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6) 화두 / ‘이뭣고?’-효과와 공덕 / 법(法)의 양식(糧食), 심농(心農) / 노정기(路程記) / 법의 기쁨 / 참선은 우리의 본업(本業), 그 밖에 모든 것은 부업.

‘이뭣고?’는 이 한마디 속에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이 다 들어있는 것입니다.
‘이뭣고?’ 한번하는 공덕이 관세음보살이나 아미타불을 육백 만번한 공덕보다도 더 낫다.
당신네 농사는 당신 밖에는 배가 부르지 않지마는, 우리 마음의 농사는 우리 스스로도 영원히 배부르고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영원히 목마르고 배고픔을 면케하는 해탈도를 증득하는 마음의 농사를 짓는 것이요.
‘이뭣고?’는 별로 재미가 없는 것 같지만 자꾸 해 보면 말로써 표현할 수 없는 '법(法)의 낙(樂)'이 있는 것입니다. '법의 기쁨'이 있어. 해 본 사람만이 느낄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 최상승법을 믿는 실천하는 학자는 이 참선을 갖다가 본업으로 알고, 그 밖에 모든 것을 부업(副業)으로 알고서 본업과 부업을 열심히 또 충실히 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송담스님(No.306) - 86년 8월 화두·불명·수계 법어(86.08.03)에서.


(1) 약 14분.  (2) 약 15분.


(1)------------------

지금부터서 그 오계(五戒)를 지키면서 부처님 제자로써 해탈도(解脫道)를 증득하기 위해서 닦아가는 화두(話頭) 법문을 설하겠습니다.
불명을 이제 타신 분이나, 화두를 타신 분이나, 오계를 받고자 하신 분도 다같이 들으시면 좋습니다.

이 자(字)는 ‘보일 시(示)’자 입니다. 보일 시(示). ‘보인다’ 그말이여.
이 밑에 여러분의 불명(佛名)이 쓰여져 있습니다.
김 아무개에게 보인다. 아래와 같은 공부하는 법을 보여드린다.

유일물어차(有一物於此)하니, 한 물건이 여기에 있으니,
한 물건이 여기에 있으니 상재동용중(常在動用中)하되, 항상 움직여 쓰는 가운데 있으되, 몸을 움직거리고[動] 정신을 쓰고[用] 하는 그 가운데 이 '한 물건'이 항상 있다 그말이여.

그런데 그 몸을 움직거리고 정신을 쓰고 하는 그 가운데에 그놈을 찾으면 얻을 수가 없어(動用中收不得).
분명히 소소영령(昭昭靈靈)하게 있는데 그놈을 거두어 찾을라고 하면 얻을 수가 없다.
눈으로 볼라고 해도 보이지 않고, 손으로 잡을라고 해도 잡히지도 않고, 생각으로 아무리 그놈을 알라고 해도 알 수가 없더라.

그러니 ‘이것이 무엇인고?’ ‘이뭣고~?’
한문으로는 시삼마(是甚麼). 우리말로는 ‘이것이 무엇인고?’ 줄여서 ‘이뭣고?’

‘아무개야’하고 부르면 ‘예!’하고 대답을 하는 그 대답할 줄 아는 놈. 욕하면 퍼르르 성을 내는데 그 성낼 줄 아는 놈. 칭찬하면 기뻐하는데 그 기뻐할 줄 아는 놈. 다치면은 아픈데 그 아플 줄 아는 놈. 배가 고프면 배고픈 밥먹을 줄 아는 놈.

한 생각 악한 생각이 일어나면 독사와 같은 마음이 나는데-나찰귀(羅刹鬼)와 같고 독사와 같이 되는데, 또 한 생각 탁! 돌이켜서 착하게 먹으며 또 천사가 되기도 한다 그말이여.
찰나(刹那) 간에 독사도 되기도 하고, 찰나 간에 천사도 되기도 하는, 그러한 그 신기하고도 묘하고 소소영령한 놈이 우리 모두 가슴속에 있어.

그놈을 성이 날 때도 냉큼 돌이켜서 ‘이뭣고?’ 슬픈 일을 당해도 냉큼 돌이켜서 ‘이뭣고?’

중생들은 뭐 하나가 기분이 나쁘면 이 생각 저 생각, 점점 더 생각에 생각을 더 펴 가지고 점점 속이 상해 나가고, 또 누가 미우면 조금 잘못한 점이 있으면 과거에 몇해 전에 있었던 일까지 이 생각 저 생각 기억을 더듬어 가지고 점점 그 사람을 미워하고 그러는 법이고,
도(道)를 닦는 사람은, 지혜있는 사람은 언짢은 일을 당하더라도 그 생각이 두 번째 생각으로 다른 생각으로 번지기 전에 냉큼 ‘이뭣고?’ 이래 버리거든.

누가 미운 짓을 해도 냉큼 생각을 돌이켜서 ‘이뭣고?’해 버리면, 구태여 계속해서 그 사람에게 욕을 하고 때리고 속상하는 소리를 해 가지고 그 사람과 다툴 필요가 없는 것이여.

그래서 도를 안 닦는 사람은 사소한 일로 해서 점점 죄를 짓게 되고 웬수를 맨들고 시끄럽게 맨들고 남과 웬수를 맺게 되는 거고, 집안을 결국은 수라장(修羅場)으로 맨드는 거고,

이 도를 닦는 사람은 여간해서 그런 환경에 휩쓸리지를 아니하고 냉큼 돌이켜서 ‘이뭣고?’를 하기 때문에 싸울 필요가 없어.
남을 원망할 필요도 없고 언제나 마음속은 항상 부처님을 모시고 사는 또 귀빈을 맞이해서 사는 그런 마음, 항상 천상(天上)이나 극락(極樂)에서 사는 그런 마음으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노를 젓고 갈 때, 노젓는 사람이 노젓기에 따라서 동쪽으로도 가고 서쪽으로도 가는 거와 마찬가지여.

도 닦는 사람은 자기의 한 생각을 잘 조정 함으로써 자꾸 자꾸 승화되어 가고 도가 깊어지는 것이고,
도를 안 닦은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라, 눈을 보면 봄으로 해서 죄를 짓고, 뭣을 들으면 들음으로 해서 점점 번뇌(煩惱)의 불집 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법은 최상승법이다. 최상승법(最上乘法).
이 한마디 ‘이뭣고?’는 이 한마디 속에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이 다 들어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팔만대장경-해인사에 그 팔만대장경 판이 있는데 그놈을 목판에다 찍어보면 수천 권이 되는데 그놈을 읽을 수 있습니까. 읽어도 다 해석도 못하죠.
그러나 ‘이뭣고~?’ 한마디를 하면 팔만대장경을 한번 다 읽은 거와 똑같애요.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을 부르고, 아미타불(阿彌陀佛)을 부르는 공덕이 다 말로써 표현할 수가 없지만, ‘이뭣고?’ 한번하는 공덕이 관세음보살이나 아미타불을 육백 만번한 공덕보다도 더 낫다.
아미타불을 육백 만번 할라면 백일 동안을 계속 불러야 하는데 ‘이뭣고?’ 한번 하는데 1초도 안 걸립니다.   그만큼 ‘이뭣고?’는 공덕이 장한 것입니다. 왜 그러냐?

‘이뭣고?’는 ‘이뭣고?’할 때에 당장 그 자리에서 부처님의 진리를 바로 실천을 하는 것이 되는 것이여.

노정기(路程記), ‘여기서 어느 목적지에 갈라면은 어디행 기차를 타고 가서 내려 가지고, 그 다음에 버스를 타고 얼마를 북쪽으로 가다가 뭐이 나오면 한다.’
그렇게 적혀있는 노정기만 자꾸 읽고 있는 사람과 직접 그런 것을 다 알아 가지고 당장 한걸음 출발하는 사람과의 관계와 마찬가지여. 밤낮 농사짓는 법을 책으로 연구하고 해 봤자 배가 부른 것이 아닙니다.

당장 논에 들어가서 농사를 지어서 밥을 지어 가지고 밥을 바로 입에다 떠 넣는 것이여, ‘이뭣고?’는.
당장 밥을 떠서 입에다 넣어서 깨물어 먹으면은 배가 부르지만, 밤낮 책만 펴 가지고 농사짓는 법만 연구해 가지고 언제 그것이 배가 부르겠습니까.

우리 자신이 농사짓는 법을 잘 연구를 해 가지고 그래 가지고 농사짓는 법도 있지만,
이미 농사 잘 짓는 법 아는 사람과 같이 그 사람과 같이 농사를 짓고, 이미 다른 사람이 농사를 지어논 놈을 갖다가 밥을 해서 딱 놔주면 입에다 떠 넣어준 것입니다.

‘이뭣고?’하라고 가르쳐 준 것은 밥을 여러분 입에다 떠 넣어준 거와 같은 것입니다.
여러분은 씹어서 삼키기만 하면 되는데, 입에다 이렇게 떠 넣어 주어도 뱉어 버리고 씹지도 않고 삼키지 않는다면 그것은 부처님의 힘으로도 어찌 하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이뭣고?’ 한번 해 보세요. ‘이뭣고?’.  ‘이뭣고?’ 한번 할 때마다 여러분은 씹어서 삼키는 거와 같애.
그래서 ‘이뭣고?’ 이것이 ‘법(法)의 양식(糧食)’입니다. 법의 양이여, 도(道)의 양식이거든.

그래서 이 법의 양식을 부지런히 먹고 잘 씹어서 삼키면 여러분은 도를 성취를 하는 것입니다. 견성성불(見性成佛)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마음 심(心)’자, ‘농사 농(農)’자, 심농(心農)이라 그러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하루는 수행하실 때에 들녘을 지나는데,
어느 불법(佛法)을 믿지 않는 바라문(婆羅門)이 부처님이 탁발(托鉢)을 하시니까, ‘밥을 못주겠다.’ ‘왜 못주느냐.’

‘우리는 피땀을 흘려서 농사를 지어가지고 이렇게 먹지만, 당신네들은 농사도 안 짓고 장사도 안 하고, 밤낮 서늘한 그늘속에 앉아서 있다가 때만 되면 거저 밥을 얻어 먹으러 오니 우리는 공밥 먹는 사람에게는 밥을 줄 수가 없다. 이 피땀 흘려서 농사지은 것을 어찌 당신들한테 줄 수가 있겠느냐.’

부처님 말씀이 ‘당신만 농사를 짓는게 아니라 나도 농사를 지었소. 당신보다도 더 열심히 농사를 짓고 있소.’ (바라문) ‘어찌 도를 닦는 사문(沙門)이 거짓말을 허요.’

‘아하, 거짓말이 아니요. 당신네들은 몸뚱이를 가지고 몸뚱이를 먹여 살리는 양식을 가꾸는 농사를 짓지마는, 우리는 영혼을 해탈케하는 도를 이루게 하는 마음의 농사를 짓는다.
당신이 짓는 농사 양식(糧食)으로는 먹어봤자 하루 밖에는 참을 수가 없지만, 우리 마음의 농사는 금생 뿐만이 아니라 영원을 두고 배부르는 그런 농사를 짓는 것이고,
당신네 농사는 당신 밖에는 배가 부르지 않지마는, 우리 마음의 농사는 우리 스스로도 영원히 배부르고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영원히 목마르고 배고픔을 면케하는 해탈도를 증득하는 마음의 농사를 짓는 것이요.’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바라문은 부처님의 말씀에 감동이 되어서 보리심(菩提心)을 발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 농사는 ‘마음의 농사’야.

농사는 짓는 때가 있고 그 때를 타서 열심히 해야지, 씨만 심어놓고 가꾸지를 안하면 그 농사는 폐농(廢農)을 하게 됩니다.

농사를 짓는 농부들은 때 맞춰서 땅을 갈고, 모자리를 해서 그놈을 때 맞춰서 심고, 그래 가지고 농약을 주고 비료를 주고 그래 가지고 그 피땀을 흘려서 농사를 짓게 되는데 그걸 등한히 해 보십시오.
벌레가 다 먹어버리고 물을 맞춰서 주지 않으면 말라죽거나 물에 너무 오랫동안 잠기면은 병이 생기고, 그렇게 해서 수확을 거두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심는 것도 중요하지만, 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잘 가꾸는데 있는 것입니다.

마음의 농사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은 오늘 농사짓는 모자리의 씨를 심었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부지런히 가꾸어서 때 맞춰서 잘 가꾸어 나가야지, 일시라도 등한히 해 버리면 벌레가 와서 침식을 하게 되고 말라죽거나 떠 죽거나 그렇게 해서 못쓰게 되는 것입니다.(32분48초~46분11초)


(2)-------------------

우리의 도(道)도 잠시도 등한히 하면 그렇게 안이비설신의-육근(六根)을 통해서 팔만사천마군(八萬四千魔軍)이가 도를 이루지 못하도록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것입니다.

‘마군이가 왜 우리 도 닦는 것을 방해를 치냐’하면 도인(道人)이 생겨나면 자기네 설 땅이 없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마군이의 궁전이 흔들리게 되고 마군이가 소탕이 되어서 마군이 살곳이 없기 때문에, 마군이가 자기 설 땅을 지키고 자기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도 닦는 사람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아니하고 방해를 놓는 것입니다.

그 마군이를 항상 우리는 잘 대항해서 침범해 들어오지 못하도록 우리 심왕(心王) 국토를 잘 지켜나가야만 우리는 도를 성취를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 마군이는 눈을 통해서 들어오고, 귀를 통해서 들어오고, 코를 통해서 들어오고, 입을 통해서 들어오고, 몸뚱이를 통해서 들어오고, 우리의 생각을 통해서 들어오는 것입니다.

들어올라고 하는 그 찰나에-이미 들어와 버리면 쫓아내기가 어려워, 들어올라고 할 때 딱! 그놈을 문을 닫아 걸어야 되거든.

무슨 생각이든지 일어날 때, 무엇이 눈을 통해서 들어올 때, 어떠한 사물이 귀를 통해서 들릴 때, 코를 통해서 들어오고, 입을 통해서 들어오고, 몸뚱이를 통해서 들어올 때에,
바로 그 즉시 ‘이뭣고?’ 이렇게 한다면, 마군이가 우리의 국토에 발을 디디지 못하고 물러서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최상승법입니다.

별로 재미가 없는 것 같지만 자꾸 해 보면 말로써 표현할 수 없는 법(法)의 낙(樂)이 있는 것입니다. 법의 기쁨이 있어. 해 본 사람만이 느낄수가 있는 것입니다.
자기가 한 달·두 달·석달·1년·이태 이렇게 열심히 하다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전날의 자기가 아닌 딴 사람으로 성장 또 향상되어 가고 있는 것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해탈도를 향해서 우리는 정말 부지런히 닦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모두 세속의 다 직업이 있지만, 이 ‘이뭣고?’ 내가 나를 닦는-나의 영혼을 갖다가 해탈케 하는 이 직업이 정말 우리의 본업(本業)인 것입니다.
다른 것은 그저 몸뚱이를 살찌게 하고 또 의식주를 위해서 다 필요한 것이기는 하지만 그까짓 것들이 우리의 영원한 영혼을 위하는 직업에다 대겠습니까.

그래서 우리 최상승법을 믿는 실천하는 학자는 이 참선을 갖다가 본업으로 알고, 그 밖에 모든 것을 부업(副業)으로 알고서 본업과 부업을 열심히 또 충실히 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 가정이나 개인이나 사회·국가에 있어서 정말 충실하고자 하면 이 ‘이뭣고?’사업을 잘해야 그래야 모든 것이 제대로 되어가는 것입니다.

이 문제가 제대로 되어가지 않고서는 모든 것이 정말 훌륭하게 이루어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또 이루어져 봤자 별 것도 아닌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서 정말 우리는 몸과 목숨을 다 바칠 각오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몸 바칠 것은 오직 이것뿐인 것입니다.

자세를 바르게 하고, 가부좌(跏趺坐)나 반가부좌(半跏趺坐), 한번 앉아 보세요.
가부좌를 할 때는 몸을 단정히 하되 너무 힘을 주어 가지고 뒤로 자지바지하거나 어깨에다 힘을 주거나 목에 힘을 주어서는 아니됩니다. 단정하면서도 힘은 다 빼야 하는 것입니다.

어금니는 지긋이 물고 또 혀는 위로 꼬부려서 저 입천장에다 꼬부려 붙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눈은 평상으로 뜨되 자기 자리에서 약 3미터 지점에다 눈을 떨구는 것입니다.
'눈을 떨군다'하는 것은 의식적으로 한 점을 응시(凝視)하거나 주시(注視)하는 것이 아니고, 본다면 그 점이 보이되 의식적으로는 보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평상으로 뜨되 뜨고만 있으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몸은 좌우나 전후로 기울어지지 않도록 두 어깨위에 두 귀가 수직으로 놓이도록 하고 이렇게 해서 몸을 단정히 한 다음에,

숨을 들어마실 때에는 단전-배꼽밑에 아랫배가 볼록해지도록 하고, 숨을 내쉴 때는 그 배가 차츰차츰 홀쪽해 지도록,
들어마신 호흡이 그까지 가도록 몰아부치는 것이 아니고, 그냥 숨은 코로 들어가지만 우리의 생각은 배가 볼록하게만 맨들면 되어요. 그냥 배를 요렇게 내밀면 되어.
들어마실땐 내밀고 또 숨을 내쉴 때는 배를 홀쪽하게 잡아댕기면 되는 것입니다.

들어마셔 보세요. 배를 볼록하니 내밀면서 숨을 쑤욱 들어마셔. 들어마셨으면 하나·둘·셋 3초 동안 머물렀다가 또 조용하니 숨을 내쉬는데 내쉼에 따라서 배를 등쪽으로 홀쪽하게 맨드는 것입니다.

또 다 내쉬었으면 또 스르르하니 들어마셔. 그래서 들어마시는 시간은 약 3초 동안에 걸쳐서 들어마시고, 들어마셨다가 딱 정지하는데 정지하는 시간은 약 3초, 또 정지했다가 내쉬는 시간이 약 3,4초 조금 긴 듯한 것이 좋은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데, 들어마실 때 너무 배가 가뜩 이렇게 들어마시면 안 되어요. 8부 정도만 들어마시고.
또 딱 정지하는 것도 약 3초 정도만 해야지 너무 오랫동안 참고 있으면 그것도 안되고,
또 내쉴 때에도 약 8부 정도만 내쉬어야지, 뱃속에 하나도 없을 때까지 완전히 뱃가죽이 등어리가 닿을 때까지 다 내쉴려고 하면 그것도 힘이 들고 무리가 가니까 그래도 안 되고,

그래서 들어마신 호흡도 8부 정도 들어마시고, 내쉬는 호흡도 약 8부 정도 들어마셔서 호흡을 하는데 조금도 무리가 안 가도록, 힘이 들지 않도록 자연스럽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들어마셨다가 3초 정지했다가 내쉴 때 ‘이뭣고~?’ 이렇게 하는 거여. ‘이뭣고~?’
‘이뭣고?’할 때 배가 차츰차츰 홀쪽해지도록, 다 내쉬었으면 또 스르르하니 숨을 또 들어마셔 가지고 약 3초 동안 머물렀다가 또 내쉬면서 ‘이뭣고?’ 이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처음에 주욱 하셔 나가면 나중에는 한달, 두달, 석달 이렇게 하다보면 ‘이뭣고?’를 숨 내쉴 때마다 안해도 괜찮게 되어요.
숨은 서너번 할 때에 ‘이뭣고?’ 한번 해 놓고서, 숨은 서너번 들어마셨다 내쉬었다 해도 되는 것입니다.

나중에 참으로 익숙해지면 아침에 ‘이뭣고?’ 한번 하고 점심 때까지 ‘이뭣고?’는 들지 안해도 항상 ‘이뭣고?’하는 알 수 없는 의심만 있으면 그만 그것이 화두를 이미 들어...(녹음 불량)
‘이뭣고?’ 딱 챙기는 것입니다. 이렇게 챙겨 가지고 또 금방 또 망상에 들면 그때 또 ‘이뭣고?’

망상이 들어오지 않고 ‘이뭣고?’한 알 수 없는 의심이 고대로 딱 있으면, 뭐 구태여 ‘이뭣고?’ ‘이뭣고?’ 자꾸 되풀이해서 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아미타불·관세음보살은 하루에 십만 독(讀), 이십만 독해서 횟수를 채우기 위해서 염주(念珠)를 부지런히 돌리면서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하는데 ‘이뭣고?’는 그게 아니어요.
‘이뭣고’ ‘이뭣고’ ‘이뭣고’ ‘이뭣고’.... ‘이뭣고’ 한번 부른 것이 관세음보살 육백만 번 공덕에 해당된다고 그러니까, 이놈을 하루에 오만 독을 하면은 육백만에다 오만을 곱하면 얼마냐? 진짜 이렇게만 하면은 며칠 안가서 툭 터질거다.

절대로 ‘이뭣고?’는 횟수가 문제가 아니고 그 간절(懇切)한 간절한 그 의심, 의심(疑心)이 나중에는 의단(疑團)이 되어.

한번 화두를 들어서 그 '알 수 없는 의심 뭉탱이'가 고대로 있어 가지고 무엇을 봐도 그 의단이 흩어지지 아니하고 무엇을 들어도 흔들림이 없이,
알 수 없는 의단이 눈을 감으나 눈을 뜨나, 앉으나 서나, 일을 하나, 차를 타거나, 누가 옆에서 나한테 욕을 하거나 억울한 소리를 해도 조금도 동요됨이 없이 화두만이 떠억 드러나게 된다면 그게 공부가 자리가 잡혀가는 거여. 익숙해지는 거여.

그렇게 해서 새벽부터 저녁까지, 저녁부터 새벽까지 잠을 자면 꿈에서도 그 의단이 없어지지 않고, 새벽에 눈을 떠도 엊저녁에 들었던 그 화두가 고대로 있게 된다면 그것이 타성일편(打成一片)이라 하는 건데,
공부가 익숙하게 되어서 그렇게 되어야 머지 않아서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정말 알뜰히 열심히 해야 그런 타성일편 지경이 오는 것인데, 열심히 하지 아니하고 허다 말다가 그저 그래 놓고서,
‘아이고, 참선해봤자 되지도 않고 우리는 근기(根機)가 얕아서 염불이나 해야지, 참선은 좋은 줄은 알지마는 죄 많은 중생이라 못한다’고, 이런 자포자기를 하신 분이 있는데 절대로 그렇지를 않습니다.

열심히 해서 발심(發心)하고 분심(憤心)을 가지고 의심(疑心)을 내서, 대신심과 대분심,
‘어째서 과거에 불보살과 선지식은 이 문제를 해결을 해서 해탈도를 증득했는데 나는 왜 같은 사람으로서 무량겁을 두고 오늘날까지 생사윤회(生死輪廻)를 했는가.’
속에서 분한 생각이 나고 그래 가지고 도를 아니 닦을라야 아니 닦을 수 없는 그런 분심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대의단, 대의심, ‘이뭣고?’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대관절 이놈이 무엇인고?’하는 그 간절한 의심.
이 3가지 요소가 동시에 일어날 때에 우리는 화두를 들랴고 안해도 저절로 화두가 들어지는 것입니다. 계를 지킬랴고 안해도 저절로 계가 지켜지는 것이고, 참선을 안 할래야 안 할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도는 그 가운데에 성취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오늘 오계를 받고 또 화두를 타고 또 불명(佛名)을 받게 되겠습니다. 앞으로 스님네가 부르는대로 차례차례 나오셔서 이 불명을 받아 타셔서, 자기의 불명이 무엇인가를 잘 아셔야 합니다.
속에 이와 똑같이 생긴 계문(戒文)이 들어있고 거기에 여러분의 불명이 씌여 있습니다. 한문으로 씌여 있습니다.

여러분이 받은 봉투에는 한글로 씌여 있으니까 자기의 불명이 무엇인가를 똑똑히 아시고,
가정에서도 내외 간에 서로 불명을 부르시면 더욱 좋고, 형제자매 간에도 불명을 부르고 ‘아무개 엄마, 아무개 엄마’하지 말고 ‘아무개 보살’ 이렇게 해서 불명을 서로 부르면 불명을 부른 사람도 공덕이 되고 부름을 받는 사람도 공덕이 되는 것입니다.

피차 업장(業障)이 소멸이 되고, 불명 한번 부를 때마다 ‘이뭣고?’를 하는 데에 연결이 되기 때문에 그것이 바로 자리(自利)와 이타(利他)가 동시에 되는 것이니만큼,
불명을 잘 스스로 잊지말고 남의 불명도 잘 알아서 서로 서로 불러주게 된다면 우리는 부처님의 제자로서 또 부처님의 아들로서 도반으로서 좋은 인연이 깊어지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32분48초~60분35초)(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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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계(五戒) ; (산스크리트어 pañca-śīla) 재가(在家)의 신도가 지켜야 할 다섯 가지 계율.
①불살생(不殺生). 살아 있는 생명을 죽이지 말라.
②불투도(不偸盜). 주지 않은 것을 빼앗지 말라.
③불사음(不邪婬). 삿된 음행을 하지 말라.
④불망어(不妄語). 거짓말을 하지 말라.
⑤불음주(不飮酒). 취기(醉氣)가 있는 것에 취(醉)하지 말라.
*해탈도(解脫道) ; ①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가르침이나 수행.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난 경지. ②사도(四道)의 하나.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나 해탈하는 단계.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불명(佛名) ; 불법에 귀의한 남녀 신자에게 붙이는 이름.
*소소영령(昭昭靈靈) ; 한없이 밝고 신령함. 소소(昭昭)도 영령(靈靈)도 함께 밝은 뜻. 밝은 모양. 진여(眞如)•법성(法性)•불심(佛心)을 의미하는 말.
*나찰(羅刹) : 신속하게 땅이나 공중으로 다니면서 사람을 잡아 먹는다는 무서운 악귀(惡鬼). 나중에 불교의 수호신(守護神)이 되었다.
*도(道) ; ①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그 방법. ②깨달음. ③가르침. ④궁극적인 진리. ⑤이치. 근원.
*수라장(修羅場) ; 아수라장(阿修羅場). ①아수라왕(阿修羅王)이 제석천(帝釋天)과 싸운 마당. ②싸움이나 기타의 이유로 혼란에 빠져 모든 것이 뒤범벅이 된 곳. 또는 그러한 상태.
*번뇌(煩惱 번거러울 번,괴로워할 뇌) ; ①마음이 시달려서(煩) 괴로워함(惱). 나쁜 마음의 작용. 몸과 마음을 번거롭게 하고 괴롭히는 정신작용. 근원적 번뇌로서 탐냄(貪)•성냄(瞋)•어리석음(癡)이 있다.
②나라고 생각하는 사정에서 일어나는 나쁜 경향의 마음 작용. 곧 눈 앞의 고(苦)와 낙(樂)에 미(迷)하여 탐욕•진심(瞋心)•우치(愚癡)등에 의하여 마음에 동요를 일으켜 몸과 마음을 뇌란하는 정신 작용.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스승)으로부터 화두•공안(公案)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공안)을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공안 또는 화두(話頭)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1700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 ; '팔만사천 법문이 있다'는 뜻으로, ‘대장경(大藏經-부처님의 가르침을 적은 경전을 통틀어 이르는 말)’을 달리 이르는 말.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 ; 대자대비(大慈大悲)의 마음으로 중생을 구제하고 제도하는 보살.
관세음(觀世音)은 산스크리트어 avalokiteśvara의 번역, 보살(菩薩)은 산스크리트어 bodhi-sattva의 음사인 보리살타(菩提薩埵)의 준말.
세간(世間)의 중생이 갖가지 괴로움을 받을 때, 그의 이름을 부르면 그 음성(音聲)을 듣고(觀) 대자비와 지혜로써 자유 자재로 중생을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해 주는 보살. 아미타불(阿彌陀佛)의 왼쪽 보처(補處).
또 자재롭게 보는 이(觀自在者), 자재로운 관찰 등의 뜻으로 '관자재보살(觀自在菩薩)'이라 한다. 또 광세음(光世音)·관세음(觀世音)·관세자재(觀世自在)·관세음자재(觀世音自在) 등으로 쓰며 줄여서 관음(觀音)이라 한다. 관세음보살의 주처는 보타낙가산(補陀洛迦山)이다.
한국에서는 동해에 있는 강원도 양양 낙산사(洛山寺)가 관음 도량으로 유명하다.
*아미타불(阿彌陀佛) ; 대승불교에서 서방정토(西方淨土) 극락세계에 머물면서 법(法)을 설하는 부처님.
<정토 3부경>에 있는 이 부처님의 역사는, 오랜 옛적 과거세에 세자재왕불(世自在王佛 Lokesvararaja-Buddha)의 감화를 받은 법장비구(法藏比丘 Dharmakara)가 2백 10억의 많은 국토에서 훌륭한 나라를 택하여 이상국을 건설하기로 기원하였다.
또 48원(願)을 세워 자기와 남들이 함께 성불하기를 소원하면서 오랜 겁을 수행한 결과 지금부터 10겁 이전에 그 원행(願行)이 성취되어 아미타불이 되었다. 줄여서 미타(彌陀).
의역하면 무량광불(無量光佛 Amitabha Buddha-무한한 공간에 꽉 차 있어서 안팎과 갓이 없는 빛의 부처님), 무량수불(無量壽佛 Amitayus Buddha-무한한 시간에 뻗치어서 끝없는 생명의 부처님).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아 부처가 됨[成佛].
*바라문(婆羅門) ; ‘브라만(Brahman)(인도 카스트 제도에서 가장 높은 지위인 사제 계급)’의 음역어.
*탁발(托鉢 밀 탁, 바리때 발) ; 스님이 경문을 외면서 집집마다 다니며 보시를 받음.
*사문(沙門) ; 슈라마나(산스크리트어: śramaṇa, 팔리어: samaṇa)의 음역. 식(息)·근식(勤息)·정지(淨志) 등으로 번역. 여러 선법(善法)을 근수(勤修)하고, 악법(惡法)을 행하지 않으며, 심신을 조어(調御)하여 청정(淸淨)한 깨달음의 길을 지향(志向)하고 노력함을 뜻함.
①인도에서 바라문교의 「베다」 성전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제종교 수행자의 총칭.
②출가하여 불문(佛門)에 들어 도를 닦는 사람.
*보리심(菩提心) ; ①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 ②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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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근(六根) ; 육경(六境-色•聲•香•味•觸•法)을 인식하고 판단하기 위한 능력이 있는 기관. 눈, 귀, 코, 혀, 몸, 뜻(眼,耳,鼻,舌,身,意)을 이른다.
*팔만사천(八萬四千) 마군(魔軍) ; 많은 수의 악마의 군세(軍勢)를 뜻함.
*도인(道人) ; 깨달은 사람.
*심왕(心王) : 의식 작용의 본체。객관(客觀) 대상에 대하여 그 일반상(一般相)을 인식하는 정신 작용。여기에 육식(六識), 팔식(八識), 구식(九識)의 구별이 있다.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주로 좌선(坐禪) 수행을 말한다.
*본업(本業) ; ①주가 되는 직업. ②주로 하는 일.
*부업(副業) ; 본업 이외에 여가를 이용하여 갖는 직업.
*가부좌(跏趺坐 책상다리할 가,책상다리할 부,앉을 좌) ; 좌선할 때 앉는 방법의 하나.
*간절(懇切 간절할•정성스런 간,정성스런•절박할 절) ; ①지성(至誠)스럽고 절실(切實)함. ②정성이나 마음 씀씀이가 더없이 정성스럽고 지극함. ③마음속에서 우러나와 바라는 정도가 매우 절실함.
*의단(疑團 의심할 의, 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타성일편(打成一片) : ‘쳐서 한 조각을 이룬다’. 참선할 때 화두를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화두가 들려서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일체처 일체시에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만이 독로(獨露)한 순수무잡(純粹無雜) 경계.
*근기(根機 뿌리 근,베틀 기) ;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는 중생의 소질이나 근성.
*발심(發心) ; ①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②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원어)發起菩提心발기보리심, 發菩提心발보리심.
*생사윤회(生死輪廻) ; 육도윤회(六途輪廻). 선악(善惡)의 응보(應報)로 육도(六途-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의 고락(苦樂)을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것.
*계문(戒文) ; 불자(佛子)가 지켜야 할 행동 규범을 조목별로 적은 글.
*업장(業障) ; 전생(前生)이나 금생(今生)에 행동•말•마음(신구의,身口意)으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이 세상에서 장애(障礙)가 생기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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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싼또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