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두(공안)2015.05.12 11:01

§(119) 마조원상(馬祖圓相) 공안 / 경봉 스님과의 일화 / 참선은 결정코 내가 나를 깨닫는 유일한 길 / 이 세상 어떠한 일보다 우선해서 우선 나부터 깨달라야.

참선은 명예와 이양을 위한 것도 아니고, 지식과 수단을 위하는 것도 아니고, 오직 내가 나를 깨닫는 길이고, 내가 나를 깨달은 뒤에는 일체 중생을 제도(濟度)하는 커다란 목적과 의무를 수행할 따름인 것입니다.
첫째 내가 나를 깨닫지 못하고 남을 제도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자기가 능히 헤엄을 칠 줄 아는 사람이라야 물에 빠진 사람을 건지기 위해서 물에 들어갈 수가 있습니다.
내가 나를 깨닫는 이 참선은 금생에 사람 몸 받을 때 하지 아니하면—이것은 영원히 다시 사람 몸을 받을지, 다시 또 이 불법을 만나게 될지, 정말 막연하고 막연할 따름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세상의 어떠한 일보다도 우선해서 참선을 철저히 해야 한다고 하는 까닭이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만큼 건강하고, 이만큼 살고 있을 때, 그리고 선지식(善知識)의 법문을 들을 수 있을 때, 하루하루를 정말 알뜰하고 착실하게 공부를 지어가야만 되는 것입니다.
깨달음은 이론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요, 오직 본참화두를 여법(如法)하게 거각하고 정진을 함으로써만이 눈이 열리는 것입니다.
**송담스님(No.119)—80년 1월 관음재일 법어(80.01.24)


약 19분.



방금 조실 스님의 법문을 통해서 마조원상(馬祖圓相) 법문에 대해서 여러 차례 말씀을 들었습니다.

마조(馬祖) 스님은 중국의 육조(六祖) 스님의 제자, 회양(懷讓) 스님의 제자로서,
‘마구답살천하인(馬駒踏殺天下人)이라. 망아지가 천하 사람을 밟아 죽인다’고 하는 달마 스님께서 그렇게 예언을 하셨다고 합니다.

‘후대에 가서 마조라고 하는 대도인(大道人)이 나와 가지고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 이 정법을 천하에 선양한다’고 하는 뜻으로 예언을 하셨던 것입니다.

그 마조 스님께서 원상(圓相)을 그려놓고 원상, 동그라미를 그려놓고 “이 속에 들어가도 치고, 이 속에 이 둥그라미 안에 들어가지 아니해도 치겠다” 이렇게 어떤 승려, 도를 배우는 승려 앞에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그 승려는 그 원상 안으로 뛰어들어가서 딱 앉았습니다. 마조 스님은 주장자로 그 승려를 한 대 후려팼습니다.

그 승려는 탁! 마조 스님을 쳐다보면서 “스님은 저를 치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단호하게 말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마조 스님은 입을 딱 다물고서 아무 말도 없이 가버리셨습니다.

이 공안(公案)은 마조원상(馬祖圓相)이라 해서 종문(宗門) 중에 공안 가운데에 최고 가는 공안으로 천년을 두고 선종 문중에서 회자되고 있습니다.

이 공안은 조실 스님께서 육대 선지식으로부터 인가를 다 받고 만공 스님 회상에 가서 만공 스님의 너무나도 밝고 밝으신 지혜의 눈과 철두철미한 종사의 수단 아래 무릎을 꿇고 다시 정신을 차려서 정진을 하셔 가지고,
다시 대각(大覺)을 성취하신 공안이기 때문에 조실 스님께서는 매양 ‘소식을 얻었다’고 하는 학자를 대할 때 이 공안을 많이 물으셨습니다.

경봉 스님께서, 지금 통도사 극락선원 조실로 계신 경봉(鏡峰) 큰스님께서 처음에 깨달으셨을 때,
바로 마치 그때 거기에 당도하신 전강 조실 스님께서는 경봉 스님보다는 훨씬 연세가 아래였었지마는 바로 이 마조원상의 공안을 경봉 스님께 물어 가지고,

처음에는 경봉 스님께서 그 원상을 손으로 이리 뭉켔습니다.
거기에서 조실 스님은 “당장 이 송장을 끌어 묻으라”고 호통을 치셨습니다.

거기에서 한참 눈을 웅큼하게 해 가지고 계시다가 다시 경봉 스님께서 “이제 알았다. 다시 물어라” 이렇게 해서 그때 보시니 아까의 경계와 판연히 달라서 경봉 스님을 산골짜구니로 끌고가 가지고 이 공안을 다시 물으니까 여지없이 경봉 스님께서 일르셨다고 한 말씀을 금방 법문을 통해서 들었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는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각 선원에서 공부를 하고 오신 납자스님네도 여러분이 오셨습니다.
그리고 신도 보살님 여러분들도 우리 용화사에서 지내신 분 또 다른 선방에서 공부를 하시고 오신 보살님네들도 여러분이 계십니다. 그동안 석 달 동안 가행정진 용맹정진을 하시고 오신 분들입니다.

해제가 되면 으레이 부처님 당시에도 부처님 회상으로 모여 가지고 그동안에 공부했던 것을 탁마하고, 잘못했던 것을 대중 앞에 참회하고, 그렇게 해서 한철동안 지낸 공부를 총결산 하고, 반성하고 참회해서 다시 새로운 정신을 가다듬어서 공부를 해왔었습니다.

이 가운데에 참여하신 청신사 청신녀 그리고 비구 비구니 여러분들,
과연 지난 삼동(三冬) 안거 동안 정진을 하셔서 투철히 깨치신 바가 있으면 이 마조원상, 원상을 그려놓고 이 안에 들어가도 치고 들어가지 아니해도 치니 한번 자신 있게 일러 보시기를 바랍니다.
조실 스님을 대신해서 수응(酬應)을 해 드리겠습니다.

“스님께 못 이르겠습니다”
“환귀본처(還歸本處)하라. 이르지 못할 것을 뭐하러 나왔느냐”

이 공안은 벌써 이를라고 생각을 움직이면 그르쳐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조실 스님께서 법문하실 때 ‘사자는 교인(獅子咬人)하고 한로는 축괴(韓獹逐塊)’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개한테 돌멩이를 던지면 개는 그 돌멩이가 무슨 명태 대가리나, 고기 덤뱅이 인줄 알고 그 돌멩이를 물으러 우르르르 쫓아가는 법이고,
사자는 돌멩이를 던지면 돌멩이는 쫓아가지 아니하고 돌멩이를 던진 그 사람의 목덜미를 물어뜯고 마는 것입니다.


참선(參禪)은 결정코 내가 나를 깨닫는 유일한 길인 것입니다.

참선은 명예와 이양을 위한 것도 아니고, 지식과 수단을 위하는 것도 아니고, 오직 내가 나를 깨닫는 길이고,
내가 나를 깨달은 뒤에는 일체 중생을 제도(濟度)하는 커다란 목적과 의무를 수행할 따름인 것입니다.

첫째, 내가 나를 깨닫지 못하고 남을 제도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자기가 능히 헤엄을 칠 줄 아는 사람이라야 물에 빠진 사람을 건지기 위해서 물에 들어갈 수가 있습니다.
헤엄도 칠 줄 모르는 사람이 물에 빠진 사람을 건진답시고 물에 풍덩 뛰어들어가면 빠진 사람을 건지기커녕 자기까지 빠져 죽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는 중생을 제도할 원대한 의무와 책임을 가지고 있지만 그러한 의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우선 나 자신부터 깨닫지 아니하면 아니됩니다.

‘나를 깨닫는 길’은 이 세상의 어떠한 일보다 우선(優先)해서 중요하고, 어떠한 일보다 우선해서 급하고 요긴한 것입니다.
밥을 먹는 일도 급하고, 잠을 자는 일도 급하고, 세속에 우리가 맡은 모든 일들이 하나도 버려서는 안되겠지만 어떠한 일보다 우선해서 우선 나부터 깨달라야 하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위해서는 먹을 것 입을 것을 다 망각하고 오직 자식 생각만을 하시지만, 그렇기는 하지만 발등에 불이 떨어졌을 때는 우선 자기 발등의 불부터 끄고 자식 불을 끌 수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의식적으로가 아니라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어떠한 효자라 하더라도—그 효자는 자기의 모든 것을 다 바쳐서 부모만을 위하는 하늘에서 낸 효자라 할지라도 자기 발등의 불부터 끌 수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자기 발등의 불을 쪼끔 오래 놔둔다고 해서 죽는 것도 아닌 것입니다. 잠시 뜨겁다가 마는 것이지만 그래도 자기 발의 불부터 끄는 것입니다.

하물며 내가 나를 깨닫는 이 참선은 금생에 사람 몸 받을 때 하지 아니하면—이것은 영원히 다시 사람 몸을 받을지, 다시 또 이 불법을 만나게 될지, 정말 막연하고 막연할 따름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세상의 어떠한 일보다도 우선해서 참선을 철저히 해야 한다고 하는 까닭이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돈을 많이 모이고, 권리를 많이 누리고, 명예를 하늘 닿도록 차지한다 하더라도 그러한 일들은 나의 죽음을 막아주지 못합니다. 죽을 때 한 톨도 한 치도 그것을 가지고 갈 수도 없습니다.

죽어갈 때에는 무엇을 가지고 가느냐? 명예를 얻느라고 얻은 죄업(罪業), 재산을 얻느라고 지은 죄업, 권리를 누리느라고 지은 죄만을 산더미처럼 지고 염라대왕 앞에 끌려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때는 아무리 통곡을 하고 뉘우치고 눈물을 흘려도 아무도 받아 줄 사람이 없습니다.

우리가 이만큼 건강하고, 이만큼 살고 있을 때, 그리고 선지식(善知識)의 법문을 들을 수 있을 때, 하루하루를 정말 알뜰하고 착실하게 공부를 지어가야만 되는 것입니다.

오직 그것만이 과거의 무량겁에 지어 놓은 모든 죄도 소멸을 할 수가 있고,
이 공부에 철저하면서 세속적인 또는 인간적인 책임을 충실히 한다면 현실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큰 죄를 짓지 않게 되는 것이며, 앞으로도 진리를 깨닫는 목적을 향해서 걸어가므로 해서 생사해탈을 기어코 기약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바른길, 이러한 지혜로운 길 인간으로서 최고의 길이 바로 이 참선법이요, 불법이요, 정법인 것입니다.


지금 마조원상 법문을 조실 스님을 대신해서 여러분 앞에 물었습니다마는 이것은 이론적으로 따져서 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걸 내가 오늘 이르지를 못했으니 당장 집에 가서 경전을 뒤적거리고 조사어록(祖師語錄)을 뒤적거려서라도 기어이 이것을 찾아봐야겠다’  이렇게 생각하신 분이 계신다면 잘못된 생각을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조사 공안이 적혀있는 염송(拈頌)이나 무문관(無門關)이나 그 밖의 벽암록(碧巖錄) 같은 어떠한 어록을 뒤적거린다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이 자리에서 바로 보지를 못했다면 찰나 간에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를 거각(擧却)하는 것이 가장 지혜 있고 바른 수행인인 것입니다.

공안은, 화두는 절대로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더듬어서 알아맞출 수도 없는 것이고, 이론적으로 따져서 결론을 얻을 수도 없는 것입니다.
이론으로 따져서 결론을 얻었다든지 사량심으로 알아졌다면 그것은 깨달음이 아니라 그것은 중생심(衆生心)이요, 중생의 번뇌 망상으로 얻어진 것이라, 망상에 결국은 지내지 못한 것입니다.

아무리 보기 좋게 생긴 사람을 만들어 놨다 하더라도 그것이 참사람이 아니고 흙이나 석고 같은 것으로 만들어졌다면 그것을 아무리 이쁘게 조각을 해 놨어도 아내로 맞이할 수는 없는 거와 마찬가지입니다.

깨달음은 이론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요, 오직 본참화두를 여법(如法)하게 거각하고 정진을 함으로써만이 눈이 열리는 것입니다.

슬플 때나 기쁠 때나 괴로울 때나 억울할 때나 우리의 마음에서 어떠한 생각이 일어나건, 어떠한 감정이 일어나건,
그 생각 그 감정 하나하나를 헛되이 놔 보내지 말고, 바로 그 생각을 돌이켜서 ‘이뭣고?’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다못 이렇게 순박하게, 이렇게 진실하게, 이렇게 바보처럼 한 생각 한 생각을 다져 나간다면 결정코 우리는 생사를 해탈하는 힘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11분49초~3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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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조(馬祖) 스님, 육조(六祖) 스님, 남악회양(南嶽懷讓) 스님 ;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마조원상(馬祖圓相) 공안 ; [선문염송(禪門拈頌)] (혜심 지음) 제5권 165칙 ‘원상(圓相)’ 공안.
〇馬祖因見僧參  畫一圓相云  入也打不入也打  僧便入  師便打  僧云和尙打某甲不得  師靠却拄杖  休去.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1700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전강 조실 스님과 마조원상(馬祖圓相) 공안 ; [언하대오(言下大悟)] (용화선원刊) p24 - 26.
내가 25세 때 덕숭산 금선대에 계신 만공 스님을 처음 찾아가서 예배하니 나에게 묻기를 “심마물이 임마래오(甚麽物恁麽來)”하시었다. 내가 다시 예배하니 또 묻기를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어?”하시었다.
이번에는 내가 서슴없이 주먹을 불끈 들어 보이니 만공 스님은 그만 얼굴을 찌푸리시면서 “허! 저렇게 주제 넘는 사람이 견성했다해. 네 습기(習氣)냐, 체면없이 무슨 짓이냐?” 이러시고는,

그 다음부터는 나를 보시기만 하면 비웃으며 “저 사람, 저런 사람이 견성을 했다 하니 말세 불법이 이럴 수가 있는가”하고 번번이 조롱을 하시었다.
나는 차츰 불안해지다가 분심이 났다. 선지식이 저러실 때에는 반드시 까닭이 있으리라. 이렇게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때 몸은 극도로 쇠약하여 핏기가 하나도 없어 앉으면 잠이 와서 앉지도 못할 정도로 바짝 말랐다.

그래서 운동대를 붙잡고 서서 ‘에라!  한바탕 해봐야겠다.  그까짓 놈의 몸은 하다가 죽으면 그뿐이지’하고,
나는 만공 큰스님의 말씀을 믿고 그 회상에서 하안거 중 판치생모 화두를 잡고 용맹정진하다가 반 철이 지날 무렵 홀연히 ‘마조원상공안의 의지(馬祖圓相公案意旨)’가 확 드러났다.

그 길로 조실 방에 들어가 보월 스님 앞에 원상을 그려 놓고 묻기를 “마조원상 법문에 <들어가도 치고, 들어가지 아니해도 친다. (入也打不入也打) >고 하였으니 조실 스님께서는 어떻게 이르시겠습니까?”하니 보월 스님은 곧 원상을 뭉개셨다.

나는 보월 스님께 말하되 “납승을 갈등 구덩이(葛藤窠臼)속에 죽이신 것입니다. 마조방하(馬祖棒下)에 어떻게 생명을 보존하시겠습니까?” 이렇게 말하고,

보월 스님의 대답이 떨어지기 전에 문을 닫고 만공 스님 처소에 와서 다시 묻되,
“마조원상 법문을 보월스님께 물었더니 원상을 뭉개었습니다. 이렇게 그르칠 수 있겠습니까?”하였더니 만공 스님은 도로 나에게 묻되 “자네는 어떻게 이르겠는가?” 하시었다.

내가 답하되, “큰스님께는 이르지 못하겠습니다”하였더니,
만공 스님이 주장자를 초안(初眼)이에게 주시면서 “자네가 묻게”하시니 초안 스님이 주장자로 원상을 그리고 “입야타 불입야타(入也打不入也打)”해서, 내가 초안이를 보고 여지없이 일렀다.

그러나 학자를 위해서 설파하지 않는다. 만공 스님께서 고개를 끄덕끄덕 하시면서 점검하시되, “누가 밤사람 행한 것을 알 수가 있겠느냐(誰知更有夜行人)”하셨다.

그런 다음, 만공 스님과 한암 스님과의 서신문답과 기타 중요 공안에 대한 탁마(琢磨)를 낱낱이 마치고 떠나려고 할 때, 만공 스님께서 물으시되,

“부처님은 계명성(啓明星)을 보고 오도했다는데 저 하늘에 가득한 별 중 어느 것이 자네의 별인가?” 하시니,
내가 곧 엎드려서 허부적 허부적 땅을 헤집는 시늉을 하니 만공 스님께서 “옳다. 옳다!(善哉善哉)” 인가하시고 곧 나에게 전법게(傳法偈)를 지어 주시되,

불조미증전(佛祖未曾傳)이요
아역무소득(我亦無所得)이라
차일추색모(此日秋色暮)한데
원소재후봉(猿嘯在後峰)이로다

불조가 일찍이 전하지 못했는데
나도 또한 얻은 바 없네.
이날에 가을빛이 저물었는데
원숭이 휘파람은 후봉에 있구나.
*공안(公案) : 화두(話頭)。①정부 관청에서 확정한 법률안으로 백성이 준수해야 할 것。②선종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이것을 화두라고도 하는데 문헌에 오른 것만도 천 칠백이나 되며 황화취죽 앵음연어(黃花翠竹鶯吟燕語) — 누른 꽃, 푸른 대, 꾀꼬리 노래와 제비의 소리 등 — 자연현상도 낱낱이 공안 아님이 없다.
화두에 참구(叅句)와 참의(叅意)가 있다。이론적으로 따져 들어가는 것이 참의요 사구(死句) 참선이며, 말길 뜻길이 끊어져서 다만 그 언구만을 의심하는 것이 참구요 활구(活句) 참선이다.
*만공 스님 ;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수응(酬應 응대할 수,응할 응) ; 남의 요구에 응함.
*사자는 교인(獅子咬人)하고 한로는 축괴(韓獹逐塊) ; ‘사자는 사람을 물고 개는 흙덩이를 쫓느니라’
*咬(교)물다. 깨물다. *獹(로)개 이름. 전국시대 한(韓)나라 좋은 개 이름. *逐(축)쫓다. *塊(괴)흙덩이.
[참고] ①《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 제11권 ‘양주 왕경초 상시(襄州王敬初常侍)’에 '師子齩人  韓獹逐塊'
②중국 고봉 스님의 《선요禪要》의 ‘개당보설(開堂普說)’에 '獅子咬人  韓獹逐塊' (통광 스님 역주 ‘고봉화상선요•어록’ p39,47에서)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제도(濟度 건널 제,건널 도) ; 중생을 미혹의 큰 바다(생사고해 生死苦海)로부터 구하여[濟], 생사없는 피안(彼岸,깨달음의 언덕)에 이르게 하는[度] 것. 제(濟)는 구제(救濟). 도(度)는 도탈(度脫).
[참고] 구제(救濟 건질 구,건널 제)—어려움이나 위험에 빠진 사람을 돕거나 구하여 줌. 도탈(度脫 건널 도,벗을 탈)—속세의 속박이나 번뇌 등에서 벗어나 근심이 없는 편안한 경지에 도달함.
*우선(優先)하다 ; (...보다, ...에) 딴 것에 앞서 특별하게 대우하다.
*죄업(罪業) ; 자신과 남에게 해가 되는 그릇된 행위(身)와 말(口)과 생각(意). 괴로움의 과보를 초래하는 악한 행위. 좋지 않은 결과의 원인이 되는 악한 행위.
*선지식(善知識) ; 부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지도자. 좋은 벗.
*조사어록(祖師語錄) ; 어록(語錄). 선종(禪宗)에서 부처님의 바른 종지(宗旨)를 전하는 조사(禪師)나 귀의나 존경을 받을 만한 선승(禪僧)의 가르침, 문답, 언행을 모은 글, 또는 그 책.
*본참화두(本參話頭) ; 본참공안(本參公案).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것을 원칙으로 한다.
*거각(擧却 들 거,어조사 각) ; 화두를 든다.
*사량(思量) ; 생각하여 헤아림. 사유하고 판단함.
*중생심(衆生心) ; 번뇌에 얽매인 미혹한 존재(중생)가 일으키는 미혹한 마음.
*여법(如法 같을·같게 할·따를·좇을 여/ 부처님의 가르침·불도佛道 법) ; 부처님의 가르침에 맞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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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

§(세등24) 화두드는 법 / 최상승법 / ‘한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하는 것이 생사(生死) / 불보살, 선지식 아닌 사람이 없다 / 중생심이 바로 대총상법문(大總相法門) 체(體).

대혜(大慧) 『서장(書狀)』에 보면 공부하다가 어려운 역경계가 나타나는 것이 마장이 붙어서 그런 게 아니라 한고비 올라가기 위한 아주 중요한 경계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한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 일어났다 꺼졌다’하는 것이 그것이 바로 생사입니다. 그 ‘한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하는 그 생사의 연속이 바로 일평생(一平生)이 되고, 그것이 바로 육도윤회(六途輪廻)가 되고, 그것이 무량겁(無量劫)이 되는 것입니다.
이 끊임없이 거듭되는 이 생사의 물결 속에서 바로 생사해탈하는 법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무슨 생각이 일어나건—그 생각이 슬픈 생각이건, 기쁜 생각이건, 또는 노여운 생각이건, 과거의 생각이건, 무슨 생각이 일어나건—일어나는 그 생각을 버릴려고 없애려고 하지 말고, 그 생각에서 ‘이뭣고?’하는 것입니다.
발심한 사람, 참으로 진발심(眞發心)을 한 사람이라야 어느 때 어느 장소에서도 불보살을 친견할 수가 있고, 선지식을 바로 친견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망상이 일어나면 일어나는 그 자리에서 ‘이뭣고?’하면 그것이 공부인데, 망상이 일어나기 때문에 공부가 안된다고 왜 그러한 쓸데없는 생각을 하느냐. ‘안된다’고 생각함으로써 자기로 하여금 ‘공부 안되는 사람’으로 스스로 낙인(烙印)을 찍는 것이 된다. 그런 생각을 할 필요가 없어.
떠오르는 그 많은 중생심(衆生心), 번뇌 망상심, 생멸심 그것을 꼭 나쁘다고 생각할 것이 없습니다.  그것이 바로 어디에서 일어나느냐? 우리의 진여불성(眞如佛性)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그러니 성내는 놈, 슬퍼하는 놈, 기뻐하는 놈, 원망하는 놈, 아퍼하는 놈, 괴로워하고 외로워하는 놈, 이것이 전부 다 진여불성으로부터서 일어나는 한 거동이요 모습일진대, 그 거동 그 모습을 버릴려고 할 것이 없어.
바로 그놈을 계기로 해서 ‘이뭣고?’ 이렇게 들어가면 그것이 바로 자기 진여불성을 찾는 가장 가깝고 빠르고 묘하고 간단한 길이다.  중생의 번뇌 망상심 그놈을 버리고 어떠한 진여불성을 찾아서 깨달으려고 마음을 먹는다면 무량겁을 두고 공부를 한다해도 그 사람은 깨달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화두 하나만 제대로 들을 줄 알면 그 사람은 갈 곳이 없습니다. 결정코 대도를 성취할 수 있는 것입니다.
**송담스님(세등선원No.24)—기미년 동안거 결제 법문(79.10.17)


(1) 약 18분.  (2) 약 21분.


(1)------------------

오늘 기미년 삼동(三冬) 결제일을 맞이해서 조실 스님의 공안법(公案法)—최상승법(最上乘法)에 있어서 공안법에 대한 법문을 들었습니다. 공안법은 이론으로서 따져서 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공안(公案)이라고 하는 것이 무엇이냐? 천 칠백 공안이 있습니다.
문헌상에 오른 것만 해도 천 칠백 공안인데, 문헌에 오르지 아니한 것을 말하자면 우주법계 삼라만상(森羅萬象) 두두물물(頭頭物物)이 전체가 공안 아닌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떠한 한 공안, 한 화두(話頭)를 선지식(善知識)으로부터 받아 가지고, 그 한 공안에만 철저하게 실참실수(實參實修) 해 가지고, 한 공안을 타파(打破)함으로써 천 칠백 공안, 무량무수의 공안을 일시에 타파하는 그러한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최상승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입니다.

뒤에 있는 문을 좀 잠깐 열어서 차운 공기가 들어오게 좀 하십시오. 다들 열어 주세요. 확 열어 주세요.


오늘부터서 석 달 동안 결제(結制)에 들어갑니다.
결제 동안은 부모의 부고(訃告)가 오더라도 그 부고장(訃告狀)을 본인에게 보여주지 아니하고 사무실에 보관해 놓았다가 내년 정월 15일에 해제한 뒤에사 그 부고를 본인에게 전할 만큼, 결제 동안에는 그렇게 규칙이 엄격하게 출입을 금하고 목숨을 바쳐서 정진을 하는 기간인 것입니다.

일단 방부(房付)를 들이면은 그래 가지고 방(榜)을 딱 짜고 정진에 들어가면 세상의 모든 인연을 다 끊고 인사로 왔다갔다하는 것을 다 끊고, 오직 생사대사(生死大事) 하나만을 위해서 대중의 규칙을 자발적으로 지키면서, 밥이면 밥, 죽이면 죽, 짜면 짠 대로 먹고, 싱거우면 싱거운 대로 먹고, 맛이 있으면 있는 대로 먹고, 없으면 없는 대로 먹고, 오직 의식주 문제는 인연에다 맽겨.

그리고서 밤 9시부터서 그 이튿날 새벽 3시까지 여섯 시간을 제외하고는 일체 잠을 스스로 허락해서는 아니 되는 것입니다.

9시부터 3시까지 정식으로 잘 수 있는 시간이지마는 그동안에 보면 한 시간이라도 덜 자고 공부하고, 2시간이라도 덜 자고 공부하기 위해서 처음에는 자는 체하고 누웠다가 가만히 일어나서 10시까지 11시까지 다시 일어나서 혼자 공부하는 분도 있고,

새벽 3시에 일어나는 것이 원칙이지만 2시나, 1시쯤 미리 일어나서 옆의 사람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미리 일어나서 공부하는 이도 있고, 이렇게 해서 ‘어쨌든지 금생에 결정코 대도를 성취하리라’ 이러한 결심을 가지고 정진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잠만 그럴 것이 아니라 선원 밖으로 외출하는 것도 ‘시내의 병원에 간다, 무슨 일이 있어서 나간다’ 외출하는 것도, 일주문 밖에 나가는 것도 철저히 옛날에 다 그것을 단속을 했던 것입니다.
시내에 어떠한 신심 있는 단월(檀越)로부터서 공양(供養) 청장(請狀)을 받어도 결제 중에는 가지를 아니 하고,

또 확철대오(廓徹大悟)할 때까지는 대중적으로 특별히 허용될 때를 제외하고는 일체 경전이나 어록(語錄)을 읽고 보고 하는 것도 허락이 되지를 아니했습니다.

9시부터 3시까지 삼경(三更) 외에는 잠을 허락하지 아니하고, 인사로 왕래하는 일체 출입을 금하고, 또 경전 같은 것을 읽고 하는 그런 것도 허락하지 아니하고, 특별한 때를 제외하고는 거의 말이 없다시피,
이렇게 철저하게 공부를 해서 3년을 그렇게 해서 만약에 확철대오를 못하면 내가 거짓말한 죄로 혀를 빼서 쟁기로 가는 발설여경지옥(拔舌犂耕地獄)에 내가 들어가겠다. 이렇게 몽산(蒙山) 도인께서 맹서를 하셨습니다.

이렇게 열심히 한다면 아무리 근기(根機)가 하열(下劣)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3년을 하면 백발백중 공안을 타파해 가지고 견성(見性)을 할 수가 있다고 하는 것을 보증을 하시는 것입니다.


아까 조실 스님 말씀 가운데에도 화두를 어떻게 들어야 하느냐?
참선이라 하는 것은 거두절미(去頭截尾)하고 화두를 어떻게 드느냐? 오직 그 한 점에 도업(道業)을 성취하고 하지 못하고 한 관건(關鍵)이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화두는 이론으로써 교리적으로 따져서 해결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론으로 따져서는 아무리 따져봤자 결론이 없는 것입니다.

설사 자기 나름대로 어떤 결론이 얻어졌다 하더라도 그것은 깨달음이 아닌 것입니다. 그것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 분별심으로 얻어진 것이라 아무리 묘한 답이 얻어졌다 하더라도 그것은 더욱 중생의 번뇌(煩惱) 망상(妄想)만 치성(熾盛)하게 만든 결과일 뿐, 그것은 깨달음이 아닌 것입니다.

이론으로 따져서 ‘아하! 이런 것이로구나’ 이렇게 따져서 알아맞추는 그러한 참선은 활구참선(活句參禪)이 아닙니다. 그것은 죽은 참선이요, 의리선(義理禪)이요, 그것은 삿된 참선인 것입니다.
차라리 그러한 참선을 할 바에는 관세음보살 또는 아미타불을 열심히 염송(念誦)하는 것만도 못한 것입니다.


‘이 무엇고?’ 아까 조실 스님께서는 판치생모(板齒生毛),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판치생모 화두를 처음부터 끝까지 강조를 해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가운데 계신 분 가운데에는 조실 스님으로부터 판치생모 화두를 받으신 분이 계실 줄 생각합니다마는 그분은 천하없는 누가 뭐라 해도 끝까지 그 판치생모 화두를 가지고 공부를 하셔야 할 것이고,
또 시삼마(是甚麽) ‘이 무엇고?’ 시삼마 화두를 하신 분은 시삼마 화두,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를 하신 분은 정전백수자, 조주의 무(無)자 화두를 하신 분은 조주 무자, 어느 화두를 하던 간에 상관이 없습니다.

무자 화두가 더 좋고, 판치생모가 더 좋고, 시삼마가 더 좋고, 그 공안 자체에 있어서 더 좋고 나쁘고 한 것은 없어.

다못 문제는 자기가 목숨을 바칠 수 있을 만큼 철저히 믿어지는 선지식, 바로 깨달라서 선지식의 인가(印可)를 받은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그 화두를 받기만 했다면 천칠백 화두 가운데의 어느 화두를 타 가지고 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상관이 없습니다.


어느 화두건 처음부터 한결같이 잘 들리는 화두는 없는 것입니다.

맨 처음에는 잘 들린 듯하다가 얼마 안가서 그렇게 잘 들리지를 아니하고 애를 먹고 그러다가, 그 고비를 잘 넘기면서 공부를 지어가면 또 한결 수월하게 되다가, 그렇게 수월하게 계속 잘되어 갔으면 문제가 없겠지만,
얼마동안 가다가 뚝 변해 가지고 가슴이 답답하고 머리가 아프고, 몸이 뒤틀리고 시간이 지루하고 도저히 앉어서 참을 수가 없고, 공부가 더 이상 공부를 지속할 수 없을 만큼 그러한 역경계(逆境界)가 나타나는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공부에 마장(魔障)이 붙은 것이다’ 이렇게 생각한 분이 있지만, 대혜(大慧) 『서장(書狀)』에 보면 이러한 어려운 경계가 마장이 붙어서 그런 게 아니라 한고비 올라가기 위한 아주 중요한 경계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공부를 하다가 그렇게 가슴이 답답하고, 몸이 뒤틀리고, 머리가 멍하고, 시간이 지루하고, 앉았을 수도 없고 섰을 수도 없고, 화두를 놓을 수도 없고 들 수도 없고, 이렇게 답답하고 어려운 경계에 도달하거든 조금도 걱정을 하거나 짜증을 내거나 자포자기를 하지 말고, 이것이야말로 앞으로 내가 한 걸음 공부가 나아가기 위한 그러한 중대한 지점에 도달했다고 하는 것을 명심을 하고,

그런 때에는 가만히 일어나서 밖으로 나가 가지고 20미터나 30미터, 일직선으로 코스를 딱 정해놓고서 왔다갔다 한 5분 내지 10분을 하면 저절로 머리가 시원해지고 가슴이 후련해지면서 화두가 성성(惺惺)하게 들어질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다시 또 자리에 가만히 와서 앉아가지고 허리를 쭈욱 펴고서 성성하게 그리고 적적(寂寂)하게 화두를 단속해 나가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잘 그 마음을 써 가지고 지혜롭게 그 고비를 넘기면 그 다음에는 한결 공부가 수월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공부라 하는 것은 전혀 어려운 것이 없고, 오직 한 생각—일어났다 꺼졌다 일어났다 꺼졌다 한—그 한 생각을 어떻게 단속하느냐? 오직 그 한 가지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생사대사, 생사대사, 생사해탈(生死解脫), 경전에나 조사(祖師) 법문에 생사해탈 문제가 대단히 거론됩니다마는 대관절 그 생사(生死)라 하는 것이 무엇이냐?
‘한 생각 일어나는 것’ 그것이 생(生)이요, ‘일어났던 그 한 생각이 없어지는 것’ 그것이 바로 죽음인 것입니다. 생사. 생멸(生滅).

그래서 우리는 ‘부모한테 몸뚱이를 받아났을 때 그것이 생(生)이고, 한평생 살다 죽은 것이 그것이 사(死)’ 이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마는 이 몸뚱이를 표준 할 때는 그렇지만,

우리는 이 몸뚱이를 표준으로 할 것이 아니라 이 몸뚱이를 끌고 다니는 ‘나’ ‘아무개야!’하고 부르면 ‘예’하고 대답하는 그놈, 지금 입을 벌리고 이렇게 말하고 있는 그놈, 이렇게 하는 말을 들을 줄 아는 그놈, 그것에다 기준을 두고 생각해야 합니다.

한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 일어났다 꺼졌다, 하루 동안에도 수없이 많은 생각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데 그것이 바로 생사인 것입니다.


고개를 들고 산승(山僧)의 얼굴을 보십시오. 고개를 숙이고 경건하게 듣는 것도 좋지만, 고개를 숙이고 듣다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스르르르 잠이 와서, 졸면서 잠을 자면 이것 재미가 없습니다.
눈을 딱 뜨고, 말을 하고 있는 저의 얼굴을 보면서 들어야 훨씬 더 잘 들리는 것입니다. 보기가 싫게 생겼지만 이 시간에는 불가불 좀 봐 주시길 바라겠습니다.(5분17초~23분16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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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 일어났다 꺼졌다’하는 것이 그것이 바로 생사입니다.
그 ‘한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하는 그 생사의 연속이 바로 일평생(一平生)이 되고, 그것이 바로 육도윤회(六途輪廻)가 되고, 그것이 무량겁(無量劫)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세계에는 성주괴공(成住壞空)이 있고, 무엇이든지 어떠한 물건이 이루어지면 한동안 머물러 있다가 그것이 파괴가 되어 가지고 나중에는 없어집니다. 우리 눈으로 볼 수 있는 모든 것이 다 그렇습니다.
해도 그렇고, 달도 그렇고, 별도 그렇고, 이 지구도 그렇고, 지구상에 있는 모든 것이 다 마찬가지입니다. 한 가지 것도 영원불멸한 것은 없습니다. 다 성주괴공(成住壞空)입니다.

우리의 육체는 생로병사(生老病死)가 있습니다. 어머니한테 태어났다가 한 살 두 살 먹다 보면은 늙고, 늙으면 죽습니다. 죽으면 10분이 못 가서 10분 뒤부터서는 오장육부가 버글버글버글 썩기 시작해 가지고 결국은 화장(火葬)을 하거나, 땅에다 묻는다 하더라도 한줌 흙이 되고 없어져 버리게 됩니다.

그래서 이 몸뚱이는 생로병사가 있고, 우리의 마음에는 생주이멸(生住異滅)이 있습니다.
한 생각이 일어났다가, 잠시 그 생각이 머물러 있다가, 다른 생각으로 변해 가지고, 그래 가지고 그 생각이 꺼져버립니다. 꺼지자마자 또 새로운 딴 생각이 일어났다가, 잠시 머물렀다가, 또 다른 생각으로 발전해 가지고 결국은 또 그 생각이 없어집니다. 이렇게 하기를 무량겁을 해 내려왔습니다.

이 몸뚱이 태어나 가지고 오늘날까지도 그 우리의 생각에 생주이멸, 생주이멸, 생주이멸, 생주이멸이 거듭되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생사요, 그것이 앞으로 영겁을 두고 육도윤회 할 근원을 장만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염기염멸(念起念滅), 바로 그 생사 속에서 생사에 휩쓸려 들어가지 않은 길이 있습니다.

생사 속에 나를 맡겨버리면 결국은 나도 생사의 물결 속에 무량겁을 두고 윤회하는 떠돌이 신세를 면치를 못할 것이고, 이 끊임없이 거듭되는 이 생사의 물결 속에서 바로 생사해탈하는 법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무슨 생각이 일어나건—그 생각이 슬픈 생각이건, 기쁜 생각이건, 또는 어떠한 노여운 생각이건, 과거의 생각이건, 무슨 생각이 일어나건—일어나는 그 생각을 버릴려고 하지 말고, 없앨려고 하지 말고,
한 생각이 일어났다—여기 앉아서 지금 딸 생각이 났다. 「딸이 지금 잘 있나?」 「애기가 잘 컸나?」 그런 생각이 났다 할 때에—「아! 내가 쓸 데 없는 생각을 했구나」 그런 생각도 하지 말고, 그 생각이 났을 때 ‘이뭣고?’

무엇이 금방 그 딸 생각을 했나? 이거여. 이 딸 생각하는 이놈이 뭣고?

과거에 어떤 친구로부터 배반을 당해서 불현듯 그 생각이 나 가지고 속에서 화가 탁! 치밀어 오를 때, 바로 그 생각을 버리지 말고 그 생각에서 ‘이뭣고?’

이것이 바로 생사 속에서 생사를 해탈하는 아주 묘한 그리고 간단한 방법인 것입니다.

이렇게 공부를 단속하는 사람은 망상이 일어난다고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망상(妄想) 한 생각 일어날 때마다 바로 화두를 들기 때문에 그 망상은 바로 그것이 선지식의 한 법문이요, 경책(警策)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선지식 또는 부처님 또는 관세음보살 하면 32상(三十二相)과 80종호(八十種好)를 갖추어서 아주 우리가 법당에 모셔진, 탱화(幀畵)에 그려진 그러한 모습으로 계실 줄 생각하지만 마냥 그렇지를 않습니다.

불보살(佛菩薩)은 천백억 화신(千百億化身)을 나투는 것입니다.

때로는 비구의 모습으로 나투기도 하고, 때로는 여자의 모습으로 나투기도 하고, 때로는 장자(長者)의 모습으로 나투기도 하고, 때로는 거지의 모습으로 나투기도 하고, 때로는 강도 도둑으로 나투기도 하고, 때로는 문둥이로 나투기도 하고,
때로는 철없는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나투기도 하고, 때로는 시어머니로 나투기도 하고, 때로는 며느리로 나투기도 하고, 때로는 남편으로 나투기도 하고, 때로는 아내로 나타나기도 하고,

때로는 친구로 나타나기도 하고, 친구로 나타나서 신의를 지키는 그러한 친구로만 나투는 게 아니라 배반 배신하는 그런 친구로도 나타나고,
아내로 나타나면 아주 현모양처로만 나타나는 게 아니라, 아주 고약한 악처(惡妻)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수도 있습니다. 좋은 남편으로만 나타나는 게 아니라 외도를 일삼는 천하의 색마(色魔)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어떻게 내 마음에 꼭 맞는 그러한 선지식으로만 나타난다면 그 참 그런 좋을 수가 없겠지마는, 불보살은 중생을 하루라도 더 빨리 생사해탈을 하게 하기 위해서 너무나도 자비가 크신 까닭으로 해서 천백억 화신으로 역경계(逆境界) 순경계(順境界)를 가리지 않고 나타나신 것입니다.

그래서 발심한 사람, 참으로 진발심(眞發心)을 한 사람이라야 어느 때 어느 장소에서도 불보살을 친견할 수가 있고, 선지식을 바로 친견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발심을 못한 사람은 선지식을 노상 코앞에 모시고 있으면서, 한 자리에 불보살을 모시고 살면서도 선지식을 알아보지를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선지식이 누군가를 모르는 것입니다.

다시 더 분명히 말하자면 『불보살 아닌 사람이 없고, 불보살 아닌 것이 없고, 선지식 아닌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문제는 자기가 발심을 했느냐, 못했느냐? 진발심을 했느냐, 못했느냐? 거기에 달려있는 것이지, 행여나 선지식이 없을까 걱정할 것 없고, 불보살을 만나지 못할까 근심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부터서라도 댁에 가시거든 남편이 나한테 잘해 주건 못해 주건, 며느리가 자기한테 효도를 하건 말건, 시어머니가 자기에게 잘해 주시건 안해 주시건, ‘바로 저분이 선지식이다. 저분이 바로 불보살 화현(化現)으로 나타난 분이다’ 이리 생각하고,

오히려 더 시어머니가 자기한테 잘못할수록에 발심을 하고, 며느리가 시어머니한테 잘못할수록에 더욱 발심을 하고, 사돈이 자기한테 섭섭하게 할수록 자기는 더 발심을 해서,
이렇게 마음을 쓰고, 이렇게 말을 하고, 이렇게 행동에 옮긴다면 거기에서 자기의 과거에 어떠한 두터운 업장이라도 거기에서 다 소멸이 될 것이고, 업장소멸(業障消滅)하면 소원성취는 바로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소원을 성취하지 못한 것은 업장이 가로막기 때문에 성취를 못하는 것이니까, 업장만 소멸한다고 하면은 소원성취는 바로 한 걸음도 옮기지 아니하고 거기에서 성취하는 것입니다.

3일 기도를 한다든지 7일 기도를 한다든지 또는 백일기도(百日祈禱)나 천일기도(千日祈禱), 만일기도(萬日祈禱) 이렇게 합니다마는, 어째서 그렇게 사람에 따라서는 3일 기도를 하고도 소원을 성취를 하고, 백일기도를 하고도 성취를 하고, 만일기도를 하고도 성취를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째서 빨리하는 사람도 있고, 더디하는 사람도 있냐?’하면은 업장이 얼마만큼 소멸이 되었냐 거기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3일 기도만 하고도 마음이 맑아져서 불보살의 마음과 같이만 된다면 3일에도 소원을 성취해.

한번 가서 간절(懇切)한 마음으로 향 하나를 올리고 절을 하고, 청수(淸水) 한 그릇을 올리고 간절히 절하고 와서 그리고서 소원을 성취한 사람도 있습니다.
그 간절히 향 하나 올리고, 물 한 그릇 올리고 소원을 할 때 그 마음, 부처님 마음과 하나가 된다면 절 한 자리 하는 사이에도 소원을 성취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우리의 마음이 맑고 깨끗해지는 것은 꼭 오랜 시간만이 걸려야 되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한 생각, 한 생각 일어나는 그 생각을 돌이켜서 「이뭣고?」 「어째서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라 했는고?」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어째서 조주는 무(無)라고 했는고?」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를 생각생각마다 들고 또 들고, 앉거나 서거나 누웠거나 걸어다니거나 차를 탈 때나 행주좌와 어묵동정을 가리지 말고,
속이 상할 때나, 슬플 때나, 기쁠 때나, 일을 할 때나, 누구와 이야기를 하는 그 사이도, 밥을 먹을 때나, 똥을 눌 때나, 소지를 하거나, 밥을 짓거나 그것은 상관이 없습니다.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할 때라고 ‘이뭣고?’

‘하! 공부가 안된다’고, 공부가 안된다고 하는 생각이 그것이 자기로 하여금 공부가 안되게 하는 것이여.

“어째서 안되냐? 무엇을 안된다고 하느냐?”
“망상이 일어나서 안됩니다”

망상이 일어나면 일어나는 그 자리에서 ‘이뭣고?’하면 그것이 공부인데, 망상이 일어나기 때문에 공부가 안된다고 왜 그러한 쓸데없는 생각을 하느냐. ‘안된다’고 생각함으로써 자기로 하여금 ‘공부 안되는 사람’으로 스스로 낙인(烙印)을 찍는 것이 된다. 그런 생각을 할 필요가 없어.

화두를 타 가지고 바로 그때부터서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어가지고 순일무잡(純一無雜)하게 공부가 된다면 어찌 일주일을 넘을 필요가 있느냐.

무량겁(無量劫)으로 지어온 자기의 업(業)이 산과 같고, 바다와 같기 때문에 번뇌와 망상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것이 하나의 습관이 되고, 체질화가 되어 가지고 가만히 있어도 별별 생각이 떠오르는 것을 누구를 원망할 것이냐.
떠오르는 그 많은 중생심(衆生心), 번뇌 망상심, 생멸심 그것을 꼭 나쁘다고 생각할 것이 없습니다.

그것이 바로 어디에서 일어나느냐? 우리의 진여불성(眞如佛性)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진여불성은 모양도 없고, 냄새도 없고, 빛깔도 없고, 그래서 무어라 표현할 수도 없고, 눈으로 볼라야 볼 수도 없고, 코로 냄새 맡을 수도 없고, 손으로 만져볼 수도 없지마는, 그놈이 너무나도 신령스럽고 신기하고 묘한 것이라, 때와 인연 따라서 천만 가지 모습으로 천만 가지 빛깔로 그놈이 활동을 하게 됩니다.

때로는 불보살과 같이 착한 마음을 내기도 하고, 때로는 살인강도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천하의 대학자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천하의 역적이 되기도 합니다. 그 얼마나 미묘하고 신령스러운 것이라 그렇게 천만 가지 모습으로 나타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니 성내는 놈, 슬퍼하는 놈, 기뻐하는 놈, 원망하는 놈, 아퍼하는 놈, 괴로워하고 외로워하는 놈, 이것이 전부 다 진여불성으로부터서 일어나는 한 거동이요 모습일진대, 그 거동 그 모습을 버릴려고 할 것이 없어.

바로 그놈을 계기로 해서 ‘이뭣고?’ 이렇게 들어가면 그것이 바로 자기 진여불성을 찾는 가장 가깝고 빠르고 묘하고 간단한 길이다.
중생의 번뇌 망상심 그놈을 버리고 어떠한 진여불성을 찾아서 깨달으려고 마음을 먹는다면 무량겁을 두고 공부를 한다해도 그 사람은 깨달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중생심은 그것이 바로 대승법, 대총상법문(大總相法門) 체(體)다. 그 중생심, 번뇌 망상심 그것 때문에 육도(六途)를 윤회한다고 아까 말씀을 했습니다마는 그것 때문에 우리는 성불(成佛) 할 수 있는 자격을 가지고 있다 그말이여.

그러니 그 번뇌 망상이 우리에게는 원수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큰 은혜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최상승 활구참선, 이 정법을 믿고 공부한 사람에게는 그 번뇌 망상이 바로 불보살의 손이요, 불보살이 보내주신 반야용선(般若龍船)이지만,
정법을 믿지 않고 활구참선법을 믿지 않는 사람은 중생심, 번뇌 망상심 이것이 큰 원수요, 나를 무간지옥(無間地獄)으로 끌고 가는 원수요 도적놈이다.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이 육적(六賊)이라, 여섯 도적놈이라고 하는 것이 바로 거기에다 두고 하는 말이다.

한 생각 정법을 믿으면 여섯 도적놈이 바로 6대보살(六大菩薩)이여. 나를 극락세계로 불국세계로 인도하기 위해서 반야용선을 가지고 나를 영접하러 온 보살화신이고,
정법을 믿지 않는 사람은 여섯 도적놈이 되어 가지고 눈으로 귀로 코로 귀로 입으로 몸으로 생각으로 여섯 문을 통해서 기회만 있으면 지옥으로 끌고갈려고 엿보고 있다 그말이여.

이러한 최상승법, 활구참선법. 인간으로 태어나기도 어렵지만 인간으로 태어나가지고 어떻게 해서 이러한 묘한 최상승법을 우리는 만났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면, 하! 나도 희유하고 감사하고 다행스러울 수가 없습니다.

이러한 다행한 마음으로 한 생각 한 생각을 ‘이뭣고?’로 돌려서 슬픔도 그놈으로 이겨내고, 노여움도 이 ‘이뭣고?’로 이겨내고, 괴로움도 이 ‘이뭣고?’로 이겨내고, 이렇게 해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면 그 사람은 물어볼 것도 없이 결정코 금생에 자아를 자각, 대도를 성취해서 부처님의 혜명(慧命)을 이어받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몽산 큰스님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이렇게 간절히 3년을 해봐라. 결정코 대도를 성취할 것이다. 그렇게 열심히 해서 성취를 못하면 내가 네 대신 무간지옥에 가겠다』 이렇게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결제일이기 때문에 조실 스님의 법문도 이 화두, 공안에 대한 법문을 추려서 들었고, 또 산승도 이 공안에 대해서 화두를 거각(擧却)하는 법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화두 하나만 제대로 들을 줄 알면 그 사람은 갈 곳이 없습니다. 결정코 대도를 성취할 수 있는 것입니다.(23분17초~44분28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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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공안(公案) : 화두(話頭)。①정부 관청에서 확정한 법률안으로 백성이 준수해야 할 것.
②선종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이것을 화두라고도 하는데 문헌에 오른 것만도 천 칠백이나 되며 황화취죽 앵음연어(黃花翠竹鶯吟燕語) — 누른 꽃, 푸른 대, 꾀꼬리 노래와 제비의 소리 등 — 자연현상도 낱낱이 공안 아님이 없다.

화두에 참구(叅句)와 참의(叅意)가 있다。이론적으로 따져 들어가는 것이 참의요 사구(死句) 참선이며, 말길 뜻길이 끊어져서 다만 그 언구만을 의심하는 것이 참구요 활구(活句) 참선이다.
*삼라만상(森羅萬象) 두두물물(頭頭物物) ; 우주 사이에 벌여 있는 온갖 사물과 현상.
*선지식(善知識) ; 부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지도자. 좋은 벗.
*실참실수(實參實修) ; 실답게 참구(參究)하고 실답게 수행하는 것. 공안(화두)을 이론으로 분석하고 따지는 것이 아닌 선지식의 지도 아래 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드는 것을 말한다.
*화두(話頭)를 타파(打破) ;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스승)으로부터 화두•공안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그 화두(話頭)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 하지 아니하고,
오직 꽉 막힌 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을 타파하여 확철대오(廓徹大悟)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것.

[참고] 화두라 하는 것은 무엇이냐?
공안(公案)이라고도 말하는데, 화두는 깨달음에 이르는 관문이요, 관문을 여는 열쇠인 것입니다.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그 화두(話頭)에 대한 의심(疑心)을 관조(觀照)해 나가는 것, 알 수 없는 그리고 꽉 맥힌 의심으로 그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그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더 이상 그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더 이상 의심이 커질 수 없고, 더 이상 깊을 수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내 가슴속이 가득 차고, 온 세계가 가득 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눌 때에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탈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잘 때에는 꿈속에서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에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큰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그 항아리를 큰돌로 내려치면은 그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를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52분12초~) [‘참선법 A’ 에서]

이뭣고? 이것이 무엇인고?
“이 뭣고...?” 이렇게 의심을 해 나가되, 이런 것인가 저런 것인가 하고 이론적으로 더듬어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다못 “이 뭣고...?” 이렇게만 공부를 지어나가야 됩니다. 여기에 자기의 지식을 동원해서도 안되고, 경전에 있는 말씀을 끌어 들여서 “아하! 이런 것이로구나!” 이렇게 생각해 들어가서도 안됩니다.

공안은 이 우주세계에 가득 차 있는 것이지마는 문헌에 오른, 과거에 고인(古人)들이 사용한 화두가 천칠백 인데, 이 ‘이뭣고?’ 화두 하나만을 열심히 해 나가면 이 한 문제 해결함으로 해서 천칠백 공안이 일시(一時)에 타파가 되는 것입니다.

화두가 많다고 해서 이 화두 조금 해 보고, 안되면 또 저 화두 좀 해 보고, 이래서는 못 쓰는 것입니다. 화두 자체에 가서 좋고 나쁜 것이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한 화두 철저히 해 나가면 일체 공안을 일시에 타파하는 것입니다.(76분34초~) [ ‘참선법 A’ 에서]
*결제(結制 맺을 결/만들•법도 제) ; 참선 수행하는 안거(安居)에 들어감. 하안거는 음력 4월 15일에 결제하며, 동안거는 음력 10월 15일에 결제한다.
*해제(解制 풀 해/만들•법도 제) ; ①(안거)를 마침. ②재계(齋戒)하던 것을 그만두고 풂.
*부고(訃告 부고 고,알릴 고) ; 어떤 사람의 죽음을 연고자에게 알림. 또는 그러한 글.
*방부(房付)를 들이다 ; 수행자가 절에 머물며 공부할 것을 인사드리고 허락을 구해 결제(結制)에 참가하다.
*방(榜) ; 용상방(龍象榜)을 말함.
[참고] 용상방(龍象榜) ; 절에서 하안거 동안거 결제 때나, 큰일을 치를 때에 각자 할 일을 정해 붙이는 명단. 행사가 끝날 때까지 모든 사람이 잘 볼 수 있는 곳에 붙여서 각자가 맡은 일에 충실하도록 한 것이다.
*생사대사(生死大事) ; ①삶과 죽음, 생사(生死)의 큰 일. ②수행을 하여 생사를 벗어나는 깨달음을 얻는 큰 일.
*단월(檀越) ; 시주(施主). dana-pati 의 음역. ①스님에게 혹은 절에 돈이나 음식 따위를 보시하는 일. 또는 그런 사람. ②남에게 가르침이나 재물을 아낌없이 베푸는 사람.
*공양(供養) 청장(請狀) ; 공양 청첩장. 재가신도가 스님들께 공양(식사)을 드리기 위하여 초청하는 것.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어록(語錄) ; 조사어록(祖師語錄). 선종(禪宗)에서 부처님의 바른 종지(宗旨)를 전하는 조사(禪師)나 귀의나 존경을 받을 만한 선승(禪僧)의 가르침, 문답, 언행을 모은 글, 또는 그 책.
*발설여경지옥(拔舌犂耕地獄) ; 또는 발설이경지옥(拔舌犂耕地獄). 犂(밭 갈 리, 밭 갈 려).
사람의 혀를 길게 빼 늘여 놓고, 그 혓바닥을 소 쟁기로 쟁기질을 하는 지옥.
*몽산(蒙山) ; ‘역대 스님 약력’ 참고.
*근기(根機 뿌리 근,베틀 기) ;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는 중생의 소질이나 근성.
*하열(下劣 아래 하/못할·낮을 렬) ; (행동이나 생각이) 남보다 뒤떨어짐. 수준이 낮음.
*견성(見性)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음. 미혹을 깨뜨리고 자신의 청정한 본성을 간파하여 깨달음.
*거두절미(去頭截尾) ; 말이나 사건 등의 부차적인 설명은 빼어 버리고 사실의 요점(要點)만 말함.
*도업(道業) ; 도(道)는 깨달음. 업(業)은 영위(營爲 ; 일을 계획하여 꾸려 나감). 불도(佛道)의 수행. 진리의 실천.
*관건(關鍵 빗장 관,열쇠 건) ; 어떤 일의 성패나 추이를 가름하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나 요인.
*사량(思量) ; 생각하여 헤아림. 사유하고 판단함.
*분별(分別) ; ①대상을 차별하여 거기에 이름이나 의미를 부여함. 대상을 차별하여 허망한 인식을 일으키는 인식 주관의 작용. ②구별함. ③그릇된 생각.
*번뇌(煩惱 번거러울 번,괴로워할 뇌) ; ①몸과 마음을 번거롭게 어지럽히고[煩亂, 煩勞, 煩擾] 괴롭혀 고뇌케 함[逼惱, 惱亂] 등의 뜻으로 번뇌(煩惱)라 표현. 근원적 번뇌로서 탐냄(貪)•성냄(瞋)•어리석음(癡)이 있다.
②나라고 생각하는 사정에서 일어나는 나쁜 경향의 마음 작용. 곧 눈 앞의 고(苦)와 낙(樂)에 미(迷)하여 탐욕•진심(瞋心)•우치(愚癡)등에 의하여 마음에 동요를 일으켜 몸과 마음을 뇌란하는 정신 작용.
이러한 번뇌[惑]에 의해 중생이 몸과 마음의 행위[身口意三業]를 일으키게 되면, 이로써 3계 6도의 생사윤회에 묶이게 되고 고통[苦]의 과보를 받게 된다. [惑-業-苦 三道]
*망상(妄想 망녕될 망,생각 상) ; ①이치에 맞지 아니한 망녕된(妄) 생각(想)을 함, 또는 그 생각. ②잘못된 생각.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하다고 잘못 생각하는 것.
*치성(熾盛 성할 치,성할 성) ; 불길이 일어나는 것과 같이 성하게 일어남.
*의리선(義理禪) ; 말이나 글로 해석하고 설명하는 선. 이런 의리선(義理禪)은 ‘사구참선(死句參禪)’이라 바른 깨달음을 얻을 수가 없다.
*염송(念誦 생각 념,욀 송) ; 마음속으로 부처님을 생각하고 불경(佛經)이나 진언(眞言) 등을 외움.
*인가(印可 도장 인/옳을•인정할 가) ; 스승이 제자의 깨달음을 인정함.
*마장(魔障 마귀 마,장애 장) ; 귀신의 장난이라는 뜻으로, 일이 진행되는 과정에 나타나는 뜻밖의 방해나 헤살을 이르는 말. [참고]헤살;남의 일이 잘 안 되도록 짓궂게 방해함.
*대혜(大慧) 스님 ; ‘역대 스님 약력’ 참고.

*서장(書狀) ; 원래 이름은 『대혜보각선사서(大慧普覺禪師書)』이며 『서장(書狀)·『대혜서(大慧書)·『대혜서문(大慧書門) 등으로 불리우고 있다. 송나라 때의 대혜종고(大慧宗)선사가 당대의 사대부 관료 40명과 2명의 스님에게 보낸 62() 서간문(書簡文 편지 형식의 ).

책은 일상생활에서 불교 수행을 생기는 의문과 올바른 수행 등에 대하여 주고받은 문답이 내용으로, 조용한 경계만을 묵묵히 지켜나가는 묵조선(默照禪) 배격하고 일상생활에서 화두를 참구하는 간화선(看話禪) 역설하였다.

*한고비 ; 어떤 일의 진행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거나 어려운 단계나 국면.
*성성(惺惺) ; ①정신이 맑고 뚜렷함. 정신을 차림. 총명함. ②깨달음.
*성성적적(惺惺寂寂) ; 정신이 고요하면서도 깨끗하고 또록또록 한 상태.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를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것.
*조사(祖師) : ①1종1파의 선덕(先德)으로서 후세 사람들의 귀의 존경을 받는 스님。 보통은 1종1파를 세운 스님을 부르는 말。 ②선가에서는 달마스님을 말한다。 ③불심종(佛心宗)을 깨달아서 이를 전하는 행(行)과 해(解)가 상응(相應)하는 도인.
*산승(山僧) ; 스님이 자신을 겸손하게 일컫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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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괴공(成住壞空) : 세상의 모든 것은 크나 작으나 다 변화의 과정을 밟게 된다. 곧 성립되어 가는 과정, 안정(安定)하여 진행하는 과정, 쇠퇴하여 가는 과정, 멸망하여 없어지는 과정이 반드시 있게 된다.
모든 물질도, 우리 몸도 사회도, 국가도, 세계 전체도 다 그렇게 된다. 이것을 성주괴공(成住壞空)이니, 생주이멸(生住異滅)이니, 생로병사(生老病死)니 하는데, 그 원인은 우리의 마음 속에 생각이 쉴 새 없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기 때문이다.
*이뭣고(是甚麼 시심마,시삼마) : ‘이뭣고? 화두’는 천 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왔다.
*경책(警策 깨우칠 경,채찍 책) ; 타이르고 채찍질하여 깨우치게 하는 것.
*삼십이상(三十二相) ; 부처님이 갖추고 있다는 32가지의 뛰어난 신체의 특징. 몸이 금빛이다, 손가락이 길다, 두 눈썹 사이에 흰 털이 있다, 발바닥에 두 개의 바퀴 모양의 무늬가 있다 등등.
*팔십종호(八十種好) ; 부처님과 갖추고 있는 80가지의 작은 특징. 얼굴 빛이 화평하여 웃음을 먹음은 것, 목이 둥글고 아름다운 것 등등.
*탱화(幀畵) ; 부처님, 보살, 성현들을 그려서 벽에 거는 그림. '탱(幀)'이라고도 한다.
*화신(化身) ; 화신불(nirmaka-kaya 化身佛). 부처의 삼신(三身:法身•報身•化身)의 하나로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 여러 가지 형상으로 변화하는 불신(佛身). 응화신(應化身)·변화신(變化身)•응신(應身)이라고도 한다.
*장자(長者) ; ①덕망이 뛰어나고 경험이 많아 세상일에 익숙한 어른. ②큰 부자를 점잖게 이르는 말.
*악처(惡妻) ; 성품이나 행실이 바르지 못하고 사나운 아내.
*색마(色魔) ; 성행위나 성관계 따위에 지나치게 몰입하는 사람을 마귀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
*역경계(逆境界) ; ①자기의 마음에 반대되어 마음이 언짢은 경계. ②일이 순조롭지 않아 매우 어렵게 된 처지나 환경. 역경(逆境), 위경(違境)이라고도 한다.
*순경계(順境界) ; ①자기의 마음에 들어맞어 마음이 따르는 경계. ②모든 일이 뜻대로 잘되어 가는 경우나 형편.
*발심(發心) ; ①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②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원어)發起菩提心발기보리심, 發菩提心발보리심.
*화현(化現) ; 부처님이나 보살이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각(各) 중생의 소질에 따라 여러 가지로 모습을 바꾸어 이 세상에 나타나는 것. 화신(化身)이라고도 한다.
*업장소멸(業障消滅) ; 전생(前生)이나 금생(今生)에 행동·말·마음(신구의,身口意)으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이 세상에서 생긴 장애(障礙)가 사라져 없어짐.
*간절(懇切 간절할•정성스런 간,정성스런•절박할 절) ; ①지성(至誠)스럽고 절실(切實)함 ②정성이나 마음 씀씀이가 더없이 정성스럽고 지극함 ③마음속에서 우러나와 바라는 정도가 매우 절실함.
*본참화두(本參話頭) ; 본참공안(本參公案).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낙인(烙印 지질 락,도장 인) ; ①다시 씻기 어려운 부끄럽고 욕된 평판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②불에 달구어 찍는 쇠붙이로 만든 도장.
*타성일편(打成一片) : ‘쳐서 한 조각을 이룬다’. 참선할 때 화두를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화두가 들려서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일체처 일체시에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만이 독로(獨露)한 순수무잡(純粹無雜) 경계.
*순일무잡(純一無雜 순수할 순,하나 일,없을 무,섞일 잡) ; 대상 그 자체가 순일(純一)해 전혀 이질적인 잡것의 섞임(雜)이 없음(無).
*무량겁(無量劫) ; 헤아릴 수 없는 오랜 시간이나 끝이 없는 시간. 劫과 刧는 동자(同字).
*업(業) ; (산스크리트어:karma카르마) ; ①몸과 입과 마음으로 짓는 행위와 말과 생각, 일체의 행위.
②행위와 말과 생각이 남기는 잠재력. 과보를 초래하는 잠재력.
③선악(善惡)의 행위에 따라 받는 고락(苦樂)의 과보(果報).
④좋지 않은 결과의 원인이 되는 악한 행위. 무명(無明)으로 일으키는 행위.
⑤어떠한 결과를 일으키는 원인이나 조건이 되는 작용. 과거에서 미래로 존속하는 세력.
*중생심(衆生心) ; 번뇌에 얽매인 미혹한 존재(중생)가 일으키는 미혹한 마음.
*진여(眞如) ; ①차별을 떠난,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②궁극적인 진리. ③모든 분별과 대립이 소멸된 마음 상태. 깨달음의 지혜. 부처의 성품. ④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청정한 성품.
*불성(佛性) ; ①모든 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부처가 될 수 있는 소질·가능성. ②부처 그 자체. 깨달음 그 자체.
*대총상법문(大總相法門) ; 진여(眞如)를 가르켜 말함. 진여의 실체.
진여가 광대하여 모든 것을 포섭한 것을 대(大)라 하고, 일미 평등(一味平等)하여 차별의 모양을 여읜 것을 총상(總相), 수행하는 이의 모범이 되는 것을 법(法), 관하는 지혜가 드나드는 것을 문(門)이라 한다.
*반야용선(般若龍船) ; 생사의 고해(苦海)에서 고통 받는 중생을 반야(船若, 지혜)로 깨달음의 세계인 피안(彼岸)의 극락정토로 중생들을 건네 주는 반야바라밀의 배[船]를 말한다.
*무간지옥(無間地獄) ; 아비지옥(阿鼻地獄)이라고도 함. 아비(阿鼻)는 산스크리트어 avīci의 음사(音寫)로서 ‘아’는 무(無), ‘비’는 구(救)로서 ‘전혀 구제받을 수 없다’는 뜻. 고통이 끊임없으므로 무간(無間)이라 함.
아버지를 죽인 자, 어머니를 죽인 자, 아라한을 죽인 자, 승가의 화합을 깨뜨린 자, 부처의 몸에 피를 나게 한 자 등, 지극히 무거운 죄를 지은 자가 죽어서 가게 된다는 지옥.
이 지옥에 떨어지는 죄인에게는 필파라침(必波羅鍼)이라는 악풍(惡風)이 있는데 온몸을 건조시키고 피를 말려 버리며 또 옥졸이 몸을 붙잡고 가죽을 벗기며, 그 벗겨낸 가죽으로 죄인의 몸을 묶어 불 수레에 싣고 훨훨 타는 불구덩이 가운데에 던져 넣어 몸을 태우고,
야차(夜叉)들이 큰 쇠 창을 달구어 죄인의 몸을 꿰거나 입, 코, 배 등을 꿰어 공중에 던진다고 한다. 또는 쇠매(鐵鷹)가 죄인의 눈을 파 먹게 하는 등의 여러 가지 형벌로 고통을 끊임없이 받는다고 한다.
*혜명(慧命) ; ①지혜를 생명에 비유하는 말. ②법신(法身)은 지혜가 생명이 된다는 뜻.
*거각(擧却 들 거,어조사 각) ; 화두를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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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