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회(신수기도)2015.02.17 10:52

§(324) (게송)조화무사부사력~ / 기도는 정성이 제일 / (게송)송백천년취~ / 참선, 기도가 둘이 아니다 / 의심관(疑心觀) / ‘관세음보살’하는 자기 음성을 자기가 관(觀)해.


몸과 마음이 한결같고 청정하고 정성스러우면 기도 시작할 때 이미 목적은 달성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일주일 동안 기도(祈禱)하는 그 경건하고, 엄숙하고 간절한 그 마음을,

앞으로 살아가시는 1년 내내 하루도 퇴타함이 없이 방심함이 없이 그렇게 경건하게 엄숙하게 그리고 청정하고도 간절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생활 속에서 참선(參禪)하는 참선 기도로 살아 주시기를 부탁을 합니다.

화두가 알 수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그 알 수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그것을 관조(觀照)를 할 줄 알아야 돼. 의심관(疑心觀).

그러다가 그 의심이 희미해져서 없어져 버리거나, 딴 생각[別念]이 들어오면 그때 ‘이뭣고?’하고 또 챙기는 거여. 없어지면 챙기고 또 끊어지면 챙기고, 이리 되어야 하거든.

‘관세음보살’ 부를 때에는 음성을 고르게 하되, 자기가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하는 자기의 그 음성을 자기가 관(觀)하면서 해야 돼.

**송담스님(No.324)—87년 신수기도 회향(87.02.06)


(1) 약21분.  (2) 약 21분.


(1)------------------


조화무사부사력(造化無私不思力)이요  일일청청세한색(一一靑靑歲寒色)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장단대소재목전(長短大小在目前)한데  가소시인회부득(可笑時人會不得)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조화무사부사력(造化無私不思力)이요. 자연의 조화, 천지의 조화가 사사로움이 없어. 사사로움이 없는 그 부사의력(不思議力)이다 그말이여.

불가사의(不可思議)한 알 수 없는 그런 위대한 힘이, 일일청청세한색(一一靑靑歲寒色)이다.  낱낱이 푸르고 푸르러서 세한(歲寒)의 빛이여. 누가 사람의 인조(人造)로 인력(人力)으로 그렇게 할 수가 없어.


아무도 인공(人工)으로 손을 대지 아니하는데, 자연의 이법(法)에 의해서, 불가사의한 그 힘에 의해서 소나무는 푸르고, 대나무도 푸르고, 산천에 초목이 각자 그 종류에 따라서 여러 가지 빛깔을 나투는데,


장단대소(長短大小)가 재목전(在目前)하건만, 어떤 것은 길고, 어떤 것은 짧고, 어떤 것은 크고, 어떤 것은 작아서 형형색색으로 우리의 눈앞에 조금도 숨김없이 펼쳐져 있건마는,

가소시인회부득(可笑時人會不得)이다. 우습다, 모든 사람들이 그 숨김없는 적나라(裸)한 그 도리를 알지를 못하는구나.



오늘은 정묘년 정월 초아흐레 신수기도 회향일을 맞이했습니다. 그동안에 여러분께서는 7일 동안을 정말 정성껏 기도에 동참하시고 또 직접 기도에 참석을 하셔서 정성을 다해서 목이 쉬도록 정근(精勤)을 하셨습니다. 


기도 입재 때 말씀드린 바와 같이 기도는 정성(誠)이 제일인데, 정성이라 하는 것은 말로써 ‘이러 이렇다’ 이렇게 표현을 할 수는 없지만 구태여 말하자면,

첫째, 몸과 마음을 청정히 하고 그리고 한결같아야 하고, 그리고 참된 그 마음으로 해야 한다고 하는 것을 말씀을 했습니다.


이미 몸과 마음이 한결같고 청정하고 정성스러우면 시작할 때 이미 목적은 달성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많은 시간을 3일이라든지 7일이라든지 또는 백일이라든지 천일기도, 만일기도 그렇게 기도 날짜를 많이 잡은 것은 우리의 마음이 그렇게 되지 아니하기 때문에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것입니다.

많은 시간을 억지로라도 참고 견디면서 노력을 하다보면 그 어느 땐가는 청정하고 일여하고 참된 생각에 부합(合)이, 계합이 되는 것입니다.  


자고(自古)로 기도를 정말 위법망구(爲法忘軀)적으로 간절히 해서 성취한 예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런데 요새 어려운 일을 당해서, 중대한 일을 당해서 많은 분들이 기도를 여기서 저기서 모다 하시지만 기도했다고 해서 자기가 바라는 만큼 그때에 바로 성취 되냐 하면은 혹 된 사람도 있고, 안된 사람도 있고 혹 될 때도 있고 안될 때도 있고,

그 사람과 그 성취하고자 하는 목적과 모다 그런 여러 가지 경우에 있어서 한결같이 다 되지를 않는 것을 우리는 보고 또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어째서 그런데 그렇게 정성스럽게 했는데 기도가 성취되기도 하고, 안되기도 하느냐?

첫째는 자기의 정성이 어딘가 부족한 점이 있었기 때문에 그렇지 않냐, 그렇게 볼 수도 있고 또 정성에는 조금도 부족함이 없었지만 그것이 성취되는 것이 차라리 안되는 것보다 못하기 때문에 그래서 이루지 못한 경우도 있습니다.


그 기도를 자기 목적을 성취함으로써 오히려 안된 것보다 더 해로울 때에는 그 기도 성취가 되지 않는 경우도 있는 것이고 또 기도를 열심히 했는데 자기가 원하는 대로 목적을 이루기커녕은 생각지도 않는 견디기 어려운 여러 가지 고통이 한목 몰아닥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것은 앞으로 금생, 내생, 저 내생까지 계속해서 그 좋지 못한 과보를 받을 수 밖에 없는, 말하자면 전생에 그러한 업(業)으로 그렇게 많은 고통을 받게 되어있는 삼생(三生)에 걸쳐서 받을 죄를,

금생에 신심껏 기도를 하고 그 공덕으로, 기도를 한 공덕으로 삼생에 걸쳐서 받을 것을 금생 일생 동안에 다 몰아서 다 받아 버리고 그리고서 이 다음 생에는 정말 큰 원을 성취하도록 그렇게 될 경우에 바로 그렇습니다.


그래서 코앞에 조그만한 원(願)을 세워서 목이 쉬도록 기도를 했다가 그것이 이루지 못한다고 해서 불평을 하고 ‘그 기도해 봤자 소용이 없다. 나도 기도해 봤지만 그거 이루지도 못하더라’ 이러한 반감심(感心)을 갖고 불신을 하고 퇴타심(退墮心)을 낸다면 그 사람이 기도할 때 정성스러운 그 정도가 과연 어느 정도였었다고 하는 것을 짐작할 만하는 것입니다.


작은 것을 원했다가 큰 것을 바라지도 안 했는데 성취되는 수도 있고, 큰 것을 원했는데 조그만한 것이 우선 코앞에 이루어진 경우도 있고,

코앞에 전혀 이루지도 않고 그저 담담하니 별로 소원을 이룬 것 같지도 않은데, 살아가면서 점점 신심이 돈독하고 모든 일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잘 풀려나가고 그러한 수도 있고 여러 가지 경우가 있어서,


그래서 이 기도라 하는 것은 청정한 몸과 마음 그리고 한결같은 마음,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기도를 하되 기도가 회향(廻向)을 했다고 해서 인자 빨리 자기 목적한 것이 돌아오기만을 급급하게 기다릴 것이 아니라,

기도가 끝난 뒤에도 그 기도 때와 같은 그 정성스러운 행동,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한결같이 ‘이뭣고?’ 참선을 하면서 계속 정성스러운 마음이 흩어지지 않도록 몸과 마음을 다져 나간다면 그것이 바로 기도 성취할 수 있는 마음가짐이요,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그러한 것을 받을 수 있는 그 자세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송백천년취(松栢千年翠)로되  불입시인의(不入時人意)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모란일일홍(牡丹一日紅)한대  만성공자취(滿城公子醉)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송백(松栢)은 천년취(千年翠)하되, 소나무와 잣나무는 천년 동안을 푸르르되,

불입시인의(不入時人意)요, 세상 사람들의 뜻에는 들지를 안 해. 별로 그렇게 소나무, 잣나무 그렇게 '좋다'고 '아름답다'고 별로 안 그런다 그말이여.


목단(牧丹), 모란(牡丹)은 하루 피었다가 시들어 버리는 하루 동안 밖에는 붉지를 않는데,

만성공자취(滿城公子醉)요. 모든 사람들은 그 목단이 꽃 가운데 왕이라고 그렇게 모다 좋아하고 칭찬을 하고 거기에 모다 반하더라 그말이지.


송백은 무루법(無漏法), 무루복(無漏福), 영원한 복에다가 비유한 것이고, 모란은 유루복(有漏福)에다가 비유한 게송(偈頌)입니다.


영원한 우리 생사해탈법은 한번 깊이 믿고 실천을 하면 당장 금생에부터 모든 업장(業障)을 소멸하고, 영원한 행복을 얻고, 확철대오(廓徹大悟)해서 생사윤회(生死輪廻)에서 벗어나는 그러한 참 좋은 것인데 그것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별로 그렇게 마음에 들어하지를 안 해.


물론 특수한 신심이 있는 사람은 모르되, 대부분의 사람은 별로 그것에 관심이 없고,

유루복(有漏福)—당장 부자가 된다든지, 높은 벼슬자리 벼슬을 한다든지, 부귀영화 모다 이런 해봤자 별 수 없고 또 뜻대로 얻어진다고 해도 영원성이 없는 그런 재산이나 명예, 권리 모다 그런 것에는 세상 모든 사람들이 그것을 못 얻어서 야단이고 그것을 얻으면 거기에 빠져서 헤어날 줄을 모르고, 그렇다는 것입니다. 


이번에 기도에 동참하신 여러분들은 과연 무루(無漏)의 복(福)을 원하셨는가? 또는 영원성이 없는 유루복만을 목적에다 두고 기도를 하셨는가?

또 저 궁극적 목표는 무루복에다 두되, 우선 당장 급해서 그래서 유루복에 원도 세우시고 하시는 분도 많이 계시리라고 생각합니다.


인생이 살아가는 것은 우선 당장 급한 것은 재산이요, 명예요, 권리요, 가족의 행복이요, 아들딸의 대학에 들어가는 일이요, 아무리 생사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참선을 한다 해도 당장 코앞에 그 문제가 절박할 수 밖에는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러한 원을 이루기 위해서 기도하신 것을 절대로 나쁘다고 할 수가 없습니다. 이런 1년에 한 번 있는 신수기도에 동참을 해 가지고 정성을 다해서 기도를 하는 것도 참 뜻깊은 일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우리 어머니, 우리 할머니는 참선 밖에는 모르고 자식들이 대학에 가고 못한 것은 관심이 없다’ 이러한 인상을 주어서도 안 되고, 또 할머니, 어머니, 아버지가 자기 아들딸의 학교 문제에 관심이 없을 수가 없고, 우선 나중에야 어떻게 될망정 우선 대학에는 들어가 놓고 봐야 하는 것이고, 그놈이 대학엘 못 들어가면 어떻게 될 것이냐 그말이여.


그래서 기도를 일주일 동안 목이 쇠도록 그렇게—그 날씨가 상당히 강추위 했는데 그 눈을 뒤집어쓰면서 새벽기도부터서 모다 참석을 하시고, 대단히 참 감동을 했습니다.


그러한 이 신수기도 때와 같은 그러한 간절한 마음, 열렬한 마음, 그 추위도 무서워하지 않고, 편안히 자고 싶은 잠을 깨고 새벽에 날마다 이렇게 참석하신 그럴 수 있는 그런 정성이면 내가 나를 찾는 참선 공부에도 응당 그렇게 할 수 있는 저력(底力)이 있다고 하는 것을 나는 믿습니다.(처음~21분13초)



(2)------------------


부디 일주일 동안 기도(祈禱)하는 그 경건하고, 엄숙하고 간절한 그 마음을 앞으로 살아가시는 1년 내내 하루도 퇴타함이 없이 방심함이 없이 그렇게 경건하게 엄숙하게 그리고 청정하고도 간절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생활 속에서 참선(參禪)하는 참선 기도로 살아 주시기를 부탁을 합니다.


그 동안에 일주일 간은 기도 참선을 하셨는데 앞으로 일 년간은 참선 기도—참선하면서 바로 그 참선이 기도가 되도록, 그 동안에는 ‘기도의 참선’을 했는데 ‘참선의 기도’를 하시라 그말이여.


그러면은 참선과 기도가 둘이 아니거든. 절대로 참선과 기도가 둘일 수가 없습니다.

참선을 하는 데에도 청정한 몸과 마음, 정성스러운 마음, 한결같은 마음이 요구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기도만 그런 것이 아니라 참선도 역시 그러한 마음가짐은 절대로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를 정성껏 할 수 있는 사람은 참선도 또한 그렇게 할 수가 있고 또 평소에 참선을 열심히 하신 분은 기도 때가 되면 기도도 또한 그렇게 하실 수가 있는 것입니다.


속담에 ‘국수할 줄 아는 사람이 수제비 못 끓여 먹겠느냐’ 그런 말이 있듯이 참선하나 제대로 할 줄 알면 기도고, 주력(呪力)이고, 경을 읽는 것이고, 경우에 따라서 필요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참 훌륭하게 해 낼 수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만리장공우제시(萬里長空雨霽時)에  일륜명월영청휘(一輪明月映淸輝)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부운엄단천인목(浮雲掩斷千人目)한데  득견항아면자희(得見姮娥面者稀)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만리장공우제시(萬里長空雨霽時)에, 저 만 리나 된 넓고도 긴 저 하늘에 비가 갰어.

일륜명월(一輪明月)이 영청휘(映淸輝)다. 한 바퀴 밝은 달이 밝고 맑게 빛나는데, 비가 오고 운무가 끼었을 때에는 그 달이 떠도 보이지를 않고 컴컴하니 그러다가 비가 쫙 개 가지고 그 새파란 하늘에 밝은 달이 휘영청 밝았다 그말이여.


부운엄단천리목(浮雲掩斷千人目)이여. 뜬구름이 한덩어리가 날아와 가지고 달을 가리워 버리니까, 모든 사람의 눈에 그 밝고 맑은 달의 얼굴을 보기가 어려워. 구름이 가리워 버리니까 그 달을 보기가 어렵더라.


사실은 우리의 그 본성(本性) 마음자리는 부처님의 마음자리와 둘이 아니고 비로자나 법신불(毘盧遮那 法身佛)과 둘이 아니어. 우주의 진리와 둘이 아니기 때문에 무엇이든지 마음에 원하면 그것은 반드시 이르러 와서 얻어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원하고 원해도 잘 이루어지지 아니한 것은 일념(一念)이 되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나의 참된 마음과 그 어두운 부정적인 생각에 가로막혀서 장애를 받아가지고 원이 이루어지는 것을 가로막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가로막는 것만 없으면 바로 원하는 대로 바로 그것이 이루어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눈앞에 장벽만 없다면 몇백 미터고 저 앞을 다 볼 수 있지만 앞에 종이 한 장만 가로막혀 있어도 밖이 보이지 않는 거와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기도와 참선 공부가 내나 서로 상통한 것이고 둘이 아니라’하는 말씀을 했습니다마는 정말 기도를 목이 쇠도록 큰 소리로 정근만 하면 그것이 정성을 다한 것이냐?

참, 기도가 쉬운 거 같아도 정말 이 기도가 참선과 똑같이 어려운 것입니다. 그 목청을 돋아서 한 시간, 두 시간 내지 네 시간을 불러대면 되냐?


어떻게 해야 기도를 참 정말 훌륭하게 하는 것이 되는 것이냐?


‘관세음보살’ 부르면서도, 입으로는 ‘관세음보살’ 부르고 목이 터지도록 부르면서, 그렇게 부르는 속에도 우리의 생각은 계속 집안일도 생각하고, 과거 일도 생각하고, 어릴 적 일도 생각하고, 이일 저일 할 것은 다 합니다.

그 ‘관세음보살’ 부를 때는 오직 관세음보살만을 불러야 되겠는데, 입으로는 관세음보살 외치면서 속으로는 온갖 잡념 망상이 조금도 거침없이 왔다갔다 왔다갔다 왔다갔다 하거든. 기도를 해 보면서 가만히 자기 스스로를 이렇게 관조해 보면 알 수가 있고, 그것을 경험을 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또 기도를 하면서 탁자 위에 촛불이라든지, 향이라든지 또는 청수 그릇이라든지 또는 탁자 위에 모신 부처님 눈, 코, 입이라든지 이런걸 보면서, 입으로는 외치면서도 그 눈으로 보이는 그런 것들에 계속 우리의 생각이 그런 데로 다 돌아다니는 것입니다.

촛불이 크게도 보였다, 작게도 보였다, 자기 앞으로 가까이도 보였다, 멀리도 보였다, 부처님 얼굴도 이렇게 우러러 보면서 정근을 하면 부처님 얼굴이 이리 변했다, 저리 변했다, 가까이 왔다, 멀어졌다 야단이거든. 단 1분 1초도 정말 망상이 없이, 번뇌가 없이 깨끗하게 정진이 되어 가기가 어렵다고 하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기도할 때 눈으로 보이는 부처님 얼굴에다가 집중을 하는 것이 좋으냐? 훨훨훨 타고 있는 촛불에다가 눈을 대고 하는 것이 옳으냐? 무엇을 어디다가 우리의 눈을 고정하며, 어떻게 해야 하느냐?


대단히 이것도 참선할 때에 덮어놓고 ‘이뭣고?’ ‘이뭣고?’ ‘이뭣고?’ 계속 그렇게 하는 것을 그 참선을 잘한다고 할 것이냐?

‘참선을 어떻게 해 나가야 올바르게 하느냐?’한 것과 똑같이, ‘기도도 어떻게 해야 올바르게 하는 것이냐?’하는 것도 똑같이 중요하고 어려운 것입니다.


참선은 그저 ‘이뭣고?’ ‘이뭣고?’ 이뭣고?... 아주 그 관세음보살 부르듯이 ‘이뭣고?’를 계속 끊임없이 찾고 또 찾고, 찾고 또 찾고, 물론 처음에 시작한 사람은 그렇게 할 수 밖에는 없고 그렇다고 하되 한 달, 두 달, 석 달, 일 년을 가면서는 그렇게 화두를 염불하듯이 그렇게 자꾸 들먹이는 것이 아니에요.


‘이뭣고?’한 그 알 수 없는, ‘이뭣고?’했을 때 그 알 수 없는 의심, 그 의심이 있을 때에는 그 의심을 성성(惺惺)하고 적적(寂寂)하게 그 의심을 관(觀)해 나가야지,

거기다 대고 이미 화두가 없어지지 않고, 화두에 대한 의심이 있는데도 거기다 대고 자꾸 ‘이뭣고, 이뭣고, 이뭣고’ 그래 하는 것이 아니에요. 그러면 어린애, 애기 잠재울 때 잠 막 잘라고 한 놈을 더 잘 자라고 가슴을 턱! 턱! 때리는 거와 마찬가지거든 그게.


그러니 화두가 알 수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그 알 수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그것을 관조(觀照)를 할 줄 알아야 돼. 의심관(疑心觀).

그러다가 그 의심이 희미해져서 없어져 버리거나, 딴 생각[別念]이 들어오면 그때 ‘이뭣고?’하고 또 챙기는 거여. 없어지면 챙기고 또 끊어지면 챙기고, 이리 되어야 하거든. 그래서 그 관(觀)이, 의심관(疑心觀)이 그것이 공부해 나가는데 아주 중요한 것이여. 


이 관세음보살도 목이 터지도록 막 부를 것이 아니라 적당한 음성으로,

물론 여기서 목탁을 치면서 여러 사람이 정근할 때에는 자기도 소리를 내어서 같이 그 음성과 음성이, 내 음성과 다른 사람 음성이 혼연일치(致)가 되어서 전체 동참 대중이 한마음이 되어야 하거든.

자기 혼자 어디 가서 한 것 보단 여러 사람이 모여서, 여러 사람의 마음이 정성도 하나요, 그 정근하는 음성도 그 목탁에 맞춰서 하나가 되어야 하거든.


어떤 사람은 (음을 아주 낮게)‘관세음보살’하는데, 어떤 사람은 (음을 고음으로)‘관세음보살’ 이래 가지고 한 사람은 크게 하고 작게 하고, 한 사람은 더디게 하는데, 한 사람은 늘어져 쳐지게 하고 도저히 그래서는 안되거든.

목탁을 치면은 그 목탁 소리에 저 법당에 가득한 그 동참제자가 한마음 한뜻이 되고, 음성도 같이 이렇게 나가야 되거든.


우리가 남북통일을 바라는데 한 사람이 바란 것 보다는 전 국민이 한마음 한뜻이 되어 가지고 통일을 염원하고, 통일을 위해서 물질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이 혼연일치가 될 때에 우리의 생활도 달라지고 나라에 대한 충성도 달라지고 모든 면에서 다 나날이 새로워질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마침내 통일 성업도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칠일 동안의 기도도 모든 점에 있어서 전 동참재자가 한마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 한마음이 되게 하기 위해서 입재 법요식도 하고 또 시간도 맞추고 또 병법(秉法) 스님이 나서서 목탁도 치면서 같이 하고, 이것이 바로 전 동참제자로 하여금 한결같은 마음, 한덩어리가 되게 하기 위해서 그런 것입니다.


여러분이 기도를 구태여 추운 새벽같이 오시지 않고 집에서 해도 기도가 안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원근에서 그 바쁘고, 춥고 하는 데도 불구하고 나오신 것은 여러 사람이 같이 마음을 합해서 하는 데에서 몇백 배의 효과가 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래서 ‘관세음보살’ 부를 때에는 음성을 고르게 하되, 자기가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하는 자기의 그 음성을 자기가 관(觀)하면서 해야 돼.

생각은 딴 데 가 있고, 눈은 눈 앞으로 보는 데에 제멋대로 요리 갔다 저리 갔다 하고, 목소리만 크게 불렀지 조금도 그것이 경건성이 없이 부른 것은 그 목만 쉬었지 정말 기도의 참된 경계에 들어가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목소리를 참 경건하고 엄숙한 저 뱃속에서 부터서 울려 나오는 그 정성스러운 음성 소리로 해야 하거든. 그래 가지고 자기의 목소리를 자기가 관(觀) 해.


다른 사람 목소리를 들을 것이 아니고 ‘아이고, 저 사람 목소리도 되게 크다’ 다른 사람 목소리를 듣지 말고, 자기의 음성을 들어야 되요.

자기의 음성을 들으면서 ‘관세음보살’하면 눈을 떴으되 딴 것이 보이지를 않고, 귀가 열렸으되 다른 소리가 들리지를 않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일주일을 한결같이 한다면 가장 여법(如法)한 기도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목탁은 너무 늘어지게 쳐도 힘이 들고 그렇다고 해서 너무 빨리 쳐도 숨이 가빠서 따라갈 수가 없고, 그런데 처음에는 느릿느릿 쳐도 점점 10분, 20분, 30분 이렇게 해 가다보면 열기가 올라가지고 약간은 빨라질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지나치게 빨리 하는 것은 너무 숨이 가쁘고 그러기 때문에 될 수 있으면 처음이나 중간이나 끝이 대체적으로 한결같은 것이 좋은데, 하다보면 좀 빨라져요.


그렇게 해서 하여간 일주일 동안을 내가 법당에 올라와서 참석은 안 했지만 계속해서 나도 그 기도에 참석을 했고, 기도 정근하는 소리와 목탁 소리를 계속 나도 거기에 마음을 합해 왔습니다. 그래서 그 동안에 기도가 얼마만큼 정성스럽게 잘 진행이 되었는가를 잘 알고 있습니다.  


이번에 기도에 동참하신 분은 반드시 크고, 작은 여러분 각자의 소원이 성취가 되실 것이고, 또 그런 유루의 복은 말할 것도 없고, 나아가서 무루의 대원(大願)까지 연결이 되어서 기도 성취는 정말 원만히 성취가 되시리라고 나는 확신(信)을 합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확신을 하십시오. 그 원이 빨리 이루어지고 더디 이루어지고 하는 차이는 있을지언정, 확신한 사람에게는 반드시 그 목적이 달성이 되는 것입니다. 


앞으로 또 정월 대보름이 한 오륙일 남았습니다. 대보름에 해제 법요식과 백일기도 회향 법회가 있습니다. 그때까지 계속해서 경건한 마음으로 기도하시는 분은 기도를 하시고 또 참선기도 하시는 분은 참선을 열심히 하셔서 백일기도 회향 때 또 해제 법회도 참석을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21분15초~42분17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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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조화무사부사력~’ ; [선문염송(禪門拈頌)] (혜심 지음) 제11권 421칙 ‘백수(栢樹)’ 진정문(眞淨文) 게송 참고.

*부사의(不思議) ; 불가사의(不可思議). 불보살의 해탈, 지혜, 신통력이 헤아릴 수 없다는 말.

*불가사의(不可思議)말로 표현하거나 마음으로 생각할 수 없는 오묘한 이치 또는 가르침을 뜻하며,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놀라운 상태를 일컫기도 한다.

*세한(歲寒) ;  전후  추위라는 으로 심한 한겨울 추위 이르는 .

*적나라(裸)하다(실상이나 감정)있는 그대로  드러나 더이상 숨김 없다.

*정근(精勤) ; ①쉬거나 게으름 피우지 않고 이나 공부 아주 부지런히 노력하는 것. 힘써 일하는 것. ②기도를 할 때 별념(別念)이 없이 일심으로 불보살의 명호를 염불하는 것.

*자고(自古)로로부터 내려오면서.

*위법망구(爲法忘軀) ; 법(法, 진리)를 구하기 위해[爲] 몸[軀] 돌보는 것을 잊는다[忘].

*퇴타(退墮 물러날 퇴,떨어질·게으를 타) ; 어떤 경지로부터 물러나 되돌아 오는 것. 퇴전(退轉)이라고도 한다.

*회향(廻向) ; 회전취향(回轉趣向)의 뜻. ①방향을 바꾸어 향하다. ②자신이 쌓은 공덕을 다른 이에게 돌려 이익을 주려하거나 그 공덕을 깨달음으로 향하게 함. ③자신이 지은 공덕을 다른 중생에게 베풀어 그 중생과 함께 정토에 태어나기를 원함.

*이뭣고(是甚麼) ; 「이뭣고」 화두는 천 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를 찾는 것이다.

*(게송) ‘송백천년취~’ ; [선문염송(禪門拈頌)] (혜심 지음) 제11권 421칙 ‘백수(栢樹)’ 묘지곽(妙智廓) 게송 참고.

*모란(牡丹)작약과의 낙엽 활엽 관목높이는 2미터 정도이고 가지는 굵고 이 없으며은 크다.

늦봄에 붉고  이 피는데 꽃빛은 보통 붉으나 개량 품종에 따라 흰색붉은 보라색검은 자주색누런복숭앗빛을  흰색 따위의 여러가지가 있다.

*목단(牧丹) ; 모란(牡丹).

*무루법(無漏法) ; 번뇌의 더러움에 물들지 않은 마음 상태, 또는 그러한 세계. 번뇌와 망상이 소멸된 상태. 분별을 일으키지 않는 마음 상태. 사제(四諦) 가운데 깨달음의 결과인 멸제(滅諦)와 그 원인인 도제(道諦)에 해당하는 모든 현상.

*유루복(有漏福) ; 평범한 범부 중생이 지은 복(福)—부귀영화, 명예, 권리, 오욕락 따위의 복으로, 유루(有漏)—번뇌 또는 고를 더욱 증장시키는—의 복이어서 한도(度)가 있어 영원성이 없고 영원히 믿을 것이 못된다.

하늘에다 쏘아 올린 화살이 아무리 힘이 센 장사가 활을 당겨서 활을 쐈다 하드라도 올라갈 만큼 올라가면 결국은 다시 땅으로 떨어지고 마는 것처럼, 아무리 큰 복을 쌓는다 하드라도 그 복이 인천(人天)에서 제일가는 부자가 된다 하드라도 자기가 지은 복만큼 다 받아버리면 다시 또 타락하게 된다.

그래서 옛날 도인들은 인간 세상의 그 유루복(有漏福)이라 하는 것은 그 복을 얻으면서 죄를 짓고 또 얻어가지고 누리면서 죄를 짓고, 또 그 얻었던 것을 결국은 다 없애면서 그 죄를 짓는다. 그래서 『인간의 유루복은 삼생(三生)의 원수다』 이렇게 표현을 한 것이다.


그러나 세상을 살아가려면 유루복도 있기는 있어야 하므로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을 해서 구해야 하고,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을 해서 얻은 복은 그래도 나를 그렇게까지 큰 죄를 짓지 않게 하고, 언젠가 떠나더라도 나를 그렇게 크게 해롭게는 하지 않고 곱게 떠나는 것이다.

유루복이라도 좋은 방법으로 구하고 보시(布施)와 같은 또 좋은 방향으로 잘 사용을 하는데, 보시도 무주상(無住相) 보시를 해야 같은 재보시(財布施)를 해도 결과로 돌아오는 복은 한량이 없다.

참선하는 것이 바로 나를 무심(無心)한 상태로 이끌게 만들고, 무심한 상태에서 재보시, 법보시, 무외보시(無畏布施)를 하면 그것이 바로 무주상 보시가 되는 것이어서, 무주상(無住相)으로 하면 그것이 무루복과 연결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항상 참선하는 마음으로 살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돈도 벌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보시도 한다면, 유루복과 무루복을 겸해서 닦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No.565) - 1996년 설날통알 및 설날차례(1996.02.19)에서.

유루복은 삼생(三生)의 원수다. 왜 그러냐?
유루복은 복을 짓느라고 죄를 지으니 그것 때문에 내가 삼악도(三惡道)에 가게 되니까 그래서 그 유루복은 원수이고, 또 하나는 지어놓은 복을 그 놈을 지키고 사용하느라고 또 죄를 짓게 되니까 그래서 또 원수고, 마지막에는 언젠가는 유루복은 나의 몸과 마음과 가정을 갖다가 갈기갈기 짓밟고 찢어 놓고서 떠나기 때문에 또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유루복일망정, 유루복이 없어갖고는 정말 세상을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유루복이 삼생의 원수라 하더라도 그것이 없어갖고는 당장 어찌 해 볼 도리도 없고, 사람노릇 할 수도 없고, 생활도 할 수도 없고, 자식교육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유루복도 있기는 있어야 하는데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을 해서 구해야-힘들고 일확천금(一攫千金)은 안 되지만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을 해서 얻은 복은 그래도 나를 그렇게까지 큰 죄를 짓지 않게 하고, 언젠가 떠나더라도 나를 그렇게 크게 해롭게는 하지 않고 곱게 떠나는 것입니다.
부당한 방법으로 억지로 남을 해롭게 하고, 나라의 법을 어기면서까지 무리한 방법으로 취득을 해 놓으면 그것은 머지않아서 큰 재앙을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루복이라도 좋은 방법으로 구하고 또 좋은 방향으로 잘 사용을 하는데, 그것을 사용을 할 때에는 보시를 하는데, 무주상(無住相) 보시를 해야 같은 재보시(財布施)를 해도 결과로 돌아오는 복은 한량이 없는 것이고.

남에게 금전이나 어떤 재산을 보시하면서 내가 이것을 했다고, ‘너한테 보시를 했으니 나한테 너는 응당 고맙게 생각해야 하고, 나한테 그 은혜를 갚아야 한다.’ 그래 가지고 그 과보(果報)를 바래.
공투세를 해 가지고 과보를 바라면 그것이 유주상(有住相)의 보시가 되어서 상대방에 정신적으로 많은 부담감을 주어가지고, 내것 보시하고서 주고받는 사이가 서먹하게 되고, 나중에는 결국 원수가 되는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시는 하되 무주상(無住相)으로 해야 한다.

무루복(無漏福)은 어떻게 짓느냐? 물론 재보시, 법보시, 무외보시(無畏布施)를 하되, 무주상(無住相)으로 하면 그것이 무루복과 연결이 되고,
그 무루복을 참으로 더 훌륭하게 크게 깊게 심으려면 우리 자신이 항상 정법을 믿고, 최상승법에 입각해서 참선(參禪)을 열심히 함으로써 참선하는 것이 바로 나를 무심(無心)한 상태로 이끌게 만들고, 무심한 상태에서 보시를 하면 그것이 바로 무주상 보시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항상 참선하는 마음으로 살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돈도 벌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보시도 한다면 유루복과 무루복을 겸해서 닦게 되기 때문에 우리는 살아서부터 도솔천 내원궁이나 극락세계에 갈 수 밖에 없는 그러한 복을 심고 종자(種子)를 심기 때문에, 우리는 도솔천 내원궁에 가는 것은 걱정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무루복(無漏福) ; 번뇌가 없는 더러움이 없는 복. 영원히 끝장이 나지를 않고 아무리 쓰고 또 써도 바닥이 나지를 않고 다할 날이 없는 복(福) 그것이 무루복입니다.
무루복이라 하는 것은 참선법(參禪法)에 의해서 내가 내 마음을 닦아 가지고 생사해탈하는 이것만이 영원히 생사를 면하는 무루복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참선하는 마음으로 살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돈도 벌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보시하여, 무루복(無漏福)과 유루복(有漏福)을 겸해서 닦아야, 남도 좋고 나도 행복할 수 있는 길을 가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게송(偈頌) ; 시(詩), 게(偈)와 송(頌) 모두 불교의 가르침을 싯구로 나타낸 것.

*업장(業障) ; 전생(前生)이나 금생(今生)에 행동•말•마음(신구의,身口意)으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이 세상에서 장애(障礙)가 생기는 것.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생사윤회(生死輪廻) ; 육도윤회(六途輪廻). 선악(善惡)의 응보(應報)로 육도(六途-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의 고락(苦樂)을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것.

*저력(底力)으로 간직하고 있는 밑바탕 든든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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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祈禱) ; 불보살(佛菩薩)의 가피(加被, 중생을 이롭게 하는 불보살의 자비)를 받들어 재앙을 피하고, 복(福)을 더하도록 기도하는 것.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주력(呪力) ; 진언(眞言)·다라니(陀羅尼)로 하는 기도. 진언(眞言)·다라니(陀羅尼)의 효과.

*(게송) ‘만리장공우제시~’ ; [선문염송(禪門拈頌)] (혜심 지음) 제11권 421칙 ‘백수(栢樹)’ 불감근(佛鑑勤) 게송 참고.

*본성(本性) ; 상주불변한 절대의 진실성. 본래의 모습. 본체. 불성(佛性)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 ; 비로자나(毘盧遮那)는 vairocana의 음사(音寫). 부처님의 몸에서 나오는 빛과 지혜의 빛이 세상을 두루 비추어 가득하다(光明遍照,遍一切處,日)는 뜻.

①진리 그 자체인 법신(法身)을 형상화한 것. 비로자나 법신불(毘盧遮那 法身佛)

②대일여래(大日如來)와 같음.

*일념(一念) ; 

*번뇌(煩惱) : 망념(妄念)이라고도 하는데, 몸과 마음을 괴롭히고 어지럽히는 정신작용의 총칭.

*성성적적(惺惺寂寂) ; 정신이 고요하면서도 깨끗하고 또록또록 한 상태.

*현전(現前) ; 앞에 나타나 있음.

*딴 생각 ; 별념(別念). [몽산법어] (용화선원刊) 박산무이선사선경어(博山無異禪師禪警語)에서.

“做工夫호대  着不得一絲毫別念이니  行住坐臥에  單單只提起本叅話頭하야  發起疑情하야 憤然要討箇下落이니라.  若有絲毫別念하면  古所謂雜毒이  入心하야  傷乎慧命이라하니  學者는 不可不謹이니라”

“공부를 짓되 털끝만치라도 딴 생각[別念]을 두지 말지니, 가고 멈추고 앉고 누우매 다못 본참화두(本叅話頭)만을 들어서 의정을 일으켜 분연히 끝장 보기를 요구할 것이니라.

만약 털끝만치라도 딴 생각[別念]이 있으면 고인이 말한 바 「잡독(雜毒)이 마음에 들어감에 혜명(慧命)을 상한다」하니, 학자는 가히 삼가지 않을 수 없느니라.”


“余云別念은  非但世間法이라  除究心之外에  佛法中一切好事라도  悉名別念이니라.  又豈但佛法中事리요  於心體上에  取之捨之  執之化之가  悉別念矣니라”

“내가 말한 딴 생각[別念]은 비단 세간법만 아니라 마음을 궁구하는 일 외에는, 불법(佛法)중 온갖 좋은 일이라도 다 딴 생각[別念]이라 이름하느니라.

또 어찌 다만 불법중 일뿐이리오?  심체상(心體上)에 취하거나[取], 버리거나[捨], 집착하거나[執], 변화하는[化] 것이 모두 다 딴 생각[別念]이니라.” (p164-166)

*혼연일치(致)완전히 하나 일치함.

*병법(秉法 잡을 병,법 법)사찰에서 의식의 진행을 담당하는 직책, 또는 그 일을 맡은 스님.

*여법(如法 같을·같게 할·따를·좇을 여, 부처님의 가르침·불도佛道 법) ; 부처님의 가르침에 맞음.

*확신( 굳을 확,믿을 신) ;  믿음또는 그러 신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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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싼또샤
법회(신수기도)2015.02.16 15:42

§(290) 기도는 정성스럽게 해야 한다 / 정성스럽게 한다는 것은 몸·마음·주변환경이 청정·정숙하고, 기도의 처음과 끝이 여일(如一)한 것 / 삼륜(三輪)이 공적(空寂).


처음 기도 시작하기 전에는 뚜렷이 목표가 있어야 하지만, 일단 기도를 시작한 뒤에는 그러한 ‘내가 무엇을 바랜다’하는 그런 생각마저도 하지 말고 일심으로 정근(精勤)만을 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정성스럽게 기도를 하면 우리가 기도 시작하기 전에 바랬던 작은 소원, 큰 소원 또는 유루복(有漏福), 무루복(無漏福)을 따질 것이 없이 모든 것이 다 내가 구하지 아니해도 다 나에게 이르러 오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기도가 바로 삼륜(三輪)이 공적(空寂)해서—열심히 하다 보면 마침내는 「기도를 하는 내」나 「내가 바라는 부처님」이나 「내가 바랜 바 어떠한 목적」이 셋이 다 공(空)해 가지고 그것이 바로 삼륜이 공적인데,

삼륜이 공적을 한 가운데에 한결같이 정진을—한 생각도 딴 생각[別念]을 내지 아니하고 순일하게 정진을 지어가면 결국은 ‘참나’를 깨닫는 데에까지 연결이 될 것입니다.

**송담스님(No.290)—86년 신수기도 입재(86.01.03)


약 13분.


병인년 정월 초삼일 신수기도 입재 법요식을 맞이해서 조실 스님의 71년도 법문을 녹음을 통해서 들었습니다. 


기도에 대한 법문을 조실 스님 녹음법문을 통해서 잘 들었기 때문에 ‘기도를 어떻게 하면은 기도의 성취를 할 수가 있는가?’ 기도하는 방법에 대해서 간단히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여러분께서 기도를 하실 때에는 반드시 어떠한 목적이 있을 것입니다. 어떠한 성취해야 할 소원이 있으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막연하게 아무 소원도 없이 기도를 하시기 보다는 뚜렷한 소원·목적을 가지고, 그 목적을 이루려는 그러한 간절한 소원을 가지고 기도를 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처음 시작할 때 시작하기 전에는 뚜렷이 목표가 있어야 하지만, 일단 기도를 시작한 뒤에는 그러한 ‘내가 무엇을 바랜다’하는 그런 생각마저도 하지 말고 일심으로 정근(精勤)만을 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한 말로 말해서 ‘기도는 어떻게 해야 하냐?’하면 정성(誠), 정성스럽게 해야 한다. 기도를 하는데 정성이 부족하면 그 기도는 성취하기가 어려울 것 입니다.



대관절 그 정성이라고 하는 것을 ‘무엇을 어떻게 하는 것을 정성이라고 하느냐?’

첫째는, 안과 밖이 청정(淸淨)해야 해. ‘안’이라 하는 것은 우리의 마음이 청정해야 하고 ‘밖’은 우리의 몸과 우리의 주변, 환경이 깨끗해야 한다.


이 기도를 하면서 입으로는 온갖 잡(雜)된 소리를 하고 망어(妄語), 양설(兩舌), 악구(惡口)를 하고,

또 몸으로는 잡된 행동과 추한 행을 하고, 마음으로는 온갖 탐욕스럽고 삿되고 몹쓸 생각을 하고 이러면 정성이라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정성을 드릴려면 첫째, 마음도 깨끗하고, 몸도 깨끗하고, 입도 깨끗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정숙(肅)해야 한다. 고요하고 엄숙해야 한다.

기도를 드리면서 시끄럽고 소란하고, 질서가 없고 들쑥날쑥하고 이러면 정성을 다했다고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 기도 시간도 엄수해야 하고 기도할 때에 어쨌든지 고요하고 엄숙하고 경건해야 합니다.


그리고 처음과 끝이 여일(如一)해야 한다.

처음 시작할 때에는 아주 엄숙하고 경건하게 시작해 가지고, 중간에 가면서 흐지부지하니 해이(弛)해져 가지고 끝을 야무지게 마무리를 짓지 못하고, 끝에 가서는 김이 다 빠진 것처럼 이렇게 되어서는 정성을 다했다고 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한번 시작을 했으면은 중간이나 끝까지 쪼옥 한결같이 해야 하는 것이여.


이렇게 기도를 해 나가면, 일심으로 정말 간절하게 이렇게 해 나가면 업장(業障)이 소멸(消滅)이 되고, 과거에 자기가 지은 모든 죄업(罪業)이 참회(懺悔)가 될 것입니다.


그래가지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아무 자기도 모르는 하염없는 눈물이 넘쳐 흐른다든지,

그 기도를 하고 나서 과거에 자기가 원망했던 사람, 미워했던 사람, 야속하게 생각했던 거, 유감스럽게 생각했던 거, 모든 그러헌 생각들이 봄눈 녹듯이 다 녹아 빠질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에 기도는 성취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정성스럽게 기도를 하면 우리가 기도 시작하기 전에 바랬던 작은 소원, 큰 소원 또는 유루복(有漏福), 무루복(無漏福)을 따질 것이 없이 모든 것이 다 내가 구하지 아니해도 다 나에게 이르러 오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아까 조실 스님 법문 가운데에도, 오래 살기를 바래서 기도를 하는데 과연 80년 내지 100세를 산다 하더라도 결국은 죽게 되고,

부자가 되기를 바래서 기도를 해서 기도성취를 해 가지고 큰 부자가 되었다 하더라도 언젠가는 그 재산이 내게로부터 떠날 때가 있을 것이여.


그래서 이러한 유루복(有漏福)—밖에서 부터서 구하는 샘[漏]이 있는 그러한 유루복이라고 하는 것은 일시적으로 성취가 되었다 해도 마침내는 내게로부터 떠나고 또 끝이 있기 때문에 그것은 영원성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절에 아들을 낳기 위해서 기도를 하고, 부자가 되기 위해서 기도를 하고 또 수명장수(壽)를 위해서 기도를 하고, 높은 벼슬자리 올라가기를 위해서 기도를 하고,

하지만, 이 정법(正法) 도량에 와서 기도를 하면 그런 조그마한 인간적인 소원으로 기도를 하러 왔지만 결국은 무루복(無漏福)—샘[漏]이 없는 영원한 법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최상승법, 참선법(參禪法)을 선양하는 이 도량에서 매년 초삼일부터서 아흐레까지 칠일 동안 신수기도를 봉행(奉行)하는 근본 뜻이 바로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참선을 바라고 정법을 원한다 하더라도 우리는 인간의 몸을 가졌고, 가정을 가졌고 그렇기 때문에 이 세상에 살아가려면 영원한 무루복도 필요하지만 우선 당장 유루복도 없어서는 아니될 것입니다.

그래서 작은 것을 구하기 위해서 기도를 하지만 그 기도를 올바르게 정말 참되게 기도를 하면 저절로 이 무루법(無漏法)에까지 이르르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부탁드리고자 하는 것은 비록 신수기도를 한다 하더라도 정말 올바르게 기도를 하시면 작은 소원은 말할 것도 없고, 정말 ‘참나’를 깨달은 데에까지 이르르는 디딜목이 되리라고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어쨌던지, 오늘부터 7일간 여법(如法)하게 정진을 하셔서 시종일관(貫)해서 기도를 해 가지고,


그 기도가 바로 삼륜(三輪)이 공적(空寂)해서—열심히 하다 보면 마침내는 「기도를 하는 내」나 「내가 바라는 부처님」이나 「내가 바랜 바 어떠한 목적」이 셋이 다 공(空)해 가지고 그것이 바로 삼륜이 공적인데,


삼륜이 공적을 한 가운데에 한결같이 정진을—한 생각도 딴 생각[別念]을 내지 아니하고 순일하게 정진을 지어가면 결국은 ‘참나’를 깨닫는 데에까지 연결이 될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금년 특히 가족 가운데에 삼재(三災)가 든 분은 더욱 정성을 다해서 기도를 해주시고,

삼재가 안 드신 분도 이 기도에 동참하신 분은 이 법당에 들어와서 기도할 그 시간 뿐만이 아니라,


기도가 끝나고 나가서 공양을 잡순다든지, 차를 타고 댁으로 돌아가신다든지, 또 댁에 돌아가셔서 또 생활을 하는 가운데에도,

이 법당에서 기도하는 그러한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일주일간을 쪼옥 한결같이 그렇게 하신다면 틀림없이 소원을 성취하시리라고 믿는 것입니다.


아무쪼록 소원 성취하시길 다시 한번 간절히 바라고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처음~12분34초)(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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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근(精勤) ; ①쉬거나 게으름 피우지 않고 이나 공부 아주 부지런히 노력하는 것. 힘써 일하는 것. ②기도를 할 때 별념(別念)이 없이 일심으로 불보살의 명호를 염불하는 것.

*정성(精誠)온갖  다하려는 진실되고 성실한 마음.

*청정(淸淨 맑을 청,깨끗할 정) ; 허물이나 번뇌가 없이 깨끗함.

*잡(雜)되다 ; (사람이나  언행)조촐하지 못하며 막되고 상스럽다. *조촐하다 : 단정하고 품위가 있다.

*망어(妄語) ; 거짓말이나 헛된 말.

*양설(兩舌) ; 이간질하는 말.

*악구(惡口) ; 남을 괴롭히는 나쁜 말. 욕.

*정숙하다(肅-- 고요할 정,엄숙할 숙) ; (장소 분위기)아무 소리 없이 조용하고 엄숙하다.

*흐지부지하다(사람 어떤 )분명히 끝맺지 못하고 흐리멍덩하 넘기다.

*해이하다(解弛-- 풀 해,느슨할 이) ; (마음가짐이나 태도 따위가)긴장이 풀어져서 느슨한 상태이다.

*업장(業障) ; 전생(前生)이나 금생(今生)에 행동•말•마음(신구의,身口意)으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이 세상에서 장애(障礙)가 생기는 것.

*소멸(消滅) ; 사라져 없어짐.

*죄업(罪業) ; 자신과 남에게 해가 되는 그릇된 행위(身)와 말(口)과 생각(意). 괴로움의 과보를 초래하는 악한 행위. 좋지 않은 결과의 원인이 되는 악한 행위.

*유루복(有漏福) ; 평범한 범부 중생이 지은 복(福)—부귀영화, 명예, 권리, 오욕락 따위의 복으로, 유루(有漏)—샘이 있는, 번뇌 또는 고를 더욱 증장시키는—의 복이어서 한도(度)가 있어 영원성이 없고 영원히 믿을 것이 못된다.

하늘에다 쏘아 올린 화살이 아무리 힘이 센 장사가 활을 당겨서 활을 쐈다 하드라도 올라갈 만큼 올라가면 결국은 다시 땅으로 떨어지고 마는 것처럼, 아무리 큰 복을 쌓는다 하드라도 그 복이 인천(人天)에서 제일가는 부자가 된다 하드라도 자기가 지은 복만큼 다 받아버리면 다시 또 타락하게 된다.

그래서 옛날 성현들은 인간 세상의 그 유루복(有漏福)이라 하는 것은 그 복을 얻으면서 죄를 짓고 또 얻어가지고 누리면서 죄를 짓고, 또 그 얻었던 것을 결국은 다 없애면서 그 죄를 짓는다.

그래서 『인간의 유루복은 삼생(三生)의 원수다』 이렇게 표현을 한 것이다.


그러나 세상을 살아가려면 유루복도 있기는 있어야 하므로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을 해서 구해야 하고,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을 해서 얻은 복은 그래도 나를 그렇게까지 큰 죄를 짓지 않게 하고, 언젠가 떠나더라도 나를 그렇게 크게 해롭게는 하지 않고 곱게 떠나는 것이다.

유루복이라도 좋은 방법으로 구하고 보시(布施)와 같은 또 좋은 방향으로 잘 사용을 하는데, 보시도 무주상(無住相) 보시를 해야 같은 재보시(財布施)를 해도 결과로 돌아오는 복은 한량이 없다.

참선하는 것이 바로 나를 무심(無心)한 상태로 이끌게 만들고, 무심한 상태에서 재보시, 법보시, 무외보시(無畏布施)를 하면 그것이 바로 무주상 보시가 되는 것이어서, 무주상(無住相)으로 하면 그것이 무루복과 연결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항상 참선하는 마음으로 살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돈도 벌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보시도 한다면, 유루복과 무루복을 겸해서 닦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No.565) - 1996년 설날통알 및 설날차례(1996.02.19)에서.
유루복은 삼생(三生)의 원수다. 왜 그러냐?
유루복은 복을 짓느라고 죄를 지으니 그것 때문에 내가 삼악도(三惡道)에 가게 되니까 그래서 그 유루복은 원수이고,
또 하나는 지어놓은 복을 그 놈을 지키고 사용하느라고 또 죄를 짓게 되니까 그래서 또 원수고,
마지막에는 언젠가는 유루복은 나의 몸과 마음과 가정을 갖다가 갈기갈기 짓밟고 찢어 놓고서 떠나기 때문에 또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유루복일망정, 유루복이 없어갖고는 정말 세상을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유루복이 삼생의 원수라 하더라도 그것이 없어갖고는 당장 어찌 해 볼 도리도 없고, 사람노릇 할 수도 없고, 생활도 할 수도 없고, 자식교육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유루복도 있기는 있어야 하는데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을 해서 구해야-힘들고 일확천금(一攫千金)은 안 되지만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을 해서 얻은 복은 그래도 나를 그렇게까지 큰 죄를 짓지 않게 하고,
언젠가 떠나더라도 나를 그렇게 크게 해롭게는 하지 않고 곱게 떠나는 것입니다.

부당한 방법으로 억지로 남을 해롭게 하고, 나라의 법을 어기면서까지 무리한 방법으로 취득을 해 놓으면 그것은 머지않아서 큰 재앙을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루복이라도 좋은 방법으로 구하고 또 좋은 방향으로 잘 사용을 하는데,
그것을 사용을 할 때에는 보시를 하는데, 무주상(無住相) 보시를 해야 같은 재보시(財布施)를 해도 결과로 돌아오는 복은 한량이 없는 것이고,

남에게 금전이나 어떤 재산을 보시하면서 내가 이것을 했다고, ‘너한테 보시를 했으니 나한테 너는 응당 고맙게 생각해야 하고, 나한테 그 은혜를 갚아야 한다.’ 그래 가지고 그 과보(果報)를 바래.

공투세를 해 가지고 과보를 바라면 그것이 유주상(有住相)의 보시가 되어서 상대방에 정신적으로 많은 부담감을 주어가지고, 내것 보시하고서 주고받는 사이가 서먹하게 되고, 나중에는 결국 원수가 되는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시는 하되 무주상(無住相)으로 해야 한다.

무루복(無漏福)은 어떻게 짓느냐?
물론 재보시, 법보시, 무외보시(無畏布施)를 하되, 무주상(無住相)으로 하면 그것이 무루복과 연결이 되고,

그 무루복을 참으로 더 훌륭하게 크게 깊게 심으려면 우리 자신이 항상 정법을 믿고, 최상승법에 입각해서 참선(參禪)을 열심히 함으로서,
참선하는 것이 바로 나를 무심(無心)한 상태로 이끌게 만들고, 무심한 상태에서 보시를 하면 그것이 바로 무주상 보시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항상 참선하는 마음으로 살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돈도 벌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보시도 한다면,
유루복과 무루복을 겸해서 닦게 되기 때문에 우리는 살아서부터 도솔천 내원궁이나 극락세계에 갈 수 밖에 없는 그러한 복을 심고 종자(種子)를 심기 때문에, 우리는 도솔천 내원궁에 가는 것은 걱정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무루복(無漏福) ; 번뇌가 없는 더러움이 없는 복. 영원히 끝장이 나지를 않고 아무리 쓰고 또 써도 바닥이 나지를 않고 다할 날이 없는 복(福) 그것이 무루복입니다.
무루복이라 하는 것은 참선법(參禪法)에 의해서 내가 내 마음을 닦아 가지고 생사해탈하는 이것만이 영원히 생사를 면하는 무루복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참선하는 마음으로 살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돈도 벌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보시하여, 무루복(無漏福)과 유루복(有漏福)을 겸해서 닦아야, 남도 좋고 나도 행복할 수 있는 길을 가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수명장수(壽命長壽 목숨 수,목숨 명,길 장,목숨 수) ; 수명이 길어 오래도록 삶. 어린아이의 명이 길어 오래 살기를 빌 때에 쓴다.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참선법(參禪法) ; ①선(禪) 수행을 하는 법.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법.
*봉행(奉行) ; ①뜻을 받들어 행함. ②제사나 의식 따위를 치름.
*무루법(無漏法) ; 번뇌의 더러움에 물들지 않은 마음 상태, 또는 그러한 세계. 번뇌와 망상이 소멸된 상태. 분별을 일으키지 않는 마음 상태. 사제(四諦) 가운데 깨달음의 결과인 멸제(滅諦)와 그 원인인 도제(道諦)에 해당하는 모든 현상.
*디딜목발로 디디기 위하여 놓은 널판(넓고 판판하게  뭇조각)디딜널. 디딜판. 디딤널. 디딤판.
*여법(如法 같을·같게 할·따를·좇을 여, 부처님의 가르침·불도佛道 법) ; 부처님의 가르침에 맞음.
*시종일관(貫)처음부터 까지 한결같이.
*삼륜공적(三輪空寂) ; 타인에게 물건을 줄때, 실체가 공(空)한 것을 관(觀)하여 보시에 집착하는 마음을 없애기 위해, 「시자(施者 베푸는 사람) · 수자(受者 받는 사람) · 시물(施物 보시한 물건)의 3륜(輪)이 모두 본래 공(空)한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을 말함. 삼륜체공(三輪體空), 삼륜청정(三輪淸淨)이라고도 함.
*딴 생각 ; 별념(別念). [몽산법어] (용화선원刊) 박산무이선사선경어(博山無異禪師禪警語)에서.
“做工夫호대  着不得一絲毫別念이니  行住坐臥에  單單只提起本叅話頭하야  發起疑情하야 憤然要討箇下落이니라.  若有絲毫別念하면  古所謂雜毒이  入心하야  傷乎慧命이라하니  學者는 不可不謹이니라”
“공부를 짓되 털끝만치라도 딴 생각[別念]을 두지 말지니, 가고 멈추고 앉고 누우매 다못 본참화두(本叅話頭)만을 들어서 의정을 일으켜 분연히 끝장 보기를 요구할 것이니라.
만약 털끝만치라도 딴 생각[別念]이 있으면 고인이 말한 바 「잡독(雜毒)이 마음에 들어감에 혜명(慧命)을 상한다」하니, 학자는 가히 삼가지 않을 수 없느니라.”

“余云別念은  非但世間法이라  除究心之外에  佛法中一切好事라도  悉名別念이니라.  又豈但佛法中事리요  於心體上에  取之捨之  執之化之가  悉別念矣니라”
“내가 말한 딴 생각[別念]은 비단 세간법만 아니라 마음을 궁구하는 일 외에는, 불법(佛法)중 온갖 좋은 일이라도 다 딴 생각[別念]이라 이름하느니라.
또 어찌 다만 불법중 일뿐이리오?  심체상(心體上)에 취하거나[取], 버리거나[捨], 집착하거나[執], 변화하는[化] 것이 모두 다 딴 생각[別念]이니라.” (p164-166)
*삼재(三災 석 삼,재앙 재) ; 사람의 태어난 해(十二支)에 따라 9년 주기로 돌아온다는 3가지 재난, 나쁜 운수를 의미한다.
①대삼재(大三災)라 하여 물(水災), 불(火災), 바람(風災)에 의한 재난을 의미하기도 하고,
②도병(刀兵-서로 흉기를 갖고 살해함), 기근(饑饉-기근이 일어남), 질역(疾疫-큰병이 유행함)을 뜻하기도 하며,
③자연 현상으로 입은 세 가지 재해(災害) 즉 곡식이 익지 않는 기(飢), 채소가 익지 않는 근(饉), 과일이 익지 않는 황(荒)을 가리키기도 한다.
삼재의 첫해를 입삼재(入三災, 들삼재)이라고 하며 두 번째 해는 침삼재(枕三災, 눌삼재·앉은삼재)를, 마지막 해를 출삼재(出三災, 날삼재)라고 한다.
고려시대 이전부터 삼재에 대한 개념이 형성되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조선시대에는 삼재라는 개념이 널리 확산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참고] 송담스님(No.258)-1985년(을축년) 신수기도입재(1985.02.22) 법문에서.
삼재가 들으신 분뿐만이 아니라 삼재가 안 들으신 모든 사부대중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재앙(災殃)은 언제나 우리에게 닥아 올 수가 있고 우리에게 일어날 수가 있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삼재는 바로 우리의 마음에서 그 근본이 일어나기 때문인 것입니다.
마음이 없다면 삼재가 붙을 수가 없고 일어날 수가 없을 것입니다마는, 우리는 마음이 있어서 그 마음으로 부터 끊임없는 파도가 파도치고 있기 때문에 삼재가 일어날 가능성은 언제나 있는 것입니다.

대관절 이 삼재라고 하는 것이 왜 그것이 어떠한 이유로 해서 있는 것이냐?
태어난 해에 따라 차례차례로 돌아가면서 이렇게 삼재가 오느냐 하는 것은,
이것은 음양오행의 술가들이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것이라 나는 잘 모르겠습니다마는 하여간 옛날부터서 우리의 생활 경험을 통해서 절대로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이 삼재가 든 사람은 항시 불보살과 성현께 기도를 하고, 또 항시 3년 동안 근신을 하고, 말과 행동과 마음가짐을 각별히 조심을 해서,
대인 관계에 있어서나 모든 면에 있어서 근신하고, 지혜롭고, 참을성 있게 그렇게 조심을 해 나가야만 된다고 하는 것은 우리는 알고 있는 것입니다.

생활은 여전히 해 가되 ‘어떻게 근신을 하고 어떻게 조심을 하느냐’하는 것은 다른 게 아니라,
불법을 믿고 항시 염불을 하는 이는 염불을 열심히 하고, 경을 독송하는 이는 경을 열심히 독송하고,
또 참선법을 믿고 실천하는 분은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일심(一心)으로 화두를 들며 참구를 한다면 어느 틈에 있어서 삼재가 엿볼 수가 있겠습니까.

삼재가 아무리 무섭다 해도 우리의 마음의 틈을 통해서 들어오는 것이지, 마음에 틈이 없다면 들어올 수가 없을 것입니다.

삼재가 우리의 마음의 틈을 타서 들어온다고 하는 사실을 우리는 깊이 인식을 하고 삼재에 걸린 분. 또 앞으로 삼재를 맞이할 분들은 각별히 마음의 문—마음의 문은 눈이 바로 마음의 문이요. 귀가 마음의 문이요. 코와 입이 마음의 문이요. 우리의 몸뚱이가 마음의 문이요. 우리의 생각이 마음의 문인 것입니다.

이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육근(六根)-육문(六門)이 바로 삼재가 들어오는 문이 것입니다. 그 문단속을 잘 하는 것으로 모든 도적을 막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부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삼재를 막아내는, 비단 삼재라고 했습니다마는 더 널리 말을 한다면 육적(六賊)이 될 것이고, 더 방대하게 말한다면 팔만사천 마군(八萬四千魔軍)이 될 것입니다.

그 팔만사천 마군이를 ‘한 생각’에 막을 수도 있고, 도적을 불러 들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한 생각’ 비끗 잘못하면 바로 삼재와 육적과 팔만사천 도적을 불러들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육도윤회(六道輪廻)를 하고 있는 것도 역시 그 ‘한 생각’ 때문에 육도윤회를 해서 끊임없이 생사를 받고 있습니다마는, 그 ‘한 생각’만 잘 단속해 나간다면 신수기도는 정말 옳게 봉행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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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싼또샤
법회(신수기도)2015.02.13 15:07


§(438) 「내 마음과 부처님 마음이 하나가 되는 것」이 기도의 목적 / 정법 법문(正法法門) 들은 것이 기도성취 / 십악참회(十惡懺悔) / 송담스님 축원.


기도는 「내 마음과 부처님 마음이 하나가 되는 것」이 기도의 목적입니다. 하나가 되려면 우리의 마음을 부처님 마음과 같이, 허공과 같이 청정하게 되어야 부처님 마음과 우리의 마음이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일주일 동안 지극정성(至極精誠)으로 정근(精勤)을 하고 관세음보살을 부르고, 참회(懺悔)를 하고 발원(發願)을 함으로써 그동안에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이 청정해지는 것입니다.

그 청정해짐으로 해서 부처님 마음과 내 마음이 하나가 될 때에 기도성취의 선이 이어지는 것입니다.

관세음보살’ 한번 한번 부를 때에 「관세음보살 부르는 자기」와 「관세음보살 부르는 소리」와 「관세음보살」이 하나가 되도록, 관세음보살과 내가 하나가 되면 그것이 바로 부처님과 내가 하나가 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속에 참회도 저절로 되는 것입니다.

기도는 이미 법문 들을 때 다 결판(決判)이 난 것이고 또 일주일 동안 지극정성으로 함으로써 그 자체가 기도성취다.

**송담스님(No.438)—91년 신수기도 입재(91.02.17)


(1) 약 13분.  (2) 약 21분.


(1)------------------


(원장 스님께 삼배 올리겠습니다)  편안하게 앉으십시오.

오늘 칠일기도, 칠일 신수기도 입재 법문을 조실 스님의 녹음 법문을 통해서 잘 들었습니다. 


조실 스님 법문 가운데 ‘기도는 정법 법문(正法法門) 들은 것으로써 기도는 다 된 것이다’ 이런 말씀이 계셨습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기도는 「내 마음과 부처님 마음이 하나가 되는 것」이 기도의 목적입니다.

하나가 되려면 우리의 마음을 부처님 마음과 같이, 허공과 같이 청정하게 되어야 부처님 마음과 우리의 마음이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조실 스님의 최상승(最上乘) 법문을 정성껏 들음으로 해서 우리의 마음이 허공과 같이 깨끗해졌다면 그것이 바로 기도요, 기도 성취인 것입니다.


마음이 깨끗해서 부처님 마음과 하나가 된다면 무슨 소원을 성취를 못하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법문을 들으면 들을 때 그때 잠깐이고, 돌아서면 또 우리의 마음은 끝없는 번뇌(煩惱)와 망상(妄想)으로 어지럽혀지기 마련입니다.


또 법문 듣는 동안에도 온갖 번뇌와 망상이 일어나고,

그래서 일주일 동안 지극정성(至極精誠)으로 정근(精勤)을 하고 관세음보살을 부르고, 참회(懺悔)를 하고 발원(發願)을 함으로써 그동안에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이 청정해지는 것입니다.

그 청정해짐으로 해서 부처님 마음과 내 마음이 하나가 될 때에 기도성취의 선이 이어지는 것입니다.



보통 우리에게는 알게 지은 죄, 모르게 지은 죄, 무량겁으로부터 오늘날까지 오면서 그 죄가 한량이 없습니다. 몸으로 짓고, 입으로 짓고, 우리의 마음으로 지은 죄가 산과 같고 바다와 같고 허공과 같이 그렇게 많은 것입니다.


그런데 그 마음으로 지은 죄, 입으로 지은 죄, 몸으로 지은 죄를 깨끗이 하기 위해서 기도를 하고 참회를 하는데 기도할 때는 언제든지 옛날부터 목욕재계(沐浴齋戒)를 합니다.


목욕재계(沐浴齋戒)가 무엇입니까? 이 몸뚱이에 묻은 더러운 때를 깨끗이 씻으므로 해서 마음을 청정하게 하는 데에 나아가고자 하는 것입니다.

마음을 깨끗이 허기 위해서 먼저 몸을 깨끗이 하고 또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하는 것이 그것이 결국은 궁극에 가서는 마음을 깨끗이 하는 대로 나아가기 위한 준비인 것입니다.


그러면 몸만 깨끗이 씻고 옷만 새로 갈아입고서, 마음에 지은 죄가 가득차 있는데 그걸 어떻게 하느냐? 이게 바로 참회인 것입니다.


많은 중생들은 과거에 지은 죄는 다 몸뚱이를 바꿀 때 다 잊어 버렸습니다. 잊어 버렸어도 우리의 제팔 아뢰야식(第八 阿賴耶識) 속에는 과거에 지은 죄의 그림자가 종자(種子)로써 다 쟁여져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금생에 지은 죄는 아직 잊어버리지 않고 기억 속에 남아 있기 때문에 자기가 지은 죄의식 때문에 한량없는 고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비밀리에 숨기고 있어도 그럴수록에 자기 양심으로는 자기가 지은 죄 때문에 얼마나 많은 세월을 양심적 가책(責)을 받으면서 고통 속에 몸부림을 치고 있는 것입니다.


다행히 우리는 부처님의 법문을 통해서 자기가 지은 죄를 참회하는 법을 우리는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용화사 법보선원에서는 아침에 예불(禮佛)하고 예불 끝에 그 지은 (죄를 참회하는) 십악참회(十惡懺悔)를 하고 있습니다.


결제(結制)에 방부(房付)를 들이신 분은 날마다 그 참회 의식을 하셔서 잘 아시겠지만, 예불에 참례(禮)를 안해 보신 분은 한번 와서 주무시면서 아침에 예불에 참례하시는 것도 참 좋으리라고 생각을 하고,


참회를 통해서 지은 죄를 씻는다고 하는 것은 우리가 그 참회법이 없으면 자기가 지은 죄 때문에 금생 일생동안 남몰래 피가 녹고 오간장이 썩어 문드러질 것입니다.

그 죄의식(罪意識) 때문에 독한 약을 먹고 몸이 병들어 가듯이, 마음의 고통을 이겨내지를 못합니다.


그래서 기도하시기 전에 여러분은 부처님께 참회하는 마음을 갖고 그리고서 정근을 하면서도 그 정근의 일념으로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을 부름으로 해서,


그 관세음보살 한번 한번 부를 때에 「관세음보살 부르는 자기」와 「관세음보살 부르는 소리」와 「관세음보살」이 하나가 되도록,

이렇게 하면은 그 동안에 망상도 일어날 겨를이 없고, 관세음보살과 내가 하나가 되면 그것이 바로 부처님과 내가 하나가 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속에 참회도 저절로 되는 것입니다.



이번 겨울에 모두 대학입시 문제로 많은 분들이 마음을 조이고 또 전기, 후기 모두 합격하신 분도 있고, 떨어진 분도 있고 또 다시 재수, 삼수를 하시는 분도 있겠는데, 그러한 문제로 해서 모두가 다 기도를 하시고,


그런데 그 기도라고 하는 것은 기도함으로서 소원을 이루기도 하고 또 기도를 그렇게 정성껏 했음에도 불구하고 또 마음먹은 대로 안되는 수도 있습니다.


학교 입학 문제라든지, 취직·승진 문제라든지 또는 사업발전 문제 또 남녀 모다 결혼 문제, 관재구설(舌)이라든지, 병고에 관한 것 또 생남불공(生男佛供) 기도라든지, 인간이 살아가는 데는 크고 작은 많은 소원이 있을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것과 또 삼재(三災)가 들면 그 삼재에 혹 좋지 않는 일이 있을까 해서 그런 것을 또 소멸하기 위해서라도 참 지극정성으로 모다 기도를 하시는데 우리가 소원한 대로 꼭 그것이 달성하느냐?


가시적으로 되어야만 직성이 풀리고 좋아하고,

마음먹은 대로 그것이 안되면 마음이 언짢고, 기도라는 게 내 정성이 부족했는가? 그걸 모두 다 회의를 품게 됩니다마는, 기도는 어쨌든지 최선을 다하고 간절(懇切)하게 할 뿐인 것입니다.


만일에 기도를 그렇게 간곡(懇曲)히 정성을 다해서 했음에도 불구하고 마음먹은 대로 안되었다고 해서 낙심(落心)을 하거나 실망을 하거나 원망을 하거나 비관적으로 생각할 일이 아닙니다.

왜 그러냐 하면, 그것이 안됨으로 해서 저 나중에 결과적으로 더 좋을 수도 있고, 그것이 됨으로 해서 더 안 좋은 경우도 얼마든지 있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환히 다 알고 계시기 때문에 얼마만큼 정성껏 하느냐? 그것도 아시고,

저 사람이 이번 취직이 되거나 합격이 되는 것이 더 좋은가, 차라리 이번에는 안되는 편이 더 좋은가? 그것도 더 잘 아시기 때문에 경우에 따라서는 합격되기도 하고, 사람에 따라서는 합격이 안되는 수도 있어.


안되는 것이 차라리 그 사람에게는 더 좋을 수 있을 때에는 지극정성으로 기도했어도 안되는 경우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기도는 이미 법문 들을 때 다 결판(決判)이 난 것이고 또 일주일 동안 지극정성으로 함으로써 그 자체가 기도성취다’ 이렇게 생각하시고,


결과가 나고, 안 나는 것은 다 인연에다 맡겨 버리고, 성취가 안되어도 더 감사하게 생각하고, 성취가 되어도 감사하게 생각하고,

이러한 정도의 마음을 가지고 느긋한 마음으로 정말 큰, 엄청나게 큰 항공모함과 같은 배에 탄 기분으로 일주일 동안을 한결같이 기도를 해 주시기를 부탁합니다.(처음~12분59초)



(2)------------------


〇헌공(獻供)—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는 예식.


〇정근(精勤)—‘석가모니불’ 정근.


〇축원(祝願)—송담 스님.


〇반야심경(般若心經) 봉독(讀).  (13분17초~33분38초)



부처님께 공양 올리는 헌공  축원이 있겠습니다.


욕건만나라 선송 정법계진언   (7)

欲建曼那羅 先誦 淨法界眞言


원차향위 해탈지견 원차등위 반야지광

願此香爲 解脫知見 願此燈爲 般若智光

원차수위 감로제호 원차식위 법희선열

願此水爲 甘露醍 願此食爲 法喜禪悅


즉세제지장엄 성묘법공양 원만시방법계해 봉헌무진삼보전 감찰법보제자 건간심

卽世諦之莊嚴 成妙法供養 圓滿十方法界海 奉獻無盡三寶前 鑑察法寶弟子 虔懇心


원수자비애납수(願垂慈悲哀納受) (3)


지심정례공양 시방삼세 제망찰해 상주일체 불타야중

至心頂禮供養 十方三世 帝網刹海 常住一切 佛陀耶衆

지심정례공양 시방삼세 제망찰해 상주일체 달마야중

至心頂禮供養 十方三世 帝網刹海 常住一切 達摩耶衆

지심정례공양 시방삼세 제망찰해 상주일체 승가야중

至心頂禮供養 十方三世 帝網刹海 常住一切 僧伽耶衆

유원 무진삼보 대자대비 수차공양 원공법계제중생 자타일시성불도

唯願 無盡三寶 大慈大悲 受此供養 願共法界諸衆生 自他一時成佛道


나무삼계대사 사생자부 시아본사 석가모니불

南無三界大師 四生慈父 是我本師 釋迦牟尼佛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 (정근 精勤)


천상천하무여불 시방세계역무비

天上天下無如佛 十方世界亦無比

세간소유아진견 일체무유여불자

世間所有我盡見 一切無有如佛者



축원


앙고 삼계대사 사생자부 본사 석가모니불 불사자비 허수낭감

仰告 三界大師 四生慈父 本師 釋迦牟尼佛 不捨慈悲 許垂朗鑑


지심봉축 유아조국 남북통일 자주독립 속성완수 세계평화 만민함락 불일증휘 법륜상전 국계항안어만세

至心奉祝 唯我祖國 南北統一 自主獨立 速成完遂 世界平和 萬民咸樂 佛日增輝 法輪常轉 國界恒安於萬歲


법보제자 정법문중 신심견고 영불퇴전 화두순숙 의단독로 확철대오 광도중생지발원

法寶弟子 正法門中 信心堅固 永不退轉 話頭純熟 疑團獨露 廓徹大悟 廣度衆生之發願


원아금차 인천시 주안동 용화사 법보선원 수월도량 신미년 정초 신수기도 동참발원재자 시회합원 노소남녀 법보제자 가내일문 동남동녀 청신사 청신녀 각각등보체

願我今此 仁川市 朱安洞 龍華寺 法寶禪院 水月道場 辛未年 正初 身數祈禱 同參發願齋者 時會合院 老少男女 法寶弟子 家內一門 童男童女 淸信士 淸信女 各各等保體


앙몽 제불보살 가피지원력 사대강건 육근청정 수명장원 복혜구족 자손창성 염불자 삼매현전 간경자 혜안통투 참선자 의단독로 우선지식 일언지하 확철대오

仰蒙 諸佛菩薩 加被之願力 四大康健 六根淸淨 壽命長遠 福慧俱足 子孫昌盛 念佛者 三昧現前 看經者 慧眼通透 參禪者 疑團獨露 遇善知識 一言之下 廓徹大悟

사업자 재수대통 병고자 속득쾌차 학업자 학업성취 각종시험자 여의원만합격 동서사방 출입왕환 상봉길경 불봉재앙 관재구설 삼재팔난 사백사병 영위소멸

事業者 財數大通 病苦者 速得快差 學業者 學業成就 各種試驗者 如意圓滿合格 東西四方 出入往還 常逢吉慶 不逢災殃 官災口舌 三災八難 四百四病 永爲消滅

각기심중 소구소원 일일여의원만 성취지대원

各其心中 所求所願 一一如意圓滿 成就之大願


금차 칠일 신수기도 동참재자 노소남녀 각각등보체 법보제자 각각등복위 광겁부모 각열위영가 법보전 만년위패 법보 각열위영가

今此 七日 身數祈禱 同參齋者 老少男女 各各等保體 法寶弟子 各各等伏爲 曠劫父母 各列位靈駕 法寶殿 萬年位牌 法寶 各列位靈駕

차사최초 창건이래 중건중수 대소시주화주 도감별좌 각열위영가

此寺最初 創建以來 重建重修 大小施主化主 都監別座 各列位靈駕

차도량내 도량외 유주무주 애혼제불자 각열위영가 내지 오무간지옥 일일일야 만사만생 만반고통 수고함령 제불자각열위영가

此道場內 道場外 有主無主 哀魂諸佛者 各列位靈駕 乃至 五無間地獄 一日一夜 萬死萬生 萬般苦痛 受苦含靈 諸佛者各列位靈駕

겸급법계 사생칠취 삼도팔난 사은삼유 일체유식함령등 각열위영가

兼及法界 四生七趣 三途八難 四恩三有 一切有識含靈等 各列位靈駕

무량겁래 소작지죄업 실개소멸 왕생도솔천 내원궁 친견미륵존 속성정각 하강용화 광도중생지발원

無量劫來 所作之罪業 悉皆消滅 往生兜率天 內院宮 親見彌勒尊 速成正覺 下降龍華 廣度衆生之發願


일당청중혜원명 사해징청공일가

一堂淸衆慧圓明 四海澄淸共一家

법계중생발보리 구경원성살반야

法界衆生發菩提 究竟圓成薩般若


마하반야바라밀(摩訶般若波羅蜜)


나무석가모니불(南無釋迦牟尼佛) 나무석가모니불(南無釋迦牟尼佛)

나무시아본사석가모니불(南無是我本師釋迦牟尼佛)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

摩訶般若波羅蜜多心經


관자재보살 행심반야바라밀다시 조견오온개공 도일체고액

觀自在菩薩 行深般若波羅蜜多時 照見五蘊皆空 度一切苦厄


사리자 색불이공 공불이색 색즉시공 공즉시색 수상행식 역부여시

舍利子 色不異空 空不異色 色卽是空 空卽是色 受想行識 亦復如是


사리자 시제법공상 불생불멸 불구부정 부증불감 시고 공중무색 무수상행식 무안이비설신의

舍利子 是諸法空相 不生不滅 不垢不淨 不增不減 是故 空中無色 無受想行識 無眼耳鼻舌身意


무색성향미촉법 무안계 내지 무의식계 무무명 역무무명진 내지 무노사 역무노사진 무고집멸도

無色聲香味觸法 無眼界 乃至 無意識界 無無明 亦無無明盡 乃至 無老死 亦無老死盡 無苦集滅道


무지역무득 이무소득고

無智亦無得 以無所得故


보리살타 의반야바라밀다고 심무가애 무가애고 무유공포 원리전도몽상 구경열반 삼세제불

菩提薩陀 依般若波羅蜜多故 心無罫碍 無罫碍故 無有恐怖 遠離顚倒夢想 究竟涅槃 三世諸佛


의반야바라밀다고 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依般若波羅蜜多故 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고지 반야바라밀다 시대신주 시대명주 시무상주 시무등등주

故知 般若波羅蜜多 是大神呪 是大明呪 是無上呪 是無等等呪


능제일체고 진실불허 고설 반야바라밀다주 즉설주왈

能除一切苦 眞實不虛 故說 般若波羅蜜多呪 卽說呪曰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사바하(3)

揭諦揭諦 波羅揭諦 波羅僧揭諦 菩提娑婆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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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 법,문 문) :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1700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번뇌(煩惱) ; 번뇌(煩惱, kleśa)란 몸과 마음을 번거롭게 괴롭히고 어지럽혀 더럽히게 하는 ‘정신작용’을 가리키는 말이다. 불교에서는 이러한 번뇌[惑]에 의해 중생이 몸과 마음의 행위[身口意 三業]를 일으키게 되면, 이로써 3계 6도의 생사윤회에 묶이게 되고 고통[苦]의 과보를 받게 된다. [惑-業-苦 三道]

따라서 불교에서는 이런 고통의 생사윤회의 원인이 되는 번뇌를 끊어 벗어나고[心解脫], 어리석음[無明]을 밝은 지혜의 깨달음[菩提]으로 깨뜨림[慧解脫]으로서 안온한 해탈 열반[涅槃]의 상태에 이르는 것을 수행의 목적으로 삼는다.

*망상(妄想 망녕될 망,생각 상) ; ①이치에 맞지 아니한 망녕된(妄) 생각(想)을 함, 또는 그 생각. ②잘못된 생각.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하다고 잘못 생각하는 것.

*지극정성(至極精誠) ; 더할 수 없이 극진한 정성(온갖 힘을 다하려는 진실되고 성실한 마음).

*정근(精勤)쉬거나 게으름 피우지 않고 이나 공부 아주 지런히 노력하는 것. 힘써 일하는 것.

*참회(懺悔 뉘우칠 참,뉘우칠 회) ; ①자기의 잘못에 대하여 깨닫고 깊이 뉘우치며, 다시는 같은 잘못을 짓지 않겠다고 결심함. ②신이나 부처님 또는 대중 앞에서 자기의 죄를 뉘우치고 용서를 구함.

[참고]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156~157 참고.

(70)有罪則懺悔하고  發業則慚愧하면  有丈夫氣象이요,  又改過自新하면  罪隨心滅이니라.

허물이 있거든(有罪) 곧 참회하고, 잘못한 일이 있으면(發業) 곧 부끄러워할 줄 알면(慚愧) 대장부의 기상이 있다 할 것이요,

또한 허물을 고쳐 스스로 새롭게 하면(改過自新), 그 죄업은 마음을 따라 없어지느니라(罪隨心滅).

(註解) 懺悔者는  懺其前愆이요  悔其後過라.  慚愧者는  慚責於內하고  愧發於外라.  然이나 心本空寂이라  罪業이  無寄니라

참회(懺悔)란 먼저 지은 허물을 뉘우치고, 뒷날에는 다시 짓지 않겠다고 맹세하는 것이다.

부끄러워한다(慚愧)는 것은 안으로 자신을 꾸짖고, 밖으로는 자기의 허물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은 본래 비어 고요한 것이라(心本空寂), 죄업이 붙어 있을 곳이 없는 것이다(罪業無寄).

*발원(發願) ; 원하는 마음을 냄. 원을 세움.

*목욕재계(沐浴齋戒) ; 제사나 중요한 일 따위를 앞두고 목욕을 하여 몸을 깨끗이 하고 부정(不淨)을 피하며 마음을 가다듬는 일.

*제팔 아뢰야식(第八 阿賴耶識) ; 팔식(八識) 가운데 여덟 번째인 아뢰야식(阿賴耶識)을 말함.
과거의 인식, 경험, 행위, 학습 등에 의해 형성된 인상(印象)이나 잠재력, 곧 종자(種子)를 저장하고, 육근(六根)의 지각 작용을 가능하게 하는 가장 근원적인 심층의식.

아뢰야(阿賴耶)는 산스크리트어 ālaya의 음사로, 거주지·저장·집착을 뜻함. 식(識)은 산스크리트어 vijñāna의 번역. 아뢰야(阿賴耶)를 진제(眞諦)는 a(無)+laya(沒)로 보아 무몰식(無沒識), 현장(玄奘)은 ālaya로 보아 장식(藏識)이라 번역.
[참고] 〇팔식(八識) ; 유식설(唯識說)에서 분류한 8가지 마음 작용.
인간의 모든 마음 활동을 8가지로 분류한 것이 8식(八識)이다. 곧,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의식(意識)·말나식(末那識)·아뢰야식(阿賴耶識).
8식(八識) 가운데 앞의 5가지 식(識), 곧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을 전5식(前五識)이라 하고, 그리고 第六 意識(제6의식), 第七 末那識(제7말나식), 第八 阿賴耶識(제8아뢰야식)이라 한다.
*종자(種子) ; ①씨앗 ②무엇인가를 낳을 가능성 ③아뢰야식에 저장되어 있으면서 인식 작용을 일으키는 원동력. 습기(習氣)와 같음 ④밀교에서, 상징적 의미를 가지는 하나하나의 범자(梵字).

*쟁이다차곡차곡 포개어 쌓아 두다.

*가책( 꾸짖을 가,꾸짖을 책) ; 자신 잘못 후회되어 스스로 뉘우치고 꾸짖음.

*예불(禮佛) ; ①경건한 마음으로 부처님에게 절함. ②절에서 아침·저녁 두 차례에 걸쳐 불·보살(佛·菩薩)에게 예배하는 의식.

*십악참회(十惡懺悔) ; 몸(身)과 입(口)과 마음(意)으로 짓는 10가지 죄—살생(殺生), 투도(偸盜), 사음(邪婬), 망어(妄語), 기어(綺語), 악구(惡口), 양설(兩舌), 탐욕(貪慾), 진에(瞋恚), 사견(邪見)—를 지은 자기의 잘못에 대하여 깨닫고 깊이 뉘우치며, 다시는 같은 잘못을 짓지 않겠다고 결심함.

*십악(十惡) ; 몸(身)과 말(口)과 뜻(意)으로 짓는 열 가지 죄악.

〇몸(身)—①살생(殺生 살아 있는 생명을 죽임) ②투도(偸盜 남의 재물을 훔침) ③사음(邪婬 삿된 음행).

〇말(口)—④망어(妄語 거짓말이나 헛된 말) ⑤기어(綺語 진실이 없는, 교묘하게 꾸민 말) ⑥양설(兩舌 이간질하는 말) ⑦악구(惡口 남을 괴롭히는 나쁜 말, 욕).

〇뜻(意)—⑧탐욕(貪欲 탐내어 그칠 줄 모르는 욕심) ⑨진에(瞋恚 성냄) ⓪사견(邪見 그릇된 견해).

*결제(結制 맺을 결,만들•법도 제) ; 참선 수행하는 안거(安居)에 들어감. 하안거는 음력 4월 15일에 결제하며, 동안거는 음력 10월 15일에 결제한다.

*방부(房付)를 들이다 ; 수행자가 절에 머물며 공부할 것을 인사드리고 허락을 구해 결제(結制)에 참가하다.

*죄의식(罪意識) ; 저지른 죄과(罪過   만한 과실이나 허물)나 잘못에 대하여 스스로 죄로 느끼는 의식.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 ; 대자대비(大慈大悲)의 마음으로 중생을 구제하고 제도하는 보살.

관세음(觀世音)은 산스크리트어 avalokiteśvara의 번역, 보살(菩薩)은 산스크리트어 bodhi-sattva의 음사인 보리살타(菩提薩埵)의 준말.

세간(世間)의 중생이 갖가지 괴로움을 받을 때, 그의 이름을 부르면 그 음성(音聲)을 듣고(觀) 대자비와 지혜로써 자유 자재로 중생을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해 주는 보살. 아미타불(阿彌陀佛)의 왼쪽 보처(補處).

또 자재롭게 보는 이(觀自在者), 자재로운 관찰 등의 뜻으로 '관자재보살(觀自在菩薩)'이라 한다. 또 광세음(光世音)·관세음(觀世音)·관세자재(觀世自在)·관세음자재(觀世音自在) 등으로 쓰며 줄여서 관음(觀音)이라 한다. 관세음보살의 주처는 보타낙가산(補陀洛迦山)이다.

한국에서는 동해에 있는 강원도 양양 낙산사(洛山寺)가 관음 도량으로 유명하다.

*관재구설(官災口舌) ; 관가로부터 재앙을 입는 일(官災)과 남이 나를 비방하거나 헐뜯어서 해를 입는 일(口舌)을 아울러 이르는 말.

*생남불공(生男佛供) ; 아들을 낳기 위하여 올리는 불공(佛供).

*불공(佛供 부처 불,이바지할·바칠 공) ; 부처님 앞에 향(香)·등(燈)·꽃·음식 따위를 바치고 기원함.

*삼재(三災 석 삼,재앙 재) ; 사람의 태어난 해(十二支)에 따라 9년 주기로 돌아온다는 3가지 재난, 나쁜 운수를 의미한다.

①대삼재(大三災)라 하여 물(水災), 불(火災), 바람(風災)에 의한 재난을 의미하기도 하고,

②도병(刀兵-서로 흉기를 갖고 살해함), 기근(饑饉-기근이 일어남), 질역(疾疫-큰병이 유행함)을 뜻하기도 하며,

③자연 현상으로 입은 세 가지 재해(災害) 즉 곡식이 익지 않는 기(飢), 채소가 익지 않는 근(饉), 과일이 익지 않는 황(荒)을 가리키기도 한다.

삼재의 첫해를 입삼재(入三災, 들삼재)이라고 하며 두 번째 해는 침삼재(枕三災, 눌삼재·앉은삼재)를, 마지막 해를 출삼재(出三災, 날삼재)라고 한다.

고려시대 이전부터 삼재에 대한 개념이 형성되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조선시대에는 삼재라는 개념이 널리 확산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참고] 송담스님(No.258)-1985년(을축년) 신수기도입재(1985.02.22) 법문에서.

〇삼재가 들으신 분뿐만이 아니라 삼재가 안 들으신 모든 사부대중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재앙(災殃)은 언제나 우리에게 닥아 올 수가 있고 우리에게 일어날 수가 있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삼재는 바로 우리의 마음에서 그 근본이 일어나기 때문인 것입니다.

마음이 없다면 삼재가 붙을 수가 없고 일어날 수가 없을 것입니다마는, 우리는 마음이 있어서 그 마음으로 부터 끊임없는 파도가 파도치고 있기 때문에 삼재가 일어날 가능성은 언제나 있는 것입니다.


〇대관절 이 삼재라고 하는 것이 왜 그것이 어떠한 이유로 해서 있는 것이냐?

태어난 해에 따라 차례차례로 돌아가면서 이렇게 삼재가 오느냐 하는 것은,

이것은 음양오행의 술가들이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것이라 나는 잘 모르겠습니다마는 하여간 옛날부터서 우리의 생활 경험을 통해서 절대로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이 삼재가 든 사람은 항시 불보살과 성현께 기도를 하고, 또 항시 3년 동안 근신을 하고, 말과 행동과 마음가짐을 각별히 조심을 해서,

대인 관계에 있어서나 모든 면에 있어서 근신하고, 지혜롭고, 참을성 있게 그렇게 조심을 해 나가야만 된다고 하는 것은 우리는 알고 있는 것입니다.


〇생활은 여전히 해 가되 ‘어떻게 근신을 하고 어떻게 조심을 하느냐’하는 것은 다른 게 아니라,

불법을 믿고 항시 염불을 하는 이는 염불을 열심히 하고, 경을 독송하는 이는 경을 열심히 독송하고,

또 참선법을 믿고 실천하는 분은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일심(一心)으로 화두를 들며 참구를 한다면 어느 틈에 있어서 삼재가 엿볼 수가 있겠습니까.


삼재가 아무리 무섭다 해도 우리의 마음의 틈을 통해서 들어오는 것이지, 마음에 틈이 없다면 들어올 수가 없을 것입니다.


〇삼재가 우리의 마음의 틈을 타서 들어온다고 하는 사실을 우리는 깊이 인식을 하고 삼재에 걸린 분. 또 앞으로 삼재를 맞이할 분들은 각별히 마음의 문—마음의 문은 눈이 바로 마음의 문이요. 귀가 마음의 문이요. 코와 입이 마음의 문이요. 우리의 몸뚱이가 마음의 문이요. 우리의 생각이 마음의 문인 것입니다.


이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육근(六根)-육문(六門)이 바로 삼재가 들어오는 문이 것입니다. 그 문단속을 잘 하는 것으로 모든 도적을 막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부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삼재를 막아내는, 비단 삼재라고 했습니다마는 더 널리 말을 한다면 육적(六賊)이 될 것이고, 더 방대하게 말한다면 팔만사천 마군(八萬四千魔軍)이 될 것입니다.


그 팔만사천 마군이를 ‘한 생각’에 막을 수도 있고, 도적을 불러 들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한 생각’ 비끗 잘못하면 바로 삼재와 육적과 팔만사천 도적을 불러들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육도윤회(六道輪廻)를 하고 있는 것도 역시 그 ‘한 생각’ 때문에 육도윤회를 해서 끊임없이 생사를 받고 있습니다마는, 그 ‘한 생각’만 잘 단속해 나간다면 신수기도는 정말 옳게 봉행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간절(懇切 간절할•정성스런 간,정성스런•절박할 절) ; ①지성(至誠)스럽고 절실(切實)함 ②정성이나 마음 씀씀이가 더없이 정성스럽고 지극함 ③마음속에서 우러나와 바라는 정도가 매우 절실함.

*간곡히(懇曲- 간절할 간,간절할 곡) ; 간절하고 정성스럽게.

*낙심(落心)바라던 일이 이루어지지 아니하여 맥(脈 기운이나 힘) 풀리고 마음 상(傷).

*결판(決判)승부 또는 옳고 그름 가려 판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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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싼또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