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안거 해제, 백종2015.07.31 11:48

§(512) (게송)당하지귀아시수~ / 올바른 방생(放生)이란? 마음을 자비롭게 가져라 / 참선을 하는 뜻은 자기 방생입니다 / (게송)피치삭발유래유~ / (게송)정체종래절성색~.


방생의 참뜻을 깊이 이해를 하셔서 마음속에 자비심을 가져. 항상 자비심(慈悲心)을 가지고 생명을 죽이지 아니할 뿐만 아니라, 생명을 가진 사람이나 동물이나 자연에게도 자비로운 마음으로 상대하면 그것이 벌써 방생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산에다 대고 내가 크게 소리를 지르면 메아리가 크게 돌아오고, 노래를 부르면 노래가 돌아오고, 좋은 말을 하면 그 메아리는 좋은 말로써 돌아오고, 입에 못 담을 고약한 욕을 퍼부으면 메아리는 그런 무서운 욕으로 내게 돌아오는 것입니다.

인간과 인간의 관계는 메아리와 똑같은 것입니다. 서로서로 존중히 여기고 서로서로 따뜻하게 자비롭게 상대하면 상대방도 역시 또 나한테 그렇게 돌아오는 것입니다.

집안에서 직장에서 또는 회사에서 사회에서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항상 자비스러운 마음으로 모든 사람을 상대하고, 자기 마음속에 자비심을 항상 이렇게 일으키고 자비로운 말, 자비로운 행동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면 자라 천 마리, 만 마리를 사서 물에다 넣어준 것 못지않게 큰 공덕(功德)을 받게 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49년 동안 팔만사천 묘법(妙法)을 설하셨는데, 그 많은 법문(法門)이 중생의 근기(根機) 따라서 종횡으로 팔만사천 가지 방편(方便)을 설하셨지만, 한마디로  『밖으로 치닫지 말고 한 생각 돌이켜서 바로 자기를 찾으라』

**송담스님(No.512)—93년 하안거해제 및 백종, 백일기도회향(93.09.01)


(1/3) 약 22분.  (2/3) 약 20분.  (3/3) 약 18분.


(1/3)----------------


당하지귀아시수(當下知歸我是誰)오  의정거처요분명(疑情擧處要分明)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막파심량중복탁(莫把心量重卜度)하라  혜등호향풍전속(慧燈好向風前續)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당하지귀아시수(當下知歸我是誰), 당하(當下)에, 즉하(卽下)에 ‘내가 이 누군가?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가?’ 이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그말이여.

의정거처요분명(疑情擧處要分明)이다. ‘이뭣고?’ 이 의정(疑情) 일어나는 곳에, 화두를 척! 들어 일으키는 곳에, 분명함을 요하느니라.


막파심량중복탁(莫把心量重卜度)하라. 마음으로 헤아리고 이리저리 점치고 따지고 그러지를 말아라.

혜등호향풍전속(慧燈好向風前續)이니라. 지혜의 등불을 바람 앞을 향해서 잘 꺼지지 않도록 이어 갈지니라.



오늘은 계유년 음력 7월 15일 하안거 해제날이고 또 백종날입니다.

하안거 해제는 석 달 동안 안거(安居)를 해서 오늘 해제를 하는데 용주사, 위봉사, 세등선원 각처(各處)에서 정진(精進)을 하던 도반들이 오늘 용화선원에 모여서 함께 이 해제 법요식을 갖게 되었습니다.


석 달 동안 그 더위와 혼침(昏沈)과 산란(散亂)과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고 그것을 극복하면서 정진을 한 그 도반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해제 법요식을 갖는다고 하는 것은 대단히 뜻깊은 날인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7월 15일 해제를 기해서 백중(百中) 천도재를 거행하는데,

백중날이라 하는 것은 부처님 당시 목련 존자(目連尊者)가 그 어머니 청제부인이 생전에 지은 죄로 지옥에 떨어져서 만반고통(般苦痛)을 받고 있을 때 그 어머니를 구제하기 위해서 갖은 정성을 다 했지만,

목련 존자의 그 신통술로도 어찌하지 못해서 그래서 부처님께 간절히 “우리 어머니를 천도(薦度)해 주십시오. 저 무서운 지옥고로부터서 벗어나게 해 주십시오” 간청을 했습니다.


“지옥고에서 백 가지 고통을 받고 있는 그 어머니를 구제하는 방법은 해제날 백 가지 과일과 맛있는 음식을 장만해가지고 해제에 모인 대중 스님들께 공양(供養)을 올려라. 그럼으로써 그 공덕으로 너의 어머니가 지옥고로부터 구제를 받을 수가 있느니라”


이렇게 해서 그때부터서 삼천년이 되도록 인도, 동남아, 중국, 한국, 일본 이렇게 내려오면서 7월 15일 백중날 지옥고에 신음하고 있는 선망부모(先亡父母)를 천도하는 전통이 오늘날까지 전해 내려오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이 용화선원 부처님 앞의 탁자에도 신남신녀(信男信女) 여러분들의 정성 어린 공양구(供養具)가 많이 쌓여져 있습니다.


모르는 분은 영가(靈駕) 위패(位牌) 앞에 많이 차려놓고 영가들을 위해서 영가들 훈감하라고 이렇게 많이 갖다놓은 것으로 착각을 하고 계신 분도 있겠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첫째, 부처님께 올리고 그 다음에는 대중 스님네께 올리고 또 여기에 모이신 여러분들도 공양하고, 이러한 공양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 7월에는 해제 때를 기해서 전국 각 사암(寺庵)에서 또 방생(放生)을 많이 행하는데, 이 방생이라 하는 것도 대단히 뜻이 깊은 것이어서 ‘죽어가는 생명을 놓아 준다’ 그래서 방생이라 그러는데,

방생에는 흔히 자라나 잉어등 어류(類)를 많이 사 가지고 강물이나 호수나 그런 데다 모다 많이 놔 주고 그러는데,


전강 조실스님께서도 생존(生存) 시에 많은 방생을 하셨습니다.

차떼기로 엄청난 고기를 갖다가 사서 방생을 하시고 몇백 관(貫)씩 이렇게 하셨는데, 마땅히 조실 스님의 법을 신(信)하는 우리로서는 조실 스님의 그런 행하시던 좋은 일을 본받아서 우리 용화선원에서도 방생 법회를 갖음직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조실 스님 열반(涅槃)하신 뒤로는 방생을 안 하고 20년의 세월이 지났습니다.

왜 그 방생을 하지 않았냐? 마땅히 그런 좋은 것을 왜 안하고 그러냐? 신도들로부터 종종 요청도 있었고 그런 질문도 받았습니다마는,


원래 방생의 뜻이 죽어가는 사람, 죽어가는 동물—비단 꼭 물고기뿐만이 아니라 육지에서 사는 동물, 하늘에 날으는 새, 무엇이고 죽어가는 생명을 살려주는 것이어서,

그것은 어디까지나 생명을 존중히 여기는, 나아가서는 그래서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자비심, 자비 종자(種子)를 잘 증장을 시키고,


그래서 어떠한 종류의 생명이라도 그 생명 자체는 고귀하고 소중한 것이라 ‘자기도 죽이지 아니할 뿐만 아니라 어쩔 수 없이 죽어가고 있는 그러한 생명을 놔 주자, 죽지 않도록 해 주자’는 데 깊은 뜻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월 해제라든지 7월 해제를 기해서, 전국 사찰에서 방생을 한다 해 가지고 며칠 전부터 고기 장수에게 부탁을 해 가지고 ‘자라를 200마리, 잉어를 몇백 마리 그리고 미꾸라지를 몇백 관, 이렇게 어김없이 그날 잡아다가 놔라’ 이렇게 미리 계약을 해 가지고,


그 고기 장수는 그날 그만한 양을 대기 위해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작살로 자라를 찍고, 그물로 고기를 잡고 해가지고 그것을 충당하기 위해서 애를 씁니다. 그래서 그전에 더러 보면 자라 등어리에 작살이 찍힌 자죽이 있는 자라도 보았습니다.


그 자라들이 입이 있어서 말을 한다면 또는 그런 잉어나 고기들이 사람에게 말을 할 수 있다면,

우리는 방생 법회인가 뭐 그것 때문에 이렇게 등어리에 작살을 찍히고 우리는 이렇게 곤욕(辱)을 치르고 있습니다”하고 스님네한테 원정(原情)을 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우연히 강변에를 갔다든지, 우연히 바닷가를 갔다든지 해서 ‘자라가 잡혀서 죽게 된다 또는 잉어가 죽어가게 되었다’ 이럴 때에 자기에게 있는 돈을 털어서 사가지고 강에다도 놔 주고, 바다에다도 놔 준다면 그건 대단히 좋은 방생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다시피 흥부(夫)가 우연히 제비 새끼가 떨어져서 발목이 부러져서 버르적거리고 있는데 그걸 가는 실로 잘 짬매서 약을 발라서 그걸 나꾸어 가지고 날려 주어서 그래서 (제비가) 박씨를 물어다 주어가지고 그렇게 엄청난 부자가 되었다니까,

그 형 놀부는 멀쩡한 제비를 후려잡아 가지고 다리를 부질러 가지고 그놈을 짭매서 날려주어 가지고, 그 참 엄청난... 그 재미있는 내용의 흥부전(傳)을 여러분도 봐서 아시겠지만,


마치 전국 사찰에서 행하는 방생 법회라 하는 것이 놀부가 하는 그러한 식의 방생이 된다면, 방생의 참뜻이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하지 아니하면 아니 되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조실 스님 생존 시에 제가 조실 스님께도 말씀드렸는데 “그런 고기를 몇백 관씩 차떼기로 해서 방생을 하신 것도 참 좋은 일인데, 우선 대중 가운데 병 있는 대중에게 약을 먹이고 병을 치료해 준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이런 말씀을 여쭈었는데,

“누가 아프냐?”

“아무개가 치질로 앓고 있습니다.”

“그럼 진즉 나한테 말하지, 말을 않으니 내가 치질을 앓는지, 치통을 앓는지 내가 알 수가 있냐? 왜 너는 나를 무자비한 사람을 만드느냐” 이렇게 해서 꾸지람을 들은 기억이 지금도 남니다마는,


여러분들도 방생은 7월 백중이나 정월 보름을 기해서 정기적으로, 행사로써 그렇게 방생하는 방생보다는 항상 우리가 살아가는 데 있어 날짜를 정하지 않고서 언제라도 죽어가는 그런 생명이 있으면 살려주고,

사람도 병들어서 돈이 없어서 죽게 된다든지 그런 사람이 있으면 그럴 때에 우연히 자비심이 발동이 되어가지고 그렇게 행해져야 하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하기는 ‘연전(前)에 외국 화물선을 타고 저 남미를 가는데, 갑판에 올라가서 그 선원이 바람을 쐬다가 발을 헛디뎌서 바다에 떨어져서 밤중에 영락없이 죽은 줄로 그렇게 생각을 했는데,

그 배가 짐을 풀고 다시 돌아오면서 보니까, 저만큼 바다에 까마니 무엇이 떠다닌 것이 보여서 그래 망원경으로 보니까 그 전날 물에 빠져서 죽은 줄 알았던 사람이 물에서 떠다닌다 그말이여.

그래서 가까이 가서 보니까 큰 거북이를 타고 해상에 이렇게 떠돌고 있어서 그래서 건져 냈다. 알고 보니 그 선원의 어머니가 신심이 있어서 항상 방생을 행했다. 자라도 많이 놔 줬다’

이런 이야기도 신문에 난 것을 봤습니다.


그리고 옛날에 어떤 사람은 음식점을 하는데 파리 한 마리도 안 죽였어. 그리고 음식에 혹 파리가 빠지더라도 그것을 좋게 건져서 습기를 제거해 가지고 날려 주고.

그 음식점을 하니 얼마나 많은 파리가 성가시게 했겠습니까마는, 될 수 있으면 한 마리의 파리도 죽이지 않고 그렇게 날려 주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어떤 죄 혐의로 잡혀 들어가 가지고 영락없이 살인 혐의(疑)를 받아가지고 그렇게 죽게 되었는데, 판사가 사형이라고 이렇게 판결문을 쓸라고 하면 붓끄터리에 파리들이 모여들어서 글씨를 도저히 쓸 수가 없어.

그래서 그 파리를 내키고 다시 쓸라고 하면 또 모여들고 모여들고 그래서 그 사람 보고 “평소에 네가 파리와 무슨 관계가 있느냐?”

“저는 별거 없고 음식점을 하는데 약허 약허 했었다” 그런 말을 했습니다.


그래서 파리 한 마리의 목숨도 소중히 여기고 죽이지 않는 사람이 어찌 사람을 죽였겠느냐? 다시 여러 가지로 심사를 해 가지고 알아본즉 모략에 의한 애매한 혐의로 잡혀왔다는 것을 알아서 석방이 된 그런 일도 있었고,


어떤 사람은 몸에—요새는 약이 많이 발달이 되어 가지고 이를 구경할래야 할 수가 없지만, 옛날에는 몸에 이가 없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이가 드글드글 했었습니다.

그럴 때에도 이를 죽이지 않고, ‘이도 저도 살라고 이 세상에 나왔는데 그걸 뚝뚝 죽일 수가 있느냐’해서 이도 안 죽이고 항상 가려우면 슬슬 긁고 그렇게 살았는데,


어떤 원결(怨結) 관계가 있어 가지고 그 사람이 자고 있을 때 자객이 칼을 품고 들어가서 그 사람을 죽이려고 보니까, 가슴에 벌거니 벌써 누가 한 걸음 먼저 와서 가슴을 찔러서 죽였다 그말이여. 그래서 칼을 들고 찍을려다가 도로 가버렸어.


그런데 사실은 그 몸 안에 있던 '이'들이 전부 스스로 부딪치고 해 가지고는 몸에 있는 피를 터뜨려가지고 마치 칼에 찔린 것처럼 그렇게 보여서 '이'들이 그 사람의 생명을 보호했다. 그러한 설화도 전해오고.(처음~21분39초)



(2/3)----------------


또 어떤 큰 부자는 집안에 어떻게 쥐가 많던지 창고에도 몇백 마리가 드글드글 끓고, 온 집안에도 쥐 때문에 살 수가 없을 정도로 그렇게 많았는데,

다른 사람들은 ‘쥐덫을 놔라. 쥐약을 놔라’ 모다 그랬지만 “아니다. 저 쥐들도 나와 인연이 있어서 우리집에 와서 사니, 쥐가 아무리 많이 먹는다 해도 사람 먹을 것은 남겠지. 죽이지 말라’ 해 가지고 살렸는데,


하루는 쥐들이 수백 마리가 마당에 모여 가지고 쥐들이 춤을 춘다는 거여. 그래서 온 집안 식구가 나와서 야단이여.

그래서 그 주인도 그걸 구경하러 마당에 나와서 그걸 구경하는데, 나오자마자 대들보가 부러져가지고 집이 왕창 가라앉았다 그말이여.

그 주인이 쥐들의 춤을 구경하기 위해서 나오지 않았으면 영락없이 대들보와 서까래에 깔려서 즉사(死)를 했을 것이다.


그런 쥐들도 자기네들의 생명을 그렇게 죽이지 않았다고 한 것에 대해서 은혜를 갚았다 이거거든.


이런 것으로 보면 쥐나 파리나 또는 몸의 피를 빨아먹는 '이'까지도, 하물며 영특한 자라라든지 용이 되어갈 잉어라든지 그런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그런 피를 빨아먹고 사는 '이' 같은 그런 작은 존재도 자기의 생명의 은혜를 알더라 그거거든.


부처님 말씀에 『사람이나 동물이나 저 꿈적꿈적한 준동함령(蠢動含靈)까지라도 다 불성(佛性)이 있다』고 하시는 그 말씀이 이러한 설화를 통해서도 우리는 정말 믿어지는 것입니다.


사람 몸을 빨아먹는 '이'를 죽이고, 사람의 피를 빨아먹는 모기 또 변소에 가서 더러운 곳에 앉았다가 그 발에는 균이 드글드글 할 텐데, 그 발로 밥상에 날아와서 앉고, 응당 인간의 건강을 위해서도 인간에 해를 끼치는 그런 해충을 약을 써서 구제(除)해야 할 수 밖에는 없다고 생각하나,


그러나 그러한 작은 벌레도 자기가 살라고 하는 그 생명력, 스스로 그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는 그런 것은 우리가 깊이 생각해야 하리라고 생각하고,

그러한 벌레까지도 차마 죽이지 못하는 그러한 마음이 어찌 사람의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겠습니까.


법정 스님의 수필집에 보니까, 모기가 가면서 그 며느리 보고 ‘오늘 내가 나가면은 어떤 모진 사람의 손바닥에 맞아서 내가 죽을는지도 모르고, 다행히 그렇지 않은 분을 만나면 다시 살아올는지도 모르나, 하여튼 잘 있거라’ 그리고 나갔다고 그러는데,


모기가 와서 붙어가지고 피를 빨아먹으면 무의식 중에 탁! 쳐 가지고 죽이기도 하고 또 모기가 날랜 놈은 또 피해서 도망가기도 하겠는데,

정말 요새처럼 사람의 목숨이 파리 목숨만도 못하게 이렇게 함부로 취급을 당하는 세상은 일찍이 없었다고 생각이 됩니다.


교통사고로도 날이면 날마다 많은 사람이 죽어가고, 무슨 공사장에서도 실수로 많이 죽고, 비행기가 떨어져서 죽고, 기차가 가라앉아서 죽고, 자동차가 접촉 사고로 죽고 또 강도로 죽고, 자식이 애비를 죽이고 일가족을 죽이고 해서 날마다 사람이 죽이고 죽는 그러한 생명을 경시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오늘을 사는 우리들은 정말 깊이 반성을 해야 하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자기 목숨이 소중하면 다른 사람의 목숨도 소중한 것입니다. 인간의 목숨이 소중하면 동물의 목숨도 소중합니다.

자기의 목숨이 참으로 소중한 줄 안 사람은 남의 목숨도 소중히 여기는 것이고, 인간의 목숨이 소중한 줄 알면 동물의 목숨도 소중히 여길 줄 알아야 하고,

나아가서는 동물뿐만이 아니라 식물, 더 나아가서는 자연환경까지라도 정말 소중히 할 줄 알아야 그것이 바로 문화인이고, 그것이 바로 인간성을 바로 지닌 사람의 행위라고 생각이 되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에 귀의(歸依)해서 정법에 의지해서 도를 닦는 법보재자(法寶弟子) 여러분!

정말 생명이라고 하는 것은 소중한 것입니다.


아까 조실 스님 게송(偈頌) 속에 ‘안비천말적유사(雁飛天末迹留沙)요, 기러기는 저 하늘갓으로 날아갔는데 기러기가 놀다 간 모래사장에는 발자죽만 남아있고, 사람은 황천(黃泉)에 갔는데 그 이름만 집에 남아있더라’(人去黃泉名在家) 그런 게송을 읊으셨는데,

정말 이 세상이라 하는 것은 명예나 권리나, 재산이나 오욕락(五欲樂)이라고 하는 것은 정말 영원성이 없는 무상(無常)하고도 허망한 물거품 같은 것입니다.


그러한 것을 보다 더 자기가 많이 소유하고 갖기 위해서 다른 사람의 생명을 짓밟고, 다른 사람을 해롭게 하고 이러한 풍조가 만연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내가 그러면 다른 사람도 또 그렇게 되고 그러기 때문에 내가 다른 사람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지 아니하면 다른 사람도 내 생명을 소중히 여겨 주지 않습니다. 바로 이것이 자업자득(自業自得)인 것입니다.


산에다 대고 고함을 지르면 메아리가 돌아오게 되는 것처럼 내가 크게 소리를 지르면 메아리가 크게 돌아오고, 노래를 부르면 노래가 돌아오고, 좋은 말을 하면 그 메아리는 좋은 말로써 돌아오고, 산에다 대고 입에 못 담을 고약한 욕을 퍼부으면 메아리는 그런 무서운 욕으로 내게 돌아오는 것입니다.


인간과 인간의 관계는 메아리와 똑같은 것입니다. 서로서로 존중히 여기고 서로서로 따뜻하게 자비롭게 상대하면 상대방도 역시 또 나한테 그렇게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가 살고 갈 이 세계를 보다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고, 우리만 살고 갈 뿐만 아니라 우리의 자손들이 살 이 세계를 보다 더 살기 좋은 세계로 만들어 놓고,

자식들을 위해서 집은 좋은 집을 줄라고 하면서 정말 우리 모두가 살 이 세계는 어찌 피비린내 나는 수라장(修羅場)으로 만들어 놓고 자기집만 잘 단속하면 무슨 소용이 있는 것입니까.


그래서 오늘 백중날 방생을 할 생각이 있으신 분은—자기 아들이 꼭 외항선을 타는 선원이 된다면 거북이를 사서 바다에다 혹 넣고 싶은 생각이 나실는지 모르나, 방생의 참뜻을 깊이 이해를 하셔서 마음속에 자비심을 가져.

항상 자비심(慈悲心)을 가지고 생명을 죽이지 아니할 뿐만 아니라, 생명을 가진 사람이나 동물이나 자연에게도 자비로운 마음으로 상대하면 그것이 벌써 방생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꼭 죽어가는 것을 찾아다니면서 ‘어디 자라 잡아서 죽이는 데 없나? 잉어 잡아서 죽일라는 거 없나?’ 그걸 찾아다닐게 아니라 집안에서 직장에서 또는 회사에서 사회에서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항상 자비스러운 마음으로 모든 사람을 상대하고,

자기 마음속에 자비심을 항상 이렇게 일으키고 자비로운 말, 자비로운 행동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면 자라 천 마리, 만 마리를 사서 물에다 넣어준 것 못지않게 큰 공덕(功德)을 받게 될 것입니다.


금생에 태어나서 일생 동안 병치레만 하거나 또는 인생을 제대로 살지도 못하고 단명(短命)하게 죽거나, 본의 아니게 불의(不意)의 어떤 사고로 비명액사(非命死)를 한 거나, 이런 것이 다 우연한 결과가 아니고 과거에 우리가 지은 업(業)에 의해서 그러한 과보(果報)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앞으로의 장래에 있어서 또는 저 영원한 내세에까지라도 항상 건강하고 수명이 장수하고 그럴러면,

그리고 그런 비명액사를 당하지 않고 자기의 명(命)대로 행복하게 잘 살라면 방생을—자라나 잉어나 그런 죽어가는 동물을 경우에 따라서는 그런 식의 방생도 하지마는, 일상생활 속에서 자기의 마음을 자비롭게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꼭 몽둥이나 총칼로 사람을 죽이는 것만이 죽이는 것이 아니고, 마음속에 미워하고 원망하고 저주하는 마음을 일으킬 때 이미 총칼보다도 무서운 살생(生)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말 가지고도 사람의 마음속에 깊은 상처를 주는 그런 악한 말을 하는 것도 역시 살생에 준하는 것입니다.


몸으로 때리고 치고 찌른 것, 말로써 사람을 그 마음속에 깊은 상처를 주는, 근심과 고통과 공포를 주는 그런 말도 역시 마찬가지고, 행동으로는 안 나타냈어도 속으로 미워하고 원망하고 죽일 생각을 하고, 저 사람이 오그라 죽기를 바라고 저주하는 것도 역시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오늘 우란분(盂蘭盆)의 역사에 최초의 근본은 목련 존자로부터서 시작이 되었는데,

목련 존자는 부부간에 금실(瑟)이 좋아서 참 재미있게 잘살았는데, 목련 존자의 전생 얘기죠.


500생 전생의 이야기인데, 그런데 그 어머니가 ‘이놈이 결혼하기 전에는 어미한테도 곧잘 잘하고 그러더니 장가간 뒤로는 계집한테 빠져가지고 아주 어미한테는 소홀히 하고’ 그렇게 느끼셨던지,

노상 ‘며느리 저년이 들어와 가지고 우리 자식의 마음이 변했다. 그런 여우같은 며느리한테 빠져가지고 어미를 우습게 본다’ 이래가지고 노상 사사건건이 큰 일, 작은 일 할 것 없이 며느리를 미워하고 들볶고 그랬다.


그러니까 목련이 처음에는 여러 가지로 자기 아내 보고 ‘어머니한테 잘해 드려. 어머니한테 잘해 드려’ 이렇게 마누라를 달래기도 하고 또 어머니를 위안을 시켜 드리기도 했는데 세월이 가도 조금도 효과가 없고 점점 집안이 아주 대단히 두 고부(婦) 사이에서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

그래서 골이 나가지고는 “어떤 기운 센 놈이 와서 저 늙은이 좀 때려죽여 버렸으면 좋겠다” 아! 이런 말을 툭 자기도 모르게 나왔다 그말이여. 그 과보로 500생 동안을 죽을 때는 꼭 맞아 죽었어.


마지막 500생에 출가해 부처님 제자가 되어가지고 십대제자(十大弟子) 가운데 신통제일 목련 존자가 되었는데, 그 효심이 지극해서 지옥에 빠진 어머니 청제부인을 지옥에서 구제를 해 드린 그리고 아라한과를 증득해서 삼명육통(三明六通)과 팔해탈(八解脫)을 증득한 대성현이 마지막 돌아가실 때에 외도들에 의해서 맞아서 돌아가셨다 그말이여.


말 한마디가—어머니한테 한 그 악한 말 한마디가 오백생 동안 맞아 죽는 과보를 받았다 이겁니다. 하물며 행동으로 마음으로 부모에게 불효한 사람은 과연 어떠한 무서운 과보를 받게 될 것인가?


우리의 몸뚱이는 잘났건 못났건, 잘 배웠건 못 배웠건, 부모에게 얼마나 많은 사랑을 받았건, 얼마나 많은 유산을 받았건 못 받았건, 부모가 아니면 이 몸은 이 세상에 태어나지를 못했습니다.

반드시 세상에 태어날 때는 부모를 의지하지 않고서는 이 몸뚱이를 받아 날 수가 없습니다.


하물며 이만큼 좋은 몸을 받아났고 또 만나기 어려운 불법(佛法)을 만났고, 불법 가운데에도 최상승법(最上乘法)을 만났어.

생사해탈(生死解脫)을 하기 위한 이 정법을 만난 그 근본은 부모님으로 인해서 이 몸뚱이가 이 세상에 태어났기 때문에 그러한 좋은 과보를 받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이 자리에 모이신 사부대중 여러분들도 해제 법요식과 아울러 선망부모를 천도하는 대천도 법회를 위해서 이렇게 많은 분들이 운집(雲集)을 하셨으리라고 생각이 됩니다.(21분40초~41분1초)



(3/3)----------------


돌아가신 뒤에 선망부모를 정성을 다해서 천도해 드리는 것도 대단히 좋은 일이고 꼭 필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아직 돌아가시지 않은 살아계신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은 더욱 좋은 일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왜 그러냐?


부모에게 불효를 하면 그 부모도 사람이요 감정이 있기 때문에, 그 자식이 불효하면 다른 사람한테 몇십 배 구박을 받은 것보다 더 가슴이 아프고 원통(冤痛)하고 절통(痛)한 것입니다.


‘내가 저를 어떻게 키웠는데, 내가 저를 어려서부터 어떻게 낳아서 키웠는데 지가 나한테 그럴 수가 있느냐’ 이러한 생각이 들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생각을 품고 돌아가시게 되면 그 부모가 좋은 곳으로 가시겠습니까?


다른 사람을 미워해도 안 되는데, 다른 사람에게 원망을 품어도 안 되는데, 자기 뱃속에서 나온 자식을 원망하는 마음으로 숨을 거두었다면 그 부모는 좋은 곳으로 갈 수가 없습니다.

어디로 가냐 하면은 그 자식의 아들이나 손자로 태어나는 것이여.


엊그제 자식이 자기 부친을 죽이고 일가족을 살해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사건들이 우연한 일이 아닙니다. 전생의 원수가 보복을 위해서 자식으로 태어난 것입니다.


자식이 다 부모에게 은혜 갚기 위해서 태어난 것만이 아니여.

웬수가 보복을 하기 위해서 자식으로 태어나가지고 일생 동안을 불효를 하고, 처음에는 지극히 효도를 하다가 막판에 가서는 부모 속을 갈기갈기 찢고 그런 예도 있습니다. 가문을 망치거나 재산을 망치거나 심지어는 부모를 살해하기까지도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가족끼리 화목을 해야 하는 거고, 남에게도 생명과 재산과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해서는 안 됩니다. 자기가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어쨌든지 남을 해롭게 해서는 안 돼. 



석 달 동안 그 무덥고 힘드는데, 서늘한 데에서 목욕을 하고 선풍기 틀어놓고 낮잠도 자고 그러지 않고서 그 방부(房付)를 들이고 더운데 와서 그 등어리에 땀이 줄줄줄줄 흐르는데 두 시간씩, 세 시간씩 앉아서 입선(入禪)을 하고,

새벽같이 일어나고 하루 종일 그렇게 사분정진(四分精進)을 하는 선방의 선객(禪客) 스님들 또 보살님네들, 시민선원의 거사님네들,


참선(參禪)을 하는 뜻이 무엇이겠습니까?


첫째는 자기의 생사 문제를 해결한다. ‘생사 문제 해결한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자기 방생입니다.

맨 처음에 자기가 자기를 방생을 시켜야 남도 죽게 되는 사람을 살려내지, 자기가 쇠사슬에 콱 묶여가지고 다른 사람 쇠사슬을 풀어 줄 수 있겠습니까?


참선을 열심히 해서 우선 자기 방생을 하고, 자기 방생을 하면서도 항상 그 뜻은 보살심(菩薩心), 마음속에 탁! 뜨거운 보살심을 지니고서 열심히 화두를 들고 정진을 하고,

대중 속에서 정진을 하면서 행여나 자기가 하는 행동, 자기가 하는 말 한마디라도 대중에게 불쾌감을 주지 않고 대중 공부하는데 폐를 끼치지 않도록 그렇게 정진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가정에 돌아가서 또는 직장에 다니신 분은 직장에 나가서도 항상 말 한마디 조심하고, 발 한 걸음 옮길 때에도 조심을 해서 남에게 조그마한 피해도 가지 않고, 더군다나 큰 피해는 말할 것도 없고,

조금 기분만 언짢게 하는 그러한 정도의 일까지라도 조심을 해야 하는데, 마냥 조심을 하다보면 살기가 대단히 불편할 것 같으나 항상 화두를 들고 정진하게 되면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악한 마음이 일어날 수가 없고, 항상 신심(信心)과 분심(憤心)과 의단(疑團)으로 화두를 들고 생활을 하게 되면 저절로 살생은커녕 자비심이 마음속에 넘쳐흐르는 거고,

남의 것을 훔치기는커녕 내 것을 남에게 보시하려는 그런 마음이 나오는 거고,

음행을 하기는커녕 항상 몸과 마음을 청정하게 갖게 되고,

거짓말을 하고 사기를 치기는커녕 항상 진실한 마음을 갖고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참선은 이것이 최상승법이고, 이것을 갖다가 불법의 핵심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피치삭발유래유(披緇削髮有來由)하되  막향청산공백두(莫向靑山空白頭)니라

나무~아미타불~

사십구년다소설(四十九年多少說)이  종횡위아지귀휴(縱橫爲我指歸休)니라

나무~아미타불~


먹물 옷[緇衣]을 입고 삭발(削髮)을 한, 세속의 모든 것을 버리고 청춘을 다 버리고 출가(出家)해서 도를 닦는 데는 반드시 그럴만한 까닭이 있고 깊은 뜻이 있는 것이어서,(披緇削髮有來由)

막향청산공백두(莫向靑山空白頭)니라. 그런 깊은 원력(願力)과 그러한 뜻이 있어서 출가를 했는데, 어찌 청산 속에 공연히 머리가 희어 가고 있느냐.


정말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버리고 출가해서 먹물 옷을 입고, 머리를 깎아서 수행자로서 나섰다면 정말 철저한 신심과 철저한 분심으로 정진을 해야 할 것입니다.


금년 여름에 용화선원 선방 스님네나 또 용주사 중앙선원이나 위봉사 선원, 세등선원 여러 모다 선방에서 정말 열심히 정진을 했다고 들었습니다. 달리는 말에 채찍을 가하랬다고 그렇게 알뜰히 열심히 하셨지만,

도반의 입장에서—정말 해제를 하고서도 풀어진 마음으로 살지 말고, 해제 기간일수록 더욱 허리띠를 졸라매고 한 걸음 한 걸음 옮기고, 일거수일투족(足)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간에 결제 중보다도 더 알뜰히 잡드리 하시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사십구년다소설(四十九年多少說)이  종횡위아지귀휴(縱橫爲我指歸休)니라.

부처님께서 49년 동안 팔만사천(八萬四千) 묘법(妙法)을 설하셨는데, 그 많은 법문(法門)이 중생의 근기(根機) 따라서 종횡으로 팔만사천 가지 방편(方便)을 설하셨지만,

한마디로 『밖으로 치닫지 말고 한 생각 돌이켜서 바로 자기를 찾으라』는 그 한마디여.


그 한마디만을 철저하게 단속하고 철저하게 잡드리한다면 결제, 해제가 무슨 차등이 있겠느냐.

산으로 가나, 들로 가나, 차를 타나 걷거나, 목욕탕을 가거나 변소에를 가거나, 무엇을 하거나 무슨 상관이 있느냐.


옛날 도인은 장바닥에 가서 공부를 하신 분도 있었고, 노동판에 가서 정진하는 이도 있고, 곡천 선사(谷泉禪師)는 거짓으로 죄를 지어가지고 감옥살이를 하면서 도를 닦으신 분도 있어.



정체종래절성색(正體從來絶聲色)한데  멱즉지군불견종(覓則知君不見蹤)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묘봉정상일전신(妙峰頂上一轉身)하면  시방무처불봉거(十方無處不逢渠)니라

나무~아미타불~


정체종래절성색(正體從來絶聲色)이여. 정체(正體), 바른 진리의 체(體)는 본래 성색(聲色)이 끊어진 자리여. 어떤 말도 거기에는 미치지 못하고, 어떠한 모양도 거기에는 찾아 볼 길이 없는 것이여.

멱즉지군불견종(覓則知君不見蹤)이야. 아무리 눈으로 보려고 하고, 귀로 들을라고 하고, 손으로 만지려고 하고, 생각으로 알라고 해도 그 자취를 볼 수가 없어. 그 자체는 성색(聲色)이 끊어졌기 때문에 그런 거여.


묘봉정상(妙峰頂上)에 일전신(一轉身)하면, 수미산(須彌山) 꼭대기에서 거기서 행여나 떨어질까 봐서 그걸 붙잡고 발발 발발 떨지 말고 거기서 턱! 손을 놔 몸을 굴리면,


시방세계(十方世界)에 그를 만나지 아니한 곳이 없을 것이다.(十方無處不逢渠)

온 법계(法界)가 다 정체(正體)가 여여(如如)한 면목이더라. 


자기의 본참공안(本參公案)에 철저히 참(參)해서 사량복탁(思量卜度)을 하지 말고, 해 갈수록 알 수 없고, 알 수 없는 거기에서 다시 그놈을 되집어서 ‘이뭣고?’

해 갈수록 꽉 막혀서 알 수가 없어야지 ‘하아, 이런 것이로구나!’ 이렇게 사량분별로 따지고, 알아지고 얻어진 것이 있다면 그것은 참 깨달음이 아니야. 


우리의 선망부모가 오늘 이 백중날을 기해서 석 달 동안 열심히 도를 닦은 청정한 수행자들의 간곡한 신심과 원력과 수행력에 의해서 우리의 선망부모가 오늘 천도가 잘되실 것입니다.

이어서 법요식(法要式)이 진행이 될 것입니다.(41분2초~58분41초)(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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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당하지귀아시수(當下知歸我是誰)~’ ; [무이선사광록(無異禪師廣錄)] 제17권, ‘示蔡聖龍祠部’ ‘示朱羅青民部’ 게송 참고.

*당하(當下)일이 있는  자리또는 그때.

*안거(安居 편안할 안, 있을 거) ; (산스크리트) varsa 원뜻은 우기(雨期). ① 인도의 불교도들은 4월 15일(또는 5월 15일)부터 3개월 간 우기(雨期)때에 외출하면 풀이나 나무,작은 곤충을 모르고 밟아 죽일까 두려워 했고 그래서 동굴이나 사원에 들어가서 수행에 전념했다. 이것을 우안거(雨安居)라고 한다.

② 선종(禪宗)에서는 음력 4월 15일부터 7월 15일까지를 하안거(夏安居), 10월 15일부터 다음해 1월 15일까지를 동안거(冬安居)라고 해서 각각 90일간 사원에 머물르면서 외출을 금지하고 오로지 좌선을 중심으로 한 수행에 전념한다. 안거의 처음을 결제(結制), 끝을 해제(解制)라 한다.

*정진(精進) ; ①정성을 다하여 노력해 나아감. ②잡념을 버리고 불법(佛法)을 깨우치기 위해 수행에 힘씀.

*혼침(昏沈 어두울 혼, 잠길 침) ; ①정신이 미혹(迷惑)하고 흐리멍덩함. ②좌선할 때 정신이 맑지 못하여 잠에 빠지거나 무기공(無記空)에 떨어진 상태.

*산란(散亂 흩을 산, 어지러울 란) ; 혼침(昏沈)의 반대인데 도거(掉擧)라고도 한다. 정신을 흐트러 어지럽혀 다른 곳으로 달아나게 하는 정신작용. 마음이 흐트러져 정리되어 있지 않은 것. 마음이 어지러운 것.

*백중(百中)날 ; 음력 칠월 보름날. 석 달간의 하안거(夏安居)를 마치는 날. 하안거를 마친 수행자들에게 공양을 올리어 그 공덕으로 어머니를 지옥에서 구제한 목련존자의 효심을 기원으로 하는, 우리의 선망부모의 영가를 천도하는 법요식을 거행하는 날(우란분회 盂蘭盆會). 백중(百衆)·백종(百種)이라고도 한다.

불교가 융성했던 신라·고려 시대에는 이날 국가적으로 '우란분회'를 열었으나 조선 시대 이후로 절에서만 여러 가지 음식을 갖추어 재를 올리고, 농가에서는 이날 하루 농번기의 피로를 씻기 위해 머슴을 쉬게 하였다.

*목련(目犍連, 目連) ; 산스크리트어 maudgalyāyana의 음사. 대(大)목건련 또는 마하(摩訶)목건련이라고도 한다. 원명 꼴리따. 부처님 십대제자(十大弟子)의 한 사람.

마가다국(magadha國)의 바라문 출신으로, 인근 마을의 사리불(舍利弗)와 친하여 어느 날 바라문교의 축제를 구경하다가 인생의 허무함을 느끼고 깨달음을 얻기 위해 스승을 찾아나서 라자가하(王舍城)의 유명한 회의론자 산자야 문하로 들어갔으나 완전한 마음의 평화를 얻지는 못하던 중에,

사리불이 라자가하의 거리에서 탁발을 하던 부처님의 제자 앗사지(馬勝)를 만나 들은 “일체는 원인이 있어 생기는 것 / 여래는 그 원인을 설하시네 / 그리고 또 그 소멸까지도 / 위대한 사문은 이와 같이 가르치네”라는 연기(緣起)의 가르침을 사리불한테 듣고는,

사리불과 산자야의 제자 250명과 함께 죽림정사를 방문해 부처님께 귀의했다. 신통력이 뛰어나 신통제일(神通第一)이라 일컬음. 사리불과 함께 불교교단의 중심인물이었다.

붓다보다 나이가 많았고, 탁발하는 도중에 외도(外道)들이 던진 돌과 기왓장에 맞아 고통을 겪는 중에, 사리불이 열반에 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붓다에게 나아가 열반에 들겠다고 말씀 드리고 고향으로 돌아가다 마수촌에서 열반에 들었다.

*존자(尊者) ; ①산스크리트어 āyuṣmat 수행이 뛰어나고 덕이 높은 수행자를 일컫는 말. ②성자. 현자.

*만반고통(般苦痛) ; 갖가지의 모든 고통.

*천도(薦度) ; 불교 의례의 하나. 망자의 넋을 부처님과 인연을 맺어 주어 좋은 곳으로 가게 하는 일.

*공양(供養) ; ①불(佛)•법(法)•승(僧)의 삼보(三寶)에 음식•옷•꽃•향 등을 바침. ②공경함. 찬탄함. 칭송함. 예배함. ③봉사함. ④절에서 음식을 먹는 일.

*선망부모(先亡父母) ; 금생에 돌아가신 부모 뿐만 아니라 과거 우리의 모든 부모.

[참고] 1984년(갑자년) 칠석차례(No.243) 송담 스님 법문에서.

“선망부모는 저 사람의 선망부모가 곧 나의 선망부모와 같은 것입니다.

영가(靈駕)는 수천만 번 몸을 바꾸면서 나의 조상이 되었다, 김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가, 박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가, 이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 왔다갔다 하기 때문에,

내 부모가 바로 저 사람의 부모고, 저 사람의 부모가 다 내 부모여서, 내 부모를 소중히 아는 사람은 바로 다른 노인들을 다 소중히 여기게 되고, 내 자식이 사랑스런 사람은 또 다른집 아기들도 아껴주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동체대비(同體大悲)라 하는 것입니다.”

*신남신녀(信男信女) ; 불교에 귀의한 재가의 남자 신도와 여자 신도를 말한다.

*공양구(供養具) ; 부처님이나 보살님께 바치는 음식물·향·꽃 등의 물건, 또는 그 물건을 바칠 때 사용하는 기구.

*영가(靈駕) ; 망자(亡者 죽은 사람)의 넋을 높여 부르는 말. 영(靈)은 정신의 불가사의(議)함을 의미하는 것으로 정신 자체를 가리키고, 가(駕)는 상대를 높이는 경칭(敬稱)이다.
*위패(位牌) ; 죽은 사람의 위(位)를 모시는 나무패.
*사암(寺庵) ; 절과 암자.
*방생(放生) ; 사람에게 잡힌 물고기나 새, 짐승 따위를 산이나 물에 놓아서 살려 주는 일. 불교도라면 누구나 지켜야 하는 첫째 계(戒)인 불살생계(不殺生戒)보다 적극적인 선을 실천하는 선행(善行)이다.
*차떼기(車떼기)화물차   분량 상품 한꺼번에 사들이는 . 또는 그렇게 하기 위한 흥정.
*관(貫)무게 재는 단위 나타내는  관은    배로 3.75킬로그램에 해당한다.
*열반(涅槃) ; 산스크리트어 니르바나(nirvāṇa) 팔리어 nibbāna의 음사. 멸(滅)·멸도(滅度)·적멸(寂滅)·적정(寂靜)·적(寂)·안온(安穩)이라 번역. 불어서 끈 상태라는 뜻.
① 불어서 불을 끄듯, 탐욕〔貪〕과 노여움〔瞋〕과 어리석음〔癡〕이 소멸된 심리 상태. 모든 번뇌의 불꽃이 꺼진 심리 상태. 사제(四諦)에서 집(集), 곧 괴로움의 원인인 갈애(渴愛)가 소멸된 상태. 모든 번뇌를 남김없이 소멸하여 평온하게 된 상태. 모든 미혹의 속박에서 벗어난 깨달음의 경지. 번뇌를 소멸하여 깨달음의 지혜를 완성한 경지.
② 석가모니의 죽음.  ③‘스님의 죽음’을 수행을 통해 해탈(解脫)에 이르게 됨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
*종자(種子) ; ①씨앗 ②무엇인가를 낳을 가능성 ③아뢰야식에 저장되어 있으면서 인식 작용을 일으키는 원동력. 습기(習氣)와 같음 ④밀교에서, 상징적 의미를 가지는 하나하나의 범자(梵字).
*곤욕( 괴로움·남처함 곤/욕될 욕) ; 참기 힘든 심한 모욕(辱 깔보고 욕되게 함)또는 그러 .
*원정(原情) ; 억울한 사정을 하소연함. 또는 억울한 사정.
*흥부(興夫)고대 소설 <흥부전> 주인공부자이며 심술궂은  놀부와는 달리 가난하고 착하며 나중 부자 된다.
*짬매다 ; ‘묶다’의 사투리.
*나꾸다 ; ‘낫우다(고치다, 올바르게 하다)’의 사투리.
*박씨 ; ‘박’의 씨. ‘박’은 박과(科)의 한해살이 덩굴풀의 열매로 삶거나 말려서 바가지를 만들고 속은 먹는다. 인가(人家)의 담이나 지붕에 올리어 재배한다.
*부질다 ; ‘뿌질다(단단한 물체를 꺾어서 부러지게 하다)’의 사투리.
*연전(前) ; 여러 해 전.
*원결(怨結 원망할 원/맺을·번뇌 결) ; 원망(怨望)의 마음이 얽혀 풀리지 않는 것을 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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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동함령(蠢動含靈) ; 꿈지럭거리며 움직이는 함령(含靈, 심령心靈을 가지고 있는 것). 모든 생물. 중생(衆生).

*불성(佛性) : 부처를 이룰 수 있는 심성(心性)으로 사람사람에게 본래 갖춰져 있는 자성(自性)을 말함。불타나 중생이나 심지어 꿈적거리는 미물(微物)에 이르기까지 그 자성에 있어서는 차등이 없다.

*구제( 몰 구, 제거할 제) ; 해충 따위 몰아내어 없애 버림.

*귀의(歸依) ; ①부처님의 가르침을 믿고 의지함. ②몰아의 경지에서 종교적 절대자나 종교적 진리를 깊이 믿고 의지하는 일. ③돌아가거나 돌아와 몸을 의지함.

*게송(偈頌) ; 시(詩), 게(偈)와 송(頌) 모두 불교의 가르침을 싯구로 나타낸 것.

*하늘갓 ; 하늘가(하늘의 끝).

*발자죽 ; ‘발자국(발로 밟은 곳에 남은 흔적)’의 사투리.

*황천(黃泉) ; 저승(사람이 죽은 뒤에 그 혼이 가서 산다고 하는 세상).

*(게송) ‘雁飛天末迹留沙  人去黃泉名在家’ ;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136 게송 참고.

*오욕락(五欲,五慾,五欲樂) ; ①중생의 참된 마음을 더럽히는—색,소리,향기,맛,감촉(色聲香味觸)에 대한—감관적 욕망. 또는 그것을 향락(享樂)하는 것. 총괄하여 세속적인 인간의 욕망.

②불도를 닦는 데 장애가 되는 다섯 가지 욕심. 재물(財物), 색사(色事), 음식(飮食), 명예(名譽), 수면(睡眠).

*무상(無常) ; 모든 현상은 계속하여 나고 없어지고 변하여 그대로인 것이 없음. 온갖 것들이 변해가며 조금도 머물러 있지 않는 것. 변해감. 덧없음. 영원성이 없는 것.

*자업자득(自業自得)자기[自] 저지른 일의 결과[業] 스스로[自] 돌려받음[得].

‘스스로 저지른 결과’란 뜻으로 많이 쓴다. 과거, 전생의 선악(善惡)의 인연에 따라 뒷날 길흉화복(福)의 갚음을 받게 된다는 뜻의 인과응보(因果應報)에도 자업자득의 뜻이 들어 있다. 자작자수(自作自受), 자업자박(縛)도 같은 뜻이다.

*수라장(修羅場) ; 아수라장(阿修羅場). ①아수라왕(阿修羅王)이 제석천(帝釋天)과 싸운 마당. ②싸움이나 기타의 이유로 혼란에 빠져 모든 것이 뒤범벅이 된 곳. 또는 그러한 상태.

*자비심(慈悲心) ; 자(慈)는 ‘우정•친애의 생각’라는 원의(原義)로, 남에게 즐거움을 준다는 뜻, 비(悲)는 ‘연민•동정’을 원의(原義)로, 남의 괴로움을 덜어준다는 뜻.

불•보살이 중생을 불쌍히 여겨 고통을 덜어 주고 안락하게 해주려는 마음.

*공덕(功德) ; ①복, 복덕 ②선한 마음으로 남을 위해 베푸는 모든 행위와 마음 씀씀이.

무엇보다 가장 큰 공덕은 불법에 귀의하여 깨달음을 닦는 것이고, 이러한 사람을 보고 함께 기뻐하는 것도 큰 공덕(隨喜功德)이 된다. 이러한 공덕은 끝이 없어서 수천 사람이 횃불 하나에서 저마다 홰를 가지고 와서 불을 붙여 가더라도 원래의 횃불은 사그러들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병치레(病치레) ; 병을 앓아 치러 내는 일.

*과보(果報) ; 인과응보(因果應報, 전생에 지은 선악에 따라 현재의 행과 불행이 있고, 현세에서의 선악의 결과에 따라 내세에서 행과 불행이 있는 일).

*우란분(盂蘭盆) ; 우란분(盂蘭盆)은 산스크리트어 ullambana의 음사로, 도현(倒懸)이라 번역. 거꾸로 매달리는 고통을 받는다는 뜻. 절에서, 음력 7월 15일에 지옥이나 아귀의 세계에서 거꾸러 매달려 고통받고 있는 영혼을 구제하기 위해 삼보(三寶)에 공양하는 의식.
『우란분경(盂蘭盆經)』에 의하면 부처님 제자 중에 신통력이 제일인 목련이 지옥에 떨어져 고통을 받고 있는 어머니를 구해주려고 하였으나 신통력으로도 어찌 할 수 없어서,
석가모니의 가르침에 따라서 수행하는 스님들이 모두 모이는 하안거가 끝나는 7월 15일인 자자일(自恣日)에 삼보(三寶)에 공양하게 하여 목련의 모친을 악도에서 벗어나게 한 것이 기원이라고 한다.
*금실(琴瑟 거문고 금, 비파 슬) ; 거문고 비파 서로 어울리는 모양처럼  어울리는 부부 사이 두터운 정과 사랑 비유적으로 이르는 .
*십대제자(十大弟子) ; 석가모니의 제자 중 수행과 지혜가 뛰어난 10명을 이르는 말.
사리불(舍利弗) : 산스크리트어 śāriputra의 음사. 마가다국(magadha國)의 바라문 출신으로, 지혜가 뛰어나 지혜제일(智慧第一)이라 일컬음. 원래 목건련(目犍連)과 함께 육사외도(六師外道)의 한 사람인 산자야(sañjaya)의 수제자였으나 붓다의 제자인 앗사지로부터 그의 가르침을 전해 듣고, 250명의 동료들과 함께 붓다의 제자가 됨. 붓다보다 나이가 많았다.
목건련(目犍連) : 산스크리트어 maud galyāyana의 음사. 마가다국(magadha國)의 바라문 출신으로, 신통력이 뛰어나 신통제일(神通第一)이라 일컬음. 원래 산자야(sañjaya)의 수제자였으나 사리불(舍利弗)과 함께 붓다의 제자가 됨. 붓다보다 나이가 많았다.
가섭(迦葉) : 산스크리트어 kāśyapa의 음사. 마가다국(magadha國) 출신으로, 엄격하게 수행하여 두타제일(頭陀第一)이라 일컬음. 결혼했으나 아내와 함께 출가하여 붓다의 제자가 됨. 붓다가 입멸한 직후, 왕사성(王舍城) 밖의 칠엽굴(七葉窟)에서 행한 제1차 결집(結集) 때, 그 모임을 주도함.
수보리(須菩提) : 산스크리트어 subhūti의 음사. 사위국(舍衛國)의 바라문 출신으로, 공(空)의 이치에 밝아 해공제일(解空第一)이라 일컬음. 그래서 공(空)을 설하는 경(經)에 자주 등장하여 설법함.
부루나(富樓那) : 산스크리트어 pūrṇa의 음사. 바라문 출신으로, 설법을 잘 하여 설법제일(說法第一)이라 일컬음. 녹야원(鹿野苑)에서 붓다의 설법을 듣고 그의 제자가 됨. 인도의 서쪽 지방에서 붓다의 가르침을 전파하다가 거기에 입적함.
아나율(阿那律) : 산스크리트어 aniruddha의 음사. 붓다의 사촌 동생으로, 붓다가 깨달음을 성취한 후 고향에 왔을 때, 아난(阿難)·난타(難陀) 등과 함께 출가함. 통찰력이 깊어 천안제일(天眼第一) 이라 일컬음.
가전연(迦旃延) : 산스크리트어 kātyāyana의 음사. 인도의 서쪽에 있던 아반티국(avanti國)의 크샤트리야 출신으로, 왕의 명령에 따라 붓다를 그 나라로 초청하기 위해 찾아갔다가 출가함. 깨달음을 얻은 후 귀국하여 붓다의 가르침을 전파함. 교리에 밝아 논의제일(論議第一)이라 일컬음.
우바리(優波離) : 산스크리트어 upāli의 음사. 노예 계급인 수드라 출신으로 석가족의 이발사였는데, 아난(阿難)·난타(難陀)·아나율(阿那律) 등이 출가할 때 같이 붓다의 제자가 됨.
계율에 엄격하여 지계제일(持戒第一)이라 일컬음. 붓다가 입멸한 직후, 왕사성(王舍城) 밖의 칠엽굴(七葉窟)에서 행한 제1차 결집(結集) 때, 계율에 대한 모든 사항을 암송함으로써 율장(律藏)의 성립에 크게 기여함.
나후라(羅睺羅) : 산스크리트어 rāhula의 음사. 붓다의 아들. 붓다가 깨달음을 성취한 후 고향에 왔을 때, 사리불(舍利弗)과 목건련(目犍連)을 스승으로 하여 출가함. 지켜야 할 것은 스스로 잘 지켜 밀행제일(密行第一)이라 일컬음.
@아난(阿難) : 산스크리트어 ānanda의 음사. 붓다의 사촌 동생으로, 붓다가 깨달음을 성취한 후 고향에 왔을 때 난타(難陀)·아나율(阿那律) 등과 함께 출가함. 붓다의 나이 50여 세에 시자(侍者)로 추천되어 붓다가 입멸할 때까지 보좌하면서 가장 많은 설법을 들어서 다문제일(多聞第一)이라 일컬음.
붓다에게 여성의 출가를 3번이나 간청하여 허락을 받음. 붓다가 입멸한 직후, 왕사성(王舍城) 밖의 칠엽굴(七葉窟)에서 행한 제1차 결집(結集) 때, 아난이 기억을 더듬어 가며 “이렇게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붓다께서는……”이라는 말을 시작으로 암송하면, 여러 비구들은 아난의 기억이 맞는지를 확인하여 잘못이 있으면 정정한 후, 모두 함께 암송함으로써 경장(經藏)이 결집됨.
*삼명육통(三明六通) ; 부처님이나 아라한이 갖추고 있는 3가지 자유 자재한 지혜[三命]와  수행으로 갖추게 되는 6가지 불가사의하고 자유 자재한 능력[六神通].
*팔해탈(八解脫) ;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여덟 가지 선정(禪定).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를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것.
*운집(雲集 구름 운, 모일 집) ; 구름(雲)처럼 모인다(集)는 뜻으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듦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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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통(冤痛 원통할 원, 아플 통) ; 분(憤·忿)하고 억울함.

*절통(切痛 끊을·몹시 절/ 아플 통) ; 뼈에 사무치도록 분(憤·忿)하고 억울함.

*방부(房付)를 들이다 ; 수행자가 절에 머물며 공부할 것을 인사드리고 허락을 구해 결제(結制)에 참가하다.

*입선(入禪) ; 참선 수행(좌선)에 들어가는 것, 좌선(坐禪)을 시작하는 것. 참선(좌선)수행.

*사분정진(四分精進) ; 참선이나 기도를 하루 네 번(새벽, 오전, 오후, 저녁)씩 시간을 정해 정진하는 것.

*선객(禪客 참선 선/손님•사람 객) ; 참선 수행을 하는 사람.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보살심(菩薩心) ; ①스스로 불도(佛道)를 구하고, 타인을 구제하여 깨닫게 하고자 하는 마음. ②발심하여 불도를 수행하는 마음.

*신심(信心) : ①‘내가 바로 부처다’ 따라서 부처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요, 일체처 일체시에 언제나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공, 이 소소영령한 바로 이놈에 즉해서 화두를 거각함으로써 거기에서 자성불(自性佛)을 철견을 해야 한다는 믿음.

②‘올바르게 열심히 참선을 하면 나도 깨달을 수 있다’는 믿음. 진리에 대한 확신.

*분심(憤心) : 억울하고 원통하여 분한 마음.

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도인들은 진즉 확철대오를 해서 중생 제도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왜 여태까지 일대사를 해결 못하고 생사윤회를 하고 있는가. 내가 이래 가지고 어찌 방일하게 지낼 수 있겠는가.

속에서부터 넘쳐 흐르는 대분심이 있어야. 분심이 있어야 용기가 나는 것이다.

*의단(疑團 의심할 의, 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게송) ‘피치삭발유래유~’[소요당집(逍遙堂集)] ‘시밀행선자(示密行禪子)’ 게송 참고.

*치의(緇衣 검을·승복 치/ 옷 의) ; ①검은 물을 들인 스님의 옷. ②승복을 입은 사람. 즉 '스님'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삭발(削髮) ; 머리카락을 깎는 것. 불교에서는 머리카락을 무명초(無明草) 즉 ‘무명의 풀’로 보기 때문에 삭발은 인간 내면의 무명과 번뇌, 아집과 교만을 잘라 내버리겠다는 새로운 각오와 서원을 의미한다.

*출가(出家) : [범] Pravrajita 집에서 나온다는 말이다. 가정 생활을 떠나서 수도와 포교를 전문으로 하기 위하여, 스님이 되는 것을 말함이다.

그러나 몸 출가(身出家)보다도,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 등 삼독(三毒)의 불이 늘 붙고 있는 번뇌 망상의 불집에서 뛰어나오는 마음 출가(心出家)를 하여야 한다.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용화선원刊) p132~133.

出家爲僧이  豈細事乎아.  非求安逸也며  非求溫飽也며  非求利名也라

爲生死也며  爲斷煩惱也며  爲續佛*慧命也며  爲出*三界度衆生也니라 


 출가하여 중이 되는 것이 어찌 작은 일이랴 !  몸의 안일을 구하려는 것도 아니고, 따뜻이 입고 배불리 먹으려는 것도 아니며, 명예와 재물을 구하려는 것도 아니다.

나고 죽음을 면하고, 번뇌를 끊으려는 것이며, 부처님의 지혜를 이으려는 것이며, 삼계에 뛰어나서 중생을 건지려는 것이니라.

[참고] 송담스님 법문(No.353)—88년 신수기도 회향(88.02.26)에서.

출가(出家)라 하는 말은 말을 바꿔서 말하면 ‘크게 버리는 것’입니다. ‘크게 버리는 것’이 그것이 바로 출가인 것입니다.


출가에도 두 가지 뜻이 있고, 재가(在家)에도 두 가지 뜻이 있는데,

몸뚱이는 세속(世俗)에 있으면서 마음은 출가한—청신사(清信士) 청신녀(清信女)로서 비록 몸뚱이는 세속에 있으면서도 그 마음은 모든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을 다 버려 버리고,

청정한 신심으로 불법에 귀의(歸依)해서 항상 정법(正法)에 의지해서 도를 닦는 그런 분은 바로 몸뚱이는 세속에 있으면서도 마음은 출가한 분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또 몸뚱이는 출가했으면서도 마음은 속가(俗家)에 가 있는 그러한 출가도 있습니다.

비록 출가해서 염의(染衣)를 입고 머리는 깎았으되 마음이 완전히 오욕락(五欲樂)을 버리고, 탐진치 삼독을 버리고서 청정한 출가인으로서 사문(沙門)으로서 도를 닦지를 못하고,

몸뚱이는 절에 있으면서 마음속에 세속의 명리와 탐심을 버리지 못했다면 이것은 몸뚱이는 출가했으면서도 마음은 출가를 못한 것이라고 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또 몸뚱이도 세속에 있고, 마음도 완전히 세속의 탐진치 삼독과 오욕락에 빠져서 일생을 그냥 고대로 살아가는 사람은 바로 몸뚱이도 마음도 세속에 있는 것입니다.


몸도 출가하고, 마음도 출가한, 정말 청정한 사문은 바로 그러헌 분인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 또는 순치황제라든지 역대 조사들은 몸도 출가하고, 마음도 출가한 그러한 모범을 우리들에게 보여주신 것입니다.


많은 거사(居士)라든지, 청신녀 가운데에 몸뚱이는 세속에 있으면서도 그렇게 신심이 돈독해서 정법을 믿고 수행을 쌓아서 도를 얻은 분도 인도나 중국, 한국, 일본에 많이,

널리 이름이 알려지지 안 해서 그렇지, 정말 훌륭한 그런 분들도 많이 계시리라고 나는 생각을 합니다.

*원력(願力) : 원(願)하는 바를 이루려는 의지. 본원력(本願力)•숙원력(宿願力)•대원업력(大願業力)•서원(誓願)•행원(行願)이라고도 한다.

*일거수일투족(足)   들고    옮긴다는 으로크고 작은 동작 하나하나 이르는 .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 사람이 일상적으로 하는 일체의 행위.

*잡드리 ; ‘잡도리’의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그 대책.

*팔만사천(八萬四千) : 중생의 망상이 벌어져 나가는 것을 자세히 분석하면 팔만 사천 갈래가 된다고 한다. 그러므로 망상을 따라 일어나는 악마의 수효도 팔만 사천이요, 망상을 다스리는 법문도 팔만 사천이다.

인도에서는 많은 수효를 말할 때에는 이 말을 쓰는 수가 가끔 있다. 줄여서 팔만이라고만 하기도 한다.

*묘법(妙法) ; ①심원미묘(深遠微妙)한 도리. 특별한 진리. ②바른 이법(理法). ③뛰어난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고귀한 가르침.

*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 법, 문 문) :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근기(根機 뿌리 근/베틀 기) ;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는 중생의 소질이나 근성. 보통 근기의 차등을 상근기, 중근기, 하근기로 구분한다.

[참고] 송담스님(No.88)—(참선법A) 법련사 불교학생회 청법 법문(1978.10.1)에서.

‘중생 말세다, 중생 근기가 미약하다, 그러니까 참선법 가지고는 안되고 아미타불을 불러야 한다’ 이러한 것을 주장하는 분들이 있습니다마는,

말세라고 하는 것은 편의에 따라서 정법 시대, 상법 시대, 말법 시대 이렇게 해서 말씀해 놨지만은 최상승법을 믿고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이면, 그 사람은 하근기가 아니라 상근기(上根機)인 것입니다.


아무리 부처님 당시에 태어났으되 이 법을 믿지 아니한 사람은 하근기인 것이고,

지금 삼천 년이 지난 오늘날에 태어났어도 이 활구참선법을 믿고 열심히 실천에 옮긴 사람이면, 그 사람은 바로 정법 시대 사람이요, 그 사람은 상근기라고 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참선법을 배우고자 하고, 참선에 의해서 자아를 깨닫고자 하는 마음을 냈을 때 여러분은 이미 정법 시대를 만나 것이고, 여러분은 상근기인 것입니다.

조금도 그런 염려를 마시고 열심히 공부를 해서 결정코 금생에 ‘참나’를 자각하도록 도업을 성취하기를 간절히 빕니다.

*방편(方便 방법·수단 방/편할 편) ; ①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일시적인 수단으로 설한 가르침.중생 구제를 위해 그 소질에 따라 임시로 행하는 편의적인 수단과 방법. 상황에 따른 일시적인 수단과 방법.

②교묘한 수단과 방법.

*(게송) ‘정체종래절성색~’ ; [금강경오가해] 이색이상분(離色離相分) 함허득통 설의(說誼) 참고.

*수미산(須彌山) ; 수미(須彌)는 ‘sumeru’의 음역. 묘고산(妙高山)이라 한역함. 불교의 우주관에 의하면 세계의 중심에 높이 솟은 거대한 산.

*시방세계(十方世界) ; 온 세계. 사방(四方 동•서•남•북)과 사유(四維 동북•동남•서남•서북)와 상하(上下)에 있는 무수한 세계.

*법계(法界) : [범] dharmadhatu  dharma 곧 법은 온갖 유형 무형의 물질과 모든 일과 어떤 이치이거나를 다 들어 말하고  dhatu는 경계(境界) 또는 범위(範圍)란 말이다。그러므로 온갖 것(萬有)을 총괄하여 하는 말이니, 우주의 전체와 진리의 전체, 법 성품(法性)의 전체를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여여(如如)산스크리트어 tathatā ①그렇게 있는 것. 있는 그대로의 것. 진실의 모습. 진여(眞如)와 동일. 생멸변화(生滅變化)하지 않는 것. 차별을 떠난, 있는 그대로의 모습. ②모든 현상의 본성. ③분별이 끊어져 마음 작용이 일어나지 않는 상태. 분별이 끊어져, 있는 그대로 대상이 파악되는 마음 상태.

*본참공안(本參公案) : 본참화두(本參話頭).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참(參) ; 참구(參究). ①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드는 것. ②선지식의 지도 아래 참선하여 화두(공안)을 꿰뚫어 밝히기 위해 집중함. 화두 의심을 깨뜨리기 위해 거기에 몰입함.

*사량복탁(思量卜度) : 사량분별(思量分別) 사량계교(思量計較)와 같은 말。 생각하고 헤아리고 점치고 따짐。 가지가지 사량분별(思量分別)로 사리(事理)를 따짐。 법화경 방편품(法華經方便品)에 「이 법은 사량분별로 능히 알 바가 아니다」라고 함.

*법요식(法要式) ; 불사(佛事-제사, 법회 따위의, 불가(佛家)에서 행하는 모든 일)를 할 때 행하는 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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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
법회(입춘기도)2015.02.04 11:23

§(257) 아육왕의 마지막 과일 반 조각 보시 / 보시의 공덕—재앙을 소멸케 한다 / 삼재를 소멸하고 예방하는 근원적인 길은 참선 정진 / (게송)인생백년정하허~.

육바라밀(六波羅蜜) 첫째에 보시라고 하는 항목이 있는 것은, 도에 들어가는 첫 단계가 욕심을 버리는 것이여. 보시는 자기 마음을 비우게 하는 가장 훌륭한 방법인 것이며, 모든 재앙을 소멸하는 가장 좋은 방법인 것입니다.
‘본래 생사가 없으며, 복과 죄가 없는 것이다’하는 정법의 말씀을 믿고서 한 생각 돌이켜서 좋은 일을 당해도 화두를 들고, 궂은일을 당해도 화두를 들고, 행주좌와 어묵동정간에 화두(話頭)를 들고 가행정진(加行精進)을 하는 것이야말로 삼재를 소멸하고 예방하는 가장 근원적인 길이라고 감히 단언(斷言)을 하는 것입니다.
**송담스님(No.257)—85년 입춘법회(85.02.04)


(1) 약 19분.  (2) 약 13분.


(1)------------------

아육왕(阿育王)은 부처님 당시에 어린아이로써 길에서 소꼽장난을 하다가 모래와 흙으로 성을 쌓고 길은 닦고 그러다가 부처님이 지나가시는 길에 부처님께 그 길을 터 드리면서 ‘어서 이리 지나가십시오’하고 길을 내드렸습니다.

소꼽장난을 하면서 부처님께 길을 닦아드리는 그 공덕으로, 부처님께서는 ‘앞으로 백년 후에 너는 전륜성왕(轉輪聖王)이 될 것이다’하고 수기(授記)를 주셨습니다.
전륜성왕은 무력으로써 천하를 통일한 것이 아니라 불법(佛法)으로써 천하를 통일하는 위대한 왕을 갖다가 천자를 전륜성왕이라 하는데, 전륜성왕도 부처님과 똑같이 32상(三十二相)을 갖추고 태어난 것입니다.

그런 아육왕이 과연 부처님 열반하신 뒤, 백년 만에 인도에 태어나서 전 인도를 갖다가 통일을 하고 불법으로써 인도 천지를 다스린 그런 성군(聖君)이었던 것입니다.

그 아육왕이 국토를 순례하며 부처님께서 탄생하신 네팔(Nepal)에 들렸을 때에 부처님의 탄생지인 그 룸비니(Lumbini) 동산에 높은 돌기둥 탑을 세우고 거기에다가,
「여기는 부처님께서 탄생한 곳이니 이 지방 사람들에게는 세금을 면제해 주어라」하는 그러한 칙어(勅語)를 돌에 새겨놨습니다. 그 돌기둥 탑과 그 돌에 기록한 비문이 지금도 남아있습니다.
성지 순례로 가셨던 분들은 그것을 직접 볼 수 있었을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그 아육왕은 일생동안 그렇게 많은 보시를 행하고, 불법을 옹호하고, 불법으로써 부처님 진리로써 천하를 다스렸습니다. 그러자 그 아육왕은 마침내 병을 앓아눕게 되었습니다.

병을 앓고 눕게 되자 보시하려는 마음이 더욱 높아져가지고 밤으로 낮으로 황금 뭉탱이를 계원사(鷄園寺)라 하는 절로 갖다가 바쳤습니다.
절을 고치시도록 보내고, 대중공양을 하시라고 보내고, 그저 계속 날이면 날마다 황금을 보내기를 그치지 안했습니다.

그때에 불법을 잘 믿지 아니한 한 대신이 태자에게 권해 가지고, 그때 태자(太子)는 삼파지(三波地)라고 하는 태자인데,
그 태자에게 권해서 그 황금을 쌓아둔 창고 문을 굳게 닫고 황금을 내가지 못하도록 엄중하게 그 창고 문을 갖다가 지키게 했던 것입니다.

아육왕은 계속해서 그 황금을 갖다 바치라고 했지만, 그 무서운 위력을 가졌던 전륜성왕도 병이 들어 앓아눕게 되자 그 왕의 명령은 시행이 되지를 못했습니다. 그때에 왕은 점점 기력은 쇠해져 갔습니다.
왕은 게송을 읊기를,

금아아육왕(今我阿育王)이  무부자재력(無復自在力)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유반암마륵(唯半菴摩勒)이  어아득자재(於我得自在)로구나
나무~아미타불~

금아아육왕(今我阿育王)이 무부자재력(無復自在力)이다. 이제 나 아육왕이 아무런 자재력이 없구나. 아무 힘이 없구나.
오직 암마륵 반 조각에, 암마륵 과실만이 나에게는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다. 그 손에—암마륵이라고 하는 인도에서 나는 과일인데, 그 암마륵 과일 반 조각 밖에는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그것 밖에 없구나.

이런 처량한 게송을 읊고서, (아육왕을) 모시고 있는 신하를 시켜서 그 반 조각 암마륵 과일을 계원사로 보내드렸던 것입니다.
계원사 원주스님은 그 반 조각의 조그마한 암마륵 과일을 갈아서 가루로 만들어가지고 죽을 쑤는데 그것을 섞어 가지고 여러 대중이 고루고루 그것을 공양을 했던 것입니다.

그 인도를 통일해 가지고 날으는 새도 떨어뜨리는 그러한 위대했던 아육왕도 늙어서 병이 드니까 그리고 그 권한이 태자에게로 돌아가니까 아무 힘이 없게 되었던 것입니다.
창고에는 산더미 같은 황금이 쌓여 있고, 칠보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고, 곡식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하더라도 늙고 병들면 이미 자기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보시(布施)라 하는 것은 언제나 바로 그때그때에 해야 하는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을 위한 보시, 고아원이나 양로원에 행하는 보시, 돈이 없어 병을 치료 못하는 그러한 사람에게 보시, 수행하는 스님네에게 보시,
그러한 보시는 가난하면 가난한 대로, 부자면 부자 대로 언제나 그때그때 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나중에 많이 돈을 벌어서 하리라’하면 그때는 자기의 뜻대로 되어지지 아니한 것입니다.
왜 그때그때 하지를 못하고 ‘나중에 많이 벌어서 하리라’하는 생각을 내느냐 하면, 엄격하게 말하면 하나의 욕심인 것입니다.

(녹음 끊김) ...하기보다는 이 작은 돈을 잘 굴려서 큰돈을 만들어 가지고 나도 잘살고, 그때 여유가 있으면 마음껏 보시를 하리라. 이것은 어리석고 탐심에서 그러한 생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 당장 이것을 해 버리면 뭘 먹고 살며, 장사는 무엇으로 하며, 사업은 무엇으로 하느냐?
그러니 이때에 할 것이 아니라 이것은 우선 먹어야 하고, 장사를 해야 하고, 사업을 해서 큰돈을 벌어 가지고 그때 해도 늦지 아니할 것이다.

이러한 생각을 갖기 때문에 그때그때 분(分) 따라서 할 수 있는 보시를 뒤로 미루고 못하게 되어서, 씨를 뿌리는 계절을 놓치기 때문에 정당(正當) 수확을 해야 할 가을철에 가서는 거둘 것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언제인가도 말했지만 잔치 때 쓰기 위해서 우유를 짜지 아니하고 한 달 내 두었다가 잔칫날 짜려고 보니까 젖이 말라서 별로 많이 나오지 못했다고 하는 비유경(譬喩經)의 말씀을 했습니다만은,
젖은 매일매일 짜야 젖이 더욱 더 잘 나오는 것입니다. 짜지 않고 한 달 내 놔두면 젖이 밭아 버리고, 한 달 동안 모인 젖이 있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욕심과 탐심 그리고 어리석은 마음으로 보시할 줄을 모르고 자꾸 쌓아 모으려고만 할 때에 인정사정없이 남을 해롭게 하게 되고, 남에게 원한을 사게 하는 결과로 돌아오는 것은,
원수와 원수의 결과로 재앙을 끌어드리는 그러한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육바라밀(六波羅蜜)에 첫째에 보시라고 하는 항목이 있는 것은, 도에 들어가는 첫 단계가 욕심을 버리는 것이여.
보시는 자기 마음을 비우게 하는 가장 훌륭한 방법인 것입니다. 모든 재앙을 소멸하는 가장 좋은 방법인 것입니다.

보시는 재보시(財布施)가 있고, 법보시(法布施)가 있습니다.
재물, 자기에게 있는 금은전보(金銀錢寶)와 의복과 먹을 음식, 그런 물질로 보시하는 법이 있고, 법을 설해서 법으로 보시하는 법이 있습니다. 또 물질로도 하고 마음으로 보시할 수도 있습니다.
보시의 형태는 크고 작은 것과 유형무형의 여러 가지 의미의 보시가 있습니다.

어떠한 형태의 보시도 보시는 자기의 마음 비우게 하는 것입니다.
과거의 모든 업(業)의 종자(種子)를 소멸하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앞으로 다가올 모든 재앙을 미리 막는 가장 좋은 슬기로운 방법이 되는 것입니다.

보시를 통해서 자기를 비우게 하는 그러한 항목이 바로 보살도(菩薩道)의 육바라밀의 첫째 항목에 넣어 놓은 것은 너무너무 부처님께서 설정을 잘해 주신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보시·지계·인욕·정진·선정·지혜가 하나도 빠뜨릴 수 없는 그러한 조항이지만 보시를 첫 꼭대기에다 넣은 것은 그것이 우리에게 너무 절실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중생은 무엇이던지 탐심과 욕심으로서 자꾸 쌓아 모으려고 하기 때문에 그 마음을 깨뜨려 버리고 비움으로써 지혜로 나아가는 첫 단계가 되기 때문에 보시는....

부처님이 아무리 안 잡수어도 법당의 부처님이 배고프다고 하신 법이 없습니다. 부처님은 떡을 갖다놔도 한 덩어리도 잡수지 않습니다. 아무리 마지(摩旨)를 짓고, 공양을 올려도 잡수지 않습니다.

우리 중생으로 하여금 보시의 공덕으로서 마음을 비우고, 탐심과 욕심을 비우고, 모든 재앙을 소멸케 하려는 부처님의 자비로운 방편(方便)인 것입니다.
보시를 행하면 죽을 운수(運數)도 때우는 것이고, 어려운 재앙도 막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31분30초~50분4초)


(2)------------------

보시를 하지 아니하고 욕심껏 쌓아 모으다가 그 돈을 한푼도 쓰지 못하고 목숨을 잃게 된 사람도 적지 않는 것입니다.

늙어서 쓰기 위해서—젊어서는 쓰더라도 또 벌게 되니까 또 쓰고 벌고 그러다가도,
나이가 50이 넘고, 60이 넘으면 이제는 내가 돈도 벌 수 없고 이 돈 떨어지면 어디서 돈이 있어서 쓸 것인가, 돈이 떨어지면 이제는 나는 물이 말라버리는 고기와 같아서 꼼짝을 못할 것이다.

이래가지고 쌓고 또 쌓고 해가 지고 영판 한번 들어가면 나올 줄을 모르고 쓰지를 않고 있다가, 죽은 뒤에 보면 돈 뭉텅이가 10번, 20번 쌓고 쌓은 뭉텅이가 나와, 이러한 예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구들장을 파고 구들장 밑에다가 항아리를 묻고 돈을 갖다가 몇백만 원을 묻어 놓고서 죽은 사람도 있습니다.
죽었는데 그 구들장 위에 방석을 놨는데 방석이 뜰썩 뜰썩해서 보니까 큰 구렁이가—그 죽은 사람이 업이 되어가지고, 그 업(業)으로 구렁이가 되어가지고 자기가 묻어놨던 그 돈 항아리에 애착을 끊지를 못해 가지고,
그 방석 밑에 또아리를 틀고 혀를 널름널름, 이것은 몇십여 년 전에 어떤 절에서 있었던 실화인 것입니다.

죽은 뒤에 구렁이가 되어가지고 그 위패 모신 상에 구렁이가 되어가지고 있었다는 얘기며, 그 구렁이를 집어 버려 그 구렁이를 따라가니까 무덤 속으로 들어갔다는 그런 설화도 있습니다마는,

삼재(三災)를 면하려면 부적(符籍)을 갖다가 붙이고, 무슨 액막이를 하고 그러기 보다는 삼재를 든 분은 보시를 행하는 것, 그리고 방생(放生)을 하고 보시를 하는 것, 이런 것이 차라리 훌륭한 지혜로운 방편이 되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방편이 아니라 가장 근원적인, 근원에서 해결 짓는 방법은 ‘본래 생사가 없으며, 복과 죄가 없는 것이다’하는 정법의 말씀을 믿고서 한 생각 돌이켜서 좋은 일을 당해도 화두를 들고, 궂은일을 당해도 화두를 들고,
행주좌와 어묵동정간에 화두(話頭)를 들고 가행정진(加行精進)을 하는 것이야말로 삼재를 소멸하고 예방하는 가장 근원적인 길이라고 감히 단언(斷言)을 하는 것입니다.

오늘 이 입춘 법회가 끝나면 점심공양도 하시지 않고 어디를 가시는지 급히 문밖으로 도망치듯이 빠져나갈 분들이 상당수 있으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어디로 가시겠습니까? 틀림없이 한 장에 5만 원, 10만 원, 20만 원 하는 부적을 사러 점쟁이나 무당집으로 쫓아가실 것입니다.

부적 한 장으로 재앙을 막고, 자기가 지은 업장(業障)을 소멸할 수 있다면 우리 용화사에서도 부적을 몇만 장이라도 찍어 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잠시 어리석은 사람의 마음을 위안하는데는 도움이 될는지 모르지만 그것으로써 삼재가 면해질 까닭이 없습니다.

내가 지은 것은 어떠한 형태로든지 받게 됩니다.
기왕 받을 바에는 우리는 받으면서 새로운 원수를 맺을 것이 아니라, 받으면서 오히려 자기의 과거 죄를 진정으로 참회하고,
받으면서 오히려 위대한 스승을 만나고 불보살을 만난 그런 기분으로 그것을 받아서 소화를 시킨다면, 깨끗이 받아서 해결 짓고서 새로운 광명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받으면서 새로운 원수를 또 이중 삼중으로 맺어나가는 그런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하신 것이 너무너무 다행한 인연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인생백년정하허(人生百年情何許)인고  영별유유갱대상(永別悠悠更對床)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요지백운귀거로(遙指白雲歸去路)에  원산점점천창창(遠山點點天蒼蒼)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인생 백년이 그 정(情)이 얼마나 되는가?
영별유유갱대상(永別悠悠更對床)이다. 영원히 이별한—다시 만날 기약이 없는 이별을 하는 이 광경, 다시 또 이렇게 서로 상(床)을 앞에 대하게 된다.

요지백운귀거로(遙指白雲歸去路)에, 저 아스라니 가리키는 흰구름 돌아가는 길에, 먼산은 점점(點點)하고 하늘은 푸르르구나.

월송거사 양준호 영가. 잠시 인간 세상에 태어났다가 24세를 일기로 홀연히 떠나갔는데,
잠시 와서 그 부모와 가족들에게 무상의 도리를 일깨워 주고, 일가친척과 모든 인연 있는 사람들에게 이 몸뚱이는 허망한 것이고, 인생은 허망한 것이고, 부귀와 공명도 한낱 뜬구름과 같다고 하는 것을 역력히 보여주고,

그리고 다시 인연 따라서 극락세계나 도솔천 내원궁에 태어나기를 바라며,
다행히 이 사바세계에 인연이 있어서 인도환생(人道還生)을 한다면 정법문중(正法門中)에서 다 같이 도를 닦는 도반이 되어줄 것을 기약하고 다짐하노라.

오늘 입춘일을 맞이해서 이 법회에 참석하신 신남신녀 여러분,
함께 이 법석(法席)을 같이 하는 인연으로 과거 무량세에 지었던 모든 죄업은 봄눈 녹듯이 소멸하시고, 앞으로 크고 작은 모든 소원이 뜻대로 이루어지시기를 간절히 부처님께 축원하면서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오늘 점심공양은 월송거사 양준호 영가의 명복(冥福)을 빌기 위해서 공양(供養)을 올리게 됩니다.
영가의 명복을 비는 마음으로 맛있게 공양을 해주시고, 일 년 내내 건강하시고, 삼재가 드신 분도 아무 탈이 없이 오히려 모든 일이 더욱 뜻대로 이루어지시기를 축원(祝願)합니다.(50분6초~62분20초)(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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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육왕(阿育王) ; 산스크리트어 aśoka 팔리어 asoka의 음사. 무우(無憂)라고 번역.
찬드라굽타(candragupta)가 마가다국(magadha國) 난다(nanda) 왕조를 무너뜨리고 세운 마우리야(maurya) 왕조의 제3대 왕으로 인도 남단부를 제외한 전 인도를 통일함. 재위 기원전 270년경-230년경.

즉위 8년에 인도 북부 동해안의 뱅골만에 위치한-오늘날 오릿사주의 대부분-깔링가국과 전쟁을 벌여 승리하였으나, 전쟁으로 인한 사람들의 살육, 사망, 이주의 대 참상을 매우 괴로워하고 비통하게 여겨,
‘무력의 정복’을 버리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근본으로 비폭력과 정의에 기초한 ‘다르마(法)의 정복’으로 전환하였다.

아육왕의 주선으로 도읍지인 화씨성(華氏城)의 아육승가람(阿育僧伽藍)에서 1,000여 명의 비구들이 제3차 결집(結集)을 행하여, 경(經)·율(律)·논(論)의 삼장(三藏)을 정리함.
불교에 귀의하여 수많은 탑과 사원을 세우고, 수많은 사절들을 인도 전역에 파견하여 불교를 전파함. 특히, 자신의 아들 마힌다(mahinda)와 딸 상가밋타(saṅghamittā)를 스리랑카에 파견하여 그곳에 불교를 전함.
왕은 자신의 뜻과 행적을 널리 알리기 위해 암벽(바위)에 또는 석주(石柱 돌기둥)에 칙령(勅令)을 새겨 세웠다.
왕이 죽은 후, 마우리야 왕조는 서서히 분열되어 기원전 180년경에 멸망함.
*전륜성왕(轉輪聖王) ; 산스크리트어 cakravarti-rāja 인도 신화에서, 칠보(七寶)를 갖추고 정법(正法)으로 수미산(須彌山)의 사방에 있는 대륙을 다스리는 왕.
32상(相:신체의 특징)·7보(寶)를 갖추고, 무력에 의하지 않고 정법에 의해 세계를 정복·지배한다고 한다.
하늘로부터 받은 윤보(輪寶)를 굴려 모든 장애를 물리친다고 함. 윤보에는 금·은·동·철의 네 가지가 있는데, 금륜보(金輪寶)를 지닌 금륜왕(金輪王)은 네 대륙을 다스리고, 은륜보(銀輪寶)를 지닌 은륜왕(銀輪王)은 세 대륙을, 동륜보(銅輪寶)를 지닌 동륜왕(銅輪王)은 두 대륙을, 철륜보(鐵輪寶)를 지닌 철륜왕(鐵輪王)은 한 대륙을 다스린다고 함.
전통적으로 인도 마우리아왕조의 아쇼카왕[阿育王](BC 3세기)을 세속의 전륜성왕이라고도 말한다.
*수기(授記) ; 부처님이 불법에 귀의한 중생에게 어느 시기, 어느 국토에서 어떤 이름의 부처로 태어날 것이며, 그 수명은 얼마나 될 것이라는 것 등을 낱낱이 제시하면서, 미래세의 언젠가는 반드시 부처가 될 것이라고 알려 주는 것을 말한다. 또는 부처님이 중생에게 기별(記別)을 주는 것을 말한다.
*삼십이상(三十二相) ; 부처님이 갖추고 있다는 32가지의 뛰어난 신체의 특징. 몸이 금빛이다, 손가락이 길다, 두 눈썹 사이에 흰 털이 있다, 발바닥에 두 개의 바퀴 모양의 무늬가 있다 등등.
*룸비니(Lumbinī) ; 불교의 창시자인 고타마 싯다르타(Gotama Siddhārtha), 즉 ‘석가모니(釋迦牟尼, Śākyamuni)’가 탄생한 곳으로 네팔 남동부 테라이(Terai) 지방, 바이라와(Bhairawa)의 서방에 있다.
석가족(샤카족)의 도읍 카필라바스투의 유적이 약 16km 서쪽에 있다.

이 부처님의 탄생지 ‘룸비니’는 19세게 말까지만 해도 분명하게 알려지지 않았던 중, 1896년 독일의 고고학자 앨로이스 휘러(Alois Anton Führer)가 오늘날의 네팔 테라이 지역에 있는 옛 사원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울창한 숲에 버려져 있는 아쇼카왕 석주(石柱)를 발견했다. 석주에 새겨진 내용은,
‘자비로운 삐야다시 왕(아쇼카 왕의 다른 이름)은 왕위에 오른지 20년에 이곳을 방문하고 참배하였다.
왜냐하면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 Śākyamuni Buddha)께서 이곳에서 탄생하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주위에 돌담을 쌓고 돌기둥(石柱)을 세우게 했다.
부처님께서 여기 룸비니 마을에서 탄생하셨기 때문에 이 마을에 세금을 면제하였고, 단지 생산의 8분의 1만  내도록 하였다.’ 이로써 부처님의 탄생지라는 것이 확인되었다.

[참고] 아쇼카왕은 부처님이 열반하신지 약 2백년 후, 인도 마우리야 왕조의 제3대 왕으로서 기원전 269년 경에 즉위하여 36년간 인도 남단부를 제외한 전 인도를 통치하였는데,
즉위 8년(B.C. 262)에 인도 북부 동해안의 뱅골만에 위치한-오늘날 오릿사주의 대부분-깔링가국과 전쟁을 벌여 승리하였으나, 전쟁으로 인한 사람들의 살육, 사망, 이주의 대 참상을 매우 괴로워하고 비통하게 여겨, 그가 ‘무력의 정복’을 버리고 ‘다르마(法)의 정복’으로 전환하는 이정표가 된다.
[아쇼카의 '다르마(法)' 개념은 직접적인 불교의 특징적 용어들을 사용하고 있지 않지만,
핵심은 윤리적인 바른 삶-①바른 인간관계:웃어른•이웃에 대한 존경, 수행자에 관대함, 노예나 종의 바른 처우, 모든 교단의 화합과 비난 금지.
②계행과 바른 삶:살생금지, 동물 희생제 금지, 적게 소비.
③다르마의 수행과 백성의 복지:출가자나 재가자 모두 7가지의 경전을 듣고 명상하도록 함, 보시와 복지.
곧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고 실천하는 결실을 통해 모든 사람이 현세와 내세의 모든 이익과 행복을 얻기 바라는 부처님의 ‘다르마(法)’를 근본으로 한다.]
이 다르마의 내용을 널리 알리기 위해 암벽(바위)에 또는 석주(石柱 돌기둥)에 칙령(勅令)을 새겨 세웠다.
그 가운데 하나가 아쇼카 왕이 즉위 20년이 되던 해, B.C. 250년 무렵에 룸비니를 방문하고 기념하기 위해 세운 룸비니 석주(石柱)이다.
*칙어(勅語) ; 임금이 몸소 타이르는 말씀. 또는 그것을 공표한 글.
*(게송) ‘금아아육왕~’ ; [아육왕경(阿育王經)] 제5권, 반암마륵시승인연품(半菴摩勒施僧因緣品) 참고.
*분(分) : 분수(分數-자기 신분에 맞는 한도. 자기의 신분이나 처지에 알맞은 한도).
*정당(正當) ; ‘정당하다(이치에 맞아 올바르고 마땅하다)’의 어근.
*밭다 ; (무엇이) 바싹 졸아서 물기가 거의 없어지다.
*육바라밀(六波羅蜜) ; 바라밀(波羅蜜)은 산스크리트어 pāramitā의 음사로, 도피안(到彼岸)·도(度)·도무극(度無極)이라 번역. 깨달음의 저 언덕으로 건너감, 완전한 성취, 완성, 수행의 완성, 최상을 뜻함.
보살이 이루어야 할 여섯 가지 완전한 성취.
①보시바라밀(布施波羅蜜). 보시를 완전하게 성취함. 보시의 완성.
②지계바라밀(持戒波羅蜜). 계율을 완전하게 지킴. 지계의 완성.
③인욕바라밀(忍辱波羅蜜). 인욕을 완전하게 성취함. 인욕의 완성.
④정진바라밀(精進波羅蜜). 완전한 정진. 정진의 완성.
⑤선정바라밀(禪定波羅蜜). 완전한 선정. 선정의 완성.
⑥지혜바라밀(智慧波羅蜜). 분별과 집착이 끊어진 완전한 지혜를 성취함. 지혜의 완성.
*금은전보(金銀錢寶) ; 금은(金銀)이나 돈[錢] 패물[寶].
*종자(種子) ; ①씨앗 ②무엇인가를 낳을 가능성 ③아뢰야식에 저장되어 있으면서 인식 작용을 일으키는 원동력. 습기(習氣)와 같음 ④밀교에서, 상징적 의미를 가지는 하나하나의 범자(梵字).
*보살도(菩薩道) ; ①보살의 수행. 보살이 자리이타(自利利他)를 갖추어 깨달음에 이르는 도. ②대승불교.
*마지(摩旨) ; 부처님께 올리는 밥.
부처님께 올리는 밥은 대부분 사시(巳時), 즉 오전 9시에서 11시 사이에 올린다. 이것은 생전에 부처님이 하루에 한 번 그 시간에 밥을 먹은 데서 유래한다.
사시에 부처님께 올리는 공양을 ‘마지 올린다’고 하는데, 한자를 풀이하면 (摩指, 摩旨, 磨旨) ‘손으로 만들어 올린다 혹은 정성스럽게 만든 공양을 올리오니 제 뜻을 감읍하여 주시옵소서’라는 뜻을 담고 있다.
*방편(方便 방법·수단 방,편할 편) ; ①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일시적인 수단으로 설한 가르침.중생 구제를 위해 그 소질에 따라 임시로 행하는 편의적인 수단과 방법. 상황에 따른 일시적인 수단과 방법.
②교묘한 수단과 방법.
*운수(運數) ; 인간의 능력을 초월하는 천운(天運 하늘이 정한 운수)과 기수(氣數 저절로 오가고 한다는 길흉화복吉凶禍福의 운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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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업은 한 집안의 재물 신격으로서 흔히 구렁이, 족제비 등으로 상징된다. 집안에 이런 동물이 어느 곳이든 머물러 있어야 가업이 번창한다고 믿고 있다.
*삼재(三災 석 삼,재앙 재) ; 인간에게 9년 주기로 돌아온다는 3가지 재난을 의미한다. 도병(刀兵-서로 흉기를 갖고 살해함), 기근(饑饉-기근이 일어남), 질역(疾疫-큰병이 유행함)이 있으며 십이지(十二支)에 따라 든다.
삼재의 첫해를 입삼재(入三災,들삼재)이라고 하며 두 번째 해는 침삼재(枕三災,눌삼재·앉은삼재)를, 마지막 해를 출삼재(出三災,날삼재)라고 한다.
*부적(符籍 부적 부,문서 적) ; 잡귀를 쫓고 재앙을 물리치기 위하여 붉은색으로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려 몸에 지니거나 집에 붙이는 종이.
*방생(放生) ; 사람에게 잡힌 물고기나 새, 짐승 따위를 산이나 물에 놓아서 살려 주는 일. 불교도라면 누구나 지켜야 하는 첫째 계(戒)인 불살생계(不殺生戒)보다 적극적인 선을 실천하는 선행(善行)이다.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가행정진(加行精進) ; 별도의 노력을 기울여서 하는 정진. 어떤 일정한 기간에 좌선(坐禪)의 시간을 늘리고, 수면도 매우 단축하며 정진하는 것.
*단언(斷言) ; 머뭇거리지 않고 딱 잘라서 말함.
*(게송) ‘인생백년정하허~’ ; [청허당집(清虛堂集)] (서산휴정 著,朴敬勛 역, 동국대학교 역경원) p181 ‘원상인(圓上人)을 이별하며 드림’  참고.
*아스랗다 ; (보이는 것이)까마득하게 멀거나 아슬아슬하게 높다.
*점점(點點)하다 ; (사물이 어떤 곳에)여기저기 점을 찍은 듯이 흩어져 있다.
*한낱 ; 기껏해야 대단한 것 없이 다만.
*인도환생(人道還生) ; 인간이 사는 세계로 다시 태어남.
*정법문중(正法門中) ;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을 따르는 집안.
*법석(法席) ; 대중이 둘러앉아서 설법, 독경, 강경, 법화(法話) 따위를 행하는 자리.
*명복(冥福 저승 명,복 복) ; ①죽은 뒤 저승에서 받는 복. ②(불교)죽은 뒤에 받는 복덕.
*공양(供養) ; ①불(佛)•법(法)•승(僧)의 삼보(三寶)에 음식•옷•꽃•향 등을 바침. ②공경함. 찬탄함. 칭송함. 예배함. ③봉사함. ④절에서 음식을 먹는 일.
*축원(祝願) ; 어떤 일이 희망하는 대로 이루어지기를 불보살(佛菩薩)께 간절히 원하고 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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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