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심 자신(自信)2020. 3. 30. 16:33

 

 

§(602) (게송)일종위배본심왕~ / 우리 모든 중생들이 본래는 비로자나 부처님이요, 본심왕과 같은 식구, 같은 도반이었었고 본심왕의 한 몸이었었다 / 최상승법에 의해서 자기의 면목(面目)을 찾는 것이 본심왕이 계신 마음의 고향으로 한 걸음 한 걸음 향하고 있는 것이다 / 「최상승론(最上乘論)」 夫修道之本體 須識當身心 本來淸淨 不生不滅 無有分別 自性圓滿淸淨之心 此是本師 乃勝念十方諸佛.

 

오조홍인 대사의 「최상승론」에 말씀하신, 바로 이 몸을 끌고 다니는 이 마음이 본래청정(本來淸淨)해서 불생불멸(不生不滅)하고 무유분별(無有分別)하고, 이 자성원만청정심(自性圓滿淸淨心)이 바로 비로자나 부처님이요, 석가모니 부처님이라고 하는 철저한 신념과 달관(達觀)만이 이것이 최상승(最上乘)이요, 바로 내가 부처님이 되는 길이다 이것입니다.

 

이러한 믿음과 이러한 철저한 인식 위에서 '이뭣고?'

 

난관에 부딪히지 않고 수월하게 되어가는 사업, 되어가는 공부는 힘이 하나도 없어. 운동 선수나 모든 것이 그런 난관을 부딪히면서 거기에서 자기가 야물아지는 거고 건강해지는 것이고 그리해야 더 큰 문제를 당했을 때 중심이 흔들리지 않고 자기도 목적을 이루게 될 뿐만 아니라, 많은 중생을 제도하는 데에도 끄떡이 없는 것이다.

 

**송담스님(No.602)—1998년 2월 첫째일요법회(98.02.01) (용602)

 

약 13분.

 

일종위배본심왕(一從違背本心王)하고  기입삼도역사생(幾入三途歷四生)고

나무~아미타불~

금일척제번뇌렴(今日滌除煩惱染)하니  수연의구자환향(隨緣依舊自還鄕)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일종위배본심왕(一從違背本心王)하고, 한 번 본심왕(本心王)을 등지고 나온 뒤로,

기입삼도역사생(幾入三途歷四生)고, 몇 번이나 삼악도(三惡途)에 들어갔으며, 몇 번이나 태란습화(胎卵濕化) 사생(四生)을 거쳐 왔던가.

 

금일척제번뇌렴(今日滌除煩惱染)하니, 오늘 번뇌(煩惱)의 생각을 깨끗이 씻어버리니,

수연의구자환향(隨緣依舊自還鄕)이로구나. 인연 따라서 옛을 의지해서 스스로 마음의 고향으로 돌아가게 되었구나.

 

우리가, 우리 모든 중생들이 본래(本來)는 본심왕(本心王), '근본 마음의 왕'이라 한 것은 진여불성(眞如佛性)이요, 비로자나(毘盧遮那) 부처님이요, 그런 본심왕과 같은 식구였었고, 같은 도반(道伴)이었었고 본심왕의 한 몸이었었어.

 

그런데 그 본심왕을 저버리고 등지고 거기서 한 생각 잘 못 먹고서, 한 생각 그릇 먹은 탓으로 거기서 떨어져 나왔다 그말이여.

그래가지고 수없는 생(生)을 지옥(地獄) · 아귀(餓鬼) · 축생(畜生)으로 돌고 돌며 태란습화(胎卵濕化) 사생(四生)의 몸을 받아가지고 돌고 돌다가, 다행히 금생에 이렇게 사람 몸을 받았고 또 불법(佛法)을 만나서 이렇게 이 자리에 이렇게 형제자매 도반으로 불법을 믿고 전강 조실 스님의 최상승 법문(最上乘法門)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 최상승 법문을 듣고 믿고 마음에 계합(契合)해서 그 법문에 의지해서 여법(如法)히 수행할 보리심(菩提心)을 발(發)했으니 그것으로써 우리의 역겁(歷劫) 다생(多生)으로 오면서 우리의 자성(自性)에 끼인 번뇌렴(煩惱染), 띠끌 먼지를 깨끗이 씻어 버리게 되었다 그말이여.

 

인연 따라서, 각자 자기의 어떠한 이 사바세계(娑婆世界)에 이 나라에 남녀노소와 자기의 직업과 자기의 상황에 그 자리에 있어서 그렇게 살면서 그 속에서 최상승법(最上乘法)에 의해서 자기(自己)의 면목(面目)을 찾는 것 그 자체가 본심왕(本心王)이 계신 마음의 고향으로 한 걸음 한 걸음 향하고 있다 그말입니다.

 

 

방금 우리는 전강 조실 스님의 녹음 법문을 통해서 실참실오(實參實悟), '실다웁게 진실하게 닦고 참되게 깨달아야 한다'는 간곡한 법문을 다 같이 들었습니다.

 

오조홍인(五祖弘忍) 대사(大師)의 「최상승론(最上乘論)」에,

대저 수도(修道)의 본체(本體)는, 도를 닦아가는 참다운 근본은 무엇이냐 하면은 모름지기 자기 자신의 몸과 마음이 본래청정(本來淸淨)하다. 본래 청정해가지고 불생불멸(不生不滅)이며, 남[生]도 없고 멸(滅)함도 없으며 무유분별(無有分別)하다, 분별도 없다.

 

자성원만청정(自性圓滿淸淨)한 마음이 이것이 바로 본사(本師)니라. 본사(本師), 근본 스승이다.

본사라 하는 것은 석가모니(釋迦牟尼) 부처님이요, 바로 비로자나(毘盧遮那) 부처님이시다 이거여.

그렇게 확실히 알고 믿어야 한다 그말이여. 그렇게 확실히 믿고 그렇게 달관(達觀)을 해 버리는 거여.

 

그리해야 '이뭣고?'를 한번을 하더라도 그 한번의 '이뭣고?'가 바로 자성의 부처님과 바로 하나가 되어가는 길이여.

이렇게 해 나간 것이 승념시방제불(勝念十方諸佛)이니라. 시방에 모든 부처님을 생각하는 것보다 낫느니라.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을 염(念)하고, 아미타불(阿彌陀佛)을 염(念)하고,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을 부르고 한 것도, 일심으로 일심불란(一心不亂)하게 해 가면 그것도 하나의 수행 방법이고 좋은 수행 방법이기는 하지마는.

지금 오조홍인 대사의 「최상승론」에 말씀하신, 바로 이 몸을 끌고 다니는 이 마음이 본래청정(本來淸淨)해서 불생불멸(不生不滅)하고 무유분별(無有分別)하고, 이 자성원만청정심(自性圓滿淸淨心)이 바로 비로자나 부처님이요, 석가모니 부처님이라고 하는 철저한 신념과 달관(達觀)만이 이것이 최상승(最上乘)이요, 바로 내가 부처님이 되는 길이다 이것입니다.

 

이러한 믿음과 이러한 철저한 인식 위에서 '이뭣고?'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간에, 어데서 무엇을 하던지 간에 앉어서나 서서나 일어서서나 일할 때나, 심지어는 골이 날 때나 속이 상할 때나, 외롭고 쓸쓸하고 슬플 때나, 오늘날과 같이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사회 국가의 모든 어려운 난국(難局)을 만났을 때에 가정적으로 개인적으로 많은 물질적 심적 고통과 곤란을 우리는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1997년 12월, 아이엠에프(IMF) 경제위기]

이럴 때일수록 더욱 이 최상승법(最上乘法)을 의지하고 정법(正法)에 의지해서 우리를, 중심을 잡어 나가야 할 때라고 생각을 합니다.

 

 

부처님 말씀에, 어려운 속에서 어려운 일을 당해보지 않고,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나 난관(難關)에, 난관을 만나가지고 그 난관에 부딪혀서 그 난관을 극복해 나가면서 자기 중심을 잡어 나가고, 사업이 되었건 학문이 되었건 또는 도(道)를 닦는 일이 되었건, 난관에 부딪히지 않고 수월하게 편안하게 그러기를 바래지 말라 이거거든.

 

난관에 부딪히지 않고 수월하게 되어가는 사업, 되어가는 공부는 힘이 하나도 없어.

운동 선수나 모든 것이 그런 난관을 부딪히면서 거기에서 자기가 야물아지는 거고 건강해지는 것이고 그리해야 더 큰 문제를 당했을 때 중심이 흔들리지 않고 자기도 목적을 이루게 될 뿐만 아니라, 많은 중생을 제도하는 데에도 끄떡이 없는 것이다 하는 그런 요지(要旨)의 법문을 많이 하셨습니다.(처음~13분18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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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일종위배본심왕(一從違背本心王)~’ ; 『석문의범(釋門儀範)』 관욕(灌浴) 입실게(入室偈) 참고.

*삼악도(三惡途) : 삼악취(三惡趣)라고도 하며 지옥, 아귀, 축생을 말한다。죄악을 범한 결과로 태어나서 고통을 받는 곳으로 즉 지옥의 고통과, 아귀의 굶주림과, 축생의 우치에서 방황하게 된다는 것이다.

*사생(四生) ; 중생이 윤회하는 세계인 육도(六途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에서의 네 가지 생(生), 네 가지 태어나는 방식. 태생(胎生), 난생(卵生), 습생(濕生), 화생(化生)을 이른다.

*'마음의 고향(故鄕)' ; 본향(本鄕). 본고향(本故鄕). 태어나고 자란 본래의 고향. 이 뜻에 기초하여 사람이 본래 갖추고 있는 심성[本性] 또는 청정한 불국토라는 뜻으로 쓰인다.

*진여불성(眞如佛性) ; 진여(眞如)인 불성(佛性).

*진여(眞如) ; ①차별을 떠난,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②궁극적인 진리. ③모든 분별과 대립이 소멸된 마음 상태. 깨달음의 지혜. 부처의 성품. ④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청정한 성품.

*불성(佛性) ; ①모든 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부처가 될 수 있는 소질·가능성. ②부처 그 자체. 깨달음 그 자체.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 ; 비로자나(毘盧遮那)는 vairocana의 음사(音寫). 노사나(盧舍那)·자나(遮那) 등으로도 음사한다. 부처님의 몸에서 나오는 빛과 지혜의 빛이 세상을 두루 비추어 가득하다는 뜻에서 광명변조(光明遍照, 日), 허공과 같이 드넓은 세계에 거처하며 그 공덕과 지혜가 청정하다는 뜻에서 광박엄정(廣博嚴淨), 시공간적으로 어떤 한계도 없이 일체법과 모든 중생으로부터 떨어져 있지 않는다는 뜻에서 변일체처(遍一切處) 등이라 한다.

①진리 그 자체인 모든 곳에 편재(遍在)하는 법신으로서의 비로자나 부처님. ②대일여래(大日如來)와 같음.

*전강선사(田岡禪師) ; (1898-1974) 법명은 영신(永信), 호는 전강(田岡).

선사는 1898년(戊戌) 11월 16일 전남 곡성군 입면 대장리에서 정해용(鄭海龍)을 아버지로, 황계수(黃桂秀)를 어머니로 태어나셨다.

16세에 인공(印空) 화상을 득도사로, 제산(霽山) 화상을 은사로, 응해(應海) 화상을 계사로, 해인사에서 출가하여 경을 보다가 도반의 죽음으로 무상함을 느끼고 선방으로 나가 용맹정진하여 23세에 견성하시고 다음의 오도송을 지으셨다.

 

昨夜月滿樓 (작야월만루)  窓外蘆花秋 (창외노화추) 어젯밤 달빛은 누(樓)에 가득하더니 창밖은 갈대꽃 가을이로다.

佛祖喪身命 (불조상신명)  流水過橋來 (유수과교래) 부처와 조사도 신명(身命)을 잃었는데 흐르는 물은 다리를 지나오는구나.

 

당시 유명한 육대 선지식 혜월⋅혜봉⋅한암⋅용성⋅보월⋅만공 선사와 법거량을 하여 모두 인가를 받으시고 25세에 만공선사로부터 아래의 전법게를 받으시니 경허-만공으로 이어지는 불조정전(佛祖正傳) 제77대의 법맥을 이으셨다.

 

佛祖未曾傳 (불조미증전)  我亦無所得 (아역무소득) 불조가 일찍이 전하지 못했는데 나도 또한 얻은 바 없네.

此日秋色暮 (차일추색모)  猿嘯在後峰 (원소재후봉) 이날에 가을빛이 저물었는데 원숭이 휘파람은 후봉에 있구나.

 

33세의 젊은 나이로 불찰대본산 통도사 보광선원 조실로 추대된 이래 법주사 복천선원⋅경북 수도선원⋅도봉산 망월사⋅부산 범어사⋅대구 동화사 등 여러 선원의 조실을 두루 역임하시었다.

 

제자 송담선사를 만나 10년 묵언수행을 지도하시자 송담선사는

 

黃梅山庭春雪下 (황매산정춘설하)  寒雁唳天向北飛 (한안여천향북비) 황매산 뜰에는 봄눈이 내렸는데, 차운 기러기는 저 장천에 울며 북을 향해서 날아가는구나.

何事十年枉費力 (하사십년왕비력)  月下蟾津大江流 (월하섬진대강류) 무슨 일로 십년 동안을 헛되이 힘을 허비 했던고! 달 아래 섬진대강이 흐르는구나.

 

이와 같이 오도송을 짓고 선사와 탁마하시니 선사께서는 흔연히 인가하시고 다음의 전법게와 함께 법을 전하시어 송담선사로 하여금 불조 제78대 법맥을 잇게 하셨다.

 

非法非非法 (비법비비법) 無法亦無心 (무법역무심) 법도 아니요 비법(非法)도 아니니라. 법(法)도 없지마는 마음도 없느니라.

洛陽秋色多 (낙양추색다) 江松白雲飛 (강송백운비) 낙양에는 추색(秋色)이 많고 강송(江松)에 백운(白雲)이 날으니라.

 

말년에는 천축사 무문관⋅인천 용화사 법보선원⋅용주사 중앙선원의 조실로 계시다가 1974년(甲寅) 음력 12월 2일, 인천 용화선원에서,

 

“여하시생사대사(如何是生死大事)인고? 억! 九九는 번성(翻成) 八十一이니라.”

 

라는 임종게를 남기시고, 평소 정진하시던 의자에 앉으시어 열반에 드시니 세수 77세, 법랍 61세이셨다. 선사께서는 후학을 위한 칠백 여 시간 분량의 육성 녹음법문을 남기셨다.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간화선(看話禪) ; 화(話)는 화두(話頭)의 준말이다. 간화(看話)는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을 본다[看]’는 말로써,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이 화두를 관(觀)해서, 화두를 통해서 확철대오하는 간화선을 전강 조실스님과 송담스님께서는 ‘최상승법(最上乘法)’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고 말씀하신다.

*여법(如法 같을·같게 할·따를·좇을 여/ 부처님의 가르침·불도佛道 법) ; 부처님의 가르침에 맞음.

*'보리심(菩提心)을 발(發)했으니' ; 발보리심(發菩提心). 발심(發心).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을 일으킴[發].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이라고 한다.

보리심은 모든 부처님이 부처님이 될 수 있었던 바탕이 되는 종자이고 청정한 법이 자라날 수 있는 좋은 밭이기 때문에 , 이 마음을 발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면 속히 위없는 보리를 증득한다.

*실참실오(實參實悟) ; 실답게 참구(參究)하고 실답게 깨달음. 참(參)은 참선(參禪) 또는 참구(參究). 실참(實參)은 공안(화두)을 이론으로 분석하고 따지는 것이 아닌 선지식의 지도 아래 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드는 것을 말한다.

다만 그 꽉 맥힌 의심으로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고, 의단이 더이상 간절(懇切)할 수가 없고, 더이상 커질 수가 없고, 더이상 순일무잡(純一無雜)할 수가 없어 가지고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어 그놈을 타파(打破)할 때에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는 것이다.

 

[참고 ❶] 『조계진각국사어록(曹溪眞覺國師語錄)』 「서답(書答)」 ‘답노상서(答盧尙書 노상서에게 답함)’에서.

所以古德云 路途之樂 終未到家 見解入微 不名見道 參須實參 悟須實悟 閰羅大王 不怕多語 若要實參實悟 須是從前坐禪處得底 經敎上得底 古人語錄上得底 宗師口頭下得底 有滋味寶悟處 一時掃向他方世界 好字細看

 

그러므로 옛 스님은 ‘길의 즐거움은 종내 집에 이르지 못하게 하며, 보고 알아 미세한 데 들어가는 것은 도를 보았다 할 수 없습니다. 참구는 진실한 참구이어야 하고 깨달음도 진실한 깨달음이어야 합니다. 염라대왕은 많은 말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만일 알차게 참구하여 진실로 깨달고자 하면, 종전에 좌선(坐禪)해서 얻은 것과 경전에서 얻은 것과 고인의 어록에서 얻은 것과 종사의 입을 통해 얻은 것 등에서 자미(滋味)있고 소중히 여긴 깨달았던 경계를, 한꺼번에 다른 세계에 쓸어 버리고 자세하게 살펴야 좋을 것입니다’ 하였습니다.

 

[참고 ❷] 『고봉화상선요(高峰和尙禪要)』 26. 「시중(示衆)」에서

若論實參實悟 正如八十公(翁?)公 向逆風逆水裏 牽一隻無底鐵船相似 不問上與不上 徹與不徹 直須心心無間 念念無虧 一步一步 盡平生伎倆睚(厓?)將去 睚到著脚 不得處 筋斷骨折時 驀然水轉風回 卽是到家消息 卽今莫有到家底麼 (卓柱杖一下 云) 十萬八千

 

만일 실답게 정진을 하고 실답게 깨닫는 것을 말하자면 마치 80세의 늙은이가 바람을 거스르고 물살을 거슬러서 한 척의 밑 없는 쇠배를 끄는 것과 같으니, 올라가고 올라가지 못함과 도달하고 도달하지 못함을 묻지 말고, 곧 마음 마음이 끊임없이, 생각 생각이 이지러짐이 없이 한 걸음 한 걸음에 평생의 힘을 다하여 끝까지 밀고 나아가야 한다.

밀어서 다리를 붙일 수 없는(더이상 나아갈 곳이 없는) 곳과 힘줄이 끊어지고 뼈가 부러질 때 이르르면 별안간 물살과 바람의 방향이 바뀌는데 이것이 바로 집에 이르른 소식이다.

지금 집에 이르른 이가 있느냐? (주장자로 한 번 치고 말하기를) 십만(十萬) 팔천리(八千里)로다.

 

[참고 ❸] 『백운화상어록(白雲和尙語錄)』 상권 ‘흥성사입원소설(興聖寺入院小說)’에서.

若也眞實參學者 參須實參 悟須實悟 始得 且作麽生是實參實悟耶 於二六時中 四威儀內 以生死大事爲念 離心意識 參出凡聖路 學以無心無爲 綿密養之 常常無念 常常不昧 了無依倚 到冥然地 自然合道 不見古人云 無心方見本來人

 

만약 진실한 참학자(參學者)라면 참구는 반드시 진실한 참구이어야 하고 깨달음도 진실한 깨달음이어야 한다. 그렇다면 무엇이 진실한 참구이며 진실한 깨달음인가?

하루 열두 시간과 사위의(四威儀) 가운데서 생사의 큰 일을 생각하되, 심의식(心意識)을 떠나 참구하여 범성(凡聖)의 길을 벗어나고 무심(無心)과 무위(無爲)를 배우고 그것을 면밀히 길러 언제나 무념(無念)하고 항상 어둡지 않아, 마침내 기댈 곳이 다 사라지고 명연(冥然)한 자리에 이르면 자연히 도에 합할 것이다. 고인이 ‘무심(無心)이어야 비로소 본래인(本來人)을 본다’라는 말을 모르는가?

*오조(五祖) : (602 – 675) 이름은 홍인(弘忍)이고, 성은 주(周)씨인데, 호북성 기주(蘄州) 황매현(黃梅縣)에서 났다.

중국 선종의 제 4조(四祖) 도신(道信)의 법을 받아 황매현 쌍봉산(雙峰山)에서 오래 교화하였다.

많은 제자들 가운데 혜능(慧能)과 신수(神秀)의 두 분이 있었으므로, 6조 혜능 계통은 남돈(南頓)의 남종선이 되었고, 신수 계통은 북점(北漸)의 북종선이 되어 두 종파가 생기게 되었다.

671년에 법을 혜능에게 전하고, 당나라 고종(高宗) 상원(上元) 2년에 74살로써 입적하였다. 시호(諡號)를 대만선사(大滿禪師)라 하고, 황매산 동산에 탑을 세웠다.

달마대사가 인도에서 중국으로 건너와 성립된 선종(禪宗)은 2조 혜가(慧可), 3조 승찬(僧粲)을 거쳐 4조 도신(道信) 스님으로 이어진다. 도신의 제자 법융(法融) 스님이 우두산에서 선법을 선양하여 우두종(牛頭宗)이 생겼다. 그리고 5조 홍인 대사의 문하에서 남종과 북종으로 갈라져 남종선, 북종선이 되었다.

*최상승론(最上乘論) ; 1권. 5조 홍인대사(弘忍大師)의 저술.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청정한 불성(佛性)을 확인하여 잘 지키는 수심(守心)을 강조한 저술.

돈황 출토본 중에 「기주인화상 도범취성 오해탈종 수심요론(蘄州忍和尙導凡趣聖悟解脫宗修心要論)」이 이것과 같은 것으로, 제목은 다르나 기주 인화상이 곧 홍인대사이며, 「수심요론」이 우리나라에서 「최상승론」이라는 제목으로 전해왔음을 알 수 있다.

*석가(釋迦) : [범] Sakyamuni 한문으로는 음대로 써서 석가모니(釋迦牟尼) 또는 석가문(釋迦文)이라 하고, 줄여서 석가(釋迦)라 한다。뜻으로 번역하여 능인적묵(能仁寂默) 또는 능적(能寂)•능유(能儒)라 한다。Sakya는 종족(種族)의 이름이고, muni는 존칭이니, 곧 「석가 종족에서 나신 거룩한 어른」이란 뜻이다.

서력 기원전 565년(<중성점기衆聖點記>를 표준한 연대)에 중인도 가비라(迦毘羅 Kapila-vastu) 성주 정반왕(淨飯王)의 태자로 나시었다。난 지 칠 일 만에 어머니 마야 부인(摩耶夫人)을 잃고 이모인 파사파제(波闍波提)에게 자랐다。어릴 때 이름은 교답마(喬答摩 Gautama ; Gotama) 혹은 실달다(悉達多 Siddhartha)라 하였다。어려서 온갖 학문과 무예를 고루 배워서 정통하고, 열일곱 살에 선각왕(善覺王)의 딸 야수다라(耶輸陀羅)와 결혼하여 한 아들을 두었다.

 

그 나라의 제도에 종교와 학문을 차지한 바라문족과, 정치와 군사를 차지한 왕족과 그 다음으로 평민과 노예족의 네 가지 계급이 있었으므로, 이것을 개혁할 뜻을 늘 품고 있었다。하루는 농부들이 밭 가는 것을 보고, 똑 같은 사람으로 어떤 이는 불볕에 죽도록 일하고, 어떤 이는 놀기만 하는 것이 옳지 못한 것과, 사람이 동물을 학대하는 참혹한 일을 아프게 생각하여, 모든 것이 평등하고 싸움과 슬픔이 없는 세상을 만들려고 국가와 사회 문제에 대하여 번민하였다.

다시 인간에는 살아가고 늙고 병들고 죽는 큰 고통이 있음을 느껴, 누구나 다같이 참다운 행복을 누리게 할 도리를 찾고 있었다。그리고 우주의 온갖 것에 대하여 생각하여 갈수록 의문 아님이 없었다。그리하여 이 모든 문제들을 해결하려고, 드디어 열아홉에 왕궁을 뛰쳐나와 산중으로 갔다.

 

처음 육 년 동안은 바라문 교도들이 하는 대로 심한 고행(苦行)을 하다가, 육체를 괴롭히는 것만이 바른 길이 아님을 깨닫고, 몸을 보살펴 가면서 마음을 닦아 서른 살에 비로소 우주의 진리를 크게 깨쳐서 마침내 부처님이 되었다。그 뒤 49년 동안 쉴 새 없이 돌아다니면서 묘한 법을 가르쳐 한량없는 중생을 건지시고, 여든 살(기원전 486년)에 그의 육신은 세상을 떠났다.

 

*달관(達觀 통달할 달/볼 관) ; 인생의 진리를 꿰뚫어 보아 사소한 일에 집착하지 않고 넓고 멀리 바라봄. 또는 그러한 경지.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시삼마) :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이냐?' ‘이것이 무엇인고?’

 

불교(佛敎)의 목적은 「깨달음」입니다. '불(佛)'이라 하는 말은 인도(印度) 말로 'Buddha'란 말인데 우리말로 번역하면 '깨달음'입니다. 「깨달음」. 「깨달은 어른」.

'불교(佛敎)'하면 깨달은 가르침, 깨닫는 가르침. '불도(佛道)'하면 깨닫는 길, 깨닫는 법.

 

깨닫는 것이 불교의 목적입니다. 무엇을 깨닫느냐?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혀로 맛보고, 몸으로 차고 더운 것을 느끼고, 생각으로 과거 현재 미래의 일을 생각하고, 때로는 슬퍼하고 때로는 기뻐하고 때로는 성내고,

착한 마음을 낼 때에는 천사와 같다가도 한 생각 삐뚤어지면은 찰나간에 독사와 같이 악마가 되는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놈이 있습니다.

 

소소영령한 주인공이 그렇게 여러 가지로 작용을 할 수 있는데, '대관절 그러한 작용을 일으키는 이놈이 무엇이냐? 이뭣고?' 이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바로 나의 근본을 깨닫는 것입니다.

모든 화두에 가장 기본이고 근본적인 화두는 내가 나를 찾는 ‘이뭣고?’가 첫째 기본이요 핵심적인 화두입니다. 무슨 공안을 가지고 공부를 해도 깨닫는 것은 나를 깨닫는 것이지, 저 무슨 우주의 무슨 그런 게 아닙니다.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왔다.

*일심불란(一心不亂) : ①두 생각이 없이, 딴 생각이 없이 마음이 흩어지지 않음. ②마음을 흩어지지 않게 함.

*'오늘날과 같이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사회 국가의 모든 어려운 난국(難局)을 만났을 때에 가정적으로 개인적으로 많은 물질적 심적 고통과 곤란을 우리는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 ‘IMF 경제 위기’ ‘IMF 외환 위기’ ‘IMF 관리체제’ ‘IMF 시대’

한국에서 기업부도와 금융위기가 확산되어 1997년 12월 정부가 IMF(국제 통화 기금 ; International Monetary Fund)로부터 구제금융을 신청함으로써 한국경제가 IMF 관리체제로 들어가게 된 사건.

한국은 외환 관리정책의 미숙과 실패, 금융기관의 부실과 방만한 기업경영으로 인한 대기업의 연쇄 부도, 대외 신뢰도 하락, 단기 외국 채무의 급증 등으로 외환위기를 겪게 되어 한국 정부는 모라토리움(채무지불유예) 선언을 할 사태에 이르자, 1997년 12월에 IMF에 구제금융을 실천하여 IMF, 세계은행, 아시아개발은행으로부터 지원받아 외환위기의 고비를 넘겼으나, IMF의 구제금융 조건은 엄격한 재정 긴축과 가혹한 구조 개혁, 시장 개방 등을 요구하기 때문에 구제를 받는 나라는 금리가 상승되고 실업률이 상승되는 등의 상황이 나타나게 된다.

한국은 각종 경제 개혁과 전국민적 노력 덕분에 2001년 8월에 IMF 관리체제가 종료되었다.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