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과 · 인연 · 비유'에 해당되는 글 29건

  1. 2024.12.13 §(366) (게송)삼불형의총부진~ / 소소영령(昭昭靈靈)한 그 주인공을 내 집안에 있는 보배에다 비유 / 중생의 육식(六識)이 발동하는 바로 그 당처(當處)를 깨달아야 한다. 3
  2. 2024.03.11 §(229) 중병(重病)을 앓는 장로 비구의 과거 인연 『법구비유경』 / '남의 마음을 상하게 하지 말자' / 말 조심 / 방편으로 바른 법을 표현 / 자기 허물을 볼 줄 아는 사람이 성현(聖賢). 2
  3. 2024.01.27 §(210) 부처님의 ‘큰 나무 기둥[大方梁]’ 설법, 목동·두꺼비 인과 설화. 《근본설일체유부비나야약사》 / 한 생각, 한마디 말의 결과가 무섭고 소중하다 / 한 생각 잘 단속해 화두를 들고 나.. 3
  4. 2024.01.09 §(280) 『열반경(涅槃經)』 '용기'에 대한 비유 설화. 깨달음을 얻으려면 위법망구적인 철저한 용기가 있어야 한다 / 「한 생각 진실함」에서 신심, 분심, 용맹심, 대의단도 거기에 갖추어진다. 2
  5. 2022.03.08 §((128)) 오조 홍인대사, 재송(栽松) 도인이 몸을 바꿔서 4조 도신스님을 찾아온 법문 / 인정(人情)과 자비(慈悲) / (게송)약이색견아~. 『금강경』 사구게.
  6. 2021.09.12 §((212)) 네 아내(육신, 재산, 부모형제 처자권속, 마음)의 비유 / 우리의 자성(自性) 본성(本性) 바로 그놈을 제일 애끼고 사랑하고 돌봐줘야.
  7. 2021.07.27 §((235)) 울산군(蔚山郡) 원남면 이근홍의 인과설화 / 김천(金泉)에서 어느 부인이 아들 집 개로 태어난 인과설화 / 한 생각 뒤가 바로 내생(來生).
  8. 2021.07.10 §((242)) 나후라존자의 전생 일화 / 부처님이 나후라에게 하신 엄숙한 훈도(발 씻은 물과 대야) / 성현(聖賢)도 자식은 바꾸어서 가르친다.
  9. 2021.06.02 §((330)) 비사왕과 가섭존자의 설화. '천당, 지옥' '새끼 타래와 은전, 금전' '맷돼지 똥 갑옷' 비유 / 도에 들어가는 첫째 단계가 아상(我相) 인상(人相)을 버리는 것.
  10. 2021.05.11 §((472)) (게송)우후정화연야발~ / LA 인종 폭동 / 참선법을 배워야 세계가 평화롭게, 인간이 인간답게 / 백인이나 유색 인종이나 인간의 본성에는 차등이 없다.
인과 · 인연 · 비유2024. 12. 13. 17:51

§(366) (게송)삼불형의총부진~ / 소소영령(昭昭靈靈)한 그 주인공을 내 집안에 있는 보배에다 비유 / 중생의 육식(六識)이 발동하는 바로 그 당처(當處)를 깨달아야 한다.

**송담스님(No.366)—1988년(무진년) 칠석차례 법어(88.08.18) (용366)

 

약 9분.

 


삼불형의총부진(三佛形儀總不眞)이요  안중동자면전인(眼中瞳子面前人)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약능신득가중보(若能信得家中寶)하면  제조산화일양춘(啼鳥山花一樣春)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삼불형의(三佛形儀)가 총부진(總不眞)이요  안중동자면전인(眼中瞳子面前人)이다.
흙으로 뭉쳐서 만든 부처님, 또 나무로 깎아서 만든 부처님, 쇠를 녹여서 조성한 부처님, 이 세 가지 종류의 부처님의 그 형체가 총부진(總不眞)이여. 모두가 다 참다운 부처님이 아니여. 왜 그러냐?
 
흙으로 조성한 부처님은 물에 들어가면 풀어져 버리고, 나무로 조성한 부처님은 불 속에 들어가면 타 버리고, 쇠붙이로 녹여서 지어붓은 부처님은 용광로(鎔鑛爐) 속으로 들어가면 녹아버린다 그 말이여. 그러니 어찌 그러한 부처님의 불상(佛像)을 갖다가 참다운 부처님이라고 할 수가 있겠느냐?
 
안중동자면전인(眼中瞳子面前人)이다. 눈 속에, 동자(瞳子) 속에 나타나 있는 그것이 바로 앞에 서 있는 그 사람의 모습이더라 그 말이여.
사람마다 눈동자 속에 보면은 그 사람 모습이 있는데, 그 눈동자 속에 있는 모습이 바로 자기 앞에 있는 사람의 모습이여. 그 사람의 모습이 바로 눈동자 있는 데에서 찾아봐야 그 사람의 모습이 거기에 비추어져 있다 그거거든.
 
약능신득가중보(若能信得家中寶)하면, 만약 능히 내 집안에 있는 보배를 믿는다면,
 
내 집안에 있는 보배가 무엇이냐?
어떤 사람이 죽을 때 그 평생 먹고 쓰고도 남을 보물의 구슬이 있었는데, 그 보주(寶珠)를 그 아들한테 전해 주어야겠는데 아들이 너무 어려 가지고 그 보물을 전할 수가 없어서 그 아들의 옷 속에다가 그 보물을 딱 넣어놓고 그래 가지고 꽁꽁 꿰메서 잘 두었다 그 말이여.
혹은 또 그 집안에 어디다가 깊이 딱 간직을 해 놨는데 아들한테는 일러줄 수가 없으니까, 자기의 친구한테 그것을 일러주었어. ‘내 자식이 철이 들거든 거기 그 보물이 있는 곳을 가르켜 줘라’ 일러주고서 죽었는데.
 
그 아들이 부모가 죽어버리니까 혈혈단신(孑孑單身)이 되어 가지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유랑걸식(流浪乞食)을 하고 돌아다녔다 그 말이여.
 자기한테 그런 아버지의 유산으로 받은 평생 쓰고 먹고 남을 보배가 있는 줄 모르고 그렇게 참 갖은 고생을 하면서 거지 신세로 그렇게 돌아다니다가 어느 날 자기 아버지의 친구를 만났어.
그래 가지고 ‘바로 너의 그 옷 속에 보배가 있다’ 또는 ‘너의 집 어디에 가면은 그 보배가 있다’ 그래 가지고 그 보배를 발견을 해 가지고 평생토록 참 유족(裕足)하게 살았다 하는 그 경전에 있는 말씀인데.
 
자기 안에 있는 보배, ‘그것이 바로 무엇이냐?’ 하면은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소소영령(昭昭靈靈)한 그 주인공, 그것을 갖다가 집안의 보배에다가 비유를 해서 말씀을 하신 거여.
부르면 대답할 줄 알고, 욕하면 성낼 줄 알고, 배고프면 밥 먹을 줄 아는, 그리고 슬퍼할 줄도 알고, 기뻐할 줄도 알고, 성낼 줄도 아는 바로 그놈.
 
성내고 울고불고하는 그러한 작용이 어디서 나오느냐? 그 말이여. 탐심도 낼 줄도 알고, 고약한 그 마음을 내는데, 그 마음 낼 줄 아는 놈, 그러한 작용이 어디에서 일어나느냐?
그 작용이 일어나는 바로 그 당처(當處), 그것은 우리는 볼 수가 없어. 중생심으로는 그놈은 볼 수가 없고, 중생견(衆生見)으로는 그것을 알 수가 없는 거여. 더군다나 육안으로는 보일 수도 없어.
 
그런데 그놈으로부터서 온갖 중생의 그 육식(六識)이 거기서 발동을 한다 그 말이여.
그 발동하는 그놈을, 발동하는 그 근본, 그 당처를 진실로 얻어버리면, 그놈을 깨달라 버리면, 제조산화(啼鳥山花)가 일양춘(一樣春)이다. 저 우는 새와 그 산에 울긋불긋 피는 꽃이 한결같은 봄이더라.
 
'그 우는 새소리가 바로 부처님의 법문이요, 그 산에 울긋불긋 피어있는 꽃이 바로 부처님의 몸뚱이더라' 이렇게 해석을 붙이면 이 경전은 김이 새버린 것입니다.
바로 봄이 돌아오니 산에는 울긋불긋 꽃이 피고 새는 노래한다 이거거든. 거기에다기 무슨 변명을 붙이고, 변명을 붙이면은 그것은 깨달음의 소식이 아니라 중생의 망견(妄見)이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오늘 칠석날을 맞이해서 여러분은 동참을 해서 부처님께 공양(供養)을 올렸으니 그리고 대중스님네 공양을 올렸으니 여러분은 유루(有漏), 무루(無漏)의 복(福)을 영생토록 쓰고 남을 복록을 받게 되셨으며, 최상승 법문을 들었으니 여러분은 생사해탈(生死解脫)을 해서, 영원히 이 고해(苦海)에 육도윤회(六道輪廻)를 해탈을 해서 생사 없는 열반(涅槃)의 세계에서 삼세제불과 더불어 무생곡(無生曲)을 읊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55분21초~64분28초)(끝)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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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삼불형의총부진(三佛形儀總不眞)~ ; 『금강경오가해(金剛經五家解)』 정신희유분(正信希有分), 야부도천 게송 참고.
*부처님[佛] ; ‘부처’에 해당하는 산스크리트어, 팔리어는 buddha이다. 이 buddha의 온전한 음사어(音寫語)는 불타(佛陀·佛馱), 부도(浮圖·浮屠), 부타(浮陀), 부두(浮頭), 발타(勃陀·馞陀), 몰타(沒駄) 등이 있다. 각자(覺者 깨달은 어른), 지자(知者), 각(覺 깨달음)으로 한역(漢譯).
불타(佛陀)라는 말이 순우리말로 ‘부텨’라고 읽히고 이 말이 점차 변하여 ‘부처’가 되었다. 보통 공경하는 뜻으로, 경칭어미를 붙여 ‘부처님’이라 한다.

「궁극적인 진리를 깨달은 사람, 모든 번뇌를 소멸한 사람」이라는 뜻이며, 가장 크고 높고 참된 이치를 자기가 깨치고[自覺] 남들까지 깨치게 하여[覺他], 그 지혜와 복이 끝없이 원만하고 이치와 일에 두루 걸림없고[覺行圓滿], 등정각(等正覺)을 성취한 이를 말한다.

'불교(佛敎)’ 그러면, ‘깨닫는[佛] 가르침[敎]’ ‘깨닫는 길’ 그 이치를 가르쳐서 누구나 깨달아 부처가 되고, 어디나 밝고 깨끗하고 평등하고 싸움 없는 세상이 되게 하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치심 곧 불교(佛敎)다.

*깨달음 ; 각(覺). 진리(부처님의 가르침), 마음의 근원을 깨달아 앎. 지혜의 체득.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흙으로 조성한 부처님은 물에 들어가면 풀어져 버리고, 나무로 조성한 부처님은 불 속에 들어가면 타 버리고, 쇠붙이로 녹여서 지어붓은 부처님은 용광로(鎔鑛爐) 속으로 들어가면 녹아버린다’ ; 조주삼전어(趙州三轉語).
[참고 ❶] 조주삼전어(趙州三轉語) ; '조주의 세 마디 말' 선종의 화두[벽암록 96칙].
조주선사(778~897)가 상당(上堂)하여 말했다. "금불(金佛)은 용광로를 건너지 못하고, 목불(木佛)은 불을 건너지 못하며, 이불(泥佛 진흙으로 빚어 만든 불상)은 물을 건너지 못한다"

후에 벽암(碧巖 : 圜悟克勤 1065~1135)이 평창(評唱)하기를 「저 옛사람이 독특한 안목으로 사람들을 지도함에 있어서 이 말(삼전어)을 빌려서 이 소식(깨달은 경계)에 통하게 한 것은 사람들을 위해서였다. ...(중략)...
이불(泥佛 진흙으로 빚어 만든 불상)은 물을 건너게 되면 풀어지고, 금불(金佛)은 용광로를 건너가게 되면 녹아 버리고, 목불(木佛)은 불을 건너가게 되면 타 버리고 만다」

삼전어(三轉語)란 깨달음의 결정적 전기가 되는 세 가지 어구. 전어(轉語)는 미혹을 깨달음으로 반전시키는 어구라는 뜻이다. 이에 따라 일반적으로 삼전어는 철벽(鐵壁)과 같은 궁지(窮地 매우 곤란하고 어려운 일을 당한 처지)를 마주치고 나서 그것을 뒤집어 새로운 안목을 열어주는 계기가 되는 화두의 기능을 지닌다.

[참고 ❷] 『고존숙어록(古尊宿語錄)(제14권)』 (卍續藏 제68책) '趙州眞際禪師語錄之餘'
師上堂 示衆云 金佛不度爐 木佛不度火 泥佛不度水 眞佛內裏坐 菩提涅槃 眞如佛性 盡是貼體衣服 亦名煩惱

조주선사가 상당(上堂)하여 대중에게 말씀하셨다. "금으로 만든 부처님은 용광로를 건너지 못하고, 나무로 만든 부처님은 불을 건너지 못하며, 진흙으로 만든 부처님은 물을 건너지 못한다. 참부처님[眞佛]은 안에 앉아 있다. 보리 · 열반 · 진여 · 불성은 모두 몸에 걸친 의복과 같으니, 이 또한 번뇌라고 이름한다"

[참고 ❸]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 제28권 「諸方廣語 - 十二人見錄(제방 선사들의 긴 법어 - 12인 기록 있음)」 '조주 종심 화상(趙州從諗和尙)‘
上堂云 金佛不度爐 木佛不度火 泥佛不度水 眞佛內裏坐 菩提涅槃 眞如佛性 盡是貼體衣服 亦名煩惱

*지어붓다 ; (사람이 쇠를) 녹여서 붓다.
*용광로(鎔鑛爐 녹일 용/쇳돌 광/화로 로) ; 높은 온도로 광석을 녹여 철, 구리, 납 따위의 쇠붙이를 뽑아내는 가마.
*혈혈단신(孑孑單身 외로울 혈/홑 단/몸 신) ; 의지할 곳 없이 외로운 홀몸.
*유랑걸식(流浪乞食 흐를·떠돌 류/물결·떠돌아다닐 랑/빌 걸/밥 식) ; 일정한 거처가 없이 떠돌아다니며 밥을 빌어먹음.
*소소영령(昭昭靈靈) ; 한없이 밝고 신령함. 소소(昭昭)도 영령(靈靈)도 함께 밝은 뜻. 밝은 모양. 진여(眞如), 법성(法性), 불심(佛心)을 의미하는 말.

[참고] 『임제록(臨濟錄)』
道流  儞欲得作佛  莫隨萬物  心生種種法生  心滅種種法滅  一心不生  萬法無垢  世與出世  無佛無法  亦不現前  亦不曾失  設有者  皆是名言章句  接引小兒  施設藥病  表顯名同  且名句不自名句  還是儞目前  昭昭靈靈  鑒覺聞知照燭底  安一切名句

도를 배우는 이들이여. 그대들이 부처가 되고자 한다면 일체 만물을 따라가지 말라. 마음이 나면 온갖 법이 나고 마음이 멸하면 온갖 법이 멸하니, 한 마음 나지 않으면 만법에 허물이 없다. 세간과 출세간에 불(佛)도 없고 법(法)도 없어서 현전하지도 않고 잃은 적도 없다.
설사 무엇이 있다 하더라도 모두 언어의 구절이어서, 어린아이를 달래기 위해 병에 따라 약을 준 것이며 무엇을 표현하는 이름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언어의 구절은 그 자체로 언어의 구절이 되는 것이 아니라, 다름 아닌 그대들 눈앞에서 밝디 밝고 신령하게[昭昭靈靈] 살피거나 느끼거나 듣거나 알거나 비추는 바로 그것이 모든 언어의 구절을 붙이는 것이다.
*주인공(主人公 주인 주/사람 인/존칭·‘높임’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청정한 부처의 성품을 나타내는 말. 주인옹(主人翁).
*당처(當處) ; ①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 그곳. 또는 이곳. ②그대로. 지금 현재 있는 그 자리에서. 바로 그곳에서.
*중생심(衆生心) ; ①번뇌에 얽매인 미혹한 존재(중생)가 일으키는 미혹한 마음. ②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청정한 성품. 진여심(眞如心). ③아뢰야식(阿賴耶識)을 말함.
*중생견(衆生見) ; 중생의 번뇌에 얽매여 전도몽상(顚倒夢想 : 바르게 사물을 볼 수 없는 미혹함)한 잘못된 견해.
*육식(六識) ; 안(眼)·이(耳)·비(鼻)·설(舌)·신(身)·의(意)의 육근(六根)으로 각각 색(色)·성(聲)·향(香)·미(味)·촉(觸)·법(法)의 육경(六境)을 식별하는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의식(意識)의 6가지 마음 작용. 산스크리트어 ṣaḍ-vijñāna 
①안식(眼識). 시각 기관〔眼〕으로 시각 대상〔色〕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②이식(耳識). 청각 기관〔耳〕으로 청각 대상〔聲〕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③비식(鼻識). 후각 기관〔鼻〕으로 후각 대상〔香〕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④설식(舌識). 미각 기관〔舌〕으로 미각 대상〔味〕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⑤신식(身識). 촉각 기관〔身〕으로 촉각 대상〔觸〕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⑥의식(意識). 의식 기능〔意〕으로 의식 내용〔法〕을 식별·인식하는 마음 작용.

*동참(同參) ; ①어떠한 일에 함께 참여함. ②스님와 신도가 한 법회에 같이 참석하여 불도(佛道)를 닦는 일. ③같은 스승 밑에서 함께 공부하는, 동문수학하는 '도반(道伴)'과 같은 말. 동학(同學)이라고도 한다.
*공양(供養 이바지하다·받들다·모시다·바치다 공/기르다·공양하다 양) ; ①불(佛)•법(法)•승(僧)의 삼보(三寶)나 스승, 부모, 영가에 음식, 옷, 약, 꽃, 향 등을 바침. ②스님들의 식사를 공양이라 하는데, 이것은 스님들은 시주(施主)의 공양물로 생활하기에 공양을 올리는 이[施主]의 시은(施恩)을 상기하여 잊지 않게 하고자 함이다. ③신구의(身口意) 세 가지 방법으로 하는 공양으로 삼업공양(三業供養)이라 한다. 자세[身]를 낮추어서 삼가고 공경하는 예를 갖추는 공경, 입[口]으로 훌륭함을 기리는 찬탄, 오로지 마음[意]을 쏟는 존중이다.
*대중(大衆) ; (산스크리트어, 팔리어) mahā-samgha, mahā-sabhā. 음역하면 마하승가(摩訶僧伽)이다. 많은 사람의 모임이란 뜻으로 참선 수도하는 스님들의 모임 또는 일반적으로 법문을 청하여 듣는 사부대중(四部大衆 비구 · 비구니 · 우바새 · 우바이)을 일컫는다.
*유루(有漏) ; ①샘[漏]이 있는[有]. 한도(限度)가 있어 영원성이 없는. ②누(漏)는 마음에서 더러움이 새어 나온다(漏泄 누설)는 뜻으로 '번뇌'를 말함. 번뇌의 더러움에 물든 마음 상태, 또는 그러한 세계. 온갖 번뇌와 망상을 일으키는 마음 작용. 차별이나 분별을 일으키는 마음 작용. ③생존에 집착하는 번뇌.
*유루복(有漏福 있을 유/새다·번뇌 루/복 복) ; 평범한 범부 중생이 지은 복(福)은 부귀영화, 명예, 권리, 오욕락 따위의 복으로, 유루(有漏)—샘[漏]이 있는, 번뇌[漏] 또는 고를 더욱 증장시키는—의 복이어서 한도(限度)가 있어 영원성이 없고 영원히 믿을 것이 못된다.
하늘에다 쏘아 올린 화살이 아무리 힘이 센 장사가 활을 당겨서 활을 쐈다 하드라도 올라갈 만큼 올라가면 결국은 다시 땅으로 떨어지고 마는 것처럼, 아무리 큰 복을 쌓는다 하드라도 그 복이 인천(人天)에서 제일가는 부자가 된다 하드라도 자기가 지은 복만큼 다 받아버리면 다시 또 타락하게 된다.

그래서 옛날 성현들은 인간 세상의 그 유루복(有漏福)이라 하는 것은 그 복을 얻으면서 죄를 짓고, 또 얻어가지고 누리면서 죄를 짓고, 또 그 얻었던 것을 결국은 다 없애면서 그 죄를 짓는다. 그래서 『인간의 유루복은 삼생(三生)의 원수다』 이렇게 표현을 한 것이다.

그러나 세상을 살아가려면 유루복도 있기는 있어야 하므로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을 해서 구해야 하고,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을 해서 얻은 복은 그래도 나를 그렇게까지 큰 죄를 짓지 않게 하고, 언젠가 떠나더라도 나를 그렇게 크게 해롭게는 하지 않고 곱게 떠나는 것이다.
유루복이라도 좋은 방법으로 구하고 보시(布施)와 같은 또 좋은 방향으로 잘 사용을 하는데, 보시도 무주상(無住相) 보시를 해야 같은 재보시(財布施)를 해도 결과로 돌아오는 복은 한량이 없다.

참선하는 것이 바로 나를 무심(無心)한 상태로 이끌게 만들고, 무심한 상태에서 재보시, 법보시, 무외보시(無畏布施)를 하면 그것이 바로 무주상 보시가 되는 것이어서, 무주상(無住相)으로 하면 그것이 무루복과 연결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항상 참선하는 마음으로 살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돈도 벌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보시도 한다면, 유루복과 무루복을 겸해서 닦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No.565) - 1996년 설날통알 및 설날차례(1996.02.19)에서.(4분53초)
복(福)이라고 하는 것이, 부처님 말씀에 유루복(有漏福)과 무루복(無漏福)이 있는데, 유루복은 삼생(三生)의 원수다. 왜 그러냐?
유루복은 복을 짓느라고 죄를 지으니 그것 때문에 내가 삼악도(三惡道)에 가게 되니까 그래서 그 유루복은 원수이고, 또 하나는 지어놓은 복을 그놈을 지키고 사용하느라고 또 죄를 짓게 되니까 그래서 또 원수고, 마지막에는 언젠가는 유루복은 나의 몸과 마음과 가정을 갖다가 갈기갈기 짓밟고 찢어 놓고서 떠나기 때문에 또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유루복일망정, 유루복이 없어 갖고는 정말 세상을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유루복이 삼생의 원수라 하더라도 그것이 없어갖고는 당장 어찌 해 볼 도리도 없고, 사람노릇 할 수도 없고, 생활도 할 수도 없고, 자식교육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유루복도 있기는 있어야 하는데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을 해서 구해야, 힘들고 일확천금(一攫千金)은 안 되지만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을 해서 얻은 복은 그래도 나를 그렇게까지 큰 죄를 짓지 않게 하고, 언젠가 떠나더라도 나를 그렇게 크게 해롭게는 하지 않고 곱게 떠나는 것입니다.
부당한 방법으로 억지로 남을 해롭게 하고, 나라의 법을 어기면서까지 무리한 방법으로 취득을 해 놓으면 그것은 머지않아서 큰 재앙을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루복이라도 좋은 방법으로 구하고 또 좋은 방향으로 잘 사용을 하는데, 그것을 사용을 할 때에는 보시를 하는데, 무주상(無住相) 보시를 해야 같은 재보시(財布施)를 해도 결과로 돌아오는 복은 한량이 없는 것이고,

남에게 금전이나 어떤 재산을 보시하면서 내가 이것을 했다고, ‘너한테 보시를 했으니 나한테 너는 응당 고맙게 생각해야 하고, 나한테 그 은혜를 갚아야 한다.’ 그래 가지고 그 과보(果報)를 바래.
공투세를 해 가지고 과보를 바라면 그것이 유주상(有住相)의 보시가 되어서 상대방에 정신적으로 많은 부담감을 주어가지고, 내것 보시하고서 주고받는 사이가 서먹하게 되고, 나중에는 결국 원수가 되는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시는 하되 무주상(無住相)으로 해야 한다.

무루복(無漏福)은 어떻게 짓느냐?
물론 재보시, 법보시, 무외보시(無畏布施)를 하되, 무주상(無住相)으로 하면 그것이 무루복과 연결이 되고, 그 무루복을 참으로 더 훌륭하게 크게 깊게 심으려면 우리 자신이 항상 정법을 믿고, 최상승법에 입각해서 참선(參禪)을 열심히 함으로서, 참선하는 것이 바로 나를 무심(無心)한 상태로 이끌게 만들고, 무심한 상태에서 보시를 하면 그것이 바로 무주상 보시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항상 참선하는 마음으로 살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돈도 벌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보시도 한다면, 유루복과 무루복을 겸해서 닦게 되기 때문에 우리는 살아서부터 도솔천내원궁이나 극락세계에 갈 수 밖에 없는 그러한 복을 심고 종자(種子)를 심기 때문에, 우리는 도솔천내원궁에 가는 것은 걱정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15분50초~20분41초)

*무루(無漏 없을 무/샐·구멍·번뇌 루) ; 유루(有漏)의 대칭어. ①샘[漏]이 없는[無]. 한도(限度)가 없어 영원한. ②마음과 몸을 괴롭히는 번뇌에서 벗어남. 번뇌의 더러움에 물들지 않은 마음 상태. 번뇌가 사라진 경지.
누(漏 산스크리트어 āsrava)는 번뇌(煩惱 산스크리트어 kleśa)의 동의어로 누주(漏注) · 누설(漏泄, 漏洩 흘러나온다) · 누실(漏失) 등으로도 한역한다. 곧 육근(六根)과 아홉 구멍(九孔)에서는 항상 과실(過失 결점. 과오. 허물)과 부정한 것이 흘러나오므로 누(漏)라 한다. 혹은 누란 누락(漏落)의 뜻으로 중생을 삼악도(三惡途 : 지옥, 아귀, 축생)에 떨어뜨린다는 뜻이다. 이러한 누(漏)를 동반한 법을 유루, 그렇지 않은 법을 무루라 한다.
*무루복(無漏福 없을 무/새다·번뇌 루/복 복) ; 번뇌[漏]가 없는 더러움이 없는 복. 영원히 끝장이 나지를 않고 아무리 쓰고 또 써도 바닥이 나지를 않고 다할 날이 없는 복(福), 그것이 무루복입니다.
무루복이라 하는 것은 참선법(參禪法)에 의해서 내가 내 마음을 닦아 가지고 생사해탈하는 이것만이 영원히 생사를 면하는 무루복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참선하는 마음으로 살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돈도 벌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보시하고, 다른 사람에게 「내가 나를 깨닫는 정법」을 믿도록 권고하고 인도하고, 자기도 열심히 닦으면서 남도 같이 닦게 하여 무루복(無漏福)과 유루복(有漏福)을 겸해서 닦아야, 남도 좋고 나도 행복할 수 있는 길을 가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최상승(最上乘) ; 더할 나위 없는 뛰어난 교법. 최상의 가르침. 가장 뛰어난 가르침.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를 벗어나 해탈하였다는 말. 생사의 굴레에서 벗어나 깨달음의 세계, 열반의 경지에 드는 것.
*생사(生死) ; ①생과 사. 살아 있는 것과 죽은 것. ②유전(流轉 윤회의 생존. 생사의 갈림길)의 모습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말. 미혹(迷惑 도리에 어두운 것). 미혹의 세계. 미혹의 모습. 현실 사회의 고뇌. 태어남과 죽음이 번갈아 끊임이 없는 미혹의 세계. 윤회와 같음.
[참고 ❶] 송담스님(No.389)—1989년(기사년) 부처님오신날 법어(89.05.12)에서.
중생의 번뇌심(煩惱心) ‘한 생각’ 일어날 때 새로 태어난 것이고, 그 번뇌가 꺼질 때 또 죽는 것, ‘우리의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한 것이 바로 생사(生死)인 것입니다.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한 그것이 원인이 되어서 생사윤회를 하는 것이어서, ‘이 몸뚱이 살아있으면서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하는 거 그 자체가 바로 생사심(生死心)이요, 생사심이 바로 생사윤회(生死輪廻)인 것입니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천 만의 생각이 일어났다 없어지고, 생각이 일어났다 없어집니다.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을 모르는 사람은 죽었다 깨어날 때마다 업(業)만 더하고, 점점 고통이 심한 윤회를 거듭할 것입니다마는, 활구참선법을 믿는 사람은 한 생각이 일어날 때 ‘이뭣고?’ 자신의 본참화두(本參話頭)를 드는 것입니다.
‘이뭣고?’ 한마디 본참화두를 거각(擧却)할 때, 우리의 마음속에 탐진치(貪瞋痴) 삼독(三毒)을 물리치고, 업장소멸이 되고, 진리를 향해서 나아가게 됩니다.

[참고 ❷]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 상권. 동진(東晉) 평양(平陽) 사문(沙門) 석법현(釋法顯) 한역(漢譯). (동국역경원 | 최민자 번역)
爾時 世尊卽說偈言 我欲棄捐此 朽故之老身 今已捨於壽 住命留三月 所應化度者 皆悉已畢竟 是故我不久 當入般涅槃 我所說諸法 則是汝等師 頂戴加守護 修習勿廢忘 汝等勤精進 如我在無異

그때 세존께서 곧 게송을 말씀하셨다. 나는 쇠약하고 늙은 이 몸을 이제 버리려 하네. 지금 이미 목숨을 버렸어야 함에도 수명을 늘려 석 달을 머물려 하네. 교화(敎化)하고 제도해야 할 일을 모두 다 이미 마쳤네. 그러므로 나는 머지않아 반열반에 들 것이네.
내가 말한 모든 법이 곧 그대들의 스승이니 공경하여 받들고[頂戴] 더욱 지키고 보호하여 닦아 익혀 잊지 말고, 그대들은 부지런히 정진(精進)하여 내가 있을 때와 다름이 없어야 하네.

生死甚危脆 身命悉無常 常求於解脫 勿造放逸行 正念淸淨觀 善護持禁戒 定意端思惟 攝情於外境 若能如此者 是則護正法 自到解脫處 利益諸天人

나고 죽음은 매우 위태롭고 몸과 목숨은 모두 무상하니 항상 해탈을 구하여 방일(放逸)한 행동하지 말아야 하네. 바르게 생각하고 청정하게 관하며 금계(禁戒)를 잘 보호하고 지키며, 산란하지 않은 한결같은 마음[定意]으로 바르게 사유하여 바깥 경계로 치달리는 감정을 거두어야 하네.
만약 이와 같이 하면 이것이 곧 정법(正法)을 보호하는 것이니 스스로 해탈처에 이르러 모든 천상 세계와 인간 세상을 이롭게 하리라.
*해탈(解脫) : [산스크리트어] Vimoksa  [팔리어] Vimutti  음을 따라 비목차(毘木叉) • 비목저(毘木底) • 목저(木底)라고 한다. 모든 번뇌의 속박을 끊어 버리고 온갖 고통에서 벗어난다는 뜻이므로, 도탈(度脫) 혹은 자유자재(自由自在)라고도 한다. 열반은 불교 구경(究竟)의 이상으로써 여러가지 속박에서 벗어난 상태이므로 곧 해탈이라고도 할 수 있다.

*고해(苦海) ; 중생이 태어나서 죽어 윤회하는 영역으로서의 세 개의 세계, 삼계(三界 : 욕계欲界 · 색계色界 · 무색계無色界)에서 생사의 괴로움이 무한하므로 바다에 비유함.
*육도윤회(六途輪廻, 六道輪廻) ; 선악(善惡)의 응보(應報)로 육도(六途 -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의 고락(苦樂)을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것.
*열반(涅槃) ; 산스크리트어 니르바나(nirvāṇa) 팔리어 nibbāna의 음사(音寫). 멸(滅) · 멸도(滅度) · 적멸(寂滅) · 적정(寂靜) · 적(寂) · 안온(安穩) · 원적(圓寂) · 안락(安樂) 등으로 번역.
①타고 있는 불을 바람이 불어와 꺼 버리듯이, 타오르는 탐욕〔貪〕과 노여움〔瞋〕과 어리석음〔癡〕 등의 번뇌의 불꽃을 지혜로 꺼서 일체의 번뇌나 고뇌가 소멸하여 평온하게 된 상태.
사제(四諦)에서 집(集), 곧 괴로움의 원인인 갈애(渴愛)가 소멸된 상태. 모든 미혹의 속박에서 벗어난, 해탈(解脫)한 깨달음의 경지.
②번뇌 망상이 일어나고 꺼짐이 없어져, 지극히 고요하고 깨끗하고 밝고 맑은 경지.

소승법(小乘法)에서는 번뇌를 끊어 버리고 생각을 일으키지 말아야 열반에 든다 하고, 대승법으로는 번뇌가 본래 없는 이치를 깨치면 생각이 일어나도 일어나는 것이 아니어서, 사바세계의 어떤 환경에서 무슨 일을 하든지 늘 열반의 즐거움이 되는 것이다. 따로 열반에 들고 나고 할 것 없이 무엇이나 다 열반이며 어느 때나 늘 열반이다. 이것이 큰 열반인 것이다.
*삼세제불(三世諸佛) ; 삼세(三世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부처님[諸佛].
*무생곡(無生曲) ; 무생의 노래. 생멸(生滅)을 벗어난 진리의 노래. ‘무생’이란 생겨남[生]이 없는 것[無]. 일체법이 생겨나고 멸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떤 것도 자성적 실체를 갖지 않기 때문에 실제로는 생겨나거나 멸하는 것이 없음을 나타내는 말이다. ‘곡(曲)’이란 곡조(曲調)로 종지(宗旨 가르침의 요지)를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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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
인과 · 인연 · 비유2024. 3. 11. 12:27

§(229) 중병(重病)을 앓는 장로 비구의 과거 인연(因緣) 『법구비유경(法句譬喩經)』 18. 도장품(刀仗品) / '남의 마음을 상하게 하지 말자' / 말 조심 / '수행자는 말을 적게 하라'
방편(方便)을 가자(假藉)하지 아니하면 바른 법을 표현하기가 어려운 것 / 인과 방편설로써 자기의 마음가짐 · 말씨 · 인간성 · 행동거지를 돌아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갖어야 / 자기 허물을 볼 줄 알아야 그것을 성현(聖賢)이라 하는 것.

말이라 하는 것은 사람을 죽일 수도 있고 살릴 수도 있고, 말 한마디로 내가 죽을 고비에서 살아나기도 하고, 말 한마디 비끗 잘못해 가지고 내가 죽을 고비에 들어가기도 하는 것입니다.
말이라고 하는 것은 마음과 행동의 중간에 있습니다. 신구의(身口意) 이것이 삼업(三業)인데, 마음에 뭔 생각[意]이 나면 결국은 말[口]을 통해서 그것이 표현이 되고, 마침내는 행동[身]으로써 그것이 실천이 되는데.
마음에서 한 생각이 탁! 일어난 것은 아직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말을 통해서 일차적으로 밖으로 표현이 되고, 그다음에는 행동으로써 그것이 구체화(具體化)되는 것입니다.

'성현(聖賢)도 자기 허물을 보기가 어렵다'는 말도 있는데, 자기 허물을 볼 줄 알아야 그것을 성현이라 하는 것입니다. 범부(凡夫)는 평생 남의 허물만 보고 자기 허물을 못 보는 것이고, 성현(聖賢)이라야 남의 허물을 통해서 자기를 보는 거여. 남의 허물 보기 전에 먼저 자기 허물을 보게 되고, 남의 허물이 바로 자기 허물인 줄 아는 사람은 이것이 바로 성현이라 하는 것입니다.

**송담스님(No.229)—1984년(갑자년) 신수기도 입재(84.02.04) (용229)

 

(1) 약 13분.

 

(2) 약 15분.


(1)------------------

부처님 당시에 현제국(賢提國)이라는 나라가 있었는데, 그 나라에 아주 그 노스님, 아주 장로(長老) 비구(比丘)인데, 연세는 많고 그런 스님 한 분이 있었는데 대단히 중병(重病)을 앓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 여러 달을 씻지도 않고 옷도 빨아 입지도 않고 그래 가지고는 이 노스님이 앓고 있는 그 방에는 그 근처에도 사람이 지내갈 수가 없습니다. 똥 냄새에다, 오줌 냄새에다가, 피고름이 썩어 문드러진 냄새에다, 땀에다 모다 섞어져 가지고 도대체 그 근처만 가도 창자가 거꾸로 뒤집어질 정도로 고약한 냄새가 나서 아무도 그 간호하는 사람이 없어요.

그 부처님께서 떠억 정중(定中)에 관(觀)을 해 보시고 그 늙으신 비구가 그런 중병을 앓고 있는 것을 아시고서 제자들을 거느리고서 그 현제국에 있는 그 노비구(老比丘) 있는 곳을 가셨습니다. 그래 가지고 제자들에게 명(命)해서 차례차례로 그 간병(看病)을 하도록 명을 했습니다.
근데 이 부처님께서 명을 하시니까 마지못해서 간호를 한 척하고, 뭐 왔다갔다하고 어쩌고 그러지만, 그 가기만 가면 비위가 상하고 창자가 뒤집어질라 그러고, 한번만 갔다 오면은 도대체 밥을 먹을 수가 없어. 그래서 형식적으로 거짓으로 그저 간호를 한 척하고 그랬는데, 부처님이 왜 그것을 모르시겠느냐 그 말이여.

부처님이 그것을 아시고서 당신이 손수 더운물을 데워 가지고 가서 그 환자를 옷을 다 벗겨서 다 빨고 몸을 다 깨끗이 씻겨서 씻고, 그 방에 깔아져 있는 마른 풀은—돼지 그 우리 안에 돼지 똥과 오줌이 범벅이 쳐진 것 같이 그 풀이 썩어서 마치 퇴비처럼 되어 있는 것을 쏵 다 손수 다 그것을 걷어내고서 풀을 비어다가 말려서 마른 풀을 깨끗이 다 깔아 놓고, 옷을 빨아 입히고 목욕을 시키고 이렇게 해서 딱 해 놓으니까 그 다른 제자들이 송구스러워서 어쩔 줄을 몰랐어.

그리고 부처님께서 그 제자들을 향해서 법(法)을 설하시기를, "여래(如來)가 이 땅에 온 것은 병(病)들고 가난하고 의지할 곳 없고 한 외롭고 약한 노인(老人)이나, 가난한 사람을 위해서 그 사람을 구제(救濟)하기 위해서 여래는 이 땅에 왔느니라. 앞으로 어떠한 사람이든지 이러한 외롭고 병들고 가난한 노인이나 또는 수행자, 수행하시는 스님들을 잘 약(藥)을 공양(供養)을 하고 의복을 공양을 하고 이 병든 스님을 잘 공양을 올려서 간호를 해드리고 하면은, 그 복은 여래(如來)를 공양하는 복(福)보다도 더 수승(殊勝)하느니라. 그래서 그 복이 무량(無量)해서 자기 원하는 바를 성취치 못하는 바가 없을 것이다" 이렇게 법문을 설하셨습니다.


신수기도, 일주일간 인자 신수기도를 열심히 하셔야지요. 정성(精誠)껏 일주일 동안을 기도를 하셔야 하는데, 일주일 동안만 정성껏 기도하고, 그리고 기도가 끝난 다음에는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으로 마음속이 그뜩해 가지고 생각마다 고약한 생각, 말마다 고약한 소리, 행동을 고약한 행동을 하면, 일주일 기도를 아무리 정성껏 했기로서니 어떻게 그 사람에게 한량없는 많은 복을 받게 될 것이냐 그 말이여.

해마다 정월(正月)에는 그 해에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사는 것이 좋다' 하는, 어떠한 해는 「마음보를 고치자」 그러한 말씀도 내가 했고, 작년에는 「썽을 내지 말자」 이런 말씀을 했는데, 금년에도 「썽을 내지 말며,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썽내게 하지 말자」
다른 사람 속을 이리저리 속상하게 만들어 놓고 "너 금년에는 썽을 안 내는 해여" 이래 해 가지고 약을 올리고, 「자기도 썽을 안 내야 하지만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썽을 내지 않게 하자」 금년에는 이렇게 나는 사부대중(四部大衆) 여러분에게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자기 썽 안 내는 것도 대단히 중요하지만,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썽을 내지 않도록 하는 것도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중요한 일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복을 짓는 것은 남에게 모든 물심양면(物心兩面)으로 베푸는 것도 좋은 것이지만—남의 마음을 어떠한 내가 충격을 가해 가지고,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썽을 내게 하는 거, 속상하게 하는 거—다른 사람을 괴롭히는 짓 하지 않는 것이 참으로 그것이 복을 짓는 데에 보다 더 중대한 일이 되는 것입니다.

'좋은 일 열 가지 한 것 보단 남 못할 일 한 가지 안 하는 것이 더 좋다' 하는 그러한 옛날의 말씀도 있습니다. 참 좋은 일도 많이 하고, 남에게 좋은 일도 많이 하고 하면서 가끔 말을 갖다가 박(薄)하게 해 가지고 남의 오장(五臟)을 활딱 뒤집어놓는 성미(性味)가 있단 말이여.
하는 일마다 본받을 일이 많고 아흔아홉 가지를 다 잘하는데, 가끔 그 말 한마디를 잘못해 가지고 남을 갖다가 오장을 쑤시는 그러한 묘한 취미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더러 있는데, 그것 참 아흔아홉 가지 공을 공(功)들여서 탑을 99층 탑을 쌓아 가지고, 한마디 그 독(毒)한 말로써 그 99층 탑을 때려부시는 격이 되는 것입니다.

병들고 가난하고 외로운 그러한 분들을 잘 보살펴드리고 또 그러한 스님네를 잘 공양을 하는 것 대단히 좋고 그건 반드시 실천을 하되, 돈 안 들고 힘 안 들이고 공덕을 쌓을 수 있는 길. '남의 마음을 상하게 하지 말자' 같은 말이라도 남의 마음을 편안케 해 줘.
그래서 부처님은 '망어(妄語)나 기어(綺語)나 양설(兩舌) 악구(惡口)를 하지 아니할뿐만 아니라, 따듯한 말, 부드러운 말, 자비(慈悲)스러운 말, 사랑하는 말로써 모든 어른과 친구와 아랫사람 이웃 사람에게 대한다면 이것이야말로 참 큰 복(福)을 짓는 것이 되는 것이다'

이 말이라 하는 것은 사람을 죽일 수도 있고 살릴 수도 있고, 말 한마디로 내가 죽을 고비에서 살아나기도 하고, 말 한마디 비끗 잘못해 가지고 내가 죽을 고비에 들어가기도 하는 것입니다.
말이라고 하는 것은 마음과 행동의 중간에 있습니다. 신구의(身口意) 이것이 삼업(三業)인데, 마음에 뭔 생각[意]이 나면 결국은 말[口]을 통해서 그것이 표현이 되고, 마침내는 행동[身]으로써 그것이 실천이 되는데.
마음에서 한 생각이 탁! 일어난 것은 아직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말을 통해서 일차적으로 밖으로 표현이 되고, 그다음에는 행동으로써 그것이 구체화(具體化)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이라고 하는 것은 생각에 떠오르기만 하고 밖으로 표현이 안 되면 자기의 문제로서 끝나지만, 말로써 이미 표현이 되어 버리면 긁어 담지를 못합니다. 더군다나 행동으로 실천을 해 버린 것은 더 말할 것도 없고.
이 말, 불쑥 말이 나오기가 쉬운데, 한번 나가 버리면 그때 입을 탁! 막아 봤자 이미 소용이 없어요. 돈 안 들이고, 힘 안 들이고 사람을 살리고 나를 살리는 그러한 좋은 길.

그 말 한마디, 몽둥이로 사람을 때려야만 사람이 다치는 것이 아니라, 말 한마디 불쑥 잘못해 가지고 참 집안에 모든 시비(是非)도 일어나고, 친구 간에 의(義)도 상하게 되고, 그 대중(大衆)도 소란하게 맨들고, 이 말 한마디가 그렇게 무서운 것입니다.
그래서 '수행자는 말을 적게 하라' 제일조(第一條)에 그 '말을 적게 하라'고 하는 그러한 말씀이 전해온 까닭도 바로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31분2초~43분24초)





(2)------------------

그때 그 부처님께서 그 대중을 향해서 병(病)든 그 비구, 병들고 늙고 약하고 한 그러한 노인을 갖다가 간호를 잘하면 그 복이 한량이 없고, 무슨 원(願)이고 마음먹은 대로 성취가 되는데, 마치 무엇과 같으냐 하면은 '인도(印度)에 있는 다섯 개의 큰 강(江)이 흘르고 흘러서 다 바다에 들어가듯이, 모든 복(福)은 그 사람한테로 다 모여든다' 이것이거든. 그래 가지고 '그 공덕(功德)이 점점점점 원만(圓滿)해 가지고 마침내는 성불(成佛)까지도 할 수가 있다’ 이렇게 법문을 하셨는데.

그때 그 현생국에 왕(王)이 "부처님, 저 노비구는 과거에 무슨 인연(因緣)으로 금생에 저렇게 병고(病苦)에 시달리되 아무도 간병(看病)하는 사람이 없다가, 세상에 부처님 세존(世尊)께서 손수 더운물을 데워서 목욕을 해 주시고 빨래를 해서 갈아입히시고 풀을 뜯어다가 말려서 자리를 깔아 주시고, 어떻게 해서 저 노비구는 어찌 보면은 이 세상에서 제일 박복(薄福)한 사람 같았는데, 오늘 보니까 이 세상에서는 제일 복을 많이 지은 사람 같습니다. 과거(過去)에 무슨 업(業)으로 그렇습니까?" 이렇게 부처님께 여쭈어봤습니다.

부처님께서 과거에 인연을 말씀하시기를, 옛날에 악행왕(惡行王)이라 한 임금이 있었는데, 그 임금은 어떻게 포악(暴惡)하고, 우리나라에 연산군(燕山君)이나 모다 그러한 고약한 왕보다도 더 고약했던지 말로 할 수가 없어. 어떻게 법(法)을 갖다가 일 년이면 몇 번씩 뜯어고쳐 가지고 ‘어떻게 하면 백성을 갖다가 피를 빨아먹으며 어떻게 하면 백성을 괴롭힐까?’ 오직 자나깨나 그것만 연구하는 임금이여.

그래 가지고 법을 어떻게 자주 뜯어고쳐 가지고 백성을 못살게 굴고 그러니 백성이 아무리 그 법을 따르려고 해도 할 수가 없어. 자꾸 법을 고쳐 가지고는 도저히 실천할라야 할 수 없도록 그렇게 고약한 짓만 하면서, 또 그 천하에 장사(壯士)는 전부 뽑아다가 놓고, 임금에 명(命)에 조끔이라도 어겼다 하면은 쇠심줄로 맨든 그 채찍을 가지고 무섭게 매질을 하고 때리는데, 그 매질하는 장사도 아주 물리가 나 가지고 자기한테 은근히 뇌물을 갖다 바치면 아프게 때린 척하면서 안 아프게 때리고, 자기한테 뇌물을 바치지 아니하면 아주 살이 쭉쭉 째져서 피가 쏟아지도록 그렇게 무섭게 후려치고 그런다 그 말이여.

그래서 아주 백성들이 살라야 살 수가 없게 되었는데, 그래서 세상이 그렇게 되면 무고(誣告)로 모략중상(謀略中傷)을 하는 풍조가 천하에 아주 유행이 되는 것입니다.
나라가 잘 다스려지면 서로 믿고 서로 사랑하기 때문에 법(法)은 차츰차츰 간단해지는 것이고, 그래서 약법삼장(約法三章)이라, 성현이 나라를 다스리면 약법삼장이라 해 가지고 법을 간략히 해 가지고 삼장(三章)으로 된다 그 말이여. 법이 아주 간단해. 그래 가지고는 그렇게 법을 미세하게 엄하게 맨들 필요가 없다 그 말이여.

백성들이 모다 자연히 봄이 돌아오면은 날이 따뜻해지면은 얼음이 다 녹고, 땅에서는 더운 김이 무럭무럭 나면서 여기저기서 온갖 산천초목에서는 새싹이 돋으고 잎이 피고 꽃이 피고 여기저기에 모든 산새들은 즐겁게 노래하고 시냇물은 노래를 부르면서 졸졸 흘러내리고, 강산(江山)에는 울긋불긋 꽃이 피어서 사람들은 그 겨울에는 꽁꽁 문을 걸어 잠그고 밖에를 나오지를 못하다가 봄이 오면은 문을 다 열어제끼고 모다 이렇게 해서 사람들이 산으로 들로 논으로 모다 나와서 활동을 하게 되는 거와 같애.
성현이 이 나라를 다스리면은 자연히 인심(人心)이 순화(純化)가 되어 가지고 남을 미워하고 남을 모략하고 무고로 하고 그러한 법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래, 이 남을 조끔 수만 틀렸다면 터무니없는 이 모략(謀略)을 해 가지고는 사람을 갖다가 잡혀가서 죽도록 두들겨 맞도록 맨들고,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한 아주 그 정법(正法)을 믿는 그러한 아주 선량(善良)한 사람이 있었는데, 어떤 사람이 갖다가 오해를 해 가지고 모략을 무고를 해 가지고 그 사람이 잡혀갔습니다. 잡혀가서 참 죽도록 뚜르러 맞을 판인데, 그 사람이 그 장사(壯士)한테 빌기를 "참, 나는 참 정법을 믿는 사람입니다. 내가 절대로 그러한 악한 일을 할 리가 있겠습니까. 이건 어떤 사람이 오해를 해 가지고 이렇게 이 무고로 이렇게 한 것이니 나를 용서를 해 달라"고, "나를 용서를 해 주고 조사를 해 보면 알지 않겠느냐"고.

이렇게 아주 정법을 믿는 선량한 사람이 간곡히 그렇게 말을 하니까, 그 포악한 장사도 한 점 눈물이 있었던지, 그 '정법을 믿는다'는 그 말 한마디에 아프게 때리지를 않고, 그 채찍이 그 사람 몸에 닿지 않도록 엄포만 놓고서 안 아프게 때려 줬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이 다행히 죽지를 않고, 혹독하게 매를 맞지 않고 잘 풀려났습니다.

그러한 일이 있었는데, 그 매질을 혹독히 한 그 장사(壯士)가 죽어 가지고 무간지옥(無間地獄)에 떨어졌습니다. 지옥에 들어가서 그 무서운 고(苦)를 다 받고, 몇백 생(生)을 받았는지 몇 겁(劫)을 받았는지 받고서 겨우 풀려났는데, 뭣이 되었냐 하면은 축생(畜生)이 되었습니다.
축생이 되어 가지고 참 수없이 육백 생(生) 동안을 축생이 되어 가지고 매를 맞았습니다. 이 소 쟁기질을 못한다고 밤낮 후려치고, 또는 말이 되어 가지고 빨리 안 달린다고 뚜드러 패고, 그래 가지고 수없는 참 육백 생 동안을 축생이 되어 가지고 그 혹독한 매질을 당하다가, 겨우 그 자기가 매질한 만큼 몇백 배를 이자까지 쳐서 그 보(報)를 다 받고 난 다음에사 겨우 사람이 되었는데, 평생 동안을 병고(病苦)를 앓게 되었다.

"그때 그 전생에 그 매질을 한 장사(壯士)가 금생(今生)에 태어나 가지고 저 늙은 비구(比丘)가 되었느니라. 그리고 그때 선량(善良)한 백성이, 무고로 잡혀 들어가 가지고 그때 그 장사한테 풀려난 사람이 바로 오늘 나다.
그때 그 장사가 내가 '정법(正法)을 믿는다'고 애원(哀願)을 한 그 한마디로 어떻게 마음을 돌이켜 가지고 나를 매질을 아니하고 잘 풀어준 그 공덕(功德)으로, 그 인연으로 오늘날 내가 손수 저 늙은, 저 고약한 냄새가 나는 저 늙은 비구를 내가 오늘 손수 더운물을 데어서 간호를 하고 이 빨래를 해 주고 하게 되었느니라. 한번 지은 죄(罪)는 생을 바꾸더라도 면(免)하지를 못하는 것이 이와 같은 것이다" 이렇게 대중을 위해서 전생(前生)의 인과(因果)를 설하셨습니다.


'최상승법(最上乘法)을 믿는 사람은 생사(生死)를 초월(超越)을 하고 일대사(一大事) 문제를 해결하기 때문에 이 천칠백 공안(公案), 공안 법문이나 필요하지 인과설(因果說)이 무슨 필요가 있느냐? 거 뭐 인과설, 잔소리만 많이 하고 무슨 그런 소리가 필요하냐?'

'어떠한 것이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입니까?' 하니,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한데,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판치생모(板齒生毛) 의지(意旨)를 일러봐라!'

'이러한 등등(等等)의 법문, 간단한 법문(法門) 한마디면 족하지, 무슨 그런 너저분한 인과설(因果說)을 하느냐?'

이렇게 이 공격을 하고 나를 갖다가 비난을 하는, 나에게 충고(忠告)를 하는 그러한 분이 계셔서, 내 마음으로 "참 옳은 말씀이요. 나한테 직접 그런 말을 해 주어서 대단히 고맙습니다" 이렇게 말을 하고서, "참 그 좋은 말씀을 내가 깊이 참작(參酌)을 하겠습니다" 했는데, 하고서도 나는 또 오늘 올라와서 또 이런 인과설을 말하게 됩니다.
나한테 충고를 해 준 그분한테는 내가 좀 미안하기는 하지만, 아까도 말씀드린 바와 같이 방편(方便)을 가자(假藉)하지 아니하면 바른 법을 표현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거울을 보지 아니하면 내가 내 눈은 볼 수가 없는 것이여. 내 눈은 청황적백(靑黃赤白) 온갖 것을 다 보지만, 눈 자체(自體)는 눈이 자기가 자기 눈을 볼 수가 없어. 거울이나 거울의 대용품을 가자(假藉)하지 않고서는 자기의 눈이 어떻다고 하는 것을 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발심(發心)을 해서 수행을 하고 정법을 믿고 활구참선(活句參禪)을 한다 하더라도, 내가 나의 모습을 보기는 대단히 어려운 것입니다. 그래서 다 부처님 경전(經典)에 나오는 팔만사천(八萬四千) 가지의 그 방편설(方便說)을 가끔 하나씩을 들어서 그것을 살펴봄으로써 자기의 마음가짐과 자기의 말씨와 자기의 행동과 자기의 인간성과 자기의 행동거지를 돌아볼 수 있는 좋은 기회(機會)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지혜 있는 집 며느리는 이웃집, 담 너머 이웃집 며느리 하는 것을 보고 거기서 자기를 깨닫게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경전(經典)에 있는 이런 방편설을 하나씩을 보면은 참, 자기를 반성(反省)할 수가 있지 않겠습니까?

'성현(聖賢)도 자기 허물을 보기가 어렵다'는 말도 있는데, 자기 허물을 볼 줄 알아야 그것을 성현이라 하는 것입니다.
범부(凡夫)는 평생 남의 허물만 보고 자기 허물을 못 보는 것이고, 성현(聖賢)이라야 남의 허물을 통해서 자기를 보는 거여. 남의 허물 보기 전에 먼저 자기 허물을 보게 되고, 남의 허물이 바로 자기 허물인 줄 아는 사람은 이것이 바로 성현이라 하는 것입니다.(43분28초~58분23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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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로(長老) ; ①나이가 많고 덕이 높은 사람을 높여 이르는 말. ②(불교) 덕행이 높고 나이가 많은 스님을 높여 이르는 말.
*비구(比丘) : 산스크리트어 bhikṣu 팔리어 bhikkhu의 음사. 걸사(乞士) · 파번뇌(破煩惱) · 파악(破惡) · 포마(怖魔) · 제근(除饉) 등으로 번역. 남자가 출가하여 중이 되어, 이십 세 이상 된 때에 250계 되는 비구계(比丘戒)를 받은 뒤에라야 비구라고 부른다.
비구에 다섯 가지 뜻이 있는데  ①사유 재산을 모아 두지 않고 걸식하며 지내는 것. ②번뇌 망상을 깨뜨려 버리는 것. ③탐욕과 분노와 우치가 불붙는 번뇌의 집에서 뛰어나는 것. ④부처님의 계율을 깨끗하게 지키는 것. ⑤외도와 악마가 무서워하는 것 등이다. 여승(女僧)은 비구니(比丘尼 bhikkuni)라고 하는데, 모든 것이 남승과 같고, 오직 348계 되는 비구니계를 지켜야 한다.
*정(定) : ①계(戒) • 정(定) • 혜(慧) 3학의 하나. ②[산스크리트어] samadhi  음대로 써서 삼마지(三摩地) • 삼마야(三摩耶) 또는 삼매(三昧)라고 한다. 마음이 움직이지 않아서 생각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지 않음을 말한다.
*법(法) ; (산스크리트어) dharma, (팔리어) dhamma의 한역(漢譯). ①진리. 진실의 이법(理法). ②선(善). 올바른 것. 공덕. ③부처님의 가르침. ④이법(理法)으로서의 연기(緣起)를 가리킴. ⑤본성. ⑥의(意)의 대상. 의식에 드러난 현상. 인식 작용. 의식 작용. 인식 내용. 의식 내용. 마음의 모든 생각. 생각.
*여래(如來) : 부처님 10호의 하나. 산스크리트어 Tathagata의 역(譯).
여(如)는 진여(眞如)의 뜻이니 곧 진여로부터 나타나 오신 각자(覺者)의 뜻. 또 여거여래(如去如來)의 뜻으로서 여여부동(如如不動)하게 사바세계에 오셔서 중생의 근기에 응하신 까닭에 여래(如來)라고 함. 『금강경』에는 좇아온 곳이 없고 또한 돌아갈 곳이 없으므로 여래라고 이름한다 했음.
*공양(供養 이바지하다·받들다·모시다·바치다 공/기르다·공양하다 양) ; ①불(佛)•법(法)•승(僧)의 삼보(三寶)나 스승, 부모, 영가에 음식, 옷, 약, 꽃, 향 등을 바침. ②스님들의 식사를 공양이라 하는데, 이것은 스님들은 시주(施主)의 공양물로 생활하기에 ‘공양을 올리는 이[施主]’의 시은(施恩)을 상기하여 잊지 않게 하고자 함이다. ③신구의(身口意) 세 가지 방법으로 하는 공양으로 삼업공양(三業供養)이라 한다. 자세[身]를 낮추어서 삼가고 공경하는 예를 갖추는 공경, 입[口]으로 훌륭함을 기리는 찬탄, 오로지 마음[意]을 쏟는 존중이다.
*신수(身數)기도 ; 지난 1년 동안의 죄업을 참회하고, 새해를 맞아 정초에 1년 동안의 안녕과 소원을 기원하는 기도.
*신수(身數 몸·나·자신 신/운수 수) ; 사람의 운수(運數). 사람의 운명(運命)이나 길흉화복(吉凶禍福)의 운수.
*탐(貪) ; 자기의 뜻에 잘 맞는 사물에 집착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진(瞋) ; 자기의 마음에 맞지 않는 것에 대하여 분하게 여겨 몸과 마음이 편안하지 못하게 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치(癡) ; 현상이나 사물의 도리를 이해하지 못하여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는 번뇌를 이른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삼독(三毒) ; 사람의 착한 마음(善根)을 해치는 세 가지 번뇌. 욕심·성냄·어리석음(貪瞋癡) 따위를 독(毒)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만(慢) ; 남을 업신여기고 자신을 높이는 마음 작용.
*의(疑) ; 인과(因果)의 진리를 의심하는 마음 작용.
*악견(惡見) ; 올바르지 않은 견해. 그릇된 견해.
*사부대중(四部大衆) ; 불문(佛門)에 있는 네 가지 제자. 곧 비구(比丘), 비구니(比丘尼) 등 출가 제자와 우바새(優婆塞), 우바이(優婆夷) 등 재가 제자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사중(四衆)과 같은 말. 줄여서 사부(四部)라고도 한다.
[참고] 우바새 : upāsaka의 음역. 삼귀의(三歸依)와 오계(五戒)를 받아 지니는 남성 재가신도.(같은 말=靑信士, 靑信男, 信男, 信士, 居士, 近事男, 近善男, 善宿男)
원래의 말뜻은 모시는 사람. 받들어 모시는 사람. 출가자와 승단을 가까이에서 돌보고 보호하며 한편 가까이 배우는 사람이라는 뜻을 지닌다. 선숙(善宿)은 선(善)을 품어 그것에 머물기[宿] 때문에 선숙이라고 한다.
우바이 : upāsikā의 음역. 삼귀의(三歸依)와 오계(五戒)를 받아 지니는 여성 재가신도. (같은 말=靑信女, 信女, 近事女, 近善女, 善宿女)
*박하다(薄-- 엷다·얇다·적다·야박하다 박) ; ①(마음 씀씀이나 태도가) 너그럽거나 푼푼하지 못하여 야멸치고 쌀쌀하다. ②(이익이나 소득이) 많지 않아 보잘것없다. ③(무엇이) 두께가 얇다. ④(물건의 품질이) 변변하지 못하다.
*망어(妄語) ; 거짓말이나 헛된 말.
*기어(綺語) ; 진실이 없는, 교묘하게 꾸민 말.
*양설(兩舌) ; 이간질하는 말.
*악구(惡口) ; 남을 괴롭히는 나쁜 말. 욕.
*삼업(三業) : trini karmani  몸[身]과 입[口]과 뜻[意]으로 짓는 세 가지 행동 전체를 말한다.
몸으로 짓는 살생(殺生), 투도(偸盜), 사음(邪淫) 세 가지와, 입으로 짓는 망어(妄語), 기어(綺語), 양설(兩舌), 악구(惡口) 네 가지와, 뜻으로 짓는 탐심(貪心), 진심(瞋心), 치심(痴心)의 세 가지가 있다. 이것이 삼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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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덕(功德 공로·보람 공/덕 덕) ; ①복, 좋은 결과를 가져 오는 원인이 되는 뛰어난 복덕(福德). ②선한 마음으로 남을 위해 베푸는 모든 행위와 마음 씀씀이.
무엇보다 가장 큰 공덕은 불법에 귀의하여 깨달음을 닦는 것이고, 이러한 사람을 보고 함께 기뻐하는 것도 큰 공덕(隨喜功德)이 된다. 이러한 공덕은 끝이 없어서 수천 사람이 횃불 하나에서 저마다 홰를 가지고 와서 불을 붙여 가더라도 원래의 횃불은 사그러들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참고] 『대승의장(大乘義章)』 (제9권) ‘二種莊嚴義四門分別’에서.
言功德者 功謂功能 善有資潤福利之功 故名爲功 此功 是其善行家德 名爲功德

공덕에서 공(功)은 공능(功能, 功績과 才能)을 말하니, 선을 쌓는 등 복되고 이로운 공능을 지닌 것을 공(功)이라고 하며, 이 공을 통해 이루어진 선행에 따른 덕을 공덕이라고 한다.
*원만(圓滿 둥글·온전할·원만할 원/찰·가득할 만) : ①완전한. 부족함이 없는. 결함이 없는. 모두 갖추어져 있음. ②증감이 없는 평등무애한 경지. 흠 없는 법의 특징 또는 구경의 깨달음 등을 형용하는 말.
[참고 ❶] 『아비달마순정리론(阿毘達磨順正理論)』 제32권 「辯緣起品 第三之十二」 (대정장29, p.525c21)
言圓滿者 謂於佛身 衆相周圓 無缺減故

원만이라는 말은 부처님 몸에 온갖 상호가 두루 완비되어 결함이 없다는 뜻이다.

[참고 ❷] 『대보적경(大寶積經)』 제60권 「文殊師利授記會 第十五之三」 (대정장11, p.346c3)
文殊師利言 善男子 若法不增不減 是名圓滿 云何圓滿 若於諸法 不能了知 則生分別 若能了知 則無分別 若無分別 則無增減 若無增減 此則平等 是故善男子 若見色平等 卽是色圓滿 受想行識 及一切法圓滿 亦復如是

문수사리가 말했다. 선남자야, 증가하지도 않고 감소하지도 않는 법을 원만이라 한다. 무엇을 원만이라 하는가? 모든 법에 대하여 분명하게 알지 못하면 분별이 일어나지만, 분명하게 안다면 분별이 사라진다. 만일 분별이 사라진다면 증감이 없고, 증감이 없다면 이것이 평등이다. 그러므로 선남자야, 만일 색을 평등하게 보면 색의 원만이니, 수 · 상 · 행 · 식과 다른 모든 법의 원만도 이와 같다.

*성불(成佛 이룰 성/부처 불) ; ①세상의 모든 번뇌를 끊고 해탈하여 불과(佛果)를 얻음. 곧 부처가 되는 일을 이르는 말이다. ②석존이 붓다가야에서 깨달음을 연 것. ③올바른 깨달음을 얻은 것. 혹은 분명하게 완전히 깨달은 것이라는 뜻.
*간병(看病) ; 환자를 간호(看護)하는 것. 또는 그 일을 맡은 스님.
*세존(世尊) : [산스크리트어] Bhagavat ; Lokanatha ; Lokajyestha의 음역(音譯)으로 바가범(婆伽梵) · 로가나타(路迦那他) · 로가야슬타(路伽惹瑟吒)라 하며 부처님 십호(十號)의 하나, 부처님은 원만한 공덕을 갖추어 세상에서 가장 높으시므로, 이렇게 부르며 석존(釋尊)이라고도 한다.
*박복(薄福 엷을·적을 박/복 복) ; 복이 별로 없음. 또는 팔자(八字, 사람의 타고난 운수나 분수)가 사나움.
*업(業) ; 업(業)은 행위(行爲)이다. 우리의 행위, 행동에 의해 일어나는 일종의 세력(勢力) 또는 형성력(形成力)을 말한다. 그리고 이 세력에 의해 하나의 행위는 반드시 그 때가 이르면 그에 상응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〇업의 종류.
(1)중생이 행하는 모든 행위를 3가지로 나누어, ①몸으로 행하는 모든 행위를 신업(身業) ②입(口)을 통해 말로 하는 행위를 구업(口業) ③생각으로 짓는 모든 것을 의업(意業)이라 한다.
이 3가지 업(業)을 신·구·의 삼업(三業)이라 하는데, 삼업(三業)은 결국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우리의 일상생활’이다
(2)업에 의하여 과보(果報)를 받는 시기에 따라, ①금생(今生 : 지금 살고 있는 생)에 업을 지어 금생에 과보를 받는 순현업(順現業) ②금생에 업을 지어 다음 생에 받는 순생업(順生業) ③금생에 업을 지어 삼생(三生) 후에 받는 순후업(順後業)이 있다. 위의 삼시업(三時業)은 갚음을 받는 시기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정업(定業)이라 하고, 여기에 대해서 시기가 정해져 있지 않은 것을 부정업(不定業)이라 한다.
(3)업의 성질(性質) 따라, ①선심(善心)에 의해서 일어나는 선업(善業)과, ②악심(惡心)에 의해서 일어나는 불선업(不善業, 악업(惡業))과, ③선악(善惡) 어떤 것도 아닌 무기심(無記心)에 의해서 일어나는 무기업(無記業)의 셋을 삼성업(三性業)이라고 한다. 그 과보도 선업은 좋은 과보를 받고, 악업은 고(苦)의 과보를 받는다.

*포악(暴惡 사나울 포/악할 악) ; 사납고 악독함.
*장사(壯士 장壯하다·굳세다·씩씩하다 장/선비·사내·남자 사) ; 기개와 힘이 아주 굳센[壯] 사람[士].
*쇠심줄 ; 소의 힘줄.
*무고(誣告 속이다·왜곡하다 무/고하다·알리다 고) ; 사실이 아닌 일을 거짓으로 꾸미어 해당 기관에 고소하거나 고발하는 일.
*모략중상(謀略中傷 꾀·계략 모/꾀·경영하다 략/마음·심중 중/해치다·상하다 상) ; 남을 해롭게 하는 모략(謀略)과 남을 헐뜯어 명예를 손상(損傷)함. 또는 그런 일.
*무간지옥(無間地獄) ; 아비지옥(阿鼻地獄)이라고도 함. 아비(阿鼻)는 산스크리트어 avīci의 음사(音寫)로서 ‘아’는 무(無), ‘비’는 구(救)로서 ‘전혀 구제받을 수 없다’는 뜻. 이 지옥에 떨어진 중생은 한 치의 빈틈도 없이 끊임없이 고통을 받기 때문에 무간(無間)이라 한다.
아버지를 죽인 자, 어머니를 죽인 자, 아라한을 죽인 자, 승가의 화합을 깨뜨린 자, 나쁜 마음으로 부처님의 몸에 피를 나게 한 자 등, 지극히 무거운 죄를 지은 자가 죽어서 가게 된다는 지옥.

이 지옥에 떨어지는 죄인에게는 필파라침(必波羅鍼)이라는 악풍(惡風)이 있는데 온몸을 건조시키고 피를 말려 버리며 또 옥졸이 몸을 붙잡고 가죽을 벗기며, 그 벗겨낸 가죽으로 죄인의 몸을 묶어 불 수레에 싣고 훨훨 타는 불구덩이 가운데에 던져 넣어 몸을 태우고, 야차(夜叉)들이 큰 쇠 창을 달구어 죄인의 몸을 꿰거나 입, 코, 배 등을 꿰어 공중에 던진다고 한다. 또는 쇠매(鐵鷹)가 죄인의 눈을 파 먹게 하는 등의 여러 가지 형벌로 고통을 끊임없이 받는다고 한다.
*겁(劫) ; (산스크리트어) Kalpa  음을 따라 갈랍파(羯臘波) 또는 겁파(劫波)라 하고, 다시 줄여서 겁(劫)이라고만 한다. 인도에서의 가장 긴 시간단위. 지극히 긴 시간. 무한히 오랜 세월을 가리키는 말이다.

[참고] 겁(劫)의 무한히 긴 시간을 개자겁(芥子劫) • 반석겁(盤石劫)으로 비유한다.
-개자겁(芥子劫) : 가로•세로•높이가 각각 1유순(由旬,약 8km)인 성(城) 안에 겨자 씨를 채워, 100년에 한 알씩 집어내어 겨자 씨가 다 없어진다 해도 1겁이 끝나지 않는다고 한다.
-반석겁(盤石劫) : 가로•세로•높이가 각각 1유순(由旬,약 8km)인 큰 반석(盤石)을 부드러운 천으로 100년에 한 번씩 쓸어 반석이 다 닳아 없어진다 해도 1겁이 끝나지 않는다고 한다.
*보(報) ; 과보(果報), 인과응보(因果應報, 전생에 지은 선악에 따라 현재의 행과 불행이 있고, 현세에서의 선악의 결과에 따라 내세에서 행과 불행이 있는 일).
*애원(哀願 슬프게·애처로이 애/원하다·빌다 원) ; 소원이니 요구 따위를 들어 달라고 애처롭게[哀] 사정하여 간절히 바람[願].
*인과(因果) : 무엇이나 원인 없는 결과가 없고, 결과 없는 원인이 없다. 콩 심은 데 콩이 나고, 팥 심은 데 팥이 나서, 이 세상의 온갖 일과 모든 물건이 반드시 인과의 법칙대로 되어 가는 것이다. 사람의 일도 착한 일을 하면 복을 받고, 악한 짓을 하면 재앙을 받아서 길(吉) • 흉(凶) • 화(禍) • 복(福)이 하나도 우연한 것이 없다.

그러나 그 보응(報應)의 나타남이 원인을 짓는 그 즉시로 곧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의 환경이 복잡하고, 마음 쓰는 것이 또한 한결같지 않기 때문에 무거운 쪽부터 먼저 실현되어, 짓는 그 당장에 받게 되는 순현보(順現報)와, 짓는 그 즉시에 받지 않고 그 다음 시기에 받는 순생보(順生報)와, 받기는 반드시 받되 언제 받게 될지 일정하지 않은 순후보(順後報)가 있다.
이 세 가지 과보(果報)는 금생(今生) 안에 실현되기도 하고, 여러 생[多生]을 통하여 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착한 사람이 빈천하거나, 악한 사람이 잘되는 것은 일시적인 현상일 따름이다.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간화선(看話禪) ; 화(話)는 화두(話頭)의 준말이다. 간화(看話)는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을 본다[看]’는 말로써,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이 화두를 관(觀)해서, 화두를 통해서 확철대오하는 간화선을 전강 조실스님과 송담스님께서는 ‘최상승법(最上乘法)’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고 말씀하신다.
*일대사(一大事) ; 매우 중요하거나 아주 큰 일. 삶과 죽음, 즉 생사(生死)의 일.
①부처님이 중생구제를 위해 세상에 나타난다고 하는 큰 일. 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목적. ②가장 중요한 일이란 뜻. 수행의 목적. 깨달음을 얻는 것. 인간으로서의 완성.

『법화경』 방편품에 ‘諸佛世尊, 唯以一大事因緣故, 出現於世  모든 부처님은 오직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 때문에 세상에 출현한다’라고 한 것에서 유래.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한 목적은 깨달음을 얻기까지의 과정을 보이고, 지혜를 발휘하여 모든 중생을 깨닫게 하고 구제하는 것이다.
*천칠백 공안(千七百 公案) ;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에 천칠백일 명의 인물들이 보여준 기연어구(機緣語句, 깨달음을 이루는 기연에 주고받은 말과 경전·어록의 글)를 수록하고 있는 것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
*판치생모(板齒生毛) ; 화두(공안)의 하나. 版과 板은 동자(同字).
[참고 ❶] 『선문염송(禪門拈頌)』 (고려 진각혜심眞覺慧諶 선사 편찬) 475칙 ‘판치(版齒)’
(古則) 趙州因僧問 如何是祖師西來意 師云版齒生毛.

조주 스님에게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선사가 대답하였다.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投子靑頌) 九年小室自虛淹 爭似當頭一句傳 版齒生毛猶可事 石人蹈破謝家船

투자청이 송했다.
9년을 소림에서 헛되이 머무름이 어찌 당초에 일구 전한 것만 같으리오.
판치생모도 오히려 가히 일인데 돌사람이 사가(謝家)의 배를 답파했느니라

[참고 ❷] 『언하대오(言下大悟)』 (전강 선사 법어집 | 용화선원刊) p53~54.
어떤 스님이 조주 스님께 묻되, “어떤 것이 ‘조사서래의’입니까?(如何是祖師西來意)” 하니 답하시되,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하셨다. 즉, 「어떤 것이 달마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 「판치에 털이 났느니라」라고 하는 화두.

그러면 조주 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을까?  이 화두도 ‘무자’ 화두와 같이 ‘판치생모’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판치생모”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께 뜻이 있는 것이니, 학자들은 꼭 조주 스님의 뜻을 참구할지어다.
“어째서 ‘무’라 했는고?” 하는 것과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하는 것은 조금도 다름이 없는 것이다.

*방편(方便 방법·수단 방/편할 편) ; 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그때마다의 인연에 적합하게 일시적인 수단으로 설한 뛰어난 가르침. 중생 구제를 위해 그 소질에 따라 임시로 행하는 편의적인 수단과 방법.
곧 불보살이 중생의 근기에 적절하게 응하여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하여 법을 펼쳐 보임으로써 그들을 교화하여 이익되게 하는 것을 말한다.
*가자(假藉 임시·일시/깔다·빌리다 자) ; 임시로 빌림. ‘藉’는 ‘借(차, 적)’의 본자.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을 일으킴[發].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보리심은 모든 부처님이 부처님이 될 수 있었던 바탕이 되는 종자이고 청정한 법이 자라날 수 있는 좋은 밭이기 때문에 , 이 마음을 발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면 속히 위없는 보리를 증득한다.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본참공안]를 받아서,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사구(死句) ; 분별과 생각으로 공안(화두)을 따지고 이리저리 분석하여, 마음 길이 끊어지기 커녕은 점점 분별심(分別心)이 치성(熾盛)해지기 때문에 그것을 사구(死句)라 한다. 죽은 참선[死句參禪].
활구(活句) ; 깨달음은 중생의 사량분별(思量分別)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고, 사량분별이 끊어짐으로 해서 깨달음에 나아갈 길이 열리는 것이어서, 일체처 일체시에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으로 화두를 거각하면 일부러 사량분별을 끊을려고 할 것도 없이 끊어지기 때문에 이것을 활구(活句)라 한다.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저 | 송담선사 역 | 용화선원 刊) p49~52. (가로판 p50~53)
大抵學者는  須參活句언정  莫參死句어다.

대저 배우는 이들은 모름지기 활구(活句)를 참구할지언정, 사구(死句)를 참구하지 말지어다.

<註解> 活句下에  薦得하면  堪與佛祖爲師요,  死句下에  薦得하면  自救도  不了니라.  此下는 特擧活句하야  使自悟入이니라.
【 要見臨濟인댄  須是鐵漢이니라

활구(活句)에서 얻어 내면 부처나 조사의 스승이 될 만하고, 사구(死句)에서 얻는다면 제 자신도 구하지 못할 것이다. 이 아래는 특히 활구(活句)를 들어 스스로 깨쳐들어가게 하는 것이다.
【 임제를 친견하려면 쇠뭉치로 된 놈이라야.

<評曰> 話頭에  有句意二門하니  參句者는 徑截門活句也니  沒心路沒語路하며  無摸索故也요,  參意者는  圓頓門死句也니  有理路有語路하며  有聞解思想故也라.

평해 가로되, 화두(話頭)에 참구(參句)와 참의(參意) 두 가지 문이 있으니, 참구(參句)는 경절문 활구(徑截門活句)니, 마음 길이 끊어지고 말 길도 끊어져서 더듬고 만질 수가 없는 때문이요,
참의(參意)라 하는 것은 원돈문 사구(圓頓門死句)니, 이치의 길도 있고, 말의 길도 있으며, 들어서 알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경절문(徑截門) : 지름길문. 교문(敎門)의 55위(位) 점차(漸次)를 거치지 않고 한번 뛰어서 여래의 경지에 바로 들어가는 문. 다시 말하면 화두(공안)을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
*원돈문(圓頓門) : 원교(圓敎)와 돈교(頓敎)가 교문(敎門)에 있어서는 가장 높고 깊은 이치를 가르친 바이지만, 말 자취가 남아 있고 뜻 길이 분명히 있어서 참으로 걸림 없는 이치를 완전히 가르친 것이 못된다. 오직 조사선이 있을 뿐이다.
*팔만사천(八萬四千) : 중생의 망상이 벌어져 나가는 것을 자세히 분석하면 팔만사천 갈래가 된다고 한다. 그러므로 망상을 따라 일어나는 악마의 수효도 팔만사천이요, 망상을 다스리는 법문도 팔만사천이다.
인도에서는 많은 수효를 말할 때에는 이 말을 쓰는 수가 가끔 있다. 줄여서 팔만이라고만 하기도 한다.
*성현(聖賢) ; 성인(聖人)과 현인(賢人)을 아울러 이르는 말.
*범부(凡夫 무릇·보통 범/남편·사내 부) ; 무명 번뇌(煩惱)에 얽매여 업에 따라 과보를 받아 자재롭지 못하여 생사(生死)를 초월하지 못하는 사람. 각각의 중생들이 서로 다른 업으로 말미암아 윤회하기 때문에 이생(異生) 또는 이생범부(異生凡夫)라고도 한다.
사향사과(四向四果)의 성인을 기준으로 보면 도를 깨닫지 못한 이들을 모두 범부라 하고, 대승은 성문 · 연각 · 보살 · 불(佛) 등 사성(四聖)을 기준으로 하여 보면 육도에서 생사윤회하는 중생들은 모두 육범(六凡)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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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700여 개의 ‘참선 법문(法門)’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 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 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그리고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도 있습니다.

참선법 A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B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C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D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E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A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B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C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D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E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700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인과 · 인연 · 비유2024. 1. 27. 21:16

 

 

§(210) 부처님의 ‘큰 나무 기둥[大方梁]’ 비유 설법, 목동 · 두꺼비 인과 설화. 《근본설일체유부비나야약사(根本說一切有部毘奈耶藥事)》 / 한 생각, 한마디 말의 결과가 무섭고 소중하다 / 한 생각을 잘 단속을 해 화두를 들고 나가라.

과거 한량없는 생(生) 동안 깊은 불법의 인연이 있어서 금생에 이렇게 모다 한자리에 모이셨습니다마는, 앞으로 다시는 퇴전(退轉)하지 아니하고 금생에 결정코 대도(大道)를 성취해서 생사해탈(生死解脫)을 하려면, 우리의 끊임없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그 한 생각, 한 생각을 정말 뼈아프게 단속해 나가서 다시는 일어나는 한 생각을 섣불리 흘려보내지 말 것이며,
눈으로 한 가지 일을 보거나, 귀로 어떤 한 소리를 듣거나, 어데서 무엇을 하던지 간에 한 생각 한 생각을 잘 단속을 하고,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육근(六根)과,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 육경(六境), 육식(六識)을 물샐틈없이 단속을 해 가지고 화두(話頭)를 들고 나가야만 할 것입니다.

**송담스님(No.210)—1983년 칠석법회(83.08.15) (인과 인연)(용210)

 

(1) 약 13분.

 

(2) 약 12분.



(1)------------------

부처님께서 아란 존자를 데리고 무능적국(無能敵國)에 들어가셔서 항하사(恒河沙) 강변을 지나고 계실 때에, 마치 한 수행승이 부처님 곁으로 다가와서 법문(法門)을 청했습니다.

그 부처님께서 그 수행승에게 무슨 법문을 해 주셨냐 하면은 마치 그때에 갠지스 강 가운데에 큰 나무 기둥 하나가 떠내려오고 있었습니다.
그 기둥을 부처님께서 가리키시면서, “저 기둥을 봐라! 저 나무 기둥이 이쪽 언덕에도 걸리지 아니하고, 저쪽 언덕에도 걸리지 아니하고, 또 강 중간에도 걸리지 아니하며, 또 강물의 소용돌이 속에도 들어가서 뱅뱅 맴돌지 아니하면, 결국은 저 나무 기둥은 흐르고 흘러서 마침내는 저 바다로 도달하고 말 것이니라”

그러면 ‘이쪽 언덕에 걸리지 않는다’는 것은 무엇이냐 하면은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혀로 맛보고, 몸뚱이로 감각하고, 생각으로 알고 하는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에 걸리지 아니하는 것을 말하는 게고.
‘저쪽 언덕에도 걸리지 아니한다’는 말은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의 상대가 되는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 바깥 경계에도 집착하지 아니한다고 하는 것을 비유한 것이고.
‘중간에 걸리지 아니한다’고 하는 것은 눈으로 어떠한 색(色)을 보면 속에 안식(眼識)이라 하는 것이 생기고, 귀로 바깥 경계 소리를 들으면 속에 이식(耳識)이라고 하는 것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육식(六識)이 생기기 때문에 '그 육식에도 걸리지 아니한다'고 하는 것을 비유한 것입니다.

그리고 ‘물의 소용돌이 속에 걸리지 아니한다’ 하는 것은 학문이나 경전이나 그러한 것을 보다가 알음알이에 집착을 한다고 하는 데에 비유를 한 것입니다.
요새 불자(佛子) 가운데에 지성인 측에서 교리적으로 공부하기를 좋아하고 그러는데, 무슨 경전이나 다 부처님의 소중한 진리가 담겨 있는 법문이기는 사실이나, 그러한 경을 올바르게 보지를 못하고 사량분별(思量分別)로 따져서 알아들어가는 데에 맛을 붙여 가지고 그렇게 해서 거기에 집착을 하면, 그 나무토막이 강물에 떠내려가다가 뱅뱅뱅뱅 도는 그 소용돌이 속에 한번 들어가면 밤낮 그 자리에서 돌기만 하고 거기서 빠져나오지를 못하기 때문에 바다에는 도달을 못하고 마는 것입니다.

불법(佛法)도 이쪽에도 걸리지 아니하고, 저쪽에도 걸리지 아니하고, 중간에도 걸리지 아니하고, 소용돌이에도 머꾸지를 않는다면 반드시 깨달음에 이르고 마는 것이다. 이러한 내용의 법문을 그 수행승에게 해 주셨습니다. 그 법문을 듣고 그 수행승은 깨달음을 얻고 떠났습니다.(20분52초)


그 법문을 설하실 때에 그 곁에서 소를 치는 목동(牧童)이 어떻게 열심히 그 법문을 들었던지, 거기서 발심(發心)을 해 가지고 목동을 그만두고 당장 그 자리에서 출가할 결심을 하고 부처님께 허락을 해 주시라고 간청을 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네가 지금 목동의 책임을 맡아 가지고 남의 소를 기르고 있으니 그 소를 갖다가 주인한테 갖다가 인계를 하고 주인한테 인사를 하고 그리고서 오너라”
목동은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여기에 있는 소들은 전부 송아지들이기 때문에 소 어미는 주인한테 있으므로 그냥 놔두어도 송아지들은 제 어미를 찾아가기 마련입니다. 그러니 그럴 필요도 없이 당장 이 자리에서 계(戒)를 설해주십시오” 그러니까.

“아니다. 그럴 수가 없는 것이다. 반드시 저 송아지를 주인한테 정식으로 인계를 하고, 너도 네 몸도 그 주인한테 고용이 되어 있으므로 정식으로 하직(下直) 인사를 하고 와야지 그럴 수가 있느냐”

그래서 그 목동은 그 송아지 떼를 몰고 그 주인한테로 달려갔습니다. 송아지는 자기의 목동이 달려가니까 덩달아서 달려가는데, 목동은 달려가면서 “무섭다. 무섭다. 무섭다. 무섭다” 하면서 계속 달려갔습니다. 그러니까 다른 목동들도 "무엇이 무서우냐?"고 하면서 달려갔습니다.

‘무엇이 무서우냐? 하면은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 무섭고, 늙은 것이 무섭고, 병든 것이 무섭고, 죽는 것이 무섭다’
이런 뜻으로써 계속 “무섭다. 무섭다” 하면서 주인한테 쫓아가 가지고 송아지를 인계하고 그리고 하직 인사를 하고 되돌아오면서 계속 “무섭다”고 또 오니까, 5백 명의 다른 목동들도 그 목동을 따라서 같이 부처님 처소로 와 가지고, 그 목동과 다른 5백 명의 목동이 일시에 출가를 해 가지고 부처님 제자가 되어서 다 아라한과(阿羅漢果)를 증득(證得)을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목동이 법문을 들을 때에 가지고 있던 지팽이가 있었는데, 그 지팽이 끝에 꽂혀서 죽은 두꺼비가 한 마리 있었던 것입니다.
목동은 부처님 법문 듣는 데에 너무 골몰한 나머지 자기 작대기가 두꺼비의 등어리에 놓아져 있는 것도 모르고 계속 열심히 듣다 보니까 힘을 계속 그 작대기에다 힘을 주어 가지고, 작대기가 두꺼비 등어리를 뚫고 창자를 꿰뚫어서 맞창이 났던 것입니다.

그 두꺼비는 작대기가 자기 등어리에 닿을 때에 비명을 질렀으면 그 목동이 깜짝 놀라서 그 작대기를 치웠을 텐데, 그 두꺼비라는 놈은 ‘자기가 만약에 빽빽 하고 소리를 지르면 그 목동이 깜짝 놀라 가지고 부처님 법문 듣는 데에 방해가 될까봐 차라리 내가 이대로 죽을지언정 어찌 부처님 법문 듣는 그것을 방해를 할 수가 있겠는가’
그래 가지고 그 두꺼비도 보통 두꺼비가 아니라 이상한 두꺼비가 되어 가지고 두꺼비 저도 법문을 들을 뿐만 아니라, 그렇게 해서 그 자리에서 목동의 작대기에 찔려서 죽었던 것입니다.

그러한 거룩한 생각으로 인해서 그 두꺼비는 죽어서 바로 사천왕(四天王)에 태어나 가지고 천자(天子)가 되었던 것입니다.
천자가 되어 가지고 가만히 생각하니 너무너무 부처님 은혜가 지중하고 감사하기 때문에 '천자의 옷차림을 떠억 하고서 하늘나라에서 내려와 가지고 부처님을 뵈옵고, 전생(前生)에는 두꺼비의 몸으로 법문을 들었지만, 금생에는 내가 천자의 옷을 입고서 부처님의 법문을 들으리라. 그리고 감사한 예배를 올리리라’

이래 가지고 달밤에 달은 휘황창 밝은데 하늘나라에서 꽃비를 내리면서 찬란한 모습으로 천상에서 부처님 처소로 내려왔습니다. 내려와 가지고 부처님께 무수배례(無數拜禮)를 올리고, 부처님의 법문을 듣고서 다시 확철대오를 해 가지고 천상에를 올라갔던 것입니다.

그런데 대중들은 꽃비가 내리고 장엄한 하늘나라의 음악이 울린 것만 보았지, 제석천왕(帝釋天王)이 내려온 것은 보지를 못해서 그 이튿날 부처님께 “어젯밤에 부처님께 무슨 신기한 일이 있었습니까?”하고 여쭈어 보았습니다.
그리고 “또 어떻게 해서 그 목동이 전생에 무슨 인연으로 해서 이렇게 자기뿐만이 아니라 5백 명의 목동을 데리고 이렇게 와서 출가해 가지고 부처님 법문에 의지해서 이렇게 눈을 뜨게 되었습니까?” 부처님께 여쭈니까 부처님께서 그 목동의 전생과 두꺼비의 전생에 대한 법문을 해 주셨습니다.(15분57초~28분14초)





(2)------------------

전생에 가섭파여래(迦攝波如來)라고 하는 부처님이 계셨는데, 그때에 목동이 그 부처님을 뵈옵고 발심을 해 가지고 출가한 사실이 있었는데, 그 목동이 수행을 하다가 어느 절에서 다른 경(經) 공부를 하는 스님과 같이 유숙(留宿)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목동으로 있다 출가를 한 그 수행인은 참선이 좋아서 계속 참선만을 열심히 하고 있는데, 함께 그 절에서 머무른 여러 스님들은 모두 경(經) 공부를 해서 밤새도록 경을 큰 소리로 읽고 외우고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참선을 해서 마음을 고요히 집중을 해 가지고 정(定)에 들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너무너무 경 읽는 소리가 크고 시끄러워서 도저히 참선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 가지고 그 이튿날 너무너무 부애가 나니까, 욕을 하기를 “밤새 두꺼비 우는 소리를 하는 통에 참선을 못했다”고 이렇게 욕설을 한 그 인연으로 해서 금생에 5백 생 동안을 두꺼비 몸을 받으면서 내려오다가, 금생에 이렇게 참 자기 몸뚱이에 그 작대기가 꽂혀서 죽게 됨에도 불구하고 법문, 법(法)을 존중하고 아끼는 그러한 신심과 보살심을 냄으로 해서 두꺼비의 몸을 벗고 천상에 태어나서 사왕천(四王天) 궁의 천자가 되었다고 하는 원인을 말씀을 하시고.


또 이 목동이 이렇게 도를 얻은 인연은, 전생에 한 수행인이 있었는데 너무너무 수행을 잘하고 덕(德)이 있어서 대중 가운데 누가 싸움을 하기만 하면 이 스님이 말을 몇 마디 하면 금방 싸움이 가라앉고 화해를 잘 시켰던 것입니다.

마치 그 가섭파여래 회상에서 있을 때인데, 두 사람이 싸움을 해 가지고 며칠째 서로 말을 안 하고 지냈습니다.
지금 이 보살선방(菩薩禪房)에도 가끔 옛날에는 사소한 일에 타시락거리면 며칠씩 속으로 꽁해 가지고 말도 안 하고 그런 일이 있지 않은가 생각이 됩니다마는, 요새는 그런 일이 거의 없고 모두가 다 화합하고 합심해서 석 달 동안을 하루같이 그렇게 엄숙하고 거룩하게 그렇게 정진들을 잘해 오신 걸로 생각이 됩니다.

그런데 그 두 사람이 그렇게 싸움을 해 가지고 말을 안 하는데, 그 스님한테 화해를 시켜 달라고 왔습니다. 그런데 그 스님이 당장 그 자리에서 화해를 붙여 주지 아니하고, ‘내가 지금 바쁜 일이 있으니까 다른 스님한테 요청을 해 가지고 그래 가지고 안 되거든 나한테 오너라’ 이렇게 미뤘습니다.
그렇게 미룬 것은 ‘다른 사람한테 가서 해도 안 되어 가지고, 그때 자기한테 와 가지고 화해가 되어야 자기의 권위가 설 것이다’ 해 가지고 다른 사람한테 미루고 자기는 외출을 해 버렸습니다. 그런데 와서 보니까 벌써 다른 스님한테 말을 해 가지고 화해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 화해가 되었느냐?”고 내막을 물으니까 “약허이약허이 해서 화해가 되었다. 그 스님이 이러 이러한 말씀을 해 주었기 때문에 우리가 다 오해를 풀고 화해를 했다” 그러니까,
“그것은 양치기 하는 사람들이나 그런 식으로 화해를 붙이지, 어찌 수행승이 그럴 수가 있느냐” 이렇게 욕설을 했습니다. 그 ‘양치기 같은 짓을 했다’ 하는 그러한 속으로 신경질을 내면서 그러한 퉁명스런 말 한마디를 뱉은 그 인연으로 5백 생 동안을 양치기 노릇을 했던 것입니다.

아까 두꺼비는, 경 읽는 소리를 갖다가 “두꺼비 우는 소리를 하는 통에 시끄러워서 참선을 못했다’고 한마디 욕을 내뱉은 그 과보로 5백 생 동안을 두꺼비 과보(果報)를 받았고, 이번에는 “양치기 같은 그런 사람들이나 그런 식으로 화해를 붙이지 어찌 수행승이 그럴 수가 있느냐” 그렇게 신경질을 내면서 욕설을 한 그 과보로 양치기를 5백 생 동안을 양치기를 했다 이것입니다.

‘한 생각’ 불쑥 신경질을 내고 한마디 내뱉은 그 과보로 5백 생 동안을 양치기 노릇도 하고, 또 5백 생 동안을 두꺼비 노릇을 하게 된 그 인과(因果)를 우리가 살펴본다면 한 생각, 한마디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우리는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일상생활을 통해서 부모자식 간에 또는 친구간에, 직장에서나, 가정에서나 아무렇게나 생각나는 대로 한마디씩 툭툭 내뱉은 것이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을 합니다마는, 우리는 오늘 이 부처님의 설화를 통해서 한 생각 움직이고, 한마디 내뱉은 그 결과가 얼마나 무섭고 소중하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깨달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물며 나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남을 해롭게 하고, 나 살기 위해서 남을 상처내고 남을 죽인다고 할 때에 그 과보는 비단 5백 생이 문제가 아니라, 무량 아승지겁(阿僧祇劫)을 무간지옥(無間地獄)에 들어가서 한량없는 고(苦)를 받고 영원히 벗어날 기약이 없는 것입니다.

오늘 칠석날을 맞이해서 여러 신남신녀(信男信女)들이 이렇게 많이 정성스러운 공양구(供養具)를 가지고 법보선원에, 불전(佛前)에 이렇게 동참(同參)을 하셨습니다.

과거 한량없는 생(生) 동안 깊은 불법의 인연이 있어서 금생에 이렇게 모다 한자리에 모이셨습니다마는, 앞으로 다시는 퇴전(退轉)하지 아니하고 금생에 결정코 대도(大道)를 성취해서 생사해탈(生死解脫)을 하려면, 우리의 끊임없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그 한 생각, 한 생각을 정말 뼈아프게 단속해 나가서 다시는 일어나는 한 생각을 섣불리 흘려보내지 말 것이며,
눈으로 한 가지 일을 보거나, 귀로 어떤 한 소리를 듣거나, 어데서 무엇을 하던지 간에 한 생각 한 생각을 잘 단속을 하고,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육근(六根)과,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 육경(六境), 육식(六識)을 물샐틈없이 단속을 해 가지고 화두(話頭)를 들고 나가야만 할 것입니다.(28분16초~39분43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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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큰 나무 기둥[大方梁]’ 비유 설법, 목동·두꺼비 인과 설화 ; 대정신수대장경(大正新修大藏經) 제24책 No. 1448 《근본설일체유부비나야약사(根本說一切有部毘奈耶藥事)》 제11 참고.
*항하사(恒河沙) ; 갠지스 강(Ganges江)의 모래라는 뜻으로, 무수히 많은 수량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항하(恒河) ; 갠지스 강(Ganges江, 히말라야 산맥에서 시작하여 인도 북부를 가로질러 벵골 만(灣)으로 흘러들어 가는 인도 최대의 강. 길이는 2,510킬로미터)
*법문(法門 부처님의 가르침 법/문 문) ; 불법(佛法)을 문(門)에 비유한 말.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門)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육식(六識) ; 안(眼)·이(耳)·비(鼻)·설(舌)·신(身)·의(意)의 육근(六根)으로 각각 색(色)·성(聲)·향(香)·미(味)·촉(觸)·법(法)의 육경(六境)을 식별하는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의식(意識)의 6가지 마음 작용. 산스크리트어 ṣaḍ-vijñāna 
①안식(眼識). 시각 기관〔眼〕으로 시각 대상〔色〕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②이식(耳識). 청각 기관〔耳〕으로 청각 대상〔聲〕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③비식(鼻識). 후각 기관〔鼻〕으로 후각 대상〔香〕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④설식(舌識). 미각 기관〔舌〕으로 미각 대상〔味〕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⑤신식(身識). 촉각 기관〔身〕으로 촉각 대상〔觸〕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⑥의식(意識). 의식 기능〔意〕으로 의식 내용〔法〕을 식별·인식하는 마음 작용.
*알음알이[知解. 解. 會. 解會] ; 참선은 연구하는 것이 아니다. 생각으로써 이리저리 따져서 아는 것은 깨친 것이 아니다. 참선하는 데 가장 꺼리는 것이 이 알음알이이다. 그러므로 『이 문 안에 들어오려면 알음알이를 내지 말라(入此門內莫存知解)』라고 크게 써서 절 문에 붙이는 것이 이 까닭이다.
*불자(佛子) : 부처님의 자녀라는 뜻이다. 불법(佛法)을 믿는 이면 모두 불자가 된다. 그것은 부처님 법에서 새로운 생명을 얻었기 때문이며 부처님의 혜명(慧命)을 이어가고, 법(法)의 집과 법(法)의 재산을 상속받게 되는 까닭이다.
또한 모든 중생을 다 불자라고 하는데, 그것은 어떤 중생이나 모두 부처의 성품(佛性)이 있어서, 그것이 부처의 씨가 되고, 지혜는 어머니가 되며 부처님은 아버지가 되어, 필경에는 반드시 성불(成佛)하게 된다.
<섭대승론석(攝大乘論釋)>에는 불자에 다섯 가지 뜻이 있다고 하였다. ①믿음이 종자가 되고 ②지혜는 어머니가 되고 ③선정은 태(胎)가 되고 ④자비심(慈悲心)은 유모가 되고 ⑤부처님은 아버지가 된다.
*사량분별(思量分別) : 사량복탁(思量卜度), 사량계교(思量計較)와 같은 말.
생각하고 헤아리고 점치고 따짐. 가지가지 사량분별(思量分別)로 사리(事理)를 따짐. 법화경 방편품(法華經方便品)에 ‘이 법은 사량분별로 능히 알 바가 아니다’라고 함.
*불법(佛法) ; 부처님이 깨달은 진리(法). 부처님의 교법(敎法). 부처님이 설한 법. 부처님의 가르침.
*머꾸다 ; ‘멈추다’ ‘막히다’의 사투리.
*깨달음 ; 각(覺). 법(法)의 실체와 마음의 근원을 깨달아 앎. 지혜의 체득.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법(法) ; (산스크리트) dharma, (팔리) dhamma의 한역(漢譯). ①진리. 진실의 이법(理法). ②선(善). 올바른 것. 공덕. ③부처님의 가르침. ④이법(理法)으로서의 연기(緣起)를 가리킴. ⑤본성. ⑥의(意)의 대상. 의식에 드러난 현상. 인식 작용. 의식 작용. 인식 내용. 의식 내용. 마음의 모든 생각. 생각.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을 일으킴[發].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보리심은 모든 부처님이 부처님이 될 수 있었던 바탕이 되는 종자이고 청정한 법이 자라날 수 있는 좋은 밭이기 때문에 , 이 마음을 발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면 속히 위없는 보리를 증득한다.
*하직(下直) ; ①먼길을 떠날 때 웃어른에게 작별을 아룀. ②'죽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아라한과(阿羅漢果) ; 아라한(모든 번뇌를 완전히 끊어 열반을 성취한 성자)의 깨달음의 경지. 곧 소승 불교의 궁극에 이른 성자의 지위로서, 성문 사과(聲聞四果-수다원·사다함·아나함·아라한)의 가장 윗자리이다.
*증득(證得) ; 수행으로 진리를 체득함.
*지팽이 ; ‘지팡이’의 사투리.
*맞창 ; [주로 ‘나다’, ‘뚫다’ 따위의 말과 함께 쓰여] 마주 뚫린 구멍.
*사천왕(四天王) ; 불교의 우주관에 의하면 세계의 중심에 높이 솟은 거대한 산, 수미산이 있는데 그 수미산(須彌山)의 중턱에 있는 사왕천(四王天)의 주신(主神)인 4명의 외호신이다. 사대천왕(四大天王) · 호세사천왕(護世四天王)이라고도 한다.
수미산 꼭대기에 있는 도리천의 왕인 제석천(帝釋天)을 섬기며 불법(佛法)뿐 아니라, 불법에 귀의하는 사람들을 수호하는 호법신이다. 동쪽의 지국천왕(持國天王), 서쪽의 광목천왕(廣目天王), 남쪽의 증장천왕(增長天王), 북쪽의 다문천왕(多聞天王)을 말한다.
*무수배례(無數拜禮) ; 헤아릴 수 없이(無數) 많은 절을 하여 예를 표함.
*확철대오(廓徹大悟 클 확/통할 철/큰 대/깨달을 오)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제석천(帝釋天) ; 제(帝)는 산스크리트어 indra의 번역, 석(釋)은 산스크리트어 śakra의 음사. 신(神)들의 제왕인 샤크라〔釋〕라는 뜻. 천(天)은 신(神)을 뜻함.
수미산 꼭대기에 있는 도리천의 왕으로, 사천왕(四天王)과 32천을 통솔하면서 불법(佛法)과 불법에 귀의하는 사람을 보호하고 아수라의 군대를 정벌한다고 한다.
도리천에는 33신이 있는데, 제석은 그 중앙에 있는 선견성(善見城) 안의 수승전(殊勝殿)이라는 궁전에 살고, 나머지 32신은 그 성(城) 밖의 궁전에서 각각 산다고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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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숙(留宿 머무를 류/묵을 숙) ; (사람이 어디에) 여장(旅裝, 여행할 때의 차림)을 풀고 묵음.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참고] 송담스님(No.793) - 2018년 동안거 결제 법문에서.
우리는 생로병사 속에서 살면서 생로병사가 없는 도리를 깨닫고자 불법을 믿고 참선(參禪)을 하고, 비록 한 생각 한 생각 났다가 꺼지고 또 일어났다가 없어지고, 울다가 웃다가 그러면서 죽음을 향해서 가고 있지마는, 그 죽음을 향해서 가는 속에서 생사해탈(生死解脫)하는 도리가 있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부처님의 법문(法門)을 의지해서 그것을 믿고 생사해탈을 위해서 우리는 참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생사해탈이라 하는 것이 이 육체를 가지고 죽지 않고 백 살, 이백 살, 오백 살, 천 살 살아가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그러한 생사해탈이 아니고 생사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달음으로 해서 생사해탈을 할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불법(佛法)은 생사윤회(生死輪廻)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는 종교인 것입니다. 이론적으로는 설명하기가 대단히 어려우나 부처님으로부터 역대조사(歷代祖師)를 통해서 오늘날까지 경허 선사, 만공 선사, 전강 선사로 해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고자 하는 법문을 우리는 믿고, 이론적으로 따져서 가리키고 배우는 것이 아니라 다맛 간단한 방법으로 그 진리를 깨닫는 법을 우리는 믿고, 그 법에 의해서 참선 수행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행히 우리는 불법을 믿고, 불법 가운데에서도 최상승법(最上乘法)인 활구참선(活句參禪)! 역대조사를 통해서 전수해 온 활구참선에 의해서 무상(無常) 속에서 영원을 살아가는 법을 우리는 믿고 그것을 실천하고 있는 것입니다.
간단하고도 간단한 일이나 이 최상승법 활구참선법을 믿는 사람은 확실히 불법의 근본 진리를 향해서 그것을 우리 몸을 통해서 그 진리를 체달(體達)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정(定) : ①계(戒)•정(定)•혜(慧) 3학의 하나。 ②[범] samadhi  음대로 써서 삼마지(三摩地)•삼마야(三摩耶) 또는 삼매(三昧)라고 한다。 마음이 움직이지 않아서 생각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지 않음을 말한다.
*부애 ; 부아. 분하고 노여운 마음.
*법(法) ; (산스크리트) dharma, (팔리) dhamma의 한역(漢譯). ①진리. 진실의 이법(理法). ②선(善). 올바른 것. 공덕. ③부처님의 가르침. ④이법(理法)으로서의 연기(緣起)를 가리킴.
보살심
*사왕천(四王天) ; 욕계 육천(欲界六天) 중 첫 번째 하늘. 천(天)은 신(神), 또는 그들이 사는 곳이라는 뜻. 사천왕(四天王)과 그 권속들이 사는 곳.
불교의 우주관에 의하면 세계의 중심에 높이 솟은 거대한 산, 수미산이 있는데 그 수미산(須彌山) 중턱의 동쪽에 있는 지국천(持國天), 서쪽에 있는 광목천(廣目天), 남쪽에 있는 증장천(增長天), 북쪽에 있는 다문천(多聞天)을 일컬음.
*회상(會上) ; ①대중이 모여서 설법을 듣는 법회. 또는 그 장소. ②대중들이 모여서 수행하는 공동체 및 그 장소. ③‘회상(會上)’이란 말은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은 후, 영취산(靈鷲山)에서 제자들에게 설법을 하면서 함께 모인 것을 ‘영산회상(靈山會上)’이라 부른 데에서 유래한다.
*보살선방(菩薩禪房) ; 보살선원(菩薩禪院). 스님이 수행하는 선원과 같은 기간과 방식으로 보살님(신도)들이 정진 할 수 있는 선원. 용화선원에는 스님선원, 보살선원이 있고 또 매일 언제든지 와서 정진할 수 있는 시민선원이 있다.
*타시락거리다 ;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과, 또는 둘 이상의 사람이) 대수롭지 않은 일로 서로 자꾸 우기거나 가볍게 다투다.
*약허이약허이 ; 약하(若何)하다. ‘약하하다’는 ‘여하(如何)하다’의 높임 말.
*여하(如何)하다 : 어떠하다(어떻다, 의견·성질·형편·상태 따위가 어찌 되어 있다).
*과보(果報 열매 과/갚을 보) ; 인과응보(因果應報, 전생에 지은 선악에 따라 현재의 행과 불행이 있고, 현세에서의 선악의 결과에 따라 내세에서 행과 불행이 있는 일).
*인과(因果) : 무엇이나 원인 없는 결과가 없고, 결과 없는 원인이 없다. 콩 심은 데 콩이 나고, 팥 심은 데 팥이 나서, 이 세상의 온갖 일과 모든 물건이 반드시 인과의 법칙대로 되어 가는 것이다. 사람의 일도 착한 일을 하면 복을 받고, 악한 짓을 하면 재앙을 받아서 길(吉) • 흉(凶) • 화(禍) • 복(福)이 하나도 우연한 것이 없다.

그러나 그 보응(報應)의 나타남이 원인을 짓는 그 즉시로 곧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의 환경이 복잡하고, 마음 쓰는 것이 또한 한결같지 않기 때문에 무거운 쪽부터 먼저 실현되어, 짓는 그 당장에 받게 되는 순현보(順現報)와, 짓는 그 즉시에 받지 않고 그 다음 시기에 받는 순생보(順生報)와, 받기는 반드시 받되 언제 받게 될지 일정하지 않은 순후보(順後報)가 있다.
이 세 가지 과보(果報)는 금생(今生) 안에 실현되기도 하고, 여러 생[多生]을 통하여 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착한 사람이 빈천하거나, 악한 사람이 잘되는 것은 일시적인 현상일 따름이다.
*아승지겁(阿僧祇劫) ; 아승지(阿僧祇)는 산수로 나타낼 수 없는 가장 큰 수 중의 하나이고, 겁(劫)은 연•월•일로써는 헤아릴 수 없는 아득한 시간을 말함.
*무간지옥(無間地獄) ; 아비지옥(阿鼻地獄)이라고도 함. 아비(阿鼻)는 산스크리트어 avīci의 음사(音寫)로서 ‘아’는 무(無), ‘비’는 구(救)로서 ‘전혀 구제받을 수 없다’는 뜻. 고통이 끊임없으므로 무간(無間)이라 함.
아버지를 죽인 자, 어머니를 죽인 자, 아라한을 죽인 자, 승가의 화합을 깨뜨린 자, 부처의 몸에 피를 나게 한 자 등, 지극히 무거운 죄를 지은 자가 죽어서 가게 된다는 지옥.


이 지옥에 떨어지는 죄인에게는 필파라침(必波羅鍼)이라는 악풍(惡風)이 있는데 온몸을 건조시키고 피를 말려 버리며 또 옥졸이 몸을 붙잡고 가죽을 벗기며, 그 벗겨낸 가죽으로 죄인의 몸을 묶어 불 수레에 싣고 훨훨 타는 불구덩이 가운데에 던져 넣어 몸을 태우고, 야차(夜叉)들이 큰 쇠 창을 달구어 죄인의 몸을 꿰거나 입, 코, 배 등을 꿰어 공중에 던진다고 한다. 또는 쇠매(鐵鷹)가 죄인의 눈을 파 먹게 하는 등의 여러 가지 형벌로 고통을 끊임없이 받는다고 한다.
*신남신녀(信男信女) ; 불교에 귀의한 재가의 남자 신도와 여자 신도를 말한다.
*공양구(供養具) ; 부처님이나 보살님께 바치는 음식물·향·꽃 등의 물건, 또는 그 물건을 바칠 때 사용하는 기구.
*법보선원(法寶禪院) ; 인천시 미추홀구 주염로 43에 있는 용화선원(龍華禪院)에 있는 스님 선방(禪房)의 이름.
*동참(同參) ; ①어떠한 일에 함께 참여함. ②스님와 신도가 한 법회에 같이 참석하여 불도(佛道)를 닦는 일. ③같은 스승 밑에서 함께 공부하는—동문수학하는 '도반(道伴)'과 같은 말. 동학(同學)이라고도 한다.
*퇴전(退轉) ; 불교를 믿는 마음을 다른 데로 옮겨 처음보다 더 밑으로 전락(轉落)함.
*대도(大道) ; ①부처님의 깨달음. 산스크리트어 bodhi 각(覺). 보리(菩提). ②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그 방법. ③무상(無上)의 불도(佛道). 궁극적인 진리. ④이치. 천지만물의 근원. 바른 규범.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를 벗어나 해탈하였다는 말. 생사의 굴레에서 벗어나 깨달음의 세계, 열반의 경지에 드는 것.
*해탈(解脫) : [범] Vimoksa  [팔] Vimutti  음을 따라 비목차(毘木叉) • 비목저(毘木底) • 목저(木底)라고 한다。모든 번뇌의 속박을 끊어 버리고 온갖 고통에서 벗어난다는 뜻이므로, 도탈(度脫) 혹은 자유자재(自由自在)라고도 한다. 열반은 불교 구경(究竟)의 이상으로써 여러가지 속박에서 벗어난 상태이므로 곧 해탈이라고도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의 소의(所依)가 되어 육식을 일으켜 대상을 인식케 하는 근원이다。곧 눈(眼) • 귀(耳) • 코(鼻) • 혀(舌) • 몸(身) • 뜻(意)의 여섯 가지 기관(器官)을 말한다.
*육경(六境) ; 육근(六根)의 대상 경계인 색(色)·성(聲)·향(香)·미(味)·촉(觸)·법(法)을 말함.
산스크리트어 ṣaḍ-viṣaya 경(境)은 대상을 뜻함. 육진(六塵)·육적(六賊)이라고도 한다.
①색경(色境). 눈으로 볼 수 있는 대상인 모양이나 빛깔.
②성경(聲境). 귀로 들을 수 있는 대상인 소리.
③향경(香境). 코로 맡을 수 있는 대상인 향기.
④미경(味境). 혀로 느낄 수 있는 대상인 맛.
⑤촉경(觸境). 몸으로 느낄 수 있는 대상인 추위나 촉감 등.
⑥법경(法境). 의식 내용. 관념.
*육식(六識) ; 안(眼)·이(耳)·비(鼻)·설(舌)·신(身)·의(意)의 육근(六根)으로 각각 색(色)·성(聲)·향(香)·미(味)·촉(觸)·법(法)의 육경(六境)을 식별하는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의식(意識)의 6가지 마음 작용. 산스크리트어 ṣaḍ-vijñāna 
①안식(眼識). 시각 기관〔眼〕으로 시각 대상〔色〕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②이식(耳識). 청각 기관〔耳〕으로 청각 대상〔聲〕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③비식(鼻識). 후각 기관〔鼻〕으로 후각 대상〔香〕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④설식(舌識). 미각 기관〔舌〕으로 미각 대상〔味〕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⑤신식(身識). 촉각 기관〔身〕으로 촉각 대상〔觸〕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⑥의식(意識). 의식 기능〔意〕으로 의식 내용〔法〕을 식별·인식하는 마음 작용.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화두(공안)에는 '이뭣고?' '판치생모' '무자' '정전백수자'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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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700여 개의 ‘참선 법문(法門)’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 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 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그리고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도 있습니다.

참선법 A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B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C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D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E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A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B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C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D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E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700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280) 『열반경(涅槃經)』 '용기'에 대한 비유 설화. 깨달음을 얻으려면 위법망구(爲法忘軀)적인 철저한 용기가 있어야 한다 / 「한 생각 진실함」에서 신심(信心), 분심(憤心), 용맹심도 거기에 갖추게 되고, 대의단(大疑團)도 거기에 갖추어진다.

**송담스님(No.280)—1985년(을축년) 동안거 결제(85.11.26)(용280)(인연인과비유)

 

약 13분.


『열반경(涅槃經)』에 나온 말씀인데, 어떤 사람이 공동묘지(共同墓地), 묘지 곁에다가 집을 짓고 사는 데 밤에 어디서 소리가 들리기를 자꾸 자기 이름을 불러 싸.
‘어디서 들리는고?’ 하고 가만히 귀를 종그리고 그 소리 나는 쪽을 가 보니까 무덤, 묘지 속에서 소리가 난다 그 말이여. 그래서 공포심이 발칵 나면서 그냥 거기서 물러나왔어. 그 다음날 저녁에도 밤만 깊어지면 무덤 속에서 또 자기를 불러. 그래서 또 겁이 잔뜩 났다 그 말이여.

그래 가지고 그 이튿날 날이 새 가지고 그 마을에 담력(膽力)이 센 사람, 용기가 있는 사람한테 그 얘기를 했습니다. “아! 밤만 되면 무덤 속에서 소리가 나고 나를 불러 싸니 이것 참 무서워서 혼이 났다” 그러니까, “정말 그렇다면 내가 한번 오늘 저녁에는 가봐야겠다” 그 무덤 옆에 집에 가 가지고 그날 저녁에 가만히 그 무덤 옆에 가까이 가서 있으니까, 아! 소리가 난다 그 말이여.

그래서 그 소리 나는 무덤 있는 데로 가니까 그 속에서 말을 하기를 “나는 이 땅속에 묻혀 있는 황금 덩어리다. 그러니 내가 이 황금 덩어리를 너에게 주고자 하니 내가 시키는 대로 해라”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내일 아침에 집안 소지(掃地)를 깨끗이 하고 목욕재계(沐浴齋戒)를 하고 그리고서 그 방에다가 맑은 물을 여덟 그릇을 떠다 놓고 또 죽을 잘 쒀서 여덟 그릇을 따악 갖다가 놓고서 기다려라. 그러면 먹물 옷 입은 스님이 너를 찾아갈 것이다. 그러면 그 스님을 네 방으로 모셔 들여 가지고 그 물과 죽을 대접을 해라. 공양(供養)을 해라.
그러면 그 스님들이 그 물과 죽을 맛있게 잡술 테니 그러고 난 다음에 방을 여덟 개 칸으로 막아 가지고 한 칸 한 칸에다가 그 스님을 딱 모셔라. 모시고서 문을 딱 잠가 놓으면 그 스님들이 바로 황금으로 변해 가지고, 항아리 속에 황금이 가뜩 담아진 것으로 변할 것이다” 그래서 인자 그렇게 약속을 하고 그 이튿날 시키는 대로 그대로 따악 했습니다.

사시(巳時)가 되니까 스님네들이 주욱 여덟 분이 오는데 준비해 놓은 방으로 안내를 했습니다. 죽 공양을 다 잡숫고 물을 잡숫고 난 다음에 여덟 칸 방에다가 한 칸, 한 칸 안내를 해서 모셔 놓고 문을 딱 잠갔는데, 조금 있다 문을 열어보니까 스님은 간 곳이 없고 칸칸이 항아리 속에 황금이 담뿍담뿍 들었습니다.

그랬는데, 그 마을 사람이 ‘그렇게 부자가 되었다’는 말을 듣고서 ‘나도 부자가 되어야겠다’ 이렇게 생각하고서, 마치 흥부가 제비 다리를 짬매서 날려보내 가지고 큰 부자가 되었다고 하니까 놀부가 성한 제비를 뚜드려 잡아 가지고 그 부자가 되려고 하듯이,
그 어리석은 사람이 집에다가 죽을 쒀서 여덟 그릇을 해 놓고 물을 뜨고 해 놓고는 며칠을 기다리니까, 마치 탁발(托鉢)하는 스님이 여덟 분이 오니까 그분을 초청을 해서 그 죽과 물을 공양(供養)을 올리고는 다짜고짜로 여덟 칸에다 갖다가 넣고 문을 잠가 놓으니까,
그 스님은 뭣도 모르고 죽을 먹고서 강제로 구금(拘禁)을 당해서 아무리 문을 따 달라고 해도 문을 따 주지 않아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문을 박차고 나오고 하는 바람에 그래 가지고는 관가에까지 알려져 가지고, 그 사람이 성스러운 스님을 갖다가 이유 없이 감금을 시켰다 하는 죄목으로 엄하게 취조를 받고 징역을 살게 되었습니다.

맨 처음에 그 무덤 옆에 집을 짓고 살던 그 사람도 ‘그 사람이 부자가 되었다’는 말을 듣고, 자기도 또 그렇게 해서 스님을 여덟 분을 초청을 해다가 또 죽을, 공양을 올리고 또 칸칸이 여덟 분을 따악 닫어 놓고 조금 있다 문을 열어보니까 아! 항아리가 있기는 있었습니다.
항아리를 요리 내다보니까, 아! 혀를 널름널름 하는 큰 구렁이가 항아리마다 들어있어 가지고 노려보면서 물라고 달라들었습니다. 그래 가지고 혼비백산(魂飛魄散)해 가지고 도망을 쳤는데.

이러한 소식이 그 나라 임금님한테 들려 가지고, 임금님이 불법(佛法)을 믿는 그러한 훌륭한 임금이었던지 거기서 죄인들을 불러다 놓고 또 만조백관(滿朝百官)을 모다 불러다 놓고 그리고서 훈계(訓戒)를 했습니다.

“목욕재계를 하고 죽과 물을 떠다가 스님네를 갖다가 공양을 올리고 또 별실에다가 모신 외면상의 행동은 세 사람이 다 똑같았지만, 맨 처음에 그 사람은 용기가 없었고, 용기가 없고 겁약한 사람이 욕심만 있었기 때문에 자기는 그 황금을 얻지를 못했고. 다음에사 욕심만 치성해 가지고, 용기도 없는 사람이 남의 본(本)을 따 가지고 황금만 얻으려고 했기 때문에 구렁이한테 물리게 되고,
중간 사람은 분(分)에 없는—용기 있는 사람이 그 황금을 얻은 것을 보고, 욕심을 가지고 멀쩡한 스님을 갖다가 죽 한 그릇 먹여서 때려 가둬 가지고 황금을 얻으려고 이런 짓을 했기 때문에 그 사람은 벌을 받고 징역을 살게 되었다. 용기를 가지고, 신념을 가지고, 목적 달성을 하기 위해서 용기를 가진 사람은 저렇게 황금을 얻었다.

도를 닦는 데에 있어서도, 깨달음을 얻으려고 하는 그 마음은 어느 사람이 그것이 없겠느냐. 첫째는 자기의 목숨을 걸고서 생사 문제, 육신의 생명을 바치고서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고 하는 그러한 위법망구(爲法忘軀)적인 철저한 용기가 없어 가지고서는 도는 이룰 수가 없는 것이다” 이러한 취지의 말씀이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에 있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 모이신 사부대중 여러분, 낱낱이 다 ‘불법을 믿고 참선 수행을 해서 대도(大道)를 성취해서 생사해탈(生死解脫)을 하리라’ 그러한 생각이 없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위법망구적인 그런 대용맹지(大勇猛志)가 없어 가지고서는 이 일은 성취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선재동자(善財童子)가 일백십성(一百十城)을 넘으면서 갖은 고난을 극복하면서 한 생각 퇴전(退轉)함이 없이 53선지식(五十三善知識)을 차례차례로 친견을 하고 승사(承嗣)를 했습니다. 바로 이 「한 생각 진실함」에서 신심(信心)도 거기에 갖추게 되고, 분심(憤心) 용맹심도 거기에 갖추게 되고, 대의단(大疑團)도 거기에 갖추어질 것입니다.

한 생각 진실하다면 성도 다르고, 연령도 다르고, 성격도 다른 팔도에서 운집(雲集)한 선객(禪客) 스님네나 보살선방(菩薩禪房)의 여러 보살님네들은 하등에 걸거칠 것이 없을 것입니다. 어떠한 성격을 가진 분하고도 아무 장애가 없이, 간격이 없이 화합을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어떠한 자기 마음과 맞지 않는 불편한 상황 속에서도 적응을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오히려 자기 마음과 맞지 않는 그러한 상황 속에서 더 발심(發心)을 할 수가 있을 것이고, 더 분심을 낼 수가 있을 것이고, 더 철저한 간절한 의단이 독로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27분53초~40분15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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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지(掃地 쓸 소/땅 지) ; ①마당(땅)을 쓺. 또는 그 일을 맡은 사람. ②청소.
*목욕재계(沐浴齋戒) ; 제사나 중요한 일 따위를 앞두고 목욕을 하여 몸을 깨끗이 하고 부정(不淨)을 피하며 마음을 가다듬는 일.
*공양(供養 이바지하다·받들다·모시다·바치다 공/기르다·공양하다 양) ; ①불(佛)•법(法)•승(僧)의 삼보(三寶)나 스승, 부모, 영가에 음식, 옷, 약, 꽃, 향 등을 바침. ②스님들의 식사를 공양이라 하는데, 이것은 스님들은 시주(施主)의 공양물로 생활하기에 공양을 올리는 이[施主]의 시은(施恩)을 상기하여 잊지 않게 하고자 함이다. ③신구의(身口意) 세 가지 방법으로 하는 공양으로 삼업공양(三業供養)이라 한다. 자세[身]를 낮추어서 삼가고 공경하는 예를 갖추는 공경, 입[口]으로 훌륭함을 기리는 찬탄, 오로지 마음[意]을 쏟는 존중이다.
*사시(巳時) ; ①지난날에 쓰던 십이시(十二時)가운데 여섯 번째 시(時). 오전 9시부터 11까지를 말한다. ②지난날에 쓰던 이십사시(二十四時)가운데 열한 번째 시(時). 오전 9시 반부터 10시 반까지를 말한다.
*탁발(托鉢 맡길 탁/바리때 발) ; 도를 닦는 스님이 경문(經文)을 외면서 집집마다 다니며 보시를 받음.
수행자의 아집(我執)과 아만(我慢)을 없애고, 동시에 보시하는 이의 복덕을 길러 주는 공덕이 있다고 하여 부처님 생존 당시부터 행하였다.
*혼비백산(魂飛魄散 넋 혼/날 비/넋 백/흩을 산) ; (사람이)매우 놀라거나 혼이 나서 넋을 잃음.
*만조백관(滿朝百官) ; 조정(朝廷, 임금과 신하들이 모여 나라의 정치를 의논하고 집행하는 곳, 또는 그런 기구)의 모든 벼슬아치.
*훈계(訓戒 가르칠 훈/경계할 계) ; 잘못하지 않도록 타일러 주의시킴. 또는 그런 말.
*깨달음 ; 각(覺). 법(法)의 실체와 마음의 근원을 깨달아 앎. 지혜의 체득.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법(法) ; (산스크리트) dharma, (팔리) dhamma의 한역(漢譯). ①진리. 진실의 이법(理法). ②선(善). 올바른 것. 공덕. ③부처님의 가르침. ④이법(理法)으로서의 연기(緣起)를 가리킴. ⑤본성. ⑥의(意)의 대상. 의식에 드러난 현상. 인식 작용. 의식 작용. 인식 내용. 의식 내용. 마음의 모든 생각. 생각.
*위법망구(爲法忘軀) ; 법(法, 진리)를 구하기 위해[爲] 몸[軀] 돌보는 것을 잊는다[忘].
*대도(大道) ; ①부처님의 깨달음. 산스크리트어 bodhi 각(覺). 보리(菩提). ②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그 방법. ③무상(無上)의 불도(佛道). 궁극적인 진리. ④이치. 천지만물의 근원. 바른 규범.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를 벗어나 해탈하였다는 말. 생사의 굴레에서 벗어나 깨달음의 세계, 열반의 경지에 드는 것.
*생사(生死) ; ①생과 사. 살아 있는 것과 죽은 것. ②유전(流轉 윤회의 생존. 생사의 갈림길)의 모습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말. 미혹(迷惑 도리에 어두운 것). 미혹의 세계. 미혹의 모습. 현실 사회의 고뇌. 태어남과 죽음이 번갈아 끊임이 없는 미혹의 세계. 윤회와 같음.
[참고 ❶] 송담스님(No.389)—1989년(기사년) 부처님오신날 법어(89.05.12)에서.
중생의 번뇌심(煩惱心) ‘한 생각’ 일어날 때 새로 태어난 것이고, 그 번뇌가 꺼질 때 또 죽는 것, ‘우리의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 한 것이 바로 생사(生死)인 것입니다.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 한 그것이 원인이 되어서 생사윤회를 하는 것이어서, ‘이 몸뚱이 살아있으면서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거 그 자체가 바로 생사심(生死心)이요, 생사심이 바로 생사윤회(生死輪廻)인 것입니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천 만의 생각이 일어났다 없어지고, 생각이 일어났다 없어집니다.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을 모르는 사람은 죽었다 깨어날 때마다 업(業)만 더하고, 점점 고통이 심한 윤회를 거듭할 것입니다마는, 활구참선법을 믿는 사람은 한 생각이 일어날 때 ‘이뭣고?’ 자신의 본참화두(本參話頭)를 드는 것입니다.
‘이뭣고?’ 한마디 본참화두를 거각(擧却)할 때, 우리의 마음속에 탐진치(貪瞋痴) 삼독(三毒)을 물리치고, 업장소멸이 되고, 진리를 향해서 나아가게 됩니다.

[참고 ❷]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 상권. 동진(東晉) 평양(平陽) 사문(沙門) 석법현(釋法顯) 한역(漢譯). (동국역경원 | 최민자 번역)
爾時 世尊卽說偈言 我欲棄捐此 朽故之老身 今已捨於壽 住命留三月 所應化度者 皆悉已畢竟 是故我不久 當入般涅槃 我所說諸法 則是汝等師 頂戴加守護 修習勿廢忘 汝等勤精進 如我在無異

그때 세존께서 곧 게송을 말씀하셨다. 나는 쇠약하고 늙은 이 몸을 이제 버리려 하네. 지금 이미 목숨을 버렸어야 함에도 수명을 늘려 석 달을 머물려 하네. 교화(敎化)하고 제도해야 할 일을 모두 다 이미 마쳤네. 그러므로 나는 머지않아 반열반에 들 것이네.
내가 말한 모든 법이 곧 그대들의 스승이니 공경하여 받들고[頂戴] 더욱 지키고 보호하여 닦아 익혀 잊지 말고, 그대들은 부지런히 정진(精進)하여 내가 있을 때와 다름이 없어야 하네.

生死甚危脆 身命悉無常 常求於解脫 勿造放逸行 正念淸淨觀 善護持禁戒 定意端思惟 攝情於外境 若能如此者 是則護正法 自到解脫處 利益諸天人

나고 죽음은 매우 위태롭고 몸과 목숨은 모두 무상하니 항상 해탈을 구하여 방일(放逸)한 행동하지 말아야 하네. 바르게 생각하고 청정하게 관하며 금계(禁戒)를 잘 보호하고 지키며, 산란하지 않은 한결같은 마음[定意]으로 바르게 사유하여 바깥 경계로 치달리는 감정을 거두어야 하네.
만약 이와 같이 하면 이것이 곧 정법(正法)을 보호하는 것이니 스스로 해탈처에 이르러 모든 천상 세계와 인간 세상을 이롭게 하리라.
*해탈(解脫) : [범] Vimoksa  [팔] Vimutti  음을 따라 비목차(毘木叉) • 비목저(毘木底) • 목저(木底)라고 한다。모든 번뇌의 속박을 끊어 버리고 온갖 고통에서 벗어난다는 뜻이므로, 도탈(度脫) 혹은 자유자재(自由自在)라고도 한다. 열반은 불교 구경(究竟)의 이상으로써 여러가지 속박에서 벗어난 상태이므로 곧 해탈이라고도 할 수 있다.
*용맹(勇猛 날래다·용감하다·결단력이 있다·강하다 용/굳세고 용맹스럽다·맹렬하다·굳고 강하다 맹) ; 기운차고 씩씩하며 두려움 없이 용감함.
*선재동자(善財童子) ; 화엄경의 입법계품(入法界品)에 나오는 구도자(求道者). 문수보살의 법문을 듣고 발심(發心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하여 그 보살의 가르침대로 오십삼 선지식(五十三善知識)을 차례로 만나 보살도(菩薩道)를 배우고, 보현보살의 행원(行願 서원을 세우고 수행함)을 실천하여 진리의 세계로 들어감.
*퇴전(退轉) ; 불교를 믿는 마음을 다른 데로 옮겨 처음보다 더 밑으로 전락(轉落)함.
*53선지식(五十三善知識) ; 『화엄경』 입법계품(入法界品)에서 선재 동자(善財童子)가 복성의 동쪽 장엄당사라림에서, 최초로 문수 보살의 법문을 듣고 남방으로 향하여 차례차례 찾아가서 법문을 들은 53위의 선지식(스승).
*승사(承嗣 받들 승/이을 사) ; 후임자나 후대가 선임자나 선대의 권리나 의무를 뒤이어 물려받음.
*신심(信心) : ①‘내가 바로 부처다’ 따라서 부처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요, 일체처 일체시에 언제나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공, 이 소소영령한 바로 이놈에 즉해서 화두를 거각함으로써 거기에서 자성불(自性佛)을 철견을 해야 한다는 믿음. ②‘올바르게 열심히 참선을 하면 나도 깨달을 수 있다’는 믿음. 진리에 대한 확신.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저 | 송담스님 역 | 용화선원刊) p54~55. (가로판 p56~57)
參禪엔  須具三要니  一은  有大信根이요  二는  有大憤志요  三은  有大疑情이니 苟闕其一하면  如折足之鼎하야  終成癈器하리라

참선하는 데는 모름지기 세 가지 요건을 갖추어야 하나니, 첫째는 큰 신심이요, 둘째는 큰 분심이요, 셋째는 큰 의심이니, 만약 그 중에서 하나라도 빠지면 다리 부러진 솥과 같아서 소용없는 물건이 되리라.

註解(주해) 佛云, 成佛者는  信爲根本이라 하시고  永嘉云, 修道者는  先須立志라 하시며 蒙山云, 參禪者는  不疑言句가  是爲大病이라 하고  又云, 大疑之下에  必有大悟라 하시니라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성불하는 데에는 믿음이 근본이 된다」 하시고, 영가스님은 이르기를 「도를 닦는 이는 먼저 모름지기 뜻을 세워야 한다」 하시며, 몽산스님은 이르기를 「참선하는 이가 화두를 의심하지 않는 것이 큰 병이 된다」 하시고, 또 이르기를 「크게 의심하는 데서 크게 깨친다」고 하시니라.
*분심(憤心, 忿心, 奮心 분하다·원통하다·성내다·힘쓰다·떨치다·분격하다) : 억울하고 원통하여 분한 마음.
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도인들은 진즉 확철대오를 해서 중생 제도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왜 여태까지 일대사를 해결 못하고 생사윤회를 하고 있는가. 내가 이래 가지고 어찌 방일하게 지낼 수 있겠는가. 속에서부터 넘쳐 흐르는 대분심이 있어야. 분심이 있어야 용기가 나는 것이다.
*의단(疑團 의심할 의/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의심(疑心) :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해 ‘알 수 없는 생각’에 콱 막히는 것.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이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수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이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또는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또는 ‘조주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바른 깨달음은 알 수 없는 의단, 알 수 없는 의심에 꽉 막힌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운집(雲集 구름 운/모일 집) ; 구름[雲]처럼 모인다[集]는 뜻으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듦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선객(禪客 참선 선/손님·사람 객) ; 참선 수행을 하는 사람.
*보살선방(菩薩禪房) ; 보살선원(菩薩禪院). 스님이 수행하는 선원과 같은 기간과 방식으로 보살님(신도)들이 정진 할 수 있는 선원. 용화선원에는 스님선원, 보살선원이 있고 또 매일 언제든지 와서 정진할 수 있는 시민선원이 있다.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을 일으킴[發].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보리심은 모든 부처님이 부처님이 될 수 있었던 바탕이 되는 종자이고 청정한 법이 자라날 수 있는 좋은 밭이기 때문에 , 이 마음을 발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면 속히 위없는 보리를 증득한다.
*의단독로(疑團獨露 의심할 의/덩어리 단/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가 홀로[獨] 드러나다[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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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700여 개의 ‘참선 법문(法門)’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 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 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그리고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도 있습니다.

참선법 A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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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700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128)) 오조(五祖) 홍인대사(弘忍大師), 재송(栽松) 도인이 몸을 바꿔서 4조(四祖) 도신(道信) 스님을 찾아온 법문 / 인정(人情)과 성현의 자비(慈悲)와는 동질성의 것이 아니다 / 도를 닦아 가는 데 있어서는 정(情)에 떨어진 일보다 더 해로운 것은 없다 / (게송)약이색견아~. 『금강경』 사구게(四句偈).

**송담스님(No.128)—1980(경신)년 칠석법회 법문(80.08.17) (용128) (인연 인과 비유)

 

(1) 약 12분.

 

(2) 약 13분.


(1)------------------

금방 우리는 전강 조실 스님 법문을 통해서 오조(五祖) 홍인대사(弘忍大師)의 법문과 최상승법인 이 활구참선을 하는 법에 대해서 법문을 들었습니다. 오조 홍인대사는 부처님으로부터 서른두 번째, 32대 조사(祖師)이십니다. 그리고 바로 육조(六祖) 스님의 법사 스님이신 것입니다.

그 5조 스님은 원래 노인 노승(老僧)으로서 4조(四祖) 스님께 인가를 맞으러 갔는데, 그 4조 스님은 법을 전할 만한 제자를 만나지 못해서 날마다 그 자기, 당신의—이 부처님으로부터 서른한 번째, 31대까지 당신에게 이 법(法)이 전해 내려왔는데 당신의 법(法)을 전해 받을 제자를 만나지 못해서 날마다 제자 오기를 기다리고 있던 차에 하룻날 어느 제자가 찾아왔습니다. 보니 당신보다도 더 나이가 많은 제자가 왔습니다.

법거량(法擧揚)을 해 보니 분명히 깨달았는데, 깨닫기는 깨달았지만 자기보다도 더 나이가 많은 사람한테 법을 전해 봤자 법을 전하나 마나, 마치 장님 불 끄나 켜나 마찬가지로 자기보다 나이가 많아서 먼저 죽을 사람한테 법을 전해 봤자 다리 뻗고 잘 수도 없는 일이고 그래서 "니가 분명히 깨닫기는 깨달았지만 법을 전할 수가 없다"
"그러면 어떻게 합니까?"

"가서 몸을 바꿔 가지고 오너라"
그래서 "그러면 제가 이 기념으로 소나무 한 그루를 심어 놓고 가겠습니다"

그래서 그 소나무, 조그마한 소나무 한 그루를 팔십 먹은 노승(老僧)이 캐다가 뜰 앞에다 딱 심어 놓고 그리고서 떠나는데 그 4조 스님이 "니가 소나무를 갖다가 심었으니 니 이름을 재송(栽松)이라고 해라. '재배한다' 해서 '재(栽)' 자 하고, '소나무 송(松)' 자, 재송(栽松)이라고 니 이름을 내가 지어주마"

그렇게 해서 그 재송은 거기서 하직을 하고 내려가다가 시내를 따라서 죽 내려가다 보니 시냇가에 어떤 이쁘게 생긴 처녀가 빨래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노승이 걸망을 처녀 옆에다가 부려 놓고 그 처녀한테 "내가 부탁할 말이 있소"

"무슨 말씀이요?"
"처녀 댁에서 하룻밤만 쉬어 갑시다"

이 5조 재송(栽松) 법문에 대해서는 이 가운데는 여러 번 듣고 잘 아신 분도 계실 줄 생각합니다. 그러나 처음 오신 분도 계시고 또 금방 아까 전강 조실 스님 법문은 후반부만 말씀을 하셔서 조금 보충을 해 드리고자 합니다.
이 재송 스님께서, 오조 홍인대사가 「최상승론(最上乘論)」이라 하는 참 불법의 최고의 법문을 설하신 것이 있기 때문에 오늘 전강 조실 스님께서 최상승법인 참선법, 활구참선(活句參禪)을 설하시기 전에 간략히 재송 법문을 하신 것입니다.

그러니 그 처녀가 "어른이 계시니 우리집에 가서 어른한테 허락을 맡으십시오"
그러니까 아니라고 "어른은 어른이고 처녀가 한마디만 허락을 하면 내가 가서 어른한테 말을 할 테니까 처녀는 처녀대로 한마디만 허락을 해달라"고. "하룻밤만 쉬어 가자"고.

"그러면 쉬어 가시라"고 그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그러니 "참 고맙다"고 하고는 그 옆에 가서 가만히 앉아서 좌선(坐禪)을 하고 앉았는데, 그 처녀는 '조금 쉬었다가 가실려나 보다' 이리 생각하고 한참 동안 빨래를 하고는 아! 이리 돌아다보니까 아 그 스님이 앉은 채 아조 열반(涅槃)에 드셨다 그 말이여. 앉은 채 딱! 숨을 거두어 버렸어.

아 그 흔들고 "스님, 스님" 하고 아무리 흔들어 봤자 까닥도 안 한다. 아 그래서 겁이 잔뜩 나고 그래서 주섬주섬 해 가지고 집으로 쫓아가서 부모님께 "아, 그 어떤 노스님이 우리집에서 하룻밤만 쉬어 가자고 하도 간청을 하셔서 그러라고 그랬더니 앉은 채 그냥 돌아가셔 버렸다"고. 그래서 어른들 모다 오셔서 장례를 치러 드렸는데 그 뒤로 그 처녀 배가 날을 거듭하면서 차츰차츰 부르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집에서는 자기 딸을 갖다가 의심을 하고 '누구의 자식이냐?'고 아무리 힐책을 했지만 전혀 그런 사실이 없다고 해봤자 아무도 곧이듣지를 않고, 결국은 '불 안 땐 굴뚝에 연기가 나겠느냐?' 이래 가지고 그 처녀는 집안을 위해서, 집안의 명예를 위해서 감쪽같이 죽여 없앨 수밖에는 없었던 것입니다. 옛날에는 집안에 그러한 일이 나면 가문의 명예를 위해서 참 깊은 소(沼)에다가 갖다가 넣어 버리기도 하고 또는 푸대로 싸서 수백 리 밖에 갖다가 버리기도 하고 그랬던 것입니다.

요새는 그런 일들이 보통으로 여겨지기도 하고, 으레히 결혼 전에 모다 그 먼저 그럴 수도 있고 모다 그래 오고 있지만 옛날에는 그러한 법이 대단히 엄격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인을 시켜서 괴에다 넣어 가지고 참 깊은 소(沼)에다 갖다 넣어 버리기로 했는데, 다행히 그 모친 배려로 해서 많은 금품을 주어 가지고 하인들에게 부탁을 해서 소(沼)에다 넣지 말고 저 수백 리 밖에다 갖다가 버리고 다시는 고향 근처에 어리대지 말도록 이렇게 해 가지고 그 처녀는 수백 리 밖에 가서 풀어주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거지로 돌아다니면서 얻어먹다가 엄동설한(嚴冬雪寒)에 달이 차서 남의 집 담 밑에서 해산(解産)을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해산을 해 가지고 그걸 어떻게 해 볼 수가 없으니까 그 애기를 갖다가 그 폭포수 밑에 강가에다 갖다가 가만히 넣어 버렸던 것입니다.
그리고서 밤새 참 울고 울어 지새우다가 그 이튿날 아침에 너무너무 불쌍하고 궁금하고 해서 다시 그 물 소 있는 데를 가보니까 물오리들이 수십 마리가 모여 가지고 그 강보에 쌓인 갓난아기를 등으로 모다 받치고 입으로 모다 어루만지면서 그 물위에 동동동동 이렇게 떠다니면서 오리들이 참 신비하게도 그렇게 애기를 갖다가 떠받치면서 다니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 애기는 물오리들의 날개와 등으로 떠받쳐진 채 거기서 죽지 아니하고 보송보송한 채 떠다니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엄마는 쫓아가서 애기를 들어내 가지고 그 애기를 안고 다니면서 애기를 키웠던 것입니다. 가는 곳마다 참 거지의 신세지만 이상하게도 가는 곳마다 많은 사람들의 따뜻한 친절로 해서 그 애기를 키웠습니다마는 집도 절도 없는 그러한 신세로써 그 애기를 하나를 믿고 한 살, 두 살, 세 살 이렇게 키우는데 너무너무 애기가 잘 생기고 영리하고 귀엽고 똑똑해서 참 그러한 자기의 외로운 신세지만 그 애기 하나 길르는데 보람을 느끼면서 고생이 고생인 줄 모르고 그 애기를 길르다가 애기가 십여 세가 되었는데 하루는 우연히 어머니에게 작별을 고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내가 너를 믿고 오늘날까지 살았는데 니가 나를 두고 가다니 될 말이냐?" 아무리 울며 붙잡았지만 그 애기는 뿌리치고 바로 4조(四祖) 도신대사(道信大師)가 계신 곳으로 쫓아갔던 것입니다. 가자마자 "그 팔십 년 늙은 노인이 결국은 이렇게 몸을 바꿔서 왔습니다" 그래 가지고 도신 스님으로부터 인가를 받아서 부처님으로부터 32대 조사(祖師)의 전법을 받게 되셨던 것입니다.(14분47초~26분50초)

 





(2)------------------

여러분은 아까 전강 조실 스님 법문 가운데에 그 오조 홍인대사를 그 어머니가 너무너무 보고 싶고 그리워서 그 아들(오조)이 계신 황매산을 찾아갔다 이것입니다. 찾아갔는데 그 아들이 우리 인간의 정(情)으로는 외로우신 어머니가 찾아왔으니 당연히 반갑게 맞이할 것 같은데, 그 어머니를 갖다가 저 뒷방에다가 갖다가 가두어서 굶어서 돌아가시게 했다. 그런 말씀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우리 상식적으로는 도저히 용납할 수가 없고 이해할 수가 없는 일이 되겠습니다마는, 인정(人情)이라고 하는 것이 우리 인간 세상에 있어서는—인정머리 없는 사람이다, 인정머리가 없다—그 인정이 참 좋은 것으로 생각하고, 인정은 바로 성현의 자비(慈悲)와 같은 것으로 생각하고, 인정이 있는 사람을 그렇게 훌륭한 참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엄격하게 따지면 인정(人情)과 성현의 자비(慈悲)와는 동질성의 것이 아닙니다.

성현의 자비에는 따뜻한 인정도 있지만 동시에 참 서릿발보다도 더 차웁고 칼날보다도 더 날카로울 수도 있는 그런 면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생(衆生)의 인정이라 하는 것은 정에 빠지면 이성(理性)을 잃어버리게 되어서 정(情)으로 남을 보살피고 정(情)으로 남을 사랑하면 그 결과는 그 사람을 위하기보다는 오히려 해롭게 하는 그러한 역효과를 가져오는 수가 너무나 많고 그 정(情) 때문에 결국은 가슴이 쓰리고 아픈 그러한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찌 이 홍인대사(弘忍大師), 이 재송 도인, 이 홍인대사인들 자기를 낳아주신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없으리오마는 또 어머니를 따뜻하게 맞이하고 잘 받들어 모시려는 인간으로서의 정이야 어찌 없겠습니까마는, 참으로 어머니를 생각하고 어머니의 영원한 영혼의 행복을 위해서는 그렇게 해 드릴 수밖에는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당신 밑에 모여 있는 칠백 명의 제자들로 하여금 수행자는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도(道)를 닦아야 한다고 하는 표본을 보이시기 위한 뜻도 거기에 있었으리라고 나는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무릇 도를 닦아 가는 데 있어서는 정(情)에 떨어진 일 그보다 더 해로운 것은 없는 것입니다. 사람이 서로 부모와 자식, 남편과 아내, 또는 형제간 친구 일가 간 모두가 다 정과 정에 얽히고설켜서 서로 좋아하고, 그것이 한 생각 변하면 미워하고 그것이 더 나아가면 웬수가 되고 전부가 다 그 원인은 정으로부터 그러한 웬수가 일어난다고 하는 사실을 우리는 명심해야 할 줄 생각합니다.
정법을 믿고 참나를 깨닫는 그러한 최상승법을 믿는 사람에게는 그러한 어리석음에는 떨어지지 아니할 것입니다.

최상승법을 믿지 아니한 사람은 정(情)이 사람의 전부인 줄 알고 정에 떨어져서 정에 얽히고 그래 가지고 부부가 한 생각에 웬수가 되고, 형제가 웬수가 되고, 부모 자식 간에 웬수가 되고, 친구가 웬수가 되어서 어제에 가장 친했던 사람이 하룻밤 사이에 웬수가 되어서 세세생생(世世生生)에 서로 해코자하고 서로 죽이고 그러다가 또 한 생각이 풀어지면은 또 가까워졌다 풀어졌다 가까워졌다 얽혔다 설켰다 이리해서 무량겁을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윤회(輪廻)를 하는 것입니다.

그 어머니를 갖다가 방에다 가둬서 굶어 돌아가시게 하는 것을 보고 칠백 명이 넘는 그 제자들은 '세상에 도인(道人)이 저럴 수가 있느냐? 저런 것이 어찌 도인이라 할 수가 있겠나? 우리는 이런 참 무도한 사람을 스승으로 알고 이 밑에서 우리가 있을 수는 없다' 그리해 가지고 모다 걸망을 싸가지고 전부 거기를 떠나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때에 하늘에서 소리가 있기를 "여러분들은 내 말을 잘 들으시오. 나는 이 오조 홍인대사의 어머니입니다. 나는 아들을 잘 두어서 그 덕택으로 하늘나라에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좋은 아들을 두지 않았던들 나는 인간으로서 정(情)에 떨어져서 아들을, 도인인 아들을 도인으로 보지를 못하고 내 배 속에서 나왔다고 하는 그 사실로 해서 '내 아들, 내 아들' 그러한 정(情)으로 아들을 보다가 일생을 외로움과 서글픔 속에서 인생을 살면서 아들에게, 중생교화를 하는 아들의 신경을 쓰게 만들어 주고 나아가서는 사찰에 피해를 끼치다가 내생에는 다시 어느 곳에 떨어졌을는지도 모르는데, 다행히 아들의 그러한 용감한 적극적으로 이 에미를 생각하는 그 뜨거운 자비, 뜨거운 자비로 해서 나는 모든 업(業)을 뿌리치고 선도(善道)에 태어나게 되었으니 여러분들은 이 도량을 떠나지 말고 여기서 철저히 용맹정진(勇猛精進)을 해서 대도를 깨달으십시오" 이러한 우렁찬 목소리가 공중에서 울려 나왔던 것입니다.

거기에서 칠백 명은 일제히 감격해 가지고 다시 걸망을 내려놓고 그전보다도 훨씬 더 철저한 신심으로 도를 닦고 홍인대사를 정말 위대한 스승으로 신봉(信奉)을 했던 것입니다.


약이색견아(若以色見我)커나  이음성구아(以音聲求我)하면
시인행사도(是人行邪道)라  불능견여래(不能見如來)니라
나무~아미타불~

만약 색상(色相)으로써 나를 보거나, 음성으로써 나를 구하면 이 사람은 삿된 도를 행하고 있음이라 능히 여래(如來)를 보지 못하리라. 부처님께서 설하신 『금강경』에 있는 사구게(四句偈)입니다.
'내 모습이 32상(三十二相)과 80종호(八十種好)를 갖추었기 때문에 그래서 참 성현이다, 그래서 부처님이다' 하고 나를 보거나, 나의 음성은 원음(圓音)이라—한 말로 말하되 16군생(十六群生)이, 일체중생이 각기 자기 근기(根機) 따라서 사람으로 사람대로, 짐승은 짐승대로, 벌레는 벌레대로, 성인은 성인대로 각기 열 가지의 모다 자기의 입장에 따라서 나의 말을 알아들을 수가 있다. 그래서 나의 목소리는 '뚜렷한 소리'다 해서 원음(圓音)이라 그러는데, '나는 원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원음으로 설법을 할 수가 있기 때문에 참 부처님이다' 이렇게 나를 찾은 사람, 이 사람은 바로 삿된 도를 행하고 있는 사람, 소견이 삿된 사람이라 이러한 사람은 참으로 여래는 볼 수가 없는 것이다.

여러분은 부처님을 찾을 때, 선지식을 찾을 때, 정법을 찾은 때 있어서 이 금강경에 사구게를 깊이 명심을 해야 할 것입니다.
겉모양을 보고 음성을 듣고 그래 가지고 그 색상에 떨어져서 스승을 구하고 정법을 구하고 부처님을 구할 때에는 벌써 그 생각 자체가 그릇된 생각이여. 그릇된 소견에 떨어졌기 때문에 그 사람에게는 정법, 참나, 참 부처님은 만나지지 못할 것입니다.(26분53초~39분9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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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도 있습니다.

 

 

참선법 A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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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700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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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
인과 · 인연 · 비유2021. 9. 12. 08:21

§((212)) 네 아내(육신, 재산, 부모형제 처자권속, 마음)의 비유 / 우리의 자성(自性) 본성(本性) 바로 그놈을 제일 애끼고 사랑하고 돌봐줘야.

 

**송담스님(No.212)—1983년 9월 첫째 일요법회(83.09.04) (용212) (인연인과비유)

 

 

 

약 21분.

 



옛날에 부처님께서 사위국(舍衛國) 기원정사(祇園精舍)에 계실 때 한 거사(居士)가 있었는데 그때에 그 거사는 네 사람의 아내를 데리고 살았습니다.
네 사람을—그때 당시는 일부다처제로 아마 부인을 첫째 부인, 둘째, 셋째, 넷째 그 사람 능력 따라서 여러 부인을 거느리고 살 수가 있었던지 네 사람의 아내를 데리고 살았었는데,

그 사람은 첫째 부인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앉을 때나 섰을 때나, 잠을 잘 때나 밥을 먹을 때나, 어디 외출을 할 때나 일을 할 때나, 언제 어데서라도 잠시도 그 첫째 부인과 같이 붙어서 살았습니다. 그만큼 그 첫째 부인을 사랑하고 애끼고 좋아하고 그랬습니다.
그리고 먹는 것도 잘 먹이고, 이 세상에서 없는 제일 좋은 것은 다 먹이고 다 입히고, 누가 조금이나 해꼬자 할까 항시 자기 몸 가까이에 놓고 그렇게 사랑하고 이뻐했습니다. 아마 이 세상에 아무리 아내를 사랑한다 하더라도 그렇게까지 사랑하기는 어려웠으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또 둘째 부인도 첫째 부인만큼은 못해도 너무너무 사랑해서 도대체 다른 사람이 그 자기 아내를 볼까 두려워서 항시 가둬 놓고 그 아내를 사랑을 했습니다.
행여나 남이 눈독을 들일까 혹 남이 아내를 훔쳐갈까 이래 가지고 아내는 도저히 어디 밖에 내보내지도 않고, 마당에도 잘 내보내지도 않고, 항시 자기 방이나 특실에다가 딱 넣어 놓고 쇠통을 채워 놓고 그렇게 아내를 사랑을 했습니다.
너무너무 애끼고 사랑을 하고 심지어는 의처증(疑妻症)이라고 할 만큼 그 아내를 밖으로 내놓지를 않고 남이 보는 것을 그렇게 꺼려했습니다.

셋째 부인은—셋째 부인도 애끼는 생각도 있고 사랑하는 생각도 있고 그랬지만, 마음대로 밖으로도 외출하고 싶으면 하게 하고, 그렇게 날마다 보지는 아니하고 가끔 한번씩 보기만 하고 그저 수수허니 그렇게 살았습니다.

넷째 부인이 있었는데, 그 넷째 부인은 항시—자기(거사)는 그렇게 별로 좋아하지도 않고 사랑하지도 않지마는, 넷째 부인은 그렇게 남편을 하녀가 상전 모시듯이 그렇게 잘 따르고 또 명령을 복종을 하면서 그렇게 했습니다마는, 남편은 여간해서 옷 한 벌 명절이 되어도 해주도 않고, 그냥 영 그저 종 비슷하니 그렇게 취급만 했지 별로 그렇게 아끼지도 않고 따뜻하게 봐 주지도 않고, 그렇게 해서 네 아내를 그렇게 거느리고 살았습니다.

그러자 그 장자(長者)는 하룻날 부득이한 사정이 있어서 저 먼 데로 귀양을 가게 되었습니다. 이제 한 번 가면 다시는 돌아오기가 어려울 그러한 참 급박한 상황에서 먼 데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첫째 부인을 보고 "내가 이렇게 인자 가는데 다시 돌아올런지 못 돌아올런지 알 수가 없고, 나는 당신을 여의고는 도저히 살 수가 없어. 그러니 나를 따라서 가자"고 사정을 했습니다.
그러니 큰 마누라는 "내가 평생 동안 당신을 모시고 살았고, 당신도 나를 끔찍이 애끼고 사랑한 것은 사실이나 나는 못 따라가겠다"고.

"그럴 수가 있느냐"고 했지만 "더이상은 죽었으면 죽었지 못 따라가겠다" 하는 것입니다.
그래 할 수 없이 "이런 배은망덕(背恩忘德)한 여자가 있단 말이냐"고 호통을 치고, 그래도 따라가지 못하겠다고 하는 데야 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둘째 부인한테 또 말을 했습니다.
둘째 부인도 "당신이 나를 너무 지극히 사랑해서 평생을 참 문밖을 마음대로 못 나가고 가둬 놓고 키우고 그랬지만 나는 당신을 따라갈 수가 없다" 둘째 부인도 거절을 했습니다.

그래 셋째 부인한테 또 말을 했습니다.
"내가 당신을 그동안에 살면서 첫째와 둘째한테만 내가 주로 사랑을 쏟고 당신한테는 그렇게 내가 사랑을 못 해주고 해서, 내가 이 마지막 가게 될런지도 모른 이 먼 나라를 가는데 같이 가자고 하기가 미안하나, 어디 그래도 첫째 둘째가 저렇게 배은망덕을 해서 안 가니 당신이라도 좀 같이 갈 수가 없겠느냐?" 사정을 하니까,
"평생 동안 괄세를 하고 첫째 둘째한테만 퐁 빠져 가지고 그 돌아본 채도 안 해 놓고서 어째 오늘은 나보고 아주 가자고 하냐"고, "그런 철면피(鐵面皮) 같은 소리를 할 수가 있단 말이냐"고, "나도 그렇게는 못 하겠다"고 딱 잡아뗐습니다.

그래 마지막에 참, 넷째 부인한테 또 부탁을 했습니다. "내가 그동안 당신을 하녀처럼 생각하고 옷 한 벌 변변히 해 준 것도 없고, 손 한번 내가 따뜻하게 만져주지도 않았는데, 저렇게 세 여자들이 저렇게 배은망덕을 하고 안 따라가니 도저히 나 혼자 가기는 도저히 갈 수가 없고 천상 당신이 나를 좀 따라가 줘야 하지 않겠냐?"고 하니까,
넷째 부인이 눈물을 흘리면서 "어피차 나는 일생 동안 당신의 종노릇을 하면서 푸대접을 받아도 그것이 나의 팔자거니 하고 참 세월을 그렇게 살아왔는데, 당신이 살면 얼마나 산다고 내가 기꺼이 내가 따라 모시겠다" 그래 가지고 승낙을 했던 것입니다.

첫째 부인은 '국경까지는 바라다 주겠다', 둘째 부인은 '이 문 방안까지 밖에는 못 가겠다', 또 셋째 부인은 '저 마을 밖에까지 밖에는 못 가겠다'. 이렇게 모다 해서 거절을 당하고 그렇게 인자 마지막 넷째 부인과 길을 떠나게 되었다 이것입니다.


그런데 이 첫째 부인은 무엇이냐 하면은 우리의 육신(肉身)이라 이것입니다. 사람이 그 영혼이 이 세상에 태어날 때 육신을 받아서 태어나게 되고 또 그러기 때문에 일생 동안 그 육신을 떠나서는 살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영혼이 떠나는데 육신이 따라갈 수가 없고, 육신은 결국은 영혼이 떠날 때 육신은 떨어져서 쓰러지면 땅에다 묻거나 불에 태우거나 하지, 육신이 절대로 영혼을 따라갈 수가 없는 데다 비교를 한 것이고.

둘째 부인은 재산(財産)에다가 비교를 한 것입니다. 육신이라 하는 것은 자나깨나 항시 같이 살고 있는 것이지만 재산은 누가 보면 훔쳐갈까, 달라고 할까 두려워서 항시 창고나 궤 속에다 가둬 놓고 쓰기 때문에 둘째 부인은 재산에다가 비유를 한 것이고.

셋째 부인은 부모나 형제나 처자권속에다가 비교를 한 것이어서 가끔 만나면 좋고 그저 든든한 맛으로 그저 형제간은 그렇게 살되, 그 영혼이 죽은다 해서 형제간이 같이 죽어갈 수는 없는 것이죠?

그런데 마지막 넷째 부인은 우리의 마음에다가 비교를 한 것입니다. 우리는 평생 동안 살면서 그 마음에 대해서는 거의 무관심하게 사는 것입니다.

이 몸뚱이라든지, 재산이라던지, 부모 형제에 대해서는 온갖 인정을 쏟고 애지중지하고, 그 어쩔 줄을 모르고 심지어는 그 육신을 위해서는 온갖 음식이다 보약이다 또 좋은 옷이다 화장품이다 해 가지고, 그렇게 온 정성을 쏟아서 그 육체 하나를 갖다가 잘 가꾸기 위해서 평생 동안 보호를 하고 애지중지하지만 먼 데로 떠나는 날에는 완전히 언제 봤던가 완전히 배신을 해 버리고 따라가 주지를 않는 것입니다.

둘째, 재산도 그 재산을 벌기 위해서 그렇게 참 피땀 흘려서 고생을 하고 밤잠을 안 자고 고생을 하고, 그 재산을 모으기 위해서 알고 모르고 지은 죄가 얼마인 줄을 알 수가 없고 그렇지마는 죽어 가는 마당에는 재산도 아무 소용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셋째, 부모라던지 형제간이라던지 처자권속도 내가 희생을 해 가면서 봉사를 하고 그걸 잘 먹이고 잘 입히기 위해서 온갖 정성을 다 쏟고 하지만, 내가 죽어 갈 때에는 부모도 어찌하지 못하고 형제간도 어찌하지 못하고 심지어 처자와 아내와 자식들도 내가 죽어 갈 때에는 나 대신 죽어 줄 수도 없고 내가 죽을 때에 따라 죽어 줄 수도 없는 것입니다.

넷째에 평생에 괄세하고 소박을 했던 넷째 마누라는 바로 우리의 마음자리에다 비교한 것인데, 그 마음자리 마음은 제일 소중하고 애끼고 잘 먹이고 잘 입혀야 할 넷째 마누라인데, 그것을 등한히 했기 때문에 그것을 등한히 하고 첫째 마누라, 둘째 마누라, 셋째 마누라한테만 퐁 빠져 가지고 괄세를 했기 때문에, 그 셋째까지 먹여 살리느라고 죄만 퍼지었지 마지막 가는 마당에는 그 죄만 짊어지고 가게 되고 아무도 따라와 주지 아니한 것처럼.

우리의 본성(本性)을 갈고 닦아서 과거에 지은 업(業)도 소멸하고, 새로 업을 짓지 말아야 극락세계(極樂世界)나 도솔천 내원궁(兜率天內院宮)에 태어나거나 또는 다시 인도환생(人道還生)을 하되 좋은 가문과 좋은 부모와 또 정법을 만날 수 있는 그러한 환경에 태어나서 인물도 좋고 머리도 좋고 인품도 좋게 태어나서 공부도 걸림이 없이 하고 또 이 최상승법과도 인연이 있어서 바르게 살아갈 수 있게 되겠지만, 그것을 괄세를 하고, 불고(不顧)를 하고 그랬기 때문에, 그 마음자리를 괄세를 하고 닦지를 않았기 때문에 악도(惡道)에 떨어져서 그동안에 애끼고 가꾸고 한 육신이나 재산이나 부모 처자권속도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특히 우리나라는 지금 부인을 하나밖에는 갖지를 못하게 법률이 되어 있습니다마는, 그러한 이 네 명의 부인을 갖는다 하는 것은 우리의 육체와 재산과 부모와 형제 처자권속과 또 우리의 본래부터 타고난 그 마음자리와 이 네 가지를 비유를 했을 뿐,
사실 우리는 아직도—불법을 믿고, 도를 닦고 이렇게 와서 법문을 듣지만—첫째 둘째 셋째만 이뻐하고, 넷째 부인은 영 겨우 시간이 조끔 있으면 형식상으로 조끔 들여다본 척하고 실재 마음을 딴 데에가 있고, 이렇게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분이 많이 계시다면 이것은 불법(佛法)의—위태로운 그 썩은 새끼에 매달린 불법이 위태로운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불법을 그렇게 위태롭게 만든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들이 첫째 둘째 셋째, 마지막 가는 길에는 여지없이 배신해 버리고 말아버릴 그러한 (첫째) 둘째 셋째 부인한테만 퐁 빠져 가지고 정신이 하나도 없고, 진짜 나를 따라가 줄 넷째 부인한테는 그렇게 등한히 하기 때문에 마지막 떠나는 길이 그렇게 처량할 수 밖에는 없는 것처럼.
우리의 자성(自性) 본성(本性) 바로 그놈을 제일 애끼고 사랑하고 돌봐줘야 하고 잘 먹이고 잘 입혀야 할 터인데 그것을 괄세를 하기 때문에 우리 자신들의 장래, 우리 자신들의 금생은 말할 것도 없고, 저 내생 무량겁을 두고 처량한 신세로 객지로 육도윤회를 떠돌이 할 수 밖에는 없게 되는 것이며, 그것이 바로 불법의 명(命)을 실오라기처럼 위태로운 지경에까지 몰고 가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이 종단은, 여러분 앞에 종단 이야기를 하기가 대단히 죄송하고 얼굴을 들 수가 없습니다마는, 우리 종단의 일은 스님네만의 일이 아니고 우리 사부대중 전체의 일이기 때문에 우리는 진정한 마음으로 우리 종단이 하루속히 바로잡아지고 안정이 되어서 불법이 나날이 융성해 가고 많은 사람들이 불법에 귀의해서 바른 길을 찾아서, 실오래기 같은 그 불법의 맥이 동아줄보다도 더 크고 아름드리 고목(古木)나무나 강철로 된 밧줄과 같이 아무리 끊어도 끊어질 수 없는 그런 튼튼한 맥이 되도록 우리는 진심으로 기원을 하고 협조를 해야 하리라고 생각이 됩니다.(19분3초~39분33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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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700여 개의 ‘참선 법문(法門)’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 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 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그리고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도 있습니다.

 

참선법 A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B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C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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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선법 E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700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인과 · 인연 · 비유2021. 7. 27. 13:23

§((235)) 울산군(蔚山郡) 원남면 이근홍의 인과설화 / 인과(因果)와 윤회(輪廻)의 법칙을 부정을 해 버린 사람은 무식하기가 말로 할 수 없는 사람 / 김천(金泉)에서 어느 부인이 아들 집 개로 태어난 인과설화.

금생(今生)에 어떻게 짓느냐에 따라서 내생(來生)에 어떻게 받느냐 한 것을 알 수가 있다. 한 생각 뒤가 바로 내생 / 한 생각 일어나자마자 그 생각을 탁! 돌이켜 가지고 '이 뭣고?' 화두를 들면 생사해탈(生死解脫) 길로 나아간 것이 된다.

**송담스님(No.235)—1984년(갑자년) 법보재 법회(84.04.16) (용235) (인과, 인연)

 

 

 

(1) 약 21분.

 

 

(2) 약 20분.

 


(1)------------------

요새 혹 젊은 분들은 이 불교(佛敎)에 인과(因果), 윤회(輪廻)의 이치를 잘 모르는 분은 그런 것을 잘 모르니까, '그런 소리는 권선징악(勸善懲惡)을 하기 위한 방편설(方便說)이 아니냐?' 이렇게 잘 믿을려고 하지 않는 분이 있습니다마는,
요새는 심령과학(心靈科學)이 상당히 발달이 되어서 사람이 죽었다고 해서 그 영혼까지도 흩어져 없어져 버린 것이 아니라, 설사 몸은 죽어서 땅에다 묻고 화장(火葬)을 해서 한줌의 재가 되어서 물이나 산에 흩어 버리고 그래서 없어졌다 하더라도, 이 몸뚱이를 끌고 다니는 그 영혼은 원래 태어난 때가 없고 또한 영원히 죽어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업(業)에 따라서 다시 또 몸을 받아나고 또 한평생을 살다가 또 지은 업에 따라서 천당이나, 지옥이나, 인간이나, 축생에 또 태어나는 노릇입니다.


1938년에 경상북도 울산군(蔚山郡) 원남면(苑南面) 상서리(上西里)에 이규진(李圭鎭)씨라 하는 분이 살아 있었습니다. 그분에게는 이근홍(李根洪)이라고 하는 외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그 이근홍 군이 갑자기 병(病)을 앓다가 손쓸 겨를도 없이 죽었습니다. 그래서 그 부모는 너무너무 애통(哀痛)하다가 두 눈이 짓물러서 앞을 보지 못할 정도로 되었습니다.
그런데 마치 그 이근홍이라는 사람이 죽은 뒤에 한 4년쯤 되어 가지고 거기서 한 20리 가량 떨어진 마을에 한 청년이 있었는데, 그 청년도 우연히 병을 앓다가 그냥 허망하게 죽었습니다.

근데 그 청년이 죽어 가지고 염라대왕(閻羅大王) 저승을 갔는데, 저승에 가니까 어떤 청년이 옷을 깨끗이 입고서 의자에 앉었는데 아, 자기를 보고 대단히 반겨하면서,

"당신이 저 울산 원남에서 살다가 온 사람이 아니냐?"
"아, 내가 그렇다"고.

당신은 지금 아직 이 저승에 올 때가 아닌데, 그 잘못해 가지고 다른 사람이 잡혀올 텐데 당신이 잘못 잡혀왔어. 그래서 당신은 곧 당신 집으로 다시 돌아가게 될 것이다.
조끔 있으면 염라대왕이 당신을 부르면 나가게 될 텐데, 그 염라대왕이 당신한테 다시 당신 고향으로 가라고 명령을 할 것이다.

조끔 있으니까 자기 이름을 불러서 염라대왕 앞에 떠억 끌려갔다 그 말이여. 그 청년을 잡아오는 그 지옥 저승에 사자(使者)를, "어찌 그런 것을 정확하게 자상하게 살펴서 잡아오지를 못하고 어믄 사람을 잡아왔다"고 그 되게 혼구녁을 내서 꾸짖고서, "기왕 이 오기 어려운 곳을 왔으니 이 저승을 구경이나 하고 가라"

그래 가지고 그 이근홍이라는 사람은 4년 전에 와서 그 저승의 모든 것을 잘 알기 때문에 이근홍이가 안내를 해 가지고 그 십대왕(十大王) 궁(宮)을 다 구경을 하고 또 그 죄(罪) 진 사람 죄 받는 모습도 다 구경을 하고, 그리고서 이제 지옥(地獄)에서 떠나오게 되었는데, 그 이근홍이라는 사람이 "내가 당신한테 부탁할 말이 있으니, 내 고향에 가거든 꼭 내 말을 좀 우리 집에다 전해 달라"고. "무슨 말이냐" 한께,

"내가 우리 숙부한테 돈 백 원을 빌려 쓰고서 미처 갚지를 못하고 내가 죽었는데, 내가 죽은 뒤에 우리 숙부께서, 내가 죽은 뒤 2년 만에 우리 숙부가 돌아가셔 가지고 지금 나 있는데 와서 계시는데, 내가 갚지 못한 그 백 원, 그 백 원을 저승에까지 따라와 가지고 갚으라고, 근데 내가 이 저승에 무슨 돈이 있어서 갚겠느냐고.
안 갚으니까 그 숙부가 염라대왕한테 고소(告訴)를 해서 지금 재판이 걸렸는데 아무 때라도 그 돈이 해결이 되어야 우리 숙부도 좋은 곳, 어디로 딴 데로 가시게 되고, 나도 다른 데에 가서 태어날 텐데 아직 그 재판이 계류 중이라 가지를 못하고 이 저승에서 이렇게 4년이나 꼼짝을 못하고 있으니,
고향에 돌아가거든, 울산군 원남면 상서리라고 하는 곳에 가서 우리 아버지 이규진 씨를 찾어 가지고, 저승에 와서 이근홍이란 사람을 만나서 이런 약허약허(若何若何) 허더란 말을 소상하니 얘기를 하고, 돈 백 원을 그 우리 숙부님, 숙부 댁에다가 갖다 갚고, 그리고서 나를 천도(薦度)를 좀 잘해 달라"고, 그렇게 부탁을 했습니다.

"나를 천도를 하되 울산에 가면 문수암(文殊庵)이라고 하는 절이 있으니까, 그 문수암에 가서 돈과 쌀과 그 정성껏 모든 것을 마련을 해 가지고 가서 하되, 불국사(佛國寺)에 가서 큰스님네를 초청을 해다가 영가에게 법문(法門)도 들려주고, 그 여러 스님네를 많이 초청해서 스님네 공양(供養)도 올리고 그렇게 조끔 말을 해 달라"고.

그리고서 인자 시간이 다 되었으니까 빨리 가라고 그래서, 그래서 인자 조루루 하니 그 지옥에 열두 대문을 전부 구경을 하고 거쳐서 오니까 무슨 강이 있는데, 다리를 건너오는데 중간에 다리가 뚝! 부러져 가지고 깜짝 놀랜 바람에 깨어났다 그 말이여.
눈을 떠 보니까 집에서는 그 초상(初喪)이 났다고 울고불고 야단이다 그 말이여. 죽은 지가 사흘이 되어 사흘 만에 다시 깨어났어. 그래 가지고 깨어나고 보니까 자기는 꿈꾼 거다. 꿈을 꾸었어. 꼭 꿈속에서 만난 것처럼 모든 것을 보고 느끼고 기억을 해 가지고 꿈 얘기를 하는데, 집안에서는 모다 초상이 나가지고 울고불고 야단이다 그 말이여.

그래서 눈을 떠 가지고 인자 정신을 차려서—그 이근홍이라는 사람을 만나서 지옥을 안내 받고, 이근홍이가 자기한테 부탁한 말을 전부 다 얘기를 하니까 '하, 그 참 이상하다' 그래 가지고 그 원남면 상서리로 사람을 보내 가지고 그 이규진씨란 사람을 만나서 보니까, 2년 전에 그 이규진씨 동생이 죽었고 또 그보다 2년 전에, 더 2년 전에는 이규진씨 아들 이근홍이라는 사람이 분명히 죽었다 이거거든.
그러니 거짓말이 아니고 틀림없는 사실이라고 하는 것이 확인이 되어서, 그래서 그 돈 백 원을 갖다가 그 숙부집에 갚고, 바로 날을 받아 가지고 문수암(文殊庵)에 가서 큰 재(齋)를 지냈어.

칠일 기도를, 지장기도를 해 가지고 떠억 천도재(薦度齋)를 지냈는데, 마지막 천도한 날 저녁에 이근홍이하고, 이근홍이 숙부하고 떠억 그 청년 꿈에 나타나 가지고,
"내가 그 영 이 저승에서 풀려날 길이 없었는데 당신이 내 약속을, 부탁을 잘 들어주고 우리 부모님이 나를 위해서 그렇게 참 천도재를 융숭(隆崇)하게 해 준 그 공덕으로 다 지옥에 재판이 다 끝나고, 우리 숙부와 나와 함께 도리천(忉利天)에 태어나게 되었다" 심심한 사과를 하고 마지막 작별을 하는데,
"당신은 앞으로 15년 뒤에는 나한테로, 내가 있는 도리천으로 오게 될 것이니 그때 다시 만나자"고, 그렇게 하고서 이근홍이란 사람 숙질간이 뚝 떠나서 하직(下直)을 했는데, 깨고 보니 그 분명히 꿈이다 그 말이여. 참... 그래서 그럭저럭하다가 15년이 되었는데 과연 그 청년이 15년 만에 죽었습니다.

이것은 1938년이니까, 지금부터 한 50년 전에 울산에 그 원남면 상서리에 있었던 한 실화(實話)입니다마는, 사람을 떡 보면 '저 사람이 전생(前生)에 뭣이었었고 또 내생(來生)에는 어떻게 되겄다' 이런 것을 숙명통(宿命通)이 열리면 알 수가 있고, 또 우리 보통 사람의 눈에는 안 보이지만 이 허공계에 있는 모든 귀신(鬼神), 선신(善神) 악신(惡神) 이런 귀신을 다 볼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오래된 농짝 같은 거, 오래된 무슨 골동품 같은 거, 그런 걸 보면 거기에 그 골동품에 탁! 애착(愛著)이 붙어 있는, 전생에 그 사연이 있는 그러한 영가(靈駕)가 거기에 딱! 붙어서 그것을 의지해 가지고 있는 것이 환히 보이는 사람이 있습니다. 스님 가운데도 있고, 보살 가운데도 있고, 또 불교를 안 믿어도 또 그런 것이 보이는 사람이 있어요.

이건 전생에 식(識)이 맑어서, 태어나면서부터 식(識)이 맑은 사람, 또 입태(入胎) 출태(出胎)에—사람은 태중(胎中)에 환히 모든 것을 이렇게 알고 있다가, 일생 동안 자기가 한 일을 다 기억하고 있다가 딱! 새로운 태(胎) 속으로 들어가는 찰나(刹那)에 콱 매(昧)해 버리기도 하고, 그 태(胎) 속에 들어 있을 때까지도 알고 있다가 그 태에서 나오면서 잊어버리기도 하고, 태에서 나와 가지고도 환히 알고 있다가 차츰 그 어릴 때는 환히 알고 있다가 차츰차츰 밥을 먹고 말을 할 만큼 되면 영 꽉 맥혀 버리기도 하고 그러는 것입니다.

특수한 사람은 태(胎)에 들어갈 때도 안 매(昧)하고, 나올 때도 안 매(昧)하고, 또 잠깐 매(昧)했다가도 커서 염불(念佛)만 조끔 하던지, 주력(呪力)을 조끔 하던지, 기도만 조끔 해도 금방 그 맥혔던 것이 벗거져 가지고 이리 보면은 귀신도 보이고 모다 그러는 수가 있습니다. 귀신 붙은 것도 보이기도 하고 그러는데.
뭐 귀신 붙은 것이 보이고, 귀신이 보인다고 해서 그것이 확철대오한, 그 도통(道通)을 한 것은 아니에요. 그것을 착각을 하면 안 됩니다. 설사 그런 영가가 보이고, 귀신이 보이고, 뭐 전생 일을 환히 안다고 해서 그것이 무슨 생사해탈(生死解脫)을 하는, 도(道)를 깨닫는 것 하고는 전혀 관계가 없는 것인데, 식(識)이 맑으면 그런 것이 보이게 되어요.

혹 이 사부대중 가운데에도 그런 것이 보이기도 하고, 알기도 하는 분이 상당수 있지 않은가, 나는 생각을 합니다마는, 그것은 좋은 것도 아니요 나쁜 것도 아닙니다.
좋은 것도 아니요 나쁜 것도 아니지만, 그러한 것에 신경을 쓰고 집착을 해서 아는 소리를 하고, 자기가 무슨 도(道)나 트인 것처럼 그런 그 고런 것 좀 아는 것을 가지고 자랑을 하고 뽐내고 으시대고 도인 행세를 하고 이렇게 되면 그건 물어볼 것도 없이 사도(邪道)고, 외도(外道)고, 아주 잘못된 것입니다.

혹 공부를 하다가 그러한 능력(能力)이 얻어졌다 하더라도 그것이 진정한 도(道)가 아니라고 하는 것을 스스로 잘 인식을 하고, 전혀 그런 것에는 신경을 쓰지 말아야 하고, 집착을 하지 말아야 하고 또 그러한 힘을 능력을 써먹고, 남 앞에 과시를 하고 그래서는 아니 되는 거여. 아주 깨끗이 본인도 그건 없었던 것으로 취급을 하고, 오직 정법(正法)을 향해서 닦아 가면 아무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이러한 실화와 또 이러한 능력이 있는 사람, 또 부처님의 말씀을 의지해서 보면, 사람이 죽어서 자기의 지은 업(業)에 따라서 천당과 아수라와 인간과 축생과 아귀와 지옥, 이 육도(六道)를 인연 따라서, 업 따라서 윤회(輪廻)한다고 하는 것은 지극히 과학적 사실이요, 틀림없는 법칙이라고 하는 것을 우리는 잘 알 수가 있습니다.

인과(因果)에 법칙(法則)은 그러한 추호(秋毫)도 어김이 없는 사실인데도 불구하고 이것을 미신(迷信)이라고 믿지를 아니한 사람은 업이 두터운 사람이요, 눈이 극도(極度)에 근시안(近視眼)은 한 5m만 떨어지면—다른 사람은 저 10m, 100m, 저 10리, 20리 떨어진 먼 산도 다 보이는데—극도에 근시안은 안경만 벗으면 코앞에 사람도 잘 못 알아봅니다.
또 육체적으로는 눈이 시력이 아무리 좋아도 백지 한 장만 가리워 놓면 그밖이 안 보입니다. 벽 밖에도 우리는 볼 수가 없고, 더군다나 산이 가려 막혀 있으면 산 넘에는 보지를 못합니다.

그런데 부처님을 비롯한 여러 성과(聖果)를 얻은 성인들은, 육신통(六神通)을 얻은 성인들은 공간적(空間的)으로 아무리 멀고 아무리 산과 벽이 막혀 있어도 바로 이 허공(虛空)을 보듯이 환히 다 보게 되는 것입니다. 설사 그런 성현이 아니라도, 외도(外道)라도 이렇게 천안통(天眼通)을 얻으면 공간에 걸림 없이 다 보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이 극도에 근시안이요, 그런 천안통을 갖지 못했기 때문에 보지 못한 것을, 자기가 보지 못한다고 해서 '에이, 그런 것은 거짓말이요 미신이다' 이렇게 그러한 인과(因果) 윤회(輪廻)와 윤회의 법칙을 그렇게 간단하게 부정을 해 버린 사람은 무식하기가 말로 할 수 없는 사람이여.

자기 눈으로 못 봤다고 해서 부정을 한다면 우리가 증조할아버지, 아 고조할아버지나 7대 할아버지, 10대 할아버지 본 사람이 어디가 있어?
아무리 할아버지 많이 봐도 증조할아버지까지는 혹 보는 수가 있어도 고조(高祖)나 육 대조(六代祖), 칠 대조(七代祖) 이상 본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그러면은 자기 눈으로 못 봤다 해서 자기에게는 육 대조나 칠 대조, 십 대조 할아버지가 안 계셨단 말입니까?
'내 눈으로 안 보면 믿을 수가 없다' 한 그건 참, 코 없으면 똥을 집어먹을 사람이거든.(19분49초~40분46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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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이 바른 말이고, 이치에 합당한 말이고, 성현의 말씀이면 믿을 줄을 알아야지, 자기 눈으로 극도의 근시안이 되어 가지고 5m만 떨어져도 못 보고 더듬더듬한 사람이 저 앞에 산이 있다고 해도 믿지 않고, 차가 온다고 해도 믿지 아니하고 막 함부로 마구잽이 막 쫓아나가면, 그 사람은 자동차에 치이고 허방에 빠지는 길 밖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입니다.
인과에 법칙을 안 믿는 사람은, 그건 불법을 믿는다고 할 수가 없어요. 정말 이 세상에 모든 사람이 인과(因果)의 법칙(法則)만 철저히 믿게 되면 그 사람은 죄를 지을라야 지을 수가 없습니다. 인과의 법칙을 모든 사람이 믿으면 이 세상에 법이 필요 없게 되는 것입니다. 형법이나 무슨 민법이고 뭐 아무 법률(法律)이 필요가 없어요. 경찰도 필요 없고, 법원도 필요 없고, 형무소 교도소도 필요 없이 되는 것입니다.

참, 이 불법(佛法)을 철저히 믿고 참선(參禪)을 하고 수행을 하면, 내가 저지른 행동은 말할 것도 없고, 마음속으로 한 생각 잠깐 일어났다 꺼지는 그 찰나간의 생각마저도 한데에 떨어지지 아니하고 고대로 과보(果報)를 받는다고 하는 사실을 뜨겁게 느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몸으로 남을 뚜드러 패고 남을 죽이고 그런 것은 뭐 말할 것도 없고, 또 입으로 무슨 거짓말을 하고 그런 것도 말할 것도 없고, 자기 속으로 잠깐 한 생각 내는 것도 그렇게 무섭게 다시 돌아온다고 하는 사실을 정말 느끼게 되고 인식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렇게 철저하게 뜨겁게 와서 느끼고 와서 닿는데, 어떻게 입으로 거짓말을 하며, 남의 재산을 사기를 치며, 나 이롭기 위해서 남을 갖다가 죽이고 패고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조카가 삼촌의 돈 백 원을 빌려다 쓰고—삼촌이라 하면은 바로 자기 아버지의 동생인데, 아버지의 동생의 돈 백 원 빌려다 쓰고 못 갚었는데—다른 사람이 아닌데, 조카에게 돈 백 원 빌려준 것을 저승에 까지 가 가지고 그놈을 안 냈다고 해서 염라대왕에 재판을 해 가지고 둘 다 그 재판에 걸려 가지고 가덜 못하게 되니, 중생의 그 탐심과 탐진치(貪瞋癡) 삼독심(三毒心)이라는 게 그렇게 무서운 것입니다.


저 김천에 또 어떤 사람은 자기 딸에게, 며느리와 아들 몰래 딸이 오면은 양석[糧食]도—옛날에 참 왜정(倭政) 때는 그렇게 쌀이 귀했거든. 그러니 딸이 오면은 그 며느리 눈치봐 가면서 몇 되씩 퍼 주면은 치마 속에다가 그저 감춰 가지고 가 가지고는 가고, 그저 팥 농사면 팥도 퍼 주고 깨도 퍼 주고 이래가지고 헌데, 그 친정어머니의 마음이지요.
그 시집가 논 딸을 항시 불쌍하고 못 잊고 그러니까, 가서 잘살면 오히려 친정에 모다 갖다 드리겠지만, 시집간 것이 가난한 데로 갔던지 친정에만 오면 어머니가 그렇게 가슴이 아파해서 그렇게 며느리 몰래 퍼 주고 퍼 주고 그랬었는데.

그 며느리가 얌전하고 효심(孝心) 있으면 그 시어머니의 마음을 알아서 며느리가 자진해서 '이거 시누가 왔으니 이거 쌀도 좀 주십시다. 깨도 좀 줍시다' 하고 자발적으로 그렇게 하면 그것이 참 효도가 되고, 얼마나 시어머니의 마음을 흐뭇하게 해 드릴 텐데 그 며느리가 마음이 거기까지 가지 못했던지, 그 시어머니가 며느리 몰래 그 할 때 얼마나 그 참 가슴이 아팠겠습니까?

아 그랬는데, 그 부인이 죽어 가지고 그 집에 개가 되었습니다. 그 개가 된 것을 어떻게 알겄습니까마는, 그 아들 꿈에 떠억 그 개가... 어찌 개가 떠억 자기 어머니로 보이면서,
"내가 니 애미다. 니 애미인데 내가 죽어 가지고 내가 개가 되었어. 내가 왜 개가 되었냐 하면, 너와 며느리 몰래 그 시집간 니 누이동생에 곡식을 퍼 주고 모다 그랬는데, 그 죄로 그것을 갚기 위해서 내가 개가 되어 가지고 느그 집 집을 내가 지키고 있다. 아, 그런데 며느리가 꺼떡하면 나를 발길로 찬다"

시골에 가면 부엌에서, 아주 개가 부엌에서 살면서 밥만 펐다 하면은 그저 밥 냄새 맡고 그저 달라들거든. 발길로 탁! 차기도 하고, 그저 주걱으로 대골통을 때리기도 하고. 그래 가지고는 밥은 즈그들이 다 밥 먹고 솥단지 씻은 거, 뭐 밥 먹고 남은 거, 누룽지 식은 밥, 모다 그런 걸 찌클어 주니 겨울에는 차와서 먹을 수가 없고, 여름에는 또 그 또 변질된 것 고런 것이나 주고.

그래 가지고는 "그러니 내가 밥도 먹을 수가 없고, 그 발길로 며느리... 다른 사람한테 채여도 분할 텐데 며느리한테 채여서 내가 분하고 살 수가 없다. 그러니 니 처(妻)한테 '개, 집에서 키우는 개를 그렇게 차는 법이 아니라'고 일러주어라. 그러고 밥도 좀 따뜻하게 주고, 때맞춰서 주고. 이렇게 하고 내가 겨울에는 추워서 잘 데가 없으니 짚으로 개집을 잘 만들어 가지고 좀 잘 수 있겄게 해다오"

그래서 참, 꿈을 깨 놓고 보니까 묘하다 그 말이여. 그 꿈을 깨 가지고 개 있는 데서, 개를 가서 보니 머끔하니 자기를 쳐다본 것이 꼭 자기 어머니 같다 그 말이여. 아, 그래도 이것이 그 꿈이라 놔서 차마 개 보고 '어머니, 어머니' 할 수도 없고.
그래서 차마 그 처한테 그 얘기를 '어머니가 세상에 개가 되었다'는 말을 챙피하기도 하고, 할 수도 없고 그래서 말을 안 하고는 며칠을 지냈는데, 아, 또 꿈에 그 나타나 가지고 "채여 가지고 눈팅이가 부었다"고, "왜 말을 하라니까 안 한다"고 재차 그런다 그 말이여.

그래서 할 수 없이 인자, "개를 발길로 차지 말라"고, "그렇게 내 집을 지켜주는 개를 그렇게 차지 말라"고, 그 부탁을 하고 "밥도 좀 따뜻이 주라"고 그러는데,
"남자가 조잡하게 무슨 개 밥 주고 말고 한 것을 간섭을 한다"고. "밖에 일이나 허제 개 갖고 그런다"고, 툭! 받어 버린다 그 말이여.

또 며칠 있다가 또 꿈에 또 그런다 그 말이여. 그래서 세 번째는 할 수 없이, "내가 지금 세 번째 꿈을 꾸는데, 저 개가 어머니가 돌아가셔 가지고 개가 되었다고 그런다. 그 어머니가 그 개가 되었다고 그러니, 이것이 한 번이라면 모르는데 세 번째 똑같은 꿈을 꾸니 이것이 아무래도 이상해. 그러니 제발 개를 발길로 차지 말고 하라"고, 아주 따끔하니 아주 타일러서, 그때부터서 인자 개집을 맨들어서 따뜻이 해 드리고, 또 밥도 따뜻하게 해서 잘 때맞춰서 개밥을 주고, 절대로 발길질하지 아니하고 잘 해드렸는데.

아, 그날 저녁에 떠억 어머니가 나와 가지고, "이제는 인자 내가 살겄다. 잠자리도 편하고, 밥도 배불리 먹고, 발길질을 안 하고 그래 인자 살겄는데, 내가 원(願)이 하나가 있다. 저 합천 해인사(海印寺) 그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을 내가 구경을 해야 내가 좋은 곳으로 인제 개 탈을 벗어나서 태어나게 된다고 그러니 나를 그 해인사 가서 절 구경을 시키고, 특히 그 팔만대장경 모셔진 그 대장각(大藏閣)을 나를 좀 데리꼬 다오" 부탁을 해서,
'이제는 틀림없다' 생각을 해 가지고, 그 개를 모시고 직지사(直指寺) 역(驛)을 가서 기차를 탈라고 하니까, 그 역원(驛員)이 "개는 차 못 탄다"고 딱! 가로막는다 그 말이여. 그 참 난감하게 되었다 그 말이여. 그냥 우물우물하고 있는데, 아! 개가 어떻게 잽싸게 이리저리 피해 가지고는 그냥 저리 뒤로 해 가지고는 지가 홀랑 뛰어올라 가 가지고는 그 의자 밑에로 쏘옥 들어가 버려.

그래 가지고는 인자 이 대구역(大邱驛)에 내려 가지고, 인자 내리니까 또 지가 먼저 탁! 내려 가지고는 그래 가지고는 역원에 눈을 피해 가지고는 인자 그 합천 해인사를 가는데,
절을 이리저리 인자 구경을 하고 다니는데, 아! 그 스님이 '개를 절 법당(法堂)에까지 데리고 왔다'고 막 호통을 치니깐, 개라는 놈이 이리 흘깃흘깃 쳐다보면서 그냥 저리저리 멀리 돌아가 가지고는 저 혼자 이리저리 막 싸다니면서 구경을 하다가 팔만대장경이 모셔진 장경각(藏經閣)을 가게 되는데,
아! 거기 또 스님이, 안내하는 그 스님이 못 들어가게 하니까 그놈이 잽싸게 저리 해가지고는 지가 먼저 들어가 가지고는 뚤래뚤래뚤래 돌아다니면서, 칸칸이 돌아다니면서 다 구경을 하고는 나왔다고. 그 주지 스님, 안내한 스님과 주지 스님한테 그 혼이 났다 그 말이여.

그러니 그래서 할 수 없이 그 꿈꾸는 얘기 하며 그 소상하니 얘기를 했더니—그 주지 스님이 누구냐 하면 그때 이고경(李古鏡) 스님이라는 주지 스님이 그때 주지(住持)를 했어요.
그 이고경 스님한테 그러한 얘기를 했더니, "그 틀림없이 있을 만한 얘기"라고, "아무리 내 재산이지만, 이미 아들 며느리한테 재산을 갖다가 물려주었으면 당연히 딸한테 줄라면은 다 말을 하고 주어야지 그 며느리와 아들 몰래 재산을 빼돌렸으니까 그 개 과보를 받을 만하다"고.

그래 가지고 그 자기가 그 살림을 빼돌린 그 값을 치루기 위해서 개가 되어 가지고 그 살림을 지키는 거여. 그래 인자 살림을 다 자기 빚을 갚을 만큼 되니까, 인자 그 합천 해인사 절 구경을 하고 팔만장경을 구경을 하고 그러니까 그 인연으로 개 탈을 벗게 되었어.
그래 가지고 집에 왔는데 꿈에, "내가 니 덕으로 참 좋은 구경을 하고 그 공덕으로 내가 개 탈을 벗었어. 내가 인자 좋은 곳으로 태어나게 되었는데 참 고맙다. 기왕이면은 더 좋은 곳으로 가게 해인사에 가서 나를 갖다가 사십구재(四十九齋)를 한 번 해다오. 그렇다면은 내가 원(願)이 없겄다" 그래 가지고는 가서 인자... 그런데 그 이튿날 꿈을 깨고 보니까 개집에 개가 딱 죽어 갖고 있다 그 말이여.

그래서 이 개를 갖다가 저 산에다가 묻어서 개 무덤을 딱 해 주고는 해인사에 가서 사십구재를 떠억 지냈는데, 사십구재 지낸 날 저녁에 꿈에 그 개 탈을 벗어버리고, 이 좋은 옷을 한 벌을 (불에) 사롸 달라고 그래서 사롸 드렸는데, 그 옷을 입고 그렇게 얼굴이 환해 가지고 참 선녀(仙女)처럼 그렇게 되어 가지고 이 천상(天上)으로 태어났다 이거여.
이건 내가 그 아들의 이름도 다 알고 있었는데 내가 오래되어서 그 이름을 기억을 못하지만, 이것도 다 실지로 있었던 실화(實話)다 이것입니다.

아까 이근홍이라는 사람의 얘기와, 이 자기 어머니가 개가 된 이러한 하나에 실화이면서 인과설화(因果說話)인데, 이러한 얘기는, 이러한 실화는 우리 도처에 있는 일이고 우리나라뿐만이 아니라 중국이나 일본, 심지어는 저 인도나 미국 같은 데도 이러한 얘기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최면학이, 최면술 하는 그 최면학이 발달이 되어 가지고 최면(催眠)을 걸어서 연령 소급(年齡遡及), 퇴행법(退行法)을 쓰면, 그 사람이 전생(前生)에 무엇이었으며 그런 것을 환히 다 알 수가 있습니다. 그래 가지고 사람이 죽으면 아주 죽는 것이 아니라, 영혼은 다시 인도환생(人道還生)을 하기도 하고 개가 되기도 하고, 미국에 새로 태어나기도 하고 한국에 태어나기도 하고 그런다고 하는 사실을 다 과학적(科學的)으로 증명(證明)할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어려서부터 운동을 잘한다, 또는 그림을 잘 그린다, 또는 음악을 잘한다, 모다 수학을 잘한다' 이것이, '바둑을 잘 둔다' 이런 게 우연한 것이 아닙니다. '천재적인, 천부적(天賦的)인 소질(素質)이 있다' 그러는데, 이건 전생에 그렇게 익힌 것이 금생에 그렇게 나면서부터 천부적인 소질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소질 면에서 뿐만이 아니라, 마음씨가 착하고 포악한 것 하며, 부자로 살고 귀하게 살고 또는 천하게 살고 하는 것 하며, 백만 가지가 다 전생에 자기가 지어 가지고 그렇게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해서 금생에 우리가 전생(前生)에 지은 그러한 인연(因緣)으로 해서 금생(今生)에 이렇게 받어 난 것을 본다면, '우리가 금생(今生)에 어떻게 짓느냐?'에 따라서 '내생(來生)에 어떻게 받느냐?' 한 것을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우리가 금생에 함부로 마음을 쓸 수 있으며, 함부로 말을 할 수 있으며, 함부로 행동을 할 수가 없다고 하는 것을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말조심(말操心), 행동 조심(操心), 마음씨 바르게 쓰고, 착하게 쓰고, 지혜롭게 해서 과거에 업(業)을 소멸(消滅)을 하고, 지끔 이 시각(時刻) 이후가 바로 내생(來生)이니까—이 몸뚱이를 기준으로 해서 본다면 이 몸뚱이 죽은 뒤가 내생이지만 그것은 옅은 인과법이고, 내생(來生)은 한 생각 뒤가 바로 내생이여. 일 초 뒤가 바로 내생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 최상승법에 있어서는 '그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그 한 생각을 어떻게 단속을 하느냐?' 그것이 그렇게 중요하고 무서운 것이다 이것입니다.
한 생각 일어나는 그 생각이 구체화되기 전에, 얼굴에 나타나고 행동으로 나타나기 전에, 한 생각 일어나자마자 그 생각을 탁! 돌이켜 가지고 화두(話頭)를 들어.
그 생각을 돌이키지 아니하면 큰 죄를 범(犯)하게 되는데, 그 죄(罪)로 형성화(形成化)되기 이전에 그 생각을 딱! 돌이켜서 '이 뭣고?' 이렇게 하면, 죄를 미연(未然)에 방지하고 오히려 생사해탈(生死解脫) 길로 나아간 것이 된다 그 말이여.(40분47초~60분40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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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700여 개의 ‘참선 법문(法門)’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 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 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그리고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도 있습니다.

 

참선법 A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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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700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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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
인과 · 인연 · 비유2021. 7. 10. 12:21

§((242)) 나후라존자의 전생 일화 / 부처님이 나후라에게 하신 엄숙한 훈도(발 씻은 물과 대야) / 성현(聖賢)도 자식은 바꾸어서 가르친다.

**송담스님(No.242)—1984년 7월 첫째일요법회(84.07.01) (용242) (인과,인연,비유)

 

 

 

(1) 약 13분.

 

 

(2) 약 10분.

 


(1)------------------

오늘 갑자년 7월 첫째 일요법회를 맞이했는데, 본격적으로 여름을 맞이한 것 같습니다. 등어리에서는 땀이 줄줄 흐르고, 너무 더워서 머리가 텅 비어 버린 것 같습니다.
이렇게 더울 때에 숨이 막힐듯 이 더위에도 불구하시고 사부대중이 이렇게 법당을 가득 메우셨는데, 지금 이렇게 더운 것을 참고 견디면서 여기에서 참 마음자리를 찾는 법문을 듣고 마음을 닦지 아니하면, 참으로 그 펄펄 끓는 화탕 노탕(火湯爐湯)지옥, 무간 아비(無間阿鼻)지옥에 들어가서 고(苦)를 받을 일을 생각해 보십시오.

지금 편하기를 바라고 시원하게 지내는 재미로 이 더위를 꺼려서 법회에 참석도 하지 아니하고, 더웁다고 선방에 방부도 들이지 아니하고, 서늘한 것만 찾고 냉동이 갖추어진 그런 데서 밤낮 얼음물이나 마시면서 시원하게 낮잠이나 자고 그렇게 지내다가, 숨 한번 내쉬었다 들어마시지 못하면 어느 곳으로 끌려갈 것이냐 이 말씀이여.

'내가 나 찾는 공부'는 내가 해야지,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뒤로 미루다가 아무도 나를 위해서 해 주는 사람은 없는 것입니다.
부처님이 삼계(三界)에 대성인이시고 사생(四生)에 자부(慈父)이시지만 그리고 육신통(六神通)이 자재하시지만, 우리로 하여금 깨달을 수 있는 깨닫는 방법, 길은 일러주실 수 있지마는 내 대신 깨달라 주실 수도 없고, 내가 하지 아니하면 나를 깨닫게 해 주실 수도 없는 것입니다.

부처님 당시에 선성(善星) 비구는 부처님을 평생토록 모시고, 수십 년을 모시고 살았지만, 생함지옥(生陷地獄)을 했습니다. 바른 사상으로 바르게 불법을 믿고 바르게 닦지 아니하면, 설사 부처님을 평생을 모시고 산다 해도 삿된 소견을 가지고 바르게 닦지 아니했기 때문에 생함지옥을 한 것입니다.


〇나후라존자의 전생 일화.

부처님께는 나후라(羅睺羅)라고 하는 아드님이 한 분 있었는데 그 나후라존자가—'나후라(Rāhula 라훌라)' 라는 말은 ‘속박이다’ 그 말이여. 구속 · 속박 · 얽매임 이런 뜻인데,
나후라가 탄생을 하니까 궁중은 말할 것도 없고, 온 나라 백성들이 축하 경축을 하고 야단이었었는데, 부처님 그 실달 태자(悉達太子)는 “아! 나후라가 태어났구나. 나를 출가하는 것을 구속하는, 막는 그러한 존재가 태어났구나” 이런 뜻에서 '나후라' 라고 이름을 지었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런데 한 경전에는 부처님이 출가하신 뒤에 나후라가 태어났다고 적혀 있는 데도 있습니다.
그 나후라가 야수다라(耶輸陀羅)—부처님 실달 태자의 태자비(太子妃) 야수다라가 그 나후라를 배 가지고 6년 동안을 해산(解産)을 못하고 6년 동안 어머니 뱃속에 있다가, 부처님께서 성도(成道)하신 날 저녁에 나후라가 태어났다고 적혀 있는 데도 있습니다.

어째서 지금 모든 사람들이 어머니 뱃속에 포태(胞胎)가 되면 열 달 만에 태어나는데, 왜 나후라존자는 6년이라고 하는 장구한 세월 동안을 어머니 뱃속에 들어 있었냐?
여러분이 들을 때에는 신화처럼 전설처럼 그렇게 들리시겠지만, 그렇게 전해 내려오니까 반드시 그 원인이 있을 것이다 그 말씀이여.
옛날에 그 나후라존자가 저 전생에 어느 나라 국왕으로 있을 때에 벽지불(辟支佛), 독각(獨覺)이 있었는데, 그 독각이 성중(城中)으로 들어와서 걸식(乞食)을 할려고 그러는데, 그것을 성중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았습니다. 막으니까, 7일 동안을 들어오지를 못하고 산중에 딱 갇혀서 7일 동안을 굶게 했던 것입니다.
그 7일 동안을 독각 수행자로 하여금 산중에 갇혀서 나오지 못하게 굶게 한 그 과보(果報)로 무간지옥에 떨어져서 한량없는 고를 받다가 다시 그 남은 과보(果報)로 해서 7년 동안을 태중에 갇혀 있었다. 이렇게 인과론적으로 볼 때에는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7일 동안을 걸식을 못하게 성중에 들어오지 못하게 해 가지고, 7일 동안을 그 독각으로 하여금 굶게 한 그 인연으로 7년 간을 모태 중에 있어서 나오지 못했다 이것입니다.
이조 때에도 유교를 숭배하고 불교를 탄압한 나머지 승려들로 하여금 서울 장안에는 사대문(四大門) 안에는 들어오지를 못하게 했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이조 말엽에 일본 사람들이 한국에 와 가지고, 겨우 승려들도 어렵게—몇백 년 간을 서울 장안을 못 들어오다가—겨우 장안에 들어갔던 그러한 참 비참한 역사도 있습니다마는.


〇부처님이 나후라에게 하신 엄숙한 훈도.

그 나후라존자가 15세에 출가를 했는데, 이 세상에 7년 만에 태어날 때에는 그 부처님이 성도하시던 날 밤에 태어났고 또 출가하기는 15살 때 출가를 했다.
어떻게 출가를 했냐 하면 부처님이 견성성불(見性成佛)하셔 가지고 그 고향으로 돌아가셨는데, 고향으로 가시니까 그 부처님의 부인이셨던 야수다라 부인이 누각에서 떠억 보니까, ‘부처님이 성불을 해 가지고 제자들을 거느리고 왕궁에 돌아오신다’는 기별을 듣고서 다락에 올라가서 이렇게 보니까, 참 거룩한 모습으로 제자들을 거느리고서 떠억 성중으로 들어오신다 그 말이여.

그래서 그 나후라로 하여금 “저기, 저 맨 앞에 오시는 저 거룩한 어른이 너의 아버님이시다. 가서 인사를 여쭙고 ‘아버지, 저에게 유산(遺産)을 주십시오’ 하고 가서 인사를 해라” 하고 시켰습니다.
나후라존자는 그때 15살인데, 어머니 말 대로 내려가서 부처님께 인사를 하고 “아버지, 저에게 유산을 주십시오” 이랬겠다.
“오냐, 내가 유산을 줄테니 나를 따라오너라” 그래 가지고 숲속으로 데리고 가서 여하약하를 막론하고 머리를 착 깎아서 중을 만들어 버렸습니다.

만들어서 부처님의 왼팔인 사리불존자(舍利佛尊者), 사리불에게 맡겨서 사리불을 스승, 은사를 삼고 사리불의 상좌(上佐)를 삼아 가지고 사리불로 하여금 교육을 시키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부처님의 아들이지만 아무 철이 안 들고, 왕궁에서 참 귀여움만 받고 그래 가지고 도무지 버릇이 하나도 없고, 아버지가 모든 스님들의 스승이시고 모든 중생들의 존경 받는 그런 위대한 존재라 하는 것을 떠억 코에다 걸고서 말을 도무지 듣지를 않고, 무엇이던지 제멋대로—스승 말도 잘 안 듣고 남 말도 안 듣고,
누가 찾아와서 “부처님 어디 계시냐?” 하고 여쭤보면은 지금 계셔도, “어디 먼 데 가시고 안 계신다”고 거짓말을 하고, 또 안 계셔도 “저 어디 가보라고, 지금 저기 계신다”고 해 가지고 늘상 사람들을 거짓말을 해 가지고 골탕을 먹이는 것을 아주 일쑤로 하고 그래서 대단히 말썽을 부리고 그랬었는데.(6분10초~19분2초)





(2)------------------

부처님께서 같이 데리고 있기보단 저 다른 산중으로 떼어 보내 가지고 거기서 교육을 시키면 좋겠다 싶어서 그리 보냈는데, 별로 큰 효과가 없고 들려오는 소문에는 대단히 염려가 되셨다 그 말이여.

그래서 하루는 그 나후라존자가 있는 데를 찾아가셨어.
찾아가니까 나후라존자가 아버지가 오셨다고 반겨 하면서 의자를 내놓으면서 앉으시라고. 앉으신 다음에 부처님께서 “대야에다가 발을 씻게 물을 좀 떠 오너라”
물을 떠 오니까 “네가 내 발을 좀 씻겨라” 그러니까 나후라존자가 아주 신나게 발을 다 씻겨 드렸습니다.

다 씻고 난 다음에 “너 그 물을 먹을 수 있겠느냐?”
“어떻게 더러운 발을 씻은 더러운 물을 먹을 수가 있겠습니까?”

“사람이 물이 아니면 살 수가 없지마는, 발을 씻은 더러운 물은 먹을 수가 없는 것이다. 네가 출가해서 사문(沙門)이 되었지마는 말을 함부로 하고, 행동을 함부로 하고, 지켜야 할 계율을 지키지 않고 지켜야 할 규칙을 지키지 않고 함부로 하면, 그리고 입으로 몸으로 마음으로 청정한 행을 가지지 아니하면, 마치 이 발 씻은 물과 같이 더러운 것이니라. 그래서 그 물은 버릴 수밖에 없어. 이 물을 갖다 버려라” 하니까 갖다 버리고서 대야를 갖다가 놓으니까, 부처님께서 그 대야를 갖다가 발로 차버렸습니다.

“왜 대야를 발로 차십니까?” 하니까.
“내가 대야를 발로 차니까, 행여나 그 대야가 깨질까봐 염려가 되느냐?” 부처님이 물어보시니까,
“그까짓 뭐 발 씻은 대야 헐하디 헐하고 비싸지도 않은 거, 그거 깨질까 걱정은 안 했습니다”

“그거 봐라. 네가 정반왕(淨飯王)의 손자요, 왕손이요, 나의 제자요, 그렇지만 네가 입으로 거짓말을 하고, 행동으로 계율을 지키지 아니하고, 마음을 진실하게 쓰지 아니하고 그러면, 저 발 씻는 대야처럼 너를 갖다가 사람들이 발길로 차고 내쫓친다 하더라도 아무도 너를 소중히 아는 사람이 없느니라.
네가 왕손이요, 나의 제자요, 출가 사문(沙門)이고 한데, 얼마나 네가 귀하고 소중한 존재냐. 그러나 네가 마음으로, 입으로, 말로 출가인답지 못하고 진실하지 못하고 청정하지 못하면, 아무도 네가 죽는다 해도 너를 애석하게 생각할 사람은 없는 것이니라” 이렇게 아주 준열히 꾸짖으셨습니다.

그때부터 나후라존자는 그 부처님이 말씀하신, 그 아버님께서 말씀하신 그 말씀을 뼛속 깊이 알아듣고서 그 뒤부터서는 완전히 딴사람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래 가지고 작은 일에서부터 큰 일에 이르기까지 한마디도 잔소리를 할 필요가 없고 남의 눈살을 찌푸리게 할 만한 일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때 이래로 어떻게 묵묵히 말없이 수행을 열심히 했던지 아라한과(阿羅漢果)를 증득을 했고, 마침내는 대성현이 되어서 부처님 10대 제자 가운데에 밀행제일(密行第一)로 손꼽히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필 왜 오늘 부처님의 아드님이신 나후라존자의 얘기를 하냐 하면, 요새 날이 갈수록 청소년의 문제가 복잡해지고 있습니다. 청소년 범죄 사실이 나날이 늘어 가고 있고, 그 범죄가 나날이 심해 가고 있고, 때로는 강도도 하고 때로는 사람도 죽이기도 하고 이루 다 형용할 수 없는 그러한 사건들이 계속해서 일어나고 또 횟수가 많아져 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부모님네들은 학교를 보내나, 항시 그 자녀들 때문에 마음을 놓을 수가 없는 그런 세상이 되었습니다.

삼천년 전에 부처님, 성현의 아드님이신 나후라존자도 그러한 문제점이 있는 문제아동이었었지만, 부처님의 그 지혜롭고 자비롭고 엄숙한 교훈으로써 그 나후라존자를 갖다가 잘 훈도(薰陶)해서 성현이 되도록 한 것을 우리는 거울삼아서 여러분들의 자녀의 교육에 부처님의 뜻을 받들어서 해 나가신다면 자녀 교육에 큰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〇자녀 교육.

옛날부터 성현(聖賢)도 자식은 바꾸어서 가르켜야 한다.
공자님도 그 아드님을 교육하는데 있어서 직접 당신이 가르키시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시켜서 교육을 하셨고, 부처님도 당신이 직접 가르키시지 아니하고 사리불에게 맡겨서 그 아드님을 교육을 했습니다.

'왜 아무리 그 부모가 훌륭해도 직접 그 자식을 가르킬 수가 없느냐?' 하면, 자식은 정(情)으로 서로 인연이 맺어져서 부모 자식이 되었기 때문에 항시 정이 앞서게 됩니다.
정이 앞서게 되면은 교육은 성공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물론 스승과 제자 간에도 정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정이라 하는 것은 물러서, 무르면은 법도(法度)를 잡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그리고 부모는 자식에 대한 욕심이 많아서 자기 뜻대로 안되면은 화가 먼저 치밀으고, 그 자식을 너무 사랑하고 너무 기대하는 그 마음이 뜻대로 이루어지지 아니하면 삽시간에 미운 생각으로 변해 가지고, 말이 법도에 벗어난 그런 말이 나올 수도 있고, 때로는 심하게 매질을 하기도 하고, 그래 가지고 부모 자식 간에 정의를 손상하는 결과를 가져와서 때로는 위험한 지경에까지도 이를 수가 있어서, 자식은 스승에게 맡겨서 가르키는 것을 옛날부터서 원칙으로 하고 있는 것입니다.(19분3초~28분36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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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700여 개의 ‘참선 법문(法門)’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 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 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그리고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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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330)) 비사왕과 가섭존자의 설화 ; 『중아함경』 제16권 6.왕상응품 (71) 비사경(鞞肆經). 가섭존자의 천당, 지옥 비유. 새끼 타래와 은전, 금전의 비유. 맷돼지 왕의 똥 갑옷 비유.
중생은 선입관에 국집(局執)이 되어 깨달음에 나아가지를 못한다 / 도(道)에 들어가는 첫째 단계가 국집을 버리는 것. 아상(我相)과 인상(人相)을 버리는 것.

**송담스님(No.330)—1987년 5월 첫째일요법회(87.05.03) (용330) (인과인연비유)

 

 

(1) 약 13분.

 

(2) 약 10분.

 


(1)------------------

옛날에 비사왕(鞞肆王)이라고 하는 임금님이 있었는데, 그때 가섭(迦葉)이라고 하는 큰 도인이 계셨습니다.
그 비사왕이 그 가섭존자를 만나 가지고 묻기를, "불교에서는 착한 일을 하면 천상에 태어나고, 악한 일을 하면 내생에 지옥에 간다고 모다 그래 쌓는데, 나는 그 소리를 도저히 믿을 수가 없습니다. 어디가 내생이 있고, 어디가 무슨 지옥 천당이 있겠습니까? 그건 허무맹랑한 소리고 사람들을 속이는 소리고, 괜히 악한 짓하지 말고 착한 일하라고 그렇게 그 권선징악을 하기 위해서 공연히 사람들을 겁을 주는 소리지, 어디가 그 뭐 내생이 어디가 있고, 숨 한 번 끊어져서 죽어버리면 그만이지 무슨 내생이 있겠느냐"고. "그런 명색이 도인이고 성인이라고 한 사람들이 멀쩡한 소리를 가지고 혹세무민을 한다, 세상을 속이고 모다 그런다 해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지금 이 머리 위에 떠 있는 해와 달은 그러면 금세(今世)를 위해서 있는 것이요? 내생(來生)을 위해서 있는 것이요?" 하고 가섭존자가 물었습니다.
물으니까 비사왕이 "그런 소리 물어봤자 나는 내생은 도저히 있다고 믿을 수가 없다"고, "해야 오늘을 위해서 떴건, 내일을 위해서 떴건 그것은 가만 놔둬도 떴다 졌다 하는 것이지 무슨 거기다 대고 금생 내생을 따지느냐? 나 그래도 그런 것은 내생은 나는 안 믿는다"고. "인과(因果)도 안 믿고 내생도 그런 것도 안 믿는다" 그러니까.


가섭존자의 천당, 지옥 비유.

"그러면 어째서 그렇게 안 믿소?" 그러니까,
"내가 잘 아는 사람, 아주 일생 동안을 착한 일만 하고 그런 사람보고 그 사람이 죽을라고 할 때 '당신은 일생 동안을 좋은 일만 하고, 마음씨를 착하게 하고, 행동을 착하게 하고 그랬으니 당신은 틀림없이 천당에 갈 거요. 만약에 천당이라고 하는 곳이 사실 있다면 당신은 천당에 갈 것이니, 천당에 가걸랑 바로 와 가지고 나한테 천당이 이렇게 이렇게 생겼고, 실지로 있다고 한 것을 나한테 보고를 해 주시오' 하고 신신부탁(申申付託)을 했는데, 그 사람이 한번 죽어가더니 천당에를 갔는지 어디로 꼬꾸라졌는지 다시는 와서 말을 안 하더라 이거지요"

또 자기가 안 사람 가운데 천하에 고약한 사람이 하나 있었는데, "그 사람은 사기협잡에다가 사람을 많이 죽이고, 온갖 못된 짓을 다하고, 참! 인간으로서는 그럴 수가 없는 짐승만도 못한 그런 못된 놈이 내가 잘 아는 사람 가운데 그런 사람이 있어서, 내가 그래도 마지막 죽게 된다고 그래서 그 문병을 안 갈 수가 없어서 가 가지고, '참, 죽어갈라고 하는데 말하기는 미안하지만 당신은 틀림없이 죽으면 지옥에 갈 거요. 지옥에 갈 건데 제발 지옥에 가거든, 나한테 와서 그 지옥이 사실로 있는 고대로 그 본대로 와서 얘기를 해 달라'고, 그러면서 신신당부를 했는데, 그 사람이 한번 죽더니 다시는 오지 않더라. 그러니 어찌 그 지옥도 있다고 내가 믿을 수가 없고, 천당도 믿을 수가 없다. 그래서 나는 안 믿는다" 그러니까.

그 가섭존자가 "참, 그 대왕 말씀을 들으니 일리가 있는 것 같은데 내 말을 한번 들어보시오. 어떤 사람이 똥구덩이에 빠졌다가 겨우 거기서 나와 가지고 깨끗이 목욕을 하고 옷을 갈아입고 몸에다 향수를 치르고 그랬던 사람이 어찌 다시 똥항에 들어가라고 하면 들어가겠소?
그와 같아서 인간 세상에 모다 그 죄 많은 이 고해(苦海)에 있다가 착한 일을 한 그 공덕으로 천당에 한번 갔으면 거기 가서 보니깐 너무너무 좋고 그런데 무엇 때문에 그 사람이 인간 세상에 당신한테 그 소리 할라고 여기를 오겠습니까?
그리고 또 한 사람은 이 대왕이 역적을 한 놈을 잡아가지고 취조를 하는데 그 죄인이 ‘내가 마지막 이렇게 죽어가니 내 부모형제와 고향을 한번 가서 다 둘러보고 하직 인사라도 하고 그러고 올 테니 나를 좀 놔 주시오’ 하면은 당신이 놔 주겠습니까?"
"나 안 놔 주지요"

"그와 같습니다. 죄 지어 가지고 지옥에 한번 갔으면 저는 쇠사슬에 묶여서 고문 받느라고 볼 일을 못 볼 텐데, 누가 당신한테 가서 지옥고 구경한 것 얘기하라고 지옥에서 놔 주겠습니까? 그러니 천당에 한번 올라가면은 갔다 왔다고 보고한 사람도 없을 것이고, 지옥에 한번 떨어진 사람이 지가 무슨 그 권리가 있어서 와서 그것을 보고를 하겠습니까? 그래서 그런 거지, 천당이 없는 것이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지옥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존자가 말이 일리가 있는 것 같으나 그런 소리 쯤 가지고 내가 인과(因果)를 믿을 사람이 아니여"

그래 가지고 아주 인과를 막 부인을 하고. "그런 소리는 하나의 비유는 될지 모르지마는 나는 그래도 지옥이니 천당이니 그따위 소리를 나는 믿을 수가 없다"

 


새끼 타래와 은전, 금전의 비유.

그러면 내가 또 하나 비유를 들어서 얘기를 하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둘이 여행을 가는데, 둘이 다 가는데 좋은 새끼를 꽌 타래가 있으니까 둘이 그놈을 짊어질 만큼 가득 짊어졌다 이것입니다.
‘이건 참, 집에 가지고 가면은 농사짓는 데도 필요하고, 뭘 묶는 데도 필요하고 그러니 우리 이것 임자도 없고 버린 것이니까 우리가 짊어지고 가자’

그래서 짊어지고 가다가 얼마쯤 땀을 흘리다 가니까, 아! 뭔 주머니가 하나 있는데 그 주머니를 열어보니까 은이 가득 주머니 속에 들었다 그 말이여.
묵직한 은전(銀錢)이 들어있어서 그 앞서간 사람이 그 은전을 자기가 딱 짊어지고 그 은전이 무거우니까 ‘에이, 이까짓 거’ 새끼 짐은 갖다가 벗어 내동댕이쳐 버리고 얼마만큼 가니까, 또 무슨 주머니가 있어서 그 주머니를 보니까 아! 그 속에는 황금이 번쩍번쩍한 황금전이, 황금이 그냥 그 속에 가득 들었다 그 말이여.

이것 자기가 갖고 싶지만 자기는 이미 은전 뭉텅이를 줏었으니까 뒤에 온 사람보고 ‘여기에 금전(金錢)이 있으니 당신 그 새끼 뭉텅이 버려버리고 이 금전 뭉텅이를 당신 가지시오’ 하니까,
‘아니 나 그것 싫소. 내가 이 새끼 뭉텅이가 이걸 얼마나 필요해서 이것을 여기까지 참! 수십 리를 이놈을 짊어지고 애써서 왔는데, 이것 고향에 가지고 가면 농사짓는데 꼭 필요한데, 이렇게 애써서 짊어지고 온 것을 내가 버리고 그 금전 뭉텅이를 내가 가지고 가겠느냐고 말도 안 되는 소리한다’고 기어이 그 사람이 금전 뭉텅이를 안 가지고 새끼 뭉텅이를 가지고 간다고 고집을 하니까.

아! 이 사람은 할 수 없이 그 사람이 안 갖는다 하니까, 은전 뭉텅이를 둘 다 가지고 가면 좋겠는데 너무 무거워서 은전 뭉텅이는 그냥 버려버리고 금전 뭉텅이만 갖다 한 짐 짊어지고 인자 고향에로 오니까, 그 가족들이 모두 그 금전을 그놈을 갖다가 한 닢만 팔아도 논이 몇 마지기요, 두 닢만 팔아도 그냥 고대광실(高臺廣室) 좋은 집을 짓고 아주 그냥 양식도 사고, 종도 들이고.
또 그 돈이 그리고도 한량없이 남으니까 절에 시주도 하고, 양로원 고아원에다가 또 보시도 하고, 뭐 일가친척 가난한 사람도 노나주고, 돈 없어서 학교 못 다니는 사람, 돈 없어서 병 앓고 있는 사람, 그런 데다 아주 적절히 써서 참 그 사람은 잘살게 되었는데.

아! 새끼 뭉텅이만 잔뜩 짊어지고 간 사람은 짊어지고 가자 집안 식구들한테 ‘아무개는 금전을 가지고 와서 저렇게 잘사는데, 병신 같은 것이 새끼 뭉텅이만 짊어지고 와 가지고 그까짓 것 무엇에 쓰냐’고 막 혼구녕만 났다 그 말이여. 그래 가지고는 집안 식구한테도 대접을 못 받고 아! 계속해서 가난뱅이 신세를 못 면하는데.


마치 대왕은 그 ‘내생이 없다’ 하고, 「무슨 착한 일을 하면 천당에 간다. 악한 일을 하면 지옥에 떨어진다」 하는 이런 인과법을 믿지 않는 것으로써 자기의 고집을 삼고, 끝까지 내가 이 성현의 말씀을 해 준데도 불구하고 믿지 않는 것은 마치 새끼 뭉텅이 그놈 그것 땀 흘리면서 짊어지고 온 것이 아까워서 그 은전 뭉텅이나 금전 뭉텅이를 보고도 그놈을 취하지 아니하고, 새끼 뭉텅이만 잔뜩 짊어지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사람과 대왕님과는 너무나도 같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대왕님이 말이 꽉 막혔습니다. 한참을 말이 막혀서, 이것 내가 이 고집을 꺾자니 이 존자 앞에 참 창피하기도 하고, 또 가섭존자의 말씀이 절대로 들어보니 그럴싸하기는 하고.

그래서 "사실은 내가 여태까지 임금 노릇을 하면서 입만 벌렸다 하면은 ‘내생이라는 것은 없다’ 입만 벌렸다 하면은 인과를 부인을 하고 이래 왔는데, 이런 것을 만조백관(滿朝百官)이 다 알고 있는데, 내가 존자 말을 듣고서 그 여러 해 동안을 내가 그 주장을 해 오고 고집을 해 온 이것을 존자한테 설복(說伏)을 당했다 한다면 내 임금의 채신이 무엇이 되겠습니까? 그러니 그것이 참! 딱해서 그럽니다. 그거 그 문제만 아니면은 내가 그냥 그것 참! 존자 말씀이 그것 참! 틀림없는 말인데, 임금으로서, 내가 평민만 같아도 모르겠는데 임금으로서 참 존자한테 내가 설복을 당했다고 해서야 내가 앞으로 어떻게 만조백관을 거느리고 하겠습니까? 그래서 나는 나의 고집을 버릴 수가 없습니다" 하니까.(14분56초~27분53초)





(2)------------------


맷돼지 왕의 똥 갑옷 비유.

참! 딱합니다. 내가 비유를 하나 더 들어서 얘기를 하지요.

참 아주 큰 멧돼지가 있었는데, 그놈은 많은 그 작은 멧돼지를 거느리고 사는 멧돼지의 왕인데 왕초인데, 그놈이 그 자기네 부하들을 거느리고 아주 큰소리를 치고, 쪽 자기 명령에 복종하지 않으면은 그 나발대로 받아 가지고 그냥 막 혼구녕을 내고 해 가지고, 누구고 그 멧돼지 왕초한테는 수백 마리의 멧돼지들이 꼼짝을 못하고 그러는데, 아! 그렇게 큰소리를 뻥뻥 치다가 호랭이를 만났습니다.
호랭이를 만났는데 인자 그 부하들 보는 데에서 호랭이한테 참 항복할 수도 없고, 정면상대해서 싸우자니 호랭이 그 날카로운 발톱으로 한번 할퀴어서 쥐어 뜯어버리면 꽥 소리도 못하고 죽을 것 같고.

참 딱해서 그 멧돼지 왕이 한참 동안을 꾀를 내다가 호랭이 보고 "내가 잠깐 우리 선조 때부터서 내려오는 그 갑옷이 있으니 내가 그 갑옷을 입고 나와 가지고 내가 한바탕 당신하고 해볼 양이니, 내 갑옷 입은 것이 무서우면 당신이 먼저 길을 비켜서 먼저 가고, 나하고 기어코 한바탕 해볼 생각이 있으면 내가 갑옷 입을 때까지 잠깐 기달려 주오" 그러니까,
호랭이가 지까짓 놈이 갑옷 아니라 별것을 입고 온들 그까짓 것 문제가 없으니까 "갑옷 입고 나올테면 입고 나와 보라"고 하니까.

멧돼지란 놈이 꿀꿀거리면서 어디를 가더니 사람 똥항 속에 풍 들어가서 허우적허우적하면서 온 몸뚱이에다가 똥을 잔뜩 쳐바르고 나와 가지고는 "자 덤빌라면 한번 덤벼보라"
그러니까 호랭이란 놈이 저놈이 갑옷이라더니 어디서 똥을 뒤집어쓰고 나와 가지고 "야! 그것이 네 선조 때부터서 내려오는 갑옷이냐? 에이, 더러운 놈의 자석. 나 너하고 싸움 안 할 테니까 빨리 꺼져라 이 자식아!"

그래 가지고 그 멧돼지가 그 꾀는 참 비루하고 추잡한 꾀를 냈지만 영락없이 호랭이를 싸우지 않고 물리쳤습니다. 저는 그리고서 부하 앞에서 "아! 내가 나의 이 지혜로써 저 건방진 놈을 내가 물리쳤다"고 아주 뻐개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그 번연히 대왕님의 생각이 틀리고, 그 성현의 말씀이 옳고 내 말이 옳은데도, 그 신하들이 창피하다고 해서 그 자기의 잘못된 소견을 버리지 못한다면, 그 똥을 뒤집어쓰고 나와 가지고 호랭이 보고 물러서라고 한 것과 어찌 다를 바가 있겠습니까?
그렇게 말하니까 임금님이 참 너무 부끄럽게 생각을 하고 이 동곳을 빼고 그 존자 앞에 항복을 했습니다.

이것은 참, 한 설화(說話)입니다마는 이게 중아함경(中阿含經)에 나오는 부처님의 설화입니다.


그런데 우리 중생들에게는 자기 나름대로의 선입관(先入觀)이 있습니다.
정치가나 법률가나 학자나 또는 실업가나 또는 뭐 무역이나 장사하는 사람, 모든 사람, 심지어 구두를 닦는 사람은 구두를 닦는 사람, 또 구들을 놓는 사람은 구들 놓는 사람, 목수, 미쟁이 무엇을 하든지, 남 보면은 별것 아닌 것 같지마는 자기 자신은 자기 나름대로의 일가지견(一家之見)이 있고 철학이 있습니다.

또 여기에 사부대중이 모다 모이셨습니다마는 당신 나름대로 다 경도 보고, 기도도 해 보고, 염불도 해 보고, 또 주력도 해 보고, 또 참선도 해 보고, 그래 가지고 각기 일가지견이 자기 나름대로 있습니다.
다 해 봐 가지고 '참선은 이러한 것이다' '염불은 이런 것이다' '불법은 이렇게 하는 것이다' 다 자기 소견(所見)이 있습니다. 그래 가지고 이 비사왕처럼 딱 자기 소견이 있어 가지고 여간해서 그것을 버리지를 않습니다. 그래 가지고 그러한 선입관에 국집(局執)이 되어 가지고 깨달음에 나아가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이 불법은 깨달음을 얻어 가지고서도 ‘내가 깨달음을 얻었다’ 한 생각만 가져도 벌써 그것이 미(迷)한 것인데, 아라한과(阿羅漢果)를 증득했거나 수다원(須陀洹)이나 사다함(斯陀含)이나 아나함(阿那含) 이런 성과(聖果)를 얻어 가지고서도 ‘내가 이러한 성과를 얻었다’ 하는 생각을 내면, 벌써 그것이 아상(我相) · 인상(人相) · 중생상(衆生相) · 수자상(壽者相)에 떨어진 것이어서 그것이 참다운 도에 들어간 것이 아닌데, 깨달음에 들어간 것도 아닌 그밖에 다른 생각에 국집을 한다면 그것은 참 언어도단(言語道斷)인 것입니다.

도(道)에 들어가는 첫째 단계가 그러한 국집을 버리는 것이여. 아상(我相)과 인상(人相)을 버리는 것이여.
우리 중생은 아애(我愛) · 아만(我慢) · 아치(我癡), 이것이 우리 중생 그 제7식(七識)의 본업(本業)인데, 그놈에 딱 국집을 해 가지고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내 것이다’ ‘내가 잘한다’ ‘내가 옳다’ 이러한 아애 · 아만 · 아치, 이것 때문에 도에 들어가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어쨌든지 자기의 국집을 버려야 합니다.

이 말을 ‘자기의 주관을 버리라’ ‘자기의 주체의식을 버리라’ 이러한 말과 혼동이 되어서는 아니 됩니다. 물론 한국 국민은 한국 국민으로서의 주체의식이 있어야 하고, 내가 어떠한 사업을 하니 무엇을 하는 데 있어서도 확고한 주관이 서야지요.

하지만 도(道)에 있어서의 그 선입관, 선입관이 딱 가로막고 있으면 어떠한 선지식(善知識)의 말을 들어도 먹혀 들어가지를 않는 것입니다.
아까 이 비사왕이 그러한 삿된 소견을 국집을 해 가지고 그렇게 존자가 알아듣겄게 얘기를 해 주어도 거기에 항복을 하지 아니하고 믿지 않을려고 한 것처럼, 다행이 이런 가섭존자와 같은 그러한 참 그 변재(辯才)가 무궁무진한 그리고 지혜와 자비가 넘치는 이런 훌륭한 도인을 만나서 결국은 항복은 해서 다행입니다마는, 우리도 어쨌든지 그러한 사견(邪見)에 빠져 가지고 정법에 나아가지 못하는 일이 있어서는 아니 되겠습니다.(27분54초~37분13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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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700여 개의 ‘참선 법문(法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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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도 있습니다.

참선법 A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B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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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
인과 · 인연 · 비유2021. 5. 11. 17:14

§((472)) (게송)우후정화연야발~ / LA 인종 폭동(1992년). 인과법(因果法)의 과보(果報) / 참선법을 배워야 세계가 평화롭게 되는 것이고,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것 / 백인이나 유색 인종이나 인간의 본성(本性)에 있어서는 차등(差等)이 없는 것 / 자기 마음 하나를 잘 다스려야.

**송담스님(No.472)—1992년 5월 첫째일요법회(92.05.03) (용472) (인과인연)

 

 

약 21분.

 


우후정화연야발(雨後庭花連夜發)하여  청향산입효창신(淸香散入曉窓新)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화응유의향인소(花應有意向人笑)언만  만원선승공도춘(滿院禪僧空度春)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우후정화연야발(雨後庭花連夜發)하니  청향산입효창신(淸香散入曉窓新)이로구나.
비 온 뒤 뜰에 꽃이 밤을 이어서 피었어. 비가 오니 그 비 기운을 받아서 뜰에 꽃이 아주 만발을 했다 그 말이여.
청향산입효창신(淸香散入曉窓新)이다. 그 꽃에 맑은 향기가 나부껴서 새벽 창을 뚫고 들어왔어.

화응유의향인소(花應有意向人笑)언마는, 그 만발한 꽃은 응당 뜻이 있어서 사람들을 향해서 웃고 있건만,
만원선승(滿院禪僧)은 공도춘(空度春)이로구나. 이 선원에 가득한 모든 대중들은 그 꽃에 깊은 뜻을 모르고서 공연히 이 봄을 지내고 있구나.

편양(鞭羊) 선사의 게송입니다.


오늘은 임신년 5월 첫째 일요법회 날입니다.
방금 전강 조실 스님의 『몽산법어(蒙山法語)』에 나오는 그 '동산숭장주(東山崇藏主)라고 하는 분이 그 제자를, 참선하러 떠나는 제자를 향해서 설한 법문[東山崇藏主送子行脚法語]'을 조실 스님의 녹음법문(錄音法門)을 통해서 들었습니다.

금년도 벌써 5월이 되었습니다. 엊그제 눈이 오고 우박이 쏟아지고 비가 오고, 벌써 꽃은 만발하고 있지마는 벌써 여름이 머지않아서 다가올 것 같습니다. 아마 내일이나 모레 입하(入夏)가 돌아올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마는.
세월은 이렇게 하루하루 지나간 줄 모르게 지나가고 또 오는 소식도 없이 이렇게 오고, 그렇게 해서 재촉하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흰머리가 생기게 하고 주름살이 불어나게 하고, 그렇게 해서 사형(死刑) 집행일이 그렇게 해서 하루하루 다가오고 있는 증거인 것입니다.


여러분도 뉴스를 통해서 잘 아시겠지마는, '미국은 민주주의 나라고, 살기 좋은 나라고, 부자의 나라고, 세계에서 제일 참 좋은 나라라고 그래서 미국 대통령은 세계의 대통령과 마찬가지다' 이렇게 모다 말들하고 그러는데, 그러한 나라에 흑인들 폭동(暴動)이 일어나 가지고[LA 인종 폭동(1992년)], 폭동이 일어난 피해를 입은 제일 큰 대상이 한국 사람들이라 하니 참 어처구니없는 일입니다.

좀더 잘살아 보려고 미국을 갔는데 무엇을 잘못해 가지고 흑인들이 한국 사람을 상대해서 800개에 가까운 한국 사람의 가게에다가 타거나 파괴가 되고 약탈을 당했다 하니 참 기가 막힐 일입니다. 금생에 설사 한국 사람들이 미국에 가서 잘살아 보려고 애썼을지언정 무슨 흑인들에게 잘못한 일이 있었겠습니까?
백인에 대한, 백인들이 흑인을 차별 대우한 그 원한을 참 애잔한 한국 사람들한테 한풀이를 한 모양인데, 우리는 인과법(因果法)을 믿기 때문에 그 인과법에 입각해서 이것을 살펴보면 '설사 금생에 잘못한 것이 없다 하더라고 전생에 잘못한 그 과보(果報)가 있어서 금생에 그런 억울한 일을 당하는 것이 아니냐' 이렇게 생각해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조물주가 사람을 만들 때 흙으로 빚어서 구웠는데, 처음에 구운 것이 너무 불이 약해 가지고 허옇게 나왔어. 그것이 백인(白人)이고. 너무 허옇게 나와서 화력을 좀 강하게 했는데 너무 화력이 강해 가지고 시커멓게 구워진 것이 검둥이고. 그래서 세 번 만에 약하지도 않고 강하지도 않게 적당하게 구운 것이 황인종(黃人種)이다. 우리 동양 사람들은 황인종이거든.

그런데 그러한 황(黃)이라 하는 것은 중(中)입니다. 검은 것은 북(北)이고, 빨간 것은 남쪽이고, 흰 것은 서쪽이고, 푸른 것은 동쪽이고 그리고 노란색은 중앙인 것입니다. 이것이 다섯 가지 색, 오색(五色)을 동 · 서 · 남 · 북 · 중앙에다가 배대(配對)를 하면 그렇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황인종은 중앙에 속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황인종은 '가장—너무 굽지도 않고, 너무 덜 굽지도 않고—적당하게 구워진 것이 바로 동양의 황인종이다' 인자 그러한 비유의 말이 있습니다마는. 그래서 우리 동양 사람은, 그러한 성현도 동양에서 많이 나오고, 그에 따라서 진리의 개발도 동양에서 일어나고, 모든 문화도 동양에서부터 발원지(發源地)가 되는 것입니다.

세계는 모다 물질문명을 다투어서 발전을 시켜 가지고 모다 살기에 편리하고, 또 그것이 악용이 되면은 무서운 무기를 만들어서 사람을 모다 죽이고 세계를 멸망케 하는 그러한 위험한 면이 있지만,
우리 동양은 '어떻게 하면 사람의 본성을 개발해서 그래서 진리를 자기에게 찾아 가지고 영원한 행복을 얻고, 나아가서 온 세계의 평화를 이룩하느냐' 이러한 쪽으로 동양의 성현들은 공자님이나 부처님이나 또는 노자나 동양의 성현들은 전부 그러한 방향으로 문을 열어서 우리로 하여금 진리에 나아가도록 해 주신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에 우리가 동양인으로 태어난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서양 사람들이 아무리 문명이 발달하고 과학이 발달했다 하더라도 그것 가지고서는 자기 자신도 영원한 행복을 얻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것 가지고 세계평화는 이룩되지 않는 것입니다.
서양 사람들은 반드시 우리 동양 사람들에게 와서 이 참선법(參禪法)을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세계가 평화롭게 되는 것이고,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길이 거기서 열리는 것입니다.

알지도 못하고, 백인은 유색 인종(有色人種)을 무시한다 그말이여. 이번에는 한국 사람이 미국에서 흑인들한테 피해를, 본의 아닌 참 어처구니없는 피해를 입었지만 그것으로써 끝나지 않습니다.
언젠가는, 물론 백인들이 그것을 자각을 하고 유색 인종을 멸시하고 탄압하고 무시하고 천대하는 그러한 생각들이 마음에서 없어진다면 혹 모르지만, 그런 생각이 없어지지 않고 백인이라 해서 우월감을 가지고 유색 인종을 종 부리듯 생각하고, 법으로는 물론 평등하다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흑인뿐만이 아니라 황색 인종까지도 백인들은 무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과보를 머지않아서 한국 사람이 이번에 당한 것 몇십 배, 몇백 배를 당할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결국은 미국은 흑인이 지배하는 시대가 앞으로 오십 년, 백 년 후에는 반드시 오고야만 말 것입니다.
그러한 참혹한 일을 당하지 아니하려면은 마음속에서 유색 인종을 무시하고 천대하는 그런 마음을 고쳐야 할 것입니다. 우선 법적으로 했지만, 법적으로 뿐만이 아니라 실지로 마음속에서 그런 생각이 없어져야만 그런 무서운 과보를 면하리라고 나는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행여나 백인들이 이 동양 사람, 황색 인종을 무시하니까 황색 인종은 그 마음을 검둥이들한테 부애풀이를 한다든지, 겉으로 부애풀이는 못해도 마음속으로 천대하는 마음을 가져서는 아니될 것입니다. 희거나, 검거나, 누르거나, 전혀 인간의 본성(本性)에 있어서는 차등(差等)이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얼굴이 희다 하더라도 마음을 검게 쓴다면 검둥이만 못할 것이고, 설사 얼굴이 누르거나 검더라도 그 마음을 부처님을 믿고 진리를 믿는 마음으로 지혜와 자비로써 모든 사람을 상대한다면 그 사람은 백인보다도 훨씬 훌륭한 사람일 것입니다.

우리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귀의 노예가 되고, 눈의 노예가 되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귀와 눈은 우리의 마음이 활동하는 문(門)에 지나지 못한 것입니다.
그 문(門)에 지나지 못한, 눈에 비친 색상과 귀로 들어오는 소리, 그것에 노예가 되어 버리고 만다면 무서운 삼악도(三惡途)의 길이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눈으로 무엇을 보건, 귀로 무엇을 듣건, 항상 거기에서 자기의 본심(本心)으로 돌아가고 본지(本旨)에 입각해서 행동을 하고, 본지에 입각해서 말을 하고, 본지에 입각해서 생각을 한다면 그 사람은 영원히 삼악도를 면할 뿐만 아니라 진리의 세계로 들어갈 것이고, 그렇게 마음을 쓰는 사람들이 자꾸 불어나서 가정에서, 사회 국가에서, 온 세계에서 자기의 본심을 찾는 본지에 입각한 생활을 해 나간다면 세계평화는 반드시 오고야만 말 것입니다.

지금 세계 도처에서 싸움이 일어나고, 종교가 다르다고 해서 싸움을 하고, 빛깔이 다르다고 해서 싸움을 하고, 사상이 다르다고 해서 싸운다면 결국은 온 세계는 원래는 다 한 집안 식구고, 한 형제간인데, 형제간끼리 싸우는 것이 되고, 집안끼리 싸우는 것밖에는 안된 것입니다.
가깝게 생각하면 한 가정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부간에 생각이 다르다고 해서 싸우고, 형제간에 서로 의사가 다르다고 해서 싸우고, 한 가족 안에서도 종교가 다르다고 해서 고부간(姑婦間)에 싸우고 형제간에 싸운다면 그 가정이 불행하게 될 것은 뻔한 일인 것입니다.

얼굴 빛깔이 다르거나, 생각이 다르거나, 종교가 다르거나, 다를 수가 있을 것입니다!
다르다 하더라도 서로 상대방을 이해하고, 서로 상대방의 의사를 존중히 여기고, 상대방의 종교를 존중히 여기고, 그러면서 공통점을 찾아 나가고 언제나 근본에 의해서 근본을 향해서 공통점을 찾아 나간다면 지엽적으로 다른 점은 다 거기에서 적당하게 융화가 되어 가리라고 생각합니다.

한 철 방부(房付)를 들이고 정진을 하는 선방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구참(久參)의 생각과 신참(新參)의 생각이 다를 수도 있고, 남방에서 온 사람과 북방에서 온 사람이 다를 수가 있고, 다를 것이나 그 선원의 근본 규범에 서로 자발적으로 순종을 하고 개인의 의사를 지나치게 주장을 하지 않는다면 그 선원은 석 달 동안 아무 장애가 없이 정진을 잘해서 해제(解制)를 맞이할 것입니다.
아무것도 아닌 일 가지고,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는 일을 자기의 의사만을 주장하고 상대방의 의사를 짓밟는다면 중간에 결국은 걸망을 싸고 도망가게 되고, 서로 언쟁이 끊일 날이 없을 것입니다.

선방에 규범이 있고, 가정에는 가훈이 있고, 국가에는 헌법이 있고, 온 세계에는 인륜이라고 하는 길이 있을 것입니다.

왜 이러한 것들이 지켜지지 않느냐?
문제는 자기 마음 하나를 다스리지를 못하기 때문에, 각자 자기의 마음만 다스릴 줄을 알고 자기의 감정만 다스릴 줄 안다면 그 사람은 어디를 가더라도 신사요, 숙녀요, 모범이 될 수 있는, 존경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처음~21분3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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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 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 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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