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법문2015. 5. 5. 13:48

 

 

 

§(773) (게송)일념정좌수유간~ / 한 생각 돌이켜 ‘이뭣고?’하면 이 사바세계가 부처님 세계가 되는 것 / (게송)화불능소수불닉~ / 법보전을 지은 까닭 / 생사 호흡지간.

정법을 믿고 ‘참나’를 찾는 ‘이뭣고?’ 화두를 하면서 정진을 한 사람은 무상(無常) 속에서 영원을 사는 길이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조실 스님은 비록 우리의 눈으로 육신을 뵐 수 없지마는 조실 스님은 돌아가시지 않고 이 도량에 분명 살아계신 것입니다. 그 조실 스님의 법문을 듣고 그대로 실천한 사람은 반드시 자기 자신을 깨닫게 되고 사바세계에서 영원을 사는 길을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 정법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에 의해서 이렇게 사바세계에 살면서도 항상 ‘이뭣고?’를 찾으면, 이 사는 사바세계가 생불(生佛)을 모시고 사는 바로 부처님의 세계가 되는 것입니다.
정법을 믿는 도반이요, 형제자매요, 한 가족으로써 이 목숨이 다하도록 ‘이뭣고~?’를 열심히 하시기를 부탁하고, 세세생생에 또 만나기를 약속을 하면서 말씀을 마치고자 합니다. 성불하십시오.


**송담스님(No.773) - 2015(을미)년 법보재 법회(05-04) (용773)


약 22분.


일념정좌수유간(一念靜坐須臾間)하면  승어항사칠보탑(勝於恒沙七寶塔)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보탑필경쇄위진(寶塔畢竟碎爲塵)이나  일념정진성정각(一念精進成正覺)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일념정좌수유간(一念靜坐須臾間)하면, 한 생각 잠깐 동안 정좌를 하는 것은
승어항사칠보탑(勝於恒沙七寶塔)이다, 항하사(恒河沙) 모래수와 같이 많은 칠보탑을 조성해 모신 공덕보다도 더 수승(殊勝)하다.

왜 그러냐 하면 칠보로 장엄한 칠보탑은 아무리 정성스럽게 조성을 해서 모셨다하더라도 언젠가는 파괴가 되어 가지고 티끌이 될 때가 있어.
그러나 ‘한 생각’ 정진을 하는 것은 그 공덕으로 필경에 바른 깨달음을 얻어서 성불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이 게송은 화엄경에 있는 게송입니다. 이 게송의 뜻을 뼛속 깊이 잘 이해를 한다면, 한 생각 한 생각을 돌이켜서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를 드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를 알 수가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눈 뜨자마자 눈으로 무엇을 보고, 귀로 무슨 소리를 듣고, 금방 이 생각 저 생각 그럭저럭 하다가 아침을 먹고, 또 그럭저럭 지내다가 점심을 먹고, 그럭저럭 해서 하루해가 또 지나가고, 때로는 회사에 나가기도 하고, 공장에 가서 일을 하기도 하고, 밭이나 논에 나가서 농사를 짓기도 하고, 무엇인가 살기 위해서 자기의 직책을 위해서 일을 하게 되는데, 설사 일을 하거나 농사를 짓거나 무엇을 하더라도 항상 생각은 있거던.


그 생각을 이 생각 저 생각 내버려두지 말고, 그 생각을 돌이켜서 항상 ‘이뭣고~?’하고 자기가 자기의 불성(佛性)을 찾는 화두를 들면, 그 한 생각 화두를 드는 그것이 결국은 한 번에 끄치지 않고 하루종일 살면서 또 그 이튿날 살면서도 그렇게 한 생각 한 생각을 돌이켜서 화두를 들면 필경에는 견성성불(見性成佛)하게 된다 그말입니다.


오늘은 을미년 3월 16일 법보재(法寶齋)일입니다. 이 3월 16일 법보일은 어떻게 해서 생겨났느냐?
이 부처님 옆에 전강 조실 스님의 영탱(影幀)이 봉안이 되어 있는데, 그 조실 스님께서 여기다가 법당을 짓고 법보전(法寶殿)이라 이름을 하셨는데.

우리는 한번 태어난 사람은 무엇을 하던지 살다가 결국은 마침내 이승을 또 하직(下直)을 하게 됩니다.

사람에 따라서는 60세 이내에도 죽기도 하고 70세까지 살기도 하고, 80세까지도 살고, 특별한 사람은 100세 넘어서까지도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마는 죽지 않고 이 몸뚱이를 가지고 영원히 사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살아가면서 그럭저럭 살면 눈과 코와 입—이 육신(肉身)을 통해서 온갖 업을 짓고, 우리의 마음으로 탐진치 삼독심을 내서 업을 짓고, 그 지은 업(業)으로 해서 결국은 육도윤회(六途輪廻)를 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 정법을 믿고 ‘참나’를 찾는 ‘이뭣고?’ 화두를 하면서 정진을 한 사람은 무상(無常) 속에서 영원을 사는 길이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속이 상할 때도 ‘이뭣고?’  슬플 때도 ‘이뭣고?’  기쁠 때도 ‘이뭣고?’  좋은 것을 봐도 ‘이뭣고?’  언짢은 일을 당해도 ‘이뭣고?’

항상 ‘이뭣고?’하고 자기를 돌이켜서 관조하면 그것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고, 별로 힘도 안 드는 것 같지마는, 세계 60억이나 되는 많은 사람 가운데에, 그 가운데는 빈부귀천, 남녀노소가 있지마는 자기가 자기의 부처를 찾는 공부를 하는 사람은 그 몇만 분의 일도 안됩니다.

그래서 이 정법을 믿고 정진을 한 사람은 그렇게 소중하고 위대한 것입니다.

다같이 밥 먹고 똥 싸고 살지마는 이 정법을 믿고 정진하는 사람은 비록 이 사바세계에 살면서도 정말 뜻깊고 값이 있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고, 이렇게 ‘이뭣고?’를 하면서 사는 것이 생사해탈하는 길이 항상 바로 거기에 따라붙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60억 인구 가운데 몇천만 분의 일 밖에 안되지마는 우리는 그렇게 소중한 사람이고, 정말 인생으로 태어나서 값이 있게 인생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한 생각 정좌(靜坐)하는 것이 칠보로 항하수 모래수와 같은 탑을 쌓는 공덕보다도 더 소중하다』는 뜻이 바로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부처님이 절절이 다 모셔져 있지마는 이 용화사에서 전강대종사(田岡大宗師)께서 이 법보전을 짓고 이렇게 부처님을 모시고 여기서 최상승 법문을 설하셨습니다.
비록 조실 스님의 육신은 지금 우리 눈으로는 볼 수 없고, 조실 스님의 영탱만을 뵐 수밖에 없으나, 다행히 과학문명의 발달로 조실 스님의 육성(肉聲)을 녹음을 통해서 우리는 살아계신 조실 스님과 똑같은 그 음성을 우리는 들을 수가 있습니다.

조실 스님 법문을 정말 신심으로 듣고 또 듣고 하면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알 수가 있게 되고, 하루하루를 어떠한 생각 어떠한 마음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조실 스님은 비록 우리의 눈으로 육신을 뵐 수 없지마는 조실 스님은 돌아가시지 않고 이 도량에 분명 살아계신 것입니다.
그 조실 스님의 법문을 듣고 그대로 실천한 사람은 반드시 자기 자신을 깨닫게 되고 사바세계에서 영원을 사는 길을 알게 될 것입니다.

만석꾼인 부자도 다 결국은 죽는 거고, 국왕 대신으로부터 대통령으로부터 모든 사람은 그 속에서 살다가 또 죽어 가는데, 죽어서 또 복을 지은 사람은 천당에도 가고 다시 인도환생(人道還生)할 수도 있습니다. 업을 지은 사람은 축생이 될 수도 있고, 죄를 많이 지은 사람은 지옥에 갈 수도 있습니다.

그 육도윤회는 끝이 없습니다.
우리가 지은 대로 받아 나는 것이라, 누가 특별히 누구를 지옥으로 보내고 천당으로 보낼 수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가 지은 업(業)에 의해서 천당도 가고, 지옥도 가고, 다시 인도환생도 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정법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에 의해서 이렇게 사바세계에 살면서도 항상 ‘이뭣고?’를 찾으면, 이 사는 사바세계가 생불(生佛)을 모시고 사는 바로 부처님의 세계가 되는 것입니다.

자기가 어떠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사느냐에 따라서 이 사바세계가 생사윤회의 고해(苦海)가 될 수도 있고, 자기가 한 생각을 돌이켜서 정법을 믿고 생활 속에서 ‘이뭣고?’를 열심히 한 사람은, 농사를 짓거나 장사를 하거나 비록 다른 사람과 같이 눈·코·입·귀가 달려 있고 밥먹고 똥 싸지마는 그 사람은 정말 불보살이 항상 아껴주시고 돌봐주시고 이끌어주시는 것입니다.


화불능소수불닉(火不能燒水不溺)이요  풍불능표도불벽(風不能飄刀不劈)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연사도라경사철(軟似兜羅硬似鐵)하고  천상인간불능식(天上人間不能識)이로다
나~무~아~미~타~불~

화불능소수불닉(火不能燒水不溺)이요, 불에 넣어도 불에 타지 않고, 물에 넣어도 젖지 아니하며
풍불능표도불벽(風不能飄刀不劈)이다, 바람이 불어도 나부끼지 않고, 칼로 아무리 쳐도 쪼개지지 않는다.

연사도라경사철(軟似兜羅硬似鐵)이요, 부드럽기는 명주 고름 같이 그렇게 부드럽고, 굳기는 쇠와 같이 그렇게 굳세다.

그러한 것이 이 세상에 어디에가 있느냐?
천상 인간(天上人間)을 다 뒤져 봐도 - 로켓트를 타고 저 천상으로 올라가도 거기서 찾을 수도 없는 거고, 잠수함을 타고 바다 깊이 들어가도 그건 찾을 수가 없어.

천상 인간에 그것을 찾아봐도 볼 수도 없고 알 수가 없는데, 그러한 물건이 어디가 있냐?

우리가 낱낱이 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부모한테 이 육체를 받아 태어날 때 같이 따라온 것입니다. 그때 생긴 것은 아닌데 태어날 때 이미 몸속에 들어있어.

그래 가지고 그놈이 눈을 통해서 모든 것을 볼 줄도 알고, 귀를 통해서 모든 것을 들을 수도 있고, 코를 통해서 모든 것을 냄새 맡을 수도 있고, 혀를 통해서 모든 맛을 볼 수도 있고, 손과 육체를 가지고 더웁고 추운 것을 알고, 욕하면 성낼 줄도 알고, 칭찬하면 기뻐할 줄도 아는 놈이 있는데 해부를 해도 안 나옵니다.

자기가 자기 이름을 한 번 불러 봐. 부르면 ‘예’하고 대답하는데, 바로 그놈인데, 그놈은 알라야 알 수가 없고 볼라야 볼 수도 없으나, 항상 이 몸뚱이를 주재를 하고 이 몸뚱이 주인공이다 그말이여.

그러한 소중한 것을 가지고 있으면서 그것을 내버려두고 업(業)만 짓고 살아서 되겠냐 그말이여.
속이 상할 때도 ‘이뭣고~?’  슬플 때도 ‘이뭣고~?’  기쁠 때도 ‘이뭣고~?’

‘이뭣고~?’ 자기가 자기를 찾으면 처음에는 금방 잊어버리고 또 잊어버리는데,
자꾸 하다보면 ‘이뭣고~?’할려고 안 해도 저절로 앉아서도 ‘이뭣고~?’가 되고, 서서도 ‘이뭣고~?’가 되고, 속이 상할 때도 속상한 데로 따라가지 않고 금방 ‘이뭣고~?’를 챙기게 되면,

우리는 부모가 낳아 주신 이 육체를 가지고 견성성불할 수가 있고, 이 사바세계의 생사고해(生死苦海)에서 살면서도 영원을 사는 길이 거기에서 열리는 것이니,

이 자리에 모이신 여러 법보재자 여러분!
산승(山僧)이 지금 이렇게 간곡히 말씀을 드린 것을 뼛속 깊이 명심하시고, 오늘 이 자리부터서 날이면 날마다 ‘이뭣고?’를 열심히 하셔서 정말 인생으로 태어난 보람을 깊이 느끼면서 행복하게 살아가시고, 세세생생에 또 정법문중(正法門中)에서 또 만나게 될 것을 바라고 기약을 합니다.

여러분!
전강 조실스님께서 여기다 자리를 잡고 이렇게 법보전을 지어 놓은 까닭은 여러분께 이러한 말을 간곡히 말씀을 드려 가지고 이 법에 의해서 생사윤회에서 해탈하도록 하기 위해서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안에는 우리의 조상 - 부모님, 조부모님, 선망부모(先亡父母)의 영가(靈駕)가 모셔져 있습니다.
이 법은 살아있는 사람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이 자리에 모셔진 우리의 조상들께서도 이 법문을 들으면은 영가로써 듣고서 다 해탈도를 찾으실 것입니다.

여러분, 이렇게 간곡히 말씀을 드리는데 우리 이 몸뚱이는 정말 내일을 기약할 수가 없고, 한 시간 뒤를 기약할 수가 없습니다.

생사(生死)는 호흡지간(呼吸之間)에 있어. 호흡지간에 내생에 갈 수도 있고 이승을 하직할 수도 있으니 철저하게 무상(無常)을 깨닫고 앉아서도 ‘이뭣고~?’  서서도 ‘이뭣고~?’ 이렇게 함으로 해서 이 사바세계에 태어난 뜻을 소홀히 하지 마시고,

오늘 법보재일에 이렇게 간곡히 말씀드리는 것을 깊이 명심하시고, 정말 정법을 믿는 도반이요, 형제자매요, 한 가족으로써 이 목숨이 다하도록 ‘이뭣고~?’를 열심히 하시기를 부탁하고, 세세생생에 또 만나기를 약속을 하면서 말씀을 마치고자 합니다. 성불하십시오.(박수)

말씀 드리고자 하는 말이 한(限)이 없지마는 하다 못한 말을 이 주장자에 맡기고 내려갑니다.(처음~21분47초)(끝)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