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5) 전강 스님 법문을 녹음을 통해서라도 자주 듣다 보면 공부해 나가다가 문제점이 있는 것이 바로 잡아진다 / 화두는 가장 중요한 요점은 의심(疑心)입니다 / (게송)군금욕식무위리~.


이뭣고?’하는 것은  의심을 나게 하는 것이고,  이뭣고?’함으로써 나온  의심을 ()하는 것입니다. ‘관()한다’고 하는 것은 생각 없는 생각으로 생각한다’는 것을 ()한다’고 표현을 하는 것입니다.

버리고 찾는 것은 올바른 수행이 아닌 것입니다. 바로 거기에 즉해서 화두를 거각(擧却)을 하면 천차만별이 바로 조사(祖師)의 설법이고, 부처님의 설법이 되고, 선배의 채찍질이 것입니다.

흥망성쇠와 생로병사와 모든 것이 우리의 한마음의 나타남이기 때문에 바로 거기에 즉해서 화두를 드는 사람은 지혜있는 사람이요, 희로애락과 흥망성쇠에 끄달린 사람은 어리석은 원숭이가 물속에 비추는 달을 건질라고 하는 거와 같은 것입니다.

**송담스님(No.715)—2007년(정해년) 동안거결제 법어(07.11.24)

약 10분.

자세를 바르게 하고, 호흡을 바르게 하고, 그다음에 화두(話頭)가 정말 참선(參禪)하는 데에 껌껌한 밤에 가는 등불과 같은 것입니다. 화두를 자기가 정말 믿는 선지식(善知識)한테 화두를 타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러냐 하면, 자기가 책을 보고 화두를 간택할 수도 있고  아무한테라도 화두를  수가 있습니다. 무엇이 문제냐? 화두 자체는 별것이 아니나,  나가다가 잘못되면 자기가 믿는 선지식이 아니면 가다가  바꾸게  우려가 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화두는 자꾸 바꿔싸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다른 것은 마음에  맞으면 바꿀 수가 있으나 화두는 잘되거나 못되거나  화두로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누구나  화두 가지고 하다 보면 처음부터 끝까지  그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다가 보면은  화두가   들리기도 하고 영판 그럴 수가 있습니다마는 그렇다 하더라도 심호흡을 하면서  화두 하나를  잡드리해 나가는데 그래서 전강 조실 스님 법문을 녹음을 통해서라도 자주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녹음법문을 듣다 보면 공부해 나가다가 애로점, 문제점이 있는 것이 그때 가서 바로 잡아지는 것입니다.


화두는 무엇이 가장 중요한 요점이냐 하면은 의심(疑心)입니다.   없는 의심, ‘이뭣고?’


이뭣고, 이뭣고하는 글자 석 자가 문제가 아니라 이뭣고?’    없는 의심,  의심을 관(觀)하는 것입니다.

이뭣고?’하는 것은  의심을 나게 하는 것이고,  이뭣고?’함으로써 나온  의심을 떠억 ()하는 것입니다. ‘관()한다’고 하는 것은 생각 없는 생각으로 생각한다’는 것을 ()한다’고 표현을 하는 건데.


 화두는 혼침(昏沈)이 오고 그럴 때에는 미간(眉間)에다가 두고 관하고, 혼침이   때에는 배꼽밑에 단전(丹田)에다가 화두를 두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니 초학자(初學者)가 너무 미간에다가 화두를 들고 ()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상기(上氣)가  수가 있으니, 어쨌든지 숨을 들어마실  아랫배가 볼록해지고,  들어마셨으면 한참 머물렀다가 내쉬면 아랫배가 홀쪽해진 것을 느끼면서 이뭣고?’


화두를  때에는 기왕이면 들었다가 내쉴  이뭣고?’ 초학자는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마는 나중에 익숙해지면 호흡에 상관없이 항상   없는 의심이 단전에  있도록 호흡은 무심(無心) 속에 항상 단전호흡을 하도록 이렇게 해 나가면 되는 것입니다.



군금욕식무위리(君今欲識無爲理)인댄  불리천차만별중(不離千差萬別中)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단지공월낙담심(但知空月落潭心)  쟁사치원왕노형(爭似癡猿枉勞形)이니라

나무~아미타불~


군금욕식무위리(君今欲識無爲理)인댄  불리천차만별중(不離千差萬別中)이다.

여러분이 무위(無爲) 이치를 깨닫고자 할진대는 천차만별 가운데를 여의지 말지어다.


천차만별(千差萬別)이라 하는 것은 육체가 처해 있는 모든 상황 행주좌와 어묵동정, 그리고 마음으로는 희로애락, 육체적인 정신적인 모든 상황이 천차만별인 것입니다.  천차만별 중을 여의지 말아라.

눈으로 무엇을 들어도 이뭣고?’ 코로 무슨 냄새를 맡어도 이뭣고?’ 귀로 무슨 소리를 듣거나 눈으로 무엇을 보거나 일체처 일체시에서 바로 그놈을 여의고 찾을 것이 아니라, 무슨 소리가 들리면  소리에 즉(卽)해서 이뭣고?’


버리고 찾는 것은 올바른 수행이 아닌 것입니다. 바로 거기에 즉해서 화두를 떠억 거각(擧却)을 하면 천차만별이 바로 조사(祖師)의 설법이고, 부처님의 설법이 되고, 선배의 채찍질이  것입니다.


단지공월낙담심(但知空月落潭心)하라. 다못 허공에 달이  가운데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여. 어리석은 원숭이가  속에 떨어져 있는 달을 건질라고 하는 설화를 여러분은 알고 계실 것입니다.

원숭이는  속에 달이 비치니까  하늘에 있는 달이 떨어졌다고 수백 마리의 원숭이가 팔에 팔을 연결해 가지고  달을 건질라고 하다가 빠져 죽은 설화가 있습니다. 달은 못에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허공을 여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번뇌나 망상이나 슬픔이나 기쁨이나  세계의 흥망성쇠나 생로병사가  우리의 한마음의 나타남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흥망성쇠와 생로병사와 모든 것이 우리의 한마음의 나타남이기 때문에 바로 거기에 즉해서 화두를 드는 사람은 지혜있는 사람이요, 희로애락과 흥망성쇠에 끄달린 사람은 어리석은 원숭이가 물속에 비추는 달을 건질라고 하는 거와 같은 것입니다.


우리는  세계도 마찬가지지만 특히 우리나라는 정치니 경제니 옛날보다는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마는 고구려나 고려 ・ 이조 ・ 신라 · 백제나 해방되어 가지고 오늘날까지 우리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일은 적고 걱정스러운 일들은 끊임없이 옛날과 다름없이 일어나고 있습니다마는.

우리는 그런 것들이 꿈속에 일어나는 일이요,  중생(衆生)의 지은 업(業)으로 일어나서 일어나는 일이니, 설사 우리나라에 일어난 일이라도 참으로 그런 것들이 걱정이 되면 우리로서는 화두를 단속하고 정진하는 일밖에는 없습니다.


오늘 너무 말을 많이   같습니다.  철을 오늘 이러한 한결같은 마음으로 이렇게  지내시기를 부탁을 드립니다.(3719~4733)()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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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참선(參禪) ; ①선() 수행을 하는 .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선지식(善知識) ; ①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좋은 지도자. 훌륭한 지도자. 바르게 이끄는 사람. ②좋은 . 마음의 . 선우(善友).

*잡드리 ; ‘잡도리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대책.

*전강선사 녹음법문(錄音法門) ; 전강 스님께서 후학을 위해 참선법(參禪法) 핵심으로 설한 법문이 칠백여 시간 분량이 녹음되어 있다.  중에는 『전강선사 일대기』 『몽산법어』 『초발심자경문』 등이 있다. 용화선원(녹음실)에서 전강선사  송담스님의 모든 법문을 mp3 파일로 구할  있습니다.

*이뭣고(是甚 시심마, 시삼마) : ‘이뭣고? 화두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자리)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 일곱 ()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 ,   ()이다. ‘이뭣고?(이뭐꼬)'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뜻은  속에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왔다.


[참고] 이뭣고? 이것이 무엇인고?

···뭣고·····?” 이렇게 의심을  나가되, 이런 것인가 저런 것인가 하고 이론적으로 더듬어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다못 ···뭣고······?” 이렇게만 공부를 지어나가야 됩니다. 여기에 자기의 지식을 동원해서도 안되고, 경전에 있는 말씀을 끌어 들여서 아하! 이런 것이로구나!” 이렇게 생각해 들어가서도 안됩니다.

화두(공안)  우주세계에 가득 있는 것이지마는 문헌에 오른, 과거에 고인(古人)들이 사용한 화두가 천칠백인데,  이뭣고?’ 화두 하나만을 열심히  나가면   문제 해결함으로 해서 천칠백 공안이 일시(一時) 타파가 되는 것입니다.

화두가 많다고 해서  화두 조금  보고, 안되면   화두   보고, 이래서는  쓰는 것입니다. 화두 자체에 가서 좋고 나쁜 것이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화두 철저히  나가면 일체 공안을 일시에 타파하는 것입니다.(7634~7822) [ ‘참선법 A’ 에서]

*혼침(昏沈 어두울 /잠길 ) ; ①정신이 미혹(迷惑)하고 흐리멍덩함. ②좌선할  정신이 맑지 못하여 잠에 빠지거나 무기공(無記空) 떨어진 상태.

*단전(丹田) ; 배꼽 아래로  () 삼푼 되는 (위치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아랫배에 해당. '' () 뜻하며, '단전' 인체에서 가장 귀중한 약을 만들어내는 장소로서의 []이라는 의미. 도가와 한의학에서는 단전을 생명력, 활동력의 원천으로 본다.

*초학자(初學者) ; ①처음 배우기 시작한 사람. ②배워 익힌 지식이 얕은 사람.

*상기(上氣) ; [한의피가 뇌로 몰리는 현상얼굴이 붉어지고 열이 나며발한두통이명(耳鳴), 현기증 따위가 일어나기도 한다. ②얼굴이 흥분이나 수치감으로 붉어짐.

*무심(無心) ; ①아무런 생각이나 감정이 없음. ②세속적인 욕망이나 가치 판단에서 벗어난 마음 상태.

*(게송) ‘군금욕식무위리~’ ; [금강경오가해무득무설분(無得無說分), 함허득통 설의(說誼참고.

*무위(無爲) ; (산스크리트어: asaṃskrta, 팔리어: asavkhata) 무위(無爲) 조작(造作: 만들다) 뜻이 없는 것으로 유위의 () 되며, 조작되지 않은 세계,  인연의 화합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닌 세계,  생멸변화를 떠난 절대적이며 항상 존재하는 진리 또는 진리의 세계를 뜻한다.

②온갖 분별이 끊어진 마음 상태. 분별하지 않고 대상을 있는 그대로 파악하는 마음 상태. 분별과 망상이 일어나지 않는 마음 상태. 탐욕[] 노여움[] 어리석음[] 삼독(三毒) 소멸된 열반의 상태.

*즉해서(-- ·즉시 ) ; . 곧바로. 당장. 즉시(卽時 : 어떤 일이 행하여지는 바로 그때). 즉각(卽刻 : 일이 일어나는  순간 바로. 당장에 ).

*거각(擧却  /어조사 ) ; 화두를 든다. ‘화두를 든다’ ‘화두를 거각한다 말은 자신의 본참화두를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觀照)하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 세등선원(No.09)—병진년 동안거 결제중 법어(76.12.26)에서.

화두를 먼저 이마로 의심을 하지 말고,  화두를호흡하는데 배꼽 [丹田] 숨을 들어마시면은 배가 볼록해지고 숨을 내쉬면은 배가 홀쪽해지는데,  배가 빵빵해졌다 홀쪽해졌다 허는 거기에다가 화두를 들고 이뭣고~?’     없는 생각 ()하는 그것이 화두를 드는 것이여.
*조사(祖師) : 부처님의 바른 종지(宗旨)  조사선법(祖師禪法) 전하는 스승을 말함이니 종사(宗師) 같다.

*어리석은 원숭이가  속에 떨어져 있는 달을 건질라고 하는 설화 ; 정중로월(井中撈月 우물 정/가운데·속 중/잡을·건질 로/달 월)  ‘우물 속에 있는 달을 건진다’


[참고] 『마하승기율(摩訶僧祇律) 7 (東晉天竺三藏佛陀跋陀羅共法顯譯) ‘明僧殘戒之餘

佛告諸比丘  過去世時  有城名波羅奈  國名伽尸  於空閑處有五百獼猴  遊行林中  到一尼俱律樹  樹下有井  井中有月影現  獼猴主見是月影  語諸伴言  月今日死  落在井中  當共出之  莫令世間長夜闇冥  共作議言  云何能出  獼猴主言  我知出法  我捉樹枝  汝捉我尾  展轉相連  乃可出之  時諸獼猴卽如主語  展轉相捉  小未至水  獼猴重  樹弱枝折  一切獼猴墮井水中


부처님께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과거세에 가시(伽尸)라는 나라에 파라나(波羅奈)라는 성이 있었다. 한적한 곳에 오백 마리의 원숭이가 살고 있었는데 숲속을 유행 중에  니구율나무 밑에 이르렀을 , 나무 밑에 있는 우물에 달이 비치고 있었다.

이때 원숭이 무리의 우두머리가 우물   그림자를 보고 무리들에게 말했다. “지금 달이 우물에 빠져 죽어가고 있는데 세상이 어두워지지 않게 꺼내줘야 하겠다 함께 의논했다. “어떻게 해야 꺼낼  있을까?”

우두머리가 말했다. “내가 꺼내는 방법을 안다. 내가 나뭇가지를 잡고 너는  꼬리를 잡고 그렇게 서로 이어서 늘어뜨리면 꺼낼  있다 원숭이 무리가 우두머리의 말에 따라 서로의 꼬리를 잡고 늘어뜨렸는데 물에 이르기 전에 이어진 원숭이들이 너무 무거워 나뭇가지가 부려져 모두 우물 속으로 떨어졌다.

*중생(衆生) :  성품을 잃어버리고 망녕된 온갖 생각이 분주하게 일어났다 꺼졌다 하기 때문에, 온갖 세계에 돌아다니면서 났다 죽었다 하는 무리들,  정식(情識) 있는 것들을 모두 중생이라 한다。그러므로 사람뿐 아니라 모든 동물과 귀신들과 하늘 사람들까지 합쳐서 하는 말인데, 유정(有情) · 함령(含靈) · 함식(含識) · 군생(群生) · 군맹(群萌) · 군품(群品) 같은 여러 가지 말로도 쓴다.

부처님은 구제의 대상을 인류(人類)에게만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와 같은 중생 전부를 가르치고 건지시는 것이다.

*() : [] karma [] Kamma 음을 따라 갈마(羯磨)라고 하며, 짓다() 뜻이다。중생들이 몸으로나 말로나 뜻으로 짓는 온갖 움직임(動作) 업이라 한다。개인은  업으로 말미암아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모든 운명과 육도(六道) 윤회(輪廻) 받게 되고, 여러 중생이 같이 짓는 공업(共業)으로 인하여 사회와 국가와 세계가 건설되고 진행되며 쇠퇴하거나 파멸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처음에는 악업(惡業) 짓지 말고 선업만 지으라고 가르치다가, 필경에는 악과 선에서도  뛰어나고, 죄와 복에 함께 얽매이지 말아서 온갖 국집과 애착을  버리도록 하여, 부처님의 말씀에까지라도 걸리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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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싼또샤
법회(성도재)2017.04.30 22:00

§(319) (게송)세존당입설산중~ / 백아와 종자기 / (게송)일견명성몽변회~ / 납월팔일 용맹정진 / 정중로월(井中撈月) / (게송)월마은한전성원~ / 거울 법문 / 이뭣고? 화두 / 송담스님 오도송.


우리가 믿되 바르게 믿고, 철저하게 믿고, 바른 스승과 바른 도반을 만나서 올바르게 노력을 한다면 결정코  공(功)이 헛되지 아니해서 반드시 자기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을 깨닫게 되는 날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거울만 거울이 아니라, 이 삼천대천세계  허공계, 끝없는 허공이라고 하는 것이 하나의 거울인 것입니다.  거울에 나타나는 모습은 언제나 자기인 것입니다. 그 허공으로  거울에 나타나는 모든 것이 바로 자기의 모습인 것입니다.

 사람의 허물은  허물의 그림자다. 저 사람 잘못한 것은 바로  허물이  사람이라고 하는 거울을 통해서 나타나는 것이다 그 말씀이여.  사람뿐만이 아닙니다.  회사나,  사회나, 국가나,  세계에 모든 것들이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모든 나쁜 것을 눈을 통해서 보거나, 귀를 통해서 듣거나, 코와 혀와 몸뚱이와 뜻을 통해서 느꼈을  바로 거기에서 자기를 반성을 하고, 자기의 허물을 고치고, 나아가서는 참나’로 돌아오는 공부를 열심히 한다면 진정코 참다운 자기 모습을  것입니다.

‘대관절 소소영령한 이놈이 무엇이냐?’  끊임없이 작용을 하고 있는 이놈이 무엇인가? 어떻게 그놈을 잊어버릴 수가 있습니까. 잊어 버릴라야 잊어 버릴 수가 없고,  버릴라야 놔 버릴 수가 없어.  곳이 없어요.

미운 사람을 만날 때도,  것이 있습니까?  미운 그 사람 얼굴이 바로 자기 얼굴인데. ‘이뭣고?’ 이 세상에 태어나서 우리가  일은 이것밖에는 없습니다. 다른 데에다가 정신을  겨를이 없습니다.

바로 돌이켜서 이뭣고?’   하나를 내놓고는 우리가  일이라고는 없는 것입니다.  일 하나 충실히 하고 전력투구를 하면 정말 자기 마음이 안정이 되고, 자기 마음이 맑아지고, 자기 살아가는 데에 보람을 느끼게 됩니다.

**송담스님(No.319)—86 병인년 성도재 법회(87.01.17) (67)

(1/4) 약 20분. (2/4) 약 17분. (3/4) 약 12분. (4/4) 약 18분.

(1/4)----------------


세존당입설산중(世尊當入雪山中)하사  인견명성운오도(因見明星云悟道)로다

나무~아미타불~

약야산중봉자기(若也山中逢子期)런들  기장황엽하산하(豈將黃葉下山下)리요

나무~아미타불~


세존당입설산중(世尊當入雪山中), 우리 세존(世尊) 부처님께서 삼천년 전에 왕궁의 부귀를 헌신짝처럼 버리시고 설산에 들어가셔서 갖은 고행을  하셨습니다.

마침내 인견명성운오도(因見明星云悟道)여. 납월 8일(臘月八日) 새벽별을 보시고서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셨습니다.


약야산중봉자기(若也山中逢子期)런들, 만약  산중(山中)에서 자기(子期)를 만났더라면,

기장황엽하산하(豈將黃葉下山下)리요. 어찌 노란 이파리를 가지고 산아래로 내려갔을 것인가.


‘산중(山中)에서 자기(子期)를 만난다  자기란 말은 사람 이름인데, 종자기(鐘子期)라고 하는 사람 이름인데,  종자기는 아주  거문고, 음악을 달통한 사람이여.

누가 거문고를 타거나, 무슨 음악을 하면은  음악 소리만 듣고서도  음악을 연주하는 사람의 마음을 알아 버리고,  음악의 뜻을 알아 버리고, 아주 음악에 달통한 도인인데.


백아(伯牙)라고 하는 사람이,  그이도 거문고를  타는 사람이었었는데 백아가 거문고를 타면 종자기란 사람이  음악을 들으면 벌써 백아의 뜻을 알아 버려. 그래서 백아와 자기는 지음상통(知音相通)이여. 말로써 뜻을 표현하지  해도 벌써 음악 한가락 떠억 들으면은 서로의 마음과 마음이 통해 버리는 것입니다.


친구 간(間),  사람의 희로애락을 서로 마음과 마음이 서로 통하면 말로써 구체적으로  심중을 표현하지  해도 상대방의 얼굴빛만 봐도 알고,   번만 감았다 떠도 알고, 기침만 해도 알고. 그래서 그러한 친구 간을 지기(知己)라고 그러거든.


부부간에도 서로 마음과 마음이 통하는 부부는 남편이 눈만 떳다 감거나, 고개를  들었다 놓거나, 쪼끔 손만 이리 움직여도 지금 남편이 무엇을 바라고 있다. 무엇을 요구한다 물을 떠다 드린다든지, 무슨 책을 갖다 드린다든지, 무슨 약을 갖다가 한다든지.  아내가 무엇을 해도 남편이 벌써  아내의 뜻을 알고서 해 주고.


친구 간도 그래야 마땅하고, 백년해로(百年偕老)를 약속한 부부간에도 서로 그렇게 통해야  것이고 또 스승 상좌(上佐) 간에도, 그렇게  도를 배우는 스승 상좌 간에도 그리되어야  것이고.

또 나라의 통치자와 백성도 그렇게 서로 통해야  것이고, 모두 공장이나 회사 노사 간에도 그렇게 서로 심지(心志)가 통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이 백아라고 한 사람이 거문고를 타되 아무도  거문고의 참뜻을 알아준 사람이 없지마는 오직 종자기  사람이 그걸 알아주기 때문에 거문고를 자주자주 뜯고 그러다가 종자기란 사람이 먼저 죽었습니다.

종자기가 죽어버리니까 거문고를 타 봤자 아무도 알아들은 사람이 없고, 그 참다운 뜻을 감상해 주는 사람이 없고 그러니까 다시는 거문고를 뜯지를 않았다고 하는 중국에 옛날 전설이 있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설산에서 별을 보고 깨달으신 뒤에 종자기와 같은 그러한 사람을 거기서 만나셨다면 무엇 하러 노란 이파리를 들고 산밑으로, 산아래로 내려오셨겠느냐.

노란 이파리, 황엽(黃葉)이라 하는 것은 어린애를 달래기 위해서 노란 이파리를,  단풍잎 빨갛고 노란 그런 이파리를 주면서 여기  있다. 여기  있다 이러면서 어린애의 울음을 달래는 것인데, 여기서 노란 이파리’라 하는 것은 방편설(方便說)인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49 동안 중생의 근기(根機)를 맞추어서 그렇게 횡설수설(橫說竪說)하신 여러 가지  방편 법문을 갖다가 여기서는 노란 이파리’라고 표현을  것입니다.

산중에서 자기와 같은, 정말 부처님의 깨달으신 도리를 알아차릴  있는 그러한 사람을 만났던들 무엇 하러 노란 이파리를 가지고 산아래로 내려갔을 것이냐.



해마다 돌아오는 납월 8일(臘月八日)입니다.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이천오백삼십일 년이 되었습니다. 이천오백삼십일 해의 납월 8일이 지내가고  이렇게 왔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설산에서  납월팔일 새벽별을 보시고서 그렇게 확철대오를 하셨는데, 이천오백삼십  동안 해마다 뜨는  별을 보고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확철대오를 했을까요?


오늘 새벽에도  별은 떴습니다. 하늘이 안개가 끼어서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별은  있었습니다.

그리고 해마다 납월 8일이 되면 초하루부터서 8 새벽까지 전국 방방곡곡의 선방(禪房)에서 중국이나 한국, 일본 이런 불교를 믿는 절에 선방에서는  용맹정진(勇猛精進) 또는 가행정진(加行精進)을 하고 내려왔습니다.


우리 용화선원에서는 특별히 용맹정진을 하는 그러한 거시기을  하고 있습니다마는, 그래도 개인적으로  일주일간을 용맹정진 하는  마음으로, 상(相)이 없는 가운데에 모두 정진을 하셨던 것입니다.



일견명성몽변회(一見明星夢便廻)한데  천년도핵장청매(千年桃核長靑梅)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수연불시조갱미(雖然不是調羹味)나  증여장군지갈래(曾與將軍止渴來)니라

나무~아미타불~


일견명성몽변회(一見明星夢便廻)여, 한 번  새벽별을 보시고서 꿈을 문득 돌이켰다 그말이여. 오랜 잠 속의 꿈을, 별을   봄으로 해서 꿈을 ! 돌이켜서 깨달아 버렸어.

천년도핵(千年桃核)이 장청매(長靑梅)다.  년이나 묵은 복숭아씨에서 푸른 매화의 싹이 텃드라. 복숭아씨에서 복숭아 싹이 나지 않고, 복숭아씨는 분명히 복숭아씨인데 그 복숭아씨에서 매화의 싹이 텃드라 그말이여.


수연불시조갱미(雖然不是調羹味)나, 비록  매화를 가지고,  매화의 신맛을 가지고 국의 맛을 고르지는 못하나,

증여장군지갈래(曾與將軍止渴來)로구나. 일찍이 장군에게  목마른 것을 그치게 했더라.


「삼국지(三國志)」에 보면 군사들이 계속 격전을 거듭을 해가지고 땀을 많이 흘렸어. 그래서 목이 말라서, 그런데 모두 준비했던 물은  먹어버리고 미처  준비를 못하고 계속 싸우면서 나아가는데, 목이 말라가지고 군인들이 병사들이 발광을 한다 그말이여.

그러니 그때에 조조가  산너머 가면 거기에 매실(梅實)이 많이 열렸다.  산만 넘으면 실컷 매실을 먹을 수가 있다  매실 얘기를 하니까 병사들이 매실 말만 듣고도 침이 지르르르 하니 입안에 가득차가지고 갈증을 면한 고사가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별을 보고 깨달았다’하는 ,  말을 듣고서 별을 보고 깨달았다 그러니까 납월 8 무렵만 되면  천하에 총림 선원에서 모두 우리도 부처님처럼 고행 정진하고, 용맹정진 다못 일주일간이라도 용맹정진을 하고 가행정진을 하자 그래가지고 하는데. 가행정진 용맹정진 중에 확철대오를  분도 간간이 있어 왔습니다.


그러나 가행정진 했다고 해서  대중이  깨닫느냐 하면은 그렇지를 못해.

그래도 일주일 동안 용맹정진 또는 가행정진을 하면 그동안에 장군죽비(將軍竹篦)를 가지고 경책(警策)을 하고, 이렇게 경책을 맞으면서 7 동안을 옆구리를 땅에다 대지 아니하고 그렇게 정진을 하는데,  꾸벅 졸면은 입승(立繩) 스님이 와가지고 장군죽비로 등짝을 내다 친 바람에 잠이 버쩍 버쩍 잠이 달아나고 그런데.


 장군죽비를  맞으려고 어떻게 눈을 갖다가처음에  3일간은 그럭저럭 괜찮은데 사흘, 나흘이 되면은 눈 껍데기가 천근이나 되게 눌리고, 아무리 정신을 들라고 해도 금방 일 초도 못된 사이에 꺼벅한다 말이여. 또 금방 정신을  차렸는데  꺼벅하고.

그렇게 잠을 안 자고 용맹정진을 하다 보면 그때 하는 동안에는 순전히 잠을  자려고 싸울 따름이지만, 납월 8일을 지내고 나서 보면은 정말 정진하는 데에 자신감이 생기고 힘이 생긴다 그말이여.


그래가지고 실지로 일주일 동안은 그렇게 맑은 정신이   같지 않고 오직 잠과만 싸웠지만, 지내 놓은 뒤에 한결 정진하기에 힘이 생기고, 신심도 나고 그래서 납월 8일에는 선방에서 대체적으로 가행정진도 하고 용맹정진도 해왔던 것입니다.


비록 매실을 가지고  맛은 고르지를 못해.  산너머에 있는 매실이 있다’한 그걸 가지고 실지로  매실을 마시고, 먹을 수는 없지마는 그 말만 듣고서도 입안에 침이 주르르르 나와 가지고 입안에 고여서 갈증을 면할 수가 있더라.


 게송(偈頌)이 함축하고 있는 뜻을 내가 설명을 하기가 대단히 어렵습니다.(처음~1924)



(2/4)----------------


「승기율(僧祇律)」이라고 하는 경책(經冊)에 정중로월(井中撈月)이다.  가운데에 달을 붙잡는다. 샘 속에 들어있는 달을 건진다하는 내용의 법문이 있는데, 부처님께서 여러 비구들을 향해서 말씀을 하시기를,


과거 시(時)에  나라는 가시국(伽尸國)이라  나라고,  가시국이라  나라에 바라나(波羅奈)라고 하는 성(城)이 있었는데  성안에 숲이 있어. 아주 우거진 숲이 있는데  숲속에는 오백 마리의 원숭이 떼들이 있었어.


근데 오백 마리의 원숭이를 이끌고  원숭이의 우두머리가 오백 마리의 권속을 이끌고  숲속을 유행(遊行)을 .  골짜구니에서  골짜구니로,  골짜구니에서  골짜기로 이렇게 다니다가  우물이 있는데, 샘이 있는데,   속에 이상한 것이 보인다 그말이여. 환희 밝은 쟁반같이 밝은 것이 보이는데.


 이상하다. 저게 분명히 저것이 달인데, 아무래도  달이 떨어져가지고 우물에 빠져서 죽게 되었어. 저 우물에 빠져서 죽게  달을 건져야지 만약에  달을 건지지 아니하면  세계에 암흑세계가  것이 아니냐.

그러니 다행히 우리가  달을 발견했으니까 망정이지 만약에 우리가 보지를 않았던들 영원히   속에 빠져서 없어져버리면 하늘에는 영원히 암흑세계가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저것을  봤으면 모르되 보고서 그냥  수가 있느냐


그래서 여러 가지로 오백 마리의 원숭이들이 연구를 한 결과  우두머리가 좋은 꾀를 하나 발견을 했습니다.

우물가에 있는 나뭇가지를 자기가 붙잡고, 자기 다음 원숭이는 우두머리의 꼬리를 붙잡고  그다음 우두머리는  앞에 꼬리를 붙잡고 해서 차츰차츰해서 꼬리에 꼬리를 붙잡고 우물 속으로 늘어져 들어가 가지고 마지막 원숭이가 달을 건져내면 되겠다.


거 참 좋은 꾀다. 그래가지고 하는데 오백 마리나 되는 원숭이가 그렇게 꼬리에 꼬리를 붙잡고 늘어져 놓으니 너무 무거워가지고 우두머리가 잡고 있는 나뭇가지가 부러져 버렸습니다. 부러져가지고 오백 마리나 되는 원숭이가 우물 속에  빠져서 죽었던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세상에 출현을 하셔가지고 팔만사천(八萬四千) 묘법(妙法)을 설하시고  교외별전(敎外別傳)으로 삼처전심(三處傳心)을 해서 최상승법(最上乘法)을  세계에 전하시고서 한량없는 중생으로 하여금 자아 면목(面目)을   있도록 그렇게 하시고서 열반에 드셨는데, 80세를 일기로 열반에 드셨는데,


삼천년이 되는 오늘날까지 역대조사(歷代祖師)가 부처님의 법을 계계승승(繼繼承承)해서 그렇게 전해 내려오고   법이 많은 신남신녀와 모든 재가 출가의 모다 사부대중(四部大衆)들이  법을 믿고 부처님과 조사들의 득도(得道) 인연을 본받고 그래가지고 모두 경을 읽는다, 염불을 한다, 주력을 한다, 기도를 한다,  참선을 한다, 이래가지고 모두 발심(發心)하고 분심(憤心)을 내어가지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대단히 장한 일이요, 기특한 일이요, 고마운 일이요, 뭐라고 칭찬을 한다 하더라도 지나침이 없을 정도로  훌륭한 일이나,  원숭이 우두머리가 잡은  나뭇가지가 ! 부러진 날이면 오백 마리의 잔나비가 일시에 달을 건지려고 하다가 우물에  빠져 죽어 버린 거와 같은 현상이 있을 수가 있다 이거거든.


제마다 모두 자기의 근기에 따라서 온갖 노력을 하고 애를 쓰고 있는데,  붙잡은 가지가 그것이 약한 가지, 뿌리가 얕이 백혔다든지 또는 나뭇가지가 약해가지고  부러진 날이면 어떻게 되느냐?


그래서 우리가 자기 딴은 신심을 내서 노력을 하지만  공부해 나가는, 자기가 믿는 법이라든지, 자기가 의지하는 정신적으로 의지하는 선지식이라든지, 큰스님네라든지, 그런 것들이 뿌리가 약하거나, 가지가 약한 것을 붙잡고 하다가  부러져가지고 우물에 빠져 버린 거와 같은 현상이 우리가 수행해 나가는 데에 그런 현상이 있을 수가 있다 이것입니다.


기도를 자기 나름대로 아들을 낳고자 원을 해서 무슨 기도를 한다든지 또는 부자가 되고자 해서 무슨 염불을 한다든지 또는 깨닫고자 해가지고 화두(話頭)를 타가지고 참선(參禪)을 한다든지, 각기 자기의 근기와 원에 따라서 하는데,

그것이 자기 뜻대로  이루어지지 아니  가지고 잘못 잡아가지고 손이 미끄러져서 빠진다든지   붙잡아도 약한 가지를 붙잡았다든지, 뿌리가 약한 것을 붙잡았다든지,  같이 모다 이렇게 잡고 있는데 그중에 한 사람이 손이 빠져도  떨어질 것이고.


그래서 우리가 각기 자기의 종파(宗派)의 법이 옳다’고 믿고 그렇게 주장을 하고  이렇게 공부를 하고,

 같은 참선을 하되 자기가 믿는 선지식(善知識)에 따라서 자기가 믿는 선지식이 지도하고 가르키시는 법이 옳다’고 주장을 하고, 자기가 믿지 않는 선지식을 비방을 하고 모다 이래가지고 저마다 자기 것은 옳고 남의 것은 옳지 못하다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서로 파가 갈라지고, 시기와 질투를 하고 모다 그러는데.


참, 더욱이 요새 참선을 하는 사람들이, 참선에 대한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날로 늘어가고 있고, 대단히  좋은 현상이기는 하나 행여나 잘못 붙잡거나, 약하고 뿌리가 옅은 그런 나무를 붙잡고 늘어지다가 결국은 손이 빠지거나, 뿌리가 뽑히거나, 가지가 부러지거나 하면 달은 건지지를 못하고 우물에 빠져 죽고야만 말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볼라야   없고, 알라야   없는, 그리고 가르킬라야 가르켜  수도 없고, 배울라야 배울 수도 없는   물건을 우리가 깨닫기 위해서 그렇게 애를 쓰고 정진을 하고 집안일을 갖다가 뒤로 미루고 이  일을 위해서 애를 쓰고.

 일생에  태어난 셈치고 가정과 자기의 청춘과 인생을  바쳐서 출가해가지고 도(道)를 닦고 그러는데.


이 원숭이가 만약에 튼튼한 나무를 붙잡고 달을 건질라고 애를 쓰다가 나뭇가지만 부러지지 아니했다면  번이고 건질라고 시도를 하면은, 물에다가 손을 넣으면은 달이 흩어져버리고  한참 손을 빼고 기다리고 있으면  흩어졌던 달이 다시  온전해지면  가만히 건질라고 하면 빠지고,

누차 애쓰다 보면 ! 이것이 물속에 있는 달이 아니고  달이 바로  하늘에 있다.  하늘의 달이 떨어진  알았는데 하늘의 달이 떨어진 것이 아니고 원래  달은 하늘에 휘황창 밝고 있다’고 하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믿되 바르게 믿고, 철저하게 믿고, 바른 스승과 바른 도반을 만나서 올바르게 노력을 한다면 결정코  공(功)이 헛되지 아니해서 반드시 자기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을 깨닫게 되는 날이 있을 것입니다.



월마은한전성원(月磨銀漢轉成圓)한데  소면서광조대천(素面舒光照大千)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연비산산공착영(連臂山山空捉影)하되  고륜본불낙청천(孤輪本不落靑天)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월마은한전성원(月磨銀漢轉成圓)이요, 달이  하늘에 돌고 도는 가운데에 점점 둥글어져.

소면서광조대천(素面舒光照大千)이로구나.  밝고 밝은 달이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를 비추는구나.


연비산산공착영((連臂山山空捉影)이나, 원숭이들이 팔에 팔을 연결을 해가지고 부질없이  우물 속에 달을 건지려고 하나,

고륜본불낙청천(孤輪本不落靑天)이로구나. 하늘에 떠있는  둥근달은 본래 푸른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더라.


우리가 불법을 믿되 각기 자기 나름대로의 크고 작은 원(願)이 있어서  원을 성취하기 위해서 절에를 오게 됩니다.

그래가지고 처음에는 작은 , 가까운 , 자기 나름대로 모두 원을 가지고 와서 차츰 절에 다니고, 다니면서 법문(法門)을 듣고 하다 보면 차츰차츰 인연이 도래(到來)하면 인자 바르게 믿게 되는데.


자기가 애당초에 잘못 믿어가지고, 기도를 해도 아들을 낳기 위해서 그렇게 지극정성으로 기도를 하고 시주(施主)를 하되 아들을 못 낳으면 에이, 그까짓  기도 해봤자 소용이 없다

또 부자가 된다고 그래서 기도를 해봤지마는 별로 부자도 되지도 않고 에이, 그까짓  불법 믿어봤자 소용이 없다 병을 고치기 위해서 기도를 하고 불공을 하고 시주를 했는데  해봤자 그까짓  소용이 없다


그러자 마치 다른 종교에서  종교 와서 기도를 하면은 그 병도 고칠 수가 있고 부자도 된다’고 끈질기게 와서 졸라대고 유혹을 하면 솔깃이 그리 기울어져가지고 그런 데에 가서 개종(改宗)을 하기도 하고.  그런 사람들이 종종 있는데.


불교가 아무리 정법이고 최상승법이라 하더라도 잘못 믿으면 그렇게 되기가 십상팔구(十常八九)인 것입니다.


옳게 믿으면 처음에는 옅은 데로 들어갔다가  믿음이 간절하고 한결같으면 차츰차츰 좋은 인연을 만나가지고 바른 스승을 만나서, 바른 법을 향해서 나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돈을 벌기 위해서 부자가 되기 위해서 절에 갔다가 결국은 참나’를 깨닫고 영원한 보배를 얻을  있는, 세세생생(世世生生)에 쓰고도 쓰고 남을 그러한 영원한 보배를 얻은 데에까지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1930~3646)



(3/4)----------------


어떤 사람이 남편이 중국을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좋은 거울을 사가지고 와서 선사를 했습니다. 그 아내가 남편이 갖다  것을 보고 이리 들여다보니까 아주 이쁘게 생긴 미인이 하나가 들어있거든.


옛날에는 거울이라는 것이 없었는데, 중국에 가 가지고 거울을 가지고 오니까 거울이 무엇인 줄도 모르고 남편이 이거  좋은  가지고 왔으니까 이거 가지라’고 줬는데 요리 들여다보니까 이쁜 미인이 들어와 있어.

‘중국 갔다가 오더니 어디서 아주 새파란 젊은 년을 갖다가 데리고 왔다’고 아주 그냥 남편한테 눈을 흘기고 막하고. 그래서 아니 그것이 아니라고, 내가 무슨 여자를 데리고 왔느냐?’. ‘ 속에 들어 있지 않느냐’고 한참 싸우다가 결국은 시어머니한테 그것을 보였습니다.


시어머니가  거울을 이리 들여다보니까 ‘젊은 여편네라더니 늙은 년을 데리고 왔지 않느냐’ 그래가지고 ‘너는  눈이 젊은 것이 그렇게 눈이 시원찮으냐. 이거 봐라 이것이 늙은 년이지 젊은 년이냐?’ 그러다가 한참 둘이 인자 주거니 받거니 하니까 시아버지가 들어왔습니다. ‘뭔 소리를 그렇게 시끄럽게 그래싼고?


‘아들이 중국에서 젊은 년을 데리고 왔다고 며느리가 그래서 보니까 젊은 년이 아니고 늙은 년을 데리고 왔구료 그러니까, 영감이 들여다보니까 ‘늙은 년켕이는 늙은 놉을 데리고 왔지 않느냐?’

이래가지고 결국은 거울이 무엇인 줄을 모르는 사람은 그렇게  수밖에는 없을 것입니다.


그 거울이라는 것은  앞에 있는 고대로 비추는 것이어서, 늙은 사람이 들여다보면은 늙은 사람이 나타나는 것이고, 젊은 사람이 들여다보면 젊은 사람 얼굴이 나타나는 거여.


여러분이  세상에서 눈을 통해서 보는 모든 것이   거울에 나타나는 자기 모습인 것입니다.


자기의 모습이 나타난 줄을 모르고 거울 속에 젊은 사람이 나타났다는 , 늙은이가 나타났다는  이래가지고 거울 속에 있는  모습을 그것을 가지고 마음을 일으켜서 성을 내고, 원망을 하고,  탓을 갖다가 다른 사람에게 돌리는 것입니다.


거울에 나타난 그림자는 바로 그것이 자기의 얼굴인 것입니다. 


중국에서 가져온 거울만이 거울이 아니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거울만 거울이 아니라, 이 삼천대천세계  허공계, 끝없는 허공이라고 하는 것이 하나의 거울인 것입니다.


그래서  거울은 동서남북이 평면으로  거울이 아니라 입체적으로  거울이여. 동서남북도 없고 상하가 없어. 어디서 보나  보이는 것인데.  거울은 물체만  안에 보이고  거울에 나타난 모습은 눈을 통해서만  수가 있는데.


이 허공의 거울은 눈으로   있는 그런 색상만 비추는 것이 아니라, 귀로 들을  있는 모든 소리도  허공의 거울에는 나타나는 것입니다. 코를 통해서 맡을  있는 모든 냄새도  거울에는 나타나는 것입니다.

 혀를 통해서 맛볼  있는 모든 맛도  거울에는 나타날 수가 있고, 몸뚱이를 통해서 느낄  있는 모든 것도 거기에 나타날 수가 있습니다. 우리의 생각을 통해서 느낄  있는 모든 법도  허공의 거울에는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니  거울을 입체적이라고 해도 맞지 않습니다. 입체적이라 하면은 겨우 삼차원(三次元) 밖에는  되는 것인데, 허공으로   거울은 최소한도로 육차원(六次元)으로  거울이라 이렇게 말할 수도 있습니다.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를 통해서 느낄  있는 모든 상대가  속에 나타나기 때문에 이것을 육차원이라고 말할 수가 있을  같습니다.


 거울에 나타나는 모습은 언제나 자기인 것입니다. 그 허공으로  거울에 나타나는 모든 것이 바로 자기의 모습인 것입니다.


눈으로 보이는 것은 자기의 모습이요. 귀로 들을  있는 것은 자기의 음성이요. 코로 맡을  있는 것은 자기의 내음이요. 혀로 맛볼  있는 것은 자기의 맛이요. 몸으로 느낄  있는 것은 자기의 몸이고, 뜻으로 느낄  있는  나타나는 것은 바로 자기의 마음인 것입니다.


그래서  허공으로  거울의 뜻을  이해만 한다면 어디에서나 언제라도 자기의 모습을  수가 있고, 자기의 음성을 들을 수가 있고, 자기의 내음을 맡을 수가 있고, 자기의 맛을  수가 있고, 자기의 몸을 촉감  수가 있고, 자기의 마음을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찌 거기에 나타나는 것을 보고 미워하고, 원망하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바로  거울에 나타난 자기의 모습을 보고서 더럽게 생겼다’고 욕을 퍼붓고 심지어  거울 속에 그런 것이 들었다고 거울을 부실려고 달라들고 그러할 수가 있겠습니까?

거울에 나타나는 그 모습을 보고 눈꼽이 끼었으면 눈을 닦고, 얼굴에 더러운 것이 묻었으면 그것을 닦고 그리고  얼굴에 예쁘게 단장을 하면은  것을 어찌 거기에 나타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