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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1.03.27 §((244)) 『현우경』, 우파사나 여인의 공양 / 우파사나가 자신의 허벅지를 도려내 공양 / 한 우물을 파라 / 일상생활이 바로 수도장 / 우리도 낱낱이 다 부처님.
  2. 2021.01.18 §((190)) 인과의 법칙은 어김없다(現生報, 順生報, 順後報) / 도솔천내원궁 발원 / '이뭣고?'를 하면 삼재(三災)가 계정혜(戒定慧) 삼학(三學)으로 변한다.
  3. 2020.12.04 §((575)) (게송)파납몽두올연좌~ / 송담스님의 묵언 / 인과(因果) / 부처님의 조국 가비라국의 멸망 인연 / 무서운 죄를 미연에 방지하려면 '이뭣고?'를 해야.
  4. 2020.03.11 §(332) 부처님의 조국, 석가족의 멸망 인과 / 부처님 말씀 「절대로 보복을 하지 말라」 / 정법을 믿고 수행해 바른 깨달음을 얻어야 영원한 생사해탈을 할 수가 있다.
  5. 2020.02.25 §(345) 부처님의 법문은 원음(圓音) / 법문을 듣다가 죽은 그 공덕으로 도리천에 태어난 조개 이야기[선견율비바사(善見律毘婆沙)] / 인신난득 불법난봉.
  6. 2019.11.24 §(133) 숯쟁이 영감 / 꿈과 현실은 분명히 둘이지만 하나 / 모든 현상은 진여불성으로부터 일어나는 파도 / 생사는 본래 없다 / 이만할 때 자기를 밝히라.
  7. 2019.10.15 §(619) 팔만대장경 결집 역사 / 고려 팔만대장경의 전산화 불사 수희 동참 / 수달장자 부부의 공양 공덕 이야기 / 아사세왕의 참회, 제1회 결집 외호 공덕.
  8. 2017.01.07 §(465) (게송)삼계진로여해활~ / 자기의 인연, 자기의 업(業) / ‘이뭣고?’ 참선만이 모든 일의 근본적인 해결책 / (게송)약인투득상두관~ / 감사하는 마음.
  9. 2015.12.27 •§•(277) 인정(人情)에 따르지 말라 / 전강 조실스님 출가 인연 / 빈한(貧寒)에 발도심(發道心)이다 / 자성미타(自性彌陀) / 달마사행론中 제법부동적정문.
  10. 2015.12.18 §(224) 빈두로타사, 그리고 그의 무량겁 전생 때의 단니기 이야기[현우경(賢愚經)] / 단정왕(端正王)의 명판결.
인과 · 인연 · 비유2021. 3. 27. 15:44

§((244)) 『현우경(賢愚經)』 '우파사나 여인의 공양(供養)' / 모든 수행인과 스님들을 평등한 마음으로 존경을 하니, 너의 공양을 받은 사람은 모두가 반드시 큰 성과(聖果)를 성취할 것이다 / 우파사나 여인이 병든 스님께 자신의 허벅지를 도려내 공양 올린 일화.

'이뭣고?' 하고 참선(參禪)하는 공덕이 매우 수승하다 / 한 우물을 파라 / 일상생활이 바로 내 본마음 찾는 수도장(修道場) / 바로 그 자리에서 한 걸음도, 일 초도 옮기지 말고 그 자리에서 바로 '이뭣고?'

우리도 불성(佛性)을 가지고 있다 = 우리도 낱낱이 다 부처님이다 / 우리도 분명히 부처님인데, 다못 '번뇌(煩惱) 속에 가리워져 있는 부처님' / 하면 된다고 믿고 대든 사람은 기어코 되고만 마는 것.

**송담스님(No.244)—1984년 8월 첫째 일요법회(84.08.05) (용244) (인과인연)

 

 

 

(1) 약 21분.

 

(2) 약 17분.

 


(1)------------------

『현우경(賢愚經)』에 부처님께서 말씀을 하시기를, 사위국(舍衛國) 이웃나라에 비뉴건특(毘紐乾特)이라고 한 나라가 있는데, 그 나라는 온통 사견(邪見), 삿된 소견을 가진 사람들이 많고 이 정법(正法)을, 불법승(佛法僧) 삼보(三寶)를 믿는 사람이 극히 귀했습니다.

그 가운데에 우파사나(優波斯那)라고 하는 여자 신도, 청신녀(淸信女)가 있었는데 그이가 우연히 그 이웃나라 사위국에 놀러갔다가 거기서 어떤 거사(居士)를 만났습니다.

거사한테, "참! 석가모니(釋迦牟尼) 부처님이라 한 분이 출세(出世)를 하셨는데, 그분은 삼십이상(三十二相)과 팔십종호(八十種好)를 갖추셨으며, 왕궁에 부귀를 버리고서 출가(出家)해 가지고 12년 만에 대도(大道)를 성취해 가지고 그래 가지고 지금 견성성불(見性成佛)을 해서 설법을 하시는데, 그 부처님을 친견하고 법문을 들으면은 무량억겁(無量億劫) 죄가 소멸이 되고, 그래 가지고 그 법문에 의지해서 수행을 하면은 생사고(生死苦)를 면하고 영원한 행복을 얻는다" 그런 부처님의 그 공덕(功德)을 그 거사로부터 듣고서는 '아! 나도 한번 그 부처님을 친견하리라'

그래 가지고 마음을 먹고 부처님이 계시는 기원정사(祇園精舍)로 친견을 하러 갔습니다. 갔는데 먼빛으로 봐도 마치 저 하늘에 수천 개 수만 개의 번쩍거린 그 뭇별 속에 둥근달처럼, 먼 데서 봐도 대번에 알아차릴 만큼 그렇게 거룩하신 부처님이 많은 제자들에 둘러싸여서 사부대중에게 설법을 하시는데 그 낭랑(朗朗)한 음성이 기가 맥히다 그 말이여.
그래서 감히 황송해서 가까이 가지를 못하고 저 뒤 한쪽 구석에 앉아서 경건한 마음으로 법문을 듣는데, 부처님이 그때 마침 무슨 법문을 설하셨냐 하면은 '다섯 가지 지켜야 할 성(聖)스러운 행실(行實)'에 대해서 말씀을 하시는데,

첫째는 산목숨을 죽이지 말아라.
산목숨을 죽이면은 자비심(慈悲心)을 손상을 하고, 그래 가지고 무간지옥(無間地獄)에 떨어져서 한량없는 고(苦)를 받되 내생(來生)에 다시 사람으로 태어나되 단명보(短命報)를 받을 것이다.
그런데 살생(殺生)을 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죽을 목숨을 살려주고 이렇게 해서 그런 그렇게 행(行)을 가지면은 세세생생(世世生生)에 건강하게 그리고 수명(壽命)이 장수(長壽)할 것이다.

둘째에는 도둑질을 하지를 말 것이니, 도둑질을 하면은 그 도둑질을 한 죄로 무간지옥에 떨어져서 한량없는 고(苦)를 받다가 다행히 사람으로 태어난다 하더라도 빈천고(貧賤苦)를 받어. 가난뱅이 보(報)를 받고 사업(事業)이라고 했다 하면은 재수가 없어서 손재(損財)를 하고 평생에 빈궁보(貧窮報)를 받을 것이다.
그러나 남의 것을 도둑질하지 아니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내가 가지고 있는 재산을 다른 사람에게 보시(布施)를 하고 이리 하면은 그 사람이 세세생생에 거부장자(巨富長者)가 되어서 자기도 쓰고, 쓰고 남아서 모든 사람에게 베풀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셋째에는 사음(邪淫)을 하지 말지니, 자기 남편, 자기 아내가 아닌 사람하고는 관계를 갖지 말 것이니, 만약에 그러한 사음을 하게 되면 무간지옥에 떨어져서 한량없는 고(苦)를 받다가 나중에 다행히 사람의 몸을 받는다 하더라도 모든 사람에게 멸시를 받고 추(醜)한 인간이 될 것이니라.
다행히 사음을 하지 아니하고 청정(淸淨)한 행실을 가지면 세세생생에 모든 사람으로부터 존경을 받고 사랑을 받게 될 것이다.

넷째는 거짓말을 하지 말 것이니, 거짓말을 하면은 그 과보(果報)로 무간지옥에 떨어져서 한량없는 고(苦)를 받게 되다가, 다행히 그 고를 다 받고 사람으로 태어난다 하더라도 아무도 내 말을 믿어주지를 아니할 것이다. 아무리 옳은 말을 나는 힘을 들여서 열심히 말을 한다 해도 내 말은 도무지 남이 신용(信用)을 안 해 주어.
그러나 거짓말을 하지 아니하고 항시 진실한 마음과 말과 행실을 가지면은 어디를 가나 세세생생에 모든 사람으로부터서 신용을 얻게 될 것이다.

다섯째는 술을 마시지 말 것이니, 술을 마시면은 무간지옥에 떨어져서 한량없는 고(苦)를 받다가 다시 사람으로 태어난다 해도 바보, 천치로 태어나서 아무짝에도 못쓸 멍청이가 될 것이다.
다행히 술을 마시지 아니하고 계율(戒律)을 지키면은 머리가 총명(聰明)하고 지혜로운 사람이 될 것이다.

이러한 오계(五戒)를 설하시는 것을 듣고서 이 우파사나 여인은 마음이 황홀해서 너무 신심(信心)이 복받쳐서 부처님 앞—법회가, 법문이 끝나자마자 부처님 앞으로 엉금엉금 기어가 가지고는 오체투지(五體投地)로 절을 하고서, "저에게, 그 저도 오계를 설해 주십시오" 해 가지고,
"참 기특하다" 그러고서 오계를 설해 받았습니다.

오계를 받고서, "제가 여기까지 와서 부처님께 오계를 받았습니다마는, 제가 살고 있는 나라는 모다 우매(愚昧)하고 삿된 소견을 가진 사람이 많으니 그런 사람들에게도 무슨 이익을 줄 수 있는 무슨 선물을 하나 주십시오"
그래 부처님이 "그렇다. 참 기특하구나" 그리고서 『법구경(法句經)』이라고 하는 경을 하나 주셨습니다.

그래서 그걸 주시면서 "이것을 항시 몸에 지니고 항시 큰 소리와 작은 소리와 또 마음속으로 이 경(經)을 외우고 가져서 모든 사람의 귀와 마음에 이 소리가 울려서 일체중생(一切衆生)이 고(苦)를 면하고 진리의 눈을 뜨게 할지니라"
이런 수기(授記)를 받고서 가지고 오는데 너무너무 신심이 나고 환희심(歡喜心)이 나서 참! 자기 고향으로 돌아와서 밤이나 낮이나 이 경을 외웠습니다. 큰 소리로 낭랑하게 외우기도 하고, 자기 귀에 들릴 만큼 가만가만 외우기도 하고 그랬는데.

밤에 참 고요한 틈을 타서 낭랑하게 경을 외우는데, 마치 그 지붕 위를 날아가던 바이슈라마나(비사문毘沙門)라고 하는 하늘나라 신(神)이 모든 권속(眷屬)들을 데리고 그 공중을 날아가다가 그 낭랑한 경 읽는 소리가 들리니까, 날아가다 공중에 딱 정지를 해 가지고 한참 귀를 기울이고 있는데 너무너무 하늘나라 그 선신(善神)들도 환희심이 났습니다.

그래 가지고 참, "선재(善哉) 선재로구나, 참 좋고 좋구나! 이 누이여. 참, 그 너무너무 설법을 잘하는구나" 이렇게 칭송(稱頌)을 하고.
"천상(天上)에 제일가는 보배를 내가 선물로 주고 싶지마는 누이는 그것을 받으려 하지 아니할 것이니, 내가 좋은 희소식(喜消息)을 하나 전해드리겠다. 무슨 희소식이냐 하면은 여기서 멀지 않은 숲속에 사리불존자(舍利弗尊者)와 목련존자(目連尊者)가 오백 명의 스님들과 같이 머물러 계시면서 정진을 하고 계시니, 그 두 성인(聖人)과 오백 명의 스님네들을 초청을 해서 공양을 올려서 무량공덕(無量功德)을 짓도록 하라" 이렇게 하늘에서 큰 소리로 우파사나 여인에게 들려주었습니다.

우파사나는 깜짝 놀래가지고 하늘을 두리번거리고 봤지마는 눈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대관절 당신이 누구이기에 내 이름을 알며 나보고 '누이'라고 하며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그러니까,
"나는 하늘나라에 사는 바이슈라마나라고 하는 천신(天神)인데, 그대가 너무너무 낭랑하고 아름다운 음성으로 경을 읽고 설법을 하기에 내가 그것을 좋아서 듣고 환희심이 나서 내가 이렇게 말하는데. 내가 그대보고 누이라고 한 것은 다름이 아니라, 부처님께서는 모든 성현(聖賢) 가운데에 최고의 법왕(法王)이신데 나와 그대는 그 법왕의 제자(弟子)이므로 그대와 나는 법형제간(法兄弟間)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그대보고 누이라고 한 것이니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 없느니라. 그리고 저 사리불존자와 목련존자와 그리고 오백 명의 스님네들을 초청하고 공양을 하면은 그 존자들이 공양을 잡숫고서는 반드시 축원(祝願)을 해 주실 테니 축원을 할 때에 내 축원도 같이 해 달라고 부탁을 해 주오" 이렇게 부탁을 했습니다.

그래서 너무너무 그 말을 듣고 환희심이 나서 밤이 늦게까지 잠이 안 왔습니다. 너무너무 기쁘면은 잠이 안 오는 것이죠. 그래서 새벽녘에사 간신히 잠이 들었는데, 날이 동이 튼 중도 모르고 잠을 자고 있었는데, 마치 그 집 하인이 산에 나무를 하러 갔습니다.
껌껌할 때 산에 나무를 하러 갔는데, 나무를 하기 위해서 저 높은 나뭇가지 위에 올라가서 도끼로 가지를 찍다가 저 밑에를 내다보니까, 아! 거기에 오백여 명 스님들이 앉아서 고요히 앉아서 참선(參禪)하고 있는데, 그중에 보니까 옛날에 한 번 친견했던 일이 있는 사리불존자와 목련존자가 떠억 계시거든.

'야, 참 기가 맥히구나. 우리 주인 마나님이 그렇게 좋아하시는데, 내가 가서 친견을 하고 인사를 여쭤야겠다' 해 가지고, 나뭇가지에서 내려와 가지고는 사리불과 목련존자 계신 데로 쫓아가서 오체투지로 절을 터억 삼배(三拜)를 하고서는, "우리 주인 우파사나 여인께서 두 존자와 오백 스님네께 문안을 드립니다"
주인 말도 안 듣고, 지가 떠억 지 자작(自作)으로 인사를 하면서 주인의 이름으로 인사를 떠억 올렸다. 올리고서, "오늘 점심 공양에 청(請)을 하겠습니다" 이렇게 떠억 하니까.

그 사리불존자가 "참 기특하구나. 니가 때를 맞추어서 공양 준비를 해 놓고 청을 한다면은 기꺼이 가서 공양을 받겠노라. 니가 가거든 너희 주인께 내 말을 전해라.
공양(供養)을 올리면 어떠한 공덕(功德)이 있다고 하는 것을 전하는데,
첫째는 공양을 어떠한 분에게 공양을 올리는 것이 좋으냐 하면, 첫째는 앞으로 먼 데로 떠나려고 하는 그런 스님네와 그런 사람에게 공양을, 보시를 하면은 좋고.
또 (둘째) 먼 여행을 하다가 돌아온 그러한 사람은 얼마나 지쳐 있겠습니까? 그런 스님네와 그런 사람에게, 그러한 길손에게 보시를 하면은 좋고.
그다음에는 (셋째) 병 들어서 아무도 돌보는 사람이 없거나 그러한 참 고통 속에 있는 그런 병자(病者)에게 보시를 하면은 좋고.
또 (넷째) 가난하거나 먹을 것이 없어서 배가 고파 굶주리는 사람, 그런 사람에게 보시를 하면 좋고.
또 하나(다섯째)는 법(法)을 알아서, 법을 가지고 있는 그러한 선지식(善知識)이나 수행인(修行人)에게 보시를 하면은, 이 다섯 가지의 보시를 하면은 현세에 당장 복(福)을 받는다고 그 말을 너의 주인에게 가서 말을 해라"

그래서 그 하인은 너무너무 기뻐서 나무도 그저 한 둥 만 둥 해놓은 놈만 싸서 짊어지고, 묶어서 짊어지고 집으로 쫓아왔습니다.
쫓아와서 그 하녀보고 "지금 주인마님이 어디 계시냐?" 한게.
"지금 밤 늦게사 잠이 들어서 아직까지 자리에서 안 일어나시니 떠들지를 말아라"
"아니 내가 긴히 여쭐 말이 있으니까 좀 깨와야겠다"

"나는 못 깨운다"
"그럼 내가 가서 직접 깨와야겠다" 다짜고짜로 쫓아가서 주인마님 문을 톡톡 뚜드렸습니다.

주인이 깜짝 놀래서 "게 누군고?" 한게,
"예, 저 아무개입니다"

"무슨 일이냐?"
"지금 그러니까 긴히 여쭐 말씀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 주인마님이 떠억 일어나 가지고 문을 열고 나왔습니다.
"어디 말을 해 봐라. 무슨 일이 있기에 새벽같이 나를 깨우는고?"
"예, 다름이 아니라 제가 새벽같이 산에 나무를 하러 갔는데. 그 숲속에 사리불존자와 목련존자와 그리고 오백 명의 스님네들이 떠억 머물러 계십디다"

"아 그래! 그 참 반가운 소리로구나" 그리고서 아주 보석으로 만든 귀고리를 떠억, 두 귀에 걸려 있는 귀고리를 떠억 빼서, 그 기쁨을 표할 길이 없으니까 귀고리를 뽑아서 주고. "참 고맙구나. 그런 반가운 소식을 나한테 알려주어서 고맙구나" 하고 귀고리를 빼 줬습니다.
"또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그 사리불존자, 목련존자께서 다섯 가지 보시 공덕에 대해서 말씀을 해 주셔서 이러 약허약허한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하고 여쭈니까,

"아 그래! 니가 그러한 좋은 법문을 듣고 와서 나한테 전해 주다니 그러한 고마울 도리가 없구나" 칠보(七寶)로 만든 목걸이를 떠억 빼서 주면서 "너무너무 고마워서 내가 그 보답으로 내가 이 목걸이를 너에게 하사(下賜)하노라"
그래서 목걸이를 떠억 받아서 목에 걸고서 "또 한 말씀, 내가 여쭐 말씀이 있습니다"

"무슨 말인고?"
"오늘 점심에 내가 주인마님 말씀도 듣지 않고 공양을 청(請)해 버렸습니다" 한게.

'너 이놈! 어른 말도 듣지 못하고 감히 니 멋대로 공양을 청해? 괘씸한 놈 같으니라고' 보통 사람 같으면은 천 명이면 천 명 그렇게 말할 텐데.
이 우파사나는 그렇지를 않고, "야, 과연 그렇지 않아도 내가 청할라고 했는데 어떻게 니가 내 뜻을 알고 그렇게 가서 내 대신 청을 했단 말이냐? 너무너무 고맙구나. 내가 너를 위해서 무엇을 해 줘야 옳단 말이냐? 오늘부터 노예를, 내가 종의 문서를 불살라 버리고 너를 해방을 시켜줄 테니, 니 멋대로 인자 자유인이 되어서 어디를 가서 살던지 니 멋대로 살아라" 종의 문서를 불살라 버렸습니다.
"너는 집에 있거나 출가(出家)를 하거나, 산에서 살거나 들에서 살거나, 도시를 가거나 어디를 가거나, 너는 하늘에 별처럼 하늘에 달처럼 모든 어두운 세계를 비출 수 있는 그러한 공덕을 갖게 될 것이다" 이렇게 해서 축원을 하면서 종으로부터 해방(解放)을 시켜줬습니다.

그리고서 손을 씻고 공양 준비를 하고, 손이 모자라서 이웃사람을 초청을 해다가 가지가지 음식을 맛있게 만들고, 그래 가지고는 그 종을 시켜서, 하인을 시켜서 때맞춰서 사리불존자와 목련존자 공양청(供養請)을 했습니다. 공양청을 해서 공양을 맛있게 잡숫게 했는데.
그 공양이 눈으로 보기만 해도 그 빛깔이 아름다와서 먹음직스럽고, 그 음식에서는 너무너무 구수하고 맛있는 향내가 나서 참 식욕을 돋구고, 먹어 보니 산해(山海)의 진미(珍味)가 그렇게 다 갖추어져서 참 맛있게 공양을 드셨습니다.

드시고서 법문을 해 주시는데, "음식에 빛이 좋으면 세세생생에 얼굴빛이 아름답고 곱게 받아 날 것이며, 그 음식에 향그러운 맛이 있으면 세세생생에 그 사람 이름이 명예가 널리널리 퍼져서 그 사람 성명(姓名)만 들어도 모든 사람이 환희심을 내고 존경심을 낼 것이다.
또 음식이 맛이 있으면—음식이 맛있는 음식, 기왕 공양을 올리되 빛깔이 좋고 또 향내가 좋고 또 맛이 좋으면 세세생생에 무엇이고 마음먹은 대로 자기 소원을 성취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공양도, 보시도 좋지만 특히 먹는 음식 공양을 잘 올리면은 세세생생에 큰 힘을, 좋은 힘을 가지고 태어나게 되느니라" 그렇게 법을 설해 주셨습니다.(15분3초~35분45초)




(2)------------------

그때 우파사나는 "제가 한 말씀 다시 여쭐 말씀이 있습니다"
"무슨 말인고?"

"저는 이상해서—항시 그 어떠한 스님네나 성인(聖人)에게 공양을 올릴라고 마음을 먹으면 눈에는 안 보이는데 귓전에 와서 일러주는데, '이분은 아라한과(阿羅漢果)를 증득한 성인이니라, 이분은 아나함과(阿那含果)를 얻은 성인이다, 이분은 사다함과(斯陀含果)를 얻은 성인이다, 또는 이분은 계행(戒行)이 청정한 스님이다, 또는 이분은 계행이 청정하지 못한 스님이다, 또는 이분은 참 지혜가 있는 스님이다, 또는 이분은 아주 어리석은 분이다' 아! 이렇게 귀에다 대고 일러주는 어떤 신(神)이 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는고?"

"그렇게 하지마는, 나는 모든 스님을 다 같이 아라한과를 증득한 그러한 훌륭한 성인으로 알고 다 공양을 올리고 있습니다"
"그렇다. 공양은 니가 그렇게 평등한 마음으로 모든 수행인과 스님들을 갖다가 그렇게 공양을 하니 참 기특하고 기특하구나. 차별심(差別心)을 가지고 공양을 하지 아니하고 평등한 마음으로 존경을 하니, 너의 공양을 받은 사람은 모두가 다 반드시 그러한 큰 성과(聖果)를 성취할 것이다" 그렇게 수기(授記)를 주셨던 것입니다.

그 우파사나는 그 뒤에 어떠한 공양을 올렸느냐 하면은, 어떤 병든 스님이 병에 걸려 가지고 영양실조가 되어 가지고 도저히 차도(差度)가 없이 신음을 하고 있는 스님이 있었는데, 그 스님을 보고 "내가 내일 오정육(五淨肉), 오정육을 구해서 공양을 올리겠습니다"

'오정육(五淨肉)'이라 하는 것은 그 짐승, 소나 돼지나 그 짐승이 죽을 때 죽는 그 현상을 내가 직접 보지 아니한 고기, 또 죽을 때 그 짐승이 죽기 싫어서 비명을 지르는 그 소리를 듣지 아니한 고기, 그리고 나를 위해서 일부러 죽이지 아니한 고기, 그리고 세 사람 손 이상을 건너간 고기, 또는 독수리나 범이나 그러한 짐승이 먹다가 버린 고기, 이러한 다섯 가지 종류에 고기를 '다섯 가지 깨끗한 고기다' 해서, 이것을 '오정육'이라 하는데.
"제가 이 오정육을 구해 가지고 공양을 올리겠습니다" 이렇게 약속을 했습니다.

약속을 했는데 그 이튿날 고기를 사러 나가니까, 그날은 국법(國法)으로 일체 살생(殺生)을 못하고 팔지 못하게 제정(制定)이 되어 있는 날이라 어느 푸줏간을 가도 고기를 살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곱으로, 삼 곱, 십 곱을 줄테니까 고기를 구해 달라고 이리저리 다 손을 썼지마는 종내(終乃) 그 고기를 구하지를 못했습니다.
근데 '그 병든, 그 앓고 계신 스님께는 꼭 갖다 드리겠다고 약속을 했는데 어떻게 내가 이 약속을 어길 수가 있을까?' 그래서 할 수 없이 집안 식구 아무도 몰래 자기 허벅지 살을 도려내 가지고 그것으로 잘 요리를 해서 그 스님께 갖다 바쳤습니다.

그 스님은 그것이 그 우파사나의 허벅지 살인 중도 모르고 그것을 잡숫고서 병이 쾌차가 되어서 참 도(道)를 잘 닦으셨으나, 우파사나는 그 살점뱅이를 그걸 오리기를 뭐 한 점을 오리겠습니까, 두 점을 오리겠습니까? 기왕 공양을 올리기로 하면은 적어도 한 근 이상 해야 약으로 사용할 만하기 때문에 상당히 많은 살점뱅이를 뜯었으니 그것이 몇 달 동안 고생을 하셨겠느냐 그 말이여.
그래도 그것을 아무한테도 말을 안 하고 혼자 옷 속에서 치료를 했는데, 그러한 그만큼 그 우파사나는 부처님과 부처님 제자들에게 그 수행하는 스님네를 공양을 하기를 이렇게 참 돈독한 신심(信心)으로 공양을 올렸습니다.

여러분들은 '그런 분이야 보살화현(菩薩化現)이지, 우리 같은 사람이야 그렇게 할 수 있겠나?' 혹 그렇게 생각하실런지 모릅니다마는.
부처님도 과거세(過去世)에 자기의 눈도 빼 주고 살도 도려 주고, 자식도 다 호랭이에게 보시를 하고, 자기 몸을 짓쳐서 자기 몸뚱이를 주린 범에게 보시를 하고, 이러한 참 수없는 생(生)을 그렇게 행(行)하기 어려운 것을 행해 가지고, 삼십이상(三十二相)과 팔십종호(八十種好)와 팔만세행(八萬細行)이 갖춘 그런 덕(德)과 지혜(智慧)가 원만히 갖추어진 성현으로서 출세를 하셔서 이렇게 무량중생을 제도(濟度)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경(經)을 외운 공덕으로도 이만큼 큰 공덕을 쌓아서 대도(大道)를 성취하게 하고 또 대도를 성취할 수기(受記)를 받거든, 하물며 최상승법(最上乘法)인 이 참선 공부를 하면 어찌 이 경을 외운 그러한 공덕에다가 비유할 수 있겠습니까?

「'이뭣고?' 화두 한 번 드는 공덕이 '관세음보살'이나 '옴마니반메훔'이나 또는 '아미타불' 같은 이러한 염불이나 주력(呪力) 육백만 번 한 공덕보다도 더 수승(殊勝)하다」 이러고.
「팔천세(八千世)를 경을 외우고 삼천겁(三千劫) 동안을 청정한 계율을 지킨 공덕보다도 잠깐 동안 '이뭣고?' 하고 참선(參禪)하는 공덕이 더 수승하다」 했습니다.

여러분은 참선은 해 보면 별 재미도 없고, 만날 해 봤자 죽 떠먹은 자리요. 무엇이 눈에 보인 것이 있고 나타난 것이 있고, 1년 이태 3년 내지 10년을 해도 누구한테 내놓을 것이 하나도 없다 그 말이여.
그러니 그거 해 봤자 별 볼 일 없고, 어쨌든지 관세음보살을 부른다던지 또는 허공산제(虛空山祭)를 지내서라도 무슨 소원을 성취한 것이 있어야지, '이뭣고?' 해 봤자 잠만 퍼오고 망상(妄想)만 일어나고 재미는 없고 이거, '에이, 그거 조끔 좋다고 해 보니 별 볼 일 없다' 이래 가지고 버렸다가, 또 법문(法門) 들어보면 '그래도 좋다니까 해 보자' 해 보면 안 되니 또 그만두었다가.

이것 좀 했다 저것 좀 했다, 『천수(千手)』 좀 외웠다, 『금강경』이 좋다 하면 금강경 좀 읽어 보고, '옴마니반메훔'을 읽으면 '옴마니반메훔' 해 보고, 또 기도를 가면 좋다니 기도를 좀 해 보고.
단양(丹陽)으로 갔다가, 동해로 갔다 서해로 갔다, 좋다고만 하면 발이 닳아지게 쫓아다니는데, '우물을 파도 한 우물을 파라' 이것이여.

좋은 우물은 조끔 파 가지고 물이 나는 법이 없습니다. 조끔 깔짝깔짝해서 물이 나온 것은 그건 대개가 다 건수(乾水)로, 장마철에는 풍풍 나오다가 며칠 지내면은 바짝 말라서 가뭄에는 물 한 방울 안 나오는 것입니다.
한 질 파서 안 나오면 두 질 파고, 두 질 파서 안 나오면 석 질, 석 질 파서 안 나오면 열 질, 열 질 파서 안 나오면 스무 질, 계속 파 들어가면 나중에는 암반(巖盤)이 나올 것이다 그 말이여.
암반이 나오면 거기서 그만둘 것이 아니라 그 암반까지, 무슨 수를 쓰던지 그 암반까지 뚫어 버리면 거기서 물이 펑펑 솟아오르는데, 그것은 장마 진다고 해서 물이 더 불지도 않고, 몇 해를 가문다 하더라도 그 암반 밑에 있는 지하수(地下水)는 가뭄을 타는 법이 아닙니다. 그 물이야말로 시원하고 달고 겨울에는 뜨끈뜨끈하고 여름에는 시원하고 이런 것입니다.

도(道)를 닦으면 세세생생에 쓰고 쓰고 남을 공덕이 그 속에 있고, 세세생생에 누리고 누려도 다함이 없는 영원한 행복, 영원한 재산이 거기에 있는데, 어찌 조끔 깔짝깔짝해 가지고 얻기를 바랜다면 그것은 욕심이 태과(太過)한 사람인 것입니다.
안 된다고 그만두어 가지고서는 세세생생에 무엇을 해먹고 살겠습니까? 세속에 조그만한 사업 하나도 몇 번을 실패하고 '죽을까, 말까?' 참 이러한 피나는 고통을 겪으면서 되풀이하면서 해 가지고 마침내 성공하는 법인데.
이 최상법(最上法) 무상대도(無上大道)가 어찌 그렇게 간단하게 쉬웁게 될 것을 바래서는 안 될 것입니다. 안될 때에 오히려 더 용기와 지혜와 끈기로써 밀고 나가는 그러한 사람이 아니고서는 대도를 이루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도(道)가 어려운 것만을 내가 얘기한 것이 아니라, 이 도라고 하는 것은 '내게 있는 것을 내가 찾는 것'이지, 저 먼 데에 가 있고, 저 깊은 무슨 바닷속에 가 있고 그런 것이 아니라,
지금 이 말하고 있는 놈, 이 말을 듣고 있는 놈, 밥을 먹을 때, 똥을 눌 때, 성을 낼 때, 슬퍼할 때 바로 거기에 내가 찾아야 할 본바탕 마음이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언제나 앉었을 때나, 섰을 때나, 일할 때나, 속이 상할 때나, 슬플 때나, 괴로울 때나 그때그때가 바로 내 본마음 찾는 수도장(修道場)인 것입니다.
바로 그 자리에서 한 걸음도 옮기지 말고, 일 초도 옮기지 말고 그 자리에서 바로 '이뭣고?' 이렇게 간절한 마음으로 화두(話頭)를 들어 나가는 것입니다. 하루를 그렇게 지내고, 이틀을 그렇게 지내고, 사흘을, 한 달을, 일 년을, 이태를, 삼 년을 이렇게 한결같이 밀고 나가면 할라고 안 해도 어떠한 찰나(刹那)에 터억 화두가 들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 자리에 앉아 계신 사부대중 가운데에는 이러한 경험을 다 해 보신 분도 많이 계시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이건 결정코 있는 것이고, 오는 것이고,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한 깊은 신념(信念)을 가지고 해야 할 것입니다.

왜 이것이 되느냐 하면, 우리는 본래 부처님이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교(敎), 경(經)에는 '우리도 불성(佛性)을 가지고 있다' 했지만, '불성을 가지고 있다' 하니까 불성이란게 뭐냐? 무슨 보물 덩어리냐? 무엇을 가지고 불성이라고 하냐?
근데 '불성을 가지고 있다'고 한 표현을 달리 바꾸어서 말하면, '우리도 낱낱이 다 부처님이다' 그 말이여.

보석에다가 비교하면 '보석이 먼지에 덮여 있는 상태다' 먼지에 덮여 있어서 그 보석의 빛이 밖으로 나타나지 아니할 뿐이지, 아무리 먼지가 끼어 있다고 해서 그 보석이 보석 아닌 것이 아니거든. 그 먼지만 닦아 버리면 찬란한, 오색(五色)이 찬란(燦爛)한 빛이 나올 것이고, 닦지 아니하고 놔두면 계속 먼지에 파묻혀 있을 뿐이지 보석임에는 다름이 없다 그 말이여.
우리도 분명히 부처님인데, 다못 '번뇌(煩惱) 속에 가리워져 있는 부처님'이다 그 말이여.

우리가 보석에 묻어 있는 먼지만 닦아 버리면 바로 찬란한 보석이 되듯이, '이뭣고?' 번뇌 망상 일어날 때마다 자꾸 '이뭣고?'를 한 것은 바로 그것이 내 본마음으로 돌아가는 길이거든.
본래 부처인데 새로 부처가 될 것이 없건마는 그래도 닦아야지. 먼지를 닦아내야 찬란한 빛이 나듯이 닦지 아니하고 놔두면 무량겁(無量劫)을 두고 먼지에 쌓여 있는 보석과 같애서 빛을 발휘할 수가 없어. 그러기 때문에 열심히만 닦으면 반드시 되게 되어 있는 거다 그 말이여. 어느 보석에 먼지 닦아서 번쩍거리지 아니할 보석이 어디가 있겠느냐.

그러한 신념을 가지고 '여자다 또는 나는 무식하다, 나는 머리가 좋지 않다, 배운 것이 없다, 나는 이미 늙었다, 나는 힘이 없다' 그건 다 스스로 자기가 자기를 버리는 것이여.
도 닦는데 가장 큰 옳지 못한 생각이 무엇이냐 하면은 자포자기(自暴自棄)하는 것입니다. 자포자기한 사람은 도저히 어떻게 해 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나도 할 수 있다'고 믿고, '하면 된다'고 믿고, '나도 부처다'고 일단 믿고 대든 사람은 아무리 어리석건 바보건 천치건, 여자건, 나이가 많건 상관이 없이 그 사람은 기어코 되고만 마는 것입니다.

저 밑에 낭떠러지에 떨어진 사람을 저 위로 끌어올릴라고 할 때에 본인이 기어나올라고 한 사람은 손을 뻗쳐 주어도 올라올 것이요, 장대나 어떤 노끈을 던져 주어도 그 사람을 끌어올릴 수가 있을 것입니다마는.
본인이 올라올라고 하지 아니한 사람은 위에서 아무리 어떻게 해 줄라고 해도 어떻게 해 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본인이 안 올라오고 뒤로 자빠지면서 올라올려고 노력을 안 한 사람을 어떻게 끌어올려 주겠습니까?
삼세제불(三世諸佛)이 출현(出現)을 하신다 해도 본인이 이를 갈아붙이고 발버둥을 치면서 할라고 대든 사람이라야 되는 것입니다.

이 가운데 계신 모든 청신사 청신녀 사부대중은 우파사나(優波斯那)와 같은 그러한 신심을 가지고 보시 공덕을 쌓고, 경을 외우고, 화두를 들고 참선을 하신다면은 한 사람도 낙오자가 없이 다 같이 불도(佛道)를 이룰 날이 머지않은 장래에 올 것을 저는 믿고 기대를 하는 바입니다.(35분45초~52분39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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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700여 개의 ‘참선 법문(法門)’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 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 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그리고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도 있습니다.

참선법 A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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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700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인과 · 인연 · 비유2021. 1. 18. 19:28

§((190)) 인과의 법칙은 어김없다(現生報, 順生報, 順後報) / 참선 수행인들은 내생(來生)에 도솔천 내원궁에 태어나기를 원(願) / 한 생각 돌이켜서 '이 뭣고?'를 듦으로 해서 삼재(三災)는 계정혜(戒定慧) 삼학(三學)으로 변하고, 팔만사천 마구니는 팔만사천 불보살(佛菩薩)로 변해질 것이다.


인과의 법칙은 자기가 지은 원인에 따라서, 이것은 행동[身]뿐만이 아니라, 말[口]로 짓는 죄 또 생각[意]으로 지은 것까지도 하나도 어김없이 다 결과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송담스님(No.190)—1983년 입춘 법회(83.02.04) (용190)



약 14분.

무당이나 점쟁이한테 쫓아가 가지고 모든 일이 해결이 된다면 무엇이 걱정을 할 것이 있습니까? 돈 많은 사람은 무당을 차라리 자기집에다가 모셔다 놓고, 조실 스님으로 모셔 놓고 백만사(百萬事)를 의논한다면은 무슨 소원을 성취를 못하고, 무슨 도를 깨닫지 못하고, 장관이나 국회의원이나 대학 합격이나 무엇이 걱정이겠느냐 그말이여. 점쟁이 하라는 대로만 하면.


그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받는 모든 재앙이나 복(福) · 불복(不福)은 우리가 무량겁(無量劫)으로 오면서 지은 우리의 업(業)에 의해서 받어지는 것이고, 현실적으로 우리가 짓는 대로 받는 것이여.


그 여러분 가운데에는 그 말이 잘 믿어지질 않고 '우리가 별로 죄(罪) 지은 것도 없는디 왜 이러한 액난(厄難)을 당해야 하느냐. 그것은 맞지 않는 소리다' 또 '아무개는 평생 동안 법이 없어도 살 그렇게 정직하고 그렇게 착하고 한데 왜 그러한 못 당할 일을 당하느냐. 그러니 그것도 맞지 않는 말이다' 또 '아무개는 그렇게 평생을 사기를 처묵고 살고 못된 짓만 하고 살아도 그렇게 잘사는 걸 보면 그거 다 인과(因果)라는 게 멀쩡한 소리다' 이렇게 생각을 하는 분이 있을는지 모릅니다마는.


인과(因果)의 법칙이, 금생에 지어 가지고 금생에 당장 받는 그런 현생보(現生報)가 있어요.

그런 금생에 지어 가지고 금생에 받는 것을 현생보(現生報)라 그러고, 금생에 지어 가지고 이 다음 생에 받는 것을 순생보(順生報)라 그러고, 또 금생에 지어 가지고 저 몇 생을 가 가지고 훨씬 뒷 생에 가서 받는 그러한 것을 갖다가 순후보(順後報)라 그러는 거여.

현생보(現生報), 순생보(順生報), 순후보(順後報) 이렇게 세 가지로 지은 원인에 따라서 그 결과를 받게 됩니다.

금생에 지어 가지고 금생에 당장 받는 예도 우리는 얼마든지 볼 수가 있고 금생에 지어...(녹음 끊김).


삼생(三生)을 다 환히 보는 성현들의 말씀에 의지하면, 크게 세 가지 종류로 받게 되기 때문에 혹 금생에 그렇게 못된 짓을 해도 금생에 그 과보를 안 받는 경우도 있고, 금생에 그렇게 착한 일을 하고 훌륭함에도 불구하고 금생에 그 좋은 과보를 받지 않는 것을 우리는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 가지의 종류로 받을지언정 기어코 언제 받던지 자기가 지은 것은 좋은 것은 좋은 것대로 받고, 악한 것은 악한 대로 그 과보(果報)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터럭끝 만큼도 차이가 없습니다.

컴퓨타(computer)로 따지고, 전자계산기로 따진 것보다도 훨씬 더 정확한 것이 이 인과(因果)의 법칙인 것입니다.


그 컴퓨타는 그 재료를 거기다가 넣는 그 범위 내에서만 나오는 것이지, 그 재료를 넣지 아니하면 나오지를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과의 법칙은 자기가 지은 원인에 따라서, 이것은 행동[身]뿐만이 아니라—행동으로 살생을 하고, 행동으로 도둑질을 하고, 행동으로 음행을 하고, 행동으로 거짓말을 하고, 행동으로 죄를 범하는 것뿐만이 아니라—말[口]로 짓는 죄 또 생각[意]으로 지은 것까지도 하나도 어김없이 다 결과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 죄는 소승적(小乘的)인 계율(戒律)로 보면, 속으로는 누구를 죽이려고 마음을 먹었다 하더라도 행동으로만 죽이지 아니하면 그것이 죄가 성립이 되지 않습니다. 또 현대의 모든 법률도 마음으로 온갖 도둑질을 하고, 온갖 못된 짓을 하려고 마음을 먹었다 하더라도 행동으로 범하지만 않으면 처벌을 받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대승법(大乘法)에 있어서는, 우리의 인과의 법칙에 있어서는 속으로 생각을, 행동으론 옮기지 안 했어도 속생각으로만 한 생각 먹었다 하더라도 이미 죄를 범한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대승법, 최상승법(最上乘法)에서는 그 모든 행동의 근원이 되는 생각을 바르게 다스려 나가도록 노력을 하는 것입니다.

생각으로 남을 도울 생각, 좋은 생각을 하면 그 좋은 생각으로 인해서 우리는 천상(天上)에 태어날 수가 있습니다. 또 생각으로 '누구를 죽이리라, 무엇을 훔치리라, 누구하고 무슨 음행을 하리라' 이러한 생각을 먹어도 이미 그 사람은 지옥(地獄)에도 갈 수가 있고, 축생(畜生)에 떨어질 수도 있고 그러한 과보(果報)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가만히 앉아서도 우리는 천당(天堂)에도 갈 수가 있고, 한 걸음도 옮기지 않고서도 독사가 될 수도 있고, 소가 될 수도 있고 또 지옥에도 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최상승법에서는 지옥에 가기를 싫어하지도 아니하고 천당에 가기를 바래지도 않습니다. 왜 그러냐?

지옥에 가면, 한 생각을 일으켜서 지옥에 가기를 싫어하는 마음을 내도 이미 한 생각이 움직였기 때문에 육도(六道) 중에 어느 곳엔가는 우리는 떨어지게 되는 것이고, 또 천당에 가기를 원하지를 않지만, 천당에를 가기를 원하나 원하지 않으나 이미 한 생각은 동(動)한 것이기 때문에 육도 중에 어느 곳엔가는 또 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천당에 가 봤자 자기가 지은 공덕(功德) 만큼 다 받으면 다시 또 떨어지게 되고, 그러기 때문에 천당에 가는 것을 그렇게 좋아하지를 않습니다.

어느 종교에서는 천당에만 가면은, 천당에 가는 것이 모든 자기 종교를 믿는 구경(究竟)에 목적으로 삼고 있지만, 천당에 가는 것 별로 좋지 않습니다. 천당에 가 봤자 자기가 지은 만큼 다 복(福)을 받으면 다시 떨어지는 것입니다. 활을 하늘에다 대고 쏘면 그 힘이 다하면 다시 지상에 떨어지는 거와 똑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그 천상도 옅은 데로부터서 저 높은 데에 이르기까지 한량이 없습니다마는, 그 천상 가운데에 도솔천(兜率天)이라 하는 곳이 있어.

도솔천에도 내원(內院)과 외원(外院)이 있는데, 외원궁(外院宮)에 가도 거기에는—이 지구가, 이 세계가 온통 불이 나 가지고 불로써 온 세계가 다 타 버리는 때가 언젠가는 옵니다마는, 그 불이 도솔천 외원궁까지는 그 불길이 닿아서 타 죽습니다. 그런데 그 내원궁(內院宮)에는 그 불길이 미치지를 못해요.

그래서 성현들이, 앞으로 이 사바세계(娑婆世界)에 강림(降臨)하실 부처님이나 모든 성현들이 그 도솔천 내원궁(兜率天內院宮)에 가서 계시는 것입니다.


석가모니(釋迦牟尼) 부처님께서도 인도(印度)에 가비라(迦毘羅 kapila) 왕국에 삼천년 전에 태어나시기 전에 그 도솔천 내원궁에 계시다가 이 사바세계에 오셨고, 앞으로 56억 7천만 년 뒤에 이 사바세계에 석가모니 부처님의 다음 부처님으로 출현하실 미륵 부처님, 미륵불(彌勒佛)도 현재 도솔천 내원궁(兜率天內院宮)에 지금 계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이 참선하는 수행인들은 내생(來生)에 몸을 받아나되 도솔천 내원궁(兜率天內院宮)에 태어나기를 원(願)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거기에 가면 바로 미륵 부처님을 비롯한 많은 성현(聖賢)들을 친견(親見)할 수가 있고, 거기 가서 그러한 부처님의 법문을 듣고 확철대오를 해 가지고 빨리 이 사바세계에 내려와서 한없는 중생을 제도하리라 이러한 원을 가지는 것입니다.


그 도솔천 내원궁을 제외하고는 다른 천상에 태어나 봤자 그것은 영원한 곳이 아니기 때문에 천상에 태어나는 것도 우리는 별로 좋아하지를 않는 것입니다. 천상에 태어난 것도 바래지 아니하고, 또 지옥에 태어나는 것도 싫어하지를 아니하고 무엇을 생각하느냐?


'이 무엇고?'


좋은 일을 봐도 '이 뭣고?',

궂은 일을 봐도 '이 뭣고?',

눈으로 무엇을 보아도 '이 뭣고?',

귀로 무슨 소리를 들어도 '이 뭣고?',

몸에 병이 나도 '이 뭣고?',

집안에 경사스러운 일이 있어도 '이 뭣고?',


일체처(一切處) 일체시(一切時)에 일분일초를 등한(等閑)히 보내지 아니하고 '이 무엇고?' 우리의 본참공안(本參公案)으로 우리의 생각 생각을 돌이킬 때에 팔만사천 마구니가 들어붙을 틈을 주지를 않는 것입니다. 팔만사천 마구니가 들어붙지 못하는데 무슨 삼재(三災)가 우리에게 붙을 것이냐 그말이여.

설사 과거에 어떤 지은 업(業)에 의해서 삼재가 우리에 붙은다 하더라도 그 삼재는 한 생각 돌이켜서 '이 뭣고?'를 듦으로 해서 그 삼재(三災)는 계정혜(戒定慧) 삼학(三學)으로 변할 것입니다.

팔만사천 마구니가 우리에게 붙기 위해서 전후좌우에 엿보고 있다가도 '이 뭣고?'를 들면, 그 마구니가 찰나간에 팔만사천 불보살(佛菩薩)로 변해질 것이다 그 말이여.(43분18초~56분47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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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600 개가 넘는 ‘(참선) 법문’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 있습니다.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600 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인과 · 인연 · 비유2020. 12. 4. 10:24

§((575)) (게송)파납몽두올연좌~ / 유마의 두구(杜口) / 송담스님의 출가 묵언 / 인과(因果)의 법칙 / 부처님의 조국 가비라국의 멸망 인연 / 부처님의 두통 인과.

우리나라와 일본과의 인연 / 탐심(貪心), 진심(瞋心), 치심(癡心)은 중생의 재산 / 역행보살(逆行菩薩) / 무서운 죄를 미연에 방지하려면 '이뭣고?'를 해야 한다.

 

**송담스님(No.575)—1996년 9월 첫째일요법회(96.09.01) (용575)

 

(1/4) 약 21분.

 

(2/4) 약 21분.

 

(3/4) 약 20분.

 

(4/4) 약 5분.

 

(1/4)----------------

 

파납몽두올연좌(破衲蒙頭兀然坐)하니  부귀영예운외몽(富貴榮譽雲外夢)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병옹수무일립미(甁甕雖無一粒米)나  만고광명조대천(萬古光明照大千)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종두생두영수형(種豆生豆影隨形)한데  삼시업과여경조(三時業果如鏡照)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자작자수무회피(自作自受無廻避)라  나득원천갱우인(那得怨天更尤人)이리오

나무~아미타불~

 

파납몽두올연좌(破衲蒙頭兀然坐)하니, 떨어진 누데기로 머리를 무릅쓰고 올연히 앉았으니, 부귀와 영예가 구름 밖에 꿈이로구나.

병옹수무일립미(甁甕雖無一粒米)나, 쌀 도가지에 비록 한 알갱이 쌀도 없지마는,

만고광명조대천(萬古光明照大千)이로구나. 만고(萬古)에 광명이 대천세계(大千世界)를 비추는구나.

 

이것은 누데기를 입고 가난한 수행하는 수행자의 생애를 읊은 게송입니다.

 

종두생두영수형(種豆生豆影隨形)이요. 콩을 심으면 콩이 나는 것이 마치 그림자가 그 형체 따르듯 한다 그말이거든.

삼시업과(三時業果)가 여경조(如鏡照)요. 과거 · 현재 · 미래를 통해서 업보(業報)가 거울에 비추듯이 환하다 이거거든.

 

자작자수무회피(自作自受無廻避)여. 자기가 지어 가지고 자기가 받는 것이라 피할 곳이 없어.

나득원천갱우인(那得怨天更尤人)이리요. 어찌 하늘을 원망하고, 다시 다른 사람을 허물할까 보냐.

그게 다 인과법(因果法)이 역연(歷然)해서 모든 과보는 자기가 지어서 자기가 받는 것이지, 하늘이 억지로 죄를 주며, 자기가 죄 받는 것을 남을 원망할 것이 없다. 이것도 역시 고인(古人)의 시입니다.

 

 

방금 전강 조실 스님의 녹음법문(錄音法門)을 통해서 제방(諸方)에서 또는 용화선원에서 여름 삼하결제(三夏結制), 삼하안거를 마치고 다시 이 자리에 모인 여러 선배 · 후배 · 형제자매 · 도반들을 위해서 정진하는 데 아주 요긴한 법문을 들었습니다. 여기에 산승(山僧)이 더이상 무슨 말을 첨가해서 말을 할 것이 있겠습니까.

 

유마거사(維摩居士)가 병을 앓았습니다. 병을 앓고 있으니까 부처님께서 그 제자들로 하여금 가서 문병을 하도록 지시를 하셨습니다.

인도에 유마거사나, 중국에 방거사(龐居士)나, 우리나라에 부설거사(浮雪居士)는, 그밖에도 많은 훌륭한 거사님네들이 참 출가해서 도 닦은 스님네와 맞먹거나, 못지않는 훌륭한 거사님네들도 많이 있었습니다마는, 언필칭(言必稱) '인도에 유마거사, 중국에 방거사, 한국에 부설거사' 이렇게들 말합니다. 물론 현대에도 깨달은 그런 거사님들도 여기저기 모다 있으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그 유마거사가 병이 나서 부처님께서 여러 제자들을 문병(問病)을 가도록 지시를 했는데, 부처님 제자들이 모두 다 '과거에 어디서, 언제, 어떻게 하다가 유마거사한테 방(棒)을 맞고, 그래서 차마 얼굴을 들고 문병을 갈 수가 없습니다' 전부가 한결같이 다 사절을 했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부처님께서는 문수보살(文殊菩薩)에게 문병을 가도록 지시를 하셨습니다. 그래서 문수보살은 여러 보살들 가운데에도 으뜸가는 보살이라, 부처님께서 지시를 하시니까 가시기로 했습니다.

문수보살이 간다 하니까 여태 사절하고 못 간다고 한 부처님 제자들이 '아, 그렇다면 우리도 문수보살을 따라서 가겠습니다' 와! 하고 따라나섰습니다. 그래가지고 유마거사가 앓고 있는 집으로 문병을 갔습니다.

 

가서 문수보살이 문병을 하기를, "어쩌다가 이렇게 병환이 나셨습니까?"

"중생이 병을 앓고 있기 때문에 나도 앓고 있습니다"

 

"언제나 병이 나으시겠습니까?"

"중생이 병이 다 나으면 내 병도 나을 것입니다" 이렇게 병문안(病問安)을 마치고.

 

유마거사는 "기왕 이렇게 모였으니 우리가 불이법문(不二法門)에 대해서 각기 자기의 깨달은 바를 얘기를 하는 것이 좋겠다" 이렇게 해서 부처님 제자들이 모두 차례차례 자기가 깨달은 바를, 불이법문에 대해서 깨달은 바를 말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문수보살이 불이법에 대해서 말하게 되었습니다. 뭐라고 말을 했냐 하면은 "불이법은 말로써 할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거기에 모인 모든 부처님 제자들이 모두가 다 참, 불이법에 대해서 가장 잘 말을 했다고, 대답을 했다고 모두 감탄을 하고 칭찬을 했습니다.

 

"그러면 맨 마지막에 유마거사께서 불이법에 대해서 말씀을 하십시오" 이렇게 되었습니다.

유마거사는 아무 말도 않고 묵언(默言)을 했습니다. 입을 딱! 다물고 말을 안 해.

 

그것을 선가(禪家)의 문구로 '양구(良口)'라고 하는데—유마경에는 '막을 두(杜)'자, '두구(杜口)'라고 쓰여 있는데—양구(良口), '어질 양(良)'자, '입 구(口)'자, 양구라 그러는데.

양구라 하는 것은 무슨 법을 묻는데 대해서 입을 딱! 다물고 아무 말도 안 하고 한참 있는 거동인데, 양구를 하니까 거기에 모인 모든 대중들이 정말 유마거사야말로 불이법에 대해서 가장 훌륭하게 일렀다고 모다 찬성을 했습니다. 그래서 '유마(維摩)의 두구(杜口)’라고, 그런 문자로 지금까지도 참 널리 회자(膾炙)되고 있는데.

 

나는 학생 때 그 유마경(維摩經)을 읽고서 그 유마거사가 양구를 한 그 뜻을, 그 참다운 그 진리를 어찌 내가 알았으리요. 진짜 깨달은 것은 아니고, 속담에 「웅변은 은(銀)이라면 무어(침묵)는 금(金)」이라든가 그런 속담도 있듯이 '정말 그 말을 안 함으로써 최고의 진리를 여지없이 표현한 도리가 있구나' 껍데기로, 겉으로 그러한 느낌을 가졌어.

'내가 만약에 출가해서 중이 되면 일생 동안을 말을 하지 않고 완전히 벙어리가 되어서 수행을 하고, 벙어리로서 일생을 마치리라' 이러한 건방진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래서 중이 되어 가지고 전강 조실 스님의 지시에 따라서 '아무리 참선을 하더라도 기초 염불은 해야 되는 것이다. 천수(千手)와 쇳송[鍾頌]과 예불 젓숩고, 상단(上壇) · 중단(中壇) · 각단예불(各壇禮佛)은 할 줄 알아야 하고, 사시(巳時)에 마지(摩旨)는 올리고, 그놈을 또 올릴 줄 알아야 한다' 그래서 한 일주일 걸려서 주야불철하고 그것을 읽고 외우고 해 가지고 조실 스님께 바치고.

그 목탁(木鐸) 치는 법, 모다 요령(鐃鈴) 흔드는 법도 전부 조실 스님한테 직접 배우고. 배우기는 배워 놓고는 한 번도 제대로 써먹지도 못하고 바로 묵언에 들어갔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군대 안 갈라고 내가 묵언을 했다'고, 그런 사실과 다른 얘기로 말을 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때는 한국에 병역법이라는 것이 없었습니다. 없어 가지고, 군대고 무엇이고 그런 것도 없고.

다못 내가 일생을 이 세상에 안 태어난 셈 치고, 벙어리로서 이 세상을 아주 오직 하나만을 심중(心中)에 세우고, 그렇게 병신 노릇을 할라고 한 사람이지, 무슨 그때는 군대 그런 것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런데 한 10년을 묵언을 하다가 조실 스님께서 '이제 그만해라. 수행 방법으로써 묵언이지, 묵언을 하기 위한 묵언이라는 것은 그것이 썩 의의가 있는 것이 아니다'

조실 스님께서 그렇게 명령을 하셔서 묵언을 텄습니다마는, 지금도 역시 그때 조실 스님의 명령에 의해서 마지못해서 입은 열기는 열었지만, 지금도 계속해서 차라리 묵언을 한 것이 나 자신을 위해서는 더 좋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가끔 해 봅니다.

 

사실 이렇게 법상에 올라와서 두서없는 말을 하고 있지마는, 내가 제일 좋아한 것은 차라리 유마거사의 흉내를 내서 말을 하지 않는 것을 퍽 마음으로 좋아합니다.

유행가에 뭐 '마음 약해서 잡지 못했네. 돌아서는 그 사람~' 뭐 그런 말이 있는데, 마음이 약해서 이렇게 참—여러분 앞에 내가 제일 좋아하고, 여러분 앞에 정말 하고 싶은 말은 입을 딱 다물고 있는 것이 나 자신을 위해서도 좋고, 여러분을 위해서도 좋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을 하면서—이렇게 또 말을 하고 있습니다. 널리 내 마음을 이해해 주시기를 부탁을 드립니다.

 

요새 여러분들은 뉴스를 통해서 전직 대통령이 모다 그 사형언도를 받고, 징역을 받고, 모다 그런 것을 잘 알고 계실 텐데, 우리에게는 그 각기 나름대로 그런 것에 대한 충격도 받고 모다 여러 가지 감회가 있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생각기에는 그 형량이 많고 적고 그런 것에 대해서 왈가왈부해 봤자 한이 없는 것이고, 미래에 있어서 동서양 대소 국가 모든 대통령을 비롯한 고관대작을 맡고 있는 각부 장관이나, 대소 관료들이 이 재판을 통해서 정말 거울삼아서 일대 각성(覺醒)을 해서, 자기의 직분을 정말 깨끗하게 사심(私心) 없이 정말 국가와 민족과 인류를 위해서 멋지게 자기의 직분을 다할 수 있다면 참 얼마나 좋을까?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정말 슬프고도 가슴 아프고 부끄러운 그러한 사건이 우리나라에서 일어났다고 하는 것은 이 나라 국민으로 태어난 국민의 한 사람으로 참 뭐라고 얼굴을 들 수가 없습니다.(처음~20분49초)

 

 

 

 

(2/4)----------------

 

일체 허영도 없고, 시새우고 부러워할 것도 없고, 법률이나 역사에 대해서도 또 염라대왕 앞에 가서 심판을 받고 그럴 두려워할 것도 없이, 우리는 이렇게 살아가야 하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이 자리에 모이신 모든 도반들은 머리를 깎은 스님네거나, 머리를 깎지 않은 우바새(優婆塞) 우바이(優婆夷), 노소남녀 여러분들이 다 그러한 분들이 이 자리에 모다 모이셨다고 산승은 생각합니다.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이라 하는 것은 반드시 삼악도(三惡途)에 떨어지는 거고, 떨어지고 만다고 하는 인과법을 깊이 믿게 된다면 이러한 부끄럽고 창피한 전철을 세세생생(世世生生)에 밟지 않게 되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이번 사건을 통해서 권리나 명예 · 재산 · 부귀영화라 하는 것이 얼마나 덧없고 믿지 못할 것인가, 그런 것을 뼈아프게 느끼셨으리라고 생각을 하고, 특히 부도덕한 방법으로 얻어진 부귀공명이라 한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우리는 잘 알게 되었습니다.

 

큰 권리도, 큰 명예도, 큰 재산도 없는 그냥 평범한 인생을 살면서 정법(正法)을 믿고 최상승법(最上乘法)에 의지해서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본참화두(本參話頭)를 들고, 여법(如法)하게 하루하루를 착실히 살아가고 있는 여러분은 얼마나 고상하고, 떳떳하고, 멋진 삶을 살고 있는 여러분인 것입니다.

 

 

인과(因果)의 법칙을 피하고는 살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손으로 만져 보고,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것은 인과의 법칙에 의해서 추진되고, 운영되고, 생성하고 있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조국, 가비라(迦毘羅) 왕국은 고살라국 혹 사위국(舍衛國)이라고도 하는데, 고살라국의 유리왕에 의해서 멸종이 되었습니다.

역사적으로 현실적으로 나타난 원인은 이유는 부처님의 나라, 가비라 왕국은 비록 나라는 작지마는 양반의 나라이고, 고살라국은 엄청나게 나라도 크고 부강하고 그렇지만 상놈의 나라였습니다. 그런데 그 고살라국의 왕, 파사익왕이 가비라 왕국에 혼인을 청했습니다. '자기(의 유리 태자)하고 가비라 왕국에 공주하고 결혼을 하자' 이렇게 청혼이 들어왔습니다.

 

가비라 왕국에서는 '도저히 그런 상놈의 나라에게 공주를 줄 수가 없다' 그런데 안 주면은 금방 무력으로 침공을 해 들어올 것이고. 그래서 극비리에 의논을 하기를, 공주는 직접 줄 수가 없고 궁녀 가운데, 종 가운데에 가장 공주와 비슷하게 생긴 사람을 골라서 공주로 속여가지고 시집을 보내기로 했습니다.

그래가지고 결혼을 해서 시집을 보냈는데, 그 유리 태자가 아직 어리니까 그 파사익왕은 외갓집으로 보내서, 외갓집 가비라 왕국으로 보내서 거기 가서 문무(文武)에 관한 여러 가지를 잘 배우도록 외갓집으로 보냈습니다. 가비라 왕국에서는 그 유리 태자를 맞이해 가지고 혼자만을 가리키기보다는 궁중이나 모다 고관대작의 아들, 모다 소년들을 오백 명을 모아가지고 큰 회관에서 유리 태자와 같이 모든 교육을 받도록 했습니다.

 

그러니까 유리 태자는 자기로 인해서 그 오백 명이나 되는 소년들을 모여서 자기를 중심으로 해서 그런 교육이 실시가 되니까 기고만장했습니다.

그래가지고 안하무인이 되어가지고 막 언행을 함부로 하고 막 그러니까, 그 고관대작의 아들들도 나름대로 다 긍지가 있는데 고살라국 유리 태자가 건방지게 느껴져 가지고 '종놈의 자식이 까불고 자빠졌다'고, 이렇게 뒤에서 욕을 했습니다.

 

유리 태자가 그 말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래가지고 내용을 잘 알아본 결과 자기가 맞이한 아내가 가비라 왕국에 궁녀였다고 하는 것을, 정식 공주가 아니고 궁녀였다고 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가지고 '내가 만약에 왕이 되면 기어코 이 나라를 갖다가 멸종을 시키리라'하고 마음으로 독한 마음을 먹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해가지고 나이가 차츰 먹어가지고 자기 아버지가, 부왕이 없는 틈을 타서 자기가 왕위를 찬탈을 해가지고 왕이 되었습니다. 그래가지고 그 무력 준비를 해가지고 가비라 왕궁을 침공을 하게 되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그것을 아시고서 두 나라 국경 지대에 큰 고목나무 밑에 가서 떠억 앉아서 계셨습니다. 유리왕이 국경을 넘어가다가 부처님이 고목나무 밑에 앉아 계신 것을 보고 "웬일이십니까? 세존이시여. 해필 이 많은 나무가 있는데, 해필 죽은 나무 밑에 와서 이렇게 계십니까?"

"조국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렇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말을 듣고 유리왕은 그길로 회군을 해서, 침공을 중단을 하고 회군을 했습니다.

 

얼마 있다가 또 침공을 하기로 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이제 막아봤자 안 되겠다 하는 것을 알고 그냥 막지를 않으셨는데, 유리 태자는 이제는 부처님이 거기 가서 계시더라도, 돌아서라도 가서 기어코 끝장을 내려고 마음을 먹었었던 것입니다.

 

그래가지고 가비라 왕국에 들어가서 막 지딱지딱 때려 부수고 사람을 죽이고 하는데, 마하남(摩訶男)이라고 하는 그때 그러니까 유리왕에 외할아버지 격이죠, 실제는 아니지마는 "잠깐 중지를 해라. 내가 이 마당에 연못 속에 들어가서 있다가 나올 때까지 만이라도 기다려다오" 이렇게 부탁을 했습니다.

유리왕이 생각하기에 '물속에 들어가서 있어 봤자 불과 1, 2분이면 나오겠지' "뭐 그렇게 하라"고 그래가지고 물속에 마하남 왕이 들어갔는데, 1분이 지나도 안 나오고, 5분이 지나도 안 나오고, 10분이 지나도 안 나와서 나중에 사람을 시켜서 물속에 살펴보라고 하니까, 물속에 있는 나무뿌리에다가 머리를 풀어서 거기다 칭칭 동여매고 죽어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동안에 많은 사람들이 동서남북 문으로 모다 빠져나갔는데, 동쪽으로 나간 사람이 서쪽으로 다시 들어오기도 하고, 서쪽으로 나간 사람이 남쪽으로 들어오기도 하고 해가지고, 들랑달랑하기만 하지 별로 많이 도망해 간 사람이 없었다고 그럽니다.

 

그때 목련존자는 신통력으로 가비라 왕국에 5천 명의 젊은이들을 뽑아가지고 저 하늘나라에 어디다가 피신을 시켰습니다. 난리가 어떻게 무참하게 사람들을 많이 죽였는지 피가 아주 도성에 가득차고 냇물 흐르듯이 흘렀다고 그럽니다.

난리가 다 가라앉고 유리왕과 그 군인들이 다 돌아간 뒤에 목련존자가 하늘나라에 올라가서 5천 명의 청년을 보니까 다 죽어 가지고 있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그 난리가 다 가라앉은 다음에 제자들을 거느리고 가비라 왕국 도성에, 현지에 와 보셨습니다. 눈으로도 볼 수 없고, 그 피비린내를 맡을 수도 없고, 그 비참한 부처님에 가족들, 일가친척, 사촌, 6촌들, 모든 도성 안 백성들이 다 무참하게도 살해를 당해 가지고 있는 것을 보셨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전에는 내가 여기서 많은 사람들을 모여 놓고 설법을 했건마는, 그러시고서 "여래는 다시는 이 땅에 발을 들이지 아니하리라"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얼마나, 부처님의 경지에서는 생사가 없으시고, 너와 내가 없으시고, 멀고 가까운 것이 없는 그러한 경지에 계신 부처님이시지만, 부처님께도 그런 것을 보시고 참 얼마나 속이 언짢으셨으면 '다시는 이 땅에 발을 들이지 아니하리라' 그러셨겠습니까. 그러시고 "7일 후에 고살라국은 불 세례를 받을 것이다. 불에 의해서 화재가 나서 다 타 죽을 것이다" 그렇게 예언을 하셨습니다.

 

고살라국에서는 그런 말을 전해 듣고, 불에 안 타 죽기 위해서는 물가로 가는 것이 좋다 해가지고, 그 왕족과 대신과 모든 사람들이 전부 바닷가로 갔습니다. 가 가지고 큰 강가로 가 가지고 큰 배를 타고, 물에서 일주일을 노래를 부르고 그러면서 그렇게 지냈습니다. 느닷없이 먹구름이 하늘에서 일어나 가지고 뇌성벽력을 해가지고 왕궁에도 벼락을 때려서 왕궁이 다 불에 타고, 타고 있는 배에도 불이 나 가지고 다 타 죽었습니다.

잘못 생각하면, 부처님께서 당신의 조국을 그렇게 사람을 많이 살육을 하고 했으니까, 감정적으로 신통력으로써 아주 벼락을 쳐서 죽게 했다고 혹 그렇게 오해를 하실 분이 있을는지 모르지만, 부처님이 절대로 그러실 리가 없습니다.

 

자기 자신이—고살라국 유리왕을 비롯한, 고살라국 사람들이 그렇게 무참하게 사람을 죽이고 그럴 수가 있습니까? 어떻게 죽였냐 하면은 칼로 쳐 죽이고, 창으로 찔러 죽인 것은 말할 것도 없고, 큰 전차를 가지고 와서 막 깔아뭉개고, 수백 마리 코끼리 떼를 몰고 와 가지고 직신직신 밟아서 창자가 터지고 가슴팍이 부서지고, 뼈다구가 부러지고 대가리가 깨지고 해가지고 수백 명, 수천 명을 일시에 개떡처럼 만들었으니, 동서고금에 그러한 역사는 보기가 어려우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사람을 죽여도 그렇게 죽이는 법이 없고, 설사 공주로 속여 가지고 궁녀를 보냈기로서니 그렇게 하는 법이 아니거든. 그러한 과보로써 그렇게 죄를 받게 되는 것이다 그말이여.

 

한 제자가 부처님께 여쭙기를 "과거에 무슨 인연으로 이와 같은 무서운 과보를 가비라 왕국 사람들은 받게 되었을까요?" 부처님께 여쭈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한참 계시다가 말씀을 하시기를, "과거 무량겁 전에 한 나라가 있었는데, 흉년이 들어서 먹을 것이 다 떨어졌어. 그래서 큰 호수를 막고 물을 품어 가지고 그 호수 속에 있는 고기를 잡아 가지고 그 굶주림을 면했느니라. 그때  한 고기가 있었으니, 그게 바로 그때 앙심을 품고 죽은 고기가 바로 저 유리왕이고 저 신하들이다"

 

그 고기를 잡아서 그물로 잡아 가지고 육지로 던져놓으면 고기가 팔딱팔딱팔딱 뛰니까, 한 소년이 그 고기의 대가리를 작대기로 가지고 다니면서 딱 때리고, 딱 때리고 하면서 그렇게 재미있게 뛰고 놀던 소년이 하나 있었는데, 그 소년이 누구냐 하면은 부처님의 전생(前生)이었다 그말이여.

그 고기를 잡아서 먹은 모든 사람들은 가비라 왕국에 왕을 비롯한 왕족과 모든 백성들이고, 그 고기의 대가리를 막대기로 때리고 다니면서 놀던 소년은 부처님이었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항상 머리가 수미산으로 눌러 놓은 것처럼 뻑적지근이 항시 머리가 아프셨다 그거거든.

 

무량겁이 지났고, 삼계대도사(三界大導師)요, 사생(四生)의 자부(慈父)가 되신 성현 가운데 대성현이신 부처님께서도 그때 그 고기들의 대가리를 때린 그 과보로 머리 골이 아프셨어. 인과라 하는 것이 이렇게 무서운 것이여.

부처님의 삼불능(三不能) 가운데에 '정업(定業)은 면치 못한다'고 하는 조항이 바로 거기에 해당이 됩니다마는.(20분52초~41분47초)

 

 

 

 

(3/4)----------------

 

연전(年前)에 KAL기(대한항공 비행기)를 소련에서 미사일로 쏴 가지고 120여 명인가 그 비행기 탄 사람들이 참 영문도 모르고 폭파해서 다 죽었습니다. 내가 육신통, 숙명통이 안 나서 왜 그러한 과보를 KAL기가 받게 되었는가 그것은 내가 모르겠습니다마는, 이번에 러시아 비행기가 141명을 태우고 북극을 지나다가 떨어져서 몰살을 했습니다. '우리나라 비행기를 쏘더니, 그놈 잘 떨어져서 뒤졌다' 내가 그런 생각으로 내가 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무엇 때문에 러시아 비행기가 떨어졌는가 그것도 아직 밝혀지지 않았고, 또 과거에 무슨 과보로 그랬는가도 확실히 알 수가  없고, 우리나라 비행기를 그렇게 떨구더니 그 과보로 떨어졌는가 그것도 내가 확실히 모릅니다.

 

우리나라가 소련에 적성국가(敵性國家)도 아니고, 전쟁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군용 비행기도 아니고 민간 항공기를 무엇이 잘못되어서 국경을 조금 본의 아니게 침범을 했다 하더라도 좋게 나가라고 하고 인도를 해서 정식 궤도로 가도록 하면 그만이고, 또 나중에 국제법으로 그것을 따질지언정 거기다 대고, 그 비행기에 탄 사람이 무슨 죄가 있습니까? 그러한 짓을 하는 법이 아니거든. 국가적으로도 그래서는 안 되는 거고, 개인적으로도 그렇게 일을 처리해서는 아니 되거든.

 

우리나라는 오천 년을 두고 일본에 크고 작은 침범과 약탈을 당해 왔습니다. 동해, 남해, 서해로 수없는 일본 왜놈에 해적들이 와 가지고 여자도 강간하고, 재산도 납치하고, 갖은 못된 짓을 다 했습니다. 그것을 막기 위해서 신라 문무왕, 불국사 석굴암도 동쪽을 향해서 짓고 또 동해에다가 대왕암을, 자기의 시체를 동해에다가 묻어서 용이 되어 가지고 일본 해적을 막으려고 그렇게 원력을 세운 역사가 지금까지도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임진왜란이 일어나 가지고 우리나라를 피바다로 만들었습니다. 경술년 합방(合邦, 경술국치庚戌國恥)으로 해서 우리나라는 완전히 일본에 식민지가 되었습니다. 세계 역사에 없는 식민지 정책, 교활하고 악랄한 정책을 써서 우리나라를 피를 빨아먹고 짓이겼습니다. 우리나라 백성이라면 세세생생에 용서할 수 없는 그러한 고약한 것들인 것입니다.

 

그래 나도 애국자도 아니고, 일개 평범한 중이지만 그 생각을 하면은 이가 부득부득 갈리고 그랬었는데, 지금은 내가 그런 것을 잊어버렸습니다.

왜 잊게 되었느냐 하면은 어째서 일본이라는 나라는 본래 아이누족이 그 본토에서 사는 소수 족속이고, 대부분 우리나라에서 건너간 사람들—가야가 망해가지고 그리 배를 타고 가서 거기서 뿌리박고 살고, 고구려나 신라나 백제나, 특히 백제 사람들이 많이 가서 거기 가서 나라를 세웠습니다. 나라에다가 백제 사람들이 가서 나라를 세웠다고 해서 현재 나라[奈良]라고 하는 도시가 있습니다.

 

일본 사람들은 우리나라가 가서 모다 했다는 것을 고분을 발굴해도 그 증거가 나오고 모든 역사의, 일본에 만요우스[萬葉]니, 고사기니 그런 책을 봐도 하나하나가 다 증거가 드러나는 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숨기고 있습니다.

일본에 국조신(國祖神)인 아마데라스 오오미카미[天照大御神]니, 아마데라스 오오미카미의 동생인 스사노오노 미코도가 바로 한국에서 건너간 사람인데도 자기네들은 그것을 숨기고 말을 안 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서 일본이라는 나라 교육도 시키고, 글도 가르키고, 농사짓는 법도 가르키고, 다리 놓고 집 짓는 법도 가르키고, 도자기 굽는 법도 가르키고, 모든 것을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서 가르켰는데, 왜 세계에서 제일 미워하고, 제일 못살게 한국을 못살게 구냐? 암만 생각해 봐도 알 수가 없어?

'이놈들을 언제라도 이 버릇대기를 고쳐줘야, 한 생(生)을 성불을 늦게 하더라도 이놈들을 가만 두어서는 안 되겠다' 그런 생각을 먹었었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내가 신통력으로 본 것이 아니고 가만히 이치를 미루어서 생각해 보니까,

우리나라에서 가야가 망하니까 나라가 망하니까 거리 도망가서 살고, 신라가 망하니까 거리 도망가서 살고, 고구려 · 고려가 망하니까 거기 들어가서 살고, 백제가 망하니까 거기 들어갔다 그말이여.

 

여기서 망한 사람들이 거기를 갔으니 무슨 생각을 했겠느냐 그말이여. '언젠가는 힘을 길러 가지고 권토중래(捲土重來)를 해야겠다. 다시 한국을 뺏어서 다시 한국을 차지해야겠다' 그런 생각을 갖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그말이여.

그래놓으니 처음에 1대, 2대, 3대에 올 때까지는 그런 생각을 다 구전심수(口傳心授)로 전해 내려오지만, 5대, 10대 지나가서 부터서는 그런 생각 다 잊어버리고 몰라. 모르지만, 잠재의식 속에는 그게 다 있다 그말이여.

 

그래서 한국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하고, 그런 국민학교 · 유치원 애들한테도 물어보면 '세계에서 제일 싫은 나라, 미운 나라가 어디냐?'하면 한국이라고 한다는 여론조사를 해 보면.

그러니 이것이 한국에서 망한 나라가 가 가지고 종자가 퍼진 것이 일본 사람들이라고 보면, 그렇게 생각을 하니까 '그리여! 그렇겠지'하고 내가 지금은 미운 생각을 안 갖고.

 

그 사람들도 그러한 이웃지간에 가까운 나라를 역사를 잘 연구해 보면 미워해서는 안 될 형님의 나라요, 자기의 조상에 나라인데, 한국을 그렇게 미워하지 않고 오히려 한국을 존경하고, 숭배하고, 가장 한국을 아끼고, 물심양면으로 한국을 도우려고 하는 그러한 나라가 되어서 정말—알고 보면 같은 단군(檀君)의 후예거든. 비록 나라가 망해 가지고 갔을망정 한 핏줄이기 때문에 우리가 미워해서도 안 되고, 일본 사람들도 한국을 미워해서는 안 될 가장 가까운 단군의 후손들이여.

 

그래 지금은 미운 생각이 없고, 불교를 믿는 사람들이 많고 그러니까 그러한 나와 같은 생각을 가져주었으면 참 좋겠는데, 전혀 그런 징조가 보이지를 않고 경제적으로 지금은 우리나라를 침범을 하고 들어오고 있고, 우리나라 사람들은 정신을 못 차리고 '일본 물건'하면 다 선호를 하고, '일본 문화'하면은 다 무슨 향수처럼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그런데, 정신을 차려야 할 것입니다.

 

일본은 앞으로 그 사람들이 정말 불법(佛法)을 옳게 믿고, 올바른 역사의식을 가지고 바른 생각을 갖지 않는다면 일본은 언제라도 화산이 터질 것이고, 지진이 일어나서 고베와 대판에 일어나는 그런 사건이 심심치 않게 일어날 것입니다.

그리고도 정신을 못 차리면 앞으로 몇천 년 뒤에나 몇억 년 뒤에는 결국은 바다 밑에 가라앉고 말 것입니다. 지금도 매년 조금씩은 가라앉는다고 그러는데, 그렇게 돌연히 뭐 쇳덩어리 가라앉듯이 가라앉지는 않을 것이지만, 많은 시간과 여유가 있으니까 일본 사람들은 마음보를 고쳐야 하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우리나라에 6.25동란이 왜 일어났을까? 공산주의 때문에 그렇다고 지금 우리는 생각하고 있지마는, 저 몇백 년,  몇천 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마치 가비라 왕국이 고살라국에 의해서 그렇게 멸망된 것처럼 반드시 이것도 까닭이 있으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신라가 고구려를 멸망을 시킨 그 과보로 6.25동란이 또 일어나 가지고 남한 일대를 피바다를 만들었을란가도 알 수가 없는 일입니다.

 

우리는 그런 의미에서 개인적으로나 가정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국가적으로나 정말 보복하는 그런 마음을 아니 가져야 하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보복을 아니할 뿐만 아니라, 남에게 해를 끼치면서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그러한 일은 큰 일이건 작은 일이건 아니해야 하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남을 해치면서까지 자기의 이익을 추구하면 반드시 그 과보가 돌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얻어진 것이 있다 하더라도 머지않아서 그것이 나로 부터서 떠나게 되고, 떠날 때는 거저 떠난 것이 아니라 나를 갈기갈기 몸과 마음을, 가정을 찢어 좃아 놓고 떠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나라는 '새 한국 건설'이라고 하는 그러한 슬로건으로 새 정치를 하려고 모다 노력을 하고 있고, 부정을 척결한다 그래서 전직 대통령도 모다 갇히고 사형언도를 받고 있습니다마는, 자작자수(自作自受)라고 생각하면 받는 편은 깊은 참회(懺悔)가 있어야 할 것이고, 정말 그분들은 자기의 잘못을 정말 참회를 하고, 법의 공정한 심판을 기다릴 수밖에는 없고.

생각 생각이 참회하는 염불, 금강경이라든지 반야심경이든지, 고왕경 같은 경을 주야불철하고 읽어서 자기의 몸이 이 세상에 있는 것도 잊어버리고, 시간가는 것도 잊어버리고, 사형을 당하느니, 무기징역을 당하느니 그런 생각까지도 잊어버리고, 어떤 심판이 내리더라도 조용하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게 된다면 그것이 하나의 길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다른 보통 고기들은 잡기 위해서 도마 위에다 올려놓으면 펄떡펄떡 뛰어서 도망가는데, 잉어는 큰 잉어도 도마 위에다 딱 올려놓으면 절대로 뛰지 않고 가만히 죽음을 맞이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나 실제로 잉어를 잡어 보지 않아서 모르는데, 그런다는 말을 어릴적부터서 들었습니다.

일국에 대통령을 살고 참 고관대작을 지냈으면 자기의 잘못을 솔직히 인정을 하고 참회를 하고, 국가와 민족과 인류 앞에 참회를 하고, 조용하니 공정한 심판을 기다릴 줄 안다면 그것도 또한 멋진 죽음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법에 있어서는 공정한 법에 의해서 처결을 할 수밖에는 없는 것이고, 우리 국민들은 소련 비행기가 떨어져서 141명이 죽은 것을 좋아할 필요가 없듯이, 그것을 보고 형이 약하느니, 가볍느니, 잘 죽었느니, 마땅히 죽어야 하느니, 이런 생각 우리는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것을 보고 우리는 과연 나 자신에게는 잘못이 없는가? 우리 부모나 우리 형제나, 우리의 형제간에는 그런 잘못이 없는가?

 

죄가 크고 작은 차이는 있어도 잘못은 우리 중생에게는 누구에게나 다 있을 수가 있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중생이 가지고 있는, 누구에게나 다 빠짐없이 가지고 있는 재산이 탐심(貪心)이요, 진심(瞋心)이요, 치심(癡心)입니다. 탐심이 과(過)하고 진심이 과하고 어리석은 생각이 과하면, 그 시대 그 환경에 놓여지면 능히 그러헐 죄를 범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힘이 없고 그런 기회를 타지 못하니까 그런 죄를 안 범한 것이지, 기회가 주어지면 장담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물론 그런 기회가 있어도 양심을 가지고 정심을 가진 사람이 어찌 그럴 수가 있겠습니까마는, 그런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지는 못한다는 것입니다.

 

십계와 이백오십 계, 오백 계, 그런 계율이 불가(佛家)에는 엄정한 계율이 있는데, 역대조사(歷代祖師)와 율사(律師)와 청정한 스님네들은 모두가 다 그런 계율을 잘 지키려고 하시고 또 잘 지키고 있다고 믿습니다마는 엄격히 말하면 소승계(小乘戒), 대승계(大乘戒)를 총망라해서 완전무결하게 지킬 수 있는 분은 오직 부처님 한 분뿐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볼 때 우리는 아직까지는 큰 죄를 범하지 않고 있다 하더라도, 대승계 단계에까지 가서 본다면 우리도 많은 죄를 범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 생각 일으키면 바로 범하고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시대에 살고 있는,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물론 용화사 이 경내에서는 '우리는 신문도 보지 말자. 라디오나 텔레비젼도 보지 말자. 온갖 잡지도 보지 말고 여기에 지내는 이 석 달 안거 동안에는 일체 그런 매스컴에 접하지 말고 오직 정진만 하자'고 우리가 결의를 해 가지고 그렇게 살고 있어서, 여기서 참선하고 있는 총무 스님을 비롯한 여러 스님네, 선방 스님네, 전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모르고 계시리라고 생각이 됩니다.(41분48초~61분48초)

 

 

 

 

(4/4)----------------

 

아마 이런 얘기를 하면 '그런 일이 있었던가?' 그렇게 생각을 하시겠지만 그래도 우리는 이 시대를 살고 있는 국민이고, 부처님도 이미 그 나라를 떠나서 다른 나라에 가서 제자들과 모다 지내고 계신 그러한 처지에 계시면서도 당신의 조국이 고살라국에 의해서 침공을 당하게 될 때, 떠억 가서 고목나무 밑에 가서 앉아서 그것을 막으려고 하신 그 마음을 생각하면 우리도 우리의 조국에 대해서, 우리의 민족에 대해서 출가한 몸이지만 항상 부처님 앞에 이 나라가 편안하고 잘되기를 빌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러한 사건을 통해서 우리는 침 뱉고 욕하고 돌팔매질을 할 것이 아니라, 20세기 말기에 보살 화현이, 역행보살(逆行菩薩)이 이 나라에 화현(化現)으로 온 분이라고 이렇게 생각을 함직 하다고 나는 생각을 한겁니다.

그러면 역행보살로 태어나신 분이니까 거기다 대고 절을 하고 그러라는 것이 아니고, '그걸 보고 나를 반성하고, 세세생생에 내가 만약 그런 기회와 입장이 주어진다 하더라도 나는 그렇게 하지 말아야겠다. 그리고 명예와 권리와 부귀영화에 대해서 부도덕한 방법으로 그것을 취하려고 하지 말아야겠다. 오욕락 · 명예 · 권리 · 지위 · 부귀영화라는 것이 정말 허망한 것이고, 믿을 것이 못되는 것이고, 그런 것을 취득하기 위해서 법을 어기고 남을 해꼬자하지 말아야겠다' 이렇게 마음먹는다면은 우리는 그 역행보살들의 몸으로 보여준 역사적인 법문을 우리는 잘 뼛속 깊이 간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그렇게 마음을 먹을 때 앞으로 우리들은 세세생생에 그런 일이 없을 것이고, 우리의 자녀들도 그러한 짓을 아니하게 될 것입니다.

 

죄가 크고 작은 차별은 있고, 종류는 다를지언정 한 생각 잘못 먹으면 그렇게 죄과를 범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미연에 방지하려면 언제나 말씀드리듯이 '이뭣고?'인 것입니다.

 

같이 "이뭣고?"

(신도) "이뭣고?"

 

"이뭣고?"

(신도) "이뭣고?"

 

글자 석 자고 아무 맛도 없는 말이지만, 무서운 죄를 미연에 방지하는 가장 현명한 길인 것입니다. '이뭣고?' 이 석 자는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을 요약해서 추출해서 낸 바로 '이뭣고?'인 것입니다. 팔만대장경을 정말 옳게 읽고 그 뜻을 안 사람이면 '이뭣고?'밖에 할 것이 없거든.

그대신 '이뭣고?'는 아까 전강 조실 스님 법문에도 간곡히 말씀을 하셨지만, 공안을 의리(義理)로 따지는 것이 아닙니다. 의리로 따지는 것은 천칠백 공안(千七百公案)을 막힘이 없이 다 따진다 하더라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61분49초~66분40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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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600 개가 넘는 ‘(참선) 법문’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 있습니다.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600 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인과 · 인연 · 비유2020. 3. 11. 11:56

 

 

§(332) 부처님의 조국, 석가족의 멸망 인과 / 부처님께서는 「절대로 보복을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 정법을 믿고, 실천을 해서 바른 깨달음을 얻어야 영원한 생사해탈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조국인 가비라왕국과 사위국 유리왕과의 악연. 가비라왕국과 사위국의 멸망. 『증일아함경(增壹阿含經)』 제26권, 34.등견품(等見品) [2]에 있는 석가족의 멸망 인과.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은 남한테 원수를 본의(本意) 아니게 짓기도 하고, 또 보복(報復)을 하는 경우도 있을 수가 있습니다마는, 부처님께서는 「절대로 보복을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보복으로써 정말 깨끗하게 일이 처리가 되는 것이 아니고, 보복을 하면 그쪽에서는 다시 또 보복을 하고, 이쪽에서 또 보복을 하고 해서 생(生)을 거듭하면서 점점 원결(怨結)은 더 깊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송담스님(No.332)—1987년 6월 첫째일요법회(87.06.07) (용332) 인과인연

 

(1) 약 15분.

 

(2) 약 14분.

 

(1)------------------

 

옛날에 부처님 재세시(在世時)에 그 사위국(舍衛國)에 파사익왕(波斯匿王)이라고 하는 왕이 있었습니다. 그 왕은 부인을 얻었는데, 그 말리부인(末利夫人)이라 한 왕후(王侯)를 얻었습니다.

그 말리부인은 원래—부처님의 고국(故國)이신 그 가비라왕국(迦毘羅王國)에 마하남(摩訶男)이라고 하는 분이 있었는데, 그분에 종의 아들입니다.

 

그 부처님 나라는 가비라왕국이라 해서 나라가 조그만하고, 파사익왕이 있는 그 사위국은 대단히 인도에서도 참 큰 나라고 그렇습니다. 그래서 가비라왕국에 그 공주를 자기 왕후로 달라고 요청을 했습니다.

 

그런데 가비라왕국은 나라는 적지마는 양반의 나라고, 또 이 사위국은 나라는 워낙 크고 했지만 가비라왕국에서 볼 때에는 '나라만 크고 모다 그래서 그러기는 허되 참 양반의 나라가 아니다' 그렇게 생각을 했던지, 공주를 왕비로 달라고 하니까 차마 공주를 줄 수가 없으니까 그 궁녀(宮女), 종 가운데에 잘 생기고 비슷한 사람을 골라서 공주로 속여가지고 시집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그 시집간 그가 누구냐 하면 바로 그 말리부인인데, 그 말리부인은 평소에 항상 마음속으로 자기는 신분이 종이지만 '왕비가 한번 되었으면...' 하고 항시 마음속으로 축원을 하고 기도를 하고 서원을 세웠습니다.

그래가지고, 그러면서 참 마음으로 부처님을 믿고 그러면서 그렇게 인자 왕비가 되기를 서원을 하다가 결국은 그 왕비로, 이상스럽게 그 공주 대신 자기가 왕비로 시집을 가게 되았습니다.

 

우리가 무엇이고 일심으로 마음속으로 기도를 하고 서원(誓願)을 세우고 원(願)을 세우면 반드시 우리 누구라도 그렇게 이루어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그러한 참 불가사의(不可思議)한 그러한 위신력(威神力)이 있어서, 지극정성으로 기구(祈求)하고 축원을 하고 빌면 그렇게 이루어질 수가 있는 도리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왕이면 바르고 좋은 원을 세워야 합니다마는.

 

그래서 그 말리부인이 파사익왕한테 시집을 가가지고 아들을 낳았는데 그 아들 이름이 ‘유리태자(瑠璃太子)’입니다. 아주 영특하고 잘나고 그랬는데, 여덟 살이 되어서 그래서 인자 그 왕이 그 아들을 여덟 살이 되었으니 자기 외가로 보내서 거기서 모든 것을 잘 배우고 그러라고 외갓집으로 외할아버지한테 보냈습니다.

 

그 외가댁에서 그 외손자가 왔으니 그걸 참 잘 가리켜야겄는데, 활 쏘는 법도 가리키고 말 타는 법도 가리키고 모든 학문도 가리키고 그런데, '혼자만 가리키기보단 기왕이면 오백 명의 그 고관대작(高官大爵)이라든지, 양반의 집 아들들 뽑아가지고 같이 공부를 시켰으면 참 좋겠다' 그렇게 생각을 내가지고 큰 수련도장(修鍊道場)을 하나를 지었습니다.

 

그래가지고 맨 처음에 부처님을 모셔다가 설법(說法)을 먼저 듣고, 그리고 나서 인자 활 쏘는 법과 그 밖에 모든 공부를 시키리라 해가지고 새로 집을 짓고, 인자 오백 명의 동자(童子)들과 함께 요렇게 해서 했는데,

그 유리태자는 자기로 인해서 그렇게 참 외할아버지께서 그렇게 참 오백 명의 동자를 모다 모아가지고 같이 공부하게 하고 새로 집을 짓고 하니까 너무너무 기뻐서, 그 자기가 주인공이 되어가지고는 거기서 막 너무너무 기뻐서 그냥 활발하게 거동을 하고 막 그냥 자기가 일인자가 되어가지고 그러니까, 그 사람, 거기에 모인 동자들이 수근덕 수근덕거리면서 "종놈의 자식이 까분다"고, 아! 이렇게 욕을 했습니다.

 

아, 그러니까 그 애가 그 말을 듣고서 깜짝 놀랬습니다.

그래가지고 그 내용을 갖다가, 그러니까 "왜 나보고 욕하냐"고 막 하다가 그 위~하니 달라들어서 아주 치고받고 해서 욕설을 퍼붓고 해서 큰 망신을 하고 사위국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때에 그 같이 모시고 간 바라문(婆羅門) 하나가 호고(好苦)라고 하는 바라문이 있었는데, "내가 나중에 부왕마마가 승하(昇遐)하시고 임금이 되거든, 오늘 내가 당한 이 치욕과 이 봉변을 나한테 일깨워다오" 그렇게 부탁을 했습니다.

그래가지고 나중에 결국은 그 왕이 승하하고 자기가 왕이 되었습니다. 왕이 되었을 때에 그 호고(好苦)라고 하는 그 대신이 그때 그 봉변 당했던 일을 또 이 기억을 개득(이해)을 시켜 주었습니다.

 

그래가지고 많은 병사를 갖다가 이끌고 가비라왕국을 갖다가 쳐부시러 갔습니다.

그때 부처님께서 그 소식을 들으시고서 가비라왕국과 사위국 그 중간 경계 국경지대에 가가지고 큰 고목나무가 하나 죽어 갖고 있었는데 그 고목나무 그늘에 가서 떠억 이렇게 앉아 계셨습니다.

 

그리자 그 유리왕이 대군을 통솔을 해가지고 국경을 넘어서려고 하는데 고목(枯木)나무 밑에 부처님이 터억 앉아 계시거든.

 

"아니 부처님께서 왠 이리 고목나무 밑에 와서 이렇게 앉아 계십니까?"헌께,

"비록 고목은 되었으나 나에 고국(故國)의 그늘이 아니냐. 말라 죽은 고목일망정 조국(祖國)의 그늘이 좋아서 이렇게 그늘 밑에가 있노라"

아! 그 말씀을 듣고서 유리왕이 회군(回軍)을 했습니다. 군사를 몰고 다시 돌아갔습니다.

 

얼마 있다가 또 이 호고(好苦)라고 하는 대신이 또 유리왕을 충동(衝動)이를 쳐가지고,

"먼저는 부처님 때문에 못했지마는, 아! 어찌 그 참 치욕을 당하고서도 그 가비라왕국을 그냥 둘 수가 있겠습니까?"하고 또 충동이를 치니까, 대군을 몰아가지고 또 쳐들어갔습니다.

 

"이제는 부처님이 설사 거기에 계신다 하더라도 그걸 무시해버리고 가야합니다" 그래가지고 가기로 하는데, 부처님께서는 이제 막어봤자 소용이 없는 줄 짐작을 하시고 그냥 안 가셨는데.

 

가비라왕국에 쳐들어갔는데 성문을 갖다가 탁 때려 잠그고 그래 있는데, 큰 소리를 치면서 성문을 갖다가 열고 결국은 들어갔는데, 그때 그 유리왕의 외할아버지인 마하남(摩訶男)이,

"좋다! 니가 이 나라를 치는 것을 내 힘으로 어찌 막겠냐마는 내가 한 가지 소원이 있다. 내가 이 궁정(宮廷) 뜰에 있는 연못 속에 들어갔다가 나올 때까지 성문을 열어놓고 도망갈 수 있는 사람은 도망가게 해라. 내가 물속에 들어가서 참고 있은들 얼마 동안을 있겠느냐? 그 소원 한번만 들어다오"

 

"그것 그렇게 하지요"

마하남이 물속에 들어갔습니다.

 

그래가지고 '이제 도망갈 사람은 도망가라' 해가지고 사람들이 동서남북 사문(四門)을 다 열어놓고 도망가라 그러는데, 서로 앞을 다투어서 도망가는데 벌집 건드려 놓은 것처럼 와- 허니 쏟아져 나가는데, 남문(南門)으로 나갔던 사람이 계속 도망가지를 않고 동문(東門)으로 도로 들어오고, 북문(北門)으로 나갔던 사람은 서문(西門)으로 들어오고, 서문(西門)으로 나갔던 사람은 남문(南門)으로 들어오고,

아! 계속 줄달음질쳐서 도망가면 다 살아갈텐디 어쩐 셈인지 다시 다른 문으로 들어오고 들어왔다 나가고 나가고 해가지고는 별로 많이 도망가지를 못했습니다.

 

'아! 이것이 바로 과거에 업(業)이 있어서 결국은 죽을 수 밖에는 없구나'

하여간 한참 있어도 연못 속에 들어갔던 그 마하남이 나오지를 않습니다. 사람을 시켜서 연못 속에 들어가서 보라니까, 머리를 그 연못 속에 있는 나무 등걸에다가 칭칭 틀어 감고서 그래서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그 마하남은 자기 한 몸을 죽여서 많은 사람들을 피난을 시키기 위해서 그러한 참 희생적인 방편을 썼는데, 결국은 별로 많이 도망가지를 못하고 모두 다, 참 이 경전에는 '9천9백9십만 명이다' 이렇게 표현이 되어 있습니다마는,

그 사람들을 모두 다 잡어서 땅에다가 묻고, 흙으로 다 덮어서 포개서 다 묻고서 많은 코끼리를 동원을 해가지고는 밟아서 다 죽였는데, 거기서 흐르는 피가 냇물을 이루었다고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때에 그렇게 죽일라고 할 때에 목련존자가, 내나 부처님의 제자고 신통이 제일인데 부처님의 그 가슴 아파하신 것을 알고서,

"제가 가서 그 가비라(迦毘羅) 성중(城中)에 있는 사람들을 모두 저 허공계(虛空界)로 데려다가 피신을 시킬까요?" 이렇게 여쭈어봤습니다.

 

"니가 그렇게 할 수 있을 것 같으냐?"

"글쎄요. 참 어렵겠습니다마는 한번 해 보고 싶습니다"

 

그래가지고 그 궁중에 왕족과 모다 거기 사람들을 오천 명을 갖다가 뽑아가지고 바리때에다 담았습니다. 담아가지고 저 공중으로 갖다가 놓았습니다.

 

갔는데, 그리고 그 가비라왕국에 다 사람들을 죽이고 다 인자 가버렸는데, 그때 목련존자가 그 허공중에 올라가가지고 그 오천 명 피난시킨 그걸 보니까 바리때 안에 다 고스란히 죽어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도 어피차 그 전생(前生)에 과보(果報)로 죽게 된 그런 경우는 억지로 어떤 신통술로 그것을 억지로 그것을 살릴 수가 없다고 하는 것도 알 수가 있습니다.(28분40초~43분54초)

 

 

 

 

(2)------------------

 

그 살상(殺傷)이 난 뒤에 부처님께서는 여러 비구 제자들을 거느리고서 그 현장에를 가셨습니다.

당신의 고국이고, 당신의 모다 친척이고 사촌들이고 모다 그래서 안 가볼 수가 없죠. 그래서 제자를 거느리고 가서 보시니까 참 그 비참하기가 말로 할 수가 없어.

 

"내가 그전에 여기에 와서 설법을 해가지고 참 수천만 중(衆)을 갖다가 득도(得道)케 했는데 오늘은 이렇게 참 비참한 현장이 되고 말았구나. 내가 이제부터 다시는 이 땅에 발을 디디지 아니하리라"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유리왕과 여기 와서 이렇게 참 참혹한 행동을 한 저 군사들은 오래 살지를 못할 것이다. 지금부터 7일 후에는 한 사람도 살아남지 못하고 다 멸종(滅種)을 하고 말 것이다" 하고 부처님께서 예언을 하셨습니다.

 

유리왕이 부처님이 그렇게 말씀하셨단 말을 듣고서 너무너무 공포에 떨고 그래가지고 그 군사를 이끌고 강변에 가가지고 거기서 풍악을 잽히면서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면서—가만히 있자니 두렵기만 하고 그러니까 강변에 가가지고는 날을 새서 술을 마시면서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면서 그렇게 지냈습니다.

 

그래가지고 궁중으로 돌아오지 않고 거기서 그렇게 지새는데, 갑자기 밤중에 비구름이 일어가지고 폭풍이 불어서 아주 큰 폭우가 쏟아져가지고는 강변이 넘쳐서 왕과 그 병사들이 수십만 명이 다 큰물이 져서 다 떠내려 가가지고 한 사람도 살아남지를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 사위국에 궁전에는 벼락을 쳐가지고, 하늘에서 불덩어리가 쏟아져서 벼락을 쳐가지고는 삽시간에 불이 타서 재가 다 되아버린 것입니다.

 

그렇게 무참하게 많은 사람을 죽여서—코끼리를 시켜서 밟아 죽이고 그래가지고 그 과보가 워낙—부처님께서 직접 나서서 그것을 막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처님의 조국이요 부처님의 친척이요 사촌들이고 부처님의 조국에 백성들을 갖다가 그렇게 무참하게 짓밟아서 죽였으니, 마땅히 큰물이 져서 죽을 수밖에는 없고 또 하늘에서 벼락을 쳐서 그 악당들이 살던 궁은 잿더미가 될 수밖에는 없으리라고 생각이 됩니다마는.

그때에 부처님께서 그 제자들에게 "저 자들이 모다 죽어서는 무간아비지옥(無間阿鼻地獄)에 떨어질 것이다"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비구들이 부처님께, "무엇 때문에 저 유리왕이 저렇게 이 가비라왕국에 부처님의 그 권속과 왕과 병, 백성을 저렇게 참혹하게 죽이게 되았을까요? 전생(前生)에 무슨 인연(因緣)으로 저렇게 되았을까요?" 하고 여쭤보았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과거 구원겁(久遠劫)에 이 사위국(舍衛國)에 강변에서 고기를 잡아먹고 살았었는데, 그때 이 큰 못에 그때 인자 많은 고기가 살고 있었는데, 그때 나라에 가뭄이 들어서 농사가 잘 안되고 흉년이 들어가지고 모다 배가 고프니까 그 못에서 많은 고기를 잡아먹었어"

 

수없이 많은 백성들이 그 많은 고기를 다 잡아서 먹었었는데, 그때에 그 구쇄(拘璅)라고 하는 고기가 하나 있었고 양설(兩舌)이라 하는 두 고기가 있었는데, 그 고기 중에는 제일 참 큰 왕이었었는데, '우리들이 아무 인간을 해롭게 한 일이 없는데 저 사람들이 우리를 이렇게 씨를 말리고 다 죽이니 우리가 언젠가는 내세(來世)에 사람이 되면은 우리가 이 원한(怨恨)을 갚자' 하고 그렇게 맹세를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때에 그 사위국에 그 고기를 잡아먹고 모다 그런 그 사이에 어린 소년이 하나가 있었는데, 고기를 잡아서 이 언덕으로 잡아 올리면은 그 막대기를 가지고 고기 그 머리빡을 탁! 치고 그러면서 고기가 잡혀 올라올 때마다 손뼉을 치면서 좋아하고, 또 잡아 올리면은 막대기로 탁! 치고 이 탁! 치고 해서 아 그렇게 참 뭣도 모르고 그렇게 좋아서 그랬던 소년이 하나 있었다.

 

그런데 그때에 고기를 잡아먹던 사람들이 바로 이 가비라왕국에 마하남(摩訶男)을 위시(爲始)한 많은 가비라 모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일가친척 그 백성들이고,

그 잡아먹힌 고기에 그 구쇄(拘璅)라고 하는 고기는 이 유리태자(瑠璃太子)고, 또 이 양설(兩舌)이라고 하는 고기는 아까 그 호고(好苦)라고 하는 바라문, 임금으로 하여금 자꾸 충둥이를 쳐서 그 가비라왕국을 공격하라고 충둥이 친 그 바라문이고.

그때 소년이 고기를 갖다가 탁 탁 막대기로 때리면서 좋아하던 그 소년이 누구냐하면 바로 석가세존(釋迦世尊)이다 이거거든.

 

과거에 그러한 그 못에 수천 마리, 수만 마리 고기를 그렇게 참 잡아서 회쳐 먹고 삶아 먹고 지저 먹고 볶아 먹고 그 이렇게 했다 그말이여.

그러한 과보(果報)로 해서 금생에 그 무서운 참 이 살생(殺生)을 당하게 되았습니다.

 

금생의 인연(因緣)으로만 본다면, 종을 갖다가 공주로 속여가지고 왕비로 시집을 보낸 그 잘못이 있고. 또 거기서 태어난 그 유리태자를 갖다가 '종의 자식'이라고 놀려대고 모다 그러한 원인을 찾을 수가 있지만.

설사 그렇기로서니 자기 외조부—사실은 뭐 종의 자식이니까 외조부라고 할 수도 없고, 또 그 입장에서 보면은 그러한 자기를 갖다가, 일국에 태자(太子)를 갖다가 '종의 자식'이라고 그렇게 놀린 그 말을 듣고 그만큼 참 분(憤)이 날 수도 있겠지만, 그렇기로서니 그렇게까지 무참(無慘)하게 살생을 하고 그럴 수는 없어.

 

웬수를 갚을라면 거기에 관계되는 사람만 허지, 그렇다고해서 아주 그 많은 사람을 갖다가 생(生)으로 매장을 해가지고 코끼리로 밟혀서 죽이고. 그 살생을 하되 그런 방법이 그렇게 참혹하고 악독한 방법으로 그러는 법이 아니고.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은 남한테 웬수를 본의(本意) 아니게 짓기도 하고, 또 본의 아니게 또 보복(報復)을 하는 경우도 있을 수가 있습니다마는, 부처님께서는 「절대로 보복을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보복으로써 정말 깨끗하게 일이 처리가 되는 것이 아니고, 보복을 하면 그쪽에서는 다시 또 보복을 하고, 요쪽에서 또 보복을 하고 해서 생(生)을 거듭하면서 점점 원결(怨結)은 더 깊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가지고 오늘날 이 세계가 이렇게 서로 이 사상(思想)이 다르고 이념(理念)이 다르고 또 이해관계(利害關係)가 다르면 서로 참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아니하고 싸우는데, 그렇게 싸와가지고 자기나라가 행복해질 수도 없는 거고, 싸와가지고 이 온 세계가 평화롭게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참 이 살생(殺生), 예수교에서는 '모든 동물은 사람으로 하여금 잡어먹으라고 그렇게 하나님이 만들어 놨으니까 소고 돼지고 닥치는 대로 동물은 잡어먹어야 옳다'고 그런 말들을 합니다마는.

그래서 그런 얘기를 하면서, 그래서 그러면 지금은 사람 몸뚱이에 이나 벼룩이 없어졌지만 참 해방 직후 굉장히 이가 참 많고, 이 없는 사람이 없고 그런데 "그러면 사람 몸뚱이를 이나 벼룩이, 벼룩이나 빈대가 그 (피를) 빨아 먹고 사는데, 그러면 사람은 이나 벼룩 빈대가 (피) 빨아 먹으라고 이 세상에 태어났겠느냐?"고 이렇게 반박을 하고 웃은 일도 있습니다마는, 사람이 살기 위해서 짐승이 태어났다고는 도저히 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 세상이 약육강식(弱肉强食)이 되아가지고 힘 강한 놈이 약한 놈을 갖다가 먹고 살고 이렇게 하고 있으나 이것은 떳떳한, 마땅히 그렇게 되아라고 누가 만들어 놨다고 이렇게 생각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서로 도우면서 살 수 있는 세계가 되어야 하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이런 그 미물(微物)의 고기를 잡아먹은 그 과보(果報)로도 그렇게 참 무참한 과보를 받게 되거든, 하물며 사람이 사람을 죽여가지고 그 무서운 과보를 어떻게 면할 길이 있겠습니까?

사람을 죽인 죄도 그렇게 무섭거든, 하물며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죽이는, 정법(正法)을 멸망하게 하는 죄는 또한 무엇에다가 비유를 할 수가 있겠습니까?

 

사법(邪法)을 믿고, 바른 정법을 믿고 실천하지 아니하면 먼저 자기가 자기를 죽이는 것이 되는 것이고, 그런 삿된 법을 남에게 가리키면 많은 사람을 죽이게 되는 것입니다.

정법을 믿고, 정법을 실천을 해서 바른 깨달음을 얻어야 영원한 생사해탈(生死解脫)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43분55초~57분55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Posted by 닥공닥정
인과 · 인연 · 비유2020. 2. 25. 10:11

§(345) 부처님의 법문은 원음(圓音) / 법문을 듣다가 죽은 그 공덕으로 도리천에 태어난 조개 이야기[선견율비바사(善見律毘婆沙)] / 인신난득 불법난봉.

 

이 사람 몸을 받아서 정법(正法)을 만난다고 하는 것이 대단히 참 희유(稀有)한 것입니다. 저 천상에서 이 지상에 겨자씨를 향해서 바늘 하나를 떨구어 가지고 그 바늘이 겨자씨에 딱 꽂힌 만큼 그만큼 이 불법을 만나기가 그렇게 어려운 것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사람으로서 불법을 만났으니 이러한 절호의 기회를 도(道)를 열심히 닦지 아니하고 또 도를 깨닫지를 못하고 그렁저렁하다가 이 몸뚱이를 잃게 되면 천당 아니면은 지옥이요, 그렇지 않으면 축생에 떨어지고 다행히 사람으로 태어난다 해도 또 불법을 만나게 될지 아무도 보장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송담스님(N0.345)—1988년 1월 첫째일요법회(88.01.03) (용345)

 

약 11분.

 

부처님 당시에 부처님께서 선바국(瞻婆國)이라는 나라에 가셨습니다. 그 선바국 나라에 가라지(迦羅池)라고 하는 큰 못이 있었는데 그 못가에서 여러 대중을 향해서 법문(法門)을 하시게 되었습니다.

그때에 그 못 가운데에 살고 있는 큰 조개가 한 마리 있었는데, 그 조개가 부처님께서 법문하시는 그 소리를 듣고서 그 연못 밖으로 기어나왔습니다.

 

부처님의 법문은 원음(圓音)이라, 한 말씀으로 설하시되 모든 중생이 각기 자기 나름대로 그 부처님의 설법을 다 들을 수가 있습니다.

보살(菩薩)은 보살대로 듣고, 아라한(阿羅漢)은 아라한대로 듣고, 중생은 중생대로 듣고, 축생은 축생대로 다 듣고, 하늘나라 사람들은 하늘나라 사람대로 다 듣는 것입니다. 시방세계(十方世界) 모든 중생이 다 부처님의 설법을 알아들을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의 설법을 원음이라 그러는 것입니다.

 

그 가라지라고 하는 못 속에 살고 있는 큰 조개도 그 부처님의 음성소리가 못 속에 울리니까 거기서 못 밖으로 기어나와 가지고 그 못 밖에 풀밭에 풀섶에 그늘에 딱 멈추어서 입을 떡 벌리고서 법문을 듣고 있었습니다.

그때 그 목동이, 그 소를 치는 목동이 작대기를 들고서 소를 몰다가 그 목동도 그 부처님 법문, 많은 신도들이 운집(雲集)을 해가지고 앉아서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있으니까 아! 자기도 가까이 가서 그 법문을 들어야겠다.

 

이래 가지고 가 가지고 그 풀섶에다 자기가 들고 있는 그 지팽이를 탁! 꽂아 놓고 그리고서 법석(法席)에 나아갈려고 했는데, 그 작대기를 탁! 풀섶에 꽂은 것이 하필 법문을 듣기 위해서 나와 있는 조개, 그 조개가 입을 떡 벌리고 귀를 기울이고 듣고 있는 그 조개 벌리고 있는 데다가 그 작대기를 탁! 꽂았다 그말이여.

그래 놓으니 그 입을 딱 다물고 있으면 여간 작대기를 꽂아도 그 깨지들 않을 텐데 입을 벌리고 있는 데다가 탁 꽂으니까 그 조개가 깩 소리도 못하고 그냥 죽고 말았습니다.

 

그 조개는 그 부처님의 법문을 듣다가 죽었습니다. 그 법문을 듣다가 죽은 그 공덕(功德)으로 도리천(忉利天)에 태어났습니다.

도리천에 태어나 가지고 그 한량없는 복을 받고 그 도리천에 12유순(由旬)이나 되는 큰 궁전, 가로 세로가 12유순이나 되어. 그 12유순은 굉장히 큰 아주 그 거리의 단위인데, 그 12유순이나 되는 그 넓고 큰 궁전에서 천녀들과 그 노래를, 천녀들이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고 그 잘 먹고 잘 입고 그 낙(樂)을 받고 있는데.

 

그러면서 그 천안(天眼)으로써 자기가 과거에 어떠한 연(緣)으로 해서 이렇게 도리천에 태어나 가지고 이런 천당의 낙을 받고 있는가 하고 전생에 자기 몸뚱이를 따악 관(觀)을 해 보니까,

전생에 자기가 한 마리의 조개로써 이 선파국의 가라지라고 하는 못에서 살고 있다가 부처님의 법문을 듣기 위해서 나왔다가 그 목동에 작대기에 꽂혀서 죽은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 부처님의 법문을 듣다가 죽기는 했지만 부처님의 법문을 들은 그 공덕으로 내가 이런 도리천에 태어나서 이러한 참 이 한량없는 낙(樂)의 보(報)를 받게 되었구나' 이렇게 생각을 하고서 그 궁전에서 내려와 가지고 부처님 회상(會上)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래 가지고 부처님께 예배를 드리고 공양(供養)을 올리니까 부처님께서 설법을 해 주셨습니다.

 

그 조개의 후신(後身)인, 천당에서 내려온 그 조개를 향해서 부처님께서 법을 설하시니까 바로 언하(言下)에 수다원과(須陀洹果)를 증득을 해 가지고 그래 가지고 환희용약(歡喜踊躍) 해 가지고 다시 도리천으로 돌아왔습니다. 이것은 『희(선)견율비바사(善見律毘婆沙)』라고 하는 경(經)에 이러한 설화가 있습니다.

 

이 설화를 통해서 그러한 조개도 부처님의 설법을 들은 그 공덕(功德)으로—보통 부처님의 설법을 듣다가 죽지 않고 그냥 어떠한 사람의 작대기에 꽂혀서 죽었다면 원한심을 품고 세세생생에 서로 원수를 갚고 원수를 또 받고 하면서 악도(惡途)를 윤회(輪廻)할 텐데,

부처님의 법문을 들었던 그 인연공덕으로 천상에 태어났고, 다시 또 천상에서 내려와 가지고 부처님께 공양—그 너무너무 감사하니까 부처님께 그 감사한 은혜를 보답하기 위해서 내려와서 예배를 드리고 공양을 올리고서 부처님께서 법문을 해 주셔 가지고 성인(聖人)의 그 수다원과를 증득을 하게 되었어.

 

한 마리의 조개도 법문을 의지해서 그렇게 깨달랐거든, 하물며 우리 사람!

우리 사람은 다른 중생들, 다른 짐승들보다는 훨씬 여러 가지 여건이 도(道)를 닦기 좋게 우리는 타고난 것입니다.

 

천상에 태어났던 이 조개는 다행히 참, 부처님의 법문을 들은 공덕으로 천상에 태어났기 때문에 다시 또 이 인간 세상에 내려와 가지고 부처님의 법문을 들었지만, 다른 어떠한 유루복(有漏福)을 지어서 천상에 올라가면 계속해서 천상에서 복을 받느라고 여간해서 발심(發心)을 해 가지고 불법에 귀의(歸依)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다행히 우리는 숙세의 깊은 인연이 있어서 사람 몸을 받아 가지고 금생에 또 이 불법(佛法)에 귀의해서 이렇게 최상승(最上乘) 법문을 듣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 사람 몸을 받아서 정법(正法)을 만난다고 하는 것이 대단히 참 희유(稀有)한 것입니다. 저 천상에서 바늘 하나를 떨구어 가지고, 이 지상에 겨자씨를 향해서 바늘을 떨구어 가지고 그 바늘이 겨자씨에 딱 꽂힌 만큼 그만큼 이 불법을 만나기가 그렇게 어려운 것입니다.

 

또 눈먼 거북이가 천년 만에 한 번씩 바다 위에 떠올라 가지고 그때 마치 구멍이 뚫린 큰 고목나무 등걸을 만나 가지고 거기에 몸을 의탁해 가지고 숨을 쉬고서 들어가는데, 그 천년 만에 떠올라 가지고 하필 떠오른 그곳에 구멍 뚫린 고목나무 둥치를 만난 만큼 그만큼, 그보다도 더 어렵다 이것입니다.

더군다나 그 거북이는 눈먼 거북이입니다. 눈이 떠 있는 거북이도 그 고목나무를 만나기가 어려울 텐디, 눈먼 거북이가 더군다나 어떻게 그 나무를, 지척(咫尺) 간에 나무가 있은들 어떻게 그것을 붙잡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만큼 사람으로 태어나서 불법을 만나기가 그렇게 어렵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사람으로서 불법을 만났으니 이러한 절호의 기회를 도(道)를 열심히 닦지 아니하고 또 도를 깨닫지를 못하고 그렁저렁하다가 이 몸뚱이를 잃게 되면 천당 아니면은 지옥이요, 그렇지 않으면 축생에 떨어지고 다행히 사람으로 태어난다 해도 또 불법을 만나게 될지 아무도 보장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12분59초~24분11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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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문을 듣다가 죽은 그 공덕으로 도리천에 태어난 조개 이야기

[참고] 『선견율비바사(善見律毘婆沙)』 제4권. 승가발타라(僧伽跋陀羅) 한역(漢譯) | 동국역경원.

 

물었다. "부처님은 무엇 때문에 하늘과 사람들만의 스승이요, 축생의 스승은 아닙니까? 옛날 여래가 세상에 계시면서도 축생들을 위하여 설법하셨는데 무엇 때문에 하늘과 사람들만의 스승이라 합니까?"

 

수다라경(修多羅經)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때에 부처님은 첨파국(瞻婆國)에 계시면서 가라(迦羅) 못가에서 첨파국 사람들을 위하여 설법하셨는데 이때 못 안에 무명조개[蛤 대합조개] 하나가 부처님의 설법하신 소리를 듣고는 기뻐하여 곧 못에서 나와 풀뿌리 아래에 들어갔습니다.

 

이때에 어떤 한 소를 치는 사람[牧牛人]은 대중들이 둘러서서 부처님 설법을 듣고 있음을 보고는 부처님에게 가서 법을 들으려고 하여 지팡이로 땅을 찌른 것이 무명조개 머리에 잘못 닿았습니다. 무명조개는 곧 목숨이 끊어져서 도리천에 나아 도리천왕이 되었으니, 그 복의 과보 때문이었습니다. 궁전의 세로와 너비는 바로 12유순이었습니다.

이에 무명조개 천인은 갑자기 깨달았습니다. 기녀들의 오락 소리를 보고 깨달은 뒤에 곧 생각하였습니다. '나는 앞서 축생이었는데 무슨 인연 때문에 이 하늘 궁전에 태어났을까?'

곧 하늘 눈[天眼]으로 자세히 살피니, 앞서 못가에 부처님 설법을 들은 이 공덕 때문에 이 과보를 얻었기에 무명조개 천인은 곧 궁전을 타고 부처님에게 가서 닿아 땅에 엎드려 발아래 예배하였습니다.

 

問曰 佛何以獨爲天人師 不爲畜生師耶 昔如來在世亦爲畜生說法 何以獨稱爲天人師

修多羅經說 爾時佛在瞻婆國 於迦羅池邊 爲瞻婆人說法 是時池中有一蛤 聞佛說法聲歡喜 卽從池出入草根下 是時有一牧牛人 見大衆圍遶聽佛說法 卽往到佛所 欲聞法故以杖刺地 誤著蛤頭 蛤卽命終生忉利天 爲忉利天王 以其福報故 宮殿縱廣正十二由旬

於是蛤天人 霍然而悟 見諸妓女娛樂音聲 悟已尋卽思惟 我先爲畜生 何因緣故生此天宮 卽以天眼觀 先於池邊聽佛說法 以此功德得此果報 蛤天人卽乘宮殿 往至佛所頭頂禮足

 

부처님은 아시면서 일부러 '너는 어떤 사람인데 갑자기 나의 발에 예배하고 신통ㆍ광명ㆍ상호가 견줄 데 없이 여기를 환히 비추느냐?'고 물으셨습니다.

무명조개 천인은 게송으로 대답하였다.

 

옛날에 무명조개 몸이 되어

물속에서 먹이를 찾다가

부처님의 설법하신 소리 듣고

나와서 풀뿌리 밑에 있었습니다.

 

어떤 소치는 사람이 있었는데

지팡이를 가져와서 법을 듣다가

지팡이로 저의 머리를 찔렀으므로

목숨을 마쳐서 천상에 났습니다.

 

부처님은 무명조개 천인이 말한 게송으로 사부대중을 위하여 설법하셨습니다. 이때에 대중 가운데 팔만사천 인은 다 불도의 자취를 얻었고, 무명조개 천인은 수다원 과위를 얻었습니다. 이에 무명조개 천인이 도의 과위를 얻고 기뻐하며 웃음을 머금고 떠나갔습니다.

 

그러므로 천인사라 합니다.

 

佛知故問 汝是何人 忽禮我足 神通光明相好無比 照徹此間

蛤天人以偈而答 往昔爲蛤身 於水中覓食 聞佛說法聲 出至草根下 有一牧牛人 持杖來聽法 杖攙刺我頭 命終生天上

佛以蛤天人所說偈 爲四衆說法 是時衆中八萬四千人 皆得道跡 蛤天人得須陀洹果 於是蛤天人得道果已 歡喜含笑而去 故稱爲天人師

 

[참고] 『법원주림(法苑珠林)』 제17권 「제7 경법편(敬法篇)」 ’제3 청법부(聽法部)‘ 서명사(西明寺) 사문(沙門) 석도세(釋道世) 지음 | 동국역경원.

 

『선견율론(善見律論)』에서 말하였다.

옛날 부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 첨바라국(瞻婆羅國)의 가라못[迦羅池] 가에 가서 대중을 위해 설법하셨다. 그때 못에 있던 대합조개 한 마리가 부처님께서 못가에서 설법하시는 소리를 듣고 못에서 나와 풀 속으로 들어가 법을 듣고 있었다.

그때 또 어떤 사람이 지팡이를 들고 소를 놓아 먹이고 있었다. 그는 부처님께서 앉아 대중을 위해 설법하시는 것을 보고 곧 부처님에게로 나아가 설법을 들으려고 지팡이를 땅에 꽂다가 잘못해 조개의 머리를 찔렀다. 조개는 곧 그 자리에서 죽어 도리천에 났다. 그 복의 과보로 그 궁전의 가로 세로가 12유순이 되었다. 그는 여러 천녀들과 향락하다가, 곧 궁전을 타고 부처님께로 가서 부처님 발에 예배했다.

 

善見律論云 昔佛在世時 到瞻婆羅國迦羅池邊 爲衆說法 時彼池中有其一蛤 聞佛池邊說法之聲 卽從池出 入草根下 聽佛說法 時有一人持杖放牛 見佛在坐爲衆說法 卽往佛所 欲聞法故 以杖刺地誤著蛤頭 卽便命終 生忉利天 以福報故 宮殿縱廣十二由旬 與諸天女 娛樂受樂 卽乘宮殿 往至佛所 頭頂禮足

 

부처님께서는 아시면서 짐짓 물으셨다. "너는 어떤 사람이기에 갑자기 와서 내 발에 예배하며 신통과 광명과 상호가 비할 데 없어 이 세간을 환히 비추느냐?"

조개였던 하늘 사람은 게송으로 대답했다.

 

저는 지난 세상에 대합조개로서

물 속에서 먹이 찾고 살다가

부처님 설법하는 소리를 듣고

못에서 나와 풀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소를 먹이는 어떤 사람이

지팡이 들고 법을 들었는데

지팡이 꽂다 저의 머리 찔러

저는 죽어서 천상에 났습니다.

 

부처님께서 이 조개였던 하늘 사람의 게송으로 사중(四衆)을 위해 설법하셨다. 그때 대중 가운데 팔만사천 인은 다 도의 자취를 보았으며, 그 조개였던 하늘 사람은 수다원과(須陁洹果)를 얻어 합장하고 떠났다.

 

佛知故問 汝是何人 忽禮我足 神通光明相好無比照徹此間

蛤天人以偈而答 往昔爲蛤身 於水中覓食 聞佛說法聲 出至草根下 有一牧牛人 持杖來聽法 杖劖刺我頭 命終生天上

佛以蛤天人所說偈 爲四衆說法 是時衆中八萬四千人 皆得道跡 蛤天人得須陀洹果 合掌而去

 

*법문(法門 부처님의 가르침 법/문 문) ; 불법(佛法)을 문(門)에 비유한 말.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門)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부처님 ; 불(佛). 산스크리트어, 팔리어 buddha의 음사. 각자(覺者)·각(覺)이라 번역.

① 궁극적인 진리를 깨달은 사람. 우주의 본성이나 참모습을 깨달은 사람. 모든 번뇌를 소멸한 사람. 청정한 성품을 깨달은 주체. ② 진리 그 자체. 우주 그 자체. ③ 석가모니.

*원음(圓音) ; 치우침 없는 원만한 음성. 들을 수 없는 이가 없는 음성. 모든 유정이 제각기 알아들을 수 있는 소리. 부처님께서 한 음성[一音]으로 일체법을 설하실 때, 모든 중생이 제각기 능력이나 소질에 따라 평등하게 이해하는 원만한 부처님의 가르침.

*보살(菩薩) : 보리살타(菩提薩埵)의 준말。각유정(覺有情) • 개사(開士) • 대사(大士)등으로 번역。①성불하기 위하여 수행에 힘쓰는 이의 총칭。②대승교에 귀의, 사홍서원을 발하여 육바라밀을 수행하며 위로는 보리를 구하고 아래로는 일체 중생을 교화하여 자리 • 이타(自利 • 利他)의 행을 닦으며 51위의 수행계단을 지나 드디어 불과(佛果)를 증득하는 이.

*아라한(阿羅漢) ; 산스크리트어 arhat의 주격 arhan의 음사. 모든 번뇌를 완전히 끊어 열반을 성취한 성자. 응공(應供)·응진(應眞)·무학(無學)·이악(離惡)·살적(殺賊)·불생(不生)이라 번역.

마땅히 공양 받아야 하므로 응공(應供), 진리에 따르므로 응진(應眞), 더 닦을 것이 없으므로 무학(無學), 악을 멀리 떠났으므로 이악(離惡), 번뇌라는 적을 죽였으므로 살적(殺賊), 미혹한 마음을 일으키지 않으므로 불생(不生)이라 함.

*시방세계(十方世界) ; 온 세계. 사방(四方 동•서•남•북)과 사유(四維 동북•동남•서남•서북)와 상하(上下)에 있는 무수한 세계.

*풀섶 ; '풀숲(풀이 무성하게 꽉 들어찬 곳)'의 사투리.

*운집(雲集 구름 운/모일 집) ; 구름[雲]처럼 모인다[集]는 뜻으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듦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법석(法席) ; 대중이 둘러앉아서 설법, 독경, 강경, 법화(法話) 따위를 행하는 자리.

*공덕(功德 공로·보람 공/덕 덕) ; ①복, 좋은 결과를 가져 오는 원인이 되는 뛰어난 복덕(福德). ②선한 마음으로 남을 위해 베푸는 모든 행위와 마음 씀씀이.

무엇보다 가장 큰 공덕은 불법에 귀의하여 깨달음을 닦는 것이고, 이러한 사람을 보고 함께 기뻐하는 것도 큰 공덕(隨喜功德)이 된다. 이러한 공덕은 끝이 없어서 수천 사람이 횃불 하나에서 저마다 홰를 가지고 와서 불을 붙여 가더라도 원래의 횃불은 사그러들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참고] 『大乘義章』 (제9권) ‘二種莊嚴義四門分別’에서.

言功德者 功謂功能 善有資潤福利之功 故名爲功 此功 是其善行家德 名爲功德

 

공덕에서 공(功)은 공능(功能, 功績과 才能)을 말하니, 선을 쌓는 등 복되고 이로운 공능을 지닌 것을 공(功)이라고 하며, 이 공을 통해 이루어진 선행에 따른 덕을 공덕이라고 한다.

*도리천(忉利天) ; 욕계에 있는 육욕천(六欲天)의 하나. 도리(忉利)는 33이라는 뜻, 천(天)은 신(神)들이 사는 곳이라는 뜻. 33신(神)들이 사는 곳.

불교의 우주관에 의하면 세계의 중심에 높이 솟은 거대한 산이 수미산인데, 이 수미산 정상에 있으며, 중앙에 왕인 제석(帝釋)이 있고 사방의 봉우리에 각각 8신(神)이 있어 33신.

*유순(由旬) ; 산스크리트어 yojana(요자나)의 음사. 고대 인도의 거리의 단위. 소달구지가 하루에 갈 수 있는 거리로서 소유순은 40리, 중유순은 60리, 대유순은 80리인 세 가지가 있다.

*연(緣) ; 인연(因緣) ; ①어떤 결과를 일으키는 직접 원인이나 내적 원인이 되는 인(因)과, 간접 원인이나 외적 원인 또는 조건이 되는 연(緣). 그러나 넓은 뜻으로는 직접 원인이나 내적 원인, 간접 원인이나 외적 원인 또는 조건을 통틀어 인(因) 또는 연(緣)이라 함. ②연기(緣起)와 같음.

*보(報) ; 과보(果報), 인과응보(因果應報, 전생에 지은 선악에 따라 현재의 행과 불행이 있고, 현세에서의 선악의 결과에 따라 내세에서 행과 불행이 있는 일).

*회상(會上) ; ①대중이 모여서 설법을 듣는 법회. 또는 그 장소. ②대중들이 모여서 수행하는 공동체 및 그 장소. ③‘회상(會上)’이란 말은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은 후, 영취산(靈鷲山)에서 제자들에게 설법을 하면서 함께 모인 것을 ‘영산회상(靈山會上)’이라 부른 데에서 유래한다.

*공양(供養 이바지하다·받들다·모시다·바치다 공/기르다·공양하다 양) ; ①불(佛)•법(法)•승(僧)의 삼보(三寶)나 스승, 부모, 영가에 음식, 옷, 약, 꽃, 향 등을 바침. ②스님들의 식사를 공양이라 하는데, 이것은 스님들은 시주(施主)의 공양물로 생활하기에 공양을 올리는 이[施主]의 시은(施恩)을 상기하여 잊지 않게 하고자 함이다. ③신구의(身口意) 세 가지 방법으로 하는 공양으로 삼업공양(三業供養)이라 한다. 자세[身]를 낮추어서 삼가고 공경하는 예를 갖추는 공경, 입[口]으로 훌륭함을 기리는 찬탄, 오로지 마음[意]을 쏟는 존중이다.

*수다원(須陀洹) ; 산스크리트어 srota-āpanna 팔리어 sota-āpanna의 음사(音寫). 예류(預流) · 입류(入流)라고 번역.

욕계 · 색계 · 무색계의 견혹(見惑)을 끊은 성자. 깨달음의 길을 하천의 흐름에 비유하여 그 흐름—처음으로 성자의 계열에 들었으므로 예류 · 입류라고 함.

이 경지를 수다원과(須陀洹果) · 예류과(預流果), 이 경지에 이르기 위해 수행하는 단계를 수다원향(須陀洹向) · 예류향(預流向)이라 함.

초기불교에서 - 성문(聲聞)으로서 - 해탈하는 길은 ‘성문사과(聲聞四果)’라고 하여, 수다원(須陀洹) · 사다함(斯陀含) · 아나함(阿那含) · 아라한(阿羅漢)의 4단계를 설정하고 있다.

*견혹(見惑) ; ①사제(四諦)를 명료하게 주시하지 못함으로써 일어나는 번뇌. 이 번뇌에는 유신견(有身見) · 변집견(邊執見) · 사견(邪見) · 견취견(見取見) · 계급취견(戒禁取見) · 탐(貪) · 진(瞋) · 치(癡) · 만(慢) · 의(疑)가 있음. 

② 유식설에서, 후천적으로 습득한 그릇된 지식에 의해 일어나는 번뇌, 곧 분별기(分別起)를 말함.

*환희용약(歡喜踊躍 기쁠 환/기쁠 희/뛸·춤출 용/뛸 약) ; 기뻐서 뛰는(춤추는) 것. 마음속에서 기뻐하는 것이 환희(歡喜)이고, 그것이 형태나 동작으로 나타나는 것이 용약(踊躍)이다. 수행 또는 문법(聞法)에 동반되는 기쁨. 기뻐서 힘이 솟음. 대단히 기뻐하고 있는 모양.

*선견율비바사(善見律毘婆沙) ; 남제(南齊)의 승가발타라(僧伽跋陀羅) 한역. 18권 『선견론(善見論)』 · 『비바사율(毘婆沙律)』 · 『선견비바사율(善見毘婆沙律)』이라고도 한다. 소승 율부(律部) 5대 논서 중 하나로서 스리랑카 상좌부에서 전수된 율장에 대한 주석서이다.

*세세생생(世世生生) ; 많은 생애를 거치는 동안. 태어날 때마다. 세세(世世)토록.

*악도(惡道, 惡途) ; 악한 짓을 한 중생이 그 과보로 받는다고 하는 괴로움의 생존. 지옥•아귀•축생 등의 세계. 삼악도(三惡道).

*윤회(輪廻) : 세상의 온갖 물질과 모든 세력(勢力)은 어느 것이나 아주 없어져 버리는 것이 하나도 없다。오직 인과(因果)의 법칙(法則)에 따라 서로 연쇄 관계(連鎖關係)를 지어 가면서 변하여 갈 뿐이다。마치 물이 수증기가 되고 구름이 되고 비가 되어, 다시 물•수증기••• 이와 같이 모든 것은 돌아다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업식(業識)도 육체가 분해될 때에 아주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모든 중생들은 온갖 생각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므로, 쉴 새 없이 번민과 고통 속에서 지내다가 육신이 죽으면 생전에 지은 업(業)을 따라 지옥 • 아귀 • 축생 • 수라 • 천상 또는 다시 인간으로 수레바퀴 돌듯 돌아다니게 된다。그러나 성품을 깨쳐서 생각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바가 없게 되면 윤회는 끊어지는 것이다.

*도(道) ; ①깨달음. 산스크리트어 bodhi의 한역. 각(覺). 보리(菩提)라고 음사(音寫). ②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그 방법. ③무상(無上)의 불도(佛道). 궁극적인 진리. ④이치. 천지만물의 근원. 바른 규범.

*유루복(有漏福) ; 평범한 범부 중생이 지은 복(福)—부귀영화, 명예, 권리, 오욕락 따위의 복으로, 유루(有漏)—샘이 있는, 번뇌 또는 고를 더욱 증장시키는—의 복이어서 한도(限度)가 있어 영원성이 없고 영원히 믿을 것이 못된다.

하늘에다 쏘아 올린 화살이 아무리 힘이 센 장사가 활을 당겨서 활을 쐈다 하드라도 올라갈 만큼 올라가면 결국은 다시 땅으로 떨어지고 마는 것처럼, 아무리 큰 복을 쌓는다 하드라도 그 복이 인천(人天)에서 제일가는 부자가 된다 하드라도 자기가 지은 복만큼 다 받아버리면 다시 또 타락하게 된다.

 

그래서 옛날 성현들은 인간 세상의 그 유루복(有漏福)이라 하는 것은 그 복을 얻으면서 죄를 짓고 또 얻어가지고 누리면서 죄를 짓고, 또 그 얻었던 것을 결국은 다 없애면서 그 죄를 짓는다. 그래서 『인간의 유루복은 삼생(三生)의 원수다』 이렇게 표현을 한 것이다.

 

그러나 세상을 살아가려면 유루복도 있기는 있어야 하므로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을 해서 구해야 하고,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을 해서 얻은 복은 그래도 나를 그렇게까지 큰 죄를 짓지 않게 하고, 언젠가 떠나더라도 나를 그렇게 크게 해롭게는 하지 않고 곱게 떠나는 것이다.

유루복이라도 좋은 방법으로 구하고 보시(布施)와 같은 또 좋은 방향으로 잘 사용을 하는데, 보시도 무주상(無住相) 보시를 해야 같은 재보시(財布施)를 해도 결과로 돌아오는 복은 한량이 없다.

 

참선하는 것이 바로 나를 무심(無心)한 상태로 이끌게 만들고, 무심한 상태에서 재보시, 법보시, 무외보시(無畏布施)를 하면 그것이 바로 무주상 보시가 되는 것이어서, 무주상(無住相)으로 하면 그것이 무루복과 연결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항상 참선하는 마음으로 살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돈도 벌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보시도 한다면, 유루복과 무루복을 겸해서 닦는 것이다.

 

(4분 51초)

[참고] 송담스님(No.565) - 1996년 설날통알 및 설날차례(1996.02.19)에서.

복(福)이라고 하는 것이, 부처님 말씀에 유루복(有漏福)과 무루복(無漏福)이 있는데, 유루복은 삼생(三生)의 원수다. 왜 그러냐?

유루복은 복을 짓느라고 죄를 지으니 그것 때문에 내가 삼악도(三惡道)에 가게 되니까 그래서 그 유루복은 원수이고, 또 하나는 지어놓은 복을 그 놈을 지키고 사용하느라고 또 죄를 짓게 되니까 그래서 또 원수고, 마지막에는 언젠가는 유루복은 나의 몸과 마음과 가정을 갖다가 갈기갈기 짓밟고 찢어 놓고서 떠나기 때문에 또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유루복일망정, 유루복이 없어갖고는 정말 세상을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유루복이 삼생의 원수라 하더라도 그것이 없어갖고는 당장 어찌 해 볼 도리도 없고, 사람노릇 할 수도 없고, 생활도 할 수도 없고, 자식교육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유루복도 있기는 있어야 하는데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을 해서 구해야—힘들고 일확천금(一攫千金)은 안 되지만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을 해서 얻은 복은 그래도 나를 그렇게까지 큰 죄를 짓지 않게 하고, 언젠가 떠나더라도 나를 그렇게 크게 해롭게는 하지 않고 곱게 떠나는 것입니다.

부당한 방법으로 억지로 남을 해롭게 하고, 나라의 법을 어기면서까지 무리한 방법으로 취득을 해 놓으면 그것은 머지않아서 큰 재앙을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루복이라도 좋은 방법으로 구하고 또 좋은 방향으로 잘 사용을 하는데, 그것을 사용을 할 때에는 보시를 하는데, 무주상(無住相) 보시를 해야 같은 재보시(財布施)를 해도 결과로 돌아오는 복은 한량이 없는 것이고,

 

남에게 금전이나 어떤 재산을 보시하면서 내가 이것을 했다고, ‘너한테 보시를 했으니 나한테 너는 응당 고맙게 생각해야 하고, 나한테 그 은혜를 갚아야 한다.’ 그래 가지고 그 과보(果報)를 바래.

공투세를 해 가지고 과보를 바라면 그것이 유주상(有住相)의 보시가 되어서 상대방에 정신적으로 많은 부담감을 주어가지고, 내것 보시하고서 주고받는 사이가 서먹하게 되고, 나중에는 결국 원수가 되는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시는 하되 무주상(無住相)으로 해야 한다.

 

무루복(無漏福)은 어떻게 짓느냐? 물론 재보시, 법보시, 무외보시(無畏布施)를 하되, 무주상(無住相)으로 하면 그것이 무루복과 연결이 되고,

그 무루복을 참으로 더 훌륭하게 크게 깊게 심으려면 우리 자신이 항상 정법을 믿고, 최상승법에 입각해서 참선(參禪)을 열심히 함으로서, 참선하는 것이 바로 나를 무심(無心)한 상태로 이끌게 만들고, 무심한 상태에서 보시를 하면 그것이 바로 무주상 보시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항상 참선하는 마음으로 살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돈도 벌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보시도 한다면, 유루복과 무루복을 겸해서 닦게 되기 때문에 우리는 살아서부터 도솔천 내원궁이나 극락세계에 갈 수 밖에 없는 그러한 복을 심고 종자(種子)를 심기 때문에, 우리는 도솔천 내원궁에 가는 것은 걱정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을 일으킴[發].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보리심은 모든 부처님이 부처님이 될 수 있었던 바탕이 되는 종자이고 청정한 법이 자라날 수 있는 좋은 밭이기 때문에 , 이 마음을 발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면 속히 위없는 보리를 증득한다.

*귀의(歸依) ; ①부처님의 가르침을 믿고 의지함. ②몰아의 경지에서 종교적 절대자나 종교적 진리를 깊이 믿고 의지하는 일. ③돌아가거나 돌아와 몸을 의지함.

*불법(佛法) ; 부처님이 깨달은 진리(法). 부처님의 교법(敎法). 부처님이 설한 법. 부처님의 가르침.

*최상승(最上乘) ; 더할 나위 없는 뛰어난 교법. 최상의 가르침. 가장 뛰어난 가르침.

*'우리는 이 사람 몸을 받아서 정법(正法)을 만난다고 하는 것이 대단히 참 희유(稀有)한 것입니다' ; 인신난득(人身難得). ‘사람의 몸[人身] 얻기[得] 어렵다[難]’ ‘사람으로 태어나기 힘들다’ 난득(難得)은 성취하여 얻기가 매우 어려움을 나타내는 말.

부처님께서는 맹귀우목(盲龜遇木, 맹귀부목盲龜浮木)과 조갑상토(爪甲上土)의 비유를 들어서 인신난득(人身難得)하니 방일하지 말고 수행 정진하여 구경의 목적을 성취할 것을 가르치신다.

 

맹귀우목(盲龜遇木, 맹귀부목盲龜浮木)은 눈먼 거북이가 바다 속에 있다가 숨을 쉬기 위해 일백 년에 한 번씩 바다 밖으로 머리를 내밀 때, 파도에 이리저리 떠다니는 구멍이 한 개 뚫린 나무 조각의 구멍에 머리를 집어넣는 것. 매우 실현되기 어려운 좋은 일을 비유한 것이다.

눈먼 거북이는 지혜를 얻지 못한 중생, 바다는 유전생사하는 세계, 바다 속은 깊은 미혹, 구멍난 나무 조각은 안식처, 곧 사람의 몸으로 태어나는 것, 부처님을 만나는 것 등을 비유한 것이다.

사람으로 태어나는 것,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는 것 등이 맹귀우목과 같으니, 지금 천만다행으로 이런 조건을 갖춘 기회를 만났을 때, 부지런히 수행하여 생사윤회에서 벗어날 것을 가르치신다.

 

[참고] 『잡아함경(雜阿含經) 406.』 (제15권) ‘맹구경(盲龜經)‘ (동국역경원)

如是我聞 一時佛住獼猴池側重閣講堂 爾時世尊告諸比丘 譬如大地悉成大海 有一盲龜 壽無量劫 百年一出其頭 海中有浮木 止有一孔 漂流海浪 隨風東西 盲龜百年 一出其頭 當得遇此孔不 阿難白佛 不能世尊 所以者何 此盲龜 若至海東 浮木隨風 或至海西 南北四維圍遶亦爾 不必相得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미후(獼猴)못 가에 있는 2충 강당에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유하면, 이 큰 대지가 모두 큰 바다로 변할 때, 한량없는 겁을 살아온 어떤 눈먼 거북이 있는데, 그 거북이는 백년에 한번씩 머리를 바닷물 밖으로 내민다. 그런데 바다 가운데에 구멍이 하나뿐인 나무가 떠돌아다니고 있는데, 파도에 밀려 표류하고 바람을 따라 동서로 오락가락한다고 할 때 저 눈먼 거북이 백년에 한번씩 머리를 내밀면 그 구멍을 만날 수 있겠느냐?”

 

아난이 부처님께 사뢰었다.

“불가능합니다. 세존이시여. 왜냐하면 이 눈먼 거북이 혹 바다 동쪽으로 가면 뜬 나무[浮木]는 바람을 따라 바다 서쪽에 가 있을 것이고, 혹은 남쪽이나 북쪽, 사유(四維)를 두루 떠도는 것도 또한 그와 같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반드시 서로 만나지는 못할 것입니다”

 

佛告阿難 盲龜浮木 雖復差違 或復相得 愚癡凡夫 漂流五趣 暫復人身 甚難於彼 所以者何 彼諸衆生 不行其義 不行法 不行善 不行眞實 展轉殺害 強者陵弱 造無量惡故 是故比丘 於四聖諦 當未無間等者 當勤方便起增上欲 學無間等 佛說此經已 諸比丘聞佛所說 歡喜奉行

 

부처님께서는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눈먼 거북[盲龜]과 뜬 나무[浮木]는 비록 서로 어긋나다가도 혹 서로 만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어리석고 미련한 범부가 오취(五趣 지옥·아귀·축생·인·천)에 표류하다가 잠깐이나마 사람의 몸을 받는 것은 그것보다 더 어려우니라.

왜냐하면 저 모든 중생들은 그 이치를 행하지 않고 법을 행하지 않으며, 선(善)을 행하지 않고 진실을 행하지 않으며, 서로서로 죽이고 해치며, 강한 자는 약한 자를 업신여기며 한량없는 악(惡)을 짓기 때문이니라.

그러므로 비구들아,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四聖諦]에 대하여 아직 빈틈없고 한결같지 못하다면 마땅히 힘써 방편을 쓰고 왕성한 의욕을 일으켜 빈틈없는 한결같음을 배워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참고] 『잡아함경(雜阿含經) 442.』 (제16권) ‘조갑경(爪甲經)‘ (동국역경원)

如是我聞 一時佛住舍衛國祇樹給孤獨園 爾時世尊以爪甲擎土已 告諸比丘 於意云何 我爪甲上土爲多 此大地土多 諸比丘白佛言 世尊甲上土甚少少耳 此大地土甚多無量 乃至算數譬類不可爲比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때 부처님께서 손톱으로 흙을 찍어 들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어떻게 생각하느냐? 내 손톱 위의 흙이 더 많으냐, 저 대지의 흙이 많으냐?”

모든 비구들이 부처님께 사뢰었다. “손톱 위의 흙이 훨씬 적습니다. 이 대지의 흙과 돌은 너무도 많아 한량이 없고 나아가 어떤 숫자의 비유로도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佛告比丘 如甲上土者 若諸衆生 形可見者 亦復如是 其形微細 不可見者 如大地土 是故比丘 於四聖諦未無間等者 當勤方便 學無間等 佛說是經已 諸比丘聞佛所說 歡喜奉行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손톱 위의 흙처럼, 모든 중생들 중에 형상을 볼 수 있는 중생은 역시 그와 같은 정도이고, 그 형상이 미세하여 볼 수 없는 중생은 저 대지의 흙과 같이 많으니라. 그러므로 비구들아,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에 대하여 아직 빈틈없고 한결같지 못하다면 마땅히 힘써 방편을 써서 빈틈없는 한결같음을 배워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如陸地 如是水性亦爾 如甲上土 如是衆生 人道者 亦復如是 如大地土 如是非人亦爾 ...... 如甲上土 如是衆生從地獄命終生人中者亦如是 如大地土 如是衆生從地獄命終還生地獄者亦如是 如地獄 如是畜生 餓鬼亦爾

如甲上土 如是衆生從地獄命終生天上者亦如是 如大地土 如是衆生從地獄命終還生地獄者亦如是 如地獄 如是畜生 餓鬼亦爾

 

육지처럼 물의 성질도 또한 그러하니라. 손톱 위의 흙처럼 이렇게 사람 세계[人道]의 중생도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며, 대지의 흙처럼 그렇게 사람이 아닌[非人] 중생도 또한 그러하니라.

 

손톱 위의 흙처럼 지옥에서 목숨을 마치고 인간으로 태어나는 중생도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며, 대지의 흙처럼 지옥에서 목숨을 마치고 도로 지옥에 태어나는 중생도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니라. 지옥을 설명한 것에서와 마찬가지로 축생 아귀도 또한 그와 같으니라.

 

손톱 위의 흙처럼 지옥에서 목숨을 마치고 천상(天上)에 태어나는 중생도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고, 대지의 흙처럼 지옥에서 목숨을 마치고 도로 지옥에 태어나는 중생도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니라. 지옥과 마찬가지로 축생 아귀도 또한 그와 같으니라.

 

如甲上土 如是衆生人道中沒還生人道中者亦如是 如大地土 其諸衆生從人道中沒生地獄中者亦如是 如地獄 如是畜生 餓鬼亦爾

如甲上土 其諸衆生從天命終還生天上者亦如是 如大地土 其諸衆生天上沒生地獄中者亦如是 如地獄 畜生 餓鬼亦如是

 

손톱 위의 흙처럼 인간 세계에서 목숨을 마치고 도로 인간 세계에 태어나는 중생도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며, 대지의 흙처럼 인간 세계에서 목숨을 마치고 지옥에 태어나는 그 모든 중생들도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니라. 지옥과 마찬가지로 축생 아귀도 또한 그와 같으니라.

 

손톱 위의 흙처럼 천상에서 목숨을 마치고 도로 천상에 태어나는 중생은 다해야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고, 대지의 흙처럼 천상에서 죽어 지옥에 태어나는 그 모든 중생들도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니라. 지옥과 마찬가지로 축생 아귀도 또한 그와 같으니라.

 

*정법(正法 바르다·올바르다 정/부처님의 가르침 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정법시대(正法時代 : 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후 교법(敎法)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습을 시기별로 정법(正法), 상법(像法), 말법(末法)으로 분류하는데,

처음 정법시대는 교법이 온전히 있음은 물론 닦아 가는 사람도 많고, 닦는 사람은 대개 깨쳐서 성과(聖果)를 얻게 되지마는, 그 다음 상법시대는 교법도 있고 수행하는 사람도 있지마는 깨치는 사람은 적게 되고, 그 다음 말법시대는 곧 쇠잔하고 미약한 교법만 남아 있어 수행하고 증득하는 자가 없는 시기이다. 구체적인 시기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그러나 『잡아함경(雜阿含經)』에는 「부처님의 제자들이 부지런히 신(身)·수(受)·심(心)·법(法)의 사염주(四念住)를 닦아서 탐욕과 분심을 끊으면 정법은 영원토록 세상에 머물러 빛나게 될 것이나, 수행하지 않게 되면 정법은 곧 소멸하고 말 것이다」라고 하였으며, 여러 경전에도 「누구나 부처님 말씀대로 닦으면 다 반드시 견성성불한다」하였고,

조사들의 말씀에는 「참선하는 이가 견성하는 것은 세수하다가 코를 만지는 것처럼 아주 쉽고 당연한 일이다」하였으므로, 누구나 공부하면 반드시 성공할 것이다。다만 우리는 사학(邪學)과 외도(外道)가 번성한 이 시대에 났으므로, 망녕된 알음알이를 내지 말고 줄기차게 정진한다면, 하나도 실패함이 없을[萬無一失]뿐 아니라 정법은 영원히 나아갈 것이다.

*희유(稀有 드물 희/있을 유) ; 드물게[稀] 있음[有].

*등걸 ; 나무의 줄기를 베어 내고 남은 밑동(나무줄기에서 뿌리에 가까운 부분).

*지척(咫尺 여덟 치·가깝다·길이 지/자·길이 척) ; 길이가 8치[咫 3.03cm] 밖에 안 되는 짧은 거리. 아주 가까운 거리.

 

Posted by 닥공닥정
인과 · 인연 · 비유2019. 11. 24. 16:47

§(133) 숯쟁이 영감 / 꿈과 현실은 분명히 둘이지만 하나 / 모든 현상은 진여불성으로부터 일어나는 파도 / 생사는 본래 없다 / 이만할 때 자기를 밝히라.

 

분명 허망한 줄 알면서 충실히 다 처리를 해야 하고, 충실히 하면서 동시에 허망한 줄을 아는 사람, 이것이 바로 불자로서 바르게 인생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허망한 거 내놓고 진실한 것이 없고, 실다운 것 내놓고 허망한 것이 무상한 것이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불법은 생사(生死)를 버리고 열반(涅槃)을 얻는 것이 아니라, 생사 속에서 생사 없는 도리를 깨닫는 데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을 바꾸어서 말하면 생사는 깨닫지 못한 사람에게 생사(生死)지, 참나를 깨닫고 보면 「생사는 본래 없었던 것」입니다.

깨닫지 못한 사람 눈에 비친 생사는 깨달은 사람에게는 고대로 열반의 도리요, 열반의 소식이요, 이 생사의 대해(大海)가 바로 극락세계(極樂世界)로 변하는 것입니다.

 

생사는 본래 없지만 깨닫지 못한 중생에게는 가장 무서운 것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분명 이것은 꿈에 본 독사와 같은 것이지만 꿈을 꾸고 있는 동안에는 무섭기가 생시(生時)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 우리에게는 중대한 이 문제를 해결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눈병을 고쳐야 하고 꿈을 깨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 방법이 바로 이 참선법(參禪法)입니다. 참선을 열심히 해 가지고 참나를 깨달라야만 되는 것입니다. 인생이 해야 할 일은 오직 이 한 일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송담스님(No.133)—1981년 1월 첫째일요법회 (용133)

 

(1/3) 약 21분.

(2/3) 약 20분.

(3/3) 약 8분.

 

(1/3)----------------

 

인생이 과거에 무슨 인연(因緣)으로 이 세상에 태어났는가?

 

세계 40억 인구가 다 눈도 있고, 코도 있고, 입도 있고, 손도 있고, 발도 있고, 오장육부가 다 있지만 한 사람도 똑같은 사람은 없습니다. 비슷하게 닮은 사람은 있지만 똑같은 사람은 없습니다. 왜 그러냐?

각기 지은 바가 다르기 때문에—각기 생각한 바가 다르고, 행동이 다르고, 과거 무량겁으로부터 오늘날까지 지은 바가 다르기 때문에 그 결과로써 받음이 또한 다르다 이 말씀이여.

 

누구는 부자로 살고, 누구는 명예와 권리가 있고, 누구는 힘이 세고, 누구는 건강하고, 누구는 병약하고, 누구는 정직하고, 누구는 불량하고, 천 가지 만 가지 차(差)가 있지만 이것이 다 과거에 자기가 그렇게 지어 가지고 그렇게 된 것이다.

일신상만 그럴 뿐만 아니라 부모와 자식과의 관계, 남편과 아내와의 관계, 형과 동생과의 관계, 친구와의 관계, 모든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또한 과거에 그렇게 지어 가지고 금생에 그렇게 받는 것이지, 우연히 아무 이유도 없고 원인도 없이 그러한 관계가 만나지는 것이 아니다 이 말씀이여.

 

옛날에 정승(政丞)이, 아주 학식도 높고 경륜도 있고 인격도 훌륭하고 한 정승이 한 분 있었는데, 그분의 부인도 남편 못지않게 어질고 착하고 모든 부덕(婦德)을 원만히 갖추었드라.

아들도 여러 형제 두고 살림도 풍족하고 그러한 아주 행복한 가정을 꾸려 나가고 있었는데 하루는 그 부인이 간 곳이 없어졌다. 혹 친정에를 갔는가, 이웃을 갔는가, 갈만한 곳을 다 연락을 해서 알아보았지만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어. 하루 이틀 한 달 두 달 석 달이 지내도 아무 소식이 없어.

 

그래서 그 정승이 정승을 내놓고 그 아내를 찾으러 나섰다. 팔도를 다니면서 아내를 찾으러 다니는데, 마치 강원도 지방을 가 가지고 어느 산중을 지내다가 보니 자기 아내와 비슷한 사람이 가마니를 이고 어느 영감 뒤를 따라가는 것을 보았다. 쫓아가서 자세히 살펴보니까 틀림없이 자기 아내여.

 

"여보, 당신이 아무개 아니요?"

"예, 기요"

 

그런데 왜 "어찌된 일이냐?"하고 물어보니까, 아무 이유도 없고 "그냥 나가고 싶어서 집을 나왔다"고.

 

"저 앞에 간 사람은 누구냐?"고.

"새로 만나 영감"이라고.

 

"그 머리에 이고 가는 것은 무엇이요?"

"숯 가마니요"

 

"당신이 미쳤느냐"고 붙들고 낙루(落淚)를 하는데, 부인은 별로 울지도 않고 멀쩡해 갖고 섰다 그말이여. 저만큼 숯쟁이 영감이 가다가 암만 기다려도 안 오니까 지게를 거기다 받쳐 놓고.

 

"올라가자"

"싫다"

 

"자식도 보고 싶지 않냐?"

"안 보고 싶다"

 

"저 숯쟁이 영감이 무엇이 좋아서 나를 싫다 하느냐?"

"나도 모르겠소"

 

아! 이래 가지고 영감은 울고불고해도 할멈은 별로 그렇게 슬퍼한 기색도 없이 자꾸 숯쟁이 영감만 따라갈려고 한다 그말이여. 기가 맥혀서. 강제로 끌고갈 수도 없고, 본인이 싫다는데야 별도리가 없어.

그래서 참 그 영감은 그 숯쟁이 영감한테 마누라를 꼼짝없이 뺏기고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이건 도대체 어디에다 하소연할 수도 없고, 자기 권리로 숯쟁이 영감을 권력으로 눌러서 뺏어갈 수도 없는 것이고.

 

그래서 그길로 한 발 두 발 걸어서 오대산 월정사를 찾아들어 갔어. 찾아들어 가 가지고 큰스님을 만나 가지고 일장 설화(一場說話)를 다 얘기를 했어.

"어째서 나와 반평생을 같이 사는 동안에 싸워 본 일도 없고, 피차 서로 부족하다고 생각한 바도 없고, 이 세상에 임금님 내 놓고는 내가 이 세상에서 일인지하(一人之下) 만인지상(萬人之上)으로 나 이상 좋은 영감이 없을 텐데 남편이 없을 텐데, 어째서 나를 버리고 그 숯쟁이 영감을 갔는가?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습니다"

"그 이유를 알고 싶으면 참선을 해라"

 

그래 가지고 참선(參禪)을 시작을 했습니다. 밤낮을 가리지 아니하고 '이뭣고?'를 하는데 밥도 먹게 되면 먹고 말게 되면 말고, 잠도 자게 되면 정 고단하면 조금 자고 벌떡 일어나서 공부하고,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간에 정말 그 큰스님의 지도하에 목숨을 바쳐서 도를, 참선을 했습니다.

 

참선이란 것이 꼭—'내가 마누라와의 관계가 어째서 무슨 인연으로 이렇게 되었는가?' 참선 한다고 해서 그것을 알게 되고 그것을 알기 위해서 참선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정승의 입장에서는 이 세상에 해 볼 건 다해 보고 아무것도 부러운 것이 없고, 오직 생짜로 마누라한테 내소박을 맞고, 숯쟁이 영감한테 가버린 그 이유가 자기 목숨보다도 더 궁금하고 기가 맥혀서 '이것은 기어코 내가 이것은 알고야만 말겠다!' 그래 가지고 죽기로 맹세를 하고 정진을 했던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밥을 먹어도 짜고 싱겁고 매운 중도 모르고, 배가 고픈 중도 모르고 제절로 속에서 의심이 나는데 앉아서도 '이뭣고?' 서서도 '이뭣고?' 밥을 먹으면서도 '이뭣고?' 소지를 하면서도 '이뭣고?'

누가 자기 보고 '잘하네, 못하네' 무슨 그런 시비하는 것도 귀에 들어오지도 아니하고, '열심히 해야겠다, 열심히 이래야겠다 저래야겠다' 의식적으로 그런 생각도 없고 그저 속에서 자동으로 분심(憤心)이 나고 의심이 나는데, 옆에 사람 그 사람에 대해서는 간섭할 수도 없고.

 

이렇게 해 가지고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했어. 간절한 의심이 속에서부터 북받쳐 오르는데 '이뭣고?' 뿐이다.

한 달, 두 달, 석 달, 일 년 이렇게 하다가, 잠도 안 오고 배고픈 중도 모르고 의단이 독로해서 적적성성(寂寂惺惺)해 가지고 툭 터졌는데 아! 자기 전생(前生)이 환히 다 보인다 그말이여.

 

이 말을 듣고서 '옳지! 참선을 하면 전생을 환히 아는구나' 이렇게만 생각을 하면 아니됩니다.

이것은 인과(因果)가 어떻다고 하는 것을 이야기하기 위해서 지금 내가 말을 하고 있는 것이고, 참선을 하는 데 있어서는 그렇게 속에서부터 자동으로 의단이 독로해야 한다고 하는 것만을 얘기한 것이지, '아! 견성(見性)을 하면 전생 일을 훤히 안다, 전생 일을 아지 못하면 견성이 아니다' 이렇게 비약을, 비약적으로 생각을 해서는 아니됩니다.

 

'전생에 과연 어떻게 해서 마누라를 만나게 되었는가?' 생각해 보니까 환하니 보이는데, 전생에 자기는 내나 그 오대산에서 공부하던 선객(禪客) 스님인데.

그 마누라는 누구인고 하고 보니까, 선방에 스님네들은 겨울에는 그 어한(禦寒)을 하기 위해서 솜을 넣어서 누벼 가지고 누비 두루마기를 입고 그것이 또 떨어지면 헝겊을 거듭거듭 대 가지고 마치 따오기를 새를 갖다가 주렁주렁 매달아 놓은 것처럼 그렇게 더덩캥이 누데기를 입고 사는데, 겨울에는 추워서 빨 수도 없고 한 해 겨울을 입고 그 이듬해사 그 누데기를 빨게 됩니다.

 

요새는 이[蝨]가 어디로 갔는지 도대체 약을 할려고 해도 구경을 할 수가 없지만 옛날에는 이가 아주 자주자주 옷을 갈아입고 그런다 해도 이가 전혀 없을 수가 없고, 더군다나 누데기 같은 것을 한 해 겨울을 입고 보면 누데기 안에 이가 뚱실뚱실한 황소만씩한 이로부터서 서카래까지 수없이 더글더글합니다.

그 누데기 속에 이가 한 마리가 크기 시작하는데 주먹탱이 만큼 컸는가, 가려우면 그놈을 잡아내 가지고 손바닥에다가 이렇게 굴려 보기도 하고 또 씨름도 시키기도 하고 그러다가 또 집어넣고.

 

그놈을 잡아서 버리면은 엄동설한에 얼어 죽을 것 같고, 차마 그래서 도로 집어넣다가 심심하면 꺼내서 같이 또 놀고 집어넣고 그렇게 한 해 겨울을 지냈는데, 그래가지고 해동(解冬)이 되아서 이제 누데기를 빨게 되았다.

그냥 마구잽이 빨면 툭 터져서 죽으면 안돼았고, 그래도 한 해 겨울을 같이 지냈으니 미운 정 고운 정이 다 들어서 아! 그 이를 어떻게 처리를 할까?

옷을 갈아입고 다시 또 몸에다 넣자니 그렇고, 그러던 차에 마치 개를 만났다 그말이여. 그래가지고 그 개한테 이를 갖다가 개 몸뚱이에다 요렇게 살짝 넣어 주었다 그말이여.

 

그 이가 누구냐 하면은 자기 할머니(부인)였었다. 한 해 겨울을 따뜻한 자기 몸에서 함께 지냈으니 그 인연으로 그다음 생에 마누라가 되어가지고 자기와 일심동체가 되어가지고 반평생을 같이 살았어. 그러면 그 개가 누구냐 하면은 숯쟁이 영감이다.

 

이를 잡어서 개한테 넣어 줬는데, 그 자기 몸에서 잡아가지고 개한테 넘겨줄 그때가 돌아오니까 자기를 버리고—부인도 모르지, 모르고서 그 개한테 건너간 그 도수가 딱 돌아오니까 정승 영감을 버리고 정처 없이 가출을 해가지고 걸어가고 걸어가다 얻어먹고 얻어먹다 걸어가고,

그래가지고 결국은 그 숯쟁이 영감, 개가 숯쟁이 영감으로 태어났는데 그 숯쟁이 영감을 만나자 처음 만났는데 그냥 첫눈에 눈이 딱! 맞어 버렸다. 아무 이유도 모르고 까닭도 없이 그 숯쟁이 영감을 한눈에 딱! 보자마자 '이게 바로 내 영감이다'

 

숯쟁이 영감, 매일 숯을 과서, 숯을 갖다가 구워가지고 그놈을 팔아서 30리 50리를 걸어서 강릉장에 가서 팔고 그놈을 팔아 가지고 또 잡곡을 사가지고 들어와서 그놈을 끓여 먹고 사는 홀애비 신세인데 옷도 참 말로 할 수가 없고, 숯쟁이 영감이 숯가루로 화장을 하고 사는데 수염허며 무엇이 볼 것이 있겠느냐 그말이여. 볼수락 정 떨어지게 생겼겠지만 전생의 인연으로 정승 영감 백보다 낫다 그말이여.

 

그래 가지고 숯쟁이 영감이야 정승 부인이 자기를 찾아왔는데, 자기가 정승 부인이라고는 안 하지만 벌써 정승 부인이면 밖으로 풍기는 그 귀인의 자태가 자르르 하고.

 

"여기서 영감님하고 영감님 밥도 해 드리고 여기서 같이 살 수 없을까요?"

"아이구, 그 말씀을, 어디 그런 말씀을 다 하시느냐?"고, "여기서 어떻게 사실 것이냐?"고, "안 된다"

 

"아니 상관이 없다"고, "여기서 같이 살게만 해 달라"고.

너무 자기하고 그 부인하고 비교를 해 보니 비교가 되지를 않고, 도대체 황감(惶感)하고 죄송해서 '아! 그러시라'고 할 수가 없게 되었어.

 

그렇지만 호박이 넝쿨째 떨어져서 속으로야 기가 맥히게 좋지만 '안 된다'해도 뭐 자기가 탁 걷어붙이고 나아가서 밥을 하고.

그날 저녁에, 방은 쪼그만한 됫박만한 방 하나 밖인데 부인이 몇백 리를 걸어서 걸어서 와가지고 꾸벅꾸벅 졸다가 쓰러져 자는데, 영감은 그 옆에 잘 수도 없고 윗목에 가서 혼자 쪼그리고 앉았다가 '에이, 나도 모르겠다'해 같이 자기 시작해 가지고 결국은 부부간이 되었는데.

 

인간에 인연이라 하는 것이 부부간에 만나는 인연이 반드시 과거에 그러한 인연으로 해서 금생에 만나고, 금생에 만났다가 또 헤어지고, 헤어졌다 또 만나고 이런 것이여.

 

여러분 가운데는 부부간에 정분이 기가맥히게 좋은 분도 있을 것이고, 처음에는 좋다가 중간에 쪼금 그 냉각기가 있다가 또 나중에 또다시 좋기도 하고 또 중간에 헤어지기도 하고. 영화 같은 데 보면 헤어졌다 또 다시 만나기도 하고.

참, 인간에 인연이라 하는 것이 기구한 것인데, 그것이 다 우연히 그렇게 된 것이 아니여. 반드시 아까 숯쟁이 영감과 같은, 그보다도 더 이상한 묘한 그러한 인연이 얽히고설켜서 금생에 이렇게 만나는 것이여.(25분25초~46분39초)

 

 

 

(2/3)----------------

 

일생 동안을 잘 살아도 한마당 꿈에 지나지 못하고, 일생 동안을 잘 못산다 하더라도 그것도 또한 한바탕 꿈에 지나지 못한 것이여.

꿈에 주먹탱이 만한 보석을 얻어 봤댔자 꿈 깨 버리면 간 곳이 없고, 꿈에 무서운 호랭이나 독사한테 쫓겨서 진일 켜 봤댔자 눈만 딱! 떠 버리면 호랭이도 간 곳이 없고 독사도 간 곳이 없습니다.

 

참선을 하기 전에는 꿈에 그런 호랭이한테 쫓긴다던지 독사한테 쫓길 때 그 무섭고 겁이 난 것이 말로 할 수 없는데, 아무리 도망갈려고 해도 발은 제자리에서만 동동거리고, 아무리 고함을 질러도 큰소리가 나지를 않고 그리하다가, 얼마 동안을 그렇게 몸부림을 치다가 겨우 눈을 떠 보면 전신이 땀이 젖어 갖고 있고 이러한 꿈을 꾸는 수가 있었는데,

참선을 한 뒤로는 그런 어려운 그런 무서운 경지를 딱 닥치면 금방 탁! 화두(話頭)를 들면서 눈이 뚝 떠져 버린다 말이여. 그래서 그런 무서운 꿈을 잘 꾸지도 않지만 혹 꾸더라도 금방 내가 '에이, 이까짓 것'하고 탁! 정신을 차려버리면 눈이 뚝 떠져 버리는 그런 경험을 가끔 하게 되는데.

 

우리의 인생살이가 무섭건 괴롭건, 기쁘건 행복하건 간에 엄격히 말하면 인생 칠십이라고 해 봤자 잠깐 동안 꾸는 봄꿈에 지나지 못한 것이다 이 말이여.

행복하게 산다 하더라도 눈떠 버리면 허망한 것이고, 괴롭다 하더라도 무섭다 하더라도 딱! 눈떠 버리면 무엇이 괴롭고 무엇이 무서울 것이 있느냐 그말이여.

 

우리는 인생 어피차 과거의 인연으로 해서 금생에 부모에 의탁을 해서 이 몸을 받아 낳고 일평생을 길건 짧건 좋건 궂건 일생을 살아갈 수밖에는 없습니다.

꿈은 꿈이로되 분명 현실은 또 있습니다. 눈을 떠 버리면 꿈이지만 눈을 뜨기 전까지는 분명 현실입니다. 호랭이를 만나면 무섭고 독사를 만나면 무섭고, 보석이나 금덩어리를 주으면 기쁘고 그것을 빼앗기면 아깝습니다.

 

눈을 떠 버리면 문제가 하나도 아니지만 눈을 뜨기 전까지는 분명 현실입니다. 인생에 명예와 권리와 지위와 부귀공명이 그것이 허망한 것이고 꿈이라 하지만, 인생으로써 살아가는 동안에는 피할래야 피할 수도 없고, 없어서도 안되고 분명히 필요한 것이고 그러한 것입니다.

 

그래서 꿈과 현실은 분명히 둘이지만 하나입니다. 현실을 내놓고 꿈이 따로 없고, 꿈을 내놓고 현실이 따로 없습니다. 그래서 '인생은 허망한 것이요, 무상한 것이요, 세상은 무상한 것이요, 허망한 것이다. 다 소용없는 것이다, 다 버려라' 이렇게 말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현실 속에 있으면서 자기에게 주어진 책임을 충실히 이행하고 최선을 다하면서 그 가운데 그것이 허망한 줄을 알아야지, '허망한 것이니까 다 소용없다' 이러한 방향으로 이러한 태도는 올바른 불자(佛子)의 자세가 아닌 것입니다.

충실하다고 해서 허망한 줄을 모르고 거기에 집착을 하고 거기에 얽매이면 그 사람은 또한 어리석은 사람인 것입니다.

 

허망한 줄만 알지 그것을 자기에게 주어진 책무를 아빠로서 엄마로서 국민으로서 스승으로서 제자로서 자기의 직책을 충실히 하지 아니한다든지, 그것에 충실한답시고 거기에 완전히 얽매어 가지고 참으로 이것이 허망한 줄을 모른다던지, 이 사람은 정반대의 입장이지만 두 사람이 다 바른 것이 아닌 것입니다.

 

분명 허망한 줄 알면서 충실히 다 처리를 해야 하고, 충실히 하면서 동시에 허망한 줄을 아는 사람, 이것이 바로 불자로서 바르게 인생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허망한 거 내놓고 진실한 것이 없고, 실다운 것 내놓고 허망한 것이 무상한 것이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왜 그러냐?

 

삼라만상(森羅萬像) 두두물물(頭頭物物), 찬란히 빛나는 해와 달, 별, 그리고 산과 흐르는 물, 꽃과 잎, 모든 동물, 이 우주법계에 가득차 있는 온갖 것이 이 두두물물이—이것을 불교의 술어로는 '일체법(一切法)'이라 하는데, 제법(諸法)이라고도 하고 일체법이라 하는데, 이 삼라만상이 어디에서 나왔느냐?

우리 눈으로 볼 수 있고, 귀로 들을 수 있고, 손으로 만져 볼 수 있고, 생각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이 모든 것이 이것 자체가 어데서 왔느냐?

진여불성(眞如佛性)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우리의 자성(自性)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삼라만상 두두물물을 여의고 우리의 자성은 찾을 길이 없습니다. 번뇌(煩惱)와 망상(妄想)을 떠나서 우리의 참마음을 찾을 길은 없습니다. 우리의 번뇌와 망상이 우리의 진여자성으로부터 나왔기 때문에 이놈을 버리고 찾아서는 우리의 자성을 찾을 길이 없습니다.

마치 저 출렁거리는 산더미 같은 바다에 파도, 크고 작은 파도가 물을 떠나서 파도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그 파도는 물이 움직여서 파도가 된 것이기 때문에 파도가 바로 물인 것입니다. 파도를 버리고서 물을 찾는다면 우리는 물을 앞에다 두고 물을 볼 수가 없습니다.

 

세속에 모든 인간 관계, 모든 현상 이것이 진여불성으로부터 일어나는 파도요, 진여불성을 뿌리로 해서 뻗어난 가지요, 잎이요, 꽃이요, 열매인 것입니다. 우리는 그 가지와 잎, 줄기를 더듬어서 뿌리로 돌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번뇌와 망상 그것 때문에 우리가 윤회를 하고, 그것 때문에 깨달음에 이르지 못한다고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그것이 일어나는 근본이 어디에 있는가를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세속에 웬수 같은 자식, 웬수 같은 남편, 웬수 같은 아내, 웬수 같은 형, 웬수 같은 동생, 웬수 같은 친구, 웬수 같은 이웃이 많이 있습니다.

어째서 훌륭한 부모, 좋은 자식, 좋은 형, 좋은 동생, 진정한 사랑할 수 있는 아내와 남편을 만나지 못하고 웬수 같은 사람을 만나서 평생을 눈물과 한숨으로 살아야 하는가? 원망과 한탄으로 일생을 살아야 하는가? 온전히 이유는 그 상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 있어.

 

한 번 지어 놓은 인연(因緣)은 도저히 피할 길이 없는 것입니다. 부처님도 자기가 지어 놓은 인과(因果)는 면할 길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참나, 온갖 인과에 근원을 깨달라서 체달(體達)을 하면 제절로 모든 일이 해결이 되는 것입니다.

 

불법(佛法)은 자기에게 자기가 지어서 받은 인과, 윤회 생사윤회를 피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녹음 끊김) 열반의 저 언덕에 도달하는 데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생사(生死)를 버리고 열반(涅槃)을 얻는 것이 아니라, 생사 속에서 생사 없는 도리를 깨닫는 데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을 바꾸어서 말하면 생사는 깨닫지 못한 사람에게 생사(生死)지, 참나를 깨닫고 보면 「생사는 본래 없었던 것」입니다.

깨닫지 못한 사람 눈에 비친 생사는 깨달은 사람에게는 고대로 열반의 도리요, 열반의 소식이요, 이 생사의 대해(大海)가 바로 극락세계(極樂世界)로 변하는 것입니다.

 

마치 눈병 난 사람의 눈으로 볼 때에는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무슨 꽃이 피어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자전거 구사리 같은 것이 이리저리 올라갔다 내려갔다 얽혀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눈병을 깨끗이 치료를 한 뒤에 보면 아무것도 허공에는 원래로 없었던 것이여.

없는 것이 있는 것으로만 보였지 눈병이 나 있을 때나, 눈병을 나은 뒤에나 허공에는 원래 아무것도 없었던 것입니다.

 

깨닫지 못한 사람에게 보인 생사도 역시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생사는 본래 없었던 것입니다.

'생사해탈, 생사해탈' 말을 했지만, 부처님께서 그런 말씀을 하셨지만, 어디까지나 중생의 입장에서 중생의 언어를 빌려서 그러한 표현을 방편(方便)으로 쓰신 것에 불과한 것입니다.

 

생사는 본래 없지만 깨닫지 못한 중생에게는 가장 무서운 것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분명 이것은 꿈에 본 독사와 같은 것이지만 꿈을 꾸고 있는 동안에는 무섭기가 생시(生時)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 우리에게는 중대한 문제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눈병을 고쳐야 하고 꿈을 깨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 방법이 바로 이 참선법(參禪法)입니다.

 

참선을 열심히 해 가지고 참나를 깨달라야만 되는 것입니다. 인생이 해야 할 일은 오직 이 한 일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권리가 높고, 아무리 학문이 높고, 아무리 기운이 세고, 아무리 재산이 많다 하더라도 이 참나를 깨닫는 일만은 해야 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모든 권리와 모든 재산과 모든 힘과 모든 학식과 자기의 생명까지라도 바쳐서 이 문제는 해결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일인지하 만인지상에 정승이라 하드라도 이 문제는 해결을 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아내, 귀여운 아내, 얌전한 아내, 일평생을 행복하게 살고 백년을 해로(偕老)할 줄 알았다가 뜻밖에 간 곳이 없으니, 삼천리 강토를 한 손에 움켜쥐고 호령을 했던 정승도 사랑하는 아내가 간 곳이 없어지자 살맛이 없어지고 정승도 다 팽개치고 그 아내를 찾어 나섰습니다.

 

거지와 마찬가지인 숯쟁이 홀애비 영감한테 정승에 부인을 빼앗길 줄이야 꿈엔들 생각했겠습니까?

인생이 가지고 있는 모든 권리도 그와 마찬가지요, 모든 재산도 그와 마찬가지요, 모든 명예도 또한 그와 마찬가지인 것입니다.(46분41초~66분41초)

 

 

 

(3/3)----------------

 

호향차시명자기(好向此時明自己)하라  두상광음전두비(頭上光陰轉頭飛)로구나

나무~아미타불~

 

호향차시(好向此時)하야 명자기(明自己)하라. 좋이 이때를 향해서 참나를 밝힐지니라.

두상광음(頭上光陰)이 전두비(轉頭飛)니라. 머리 위에 광음(光陰)이, 시간이 쏜살같이 흘러가고 있느니라.

 

이때를 향해서 자기를 밝히라. 이때, 이때란 어느 때냐?

 

지금 이만큼 살 때, 이만큼 건강할 때—바쁘다 핑계 대지 말고, 아직은 시간이 있다 뒤로 미루지 말고, 아들딸 키워 놓고 장가 보내 놓고 이러한 등등 핑계를 대지 말고. '몸이 건강치 못하니까 병을 낫은 다음에 하리라' 그러한 핑계도 대지 말고, '좀 더 부자가 되어가지고 하리라' 그러한 핑계도 대지 말고,

지금 이만큼 살 때, 이만큼 이만한 처지에서 바쁘면 바쁜 대로, 가난하면 가난한 대로, 아프면 아픈 대로, 당장 내일 일을 모르고 밤새 일을 모르고 한 시간 뒷일을 모르는 백지 한 장 밖을 내다보지 못한 우리의 입장에서 무엇을 믿고 뒤로 미루겠는가 이 말씀이여.

 

머리 위에 광음은 쏜살같이 흘러간다. 시간을 아낄 줄 아는 사람이야말로 도업(道業)을 성취하는 것입니다.

공부할 수 있는 장소는 앉아 있을 때는 바로 그 자리가, 서 있을 때는 그 자리가, 걸어갈 때는 그곳이, 차를 탈 때는 바로 그 차 안이, 변소에 앉았을 때는 변소가, 감옥에 들어가 있는 사람은 감옥이, 병원에 있는 사람은 병원이 바로 그때 그 자리가 참나를 깨달을 수 있는 영산회상(靈山會上)인 것입니다.

 

부처님은 우주법계에 가득차 계신 것입니다. 우주법계는 바로 부처님 품안이요, 부처님 손바닥인 것입니다.

부처님 계신 곳은 어디나 법당이요, 우주법계가 부처님이 꽉 차 계신다면 우주법계 · 허공계 · 육도법계는 온전히 바로 거기가 법당이요, 불회상(佛會上)인 것입니다.

 

우리가 깨달을 수 있는 곳은 우주법계 전체인 것입니다.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전체가 대화엄경이요, 대열반경이요, 법화경이요, 금강경이요,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인 것입니다. 우리가 들을 수 있는 온갖 소리는 다 부처님에 설법(說法)입니다.

날아가는 새 소리, 비행기 소리, 기차 소리, 자동차 소리, 까마귀 소리, 개 짖는 소리 하나도 빼 놓지 않고 고대로 전부 부처님에 설법입니다. 나를 칭찬하는 소리, 나에게 억울하게 욕하는 소리, 부처님에 설법 아닌 것이 없습니다. 이렇게 믿고 이렇게 닦아가는 것이 최상승법(最上乘法)입니다. 여러분은 최상승법을 믿는 최상승 수행인이요, 불제자인 것입니다.

 

오늘 이 법회에 참석한 여러분은 이제부터서는 원망할 남편도 없고, 원망할 아내도 없고, 미워할 이웃도 없고 웬수도 없습니다. 어제까지 미웠던 사람도 이제부터서는 미워할 거리가 되지를 않을 것입니다.

그 사람 앞에는 누구도 부처님인 것입니다. 어제까지 웬수도 이제부터서는 나로 하여금 참나를 깨닫게 해 주는 도반(道伴)이요, 관세음보살이요, 문수보살이요, 부처님인 것입니다. 최상승법의 묘한 진리가 위력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금생(今生)에 약불종사어(若不從斯語)하면  후세당연한만단(後世當然恨萬端)하리라

나무~아미타불~

 

금생에 이렇게 말씀을 드린 이 말씀을 믿고 실천을 하지 아니하면 후생에 한(恨)이 만단(萬端)이나 될 것입니다.(66분47초~1시간14분37초)(끝)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1/3)

 

*인연(因緣) ; ①어떤 결과를 일으키는 직접 원인이나 내적 원인이 되는 인(因)과, 간접 원인이나 외적 원인 또는 조건이 되는 연(緣). 그러나 넓은 뜻으로는 직접 원인이나 내적 원인, 간접 원인이나 외적 원인 또는 조건을 통틀어 인(因) 또는 연(緣)이라 함. ②연기(緣起)와 같음.

*정승(政丞 정사 정/도울·정승 승) ; 조선 시대, 의정부(議政府 행정부의 최고 기관)의 수반(首班 행정부의 우두머리)인 영의정(領議政), 좌의정(左議政), 우의정(右議政)을 통틀어 이르는 말.

*부덕(婦德 아내·여자 부/덕·은혜·선행·행위 덕) ; 부녀자(婦女子 결혼한 여자와 성숙한 여자를 통틀어 이르는 말)의 아름다운 덕행(德行 어질고 너그러운 행실).

*낙루(落淚 떨어질 낙/눈물 루) ; 눈물을 흘림. 또는 그 눈물.

*일장 설화(一場說話) ; 한바탕(크게 벌어진 한판)의 이야기.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 왔다.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 사람이 일상적으로 하는 일체의 행위.

*생짜(生-) ; 아무런 근거나 조건도 없이 억지를 부리거나 강다짐을 하는 것을 낮잡아 이르는 말.

*내소박(內疏薄 안·부녀자·아내 내/멀어질 소/야박할 박) ; 아내가 남편을 박대(薄待)함.

*박대(薄待 엷을·야박할 박/대접할·대우할 대) ; 남의 사정을 생각하지 않고 아무렇게나[野薄] 대접(待接)함. 푸대접. 인정 없이 모질게 대함.

*의단독로(疑團獨露 의심할 의/덩어리 단/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공안,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가 홀로[獨] 드러나다[露].

*적적성성(寂寂惺惺) ; 성성적적(惺惺寂寂). 온갖 번뇌 망상이 생멸하지 않고 마음이 고요[寂寂]하면서도 화두에 대한 의심이 또렷또렷[惺惺]한 상태.

*인과(因果) : 무엇이나 원인 없는 결과가 없고, 결과 없는 원인이 없다。콩 심은 데 콩이 나고, 팥 심은 데 팥이 나서, 이 세상의 온갖 일과 모든 물건이 반드시 인과의 법칙대로 되어 가는 것이다。사람의 일도 착한 일을 하면 복을 받고, 악한 짓을 하면 재앙을 받아서 길(吉) • 흉(凶) • 화(禍) • 복(福)이 하나도 우연한 것이 없다.

 

그러나 그 보응(報應)의 나타남이 원인을 짓는 그 즉시로 곧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사람의 환경이 복잡하고, 마음 쓰는 것이 또한 한결같지 않기 때문에 무거운 쪽부터 먼저 실현되어, 짓는 그 당장에 받게 되는 순현보(順現報)와, 짓는 그 즉시에 받지 않고 그 다음 시기에 받는 순생보(順生報)와, 받기는 반드시 받되 언제 받게 될지 일정하지 않은 순후보(順後報)가 있다.

이 세 가지 과보(果報)는 금생(今生) 안에 실현되기도 하고, 여러 생[多生]을 통하여 되기도 한다。그러므로 착한 사람이 빈천하거나, 악한 사람이 잘되는 것은 일시적인 현상일 따름이다.


*견성(見性)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品)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음. 미혹을 깨뜨리고 자신의 청정한 본성을 간파하여 깨달음.

*내나 ; ①다름이 아니라. ②결국에 가서는.

*선객(禪客 참선 선/손님·사람 객) ; 참선 수행을 하는 사람.

*어한(禦寒 막을 어/찰 한) ; 추위를 막음. 또는 추위에 언 몸을 녹임.

*더덩캥이 ; 더뎅이(부스럼 딱지나 때 따위가 거듭 붙어서 된 조각).

*누데기 ; ‘누더기(누덕누덕 기운 헌 옷)’의 사투리.

*이[蝨] ; 몸길이 1~4밀리미터이고, 몸은 보통 편평한 방추형이다. 사람의 불결한 머리나 옷, 동물의 털 등에 붙어 살면서 번식하여 피를 빨아먹고 사는 해충이다. 피를 빨아 먹어서 몸을 가렵게 하는 외에 발진티푸스, 재귀열 등의 질병을 옮긴다.

*서카래 ; '서캐(이[蝨]의 알)'의 사투리. 서까래, 써까리, 서카리, 쌔기 라고도 한다.

*황감하다(惶感-- 두려워하다·당황하다·어찌할 바를 모르다 황/느끼다·감동하다·고맙게 여기다 감) ; 황송하고 감격스럽다.

 

 

 

----------------(2/3)

 

*한바탕 ; 크게 한판(한 번 벌이는 판). 한판 크게.

*주먹탱이 ; 주먹(다섯 손가락을 모두 오무려 쥔 손)같이 둥글고 단단하게 한데 뭉쳐진 어떤 것.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화두(공안)에는 '이뭣고?' '판치생모' '무자' '정전백수자' 등이 있다.

*봄꿈 ; ①봄날에 꾸는 꿈. ②한때의 덧없는 일이나 헛된 공상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불자(佛子) : 부처님의 자녀라는 뜻이다. 불법(佛法)을 믿는 이면 모두 불자가 된다. 그것은 부처님 법에서 새로운 생명을 얻었기 때문이며 부처님의 혜명(慧命)을 이어가고, 법(法)의 집과 법(法)의 재산을 상속받게 되는 까닭이다.

또한 모든 중생을 다 불자라고 하는데, 그것은 어떤 중생이나 모두 부처의 성품(佛性)이 있어서, 그것이 부처의 씨가 되고, 지혜는 어머니가 되며 부처님은 아버지가 되어, 필경에는 반드시 성불(成佛)하게 된다.

<섭대승론석(攝大乘論釋)>에는 불자에 다섯 가지 뜻이 있다고 하였다. ①믿음이 종자가 되고 ②지혜는 어머니가 되고 ③선정은 태(胎)가 되고 ④자비심(慈悲心)은 유모가 되고 ⑤부처님은 아버지가 된다.

*삼라만상(森羅萬象) 두두물물(頭頭物物) ; 우주 사이에 벌여 있는 온갖 사물과 현상.

*진여불성(眞如佛性) ; 진여(眞如)인 불성(佛性).

*진여(眞如) ; ①차별을 떠난,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②궁극적인 진리. ③모든 분별과 대립이 소멸된 마음 상태. 깨달음의 지혜. 부처의 성품. ④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청정한 성품.

*불성(佛性) ; ①모든 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부처가 될 수 있는 소질·가능성. ②부처 그 자체. 깨달음 그 자체.

*자성(自性) ; ①사물 그 자체의 본성. 본성 ②본래부터 저절로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번뇌(煩惱 번거러울 번/괴로워할 뇌) ; ①몸과 마음을 번거롭게 어지럽히고[煩亂, 煩勞, 煩擾] 괴롭혀 고뇌케[逼惱, 惱亂] 하므로 번뇌(煩惱)라 표현. 근원적 번뇌로서 탐냄(貪)•성냄(瞋)•어리석음(癡) 등이 있다.

②나라고 생각하는 사정에서 일어나는 나쁜 경향의 마음 작용. 곧 눈 앞의 고(苦)와 낙(樂)에 미(迷)하여 탐욕•진심(瞋心)•우치(愚癡)등에 의하여 마음에 동요를 일으켜 몸과 마음을 뇌란하는 정신 작용.

불교는 중생의 현실을 혹·업·고(惑·業·苦)의 삼도(三道)로 설명한다. 즉 번뇌[惑]에 의해 중생이 몸과 마음의 행위[身口意 三業]를 일으키게 되면, 이로써 3계 6도의 생사윤회에 속박되어 고통[苦]의 과보를 받게 된다.

*망상(妄想 망령될 망/생각 상) ; ①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는 것으로 상정하고 집착하는 의식의 작용. 분별(分別), 망상분별(妄想分別), 허망분별(虛妄分別), 망상전도(妄想顚倒) 등으로도 한역한다. ②이치에 맞지 아니한 망령(妄靈)된 생각[想]을 함, 또는 그 생각. 잘못된 생각.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하다고 잘못 생각하는 것.

*체달(體達 몸 체/통달할 달) ; ①몸[體]으로 직접 통달(通達)함. 몸소 경험하여 막힘이 없이 트이다. ②사물의 이치를 통달하여 깨달음.

*열반(涅槃) ; 산스크리트어 니르바나(nirvāṇa) 팔리어 nibbāna의 음사. 멸(滅)·멸도(滅度)·적멸(寂滅)·적정(寂靜)·적(寂)·안온(安穩)·원적(圓寂)·안락(安樂) 등으로 번역.

①타고 있는 불을 바람이 불어와 꺼 버리듯이, 타오르는 탐욕〔貪〕과 노여움〔瞋〕과 어리석음〔癡〕 등의 번뇌의 불꽃을 지혜로 꺼서 일체의 번뇌나 고뇌가 소멸하여 평온하게 된 상태.

사제(四諦)에서 집(集), 곧 괴로움의 원인인 갈애(渴愛)가 소멸된 상태. 모든 미혹의 속박에서 벗어난, 해탈(解脫)한 깨달음의 경지.

②번뇌 망상이 일어나고 꺼짐이 없어져, 지극히 고요하고 깨끗하고 밝고 맑은 경지.

소승법(小乘法)에서는 번뇌를 끊어 버리고 생각을 일으키지 말아야 열반에 든다 하고, 대승법으로는 번뇌가 본래 없는 이치를 깨치면 생각이 일어나도 일어나는 것이 아니어서,

사바세계의 어떤 환경에서 무슨 일을 하든지 늘 열반의 즐거움이 되는 것이다. 따로 열반에 들고 나고 할 것 없이 무엇이나 다 열반이며 어느 때나 늘 열반이다. 이것이 큰 열반인 것이다.

*'생사는 깨닫지 못한 사람에게 생사(生死)지, 참나를 깨닫고 보면 「생사는 본래 없었던 것」입니다' ; '생사는 본래 없다. 生死本無. 本無生死'

 

[참고 ❶] 송담스님 법문(No.366, No.636)에서 정리.

생사는 무엇이냐?

그것은 깨닫지 못한 중생의 눈으로 볼 때, 우리가 번뇌로 매(昧)했기 때문에 있는 것으로 착각되어 '태어났다, 죽었다' 그런 것이지, 원래는 우주보다도 먼저 있었고, 이 우주 법계가 다 가루가 되어서 없어진다 하더라도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진여불성(眞如佛性)자리, 우리의 ‘참나’라고 하는 이 불성(佛性)은 생사가 없는 것입니다.

 

그 생사가 없는 이치를 깨닫지를 못하고 있으니까 분명히 생사로 우리에게는 보이는 것이지 「생사는 본래 없다」 이것입니다.

마치 눈병이 일어난 사람은 맑은 허공을 봐도 허공 속에 무슨 헛꽃이 이글이글 피어서 이리갔다 저리갔다 한 것처럼 보이나 눈병만 낫고 보면 원래 허공의 꽃은 없었고, 눈병이 낫으나 안 낫으나 허공의 꽃이란 것은 본래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사(生死)도 역시 그와 마찬가지여서, 그 ‘생사 없는 도리를 깨닫는 방법’이 ‘참선(參禪)’이라 하는 것입니다. 용화사에서는 전강 조실스님 법문이나 산승이 말씀을 할 때마다 그 ‘생사 없는 도리를 깨닫는 방법’을 항상 말씀을 드려 오고 있는 것입니다.

 

‘이뭣고?’는 천하 맛없는 간단한 한마디지만, 알 수 없는 의심으로 자꾸 ‘이뭣고?’를 해서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해서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면, 우리의 그 착각으로 인식되어진 번뇌일망정 언제 끊어진 줄 모르게 번뇌가 끊어져 버리고, 그 의단이 더이상 커질 수 없을 때 그 의단을 깨뜨리게, 타파(打破)하게 됩니다.

그러면 나의 불성을 깨닫게 되고, 나의 면목(面目)을 깨닫게 되고,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이 공부를 열심히 해야 진실로 불법(佛法)을 믿는 사람인 것입니다.

 

 

[참고 ❷] 『진심직설(眞心直說)』 (보조 지눌) '진심출사(眞心出死)' (참마음 이야기, 진심직설 강의 | 강건기 강의 | 불일출판사) p199~208.

문 : 或曰 嘗聞見性之人 出離生死 然往昔諸祖 是見性人 皆有生有死 今現見世間修道之人 有生有死事 如何云出生死耶

 

일찍이 견성한 사람은 생사를 벗어난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나 과거의 조사들은 다 견성한 사람들이었지만 모두 생사가 있었고, 지금 세상의 수도하는 사람들도 다 생사가 있는데 어떻게 생사를 벗어난다고 합니까?

 

답 : 曰 生死本無 妄計爲有 如人病眼 見空中花 或無病人 說無空花 病者不信 目病若無 空花自滅 方信花無 只花未滅 其花亦空 但病者 妄執爲花 非體實有也

 

생사는 본래 없는 것[生死本無]인데, 망령되이 있다고 헤아린다. 어떤 사람이 병든 눈으로 허공의 꽃을 볼 때 눈병 없는 사람이 허공의 꽃이 없다고 하면 병자는 그 말을 믿지 않다가 눈병이 나으면 허공의 꽃이 저절로 없어져 비로소 꽃이 없음을 믿게 된다. 다만 그 꽃이 없어지지 않았더라도 그 꽃은 또한 공한 것이므로 단지 병자가 망령되이 꽃이라 집착하였을 뿐이요, 그 본체가 참으로 있는 것은 아니다.

 

如人妄認生死爲有 或無生死人 告云本無生死 彼人不信 一朝妄息 生死自除 方知生死本來是無 只生死未息時 亦非實有 以妄認生死有

 

그와 같이 사람들이 망령되이 생사가 있다고 인정하다가 생사를 초월한 사람이 '본래 생사가 없다[本無生死]'고 말하면 그는 그 말을 믿지 않다가, 하루아침에 망심이 쉬어 생사가 저절로 없어져서야 비로소 본래 생사가 없는 것임을 안다. 다만 생사가 없어지기 전에도 실로 있는 것이 아니건만, 생사가 있다고 그릇 인정하였던 것이다.

 

故 經云 善男子 一切衆生 從無始來 種種顚倒 猶如迷人 四方易處 妄認四大爲自身相 六塵緣影爲自心相 譬彼病目 見空中花 乃至 如衆空花 滅於虛空 不可說言 有定滅處 何以故 無生處故 一切衆生 於無生中 妄見生滅 是故說名輪轉生死

 

그러므로 경(經, 圓覺經)에 "선남자여, 일체 중생이 비롯함이 없는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가지가지 뒤바뀐 것이 마치 어리석은 사람이 사방의 방위를 혼동하는 것과 같아서 사대(四大)를 제 몸이라 잘못 생각하고, 육진(六塵)의 반연하는 그림자를 제 마음이라 한다. 비유하면 병든 눈으로 허공의 꽃을 보고, 나아가서는 그 온갖 허공의 꽃이 허공에서 사라져도 사라진 곳이 있다고 말하지 못하는 것과 같으니, 이것은 본디 생긴 곳이 없기 때문이다.

일체 중생들은 생멸이 없는 데에서 망령되이 생멸을 보기 때문에 이를 일러 '생사에 윤회한다'고 말한다" 하였다.

 

據此經文 信知達悟 圓覺眞心 本無生死 今知無生死 而不能脫生死者 功夫不到故也 故敎中說 菴婆女 問文殊云 明知 生是不生之法 爲甚麽 被生死之所流 文殊云 其力未充故 後有進山主 問修山主云 明知 生是不生之法 爲甚麽 却被生死之所流 修云 笋畢竟成竹去 如今作筏使得麽

 

이 경에 의하면 원각의 진심을 환히 깨치면 본래 생사가 없음[本無生死]을 진실로 알게 된다. 그러나 지금 생사가 없음을 알았지만 능히 생사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아직 공부가 완성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가르침 중에 이렇게 설하셨다. 암바(菴婆)라는 여자가 문수보살에게 "생이 바로 생이 아닌 법을 분명히 알았는데, 무엇 때문에 생사에 흘러 다닙니까?"하고 물었다. 문수보살은 "그 힘이 아직 충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라 하였다.

그 뒤에 진산주(進山主)가 수산주(修山主)에게 묻기를 "생이 바로 생이 아닌 법을 분명히 알았는데, 무엇 때문에 생사에 흘러 다닙니까?"하였다. 수산주는 "죽순이 마침내는 대나무가 되겠지만, 지금 당장 그것으로 뗏목을 만들어 쓰려한다면 되겠는가"라고 하였다.[『선문염송』 제1314칙 '명지(明知)' 참고]

 

所以 知無生死 不如體無生死 體無生死 不如契無生死 契無生死 不如用無生死 今人 尙不知無生死 況體無生死 契無生死 用無生死耶 故認生死者 不信無生死法 不亦宜乎

 

그러므로 생사가 없음을 아는 것[知無生死]이 생사가 없음을 체득함[體無生死]만 못하고, 생사가 없음을 체득한 것은 생사가 없음에 계합함[契無生死]만 못하며, 생사가 없음에 계합한 것은 생사가 없음을 마음대로 쓰는 것[用無生死]만 못하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아직 생사가 없음도 알지 못하거늘 하물며 생사가 없음을 어찌 체득하겠으며, 어찌 생사가 없음에 계합하겠으며, 어찌 생사가 없음을 활용하겠는가. 그러므로 생사를 인정하는 사람으로서는 생사가 없는 법을 믿지 않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는가.

 

*본무(本無) ; [s] abhūtvā, amūla, apūrvo bhāvah 본래 없다는 말. 모든 존재의 무상한 본질을 나타낸다. 인연으로 발생하고 소멸하는 모든 법의 공성(空性)을 나타내는 말이다.

또는 그러한 인연의 존재에 대하여 망상으로 집착하여 '있다'고 착각하는 것도 본래 없는 것이므로 본무라 한다.

*생사대해(生死大海) ; '생사의 큰 바다[大海]' 중생이 벗어나지 못하는 고통스러운 윤회의 세계를 바다에 비유한 말.

중생이 태어나서 죽어 윤회하는 영역으로서의 세개의 세계—삼계(三界 : 욕계欲界, 색계色界, 무색계無色界)를, 중생이 생사유전하는 세계를 '큰 바다[大海]'에 비유함.

*극락세계(極樂世界) : 아미타불이 살고 있는 정토(淨土). 괴로움과 걱정이 없는 지극히[極] 안락[樂]하고 자유로운 세상[世界]이다. 안양(安養), 안락국(安樂國), 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 무량수불토(無量壽佛土), 무량광명토(無量光明土), 무량청정토(無量淸淨土)라고도 함.

*'허공에 무슨 꽃이 피어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 공화(空花, 空華). 환(幻). 공안화(空眼花). 공중(空中)의 꽃. 눈의 장애로 말미암아 생기는 허공의 꽃.

실재하지 않는 것을 있는 것으로, 관념을 실재하는 객관 대상으로, 고유한 실체가 없는 것을 실체가 있는 것으로 보는, 번뇌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망상(착각·환상·편견 등)을 말한다.

*구사리 ; 일본어 'くさり(쿠사리)'이며, '쇠사슬'이라는 뜻. 자전거 체인을 말한다.

*방편(方便 방법·수단 방/편할 편) ; 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그때마다의 인연에 적합하게 일시적인 수단으로 설한 뛰어난 가르침. 중생 구제를 위해 그 소질에 따라 임시로 행하는 편의적인 수단과 방법.

곧 불보살이 중생의 근기에 적절하게 응하여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하여 법을 펼쳐 보임으로써 그들을 교화하여 이익되게 하는 것을 말한다.

*해로(偕老 함께 해/늙을 로) ; 부부가 평생을 함께 살며 늙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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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호향차시명자기(好向此時明自己) 두상광음전두비(頭上光陰轉頭飛)' ; '좋이 이때를 향해서 참나를 밝힐지니라. 머리 위에 광음(光陰)이, 시간이 쏜살같이 흘러가고 있느니라'

[참고] 『선가귀감』 (서산대사 | 용화선원刊) p161 (가로판 p169) 게송 참고.

호향차시명자기(好向此時明自己) 백년광영전두비(百年光影轉頭非)

‘당장 이때에 마음을 애써 밝히소, 백 년 세월도 순식간에 글러지느니’

*광음(光陰 빛 광/응달 음) ; 햇빛[光]과 그늘[陰], 즉 낮과 밤이라는 뜻으로, 시간이나 세월을 이르는 말.

*도업(道業) ; 도(道)는 깨달음. 업(業)은 영위(營爲 : 일을 계획하여 꾸려 나감). 불도(佛道)의 수행. 진리의 실천.

*영산회상(靈山會上) ; ①석가모니께서 영취산(靈鷲山)에서 설법하던 때의 모임. 또는 그곳에서 법화경을 설하던 때의 모임. ②선종의 삼처전심(三處傳心) 중 하나로 부처님과 가섭이 이심전심으로 주고받은 염화미소(拈花微笑)의 회좌(會座).

*육도법계(六道法界) ; 육도(六道)의 세계. 육도(六道,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

*불회상(佛會上) ; 부처님(佛)의 회상(會上). 부처님 계시는 곳.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간화선(看話禪) ; 화(話)는 화두(話頭)의 준말이다. 간화(看話)는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을 본다[看]’는 말로써,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이 화두를 관(觀)해서, 화두를 통해서 확철대오하는 간화선을 전강 조실스님과 송담스님께서는 ‘최상승법(最上乘法)’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고 말씀하신다.

*도반(道伴 깨닫다·도리·근본·불교 도/반려·동반자·벗 반) ; 함께 불도(佛道 부처님이 성취하신 최상의 깨달음)를 수행하는 벗. 불법(佛法)을 닦으면서 사귄 벗. 도려(道侶) · 도우(道友) · 동행(同行) 등과 같은 말.

*(게송) ‘금생약불종사어(今生若不從斯語) 후세당연한만단(後世當然恨萬端)’ ;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 ‘자경문(自警文)’ 게송.

勸汝慇懃修善道  速成佛果濟迷倫  今生若不從斯語  後世當然恨萬端

너에게 도 닦기를 은근히 권하노니, 어서 빨리 불과(佛果) 이뤄 미혹 중생 건지어라. 금생에 만일 이 말을 안 따르면, 후세에 당연히 한(恨)이 만 갈래나 되리라.

*만단(萬端) ; 수없이 많은 갈래.

 

Posted by 닥공닥정
인과 · 인연 · 비유2019. 10. 15. 07:20

§(619) 팔만대장경 결집 역사 / 고려 팔만대장경의 전산화 불사 수희 동참 / 수달장자 부부의 공양 공덕 이야기 / 아사세왕의 참회, 제1회 결집 외호 공덕.

 

아사세왕은 부왕을 죽인 죄로 해서 일단은 지옥에 떨어졌습니다. 떨어지자마자 다시 거기에 고통도 받을 겨를도 없이 천상(天上)에 가서 태어났습니다. 그건 왜 그러냐?

부처님께 참회를 했고, 적극적으로 불법승(佛法僧) 삼보를 외호할 뿐만 아니라 제1회 결집을 하는데 물심양면으로 외호를 한 그 공덕으로 결국은 무간지옥에 떨어져서 무량겁을 받을 죄가 소멸이 되어가지고 천상에 올라간 것입니다.

 

**송담스님(No.619)—99년 2월 첫째일요법회(99.02.07) (용619)

 

(1) 약 13분.

 

(2) 약 14분.

 

(1)------------------

 

정말 여러분에게 참 오늘은 특별한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

 

오늘날 부처님으로부터 달마 스님까지 28대, 육조 스님까지 33대, 현재 전강 조실 스님까지는 77대가 법(法)의 등불이 이렇게 이어져 왔다고 우리는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 불립문자(不立文字), 견성성불(見性成佛) 법으로 그렇게 법도 이어오면서 부처님께서 49년 동안 설하신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이 우리나라 해인사에 봉안되어 있다는 거 아닙니까, 여러분도 잘 아시다시피.

 

작년엔가 그 팔만대장경과 불국사 석굴암 부처님과 종묘(宗廟), 세 문화재가 유네스코로부터서 이 「세계의 문화재(세계문화유산)」로 지정받은 사실을 여러분은 알고 계실 것입니다.

대단히 우리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자랑스러운 일이기는 합니다마는 문화재로 지정을 받아서 불이 타지 않도록, 습기가 침범하지 않도록, 벌레가 먹지 않도록 또 도적이 침범 못하도록 잘 보존해서 몇천 년이고, 몇만 년이고 보존을 잘 지키고 그렇게 해야 한 것은 당연하지만 그것만으로써 팔만대장경을 모신 목표가 거기에서 끝나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얼마나 어렵게, 어렵게 해가지고 우리나라 해인사에까지 팔만대장경이 모셔졌는가 여러분은 구체적으로는 잘 모르실 것입니다.

 

부처님 열반하신 해에, 부처님 돌아가시니까 부처님 제자들이 통곡을 하고 머리를 땅에다가 부딪치면서 통곡을 하니까 어떤 늦게 된 스님, 조끔 머트럽게 말해서 늦깨끼 한 사람이 나와서 "여러분 통곡할 것 없습니다. 그동안에는 부처님이 계셔서 '이것은 해라, 이것은 하지 마라' 여러 가지 계율을 만들어 가지고 우리를 꼼짝달싹을 못하게 하셨는데 인자 부처님이 돌아가셨으니 우리도 좀 자유롭게 좀 살 때가 되었는데 뭐 그렇게 울어쌌냐" 아! 그렇게 소리를 지른 스님이 한 분 있었습니다.

 

그것을 보고 가섭 존자(迦葉尊者)께서 '아하! 안 되겠다' 그래가지고 부처님 열반하신 뒤 백 일 만에 오백 성승(五百聖僧)을 모아가지고 부처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결집(結集)을 했습니다.

지금처럼 속기술로 했는지, 그때는 녹음기가 없었으니까 녹음으로 할 수는 없었을 것이고, 전해 온 바로는 외워가지고, 아란(阿難) 존자를 시켜서 죽죽죽죽 죽죽죽 '어데서 누구 있을 때 어떻게 이 법문을 하셨다' 죽죽 외우면 오백 성승들이 '과연 그렇게 했다'고 전부가 인정을 하면 그것으로써 또 한 경전이 결집이 되고 해서 외워가지고 결집을 했다고 전해 오고 있습니다마는.

 

'그렇게 외워가지고 무슨 결집이 되냐?' 생각하실는지 모르지만 한 토, 한 글자도 틀리지 않게 아란 존자는 외우셨던 것입니다. 그만큼 기억력이 좋았으니까요.

 

제1회는 그렇게 오백 성승이 모여서 왕사성 칠엽굴(七葉窟)에서 제1회 결집을 했고, 두 번째 결집은 부처님 열반하신 뒤 백 년 만에 야사(耶斯)라고 하는 존자가 제의를 해가지고 비사리성에서 칠백의 아라한(阿羅漢)들이 모여가지고 제2회 결집을 했습니다.

또 제3회 결집은 부처님 열반하신 뒤 삼백삼십 년 만에 아육왕(阿育王)의 보호 아래 제수라고 하는 존자의 사회로 파타리자 성에서 천 명의 아라한들이 모여가지고 제3회 결집을 했던 것입니다.

 

제 4회 결집은 불멸후 육백 년경에 가니색가왕의 적극적인 보호 아래 가습미라에서 협존자(脇尊者)와 세우 존자를 상좌로 오백의 성자들이 모여서 제4회 결집을 했습니다. 그때 삼장(三藏)을 결집을 하고 그 삼장에 대해서 주석도 달고 그랬습니다.

그 뒤로 대승경전이라든지 또 비밀장 밀교 그런 경전도 모다 결집이 되었습니다마는, 오늘은 그 자세한 것을 생략을 하고.

 

그렇게 해서 삼장법사 구마라습이라든지 현장법사 그밖에 많은 범어와 중국어에 통달한 성자들이 그것을 중국어로 번역하고, 티베트어로 번역하고 그렇게 해서 한문 경전으로 된 것을 고려 때에 그 고려 현종이 그것을 그 원본을 책으로 갖다가 우리나라에서 그것을 경판에다 새겼습니다.

 

새겼는데 무슨 목적으로 새겼느냐 하면은, 거란족들이 우리나라를 침범해 들어오니깐 그것을 물리치기 위해서 오천사십팔 권의 그 경전을 새겨가지고 부인사, 부인사가 아마 경북 영천에 있는 절로 전해지고 있습니다마는, 그것을 부인사에 설치를 했습니다.

그것이 1232년 고종 19년에 몽고병이 침입을 해왔습니다. 그래가지고 거기다 불을 질렀습니다.

 

그래 불타버리니까 1236년 4년 뒤에 그 고종이 다시 경판을 새기기를 시작했습니다. 16년 동안에 걸쳐서 강화도에서 1511부 6802권이고, 판수로는 81,258장이라고 그걸 완성을 해서 해인사에 봉안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강화 선원사에 보관했다가 이태조(李太祖) 7년에, 1398년에 서울 지천사에 옮겼다가 다시 해인사로 옮겨 모신 것이 오늘날까지 지금 해인사에 잘 봉안이 되어있습니다.

 

어떻게 잘했던지, 소금물에 담구고 말리고 모다 칠(漆)을 먹이고 해가지고 한 장도 버러지 먹은 것도 없고, 귀지도 않게, 그래서 잘 보존이 되어왔습니다. 그것이 우리나라에 국보일 뿐만 아니라 세계의 보물로 지정이 되었다는 것 아닙니까.

그것이 그렇게 보존이 되어서 그걸 대단히 자랑스럽고 앞으로도 영구히 잘 보존해야 하겠지만 그것으로써 끝났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그말이여.

 

21세기를 우리는 맞이한 마당에 집집마다 컴퓨터가 있고, 세계가 다 자기 있는 곳에서 미국에서나 소련에서나 영국에서나 독일에서도 컴퓨터만 누르면 인터넷을 통해서 해인사 팔만대장경을 열람할 수가 있게 된 그런 시대가 되었습니다.

근데 일본에서는 한국의 이 대장경을 본따서 신수대장경(新脩大藏經)이란 것을 만들어가지고 그것을 전산화를 해가지고 일본에 있는 신수대장경은 세계에서 다 열람할 수가 있는데 그보다도 훨씬 더 잘되고 좋은 경전이 우리나라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전산화가 되어 있지 않아가지고 우리나라 경전을 보려면 여기까지 와야만 됩니다.

 

그 쉽게 팔만대장경을 볼 수가 있습니까?

 

그래서 그렇게 어렵게, 어렵게 해가지고 우리나라에 모셔진 팔만대장경을 우리나라 국민은 누구라도, 외국에 있는 어떠한 불교 학자라도 그 팔만대장경을 거기에서 열람할 수 있고 공부할 수 있도록 하는 작업이 바로 고려 팔만대장경의 전산화 불사(佛事)라 하는 것입니다.

마땅히 이런 불사는 국가적으로 해야 할만한 불사고 또 국가에서 못하면은 불교 종단에서라도 적극적으로 나서서 해야 할 텐데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나라는 아이엠에프(IMF) 사태로 인해서 경제가 말이 아니고, 종단은 참 내 입으로 벌리기도 참 안되었지마는, 종단이 저렇게 분규가 일어나가지고 시끌사끌 한데 그런 불사를 할 정신이나 있겠습니까?

 

다행히 불보살(佛菩薩) 화현(化現)이 우리나라에 나타나가지고 그것을 개인적으로 이 전산화 불사를 94년도부터서 시작해가지고 오늘날까지 왔습니다.

다행히 삼성문화재단에서 이 불사를 찬동해 가지고 꽤 많은 돈을 내서 참 적극적으로 협조를 해서 기본 입력은 되었으나 그것을 한 자, 한 자 틀림없이 되었나, 그것을 낱낱이 다 대조를 해가지고 해야 하고. 거기서 더 나아가서는 또 한글로 번역을 또 해서 한문을 모른 사람도 집안에 앉아서 팔만대장경을 무슨 경에 무슨 품에 몇 조에 이걸 딱 볼 수 있게 그렇게 해야 하고.

 

또 더 나아가서는 영어라든지 세계의 다른 나라 외국어로도 번역해가지고 외국 사람들도 자기 나라에서 자기집에서 해인사 팔만대장경을 열람할 수 있게 이렇게 한, 그러한 역사 이래로, 불교 삼천년 역사 이래로 처음이라고 할 만한 그런 위대한 불사가 원력(願力)을 세운 불보살 화현에 의해서 이 불사가 시작이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불사는 우리 불교도(佛敎徒)가 한 사람도 빠짐없이 여기에 다 동참을 해야 합니다.

이런 말씀을 드리면 '아이엠에프 시대가 되어가지고 우리 살기도 어려운데 무슨 불사를 하느냐? 동참을 하느냐?' 혹 그렇게 생각하실는지 모릅니다마는, 이렇게 어려울 때 불사에 동참을 하고 성의를 바쳐야 복을 받는 것입니다. 그 예를 내가 경전에 나온 말씀을 빌려서 여러분에게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14분6초~26분43초)

 

 

 

 

 

(2)------------------

 

수달장자(須達長者)라고 여러분은 아실 것입니다. 『금강경(金剛經)』 첫머리 읽으면 기수급고독장자(祗樹給孤獨長者)라고, 그 기수급고독장자가 누구냐 하면 수달장자입니다.

그 수달장자가 처음에 대단히 부자로 살다가 마지막 가난해지고 또 가난해져 가지고 마지막 일곱 번째는 뭐라고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저녁 끓일 것도 없고, 뭐 속담에 뭣이 짝 찢어지게 가난하다고 하지요.

 

그렇게 가난한데, 부부가 굶고 살다시피 그러다가 수달장자가 밖에를 슬슬 댕겨서 봤습니다. 혹 뒤엄이나 쓰레기통에 혹 먹다가 버린 쉰 빵 쪼가리라도 혹 있나하고 보다 보니까 나무토막 하나를 얻었습니다.

흠흠 맡아보니까 그 쓰레기 속에서 주었는데 향내가 진동한다 그말이여. 그래서 그놈을 씻어가지고 보니까 전단향(栴檀香) 나무토막이라. 그놈을 가지고 팔았습니다. 팔아가지고 쌀 너 말을 샀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반가웠겠습니까. 여러 날을 굶다시피 하다가 쌀 너 말을 구했으니.

그 쌀 너 말을 집으로 가지고 와서 그 부인 보고 '우선 한 말만 밥을 해가지고 오늘 좀 배를 채워야겠다. 밥을 하라'고. '나는 슬슬 다시 가서 쓰레기통에 배추 이파리나 무 이파리 같은 것이라도 있으면 주워가지고 와서 다글다글 끓여서 먹어야 할 테니까 밥을 하라'고 해서 밥을 해 놓고, 인자 밥이 있고 아직 수달장자 안 왔는데.

 

부처님이 가만히 정사(精舍)에서 관(觀)을 해 보시니까 '수달장자가 이제 참 때가 되었구나. 수달장자를 정말 제도할 때가 왔구나' 그렇게 생각하시고서 사리불(舍利佛)을 가서, 수달장자한테 가서 걸식(乞食)을, 바리때를 가져가서 밥을 얻으러 보냈습니다.

그러니까 그 부인이 밥을 해가지고 냄새는 코로 술술술 들어오는데 속에서 회(蛔)가 동(動)해 가지고 견딜 수 없이 그런데, 아! 사리불 존자가 왔으니 안 드릴 수가 없으니까 기쁜 마음으로 한 말밥을 드렸습니다.

 

그다음에 다시 또 한 말을 퍼서 밥을 했는데, 부처님께서 '목련(目連) 존자, 네가 또 가서 밥을 빌어 오너라' 목련 존자가 가서, 밥을 다 익을만 할 때 들어가서 바리때를 떠억 펴니까 두말없이 또 두 번째 한 밥을 퍼줬습니다.

그리고 또 세 번째 한 말을 퍼서 또 밥을 했습니다. 그다음에는 부처님께서 가섭(迦葉) 존자를 시켜서 '가서 밥을 빌어라'하니까 가섭 존자가 또 가 가지고 밥이 김이 풀풀풀 난 데가 바리때를 떠억 가니까 두말없이 또 딱 퍼줬습니다.

 

그런 마지막 한 말 남은, 네 말 밥을 딱 밥을 했습니다. 그때는 부처님께서 몸소 바리때를 가지고 가서 딱 펴니까, 깜짝 놀랐습니다.

또 두말할 것도 없이 그놈을 퍼서 (드리니까), 이렇게 바리때를 받아 놓고 부처님께서 작관을 하시고 축원을 하시기를 "금일죄멸복생(今日罪滅福生)이니라, 오늘날 그 가난해야 할 그 죄는 없어지고 멸하고, 큰 복을 받을 것이다"

 

부처님께서 딱 축원(祝願) 한마디 하는데, 그때 마치 수달장자가 나물거리 주워가지고는 들어왔습니다.

와서 보니 부처님 와서 계시지, 크게 기뻐해가지고 부처님 받은 밥, 사리불, 목련, 가섭 존자 할 것 없이 다 와가지고 그 밥을 퍼 놓고 찌개를 끓여서 거기서 공양(供養)을 잡쉈는데, 공양이 끝나자 여기서 저기서 보물이 막 솟아오르는데 금은보화 칠보와 비단과 곡식과 또 그런 것이 와 가지곤 땅에서 솟아나가지고 옛날에 부자일 때와 같이 되었다 이거여.

 

그러니까 수달장자는 그때 다시 잘 차려놓고 부처님과 부처님 제자들을 다시 초청을 해가지고 공양을 올리고서 법문(法門)을 청했습니다. 부처님께서 법문을 설하시니까 수달장자 내외는 말할 것도 없고 거기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이 도를 다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이 과연 수달장자의 부인이라면 식구가 쫄쫄 굶다가 모처럼 얻은 거 밥해 놓은 거 스님네가 오면 탁 떨어주고, 탁 떨어주고 그럴 수 있을 것인가? 여러분도 틀림없이 그렇게 하실 수 있으리라고 나는 믿습니다.

 

이렇게 경제가 어렵고 직장에 다니다가 다 퇴출 당하고 또 유학 간 애들도 다 불러들이고, 대학도 휴학을 시키고 군대에 보내고 여러 가지 어려운 점이 많으시겠지만 그렇다고 역사 이래로 없는 이런 불사에 빠지면 참 언제 업장(業障)이 소멸(消滅)이 되고 복을 받겠습니까?

이런 말씀을 안 해도 아까 말한 팔만장경의 그 전산화 불사가 그렇게 이루어지고 있다고 알기만 하셨다면 여러분은 진즉 하셨겠는데 아마 잘 모르고 안 하신 분은 이런 기회에 다 동참을 하시고.

 

'이 경전 불사에 동참하는 그것이 얼마나 공덕이 장하냐?'하면, 여러분이 잘 아시다시피 아사세(阿闍世)왕이라고 아실 것입니다.

부처님의 사촌동생인 조달(調達)이, 제바달다(提婆達多)라고 하는데, 그 조달이의 꼬임에—이 아사세왕에 뭐라고 꾀셨냐 하면은 아사세왕 아버지는 빈바사라(頻婆娑羅 bimbisāra 빔비사라)왕인데,

"빈바사라왕이 명이 길게 생겨서 죽을 때까지 기다리다가는 태자는 임금 맛도 못 보고 죽게 생겼어. 그러니까 나는 부처님을 어떻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부처님을 죽이고 내가 신불(新佛)이 되고, 아사세 태자는 빈바사라왕, 부왕(父王)을 죽이고 신왕(新王)이 되라. 신왕과 신불이 나와 가지고 이 세계를 한번 휘어잡아 보자"

 

꾀서우니까 아사세왕이 솔깃해가지고 자기 아버지를 갖다가 칠중(七重) 감옥에다 가두고 굶겨 죽이려고 했습니다. 결국은 죽였단 말도 있고, 죽이러 올라온 줄 알고 자결을 했단 말도 있고 그럽니다마는, 하여간 경전에 따라서 일반적으로 아사세는 자기 부왕을 죽인 걸로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그러고 나서 아사세왕은 만신창이(滿身瘡痍)가 되어가지고, 아조 문둥이처럼 되어가지고 아조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기파(耆婆) 어의(御醫)가 너무너무 볼 수가 없으니까, 부처님께 가서 참회(懺悔)를 하면은 어쩌면 낫을런지 모르니까 부처님께 가서 참회를 하라 그러니까,

'나 같은 이러한 대역죄(大逆罪), 오역죄(五逆罪)를 지었는데 부처님이 받아 주실까요?'

'틀림없이 받아 주실 테니까...'

 

'그러면 그대가 먼저 가서 내가 참회를 오면은 받아 주시겠느냐고 먼저 가서 말씀을 여쭤봐라'

가서 말씀을 드리니까, '그러면 진실로 참회한다면야 내가 왜 참회를 안 받아 주겠느냐' 그래서 참회를 하고 그래가지고는 차츰차츰 병도 낫고 그래가지고,

 

부처님 당시에 파사익왕이니 뭐 아사세왕이니 여러 왕들이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부처님과 부처님 제자들 삼보(三寶)를 외호(外護)하는 왕으로서 경전마다 나와 있고, 참 그런데다가 가장 뚜렷한 공적은 무엇이냐 하면은 제1회 결집(結集) 때 아사세왕이 공양 · 의복 · 약, 일체를 전부 뒷바라지를 해가지고 제1회 결집을 무난히 성취를 한 것입니다.

 

그랬는데 여기서 말씀을 드리고자 한 것은 아사세왕은 그 아버지를 죽이고 한—그 부모를 죽이고, 부처님 몸에 피를 내게 하고, 아라한(阿羅漢)을 죽이고 그런 것이 오역죄에 해당이 되는데, 그 오역죄를 지은 사람은 지옥에 떨어지게 돼. 무간지옥(無間地獄)에 떨어지게 되고, 경우에 따라서는 생함지옥(生陷地獄)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사세왕은 그러한 죄로 해서 일단은 지옥에 떨어졌습니다. 떨어지자마자 다시 거기에 고통도 받을 겨를도 없이 천상(天上)에 가서 태어났습니다. 그건 왜 그러냐?

부처님께 참회를 했고, 적극적으로 불법승(佛法僧) 삼보를 외호할 뿐만 아니라 제1회 결집을 하는데 물심양면으로 외호를 한 그 공덕으로 결국은 무간지옥에 떨어져서 무량겁을 받을 죄가 소멸이 되어가지고 천상에 올라간 것이다 그말이여.

 

이 자리에 모이신 사부대중(四部大衆) 여러분은, 지금은 여러분들이 발심(發心)을 해서 불법을 믿는 여러분들이 무슨 큰 죄를 지었을까마는, 무량겁을 오면서 수천만 생을 오면서 산같이 지은 입으로 지은 죄, 바다와 같은 그 몸으로 지은 죄, 허공과 같이 지은 죄를 마음으로 지었다고...

안 지었다고 누가 보장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한 지은 죄도 낱낱이 빼놓지 않고 다 받게 될 것입니다마는, 오늘 내가 소개한 이런 팔만대장경의 전산화를 통해서 온 세계 사람에게 이 팔만대장경을 읽게 하는 그 공덕으로 그 죄도 소멸이 되리라고 저는 감히 보증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형편이 넉넉한 분은 좀 넉넉하니 하고 아무리 적어도 적은 돈이라도 아까 수달장자처럼 그것을 안 먹으면 굶어 죽게 생겼어도 탁! 갖다 바칠 때에 큰 부자의 복을 받게 되는 이런 경전에 말씀을 명심을 하시고 여기에 기쁜 마음으로 동참(同參)을 하시기를 바랍니다.

 

내가 전강 조실 스님 열반하신 뒤로 25년, 사석(私席)에서나 법석(法席)에서나 단 한 번도 여러분에게 시주(施主)를 하란 말을 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이 불사는 여러분의 어려운 난국을 해나가기 위해서도 또 여러분의 가정을 위해서도, 우리 국난을 맞이한 대한민국을 위해서도, 세계가 말세(末世)의 현상이 나가지고 도처에서 사람을 죽이고 천재지변이 일어나고 이러한 세계를 구제하기 위해서도 이 전산화 불사는 하루속히 원만히 성취되어야 하기 때문에 저의 역사를 깨고 불사(佛事)에 동참하시라고 감히 권고를 하는 것입니다.

 

형편 따라서 성의껏 하시면 되고 한 번에 안 내더라도 다달이 요렇게 해서 하셔도 되고, 구체적인 것은 앞으로 여기 고려대장경 연구소장으로 이 불사를 하고 있는 스님께서 구체적으로 여러분에게 설명을 해드릴 것입니다. 게송 하나를 읊고 내려가고자 합니다.

 

 

금생(今生)에 약불종사어(若不從事語)하면 후세당연한만단(後世當然恨萬端)하리라

나무~아미타불~

 

그러면 소장님 잠깐 나와 주십시오.(26분44초~41분11초)(끝)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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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부처님으로부터 달마 스님까지 28대, 육조 스님까지 33대' ; 삽삼조사(卅三祖師). 삼십삼세 조사(三十三世祖師).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뒤에 부처님을 대신할 전 교단(敎團)의 어른을 한 분씩 정하여 내려왔다。그것은 스승되는 어른이 그 제자들 가운데서 빼어난 이를 선택하여 법(法)을 전하고, 그 증거로써 부처님의 가사와 발우(衣鉢)를 전해 주었다.

그리하여 인도에서 1.가섭존자, 2.아란존자, 3.상나화수....이렇게 전승되어 28대 되는 달마대사(達摩大師)가 중국에 와서 중국의 초조(初祖)가 되고, 그로부터 2조 혜가, 3조 승찬, 4조 도신, 5조 홍인, 6조 혜능대사(慧能大師)로 내려왔는데, 위 33인의 조사를 삽삼조사라 한다.

6조 혜능에 이르러서는 불법을 대중화하기 위하여 정통(正統)으로 내려가는 전례를 폐지하고, 따라서 의발을 전하는 것도 그만두었다.

*법(法) ; (산스크리트) dharma, (팔리) dhamma의 한역(漢譯). ①진리. 진실의 이법(理法). ②선(善). 올바른 것. 공덕. ③부처님의 가르침. ④이법(理法)으로서의 연기(緣起)를 가리킴. ⑤본성. ⑥의(意)의 대상. 의식에 드러난 현상. 인식 작용. 의식 작용. 인식 내용. 의식 내용. 마음의 모든 생각. 생각.

*불립문자(不立文字) ; 진리는 문자로 표현 할 수 없는, 개념으로 규정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는 것. 선종에서 법(法)은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하는(以心傳心) 것이므로, 따로 언어•문자를 세워 말하지 않는데 참 뜻이 있다고 하는 것.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아 부처가 됨[成佛].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 ; 팔만사천 법문이 있다는 뜻으로, ‘대장경(大藏經 - 부처님의 가르침을 적은 경전을 통틀어 이르는 말)’을 달리 이르는 말.

*유네스코(UNESCO United Nations Educational, Scientific and Cultural Organization 국제 연합 교육 과학 문화 기구) ; 국제 연합(UN) 전문 기관의 하나. 교육, 과학, 문화의 보급과 국제 교류 증진을 통한 국제간의 이해와 세계 평화를 추구한다. 1946년에 창설되었으며, 본부는 파리에 있다.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UNESCO 世界文化遺產) ;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지닌 자연 유산 및 문화 유산들을 발굴 및 보호, 보존하기 위하여 '세계 문화 및 자연 유산 보호 협약'의 규정에 따라 유네스코에서 지정하는 유산.

*머트럽다 ; 말이나 행동이 일정하게 바르게 하지 않고 울퉁불퉁하다.

*늦깨끼(늦깎이) ; ①나이가 많이 들어서 스님이 된 사람. ②나이가 꽤 들어서 어떤 것을 시작하거나 성공한 사람.

*결집(結集) ; 산스크리트어, 팔리어 saṃgīti  상기티는 결경(結經) · 집법(集法) 또는 합송(合誦) · 합창(合唱)으로 해석하며, 회의(會議)를 의미한다고도 한다.

많은 자격 있는 사람들이 모여 불전(佛典)을 올바로 평가하고 편찬하는 일을 의미한다. 인도에서는 붓다의 입멸 후부터 2세기경까지 4차례의 결집이 있었고, 그 후 현대에 오기까지 세계 각국에서 여러 차례의 대장경(大藏經) 결집이 있었다.

*가섭 존자, 아난 존자 ;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에서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아라한(阿羅漢) ; 산스크리트어 arhat의 주격 arhan의 음사. 모든 번뇌를 완전히 끊어 열반을 성취한 성자. 응공(應供) · 응진(應眞) · 무학(無學) · 이악(離惡) · 살적(殺賊) · 불생(不生)이라 번역.

마땅히 공양 받아야 하므로 응공(應供), 진리에 따르므로 응진(應眞), 더 닦을 것이 없으므로 무학(無學), 악을 멀리 떠났으므로 이악(離惡), 번뇌라는 적을 죽였으므로 살적(殺賊), 미혹한 마음을 일으키지 않으므로 불생(不生)이라 함.

*아육왕(阿育王) ; 산스크리트어 aśoka 팔리어 asoka의 음사. 무우(無憂)라고 번역.

찬드라굽타(candragupta)가 마가다국(magadha國) 난다(nanda) 왕조를 무너뜨리고 세운 마우리야(maurya) 왕조의 제3대 왕으로 인도 남단부를 제외한 전 인도를 통일함. 재위 기원전 270년경-230년경.

즉위 8년에 인도 북부 동해안의 뱅골만에 위치한 - 오늘날 오릿사주의 대부분 - 깔링가국과 전쟁을 벌여 승리하였으나, 전쟁으로 인한 사람들의 살육, 사망, 이주의 대 참상을 매우 괴로워하고 비통하게 여겨, ‘무력의 정복’을 버리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근본으로 비폭력과 정의에 기초한 ‘다르마(法)의 정복’으로 전환하였다.

 

아육왕의 주선으로 도읍지인 화씨성(華氏城)의 아육승가람(阿育僧伽藍)에서 천여 명의 비구들이 제3차 결집(結集)을 행하여, 경(經)·율(律)·논(論)의 삼장(三藏)을 정리하였다. 불교에 귀의하여 수많은 탑과 사원을 세우고, 수많은 사절들을 인도 전역에 파견하여 불교를 전파하였고, 특히 자신의 아들 마힌다(mahinda)와 딸 상가밋타(saṅghamittā)를 스리랑카에 파견하여 그곳에 불교를 전하였다.

왕은 자신의 뜻과 행적을 널리 알리기 위해 암벽(바위)에 또는 석주(石柱 돌기둥)에 칙령(勅令)을 새겨 세웠다. 왕이 죽은 후, 마우리야 왕조는 서서히 분열되어 기원전 180년경에 멸망하였다.

*삼장(三藏) ; 《경장(經藏)》, 《율장(律藏)》, 《논장(論藏)》의 세 가지 불서(佛書)를 통틀어 이르는 말.

*범어(梵語) ; 인도 · 유럽 어족 가운데 인도 · 이란 어파에 속한 인도 · 아리아어 계통으로 고대 인도의 표준 문장어. 고대 인도 문학이나 불경(佛經)은 이 언어로 기록되어 있으며 오늘날까지 내려오는 고급 문장어이다. 산스크리트(Sanskrit) · 산스크리트어(Sanskrit語) · 천축어(天竺語).

*귀지다 ; '귀나다(모가 반듯하지 아니하고 한쪽으로 비뚤어지거나 기울어지다)'의 옛말.

*신수대장경(新脩大藏經) ; 일본에서 간행한 대장경. 원제는 <대정신수대장경(大正新脩大藏經)>. 다카쿠스 준지로(高楠順次郞)의 주관으로 대정(大正) 11년(1922)에 기획하여 소화(昭和) 7년(1932) 2월에 완성됨. 고려대장경을 저본으로 하고 여러 간행본과 사본등을 대조하여 많은 차이점을 각 페이지 하단에 자세히 주기(註記)하고, 여기에 팔리어와 산스크리트를 일부 병기(倂記)함.

총 100권 중 인도와 중국의 찬술부가 55권, 일본 찬술부가 29권, 돈황 사본이 1권, 도상부(圖像部) 12권, 목록 3권으로 이루어짐. 이중 도상부와 목록을 제외한 85권이 불전(佛典)으로 총 3,053부, 1만 1,970권에 이른다.

*불사(佛事) ; ①불법(佛法)을 알리는 일. 법회, 불공(佛供), 재(齋)의 봉행, 경전의 간행과 유통, 사찰의 중창과 전각 중수, 불상·탱화·불구(佛具)·가사(袈裟) 조성 등의, 불가(佛家)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가리킨다. ②부처님께서 중생을 교화(敎化)하시는 일.

*아이엠에프(IMF) ; ‘IMF 경제 위기’ ‘IMF 외환 위기’ ‘IMF 관리체제’ ‘IMF 시대’ 한국에서 기업부도와 금융위기가 확산되어 1997년 12월 정부가 IMF(국제 통화 기금 ; International Monetary Fund)로부터 구제금융을 신청함으로써 한국경제가 IMF 관리체제로 들어가게 된 사건.

한국은 외환 관리정책의 미숙과 실패, 금융기관의 부실과 방만한 기업경영으로 인한 대기업의 연쇄 부도, 대외 신뢰도 하락, 단기 외국 채무의 급증 등으로 외환위기를 겪게 되어 한국 정부는 모라토리움(채무지불유예) 선언을 할 사태에 이르자, 1997년 12월에 IMF에 구제금융을 실천하여 IMF, 세계은행, 아시아개발은행으로부터 지원받아 외환위기의 고비를 넘겼으나, IMF의 구제금융 조건은 엄격한 재정 긴축과 가혹한 구조 개혁, 시장 개방 등을 요구하기 때문에 구제를 받는 나라는 금리가 상승되고 실업률이 상승되는 등의 상황이 나타나게 된다.

한국은 각종 경제 개혁과 전국민적 노력 덕분에 2001년 8월에 IMF 관리체제가 종료되었다.

*불보살(佛菩薩) ; 부처님과 보살을 아울러 일컫는 말. 불(佛)은 불타(佛陀)의 준말. 각자(覺者)라 번역한다. 보살은 성불(成佛)하기 위하여 수행에 힘쓰는 이의 총칭이다.

*화현(化現) ; 부처님이나 보살이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각(各) 중생의 소질에 따라 여러 가지로 모습을 바꾸어 이 세상에 나타나는 것. 화신(化身)이라고도 한다.

*원력(願力) : 원(願)하는 바를 이루려는 의지. 본원력(本願力)•숙원력(宿願力)•대원업력(大願業力)•서원(誓願)•행원(行願)이라고도 한다.

*동참(同參) ; ①어떠한 일에 함께 참여함. ②스님와 신도가 한 법회에 같이 참석하여 불도(佛道)를 닦는 일. ③같은 스승 밑에서 함께 공부하는, 동문수학하는 '도반(道伴)'과 같은 말. 동학(同學)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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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달장자 부부의 공양(供養) 공덕 '죄멸복생(罪滅福生)' 이야기 ; 잡비유경(雜譬喩經) (하권) '28(二八)'

*수달(須達) ; 산스크리트어, 팔리어 Sudatta의 음사. 온전한 이름은 수달다(須達多). 소달다(蘇達多)라고도 음사. 선시(善施), 선수(善授), 선여(善與), 선급(善給), 선온(善溫) 등이라 한역. 석가모니 부처님과 같은 때 중인도 사위성(舍衛城)에 살던 부호(富豪)이자 파사익왕(波斯匿王)의 대신(大臣). 성품이 인자하여 평소에 고아나 홀로 사는 노인들에게 보시하기를 좋아하였으므로 급고독(給孤獨)이라고도 불렸음.

왕사성(王舍城) 죽림정사(竹林精舍)에서 석가모니 부처님께 설법을 들은 뒤 귀의하였다. 당시 사위성에 정사가 없었으므로 기타(祇陀) 태자에게 황금을 주고 동산을 사고 태자에게 숲을 보시 받아 기원정사(祇園精舍 : 祇樹給孤獨園)를 지어 부처님께 바침. 부처님은 20여 년간 이 정사에 머물면서 많은 설법을 하셨다.

*기원정사(祇園精舍) ; 기다원림수달다정사(祇陀園林須達多精舍)의 약어(略語).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살아 계실 때 가장 큰 불교사원으로서, 중인도 코살라국(國)의 수도 사위성(舍衛城:슈라바스티) 남쪽 1.6 km 지점에 있던 기타태자(祇陀太子) 소유의 동산에 지은 절.

부호(富豪)이자 파사익왕(波斯匿王)의 대신(大臣)인 수달(須達)은 왕사성(王舍城) 죽림정사(竹林精舍)에서 석가모니 부처님께 설법을 들은 뒤 귀의하였고, 당시 사위성에 정사가 없었으므로 기타(祇陀) 태자에게 황금을 주고 동산을 사고 태자에게 숲을 보시 받아 기원정사(祇園精舍 : 祇樹給孤獨園)를 지어 부처님께 바침.

이는 ‘기타태자의 동산에 수달(須達:給孤獨長者)이 지은 승원’이라는 뜻인데, 급고독장자(給孤獨長者)란 ‘고독한 이들에게 보시를 많이 한 부자’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전단향(栴檀香) ; 전단향 나무. 인도에서 나는 향나무의 하나. 목재는 불상을 만드는 재료로 쓰고 뿌리는 가루로 만들어 단향(檀香)으로 쓴다.

*정사(精舍) ; vihara. 수행승들이 머물면서 불도(佛道)를 닦는 집. 사원. 절.

*사리불 존자, 목련 존자 ;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에서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걸식(乞食 빌·구할·청할 걸/밥·음식 식) ; ①빌어서 얻어먹음. ②수행자가 수행을 위해 육신을 지탱하고자 일정한 법도에 따라 남에게 음식을 받는 것.

*바리때 ; 절에서 쓰는 스님의 공양(식사) 그릇. 나무나 놋쇠 따위로 대접처럼 만드는데, 나무에는 안팎에 칠(漆)을 한다. 발우(鉢盂)ㆍ발우대ㆍ응기(應器)ㆍ응량기(應量器)라고도 한다.

응량기(應量器)란 법에 응하는 또는 1명의 식량에 마땅한 그릇이니 먹을 만큼의 분량을 담는 그릇이고, 또 남의 공양을 받기에 마땅한 수행과 덕을 갖춘 성현(聖賢)이 사용하는 그릇이란 뜻이다.

*회(蛔)가 동(動)하다 ; 뱃속에 있는 회충(蛔蟲)이 먼저 알고 요동(搖動)을 칠 정도로 입맛이 당긴다는 뜻이다. 뜻이 변하여, 어떤 음식이나 일을 앞에 두었을 때 입맛이 당기거나 즐거운 호기심이 일어나는 상태를 가리키는 말이다.

*말밥 ; 한 말가량의 쌀로 지은 밥. '말[斗]'은 부피의 단위로 곡식 · 액체 · 가루 따위의 부피를 잴 때 쓴다. 한 말은 한 되[升]의 열 배로 약 18리터에 해당한다.

*축원(祝願) ; 어떤 일이 희망하는 대로 이루어지기를 불보살(佛菩薩)께 간절히 원하고 빎.

*공양(供養 이바지하다·받들다·모시다·바치다 공/기르다·공양하다 양) ; ①불(佛)•법(法)•승(僧)의 삼보(三寶)나 스승, 부모, 영가에 음식, 옷, 약, 꽃, 향 등을 바침. ②스님들의 식사를 공양이라 하는데, 이것은 스님들은 시주(施主)의 공양물로 생활하기에 공양을 올리는 이[施主]의 시은(施恩)을 상기하여 잊지 않게 하고자 함이다. ③신구의(身口意) 세 가지 방법으로 하는 공양으로 삼업공양(三業供養)이라 한다. 자세[身]를 낮추어서 삼가고 공경하는 예를 갖추는 공경, 입[口]으로 훌륭함을 기리는 찬탄, 오로지 마음[意]을 쏟는 존중이다.

*법문(法門 부처님의 가르침 법/문 문) ; 불법(佛法)을 문(門)에 비유한 말.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門)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업장소멸(業障消滅) ; 전생(前生)이나 금생(今生)에 행동·말·마음(신구의,身口意)으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이 세상에서 생긴 장애[業障]가 사라져 없어짐[消滅]. 죄업소멸(罪業消滅).

*아사세(阿闍世) ; (산스크리트) Ajātaśatru (팔리어) Ajātasattu 부처님 제세 시 중인도 마가다국(摩揭陀國)의 왕. 빈바사라(頻婆娑羅)왕과 위제희(韋提希) 부인 사이에서 태어났다. 성장하여 태자가 된 후, 제바달다의 꼬임에 넘어가 부왕(父王)을 감옥에 가둬 죽이고 스스로 왕위에 올랐다. 부왕을 시해한 죄로 인해 온몸에 부스럼이 생겼는데, 기파(耆婆) 어의(御醫)의 권유로 부처님 앞에서 참회한 뒤 치유되어 부처님께 귀의하였다.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뒤 왕사성에 사리탑을 세우고 공양하였으며, 마하가섭을 비롯한 부처님 제자들이 칠엽굴에서 1차 결집을 행할 때, 대단월(大檀越)이 되어 음식 · 재물 · 당우(堂宇) 등을 지원하여 불교 교단을 외호하였다.

*조달(調達) ; 제바달다(提婆達多 산스크리트어, 팔리어 devadatta의 음사). 번역하여 천열(天熱), 천수(天授), 천여(天與).

부처님의 사촌 동생으로, 출가하여 그의 제자가 됨. 부처님에게 승단을 물려줄 것을 청하여 거절당하자 오백여 명의 비구를 규합하여 승단을 이탈함. 여러 번 부처님을 살해하려다 그 과보로 살아서 지옥에 떨어졌다고 한다.

*빈바사라왕(頻婆娑羅王) ; 산스크리트어, 팔리어 bimbisāra의 음사. 부처님 재세시 마가다국(magadha國)의 왕(재위 기원전 五八〇년경~기원전 五五〇년경). 빈비사라(頻毘娑羅), 빔비사라 등으로 음사하고 병사왕(缾沙王·萍沙王), 영승왕(影勝王), 안모단정왕(顔貌端正王) 등으로 한역한다. 왕비 위제희(韋提希)와 함께 부처님께 귀의하였다.

왕사성(王舍城) 부근에 죽림정사(竹林精舍)를 지어 부처님께 바치고 그 제자들인 승가에 공양하고 불교를 호지(護持)하며 교단을 지원한 최초의 외호자(外護者)이다. 만년에는 궁전에 탑을 세우고 부처님의 머리카락과 손톱 등을 봉안하고 예배하였다. 후에 태자 아사세(阿闍世)에게 왕위를 찬탈당하고 감옥에 갇혀 있다가 아나함과를 증득한 후 죽었다.

*만신창이(滿身瘡痍 찰 만/몸 신/부스럼 창/상처 이) ; 온몸이 제대로 성한 데가 없을 만큼 상처투성이가 됨.

*기파(耆婆) ; 산스크리트어, 팔리어 jīvaka의 음사. 고대 인도의 사위성에서 살던 의사.

덕차시라국의 반가라에서 7년간 배운 뒤 본국인 바가타성에 귀국, 여러 사람들에게 약을 나누어 주고 남쪽 나라의 폭군의 병을 고쳐주기도 했다. 불교에 귀의하여 석가모니와 그의 제자들의 병을 치료하였다.

*참회(懺悔 뉘우칠 참/뉘우칠 회) ; ①자기의 잘못에 대하여 깨닫고 깊이 뉘우치며, 다시는 같은 잘못을 짓지 않겠다고 결심함. ②신이나 부처님 또는 대중 앞에서 자기의 죄를 뉘우치고 용서를 구함.

[참고]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156~157 참고. (가로판 p163~164)

有罪則懺悔하고  發業則慚愧하면  有丈夫氣象이요,  又改過自新하면  罪隨心滅이니라.

 

허물이 있거든[有罪] 곧 참회하고, 잘못한 일이 있으면[發業] 곧 부끄러워할 줄 알면[慚愧] 대장부의 기상이 있다 할 것이요, 또한 허물을 고쳐 스스로 새롭게 하면, 그 죄업은 마음을 따라 없어지느니라.

 

(註解) 懺悔者는  懺其前愆이요  悔其後過라.  慚愧者는  慚責於內하고  愧發於外라.  然이나 心本空寂이라  罪業이  無寄니라

 

참회(懺悔)란 먼저 지은 허물을 뉘우치고, 뒷날에는 다시 짓지 않겠다고 맹세하는 것이다. 부끄러워한다[慚愧]는 것은 안으로 자신을 꾸짖고, 밖으로는 자기의 허물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은 본래 비어 고요한 것이라, 죄업이 붙어 있을 곳이 없는 것이다.

*대역죄(大逆罪 큰 대/거스를 역/죄 죄) ; 예전에, 국가와 사회에서 지켜야 할 도리를 크게[大] 거스르는[逆] 일을 저지른 죄(罪). 왕권을 범하거나 임금이나 부모를 죽이는 큰 죄를 이르던 말. 불교에서는 오역죄(五逆罪)에 해당한다.

*오역죄(五逆罪) ; 다섯 가지 지극히 무거운 죄. 다섯 가지의 내용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으나 대표적인 것은 다음과 같음.

①아버지를 죽임. ②어머니를 죽임. ③아라한을 죽임. ④승가의 화합을 깨뜨림. ⑤부처님의 몸에 피를 나게 함. 이 다섯 가지는 무간지옥(無間地獄)에 떨어질 지극히 악한 행위이므로 오무간업(五無間業)이라고도 함.

*삼보(三寶) ; 부처님(佛寶)과 부처님의 가르침(法寶)과 그 가르침에 따라 수행하는 집단(僧寶) 의 3가지를 보배에 비유한 말. 이것은 불교를 구성하는 3가지의 중요한 요소임. 삼보(三寶)에 귀의하는 것은 불교도로서의 기본적인 조건임.

*외호(外護) ; 불법(佛法)을 세상에 널리 퍼뜨리는데 힘이 되도록 수행하는 사람을 보호하는 것을 말한다. 신(身)·구(口)·의(意)를 보호하는 것을 내호(內護)라고 한다. 내호와 외호를 합하여 이호(二護)라고 한다.

*무간지옥(無間地獄) ; 아비지옥(阿鼻地獄)이라고도 함. 아비(阿鼻)는 산스크리트어 avīci의 음사(音寫)로서 ‘아’는 무(無), ‘비’는 구(救)로서 ‘전혀 구제받을 수 없다’는 뜻. 이 지옥에 떨어진 중생은 한 치의 빈틈도 없이 끊임없이 고통을 받기 때문에 무간(無間)이라 한다.

아버지를 죽인 자, 어머니를 죽인 자, 아라한을 죽인 자, 승가의 화합을 깨뜨린 자, 나쁜 마음으로 부처님의 몸에 피를 나게 한 자 등, 지극히 무거운 죄를 지은 자가 죽어서 가게 된다는 지옥.

 

이 지옥에 떨어지는 죄인에게는 필파라침(必波羅鍼)이라는 악풍(惡風)이 있는데 온몸을 건조시키고 피를 말려 버리며 또 옥졸이 몸을 붙잡고 가죽을 벗기며, 그 벗겨낸 가죽으로 죄인의 몸을 묶어 불 수레에 싣고 훨훨 타는 불구덩이 가운데에 던져 넣어 몸을 태우고, 야차(夜叉)들이 큰 쇠 창을 달구어 죄인의 몸을 꿰거나 입, 코, 배 등을 꿰어 공중에 던진다고 한다. 또는 쇠매(鐵鷹)가 죄인의 눈을 파 먹게 하는 등의 여러 가지 형벌로 고통을 끊임없이 받는다고 한다.

*생함지옥(生陷地獄) ; 살아서[生] 지옥(地獄)에 떨어짐[陷].

*사부대중(四部大衆) ; 불문(佛門)에 있는 네 가지 제자. 곧 비구(比丘), 비구니(比丘尼) 등 출가 제자와 우바새(優婆塞), 우바이(優婆夷) 등 재가 제자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사중(四衆)과 같은 말. 줄여서 사부(四部)라고도 한다.

[참고] 우바새 : upasaka의 음역. 삼귀의(三歸依)와 오계(五戒)를 받아 지니는 남성 재가신도.(같은 말=靑信士,靑信男,信男,信士,居士,近事男,近善男,善宿男) 원래의 말뜻은 모시는 사람. 받들어 모시는 사람. 출가자와 승단을 가까이에서 돌보고 보호하며 한편 가까이 배우는 사람이라는 뜻을 지닌다. 선숙(善宿)은 선(善)을 품어 그것에 머물기[宿] 때문에 선숙이라고 한다.

우바이 : upasika의 음역. 삼귀의(三歸依)와 오계(五戒)를 받아 지니는 여성 재가신도. (같은 말=靑信女,信女,近事女,近善女,善宿女)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을 일으킴[發].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보리심은 모든 부처님이 부처님이 될 수 있었던 바탕이 되는 종자이고 청정한 법이 자라날 수 있는 좋은 밭이기 때문에 , 이 마음을 발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면 속히 위없는 보리를 증득한다.

*시주(施主 베풀 시/주인 주) : ①스님에게 혹은 절에 돈이나 음식 따위를 보시하는 일. 또는 그런 사람. ②남에게 가르침이나 재물을 아낌없이 베푸는 사람. 단월(檀越 dana-pati)이라고도 함.

*말세(末世 끝 말/세상 세) ; ①도덕, 풍속, 정치 등의 모든 사회 질서와 정신이 매우 타락하고 쇠퇴하여 끝판에 이른 세상. ②석존입멸후 오백 년을 정법(正法)의 세상, 그 다음 천 년을 상법(像法)의 세상, 그 후의 일만 년을 말법(末法)의 세상이라고 한다. 구체적인 시기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곧 불멸(佛滅) 후 오랜 기간을 지나 부처님의 가르침이 쇠퇴하는 시기.

*(게송) ‘금생약불종사어(今生若不從斯語) 후세당연한만단(後世當然恨萬端)’ ;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 ‘자경문(自警文)’ 게송.

勸汝慇懃修善道  速成佛果濟迷倫  今生若不從斯語  後世當然恨萬端

 

너에게 도 닦기를 은근히 권하노니, 어서 빨리 불과(佛果) 이뤄 미혹 중생 건지어라. 금생에 만일 이 말을 안 따르면, 후세에 당연히 한(恨)이 만 갈래나 되리라.

 

Posted by 닥공닥정

§(465) (게송)삼계진로여해활~ / 자기의 인연, 자기의 업(業) / ‘이뭣고?’ 참선만이 모든 일의 근본적인 해결책 / (게송)약인투득상두관~ / 감사하는 마음.

 

 삼계진로와 흥망성쇠가 어디서부터서  것이냐? 누구 때문에  것이냐?  자기의 마음, 심념(心念)에서  나온 것이다 그거거든.

결국은 자기가 어떻게 짓느냐? 짓는 데에는  생각이 동(動)하고 심념(心念)이 동하기 때문에  심념이 나 가지고  심념이 행동화됨으로 해서 업을 지어가지고  업으로 인해서 태어나고 업으로 인해서 모든 일을 당하게  것이다.

 

일념불생도해탈(一念不生都解脫)이여.  생각 나지 아니하면은 그것이 바로 해탈(解脫)이다. 자기의 마음을 단속하지 않고 자꾸 밖에만 원망하고 불평하고 탓하고 해봤자 무슨 좋은 일이 있을 것이냐.

 

그래서  세상이 이렇게 어지럽고 시끄러울수록에 이뭣고?’ 참나를 찾는  공부밖에는 해결책이 없는 것이여. 전부가 원인을 자기에게서 찾고, 자기가 정신을 차리고 자기가 자기 스스로에서 찾아야만 모든 일이 풀릴 것입니다. 어떠한 어려운 일이라도 원인을 파악을 하면 반드시 해결책은 있는 것이지 해결책이 전혀 없는 어려운 일이란 것은  세상에는 없습니다. 그러니 가장 근본적이고 가장 급한 일부터 해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이뭣고?’입니다.

참나를 깨달아 버리면 산하대지가 넓고 넓어. 어디를 간들  그것이  집이요, 부처님 나라요, 극락세계요, 적광토다 이거거든.

 

**송담스님(No.465)—92 2 첫째일요법회(92.02.02 (용465)

 

약 18분.

 

삼계진로여해활(三界塵勞如海闊)하고  무고무금요괄괄(無古無今閙聒聒)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진향자가심념생(盡向自家心念生)이니  일념불생도해탈(一念不生都解脫)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삼계진로(三界塵勞)가 여해활(如海闊)이다. 욕계(欲界) · 색계(色界) · 무색계(無色界),  삼계(三界). 삼계의 진로(塵勞), 진로 망상(妄想), 생사 변화, 희로애락, 흥망성쇠 이런 것이 전부 다 삼계진로(三界塵勞)인데,  삼계진로의 모양이 마치  바다처럼 넓고 넓어. 끝없다. 끝이 없고 한이 없다 그말이여.

 

무고무금요괄괄(無古無今閙聒聒)이여. 옛도 없고 이제도 없어. 옛이나 이제나 마냥 복잡하고 시끄럽고 그렇다 그말이여. 세월이 갈수록 점점 더해 간다 그말이여.

 

그러면  삼계진로와 흥망성쇠가 어디서부터서  것이냐? 누구 때문에  것이냐?

 사람들은 옛날에는 임금이 임금 노릇을 잘못해서 그렇다. 지금은 대통령이 잘못해서 그렇다. 무슨 정부가 정치를 잘못해서 그렇다. 전부 다른 사람한테  원인을 돌리고 세상을 한탄합니다.

 

그러나 진향자가심념생(盡向自家心念生)이여.  자기의 마음, 심념(心念)에서  나온 것이다 그거거든.

 

‘왜 나는  잘못할 게 없는데   때문에 세상이 시끄럽겠느냐?’

물론 대통령이나 장관이나 무슨 야당이나 당수 그런 사람들은 자기가 잘못해서 그랬다고 그렇게 생각을 해야 되겠지만, 우리 일반 서민들은 자기야  국가 정치를 하는 것도 아니고 사업하는 것도 아니고 자기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고 월급 타 먹고 살고, 농사꾼은 농사지어 먹고 사는데 자기가  잘못해서 나라가 시끄러워?

 

도대체 납득(納得) 안 가고 곧이가  들리는지 모르지만, 그러한 세상을 만날 수밖에 없도록 자기가 업(業)을 그렇게 지어서 만난 것이여.

자기가 업을  지어 가지고  천상(天上)에  복(福)을 지었다면은 천상에 가서 나지, 뭐하러  사바세계(娑婆世界) 복잡한 데에 태어났냐 그말이여.

 

어떤 사람은  우리 어머니 아버지는  나를 낳냐?’고, ‘나를 낳아가지고 이렇게  먹이고 입히지도 못하고 대학도 보내지도 못하고 유학도 보낼 자신도 없으면서  나를 낳았느냐?’고 부모한테 따지는 학생이 요새 있다고 그런 말을 들었는데.

 

어찌 보면은 부모가 대답할 말이 없을  같기도 하고. 그러나 그건  학생이 전혀 모르는 말이거든.

무엇 때문에 자기가 그러한 부모 속에 자기가 태어났냐 그말이여.

 

자기가 영혼이그걸 보통 숙주(宿主)라고 그러는데, 여인숙(旅人宿)이라서 (宿)’자와 ‘주인 ()’ 숙주라고 그러는데,

숙주는 이제 어떠한 태중(胎中)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영혼이 인자 요렇게 숙주를 찾는데, 자기가 태어나기에 적당한 데에 인연(因緣) 있는 데에 결국은 태어나기 마련인데.

 

자기가 그런 인연을 지었고 거기에 태어날 수밖에 없는 인연을 스스로 지었기 때문에 거기에 태어난 것이거든.

부모가 가난하고 무식하고 해도 자기가 고학(苦學)을 하고 열심히 해가지고 대통령이  사람도 있고,  사회적으로  훌륭한 사람이  사람도 얼마든지 있어요. 부잣집에 좋은 집에 태어났어도  볼일 없이 또  사람도 얼마든지 있는 것이다 그말이여.

 

그래서 결국은 자기가 어떻게 짓느냐? 짓는 데에는  생각이 동(動)하고 심념(心念)이 동하기 때문에  심념이 나 가지고  심념이 행동화됨으로 해서 업을 지어가지고  업으로 인해서 태어나고 업으로 인해서 모든 일을 당하게  것이다 그말이여.

 

그러면 일념불생도해탈(一念不生都解脫)이여.  생각 나지 아니하면은 그것이 바로 해탈(解脫)이다 그말이여.

 

우리가 비록  사바세계 복잡하고도 다난(多難)한 세상에 시대에 이렇게 태어나서 살고 있지만 터억 마음을 가다듬고 화두(話頭)를 들고 터억 정진(精進)을  나가면 세상 시끄럽거나 말거나, 망하거나 흥하거나 무슨 상관이 있으며,

그렇게  나가므로 해서 우선 자기가  뜨거운 불구덩이 속에서 타 죽지 않는 길이 거기서 열리고,  사람  사람이 모다 일념불생(一念不生) 참선(參禪)을 해 나가므로 해서  사람을 중심으로 해서 주변이 차츰차츰  적광토(寂光土)로 변해가는 것이다 그말이여.

 

자기의 마음을 단속하지 않고 자꾸 밖에만 원망하고 불평하고 탓하고 해봤자 무슨 좋은 일이 있을 것이냐 그말이여.

 회사가 노사 분규(勞使粉糾)가 일어났을  노동자는 기업주를 원망하고 탓하고, 기업주는 노동자를 탓하고 해가지고 계속 싸워봤자 누가 이익을  것이냐?

 

노동자는  공장이 자기 공장이다’ 생각하고 자기 회사다 생각하고 자기에게 주워진 일을 착실히 열심히 하고, 기업주는  노동자들이 바로 자기 가족이다 생각하고  자기 친자식처럼 자기 가족처럼 생각하고, 원하기 바라기 전에 데모하기 전에 잘해 주고 이렇게  때에 만이  회사가 잘되어 가는 것입니다.

 길밖에는 회사도 잘될 길이 없는 것이고, 사회도 잘될 길이 없는 것이고, 나라도 잘되어  길이 없고, 세계도 잘되어  길이 없어.

 

그걸 거꾸로 생각하고 모든 책임과 원인은 다른 사람 밖에서다가 돌리고, 자기는  옳고 자기 잘못은 없다고 생각하면 자기의 향상도 없고 가정에 화목도 없고, 회사나 기업체도 잘되어 갈 수가 없고 결국은 너도나도  망할 수밖에는 없는 것이여.

 

 

그래서  세상이 이렇게 어지럽고 시끄러울수록에 이뭣고?’ 참나를 찾는  공부밖에는 해결책이 없는 것이여.

‘그  이뭣고? 하고 밤낮 앉아서 눈만 감고 앉아 있으면 무엇이 될까?’ 신심(信心)이 없는 사람,  활구참선(活句參禪)이 뭔지 모르는 사람은  그렇게도 생각할 것입니다.

 

항상 이뭣고?’ 챙기고, 가정에서나 직장에서나 어디를 가나 차를 타나 일을 하거나 빨래를 하거나 그렇게  사람에게는 하루하루 향상이 있을 것이며 가정이 화평할 것이며 회사가 잘되어  것이며 국가가 잘되어  것입니다.

현재 여러분도  아시겠지마는 우리나라 앞으로 경제 문제, 통일을 앞두고 경제 문제가 가장 중요한데  경제 문제도 이렇게 노사간(勞使間)에 이렇게 해가지 않고서는 속수무책(束手無策)이고 정치도 역시 마찬가지고 학원 교육 문제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전부가 원인을 자기에게서 찾고, 자기가 정신을 차리고 자기가 자기 스스로에서 찾아야만 모든 일이 풀릴 것입니다.

 

여기에 계신 사부대중(四部大衆)도 정치하고는 관계가 없을 분도 많이 계실 것이고 지금 말한 여러 가지 문제에 직접 관여는 하신 분도 계실 것이고  하신 분도 계실 것이나, 어떠한 분이라도 원인을 분명히 알면 해결책이 있는 것입니다.

어떠한 어려운 일이라도 원인을 파악을 하면 반드시 해결책은 있는 것이지 해결책이 전혀 없는 어려운 일이란 것은  세상에는 없습니다.

 

그러니 가장 근본적이고 가장 급한 일부터 해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이뭣고?’입니다.

 

 

약인투득상두관(若人透得上頭關)하면  시각산하대지관(始覺山河大地寬)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불락인간분별계(不落人間分別界)인덴  하구녹수여청산(何拘綠水與靑山)이리오

나무~아미타불~

 

약인(若人)이 투득상두관(透得上頭關)하면, 만약 사람이 상두관(上頭關)을 뚫어버리면 시각산하대지관(始覺山河大地寬)이다. 비로소 산하대지가 넓은 것을 깨달으리라.

 

상두관(上頭關)은 확철대오(廓徹大悟)하는 것을 말하는 거여. 참선을 해서 참나를 깨닫고, 공안(公案)을 타파(打破)해 가지고 자아를 깨닫는 것이 상두관을 투득(透得)한 것인데.

참나, 참나를 깨달아 버리면 산하대지가 넓고 넓어. 어디를 간들  그것이  집이요, 부처님 나라요, 극락세계요, 적광토다 이거거든.

 

불락인간분별계(不落人間分別界)하면, 인간의 시비, 인간의 온갖 시비, 흥망성쇠, 선악, 빈부귀천 이런 것이 전부 인간의 분별계(分別界)인데  분별계에 떨어지지 아니 .

가난하면 가난한 대로, 부자면 부자, 흥하면 흥한 대로, 망하면 망한 대로 일체처 일체시에  시비에 빠지지 아니하면 하구녹수여청산(何拘綠水與靑山)이냐. 푸른 물이나 청산이나 무엇에 걸릴 것이 있느냐 그거거든.

 

춘하추동 계절에도 걸릴 것이 없고 녹수청산에도 걸릴 것이 없고 흥망성쇠와 빈부귀천에도 걸릴 것이 없어. 모든 것은 인연대로 닥치는 대로.

떠억 깨달으면 깨달은 경계에서, 이뭣고?’  사람은 이뭣고?’ 하는  경계에서 인연 따라서 최선을 다해서 살아간다면 아무리 세상이 복잡하고 혼잡하고 그렇다 하더라도  속에  희망이 있어.

 

새해에는 이뭣고?’로써, 그리고  공부를 하지 아니한 사람은 원망이 많고 불평이 많은데,  공부를 하고 이렇게 이런 신심으로 살아가면 원망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멀고 가까운 자기와 인연이 있는 모든 사람이,

심지어는 자기를 그렇게 미워하고, 자기를 그렇게 시비를 걸고 자기를 괴롭히던 사람들까지라도 자기에게  해준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자기에게 여러 가지로 고통을  사람까지라도  고마운 사람으로 감사하는 마음으로 상대할 수가 있게  것입니다.

 

그래서 새해에는 어떠한 일이나, 어떠한 경계나, 어떠한 사람을 만나더라도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상대할  있도록 그렇게 마음을 쓰면서 살아가기를 우리  같이 다짐합시다. 원망은 원망을 낳고 감사에는 화목이 오기 때문인 것입니다.(4823~6540)() (용465)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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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삼계진로여해활~’ ; 중봉명본(中峰明本) 스님의 「天目中峰和尚廣錄」 27() ‘경책가(警策歌)’ 참고.

*삼계(三界) : [] trayo-dhatavah 중생들이 살고 있는 세계를  가지로 나누는데,

①욕계(欲界 Kamadhatu) : 음욕(婬欲) • 식욕(食欲) • 재욕(財欲) 같은 탐욕이 많아서, 정신이 흐리고 마음이 험악하며, 순전히 물질에 속박되어 가장 둔탁한 중생들이 사는 낮은 세계.

②색계(色界 rupadhatu) : 욕계 위로 욕심은 매우 적으나 성내는 버릇이 남아 있어, 물질의 지배를 아주 벗어나지 못한 중생들이 사는 비교적 맑은 세계. ()  물질이란 뜻이다.

③무색계(無色界 arupadhatu) :  위층으로 탐욕과 성냄은 떨어져서 물질의 영향은 받지 않으나, ‘()’ 버리지 못하여 정신상으로 걸림이 남아 있는 깨끗한 중생들이 사는 높은 세계.

이것을 흔히 땅으로부터 하늘까지 올라가면서 유형(有形) 계층으로만 말하지마는, 실상은 입체적 공간이 아니라, 정신적인 세계의 구분(區分)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상(地上) 세계의 어떤 곳에도 () • () • ()  삼독심(三毒心) 경중(輕重) 따라 삼계가 벌어져 있는 것이다.

*진로(塵勞 티끌·속세 /근심할 ) ; ①마음이나 몸을 괴롭히는 노여움이나 욕망 따위의 망념(妄念), 마음의 티끌. 번뇌(煩惱) 말한다. 중생의 마음을 더럽히고 생사에 유전(流轉 끊임없이 이어짐)시켜 피로하게하는 . ②생사(生死). 생사윤회(生死輪廻).

*망상(妄想 망녕될 /생각 ) ; ①이치에 맞지 아니한 망녕된() 생각() , 또는  생각. ②잘못된 생각.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하다고 잘못 생각하는 .

*납득(納得 받아들임 /얻을·만족할 ) ; 다른 사람의 말이나 형편 따위를  이해하고 긍정함.

*곧이 ; 바로 그대로.

*() : [] karma [] Kamma 음을 따라 갈마(羯磨)라고 하며, '짓다()' 뜻이다。중생들이 몸으로나 말로나 뜻으로 짓는 온갖 움직임(動作) 업이라 한다。개인은  업으로 말미암아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모든 운명과 육도(六道) 윤회(輪廻) 받게 되고, 여러 중생이 같이 짓는 공업(共業)으로 인하여 사회와 국가와 세계가 건설되고 진행되며 쇠퇴하거나 파멸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처음에는 악업(惡業) 짓지 말고 선업만 지으라고 가르치다가, 필경에는 악과 선에서도  뛰어나고, 죄와 복에 함께 얽매이지 말아서 온갖 국집과 애착을  버리도록 하여, 부처님의 말씀에까지라도 걸리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

*천상(天上) : 욕계의 육욕천(六欲天) 색계 · 무색계의 여러 () 통틀어 일컬음. ()들이 사는 . () 세계.

*사바세계(娑婆世界) ;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세계. 현실의 세계. 인토(忍土) · 감인토(堪忍土) · 인계(忍界)라고 한역.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중생들을 교화하는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 모두 사바세계이다.

*숙주(宿主 묵을 숙/주인 주) ; ①기생 생물에게 영양을 공급하는 생물. ②전적으로 기대어 이익을 취하는 대상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③조직편(組織片)이나 기관(器官)의 이식(移植)에서 그 이식체를 받는 쪽의 개체.

*인연(因緣) ; ①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분 또는 관계.  ②어떤 상황이나 , 사물과 맺어지는 관계(연줄). ③인() () 아울러 이르는 .  결과를 만드는 직접적인 () 그를 돕는 외적이고 간접적인 ().

*고학(苦學) ; 학비(學費)를 자기의 힘으로 벌어 고생하며 배움.

*해탈(解脫) ; 산스크리트어 Vimoksa  팔리어 Vimutti

①모든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나 정신이 자유 자재한 . 괴롭고 아픈 세계에서 해방된 평안한 상태. 속세의 모든 굴레에서 벗어난 상태. ②모든 번뇌를 남김없이 소멸한 열반의 상태. ③깨달음. ④마음을 고요히 가라앉히고 한곳에 집중하여 산란하지 않는 선정(禪定) 상태. 평온한 경지.

*다난(多難)하다 ; 힘들고 어려운 일이 많다.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정진(精進) : [] Virya  음을 따라 비리야(毘梨耶  毘離耶) • 미리야(尾利也)라고도 쓴다。보살이 수행하는  바라밀(六波羅蜜) 하나。순일하고 물들지 않는(純一無染) 마음으로 부지런히 닦아 줄기차게 나아가는 것이다。그러나 닦는 생각() 닦는 () 있어서는  된다。함이 없이 하는 것이 정진이다.

*일념불생(一念不生) ; 경계를 당하여 마음이 일지 않은 . 불생(不生).

[참고]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84, p103 참고.

斷煩惱가  名二乘이요  煩惱不生이  名大涅槃이니라.  (註解) 斷者는 能所也요  不生者는  無能所也니라.

번뇌를 끊는 것은 이승(二乘)이요, 번뇌가 나지 않는 것이 대열반(大涅槃)이니라.

(주해) 끊는 것은 주체와 객체가 벌어짐이요, ‘나지 않는(不生)  주체도 객체도 없느니라.

 

見境心不起가  名不生이요  不生이  名無念이요  無念이  名解脫이니라.  (註解) 戒也定也慧也가  擧一具三이요  不是單相이니라.

경계를 당하여 마음이 일지 않은 것을 나지 않는다(不生)’ 이름하고, ‘나지 않는 (不生)’ 무념(無念)이라 하며, 무념을 해탈(解脫)이라 하느니라.

(주해) 계율이나 선정이나 지혜가, 하나를 들면 셋이 갖추어 있는 것이요, 홑으로  것이 아니니라.

 

[참고] 송담스님(No.410)—90 2 첫째일요법회, 신수기도회향, 입춘법회(90.02.04)

 

일종위배본심왕(一從違背本心王)하고  기입삼도역사생(幾入三途歷四生)

금일척제번뇌염(今日滌除煩惱染)하니  수연의구자환향(隨緣依舊自還鄕)이로구나

 

일종위배본심왕(一從違背本心王)하고, 한번 본심왕(本心王) 등지고  이후로, 기입삼도역사생(幾入三途歷四生).  번이나 삼도와 사생을 지냈던가. 삼도에 들어가서 사생을 지냈던가. 삼도(三途) 지옥·아귀·축생 삼도요. 사생(四生) ···(胎卵濕化) 사생이요.

금일척제번뇌염(今日滌除煩惱染)하니, 오늘에사 모든 번뇌의 생각을 씻어 버리니, 수연의구자환향(隨緣依舊自還鄕)이로구나. 인연 따라서 옛을 의지해서 스스로 본고향(本故鄕) 돌아가게 되었구나.

 

우리 모든 중생들이 원래는  비로자나(毘盧遮那) 법신불(法身佛)  몸뚱이,  마음이여. 그런데  본심왕을 위배(違背)하고 거기서 배반을 하고 물러나왔다.

' 생각' ()하지 않았다면 영원토록 법왕(法王) 같이  수가 있을 텐데 한 생각 동(動)해 가지고,  생각 삐끗 어긋져 가지고 거기서 떨어져 나와 가지고 육도윤회(六途輪廻)지옥, 아귀, 삼악도(三惡途)를  번이나 들어갔으며 태란습화 사생을  번이나 겪었든가.

 

경오년 초삼일부터 오늘까지 칠일 기도를 마쳤습니다. 그리고 오늘  입춘일을 맞이했습니다. 그리고 2 첫째 일요법회를 맞으셨습니다.   가지의 법회가 오늘 겹쳤습니다.

 그동안   동안 정성을 다해서 기도(祈禱) 봉행하는 가운데 우리 사부대중의 마음은 참회(懺悔) 하고, 기도를 하고, 발원(發願) 하고 그래 가지고 모든 업장(業障)  소멸이 되고, 번뇌의 생각 훨훨 타오르던 탐진치 삼독(三毒) 번뇌염(煩惱染) 깨끗이 씻어졌습니다.

 

번뇌(煩惱) 나지 아니하면 그것이 무념(無念)이고, 무념이면 그것이 불생(不生)이여.

불생이면, 일념불생(一念不生) ' 생각 남이 없는 도리'  버리면 그것이 바로 본향(本鄕)으로 돌아가는 소식이더라.(처음~627)

*참선(參禪) ; ①선() 수행을 하는 .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적광토(寂光土) ; 상적광토(常寂光土). 항상[] 변하지 않는[] 광명[] 세계[]. 부처님의 거처나 빛나는 마음의 세계를 이르는 말이다.

*이뭣고(是甚 시심마) : ‘이뭣고? 화두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자리)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 일곱 ()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 ,   ()이다. ‘이뭣고?(이뭐꼬)'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뜻은  속에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왔다.

*신심(信心) : 내가 바로 부처다 따라서 부처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요, 일체처 일체시에 언제나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공,  소소영령(昭昭靈靈)한 바로 이놈에 즉해서 화두를 거각(擧却)함으로써 거기에서 자성불(自性佛) 철견을 해야 한다는 믿음.

올바르게 열심히 참선을 하면 나도 깨달을  있다 믿음. 진리에 대한 확신.

내가 바로 부처다라는 믿음. 그러기 때문에 끊어야  생사도 없고, 버려야  번뇌도 없다 하는 믿음.

④일체처 일체시에 자신의 본참공안(本參公案)으로 자가철주(自家鐵柱) 세워 이것 밖에는 내가  것이 없다! 오직 이것만이 내가 바로 살아가는 길이고 나의 생사 문제를 해결하는 길이고 이것만이 영원을 살아가는 길이다!’라고 하는 철저하고 확실한 믿음.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막힌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속수무책(束手無策 묶을·잡아맬 속/손 수/없을 무/꾀 책) ; 손이 묶인 것처럼 어찌할 도리나 방책(方策 일을 하는 방법과 꾀)이 없어 꼼짝 못 함.

*사부대중(四部大衆) ; 불문(佛門) 있는  가지 제자.  비구(比丘), 비구니(比丘尼), 우바새(優婆塞), 우바이(優婆夷)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참고] 우바새 : upasaka 음역. 속세에 있으면서 불교를 믿는 남자.(같은 =靑信士,靑信男,信男,信士,居士,近事男,近善男,善宿男) 원래의 말뜻은 모시는 사람. 받들어 모시는 사람. 출가수행자를 모시고, 신세를지므로 이렇게 말한다. 우바이 : upasika 음역. 속세에 있으면서 불교를 믿는 여자. (같은 =靑信女,近事女,近善女,近宿女)

*(게송) 약인투득상두관~’ ; ①『석문의범(釋門儀範) 다비문(茶毘文)—쇄골편(碎骨篇) 참고. ②卍新纂續藏經 65 《高峰龍泉院因師集賢語錄》 13 涅槃法語門散灰 참고.

*상두관(上頭關) ; 조사관(祖師關). 조사의 경지에 이르는 관문(關門),  화두(공안) 말함.

관문(關門) 옛날에 국방상으로나 경제상으로 중요한 곳에 군사를 두어 지키게 하고, 내왕하는 사람과 수출입하는 물건을 검사하는 곳이다.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 깨달음.

*공안(公案 : 화두 話頭) 타파(打破) ;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스승)으로부터 화두공안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화두(話頭)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 하지 아니하고,

오직  막힌 다못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참구(參究) 나가 화두을 타파하여 확철대오(廓徹大悟)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나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되는 .

 

[참고] 화두라 하는 것은 무엇이냐? 공안(公案)이라고도 말하는데, 화두는 깨달음에 이르는 관문이요, 관문을 여는 열쇠인 것입니다.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화두(話頭) 대한 의심(疑心) 관조(觀照) 나가는 ,   없는 그리고  맥힌 의심으로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이상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이상 의심이 커질  없고,  이상 깊을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가슴속이 가득 차고,  세계가 가득 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때에도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때도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때에는 꿈속에서도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 확철대오(廓徹大悟) 하게 되는 것입니다.

큰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항아리를 큰돌로 내려치면은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5212~) [‘참선법 A’ 에서]

 

이뭣고? 이것이 무엇인고?

···뭣고·····?” 이렇게 의심을  나가되, 이런 것인가 저런 것인가 하고 이론적으로 더듬어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다못 ···뭣고······?” 이렇게만 공부를 지어나가야 됩니다. 여기에 자기의 지식을 동원해서도 안되고, 경전에 있는 말씀을 끌어 들여서 아하! 이런 것이로구나!” 이렇게 생각해 들어가서도 안됩니다.

 

공안은  우주세계에 가득  있는 것이지마는 문헌에 오른, 과거에 고인(古人)들이 사용한 화두가 천칠백인데,  이뭣고?’ 화두 하나만을 열심히  나가면   문제 해결함으로 해서 천칠백 공안이 일시(一時) 타파가 되는 것입니다.

화두가 많다고 해서  화두 조금  보고, 안되면   화두   보고, 이래서는  쓰는 것입니다화두 자체에 가서 좋고 나쁜 것이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화두 철저히  나가면 일체 공안을 일시에 타파하는 것입니다.(7634~) [ ‘참선법 A’ 에서]

*분별계(分別界) ; 분별 경계(分別境界).

*분별(分別) ; ①대상을 차별하여 거기에 이름이나 의미를 부여함. 대상을 차별하여 허망한 인식을 일으키는 인식 주관의 작용. ②구별함. ③그릇된 생각.

*경계(境界) ; ①인과(因果) 이치(理致) 따라서, 자신이 부딪히게 되는 생활상의 모든 일들. 생로병사희로애락빈부귀천시비이해삼독오욕부모형제춘하추동동서남북 등이 모두 경계에 속한다. ②나와 관계되는 일체의 대상. 나를 ()라고   일체의 (). ③시비(是非)•선악(善惡) 분간되는 한계.  경계(境界)에는 역경(逆境) 순경(順境), 내경(內境) 외경(外境) 있다.

[참고] 송담스님(No.336)—87 8 첫째일요법회(87.08.02)에서.

〇인간의 분별계(分別界)  무엇이냐? 탐진치 삼독이 인간의 분별계요. 오욕락이 인간의 분별계요. 희로애락이 인간의 분별계요. 생로병사가 인간의 분별계요. 빈부귀천이 인간의 분별계여.

어디에 떨어지거나 인간의 분별계에 떨어졌다 하면 그것이 바로 생사윤회인 것입니다.

 

용465

 

Posted by 닥공닥정
인과 · 인연 · 비유2015. 12. 27. 17:06

•§•(277) 인정(人情) 따르지 말라 / 전강 조실스님 출가 인연 / 빈한(貧寒) 발도심(發道心)이다 / 자성미타(自性彌陀) / 달마사행론中 제법부동적정문.

 

도인 말씀에호귀득도난(豪貴得道難)이니라. 호걸스럽고 부자된 나면은 도를 배우지 못하니라, 받니라고. 빈한(貧寒) 발도심(發道心)이다. 가난하고 차운 데서 도심(道心) 발한다 그렇다 그말이여.

 

공부인은 공부하는 사람은 하늘을 보지 못한다. 언제 하늘을 겨를이 없다 이거여. 하늘 쳐다볼 겨를이 없어. 불견지(不見地). 땅을 들여다볼 겨를도 없다. 이뭣고?’ 하나 들여다보고, 머리를 들어도이뭣고?’ 머리를 숙여도이뭣고?’. 가도이뭣고?’ 와도이뭣고?’. 그저이뭣고?’ . ‘이뭣고?’ 그저 그저 나는 대로 .

 

**전강선사(No.277)—달마사행론 제법부동적정문, 조실스님 출가인연(임자 72.11.04.새벽) (전277)

 

(1) 약 18분.

 

(2) 약 18분.

 

 

(1)------------------

 

공부하는 사람은무슨 공부여? 참선 공부하는 사람은 요중정경정(要中正勁挺)해라. 중정경정(中正勁挺) 그놈을 요긴하게 지녀라. 말하자면, 아주 요긴하게 가져라.

중정(中正)이란 거는가운데 ()’  ‘굳셀 ()’자인디, 가운데 중정(中正), 중정 마음이 ()해야 되거든.

 

중정이 약하면 못혀. 퇴타(退墮) 번지고(버리고), 할라다가도 그만 금방 없어져 번지고, 마음 났다가도 그만 하기 싫고, 암만 할라고 해도 못혀. 중정(中正) ! 실해 가지고는 그걸...

사람 중심이 ()하다. 사람 중심이 시원찮은 사람이다중정이 약하면 .

 

중정(中正) 아주 굳어야 된다. 철석같이 굳어. 생사를 ()할라고 하는 도학자가 중정이 약해서는 못혀. 중정 하나를 가져라.

 

불근인정(不近人情)이니라. 인정을 가까이 것이니라. , 인정 가까이 아무짝에도 못쓰는 것이여.

부모 형제가 그렇게 인연이 가깝지마는부모 형제가 어쨌든지 자식을 낳아서 길러서 장가들여서 좋은 손자 보고 어쨌든지 잘사는 , 그것 볼라고 자식을 낳을라고 애쓰는 것이여.

자식 낳아서 길러서 며느리 얻어서 살림 ... 부자로 모두 인계해 주면은 그게 부모 노릇 잘한 것이고 인계를 받아서 부모 향화(香火) 받드는 것이 자식이란 말이여. 그걸 제일 치는디.

 

우리 도문(道門) 중에서는 그것 같이 원수가 없다. 대원수다. 고것 땀세(때문에) 도를 닦는구나.

서로 어머니, 아이고! 우리 어머니, 우리 , 우리 자식, 우리 마누래, 손자, , , 망할 놈의 때문에 거기에 잡혀 가지고는 그놈의 종노릇 허다가 아무것도 못하고 생사(生死) () 받는구나.

 

그러기 때문에 고향 여의고, 부모 여의고, 친척 여의고, 그러고 나오는 것이여. 그래서 출가(出家) 그려. 집에 버린다 그말이여. 이렇게 나와야 되아.

 

 

그걸 나올 인연이 없으면 나도 일곱 먹어서 어머니 돌아가신 , 계모가 들어와서 밑에 살면서 고생을 무척 했는데, 그런 고생이 아니었었으면 숭악한 놈의 산중에서 퇴깽이(토끼)하고나 사는 놈의 데서 내가 살았는데, 어떻게 나오냐 그말이여.

퇴깽이란 놈이 바위 구녁에서 나오면 그만 어떤 놈한테 잡혀 멕힐까 싶어서 두려운 마음밖에 없는 것인데, 산골짝에서 살다가 나온 것이 기적이여.

 

(어머니는) 일곱 먹어 돌아가시고, 우리 아버지가 열여섯 먹어 돌아가시고,

! 혼자 동생 하나 데리고 오촌(五寸)한테 붙어 있는데, 우리 오촌댁이가 다섯 번째 그리 시집 왔데야. 아이를 데리고 왔는데, 딸은 이름이 푸잽이고 남자 아이는 이름이 뭉치여. 푸잽이, 뭉치 그려.

헌데, 푸잽이, 뭉치 놈을 항상 그저아이고, 자식아, 자식아!’ 이러고 주고, 우리는 나하고 동생하고는 붙여서 있은게, 오촌댁한테 붙여 있은게 잘해도 주어.

 

주니깐 ! 이놈의 평생 도둑질 밖에 못허네. 그놈의 도둑질을 하는데 도둑질이야 하겠는가마는, 집안에 같은 이런 있으면촌간(村間)이라, 그놈 몰래 내다 구워 먹지. 그런 놈의 짓거리나 하고 나고,

 

우리 둘은 동생하고 나하고는 동생은 다섯 먹고, 나는 여나무 넘었는데, , 이놈의 방이 헛방인데 말이여. 그놈의 헛방에 쥐가 사는 데여.

쥐가 그냥 사는 데인데, 거가 자네. 참말로 그것을, 얘기라고 하고 앉았구만은 그렇다 그말이여.

 

출가한 인연을 얘기하는 것이여. 어느 때도 얘기 했지마는 이렇게 자세하게는 했지.

 

이놈의 데가 쥐란 놈이 벼룩을 얼매나 싸놔... 벼룩하고 쥐하고 살아!

거기 조금 잘라고 하면 올라와서 온몸이 나도 근지러워 죽겠는데, 다섯 먹은 동생 그것이원명이, 동생이 그거여.

 

아이고 죽겠다. “아이고 죽겠다. “! 나도 그렇다. 나도 그래

서로 이놈 피워봤자 소용없고, 봤자 소용없고, 앉었자 소용없고, 그놈의 데서 (밤을) 새우네 그려.

이거 , 요만큼이라도 내가 보태서도 허고, 거다가 내가 소설적으로도 하고, 틀림없어!

 

그런 놈의 데서 가지고서는, 오촌댁 밑에서 가지고는 가서 종일 가서 일을 뭐라도 하고, 해야지 허면 죽네. 그러 하면 밥도 얻어먹고 쫓겨나네.

그런 놈의 쫓겨난 놈의 데서, ‘인자 오늘은 죽었다 못해 가지고 가면. 솔찬이 가지고 가야지.

 

그러고 들어가서, 오촌댁이란 이는 키가 6척이나 된다고 하는데 7척이나 되아.

길이가 그리 인디, 아침에 입이 벌어지면은 때까지 입이 오므라져. 그런 말을 해싸. 우리 () 쌌고, 못쓰겠다고 쌌고.

 

그런 놈의 데서 번은 하도 못살게 굴고, 그래서 동생을 데리고 나갈라고 생각을 내놓고서는, 어디로 어떻게 갈라고 작정허고서는 저리가면 인자 따라가면 벼칠채정으로 올라가거라. 벼칠채정으로 올라가면 내가 뒤따라갈게 걱정 말고 가거라. 내가 가마

 

그러고는에끼, 빌어먹을 !” 욕을 했네 인자 그때는에끼, 빌어먹을 , 망할 년아! 이년아, 오장이 썩을 년아! 이년아. 빌어먹을 년아! 이년아하고 욕을 그냥 어떻게 퍼댔네.

더럽게 썩은 놈의 인간이 들어와서 다섯 번이나 여섯 번이나 시집온 것이 들어와서 지랄 문둥이 같은 것이 들어와서...” 어떻게 퍼대놨던지. , 그냥 듣기 고약한가 보등만.

 

훌훌 뛰더니, 우리 오촌이라고 이가 쫓아와. 잡을라고 쫓아와.

그까짓 년을 계집년이라고 데리고 살고 쫓아오냐? 쫓아올려면 쫓아오라고, 쫓아와 쫓아와서 죽일테냐?” 그러고는 욕을 냅대빌어먹을 , 망할 , 저년 뵈기 싫은 , 저년갈란게 부치고 , 그러고 떠났네.

 

그러고 떠나 가지고는 종일 점심도 있나 있나? 점심도 먹어 가지고 하루재를 넘어가서 산에 들어가서 보리수냉기(나무) 붙은 빨강 있나? 고런 것을 따서 둘이 연명을 했네. 사람이 있어야 여그 듣고는 재미가 나는디 없으면... 알아. 환히 알아.

 

그걸 먹고서는 그길로는 이모 집이라고인자 우리 서모 이모 집이여, 우리 친이모 집은 아니고. 가는 즈그 진짜 (이모).

거기를 둘이 찾아가니 아따, 계모 이모란 이가저런 것들이 어디를 찾아오냐 욕을 퍼붓는데 욕도 솔찬혀. 욕이 아니여. 욕이 욕이여.

 

아따, 그놈. 에이, 빌어먹을 . 이놈의 데도 있지 못하겠다. 조금도 못쓰겄다.

, 굴비를 널어 놨길래 굴비를 거그서 하나 돌랐네. 굴비 구운 있나? 그놈을 몰리 장꼬방(장독대) 둘러 가지고가지고 가자

가지고 가서 그놈의 어디 남서재 넘어가는 재말랑에 가서 모다 이렇게 나무를 줏어다가 놓고는 그놈을 구었네. “구어서 먹자

둘이 그놈을 찢어 먹어 놓으니 짜와서, 짜온 놈을 먹어 논게 배가 우르르르 끓고, 아따 그놈 빈속에 먹어 놓으니 죽겄데.

 

그렇게 떠나와 가지고서는 어쩠지? 그저 동생은 우리 계모 어디로 가버린 거따 갖다가 주어 번지고서는 그래 내가 나섰다 그말이여.

 

나서 가지고는 몸뚱이에는 올랐어, 내가 . 옴이 어시 달걀 같은 놈이 전신에 불거졌네. 그래 가지고 피가 질질나, 전신에.

이런 놈을 끌고 어디 얻어먹고 나갈라니 나갈 데도 없고, 동네 들어가서 어디 잘라니 동네방에 재이나? 시월 초하룻날 나갔는데.

 

그래 가지고 불무를, 그릇 맨든 불무를 불었어. 불무를 불면서 이놈 만들라고 하는 침서(치면서) 붐서(불면서), 엎져서 침서 붐서 몸뚱이는 달걀 같은 놈은 나와 죽겠지. 고생을 했네.

 

그러헌 촌간에 나서 그러헌 고생 인연이 없었으면 내가 출가를 못했을 것이다 그말이여. 조금만만한 틈만 있어서 내가 살길이 있었으면은 내가 출가를 못했을 것이여.

 

그러헌 인연으로써 출가를 내가 했단 말이여. ! 유기(鍮器) 장사 하다가 돌아댕기다가 스님을 하나 만났네. 스님을 만난 것이 괴상스러운 분을 만났지.

땡땡이는 그런 땡땡이가 없네. 아주 장편월이라고 유명한 땡땡이 얘기 다할 없지 그건.

 

에라, 여기 있다가는 요런 놈의 중노릇 했다가는 ! 지랄도 아니다.

쌀을 몰리(몰래) 퍼내서 50전을 맨들었네. 50전을 맨들었어, 내가. 몰리 통에서.

50전을 맨들어 가지고 50전을 그놈 가지고 나서서까먹고 나설라면은 먹고 것이고, 쌀을 그놈을 팔았네.

팔아 가지고는 단지를 가지고는 짊어지고는 단지 밥을 먹으면서 합천 해인사를 들어왔어.

 

어릴 내가 합천 해인사를 그때 열여섯 먹어서 그래 들어왔구만. 그러헌 인연이 아니었었으면은, 천하고 고약스러운 인연이 아니었었으면은 불문(佛門) 들어올 도리가 없어.

 

, 그걸 가만히 생각하면은 우리 부처님도 이랬지마는, 도인 말씀에호귀득도난(豪貴得道難)이니라. 호걸스럽고 부자된 가서 나면은 도를 배우지 못하니라, 받니라고. 빈한(貧寒) 발도심(發道心)이다. 가난하고 차운 데서 도심(道心) 발한다 그렇다 그말이여.

 

그렇게 들어와 가지고서는 중이 되아 놓으니! 인자 , 스님을 ()하니 스님께서 나를 글을 가르킬라고 인자 책을 주지, 스님도 그러고 그저 절에 들어와 부처님 덕으로 좋은 쌀밥 얻어먹지, 가만히 앉아 공부하라고 주지, 세상에 이런 복이 어디 있나?

 

그런 기맥힌 땅을 만나 놓으니까, 인자 그때 고생 고런 것은 그건 아무것도 아니여. 잊어번지고는 받는 그런 밖에 모른다 그말이여. 편안한 밖에는 모르고. 인자 그저 조금만 일이 있으면 그건 싫고.

 

일이라고 합천 해인사 백련암은 유명(有名)짜한 데지. 일이야 바로 말이지 이상 수는 없지. 제사가 년에 천여 되는데, 제사마다 나물 볶아서 올리는 제사가 있는데 그놈 우리가 씻거 볶았지.

 

하지마는 그런 그때 고생에다 대면은 그건 고생도 아무 것도 아니고 이렇지마는, 조금 인자 중이 되어 놓으면은 그만 놀라고만 . 조금만한 것도 하기 싫거든. 그래 가지고는 틀려.

그래 가지고 허기 싫어. 여내 인자 어디 가면 중대한 소임 같은 하기 싫고. 그래 가지고는 천하에 못쓸 것이 되는 것이여.

 

놀고나 싶고, 그저 괴각(乖角)질이나 하고 일도 하고, 그만 조끔만 허면 허기 싫고, 그저 가고 싶고, 그저 가면 거가 있으면 가고, 홍팔도 진주 마냥으로, 그것 큰일 나지.

신세 망하고 절에가 있으면 절에 아이들 망하고, 안되아! 그것 절대 안되는 게로구만.(1519~3234)

 

 

 

 

 

(2)------------------

 

중정(中正), 중으로 , 중정인디, 중정 그놈이 경정(勁挺) 해야 되아. 굳셀 (), 굳셀 (), 아주 마음이 굳어서 불근인정(不近人情)이니라. 요런 인정에 따르지 말어라. 인정 소용없다. 부모 인정 그거 하나 소용없는 것이다.

우리 출가인은 부모, 부모부텀 떠나야 하는 것이여. 집안 가정부텀 떠나야 하는 것이여.

 

구순정응대즉(苟循情應對則) 부모 은혜 주고, 모도 부모 무슨 인연 이리저리 모도 부모 인연 떨어지기 싫어서 항상 그만 모도 그런 갔다왔다...

공부만 못할 것이 아니라 공부만 안되는 것이 아니라 그거 자꾸 자주 결심하다가 그냥 버리는 것이여. 그만 끄집어 버려.

여기 정로 보지, 가까운 데서 중노릇한다고 자꾸 즈그 집에서 끄집어 간게 그냥 버려. 성가시니께 버려.

 

유속아사(流俗阿師)니라. 그냥 그래서 중노릇을 못하게 되니, 참으로 중노릇 사람은 중정(中正) 요구해서 마음이 철석(鐵石)같애서 조금도 인연에, 그런 무슨 반연 경계(攀緣境界) 끌리들 말아라. 요런 부탁이 하나 나왔어.

 

 

공부인은, 공부하는 사람은 하늘을 보지 못한다. 언제 하늘을 겨를이 없다 이거여. 하늘 쳐다볼 겨를이 없어. 불견지(不見地). 땅을 들여다볼 겨를도 없다.

이뭣고?’ 하나 들여다보고 머리를 들어도이뭣고?’ 머리를 숙여도이뭣고?’. 가도이뭣고?’ 와도이뭣고?’. 그저이뭣고?’ . ‘이뭣고?’ 그저 그저 나는 대로 .

 

세상에이뭣고?’ 내가 나를 찾는이뭣고?’ 찾는 놈을 찾는이뭣고?’인디, 그건멀다하고 그건 배를 만들어서 타고 가는 것이고, ‘아미타불 넘이 맨들어 타고 간다는구만.

그러니극락세계(極樂世界) 발원(發願)허고 아미타불을 해야지, 참선하면 못쓴다. 참선해서는 견성 못한다

 

! 그놈의 멍청이들 보소. 아미타불 경을 부득이 어쩔 없어 부처님께서 설해 놨는데 아미타불 가운데 일이 내지 7일을 일심불란(一心不亂)해야 아미타 극락세계를 가느니라.

일심불란지경(一心不亂地境) 어느 지경인고? 마음이 어지럽지 않은 경계가 어느 지경이냔 말이여?

 

거다가 아미타불(阿彌陀佛) 재하방(在何方)? 어디 있는고? 마음을, 심두를 잡아서 연구를 보아라(着得心頭切莫忘).

생각이 생각이 없는 곳에 이르러야사(念到念窮無念處) 육문(六門)에서 자금광(紫金光) 놓느니라(六門常放紫金光). ! 바로 이렇게 일러 줬단 말이여.

 

자성미타(自性彌陀)니라. 자성(自性) 미타(彌陀)니라. ! 이렇게 씌였다 말이여. ! 이렇게 놨는데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그러냐?

 

십만 오백십육 국토를 지내가서 세계가 있는데 극락세계를 간다. , 이렇게 믿고 있네. 되는 겐가?

지환즉리(知幻卽離). 환인 알면 여읜다. 부작방편(不作方便)이니라. 방편을 짓지 말어라. 바로 놨지. ‘이뭣고?’허는 학자들은 그러헌 끌리지 말어.

 

요새 서울에다가 지끔 미타회상을 만들어 놓고 굉장하다구만.

아미타불 불러야 가지, 말세에는 참선해야 소용 하나 없다 율사가 와서 인자 그래 놓고는 부처님 네팔까장 보니까 거기는 괴기는 먹는대. 괴기는 먹어.

그래 괴기는 인자 먹은 그까짓 괴기는 먹을 없고 먹는다든가 어쩐다든가 헌디, ‘괴기는 먹어라, 먹지 말아라 없지마는.

 

참선법은 없어. 참선해서는 견성 못해. 견성. 아미타불 불러야 간다 이렇게 모도 야단을 치고 서울에 국내에 지금 들어와서 중국서 인가 받아 가지고 왔다고 들어온 법사 하나가 있다는구만. 중국 누구한테 받아 왔는고 모르지.

 

속지 말고 속지 마라. 속지만 허면 그만이여.

 

중정경정(中正勁挺)이래야 속지 않는 거여. 중정이 요중정경정(要中正勁挺)이래야 속지 않는 거여. ‘가운데 ()’, ‘굳셀 ()’, 밑에는 경정, ‘굳셀 ()’, ‘굳셀 ()’.

여지없이 금강 철석보담도 굳어야 되아. ! 그런 굳은 마음을 가지고는 화두 하나를 ! 믿어 가지고는 그저 나가.

 

그건 방편이 없어. 부작방편(不作方便)이여. 방편이 없어.

달마 스님은 방편을 말하지 않았어. 어디든지 그대로 말했어. 듣든지 말든지 달마 스님이. 이거 달마스님 말인데 이런 말이 있어.

 

그렇게 굳센 마음 한번 가지고는 듣는다고 이리 옳다고 자빠지고, 말이 옳다고 저리가 자빠지고, 말세라고 된게 참선이 되니께 아미타불 불러야 옳겄다고 자빠지고, 그래 것인가?—, 우리 용화사 학자들은 이걸 결택을 해야 한다 그말이여.

 

 

35 제법부동적정문(諸法不動寂靜門)인데, 35 가서 제법(諸法) 부동(不動) 적정문(寂靜門) 있는데, 적정문(寂靜門) 가운데에 ()이라.

() 물어 이르되, 누가 이르되, 이건 물어 이른 혜가 스님이 물었지. 그랬지 ?

 

물어 가로되, “어떤 것이 여래혜일(如來慧日) 잠몰어유지(潛沒於有地)니꼬어떤 것이 여래혜일(如來慧日) 잠몰어유지(潛沒於有地)입니까?”

여래혜일(如來慧日)여래혜일(如來慧日) 부처님 혜일(慧日), 우리도 견성하면 혜일(慧日), 우리 본래 갖춰져 있는 혜일(慧日), 우리 본분납승(本分衲僧), 우리도 본래 본래각(本來覺) 있거든. ()해서 그렇지 본래 있거든.

 

본래 있는 생사 없는 지금 우리 혜일(慧日) 찾을라고 아니여? 참선해서 지금 찾을라는 아니여?

 

찾을라고 하는 혜일(慧日), 본래 갖춰져 있는 혜일(慧日) 이렇게 ()했습니까? 잠몰어유지(潛沒於有地)입니까?

유지(有地) 가서 ()했읍니까? 유취(有趣) 가서 모두 지옥취(地獄趣) 아귀취(餓鬼趣) 생사취(生死趣) 가서 ()했습니까? 그말이여. 알아듣기 어려운 말이여.

   

제법부동적정문(諸法不動寂靜門)이라고 . 글로 보란 말이여. 내가 새겨 줄께 ?

어째서 우리 본래 갖춰져 있는 혜일(慧日) 이렇게 유지(有地) 잠복(潛伏)되어 가지고 생사를 받습니까?” 그말이여.

답왈(答曰), 비유견유(非有見有) 때문에 혜일(慧日) 몰어유지(沒於有地)니라.

 

() 아닌데 어디 ()? () 아닌데, 혜일(慧日)에는 () 아니여.

무슨 있는 유상(有相) 무상(無相) 비무상(非無相) 비유상(非有相) 일체가 도무지 붙여 봤던들 아니여.

혜일(慧日)에는 그런 것이 없어. (), 지옥취(地獄趣), 아귀취(餓鬼趣) 본래 아무것도 붙어 있는 없어.

 

그런 것이 없는데 ! 유상(有相)으로 집착을 한다.

몸뚱이도 유상(有相) 집착하고, 코빼기도 유상(有相) 집착하고, , , , 몸뚱이, , 다리, 이놈의 , 아상(我相) 아소심(我所心) 아집(我執) 이놈을 집착해 가지고 있다.

한시도! 내가 이놈이 알고 한시도 집착이 떨어진 법이 없어. 유취(有趣) 집착되어 가지고 있어.

 

그놈의 때문에, 어디 인자 몸뚱이 불태워 버리면 본래나기 전이나 불태워 버린 뒤에 봐라, 있나?—아무것도 없는데, 그렇게 유취(有趣)에가 () 가지고 있냔 말이여?

 

요것 때문에 비유견유(非有見有), () 아닌데 () 보기 때문에그만 그거 혜일(慧日) 절대 무슨 유취(有趣) 비취(非趣) 비무취(非無趣) 일물(一物) 뭣이 거기서 때꼽재기가 없는데! 이래 가지고 받는구나. 고렇게 알아 주면 주면 알아듣겠지? ?

 

무상견상(無相見相) 또한 그러니라. 본래 일체 () (), 이러 저녀러 () 보냐? ()으로 보지마는 어디 ()이냐?

그까짓 무슨 () 그녀러 () 그놈이 본래 () 아니고, () 떼놓고 보면 무상(無相)이고, 무상(無相) 무상(無相) 아니고,

유상(有相) 무상(無相) 아니고, 유무무상(有無無相) 떼고 여읠 것도 없고, 본래 거가 무슨 뭣이 붙어 있고 떨어진 것이 없다.

 

() 없는데, 본래 모냥이 없는데 그만 () () 것도 그런 것이다. 모두 이렇게 이놈의 중생이 그만 모두 얽혀지는구나. () 떨어지고 집착에 떨어지고.

 

 

운하명부동상(云何名不動相)입니까? 어떤 것이 () 않은 ()입니까?”

답왈(答曰), 대답을 부득어유유유(不得於有有有), 부득어유유유(不得於有有有), () 자여. 시러금 () () 아니다. 본래 근본 당처(當處) 들어가서 () () 아니다. 이름은 ()라고 하지마는 그게 () 아니여.

 

어떤 () 하냐? 어떤 유상(有相)이라 하고?

어디 ()? ()라고 하지만 () 아니고, () () 아니다. 본래 () 아니여.

 

, 그러니 무유가동(無有可動)이며 가히 () 것이 있음이 없으며,

() 것이냐? () () 아닌데, 무슨 () 여기가 () 있냐?

생사 () 있으며, 생사 빠질 있으며, 무간지옥에 빠질 것이 어디 있으며, 무슨 () 있냐?

 

부득어무무무무(不得於無無無無), 이건 자네!

() 시러금 () (), () () 아니다. () () 아니다.

()라고 해놨지마는 이것 () 아니여. 무슨 () () 있냐? 무상(無相) 가서 ()하냐?

() () 아니여. 하니 () 가히 () 것이 있음이 없다.

 

() () 것이 있나? ()에가 ()?

()에도 () 본래 없고, ()에도 () 없고, () () 아니니 () () () 것이 있음이 없다. 부동상(不動相)이란 그런 거다.

 

즉심무심(卽心無心)이라, 그러니 마음이 마음이 없어.

마음이라고 하지만 그게 마음이냐? 입으로 마음이라 했지? 무슨 마음이냐?

마음? 마음이 어떤 마음이여? 입으로 마음이라고 놨지, 무슨 마음이여?

 

심무유가동(心無有可動)이다. 그러니 마음이 가히 () 것이 있음이 없다.

 

즉상(卽相) 무상(無相)이여. () () 없어. () () 아니여.

() 아니여! () 도무지 () ()이라 해야 () 아니여.

 

그러니 상무유가동(相無有可動)이여. () 가히 () 것이 없어. () () 것이 있음이 없어. () 명부동상(名不動相)이니라. 부동상(不動相) 그런 것이니라.

 

약작여시증자(若作如是證者) 만약 요렇게 () 자는, 요렇게 아는 자는 시명자광혹(是名自誑惑)이다. 이게 제가 제대로 속는 것이다. 자광혹(誑惑) 거다.

 

상래(上來) 미해(未解), 상래(上來) 알들 못했으니, 해시(解時)에는 무법가해(無法可解)니라. 때에는 법을 가히 앎이 없느니라.

 

부동상(不動相) 내가 새겨 놨어. 글을 . 가만히 . 그대로!

달마 스님은 당시에 관법이고 화두법이 없어서 놨어. 하지만 이렇게 밝게 놓을 도리가 없다 그말이여. 오늘 아침에 부동상(不動相) 새겨서 대중에 들렸어.(3235~5023)()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1)

 

*퇴타(退墮 물러날 /떨어질·게으를 ) ; 어떤 경지로부터 물러나 되돌아 오는 . 퇴전(退轉)이라고도 한다.

*번지다 ; ‘버리다(앞말이 나타내는 행동이 이미 끝났음을 나타내는 )’ 사투리.

*()하다 ; ①책임이나 의무를 지지 않게 되다. (화나 곤란한 상황을)맞지 않게 되거나 피하다. (어떤 상태나 처지를)벗어난 상태로 되다.

*아무짝 ; [주로 '아무짝에도' 꼴로 쓰여 부정 표현과 함께]임의의 용도. ‘아무 비하하여 쓰는 .

*향화(香火) ; ①향불. 향을 태우는 . ②향을 피운다는 뜻으로, ‘제사(祭祀)’ 이르는 .

*땀세 ; 땜에(‘때문에 준말).

*출가(出家) : [] Pravrajita 집에서 나온다는 말이다。가정 생활을 떠나서 수도와 포교를 전문으로 하기 위하여, 승려가 되는 것을 말함이다.

그러나 출가(身出家)보다도,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 삼독(三毒) 불이 붙고 있는 번뇌 망상의 불집에서 뛰어나오는 마음 출가(心出家) 하여야 한다.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용화선원刊) p132~133.

出家爲僧이  豈細事乎아.  非求安逸也며  非求溫飽也며  非求利名也라

爲生死也며  爲斷煩惱也며  爲續佛*慧命也며  爲出*三界度衆生也니라

출가하여 중이 되는 것이 어찌 작은 일이랴 !  몸의 안일을 구하려는 것도 아니고, 따뜻이 입고 배불리 먹으려는 것도 아니며, 명예와 재물을 구하려는 것도 아니다. 나고 죽음을 면하고, 번뇌를 끊으려는 것이며, 부처님의 지혜를 이으려는 것이며, 삼계에 뛰어나서 중생을 건지려는 것이니라.

*숭악하다 ; ‘흉악하다(凶惡--)’ 사투리.

*퇴깽이 ; ‘토끼 사투리.

*구녁 ; ‘구멍 사투리.

*오촌(五寸) ; 부모의 사촌 형제. 또는 사촌 형제의 자식.

*촌간(村間) ; ①시골 마을의 사회. ②마을과 마을 사이.

*여나무 ; ‘여남은(''보다 조금 되는 )’ 사투리.

*헛방 ;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허드레 세간(집안 살림에 쓰는 온갖 물건) 넣어 두는 .

*새우다 ; 한숨도 자지 않고 밤을 지내다.

*솔찬하다 ; 솔찮다. ‘①꽤 많다. ②수월하지 않다 사투리.

*돌르다 ; ‘훔치다 사투리.

*몰리 ; ‘몰래(남이 모르게 살짝)’ 사투리.

*장꼬방 ; ‘장독대 사투리.

*재말랑 ; ‘잿마루(재의 꼭대기)’ 사투리.

* ; 옴진드기가 기생하여 일으키는 전염 피부병. 손가락이나 발가락의 사이, 겨드랑이 따위의 연한 살에서부터 짓무르기 시작하여 온몸으로 퍼진다. 몹시 가렵고 헐기도 한다.

*불무 ; ‘풀무(불을 피울 바람을 일으키는 기구)’ 사투리.

*살길 ; 살아갈 방도(方道 어떠한 일이나 문제를 처리해 나가는 방식이나 수단) 방책(方策).

*유기(鍮器) ; 놋쇠로 만든 그릇.

*땡땡이 ; 땡땡이중(꽹과리를 치면서 동냥이나 다니는 스님을 낮춰 부르는 ).

*단지 ; 목이 짧고 배가 부른 작은 항아리.

*유명(有名)짜하다 ; 널리 알려져 있다.

*괴각(乖角) ; 어긋나고 틀어지다. 언행(言行) 대중의 질서를 따르지 못하고, 유달리 어긋나는 짓을 말하며, 또는 그러한 짓을 하는 사람.

 

 

 

 

 

------------------(2)

 

*철석(鐵石)같다 ; (마음이나 의지, 약속 따위가)아주 굳고 단단하다.

*반연(攀緣 매달릴·의지할 /인연 ) ; ①대상에 의해 마음이 움직임. 대상에 의해 일어나는 마음의 혼란. ②인식함. ③인식 대상. ④얽매임. 집착함. ⑤인연에 끌림.

*극락세계(極樂世界) : 아미타불이 살고 있는 정토. 괴로움과 걱정이 없는 지극히() 안락()하고 자유로운 세상(世界)이다. 안양(安養)•안락국(安樂國)•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무량수불토(無量壽佛土)•무량광명토(無量光明土)•무량청정토(無量清淨土)라고도 .

*발원(發願) ; 원하는 마음을 . 원을 세움.

*일심불란(一心不亂) ; 가지 일에 집중하여 마음이 흩어지지 않음. 오직 가지 일에만 마음을 .

*(게송) 아미타불재하방~’ ; [한가로운 도인의 -나옹화상법어집] (김달진역주, 세계사刊). 염불하는 사람들에게 보임(示諸念佛人/8) 게송 참고. p166.

*육문(六門) ; 육근(六根, 안근眼根·이근耳根·비근鼻根·설근舌根·신근身根·의근意根) 말한다. 육식(六識,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의식意識) 육경(六境,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 인식하는 경우, 입구가 되므로 () 또는 뿌리() 하는 것이다.

*자금광(紫金光) ; 자마금(紫磨金 : 황금 중의 최고인 자색을 ) () 띄고 있는 부처님의 몸에서 나오는 .

*자성미타유심정토(自性彌陀唯心淨土) ; 자기 마음 가운데 본래 갖추어 있는 성품[自性] 부처[彌陀] 다르지 않아서, 어리석으면 범부가 되고 깨달으면 부처가 되는 것으로, 아미타불이나 극락정토도 곳에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자기 마음 가운데 있다는 말이다.

만법 유심의 이치에 의하여 자기 마음을 닦아 불성을 깨달으려 하는 .

*방편(方便 방법·수단 /편할 ) ; ①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일시적인 수단으로 설한 가르침.중생 구제를 위해 소질에 따라 임시로 행하는 편의적인 수단과 방법. 상황에 따른 일시적인 수단과 방법. ②교묘한 수단과 방법.

*본분납승(本分衲僧) ; 본색납자(本色衲子), 본분산승(本分山僧) 같은 말。 새로 닦을 없이 본래 부처라고 하는 도리를 깨달아서 그러한 입장을 견지(堅持)하는 납승. 또는 자신이 본래부터 지니고 있는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본래부터 그대로 부처인 도리를 깨닫기 위한 수행을 하는 스님.

*본래각(本來覺) ; 본각(本覺). 일체 중생에게 본래 갖춰져 있는 각성(覺性) 뜻으로서 청정한 심성(心性) 말함。  심성은 허명(虛明)해서 인연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도 아니요 자연적인 것도 아니며, 본래 중생의 상념(想念) 떠나서 법계에 두루 가득 있는 것이다。 따라서 미망(迷妄) 깨달음에 관계 없는 절대적인 경위(境位)이다.

*() ; 깨달음. 법의 실체와 마음의 근원을 깨달아 .

*() ; 미혹(迷惑), 미망(迷妄), 미집(迷執) 준말. 진리에 어두움. 마음이 흐리고 혼란함. 깨달음() 반대. 무명번뇌로 인하여 사리를 밝게 깨치지 못하고 전도몽상(顚倒夢想, 바르게 사물을 없는 미혹함)하는 .

*() ; () 산스크리트어 bhava(바바) 한역으로 마음을 갖는 생물로서의 생존을 말함.

생존의 장소. 미혹의 (). 선악의 원인에 의해 미혹의 세계에서 고락의 과보를 느끼고, 생사윤회가 계속되어 인과가 다하지 않는 . 미혹하는 것의 존재의 세계. 이것에는 종류(三有) 있다.

욕유(欲有 : 욕계의 생존), 색유(色有 : 색계의 생존), 무색유(無色有 : 무색계의 생존) 말한다.

*아상(我相) ; 산스크리트어 ātma-saṃjñā 나라는 관념·생각.  자아(自我)라는 관념·생각.  자의식.  남과 대립하는 나라는 관념·생각.  실체로서의 자아가 있다고 생각하는 망상.

*아소심(我所心) ; 내게 소속된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 마음.

*아집(我執) ; ( : 아트만) 실재한다고 생각하는 얽매임. 아견(我見) 같다. ②자기의 견해에 얽매어 떠나지 않는 . 자기를 중심으로 생각하는 얽매임. 자기의 의견에 집착하는 .

*한시(한時) ; ①같은 시각. ②잠깐 동안.

*때꼽재기 ; 때가 여러 겹으로 엉겨붙은 조각이나 부스러기.

*시러금 ; 마땅히(①그렇게 하는 것이 이치로 보아 당연하게. ②조건이나 정도에 어울리도록 알맞게). 능히(能히, 막히거나 서투른 데가 없이).

*당처(當處) ; 어떤 일이 일어난 자리. 그곳. 또는 이곳.

 

 

Posted by 닥공닥정
인과 · 인연 · 비유2015. 12. 18. 17:04

§(224) 빈두로타사, 그리고 그의 무량겁 전생 때의 단니기 이야기[현우경(賢愚經)] / 단정왕(端正王)의 명판결.

 

() 두터운 람도 다행히 부처님을 친견하고 출가해서 보리심(菩提心) 발하게 되면 확철대오(廓徹大悟) 해서 생사(生死) 윤회(輪廻) 벗어나게 있다고 하는 법문을 들었습니다.

 

**송담스님(No.224)—83 동지법회(83.12.22) 용224.

 

(1) 약 18분.

(2) 약 16분.

 

(1)------------------

 

부처님께서 사위성(舍衛城) 기원정사(祇園精舍) 계실 , 빈두로타사(賓頭盧埵闍) 하는 바라문(婆羅門) 있었는데, 바라문은 아내가 어떻게 독하고 모질며 사납고, 생긴 것도 억세고 보기 싫게 생긴 것이, 눈은 살조개를 놓은 것처럼 벌개 가지고 사사건건이 남편을 괴롭혔습니다.

 

그런데 빈두로타사는 아들은 없고 딸만 형제가 있었는데, 딸을 여우살이를 했습니다.

딸을 여울 때마다 있는 재산을 털어서 주고, 있는 재산 논과 밭과 임야와 모든 재산을 있는 대로 털어 가고, 그리고서 시집을 가지고도 번갈아가면서 딸과 사위가 가지고 앙탈을 부리고 그래 가지고 눈에 띄는 대로 훑어갔습니다. 그래서 주면은 포악(暴惡) 하고.

 

그렇게 시달리면서 여생(餘生) 살고 있는데,

그해는 가을이 되어서 밭에다가 농사를 지어 놓은 것이 있는데 그것을 추수(秋收) 할라니 손대는 없고, 그래서 이웃집에 있는 집에서 소를 빌려다가 농사 지은 추수한 것을 갖다가 소에 실려서 집으로 가져 나르고, 일이 끝나서 인자 해가 저물어서 소를 주인집의 앞에다 갖다 놓았습니다.

 

소를 주인집 앞에다 갖다 놓았을 주인이 보았습니다. 주인이 보았기 때문에 아무 말도 하지 아니하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주인이 나중에 소를 들이 맬라고 보니까 소가 어디로 버리고 없었습니다.

 

그래서 주인이 빈두로타사 집에 와서 소를 썼으면 갖다 주지 않고 갖다 주냐?” 그러니까, “! 내가 아까 소를 갖다가 당신 앞에다 갖다 놓았을 당신이 보지 않았습니까

당신이 가지고 것은 봤지마는 나한테 썼단 말을 아니 해서 아직도 알고 그냥 놔뒀는데, 무슨 소리냐? 썼으면 소를 썼다고 나한테 말을 해야지, 말을 아니 하니 내가 어떻게 알았느냐?” 그래 가지고 소를 물어내라

 

내가 당신 집에 갖다 것을 당신이 버젓이 놓고 그러느냐?” “말을 해서 나는 몰랐다이리 옥신각신 싸우다가 기어이 소를 찾아오라고 하니까,

사람이 마을을 찾고, 들을 찾고, 여기저기 찾아다니다가 어느 숲속을 가니까, 거기에 마치 부처님께서 숲속에 떠억 앉아 계신다 그말이여.

 

그래서 빈두로타사 바라문이 부처님이 그리 조용히 앉아 계신 모습을 보고,

고타마, 구담사문(瞿曇沙門) 얼마나 마음이 편안할까? 나처럼 악독한 아내한테 시달리지도 아니할 것이며, 딸과 사위 놈들한테 들볶이지도 아니할 것이며, 농사짓느라고 고생할 것도 없고, 인간 세상에 아무 걱정이 없이 얼마나 마음이 편안하실고?’ 그런 생각을 속으로 먹고 있었는데,

 

부처님께서는 벌써 빈두로타사 바라문의 마음을 아시고서네가 생각한 바와 같으니라. 나는 인간의 부귀영화(富貴榮華) 빈궁(貧窮) 그러한 생사열뇌(生死熱惱) 아무 고통도 괴로움도 없느니라

그렇게 말씀하시면서너도 그러한 괴로움으로부터 해탈하고자 하거든 출가해서 도를 닦는 것이 어떠한고?” 빈두로타사가! 같은 사람도 출가를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네가 세속의 인연을 끊고 출가한다면 어찌 허락을 아니할까 보냐그래서 찾다가 소도 그만두고, 고약한 아내로부터 떠나고 싶은 생각에 그길로 집으로 가지도 않고 부처님을 따라서 출가를 버렸습니다.

() 받고 출가를 했는데자기는 늦게 출가했다 관계로 밤낮을 가리지 아니하고 용맹정진을 해서 머지않아서 아라한과(阿羅漢果) 증득을 했습니다.

 

 

그러니 아란존자가 빈두로타사 바라문은 늦게 출가했으면서도 어떻게 저렇게 짧은 시일에 확철대오를 해서 아라한과를 증득 했습니까? 과거에 무슨 인연으로 그렇습니까?”하고 부처님께 여쭈어 보았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과거 무량겁 전에 단정왕(端正王)이라 하는 왕이 있었는데, 왕이 정법을 ()하고, 정법으로써 나라를 다스렸기 때문에 나라 백성들이 그렇게 모다 편안하게 행복하게 살았더니라.

 

그때 나라에 단니기(膩羈) 하는 바라문이 있었는데, 바라문은 가난하기가 말로 없이 가난했었어.

그래서 빈두로타사처럼 가을에 추수를 때에 일꾼을 수도 없고, 자기가 그것을 하자니 힘이 들고 그러니까 남의 집에서 소를 빌려다가 추수 짐을 실어나르고 그리고서 소를 임자 앞에다 갖다 놔뒀는데,

주인한테 말을 하지 아니하고 소를 앞에다 갖다만 놓고 왔는데주인이 봤기 때문에 그냥 왔는데, 소가 어디로 가버렸어. 그래서 소를 찾아오라고 하니까, 암만 찾아봐도 찾을 수가 없어.

 

그래서 주인이 소를 빨리 물어내라하니 돈이 없으니 수도 없고, 그래서 임금님한테 단정왕이라고 하는 임금님한테 가서 재판을 하게 되었습니다.

재판을 하러 가는 도중에 말이 뛰어오는데 말은 왕궁의 말인데, 왕궁의 말을 기르는 책임자가 말을 놓쳐 가지고 말이 달아나니까 말을 붙잡아 달라.

 

붙잡아 달라고 해서 앞을 가로막으니까 말이 도망간다 그말이여. 그래 급하니까 도망가게 하기 위해서 돌맹이를 주워 가지고, 도망가지 못하게 위협하느라고 던진 것이 다리에 맞아 가지고 다리가 때깍 부러져 버렸다.

 

그러니까 마부가 말을 가게 붙잡으라고 그랬지 누가 말을 갖다가 다리를 분지르라고 했느냐? 말을 내놓아라

내가 일부러 죽인 것이 아니고 당신이 붙잡아 달라고 그래서 가게 하느라고 돌을 던진 것이 맞았지, 내가 일부러 것이 아니니 물어줄 수도 없고, 물어줄 돈도 없다

너는 나쁜 놈이다. 임금님한테 가서 재판을 해야겠다그래서 마부도 따라붙었습니다.

 

그리고 어디만큼 가니까 강을 건너서 가야 하는데 어디가 얼마만큼 깊은지, 어디가 얼마만큼 옅은지 그걸 모르는데, 저쪽에서 목수가 손에 짐을 들고 옷을 걷어붙이고, 입에다가 끌을나무에 구멍을 뚫는 끌을 물고 오는데,

어디로 가면 물이 옅으고 가기가 좋소?”하고 물어보니까, ‘저리 가라 입으로 가리키다가 입을 쪼끔 뻥긋 벌린 것이 끌이 빠져 가지고 물속으로 풍덩 들어가 버렸다. 아무리 찾아도 찾을 길이 없어.

 

그러니까 끌을 내놓으라” “당신이 입을 벌리다 끌이 빠졌는데 나보고 물어달라고 하냐?”

그러니 목수도그러면 상감마마한테 재판을 해야겠다그래 목수가 따라붙었습니다.

 

그래 가지고 물을 건너서 어디만큼 가니까 배도 고프고 목도 마르고 그래서, 마치 주막이 있길래 주막에서 술을 잔을 먹으려고 평상에 앉은데, 이불이 있어서 이불에 그냥 이렇게 걸터앉았는데, ‘!’ 소리가 났어.

그래서 보니까 이불 속에 어린아이를 넣고 덮어 놨던가 애기가 창자가 터져서 죽었습니다. 그러니 주막 주인이 남의 애기를 갖다가 깔고 앉아 가지고 터지게 죽였느냐? 애기를 물어내라

 

그러니 물건도 돈이 없어서 물어주는데, 어떻게 애기를 물어줄 수가 있습니까? 그래서 주막 주인도 같은 놈은 상감마마한테 소송을 제기해 가지고 너를 벌을 주어야겠다그래 가지고 주막주인도 따라붙었습니다.

 

얼마를 가다가 담장이 있는데 담장 밑에를 지내다가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죄가 가지 죄만 지어도 살아나기가 어려울 텐데남의 소를 잃어 버려, 돌을 던져서 다리를 부러뜨려, 남의 끌을 갖다가 물에 빠뜨리게 , 주막집의 애기를 깔고 뭉개 가지고 터져 죽게

아무리 생각해도 여러 가지 죄로 상감마마 앞에 끌려가면 영락없이 자기는 징역을 살아도 무기징역을 것이고, 재수가 없으면 사형도 받게 되었다 그말이여.

 

그러느니, ‘끌려가 가지고 벌을 받기보다는 내가 이럴 어디로 도망을 밖에는 없다 가지고 담을 훌떡 뛰어서 ! 내려가니까 노인이 거기서 무슨 엎드려서 일을 하고 있던가, 노인이 꺼꾸러지면서 뇌진탕을 일으켜 가지고 노인이 뻐르적뻐르적하다가 죽어 버렸습니다.

그러니 노인의 아들이 놈이 남의 너머로 뛰어와 가지고 우리 아버지를 갖다가 돌아가시게 했느냐?” 그래 가지고이런 놈은 상감마마한테 가서 재판을 가지고 이놈도 벌을 주어야겠다그래서 사람도 따라붙었습니다.

 

 

그래 가지고 여섯 사람이 꼼짝을 못하게 에워싸면서 상감마마 계신 데로 가는데, 숲속을 지내는데 나무가 하나가 있는데 나무 위에 꿩이 앉아서여보시오, 당신 단니기(膩羈), 내가 당신한테 부탁할 말이 있는데,

내가 나무에 앉아서 울면 그렇게 목소리가 우렁차고 아름답고 나는데, 다른 데에서 울면 그렇지를 못하니, 무엇 때문에 나무에 앉아서만 울면 그렇게 목소리가 좋은가? 그것을 갖다가 지금 당신이 상감마마한테 간다 하니, 상감마마한테 가면 사유를 여쭈어 달라

 

알았다. 내가 가서 상감마마한테 말을 여쭈어 보고 죽지 아니하면 내가 너한테 이곳에 와서 일러주마

 

그렇게 승낙을 하고 얼마만큼 가다가 쉬는데, 숲속에서 독사 마리가 나오더니당신이 어디를 가요?” “나는 이러 이러한 여섯 가지 죄를 지어 가지고 나는 상감마마한테 끌려간다

 

그러니까 독사가 하는 말이내가 의심나는 것이 있는데, 훌륭한 상감마마한테 가거든 말을 물어봐라. 무슨 말이냐 하면 내가 굴속에서 아침에 나올 때에는 그렇게 기분이 좋고 날아갈 듯한, 그렇게 가볍게 나오는데 하루 종일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저녁때에 굴속으로 들어갈 때에는 너무너무 몸이 커지고 무겁고 그래 가지고 굴속에 들어가진다.

그러니 아침에 나올 때에는 그렇게 나오는 데에 아무 불편이 없고 가볍고 좋은데, 해가 저물어 집으로 들어갈 때에는 그렇게 들어가지고 아프고 무겁고 그런가? 그것을 여쭈어 달라

 

오냐, 알았다. 내가 죽지 않고 돌아오면 너한테 그것을 일러주마”(1837~3614)

 

 

 

 

 

(2)------------------

 

그래 가지고 상감마마 앞에 끌려갔습니다. 그래서 첫째, 소를 잃어버린 재판을 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 임자가 놈이 소를 갖다 잃어버리고 갚지를 합니다. 그러니 소를 갖다가 찾아 주십시오

 

상감마마가 단니기 보고네가 정말 남의 소를 갖다가 부려먹기만 하고 갚았느냐?”

그런 것이 아니라 갖다가 일을 하고 사람 앞에다가 갖다가 놨는데, 주인이 보고 있길래 그냥 두고 왔습니다. 주인이 보았다면은 주인을 불러서여기 소를 갖다 놨습니다하겠지만, 주인이 보았기 때문에 아는 알고 그냥 왔습니다

 

그러니까 상감마마가 재판을 하기를너희들 사람 죄가 있다. 눈으로 봤으면 소를 갖다가 네가 받아서 외양간에다 갖다 넣을 일이지, 눈으로 봤으면서도 내버려두었으니 죄는 눈에가 있어. 그러니 눈을 버려야겠다.

그리고 너는 남의 소를 갖다 썼으면 소를 갖다가 써서 고맙다고, 여기 소를 가져왔다고, ! 말을 해야지 말을 했으니 혓바닥을 버려야겠다이렇게 재판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임자가! 정말 상감마마 말씀을 들으니, 그렇겠습니다. 그러니 내가 달란 말은 테니 빼는 , 사람 빼는 형벌은 용서를 주십시오이래 가지고 화해를 하게 되었습니다.

 

번째, 돌을 던져서 다리를 부러뜨렸다는 재판을 하게 되는데,

네가 사람보고 말을 갖다가 도망가게 달라고 네가 부탁을 했으니, 너는 입으로 했으니 혀를 빼야겠고, 너는 돌을 던졌냐? 그러니 팔을 갖다가 꺾어야겠다. 사람이 죄가 없지 못하니 사람 벌을 해야겠다

그러니 임자가 말을 물어 달라고 테니 빼는 것과, 사람 팔목을 꺾는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이래서 화해를 했습니다.

 

강을 건너다가 끌을 빠트리는 재판을 하게 되는데네가 길을 묻고, 사람은 끌을 가지고 가면 당연히 손으로 들고 가야 텐데, 끌을 입에다 물고 갔느냐? 그러니 너는 앞니 개를 빼야 하겠고, 너는 입으로 길을 물었으니 너에게도 허물이 있어. 그래서 사람 벌을 내려야겠다

그러니까 임자가내가 끌을 물어 달라고 하지 아니 테니 이빨 빼는 것과 사람 빼는 것을 용서해 주십시오그래서 화해를 했습니다.

 

주막에서 애기를 깔고 앉아 가지고 터져 죽게 재판이 시작이 되었습니다.

너희 집은 주막집이 되어서 손님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왕래가 끊어지지 아니하니, 애기를 손님이 없는 방에다가 재울 것이지 어찌 손님이 앉는 평상에다가 애기를 뉘어 놓으며, 애기를 뉘어 놓으면 머리를 내놓고 뉘어야지 어찌 이불로 싸서 덮어놨느냐? 그랬으니 너한테도 허물이 있고.

앉을라면 거기에 무엇이 있는가? 물건이 있으면 치워 놓고 앉아야지, 마구잽이 앉는 법이 어디가 있느냐? 사람이 허물이 있어.

 

그러니 애기는 이미 죽었으니 어떻게 물어줄 도리는 없고, 단니기를 애기 하나 까지 남편으로 맞이해라. 그러면은 애기를 물어주는 것이 되지 않느냐?” 이렇게 재판을 내렸습니다.

 

주막집 주인이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애기를 기어이 물어 달라고 하다가는 영락없이 아무것도 없는 건달 놈을 남편으로 맞아들이자니 혹을 떼려다 붙이게 됐다 그말이여.

그리고 가난할 뿐만 아니라 백수건달(白手乾達) 남편으로 맞이했다가는 자기 신세가 오그라질 밖에는 없고, 그래서제발 애기 물어 달라고 안할 테니 저놈을 남편으로 삼으란 말씀을 거둬 주십시오이렇게 해서 재판이 화해가 되었습니다.

 

마지막에 담을 뛰어넘다가 늙은이를 죽이게 해서 자기 아비를 물어 달라고 사람에게는 아비는 이미 죽었고, 그러니 아비를 어떻게 물어주겠느냐? 백수건달을 아비로 삼아라그렇게 재판을 내렸습니다.

그러니 사람이 아버지 돌아가신 것도 슬픈 데에, 아비를 죽인 웬수 놈을 아비로 모실 수는 도저히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재판도 화해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다른 사람들은 재판을 해서 자기 잃어 버린 물건도 찾고, 그놈을 갖다가 벌을 주려고 왔던 원고(原告)들은 버리고, 단니기만 상감마마 앞에 남아 있습니다. “너는 가고 있는고?” “제가 여쭐 말씀이 있습니다

 

오다가 꿩한테 들은 말을 여쭙고어째서 꿩이 나무에서 울면 소리가 납니까?” 여쭈어 봤습니다. “ 나무 밑에는 황금으로 만든 솥이 묻혀 있느니라. 그래서 황금 솥에 울려서 소리가 아름답게 나느니라이렇게 일러 주셨고.

 

"독사가 아침에 나갈 때에는 그렇게 몸이 가볍고 좋은데, 해가 저물어서 때는 어째서 그렇게 몸이 무겁고 그렇게 문턱을 넘기가 어렵습니까?” 그걸 물어보니까,

 

아침에 나갈 때에는 저녁에 편안하니 쉬었기 때문에 몸에 독소가 풀리고, 피로가 풀려서 그렇게 몸이 가볍고.

하루 종일 낮에 돌아다니면서 가는 곳마다 까막까치가 좃고 괴롭히며 모든 짐승도 잡어먹으려고 그러고, 자기도 자기를 해꼬자한 것이 있으면 그놈과 싸우고 하느라고 진심(瞋心) 많이 냈기 때문에 진심을 냄으로 해서 혈압이 오르고 따라서 몸도 커지고, 몸도 무거워지고 거칠어져서 그래서 몸이 무겁고 굴속으로 들어갈 때에는 부드럽지 않고 무거운 것이다.

 

비단 그러한 독사뿐만이 아니라 우리 사람도 마음을 편안히 하고 안정을 하면, 피도 맑아지고 몸이 가벼워지며 정신도 맑아지려니와,

진심(瞋心) 내고크고 작은 일에 볼쏙볼쏙 진심을 싸면 혈압이 오르고 피가 탁해지고, 오장육부를 갖다가 메겡이로 치는 거와 같아서 몸이 제대로 움직이지를 못하고 여기저기 고장이 나고 이래 가지고 병이 나는 법이니라 이렇게 일러 주시고,

 

네가 꿩이 울면 소리가 우렁차고 아름답게 들린다는 나무 밑에 있는 황금으로 만든 솥은 응당 나의 소유려니와 네가 나무 밑을 파서 황금 솥이 나오거든, 솥을 가지고 그것으로 논도 사고, 밭도 사고, 집도 새로 짓고 해서 잘살아라그렇게 임금님이 일러 주셨습니다.

 

그때에 단정왕이라고 하는 임금이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 석가모니 부처요, 그때 단니기라고 하는 바라문은 오늘 악독한 아내를 버리고, 딸과 사위를 버리고 늦게 출가했으나 도를 닦아 가지고 그렇게 아라한과를 증득한 빈두로타사가 바로 옛날에 단니기라고 하는 바라문인 것이다.

옛날에도 내가 단정왕으로 있을 때에 다섯 가지 재판을 판결을 지혜롭게 내려줌으로 해서 사람을 살려 주었고, 황금 있는 그것까지 일러 주어서 사람을 도와 주었을 뿐만 아니라 금생에도 저의 무서운 고통을 덜어 주어 가지고 마침내 해탈도를 얻게 했느니라이렇게 법문을 하셨습니다.

 

 

자리에 모이신 여러 사부대중, 세상에 살고 있는 모든 인간들도 무량겁 인연으로 업연(業緣)으로 해서 크고 작은 가지, 가지 양상을 많은 업연들로 인해서 수없이 많은 고통도 받고 은혜도 입고, 남에게 고통을 주기도 하고 은혜를 베풀기도 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가깝게는 남편, 아내, 아들, , 며느리, 손자손녀에 이르기까지 때로는 은인으로 상대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웬수로 상대가 되기도 합니다.

 

고의적으로 지은 업연은 고의적으로 받게 되고, 전혀 고의성이 없이 무의식중에 은혜를 입히거나 해를 입히면 무의식중에 받게 되는 것입니다.

설사 법에는 제재(制裁) 면했다 하더라도 인과 관계는 그것으로써 완전히 끝나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전생에 지은 다섯 가지 죄로 () 받아야 것을, 다행히 현명한 상감마마의 판단으로 해서 법의 벌은 면했지만, 전생에 지은 업으로 금생에 다시 빚쟁이들이 아내로 태어나고, 딸로 태어나고, 사위로 태어나 가지고, 기둥뿌리가 남을 정도로 샅샅이 훑어가고,

중의 제일 고약한 웬수는 아내가 되어 가지고 일생 동안을 한솥밥을 먹으면서, 지붕 밑에 살면서 날이면 날마다 오장을 뒤집어 놓고 바가지를 긁고 이렇게 살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한 () 두터운 사람도 다행히 부처님을 친견하고 출가해서 보리심(菩提心) 발하게 되면 확철대오(廓徹大悟) 해서 생사(生死) 윤회(輪廻) 벗어나게 있다고 하는 법문을 들었습니다.(3615~5218)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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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두로타사 인연 이야기 ; [현우경(賢愚經), 11] 46 단니기품(膩羈品) 참고.

[참고] [현우경(賢愚經)] ‘단니기품 있는 단정왕의 다른 명판결.

見二母人,共諍一兒,詣王相言。時王明黠,以智權計,語二母言:『今唯一兒,二母召之,聽汝二人,各輓一手,誰能得者,即是其兒。』 其非母者,於兒無慈,盡力頓牽,不恐傷損;所生母者,於兒慈深,隨從愛護,不忍抴輓。王鑒真偽,語出力者:『實非汝子,強輓他兒,今於王前,道汝事實。』 即向王首:『我審虛妄,枉名他兒。大王聽聖!幸恕虛過。』 兒還其母,各爾放去。復有二人,共諍白疊,詣王紛紜,王復以智,如上斷之。

 

그때에 어떤 어머니가 아이를 데리고 왕에게 와서 제각기 아들이라고 주장하였다. 왕은 현명하고 지혜로워 방편으로 여자에게 말하였다.

지금 아이는 하나인데 어머니가 서로 아이라고 주장하는구나. 너희들 둘은 각기 아기 팔씩 잡고 당겨라. 누구나 빼앗는 이가 바로 어머니다

 

아이의 어머니가 아닌 이는 아들을 사람하는 마음이 없으므로 힘을 다해 마구 잡아당기면서 아이가 상할까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이를 낳은 어머니는 아이를 매우 사랑하기 때문에 끌려가면서도 아이를 아껴 보호하려 차마 잡아당기지 못하였다.

 

왕은 진위(眞僞) 판단하고, 힘을 다해 마구 잡아당긴 여자에게 말하였다. ‘ 아이는 실로 아들이 아니다. 억지로 남의 아이를 욕심낸 것이다. 지금 앞에서 사실대로 고백하라

그는 머리를 조아리고 왕에게 아뢰었다. ‘실로 거짓이었습니다. 남의 아이를 억지로 아이라 하였습니다. 대왕님의 존엄하신 판결입니다. 저의 죄를 용서하여 주소서

왕은 아이를 어머니에게 돌려주고 각기 놓아 보내었다.

 

어떤 사람이 천을 가지고 와서 서로 것이라 시끄러이 다투었다. 왕은 지혜로써 위와 같이 판결하였다. —[현우경] (몽산 관일 번역 | 두배의 느낌) p259~260 참고.

*기원정사(祇園精舍) ; 기수급고독원(祇樹給孤獨園)정사의 약어(略語). 중인도 코살라국() 수도 사위성(舍衛城:슈라바스티) 남쪽 1.6 km 지점에 있던 기타태자(祇陀太子) 소유의 동산에 지은 .

이는기타태자의 동산에 수달(須達:給孤獨長者) 지은 승원이라는 뜻인데, 급고독장자(給孤獨長者)고독한 이들에게 보시를 많이 부자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바라문(婆羅門) ; 산스크리트어 brāhmaṇa 음역어. 고대 인도 바라문교의 카스트(caste 가지[四種姓] 분류되는 세습적 신분 계급 제도) 제도의 최상위 계급인 사제(司祭) 계급을 일컫는다.

베다(Veda 바라문교 근본 경전) 교육하고 사원과 일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제식(祭式) 관장했다.

*여우살이 ; ‘결혼 생활 말하는 우리말. 여기서의 결혼 생활이란 남자측을 말하는게 아니고 여자측의 결혼 생활을 말한다.

*여우다 ; ‘결혼을 시키다 사투리.

*훑어가다 ; ①있는 대로 빡빡 뺏어가다. (사람이 어디를)어느 한쪽에서부터 더듬거나 살피어 가다.

*포악(暴惡 사나울 /악할 ) ; 사납고 악독함.

*추수(秋收) ; 가을에 익은 곡식을 거두어들임. 가을걷이.

*손대 ; 일을 사람.

*고타마(Gotama) ; 인도의 크샤트리야 계급에 속하는 여러 ()가운데 하나. 석가모니의 (). 구담(瞿曇)이라 음역.

*사문(沙門) ; 슈라마나(산스크리트어: śramaṇa, 팔리어: samaṇa) 음역. (근식(勤息정지(淨志) 등으로 번역. 여러 선법(善法) 근수(勤修)하고, 악법(惡法) 행하지 않으며, 심신을 조어(調御)하여 청정(淸淨) 깨달음의 길을 지향(志向)하고 노력함을 뜻함.

①인도에서 바라문교의 「베다」 성전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제종교 수행자의 총칭.

②출가하여 불문(佛門) 들어 도를 닦는 사람.

*부귀영화(富貴榮華) ; 많은 재산과 높은 지위로 누릴 있는 영광스럽고 호화로운 생활.

*빈궁(貧窮 가난할 /빈곤 ) ; 가난하여 살기가 어려움.

*생사열뇌(生死熱惱) ; 생사의 매우 심한 괴로움.

*() ; 불교에 귀의한 자가 () 쌓기 위해 지켜야 규범.

*아라한과(阿羅漢果) ; 아라한(모든 번뇌를 완전히 끊어 열반을 성취한 성자) 깨달음의 경지. 소승 불교의 궁극에 이른 성자의 지위로서, 성문 사과(聲聞四果-수다원·사다함·아나함·아라한) 가장 윗자리이다.

*아난존자(阿難尊者) : [] Ananda 음을 따라 아난타(阿難陀) 쓰고, 줄여서 아난(阿難) 또는 아란이라 하며, 뜻으로 번역하여 환희(歡喜) 또는 경희(慶喜)라고 하니, 기쁘다 뜻이다。

부처님의 사촌이며 조달(調達) 동생이다。부처님 성도하시던 밤에 났고, 스물 다섯 살에 출가하여 25 동안 부처님의 시자(侍者) 있었으며 십대제자 가운데서도 다문제일(多聞第一) 총명이 놀라웠다。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뒤에 가섭존자의 주관으로 왕사성 밖에 있는 필발라굴(畢鉢羅窟 Vaibhara)에서 오백 성승(聖僧) 모여 경전을 결집하는데 아난존자는 때까지 아직 성과(聖果) 얻지 못하였으므로 거기에 참석하지 못하고 있다가, 가섭존자에게 묻기를 『부처님께서 사형(師兄)에게 법을 전하실 때에 금란가사(襴袈裟) 말고 따로 무엇을 전하신 것이 있읍니까?』『아난아』『예?』『문 밖에 찰간(刹竿)대를 꺾어 버려라! 』하였다。그러나 아난은 말뜻을 알아듣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용맹정진 사흘 만에야 비로소 크게 깨치고 나서, 회의에 참석하여 부처님의 말씀을 들은 대로 외니 하나도 틀림없음을 대중이 증명하여 경의 결집이 완성된 것이다。그 가섭존자로부터 법통(法統) 받았다가 상나화수(商那和修)에게 법을 전하였다.

 

 

 

 

 

------------------(2)

 

*백수건달(白手乾達) ;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이 건들거리고 돌아다니는 사람.

*원고(原告) ; 소송을 제기하여 재판을 청구한 사람.

*까막까치 ; 까마귀와 까치를 아울러 이르는 .

*좃다 ; ‘쪼다(뽀족한 것으로 찍다)’ 사투리.

*해꼬자 ; 해꼬지. 해코지(害코지)—남을 해치고자 하는 .

*진심(瞋心) ; 왈칵 성내는 마음.

*메겡이 ; ‘(묵직하고 둥그스름한 나무토막이나 쇠토막에 자루를 박아 무엇을 치거나 박을 쓰는 방망이)’ 사투리.

*업연(業緣) ; 업보(業報) 인연(因緣). 선업은 낙과(樂果) 인연을 부르고 악업은 고과(苦果) 인연을 부른다.

*오장을 뒤집다 ; ‘오장(五臟) 긁다’, ‘오장을 건드리다 같은 표현으로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의) 비위를 건드려서 기분 나쁘게 하다라는 .

*보리심(菩提心) ; 불도(佛道=菩提=眞理)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생사윤회(生死輪廻 /죽을 /바퀴 /빙빙돌 ) : 사람이 어리석음(無明)으로 인한 번뇌와 업에 의하여 삼계육도(三界六道)에서 났다가() 죽고() 났다가 죽는 것이 바퀴() 돌듯이() 반복함. 육도윤회(六途輪廻).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