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대사'에 해당되는 글 14건

  1. 2016.08.01 §(706) (게송)월원불유망~ / 정진은 ‘한 생각을 어떻게 잡드리 하냐?’ 가장 중요 / 최상승론 / 참선은 생사속에서 영원을 살아가는 길 / (게송)운주천부동~.
  2. 2016.04.17 §(480) (게송)기래긱반냉첨의~ / 일대사(一大事) / 大事未明 如喪考妣 大事已明 亦如喪考妣 / 오후보림(悟後保任) / (게송)만리산하평사장~ / 의심관.
  3. 2015.06.21 §(세등39) (게송)황앵상수일지화~ / 무상설법(無上說法) / 일초직입여래지 / 선용기심(善用其心) / 화두 의단타파 확철대오하는 이 도리를 부처님을 모시고 증명합니다.
  4. 2015.03.26 §(118) (게송)법법본래무소주~ / 참마음을 일으켜 공부를 끝장내라 / 조실스님 꿈에 지옥고 광경 / 3가지의 도에 나아가는 첩경(捷徑)과 5가지의 철저한 바른 믿음.
  5. 2015.03.11 §(772) (게송)정종소식몰자미~ / 왜 출가를 했는가? / 공부는 ‘한 생각을 어떻게 단속하느냐’에 달려있다 / (게송)수행막대빈모반~ / 수행은 남이 대신해 줄 수 없다.
  6. 2015.01.06 §(616) (게송)남북동서무정착~ / 장판때 / (게송)이인유밀불수저~ / 수행자는 코뿔소의 뿔처럼 외롭게 지내라 / 자각(自覺) 각타(覺他) 각행원만(覺行圓滿)—수행자목표.
  7. 2014.11.01 §(251) (게송)사중구의원~ / 지금 이 찰나! '한 생각' 돌이켜서 ‘이뭣고?’ / 인생은 나그네, 세상만사 뜬구름 / 중생이 본래 부처다 / 최상승법은 언제나 우리 가까이 있다.
  8. 2014.08.19 §(410) 보왕삼매론십대애행(寶王三昧論十大礙行)—장애(障礙) 속에서 도를 성취하는 법 / 참회(懺悔).
  9. 2014.07.02 §(436) 만공 스님, 금봉 스님, 고봉 스님 / 임종게(臨終偈), 후사(後事) / 우리 용화사는 영원히 전강 스님을 조실로 모시고 공부를 해가자.
  10. 2014.03.12 §(세등68) (게송) 구명소일모선성~ / ‘깨달음’이라 하는 것은 알고 모르는데 있는 것이 아니여 / 조백(糟魄).
정진(精進) 수행2016. 8. 1. 19:47

§(706) (게송)월원불유망~ / 정진은 ‘한 생각을 어떻게 잡드리 하냐?’ 가장 중요 / 최상승론 / 참선은 생사속에서 영원을 살아가는 길 / (게송)운주천부동~.

어떻게든지 해서라도 알뜰하게 착실히 정진을 할라고 마음을 먹은 것은 발심(發心)한 사람이면 다 그런 마음을 일으킬 수가 있습니다마는 ‘육체를 고통을 줌으로해서 정진에 더 유익하게 하리라’ 이러한 생각은 썩 지혜롭지 못한 생각이라고 생각됩니다.


정말 진실한 정성이 마음으로부터서 일어나면 저절로 신심과 분심이 한목 일어나서 화두를 들라고 하지 안 해도 저절로 터억 화두가 드러난다.


어떻게 하면 생사 속에서, 성주괴공 속에서, 생주이멸 속에서 영원을 살아가려는 길이 무엇이냐? 영원함을 깨닫는 방법이 무엇이냐? 이것이 바로 부처님의 법문(法門)이요, 조사(祖師)의 법문이요. 바로 이 화두라고 하는 것이 그것을 해결하는 방법인 것입니다.


알 수 없는 의심! 꽉 맥혀서 알 수 없는 의심을 관(觀)해 나가야지 알아 들어가는 것이 있거나, 보여지는 것이 있거나, 사량분별로 해 가는 것은 백만겁을 해도 그것은 바른 깨달음에 도달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 사바세계(娑婆世界)에 이 속에서도 정법을 믿는 여러 도반들을 생사 무상 속에서 화두를 들고 착실히 하루 하루를 지내간다면 거기에는 언제나 부처님이 출현을 하신 것이고, 거기에는 항상 조사 스님이 우리를 위해서 눈에 안 보이는 채찍질을 해 주시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생로병사 속에서 생사가 없는 영원을 살아가는 길이 우리 앞에는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송담스님(No.706)—2006년(병술년) 동안거 결제 법어(06.12.05) (용706)

(1) 약 20분.

(2) 약 21분.


(1)------------------

월원불유망(月圓不逾望)하고  일중위지경(日中爲之傾)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정전백수자(庭前柏樹子)는  독야사시청(獨也四時靑)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오늘 결제일을 맞이해서 수원 용주사 중앙선원, 위봉사 위봉선원, 승련사 승련선원, 대전 세등선원 또 복전선원, 회룡사 선원, 그러고 각지 토굴 사암에서 비구·비구니·사미·사미니·청신사·청신녀, 형제 자매 도반 여러분들이 용화사 법보선원에 모여서 결제(結制) 법요식을 갖게 되었습니다.

금방 결제 법어는 전강 대종사(田岡大宗師) 조실 스님의 녹음법문(錄音法門)을 통해서 우리가 이 결제 중에 어떻게 정진을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 감동 깊게 법문을 들었습니다.
산승이 더이상 여러분에게 할 말씀은 없습니다마는 기왕 우리 도반들이 이렇게 모이셨으니 노바심(老婆心)으로 몇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법문을 듣고 또 결제에 들어가면 누구를 막론하고 ‘이번 한 철은 정말 이 일대사(一大事)를 위해서 열심히 정진(精進)을 하리라’ 다 다짐은 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 다짐하는 그 마음가짐은 대단히 좋으나 ‘식사를 좀 적게 먹어서 혼침(昏沈)을 좀 막으리라, 먹고 싶은 대로 잔뜩 먹으면 졸음이 더 올테니까 될 수 있으면 적게 먹고 졸음을 쫒으리라’ 이런 생각을 낼 수도 있을 것이고,
방선(放禪) 시간이라도 말을 하다 보면 자연히 잡담이 나오게 되고, 잡담을 하다 보면 이런 저런 생각이 일어날 수도 있을 테니까 아주 입을 꽉 닫거나, 입을 아주 묵언을 하지 않드라도 ‘될 수 있으면 말을 적게 하리라’ 이러한 다짐을 하실 수도 있을 것입니다.

대단히 좋은 생각이고 어떻게든지 해서라도 알뜰하게 착실히 정진을 할라고 마음을 먹은 것은 발심(發心)한 사람이면 다 그런 마음을 일으킬 수가 있습니다마는 ‘육체를 고통을 줌으로해서 정진에 더 유익하게 하리라’ 이러한 생각은 썩 지혜롭지 못한 생각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육체라 하는 것은 기계와 같아서, 아주 정밀한 기계와 같아서 적당한 기름을 쳐줘야 하고 그 기계를 적당하게 지혜롭게 조정을 해야 그 기계가 잘 돌아가고 그 기계의 목적을 달성을 해서 무슨 물품을 잘 생산해 낼 것입니다.
이 육체도 과식하고 너무 영양을 많이 섭취하고 그래서는 안되겠지마는 적당하니 먹고 잘 저작(咀嚼)을 해서 먹고 그래야지, 잠도 최소한도로 잘 만큼 자 주어야지 잠을 억지로 안 자 놓으면 그 이튿날 정진을 할 때 정진 중에 자꾸 졸음에 빠져가지고 오히려 성성(惺惺)하게 화두가 잘 안 들릴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참으로 정진을 잘할 수가 있느냐?
용을 쓰고, 눈썹을 찌푸리면서 용을 쓰고 그렇게 하는 것이 그것이 올바른 정진이 아니고 자세는 바르게 하되 너무 용을 써서는 아니된 것입니다.

이 자리에 모이신 분은 다 구참(久參) 스님네들도 많이 계시고 구참 청신사 청신녀도 계실 것입니다마는 이 자리에는 처음으로 나온 승가대학을 졸업하고 처음으로 발심을 해서 나오신 분도 상당수 있기 때문에 초학자(初學者)들을 위해서 이런 노바심절(老婆心切)에서 말씀을 드린 것이니 그렇게 이해하시를 바랍니다.

해태(懈怠)에 떨어지지 아니해야 그것이 정진이고, 해태의 반대말이 정진인 것입니다.
정진이라 하는 것 용을 쓰고, 밥을 안 먹고, 잠을 안 자고 송곳으로 무릎을 찌르면서 혼침을 졸음을 쫓고 한 모다 그런 것도 한 방편이 될 수가 있겠습니다마는 진정한 정진이라 하는 것은 지나치게 육체를 들볶고 그러한 것이 아닙니다.

공양(供養)하는 시간에 잘 씹어서 적당히 공양을 하되 공양을 씹으면서도 떠억 화두(話頭)를 잡드리 하고, 소지(掃地)를 할 때에도 화두를 들고 잡드리를 하고, 포행을 할 때에도 화두를 들고 잡드리 하고,
일체 잡담 쓸데없는 말하는 데에 참섭(參涉)은 아니허되 다른 사람이 말을 하거나 말거나 자기가 거기에 끌려들어가지 아니하면 되는 것이지, 남이 말하고 남이 하는 것에 대해서 구태여 시비를 일으키고 그럴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과거에 조사(祖師) 스님네 어록(語錄)을 보면 3일만에도 깨달은 분도 있고, 7일에 깨달은 분도 있고, 백일에 깨달은 분도 있고, 3년에 깨달은 분도 있고, 10년에 깨달은 분도 있어서 이런 것은 과거에 전생부터서 어떻게 닦아왔느냐 그런 것도 작용이 되려니와,
금생에 어떻게 정진을 해 왔으며 어느 선지식의 지도하에 했느냐, 어떠한 도반들을 만나서 정진을 했느냐, 어떠한 상황에서 어떻게 정진을 했느냐, 모다 그런 것들이 다 복합적으로 작용이 되어가지고 그래가지고 일대사(一大事)를 해결하는 것입니다마는.

과거에 어느 분이 그렇다고 해서 ‘자기도 그와 똑같이 해서 단시일(短時日) 내에 요절을 내리라’ 이러한 생각은 어리석은 생각이라고 됩니다.
날짜야 시간이야 몇 달이 걸리건, 몇 년이 걸리건 그것이 크게 문제가 되지 아니하고, 당장 이 철 또는 오늘 또는 당장 이 시간, 이 한 생각을 어떻게 잡드리 하느냐 그것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올바르게 잡드리 하면 그렇게 해서 하루, 이틀, 한 달, 두 달 그렇게 해서 석 달 뒤에 해제를 맞이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석 달이 어떻게 한 생각 한 생각을 잡드리 했느냐가 그것이 중요한 거지, 시간을 그렇게 크게 문제삼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오조 홍인(五祖弘忍)대사의 법문에 ‘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조사들은 다 일대사를 해결했는데 나는 왜 오늘날까지 생사 문제를 해결을 못했느냐? 이런 데에 대한 신심(信心)과 분심(憤心)에 대해서, 그리고 화두를 타고 정진을 한 사람은 의심(疑心)이, 자기 마음으로부터서 그런 문제를 해결하리라고 하는 정성심(情誠心)이 일어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정성심이 마음으로부터서 일어나지 아니하면, 속마음으로부터서 일어나지 아니하면 진실한 발심이 아니고 진실한 분심이 아닌 것입니다.
정말 진실한 정성이 마음으로부터서 일어나면 저절로 신심과 분심이 한목 일어나서 화두를 들라고 하지 안 해도 저절로 터억 화두가 드러난다. 이러한 오조 스님이 직접 화두란 단어는 사용하지 아니했지마는 그러한 법문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법문 끝에 ‘다맛 해어진 옷을 입고 거친 음식을 먹고 요연(了然)히 수본진심(守本眞心)을 하되 양치불해어(佯癡不解語)하면—양치(佯癡)라 하는 것은 ‘거짓 양(佯)’자, ‘어리석은 치(癡)’자 양치입니다.
‘거짓 양(佯)’자, ‘병들 병(病)’자 양병(佯病)이라 하면 사실은 병이 안 났는데 병이 난 것처럼 거짓 꾀병을 앓는 것을 양병이라 하는데, 실지는 바보도 아니고 어리석지도 않지마는 바보 노릇을 하는 것입니다. 어느 정도 바보 노릇을 하냐 하면은 말귀를 못 알아들은 것처럼 바보 노릇을 하라 이것입니다.

선방에 와 가지고 똑똑한 체 하고 잘난 체 하고 그래가지고 시비(是非)를 하고 그래서 옆에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고 대중을 소란케 하고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양치(佯癡)가 아니라 진짜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선방에 와서는 ‘내가 과거에 좋은 훌륭한 대학을 나왔거나, 과거에 무슨 자랑할만한 경력이 있거나 무슨 말을 잘하거나 외국어를 잘하거나, 수단이 있어서 무슨 일을 잘 처리하고, 무슨 재주가 있어서 뭣을 그림이나 글씨를 잘 그리고, 물건을 잘 만들고...’ 그런 생각을 다 버리고, 또 출가한 뒤에 선방에 나온 지가 여러 철이 되어서 구참이 되거나 그런 생각도 다 버리고,
오직 말귀도 못 알아들은 바보가 되어 가지고, 거짓 바보가 되어가지고 하루 하루를 그렇게 지내고 한 달 한 달을 그렇게 지내서, 그러면서 속으로는 떠억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를 거각(擧却)을 해서 퍼뜩 잊어버리면 또 챙기고, 또 놓치면 또 챙기고 해서, 그렇게 해서 누구하고 잡담 할 겨를도 없고.

밥이 맛있거나 없거나 반찬이 맛이 있거나 말거나, 밥이면 밥, 찰밥이면 찰밥, 국수면 국수, 라면이면 라면, 그저 원주 별좌 공양주가 정성껏 해다 올리면 그저 죽비(竹篦)에 따라서 공양을 들되 숟갈을 들고 밥을 뜨고, 저분으로 반찬을 들고 한 것이 이것이 전체가 화두를 드는 의심속에서 그렇게 하되,
어떻게 밥을 먹었는지 말았는지, 밥이 맛이 있는지 없는지, 그렇게 한 철을 하루 하루를 지내면 반드시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해서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어서 마침내는 의단을 타파(打破)하고 자기의 본각(本覺)을, 본성(本性)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거짓 바보 노릇을 하면서, 말귀도 못 알아들은 바보 노릇을 하면서 이렇게 정진(精進)을 해야 기력(氣力)은 적게 소모하고서도 정진에 크게 공(功)이 있으니 이렇게 정진한 사람을 과연 대정진인(大精進人)라고 할 수가 있는 것이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오조 스님 당시에 화두라고 하는 그 간화선법(看話禪法)은 없었으나 그때 화두라고 하는 것이 있었다면 오조 스님께서는 아까 전강 조실 스님께서 말씀하시듯 또 산승(山僧)이 지금 말한 것처럼 화두를 어떻게 거각을 하라고 분명히 말씀을 하셨으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이렇게 정진을 한다면 석 달이 어떻게 지나갔는 모르는 사이에 석 달이 지나가서 정말 정진하는 사람으로서의 기틀이 석 달을 지내고 나면 자리가 잡혀 나갈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내가 오늘 부탁을 드리는 것은 이런 마음가짐으로 정진을 하시기를 간곡히 부탁을 하고.(처음~19분44초)

 

 

 



(2)------------------

또 그 선원에 주지 스님이나 선원장이나 또 삼직(三職) 스님네나 원주·도감·별좌·공양주·채공을 맡으신 그런 분들은 정말 선방 방부 들인 스님네가 구참인 되었건, 새로 나오신 신참이 되었건 어떤 분이 오셨거나 간에 반드시 ‘이 최상승법(最上乘法)에 의해서 생사 문제를 해결하려고 오신 견성성불(見性成佛) 하는 그 후보자가 오셨다—지금은 확철대오(廓徹大悟)를 못했다 하더라도 반드시 확철대오 해서 불법을 선양하고, 이 새로운 부처님이 탄생하실 그런 분들’이라 생각하고 정성을 다해서 잘 외호(外護)를 해 주시를 부탁을 하고,

그렇게 함으로 해서 그 선방이 정말 장애가 없을 뿐만 아니라 선신(善神), 불보살(佛菩薩)들이 항상 그 도량(道場)에서는 다 왕림하셔서 호념(護念)을 해 주실 것이고, 선신들도 다 외호를 잘해 주시리라고 믿습니다.

비록 전라도·경기도·충청도 이렇게 장소는 멀리 떨어져 있어도 그 선원마다 그러한 마음가짐을 가지고 외호 대중이나 정진하는 스님네가 그렇게 정진을 하신다면 바로 이 한 자리에 모여서 아까 이 법회가 시작하기 전에 몇 분 동안 우리가 죽비를 치고 입선(入禪)을 했습니다마는,
여러 멀리 떨어져 있는 도량에 계시더라도 우리가 시간 맞춰서 한 도량에서 조실 스님의 법문을 들으면서 불보살이 항상 호념해 주신 가운데에 그렇게 정진을 한다고 그런 마음가짐으로 지내시기를 바래고, 그런 마음가짐으로 지내면 반드시 우리는 어데서라도 한 자리에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됨으로 해서 우리는 한 사람도 낙오자가 없고, 탈선한 사람이 없고 그러기 위해서 결제(結制)날 이렇게 날씨도 춥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자리에 우리는 모이게 된 것입니다.

어찌 생각하면 교통도 위험하고 그러니 다 각기 있는 절에서 정진을 하지 이렇게 먼 데 오시지 말라고 그렇게 말씀을 드리고 싶지마는 그래도 도반들이 이렇게 모이고 보니—산승도 참 멀리서 모다 잘 정진을 하리라 결제도 잘 하리라 또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고, 그러나 이렇게 모여서 직접 여러분을 상면 하고 같이 조실 스님 법문을 듣고 또 산승이 이렇게 여러분께 간곡히 부탁을 드리게 되니 산승도 대단히 마음에 참 감격스럽고 결제하는 보람이 있습니다.

전강 조실 스님의 법문에 의해서 우리는 잘 한 철을 어떻게 정진을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 충분히 들었고, 산승이 또 조실 스님을 대신해서 여러분께 이렇게 부탁을 드리게 되니,
아까 월원불유망(月圓不逾望)이요, 달이 둥글어지면 보름달이 되면은 그날부터서 차츰차츰 적어져서 결국은 조각달이 되어가다가 결국은 없어지는 거고,
해가 아침에 동쪽에서 떠서 차츰차츰 올라와서 하늘 중천(中天)에 이르게 되면 그대로 중천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일 초 일 초 시간이 지내감에 따라서 차츰차츰 서쪽으로 기울어지는 것입니다.(日中爲之傾)

달과 해만 그런 것이 아니라 삼라만상(森羅萬象) 두두물물(頭頭物物)이 고대로 있는 것은 단 한 가지도 없습니다. 이 삼라만상 모든 것은, 세계에는 성주괴공(成住壞空)이 있어서 이루어지면은 잠시동안 머물러 있다가 차츰차츰 변해가지고 무너져서 결국은 언젠가는 없어져 버리는 거고,
우리의 육체도 부모로부터서 태어나면 조그만한 어린아이가 차츰차츰 젖을 먹고 밥을 먹고 커서 어른이 되고 사십 오십이 되면은 차츰차츰 장년(壯年)이 되어가지고, 오십 육십이 되면은 주름살이 생기고 흰머리가 나고 해서 눈도 침침해지고 귀도 어두워지게 되고 병이 나면은 결국은 죽게 됩니다. 한 사람도 늙지 않고 병들지 않고 죽지 않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니 우리의 마음은 어떻습니까?
무슨 생각이 일어나면 그 생각이 좋은 생각이건, 궂은 생각이건 간에 생주이멸(生住異滅)이—생각이 일어나면 잠시 그 생각이 있다가 다른 생각으로 옮겨가지고 결국은 그 생각은 꺼지고, 그리고 또 생각이 일어나면은 그 생각이 일어났다가 변해가지고 그 생각이 꺼지게 됩니다.

그런 것이 바로 무상(無常)한 것이요, 그러한 생각이 결국은 생사윤회(生死輪廻)가 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속에 우리는 현재 놓여있습니다.
그러한 속에 놓여 있으면서 우리는 생사(生死) 속에 있으면서 그 생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출가(出家)를 했고 불법을 믿고 오늘 이 자리에 모이셨습니다.

어떻게 하면 생사 속에서, 성주괴공 속에서, 생주이멸 속에서 영원을 살아가려는 길이 무엇이냐? 영원함을 깨닫는 방법이 무엇이냐?
이것이 바로 부처님의 법문(法門)이요, 조사(祖師)의 법문이요. 바로 이 화두라고 하는 것이 그것을 해결하는 방법인 것입니다.

화두라 하는 것은 글을 통해서 자기가 선택할 수도 있겠습니다마는 반드시 자기가 믿는 선지식(善知識)으로부터서 지시를 받아가지고 그 화두 하나를 가지고 참구(參究)해 나가는데,
아까 조실 스님께서 말씀하신 활구참선(活句參禪)과 사구참선(死句參禪), 활구와 사구는, 의리(義理)로 이론적으로 따져 들어가는 것은 그것이 아무리 교리적으로 따졌거나 철학적으로 따졌거나 따져 들어간 것은 그것은 사구(死句)라 하는 것입니다.

알 수 없는 의심, 따져들어가는 것이 없이 알 수 없는 의심으로만 ‘이뭣고?’면 ‘이뭣고?’ 판치생모(板齒生毛)면 판치생모, 정전백수자(庭前柏樹子)면 정전백수자,
‘이뭣고?’ 또 무자(無字) 화두를 하신 분은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판치생모를 하신 분은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알 수 없는 의심! 꽉 맥혀서 알 수 없는 의심을 관(觀)해 나가야지 알아 들어가는 것이 있거나, 보여지는 것이 있거나, 사량분별로 해 가는 것은 백만겁을 해도 그것은 바른 깨달음에 도달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발심해서 처음 선방에 나온 신참(新參) 학자는 이 점에 대해서 각별히 유의를 해야 할 것입니다.
한번 화두를 탔으면 아무리 안되어도 고대로 해 나가고 또 해 나가야지, 화두가 잘 안된다고 해서 다른 화두를 들고 해 보거나 다른 스님네한테 가서 다른 화두를 타 가지고 해볼랴고 하는 그런 생각은 어리석은 생각이 되는 것입니다.

비유를 들어서 샘을 파는데 1m, 2m 파고들어가도 물이 안 나온다고 해서 또 자리를 옮겨서 또 파고, 또 파다가 몇 미터 파고들어가서 안되면 또 옮기고 하면 그 사람은 십 년을 판다 하드라도 수백 개의 우물을 판다해도 좋은 물은 얻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처음에, 그래서 샘을 팔 때에는 자리를 잘 잡아야 합니다. 자리를 잘 잡아서 꼭 물이 나올 수 있는 그 수맥(水脈)을 아는 그런 사람을 청해 가지고 어느 장소에다 파면 좋은 물이 나오겠는가?
그 자리를 딱! 잡았으면 5m, 10m, 20m, 50m, 100m라도 파고들어가서 마침내 암반이 나오면 그 암반을 뚫어야 그 속에서 가뭄을 타지 않고, 춘하추동 아무리 가뭄이 들더라도 증감이 없이 한결같은 좋은 물을 얻어서, 많은 좋은 물이면서 많은 물을 얻어서 몇 년을 먹어도 상관이 없고 몇십 년을 먹어도 변함이 없는 그런 물을 얻듯이 화두를 참구해서 참선을 하는 사람도 그러헌 진실하고 독실한 그런 발심과 원력(願力)으로 정진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참선이라 하는 것이 결코 수월하고 그런 것이 아닙니다. 정말 생명을 바칠만한 그러한 신심(信心)과 분심(憤心)과 의단(疑團)으로 해 가야, 이 삼요(三要)를 갖추어 나가야지 하나만 빠져도 그것이 이루어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달은 둥글어도 보름달도 기울어지고, 해는 정오가 지내면은 서쪽으로 기울고 그러되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는 독야사시청(獨也四時靑)이다. 정전백수자는, 뜰 앞에 잣낭구는 춘하추동 사시절에도 변함이 없이 홀로 푸르구나’ 이런 고조사(古祖師)의 게송(偈頌)을 읊었습니다.

이런 한결같은 마음으로 한 철 동안을 잘 정진하시기를 바래고, 이 자리에는 법문만 듣고 자기 토굴(土窟)에 들어가서 정진을 헐라고 하는 분도 있고, 가정에서 생활하면서도 정진헐라고 하는 그러한 신도님들도 계실 것입니다.
방부를 들이고 선방에 지내시거나, 결제에 참석을 하고 가정에서 직장에서 정진을 하거나 간에 이렇게 조실 스님의 법문과 산승의 간절한 간곡한 부탁드리는 말씀을 명심을 하고 지내시면 어데서 지내시거나 항상 우리는 한 선방에서 지내는 것이 되는 것이므로 그렇게 잘 지내시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백일기도 입제일입니다 백일기도에 동참하신 분들도 날마다 와서 기도는 못하시더라도 가정에서도 결제에 동참하셨고, 백일기도에 동참을 하셨으니 정진과 기도하는 마음으로 석 달 동안을 잘 지내시고 건강하게 그렇게 잘 지내시고 알뜰히 정진하시고 내년 정월 보름날 해제 때 또 이 자리에 건강한 모습으로 만나게 되기를 바래면서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운주천부동(雲走天不動)이요  주행안불이(舟行岸不移)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본시무일물(本是無一物)이라  하처기환비(何處起歡悲)리요
나무~아미타불~

운주천부동(雲走天不動)이요, 구름은 바람에 따라서 달아나고 있지마는 저 위에 하늘은 움직임이 없고,
주행안불이(舟行岸不移)라, 배는 물결따라 흘러가고 있지마는 양쪽 기슭은 움직임이 없구나.

본시무일물(本是無一物)인데  하처기환비(何處起歡悲)리요.
본래 이 한 물건도 없거늘 어느 곳에 기쁨과 슬픔을 일으키리요.
이조 때에 큰 도인이신 편양 언기(鞭羊彦機)선사의 게송입니다.

이 세상은 나라도 여당과 야당 모다 이 신문을 보신 분들은 다 아시겠지마는 모든 것이 한결같지 않고 어수선하고 복잡하고 온 세계가 도처에서 전쟁을 하고 사람이 죽고 모다 핵 실험을 하고 모다 복잡합니다.

그러나 이 자리에 모이신 여러 도반들은 뉴스를 듣거나 신문을 보거나 걱정이 안되신 바는 아니겠으나 그렇게 복잡하드라도 그 속에서 조실 스님 법문을 녹음으로라도 들으시면서 열심히 정진을 하고 자기가 맡은 바 일을 착실히 하고, 착실히 하는 가운데 화두를 들고 정진한다면,
구름이 지나가도 하늘이 움직임이 없고, 배가 지내가도 양쪽 기슭은 움직임이 없듯이 산천초목이 춘하추동에 따라서 잎이 피고 꽃이 피었다 가을이 되면 다 단풍이 져서 떨어지고 겨울이 되면은 흰눈이 내리드라도 잣나무는 푸르름을 지키듯이,

이 사바세계(娑婆世界)에 이 속에서도 정법을 믿는 여러 도반들을 생사 무상 속에서 화두를 들고 착실히 하루 하루를 지내간다면 거기에는 언제나 부처님이 출현을 하신 것이고, 거기에는 항상 조사 스님이 우리를 위해서 눈에 안 보이는 채찍질을 해 주시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생로병사 속에서 생사가 없는 영원을 살아가는 길이 우리 앞에는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19분44초~40분17초)(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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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월원불유망~’ ; [청허당집(清虛堂集)] (서산휴정, 西山 休靜) ‘草堂咏栢(초당영백, 초당에서 잣나무를 읊음)’ 게송 참고.
*결제(結制 맺을 결/만들·법도 제) ; 참선 수행하는 안거(安居)에 들어감. 하안거는 음력 4월 15일에 결제하며, 동안거는 음력 10월 15일에 결제한다.
*전강선사 ;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전강선사 녹음법문(錄音法門) ; 전강 스님께서 후학을 위해 참선법(參禪法)을 핵심으로 설한 법문이 700여 시간 분량이 녹음되어 있다. 이 중에는 『전강선사 일대기』 『몽산법어』 『초발심자경문』 등이 있다. 용화선원(녹음실)에서 전강선사 및 송담스님의 모든 법문을 mp3 파일로 구할 수 있습니다.
*노바심 ; 노파심(老婆心). 노파(老婆)가 자식·손자를 애지중지 하듯이, 스승이 수행자에게 나타내는 자비심. 친절심(親切心). 파심(婆心)이라고도 함.
*일대사(一大事) ; 매우 중요하거나 아주 큰 일. 삶과 죽음, 즉 생사(生死)의 일.
①부처님이 중생구제를 위해 세상에 나타난다고 하는 큰 일. 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목적. ②가장 중요한 일이란 뜻. 수행의 목적. 깨달음을 얻는 것. 인간으로서의 완성.
『법화경』 방편품에 ‘諸佛世尊, 唯以一大事因緣故, 出現於世  모든 부처님은 오직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 때문에 세상에 출현한다’라고 한 것에서 유래.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한 목적은 깨달음을 얻기까지의 과정을 보이고, 지혜를 발휘하여 모든 중생을 깨닫게 하고 구제하는 것’이다.
*정진(精進) : [범] Virya  음을 따라 비리야(毘梨耶 • 毘離耶) • 미리야(尾利也)라고도 쓴다。보살이 수행하는 육 바라밀(六波羅蜜)의 하나。순일하고 물들지 않는(純一無染) 마음으로 부지런히 닦아 줄기차게 나아가는 것이다。그러나 닦는 생각[能]과 닦는 것[所]이 있어서는 안 된다。함이 없이 하는 것이 정진이다.
*혼침(昏沈 어두울 혼/잠길 침) ; ①정신이 미혹(迷惑)하고 흐리멍덩함. ②좌선할 때 정신이 맑지 못하여 잠에 빠지거나 무기공(無記空)에 떨어진 상태.
*방선(放禪) ; 좌선을 하거나 불경을 읽는 시간이 다 되어 공부하던 것을 쉬는 일. 몸을 쉬는 가운데서도 마음은 항상 본참화두를 들고 있어야 한다.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을 일으킴[發].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저작(咀嚼 씹을 저/씹을 작) ; 음식물을 입에 넣고 씹음.
*성성(惺惺) ; ①정신이 맑고 뚜렷함. 정신을 차림. 총명함. ②화두에 대한 의심이 또렷또렷한 것.
* ; [주로 ‘용을 쓰다’의 구성으로 쓰여]무리하게 어떤 일을 해내려고 마음을 몰아 애써서 한꺼번에 내는 힘.
*구참(久參 오랠 구/참구할·참여할 참) ; 오랫동안에 걸쳐서 수행한 것. 오랫동안 선(禪)을 닦은 것. 또는 그런 사람. 불법(佛法)에 귀의한지 오래 되는 것. 초학(初學)의 상대어.
*초학자(初學者) ; ①처음 배우기 시작한 사람. ②배워 익힌 지식이 얕은 사람.
*노바심절(老婆心切) ; 노파(老婆)가 자식·손자를 애지중지 하듯이, 스승이 수행자에게 나타내는 자비심으로 지극히 친절(親切)하다는 뜻.
*해태(懈怠 게으를 해/게으를 태) : 게으름(행동이 느리고 움직이거나 일하기를 싫어하는 태도나 버릇).
*공양(供養) ; 절에서 음식을 먹는 일.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잡드리 ; ‘잡도리’의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그 대책.
*소지(掃地 쓸 소/땅 지) ; ①마당(땅)을 쓺. 또는 그 일을 맡은 사람. ②청소.
*참섭(參涉 참여할·간여할 참/건널·관계할 섭) ; 남의 일에 참견하여 아는 체함.
*요절을 내다 ; ‘어떤 뜻한 바 일을 끝마치다’의 강한 표현.
*오조 홍인대사 ;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신심(信心) : ①‘내가 바로 부처다’ 따라서 부처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요, 일체처 일체시에 언제나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공, 이 소소영령한 바로 이놈에 즉해서 화두를 거각함으로써 거기에서 자성불(自性佛)을 철견을 해야 한다는 믿음. ②‘올바르게 열심히 참선을 하면 나도 깨달을 수 있다’는 믿음. 진리에 대한 확신.
*분심(憤心) : 억울하고 원통하여 분한 마음.
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도인들은 진즉 확철대오를 해서 중생 제도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왜 여태까지 일대사를 해결 못하고 생사윤회를 하고 있는가. 내가 이래 가지고 어찌 방일하게 지낼 수 있겠는가. 속에서부터 넘쳐 흐르는 대분심이 있어야. 분심이 있어야 용기가 나는 것이다.
*의심(疑心) :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해 ‘알 수 없는 생각’에 콱 막히는 것.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이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수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이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또는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또는 ‘조주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바른 깨달음은 알 수 없는 의단, 알 수 없는 의심에 꽉 막힌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본참화두(本參話頭) ; 본참공안(本參公案).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정성심(情誠心 진심·성심·참마음 정/정성·진실 성/마음 심) ; 정성심(精誠心). 온갖 힘을 다하려는 진실되고 성실한 마음. 과거의 모든 부처님과 조사들은 다 생사 문제, 일대사(一大事)를 해결했는데, 무슨 연고로 나는 아직도 생사 문제를 해결 못했나? 진실로 온 힘을 다하여 이 나의 생사 문제를 해결해야겠다는 마음.
*요연히(了然- 밝을 요/그럴·명백할 연) ; 분명하고 명백하게.
*거각(擧却 들 거/어조사 각) ; 화두를 든다. ‘화두를 든다’ ‘화두를 거각한다’는 말은 자신의 본참화두를 들 때 알 수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그 알 수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觀照)하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 세등선원(No.09)—병진년 동안거 결제중 법어(76.12.26)에서.
화두를 먼저 이마로 의심을 하지 말고, 이 화두를—호흡하는데 배꼽 밑[丹田]에 숨을 들어마시면은 배가 볼록해지고 숨을 내쉬면은 배가 홀쪽해지는데, 그 배가 빵빵해졌다 홀쪽해졌다 허는 거기에다가 화두를 들고 ‘이뭣고~?’   ‘알 수 없는 생각’ 관(觀)하는 그것이 화두를 드는 것이여.
*죽비(竹篦 대나무 죽/빗치개·통발 비) ; 예불이나 참선 정진할 때 이 죽비를 손바닥에 쳐서 소리를 내어 시작과 끝을 알리거나, 공양할 때 공양순서를 알리는데 쓰는 불교 용구.
*의단독로(疑團獨露 의심할 의/덩어리 단/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가 홀로(獨) 드러나다(露).
*타성일편(打成一片) : ‘쳐서 한 조각을 이룬다’. 참선할 때 화두를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화두가 들려서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일체처 일체시에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만이 독로(獨露)한 순수무잡(純粹無雜) 경계.
*타파(打破) ;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그 화두(話頭)에 대한 의심(疑心)을 관조(觀照)해 나가는 것, 알 수 없는 그리고 꽉 맥힌 의심으로 그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그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더 이상 그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더 이상 의심이 커질 수 없고, 더 이상 깊을 수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내 가슴속이 가득 차고, 온 세계가 가득 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눌 때에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탈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잘 때에는 꿈속에서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에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큰 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그 항아리를 큰 돌로 내려치면은 그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를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참선법 A’ 에서]
*본각(本覺) ; 본래 갖추어져 있는 깨달음. 부처님의 본래의 깨달음.
*본성(本性) ; 상주불변한 절대의 진실성. 본래의 모습. 본체. 불성(佛性)
*간화선(看話禪) ; 화(話)는 화두(話頭)의 준말이다. 간화(看話)는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을 본다[看]’는 말로써,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이 화두를 관(觀)해서, 화두를 통해서 확철대오하는 간화선을 전강 조실스님과 송담스님께서는 ‘최상승법(最上乘)’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고 말씀하신다.
*산승(山僧) ; 스님이 자신을 겸손하게 일컫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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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직(三職) ; 주지(住持)를 돕는 세 직책. 곧 총무, 교무, 재무를 말함.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아 부처가 됨[成佛].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외호(外護) ; 불법(佛法)을 세상에 널리 퍼뜨리는데 힘이 되도록 수행하는 사람을 보호하는 것을 말한다. 신(身)·구(口)·의(意)를 보호하는 것을 내호(內護)라고 한다. 내호와 외호를 합하여 이호(二護)라고 한다.
*선신(善神) ; 불법(佛法)과 그것을 믿는 이들을 보호하는 신.
*도량(道場) : 사찰. [범] bodhimandala 도를 닦는 곳이란 말이다. 습관상 ‘도량’으로 발음한다.
*호념(護念) ; 불보살이 선행을 닦는 중생을 늘 잊지 않고 보살펴 주는 일.
*입선(入禪) ; 참선 수행(좌선)에 들어가는 것, 좌선(坐禪)을 시작하는 것. 참선(좌선)수행.
*중천(中天 속·한가운데 중/하늘 천) ; 하늘의 한가운데.
*삼라만상(森羅萬象) 두두물물(頭頭物物) ; 우주 사이에 벌여 있는 온갖 사물과 현상.
*성주괴공(成住壞空) : 세상의 모든 것은 크나 작으나 다 변화의 과정을 밟게 된다。곧 성립되어 가는 과정, 안정(安定)하여 진행하는 과정, 쇠퇴하여 가는 과정, 멸망하여 없어지는 과정이 반드시 있게 된다。모든 물질도, 우리 몸도 사회도, 국가도, 세계 전체도 다 그렇게 된다。이것을 성주괴공(成住壞空)이니, 생주이멸(生住異滅)이니, 생로병사(生老病死)니 하는데, 그 원인은 우리의 마음 속에 생각이 쉴 새 없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기 때문이다.
*무상(無常) ; 모든 현상은 계속하여 나고 없어지고 변하여 그대로인 것이 없음. 온갖 것들이 변해가며 조금도 머물러 있지 않는 것. 변해감. 덧없음. 영원성이 없는 것.
세상의 모든 사물이나 현상들이 무수한 원인(因)과 조건(緣)의 상호 관계를 통하여 형성된 것으로서 그 자체 독립적인 것은 하나도 없고, 인연(因緣)이 다하면 소멸되어 항상함[常]이 없다[無].
*생사윤회(生死輪廻 날 생/죽을 사/바퀴 윤/빙빙돌 회) : 사람이 어리석음[無明]으로 인한 번뇌와 업에 의하여 삼계육도(三界, 六途)에서 났다가[生] 죽고[死] 났다가 죽는 것이 바퀴[輪]가 돌듯이[廻] 반복함.
[참고] 송담스님(No.389)—89년(기사년) 부처님오신날 법어(89.05.12)에서.
중생의 번뇌심(煩惱心) ‘한 생각’ 일어날 때 새로 태어난 것이고, 그 번뇌가 꺼질 때 또 죽는 것, ‘우리의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한 것이 바로 생(生), 사(死)인 것입니다.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한 그것이 원인이 되어서 생사윤회를 하는 것이어서, ‘이 몸뚱이 살아있으면서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하는 거 그 자체가 바로 생사심(生死心)이요, 생사심이 바로 생사윤회(生死輪廻)인 것입니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천 만의 생각이 일어났다 없어지고, 생각이 일어났다 없어집니다.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을 모르는 사람은 죽었다 깨어날 때마다 업(業)만 더하고, 점점 고통이 심한 윤회를 거듭할 것입니다마는, 활구참선법을 믿는 사람은 한 생각이 일어날 때 ‘이뭣고?’ 자신의 본참화두(本參話頭)를 드는 것입니다.
‘이뭣고?’ 한마디 본참화두를 거각(擧却)할 때, 우리의 마음속에 탐진치(貪瞋痴) 삼독(三毒)을 물리치고, 업장소멸이 되고, 진리를 향해서 나아가게 됩니다.
*삼계(三界) ; 불교의 세계관으로 중생이 왕래하고 거주하는 세 가지 미혹한 세계. 중생이 태어나서 죽어 윤회하는 영역으로서의 세개의 세계. 중생의 마음과 생존 상태를 세 단계로 나눈 것. 욕계(欲界), 색계(色界), 무색계(無色界)를 이른다.
*육도(六途, 六道) ; 중생이 선악(善惡)의 업(業 : 의지에 기초한 행위)에 의하여 생사 윤회하는 여섯 가지의 세계. 지옥도(地獄道), 아귀도(餓鬼道), 축생도(畜生道), 아수라도(阿修羅道), 인간도(人間道), 천상도(天上道)가 있다.
*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 법/문 문) :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조사(祖師) : ①1종1파의 선덕(先德)으로서 후세 사람들의 귀의 존경을 받는 스님。 보통은 1종1파를 세운 스님을 부르는 말。 ②선가에서는 달마스님을 말한다。 ③불심종(佛心宗)을 깨달아서 이를 전하는 행(行)과 해(解)가 상응(相應)하는 도인.
*선지식(善知識) ; ①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좋은 지도자. 훌륭한 지도자. 바르게 이끄는 사람. ②좋은 벗. 마음의 벗. 선우(善友).
*참구(參究 헤아릴 참/궁구할 구) ; ①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드는 것. ②선지식의 지도 아래 참선하여 화두(공안)을 꿰뚫어 밝히기 위해 집중함. 화두 의심을 깨뜨리기 위해 거기에 몰입함.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 왔다.
*판치생모(板齒生毛) ; 화두(공안)의 하나.
어떤 스님이 조주 스님께 묻되, “어떤 것이 ‘조사서래의’입니까?  (如何是祖師西來意)”하니 답하시되,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하셨다. 즉, 「어떤 것이 달마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판치에 털이 났느니라.」라고 하는 화두.
그러면 조주 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을까?  이 화두도 ‘무자’ 화두와 같이 ‘판치생모’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판치생모” 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께 뜻이 있는 것이니, 학자들은 꼭 조주 스님의 뜻을 참구해야 한다. “어째서 ‘무’라 했는고?” 하는 것과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하는 것은 조금도 다름이 없는 것이다. [언하대오(言下大悟)에서] (용화선원) p53.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 ; 화두의 하나. 조주선사(趙州禪師, 778-897)에게 한 스님이 와서 묻기를, “어떤 것이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 (如何是祖師西來意)”라고 했을 때, 조주선사가 대답하기를, “뜰 앞에 있는 잣나무니라”라고 한 데서 유래한 화두이다.
*무자(無字) : 화두. 어느 스님이 조주(趙州) 스님께 묻되 「개도 불성(佛性)이 있읍니까 없읍니까?」하니, 조주스님이 답하되 「무(無)」라 하시니 「준동함령(蠢動含靈)이 다 불성이 있는데 어째서 무(無)라고 했는고?」하는 참선할 때 참구(叅究)하는 천 칠백 공안 중의 하나.
[참고]  [언하대오(言下大悟)에서] (용화선원) p52~53.
‘무자’ 화두하는 학자들이여, 조주 스님의 “무” 라고 하신 그 의지가 “무” 에 있는 것이 아니다.  기실(其實) 엉뚱한 곳에 있는 것이니 제발 조주 스님의 뜻을 찾으려고 애쓸지언정  ‘무자(無字)’에 떨어져서 광음을 헛되이 보내지 않기를 재삼 부탁하노라.
이 ‘무자’ 화두 지어감에 좋은 비유 설화가 있으니 옛날 중국 당나라에 천하일색인 양귀비가 있었는데 당 현종의 애첩으로 궁성에 살고 있었다. 이 양귀비와 정부 안록산은 서로가 보고 싶어 못 견딜 지경이었다.

빈호소옥무타사(頻呼小玉無他事)라  지요단랑인득성(只要檀郞認得聲)이로다
자주 소옥이를 부르는 것은 다른 일이 아니라 다못 낭군에게 소리를 알리고자 함이로다.

양귀비는 자기의 종인 소옥을 아무 할 일 없이 큰 소리로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자꾸 부른다.  왜 양귀비는 소옥을 그렇게 부를까?  다만 낭군에게 자기의 음성을 들리게 하기 위함이다. 양귀비의 뜻이 소옥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소옥을 통해서 자기의 음성을 안록산에게 알리는데 본 뜻이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무자’ 화두는 ‘무자’ 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무” 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에게 뜻이 있는 것이니, ‘무’라는 말을 천착(穿鑿)하지 말고 “무” 라 말씀하신 조주 스님의 의지를 참구할지니라.
*의심관(疑心觀) ; 화두를 거각하여 알 수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그 알 수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觀照)를 하는 것.

 


[참고] 송담스님(세등선원 No.68)—정묘년 동안거 해제 법어(1988.01.17)

처음에 공부를 할 줄 모르는 사람은 힘을 좀 써야 화두가 들리니까 힘을 좀 써서 하기도 하고, 자꾸 숨을 들어마셨다 내쉴 때마다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한번 하고 한참 있으면 화두가 없어져 버리니까, 부득이 숨을 내쉴 때마다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하고 자주자주 들을 수 밖에는 없지만, 한 철, 두 철, 세 철 이렇게 해 가다 보면 그렇게 자주 들지 안 해도 화두가 잘 들리게 된다 그말이여.

들려 있걸랑 화두를 다시 또 거기다 덮치기로 자꾸 들어 쌀 필요는 없는 것이여.
화두가 희미해져 버리거나, 화두가 없어지고 딴 생각이 들어오거나 하면 그때 한번씩 떠억 챙기면 되는 것이지, 화두가 이미 들어져서 알 수 없는 의심이 있는데, 거기다 대고 자꾸 화두를 막 용을 쓰면서 자꾸 들어 싸면 그것은 아주 서투른 공부다 그말이여.

그렇게 순일하게, 화두를 들려고 안 해도 화두가 터억 들려서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걸랑, 그 독로한 의단을 성성(惺惺)한 가운데 묵묵히 그것을 관조(觀照)를 하는 거여. 알 수 없는 의심의 관(觀)이여. 의심관(疑心觀).
거기에는 고요하다는 생각도 붙을 수가 없고, 편안하다는 생각도 붙을 수가 없고, 맑고 깨끗하다는 생각도 어떻게 거기다가 그런 생각을 붙일 수가 있냐 그말이여. 고요하고 맑고 깨끗하고 편안한 그런 생각에는 조금도 그런 생각을 두어서도 안되고, 그런 생각을 즐겨서도 안되고, 그런 생각을 집착해서도 안돼.

다맛 우리가 할 일은 알 수 없는 의단(疑團)만을 잘 잡드리 해 나가는 거여. 너무 긴하게 잡드리를 해서도 안되고, 너무 늘어지게 해서도 안되고, 긴(緊)과 완(緩) 긴완(緊緩)을 득기중(得其中)을 해야 혀. 그것이 묘한 관(觀)이라 말할 수가 있는 거여.

관(觀)이라 하는 것도 일종에 생각이지만, 생각없는 생각을 관(觀)이라 하는 거여.
우리가 참으로 올바르게 화두를 들을 줄 모르는 사람은 부득이 해서 생각을 일으켜 가지고 화두를 참구를 하는데, 일구월심 정진을 해서 참으로 바르게 화두를 참구할 줄 아는 사람은 바로 관(觀)으로 들어가는 거여. 관이란 생각없는 생각으로 생각하는 것을 관이라 그러는 거여. 조금도 늘어지지도 않고, 조금도 긴하지도 아니한 ‘묘(妙)한 의심(疑心)의 관(觀)’으로 해 나가야 되는 거여.

1분의 백천 분의 1 같은 그런 짧은 시간도 생각을 일으켜서 그 일어나는 잡념을 물리칠라 할 것도 없고, 그렇게 화두가 순일하게 된다 해도 아주 미세한 생각은 이렇게 일어날 수가 있어. 일어나지만 그것을 일어나는 생각을 물리칠라고 생각을 내서는 아니되는 거여. 생각이 일어나더라도 일어난 채로 그냥 놔둬 버리고, 자기 화두만을 잘 관해 나가면 그 생각은 자취없이 스쳐서 지내가 버리는 거여.

마치 앞으로 춥도 덥지도 않는 이 봄철이 돌아오겠지마는, 그 봄철에 도량이나 동산에 나가서 그 산책을 하면서 포행을 하면서 정진을 헐 때에 춥지도 덥지도 않는 봄바람이 귓전에 스쳐간다고 해서 그 봄바람 때문에 화두가 도망갈 필요는 없거든.
그냥 귓전을 스쳐서 지내가고 옷자락이 좀 팔랑거리거나 말거나 내버려둬 버리고, 나는 성성적적(惺惺寂寂)허게 그 의심의 관(觀)을 단속해 나가는 것처럼, 일어나는 크고 작은 모든 번뇌가 일어난다 하드라도 그냥 놔둬 버려.

끝없이 일어났다가 없어지고 일어났다 꺼져 버리고, 내가 거기에 따라주지만 아니하고, 집착하지만 아니하고, 물리칠라고 하지도 말고, 그러면은 그냥 제 결에 일어났다가 제물에 그냥 스쳐가 버리는 거여.
그까짓 것은 내가 공부해 나가는 데 조금도 방해로울 것이 없는 것이여.
우리 활구참선을 하는 수행자는 승속(僧俗)을 막론하고 그 화두를 올바르게 잡두리 해 나갈 줄만 알면, 어디를 가거나 다 선불장(選佛場)이요, 그게 바로 선방(禪房)이요, 공부처(工夫處)다 그말이여.

 


[참고] 송담스님(No.256)—85년 2월 첫째 일요법회(85.02.03)

금년 여름에 보살선방에 백여섯 분이 방부를 들여서 항시 칠팔십 명이 그렇게 참 엄격한 규율 속에서 정진들을 모다 애쓰고 계시는데 자세를 바르게 하고, 호흡을 바르게 하고, 나아가서 세 번째 가서는 화두(話頭)를 어떻게 의심(疑心) 하느냐?
이 화두를 의심하는 방법, 이것이 또한 간단하지만 참 이것이 어려운 것입니다. 한 철, 두 철, 세 철, 3년, 5년, 10년을 해도 이 화두를 참으로 올바르게 화두를 참구(參究)하고, 관조한다는 것은 어려운 것입니다. 이것은 한 말로 ‘이렇게 하는 것이 좋다’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법문을 듣고 고대로 또 하고, 고대로 하면서 또 법문을 듣고 해서 스스로 많은 노력, 스스로 그것을 공부해 나가는 요령—급하지도 않고 너무 늘어지지도 아니하며, 그 요령을 스스로 터득을 해야 합니다.
스스로 터득한다니까 선지식(善知識)도 필요 없고, 자기 혼자 어디 돌굴이나 토굴에 가서 막 해제끼면 되냐 하면 그게 아니에요. 반드시 선지식의 지도를 받되, 받아 가지고 하면서도 스스로 그 묘한 의관(疑觀)을 얻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묘한 의심관이라 하는 것은 도저히 어떻게 말로써 설명해 가르켜 줄 수가 없습니다. 자기가 일구월심(日久月深) 항시 면면밀밀(綿綿密密)하게 의심해 가고 관해 가고, 그 자세와 호흡과 화두를 삼위가 일체가 되도록 잘 조정을 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필경에는 그 묘한 의심관인 것입니다. 그 의심관, 관(觀)이라 하는 것도 일종의 생각이지만 ‘생각 없는 생각’을 관이라 이렇게 말할 수가 있는데, 막연하게 어떤 관이 아니라 이 활구참선(活句參禪)은 ‘의심(疑心)의 관’이라야 돼.

옛날에는 해가 떨어지려고 할 때, 서산에 지려고 할 때, 저 수평선에 해가 지려고 할 때에, 그 큰 맷방석만한 해가 땅에 질락 말락 할 때 그 빨갛고 아름다운 거—해가 중천에 있을 때는 눈이 부셔서 볼 수가 없는데, 해가 질 무렵에는 눈이 부시질 않고 그 아름답고 벌건 굉장히 큰 그 해를 볼 수가 있습니다.

그 아름다운 해를 한참 보는 것입니다. 마지막 딱 떨어져서 안 보일 때까지 한 시간 내지 두 시간을 눈이 부시지 아니할 때부터서 그것을 관하기 시작해 가지고 마지막 질 때까지 관찰하고서, 그 다음에는 밤새 그 눈을 감으나 뜨나 그 찬란하고 아름다운 둥그런 해를 관(觀)하는 것입니다.
눈을 감고서도 보이는 것이 그것이 관(觀)인 것입니다. 눈을 뜨나 감으나 상관없이 항시 있는 것이 그것이 관인데, 그것을 갖다가 일관(日觀)이라 그러거든. 해를 관하는 수행법이여.

밤새 그 둥근 해를 갖다가 관하고, 그 이튿날 하루 종일 관하다가 또 해 질 때 다시 또 그 관을 해서, 그 관을 다시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또 밤새 관하고, 그 이튿날 관하고 또 해 질 때 관하고 해서 평생 동안을 그렇게 관을 해 나가는데, 이것도 하나의 수행 방법입니다.
이러한 그 일관이라든지 또 달을 관하는 관법이라든지, 아까 백골관이라든지, 여러 가지 관법(觀法)이 있는데, 이 참선도 하나의 ‘의심의 관법’이라 이렇게 말할 수가 있습니다.

성성(惺惺)하고 적적(寂寂)하면서도, 일부러 화두를 들려고 하지 아니해도 저절로 그 의심관이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그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도록,
처음에는 ‘이뭣고?’ ‘이뭣고?’하지만 나중에는 ‘이뭣고?’ 안 해도 알 수 없는 의심이—해가 질 때 봐두었던 그 둥근 해가 밤에도 고대로 보이고, 그 이튿날에도 고대로 환하게 보이듯이, 의심관이 그렇게 되어야 하거든.

그렇게 해서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면 일주일을 가지 못해서 공안을 타파(打破)하게 되고, 일체 천칠백 공안을 일관도천(一串都穿)을 해. 자기의 본래면목(本來面目)과 역대조사(歷代祖師)의 면목을 사무쳐 보게 되는 것입니다.
*원력(願力) : 원(願)하는 바를 이루려는 의지. 본원력(本願力)•숙원력(宿願力)•대원업력(大願業力)•서원(誓願)•행원(行願)이라고도 한다.
*토굴(土窟) ; 사전적인 원래의 뜻은 ‘땅을 파고 위에 거적 따위를 얹고 흙을 덮어 추위나 비바람만 가릴 정도로 임시로 지은 집’이나, 근래에 절에서 쓰이는 의미는 대중이 함께 거주하는 ‘사찰(절)’과 대비되는 의미로, 어떤 집 형태와는 관계없이 스님의 ‘개인의 수행 거처’를 말함.
*(게송) ‘운주천부동~’ ; 『편양당집(鞭羊堂集)』 (1권) ‘차동림운(次東林韻)’ 참고.
*사바세계(娑婆世界) ;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이 세계. 현실의 세계. 인토(忍土) · 감인토(堪忍土) · 인계(忍界)라고 한역.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중생들을 교화하는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가 모두 사바세계이다.

 

Posted by 닥공닥정
정진(精進) 수행2016. 4. 17. 09:15

§(480) (게송)기래긱반냉첨의~ / 일대사(一大事) / 大事未明 如喪考  大事已明 亦如喪考 / 오후보림(悟後保任) / (게송)만리산하평사장~ / 의심관.

 

어제 살았던 사람이 오늘 죽고, 오늘 살았던 사람이 내일은 벌써 황천객(黃泉客) 되는 그러한 말세라, 이러한 말세일수록에 더욱 정진을, 정법을 믿고 생사 문제를 해결하는 참선(參禪) 수행 밖에는 정말 것이 없다. 그런데 세속의 장사를 하나, 농사를 짓거나, 무슨 회사나, 무슨 직업을 갖더라도 직업은 직업이 부업(副業)이고, 우리가 정말 몸과 목숨을 바쳐서 열심히 해야 본업(本業) 생사 문제를 해결하는 길이다 그말이여.

 

고조사나 부처님처럼 그러한 경계, 그러한 데에 이르기 전에는 알았다는 생각, 얻었다는 생각, 그런 생각을 갖지를 말고 언제나 부모 초상 만난 것처럼, 부모 초상을 맞는 상자(喪者) 같은 그러한 간곡한 간절한, 앞뒤가 끊어진 그러한 마음가짐으로 알뜰히 정진을 해야 것입니다.

 

생각 결국은 만년(萬年)인데, 생각 일어나는 생각을 바로 돌이켜서 화두를 드는 사람은 진리의 세계로 나아가는 거고, 일어나는 생각을 단속을 하지 않고 끝없는 죄업을 짓는 행동으로 발전 시키는 사람은 하는 짓마다 자기를 생사의 윤회 속으로 끌고가고, 하는 일마다 남을 해롭게 하고, 하는 일마다 자연을 병들게 밖에는 없는 것이다.

 

활구참선! ‘이뭣고?’ 없는 의심(疑心)으로이뭣고?’ 그뿐이거든. 이뭣고?’ ! 생각이 끊어져야 하거든. 없으면 벌써 그것이 화두 들고 있는 것이여.

 

**송담스님(No.480)—92 9 첫째일요법회(92.09.06) (용480)

 

(1) 약 12분.

(2) 약 18분.

 

(1)------------------

 

기래긱반냉첨의(飢來喫飯冷添衣)  삼척지동야공지(三尺之童也共知)로다

나무~아미타불~

일개화두명역력(一箇話頭明歷歷)한데  여하개안자우치(如何開眼恣愚癡)리요

나무~아미타불~

 

기래긱반냉첨의(飢來喫飯冷添衣삼척지동야공지(三尺之童也共知). 배가 고프면 밥을 먹고 추우면 옷을 껴입고 하는 것은 삼척동자(三尺童子) 함께 아는 일이다 그말이여.

 

일개화두명역력(一箇話頭明歷歷). 개의 화두가 또록또록 하고 역력(歷歷)해서 의단(疑團) ! 독로(獨露)하도록 잡드리 나가면,

여하개안자우치(如何開眼恣愚癡)리요. 어떻게 눈을 뜨고서 그럭저럭 어리석은 짓을 하고 것인가. 벌써 화두를 들고 성성적적(惺惺寂寂) 화두를 잡드리 나가는 사람이라면 벌써 정법(正法) 믿는 사람이요, 정법을 믿는 선학자(禪學者) 어떻게 어리석은 짓을 나갈 수가 있겠느냐.

 

어리석다 하는 것은 것이 아니라 불법을 경전 속에서 이치로 따져서 알려고 하는 , 세속의 오욕락(五欲樂)—재산이라든지, 색이라든지, 명예 권리라든지, 모든 세속적인 안락이라든지, 그러한 것에 눈을 팔고, 그런 것이 인생의 행복의 길을 그런 데서 찾는다던지, 이런 것이 어리석은 것을 방자(放恣) 하는 것이거든.

화두를 성성적적하게 거각(擧却) 나갈 줄만 알면 저절로 어리석은 오욕락에 시간과 나의 정력을 거기에 헛되이 소모할 까닭이 없을 것이다.

 

생사대사(生死大事) 시대정법시대나, 상법시대나, 말법시대나 어느 때나 생사대사는 우리 자신이 자신의 생사 문제를 해결을 해야 하지만 유독 오탁악세(五濁惡世) 말세(末世) 있어서는 세상이 무상(無常)하기가 말로 수가 없어. 몸뚱이가 살아 있다고 믿을 수가 없어.

 

날마다 교통사고로 죽고, 불의의 사고로 죽고, 옛날과 달라서 몸의 병도 온갖 현대 의학으로 고칠 없는 고약한 병들이 일어났어.

어제 살았던 사람이 오늘 죽고, 오늘 살았던 사람이 내일은 벌써 황천객(黃泉客) 되는 그러한 말세라, 이러한 말세일수록에 더욱 정진을, 정법을 믿고 생사 문제를 해결하는 참선(參禪) 수행 밖에는 정말 것이 없다.

 

세속의 장사를 하나, 농사를 짓거나, 무슨 회사나, 무슨 직업을 갖더라도 직업은 직업이 부업(副業)이고, 우리가 정말 몸과 목숨을 바쳐서 열심히 해야 본업(本業) 생사 문제를 해결하는 길이다 그말이여.

그러냐 하면 세속의 사업은 잘되더라도 믿을 수가 없는 거고. 그것 재산이나 명예 권리를 위해서 몸과 목숨을 바칠만한 것이 못되아. 그것은 엄밀히 따져보면 생사윤회(生死輪廻) 업을 짓는 일에 지내지 못하고, 정말 우리 생사 문제를 해결하는, 일대사(一大事) 문제를 해결하는 길은 참선이고.

 

세속의 부귀영화는 잘해봤자 금생 일생에 누린 뿐이고, 누리다가 죄를 짓게 되는 것이지만 참선법은 금생 일생에 생사업(生死業) 지을 뿐만 아니라 세세생생(世世生生) 무량겁을 두고 영원히 생사윤회를 해탈하는 길이기 때문에 지금도 늦었지만 늦은 때가 바로 이른 때다.

 

그래서 고인(古人) 말씀하시기를 『일대사, 생사문제! 일대사는 깨닫기 전에도 부모 초상 만난 거와 같이』 부모 초상을 만난 사람이 모든 사업이고 무엇이고 중단해 버리고 오직 부모의 초상(初喪) 당했으니 하늘과 땅이 닿아 버려. 호천망극(昊天罔極) 슬픔 속에 무슨 생각이 있을까보냐 그말이여.

 

『대사(大事) 미명(未明) 시에도 부모의 초상을 만난 거와 같이 그렇게 나가고, 대사(大事) 이미 밝힌 뒤에도 여상고비(如喪考). 부모 초상 만난 같이 해라』

깨닫기 전에도 부모 초상 만난 거와 같이 정말 공부해 나가는데 전력투구를 하려니와 깨달은 뒤에는 부모 초상 만난 것같이 해야 하느냐?

 

보조국사(普照國師) 말씀하시기를 깨닫는다 하는 것은 애기 낳아 놓은 거와 같다』

애기 낳아 놓았다고 해서 물론 그것도 사람은 사람이지만 뒤에 젖을 먹이고, 밥을 먹이고 옷을 입히고, 가르키고 해서 이십 년간 정성을 들여놔야, 자기 앞을 가려나갈 만한 겨우 하나의 인간이 이루어진 것이지, 낳아 놨다고 해서 그것이 다가 아니거든.

그와 마찬가지로 견성(見性) 했다고 해서 그것이 다가 아니고 견성한 뒤에 오후보림(悟後保任) 해서 무량겁의 습기(習氣) ()해서 정말 알뜰히 공부를 나가야 한다.

 

득이수난(得易守難)이다. 얻은 것은 쉽고 지키기는 어렵다그랬습니다.

대혜 스님도 영리한 놈이 퍼떡 깨달아 가지고 그것으로써 일대사를 요달한 알고, 뒤에 정진을 오후보림을 열심히 아니하고 그럭저럭 지내면은 다시 본지풍광(本地風光) 나타나서 ()하게 된다고. 그래서 오후(悟後) 정말 알뜰히 정진할 것을 경고하신 법문이 있으려니와.

 

가운데는 알뜰히 정진하고 여러 수행을 해서 상당한 견처(見處) 있는 분도 적지 아니할 것입니다마는 고조사나 부처님처럼 그러한 경계, 그러한 데에 이르기 전에는 알았다는 생각, 얻었다는 생각, 그런 생각을 갖지를 말고 언제나 부모 초상 만난 것처럼, 부모 초상을 맞는 상자(喪者) 같은 그러한 간곡한 간절한, 앞뒤가 끊어진 그러한 마음가짐으로 알뜰히 정진을 해야 것입니다.(1459~2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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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리산하평사장(萬里山河平似掌)한데   일조관로직여현(一條官路直如絃)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행인약문궁통사(行人若問窮通事)한데   철벽은산재면전(鐵壁銀山在面前)이니로다

나무~아미타불~

 

만리산하평사장(萬里山河平似掌)이여. 만리(萬里) 강산이 평평하기가 손바닥 같애. 만리가 트여서 넓은 산하가 손바닥 같다 그말이여.

일조관로(一條官路) 직여현(直如絃)이여. 한가닥 관로(官路), 옛날에는 역과 사이를 말이 달려 가지고 말로써 온갖 통신을 전하고, 관리나 국가의 어떤 일이 있을 때도 관로(官路) 사용해 가지고 빨리요새 같으면 고속도로처럼 조그마한 그저 꼬부랑꼬부랑 길이 아니라 데를 가로지르는 그런 고속도로처럼 그런 관로가 곧기가 마치 줄과 같다 그말이여.

 

우리가 공부를 나가는데 세속이 아무리 시끄럽고 복잡하고 흥망성쇠와 영욕득실이 날이면 날마다 변화가 무쌍해서 굉장히 어려울 같지마는,

세계에는 성주괴공(成住壞空) 있고이루어졌다가 잠시 머물러 있다가 무너져 가지고 결국은 없어지는 성주괴공이 있고. 우리 몸뚱이에는 생로병사(生老病死) 있어. 태어나면 늙어서 병들어 죽는 것이고.

우리의 마음에는 생주이멸(生住異滅) 있어. 무슨 생각이 일어나면은 얼마 동안 생각이 머물러 있다가 금방 생각이 다른 생각으로 변화 발전을 가지고 결국은 멸해. 생각이 없어진다 그말이여.

 

그러한 성주괴공과 생노병사와 생주이멸의 현상이 끊임없이 되풀이되어 가고 있다 그말이여그래서 빈부귀천이나 영욕득실이나, 경제계 정치계가 사람이 대통령이 되고 여러 사람이 모다 장관도 드나들고 그러다가 얼마 가면 뒤바뀌고.

어제 , 승진을 했다고 기뻐하지마는 하룻밤 사이에 파면이 되고, 어제 , 하늘에 날아가는 새도 떨굴 만큼 권세가 무서웠지마는 벌써 황천객이 되기도 하고 감옥에 들어가기도 하고 그렇다 그말이여.

 

그렇게 무상한 줄을 깨달아 버리는 사람. 그런 무상(無常)하다고 하는 것을 철저히  깨닫고 발심을 해서 공부하는 사람이 때에는 세속의 흥망성쇠와 영욕득실과 빈부귀천이 손바닥 안에 들었어.

누가 대통령이 되고, 누가 장관이 되고, 누가 총장이 되고, 누가 어느 나라가 무엇을 어쩌고 해봤자 손바닥 안에 환히 손바닥 안에 들어있는 일이라 그게. 그렇게 야단스러울 것도 없고 놀랄 것도 없고, 환한 것이거든.

 

아무리 신문에 별별 소리가 나봤자 그것이 초명안첩(蟭螟眼睫) 하루살이의 눈썹에다가 눈에 보이지 않을 만한 모다 균들이 거기다가 보금자리를 짓고 거기서 땅이 넓고, 땅이 넓다 서로 싸운 거와 같애.

하루살이의 눈썹이 얼마나 크며, 눈썹에서 버글거리고 있는원자 현미경으로 봐도 보일랑말랑한 그런 균들이 눈썹에다가 보금자리를 치고 땅을 싸우고 있는 격이나, 지구 덩어리 속에 백칠십여 개로 나라가 노나져 가지고 서로자기 영토다, 영토다, 영토다하고 싸우고.

 

그러고 있는 사이에 결국은 공기도 오염이 되고 땅도 오염이 되고, 거기에 흐르고 있는 물도 오염이 되고 바다도 오염이 되었어. 몇백 , 몇천 또는 그보다 빠른 시일내에 지구가 파멸이 될런지도 모르고, 모든 동물과 식물들이 죽어질런지도 모릅니다.

사람들이 요새 지구 종말론이니 가지고 사람들이 모다 어리석은 사람들이 흔들려 가지고 야단이다는 말을 들었는데.

 

그런 의미의 종말론이 아니라 사람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정법(正法) 믿고 착실히 자성(自性) 깨달아서 우주의 진리를 깨달을라고 노력을 하지 않고서,

물질 문명에 눈이 어두워서 인간의 행복이 오욕락(五欲樂) 있는 알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아니하고 그것을 위해서 몸부림을 치고, 자기 자성을 포기하고 자연을 오염을 시키고, 그래 가지고 투쟁을 일삼는다면 정말 우리가 모르는 가운데 하루하루 자연은 병들고 멍들어서 사람이 먹을 물도 없게 되고, 먹을 음식도 없어지게 되고.

 

마치 지옥에서 목이 말라서 물을 마시면은 불이 되어 가지고 목이 타고, 배가 고파서 무슨 음식을 먹으면 그것이 불이 되어서 목이 훨훨 타죽는 거와 같이, 사람들의 어리석음으로 인해서 천지 자연이 오염이 되어 가지고 먹으면은 그것이 암이 되고 몸의 생명을 단축하는 결과가 되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뉴스를 통해서 아신 바와 같이 고래가 까닭없이 죽어 나자빠지고, 호주에서는 모두 바다의 짐승들이 육지로 기어 올라오고 다시 바다로 갖다 두면 다시 기어 올라오고. 얼마 후에 보니 모다 그것들이 죽어져 갔고 있더라 이거거든. 그것이 자연의 오염으로 인해서 그렇게 것이다 그말이여.

결국 자연이 오염이 것은 인간의 마음이 썩어 문드러졌기 때문에, 썩어 문드러진 마음으로 하는 모든 생활과 행동이 바로 자연을 오염시키게 되고, 오염시켜 놓고 인간이 속에서 죽어가는 것입니다.

 

쓰레기를 버리지 말라, 구정물을 버리지 마라, 나쁜 비누를 쓰지 말라, 산에 가서 함부로 더러운 쓰레기 버리지 말라. 이런 것들 대단히 명심을 해야 일이고, 산에를 가나 바다를 가나 반드시 그런 것을 주의해야 일이나, 어찌 숟가락으로 밥을 떠먹고 저분으로 반찬을 집어먹을 아는 사람이 어찌 산에 가서 강에 가서 바다에 가서 함부로 버릴 수가 있는 일이냐 그거거든.

 

자기의 생각에서 끊임없이 일어나는 생각을 돌이켜서 화두(話頭) 들고 돌이켜서 화두를 아는 사람은 그럴 수가 없어.

생각 결국은 만년(萬年)인데, 생각 일어나는 생각을 바로 돌이켜서 화두를 드는 사람은 진리의 세계로 나아가는 거고, 일어나는 생각을 단속을 하지 않고 끝없는 죄업을 짓는 행동으로 발전 시키는 사람은 하는 짓마다 자기를 생사의 윤회 속으로 끌고가고, 하는 일마다 남을 해롭게 하고, 하는 일마다 자연을 병들게 밖에는 없는 것이다.

 

생각이 그렇게 소중하고도 무서운 것이다 그거거든.

 

진리(眞理), 진리하니까 굉장히 무슨 깊디 깊고, 높디 높아서 우리와 굉장히 멀리 동떨어진 그러한 세계의 일처럼 생각할런지 모르지만 진리는 우리와 가장 가까운 있는 것이여.

아까 배고프면 먹을 알고 추우면 옷을 껴입을 아는 것은 삼척동자도 하는 일이라 했으나, 진리가 바로 배고프면 먹을 아는 있는 것이여추우면 옷을 껴입을 아는 데에 거기에 진리가 있는 것이여.

 

무엇이 배고프면 밥을 먹을 아냐 그거거든. 배고프면 먹을 아는 것을 우리 알고 있지만, 배고프면 먹을 아는 놈이 무엇인가를 찾는 사람은 그것이 바로 진리로 들어가는 길목이여 그게.

진리가 무슨 화엄경을 많이 읽어야 알고, 법화경을 많이 읽어야 하고 금강경, 반야심경을 많이 읽어서 그것을 해석할 알면 진리를 알까 그게 아니거든.

 

배고프면 먹을 바로 그때에이뭣고?’

우리가 찾는이뭣고?’ 바로 이뭣고?’하는 놈이 배고프면 먹을 아는 놈이거든. 그래서 참선은 배고프면 먹을 아는 사람이면 누구나 있는 것이고, 바른 방법으로 열심히만 하면 진리를 깨달을 수가 있는 것이다.

 

정법이라는 복잡하고 어려운 것이 아니여. 활구참선!

사구참선(死句參禪) 이론적으로 따져 들어가고, 무엇이 알아 들어가는 것이 있고, 얻어지는 것이 있고, 더듬어 들어갈 것이 있고, 그것은 그러한 식으로 참선을 하면 그건 죽은 참선이여, 사구참선이여. 미륵불(彌勒佛) 하생(下生) 때까지 해도 사람은 깨달을 길이 없는 것이고.

 

활구참선! ‘이뭣고?’ 없는 의심(疑心)으로이뭣고?’ 그뿐이거든.

이뭣고?’ ! 생각이 끊어져야 하거든. 없으면 벌써 그것이 화두 들고 있는 것이여.

화두를 거각(擧却)한다, 의단(疑團) 독로(獨露) 것이 무엇이냐? 없는 것이다. 없는 생각 때문에 앞뒤 생각이 끊어져 버리거든. ‘이뭣고?’

이뭣고?’ 글자가 아니라이뭣고?’ 했을 막혀서 없으면 그것이 이미 화두가 들어져 있는 것이거든.

 

없는 의단이 들어 있을 때는 자꾸 거기다 대고이뭣고?’ ‘이뭣고?’ ‘이뭣고?’ 덮치기로 자꾸 해도 괜찮아.

이뭣고?’ 해서 없는 의심이 ! 있으면, 없는 의심만 ()하면 되는 거여.

그러다가 생각이 일어나거나, 의단이 없어지거나 희미해지면 그때 다시 이뭣고?’ 드는 거여. ‘이뭣고?’ ‘~? 지금 ~ 하는 이놈이 무엇이냐?’ 그러한 뜻으로~뭣고?’

 

먹을 때도이뭣고?’ 옷을 입을 때도이뭣고?’ 세수하고 양치질 때도이뭣고?’ 양치질하면서도이뭣고?’거든. 선방(禪房) 앉아서 죽비() 치고 따악 앉을 때만 하는 것이 아니거든.

누워서도이뭣고?’ 똥눌 때도이뭣고?’ 세수하고 빨래할 때도이뭣고?’ 차를 타고 걸어갈 때도이뭣고?’ 일체처 일체시에 없는이뭣고?’ 항상 간단(間斷)없이 의단이 독로하도록 그렇게 잡드리를 가면, 산에 가도이뭣고?’하는 사람이 쓰레기를 함부로 버릴 까닭이 없고, 바다에 가서이뭣고?’ 하는 사람은 바다에 가서 무엇을 오염을 시킬 것이냐 그말이여.

 

한강을 맑게 하고, 금강을 맑게 하고, 낙동강을 맑게 하고, 영산강을 맑게 하고, 섬진강을 맑게 하는 길은이뭣고?’ 열심히 하는 거여. 이뭣고?’ 열심히 사람이면 자연히 산하대지가 맑아지는 거여.(2656~4455)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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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기래긱반냉첨의~’ ; 중봉명본 스님의 '天目中峯和尙廣錄(卷第三十)'에서 '警世卄二首' 게송 참고.

*삼척동자(三尺童子) ; 키가 [] [] 정도밖에 되지 않는 어린아이[童子]. 철없는 어린아이를 이르는 . [] 30.3Cm 해당한다.

*역력(歷歷 겪을·지낼·수를 ·가릴 ) ; ①뚜렷한 모양. 분명한 모양. 똑똑한 모양. ②사물이 질서정연하게 늘어선 모양.

*의단(疑團 의심할 /덩어리 ) ; 공안·화두에 대한 없는 의심(疑心) 덩어리().

*독로(獨露 홀로·오로지 /드러날 ) ; 홀로() 드러나다().

*잡드리 ; ‘잡도리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대책.

*성성적적(惺惺寂寂) ; 온갖 번뇌 망상이 생멸하지 않고 마음이 고요[寂寂]하면서도 화두에 대한 의심이 또렷또렷한[惺惺] 상태.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방자히(放恣- 거리낌이 없을 /방자할·마음대로·제멋대로 ) ; 어려워하거나 삼가는 태도가 없이[] 무례하고 건방지게[].

*거각(擧却 /어조사 ) ; 화두를 든다. ‘화두를 든다’ ‘화두를 거각한다 말은 자신의 본참화두를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觀照)하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 세등선원(No.09)—병진년 동안거 결제중 법어(76.12.26)에서.

화두를 먼저 이마로 의심을 하지 말고, 화두를호흡하는데 배꼽 [丹田] 숨을 들어마시면은 배가 볼록해지고 숨을 내쉬면은 배가 홀쪽해지는데, 배가 빵빵해졌다 홀쪽해졌다 허는 거기에다가 화두를 들고이뭣고~?’   ‘ 없는 생각()하는 그것이 화두를 드는 것이여.

*생사대사(生死大事) ; ①삶과 죽음, 생사(生死) . ②수행을 하여 생사를 벗어나는 깨달음을 얻는 .

*오탁악세(五濁惡世 다섯 /흐릴 /악할 /세상 ) ; 명탁(命濁), 중생탁(衆生濁), 번뇌탁(煩惱濁), 견탁(見濁), 겁탁(劫濁) 다섯 가지 더러운 것으로 가득찬 죄악의 세상.

[참고] ①명탁(命濁) 말세가 다가와 악업(惡業) 늘어감에 따라 사람의 목숨이 점차 짧아져 백년을 채우기 어려움을 이른다. ②중생탁(衆生濁) 중생이 죄가 많아서 올바른 도리를 알지 못하는 것을 이른다. ③번뇌탁(煩惱濁) 번뇌로 인하여 마음이 더럽혀지는 것을 이른다. ④견탁(見濁) 그릇된 견해나 사악한 사상이 만연해지는 것을 이른다. ⑤겁탁(劫濁) 기근과 전쟁과 질병 등의 재앙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시대.

*말세(末世 /세상 ) ; ①도덕, 풍속, 정치 등의 모든 사회 질서와 정신이 매우 타락하고 쇠퇴하여 끝판에 이른 세상. ②석존입멸후 오백년을 정법(正法) 세상, 다음 천년을 상법(像法) 세상, 후의 일만년을 말법(末法) 세상이라고 한다.

*무상(無常) ; 모든 현상은 계속하여 나고 없어지고 변하여 그대로인 것이 없음. 온갖 것들이 변해가며 조금도 머물러 있지 않는 . 변해감. 덧없음. 영원성이 없는 .

세상의 모든 사물이나 현상들이 무수한 원인() 조건() 상호 관계를 통하여 형성된 것으로서 자체 독립적인 것은 하나도 없고, 인연(因緣) 다하면 소멸되어 항상함[] 없다[].

*황천객(黃泉客) ; 저승[黃泉, 사람이 죽은 뒤에 혼이 가서 산다고 하는 세상]으로 나그네[]라는 뜻으로, 죽은 사람을 이르는 .

*참선(參禪) ; ①선() 수행을 하는 .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본업(本業) ; ①주가 되는 직업. ②주로 하는 .

*생사윤회(生死輪廻 /죽을 /바퀴 /빙빙돌 ) : 사람이 어리석음(無明)으로 인한 번뇌와 업에 의하여 삼계육도(三界六道)에서 났다가[] 죽고[] 났다가 죽는 것이 바퀴[] 돌듯이[] 반복함. 육도윤회(六途輪廻).

*일대사(一大事) ; ①부처님이 중생구제를 위해 세상에 나타난다고 하는 . 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목적 ②가장 중요한 일이란 . 수행의 목적. 깨달음을 얻는 . 인간으로서의 완성.

*세세생생(世世生生) ; 많은 생애를 거치는 동안. 태어날 때마다. 세세(世世)토록.

*고인(古人) ; 옛날 사람. 옛날 선승(禪僧).

*초상(初喪) ; ①사람이 죽어서 장사(葬事)지낼 때까지의 . ②사람이 죽은 .

*호천망극(昊天罔極 하늘·큰모양 /하늘 /없을 /다할 ) ; ①하늘이 넓고 크며 끝이 없음. ②부모의 은혜가 하늘과 같이 넓고 커서 다함이 없다는 .

*대사(大事) ; 일대사(一大事). 매우 중요하거나 아주 . 삶과 죽음, 생사(生死) .

①부처님이 중생구제를 위해 세상에 나타난다고 하는 . 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목적. ②가장 중요한 일이란 . 수행의 목적. 깨달음을 얻는 . 인간으로서의 완성.

『법화경』 방편품에諸佛世尊, 唯以一大事因緣故, 出現於世間  모든 부처님은 오직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 때문에 세상에 출현한다라고 것에서 유래.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한 목적은깨달음을 얻기까지의 과정을 보이고, 지혜를 발휘하여 모든 중생을 깨닫게 하고 구제하는 이다.

 

[참고] [선문염송·염송설화] (혜심·각운 지음 | 월운 옮김) 692대사(大事)’

洞山  門僧  世間  是甚麼物最苦  僧云  地獄最苦  師云  不然  向此衣線下  不明大事  始是苦

동산(洞山)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세상에서 무엇이 가장 괴로운가?”

스님이 말하였다. “지옥의 고통이 가장 괴롭습니다

선사가 말하였다. “그렇지 않다. 밑에서 [大事] 밝히지 못하는 것이 진짜 괴로운 일이니라

 

<염송설화(拈頌說話)>

동산(洞山) 노인이 노파심이 간절해서 입이 쓰도록 간곡히 일러 말씀이니 모름지기 대사(大事) 밝혀야 동산의 뜻을 저버리지 않는다.

*대사(大事) 미명(未明) 시에도 부모의 초상을 만난 거와 같이 그렇게 나가고, 대사(大事) 이미 밝힌 뒤에도 여상고비(如喪考). 부모 초상 만난 같이 해라 ; [종감법림(宗鑑法林)] (23) ‘睦州示衆  大事未明  如喪考  大事已明  亦如喪考

[천목중봉화상광록(天目中峰和尙廣錄)] 3 '송고(頌古)'大事未明如喪考  大事已明亦如喪考 대한 중봉화상의 게송이 다음과 같이 있다. ‘萬里山河平似掌  一條官路直如絃  行人若問窮通事  鐵壁銀山在面前

 

[참고] [선문염송·염송설화] (혜심·각운 지음 | 월운 옮김) 655대사(大事)’

목주(睦州) 대중에게 보여 말하였다. “ [大事] 끝내지 못했으면 돌아가신 부모님을 장사 지내는 같이 하고, 일을 끝냈더라도 돌아가신 부모님을 장사 지내는 같이 하라

睦州  示衆云  大事未辦  如喪考  大事已辦  如喪考

 

<염송설화(拈頌說話)>

[大事] 끝내지 못했으면 돌아가신 부모님을 장사 지내는 같이 하라[大事未辦 如喪考]”함은 좋은 음악을 들어도 즐겁지 않고 맛있는 것을 먹어도 달지 않으며, 소리와 빛에 끄달리지 않고서 마침내 일을 끝낸다는 뜻이다.

일을 끝냈더라도 돌아가신 부모님을 장사 지내는 같이 하라[大事已辦 如喪考]” 들어갈 곳을 얻지 못했으면 들어갈 곳을 얻으려 하고, 들어갈 곳을 이미 얻었으면 모름지기 나올 길을 구해야 한다는 뜻이다.

다른 책에는봄바람을 만나지 못하면 꽃이 피지 못하지만 꽃이 뒤엔 바람을 맞고 떨어진다[不得春風花不開  花開又被風吹落]” 하였다.

고비()” 함은, 아버지가 죽으면 () 하고, 어머니가 죽으면 () 한다. 어떤 이는 선고(先考) · 선비() 하는데, 이는 잘못이다. () 자는 평음(平音:平聲)으로 읽어야 하니 '장사 지낸다[行喪]' 뜻이다. 칙음(則音:上聲)으로 읽으면 '잃는다' 뜻이나 이미 고비가 되신 분을 어찌 다시 잃는다[喪失] 하겠는가?

 

[참고] [선문염송·염송설화] (혜심·각운 지음 | 월운 옮김) 1206대사(大事)’

봉상부(鳳翔府) 청봉산(靑峰山) 전초(傳楚) 선사에게 어떤 스님이 물었다. “ 일은 이미 이루어졌거늘 어째서 부모를 잃은 같이 합니까?

선사가 말하였다. “봄바람이 불지 않아 꽃이 피지 않더니, 꽃이 피자 바람에 떨어지는구나

鳳翔府靑峰山傳楚禪師  因僧問  大事已成  爲什麼如喪考妣  師云 不得春風花不開  及至花開又吹落

 

<염송설화(拈頌說話)>

일은 이미 이루어졌거늘[大事已成]... ”이라 함은 다른 곳에서 일을 아직 이루지 못했거든 부모를 잃은 같이 하고, 일을 이미 이루었어도 부모를 잃은 같이 하라 하였다. “봄바람이 불지 않아[不得春風].... ”라고 함은 깨달은 곳도 역시 잊어버린다는 뜻이다.

*보조국사(普照國師) ; 분류역대 스님 약력참고.

*보조국사(普照國師) 말씀하시기를 『깨닫는다고 하는 것은 애기 낳아 놓은 거와 같다』

[참고] 보조국사 지눌(一一五八 ~ 一二一0) <수심결修心訣>에서.

頓悟者  凡夫迷時  四大爲身  妄想爲心  不知自性是眞法身  不知自己靈知是眞佛也  心外覓佛  波波浪走  忽被善知識  指示入路  一念廻光  見自本性  而此性地  原無煩惱  無漏智性  本自具足  卽與諸佛  分毫不殊  故云頓悟也

 

돈오(頓悟 단박 깨달음) 범부(凡夫) 미혹했을 사대(四大) 몸이라 하고 망상(妄想) 마음이라 하여, 자기의 성품(自性) 법신(法身) 모르고 자기의 신령스런 (靈知) ()부처인 알지 못하여, 마음 밖에서 부처를 찾아 물결따라 여기저기 헤매다가,

홀연히 선지식(善知識) 지시로 바른 길에 들어가 생각 돌이켜 자기의 본래 성품을 보면, 성품(性品)자리에는 원래(原來) 번뇌(煩惱) 없고, 무루(無漏) 지혜 성품이 본래(本來) 스스로 구족(具足)하여 모든 부처님과 털끝만큼도 다르지 않으니 그러므로 돈오(頓悟, 단박 깨달음)라고 한다.

 

漸修者  雖悟本性 與佛無殊  無始習氣  卒難頓除故  依悟而修  漸熏功成  長養聖胎  久久成聖   云漸修也 比如孩子初生之日  諸根具足  與他無異    其力未充  頗經歲月  方始成人

 

점수(漸修, 차츰 닦음), 비록 본래 성품(本性) 부처와 다름이 없음을 깨달았으나 오랫동안 익혀온 습기(習氣) 갑자기 모두 없애기는 어려우므로, 깨달음에 의지하여 닦아 점차로 익혀 () 이루어 성인(聖人) () 길러 양성하면, 오랜 동안을 지나 성인(聖人) 이루게 되므로, 점수(漸修, 점차로 닦음)라고 한다.

비유(比喩)하면, 마치 어린 아이가 처음 태어났을 모든 기관(諸根) 갖추어 있음은 남과 다르지 않지만, 힘이 아직 충실하지 못하므로 제법 세월(歲月) 지난 뒤에야 비로소 어른(成人) 되는 것과 같다.

*오후보림(悟後保任) ; 깨달은 뒤에 선지식을 찾아 인가를 받고, 다시 숲속이나 토굴에 들어가 다생(多生) 습기(習氣) 제하고 () 역량을 키우는 보임(保任)공부. 장양성태(長養聖胎).

*습기(習氣) ; ①과거의 온갖 ()—생각, 행위, 경험, 학습 따위로 말미암아 아뢰야식(阿賴耶識) 남긴 기운, 잠재력. 종자(種子) 같음. ②번뇌로 인해 남아 있는 습관적인 기운. (), 번뇌습(煩惱習), 여습(餘習), 잔기(殘氣)라고도 한다.

*본지풍광(本地風光) : 본래면목(本來面目)이라거나 부모에게서 낳기 면목(父母未生前面目)이라거나, 천진 면목(天眞面目) • 법성(法性) • 실상(實相) • 열반(涅槃) • 보리(菩提)라고 하는 것들이 모두 같은 뜻이다.

*() ; 미혹(迷惑), 미망(迷妄), 미집(迷執) 준말. 진리에 어두움. 마음이 흐리고 혼란함. 깨달음() 반대. 무명번뇌로 인하여 사리를 밝게 깨치지 못하고 전도몽상(顚倒夢想, 바르게 사물을 없는 미혹함)하는 .

*견처(見處) ; (틀린) 견해가 생긴 곳이라는 . 집견(執見, 자신의 마음속에서 고집하는 견해. 여러 종류의 망견妄見) 일어나는 장소. 유루법(有漏法) 다른 이름. ②자기 나름대로 얻은 어떤 생각이나 입장, 견해. () 견해, 세계관이라는 . 특수한 세계관의 입장.

*상자(喪者 상복을 입을·잃을 / ) ; 초상(初喪, 사람이 죽어서 장사 지낼 때까지의 ) 치르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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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만리산하평사장~’ ; [천목중봉화상광록(天目中峰和尙廣錄)] 3 '송고(頌古)'大事未明如喪考  大事已明亦如喪考 대한 중봉화상의 게송.

*大事未明如喪考  大事已明亦如喪考 ; ‘ [大事] 밝히지 못했으면 돌아가신 부모님을 장사 지내는 같이 하고, 일을 밝혔더라도 돌아가신 부모님을 장사 지내는 같이 하라” [종감법림(宗鑑法林)] 23 ‘睦州示衆  大事未明  如喪考  大事已明  亦如喪考

*(게송)萬里山河平似掌  一條官路直如絃  行人若問窮通事  鐵壁銀山在面前 ; 게송에 대한 하나의 법문---> http://emokko.tistory.com/418

*관로(官路 벼슬·관청 / ) ; 관도(官道). 예전에, 국가에서 관리하던 간선길(幹線길 : 도로, 철도, 전신, 수로 등의 주요 구간 사이를 연결하는, 중심이 되는 ).

*성주괴공(成住壞空) : 세상의 모든 것은 크나 작으나 변화의 과정을 밟게 된다。곧 성립되어 가는 과정, 안정(安定)하여 진행하는 과정, 쇠퇴하여 가는 과정, 멸망하여 없어지는 과정이 반드시 있게 된다。모든 물질도, 우리 몸도 사회도, 국가도, 세계 전체도 그렇게 된다.

이것을 성주괴공(成住壞空)이니, 생주이멸(生住異滅)이니, 생로병사(生老病死) 하는데, 원인은 우리의 마음 속에 생각이 없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기 때문이다.

*초명안첩(蟭螟眼睫 사마귀 ·벌레 이름 /멸구·모기 / /속눈썹 ) ; 초명(蟭螟)아주 작은 벌레 뜻하는데, 초명의 속눈썹[蟭螟眼睫]으로 아주 작은 자리를 말함.

*자성(自性) ; ①사물 자체의 본성. 본성 ②본래부터 저절로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만년(萬年) ; ①항상 변함없이 같은 상태. ②아주 오랜 세월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

*이뭣고(是甚 시심마) : ‘이뭣고? 화두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이뭣고?’하고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자리)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이것이 무엇인고?’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 일곱 ()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 ()이다. ‘이뭣고?(이뭐꼬)'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뜻은 속에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왔다.

*미륵불(彌勒佛) : [] Maitreya 대승보살, 또는 매달려야(呾麗耶), 매달례야(怛隷野)。번역하여 자씨(慈氏) 이름은 아일다(阿逸多) 무승(無勝) 막승(莫勝)이라 번역.

인도 바라나국의 바라문 집에 태어나 석가모니의 교화를 받고 미래에 성불하리라는 수기를 받아, 도솔천에 올라가 있으면서 지금 하늘에서 천인(天人)들을 교화하고,

석가모니 입멸후 56 7천만 년을 지나 다시 사바세계에 출현하생(下生)하여, 화림원(華林園) 안의 용화수(龍華樹) 아래에서 성불(成佛)하고 3회의 설법으로써 석가모니의 교화에서 빠진 모든 중생을 제도한다고 한다. 법회를 용화삼회(龍華三會) 한다.

도솔천에서의 생을 마치면 인간으로 태어나 성불하여 석가모니불의 자리[] 보충(補充)한다는 뜻으로 보처(補處) 미륵이라 하며, 현겁(賢劫) 불의 5().

*의심(疑心) :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 대해 없는 생각 막히는 .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또는어째서 () 했는고?’ 또는조주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 했는고?’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바른 깨달음은 없는 의단, 없는 의심에 막힌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본참화두(本參話頭) ; 본참공안(本參公案).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거각(擧却 /어조사 ) ; 화두를 든다. ‘화두를 든다’ ‘화두를 거각한다 말은 자신의 본참화두를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觀照)하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 세등선원(No.09)—병진년 동안거 결제중 법어(76.12.26)에서.

화두를 먼저 이마로 의심을 하지 말고, 화두를호흡하는데 배꼽 [丹田] 숨을 들어마시면은 배가 볼록해지고 숨을 내쉬면은 배가 홀쪽해지는데, 배가 빵빵해졌다 홀쪽해졌다 허는 거기에다가 화두를 들고이뭣고~?’   ‘ 없는 생각()하는 그것이 화두를 드는 것이여.

 

*이뭣고?’ 해서 없는 의심이 ! 있으면, 없는 의심(疑心) ()하면 되는 거여 ; 의심관(疑心觀). 의관(疑觀). 화두를 거각하여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觀照) 하는 .

 

[참고①] 송담스님(세등선원No.68)—정묘년 동안거 해제 법어(88.01.17) (5분 59초)

처음에 공부를 모르는 사람은 힘을 써야 화두가 들리니까 힘을 써서 하기도 하고, 자꾸 숨을 들어마셨다 내쉴 때마다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한번 하고 한참 있으면 화두가 없어져 버리니까, 부득이 숨을 내쉴 때마다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하고 자주자주 들을 밖에는 없지만,

, , 이렇게 가다 보면 그렇게 자주 들지 해도 화두가 들리게 된다 그말이여.

 

들려 있걸랑 화두를 다시 거기다 덮치기로 자꾸 들어 필요는 없는 것이여.

화두가 희미해져 버리거나, 화두가 없어지고 생각이 들어오거나 하면 그때 한번씩 떠억 챙기면 되는 것이지, 화두가 이미 들어져서 없는 의심이 있는데, 거기다 대고 자꾸 화두를 용을 쓰면서 자꾸 들어 싸면 그것은 아주 서투른 공부다 그말이여.

 

그렇게 순일하게, 화두를 들려고 해도 화두가 터억 들려서 의단(疑團) 독로(獨露)하걸랑, 독로한 의단을 성성(惺惺) 가운데 묵묵히 그것을 관조(觀照) 하는 거여. 없는 의심의 ()이여. 의심관(疑心觀).

거기에는 고요하다는 생각도 붙을 수가 없고, 편안하다는 생각도 붙을 수가 없고, 맑고 깨끗하다는 생각도 어떻게 거기다가 그런 생각을 붙일 수가 있냐 그말이여. 고요하고 맑고 깨끗하고 편안한 그런 생각에는 조금도 그런 생각을 두어서도 안되고, 그런 생각을 즐겨서도 안되고, 그런 생각을 집착해서도 안돼.

 

다맛 우리가 일은 없는 의단(疑團)만을 잡드리 나가는 거여. 너무 긴하게 잡드리를 해서도 안되고, 너무 늘어지게 해서도 안되고, () () 긴완(緊緩) 득기중(得其中) 해야 . 그것이 묘한 ()이라 말할 수가 있는 거여.

 

()이라 하는 것도 일종에 생각이지만, 생각없는 생각을 ()이라 하는 거여.

우리가 참으로 올바르게 화두를 들을 모르는 사람은 부득이 해서 생각을 일으켜 가지고 화두를 참구를 하는데, 일구월심 정진을 해서 참으로 바르게 화두를 참구할 아는 사람은 바로 ()으로 들어가는 거여. 관이란 생각없는 생각으로 생각하는 것을 관이라 그러는 거여.

 

조금도 늘어지지도 않고, 조금도 긴하지도 아니한() 의심(疑心) ()’으로 나가야 되는 거여.

 

1분의 백천 분의 1 같은 그런 짧은 시간도 생각을 일으켜서 일어나는 잡념을 물리칠라 것도 없고, 그렇게 화두가 순일하게 된다 해도 아주 미세한 생각은 이렇게 일어날 수가 있어.

일어나지만 그것을 일어나는 생각을 물리칠라고 생각을 내서는 아니되는 거여. 생각이 일어나더라도 일어난 채로 그냥 놔둬 버리고, 자기 화두만을 관해 나가면 생각은 자취없이 스쳐서 지내가 버리는 거여.

 

마치 앞으로 춥도 덥지도 않는 봄철이 돌아오겠지마는, 봄철에 도량이나 동산에 나가서 산책을 하면서 포행을 하면서 정진을 때에 춥지도 덥지도 않는 봄바람이 귓전에 스쳐간다고 해서 봄바람 때문에 화두가 도망갈 필요는 없거든.

그냥 귓전을 스쳐서 지내가고 옷자락이 팔랑거리거나 말거나 내버려둬 버리고, 나는 성성적적(惺惺寂寂)허게 의심의 () 단속해 나가는 것처럼, 일어나는 크고 작은 모든 번뇌가 일어난다 하드라도 그냥 놔둬 버려.

 

끝없이 일어났다가 없어지고 일어났다 꺼져 버리고, 내가 거기에 따라주지만 아니하고, 집착하지만 아니하고, 물리칠라고 하지도 말고, 그러면은 그냥 결에 일어났다가 제물에 그냥 스쳐가 버리는 거여.

그까짓 것은 내가 공부해 나가는 조금도 방해로울 것이 없는 것이여.

우리 활구참선을 하는 수행자는 승속(僧俗) 막론하고 화두를 올바르게 잡두리 나갈 줄만 알면,

어디를 가거나 선불장(選佛場)이요, 그게 바로 선방(禪房)이요, 공부처(工夫處) 그말이여.

 

 

[참고②] 송담스님(No.256)—85 2 첫째 일요법회(85.02.03) (5분 57초)

금년 여름에 보살선방에 백여섯 분이 방부를 들여서 항시 칠팔십 명이 그렇게 엄격한 규율 속에서 정진들을 모다 애쓰고 계시는데 자세를 바르게 하고, 호흡을 바르게 하고, 나아가서 번째 가서는 화두(話頭) 어떻게 의심(疑心) 하느냐?

화두를 의심하는 방법, 이것이 또한 간단하지만 이것이 어려운 것입니다. , , , 3, 5, 10년을 해도 화두를 참으로 올바르게 화두를 참구(參究)하고, 관조한다는 것은 어려운 것입니다. 이것은 말로이렇게 하는 것이 좋다말하기가 어렵습니다.


법문을 듣고 고대로 하고, 고대로 하면서 법문을 듣고 해서 스스로 많은 노력, 스스로 그것을 공부해 나가는 요령급하지도 않고 너무 늘어지지도 아니하며, 요령을 스스로 터득을 해야 합니다.

스스로 터득한다니까 선지식(善知識) 필요 없고, 자기 혼자 어디 돌굴이나 토굴에 가서 해제끼면 되냐 하면 그게 아니에요. 반드시 선지식의 지도를 받되, 받아 가지고 하면서도 스스로 묘한 의관(疑觀) 얻어야 하는 것입니다.


묘한 의심관이라 하는 것은 도저히 어떻게 말로써 설명해 가르켜 수가 없습니다. 자기가 일구월심(日久月深) 항시 면면밀밀(綿綿密密)하게 의심해 가고 관해 가고, 자세와 호흡과 화두를 삼위가 일체가 되도록 조정을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필경에는 묘한 의심관인 것입니다. 의심관, ()이라 하는 것도 일종의 생각이지만생각 없는 생각 관이라 이렇게 말할 수가 있는데, 막연하게 어떤 관이 아니라 활구참선(活句參禪)의심(疑心) 이라야 .


옛날에는 해가 떨어지려고 , 서산에 지려고 , 수평선에 해가 지려고 때에, 맷방석만한 해가 땅에 질락 말락 빨갛고 아름다운 해가 중천에 있을 때는 눈이 부셔서 수가 없는데, 해가 무렵에는 눈이 부시질 않고 아름답고 벌건 굉장히 해를 수가 있습니다.

아름다운 해를 한참 보는 것입니다. 마지막 떨어져서 보일 때까지 시간 내지 시간을 눈이 부시지 아니할 때부터서 그것을 관하기 시작해 가지고 마지막 때까지 관찰하고서, 다음에는 밤새 눈을 감으나 뜨나 찬란하고 아름다운 둥그런 해를 ()하는 것입니다.


눈을 감고서도 보이는 것이 그것이 () 것입니다. 눈을 뜨나 감으나 상관없이 항시 있는 것이 그것이 관인데, 그것을 갖다가 일관(日觀)이라 그러거든. 해를 관하는 수행법이여.

밤새 둥근 해를 갖다가 관하고, 이튿날 하루 종일 관하다가 다시 관을 해서, 관을 다시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밤새 관하고, 이튿날 관하고 관하고 해서 평생 동안을 그렇게 관을 나가는데, 이것도 하나의 수행 방법입니다.


이러한 일관이라든지 달을 관하는 관법이라든지, 아까 백골관이라든지, 여러 가지 관법(觀法) 있는데, 참선도 하나의의심의 관법이라 이렇게 말할 수가 있습니다.

성성(惺惺)하고 적적(寂寂)하면서도, 일부러 화두를 들려고 하지 아니해도 저절로 의심관이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의단(疑團) 독로(獨露)하도록,

 

처음에는이뭣고?’ ‘이뭣고?’하지만 나중에는이뭣고?’ 해도 없는 의심이해가 봐두었던 둥근 해가 밤에도 고대로 보이고, 이튿날에도 고대로 환하게 보이듯이, 의심관이 그렇게 되어야 하거든.

그렇게 해서 타성일편(打成一片) 되면 일주일을 가지 못해서 공안을 타파(打破)하게 되고, 일체 천칠백 공안을 일관도천(一串都穿) . 자기의 본래면목(本來面目) 역대조사(歷代祖師) 면목을 사무쳐 보게 되는 것입니다.

*선방(禪房) ; ①참선(參禪)하는 . ②선원(禪院).

*죽비( 대나무 /빗치개·통발 ) ; 예불이나 참선 정진할 죽비를 손바닥에 쳐서 소리를 내어 시작과 끝을 알리는데 쓰는 불교 용구.

 

Posted by 닥공닥정
정진(精進) 수행2015. 6. 21. 16:11

 

 

§(세등39) (게송)황앵상수일지화~ / 무상설법(無上說法) / 일초직입여래지 / 선용기심(善用其心) / 화두 의단타파 확철대오하는 이 도리를 산승은 부처님을 모시고 증명합니다.

언제 어느 찰나에 깨달을런지를 모르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본참화두(本參話頭)를 거각(擧却)하고 성성적적한 상태로 정진을 해 가야 하는 것입니다.

 

공부가 잘 안되고, 화두가 잘 안 들리고, 답답하고 몸부림쳐지고 애를 먹을 때 그때, 선용기심(善用其心), 잘 그 마음을 잡드리해서 화두를 들고 공부를 지어 나가면 그 고비가 바로 깨달을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는 좋은 고비다.

 

‘철저하게 무상(無常)을 깨닫지 못한 사람은 도업(道業)을 이루지 못한다’ 하셨습니다. 생사(生死)가 호흡지간(呼吸之間)에 있다고 하는 사실을 명심을 하셔서 1초 1초를 금쪽같이 아껴서 공부하고, 한 생각 한 생각 일어날 때마다 화두를 거각해서 등한(等閒)히 지내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송담스님(세등선원No.39)—임술년 하안거 결제 법어(82.04.17) (세등39)

 

(1) 약 22분.

(2) 약 12분.


(1)------------------

황앵상수일지화(黃鶯上樹一枝花)요  백로하야천점설(白鷺下野千點雪)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야래풍우(夜來風雨)를 객문선(客聞先)헌데  춘산의구초당전(春山依舊草堂前)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황앵(黃鶯)이 상수(上樹)하니 일지화(一枝花)요, 노란 꾀꼬리가 나무에 오르니 한 가지 꽃이요.
백로하야천점설(白鷺下野千點雪)이다. 흰 해오라기가 들에 내리니 천점의 눈이더라.

야래풍우(夜來風雨)를 객문선(客聞先)인데, 밤새 오는 비바람 소리를 객이 먼저 들었는데,
춘산의구초당전(春山依舊草堂前)이로구나.  봄 산은 옛을 의지해서 초당 앞에 서 있구나.

임술년 하안거 결제일을 맞이했습니다.
벌써 4월 17일 입하(入夏)가 지나서 뜰 앞, 뜰 뒤 산과 들은 바야흐로 연록(軟綠)의 계절이 돌아왔습니다. 그 아름다운 꽃들도 지고 지금 모란꽃이 한창 피어 있습니다.

노란 꾀꼬리가 가지에 오르니 한 송이의 꽃이요, 흰 해오라기가 들에 내리니 천점의 눈이로다.
한 송이의 꽃, 노란 꾀꼬리 한 마리가 떠억 나뭇가지에 오르니 한 송이의 아름다운 꽃이다.

꾀꼬리 한 마리가 나뭇가지에 오를 때 한 가지의 아름다운 꽃이요.
산과 들과 방방곡곡 금수강산(錦繡江山)이 울긋불긋한 꽃과 잎이 비단에 수(繡)놓은 것처럼 이렇게 싱그럽고 아름답게 장엄(莊嚴)을 하고 있습니다.

범연(泛然)히 보면, 예사로 보면, 봄이 오니까 잎이 피고 꽃이 피고, 여름이 돌아오니까 이렇게 무성하게 잎이 모다 피어오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고, 너무나 평범한 일이지만,
깨달은 눈으로 보면 이 평범한 현실이 입으로 설할 수 없고, 문자로 표현할 수 없는 최고의 진리를 남음이 없이 설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눈을 통해서 보는 모든 색상, 귀를 통해서 듣는 모든 소리, 코를 통해서 맡는 모든 냄새, 혀를 통해서 맛보는 모든 맛, 몸을 통해서 느끼는 모든 감각, 뜻을 통해서 받아 들여지는 모든 의식이 바로 진리를 깨닫게 하는 무상설법(無上說法)으로 나타났던 것입니다.

부처님은 납월팔일(臘月八日) 새벽 동천(東天)에 떠오르는 샛별을 보시고 견성성불(見性成佛) 하셨고,
어떠한 도인(道人)은 복숭아꽃 피는 것을 보고 깨달으시기도 하고, 어떠한 도인은 물 흘러가는 것을 보고 깨닫기도 하고, 어떠한 도인은 닭 우는 소리를 듣고 확철대오(廓徹大悟) 하기도 하고,
어떠한 도인은 시장에서 장사꾼들이 멱살을 거머쥐고 서로 다투고 욕을 하는 그 소리를 듣고 깨달은 분도 있고, 우리도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확철대오를 할는지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깨달을 때에, 차츰 차츰 알아 들어가 가지고 깨닫는 것이 아니라,
알 수 없는 의단, 꽉 맥혀서 알 수 없는 의단(疑團)만이 독로(獨露)해서 순일무잡(純一無雜)한 경계에 들어가서,
화두를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화두가 성성적적(惺惺寂寂)하게만 나가고 있으면, 언제 어느 찰나에 의단이 타파(打破)될런지를 알 수가 없어.


예를 들자면 어느날 중대한 뉴스가 발표가 된다. 확실한 시간은 모르지만 오늘 중으로 무슨 중대한 발표가 있다.
이럴 때에 아침부터 라디오나 TV 다이알을 딱 맞춰 놓고—언제 중대한 발표가 돌연히 발표가 될는지 모를 때 딱 다이알을 맞춰놓고 대기하고 있는 것처럼,
벌써 다이알을 맞춰놓지 아니한 채 있다가 지나가 버리면 중대한 발표를 듣지 못하는 거여.

언제 발표될지를 모를 때처럼, 딱 다이알을 맞춰놓고 있어야 하는 것처럼,
언제 어느 찰나에 깨달을런지를 모르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본참화두(本參話頭)를 떠억 거각(擧却)하고 성성적적한 상태로 정진을 해 가야 하는 것입니다.

번갯불 번쩍할 때에 그 번쩍 하는 그 찰나를 이용해서 바늘귀를 뀌듯이, 깨달음의 눈을 뜨는 그 장면은 마치 그와 같은 것이여.
점진적(漸進的)인 것이 아니고, 비약적(飛躍的)인 것이기 때문에 일초직입여래지(一超直入如來地), 한번 뛰어서 여래(如來)의 경지에 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에 이 공부는 1분 1초라도 등한히 놓아 지낼 수가 없는 것이여.

다른 공부는 시간을 맞춰서도 하고, 또 공부 아니할 때에는 만사를 다 잊어버리고 즐겁게 놀기도 하고, 먹고 잠도 자기도 하고, 사업이나 무슨 사무나 모든 것을 다 놔 버리고 훌쩍 떠나서 저 산이나 바다로 쉬러 가기도 하고,
그렇지만, 우리의 공부는 쉬는 시간이 없습니다.

밥을 먹을 때에도 화두를 들고 먹어야 하고, 세수를 할 때에도 화두를 들고 세수를 해야 하고, 똥을 눌 때에도 화두를 들고 똥을 눠야 하고, 몸이 아플 때에도 화두를 들고 꿍꿍 앓아야 하고,
속이 상할 때에도 화두를 들고 속을 상해야 하고, 다정한 사람이 죽어서 슬플 때에도 화두를 들고 슬퍼해야 하고,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속이 상할 때나 괴로울 때나,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아니하고,

단 1초 동안이라도, 찰나 동안이라도 화두를 놔 버리면 그 사람은 진실한 수행인이라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 공부가 마냥 한결같이 잘되는 것이 아니고, 어느 때에는 순풍에 돛 달듯이 화두가 저절로 들리면서 성성하게 잘되어 가다가,
또 어떤 때에는 뚝 변해 가지고 영 답답하고 머리가 개운치를 못하고, 시간이 지루하고 몸부림이 쳐지고 어찌해 볼 수 없이 그렇게 애를 먹은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나귀를 끌고 깊은 우물로 들어갈라고 하는 것처럼, 되게 고삐를 땡겨서 우물로 들어갈라고 하면 할수록 나귀는 뒤로 버티고 안 들어올라고, 이렇게 공부하기가 어렵고 힘이 든 때도 있습니다.
수월하게 잘될 때 보다도 이렇게 공부가 잘 안되고 힘이 들고, 애를 먹고 답답하고 몸부림쳐질 때 그때가 훨씬 중대한 중요한 고비라 하는 것을 잘 인식을 해야 할 것입니다.

<서장(書狀)>에도 대혜(大慧) 스님께서 그 점에 대해서 누누히 강조하신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렇게 공부가 잘 안되고, 화두가 잘 안 들리고, 답답하고 몸부림쳐지고 애를 먹을 때 그때,
선용기심(善用其心), 잘 그 마음을 잡드리해서 화두를 들고 공부를 지어 나가면 그 고비가 바로 깨달을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는 좋은 고비다 이 말씀이여.

공부가 한 걸음 나아갈랴면은 그와 같은 경계를 만나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러한 고비를 잘 넘기고 나면 그 다음부터서는 한결 공부가 수월하고 힘을 얻게 된다 이것입니다.

흔히 화두가 성성하게 잘 들리면은 공부가 잘된다고 좋아하고,
그러다가 보면 또 공부가 영 답답하고 잘 안되면 그 안되어서 성화를 내고 거기에서 번뇌심을 내고, 짜증을 내고, 자포자기하는 마음을 내고, 어쩔 줄을 몰라.
기도를 해볼까? 주력을 해볼까?


불행방초로(不行芳草路)허면  난지낙화촌(難至落花村)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산진수궁의무로(山盡水窮疑無路)터니  유암화명우일촌(柳暗花明又一村)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불행방초로(不行芳草路)허면 난지낙화촌(難至落花村)이라.
꽃다운 풀 우거진 길을 지나가지 아니하면, 꽃 떨어진 마을에 이르기 어렵다.
향기나는 풀이 우거진 오솔길을 지나가야 꽃이 활짝 피고 지고 한 아름다운 고장에 들어갈 수가 있다.

수궁산진의무로(水窮山盡疑無路)터니, 산이 다하고 물이 다해서 이제 맥혀 가지고 인자 길이 없지 않나? 이렇게 의심했더니,
유암화명우일촌(柳暗花明又一村)이다. 버들은 그윽히 드리워져 있고, 꽃이 화사하게 피어있는 또 한 마을이 있더라.(처음~21분37초)




(2)------------------

아무리 화두를 들고 정진 할라고 애를 써도 가도가도 답답하기만 하고, 한 걸음도 공부가 더 나아가는 늘어나는 수가 없어. 작년에 마냥해도 그 택이요, 금년에도 마냥해도 그 택이요. 그 또 몇 해냐?

몇 해를 자기 딴에는 밤잠을 안 자고, 남 구경하고 놀러가도 자기는 구경하고 놀 것을 그만두고 자나깨나 화두를 들고 애를 써서 공부를 한다고 하는데 만(萬)날 해도 죽 떠먹은 자리여.
누구한테 내놓을래야 내놓을 것이 있나, 콱 맥혀서 답답하기만 하고.

‘참으로 확철대오라고 하는 것이 있는 것인가?’

‘공연히 이렇게 화두만 꽉 아무 생각 못하게 하고 잡념 못하게 하기 위해서, 풀라야 풀 수도 없고 아무 답도 있을 수도 없는 그런 공안(公案)이라 하는 문제를 주어 가지고 이 사람 골때리는 지서리가 아닌가?’

‘무슨 이거 방편(方便)으로 이 화두를 참구(參究)하게 만들어 가지고 마침내 번뇌 망상 안 일어나게 하기 위해서, 조사(祖師)가 방편으로 화두니, 공안이니 하는 것을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닌가?’
이러한 생각도 들드라 이 말씀이여.

3년 5년 10년 해봤자 무슨 소식이 있어야지?
해 갈수록 답답하기만 하고 혼침(昏沈)만 오고, 아무리 화두를 들라고 몸부림을 쳐도 끊임없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망상뿐이고, 망상이 조금 잠잠해질라 하면 그때는 또 혼침이 와 가지고,

얼마나 답답하고 얼마나 지루하고 얼마나 못 견뎠으면 웃옷을 벗어서 방바닥을 치면서 ‘이 조주(趙州)가 뭣 때문에 무자(無字) 화두를 내 가지고 이 사람을 이렇게 골탕을 먹이냐’고 다리를 뻗고 우는 스님도 있었고,
머리를 갖다가 벼람박에나 기둥에다 갖다가 이마를 수없이 들이받으면서 피가 나도록 받으면서 죽어버리고 싶은 이러한 충동을 느끼는 수도 있고,

그러나 역대조사(歷代祖師)의 남기신 법어(法語)를 보면 결정코 우리를 속이지 않는 사실을 우리는 인증할 수가 있습니다.

사량분별심(思量分別心)으로는 아무리 따져도 해결이 안 되지만,
선지식(善知識)의 바른 지도에 의해서 여법(如法)하게 정진을 하면, 그래 가지고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랴고 안 해도 저절로 화두가 독로하고,

머리를 들어도 하늘이 보이지 아니하고, 머리를 숙여도 땅이 보이지 아니하고, 산을 봐도 산의 빛깔과 모냥에 대해서 보이지 아니하고, 물을 봐도 물이 보이지 아니하고,
걸어가되 걸어가는 줄을 모르고, 앉았으되 앉아있는 줄을 모르고, 천 명 만 명 사람이 있는데 서 있어도 한 사람도 사람이 보이지 아니하고, 밥을 먹고 반찬을 먹어도 짜고 싱거운 줄을 모르고,

이러한 경지에—오직 화두의 의단 하나만이 성성적적하게 독로하고, 이러한 경계에 들어가서도 빨리 깨닫기를 기다리지 아니하고, 누가 나로 하여금 이럴 때 툭 깨닫게 해 주기를 바래지도 말고,
다못 이와같이 공부를 지어가야 일주일이 가지 아니해서 반드시 의단이 타파가 되어서 확철대오를 할 것이다.
이것은 속일 수 없는 사실이여. 역대조사가 다 그러한 과정을 겪으셨어.

‘이것이 만약에 거짓이라면은 거짓말한 죄로 무간지옥(無間地獄)에 가겠다’고 오조(五祖) 홍인대사(弘忍大師)도 맹세를 하셨고, 몽산(蒙山) 스님도 맹세를 하셨고,
산승(山僧)도 이 도리를 믿고 여러분 앞에 부처님을 증명으로 모시고 여러분에게 선언을 합니다.

출가한 목적은 오직 이 한 문제!
이 일대사(一大事) 해결하는 일 밖에는 다시 무엇이 있습니까?

부모와 정든 고향을 버리고 청춘을 버리고 인생의 모든 낙(樂)을 다 버리고 머리를 깎고 출가한 우리들입니다. 정말 목숨 바쳐서 정진을 해야 할 것입니다.

인생 칠십이라 하지만 누구나 칠십까지 다 사는 것도 아니고, 하루도 장담을 못하는 것이고, 한 시간도 믿을 수가 없고, 숨 한번 내쉬었다 들어마시지 못하면 바로 그것이 내생(來生)인 것입니다.

‘철저하게 무상(無常)을 깨닫지 못한 사람은 도업(道業)을 이루지 못한다’ 하셨습니다.
생사(生死)가 호흡지간(呼吸之間)에 있다고 하는 사실을 명심을 하셔서 1초 1초를 금쪽같이 아껴서 공부하고, 한 생각 한 생각 일어날 때마다 화두를 거각해서 등한(等閒)히 지내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정진심(精進心)을 일으켜서는 안 된다.

‘오늘부터서는 내가 잠을 안 자고 공부를 하리라. 내일부터서는 묵언을 하고 공부를 하리라. 내일부터서는 오후불식(午後不食)을 하리라. 그래 가지고 말을 아니하고 가행정진(加行精進)을 하리라’
그렇게 마음을 먹고 정진을 애써서 할려고 하는 그러한 기특하고 갸륵한 수행인이 있습니다.

대단히 기특하고 갸륵하고 매일 같이 자기를 ‘오늘 하루는 어떻게 공부를 했는가’ 반성을 해 보고 ‘내일은 어제보다 더 알뜰히 공부를 하리라’ 이렇게 시시각각으로 단속을 하고 또 단속을 하는 것, 참 좋습니다.
단 하루도 등한히 지낸 날이 없고, 하루하루 갈수록 더 알차게 공부를 해 나가는 것, 대단히 좋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생각 일으키는 그 생각마저도 화두를 간절히 든다면 어느 것이 더 낫겠습니까?

‘게으른 사람은 항상 뒤를 바라보고, 지금의 일찰나(一刹那)를 등한히 한다’ 그랬습니다.

진실한 수행인은 ‘앞으로 잘하리라’하는 생각도 일으키지 말고, 당장 지금 이 찰나에 허리를 쭉 펴고 화두를 간절히 드는 법인 것입니다. 이것이 최상승 학자의 수행 자세인 것입니다.
이렇게 1초 1초를 다져 나간다면 그 사람은 그날 하루도 알차게 공부를 하게 될 것이고, 물어 볼 것도 없이 내일 하루도 충실하게 정진이 되어질 것입니다.

1초 1초가 모여서 1분이 되고, 1분 1분이 모여서 한 시간이 되고, 한 시간 한 시간이 모여서 하루가 되고, 하루 하루가 모여서 한 달이 되고, 한 달 한 달이 모여서 1년이 되기 때문에,
1초 1초, 한 생각 한 생각을 알뜰히 단속한 사람이야말로 일생을 충실하게 정진할 사람이고, 나아가서는 억겁(億劫)의 생사 문제도 ‘한 생각’에서 해결이 나는 것입니다.

‘일념(一念)이 바로 무량겁(無量劫)’이라고 하는 법성게(法性偈)의 법문을 보면 알 수가 있을 것입니다.
일념 일념, 1초 1초를 등한히 한 사람은 무량겁 생사윤회가 끊어지지를 아니한 것입니다.(21분40초~34분6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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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黃鶯上樹一枝花 白鷺下野千點雪 ; 『오등회원(五燈會元)』 15 「奉先深禪師 참고.
師曰 古人道白鷺下田千點雪,黃鶯上樹一枝花 維那作麼生商量?
*(게송) 夜來風雨客聞先 春山依舊草堂前 ; 『매천집』 (3권) (매천 황현의 시문집) ‘復至文星齋 참고.
[참고] 『매천집(梅泉集)』 (3) - () : 신축고(辛丑稿)
 다시 문성재에 이르러〔復至文星齋〕 (한국고전번역원, 박헌순 )
夜來風雨客聞先 隔嶺思家轉杳然 已過頭番摘茶候 將蕪一畝種蔘田 老懷慣與同庚話 詩訣勤從後輩傳 世事十年驚百變 春山依舊草堂前
 
밤에 부는 비바람 소리 나그네가 먼저 듣고, 고개 너머 고향 집이 더욱 아득히 생각나네. 첫 찻잎  시기는 이미 제철 지나갔고, 한 뙈기 인삼 밭은 장차 묵밭이 되어 가리.
늙은이 회포를 익숙하게 동갑 벗과 주고받고, 시 짓는 비결은 부지런히 후배에게 전해 주네. 세상일은   동안 백번이나 변했지만, 봄 산은 예전처럼 초당 앞에 우뚝하네.
*매천 황현(梅泉 黃玹 1855~1910) ; 전남 광양 출생. 한말의 시인, 문장가, 우국지사. 1910 829 한일합방의 치욕을 당하자, 절명시(絶命詩) 4편을 남기고 910 음독 자결하였다.
*연록(軟綠 연할 /초록빛 ) ; 연한 녹색. 연녹색. 연한 초록색(草綠色).
*금수강산(錦繡江山) ; 비단에 수를 놓은  매우 아름다운 산천. 함경북도 북쪽 끝에서 제주도 남쪽 끝까지 3,000리가 되는 우리나라의 자연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장엄(莊嚴 엄숙할삼가할꾸밀 /엄할공경할꾸밈 ) ; ①좋고 아름다운 것으로 국토를 꾸미고, 훌륭한 공덕을 쌓아 몸을 장식하고, 향이나  따위를 부처님께 올려 장식하는 .
②건립하는 . 건립. 훌륭히 배치, 배열되어 있는 . ③장식. 물건을 장식하는 . 아름답게 장식함. 훌륭한 . 엄숙하게 장식된 모양, 모습. 장식물.
*범연(泛然) ; ①두드러진 데가 없이 평범하게. ②특별한 관심이 없어 데면데면하게.
*삼세제불(三世諸佛) ; 삼세(三世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부처님[諸佛].
*역대조사(歷代祖師) ; 석가세존(釋迦世尊)으로부터 불법(佛法)을 받아 계승해 온 대대의 조사(祖師).
*무상설법(無上說法) ; 진리를 깨닫게 하는 최고의 가르침.
*납월팔일(臘月八日) ; 납월(臘月)은 음력으로 한 해의 맨 마지막 달을 이르는 말. 음력 12월 8일.
석가모니가 35세의 12월 8일 중인도 마갈타국 니련선하(尼連禪河)가에 있는 보리수 아래에서 샛별[明星]이 뜰 무렵 별을 보고 불도(佛道)를 이루던 날. 부처님의 성도일(成道日). 납팔(臘八)이라고 줄여 쓰기도 하고, 성도회(成道會) · 성도절(成道節) · 성도재일(成道齋日) 등이라고도 한다.
이 석가모니의 성도를 기념하기 위해 선원에서는 초하루부터 팔일 새벽까지 밤낮으로 잠을 자지 않고 용맹정진(勇猛精進)을 한다.
*샛별 ; 새벽별. 명성(明星). 새벽에 동쪽 하늘에서 밝게 빛나는 ‘금성(金星)’을 이르는 말. 새벽별, 태백성(太白星), 계명성(啓明星), 장경성(長庚星) 등이라고도 한다. 『보요경(普曜經)』에 따르면 석가모니(釋迦牟尼)께서 이 별이 돋을 때, 정각(正覺)을 이루었다고 한다.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꿰뚫어 보아[] 깨달아 부처가 [成佛].
*도인(道人) ; ①불도(佛道)를 수행하여 깨달은 사람. ②불도(佛道)에 따라 수행하는 사람.
*'어떠한 도인(道人) 복숭아꽃 피는 것을 보고 깨달으시기도 하고' ;
[참고]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 (제11권) (전등록 1, 김월운 옮김 | 동국역경원) p730.
福州靈雲志勤禪師本州長溪人也 初在潙山因桃華悟道 有偈曰 三十來年尋劍客 幾逢落葉幾抽枝 自從一見桃華後 直至如今更不疑 祐師覽偈詰其所悟與之符契 祐曰 從緣悟達永無退失 善自護持
 
복주(福州) 영운지근(靈雲志勤) 선사. 그는 본주(本州 : 福州)의 장계(長溪) 사람이니, 처음에 위산에 있다가 복사꽃을 보고서는 도를 깨닫고 게송을 지었다.
 
30년 동안 검(劍)을 찾던 나그네여. 몇 차례나 잎이 지고 가지가 돋았나.
스스로 복사꽃을 한 차례 본 뒤로는 지금에 이르도록 다시는 의심치 않네.
 
영우(靈祐)가 이 게송을 보고 그 깨달은 바를 따져서 서로 계합하였다. 영우가 말했다.
"인연 따라 깨달아 도달했으니, 영원히 물러나지 않으리니 잘 보호하여 간직하라"
 
*'어떠한 도인은  흘러가는 것을 보고 깨닫기도 하고' ;
[참고] 『선관책진(禪關策進)』 (운서주굉 스님 지음) 「제조고공절략(諸祖苦功節略 조사들의 공부법)」의 ‘이두촉주(以頭觸柱 머리를 기둥에 부딪치다)’에서.
中峰本禪師 侍高峰死關 晝夜精勤 困則以頭觸柱 一日 誦金剛經 至荷擔如來處 恍然開解 自謂所證未極 彌益勤苦 咨決無怠 及觀流水 乃大悟
評曰 自謂所證未極 故終至極處 今之以途路 爲到家者 衆矣 嗟夫
 
중봉본(中峰本) 선사는 사관(死關)에서 고봉(高峰) 화상을 모시고 주야로 정진하며 지내는데, 곤(困)하면 머리를 기둥에 부딪치곤 했다. 하루는 금강경을 외우다가 '하담여래처(荷擔如來處)'라는 대목에 이르러 환하게 개해(開解)하더니 스스로 말하기를 "증한 바가 아직 구경(究竟)이 아니다"하고 더욱 힘써 정진하여 부지런히 법을 묻고 결택하더니, 어느 날 물이 흘러가는 것을 보고 마침내 대오(大悟)하였다.
(평) 중봉선사는 스스로 '증한 바가 구경이 아니다'라 했으니, 그런 까닭으로 마침내 지극한 곳에 이르렀거늘 지금에 길위에 있으면서도 집에 이른 것으로 아는 자가 많으니 딱한 일이다.
 
*'어떠한 도인은  우는 소리를 듣고 확철대오(廓徹大悟) 하기도 하고' ;
[참고] 서산대사(西山大師) ; (1520~1604) 조선의 스님. 평남 안주 출신. 법명은 휴정(休靜). 호는 청허(淸虛). 서산(西山)인 묘향산에 오래 머물러 서산(西山)이라고도 함.
9세에 어머니를, 10세에 아버지를 여의고 안주 군수를 따라 한양에 가서 12세에 성균관에 입학함. 15세에 과거에 응시하였으나 낙방하고 동배(同輩) 여러 명과 함께 지리산을 유람하며 지내다 숭인(崇仁)의 설법을 듣고 남아 여러 경전을 정독하고 다시 부용 영관(芙蓉靈觀, 1485-1571)에게 3년 동안 지도를 받았다. 그 때 그의 나이 18세. 그 3년뒤 21세에 계(戒)를 받음.
 
그 후 명산 제찰(名山 諸剎)을 찾아다니면서 수도하다가, 어느 날 벗을 찾아 봉성(鳳城 : 南原)을 지나가다 우연히 낮닭 우는 소리를 듣고 크게 깨쳐 다음과 같이 게송을 지었다.
 
발백심비백(髮白心非白) 고인증누설(古人曾漏洩) 머리 세어도 마음 안 센다고 옛 사람 일찌기 일렀더구나.
금문일계성(今聞一鷄聲) 장부능사필(丈夫能事畢) 닭울음 한 소리 이제 듣고 나니 장부의 할 일을 다 마쳤도다.
홀득자가저(勿得自家底) 두두지차이(頭頭只此爾) 문득 자가 것을 깨닫고 나니 온갖 것이 다만 이뿐이로세.
천만금보장(千萬金寶藏) 원시일공지(元是一空紙) 팔만대장경도 본시는 한 장 빈 종이로세.
 
그 뒤로 관동(關東)의 명산을 두루 편답하니 그 때 나이가 30이었다.
 
1552년(명종 7)에 새로 부활된 승과(僧科)에 합격하여 대선(大選)이 되고, 3년 후에는 선교양종판사(禪敎兩宗判事)가 되었으나 2년 후에 그 직책을 사양하고 금강산 · 지리산 · 묘향산에서 수행함.
1592년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선조는 휴정을 팔도도총섭(八道都摠攝)에 임명하니, 그는 묘향산에서 나와 전국 승려들에게 총궐기하는 격문을 방방곡곡에 보내 승군(僧軍)을 평남 순안 법흥사(法興寺)에 집결시켜 여러 곳에서 큰 공을 세움.
 
임진왜란 7년 전쟁이 끝난 후 79세의 휴정은 그의 제자 유정(惟政)과 처영(處英)에게 모든 일을 맡기고 묘향산으로 들어감. 그 뒤로도 금강산, 지리산, 묘향산 등지를 왕래하며 많은 제자를 이끌었다. 1604년(선조 37) 정월 23일에 묘향산 원적암(圓寂庵)에서 입적함. 세수 85세, 선납(禪臘) 65.
 
그 날 아침 대사는 목욕을 하고 옷을 갈아입은 뒤 눈이 쌓인 길을 헤치고 남여(籃輿 : 주로 산길에 쓰이는 뚜껑이 없고 의자같이 된 가마)를 타고 여러 암자를 마지막으로 돌아보신 후 원적암으로 돌아와 손을 씻고 위의를 갖추고 불전에 분향한 다음 스스로 붓을 들고 조실(祖室)에 들어가서 그의 자화상에 이렇게 적었다. 즉
 
팔십 년 전 거시아(八十年前渠是我) 팔십 년 전에는 네가 내러니
팔십 년 후 아시거(八十年後我是渠) 팔십 년 뒤 오늘은 내가 너로다.
 
하고, 다시 임종게(臨終偈)로써 「千計萬思量  紅爐一點雪  泥牛水上行  大地虛空裂」
억천만 가지 온갖 생각들  불에 떨어진 흰눈 한 조각, 진흙 황소가 물 위로 가고  땅과 허공이 꺼져 버렸네.
 
이렇게 써놓고 고요히 앉아서 입적하였다.
저서 : 삼가귀감(三家龜鑑)·선가귀감(禪家龜鑑)·선교석(禪敎釋)·청허집(淸虛集)·운수단(雲水壇).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의단(疑團 의심할 의/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독로(獨露 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홀로[獨] 드러나다[露].
*의단독로(疑團獨露 의심할 의/덩어리 단/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공안,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가 홀로[獨] 드러나다[露].
*순일무잡(純一無雜 순수할 순/하나 일/없을 무/섞일 잡) ; 대상 그 자체가 순일(純一)해 전혀 이질적인 잡것의 섞임[雜]이 없음[無].
*성성적적(惺惺寂寂) ; 온갖 번뇌 망상이 생멸하지 않고 마음이 고요[寂寂]하면서도 화두에 대한 의심이 또렷또렷[惺惺]한 상태.
*타파(打破) ;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화두(話頭) 대한 의심(疑心) 관조(觀照) 나가는 ,   없는 그리고  맥힌 의심으로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더이상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더이상 의심이 커질  없고, 더이상 깊을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가슴속이 가득차고,  세계가 가득 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때에도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때도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때에는 꿈속에서도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 확철대오(廓徹大悟) 하게 되는 것입니다. 큰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항아리를 큰돌로 내려치면은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참선법 A’ 에서]
*본참화두(本參話頭) ; 본참공안(本參公案).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거각(擧却 들 거/어조사 각) ; 화두를 든다. ‘화두를 든다’ ‘화두를 거각한다’는 말은 자신의 본참화두를 들 때 알 수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그 알 수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觀照)하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 세등선원(No.09)—병진년 동안거 결제중 법어(76.12.26)에서.
화두를 먼저 이마로 의심을 하지 말고, 이 화두를—호흡하는데 배꼽 밑[丹田]에 숨을 들어마시면은 배가 볼록해지고 숨을 내쉬면은 배가 홀쪽해지는데, 그 배가 빵빵해졌다 홀쪽해졌다 하는 거기에다가 화두를 들고 ‘이뭣고~?’ ‘알 수 없는 생각’ 관(觀)하는 그것이 화두를 드는 것이여.
*뀌다 ; ‘꿰다 사투리.
*점진적(漸進的 점점 /나아갈 /조사 ) ; ①점차로 조금씩 나아가는. ②점차로 조금씩 나아가는 .
*비약적(飛躍的  / /조사 ) ; ①단계를 껑충 뛰어 아주 빠르고 눈부시게 발전, 향상하는. 정상적인 단계를 차례로 밟지 않는. ②단계를 껑충 뛰어 아주 빠르고 눈부시게 발전, 향상하는 . 정상적인 단계를 차례로 밟지 않는 .
*일초직입여래지(一超直入如來地) ; ‘한 번 뛰어 여래(如來)의 경지에 바로 들어간다’
*여래(如來) : 부처님 10호(十號)의 하나。 범어 tathāgata의 역(譯)。 여(如)는 진여(眞如)의 뜻이니 곧 진여로부터 나타나 오신 각자(覺者)의 뜻。 또 여거여래(如去如來)의 뜻으로서 여여부동(如如不動)하게 사바세계에 오셔서 중생의 근기에 응하신 까닭에 여래(如來)라고 함。 금강경에는 좇아온 곳이 없고 또한 돌아갈 곳이 없으므로 여래라고 이름한다 했음.
[참고] 『증도가(證道歌)』 (영가永嘉 스님)에서.
覺卽了不施功  一切有爲法不同  住相布施生天福  猶如仰箭射虛空  勢力盡箭還墜  招得來生不如意
 
깨닫고 나면 공(功)을 베풀지 않으니 일체 유위법(有爲法)과 같지 않다. 상(相)에 머문 보시는 천상에 나는 복이나, 마치 하늘을 향해 화살을 쏘는 것과 같다. 올라가는 힘이 다하면 화살은 다시 떨어지니, 내생(來生)에 뜻과 같지 않음을 초래하게 되리라.
 
爭似無爲實相門  一超直入如來地  但得本莫愁末  如淨琉璃貪寶月  我今解此如意珠  自利利他終不竭
 
어찌 무위(無爲)의 실상문에, 한 번 뛰어 여래의 경지에 바로 들어가는 것만 하겠는가. 다만 근본을 얻을지언정 지엽은 근심하지 말라. 마치 깨끗한 유리구슬 안에 보배 달을 머금은 것과 같네. 내, 이제 여의주를 아나니 나와 남을 이롭게 함에 마침내 다함이 없도다.
*'그런데  공부가 마냥 한결같이 잘되는 것이 아니고, 어느 때에는 순풍에  달듯이 화두가 저절로 들리면서 성성하게 잘되어 가다가,  어떤 때에는  변해 가지고  답답하고 머리가 개운치를 못하고, 시간이 지루하고 몸부림이 쳐지고 어찌해   없이 그렇게 애를 먹은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나귀를 끌고 깊은 우물로 들어갈라고 하는 것처럼, 되게 고삐를 땡겨서 우물로 들어갈라고 하면 할수록 나귀는 뒤로 버티고  들어올라고, 이렇게 공부하기가 어렵고 힘이  때도 있습니다.
 
수월하게 잘될  보다도 이렇게 공부가  안되고 힘이 들고 애를 먹고 답답하고 몸부림쳐질 , 그때가 훨씬 중대한 중요한 고비라 하는 것을  인식을 해야  것입니다. 『서장(書狀)』에도 대혜(大慧) 스님께서  점에 대해서 누누히 강조하신 것을  수가 있습니다' ;  '공부가 안될 때가 한 계단 올라서려는 고비’ 법문을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서장(書狀) ; 원래 이름은 『대혜보각선사서(大慧普覺禪師書)』이며 『서장(書狀)』 · 『대혜서(大慧書)』 · 『대혜서문(大慧書門)』 등으로 불리우고 있다. 송나라 때의 대혜종고(大慧宗杲)선사가 당대의 사대부 관료 40명과 2명의 스님에게 보낸 총 62장(狀)의 서간문(書簡文 편지 형식의 글).
이 책은 일상생활에서 불교 수행을 할 때 생기는 의문과 올바른 수행 등에 대하여 주고받은 문답이 주 내용으로, 조용한 경계만을 묵묵히 지켜나가는 묵조선(默照禪)을 배격하고 일상생활에서 화두를 참구하는 간화선(看話禪)을 역설하였다.
*잡드리 ; ‘잡도리’의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그 대책. ③아주 요란스럽게 닦달하거나(단단히 윽박질러서 혼을 내다) 족침(견디지 못하도록 몹시 급하게 몰아치다).
*'그렇게 공부가  안되고, 화두가   들리고 답답하고 몸부림쳐지고 애를 먹을 , 그때! 선용기심(善用其心),   마음을 잡드리해서 화두를 들고 공부를 지어 나가면  고비가 바로 깨달을  있는 힘을 얻을  있는 좋은 고비다  말씀이여공부가  걸음 나아갈라면은 그러한 그와 같은 경계를 만나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러한 고비를  넘기고 나면 그다음부터서는 한결 공부가 수월하고 '힘을 얻게 된다[得力]' 이것입니다 ; 득력(得力). 수행이나 어떤 기술 · 운동에서 자꾸 되풀이해서 하면, 처음에는 잘 안되던 것이 할라고 안 해도 저절로 잘 되어질때 득력(得力)이라 표현. 수월하게 되어 힘이 덜어지는 것을 다른 표현을 쓰면 그것을 ‘힘을 얻었다(得力)’하는 것.
참선 수행에서는 화두에 대한 의심을 할려고 안 해도 저절로 의심이 독로(獨露)하게 되는 것을 ‘득력’이라고 말한다.
 
[참고] 『서장(書狀)』 (대혜종고 著) ‘증시랑(曾侍朗)에게 답함(여섯 번째)’
苟念念에 不退初心하고 把自家心識이 緣世間塵勞底하야 回來抵在般若上이면 雖今生에 打未徹이라도 臨命終時에 定不爲惡業所牽하야 流落惡道하고 來生出頭에 隨我今生願力하야 定在般若中하야 現成受用하리니 此時決定底事라 無可疑者니라.
 
참으로 생각생각에 초심(初心)에서 물러나지 말고 자기 자신의 마음이 세간의 번뇌와 반연하는 것을 잡아 돌이켜 반야(般若) 위에 이르게 하면, 설령 금생에 (이 일을) 타개打開하여 사무치지 못하더라도 임종시에 결정코 악업(惡業)에 이끌리는 바가 되어 악도(惡道)에 흘러 떨어지는 일은 없을 것이며, 내생에 태어나면 나의 금생 원력에 따라 반드시 반야 가운데에 있어 수용(受用)을 현전 성취(現前成就)할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결정적인 일이라, 의심할 게 없는 것입니다.
 
衆生界中事는 不著學하야도 無始時來로 習得熟하며 路頭亦熟이 自然取之에 左右逢其原하니 須著撥置니이다.
出世間學般若心은 無始時來로 背違라 乍聞知識의 說著이어도 自然理會不得하나니 須著立決定志하며 與之作頭抵하야 決不兩立이니다.
 
중생계의 일은 배우지 않더라도 아득한 옛날부터 익혀서 무르익어졌으며, 인생길에도 역시 익어져서 자연스레 취하여 그 중생계의 일 속으로 들어가니, 마땅히 이 습기를 없애 버리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이에) 세간을 나와서 반야(般若)를 배운다는 마음은 시작을 알 수 없는 때로부터 등지고 어겨왔으므로 잠깐 선지식의 설법(說法)을 듣는다 해도 쉽사리 이해되지 않습니다. 모름지기 결정(決定)한 뜻을 세워서 더불어 머리를 맞대고 겨루어 나가야 합니다. (습기와 반야는) 결코 양립되지 않습니다.
 
此處에 若入得深하면 彼處는 不著排遣하야도 諸魔外道가 自然竄伏矣니이다. 生處는 放敎熟하고 熟處는 放敎生이 政爲此也니 日用做工夫處에 捉著欛柄하면 漸覺省力時가 便是得力處也니이다.
 
이 곳[般若心]에 깊이 들어가게 되면 저 곳은 (습기를 굳이) 물리쳐 보내지 않아도 모든 마(魔)와 외도가 자연히 항복해 숨을 것입니다. 설은 곳[生處]은 익게 하고, 익은 곳[熟處]은 설게 함이 바로 이 때문이니, 일용에 공부하는 곳에서 요점을 잡고[欛柄] 차츰 힘이 덜어진다고 느낄 때가, 바로 그때가 힘을 얻는 곳입니다.
 
*(게송) '불행방초로(不行芳草路) 난지낙화촌(難至落花村)' ; ‘우거진 풀밭길 걷지 않으면 꽃이 지는 마을에 가긴 어려워.’ 『선가귀감(禪家龜鑑)』 (용화선원刊) p166 (가로판 p174)
*(게송) ‘수궁산진의무로(水窮山盡疑無路) 유암화명우일촌(柳暗花明又一村)’ ; 중국 남송 세대의 시인, 육유(陸遊)의 시 《遊山西村》 참고.
莫笑農家臘酒渾,豊年留客足鷄豚。山重水復疑無路,柳暗花明又一村。 簫鼓追隨春社近,衣冠簡樸古風存。從今若許閑乘月,拄杖無時夜叩門。
 
[참고] 송담스님(No.523)—93년(계유년)성도재 법회(93.12.08.음)
수궁산진의무로(水窮山盡疑無路)터니, 물이 다하고 산이 다해. 목적지를 찾아서 깊은 산중에 들어가는데 이제 계곡을 따라서 올라가니 물도 다 끊어지고 산도 콱 막혀서 인자 더이상 갈 곳이 없구나. 내가 갈 곳은 어디냐? 이렇게 물도 끊어지고 산도 콱 막혀서 이제 길이 콱 끊어졌으니 ‘이제는 내가 여기서 죽는구나’
 
그러나 거기서 쉬지 않고 다시 한 걸음 한 걸음을 옮겨서 한 고개를 넘어가니 유암화명우일촌(柳暗花明又一村)이다. 파란 버들은 그윽히 휘늘어지고 밝은 꽃은 환하니 핀 또 한 마을이 거기에 있구나.)
 
 
 
 
------------------(2)
 
* ;  정도.  만큼.  수준.
*만날(-) ; ①어떤 경우든 한결같이. ②특정한 시간에 한정되지 않고 어느 때든. ③때를 가리지 않을 만큼 매우 자주.
*골때리다 ; 어이없고 터무니없다.
*지서리 ; ‘짓거리('' 낮잡아 이르는 )’ 사투리. * : 몸이나 몸의 일부를 놀려 움직이는 행동이나 행위를 나타내는 .
*방편(方便 방법·수단 /편할 ) ; ①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일시적인 수단으로 설한 가르침. 중생 구제를 위해  소질에 따라 임시로 행하는 편의적인 수단과 방법. 상황에 따른 일시적인 수단과 방법. ②교묘한 수단과 방법.
*참구(參究 헤아릴 /궁구할 ) ; ①다못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드는 . ②선지식의 지도 아래 참선하여 화두(공안) 꿰뚫어 밝히기 위해 집중함. 화두 의심을 깨뜨리기 위해 거기에 몰입함.
*조사(祖師) : 부처님의 바른 종지(宗旨)  조사선법(祖師禪法) 전하는 스승을 말함이니 종사(宗師) 같다.
*혼침(昏沈 어두울 /잠길 ) ; 정신이 미혹(迷惑)하고 흐리멍덩함.
*벼람박 ; ‘바람벽(--, 집의 둘레 또는 방의 칸막이를 하기 위해 만든 )’ 사투리.
*역대조사(歷代祖師) ; 석가세존(釋迦世尊)으로부터 불법(佛法) 받아 계승해  대대의 조사(祖師).
*사량분별(思量分別) : 사량복탁(思量卜度), 사량계교(思量計較) 같은 말。 생각하고 헤아리고 점치고 따짐。 가지가지 사량분별(思量分別) 사리(事理) 따짐。 법화경 방편품(法華經方便品)  법은 사량분별로 능히  바가 아니다라고 .
*선지식(善知識) ; 부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지도자. 좋은 .
*여법(如法 같을·같게 ·따를·좇을 / 부처님의 가르침·불도佛道 ) ; 부처님의 가르침에 맞음.
*무간지옥(無間地獄) ; 아비지옥(阿鼻地獄)이라고도 . 아비(阿鼻) 산스크리트어 avīci 음사. 고통이 끊임없으므로 무간(無間)이라 . 아버지를 죽인 , 어머니를 죽인 , 아라한을 죽인 , 승가의 화합을 깨뜨린 , 부처의 몸에 피를 나게   , 지극히 무거운 죄를 지은 자가 죽어서 가게 된다는 지옥.
 
 지옥에 떨어지는 죄인에게는 필파라침(必波羅鍼)이라는 악풍(惡風) 있는데 온몸을 건조시키고 피를 말려 버리며  옥졸이 몸을 붙잡고 가죽을 벗기며,  벗겨낸 가죽으로 죄인의 몸을 묶어  수레에 싣고 훨훨 타는 불구덩이 가운데에 던져 넣어 몸을 태우고, 야차(夜叉)들이   창을 달구어 죄인의 몸을 꿰거나 , ,  등을 꿰어 공중에 던진다고 한다. 또는 쇠매(鐵鷹) 죄인의 눈을  먹게 하는 등의 여러 가지 형벌로 고통을 끊임없이 받는다고 한다.
*지옥에 가겠다(떨어지리라) ;
[참고 ①] 「최상승론(最上乘論)」 (5조 홍인대사 弘忍大師 602 ~ 675)
若有人依文行者即在前成佛. 若我誑汝當來墮十八地獄. 指天地爲誓. 若不信我世世被虎狼所食.
 
만약 어떤 사람이 있어 이 글(最上乘論)에 의지해 수행하면 곧 성불하게 될 것이다. 내가 만약 너를 속인다면 다음 세상에 십팔지옥(十八地獄)에 떨어지리라. 하늘과 땅에 맹세하노라. 만약 나를 믿지 아니하면 세세생생에 호랑이 밥이 되리라.
 
[참고 ②] 『불조직지심체요절(佛祖直指心體要節)』 하권 (백운화상초록 白雲和尙抄錄) ‘승고선사(承古禪師 ? ~ 1045)’
承古禪師 常勸諸人 莫學佛法 但自無心去 利根人晝時解脫 鈍根人或三五年 遠不過十年 若不悟去 老僧 替你入拔舌
 
승고선사께서 항상 여러 사람에게 권하되 “불법을 배우지 말고 다만 스스로 무심하여라. 영리한 근기의 사람은 한나절에 해탈하고, 둔한 근기의 사람은 혹은 3년 · 5년이며 멀어도 10년을 지나지 않는다. 만약 깨닫지 못하면 노승이 너를 대신해서 혀를 뽑는 발설지옥(拔舌地獄)에 들어가리라”
 
[참고 ③] *몽산화상시중(蒙山和尙示衆—몽산화상이 대중에게 보이심) ; 『몽산법어』 (몽산화상 1231 ~ 1298 또는 1308) (용화선원刊) p97-99.
若有來此(약유내차)하야  同甘寂寥者(동감적료자)인댄  捨此世緣(사차세연)하며  除去執着顚倒(제거집착전도)하고  眞實爲生死大事(진실위생사대사)하야  肯順菴中規矩(긍순암중규구)하야 截斷人事(절단인사)하고  隨緣受用(수연수용)호대  除三更外(제삼경외)에  不許睡眠(불허수면)하며 不許出街(불허출가)하며  不許赴請(불허부청)하며  未有發明(미유발명)이어든 不許看讀(불허간독)하며  非公界請(비공계청)이어든  不許閱經(불허열경)이니
 
만약 이에 와 고요함을 같이 즐기려는 이는, 이 세상 인연을 다 여의며 제 고집과 애착과 모든 거꾸러진 생각을 다 버리고, 참으로 생사의 큰일을 위하야 절의 규칙을 잘 지키고 인사(人事)를 끊고 먹고 입는 것을 되어가는 대로 하되, 밤 삼경 외에는 자지 말고 거리에도 나가지 말며 오라는 데도 가지 말고 깨치기 전에는 글도 읽지 말며 예식 때가 아니거든 경도 보지 말지니
 
如法下三年工夫(여법하삼년공부)호대  若不見性通宗(약불견성통종)인댄 山僧(산승)이  替爾(체이)하야  入地獄(입지옥)호리라
법다이 삼 년 동안 공부해 만약 견성하여 종지(宗旨)를 통달하지 못하면, 산승(山僧)이 너희들을 대신하여 지옥에 들어가리라.
 
[참고 ④] 「고봉화상선요·어록(高峰和尙禪要·語錄)」 ‘立限示衆(其九)—9. 기한을 정하고 대중에게 보임’ (고봉원묘 高峰原妙 1238 ~ 1295) (통광 역주 | 불광출판사) p85, p88 참고.
參禪 若要剋日成功 如墮千尺井底相似 從朝至暮 從暮至朝 千思想萬思量 單單只是箇求出之心 究竟決無二念 誠能如是施工 或三日 或五日 或七日 若不徹去 西峰今日 犯大妄語 永墮拔舌犁耕
 
참선하는데 만일 한정된 날짜에 공(功)을 이루려면 마치 천척이나 되는 우물에 빠졌을 경우처럼 아침부터 저녁까지, 저녁부터 아침까지 밤이나 낮이나 천 생각 만 생각이 오로지 다만 우물에서 나오려는 마음뿐이고 끝끝내 결코 다른 생각이 없는 것과 같이 하여라. 진실로 이렇게 공부하기를 혹은 3일, 혹은 5일, 혹은 7일 하고도 깨치지 못한다면 서봉은 오늘 대망어죄(大妄語罪)를 범했으므로 영원히 혀를 뽑아 밭을 가는 지옥[拔舌犁耕地獄]에 떨어질 것이다.
*오조(五祖) 홍인대사(弘忍大師), 몽산 스님 ;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산승(山僧) ; 스님이 자신을 겸손하게 일컫는 .
*일대사(一大事) ; ①부처님이 중생구제를 위해 세상에 나타난다고 하는  . 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목적 ②가장 중요한 일이란 . 수행의 목적. 깨달음을 얻는 . 인간으로서의 완성.
*무상(無常) ; 모든 현상은 계속하여 나고 없어지고 변하여 그대로인 것이 없음. 온갖 것들이 변해가며 조금도 머물러 있지 않는 . 변해감. 덧없음. 영원성이 없는 .
*도업(道業) ; () 깨달음. () 영위(營爲 - 일을 계획하여 꾸려 나감). 불도(佛道) 수행. 진리의 실천.
*생사재호흡지간(生死在呼吸之間) ; ‘생사(生死)가 한 호흡지간(呼吸之間)에 있다.’ 생사라 하는 것은 멀리 잡을 것이 아니라 하루도 멀고, 한끼도 멀고, 한 호흡 사이에 있다고 하는 것. 그렇게 무상하고 기약할 수 없는 것이 우리의 생사인 것이다.
*호흡지간(呼吸之間) ; 한 번 내쉬고[呼] 들이쉬고[吸] 할 사이[間]라는 뜻으로, 아주 짧은 시간을 이르는 말.
[참고] 『사십이장경(四十二章經)』 ‘제38장’
佛問沙門 人命在幾間 對曰數曰間 佛言 子未知道 復問一沙門 人命在幾間 對曰飯食間 佛言 子未知道 復問一沙門 人命在幾間 對曰呼吸間 佛言 善哉子知道矣
 
부처님께서 사문에게 물으셨다. “사람의 목숨이 얼마 사이에 있는가?” 대답하기를 “며칠 사이에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너는 아직 도를 모르는구나”
다시 한 사문에게 물으셨다. “사람의 목숨이 얼마 사이에 있는가?” 대답하기를 “밥 먹을 사이에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너도 아직 도를 모르는구나”
다시 한 사문에게 물으셨다. “사람의 목숨이 얼마 사이에 있는가?” 대답하기를 “호흡 사이에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훌륭하다. 너는 도를 아는구나”
*등한(等閒) ; 무관심하거나 소홀하게.
*오후불식(午後不食) ; 정오(正午),  열두 시가 지나면 먹지 않는 .
*가행정진(加行精進) ; 별도의 노력을 기울여서 하는 정진. 어떤 일정한 기간에 좌선(坐禪) 시간을 늘리고, 수면도 매우 단축하며 정진하는 .
*일찰나(一刹那) ; 극히 짧은 순간.
*억겁(億劫) ; 무한히 길고 오랜 세월.
*일념즉시무량겁(一念卽是無量劫) ; ‘한 생각이 바로 무량겁’
통일 신라 시대에, 의상대사가 중국에서 화엄경을 연구하고 그 경의 핵심을 추려서 7언 30구(210자)의 게송으로 지은 「화엄일승법계도 華嚴一乘法界圖」 또는 「법성게 法性偈」에 나오는 구절.
無量遠劫卽一念   一念卽是無量劫 (무량원겁즉일념  일념즉시무량겁) 한량없는 오랜 세월이 한 생각 찰나요, 찰나의 한 생각이 무량한 시간이네.
*법성게(法性偈) ; 통일 신라 시대에, 의상(義湘 625 ~702) 스님이 중국에서 화엄경을 연구하고 그 경의 핵심을 추려서 지은 7언 30구(210자)의 게송. 210자를 54개의 각(角 굴절)이 있는 도인(圖印)에 합쳐서 만든 「일승법계도(一乘法界圖)」의 게송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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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600 개가 넘는 ‘(참선) 법문’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 있습니다.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600 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신심(삼요)2015. 3. 26. 13:07

 
§(118) (게송)법법본래무소주~ / 참마음을 일으켜 공부를 끝장내라 / 조실스님 꿈에 지옥고 광경 / 3가지의 도에 나아가는 첩경(徑)과 5가지의 철저한 바른 믿음.
 
중봉(中峰) 스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한 철 두 철 또는 10년 20년 참선을 해도 깨닫지를 못하고 공부가 진취가 없는 사람은 그 까닭이 무엇인가? 다른 것이 아니라 ‘참마음’, 참마음을 일으키지 아니했기 때문에 공부가 끝장이 나지를 않는다”
 
생사 문제, 일대사(一大事) 문제를 한번 듣고서 그 문제에 관해서 잠을 자거나 밥을 먹거나 똥을 누거나 길을 가거나 차를 타거나 생각 생각이 염두(頭)에서 떠나지 않게 된다면 이것이 바로 참마음을 발(發)한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생사 문제, 일대사 문제를 대해서 속으로부터—아무리 의식적으로 일으켜서가 아니라—저절로 솟구쳐 오르는 참마음이 있어야만 우리의 공부의 끝장이 날 때가 오는 것입니다.
 
**송담스님(No.118) - 80년 동안거해제 법어(80.03.01) (용118)

 

(1) 약 21분.

(2) 약 9분.

 

 

(1)------------------
 

법법본래무소주(法法本來無所住)한데  어무소주절추심(於無所住絶追尋)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양오작야침서령(陽烏昨夜沈西嶺)한데  금일의연상효림(今日依然上曉林)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법법(法法)이 본래무소주(本來無所住)한데, 법법, 일체법(一切法), 온갖 삼라만상(森羅萬象) 두두물물(頭頭物物) 이것이 바로 법법(法法)입니다. 이 온갖 법이 본래 주(住)한 바가 없다.

어무소주절추심(於無所住絶追尋)이라. 주(住)한 바 없는 곳에 추심(追尋)을 끊으라.

 

하늘에는 구름이 날으고, 땅에는 물이 흐르고, 봄에는 꽃이 피고, 가을에는 단풍이 지고, 겨울에는 흰눈이 내리고, 농부는 쟁기를 가지고 논으로 들어가고, 나무꾼은 지게를 짊어지고 산으로 올라가는, 이 모든 것이 본래로 주(住)한 바가 없는 법이다. 주(住)한 바 없는 곳에서 무엇을 찾는단 말이냐?

 

양오작야침서령(陽烏昨夜沈西嶺)이니, 양오(陽烏)는 태양입니다. 태양이 어젯밤에 서쪽 산으로 넘어갔는데,

금일의연상효림(今日依然上曉林)이라. 오늘은 예나 다름없이 새벽 숲 위로 떠오르는구나.

 

 

오늘은 삼동결제(三冬結制), 기미년 동안거(冬安居)가 마지막 끝나는 해제일입니다. 동안거 해제일이요, 또 작년 10월 15일부터 시작한 백일기도가 오늘 회향(廻向)을 하는 날이고, 또 우리나라 옛날부터서 전해 내려오는 정월 대보름날로써 우리의 선망부모(先亡父母)의 영가(靈駕)께 차례를 올리는 천도(薦度) 법요식(法要式)이 있겠습니다.

 

삼동 석 달 동안 참 오랜만에 강추위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대중 스님네와 선방의 보살님네들 모다 정진을 열심히 해주셨고, 그 동안에 여러 차례 열리는 법회에 많은 사부대중들이 참여를 하셔서 법문을 듣고 또 정진들을 하셨습니다.

 

해제(解制)날은 자자(自恣)일이라 해 가지고 한군데 모여서 자기의 잘못을 참회하고 반성하고, 또 대중으로부터 자기의 잘못된 점을 지적을 받아서 고맙게 생각하고 자기의 허물을 고쳐서 새롭게 마음을 가다듬고 정진(精進)하는데 채찍을 삼는 그러한 날인 것입니다.

 

오늘 해제일을 맞이해서 각자 지나간 석 달 동안 정말 출가(出家) 본질을 저버리지 아니하고 참되게 성실하게 최선을 다해서 정진을 했는가? 가슴에 손을 얹고 고요히 반성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오늘 해제라 해서 삼동의 안거가 끝나기는 했지만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지 못했다면 우리의 공부는 오히려 오늘부터 더욱 채찍을 맹렬히 가하면서 정진을 해야 할 줄 생각합니다.

 

 

중국의 고봉(高峰) 스님, 선요(禪要)의 그 고봉 스님의 사법제자(嗣法弟子)이신 중봉(中峰) 스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한 철 두 철 또는 10년 20년 참선을 해도 깨닫지를 못하고 공부가 진취가 없는 사람은 그 까닭이 무엇인가? 다른 것이 아니라 참마음! 참마음을 일으키지 아니했기 때문에 공부가 끝장이 나지를 않는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참마음’이라 하는 것이 무엇이냐?

 

어떤 사람이 나한테 도저히 참을라야 참을 수 없고, 잊을라야 잊을 수 없을 만큼 그렇게 억울하고 분이 날만한 욕을 해왔을 때 참을 수도 없고, 아무리 마음을 돌려서 이해 할려고 해도 이해할 수도 없고, 그 말을 듣자마자 오장육부가 활딱 뒤집어지면서 화가 치밀어 오릅니다.

밥을 먹어도 그 분한 마음이 가라앉지 않고, 잠을 잘려고 자리에 들어가도 잠이 오지 아니하고, 차를 타나, 길을 걸어가나, 일을 하거나 도무지 그렇게 억울하고 분한 욕을 듣고서는 기어코 해명(明)보다도 복수를 하던지 그렇지 않고서는 도저히 풀리지를 않은 이러한 경우처럼,

 

생사(生死) 문제에 대해서 나의 생사 문제—생사가 눈 한번 감았다 뜨지 못하고 숨 한번 내쉬었다 들어마시지 못하면 그것이 바로 주검이요, 한번 죽으면 지옥이나 축생이나 무량겁을 두고 다시 생사의 수레바퀴 속에 괴로움을 받을 일.

"생사 무상, 생사 문제, 일대사(一大事) 문제를 한번 듣고서 그 문제에 관해서 잠을 자거나 밥을 먹거나 똥을 누거나 길을 가거나 차를 타거나 생각 생각이 염두(頭)에서 떠나지 않게 된다면 이것이 바로 참마음을 발(發)한 것이다" 이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전강 조실 스님께서 어렸을 때 해인사에서 도반 소년이 죽는 것을 보시고, 바로 그날 저녁에 저승에를 가셔 가지고 지옥(地獄)에서 지옥고 받는 그 현상을 목격을 하고,

 

그 사람을 맷돌에다 콩나물처럼 여러 사람을 한 다발씩 해서 맷돌 구녁에다 넣으면 큰 집 덩어리만한 아랫 맷돌은 왼쪽으로 돌고, 위짝은 오른쪽으로 돌면서 십여 명씩 사람을 다발로 집어넣으면 칠칠칠칠 갈리면서 시뻘건 피가 피고름으로 갈려서 나오는 그런 현상이며,

사람을 머리꼭대기부터서 톱으로 썰어 내리는 광경이며, 펄펄 끓는 구리쇠 물을 목에다가 따라 붓는 광경이며, 그런 것을 보시고 너무나 무서워서 소스라쳐 깨시고 그 길로 서장(書狀)을 배우시다가 서장을 덮어버리고 선방(禪房)으로 나가셨던 일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생사 문제, 일대사 문제를 대해서 속으로부터—아무리 의식적으로 일으켜서가 아니라—저절로 솟구쳐 오르는 참마음이 있어야만 우리의 공부의 끝장이 날 때가 오는 것입니다.

 

 

언젠가도 말씀을 드렸습니다마는 우리가 공부를 해나가는 데 첫째는 신심, 둘째는 분심, 셋째는 화두에 대한 의심, 이 세 가지 요긴한 것[三要]을 갖추어야 한다고 말씀을 했습니다.

 

오늘은 그 신심(信心), 대관절 그 첫째 갖추어야 할 신심이라는 것이 무엇이냐? 

 

첫째는 자기 몸 가운데 있는 주인공, 눈을 통해서 볼 줄 알고, 귀를 통해서 들을 줄 알고, 코를 통해서 냄새 맡고, 혀를 가지고 맛을 볼 줄 알고, “아무개야” 하고 부르면 “예” 하고 대답할 줄 아는 놈,

성도 낼 줄 알고, 슬퍼할 줄도 아는 그 주인공이 삼세제불(三世諸佛)과 더불어 조금도 모자람이 없다고 하는 사실, 나에게도 부처님과 같은 똑같은 진여불성(眞如佛性)이 있다고 하는 사실을 첫째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그 주인공이 무량겁을 두고 내려오면서 오늘날까지 귀로 들을 수 있는 소리, 눈을 통해서 볼 수 있는 온갖 색상, 우리의 의식으로 누구를 사랑하고 누구를 미워하고, 오욕락(五欲樂)에 빠지고 그것을 익히면서 생사윤회(生死輪廻)를 하고 있다고 하는 사실, 이것을 똑바로 이해를 해야 합니다.

 

셋째는 고조사(古祖師)들이 남겨 놓으신 한 말씀 한마디가, 공안(公案)에 대한 말씀이라든지 또는 법문답(法問答) 하신 것이라든지, 일언반구(一言半句)가 마치 하늘에 뻗쳐 서 있는 큰 칼과 같아서,

그 고인(古人)의 일언반구에 대해서 등한히 그걸 따진다든지, 알음알이로 그것을 짐작을 해 볼라고 한다든지, 공연히 남의 흉내를 내서 법담(法談)을 한다든지, 이러다가는 그 큰 칼에 나의 목숨이 끊어진다고 하는 엄숙한 자세를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선방에 한 철, 두 철, 세 철, 다니다 보면 큰스님네 법문도 듣고, 선배들의 법문답 하는 것을 보고, 그래 가지고 조그마한 소견을 그것을 가지고 희롱을 하고, 자기도 한소식 한 것처럼 뽐내고, 이러한 조그만한 것을 득소위족(得少爲足), 조그만한 것을 얻어 가지고 만족을 삼는 이러한 태도는 최상승 활구참선(活句參禪)을 하는 진정한 수행인으로서는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넷째는 일용공부(日用工夫)에 있어서 다못 자기가 공부를 짓지 아니한 것 그것을 두려워할지언정,

가다듬고 또 다잡이 하고 이렇게 해서 화두를 들고 또 들고 행주좌와 어묵동정간에 1분 1초라도 등한히 보냄이 없이 계속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가지고 생각 생각이 정미(微)롭게 공부를 지어 나간다면 결정코 확철대오 할 수 있다고 하는 사실을 우리는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다섯째에 가서, 이 생사 문제—생사가 무상해서 찰나 찰나에 주검의 문을 향해서 우리가 나아가고 있다고 하는 이 생사 문제가 결정코 적은 일이 아니라고 하는 사실을 깊이 인식을 하고,

만약 내가 큰 분심(憤心)을 내 가지고 결정적인 지조를 가지고서 나의 힘으로 결단코 칠통(桶)을 타파(打破)할 것을 기약하지 않는다면, 마침내 삼도(三途)의 고해(苦海) 속에 빠지는 것을 면할 수가 없다고 하는 사실을 깊이 인식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상 말한 이 다섯 가지, 이것이 바로 수행인이 가져야 할 가장 간절(懇切)하고 간절한 명심해야 할 믿음인 것입니다. 이것을 철저히 믿고 그리고서 공부를 지어나간다면 백 명이면 백 명, 천 명이면 천 명, 도업(道業)을 성취하지 못할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다섯 가지의 믿음에 대해서 과연 자기가 그만큼 철저하게 빈틈없이 나아가고 있는가에 대해서 나날이 점검을 하고 반성을 해 나가야 할 줄 압니다.(처음~20분57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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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어떻게 하면 보다 더 빨리 도(道)에 나아갈 수 있는 길이 무엇인가? 

도를 닦아 가는 사람은 첫째, 지혜의 눈이 밝아져야 한다. 어떤 것이 지혜의 눈이냐?

 

이 세간(世間)에 태어난 이 몸과 우리의 의식과 우리의 육식(六識)을 통해서 인식할 수 있는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 이 모든 경계(境界)와 일체 시비—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르고 한 일체 시비(是非)와 누구는 미웁고 누구는 사랑하고 하는 증애(愛)와,

무엇은 좋고 무엇은 나쁘고 하는 취사심(捨心), 무엇은 나에게 유리하고 무엇은 나에게 손해가 된다고 하는 득실(失)어떻게 하면 더 오래 살고 어떻게 하면 빨리 죽는가 하는 수명(命)에 관한 문제, 어떻게 하는 것은 나에게 괴롭고 어떻게 하는 것은 나한테 즐겁다고 하는 고락(苦樂)의 문제,

 

이러한 것들이 다 꿈속의 인연이다고 하는 것을, ‘꿈속에서 꿈꾸는 일이다, 꿈속의 인연이어서 조금도 그러한 것들이 실(實)다운 것이 아니다’ 그렇게 조파(破)하는 것입니다, 간파(破)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철두철미(尾) 간파를 하고서 그러한 문제들에 대해서 분별심을 일으키지 않는 것, 이것이 바로 지혜의 눈을 가진 사람이다.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탐진치(貪瞋) 삼독(三毒) 가운데에 치(癡)라고 하는 것이 바로 이렇게 봐야 할 것을 그렇게 보지 못하고, 이러한 세간의 신심(身心), 일체 경계라든지, 일체 시비·증애·취사·고락·득실, 그런 문제들이 실(實)다운 것으로 믿고 그것을 향해서 갖은 계략과 몸부림을 치는 것을 갖다가 ‘어리석음[癡]’이라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정말 꿈속의 인연이다. 그래서 실다운 것이 아니고 꿈같이 허망한 것이고, 부실한 것이라고 하는 것을 철저하게 인식을 하고 간파를 하면 이것을 바로 ‘지혜의 눈이 밝아졌다’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종상불조(從上佛祖), 부처님으로부터 역대 조사의 설하신 모든 말씀과 유불선(仙) 삼교(三敎)의 성현의 말씀과 제자백가(諸子百家)의 수많은 차별법이 다 한 근원으로 돌아간다고 하는 것을 이해를 하고 그것에 대해서 다른 소견을 일으키지 아니하면, 이것이 바로 이성(理性)에 통했다 그런 것입니다. 이치 이(理)자, 성품 성(性)자, ‘이치에 통달을 했다. 이성에 통달했다’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셋째는 오늘부터 지금부터 미래가 다하도록 내가 만약 나를 깨닫지 못한다면, 나의 생사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결정코 이 공부를 중단하지 아니하리라, 쉬지 아니하리라. 이것은 바로 지조(操), 이러한 굳건한 뜻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첫째는 지혜의 눈, 둘째는 이성에 통달하고, 셋째는 지조가 견고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 중에 하나만 결(缺)해도 우리의 도는 완성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만약에 지혜의 눈은 얻었지만 이성에 통달하지 못하고 지조가 굳건하지 못한다면,

하나의 무사인(無事人), 일 없는 사람이 되어 가지고 그 사람은 다못 스스로 일 없는 사람이 되어서 소요(遙)는 할지언정 불법을 자아를 완성을 해서 자리이타(自利利他) 할 수 있는 진정한 부처님 제자는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또 둘째인 이성에는 통달했으되 지혜의 눈을 뜨지 못했거나 지조가 견고하지 못한 사람은 영리하기는 할지언정 진정한 참 불제자라고는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셋째, 지조는 견고하되 지혜의 눈을 뜨지 못했다든지 이성에 통달하지 못했다면 이 사람은 담판한(擔板漢)이라. 이 사람은 맨손으로 호랑이를 잡을려고 그러고, 맨몸으로 한강을 건너뛸려고 하는 지극히 우직한 사람이 될 수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혜의 눈을, 또 이성에 통달, 셋째는 목적을 달성하기 전까지는 죽어도 쉬지 아니하리라고 하는 이런 철저한 뜻을 갖춘다면 불일성지(不日成之)다. 이 사람은 결정코 도업(道業)을 성취할 수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여기에 모이신 사부대중 여러분! 오늘 해제 법요식에 참석하신 여러분!

과연 이상의 세 가지의 도에 나아가는 첩경(徑)과 다섯 가지의 철저한 바른 믿음이 자기에게 얼마만큼 갖추어져 있었는가? 현재 얼마만큼 갖추어져 있는가에 대해서 냉정하게 스스로 점검을 해보시고,

 

오늘 이후로 이 세 가지의 첩경과 다섯 가지의 믿음에 대해서 하나도 빠짐이 없도록 단속을 하고 채찍을 가해서 결정코 이 몸 있을 때 생사, 일대사(一大事) 문제를 요달(了達)해 주셔서 부처님의 혜명(慧命)을 이어받아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을 드리는 것입니다.(20분58초~29분36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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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법법본래무소주~’ ; [신심명(信心銘) 벽의해(闢義解)] 중봉 명본선사(中峰 明本禪師) (명정 역주, 극락선원 2014) p93 게송 참고. *(頻伽藏本)天目中峰和尚廣錄 卷第十二之上 信心銘闢義解上 게송 참고.

*追(추)쫓다,구하다 *尋(심)찾다 *上(상)위,오르다 *曉(효)새벽

*삼라만상(森羅萬象) 두두물물(頭頭物物) ; 우주 사이에 벌여 있는 온갖 사물과 현상.

*양오(陽烏,暘烏 태양 양/까마귀 오) ; 태양(太陽)을 달리 이르는 말. 태양 속에 세 발 달린 까마귀가 살고 있다는 전설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삼동결제(三冬結制) ; 삼동(三冬, 겨울철의 석 달)에 하는 결제, 동안거(冬安居, 음력 10월 15일부터 다음해 1월 15일까지)를 말한다.

*안거(安居 편안할 안,있을 거) ; (산스크리트) varsa 원뜻은 우기(雨期).
① 인도의 불교도들은 4월 15일(또는 5월 15일)부터 3개월 간 우기(雨期)때에 외출하면 풀이나 나무,작은 곤충을 모르고 밟아 죽일까 두려워 했고 그래서 동굴이나 사원에 들어가서 수행에 전념했다. 이것을 우안거(雨安居)라고 한다.
② 선종(禪宗)에서는 음력 4월 15일부터 7월 15일까지를 하안거(夏安居), 10월 15일부터 다음해 1월 15일까지를 동안거(冬安居)라고 해서 각각 90일간 사원에 머물르면서 외출을 금지하고 오로지 좌선을 중심으로 한 수행에 전념한다. 처음을 결제(結制), 끝을 해제(解制)라 한다.
*회향(廻向) ; 회전취향(回轉趣向)의 뜻.
①방향을 바꾸어 향하다. ②자신이 쌓은 공덕을 다른 이에게 돌려 이익을 주려하거나 그 공덕을 깨달음으로 향하게 함. ③자신이 지은 공덕을 다른 중생에게 베풀어 그 중생과 함께 정토에 태어나기를 원함.
*선망부모(先亡父母) ; 금생에 돌아가신 부모 뿐만 아니라 과거 우리의 모든 부모.
[참고] 1984년(갑자년) 칠석차례(No.243) 송담 스님 법문에서.
“선망부모는 저 사람의 선망부모가 곧 나의 선망부모와 같은 것입니다.
영가(靈駕)는 수천만 번 몸을 바꾸면서 나의 조상이 되었다, 김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가, 박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가, 이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 왔다갔다 하기 때문에,
내 부모가 바로 저 사람의 부모고, 저 사람의 부모가 다 내 부모여서, 내 부모를 소중히 아는 사람은 바로 다른 노인들을 다 소중히 여기게 되고, 내 자식이 사랑스런 사람은 또 다른집 아기들도 아껴주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동체대비(同體大悲)라 하는 것입니다.”
*영가(靈駕) ; 망자의 넋을 높여 부르는 말. 영(靈)은 정신의 불가사의함을 의미하는 것으로 정신 자체를 가리키고, 가(駕)는 상대를 높이는 경칭(敬稱)이다.
*천도(薦度) ; 불교 의례의 하나. 망자의 넋을 부처님과 인연을 맺어 주어 좋은 곳으로 가게 하는 일.
*법요식(法要式) ; 불사(佛事 - 제사, 법회 따위의, 불가(佛家)에서 행하는 모든 일)를 할 때 행하는 의식.
*자자(自恣 스스로 자/마음대로 자) ; 안거(夏安居)가 끝나는 날에 수행자들이 한곳에 모여 자신의 잘못을 고백(告白)하고 참회(懺悔)하는 의식.
*정진(精進) ; ①정성을 다하여 노력해 나아감. ②잡념을 버리고 불법(佛法)을 깨우치기 위해 수행에 힘씀.
*출가(出家) : [범] Pravrajita 집에서 나온다는 말이다。가정 생활을 떠나서 수도와 포교를 전문으로 하기 위하여, 승려가 되는 것을 말함이다. 그러나 몸 출가(身出家)보다도,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 등 삼독(三毒)의 불이 늘 붙고 있는 번뇌 망상의 불집에서 뛰어나오는 마음 출가(心出家)를 하여야 한다.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용화선원刊) p132~133.
出家爲僧이  豈細事乎아.  非求安逸也며  非求溫飽也며  非求利名也라
爲生死也며  爲斷煩惱也며  爲續佛*慧命也며  爲出*三界度衆生也니라 
 
 출가하여 중이 되는 것이 어찌 작은 일이랴 !  몸의 안일을 구하려는 것도 아니고, 따뜻이 입고 배불리 먹으려는 것도 아니며, 명예와 재물을 구하려는 것도 아니다.
나고 죽음을 면하고, 번뇌를 끊으려는 것이며, 부처님의 지혜를 이으려는 것이며, 삼계에 뛰어나서 중생을 건지려는 것이니라.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고봉 스님 ; 분류 ‘고봉스님(선요)’ 참고.
*선요(禪要)『선요』는 중국 송대 말기에서 원대 초기의 고봉원묘(高峰原妙, 1238~1295) 선사의 법어집으로 대중과 개인을 위한 법문과 편지글 및 스님 자신의 수행과정을 직접 말씀한 편지글을 포함해 29단락의 법어로 구성되어 있다.
내용은 참선 수행인이 생사 일대사(生死 一大事)의 해결을 위하여 간절하게 화두 참구해야 할 것을 말씀하셨다.
*사법(嗣法 이을 사/법 법) ; 선가에서 스승으로부터 법(法 깨달음)을 이어받음. 또는 이어받은 사람.
*중봉(中峰) 스님 ; (1263~1323) 중국 원나라 스님. 불명은 명본(明本). 항주 전당 사람. 보응(普應), 환주도인(幻住道人), 환주노인(幻住老人), 중봉보응국사(中峰普應國師)라고도 한다.
15세에 출가하여 금강경, 원각경, 법화경, 전등록 등을 보고, 후에 고봉원묘(高峰原妙)의 사관(死關)을 찾아 심요(心要)를 묻고, 금강경을 읽다 뒤에 샘물이 흘러 나오는 것을 보고 활연히 깨쳤다.
고봉의 법을 받고는 일정하게 있는 곳 없이 배(船)에서 있기도 하고 암자에서 거주하기도 하였다.
저서로는 북정자적(北庭慈寂) 스님이 편집한 『천목중봉화상광록(天目中峰和尙廣錄)』 30권이 있다. 『광록』안에는 「산방야화(山房夜話)」  「동어서화(東語西話)」  「신심명벽의해(信心銘闢義解)」가 포함되어 있다.
*일대사(一大事) ; 매우 중요하거나 아주 큰 일. [불교] 삶과 죽음, 즉 생사(生死)의 일.
①부처님이 중생구제를 위해 세상에 나타난다고 하는 큰 일. 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목적
②가장 중요한 일이란 뜻. 수행의 목적. 깨달음을 얻는 것. 인간으로서의 완성.
 
'법화경' 방편품에 '諸佛世尊, 唯以一大事因緣故, 出現於世. 모든 부처님은 오직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 때문에 세상에 출현한다' 라고 한 것에서 유래.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한 목적은 “깨달음을 얻기까지의 과정을 보이고, 지혜를 발휘하여 모든 중생을 깨닫게 하고 구제하는 것”이라고 한다.
*염두(頭) ; 마음속. 마음의 속.
*저승 ; 사람이 죽은 뒤에 그 영혼이 가서 산다고 하는 세상. 염라국(國, 염라대왕이 가스리는 나라)이라고도 한다.
*지옥(地獄 땅 지, 감옥 옥) ; ①고통이 가득찬 세계. 현세에 악업(惡業)을 행한 자가, 사후 그 보답을 받는 곳. ②아주 괴롭거나 더없이 참담한 환경이나 형편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소스라치다두려움이나 놀라움 따위 깜짝 놀라 몸을 갑자기 떠는 듯이 움직이다.

*서장(書狀) ; 원래 이름은 『대혜보각선사서(大慧普覺禪師書)』이며 『서장(書狀)·『대혜서(大慧書)·『대혜서문(大慧書門) 등으로 불리우고 있다. 송나라 때의 대혜종고(大慧宗)선사가 당대의 사대부 관료 40명과 2명의 스님에게 보낸 62() 서간문(書簡文 편지 형식의 ).

책은 일상생활에서 불교 수행을 생기는 의문과 올바른 수행 등에 대하여 주고받은 문답이 내용으로, 조용한 경계만을 묵묵히 지켜나가는 묵조선(默照禪) 배격하고 일상생활에서 화두를 참구하는 간화선(看話禪) 역설하였다.

*삼세제불(三世諸佛) ; 삼세(三世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부처님[諸佛].

*진여(眞如) ; ①차별을 떠난,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②궁극적인 진리. ③모든 분별과 대립이 소멸된 마음 상태. 깨달음의 지혜. 부처의 성품. ④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청정한 성품.

*불성(佛性) ; ①모든 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부처가 될 수 있는 소질·가능성. ②부처 그 자체. 깨달음 그 자체.

*오욕락(五欲,五慾,五欲樂) ; ①중생의 참된 마음을 더럽히는—색,소리,향기,맛,감촉(色聲香味觸)에 대한—감관적 욕망. 또는 그것을 향락(享樂)하는 것. 총괄하여 세속적인 인간의 욕망.

②불도를 닦는 데 장애가 되는 다섯 가지 욕심. 재물(財物), 색사(色事), 음식(飮食), 명예(名譽), 수면(睡眠).

*생사윤회(生死輪廻 날 생/죽을 사/바퀴 윤/빙빙돌 회) ; 육도윤회(六途輪廻). 선악(善惡)의 응보(應報)로 육도(六途 -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의 고락(苦樂)을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것.

*법문답(法問答) ; 법거량(法擧揚). ①스승이 제자의 수행 상태를 점검하기 위해 주고받는 문답. ②선객(禪客)들 사이에 주고받는 선(禪)에 대한 문답.

*일언반구(一言半句)한마디 말과  구절이라는 으로아주 짧은  이르는 .

*고인(古人) ; 옛날 사람. 옛날 선승(禪僧).

*알음알이(知解) : 참선은 연구하는 것이 아니다。생각으로써 이리저리 따져서 아는 것은 깨친 것이 아니다。참선하는 데 가장 꺼리는 것이 이 알음알이이다。그러므로 『이 문 안에 들어오려면 알음알이를 내지 말라(入此門內莫存知解)』라고 크게 써서 절 문에 붙이는 것이 이 까닭이다.

*법담(法談) ; 선사(禪師)들이 서로 법문을 묻고 대답하는 것.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1700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다잡이 ; 늦추었던 것을 바싹 잡아 죔.

*참구(參究 헤아릴 참/궁구할 구) ; ①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드는 것. ②선지식의 지도 아래 참선하여 화두(공안)을 꿰뚫어 밝히기 위해 집중함. 화두 의심을 깨뜨리기 위해 거기에 몰입함.

*정미하다(微-- 정미할 정/자세함 미) ; 정밀하고 자세하다.

*분심(憤心)억울하고 원통하여 분한 마음.

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도인들은 진즉 확철대오를 해서 중생 제도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왜 여태까지 일대사를 해결 못하고 생사윤회를 하고 있는가. 내가 이래 가지고 어찌 방일하게 지낼 수 있겠는가.

속에서부터 넘쳐 흐르는 대분심이 있어야. 분심이 있어야 용기가 나는 것이다.

*칠통(漆桶 옻 칠/통 통) ; ①옻칠을 한 통 ②중생의 마음은 무명이 덮여서 어둡고 검기가 옻을 담은 통 속과 같은 상태 또는 그런 상태의 사람. ③무명(無明).

*칠통(漆桶)을 타파(打破) ; ‘참나’를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

*삼도(三途, 三塗) ; 악한 일을 한 중생이 그 과보로 받는다는 3가지 미혹한 생존. 지옥•아귀•축생의 생존.

*간절(懇切 간절할•정성스런 간/정성스런•절박할 절) ; ①지성(至誠)스럽고 절실(切實)함. ②정성이나 마음 씀씀이가 더없이 정성스럽고 지극함. ③마음속에서 우러나와 바라는 정도가 매우 절실함.

*도업(道業) ; 도(道)는 깨달음. 업(業)은 영위(營爲 - 일을 계획하여 꾸려 나감). 불도(佛道)의 수행. 진리의 실천.

 

 

 

 

 

------------------(2)

 

*도(道) ; ①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그 방법. ②깨달음. ③가르침. ④궁극적인 진리. ⑤이치. 근원.

*세간(世間) ; (산스크리트어 loka) 세(世)는 파괴·변화, 간(間)은 가운데·간격을 뜻함.

① 변하면서 흘러가는 현상계. ② 생물들의 세계. ③ 생물들이 거주하는 자연 환경, 곧 산하대지. ④ 세상. 이 세상. 세속. ⑤ 산스크리트어 saṃsāra 미혹한 세계. ⑥ 육내입처(六內入處), 또는 십이처(十二處)를 말함.

*조파(破) ; 석가모니가 지혜의 밝고 환한 빛으로 범부(凡夫 번뇌에 휩싸여 진리에 어두운 이)의 무명(無明 근본번뇌, 어리석은 마음)을 비추어 깨우치는 일.

*간파하다(看破--) ; 속내(드러나지 않은 이나 숨겨 마음)를 꿰뚫어 알아차리다.

*철두철미(尾)처음부터 까지 빈틈없고 철저하게.

*유불선(仙)유교 불교 도교 아울러 이르는 .

*제자백가(諸子百家) ; 중국 춘추 전국시대에 활약한 유가·도가·묵가·법가 등 수많은 학자와 학파들의 총칭.

*지조( 뜻 지/절개 조) ; 원칙 신념 굽히지 아니하고 끝까지 지켜 꿋꿋한 의지 기개.

*결하다(缺-- 부족할 결) ; ①(무엇 갖추어야  )갖추지 못하고 빠뜨리다. ②(갖추어졌어야  )빠져 있거나 부족하다.

*소요( 거닐 소/서성거릴 요) ; 마음 내키는 대로 이리저리 슬슬 거닐며 돌아다.

*자리이타(自利利他) ; 자신도 이롭게 하면서 남도 이롭게 하는 것.

*담판한(擔板漢 멜 담/널판지 판/사나이 한) ; 판자를 어깨에 메어 한쪽을 보지 못하는 자, 곧 전체를 보지 못하고 편견을 가진 사람을 말함.

*불일성지(不日成之) ; 어떤 일을 며칠 안 걸려서 이룸.

*첩경( 빠를 첩/지름길 경) ; 지름길. 가깝게 질러서 가는 빠른 길.

*요달(了達 마칠•완전히 료/통달할 달) ; 통달해 마침. 완전히 통달함.

*혜명(慧命) : 지혜를 생명에 비유한 말.

 

Posted by 닥공닥정
발심 자신(自信)2015. 3. 11. 11:31

§(772) (게송)정종소식몰자미~ / 왜 출가를 했는가? / 공부는 ‘한 생각을 어떻게 단속하느냐’에 달려있다 / (게송)수행막대빈모반~ / 수행은 남이 대신해 줄 수 없다.

앉아서나 서서나 걸어갈 때나 밥먹을 때나 일체처 일체시에 화두가 독로하도록 잡드리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이 깨달음을 얻느냐, 깨닫지 못하고 그럭저럭 늙어서 죽음을 맞이하느냐는 거기에 달려있는 것.


오늘 여러분께 말씀한 이 두서 없는 말을 깊이 명심하고 다행히 조실 스님의 녹음 법문 테이프가 있고, 또 산승이 해 놓은 녹음 테이프도 있으니 시간이 있으면 녹음 법문을 들으면서 가정에서나 절에 와서나 선방에 방부를 들이거나 정말 알뜰히 단속을 하면 반드시 일대사(一大事)를 해결하게 될 것입니다.


그 ‘한 생각’을 착실히 단속을 하므로써 우리는 ‘참나’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말고는 인생으로 태어난 본의가 없는 것입니다.


받아나기 어려운  인생으로 태어났을 때 정말 정법(正法)을 믿고 ‘이뭣고?’를 해야 합니다. 이것은 남이 대신해 줄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부모라도 자식을 위해서 해 줄 수 없고, 아무리 효심이 있는 아들과 딸이나 며느리가 부모를 위해서 해 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전부 자기 수행(修行)은 자기 자신만이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송담스님(No.772)—2015(을미)년 동안거해제 및 백일기도 회향(15.03.05) (용772)

 

 

(1) 약 16분.

(2) 약 7분.


(1)------------------

 

정종소식몰자미(正宗消息沒滋味)하야  불용여하우약하(不用如何又若何)로다
나~무~아~미~타~불~
타파은산철벽거(打破銀山鐵壁去)하면  차시방도사생하(此時方渡死生河)니라
나~무~아~미~타~불~

정종소식(正宗消息)은 몰자미(沒滋味)다. 정말 최상승 활구참선(活句參禪) 해서 ‘참나’를 깨닫는 이 소식은 몰자미(沒滋味)여, 자미가 없다 그말이여.
불용여하우약하(不用如何又若何)다. 이러쿵저러쿵 전혀 재고 따질 필요가 없다 그말이여.

타파은산철벽거(打破銀山鐵壁去)하면, 은산철벽(銀山鐵壁)과 같은 콱~ 막혀서 나아갈라야 나아갈 수도 없고, 물러설라야 물러설 수도 없는, 그러한 절대절명(絕對絕命)의 그 자리에서 자기 본참공안(本參公案)에 콱~ 막혀서 알 수가 없어.

꽉 막혀서 알 수가 없는 거기에서, 차시방도사생하(此時方渡死生河)다. 생사(生死)의 강을 건너가는 길이 바로 거기에서 있느니라.


오늘은 을미(乙未)년 정월 15일, 지난 삼동(三冬)결제 해제일입니다. 지난 3개월 동안을 어떻게 지냈느냐?

시간 맞춰서 죽비(竹篦) 치면 앉고, 죽비 치면 일어서고, 때 되면 공양하고, 시간이 되면 잠자고, 규칙적인 생활을 아니할라야 안할 수가 없이 했는데, 규칙적으로 그렇게 생활한 것만이 거기에 공부가 다 잘한 것이 아니고, 어떻게 지냈느냐 한 것은 밖에서 남이 보아서는 알 수가 없고, 자기 자신이 지난 석 달 동안을 지내온 자기 자신을 냉정하게 반성을 해보고 관찰을 해봐야 할 오늘이 바로 그 해제일입니다.

안으로 철저하게 본참공안에 막혀서 알 수 없는 대의단(大疑團)이 독로(獨露)하도록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일체처(一切處) 일체시(一切時)에 밥 먹을 때나 옷을 입을 때나 화장실에 갈 때나 포행을 할 때나,
그 화두가 역력(歷歷)하고 의단이 독로하도록 그렇게 알뜰히 잡드리를 했는가 안 했는가는 본인이 반성을 해보면 알 것입니다.

형식적으로 시간 맞춰서 규칙적인 생활을 한 것도 중요하지만 그 알맹이가 정말 의단이 독로해서 알 수 없는 대의단이 코앞에 떠억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독로를 했나 안 했나?

그렇게 알뜰히 정진을 해야 정진이 되는 것이지, 눈으로 보는데 끄달리고, 귀로 듣는데 끄달리고, 먹을 때는 먹는데 끄달리고, 제 일인 척 사람을 만나서 얘기하는데 끄달리고 그렇게 그럭저럭 지내다 보면 석 달도 금방 지나가고,
또 다음 철도 그렇게 그럭저럭 지나가고, 그렇게 일생을 지내면 아까운 시간만 낭비를 하고 얼굴에 주름살만 생겨 가지고 머지않아서 죽을 날을 맞이할 수 밖에는 없으니, 그렇게 지내 가지고서는 머리를 깎은 본의(本意)가 과연 무엇이었던가? 무엇을 위해서 부모를 하직하고, 세상을 하직하고 출가(出家)를 했는가?

정말 냉정하게, 엄하게, 철저하게 자기가 지내온 석 달을 양심적으로 반성을 하고 되돌아보아야 그래야 앞으로 다가오는 시간을 어떻게 지낼 것인가가 결정이 될 것입니다.

정말 우리는 어떻게 정진(精進)을 하며 어떻게 생활을 했는가, 그것은 상관없이 시간은  1초 1초, 1분 1분,  한 시간 한 시간이 지나서 금방 아무것도 한 것 없이 하루 24시간이 지나가는 것입니다.
하루가 그렇게 지나가고, 이틀이 그렇게 지나가서 공부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주름살만 생기면서 죽음을 맞이해서는 출가 본의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명색(名色)이 불법을 믿고, ‘참나’를 깨닫기 위해서 머리를 깎고 중노릇을 한 그 본의를 정말 양심적으로 반성을 하고 지나간 일을 철저히 반성을 하므로써 앞으로 다가올 하루 하루를 어떻게 지내야 할 것인가를 판단이 날 것입니다.

아깝고 소중한 시간, 그 시간에 따라서 우리는 얼굴에 주름살이 생기고 머리에는 흰 머리카락이 불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번연히 그것을 알면서도 그럭저럭 지내서는 부모에게 죄송하고, 우리에게 음식과 의복을 조달해 주는 신도 여러분께도 죄송하고 부끄럽지 않겠습니까?


이 자리에는 비구∙비구니∙청신사∙청신녀∙어린애기와 나이 많은 할머니 할아버니가 가득 모이셨습니다.
출가를 한 스님네나 출가를 아니하고 머리를 깎지 않은 신도 여러분이나 우리의 생사(生死) 문제는 똑같습니다. 똑같은 그 생사 문제 때문에 우리는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그것 때문에 불법을 믿고 출가도 하고 참선을 하는데 자기의 한 시간 한 시간, 1초 1초, 한 생각 한 생각을 어떻게 단속하느냐에 따라서 정말 알뜰하게 자기의 본참화두에 대한 의단이 충실하도록 잡드리 하고,
앉아서나 서서나 걸어갈 때나 밥먹을 때나 일체처 일체시에 화두가 독로하도록 잡드리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이 깨달음을 얻느냐, 깨닫지 못하고 그럭저럭 늙어서 죽음을 맞이하느냐는 거기에 달려있는 것이니, 이것이 보통 일이 아닙니다.

정말 생각해 보면은 날마다 회초리를 가지고 자기 종아리를 부르트도록 종아리를 치면서 스스로 반성하고 스스로 경책(警策)을 하며 그렇게 단속을 해야만 할 그런 중대사인 것입니다.

이 자리에 모이신 형제 자매 도반 여러분!
산승(山僧)이 앞으로 얼마 안 있으면 죽음을 맞이할텐데 앞으로 몇번이나 이런 말씀을 하게 될런지 나 자신도 잘 모릅니다. 그러나 이 말을 내가 지나온 90년을 반성하고 돌아본 바, 정말 이런 말씀을 여러분께 하고 싶어 했습니다.

오늘 여러분께 말씀한 이 두서 없는 말을 깊이 명심하고 다행히 조실 스님의 녹음 법문 테이프가 있고, 또 산승이 해 놓은 녹음 테이프도 있으니 시간이 있으면 녹음 법문을 들으면서 가정에서나 절에 와서나 선방에 방부를 들이거나 정말 알뜰히 단속을 하면 반드시 일대사(一大事)를 해결하게 될 것입니다.

인생! 세계 65억이라고 하는데 그 많은 인생이 전부 명예나 권리나 지위, 부귀 그런 것에 얽매여서, 그런 것이 인생인 줄 알고 다투고 싸우고 몸부림치면서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자리에 모이신 여러 비구∙비구니∙청신사∙청신녀 도반 여러분은 그래도 그러한 인생살이 속에서 그래도 발심(發心)을 해 가지고 이 자리에 모이셨으니, 제가 이런 말씀을 하게 되는 것을 산승은 고맙게 생각하고 다행으로 생각합니다.

공부라는 것은 ‘한 생각을 어떻게 단속하느냐’ 거기에 달려있는 것이지, 오래 앉았다고만 해서 꼭 되는 것도 아니고

때로는 시간 있으면 가부좌도 하고, 반가부좌도 하고 항상 화두(話頭)를 챙기고, 걸어가면서도 챙기고, 앉아서도 챙기고, 밥 먹으면서도 챙기고, 화장실에 가서도 챙기고 그렇게 단속을 하므로써—지식이 있건 없건, 나이가 많건 적건, 머리를 깎았건 안 깎았건 그것이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그 ‘한 생각’을 그렇게 착실히 단속을 하므로써 우리는 ‘참나’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이것말고는 인생으로 태어난 본의가 없는 것입니다.

돈을 많이 벌어서 뭐할 것이며, 그걸 가지고 저승에 가봤자 염라대왕이 알아주지도 않고, 명예나 권리나 지위, 부귀가 아무리 하늘을 찌를듯 한다 하더라도, 그것도 인생의 무상(無常)한 속에서 비 오고, 바람 불고 그런 것과 마찬가지로 생사윤회(生死輪廻) 속에 한 장면에 불과하지, 그것이 나의 진정한 행복도  아니고 인생의 목적도 아닌 것입니다.(처음~15분25초)

 

 

 



(2)------------------

수행막대빈모반(修行莫待鬢毛斑)하라  호리신분개소년(蒿裡新墳皆少年)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일실인신기시환(一失人身幾時還)이면  지옥시장기등한(地獄時長豈等閑)고
나~무~아~미~타~불~

수행(修行)을 막대빈모반(莫待鬢毛斑)하라. 수행을 하는데 귀밑을 희기를 기다리지 마라. 나이가 들어가면 귀밑에 머리털이 흰머리가 나는데, 금방입니다. 20세, 30세도 휘딱 지나가고 30, 40이 되면 더 빠르고 50, 60이 되면 하루 시간이 20시간이 아니고 10시간도 못 되는 것입니다.

호리신분(蒿裡新墳)이 개소년(皆少年)이다. 공동묘지에 가면은 무덤이 참 많은데, 그 다 노인의 무덤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중년이나 청년이나 어린애 무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니 ‘아직은 젊으니까 돈도 벌고 좀 살아보자. 참선은 늙어서 하자.’ 그런 생각하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일실인신기시환(一失人身幾時還), 한번 사람 몸을 잃어버리면 언제 다시 사람 몸을 받아날 것인가? 정말 그건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육도(六途)! 천당·인간·아수라·지옥·아귀·축생 육도가 있는데 사람 몸으로 받아나서 태어나기가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닙니다.

한번 사람 몸을 잃어버리면 내생에는 축생이 될런지, 아귀가 될런지, 또는 혹 좋은 일도 많이 한 사람은 천당에도 가겠습니다. 죄를 지은 사람은 아귀가 되거나 축생이 되거나 또 지옥에도 가게 됩니다
그 육도 중에 제일 고약한 데가 지옥인데, 지옥에 한번 빠지면 몇억 광년이 지나가야 나올 둥 말 둥 하는 것입니다.

인생이 살면서 본의 아니게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남을 해롭게도 하고, 사기도 치기도 하고 그런데, 그때는 욕심에 정에 끄달려 가지고 본의 아니게 죄를 지을 수도 있겠으나 그 지은 죄는 하나도 에누리 없이 자기가 다 받게 되는 것입니다
몇백 배, 몇천 배로 죄를 받게 되는데, 정말 인생으로 태어나서 - 받아나기 어려운  인생으로 태어났을 때 정말 정법(正法)을 믿고 ‘이뭣고?’를 해야 합니다.

이것은 남이 대신해 줄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부모라도 자식을 위해서 해 줄 수 없고, 아무리 효심이 있는 아들과 딸이나 며느리가 부모를 위해서 해 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전부 자기 수행(修行)은 자기 자신만이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러니 받기 어려운 사람 몸 받았을 때,  출가 아니한 사람도 속가에서 생활하면서도 이것은 꼭 해야 하는 거고, 더군다나 머리를 깎고 출가한 스님네는 정말 알뜰하고 간절하게 한 생각 한 생각을 단속해서 정진을 하는 것 밖에는 없어.

이런 말씀을 오늘 해가 지도록 말을 해도 끝이 없습니다. 정말 앞으로 또 결제날이 올라면은 석 달이 지나야 여름 결제를 하게 되는데 그때까지 지금 모이신 분을 또 만나게 될런지, 내가 이 세상을 떠날런지, 또는 여러분 가운데도 또 세상을 떠나시는 분도 있을 수가 있을 것입니다.

인생의 생사 문제는 정말 무상한 것이니 시간 아껴서 열심히 알뜰히 ‘이뭣고?’를 해주시기를 다시 한번 부탁을 드리면서 더하고 싶은 많은 말을 이 주장자(拄杖子)에다 부탁을 하고 내려가고자 합니다.(박수)(15분26초~22분15초)(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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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정종소식몰자미~ ; [사명당대사집(四溟堂大師集)] (권6) '贈淳長老' 사명대사 게송 참고.
*정종(正宗) ; 석가세존으로부터 대대로 조사(祖師)들이 연면(連綿)하여 바르게 전해온 바른 종지(宗旨, 근본이 되는 중요한 뜻). 올바른 가르침. 선종에서 자기의 종지(宗旨)를 가리켜 말함.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1700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자미(滋味 맛있을 자,맛 미) ; 자양분이 많으며 좋은 맛. 또는 그런 음식.
*은산철벽(銀山鐵壁) ; 철벽은산(鐵壁銀山). 은과 철은 견고해서 뚫기 어렵고 산과 벽은 높아 오르기 어려움을 나타낸 것.
*절대절명(絕對絕命) : 절체절명(絕體絕命-몸도 목숨도 다 되었다는 뜻으로, 어찌할 수 없는 궁박한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본참공안(本參公案) : 본참화두(本參話頭).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삼동(三冬) ; 겨울철의 석 달.
*죽비(竹篦 대나무 죽,빗치개•통발 비) ; 예불이나 참선 정진할 때 이 죽비를 손바닥에 쳐서 소리를 내어 시작과 끝을 알리는데 쓰는 불교 용구.
*의단(疑團 의심할 의, 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독로(獨露 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홀로(獨) 드러나다(露).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 사람이 일상적으로 하는 일체의 행위.
*일체처(一切處) 일체시(一切時) ; 모든 곳 모든 때에. 언제 어디서나.
*역력(歷歷) ; 훤히 알 수 있게 분명하고 또렷함.
*잡드리 ; ‘잡도리’의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그 대책.
*본의(本意) : 본심(1. 본디부터 변함없이 그대로 가지고 있는 마음. 2. 꾸밈이나 거짓이 없는 참마음)
*출가(出家) : [범] Pravrajita 집에서 나온다는 말이다。가정 생활을 떠나서 수도와 포교를 전문으로 하기 위하여, 승려가 되는 것을 말함이다.
그러나 몸 출가(身出家)보다도,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 등 삼독(三毒)의 불이 늘 붙고 있는 번뇌 망상의 불집에서 뛰어나오는 마음 출가(心出家)를 하여야 한다.
*정진(精進) : [범] Virya  음을 따라 비리야(毘梨耶 • 毘離耶) • 미리야(尾利也)라고도 쓴다.
보살이 수행하는 육 바라밀(六波羅蜜)의 하나。순일하고 물들지 않는(純一無染) 마음으로 부지런히 닦아 줄기차게 나아가는 것이다。그러나 닦는 생각(能)과 닦는 것(所)이 있어서는 안 된다。함이 없이 하는 것이 정진이다.
*명색(名色) ; ①어떤 부류에 붙여져 불리는 이름. ②실속 없이 그럴듯하게 불리는 허울만 좋은 이름.
*번연히 ; ‘번히(어떤 일의 결과나 상태 따위가 훤하게 들여다보이듯이 뚜렷하고 분명하게)’의 본말.
*경책(警策 깨우칠 경,채찍 책) ; 타이르고 채찍질하여 깨우치게 하는 것.
*산승(山僧) ; 스님이 자신을 겸손하게 일컫는 말.
*일대사(一大事) ; 매우 중요하거나 아주 큰 일. [불교] 삶과 죽음, 즉 생사(生死)의 일.
①부처님이 중생구제를 위해 세상에 나타난다고 하는 큰 일. 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목적
②가장 중요한 일이란 뜻. 수행의 목적. 깨달음을 얻는 것. 인간으로서의 완성.
③참학(參學)의 일대사. 절대의 수행이라는 것.
「법화경」 방편품에 ‘諸佛世尊, 唯以一大事因緣故, 出現於世間’
“모든 부처님은 오직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 때문에 세상에 출현한다.” 라고 한 것에서 유래.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한 목적은 “깨달음을 얻기까지의 과정을 보이고, 지혜를 발휘하여 모든 중생을 깨닫게 하고 구제하는 것”이라고 한다.
*발심(發心) ; ①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②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원어)發起菩提心발기보리심, 發菩提心발보리심.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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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수행막대빈모반~’ ; [치문경훈(緇門警訓)] '잡록(雜錄)'에서 '굉지선사시중(宏智禪師示衆)' 참고.
[참고] 〇宏智禪師示衆
蒿里新墳盡少年  修行莫待鬢毛斑  死生事大宜須覺  地獄時長豈等閒
道業未成何所賴  人身一失幾時還  前程黑暗路頭險  十二時中自着奸


굉지(宏智)선사가 대중에게 보임.
쑥대밭에 새 무덤이 다 소년의 무덤이니, 수행(修行)하는데 귀밑을 희기를 기다리지 말아라. 생사대사(生死大事)를 모름지기 깨달아야 하니, 지옥 고통 길고 기니 어찌 등한히 하겠는가.
도업(道業)을 못 이루면 그 무엇에 의지하며, 사람 몸 한 번 잃고 언제 다시 돌아오리. 앞길이 캄캄하고 가야 할 길 험하구나. 하루 어느 때나 마음을 다잡아 도(道)를 구하여라.
*육도(六途, 六道) ; 중생이 선악(善惡)의 업(業:의지에 기초한 행위)에 의하여 생사 윤회하는 여섯 가지의 세계. 지옥도(地獄道), 아귀도(餓鬼道), 축생도(畜生道), 아수라도(阿修羅道), 인간도(人間道), 천상도(天上道)가 있다.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이뭣고(是甚麼 시심마,시삼마) : ‘이뭣고? 화두’는 천 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왔다.
[참고] 이뭣고? 이것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렇게 의심을 해 나가되, 이런 것인가 저런 것인가 하고 이론적으로 더듬어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다못 “이···뭣고······?” 이렇게만 공부를 지어나가야 됩니다. 여기에 자기의 지식을 동원해서도 안되고, 경전에 있는 말씀을 끌어 들여서 “아하! 이런 것이로구나!” 이렇게 생각해 들어가서도 안됩니다.
화두(공안)은 이 우주세계에 가득 차 있는 것이지마는 문헌에 오른, 과거에 고인(古人)들이 사용한 화두가 1700인데, 이 ‘이뭣고?’ 화두 하나만을 열심히 해 나가면 이 한 문제 해결함으로 해서 1700공안이 일시(一時)에 타파가 되는 것입니다.
화두가 많다고 해서 이 화두 조금 해 보고, 안되면 또 저 화두 좀 해 보고, 이래서는 못 쓰는 것입니다. 화두 자체에 가서 좋고 나쁜 것이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한 화두 철저히 해 나가면 일체 공안을 일시에 타파하는 것입니다.(76분34초~78분22초) [ ‘참선법 A’ 에서]
*수행(修行) ; ①실천하는 것. 행하는 것. ②오로지 한 생각에만 집중하여, 한결같이 그것을 잊지 않고 그것 외에 다른 생각이 일어나지 못하도록 하는 노력.
*주장자(拄杖子 버틸 주,지팡이 장,접미사 자) ; 수행승들이 좌선(坐禪)할 때나 설법(說法)할 때에 지니는 지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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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6) (게송)남북동서무정착~ / 장판때 / (게송)이인유밀불수저~ / 수행자는 코뿔소의 뿔처럼 외롭게 지내라 / 자각(自覺) 각타(覺他) 각행원만(覺行圓滿)—수행자목표.


도 닦는 참선의 기쁨을 먹고 사는 것이 수좌의 음식이다.

수행자는 항상 냉정하고 쌀쌀하고, 무슨 명예나 이끗이나 이양(利養)이나 재색(財色)에 그런 데에 솔깃하게 넘어가서는 안된다.

부처님 말씀에 ‘스스로의 자기의 깨달음을 얻지 않고서는 다른 사람을 깨닫게 할 수 없는 것이고, 자기 자신을 깨닫는 공부를 게을리 하고서는 부처님의 혜명(慧命)을 전통해 갈 수가 없는 것이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송담스님(No.616)—98년(무인년) 동안거결제 법어(98.12.03)


약 22분.


남북동서무정착(南北東西無定着)하고  생애지재일지공(生涯只在一枝筇)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설두세작연하미(舌頭細嚼烟霞味)하고  직입천봉갱만봉(直入千峰更萬峰)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남북동서무정착(南北東西無定着)하고  생애지재일지공(生涯只在一枝筇)이다.

동서남북 정착한 데가 없어. 겨울에는 남쪽 선방(禪房)에 가서 지내고, 여름에는 저 북쪽 선방으로 가고, 동쪽으로 갔다, 서쪽으로 갔다, 남쪽으로 동쪽으로 갔다.


선지식(善知識)을 찾아서 도반(道伴)을 찾아서 또 지내기 좋은 도량(道場)을 찾아서, 동서남북으로 일정하게 딱 정착한 데가 없듯이 계절 따라서 왔다갔다 하는데,


생애지재일지공(生涯只在一枝筇)이다. 수좌(首座)의 일생애(一生涯)라 하는 것이 오직 이 한 가지 주장자(拄杖子)에 달려 있다 그말이여.


설두세작연하미(舌頭細嚼烟霞味)하고, 혀끄터리는 다못 안개와 연기, 연하(烟霞)의 맛을 가늘게 씹는 것이다 그말이여.

연하를 씹으면서 연하의 맛을—무슨 맛있는 고량진미(味), 산해(山海)의 진미를 먹고 사는 게 아니라 연하의 맛을 씹으면서,


그 연하(烟霞)의 맛이라는 게 무엇이냐? 법희선열(法喜禪悅)이요, 선열(禪悅)로 위식(爲食)하는 겁니다. 도 닦는 참선의 기쁨을 먹고 사는 것이 수좌의 음식이다 그말이여.


연하의 맛을 씹으면서 직입천봉갱만봉(直入千峰更萬峰)이다. 바로 천봉(千峰) 다시 만봉(萬峰)을 향해서 들어가더라.


‘천봉 그리고 또 다시 거기서 더 만봉을 찾아서 들어간다’ 그 말은 아까 조실스님의 법문 가운데에 활구참선이라 하는 것은 이론적으로 따져서 말 길[語路]을 더듬어서 알아들어가는 공부가 아니여.


해 갈수록 알 수가 없는 그 본참공안(本參公案)을 향해서 바로 의심관(疑心觀)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들어갈수록 깊고, 들어갈수록 알 수가 없기 때문에 천봉만봉갱만봉(千峰萬峰更萬峰)을 향해서 들어간다고 이렇게 표현을 한 것입니다.



오늘 동안거 결제를 맞이해서 비구·비구니·청신사·청신녀 형제자매 도반들이 여기에 모다 운집(雲集)을 했습니다.

각자 자기가 지내는 처소에서 결제를 해도 되겠지만은 조실스님의 최상승법문(最上乘法門)을 뜻을 같이한 도반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그 법문을 듣기 위해서 여기에 오셨습니다.


그 선방에도 다 녹음테이프가 있어서 거기서 들어도 충분하리라고 생각이 되는데 여기에 와서 지내는 데에는,

도반들 같은 도반들을 여기서 만나서 입을 벌려서 말은 안 하지만은 한번 눈과 눈이 마주칠 때, 마음과 마음이 마주침으로서 한 목표를 향해서 활구참선(活句參禪)을 해 나가는 선후배 도반이 만나는데 뜻이 있는 것이고,


석 달 동안을 알뜰히 정진을 하고 해제 때 또 다시 만나자고 하는 말 없는 가운데에 거기서 깊은 말이 오고가는 것입니다.


방금 조실스님의 녹음법문에 활구참선, ‘여하시 조사서래의(如何是祖師西來意)이냐?'하는데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이 조실스님의 법문 속에 결제 법문은 분명히 그리고 충분히 법문을 들었습니다.


(법문을) 들어서 산승이 결제 법문이라고 할 필요가 없습니다마는 도반들이 이렇게 모이셨으니 석 달 동안을 무장무애하게 그리고 알뜰하고 짬지게 지내기를 바래는 마음에서 몇 가지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해마다, 철마다 여름이면 여름 결제, 겨울이면 겨울 결제 하는데, 처음에 첫 철에 나갈 때에는 엄섬하고 경건하고 아주 근신(謹愼)하는 마음으로 방부를 들이고 한 철을 지냅니다.


두 철이 또 지나가고 세 철, 네 철 지내다 보면 엄섬하고 경건한 그러한 기분은 차츰 사라지고 모다 아무 근신하는 마음가짐이 차츰 해이(弛)해져서 그럭저럭 한 철 지내고,


또 거기서 해제를 하면 또 다른 선방에 가서 지내고 해서 ‘장판때’만 반들반들 묻어 가지고,

철저한 신심으로 정진하는 기운이 자기도 모르는 가운데 해이해지는 그런 경향이 있다고 옛날 스님네들은 그 ‘장판때’라는 말을 많이 사용을 했습니다.


여기에 모이신 도반들은 결단코 그러한 일은 없으리라고 생각하지만 만에 하나라도 그러한 말이 해당이 된다면 안 되겠다고 하는 도반으로서의 노바심(老婆心)에서 나오는 말씀을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인유밀불수저(利刃有蜜不須舐)하고  고독지가수막상(蠱毒之家水莫嘗)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시비해리횡신입(是非海裏橫身入)하고  표호군중자재행(豹虎群中自在行)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이인유밀불수저(利刃有蜜不須舐)요, 날카로운 칼날에 꿀이 묻어있는데 어리석은 사람은 그 꿀을 핥아먹다가 혀를 베게 되는 것이니 설사 칼끝에 꿀이 묻었다 하더라도 그 꿀을 핥아먹지를 말아라 이것입니다.


고독지가(蠱毒之家)에 수막상(水莫嘗)이여. 고독지가(蠱毒之家)라 하는 것은 그 흉가(家)—샘에 독이 풀어져 있는 집의 물은 아무리 목이 마른다 하더라도 그 물을 먹지를 말아라 이것입니다.


무엇이 칼날 위에 꿀이고 고독지가에 물이라는 게 무엇이냐?


수행자는 명예나 이끗이나 재색(財色)이나 이양(利養)이나 모다 이러한 것들이,

누가 나한테 따뜻하게 잘 해주고, 잘 보시를 하고, 좋은 옷을 해주고, 약을 지어주고, 명예를 주고, 어떤 권리를 주고, 내 마음을 즐겁게 해주고 그러한 것들이 다 칼날 위의 꿀이고 고독지가(蠱毒之家)의 물이라 하는 것입니다.


수행자는 항상 냉정하고 쌀쌀하고, 무슨 그러한 이끗이나 이양이나 재색(財色)에 그런 데에 솔깃하게 넘어가서는 안된다 이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수행자는 코뿔소의 코뿔처럼 외롭게 지내라’ 그러셨습니다.

다른 모든 짐승은 뿔이 두 개씩인데 코뿔소는 코끝에 뿔이 하나가 딱 있는데, 그 하나만을 앞세우고 일생을 사는데 ‘그렇게 외롭게 살아라.’


이끗과 명예 모다 그런 데에 부합을 하지 말고, 그런 데에 넘어가지 말고,

돈 많이 주는 데 찾아당기고, 맛있게 해 주는 데 찾아당기고, 그런 데에 휩쓸리지를 말고, 먹고 잘 먹고 못 입는 것은 그것은 인연에다 맡겨.


가난한 데에 검박하고 그래도 수행하는데 도움이 되는 그런 데를 찾아가야지,

돈을 생각해서 찾아가고, 맛있게 잘 받들어 주는 데만 찾아다니면 결과적으로 남은 것은 칼끝의 꿀을 빨아먹다 혀를 짤리는 거고, 고독지가에 물을 먹다가 결국은 목숨을 잃게 된다 그 말입니다.


시비해리(是非海裏)에 횡신입(橫身入)이요. 옳다 그르다 하는 시비(是非)의 바다 속에 몸을 비켜서 들어가.

도처가 간 곳마다 시비가 끊어지는 데가 없고, 어디를 가나 크고 작은 시비는 있기 마련이고, 그런 시비에 말려 들어가지 말고 그 시비 속에서도 몸을 비켜서 나가는 거고.


표호군중자재행(豹虎群中自在行)이다. 표범과 호랑이가 득실거리는 그런 속에 자재(自在)하게 행해야 한다 그 말인데, 여러분들도 다 아시다시피 종단이 퍽 시끄럽습니다.


총무원, 조계사 모다 전국승려대회도 일어나고, 이 파 저 파 해 가지고 천여 명씩이 모아서 온갖 불상사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것은 다 어떻게 하면 종단을 잘해 나갈까? 자기가 나가야 이 종단을 잘해 나가겠다. 피차 그런 마음에서 하다보니까 충돌이 생기고, 외부에서 볼 때에는 대단히 참 가슴 아픈 사건이 벌어지고 있습니다마는,

그 분은 그런 나름대로 종단을 걱정하고 불교의 장래를 걱정해서 자기가 나가야만 되겠다고 하는 그런 끓는 용기와 원력으로 모다 그렇게 하지 않는가 생각이 됩니다마는,


그것이 진정코 종단을 위하는 일인가? 불교를 위하는 일인가? 그것은 생각하는 사람, 보는 사람의 관점에 달려 있을 것이고, 일양으로 매도할 일도 못되고, 누구 편을 들기도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불법은 자각(自覺) 각타(覺他) 각행원만(覺行圓滿)이 수행자로서 불자로서 목표를 삼고 나가야 하는 것인데,


대발심(大發心)을 해서 대지혜와 대자비로 실천 수행하는데 있어서 각자 자신의 원력과 또 자기 믿는 선지식의 지도에 따라서,


경(經) 공부를 하는 사람 또 주력(呪力) 공부를 하는 사람, 염불을 하는 사람 또 나름대로 자기가 터득한 부처님의 말씀을 포교하는 데에다가 관점을 두고 또 그렇게 해 나가는 사람,

육바라밀(六波羅密)을 수행을 해야겠다 또는 어떤 사람은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사념주관(四念住觀), 비파사나(Vipassanā)라고 하는 신·수·심·법(身受心法)을 향해서 수행하는 사람,


여러 가지 방편(方便)이 다 있어서 나름대로 열심히 그렇게 수행을 하고 있는데, 각자 그 근기와 수준에 따라서 이것이 그 단계에 따라서 이렇게 수행하는 사람, 저렇게 수행하는 사람, 여러 가지 길이 있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자리에 모이신 여러 도반들은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에 의해서, 직절근원(直截根源)하는 이 활구참선에 의해서 일대사(一大事) 문제를 해결한다고 하는 그러한 마음으로 이 자리에 모이신 것입니다.


종단이 이렇게 시끄러울수록에 우리 이 자리에 모이신 도반들은 각자 다른 철보다도 훨씬 더 자가(自家) 중심(中心)을 탁 세우고서 정말 알뜰하고 짬지게 이 한 철을 잘 지내주시기를 부탁을 드리는 것입니다.    


부처님 말씀에 ‘스스로의 자기의 깨달음을 얻지 않고서는 다른 사람을 깨닫게 할 수 없는 것이고, 자기 자신을 깨닫는 공부를 게을리 하고서는 부처님의 혜명(慧命)을 전통해 갈 수가 없는 것이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금년 삼동(三冬) 안거는 다른 안거 때보다도 더욱 마음을 가다듬고 그 선원의 청규(淸規)를 잘 지키면서 조용하게 말없는 가운데에 알뜰히 정진을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처음~21분30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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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남북동서무정착~’ ; [청허당집(清虛堂集)] (서산휴정 著,朴敬勛 역, 동국대학교 역경원) p162 ‘혜총선자(慧聰禪子)를 보내며’ 게송 참고.

*선방(禪房) ; ①참선(參禪)하는 방. 선실(禪室)과 같은 말. ②‘선방에 간다’라는 말은 ‘참선하러 절에 간다’ 또는 ‘참선에 들어간다’라는 표현이다.

*선지식(善知識) ; 부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지도자. 좋은 벗.

*도반(道伴) ; 함께 불도(佛道)를 수행하는 벗. 불법(佛法)을 닦으면서 사귄 벗.

*도량(道場) : [범] bodhimandala '도를 닦는 곳'이란 말이다。습관상 「도량」으로 발음한다.

*수좌(首座) ;①선원(禪院)에서 좌선하는 스님. ②수행 기간이 길고 덕이 높아, 모임에서 맨 윗자리에 앉는 스님. ③선원에서 좌선하는 스님들을 지도하고 단속하는 스님.

*주장자(拄杖子 버틸 주,지팡이 장,접미사 자) ; 수행승들이 좌선(坐禪)할 때나 설법(說法)할 때에 지니는 지팡이.

*혀끄터리 ; 혀끝( 앞쪽  부분). '끄터리'는 '끄트머리(  부분)'의 사투리.

*고량진미( 기름 고,기장 량,보배 진,맛 미) ; 기름진 고기 좋은 곡식으로 만든 맛있는 음식.

*산해진미(山海珍味) ; 산과 바다 온갖 진귀한 산물  갖추어 차린매우  좋은 음식.

*법희선열(法喜禪悅) ; 부처님의 가르침[法]을 듣고 따르는 기쁨[喜]과 선정(禪定)에 드는 기쁨[悅].

*선열(禪悅)① 선정(禪定)에 드는 기쁨. ② 참선할 때 가슴에 잔잔히 사무치는 기쁨.

*본참공안(本參公案) :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운집(雲集 구름 운,모일 집) ; 구름(雲)처럼 모인다(集)는 뜻으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듦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1700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판치생모(板齒生毛) ; 화두(공안)의 하나.

어떤 스님이 조주 스님께 묻되, “어떤 것이 ‘조사서래의’입니까?  (如何是祖師西來意)”하니 답하시되,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하셨다.

즉, 「어떤 것이 달마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판치에 털이 났느니라.」라고 하는 화두.

그러면 조주 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을까?  이 화두도 ‘무자’ 화두와 같이 ‘판치생모’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판치생모” 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께 뜻이 있는 것이니, 학자들은 꼭 조주 스님의 뜻을 참구해야 한다. “어째서 ‘무’라 했는고?” 하는 것과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하는 것은 조금도 다름이 없는 것이다. [언하대오(言下大悟)에서] (용화선원) p53.

*짬지다일하는 솜씨 여물고 깐깐하다.

*근신(謹愼 삼갈 근,삼갈 신) ; 말이나 행동, 마음가짐을 삼가고 조심함.

*해이하다(弛-- 풀 해,느슨할 이) ; (마음가짐이나 태도 따위)긴장 풀어져서 슨한 상태이다.

*노바심(老婆心) ; 노파(老婆)가 자식·손자를 애지중지 하듯이, 스승이 수행자에게 나타내는 자비심. 친절심(親切心). 파심(婆心)이라고도 함.

*(게송) ‘利刃有蜜不須舐  蠱毒之家水莫嘗’ ; [선문염송] (혜심 지음) ‘제1권 1칙 도솔(兜率)’ 대혜고(大慧杲) 게송 참고.

*(게송) ‘是非海裏橫身入  豹虎群中自在行’ ; [선문염송] (혜심 지음) ‘제1권 1칙 도솔(兜率)’ 죽암규(竹庵珪) 게송 참고.
*고독(蠱毒 벌레·害毒 고,독 독) ; 지네두꺼비  (). 또는  독이 들어 있는 음식 먹어서 생기는 복통이나 가슴앓이토혈(), 하혈( 증상 나타난다.
*이끗(利끗) ; ①이익이 되는 실마리. ②잇끝(말리 末利)—지말(枝末), 지엽(枝葉)적인 이익. 작은 이익.
*재색(財色) ; 재물(財物)과 타인의 몸(色).
*이양(利養) ; ① 산스크리트어 lābha  이익(利益). 이득(利得). 획득한 물(物 : 특히 출가자에 대하여 말함). 남에게서 물건을 받는 등 실질적인 이득(利得)을 말함.
② 이익(利益)을 얻어 자기몸을 보양하는 것. 재물을 탐하여 자신을 살찌우는 것.
③ 산스크리트어 satkāra 존경. 존중. 공경. 공양.
*솔깃하다(사람 어떤 )마음 끌리다.
*발심(發心) ; ①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②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원어)發起菩提心발기보리심, 發菩提心발보리심. 
*포구발심(怖懼發心 두려워할 포,두려워할 구,일어날 발,마음 심) : 끝없이 되풀이 되는 육도윤회(六途輪廻)에서 받을 생사(生死)가 정말 무섭구나. 그 생사의 고통을 매우 두려워(怖懼)하여, 두려운 마음으로 생사를 벗어나는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菩提心)을 일으킴(發).
*주력(呪力) ; 진언(眞言)·다라니(陀羅尼)로 하는 기도. 진언(眞言)·다라니(陀羅尼)의 효과.
*육바라밀(六波羅蜜) ; 바라밀(波羅蜜)은 산스크리트어 pāramitā의 음사로, 도피안(到彼岸)·도(度)·도무극(度無極)이라 번역. 깨달음의 저 언덕으로 건너감, 완전한 성취, 완성, 수행의 완성, 최상을 뜻함.
보살이 이루어야 할 여섯 가지 완전한 성취.
①보시바라밀(布施波羅蜜). 보시를 완전하게 성취함. 보시의 완성.
②지계바라밀(持戒波羅蜜). 계율을 완전하게 지킴. 지계의 완성.
③인욕바라밀(忍辱波羅蜜). 인욕을 완전하게 성취함. 인욕의 완성.
④정진바라밀(精進波羅蜜). 완전한 정진. 정진의 완성.
⑤선정바라밀(禪定波羅蜜). 완전한 선정. 선정의 완성.
⑥지혜바라밀(智慧波羅蜜). 분별과 집착이 끊어진 완전한 지혜를 성취함. 지혜의 완성.

*사념주관(四念住觀) ; 깨달음을 실현하도록 도와주고 장엄하는 37보리분법(菩提分法) 또는 37조도품(三十七助道品) 가운데 하나이다.

사념처관(四念處觀)·사의지(四意止)·사념(四念)이라고도 한다.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念處]. 네 종류의 수행방법. 네 가지의 관상법(觀想法). 네 종류의 마음이 고요해지는 내관(內觀).


염(念, sati, 마음챙김)은 ‘마음을 챙김’으로, 구체적인 의미는 ‘마음이 대상을 챙김’이다.

“여기서 마치 송아지 길들이는 자가 [송아지를] 기둥에 묶는 것처럼,

자신의 마음을 염(念, sati, 마음챙김)으로써 대상을 굳게 묶어야 한다” 『디가 니까야 주석서』에서.


염(念, sati, 마음챙김)의 대상인 몸과 느낌과 마음과 법[身·受·心·法]에서 그들을 각각 더러움[不淨], 괴로움[苦], 무상(無常), 무아(無我)라고 파악하면서, 또 깨끗함, 행복, 항상함, 자아라는 인식을 버리는 역할을 성취하면서 일어나기 때문에 네 가지로 분류된다. 그러므로 사념주(四念住, 四念處)라고 한다.

*비파사나(팔리어 vipassanā, 산스크리트어 vipaśyanā) ; 비바사나(毘婆舍那)·비발사나(毘鉢舍那)로 음역.
능견(能見)·정견(正見)·관찰(觀察)·관(觀)이라 번역.
비파사나(위빳사나)는 ‘분리해서vi  보는 것passanā’이라는 문자적인 뜻 그대로,
대상[유위제법(有爲諸法)—오온(五薀)·십이처(十二處)·십팔계(十八界)]을 나타난 모양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명상하고 관찰하여 법(法)의 무상(無常)하고 고(苦)이고 무아(無我)인 특성을 통찰하는 수행.

비파사나는 마음[心]·마음부수[心所]·물질[色]로 구분되는 71가지 구경법들 가운데 하나를 통찰하는 수행인데 이처럼 법을 통찰해 들어가면 제법의 무상이나 고나 무아를 철견(徹見)하게 된다.
무상·고·무아를 통찰하는 비파사나의 힘으로 탐·진·치의 뿌리를 멸절시켜야 영원히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 되며 그래야 해탈·열반을 실현하게 된다.
비파사나는 무상·고·무아를 통찰하는 것 그 자체이지 결코 특정한 수행기법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 「초기불교 이해」 (각묵 스님, 초기불전연구원) 참고.
*방편(方便 방법·수단 방,편할 편) ; ①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일시적인 수단으로 설한 가르침.중생 구제를 위해 그 소질에 따라 임시로 행하는 편의적인 수단과 방법. 상황에 따른 일시적인 수단과 방법.
②교묘한 수단과 방법.
*직절근원(直截根源) ; 근원(根源)을 바로 꺾었다(다스리다). 근원에 몰록 들어갔다.
*일대사(一大事) ; ①부처님이 중생구제를 위해 세상에 나타난다고 하는 큰 일. 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목적 ②가장 중요한 일이란 뜻. 수행의 목적. 깨달음을 얻는 것. 인간으로서의 완성.
*자가(自家) ; ①자신의 집. ②자기 자체.
*중심(中心) ; ①중요하고 기본 되는 부분. ②사물이나 일정한 장소 가장 가운데 되는 . ③ 잡은 마음또는 확고한 생각 태도.
*혜명(慧命) ; ①지혜를 생명에 비유하는 말. 대도정법(大道正法)의 명맥(命脈). ②법신(法身)은 지혜가 생명이 된다는 뜻.
*청규(淸規) ; ①선종(禪宗)의 사원에서, 여러 스님들이 늘 지켜야 할 규칙. ②참되고 바른 규칙이나 법도.


Posted by 닥공닥정
정진(精進) 수행2014. 11. 1. 17:01

§(251) (게송)사중구의원~ / 지금 이 찰나! '한 생각' 돌이켜서 ‘이뭣고?’ / 인생은 나그네, 세상만사 뜬구름 / 중생이 본래 부처다 / 최상승법은 언제나 우리 가까이 있다.

조실스님 법문 가운데도 들으셨겠지만은 공부가 잘 안 된다고 짜증하거나 번민을 해서는 아니되고, 또 잘된다고 해서 기뻐하는 마음도 내지 말어라.
『일어나는 망상과 번뇌를 버릴려고 그러고, 쫓을려고 그러고, 억누를려고 하지를 말고, 그냥 고대로 놔둬 버리고 나는 화두만을 턱 추켜 들면 되는 것이다.』 그것이 가장 지혜롭게 번뇌와 망상을 다스리는 방법이다.


‘오늘 법문을 들었으니까 오늘은 그럭저럭하고 내일 아침부터 하리라’ 그런 생각을 가지셨다면 그분은 벌써 틀려 버린 것입니다. 지금 이 법당에 앉어 있는 이 찰나! 이 찰나에 생각을 돌이켜야 합니다.
자기가 자기 1찰나, 1찰나를 단속할 때에 자기 생사문제가 해결이 되는 것이지, 왜 그러냐 하면, 생사는 다른 데에서 있는 것이 아니고, ‘한 생각’에서 생사(生死)가 생겨난 것입니다. ‘탐진치(貪瞋癡)’하지마는, 딱! 꼬집어서 말하면 생각이거든, ‘한 생각’이거든.  ‘오욕락(五欲樂)’해도 더 다그쳐 생각해 보면, 그것도 ‘한 생각’이여.  ‘천당’ 그것도 ‘한 생각’에서, 지옥도 ‘한 생각’에서.


‘이뭣고~?’하면, 그 속에 화엄경이 다 들었고, 팔만대장경이 다 들었고, 삼세제불을 친견하는 도리도 그 속에 다 들어있고, 육도윤회를 갖다가 끊어 버리는 도리도 바로 그 속에 있는 것입니다.
가사불사(袈裟佛事)를 하는 목적은 꼭 가사가 없어서 가사를 하는 데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고, 이 가사불사를 통해서 여러분에게 최상승법을 설해서 믿고 실천하게 해 드리는 데에 궁극의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참선을 하는 사람은 가난해도 불행하지 아니하고, 부자가 된다고 해서 그렇게 꺼떡댈 것도 없는 것입니다. 언제나 여유있고 느긋하고 멋지게—하나의 그 인생살이를 연극처럼 생각하고,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생각하고 살 수 있는 길이 이 참선법이라 하는 것입니다.


**송담스님(No.251)—84년 12월 첫째일요법회(84.12.02) (용251)

 

(1) 약 20분.

(2) 약 18분.


(1)------------------

사중구의원(死中求醫員)하고  영해억모심(嬰孩憶母心)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주공친절처(做工親切處)에  홍일상동령(紅日上東嶺)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사중구의원(死中求醫員)하고  영해억모심(嬰孩憶母心)이다.
죽을병든 사람이 의원(醫員)을 구하듯 그렇게 간절하게 하고, 어린 아이가 엄마를 생각하듯 하라. 이 참선(參禪)은 그만큼 간절(懇切)한 마음으로 해야만 하는 것입니다.(做工親切處)

무량겁(無量劫)을 두고 탐진치 삼독에 빠져 가지고, 오직 익히느니 그것만을 익혀 왔는데—탐진치 삼독(三毒)과 오욕락(五欲樂)만 익혀 왔는데,
금생에 그 속에서 그러한 집착과 애착으로부터 벗어나서 ‘참나’를 찾을려고 하니, 탐진치 삼독과 재색식명수(財色食名睡) 이 오욕락은 무량겁을 익혀 왔기 때문에 안 할려고 해도 그것은 저절로 되어져 버리고,


내가 나를 찾는 이 참선은 할려고 해도, 화두를 아무리 들어도, 들으면서도 금방 딴 생각이 동시에 침범을 해 들어오고 들을 때 뿐이지 금방 없어져 버리고, 한두 번 해본 것도 금방 습관이 드는데 하물며 무량겁을 해온 그 습성이 일조일석(一朝一夕)에 그것이 없어질 수가 없습니다.

글씨를 쓰면, 벼루를 오른쪽에다 놓고 글씨를 쓰다가 한 서너 번 먹을 찍어다 쓰고서 그쪽이 불편하니까 그 벼루를 왼쪽에다 갖다 놓고는 인자 쓰기 시작하면은 글씨 쓰다가 먹을 찍으러 가는데, 자기 손으로 오른쪽에 놨던 벼루를 왼쪽에다 놨는데 금방 먹을 찍으러 가기를 오른쪽으로 가게 됩니다.
아까 몇 번 오른쪽에서 찍어다 썼기 때문에 벌써 그것이 습관이 되어 가지고, 분명 자기 손으로 왼쪽에다 옮겨 놓았음에도 불구하고 무의식 중에 오른쪽으로 먹을 찍으러 간다 그말이어. 밥상에서 밥을 먹을 때에도 그렇고.

평상시에 자기집을 다니던 사람은 이사를 해서 동쪽에 살다가 서쪽으로 이사를 갔는데도 무의식 중에 간다는 것이 이사 간 줄을 깜박 잊어 버리고 동쪽으로 얼마 동안 가다가 ‘아! 내가 서쪽으로 이사를 갔는데, 내가 어먼 데로 가는구나’ 그런 예를 얼마든지 경험할 수가 있고.

술을 잔뜩 먹어서 완전히 인사불성(人事不省)이 되었는데도 그 취중에도 자기집을 찾아 오는 것입니다. 자기집인 줄 알고 남의 집의 침실에 들어가서 실수를 하는 예도 있다고 그럽니다마는, 무의식 중에도 평소에 익혀 놓으면 그것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만큼 똑같은 일을 거듭해서, ‘거듭한다’고 하는 것은 나중에 그것이 습관이 체질화가 되고, 체질화가 되면은 무의식 중에 되게 되는 것입니다.
나쁜 업도 익히면 그것이 몸에 젖어서 체질화가 되고, 좋은 것도 자꾸 되풀이 해서 하면 그것이 습관이 되고 체질화가 되는 것입니다.


이 화두(話頭)도 처음부터 잘되는 사람은 없습니다. 내동 잠이 안 오고 초롱초롱 하다가도 화두만 들고 할려고 하면 혼침(昏沈)이 오고, 아무 생각도 없이 괜찮다가도 화두만 들고 할라면 번뇌(煩惱) 망상(妄想)이 퍼 일어나고 그러거든.

참선을 해본 분이면 누구나 다 경험한 바시겠지마는 이 번뇌와 망상 그리고 혼침, 이것이 참선하는데 있어서 제일 우리를 괴롭히는 것들인데,
이 잠이 오는 것과 망상이 일어나는 것만 없으면은, 그냥 화두를 한번 떠억 들면 성성(惺惺)하고 적적(寂寂)해서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한다면은 공부하기가 하나도 괴로울 것이 없을 것 같은데,

그것이 처음에는 잘된 듯 하다가 얼마 지나면은 뚝 변해 가지고 영 안 되고, 또 안 되지마는 계속하다 보면 또 잘되고, 잘되었다 안 되었다, 잘되었다 안 되었다 그러면서 수없는 고비를 넘다 보면,

나중에는 할려고 안 해도 저절로 화두가 들어지고, 망상을 안 할려고 안 해도 저절로 망상이 끊어지면서 화두가 순일무잡(純一無雜)하고 순수해 가지고 앉어서나 서서나 누워서나, 일을 할 때나 밥을 먹거나, 옆에서 떠들고 시끄럽게 하거나 말거나, 고대로 화두가 성성하게 들려진 때가 오고야만 마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는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몸이 괴로운 줄도 모르고, 밤새 정진을 해도 괴롭고 피곤한 줄을 모르고 그렇다 그말이어.

그래도 ‘아! 인제 되었다. 참 좋다! 이러다가 빨리 툭 터졌으면’ 그런 생각을 하면 그것은 어리석은 짓이요. 오히려 공부를 갖다가 지지리 아홉 질 탑을 쌓는데, 여덟 질까지 쌓아 놓고 마지막 한 자 남겨 놓고 스스로 자기가 허물어뜨리는 거와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정진이 잘되어도 ‘잘된다’는 생각, ‘좋다’는 생각, ‘빨리 깨달았으면’하는 그러한 생각을 일으켜서는 아니되는 것입니다. 그럴수록에 바다와 같이 깊고 태산과 같이 무거운 마음으로 한결같이 정진을 단속을 해 나가야 하는 게고.

또 공부가 영 잘 안 되고 화두가 잘 안 들리고, 혼침이 퍼 일어나고, 몸이 뒤틀리고, 시간이 5분이 1시간보다 더 지루하게 지내간다 하드라도 짜증내는 마음을 내지 말고,
아까 전강 조실 스님 법문 가운데도 들으셨겠지마는 잘 안 된다고 짜증하거나 번민을 해서는 아니되고, 또 잘된다고 해서 기뻐하는 마음도 내지 말어라.


그러면 망상이 퍼 일어날 때는 어떻게 하느냐?
일어나거나 말거나 그 망상을 물리치거나 억지로 누를라고 허거나 쫒아낼려고 하지 말고, 그냥 일어나는 대로 고대로 놔둔 채 나는 ‘이뭣고?~’ 이렇게 자기의 화두만을 탁! 들어 버리면 되는 것입니다.

그놈을 쫓아 버릴려고 그러고, 억지로 누를려고 하면은 화두가 잘 들리기커녕은 ‘누를라고 하는 그 망상’이 하나 더 일어나게 되는 게고,
일어나는 파도를 없애기 위해서 그 파도를 없앨려고 손으로 누르거나 손으로 갖다가 없앨려고 하면은 새로운 파도가 일어나는 거와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이것이 공부해 나가는데 아주 간단하고도 묘한 방법인 것입니다.
『일어나는 망상과 번뇌를 버릴려고 그러고, 쫓을려고 그러고, 억누를려고 하지를 말고, 그냥 고대로 놔둬 버리고 나는 화두만을 턱! 추켜 들면 되는 것이다.』 그것이 가장 지혜롭게 번뇌와 망상을 다스리는 방법이다 하는 것을 여러분은 잘 아셔야 하고.

혼침(昏沈)이 올 때는 어떻게 하냐?
눈을 힘을 주어서 눈을 부릅떠도 눈텡이가, 눈 위에 껍데기가 천 근이나 되게 무겁게 덮어 누르고, 아무리 손으로 허벅지를 꼬집어 뜯어도 시퍼렇게 멍이 들도록 집어 뜯어도 소용이 없다 그말이어.

옛날 도인(道人)들은 졸음이 오면 송곳으로 무릎을 찌르면서—자명초원(慈明楚圓) 선사 같은 이, 경허(鏡虛) 선사 같은 그런 도인들도 송곳으로 무릎을 찌르면서 밤잠을 안 자면서 정진을 하는 말씀도 전해 내려오고 있읍니다마는,

그러한 송곳으로 찌르면서 졸음을 쫓을 만한 그러한 각오가 있어야 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오늘부터서 낱낱이 다 송곳부터 사러 가시지 말고, 졸음이 올 때에는 살며시 일어나서 밖에 가서 포행(布行)을 하시고 세수도 하시고 그러면서, 포행을 하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왔다갔다 포행을 일직선으로 정해 놓고 왔다갔다 한 5분 하면, 졸음이 나가면 또 자리에 와서 또 앉고 이렇게 하면서 혼침을 이기도록. 그래도 안 들으면 송곳으로 한번 찔러서라도 한번 해봄즉 한 일이지요. 그러다 잘못하면 또 피가 많이 나면 안 되니까 조심을 하시고.


이 세상에 사람이 태어나서 모양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고, 취미도 다르고, 또 직업도 다르고 다 다릅니다. 각기 다 자기의 소질 따라서 능력 따라서 서로 남녀 간에 결혼을 하고 직업을 가지고 살게 되는데, 다 이것이 일장춘몽(一場春夢)입니다.

과거에 지은 업(業)으로 서로 만나서 부부간이 되고, 부모 자식 간이 되고, 며느리가 되고, 시어머니가 되고, 친구 간이 되고, 형제간이 되어서 이렇게 만나서 사는데, 이건 참! 어찌해 볼 수 없는 현실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업으로 만나졌기 때문에 인연(因緣)이 다하면 또 헤어지게 됩니다. 생이별(生離別)도 하고 사이별(死離別)도 해서 헤어지는데, 지내 놓고 보면 이것은 분명히 꿈에 지내지 못한 것입니다.

마치 꿈꾸고 있는 동안에는 호랑이를 보면 진짜 무섭고, 뱀이 달라들면 진짜 무섭고, 어디서 좋은 보물을 얻으면 진짜 기쁘고, 깨어 놓고 보면 허망하기가 그지할 수가 없고, 하나도 무서울 것도 없고, 좋아할 것도 없지만, 실지 그 꿈을 꾸고 있는 동안에는 조금도 틀림이 없는 현실입니다.

그와 같이 인생살이도 깨닫기 전에는 분명히 현실입니다. 또 버릴 수도 없습니다. 피할 수도 없습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것은 충실히 최선을 또 다해야 합니다.
‘꿈이니까, 에이! 그까짓 것 소용없다. 가정도 버려 버리고, 재산도 버려 버리고, 직장도 버려 버리고, 사업도 다 팽개쳐라’ 부처님은 그렇게 말씀을 하시지 않았습니다.

특수한 사람에 한해서는, 목숨을 바치고 오직 이 한 일만을 할 각오가 선 사람은 그걸 버리고 출가하실 수가 있지만,
일반 청신사 청신녀는 자기에게 주어진 책임, 남편으로서 아내로서 부모로서 자식으로서 또는 관리로서 농사짓는 사람, 장사하는 사람, ‘각기 자기에게 주어진 책임을 충실히 하면서 그 가운데에 자기 마음 닦는 공부를 해라’ 이렇게 부처님께서는 법을 설하신 것입니다.

부애나면 ‘절로 가서 중이나 되어 버릴까’ 몇 번을 생각하다가, 또 부애가 풀어지면 언제 절 생각은 잊어 버리고 ‘여보, 어쩌고...’

 

도(道)는 꼭 머리를 깎고 출가 해야만 되는 것도 아니고, 속가에 있어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것이 아닙니다.
속가에 있으면 있는 대로 할 길이 있고, 출가한 스님은 출가한 스님대로의 수행해 나가는 법이 있어서 각자 자기 있는 자리, 제일 이 도 닦아 나가는데 중요한 것은 ‘지금’이라고 하는 이 찰나(刹那)인 것입니다.

내년에 어떻게 하고, 앞으로 3년 더 있다 어떻게 하고, 내일 어떻게 하고, 한 시간 뒤에 어떻게 하고, 오늘 저녁부터 어떻게 하고 이런 것이 아니라, 지금! 지금이라고 하는 이 찰나가 이 참선에 있어서는 제일 소중한 것입니다.

‘오늘 법문을 들었으니까 오늘은 그럭저럭하고 내일 아침부터 하리라’ 그런 생각을 가지셨다면 그분은 벌써 틀려 버린 것입니다. 지금 이 법당에 앉어 있는 이 찰나! 이 찰나에 생각을 돌이켜야 합니다. ‘이뭣고?~’

 

한 시간도 멀고, 일 분도 멀어요. '지금' 이 찰나, 지금이라고 하는 이 찰나는 우리가 시간으로 딱 찍을 수가 없습니다. 탁! 찍어도 이미 지나가 버린 과거인 것입니다.
번갯불을 갖다가 우리가 잡을 수 없는 것처럼, 아무리 잡을려고 해도 번갯불은 지나가 버리고 없는 것처럼, ‘지금’이라고 하는 이 시간도 우리는 잡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잡을 수 없는 그 찰나에  ‘이뭣고?~’ 이렇게 해 나가면,
일어서면서 하고, 걸어가면서 하고, 일하면서 하고, 밥 먹으면서 하고, 차 타면서 하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하고, 집으로 돌아와서 하고, 세수하면서 하고, 발 씻으면서 하고, 옷 갈아 입으면서 하고 이런 것이지, 언제 뒤로 미루고... 그 사람은 안되는 거여.

이 한 생각 한 생각, 그 찰나 찰나, 좋은 생각이 일어나거나 나쁜 생각이 일어나거나, 속이 상하거나 기쁘거나 슬프거나, 그때 그때, 그 찰나 찰나를 단속을 할 줄 아는 사람은 비로소 공부를 하는 사람이라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아휴! 너무너무 바빠서 못한다.’  ‘아들 대학 입시 준비 때문에 못한다’  ‘대학만 들어가 놓으면 인제 조금씩 해볼라고 그럽니다’  ‘딸 시집보내 놓고 할랍니다’ 그것 다 틀어져 버리고,  ‘김장이나 해 놓고 할랍니다’ 그것도 틀어져 버리는 거여. 다 틀어져 버리는 거여.

이건 자기가 자기 1찰나, 1찰나를 단속할 때에 자기 생사 문제가 해결이 되는 것이지, 왜 그러냐 하면, 생사(生死)는 다른 데에서 있는 것이 아니고, ‘한 생각’에서 생사가 생겨난 것입니다.


‘탐진치(貪瞋癡)’하지마는, 딱! 꼬집어서 말하면 생각이거든, ‘한 생각’이거든. ‘오욕락(五欲樂)’해도 더 다그쳐 생각해 보면, 그것도 ‘한 생각’이여. ‘천당’ 그것도 ‘한 생각’에서, 지옥도 ‘한 생각’에서,

‘한 생각’ 일어나는 것을 가만 놔두면 그놈이 차츰차츰 커 가지고 행동으로 나타나 가지고, 살생도 하고, 도둑질도 하고, 사음도 하고, 거짓말도 하게 되는데,
‘한 생각’ 딱! 일어나서 그것이 행동으로 옮겨지기 전에 그때 탁! 돌이켜서 ‘이뭣고?~’해 버리면, 살생도 안 하고 끝나고, 도둑질도 안 하고 끝나고, 사음도 안 하고 끝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옥, 천당을 '한 생각' 돌이킴으로써 미연(未然)에 부셔 버리는 것입니다.(40분43초~60분29초)

 

 

 



(2)------------------

그래서 여러분이 법성게(法性偈)도 보시면 ‘일념즉시무량겁(一念卽是無量劫)이요, 무량원겁(無量遠劫)이 즉일념(卽一念)이다’
이 법성게는 그 80권 화엄경을 갖다가 간단한 몇 줄의 글로써 의상대사께서 지어 놓으신 것인데, 그 법성게의 뜻만 알면 화엄경의 진리가 그 속에 다 들어있는 것입니다.

그 진리가 무엇이냐 하면은 ‘한 생각’이여, 한 생각.

이 한 생각, 이 찰나 속에 십세(十世) 고금(古今)과 시방(十方) 모든 세계와 삼세제불(三世諸佛)이 그 속에 다 들어있고, 육도윤회(六道輪廻)도 그 속에 들어있고, 천당·지옥도 그 속에 다 들어있는 것이다 그말이어.

그러니 ‘이뭣고?’ 한마디, ‘이뭣고~?’하면, 그 속에 화엄경이 다 들었고, 팔만대장경이 다 들었고, 삼세제불을 친견하는 도리도 그 속에 다 들어있고, 육도윤회를 갖다가 끊어 버리는 도리도 바로 그 속에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갖다가 최상승법(最上乘法)이라 하시고.

이 ‘이뭣고~?’ ‘어째서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라 했는고?’ 이 화두법 이것은 용궁(龍宮)에 있는 대장경 속에도 안 들어있다.

이 사바세계에 있는 경전은 많이 불타서 없어지기도 하고, 부처님께서 설하신 법문이 일부만이 전해 내려오지, 전부가 다 있는 것이 아닙니다.
중간에 설사 결집(結集)을 해놓았다 하더라도, 외도들에 의해서 많이 소각을 당해 버리고, 전해 내려오는 것은 극 일부에 지내지 못하는데, 용궁에는 부처님이 설하신 모든 법문이 다 거기에는 수장(收藏)이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용궁에 있는 장경(藏經) 속에도 ‘정전백수자’ ‘판치생모(版齒生毛)’ 이런 화두법, 최상승법인 화두법은 없다 이것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이 최상승법, 이 참선법은 교외별전(敎外別傳)이여. 교(敎) 밖에 특별히 전하신,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부처님께서 가섭존자(迦葉尊者)에게 전하신 특별한 최고의 법이여.

그래서 ’이뭣고?‘ 이 한마디 속에는 염불 공덕도 그 속에 다 들어있고, 주력하는 공덕도 그 속에 다 들어있고, 기도하는 공덕도 그 속에 다 들어있고, 팔만대장경을 다 읽어서 독송하는 공덕도 그 속에 다 들어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가사불사 회향에 동참하시고 또 일요법회에 참석하신 공덕으로 이러헌 최상승법을 이렇게 듣게 된 것입니다.
가사불사(袈裟佛事)를 하는 목적은 꼭 가사가 없어서 가사를 하는 데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고, 이 가사불사를 통해서 여러분에게 최상승법을 설해서 믿고 실천하게 해 드리는 데에 궁극의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가사불사 동참했고, 그 얻기 어려운 쪼가리도 가사불사할 때 틈틈이 훔쳐 담고 또 그런데다 오늘 또 이렇게 얻었으니까, ‘나는 이거 딸 줄 것도 있고, 아들 줄 것도 있고, 며느리 줄 것도 있으니까, 인제 아무 걱정이 없다’고 아주 흐믓해 하시겠지만,
정말 ‘이뭣고?’ 한마디 한 것에다 댄다면, 가사불사 해 가지고 쪼가리 가지고 있는 것에다 대겠습니까?

물론 그 쪼가리 가진 공덕도 대단한 것이어서 말로써 다 할 수가 없읍니다마는, ‘이뭣고?’ 한마디를 하시면 천(千) 쪼가리 만(萬) 쪼가리를 몸에다가 열 거듭 백 거듭을 감은 것보다도 더 훌륭하고 더 안전하고 더 편안한 도리가 있는 것입니다.


일신진역려(一身眞逆旅)요  만사개부운(萬事皆浮雲)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금조상별후(今朝相別後)에  사군불견군(思君不見君)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일신진역려(一身眞逆旅)요, 이 한 몸뚱이, 인간, 이 세상이라는 것은 정말 이 한 나그네 손님이다 그말이어. 잠시 이 사바세계에 나그네로 왔어.
만사개부운(萬事皆浮雲)이여. 만사(萬事)는 다 하늘에 떠있는 흰구름 한 덩어리와 같은 것이다 그말이어.

나그네는 오늘은 이 여관에서 하룻밤 자고 또 그 이튿날 떠나면 또 어느 다른 지방에서 한잠을 자고 해서, 평생 동안을 나그네로 사는 거와 같애.

정말 여자의 몸을 받은 사람은 성년(成年)할 때까지는 그 어머니, 아버지 품안에서 그렇게 자라서 공부하고 그래 가지고 시집가면은 딴 타성바지 집에 들어가서 아내 노릇을 하고 며느리 노릇을 하고 그러는데. 그래 가지고 자기도 또 아들딸을 낳게 되면, 그 아들딸들도 또 장성을 해서 시집을 가고 장가를 가고 하는데.

일평생 동안 그러고 사는 거처도 충청도 살다가 서울로 이사 오기도 하고, 서울 살다가 저 부산으로 이사 가기도 하고, 우리나라 살다가 미국이나 캐나다로 이민을 가기도 하고 그러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인생은 나그네라고 하는 것이 틀림이 없습니다.

 

또 금생에 이 사바세계(娑婆世界)에 김 아무개, 박 아무개로 태어난 것 자체가 또 그것도 나그네인 것입니다.
전생에 사바세계에 살다가 다시 인도환생(人道還生)을 한 사람도 있겠고, 전생에는 천당에서 살다가 금생에 인도환생을 해서 사람으로 태어나기도 하고, 전생에 개나 돼지나 소로 있다가 금생에 그 탈을 벗어 버리고 사람이 되는 수도 있고, 그러니 이것이 분명히 나그네인 것입니다.

그러면 금생에 왔으면 천년만년(千年萬年) 사느냐 하면, 많이 살아 봤자 백 년이요, 그렇지 않으면 팔십·칠십·육십·오십·사십·삼십, 10살에도 죽고 5살에도 죽고, 낳다가도 죽고, 배안에서 생기다 만 것이 죽기도 하고 그러는데, 이것도 나그네가 분명합니다.
여행을 하다 보면 비 맞기도 하고 눈을 맞기도 하고, 차 타기도 하고 걸어가기도 하고, 차가 뒤집어져서 다치기도 하고 배 타다가 넘어지기도 하고, 참! '인생살이라는 것이 나그네'라고 하는 말이 얼마나 적절한 표현인가를 알 수가 없습니다.

‘세상 만사는 뜬구름과 같다’한 말도 참 적절합니다.
가난하던 사람이 부자가 되고, 부자가 가난해지기도 하고, 엊그제 장관을 하다가 그만두고 평민이 되기도 하고, 천하를 호령하던 그러한 권리를 가지던 사람이 참 하룻밤 새 죽기도 하고 또 감옥에 가기도 하고 동서고금의 역사가 모두가 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나그네라고 하는 사실을 분명히 안다면 하룻밤 여관에 방이 좀 춥기도 하고 더웁기도 한데, 그렇다고 해서 골낼 것도 없고 불행하다고 생각할 것이 없습니다.
자기집에서는 편안하게 살다가 여행을 떠나면 고생이 되는데, 그 고생하는 재미로 여행을 떠난 것이 아니겠습니까?

 

사바세계의 인생살이를 나그네라고 생각한다면, 고생도 능히 재미로 참을 수가 있고 또 좀 잘 먹고 편안히 잔다고 해서 자기가 금방 뭐 크게 팔자가 핀 것도 아니거든.
사람으로 태어나서 부자로 살고 높은 벼슬을 하고 뭣 좀 권리 좀 있다고 해서 그것을 너무 으시대고 꺼떡거리고 남을 업신여기고 그걸 것도 없는 것입니다.


잘살면 잘사는 대로, 못살면 못사는 대로 좀더 느긋한 마음으로 여유를 가지고 재미스럽게 멋지게 인생을 살아가는 길이 바로 이 참선(參禪)이라 하는 것입니다.
참선을 하는 사람은 가난해도 불행하지 아니하고, 부자가 된다고 해서 그렇게 꺼떡댈 것도 없는 것입니다. 언제나 여유있고 느긋하고 멋지게—하나의 그 인생살이를 연극처럼 생각하고,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생각하고 살 수 있는 길이 이 참선법이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산다면 불행이라고 하는 것도 있을 수가 없고, 온 세계도 싸움이라고 하는 것이 없어지리라고 생각합니다. 더군다나 이 집안에도 그런 마음으로 온 식구가 산다면, 집안은 온통 화기(和氣)가 애애(靄靄)하고 모든 일이 참 재미있고 흐뭇하고 여유있게 살 수 있게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최초의 근본은 ‘한 생각 단속하는 일’이 자기의 일생을 행복하게 하고, 자기의 온 가정을 행복하게 하고, 온 사회·국가를 행복하게 하고, 인류를 행복하게 하고, 그래 가지고 영원한 진리의 세계에서 모든 사람이 서로 만나서 살 수 있는 길이라 하는 것입니다.

이 불법(佛法)은 그래서 위대하다는 것이고, 그래서 이 불법을 위해서는 삼세제불과 역대조사가 이 일대사(一大事)를 위해서 목숨을 바치시고, 그리고 거기에서 끝나는게 아니라 세세생생에 수없는 목숨을 바치면서 중생을 이 진리의 세계로 이끌으시는 데에 여념이 없는 것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왕궁의 부귀를 헌신짝 같이 버리시고 설산에 들어가셔서 이 도를 이루신 다음에 80세를 일기로 열반에 드실 때까지, 앉은 자리 더울 겨를이 없이 일평생 동안을 인도 오천축(五天竺)을 갖다가 유행(游行)을 하시면서 중생 교화를 하신 것도 바로 이 도리를 위해서인 것입니다.

‘부처님이 중생을 제도(濟度)하신다’ 그러는데, 뭐 물에 빠진 걸 갖다가 건져내는 것처럼 그런 것이 아니라, ‘중생도 깨달을 수 있다’, ‘중생이 본래 부처다.’

‘부처니 중생이니, 선이니 악이니’하는, 중생은 그러헌 생각의 쇠사슬에 얽혀 가지고 거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본래 중생과 부처가 다른 것이 아니고, 깨달음과 미(迷)한 것이 둘이 아니라고 하는 그 도리를 깨우쳐 준다면, 거기에서 해탈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중생의 그러헌 소견을 씻어주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그거 씻어준 것이 바로 그것이 중생 교화인 것입니다.

‘최상승법은 언제나 우리와 가까이 있다’고 하는 것.
책도 펴기도 전에 이미 우리 앞에 부처님의 법이 설해져 있는 것입니다. 입을 벌리기 전에 이미 염불이 그 속에 되어져 있는 것이고, 경을 읽고 있는 것이며, 설법을 듣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눈을 감으나 뜨나, 언제나 부처님을 친견하고 부처님 법문을 듣고, 또 자기 자신도 불법을 설하는 도리가 바로 이 최상승법이라.
이상으로써 일요 법회와 또 가사불사 회향 법어를 마칩니다.


산중하사기(山中何事奇)인고  청산백운다(靑山白雲多)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취적기우자(吹笛騎牛子)여  동서임자재(東西任自在)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산중(山中)에 하사기(何事奇)인고  청산(靑山)에 백운다(白雲多)다.
청산에 무슨 일이 기특한고? 무슨 일이 볼 만한 것이 있느냐? 특별히 볼 만한 것이 무엇이냐?

청산(靑山)에 백운다(白雲多)다. 푸른 산에 흰구름이 많느니라.

취적기우자(吹笛騎牛子)여  동서임자재(東西任自在)다.
젓대를 불고 소를 타고 가는 자여. 동서임자재(東西任自在)여. 동쪽으로 가고 싶으면 동쪽으로 가고, 서쪽으로 가고 싶으면 서쪽으로 가고, 동서에 자기 마음대로 자유자재하게 왔다갔다 하더라.(40분43초~77분46초)(끝)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1)

 

*(게송) ‘사중구의원~’ ; [청허당집(清虛堂集)] (서산휴정 著,朴敬勛 역, 동국대학교 역경원) p127 ‘벽천선화자(碧泉禪和子)에게’ 게송 참고.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간절(懇切 간절할•정성스런 간,정성스런•절박할 절) ; ①지성(至誠)스럽고 절실(切實)함. ②정성이나 마음 씀씀이가 더없이 정성스럽고 지극함. ③마음속에서 우러나와 바라는 정도가 매우 절실함.
*무량겁(無量劫) ; 헤아릴 수 없는 오랜 시간이나 끝이 없는 시간. 劫과 刧는 동자(同字).
*삼독(三毒) ; 사람의 착한 마음(善根)을 해치는 세 가지 번뇌. 욕심·성냄·어리석음(貪瞋癡) 따위를 독(毒)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오욕락(五欲,五慾,五欲樂) ; ①중생의 참된 마음을 더럽히는-색,소리,향기,맛,감촉(色聲香味觸)에 대한-감관적 욕망. 또는 그것을 향락(享樂)하는 것. 총괄하여 세속적인 인간의 욕망.
②불도를 닦는 데 장애가 되는 다섯 가지 욕심. 재물(財物)·색사(色事)·음식(飮食)·명예(名譽)·수면(睡眠).
*일조일석(一朝一夕) ; 하루아침이나 하루 저녁이라는 뜻으로, 짧은 시일을 이르는 말.
*어먼 : ‘애먼’의 사투리. 애먼:(일의 결과가 다르게 돌아가)억울하게 느껴지는, 엉뚱하게 느껴지는.
*인사불성(人事不省) ; 제 몸에 벌어지는 일을 모를 정도로 정신이 흐리멍덩한 상태.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내동 ; '일껏(모처럼 애써서)'의 사투리.
*혼침(昏沈 어두울 혼,잠길 침) ; 정신이 미혹(迷惑)하고 흐리멍덩함.
*번뇌(煩惱 번거러울 번,괴로워할 뇌) ; ①마음이 시달려서(煩) 괴로워함(惱). 나쁜 마음의 작용. 몸과 마음을 번거롭게 하고 괴롭히는 정신작용. 근원적 번뇌로서 탐냄(貪)•성냄(瞋)•어리석음(癡)이 있다.
②나라고 생각하는 사정에서 일어나는 나쁜 경향의 마음 작용. 곧 눈 앞의 고(苦)와 낙(樂)에 미(迷)하여 탐욕•진심(瞋心)•우치(愚癡)등에 의하여 마음에 동요를 일으켜 몸과 마음을 뇌란하는 정신 작용.
*망상(妄想 망녕될 망,생각 상) ; ①이치에 맞지 아니한 망녕된(妄) 생각(想)을 함, 또는 그 생각. ②잘못된 생각.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하다고 잘못 생각하는 것.
*성성적적(惺惺寂寂) ; 정신이 고요하면서도 깨끗하고 또록또록 한 상태.
*의단독로(疑團獨露 의심할 의,덩어리 단,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가  홀로(獨) 드러나다(露).
* ; '길(길이의 단위. 한 길은 여덟 자 또는 열 자로 약 2.4미터 또는 3미터에 해당 또는 사람의 키 정도의 길이)'의 사투리.
*도인(道人) ; 깨달은 사람.
*자명 초원(慈明楚圓) : (987 – 1040) 속성은 이(李)씨。광서성(廣西省) 계림부(桂林府) 전주(全州)에서 났다.
22세에 출가하여 멀리 분양 선소(汾陽善昭)선사의 회상에 갔었다. 분양은 욕설과 세속의 더러운 말만 할 뿐이므로 하루는 정성을 다하여 간 하였더니, 크게 성내어 『네가 나를 비방하느냐?』하고 내쫓았다。초원이 무엇이라고 변명하려는데, 분양이 손으로 그 입을 틀어막았다。그 바람에 크게 깨쳤다.
뒤에 석상산 숭승사(石霜山崇勝寺)와 담주 흥화사(潭州興化寺) 같은 여러 곳에서 교화하니, 법을 이은 제자가 50인이나 되었다。자명(慈明)은 54세로써 입적한 뒤의 시호(諡號)이고, 석상화상(石霜和尙)이라고도 한다.
*경허선사(鏡虛禪師) ;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포행(布行) ; 스님들이 참선(參禪)을 하다가 잠시 방선(放禪)을 하여 한가로이 뜰을 걷는 일.
*일장춘몽(一場春夢) ; 한바탕의 봄꿈이라는 뜻으로, 헛된 영화나 인간 세상의 덧없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업(業) ; (산스크리트어:karma카르마) ①몸과 입과 마음으로 짓는 행위와 말과 생각, 일체의 행위.
②행위와 말과 생각이 남기는 잠재력. 과보를 초래하는 잠재력.
③선악(善惡)의 행위에 따라 받는 고락(苦樂)의 과보(果報).
④좋지 않은 결과의 원인이 되는 악한 행위. 무명(無明)으로 일으키는 행위.
⑤어떠한 결과를 일으키는 원인이나 조건이 되는 작용. 과거에서 미래로 존속하는 세력.
*인연(因緣) ; ①어떤 결과를 일으키는 직접 원인이나 내적 원인이 되는 인(因)과, 간접 원인이나 외적 원인 또는 조건이 되는 연(緣). 그러나 넓은 뜻으로는 직접 원인이나 내적 원인, 간접 원인이나 외적 원인 또는 조건을 통틀어 인(因) 또는 연(緣)이라 함. ②연기(緣起)와 같음.
*찰나(剎那 절•짧은시간 찰,어찌 나) ; ①지극히 짧은 시간. 75분의 1초에 해당한다. ②어떤 일이나 현상이 이루어지는 바로 그때.
*이뭣고(是甚麼) : 「이 무엇고, 이뭣고」 화두는 천 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이것이 무엇인가?)」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를 찾는 것이다.

 

 

 



------------------(2)

*일념즉시무량겁(一念卽是無量劫) ; 통일 신라 시대에, 의상대사가 중국에서 화엄경을 연구하고 그 경의 핵심을 추려서 7언 30구(210자)의 게송으로 지은 <화엄일승법계도 華嚴一乘法界圖> 또는 <법성게 法性偈>에 나오는 구절.
無量遠劫卽一念 一念卽是無量劫 (무량원겁즉일념 일념즉시무량겁)
한량없는 오랜세월이 한 생각 찰나요, 찰나의 한 생각이 무량한 시간이네.
*십세(十世) ; 화엄종의 교학에 있어서 시간 구분. 과거 현재 미래의 3세(三世)의 각각에 그 위에 과거·현재·미래가 있다고 하고, 이러한 9세(九世)를 포용하는 1세(1념)를 더하여 10세(十世)라고 한다.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1700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결집(結集) ; 석가모니 부처님의 입멸 후 제자들이 그의 가르침을 함께 외어 기억하는 형식으로 모아서 정리한 것.
*수장(收藏) ; 거두어서 깊이 간직함.
*교외별전(敎外別傳) : 부처님께서 말씀으로써 가르친 바를 모두 교(敎)라 하는데, 교 밖에 따로 말이나 글을 여의고(不立文字) 특별한 방법으로써 똑바로 마음을 가리켜서 성품을 보고 대번에 부처가 되게 하는(直指人心 見性成佛) 법문이 있으니 그것이 곧 선법(禪法)이다.
교는 말로나 글로 전해 왔지마는 선법은 마음으로써 전하여 왔으므로 이른바 삼처 전심(三處傳心) 같은 것이다.
[참고] 선가귀감(용화선원 刊) p28, p34에서.
(5)世尊이  三處傳心者는  爲禪旨요  一代所説者는  爲教門이라. 故로  曰,  禪是佛心이요  教是佛語니라


세존께서 세 곳에서 마음을 전하신 것은 선지(禪旨)가 되고, 한 평생 말씀하신 것은 교문(教門)이 되었다。그러므로 선(禪)은 부처님의 마음이요, 교(教)는 부처님의 말씀이니라.


(6)是故로  若人이  失之於口則拈花微笑가  皆是教迹이요. 得之於心則世間麤言細語가  皆是教外別傳禪旨니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말에서 잃어버리면, 꽃을 드신 것이나 빙긋이 웃은 것(拈花微笑)이 모두 교의 자취(教迹)만 될 것이요. 마음에서 얻으면, 세상의 온갖 잡담이라도 모두 교 밖에 따로 전한 선지(教外別傳禪旨)가 되리라."
*이심전심(以心傳心) ; 진리는 말이나 글이 아닌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한다는 뜻.
*가섭존자 ;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가사불사(袈裟佛事) ; 절에서 가사를 짓는 일.
*(게송) ‘일신진역려~’ ; [청허당집(清虛堂集)] (서산휴정 著,朴敬勛 역, 동국대학교 역경원) p116 ‘산을 나가는 영암주(英庵主)를 보내며’, p115 ‘지사(芝師)를 보내며’ 게송 참고.
*역려(逆旅 맞이할 역,나그네 려) ; '나그네를 맞이한다'는 뜻으로 '여관(旅館 일정한 돈을 지불하고 손님이 묵는 집)'을 이르는 말.
*타성바지(他姓바지) ; 자기와 성(姓)이 다른 사람.
*사바세계(娑婆世界);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이 세계. 현실의 세계.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교화하는 세계. 인토(忍土)•감인토(堪忍土)•인계(忍界)라고 한역.
*인도환생(人道還生) ; 인간이 사는 세계로 다시 태어남.
*화기애애(和氣靄靄)하다(화목할 화,기운 기,아지랭이 애) ; (분위기가)서로 뜻이 맞고 정다운 기운이 넘쳐흐르는 듯하다.
*일대사(一大事) ; ①부처님이 중생구제를 위해 세상에 나타난다고 하는 큰 일. 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목적 ②가장 중요한 일이란 뜻. 수행의 목적. 깨달음을 얻는 것. 인간으로서의 완성.
*오천축(五天竺) ; 고대 인도에 있던 다섯 개의 정치적 구획. 동천축, 서천축, 남천축, 북천축, 중천축을 이른다.
*유행(遊行) ;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수행함. 행각(行脚).
*제도(濟度 건널 제,건널 도) ; 중생을 미혹의 큰 바다(생사고해 生死苦海)로부터 구하여(濟), 생사없는 피안(彼岸,깨달음의 언덕)에 이르게 하는(度) 것. 제(濟)는 구제(救濟). 도(度)는 도탈(度脫).
[참고] 구제(救濟 건질 구,건널 제) 어려움이나 위험에 빠진 사람을 돕거나 구하여 줌.
도탈(度脫 건널 도,벗을 탈) 속세의 속박이나 번뇌 등에서 벗어나 근심이 없는 편안한 경지에 도달함.
*(게송) ‘산중하사기~’ ; [청허당집(清虛堂集)] (서산휴정 著,朴敬勛 역, 동국대학교 역경원) p66 ‘고운(孤雲)의 글자를 모음’, ‘목암(牧庵)’ 게송 참고.

Posted by 닥공닥정
보왕삼매론2014. 8. 19. 20:51

§(410) 보왕삼매론십대애행(寶王三昧論十大礙行)—장애(障礙) 속에서 도를 성취하는 법 / 참회(懺悔).

**송담스님(No.410) - 1990년 2월 첫째일요법회, 신수기도회향, 입춘법회 법문에서.(용410)


약 16분.

 


이 보왕삼매론(寶王三昧論)은 명나라 때 묘협(妙叶) 스님이라고 하는 대단히 계행(戒行)이 청정하시고 도력이 높으신 큰스님께서 경전 속에서 그 10가지를 이렇게 뽑아 가지고, 십대애행(十大礙行) ‘열 가지 큰 장애 속에서 수행을 성취하는 문(門)’이라 해 가지고 ‘십대애행문(十大礙行門)’ 이라 하는 글을 창립을 하셨습니다.

어째서 이 묘협 스님은 <보왕삼매론 십대애행>이라는 글을 쓰셨냐 하면은 거기에는 중대한 뜻이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평등해서 부처님과 내가 조금도 차별이 없건만은 우리 중생은 그 업식(業識) 속에 솜처럼 얽히고 얽켜서 육도윤회(六途輪廻)를 하고 있다 그말이여.
윤회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으며 또 그 부처님의 법문(法門)에 의지해서 생사해탈(生死解脫)을 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공부 좀 할려고 그러고, 뭐 좀 할려고 하면 마장(魔障)이 일어나 가지고 공부를 성취를 못해.
백 명, 천 명 공부하지만은 정말 견성성불(見性成佛)한 사람은 몇 사람이 되느냐 그말이야.
그래서 한 일이 어긋나면은 만 가지 일이 다 어긋져. 그래 가지고 성취한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고 대부분 사람들은 뜻을 이루질 못한다 그말이여. 그래 가지고 생사윤회 속에서 헤어나지를 못해.

우리 부처님께서는 이 일대사(一大事)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삼대아승지겁(三大阿僧祇劫)을 무수하게 머리와 눈과 국가와 처자와 몸과 손발까지라도 전부 다 바치셨어.
그래 가지고 모든 보시와 지계 등 육바라밀(六波羅蜜)을 닦으면서 정진을 하면서 선지식께 승사(承嗣)를 했다 그말이여. 또 그러면서 몸과 목숨을 아끼지 않고 다 바치면서 수행을 하셨다 그말이여.

그런 것이 소상하게 다 부처님 팔상록(八相錄)에 다 기록이 되어있는데, 우리는 도(道)를 성취할 생각은 있으면서도, 그 크고 작은 마장이 맥히면은 그 놈을 이겨낼 만한 용기와 지혜와 인내가 부족해 가지고 결국은 중도(中途) 폐지(廢止)해 버려.

그래 가지고 수많은 사람이 그 만나기 어려운 사람 몸을 만나고, 만나기 어려운 불법(佛法)을 만났으면서도, 중도에서 그럭저럭 해태(懈怠)와 퇴전(退轉)해 버리고서 구경(究竟)의 깨달음에 이르지 못한 사람이 너무 많은 것을 보고, 정말 자기 자신의 몸뚱이를 끊어낸 것처럼 그렇게 참 안되어 했다.

너무너무 가련하고 너무너무 안쓰러워서 견딜 수가 없어서 상근기, 중근기, 하근기를 막론하고 될 수 있으면 중도에 그만두지 않고 도업(道業)을 성취하도록 해주기 위해서, 이 ‘십대애행(十大礙行)—장애(障礙) 속에서 도를 성취하는 법’을 부처님 경전 속에서 뽑아 가지고 이것을 만들은 것입니다.

엄격히 말하면 이것은 상근기(上根機), 상지자(上智者)라야 능히 이것을 다 감당하겠지만은,

중·하근기는 감히 이것을 다 10가지 조항을 다 원만히 실천할 수 있기는 어렵지만은, 그래도 이 10가지 법문을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에 새기면,
장애 속에서 하나 하나 어떤 장애를 만날 때마다 이 십대애행의 한 구절 한 구절이 마음에 떠올라서 거기에서 용기를 얻고 지혜를 얻고, 거기에서 인내심을 내 가지고, 그래 가지고 퇴전하지 않도록,

그렇게 하루 하루를 닦고, 한달 한달을 닦고, 1년, 이태를 그러한 마음가짐으로 닦아가면 다 그 뜻을 이룰수가 있으리라 이러한 생각에서 이 보왕삼매론을 제정을 한 것입니다.

이 보왕삼매론은 여러분이, 인자 노나 드려서 그것을 읽어보시면 다 아시겠지만은,
첫째는 몸뚱이에 병 없기를 바라지 마라.
둘째는 세상을 살아감에 곤란이 없기를 바라지 말라.
셋째는 마음 공부를 하되 장애 없기를 바라지 마라.
이렇게 해서 10가지가 나가는데,

몸에 병이 없어야 공부를 잘 할텐데 어떻게 ‘몸에 병 없기를 바라지 말라.’ 좀 이해가 안갈 것입니다만은, 사람이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四大)로 뭉쳐진 이 몸뚱이가 어떻게 병이 없겠습니까?
우리가 무량겁을 거쳐서 금생에 올 때까지 좋은 일도 많이 했겠지만, 알게 모르게 지은 악한 일도 많고 지은 업(業)이 많기 때문에 그 좋은 일 나쁜 일, 그 선업 악업 지은 그 결과로서 금생에 이와 같은 몸뚱이를 받아 난 것입니다.

얼굴 생긴 것도 그 지은 업으로 인해서 받아 나고, 몸뚱이 크고 작고 한 것도 지은 바로 받아 나고, 오장육부가 어떻게 받아 난 것도 다 내가 과거에 지은 그 업보(業報)로 받아 난거여.

나면서부터 눈이 멀어 나온 것도 그 업으로 그렇고, 귀가 어두운 것도 그렇고, 말 못한 것도 그렇고, 훤허니 달덩어리 같이 잘 태어난 것도 자기가 선업(善業)을 지어서 그렇게 됐고, 머리가 좋고 나쁜 것도 역시 그렇고, 심장이 튼튼하고 약한 것도 그렇고, 간이 약하고 튼튼한 것도 그렇고, 위장·폐장·콩팥, 일체 오장육부 사지백체(四肢百體) 받아 난 것이 지은 업으로 그런거여.

그런데 자기가 지은 업(業)은 생각지 않고 병만 없앨려고 갖은 약을 먹는다고 그 병이 다 낫습니까? 약만 갖고 그 병이 없어지질 않아. 일차적으로 자기가 지은 업에 대한 참회(懺悔)가 있어야 되고, 자기가 자기를 항상 참회를 하고 반성을 해보면 자기의 성격에 여러 가지 흠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남을 저주하고 미워하는 생각, 시기 질투하는 생각, 남 잘 되는 것을 보면 배가 아픈 생각, 남이 조그마한 잘못이 있어도 용서 안하는 버릇, 남 칭찬 하기보다는 남의 험담 하기를 좋아하는 생각, 게을러 빠지면서 남이 자기에게 잘 해주기를 바라는 생각, 자기는 남한테 별로 잘한 것 없으면서 다른 사람은 자기한테 다 잘 해주기만을 바라는 생각, 그리고 욕심이 과해 가지고 부모에게나 형제간에게나 친구간에게나 남에게 턱없이 많이 요구하는 생각.

그러한 옳지 않은 성격을 가지고 있으면서 과거에 자기가 그러한 악업(惡業)을 했기 때문에, 금생에 그런 못된 성격을 쓰게 되어있어.
그 원인인 성격은 고치기 아니하고 그냥 모든 욕심만 많아 가지고 자기한테 좋기만 바라고, 특히 건강하기를 바랜다고 한들, 그 병이 아무리 명의(名醫)한테 가서 비싼 약을 먹는다 해도 그 병이 그렇게 쉽게 낫지를 않습니다.

정말 그 병을 낫을라면은 그 옳지 않은 성격부터 개선을 해야 해. 성격을 참회를 하고 개선을 하고 그러면 그 마음이 편안해져. 마음이 편안한 뒤에사 약발도 서고 효험이 나타날 것입니다. 이것은 과학적 사실입니다.

폐결핵 같은 병도 또는 위장병 같은 병도 좋은 약만 먹는다고 낫는 것이 아닙니다.
계속 성질을 내고 악담을 하고 미워하고 원망하고 저주하고 그러면서 약을 아무리 먹어도 위장병이 낫지 않습니다. 또 폐병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첫째 마음을 편안하게 가져야 해. 자기 마음이 편안할라면은 철저한 참회가 있어야 하고, 모든 사람을 다—미웁고 원망스러운 사람을 다 용서하고, 스스로 자기 마음을 자기가 안정을 시키고 깨끗이 할 때에 약을 안 먹어도 벌써 반은 낫게 되는 것입니다.
완전히 깨끗해지면 8,90%가 병이 낫게 되고, 약은 조금 그저 보조허는 역할로 조금 먹어주면 되는 것입니다.

이 보왕삼매론 번역을 해서 알기 쉽게 해놨기 때문에 조항 조항을 낱낱이 설명을 드리지 않겠습니다만은, 가서 읽어보고 또 읽어보고 아침마다 날마다 꼭 한번 두번 이상 읽으시면, 읽는 가운데에 저절로 마음이 깨끗해지고,

‘마음이 왜 깨끗해지냐?’하면은 모든 원인을 남에게서 찾지 않고 자기 자신에서 찾게 되기 때문에 그냥 거기에서 참회가 되고, 성질이 났다가도 스르르 한번 읽고 보면 가라앉고, 불평 불만을 하다가도 이거 한번 읽고 나면 스르르 가라앉고, 용기가 안나고 자신이 없고 자포자기 하다가도 이것을 한번 읽으면은 용기가 생기고 이렇게 될테니, 이것은 신년 새해에 기도한 그 성취를 같이 축복하고 축하하는 뜻으로 이것이 여러분에게 선물이 되어질 것입니다.

글씨는 별로 잘 쓰지 못했습니다만은 정성스럽게 썼으니, 그 한 자 한 자 쓸 때마다—이 보왕삼매론 이것을 보시는 분은 그 인연으로 반드시 업장(業障)이 소멸이 되시고 도업(道業)을 성취해서, 세세생생(世世生生)에 복과 지혜가 구족(具足)하셔서, 나시는 곳마다 좋은 곳에 태어나시고 불회상(佛會上)에 태어나셔서 해탈도를 증득하고, 일체 중생을 제도할 수 있는 대보살(大菩薩)이 되어 주시기를 부탁을 드립니다.(16분25초~31분56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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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왕삼매론(寶王三昧論) ; 묘협 스님께서 지으신 『보왕삼매염불직지(寶王三昧念佛直指)』 총 22편 중 제17편 ‘십대애행(十大礙行: 10가지 큰 장애가 되는 행)’에서 여러 구절을 가려 뽑아 엮은 글이다.
우리 중생이 일상 생활과 수행을 함에 있어서 나타나는 10가지의 큰 장애가 되는 행동을 정리하고, 중생이 그 '장애 없기'를 구하지 말고 장애 속에 먼저 거처하게 하여, 그 10가지의 장애들이 실제로는 수행을 방해하는 장애가 아닌, 일체 중생의 수행·신심을 더욱 진작시키는 대선지식(大善知識)이며 또한 일체 중생을 진실하게 돕는 복전(福田)임을 알게 하여, 어리석은 중생이 장애로 인하여 퇴전하지 않고, 장애 속에서 큰 깨달음을 얻게 하기 위해 묘협 스님께서 경전에 의지하여 지으신 글.
*묘협(妙叶) 스님 ; 중국 원나라 말기부터 명나라 초기 때의 스님. 절강성(浙江省) 은현(鄞縣)에서 활동하였다고 짐작하나, 정확한 생몰연대는 알 수 없다. 저서는 『보왕삼매염불직지(寶王三昧念佛直指)』
*계행(戒行) ; ①계(戒)를 지켜 수행하는 것. ②계율과 도덕.
*업식(業識) ; ①과거에 저지른 미혹한 행위와 말과 생각의 과보로 현재에 일으키는 미혹한 마음 작용. ②오의(五意)의 하나. 무명(無明)에 의해 일어나는 그릇된 마음 작용.
*육도윤회(六途輪廻) ; 선악(善惡)의 응보(應報)로 육도(六途-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의 고락(苦樂)을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것.
*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 법,문 문) :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를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것.
*마장(魔障 마귀 마,장애 장) ; 귀신의 장난이라는 뜻으로, 일이 진행되는 과정에 나타나는 뜻밖의 방해나 헤살을 이르는 말. [참고]헤살;남의 일이 잘 안 되도록 짓궂게 방해함.
*마(魔) ; 마(魔)란 생사를 즐기는 귀신의 이름이요, 번뇌를 말한다. 마(魔)가 본래 씨가 없지만,수행하는 이가 바른 생각을 잃은 데서 그 근원이 파생되는 것이다.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아 부처가 됨[成佛].
*일대사(一大事) ; 매우 중요하거나 아주 큰 일. [불교] 삶과 죽음, 즉 생사(生死)의 일.
①부처님이 중생구제를 위해 세상에 나타난다고 하는 큰 일. 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목적
②가장 중요한 일이란 뜻. 수행의 목적. 깨달음을 얻는 것. 인간으로서의 완성.
③참학(參學)의 일대사. 절대의 수행이라는 것.
*삼대아승지겁(三大阿僧祇劫) ; 무한하게 긴 세월. 보살이 수행하여 부처님이 되기까지의 시간.
*육바라밀(六波羅蜜) ; 보살이 열반(涅槃)에 이르기 위해서 해야 할 여섯 가지의 수행. 보시(布施), 지계(持戒), 인욕(忍辱), 정진(精進), 선정(禪定), 지혜(智慧)를 이른다.
*승사(承嗣 받들 승,이을 사) ; 후임자나 후대가 선임자나 선대의 권리나 의무를 뒤이어 물려받음.
*팔상록(八相錄) ; 부처님의 일생을 8가지 중요한 사항(八相)으로 헤아려 지은 부처님 일대기.
*팔상(八相) ;부처님의 일생에 있어서의 8가지의 중요한 사항. 이 8가지 중에서 성도(成道)가 특히 중심이므로, 팔상성도(八相成道)라고도 한다. 부처님의 생애의 모습.
도솔래의상(兜率來儀相). 도솔천(兜率天)에서 흰 코끼리를 타고 이 세상에 내려오는 모습.
비람강생상(毘藍降生相). 룸비니 동산에서 마야부인의 오른쪽 옆구리에서 태어나 일곱걸음을 걷고,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이라고 선언하는 모습.
사문유관상(四門遊觀相). 네 성문으로 나가 동•남•서문에서 각각 늙은•병든•죽은 사람을 보고, 북문에 나가서는 스님을 보고서 출가의 뜻을 두는 모습.
유성출가상(踰城出家相). 무상(無常)을 깊이 생각하고, 수행을 위해 백마를 타고 시종을 데리고 성을 넘어 출가하는 모습.
설산수도상(雪山修道相). 설산에서 수도하는 모습.
수하항마상(樹下降魔相). 6년의 고행후, 보리수(菩提樹) 아래에서 깨달음에 달하려는 것을 알고,악마가 모든 수단을 다해 석존을 방해하나, 전부 물리치고 악마의 항복을 받는 모습.
녹원전법상(鹿苑轉法相). 녹야원에서 최초로 5명의 비구에게 설법하는 모습.
쌍림열반상(雙林涅槃相). 쿠시나가라성 밖의 사라쌍수(沙羅雙樹) 아래에서, 최후의 설법을 마치고 열반에 드는 모습.   팔상(八相)은 경론(經論)에 따라 여러 설이 있음.
*도(道) ; ①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그 방법. ②깨달음. ③가르침. ④궁극적인 진리. ⑤이치. 근원.
*중도(中途) ; 어떤 일이 아직 끝나지 않아 진행 중인 상황.
*해태(懈怠 게으를 해,게으를 태) ; 게으름(행동이 느리고 움직이거나 일하기를 싫어하는 태도나 버릇).
*퇴전(退轉) ; 불교를 믿는 마음을 다른 데로 옮겨 처음보다 더 밑으로 전락(轉落)함.
*구경(究竟 궁구할 구, 마칠•다할 경) 어떤 과정의 마지막이나 막다른 고비.
*도업(道業) ; 도(道)는 깨달음. 업(業)은 영위. 불도의 수행. 진리의 실천.
*장애(障礙,障碍 막을 장,거리낄 애) 어떤 일의 성립, 진행에 거치적거려 방해하거나 충분히 기능하지 못하게 함. 碍는 礙의 속자(俗字).
*근기(根機 뿌리 근,베틀 기)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는 중생의 소질이나 근성.
*사대(四大) ; 사람의 몸을 이르는 말. 사람의 몸이 땅, 물, 불, 바람(地,水,火,風)의 네 요소로 이루어졌다고 보는 데에서 연유하였다.
*업(業) ; (산스크리트어:karma카르마) 몸과 입과 마음으로 짓는 선악(善惡)의 소행(所行). 음역어는 ‘갈마(羯磨)’이다.
*업보(業報) ; 자신이 행한 선악(善惡)의 행위에 따라 받게 되는 과보(果報).
*사지백체(四肢百體) ; 몸의 전체.
*참회(懺悔 뉘우칠 참,뉘우칠 회) ; ①자기의 잘못에 대하여 깨닫고 깊이 뉘우치며, 다시는 같은 잘못을 짓지 않겠다고 결심함. ②신이나 부처님 또는 대중 앞에서 자기의 죄를 뉘우치고 용서를 구함.


[참고]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156~157 참고.
〇(70)有罪則懺悔하고  發業則慚愧하면  有丈夫氣象이요,  又改過自新하면  罪隨心滅이니라.


허물이 있거든(有罪) 곧 참회하고, 잘못한 일이 있으면(發業) 곧 부끄러워할 줄 알면(慚愧) 대장부의 기상이 있다 할 것이요, 또한 허물을 고쳐 스스로 새롭게 하면(改過自新), 그 죄업은 마음을 따라 없어지느니라(罪隨心滅).


(註解) 懺悔者는  懺其前愆이요  悔其後過라.  慚愧者는  慚責於內하고  愧發於外라.  然이나 心本空寂이라  罪業이  無寄니라


참회(懺悔)란 먼저 지은 허물을 뉘우치고, 뒷날에는 다시 짓지 않겠다고 맹세하는 것이다. 부끄러워한다(慚愧)는 것은 안으로 자신을 꾸짖고, 밖으로는 자기의 허물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은 본래 비어 고요한 것이라(心本空寂), 죄업이 붙어 있을 곳이 없는 것이다(罪業無寄).
*업장(業障) ; 전생(前生)이나 금생(今生)에 행동•말•마음(신구의,身口意)으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이 세상에서 장애(障礙)가 생기는 것.
*도업(道業) ; 도(道)는 깨달음. 업(業)은 영위(營爲-일을 계획하여 꾸려 나감). 불도(佛道)의 수행. 진리의 실천.
*세세생생(世世生生) ; 많은 생애를 거치는 동안. 태어날 때마다. 세세(世世)토록.
*구족(具足 갖출 구,충족할 족) ; 빠짐없이 두루 갖춤.
*불회상(佛會上) ; 부처님(佛)의 회상(會上). 부처님 계시는 곳.

Posted by 닥공닥정

§(436) 만공 스님, 금봉 스님, 고봉 스님 / 임종게(臨終偈), 후사(後事) / 우리 용화사는 영원히 전강 스님을 조실로 모시고 공부를 해가자.


**송담스님(No.436)-91년 입춘기도 법회(90.02.04)에서. (용436)


약 13분.

 


오늘 신미년 입춘(入春)날입니다.

오늘 입춘날에 조실 스님(故전강스님)의 펄펄 살아있는 사자후(獅子吼)과 같은 그런 활구 법문(活句法門)을 들었습니다.

23세에 확철대오(廓徹大悟)하셔서 제방(諸方) 선지식(善知識)의 인가(印可)를 받으시고 그래가지고 나와서 겪었던 사항에 대한 살아있는 법문을 들었습니다. 방금 정말 조실 스님께서 살아서 이 법상에서 하신 것과 같은 그러한 감동을 받았습니다.

방금 조실 스님 법문 가운데 나오는 금봉(錦峰) 스님은 성씨(姓氏)가 박(朴)씨시고, 조실 스님보다 훨씬 연세가 많으시고, 원래 경상도 김룡사 스님인데 만공 스님께 인가(印可)를 받으신 만공 스님의 수법제자(受法弟子)이십니다.

고봉 스님도 역시 만공 스님께 인가를 받으신 수법제자이고 그러신데, 그 스님들이 다 인가받은 구참(久參)이신데, 조실 스님께서는 그때 아주 어린, 훨씬 밑의 후배이셨습니다.

그런데 그 금봉 스님은 굉장히 성질이 급해서 조용 조용히 대화를 할 수 없을 만큼 그렇게 성질이 급하고 우악하고 그러신 어른인데, 제가 정혜사(定慧寺)에서 2년간, 금봉 스님께서 거기 조실(祖室)로 계실 때에 2년간을 정혜사에서 모시고 지내서 마음으로 참 숭배하고 그러시던 선지식이셨습니다.

그 어른은 정화(淨化) 때 선학원(禪學院)에 와서 얼마동안 머물러 계셨는데 그 선학원에 전국에서 모인 모다 수좌(首座)들 앞에서 항상 하신 말씀이 ‘1, 전강(田岡)이요. 2, 고봉(高峰)이요. 3, 만공(滿空)이다.’ 이런 말씀을 막 터놓고 하셨었습니다.
그리고 ‘전강 스님이 어디 가서 조실(祖室)을 하면 내가 그 밑에 가서 공양주(供養主)를 하겠다’고 이런 말씀도 하셨습니다.

그리고 정혜사 조실로 계시다가 해인사 조실로 추대를 받아서 해인사 조실로 가실 때, ‘내가 해인사 조실로 가는 것은 내가 살면 얼마나 살겠는가? 내가 가서 터를 닦아 놓을 테니, 간 것은 전강 스님을 조실로 모시기 위해서 내가 간다’고 그런 말씀도 하셨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얼마동안 조실로 계시다가 그날 수박 공양을 하시고 그리고 그 여름에 해인사 옆에 맑은 계곡에 가셔서 터억 목욕을 하시고, 그리고는 거기에 앉아서 목욕을 하시고서,

거기 그 관광객이 광주(光州)서 왔다고 그러니까 ‘광주 가면 경양방죽 가에 하꼬방 장수를 하는 참 내가 잘 아는 분이 거기 있으니까, 내가 여기 몇자 적어 줄 테니 광주에 가거든 일부러 경양방죽 가를 찾아가서 이 편지를 전해 달라’고 그렇게 해서 전하고서, 그 계곡 가에서 목욕을 하고서 타악 앉은 채로 열반(涅槃)에 드셨던 것입니다.

그 게송(偈頌)은 무엇이냐? 하면,
“청산(靑山)은 문수안(文殊眼)이요. 수성(水聲)은 관음이(觀音耳)다. 물소리는 관세음보살의 귀다. 금일세연진(今日世緣盡)하니, 오늘 세상 인연이 다하니, 의구수동류(依舊水東流)로구나. 옛을 의지해서 물은 동쪽으로 흘러가는구나.” 이러한 금봉 스님의 임종게(臨終偈)였습니다.

그 임종게를 해인사 대중한테 떠억 내놓고 그리고 임종에 들으셔도 되겠지만, 어째서 그 임종게를 써서 그 인편(人便)에 전강 조실스님께 보냈느냐? 거기에는 반드시 까닭이 있습니다.

고봉 스님께서도 열반하실 때 전강 조실스님을 청했습니다.
고봉 스님께서는 중풍을 앓으셔서 잘 보행도 못하시고 또 말씀도 잘 못했습니다. 그런데 임종이 가까워지자 단식을 하시고 공양을 안 잡수니까, 대중들이 아무리 공양을 하시도록 권고를 해도 안 들으셔서,

또 대중이 전강 조실스님한테 와서 어쨌든지 좀 오셔서 공양을 잡수도록 해 달라고 그렇게 부탁을 해서, 가셔서 또 이렇게 여러 가지로 - 참 서로 법(法)이 통하고,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마음과 마음이 통하는 그러헌 사이시니까 말씀을 드려 가지고 다시 잡수시기도 하고 그런 일도 있다가,

얼마 있다가 고봉 스님께서 정식으로 전강 조실스님을 청했습니다.
청해 가지고 ‘나를 위해서 임종(臨終), 마지막 내가 가는 길에 임종 법문을 설해 달라’고 청을 하셨습니다.

고봉 스님도 확철대오해서 만공 스님께 인가를 받으신 대도인(大道人)이십니다.

그래가지고 기동을 못하시고 그러니까 앉아서 이렇게 청을 하셔서,
‘그래셔서는 안 됩니다. 법상을 차리고 정식으로 법식을 거행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래가지고 부축을 받아가지고 큰방으로 나오시고, 법상을 차려서 조실스님이 떠억 법상에 올라가서 법을 설하시는데,
양쪽에서 부축을 해가지고 간신히 이렇게 나오셔 가지고, 앉으시라고 해 가지고 앉아서 법문을 조실스님께서 설하셨습니다.

이러한 일이나 일맥상통한 바가 있는 것입니다.
후사(後事). 고봉 스님이나 또는 금봉 큰스님께서 열반하신 마당에 만공 스님으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그 법등(法燈)과 그 후사를 유촉(遺囑)하기 위한 그러헌 뜻이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러한 절차가 없이 그냥 열반에 들으시면 고봉 스님을 신(信)하던 제자들이 누구를 의지해서 공부를 하며, 금봉 스님을 의지해서 공부하는 신도나 제자들이 그런 큰스님네가 열반하신 뒤에 누구를 의지해서 공부해야 하는가? 그러한 것을 무언(無言) 중에 유촉을 하시기 위해서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조실스님께서는 그런 받으신 편지를 열어 보니까 그러한 임종게가 쓰여 있어서, 또 49재에 해인사에서 조실스님을 청하고 그래서 일부러 해인사를 가셔서 금봉 스님의 49재 법문을 하셨던 것입니다.

고조사(古祖師)들은 이 일대사(一大事) 문제는 자기 자신 일신상의 문제가 아니고, 부처님으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중대한 문제가 거기에 걸려있기 때문에 여러분께서도 잘 아시는 바와 같이,

사조(四祖) 스님이 오조(五祖) 스님, 그 팔십먹은 노인이 인가를 받으러 오니까 ‘늙어서 전해 봤자 무슨 소용이 있는가’ 그래서 ‘몸을 바꿔 와라’해 가지고, 그 소나무를 심어 놓고 가서 몸을 바꿔가지고 온 재송도인(栽松道人)의 법문을 여러분도 아실 것입니다마는.

이 문제는 대단히 중대한 것입니다. 고인(古人)들은 그렇게 해서 오늘날까지 부처님으로부터 내려오는 정법의 등불이 등등상속(燈燈相續)해서 전해 내려온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용화사는 조실스님의 법문(法門)이 다행히 녹음(錄音)을 통해서 700개나 되는 그 많은 간절한 활구참선 법문이 녹음이 되어있기 때문에 ‘우리 용화사는 영원히 전강 대선사를 조실로 모시고, 우리가 모두가 같이 열반하셨지만 살아계신 조실스님으로 믿고 우리가 공부를 해가자’ 이렇게 생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입춘날을 기해서 조실스님의 사자후를 들음으로 해서 여러 사부대중 여러분은 무량겁으로부터 내려오는 모든 크고, 작은 죄가 일시에 다 소멸이 되었으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저의 기분이 그렇고, 저의 믿음과 감동이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처음~13분6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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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후(獅子吼) ; 부처의 위엄 있는 설법을, 사자의 울부짖음에 모든 짐승이 두려워하여 굴복하는 것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스승)으로부터 화두•공안(公案)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공안)을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공안 또는 화두(話頭)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1700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선지식(善知識) ; 부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지도자. 좋은 벗.
*인가(印可 도장 인,옳을•인정할 가) 스승이 제자의 깨달음을 인정함.
*만공월면(滿空月面) ; (1871~1946) 법명은 월면(月面), 호는 만공(滿空), 속명은 송도암(宋道岩). 속성은 여산(礪山) 송(宋)씨, 아버지는 송신통(宋神通) 어머니는 김(金)씨이다.
전라북도 태인(泰仁)에서 1871년(신미년) 3월 7일 출생하였다.

 

1884년(갑신년) 14세에 태허 스님을 은사(恩師)로, 경허 스님을 계사(戒師)로 충남 서산 천장암(天藏庵)에서 출가하였다.
그 뒤 계속 천장암에서 지내다, 어른 시봉(侍奉)을 하면서 공부하기란 퍽 힘드는 일이라고 생각이 들어, 온양 봉곡사(鳳谷寺)로 가서 노전(爐殿)을 보며 공부를 계속하다가, 1895년(을미년) 7월 25일에 동쪽 벽에 의지하여 서쪽 벽을 바라보던 중 홀연히 벽이 공(空)하고 일원상(一圓相)이 나타났다.
하룻밤을 지나 새벽 종송(鐘頌)을 할때, ‘응관법계성(應觀法界性)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를 외우다가 깨닫고 오도송(悟道頌)을 읊었다.

공산이기고금외(空山理氣古今外)요  공산의 이기(理氣)는 고금 밖이요
백운청풍자거래(白雲淸風自去來)라  백운과 청풍은 스스로 가고 오는구나.
하사달마월서천(何事達摩越西天)고  달마는 무슨 일로 서천을 건넜는고
계명축시인일출(鷄鳴丑時寅日出)이라  축시에 닭이 울고 인시에 해가 뜨느니라.

그 후 마곡사 근처 토굴에서 공부하다가, 스님 나이 26세 때, 1896년(병신년) 7월 보름날 경허 선사가 오시니, 선사께 지금까지 공부해 온 것을 낱낱이 고백하였다.
경허 선사가 스님에게 묻기를 ‘등(藤) 토시 하나와 미선(美扇) 하나가 있는데, 토시를 부채라고 하는 것이 옳으냐, 부채를 토시라고 하는 것이 옳으냐?’
스님의 대답이 ‘토시를 부채라고 하여도 옳고 부채를 토시라고 하여도 옳습니다.’
경허 선사가 ‘네가 일찌기 다비문(茶毘文)을 보았느냐?’ ‘보았습니다.’

경허 선사가 다시 묻기를 ‘유안석인제하루(有眼石人齊下淚)라 하니 이 참뜻이 무엇인고?’ ‘모르겠습니다.’
선사가 이르되, ‘유안석인제하루(有眼石人齊下淚)를 모르고 어찌 토시를 부채라 하고 부채를 토시라 하는 도리를 알겠느냐?’
선사가 다시 이르되 ‘만법귀일 일귀하처(萬法歸一 一歸何處)의 화두는 더 진보가 없으니 조주 스님의 무자화두(無字話頭)를 드는 것이 옳다.’하고, ‘원돈문(圓頓門)을 짓지 말고 경절문(徑截門)을 다시 지으라.’하고 떠났다.

그 후 정진하던 중 경허 선사를 경모(敬慕)하는 마음이 간절하여 1898년 7월에 선사가 계신 서산(瑞山) 부석사(浮石寺)로 가서 지내다가, 경남 범어사 계명암 선원으로부터 경허 선사께 청첩장이 와서 선사를 모시고 계명선원에 가서 하안거를 마치고, 선사와 배별(拜別)한 후 통도사 백운암으로 갔다.

마침 장마 때라 보름 동안을 갇혀 있던 중 새벽 종소리를 듣고 재차 깨달으니 요사장부(了事丈夫)가 되었다.
31세 때(1901년) 천장암에 돌아와 머무르며 지내다가, 34세 때(갑진년 1904년 2월 11일) 함경도 갑산(甲山)으로 가는 길에 천장암에 들른 경허 선사를 뵙고, 그동안 공부를 지은 것을 아뢰니, 선사가 전법게(傳法偈)를 내렸다.

운월계산처처동(雲月溪山處處同)  구름달 시냇물 산 곳곳마다 같은데
수산선자대가풍(叟山禪子大家風)  수산선자(叟山禪子)의 대가풍(大家風)이여!
은근분부무문인(慇懃分付無文印)  은근히 무문인(無文印)을 분부하노니,
일단기권활안중(一段機權活眼中)  한조각 권세 기틀 안중(眼中)에 살았구나.

1905년 덕숭산에 금선대(金仙臺)라 이름한 초암을 짓고 지내고, 그 뒤 수덕사(修德寺)·정혜사(定慧寺)·견성암(見性庵)을 중창하고 선풍(禪風)을 떨치다가 금강산 유점사(楡岾寺) 마하연(摩訶衍)에 가서 3년을 지내고, 다시 덕숭산으로 돌아와 서산 간월도에 간월암(看月庵)을 중창하였다.

말년에 덕숭산 동편 산정에 전월사(轉月舍)라 이름한 한칸 띳집을 짓고 지내다,
1946년(병술년) 10월 20일에 목욕 단좌(端坐)한 후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고, ‘자네와 내가 이제 이별할 인연이 다 되었네 그려.’하고 껄껄 웃고 문득 입적(入寂) 하였다.
나이 76, 법랍(法臘) 62. 제자들이 스님의 법어를 모은 「만공법어(滿空法語)」가 있다.
[참고] 『만공법어(滿空法語)』 (만공문도회 | 수덕사 능인선원)
*수법제자(受法弟子) ; 스승으로부터 법(法)을 인가(印可) 받은 제자.
*구참(久參) ; 오랫동안 참선한 수행승.
*조실(祖室) ; 선원의 가장 높은 자리로 수행인을 교화하고 참선을 지도하는 스님. 용화선원에서는 고(故) 전강대종사(田岡大宗師)를 조실스님으로 모시고 있다.
*정화(淨化) ; 한국 불교 정화운동. 1910년 일제에 의해 우리나라 국권을 상실한 한일합병조약을 강제로 체결하고 이를 공포한 경술국치(庚戌國恥)이후, 1911년 일제는 한국 불교를 억압하고 민족 정신을 말살하기 위해 사찰령을 제정·공포하였다. 그 후 일제 강점기 동안 일본 불교의 영향으로 우리나라 승단이 급속도로 세속화되었다. 1945년 해방 이후에 불교계를 혁신하고 한국 불교에 남아있는 식민주의 불교, 왜색 불교를 청산하기 위해 1954년부터 1960년대에 걸쳐 일어난 한국 불교 정화운동.
*선학원(禪學院) ; 서울 종로구 안국동에 있는 절. 1921년 남전(南泉)·도봉(道峰)·석두(石頭) 등 3인을 중심으로 지었다. 선학원은 당시에 일본이 우리나라를 병합하고 사찰령을 반포하여 한국 불교를 일본 총독부의 관할 아래에 다루게 되었을적에, 일본 불교의 영향으로 우리나라 승단이 급속도로 세속화되어 가는 것을 개탄, 불조(佛祖)의 정맥을 굳게 계승하기 위하여 창설된 선종의 중앙기관이다.
사찰령의 지배를 받지 않기 위하여 절(寺, 庵)이란 이름을 쓰지 않고, 선학원이라 하였다. 그 후부터 한국 불교 선종의 책원지(策源地)로서 은연한 가운데 선객들을 통솔하였으며, 1934년 12월 5일에 재단법인 조선불교중앙선리참구원(朝鮮佛敎中央禪理參究院)으로 발족하여 초대 이사로 만공·한암·적음·남전·성월 스님이 선임되었다. 해방된 뒤에는 재단법인 선학원으로 정관을 고쳤다.
*수좌(首座) ; ①선원(禪院)에서 좌선하는 스님 ②수행 기간이 길고 덕이 높아, 모임에서 맨 윗자리에 앉는 스님 ③선원에서 좌선하는 스님들을 지도하고 단속하는 스님
*공양주(供養主) ; 절에서 밥을 짓는 소임, 또는 그 일을 맡은 스님.
*하꼬방 ; 판잣집(판자로 허술하게 지은 집). 箱房. 箱(상자)의 일본어 훈독 ‘ばこ(하꼬)’+방(房)이 결합된 말.
*하꼬방 장수 ; 전강 선사와 송담 스님이 광주(光州) 경양방죽 가의 판잣집에서 3~4년 낮에는 판잣집 한편에서 장사를 하고 밤에는 판잣집의 작은 방에서 정진을 하며 지냈다고 한다.
*열반(涅槃) ; ①타고 있는 불을 바람이 불어와 꺼 버리듯이, 타오르는 번뇌의 불꽃을 지혜로 꺼서 일체의 번뇌나 고뇌가 소멸된 상태. ‘니르바나(nirvāna)’의 음역어로, 불가(佛家)에서 흔히 수행에 의해 진리를 체득하여 미혹(迷惑)과 집착(執着)을 끊고 일체의 속박에서 해탈(解脫)한 최고의 경지를 이르는 말이다.
②스님의 죽음을 수행을 통해 해탈(解脫)에 이르게 됨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
*게송(偈頌) ; 시(詩), 게(偈)와 송(頌) 모두 불교의 가르침을 싯구로 나타낸 것.
*임종게(臨終偈) ; 열반게(涅槃偈)·열반송(涅槃頌)·입적게(入寂偈)라고도 한다.
선승(禪僧)이나 고승(高僧)들이 열반에 들어가기 전 자신의 수행을 통해 얻은 깨달음을 후인들에게 전하는 마지막 말이나 글을 말한다. 한시의 오언절구나 칠언절구 형태를 취한다.
*일맥상통(一脈相通) ; 사고방식이나 성질 등이 두 대상 간에 서로 통하거나 비슷해짐.
*후사(後事) ; ①뒷날에 생길 일. ②죽은 뒤의 일.
*법등(法燈) ; 부처님의 가르침. 미(迷)한 세계의 캄캄한 마음을 없애는 것을 등불에 비유한 것.
*유촉(遺囑) ; 죽은 뒤의 일을 부탁함. 또는 그런 부탁.
*사십구재(49재, 四十九齋) ; 사십구일재(49일재, 四十九日齋) 또는 칠칠재(7 · 7재, 七七齋).
죽은 사람의 명복을 빌면서 또 영가에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들려주어(천수경, 무상계, 반야심경, 장엄염불, 금강경 등), 한 생각 돌려 무상을 깨달아 윤회를 벗어나 해탈의 길로 들어서도록 하기 위해 죽은 날로부터 7일마다 7회에 걸쳐 행하는 영가를 위해 베푸는 법회의식.
불교의 내세관(來世觀)에서는 일반적으로 보통 사람이 죽어서 다음 생을 받을 때까지의 49일 동안을 중음(中陰)이라 하는데, 이 기간 동안에 과보를 받을 다음 생이 결정되므로, 이때 부처님의 가르침을 들려주어 영가가 죄업을 참회하고 지혜의 눈을 밝혀 해탈의 길을 가도록 이 재(齋)을 지냄.
특히, 염라대왕의 심판을 받는 날이 죽은 지 49일째 되는 날이라고 하여 7회째의 재(齋)를 중요시함.

불경(佛經)에서 설한 바에 의하면 사람의 존재 상태를 4가지로 구분하는데, 그것은 ①생유(生有: 태어나는 순간) ②본유(本有: 生에서 死까지 생애) ③사유(死有: 죽는 그 순간) ④중유(中有: 이생에 죽어서 다음 生까지를 말함)이다.
이들 중 네 번째의 중유(中有)의 상태의 정상적인 기간이 49일이다. 즉 사람이 죽은 뒤에는 일반적인 경우 49일이면 중유(中有)가 끝나고 다음 생(生)이 결정된다. 그러므로 다음 생이 결정되기 전인 48일째에 정성을 다하여 영혼의 명복을 비는 것이 49일재이다.
*일대사(一大事) ; ①부처님이 중생구제를 위해 세상에 나타난다고 하는 큰 일. 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목적 ②가장 중요한 일이란 뜻. 수행의 목적. 깨달음을 얻는 것. 인간으로서의 완성.
*재송도인(栽松道人) ; 중국 선종(禪宗)의 제4조 도신대사(道信大師 580~651)가 제자를 맞아 인증을 하였지만, 제자가 너무 늙어 스승보다 먼저 이 세상을 떠나게 되면, 법을 이을 사람이 없으니 몸을 바꾸어 오도록 하였다.
이에 몸을 바꾸어 후에 다시 만날 때 증거로 삼기 위해 황매산에 소나무를 심었다. ‘소나무를 심었다’는 뜻에서 ‘재송도인(栽松道人)’이라는 별명을 가진 분이 5조 홍인대사(弘仁大師 602~675)이다.
*등등상속(燈燈相續) ; 등(燈)은 중생의 무명(無明)을 밝히는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진리를 등(燈)에 비유한 말, 이 진리의 등(燈)을 스승이 그 제자로 해서 계속 면면히 이어짐을 일컬음.
*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 법,문 문) :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Posted by 닥공닥정

<핸드폰에서, 아래 법문은 위 유튜브에서 42분 49초부터 시작됩니다>

 

§(세등68) (게송) 구명소일모선성~ / ‘깨달음’이라 하는 것은 알고 모르는데 있는 것이 아니여 / 조백(糟魄).
이 깨달음이라 하는 것은 「이것이로구나!」헐 때 틀려버린 거여. 그렇게 헐 수 있는 것이라면, 그것은 깨달음이 아니여. 우리 수행자가 항상 주의할 것은 ‘깨달음’이라 하는 것은 알고 모르는데 있는 것이 아니여.

다못 그 꽉 맥힌 의심으로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고, 의단으로 나아갈 때에 그 의단이 더 이상 간절(懇切)헐 수가 없고, 더 이상 커질 수가 없고, 더 이상 순일(純一)하고 무잡(無雜)할 수가 없어.
그래 가지고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야 가지고는 그놈을 타파(打破)할 때에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허는 것이지, 고요하고 맑고 깨끗한 경지에서 「하! 이것이로구나.」하고 그렇게 스스로 알 수 있는 것은 그런 것은 깨달음이 아니여.

**송담스님(세등선원No.68) - 정묘년 동안거 해제 법어(1988.01.17)에서.(세등68)

 

약 9분.

구명소일모선성(求名少日慕宣聖)타가  파사노년친석가(怕死老年親釋迦)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응성점두지팔각(應聲點頭遲八刻)이여  초가저사검거구(稍加佇思劍去久)니라
나무~아미타불~

구명소일모선성(求名少日慕宣聖)타가  파사노년(怕死老年)에 친석가(親釋迦)다.
명예와 권리를 추구하던 젊은 날에는 공자님을 섬겨. 보통 사람들이 다 젊었을 때는 유교를 숭상하고, 유교의 법도에 따라서 삼강오륜(三綱五倫)을 지키면서 그렇게 살아가니까, 그것이 다 공자님을 사모하는 것이고.

나이가 들어가면서 철이 들어 생사 무상(無常)한 것을 깨닫고, 정말 이 세상에 오욕락(五欲樂)이라는 것이 뜻대로 이루어지기도 어렵지마는, 설사 뜻대로 이루어졌다 하드라도 일장춘몽(一場春夢)에 지내지 못한 그 무상함을 깨닫고 발심(發心)을 해서 불법(佛法)을 믿기 시작해. 그것이 바로 죽음이 무서운 늙으막에사 석가(釋迦)를 친했더라. 불법을 믿게 되었다 이거거든.

무량겁을 오욕락을 탐허다가 육도윤회(六途輪廻)를 헌 것은 바로 이 젊은 날에 공자님을 사모한 것과 같은 것이고, 우리가 금생에 겨우 이렇게 생사가 무상한 것을 깨닫고 불법을 믿고, 불법에 귀의해서 특이한 사람은 출가해서 이렇게 납자(衲子) 생활을 하는 것은 바로 파사노년(怕死老年)에 친석가(親釋迦)다, 그렇게도 볼 수가 있는데.

응성점두지팔각(應聲點頭遲八刻)이여. 소리를 듣고서 고개를 끄덕끄덕 응두(應頭)를 허면 벌써 팔각(八刻)이 늦어져 버렸다 그말이여. 소리를 듣고 고개를 꺼떡거리면 벌써 팔각(八刻)이 늦어.
‘아무개야!’ 불러서 ‘예!’ 하고 대답한 것도, 벌써 부르는 시간이 있고, 대답하기 위해서 - 스스로 들은 바가 있기 때문에, 그놈에 응해서 대답을 허기 때문에 그 시간이 벌써 팔각이다.

초가저사검거구(稍加佇思劍去久)다. 조금 벌써 생각을 머뭇거리면 - '앗! 누가 나를 부르는구나' '앗! 응 그렇구나'하고 벌써 속에 잠깐 머뭇거리면, 칼이 이미 지내간 뒤다 그말이여.
‘칼 조심해라. 누가 너를 칼을 찌를라고 허니까 칼 조심해라’하고 그 소리 듣고 벌써 요리 피헐려고 하면 벌써 칼이 모가지를 지내간 뒤가 벌써 오래다.

우리 수행자가 공부를 헐 때에, '아! 바로 이것이로구나'하면 벌써 아닌 거여 그게. 누구한테 가서 물어보자말자 벌써 그게 모가지에 칼이 지내가 버린 거여.
이 깨달음이라 하는 것은 '이것이로구나!'헐 때 틀려버린 거여. 그렇게 헐 수 있는 것이라면 그것은 깨달음이 아니여.

우리 수행자가 항상 주의할 것은 ‘깨달음’이라 하는 것은 알고 모르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여.

다만 그 꽉 맥힌 의심으로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고, 의단으로 나아갈 때에 그 의단이 더이상 간절(懇切)헐 수가 없고, 더이상 커질 수가 없고, 더이상 순일(純一)하고 무잡(無雜)할 수가 없어.
그래 가지고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아 가지고는 그놈을 타파(打破)할 때에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허는 것이지, 고요하고 맑고 깨끗한 경지에서 '하! 이것이로구나'하고 그렇게 스스로 알 수 있는 것은 그런 것은 깨달음이 아니여.

그것을 조백(糟魄)이라 그래. 그러한 조백을 안다면, 어떤 좀 그럴싸한 무슨 경지를 맛봤다고 해서 행여나 「이것이 깨달은 것이 아닌가?」 그런 서투른 생각을 내지 않을 것이다 그말이여.

우리 수행자는 이 일대사! 이 일대사(一大事)를 위해서 이미 모든 것을 다 버린 사람들입니다. 한 생각 한 생각 잡드리 해서 어쨌든지 가행정진, 명실공히 용맹정진을 해 나갈 따름인 것입니다.


일파유조(一把柳條)를 수부득(收不得)하야  화풍탑재옥난간(和風搭在玉欄干)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일파유조(一把柳條)를 수부득(收不得)하야, 한 움큼 버들가지를 휘어잡지 못해서,
화풍탑재옥난간(和風搭在玉欄干)이다. 바람과 함께 옥난간에 걸어두노라.

버드나무 가지가 그 바람에 일렁거리는데, 그것을 어떻게 붙잡을 수가 있어. 그것을 붙잡을 수가 없으니까 바람과 함께 난간에다가 이렇게 걸어둔다.(41분58초~51분4초)(끝)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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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구명소일모선성 파사노년친석가’ ; 송(宋)나라 소강절(邵康節)의 ‘學佛吟’에서.
*(게송) ‘응성점두지팔각 초가저사검거구’ ; [신심명(信心銘) 벽의해(闢義解)] 중봉 명본선사(中峰 明本禪師) (명정 역주, 극락선원) p258 참고. *(頻伽藏本)天目中峰和尚廣錄 卷第十二之下 信心銘闢義解下 참고.
*遲(더딜·늦을 지) *刻(시간·때 각) *稍(점점 초) *佇(우두커니 설·기다릴 저)
*삼강오륜(三綱五倫) ; 유교의 도덕에서 기본이 되는 세 가지의 강령과 지켜야 할 다섯 가지의 도리.
*무상(無常) ; 모든 현상은 계속하여 나고 없어지고 변하여 그대로인 것이 없음. 온갖 것들이 변해가며 조금도 머물러 있지 않는 것. 변해감. 덧없음. 영원성이 없는 것.
*오욕락(五欲,五慾,五欲樂) ; ①중생의 참된 마음을 더럽히는-색,소리,향기,맛,감촉(色聲香味觸)에 대한-감관적 욕망. 또는 그것을 향락(享樂)하는 것. 총괄하여 세속적인 인간의 욕망. ②불도를 닦는 데 장애가 되는 다섯 가지 욕심. 재물(財物), 색사(色事), 음식(飮食), 명예(名譽), 수면(睡眠)을 이른다.
*일장춘몽(一場春夢) ; 한바탕의 봄꿈이라는 뜻으로, 헛된 영화나 인간 세상의 덧없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발심(發心) ; ①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②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원어)發起菩提心발기보리심, 發菩提心발보리심.
*육도윤회(六途輪廻, 六道輪廻) ; 선악(善惡)의 응보(應報)로 육도(六途 ;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의 고락(苦樂)을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것.
*납자(衲子 기울•옷을 꿰맴 납/사람 자) ; 납의(衲衣)를 입은 사람, 스님을 이르는 말.
*의단(疑團의심할 의/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독로(獨露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홀로(獨) 드러나다(露).
*간절(懇切 간절할•정성스런 간/정성스런•절박할 절) ; ①지성(至誠)스럽고 절실(切實)함 ②정성이나 마음 씀씀이가 더없이 정성스럽고 지극함 ③마음속에서 우러나와 바라는 정도가 매우 절실함.
*타성일편(打成一片) : 참선할 때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만이 독로(獨露)한 경계.
*확철대오(廓徹大悟 클 확/통할 철/큰 대/깨달을 오) ; 내가 나를 깨달음.
*조백(糟魄 술지게미 조/찌꺼기 백) ; 옛날부터 내려오는 성인들의 저서와 말은 모두 찌꺼기란 뜻으로, 무릇 참된 도는 말과 글로 전달될 수 없으므로 현재 전하는 모든 것은 술지게미에 불과하다는 뜻.
*일대사(一大事) ; ①부처님이 중생구제를 위해 세상에 나타난다고 하는 큰 일. 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목적 ②가장 중요한 일이란 뜻. 수행의 목적. 깨달음을 얻는 것. 인간으로서의 완성.
*잡드리 ; ‘잡도리’의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그 대책.
*가행정진(加行精進) ; 어떤 일정한 기간에 수면을 매우 줄이고 좌선(坐禪)의 시간을 늘여서 하는 정진.
*용맹정진(勇猛精進) ; 견고한 의지로 열심으로 노력하는 정진.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