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회(입춘기도)2018. 3. 31. 14:21

 

 

§(030) 팔만사천 마구니를 물리쳐 항복 받는 화두가 우리 법보선원의 부작 / 삼재는 자기 마음에서 나온 것 / 참선법이야말로 삼재를 소멸하는, 세세생생 생사해탈하는 최상승법.

 

전강 조실 스님의 법문이 입춘 삼재를 소멸하는 불공이고, 조실 스님이 설하신 ‘이뭣고?’ 또는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고 했는고?’한 판치생모가 바로 삼재를 소멸하는 부작입니다.

 

몸으로 지은 죄와, 입으로 지은 죄와, 마음으로 지은 죄, 이 삼재를 소멸하는 방법은 참선(參禪)하는 법이 가장 빠르고도 쉽고도 간단하고 요긴한 것입니다.

 

**송담스님(No.030)—77년 입춘법회(77.02.04) (용030)

 

약 13분.

 

입춘 법회를 맞이해서, 금방 갑인년 입춘날에 설하신 전강 조실 스님의 녹음법문(錄音法門)을 들었습니다.

아까 조실 스님 법문 가운데에도 말씀이 계셨지마는, 다른 절에서는 입춘날에는 입춘이 몇 시에 들었나 그것을 봐 가지고 새벽에 들었으면은 그 전날 저녁부터서 그 절에서 자고 그 시간을 맞추어서 불공(佛供)을 드리고, 그러한 절도 있기도 합니다.

 

그리고 입춘날에는 그 시간을 맞추어서 모두 다 독불공(獨佛供)을 하고, 기도를 하고 모다 그러는데, 우리 용화사 법보선원에서는 그 시간이 새벽에 들었거나, 저녁에 들었거나, 또는 낮에 들었거나, 언제 들었건 간에 입춘 불공은 조실 스님 법문 듣는 것이 그것이 입춘 불공이고.

 

또 다른 절에서는 입춘날에는 삼재(三災)에 든 사람에게는 부작(符作)을 모다 팔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법보선원에서는 어떠한 부작을 드리느냐? 우리 법보선원에서도 입춘 불공도 하고, 부작도 노놔 드릴려고 합니다.

 

우리 법보선원 부작은 무슨 부작이냐? 팔만사천(八萬四千) 마구니를 물리쳐 항복 받는 화두(話頭)가 우리 법보선원의 부작입니다.

조실 스님의 법문이 입춘 삼재를 소멸하는 불공이고, 조실 스님이 설하신 ‘이뭣고?’ 또는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고 했는고?’한 판치생모가 바로 삼재를 소멸하는 부작입니다.

 

노랑 종이에다가 경면주사(鏡面朱砂)로 그린 알 수 없는 부작은, 그것이 참으로 삼재를 소멸하냐? 또는 소멸할 수 없느냐? 그것은 아무도 보장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법보선원에서 노나 드리는 활구참선(活句參禪)하는 화두의 부작은 삼세제불(三世諸佛)과 역대조사(歷代祖師)와 전강 조실 스님과 소승(小僧)이 자신 있게 보장을 해 드립니다.

 

왜 그러냐 하면은 종이에다가 경면주사로 쓴 부작을 가지고 다녀도 교통사고를 당하는 사람도 있고, 비행기에서 추락하는 사람도 있고, 부작을 몸에다가 꼭꼭 싸서 잘 간직하고 있는 사람도 얼마든지 재앙을 당할 수가 있습니다.

사고가 나서 몸을 뒤져 보니까 몸에 부작을 가지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종종 신문에도 납니다.

 

그렇다고 해서 “부작이 전혀 영험이 없는 것이다” 이렇게는 말씀을 드리지 않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은 ‘옛날부터서 그 부작을 가지는 그러한 풍속이 내려와서 혹은 전혀 효험이 없지도 않기 때문에 옛날부터서 그런 것을 가졌지 않느냐?’ 이렇게도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마는, 그러나 전적으로 보장은 할 수가 없습니다.

 

 

삼재(三災)라고 하는 것이 대관절 무엇이냐?

 

금년에는 돼지띠, 또 토끼띠, 염소띠, 해묘미생(亥卯未生)이 그 삼재가 들게 됩니다. 삼재가 금년부터서 3년 동안 들게 되는데, 대관절 그 삼재란 것이 무엇이냐?

삼재라고 하는 것은 어디서 나온 것이며, 어떻게 생긴 고약한 놈이기에 그렇게 사람을 삼 년 동안을 달달 볶다가, 3년 만에 한 번씩 사람을 바꾸어 가지고 또 달달 볶아서 못살게 구느냐?

 

이 삼재는 여러분이 아무리 시력이 좋아서 눈을 비비고 보아도 그놈의 얼굴이 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아무리 뒤를 따라가 보아도 꼬리가 잡히지 않을 것입니다.

삼재는 저 하늘, 허공에서 내려온 것도 아니고, 땅속에서 솟아오른 것도 아닙니다.

 

삼재는 자기 마음에서 나온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에는 이 몸뚱이가 부모한테 태어나기 이전, 저 전생, 전생 수수 백억 생 이전에, 이 우주와 태양, 하늘 아래 별들이 생기기 훨씬 이전에 부터서 우리의 마음자리는 있어 왔습니다.

 

그놈이 생겨난 때가 없을 때부터서 오늘날까지 내려오면서 몸뚱이[身]로 지은 죄, 입[口]으로 지은 죄, 마음[意]으로 지은 죄, 이 몸뚱이와 입과 마음으로 지은 죄가 우리의 마음속에는 낱낱이 다 그 흔적이 녹음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놈이 어떠한 인연을 만나게 되면은 그놈이 싹이 터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지어 가지고, 내가 지은 그 원인으로 해서 그 결과가 우리의 일생을 통해서 또 내생, 저 내생에까지도 무량겁을 두고 그놈이 계속 싹이 터서 가지고 뻗고, 그러다가 또 몸을 바꿔 가지고 또 그러고.

그러면은 과거에 지은 것만 받으면 그만이냐 하면은 그놈을 받으면서 계속 앞으로 자기가 받아야 할 재앙을 지금 또 짓고 있는 것입니다. 과거에 지은 원인의 결과를 금생에 받으면서 금생에는 또 내생에 받을, 장래에 받을 업(業)을 또 짓고 있는 것입니다.

 

지으면서 받고, 받으면서 짓고, 이것이 잠시도 쉴 사이 없이 되풀이되고 있는 동안 우리는 언젠가는 이 몸뚱이를 버려야 되고, 버림으로써 그것이 끝난다고 하면은 그만이겠지마는 이 몸을 버리자마자 또 새로운 몸을 또 받게 됩니다.

 

이렇게 해서 몇억만 년을 오늘 현재 이 시간까지 왔고, 앞으로도 무량겁을 두고 그것이 계속된다고 생각할 때에 우리는 정말 무섭고, 두렵고, 몸서리쳐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부처님께서는 왕궁의 부귀를 버리시고 출가하셔서 그 문제를 몸소 모범을 보이시면서 설산(雪山)에 들어가셔 가지고 수행을 하시고, 그래 가지고 대도(大道)를 성취하신 다음 일생을 앉을자리 더워질 겨를이 없이 중생들에게 그 업을 소멸을 하고 생사해탈(生死解脫)하는 진리를 설하셨던 것입니다.

 

몸으로 지은 죄와, 입으로 지은 죄와, 마음으로 지은 죄, 이 삼재를 소멸하는 방법은 참선(參禪)하는 법이 가장 빠르고도 쉽고도 간단하고 요긴한 것입니다.

 

삼재는 비단 앞으로 3년간 돼지띠와 토끼띠와 염소띠 가진 사람에 한해서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해묘미생 밖에, 사유축생이라든지, 신자진생이라든지, 인오술생 다른 모든 생(生)도 언제라도 우리에게는 삼재가 우리를 침범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삼재는 밖에서 우리한테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우리의 안에서 나오면서 나를 괴롭히고, 나와 가지고 다시 나에게 되돌아와서 나를 괴롭히는 것입니다.

눈에도 보이지 아니하고 손에도 만져지지 않건마는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육문(六門)을 통해서 언제라도 우리의 마음속에 한 생각 동했다고 하면은 그것을 그 틈을 타서 삼재의 마구니는 우리를 침범하려고 노리고 있는 것입니다.

 

38선(三八線) 너머에서 공산당이 우리를 침범하기 위해서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것은 약과(藥果)입니다. 그것은 무력증강하고, 국민이 단합을 해서 잘 해 나가면 그것은 얼마든지 막을 수가 있습니다.

왜 그러냐? 그것은 눈으로 보이는 적이기 때문에 막기가 오히려 쉽습니다.

 

그러나 이 삼재는 눈에 보이지 않는 무서운 그림자 없는 그러한 도적이기 때문에, 그리고 밖에서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안에서 일어난 것이기 때문에 정말 이 삼재를 막는다고 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것입니다.

 

어렵지마는, 막는 방법이 참선법이라고 하는 것을 아신다고 하면은 몸에 종이로 찍은 부작을 가지신 것보다는, 입춘 시간을 맞추어서 독불공을 하신 것보다는,

일어나는 생각 생각, 그때 그때 화두를 돌이켜서 나간다고 하면은 그 마귀가 고개를 들 겨를도 없이 잠깐도 여유를 주지 않는다고 하면은 마침내 그 마귀들은 맥을 추리지 못하고, 나를 보호하고 나를 받드는 선량한 부하가 될 것이고, 나로 하여금 도업(道業)을 성취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좋은 선신(善神)이 되고, 나의 호위병이 되어 줄 것입니다.

 

아까 조실 스님께서도 참선법이야말로 삼재를 소멸하는, 금년 일 년 동안의 삼재만을 면할 것이 아니라 세세생생(世世生生)에 생사해탈하는 그러한 최상승법(最上乘法)이라고 하는 것을 그러한 요지의 말씀이 계셨습니다마는, 우리 법보선원 법보제자(法寶弟子)는 이렇게 믿고, 이렇게 실다웁게 실천을 하셔야 되는 것입니다.(처음~13분12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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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녹음법문(錄音法門) ; 전강 스님께서 후학을 위해 참선법(參禪法)을 핵심으로 설한 법문이 칠백 여 시간 분량이 녹음되어 있다. 이 중에는 『전강선사 일대기』 『몽산법어』 『초발심자경문』 등이 있다.

용화선원(녹음실)에서 전강선사 및 송담스님의 모든 법문을 mp3 파일로 구할 수 있습니다.

*불공(佛供 부처 불/이바지할·바칠 공) ; 부처님 앞에 향(香)·등(燈)·꽃·음식 따위를 바치고 기원함.

*독불공(獨佛供 홀로 독/부처 불/이바지할·바칠 공) ; 스님이 개개인에게 드려주는 불공.

*삼재(三災 석 삼/재앙 재) ; 사람의 태어난 해(十二支)에 따라 9년 주기로 돌아온다는 3가지 재난, 나쁜 운수를 의미한다.

①대삼재(大三災)라 하여 물(水災), 불(火災), 바람(風災)에 의한 재난을 의미하기도 하고,

②도병(刀兵 : 서로 흉기를 갖고 살해함), 기근(饑饉 : 기근이 일어남), 질역(疾疫 : 큰병이 유행함)을 뜻하기도 하며,

③자연 현상으로 입은 세 가지 재해(災害) 즉 곡식이 익지 않는 기(飢), 채소가 익지 않는 근(饉), 과일이 익지 않는 황(荒)을 가리키기도 한다.

 

삼재의 첫해를 입삼재(入三災, 들삼재)라고 하며 두 번째 해는 침삼재(枕三災, 눌삼재·앉은삼재), 마지막 해를 출삼재(出三災, 날삼재)라고 한다. 고려시대 이전부터 삼재에 대한 개념이 형성되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조선시대에는 삼재라는 개념이 널리 확산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부작(符作) ; ‘부적(符籍)’의 변한 말. 부적(符籍 부적 부/문서 적)—잡귀를 쫓고 재앙을 물리치기 위하여 붉은색으로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려 몸에 지니거나 집에 붙이는 종이.

*팔만사천(八萬四千) : 중생의 망상이 벌어져 나가는 것을 자세히 분석하면 팔만 사천 갈래가 된다고 한다. 그러므로 망상을 따라 일어나는 악마의 수효도 팔만 사천이요, 망상을 다스리는 법문도 팔만 사천이다.

인도에서는 많은 수효를 말할 때에는 이 말을 쓰는 수가 가끔 있다. 줄여서 팔만이라고만 하기도 한다.

*마구니 ; 마(魔). [범] mara 음을 따라 마라(魔羅)라 하고, 줄여서 마(魔)라고만 한다。장애자(障礙者)• 살자(殺者)• 악자(惡者)라 번역。목숨을 빼앗고 착한 일을 방해하며 모든 것을 파괴하는 악마를 말한다. 그러나  마(魔)는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에서 생기는 것이다.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용화선원刊) p64에서.

마(魔)란 생사를 즐기는 귀신의 이름이요, 팔만사천 마군이란 중생의 팔만사천 번뇌다. 마가 본래 씨가 없지만, 수행하는 이가 바른 생각을 잃은 데서 그 근원이 파생되는 것이다. 중생은 그 환경에 순종하므로 탈이 없고, 도인은 그 환경에 역행하므로 마가 대들게 된다。그래서 ‘도가 높을수록 마가 성하다’고 하는 것이다.

 

선정 중에 혹은 상주(喪主)를 보고 제 다리를 찍으며 혹은 돼지를 보고 제 코를 쥐기도 하는 것이, 모두 자기 마음에서 망상을 일으켜 외부의 마를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마의 온갖 재주가 도리어 물을 베려는 것이나, 햇빛을 불어 버리려는 격이 되고 말 것이다。옛말에 ‘벽에 틈이 생기면 바람이 들어오고, 마음에 틈이 생기면 마가 들어온다’고 하시니라.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 왔다.

*판치생모(板齒生毛) ; 화두(공안)의 하나. 版과 板은 동자(同字).

[참고] 『선문염송(禪門拈頌)』 (고려 진각혜심眞覺慧諶 선사 편찬) 475칙 ‘판치(版齒)’

(古則) 趙州因僧問 如何是祖師西來意 師云版齒生毛.

조주 스님에게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선사가 대답하였다.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投子靑頌) 九年小室自虛淹 爭似當頭一句傳 版齒生毛猶可事 石人蹈破謝家船

투자청이 송했다.

9년을 소림에서 헛되이 머무름이 어찌 당초에 일구 전한 것만 같으리오.

판치생모도 오히려 가히 일인데 돌사람이 사가(謝家)의 배를 답파했느니라

 

[참고] 『언하대오(言下大悟)』 (전강 선사 법어집 | 용화선원刊) p53~54.

어떤 스님이 조주 스님께 묻되, “어떤 것이 ‘조사서래의’입니까?(如何是祖師西來意)”하니 답하시되,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하셨다. 즉, 「어떤 것이 달마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 「판치에 털이 났느니라」라고 하는 화두.

그러면 조주 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을까?  이 화두도 ‘무자’ 화두와 같이 ‘판치생모’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판치생모”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께 뜻이 있는 것이니, 학자들은 꼭 조주 스님의 뜻을 참구할지어다.

“어째서 ‘무’라 했는고?”하는 것과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하는 것은 조금도 다름이 없는 것이다.

*경면주사(鏡面朱砂) ; 적색 계통의 광물성 안료. 수정과 같은 결정구조를 가지는 육방정계에 속하는 천연광물로 주성분은 황화수은(HgS)이다. 진사(辰砂), 주사(朱砂), 단사(丹砂), 광명사(光明砂)라고도 한다. 색깔은 주홍색 또는 적갈색이며 조흔색(條痕色 : 광물이 가루가 되었을 때 나타나는 색)은 심홍색(深紅色 : 아주 짙은 밝은 빨강색)이다.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본참공안]를 받아서,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삼세제불(三世諸佛) ; 삼세(三世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부처님[諸佛].

*역대조사(歷代祖師) ; 석가세존(釋迦世尊)으로부터 불법(佛法)을 받아 계승해 온 대대의 조사(祖師).

*소승(小僧) ; ①나이가 어린 스님. ②수행이 부족한 스님. 또는 하찮은 스님 또는 조무래기 스님이라는 뜻으로 경멸하는 말. ③스님이 자기 자신을 겸손하게 부르는 말. 산승(山僧), 빈도(貧道), 소아사(小阿師), 소사(小師) 등과 같은 말이다.

*삼업(三業) : 몸[身]과 입[口]과 뜻[意]으로 짓는 세 가지 행동 전체를 말한다。몸으로 짓는 살생(殺生), 투도(偸盜), 사음(邪淫) 3가지와, 입으로 짓는 망어(妄語), 기어(綺語), 양설(兩舌), 악구(惡口) 4가지와, 뜻으로 짓는 탐심(貪心), 진심(瞋心), 치심(痴心)의 3가지가 있다. 이것이 삼업이다.

*업(業) : [범] karma [파] Kamma 음을 따라 갈마(羯磨)라고 하며, ‘짓다(作)’ 뜻이다. 중생들이 몸으로나 말로나 뜻으로 짓는 온갖 움직임(動作)을 업이라 한다. 개인은 이 업으로 말미암아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모든 운명과 육도(六道)의 윤회(輪廻)를 받게 되고, 여러 중생이 같이 짓는 공업(共業)으로 인하여 사회와 국가와 세계가 건설되고 진행되며 쇠퇴하거나 파멸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처음에는 악업(惡業)을 짓지 말고 선업만 지으라고 가르치다가, 필경에는 악과 선에서도 다 뛰어나고, 죄와 복에 함께 얽매이지 말아서 온갖 국집과 애착을 다 버리도록 하여, 부처님의 말씀에까지라도 걸리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

*설산(雪山) ; 인도 북부에 솟아 있는 히말라야 산맥을 가리키는 말. 눈[雪]을 품은 곳이란 뜻. 설령(雪嶺) · 동왕산(冬王山) · 대설산(大雪山) 등이라고도 한다. 부처님의 탄생지인 카필라바스투 역시 설산의 기슭에 위치하고 있다. 석가모니가 수도한 산.

*도(道) ; ①깨달음. 산스크리트어 bodhi의 한역. 각(覺). 보리(菩提)라고 음사(音寫). ②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그 방법. ③무상(無上)의 불도(佛道). 궁극적인 진리. ④이치. 천지만물의 근원. 바른 규범.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를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것.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38선(三八線) ; 제2차 세계 대전의 전후 처리 과정에서 1945년 8월15일 맥아더가 발표한 ‘일반명령 제1호’에 의해 한반도의 38도선 이북의 일본군의 항복은 소련이, 이남의 일본군의 항복은 미국이 접수한, 미·소 양국의 한반도 분할점령 군사분계선.

38선은 1953년 6 · 25 전쟁이 끝나고 정전협정에 따라 설정된 현재의 군사분계선과 다르지만, 현재까지도 흔히 군사분계선을 삼팔선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약과(藥果) ; ①과줄(꿀과 기름을 섞은 밀가루 반죽을 판에 박아서 모양을 낸 후 기름에 튀긴 과자. ②약과는 달고 맛있어서 먹기에 쉽듯이 어떤 일을 하기가 아주 수월하다는 뜻으로,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님’을 이르는 말.

*도업(道業) ; 도(道)는 깨달음. 업(業)은 영위(營爲 : 일을 계획하여 꾸려 나감). 불도(佛道)의 수행. 진리의 실천.

*선신(善神) ; 불법(佛法)과 그것을 믿는 이들을 보호하는 신.

*세세생생(世世生生) ; 많은 생애를 거치는 동안. 태어날 때마다. 세세(世世)토록.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간화선(看話禪) ; 화(話)는 화두(話頭)의 준말이다. 간화(看話)는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을 본다[看]’는 말로써,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이 화두를 관(觀)해서, 화두를 통해서 확철대오하는 간화선을 전강 조실스님과 송담스님께서는 ‘최상승법(最上乘法)’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고 말씀하신다.

*법보제자(法寶弟子) ; [참고] 89년 설날차례(89.02.06) 법요식에서.

〇여기 (용화선원 대웅전 법보단) 만년위패에 우리의 조상 여러 영가와 원근 친척의 인연 있는 영가들을 모신 이 자리에 참석하신 모든 여러분은 법보가족이라고 말을 할 수가 있습니다. 한 가족입니다.

조상의 영가를 한 법당(대웅전 법보단, 舊 법보전)에 모셨으니 우리가 한 가족인 것입니다. 더군다나 우리는 정법(正法)에 의지해서 도를 닦는 또 이 도반(道伴)이면서 또 한 가족인 것입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최근 법문2018. 3. 3. 09:38

>>> 용화선원 법문 유튜브에서 보고 듣기 --->유튜브로 바로가기


 

§(789) (게송)파사노년친석가~ / 자기가 자기의 자성불을 찾는 ‘이뭣고?’밖에는 생사무상 속에서 영원을 살아가는 길이 없다 / (게송)호향차시명자기~.

 

산승(山僧)이 이렇게 구십이 넘어서 늙어가지고 여러분께 정말 간곡히 부탁드리는 말씀은 「이만큼 건강하고 이만큼 건강하실 때에 나의 자성 부처님을 찾는 ‘이뭣고?’를 열심히 하라」고 이 말씀을 간곡히 부탁을 드리는 것입니다.

 

**송담스님(No.789)—2018년 동안거해제(18.03.02) (용789)

 

(1) 약 20분.

(2) 약 14분.

 

 

(1)------------------

 

파사노년친석가(怕死老年親釋迦)하니  두상광음전두비(頭上光陰轉頭飛)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제득혈루무용처(啼得血淚無用處)라  불여함구과잔춘(不如緘口過殘春)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오늘은 무술년 음력 정월 15일 동안거(冬安居) 해제(解制)일입니다.

지난 석달 동안 정진하느라고 모두 애를 쓰셨습니다.

 

파사노년친석가(怕死老年親釋迦)요  두상광음전두비(頭上光陰轉頭飛)다.

죽음이 두려운 늘그막에사 석가모니 부처님을 친하게 되었다. 그런데 두상광음(頭上光陰)은 전두비(轉頭飛)다, 머리위에 광음(光陰)은 쏜살같이 지나가고 있구나.

 

제득혈루무용처(啼得血淚無用處)여.

이렇게 시간은 화살같이 지나가고 있고, 우리 자신들은 머리에 흰머리가 나고 얼굴에 주름살이 생기고, 이렇게 해서 우리는 죽음을 향해서 한 시간 한 시간 다가가고 있는데 아무리 죽음이 싫고, 죽지 않고 영원히 살기를 바래보았자 시간은 우리를 위해서 기달라 주지를 않습니다.

눈에서 피눈물이 나도록 시간을 붙잡을라고 노력을 하고, 시간이 흘러가는 것을 한탄하고 원망해 봤자 그렇게 해서 눈에 피눈물이 나도록 울어 봤자 아무 소용이 없어.

 

그래서 무상(無常)을 참으로 느끼고 깨달으고 일 분 일 초 지내간 것이 우리가 죽음을 향해서 일 초 일 초 다가가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뼛속 깊이 느낀다면은 바로 그때 그 장소를 놓치지 말고 ‘이뭣고?’를 하는 길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이뭣고?’를 한다고 해서 죽음을 면할 수가 있느냐? 시간을 막을 수가 있느냐?

그것은 아니지마는 우리가 할 일은, 해야 할 일은 그것밖에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돈을 아무리 많이 모이고 명예와 권리를 하늘같이 쌓다 하더라도 죽음은 막을 수가 없고 면할 수가 없는데, 그래도 죽음을 우리가 대항해 나가는 길은 ‘이뭣고?’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이뭣고?’는, 무상 속에서 영원을 사는 길이 거기에 열려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뭣고?’는 해도 해도 끝이 없지마는 그래도 우리가 이 무상 속에서 영원을 사는 길은—일 초 일 초 죽음을 향해서 가는 이 처지에 그것을 이겨 나가는 길, 그래도 무상 속에서 영원을 살아가는 길은 나의 본래면목(本來面目), 나의 자성불(自性佛)을 찾는 길밖에는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평상시 이만큼 건강할 때에,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눈으로 무엇을 보거나 귀로 무슨 소리를 듣거나 그리 가서 거기에 따라가면 거기에는 아무것도 나올 것이 없습니다.

다맛 눈으로 무엇을 보는 순간, 귀로 무엇을 듣는 순간 그리 정신을 팔리면 무상 속에 끌려나가는 것뿐이고.

 

바로 눈으로 무엇을 볼 그 찰나에 바로 ‘이뭣고?’ 코로 냄새를 맡을 때, 귀로 무슨 말을 들을 때,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간에 그 때와 장소를 범연(泛然)히 지나치지 말고 바로 그때를 즉(卽)해서 ‘이뭣고?’

자꾸 자기 자성불을 찾는 ‘이뭣고?’밖에는 무상 속에서 영원을 살아가는 길은 그것밖에는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별로 재미도 없고 만날 해봤자 무슨 결론이 날 것은 아니지마는 그래도 ‘이뭣고?’하고 자기가 자기의 자성불을 찾는 이 공부밖에는 달리 다른 길이 없고, 다른 길은 가봤자 빤하기 때문에 앉아서도 ‘이뭣고?’ 서서도 ‘이뭣고?’ 눈으로 무엇을 보는 그 찰나에도 ‘이뭣고?’ 기분이 나쁠 때도 ‘이뭣고?’ 속이 상할 때도 ‘이뭣고?’

항상 때와 장소를 즉해서 바로 참나를 찾는 ‘이뭣고?’ 이것이야말로 무상 속에서 영원을 사는 길이 거기에 열려 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우리는 이 말세(末世)에 태어났지마는 다행히 최상승법(最上乘法)을 만나서 참나를 찾는 방법을 우리는 알고 있으니 그것을 열심히 하면 되는 것입니다.

 

속이 상할 때도 ‘이뭣고?’ 슬플 때도 ‘이뭣고?’ 기분이 좋을 때도 ‘이뭣고?’

누가 나를 욕을 하더라도 그 욕에 의해서 속이 상하지 말고, 욕 들을 그 찰나에 나는 ‘이뭣고?’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나를 욕하는 것이 나를 찾게 하는 채찍이 되고, 참나를 찾게 하는 부처님 법(法)이 되는 것입니다.

 

비록 이 말세에 우리가 태어났다 하더라도 이 참나를 찾는 최상승법을 듣고 믿고, 그리고 ‘이뭣고?’를 실천하면 그것이 바로 무상 속에서 영원을 사는 길이 거기에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가 부모님으로부터 이 육체를 받아났는데 우리가 부모님께 해 드릴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나를 낳아서 키워서 가리켜서 이만큼 사람 노릇을 하게 해 주신 부모의 은혜가 소중하지마는 그 부모의 소중한 은혜를 갚는 길은 나를 낳아주신—이 육체를 낳아 주심과 동시에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공도 함께 우리는 받아났습니다.

그런 소중한 이 몸뚱이고, 이 소중한 자성 부처님을 가지고 있는 이 몸뚱이는 부모가 낳아 주셨지마는 부모의 은혜를 갚는 길은 맛있는 음식을 해 드리거나 좋은 옷을 해 드리는 것으로써 만분의 일도 갚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정법(正法)을 믿고 항상 ‘이뭣고?’를 찾음으로써만이 부모의 은혜를 갚는 도리가 그속에 들어 있고, 모든 성현의 은혜를 갚는 길도 거기에 있고, 부처님의 은혜를 갚는 길도 내가 나의 자성 부처님을 찾는 길, 이것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이뭣고?’를 열심히 하면 그것이 생사 속에서 생사를 해탈하는 길이 거기에 열려 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내가 나를 찾는 이 공부는 끝이 없지마는 이것은 내가 해야지 다른 사람이 내 대신 해줄 수가 없습니다.

 

다행히 부모님이 나를 낳아 주셔서 이만큼 살게 해주시고 이렇게 불법(佛法)을 믿을 수 있게 해주시고.

여기에 모이신 머리를 깎은 스님네나 머리을 안 깎은 처사님이나 거사님도 다 부모님으로 인해서 태어났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부모님의 은혜는 다른 길로 은혜의 백분의 일도 못 갚습니다.

부모의 그 고마운 은혜를 갚는 길은 불법을 믿고, 최상승법을 믿고 ‘이뭣고?’ ‘이뭣고?’를 함으로써만이 생사해탈 할 길이 거기에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생사해탈(生死解脫)이라는 게 무엇이냐?

 

한번 태어난 사람은 누구라도 차츰 자라서 늙어서 병들어 죽기 마련인데, 그동안에 그럭저럭 살다보면 주름살이 생기고 흰머리가 나고 해서 결국은 하루하루 시간이 가면 죽음을 향해서 가게 되는데, 바로 그래도 참나를 찾는 ‘이뭣고?’를 열심히 하면 무상 속에서 영원을 사는 길이 거기에 열리기 때문인 것입니다.

나를 찾는 ‘이뭣고?’야말로 이것은 최상승법이요, 내가 부처님이 되는 길이 거기에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돈을 많이 벌고 높은 벼슬을 해봤자 그것을 내생에 하나도 관(棺) 속에 가지고 가봤자 소용이 없습니다.

이 몸뚱이는 60세 70세 80세 90세 되다 보면 결국은 육체는 죽음을 맞이할 수 밖에 없는데 그 죽음을 만나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이뭣고?’를 열심히 한 사람은 생사를 해탈하는 길이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이뭣고?’를 열심히 한 사람은 죽음이 와도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왜 그러냐?

생사해탈하는 길을 알았고 믿었고, ‘이뭣고?’를 열심히 해 놓은 사람은 죽음이라고 하는 것, 생사라고 하는 것 자체가 그 사람한테는 두려울 것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안 죽고 육체로 이백 년, 삼백 년 사냐 하면 그게 아닙니다. 살 만큼 살면 가는데 ‘이뭣고?’를 열심히 한 사람은 그 죽음을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숨이 마지막 딱 끊어질 그 찰나에도 ‘이뭣고?’ 무자(無字) 화두를 하는 사람은 ‘어째서 무라 했는고?’ 판치생모(板齒生毛)하는 사람은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그러면서 숨을 딱 거두면 도솔천내원궁(兜率天內院宮)에 가서 태어나게 될 것입니다.

 

또 원(願)에 따라서 다시 인도환생(人道還生)을 할 수도 있습니다. 인도환생을 하게 되면 그런 대로 좋고, 도솔천내원궁에 가면 그런 대로 좋고, 또 극락세계에 가게 되면 그것도 또한 괜찮습니다.

어떠한 소원으로 사느냐 하는 것은 각자 자기의 신심과 원력에 달려 있습니다. 정법을 믿고 ‘이뭣고?’를 열심히 한 사람은 생사(生死)라고 하는 것이 그렇게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생사는 이 세상에 한번 태어난 사람은 반드시 죽게 되어 있는데 ‘이뭣고?’를 열심히 한 사람은 살 만큼 살다가 마지막 숨 거둘 때도 ‘이뭣고?’ 하면서 숨을 거두면 그 사람은 극락세계가 아니면은 도솔천내원궁에 가서 태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생사 속에서 영원을 사는 길이 참나를 찾는 ‘이뭣고?’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이뭣고?’한 사람이라고 해서 육체로 이백 년, 삼백 년 사는 것은 아니지마는 살 만큼 살다가 갈 때라도 ‘이뭣고?’를 한 사람은 생사를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마지막 숨 꼴딱 넘어갈 때도 ‘이뭣고?’ 하면서 숨을 거두면 틀림없이 그 사람은 도솔천내원궁에 가서 태어날 것입니다.

최상승법인 내가 나의 자성불을 찾는 이 참선(參禪) 공부는 생사를 해탈하는, 생사 속에서 영원을 사는 길이 거기에 열려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처음~19분30초)

 

 

 

 

 

(2)------------------

 

호향차시명자기(好向此時明自己)하라  백년광영전두비(百年光影轉頭非)니라

나무~아미타불~

금생(今生)에 약불종사어(若不從斯語)하면  후세당연한만단(後世當然恨萬端)하리라

나무~아미타불~

 

호향차시(好向此時)하야 명자기(明自己)하라. 백년광음(百年光陰)이 전두비(轉頭非)다.

정말 이렇게 말을 듣고 걸어다닐 수 있고, 밥 먹고 옷 입고 이러는 이러한 힘이 있을 때, 이럴 때 자기의 자성불을 잘 밝히라 그말이여. ‘이뭣고?’를 열심히 하시라 그말이에요.

 

백년광영(百年光影)이 전두비(轉頭非)여. 우리가 오래 살아봤자 백년 정도 사는데 그 백년이라는 세월이 그렇게 긴 시간이 아닙니다.

이 가운데 계신 여러분들은 다 칠팔십, 머지않아서 또 백세가 가까워집니다마는 이 시간에 명예나 권리나 지위 부귀를 아무리 많이 쌓아 놓아봤자 그것으로 생사를 면할 수는 없습니다.

 

다맛 ‘이뭣고?’밖에는 없습니다. 눈으로 무엇을 보는 찰나에 ‘이뭣고?’ 귀로 무슨 말을 들을 때 ‘이뭣고?’ 속이 상할 때 ‘이뭣고?’ 기분이 나쁠 때 ‘이뭣고?’ 때와 장소를 가릴 것이 없습니다.

속으로 항상 참나를 찾는, 나의 자성 부처님을 찾는 ‘이뭣고?’를 하는 것이, 이것이 무상 속에서 영원을 사는 길이 거기 열리기 때문인 것입니다.

 

산승(山僧)이 이렇게 구십이 넘어서 늙어가지고 여러분께 정말 간곡히 부탁드리는 말씀은 「이만큼 건강하고 이만큼 건강하실 때에 나의 자성 부처님을 찾는 ‘이뭣고?’를 열심히 하라」고 이 말씀을 간곡히 부탁을 드리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허수히 듣지 말고, 앉아서도 ‘이뭣고?’ 걸어가면서도 ‘이뭣고?’ 속이 상할 때도 ‘이뭣고?’ 기분이 좋을 때도 ‘이뭣고?’

누가 나한테 욕을 하더라도 그말을 인해서 속이 상할 것이 아니라 나는 ‘이뭣고?’ 이렇게 자기 부처님을 찾는 공부를 한다면 다른 사람이 나를 욕하는 말이 바로 나로 하여금 부처님을 찾는 공부를 하게 해주는 법문(法門)이 되는 것이여.

 

비록 이 사바세계(娑婆世界)는 생로병사가 있고, 성주괴공이 있고—이 육체는 생로병사가 있고, 우주법계는 성주괴공(成住壞空)이 있지마는 이 무상 속에서 영원을 사는 길은 돈 가지고도 안 되고, 명예나 지위 부귀 권리 가지고도 안 됩니다.

이 속에서 앉아서도 ‘이뭣고?’ 서서도 ‘이뭣고?’ 기분이 좋을 때도 ‘이뭣고?’ 항상 자기의 자성 부처님을 찾는 ‘이뭣고?’를 하는 것이 무상 속에서 영원을 사는 길이 거기에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것은 돈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명예가 필요한 것도 아니고, 다맛 이만큼 건강하면 서서도 ‘이뭣고?’ 걸어가면서도 ‘이뭣고?’ 속이 상할 때도 ‘이뭣고?’ 일체처(一切處) 일체시(一切時)가 바로 나의 자성 부처님을 찾는 수도장(修道場)인 것입니다.

 

이 말세에 우리가 몸을 받아서 태어났지마는 최상승법을 우리는 만나서 이렇게 최상승법을 여러분께 말씀할 수 있는 기회를 갖고, 또 이런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인연을 갖은 여러분들은 정말 무상 속에서 영원을 사는 길이 우리에게 있는 것을 우리는 믿고 열심히 ‘이뭣고?’를 하면 우리는 비록 말세라고 해서 한탄할 것이 없습니다.

 

결국은 이 육체를 받아난 사람은 결국은 죽게 되는데, 죽을 때도 ‘이뭣고?’ 이러면서 숨을 딱 거두면 숨 떨어지자마자 도솔천내원궁에 가서 태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일생을 살면서 본의 아니게 여러가지 업(業)을 지어왔을 것입니다마는, 업을 지어왔다 하더라도 그 업 속에 업으로 인해서 윤회에 떨어지지 않고 도솔천내원궁에 가서 태어나서 미륵 부처님을 친견하고 다시 인도환생을 할 수 있다면은 인도환생을 하면 좋고, 도솔천내원궁에서 영원히 살아도 상관이 없습니다마는 그 길이 내가 내 자신의 부처님을 찾는 ‘이뭣고?’를 하는 길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산승이 구십이 넘어서 앞으로 얼마 동안 이러한 말씀을 여러 사부대중(四部大衆)께 말씀을 드릴 기회가 몇번이나 있을란가 그건 알 수가 없으나,

내가 여러분께 이렇게 간곡히 말씀드린 것은 이것밖에는 여러분께 해 드릴 말씀이 없고, 이렇게 해 드림으로 해서 이 말씀을 믿고 열심히 ‘이뭣고?’를 하시면 여러분은 받드시 도솔천내원궁에 태어나시게 되리라고 나는 믿기 때문에 말씀을 드린 것입니다.

생사 속에서 영원을 사는 길이 ‘이뭣고?’이기 때문에 이렇게 말씀을 드린 것입니다.

 

산승의 이렇게 간곡히 말씀드린 말씀을 옳다고 믿고 그렇게 열심히 하겠다고 결심을 하신 분은 손을 한번 들어보세요.

 

<대중 손들고, 박수>

 

여러분이 정말 손을 들고 박수를 치신 그 뜻이 진심에서 나오신 행동이기 때문에 나는 여러분의 그 마음을 믿습니다.

앞으로 20년을 더 살런지, 50년을 더 살런지 사람마다 다 연세가 연령이 다르지만 이 무상한 세계에서 영원을 사는 길이 내가 나의 자성(自性) 부처님을 찾는 길이 최고이기 때문에 내가 이렇게 간곡히 말씀을 드리고, 여러분이 그 말을 옳다고 믿고 손을 들고 박수를 쳐주셔서 대단히 고맙습니다.

 

 

호향차시명자기(好向此時明自己)하소 백년광영전두비(百年光影轉頭非)로다

나무~아미타불~

금생(今生)에 약불종사어(若不從斯語)하면 후세당연한만단(後世當然恨萬端)하리라

나무~아미타불~

 

호향차시(好向此時)하야 명자기(明自己)하라, 우리가 이만큼 말귀를 듣고, 걸어다닐 수 있고, 밥 먹고 옷 입고 이만큼 건강이 있을 때 참나를 찾는 ‘이뭣고?’를 열심히 하시라 이말이여.

백년 세월이라는 것은 화살처럼 지금 날아가고 있으니, 시간은 아무리 기운이 세거나 권리가 있거나 돈이 많아도 시간은 붙잡을 수가 없어.

 

금생(今生)에 약불종사어(若不從斯語)하면, 산승이 이렇게 간곡히 여러분께 말씀을 드리고 있는 이 말씀을 깊이 명심하고.

‘이뭣고?’을 열심히 안 하시면 후세에 가서 아무리 후회한들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이 아까 손을 들고 박수를 쳤기 때문에 여러분은 산승의 말을 깊이 명심하고 행주좌와 어묵동정, 희로애락, 모든 장소 모든 시간에 ‘이뭣고?’를 열심히 해서 반드시 정법에 의해서 생사해탈을 해서 도솔천내원궁에 가서 또 만나게 되리라고 믿습니다.(19분31초~33분45초)(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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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怕死老年親釋迦 頭上光陰轉頭飛’ ; [참고]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161~162.

〇怕死老年에  親釋迦로다. 好向此時明自己어다  百年光影이  轉頭非로다.

죽음이 두려운 늙으막에야 부처님을 가까이 함이로다. 당장 이 때에 마음을 애써 밝히소, 백 년 세월도 순식간에 글러지느니.

*파사노년(怕死老年) : 송(宋)나라 소강절(邵康節)의 글에 '이름 구할 젊을 적 공자님만 따랐고, 죽기 싫은 늙으막 부처님께 나가네(求名少日慕宣聖 怕死老年親釋迦)'라고 하였다.

*(게송) ‘啼得血淚無用處 不如緘口過殘年’ ; [선문염송(禪門拈頌)] (혜심 지음) ‘제 1권 1칙 도솔(兜率)’ 취암열상당거차화운(翠嵓悅上堂擧此話云) 참고.

*안거(安居 편안할 안/있을 거) ; (산스크리트) varsa 원뜻은 우기(雨期). ① 인도의 불교도들은 4월 15일(또는 5월 15일)부터 3개월 간 우기(雨期)때에 외출하면 풀이나 나무,작은 곤충을 모르고 밟아 죽일까 두려워 했고 그래서 동굴이나 사원에 들어가서 수행에 전념했다. 이것을 우안거(雨安居)라고 한다.

② 선종(禪宗)에서는 음력 4월 15일부터 7월 15일까지를 하안거(夏安居), 10월 15일부터 다음해 1월 15일까지를 동안거(冬安居)라고 해서 각각 90일간 사원에 머물르면서 외출을 금지하고 오로지 좌선을 중심으로 한 수행에 전념한다. 안거의 처음을 결제(結制), 끝을 해제(解制)라 한다.

*광음(光陰) ; 햇빛과 그늘, 즉 낮과 밤이라는 뜻으로, 시간이나 세월을 이르는 말.

*무상(無常) ; 모든 현상은 계속하여 나고 없어지고 변하여 그대로인 것이 없음. 온갖 것들이 변해가며 조금도 머물러 있지 않는 것. 변해감. 덧없음. 영원성이 없는 것.

세상의 모든 사물이나 현상들이 무수한 원인(因)과 조건(緣)의 상호 관계를 통하여 형성된 것으로서 그 자체 독립적인 것은 하나도 없고, 인연(因緣)이 다하면 소멸되어 항상함[常]이 없다[無].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 왔다.

*본래면목(本來面目 밑 본/올 래/낯 면/눈 목) ; ①자기의 본래(本來) 모습(面目). ②자신이 본디부터 지니고 있는,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의 성품.

본지풍광(本地風光), 본지고향(本地故鄉), 본분전지(本分田地), 고가전지(故家田地), 천진면목(天眞面目), 법성(法性), 실상(實相), 보리(菩提), 부모에게서 낳기 전 면목(父母未生前面目), 부모에게서 낳기 전 소식(父母未生前消息) 등이 모두 같은 맥락에서 쓰이는 말이다.

*자성불(自性佛) ; 자성(自性)이 즉 부처라는 뜻.

*자성(自性) ; ①사물 그 자체의 본성. 본성 ②본래부터 저절로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 사람이 일상적으로 하는 일체의 행위.

*범연(泛然)히 ; ①두드러진 데가 없이 평범하게. ②특별한 관심이 없어 데면데면하게.

*즉해서(卽-- 곧·즉시 즉) ; 곧. 곧바로. 당장. 즉시(卽時 : 어떤 일이 행하여지는 바로 그때). 즉각(卽刻 : 일이 일어나는 그 순간 바로. 당장에 곧).

*말세(末世 끝 말/세상 세) ; ①도덕, 풍속, 정치 등의 모든 사회 질서와 정신이 매우 타락하고 쇠퇴하여 끝판에 이른 세상. ②석존입멸후 오백 년을 정법(正法)의 세상, 그 다음 천 년을 상법(像法)의 세상, 그 후의 일만 년을 말법(末法)의 세상이라고 한다. 구체적인 시기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곧 불멸(佛滅) 후 오랜 기간을 지나 부처님의 가르침이 쇠퇴하는 시기.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간화선(看話禪) ; 화(話)는 화두(話頭)의 준말이다. 간화(看話)는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을 본다[看]’는 말로써,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이 화두를 관(觀)해서, 화두를 통해서 확철대오하는 간화선을 전강 조실스님과 송담스님께서는 ‘최상승법(最上乘法)’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고 말씀하신다.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를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것.

*무자(無字) : 화두. 어느 스님이 조주(趙州) 스님께 묻되 「개도 불성(佛性)이 있읍니까 없읍니까?」하니, 조주 스님이 답하되 「무(無)」라 하시니 「준동함령(蠢動含靈)이 다 불성이 있는데 어째서 무(無)라고 했는고?」하는 참선할 때 참구(叅究)하는 천칠백 공안 중의 하나.

[참고]  『언하대오(言下大悟)』 (전강 선사 법어집 | 용화선원刊) p52~53.

‘무자’ 화두하는 학자들이여, 조주 스님의 “무” 라고 하신 그 의지가 “무” 에 있는 것이 아니다.  기실(其實) 엉뚱한 곳에 있는 것이니 제발 조주 스님의 뜻을 찾으려고 애쓸지언정  ‘무자(無字)’에 떨어져서 광음을 헛되이 보내지 않기를 재삼 부탁하노라.

이 ‘무자’ 화두 지어감에 좋은 비유 설화가 있으니 옛날 중국 당나라에 천하일색인 양귀비가 있었는데 당 현종의 애첩으로 궁성에 살고 있었다. 이 양귀비와 정부 안록산은 서로가 보고 싶어 못 견딜 지경이었다.

 

빈호소옥무타사(頻呼小玉無他事)라 지요단랑인득성(只要檀郞認得聲)이로다

자주 소옥이를 부르는 것은 다른 일이 아니라 다못 낭군에게 소리를 알리고자 함이로다.

 

양귀비는 자기의 종인 소옥을 아무 할 일 없이 큰 소리로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자꾸 부른다.  왜 양귀비는 소옥을 그렇게 부를까?  다만 낭군에게 자기의 음성을 들리게 하기 위함이다.

양귀비의 뜻이 소옥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소옥을 통해서 자기의 음성을 안록산에게 알리는데 본 뜻이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무자’ 화두는 ‘무자’ 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무” 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에게 뜻이 있는 것이니, ‘무’라는 말을 천착(穿鑿)하지 말고 “무” 라 말씀하신 조주 스님의 의지를 참구할지니라.

*판치생모(板齒生毛) ; 화두(공안)의 하나. 版과 板은 동자(同字).

[참고] 『선문염송(禪門拈頌)』 (고려 진각혜심眞覺慧諶 선사 편찬) 475칙 ‘판치(版齒)’

(古則) 趙州因僧問 如何是祖師西來意 師云版齒生毛.

조주 스님에게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선사가 대답하였다.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投子靑頌) 九年小室自虛淹 爭似當頭一句傳 版齒生毛猶可事 石人蹈破謝家船

투자청이 송했다.

9년을 소림에서 헛되이 머무름이 어찌 당초에 일구 전한 것만 같으리오.

판치생모도 오히려 가히 일인데 돌사람이 사가(謝家)의 배를 답파했느니라

 

[참고] 『언하대오(言下大悟)』 (전강 선사 법어집 | 용화선원刊) p53~54.

어떤 스님이 조주 스님께 묻되, “어떤 것이 ‘조사서래의’입니까?(如何是祖師西來意)”하니 답하시되,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하셨다. 즉, 「어떤 것이 달마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 「판치에 털이 났느니라」라고 하는 화두.

그러면 조주 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을까?  이 화두도 ‘무자’ 화두와 같이 ‘판치생모’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판치생모”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께 뜻이 있는 것이니, 학자들은 꼭 조주 스님의 뜻을 참구할지어다.

“어째서 ‘무’라 했는고?”하는 것과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하는 것은 조금도 다름이 없는 것이다.

*도솔천내원궁(兜率天內院宮) ; 욕계 육천(欲界六天)의 넷째 하늘. 불교의 우주관에 따르면 우주의 중심은 수미산(須彌山)이며, 그 꼭대기에서 12만 유순(由旬) 위에 도솔천이 있는데 이곳은 내원(內院)과 외원(外院)으로 구별되어 있다.

내원은 내원궁(內院宮)으로 불리기도 하며 석가모니가 보살일 당시에 머무르면서 지상에 내려갈 때를 기다렸던 곳이며, 오늘날에는 미래불인 미륵보살(彌勒菩薩)이 설법하면서 지상으로 내려갈 시기(석가모니가 입멸한 지 56억 7천만 년 뒤에)를 기다리고 있는 곳이고, 외원은 수많은 천인(天人)들이 오욕(五欲)을 충족시키며 즐거움을 누리고 있는 곳이다. 도솔(兜率)의 뜻은 지족(知足).

*원(願) ; 소원(所願). 바라고 원함. 또는 바라고 원하는 일.

*인도환생(人道還生) ; 인간이 사는 세계로 다시 태어남.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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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호향차시명자기(好向此時明自己) 백년광영전두비(百年光影轉頭非)’ ;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161 게송 참고.

*산승(山僧) ; 스님이 자신을 겸손하게 일컫는 말.

*허수히 ; 짜임새나 단정함이 없이 느슨한 데가 있게.

*법문(法門 부처님의 가르침 법/문 문) ; 불법(佛法)을 문(門)에 비유한 말.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門)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사바세계(娑婆世界) ;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이 세계. 현실의 세계. 인토(忍土) · 감인토(堪忍土) · 인계(忍界)라고 한역.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중생들을 교화하는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가 모두 사바세계이다.

*성주괴공(成住壞空) : 세상의 모든 것은 크나 작으나 다 변화의 과정을 밟게 된다。곧 성립되어 가는 과정, 안정(安定)하여 진행하는 과정, 쇠퇴하여 가는 과정, 멸망하여 없어지는 과정이 반드시 있게 된다.

모든 물질도, 우리 몸도 사회도, 국가도, 세계 전체도 다 그렇게 된다。이것을 성주괴공(成住壞空)이니, 생주이멸(生住異滅)이니, 생로병사(生老病死)니 하는데, 그 원인은 우리의 마음 속에 생각이 쉴 새 없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기 때문이다.

*업(業) : [범] karma [파] Kamma 음을 따라 갈마(羯磨)라고 하며, ‘짓다(作)’의 뜻이다。중생들이 몸으로나 말로나 뜻으로 짓는 온갖 움직임(動作)을 업이라 한다.

개인은 이 업으로 말미암아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모든 운명과 육도(六道)의 윤회(輪廻)를 받게 되고, 여러 중생이 같이 짓는 공업(共業)으로 인하여 사회와 국가와 세계가 건설되고 진행되며 쇠퇴하거나 파멸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처음에는 악업(惡業)을 짓지 말고 선업만 지으라고 가르치다가, 필경에는 악과 선에서도 다 뛰어나고, 죄와 복에 함께 얽매이지 말아서 온갖 국집과 애착을 다 버리도록 하여, 부처님의 말씀에까지라도 걸리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

*윤회(輪廻) : 세상의 온갖 물질과 모든 세력(勢力)은 어느 것이나 아주 없어져 버리는 것이 하나도 없다。오직 인과(因果)의 법칙(法則)에 따라 서로 연쇄 관계(連鎖關係)를 지어 가면서 변하여 갈 뿐이다。마치 물이 수증기가 되고 구름이 되고 비가 되어, 다시 물 · 수증기.... 이와 같이 모든 것은 돌아다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업식(業識)도 육체가 분해될 때에 아주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모든 중생들은 온갖 생각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므로, 쉴 새 없이 번민과 고통 속에서 지내다가 육신이 죽으면 생전에 지은 업(業)을 따라 지옥 · 아귀 · 축생 · 수라 · 천상 또는 다시 인간으로 수레 바퀴 돌듯 돌아다니게 된다。그러나 성품을 깨쳐서 생각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바가 없게 되면 윤회는 끊어지는 것이다.

*사부대중(四部大衆) ; 불문(佛門)에 있는 네 가지 제자. 곧 비구(比丘), 비구니(比丘尼) 등 출가 제자와 우바새(優婆塞), 우바이(優婆夷) 등 재가 제자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사중(四衆)과 같은 말. 줄여서 사부(四部)라고도 한다.

[참고] 우바새 : upasaka의 음역. 삼귀의(三歸依)와 오계(五戒)를 받아 지니는 남성 재가신도.(같은 말=靑信士,靑信男,信男,信士,居士,近事男,近善男,善宿男) 원래의 말뜻은 모시는 사람. 받들어 모시는 사람. 출가자와 승단을 가까이에서 돌보고 보호하며 한편 가까이 배우는 사람이라는 뜻을 지닌다. 선숙(善宿)은 선(善)을 품어 그것에 머물기[宿] 때문에 선숙이라고 한다.

우바이 : upasika의 음역. 삼귀의(三歸依)와 오계(五戒)를 받아 지니는 여성 재가신도. (같은 말=靑信女,信女,近事女,近善女,善宿女)

 

Posted by 닥공닥정
정진(精進) 수행2018. 2. 15. 23:55
§(356) 정진을 시작하면 귀머거리, 벙어리가 되야 / 일념삼천 / 바른 스승의 지도 / 능소(能所) / 도문(道門)의 첫 단계 / (게송)겁화소해저~ / 인생은 한바탕 꿈, 빨리 보리심을 발해야.
 
참선(參禪)이라고 하는 것이 사람으로 태어나서는 반드시 해야 하고—종교를 믿건, 안 믿건 심지어는 불교를 믿건, 안 믿건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참나’를 깨닫기 위해서 참선을 해야 할 것이다.
바른 스승의 지도를 받아서 바른 방법으로 그리고 위법망구적으로 열심히만 한다면 백 명이면 백 명 다 백발백중으로 깨달음에 이를 수가 있다고 하는 것을 역대조사(歷代祖師)가 다 증명을 하셨습니다.
 
**송담스님(No.356)—88년 4월 첫째일요법회(1988.04.03) (용356)

 

(1) 약 12분.

(2) 약 12분.

 

(1)------------------
 
한번 화두(話頭)를 타고, 불명(佛名)을 타고 화두를 타서 정진을 시작을 하면 귀로 모든 소리를 듣되 벙어리와 같고, 귀는 열려 있지마는 귀는 열려 있어서 무슨 소리가 들린다 하더라도 귀머거리와 같고, 입은 열려 있어서 부득이해서 무슨 말을 한다 하더라도 속으로는 아주 벙어리와 같이, 이렇게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어째서 귀머거리가 되고 벙어리가 되어야 허냐 하면, 들을 소리 다 듣고 거기에 온갖 분별을 다 내고, 입이 열려 있다고 해서 온갖 말참견 다 하고 온갖 잡담으로 세월을 보내고, 그래 가지고 그러면서 어느 겨를에 화두를 들며, 들다말다 귀로는 온갖 시비에 다 참견하고, 입으로는 온갖 시비 다 참견하고 그러면서 어떻게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될 수가 있겠느냐 그말이여.
 
신기하고도 묘한 것이 우리의 그 일념(一念) 속에는 십법계(十法界)가 갖추어져 있어. 그리고 일법계(一法界) 속에 또 다시 십법계가 갖추어져 있기 때문에 일념(一念) 속에 백법계가 갖추어져 있는 것이 되는 것이여.
그런데 그 일법계 속에는 30종의 세간(世間)이 들어 있는데, 따라서 백법계에는 삼천 종의 세간이 들어 있다 그말이여.
 
결론적으로 일념 속에 삼천 가지의 세간이 들어 있다. 그러니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가 바로 일념 속에 들어 있다 그말이거든.
그 일념 속에 삼천대천세계가 들어 있는데 하루에 몇 생각이 일어나냐 그말이여.
 
눈뜨자마자 끝없는 생각이 일어났다가 얼마동안 딴 생각으로 이렇게 발전을 하다가 결국은 그 생각이 또 변해서 또 꺼지면은 꺼지자마자 또 따로 새 생각이 일어나고, 거의 단 1분 1초도 쉴 사이 없이 끊임없이 생각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데 그 생각 속에 삼천 가지, 삼천 종의 세간이 갖추어져서 같이 휘몰아친다 그말이여.
그렇게 살아오기를 무량겁을 살아왔으니 그 생각을 안 할려고 한다고 해서 안 해질 수가 없는 것이여.
 
공부를 올바르게 할 줄 모르는 사람은 그 생각을 안 일어나게 하기 위해서 애를 쓰고, 그래도 생각이 일어나면은 짜증을 내고 그러는데.
그 생각을 없앨려고 한다고 해서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누를라고 헌다고 해서 눌러지는 것도 아니고 무장 더 일어나는 것이여.
 
그 생각을 어떻게 다스려 나가야 하느냐?
‘이뭣고?’
 
좋은 생각이 일어나도 ‘이뭣고?’ 악한 생각이 일어나도 ‘이뭣고?’ 슬픈 생각이 일어나도 ‘이뭣고?’ 원망하는 생각이 일어나도 ‘이뭣고?’ 오직 ‘이뭣고?’
생각 일어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이뭣고?’ 빨리 챙기는 것에다가 정성을 쏟으라 그말이여.
 
하루를 그렇게 살고, 이틀을 그렇게 살고, 열흘을 그렇게 살아. 한 달 두 달을 해도 조금도 공부가 더 나아진 것 같지 않아. 석 달 열흘을 살아도 공부가 더 나아간 것 같지도 않아. 일 년, 이태, 삼 년을 한다고 해도 공부가 그렇게 썩 그렇게 순일하게 잘된 것 같지 않다 그말이여.
그래도 그 짜증을 낼 일도 아니고 또 포기를 해서도 안 된다 그말이여.
 
번뇌(煩惱)와 망상(妄想)이 일어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것이지, 안 일어나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다 그말이여.
 
당연한 것을 당연한 걸로 받아들이고 바르게 대처만 해나가면 될 것을 자꾸 그 일어난 것을 갖다가 성화를 내고 짜증을 내고 ‘내가 이 공부를 잘못해서 그런 것이 아니냐? 내가 참선을 헐 복이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니냐?’하고 한탄을 하는데 그것은 아무 소용이 없는 일입니다.
 
자꾸 화두를 들어.
 
전강 조실 스님께서도 그렇게 무섭게 했는데, 허실 때에 그 어릴 때 같이 크던 친구가 이게 참, 병으로 허망하게 죽은 것을 보고 그렇게 무상(無常)을 깨닫고,
또 꿈에 지옥을 구경을 허셨는데 그 지옥고 받는 참혹한 그 광경을 보고 아주 몸서리치면서 꿈을 깨고서, 그래서 경을 배우다가 경을 덮어버리고 그 어린 나이로 선방(禪房)에 나가셨다 그말이여.
 
그때에 그 공부하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잘 지도를 받어서 불급불완(不急不緩)하게, 너무 급하게 하지도 않고 너무 늘어지게 하지도 않고 해서 잘 잡드리를 해 나가셨으면 아무 그런 병환이 나시지 않고 대도를 성취했을텐데,
너무, 어린 마음에 워낙 철저하게 발심(發心)을 해 가지고 무상을 깨닫고 분심이 솟구쳐 오르니까 물불을 가리지 아니하고 그 막 해 제꼈다 그말이여.
 
그래 놓으니 상기(上氣)가 되아 가지고, 상기가 될수록에 점점 더 공부를 늦꾸지 아니하고 막 몰아붙였다 그말이여.
그래 놓으니까는 눈이 벌게지기 시작하면서 눈알, 그냥 눈이 핏기가 들어서 벌게지고, 목구녕에서는 피가 막 넘어왔다 그말이여.
 
이 참선(參禪)이라고 하는 것이 사람으로 태어나서는 반드시 해야 하고—종교를 믿건, 안 믿건 심지어는 불교를 믿건, 안 믿건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참나’를 깨닫기 위해서 참선을 해야 할 것이다 그말이여.
그렇게 참사람 되는데 있어서, 참나를 찾는데 있어서 이보다 더 좋은 길은 없지만, 잘못하면 깨달음에 이르기 전에 그런 중병(重病)을—그런 중병, 상기병과 같은 무서운 병을 얻을 수도 있고, 또 바르게 공부를 못하면 미친 병이 걸리기도 하고, 또 사견(邪見)에 떨어지기도 하고 이러헌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달마 스님께서도 「혈맥론」에 ‘불급심사(不急尋師)면 공과일생(空過一生)이다. 급히 스승을 찾지 아니하면 일생을 헛되이 보내리라’ 이렇게 말씀하시고.
또 ‘무사자오자(無師自悟者)는 만중희유(萬中希有)다. 스승 없이 깨달은 사람은 만 명 가운데에도 드물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조실 스님께서도 항상 ‘바른 스승을 만나서 바르게 해야 바른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허는 법문을 항상 말씀을 하셨지마는.
이 참선이 그렇게 좋은 것이로되, 바르게 허지 못하면은 이 바른 깨달음에 이르지 못할 뿐만 아니라 육체적인 병, 정신적인 병까지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른 방법으로, 바른 스승의 지도를 받아서 바른 방법으로 그리고 위법망구적으로 열심히만 한다면 백 명이면 백 명 다 백발백중으로 깨달음에 이를 수가 있다고 하는 것을 역대조사(歷代祖師)가 다 증명을 하셨습니다.
 
 
오조(五祖) 스님의 말씀에 이렇게 바른 법으로 열심히 이렇게 해서 깨닫지를 못하면,
‘이렇게 일러주는 것을 믿지 아니하면 세세생생(世世生生)에 호랑이의 밥이 될 것이고, 내가 만약에 추호라도 거짓말을 한다면 내가 거짓말한 죄로 무간지옥에 떨어지리라’ 이렇게 참 간곡한 말씀을 하시고.
또 몽산 스님도 「몽산법어(蒙山法語)」에 ‘이렇게 여법(如法)하게 3년을 해서 안 되면 내가 너희들을 대신해서 지옥에 간다’고 이렇게도 말씀을 하셨습니다.
 
기왕 불법을 믿을 바에는 최상승법(最上乘法)을 믿고, 기왕 참선을 할 바에는 이 활구참선(活句參禪)을 해서 결정코 이 몸을 가지고 금생에 확철대오(廓徹大悟)를 기약을 해야 하리라고 생각이 됩니다.(44분14초~55분58초)
 
 
 
(2)------------------
 
 
우리가 아무리 똑똑하고 잘난다고 한들, 그리고 아무리 부귀를 겸전(兼全)한 그런 이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는 그런 부귀를 누리고 권세를 누린다고 한들 이것이 모두가 다 꿈속에서 있었던 일인 것입니다.
원효대사의 그 꿈이라고 하는 소설은 그 「삼국유사」에 나오는 설화를 갖다가 소설화해서 영화로 꾸민 것이지마는, 그것이 하나의 전설이나 일화에 지내지 아니한 것이 아니라 현실 자체가 틀림이 없는 것입니다.
 
확실히 이 세상의 오욕락(五慾樂)이라고 하는 것이 이것이 무상하고 헛된 것이라고 하는 것을 깊이 명심하고 이해를 한다면은 피아(彼我)의 상(相)이 없어져 버려.
‘내다, 내 것이다, 내가 잘났다’ 아상(我相)과 인상(人相)이 거기서 떨어져 버리는 거고, 능소심(能所心)이 다 떨어져 버리는 거여.
 
능소(能所), 능(能)이라 하는 것을 주관이란 말이고, 소(所)라 한 말은 객관이란 말인데,
주관 · 객관, 내가 이렇게 보는 놈이 있고 나에 의해서 보여지는 상대 이것이 바로 주관과 객관이요, 이것이 능소(能所)인데, 능소심이 끊어져 버려야 하거든.
 
능소심이 끊어진 것은 바로 아상과 인상이 무너진 것이여.
아상, 인상의 그 능소심이 끊어져야 무념지(無念智)가 나타난다. 생각 없는 지혜, 무념의 지혜가 현전을 헌 것이고. 평등! 평등의 이치가 나타난다 그랬거든.
 
‘내가 잘났다’는 생각, ‘내가 권리가 높다’는 생각, 내가 참 부자라고 하는 생각, 그런 아상과 인상. ‘내가 불법을 더 많이 믿고 참선을 더 많이 했다’고 하는 생각,
무엇이든지 그러헌 아상과 인상이 있기 때문에 그놈 때문에 도문(道門)의 첫 단계를 들어가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 능소심이 끊어져버리고 아상과 인상이 무너져 버릴 때에 도(道)에 첫 단계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에 바로 눈으로 무엇을 보고, 귀로 무엇을 듣되 분별심이 일어나지를 않은 거여. 비록 입을 벌려서 말을 하고 혀를 움직인다 하더라도 분별이 나지를 않아.
대중 법도에 따라서 밥을 먹고, 대중 법도에 따라서 예불을 하고 십악참회를 하고, 대중 법도에 따라서 소지(掃地)를 하고 운력(運力)을 한다 하더라도 그 가운데에 의단(疑團)만이 독로(獨露)할 뿐, 일체 분별이 나지를 아니하는 것이다. 그러한 상태를 갖다가 귀머거리와 같고 벙어리와 같다고 말을 하는 것입니다.
 
평상 일상생활을 그렇게 하면서도 완전무결한 벙어리가 되고, 완전무결한 귀머거리가 될 때에 깨끗하게 닦은 거울과 같아서 그 거울 앞에는 무엇이고, 빨간 것이 오면은 빨간 것이 나타나고, 파란 것이 오면은 파란 것이 나타나고.
빈 골짜구니에 소리를 지르면 “아!”하면 저 골짜구니도 “아!”하고 메아리를 치고, “어!”허면 “어!” 소리가 메아리쳐 오듯이 그렇게 되는 것이다 그말이여.
이래 가지고 치연(熾然)히 비추고 치연히 응하되 응한 바가 없어.
 
 
겁화소해저(劫火燒海底)하고  풍고산상격(風鼓山相擊)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진상적멸낙(眞常寂滅樂)이요  열반상여시(涅槃相如是)니라
나무~아미타불~
 
겁화소해저(劫火燒海底)요. 겁화(劫火)가 일어나가지고 이 세계의 모든 것을 다 태워버리고, 심지어는 저 바다 밑바닥까지 다 태워버리고,
그리고 바람이 불어가지고 산과 산이 무너져서 서로 맞부딪쳐. 설악산과 오대산이 맞부딪치고 백두산과 한라산이 맞부딪쳐서 다 부서져서 가루가 되어 버린다 하더라도.
 
진상적멸낙(眞常寂滅樂), 진상의 적멸한 낙은—귀머거리가 되고 벙어리가 되어서 일체처 일체시에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어가지고 순일무잡해서 그래가지고 그 공안을 타파(打破)해 가지고 확철대오를 해버리면,
불이 일어나서 온 대천세계를 다 태워버리고 바다밑에까지 다 태워버리고 산과 산이 맞부딪쳐서 가루가 되어서 부서져 없어진다 하더라도 적멸락, 진상(眞常)한 그 적멸락(寂滅樂)은 그 열반(涅槃)의 상(相), 열반상은 바로 여여(如如)할 것이다 그말이여.
 
이 세계가 앞으로 팔백억 년 가면은 이 세계가 부서져 없어지리라고 과학자들은 말을 합니다. 그 안에 부서져 버릴는지도 모르고 그 이상 더 가서 부서질란가 그것은 두고 봐야 알겠지마는 언젠가는 이 세계가 부서져 없어지고 말 때가 오는 것입니다.
 
연수(年數)로 따지면은 몇억 년 이렇게 말하지만 그것이 그렇게 썩 긴 것도 아닌 것입니다.
지내놓고 보면은, 억 년이나 천 년이나 백 년이나 십 년이나 지내놓고 보면 마찬가지 한바탕 꿈에 지내지 못한 것입니다.
 
10년을 살다가 죽으나 50년을 살다가 죽으나 백 세를 살다 죽으나, 죽는 마당은 다 똑같은 것이여.
죽은 마당에 이르러서 일생을 돌이켜보면 천자(天子)로 일생을 살았거나 평민으로 일생을 살았거나 국왕으로 일생을 살았거나 거지로 일생을 살았거나, 죽는 그 마당에서는 그 일생이 바로 한바탕 꿈에 지내지 못하는 것입니다.
 
꿈에 지내지 못한 그 일생을 그렇게 값어치 없이 탐진치(貪瞋癡)와 오욕락 속에 끌려서 얽혀서 그렇게 몸부림치다 죽어갈 것은 없는 것입니다.
죽는 마당에 이르기 전에 하루라도 빨리 보리심(菩提心)을 발해서 생사 없는 경계에 산다고 하는 것은 사람으로 태어나서 참 보람 있는 일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오늘 무진년 4월 첫째 일요법회를 맞이해서 활구참선을 해 나가는데 있어서 어떠헌 마음가짐으로 우리가 정진을 해야 하느냐? 부처님의 인행(因行) 때의 열반경에 설화를 한마디 말씀을 드렸고.
 
앞으로 한 달 뒤에 5월 첫째 일요법회날은 바로 이 법보재날과 겹쳐 있습니다. 그래서 오후 2시에 있는 일요법회를 법보재 법요식과 합해서 오전 11시 반에 법회를 거행하기로 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아시고 착오가 없으시기를 바랍니다.(56분6초~67분58초)(끝)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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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불명(佛名) ; 법명(法名). ①출가하여 절에서 행자(行者)로서 일정 기간 동안 수행한 뒤, 계(戒)를 받을 때 스승이 지어 주는 이름. ②스님이 불법(佛法)에 귀의(歸依)한 남녀신자에게 지어 주는 이름.
[참고] 송담스님(No.470)—92년 4월 첫째 일요법회
불법(佛法)에의 깊은 인연으로, 발심(發心)해서 진리를 향해서 살아가는 부처님의 아들딸로 새로 태어났기 때문에 그런 의미로 불보살(佛菩薩)의 이름을 따서 불명으로 받는다. 더 철저히 말하면 그때마다 불명을 받을 수는 없지만, 참선 수행을 통해서 하루하루 새로 태어나야 하고 시간마다 새로 태어나야 한다.
*타성일편(打成一片) : ‘쳐서 한 조각을 이룬다’ 참선할 때 화두를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화두가 들려서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일체처 일체시에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만이 독로(獨露)한 순수무잡(純粹無雜) 경계.
*일념삼천(一念三千) ; 일념삼천이란, 우리의 일념(一念) 가운데 삼천(三千)의 세계가 갖춰진다는 천태사상의 세계론이다.
[참고] 『마하지관(摩訶止觀)』 (隋天台智者大師說 | 門人灌頂記) 제5권(上)
夫一心具十法界 一法界又具十法界百法界 一界具三十種世間 百法界卽具三千種世間 此三千 在一念心 若無心而已 介爾有心卽具三千
 
일심이 십법계를 갖추고, 하나의 법계에는 또한 십법계를 갖추어 백법계가 되며, 백법계 중 하나의 법계가 각각 30종류의 세간(五陰 · 衆生 · 國土 등 3세간에 각각 十如是가 갖추어져 있어 30세간이 된다)을 갖추므로 백법계는 3천종의 세간(世間)을 갖춘다. 이 삼천세간이 한 생각하는 찰나의 마음에 달려 있다. 마음이 없다면 그만이지만 조금이라도 마음이 있다면 삼천세계를 갖춘다.
 
*일념(一念) ; 범부가 현실의 일상생활에서 일으키는 아주 미세한 미혹으로서 생각하는 마음을 뜻한다. 따라서 이 일념은 진여심(眞如心)이 아니라 중생심(衆生心)의 일념이다.
*십법계(十法界) ; 열 가지 법계. 십계(十界)라고도 한다. 세계를 중생의 미혹과 깨달음의 정도에 따라 10종으로 분류하여, 지옥 · 아귀 · 축생 · 수라 · 인간 · 하늘[天]의 미혹한 세계[迷界:六途]와 성문 · 연각 · 보살 · 불(佛)의 깨달음의 세계[悟界]로 나눈 것이다.
*십계호구(十界互具)란 십계 속에 또 각각 십계가 갖춰져 있다는 사상이다. 말하자면 인간계 가운데, 지옥계에서 부처님[佛]의 세계까지 내재해 있다는 것이다.
즉, 아무리 훌륭한 인간이라도 선한 마음과 악한 마음이 내재해 있고, 아무리 악한 사람이라도 악한 마음과 동시에 착한 마음이 있다는 뜻이다. 가능성으로서 모든 세계는 그 내면에 모든 다른 세계를 갖추고 있으며, 다만 그 많은 세계 가운데 인간 혹은 다른 한 세계가 현실에서 우위를 차지하고 있을 뿐이다.
*삼세간(三世間) ; 세 가지로 분류한 세간. 삼종세간(三種世間)이라고도 한다. 중생의 색과 마음 등 모든 법을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 오온이 이루는 세간인 오온세간(五蘊世間, 五陰世間)과 중생이 의탁하고 사는 국토인 국토세간(國土世間), 그리고 중생세간(衆生世間)은 오온으로 이루어진 가명의 중생들이 각각 차별된 특성을 가지는 세간을 가리킨다.
*세간(世間) ; (산스크리트어 loka) 세(世)는 파괴·변화, 간(間)은 가운데·간격을 뜻함.
① 변하면서 흘러가는 현상계. ② 생물들의 세계. ③ 생물들이 거주하는 자연 환경, 곧 산하대지. ④ 세상. 이 세상. 세속. ⑤ 산스크리트어 saṃsāra 미혹한 세계. ⑥ 육내입처(六內入處), 또는 십이처(十二處)를 말함.
*십여시(十如是) ; 제법의 실상을 상(相) · 성(性) · 체(體) · 역(力) · 작(作) · 인(因) · 연(緣) · 과(果) · 보(報) · 본말구경등(本末究竟等) 등 10가지 범주로 나타낸 것. 다르지 않으므로 여(如)라고 하며, 어긋남이 없으므로 시(是)라고 한다. 부처님의 세계에서 지옥까지의 10가지 세계[十法界] 각각에 십여시가 갖춰져 있다.
①여시상(如是相) : 표면에 나타난 모양. ②여시성(如是性) : 변함 없는 내면의 바탕. ③여시체(如是體) : 바탕과 모양을 갖추고 있는 주체. ④여시력(如是力) : 주체 내면에 잠재한 힘. ⑤여시작(如是作) : 내면적 힘이 밖으로 나타난 작용. 조작. ⑥여시인(如是因) : 작용에 필요한 직접적인 제일원인. ⑦여시연(如是緣) : 인(因)을 도와 과(果)를 낳게 하는 간접적인 보조 원인. ⑧여시과(如是果) : 인연으로 말미암아 맺어진 결과. ⑨여시보(如是報) : 과(果)에 의해 일어나는 갚음[報]. 여시본말구경등(如是本末究竟等) : 상(相)부터 보(報)까지의 9여시(九如是)가 모두 동등한 실상이어서 궁극[究竟]에는 평등(等)하다는 뜻을 나타낸다.
 
삼천의 세계가 나오게 된 자리가 마음이 없다면 모르되 티끌만큼이라도 마음이 있다면 순간의 일념에도 반드시 삼천의 세계를 갖추며, 그 삼천의 세계가 그대로 미혹한 세계도 되고 깨달음의 세계도 된다는 것이 곧 일념삼천설(一念三千說)이다.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 ; 줄여서 삼천세계(三千世界)라고도 함. 온갖 세계. 수없이 많은 세계. 하나의 우주 전체. 다할 수 없이 넓은 우주. 하나의 삼천세계(三千世界)가 하나의 부처님이 교화하는 범위라 한다.
*무장 ; ‘더욱, 한사코’의 사투리.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 왔다.
*번뇌(煩惱 번거러울 번/괴로워할 뇌) ; ①몸과 마음을 번거롭게 어지럽히고[煩亂, 煩勞, 煩擾] 괴롭혀 고뇌케[逼惱, 惱亂] 하므로 번뇌(煩惱)라 표현. 근원적 번뇌로서 탐냄(貪)•성냄(瞋)•어리석음(癡) 등이 있다.
②나라고 생각하는 사정에서 일어나는 나쁜 경향의 마음 작용. 곧 눈 앞의 고(苦)와 낙(樂)에 미(迷)하여 탐욕•진심(瞋心)•우치(愚癡)등에 의하여 마음에 동요를 일으켜 몸과 마음을 뇌란하는 정신 작용.
불교는 중생의 현실을 혹·업·고(惑·業·苦)의 삼도(三道)로 설명한다. 즉 번뇌[惑]에 의해 중생이 몸과 마음의 행위[身口意 三業]를 일으키게 되면, 이로써 3계 6도의 생사윤회에 속박되어 고통[苦]의 과보를 받게 된다.
*망상(妄想 망령될 망/생각 상) ; ①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는 것으로 상정하고 집착하는 의식의 작용. 분별(分別), 망상분별(妄想分別), 허망분별(虛妄分別), 망상전도(妄想顚倒) 등으로도 한역한다. ②이치에 맞지 아니한 망령(妄靈)된 생각[想]을 함, 또는 그 생각. 잘못된 생각.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하다고 잘못 생각하는 것.
*무상(無常) ; 모든 현상은 계속하여 나고 없어지고 변하여 그대로인 것이 없음. 온갖 것들이 변해가며 조금도 머물러 있지 않는 것. 변해감. 덧없음. 영원성이 없는 것.
세상의 모든 사물이나 현상들이 무수한 원인(因)과 조건(緣)의 상호 관계를 통하여 형성된 것으로서 그 자체 독립적인 것은 하나도 없고, 인연(因緣)이 다하면 소멸되어 항상함[常]이 없다[無].
*선방(禪房) ; ①참선(參禪)하는 방. ②선원(禪院).
*잡드리 ; ‘잡도리’의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그 대책. ③아주 요란스럽게 닦달하거나(단단히 윽박질러서 혼을 내다) 족침(견디지 못하도록 몹시 급하게 몰아치다).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을 일으킴[發].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보리심은 모든 부처님이 부처님이 될 수 있었던 바탕이 되는 종자이고 청정한 법이 자라날 수 있는 좋은 밭이기 때문에 , 이 마음을 발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면 속히 위없는 보리를 증득한다.
*상기병(上氣病 오를 상/기운 기/병 병) ; 화두를 머리에 두고 여기에 속효심(速效心)을 내어 참구하다가, 모든 열기[氣]가 머리에 치밀게[上] 되어 생기는 머리 아픈 병(病).
상기병이 생기면 기운이 자꾸 위로 올라와서, 화두만 들면 골이 아파서 공부가 지극히 힘이 들고 심하면 머리로 출혈이 되며 몸이 쇠약해짐. 상기병의 예방과 치료로 단전호흡과 요료법(尿療法, 오줌을 이용하여 질병을 치료하는 민간 요법의 하나)이 사용된다.
[참고] '요료법'에 관한 책. ①『기적을 일으키는 요료법』 (김정희 저 | 산수야). ②『요료법의 기적』 (나까오 료이치 | 산수야). ③『의사가 권하는 요료법』 (이영미 | 산수야). ④ 『요료법의 기적』 (건강신문사 편집부).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사견(邪見) : ①잘못된 견해. 틀린 생각. ②인과(因果)의 이치를 부정하는 잘못된 생각. ③올바로 자신의 마음의 실상을 알수가 없는 것.
*혈맥론(血脈論) ; 달마대사 혈맥론(達摩大師血脈論)이라고도 한다. 중국 선종의 초조(初祖) 보리달마(菩提達摩 Bodhidharma)의 저술로 전해지고 있다.
문답형식으로 즉심시불(卽心是佛 : 마음 그대로가 곧 부처), 심외무불(心外無佛 : 마음 밖에 부처가 없다), 성불수시견성(成佛須是見性 : 부처를 이루려면 반드시 성품을 보아야 한다) 등의 말씀이 있다.
혈맥(血脈)은 사자상승(師資相承)이라고도 하며, 스승으로부터 제자에게로 주고받아서, 정법(正法)을 상속하는 것. 신체의 혈맥이 서로 연결되어 끊어질 수 없는 것에 비유해서 말함.
*불급심사 공과일생(不急尋師空過一生) ; ‘급히 스승을 찾지 아니하면 일생을 헛되이 보내리라’
중국 선종의 초조(初祖) 보리달마(菩提達摩 Bodhidharma)의 저술로 전해지는 『달마대사 혈맥론(達摩大師血脈論)』에 있는 말씀.
[참고] 『선문촬요 禪門撮要 上 血脈論』 (경허성우 鏡虛惺牛 엮음)에서.
若不急尋師空過一生 然卽佛性自有 若不因師終不明了 不因師悟者萬中希有.
급히 스승을 찾지 아니하면 일생을 헛되이 보내리라. 불성은 스스로 가지고 있으나 스승을 인연하지 않으면 끝내 분명히 알지 못하니, 스승을 의지하지 않고 깨닫는 이는 만에 하나도 드물다.
*역대조사(歷代祖師) ; 석가세존(釋迦世尊)으로부터 불법(佛法)을 받아 계승해 온 대대의 조사(祖師).
*지옥에 가겠다(떨어지리라) ; 
[참고 ①] 「최상승론(最上乘論)」 (5조 홍인대사 弘忍大師 六O二 ~ 六七五)
若有人依文行者即在前成佛. 若我誑汝當來墮十八地獄. 指天地爲誓. 若不信我世世被虎狼所食.
 
만약 어떤 사람이 있어 이 글(最上乘論)에 의지해 수행하면 곧 성불하게 될 것이다. 내가 만약 너를 속인다면 다음 세상에 십팔지옥(十八地獄)에 떨어지리라. 하늘과 땅에 맹세하노라. 만약 나를 믿지 아니하면 세세생생에 호랑이 밥이 되리라.
 
[참고 ②] 몽산화상시중(蒙山和尙示衆—몽산화상이 대중에게 보이심) ; 『몽산법어』 (몽산화상 一二三一 ~ 一二九八 또는 一三O八) (용화선원刊) p97-99.
若有來此(약유내차)하야  同甘寂寥者(동감적료자)인댄  捨此世緣(사차세연)하며  除去執着顚倒(제거집착전도)하고  眞實爲生死大事(진실위생사대사)하야  肯順菴中規矩(긍순암중규구)하야 截斷人事(절단인사)하고  隨緣受用(수연수용)호대  除三更外(제삼경외)에  不許睡眠(불허수면)하며 不許出街(불허출가)하며  不許赴請(불허부청)하며  未有發明(미유발명)이어든 不許看讀(불허간독)하며  非公界請(비공계청)이어든  不許閱經(불허열경)이니
 
만약 이에 와 고요함을 같이 즐기려는 이는, 이 세상 인연을 다 여의며 제 고집과 애착과 모든 거꾸러진 생각을 다 버리고, 참으로 생사의 큰일을 위하야 절의 규칙을 잘 지키고 인사(人事)를 끊고 먹고 입는 것을 되어가는 대로 하되, 밤 삼경 외에는 자지 말고 거리에도 나가지 말며 오라는 데도 가지 말고 깨치기 전에는 글도 읽지 말며 예식 때가 아니거든 경도 보지 말지니
 
如法下三年工夫(여법하삼년공부)호대  若不見性通宗(약불견성통종)인댄 山僧(산승)이  替爾(체이)하야  入地獄(입지옥)호리라
법다이 삼 년 동안 공부해 만약 견성하여 종지(宗旨)를 통달하지 못하면, 산승(山僧)이 너희들을 대신하여 지옥에 들어가리라.
*여법(如法 같을·같게 할·따를·좇을 여/ 부처님의 가르침·불도佛道 법) ; 부처님의 가르침에 맞음.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간화선(看話禪) ; 화(話)는 화두(話頭)의 준말이다. 간화(看話)는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을 본다[看]’는 말로써,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이 화두를 관(觀)해서, 화두를 통해서 확철대오하는 간화선을 전강 조실스님과 송담스님께서는 ‘최상승법(最上乘法)’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고 말씀하신다.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본참공안]를 받아서,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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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욕락(五欲,五慾,五欲樂) ; ①중생의 참된 마음을 더럽히는—색,소리,향기,맛,감촉(色聲香味觸)에 대한—감관적 욕망. 또는 그것을 향락(享樂)하는 것. 총괄하여 세속적인 인간의 욕망.
②불도를 닦는 데 장애가 되는 다섯 가지 욕심. 재물(財物), 색사(色事), 음식(飮食), 명예(名譽), 수면(睡眠).
*아상(我相) ; 산스크리트어 ātma-saṃjñā ①오온(五薀,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으로 형성된 아(我)를 실체라고 잘못 생각하는 것. ②나라는 관념·생각.  자아(自我)라는 관념·생각. 남과 대립하는 나라는 관념·생각.  타자와 구분짓는 자의식 또는 그것을 형성하는 온갖 관념의 집합.
*인상(人相) ; 사람은 고귀하므로 지옥 중생이나 축생들과 다르다고 집착(執着)하는 견해.
*능소(能所) ; 어떠한 동작이나 행위, 인식이나 사건의 주체적인 측면을 능(能)이라 하고, 객관적인 측면을 소(所)라 한다. 능동(能動)과 피동(被動), 주체와 객체 또는 주인과 손(賓) 같은 말로도 표시된다.
대상을 반연하여 인식하는 주체가 능연(能緣) · 능식(能識)이라면, 반연되고 인식되는 객관은 소연(所緣) · 소식(所識)인 것이다. 또 보는 주체는 능견(能見)이고 보이는 것은 소견(所見)이다.
귀의(歸依)하는 주체인 중생이 능귀(能歸)라면 귀의의 대상인 삼보(三寶)는 소귀(所歸)이고, 교화하는 주체인 부처님이 능화(能化)라면 교화되는 대상인 중생은 소화(所化)이다. 어떠한 내용을 지시하는 언어, 곧 문장이나 어구가 능전(能詮)이라면 그 말이 가지고 있는 내용은 소전(所詮)이 된다.
 
이와 같은 대립(對立)이 있게 되면 상대가 끊어진[絶對境] 참 이치[眞理]에 들어가지 못하므로 불교에서는 이와 같은 대립을 넘어서는 것을 지향한다.
인식하는 대상과 인식하는 주체가 둘이 아닌 하나의 상태, 주객일치(主客一致)와 능소일여(能所一如)의 상태가 바로 무분별지(無分別智)이고, 귀의하는 중생과 귀의의 대상인 부처님이 둘이 아닌 것을 능소일체(能所一體)라 한다.
 
[참고] 『금강경오가해(金剛經五家解)』 (무비 역해 | 불광출판부) 제28 ‘불수불탐분(不受不貪分)‘ p491~493.
須菩提 若菩薩 以滿恒河沙等世界七寶 持用布施 若復有人 知一切法無我 得成於忍 此菩薩 勝前菩薩 所得功德
수보리야, 만약 보살이 항하(恒河, 인도 갠지스강)의 모래수와 같은 세계에 가득찬 칠보를 가지고 보시하더라도 만약 또 어떤 사람은 일체법이 아(我)가 없음을 알아서 인(忍, 여실한 진리. 확실한 앎)을 얻어 이루면 이 보살은 앞의 보살이 얻은 공덕보다 수승하리라.
 
【육조(六祖)】 通達一切法 無能所心者 是名爲忍 此人 所得福德 勝前七寶之福也
일체법을 통달하여 능소심이 없는 이를 이름하여 인(忍)이 된다 하니 이 사람의 얻는 바 복덕은 앞의 칠보를 보시한 복보다 수승한 것이니라.
 
【야부(冶父)】 耳聽如聾 口說如啞
귀로 들어도 귀머거리 같고 입으로 말하여도 벙어리와 같도다.
 
【함허(涵虛) 설의(說誼, 이치를 설함)】 知法無我 則彼我相 泯 得成於忍 則能所情 忘 能所情 忘則無念智 現 彼我相 泯則平等理 現 到伊麼時 眼見耳聞 分別不生 開口動舌 分別不生 不生不生 何啻如聾若啞
법(法)이 아(我)가 없음을 알면 곧 피아상(彼我相, 너다 나다 하는 생각)이 없어짐이요, 인(忍)을 얻어 이루면, 곧 능소(能所, 주관과 객관)의 정(情, 생각)을 잊을지니 능소의 정이 없어지면 무념지(無念智, 무념의 지혜)가 나타나고 피아상(彼我相)이 없어지면 평등의 이치가 나타남이라. 이런 경지에 이르러서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들어도 분별이 생기지 않음이요, 입을 열고 혀를 움직여도 분별이 생기지 않음이니, 생기지 않는다는 생각까지도 나지 않으면 어찌 귀머거리 같고 벙어리와 같을 뿐이리오.
 
直如明鏡照物 空谷應聲 熾然照應 而無照應 所以 道 常應諸根用 而不起用想 劫火燒海底 風鼓山相擊 眞常寂滅樂 涅槃相如是
이는 곧 밝은 거울이 사물을 비춤과 같고 빈 골짜기가 소리에 응함과 같아서 치연히 비추고 응하되 비추고 응한다 함이 없으리니, 그러므로 말하되 「항상 모든 근[六根]에 응하여 쓰되 그 쓴다는 생각을 일으키지 않음이라. 겁화(劫火)가 바다밑까지 태우고 바람이 몰아쳐 산이 무너져 내리더라도 ‘참답고 항상한 적멸의 즐거움’인 열반의 모습은 이와 같다」 (육조단경 ‘參請機緣’) 하시니라.
*무념지(無念智) ; 무념(無念)의 지혜.
*무념(無念) ; ①망념이 없는 것. 정념(正念)을 말한다. ②모든 법을 보면서도 마음에 물들고 집착하지 않는 것.
[참고] 『육조단경(六祖壇經)』 (德異本) ‘제1 오법전의(悟法傳衣, 법을 깨닫고 가사를 전해 받다)’에서.
善知識 智慧觀照 內外明徹 識自本心 若識本心 卽本解脫 若得解脫 卽是般若三昧 卽是無念
선지식들이여, 지혜로 비추어 보면 안팎이 밝게 사무쳐서 자기의 본심을 아나니 만일 본심을 알면 곧 본래 해탈이며, 만일 해탈을 얻는다면 곧 그것이 반야삼매(般若三昧)며 또는 이것이 무념(無念)이니라.
 
何名無念 若見一切法 心不染着 是爲無念 用卽徧一切處 亦不著一切處 但淨本心 使六識 出六門 於六塵中 無染無雜 來去自由 通用無滯 卽是般若三昧 自在解脫 名無念行
어찌하여 무념이라 이름하는가? 만일 모든 법을 보더라도 마음에 물들고 집착하지 않는 이것이 무념이니, 작용을 일으킨 즉 일체처에 두루 하되 일체처에 집착하지 않고, 다만 본심을 깨끗이 하여 육식(六識)으로 하여금 여섯문(六門)을 나오더라도 육진(六塵) 가운데 물들고 뒤섞임이 없어서, 오고 감에 자유롭고 널리 쓰되 걸림이 없으므로 이것이 곧 반야삼매며 자재해탈이고 그 이름이 무념행이니라.
 
若百物 不思 當令念絶 卽是法縛 卽名邊見 善知識 悟無念法者 萬法盡通 悟無念法者 見諸佛境界 悟無念法者 至佛地位
그러나 만일 백가지를 다 생각하지 아니하고 아주 생각을 끊는 이것은 법에 얽매인 것이며 한쪽에 치우친 견해[邊見]이라 이름하느니라.
선지식아, 무념(無念)의 법(法)을 깨달은 이는 만법에 걸림없이 통하며, 모든 부처님의 경계를 보며, 부처님의 자리에 이르느니라.
*도문(道門) ; ①도에 이르는 문. 부처님의 가르침. ②불문(佛門). 부처님의 법문(法門). 불교(佛敎)라는 문. 부처님의 가르침에 들어서는 문. 깨달음으로 들어서는 문.
*소지(掃地 쓸 소/땅 지) ; ①마당(땅)을 쓺. 또는 그 일을 맡은 사람. ②청소.
*운력(運力) ; '함께 힘을 기울인다'는 의미. '많은 사람이 구름같이 모여서 일을 한다'는 의미로 운력(雲力)이라고도 하며, '여러 사람들이 힘을 합하여 하는 일'이란 우리말 '울력'과 같다. 의미와 관계없이 운력(運力)은 사찰에서 대중들이 모여 육체적인 노동을 함께 한다는 뜻.
*의단독로(疑團獨露 의심할 의/덩어리 단/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공안,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가 홀로[獨] 드러나다[露].
*치연(熾然) ; ①매우 왕성한 상태. ②번뇌의 다른 이름—결(結)·박(縛)·전(纏)·취(取) 등등—가운데 하나이다.
치(熾)는 ‘성하다(盛--, 기운이나 세력이 한창 왕성하다), 맹렬하게 일어남, 횃불이 활활 타오름, 불을 붙여 이글이글 피게 함’의 뜻. 연(然)은 상태를 나타내는 접미사(接尾辭).
*(게송) ‘겁화소해저~’ ; 『육조단경(六祖壇經)』 ‘參請機緣(청법의 기연)’ 게송 참고.
*겁화(劫火) ; 세계가 파괴되는 시기(壞劫)에 들면 세계를 허물어트리는 3가지 큰 천재지변이 생기는데, 화재(火災) 풍재(風災) 수재(水災)가 그것이다. 이때에 화재가 욕계(欲界)를 불태우고 색계(色界)의 초선천(初禪天)까지 불태운다고 한다.
*타파(打破) ; 공안(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그 화두(話頭, 공안)에 대한 의심(疑心)을 관조(觀照)해 나가는 것, 알 수 없는 그리고 꽉 맥힌 의심으로 그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그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더 이상 그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더 이상 의심이 커질 수 없고, 더 이상 깊을 수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내 가슴속이 가득 차고, 온 세계가 가득 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눌 때에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탈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잘 때에는 꿈속에서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에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큰 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그 항아리를 큰 돌로 내려치면은 그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를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참선법 A’ 에서]
*진상(眞常) ; 진여상주(眞如常住)라는 뜻으로, 깨달음(열반)의 경지라는 뜻.
*적멸(寂滅 고요할 적/다할•끊어질 멸) ; ①번뇌의 불을 완전히 꺼버린, 탐욕(貪)과 노여움(瞋)과 어리석음(癡)이 소멸된 마음의 궁극적인 고요함. 적정(寂靜)으로 돌아가 일체의 상(相)을 여의고 있는 것. ②열반, 부처님의 경지, 깨달음.
*열반(涅槃) ; 산스크리트어 니르바나(nirvāṇa) 팔리어 nibbāna의 음사. 멸(滅)·멸도(滅度)·적멸(寂滅)·적정(寂靜)·적(寂)·안온(安穩)이라 번역. 불어서 끈 상태라는 뜻.
① 불어서 불을 끄듯, 탐욕〔貪〕과 노여움〔瞋〕과 어리석음〔癡〕이 소멸된 심리 상태. 모든 번뇌의 불꽃이 꺼진 심리 상태. 사제(四諦)에서 집(集), 곧 괴로움의 원인인 갈애(渴愛)가 소멸된 상태. 모든 번뇌를 남김없이 소멸하여 평온하게 된 상태. 모든 미혹의 속박에서 벗어난 깨달음의 경지. 번뇌를 소멸하여 깨달음의 지혜를 완성한 경지.
② 석가모니의 죽음.  ③스님의 죽음을 수행을 통해 해탈(解脫)에 이르게 됨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
*여여(如如) ; ①모든 법의 평등한 자성 또는 이치를 나타내는 말. 법이(法爾)와 같은 의미이다. 자성에서 같다[如]는 뜻이지만 온갖 차별된 법이 모두 그렇기 때문에 복수의 뜻으로 ‘여여’라 한다. 법계무차별의 바탕으로서 평등 부동(不動) 부전도(不顚倒) 등의 취지가 수반된다. ②분별이 끊어져, 있는 그대로의 대상이 파악되는 마음 상태. ③진실한 경계. 그렇게 있음. 차별을 떠난, 있는 그대로의 모습.
*한바탕 ; 크게 한판(한 번 벌이는 판). 한판 크게.
*탐(貪) ; 자기의 뜻에 잘 맞는 사물에 집착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진(瞋) ; 자기의 마음에 맞지 않는 것에 대하여 분하게 여겨 몸과 마음이 편안하지 못하게 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치(癡) ; 현상이나 사물의 도리를 이해하지 못하여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는 번뇌를 이른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만(慢) ; 남을 업신여기고 자신을 높이는 마음 작용.
*의(疑) ; 인과(因果)의 진리를 의심하는 마음 작용.
*악견(惡見) ; 올바르지 않은 견해. 그릇된 견해.
*보리심(菩提心) ; ①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 ②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
*인행(因行) ; ①수행. (부처가 되기 위한) 인(因)이 되는 행(行). 깨달음을 여는 근본이 된다.
②수행에 방해가 되는 외부의 요인에 흔들리지 아니하고 오롯이 수행정진하는 것. 보살이 인행(因行)을 닦아서 깨달음의 과보(果報)를 얻는 것을 수인감과(修因感果)라고 한다.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