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회(성도재)2017. 4. 30. 22:00

§(319) (게송)세존당입설산중~ / 백아와 종자기 / (게송)일견명성몽변회~ / 납월팔일 용맹정진 / 정중로월(井中撈月) / (게송)월마은한전성원~ / 거울 법문 / 이뭣고? 화두 / 송담스님 오도송.

우리가 믿되 바르게 믿고, 철저하게 믿고, 바른 스승과 바른 도반을 만나서 올바르게 노력을 한다면 결정코 그 공(功)이 헛되지 아니해서 반드시 자기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을 깨닫게 되는 날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거울만 거울이 아니라, 이 삼천대천세계 이 허공계, 끝없는 허공이라고 하는 것이 하나의 거울인 것입니다. 그 거울에 나타나는 모습은 언제나 자기인 것입니다. 그 허공으로 된 거울에 나타나는 모든 것이 바로 자기의 모습인 것입니다.

저 사람의 허물은 내 허물의 그림자다. 저 사람 잘못한 것은 바로 내 허물이 그 사람이라고 하는 거울을 통해서 나타나는 것이다 그 말씀이여. 그 사람뿐만이 아닙니다. 그 회사나, 그 사회나, 그 국가나, 그 세계에 모든 것들이 다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모든 나쁜 것을 눈을 통해서 보거나, 귀를 통해서 듣거나, 코와 혀와 몸뚱이와 뜻을 통해서 느꼈을 때 바로 거기에서 자기를 반성을 하고, 자기의 허물을 고치고, 나아가서는 ‘참나’로 돌아오는 공부를 열심히 한다면 진정코 참다운 자기 모습을 볼 것입니다.

‘대관절 소소영령한 이놈이 무엇이냐?’  끊임없이 작용을 하고 있는 이놈이 무엇인가? 어떻게 그놈을 잊어버릴 수가 있습니까. 잊어 버릴라야 잊어 버릴 수가 없고, 놔 버릴라야 놔 버릴 수가 없어. 갈 곳이 없어요.

미운 사람을 만날 때도, 할 것이 있습니까? 그 미운 그 사람 얼굴이 바로 자기 얼굴인데. ‘이뭣고?’ 이 세상에 태어나서 우리가 할 일은 이것밖에는 없습니다. 다른 데에다가 정신을 팔 겨를이 없습니다. 바로 돌이켜서 ‘이뭣고?’ 이 일 하나를 내놓고는 우리가 할 일이라고는 없는 것입니다. 이 일 하나 충실히 하고 전력투구를 하면 정말 자기 마음이 안정이 되고, 자기 마음이 맑아지고, 자기 살아가는 데에 보람을 느끼게 됩니다.

**송담스님(No.319)—86년 병인년 성도재 법회(87.01.17) (67분) (용319)

 

(1/4) 약 20분.

 

(2/4) 약 17분.

 

(3/4) 약 12분.

 

(4/4) 약 18분.

 

 

(1/4)----------------

세존당입설산중(世尊當入雪山中)하사  인견명성운오도(因見明星云悟道)로다
나무~아미타불~
약야산중봉자기(若也山中逢子期)런들  기장황엽하산하(豈將黃葉下山下)리요
나무~아미타불~

세존당입설산중(世尊當入雪山中), 우리 세존(世尊) 부처님께서 삼천년 전에 왕궁의 부귀를 헌신짝처럼 버리시고 설산에 들어가셔서 갖은 고행을 다 하셨습니다.
마침내 인견명성운오도(因見明星云悟道)여. 납월 8일(臘月八日) 새벽별을 보시고서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셨습니다.

약야산중봉자기(若也山中逢子期)런들, 만약 그 산중(山中)에서 자기(子期)를 만났더라면,
기장황엽하산하(豈將黃葉下山下)리요. 어찌 노란 이파리를 가지고 산아래로 내려갔을 것인가.

‘산중(山中)에서 자기(子期)를 만난다’ 그 자기란 말은 사람 이름인데, 종자기(鐘子期)라고 하는 사람 이름인데, 그 종자기는 아주 그 거문고, 음악을 달통한 사람이여.
누가 거문고를 타거나, 무슨 음악을 하면은 그 음악 소리만 듣고서도 그 음악을 연주하는 사람의 마음을 알아 버리고, 그 음악의 뜻을 알아 버리고, 아주 음악에 달통한 도인인데.

백아(伯牙)라고 하는 사람이, 참 그이도 거문고를 잘 타는 사람이었었는데 백아가 거문고를 타면 종자기란 사람이 그 음악을 들으면 벌써 백아의 뜻을 알아 버려. 그래서 백아와 자기는 지음상통(知音相通)이여. 말로써 뜻을 표현하지 안 해도 벌써 음악 한가락 떠억 들으면은 서로의 마음과 마음이 통해 버리는 것입니다.

친구 간(間), 저 사람의 희로애락을 서로 마음과 마음이 서로 통하면 말로써 구체적으로 그 심중을 표현하지 안 해도 상대방의 얼굴빛만 봐도 알고, 눈 한 번만 감았다 떠도 알고, 기침만 해도 알고. 그래서 그러한 친구 간을 지기(知己)라고 그러거든.

부부간에도 서로 마음과 마음이 통하는 부부는 남편이 눈만 떳다 감거나, 고개를 좀 들었다 놓거나, 쪼끔 손만 이리 움직여도 ‘지금 남편이 무엇을 바라고 있다. 무엇을 요구한다’ 물을 떠다 드린다든지, 무슨 책을 갖다 드린다든지, 무슨 약을 갖다가 한다든지. 또 아내가 무엇을 해도 남편이 벌써 그 아내의 뜻을 알고서 해 주고.

친구 간도 그래야 마땅하고, 백년해로(百年偕老)를 약속한 부부간에도 서로 그렇게 통해야 할 것이고 또 스승 상좌(上佐) 간에도, 그렇게 참 도를 배우는 스승 상좌 간에도 그리되어야 할 것이고.
또 나라의 통치자와 백성도 그렇게 서로 통해야 할 것이고, 모두 공장이나 회사 노사 간에도 그렇게 서로 심지(心志)가 통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이 백아라고 한 사람이 거문고를 타되 아무도 그 거문고의 참뜻을 알아준 사람이 없지마는 오직 종자기 한 사람이 그걸 알아주기 때문에 거문고를 자주자주 뜯고 그러다가 종자기란 사람이 먼저 죽었습니다.
종자기가 죽어버리니까 거문고를 타 봤자 아무도 알아들은 사람이 없고, 그 참다운 뜻을 감상해 주는 사람이 없고 그러니까 다시는 거문고를 뜯지를 않았다고 하는 중국에 옛날 전설이 있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설산에서 별을 보고 깨달으신 뒤에 종자기와 같은 그러한 사람을 거기서 만나셨다면 무엇 하러 노란 이파리를 들고 산밑으로, 산아래로 내려오셨겠느냐.
노란 이파리, 황엽(黃葉)이라 하는 것은 어린애를 달래기 위해서 노란 이파리를, 그 단풍잎 빨갛고 노란 그런 이파리를 주면서 “여기 돈 있다. 여기 돈 있다” 이러면서 어린애의 울음을 달래는 것인데, 여기서 ‘노란 이파리’라 하는 것은 방편설(方便說)인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49년 동안 중생의 근기(根機)를 맞추어서 그렇게 횡설수설(橫說竪說)하신 여러 가지 그 방편 법문을 갖다가 여기서는 ‘노란 이파리’라고 표현을 한 것입니다.
산중에서 자기와 같은, 정말 부처님의 깨달으신 도리를 알아차릴 수 있는 그러한 사람을 만났던들 무엇 하러 노란 이파리를 가지고 산아래로 내려갔을 것이냐.


해마다 돌아오는 납월 8일(臘月八日)입니다.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뒤 이천오백삼십일 년이 되었습니다. 이천오백삼십일 해의 납월 8일이 지내가고 또 이렇게 왔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설산에서 그 납월팔일 새벽별을 보시고서 그렇게 확철대오를 하셨는데, 이천오백삼십 회 동안 해마다 뜨는 그 별을 보고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확철대오를 했을까요?

오늘 새벽에도 그 별은 떴습니다. 하늘이 안개가 끼어서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그 별은 떠 있었습니다.
그리고 해마다 납월 8일이 되면 초하루부터서 8일 새벽까지 전국 방방곡곡의 선방(禪房)에서 중국이나 한국, 일본 이런 불교를 믿는 절에 선방에서는 다 용맹정진(勇猛精進) 또는 가행정진(加行精進)을 하고 내려왔습니다.

우리 용화선원에서는 특별히 용맹정진을 하는 그러한 거시기을 안 하고 있습니다마는, 그래도 개인적으로 다 일주일간을 용맹정진 하는 그 마음으로, 상(相)이 없는 가운데에 모두 정진을 하셨던 것입니다.


일견명성몽변회(一見明星夢便廻)한데  천년도핵장청매(千年桃核長靑梅)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수연불시조갱미(雖然不是調羹味)나  증여장군지갈래(曾與將軍止渴來)니라
나무~아미타불~

일견명성몽변회(一見明星夢便廻)여, 한 번 그 새벽별을 보시고서 꿈을 문득 돌이켰다 그말이여. 오랜 잠 속의 꿈을, 별을 한 번 봄으로 해서 꿈을 턱! 돌이켜서 깨달아 버렸어.
천년도핵(千年桃核)이 장청매(長靑梅)다. 천 년이나 묵은 복숭아씨에서 푸른 매화의 싹이 텃드라. 복숭아씨에서 복숭아 싹이 나지 않고, 복숭아씨는 분명히 복숭아씨인데 그 복숭아씨에서 매화의 싹이 텃드라 그말이여.

수연불시조갱미(雖然不是調羹味)나, 비록 그 매화를 가지고, 그 매화의 신맛을 가지고 국의 맛을 고르지는 못하나,
증여장군지갈래(曾與將軍止渴來)로구나. 일찍이 장군에게 그 목마른 것을 그치게 했더라.

「삼국지(三國志)」에 보면 군사들이 계속 격전을 거듭을 해가지고 땀을 많이 흘렸어. 그래서 목이 말라서, 그런데 모두 준비했던 물은 다 먹어버리고 미처 물 준비를 못하고 계속 싸우면서 나아가는데, 목이 말라가지고 군인들이 병사들이 발광을 한다 그말이여.
그러니 그때에 조조가 ‘저 산너머 가면 거기에 매실(梅實)이 많이 열렸다. 저 산만 넘으면 실컷 매실을 먹을 수가 있다’ 그 매실 얘기를 하니까 병사들이 ‘매실’ 말만 듣고도 침이 지르르르 하니 입안에 가득차가지고 갈증을 면한 고사가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별을 보고 깨달았다’하는 말, 그 말을 듣고서 ‘별을 보고 깨달았다’ 그러니까 납월 8일 무렵만 되면 온 천하에 총림 선원에서 모두 ‘우리도 부처님처럼 고행 정진하고, 용맹정진 다못 일주일간이라도 용맹정진을 하고 가행정진을 하자’ 그래가지고 하는데. 가행정진 용맹정진 중에 확철대오를 한 분도 간간이 있어 왔습니다.

그러나 가행정진 했다고 해서 그 대중이 다 깨닫느냐 하면은 그렇지를 못해.
그래도 일주일 동안 용맹정진 또는 가행정진을 하면 그동안에 장군죽비(將軍竹篦)를 가지고 경책(警策)을 하고, 이렇게 경책을 맞으면서 7일 동안을 옆구리를 땅에다 대지 아니하고 그렇게 정진을 하는데, 그 꾸벅 졸면은 입승(立繩) 스님이 와가지고 장군죽비로 등짝을 내다 친 바람에 잠이 버쩍 버쩍 잠이 달아나고 그런데.

그 장군죽비를 안 맞으려고 어떻게 눈을 갖다가—처음에 한 3일간은 그럭저럭 괜찮은데 사흘, 나흘이 되면은 눈 껍데기가 천근이나 되게 눌리고, 아무리 정신을 들라고 해도 금방 일 초도 못된 사이에 꺼벅한다 말이여. 또 금방 정신을 딱 차렸는데 또 꺼벅하고.
그렇게 잠을 안 자고 용맹정진을 하다 보면 그때 하는 동안에는 순전히 잠을 안 자려고 싸울 따름이지만, 납월 8일을 지내고 나서 보면은 정말 정진하는 데에 자신감이 생기고 힘이 생긴다 그말이여.

그래가지고 실지로 일주일 동안은 그렇게 맑은 정신이 난 것 같지 않고 오직 잠과만 싸웠지만, 지내 놓은 뒤에 한결 정진하기에 힘이 생기고, 신심도 나고 그래서 납월 8일에는 선방에서 대체적으로 가행정진도 하고 용맹정진도 해왔던 것입니다.

비록 매실을 가지고 국 맛은 고르지를 못해. 저 산너머에 있는 ‘매실이 있다’한 그걸 가지고 실지로 그 매실을 마시고, 먹을 수는 없지마는 그 말만 듣고서도 입안에 침이 주르르르 나와 가지고 입안에 고여서 갈증을 면할 수가 있더라.

이 게송(偈頌)이 함축하고 있는 뜻을 내가 설명을 하기가 대단히 어렵습니다.(처음~19분24초)





(2/4)----------------

「승기율(僧祇律)」이라고 하는 경책(經冊)에 ‘정중로월(井中撈月)이다. 샘 가운데에 달을 붙잡는다. 샘 속에 들어있는 달을 건진다’하는 내용의 법문이 있는데, 부처님께서 여러 비구들을 향해서 말씀을 하시기를,

과거 시(時)에 그 나라는 가시국(伽尸國)이라 한 나라고, 그 가시국이라 한 나라에 바라나(波羅奈)라고 하는 성(城)이 있었는데 그 성안에 숲이 있어. 아주 우거진 숲이 있는데 그 숲속에는 오백 마리의 원숭이 떼들이 있었어.

근데 오백 마리의 원숭이를 이끌고 그 원숭이의 우두머리가 오백 마리의 권속을 이끌고 그 숲속을 유행(遊行)을 해. 이 골짜구니에서 저 골짜구니로, 저 골짜구니에서 이 골짜기로 이렇게 다니다가 한 우물이 있는데, 샘이 있는데, 그 샘 속에 이상한 것이 보인다 그말이여. 환희 밝은 쟁반같이 밝은 것이 보이는데.

‘참 이상하다. 저게 분명히 저것이 달인데, 아무래도 저 달이 떨어져가지고 우물에 빠져서 죽게 되었어. 저 우물에 빠져서 죽게 된 달을 건져야지 만약에 저 달을 건지지 아니하면 온 세계에 암흑세계가 될 것이 아니냐.
그러니 다행히 우리가 저 달을 발견했으니까 망정이지 만약에 우리가 보지를 않았던들 영원히 저 샘 속에 빠져서 없어져버리면 하늘에는 영원히 암흑세계가 될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저것을 못 봤으면 모르되 보고서 그냥 둘 수가 있느냐’

그래서 여러 가지로 오백 마리의 원숭이들이 연구를 한 결과 그 우두머리가 좋은 꾀를 하나 발견을 했습니다.
우물가에 있는 나뭇가지를 자기가 붙잡고, 자기 다음 원숭이는 우두머리의 꼬리를 붙잡고 또 그다음 우두머리는 그 앞에 꼬리를 붙잡고 해서 차츰차츰해서 꼬리에 꼬리를 붙잡고 우물 속으로 늘어져 들어가 가지고 마지막 원숭이가 달을 건져내면 되겠다.

거 참 좋은 꾀다. 그래가지고 하는데 오백 마리나 되는 원숭이가 그렇게 꼬리에 꼬리를 붙잡고 늘어져 놓으니 너무 무거워가지고 우두머리가 잡고 있는 나뭇가지가 부러져 버렸습니다. 부러져가지고 오백 마리나 되는 원숭이가 우물 속에 다 빠져서 죽었던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출현을 하셔가지고 팔만사천(八萬四千) 묘법(妙法)을 설하시고 또 교외별전(敎外別傳)으로 삼처전심(三處傳心)을 해서 최상승법(最上乘法)을 이 세계에 전하시고서 한량없는 중생으로 하여금 자아 면목(面目)을 볼 수 있도록 그렇게 하시고서 열반에 드셨는데, 80세를 일기로 열반에 드셨는데,

삼천년이 되는 오늘날까지 역대조사(歷代祖師)가 부처님의 법을 계계승승(繼繼承承)해서 그렇게 전해 내려오고 또 그 법이 많은 신남신녀와 모든 재가 출가의 모다 사부대중(四部大衆)들이 그 법을 믿고 부처님과 조사들의 득도(得道) 인연을 본받고 그래가지고 모두 경을 읽는다, 염불을 한다, 주력을 한다, 기도를 한다, 또 참선을 한다, 이래가지고 모두 발심(發心)하고 분심(憤心)을 내어가지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대단히 장한 일이요, 기특한 일이요, 고마운 일이요, 뭐라고 칭찬을 한다 하더라도 지나침이 없을 정도로 참 훌륭한 일이나, 그 원숭이 우두머리가 잡은 그 나뭇가지가 뚝! 부러진 날이면 오백 마리의 잔나비가 일시에 달을 건지려고 하다가 우물에 다 빠져 죽어 버린 거와 같은 현상이 있을 수가 있다 이거거든.

제마다 모두 자기의 근기에 따라서 온갖 노력을 하고 애를 쓰고 있는데, 그 붙잡은 가지가 그것이 약한 가지, 뿌리가 얕이 백혔다든지 또는 나뭇가지가 약해가지고 뚝 부러진 날이면 어떻게 되느냐?

그래서 우리가 자기 딴은 신심을 내서 노력을 하지만 그 공부해 나가는, 자기가 믿는 법이라든지, 자기가 의지하는 정신적으로 의지하는 선지식이라든지, 큰스님네라든지, 그런 것들이 뿌리가 약하거나, 가지가 약한 것을 붙잡고 하다가 뚝 부러져가지고 우물에 빠져 버린 거와 같은 현상이 우리가 수행해 나가는 데에 그런 현상이 있을 수가 있다 이것입니다.

기도를 자기 나름대로 아들을 낳고자 원을 해서 무슨 기도를 한다든지 또는 부자가 되고자 해서 무슨 염불을 한다든지 또는 깨닫고자 해가지고 화두(話頭)를 타가지고 참선(參禪)을 한다든지, 각기 자기의 근기와 원에 따라서 하는데,
그것이 자기 뜻대로 잘 이루어지지 아니 해 가지고 잘못 잡아가지고 손이 미끄러져서 빠진다든지 또 꽉 붙잡아도 약한 가지를 붙잡았다든지, 뿌리가 약한 것을 붙잡았다든지, 또 같이 모다 이렇게 잡고 있는데 그중에 한 사람이 손이 빠져도 뚝 떨어질 것이고.

그래서 우리가 각기 ‘자기의 종파(宗派)의 법이 옳다’고 믿고 그렇게 주장을 하고 또 이렇게 공부를 하고,
또 같은 참선을 하되 자기가 믿는 선지식(善知識)에 따라서 ‘자기가 믿는 선지식이 지도하고 가르키시는 법이 옳다’고 주장을 하고, 자기가 믿지 않는 선지식을 비방을 하고 모다 이래가지고 저마다 ‘자기 것은 옳고 남의 것은 옳지 못하다’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서로 파가 갈라지고, 시기와 질투를 하고 모다 그러는데.

참, 더욱이 요새 참선을 하는 사람들이, 참선에 대한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날로 늘어가고 있고, 대단히 참 좋은 현상이기는 하나 행여나 잘못 붙잡거나, 약하고 뿌리가 옅은 그런 나무를 붙잡고 늘어지다가 결국은 손이 빠지거나, 뿌리가 뽑히거나, 가지가 부러지거나 하면 달은 건지지를 못하고 우물에 빠져 죽고야만 말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볼라야 볼 수 없고, 알라야 알 수 없는, 그리고 가르킬라야 가르켜 줄 수도 없고, 배울라야 배울 수도 없는 그 한 물건을 우리가 깨닫기 위해서 그렇게 애를 쓰고 정진을 하고 집안일을 갖다가 뒤로 미루고 이 한 일을 위해서 애를 쓰고.
또 일생에 안 태어난 셈치고 가정과 자기의 청춘과 인생을 다 바쳐서 출가해가지고 도(道)를 닦고 그러는데.

이 원숭이가 만약에 튼튼한 나무를 붙잡고 달을 건질라고 애를 쓰다가 나뭇가지만 부러지지 아니했다면 몇 번이고 건질라고 시도를 하면은, 물에다가 손을 넣으면은 달이 흩어져버리고 또 한참 손을 빼고 기다리고 있으면 그 흩어졌던 달이 다시 또 온전해지면 또 가만히 건질라고 하면 빠지고,
누차 애쓰다 보면 ‘아! 이것이 물속에 있는 달이 아니고 이 달이 바로 저 하늘에 있다. 저 하늘의 달이 떨어진 줄 알았는데 하늘의 달이 떨어진 것이 아니고 원래 그 달은 하늘에 휘황창 밝고 있다’고 하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믿되 바르게 믿고, 철저하게 믿고, 바른 스승과 바른 도반을 만나서 올바르게 노력을 한다면 결정코 그 공(功)이 헛되지 아니해서 반드시 자기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을 깨닫게 되는 날이 있을 것입니다.


월마은한전성원(月磨銀漢轉成圓)한데  소면서광조대천(素面舒光照大千)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연비산산공착영(連臂山山空捉影)하되  고륜본불낙청천(孤輪本不落靑天)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월마은한전성원(月磨銀漢轉成圓)이요, 달이 저 하늘에 돌고 도는 가운데에 점점 둥글어져.
소면서광조대천(素面舒光照大千)이로구나. 그 밝고 밝은 달이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를 비추는구나.

연비산산공착영((連臂山山空捉影)이나, 원숭이들이 팔에 팔을 연결을 해가지고 부질없이 그 우물 속에 달을 건지려고 하나,
고륜본불낙청천(孤輪本不落靑天)이로구나. 하늘에 떠있는 그 둥근달은 본래 푸른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더라.

우리가 불법을 믿되 각기 자기 나름대로의 크고 작은 원(願)이 있어서 그 원을 성취하기 위해서 절에를 오게 됩니다.
그래가지고 처음에는 작은 원, 가까운 원, 자기 나름대로 모두 원을 가지고 와서 차츰 절에 다니고, 다니면서 법문(法門)을 듣고 하다 보면 차츰차츰 인연이 도래(到來)하면 인자 바르게 믿게 되는데.

자기가 애당초에 잘못 믿어가지고, 기도를 해도 아들을 낳기 위해서 그렇게 지극정성으로 기도를 하고 시주(施主)를 하되 아들을 못 낳으면 ‘에이, 그까짓 거 기도 해봤자 소용이 없다’
또 부자가 된다고 그래서 기도를 해봤지마는 별로 부자도 되지도 않고 ‘에이, 그까짓 것 불법 믿어봤자 소용이 없다’ 병을 고치기 위해서 기도를 하고 불공을 하고 시주를 했는데 ‘그 해봤자 그까짓 것 소용이 없다’

그러자 마치 다른 종교에서 ‘이 종교 와서 기도를 하면은 그 병도 고칠 수가 있고 부자도 된다’고 끈질기게 와서 졸라대고 유혹을 하면 솔깃이 그리 기울어져가지고 그런 데에 가서 개종(改宗)을 하기도 하고. 참 그런 사람들이 종종 있는데.

불교가 아무리 정법이고 최상승법이라 하더라도 잘못 믿으면 그렇게 되기가 십상팔구(十常八九)인 것입니다.

옳게 믿으면 처음에는 옅은 데로 들어갔다가 그 믿음이 간절하고 한결같으면 차츰차츰 좋은 인연을 만나가지고 바른 스승을 만나서, 바른 법을 향해서 나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돈을 벌기 위해서 부자가 되기 위해서 절에 갔다가 결국은 ‘참나’를 깨닫고 영원한 보배를 얻을 수 있는, 세세생생(世世生生)에 쓰고도 쓰고 남을 그러한 영원한 보배를 얻은 데에까지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19분30초~36분46초)





(3/4)----------------

어떤 사람이 남편이 중국을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좋은 거울을 사가지고 와서 선사를 했습니다. 그 아내가 남편이 갖다 준 것을 보고 이리 들여다보니까 아주 이쁘게 생긴 미인이 하나가 들어있거든.

옛날에는 거울이라는 것이 없었는데, 중국에 가 가지고 거울을 가지고 오니까 거울이 무엇인 줄도 모르고 남편이 ‘이거 참 좋은 것 가지고 왔으니까 이거 가지라’고 줬는데 요리 들여다보니까 이쁜 미인이 들어와 있어.
‘중국 갔다가 오더니 어디서 아주 새파란 젊은 년을 갖다가 데리고 왔다’고 아주 그냥 남편한테 눈을 흘기고 막하고. 그래서 ‘아니 그것이 아니라고, 내가 무슨 여자를 데리고 왔느냐?’고. ‘요 속에 들어 있지 않느냐’고 한참 싸우다가 결국은 시어머니한테 그것을 보였습니다.

시어머니가 그 거울을 이리 들여다보니까 ‘젊은 여편네라더니 늙은 년을 데리고 왔지 않느냐’ 그래가지고 ‘너는 왜 눈이 젊은 것이 그렇게 눈이 시원찮으냐. 이거 봐라 이것이 늙은 년이지 젊은 년이냐?’ 그러다가 한참 둘이 인자 주거니 받거니 하니까 시아버지가 들어왔습니다. ‘뭔 소리를 그렇게 시끄럽게 그래싼고?’

‘아들이 중국에서 젊은 년을 데리고 왔다고 며느리가 그래서 보니까 젊은 년이 아니고 늙은 년을 데리고 왔구료’ 그러니까, 영감이 들여다보니까 ‘늙은 년켕이는 늙은 놉을 데리고 왔지 않느냐?’
이래가지고 결국은 거울이 무엇인 줄을 모르는 사람은 그렇게 될 수밖에는 없을 것입니다.

그 거울이라는 것은 그 앞에 있는 고대로 비추는 것이어서, 늙은 사람이 들여다보면은 늙은 사람이 나타나는 것이고, 젊은 사람이 들여다보면 젊은 사람 얼굴이 나타나는 거여.

여러분이 이 세상에서 눈을 통해서 보는 모든 것이 다 이 거울에 나타나는 자기 모습인 것입니다.

자기의 모습이 나타난 줄을 모르고 거울 속에 젊은 사람이 나타났다는 둥, 늙은이가 나타났다는 둥 이래가지고 거울 속에 있는 그 모습을 그것을 가지고 마음을 일으켜서 성을 내고, 원망을 하고, 그 탓을 갖다가 다른 사람에게 돌리는 것입니다.

거울에 나타난 그림자는 바로 그것이 자기의 얼굴인 것입니다. 

중국에서 가져온 거울만이 거울이 아니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거울만 거울이 아니라, 이 삼천대천세계 이 허공계, 끝없는 허공이라고 하는 것이 하나의 거울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 거울은 동서남북이 평면으로 된 거울이 아니라 입체적으로 된 거울이여. 동서남북도 없고 상하가 없어. 어디서 보나 다 보이는 것인데. 이 거울은 물체만 그 안에 보이고 또 거울에 나타난 모습은 눈을 통해서만 볼 수가 있는데.

이 허공의 거울은 눈으로 볼 수 있는 그런 색상만 비추는 것이 아니라, 귀로 들을 수 있는 모든 소리도 그 허공의 거울에는 나타나는 것입니다. 코를 통해서 맡을 수 있는 모든 냄새도 그 거울에는 나타나는 것입니다.
또 혀를 통해서 맛볼 수 있는 모든 맛도 그 거울에는 나타날 수가 있고, 몸뚱이를 통해서 느낄 수 있는 모든 것도 거기에 나타날 수가 있습니다. 우리의 생각을 통해서 느낄 수 있는 모든 법도 그 허공의 거울에는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 거울을 입체적이라고 해도 맞지 않습니다. 입체적이라 하면은 겨우 삼차원(三次元) 밖에는 안 되는 것인데, 허공으로 된 이 거울은 최소한도로 육차원(六次元)으로 된 거울이라 이렇게 말할 수도 있습니다.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를 통해서 느낄 수 있는 모든 상대가 그 속에 나타나기 때문에 이것을 육차원이라고 말할 수가 있을 것 같습니다.

그 거울에 나타나는 모습은 언제나 자기인 것입니다. 그 허공으로 된 거울에 나타나는 모든 것이 바로 자기의 모습인 것입니다.

눈으로 보이는 것은 자기의 모습이요. 귀로 들을 수 있는 것은 자기의 음성이요. 코로 맡을 수 있는 것은 자기의 내음이요. 혀로 맛볼 수 있는 것은 자기의 맛이요. 몸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은 자기의 몸이고, 뜻으로 느낄 수 있는 그 나타나는 것은 바로 자기의 마음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 허공으로 된 거울의 뜻을 잘 이해만 한다면 어디에서나 언제라도 자기의 모습을 볼 수가 있고, 자기의 음성을 들을 수가 있고, 자기의 내음을 맡을 수가 있고, 자기의 맛을 알 수가 있고, 자기의 몸을 촉감 할 수가 있고, 자기의 마음을 볼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찌 거기에 나타나는 것을 보고 미워하고, 원망하고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바로 그 거울에 나타난 자기의 모습을 보고서 ‘더럽게 생겼다’고 욕을 퍼붓고 심지어 그 거울 속에 그런 것이 들었다고 거울을 부실려고 달라들고 그러할 수가 있겠습니까?
거울에 나타나는 그 모습을 보고 눈꼽이 끼었으면 눈을 닦고, 얼굴에 더러운 것이 묻었으면 그것을 닦고 그리고 그 얼굴에 예쁘게 단장을 하면은 될 것을 어찌 거기에 나타난 모습이 미웁다고 그것을 원망하고, 탓하고, 성을 내면 그 거울에는 점점 보기 싫은 모습이 나타나고 말 것입니다.

그래서 저 사람의 허물은 내 허물의 그림자다. 저 사람 잘못한 것은 바로 내 허물이 그 사람이라고 하는 거울을 통해서 나타나는 것이다 그 말씀이여.
그 사람뿐만이 아닙니다. 그 회사나, 그 사회나, 그 국가나, 그 세계에 모든 것들이 다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모든 나쁜 것을 눈을 통해서 보거나, 귀를 통해서 듣거나, 코와 혀와 몸뚱이와 뜻을 통해서 느꼈을 때 바로 거기에서 자기를 반성을 하고, 자기의 허물을 고치고, 나아가서는 ‘참나’로 돌아오는 공부를 열심히 한다면 진정코 참다운 자기 모습을 볼 것입니다.

무엇을 볼 때나, 무엇을 들을 때나, 무엇을 맡을 때나, 무엇을 먹을 때나, 무슨 생각이 나거나 바로 그 찰나 찰나가 자기가 자기의 모습을 보고서 그 잘못된 곳을 고쳐 나갈 수 있는, 그리고 자기를 아름답게 할 수 있는 거울로 잘 사용을 해 나간다면 우리는 나날이 아름다워지고, 나날이 향상이 될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이 있는 곳은 그 집안은 항상 몸도 아름답고 예쁘고, 마음도 아름다운 사람들로 가득차게 될 것입니다.

선방에서 모두가 다 그런 마음으로 산다면 모든 시비는 다 끊어질 것이고, 선방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얼굴은 법(法)의 기쁨과 선(禪)의 즐거움으로 가득찰 것이며 모든 대중은 서로서로 좋은 도반(道伴)이 되어주고, 서로서로 좋은 선지식이 되어 줄 것입니다.

내 거울을 통해서 저 사람이 예뻐지고, 저 사람 거울을 통해서 내가 예뻐 질 것입니다.
물속에 떨어진 그 달을 건지려고 애를 쓰다가 하늘에 떠 있는 참 달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36분50초~48분22초)





(4/4)----------------

‘이뭣고?’  ‘이뭣고?’하면 좋다고 하니까 모두 ‘이뭣고?’
‘이뭣고?’가 무엇인 중도 모르고 그저 ‘이뭣고?’. 무조건하고 ‘이뭣고?’만 하라 하니까, 무조건하고 ‘이뭣고?’

몇 해를 하다가 “아, 스님 ‘이뭣고’가 무엇입니까? 대관절”
정말 ‘이뭣고?’가 무엇인 중도 모르고 ‘이뭣고?’를 여러 해를 하고 있는 그런 할머니도 계십니다. “이뭣고가 영어요?”

‘이뭣고?’란 게 대관절 도대체 ‘이뭣고?’ 소리가—경상도 사시는 분은 ‘이뭣고?’가 바로 ‘이것이 무엇인고?’하는 말이라는 것을 대번 아시겠지만,  경상도 사투리를 모르는 사람은 “‘이뭣고’가 이모꼰가? 이뭐꼰가? 이 뭐꼰가? 도시 이뭣고란 것이 어디 말이냐?’고 물어봅니다.

‘알 수 없어야 옳게 한다’고 그러니까는 알 수 없으니까 자기가 지금 옳게 해 가는 줄 알고,
무조건하고 ‘이뭣고?’ 그런 거 물어보지 말고, 모르면은 ‘이뭣고?’를 해야 결국은 스스로 깨닫게 된다 하니까 ‘이뭣고?’가 영어인지, 한국말인지 그것도 모르면서 그저 ‘이뭣고?’만 하다 하다가 아무리 해도 알 수가 없으니까 참다 참다 못해가지고 “대관절 ‘이뭣고?’란 게 무엇입니까?”

참 그쯤 천진하고, 참 웃음이 나올 정도로 천진한 할머니지만 나는 그 할머니의 말씀을 듣고 참 갸륵하게 느꼈습니다.
정말 저런 정도로 천진하고, 무조건하고 좋다고 하니까 그저 자나깨나 ‘이뭣고?’만 한 그 할머니의 그 믿은 자세가 틀림없이 이 할머니는 바른 깨달음을 얻을 수가 있을 것이다.

저만큼 마음의 때가 없고, 순진하고, 천진하고 그러니 저 할머니는 돌아가실 때 정말 고통 없이 공양 잘 자시고 이야기하시다가 스르르르 하니 미소를 띠면서 숨을 거두실 것이다.
어찌 보면 바보스럽고, 참 어찌 보면은 천진하고, 그러한 단순하고도 천진한 마음이 참 너무너무 나의 마음을 흐뭇하게 했었습니다.

이 무엇고?
‘이 무엇고?’는 ‘이것이 무엇인고?’하는 경상도 말로 ‘이뭣고?’ 이뭣고인데.
지금 이렇게 말을 하고, 이렇게 말을 들을 줄 알고, 성도 낼 줄 알고, 또 기뻐할 줄도 알고, 여기 앉아서도 집을 생각하면 집이 환하고, 한 20년, 30년 전에 어렸을 때 일도 생각하면 환하거든.

몸뚱이는 문을 잠가 놓으면 밖을 나갈 수가 없지만 문을 이중 삼중으로 잠가 놔도 그놈은 맘대로 출입을 해. 집에도 갔다 오려면 갔다 오고, 서울역도 갔다 오려면 갔다 오고, 미국도 갔다 오려면 갔다 오고, 10년 20년 전도 시간도 막 거슬러 올라갈 수도 있고, 삼천년 전으로 갔다 올 수 있고.
지금 삼천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부처님께서 도를 닦으시던 설산도 갔다 오려면 지금 이 자리에서도 갔다 올 수가 있어.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걸림이 없이 왔다갔다하는 놈이 우리에게 다 있습니다. 대관절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이놈이 무엇이냐?

눈을 통해서 모든 것을 다 볼 줄 알고, 귀를 통해서 모든 소리를 들을 줄 알고, 코를 통해서 모든 냄새를 맡을 줄 알고, 혀를 통해서 쓰다 달다 짜다 다 알 수 있고, 몸뚱이를 통해서 춥다 덥다 부드럽다 까끄럽다 다 알 수 있고, 생각을 통해서 이것은 좋다 나쁘다 그르다 다 알 수가 있어.

눈은 색상밖에는 볼 수가 없는데, 이놈은 색상도 보고, 소리도 듣고, 냄새도 맡고, 맛도 보고, 몸뚱이로 모든 것을 느끼고, 생각으로 모든 것을 다 생각하고 판단을 하고. 이렇게 여섯 가지의 관능(官能)을 자유자재로 해.

대관절 이 소소영령한 이놈이 무엇이냐? 그거거든.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놓칠라야 놓칠 수가 없습니다. 망상이 일어나고 망상 때문에 화두를 놓쳐버린다 그러는데 사실은 놓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갈 곳이 없어요.

지가 눈을 통해서 보지 아니하면 귀를 통해서 듣고, 그렇지 않으면 코를 통해서 냄새 맡고, 그렇지 않으면 입을 통해서 맛보고 말하고, 몸뚱이로 춥고 덥고를 느끼고, 생각으로 과거 현재 미래를 거침없이 돌아다니면서 다 작용을 하는데,
눈은 감으면 볼 수가 없지만 이놈은 눈을 감거나, 귀를 막거나, 조끔도 상관이 없이 활동을 하고 작용을 하거든. 심지어 잘 때에는 꿈을 통해서 이놈이 작용을 합니다. 이 몸뚱이가 죽어도 영혼이 되어가지고 육도(六途)를 왕래를 합니다.

‘대관절 소소영령한 이놈이 무엇이냐?’  끊임없이 작용을 하고 있는 이놈이 무엇인가?
어떻게 그놈을 잊어 버릴 수가 있습니까. 잊어 버릴라야 잊어 버릴 수가 없고, 놔 버릴라야 놔 버릴 수가 없어.

어떤 사람이 불법(佛法)을 믿지 않는 사람이 부처님을 보기가 싫어서 집으로 도망가 가지고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는데 그리고서 이불 속에서 열 손가락으로 눈을 가렸는데, 열 손가락 사이마다 부처님 얼굴이 보여. 그러한 설화가 있습니다마는 ‘이뭣고?’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안 보려고 눈을 감아도 환하고, 듣지 않으려고 귀를 막아도 환하고, 냄새 안 맡으려고 코를 막아도 그놈은 막을 수가 없습니다. 별별 짓을 다 해봤자 소용이 없습니다.

화두를 잊어 버리기가 더 어려운 것이지 안 잊어 버리기는 그것이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지가 보지 아니하면 듣고, 듣지 아니하면 맡고, 여섯 구녁을 통해서 무량겁(無量劫)을 두고 그놈이 작용을 하고 있는데 어떻게 그놈을 안 볼 수가 있느냐 그말이여.

‘이뭣고?’  ‘이~하는 이놈이 뭣고?’ 잊어 버렸다고 한탄하지 말고 자꾸 챙기는 것뿐인 것입니다.
무엇을 볼 때에도 ‘이뭣고?’ 무슨 소리가 들려도 ‘이뭣고?’ 시끄럽다고 안 되는 것이 아닙니다. 시끄러운 줄 아는 놈이 있는데 어떻게 그놈을 시끄러운 것이 문제가 되냐 그말이여.

자꾸 챙기고 또 챙기고, 챙기고 또 챙기고 하다 보면 신기하게도 턱! 나타나게 된 때가 오는 것입니다. 순일무잡(純一無雜)한 경계가 오고야만 마는 것입니다. 이것은 역대조사와 모든 고인(古人)들이 몸소 행해서 다 증험을 한 것인 것입니다.

미운 사람을 만날 때도, 할 것이 있습니까? 그 미운 그 사람 얼굴이 바로 자기 얼굴인데. ‘이뭣고?’
이 세상에 태어나서 우리가 할 일은 이것밖에는 없습니다. 다른 데에다가 정신을 팔 겨를이 없습니다.

시어머니가 야속하고, 남편이 야속하고, 동기간이 야속하고... 야속할 겨를이 어디가 있겠습니까. 그 야속한 그 상대가 바로 자기의 모습이고, 자기의 얼굴이고, 자기의 마음인 것을.

바로 돌이켜서 ‘이뭣고?’ 이 일 하나를 내놓고는 우리가 할 일이라고는 없는 것입니다. 이 일 하나 충실히 하고 전력투구를 하면 정말 자기 마음이 안정이 되고, 자기 마음이 맑아지고, 자기 살아가는 데에 보람을 느끼게 됩니다.
옛날에 그렇게 밉고 원망스러웠던 사람이 하나도 미운 생각이 없어지고, 정말 고맙게 느껴지게 되는 것입니다.

새해를 맞이해서 납월팔일 부처님이 성도하신 성도재(成道齋) 날을 맞이했습니다. 우리는 부처님께서 몸소 보여주신 살아 있는 그 법에 의지해서 하루하루를 알뜰하게 정진을 할 것을 다짐합시다.

선방에 계신 스님네나 또 보살님네, 또 가정에서 직장에서 생활하시는 신남신녀 여러분들도 장소가 상관이 없습니다. 바로 생활 현장이 살아 있는 수도장(修道場)이요, 선방인 것입니다.

교육대학에 모다 다니는 학생들이 국민학교 모다 그런 데 나가서 실지로 그 학생들에게 가르키는 그런 기간이 있습니다마는, 자기 학교에서 계속 이론적으로만 배운 것 보단 실지로 학교에 가서 학생들에게 가르켜 봐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진짜 살아 있는 공부인 것입니다.

선방에 오셔서 공부하시는 것도 대단히 좋은 일이지만 여러분 가정에서 직장에서 그 생활 현장에서 시부모를 상대할 때, 남편과 아내를 상대할 때, 또 자식과 며느리를 상대할 때, 또 직장에서 모든 사람을 상대하고,
모든 사람들을 상대하는 바로 그 속에서 속이 상할 때, 기쁘고 슬플 때, 바로 그때 그 찰나 찰나를 잘 살려서 즉시즉시 생각을 돌이켜서 ‘이뭣고?’ 화두로 돌이키면서 바로 그 자기의 흔들릴 뻔하는 그 생각을 바로잡고, 끌려갈 뻔한 그 자기 생각을 딱 중심을 잡아서,

그렇게 하루하루를, 찰나 찰나를 그렇게 사시고, 하루하루를 그렇게 사시고, 일 년을 또 그렇게 사신다면 우리는 결정코 부처님과 역대조사와 과거의 모든 선지식들이 우리를 속이지 않았다고 하는 것을 믿게 될 것입니다.

분 따라서 정진을 해 주시기를 부탁을 합니다. 백일기도에 동참하신 여러 신남신녀들도 바로 이 결제하신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항상 탐심 진심 치심 이 삼독심..(녹음 끊김)


황매산정(黃梅山庭)에 춘설하(春雪下)한데  한안여천향북비(寒雁唳天向北飛)로구나
나무~아미타불~
하사십년왕비력(何事十年枉費力)고  월하섬진대강류(月下蟾津大江流)로구나
나무~아미타불~

황매산정(黃梅山庭)에 춘설하(春雪下)한데, 황매산 뜰에 봄눈이 내렸는데,
한안(寒雁)이 여천향북비(唳天向北飛)로구나. 차운 기러기가 하늘에서 울며 북을 향해서 날아가는 구나.

하사(何事)로 십년왕비력(十年枉費力)고, 무슨 일로 십 년 동안을 헛되이 힘을 허비했던가.
월하섬진대강류(月下蟾津大江流)로구나. 달 아래 섬진 대강이 흐르는구나.(48분23초~66분39초)(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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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世尊當入雪山中  因見明星云悟道’ ; 「순당(巡堂)」 의식에 있는 ‘입산게(入山偈)’ 참고.
[참고] 입산게(入山偈)
世尊當入雪山中  一坐不知經六年  因見明星云悟道  言詮消息遍三千
세존께서 설산에 들어가셔서  한 번 앉음에 여섯 해 지남을 알지 못했네.  새벽별을 보시고서 깨달으시니  그 말씀 그 소식 삼천세계에 가득하여라.
*순당(巡堂) ; 예불 후의 의식으로 모든 대중이 순당 의식에 있는 게송을 창화(唱和)하며, 게송의 내용으로 각자의 수행하는 마음을 점검하며, 예불을 행한 당내(堂內)를 한 바퀴 도는 것을 말한다.
*(게송) ‘若也山中逢子期  豈將黃葉下山下’ ; [태고집(太古集)] (雪栖 편, 김달진 역주 | 세계사) '석가 출산상(釋迦出山相)' p229 참고.
*세존(世尊) : [범] Bhagavat ; Lokanatha ; Lokajyestha의 음역(音譯)으로 바가범(婆伽梵) 로가나타(路迦那他) 로가야슬타(路伽惹瑟吒)라 하며 부처님 십호(十號)의 하나, 부처님은 원만한 공덕을 갖추어 세상에서 가장 높으시므로 이렇게 부르며 석존(釋尊)이라고도 한다.
*납월팔일(臘月八日) ; 납월(臘月)은 음력으로 한 해의 맨 마지막 달을 이르는 말. 음력 12월 8일.
석가모니가 35세의 12월 8일 샛별이 뜰 무렵 중인도 마갈타국 니련하(河)가에 있는 보리수 아래에서 불도(佛道)를 이루던 날.
이 석가모니의 성도를 기념하기 위해 선원에서는 초하루부터 팔일 새벽까지 잠을 자지 않는 용맹정진(勇猛精進)을 한다. 납팔(臘八)이라고 줄여 쓰기도 한다. 일명 성도재일(成道齋日).
*새벽별 ; 샛별. 명성(明星). 새벽에 동쪽 하늘에서 밝게 빛나는 ‘금성(金星)’을 이르는 말. 석가모니(釋迦牟尼)께서 이 별이 돋을 때, 정각(正覺)을 이루었음.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지음(知音) ; ①음악의 곡조를 잘 앎. ②새나 짐승의 소리를 가려 잘 알아들음. ③마음이 서로 통하는 친한 벗을 이르는 말. 거문고의 명인 백아(伯牙)가 자신의 거문고 소리를 듣고 악상(樂想)을 잘 이해해 준 벗 종자기(鐘子期)가 죽자 자신의 거문고 소리를 아는 자가 없다고 하여 거문고 줄을 끊었다는 데서 유래한다. 『열자(列子)』에 나오는 말.
*지기(知己 알 지/자기 기) ; 자기(自己)의 속마음을 잘 알아주는[知] 참다운 벗. 지기지우(知己之友).
*백년해로(百年偕老 일백 백/해 년/함께 해/늙을 로) ; 부부가 되어 한평생 오랜 세월[百年] 잘 살면서 함께[偕] 늙음[老].
*상좌(上佐 윗 상/도울 좌) ; 윗사람을 도운다는 뜻. 곧, 한 스승의 제자를 일컬음.
*심지(心志) ; 마음속에 품은 뜻.
*황엽(黃葉) ; 버드나무의 누런 잎을 금(金)이라 하여 어린이에게 주어서 울음을 그치게 한 것. 부처님이 천상의 낙과(樂果)를 설하여 인간의 악을 그치게 함에 비유한 것.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 (曇無讖 譯) 제20권. 제9 영아행품(嬰兒行品).
*방편(方便 방법·수단 방/편할 편) ; ①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일시적인 수단으로 설한 가르침. 중생 구제를 위해 그 소질에 따라 임시로 행하는 편의적인 수단과 방법. 상황에 따른 일시적인 수단과 방법. ②교묘한 수단과 방법.
*근기(根機 뿌리 근/베틀 기) ;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는 중생의 소질이나 근성. 보통 근기의 차등을 상근기, 중근기, 하근기로 구분한다.
*횡설수설(橫說竪說 가로 횡/말씀 설/세로 수/말씀 설) ; 두서(頭緖)없이 이것저것 되는대로 지껄임.
*선방(禪房) ; ①참선(參禪)하는 방. ②선원(禪院).
*용맹정진(勇猛精進) ; 두려움을 모르며 기운차고 씩씩한 그리고 견고한 의지로 한순간도 불방일(不放逸)하는, 열심으로 노력하는 정진.
*가행정진(加行精進) ; 별도의 노력을 기울여서 하는 정진. 어떤 일정한 기간에 좌선(坐禪)의 시간을 늘리고, 수면도 매우 단축하며 정진하는 것.
*상(相) ; ①모습, 형태 ②특징, 특질 ③생각, 관념, 상(想)과 같음 ④종적을 남기고 싶다고 하는 생각.
*(게송) ‘일견명성몽변회~’ ; [선문염송(禪門拈頌)] (혜심 지음) 제1권 3칙 '오도(悟道)' 취암종(翠嵓宗) 게송 참고.
[참고] 나관중(羅貫中)의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에 있는 내용으로,
조조(曺操)가 장수(張繡)를 정벌할 때 행군 도중 물이 떨어져 병사들의 고통이 아주 심했는데, 이때 조조가 말채찍으로 앞을 가리키며 병사들에게 말하기를 “저 앞에는 넓은 매실나무 숲이 있는데, 그 매실은 아주 시고도 달아 우리 목을 축이기에 충분할 것이다. 잠시만 참고 힘을 내자.”
이 말을 들은 병사들은 매실의 신맛을 생각하고 입 안에 침이 돌아 갈증을 잊게 되었다 한다.

육조 시대 송(宋)의 유의경(劉義慶)이 지은《세설신어(世說新語)》에는 있는 내용으로,
진(晉)을 세운 사마 염(司馬炎)이 오(吳)나라를 공격할 때 길을 잘못 들어 헤매어 식수가 바닥이 났고, 물이 있는 곳을 찾을 수 없어 병사들은 갈증이 심하여 더 이상 나아간다는 것은 불가능할 정도였다.
이때 사마염은 문득 꾀를 내어 말하기를 “여러분 조금만 참고 가면 저 언덕 너머에 매화 숲이 있소. 그 곳에 가면 매실이 가지가 휠 정도로 매달려 있소.” 매실이란 말을 들은 병사들은 갑자기 입안에 침이 고여 갈증을 잊었다.
*장군죽비(將軍竹篦) ; 보통 죽비(竹篦)는 예불이나 참선 정진할 때 이 죽비를 손바닥에 쳐서 소리를 내어 시작과 끝을 알리는데 쓰는 40~50센티의 불교 용구인데, 장군죽비는 참선할 때 졸거나 자세가 흐트러진 수행자의 어깨를 쳐서 졸음을 쫓는 약 2m의 큰 죽비.
*경책(警策 깨우칠 경/채찍 책) ; 타이르고 채찍질하여 깨우치게 하는 것.
*입승(立繩) ; 선원(禪院)에서 선원의 규율과 질서를 다스리는 직책, 또는 그 일을 맡은 스님.
*게송(偈頌) ; 시(詩), 게(偈)와 송(頌) 모두 불교의 가르침을 싯구로 나타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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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기율(僧祗律) ; 마하승기율(摩訶僧祇律). 40권. 동진(東晉)의 불타발타라(佛陀跋陀羅), 법현(法顯) 공역. 마하승기부(摩訶僧祇部), 곧 대중부(大衆部)의 율장(律藏). 1권에서 35권까지는 비구계이고, 후반의 5권은 비구니계이다. 대중율(大衆律)이라고도 약칭한다.
*팔만사천(八萬四千) : 법수(法數)에는 이 말이 퍽 많다。그것은 중생의 망상이 벌어져 나가는 것을 자세히 분석하면 팔만 사천 갈래가 된다고 한다。그러므로 망상을 따라 일어나는 악마의 수효도 팔만 사천이요, 망상을 다스리는 법문도 팔만 사천이다.
또한 인도에서는 많은 수효를 말할 때에는 이 말을 쓰는 수가 가끔 있다。이것을 줄여서 팔만이라고만 하기도 한다.
*묘법(妙法) ; ①심원미묘(深遠微妙)한 도리. 특별한 진리. ②바른 이법(理法). ③뛰어난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고귀한 가르침.
*교외별전(敎外別傳) : 부처님께서 말씀으로써 가르친 바를 모두 교(敎)라 하는데, 교 밖에 따로 말이나 글을 여의고(不立文字) 특별한 방법으로써 똑바로 마음을 가리켜서 성품을 보고 대번에 부처가 되게 하는(直指人心 見性成佛) 법문이 있으니 그것이 곧 선법(禪法)이다. 교는 말로나 글로 전해 왔지마는 선법은 마음으로써 전하여 왔으므로 이른바 삼처전심(三處傳心) 같은 것이다.
[참고] 선가귀감(용화선원 刊) p28, p34에서.
世尊이  三處傳心者는  爲禪旨요  一代所説者는  爲教門이라. 故로  曰,  禪是佛心이요  教是佛語니라


세존께서 세 곳에서 마음을 전하신 것은 선지(禪旨)가 되고, 한 평생 말씀하신 것은 교문(教門)이 되었다。그러므로 선(禪)은 부처님의 마음이요, 교(教)는 부처님의 말씀이니라.


是故로  若人이  失之於口則拈花微笑가  皆是教迹이요. 得之於心則世間麤言細語가  皆是教外別傳禪旨니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말에서 잃어버리면, 꽃을 드신 것이나 빙긋이 웃은 것(拈花微笑)이 모두 교의 자취(教迹)만 될 것이요. 마음에서 얻으면, 세상의 온갖 잡담이라도 모두 교 밖에 따로 전한 선지(教外別傳禪旨)가 되리라.
*삼처전심(三處傳心) ; 세존이 가섭(迦葉)존자에게 마음-선(禪)의 등불을 따로 전했다는 세 곳.
세 곳이란 다자탑 앞에서 자리를 절반 나누어 앉으심(다자탑전분반좌 多子塔前分半座)이 첫째요, 영산회상에서 꽃을 들어 보이심(영산회상거염화 靈山會上擧拈花)이 둘째요, 사라쌍수 아래에서 관 속으로부터 두 발을 내어 보이심(사라쌍수하곽시쌍부 沙羅雙樹下槨示雙趺)이 세째이다.

*다자탑전분반좌(多子塔前分半座) : 다자탑 앞에서 자리를 절반 나누어 앉으심.
다자탑(pahuputraka)은 중인도 비사리(毘舍離Vaisali)성 서북쪽에 있다。이 탑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전설이 있는데, 그 중 하나는 어떤 장자(長者)가 산에 들어가서 도를 닦아 이룬 뒤에, 그 아들 딸 육십 명이 아버지가 공부하던 곳을 기념하기 위하여 탑을 쌓았다고 한다.
부처님께서 그 곳에서 설법하실 때에 가섭존자가 누더기를 걸치고 뒤늦게 참석하자, 여러 제자들이 그를 낮보았다。이에 부처님께서 앉으셨던 자리를 나누어 두 분이 함께 앉으셨다 한다.

*영산회상거염화(靈山會上擧拈花) : 영산회상에서 꽃을 들어 보이심.
범어의  Grdhrakuta를 음대로 써서 기사굴산(耆闍崛山)이라 하고, 뜻으로 번역하여 영취산(靈鷲山) • 취봉(鷲峰) 또는 영산(靈山)이라고만 한다。그 산 모양이 독수리 같기 때문이라고도 하고, 그 산 위에 독수리가 많았던 탓이라고도 한다。이 산은 중인도 마갈타(摩竭陀 Magadha)의 서울 왕사성(王舍城 Raja-grha) 동북쪽 십 리에 있다.
부처님께서 어느 날 이 곳에서 설법을 하시는데 하늘에서 꽃비가 내렸다。부처님은 그 꽃송이 하나를 들어 보이니, 백만 대중이 모두 무슨 뜻인지 몰라서 어리둥절하는데, 가섭존자만이 빙그레 웃었다。이에 부처님은 『바른 법 열반의 묘한 마음을 가섭에게 전한다』고 선언하셨다 한다.

*사라쌍수하곽시쌍부(沙羅雙樹下槨示雙趺) : 사라쌍수 아래에서 관 속으로부터 두 발을 내어 보이심.
부처님께서 북부 인도의 구시라(拘尸羅 Kusinagara)성 서북쪽으로 흐르는 발제하(跋提河 Ajitavati) 물가, 사라수 여덟 대가 둘씩 마주 서 있는 사이에 침대를 놓게 하고 열반에 드시니, 그 숲이 하얗게 변하였다。그리하여 학의 숲(鶴林, 鶴樹)이라고도 하게 되었다.
부처님의 몸은 금으로 만든 관에 모시고 다시 구리로 지은 덧곽에 모셔 두었는데, 먼 곳에 갔다가 부처님이 열반하신 지 7일 만에 당도한 가섭존자가 부처님의 관을 3번 돌고 3번 절하매, 관곽 속으로부터 두 발을 내어 보이셨다 한다.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간화선(看話禪) ; 화(話)는 화두(話頭)의 준말이다. 간화(看話)는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을 본다[看]’는 말로써,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이 화두를 관(觀)해서, 화두를 통해서 확철대오하는 간화선을 전강 조실스님과 송담스님께서는 ‘최상승법(最上乘法)’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고 말씀하신다.
*면목(面目 낯 면/눈 목) :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의 성품.
*역대조사(歷代祖師) ; 석가세존(釋迦世尊)으로부터 불법(佛法)을 받아 계승해 온 대대의 조사(祖師).
*법(法) : [범] dharma [파] dhamma 음을 따라 달마(達磨•達摩) 또는 담무(曇無)로 써 왔다。온갖 것을 총칭하여 이르는 말이니, 온갖 일과 모든 물질이며, 온갖 이치와 옳은 것(是), 그른 것(非), 참된 것(眞), 거짓된 것(妄)이 모두 이 ‘달마’에 들어 있다。그러나 흔히 부처님이 가르친 교리만을 법이라고 한다.
*계계승승하다(繼繼承承-- 이을 계/받들·이을 승) ; ①(자손이)여러 대를 이어 가다. ②(다른 사람이)먼저 사람이 하던 일을 이어받다.
*사부대중(四部大衆) ; 불문(佛門)에 있는 네 가지 제자. 곧 비구(比丘), 비구니(比丘尼), 우바새(優婆塞), 우바이(優婆夷)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참고] 우바새 : upasaka의 음역. 속세에 있으면서 불교를 믿는 남자.(같은 말=靑信士,靑信男,信男,信士,居士,近事男,近善男,善宿男) 원래의 말뜻은 모시는 사람. 받들어 모시는 사람. 출가수행자를 모시고, 신세를 지므로 이렇게 말한다.
우바이 : upasika의 음역. 속세에 있으면서 불교를 믿는 여자. (같은 말=靑信女,近事女,近善女,近宿女)
*득도(得道) ; 득도(得度). ①불교의 진리[道]를 체득(體得)하는 것. 깨달음. 깨달음을 이룸. ②제도(濟度)함을 얻는[得] 것. 생사윤회의 세계에서 깨달음의 피안(彼岸)으로 건너감[度]. 또는 다른 사람을 이끌어서 건네주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을 일으킴[發].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분심(憤心) : 억울하고 원통하여 분한 마음.
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도인들은 진즉 확철대오를 해서 중생 제도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왜 여태까지 일대사를 해결 못하고 생사윤회를 하고 있는가. 내가 이래 가지고 어찌 방일하게 지낼 수 있겠는가. 속에서부터 넘쳐 흐르는 대분심이 있어야. 분심이 있어야 용기가 나는 것이다.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종파(宗派) ; 한 종교에서 교리나 의식의 차이로 나뉜 큰 갈래.
*선지식(善知識) ; ①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좋은 지도자. 훌륭한 지도자. 바르게 이끄는 사람. ②좋은 벗. 마음의 벗. 선우(善友).
*도(道) ;  ①깨달음. 산스크리트어 bodhi의 한역. 각(覺). 보리(菩提)라고 음사(音寫). ②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그 방법. ③무상(無上)의 불도(佛道). 궁극적인 진리. ④이치. 천지만물의 근원. 바른 규범.
*본래면목(本來面目 밑 본/올 래/낯 면/눈 목) ; ①자기의 본래(本來) 모습(面目). ②자신이 본디부터 지니고 있는,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의 성품.
본지풍광(本地風光), 본지고향(本地故鄉), 본분전지(本分田地), 고가전지(故家田地), 천진면목(天眞面目), 법성(法性), 실상(實相), 보리(菩提), 부모에게서 낳기 전 면목(父母未生前面目), 부모에게서 낳기 전 소식(父母未生前消息) 등이 모두 같은 맥락에서 쓰이는 말이다.
*(게송) ‘월마은한전성원~’ ; [관음예문(觀音禮文)]에 나오는 게송. 舒펼(서).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 ; 줄여서 삼천세계(三千世界)라고도 함. 온갖 세계. 수없이 많은 세계. 하나의 우주 전체. 다할 수 없이 넓은 우주. 하나의 삼천세계(三千世界)가 하나의 부처님이 교화하는 범위라 한다.
*원(願) ; 소원(所願). 바라고 원함. 또는 바라고 원하는 일.
*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 법/문 문) :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도래(到來 이를 도/올 래) ; 어떤 기회나 시기가 닥쳐옴.
*시주(施主 베풀 시/주인 주) : ①스님에게 혹은 절에 돈이나 음식 따위를 보시하는 일. 또는 그런 사람. ②남에게 가르침이나 재물을 아낌없이 베푸는 사람. 단월(檀越 dana-pati)이라고도 함.
*십상팔구(十常八九) ; 열에 여덟이나 아홉 정도로 거의 예외가 없음.
*세세생생(世世生生) ; 많은 생애를 거치는 동안. 태어날 때마다. 세세(世世)토록.





----------------(3/4)

* ; ①‘머슴(이전에, 부농이나 지주에게 고용되어 그 집의 농사일이나 잡일을 해 주고 대가를 받는 사내)’의 사투리. ②그날그날 품삭과 음식을 받고 일을 하는 품팔이 일꾼.
*도반(道伴) ; 함께 불도(佛道)를 수행하는 벗. 불법(佛法)을 닦으면서 사귄 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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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뭣고(是甚麼 시심마) :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 왔다.
*깨달음 ; 각(覺). 법(法)의 실체와 마음의 근원을 깨달아 앎. 지혜의 체득.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법(法) ; (산스크리트) dharma, (팔리) dhamma의 한역(漢譯). ①진리. 진실의 이법(理法). ②선(善). 올바른 것. 공덕. ③부처님의 가르침. ④이법(理法)으로서의 연기(緣起)를 가리킴. ⑤본성. ⑥의(意)의 대상. 의식에 드러난 현상. 인식 작용. 의식 작용. 인식 내용. 의식 내용. 마음의 모든 생각. 생각.
*소소영령(昭昭靈靈) ; 한없이 밝고 신령함. 소소(昭昭)도 영령(靈靈)도 함께 밝은 뜻. 밝은 모양. 진여(眞如), 법성(法性), 불심(佛心)을 의미하는 말.
*관능(官能 지각하는 기관 관/능할 능) ; ①생물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기관(器官)의 기능(機能). ②오관(五官 눈,귀,코,혀,피부) 및 감각의 작용.
*육도(六途, 六道) ; 중생이 선악(善惡)의 업(業 : 의지에 기초한 행위)에 의하여 생사 윤회하는 여섯 가지의 세계. 지옥도(地獄道), 아귀도(餓鬼道), 축생도(畜生道), 아수라도(阿修羅道), 인간도(人間道), 천상도(天上道)가 있다.
*무량겁(無量劫) ; 헤아릴 수 없는 오랜 시간이나 끝이 없는 시간. 劫과 刧는 동자(同字).
*순일무잡(純一無雜 순수할 순/하나 일/없을 무/섞일 잡) ; 대상 그 자체가 순일(純一)해 전혀 이질적인 잡것의 섞임[雜]이 없음[無].
*고인(古人) ; 불보살(佛菩薩)님을 비롯한 역대조사(歷代祖師), 선지식을 말한다.
*(게송) ‘황매산정춘설하~’ ; 송담 스님 오도송(悟道頌).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