는 암주를 쫓아내고 암자를 태워버렸다.

어째서 그 노파는 그렇게 청정하게 지내온 암주를 속한이라고 했을까?  암주는 어째서 속한이를 면치 못하고 쫓겨나야만 했겠는가, 이 무슨 연고인가?  이것이 공안인 것이다.
여기에 대한 답을 그 당시 큰스님들께서 모두 한마디씩 하셨지만 일일이 다 적을 수는 없고 몇 개만 적어보면, “원앙이 녹수(綠水)를 만났다.” “직접 경계를 쓰겠다.” “배필이 되어 살겠다.” “할을 하겠다.” “방을 쓰겠다.” 등의 답이 있었다.

그렇지만 이 공안에는 ‘할’도 ‘방’도 소용없는 것이다. ‘방’ 내릴 때 벌써 속인이 되어버린 것이고, ‘할(喝)’ 할 때 계행은 파한 것이다.  위에 적은 어떤 답도 속한을 면치 못하는 것이다.
대승계는 부처님께서도 범하지 않고서는 설하지 못하는 법이다.  이 공안이 대승계를 판단하는 공안인 것이다.  이것에 대해서 답을 조금이라도 지체하며 찾다가는 벌써 파계승이 되어 버리는 것이니, 함부로 여기에 대해서 입을 열 수가 있을까?  이러한 공안에 눈이 어두워 가지고서야 어찌 중생에게 대승계를 함부로 설하겠는가?

큰스님네께서 이르신 답이 많이 있었지만 나로서는 “아닙니다.” 라고만 하여 왔다.  여러 번 답을 이르라는 요청도 받았지만 답할 것이 따로 있지, 이와 같은 공안에 함부로 답을 할 것인가.  미래 학자들을 살리기 위해서 오늘날까지도 끝내 답을 이르지 않았다.
금봉 스님께서는 돌아가실 때까지 한번 일러 달라고 말씀하셨지만 일러 드리지 않았다.  지금은 금봉 스님마저 돌아가셨으니 누구에게 일러 볼 것인가, 죽어 황천에 가서 염라대왕에게나 일러볼까?
공부하는 학자들이여!  확연(廓然)한 뒤에 한 번 찾아오면 그때는 산승이 더불어 탁마하리라.
*마조원상(馬祖圓相) 공안 ;
[참고] 『선문염송(禪門拈頌)』 (혜심 지음) 제5권 165칙 ‘원상(圓相)’ 공안.
馬祖因見僧參  畫一圓相云  入也打不入也打  僧便入  師便打  僧云和尙打某甲不得  師靠却拄杖  休去.
마조 스님에게 어떤 스님이 와서 뵙자, 마조 스님이 원상(圓相), 동그라미를 그려 놓고 ‘입야타(入也打) 불입야타(不入也打), 이 원상에 들어가도 치고 들어가지 아니해도 친다’하고 물으시니, 그 스님이 원상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마조 스님이 주장자로 들어간 그 스님을 한 대 후려치니까, 그 스님이 말하기를 ‘스님께서는 저를 치지 못했습니다’ 그러니까 마조 스님이 휴거(休去)를 했습니다. 아무 말도 없이 가버리셨습니다.


[참고] 송담스님(No.282) - 86년 1월 첫째일요법회(86.01.05)에서.(2분19초)
마조 스님이 원상(圓相)을 그려 놓고 ‘입야타(入也打) 불입야타(不入也打) 이 원상에 들어가도 치고 들어가지 아니해도 친다.’ 이 공안을 물은데 어떤 스님이 그 안에 들어갔어.
들어가니까 마조 스님이 주장자로 들어간 그 스님을 한대 후려쳤습니다. 치니까 그 스님이 말하기를 『스님께서는 저를 치지 못했습니다.』 이랬습니다.
그러니까 마조 스님이 휴거(休去)를 했습니다. 아무 말 없이 그냥 방장(方丈)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이 원상 안에 들어가도 치고 들어가지 아니해도 친다’한 그 공안에 그 스님이 턱 뛰어들어가는 도리는 무슨 도리며, 들어가니까 마조 스님이 주장자로 한 방을 후려치니까 그 스님이 그 방(棒)을 맞고서 하는 말이 『스님께서는 저를 치지 못했습니다.』 또 그 스님이 그렇게 말한 데에 마조 스님이 아무 말없이 저리 가버렸으니...
이러한 공안에 확연(確然)히 의심이 없어야 하는 것입니다.

비록 이러한 공안이 문헌상에 오른 것만 해도 천칠백 공안이라 하는데, 이것이 다 부처님과 조사가 씹다가 버린, 먹다가 버린 찌꺼기에 지나지 못한 것이기는 하나, 이러한 공안이 바로 학자(學者)의 소견(所見)을 가려보는 데에는 좋은 시금석(試金石)이 되는 것입니다.
*부중선사도덕(不重先師道德) 불위아설파(不爲我說破) ; ‘부중선사도덕(不重先師道德) 지중선사불위아설파(只重先師不爲我說破) 스님의 도덕을 중하게 여기는 것이 아니고, 다만 스님이 나에게 설파하여 주지 않은 것을 중하게 생각한다’

[참고 ①] 『선가귀감(禪家龜鑑)』 (용화선원刊) p171.
本分宗師의  全提此句는  如木人唱拍하며  紅爐點雪이요  亦如石火電光이니 學者實不可擬議也니라  故로  古人이  知師恩曰,  不重先師道德이요 只重先師不爲我說破라 하시니라

본분 종사가 이 구를 온전히 들어 보이심이 마치 장승이 노래하고 불 붙는 화로에 눈 떨어지듯 하며, 또한 번갯불이 번쩍이듯 하니 배우는 자가 참으로 어떻다고 헤아리거나 더듬을 수가 전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옛 어른이 그 스승의 은혜를 알고 말씀하기를 「스님의 도덕을 중하게 여기는 것이 아니고, 다만 스님이 나에게 설파하여 주지 않은 것을 중하게 생각한다」고 하시니라.

[참고 ②] 『불조직지심체요절(佛祖直指心體要節)』 (白雲景閑和尙 抄錄 | 원조각성 번역 · 주해 | 현음사) p533~534.
洞山良价禪師가 問雲嵓和尙호대 百年後에 忽有人이 問호대 還邈得師眞不아 하면 如何祗對닛고 嵓이 良久云只這是니라 師가 佇思어늘 嵓이 云承當者个事인댄 大須審細니라

동산 양개 선사가 운암 화상에게 묻기를 “백년 후에 문득 어떤 사람이 묻기를 ‘운암 스님의 모습을 그려서 얻을 수 있느냐?’고 한다면 어떻게 대답해야 됩니까?”
운암 화상이 양구하고서 말씀하시기를 “다만 이것이니라” 양개 화상이 머뭇거려서 생각하거늘 운암 화상이 말씀하시기를 “이런 일을 알아차릴진댄 크게 모름지기 자세하게 알아야 될 것이니라”

師가 猶涉疑러니 後에 因過水覩影하고 大悟前旨하야 乃有偈曰 切忌從他覓이니 迢迢與我踈라 我今獨自往에 處處得逢渠라 渠今正是我요 我今不是渠라 應須恁麽會하야사 方得契如如니라

양개 화상이 오히려 의심이 있었더니 그 후에 물을 건너다가 그림자를 보고 앞에서 운암 스님이 말씀하신 그 뜻을 크게 깨달아서 이에 게송을 하셨다.
간절히 딴데서 찾지 말 것이니 그러면 멀고 멀어서 나와 소원하네. 내가 지금 혼자 스스로 감에 곳곳마다 저를 만나게 된다.
저것이 지금 바로 나이고 나는 지금 바로 저것 아니네. 모름지기 이렇게 알아야만 비로소 여여한 도리에 계합하리라.

[참고 ③] 『선문염송 · 염송설화(禪門拈頌 · 拈頌說話)』 제17권 (혜심 · 각운 지음 | 김월운 옮김 ㅣ 동국역경원) 제682칙. ‘지시(指示)‘ p222~223.
洞山이 爲雲嵓諱旦하야 設齋陞座어늘 時有僧이 問하되 和尙이 在雲嵓處하야 得何指示닛고한대 師云하되 雖在彼中이나 不蒙指示로다하니 進云하되 旣不蒙指示인댄 何故爲佗設齋닛고한대 師云하되 爭敢違背佗리요하다 進云하되 和尙이 旣發足南泉이어늘 何故로 爲雲嵓設齋닛고한대 師云하되 我不重先師道德이며 亦不爲佛法이요 只重佗當時에 不爲我說破로다

동산이 운암의 기일(忌日)에 공양을 마련하고 법상(法床)에 올랐는데 어떤 스님이 나와서 말하였다.
“화상께서 운암의 처소에 계실 때 어떤 지시를 받았습니까?”
선사가 대답하였다. “비록 거기에 있기는 했었지만 아무런 지시도 받지 못했노라”

스님이 다시 말하였다. “아무런 지시도 받지 못했다면 어째서 그를 위해 재를 마련하셨습니까?”
선사가 대답하였다. “그를 배반할 수는 없지 않는가?”

다시 물었다. “ 화상은 이미 남전(南泉)에게서 발심했는데 어째서 운암의 재를 차렸습니까?”
선사가 대답하였다. “나는 선사(先師)의 도덕을 소중히 여기는 것도 아니며, 불법을 소중히 여기는 것도 아니다. 다만 그때 나에게 설파(說破)해 주지 않은 것을 소중히 여길 뿐이니라”

[참고 ④] 『서장(書狀)』 ‘답고산체장로(答鼓山逮長老 : 고산체 장로에게 보낸 답장)‘에서.
若使老漢 初爲渠 拖泥帶水 說老婆禪 眼開後 定罵我無疑 所以 古人云 我不重先師道德 只重先師不爲我說破 若爲我說破 豈有今日 便是遮箇道理也

만약 나로 하여금 처음부터 그를 위해 나 자신을 더럽혀가며(흙탕물을 뒤집어 쓰며) 노파선을 설하였다면 그가 안목이 열린 후에는 틀림없이 나를 비난했을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그런 까닭에 고인(洞山良价)이 ‘나는 선사(先師 : 雲嵓)의 도덕을 중히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선사가 나에게 설파하지 않았던 것을 중히 여긴다’라 하였고, 또한 (香嚴이 潙山의 은덕을 기리며) ‘만약 나에게 설파해 주었다면 어찌 오늘이 있었겠습니까’라고 말한 것입니다. 곧 이것이 이러한 도리(道理)입니다.

趙州云 若敎老僧 隨伊根機接人 自有三乘十二分敎 接他了也 老僧這裏 只以本分事接人 若接不得 自是學者根性遲鈍 不干老僧事 思之思之

조주 스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만약 내가 사람들의 근기에 따라 사람들을 접화(接化)한다면, 응당 삼승십이분교를 가지고 사람들을 접화할 것이지만, 나는 이곳에서 다만 본분사(本分事)로써 사람들을 접화할 뿐이다. 접화되지 않는다면 원래 학자의 근성이 굼뜨고 둔한 것이어서 나의 일과는 상관이 없다’라고 하셨으니 생각하고 또 생각하셔야 합니다.
*선사(先師) ; 돌아가신 스승.
*설파(說破) ; 어떤 내용을 분명하게 드러내어 말함.
*판치생모(板齒生毛) ; 화두(공안)의 하나. 版과 板은 동자(同字).
[참고] 『선문염송(禪門拈頌)』 (고려 진각혜심眞覺慧諶 선사 편찬) 475칙 ‘판치(版齒)’
 (古則) 趙州因僧問 如何是祖師西來意 師云版齒生毛.
조주 스님에게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선사가 대답하였다.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投子靑頌) 九年小室自虛淹 爭似當頭一句傳 版齒生毛猶可事 石人蹈破謝家船
투자청이 송했다.
9년을 소림에서 헛되이 머무름이 어찌 당초에 일구 전한 것만 같으리오.
판치생모도 오히려 가히 일인데 돌사람이 사가(謝家)의 배를 답파했느니라

[참고] 『언하대오(言下大悟)』 (전강 선사 법어집 | 용화선원刊) p53~54.
어떤 스님이 조주 스님께 묻되, “어떤 것이 ‘조사서래의’입니까?(如何是祖師西來意)”하니 답하시되,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하셨다. 즉, 「어떤 것이 달마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 「판치에 털이 났느니라」라고 하는 화두.
그러면 조주 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을까?  이 화두도 ‘무자’ 화두와 같이 ‘판치생모’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판치생모”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께 뜻이 있는 것이니, 학자들은 꼭 조주 스님의 뜻을 참구할지어다.
“어째서 ‘무’라 했는고?”하는 것과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하는 것은 조금도 다름이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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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방(諸方) ; ①모든 지방. ②모든 종파의 스님.
*선지식(善知識) ; ①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좋은 지도자. 훌륭한 지도자. 바르게 이끄는 사람. ②좋은 벗. 마음의 벗. 선우(善友).
*동자삭발(童子削髮) ; 어릴 때 출가하여 머리를 깎고 스님이 되는 것. 동진출가(童眞出家)와 같은 뜻.
*이력(履歷 밟을·행할·겪을 이/지낼 력) ; ①지금까지 거쳐[履] 온 학업, 직업, 경험 등의 내력(來歷). ②어떤 일을 오랫동안 또는 여러 번 겪으면서 몸에 배게 된 태도나 버릇. ③정해진 과정에 따라 경전을 공부하는 일.
*초기의(草其衣) 목기식(木其食) ; ‘가는 풀로 옷을 하고 나무 열매로 음식을 삼다’
*법량(法量) ; ①법의 분량. 법의 크기. ②불상(佛像)을 조성할 때 불상의 크기를 정하는 것.
*(게송) ‘착화주중안홀명(着火廚中眼忽明)~’ ; 한암 스님 오도송.
*정지 ; ‘부엌’의 사투리.
*부섴 ; ①’아궁이’의 사투리. ②’부엌’의 사투리.
*염송(拈頌) ; 선문염송(禪門拈頌). 선문염송집(禪門拈頌集). 고려 보조국사 지눌(知訥)의 제자 진각국사 혜심(慧諶) 스님이 1226년 수선사(修禪社, 지금의 송광사松廣寺)에서 화두 1125칙(則)과 각각의 칙(則)에 대한 짤막한 해설과 게송 등을 모아 엮은 30권의 책이다. 염송(拈頌)이라고도 한다.
*대교과(大敎科) ; 우리나라 전통강원의 수학 과정 중 하나로 사미과(沙彌科) · 사집과(四集科) · 사교과(四敎科)에 이어 『화엄경(華嚴經)』 · 『전등록(傳燈錄)』 · 『선문염송(禪門拈頌)』 등을 배운다.
*속전등록(續傳燈錄) ; 36권. 명(明)의 원극 거정(圓極居頂, 미상~1404) 엮음.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의 뒤를 이어 혜능(慧能) 문하 10세부터 20세까지, 불법(佛法)을 계속 이어온 선승(禪僧)들의 계보와 행적, 법어(法語), 문답 등을 정리한 저술.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 ; ‘본래 한 물건도 없다’
『육조단경(六祖壇經)』에 나오는 혜능선사의 게(偈)의 한 구절로 범부와 성인, 깨달음과 미혹, 생사와 열반 등 모든 대립된 차별상이 없는 본래의 모습을 가리킨다.

중국 선종의 5조 홍인(弘忍) 대사가 법을 부촉(咐囑)할 때가 된 것을 알고 대중에게 각자 게송을 지으라고 하자, 대중의 상좌(上座)인 신수(神秀)가 게송을 지어 복도 벽에다 써 놓았다.
몸은 보리수(菩提樹)요 마음은 밝은 거울과 같다(身是菩提樹 心如明鏡臺)
때때로 부지런히 털고 닦아서 티끌 끼지 않도록 하라(時時勤拂拭 勿使惹塵埃)

혜능(慧能)은 동자(童子)가 이 신수의 게송을 외는 소리를 듣고 이 게송은 아직 본성을 보지 못한 것임을 알고, 동자를 데리고 게송 있는 곳으로 가서 별가 스님에게 부탁하여 다음과 같은 게송 하나를 쓰게 부탁했다.
보리에 본래 나무 없고 명경(明鏡) 또한 대(臺)가 아니네.(菩提本無樹 明鏡亦非臺)
본래 한 물건도 없거늘 어느 곳에 티끌이 있으랴.(本來無一物 何處惹塵埃)
*바리때 ; 절에서 쓰는 스님의 공양(식사) 그릇. 나무나 놋쇠 따위로 대접처럼 만드는데, 나무에는 안팎에 칠(漆)을 한다. 발우(鉢盂)ㆍ발우대ㆍ응기(應器)ㆍ응량기(應量器)라고도 한다.
응량기(應量器)란 법에 응하는 또는 1명의 식량에 마땅한 그릇이니 먹을 만큼의 분량을 담는 그릇이고, 또 남의 공양을 받기에 마땅한 수행과 덕을 갖춘 성현(聖賢)이 사용하는 그릇이란 뜻이다.
*물팍 ; 무르팍. ‘무릎’의 사투리.
*심마물(甚麽物) 임마래(恁麽來) ;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느냐?’

 

 

Posted by 닥공닥정

 

 

§(086) 전강 스님의 선지식 정화 / 전강 스님에게 마지막 관문을 통과시키게 하는 법을 쓰신 만공 스님의 지도 / 공안은 이론으로 풀 수 없는 진리의 수수께끼 / 사교입선(捨敎入禪).

 

원래 참선(參禪)은 처음 시작할 때에도 정법안장(正法眼藏)을 전해 가지신 선지식으로부터 직접적인 지도를 받아서 참선을 시작해야 하고  그러한 선지식의 직접적인 지도하에서 정진을 해야 하고 정진을  끝에 무슨 소견이 나거나 얻은 바가 있을 때에도 반드시 그런 바른 정법(正法)을 갖으신 선지식의 인가를 받아야만 되는 것입니다.

 

공안, 화두라고 하기도 합니다마는  공안은 이론으로 풀 수 없는 진리의 수수께끼’라 이렇게 말할 수가 있습니다. 수수께끼라면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과 상식을 통해서 갖은 방법을 통해서 이것을 파고 분석하고 연구를 해서 결국은 밝혀내야  것이겠지마는, 이것은 보통 수수께끼가 아니라 진리의 수수께끼다

 

‘사교입선(捨敎入禪)이라. 교(敎)를 버리고 선(禪)에 들어간다’고 하는 고인의 말씀이 있습니다. 자기가 배운 모든 지식, 모든 이론을 깨끗이 버려버리고 백지(白紙) 상태가 되어서 완전히 바보가 되어서 선지식의 지시에 따라야만 되는 것이고, 그렇게 철저하게   있는 사람이라야 빨리 도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송담스님(No.086)—78 7 관음재일 법회(78.08.27) (용086)

 

(1) 약 20분.

 

(2) 약 4분.

 

(1)------------------

 

입추(入秋)가 지나고 처서(處暑)가 지났는데 아직도 잔서(殘暑)가 혹심(酷甚)해서 대단히 더웁고 훈증(薰蒸)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시고 오늘 7 관음재(觀音齋)에 여기 사부대중께서 많이 법회에 참석을  주셔서 대단히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특히 모다 제방(諸方)에서 해제(解制)를 마치시고,   동안  더위를 이겨내면서 용맹, 가(加) 용맹정진(勇猛精進)을 하시고 해제를 마치고 오신 모다 납자(衲子) 스님네 그동안 정진하시느라고 대단히 노고가 많으셨을  생각합니다.

 

오늘은 전강 조실 스님의 6대 선지식(六大善知識)으로부터 인가(印可) 받으신 내용에 대해서 법문이 계셨습니다.

 

원래 참선(參禪)은 처음 시작할 때에도 정법안장(正法眼藏)을 전해 가지신 선지식으로부터 직접적인 지도를 받아서 참선을 시작해야 하고  그러한 선지식의 직접적인 지도하에서 정진을 해야 하고 정진을  끝에 무슨 소견이 나거나 얻은 바가 있을 때에도 반드시 그런 바른 정법(正法)을 갖으신 선지식의 인가를 받아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달마(達摩) 스님께서 「혈맥론(血脈論)」에 말씀하시기를 급히 스승을 찾지 아니하면 일생을 헛되이 보내리라 이렇게 말씀하셨고, ‘스승 없이 깨달은 사람은   가운데에도 드물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던 것입니다.

 

눈으로 보고 걸어가는 길도 가다가  갈래  갈래 길이 나오면은 반드시   아는 사람에게 물어야만 자기의 목적지에 어김없이 도착할 수가 있거든,

 

하물며 눈으로 보이지 아니한 마음으로 가는  (), 참선이야말로 확철대오(廓徹大悟)한 선각자(先覺者)의 바른 지시 없이 자기 마음대로 공부를 지어간다든지,

바른 안목을 갖추지 못한 그러한 분에게 지도를 받고 공부를 한다고 하는 것은 거의  명이면  ,  명이면  , 중간에 가다가 주저앉거나 또는 곁길에 빠져서 헤매거나, 삿된 길에 떨어져서 영원히 자기 신세를 망치고 남을 망치고 그리고 불법(佛法)을 망하게  수밖에는 없게 되는 것입니다.

 

전강 조실 스님께서는 전생에 얼마나 도를 많이 닦으셨는지, 아마도 전생에 불보살(佛菩薩)이나 위대한 조사(祖師) 스님네가 말세(末世)의 정법을 선양하기 위해서 화현(化現)으로 나타나신 그러한 성현이신, 필시 그러한 어른이 아닌가? 이렇게 생각이 됩니다.

 

23살의 젊은 연세로 견성(見性)을 하셔서 한국의 여섯 분의  선지식으로부터 차례차례 인가를  맡으시고,

거의 지리산, 태백산을 위시(爲始)한 명산대찰에 선지식들을 차례차례  만나시고 강사가 되었건, 선사가 되었건 조실로 계신 분은 닥치는 대로 법(法)을 거량(擧揚)을 해서 거의, 확철대오 하지 못하고 선지식 노릇하고 계신 그러한 분들 모조리  색출을 해서 소탕을 해버리셨던 것입니다.

 

그때 당시 태백산에 8 도인(道人)이라 해가지고 태백산 골짝 골짜구니마다 도인이라 해가지고 도인 노릇을 하고 있는 그런 가짜 도인들을 전부   법문답(法問答)을 통해서  스스로 도인의 감투를 벗어버리고 조실 자리를 내놓을 수밖에는 없도록 그렇게 하셔서 노상  금봉 큰스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선지식 정화(淨化)를 전강 스님이 하셨다”고 이렇게 노상 말씀하신 것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금봉 스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의 스님은, 전강 스님은 일생동안을 차라리 조실 자리에 앉지 말고 납자의 위치에서 일생을 지내셨으면  좋았을 것을 그랬다 이런 말씀을 하신 것이 기억이 납니다.

“왜 그렇습니까?”하고 여쭤 봤더니 “납자의 위치에 있으면 얼마든지 어떠한 선지식이라도 가서 법거량(法擧揚)을 해가지고 정화를  수가 있는데, 스스로 조실(祖室)의 위치에 앉게  뒤에는 조실의 체모(體貌)가 있어서 그렇게  수가 없는 것이다.

 

근자에 와서 선지식의 인가도 없이 절절이 많은 조실들이 지금 한국에 수십 명의 조실 스님이 계십니다. 이럴 때에 정말 확철대오 했고  선지식으로부터 분명히 인가를 받은 그러한 조실이라야 정말 학자(學者)를 바로 제접(提接)해서 정법을 유통해 나갈 것이어늘, 자기도 분명히 깨닫지 못하고 선지식의 분명한 인가도 없이 조실의 책임을 띄고서 많은 후배들을 그르치고 있지 않느냐.

 

이럴 때에 전강 스님이 그러한 정화를 다시 한번 해주어야만 말세의 정법이, 불법이 바른 것과 삿된 것이 깨끗이 가려질텐데 전강 스님이 조실의 명예를 띄고 그러한 위치에 있기 때문에 이제 선지식 정화를   사람이 없는 것이  안타깝다” 이러한 말씀하신 것을 들었습니다.

 

 

전강 조실 스님께서는 6대 선지식으로부터 차례차례  인가를 받고서 마지막 판에 만공(滿空) 스님 회상(會上)을 찾아갔던 것입니다.

 

가서 떠억 절을 하시니까 “십마물(什麽物)고? 무슨 물건인고?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와서 절을 허는고?” 다시 한번 일어서서 떠억 절을 하시니까 “무슨 물건이여?”  물으신다 말씀이여.

그래 조실 스님께서는 주먹을 들어서 만공 스님 앞에  이렇게 들었습니다. “어허! 습기를 버리지를 못했구나 만공 스님께서 그렇게 점검을 하셨던 것입니다.

 

조실 스님께서는 자신(自信)이 만만(滿滿)해서 쪼끔도 막힐 바가 없고, 의심이 없으셨건마는 그날 이후로 계속 만공 스님 회상에 머물러 계시는데 기회 있을 때마다 전강 조실 스님의 하시는 말씀, 하시는 거동에 대해서 만공 스님께서는 인증을 하시지 아니하고, 사사건건이 전강 조실 스님을 비웃고, 놀려 대고 이렇게 하셨던 것입니다.

 

뭐라고 입만 벌리시면 “자네보다는 나어 도대체 입을 벌리지도 못하게 하시고 비웃고, 조롱하고 해서 그러니 하루, 이틀, 사흘, 나흘, 일주일, 열흘을 지내면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 절대로 선지식이 학자를 조롱하실 리도 없고, 속일 리도 없고, 아니기 때문에 아니라고 하시겠지’ 이렇게 생각을 하시고, 정신을 재차 가다듬어서 철봉대(鐵棒臺)를 붙잡고 서서 밤을 지새기를 몇날 며칠, 한 달,  , 이렇게 가행정진(加行精進)을 하셨던 것입니다.

 

결단코 선지식이 나를 조롱할 까닭도 없고 속이실 리가 없다. 반드시 까닭이 있기 때문에 그러신 것이다 이리 생각하시고 판치생모(板齒生毛)’라고 하는 화두를 들고서 용맹정진(勇猛精進)을 하셨던 것입니다.

만약에 전강 조실 스님께서 만공 스님을 최후로 만나지 못하셨던들, 만공 스님의  쓰시는 것을 정말 깊이 믿지 아니 하셨던들, 조실 스님께서는 꼭지가  떨어진 채로 선지식 노릇을 하셨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이 되는 것입니다.

 

선지식은 정말 학자로 하여금 정말 조끔도 의심 없는 경지에까지 들어가도록 이렇게 대자비를 가지시고 법을 쓰시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정말 참선을 올바르게 하고자  때에는 그러한 만공 스님과 같은 그러한 훌륭한 선지식의 지도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재삼(再三) 느끼게 됩니다.

 

만공 스님 말고 용성 스님이라든지, 한암 스님이라든지 혜월 스님이라든지 혜봉 스님이라든지, 그러한 선지식들도  만공 스님 만큼 그렇게 훌륭한 선지식이셨고, 각기  선지식마다 특이한 좋은 점을 장점을 가지고 계셔서 그러한 선지식들도  학자로서는 두루  찾아뵈어야 하고 지도도 받아야 하지마는,

 여러 선지식 가운데에도 특별히 만공 스님은 그러한 점에 있어서 학자의 마지막 중요한 관문을 통과시키게 하는 그러한 밝고도 밝은 그러한 안목을 갖으셨던 것입니다.

 

조실 스님께서는 혜봉 스님께서 “거년 가난은 비가난이요 무입추지지(無立錐之地)러니, 금년 가난이 시가난이라 추야무(錐也無)로다.  공안에 있어서 어떻게 일러야 조사선(祖師禪)을 보았다고 하겠느냐?” 조실 스님께서는 거침없이 “능각이 뾰족하고 뽀족해서 저와 같지 않습니다[稜角尖尖不似他] 이렇게 대답하심으로써 쪼끔도 의심이 없으셨지마는,

후일에 그때 혜봉 스님께서 아무 말씀이 없으셨은 것을 인가해 주신 걸로 알았었던 것을 후에사 그것이 아니라, ‘분명히 내가 그것을 잘못 일른 것이고 혜봉 스님께서 인가해 주신 것이 아니다 것을 스스로 깨달으시고  용화사에서 연전(年前)에 사부대중(四部大衆)이 운집(雲集)한 가운데에 그것을 대중 앞에 공포를 하셨던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은 우리의 정진도 일기지사(一期之事)로 느낀 바가 있다든지, 얻은 바가 있다든지, 어떠한  분의 선지식으로부터 인가를 받았다고 해서 득소위족(得少爲足) 조그만한 것을 얻은 것으로써 만족을 삼을 일이 결단코 아니라고  것을 다시  뼈아프게 느끼게 됩니다.

 

진리는 한(限)이 없이 높고 크고 깊은 것이어서 우리가 정진하는 가운데에 조그마한 쪼끔 느낀 바가 있고, 어떤 공안에 맥힌 바가 한두 공안에 통과한 바가 있다고 해서 그것으로써 족(足)함을 삼고 살림을 삼고 주저앉아서는 아니될  생각합니다.

 

옳다! 인자 되었다! 이것이로구나!’ 이렇게 생각할   사람은 기껏 옳게 공부를 해 가다가 거기서부터 비뚤어 가는 것이 되는 것이고, 계속 정진을 해 나가다가  자리에 주저앉는 것이 되는 것이고,

좋은 제호(), 우유로 만들어서 제일 맛있는 음식이 바로 제호라고 하는 음식인데, ‘ 좋은 맛있는 제호상미(醐上味) 변질케 해서 독약으로 만드는 격이 된다’고 고인이 말씀하신 뜻이 얼마나 뼈아프고 소중한 말씀이라고 하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가운데에 스님이 되었건 또는 거사가 되었건 또는 청신녀가 되었건 참으로 대도(大道)를 성취해서 생사해탈(生死解脫)을 하고 불조(佛祖)의 혜명(慧命)을 잇고자 하신다면 바른 선지식을 찾아서 올바른 지도하에 공부를 하실 것이고,

공부하시다가 어떠한 종류의 얻은 바가 있다 하더라도 반드시 눈밝은 선지식의 점검을 통해서 씻어버릴 것은 씻어버리고 그것을 발판으로 해서 다시 올라서야  사람은 다시 올라서도록 간곡히 부탁을 드리는 바입니다.(처음~206)

 

 

 

 

 

(2)------------------

 

6대 선지식으로부터 인가를 받으실 때에는 전부  공안을 통해서, 공안 문답을 통해서 점검을 받게 됩니다.  공안, 화두라고 하기도 합니다마는  공안은 이론으로 풀 수 없는 진리의 수수께끼’라 이렇게 말할 수가 있습니다.

수수께끼라면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과 상식을 통해서 갖은 방법을 통해서 이것을 파고 분석하고 연구를 해서 결국은 밝혀내야  것이겠지마는, 이것은 보통 수수께끼가 아니라 진리의 수수께끼다

 

진리는 이론으로 따져서 알아 들어가는 것이 아니고 실다웁게 닦고, 참다웁게 깨달라서, 깨달라서  몸에 체달(體達)하는 것이지 이론적으로 따져서 알아 들어갈  없는 것이고 이론적으로 가르쳐서 알게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만큼  참선 공부는 어떠한 학자라도, 어떠한 강사라도 팔만대장경을 종횡으로 걸림이 없이  해명을 하고,  해설을   있다 하더라도 그러한 힘으로 공안을 타파(打破)할 수는 없는것입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그러한 지식이 오히려 참선하는 데에  장애가 되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교입선(捨敎入禪)이라. 교(敎)를 버리고 선(禪)에 들어간다’고 하는 고인의 말씀이 있습니다.

자기가 배운 모든 지식, 모든 이론을 깨끗이 버려버리고 백지(白紙) 상태가 되어서 완전히 바보가 되어서 선지식의 지시에 따라야만 되는 것이고, 그렇게 철저하게   있는 사람이라야 빨리 도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과거에 많은 고인들이 그러한 , 이론, 지식 이러한 것들이 속에 가뜩 차 가지고 있는 상태에서 도를 얻지 못한 경우가 너무나도 많았던 것입니다.

언제나 자기가 보고 듣고 생각해서 얻은 바는 빨리 버릴수록 도(道)에는 유익한 것이 되는 것입니다.(2010~2326)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1)

 

*처서(處暑) ;    늦여름 더위가 물러가는 . 이십사절기의 하나. 양력으로 8 23경이며, 더위가 물러가고 아침저녁으로 쌀쌀한 기운이 느껴지며 벼가 익는 시기이다.

*잔서(殘暑 남을 /더울·더위 ) ; 늦여름의 한풀 꺾인 마지막 남은[] 더위[].

*혹심(酷甚 독할·심할 /심할 ) ; ①정도가 가혹(苛酷)하고 (). ②매우 지나침.

*훈증(薰蒸 불피움·태울 / ) ; ①불피워 태우고[] []. ②찌는 듯이 무더움.

*관음재(觀音齋) ; 관음재일(觀音齋日). 매월 음력 24.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님께 기도를 드리며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 3(身口意 三業) 깨끗하게 하여악업(惡業) 짓지 않아심신을 청정하게 하는 수행일.

*제방(諸方) ; ①모든 지방 ②모든 종파의 스님.

*해제(解制  /만들·법도 ) ; (안거) 마침. ②재계(齋戒)하던 것을 그만두고 .

*용맹정진(勇猛精進) ; 두려움을 모르며 기운차고 씩씩한 그리고 견고한 의지로 한순간도 불방일(不放逸)하는, 열심으로 노력하는 정진.

*납자(衲子) :  누더기옷이란 말인데, 도를 닦는 이는 어디까지나 검박하게 입어야 한다。본래 가사(袈裟) 쓰레기에서 주어서 깨끗이 빨아 가지고 누덕누덕 기워서 만드는 것이므로, 분소의(糞掃衣) 또는 백납(百衲)이라고 한다。그래서 참선하는 이를 납자라고 하는 것이다.

옛글에 『誰知百衲千瘡裡 三足金烏徹天飛』란 것이 있다。곧 『뉘 알랴, 누더기에 밝은 해가 숨은 줄을 ! 』이것이 누더기 입은 도인,  납자의 본색을 말하는 것이다.

*선지식(善知識) ; ①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좋은 지도자. 훌륭한 지도자. 바르게 이끄는 사람. ②좋은 . 마음의 . 선우(善友).

*인가(印可 도장 /옳을·인정할 ) ; 스승이 제자의 깨달음을 인정함.

*참선(參禪) ; ①선() 수행을 하는 .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정법안장(正法眼藏) ; 부처님의 바른 교법이라는 . 모든 것을 꿰뚫어 보고, 모든 것을 간직하는, 석가모니 부처님이 체득한 깨달음을 뜻한다.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혈맥론(血脈論) ; [달마대사 혈맥론(達摩大師血脈論)]이라고도 한다. 중국 선종의 초조(初祖) 보리달마(菩提達摩 Bodhidharma) 저술로 전해지고 있다.

문답형식으로 즉심시불(卽心是佛 : 마음 그대로가  부처), 심외무불(心外無佛 : 마음 밖에 부처가 없다), 성불수시견성(成佛須是見性 : 부처를 이루려면 반드시 성품을 보아야 한다) 등의 말씀이 있다. 혈맥(血脈) 사자상승(師資相承)이라고도 하며, 스승으로부터 제자에게로 주고받아서, 정법(正法) 상속하는 . 신체의 혈맥이 서로 연결되어 끊어질  없는 것에 비유해서 말함.

 

[참고] [선문촬요 禪門撮要  血脈論] (경허성우 鏡虛惺牛 엮음)에서.

若不急尋師空過一生 然卽佛性自有 若不因師終不明了 不因師悟者萬中希有.

급히 스승을 찾지 아니하면 일생을 헛되이 보내리라. 불성은 스스로 가지고 있으나 스승을 인연하지 않으면 끝내 분명히 알지 못하니, 스승을 의지하지 않고 깨닫는 이는 만에 하나도 드물다.

*() ;  ①깨달음. 산스크리트어 bodhi 한역. (). 보리(菩提)라고 음사(音寫). ②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방법. ③무상(無上) 불도(佛道). 궁극적인 진리. ④이치. 천지만물의 근원. 바른 규범.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 깨달음.

*전강선사 ;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불보살(佛菩薩) ; 부처님과 보살을 아울러 일컫는 . () 불타(佛陀) 준말. 각자(覺者) 번역한다. 보살은 성불(成佛)하기 위하여 수행에 힘쓰는 이의 총칭이다.

*조사(祖師) : 11파의 선덕(先德)으로서 후세 사람들의 귀의 존경을 받는 스님。 보통은 11파를 세운 스님을 부르는 말。 ②선가에서는 달마스님을 말한다。 ③불심종(佛心宗) 깨달아서이를 전하는 () () 상응(相應)하는 도인.

*말세(末世  /세상 ) ; ①도덕, 풍속, 정치 등의 모든 사회 질서와 정신이 매우 타락하고 쇠퇴하여 끝판에 이른 세상. ②석존입멸후 오백년을 정법(正法) 세상,  다음 천년을 상법(像法)세상,  후의 일만년을 말법(末法) 세상이라고 한다. 구체적인 시기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화현(化現) ; 부처님이나 보살이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 중생의 소질에 따라 여러 가지로 모습을 바꾸어  세상에 나타나는 . 화신(化身)이라고도 한다.
*견성(見性)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品) 꿰뚫어 보아[] 깨달음. 미혹을 깨뜨리고 자신의 청정한 본성을 간파하여 깨달음.

*법거량(法擧揚  / /나타낼·밝힐 ) ; ①스승이 제자의 수행 상태를 점검하기 위해 주고받는 문답 ②선() 수행자들 사이에 주고받는 () 대한 문답.

*도인(道人) ; ①불도(佛道) 수행하여 깨달은 사람. ②불도(佛道) 따라 수행하는 사람.

*법문답(法問答) ; 법거량(法擧揚). ①스승이 제자의 수행 상태를 점검하기 위해 주고받는 문답. ②선객(禪客) 사이에 주고받는 () 대한 문답.

*정화(淨化) ; 불순하거나 더러운 것을 깨끗하게 .

*조실(祖室) ; 선원의 가장 높은 자리로 수행인을 교화하고 참선을 지도하는 스님. 용화선원에서는 () 전강대종사(田岡大宗師) 조실스님으로 모시고 있다.

*체모(體貌  /얼굴 ) ; 체면(體面). 남을 대하기에 번듯하고 떳떳한 입장이나 면모.

*학자(學者) ; 학인(學人). 도학자(道學者).  아직 번뇌가 남아 있어, 아라한(阿羅漢)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수행해야 하는 견도(見道수도(修道) 성자.  수행승. () 닦는 수행승.  배우고 익히는 과정에 있는 스님.

*제접(提接 이끌 /응대할·가까이할 ) ; (수행자를) 가까이하여 이끌다.

*만공 스님 ; 분류 역대 스님 약력(http://emokko.tistory.com/231)’ 참고.

*회상(會上) ; ①대중이 모여서 설법을 듣는 법회. 또는  장소. ②대중들이 모여서 수행하는 공동체   장소. 회상(會上)’이란 말은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은 , 영취산(靈鷲山)에서 제자들에게 설법을 하면서 함께 모인 것을 영산회상(靈山會上)’이라 부른 데에서 유래한다.

*판치생모(板齒生毛) ; 화두(공안) 하나.

어떤 스님이 조주 스님께 묻되, “어떤 것이 조사서래의입니까?  (如何是祖師西來意)”하니 답하시되,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하셨다. , 「어떤 것이 달마조사가 서쪽에서  뜻입니까?, 「판치에 털이 났느니라.」라고 하는 화두.

그러면 조주 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 했을까?   화두도 무자 화두와 같이 판치생모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판치생모 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께 뜻이 있는 것이니, 학자들은  조주 스님의 뜻을 참구해야 한다. “어째서  했는고?” 하는 것과 어째서 판치생모 했는고?” 하는 것은 조금도 다름이 없는 것이다. [언하대오(言下大悟)에서] (용화선원) p53.

*연전(年前) ; 여러  .

*사부대중(四部大衆) ; 불문(佛門) 있는  가지 제자.  비구(比丘), 비구니(比丘尼), 우바새(優婆塞), 우바이(優婆夷)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참고] 우바새—upasaka 음역. 속세에 있으면서 불교를 믿는 남자.(같은 =靑信士,靑信男,信男,信士,居士,近事男,近善男,善宿男) 원래의 말뜻은 모시는 사람. 받들어 모시는 사람. 출가수행자를 모시고, 신세를 지므로 이렇게 말한다.

우바이—upasika 음역. 속세에 있으면서 불교를 믿는 여자. (같은 =靑信女,近事女,近善女,近宿女)

*운집(雲集 구름 /모일 ) ; 구름[]처럼 모인다[] 뜻으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듦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

*일기지사(一期之事) ; ①한 때의 . 일시적인 . ②당장의 .

*득소위족(得少爲足) ; 작은 것을 얻어 가지고 만족을 삼는다.

*제호() : 옛날 인도에서 우유로써 만드는 것이 다섯 가지가 있었는데,   가장 품질이 좋은 것으로 맛이 제일 좋고, 열병(熱病) 귀중한 약품도 되는 것이 제호다。이것은 히말라야 산에 있는 비니라는 풀만을 먹은 소의 젖으로 만든 것이 더욱 좋다고 한다.

*제호상미(醍醐上味) 번성독약(翻成毒藥) ; ‘제호(醍醐) 같은 좋은 맛이 도리어 독약이 되리라’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용화선원刊) p74~75.

然(연)이나  一念子(일념자)를  爆地一破然後(폭지일파연후)에  須訪明師(수방명사)하야  *決擇正眼(결택정안)이니라

그러나  생각을 깨친 뒤에는 반드시 밝은 스승을 찾아가 눈이 바른가를 결택 받아야 하느니라。

    

註解(주해)  此事(차사)는  極不容易(극불용이)하니  須生慚愧(수생참괴)하야사  始得(시득)다  道如大海(도여대해)하야  轉入轉深(전입전심)하니  愼勿得小爲足(신물득소위족)하라  悟後(오후)에  若不見人則(약불견인즉)  *醐上味(제호상미)가  翻成毒藥(번성독약)하리라

 

 일은 결코 쉽지 않으니 모름지기 부끄러운 생각을 내야 한다。도()  바다와 같아서 들어갈수록 더욱  깊어 가는 것이니, 작은 것을 얻어 가지고 만족 하지 말라。깨친 뒤에 만약 밝은 스승을 만나지 못하면 제호(醍醐) 같은 좋은 맛이 도리어 독약이 되리라.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

*혜명(慧命) ; ①지혜를 생명에 비유하는 . 대도정법(大道正法) 명맥(命脈). ②법신(法身) 지혜가 생명이 된다는 .

 

 

 

 

 

------------------(2)

 

*체달(體達) ; 사물의 이치를 통달하여 깨달음.

*공안(公案, 話頭) 타파(打破) ;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스승)으로부터 화두(공안)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화두(話頭)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 하지 아니하고,

오직  막힌 다못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참구(參究) 나가 화두을 타파하여 확철대오(廓徹大悟)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고] 화두라 하는 것은 무엇이냐? 공안(公案)이라고도 말하는데, 화두는 깨달음에 이르는 관문이요, 관문을 여는 열쇠인 것입니다.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화두(話頭) 대한 의심(疑心) 관조(觀照) 나가는 ,   없는 그리고  맥힌 의심으로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이상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이상 의심이 커질  없고, 이상 깊을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가슴속이 가득 차고,  세계가 가득 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때에도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때도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때에는 꿈속에서도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 확철대오(廓徹大悟) 하게 되는 것입니다.

큰 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항아리를 큰 돌로 내려치면은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5212~) [‘참선법 A’ 에서]

 

이뭣고? 이것이 무엇인고?

···뭣고·····?” 이렇게 의심을  나가되, 이런 것인가 저런 것인가 하고 이론적으로 더듬어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다못 ···뭣고······?” 이렇게만 공부를 지어나가야 됩니다.

여기에 자기의 지식을 동원해서도 안되고, 경전에 있는 말씀을 끌어 들여서 아하! 이런 것이로구나!” 이렇게 생각해 들어가서도 안됩니다.

 

공안은  우주세계에 가득  있는 것이지마는 문헌에 오른, 과거에 고인(古人)들이 사용한 화두가 천칠백인데,  이뭣고?’ 화두 하나만을 열심히  나가면   문제 해결함으로 해서 천칠백 공안이 일시(一時) 타파가 되는 것입니다.

화두가 많다고 해서  화두 조금  보고, 안되면   화두   보고, 이래서는  쓰는 것입니다.

화두 자체에 가서 좋고 나쁜 것이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화두 철저히  나가면 일체 공안을 일시에 타파하는 것입니다.(7634~) [ ‘참선법 A’ 에서]

 

Posted by 닥공닥정
만공선사2016. 10. 17. 12:37

 

 

•§•(015) (게송)문진행객편응급~ / 만공 큰스님 수행기 / 만공 큰스님 30본산 주지회의 일화 / (게송)참선수투조사관~ / 포구발심(怖懼發心).

 

입차문래(入此門來)인댄 막존지해(莫存知解)니라! 도문(道門) 들어와서는 지해(知解) 두지 말어라. 배워서 아는 것을 두지 말어라.

 

포구발심(怖懼發心) 해서 어쨌든지 금생 몸을 다른 데다가서 허비하지, 헛되이 희생시키지 버리지 말고 화두에 전렴전력(專念專力)해서, 미루지 말고 해서 금생에는 생사 문제를 해결해야 . 확철대오를 해야 한다 그말이여.

 

**전강선사(No.015)—만공 큰스님 수행기(경술70.12.11) (전015)

 

(1/3) 약 15분.

 

(2/3) 약 21분.

 

(3/3) 약 14분.

 

(1/3)----------------

 

문진행객(問津行客) 편응급(鞭應急)이요  심사귀승장불한(尋寺歸僧杖不閑)이니라

나무~아미타불~

고목계남창연리(枯木溪南蒼烟里)  목동기우농적환(牧童騎牛弄笛還)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만공 큰스님께 와서, 마지막 하날에 자네 견성한 별은 어떤 별인가?”

내가 땅을 이래 땅을 이렇게 팝니다. 이렇게 땅을 파니 뜰에 서서 내려다보고선재(善哉) 선재다!’ 일렀다 그말이여. 틀림없어. 일렀으니까 일렀다하지. ‘ 일렀구나! 일렀다

 

그거 인가(印可) ()이여. 인가 송이 반드시 있어야 하는 거여.

고승집(高僧集) . 누구를 입실(入室)시켰느니 어쩌느니. 입실이라는 것은 중간에 건당식(建幢式) 많이 나왔지 . 모도 견성(見性)허기 전에도 건당식 주었어. 그것 가지고는... 반드시 증거 게송이 나와야 하거든.

 

불조(佛祖) 미증전(未曾傳)이요  아역무소득(我亦無所得)이다

차일(此日) 추색모(秋色暮)헌디  원소(猿嘯) 재후봉(在後峰)이니라

 

, 무식한 어른이 그대로 뽑아놨다는 것이여.

어른은 배우고 어른도 역시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시고, 어머니만 모시고 어머니 밑에 그만 있다가는 어릴 출가해서 그때 당시에 어디 옳게, 그렇게 아버지 없이 혼자 나온 어른이 옳게 어디 스승을 만날 있나? 천하에 어려운 것이 스승 만나긴디.

 

() 있는 스승이야, 도인(道人) 스승이야 물론 말할 것도 없지마는 그래도 도는 없더라도 상좌(上佐) 들여서 교육시킬 만한 그러헌 스승 만나기도 어려운 것이여. 보통 어렵지 않아.

 

그래 스승을 만난 동냥중을 만났어. 동냥하는 중을 만났는데, 동냥중이라도 무슨 보통 탁발(托鉢) 하는 동냥중 같으면은 그도 탁발해서 얻어가지고 와서 경학(經學)이라도 있고 있는데, 아주 순전히 직업적으로 광쇠 뚜들면서 하는 것이여.

 

그래 어른이 그걸 한번 하면, 당신께서 큰스님께서 배웠으니까 배운 대로 것이여.

잘하셔! 보통 아니어. ‘어허허 허허어허~’하면 잘한다 말이여 그거. 그거 다르거든 그거. 목청 좋겠다 한번 하면 잘허셔.

 

그렇게 그러헌 직업 탁발승한테, 직업 동냥중한테.  ‘땡땡이중이라고 . 말하자면.

절에 한번 와서 절도 않는 것이여. 그저 독살림 어디 하나 맡아 가지고는 절을 갖다가 그만 속인 맨들아 가지고 그래 고기고 돼지고기고 뭣이고 그저 닭도 잡아서 먹기도 허고 그렇게 사는 땡땡이여.

 

, 그런데 가서 입산(入山) 하셔 가지고는 그렇게 계시다가 경허 큰스님을 만나서 그만 경허 큰스님 법문 듣고 여지없이 버려 버려. 버릴 아니어? 거기 버리면 쓰겄어? 희사(喜捨).

 

거기에 정도 들고 암만 땡땡이지마는 스승을 만나서 거기서 해를 그렇게 배우시고, 밥만 먹으면은 걸망 하나 짊어지고 댕기시면서 동냥, 땡땡이해서 가지고 와서 스님 모시고 살고.

좀체로 버리기 어려워. 도무지 부처님의 정법(正法) 꿈에도 아니지마는 버릴 없어. 한번 그런 사견(邪見) 무리한테 그런 걸려도 좀해 나온 것이여.

 

허지마는 정법을 한번 듣고는 대번 버려 버렸다. 그걸 희사심(喜捨心)이라고 . ‘기껍게 버린다그말이여. 기껍게 못쓸 것을 버려 버리고는,

경허 큰스님, 우리 한국에 그만 중흥 도인 아니어? 그러헌 도인의 법문 말씀 듣고서는 그만 걸망 싸기가 바빴어.

 

내던져 버리고, 경허 큰스님 법문 듣고 도문(道門) 들어와서 참선(參禪) 하는데, 화두(話頭) 무슨 화두를 했든고 하니만법귀일 일귀하처(萬法歸一 一歸何處)” 했다. ‘일만 법이 하나로 돌아갔는데, () 귀하처(歸何處). 하나는 어디로 돌아갔는고?’ 고렇게 허는 것이여.

 

만법(萬法) 귀일(歸一)인데, 일만 법이 하나로 돌아갔는데 () 귀하처(歸何處). 하나는 어디로 돌아갔느냐?’ 요거여.

화두를 허시는데, 어째도 3년을 해도 도무지 조금도 약무사자진취(略無些子進趣), 조그만한 진취를 얻지 못했어.

 

그래도 무슨 되아가는, 의심(疑心) 독로(獨露)헌다든지, 망상이 난다던지, 뭣이 어떻게 진취조약(進趣操略), 진취조약이 있어야 턴디, 조금도 진취라는 없고 의전(依前)이다. 처음에 시작할 때나 마찬가지여.

 

그래 가지고는 당최 이것은, 당최 의심이라는 조금도 나지 않아. 없는 것이 의심인데 어째서 그렇게도 의심이 나느냔 말이여?

의심이 그렇게 연고(緣故) 모르기는 모르지마는, 없는 의심이 나지 않는 연고가 무엇인고 하니 발심(發心) 못한 연고여.

 

여지없이 발심을 ! 해서아무것도 도대체 세상에는 것이 없구나! 몸뚱이 이놈 하나 가지고 나와서 일이 무엇이냐? 몸뚱이를 어따가 지공(支供) 해야겄나? 이렇게 허나 못허나 몸뚱이 하나 얻어 왔으니 몸뚱이 있는 동안까지 몸뚱이를 옴스름이 그대로 어따가 바쳐야겠느냐?’

오직! 오직 참선을 해야겠구나! 참선 불사(佛事)에다가 바쳐야겠구나! 여다가 위법공양(爲法供養), () 위해서 공양을 올려야겠구나!

 

틈도 없이 사이도 없이 일향간(一餉間), 일향간이라는 먹을 사이 일향간이라 .

일향간도 데다가, 헛된 데다가서 마음을 몸뚱이를 바칠 수가 없다. 오직 찾는 참선법에다가 바쳐야겠구나!’ 가지고 발심을 가지고는 닦아 나가야 하지,

조금이라도내가 살았다. 권리가 있다. 세상이 편안하다. 내가 이만큼 좋은 받아 왔구나어쩌고 고런 소용없어.

 

평상 과거에 , 몸뚱이 받아가지고 나와서 얼마만큼 배웠는지는 없지마는 평생 소학저(所學底), 평생 배운 바를 그것을 그것 내던져 버려. 그것을 버려 버려. 거기도 희사해 버려. 기껍게 버려 버려.

소학저(所學底) 소문저(所聞底), 배워서 아는 들어서 아는 . 소견저(所見底), 봐서 아는 . 고깥은 가지고 뭣이여. 그것이 뭣인디?

 

입차문래(入此門來)인댄 막존지해(莫存知解)니라! 도문(道門) 들어와서는 지해(知解) 두지 말어라. 배워서 아는 것을 두지 말어라 그말이여.

것이여? 그런 가지고 들어와서 아소심(我所心) 있어서내가 안다

 

알면 뭣혀. 어따 것이여? 여가 어디 무슨 아는 것을 배우는 것인가? 아는 것을 무슨 , 어따 쓰는 것인가? 아무 소용없어.

입차문래(入此門來)인댄 막존지해(莫存知解). 문에 들어올 때에는 지해(知解) 두지 말어라’(처음~1446)

 

 

 

 

 

(2/3)----------------

 

만공 큰스님이 중간에 그때가 사내정의(寺內正毅) 땐가. 산리(山梨) 땐가? 산리 땐가 사내정의 땐가? 사내정이 회의실에 있어서 30본산(三十本山) 주지회의를 부쳤다. 그래 30본산 주지가, 31본산 주지가 모았다.

31주지, 연연(連延) 모도 거벽(巨擘)들이 둘러앉아서 차례로 설법을 때인데, 그다음에 인자 모도 차례차례차례 주지가 법문을 이렇게 나가는데 오래는 못하지. 잠깐 시간 정해 놓고 10분인가 얼마 동안 그동안에 강령(綱領) 따서 법문을 달라고 사내 총독이 청했어.

 

차례로 법문을 허는데 만공 큰스님 차례가 돌아왔다. 법상에 올라가서, 틀도 좋으시고 훌륭하시지. 올라가서 앉아서 느닷없이 (), ‘()’이란 고함을 지른 것이여. ‘!’하고는 그만 고함을 지르고 그래 놓고는 끝에.

 

차례로 주지들이 올라와서 설법을 하되 역대 일본서 나와서, 역대 총독들이 우리 한국에 나오셔서 이렇게도 거룩한 사업을 많이 했다 온통 모도 자랑, 찬탄, 찬성만 들입대 해놓고 내려오고, 내려오고.

그럴 아니어. 그때 모도 거지반 한국정신 버리고 왜놈이 되어야 하니까, 절대 친일파(親日派) 되어야 하니까.

 

그때에 도변창(渡邊彰)이가 와서 고문(顧問) 되어 있을 때인디 모도 도변창이 밑에 가서 그저수원 용주사 강대련(姜大蓮) 같은 이가 똑똑한 분인데, 강대련 스님도 도변창이 아들이라고 했구만.

 

시방 돌아가신 고인을, 옛날 왜놈한테다가 내가 그런 말하기는 대단히 미안하지마는 법석(法席)이니까, 법석이란 것은 그거 어떻게 . 척사현정(斥邪顯正) 허는 법인데 수가 있어?

삿된 것이 있고, 거기에 잘못된 것이 있어 중생 허물이 있으면 뒤집어 내는 것이 그것이 척사현정법인데 빼놓고 수가 있나?

 

내가 반대 비방으로 것인가? 도변창이한테 그때 아들이라고 것은 사실이니까. 친일파 내가 그러니게 허지 어떻게 것이냐.

그리허고는 다음에 이회광(李晦光) 스님같은 이가 그렇게 인물이지마는 (일본)임제종에다 갖다가 우리 한국불교를 거다가 모두 그만 분종을 시킬라고 안했어? 틀림없었지.

 

그때는 30본산 주지가 그러한 친일파가 아니면 못혀. 허들 못혀.

주지 투표할 때에도 처꺽 그만 모두 경찰서에 나와서 가지고는 투표를 쓰면은 뺏어서 경관들이 가지고 이회광을 모두 맨들어 주고 이럴 때란 말이여. 말할 것도 없어. 위조로 그만 갖다가서 마구잽이 때니까 , 소용 있나?

 

그럴 때인데, 31본산 주지들이 올라가서 법문을 하는데 모두 역대 총독이 그렇게 한국, 그렇게 치정(治定) 잘했다 온통 . 그래야 아닌가. 하늘 까장 모도 추켜올려서... 

 

만공 큰스님 차례가 돌아와서 만공 큰스님이 올라가서()!’ 그만 한번 들썩하게, 회의실이 올라갔다 내려오게 목소리로 놓으시니까 깜짝 놀라.

 

끝에 뭐라고 한고 하니, 제등(齋藤) 총독이 한국 총독으로우리나라 그때 한국이라고 했나?

총독으로 나와 가지고는 첫째, 우리 승려들을 조선 승려들을 갖다가서 장가들게 만든 것이 대처(帶妻) 시킨 것이다.

중이라는 장가들었다가도, 장가든 처도 버리고 부처님 제자가 되어 가지고는 수도를 . 비구승이 되어가지고 도를 닦는 것이 그것이 우리 조선 승려인데.

 

우리 조선 승려, 장가를 들었다가도 내버리고, 사자별처(捨子別妻)하고 들어와서 도를 닦아서 내가 나를 깨달아가지고 일체중생을 깨닫게 만드는 그러한 도승(道僧)들을 갖다가서, ! 나와서는 사찰령(寺刹令) 뒤바꿔버리고중도 장가들어라 가지고는,

 

도인(道人) 날까 싶어서, 한국 도인이 나서 과거 역사 가운데 선조대왕 당시의 서산(西山) 도사가 나와서 일본, 그거 뭐여? 그거 임진왜란을 그거 모두 무찌르고 왜놈을 항복받고 모도 이래놨기 때문에 도인을 무서워서 파계승(破戒僧)부터 맨든 것이다 그말이여.

그런 말은, 임진왜란 역사 그런 말은 못하셨지마는 그건 하셨지마는, 모두 그거 속에 들어있지 .

 

한국 중을 모두 파계승을 맨들어 가지고는 모도 장가들게 만들고, 그만 장가들어 가지고는 그만 어육주초(魚肉酒草) 먹고 이렇게 만들어 놨으니 제등 총독이 무간지옥에 들어가서 지금 지옥고를 받고 있느니라.

이렇게 자랑해 놓은 총독들을 갖다가 만공 큰스님이 올라가서 방맹이로 쳐대, () 처부숴 부렸다 그말이여. ‘이걸 아느냐?’하고.

 

이래놓으니아따! 야단났다이놈의 산리는 암말도 하고, 사내정의는 암말도 하고 있는데, 듣고는 암말도 하고 있는데한국 고승이 설법하는데 저렇게 하는가 보다이러고 있는데.

 

, 이놈의 30본산 주지가만공 큰스님 내놓고는 30본산 아닌가그만 야단이 났다.

큰일났구나! 인자 우리지금 내가 한국이라고 허지마는우리 조선 불교는 기어이 인자 망해 버렸다. 인자는 사내 총독이 이대로 이치도 만무하고, 한국 불교는 여기에서 망해 버렸다

 

30본산 주지들은 낱낱이 합천 해인사 같은 이회광, 양산 통도사 같은 그때 김구하(金九河).

그런 모도 대본산 하나 주지되면은 권리가 기가 맥혔소. 가마 타고 가고 가마 타고 들어오고, 왠통 어디 갔다 오면은 대종 둥둥 쳐가지고 한분이나 하나도 나올 같으면은 그만 당장 산문출송 시켜버리고 기가 맥혔지.

 

그래 있는데, 자기네 모두 안신입명처(立命處) 부서져 버릴 것이고, 인자 왜중들이 글안해도 한국 불교를 모두 와서 점령해서 애를 쓰는 판인데, 점령헐라고 가만가만 모두 나와서 절절이 모두 하나씩 와서 모두 허물을 모두 살피고 때인데.

! 이것 이렇게 만공 큰스님이 그만 해놨으니 큰일나 버렸지, 아닌 아니라.

 

법상에서 내려오자, 그만 30본산 중은 그만 산리한테 가서 모두 고개를 읍하고들 있네. ‘인자는 큰일났다 이러고 있는데, 만공 큰스님은 내려와서 자리에 앉었을 것도 없고, 법문 허고 나왔지.

 

나오니까, 법석에 방청하러 오신 스님이 누구냐 하면은 한용운 스님이 계셨는데, 한용운 스님이 우리나라 3.1 운동 때에 어른이 거벽 아니냐 그말이여. 그때 3.1 운동 만세 부를 한용운 스님이 했지 누가 했냐 그말이여.

한용운 스님이 손병희한테 가서 얘기하고, 용성 큰스님한테 와서 말씀 여쭙고 그래 가지고 서로 이럴 수가 있느냐고 가지고는 만세를 불렀어. 기맥히지. 어른이 했지 누가 했나. 세계에서 그때 인물 당선 투표할 적에 한용운 큰스님이 당선됐어.

 

감옥에 갇혀 있어 가지고도 경찰서장 이런 것이 자꾸 와서 불러내서 조사를 허면은한용운 똥구녁을 여태까지 조사를 못했나이래 버리지 두말할 것도 없어.

 

조그만하지마는, 채머리 딸딸 흔들지마는 무서운 스님이지. 큰스님이여. 견성은 못했다하지마는. 스님이 만공 큰스님 나오니께, 와서 그만 몸을 이렇게 부촉해서 뒤에 따라오면서요리 가십시다, 스님

만공 큰스님을 형님이라 . “! 형님 가십시다. , 형님 오늘 법문 천하에 도무지 아주 그만 내가 모가지가 없는데 모가지를 붙여준 같습니다, 사상가니까 말할 없지. 그런 법문 들으면.

 

그러고는 모시고서는 지금 지금 같으면 무슨 ()... 뭣인가? 그것을 뭐라 하노? () 먹고 모두 그런 데를 ... ‘()이라고 하나? () 먹고 있는데 있는가?

그런 데가 어디 그때 있었는데 그런 데를 모시고 가서 차를 대접하시면서 허신 말씀이 형님! 법문! 참말로 이거...”

한용운 연설 강연이라는 것은 초목도 색을 변한다는 거여. 얼마나 잘하시던지. 허지마는 과연 한마디 고함 한번 질렀는데 그렇게 독찬을 하셨습니다. 허지마는 같으면 방맹이로 쳐버리겠습니다. 그녀러

 

그러니까, 만공 큰스님이 입수부리는 길지. 기다른헌 어른이그려, 자네는 방맹이를 쓰지마는 나는 () 썼네. 곰은 방맹이를 쓰는 법이고 사자는 소리를 쓰는 걸세

꼼짝 못했지. 그거 꼼짝 못해. 아무리 한용운 스님이 그렇게 장하고 그렇게 많이 배운 양반이라도 만공 큰스님한테는 꼼짝 못혀.

 

그렇게 무식해 일찍이 그렇게 하나 배우고 했지마는 도를 통해 놓으니 그렇다 그말이여. 그런 어른이신데 참선할 때에 3 동안을...

 

그저 꿈쩍 못했지. 산리도 한국 고승이라고 해서 조꼼도 거다가서 그런 고승...

일본도 불교가 그래도 명상불교, 모두 해석선, 해석불교라도 상당하지. 모든 사찰 제도 기타 규칙, 나가는 전체 범례, 전체를 우리나라가 따라갈래야 따라갈 없어. 우리나라서 건너갔지마는 일본 불교는 순전히 문화제.

() 해석적으로 해놨지. 그런 벽암록(碧巖錄) 같은 것을 일본서 해석해 놓은 잘해 놨다 그말이여. 보통 잘해 놓은 아니어. 해석선은 번지르르하지. 말할 없어. 모도 그놈 다루어 놓은 것이.

 

허지마는 우리나라 ()이란 것은 그것이 아니거든. 해석이 뭣이여? 해석과는 원수인데.

따져 놓은 것이 뭣이여? 요리조리 따져놓으면 문예 같은 , 소설 같은 , 잡지 같은 되어버리지, 선의 가치가 어디 있어?

 

! 맥혀서 없는 곳에서 화두 대의(大疑), 확철대오(廓徹大悟)하는 대의.

자오자각(自悟自覺) 해야 하는 것이지, 타오(他悟) 어디 있어? 일러주고 가르켜 주어? 해석해 주어?

 

그러니 이렇게 모두 고인(古人) 고인이내가 거기 대한 () 하나,

 

참선(參禪) 수투조사관(須透祖師關)이요  묘오요궁심로절(妙悟要窮心路絶)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참선(參禪) 수투조사관(須透祖師關)이다. 참선은 조사관(祖師關) 뚫는 것이다. 조사관을 뚫는데 수투조사관인데, 누가 아르켜 거여? 해석을 ? 해석해 주면 되냔 말이여. 아무리 의리(義理) 말해 줬자 몰라. 없어.

 

무슨 (), 무슨 (), 있는 것이면있다 모냥다리 뭣을 하나 가르켜 텐데, 어디 있는 것인가?

(), 없다어디 없는 것인가? 없으면 아무 것도 없다는 허공 같은 경계를 하나 일러 텐데, 어디 없는 것인가?

 

() 아니어. () 아니어. 비유(非有) 아니어. 비무(非無) 아니어. 아닌 것도 아니요, 아닌 것도 아니요. , 이런 보소.

 

, 그래 가지고는 묘오(妙悟) 요궁심로절(要窮心路絶)이다. 묘오(妙悟) , 묘오 깨닫는 것은 심로(心路) 끊어져. 심로란 망상 번뇌 인데, 번뇌장(煩惱障) 물러가 버려. 번뇌장이 없어져 버려.

번뇌장, 그저 이것 이런 마음, 저런 마음 퍼일어나는 전체 살도음망(殺盜婬妄)심이 일어나지, 망어(妄語) · 기어(綺語) · 양설(兩舌) · 악구(惡口) 그놈이 모도 일어나지, 탐진치(貪瞋癡) 일어나지. 그래가지고는 그놈 모두 천억 생멸심(生滅心) 퍼일어나는 것이 없이 그놈의 중생 속에서 일어난다.

 

요놈 () ! 끊어져 버린 거여. 심로(心路) 녹아져 버려. 고만 어디 없어.

 

심로가 없지마는, 다맛 끊어지지마는 그대로 산산수수(山山水水) 각완연(各宛然)이다. 웬일이여?

그러니 없어지지마는 그대로 역무(亦無) 역유(亦有). 없는 놈이 그대로 (). 이거 보소!

 

그러니 부처님이 그렇게 깨달아가지고 각존(覺尊) 되어 가지고 다시 모도 중생 경계를 그대로 말했거든. 전부 중생의 망담(妄談) 경계를 고대로 설한 것이 그것이 부처님의 설법이고 그것이 ()집이지.

 

그러니 참선법, 해탈법이 여차(如此)하다 그말이여. , 없는 같으면 그놈만 내세우고, 있는 같으면 그놈만 내세우고. 그러니 과학이 아니고 비철학(非哲學)이요 비종교(非宗敎). 철학이나 과학으로써 증명할 없는 거여.(1744~3859)

 

 

 

 

 

(3/3)----------------

 

만공 큰스님이 그래 그와 같이 한번 총독실에 가서 대할(大喝) 가지고는인제 그만 어쩌, 꼼짝달싹 못혀. 산리(山梨) 뭐라고 말해.

일본이 그와 같이 불법이 그래도 명상 불법이라도, 해석법이라도 훌륭하기 때문에 신앙심이 있기 때문에한국 고승이 이렇구나!’ 숭배를 했다 그말이여. 법문으로 들었고. 아무 말이 없었지, 무슨 말이 있었나.

 

그것도 아닌 아니라 만공 큰스님의 도력이 아니시면 그렇게 되야. 30본산 주지, 그때 그러헌 스님네는 암만 장하지마는 . 허도 허고 되야.

초월삼계(超越三界)해서, 삼계 밖에 뛰어나서, 법과 밖에서 한바탕 그렇게 법문을 했는데, 제석천주(帝釋天主)까장이라도 자리에서 보호하고 있는데, 어떻게 것이냐? 하지.

 

큰스님께서 공부를 허실 적에 3년을 만법귀일 일귀하처(萬法歸一 一歸何處)’ 했네. 3년을 화두를 해도 조끔도 진취가 없어. 사자진취(些子進趣)니라. 조끄만헌 진취도 없네. 이런 .

하고(何故)인고? 어째 이런고?’ 아마도 고봉 스님도 3년을 가지고 3 만에 견성을 하셨는데, 3년을 봐도 여차하니 이게 웬일인고? 연고를 수가 없구나. 큰스님 시킨 대로 내가 화두를 했건만 이게 이러고 있으니 웬일이냐.

 

하룻밤에는대체 3년이 솔찬이 세월이지마는 거지반 하근.. 그런 어른은 하근(下根) 아니시지마는, 3년을 대체 마지막 날이여. 그날이 날짜가.

 

, 그것! 새벽종을 당당당당...... 올리는데, 그만 터지네. 터져!

터졌는데 뭣이 터졌냐 하면, 동방에서 껌껌한 어둔 밤에 해가 올라 오데끼, 그때는 아침해 떠올라 것도 아니고 말이여. 화두 나가는데 ! 터지는데 해탈 광명장(光明藏) 터졌네.

 

광명이 터져가지고 자기 광명이 시방세계를 조요(照耀)하는데, 시방세계를 들이비추는데 끝도 갓도 없다. 광명 끄트머리가 어디맨지 당최 말할 수도 없다.

그런데 앞이 그렇게 되어 있는데 뒤도 그렇게 되어야 허지만 뒤는 그려. 뒤는 그러고 앞만 그렇다 그말이여. , 이리 돌아도 이렇고, 이리도 이렇고. , 이런 , 기가 맥혀! 그래가지고서는 그만 앞산에 개미 기어가는 것이 환히 보인다.

 

자올지마! 자올지마! 법문 들으며 자올면, 꾸뻑꾸뻑 자올면은 나가라고 해도 듣고 자올고 앉었어. 그따구 놈의 도무지 업장(業障) 가지고 () 배우러 들어와서...

인자 법문하다가도 부애가 일어나서 주먹으로 볼타구니 한번 패주고 싶네, 바로 말허자면.

 

그런 맘이 나왔어? 금생에 생사해탈 못하면 언제 것이여 글쎄. 6 7천만년을 부처님도 없고 설법 한번 들을 때가 없어.

그러니 지금 어쩌든지 닦아가지고는 도솔천궁을 가야헌다 그말이여. 도솔천 외원궁 소용없어. 외원궁까장 삼재(三災) 있으니까 안돼. 도솔천 내원으로 바로가야 하는데 화두 간택을 가지고, 시방 화두 간택한 알아?

 

눈을 찌부지지 감고 들은 그러지, ! 내가 시방도 보고 앉았어.

잠잔 사람은 테지. 주먹으로 냅대 그만 버릴텐게. 내가 이래봬도. 시방은 권투니 뭐니 이런 있지만 나도 옛날에 씨름을 어떻게 잘했던지 30 같은 대번에 내가 때려 눕혀. 한번 가면 절단 버려. 그런 알아.

 

그려 내가? 자기 생사 면하라고 그러지, 내가 내게 관계있나?

어쩔 거여. 생사 이놈 두고 이대로 두고 이게 것인가?

 

똥뭉텡이 하나를 담아가지고 돌아댕기면서, 똥자루 그녀러 빌어먹을 , 더러운 밤낮 사방 구녁에서 냄새 푹푹 똥냄새, 냄새 모두 나는 놈의 , 고걸 짊어지고 다니면서. 같은가 보다.

 

자지 마라! 자면 인자 참말로 되야.

그놈이 자면법문 듣지 말라해도 와서 처자빠져 자고 앉아서 법문 못하게 만들어 버려. 내가 조는 것만 보면 법문 하고 내려가 버리는데.

 

만공 큰스님이 인자, 내가 만공 큰스님이 인가해 주었다고 해서 우리 큰스님인게 이런 자랑 법문한 아니어. 그렇게 듣고 자빠져 자는구만.

에따! 당신 좋다고 논게 저래 자랑한다 요러고 앉았구먼. 고런 놈의 발견해낸다.

 

, 이런 광명이 투탈(透脫) 가지고는 환한 이런 놈의 , 이게 당최 수가 없네. 인자 그때에는, 그때는 반드시 큰스님을 만나야 . 환한 광명이 안팎도 없는 대광명이, 이런 일월(日月)에다가 비교를 ?

 

그래가지고는 그날 아침내 있다 말이여. 있더니 그놈이 사르르르 없어져 버려.

그놈이 없어지면서 화두는만법귀일 일귀하처 했는데 조주(趙州) ‘무자(無字)’ 들어와서 그만 눈을 그만 열어줘 버려. 활연개안(豁然開眼)이라. 눈이 열려 버렸어. ‘무자(無字)’ 대의(大義) 그대로 .

 

! 무자(無字) 대의 보면서 같은 광명 경계, 대천세계(大千世界) 눈으로써 광명 눈으로써 삭파(爍破) 버리면 뭣혀.

같은 광명 고런 것이 () 같으면 개똥벌레도 참선해서 그놈이 광명 났구먼. 개똥벌거지 개똥 속에서 나온 놈이 배때기 놓고 날아댕기는 , 칠팔월에.

 

그래가지고서는 무자(無字) 깨달아 놓고 보니까, () 어디 있더냐?

국기병원(鞠其病源) 한번 해보니 3 동안 그렇게 안되고 조끔도 진취 없이 되어있든 것이 원인이 어디 있든가?

 

가만히 되살펴 보니까 별무타고(別無他故). 다른 있는 것이 아니어.

어머니 분을 두고 들어와서 중이 되었는데 공부할 때마다 어머니 생각이 난다. ‘아이고, 우리 어머니 어찌 되었는고?’ 이런 놈의우리 어머니가 어찌 되었는고?’ 이놈이 나오면 화두가 그만 없네.

 

그래 가지고 자꾸 어머니 생각이 나다가 어쩌다 돌이켜서 보면은 어머니 생각 , 화두 , 요래 가지고 어머니한테 갔다가 화두가 왔다가, 요것이 있었어. 그놈이 무서운 장애, 어머니 생각이 무서운 장애를 주었다.

 

다시 여지없이 포구발심(怖懼發心) 해서어머니도 그만 찰나 실각(失却)하고, 잠깐 동안 실각해 몸뚱이 잃어버리고 돌아가시고, 나도 실각해 버리고 죽으면은 삼악도(三惡途) 밖에 없고, 무간지옥 밖에 없고.

삼악도 무간지옥이 아니면 충사(蟲蛇) 배때기, 돼지 배때기, 배때기, 구렁이 배때기 밖에 없는데 포구발심을 해가지고 항상 어머니 생각이 났든 것이다.

 

내가 발심 못한 연고로구나! 발심을 가지고 도를 닦아야 하느니라그런 법문을 주실 이렇게 말해 주어서 내가 친문(親聞) 했어. 했으니 어쨌든지 대중은 포구발심을 해야 .

포구(怖懼), 무서운 발심을 해서 어쨌든지 금생 몸을 다른 데다가서 허비하지, 헛되이 희생시키지 버리지 말고 화두에 전렴전력(專念專力)해서, 미루지 말고 해서 금생에는 생사 문제를 해결해야 . 확철대오를 해야 한다 그말이여.

 

 

오늘 ()문진행객(問津行客) 편응급(鞭應急)이다

나루를 건너는 객이, 행하는 객이 채찍을 한다. 어서 어서 다리를 건너가 물을 건너가서, 날이 저무니까 어서 건너가야겠다.

건너가서는심사귀승(尋寺歸僧) 장불한(杖不閑)이니라절을 찾아가는 중이 작대기가 한가롭지 못하다. 어서 어서 찾아. 어서 절을 찾아야지, 어두우면 찾으면 되아? 밤중에 어쩔 거여.

 

어서 속히 건너가서 불탄산고수활(不憚山高水)하고 건너가서, 어서 속히 옳은 도찰(道刹) 바위구녁이라도 어디 앉아 닦을 만한, 우리 부처님이 설산 들어가데끼, 바로 가서 어디 가서 닦을 앉아서 도를 닦아야 하느니라.

밖에 닦을 것이 어디 있느냐! 도를 참으로 진수(眞修) 해야 하느니라.

 

고목계남창연(枯木溪南蒼烟) 속에냉기는 마르고, 남쪽 언덕에 연기는 연파(煙波), 운연(雲煙) 산중 그런데 가서 도를 닦고 있을 같으면 시절인연(時節因緣) 도래(到來)한다. 깨달을 시절인연이 도래 .

추지임타황엽락(秋至任他黃葉落)이요가을이 오면 황엽이 누른 이파리가 떨어질 거고, ‘춘래의구초자청(春來依舊草自靑)이다봄이 같으면 풀이 스스로 피느니라.

 

거기서 목동(牧童) 기우농적환(騎牛弄笛還) 것이다. 찾는 도학자(道學者), 찾는 학자가 확철대오 가지고, 산에 잃어버린 목동이 소를 찾아가지고 소를 타고 젓대를 희롱하고 돌아올 것이다.

한번 처꺽 내가 나를 ! 깨달아서 젓대를 일없는 태평가(太平歌) 부를 때가 있을 터이니 부디 조끔도 조끔도 방심하지 말고 닦을 지어다.(39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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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날 ; ‘하늘 사투리.

*인가(印可 도장 /옳을·인정할 ) ; 스승이 제자의 깨달음을 인정함.

*건당(建幢 세울 /·휘장 ) ; 전법(傳法)의식. ( : 자기의 종지宗旨 또는 사상을 높이 찬양하는 간당竿幢) 세운다[] . 스승이 제자의 안목(眼目) 감파하여 이를 인정할 , 자기의 세계로 들어옴[入室] 허락하여 법통을 전해줄 행하는 의식이다.
*
견성(見性)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꿰뚫어 보아() 깨달음. 미혹을 깨뜨리고 자신의 청정한 본성을 간파하여 깨달음.

*전강 스님이 만공선사로부터 받은 전법게(傳法偈)

佛祖未曾傳 (불조미증전)  我亦無所得 (아역무소득)

불조가 일찍이 전하지 못했는데  나도 또한 얻은 없네.

此日秋色暮 (차일추색모)  猿嘯在後峰 (원소재후봉)

이날에 가을빛이 저물었는데  원숭이 휘파람은 후봉에 있구나.

*()①깨달음. 산스크리트어 bodhi 한역. (). 보리(菩提)라고 음사(音寫). ②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방법. ③무상(無上) 불도(佛道). 궁극적인 진리. ④이치. 천지만물의 근원. 바른 규범.

*상좌(上佐 /도울 ) ; 윗사람을 도운다는 . , 스승의 제자를 일컬음.

*도인(道人) ; ①불도(佛道) 수행하여 깨달은 사람. ②불도(佛道) 따라 수행하는 사람.

*동냥 ; ①스님이 시주(施主 : 스님에게 혹은 절에 돈이나 음식 따위를 보시하는 ) 얻으려고 돌아다니는 . 또는 그렇게 해서 얻은 돈이나 물건. ②거지나 동냥아치(동냥하러 다니는 사람)들이 돌아다니며 구걸함. 또는 그렇게 해서 얻은 돈이나 물건. ③애걸(哀乞 : 애처럽고 간절하게 )하여 빌어서 얻는 . 또는 그렇게 해서 얻은 .

*동냥중 ; 시주(施主 : 스님에게 혹은 절에 돈이나 음식 따위를 보시하는 ) 얻으려고 돌아다니는 스님.

*탁발(托鉢 맡길 /바리때 ) ; 도를 닦는 스님이 경문(經文) 외면서 집집마다 다니며 보시를 받음. 수행자의 아집(我執) 아만(我慢) 없애고동시에 보시하는 이의 복덕을 길러 주는 공덕이 있다고 하여 부처님 생존 당시부터 행하였다.

*광쇠 ; 염불할 치는 꽹과리 같은 .

*()살림 ; ①부모 형제나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지 아니하고 따로 벌인 살림. ②암자나 작은 절에서 본사(本寺) 기대지 않고 따로 사는 살림살이.

*입산(入山) ; ①산에 들어감. ②출가하여 스님이 .

*경허선사(鏡虛禪師) ; (1849-1912) () ()씨이고 법명은 성우(惺牛), 이름은 동욱(東旭)이요 () 경허(鏡虛)이며 여산(礪山) 사람이다.

헌종 15 기유(己酉) 8 24 전주 자동리(子東里)에서 태어났는데 아버지는 송두옥(宋斗玉)이요 어머니는 밀양(密陽) ()씨였다. 태어난 사흘동안 울지 않다가 목욕을 시키자 아기 소리를 내니 사람들이 모두 신기하게 여겼다.

 

일찌기 아버지를 여의고 9세에 어머니를 따라 서울로 올라와서 경기도 광주군 청계사(淸溪寺) 가서 계허(桂虛)스님을 은사로 머리를 깎고 계를 받았다. 나이는 어리지만 뜻은 컸으며 비록 고달픈 환경이라도 피곤하거나 싫어하는 마음이 없이 나무하고 물긷고 밥을 지으며 은사스님을 모셨다.

 

14세가 되도록 글을 배울 겨를이 없었는데 어느 선비가 절에 와서 여름을 지낼 때에 선비가 소일꺼리로 곁에 불러 앉히고 천자문·통사(通史) 등의 글을 가르쳐 보니 눈에 스치면 배우고 듣는대로 외우고 문리를 해석할만큼 크게 진보가 있으니 선비가 크게 감탄하였다.

얼마되지 않아서 은사인 계허스님이 환속(還俗) 하며 스님의 공부를 크게 성취시키지 못함을 애석히 여겨 편지를 써서 계룡산 동학사 만화화상(萬化和尙)에게 추천하였다. 화상은 당대에 강사였다.

 

만화강백(萬化講伯) 처소에서 일대시교(一代時敎) 수료하였다. 공부를 하는데 한가하지도 바쁘지도 않게 해도 남보다 열배 백배 앞섰으며 영호(嶺湖) 강원에 두루 참석하여 학문이 날로 진취되고 널리 내외전(內外典) 섭렵하여 정통하지 않은 것이 없어서 이름이 팔도에 떨치었다.

23 때에 대중들의 요청으로 동학사에서 개강(開講)하니 교의(敎意) ()하매 바다의 파도와 같으니 사방에서 학인들이 몰려왔다.

 

31 하루는 전날 은사 계허스님이 보살펴 아껴주던 정이 생각나서 한번 찾아뵙고자 대중에게 고하고 길을 떠나게 되었다. 도중에 갑자기 폭풍우를 만나 급히 어느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하려 하자 주인이 내쫓았다.

동네 수십 집을 찾아갔지만 집집마다 쫓기를 매우 급히 하며 소리로 꾸짖기를지금 이곳에는 전염병(콜레라) 크게 돌아 걸리기만 하면 서있던 사람도 죽는 판인데 너는 어떤 사람이기에 사지(死地) 들어왔는가!”하였다.

스님이 말을 듣자 모골(毛骨) 송연(竦然)하고 마음이 떨리며 마치 죽음의 벼랑에 다다른 같으며, 목숨이 참으로 호흡하는 사이에 있어서 일체 세상 일이 도무지 밖의 청산 같았다.

 

이에 스스로 생각하고 말하되금생에 차라리 바보가 될지언정 문자(文字) 구속되지 않고 조사(祖師) 가르침을 찾아 삼계(三界) 벗어나리라하고 발원을 마치고 평소의 읽은 공안(公案) 생각해보니, 이리저리 의해(義解) 배우던 습성이 있어서 지해(知解) 따져지므로 의심으로 참구(參究) () 없으나,

오직 영운선사(靈雲禪師)여사미거 마사도래(驢事未去 馬事到來)—나귀의 일이 끝나지 않았는데 말의 일이 닥쳐왔다.”라는 화두(話頭) 해석도 되지 않고 은산철벽(銀山鐵壁) 부딪친 듯하여이것이 무슨 도리인가?’하고 참구하였다.

 

산에 돌아온 뒤에 대중들을 흩어 보내며 말하기를그대들은 인연따라 잘들 가게나. 내가 뜻을 두어 원하는 것은 이에 있지 않다네하고 문을 폐쇄하고 단정히 앉아 전심(專心)으로 참구(參究)하는데, 밤으로 졸리면 송곳으로 허벅지를 찌르고 혹은 칼을 갈아 턱에 괴며 이와같이 3개월을 화두를 들고 정진하였다.

 

사미(沙彌)스님이 옆에서 시중을 드는데 속성(俗姓) ()씨라, 그의 아버지가 좌선을 여러 동안 하여 스스로 깨달은 곳이 있어서 사람들이 이처사(李處士)라고 부르는데, 사미의 스승이 마침 집에 가서 처사와 이야기를 하는데,

처사가 말하기를중이 필경에는 소가 된다하니까, 스님이 말하기를중이 되어 마음을 밝히지 못하고 다만 신도의 시주만 받으면 반드시 소가 되어서 시주의 은혜를 갚게 된다 했다.

 

처사가 꾸짖어 이르기를소위 사문(沙門, 스님) 대답이 이렇게 도리에 맞지 않습니까하니까,

스님이 이르기를나는 선지(禪旨) 알지 못하여서 그러하오니 어떻게 대답해야 옳습니까?”하니 처사가 이르기를어찌 소가 되기는 되어도 콧구멍 뚫을 곳이 없다고 이르지 않는고?”

 

스님이 묵묵히 돌아가서 사미에게 이르기를너의 아버지가 이러이러한 이야기를 하던데 나는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하니,

사미가 말하길지금 주실(籌室) 화상이 참선(參禪) 매우 간절히 하여 잠자는 것도 밥먹는 것도 잊을 지경으로 하고 있으니, 마땅히 이치를 것이니 사부(師傅)께서는 가서 물으소서

 

스님이 흔연(欣然) 가서 절하고 앉아서 이처사(李處士) 말을 전하는데소가 콧구멍이 없다(牛無鼻孔處)’ 말에 이르러 화상의 안목(眼目) () 움직여옛부처 나기전 소식(古佛未生前消息)’ 활연히 앞에 나타나고, 대지가 꺼지고 물질과 나를 함께 잊으니 고인(古人)크게 쉬고 쉬는 경지(大休歇之地)’ 도달한지라, 백천 법문과 한량없는 묘한 이치가 당장에 얼음 녹듯 기와가 깨어지듯 하니, 때는 고종 16 기묘(己卯 1879) 동짓달 보름께였다.

 

그날 이후 스님은 방에 누워 사람들의 출입을 상관하지 않았다. 만화강사가 들어와서 보아도 또한 누워서 일어나지 않으니 강사가 이르기를무엇때문에 누워서 일어나지 않는고?”하니, “ 없는 사람은 본래 이러합니다(無事之人 本來如是)” 하였다.

스님은 이듬해인 경진년 봄에 어머니와 태허스님이 계신 연암산 천장암(天藏庵)으로 옮겨 오후보림(悟後保任)하였다.

 

게송으로 깨달아 증득한 곳을 이르기를,

홀문인어무비공(忽聞人語無鼻孔돈각삼천시아가(頓覺三千是我家)

유월연암산하로(六月燕巖山下路야인무사태평가(野人無事太平歌)

 

홀연히 콧구멍없다는 말을 듣고, 몰록 삼천세계가 집임을 깨달았네.

유월 연암산 아랫 길에, 없는 들사람이 태평가를 부르네.

 

천장암에 머물면서 하루는 대중에게 설법할 적에 특히 전등(傳燈) 연원(淵源) 밝히는데 스님의 법은 용암화상(龍巖和尙)에게 이었으니 청허(淸虛) 12세손이 되며 환성(喚惺) 7세손이 된다 하였다.

뒤로 호서(湖西) 20 오래 주석하니 천장암과 서산의 개심사와 부석사, 마곡사·칠갑산 장곡사·아산 봉곡사·금산 태고사·계룡산 갑사·동학사·신원사·속리산 법주사 등지로 왕래하며 때로는 마음을 고요히 묵상하며 때로는 사람을 위하여 설교하면서 호서에 선풍(禪風) 크게 떨치었다.

 

51 기해년(1899) 가을에 합천 해인사 조실로 초대받고 가니 때마침 칙명으로 대장경을 인출하는 불사와 수선사(修禪社) 설치하는 사업이 있었는데 대중이 스님을 추대하여 법주로 모셨다.

영축산 통도사·표충사·대승사·동화사·파계사와 금정산 범어사와 호남의 화엄사·실상사·쌍계사·송광사·태안사는 모두 화상께서 유력(遊歷)하던 곳이다. 이로부터 사방에서 선원(禪院) 다투어 차리고 발심한 납자 또한 구름 듯하니, 기간처럼 부처님 광명이 다시 빛나 사람의 안목을 열게 함이 이와같이 ()함이 없었다.

 

임인년(1902) 범어사에서 「선문촬요(禪門撮要) 편찬 불사. 가을 동래 범어사의 금강암과 마하사 나한 개분불사(改粉佛事) 증명법사를 하였다.

56 갑진년(1904) 2 11일에 천장암에서 만공스님에게 전법게(傳法偈) 내리고 불조의 혜명을 이어가도록 부촉하였다. 봄에 오대산과 금강산을 거쳐서 안변 석왕사에 이르러 오백나한 개분불사의 증명으로 참여하였다.

 

뒤로 자취를 감추고 스스로 선비 박난주(朴蘭洲), 또는 유발거사(有髮居士) 박진사(朴進士) 하고 머리를 기르고 선비의 옷차림을 하고 갑산·강계 등지로 내왕하며 시골 서당에서 훈장도 하며 만행두타(萬行頭陀)로써 진흙에도 들고 물에도 들어가서 인연따라 교화하였다.

 

64 임자년(1912) 4 25 갑산(甲山) 웅이방(態耳坊) 도하동(道下洞)에서 입적(入寂)하니 법랍 56세였다. 입적 소식을 듣고 만공(滿空혜월(慧月)선사가 그곳에 가서 난덕산(難德山)으로 운구하여 다비(茶毘) 하고 임종게(臨終偈) 얻어 가지고 돌아왔다.

 

심월고원(心月孤圓광탄만상(光呑萬像광경구망(光境俱忘부시하물(復是何物)

마음달이 외로이 둥글게 빛나니, 빛이 만상을 삼켰도다. 빛과 경계를 함께 잊으니, 다시 이것이 무엇인고.

 

만공선사 주재, 한용운 스님의 편찬으로 스님의 법어를 모은 「경허집(鏡虛集)」이 있다.

[참고] 『경허집(鏡虛集) (석명정 | 극락선원), 『경허법어(鏡虛法語) (경허성우선사법어집간행회 | 김진성 | 인물연구소)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사견(邪見) : ①잘못된 견해. 틀린 생각 ②인과(因果) 이치를 부정하는 잘못된 생각 ③올바로 자신의 마음의 실상을 알수가 없는 .

*좀해 ; 좀처럼(여간하여서는).

*기껍다 ; (무엇이)족히 마음에 들어 만족스러워 마음이 기쁘다.

*참선(參禪) ; ①선() 수행을 하는 .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만법귀일 일귀하처(萬法歸一 一歸何處) ; 화두(공안) 하나.

어떤 스님이 조주에게 물었다. “만법(萬法) 하나로 돌아가는데 하나는 어느 곳으로 돌아갑니까?”

조주는 말했다. “내가 청주에 있을 장삼을 하나 만들었는데, 무게가 일곱 근이었다.”

僧問。萬法歸一一歸何所。師云。老僧在青州作得一領布衫重七斤。[전등록(傳燈錄) 10. 조주선사.

僧問趙州 '萬法歸一一歸何處'  州云 '我在靑州作一領布衫重七斤' [벽암록(碧巖錄)] 45.

*의심(疑心) :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 대해 없는 생각 막히는 .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또는어째서 () 했는고?’ 또는조주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 했는고?’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바른 깨달음은 없는 의단, 없는 의심에 막힌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본참화두(本參話頭) ; 본참공안(本參公案).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독로(獨露 홀로·오로지 /드러날 ) ; 홀로() 드러나다().

*진취조략(進趣操略) ; 정진해 나아가는 지조(志操) 책략(策略).

[참고] 『선요(禪要) (조계종 교육원 | 조계종출판사) p21 ()에서.

〇操略 : 志操와 策略. ‘지조 닭이 알을 품는 것처럼[如鷄抱卵] 화두를 순간도 놓치지 않고 [間斷]없이 드는 것을 말하고, ‘책략 모기가 무쇠소에 침을 꽂으려고 하는 것처럼[蚊上鐵牛] 사량분별이 붙을 없는 것을 말한다.

*의전(依前) ; ①여전하다. ②이전과 같다.

*당최 ; 도무지(아무리 해도, 이러니저러니 없이 아주). .

*연고(緣故 연줄·인연 /·연고 ) ; ①혈통(血統), 정분(情分) 또는 법률 따위로 인연을 맺은 관계. ②일이 벌어진 까닭.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 일으킴[].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지공(支供) ; ①음식 따위를 대접하여 받듦. ②필요한 물품 따위를 .

*불사(佛事) ; ①불법(佛法) 알리는 . 법회, 불공(佛供), () 봉행, 경전의 간행과 유통, 사찰의 중창과 전각 중수, 불상·탱화·불구(佛具가사(袈裟) 조성 등의, 불가(佛家)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가리킨다. ②부처님께서 중생을 교화(敎化)하시는 .

*() ; (산스크리트) dharma, (팔리) dhamma 한역(漢譯). ①진리. 진실의 이법(理法). ②선(). 올바른 . 공덕. ③부처님의 가르침. ④이법(理法)으로서의 연기(緣起) 가리킴. ⑤본성. ⑥의() 대상. 의식에 드러난 현상. 인식 작용. 의식 작용. 인식 내용. 의식 내용. 마음의 모든 생각. 생각.

*공양(供養) ; ①불()•()•() 삼보(三寶) 스승, 부모, 영가에 음식, , , , 등을 바침. ②스님들의 식사를 공양이라 하는데, 이것은 스님들은 시주(施主) 공양물로 생활하기에 공양을 올리는 [施主] 시은(施恩) 상기하여 잊지 않게 하고자 함이다. ③신구의(身口意) 가지 방법으로 하는 공양으로 삼업공양(三業供養)이라 한다. 자세[] 낮추어서 삼가고 공경하는 예를 갖추는 공경, []으로 훌륭함을 기리는 찬탄, 오로지 마음[] 쏟는 존중이다.

*입차문래(入此門來) 막존지해(莫存知解) ; 안에 들어오매 알음알이를 두지 말지어다.

[참고]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220.

神光(신광)  不昧(불매)하야  萬古徽猷(만고휘유)로다  入此門來(입차문래)  莫存知解(막존지해)어다.

거룩한 어둡지 않아 만고에 밝고나. 안에 들어오매 알음알이를 두지 말지어다.

 

[참고]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 9 천태평전보안선사(天台平田普岸禪師) 말씀.

天台平田普岸禪師洪州人也  於百丈門下得旨  後聞天台勝槪聖賢間出  思欲高蹈方外遠追遐  乃結茅薙草宴寂林下  日居月諸爲四衆所知  創建精藍號平田禪院焉  有時謂衆曰  神光不昧萬古徽猷  入此門來莫存知解

 

천태산 평전보안 선사는 홍주 사람이다. 백장의 문하에서 종지를 얻은 뒤에 천태산의 수승한 경치에서 성현이 가끔 난다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한번 가보고자 하여 멀리 찾아가서 띠집을 짓고는 밑에서 조용히 참선을 했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사부대중에게 알려지게 되어 절을 짓고 평전선원이라 하였다.

어느 대중에게 말했다. “신령한 광명이 어둡지 않아서 만고에 빛나니, 문에 들어와서는 알음알이를 두지 말라.”(「전등록 1 동국역경원, 김월운 옮김. p575-576)

*도문(道門) ; ①도에 이르는 . 부처님의 가르침. ②불문(佛門). 부처님의 법문(法門). 불교(佛敎)라는 . 부처님의 가르침에 들어서는 . 깨달음으로 들어서는 .

*지해(知解) ; 상량(商量). 알음알이.

*알음알이(知解) : 참선은 연구하는 것이 아니다。생각으로써 이리저리 따져서 아는 것은 깨친 것이 아니다。참선하는 가장 꺼리는 것이 알음알이이다。그러므로 『이 안에 들어오려면 알음알이를 내지 말라(入此門內莫存知解)』라고 크게 써서 문에 붙이는 것이 까닭이다.

*아소심(我所心) ; 나의 것이라는 마음. 나의 소유라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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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정의(寺內正毅 데라우치 마사타케) ; 일제 강점기 당시 우리나라에 대한 식민통치를 수행하고 민족운동 탄압과 수탈을 총지휘한 최고의 식민지배 통치기구인 조선총독부(朝鮮總督府) 1 총독(1910-1916).

*산리반조(山梨半造 야마나시 한조) ; 조선총독부 4 총독(1927-1929).

*30본산(三十本山) ; 1910 경술국치(庚戌國恥 한일병합 조약) 직후에 시작된 조선총독부는 1911 6 3 조선 불교에 대한 행정 통제를 강화하고 식민지 지배 구조에 불교를 예속시키기 위한 규제 일변도의 악법인 조선사찰령(朝鮮寺刹令) 공포하고 시행하여 그동안 독립적 개별적으로 운영되던 조선의 불교 사찰을 30개의 본산, 중심 사찰을 선정해 지역의 다른 사찰을 관할하게 제도.

30본산의 주지는 조선총독이, 말사(末寺) 주지는 도지사의 허가를 받아서 임명하도록 하였다. 1924 11월에 화엄사가 본산으로 되어 31본산(三十一本山) 되었다.

*연연(連延 이을 /·늘어설 ) ; (무엇이 시간이나 장소에)잇대어 길게 뻗음.

*거벽(巨擘 /엄지손가락 ) ; 어떤 분야에서 기능이나 능력이 남달리 뛰어난 사람.

*강령(綱領 벼리 /거느릴·요점 ) ; ①일의 근본이 되는 줄거리. ②정당이나 사회단체 등이 기본 입장이나 방침, 운동 규범 따위를 열거한 .

*거지반(居之半) ; ①거의 절반. ②거의 절반 가까이.

*친일파(親日派) ; ①일본과 친하게 지내는 무리. ②일제 강점기 , 우리나라 사람으로서 일제의 침략·약탈 정책에 동조하거나 협력하는 반민족적 행위를 무리.

*도변창(渡邊彰 와타나베 아키라) ; 일본인 불교학자로서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내무국 지방과, 종교과, 고적조사과 등에서 문화, 종교 분야를 담당한 촉탁 직원.

1911 6 3 시행된, 전국의 사찰을 30본산으로 나누어 조선 불교에 대한 행정 통제를 강화하고 식민지 지배 구조에 불교를 예속시키기 위한 규제 일변도의 악법인 조선사찰령(朝鮮寺刹令) 사내(寺內) 총독이 그에게 위촉하여 제정 공포하였다.

이에 이듬해, 출범한지 1년여 만에 임제종(臨濟宗 : 나라를 일본에 빼앗긴 1910 경술국치 직후에 당시 유일한 종단이었던 원종圓宗의 이회광이 일본 조동종과 연합하려 하자, 이를 개종역조[改宗易祖, 종지宗旨를 고치고 종조宗祖를 바꾸는 ] 매교적 행위라 규탄하여 1911 1 15일에 순천 송광사에서 박한영·진진응·김종래·한용운·오성월 스님 등이 총회를 열고 이회광 중심의 원종을 부정하는 새로운 종단을 세우기로 하였는데 그것이 임제종이다) 해산되고,

조선불교선교양종각본산주지의원(朝鮮佛敎禪敎兩宗各本山住持議院) 설립되면서 사찰의 설립과 주지의 임명등 불교계의 모든 행위가 총독부의 승인을 받게 되어 불교계가 일제의 통제 하에 놓이게 되었다.

*강대련(姜大蓮) ; 1875-1942 경남 진주 출생으로 14세에 금강산으로 출가하였다. 이회광이 종정으로 있던 원종 종무원의 서무부장 등을 거쳐 1911 수원 용주사의 주지가 되었다. 1915년에는 30본산연합사무소의 초대 위원장에 올랐고 불교중앙학림을 세웠다.

강대련은 친일 성향이 강하여, 3·1 운동의 열기가 가시지 않은 1919 11월에 한국과 일본의 황실, 귀족 여성을 상대국의 승려와 결혼시키면 양국의 화합에 도움이 것이라는 의견을 일본 정부에 내기도 하였다.

1920년대 결성된 항일운동과 불교 개혁운동을 동시에 진행했던 불교혁신 단체로 만해 한용운이 주도한 조선불교유신회는 1921 승려 천이백여 명의 서명을 받아 조선총독부에 사찰령을 철폐할 것을 요구하는 건의서를 제출했으나 일제의 반대와 보수적 친일 불교 기득권 세력의 반대로 실패로 돌아갔다. 이듬해인 1922 경성에 개최중인 불교유신회 총회에 참석한 젊은 승려 1백여 명이 시내에 머물고 있는 당시 친일파의 우두머리였던 강대련을 공개적으로 성토 축출하려는 움직임이 벌어져 강대련을 끌어내 등에 북을 지게 하고, 북을 치고조선 불교계의 가장 악마라고 소리를 치며 종로 거리로 끌고다닌 명고축출(鳴鼓逐出) 사건이 벌어졌다.

그는 사망할 때까지 용주사 주지를 지내면서 조선총독부와 유착한 행보를 보였고, 교권을 놓고 다른 친일 승려 이회광과는 대립하기도 하였다. 말년에 중일전쟁과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자 일본군을 위한 법요식을 지내고 국방헌금도 헌납했다.

*척사현정(斥邪顯正) ; 삿된 것을 거부하여 물리쳐, 불법(佛法) 진리를 올바르게 나타내 보임.

*이회광(李晦光) ; 1862-1933 경기도 양주 출신으로 19세에 설악산 신흥사로 출가하였다. 이회광은 역대 고승들의 행적을 적은 『동사열전(東師列傳)』에 조선의 마지막 대강백으로 기록되었을 만큼 명망이 높은 승려였으나 1908년에 친일 성향의 불교 교단 원종(圓宗) 성립한 이래 1910 조선불교를 일본 조동종과의 예속적 연합을 추진하였으나 이회광은불교계의 이완용으로 불리며 많은 반대에 부딪쳤다. 1911 조선총독부는 조선 불교에 대한 행정 통제를 강화하고 식민지 지배 구조에 불교를 예속시키기 위한 규제 일변도의 악법인 조선사찰령(朝鮮寺刹令) 발포하고 이회광이 추진한 조동종과의 연합은 부결하였으나, 총독부는 그를 해인사의 주지로 임명했다. 사찰령 이후에도 계속하여 30본산 연합체제를 주도하면서 1920년에는 역시 일본 임제종과의 병합을 추진하였으나 다른 친일 승려 강대련과의 갈등으로 반대에 부딪쳐 실패하고 해인사 주지에서도 밀려났다.

*() ; 소리를 지르는 것으로힐책하다(詰責-- : 잘못을 들어 말해 가면서 꾸짖다)’ . 선종에서 말이나 글로 표현할 없는 절대의 진리를 나타낼 , 또는 수행자를 꾸짖거나 호통칠 토하는 소리.

*제등(齋藤) 총독 ; 제등실(齋藤實 사이토 마코토). 조선총독부 3 총독(1919-1927).

*사찰령(寺刹令) ; 한국 불교는 호국불교의 성격이 강하여 국난기에는 구국의 대열에서 공헌한 바가 컸기 때문에 일제가 조선 불교를 행정 통제를 강화하여 억압하고, 식민지 지배구조에 불교를 예속시키기 위해 1911 6 3일에 제정, 공포한 법령.

내용은 사찰을 병합, 이전 또는 폐지하고자 조선총독부의 허가를 받아야 하고, 사찰의 기지와 가람은 지방장관의 허가를 받지 않고는 전법·포교·법요집행을 없다고 규정하여 종교활동 자체가 통제되었다. 30본산을 지정하여 전국의 사찰과 사찰에 귀속된 재산을 교구마다 다른 사찰을 관리하게 하였다. 30본산의 주지는 조선총독이, 말사의 주지는 지방장관의 허가를 받아서 임명하도록 하였다.

이로써 조선불교는 자주적 기능을 상실하여 인적, 물적 손실이 컸으며, 8.15해방 뒤에도 일제시대의 잔재가 제대로 청산되지 못해 교단분열의 시련을 겪어야 했다.

*도인(道人) ; ①불도(佛道) 수행하여 깨달은 사람. ②불도(佛道) 따라 수행하는 사람.

*어육주초(魚肉酒草) ; 어육(魚肉) 생선과 짐승의 살코기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고, 주초(酒草) 술과 담배.

*암말 ; ‘아무 줄어든 .

*왠통 ; ‘온통(전부 , 있는 전부)’ 사투리.

*글안해도 ; ‘그렇지 않아도. 그렇지 아니해도 사투리.

*입수부리 ; ‘입술 사투리.

*벽암록(碧巖錄) ; 선종의 대표적인 공안평창집(公案評唱集). 10. 본이름은 『불과원오선사벽암록(佛果圜悟禪師碧巖錄). 또는 벽암집(碧巖集)이라고도 한다. 송나라 원오극근(圜悟克勤 1063~1135) 지음.

책은 원래 설두중현(雪竇重顯 980~1052) 경덕전등록 · 조주록 · 운문록 등에서 개의 고칙(古則 ; 공안) 선별하여 각각의 게송을 붙인 『설두송고백칙(雪竇頌古百則)』을 원오극근이 제자들의 청에 의해서 1102 성도의 소각사, 협산의 영천원, 상서의 도림사등에 머물면서 『송고백칙(頌古百則)』을 강의했다.

  『송고백칙(頌古百則)』의 칙에 대한 서론 형식의 '수시(垂示)' 본칙과 송에 대한 해설·비판·선양의 '평창(評唱)' 그리고 본칙의 구절과 송의 구절을 평가하는 형식의 '착어(著語)' 등을 붙였는데, 제자들은 스승의 강의를 1105년경부터 모아 기록하기 시작하여 1125년에는 이미 『벽암록』 필사본이 나왔다고 한다. 『벽암록』의 간행은 1128(남송 건염 2) 원오극근의 제자 보조(普照) 의해서였다.

그런데 원오극근의 제자인 대혜종고(大慧宗 1089~1163) 당시의 학인들 책의 선화(禪話) 익혀 알음알이를 늘리기만 하고 실제적인 수행을 게을리 하는 자가 많은 폐단을 보고, 근본 뜻을 다시 세우고자 벽암록 판각과 책들을 모두 모아 대중 앞에서 불태워버려(1156 또는 1163 무렵) 총림에서 사라졌었다.

그러다가 원나라 때인 대덕년간(1297~1307) 장명원(張明遠) 여러 절에 비장되어 있던 것을 모아서 중간함으로 말미암아 세상에 유통되었다.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 깨달음.

*고인(古人) ; 불보살(佛菩薩)님을 비롯한 역대조사(歷代祖師), 선지식을 말한다.

*(게송) 참선수투조사관(參禪須透祖師關묘오요궁심로절(妙悟要窮心路絶)’ ; ‘참선을 하려면 조사의 관문을 뚫어야 하고, 오묘한 깨달음은 마음 길이 끊어져야 한다무문 혜개 스님의 [무문관(無門關)] 1조주구자(趙州狗子)’ 참고.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61 참고. *=(끊을 ).

*조사관(祖師關) ; 조사의 경지에 이르는 관문(關門), 화두(공안) 말함. 관문(關門) 옛날에 국방상으로나 경제상으로 중요한 곳에 군사를 두어 지키게 하고, 내왕하는 사람과 수출입하는 물건을 검사하는 곳이다. 화두는 이것을 통과하여야 견성 성불하게 되는 것이므로 선종(禪宗) 관문이 된다.

*의리(義理) ; 말이나 글로 해석하고 설명하는 .

*모냥다리 ; 모양다리. ‘모양새(模樣-, 겉으로 보이는 모양의 상태)’ 속되게 이르는 . '모냥' '모양' 사투리. '-다리' 일부 명사에 붙어, 그러한 상태를 대수롭지 아니하게 이르는 뜻을 더하여 명사를 만드는 .

*번뇌장(煩惱障) ; 깨달음에 이르는 , 성도(聖道) 장애하여 열반(涅槃) 얻지 못하게 하는 번뇌의 특성을 나타내는 .

*살도음망(殺盜婬妄) ; 살생(殺生) · 투도(偸盜 도둑질) · 사음() · 망어(妄語 거짓말) 줄임말. 10불선업(不善業) 가운데 가장 무거운 .

*망어(妄語) ; 거짓말이나 헛된 .

*기어(綺語) ; 진실이 없는, 교묘하게 꾸민 .

*양설(兩舌) ; 이간질하는 .

*악구(惡口) ; 남을 괴롭히는 나쁜 , .

*생멸심(生滅心) ; 생사심(生死心). 잠시도 쉬지 않고일어났다 꺼졌다 생각. 번뇌(煩惱), 망상(妄想) 말함. 오직 내가 나를 깨닫는 활구참선만이 생각의 기멸(起滅) 끊고 생사의 윤회를 벗어날 있게 한다.

[참고] 송담스님(No.389)—89(기사년) 부처님오신날 법어(89.05.12)에서.

〇중생의 번뇌심(煩惱心) ‘ 생각일어날 새로 태어난 것이고, 번뇌가 꺼질 죽는 , ‘우리의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 것이 바로 생사(生死) 것입니다.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 그것이 원인이 되어서 생사윤회를 하는 것이어서, ‘ 몸뚱이 살아있으면서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하는 자체가 바로 생사심(生死心)이요, 생사심이 바로 생사윤회(生死輪廻) 것입니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천 만의 생각이 일어났다 없어지고, 생각이 일어났다 없어집니다.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 모르는 사람은 죽었다 깨어날 때마다 () 더하고, 점점 고통이 심한 윤회를 거듭할 것입니다마는, 활구참선법을 믿는 사람은 생각이 일어날 이뭣고?’ 자신의 본참화두(本參話頭) 드는 것입니다.

이뭣고?’ 한마디 본참화두를 거각(擧却) , 우리의 마음속에 탐진치(貪瞋痴) 삼독(三毒) 물리치고, 업장소멸이 되고, 진리를 향해서 나아가게 됩니다.

*망담(妄談) ; 이치에 맞지 않고 허황되게 말함. 또는 .

 

 

 

 

 

----------------(3/3)

 

*삼계(三界) : [] trayo-dhatavah 중생들이 살고 있는 세계를 가지로 나누는데,

①욕계(欲界 Kamadhatu) : 음욕(婬欲), 식욕(食欲), 재욕(財欲) 같은 탐욕이 많아서, 정신이 흐리고 마음이 험악하며, 순전히 물질에 속박되어 가장 둔탁한 중생들이 사는 낮은 세계.

②색계(色界 rupadhatu) : 욕계 위로 욕심은 매우 적으나 성내는 버릇이 남아 있어, 물질의 지배를 아주 벗어나지 못한 중생들이 사는 비교적 맑은 세계. () 물질이란 뜻이다.

③무색계(無色界 arupadhatu) : 위층으로 탐욕과 성냄은 떨어져서 물질의 영향은 받지 않으나, '()' 버리지 못하여 정신상으로 걸림이 남아 있는 깨끗한 중생들이 사는 높은 세계.

이것을 흔히 땅으로부터 하늘까지 올라가면서 유형(有形) 계층으로만 말하지마는, 실상은 입체적 공간이 아니라, 정신적인 세계의 구분(區分)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상(地上) 세계의 어떤 곳에도 (), (), () 삼독심(三毒心) 경중(輕重) 따라 삼계가 벌어져 있는 것이다.

*제석천주(帝釋天主) ; 제석천왕(帝釋天王). 불법(佛法) 지키는 수호신. [天神]들의 제왕[] 샤크라〔釋〕라는 . 제석(帝釋), 석제(釋帝), 제석천(帝釋天), 제석왕(帝釋王), 제석태자(帝釋太子), 천주(天主)라고도 한다.

산스크리트어 이름은 샤크라 데바남 인드라(Śakra-devānām Indra). 석제환인다라(釋提桓因陀羅) · 석가제환인다라(釋迦提桓因陀羅) · 석가제바인다라(釋迦提婆因陀羅) · 석가제바인달라(釋迦提婆因達羅) 등으로 음역하고 줄여서 석제환인(釋提桓因, 釋帝桓因) · 제석천(帝釋天)이라 한다.

『법화현찬(法華玄贊)』에서는범어 석가제바인달라(釋迦提婆因達羅)에서석가 ()씨이며()이라 한역하고, ‘제바()’이라 한역하며, ‘인달라()’ 한역하니 능천제(能天帝)’ 한다뜻으로 보면석가(능히) 제바(하늘의) 인달라(제왕)’

 

불교의 세계관에 의하면 세계의 중앙에 수미산이 있는데 수미산 정상에 있는 도리천의 왕으로, 사천왕(四天王) 32() 통솔하면서 불법(佛法) 불제자를 보호한다. 도리천에는 33신이 있는데, 제석은 중앙에 있는 선견성(善見城) 안의 수승전(殊勝殿)이라는 궁전에 살고, 나머지 32신은 () 밖의 궁전에서 각각 산다.

제석천은 본래 인도 성전 《리그베다》에 등장하는 천신 벼락을 신격화한 가장 강력한 힘을 지닌 신이었으나 불교에 수용되어서는 범천(梵天) 함께 호법선신 역할을 맡게 되었다. 그리하여 항상 부처님의 설법 자리에 나타나 법회를 수호하고 사바세계 인간의 번뇌와 죄를 다스리는 역할을 담당한다.

 

한국에서는 단군의 할아버지를 석제환인(釋提桓因)이라고 하여 하늘의 주인과 제석천을 동일시하여 숭배하였다.

<잡아함경>에는 제석천이 본래 사람이었으나 수행자에게 음식과 재물, 향과 와구(臥具등불을 베푼 인연으로 제석천이 되었다고 한다. 제석천왕은 신중탱화(神衆幀畵) 손에 금강저(金剛杵) 들고 머리에 보관(寶冠) 쓰는 모습으로 많이 등장한다.

*고봉 스님의 수행 ; http://emokko.tistory.com/73

*솔찬이 ; 솔찬히. ‘아주 많이. 상당히. 제법 사투리.

*하근(下根) ; 하근기(下根機).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있는 소질이나 근성, 능력이 가장 낮은 사람.

*광명장(光明藏) ; ①광명을 함장(含藏)하고 있는 . 부처님의 신체, 또는 부처님의 여러 가지 이름 중의 하나. ②자기의 본심. 진여(眞如) 빛을 지니고 있는 중생의 본질. 무지의 어둠을 깨뜨리고 진여의 빛을 발휘하여 광명을 중에 흡수하므로 광명장이라고 한다.

*조요하다(照耀-- 비출·비칠 /빛날 ) ; (빛이)밝게 비치어 빛나다.

*업장(業障) ; 전생(前生)이나 금생(今生) 행동마음(신구의,身口意)으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세상에서 장애() 생기는 .

*부애 ; 부아. 분하고 노여운 마음.

*볼타구니 ; 볼따구니('' 속되게 이르는 ).

*아침내 ; 이른 아침부터 아침밥을 먹을 때까지 줄곧.

*대천세계(大千世界) ;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 약칭. 삼천세계(三千世界)라고도 . 온갖 세계. 수없이 많은 세계. 하나의 우주 전체. 다할 없이 넓은 우주. 하나의 삼천세계(三千世界) 하나의 부처님이 교화하는 범위라 한다.

*삭파(爍破 빛날 /깨뜨릴 ) ; 비춘다.

*포구발심(怖懼發心 두려워할 /두려워할 /일어날 /마음 ) : ‘끝없이 되풀이 되는 육도윤회(六途輪廻)에서 받을 생사(生死) 정말 무섭구나!’ 생사의 고통을 매우 두려워[怖懼]하여, 두려운 마음으로 생사를 벗어나는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菩提心] 일으킴[].

*실각(失却 잃을 /어조사 ) ; 잃다. 소실(消失)하다.

*삼악도(三惡途) : 삼악취(三惡趣)라고도 하며 지옥, 아귀, 축생을 말한다。죄악을 범한 결과로 태어나서 고통을 받는 곳으로 지옥의 고통과, 아귀의 굶주림과, 축생의 우치에서 방황하게 된다는 것이다.

*충사(蟲蛇) ; 벌레와 .

*친문(親聞) ; 몸소(자기 몸으로 직접) 들음.

*전렴전력(專念專力)하다 ; 전심전력(專心專力)하다. (사람이 한곳에)마음과 힘을 온통 쏟다.

*불탄산고수활(不憚山高水) ; 높은 깊은 물도 꺼리지 않고. (꺼릴 ). (넓을 ).

*연파(煙波 연기·안개 /물결 ) ; ①안개나 연기(煙氣) 자욱하게 수면(水面). ②연기가 자욱하게 끼어서 물결처럼 보이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

*운연(雲煙 구름 /연기·안개 ) ; ①구름과 연기(煙氣) 아울러 이르는 . ②구름처럼 연기. ③운치가 있는 필적.

*시절인연(時節因緣) ; 시절이 도래(到來)하고 인연이 합쳐지는 기회. [참고]시절(時節)—어떤 시기나 . 도래(到來)—어떤 기회나 시기가 닥쳐옴. 기회(機會)—어떠한 , 행동을 하기에 가장 좋은 .

*젓대 ; ‘(가로로 불게 되어 있는 관악기를 통틀어 이르는 )’ 일상적으로 이를는 . ().

Posted by 닥공닥정

§(026) 바른 스승이란? / 전강 스님의 용맹정진, 만공 스님과의 법거량, 인가 / 추호도 의심없이 공안을 바로 봐야 / 진실로 시간을 아껴서 정진해라.

 

참선을 나가는 데에는 바른 스승을 구해야 한다. 어떠한 것이 바른 스승이냐? 실오실참(實悟實參), 실답게 닦아 가지고, 실다웁게 깨달라서 바른 선지식의 인가(印可) 맞아야 한다.

어떻게 발심(發心) 하고 () 나서 밤이나 낮이나 철봉대를 붙잡고 정진을 하신 가운데(상기병으로 피를 너무 쏟아서 힘이 없어서 앉으면 잠이 오고 정진할 수가 없어서, 안 잘려고 철봉을 붙잡고 정진을 하심),

개천에서무무(無無) 역무(亦無)어떤 도반들이 그런 소리를 지르면서, 가재를 잡으면서 모다 그런 소리가 들려온 것을 보고서 그때 확철대오를 하셨다.

 

우리가 근기(根機) 수승하지를 못해서 중근기, 하근기라 하더라도 바른 스승을 만나 가지고 올바르게 지도를 받고, 그래서 올바르게 수행을 한다고 하면은 누구나 자기에게 있는참나 깨달라서 생사해탈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만나기 어려운 사람의 몸을 받어 가지고, 만나기 어려운 불법을 만나 가지고, 만나기 어려운 선지식을 만나 가지고도 바로 믿지 못하고 갈팡질팡, 그렁저렁 하다가 아까운 세월 보내고, 마지막 죽어 때에 천만 가슴을 쥐어뜯고, 눈물을 흘리면서 후회를 한들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공안에 대해서 낱낱이 추호도 의심없이 공안을 바로 봐야 자기의 생사(生死) 면하는 것이며, 불조의 면목(面目) 보는 것이며, 우주의 근본진리를 깨닫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생사해탈을 해서 불조(佛祖) 지혜목숨, 혜명(慧命) 잇게 되는 것입니다.

시간은 잠시도 머물러지 아니하고 1, 1 이렇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시간이 바로 우리가 사형집행 시간에 도달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잠시도 망각을 해서는 아니되겠습니다. 진실로 1, 1 시간을 아끼는 사람이라야 영원한 생사해탈을 기약할 수가 있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송담스님(No.026)—76 동지법문 (76.12.22) (용026)

 

(1) 약 21분.

(2) 약 4분.

 

(1)------------------

 

참선을 나가는 데에는 바른 스승을 구해야 한다 말씀을 하셨습니다.

어떠한 것이 바른 스승이냐? 실오실참(實悟實參), 실답게 닦아 가지고 실다웁게 깨달라서 바른 선지식(善知識) 인가(印可) 맞아야 한다.


전강 조실 스님께서는 목구녕에서 선지피가 덩어리 덩어리 맺혀서 쏟아지도록, 그렇게 말로써 형언할 없는 그러한 고행정진을 하셔 가지고, 급기야 확철대오를 가지고서 한국의 6대선지식으로부터서 법문답(法問答) 가지고 인가를 받으셨습니다.

 

조실 스님께서 받으신 인가는오냐, 옳게 알았다. 니가 견성을 했다이렇게 인가를 받으신 것이 아닙니다.

선지식과 법문답을 가지고 선지식이 조실 스님의 깨달은 증득한 힘과 역량이 너무나도 투철하시고 확철대오를 하셨기 때문에 어떠한 선지식도 조실 스님의 밝고 투철한 깨달은 경지에 대해서 무릎을 꿇지 않코서는 배기지 못했던 것입니다. “옳다, 니가 옳다하고 말씀하실 겨를 조차도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그러한 다섯 분의 선지식의 인가를 받어 가지고 마지막에 만공 큰스님한테 가지고 만공 큰스님과 법거량(法擧揚) 하셨는데, 만공 스님께서는 중요한 꼬타리를 ! 붙잡으셔 가지고 조실 스님을 인정을 하시지 않았습니다.

 

거기에서 처음에는 조실 스님께서는 만공 스님께서나를 떠볼라고, 시험해 볼라고 이러시지 않나?’하고 처음에는 범연(泛然) 그렇게 생각하셨다가 두고 두고 인정(認定) 하시고, 놀리시고, 무시를 하시고, 그러시기 때문에,

선지식이 학인(學人) 그러실 수는 없다. 반드시 무슨 까닭이 있기 때문에 저러신 것이지, 어찌 선지식으로서 깨달은 학인이 온다면 분명히 깨달은 사람을 깨달았다고 하실 일이지, 절대로 거짓말하시거나, 후배를 농락하실 리는 없다

 

그래 가지고 거기서 생각을 돌이켜 가지고, 철봉대(鐵棒臺) 붙잡고 날새기 공부를 하시면서 그때 하신 화두가판치생모(板齒生毛)’ 화두였습니다.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화두를 철봉을 붙잡고 밤이슬을 맞으면서 며칠을 두고 용맹정진을 끝에 확철대오를 하셨던 것입니다.

 

밤이나 낮이나 철봉을 잡고, 남이야 개천가에서 히히닥거리고 장난을 하거나, 잡담을 하거나 그런 것도 불구하고, 어떻게 발심(發心) 하고 () 나서 철봉대를 붙잡고 정진을 하신 가운데,

개천에서무무(無無) 역무(亦無)어떤 도반들이 그런 소리를 지르면서, 가재를 잡으면서 모다 그런 소리가 들려온 것을 보고서 그때 확철대오를 하셨는데,

 

즉시에 무슨 공안(公案) 도리가 나타났냐 하면은 마조(馬祖) 원상(圓相),

마조 스님이 둥그러미를 땅에다가 그려 놓고서 안에 들어가도 치고, 안에 들어가지 않아도 친다이렇게 어떠한 스님에게 법을 물었습니다. 스님이 둥그러미 안에 뛰어 들어갔습니다. 마조 스님은 가지고 계시던 주장자로 스님을 방맹이 쳤습니다.

맞은 스님이 말이, 조주 스님을 ! 쳐다보면서스님은 저를 치지 못했습니다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조주 스님은 아무 말씀도 하시고, 입을 다물어 버렸습니다.

 

공안에 대해서 조실 스님께서는 여지없이 간파(看破)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분이 솟구쳐 나고, 어떻게 말로써 표현할 없는 분이 나던지,

그길로조실로 계시는 만공 스님께서는 이미 보월 스님에게 조실 자리를 물려주시고 당신께서는 금선대(金仙臺) 은퇴하고 계실 때입니다. 증사(證師) 그렇게 금선대에 계시고, 조실에는 만공 스님의 수제자이신 보월 스님께서 조실로 계실 ,

 

조실방에 뛰어 들어가서 보월 조실 스님 앞에다가 원상 떠억 그려 놓고 안에 들어가도 치고, 안에 들어가지 해도 친다고 하셨으니, 말씀 일러주십시오보월 스님께서 원상을 손으로 이리 뭉개버리셨습니다.

그러니까! 천하 선지식으로서 학자를, 이렇게 천하 학자를 죽일 수가 있습니까. 이래 가지고 조실에 앉어 계실 수가 있습니까?” 고함을 지르면서 그러니까, 사람 보소, 사람 !” 그리고 어리둥절하실 ,

 

그길로 금선대에 쫓아 내려가서 만공 스님 앞에 가서제가 조실 스님을 매장(埋葬) 하고 왔습니다! 세상에 조실에 앉아서 천하 학인의 눈을 그렇게 멀릴 수가 있습니까?” 이래 가지고, 아까 전강 조실 스님께서 말씀하셨죠.

 

그렇게 해서 전강 조실 스님은 만공 스님께 정식으로 다시 그렇게 해서어디 안에 일러봐라그러니까큰스님께는 이르겠습니다.”

 

옆에 용담 스님이라고 하는, 여러분이 지금 선가귀감(禪家龜鑑) 번역한 것을 보신 분은 아시겠지마는, 처음에 용담 스님께서 선가귀감을 번역을 하신 것입니다. 그걸 번역을 했던 것을 근본으로 해서 법정 스님이 새로 교정을 가지고 내놓은 것이 요새 발간해 나오는 선가귀감입니다.

처음에 번역했던 용담 스님이 전강 조실 스님과는 아주 다정한 도반이었습니다.

 

마치 용담 스님이 옆에 계시는데, 그러면용담, 자네가 묻소그래서 용담 스님이 원상을 떠억 그려 놓고서들어가도 치고, 들어가지 아니해도 치노라.” 그러니까는 조실 스님께서 거기서 터억 일르셨습니다. 이것은 설파(說破) 되기 때문에 조실 스님께서는 말씀을 하시지 했습니다.

 

그리고 밖에 처음에 만공 스님한테 가서 절을 하니까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는고?” (전강 스님께서)주먹을 터억 내미니까는허어, 습기를 면치 못했구나. 아니다! 견성이 아니다. 견성이 아니다이렇게 부인을 하셨습니다.

그래서스님, 그때 법을 다시 물어 주십시요그랬던 것입니다. 그러니까허허허, 보게.”

 

이렇게 해서 그날부터서는 모든 공안에 대해서 정식으로 탁마(琢磨) 허락을 하셔 가지고, 천칠백 공안 낱낱이 만공 스님과 서로 탁마를 가지고,

결국은 만공 스님께서허허, 학자(學者) 선지식 똥구녁에 들어가기도 하고, 선지식이 학자 똥구녁에도 들어간 것일세이렇게 해서 모든 탁마를 마치시고,

 

그래 가지고 조실 스님을 하직을 하고 팔도에 자유자재로 다니시면서 오후보림(悟後保任) 가지고, 말년에 이르러서 용화사 법보선원에서 말년 회향을 우리를 지도하시면서 마지막 열반하신 그날까지 법상에 올라가셔서 설법을 주시고 열반(涅槃) 드셨던 것입니다.


그러한실오실참(實悟實參) 가지고 바른 선지식의 인가를 맞아야, 선지식이라야 비로소 우리가 목숨 바쳐 의지해서 공부에, 참선에 지도를 받을 있는 바른 스승이다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선지식은, 우리의 도를 지도해 주실 선지식은 무엇과 같으냐? 하면은 목수(木手)에다가 비교할 수가 있고, 도를 배우는 학자는 재목(材木)에다가 비유할 수가 있습니다.

 

재목도 좋은데다가 좋은 훌륭한 목수를 만나야 훌륭한 집을 지을 수가 있습니다. 어떠한 물건을 만들 수도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재목이 좋고 훌륭한 재목이라 하더라도 목수를서투르고, 경솔하고, 지혜롭지 못한 서투른 목수를 만나 놓으면은 아까운 재목을 버리고 말아 버리는 것입니다. 설사 재목이 조금 좋은 재목이라 하더라도 훌륭한 목수를 만나 놓으며는 상당한 효과를 나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근기(根機) 수승하지를 못해서 중근기, 하근기라 하더라도 바른 스승을 만나 가지고 올바르게 지도를 받고, 그래서 올바르게 수행을 한다고 하면은 누구나 자기에게 있는참나 깨달라서 생사해탈을 수가 있는 것이지마는,

우리 근기가 비교적 순수하고, 근기가 수승하다 하더라도 바른 스승을 만나지 못하면 자기는 영원히 깨닫기커녕은 삿된 도에 떨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바른 스승은 깨달은 바가 분명하면 되는 것입니다.

 

공자님 말씀에소인(小人) 유재자다(有才者多)이라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소인놈 가운데 재주있는 놈이 많느니라이런 말씀을 공자님이 하셨습니다.

재주가 있어 가지고, 잘하고 똑똑하고, 영리하고 수단 좋고, 이러한 사람이 소인놈 가운데에소인(小人) 유교에서는 군자(君子) 상대말로 사용합니다. ‘군자가 아닌 소인 속에 재주있는 사람이 많다이렇게 공자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불가(佛家)에도세지총명(世智聰明), 세상에서 말하는 지혜가 있고, 총명한 사람은 도에 들어오기가 어렵다 말씀을 하셨습니다.

 

여러분은 바른 선지식을 만나냐, 만나느냐, 만나 가지고도 믿느냐, 믿지 않느냐에 따라서 내가 나를 깨달라서 생사해탈하는 바른 길에 들어갈 있느냐, 없느냐의 판가름이 거기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만나기 어려운 사람의 몸을 받어 가지고, 만나기 어려운 불법을 만나 가지고, 만나기 어려운 선지식을 만나 가지고도 바로 믿지 못하고 갈팡질팡, 그렁저렁 하다가 아까운 세월 보내고, 마지막 죽어 때에 천만 가슴을 쥐어뜯고, 눈물을 흘리면서 후회를 한들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오늘 조실 스님 법문 가운데 남전 스님이 고양이를 칼로 버리는남전참묘(南泉斬猫)’라고 하는 공안에 대해서 말씀을 하셨고,

다음에는 부처님께서 열반 하실 때에 제자들을 향해서내가 열반을 했다고 해도 나의 제자가 아니요, 내가 열반을 하지 아니했다고 해도 나의 제자가 아니니, 일러라 하신 가지 공안에 대해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어째서 남전 스님이 고양이를 죽였냐? 남전 스님 회상에 동당(東堂) 대중과 서당(西堂)—지금 용화사에도 선방에서는 비구 스님네들이 참선을 하시고, 저쪽 작은 선방에서는 보살님네들이 거기서 참선을 하고 계십니다마는 그리고 여기 웃절에도 분이 그렇게 열심히 공부를 하고 계십니다마는,

 

남전 스님 회상에서도 동당, 서당 노나서 정진을 하셔서 고양이 마리가 있었는데, 동당에서는 고양이가 동당 고양이다 서당 대중들은그것은 서당의 고양이다 가지고, 고양이 마리를 가지고 서로 싸우게 되었습니다.

그때 조실 스님으로 계시는 남전 스님께서고양이를 이리 가져오너라 가지고 고양이 목을 처억 추켜들고일러라! 이르지 못하면은, 한마디 바로 이르지 못하면은 고양이를 죽일 것이다

 

동당 대중, 서당 대중이 전부 고양이를 가지고 싸우다가, 덩둘허니 그걸 쳐다보고는 입이 붙어 버렸습니다. 아무도 한마디도 이르지를 못했습니다. 남전 스님은 고양이 목을 ! 죽여 버렸습니다.

 

그리고 나자 남전 스님의 제자이신 조주(趙州) 스님우리가 화두로 공부하고 있는 무자(無字) 판치생모가 전부 조주 스님으로부터 나온 화두입니다. 조주 스님이 떠억 들어오셨습니다.

 

그러니까 남전 스님께서아까 약허약허 해서 고양이를 들고 일르라고 하자, 대중이 아무도 일르지 못했다. 그래서 고양이를 죽였는데, ! 한마디 일러라그러니까 조주 스님이 신고 있던 신을 벗어서 머리에다가 이고서 나갔습니다.

나가니깐 남전 스님께서 하신 말씀이어허, 네가 있었으면 고양이를 살릴 했구나이렇게 내용의 법문을 조실 스님께서는 대중을 향해서 물으셨고,

 

다음에 부처님 열반 시에 부처님이 열반하실라고 하니까, 대중들이 땅을 치고 우는 사람, 땅에다 머리를 짖쳐서 피를 흘리면서 통곡을 하는 사람, 몸부림을 사람, 비단 사람뿐만이 아니라 거기에 모였던 코끼리, 짐승까지라도 슬픔에 잠기지 아니한 것이 없었고,

거기에 사라쌍수(沙羅雙樹), 부처님께서는 사라수라고 하는 나무가 나란히 있는 사이에 자리를 펴시고 거기에서 열반에 드셨는데, 나무를 비롯한 근처의 , 파란 이파리가 일시에 백색으로 변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학수(鶴樹), 학같이 하얀 나무라, 학수쌍존(鶴樹雙尊)이라고 이렇게 말씀을 합니다마는 하늘의 해가 무색해지고, 산에 나무 이파리 흰빛으로 변했고 짐승, 사람 모든 것이 슬픔에 잠겼습니다.

그때에내가 죽는다고, 열반에 든다고 해도 나의 제자가 아니요, 내가 열반에 들지 아니했다 해도 제자가 아니니, 일러라 공안을 조실 스님께서는 대중을 향해서 물으셨습니다.

 

이러한 공안에 대해서 낱낱이 추호도 의심없이 공안을 바로 봐야 자기의 생사(生死) 면하는 것이며, 불조의 면목(面目) 보는 것이며, 우주의 근본진리를 깨닫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생사해탈(生死解脫) 해서 불조(佛祖) 지혜목숨, 혜명(慧命) 잇게 되는 것입니다.(153~3552)

 

 

 

 

(2)------------------


오늘 조실 스님께서 주신 법문(法門) 너무나도 위대하고, 깊고, 기가 맥힌 그러헌 법문을 고루고루 주셨습니다.

동짓날을 기해서 오늘부터서 하루에 1분씩 낮의 시간이 길어지고, 밤의 시간이 짧아지는 것입니다. 내년에 춘분이 돌아올 때까지 그때 가서 비로서 밤과 낮이 가지런하게 되는 것입니다.

 

시간은 잠시도 머물러지 아니하고 1, 1 이렇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도달을 해야 마지막 죽음의 시간이우리의 목구녁에서 숨이 ! 끊어질 시간이 1, 1 다가오고 있다고 하는 사실을 우리는 명심을 하고 1, 1 지내가는 시간을 어찌 등한히 지낼 수가 있느냐 말씀입니다.

시간이 바로 우리가 사형집행 시간에 도달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잠시도 망각을 해서는 아니되겠습니다.

 

진실로 1, 1 시간을 아끼는 사람이라야 영원한 생사해탈을 기약할 수가 있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지금은 백일기도 중간이요, 동안거 결제 기간입니다.

결제에 참여하신 보살님은 말할 것도 없고, 백일기도에 동참하신 모든 신남신녀 여러분들께서도 가정에서나, 직장에서나, 오고가는 길거리에서, 언제 어데서 생각, 생각을 돌이켜서이뭣고?’ ‘이뭣고?’ 이렇게 간절히, 간절히 화두를 들고, 참나를 찾기 위해서 끊임없이 정진을 계속해 주시기를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돌아오는 16 날은 우리에게 그렇게 간곡히 정법을 설해 주시던 조실 스님의 생신일입니다. 조촐히 그날을 추모하는 법회를 갖고저 합니다. 있으면 참여하셔서, 그때 조실 스님의 법문 한편을 듣도록... 음력 16일입니다. 이달이죠!

그러면 오늘은 이만 말씀을 드리고 다음 법요식을 진행하겠습니다.(3553~3916)(끝)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1)

 

*선지식(善知識) ; 부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지도자. 좋은 .

*인가(印可 도장 , 옳을·인정할 ) ; 스승이 제자의 깨달음을 인정함.

*선지피 ; ①선지. 짐승을 잡아 죽여서 받은 . 식어서 굳어 덩어리진 피를 말한다. ②다쳐서 선지처럼 쏟아져 나오는 .

*법문답(法問答) ; 법거량(法擧揚). ①스승이 제자의 수행 상태를 점검하기 위해 주고받는 문답. ②선객(禪客) 사이에 주고받는 () 대한 문답.

*꼬타리 ; ‘꼬투리(어떤 이야기나 사건의 실마리)’ 사투리.

*범연(泛然) ; ①두드러진 데가 없이 평범하게. ②특별한 관심이 없어 데면데면하게.

*학인(學人) ; 아직 번뇌가 남아 있어, 아라한(阿羅漢)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수행해야 하는 견도(見道수도(修道) 성자. 수행승. () 닦는 수행승. 배우고 익히는 과정에 있는 스님.

*철봉대(鐵棒臺) ; 체육 도구의 하나. 기둥 사이에 일정한 높이로 쇠막대를 평행하게 걸쳐 놓은 기구.

*날새기 ; 저녁, 밤을 지나 날이 밝아 때까지 자지 않는 .

*발심(發心) ; ①불도(佛道=菩提=眞理)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 (원어) 發起菩提心 발기보리심, 發菩提心 발보리심.

*(/忿) ; 억울하고 원통하여 분한 마음.

*공안(公案) : 화두(話頭)。①정부 관청에서 확정한 법률안으로 백성이 준수해야 것。②선종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 문답이나 동작.

이것을 화두라고도 하는데 문헌에 오른 것만도 칠백이나 되며 황화취죽 앵음연어(黃花翠竹鶯吟燕語) — 누른 , 푸른 , 꾀꼬리 노래와 제비의 소리 자연현상도 낱낱이 공안 아님이 없다.

화두에 참구(叅句) 참의(叅意) 있다。이론적으로 따져 들어가는 것이 참의요 사구(死句) 참선이며, 말길 뜻길이 끊어져서 다만 언구만을 의심하는 것이 참구요 활구(活句) 참선이다.

*마조원상(馬祖圓相) 공안 ; [선문염송(禪門拈頌)] (혜심 지음) 5 165원상(圓相)’ 공안.

馬祖因見僧參  畫一圓相云  入也打不入也打  僧便入  師便打  僧云和尙打某甲不得  靠却拄杖  休去.

마조 스님에게 어떤 스님이 와서 뵙자, 마조 스님이 원상(圓相), 동그라미를 그려 놓고입야타(入也打) 불입야타(不入也打), 원상에 들어가도 치고 들어가지 아니해도 친다하고 물으시니, 스님이 원상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마조 스님이 주장자로 들어간 스님을 후려치니까, 스님이 말하기를스님께서는 저를 치지 못했습니다그러니까 마조 스님이 휴거(休去) 했습니다. 아무 말도 없이 가버리셨습니다.

 

[참고] 송담스님(No.282)-86 1 첫째일요법회(86.01.05)에서.

마조 스님이 원상(圓相) 그려 놓고입야타(入也打) 불입야타(不入也打) 원상에 들어가도 치고 들어가지 아니해도 친다.’ 공안을 물은데 어떤 스님이 안에 들어갔어.

들어가니까 마조 스님이 주장자로 들어간 스님을 한대 후려쳤습니다. 치니까 스님이 말하기를 『스님께서는 저를 치지 못했습니다. 이랬습니다.

그러니까 마조 스님이 휴거(休去) 했습니다. 아무 없이 그냥 방장(方丈)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원상 안에 들어가도 치고 들어가지 아니해도 친다 공안에 스님이 뛰어들어가는 도리는 무슨 도리며,

들어가니까 마조 스님이 주장자로 방을 후려치니까 스님이 () 맞고서 하는 말이 『스님께서는 저를 치지 못했습니다. 스님이 그렇게 말한 데에 마조 스님이 아무 말없이 저리 가버렸으니...

이러한 공안에 확연(確然) 의심이 없어야 하는 것입니다.

 

비록 이러한 공안이 문헌상에 오른 것만 해도 천칠백 공안이라 하는데, 이것이 부처님과 조사가 씹다가 버린, 먹다가 버린 찌꺼기에 지나지 못한 것이기는 하나, 이러한 공안이 바로 학자(學者) 소견(所見) 가려보는 데에는 좋은 시금석(試金石) 되는 것입니다.

*마조(馬祖) 스님, 만공 스님, 보월 스님 ; 분류역대 스님 약력참고.

*간파하다(看破--) ; 속내(드러나지 않은 일이나 숨겨진 마음) 꿰뚫어 알아차리다.

*용담(龍潭) 스님 ; 생몰년 미상. 성은 (), 법명은 초안(初眼)이며, 용담은 법호이다.

한용운(韓龍雲) 스님의 수제자로, 덕숭산 만공(滿空) 선사의 회상에서 지도를 받아 득의처(得意處) 인증(認證)받았다. 《선가구감》 연구에 골몰하여 완벽한 번역과 풀이를 위해 정성을 다하였다.

또한 여러 고승들과 함께 「불교혁신총동맹」을 결성하여 불교혁신운동을 전개하였고, 「선학원」 부이사장, 「해동역경원」 부원장 등을 역임하였다.

1948 419, 신의주에서 병원을 하고 있던 동생을 만나겠다며 김구 선생과 함께 「정당사회단체 대표자연석회의」에 참석하러 월북하였으나, 소식이 단절되었다.

—[선가구감] (용담 스님 역주 | 효림) 편역자 소개에서.

*선가귀감(禪家龜鑑) ; 조선 서산대사가 경전과 어록 중에서 수행의 지침이 선종(禪宗) 중심으로가장 요긴하고도 절실한 부분을 가려 뽑은 불교 개론서. 용화선원에서 번역 간행한선가귀감 있다.

*설파(說破) ; 어떤 내용을 분명하게 드러내어 말함.

*탁마(琢磨 , ) ; ①학문이나 덕행 따위를 닦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 ②옥이나 따위를 쪼고 . ③옥을 갈고 돌을 닦듯이 한결같이 정성껏 애써 노력하는 . ④선지식에게 자기의 공부하다가 깨달은 바를 점검 받는 .

*오후보림(悟後保任) ; 깨달은 뒤에 선지식을 찾아 인가를 받고, 다시 숲속이나 토굴에 들어가 다생(多生) 습기(習氣) 제하고 () 역량을 키우는 보임(保任)공부. 장양성태(長養聖胎).

[참고] 보조국사 지눌(1158~1210) <수심결修心訣>에서.

頓悟者  凡夫迷時  四大爲身  妄想爲心  不知自性是眞法身  不知自己靈知是眞佛也  心外覓佛  波波浪走  忽被善知識  指示入路  一念廻光  見自本性  而此性地  原無煩惱  無漏智性  本自具足  卽與諸佛  分毫不殊  故云頓悟也

 

돈오(頓悟 단박 깨달음) 범부(凡夫) 미혹했을 사대(四大) 몸이라 하고 망상(妄想) 마음이라 하여,

자기의 성품(自性) 법신(法身) 모르고 자기의 신령스런 (靈知) ()부처인 알지 못하여, 마음 밖에서 부처를 찾아 물결따라 여기저기 헤매다가

홀연히 선지식(善知識) 지시로 바른 길에 들어가 생각 돌이켜 자기의 본래 성품을 보면,

성품(性品)자리에는 원래(原來) 번뇌(煩惱) 없고, 무루(無漏) 지혜 성품이 본래(本來) 스스로 구족(具足)하여 모든 부처님과 털끝만큼도 다르지 않으니 그러므로 돈오(頓悟, 단박 깨달음)라고 한다.

 

漸修者  雖悟本性 與佛無殊  無始習氣  卒難頓除故  依悟而修  漸熏功成  長養聖胎  久久成聖   云漸修也 比如孩子初生之日  諸根具足  與他無異    其力未充  頗經歲月  方始成人

 

점수(漸修, 차츰 닦음), 비록 본래 성품(本性) 부처와 다름이 없음을 깨달았으나 오랫동안 익혀온 습기(習氣) 갑자기 모두 없애기는 어려우므로,

깨달음에 의지하여 닦아 점차로 익혀 () 이루어 성인(聖人) () 길러 양성하면, 오랜 동안을 지나 성인(聖人) 이루게 되므로, 점수(漸修, 점차로 닦음)라고 한다.

비유(比喩)하면, 마치 어린 아이가 처음 태어났을 모든 기관(諸根) 갖추어 있음은 남과 다르지 않지만, 힘이 아직 충실하지 못하므로 제법 세월(歲月) 지난 뒤에야 비로소 어른(成人) 되는 것과 같다.

*열반(涅槃) ; ①타고 있는 불을 바람이 불어와 버리듯이, 타오르는 번뇌의 불꽃을 지혜로 꺼서 일체의 번뇌나 고뇌가 소멸된 상태. ‘니르바나(nirvāna)’ 음역어로, 불가(佛家)에서 흔히 수행에 의해 진리를 체득하여 미혹(迷惑) 집착(執着) 끊고 일체의 속박에서 해탈(解脫) 최고의 경지를 이르는 말이다. ②스님의 죽음을 수행을 통해 해탈(解脫) 이르게 됨에 비유하여 이르는 .

*근기(根機 뿌리 /베틀 ) ;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있는 중생의 소질이나 근성. 보통 근기의 차등을 상근기, 중근기, 하근기로 구분한다.

*덩둘하다 ; ①매우 둔하고 어리석다. ②어리둥절하여 멍하다.

*약허약허 ; 약하(若何)하다여하(如何)하다의 높임 . 여하(如何)하다 : 어떠하다(어떻다, 의견·성질·형편·상태 따위가 어찌 되어 있다).

*사라쌍수(沙羅雙樹) : 북부 인도의 구시성(拘尸城 kuśinagara) 서북쪽으로 흐르는 발제하(跋提河 Ajitavati) 물가, 사라수 여덟 대가 둘씩 마주 있는 것을 말한다.

부처님께서는 사라쌍수 사이에 머리를 북쪽으로 향하고 오른쪽 겨드랑이를 밑으로 해서 입멸하시니, 숲이 하얗게 변하였다. 그리하여 학의 (鶴林, 鶴樹)이라고도 하게 되었다.

*면목(面目 , ) :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의 성품.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

*혜명(慧命) ; ①지혜를 생명에 비유하는 . 정법(正法) 명맥(命脈). ②법신(法身) 지혜가 생명이 된다는 .

 

 

 

------------------(2)

 

*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 / ) :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 들게 하는 문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 진리에 이르는 .

 

 

Posted by 닥공닥정

>>> 용화선원 법문 유튜브에서 보고 듣기 --->유튜브로 바로가기


 

•§• 몽산화상시고원상인(蒙山和尙示古原上人) (4/5) 몽산화상이 고원상인에게 주신 말씀.
 
**전강선사(No.258)—몽산 02-2. 몽산시 고원상인(4) (임자72.07.13)
 
(1) 약 19분.
 
(2) 약 8분.

 

(1)-----------------
 
요면삼악도(要免三惡道)인댄  수참활구선(須參活句禪)이니라
나무~아미타불~
광음(光陰)을 양가석(良可惜)허소  신물등한과(愼勿等閑過)니라
나무~아미타불~
 
요면삼도고(要免三途苦)인대는 참으로 정말 진정으로써 삼도고(三途苦)를 면하고저 할진대는,
삼도고뿐이여. 뻘로 이렇게만 밤낮 삼악도(三惡道) 삼악도 하는데 삼도고뿐이여.
 
삼악도여. 지옥 아니면은 아귀(鬼), 아귀 아니면은 그저 축생취(畜生趣). 고놈의 삼취, 삼악취(三惡趣) 참 무섭다 그말이여.
 
인도(人道), 천도(天道), 아수라도(阿修羅道) 이 3가지는 좀 승취(勝趣)고, 좀 고급취란 말이여, 그 사람이니까!
이 악취(惡趣)는 수악한 죄만 받는 놈의 악취인데,
그 천취(天趣), 인취(人趣), 수라취(修羅趣) 그 삼취중생(三趣衆生)과 악취중생(惡趣衆生)을 비교해 보면은 떼 수(數)가 말할 수가 없어. 악도 중생은 몇억천 배인지 몰라.
 
그런데 꼭 진실로 삼도해(三道海)를, 삼악도를 면하고저 할진대는 참선밖에는 없느니라. 정법밖에 없어.
 
참선법(參禪法)이 정법(正法)이여. 정법인데, 정법은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이거든. 활구참선이래야 되거든.
 
사구(死句)나 그런 건 소용없어, 참선도. 이렇게 저렇게 따져서 분석해서 아는 건 사구선(死句禪)인데, 알아 가지고 무슨 이치를 만들어 놓은 것은 사구, 죽은 참선이여.
‘죽은 참선’이란 건 참선이 아니거든.
 
거다가 하물며 부처님 방편설(方便說) 전부를 다 갖다가—당신도 가설(假說)이라고 했으니까.
부처님 말씀에도 가설이라고 했어. 바로 회삼승귀일(會三乘歸一)할 때 당신이 해 놓은 말씀 아니여?
 
직접으로 당신 말씀에 ‘내가 가명인도고(假名引導故)로, 거짓 이름으로써 너희를 인도했다’
49년이나 다 설해 놓고, 가명인도고로 권이미실(權而未實)이요.
거짓 이름으로 했기 때문에 그 각(覺) 참선은 아니거든. 깨달은 활구참선은 아니기 때문에 가설 인도를 했다 그말이여.
 
‘가설(假說)로써 인도(引導)를 했기 따문에 권이미실(權而未實)이요, 권(權)이 실(實)답지 못하고, 추이미묘(麤而未妙)다, 추(麤)해서 묘(妙)하지 못했다.
이제야 너희가 그건 알아서 이만큼 믿었으니[心相體信], 내시실상(乃示實相)이라, 이에 실상을 보인다’고 그 법화경에 다 인자 회삼승귀일(會三乘歸一) 할 때 하신 말씀 아니여. 그대로 말씀했지.
 
그 거짓 가설(假說)이여. 천담만설(千談萬說)을 그렇게 부처님께서 다 해놓았지마는 그 가명인도다.
 
당신 부처님께서도 당장에 인생의 그 생로병사 사고(四苦)를 무서워하셔 가지고는 왕궁 부귀(富貴)에 나왔지마는, 왕궁 부귀라는 것이 무엇이냐? 부귀가 무엇이여?
부귀 그 같은 놈의 거 조금 하다 가는 놈, 잊어버린 놈의 거, 내버리는 거, 타락해 버리는 놈의 거.
 
부귀가 좋다 하지만 그 얼마 가서 그거 타락하는 것이여, 그것이.
타락한 날은 똑같은 거. 과거에 죄 받을 때나, 타락해 버린 뒤나 마찬가지 아닌가.
 
무슨 주문(文)을 하고, 무슨 다라니(尼)를 하고, 무슨 하면 어디가 나고, 뭐 보살이 되아서 무슨 어쩌고, 별 소리 다 해 봤던들, 활구선은 아니여.
 
아! 그러니 꼭 활구참선을 해서 바로 그놈 깨달라 버려야사 ‘일초(一超)에 직입여래지(直入如來地)다’
한 번 뛰어서 여래지(如來地)에 올라가서 증(證)해 버려야—그 깨달은 각(覺) 도리를, 확철히 내가 봐 버린 그 도리를 증해 버려야사 생사(生死)가 없지. 생사 없는 그 정법뿐이여. 다시 그뿐이란 말이여.
 
내가 49년을 설법을 했다고 했지마는 녹야원(鹿野苑)으로부터 발제하(跋提河)까장, 녹야원으로 발제하까장이란 말이여.
 
녹야원이라는 것이 처음 녹야원에 설법했거든. 왜 부처님이 녹야원(鹿野苑) 설법했는고?
처음 노루가 되어 가지고는 노루로써 그 차츰차츰 인자 인취(人趣)에 태어나 가지고 그렇게 됐으니까 녹야원 인연으로써 설법한 것이여.
그 인연설을 말하자면 그 뭐 한참 주워대야 되지. 그 같은 것 댈 것 뭐 있나?
 
‘녹야원에서부터서 발제하까장 49년 동안 설법을 내가 했다. 하지마는 어디 한 글귀도 못 설(說)했다’
‘못 설했다’는 건, 입으로 설법을 못해서 못 설했다는 것이 아니여.
항상 입을 열어 놓고 설법을 했지만은 ‘설법은 못했다’ 그말이여. ‘한 글귀도 못 설했다’ 그말이여.
 
못 설(說)한 원인이라는 것은 그 정법이여, 정법설. 그 확철대오 하는 공안법(公案法). 그 공안법을 설을 할 수가 없어.
어떻게 그걸 분별로 불가시(不可視)며—분별로써 가히 보이지 못하며, 입으로써 어떻게 보일 것이냐 그말이여.
 
허니 ‘네가 깨달라라, 네가 너 깨달라라’ 그말이여. 내가 너한테 일러주지 못하고 가르켜 주지 못해.
보여주지 못하고, 분별로 불가시며 아무리 천만 도리로써 너를 보여 줄 수 없다 그거여.
그 정법설이여. 참선 화두하는 법. 공안법 하나 내놓은 것뿐이지.
 

 

수참활구선(須參活句禪)이다. 활구선이 아니면은 천만 가지를 다 아무리 아무리 해서 성취를 다 해 놓았자,

기도법에 의지해서 부자가 된다든지, 거기에 무슨 신통이 난다든지, 거기에 무슨 천상천하를 마음대로 돌아댕기면서 별 변화를 다 부린다한들, 필경 그것은 타락이 있어 버려. 다한 날이 있어 버려.

 

그러니 신선(神仙)이 오통(五通)을 가져 봤던들 마지막에는 다해 버리는 날이 있고, 멸해 버리는 날이 있고, 타락하는 날이 있으니 그게 소용이 없어.

그저 그 동안에 닦어서 받은 역사는 있을지언정, 타락해 버리면 아무 것도 아니여 그거. 뭣해 그거.

 

허니 부처님 별별 말씀을 다 설해서 그 팔만사천 다리니문(尼門)을 열어서 다 해 놓았지마는 그것 가지고는 생사해탈(生死解脫) 못해. 그만 필경 타락이 있으니 소용없어.

타락한 날에는 그만 삼악도(三惡道) 떨어져. 지옥 과보(果報) 지은 놈은 지옥으로 갈 것이고, 아귀 과보 지은 놈은 아귀에 떨어질 것이고, 축생 과보 지은 놈은 축생 떨어질 것이고, 밤낮 그뿐이여.

 

 

활구참선법이라는 것은 천설만담(千說萬談)으로써 아무리 아무리 했자 설해서 보일 수도 없고, 해석해서 알릴 수도 없고,

설해서 보이고 해석해서 알려 봤던들 그건 '죽은 참선'이여. 사(死)자여 그거. 사(死)자에 떨어져 버려. 아무 것도 아니여.

 

그래서 이 참선법이라는 게 격외(格外)여.

깨달으면 벌써 깨달은 각인(覺人)끼리는 서로 봐 버리고 서로 알아부러. 물을 것도 없어. 

 

“견성(見性)을 해 가지고 스님께 인가(印可) 받으러 왔습니다. 그러니까 제 견성한 도리를 제가 송구(頌句)로 다 써가지고 가지고 왔습니다”

“그 이리 내소”

드렸다 그말이여.

 

그래 떡 보시고서는, 따악 그 본 놈을 손에 집어넣고 또 손을 냈다 그말이여. “또 내소”

아! 이놈이 낼 것이 있나. 기껏 견성했다고 그... 낼 것이 있어야지. 허! 내놓덜 못하니까,

 

“그 자네 그 견성이 썩은 견성, 그 못쓸 견성이네. 무엇을 만들어 가지고 글에다 써 가지고, 무엇을 갖다 거다가 맨들어 갖고 참선했다고, 정말 내놓으라고 하니 못 내놓는가? 참말로 자네 각(覺)을 내놓소”

 

뭐 지랄이나 내놓아야지, 내놓도 못했지. 방맹이만 짊어지지.

이런 소식이여. 이건 만공 큰스님 법문이시여. 

 

 

광음을 그러하니 또 우리 활구 학자들이야 광음(光陰)을 양가석(良可惜)하라. 이 광음을 참말로 진실히 애껴라. 왜 이렇게 헛되이 보내노.

 

'아이고 좀 더웁다고 못하고, 좀 어떻다고 못하고, 이래서 못하고 저래서 못하고' 안된다.

아무리 찐 듯한, 아무리 시루에다가서 밥 찌듯이 떡 찌듯이 쪄서 그 음식이 익는, 얼마나 그 뜨거운 지경인가?

 

별별(別別) 지경(境)이 다 온다 하드래도 지옥고(地獄苦) 보다는 낫다.

날이 이렇게 더웁다고, 이거 이걸 더웁다고 못 견디고 야단칠 것 없다. 지옥고 보다는 낫어.

 

지옥고라는 건 천하에 받을 수 없네. 생각만 해봐. 좀 생각이나 좀 해봐. 지옥고라는 건 죽어도 받을 수가 없어. 그놈을 몇억만 년을 받고 있네. 그렇게 받기 어려운 놈의 것을 받어.

 

쎄(혀)를 빼물고 ‘아이고 나 죽네’하고 그 지랄 다 받으면서도, 그렇게 과거에 무수(無數) 천만 겁을 받아왔건마는, 이런 설법만 듣고는 믿지도 않어.

믿기는 믿는다 해도 참말로 믿지 못했기 때문에 여지(地)없는 무상(無常)을 깨닫지 못하거든.

 

그 조금 더웁다고 참들 못하고 그만 그 가운데 화두를 그만 잃어버리고, 화두를 버려 버리고 그만 이럭저럭 지낸다 그말이여. 

 

그 참선하는 정법, 참선 깨달은 각법, 활구선을 정법(正法)이라 해!

그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 정법이 꼭 우리 동양 동토에서 쪼옥 나와 가지고는 달마선사(摩禪師)까장 와 가지고 달마선사가 떡 하니 이 중국에다 전해주어 중국에서 한국으로 턱 나와 가지고는,

한국서부터 그 다른 데로 건너간 것은 그만 해석선이 되아버렸어. 활구선이 되아버렸어. 해석선 활구선이라도 그 해석 활구선이 일본밖에는 간 데 없어.

 

그 다음에 우선 저 홍콩 큰스님이 와서 설법을 듣고 있지마는 아! 저 봐.

참선, 처음 한국에 와 처음 듣지. 거그는 참선법이 없는 건 사실이여. 그러니 문답을 봐도 도무지 없거든.

그 뭐냐, 그 스님네도 또 안 왔지마는 참선법은 통 없거든. 오후불식(午後不食)하는 법, 오후불식은 그건 결코 하는 거여.

 

우리 한국에서만 지금 오후불식을 않고 있기는 있지마는 참으로 율사(律師)들은 다 오후불식을 하지.

하지마는 우리 참선 학자들은 그저 삼시(三時) 먹고라도, 그저 그만 항상 하는 것이 오후불식이지 뭐. 뭔 그놈 먹었자 오후불식 않는 게 뭐 있나?

상(相)에만 끌려서 오후불식이 되고, 모냥 없는 오후불식은 안되나?

 

아! 넨장, 거 무슨 그런 말이 있지 않나? 뭐 잘 분명히 알던 못하지만은 천성산 내원서 무슨 오후불식, 항상 모도 오후불식 대중이 있는데,

 

어떤 스님은 “나는 삼시 먹고 오후불식 한다”

그러면 “삼시 먹고 오후불식은 무슨 놈의 삼시 세 때를 먹고 오후불식을 해?”

그래도 늘 먹으면서 “나는 삼시 먹고 오후불식 한다”

 

그러더니 무슨 일이 나서 “삼시 먹고 오후불식 하는 사람 좀 나오너라” 삼시 먹고 오후불식 하는 사람이 그 말 듣고 밖에 척 나오자 그만 벼락이 쳐서 그 집은 콱 무너져서 다 죽었다는 말이 있지.

그런 말 내 들은 기억이 있구만. 고렇게 되었는가, 좀 달리 됐는가는 몰라도.

 

참으로 광음(光陰)을 아껴서 신물등한과(愼勿等閑過)하소. 진실로 참말로 그 딸그닥 딸그닥 가는 광음을 헛되이 보내지 마소. 참 이게 부탁이야!(처음~19분19초)

 

 

 

 

 

(2)------------------

 

단발진정신심(但發眞正信心)해라. 다맛 참 진정(眞正) 신심(信心)을 발해라. 이 정법 학자들이여. 참선하는 이 활구 학자들이여.

진정 신심을 발해서 화두 하나를 ‘이뭣고?’를 한다든지 ‘판치생모(板齒生毛)’를 한다든지, 화두를 얻었거든 화두를 탔거든 그대로 의심(疑心)만 갖춰라. 천만담(千萬談) 다 소용없다. 의심 안 갖추면 안되아.

 

겉으로는 참선한다 하고, 속으로는 의심도 갖추지 않고, 그냥 그만 뭐 또 주력(呪力)이나 하고, 그것 소용없어.

 

어쩔 수 없으니, 안된다고 하니 아무 거라도 하라고, 안되면은 그 무슨 주력이라도 하라고, 옴마니반메훔도 부르고 그러라고, 그래 시키지. 안 시킨 게 아니여. 하지마는 오죽해서 한 소리여 그것이.

 

다만 ‘이뭣고?’ 한번 할 때, ‘옴마니반메훔’ 뭐 백천만 번, 백억만 년 하는 것 보다 ‘이뭣고?’ 한번이 그대로 그만 정법 아닌가.

 

 

단발진정신심(但發眞正信心)해라. 다맛 참으로 진정으로 신심을 발해라.

진심중(眞心中)에, 참으로 발심(發心)한 진심중에 유의(有疑)를 해야—의심이 있어야, 오직 그 온당(當)하다.

의단독로(疑團獨露), 그 의심이 온당하다.

 

자연(自然) 화두(話頭)가, 그대로 화두가 현전(現前)할 것이다. 아무 것도 섞임이 없이 화두만 앞에 현전할 것이다. 진심중(眞心中)에서 하면. 참마음 발한 가운데서 하면.

 

그저 이 목숨 뚝 끊어지면서 무간아비지옥(無間阿鼻地獄) 그저 고(苦) 밖에는 없으니 아! 이걸 내버리고 어쩔 거여.

아! 이걸 이 화두를 진실만 해서, 깨닫지를 못하드래도 낙지지시(落地之時)에—땅에 광명 떨어져 죽을 때, 이 목숨 죽을 때, 화두가 그대로 가만히 있지.

 

아! 화두가 독로(獨露)했는데, 득력(得力)했는데 어디 가고 없어?

견성(見性)을 안 했드래도 화두는 그대로 독로(獨露)거든. 독로 했지. 따악 알 수 없는 화두 하나뿐이다.

 

아무리 목숨이 끊어져서 그 혼비담상(魂飛膽喪) 할 지경이고 수망각란(手忙脚亂) 지경이지마는, 화두 하나가 독로해서 현전(現前)하다 그말이여. 딱 현전하다.

아! 그러면은 무슨 어디 악취(惡趣)에 갈 것인가? 무슨 놈의 악도에 들어갈 거여? 무슨 지옥에, 누가 지옥을 끌고 갈 거여?

 

화두 학자한테, 반야 학자한테 천억만 년 지은 죄업(罪業)이 있다 한들 일체 죄업이 여기는 붙들 못하는데, 뭔 놈의 죄가 있어야 끄집어 가지.

 

악도(惡道)에도 안 갈 것이어늘 또 귀도(鬼道)에는 왜 가나? 귀도에 뭣하러 귀도 가. 어떤 놈이 그 끌고가서 귀도(鬼道)에 갈 것이냐 그말이여.

그 다음에 또 축생취(畜生趣)는 왜 가. 소 배때기 말 배때기는 왜 들어갈 것이냐 그말이여. 소 배때기 말 배때기에 어떤 놈이 인도해서 들어가는가? 화두 학자한테, 현전한 반야 학자한테. 다시 삼악도는 문제도 없어.

 

바로 그대로 그만 악업(惡業)이 붙들 못하고, 악념(惡念)이 거기 가서 어리대들 못하고, 그것이 정법신심가(正法信心家)에 바로 가는 것이여. 정법 신심가에 나.

도 닦을만한, 내가 가서 이 몸 받아서 도 닦을만한 그런 인연 취해서 그만 바로 응해 버리는 것이여.

 

뭐 발이 있어 걸어가나? 뭐 손이 있어서 무슨 뭐 헤치고 들어가나?

발도 손도 다 놓아 버리고 아무 것도 없고 그 가고 오는 거래(去來), 뭣이 있이 가나? 그대로 응해 버리는 것인데.

응태(應胎)해 버려. 태에 가 응해 버려. 정법신심가에 어디 가서 그만 그대로 응태해 가지고 나와 버리는 것이여.

 

거기서 확철대오를 했다든지, 대오를 해 가지고는 입태(入胎)에도 매(昧)하지 않고, 주태(住胎)에도 매(昧)하지 않고, 출태(出胎)도 매(昧)하지 않고,

이렇게 매(昧)하지 안 해 버렸으면은 그거 마음대로 어디 가서, 자기 마음대로 들어가서 나서 얻어 나와 가지고는 크면서라도 환하니 매(昧)하지 안 했으니 말할 것 뭐 있나?

 

그까짓 입태, 출태 무슨 태중(胎中)에 들어갈 것도 말 것도 없는 것이고,

도솔천내원(兜率天內院)이라도, 없는 것이 아니라 도솔내원이 있지, 없어? 그런 데라도 가서 응태해 버려. 연꽃 속에 가서 응태해 버려. 그 응해 버려 그만.

갈 것이 있나? 올 것이 있나? 뭐 걸음 걸어갈 게 있나? 뭐 줄잡고 올라가나? 응태, 태에 가서 응해 버려.

 

 

‘진심중(眞心中)에 화두(話頭)를 참으로 진심으로 발심을 해서 공부를 해 보아라. 제대로 공부가 현전(現前)되지 않는가’ 이렇게 말씀해 놓았네.

 

약섭용력(若涉用力)즉, 만약 억지로 화두를 추켜들어서 억지로 힘을 써서 한 즉,

공부(工夫)가 부득력재(不得力在)니라. 공부가 그 역재(力在)가 억지로 한 것이기 때문에 되도 않고, 망상만 직살하게 들어오고,

 

망상 그놈 없으면 그만 잠만 오고, 앉으면 잠만 끄트럭 끄트럭, 그저 앉으면 자구나. 앉으면 자는 것 보세.

천하에 참선, 고런 놈의 참선을 하고 앉었어. 잠 참선? 잠 참선 아니면은 망상 참선?

 

어쩌다 참선하다가 안 졸 때가 없어. 졸 때가 있지. 누구는 어데 없나?

조끔 졸다가 그만 화두 추켜들어서 공부를 하던지. 아, 그저 그래야지.

 

앉으면 그만 꾸부덕 꾸부덕, 그래 안 하면 망상, 별놈의 망상, 호사난상(胡思亂想)만 짓고 앉었고, 이래 되는 건가?

억지로 발심을 못해 가지고 용력(用力), 힘을 써서 괜히 하고 앉었는 참선이란 건 이렇다고 했어. 바로 말해 놨지.

 

참 진심중(眞心中)에 유의(有疑)를 해야 한다.

참마음 발(發)하는 가운데 의심이 그대로 나타나야 한다 그말이여.

 

뭐 항상해야 그 말뿐, 또 이거 조금만 해 두어. 날은 더웁고 오래할 수 없고.(19분20초~27분)(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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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요면삼악도(要免三惡道)~’ ; [청허당집(清虛堂集)] (서산휴정, 西山 休靜) ‘贈洛山懷海禪子’—‘要免三途海 須參六祖禪 光陰眞可惜 愼勿等閑眠’ 게송 참고.

*삼도고(三途苦•三塗苦) ; 악한 일을 한 중생이 그 과보로 받는다는 3가지 미혹한 생존(지옥•아귀•축생)에서의 고통.

*삼악도(三惡途) : 삼취(三趣), 삼악취(三惡趣)라고도 하며 지옥, 아귀, 축생을 말한다。죄악을 범한 결과로 태어나서 고통을 받는 곳으로 즉 지옥의 고통과, 아귀의 굶주림과, 축생의 우치에서 방황하게 된다는 것이다.

*취(趣) : ①중생이 번뇌에 의해 업을 만들어 그 혹업(惑業, 미혹에 바탕을 둔 행위. 번뇌)에 이끌려 사는 곳. 이를 6종류로 나누어 육취(六趣)라고 한다. 도(道)라고도 한다. 특히 악취(惡趣), 악도(惡道)를 일컬음.

②내세로 향하는 것.

*아귀(餓鬼) ; 생전에 탐욕이나 질투가 많아 육도(六道) 중 하나인 아귀도(餓鬼道)에 이르게 된 죽은 사람의 영혼. 몸이 앙상하게 마르고 목구멍이 바늘구멍 같아 음식을 먹을 수 없어서 늘 굶주린다고 한다.

*수악하다 ; ‘독하다’의 사투리.

*여럿이 함께 모여 있는 무리.

*참선법(參禪法) ; ①선(禪) 수행을 하는 법.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법.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1700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방편(方便 방법·수단 방,편할 편) ; ①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일시적인 수단으로 설한 가르침.중생 구제를 위해 그 소질에 따라 임시로 행하는 편의적인 수단과 방법. 상황에 따른 일시적인 수단과 방법.

②교묘한 수단과 방법.

*가설(假說) ; ①임시로 설명하는 것. 언어적 관습. 비유적 표현. 제2의적(第二義的). ②허언(虛言, 거짓말. 실다움이 없는 언어).

*회삼승귀일(會三乘歸一) ; 회삼귀일(會三歸一). 실교(實敎 진실의 가르침)에 들어가게 하는 방편 수단으로의 성문·연각·보살 삼승(三乘)의 각기 다른 가르침은 모두 유일한 진실의 가르침인 일불승(一佛乘)이라고 하는 깨달음에 귀일(歸一)한다고 하는 가르침.

*가명인도고(假名引導故) ~ 내시실상(乃示實相) ; 이 구절은 구마라집이 번역한 『묘법연화경』에 해설을 덧붙인 중국 송나라의 계환(戒環) 스님이 1126년에 저술한 『묘법연화경요해妙法蓮華經要解』(제1권)에 나오는 구절.

[참고] 〇妙法蓮華經要解卷第一

.....  但以眾生垢重根噐未純。先說三乘假名引導。故權而未實麄而未妙。及乎諸糞既除心相體信。乃示實相會歸一乘。則妙而無麄矣。諸佛能事終畢於是也  ....

*권•실(權•實) : 부처님의 깊은 이치는 보통 사람으로서는 대번에 알기 어렵기 때문에, 일시적으로 방편으로써 처음에는 옅은 이치의 차별법(差別法)을 중•하(中•下) 근기에게 설한 가르침을 권(權)이라 하는데 소승교를 가리킴이요, 나중에는 참된 실상(實相)의 둘 아닌 법(不二法•眞如•平等), 영원히 변함이 없는 구극적(究極的)인 진리법을 설한 가르침을 실(實)이라 하는데 대승교를 가리킨다.

*주문(呪文) ; ①어떤 바람이나 원망 실현시킨다고 믿으며 외는 글귀. ②다라니(尼)의 글.
*다라니(尼)산스크리트어 dhāraṇī의 음사(音寫). 총지(總持), 능지(能持)라고 번역.
①가르침을 마음에 간직하여 잊지 않는 능력·지혜.
②부처님이나 보살님들의 서원(誓願)이나 덕(德), 또는 가르침이나 지혜를 나타내는 신비로운 주문으로, 범어를 번역하지 않고 음사(音寫)하여 읽음. 이 주문에는 불가사의한 힘이 있어서 이것을 외우면 한량없는 가르침을 들어도 잊지 아니하고 모든 장애를 벗어나는 공덕을 얻는다고 한다.
보통 비교적 긴 주문을 다라니, 짧은 주문을 진언(眞言)이라 하지만 엄밀하게 구별하지는 않는다.
*일초직입여래지(一超直入如來地) ; ‘한 번 뛰어 여래의 경지에 바로 들어간다’
[참고] 『증도가(證道歌)』 (영가永嘉 스님)에서.
覺卽了不施功  一切有爲法不同  住相布施生天福  猶如仰箭射虛空  勢力盡箭還墜  招得來生不如意

깨닫고 나면 공(功)을 베풀지 않으니 일체 유위법(有爲法)과 같지 않다. 상(相)에 머문 보시는 천상에 나는 복이나, 마치 하늘을 향해 화살을 쏘는 것과 같다. 올라가는 힘이 다하면 화살은 다시 떨어지니, 내생(來生)에 뜻과 같지 않음을 초래하게 되리라.

爭似無爲實相門  一超直入如來地  但得本莫愁末  如淨琉璃貪寶月  我今解此如意珠  自利利他終不竭

어찌 무위(無爲)의 실상문에, 한 번 뛰어 여래의 경지에 바로 들어가는 것만 하겠는가. 다만 근본을 얻을지언정 지엽은 근심하지 말라. 마치 깨끗한 유리구슬 안에 보배 달을 머금은 것과 같네. 내, 이제 여의주를 아나니 나와 남을 이롭게 함에 마침내 다함이 없도다.
*여래지(如來地) ; 불지(佛地). 부처의 지위(地位)·경지(境地). '부처의 상태를 이루었다'는 뜻의 성불(成佛)과도 같은 뜻.
*증(證) ; ①증득(證得, 산스크리트어: adhigama 또는adhisajbodha). 증오(證悟). 수행으로 진리를 체득하는 것 또는 깨치는 것을 말한다. 수행한 결과로 얻는 과보를 증과(證果)라고 하며, 최종의 증과는 성불(成佛: 부처가 됨)이다.
②증(證)은, 《대승의장》 제 10권에 따르면, 지득계회(知得契會) 즉 앎·증득·계합·깨침을 뜻하는데, 마음이 실성(實性)에 그윽히 잠겨서[冥] 분별을 잊고 실성(實性)에 계합하고 실성(實性)을 깨쳐서 실성(實性)과 평등한 상태에 있는 것을 말한다.
*녹야원(鹿野苑) ; 석가(釋迦)가 35세에 성도(成道)한 후 최초로 설법을 개시한 곳이며, 이때 교진여(僑陳如) 등 5명의 비구(比丘)를 제도(濟度)하였다.
갠지스 강 중류, 지금의 바라나시(Varanasi, 베나레스 Benares)에서 북동쪽 약 7㎞ 지점에 있는 사르나트(Sarnath)의 유적이 곧 녹야원의 터. 사슴동산(녹야원), 즉 사르나트(Sarnath)는 산스크리트어로 ‘사슴의 왕’을 뜻하는 ‘사란가나타(Saranganatha)’가 줄어든 말이다.
붓다가 깨달음을 이룬 우루벨라(uruvelā) 마을의 붓다가야(buddhagayā)에서 녹야원까지는 직선 거리로 약 200㎞됨.
탄생(誕生:룸비니) ·성도(成道:붓다가야) ·입멸(入滅:쿠시나가라)의 땅과 더불어 불교(佛敎) 4대 성지의 하나.
*발제하(跋提河 Ajitavati) ; 인도의 강(江) 이름. 북부 인도의 구시라(拘尸羅 Kusinagara)성 서북쪽으로 흐르는 강, 아시다발제하(阿恃多跋提河)의 약칭.
석가모니가 이 발제하(跋提河)의 물가, 사라수 여덟 대가 둘씩 마주 서 있는 사라쌍수(沙羅雙樹) 아래에서 머리를 북쪽으로 향하고 오른쪽 겨드랑이를 밑으로 해서 열반에 들었다.
*오통(五通) ; 오신통(六神通). 보통 사람으로서는 헤아릴 수 없는 것을 헤아림을 신(神)이라 하고, 걸림 없는 것을 통(通)이라 한다. 다섯 가지 불가사의하고 자유 자재한 능력.
①신족통(神足通) 마음대로 갈 수 있고 변할 수 있는 능력.
②천안통(天眼通) 모든 것을 막힘없이 꿰뚫어 환히 볼 수 있는 능력.
③천이통(天耳通) 모든 소리를 마음대로 들을 수 있는 능력.
④타심통(他心通) 남의 마음 속을 아는 능력.
⑤숙명통(宿命通) 나와 남의 전생을 아는 능력.
“제일통으로부터 제오통까지는 그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마음을 고요히 가지기만 힘쓰는 유루정(有漏定)을 닦는 외도(外道)나 신선(神仙) • 하늘 사람(天人) • 귀신들도 얻을 수가 있고, 약을 쓰든지 주문(呪文)을 읽어도 될 수 있다。그러나 누진통만은 아라한(阿羅漢)이나 불•보살만이 능한 것이다”
[선가귀감](용화선원) p94-95 참조.
*누진통(漏盡通) ; 번뇌를 모두 끊어, 내세에 미혹한 생존을 받지 않음을 아는 능력.
*팔만사천(八萬四千) : 중생의 망상이 벌어져 나가는 것을 자세히 분석하면 팔만 사천 갈래가 된다고 한다. 그러므로 망상을 따라 일어나는 악마의 수효도 팔만 사천이요, 망상을 다스리는 법문도 팔만 사천이다.
인도에서는 많은 수효를 말할 때에는 이 말을 쓰는 수가 가끔 있다. 줄여서 팔만이라고만 하기도 한다.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를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것.
*과보(果報) ; 인과응보(因果應報, 전생에 지은 선악에 따라 현재의 행과 불행이 있고, 현세에서의 선악의 결과에 따라 내세에서 행과 불행이 있는 일).
*격외선지(格外禪旨) : 참선의 도리는 보통 사람의 범상한 소견에 벗어난 것이어서 있는 마음으로나, 없는 마음으로나 다 알지 못하는 것(有心無心俱透不得)이다.
*견성(見性)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음. 미혹을 깨뜨리고 자신의 청정한 본성을 간파하여 깨달음.
*인가(印可 도장 인/옳을•인정할 가) ; 스승이 제자의 깨달음을 인정함.
*광음(光陰) ; 햇빛과 그늘, 즉 낮과 밤이라는 뜻으로, 시간이나 세월을 이르는 말.
*별별(別別)보통과는 다른 갖가지.
*지경(地境) ; 어떠한 처지 형편.
*무수(無數) ; 헤아릴 수 없음.
*여지(地)없다 ; ①(무엇)달리  말할 필요 없다. ②더 어찌할 나위가 없을 만큼 가차 없다.

*무상(無常) ; 모든 현상은 계속하여 나고 없어지고 변하여 그대로인 것이 없음. 온갖 것들이 변해가며 조금도 머물러 있지 않는 것. 변해감. 덧없음. 영원성이 없는 것.

*오후불식(午後不食) ; 정오(正午), 낮 열두 시가 지나면 먹지 않는 것.

*율사(律師) ; 계(戒)와 율(律)에 능통한 스님. 일반적으로 계행이 청정한 수행자를 가리키는 말로 쓰이기도 한다.

*삼시(三時)아침점심저녁  끼니또는  .

*상(相) ; ①모습, 형태 ②특징, 특질 ③생각, 관념, 상(想)과 같음 ④종적을 남기고 싶다고 하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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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심(信心) : ①‘내가 바로 부처다’ 따라서 부처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요, 일체처 일체시에 언제나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공, 이 소소영령한 바로 이놈에 즉해서 화두를 거각함으로써 거기에서 자성불(自性佛)을 철견을 해야 한다는 믿음.

②‘올바르게 열심히 참선을 하면 나도 깨달을 수 있다’는 믿음. 진리에 대한 확신.

*의심(疑心) : 알 수 없는 생각에 콱 막히는 것.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이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수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이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또는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또는 ‘조주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바른 깨달음은 알 수 없는 의단, 알 수 없는 의심에 꽉 막힌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오죽하다(사람이나 사태 정도)심하거나 대단하다.

*발심(發心) ; ①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원어)發起菩提心발기보리심, 發菩提心발보리심.

*온당하다(當-- 평온할 온/사리에 맞을 당) ; (생각 언행)사리(事理 사물 이치 일의 ) 어그러지지 않고 마땅하다.

*의단독로(疑團獨露 의심할 의,덩어리 단,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가 홀로(獨) 드러나다(露).

*현전(現前) ; 앞에 나타나 있음.

*무간지옥(無間地獄) ; 아비지옥(阿鼻地獄)이라고도 함. 아비(阿鼻)는 산스크리트어 avīci의 음사(音寫)로서 ‘아’는 무(無), ‘비’는 구(救)로서 ‘전혀 구제받을 수 없다’는 뜻. 고통이 끊임없으므로 무간(無間)이라 함.

아버지를 죽인 자, 어머니를 죽인 자, 아라한을 죽인 자, 승가의 화합을 깨뜨린 자, 부처의 몸에 피를 나게 한 자 등, 지극히 무거운 죄를 지은 자가 죽어서 가게 된다는 지옥.

이 지옥에 떨어지는 죄인에게는 필파라침(必波羅鍼)이라는 악풍(惡風)이 있는데 온몸을 건조시키고 피를 말려 버리며 또 옥졸이 몸을 붙잡고 가죽을 벗기며, 그 벗겨낸 가죽으로 죄인의 몸을 묶어 불 수레에 싣고 훨훨 타는 불구덩이 가운데에 던져 넣어 몸을 태우고,

야차(夜叉)들이 큰 쇠 창을 달구어 죄인의 몸을 꿰거나 입, 코, 배 등을 꿰어 공중에 던진다고 한다. 또는 쇠매(鐵鷹)가 죄인의 눈을 파 먹게 하는 등의 여러 가지 형벌로 고통을 끊임없이 받는다고 한다.

*득력(得力) ; 수행이나 어떤 기술•운동에서 자꾸 되풀이해서 하면, 처음에는 잘 안되던 것이 할라고 안 해도 저절로 잘 되어질때 득력(得力)이라 표현. 수월하게 되어 힘이 덜어지는 것을 다른 표현을 쓰면 그것을 ‘힘을 얻었다(得力)’하는 것.

참선 수행에서는 화두에 대한 의심을 할려고 안 해도 저절로 의심이 독로(獨露)하게 되는 것을 ‘득력’이라고 말한다.

*혼비담상(魂飛膽喪) ; 혼이 날아가고 마음을 잃다. *魂(혼)넋. 마음. 생각. *膽(담)쓸개. 담력. 기백. 마음. *喪(상)잃다. 죽다. 잊어버리다.

*수망각란(手忙脚亂) ; 수족(手足)을 아주 괴로울 정도로 움직이는 것. 몸이 매우 아프거나, 목숨이 끊어지려 할 때의 아주 다급하고 어찌할 줄을 모르는 것을 나타내는 말.

수각망란(手脚忙亂), 각망수란(脚忙手亂)이라고도 한다. *忙(망)바쁘다. 조급하다. 초조하다. 애타다.

 

[참고] 대정신수대장경(大正新脩大藏經) 제47冊 대혜보각선사어록(大慧普覺禪師語錄) (30권) 【宋 온문(蘊聞)編】 제19권 ‘示妙證居士(묘증거사에게 보임)(聶寺丞)’에서.
無常迅速。生死事大。眾生界中順生死底事。如麻似粟。撥整了一番。又一番到來。若不把生死兩字貼在鼻尖兒上作對治。則直待臘月三十日。手忙脚亂。如落湯螃蟹時。方始知悔則遲也。若要直截。請從而今便截斷。
 
무상(無常)은 매우 빠르고 생사의 일은 큽니다. 중생계 속에서 생사에 따르는 일은 삼대나 좁쌀처럼 많아서, 한번 마치고 나면 또 한 차례 닥쳐 옵니다.
만약 생사(生死) 이 두 글자를 잡아 코 끝에 붙여놓고 번뇌를 끊지(對治) 않는다면, 곧 납월삼십일 죽음을 맞이해서는 손발을 어지럽고 분주히 떠는 것이 마치 끓는 물에 게를 집어넣을 때와 같으니, 비로소 후회해야 이미 늦은 것입니다.
만약 곧장 끊고자 한다면, 청컨대 지금 곧 절단하십시오.
*납월삼십일(臘月三十日) ; 납월(臘月)은 음력 섣달, 음력으로 한 해의 맨 마지막 달. 납월삼십일은 섣달 그믐날, 일 년의 마지막 날로 곧 생애의 마지막 날을 뜻한다.

*죄업(罪業) ; 자신과 남에게 해가 되는 그릇된 행위(身)와 말(口)과 생각(意). 괴로움의 과보를 초래하는 악한 행위. 좋지 않은 결과의 원인이 되는 악한 행위.

*악도(惡道, 惡途) ; 악한 짓을 한 중생이 그 과보로 받는다고 하는 괴로움의 생존. 지옥•아귀•축생 등의 세계. 삼악도(三惡道).

*귀도(鬼道) ; 6도(六道)의 하나. 아귀도(餓鬼道). 아귀의 생존상태. 귀취(鬼趣)와 같음.

*입태(入胎) ; 모태(胎)에 들어가는 것.

*주태(住胎) ; 모태(胎)에 머물러 있는 것.

*출태(出胎) ; 태어나는 것.

*매(昧)하다 ; (지혜가)어두워지다. 사리를 분별하지 못하다. 잊어버리다.

*도솔천내원궁(兜率天內院宮) ; 욕계 육천(欲界六天)의 넷째 하늘. 불교의 우주관에 따르면 우주의 중심은 수미산(須彌山)이며, 그 꼭대기에서 12만 유순(由旬) 위에 도솔천이 있는데 이곳은 내원(內院)과 외원(外院)으로 구별되어 있다.

내원은 내원궁(內院宮)으로 불리기도 하며 석가모니가 보살일 당시에 머무르면서 지상에 내려갈 때를 기다렸던 곳이며, 오늘날에는 미래불인 미륵보살(彌勒菩薩)이 설법하면서 지상으로 내려갈 시기(석가모니가 입멸한 지 56억 7천만 년 뒤에)를 기다리고 있는 곳이고,

외원은 수많은 천인(天人)들이 오욕(五欲)을 충족시키며 즐거움을 누리고 있는 곳이다.

도솔(兜率)의 뜻은 지족(知足).

*호사난상(胡思亂想) ; ①이것저것 몹시 뒤섞이고 쓸데없는 생각을 어수선하게 함. ②까닭을 알 수 없는 생각.

 

 

Posted by 닥공닥정
화두(공안)2015. 5. 12. 11:01

§(119) 마조원상(馬祖圓相) 공안 / 경봉 스님과의 일화 / 참선은 결정코 내가 나를 깨닫는 유일한 길 / 이 세상 어떠한 일보다 우선해서 우선 나부터 깨달라야.

참선은 명예와 이양을 위한 것도 아니고, 지식과 수단을 위하는 것도 아니고, 오직 내가 나를 깨닫는 길이고, 내가 나를 깨달은 뒤에는 일체 중생을 제도(濟度)하는 커다란 목적과 의무를 수행할 따름인 것입니다.
첫째 내가 나를 깨닫지 못하고 남을 제도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자기가 능히 헤엄을 칠 줄 아는 사람이라야 물에 빠진 사람을 건지기 위해서 물에 들어갈 수가 있습니다.


내가 나를 깨닫는 이 참선은 금생에 사람 몸 받을 때 하지 아니하면—이것은 영원히 다시 사람 몸을 받을지, 다시 또 이 불법을 만나게 될지, 정말 막연하고 막연할 따름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세상의 어떠한 일보다도 우선해서 참선을 철저히 해야 한다고 하는 까닭이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만큼 건강하고, 이만큼 살고 있을 때, 그리고 선지식(善知識)의 법문을 들을 수 있을 때, 하루하루를 정말 알뜰하고 착실하게 공부를 지어가야만 되는 것입니다.


깨달음은 이론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요, 오직 본참화두를 여법(如法)하게 거각하고 정진을 함으로써만이 눈이 열리는 것입니다.


**송담스님(No.119)—80년 1월 관음재일 법어(80.01.24) (용119)


약 19분.

 


방금 조실 스님의 법문을 통해서 마조원상(馬祖圓相) 법문에 대해서 여러 차례 말씀을 들었습니다.

마조(馬祖) 스님은 중국의 육조(六祖) 스님의 제자, 회양(懷讓) 스님의 제자로서, ‘마구답살천하인(馬駒踏殺天下人)이라. 망아지가 천하 사람을 밟아 죽인다’고 하는 달마 스님께서 그렇게 예언을 하셨다고 합니다.

‘후대에 가서 마조라고 하는 대도인(大道人)이 나와 가지고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 이 정법을 천하에 선양한다’고 하는 뜻으로 예언을 하셨던 것입니다.

그 마조 스님께서 원상(圓相)을 그려놓고 원상, 동그라미를 그려놓고 “이 속에 들어가도 치고, 이 속에 이 둥그라미 안에 들어가지 아니해도 치겠다” 이렇게 어떤 승려, 도를 배우는 승려 앞에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그 승려는 그 원상 안으로 뛰어들어가서 딱 앉았습니다. 마조 스님은 주장자로 그 승려를 한 대 후려팼습니다.

그 승려는 탁! 마조 스님을 쳐다보면서 “스님은 저를 치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단호하게 말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마조 스님은 입을 딱 다물고서 아무 말도 없이 가버리셨습니다.

이 공안(公案)은 마조원상(馬祖圓相)이라 해서 종문(宗門) 중에 공안 가운데에 최고 가는 공안으로 천년을 두고 선종 문중에서 회자되고 있습니다.

이 공안은 조실 스님께서 육대 선지식으로부터 인가를 다 받고 만공 스님 회상에 가서 만공 스님의 너무나도 밝고 밝으신 지혜의 눈과 철두철미한 종사의 수단 아래 무릎을 꿇고 다시 정신을 차려서 정진을 하셔 가지고, 다시 대각(大覺)을 성취하신 공안이기 때문에 조실 스님께서는 매양 ‘소식을 얻었다’고 하는 학자를 대할 때 이 공안을 많이 물으셨습니다.

경봉 스님께서, 지금 통도사 극락선원 조실로 계신 경봉(鏡峰) 큰스님께서 처음에 깨달으셨을 때, 바로 마치 그때 거기에 당도하신 전강 조실 스님께서는 경봉 스님보다는 훨씬 연세가 아래였었지마는 바로 이 마조원상의 공안을 경봉 스님께 물어 가지고,
처음에는 경봉 스님께서 그 원상을 손으로 이리 뭉켔습니다.
거기에서 조실 스님은 “당장 이 송장을 끌어 묻으라”고 호통을 치셨습니다.

거기에서 한참 눈을 웅큼하게 해 가지고 계시다가 다시 경봉 스님께서 “이제 알았다. 다시 물어라” 이렇게 해서 그때 보시니 아까의 경계와 판연히 달라서 경봉 스님을 산골짜구니로 끌고가 가지고 이 공안을 다시 물으니까 여지없이 경봉 스님께서 일르셨다고 한 말씀을 금방 법문을 통해서 들었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는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각 선원에서 공부를 하고 오신 납자스님네도 여러분이 오셨습니다. 그리고 신도 보살님 여러분들도 우리 용화사에서 지내신 분 또 다른 선방에서 공부를 하시고 오신 보살님네들도 여러분이 계십니다. 그동안 석 달 동안 가행정진 용맹정진을 하시고 오신 분들입니다.

해제가 되면 으레이 부처님 당시에도 부처님 회상으로 모여 가지고 그동안에 공부했던 것을 탁마하고, 잘못했던 것을 대중 앞에 참회하고, 그렇게 해서 한철동안 지낸 공부를 총결산 하고, 반성하고 참회해서 다시 새로운 정신을 가다듬어서 공부를 해왔었습니다.

이 가운데에 참여하신 청신사 청신녀 그리고 비구 비구니 여러분들,
과연 지난 삼동(三冬) 안거 동안 정진을 하셔서 투철히 깨치신 바가 있으면 이 마조원상, 원상을 그려놓고 이 안에 들어가도 치고 들어가지 아니해도 치니 한번 자신 있게 일러 보시기를 바랍니다. 전강 조실 스님을 대신해서 수응(酬應)을 해 드리겠습니다.

“스님께 못 이르겠습니다”
“환귀본처(還歸本處)하라. 이르지 못할 것을 뭐하러 나왔느냐”

이 공안은 벌써 이를라고 생각을 움직이면 그르쳐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조실 스님께서 법문하실 때 ‘사자는 교인(獅子咬人)하고 한로는 축괴(韓獹逐塊)’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개한테 돌멩이를 던지면 개는 그 돌멩이가 무슨 명태 대가리나, 고기 덤뱅이 인줄 알고 그 돌멩이를 물으러 우르르르 쫓아가는 법이고, 사자는 돌멩이를 던지면 돌멩이는 쫓아가지 아니하고 돌멩이를 던진 그 사람의 목덜미를 물어뜯고 마는 것입니다.


참선(參禪)은 결정코 내가 나를 깨닫는 유일한 길인 것입니다.

참선은 명예와 이양을 위한 것도 아니고, 지식과 수단을 위하는 것도 아니고, 오직 내가 나를 깨닫는 길이고, 내가 나를 깨달은 뒤에는 일체 중생을 제도(濟度)하는 커다란 목적과 의무를 수행할 따름인 것입니다.

첫째, 내가 나를 깨닫지 못하고 남을 제도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자기가 능히 헤엄을 칠 줄 아는 사람이라야 물에 빠진 사람을 건지기 위해서 물에 들어갈 수가 있습니다.
헤엄도 칠 줄 모르는 사람이 물에 빠진 사람을 건진답시고 물에 풍덩 뛰어들어가면 빠진 사람을 건지기커녕 자기까지 빠져 죽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는 중생을 제도할 원대한 의무와 책임을 가지고 있지만 그러한 의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우선 나 자신부터 깨닫지 아니하면 아니됩니다.

‘나를 깨닫는 길’은 이 세상의 어떠한 일보다 우선(優先)해서 중요하고, 어떠한 일보다 우선해서 급하고 요긴한 것입니다.
밥을 먹는 일도 급하고, 잠을 자는 일도 급하고, 세속에 우리가 맡은 모든 일들이 하나도 버려서는 안되겠지만 어떠한 일보다 우선해서 우선 나부터 깨달라야 하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위해서는 먹을 것 입을 것을 다 망각하고 오직 자식 생각만을 하시지만, 그렇기는 하지만 발등에 불이 떨어졌을 때는 우선 자기 발등의 불부터 끄고 자식 불을 끌 수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의식적으로가 아니라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어떠한 효자라 하더라도—그 효자는 자기의 모든 것을 다 바쳐서 부모만을 위하는 하늘에서 낸 효자라 할지라도 자기 발등의 불부터 끌 수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자기 발등의 불을 쪼끔 오래 놔둔다고 해서 죽는 것도 아닌 것입니다. 잠시 뜨겁다가 마는 것이지만 그래도 자기 발의 불부터 끄는 것입니다.

하물며 내가 나를 깨닫는 이 참선은 금생에 사람 몸 받을 때 하지 아니하면—이것은 영원히 다시 사람 몸을 받을지, 다시 또 이 불법을 만나게 될지, 정말 막연하고 막연할 따름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세상의 어떠한 일보다도 우선해서 참선을 철저히 해야 한다고 하는 까닭이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돈을 많이 모이고, 권리를 많이 누리고, 명예를 하늘 닿도록 차지한다 하더라도 그러한 일들은 나의 죽음을 막아주지 못합니다. 죽을 때 한 톨도 한 치도 그것을 가지고 갈 수도 없습니다.

죽어갈 때에는 무엇을 가지고 가느냐? 명예를 얻느라고 얻은 죄업(罪業), 재산을 얻느라고 지은 죄업, 권리를 누리느라고 지은 죄만을 산더미처럼 지고 염라대왕 앞에 끌려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때는 아무리 통곡을 하고 뉘우치고 눈물을 흘려도 아무도 받아 줄 사람이 없습니다.

우리가 이만큼 건강하고, 이만큼 살고 있을 때, 그리고 선지식(善知識)의 법문을 들을 수 있을 때, 하루하루를 정말 알뜰하고 착실하게 공부를 지어가야만 되는 것입니다.

오직 그것만이 과거의 무량겁에 지어 놓은 모든 죄도 소멸을 할 수가 있고, 이 공부에 철저하면서 세속적인 또는 인간적인 책임을 충실히 한다면 현실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큰 죄를 짓지 않게 되는 것이며, 앞으로도 진리를 깨닫는 목적을 향해서 걸어가므로 해서 생사해탈을 기어코 기약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바른길, 이러한 지혜로운 길 인간으로서 최고의 길이 바로 이 참선법이요, 불법이요, 정법인 것입니다.


지금 마조원상 법문을 조실 스님을 대신해서 여러분 앞에 물었습니다마는 이것은 이론적으로 따져서 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걸 내가 오늘 이르지를 못했으니 당장 집에 가서 경전을 뒤적거리고 조사어록(祖師語錄)을 뒤적거려서라도 기어이 이것을 찾아봐야겠다’  이렇게 생각하신 분이 계신다면 잘못된 생각을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조사 공안이 적혀있는 염송(拈頌)이나 무문관(無門關)이나 그 밖의 벽암록(碧巖錄) 같은 어떠한 어록을 뒤적거린다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이 자리에서 바로 보지를 못했다면 찰나 간에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를 거각(擧却)하는 것이 가장 지혜 있고 바른 수행인인 것입니다.

공안은, 화두는 절대로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더듬어서 알아맞출 수도 없는 것이고, 이론적으로 따져서 결론을 얻을 수도 없는 것입니다.
이론으로 따져서 결론을 얻었다든지 사량심으로 알아졌다면 그것은 깨달음이 아니라 그것은 중생심(衆生心)이요, 중생의 번뇌 망상으로 얻어진 것이라, 망상에 결국은 지내지 못한 것입니다.

아무리 보기 좋게 생긴 사람을 만들어 놨다 하더라도 그것이 참사람이 아니고 흙이나 석고 같은 것으로 만들어졌다면 그것을 아무리 이쁘게 조각을 해 놨어도 아내로 맞이할 수는 없는 거와 마찬가지입니다.

깨달음은 이론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요, 오직 본참화두를 여법(如法)하게 거각하고 정진을 함으로써만이 눈이 열리는 것입니다.

슬플 때나 기쁠 때나 괴로울 때나 억울할 때나 우리의 마음에서 어떠한 생각이 일어나건, 어떠한 감정이 일어나건, 그 생각 그 감정 하나하나를 헛되이 놔 보내지 말고, 바로 그 생각을 돌이켜서 ‘이뭣고?’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다못 이렇게 순박하게, 이렇게 진실하게, 이렇게 바보처럼 한 생각 한 생각을 다져 나간다면 결정코 우리는 생사를 해탈하는 힘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11분49초~31분)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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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조(馬祖) 스님, 육조(六祖) 스님, 남악회양(南嶽懷讓) 스님 ;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마조원상(馬祖圓相) 공안 ; [선문염송(禪門拈頌)] (혜심 지음) 제5권 165칙 ‘원상(圓相)’ 공안.
〇馬祖因見僧參  畫一圓相云  入也打不入也打  僧便入  師便打  僧云和尙打某甲不得  師靠却拄杖  休去.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1700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전강 조실 스님과 마조원상(馬祖圓相) 공안 ; [언하대오(言下大悟)] (용화선원刊) p24 - 26.
내가 25세 때 덕숭산 금선대에 계신 만공 스님을 처음 찾아가서 예배하니 나에게 묻기를 “심마물이 임마래오(甚麽物恁麽來)”하시었다. 내가 다시 예배하니 또 묻기를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어?”하시었다.
이번에는 내가 서슴없이 주먹을 불끈 들어 보이니 만공 스님은 그만 얼굴을 찌푸리시면서 “허! 저렇게 주제 넘는 사람이 견성했다해. 네 습기(習氣)냐, 체면없이 무슨 짓이냐?” 이러시고는,

그 다음부터는 나를 보시기만 하면 비웃으며 “저 사람, 저런 사람이 견성을 했다 하니 말세 불법이 이럴 수가 있는가”하고 번번이 조롱을 하시었다.
나는 차츰 불안해지다가 분심이 났다. 선지식이 저러실 때에는 반드시 까닭이 있으리라. 이렇게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때 몸은 극도로 쇠약하여 핏기가 하나도 없어 앉으면 잠이 와서 앉지도 못할 정도로 바짝 말랐다.

그래서 운동대를 붙잡고 서서 ‘에라!  한바탕 해봐야겠다.  그까짓 놈의 몸은 하다가 죽으면 그뿐이지’하고,
나는 만공 큰스님의 말씀을 믿고 그 회상에서 하안거 중 판치생모 화두를 잡고 용맹정진하다가 반 철이 지날 무렵 홀연히 ‘마조원상공안의 의지(馬祖圓相公案意旨)’가 확 드러났다.

그 길로 조실 방에 들어가 보월 스님 앞에 원상을 그려 놓고 묻기를 “마조원상 법문에 <들어가도 치고, 들어가지 아니해도 친다. (入也打不入也打) >고 하였으니 조실 스님께서는 어떻게 이르시겠습니까?”하니 보월 스님은 곧 원상을 뭉개셨다.

나는 보월 스님께 말하되 “납승을 갈등 구덩이(葛藤窠臼)속에 죽이신 것입니다. 마조방하(馬祖棒下)에 어떻게 생명을 보존하시겠습니까?” 이렇게 말하고,

보월 스님의 대답이 떨어지기 전에 문을 닫고 만공 스님 처소에 와서 다시 묻되,
“마조원상 법문을 보월스님께 물었더니 원상을 뭉개었습니다. 이렇게 그르칠 수 있겠습니까?”하였더니 만공 스님은 도로 나에게 묻되 “자네는 어떻게 이르겠는가?” 하시었다.

내가 답하되, “큰스님께는 이르지 못하겠습니다”하였더니,
만공 스님이 주장자를 초안(初眼)이에게 주시면서 “자네가 묻게”하시니 초안 스님이 주장자로 원상을 그리고 “입야타 불입야타(入也打不入也打)”해서, 내가 초안이를 보고 여지없이 일렀다.

그러나 학자를 위해서 설파하지 않는다. 만공 스님께서 고개를 끄덕끄덕 하시면서 점검하시되, “누가 밤사람 행한 것을 알 수가 있겠느냐(誰知更有夜行人)”하셨다.

그런 다음, 만공 스님과 한암 스님과의 서신문답과 기타 중요 공안에 대한 탁마(琢磨)를 낱낱이 마치고 떠나려고 할 때, 만공 스님께서 물으시되,

“부처님은 계명성(啓明星)을 보고 오도했다는데 저 하늘에 가득한 별 중 어느 것이 자네의 별인가?” 하시니,
내가 곧 엎드려서 허부적 허부적 땅을 헤집는 시늉을 하니 만공 스님께서 “옳다. 옳다!(善哉善哉)” 인가하시고 곧 나에게 전법게(傳法偈)를 지어 주시되,

불조미증전(佛祖未曾傳)이요
아역무소득(我亦無所得)이라
차일추색모(此日秋色暮)한데
원소재후봉(猿嘯在後峰)이로다

불조가 일찍이 전하지 못했는데
나도 또한 얻은 바 없네.
이날에 가을빛이 저물었는데
원숭이 휘파람은 후봉에 있구나.
*공안(公案) : 화두(話頭)。①정부 관청에서 확정한 법률안으로 백성이 준수해야 할 것。②선종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이것을 화두라고도 하는데 문헌에 오른 것만도 천 칠백이나 되며 황화취죽 앵음연어(黃花翠竹鶯吟燕語) — 누른 꽃, 푸른 대, 꾀꼬리 노래와 제비의 소리 등 — 자연현상도 낱낱이 공안 아님이 없다.
화두에 참구(叅句)와 참의(叅意)가 있다。이론적으로 따져 들어가는 것이 참의요 사구(死句) 참선이며, 말길 뜻길이 끊어져서 다만 그 언구만을 의심하는 것이 참구요 활구(活句) 참선이다.
*만공 스님 ;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수응(酬應 응대할 수,응할 응) ; 남의 요구에 응함.
*사자는 교인(獅子咬人)하고 한로는 축괴(韓獹逐塊) ; ‘사자는 사람을 물고 개는 흙덩이를 쫓느니라’
*咬(교)물다. 깨물다. *獹(로)개 이름. 전국시대 한(韓)나라 좋은 개 이름. *逐(축)쫓다. *塊(괴)흙덩이.
[참고] ①《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 제11권 ‘양주 왕경초 상시(襄州王敬初常侍)’에 '師子齩人  韓獹逐塊'
②중국 고봉 스님의 《선요禪要》의 ‘개당보설(開堂普說)’에 '獅子咬人  韓獹逐塊' (통광 스님 역주 ‘고봉화상선요•어록’ p39,47에서)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제도(濟度 건널 제,건널 도) ; 중생을 미혹의 큰 바다(생사고해 生死苦海)로부터 구하여[濟], 생사없는 피안(彼岸,깨달음의 언덕)에 이르게 하는[度] 것. 제(濟)는 구제(救濟). 도(度)는 도탈(度脫).
[참고] 구제(救濟 건질 구,건널 제)—어려움이나 위험에 빠진 사람을 돕거나 구하여 줌. 도탈(度脫 건널 도,벗을 탈)—속세의 속박이나 번뇌 등에서 벗어나 근심이 없는 편안한 경지에 도달함.
*우선(優先)하다 ; (...보다, ...에) 딴 것에 앞서 특별하게 대우하다.
*죄업(罪業) ; 자신과 남에게 해가 되는 그릇된 행위(身)와 말(口)과 생각(意). 괴로움의 과보를 초래하는 악한 행위. 좋지 않은 결과의 원인이 되는 악한 행위.
*선지식(善知識) ; 부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지도자. 좋은 벗.
*조사어록(祖師語錄) ; 어록(語錄). 선종(禪宗)에서 부처님의 바른 종지(宗旨)를 전하는 조사(禪師)나 귀의나 존경을 받을 만한 선승(禪僧)의 가르침, 문답, 언행을 모은 글, 또는 그 책.
*본참화두(本參話頭) ; 본참공안(本參公案).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것을 원칙으로 한다.
*거각(擧却 들 거,어조사 각) ; 화두를 든다.
*사량(思量) ; 생각하여 헤아림. 사유하고 판단함.
*중생심(衆生心) ; 번뇌에 얽매인 미혹한 존재(중생)가 일으키는 미혹한 마음.
*여법(如法 같을·같게 할·따를·좇을 여/ 부처님의 가르침·불도佛道 법) ; 부처님의 가르침에 맞음.

Posted by 닥공닥정

•§•(275) 화엄경—일사천하미진수품(一四天下微塵數品) / 비로자나불은 오케스트라 지휘자 / 신심 / 조실스님의 첫 설법 / 만공선사의 인가, 전법게.

‘바로 우리 성낼 줄 알고 욕할 줄 알고, 탐심낼 줄 알고 진심낼 줄 아는 그 우리 중생심 가운데에 비로자나불이 있다. 그것을 우리가 선지식의 적절한 지도 아래 그것을 개발을 해서 스스로 깨달을 수 있다고 믿는 것. 나도 반드시 바른 지도를 받아서 노력을 헌다면 나도 성불(成佛)헐 수 있다고 믿는 것’ 그것이 신심입니다.


본인 개개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이 비로자나 전신체(全身體)다


필경에는 내가 나를 깨달지. 부처가 깨달라 주지 못혀. 그걸 비로자나 전신체라. 진대지(盡大地)가 비로자나 전신체여, 그러기 때문에. 일사천하미진수품(一四天下微塵數品)이여.


견성(見性) 못허면은 할 수가 없어. 잘 보면, 문제가 다른 문제 아무것도 없고 견성 문제여. 우리 모도 모아서 견성 「이뭣고?」 「이뭣고?」 잘해서 같이 생사해탈하자.


**전강선사(No.275)—임자년 동안거결제(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72.10.15) (전275)
**전강선사 법문 중간에 전강선사 명(命)으로 송담스님이 설하신 법문이 있습니다.

 

(1) 약 21분.

 

(2) 약 22분.


(1)------------------

 

이 묵언(默言)스님이 인자 호(號)가 송담(松潭)인데, 송담 스님을 10년 전부터 내가 법상에를 올라다니면서 여러분들 설법 좀 해 주고 교화해라.
법(法)을 알아 가지고 포교를 중생을 교화(敎化) 안 허면은 그 법을 애끼는 것도 그것이 돈 간탐(慳貪)과 부귀 간탐보다도 더헌 것이다.

법을 가지고, 좋은 법을 가지고 여러분 설법을 해드려서 아! 도(道)를 깨게 맨들아서 생사해탈(生死解脫)을 허게 해야지.
일체 중생이 같이 생사없이 상락아정(常樂我淨)을 증(證)해야지. 나 혼자만 해가지고, 안해 쓰겄느냐?

오늘은 내가 송담한테 다가서 ‘내가 인가(印可)해서 법위(法位)를 전해주니 그리 알라’고.
아! 내가 게송(偈頌—傳法偈)까장 잘 지어서 그래줬더니 죽어도 마다하고,

 

『이름은 그대로 가지겄습니다마는 저는 교화 못 허겄습니다.』
『왜 못 허겄느냐?』
『언변도 없고 또 당초에 헐 마음도 없고 못 허겄습니다.』
『그러면 고인(古人)도 대도(大道)를 통해 가지고도 보림(保任)을 헐라면은 포교고 뭣이고 그만 저 무인절도(無人絶島)에 들어가서 보림허는 법이 있으니 보림을 잘해라. 그러면 네 대로 가거라.』

10년을 내 밑에 있다가—10년을 묵언허고 10년만에 너는 바로 ‘마조원상(馬祖圓相)’ 법문에 바로 깨달라 나한테 대답을 했으니...

그래 내가 그것 하나 대답한다고 되아? 이 공안 저 공안, 공안(公案)을 모두 탁마(琢磨)를 해본 즉 아! 주욱 꿴다 그말이여. 세상에 기특헌 일이다.

나는 어찌 이렇게 내가 그 인가하는 무슨 그런 자격이 있으리요마는 그것은 한국의 과거에 6대 도인이 있었으니, 6대 선지식이 있었으니 6대 선지식의 인가가 내게 없으면 내가 어떻게 인가를 해 주리요.

허지마는 과거에 6대 선지식이 인가헌 것은 조르르르 내 설법에도 다 나와있지마는 구참선객(久參禪客)은 다 알고 있으니, 그러고 틀림없이 다 듣고 아는 이는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그랬는데, 아무리 해야 안되아. 인자는 나이 80이니 곧 오늘내일이여.
오늘내일이니까, 내가 하도 권허니깐 오늘은 설법헐라고, 저를 설법허라고 허니께 겨우 아무 말도 안해. 『예. 허겄습니다.』허고 나를 가만히 봐.

그만 설법허라고 허니까 그만 얼굴이 이만해 가지고 미안헌 생각만 잔뜩 가지고 있어. 말도 않고.
‘그래도 헐 수 없어’했더니 인자 올라와서 설법을 헐 것입니다.

헌디 나보다 설법을 더 잘 헌다. 그건 믿지 말라 그 말씀이여. 나는 50년 동안 설법했어.
아직 50년은 다 못 되었소마는 아! 인자 처음 설법헌 사람이 무슨 설법을 헐 것이여?

그렇게 확철대오한 보월 스님은 법상에 올라와서 설법허라고 하니까, 젠장 설법을 거꾸로 헌단 말이여. 설법 거꾸로 허는지 안 봤어.
다 설법허고 마지막 내려오면서 하는, 꺼꾸로 그 꽁댕이를 하면서 그나마 설법도 ‘웬굉~’ 운단 말이여. 울어. 설법하면서 울어버렸어.

대중이 그만 그 많은 대중이 ‘아, 그 보월 스님, 대도를 깨달은 스님이 설법을 허니 얼마나 장하랴’ 야단치고 듣는데, ‘원공법계제중생(願共法界諸衆生) 자타일시성불도(自他一時成佛道)’라. 이 노래를 못 하고는.

만공 스님 항상 하는 소리 들었거든. ‘원공법계제중생 자타일시성불도’라 허고 내려오면 그 소리가 구수허게 좋으니까 자기도 올라가면 그렇게 헐 줄 알고,
(몸집은) 이만헌 이가 목은 찌끄만하게 (가는 목소리로) ‘아, 이사람아!  아, 그사람 참 별 사람이네’ 이런다 그말이여.

헌디 ‘웬굉~벱계~제중생~~’ 아! 그러고 운다 그말이여. 세상에 그렇게 우는걸 보고 안 웃는 이가 없네.
다 웃네. 그중 앞에는 조카상좌라고 이만 허니 또 그렇게 뚱뚱헌 사람이 있는데, 고것 쳐다 보고는 ‘아이고! 죽겄다’고 웃는다 그말이여. 웃음판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거 뭔 법문을 잘 헐 것이요? 허지마는 인자 불가불 이 절 원장(院長)이요, 이 절 조실(祖室)이고, 이 절을 어떻게 헐 거여? 아무리 허기 싫어도 나 혼자만 깨닫고 나 혼자만 생사해탈하고 말 것이여?

대전이 아무리 좋고 대전에다 큰 절 하나 지어놓고, 나 가본게 터가 참 우리 절터 보다 좋단 말이여.
허지마는 여그는 아주 내 본사(本寺)고, 여그는 안에 조실이고, 거그도 부속 선원으로 댕기면서 인자 봐주고 이렇게 되았습니다.

그러신 줄 아시고 오늘 설법상에 올라가서 보월 스님처럼 또 그렇게 울런지, 히히 헐란지 알 수 없소마는 잘 허리라 생각은 말란 말이여.

그저 인자 한번 올라가면 차츰차츰 인자 설법이 설통(說通)이 나와. 그렇게 알고 잘 들어주시기를 바랍니다.
잠깐 허고 내려오면 또 내가 올라가 또 설법을 헐테니 또 잘 들으십시오.

‘올라와. 어서 와. 헐 수 없어.’

 

 



< 송담스님 법문 >

부처님 49년 설(說)을 아함십이방등팔(阿含十二方等八) 아함경을 12년 동안 설하시고 방등경 8년,
그리고 이십일재담반야(二十一載談般若) 21년 동안을 반야경을 설하시고,
종담법화우팔년(終談法華又八年) 마지막에 법화경을 8년 동안을 설허셔서 그걸 합하면은 49년이 됩니다.

그런데 그 49년 동안 설하신 것이 팔만대장경인데 그 49년 동안에 왜 아함경 12년부터서 말을 하고, 맨 처음에 그렇게 많은 법문을 설하신 화엄경(華嚴經)은 그 49년 동안에 빼놓고 얘기를 허게 됩니다.

그것은 아함경 설하시기 전에 21일 동안에 걸쳐서 입을 열지 아니하시고 설하신 법문이기 때문에 49년 속에 계산을 넣지 않고 얘기를 허게 됩니다.

그러면은 이 화엄경은 그 화엄세계의 교주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이 교주(敎主)로 계시는데 그 비로자나불은 입을 열지 않고, 한마디도 비로자나불의 법문이 나타나 있지 않습니다.
다른 많은 보살들이 각기 자기가 느끼고 깨달고 보는 바를 그렇게 각기 많은 보살들이 번갈라가면서 설해 놓은 것이 모아 놓은 것이 그게 화엄경이예요.

결국은 그 보살들이 자기 마음대로 자기네들 말을 말한 것이 아니라, 그 한마디 한마디가 전부 비로자나불의 뒷받침에 의해서 설해진 것입니다.
그러니까 비로자나불의 법문을 많은 보살들의 입을 통해서 설해졌다고 이렇게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은 그 많은 화엄경을 하나의 큰 교향악(交響樂)으로 비유해서 본다면은 그 많은 위대한 대교향악의 총지휘자는 바로 비로자나불이고,
그 대관혁악의 악단은 그 화엄경에 나타난 많은 불보살들이 전부 그 교향악단의 악사라고 말할 수가 있고,

아울러서 그 화엄경이 우리가 보는 그 책으로 된 그것만이 화엄경이 아니라,
일사천하미진수품(一四天下微塵數品), 다시 말해서 삼라만상(森羅萬象) 전부가 그 위대한 화엄경을 이루고 있다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따라서 유정(有情)·무정(無情)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 낱낱이 우리도 그 대관현악(大管絃樂)의 한 단원이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나서 일생을 살다가 죽어가는 것, 그 가운데에 자기가 일거수일투족(一擧手一投足)—눈 한번 깜짝이고 손 한 번 움직이고 발 한 번 움직이고 웃고 울고 헌 그것들이 그 대관현악의 악단으로써 연주하는 음악입니다.
그래서 그 많은 그 악단을 지휘하는 비로자나불 바로 그분이 청정법신(淸淨法身)이십니다.

그러면은 이렇게 말허면은 그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이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어떠헌 상호(相好)를 가지고 또 계신 걸로 착각하기가 쉽습니다마는,
사실은 그 비로자나불은 지금 산승이 말허는 말을 듣고 계신 여러분이 낱낱 여러분 가운데 바로 그 비로자나불이 계신 겁니다.

들을 줄 알고, 볼 줄 알고, 배고픈 줄 알고, 욕하면 성낼 줄 아는 그 속에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이 계신 것을 그것을 믿는 것이 신심(信心)입니다.

부처님 앞에 돈과 쌀과 모다 그 떡과 그런 것을 많이 차려놓고 절만 많이 허고 그런다고 그것이 신심이 아니라,
‘바로 우리 성낼 줄 알고 욕할 줄 알고, 탐심낼 줄 알고 진심낼 줄 아는 그 우리 중생심 가운데에 비로자나불이 있다. 그것을 우리가 선지식의 적절한 지도 아래 그것을 개발을 해서 스스로 깨달을 수 있다고 믿는 것.
나도 반드시 바른 지도를 받아서 노력을 헌다면 나도 성불(成佛)헐 수 있다고 믿는 것’ 그것이 신심입니다.

그렇게 볼 때에 불법(佛法)이라고 하는 것은 외도(外道)들이 말헌 바와 같이 우상 숭배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왜 이 세상에 태어났으며,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갈 것인가?
기어이 났으니 어떻게 살다가 가야 바르게 살았다고 할 수가 있겠는가?
머지않아서 젊은 사람이나, 나이가 많이 든 사람이나 한번은 또 가게 됩니다. 갈 때에 어떻게 가야 허느냐? 이러헌 중대 문제가 우리 앞에 가로놓여 있습니다.

그러헌 중대한 문제를 우리는 탐심(貪心)과 진심(瞋心)과 치심(癡心) 이러헌 삼독심(三毒心)으로 말미암아 그런 데에 눈을 팔다 결국은 그런 중대사를 망각하고 하루하루를 지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는 가운데에 하룻날 숨 한 번 내쉬었던 숨을 다시 들어마시지 못하면은 우리는 이 받기 어려운 몸을 버리고 또 어느 곳을 헤매게 되겠습니까?

다행히 우리는 만나기 어려운 사람 몸뚱이를 받았고, 사람 몸을 받어 가지고서도 그 많은 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들어오기 어려운 불법 문중(佛法門中)에 들어왔습니다.

불법 문중에 들어와서도 그 많은 절이 있고 많은 스님네들이 계심에도 불구하고,
이 정법(正法)을 전해 이어받으신 전강 조실스님 문하에 들어와서 '참 불법'을 듣고 수행할 수 있는 이러한 길에 들어섰다고 하는 것은 저나 여러분이 한결같이 다행한 일이요, 희유한 일이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이러한 만나기 어려운 불법을 만나서, 들어오기 어려운 정법 문중에 들어왔음에도 불구하고,
그저 하루하루를 형식에 얽매여서 ‘결제니까 절에 가야겠다, 7일 날이니까 절에 가야겠다, 또는 관음재니까 절에 가야겄다’ 이것이 하나의 의식화 되아서 그 의식화된 가운데에 절에 왔다갔다 하는 것으로써 불법을 믿는 것으로 생각하고,

또 큰스님 법문을 들을 때는 ‘아! 내가 쫌 열심히 화두(話頭)를 듣고 공부를 해야겠다’ 이런 생각이 불꽃같이 일어나지만,
그것이 벌써 집에 돌아가서 아들 손자 며느리 만나서 살림 걱정하는 소리 듣고 어쩌고 허다 보면은 금방 절에서 그 불꽃같이 일어난 신심은 간 곳 없고 다시 사회의 그 오욕락(五欲樂) 속에 휩쓸려 들어가고 말아버립니다.

비단 보살님들 뿐만 아니라 출가한 스님네도 무상(無常)을 철저히 느껴서 정든 고향과 부모형제 권속을 다 여의고 머리를 깎고 출가해서 철저히 수행할 것을 명심하고 각오한지 한두 번이 아니지마는,

또 하룻밤 자고 이틀밤 자고 사흘 나흘 엿새 가다 보면은 자기도 모르는 가운데에 그 굳었던 결심이 스르르 녹아지고 그래가지고 또 다시 또 자기를 참회하고 반성하고 해서 또 결심을 해가지고 또 정진을 애쓰고,

이렇게 애는 쓰고 있지마는 10년 20년 30년 이렇게 절에서 정진을 한답시고 함에도 불구하고 정말로 확철대오를 하지 못한 것은 그 결심이 한 생각이 만년을 가지 못하고, 또 풀어졌다 또 세웠다 이러기 때문에,

물에 잠긴 돌이, 물이 채이면은 물속에 쟁기고, 물이 빠지면 또 돌 꼭대기가 물위로 솟았다, 또 물이 채이면 또 가라앉았다, 밤낮 이래가지고 끝장을 조매 보지 못하고 한 세상을 또 마치게 되는 경우가 왕왕 있습니다.

제가 오늘 이 자리에 올라온 것은 마치 비로자나불이 한 대관현악에 지휘자가 되셔서 그 지휘자의 지휘봉에 의해서 많은 악사들이 느리게 또는 빨리, 뭣헌데는 격하게 또 뭣헌데는 조용허게 이렇게 해서 그 수천 무량수의 그 악사들이 한 분의 지휘봉에 의해서 관혁악을 연주하게 됩니다.

그와 같이 이 중생 교화하는데 있어서도 그 부처님이 하나의 위대한 그 각본을 저술한 작가이시요 또 지휘자이시고 또 감독이시고 연출이십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조실스님이 이 세상에 나오셔서 중생 교화하신 것도 근본을 거슬러 올라가면,
청정법신 비로자불의 지휘·감독·연출에 의해서 일생을 스스로 닦아서 견성오도(見性悟道)하시고 나아가서 80 고령에 이르시도록 설법을 해서 많은 제자를 교화하신 것도 하나의 연극, 그 대관현악의 한 부분이라고 말헐 수가 있습니다.

제가 여기 올라온 것은 멀리는 비로자나불의, 가깝게는 조실스님의 지휘에 의해서 하나의 배우로서 또는 악사로서, 다시 비근(卑近)허게 말허면 꼭두각시로서 여기에 올라왔다고 말해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출가해서 근 30년이 되었습니다마는 본래 근기(根機)가 우둔하고 발심이 철저허지를 못해서 노상 생각은 가지고 있으면서도 투철한 공부를 성취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역시 출가할 때의 그 마음가짐으로 전강 조실스님의 지도하에 정진허고 있는 하나의 수행인에 지내지 못합니다.

그래서 여러분에게 해 드릴 수 있는 말씀이 있다고 한다면은
‘조실스님이 열반하시기 전에 하루 한 시간, 1분1초라도 시간을 애끼고 챙겨서 가행정진, 용맹정진을 하셔서 조실스님의 철저한 지도 아래 다문 조끔이라도 더 철저히 공부를 해 주십시오. 그리고 저와 같이 공부를 하십시다.’
이러한 권고의 말씀을 드릴 이외에는 아무 말씀도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처음~21분2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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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조실스님께서 이 용화사에 주석(駐錫)하신지가 벌써 10여년 입니다마는,
그 동안에 많은 광장설(廣長舌)로써 그 경전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그러헌 최상법(最上法)을 여러분의 근기에 맞도록 그 고구정녕(苦口丁寧)하시고 참 훌륭하신 법문을 많이 해 주셨습니다.

그 그늘 잔영(殘影)이 소소영령하게 녹음기에 녹음이 다 되어있고 그것이 낱낱이 조실스님의 시자의 노고에 의해서 원고가 결집이 되어있습니다.
앞으로 그 원고를 정리허고 교정해서 그것이 하나의 설법집으로 간행할 날이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마는,
그러헌 녹음기나 또는 설법집에 의해서 여러분이 공부허는 데에 좋은 도움을 받을 수도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마는,

그것 보다는 조실스님 몸이 살아계실 그 동안에 여러분께서 공부를 허셔서, 여러분이 공부허신 만큼 밖에는 조실스님이 어떻게 더 이상 지도를 못 허십니다.

자기가 열 근을 들을 만한 힘이 있는 사람에게 열 근의 무게를 주어지고 짐을 줄 수가 있습니다. 열 근 밖에 들 수 없는 사람에게 스무 근 내지 백 근의 그런 무거운 짐을 그 사람에게 맡길 수가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얼마만큼 열심히 공부를 허느냐에 따라서 조실스님의 법문도 여러분의 근기에 설해지게 되고 조실 스님의 지도 방법도 여러분의 근기에 따라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조실스님이 가지고 계신 그 능력을 전부 그리고 철저하게 지도를 받을려면 여러분이 그만큼 철저히 정진을 허심으로써 그것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조실스님을 모시고 법문을 들어보면은 청법(聽法) 대중이 모다 구참납자(久參衲子)요, 철저히 위법망구(爲法忘軀)적으로 정진허는 그런 납자들이 터억 앞에 자리를 잡고 앉어 계시고,
또 신도님들도 철저한 신심있는 분들이 법당에 꽉 들어차서 위법망구적으로 발심헌 마음으로 들어주실 때에 조실스님은 30년을 모시고 있어도 듣지 못한 그런 법문을 대사자후(大獅子吼)를 토하신 것을 저는 종종 보았습니다.

조실스님께서 아무리 정정허시고 건강하시다 하더라도 사람의 몸은 하나의 기계라고 말할 수 있으므로 기계라고 하는 것은 그 한도가 있는 법입니다.

그리고 설사 조실스님의 법력과 도력에 의해서 백년 내지 이백년을 사실 수 있는 그런 신통력과 법력이 계시다 하드라도,
부처님께서 그런 삼계(三界)의 대도사(大導師)요 사생자부(四生慈父)이신 육신통(六神通)을 다 갖추신 무량삼매를 갖추신 그런 부처님도 79세에 열반(涅槃)을 보이셨습니다.

조실스님께서도 언제 어떻게 그 열반을 보이실는지 그것은 우리는 모릅니다.
그날이 반드시 있을 것을 우리는 예상할 수가 있습니다. 그날이 돌아오기 전에 여기에 모이신 사부대중께서는 정말 이를 악물고 대분발을 해서 철저히 정진을 해주시기를 간곡히 말씀드리고 입을 다물겠습니다.

 

 



< 전강선사 법문 >

주중야문적(舟中夜聞笛)하고  하처숙어옹(何處宿漁翁)고
나무~아미타불~
일출무인견(日出無人見)하니  조제화자홍(鳥啼花自紅)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저 참 망망창해(茫茫滄海) 저 섬 중에서 도를 닦는데, ‘이뭣고?’ 참선을 허고 있는데 어디서 젓대소리가 나. 잘 부는 젓대소리가 처억 난다 그말이여.
그 하처숙어옹(何處宿漁翁)고? 그 어느 곳에서 어옹(漁翁)이 있어서, 고기 잡는 그 어옹이 있어서 이런 젓대를 부는가?
그 젓대가 활연대오(豁然大悟)하는 젓대여. 젓대소리를 듣고 툭 깨 버렸어.

아까 그 송담 스님이 여기 원장(院長) 스님이 또 올라와서 설법할 때,
비로자나가 설법을 했는데 입 하나 뗀 법이 없이 설법했는데 보살들이 백만 천만 억만 보살들이 설했자 설할 수가 없어. 만년을 설했자 역사를 넣을 수 없어. 그러니 49년 설법에 보탤 수가 없다 그말이여.

그 본인 개개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이 비로자나 전신체(全身體)다 그말이여.
그러니 우리의 본래면목, 그 언제든지 가르쳐 줄 스승은 있지마는, 옳은 스승을 만나야만 깨닫지만은,
오(悟)는 자기가 깨닫지 부처가 깨달아 주지 못해. 그 비로자나 전신체, 생사 없는 몸뚱이.

그러고 화엄경은 그렇게 81권이니, 81권 뿐이여? 81권이 화엄경이여?
일사천하미진수품이 화엄경인데, 미진수품(微塵數品) 화엄경이 그것이 내 본래면목, 비로자나 전신체.

그 비로자나 전신체가 내 마음인데 내 본래면목인데,
그 본래면목이 별별 놈의 소리를 다허고, 별별 놈의 못할 소리가 없고, 뭐 말 한마디를 가지고 천만 가지를 맨들수 있고, 이것이 비로자나불이여.

이 비로자나불이 이렇게도 별말 다하지마는 그 근본 자체, 비로자나불 근본면목 속에 들어가서 사견(邪見)도 없고 상견(相見)도 없고 유(有)도 무(無)도 비유(非有)도 비무(非無)도 없는데,
무엇으로 뭣을 나투어서 거기서 무엇을 만들어놔?
못혀. 입 뿐이지. 입으로만 뿐이지, 하덜 못혀.

필경에는 내가 나를 깨달지. 부처가 깨달라 주지 못혀. 그걸 비로자나 전신체라.
진대지(盡大地)가 비로자나 전신체여, 그러기 때문에. 일사천하미진수품(一四天下微塵數品)이여.
아까 그 설법이여.

설법을 허되 첫 설법에 올라가서 우세나 하고 보월 스님 울고 내려오데끼 그럴 줄 알았더니 그 대의(大意)가 참 분명허단 말이여. 꼭 그렇지.

그런데 나는 스물세 살 먹어서 세상에 내가 그때 주전도 없지.
허지마는 한번 올라갈 용기가 있어서 첫 설법을 청하길래 좋아서, 아! 대중이 한 7-80명 대중이 직지사 선원에서 모여서 법문 해 달라고 청한다 그말이여.

그때도 그래도 뭔 좀 소견이 났다고 헐 때인데, 그래도 내가 체면상 못 올라갈 텐데,
그때 다 통쾌한 선지식한테 다 내가 말을 들었기 때문에 한 번 올라간 것인데, 올라가서 첫 설법을 허는데, 내 첫 설법 좀 들어 보시오.

아주 올라가서 얼마나 허고 싶던지 ‘내가 올라가면 한바탕 하리라’고.
올라가 놓으니깐, 법상에 올라가 놓으니깐 떨려. 떨릴 것이 하나도 없는디 속에는 아무 일 없는디.

아따! 그래서 그까짓 것 떨 것도 없다. 모도 그만 모도 개미같이 봐라.
너무 황송한 미안한 말이지만, 개미떼 같이 그냥 속으로 그냥 생각을 해 버렸다 말이여.

내가 그러고는 설법을 허되, ‘주장자를 들었다고 날 봐.’
차사(此事)는 개구즉착(開口卽錯)이여. 입만 열면 그르쳐. 착(錯) 불착(不錯)은 차치(且置)하고 여하시차사(如何是此事)냐?
일러. 일러! 왜 못 일러? 한번 일러 봐?
어디 우리 또 대중도 남녀가 있나? 남녀상(男女相)이 없는게 법인데.
내 첫 설법에 헌거여.

그때도 물었어. 대중에 물었어.
차사(此事)는 개구즉착(開口卽錯)이여. 입만 열면 그르쳐. 착(錯) 불착(不錯)은 차치하고 어떤 게 차사(此事)냐?
아무도 대답이 없어.

〇만공스님의 인가, 전법게.
그래서 만공 큰스님한테—만공 큰스님 십답, 한암 스님과 열 가지 문답(問答)이 있는데—‘열 가지 문답 가운데에 다 물어 주십시오’ 문답을 다 물어서 대답 내가 다했다.

(대답)허고 마지막 나올 때 『저는 스님 하직합니다.』
스님 밑에 있어 뭣 할 것이여? 나도 스님 법 내가 다 탁마해서 내가 다 가졌는데, 나도 인자 가서 중생 교화해야 할 것 아니여.

『갑니다』허고 절을 허니까,
『어이 가소. 저그 저 별이 있는데 저 하늘에 별이 있는데, 저 별—부처님 깨달은 별은 저 별 새벽별인데, 그 부처님은 새벽별을 보고 깼지마는 자네는 깨달은 별이 무슨 별인가? 어떤 별에 깨달았는가?』

(내가) 땅을 허부적 허부적...
『선재(善哉) 선재(善哉)로구나.』
선재란 건, ‘착할 선(善)자’는 ‘착하다’는 말이 아니여. ‘옳다. 옳다’ 그말이여.

불조미증전(佛祖未曾傳)인디  아역무소득(我亦無所得)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차일추색모(此日秋色暮)헌디  원소재후봉(猿嘯在後峰)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아! 내가 그렇게 『자네 별은 어떤 별인가?』 (만공스님 묻는 말에 내가) 왜 땅을 파? 왜?
『선재 선재다. 착하고 착하다.』

불조(佛祖)도 미증전(未曾傳)인디, 불조도 일찍이 전(傳)허들 못했는디,
아역무소득(我亦無所得)일세. 나도 또한 얻은 바가 없네.

차일(此日)에 추색모(秋色暮)인데, 오늘날에 추색(秋色)이 저문데, 이 가을날이여. 가을날이 저물었는데,
원소(猿嘯)는 재후봉(在後峰)일세. 원숭이 휘파람은 뒷봉에서 우네.

그러헌 인가(印可)가 어디 있냐 이말이여.
만공집(滿空集)에도 있어. 만공 큰스님 집(集)에 있는 것도 내가 갖다 내가 고승집에 이리 내놨어.
왜 어찌 거짓말을 허냐 그말이여. 어떻게 거짓말을 해. 거다가 어떻게 뻘 소리를 붙여 놓냐 그말이여.

인가(印可) 없이 '인가 있다'고, 인가 없이 나와서 조실(祖室) 노릇허고 있어?
차라리 지옥 귀신이 되어 가지고 귀신 노릇하면서 ‘아이고 나 죽겠다’ 소리를 허지.
인가 없이 주뎅이를 벌리고 조실 노릇혀? 못허는 법이다 그말이여.


내가 그러고 나왔으니, 직지사에 올라와서 설법 한번 헐 마음이 나지 않나? 불끈 난다 그말이여. 속에서는.

아, 그래 올라가서 설법을 헌 것이 ‘입만 열면 그르치니, 그르치고 그르치지 않는 걸’ 물은 게 아니여?
「차사(此事)는 착(錯) 불착(不錯)이니 이 일은 입만 열면 그르치니, 그르치고 그르치지 않는 건 그만두고 어떤게 차사(此事)냐?」 대답이 없어.

‘촛불이 밝다’ ‘병율이야, 촛불이 밝다.’ 그래.
이놈아! 촛불 밝은 걸 내가 물었어? 차사(此事)를 물었지.

별 것 다했자 소용 없어. 그래 이른 거 아니여.
이른 것은 바로 일러야 이른 것이지. 그깟은 놈의 소리를 불청허고 소용도 없고.

대번 했기 때문에 등단으로 내가 했기 때문에 만공 큰스님한테 내가 법문을,
『소승이 영신(永信)이가 법상에 올라가 설법을 했는데 큰스님한테 불가불 점검을 받어야 허겠습니다.
설법을 법상에 올라가서 주장자를 들어 대중을 보이고, 차사(此事)는 개구즉착(開口卽錯)이니 착(錯) 불착(不錯)은 차치하고 어떤 게 차사(此事)냐? 물었는데, 답이 없어 큰스님께 보내니 답해 줍소사』

그랬더니 만공 큰스님이 답을 해서 보내되,
요만한 종이에다가 그림을 하나 그렸는데, 그림이 요렇게 요렇게 요렇게 그렸어. 요렇게 그려놨어.
아니 그렇게 그린 게 아니라 그림이 요렇게 요렇게 꼬부라게, 요렇게 꼬부라게 그려놨어. 이 위에서 꼬부래. 아니 이놈이 꼬부라졌어, 밑으로.

거 무슨 도리일까? 아시겠어? 그 꼬부랑을 그려놨다 그말이여.
뭐여? 그 무슨 그림이여? 만공 큰스님 답이여, 이게.

알겠어? 견성(見性) 못허면은 할 수가 없어. 잘 보면, 문제가 다른 문제 아무것도 없고 견성 문제여.

우리 모도 모아서 견성 「이뭣고?」 「이뭣고?」 잘해서 같이 생사해탈하자.
너 허고 나는 안 안허고는 어떻게 될 것이냐? 지옥 귀신이 되고 말 것이냐?

우리가 지금 지옥 귀신 면한 줄 아시오? 아이고, 생각해 보면 큰일나.
생각을 못허고 이러고 있으니 그렇지, 역사 없는 우리가 과거에 지옥고를 얼마를 받았어.

포구발심(怖懼發心)이여. 무서운 발심. 무서워서 죄 안 짓고, 무서워서 도 닦는 것이여.
한번 또 들어가면 언제 나와? 지금 우리가 나왔단 말이여.
요까짓 것 나와서 잠깐 나왔지마는 또 죄를 퍼지어 간다 그말이여, 틀림없이.
지옥은 안 가고는 못 견뎌.

참선(參禪)이 아니면 못 견뎌.
과연 우리 이렇게 모아 참선 법문 배우라고, 참선 설법 들으라고, 우리 설판재주(說辦齋主)가 터억 나와 가지고 이 설판을 해서 이리 지어 놓으니깐 이렇게 많이 나왔네.(처음~42분38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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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法) ; (산스크리트) dharma, (팔리) dhamma의 한역(漢譯). ①진리. 진실의 이법(理法). ②선(善). 올바른 것. 공덕. ③부처님의 가르침. ④이법(理法)으로서의 연기(緣起)를 가리킴. ⑤본성.
*교화(敎化) ; 가르쳐 이끌다. 사람을 일깨워 고통받는 자를 편안히 하고, 의심하는 자를 믿게 하고, 잘못을 저지르는 사람을 바른 길로 돌아가게 함. 설교. 교도감화(敎導感化)의 준말.
*간탐하다(慳貪 아낄 간,탐할 탐) ; 몹시 인색하고 욕심이 많다.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를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것.
*상락아정(常樂我淨 항상 상,즐거울 락,나 아,청정할 정) : 대승불교에서 말하는 열반(깨달음)의 네가지 덕(德).
열반경(涅槃經)에 의하면, 열반의 경지는 생멸 변천함이 없으므로 상(常)이고, 생사의 고통을 여의어 무위(無爲) 안락하므로 낙(樂)이고, 망집(妄執)의 아(我)를 여의고 대자재(大自在)가 있는 진아(眞我)이므로 아(我)이고, 번뇌의 더러움을 여의어 담연청정(湛然清淨)하므로 정(淨)이다.
*인가(印可 도장 인,옳을•인정할 가) ; 스승이 제자의 깨달음을 인정함.
*법위(法位) ; 변하지 않는 진리의 세계. 궁극적인 진리의 세계.
*전법게(전강선사가 송담스님에게 내려 주신 전법게)
비법비비법(非法非非法)이다  법(法)도 아니요 비법(非法)도 아니니라
무법역무심(無法亦無心)이니라  법(法)도 없지마는 마음도 없느니라
낙양추색다(洛陽秋色多)하고  낙양(洛陽)에는 추색(秋色)이 많고
강송백운비(江松白雲飛)니라  강송(江松)에 백운(白雲)이 날으니라
[참고] 전강선사(No.046)—조실스님 생신일 법문(송담스님 인가,만공 한암 십대문답)(경술70.11.16)에서.
*보림(保任 보임) ; 선종(禪宗)에서 깨달은 뒤에 더욱 갈고 닦는 수행. 흔히 ‘보림’이라 읽는다. '보임'은 보호임지(保護任持)의 준말로서 ‘찾은 본성을 잘 보호하여 지킨다’는 뜻이다.
*무인절도(無人絶島) ; 사람이 살지 않는, 육지와 멀리 떨어져 있는 외딴섬.
*마조원상(馬祖圓相) ; [참고] 송담스님(No.282)-86년 1월 첫째일요법회(86.01.05)에서.
마조 스님이 원상(圓相)을 그려 놓고 ‘입야타(入也打) 불입야타(不入也打) 이 원상에 들어가도 치고 들어가지 아니해도 친다.’ 이 공안을 물은데 어떤 스님이 그 안에 들어갔어.
들어가니까 마조 스님이 주장자로 들어간 그 스님을 한대 후려쳤습니다.

치니까 그 스님이 말하기를 『스님께서는 저를 치지 못했습니다.』 이랬습니다.
그러니까 마조 스님이 휴거(休去)를 했습니다. 아무 말 없이 그냥 방장(方丈)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이 원상 안에 들어가도 치고 들어가지 아니해도 친다’한 그 공안에 그 스님이 턱 뛰어들어가는 도리는 무슨 도리며,
들어가니까 마조 스님이 주장자로 한 방을 후려치니까 그 스님이 그 방(棒)을 맞고서 하는 말이 『스님께서는 저를 치지 못했습니다.』 또 그 스님이 그렇게 말한 데에 마조 스님이 아무 말없이 저리 가버렸으니...
이러한 공안에 확연(確然)히 의심이 없어야 하는 것입니다.

비록 이러한 공안이 문헌상에 오른 것만 해도 천칠백 공안이라 하는데,
이것이 다 부처님과 조사가 씹다가 버린, 먹다가 버린 찌꺼기에 지나지 못한 것이기는 하나, 이러한 공안이 바로 학자(學者)의 소견(所見)을 가려보는 데에는 좋은 시금석(試金石)이 되는 것입니다.
*공안(公案) : 화두(話頭)。①정부 관청에서 확정한 법률안으로 백성이 준수해야 할 것。②선종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이것을 화두라고도 하는데 문헌에 오른 것만도 천 칠백이나 되며 황화취죽 앵음연어(黃花翠竹鶯吟燕語) — 누른 꽃, 푸른 대, 꾀꼬리 노래와 제비의 소리 등 — 자연현상도 낱낱이 공안 아님이 없다.
화두에 참구(叅句)와 참의(叅意)가 있다。이론적으로 따져 들어가는 것이 참의요 사구(死句) 참선이며, 말길 뜻길이 끊어져서 다만 그 언구만을 의심하는 것이 참구요 활구(活句) 참선이다.
*탁마(琢磨 쫄 탁,갈 마) ; ①학문이나 덕행 따위를 닦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②옥이나 돌 따위를 쪼고 갊. ③옥을 갈고 돌을 닦듯이 한결같이 정성껏 애써 노력하는 것. ④선지식에게 자기의 공부하다가 깨달은 바를 점검 받는 것.
*구참선객(久參禪客) ; 오랫동안 참선한 수행승.
*보월스님, 만공스님 ;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설통(說通) ; 대중 앞에서 막힘이 없이 유창하고 당당하게 설법을 잘함.
*화엄경(華嚴經) ; 본이름은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이며, 이 경은 부처님께서 성도(成道)한 깨달음의 내용을 그대로 표명한 경전이다.
3가지 번역이 있는데, 60권은 동진(東晋)의 불타발타라(佛駄跋陀羅) 번역이고, 80권은 당(唐)의 실차난타(實叉難陀) 번역, 40권은 당(唐)의 반야(般若) 번역임.
이 가운데 40권은 60권과 80권의 마지막에 있는 입법계품(入法界品)에 해당하며, 십지품(十地品)과 입법계품(入法界品)만 산스크리트 원전이 남아 있음.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 ; 비로자나(毘盧遮那)는 vairocana의 음사(音寫). 부처님의 몸에서 나오는 빛과 지혜의 빛이 세상을 두루 비추어 가득하다(光明遍照,遍一切處,日)는 뜻.
①진리 그 자체인 법신(法身)을 형상화한 것. 비로자나 법신불(毘盧遮那 法身佛)
②대일여래(大日如來)와 같음.
*교주(敎主) ; 어떤 종교나 종파를 처음 세운 사람.
*교향악(交響樂) ; 교향곡, 교향시, 교향 모음곡 등 관현악으로 연주하는 음악을 통틀어 이르는 말.
*일사천하미진수품(一四天下微塵數品) ; 법장현수(法藏賢首) 스님의 『화엄경탐현기(華嚴經探玄記)』에 보면,
용수보살(龍樹菩薩)이 용궁(龍宮)에 가서 대부사의경(大不思議經=화엄경)을 보았는데, 상본·중본·하본 3가지 본(本)이 있었다. 그 중에 상본(上本)이 십삼천대천세계미진수(十三千大千世界微塵數)게송 일사천하미진수품(一四天下微塵數品)이었다 한다.
중본(中本)은 49만 8800게송 1200품(品)이고, 하본(下本)은 10만 게송 38품이었다 한다.
용수보살이 상본과 중본은 사바세계 사람들 마음의 힘으로서 능히 가질 수 없으므로 전하지 않고, 하본(下本)을 외어 세상에 전하였고 또 그것을 간략히 한 약본(略本)이 80권 본, 60권 본이 되었다 한다.
일사천하미진수품(一四天下微塵數品)은 ‘미진수(微塵數 셀 수 없는 무한수)’의 품(品)으로 우주 사이에 벌여 있는 온갖 사물과 모든 현상—삼라만상(森羅萬象) 전부가 그 화엄경을 이루고 있으며, 곧 비로자나(毘盧遮那) 전신체(全身體)로 우리 개개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을 말한다.
*삼라만상(森羅萬象) ; 우주 사이에 벌여 있는 온갖 사물과 현상.
*유정(有情) ; 생명을 가지고 존재하는 것. 살아있는 것. 생(生)이 있는 것. 감정이나 의식을 가진 것.
번뇌에 얽매여 미혹한 모든 존재. 옛날에는 중생(衆生)이라 번역하고, 현장(玄裝)이후의 새로운 해석에서는 유정(有情)이라 한역함. 정(情)은 마음이라는 뜻. 일체 살아있는 것의 총칭.
*무정(無情) ; 감정이 없는 초목·산하·대지 등을 말함.
*관현악(管絃樂) ; 여러 가지의 관악기, 현악기, 타악기를 조화시킨 큰 규모의 합주.
*일거수일투족(一擧手一投足) ; ‘손 한 번 들고 발 한 번 옮긴다’는 뜻으로, 크고 작은 동작 하나하나를 이르는 말.
*청정법신(淸淨法身) ; 더러움이 없는 청정한 법신, 곧 비로자나불을 말함.
*상호(相好) ; 부처님의 몸에 갖추어진 용모와 형상.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오욕락(五欲,五慾,五欲樂) ; ①중생의 참된 마음을 더럽히는-색,소리,향기,맛,감촉(色聲香味觸)에 대한-감관적 욕망. 또는 그것을 향락(享樂)하는 것. 총괄하여 세속적인 인간의 욕망. ②불도를 닦는 데 장애가 되는 다섯 가지 욕심. 재물(財物), 색사(色事), 음식(飮食), 명예(名譽), 수면(睡眠)을 이른다.
*견성오도(見性悟道) : ‘성품(性)을 보아(見) 진리(道)를 깨친다(悟)’는 뜻이다。자기의 심성을 사무쳐 알고, 모든 법의 실상인 당체(當體)와 일치하는 정각(正覺)을 이루어 부처가 되는 것을 견성성불, 견성오도라 한다.
*비근(卑近)하다 ; 주위에서 흔히 보고 들을 수 있을 만큼 가깝고 알기 쉽다.
*근기(根機 뿌리 근,베틀 기) ;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는 중생의 소질이나 근성.
*가행정진(加行精進) ; 별도의 노력을 기울여서 하는 정진. 어떤 일정한 기간에 좌선(坐禪)의 시간을 늘리고, 수면도 매우 단축하며 정진하는 것.
*용맹정진(勇猛精進) ; 견고한 의지로 한순간도 불방일(不放逸)하는, 열심으로 노력하는 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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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駐錫 머무를 주,석장 석) ; ①스님들이 짚고 다니는 지팡이를 석장(錫杖)이라 하는데, ‘석장(錫杖)을 머무르게 한다(駐)’는 뜻으로, 스님이 한 곳에 머무름을 일컫는 말. ②스님이 한때 어떤 지역에 포교(布敎)를 하기 위하여 머무는 일.
*광장설(廣長舌) ; 장광설(長廣舌). ①길고 줄기차게 잘하는 말솜씨. ②부처님의 설법.
*고구정녕(苦口叮嚀 괴로울 고,말할 구,신신당부할 정•정성스러울 정,간곡할 녕) : 입이 닳도록(입이 아프도록) 정성스럽고(叮) 간곡하게(嚀) 말씀하심(口).
*청법(聽法) ; 불보살(佛菩薩)이나 스승이 설법하는 것을 경건하게 경청함.
*구참납자(久參衲子) ; 오랫동안 참선한 수행승.
*위법망구(爲法忘軀) ; 법(진리)를 구하기 위해 몸(軀) 돌보는 것을 잊는다(忘).
*사자후(獅子吼) ; ①부처의 위엄 있는 설법을, 사자의 울부짖음에 모든 짐승이 두려워하여 굴복하는 것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 ②사자의 울음소리처럼 우렁찬 연설.
*삼계(三界)의 대도사(大導師) : 삼계(三界)의 중생을 열반(涅槃)로 인도(引導)하는 위대한 사람. 부처님을 말함.
*사생자부(四生慈父) ; 육도윤회(六途輪廻)하는 세계에서 4가지 방식(四生)으로—태생(胎生), 난생(卵生), 습생(濕生), 화생(化生)—태어나는 모든 중생을 열반으로 이끄는 대자비(大慈悲)의 아버지. 부처님을 말함.
*열반(涅槃) ; 산스크리트어 니르바나(nirvāṇa) 팔리어 nibbāna의 음사. 멸(滅)·멸도(滅度)·적멸(寂滅)·적정(寂靜)·적(寂)

·안온(安穩)이라 번역. 불어서 끈 상태라는 뜻.
① 불어서 불을 끄듯, 탐욕〔貪〕과 노여움〔瞋〕과 어리석음〔癡〕이 소멸된 심리 상태. 모든 번뇌의 불꽃이 꺼진 심리 상태. 사제(四諦)에서 집(集), 곧 괴로움의 원인인 갈애(渴愛)가 소멸된 상태. 모든 미혹의 속박에서 벗어난 깨달음의 경지. 번뇌를 소멸하여 깨달음의 지혜를 완성한 경지.
② 석가모니의 죽음.  ③스님의 죽음을 수행을 통해 해탈(解脫)에 이르게 됨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
*(게송) ‘주중야문적~’ ; [청허당집(清虛堂集)] (서산휴정 著,朴敬勛 역, 동국대학교 역경원) p40 ‘동호야박(東湖夜泊)’ 게송 참고.
*활연대오(豁然大悟) ; 환하게 막힘이 없이 탁 트인 큰 깨달음.
*본래면목(本來面目 밑 본,올 래,낯 면,눈 목) ; ①자기의 본래(本來) 모습(面目). ②자신이 본디부터 지니고 있는,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의 성품.
*비로자나(毘盧遮那) 전신체(全身體) ; 전신(全身)은 '본질 그대로' '여래진신(如來眞身)'의 뜻으로 ‘비로자나 전신체’는 우리 개개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을 말한다.
*진대지(盡大地) ; 온(盡) 산하대지. 온 세계.
*차치(且置) ; 내버려두고 문제삼지 않음.
*(게송) ‘불조미증전~’ ; 만공선사께서 전강선사에게 내려 주신 전법게(傳法偈). 『만공법어(滿空法語)』 (만공문도회 | 수덕사 능인선원) p111 참고.
*조실(祖室) ; 선원의 가장 높은 자리로 수행인을 교화하고 참선을 지도하는 스님. 용화선원에서는 고(故) 전강대종사(田岡大宗師)를 조실스님으로 모시고 있다.
*포구발심(怖懼發心 두려워할 포,두려워할 구,일어날 발,마음 심) : ‘끝없이 되풀이 되는 육도윤회(六途輪廻)에서 받을 생사(生死)가 정말 무섭구나.’ 그 생사의 고통을 매우 두려워(怖懼)하여, 두려운 마음으로 생사를 벗어나는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菩提心)을 일으킴(發).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설판재주(說辦齋主) ; 법회나 불사(佛事)에 필요한 모든 물품과 비용을 준비하고 마련하는 스님 또는 신도를 말한다. 설(說)은 '법회, 불사'  판(辦)은 '힘들이다, 주관하다'의 뜻.

Posted by 닥공닥정
정진(精進) 수행2014. 7. 9. 22:36

§(455) 불방일(不放逸) / (게송)수행수시용심진~ / ‘용심(用心) 하나 참되게 한다’한 것은 불방일(不放逸) / 모든 것은 변화하느니라. 불방일(不放逸)하여 정진하라.

불방일이야말로 도업(道業)을 성취해 나가는데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만공 스님께서는 ‘용맹정진(勇猛精進)·가행정진(加行精進)을 할라면은 잠을 한 시간씩 더 자라. 그래야 정신이 쇄락(灑落)하고 성성(惺惺)해서 정진을 참으로 여법하게 할 수가 있다.’
‘부처님께서 마지막 열반하실 직전에 무슨 법문을 하셨냐?’하면은 『비구들아, 너희들에게 이르리라. 모든 것은 변화하느니라. 불방일(不放逸)하여 정진하라.』 이 말씀을 최후에 제자들에게 남기시고 열반(涅槃)에 드셨습니다.


‘도(道)가 왜 친(親)하냐’하면은 도가 먼 데에 있는 것이 아니고, 바로 끊임없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그 '한 생각' 속에 도가 들었어. 도(道)가 가까운 데에 있어.
언제나 즉시에 있어. 지금에 있고,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 도(道)거든. ‘이뭣고~?’ 그 ‘용심(用心) 하나 참되게 한다’한 것은 불방일(不放逸)이거든.


**송담스님(No.455) - 91년 9월 첫째일요법회(91.09.01)에서. (용455)

 

(1) 약 17분.

 

(2) 약 7분.

 


(1)------------------

부처님께서 아함경(阿含經)에서 말씀하시기를 『비구들이여, 밤하늘에서 온갖 별들은 빛난다. 그러나 그것들은 달빛의 16분에 1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러기에 달빛은 밤하늘에서 가장 위대하다고 여겨진다.
그것과 마찬가지로 세상에는 여러 길이 있건만, 그것들은 모두 불방일(不放逸)로 근본을 삼는다. 그러기에 온갖 착한 법에 있어 불방일이 최대가 되고 최상이 되느니라.』

불방일(不放逸). 불방일의 반대말은 방일(放逸)·해태(懈怠)라고 말할 수가 있고, 불방일을 다른 말로 표현하며 정진(精進)이란 말로 바꿀 수도 있으나 정진과 불방일과는 조금 그 느낌이 다릅니다.

이 자리에는 신미년 하안거를 성취하고 제방에서 모다 도반들이, 사부대중들이 법당 가득히 운집(雲集)을 하셨습니다. 그 도반(道伴)들에게 내가 전하고 싶은 말은 바로 이 불방일(不放逸)입니다.

불방일(不放逸)의 참뜻, 바른 정진의 참뜻, 이 불방일의 참뜻만 잘 알고 실천해 나간다면 결제·해제가 상관이 없습니다.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항상 성성(惺惺)하게 한 생각을 돌이켜 화두(話頭)를 참구(參究)해 나갈 줄만 안다면 앉었거나, 누웠거나, 섰거나, 일을 하거나, 밥을 먹거나, 화장실을 가거나, 운력을 하거나 전혀 상관이 없어.

물론 선방 규칙에 있어서 입방선 시간을 정해 놓고, 입선(入禪) 시간에는 죽비(竹篦)를 치고 좌선을 하고, 물론 그것 여법(如法)하게 지켜 나가야 하지만,

참으로 정진을 바르게 할 줄 알고, 참으로 발심(發心)한 분상(分上)에는 앉어서는 앉어서 하고, 섰을 때는 서서 하고, 걸어갈 때는 걸어서 하고, 결제 때는 결제대로 하고, 해제 때는 해제대로 하고,
일체처가 도처(到處)가 두두물물(頭頭物物)이 다 정진해 나가는 바로 입선 시간이다 그거거든.

계행(戒行)을 지키고, 보시를 하고, 무슨 인욕을 하고, 사성제(四聖諦)나 육바라밀(六波羅蜜)이나 그밖에 부처님 팔만대장경 속에는 우리가 수행을 해 나가는 참 가지가지 조도법(助道法)이 많이 있지만,
그것을 다 하늘에 반짝이는 그 무수한 별에다가 비유한다면 이 불방일은 그 하늘에 떠 있는 밝은 달과 같은 것이다.

그래서 불방일이야말로 도업(道業)을 성취해 나가는데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이 말씀이거든.

불방일은 꼭 잠 안 자고, 아주 이를 갈아붙이고 장좌불와(長坐不臥)를 하고, 단식(斷食)을 하고, 묵언(默言)을 하고 이렇게 하는 것만을 말한 것이 아니여.

그것은 그렇게 무리하게 억지로 정진을 해 가지고서는 특별히 대근기(大根機)로써 석 달 열흘을 안 자도 그만, 한 열흘씩 굶어도 그만, 그러다가 자고 싶을 때는 며칠씩 자고, 먹고 싶을 때는 말밥을 먹고,
그런 아주 몸과 모든 것을 대근기로 타고난 사람은 혹 그럴 수도 있습니다마는 그런 사람은 백만 명 가운데 하나나 있을 둥 말 둥 하고,

중근기·하근기가 그러한 자기의 근기(根機)도 모르고 그렇게 무리하게 하면 병나기 백발백중(百發百中)이여.

조실스님께서는 그렇게 참 무서운 정진을 하셔서 병환은 났지만은 다행히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해서 다행이나,
우리 모두가 다 그런 본을 봐 가지고 피가 꿀꿀 넘어온다면, 도(道)도 이루지 못하고 피만 콧구녁으로 목구멍으로 선지 덩어리가 넘어온다면 그렇게 피 꿀꿀 넘어와 가지고서는 선방에서 방부도 받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최소한도 다섯 시간 정도는 재워주고, 공양할 때는 먹을 만큼 먹고, 또 옷도 추위와 더위를 방어할 만큼... 사치해서는 안 되지만,
그래서 의부족(衣不足), 겨울에 추운데 옷을 너무 얇게 입어가지고 콜록거리고 기침하고 감기들고, 그래 가지고 그것이 쇠면은 폐렴이 걸리고 이것도 지혜롭지 못한 것이고,

‘내가 어찌 시주(施主) 것을 함부로 입을까’ 그래 가지고 너무 얇게 입어가지고 병나는 거, 이것도 퇴전(退轉)할 원인이 되는 거고,
‘시주 것을 내가 어찌 함부로 많이 먹을까’해 가지고 너무 조금씩 먹어가지고 피골이 상접해서, 그것도 어리석은 거고,
‘내가 도업을 성취 못했는데 어찌 편안하게 잠을 잘 것인가’ 그래 가지고 잠을 너무 안 자 가지고 낮에 입선시간에도 꾸벅꾸벅, 밤에 잠을 안 자 놓으니까 그 이튿날 꾸벅꾸벅 하거든.

차라리 그러느니 최소한도(最小限度)로 너댓 시간은 푹 재워주고, 보통 여섯 시간으로 하고 있지만,
‘여섯 시간은 너무 길다.’ 그러면은 한 시간 정도는 덜 자고 다섯 시간만 자되, 다섯 시간은 푹 자고 일어나서, 그 대신 일어난 뒤로는 꾸벅꾸벅하지 않거든. 다섯 시간을 자 놨으니까 그만하면 족(足)하고.

그렇게 해서 식부족(食不足)·침부족(寢不足)·의부족(衣不足) 이 삼부족(三不足)은 퇴타(退墮) 인연이라고 그렇게 말씀하신 도인도 계십니다.

그래서 만공 스님께서는 ‘용맹정진(勇猛精進)·가행정진(加行精進)을 할라면은 잠을 한 시간씩 더 자라. 그래야 정신이 쇄락(灑落)하고 성성(惺惺)해서 정진을 참으로 여법하게 할 수가 있다.’ 이렇게도 말씀을 하셨다고 합니다.

이 산철에 산철 방부를 들이신 도반이나, 또 산철 방부를 안 들인 분이나, 또 신남신녀 여러분께서도,
어쨌든지 너무 11시·12시까지 너무 오래 그러지 말고, 늦어도 10시 쯤에는 잠들고 그 대신 새벽에 서너 시에는 꼭 일찍 일어나서 떠억 정진을 하되 단전호흡을 하면서 그렇게 정진을 하시고,

그리고 낮에 방선(放禪) 시간이라도 잡담을 하지 말아라.
지난 여름 동안에 보살선방에 167명이라고 하는 많은 보살님이 방부를 들이고 모다 정진을 하셨는데, 참 애써서 모다 정진들을 하셨다고 보고를 받았는데,
그런데 잘못한 것이 무엇이냐? 방선 시간에 너무 잡담을 많이 했다.

물론 선방에서 하시지 않고 저 지대방에 가서 쉬면서 잡담을 하셨다는 건데, 지대방이라고 해서 잡담을 함부로 하면 안 된다 이거거든.
화두를 타파(打破)해서 확철대오한 것이 꼭 큰방에 앉았을 때만 하라는 게 아니거든.

지대방에 있을 때 툭 터질 수도 있고, 화장실에 가서 툭 터질 수도 있고, 해제해 가지고 행각(行脚)을 할 때 툭 터질 수도 있고, 닭 우는 소리 듣고 터질 수도 있고, 돌이 빗자루에 맞는 소리를 듣고 깨달을 수도 있고, 시장터에 가서 ‘이 자식, 저 자식’하고 싸우는 소리를 듣고 깨달은 도인(道人)도 있는데,

결제 중에 더군다나 방선 시간에 지대방에 갔다고 해서, 거기 가서도 정 허리가 아프면 다리를 뻗을 수도 있고, 허리를 좀 펼 수도 있으나,
거기서도 화두를 들고 떠억 그럴수록에-입선시간에는 졸음이 잘 오지만은 방선을 하고 지대방에 가면 잠은 달아나고 오히려 성성한 수가 많은데, 아! 그 성성한 때를 타서 화두를 떠억 성성하게 잡두리를 할 일이지.

입선 시간에는 조느라고 공부를 못하고, 방선 시간에는 잡담을 하느라고 정진을 못하면 석 달을 언제 공부를 할 것이냐 이거여.
그래서 여러 도반들은 이 해제 때, 또 이 방선 때, 그 졸음 안 오는 그때에 화두를 힘써 잡두리를 해라.

이것을 내가 오늘 해제하고 나서 첫째번 일요법회, 9월 첫째 일요법회를 맞이해서 해제하고 온 여러 도반들에게 이것을 당부를 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리고 ‘부처님께서 마지막 열반하실 직전에 무슨 법문을 하셨냐?’하면은
『비구들아, 너희들에게 이르리라. 모든 것은 변화하느니라. 불방일(不放逸)하여 정진하라.』 이 말씀을 최후에 제자들에게 남기시고 열반(涅槃)에 드셨습니다.

『비구들아, 나는 너희들에게 이르리라. 모든 것은 변화하느니라.』 이 ‘변화하느니라’는 말은, 말은 간단하지만은 범위가 참 넓습니다.
‘시시각각으로 우리는 죽음을 향해서 가고 있다. 시시각각으로 죽음이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고 하는 그런 말씀이고,

또 여러 신남신녀들에게는 ‘지금 아무리 높은 벼슬을 하고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고 부귀영화를 누리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언제 상태가 바뀌어질른지도 모른다’는 뜻이 그 속에 다 들어있고,
또 지금 여러 가지 상황이 좋지 못해서 사업이 잘 안되거나,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가정적으로 여러 가지 상황에 있는 사람에게도 다 변화하고 있어.

그러니 너무 그러한 것에 집착하지 말고, 그런 것에 너무 얽매이지 말고 어쨌든지 불방일(不放逸),
화두를 들고서-그 일념(一念)을 돌이킴으로 해서 화두를 들고, 화두의 의심이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도록 잡두리를 해 나감으로써 생사윤회의 수레바퀴에서 해탈을 하라고 하는 그러한 부처님의 마지막 법문인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80세를 일기로 열반하실 때에 마지막으로 하신 법문이라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그 마지막 법문을 세세생생에 망각해서는 아니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이 ‘불방일(不放逸)’이라고 하는 이 석 자 글 말씀을 망각을 하지 않고 항상 우리가 명심을 한다면 정진은 저절로 될 것이고, 일체 장애는 거기에 침범을 못할 것입니다.

이 방일(放逸) 때문에 우리는 해태하게 되고, 일체 장애와 일체 마군(魔軍)이가 그 틈을 타서 우리에게 들어와 가지고 우리의 도업을 방해하는 것입니다.(37분22초~53분39초)

 

 



(2)------------------

수행수시용심진(修行須是用心眞)이라  심약진시도이친(心若眞時道易親)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미오이도단재아(迷悟二途端在我)하니  시비이자막수인(是非二字莫隨人)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수행(修行)은 수시용심진(須是用心眞)이라. 도 닦아 가는 데에는 모름지기 이 용심(用心)을 참되게 하라.
심약진시도이친(心若眞時道易親)이니다. 마음이 만약 참되다면 도(道)는 참 친하기 쉬우니라.

‘도 닦기가 어렵다. 도를 이루기가 어렵다.’ 참 모두 도 닦기를 이 세상에 가장 어려운 것으로 생각하고 그렇게 말들 하지만 가장 쉬운 것이여.

무엇 때문에 그렇게 쉬운 것을 어렵다고 하냐? 용심(用心)을 참되게 못하기 때문에 어려운 것이지,
‘용심 하나 참되게 해 버리면 천하에 쉬운 것이 도다’ 이거거든.

그러면 ‘도(道)가 왜 친(親)하냐’하면은 도가 먼 데에 있는 것이 아니고, 바로 끊임없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그 '한 생각' 속에 도가 들었어.

도(道)가 가까운 데에 있어.
눈으로 볼 때는 보는 데에 있고, 들을 때는 듣는 데에 있고, 말할 때는 말하는 데 있고, 밥 먹을 때는 밥 먹는데 도가 있는 것이지, 그놈 떠나서 멀리 저 먼 데에 있는 것이 아니거든.

언제나 즉시에 있어. 지금에 있고,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 도(道)거든. ‘이뭣고~?’

그 ‘용심(用心) 하나 참되게 한다’한 것은 불방일(不放逸)이거든.

미오이도(迷悟二途)가 단재아(端在我)여. 그 사람이 깨닫지 못하고 미경(迷境)으로 생사윤회를 하느냐, 확철대오해서 바로 '참나'를 깨닫느냐 한 것은 그 단서(端緖)가 바로 내게 있어.
내가 어떻게 한 생각 한 생각을 다스려 나가느냐? 그 원인이 바로 당사자(當事者)가 '나'다 그거거든.

시비이자막수인(是非二字莫隨人)이여. 옳다·그르다, 내가 옳고 니가 그르다.
그 옳다·그르다 그 시비(是非)의 두 자(字)를 다른 사람을 따르지 마라.

다른 사람한테 책임을 몰아붙이지 말고, 다른 사람 시비하는데 말려 들어가지 말라 그말이여.
구태여 생각한다면 모든 시비도 나한테 있는 것이고, 시비(是非)의 원인이 다 내게 있는 거여.

‘저 사람이 잘못하기 때문에 이렇게 되었다.’하고, ‘저 사람이 먼저 시비를 일으켜서 그렇지, 내가 그런 것이 아니다.’ 전부가 다 남에게 시비를 몰아붙이고,

‘세상이 시끄러워서 내가 불행하다. 모든 사람이 잘못하기 때문에 내가 이렇게 그런다.’
모든 잘못된 것은 다른 사람에게 돌려보내고, 모든 잘한 것은 지가 잘해서 잘 되었다고 생각하거든. 거기에서 크고 작은 모든 시비와 전쟁이 거기서 일어나는 거여.

모든 원인이 전부 내게 있고, 모든 시비의 근원이 나로부터서 일어났다고 확실히 믿고 그렇게 살아갈 줄 알아야 하는 것이다 그 말이거든.

오늘 신미년 9월 1일 첫째 일요법회를 맞이해서 여러 도반들이 이렇게 다 해제를 하고 운집을 했으므로...
이 추계산철 결제가 또 머지않아서 시작이 됩니다.
방부를 들이신 스님네나 보살님은 말할 것도 없고, 방부를 안 들인 분들도 이 춥지도 더웁지도 않는 좋은 서늘한 계절을 맞이해서 이 불방일(不放逸), ‘방일하지 않는다,’

‘방일하지 않는다’고 하는 이 불방일 한마디를 명심을 하고, 알뜰히 정진해 주실 것을 당부하고 법상(法床)에서 내려가고자 합니다.(37분22초~60분23초)(끝)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1)

*아함경(阿含經) ; 아함(阿含)은 산스크리트어, 팔리어 āgama의 음사로, 전해 온 가르침이라는 뜻.
초기 불교시대에 성립된 수천의 경전들을 통틀어 이르는 말. 팔리(pāli) 어로 된 니카야(nikāya)가 있고, 여기에 해당하는 산스크리트(sanskrit) 본(本)이 아가마(āgama)임.
이 아가마를 한문으로 번역한 것이 아함경으로 여기에는 ①장아함경(長阿含經) ②중아함경(中阿含經) ③잡아함경(雜阿含經) ④증일아함경(增一阿含經) 네 가지가 있다.
*『비구들이여, 밤하늘에서 온갖 별들은 빛난다...』 ; 「잡아함경」 (882. 불방일근본경 不放逸根本經), 「상윳다니까야」 (S45:146) 달(月)경 참고.
*불방일(不放逸) ; ①방일(放逸-거리낌없이 제멋대로 마음 놓고 지냄)·해태(懈怠-게으름)하지 않은 것. ②온갖 선법(善法)을 닦는 것. ③능히 마음을 수호하는 것.
[참고] 《아비달마집이문족론(阿毘達磨集異門足論)》 제1권.
《아비달마집이문족론(阿毘達磨集異門足論)》에서는 "온갖 선법(善法)에 있어서 방일(放逸)하지 않음, 즉 불방일을 으뜸으로 한다(於一切善法 不放逸為尊)"고 말하면서, 불방일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爲斷不善法。爲圓滿善法。常習常修堅作恒作。數修不止名不放逸。


불선법(不善法)은 끊고 선법(善法)은 원만하게 하기 위하여, 항상 익히고 항상 수행하며 견고하게 짓고 한결같이 지으며 자주자주 수행하면서 그만두지 않는 것을 불방일(不放逸)이라 한다.

 

[참고] 「증일아함경」 18권 ‘26. 사의단품(四意斷品)’ 제1~4경 참고 요약.
〇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 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①비유하면 마치 산(山)·강(江)·석벽(石壁)·온갖 풀과 다섯 가지 곡식은 모두 땅을 의지해서 자라나고 큰다. 그래서 땅은 가장 높고 최상(最上)이다. 이와 같아서 모든 착한 도인 37도품(道品)의 법이 다 방일(放逸)하지 않은 땅에 머물러 모든 착한 법을 거기에서 자라나게 한다. 그래서 방일하지 않은 비구는 4의단(意斷)을 닦는다.
②여러 조그만 나라의 왕과 여러 큰 나라의 왕들이 다 전륜성왕(轉輪聖王)에게 와서 붙어 가까이한다. 전륜성왕은 거기에서 가장 높고 최상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아서 37도품법(道品法) 가운데에서 방일(放逸)하지 않는 법이 제일이다. 그러므로 방일하지 않는 비구는 4의단(正斷)을 닦는다.
③모든 별빛 가운데 달빛이 제일인 것처럼, 이것도 또한 그와 같아서 온갖 착한 공덕의 37도품 가운데 방일하지 않은 행(行)이 가장 제일이요 가장 높고 가장 귀(貴)하다. 그러므로 방일하지 않은 비구는 4의단을 닦느니라.
④첨복화(瞻蔔華)·수마나화(須摩那華) 등 천상(天上)과 인간(人間) 세상의 모든 꽃들 중에서 바사화(婆師華)가 가장 제일인 것처럼, 모든 착한공덕(功德)의 37도품 가운데서는 방일하지 않은 행(行)이 제일이다. 그러므로 방일하지 않은 비구는 4의단을 닦는다.

그러면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아직 생기지 않은 악은 생기지 않도록 하고(律儀斷), 이미 생긴 악은 없어지게 하고(斷斷), 아직 생기지 않은 선은 생기게 하고(隨護斷), 이미 생긴 선은 더욱 많아지고 오래 가도록 하는 것(修斷)이며, 원만하게 갖추어 닦아 수행하고 마음과 뜻에 잊지 않는 것이다. 이와 같이 비구는 4의단을 닦는다.

그런 까닭에 모든 비구들아, 너희들은 마땅히 4의단을 닦아야 하느니라. 모든 비구들아, 꼭 이와 같이 공부해야 하느니라."
그 때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참고]‘붓다의 죽음’(안양규 글) p33에서, 「불교평론」 (2005년 겨울).
〇팔리어본 「열반경」에 의하면 붓다는 제자들로부터 ‘불법에 의심이 없다’라는 말을 듣고 다음과 같은 최후의 가르침을 남긴다.
“비구들이여! 이제 나는 너희들에게 말한다. 제행(諸行)은 소멸되기 마련이다. 방일하지 않고(appamādena) 정진하라.”(디가 니까야, 열반경 D16)
무상한 세계에서 벗어나도록 정진하라는 가르침은 붓다의 유언으로 제자들에게 남겨졌을 법한 내용이다.

불방일(不放逸)의 원어는 'appamāda'인데 부정접두사 'a'와 'pamāda'로 이루어진 말이다.
'pamāda'는 어떤 자극에 의해 정신이 마비된 것을 가리키는 말로 특히 만취한 상태를 가리킨다. 따라서 'appamāda'는 마음이 깨어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단순히 무엇인가를 게으름 피우지 않고 열심히 하는 것이(diligent) 아니라 마음이 또렷이 각성(覺醒)한 상태(vigilance)이다. (Nyānatiloka, Buddhist Dictionary : Manual of Buddhist Terms and Doctrines. Kandy. 1980)
불방일의 가르침은 결국 붓다(깨어있는 자, 覺者)라는 말과 상통하는 것이다.
*선법(善法, 산스크리트어: kuśalā dharmāh, 팔리어: kusala dhamma) ; 선법(착한 법)은 '선한 교법'의 줄임말로, 5계(五戒) · 10선(十善) · 3혜(三慧) · 4혜(四慧) · 4성제(四聖諦) · 3학(三學) · 5온설(五蘊說) · 12연기설(十二緣起說) · 8정도(八正道) · 37도품(三十七道品) · 6바라밀(六波羅蜜) 등 이치에 맞고, 자신과 세상을 이익되게 하는 법(法), 즉 도리와 방편, 즉 가르침 또는 선한 행위와 수행법을 말한다.
*방일(放逸 놓을 방,제멋대로 일) ; 거리낌없이 제멋대로 마음 놓고 지냄.
*해태(懈怠 게으를 해,게으를 태) : 게으름(행동이 느리고 움직이거나 일하기를 싫어하는 태도나 버릇).
*정진(精進) : [범] Virya  음을 따라 비리야(毘梨耶 • 毘離耶) • 미리야(尾利也)라고도 쓴다。보살이 수행하는 육 바라밀(六波羅蜜)의 하나.
순일하고 물들지 않는(純一無染) 마음으로 부지런히 닦아 줄기차게 나아가는 것이다。그러나 닦는 생각(能)과 닦는 것(所)이 있어서는 안 된다。함이 없이 하는 것이 정진이다.
*운집(雲集 구름 운,모일 집) ; 구름(雲)처럼 모인다(集)는 뜻으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듦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도반(道伴) ; 함께 불도(佛道)를 수행하는 벗. 불법(佛法)을 닦으면서 사귄 벗.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화두는 「말」이란 뜻인데, 두(頭)는 거저 들어가는 어조사다。「곡식을 보고 땅을 알고, 말을 듣고 사람을 안다」는 옛말이 있다. 도(道)를 판단하고 이치를 가르치는 법말 • 참말을 화두라고 한다.
또는 공안이라고 하는 것은 「관청의 공문서」란 뜻인데, 천하의 정사를 바르게 하려면, 반드시 법이 있어야 하고 법을 밝히려면 공문이 필요하다.
부처님이나 조사들의 기연(機緣), 다시 말하면 진리를 똑바로 가르친 말이나 몸짓이나 또는 어떠한 방법을 막론하고 그것은 모두 이치세계의 바른 법령(法令)인 것이다.그러므로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참구(參究 헤아릴 참,궁구할 구) ①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드는 것.
②참선하여 화두(공안)을 꿰뚫어 밝히기 위해 집중함. 화두 의심을 깨뜨리기 위해 거기에 몰입함.
*운력(運力) ; '함께 힘을 기울인다'는 의미. '많은 사람이 구름같이 모여서 일을 한다'는 의미로 운력(雲力)이라고도 하며, '여러 사람들이 힘을 합하여 하는 일'이란 우리말 '울력'과 같다.
의미와 관계없이 운력(運力)은 사찰에서 대중들이 모여 육체적인 노동을 함께 한다는 뜻.
*입선(入禪) ; 참선 수행(좌선)에 들어가는 것, 좌선(坐禪)을 시작하는 것. 참선(좌선)수행.
*죽비(竹篦 대나무 죽,빗치개•통발 비) ; 예불이나 참선 정진할 때 이 죽비를 손바닥에 쳐서 소리를 내어 시작과 끝을 알리는데 쓰는 불교 용구.
*발심(發心) ; ①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②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원어)發起菩提心발기보리심, 發菩提心발보리심.
*발심(發心)한 분상(分上)에는 ; 발심한 수행자의 입장에 따르자면.
*도처(到處) ; 이르는 곳.
*두두물물(頭頭物物) ; 온갖 사물과 현상.
*계행(戒行) ; ①계(戒)를 지켜 수행하는 것. ②계율과 도덕.
*인욕(忍辱) : [범] Ksanti  욕되는 것을 견디어 참는 것이다。여섯 가지 바라밀(六波羅蜜) 가운데 하나。무슨 곤란이나 역경을 당하더라도, 남을 원망하거나 성내거나 그 고통과 곤란을 피하려고 하지 않고 즐겁게 받아야 한다.
*사성제(四聖諦) ; 제(諦)는 ‘sacca’의 번역으로 진리를 뜻함. 고(苦-괴로움)를 소멸시켜 열반에 이르는 네 가지 진리. 사제(四諦)라고도 함.
고제(苦諦,苦聖諦). ‘고(苦-괴로움)’라는 성스러운 진리. “태어남이 고다. 노쇠가 고다. 죽음이 고다. 슬픔•비탄•괴로움•근심•절망이 고다. 즐거운 것과 갈라짐이 고요, 싫은 것과 같이 함이 또한 고다. 요컨대 집착과 연관된, 존재의 다섯 쌓임(五取蘊)이 고다”(상응부)
집제(集諦,集聖諦). ‘고의 원인’이라는 성스러운 진리.  몹시 탐내어 집착하는 갈애(渴愛)가 고(苦)가 일어나는 원인이라는 진리.
멸제(滅諦,㓕聖諦). ‘고의 멸’이라는 성스러운 진리. 갈애가 남김없이 소멸됨으로써 고(苦-괴로움)가 소멸되어 고의 끝남, 열반에 이른다는 진리.
도제(道諦,道聖諦). ‘고의 멸에 이르는 길’이라는 성스러운 진리. 팔정도(八正道)-정견(正見,바른 이해)•정사유(正思惟,바른 생각)•정어(正語,바른 말)•정업(正業,바른 행위)•정명(正命,바른 생계)•정정진(正精進,바른 노력)•정념(正念,바른 마음챙김)•정정(正定,바른 집중)-는 갈애를 소멸시켜, 고의 멸에 이르는 길이다.
*육바라밀(六波羅蜜) ; 보살이 열반(涅槃)에 이르기 위해서 해야 할 여섯 가지의 수행. 보시(布施), 지계(持戒), 인욕(忍辱), 정진(精進), 선정(禪定), 지혜(智慧)를 이른다.
*조도법(助道法) ; 37조도법(三十七助道法)을 말한다. '깨달음(도, 보리)에 이르는 37가지의 수행법(修行法)'을 말한다. 사실상 초기불교의 수행법을 통칭하는 낱말이다.
4념처(四念處, 四念住) · 4정단(四正斷, 四正勤) · 4신족(四神足, 四如意足) · 5근(五根) · 5력(五力) · 7각지(七覺支, 七覺分) · 8정도(八正道)의 37가지 도품(道品) 또는 선법(善法) 또는 수행법(修行法)을 말한다.
*도업(道業) ; 도(道)는 깨달음. 업(業)은 영위(營爲). 불도의 수행. 진리의 실천.
*장좌불와(長坐不臥) ; 밤이 되어도 눕지 않고 늘 앉아서 수행 정진하는 것.
*말밥 ; 한 말 정도 분량의 쌀로 지은 밥.
*근기(根機 뿌리 근,베틀 기) ;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는 중생의 소질이나 근성.
*백발백중(百發百中) ; 무슨 일이든지 틀리지 않고 꼭 들어맞음.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쇠다 ; (무엇이)제 한도를 벗어나서 정도가 점점 심해지다.
*시주(施主 베풀 시,주인 주) : ①스님에게 혹은 절에 돈이나 음식 따위를 보시하는 일. 또는 그런 사람. ②남에게 가르침이나 재물을 아낌없이 베푸는 사람. 단월(檀越)이라고도 한다.
*퇴전(退轉) ; 불교를 믿는 마음을 다른 데로 옮겨 처음보다 더 밑으로 전락(轉落)함.
*퇴타(退墮 물러날 퇴,떨어질·게으를 타) ; 어떤 경지로부터 물러나 되돌아 오는 것. 퇴전(退轉)이라고도 한다.
*용맹정진(勇猛精進) ; 견고한 의지로 한순간도 불방일(不放逸)하는, 열심으로 노력하는 정진.
*가행정진(加行精進) ; 별도의 노력을 기울여서 하는 정진. 어떤 일정한 기간에 좌선(坐禪)의 시간을 늘리고, 수면도 매우 단축하며 정진하는 것.
*쇄락(灑落) ; 기분이나 몸이 상쾌하고 깨끗함.
*산철(散철) ; 본철(本철-하안거,동안거)가 아닌 시기.
*방선(放禪) ; 좌선을 하거나 불경을 읽는 시간이 다 되어 공부하던 것을 쉬는 일.
*선방(禪房) ; ①참선(參禪)하는 방. 선실(禪室)과 같은 말. ②‘선방에 간다’라는 말은 ‘참선하러 절에 간다’ 또는 ‘참선에 들어간다’라는 표현이다.
*지대방 ; 절의 큰방 머리에 있는 작은 방. 이부자리, 옷 등의 물건을 넣어 두는 곳이며, 스님들이 잠깐 휴식을 하기도 하는 곳이다.
*행각(行脚) : ①수행자가 일정한 주소를 갖지 않고 스승이나 벗을 구하여, 자기의 수행이나 교화를 위해 곳곳을 편력하는 것.
②스승의 슬하(膝下)를 떠나서 선(禪) 수행을 위해 훌륭한 선승(禪僧)이나 좋은 벗을 구하여, 마치 떠도는 구름과 흐르는 물과 같이 발길 닿는 대로 여러 곳을 편력하는 것。 이것을 행하는 자를 행각승(行脚僧) 또는 운수(雲水)라고 함。
*도인(道人) ; 깨달은 사람.
*잡두리 ; ‘잡도리’의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그 대책.
*열반(涅槃) ; 산스크리트어 니르바나(nirvāṇa) 팔리어 nibbāna의 음사. 멸(滅)·멸도(滅度)·적멸(寂滅)·적정(寂靜)·적(寂)·안온(安穩)이라 번역. 불어서 끈 상태라는 뜻.
① 불어서 불을 끄듯, 탐욕〔貪〕과 노여움〔瞋〕과 어리석음〔癡〕이 소멸된 심리 상태. 모든 번뇌의 불꽃이 꺼진 심리 상태. 사제(四諦)에서 집(集), 곧 괴로움의 원인인 갈애(渴愛)가 소멸된 상태. 모든 번뇌를 남김없이 소멸하여 평온하게 된 상태. 모든 미혹의 속박에서 벗어난 깨달음의 경지. 번뇌를 소멸하여 깨달음의 지혜를 완성한 경지.
② 석가모니의 죽음.  ③스님의 죽음을 수행을 통해 해탈(解脫)에 이르게 됨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
*타성일편(打成一片) : ‘쳐서 한 조각을 이룬다’. 참선할 때 화두를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화두가 들려서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일체처 일체시에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만이 독로(獨露)한 순수무잡(純粹無雜) 경계.
*마군(魔軍) ; 악마의 군세(軍勢). 마(魔)란 생사를 즐기는 귀신의 이름이요, 팔만사천 마군이란 중생의 팔만 사천 번뇌다. 마가 본래 씨가 없지만,수행하는 이가 바른 생각을 잃은 데서 그 근원이 파생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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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수행수시용심진~ ; 중봉명본 스님의 「天目中峰和尚廣錄」 卷第二十九 ‘寄同參十首’ 게송 참고.
*도(道) ; ①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그 방법. ②깨달음. ③가르침. ④궁극적인 진리. ⑤이치. 근원.
*단서(端緖) ; 어떤 일이나 사건 따위를 풀어 나갈 수 있는 실마리.
*당사자(當事者) ; 어떤 일에 직접 관계가 있거나 관계한 사람.

Posted by 닥공닥정

§(436) 만공 스님, 금봉 스님, 고봉 스님 / 임종게(臨終偈), 후사(後事) / 우리 용화사는 영원히 전강 스님을 조실로 모시고 공부를 해가자.


**송담스님(No.436)-91년 입춘기도 법회(90.02.04)에서. (용436)


약 13분.

 


오늘 신미년 입춘(入春)날입니다.

오늘 입춘날에 조실 스님(故전강스님)의 펄펄 살아있는 사자후(獅子吼)과 같은 그런 활구 법문(活句法門)을 들었습니다.

23세에 확철대오(廓徹大悟)하셔서 제방(諸方) 선지식(善知識)의 인가(印可)를 받으시고 그래가지고 나와서 겪었던 사항에 대한 살아있는 법문을 들었습니다. 방금 정말 조실 스님께서 살아서 이 법상에서 하신 것과 같은 그러한 감동을 받았습니다.

방금 조실 스님 법문 가운데 나오는 금봉(錦峰) 스님은 성씨(姓氏)가 박(朴)씨시고, 조실 스님보다 훨씬 연세가 많으시고, 원래 경상도 김룡사 스님인데 만공 스님께 인가(印可)를 받으신 만공 스님의 수법제자(受法弟子)이십니다.

고봉 스님도 역시 만공 스님께 인가를 받으신 수법제자이고 그러신데, 그 스님들이 다 인가받은 구참(久參)이신데, 조실 스님께서는 그때 아주 어린, 훨씬 밑의 후배이셨습니다.

그런데 그 금봉 스님은 굉장히 성질이 급해서 조용 조용히 대화를 할 수 없을 만큼 그렇게 성질이 급하고 우악하고 그러신 어른인데, 제가 정혜사(定慧寺)에서 2년간, 금봉 스님께서 거기 조실(祖室)로 계실 때에 2년간을 정혜사에서 모시고 지내서 마음으로 참 숭배하고 그러시던 선지식이셨습니다.

그 어른은 정화(淨化) 때 선학원(禪學院)에 와서 얼마동안 머물러 계셨는데 그 선학원에 전국에서 모인 모다 수좌(首座)들 앞에서 항상 하신 말씀이 ‘1, 전강(田岡)이요. 2, 고봉(高峰)이요. 3, 만공(滿空)이다.’ 이런 말씀을 막 터놓고 하셨었습니다.
그리고 ‘전강 스님이 어디 가서 조실(祖室)을 하면 내가 그 밑에 가서 공양주(供養主)를 하겠다’고 이런 말씀도 하셨습니다.

그리고 정혜사 조실로 계시다가 해인사 조실로 추대를 받아서 해인사 조실로 가실 때, ‘내가 해인사 조실로 가는 것은 내가 살면 얼마나 살겠는가? 내가 가서 터를 닦아 놓을 테니, 간 것은 전강 스님을 조실로 모시기 위해서 내가 간다’고 그런 말씀도 하셨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얼마동안 조실로 계시다가 그날 수박 공양을 하시고 그리고 그 여름에 해인사 옆에 맑은 계곡에 가셔서 터억 목욕을 하시고, 그리고는 거기에 앉아서 목욕을 하시고서,

거기 그 관광객이 광주(光州)서 왔다고 그러니까 ‘광주 가면 경양방죽 가에 하꼬방 장수를 하는 참 내가 잘 아는 분이 거기 있으니까, 내가 여기 몇자 적어 줄 테니 광주에 가거든 일부러 경양방죽 가를 찾아가서 이 편지를 전해 달라’고 그렇게 해서 전하고서, 그 계곡 가에서 목욕을 하고서 타악 앉은 채로 열반(涅槃)에 드셨던 것입니다.

그 게송(偈頌)은 무엇이냐? 하면,
“청산(靑山)은 문수안(文殊眼)이요. 수성(水聲)은 관음이(觀音耳)다. 물소리는 관세음보살의 귀다. 금일세연진(今日世緣盡)하니, 오늘 세상 인연이 다하니, 의구수동류(依舊水東流)로구나. 옛을 의지해서 물은 동쪽으로 흘러가는구나.” 이러한 금봉 스님의 임종게(臨終偈)였습니다.

그 임종게를 해인사 대중한테 떠억 내놓고 그리고 임종에 들으셔도 되겠지만, 어째서 그 임종게를 써서 그 인편(人便)에 전강 조실스님께 보냈느냐? 거기에는 반드시 까닭이 있습니다.

고봉 스님께서도 열반하실 때 전강 조실스님을 청했습니다.
고봉 스님께서는 중풍을 앓으셔서 잘 보행도 못하시고 또 말씀도 잘 못했습니다. 그런데 임종이 가까워지자 단식을 하시고 공양을 안 잡수니까, 대중들이 아무리 공양을 하시도록 권고를 해도 안 들으셔서,

또 대중이 전강 조실스님한테 와서 어쨌든지 좀 오셔서 공양을 잡수도록 해 달라고 그렇게 부탁을 해서, 가셔서 또 이렇게 여러 가지로 - 참 서로 법(法)이 통하고,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마음과 마음이 통하는 그러헌 사이시니까 말씀을 드려 가지고 다시 잡수시기도 하고 그런 일도 있다가,

얼마 있다가 고봉 스님께서 정식으로 전강 조실스님을 청했습니다.
청해 가지고 ‘나를 위해서 임종(臨終), 마지막 내가 가는 길에 임종 법문을 설해 달라’고 청을 하셨습니다.

고봉 스님도 확철대오해서 만공 스님께 인가를 받으신 대도인(大道人)이십니다.

그래가지고 기동을 못하시고 그러니까 앉아서 이렇게 청을 하셔서,
‘그래셔서는 안 됩니다. 법상을 차리고 정식으로 법식을 거행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래가지고 부축을 받아가지고 큰방으로 나오시고, 법상을 차려서 조실스님이 떠억 법상에 올라가서 법을 설하시는데,
양쪽에서 부축을 해가지고 간신히 이렇게 나오셔 가지고, 앉으시라고 해 가지고 앉아서 법문을 조실스님께서 설하셨습니다.

이러한 일이나 일맥상통한 바가 있는 것입니다.
후사(後事). 고봉 스님이나 또는 금봉 큰스님께서 열반하신 마당에 만공 스님으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그 법등(法燈)과 그 후사를 유촉(遺囑)하기 위한 그러헌 뜻이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러한 절차가 없이 그냥 열반에 들으시면 고봉 스님을 신(信)하던 제자들이 누구를 의지해서 공부를 하며, 금봉 스님을 의지해서 공부하는 신도나 제자들이 그런 큰스님네가 열반하신 뒤에 누구를 의지해서 공부해야 하는가? 그러한 것을 무언(無言) 중에 유촉을 하시기 위해서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조실스님께서는 그런 받으신 편지를 열어 보니까 그러한 임종게가 쓰여 있어서, 또 49재에 해인사에서 조실스님을 청하고 그래서 일부러 해인사를 가셔서 금봉 스님의 49재 법문을 하셨던 것입니다.

고조사(古祖師)들은 이 일대사(一大事) 문제는 자기 자신 일신상의 문제가 아니고, 부처님으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중대한 문제가 거기에 걸려있기 때문에 여러분께서도 잘 아시는 바와 같이,

사조(四祖) 스님이 오조(五祖) 스님, 그 팔십먹은 노인이 인가를 받으러 오니까 ‘늙어서 전해 봤자 무슨 소용이 있는가’ 그래서 ‘몸을 바꿔 와라’해 가지고, 그 소나무를 심어 놓고 가서 몸을 바꿔가지고 온 재송도인(栽松道人)의 법문을 여러분도 아실 것입니다마는.

이 문제는 대단히 중대한 것입니다. 고인(古人)들은 그렇게 해서 오늘날까지 부처님으로부터 내려오는 정법의 등불이 등등상속(燈燈相續)해서 전해 내려온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용화사는 조실스님의 법문(法門)이 다행히 녹음(錄音)을 통해서 700개나 되는 그 많은 간절한 활구참선 법문이 녹음이 되어있기 때문에 ‘우리 용화사는 영원히 전강 대선사를 조실로 모시고, 우리가 모두가 같이 열반하셨지만 살아계신 조실스님으로 믿고 우리가 공부를 해가자’ 이렇게 생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입춘날을 기해서 조실스님의 사자후를 들음으로 해서 여러 사부대중 여러분은 무량겁으로부터 내려오는 모든 크고, 작은 죄가 일시에 다 소멸이 되었으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저의 기분이 그렇고, 저의 믿음과 감동이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처음~13분6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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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후(獅子吼) ; 부처의 위엄 있는 설법을, 사자의 울부짖음에 모든 짐승이 두려워하여 굴복하는 것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스승)으로부터 화두•공안(公案)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공안)을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공안 또는 화두(話頭)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1700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선지식(善知識) ; 부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지도자. 좋은 벗.
*인가(印可 도장 인,옳을•인정할 가) 스승이 제자의 깨달음을 인정함.
*만공월면(滿空月面) ; (1871~1946) 법명은 월면(月面), 호는 만공(滿空), 속명은 송도암(宋道岩). 속성은 여산(礪山) 송(宋)씨, 아버지는 송신통(宋神通) 어머니는 김(金)씨이다.
전라북도 태인(泰仁)에서 1871년(신미년) 3월 7일 출생하였다.

 

1884년(갑신년) 14세에 태허 스님을 은사(恩師)로, 경허 스님을 계사(戒師)로 충남 서산 천장암(天藏庵)에서 출가하였다.
그 뒤 계속 천장암에서 지내다, 어른 시봉(侍奉)을 하면서 공부하기란 퍽 힘드는 일이라고 생각이 들어, 온양 봉곡사(鳳谷寺)로 가서 노전(爐殿)을 보며 공부를 계속하다가, 1895년(을미년) 7월 25일에 동쪽 벽에 의지하여 서쪽 벽을 바라보던 중 홀연히 벽이 공(空)하고 일원상(一圓相)이 나타났다.
하룻밤을 지나 새벽 종송(鐘頌)을 할때, ‘응관법계성(應觀法界性)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를 외우다가 깨닫고 오도송(悟道頌)을 읊었다.

공산이기고금외(空山理氣古今外)요  공산의 이기(理氣)는 고금 밖이요
백운청풍자거래(白雲淸風自去來)라  백운과 청풍은 스스로 가고 오는구나.
하사달마월서천(何事達摩越西天)고  달마는 무슨 일로 서천을 건넜는고
계명축시인일출(鷄鳴丑時寅日出)이라  축시에 닭이 울고 인시에 해가 뜨느니라.

그 후 마곡사 근처 토굴에서 공부하다가, 스님 나이 26세 때, 1896년(병신년) 7월 보름날 경허 선사가 오시니, 선사께 지금까지 공부해 온 것을 낱낱이 고백하였다.
경허 선사가 스님에게 묻기를 ‘등(藤) 토시 하나와 미선(美扇) 하나가 있는데, 토시를 부채라고 하는 것이 옳으냐, 부채를 토시라고 하는 것이 옳으냐?’
스님의 대답이 ‘토시를 부채라고 하여도 옳고 부채를 토시라고 하여도 옳습니다.’
경허 선사가 ‘네가 일찌기 다비문(茶毘文)을 보았느냐?’ ‘보았습니다.’

경허 선사가 다시 묻기를 ‘유안석인제하루(有眼石人齊下淚)라 하니 이 참뜻이 무엇인고?’ ‘모르겠습니다.’
선사가 이르되, ‘유안석인제하루(有眼石人齊下淚)를 모르고 어찌 토시를 부채라 하고 부채를 토시라 하는 도리를 알겠느냐?’
선사가 다시 이르되 ‘만법귀일 일귀하처(萬法歸一 一歸何處)의 화두는 더 진보가 없으니 조주 스님의 무자화두(無字話頭)를 드는 것이 옳다.’하고, ‘원돈문(圓頓門)을 짓지 말고 경절문(徑截門)을 다시 지으라.’하고 떠났다.

그 후 정진하던 중 경허 선사를 경모(敬慕)하는 마음이 간절하여 1898년 7월에 선사가 계신 서산(瑞山) 부석사(浮石寺)로 가서 지내다가, 경남 범어사 계명암 선원으로부터 경허 선사께 청첩장이 와서 선사를 모시고 계명선원에 가서 하안거를 마치고, 선사와 배별(拜別)한 후 통도사 백운암으로 갔다.

마침 장마 때라 보름 동안을 갇혀 있던 중 새벽 종소리를 듣고 재차 깨달으니 요사장부(了事丈夫)가 되었다.
31세 때(1901년) 천장암에 돌아와 머무르며 지내다가, 34세 때(갑진년 1904년 2월 11일) 함경도 갑산(甲山)으로 가는 길에 천장암에 들른 경허 선사를 뵙고, 그동안 공부를 지은 것을 아뢰니, 선사가 전법게(傳法偈)를 내렸다.

운월계산처처동(雲月溪山處處同)  구름달 시냇물 산 곳곳마다 같은데
수산선자대가풍(叟山禪子大家風)  수산선자(叟山禪子)의 대가풍(大家風)이여!
은근분부무문인(慇懃分付無文印)  은근히 무문인(無文印)을 분부하노니,
일단기권활안중(一段機權活眼中)  한조각 권세 기틀 안중(眼中)에 살았구나.

1905년 덕숭산에 금선대(金仙臺)라 이름한 초암을 짓고 지내고, 그 뒤 수덕사(修德寺)·정혜사(定慧寺)·견성암(見性庵)을 중창하고 선풍(禪風)을 떨치다가 금강산 유점사(楡岾寺) 마하연(摩訶衍)에 가서 3년을 지내고, 다시 덕숭산으로 돌아와 서산 간월도에 간월암(看月庵)을 중창하였다.

말년에 덕숭산 동편 산정에 전월사(轉月舍)라 이름한 한칸 띳집을 짓고 지내다,
1946년(병술년) 10월 20일에 목욕 단좌(端坐)한 후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고, ‘자네와 내가 이제 이별할 인연이 다 되었네 그려.’하고 껄껄 웃고 문득 입적(入寂) 하였다.
나이 76, 법랍(法臘) 62. 제자들이 스님의 법어를 모은 「만공법어(滿空法語)」가 있다.
[참고] 『만공법어(滿空法語)』 (만공문도회 | 수덕사 능인선원)
*수법제자(受法弟子) ; 스승으로부터 법(法)을 인가(印可) 받은 제자.
*구참(久參) ; 오랫동안 참선한 수행승.
*조실(祖室) ; 선원의 가장 높은 자리로 수행인을 교화하고 참선을 지도하는 스님. 용화선원에서는 고(故) 전강대종사(田岡大宗師)를 조실스님으로 모시고 있다.
*정화(淨化) ; 한국 불교 정화운동. 1910년 일제에 의해 우리나라 국권을 상실한 한일합병조약을 강제로 체결하고 이를 공포한 경술국치(庚戌國恥)이후, 1911년 일제는 한국 불교를 억압하고 민족 정신을 말살하기 위해 사찰령을 제정·공포하였다. 그 후 일제 강점기 동안 일본 불교의 영향으로 우리나라 승단이 급속도로 세속화되었다. 1945년 해방 이후에 불교계를 혁신하고 한국 불교에 남아있는 식민주의 불교, 왜색 불교를 청산하기 위해 1954년부터 1960년대에 걸쳐 일어난 한국 불교 정화운동.
*선학원(禪學院) ; 서울 종로구 안국동에 있는 절. 1921년 남전(南泉)·도봉(道峰)·석두(石頭) 등 3인을 중심으로 지었다. 선학원은 당시에 일본이 우리나라를 병합하고 사찰령을 반포하여 한국 불교를 일본 총독부의 관할 아래에 다루게 되었을적에, 일본 불교의 영향으로 우리나라 승단이 급속도로 세속화되어 가는 것을 개탄, 불조(佛祖)의 정맥을 굳게 계승하기 위하여 창설된 선종의 중앙기관이다.
사찰령의 지배를 받지 않기 위하여 절(寺, 庵)이란 이름을 쓰지 않고, 선학원이라 하였다. 그 후부터 한국 불교 선종의 책원지(策源地)로서 은연한 가운데 선객들을 통솔하였으며, 1934년 12월 5일에 재단법인 조선불교중앙선리참구원(朝鮮佛敎中央禪理參究院)으로 발족하여 초대 이사로 만공·한암·적음·남전·성월 스님이 선임되었다. 해방된 뒤에는 재단법인 선학원으로 정관을 고쳤다.
*수좌(首座) ; ①선원(禪院)에서 좌선하는 스님 ②수행 기간이 길고 덕이 높아, 모임에서 맨 윗자리에 앉는 스님 ③선원에서 좌선하는 스님들을 지도하고 단속하는 스님
*공양주(供養主) ; 절에서 밥을 짓는 소임, 또는 그 일을 맡은 스님.
*하꼬방 ; 판잣집(판자로 허술하게 지은 집). 箱房. 箱(상자)의 일본어 훈독 ‘ばこ(하꼬)’+방(房)이 결합된 말.
*하꼬방 장수 ; 전강 선사와 송담 스님이 광주(光州) 경양방죽 가의 판잣집에서 3~4년 낮에는 판잣집 한편에서 장사를 하고 밤에는 판잣집의 작은 방에서 정진을 하며 지냈다고 한다.
*열반(涅槃) ; ①타고 있는 불을 바람이 불어와 꺼 버리듯이, 타오르는 번뇌의 불꽃을 지혜로 꺼서 일체의 번뇌나 고뇌가 소멸된 상태. ‘니르바나(nirvāna)’의 음역어로, 불가(佛家)에서 흔히 수행에 의해 진리를 체득하여 미혹(迷惑)과 집착(執着)을 끊고 일체의 속박에서 해탈(解脫)한 최고의 경지를 이르는 말이다.
②스님의 죽음을 수행을 통해 해탈(解脫)에 이르게 됨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
*게송(偈頌) ; 시(詩), 게(偈)와 송(頌) 모두 불교의 가르침을 싯구로 나타낸 것.
*임종게(臨終偈) ; 열반게(涅槃偈)·열반송(涅槃頌)·입적게(入寂偈)라고도 한다.
선승(禪僧)이나 고승(高僧)들이 열반에 들어가기 전 자신의 수행을 통해 얻은 깨달음을 후인들에게 전하는 마지막 말이나 글을 말한다. 한시의 오언절구나 칠언절구 형태를 취한다.
*일맥상통(一脈相通) ; 사고방식이나 성질 등이 두 대상 간에 서로 통하거나 비슷해짐.
*후사(後事) ; ①뒷날에 생길 일. ②죽은 뒤의 일.
*법등(法燈) ; 부처님의 가르침. 미(迷)한 세계의 캄캄한 마음을 없애는 것을 등불에 비유한 것.
*유촉(遺囑) ; 죽은 뒤의 일을 부탁함. 또는 그런 부탁.
*사십구재(49재, 四十九齋) ; 사십구일재(49일재, 四十九日齋) 또는 칠칠재(7 · 7재, 七七齋).
죽은 사람의 명복을 빌면서 또 영가에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들려주어(천수경, 무상계, 반야심경, 장엄염불, 금강경 등), 한 생각 돌려 무상을 깨달아 윤회를 벗어나 해탈의 길로 들어서도록 하기 위해 죽은 날로부터 7일마다 7회에 걸쳐 행하는 영가를 위해 베푸는 법회의식.
불교의 내세관(來世觀)에서는 일반적으로 보통 사람이 죽어서 다음 생을 받을 때까지의 49일 동안을 중음(中陰)이라 하는데, 이 기간 동안에 과보를 받을 다음 생이 결정되므로, 이때 부처님의 가르침을 들려주어 영가가 죄업을 참회하고 지혜의 눈을 밝혀 해탈의 길을 가도록 이 재(齋)을 지냄.
특히, 염라대왕의 심판을 받는 날이 죽은 지 49일째 되는 날이라고 하여 7회째의 재(齋)를 중요시함.

불경(佛經)에서 설한 바에 의하면 사람의 존재 상태를 4가지로 구분하는데, 그것은 ①생유(生有: 태어나는 순간) ②본유(本有: 生에서 死까지 생애) ③사유(死有: 죽는 그 순간) ④중유(中有: 이생에 죽어서 다음 生까지를 말함)이다.
이들 중 네 번째의 중유(中有)의 상태의 정상적인 기간이 49일이다. 즉 사람이 죽은 뒤에는 일반적인 경우 49일이면 중유(中有)가 끝나고 다음 생(生)이 결정된다. 그러므로 다음 생이 결정되기 전인 48일째에 정성을 다하여 영혼의 명복을 비는 것이 49일재이다.
*일대사(一大事) ; ①부처님이 중생구제를 위해 세상에 나타난다고 하는 큰 일. 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목적 ②가장 중요한 일이란 뜻. 수행의 목적. 깨달음을 얻는 것. 인간으로서의 완성.
*재송도인(栽松道人) ; 중국 선종(禪宗)의 제4조 도신대사(道信大師 580~651)가 제자를 맞아 인증을 하였지만, 제자가 너무 늙어 스승보다 먼저 이 세상을 떠나게 되면, 법을 이을 사람이 없으니 몸을 바꾸어 오도록 하였다.
이에 몸을 바꾸어 후에 다시 만날 때 증거로 삼기 위해 황매산에 소나무를 심었다. ‘소나무를 심었다’는 뜻에서 ‘재송도인(栽松道人)’이라는 별명을 가진 분이 5조 홍인대사(弘仁大師 602~675)이다.
*등등상속(燈燈相續) ; 등(燈)은 중생의 무명(無明)을 밝히는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진리를 등(燈)에 비유한 말, 이 진리의 등(燈)을 스승이 그 제자로 해서 계속 면면히 이어짐을 일컬음.
*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 법,문 문) :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Posted by 닥공닥정
상(相)없이2013. 11. 18. 10:10

§(099) () 집착없이. 척사현정(斥邪顯正) / 재송도인 / 만공스님, 보월스님 / ()없이 베풀어야 / 본참화두를 들고 행동하면 자연히 상에  떨어져.

 

**송담스님(No.099) - 1979년(기미년) 신수기도회향(79.1.9.음)(77분)에서. (용099)

 

(1) 약 8분.

(2) 약 17분.

 

(1)------------------


금방 조실스님께서는 재송도인(栽松道人)의 법문을 허셨습니다. 여러분께서 조실스님이 아주 재미있게 해주신 법문이라 잘 들으셨을 줄 생각합니다.

참선을 해서 생사(生死)없는 이치를 깨닫고 그리고 보림(保任)을 잘하면, 생사에 그렇게 자유자재하게 되는 것입니다.
‘생사에 자유자재하다’고 하는 것은, 앉아서 죽고 서서 죽고, 오늘 가고 싶으면 오늘 가고, 며칠 더 있다 갈라면 가고. 옛날 도인들은 떠억 편안히 앉아서 가신 분, 또 걸망을 떠억 지고 지팽이를 집고 어디 행각(行脚)을 떠나는 그런 행색(行色)을 해 가지고, 마당에 나가서 못가에 서서 선 채 딱 열반(涅槃)하신 그런 분도 계시고,

또 등(鄧隱) 조사 같은 이는 열반하실 때 옆에 시자(侍者)보고, “제방(諸方)에 앉아서 돌아가신 분이 계시냐?”

“그런 분은 많이 계십니다.”


“서서 돌아가신 분도 계시냐?”
“그런 분도 더러 있습니다.”


“그러면 까꾸로 서서 돌아가신 분도 있느냐?”
“그런 분은 아직 없습니다.”
당신은 까꾸로 서서, 선 채 열반에 드셨습니다.

전등록에 보면 까꾸로 선 채 열반에 드셨는데 옷자락, 옷고름, 옷소매까지도 밑으로 처지지 아니하고, 몸 따라서 딱 붙은 채 열반에 드셨습니다. 옆에 대중들이 전부 그분을, 열반하신 뒤에 편안하게 뉘어 드릴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까딱을 안했습니다. 마치 큰 나무가 우뚝 선 것처럼 아무리 밀어도 넘어지지를 안했습니다.

그래서 애를 먹고 있던 차에, 마치 등 조사의 누이동생이 여승(女僧)인데, 여승이 오빠이신 등 조사가 열반하셨다는 말씀을 듣고 왔습니다. 와서는 “이 노장(老長)이 평생에 추한 짓을 하더니 죽을 때에도 이런 추한 짓을 하는구나.” 하고  손가락으로 툭 밀뜨려 버리니까 툭 쓰러졌습니다.

과거 인도나 중국 그리고 우리나라, 일본에-이 동양에 걸쳐서 많은 도인들이 이렇게 생사에 자유자재 허셨습니다. 그런 분이 참 많이 계십니다.
그러나 참으로 그 분이 올바르게 깨닫고 못 깨닫고 허는 그 구분을, 돌아가실 때 서서 돌아가셨느냐 또는 앉아서 돌아가셨느냐 또는 누워서 돌아가셨느냐, 돌아가신 뒤에 방광(放光)을 했냐 안했느냐 이러헌 것으로써 그 분의 도(道)가 높고, 높지 아니한 것을 분별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만공 스님-조실스님의 법사(法師)스님이신 만공 스님에, 맨 처음에 법(法)을 전해 받으신 보월 스님께서 열반하셨을 때에 오색(五色)이 찬란한 방광을 하셨습니다.
그때에 만공 스님께서 보월 스님의 열반에, 그 상서(祥瑞)에 대한 점검을 하시기를 “추한 이 더러운 놈이 죽을 때 추한 짓을 면하덜 못하는구나.” 이렇게 말씀을 허셨다고 합니다.

이것이 모다, 아까 등 조사의 까꾸로 서서 움직이지 아니한 것에 누이동생이 와 가지고 그 점검을 하는 말씀이나, 만공 큰스님께서 당신의 수법제자(受法弟子)이신 보월스님의 열반서상(涅槃瑞相)을 점검하신 말씀이, 다 척사현정(斥邪顯正)의 뜻을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행여나 중생들이 상(相)에 집착해서 바른 법을 보지를 못하고 삿된 소견에 떨어질까 두려워하셔서 추상(秋霜)같은 점검을 내리신 것입니다.

근자(近者)에 스님네나 또는 보살님네들이 돌아가셨을 때 화장(火葬)을 한 결과 많은 사리(舍利)들이 여기서 저기서 나오고 있습니다. 불교신문에 자주자주 보도가 됩니다마는, 물론 계행을 잘 지키고 수행을 착실히 하고 마음씨를 착하게 먹고 일생동안 한결같은 마음으로 살아온다면 사리가 나올 수가 있습니다. 또는 나오지 아니할 수도 있습니다.
나온 것을 꼭 나쁘다고 헐 것도 없습니다마는, 사리 나온 것을 가지고 ‘사리가 나왔기 때문에 그 분이 도인(道人)이다’ 이렇게 말할 수는 없다고 허는 것을 우리 법보제자 여러분들께서는 잘 알고 계서야 할 줄 생각합니다.

이것을 모르고 사리가 나오고 방광을 헌 것에 대해서 그것을 착각을 해가지고, ‘그렇기 때문에 그 분이 참 도인이다’ 이렇게 생각하신다면, 정법(正法)을 배우는 불제자(佛弟子)라고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5분58초~13분28초)

 

 

 

 

(2)------------------

 

재송도인(栽松道人)이 팔십 노인의 몸으로 인가(印可)를 받으러 갔다가 법담을 해서, 법담(法談)은 훌륭하게 해서 분명 견성(見性)헌 것을 인증을 받았지마는 늙은 탓으로 해서, 늙은 사람에게 법(法)을 전해봤자 법을 전하신 스승보다도 먼저 이 세상을 떠나게 되면, 법을 그 다음에 누가 있어서 대(代)를 이을 것인가?
그래서 몸을 바꿔 오도록 말씀을 허셨던 것입니다.

몸을 바꾸는데, 처녀의 뱃속에 들어가, 그래가지고 몸을 새로 바꿔 나와서, 어려서 출가를 해 가지고 인가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출가하신 재송도인을 떠나보내고 그 어머니-처녀로 애기를 난, 그 재송도인의 어머니-께서는 아들을 찾고 찾아서, 늙발에 아들 있는 곳을 알아가지고 찾아갔습니다. 얼마동안 별당에서 밥을 얻어 자시면서 계셨습니다.
그런데 결국 돌아가실 때에, 별당에다가 가둬서 계시게 하고 밥을 갖다 드리지 아니해서 굶어서 돌아가셨다고 하는 전설이 전해 내려옵니다.

그때 수백 명의 제자들이 ‘어째서 처녀의 몸으로 당신을 고생 끝에 낳아가지고 길러서 출가를 시켜준 그 어머니를 굶겨서 돌아가시게 헐 수가 있겠습니까? 결단코 도인(道人)이라 헐 수가 없다. 이러한 불효한 사람이 도인일 수는 없다. 우리는 이러한 사람한테 도를 배우느니 차라리 여기를 떠나자’ 이리 해 가지고 대중이 전부 걸망을 싸 짊어지고 그 절을 떠날라고 했습니다.

그때 하늘에서 그 돌아가신, 재송도인의 어머니 말씀이 들렸습니다. “여러 대중 스님네, 제 말씀을 들으시오. 나는 아들 하나를 잘 둔 공덕으로 지금 나는 천상으로 올라가는 길이오. 그러니 내 아들이야말로 불보살(佛菩薩)의 화신(化身)으로 이 세상에 태어나신 도인이고, 나에게 가장 효도를 해준 아들이니, 내 아들을 그릇 오해하지 말고 어서 걸망 짐을 풀어놓고 열심히 도를 배우시오.” 이렇게 소리가 울려나왔다고 합니다.
그 말씀을 듣고, 대중 스님네들은 다시 걸망을 풀고 그전에 보다도 훨씬 더 목숨 바쳐 공부를 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생각에는 도저히 이해가 안가시겠지마는, 이 법(法)이라고 하는 것은 절대로 인정(人情)을 써서는 아니 되는 것입니다. 인정(人情)과 자비(慈悲)는 그 질(質)에 있어서 분명히 다른 것입니다.

인정은 우선은 따뜻하고 부드럽고 좋지마는 결국 사람을 해롭게 하는 것이고, 자비는 겉으로 보기에는 인정과 너무나도 흡사하지만 그 내용에 있어서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인정이라 하는 것은, 주는 것이 있고 또 받는 것이 있는 것입니다. 주면서 또 받을 것을 또 기약을 헙니다.

그러나 불보살의 무연자비(無緣慈悲), 정말 참된 자비라고 하는 것은 주되 주는 바가 없고, 따라서 상(相)이 없는 것이며, 받을 것을 전혀 생각에 두지 않는 것입니다.
그 보답을 받기를 바래면서 주는 것은 ‘참보시’가 아니고 ‘참자비’가 아니고, 은혜를 베풀어서 덕이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결과적으로는 원망과 웬수 빚으로 돌아오는 수 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6.25 동란 때 많은 사람들이 희생을 당했습니다마는, ‘은혜를 받은 사람’이 ‘은혜를 베푼 자’에게, 은혜로 보답하지 아니하고 죽음을 갖다 안겨준 그러헌 사례가 방방곡곡에 일어났던 것입니다. 과거•현재•미래에 걸쳐서 언제라도 은혜를 베푸는 것에 덕(德)이 돌아오지를 못하고 그러헌 웬수 빚으로써 보답 받은 예는 너무나 흔한 것입니다.
그 원인이 뭣이냐 하면, 그 배은망덕(背恩忘德)한 그 사람을 다 나쁘다고 합니다마는 그렇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주되 상(相)이 없이 주라.’ 주되 보답을 바래지 말고 주어야지, 보답을 바래고 주면은 결과적으로는 좋지를 못한 것입니다.(20분29초)

심지어 부모가 자식을 가르키고, 자식을 키우고, 자식을 결혼을 시켜서 자유롭게 해준 그 일까지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모는 그 아들과 딸을 고생고생 하면서 포태(胞胎)를 해 가지고 낳아서 길러 가지고 맛있는 것은 아이의 입에 넣고, 따뜻하고 마른자리는 아이에게 주고 춥고 젖은 자리는 엄마가 눕고, 이러면서 키운 그 자식, 못 먹고 못 입으면서 키운 그 자식이 커서 장가가서 자식 낳고 살면은 부모의 은혜를 거의 망각하게 됩니다. 심지어는 너무나도 지나친 불효자식(不孝子息)이 되고, 나중에는 지집 말만 듣고 부모를 웬수같이 생각하고 부모를 내쫓고 부모를 죽게까지 하는 예는 신문에 가끔 보도됩니다.

이건 특수한 예라고 생각허실런지 모르지마는, 자식은 과거의 업(業)으로 인해서 태어난 것입니다. 혹 은혜를 갚기 위해서 태어난 그런 효자도 더러는 있지만, 대다수 자식이 웬수를 갚기 위해서 태어난 경우가 너무나도 많다고 하는 것을 저는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웬수의 자식이 태어날수록에 부모는 더욱 그 자식이 사랑스럽고 불쌍하고 피라도 빼서 그 놈을 살릴라고 허고 잘 살게 헐려고 하지마는, 그 자식은 점점 부모의 속에다가 불을 묻고 송곳으로 찌르고 고춧가루를 뿌리는 그러헌 짓을 가려가면서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모두 웬수가 태어나서 자식노릇을 하고 있는 경우인 것입니다. 그러헌 자식은 태어나지 아니한만 못하건마는 자기가 지어 놓은 업이라 그것을 달게 받을 수 밖에는 없습니다.

지금 세계에 42억이라고 하는 인구가 있지마는, 그 많은 인구가 부모의 몸을 빌리지 않고 태어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 많은 수가 얼마만큼 그 부모의 은혜를 알고 부모에 효도를 허는 사람이 있는지, 우리 자신부터 우리들의 주변 사람 가까운데부터서 자세히 살펴보십시오.

그래서 우리는 웬수를 맺지 말아야 할 것을 다짐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웬수를 맺지 아니헐라면 남에게 악(惡)하게 하지 아니할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남에게 착하게 허되 보답을 바래지 아니하고 베풀어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에게 어떤 재산을 베풀고서, “내가 너를 살려주느니, 너는 일생동안 백골(白骨)이 되도록 잊지를 말아라. 그리고 목숨 바쳐서 그 은혜를 나한테 갚아야 하느니라.” 그러헌 말을 입으로도 할 필요도 없고, 그러헌 생각을 마음으로도 가져서는 아니 되것습니다.
그렇게 했다면 받은 사람이 당장 부담을 느끼게 되고, 부담을 느끼기 때문에 주는 사람 앞에서는 고개를 잘 들지를 못하고 항시 불안을 느끼게 되고, 그 생각이 속에서 쌓이고 쌓여 가지고 준 사람을 싫어하게 되고 꺼리게 되고, 언젠가는 그 사람을 미워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속담에 ‘머리 검은 짐승은 거두지 말라’ 이런 말이 있습니다마는, 이것은 ‘사람에게 은혜를 베풀지 말어라’ ‘은혜 베풀어 가지고 좋은 꼴 보지 못한다’ 막말로 말하면 그런 말이 되겠습니다. 이것은 너무나도 뼈저린 가슴 아픈 그런 경험을 통해서 나오는 말이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자기의 힘닿는 데까지 물심양면으로 은혜를 베풀어야 하고 자비를 베풀어야 됩니다. 단, ‘베풀되 보답을 바라지 말고 베풀고, 베풀되 상(相)이 없이 베풀어야 한다’ 이것입니다.

배은망덕한 꼴을 보고, ‘나는 다시는 옆에서 사람이 죽어도, 나는 밥 한술 못 주겠다’ 이건 도저히 말이 안 되는 소리입니다. ‘물에 빠진 놈 건져주니까 보따리까지 내놓으라’, 그 보따리 내놓으라고 할까봐서, 물에 빠져서 곧 죽게 되는데 그것을 건져줄 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건져주지 않는다고 허는 것은 이건 말이 되질 않습니다.
한 번 속고 두 번 속고 몇 번을 배은망덕을 당한다 하드라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바른 일, 착한 일을 내놓고는 없는 것입니다.

어떻게 허면 보답을 바래지 아니허고, 어떻게 허면 상(相)이 없이 착한 일을 할 수 있을까?
‘이 뭣고~?’ ‘이 뭣고?’하면서, ‘이 뭣고?‘허는 마음으로 주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 뭣고?’를 놓치면 중생심(衆生心)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중생심으로 허는 일은 모두가 다 인연(因緣)의 인과(因果)의 올개미에 걸려드는 것입니다.

어떠한 경우라도, 어떠한 어려운 처지에서도 우리는 본참화두(本參話頭)인 ‘이 뭣고?’, 본참화두를 놓치지 아니허고 행동을 허게 되면, 자연히 상(相)에 떨어지지 아니하고 착한 일을 할 수가 있고,
웬수가 나를 해코지 하러 오드라도 ‘이 무엇고?’로써 상대를 허게 되면은 웬수도 굴복 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속을 살아가다보면, 나에게 자비롭게 해 주고 친절을 베풀어 준 사람도 많이 만납니다마는, 까닭 없이 나에게 해롭게 하고 까닭 없이 나에게 손해를 끼치는 그런 일을 더러 당하게 됩니다.
우리는 그 사람을 ‘나쁜 사람’이라고 이렇게 규정을 내리고 미워하고, 그 놈을 언젠가는 혼을 내줄려고 이를 갈아붙입니다마는, 사실은 까닭 없이 나를 해롭게 하는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나에게 잘해 준 것도, 그것도 언젠가 내가 그 사람에게 잘해 준 일이 있어서 내게 잘해 주게 되는 것이고, 나에게 해(害)를 끼치는 사람도, 해를 끼칠 수밖에 없도록 자기가 그 원인을 진즉(趁卽) 다 심어 놓았기 때문에 그러헌 일을 당하게 됩니다.

그래서 ‘저 사람의 허물은 바로 내 허물이다’, ‘내 허물이 저 사람에게 부딪쳐서 되돌아오는 현상이다’ 이렇게 생각하시면 틀림이 없는 것입니다.(13분30초~30분3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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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송도인(栽松道人) ; 중국 선종(禪宗)의 제4조 도신대사(道信大師 580~651)가 제자를 맞아 인증을 하였지만, 제자가 너무 늙어 스승보다 먼저 이 세상을 떠나게 되면, 법을 이을 사람이 없으니 몸을 바꾸어 오도록 하였다. 이에 몸을 바꾸어 후에 다시 만날 때 증거로 삼기 위해 황매산에 소나무를 심었다. ‘소나무를 심었다’는 뜻에서 ‘재송도인(栽松道人)’이라는 별명을 가진 분이 5조 홍인대사(弘仁大師 602~675)이다.
*보림(保任 보임) ; 선종(禪宗)에서 깨달은 뒤에 더욱 갈고 닦는 수행. 흔히 ‘보림’이라 읽는다. 보임은 보호임지(保護任持)의 준말로서 ‘찾은 본성을 잘 보호하여 지킨다’는 뜻이다.
*걸망 ; 물건을 담아서 등에 질 수 있도록 만든 자루 모양의 큰 주머니.
*행각(行脚) ; 스님이 일정한 거처를 가지지 않고, 스승의 밑을 떠나 참선의 수행을 위해 훌륭한 선지식이나 좋은 벗을 구해 마치 떠도는 구름이나 흐르는 물처럼 여러곳을 편력하는 것. 운수(雲水)와 같은 의미.
*행색(行色) ; 길을 떠나기 위하여 차리고 나선 모양.
*열반(涅槃) ; ①타고 있는 불을 바람이 불어와 꺼 버리듯이, 타오르는 번뇌의 불꽃을 지혜로 꺼서 일체의 번뇌나 고뇌가 소멸된 상태. ‘니르바나(nirvāna)’의 음역어로, 불가(佛家)에서 흔히 수행에 의해 진리를 체득하여 미혹(迷惑)과 집착(執着)을 끊고 일체의 속박에서 해탈(解脫)한 최고의 경지를 이르는 말이다. ②스님의 죽음을 수행을 통해 해탈(解脫)에 이르게 됨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
*등은(鄧隱) 조사 ; ‘등은봉(鄧隱峰) 선사’를 말함. 복건(福建)의 소무(邵武) 사람. 성은 등(鄧)씨.
어릴 때에는 지혜롭지 못한 듯 했다. 부모가 출가를 허락하자, 처음에는 마조(馬祖)의 문하에서 수행했으나 오묘한 진리를 보지 못하고는 석두희천(石頭希遷)에게로 갔다. 이렇게 왕래하기를 두세 번 거듭하다가, 끝내 마조의 가르침 아래서 계합(契合)하였다.

*제방(諸方) ; ①모든 지방 ②모든 종파의 스님.
*노장(老長) ; 나이가 많고 덕행이 높은 스님.
*방광(放光) ; 광명을 발하는 것.
*법사(法師) ; ①심법(心法)을 전하여 준 스님. ②불법(佛法)에 통달하고 언제나 청정한 수행을 닦아 남의 스승이 되어 사람을 교화하는 스님. ③설법하는 스님.
*상서(祥瑞) ; 복되고 좋은 일이 일어날 조짐.
*척사현정(斥邪顯正) ; 삿된 것을 거부하여 물리쳐, 불법(佛法)의 진리를 올바르게 나타내 보임.
*상(相) ; ①모습, 형태 ②특징, 특질 ③생각, 관념, 상(想)과 같음 ④종적을 남기고 싶다고 하는 생각
*사리(舍利) ; sarira의 음사(音寫). 신골(身骨)•유신(遺身)이라 번역. 시체나 유골을 뜻함. 그러나 오늘날에는 화장한 뒤에 나오는 작은 구슬 모양의 물질을 가리킴.
*계행(戒行) ; ①계(戒)를 지켜 수행하는 것. ②계율과 도덕.
*도인(道人) ; 깨달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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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발 ; 늙어 노인이 된 처지.
*인가(印可 도장 인,옳을•인정할 가) 스승이 제자의 깨달음을 인정함.
*법담(法談) ; 선사(禪師)들이 서로 법문을 묻고 대답하는 것.
*견성(見性)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 보아 깨달음. 미혹을 깨뜨리고 자신의 청정한 본성을 간파하여 깨달음.
*화신(化身) ; 부처의 삼신(三身:法身•報身•化身))의 하나로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 여러 가지 형상으로 변화하는 불신(佛身).
*무연자비(無緣慈悲) ; 무조건의 자비(慈悲). 상대의 어떤 것도 묻지 않고, 일체 평등으로 구제하는 자비심. 일체 평등의 이치를 깨달아 상대의 상(相:모습)을 가리지 않고 행하는 자비. 무연(無緣)이란 진여평등(眞如平等)의 이치를 깨달아 중생의 본체(本體)가 허망하다는 것을 알고 일으키는 자비.
*참- ; 일부 명사 앞에 붙어, ‘올바르고 진실된’의 뜻을 더하는 말.
*배은망덕(背恩忘德) ; 남에게 입은 은혜를 잊고 배반함.
*상(相) ; ①모습, 형태 ②특징, 특질 ③생각, 관념, 상(想)과 같음 ④종적을 남기고 싶다고 하는 생각
*지집 ; ‘계집’의 사투리. *계집 ; ‘여자’나 ‘아내’를 얕잡아 이르는 말.
*웬수 ; ‘원수(怨讐)’의 사투리. *원수(怨讐) ; 자기나 자기집에 해를 입혀 원한이 맺히게 된 사람이나 집단.
*백골(白骨) ; 죽은 사람의 살이 썩고 남은 뼈.
*한술 ; 얼마 되지 않는 적은 음식이나 그 양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숟가락으로 하나의 양.
*올개미 ; ‘올가미’의 사투리. *올가미 ; 노끈이나 철선 따위로, 잡아당겨도 매듭이 풀어지지 않도록 한 가닥을 고리처럼 만들어 짐승을 잡는 기구.
*이 무엇고(是甚麼 시심마,시삼마) : ‘이 무엇고? 화두’는 천 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 무엇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를 찾는 것이다.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열가지 병이 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본참화두(本參話頭) ; 본참공안(本參公案).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해코지 ; 남을 해치고자 하는 짓.
*혼을 내줄려고 —> 혼내다 ;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을) 매우 심하게 꾸지람을 하거나 벌을 주다.
*갈아붙이다 ; 분함을 억제하지 못할 때나 결심을 굳게 할 때, 독한 마음으로 이를 바짝 갈다.
*진즉(趁卽 좇을 진,곧 즉) ; 과거의 어느 때에 이미.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