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등59) (게송)노종평처험~ / 자신을 조복(調伏) / (게송)잉풍기랑낭생구~ / 이 도(道)는 쌓는 공부가 아니라 비우는 공부 / 첫째 아상(我相)을 없애라.


조용한 데를 만나면 조용한 대로 좋고, 시끄러운 데를 만나면 시끄러워도 상관이 없고, 변화무쌍한 그러한 복잡한 경계를 당하더라도 오히려  성성(惺惺)하고, 이렇게 공부가 되어 가도록 우리는 공부를 익혀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새로 이제 출가한 젊은 스님네들, 어쨌든지  도를 성취헐라면 바른 선지식을 찾고, 바른 선지식에게 위법망구(爲法忘軀) 법을 위해서  몸을 잊어버려.

‘몸을 잊는다하는 것은자기의 아견(我見), 아만(我慢), 아치(我癡) 자기가 잘났다는 생각, 자기는 많이 배웠다는 생각, 내로라하는  아만심(我慢心), 자존심 이러헌 것이  속에  있어 가지고—정말 법을 위해서 자기가 알고있는 모든 , 보고 듣고 알고 있는 모든 지식과 모든 것을 갖다가 깨끗이 비워버리는 거여.

다생겁래(多生劫來)로 익힌 모든 선업(善業), 악업(惡業), 일체 업도  비우려니와 법견(法見), 불견(佛見)까지라도  비워버려야 . 비우는 데에서 자기의 본래면목(本來面目) 보는 것이지, 비우지 않고서는 점점 깨달음으로부터서는 멀어져 가버리기 때문에 그런 것이야.

그래서 아상(我相), 인상(人相), 중생상(衆生相), 수자상(壽者相), 금강경에  사상(四相) 말씀하셨지마는,  첫째  아상이 문제거든. 아상(我相) 하나만 무너져버리면은 다른 나머지기 3상() 문제가 없는 것이여.

**송담스님(세등선원No.59)—병인년 하안거 결제 법어(86.04.17)


(1) 약 20분.  (2) 약 12분.


(1)------------------


노종평처험(路從平處險)하고   인향정중망(人向靜中忙)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멱화화란득(覓火和爛得)하고   담천대월귀(擔泉帶月歸)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노종평처험(路從平處險)하고  인향정중망(人向靜中忙)이다.

길은 평평한 곳으로부터 험악해지고, 사람은 고요한 곳을 향해서 바빠지더라. 평평한, 평탄한 곳이 있기 때문에 험악한 험난한 길이 있지, 본래 평탄한 길이 없었다면 험악한 길이 어디에 있을 것이냐 그말이여.

나차운 데가 있으니까 높은 데가 있고, 높은 데가 있으니까  나차운 데가 있는 것이지, 본래부터서 전부가 높다면 구태여 험(險)하다고  것이 없어.


평탄한 평지가 있기 때문에  평지를 걸어 가다가 길이 험악해지니까 !  길이 험악해졌구나하고 느끼는 것이지, 평탄할 것도 없고 본래  높은 고지에서만 있다면은 어디가 험악하다는 소리가 있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고요한 가운데에 있다가, 고요한 데에 집착해 가지고 고요한 데에 처해 있기 때문에 바빠지고 시끄럽고 그런 것이지, 본래 고요한 데에 있지 아니하고, 고요한 줄을 모르고 살았다면 구태여 시끄럽고 바쁘다는 것도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말이여.


사람이 살아가는 데 처음부터서 고생을 하고  사람은 구태여 고생이다, 고생스럽다’한 것을 느끼지 않지만, 처음에 호강을 하고 살던 사람이 조금 형세가 어려워지면  곤란한 것을 배(倍)나 느끼고  곤란한 것을 견디기가 심히어려운 법이고,


공부도 처음부터서 시끄러운 속에서 공부를 익히고, 생활하는 속에서 공부를 익힌 사람은  주변이 시끄럽고 일을 하고 복잡한 환경을 만나더라도, 공부가 그것 때문에 공부를 못한다 것을 느끼지를 않는 것입니다.


밤낮 고요한 데에만 집착해 가지고 고요한 데에서만 공부를 익힌 사람은 조금 누가 발걸음 소리만 나고,  열었다 닫었다 하는 소리만 나고, 옆에서 무슨 말하는 소리 또는  지내가는 소리, 비행기 다니는 소리, 이런 소리만  나도 화두가 달아나 버리고 신경질이 나면서 공부가 안된다고 법석을 떨게 되는 것이여.


그래서 평지라고 평탄한 것만을 좋아하고, 고요한 것만을 좋아해서 그런 데에서만 생활을 하고, 그런 속에서만 공부를 익힌 사람은 그것이 참으로 살아있는 공부를 하기가 어려운 거여.


화초도 밤낮 온실에서 적당한 온도와 적당한 습도와 적당한 광선만을 쬐면서 자란 화초는 밖에다 내다 놓면 조금 햇빛이 따가우면은 시들어버리고, 조금 바람이 세고 그러면은 견디지를 못하고 얼어죽고 이러는 것입니다.


공부라는 것이  고요한 데서만 하라는 것이 아니고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黙動靜) 간에 어떠한 경계 속에서도 흔들림을 받지 아니하고,

희로애락과 행주좌와 어묵동정 어떠한 경계를 만나더라도 그러한 경계에 끄달리지 아니하고, 그러한 경계에 장애를 받지 아니하고,


조용한 데를 만나면 조용한 대로 좋고, 시끄러운 데를 만나면 시끄러워도 상관이 없고, 변화무쌍한 그러한 복잡한 경계를 당하더라도 오히려  성성(惺惺)하고, 이렇게 공부가 되어 가도록 우리는 공부를 익혀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멱화화란득(覓火和爛得)이요  담천대월귀(擔泉帶月歸).

불을 찾음에 데기를 쉽고, 불을 찾아서 불을 가까이 하면은 옷을 태우거나 살을 데거나, 불을 가까이 하면  경우가 많고,

담천대월귀(擔泉帶月歸). 물을, 샘을 짊어지면 달을 띠고 돌아가. 물을 떠 가지고 가면은 달이  물에 비추니까 달도 따라온다 그말이여.


제아무리 조심을 한다 해도 불을 가까이 하고 항상  속에서 불을 가까이 하게 되면은 옷을 태우거나 살을 데거나 까딱하면 타죽기도 하고 그런 것이고,

물을 가까이 하면은 항상  있는 곳에는 달이 비치기 마련이니까  가까이 있으면은 달도 거기에 따라 있는 것이다.


불이라는  무엇인가? 탐진치 삼독심(三毒心), 오욕락(五欲樂) 이런 것들이 모다 불과 같은 것이어서 그런 것들을 가까이 하면 반드시  삼악도(三惡途)에 떨어지는 구렁텅이에 빠지기가 쉬운 것이고,


물이라 하는 것은 모든 것을 윤택하게 만들고, 모든 것을 씻어서 깨끗이 하는 것이니까 선지식(善知識), 좋은 도반, 그리고 법문(法門),

그리고 항상 염불을 하던지 참선을 하던지, 우리 참선하는 대중은 항상 선지식과 도반을 가까이 하고, 청정도량을 여의지 아니하고, 대중처(大衆處)를 여의지 아니하고, 그리고 항상 화두를 들고 수행을 하면 달이 거기에 따라온다’는 것은 깨달음이 내게 돌아온다’ 그말이여.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승단(僧團) 제도를 맨들어서 발심한 사람이 출가해 가지고 좋은 도반들과 함께 도를 닦도록 하신 그런 제도를 만드신 것은 바로 그러한 것이기 때문에 그렇다.


오늘은 병인년 4 17 세등선원 하안거 결제 법요식을 맞이했습니다. 방금 사부대중이 전강(田岡) 대선사 녹음법문(錄音法門)을 들었습니다.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 화두를 들고 참선해 나가는 데 요긴한 법문을 들었는데, 자세를 바르게 하고 그리고 화두를 거각(擧却)하되 사량분별을 쓰지 말고, 다맛   없는 의심,

앞도 끊어지고 뒷도 끊어져, 일체 사량분별이 끊어져, 끊어진 상태에서   없는 의단(疑團)만 독로(獨露)하도록 화두를 단속해 나가는  활구참선법에 대한 법문을 들었습니다.


  동안 대중이 방(榜)을 짜고 이렇게 인자 왕래를 ()하고, 이렇게 결제를 하게 되는데,

선방(禪房)마다  선방 나름대로의 규범이 있고 가풍이 있어서, 경상도에 있는 선방에는 거기 나름대로의 규범이 있고,  여기에 오면 여기의 규범이 있어.


그러나 중요한 점에 있어서는 모두가  공통하지만, 조금씩 다른 점이 있는 것은 그것이  오히려  좋은 것이다 그말이여. 전부가  똑같다면 그게 별로 좋을  같지마는 재미가 없는 것이여.


밤낮 똑같은옷도 똑같은 옷만 입는다든지, 음식도 밤낮 똑같은 것만 먹는다든지, 그러면은 그게 재미가 없는 것이고,

계절도 춘하추동 사시절이 있어서 변화가 있어야지, 밤낮 여름만 있다든지 밤낮 겨울만 있다든지 한다면 그건 세계에는 그런 곳도 있기는 하지마는 그게  좋은 것이 아니여.


계절도 변화가 있어야 하고  기상도 변화가 있어야 하고, 해가 뜨기도 허고, 비가 오기도 허고, 구름이 끼기도 허고, 바람이 불기도 허고 해야지,

밤낮 햇빛만 쨍쨍 난다든지, 밤낮 비만 온다든지, 밤낮 눈만 온다든지 허면 그것이 좋은 것이 아니여. 농사도  되지도 아니하고, 건강도 좋지 못하고, 인간성도 좋지를 못하는 것이여.


그래서  선방도 여러 선방들이 있는데, 선방 나름대로 규범이 다르고 법도가 다르고 가풍이 다르고 분위기가 다른 것은 그것이 우리 공부해 나가는 데 대단히 좋은 것이지, 그것이 하나도 나쁠 것이 없는 것이여. 여기는 여기대로의 독특한 가풍(家風)이 있어야 하는 것이여.


그런데 혹자는 다른  선방에는  그런데 여기는 이런다’고, 그래 가지고 그것을 삭이지를 못해 가지고 불평불만을 하고, 그렇게 되면  사람이 벌써 수행인으로서의 바탕이 덜된 사람이여.


여기에 오면은 여기의 법도에 따르면서 열심히 정진을 하고,  다른 선방에 가면 거기 선방의 규범에 따라서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자기의 뜻에   맞더라도 그놈을  인욕(忍辱)을 하면서  그놈을 소화를 시키면서 순응허면서 그래 가지고 거기에서 공부가 잘되도록.

그것이 바로 자기 자신을 이기는 법이고, 자기를 갖다가 조복(調伏) 받는 것이거든.


눈이 오는 겨울이 오면은  겨울에도  적응을 하고,  여름에 삼복더위가 오더라도  더위도 이겨낼  있어야  사람의 건강이 정상적인 것이지, 여름은  견디는데 겨울만 돌아오면은 견디지를 못한다면  사람의 건강이온당한 사람이 아니거든.


특히   닦는 데 있어서는 행주좌와 어묵동정 희로애락, 일체처 일체시에 맥힘이 없어야 하고 걸림이 없어야, 그래야  사람이 정진하는 데 힘을 얻은 사람이고,

앞으로 그러한 자세로 공부를 지어 가는 사람이라야 대도를 성취해 가지고, 육도법계 중생을 제도할 만한 그러한 도인이 되고 성현이  수가 있는 것이지,


밤낮 조용한 것만 좋아하고 손발 까딱 안 하고 앉아서만 하기만을 좋아하고, 이렇게 처음부터서 공부를 익혀 나간 사람은 벌써  그릇 되기는 틀려 버린 사람이거든.

 사람이 어쩌다가 설사  소식을 해서 깨달은 바가 있다 하더라도 보나마나   볼일 없는 사람이거든.


『잘될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그런 속담이 있지마는, 우리는 최상승법을 닦는 도학자여.


그래서 불법(佛法)에는 소승법도 있고 중승법, 대승법도 있는데, 우리 활구참선 하는 우리 선객은 최상승법(最上乘法)이여.

 최상승법이라 하냐 하면은 최상승법에서는 소승, 중승, 대승도 전부  안에  녹여서  속에  포함되어 버린 거여. 그렇기 때문에 불법(佛法) 가운데에는 최고의 불법이거든.


조용한 것만 좋아하고, 조금 시끄러우면  견디는 것은 그런 것은 소승(小乘)의 경지여. 소승에 의지해서 닦아 가는 그런 사람이거든.

그건 부처님 말씀에 생사윤회(生死輪廻)를 할지언정 소승심을 발하지 말아라 그러셨거든.


소승심! 소승심이라는  사상 자체가 그것은 못쓰는 거여. 소승심을  가지고 아무리 열심히 해봤자 설사 소승법의 구경(究竟)에 도달을  봤자 그것은 못쓰는 것이다 그말이여.


마음가짐이 그것이 대단히 중요한 것이여. 마음가짐을 그렇게 가짐으로써 사상이 그렇게 되는 것이고,

마음가짐이 잘못되면 사상이 비틀어지기 때문에 사상이 비틀어져 버리면 그것이 온갖 행동이 거기에 따라서 비틀어지는 것이고, 행동이 비틀어지면은  도(道) 수행하는 목표에 도달하지 못하고 결국은 삿된 데에 굴러 떨어져 버리고 마는 것이여.


정든 고향을 버리고, 부모형제를 버리고,  청춘을 버리고, 사람으로서 태어나서 온갖 것을  버리고 출가한 우리들이 기왕이면은 바른 사상으로 바른 목표를 향해서 수행을  가지고 바른 도를 깨달라야지,

 버리기 어려운 것을 버리고 출가해 가지고서 기껏 한다는 것이 삿된 데에 떨어지고,  볼일 없는 곳을 향해서 일생을 닦아간다면  아니 안타깝고 가련할 수가 있겠느냐  말씀이여.(처음~1951)



(2)------------------


잉풍기랑낭생구(仍風起浪浪生)한대   참괴청평해상부(慚愧淸平海上)로구나

나무~아미타불~

금일홀연풍랑식(今日忽然風浪息)허니   징명원시일강추(澄明元是一江秋)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잉풍기랑낭생구(仍風起浪浪生). 바람으로 인해서 물결이 일어났고, 물결로 인해서 버큼(거품)이 일어났더라.

참괴청평해상부(慚愧淸平海上).  맑고 평평한 바다 위에  버큼이 떠있는 것이 부끄럽구나.


바람으로 인해서 물결이 일어났고, 물결로 인해서 버큼이 일어나 가지고,  더러운 버큼이  맑고 평평한 깨끗한 바다 위에 둥둥 떠다니니  얼마나 추악하고  부끄러울 일이냐 그말이여.


금일홀연풍랑식(今日忽然風浪息)하니, 오늘 홀연히  바람과 물결이 쉬어 버리니,

징명원시일강추(澄明元是一江秋). 맑고 밝은 원래 그대로의  강(江)의 가을이더라.

가을이 돌아와  하늘은 맑고 공기도 맑은데, 바람과 물결이 잔잔히 가라앉어 버리니까,  맑고 밝은 강이 본래 그대로더라 그거죠.


출가해서 10, 20 내지 평생을 참선을 한다고 했건마는 확철대오를 못하고,

어제도 이럭저럭 오늘도 이럭저럭 이렇게 늙어간다면, 그것은 바른 선지식을 만나지 못했거나, 바른 선지식을 만났으되 용기가 부족했거나, 용기를 가지고 했으되 자기 스스로 공부하는 방법이 틀렸거나,


또는 금생에는 자기 나름대로 선지식을 만났고  용기도 가졌고  바른 방법으로 했건마는, 전생에 워낙 닦아 놓은 것이 없거나, 이러한 여러 가지 원인으로 해서  도업(道業) 성취를 못하는 경우가 있을 것입니다.


새로 이제 출가한 젊은 스님네들, 어쨌든지  도를 성취헐라면 바른 선지식을 찾고, 바른 선지식에게 위법망구(爲法忘軀) 법을 위해서  몸을 잊어버려.


‘몸을 잊는다하는 것은자기의 아견(我見), 아만(我慢), 아치(我癡) 자기가 잘났다는 생각, 자기는 많이 배웠다는 생각, 내로라하는  아만심(我慢心), 자존심 이러헌 것이  속에  있어 가지고—정말 법을 위해서 자기가 알고있는 모든 , 보고 듣고 알고 있는 모든 지식과 모든 것을 갖다가 깨끗이 비워버리는 거여.


말하자면은 어떠한 좋은 깨끗한 물을 담을라면은  그릇에 담겨있는 모든 것을 비워버려야 되거든.


 안에 들어있는 무슨 음식이 되었건, 음식 찌꺼기가 되었건, 기름기가 묻었건,  반찬 냄새가 묻었건, 일단 깨끗한 물을 담을랴면  안에 어떠한 맛있는 물건이라도  버려 버리고 깨끗이  다음에라야  맑은 물을 담을 수가있는 것이지,

거기에 본래 어떠한 것이 담어져 있는 상태에다가 아무리 맑은 물을 부어 봤자  물은 구정물이 되고 말아 버리는 것이다.


 () 그러한 음식과도  달라서, 음식은 다른 것이 담아 있어도  옆에다  곁들여서 담어서  가지  가지도 담을  있지만, () 영판  .


천하 없는 경전에 있는 말씀이라도 속에 담어져 있으면 그것은  되는 거여. 팔만대장경을 육두로  외우고,  풀이를   알아도,  생각이 속에 들어있으면은 도는 이룰 수가 없는 것이여.

천하 없이 십계, 십중대계, 48경계와 비구 250계, 비구니 500계를 낱낱이  실천을 해서 청정하기가 말로   없다 하드라도,  청정한 데에 맥혀 갖고 있으면 도는 이루지를 못하는 것이여.


심지어  보다 더한 것이 속에 있다 하드라도 얻은 바가 있다 하드라도 그러한 것이 () 갖고 있으면은 도는 통할 수가 없는 것이여.

아라한과를 증득했으되 내가 아라한과를 증득했다’하는 생각을 가지면 벌써 아라한이 아니고, 보살도를 증득했으되 내가 보살도를 증득했다하면은 벌써 그것이 보살이 아니여.


깨달았으되 깨달았다’는 생각에 () 있으면은  깨달음은 바른 깨달음이 아닌 것이여.


그렇거든 이제 공부하려는 사람이 선지식을 구할 때에 내로라는 생각을 속에 가지고 있어 가지고  선지식이 믿어지냐 하면 믿어지지도 않는 것이고, 선지식으로부터 아무리 좋은 법문을 들어봤자  법문은 귀에 들어오지를 않는것이여.


그래서  () 무엇을 많이 알고, 많이 속에다가 쌓는 공부가 아니고 비우는 공부기 때문에 그런 것이여.

다생겁래(多生劫來)로 익힌 모든 선업(善業), 악업(惡業), 일체 업도  비우려니와 법견(法見), 불견(佛見)까지라도  비워버려야 .


비우는 데에서 자기의 본래면목(本來面目) 보는 것이지, 비우지 않고서는 점점 깨달음으로부터서는 멀어져 가버리기 때문에 그런 것이야.


그래서 아상(我相), 인상(人相), 중생상(衆生相), 수자상(壽者相), 금강경에  사상(四相) 말씀하셨지마는,  첫째  아상이 문제거든.

아상(我相) 하나만 무너져버리면은 다른 나머지기 3상() 문제가 없는 것이여.


 아상(我相), ‘내’라고 하는 이놈 하나 때문에 결국은 무량겁 생사윤회도 거기에서 원인이 되는 것이고, 깨달음을 얻지 못하는 것도 거기에 원인이 되는 것이고, 육도법계(六道法界)도 거기에서 일어나는 것이고, 온갖  태란습화(胎卵濕化) 그놈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고, 모든 웬수도 거기에서 일어나는 것이여.


‘내’라는 놈이 없다면은 남하고 다툴 필요도 없는 것이고, 내라는 놈이 없다면은 탐진치(貪瞋痴) 어디에서 일어나는 것이냐 그말이여.

그래서  대중생활 하는 데에도 내’라 하는 생각 있는 데에서 온갖 불평이 일어나고, 온갖 서로 다툼도 거기에서 일어나는 것이고, 모든 장애도 거기에서 일어나는 법이다.


 도량에 들어오면은 첫째 아상을 무너뜨려 버리고,  주장을 버려 버리고,  선원의 규칙대로 순종을 하고 적응을 하도록 그렇게 한다면은   동안 장애 없이 공부할 수가 있어.

아무 장애 없이   동안을 정말 온전히 알차게 짬지게   동안을 정진을  수가 있을 것입니다.(203~3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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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路從平處險  人向靜中忙’ ; 卍新纂續藏經 제 71책 《요당유일선사어록(了堂惟一禪師語錄)》 권2 참고. 大正藏 《철옹화상어록(徹翁和尙語錄)》 상권 참고.

*(게송) ‘覓火和爛得  擔泉帶月歸’ ; 大正藏 제 47책 《허당화상어록(虛堂和尙語錄)》 1권 참고.

*나찹다 ; ‘낮다’의 사투리.

*전강선사 녹음법문(錄音法門) ; 전강 스님께서 후학을 위해 참선법(參禪法) 핵심으로 설한 법문이 700 시간 분량이 녹음되어 있다.  중에는 『전강선사 일대기』 『몽산법어』 『초발심자경문』 등이 있다.

용화선원(녹음실)에서 전강선사  송담스님의 모든 법문을 mp3 파일로 구할  있습니다.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막힌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1700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 ; 용상방(龍象榜) 말함.

[참고] 용상방(龍象榜) ; 절에서 하안거 동안거 결제 때나, 큰일을 치를 때에 각자  일을 정해 붙이는 명단. 행사가 끝날 때까지 모든 사람이    있는 곳에 붙여서 각자가 맡은 일에 충실하도록  것이다.

*조복(調伏) ; ①산스크리트어 nigraha 몸과 마음을 조절하여 온갖 악행을 다스림. ②산스크리트어 vinaya출가자가 지켜야 하는 규정.  () 말함. ③온갖 장애를 굴복시킴.

* 그릇 ; 큰일을  만한 뛰어난 인재.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버큼 ; ‘거품 사투리.



------------------(2)


*(게송) 잉풍기랑낭생구~’ ; 《허응당집(虛應堂集) (허응당 보우) ‘시부상인(示膚上人)’ 참고.

*내로라하다 ; (주로 내로라하는 꼴로 쓰여) 어떤 분야에서 두드러지거나 대표할 만하다.

*본래면목(本來面目  / / / ) ; ①자기의 본래(本來) 모습(面目). ②자신이 본디부터 지니고 있는,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의 성품.

*사상(四相) ; 깨닫지 못한 중생들이 전도(顚倒) 생각에서 실재한다고 믿는  가지 분별심.

아상(我相) ; 산스크리트어 ātma-saṃjñā 나라는 관념·생각.  자아(自我)라는 관념·생각.  자의식.  남과 대립하는 나라는 관념·생각.  실체로서의 자아가 있다고 생각하는 망상.

인상(人相) ; 사람은 고귀하므로 지옥 중생이나 축생들과 다르다고 집착(執着)하는 견해.

중생상(衆生相) ; 산스크리트어 sattva-saṃjñā  중생이라는 관념·생각. 부처와 중생을 따로 나누어  같은 중생이 어떻게 부처가 되고 무엇을   있으랴 하고 스스로 타락하고 포기하여 향상과 노력이 없는 소견.

수자상(壽者相) ; 산스크리트어 jīva-saṃjñā  목숨이라는 관념·생각. 목숨이 있다는 관념·생각. 생명체라는 관념·생각. 자기의 나이나 지위나 학벌이나 문벌이 높다는 것에 집착된 소견.

*육도법계(六道法界) ; 육도(六道) 세계. 육도(六道,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

*태란습화(胎卵濕化) ; 사생(四生). 중생이 윤회하는 세계인 육도(六途)에서의  가지 (),  가지 태어나는 방식. 태생(胎生), 난생(卵生), 습생(濕生), 화생(化生) 이른다.

*짬지다 일하는 솜씨가 여물고 깐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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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싼또샤
용화선원2015.03.15 14:06
§(280) 용화선원의 가풍—불조(佛祖)와 같이 되지 못한 이상에는 완전히 초학자의 마음가짐으로 정진을 하자.

**송담스님(No.280)—85년(을축년) 동안거 결제 법어(85.11.26)

 약 4분.



이 용화선원(龍華禪院), 물론 어느 선원이나 다 마찬가지지만, 용화선원의 특이한 노선(線)이라고 할까? 가풍(家風)이라고 할까? 용화선원에서 바라는 용화선원의 특성을 구태여 말을 하자면,


‘불조(佛祖)와 같이, 불조가 깨달으신 바와 같이 그러한 철저한 깨달음을 얻기 전에는 설사 조그마한 견처(見處)가 있다 하더라도 스스로 그런 것을 인정을 하지 말아라.


'알았다'고 하는 소견(所見), '깨달았다'고 하는 소견, 한철 두 철 하다보면 어떤 지견(知見)이 생길 수가 있는 것입니다마는 불조(佛祖)의 친증처(親證處)에 바로 이르르지 못하면 자기가 깨달았다고 하는 생각을 갖지 말아라.


깨닫지 못하면 차라리 말지언정 깨달았다 하면은 불조와 같이 불조의 친증처에 이르러야 한다’ 이러한 각오를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체중현(體中玄) 도리, 여래선(如來禪) 도리, 공견(空見)을 봤다 하더라도,

그러한 ‘보았다’고 하는 소견을 속에 가지고 있으면, 그러한 지견을 속에 지니고 있으면 공부는 아무리 정진을 한다고 해도 그 이상 진취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언제나 완전히 백지(紙) 상태—10년, 20년을 정진을 했다 하더라도 완전히 초학자(初學者)의 마음, 순수한 초학자의 그러한 마음가짐으로 정진을 하자」 이것입니다.


「누구를 막론하고 이 도량에 일단 방부(房付)를 들이고 같이 정진하게 되면, 너나 할 것 없이 불조(佛祖)와 같이 되지 못한 이상에는 완전히 초학자의 그러한 마음가짐으로, 그러한 사상으로 정진을 하자」 이것입니다.(14분14초~17분47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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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선(線)개인이나 조직단체 따위 일정한 목표 향하여 나아가기 위해 따르는 활동 방침.

*가풍(家風) ; 한집안에서 오래 지켜 온 생활 습관이나 규범.

*불조(佛祖) : 부처님과 조사(祖師), 불(佛)은 삼세제불(三世諸佛), 조(祖)는 역대(歷代)의 조사를 말함.

*견처(見處) ; 자기 나름대로 얻은 어떤 생각이나 입장, 견해.

*소견(所見) ; 어떤 일이나 사물을 살펴보고 가지게 되는 생각이나 의견.

*지견(知見) ; 배워서 얻은 지식과 보고 들어 쌓은 분별력을 아울러 이르는 말.

*친증처(親證處) ; 친히 증(證, 수행으로 진리를 체득하다)한 곳.

*체중현(體中玄) ; 임제 의현(臨濟義玄)선사가 학인을 제접하는 데 사용한 수단인 삼현(三玄-體中玄•句中玄•玄中玄)의 하나.

[참고] 선가귀감(용화선원 刊) p207, p212 에서.

[三玄]삼현

體中玄은  三世一念等이요  句中玄은  徑截言句等이요  玄中玄은  良久棒喝等이라

삼현 : 체 가운데 현(體中玄)은 삼세가 한 생각이라는 따위들이고, 구 가운데 현(句中玄)은 지름길 말들이며, 현 가운데 현(玄中玄)은 양구와 방망이와 할 같은 것들이다.


삼현(三玄) : 임제 의현(臨濟義玄)선사가 학인을 제접하는 데 사용한 수단이다.

체중현(體中玄)은 진공(眞空)의 이치를 보는 것이라 학인이 이 이치를 보았다 하더라도 신위(信位)를 여의지 못했으므로 자유의 분(分)이 없다.

구중현(句中玄)은 뜻길이 없는 말로써 그 말에 걸리거나 막히지 않고 도리를 바로 봄을 말함.

현중현(玄中玄), 사(事)에 걸림이 없는 묘유(妙有) 곧 현중현(玄中玄)의 도리를 보아야 인가(印可)를 하는 것이다. 현중현을 용중현(用中玄)이라고도 한다.


*체중현(법문에서)

[참고 ❶] 송담스님 법문(No.337)—정묘년 칠석차례(87.07.07.음)에서.

체중현(體中玄)으로 보면, 공(空)의 이치에서 보면 어떠헌 공안을 묻되 할(喝)을 해 버려도 맞고, 방(棒)을 해 버려도 맞고, 양구(良久)를 해 버려도 맞고, 닥치는 대로 막 잡아서 아무것이라도 일러도 다 맞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현중현(玄中玄) 도리에 있어서는 아무렇게나 일러도 맞지를 않습니다. 그 공안에 여지없이 이(理)와 사(事)에 탁! 맞아떨어지게 일러야 하는 것입니다.


참선 한 철, 두 철 열심히 허다 보면 어지간한 사람이면 다 그 공의 이치를 보게 됩니다.

그 공의 이치, 그게 체중현(體中玄)인데, ‘체(體) 가운데에 현(玄)’-체의 이치를 보게 되면 그것이 바로 공(空)인데, 공의 이치를 보게 되면 경(經)을 봐도 모두가 그 소식입니다.

조사어록을 봐도 모두가 다 그 도리고, 조금도 맥힐 것이 없어. 환하고.


그런데 현중현(玄中玄)에서는 그렇지를 않거든.

체(體)의 이치를 본, 겨우 그 이치만 보고 현중현을 못 본 사람은 된장이나 똥이나 마찬가지여.

선과 악이 마찬가지고, 크고 작은 것이 마찬가지고, 부처와 중생이 다를 것이 없고, 내 마누라나 형수가 다 똑같고, 그저 거지나 임금이 다 똑같고, 생과 사가 똑같고, 그러니 오직 쾌활하냐 그말이여.


그러나 그것 가지고서는 부처님과 조사가 인가(印可)를 허지를 않았습니다. 그것 가지고서는 진리를 바로 봤다고 헐 수가 없어. 그것은 바른 견성(見性)이 아니여.


그래서 조사(祖師)는 현중현이라고 허는 관문(關門)을 시설을 해 가지고, 현중현 도리를 보지를 못허면 바로 보았다고 인가를 헐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현중현 도리는 선지식이 아니면은 그것을 가려내지를 못해.


[참고 ❷] 송담스님 법문(No.282)—86년 1월 첫째일요법회(86.01.05)에서.

공안은 그 열쇠가 아니면은 도저히 그 열 수가 없는 아주 이 자물통과 같아서 도저히 그렇게 일러 가지고서는 인가(印可)를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물속에·진흙 속에 들어가서 무엇이 발을 찔렀는데, ‘뭣이 찔렀다.’ 이래 가지고서는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 찌른 것이 뾰족한 돌멩이냐, 그렇지 않으면 무슨 나무 꼬타리냐, 사금파리냐, 또는 쇠꼬치냐, 분명하게 딱! 말을 해야 하는 것이지, 막연하게 ‘뭣이 찔렀다.’ 이렇게만 말한 거와 같아서,


아! 찌른 거야 사실이지, 사실 아닌 것은 아니여.

그러나 분명하게 쇠꼬치면 쇠꼬치, 사금파리면 사금파리, 돌멩이면 돌멩이를 분명히 말을 해야 알 수가 있는 거와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그 학자가 공부를 하다가 자기 나름대로는 반드시 견처(見處)가 있어서 온 것은 사실이나,

불조(佛祖)와 같이 깨닫지 못하면 체중현(體中玄)·구중현(句中玄)·현중현(玄中玄), 현중현 도리를 바로 보지 못하면 스스로 그것에 만족을 해서는 아니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활구문중(活句門中)에 있어서의 납자(衲子)의 지조(志操)라 할 것입니다.


[참고 ❸] 송담스님 법문(No.466)—92년 보살 선방에서 하신 법문(92.02.02)에서.

구경의 깨달음이 아닌—공부해 나가다가 조금 느껴지는 그런 편안함이나 맑음이나 또는 시원함, 그런 소견이나 경계 그런 거,

구경의 깨달음이 아닌 중간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그런 경계에 ‘나도 한 소식 했다. 나도 깨달았다. 이것이 깨달음이 아닌가’하고 거기에 머물러 버리면 그 사람은 거기서 끝나는 거죠.


큰 깨달음을 얻지 못하고, 예를 들어서 저 지방에서 서울을 향해 가는데 대전이나 수원이나—시골 산중에 있던 사람이 거기에 나오면은 굉장하거든, 차도 많고 높은 건물도 많고 하니까 여기가 서울이구나! 하고 주저앉은 거나 마찬가지여.

서울을 향해서 가는 사람은 중간에 좀 볼만한 데가 도시가 있다고 해서 그것이 서울로 착각한 거나 마찬가지여.


서울로 가서 중앙청을 갈라면 중앙청까지 딱 가서 대통령을 만나든지 장관을 만나든지 해야지,

저 중간에 가 가지고 조금 높은 건물이 있다고 해서 그것을 갖다가 서울이라고 착각한다면 그거 되겠습니까? 그와 마찬가지입니다.


구경(究竟)의 깨달음이 아니면 확철대오해서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경지가 아니면 중간에 체중현(體中玄) 도리, 중간에 나타나는 보이는 그런 경계는 탁! 스스로 부정을 해 버리고 부인을 해 버리고 거기에 빠져서는 안 돼.


탁! 치워버리고 언제나 초학자와 같은 그런 심경으로 바른 자세와 바른 호흡법으로 자기의 본참공안만을 향해서 한결같이 정진을 다그쳐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참고 ❹] 송담스님 법문(No.112)—79년 11월 관음재일 법어(79.11.24)에서.

가끔 조실 스님 법문 가운데에는 공안에 대한 조리(條理)에 대해서 말씀을 하신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히 공안에 있어서 이 학자가 깨달은데 있어서 체중현(體中玄) 도리를 보는 사람,

체중현 도리를 보아 가지고 그것으로써 득소위족(得少爲足)하는—조그마한 소견을 가지고 ‘아! 내가 깨달았다’고 하는 이러한 잘못된 생각을 가질까봐,


『절대로 이 공안이라 하는 것은 현중현(玄中玄) 도리를 바로 봐야만 그것이 바로 확철대오(廓徹大悟)다.』

그러한 것을 우리에게 깊이 납득을 시키고 철저하게 명심을 하기 위해서 가끔 공안에 대한 말씀을 구체적으로 해주신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러한 법문을 듣고, 어떠한 공안에 대해서 자기 나름대로 이렇게도 따져보고, 저렇게도 일러보고 해서 ‘혹 이런 것이 아닌가. 저런 것이 아닌가’ 이렇게 공부를 지어가서는 아니된 것입니다.


이 공안은 마치 체중현 도리에서 보면 아무렇게 일러도 맞지 아니한 것이 없는 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은 공견(空見)에 빠진 사람, 공견에 빠져가지고 그러한 입장에서 볼 때에는 고함을 치나, 욕을 하나, 호령을 하나, 손을 들거나, 발을 구르거나, 무엇이 어떻게 이르건 다 안 맞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은 이 현중현 도리를 본 사람이 아니고, 그렇게 봐가지고서는 불법을 바로 깨달았다고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현중현 도리는 마치 자물쇠통에 꼭 제 열쇠가 아니면은 열리지 아니한 것처럼, 바로 깨달은 사람만이 바로 이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래선(如來禪)생각과 알음알이가 아주 끊어지지 않아서 말의 자취가 있고 이치의 길이 남아 있는 선.

*공견(空見) ; 공(空)에 집착하여 일으키는 그릇된 견해. 공(空)을 허무론적인 견해로 이해하는 것으로, 이에 따르면 인과(因果)의 도리를 비롯한 모든 것의 존재가 부정된다.

*초학자(初學者) ; ①처음 배우기 시작한 사람. ②배워 익힌 지식이 얕은 사람.

*방부(房付)를 들이다 ; 수행자가 절에 머물며 공부할 것을 인사드리고 허락을 구해 결제(結制)에 참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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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6) ‘이뭣고?’ 화두 / ‘알 수 없는 의심’을 관(觀)해야 / 용화선원의 가풍(家風)-평상시가 용맹정진 / 여법하게 정진하는 것이 참다운 불사 / 장애 극복은 정진력으로.

사실 이 ‘이뭣고~?’ ‘이뭣고?’ 이 문제는 불법(佛法)이 생겨나기 이전에, 부처님이 탄생하시기 이전에, 모든 인류에게 주어진 하나의 커다란 숙제인 것입니다.
이것을 알아볼라고 동서고금의 모든 성현들이 철인들 철학자들이 이것을 알아볼라고 별별 방법을 썼습니다마는, 오직 이 문제를 깨달으신 분, 바로 깨달라서 바로 지도하신 분은 오직 우리의 위대한 스승이신 부처님이시고, 부처님의 그 법을 깨달은 방법이 바로 법(法)이고 그 법을 이어받아서 깨닫고 또 그 제자에게 전하고 하신 분들이 바로 역대조사 선지식들이 아니시겠습니까.
‘이뭣고?’하는 그 글자, ‘이뭣고?’한 글자가 문제가 아니라 ‘이뭣고?’했을 때 그 「알 수 없는 그 의심」 그것이 화두에 요긴한 것입니다.
화두가 정말 순일무잡(純一無雜)하게 되는 것은 마지막 깨닫기 한 일주일 전부터서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생사해탈을 하기 위해서, 생사윤회를 아니할라면은, 그런 부처님의 5계(五戒)를 잘 지켜야만 한다.
**송담스님(No.346)(참선법 D) - 88.1.21 보살선방에서 하신 법문.


(1) 약 20분.  (2) 약 19분.


(1)------------------

<‘이뭣고?’ 화두>


이 화두, 그 천칠백 화두가 있는데 그 가운데에 최초의 화두요, 동시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가 ‘시삼마(是甚麼)’ 화두입니다.  ‘시삼마’는 우리말로는 ‘이뭣고?’ ‘이것이 무엇인고?’ 그말이여.
‘이것이 무엇이냐?’

남악회양(南嶽懷讓) 선사가 육조 스님께 딱 찾아가 뵈옵고 절을 하니까, 『십마물(什麽物)이 임마래(恁麽來)냐?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느냐?』 이렇게 물으셨어.

그리고 하택신회(荷澤神會) 선사가 내나 그분도 육조 스님의 제자인데, 하택신회 선사 젊어서 육조 스님 앞에 딱 가서 절을 하니까, 『십마물(什麽物)이냐? 무슨 물건이냐?』하고 물으니까,
하택신회 선사는 『제불지본원(諸佛之本源)이요 신회지불성(神會之佛性)입니다. 모든 부처님의 근본이요. 이 자기 자신 신회의 불성입니다』 이렇게 대답을 했어.

그런데 남악회양 선사가 떠억 와서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느냐?』하고 육조 스님이 물으시니까,
남악회양 선사는 망지소조(罔知所措)여. 몸 둘 바를 몰라.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할지 모른다 그말이여.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느냐?』하고 묻는데 꽉 맥혀 가지고 어찌할 바를 몰라. 몸 둘 바를 몰랐어.

그런데 육조 스님께서 『모든 부처님의 근원이요, 신회의 불성입니다』하고 대답한 하택신회에게는 『네가 나중에 공부를 해서 깨달은 바가 있다 하더라도 너는 지해종사(知解宗師) 밖에는 안 되겠다』
지해종사라 하는 것은 이론적으로 교리적으로 불교를 연구하는 그런 강사와 같은 그런 것 밖에는 너는 못 되겠다. 그렇게 말씀을 하시고,

남악회양 선사는 꽉 맥혀 가지고 그 뒤로 8년 간을 ‘무슨 물건이냐? 그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느냐?’한 그 의심을 가지고 8년 동안을 그놈을 가지고 앉으나 서나 밥을 먹으나 일을 하나, 8년 동안을 그것을 참구를 한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8년 만에사 확철대오를 했어.

그래 가지고 육조 스님한테 『설사일물(說似一物)이라도 즉부중(卽不中)입니다. 설사 ‘한 물건(一物)’이라고 해도 맞지 않습니다』 이렇게 그 깨달은 바를 말씀을 드린 것입니다.


『환가수증부(還可修證否)아? 도리어 수증할 것이 있느냐?』 그러니까, 『수증(修證)은 즉불무(卽不無)어니와 오렴(汚染)은 즉부득(卽不得)입니다. 수증할 것이 없지는 않습니다마는 오렴은 없습니다.』 이렇게 대답을 해 가지고,
『여시여시(如是如是)다. 너도 또한 그렇고 나도 또한 그렇다.』 그렇게 쾌히 인가(印可)를 하신 것입니다.

지금 용화선원에서 전강 조실 스님의 법문 또 제가 말씀을 드린 모든 것이 완전히 그 남악회양 선사가 하던 그 참선법, 그것을 바로 조사선(祖師禪)이라 그러고, 그것을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 그러는데 그 활구참선법, 남악회양 선사처럼 그렇게 해 가도록 항상 말씀을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무슨 물건이냐?’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이냐?’ 이거거든.

지금 여러분이 이렇게 집을 떠나서 여기에 오셔서 석 달 동안을 고생을 하면서 고행을 하면서 이렇게 와서 계신데, ‘무엇이냐?’ 그말이여.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느냐?’

이 몸뚱이가 여러분이라고 혹 생각하실 분이 계실런지 모르지마는, 이 몸뚱이는 흙 기운과 물 기운과 불 기운과 바람 기운이 뭉쳐서 이렇게 몸뚱이라고 하는 것을 임시 이렇게 이루고 있는 것뿐이지, 몸뚱이 이것이 여러분이 아닌 것입니다.

이것은 시시각각으로 변해서 늙어가다가 나중에 결국은 이 몸뚱이에서 영혼이 떠나 버리면 그냥 10분 못 가서 내장이 버글버글버글 썩어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바람은 바람 기운으로 나가 버리고, 불 기운은 불 기운대로 흩어져 버리고, 물 기운은 물로 돌아가 버리고, 흙 기운은 흙으로 돌아가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이 몸뚱이는 그래서 송장 덩어리인 것입니다.

송장 덩어리를 운전을 하고 있는 놈, 운전하고 있는 그놈을 우리는 찾는 것이거든.

그것을 고인들은 다 ‘자성(自性)’이라 하기도 하고, ‘마음’이라 하기도 하고, 또는 ‘영혼’이라 하기도 하고 또는 ‘진여(眞如)’라 하기도 하고 또는 ‘불성(佛性)’이라 하기도 하고, ‘법계(法界)’라 하기도 하고, ‘여래(如來)’라 하기도 하고, 경전마다 그것에 대한 이름을 달리 말씀을 하셨고 세계 나라마다 그것에 대한 이름도 다 각각 다르지만,

그 이름이 문제가 아니라 그 자체, 우리는 세세생생(世世生生)에 몸뚱이를 바꿔서 태어나면서 이렇게 육도윤회(六道輪廻)를 하고 있는데, 그 자체를 우리는 모르기 때문에 생사고해(生死苦海)를 이렇게 유전(流轉)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놈을 우리는 깨달라야겠다. ‘그놈을 깨달음으로 해서 생사해탈(生死解脫)을 하자’ 이것이 아니겠습니까?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그놈이 무엇이여?’ 눈으로 볼라야 볼 수 없고, 손으로 잡을라야 잡을 수도 없고, 냄새를 맡을라야 무슨 냄새가 거기서 나며, 그놈을 ‘어떻게 생겼는가?’ 아무리 생각해 본들 알 수가 없다 그말이여.

사실 이 ‘이뭣고~?’ ‘이뭣고?’ 이 문제는 불법(佛法)이 생겨나기 이전에, 부처님이 탄생하시기 이전에, 모든 인류에게 주어진 하나의 커다란 숙제인 것입니다.


이것을 알아볼라고 동서고금의 모든 성현들이 철인들 철학자들이 이것을 알아볼라고 별별 방법을 썼습니다마는, 오직 이 문제를 깨달으신 분, 바로 깨달라서 바로 지도하신 분은 오직 우리의 위대한 스승이신 부처님이시고, 부처님의 그 법을 깨달은 방법이 바로 법(法)이고 그 법을 이어받아서 깨닫고 또 그 제자에게 전하고 하신 분들이 바로 역대조사 선지식들이 아니시겠습니까.

이것은 그 법을 모르고서는 도저히 깨달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에게 있는 것이지만 법을 모르고서는 깨달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불법이요, 정법(正法)이요, 최상승법(最上乘法)이다.

이것은 이론적으로는 아무리 따져도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론과 지식 가지고 따져서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직 화두를 참구(參究)해 가지고 그 화두를 타파(打破)함으로 해서 깨달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뭣고?’ 아까 ‘이뭣고?’라고 하는 화두는 그밖에 ‘마삼근(麻三斤)’이라든지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라든지 ‘판치생모(板齒生毛)’라든지 천칠백 개나 되지만, 그 많은 화두 가운데에 가장 근원적이고 최초의 화두가 바로 ‘이뭣고?’거든.

‘이뭣고?’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앉아서나 서서나 누워서나 일을 할 때나 속이 상할 때나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일체처 일체시에 ‘이뭣고?’


<단전호흡과 화두 의심>


그러면 언제 단전호흡을 하고 언제는 이 화두를 드느냐? 숨을 들어마셨다가 잠깐 머꾸었다가 내쉬면서, 그 내쉴 때 ‘이뭣고~?’ 이렇게 화두를 드는 것입니다.

숨이 다 나가면 또 스르르 하니 들어마셨다가 약 3초 동안 딱 정지했다가 내쉬면서 ‘이뭣고?’

‘이뭣고?’를 길게 숨 다 나갈 때까지 ‘이뭣고?’를 길게 하시라 그말이여. ‘이뭣고~?’ 또 숨이 다 나가면 또 스르르 호흡을 들어마셔 가지고 또 약 3초 동안 딱 머꾸었다가 내쉬면서 ‘이뭣고~?’

처음 하신 분은 숨을 내쉴 때마다 ‘이뭣고?’ ‘이뭣고?’ 이렇게 하시지만, 나중에 차츰차츰 익숙해지면 그리고 ‘이뭣고?’한 뒤에 알 수 없는 생각이 있으면은 「그 알 수 없는 그 의심(疑心)」, 의심이 있는 동안에는 다시 또 ‘이뭣고?’ ‘이뭣고?’ 안 해도 상관이 없습니다.
‘알 수 없는 그 의심’이 흩어져 없어져 버리거나, 딴 생각이 나오거나 하면은 그때 또 다시 ‘이뭣고?’하고 한 번 챙기는 것입니다.

‘이뭣고?’하는 그 글자, ‘이뭣고?’한 글자가 문제가 아니라 ‘이뭣고?’했을 때 그 「알 수 없는 그 의심」 그것이 화두에 요긴한 것입니다.

의심은 없으면서 「이뭣고?」 「이뭣고?」 밤낮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하듯이 「이뭣고?」 「이뭣고?」 「이뭣고?」 『‘이뭣고?’를 잠시도 잊어버리지 말고 ‘이뭣고?’를 해라』 그러니까,
아하! 그렇게 생각하고는 「이뭣고?」 「이뭣고?」 「이뭣고?」 「이뭣고?」...‘이뭣고?’를 마치 ‘관세음보살’하듯이 그렇게 하면은 그것은 잘 모르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뭣고?’는 ‘이것이 무엇이냐?’한 그 알 수 없는 그 간절(懇切)한 의심, 그 의심이라야 옳게 하는 것입니다. 의심이 있어야.
그래서 입으로 ‘이뭣고?’ 안 해도, 알 수 없는 그 ‘대관절 이것이 무엇인고?’한 그 알 수 없는 의심 그것이 있으면 화두를 이미 들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아침에 조실 스님 법문 가운데에, '무슨 물건'을 가지고 다니다 어디다 놔 버렸는데, ‘아! 그걸 어디다 놨나? 그것이 어디가 있는가? 아! 그거 참 어디가 있는가?’ 그렇게 찾은 것처럼,
‘이거 참!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이놈이 무엇인가?’ 알 수 없는 그 의심이 그것이 화두인 것입니다.

그 의심이 항상 있어야 하고, 그 의심이 있으면 ‘이뭣고?’ ‘이뭣고?’ 거기다 덮치기로 자꾸 할 필요가 없어요. 「알 수 없는 그 의심」을 단전호흡을 하면서 그 의심을 관(觀)하는 것입니다.

앉아서도 그 의심, 서서도 그 의심, 이것은 자꾸 안 될수록에 더 열심히 하시면 나중에 언젠가는 할라고 안 해도 저절로 화두가 현전(現前)하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나, 옷을 입을 때나, 똥을 눌 때나, 입선(入禪)을 할 시간이나 또는 방선할 때나 그 의심이 항상 있어야 하거든.

그래서 ‘방선(放禪)해도 잡담을 하지 말아라.’ 이런 소리가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입선·방선이 전혀 상관이 없어요. 공부가 그렇게 되면은....

여러분이 댁에 계시면은 다 편안하고 잘 잡숫고 자유롭게 계실 텐데,
아! 여기 오셔서 백 명 이렇게 많은 수가 사시니 식사도 반찬도 변변치 못하고 모든 이 목욕탕이라든지 화장실이라든지 그런 시설도 다 불편하고, 아침에 좀 늦잠도 자고 싶은데 자도 못하고, 여러 가지로 자유롭게 살고 싶은 것도 모든 자유가 제한이 되고 그래서 생각해 보면은 참 이러한 고생이 없습니다.

이러한 고생을 무릅쓰고 여기 와서 계시는 것은 순전히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여기 오신 것인데, 어디에 음식이 맛이 있고 없는 것이 상관이 있으며, 입선·방선이 무슨 상관있습니까?

입선을 하나 방선을 하나, 반찬이 쓰거나 달거나, 밥이 질거나 되거나, 분 따라서 잘 수용을 하고 섭취를 하고 모든 것에 적응을 하면서 자나깨나 우리가 정신 쓸 곳, 신경 쓸 것은 오직 ‘이뭣고?’ 하나 뿐이거든.

‘이뭣고?’ 벌써 화두를 떠억 들고 있는 사람을 보면 눈매가 달라지고 모습이 엄숙하고 경건하면서 벌써 눈이 왔다갔다 하지를 않는 것입니다. 눈이 딱 못박혀 있는 것처럼 눈동자가 따악 박혀 있는 것입니다.
엄숙하고 경건해서 누가 감히 옆에 가서 장난도 칠 수가 없고, 말 붙이기도 어려운 것입니다. 이렇게 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입선시간은 말할 것도 없이 하지마는 방선해서 설사 자리에서 일어나서 화장실을 가시기도 하고 혹 밖에 나가서 포행(布行)을 하신다 해도 각자 자기 나름대로 속으로 ‘이뭣고?’가 따악 자리잡혀 있어야 하거든, 어디 가서 잡담을 하고 히히덕거리고 수군덕거리고 남의 흉보고 그럴 시간이 어디가 있느냐 이 말씀이여.

이 용화선원 조실 스님 열반(涅槃)하신 뒤로 벌써 13년이라고 하는 세월이 흘렀고 그 동안에 처음에 한 2~30명 하다가 4~50명 하다가 6~70명 하다가 이제는 백삼십이 명까지 방부를 드려서,
참 팔도에서 여러 발심(發心)한 보살님네들이 구름처럼 모여서 이렇게 정진을 하시니 이러한 기쁠 도리가 없고 이렇게 고맙고 감사할 도리가 없고, 또 선방의 규칙도 많이 좋아졌습니다. 좋아졌으나 아직도 멀었습니다.

물론 여러분 가운데는 참 모범이 될 만한 훌륭한 분도 많이 계십니다마는 아직 오신지 얼마 안 되신 분, 아직도 공부하는 요령을 확실히 터득을 못 하신 분도 계시고, 또 오시기는 오셨지만 아직 불법이 무엇인지, 참선이 무엇인지, 선방이 무엇인지, 좋다고 하니까 오시기는 오셨으나 막상 확실히 모르시기 때문에 좀 그런 분이 계실 줄 압니다마는,

여러분 가운데 발심을 해서 공부하신 분이 계시면 그분의 거룩한 모습을 보고 모두가 다 그 본(本)을 봐 가지고 입선·방선이 상관없이, 입승(立繩) 스님이나 누가 ‘잡담하지 말아라. 떠들지 말아라. 시끄럽게 하지 말아라’ 이러한 말씀 듣기 이전에, 각자 방선 시간에도 주욱 앉아서 정진하시고 또 졸리면 나가서 포행하다가 들어오셔서 하시고 해서,

입선·방선이 상관이 없게 이 큰방을 언제나 묵언(默言) 구역으로 해 놓고, 부득이 해서 할 요긴한 말씀이 있으면 밖에 나가서 간단하게 끝마치고 들어와서 또 정진을 하셔야죠.
이 큰방에 둘씩·셋씩·넷씩·다섯씩 구석구석이 모여 가지고 수군덕수군덕 해 쌌고 그래 싸면 공부를 좀 할려고 한 분까지 공부를 못 하시게 됩니다.(55분5초)


(2)------------------

<용화선원의 가풍(家風)>

오늘부터서 지금 섣달 초하루부터서 8일날 까지는 용맹정진(勇猛精進) 기간입니다.
전국에 선방이 옆구리를 땅에 대지 아니하고 온전히 만 일주일 간을 갖다가, 공양하고 변소에 갈 시간만 내 놓고는 전부가 큰방에 앉아서 다 법복을 수하고 그렇게 용맹정진하는 시간입니다.

조금만 졸아도 죽비를 갖다가 탁탁 쳐서 경책(警策)을 주면서 그렇게 합니다마는, 이 용화선원은 왜 그렇게 용맹정진을 아니하냐 하면은 평상시가 바로 용맹정진이 되도록 그렇게 하자는 것입니다.
비록 잠은 여섯 시간을 자지만 그 밖의 시간은 완전히 용맹정진으로 석 달 동안을 그렇게 하자는 것이 조실 스님의 지도 방법이십니다. 그래서 조실 스님께서 열반하신 뒤로도 그렇게 주욱 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다른데 선방은 용맹정진도 하고 잠도 조금씩만 자고, 참선 입선 시간을 (한번에) 3시간씩 이렇게 하기도 하고 그러는데 이 용화선원이 선방이 좋다고 와 보니 맨 잠만 자고 입선 시간도 겨우 8시간 밖에 안 된다.
그렇게 생각하시면 용화선원의 가풍(家風)을 잘 이해를 못 하신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그 가풍을 따르지를 못하고 실천을 안 해서 그렇지, 가풍이 무른 것이 아닌 것입니다.

이 도량(道場)에 들어와서 무슨 잡담을 할 시간이 있겠습니까? 그 전에 강월 스님이 입승을 할 때에 지대방이고 어디고 일체 잡담을 못하게 하고, 심지어 화장실에 가서도 말을 못하게 하고, 누구하고도 둘이 마주서서 말을 주거니 받거니 못하게 하고, 몇철 간을 그렇게 한번 해 봤습니다.
그러니까 정진할려고 애쓴 보살님네들은 참 좋다고 그러고 지금도 그렇게 했으면 좋다고 원하시는 보살님들도 상당수가 계십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은 유치원 학생이 아닙니다. 국민학교 학생도 아니고 중학교 학생, 고등학교 학생도 아니고 대학생도 아니고 대학을 졸업한 대학원 학생들이라 할 수가 있습니다.

대학원 학생한테다가 유치원 학생 다루듯이 해서 되겠느냐 그말이여.
그것은 여러분에 대한 대접도 아니고 도리가 아니기 때문에 특수한 일 아니고선 기본법 외에는 완전히 여러분에게 자유를 드려 가지고 자발적으로 여러분들이 조실 스님의 가풍에 적응하고 순종하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오셔서 나시면 잘 하신 분은 당신 좋고 여러분에게 모범이 되어서 좋고 또 용화선원의 가풍을 순종을 함으로써 용화선원을 빛내는 일이 되는 것이고, 그렇게 하는 것이 바로 불법을 빛나게 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무슨 큰 절을 짓고 돈을 많이 내서 그것이 불사(佛事)가 아니라, 여러분 한 분 한 분이 이 도량에 터억 들어서서 여법(如法)하게 참되게 정진하는 것, 그것이 바로 가장 참다운 불사를 이룩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거기에 불법이 일어나는 것이지 큰 절을 몇 억씩 들여서 절만 크게 진다고 해서 불법이 흥왕하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물론 그런 불사도 필요하지요. 필요하지만 그보다도 더 근본적으로 중요한 불사는 여러분 한 분 한 분이 진실한 불자(佛子)로서 수행을 알뜰히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야 견성(見性)을 하게 되고 견성을 해야 부처님이 탄생을 하시게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부터 아주 그 동안에 잘 하시는 분은 계속해서 잘 하실 것이고, 그 동안에 혹 그렇게 철저히 잘 못 하신 분은 오늘부터서 아주 완전히 새로 태어난 기분으로 여법하게 해 주실 것을 나는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단전호흡, 화두 의심>


아까 단전호흡을 하는데 가슴이 답답하고 꽉 맥힌 분, 그분은 호흡을 들어마실 때 배를 볼록이 하지 말고 배를 홀쪽하게 하고 또 내쉴 때 배를 볼록하게 하고 해서 반대로 이렇게 하시라는 것과,
숨을 들어마셔서 이리해서 차츰차츰 해서 저 배꼽 밑에까지 쪄 넣을라고 그러한 호흡법을 하시지 말고, 그냥 코로 스르르 하니 숨은 들어마시되 배꼽 밑의 단전, 아랫배만 약간 볼록...


볼록하게 맨들으라니깐 저 개구리 배에다가 바람 넣은 것처럼, 아랫배가 그냥 포대화상(布袋和尙)처럼 맨들라고 애를 쓰고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조금 약 2, 3센치 조금만 볼록하게 자기 느낌상으로만 그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고 내쉴 때도 너무 뱃가죽이 등어리에 가서 따악 붙도록 그렇게 억지로 헐라고 하시지 마세요. 약간 홀쪽하게 하는 듯만 하시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시면 그렇게 답답한 것은 저절로 없어지게 될 것이고.

그리고 ‘암만 화두를 들고 할라고 해도 화두가 잘 순일하게 들리지 않는다. 한 철, 두 철 내지 3년, 4년, 5년째 해도 영 화두가 순일하게 들리지 않고 자꾸 그런다.’ 그런 것을 호소하시는 분도 계시는데, 화두가 정말 순일무잡(純一無雜)하게 되는 것은 마지막 깨달으기 한 일주일 전부터서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진짜 순일무잡하게 되어서 화두를 들라고 안 해도 저절로 화두가 들리고, 뭐 놓고 들 것도 없이 그냥 새벽부터 저녁까지 저녁부터 잠을 자도 꿈속에서도 화두가 고대로, 자다가 눈을 새벽에 딱 뜨면 새로 화두 들 것도 없이 엊저녁에 들고 잠들었던 그 화두가 고대로 들어져 있는 것입니다. 아침에 눈 딱 떠도 들어져 있는 것입니다.

세수를 해도 고대로 있고, 양치질을 해도 고대로 있고, 화장실 가도 고대로 있고, 밥을 먹어도 고대로 있고, 뭐 소지를 해도 고대로 있고, 옆에서 떠들거나 말거나 전혀 상관이 없이 고대로 들어져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지경에 이르르면 일주일이 못 가서 툭 터지게 되는 것입니다.

설사 일주일 되어서 안 터지더라도 ‘빨리 터졌으면’ 그러한 생각을 가질 것이 없습니다. 그런 상태로 있으면 일주일을 가도 좋고, 열흘을 가도 좋고, 한 달을 가도 좋고, 계속 고대로 해 나가면은 언젠가는 지가 터지지 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순일무잡하게 되었을 때에 깨닫기를 바래거나, ‘누가 이럴 때에 나를 툭 깨닫게 해 줬으면’ 그런 생각을 가져서는 아니 된 것입니다. 고대로 해 나가는 것입니다.

공부 막 좀 될라고 하면 옆에서 떠들어 싸서 못한다고 하는데, 그것은 공부가 진짜 잘된 것이 아니에요. 떠든다고 화두가 달아나 버린다면은 그 화두는 아직도 지금 들렸다 안 들렸다 하기 때문에 그런 것인데,

그래서 이렇게 - 뭐 참선은 집에서는 못할 바 아니지마는, 그래도 여기 와서 조실 스님 법문을 들으면서 또 모두 여러 발심한 도반들과 같이 규칙생활을 하면서 가정의 모든 복잡한 것을 떠나서 이렇게 와서 하신 것이니,
서로 서로 목적이 같을 진대는 서로 서로 여법하게 잘해서, 나로 인해서 다른 분들이 공부를 잘하고, 다른 분들로 인해서 내가 공부가 잘 되도록 이렇게 되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화두가 안 들려도 그걸 성내거나 성화하시거나 번민, 번뇌심을 내실 필요가 없어요. 망상이 일어나면 그냥 고대로 놔둬 버리고 - 오늘 아침에 조실 스님께서 참 아주 요긴한 법문을 해 주셨는데,
망상 일어난 거 그걸 버릴라고 할 것이 아니고 고대로 놔두고, 그냥 다시 화두만 떠억 - 숨을 들어마셨다가 내쉬면서 ‘이뭣고?’ 화두만 딱 다시 한번 들은 것뿐이지, 일어나는 망상을 누를라고 하거나 쫓아낼려고 할 필요가 없다 그말이여.

쫓아낼려고 하고 누를라고 하면은 그것이 눌러지지도 않고 화두만 더 달아나 버린다 그말이여.
 


<장애 - 지계·정진력으로 이겨야>


그리고 자기가 지은 업(業)에 따라서 - 전생에 지은 업, 또 금생에 지은 업, 그런 업으로 해서 몸에 자기가 아닌 다른 영혼, 이런 것이 항시 자기 주변을 맴돌거나 자기에게 이렇게 붙거나 그러한 경우가 있습니다.
참선을 안 하신 세속에 사신 분 가운데에도 그런 분들이 상당수가 있고, 또 그것이 남이 보면은 전혀 모르지마는 자기 혼자만 아는 일이죠.

그것이 전생에 어떤 인연있는 영가 - 그것이 원결(怨結)이 있는 영가라든지, 서로 짝사랑을 하던 그런 영혼이라든지, 자기가 너무 그 사람에 대해서 너무 애착을 하고 집착을 하던 그런 영혼이라든지, 또는 무슨 원결이 있어 가지고 나한테 복수를 하기 위해서 나한테 따라붙은 그런 영혼이라든지,
그런 것이 요렇게 붙어서 항상 자기 주변에 이렇게 맴돌며 있는 그런 경우도 있고, 아주 언제나 자기한테 붙어 갖고 다니는 그런 경우도 있고, 뭣한 경우는 계속 귀에다가 뭐라고 계속 소곤대고 명령을 하고,

자기가 이렇게 살고 있지마는 실지는 하나도 자기 마음대로 못 하고, 먹는 것도 자기 마음대로 못 먹고, 그 영혼이 먹으라고 하면 먹고 먹지 말라면 안 먹고, 어디를 가자고 하면 가고 가지 말라고 하면 안 가고, 일체가 다 그 영혼에 - 특수한 그것이 신(神)인지 영(靈)인지 - 조종한대로 할 수밖에 없는 그런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애착(愛着)을 갖지 말아라. 물질에 대한 탐착·애착도 못쓰고 사람에 대한 애착과 탐착도 그것이 괴로움의 근본밖에는 아니 된 것입니다.

더군다나 남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자기의 잇속을 챙겨 가지고 남을 해롭게 하고 남을 갖다가 억울하게 탄압을 하고 심지어는 남을 죽이고 이러한 일은 참 해서는 아니 된 것입니다.
그때는 조금 이익을 얻었을런가 모르지마는 세세생생에 원결이 되어 가지고 기어코 그 앙갚음을 하게 되기 때문에 어찌 우선 조금 이익을 보기 위해서 그런 큰 고통을 받아서야 되겠습니까?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남에게 피해를 주지 말라. 남에게 고통을 주지 말아라.


남의 물건도 훔치지 말 것이며, 남에게 진심(瞋心)을 내지 말 것이며, 산목숨을 죽이지 말 것이며, 또 남을 거짓말하고 속이고 사기를 하지 말 것이며, 또 술을 마시면은 자기의 바른 정신을 놔 버리고 그래가지고 못할 짓 없이 온갖 본의 아니게 못된 행동이 나오기 때문에 ‘술을 마시지 말라’한 것이,
반드시 그것을 지키지 않으면 안 될, 생사해탈을 하기 위해서 생사윤회를 아니할라면은 그런 부처님의 5계(五戒)를 잘 지키셔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안 지켜 놓으면은 금생에도 그 과보(果報)를 받는 수가 있지마는, 내생에 두고두고 세세생생에 그런 참 괴로운 과보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다행히 금생에 이렇게 발심을 해서 선방에 나오셨지만, 과거에 지은 업연(業緣)으로 해서 그런 영혼이 우리한테 따라붙어 가지고 참선만 할라고 하면은 와 가지고 자기를 직접 간접으로 괴롭히는 그런 경우가 있습니다.
참선을 안 하고 그럭저럭 지내면은 또 괜찮은데 참선만 할라고 떠억 앉으면은 와서 괴롭히는 수가 있거든.

그건 왜 그러냐 하면은, 참선을 해서 확철대오를 해 버리면 자기가 발붙일 곳이 없기 때문에 그래서 이 참선을 해서 차츰차츰 공부가 잘 되어가면 ‘도고마성(道高魔盛)이다. 도가 높아갈수록에 마군이가 성하게 된다’ 이거거든.

그렇다고 해서 참선을 안 할 수가 있습니까? 그럴수록에 더 신심을 돈독히 해 가지고 자꾸 올바른 방법으로 꾸준히 공부를 해 나가고, 옆에 와서 집적대거나 귀에다 대고 소곤거리거나 말거나, 그것을 가지고 탓을 해서는 안 돼요.
그놈을 탓하고 억지로 떼어 내버릴려고 할수록 그놈은 더욱 꽉 붙잡고 늘어지기 때문에, 떼어 버릴라고 하지 말고 그냥 놔둬 버려.

놔둬 버리고 단전호흡을 하면서 자꾸 화두를 간절히 일심(一心)으로 화두를 참구해 나가면, 그렇게 해서 화두가 점점 순숙해져서 순일무잡하고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면 그까짓 잡신·영혼이 어디에 들러붙을 것이냐 그말이여.

오직 그것을 이겨내는 방법은 정진력(精進力), 이 최상승 활구참선(活句參禪)으로 밀고 나가는 도리 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조금도 조급한 생각내지 말고, 원망하고 한탄하지도 말고, 짜증내고 번민하지 말고서, 오직 바른 자세와 바른 호흡법을 하면서 화두를 간절히 참구해 나가면,
하루를 그렇게 지내고 이틀을 그렇게 지내고 한 달, 석 달을 그렇게 지내고 1년, 이태, 3년을 그렇게 지내고 10년 세월을 그렇게 쪼옥 해 나가면 자연히 그런 원결이 있는 영혼도 거기에 감복(感服)이 되어가지고 그냥 원결을 풀고 좋은 곳으로 떠나게 되는 것입니다.

드릴 말씀이 한이 없지만 오늘은 이만 말을 맺고자 합니다.(35분15초~73분48초)(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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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이뭣고?’ 화두 ; 분류 ‘이뭣고 화두’ 참고.
*남악회양, 육조 스님, 하택신회 ;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십마물 이마래(什麼物伊麼來) : 십마(什麼)는 의문의 말로 '무엇이냐'의 뜻이며, 이마(伊麼)는 임마(恁麼)와 같은 말로 '이렇게'의 뜻으로, 십마물 이마래(什麼物伊麼來)라는 말은 곧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느냐?'하는 말。
*망지소조(罔知所措) ; 너무 당황하거나 급하여 어찌할 줄을 모르고 갈팡질팡함.
*인가(印可 도장 인/옳을•인정할 가) ; 스승이 제자의 깨달음을 인정함.
*조사선(祖師禪) ; 교외별전(教外別傳) • 불립문자(不立文字)로서 말 자취와 생각의 길이 함께 끊어져, 언어와 문자에 의하지 않고 직접 스승으로부터 제자에게로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깨우치는 것을 전하고 있기 때문에 조사선이라 한다.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스승)으로부터 화두•공안(公案)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공안)을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공안 또는 화두(話頭)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세세생생(世世生生) ; 많은 생애를 거치는 동안. 태어날 때마다. 세세(世世)토록.
*육도윤회(六途輪廻, 六道輪廻) ; 선악(善惡)의 응보(應報)로 육도(六途 ;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의 고락(苦樂)을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것.
*생사고해(生死苦海) ; 중생이 태어나서 죽어 윤회하는 영역으로서의 세개의 세계, 삼계(三界 ; 욕계欲界•색계色界•무색계無色界)를 가리킴. 생사와 그 괴로움이 무한한 것을 바다에 비유함.
*유전(流轉) ; 생사 인과(因果)가 서로 끊임없이 이어짐.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를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것.
*법(法) ; (산스크리트) dharma, (팔리) dhamma의 한역(漢譯). ①진리. 진실의 이법(理法). ②선(善). 올바른 것. 공덕. ③부처님의 가르침. ④이법(理法)으로서의 연기(緣起)를 가리킴. ⑤본성.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참구(參究 헤아릴 참,궁구할 구) ①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드는 것. ②참선하여 화두(공안)을 꿰뚫어 밝히기 위해 집중함. 화두 의심을 깨뜨리기 위해 거기에 몰입함.
*화두(話頭)를 타파(打破) ;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스승)으로부터 화두•공안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그 화두(話頭)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 하지 아니하고,
오직 꽉 막힌 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을 타파하여 확철대오(廓徹大悟)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고] 화두라 하는 것은 무엇이냐? 공안(公案)이라고도 말하는데, 화두는 깨달음에 이르는 관문이요, 관문을 여는 열쇠인 것입니다.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그 화두(話頭)에 대한 의심(疑心)을 관조(觀照)해 나가는 것, 알 수 없는 그리고 꽉 맥힌 의심으로 그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그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더 이상 그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더 이상 의심이 커질 수 없고, 더 이상 깊을 수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내 가슴속이 가득 차고, 온 세계가 가득 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눌 때에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탈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잘 때에는 꿈속에서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에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큰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그 항아리를 큰돌로 내려치면은 그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를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52분12초~) [‘참선법 A’ 에서]

이뭣고? 이것이 무엇인고?
“이 뭣고....?” 이렇게 의심을 해 나가되, 이런 것인가 저런 것인가 하고 이론적으로 더듬어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다못 “이 뭣고...?” 이렇게만 공부를 지어나가야 됩니다.
여기에 자기의 지식을 동원해서도 안되고, 경전에 있는 말씀을 끌어 들여서 “아하! 이런 것이로구나!” 이렇게 생각해 들어가서도 안됩니다.

공안은 이 우주세계에 가득 차 있는 것이지마는 문헌에 오른, 과거에 고인(古人)들이 사용한 화두가 천칠백인데, 이 ‘이뭣고?’ 화두 하나만을 열심히 해 나가면 이 한 문제 해결함으로 해서 천칠백 공안이 일시(一時)에 타파가 되는 것입니다.

화두가 많다고 해서 이 화두 조금 해 보고, 안되면 또 저 화두 좀 해 보고, 이래서는 못 쓰는 것입니다. 화두 자체에 가서 좋고 나쁜 것이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한 화두 철저히 해 나가면 일체 공안을 일시에 타파하는 것입니다.(76분34초~) [ ‘참선법 A’ 에서]
*마삼근(麻三斤),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 판치생모(板齒生毛) ; 분류 ‘화두(공안)’ 참고.
*의심(疑心) :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이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수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이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자기의 본참화두에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간절(懇切 간절할•정성스런 간/정성스런•절박할 절) ; ①지성(至誠)스럽고 절실(切實)함 ②정성이나 마음 씀씀이가 더없이 정성스럽고 지극함 ③마음속에서 우러나와 바라는 정도가 매우 절실함.
*소소영령(昭昭靈靈) ; 한없이 밝고 신령함. 소소(昭昭)도 영령(靈靈)도 함께 밝은 뜻. 밝은 모양. 진여(眞如)•법성(法性)•불심(佛心)을 의미하는 말.
*현전(現前) ; 앞에 나타나 있음.
*입선(入禪) ; 참선 수행(좌선)에 들어가는 것, 좌선(坐禪)을 시작하는 것. 참선(좌선)수행.
*방선(放禪) ; 좌선을 하거나 불경을 읽는 시간이 다 되어 공부하던 것을 쉬는 일.
*열반(涅槃) ; ①타고 있는 불을 바람이 불어와 꺼 버리듯이, 타오르는 번뇌의 불꽃을 지혜로 꺼서 일체의 번뇌나 고뇌가 소멸된 상태. ‘니르바나(nirvāna)’의 음역어로, 불가(佛家)에서 흔히 수행에 의해 진리를 체득하여 미혹(迷惑)과 집착(執着)을 끊고 일체의 속박에서 해탈(解脫)한 최고의 경지를 이르는 말이다. ②스님의 죽음을 수행을 통해 해탈(解脫)에 이르게 됨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
*발심(發心) ; ①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②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원어)發起菩提心발기보리심, 發菩提心발보리심.
*본(本) ; 모범으로 삼을 만한 대상.
*입승(立繩) ; 선원(禪院)에서 선원의 규율과 질서를 다스리는 직책, 또는 그 일을 맡은 스님.
*묵언(默言) ; 말을 하지 않음.


------------------(2)

*용맹정진(勇猛精進) ; 견고한 의지로 한순간도 불방일(不放逸)하는, 열심으로 노력하는 정진.
*경책(警策 깨우칠 경,채찍 책) ; 타이르고 채찍질하여 깨우치게 하는 것.
*가풍(家風) ; 한집안에서 오래 지켜 온 생활 습관이나 규범.
*도량(道場) : ①붓다가 깨달음을 이룬 곳, 곧 붓다가야의 보리수(菩提樹) 아래를 말함. ②불도(佛道)를 닦는 일정한 구역. 수행하는 곳. ③절. 사찰. [참고] ‘도장’으로 일지 않고 ‘도량’으로 읽음.
*지대방 ; 절의 큰방 머리에 있는 작은 방. 이부자리, 옷 등의 물건을 넣어 두는 곳이며, 스님들이 잠깐 휴식을 하기도 하는 곳이다.
*불사(佛事) ; ①불법(佛法)을 알리는 일. 제사, 법회 따위의, 불가(佛家)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가리킨다. ②부처님이 중생을 교화(敎化)하는 일.
*여법(如法) ; 부처님의 가르침에 맞음.
*견성(見性)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음. 미혹을 깨뜨리고 자신의 청정한 본성을 간파하여 깨달음.
*포대화상(布袋和尙) ; 중국 후량(後梁) 때의 스님. 본이름은 계차(契此). 절강성(浙江省) 명주(明州) 출신. 체구가 비대하고 배가 불룩하게 나왔으며, 항상 포대를 지팡이에 걸어서 어깨에 메고 동냥한 것을 그 속에 담고 떠돌아다니면서 수행한 선승(禪僧). 916년에 명주 악림사(嶽林寺)에서 입적함.
*순일무잡(純一無雜 순수할 순,하나 일,없을 무,섞일 잡) 대상 그 자체가 순일(純一)해 전혀 이질적인 잡것의 섞임(雜)이 없음(無).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도반(道伴) ; 함께 불도(佛道)를 수행하는 벗. 불법(佛法)을 닦으면서 사귄 벗.
*번뇌(煩惱 번거러울 번,괴로워할 뇌) ; ①마음이 시달려서(煩) 괴로워함(惱). 나쁜 마음의 작용. 몸과 마음을 번거롭게 하고 괴롭히는 정신작용. 근원적 번뇌로서 탐냄(貪)•성냄(瞋)•어리석음(癡)이 있다.
②나라고 생각하는 사정에서 일어나는 나쁜 경향의 마음 작용. 곧 눈 앞의 고(苦)와 낙(樂)에 미(迷)하여 탐욕•진심(瞋心)•우치(愚癡)등에 의하여 마음에 동요를 일으켜 몸과 마음을 뇌란하는 정신 작용.
*망상(妄想 망녕될 망,생각 상) ; ①이치에 맞지 아니한 망녕된(妄) 생각(想)을 함, 또는 그 생각. ②잘못된 생각.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하다고 잘못 생각하는 것.
*업(業) ; (산스크리트어:karma카르마) ; ①몸과 입과 마음으로 짓는 행위와 말과 생각, 일체의 행위.
②행위와 말과 생각이 남기는 잠재력. 과보를 초래하는 잠재력.
③선악(善惡)의 행위에 따라 받는 고락(苦樂)의 과보(果報).
④좋지 않은 결과의 원인이 되는 악한 행위. 무명(無明)으로 일으키는 행위.
⑤어떠한 결과를 일으키는 원인이나 조건이 되는 작용. 과거에서 미래로 존속하는 세력.
*원결(怨結 원망할 원/맺을·번뇌 결) ; 원망(怨望)의 마음이 얽혀 풀리지 않는 것을 말함.
*애착(愛着) ; 사랑하여 집착함. 애집(愛執).
*앙갚음 ; 남에게 해를 받은 만큼 저도 그에게 해를 다시 줌.
*과보(果報) ; 인과응보(因果應報, 전생에 지은 선악에 따라 현재의 행과 불행이 있고, 현세에서의 선악의 결과에 따라 내세에서 행과 불행이 있는 일).
*업연(業緣) ; 업보(業報)의 인연(因緣). 선업은 낙과(樂果)의 인연을 부르고 악업은 고과(苦果)의 인연을 부른다.
*타성일편(打成一片) : 참선할 때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만이 독로(獨露)한 경계.
*감복(感服) ; 마음속으로 감동하여 탄복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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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싼또샤
대중 생활2014.05.08 16:53

§(240) 아만을 꺾고 하심,  마음이 되어야 공부가 옳게 되어가는  / 동사섭 / (게송)휴설인지단여장~ / 입을 다물어라 / 방선 때도 항상 화두를 들어야.

속담에 ‘양반 못된 것이 장바닥에 가서 큰소리치고, 개 못된 것이 들판에 가서 짖는다’
다른 사람의 잘하고 잘못하고 한 것을 말하지 말어라.(休說人之短與長)  아무 이익이 없을 뿐만 아니라 재앙을 불러들이게 되는 것이다.(非徒無益又招殃)
만약 능히 병마개 틀어막듯이 입을 그렇게 잘 막아 버리면,(若能守口如甁去)  이것이 내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데 최고의 방법이니라.(此是安身第一方)
고인(古人)이 말씀하시기를 『모든 병은 입으로부터 들어오고, 모든 재앙은 입으로부터 나온다』

‘석 달 안거(安居)가 알차게 되었느냐 못했느냐’하는 판가름은 ‘방선 시간’을 어떻게 지내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송담스님(No.240)-84년 하안거 결제 및 백일기도 입재 법회에서.

(1) 약 15분.  (2) 약 6분.

(1)------------------

금년 여름엔 용화사 보살선원(菩薩禪院)이 지대방을 터 가지고 큰방을 만들었고, 지대방은 저 뒤에 별채에다가 지대방을 크게 해서 사물함도 거기다가 다 하고 또 세수하고 씻는 것도 바로 거기 옆에다 넓게 해서 잘 해놓았습니다.

해마다 방부(房付)를 들이는 보살님네 수효가 늘어나고, 또 해마다 좋은 보살님네들이 오시고, 또 해를 거듭할수록 모든 질서가 잘 잡혀가고, 그래서 원장으로서 너무 참 기쁜 마음이 있어서 더 공부를 잘 하시도록 이렇게 모든 선방을 잘 했습니다.
여러분들은 더욱 신심을 돈독(敦篤)히 해서 열심히 또 법답게 정진을 잘 해주시기를 부탁을 합니다.

이 팔도(八道)에서 각성바지가 모다 모였어. 다 여러분의 가정에 돌아가시면 다 집안 어른이고, 다 집안에서는 큰소리 한번 치면 집안 식구가 꼼짝을 못하고 심지어 거사님까지도 다 꼼짝을 못하시겠지만,
이 선방에 와서는 큰소리칠라고 오신 것이 아닙니다.

첫째 하심(下心)을 하고 아만(我慢)을 꺾고 빈 마음으로-마음속이 허공과 같이 텅 비어서, 빈 마음이 되어야 공부가 옳게 되어가는 것입니다.

각자 자기 집에서 큰소리친다고 해서 여기서도 목에다 힘을 주고, 꺼떡허면 눈을 곤두세우고 큰소리치고, 옆의 사람 꼼짝 못허게 허고, 자기 권위를 세울려고 그러고, 그러헌 마음을 가지신다면 여기에 와서 방부를 들이고 결제(結制)를 허는 아무 보람이 없는 것입니다.
자기 집에서 큰소리칠 수 있을수록에 여기서는 하심을 하고, 옆은 분이나 대중의 뜻을 받들고, 행여나 자기로 인해서 옆의 분들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잘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해마다 점점 잘 되어가고 있지만 금년에는 더욱 잘 해주시기를 바래서 이렇게 말씀을 드린 것입니다.

속담에 ‘양반 못된 것이 장바닥에 가서 큰소리치고, 개 못된 것이 들판에 가서 짖는다’고 그런 말이 있습니다만은, 참! 이 선방에 오셔서는 무엇이건 간에, 그 선원의 법도(法度)에 자발적으로 따라 주셔서 순종을 허면서,
좀 불편한 점이 있고 내 마음에 안 드는 점이 있다 하더라도, 내가 편헐려고 여기를 온 것이 아니고 또 큰소리칠려고 온 것이 아니니까,
‘무엇이던지 일부러 고생을 사서라도 한번 해봐야겠다. 이것을 이기는 것도 도(道)에 들어가는 한 단계다’ 이렇게 생각을 하시고 기쁜 마음으로 법도에 순종을 하고 대중과 같이 행동을 하시기를 부탁을 드립니다.

그리고 비구(比丘) 스님네 선방에서도 역시 보살님네와 같이 이 말이 적용이 되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다른 데 선방에 다니신 스님네들은 용화사에 와서 지내시면, 무엇인가 좀 다른 데하고 다른 점이 있는 것을 혹 발견하실런지 모르겠습니다마는,
송광사는 송광사대로 또 해인사는 해인사대로 또 통도사나 범어사는 거기대로 또 불국선원은 불국선원대로 그 선원마다 가풍(家風)이 있고 법도가 있어서, 다른 점이 있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쪼끔 자기 마음에 안 들더라도, ‘아! 여기는 이렇게 하는구나.’
내 마음에는 쪼끔 언짢지마는, ‘여기의 법대로 한번 따라 보는 것도 또한 좋은 일이다. 나라고 해서 이렇게 못할 것이 뭐 있느냐?’ 그렇게 의젓한 마음으로 느긋한 마음으로 넓은 마음으로 또 그렇게 한번 해 보거든.

이러한 좀 느긋한 마음을 가지고 정진을 허시면 훨씬.... 앞으로 우리는 내 자신의 생사문제 뿐만이 아니라 일체 중생을 제도할 그러헌 대원(大願)을 가지고 수행을 해 나가는 수행자이기 때문에,
그 중생들은 각기 업(業)이 달라서 천 사람이면 천 사람, 만 사람이면 만 사람, 얼굴이 다르듯이 그 성격도 다르고, 그래서 그 많은 중생을 제도헐랴면 나도 그 중생과 동사섭(同事攝)을 해야 하거든.
그 중생과 뜻을 맞춰 가면서 결국은 그 중생을 제도해야 하기 때문에, ‘내’라고 하는 것이 다 비워져 없어져 버려야만 되거든.

당장 이 선방에 와서 참선해 나갈 때부터 내 마음, 내 주견(主見), 내 선입관을 버려 버리고 이 선원의 법도에 따르는 연습부터 해야, 그래야 나중에 일체중생을 제도할 때 동사섭 할 수 있는 그러한 능력이 갖추어지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잘못된 것도 아무 소리 말고 그저 그러시라는 것은 아닙니다.
얼마든지 개선해야 할 좋은 점이 있으면 입승(立繩) 스님을 통해서 좋은 의견을 제출하시면 또 이 원장이나 사무실에서도 고칠 것은 얼마든지 고칠 수가 있는 것입니다마는,
그런 것은 매우 신중하게 지금 당장만을 생각하지 않고 두고두고 장래를 위해서 참으로 그 의견이 좋은 일이고 꼭 고쳐야 할 만한 일이면, 그런 의견은 좋은 기회를 타서 건의를 할 수는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조실스님 때부터서 내려오는 전통은 될 수 있으면 지켜 가면서 그것을 잘 운용을 해 나가는데 묘(妙)가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자꾸 법도를 뜯어고치고 자꾸 제도를 이리 고쳤다 저리 고쳤다 허는 것은 좋은 것 같지마는 그것은 별로 좋은 것이 아닌 것입니다.
기본은 항시 서 있으면서도 우리가 신심과 지혜로써 운용을 잘 해 나간다면 얼마든지 다 보완이 되어 가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휴설인지단여장(休說人之短與長)이라  비도무익우초앙(非徒無益又招殃)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약능수구여병거(若能守口如甁去)하면  차시안신제일방(此是安身第一方)이니라
나무~아미타불~

휴설인지단여장(休說人之短與長)하라. 비도무익우초앙(非徒無益又招殃)이니라.
다른 사람의 잘하고 잘못하고 한 것을 말하지 말어라. 아무 이익이 없을 뿐만 아니라 재앙을 불러들이게 되는 것이다.

약능수구여병거(若能守口如甁去)하면, 만약 능히 병마개 틀어막듯이 입을 그렇게 잘 막아 버리면,
차시안신제일방(此是安身第一方)이니라. 이것이 내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데 최고의 방법이니라.

고인(古人)이 말씀하시기를 『모든 병은 입으로부터 들어오고, 모든 재앙은 입으로부터 나온다』 하셨습니다.

‘병(病)이 입으로 들어온다’하는 것은 음식을 잘못 먹어가지고-맛있는 것을 과식을 하고, 좋다 한다고 함부로 먹고-음식을 잘못 먹어가지고 그래가지고 병이 나는 수가 너무너무 많고,

또 ‘모든 재앙(災殃)은 입에서 나온다’ 말을 잘못 해 가지고 그것이 원인이 되어 시비가 일어나고 부부 간에도 말 때문에 싸움을 참 많이 하고, 며느리와 시어머니 관계도 그렇고, 친구 간에도 그렇고, 형제 간에도 그렇고, 동서 간에도 그렇고, 집안에 모다 이러쿵저러쿵 시비가 있는 것은 대부분 말 때문에 그런 거여.

말을 풀쑥 한 것이 그것이 사람에 의해서 이리 전해지고 저리 전해지고 하면은 본의 아니게 서로 오해를 사게 되고, 그래 가지고는 속으로 꽁하니 섭섭한 마음을 품고,
차라리 가서 따지고 한바탕 싸움을 하고 나면 다 별것이 아닌데, 차마 따질 수는 없고 계속 속으로 ‘저 사람이 나한테 그렇게 했단 말인가?’ 해 가지고는, ‘두고 보자’해서 꽁해 가지고 1년, 3년 되어도 속에 섭섭한 것이 풀리지를 않고, 죽을 때까지 그 마음을 버리지를 못하고,
그래가지고 나중에 뭔 일이 있을 때에는 그 섭섭한 생각이 있기 때문에 좋게 해줄 일도 좋게 안 해주고,

여기에 모이신 분은 마음보를 그렇게 쓰실 분은 안 계시겠지만 그래도 사람이라는 게 섭섭한 말을 이리저리 전해 들으면 속상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입도 꼭 다물어 버리고 기왕이면 귀까지 다물어 버렸으면 참 좋겠지만,
그 어떤 사람이 귀를 꽉 먹게 되었는데, 어렸을 때는 대단히 귀가 잘 들렸었는데 중간에 귀가 꽉 먹었어요. 그래 가지고는 여간 귀에다 큰 소리를 질러야 겨우 좀 들리고 그런데, 참 발심을 해서 공부도 열심히 헐려고 그러는데, 그 분이 정진을 기도를 열심히 하고 그랬더니,

그 공부를 할 때 그리고 기도를 할 때, 항시 「대관절 내가 전생에 무슨 잘못이 있어서 금생에 내가 귀를 먹었나?」 항시 그것이 궁금해서 그것이 알고 싶어서 간절한 마음이 항시 마음에 떠나지 아니한 상태에서 참선도 하고 기도도 하고 그랬는데,
아! 우연히-전생에 자기가 참선을 했었는데, 옆에서 어떻게 떠드는 바람에 자꾸 그리 신경이 쓰이고 그래서 ‘어떻게 해야 저놈의 소리를 안 들을고’하고 항시 그렇게 생각을 했는데,
아! 그것이 원인이 되어가지고 금생에 귀가 절벽이 되었다 하는 것을-스스로 그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것입니다.(33분19초~48분13초)


(2)------------------

참선불용다언어(參禪不用多言語)여  지재심상묵연간(只在尋常黙然看)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조주무자(趙州無字)를 여망각(如忘却)하면  수구무언아불간(雖口無言我不干)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참선(參禪)은 불용다언어(參禪不用多言語)여. 참선하는 데에는 말을 많이 아니한 것이 제일이다 그말이여.

지재심상묵연간(只在尋常黙然看)이여. 다못 앉어서나 서서나 평상시에 항시 묵연(黙然)하게 화두를 관(觀)해라.

조주무자여망각(趙州無字如忘却)하면, 말을 안 한 것이 공부에 유익하고,
그렇지만 그 말 안 하는 가운데에 화두(話頭)를 놔 버리면, 아무리 말을 안 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또 내가 관계치 못할 일이다-그 옳다고 할 수가 없다.

선방(禪房)에 방부를 들이신 보살님.
「입선(入禪) 시간」에는 말씀을 안 하시겠지만 그 「방선(放禪) 시간」을 어떻게 유용하게 지내야 하느냐?
거기에 ‘석 달 안거(安居)가 알차게 되었느냐 못했느냐’하는 판가름은 방선 시간을 어떻게 지내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방선 시간에-이제 지대방이 저리 떨어져 나갔으니까-이제 좀 떠들어도 되겠구나.’ 지금부터서 이런 생각을 허실런지 모르지만 거기도 선방(禪房)입니다.
거기도 넓고 잘해 놨으니까 일이 있으면 거기를 가시겠지만, 거기 가서도 일 보면서도 마음으로는 항시 화두를 놓치지 말고,

그리고 거기라고 해서 이 소리 저 소리 잡담을 하면 허고 난 뒤에는 ‘공연히 내가 쓸데없는 소리를 했구나.’ 말은 허다 보면 쓸데없는 소리가 나오고, 또 쓸데없는 소리허다 보면 괜히 남의 오장 건드리는 소리가 나와서 이러쿵저러쿵 시비가 일어나는 법이니까,
지대방에 가셔도 어쨌든지 말 많이 허시지 말고 바로 또 선방에 오셔서 정진을 허시도록.

선방은 ‘방선 시간’에도 항시 그 선방에서는 말허지 않도록. 도저히 말을 않고서는 안 될 일이 있을 때는 저 지대방에 가서 말씀을 하시고,
그래서 입방선(入放禪)이 없이 큰방에서는 언제라도 딱 자기 자리에서 참선을 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그렇게 만드실 것이며,

한 사람이고 두 사람이고 앉어 있으면 누구라도, 아무도 안 앉어있다 하더라도 그 안에서는 대중적인 무슨 때를 제외하고는 일체 사담(私談)을 하지 않도록, 그렇게 해서 명실공히 알차고 짬진 안거가 되도록 부탁을 합니다.

백일기도도 아울러서 봉행이 되니까 결제(結制)이면서 기도요, 기도이면서 또 결제이니까,
이 자리에 모이신 분은 참선 결제에다가 백일기도까지 하는 그러한 마음으로 석 달 동안을 하루와 같이 경건한 마음으로 해 주신다면 업장(業障)도 소멸이 되고, 또 세속적인 모든 크고 작은 원(願)도 성취가 되면서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시게 될 것입니다.(69분29초~75분28초)(끝)


------------------(1)

*보살선원(菩薩禪院) ; 스님이 수행하는 선원과 같은 기간과 방식으로 보살님(신도)들이 정진 할 수 있는 선원. 용화선원에는 스님선원, 보살선원이 있고 또 매일 언제든지 와서 정진할 수 있는 시민선원이 있다.
*지대방 ; 절의 큰방 머리에 있는 작은 방. 이부자리, 옷 등의 물건을 넣어 두는 곳이며, 스님들이 잠깐 휴식을 하기도 하는 곳이다.
*방부(房付 방•거처 방,줄•부탁할 부) ; 수행자가 절에 머물며 공부할 것을 인사드리고 허락을 구하는 일.
*돈독(敦篤)히(도타울 돈,도타울 독) ; 도탑고 성실하게. *도탑다 ; (정이나 사귐이)깊고 많다.
*팔도(八道) ; ①우리나라 전체. ②[역사] 조선 시대, 전국을 여덟 개로 나눈 행정 구역. 경기도, 충청도, 경상도, 전라도, 강원도, 황해도, 평안도, 함경도를 말한다.
*각성바지(各姓--) ; 성이 각각 다른 사람.
*하심(下心) ; 자기 자신을 낮추고 남을 높이는 마음. 자기의 마음을 스스로 겸손하게 갖는 것.
*아만(我慢 나 아,거만할·게으를 만) ; 스스로를 높여서 잘난 체하고, 남을 업신여기는 마음.
*결제(結制 맺을 결,만들•법도 제) ; 안거(安居)에 들어감. 하안거는 음력 4월 15일에 들어가며, 동안거는 음력 10월 15일에 들어간다.
*법도(法度) ; 규칙•법칙•율법•법규•결정들.
*비구(比丘) ; 출가하여 구족계(具足戒)를 받은 남자 스님. 걸식하는 남자 수행승.
산스크리트어 bhikṣu 팔리어 bhikkhu의 음사. 걸사(乞士)·파번뇌(破煩惱)·파악(破惡)·포마(怖魔)라고 번역.
*가풍(家風) ; 한집안에서 오래 지켜 온 생활 습관이나 규범.
*업(業) ; 업(業)은 행위(行爲)이다. 우리의 행위, 행동에 의해 일어나는 일종의 세력(勢力) 또는 형성력(形成力)을 말한다. 그리고 이 세력에 의해 하나의 행위는 반드시 그 때가 이르면 그에 상응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〇업의 종류 ; (1)중생이 행하는 모든 행위를 3가지로 나누어, ①몸으로 행하는 모든 행위를 신업(身業) ②입(口)을 통해 말로 하는 행위를 구업(口業) ③생각으로 짓는 모든 것을 의업(意業)이라 한다.
이 3가지 업(業)을 신·구·의 삼업(三業)이라 하는데, 삼업(三業)은 결국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우리의 일상생활’이다
(2)업에 의하여 과보(果報)를 받는 시기에 따라 ①금생(今生:지금 살고 있는 생)에 업을 지어 금생에 과보를 받는 순현업(順現業) ②금생에 업을 지어 다음 생에 받는 순생업(順生業) ③금생에 업을 지어 삼생(三生) 후에 받는 순후업(順後業)이 있다. 위의 삼시업(三時業)은 갚음을 받는 시기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정업(定業)이라 하고, 여기에 대해서 시기가 정해져 있지 않은 것을 부정업(不定業)이라 한다.
(3)업의 성질(性質)에 따라 ①선심(善心)에 의해서 일어나는 선업(善業)과, ②악심(惡心)에 의해서 일어나는 불선업(不善業, 악업(惡業))과, ③선악(善惡) 어떤 것도 아닌 무기심(無記心)에 의해서 일어나는 무기업(無記業)의 셋을 삼성업(三性業)이라고 한다. 그 과보도 선업은 좋은 과보를 받고, 악업은 고(苦)의 과보를 받는다.
*동사섭(同事攝) ; 보살(菩薩)이 중생을 제도하고 섭수(攝受)하기 위하여 행하는 4섭(四攝-보시布施, 애어愛語, 이행利行, 동사同事)의 하나.
불보살(佛菩薩)이 중생의 근기(根機)에 따라 몸을 나타내되, 그들과 사업·이익을 같이하면서, 일심동체가 되어 고락(苦樂)을 같이하고 화복(禍福)을 함께 함으로써 진리의 길로 이끌어 들이는 것을 말한다.
*주견(主見) ; 자기의 주장을 담은 의견.
*입승(立繩) ; 선원(禪院)에서 선원의 규율과 질서를 다스리는 직책, 또는 그 일을 맡은 스님.
*(게송) 휴설인지단여장~ ; [사명당대사집(四溟堂大師集)] (권4) '贈許生' 사명대사(1544-1610) 게송 참고.
*재앙(災殃) ; 뜻하지 않게 생긴 불행한 변고. 또는 천재지변으로 말미암아 생긴 불행한 사고.
*마음보 ; 마음을 쓰는 속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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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참선불용다언어~ ; [사명당대사집(四溟堂大師集)] (권6) '贈默山人' 사명대사(1544-1610) 게송 참고.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주로 좌선(坐禪) 수행을 말한다.
*묵연(默然)하다 ; 잠잠히 말이 없다.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선방(禪房) ; ①참선(參禪)하는 방. 선실(禪室)과 같은 말. ②‘선방에 간다’라는 말은 ‘참선하러 절에 간다’ 또는 ‘참선에 들어간다’라는 표현이다.
*입선(入禪) ; 참선 수행(좌선)에 들어가는 것, 좌선(坐禪)을 시작하는 것. 참선(좌선)수행.
*방선(放禪) ; 좌선을 하거나 불경을 읽는 시간이 다 되어 공부하던 것을 쉬는 일.
*안거(安居 편안할 안,있을 거) ; (산스크리트) varsa 원뜻은 우기(雨期). ① 인도의 불교도들은 4월 15일(또는 5월 15일)부터 3개월 간 우기(雨期)때에 외출하면 풀이나 나무,작은 곤충을 모르고 밟아 죽일까 두려워 했고 그래서 동굴이나 사원에 들어가서 수행에 전념했다. 이것을 우안거(雨安居)라고 한다. ② 선종(禪宗)에서는 음력 4월 15일부터 7월 15일까지를 하안거(夏安居), 10월 15일부터 다음해 1월 15일까지를 동안거(冬安居)라고 해서 각각 90일간 사원에 머물르면서 외출을 금지하고 오로지 좌선을 중심으로 한 수행에 전념한다. 처음을 결제(結制), 끝을 해제(解制)라 한다.
*오장을 건드리다 ; ‘오장(五臟)을 긁다’, ‘오장을 뒤집다’와 같은 표현으로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의) 비위를 건드려서 기분 나쁘게 하다’라는 뜻.
*사담(私談) ; 사사로이 이야기함. 또는 그런 이야기.
*업장(業障) ; 전생(前生)이나 금생(今生)에 행동•말•마음(신구의,身口意)으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이 세상에서 장애(障礙)가 생기는 것.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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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싼또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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