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精進)2014.09.17 06:53

§(760) (게송)수행막대빈모반~ / (게송)진로형탈사비상~ / 잡담(雜談)하지 마라 / 정진과 소임이 둘이 아니다 / '한 생각'을 정말 알뜰히 단속을 해야.

신심과 분심이 철저하면 화두(話頭)에 대한 철저한 의심이 돈발(頓發)하게 되어 있습니다.
잡담을 하면 자기에게도 해로울 뿐만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해를 끼치고 제3자에게도 해를 끼치니 우리 정진하는 사람에게는 잡담이 제일 해로운 것입니다.
수행도 정말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간에 알뜰히 정진을 하고 알뜰히 단속을 해야, 의단이 독로하고 화두가 순일해서 어떠한 찰나(剎那)에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자성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의 소임을 알뜰히 살면서 정말 이 정법을 믿는 사람은 화두를 들고 아침으로는 법문을 들으면서 하루 일과를 알뜰히 살아간다면, 비록 머리는 안 깎았어도 출가한 스님과 마찬가지로 정진할 수 있습니다.
**송담스님(No.760)—2013(계사년) 하안거 결제(05.24)


(1) 약 10분.  (2) 약 13분.


(1)------------------

수행막대빈모반(修行莫待鬢毛斑)하라  호리신분진소년(蒿裡新墳盡少年)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일실인신기시환(一失人身幾時還)고  지옥시장기등한(地獄時長豈等閑)고
나~무~아~미~타~불~

수행(修行)을 막대빈모반(莫待鬢毛斑)하라. 수행(修行)하는데 귀밑을 희기를 기다리지 말아라.
나이가 40, 50이 넘어가면 차츰차츰 흰머리가 하나씩 둘씩 생겨나는데, 수행을 머리털 흴 때 하리라 그렇게 기다리지 말라.
호리신분(蒿裡新墳)이 진소년(盡少年)이다. 쑥대밭에 새 무덤이 다 소년의 무덤이 많다.

일실인신기시환(一失人身幾時還)이면, 한 번 사람 몸을 잃어버리면 언제 다시 사람으로 태어날 것이냐!
지옥시장기등한(地獄時長豈等閑)고, 지옥에 한 번 떨어지면 팔만사천 겁(劫)을 지내도 벗어나기가 어렵다. 더군다나 어떻게 다시 인도환생(人道還生)할 것을 기대할 수가 있겠느냐?

사람이 생겨난 때가 없어.
비록 금생에 사람 몸 받았다하지만은 그 이전에도 우리의 생명은 몇 억만 겁 전에부터서 우리는 사람이 되었다, 업(業)에 따라서 천당(天堂)에도 가고, 축생(畜生)도 되고, 축생도 가지가지 축생으로 태어났다가 다시 또 사람이 되고.

그런데 수백만 번을 몸을 바꿔서 태어나면서 육도(六途)를 윤회(輪廻)하다가 금생에 다행히도 사람 몸을 받았는데,
사람 몸을 받았으나 인생이 무상(無常)함을 철저히 깨닫고 발심(發心)을 해서 불법을 믿고 출가해서 스님이 되는 것은 더 말할 수 없이 다행한 일이고.

사정에 따라서 출가해서 스님이 못되었더라도 가정에 살면서 결혼해 가지고 아들딸 낳으면서 직업을 가지고 살아가면서도 불법을 믿고, 법문(法門)을 듣고 참선(參禪)을 하는 분도 많은데 그러기도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그말이지.

여태까지 우리가 성불(成佛)을 못한 것은 수많은 몸을 받아났으면서도 신심(信心)과 분심(憤心)과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해서 철저하게 수행을 못했기 때문에 아직도 성불을 못한 채 이렇게 중생(衆生)의 몸으로 있다 그말이야.

신심(信心)! 무엇을 믿느냐 하면은,
우리가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코로 냄새 맡고, 입으로 음식을 먹고, 몸으로 느끼고, 생각으로 슬퍼하고 기뻐하고 이러한 작용을 하는 — 작용력이 있는 그것이 바로 우리의 자성(自性) 자리인데.

그 자성 자리는 부처님이나 보살님이나 우리 중생(衆生)이나 축생이나 그 자성(自性) 자리 자체는 조금도 차등이 없지만,
그러한 부처님과 똑같은 불성(佛性)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깨달아서 성불을 못하면 고대로 중생으로서 생사윤회(生死輪廻)를 하는 것이고,

자기한테 그런 부처님과 똑같은 불성이 있다고 하는 것을 철저히 믿고 발심을 해서 비록 사바세계(娑婆世界)에 태어났지만은 철저하게 무상함을 깨닫고 정법을 믿고 수행을 한다면 그것은 얼마나 다행한 일이며.

그렇게 해서 신심과 분심(憤心)과 — 분심은 무슨 분심이냐?
‘왜 억만 겁(劫)토록 불성을 가지고 있으면서 아직도 내가 깨닫지 못했던가? 무엇을 하느라고 여태까지 성불을 못했는가?’ 생각해 보면, 분심이 날 수밖에는 없어.

그래서 신심과 분심이 철저하면 화두(話頭)에 대한 철저한 의심이 돈발(頓發)하게 되어 있습니다.

방금 조실스님의 녹음 법문을 통해서 ‘이뭣고~?’ 화두에 대해서 그렇게 간곡히 자상하게 법문을 해주셨는데,
정말 옛날에는 녹음기가 없었지만 지금은 다행히 녹음기가 있어서 조실스님의 육성(肉聲) 법문을 녹음기를 통해서 언제라도 들을 수 있으니 그 법문을 듣고 참회(懺悔)하고 분심을 내서,
그날 하루하루를 짬지게 알뜰하게 산다면 비록 사바세계에 태어났다 하더라도 얼마든지 무상을 깨닫고 정진을 할 수가 있어서 다행입니다.

옛날에 부처님 이후로 역대 조사(祖師)스님이 계시지만은 경전으로는 그 법문이 전해 내려오지만은 그 육성(肉聲)은 들을 수가 없습니다.

다행히 녹음기라고 하는 기계를 발명을 해 가지고, 조실스님의 녹음 법문을 살아계신 조실스님한테 듣듯이 그 법문을 들을 수가 있으니 얼마나 다행한 일입니까.

아침 6시부터 40분간 불교 방송국에서 저의 설교한 것이 방송이 됩니다.
그것을 들으면 내가 들어도 ‘아, 내가 저런 말을 했구나’하고 감개(感慨)가 새롭고, 아침에 늦게까지 잠자지 말고 6시에는 꼭 일어나서 법문을 들으시고, 그날 하루를 알뜰하게 정진하면서 살아가신다면 참 좋으리라고 생각이 됩니다.(박수)(처음~10분4초)


(2)------------------

진로형탈사비상(塵勞逈脫事非常)이라  긴파승두주일장(緊把繩頭做一場)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불시일번한철골(不是一飜寒徹骨)이면  쟁득매화박비향(爭得梅花撲鼻香)이리요
나~무~아~미~타~불~

지금 이 자리에는 용화사 법보선원 15명 대중, 인제 용화선원 49명, 광주 용화선원 13명, 용주사 중앙선원 17명, 망월사 천중선원 24명, 약사암 10명, 위봉사 위봉선원 31명, 승련사 9명, 원효사 송나선원 17명, 회룡사 선원 20명, 세등선원 18명, 복전암 22명, 전라도 끄터리 도덕사 3명 — 합해서 248명의 수좌(首座)들이 이 법당에 참석을 했습니다.
그밖에도 여러 사찰에 청신사∙청신녀, 신심(信心)있는 신도님들도 많이 참석을 하셨습니다.

비록 13개 선방(禪房)으로 갈라져서 각각 그 선방에서 정진을 하고 있지만은 우리는 전강대종사(田岡大宗師)의 법문을 들으면서 열심히 정진을 하기 때문에,
비록 장소는 여기저기 떨어져 있어도 같은 신심과 같은 믿는 선지식(善知識)의 법문에 의해서 정진을 하기 때문에 비록 멀고 가까운 것에 상관없이 한 도량에서 정진하고 있다고 생각을 해야 합니다.

그렇게 생각을 하고 하루하루를 정진을 하면 잡담(雜談)하고 그럭저럭 지낼 수가 없을 것입니다.
항상 우리가 한 회상(會上)에서, 한 선방에서 같이 정진을 하고 있으면 말 한마디 잡담을 할 수도 없고, 허튼소리 할 수도 없고 그럭저럭 시간을 보낼 수가 없을 것입니다.

항상 같이 우리가 정진하고 있다는 엄숙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정진을 해서 석 달 동안, 90일 동안을 하루같이 그렇게 알뜰하게 정진을 하시리라고 믿습니다.

잡담을 하면 자기에게도 해로울 뿐만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해를 끼치고 제3자에게도 해를 끼치니 우리 정진하는 사람에게는 잡담이 제일 해로운 것입니다.

그러니 잡담을 하지 말고 선방에서 죽비를 치고 입선(入禪) 시간뿐만이 아니라 방선(放禪) 시간이나, 공양하고 난 뒤끝이나, 소지(掃地)를 하거나,
또 각기 소임 따라서 용상방(龍象榜)에 어제 다 방을 짰으리라고 생각이 됩니다만은 각자 자기가 맡은 소임(所任) — 선덕이나 입승이나 부전이나 공양주나 채공이나 별좌나 모든 소임은 각기 분 따라서 다른 소임을 맡았으나 그 소임을 충실히 하면서,

소임을 보면서도 항상 경건하게 화두를 들면서 그 소임을 보아 나아가면 오히려 소임 보는 것이 자기의 정진에도 보탬이 되고 소임을 각자 열심히 살므로 해서 다른 스님네가 정진을 장애(障礙)없이 잘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소임'이라 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자기가 맡은 소임을 열심히 하지 않으면 자기 한 사람으로 해서 여러 대중 스님네께 수행을 해나가는데 지장(支障)을 주는 것인 만큼 소임을 예사로 생각하지 말고,
항상 경건한 마음으로 감사한 마음으로 열심히 소임을 살면서 그 속에서 또 정진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정진! 정진과 소임이 둘이 아닌 것을 확실히 깨닫고 열심히 소임을 보면서 수행을 하시기를 바랍니다.

진로형탈(塵勞逈脫)이 사비상(事非常)이다.
진로형탈(塵勞逈脫)이라 하는 것은 이 사바세계 우리가 생로병사(生老病死)와 희로애락(喜怒哀樂)과 성주괴공(成住壞空), 그러한 살아가는 것이 수고로운 것인데,
진로형탈—‘생사윤회(生死輪廻)를 벗어난다’고 하는 것은 이것이 보통 일이 아닙니다.

정말 이 일상생활 속이 정진을 안 한 사람은 온통 업(業)을 짓는 것이고, 진로(塵勞) 속에서 몸부림치는 것이지만 그 속에서 떠억 화두를 챙기고 정진을 하면 일상생활이 바로 그것이 수행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긴파승두주일장(緊把繩頭做一場)이다, 소임을 보면서도 승두(繩頭)를 꽉 잡아 — 승두가 무엇이냐 하면은 화두를 들고 정진하는 사람은 ‘화두’인 것입니다.
숨을 들여마셨다 내쉬면서 ‘이뭣고~?’, 기분이 나쁠 때도 ‘이뭣고~?’, 언짢은 말을 들어도 ‘이뭣고~?’,
앉아서도 ‘이뭣고~?’, 서서도 ‘이뭣고~?’ 일체처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를 놓치지 않도록 잘 잡드리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불시일번한철골(不是一飜寒徹骨)이다, 한바탕 정진을 해 가지고 그 추위가 뼛골에 사무치지 아니하면,
쟁득매화박비향(爭得梅花撲鼻香)고. 어찌 매화꽃 향기가 코를 침을 얻으리오. 매화는 되게 강추위를 한 뒤끝에 피어야 향기가 난다는 것입니다.

수행도 정말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간에 알뜰히 정진을 하고 알뜰히 단속을 해야, 의단이 독로하고 화두가 순일해서 어떠한 찰나(剎那)에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자성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럭저럭 잡담이나 하고 그럭저럭 지내면 3년, 10년, 30년을 선방에서 산다 하더라도 공부에 진취가 없는 것입니다. 공부라 하는 것은 꼭 오랜 세월 해야만 되는 것은 아닙니다.

‘깨달음’이라 하는 것은 길게 무엇을 연구해 갖고 알아지는 것이 깨달음이 아니고,
알뜰하게 화두를 단속해서 화두가 순일하고 의단이 독로해야 거기에서 어떠한 찰나에 화두를 타파하게 되는 것이니, 한 생각 한 생각을 정말 알뜰히 단속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부자(富者)는 공연히 부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알뜰히 작은 돈을 잘 함부로 쓰지 않고 모아 가지고 그래 가지고  큰 돈이 되는 것이지,
부자라 돈이 많으니까 돈을 아무렇게나 풀풀 써버릴 것같지만은 부자일수록에 더 재산을 소중히 알고 돈을 소중히 간직했다가 쓸 때 알뜰하게 쓰는 것입니다.

우리는 무량겁(無量劫)을 오늘까지 살아왔지만은 ‘우리를 끌고다니는 나의 마음자리, 나의 주인공를 정말 얼마나 알뜰히 단속을 하면서 살아왔는가?’ 냉정히 반성을 해봐야 하는 것입니다.

선방에서 살면 소임없이 살 수 없는 거고, 가정에서도 남편은 남편의 할 일이 있고, 아내는 아내의 할 일이 있고, 가족은 가족 나름대로 다 자기 할 일이 있고, 학생은 공부하고.
그런데 그 자기의 소임을 알뜰히 살면서 정말 이 정법을 믿는 사람은 화두를 들고, 아침으로는 법문을 들으면서 하루 일과를 알뜰히 살아간다면 비록 머리는 안 깎았어도 출가한 스님과 마찬가지로 정진할 수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머리를 깎고 스님이 되어 가지고 그럭저럭 지내는 것보단, 머리를 안 깎았으면서도 세속에서 살림하면서도 알뜰히 수행을 해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신심, 그러한 분심, 그러한 의심으로 금년 계사년 여름 하안거 정진을 스님네나 보살님네나 거사님이나 정말 산승이 오늘 이렇게 간곡히 말씀드린 말씀을 깊이 명심을 하고 정진을 잘 하시기를 부탁을 합니다.(처음~22분39초)(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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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수행막대빈모반~’ ; [치문경훈(緇門警訓)] '잡록(雜錄)'에서 '굉지선사시중(宏智禪師示衆)' 참고.
[참고] 〇宏智禪師示衆
蒿里新墳盡少年  修行莫待鬢毛斑  死生事大宜須覺  地獄時長豈等閒
道業未成何所賴  人身一失幾時還  前程黑暗路頭險  十二時中自着奸
굉지(宏智)선사가 대중에게 보임.
쑥대밭에 새 무덤이 다 소년의 무덤이니, 수행(修行)하는데 귀밑을 희기를 기다리지 말아라.
생사대사(生死大事)를 모름지기 깨달아야 하니, 지옥 고통 길고 기니 어찌 등한히 하겠는가.
도업(道業)을 못 이루면 그 무엇에 의지하며, 사람 몸 한 번 잃고 언제 다시 돌아오리.
앞길이 캄캄하고 가야 할 길 험하구나. 하루 어느 때나 마음을 다잡아 도(道)를 구하여라.
*쑥대밭 ; 쑥이 무성하게 나 있는 거친 땅.
*겁(劫) : [범] Kalpa  음을 따라 갈랍파(羯臘波) 또는 겁파(劫波)라 하고, 다시 줄여서 겁(劫)이라고만 한다. '무한히 오랜 세월'을 가리키는 말이다.
*인도환생(人道還生) ; 인간이 사는 세계로 다시 태어남.
*업(業) : [범] karma [파] Kamma 음을 따라 갈마(羯磨)라고 하며, 「짓다(作)」의 뜻이다。중생들이 몸으로나 말로나 뜻으로 짓는 온갖 움직임(動作)을 업이라 한다.
개인은 이 업으로 말미암아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모든 운명과 육도(六道)의 윤회(輪廻)를 받게 되고, 여러 중생이 같이 짓는 공업(共業)으로 인하여 사회와 국가와 세계가 건설되고 진행되며 쇠퇴하거나 파멸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처음에는 악업(惡業)을 짓지 말고 선업만 지으라고 가르치다가, 필경에는 악과 선에서도 다 뛰어나고, 죄와 복에 함께 얽매이지 말아서 온갖 국집과 애착을 다 버리도록 하여, 부처님의 말씀에까지라도 걸리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
*천당(天堂) ; ①천상(天上)에 있다는 신(神)의 전당(殿堂), 하늘의 세계. 색계(色界)와 무색계(無色界)의 모든 하늘을 통칭하는 말. ②정토교(淨土敎)의 극락세계(極樂世界).
*축생(畜生) ; 삼악도(三惡道) 또는 육도(六道)의 하나로, 죄업 때문에 죽은 뒤에 짐승으로 태어나 괴로움을 받는 세계.
*육도(六途, 六道) ; 중생이 선악(善惡)의 업(業:의지에 기초한 행위)에 의하여 생사 윤회하는 6가지의 세계. 지옥도(地獄道), 아귀도(餓鬼道), 축생도(畜生道), 아수라도(阿修羅道), 인간도(人間道), 천상도(天上道)가 있다.
*무상(無常) ; 모든 현상은 계속하여 나고 없어지고 변하여 그대로인 것이 없음. 온갖 것들이 변해가며 조금도 머물러 있지 않는 것. 변해감. 덧없음. 영원성이 없는 것.
*발심(發心) ; ①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②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원어)發起菩提心발기보리심, 發菩提心발보리심.
*출가(出家) : [범] Pravrajita 집에서 나온다는 말이다。가정 생활을 떠나서 수도와 포교를 전문으로 하기 위하여, 승려가 되는 것을 말함이다。그러나 몸 출가(身出家)보다도,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 등 삼독(三毒)의 불이 늘 붙고 있는 번뇌 망상의 불집에서 뛰어나오는 마음 출가(心出家)를 하여야 한다.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주로 좌선(坐禪) 수행을 말한다.
*성불(成佛 이룰 성,부처 불) ; ①세상의 모든 번뇌를 끊고 해탈하여 불과(佛果)를 얻음. 곧 부처가 되는 일을 이르는 말이다. ②석존이 붓다가야에서 깨달음을 연 것. ③깨달음을 여는 것. 각자가 스스로 무상의 깨달음을 열고, 부처가 되는 것. ④올바른 깨달음을 얻은 것. 혹은 분명하게 완전히 깨달은 것이라는 뜻.
*신심(信心) : ‘내가 바로 부처다’ 따라서 부처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요, 일체처 일체시에 언제나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공, 이 소소영령한 바로 이놈에 즉해서 화두를 거각함으로써 거기에서 자성불(自性佛)을 철견을 해야 한다는 믿음.
*분심(憤心) : 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도인들은 진즉 확철대오를 해서 중생 제도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왜 여태까지 일대사를 해결 못하고 생사윤회를 하고 있는가. 내가 이래 가지고 어찌 방일하게 지낼 수 있겠는가. 속에서부터 넘쳐 흐르는 대분심이 있어야. 분심이 있어야 용기가 나는 것이다.
*의단(疑團 의심할 의, 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독로(獨露 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홀로(獨) 드러나다(露).
*자성(自性) ; ①사물 그 자체의 본성. 본성 ②본래부터 저절로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생사윤회(生死輪廻 날 생,죽을 사,바퀴 윤,빙빙돌 회) : 사람이 어리석음(無明)으로 인한 번뇌와 업에 의하여 삼계육도(三界六道)에서 났다가(生) 죽고(死) 났다가 죽는 것이 바퀴(輪)가 돌듯이(廻) 반복함.
*사바세계(娑婆世界) ;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이 세계. 현실의 세계.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교화하는 세계. 인토(忍土)•감인토(堪忍土)•인계(忍界)라고 한역.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돈발(頓發 갑자기 돈,일어날•나타날•밝힐 발) ; 일정한 단계를 밟지 않고 직접적, 비약적으로 일어나는.
*참회(懺悔 뉘우칠 참,뉘우칠 회) ; ①자기의 잘못에 대하여 깨닫고 깊이 뉘우치며, 다시는 같은 잘못을 짓지 않겠다고 결심함. ②신이나 부처님 또는 대중 앞에서 자기의 죄를 뉘우치고 용서를 구함.
[참고]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156~157 참고.
(70)有罪則懺悔하고  發業則慚愧하면  有丈夫氣象이요,  又改過自新하면  罪隨心滅이니라.
허물이 있거든(有罪) 곧 참회하고, 잘못한 일이 있으면(發業) 곧 부끄러워할 줄 알면(慚愧) 대장부의 기상이 있다 할 것이요,
또한 허물을 고쳐 스스로 새롭게 하면(改過自新), 그 죄업은 마음을 따라 없어지느니라(罪隨心滅).
(註解) 懺悔者는  懺其前愆이요  悔其後過라.  慚愧者는  慚責於內하고  愧發於外라.  然이나 心本空寂이라  罪業이  無寄니라
참회(懺悔)란 먼저 지은 허물을 뉘우치고, 뒷날에는 다시 짓지 않겠다고 맹세하는 것이다.
부끄러워한다(慚愧)는 것은 안으로 자신을 꾸짖고, 밖으로는 자기의 허물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은 본래 비어 고요한 것이라(心本空寂), 죄업이 붙어 있을 곳이 없는 것이다(罪業無寄).
*조사(祖師) : 부처님의 바른 종지(宗旨) 곧 조사선법(祖師禪法)을 전하는 스승을 말함이니 종사(宗師)와 같다.
*감개(感慨) : 마음속에 어떤 느낌이나 감정이 강하게 복받쳐 일어나는 것. 또는, 그 느낌이나 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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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진로형탈사비상~’ ; [황벽단제선사완릉록(黃檗斷際禪師宛陵錄)] 황벽희운(黃檗希運) 선사 게송 참고.
*수좌(首座) ; ①선원(禪院)에서 좌선하는 스님. ②수행 기간이 길고 덕이 높아, 모임에서 맨 윗자리에 앉는 스님. ③선원에서 좌선하는 스님들을 지도하고 단속하는 스님.
*전강선사(田岡禪師) ; 법명은 영신(永信). 호는 전강(田岡).
선사는 1898년 11월 16일(음) 전남 곡성군 입면 대장리에서 정해용(鄭海龍)을 아버지로, 황계수(黃桂秀)를 어머니로 태어나셨다.
16세에 인공(印空) 화상을 득도사로, 제산(霽山) 화상을 은사로, 응해(應海) 화상을 계사로, 해인사에서 출가하여 경을 보다가 도반의 죽음으로 무상함을 느끼고 선방으로 나가 용맹정진하여 23세에 견성하셨다.
당시 유명한 육대 선지식 혜월•혜봉•한암•용성•보월•만공 선사와 법거량을 하여, 모두 인가를 받으시고 25세에 만공 선사의 법맥을 이으셨다.
33세의 젊은 나이로 통도사 보광선원 조실로 추대된 이래 법주사 복천선원•경북 수도선원, 도봉산 망월사•부산 범어사•대구 동화사 등 여러 선원의 조실을 두루 역임하시고 말년에는 천축사 무문관•인천 용화선원•용주사 중앙선원의 조실로 계시다가 1974년 12월 2일(음) 인천 용화선원에서
“여하시생사대사(如何是生死大事)인고?  억! 九九는 번성(翻成) 八十一이니라.”하시고 앉아서 열반에 드셨다.
그리고 후학(後學)을 위한 700여 개의 육성 법문테이프를 남기셨다.
세수(世壽) 77세, 법랍(法臘) 61세.
*선지식(善知識) ; 부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지도자. 좋은 벗.
*회상(會上) ; ①대중이 모여서 설법을 듣는 법회. 또는 그 장소. ②대중들이 모여서 수행하는 공동체 및 그 장소. ③‘회상(會上)’이란 말은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은 후, 영취산(靈鷲山)에서 제자들에게 설법을 하면서 함께 모인 것을 ‘영산회상(靈山會上)’이라 부른 데에서 유래한다.
*입선(入禪) ; 참선 수행(좌선)에 들어가는 것, 좌선(坐禪)을 시작하는 것. 참선(좌선)수행.
*방선(放禪) ; 좌선을 하거나 불경을 읽는 시간이 다 되어 공부하던 것을 쉬는 일. 몸을 쉬는 가운데서도 마음은 항상 본참화두를 들고 있어야 한다.
*소임(所任) : 맡은 바 직책이나 임무.
*용상방(龍象榜) ; 절에서 하안거·동안거 결제 때나, 큰일을 치를 때에 각자 할 일을 정해 붙이는 명단. 행사가 끝날 때까지 모든 사람이 잘 볼 수 있는 곳에 붙여서 각자가 맡은 일에 충실하도록 한 것이다.
*성주괴공(成住壞空) : 세상의 모든 것은 크나 작으나 다 변화의 과정을 밟게 된다。곧 성립되어 가는 과정, 안정(安定)하여 진행하는 과정, 쇠퇴하여 가는 과정, 멸망하여 없어지는 과정이 반드시 있게 된다.
모든 물질도, 우리 몸도 사회도, 국가도, 세계 전체도 다 그렇게 된다.
이것을 성주괴공(成住壞空)이니, 생주이멸(生住異滅)이니, 생로병사(生老病死)니 하는데, 그 원인은 우리의 마음 속에 생각이 쉴 새 없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기 때문이다.
*본참화두(本參話頭) ; 본참공안(本參公案).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타파(打破) ;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그 화두(話頭)에 대한 의심(疑心)을 관조(觀照)해 나가는 것, 알 수 없는 그리고 꽉 맥힌 의심으로 그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그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더 이상 그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더 이상 의심이 커질 수 없고, 더 이상 깊을 수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내 가슴속이 가득 차고, 온 세계가 가득 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눌 때에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탈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잘 때에는 꿈속에서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에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큰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그 항아리를 큰돌로 내려치면은 그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를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참선법 A’ 에서]
*무량겁(無量劫) ; 헤아릴 수 없는 오랜 시간이나 끝이 없는 시간. 劫과 刧는 동자(同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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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싼또샤

§(337) (게송)적수성동신유지~, 심수만경전~, 청군앙면간허공~ / 중생의 모든 희로애락이 바로 그곳이 선불장(選佛場) / 자기 소임을 하면서 거기에 즉해서 '이뭣고?'

일어나는 그 한 생각은 분명 그것이 중생의 생각이지만, 그 중생심을 버리지 아니한 채 바로 화두(話頭)로 돌이켜 버리면, 그것이 바로-거기서 생사심(生死心)이 끊어져 버리고 깨달음으로 걸음을 내딛는 것이 된다.
번뇌나 망상을 없앨려고 허면은 더욱 일어나는데, 없앨려고 허지 말고 끊을려고 허지 말고 일어나는 바로 거기에서 화두를 들고 나아가면, 끊을려고 허지도 않았는데 저절로 번뇌가 끊어져.
**송담스님(No.337) - 정묘년 칠석차례(87.07.07.음)에서.


(1) 약 14분.  (2) 약 13분.


(1)------------------


적수성동신유지(滴水成凍信有之)하고  녹양방초색의의(綠楊芳草色依依)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추월춘화무한의(秋月春花無限意)여  불방한청자고제(不妨閑聽鷓鴣啼)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적수성동신유지(滴水成凍信有之)나  녹양방초색의의(綠楊芳草色依依)로다.
방울 물이 얼음을 이룬다 그말이여. 엄동설한에 물방울이 똑 떨어지면은 떨어지자마자 탁 얼어버리고 또 물방울이 떨어지면 떨어짐과 동시에 얼어버리고. 그러헌 진리가 진실로 있어. 사실 그런 것이로되,

녹양방초색의의(綠楊芳草色依依)여. 푸른 버드나무와 향그러운 꽃이 그 색이 아름답고 아련하다.

엄동설한에는 그렇게 꽁꽁 얼어붙어 가지고 물방울마다 얼어가지고, 결국은 흐르는 강물도 온통 전체가 얼어붙어서 흘러가는 물을 볼 수가 없으나,
어느덧 소한·대한이 지내고 입춘·우수가 돌아오면 그 꽁꽁 얼어붙었던 강물과 온 천지가 녹아가지고 푸릇푸릇 새싹이 돋아온 것이다 그말이여.

강물이 얼어붙고 온 산천이 꽁꽁 얼어붙을 때에는 풀 한포기 이파리 하나 푸른 빛깔을 볼 수가 없지만 봄이 돌아오면은 푸릇푸릇 새싹이 돌아오고 누른 꽃도 피고 빨간 꽃도 피게 된다 그말이여.

이 진리 체(體)에 입각해서 본다면 입으로 가히 설할 법이 없고 귀로 가히 들을 수 있는 법이 아니지만, 그러나 백척간두(百尺竿頭)에 한 걸음을 내려디디면 거기에는 무수방편(無數方便)이 다 이 한 일을 위해서 설해지는 것이여.

부처님께서 녹야원(鹿野苑)에서 법(法)을 설하시기 시작해 가지고, 발제하(跋提河)에서 열반에 들으실 때까지 팔만사천 법을 설하시고도 마지막에 가서는 한 글자도 설한 바가 없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팔만사천 법을 설하시고도 한 글자도 설한 바가 없다고 하셨으니, 그러면 ‘부처님께서 설하신 법이 있느냐?’할 때에 ‘설한 바가 있다’고 한다면 부처님을 비방하는 것이고, ‘설한 바가 없다’고 한다면 경을 비방하는 것이여. 법을 비방한 것이다 그말이여.

설하시고도 설한 바가 없다고 하시고, 설한 바가 없다고 하시면서도 팔만사천 법을 설하셨습니다.
꽁꽁 얼어붙은 엄동설한이 세월이 지나가면 다시 새싹이 나서 잎이 피고 꽃이 피는 도리.

추월춘화무한의(秋月春花無限意), 가을에는 휘황창 달이 밝고 봄에는 울긋불긋 아름다운 꽃이 피는 거기에 한없는 뜻이 있다 그말이여. 한없는 그러한 현상 속에 무한한 뜻이 그 속에 들어있어.

그러기 때문에 불방한청자고제(不妨閑聽鷓鴣啼)여. 한가히 자고새 우는 소리를 듣는 것이 방해롭지 않다. 봄이 돌아와서 잎이 피고 꽃이 피면은 그 꽃이 향기로운 속에는 자고새란 새가 그 노래를 하는데, 그 자고새 노래 소리를 듣는 것이 방해롭지를 않더라.

오늘 정묘년 칠석날을 맞이해서 방금 조실스님의 녹음 법문을, 그 어느 해 칠석날에 설하신 녹음 법문을 사부대중은 경청을 했습니다.
구구절절이 그 감동에 넘치는 그 간곡한 법문을 듣고 바로 12년 전에 열반허셨던 전강 선사(田岡禪師)께서 바로 이 법상에서 육성으로 실지로 설하신 거와 같이 그렇게 낭랑(朗朗)하게 그렇게 법문을 설해 주셨습니다.

칠석날이라 허면은 모든 신남신녀들이 목욕재계(沐浴齋戒)하고 조촐한 마음으로 부처님께 와서 모두 복을 빌고 명을 빌고 소원을 빌어왔습니다.
저 신라·백제 때부터 다 칠성단(七星壇)에 기도를 허고, 칠성단에 공양을 올리면은 업장이 소멸이 되고 수명장수허고 복덕이 구족허고, 아들이 없는 사람은 아들을 낳고, 돈이 없는 사람은 부자가 되고, 모든 소박한 우리 인간의 모든 소원을 빌어오는 그러헌 유서(由緖) 깊은 날입니다.

그날에 조실스님께서는 최상승법(最上乘法)을 설해 주셨습니다.
어떻게 기도를 하고 어떻게 복을 빌고 하면 부자가 되고 수명장수 하고 복덕이 구족하느냐? 그런 말씀은 한 말씀도 허시지 아니허고, 확철대오(廓徹大悟)하는 최상승 법문을 설해 주셨는데,

그 법문 가운데에 “중생의 모든 중생심을 버리고 깨달음을 구하는 것이 아니다.”
중생(衆生)의 마음 - 희로애락과 탐진치 삼독(三毒) 그러헌 마음이 끊임없이 일어났다 꺼졌다 허는데 그 마음을 버리고 그래 가지고 청정한 어떠헌 부처님 마음을 구하는 것이 아니다.

심수만경전(心隨萬境轉), 마음이 일체 경계를 따라서 마음이 이렇게 굴러 가는데,
전처실능유(轉處悉能幽)다. 그 굴르는 곳마다 다 능히 유심(幽深)하다, 깊숙하다.

중생은 경계를 보고 무슨 소리를 듣고 그러면은 그 경계에 따라서, 그 색상 따라서, 거기에 상응해서 온갖 생각이 일어납니다.


슬픈 일을 보면은 슬퍼허고, 기쁜 일을 보면은 기뻐허고, 희로애락에 따라서 경계 따라서 온갖 마음이 일어나는데, 그 경계 따라서 일어나는 그 마음이 그 경계를 여의고 깨달음으로 향한 것이 아니라,
바로 그 경계에 즉해서 자기 본성품을 봐 버리면(隨流認得性) 기뻐헐 것도 없고 근심헐 것이 없다(無喜亦無憂).
우리가 모다 공부를 해 나가는데 가장 중요헌 요점인 것입니다.

중생은 경계에 따라서 온갖 마음이 일어나되, 일어나는 그 마음으로 인해서 둘째 생각 셋째 생각 넷째 생각 해서 점점점점 그 생각이 변해서 발전해 가지고 결국은 한없는 업(業)을 짓게 됩니다.
그 생각이 얼굴에 표현이 되고 행동으로 나타나 가지고, 조그마한 '한 생각'이 동함으로 해서 그 생각이 결국은 행동으로 나타나 가지고 큰 업을 짓게 돼.

그러허기를 무량겁을 두고 오늘날까지 그렇게 해왔고, 현실적으로도 그렇게 해오고 있다 그말이여.

그런데 이 최상승법, 참선(參禪)을 하는 사람은 그 생활해 나가는데 있어서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물론 참선헌 사람이라 하드라도 눈으로 무엇을 보면은 아, 저것은 붉다·누리다·빨갛다, 저것은 사람이다·개다, 그런 것을 느끼지 아니헌 것은 아니여. 느끼되, 그 느낌이 다음 생각으로 발전하기 전에 ‘이뭣고?’하고 화두를 턱! 들어 버린다 그말이여.

그러기 때문에 일어나는 그 한 첫 생각은 분명 그것이 중생의 생각이지만, 그 중생심을 버리지 아니한 채 바로 화두(話頭)로 돌이켜 버리면, 그것이 바로 - 거기서 생사심(生死心)이 끊어져 버리고 깨달음으로 걸음을 내딛는 것이 된다 그말이여.

이것이 최상승법을 믿고 참선 공부를 한 사람과 이 최상승법을 믿지 아니허고 그냥 마구 살아가는 사람과의 차이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처음~14분17초)



(2)------------------


청군앙면간허공(請君仰面看虛空)하라  확락무변불견종(廓落無邊不見蹤)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약해전신사자력(若解轉身些子力)하면  두두물물총상봉(頭頭物物總相逢)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청군앙면간허공(請君仰面看虛空)이라. 청컨댄 그대는 머리를 들고 저 허공을 보아라.
확락무변불견종(廓落無邊不見蹤)이다. 확 트여서, 갓이 없이 트여가지고 그 자취를 볼 수가 없느니라.

약해전신사자력(若解轉身些子力)허면, 만약 거기에서 몸을 뒤치면, 몸을 돌리면,
두두물물(頭頭物物)이 총상봉(總相逢)이다. 일체 두두물물이 모두가 다 '그'더라. 모두를 거기에서 다 만날 수가 있더라. 모든 이치를 거기에서 다 볼 수가 있더라.

화두를 들어서, 들고 또 들고 해서 들어갈수록 알 수가 없다 그말이여. 꽉 맥혀서 알 수가 없어. 한 달, 두 달, 석 달, 1년, 2년, 3년, 4년, 해 갈수록 답답허고 알 수가 없어.
알 수가 없지만 다못 알 수 없는 의심을 향해서 화두를 관조(觀照)해 나갈 따름이거든. 거기에서 망상을 끊을려고 허지 않아도 망상이 끊어지고, 번뇌를 끊을려고 허지 않아도 거기서 번뇌가 끊어져.

번뇌나 망상을 없앨려고 허면은 더욱 일어나는데, 없앨려고 허지 말고 끊을려고 허지 말고 일어나는 바로 거기에서 화두를 들고 나아가면, 끊을려고 허지도 않았는데 저절로 번뇌가 끊어져. 오직 의단(疑團)만이 독로(獨露)허다 그말이여.

순일무잡해서, 그 의단이 독로해서 순일무잡한 그 경계는, 그 맑고 깨끗하고 고요허고 순수무잡한 그 경계는 말로써 표현헐 수가 없어.
거기서 한 생각 더디 의심하면, 한 생각 의심을 놓치면 - 좋다느니, 편안하다느니, 맑다느니 - 딴 생각을 거기서 먹게 되면 찰나(剎那)간에 무간지옥(無間地獄)으로 떨어지는 것이여.

깨달음을 기다리지도 말고, 누가 깨닫게 해주기를 바라지도 말고, 영원히 그런 상태로 계속 되었으면 허는 그런 생각도 헐 필요가 없어. 알 수 없는 화두만을 끝없이 관조해 나가.

행주좌와 어목동정 간에 걸어갈 때나, 앉았을 때나, 누워서나, 차를 탈 때나, 일을 할 때나, 가정에서 살림을 헐 때, 살림을 허게 되면 살림, 설거지를 허게 될 때나, 장사를 허거나, 무슨 밥을 짓거나 찌개를 끓이거나, 똥을 누거나, 옷을 입거나, 빨래를 허거나, 무엇을 허거나 상관이 없어.

가정에서 생활을 하고 직장에서 생활을 하다 보면 기쁜 일도 있고 슬픈 일도 있고 속상하는 일도 있고 걱정스런 일도 있겠죠.
바로 그 기쁜 일이 있을 때에는 기쁜 일을 당한 그 자리에서 ‘이뭣고?’ 슬픈 일을 당허면 슬픈 일을 당한 바로 거기에 즉해서 ‘이뭣고?’ 오늘같이 칠석날을 당허면은 칠석날을 당해서 목욕재계허고 와서 동참을 허고 이렇게 법요식에 참석허면 바로 거기에서.


그렇게 살아가면 중생의 모든 희로애락이 바로 그곳이 선불장(選佛場)이고.

‘최상승법을 믿는 사람은 기복(祈福)불교는 안 믿는다. 그까짓 무슨 복을 빌고, 무슨 소원을 빌고. 인간의 흥망성쇠 재산이나 남편이나 아내나 자식이나 또는 음식이나 명예나 세속의 모든 안락이 그까짓 것이 하루아침 꿈에 지나지 못헌데 얻어봤자 무슨 소용이 있어?
그까짓 것 빌어서 뭐해? 자식도 다 꿈속에서 만난 한 꿈속의 인연이요, 부귀영화도 그까짓 것 한평생 잠깐 왔다 가버리는 그까짓 것을 얻으면 무엇허고 잃으면 무엇해?’

그런 생각을 가지고 복도 빌지도 않고 칠석에도 동참(同參)도 허지도 않고, ‘나는 오나가나 참선 뿐이다. 「이뭣고?」면 그만이지. 그밖에 무엇을 구헐 것이 있어?
구해 봤자 무슨 얻어져 봤자 그거 몇 조금 가냐? 인생 칠십이 하루아침인데 죽어 갈 때 가지고 갈 무슨 소용이 있느냐? 오직 나는 「이뭣고?」뿐이 없다.’


이렇게 나간다면, 그런 사람이 만약에 있다면 그건 참 대발심(大發心)을 허고 인간을 완전히 체달(體達)해 버린 사람이지.

슬퍼도 「이뭣고?」 기뻐도 「이뭣고?」 뭐 집안이 흥해도 「이뭣고?」 망해도 「이뭣고?」 뭐 누가 죽어도 「이뭣고?」 태어나도 「이뭣고?」 좋아헐 것도 슬퍼헐 것도 말 것도 없다.


그렇게 전체가 오직 「이뭣고?」 하나로 딱 되어 가지고 산을 봐도 산일 줄 모르고, 물을 봐도 물인 줄 모르고, 남편을 봐도 남편인 중도 모르고, 자식을 봐도 자식인 줄도 모르고, 이렇게 되어 버렸다면, 그리고 오직 자나깨나 「이뭣고?」 하나 밖에 안 되았다면 그 사람에게는 언어가 끊어져 버려, 시비가 끊어져 버려.
그렇게 되아버렸다면 불일성지(不日成之)여. 그 사람은 며칠 안 가서 언제 툭 터질런지를 몰라, 그런 사람은.

그렇게 실지로 된 사람이 있다면. 승속을 막론허고 그렇게 되어 버렸다면은 그건 누가 그 사람 보고 이래라저래라 시비헐 것이 없어요.
만약에 그렇게 되었다면은 그런 사람이야말로 신심과 분심과 의단이 이 삼요(三要)가 일시에 폭발헌 사람이라.

그렇게 되지 못해서 한(恨)이여. 출가해서 10년 20년 공부해도 그렇게 되지 못하기 때문에 금일야임마(今日也恁麽) 명일야임마(明日也恁麽)거든.

그렇게 되는 것 밖에 더 없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지 못했다면 선방에서는 선방의 법도(法度)가 있고, 가정에서는 가정의 법도가 있어. 사회에 나가면 사회의 법도가 있는 법이여.
그래서 그 법도에 따르면서 행주좌와 어묵동정 그 속에서 항상 일부러 마음을 일으켜서라도 「이뭣고?」를 해야 되는 것이여.


그렇게 애를 쓰고 또 애를 쓰고 허다 보면은 아까와 같은 그러헌 타성일편지경(打成一片之境)이 오는 것입니다.

타성일편지경에 오지도 않으면서 ‘나는 참선을 허니까 운력도 나는 안 한다. 나는 참선을 허니까 예불도 안 한다. 나는 참선 허니까 법당에 갈 것도 없다.’
또 ‘참선을 허니까 나는 그까짓 거 기복불교 허지 아니허고 참선만 헌다. 난 절에도 갈 필요도 없다. 참선 밖에 더 있냐.’ 이렇게 헌다면 그것은 조금 옳은 것 같은데 그것은 옳지 않은 것입니다.

'참의심(眞疑)'이라 하는 것은 '주작(做作)이 끊어진 자리'인 것입니다.
주작(做作)이라 하는 것은 '지을 주(做)자, 지을 작(作)자' 지어서 하는 것, ‘지어서 한다’는 것은 속은 그렇지 못허면서 겉으로 그렇게 헌 것처럼 꾸미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의 놓여진 자리에서 자기에게 주어진 소임이 있습니다. 방부를 들이고 방(榜)을 짜면 각기 소임을 맡듯이 이 가정에서도 소임이 있어.
엄마로서의 해야 할 소임, 아내로서 해야 할 소임, 또는 아들로서 해야 헐 소임, 딸로서 해야 헐 소임, 시어머니로서 해야 헐 소임, 며느리로서 해야 헐 소임, 학생으로서 해야 헐 소임, 회사나 관공서의 직원으로서 해야 헐 소임이 있습니다.

이미 이 세상에 태어났으면 자기에게 주어진 소임을 최소한 허면서 거기에 즉해서 「이뭣고?」를 해야 허는 것입니다.

분심(憤心)과 의심(疑心)과 신심(信心)이 한목 폭발한 상태도 아니면서, 소임도 아니하면서 소임을 포기하고 ‘불법을 믿네, 참선을 헙네’하고 그럭저럭 그렇게 나가면 그것은 꼴불견인 것입니다.
그 사람은 바른 것이 아닌 것입니다. 그 사람은 참선을 바르게 하는 것이 아니고, 최상승법을 옳게 실천해 나간 것이 아닌 것입니다.

아까 ‘심수만경전(心隨萬境轉)이요 전처실능유(轉處悉能幽)’도 역시 그것을 실천하는 데 있어서 마찬가지인 것입니다.(36분28초~49분51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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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적수성동신유지~’ ; [금강경오가해(金剛經五家解)] 무법가득분(無法可得分), 야부도천 게송 참고.
*백척간두(百尺竿頭 일백 백, 자 척, 장대 간, 머리 두) ; ①백 자나 되는 높은 장대 위에 올라섰다는 뜻으로, 몹시 어렵고 위태로운 지경을 이르는 말. ②모든 상대적 차별을 없앤 절대의 경지.
*무수방편(無數方便) ; 헤아릴 수 없이(無數) 많은 방편.
*녹야원(鹿野苑) ; 석가(釋迦)가 35세에 성도(成道)한 후 최초로 설법을 개시한 곳이며, 이때 교진여(僑陳如) 등 5명의 비구(比丘)를 제도(濟度)하였다.
갠지스 강 중류, 지금의 바라나시(Varanasi, 베나레스 Benares)에서 북동쪽 약 7㎞ 지점에 있는 사르나트(Sarnath)의 유적이 곧 녹야원의 터. 사슴동산(녹야원), 즉 사르나트(Sarnath)는 산스크리트어로 ‘사슴의 왕’을 뜻하는 ‘사란가나타(Saranganatha)’가 줄어든 말이다.
붓다가 깨달음을 이룬 우루벨라(uruvelā) 마을의 붓다가야(buddhagayā)에서 녹야원까지는 직선 거리로 약 200㎞됨.
탄생(誕生:룸비니) ·성도(成道:붓다가야) ·입멸(入滅:쿠시나가라)의 땅과 더불어 불교(佛敎) 4대 성지의 하나.
*법(法) ; (산스크리트) dharma, (팔리) dhamma의 한역(漢譯). ①진리. 진실의 이법(理法). ②선(善). 올바른 것. 공덕. ③부처님의 가르침.
*발제하(跋提河) ; 석가모니가 열반한 쿠시나가라 옆에 흐르는 강의 이름.
*칠성단(七星壇) ; 북두칠성(北斗七星)을 신격화한 칠원성군(七元星君)을 모신 단. 칠성에 대한 신앙은 특히 중국의 도교에서 발달하여 이후 ①불교에서 칠성은 호법선신(護法善神)의 하나로 수용되었고 ②민간에서는 특히 수명과 재복을 관장하는 신으로 믿어졌다.
*유서(由緖) ; 예로부터 전하여 내려오는 까닭과 내력.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중생(衆生) : 참 성품을 잃어버리고 망녕된 온갖 생각이 분주하게 일어났다 꺼졌다 하기 때문에, 온갖 세계에 돌아다니면서 났다 죽었다 하는 무리들, 곧 정식(情識)이 있는 것들을 모두 중생이라 한다.
그러므로 사람뿐 아니라 모든 동물과 귀신들과 하늘 사람들까지 합쳐서 하는 말인데, 유정(有情)• 함령(含靈)• 함식(含識)• 군생(群生)• 군맹(群萌)• 군품(群品) 같은 여러 가지 말로도 쓴다.
부처님은 구제의 대상을 인류(人類)에게만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와 같은 중생 전부를 가르치고 건지시는 것이다.
*삼독(三毒) ; 사람의 착한 마음(善根)을 해치는 세 가지 번뇌. 욕심, 성냄, 어리석음(貪,瞋,癡) 따위를 독(毒)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게송) ‘심수만경전~’ ; [직지(直指)] (白雲和尙 抄錄, 조계종출판사) 63쪽 마나라(摩拏羅) 존자 게송 참고.
*유심(幽深)하다 ; 깊숙하고 그윽하다.
*경계(境界) ; ①인과(因果)의 이치(理致)에 따라서, 자신이 부딪히게 되는 생활상의 모든 일들. 생로병사•희로애락•빈부귀천•시비이해•삼독오욕•부모형제•춘하추동•동서남북 등이 모두 경계에 속한다.
②나와 관계되는 일체의 대상. 나를 주(主)라고 할 때 일체의 객(客). ③시비(是非)•선악(善惡)이 분간되는 한계.  경계(境界)에는 역경(逆境)과 순경(順境), 내경(內境)과 외경(外境)이 있다.
*업(業) : [범] karma [파] Kamma 음을 따라 갈마(羯磨)라고 하며, '짓다(作)'의 뜻이다。중생들이 몸으로나 말로나 뜻으로 짓는 온갖 움직임(動作)을 업이라 한다.
개인은 이 업으로 말미암아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모든 운명과 육도(六道)의 윤회(輪廻)를 받게 되고, 여러 중생이 같이 짓는 공업(共業)으로 인하여 사회와 국가와 세계가 건설되고 진행되며 쇠퇴하거나 파멸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처음에는 악업(惡業)을 짓지 말고 선업(善業)만 지으라고 가르치다가, 필경에는 악과 선에서도 다 뛰어나고, 죄와 복에 함께 얽매이지 말아서 온갖 국집과 애착을 다 버리도록 하여, 부처님의 말씀에까지라도 걸리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생사심(生死心) ; '일어났다 꺼졌다'한 그 생각. 번뇌(煩惱), 망상(妄想)을 말함.


------------------(2)


*(게송) ‘청군앙면간허공~’ ; [금강경오가해(金剛經五家解)] 이색이상분(離色離相分), 야부도천 게송 참고.
[참고] 위의 야부도천 게송을 함허 스님이 설의(說誼)한  ‘정체종래절성색~’에 대한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두두물물(頭頭物物) ; 온갖 사물과 현상.
*찰나(剎那 절•짧은시간 찰/어찌 나) ; ①지극히 짧은 시간. 75분의 1초에 해당한다. ②어떤 일이나 현상이 이루어지는 바로 그때.
*선불장(選佛場) ; 부처(佛)를 뽑는(選) 장소(場)라는 뜻. 선원에 있어서 수행자가 좌선하는 곳.
[참고] 중국 고봉 스님의 《선요禪要》의 ‘개당보설(開堂普說)’에, 방 거사(龐居士)의 게송이 아래와 같이 있다.
‘十方同聚會 箇箇學無爲 此是選佛場 心空及第歸’
‘시방세계 대중들이 한 자리에 모여, 저마다 함이 없는 법(無爲)을 배우나니, 이것이 부처를 선발하는 도량(選佛場)이라. 마음이 공(空)해 급제하여 돌아가네.’ (통광 스님 역주 ‘고봉화상선요•어록’ p37,46에서)
*체달(體達) ; 사물의 진상을 통달함.
*금일야임마(今日也恁麽) 명일야임마(明日也恁麽) ; 오늘도 그럭저럭 내일도 그럭저럭.
*법도(法度) ; 생활상의 예법과 제도(制度)를 아울러 이르는 말.
*타성일편(打成一片) : 좌선할 때 자타(自他)의 대립이 끊어져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만이 독로(獨露)한 경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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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싼또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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