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7) (게송)영화능기일~ / 남녀노소 빈부귀천 승속을 막론하고 누구나  닦을  있다 / 보현보살의 돼지 화현 / 스님의 인사 ‘잘 수용하겠습니다’ / 시주·보시는 무주상(無住相)으로 해야.


세속에 살라면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먹고 살기 위해서도 힘이 들고, 직장을 유지해야 하고 사업을 하는데도 보통 힘이  것이 아닙니다.  속에서도 정법을 믿고 이뭣고?’로써 중심을 잡아갈  있다면  사람이야말로 상근대지(上根大智)라고 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전생에는 우리가 신도였었고 여러분이 스님이었을는지도 모릅니다. 금생에 그것이 바뀌어져 갖고 신도와 스님으로  바뀌어졌을는지 모릅니다. 내생에는 우리가  신도가 되고 여러분이 스님이 되어서 선방에 와서 참선(參禪)을 할는지도 모릅니다.

**송담스님(No.627)—99 6 첫째 일요법회(99.06.06)

약 22분.

우주가 이렇게 광활하고 넓고,  넓은 속에 지구라고 하는 것이 조그만한 존재에 지내지 못하지만,  지구에 60억이라고 하는 인간들이,  여러 가지 인종들이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오욕락(五慾樂)이 인간의 행복의 조건인  대부분 그렇게 알고 살고 있습니다마는, 재산이나 부귀영화나 명예 권리라 하는 것은 잠시 꿈꾸는 것에 지내지 못하는 것입니다.



영화능기일(榮華能幾日)이며  권속편시친(眷屬片時親)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종유천근금(縱有千斤金)이라도  불여임하빈(不如林下貧)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영화능기일(榮華能幾日)이며  권속(眷屬)이 편시친(片時親)이다.

한산(寒山) 습득(拾得), 한산은 문수보살(文殊菩薩)의 화현(化現)이고, 습득은 보현보살(普賢菩薩)의 화현이라고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한산시(寒山詩)」를 여러분이 보시면은 그 안에는 마음에  새겨둬야  만한 아주 핍절하고 요긴한 법문이 들어있습니다.  속에 방금 읊은 게송이 들어 있습니다.


영화(榮華)가  부귀영화(富貴榮華), 왕이나 대신이나 대통령이나 천자나 부귀영화를 누린 것이 영화죠. 영화라고 하는 것이 능히 며칠이나  것이냐 그말이여.

일평생을 산다 해도 오육십  전이요 오육십  간에 불과하고, 천자가 되어 갖고도 얼마  되어서 맞아죽기도 하고, 왕이 되어 갖고도 얼마  있다 죽기고 하고, 쫓겨나기도 하고 그렀습니다. 잠깐     것에 지내지 못한 것입니다.


우리나라 해방  이조   역대 임금들을 보십시오. 고려 때나 신라 때를 보십시오. 중국 역사를 보십시오. 세계 모든 역사를 보십시오.  영화라 하는 것이 잠깐     것에 지내지 못한 것이다 그말이죠.


권속(眷屬) 편시친(片時親)이다.  권속이, 부모가 훌륭하고 자식이 훌륭하고 형제간이 훌륭하다고 해서  그것을 배경 삼아서 목에다 힘주고 모다 그렇지마는 잠시 잠깐 인연이 있어서 금생에 그런 인연으로 태어난 것일 뿐이지 그것도 잠깐 지나가 버리면 별것이 아니다 이것입니다.


자기 형이 청와대에  있고,  자기 처남에 외삼촌에 동생의 친구가 청와대에 있다고 해가지고 그런 것을  가지고 사기(詐欺)를 치고 모다 그런 얘기를 들었습니다마는  ,  자기 친형이 있다 해도 별것이 아닌데 처남에 외삼촌에 친구에 뭣이 뭡니까 그게.

그게  권속이 편시친이라는 , 잠깐 동안에 친한 것에 불과하시니, 그러한 것을 가지고 큰소리  것도 없는 거고.


종유천근금(縱有千斤金)이라도, 비록 천근이나 되는 금덩어리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석숭(石崇)이와 같은 그런  부자라 하더라도, 한무옥당(漢武玉堂)과 같은 그러한 부귀영화를 누린다 하더라도 그것이  별것이 아니고.


불여임하빈(不如林下貧)이다. 그런  부귀영화를 가졌다 하더라도 수풀 속에 임하(林下), 수풀 아래에 가난한 것만 같지 못하다.

수풀 아래 가난하다고 하는 것은 산중에 숲속에 들어가서 풀뿌리를  먹고,  뿌리를  먹고, 더덕을  먹고  없으면  걸식을 하고, 솔잎을 썰어서 먹고, 그렇게 가난하고 가난하게 사는 속에  가난한 맛보다 못하다 그거죠.


나물을 뜯어서 삶아 먹고, 풀뿌리를  먹고, 솔잎을 썰어서 먹고, 흘러가는 물을 마시고 그리고 졸리면은 팔을 베고 자도 낙(樂)이  속에 있다 이거거든.

 닦는 낙(樂)이라 하는 것은 팔풍경계(八風境界)가 오지를 않거든. 세속에 살면서 부귀영화를 누린 것이 그렇게 굉장한  같지마는 하루도 다리를 뻗고 자들 못하는 것입니다.


 권리를 지키고, 명예를 지키고, 재산을 지키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경계심을 가지고 지켜나가야 하고, 누가 그것을 침범할까 봐서 미연에 그것을 차단해야 하고, 누가 자기 것을 빼앗아 가려 하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상대방을 저지를 시켜야 하고 악랄한 방법을 써서 상대방을 역적으로 몰고 그래 가지고 상대방을 죽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한평생을 살아간들 그것이 지옥에  일을 남겨 놓고는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내동댕이쳐 버리고 숲속에 들어가서 도를 닦는다.

 말씀을 하면 여러분이  가정도 버리고 직장도 버리고, 사업도 버리고, 너도 나도 숲속에 들어가야 한다는 그런 뜻은 전혀 아닙니다.


세속에 자기에게 주어진 일이 있는 것입니다. 자기가 과거에 지은 인연으로 가족도 맺어지고, 어떤 직장도 갖게 되고, 나라에 나가서 대통령도 되고, 장관도 되고... 지은 인연입니다.

빚이요, 인연이요, 그러기 때문에 부처님처럼 왕궁에 부귀도 버리고 출가하신다면 그거야   말할 것도 없이 훌륭한 일이나, 그렇게 철저히 발심(發心)도 못하면서 도피처로 알고 느닷없이 버려버리고 어디로 산중에 들어가, 그건 별로 권장할 말한 일은 못됩니다.


발심을 하려면 진실하게 발심을 해야 하고, 버리려면은 깨끗하게 버려야 하는 것이지, 섣불리 임시 잠시 괴로움을 책임 회피로 버릴 수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한 ‘임하(林下)에  아래 가난한이라고 하는 것은 세속에 살면서도 그런 것에 너무 지나친 집착을 갖지  것이며,  속에서도 정법(正法)을 믿고 이뭣고?’ 한다면 바로  자리가 숲속인 것입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연꽃에다가 많이 비유를 합니다마는, 연꽃은  깊은 산중에 맑은 석간수(石間水) 속에는 연꽃이 되질 않습니다.  밑으로 내려가서 흙탕물 속에다 뿌리를 박고 거기서 연꽃이   연꽃도  자라고 아름다운 꽃이 피는 것입니다.


아까 전강 조실 스님 법문에 세속에, 부모형제 오욕락이 있는  세속에서도 거기서 바로 이뭣고?’ 하는 말씀을 하셨는데,  속에서도 정법을 믿고 어려운...


세속에 살라면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먹고 살기 위해서도 힘이 들고, 직장을 유지해야 하고 사업을 하는데도 보통 힘이  것이 아닙니다.

 속에서도 정법을 믿고 이뭣고?’로써 중심을 잡아갈  있다면  사람이야말로 상근대지(上根大智)라고 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도에서는 유마거사(維摩居士)와 같은 그런 부처님과 맞먹는 대도사(大道士)가 있었고, 중국에서는 방거사(龐居士)와 같은 그러한 거사로서 대도인(大道人)이 있는 것이고, 우리나라에도 부설거사(浮雪居士)와 같은 그런 대도인도 있는 것입니다.


이건 특별히 최고로 훌륭한 분을  사람을 말한 것뿐이지, 지금도 역시 속가에 계신 거사님으로서 속가에 계신 보살님으로서 스님네 못지않게 열심히  닦는 분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자리에 모이신  가운데에도  그런 훌륭한 스님네보다도  훌륭한 수행자가 있을  믿습니다.


도(道)라고 하는 것이  산중에만 있는 것도 아니고,  머리를 깎은 스님네만 있는 것이 아니고, 산이나 들이나 섬이나 육지나 어디서도 도는 닦을 수가 있는 것이고, 옷을 먹물 옷을 입었건 어떠한 빛깔의 옷을 입었어도 그것은 상관이 없을 것입니다.

남녀노소 빈부귀천 승속을 막론하고 어디서나 누구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을 대승(大乘)이라고 하고, 최상승(最上乘)이라고 하는 것이고.



그래서 육도(六途)가 우리의  생각 속에 있는 것처럼 도(道)도 역시 법계(法界)에 가득차 있는 것이어서, 오죽하면 보현보살이 돼지가 되어 가지고 부잣집 돼지우리 속에 가서 꿀꿀하고 있었습니다.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은 항상 부처님의 왼팔이요 부처님의 오른팔이 되어가지고 조불양화(助佛揚化)를 하시지만,  분은 형제간이요 바로 도반인 것입니다. 문수보살 있는 곳에 보현보살이 계시고, 보현보살 있는 곳에 항상 문수보살이 계신 것입니다.


그래서 문수보살이,  보현보살이 장자(長者) 집에 돼지가 되어 있는 것을 보시고서  장자 집에 가니까 꿀꿀 돼지가 되어가지고 누워있거든.

구재진로중(久在塵勞中)이면, 너무 오랫동안 진로(塵勞) 가운데 있으면은 혹망본래사(惑忘本來事)니,  본래사(本來事)를 잊어버릴까 두려우니, 속히 행장을 거두어가지고  산중으로 돌아오라[收拾行裝裡 速還靑山來].


게송 금방 생각이  나는데, 그런 뜻의 게송을 글씨에다  가지고 돼지우리에다 던져 줬습니다.

보현보살이 눈을 꺼먹꺼먹 뜯어보니까 너무 오랫동안 진로 가운데 있으면  본래사를 잊어버릴까 두려우니 행장을 거두어 가지고 속환청산래(速還靑山來)하라. 속히 청산으로 돌아오라 게송이 써졌거든. 요리 쳐다보니까 문수보살이거든.


비록 돼지 탈을 쓰고 꿀꿀하고 있어도  화현(化現)으로 나타난 것이라. 알아보고는  게송 써진  쪽지를 덥석덥석 씹어서 꿀떡 삼켰다 그말이여. 그랬는데  돼지가 죽었어.

죽으니까, 사람들이 어떤 사람이 쪽지를 던져 주니까  쪽지에 독약이 묻었던지 돼지가 죽었다  가지고  사람을 관가에다 고발해 가지고 잡혀 갔어.


“나, 독약 한 일 없고 게송만 하나 써줬다

무슨 게송이냐?

“죽었으니까 배를 갈라보면   아니냐


배를 갈라보니까 아직도  종이에 글씨가 써졌는데  게송이 쓰여 있다 그말이여.  조사해 봤자 아무 독도  묻어 있고. 그러니 그냥 이상한 일도 있다해 가지고 무혐의로 풀려났는데.


문수보살, 보현보살이 비단 돼지로만 나오겠습니까? 때로는  탈을 뒤집어  수도 있고.


 부처님 말씀에는  소가 누군  아느냐? 왕년에 시주것만 먹고 도를 열심히  닦은 것이 시주 은혜 갚으려고 해서 소가  것이다.  소들은 모다 전생에  중이다

이런 말씀을 내가 봤습니다마는, 그 말은 시주것을 먹고 열심히  닦으라’고 하는 그런 간곡한 말씀을 부처님께서는 그렇게 표현하셨으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래서 스님네는 농사도  짓고 장사도 안 하고 오직 시주것만 먹고 오직  하나만을 위해서 목숨 바쳐서 일심(一心)으로 일심불란(一心不亂)으로 도만 닦으라고 해서 장사도 하지 말아라, 농사도 짓지 말아라. 일체 오직 걸식(乞食)을 해가지고  끼씩만 먹고 도를 닦으라’고 까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한국의 형편은 걸식할 형편이  못되고,  끼만 먹고는 도저히 도를 닦을  없을 만큼 지금 우리 근기(根機)가 약해서  때도 먹고   신도님네들이 갖다 주는 걸로 밥을  먹고 요렇게 참선하고 있습니다마는, 우리 딴은 나름대로 열심히 한다고 하고 있습니다.

부처님이 보실 때에는 과연 그만 하면 되겠다’고 하실는지 어쩔는지는 제가  모르겠습니다마는,  부모형제  고향을  버리고, 일체 세속의 오욕락을  버리고 일생을 수절(守節)을 하면서 먹물 옷을 참 입고, 못난  바보같이 이렇게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세속의 명예나 권리나 부귀영화를 일찍이 부러워해 본 적도 없고,  그런 것이  허망한  알았기 때문에 출가해서 이렇게 지내고 있습니다마는, 여러분들이 부처님께 바치고 시주(施主)를 하시고 그래서  절도 짓고 선방도 짓고 이렇게 했습니다.


우리 승려로서 여러분께 부탁할 것은, 물론 여러분이 갖다 줘서 감사합니다마는 감사하다’는 말을  안합니다.  그러냐? ‘감사합니다’하면은 여러분의 공덕(功德) 그만큼 소실이 되어 버려.

감사하다’는 말로써 그것이 여러분 공덕이 이렇게 때워져 버리기 때문에 여간해서 감사하다 안 합니다. ‘ 수용하겠습니다 그뿐인 것입니다.


‘시주를 했는데  스님네가 우리한테 굽신굽신을  ? 중들이,  용화사를 가면은 스님네들이  데데해. 불친절해 그런 말을  분이 있다고 그럽니다.


용화사 스님네는 별로 스님네가 오시면 그저 수수하니, 그렇다고 해서 여러분을 업신여기거나 그런 것도 아니고 불친절이 한다고 해서 아닙니다.

여러분을 위해서 우리는 항상 화두 드는 마음으로 여러분을 맞이할 뿐이지 그렇게 굽신굽신   것을 데데하고 건방지고 아만통이 있다고 그렇게 생각을 하시면 오해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시주를 하고 보시를 하더라도 무주상(無住相)으로 하셔야 합니다.


내가 이런 것을 했다. 했으니까 나를 알아 줘야 하고, 나한테 굽신거려야 하고, 우리를 최고로 대우를 해야 한다 그런 생각을  하시겠습니다마는, 그런 생각은  하신 것이 좋을 것이고. 오셔서 열심히 와서 조실 스님 법문을 듣고  여러분을 공부  하시라고 격려해 주시는 말씀을 뼈아프게 듣고 여러분도 열심히 공부를 하셔야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 속에서 유마거사와 같은 그리고 방거사와 같은 그리고 소동파... 보살님 가운데에도 훌륭한 도인이 많이 나왔습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가 전생에는 우리가 신도였었고 여러분이 스님이었을는지도 모릅니다. 금생에 그것이 바뀌어져 갖고 신도와 스님으로  바뀌어졌을는지 모릅니다. 내생에는 우리가  신도가 되고 여러분이 스님이 되어서 선방에 와서 참선(參禪)을 할는지도 모릅니다.


보현보살이 돼지가 되어가지고 장자 집에 가서 돼지우리에 있을  누가 알겠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서로가  도반이고, 서로가  부처님의 제자고 부처님의 아들딸인 것입니다. 누가 위고 누가 아래라  것도 없습니다.


신도면 신도로서의 도리를 다하는 거고, 스님이면 스님의 도리를 다해서 열심히  닦고 앞에서 끌고 뒤에서 밀면서  세계를 부처님 세계로 만들고, 우리가 모두가  부처님이 되는 최후의 목적까지 우리는 그렇게 가야  사명을 띠고 있으며, 그것이 우리의 인연이요 우리의 운명이라고 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2438~4621)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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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욕락(五欲樂,五慾,五欲) ; ①중생의 참된 마음을 더럽히는,소리,향기,,감촉(色聲香味觸) 대한감관적 욕망. 또는 그것을 향락(享樂)하는 . 총괄하여 세속적인 인간의 욕망.

②불도를 닦는  장애가 되는 다섯 가지 욕심. 재물(財物), 색사(色事), 음식(飮食), 명예(名譽), 수면(睡眠).

*(게송) 영화능기일~’ ; 『한산자시(寒山子詩)』에서 한산(寒山)의 시.

〇我見世間人  茫茫走路塵  不知此中事  將何爲去津  榮華能幾日  眷屬片時親  縱有千斤金  不如林下貧

*한산(寒山) ; 중국 당나라 때 사람. 성명은 알 수 없고, 천태(天台) 당흥현(唐興縣)의 서쪽 70리에 한암(寒巖)이라는 바위가 있는데, 대개 그 바위굴 속에 있었으므로 ‘한산’이라 하고, 때로는 국청사(國淸寺)에 가기도 했다.

몸은 바싹 마르고, 꼴은 거지와 같고 보기에 미친 사람 비슷한 짓을 하며, 국청사 절 부엌에서 일을 하고 있는 습득(拾得)에게 대중이 먹고 남은 밥을 얻어서 댓통에 넣어가지고 한산으로 돌아가곤 하였다. 미친 짓을 부리면서도 하는 말은 불도(佛道)의 이치에 맞으며 또 시를 잘하였다.

어느날 태주자사(台州刺史) 여구윤(閭丘胤)이 사람을 보내 한암(寒巖)에 찾아가서 옷과 약 등을 주었더니, 한산은 큰 소리로 “도적놈아! 이 도적놈아!”하면서 바위굴로 물러났고 “너희들에게 말한다, 각각 노력해라!”하면서 바위굴로 들어간 뒤에는 그 소식을 알 수 없었다 한다. 세상에서 한산, 습득, 풍간(豊干)을 3성(聖)이라 부르며, 또 한산을 문수보살, 습득을 보현보살 화현이라 한다. 『한산시』 3권이 있다.

—[참고] 여구윤(閭丘胤)의 ‘한산자시집서(寒山子詩集序)’

*습득(拾得) ; 중국 당나라 때, 천태사 국청사에 있던 이. 천태산 국청사 풍간(豊干) 선사가 산에 갔다가 적성도(赤城道) 곁에서 주어 온 작은 아이라 이렇게 이름. 한산(寒山)과 친히 사귀었고 풍간선사가 산에서 나온 뒤에 한산이 바위굴로 들어가 소식을 알 수 없는 뒤로 습득도 어디론가 사라져 종적을 알 수 없었다 한다.

*문수보살(文殊菩薩) ; 문수사리보살(文殊師利菩薩). 부처의 완전한 지혜를 상징함.

문수사리는 산스크리트어 만주슈리(mañjuśrī) 음사. 문수시리(文殊尸利), 만수실리(蔓殊室利)라고도 쓴다. ‘문수 ( : 신묘하다, 훌륭하다)  사리 길상(吉祥 : 상서로움) 뜻이다. 묘길상(妙吉祥) · 묘덕(妙德) · 유수(濡首) 번역. 석가모니불을 왼쪽에서 보좌하는 보살.


문수보살은 일반적으로 연화대에 앉아 오른손에는 지혜의 칼을, 왼손에는 푸른 연꽃을 들고 있다. 그러나 때때로 위엄과 용맹을 상징하는 사자를 타고 있기도 하고, 경권(經卷) 손에  모습으로 묘사되는 경우도 많다. 문수보살은 지혜의 완성을 상징하는 화신(化身).

≪화엄경≫ 속에서도 문수보살은 보현보살(普賢菩薩) 함께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 양쪽 협시 보살(挾侍菩薩) 이룸.

*보현보살(普賢菩薩) ; 불교의 진리와 수행의 덕을 맡은 보살. 한량없는 행원(行願) 상징함. 산스크리트어 사만타바드라(Samantabhadra). 삼만다발타라(三曼多跋陀羅)라고 표기. 보현(普賢), 편길(遍吉)이라 한역.

경전을 수호하고 널리 퍼뜨리며, 불법을 펴는 보살. 연화대에 앉거나 여섯 이빨을 가진  코끼리를 타고 있다. 석가모니불을 오른쪽에서 보좌하는 보살. 보현보살은  중생의 목숨을 길게 하는 덕을 가졌으므로 연명보살(延命菩薩)이라고도 한다.

모든 보살들은  각각 부처님 공덕의 어느  부분만을 나타내어 그것이 그의 특징이 된다.

*화현(化現) ; 부처님이나 보살이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 중생의 소질에 따라 여러 가지로 모습을 바꾸어  세상에 나타나는 . 화신(化身)이라고도 한다.

*한산시(寒山詩) ; 『한산자시(寒山子詩). 중국 당나라 때의 한산자라는 전설적인 은자(隱者) 천태산의 나무, 바위 그리고 촌가의 벽에 써놓은 시를 국청사(國淸寺) 스님이 편집했다고 전해지는 시집.  한산의  3백여 ()외에 습득(拾得)  50 , 풍간(豊干) 선사의  2수가 실려 있으므로 『삼은시집(三隱詩集)』이라고도 불린다.

『한산시(寒山詩)』의 내용은  다양하여 여러 가지이나 전형적인 부분인 자연과 함께 있는 즐거움을 노래한  외에 허망한 삶을 깨치고 진정한 도를 구하라는 주제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석숭(石崇) ; 중국 서진(西晉) 부호(富豪)(二四九~OO). 항해와 무역으로 거부가 되었다.

*한무옥당(漢武玉堂) ; 중국 한무제(漢武帝) 머무는 웅장하고 화려한 궁전[玉堂] 이르는 .

*팔풍경계(八風境界) ; 팔풍(八風). 팔경(八境). 팔풍은 세상에서 사랑하거나 미워하는 바로서 능히 사람의 마음을 흔들어서 움직이게 하므로 팔풍(八風)이라 <몽산법어 p155, 용화선원刊>

이쇠(利衰 이로울 /약할 ) :  뜻에 맞고()  뜻에 어기는 ().

예훼( 기릴 /비방할 ) :  안보는 데서 나를 찬미하는 (),  안보는 데서 나를 비방하는 ().

칭기(稱譏 일컬을 /나무랄 ) : 면전에서 찬미하는 (), 면전에서 비방하는 ().

고락(苦樂 괴로울 /즐거울 ) : 몸과 마음을 괴롭히는 (), 몸과 마음을 즐겁게 해주는 ().

[참고] 팔풍, 팔세법(八世法, attha lokadhamma) : 세간(世間, 중생의 세계) 특유의 여덟가지 어려움. 이득과 손실(利衰), 좋은 평판과 나쁜 평판(), 칭찬과 비난(稱譏), 고통과 행복(苦樂)<칠각지 p57, 고요한소리刊>  팔풍경계를 요약하면 결국 역순경계(逆順境界).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 일으킴[].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이뭣고(是甚 시심마) : ‘이뭣고? 화두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자리)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 일곱 ()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 ,   ()이다. ‘이뭣고?(이뭐꼬)'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뜻은  속에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왔다.

*상근대지(上根大智) ;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있는 소질이 뛰어나고, 지혜가  사람.

*유마힐(維摩詰) : [] Vimalakirti  음대로 써서 유마라힐(維摩羅詰) • 비마라힐(毘摩羅詰)이라 하고, 줄여서 유마힐 또는 유마(維摩)라고만 한다。뜻으로 번역하면 정명(淨名) 또는 무구칭(無垢稱) 되는데, 우리 말로는 깨끗한 이름이란 뜻이다.

인도 비사리(毘舍利  Vaisali)성에서 거사(居士) 지내면서 보살행업을 닦아 크게 교화하였다。그 수행이 갸륵하여 부처님의 제자들도 미칠  없었다。그가 병들어 누우매 부처님 제자들이 모두 가서 문병하는데,  아닌 이치(不二法) 대하여 여럿이 돌려 가면서 말하게 되었다。마지막으로 문수보살은 ‘말할  없다’고 하였는데, 유마힐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하였다。그리하여 모두 ‘유마거사가 가장  아닌 법을  연설한다’고 칭찬하였다。이것은 <유마경> 주요한 내용이다.

*도사(道士) ; ①불도(佛道 : 부처님이 성취하신 최상의 깨달음) 닦아 깨달은 사람. ②불도를 닦는 사람. ③도교(道敎) 믿고 수행하는 사람. ④어떤 일에 아주 익숙하여  잘하는 사람을 이르는 .

*방거사(龐居士) ; 당나라 형주(衡州) 형양(衡陽) 사람. 자는 도현(道玄)이다. 성은 방씨고, 이름은 ()이다. 당나라 정원(貞元)  석두(石頭)에게 선지(禪旨) 짐작(斟酌)탐욕스럽고 속된 것을 싫어해 재산을 모두 동정호(洞庭湖) 던져 버리고 죽기(竹器) 팔아 생계를 꾸렸다.

뒤에 마조(馬祖)에게 가서 묻기를 온갖 법과 더불어 짝하지 않는 사람이 어떤 사람입니까?”하고 묻자 마조는 네가 서강(西江) 물을  입에 마셔버린 뒤면 일러주마라고 대답했다. 그는 말에 깨달은 바가 있어 2 동안 정진하여 깨달음.


죽으려    영조를 시켜 그늘을 보아 오시(午時) 되거든 말하라고 부탁했다영조가 지금 오시가 되었는데, 일식(日蝕) 일어납니다.”하자, 그는 평상에서 내려와 문밖으로 나가서 보는 동안, 영조가 그의 평상으로 올라가 죽어버렸다. 이를  그는 웃으면서  딸의 솜씨가 나보다 빠르구나!”하고는 7 뒤에 숨을 거두었다.

*도인(道人) ; ①불도(佛道) 수행하여 깨달은 사람. ②불도(佛道) 따라 수행하는 사람.

*부설거사(浮雪居士) ; 신라 후기의 스님으로, 서울(王都, 慶州)에서 태어났다. 이름은 진광세(陳光世). 법명(法名) 부설(浮雪). () 천상(天祥).

어려서 불국사에 출가하였다. 영조(靈照), 영희(靈熙)  도반과 함께 두륜산 등지에서 10년간 정진한 , 오대산 문수보살의 도량을 참배하러 북으로 향하여 가던 길에 두릉(杜陵 : 전북 만경) 구무원(仇無寃)이라는 신도의 집에서 며칠을 묵었다.


구무원에게  묘화(妙花) 있었는데, 부설을 흠모하여 부설과 부부가 되길 원하고, 만일 버림을 당하면 목숨을 끊겠다고 하니, 묘화의 부모도 부설에게 딸을 버리지 말고 제도하여 주시기를 간청하였다.

부설은 출가의 뜻이 견고하여 굽히지 않았으나,  돌이켜 보살의 자비로운 뜻을 생각하여 마침내 묘화와 결혼하였다. 그는 비록 재가(在家) 있었으나 아들 등운(登雲)  월명(月明) 낳고 정진을 계속하여 도를 이루었다. 등운과 월명도 출가, 수도하여 도를 깨우쳤다.

묘화부인은  십세를  살았는데, 말년에 집을 내놓아 사원으로 삼아 부설원(浮雪院)이라 하였다.

*() ;  ①깨달음. 산스크리트어 bodhi 한역. (). 보리(菩提)라고 음사(音寫). ②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방법. ③무상(無上) 불도(佛道). 궁극적인 진리. ④이치. 천지만물의 근원. 바른 규범.

*대승(大乘) ; ①기원 전후에 일어난 불교 개혁파들이 스스로를 일컫는 . 이에 반해, 그들은 전통의 보수파를 낮추어 소승(小乘)이라 . ②자신도 깨달음을 구하고 남도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수행자보살, 또는 그들을 위한 붓다의 가르침. ③붓다의 가르침에 대한 존칭. 위대한 가르침.

() '타는 '으로, 중생을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붓다의 가르침이나 수행법을 뜻함.

*최상승(最上乘) ; 더할 나위 없는 뛰어난 교법. 최상의 가르침. 가장 뛰어난 가르침.

*육도(六途, 六道) ; 중생이 선악(善惡) ( : 의지에 기초한 행위) 의하여 생사 윤회하는 여섯 가지의 세계. 지옥도(地獄道), 아귀도(餓鬼道), 축생도(畜生道), 아수라도(阿修羅道), 인간도(人間道), 천상도(天上道) 있다.

*법계(法界) ; ①모든 현상, 전우주. ②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③진리의 세계.

*조불양화(助佛揚化 도울 조/부처 불/날릴·나타낼 양/가르칠 화) ; 부처님[佛]을 도와[助] 교화(敎化)를 드날리다[揚].

*장자(長者) ; ①덕망이 뛰어나고 경험이 많아 세상일에 익숙한 어른. ②큰 부자를 점잖게 이르는 .

*진로(塵勞 티끌·속세 /근심할 ) ; ①마음이나 몸을 괴롭히는 노여움이나 욕망 따위의 망념(妄念), 마음의 티끌. 번뇌(煩惱) 말한다. 중생의 마음을 더럽히고 생사에 유전(流轉 끊임없이 이어짐)시켜 피로하게 하는 . ②생사(生死). 생사윤회(生死輪廻).

*본래사(本來事) ; 본래의 . 본분사(本分事).

*본분사(本分事) ; ①본분(本分)을 깨우치는 일. 깨달음. ②인간이 부처라고 하는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가는 .

*본분(本分 근원·마음·본성 /신분· ) ; 자신이 본래부터 지니고 있는,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라 중생이라 하는 것은  속에서 하는 말이다. 본래 어둡고 밝고 알고 모를 것이 없으며, 온갖 속박과 고통을 새로 끊을 것이 없고, 대자유(大自由)• 대해탈(大解脫) 비로소 얻는 것도 아니다. 누구나 본래부터 그대로 부처인 것이다. 그러므로 근본 깨달음(本覺)’이라기도 하는데, 『선가귀감』 첫구절에서 말한    일원상(一圓相)’ 이것을 나타냄이다.

*행장(行裝  /꾸밀·행장 ) ; 길을 떠나거나 여행(旅行) 때에 사용하는 물건과 차림[].

*시주것(施主것) ; 절이나 스님에게 조건없이 베푼 물건.

*일심불란(一心不亂) : ①두 생각이 없이,  생각이 없이 마음이 흩어지지 않음. ②마음을 흩어지지 않게 .

*근기(根機 뿌리 /베틀 ) ;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있는 중생의 소질이나 근성. 보통 근기의 차등을 상근기, 중근기, 하근기로 구분한다.

*시주(施主 베풀 /주인 ) : ①스님에게 혹은 절에 돈이나 음식 따위를 보시하는 . 또는 그런 사람. ②남에게 가르침이나 재물을 아낌없이 베푸는 사람 단월(檀越 dana-pati)이라고도 .

*공덕(功德) ; ①복, 복덕 ②선한 마음으로 남을 위해 베푸는 모든 행위와 마음 씀씀이.

무엇보다 가장  공덕은 불법에 귀의하여 깨달음을 닦는 것이고, 이러한 사람을 보고 함께 기뻐하는 것도  공덕(隨喜功德) 된다. 이러한 공덕은 끝이 없어서 수천 사람이 횃불 하나에서 저마다 홰를 가지고 와서 불을 붙여 가더라도 원래의 횃불은 사그러들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무주상(無住相) ; 집착함이 없는 모습. 집착함이 없는 상태.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 ; 대승불교도들의 실천덕목  하나. () 머뭄() 없는() 보시. 집착 없이 베푸는 보시를 의미한다. 보시는 불교의 육바라밀(六波羅蜜) 하나로서 남에게 베풀어주는 일을 말한다.

무주상보시는 내가’ ‘무엇을’ ‘누구에게 베풀었다라는 자만심 없이 온전한 자비심으로 베풀어주는 것을 뜻한다.


[참고]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105~106에서.

 (46)貧人이  來乞이어든  隨分施與하라.  同體大悲가  是眞*布施니라.

가난한 이가 와서 구걸하거든 분을 따라 나누어 주라。한몸같이 두루 어여삐 여기는 것이  보시니라.

(註解) 自他爲一曰同體요,  空手來空手去가  吾家活計니라.

나와 남이  아닌 것이  몸이요,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이 우리들의 살림살이니라.


[참고] [금강경오가해] 묘행무주분(妙行無住分) (무비 역해 | 불광출판부) p141~145, [금강경오가해 설의육조스님 금강경] (원순 옮김 | 도서출판 법공양) p101~104.

復次  須菩提  菩薩  於法  應無所住  行於布施  所謂 不住色布施  不住聲香味觸法布施

須菩提  菩薩  應如是布施  不住於相  何以故  若菩薩  不住相布施  其福德  不可思量


 수보리야, 보살은 () 응당히 머문  없이 보시를 할지니, 이른바 () 머물지 않고 보시하며 성향미촉법(聲香味觸法)에도 머물지 않고 보시해야 하느니라.

수보리야, 보살은 응당 이와 같이 보시하여 () 머물지 않아야 하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만약 보살이 () 머물지 않고 보시하면  복덕은 가히 헤아릴  없느니라.


(육조 스님 해의解義)

부차(復次)  것은 앞을 이어서 뒷말을 일으키려는 것이니라.

범부(凡夫) 보시는 다만 아름다운 외모와 오욕의 쾌락을 구하는 고로,  과보가 다하면  삼악도(三惡途 지옥,아귀,축생) 떨어지므로,

세존께서 크나큰 자비로 어떠한 것에도 집착이 없는 무상보시(無相布施)’ 행하도록 가르치시니, 아름다운 외모나 오욕(五欲) 쾌락을 구하지 않고, 다만 안으로는 인색한 마음을 없애고 밖으로는 일체 중생을 이익케 하기 위함이니, 이와 같이 상응(相應)하는 것이 색에 머물지 않는 보시(不住色布施)’이니라.


무상(無相) 보시를 한다는 것은, '보시한다' 마음도 없고, 베푸는 물건도 없으며, 받는 사람도 분별하지 않는 것이니 이것을 '상에 머물지 않는 보시(不住相布施)' 하느니라. 보살이 보시(布施) 행할  마음으로 바라는 것이 없으면  얻는 복이 시방(十方) 허공과 같아서 가히 헤아릴  없느니라.


일설에 '()' '(넓다)', '()' '(사방에 흩어버린다)'이니, 가슴 가운데 있는 모든 망념·습기·번뇌를 널리 흩어버려 사상(四相) 끊어지고 마음에 전혀 쌓여 있지 않는 것이 ' 보시(眞布施)' 하며,

 일설에는 '()' '' 육진 경계(六塵境界) 머물지 않으며 유루(有漏) 분별도 하지 않아 오직 항상 청정한  돌아가서 만법(萬法) 공적(空寂)함을 요달함이니라.

만약  뜻을 요달하지 않으면 오직 온갖 () 더하므로 모름지기 안으로 탐애(貪愛) 없애고 밖으로 보시를 행해서 안밖이 상응하여야 무량한 복을 얻게  것이니라.


다른 사람들의 악행을 보아도  허물을 보지 않아서 자성(自性) 가운데 분별을 내지 않음이 '이상(離相)' 되느니라.

가르침에 의해 수행해서 마음에 능소(能所) 없는 것이  선법(善法) 것이라. 수행인이 마음에 능소가 있으면 선법이라   없고, 능소심(能所心) 멸하지 않으면 마침내 해탈치 못하니, 순간순간 항상 반야지혜를 행하여야  복이 무량무변한 것이니라.


이같은 수행에 의지하면 일체 인천(人天 사람과 하늘신) 공경하고 공양함이 따르니 이것을 복덕(福德)이라 하도다. 항상 부주상보시(不住相布施 어떠한 것에도 집착이 없는 보시) 행하여 널리 일체 모든 중생들을 공경하면  공덕이 끝이 없어서 가히 헤아릴  없느니라.

*참선(參禪) ; ①선() 수행을 하는 .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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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싼또샤
법회(동지차례)2015.12.12 11:27

§(026) 동짓날 법회를 하는 이유? / 일체(一切) 유심조(唯心造) / 참선을 해야만 무주상 보시를 수가 있고, 무루복을 닦을 수가 있다.


동지가 돌아오건, 입춘이 돌아오건 그것이 무슨 참선해 나가는데 무슨 상관이 있으리오마는, 그러한 우주의 질서, 천지자연의 섭리를 보고서, 그것을 보고서 생사 없는 도리를 깨닫게 하기 위해서 옛날부터서 그러한 계절의 변화가 있을 때마다 법회(法會) 거행해 것으로 생각합니다.

우주의 변화, 대자연의 섭리 이런 것들이 전부가 뭐라고 표현할 없는 물건 발현인 것입니다.

허공이라고 하는 거울이 우리의 앞에나, 뒤에나, 머리 위에나, 다리 밑에나, 거울이 거울이, 무한대로 거울이 있는데, 거울에 보인 것이 자기의 얼굴이 보인 것이다. 자기의 마음이, 자기의 모습이 거울에 비추어서 반사되어서 자기에게 돌아온 것이다.

유루복이라 하는 것은 얼마 가면은 타락할 있는 복이다. ‘없을 ()’, ‘ ()’, 무루복은샘이 없는 이라 하는 것은 자기가 지은 복이 영원히 타락이 없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무주상 보시를 수가 있고, 어떻게 해야 무루복을 닦을 있느냐? 거기에 가서 참선을 해야만 무주상 보시를 수가 있고, 무루복을 닦을 수가 있다 말씀입니다.

**송담스님(No.026)—76 동지법문 (76.12.22)

약 15분.

이쪽을 요리 두르고 앉아서 얼굴을 보시고 들으십시오.

오늘은 병진년 11 초이튿날 동짓날입니다. 오늘 동지(冬至) 오전 2 35 동지 () 그렇게 됐지마는 우리 용화사 법보선원에서는 시간을 상관하지 아니하고 사시(巳時) 이렇게 법회를 거행하고 있습니다.


동지는 무슨 날인고 하면은 낮의 시간이 제일 짧고 그리고 시간이 제일 날입니다. 그러면 밤이 제일 짧고 낮이 날은 언제냐 하면 하짓날(夏至날)입니다.

하짓날은 낮이 제일 길고서 밤이 짧다가 차츰차츰 하루에 1분씩 낮이 길었던 날이 1분씩, 1분씩 짧아져 가지고, 추분(秋分) 돌아오면은 밤과 낮의 길이 똑같아졌다가 그것이 차츰차츰 반대로 1분씩 짧아져 가지고는 동지가 되면은 하지의 정반대로 낮이 제일 짧고, 밤이 제일 길어집니다.


동지가 지내면서부터 1분씩, 1분씩 낮이 길어지기 시작해 가지고, 이듬해 춘분(春分) 돌아오면은 같아집니다. 밤과 낮이 똑같아졌다가 춘분 이후로 1분씩, 1분씩 길어져 가지고 하지가 되면 제일 길어지고, 이렇게 해서 년을 통해서 그렇게 길어졌다, 같았다, 짧아져 이렇게 됩니다.


지구가 해를 년을 걸려서 자신이 하루에 바퀴씩 돌면서 태양을 바퀴 도는, 일년 걸려서 돌아가지고 다시 제자리에 돌아옴에 따라서 이렇게 낮과 밤의 시간이 차이가 있게 됩니다.


그런데 어째서 동짓날 이렇게 법회를 갖게 되느냐? 다른 절에서는 동짓날 () 새벽에 들었으면 새벽에 팥죽을 쑤어서 올리고 축원(祝願) 하고, 밤에 들었으면 밤에 팥죽을 쑤어서 올리고 축원을 하고 이러느냐?


사람이라고 하는 것은, 비단 사람뿐만 아니라 우주의 모든 질서가 음양(陰陽)으로 노나서 수가 있는 것입니다.

본래는 그것이 음양이 없는 것이지마는일단 그것이 본래는 음도 없고 양도 없는 , 뭐라고 표현할 없는 것이지마는,

그것이 아무 바람도 없고, 아무 움직임이 없을 때는 물결이 일다가, 그것이 물결이 일어났다 하면은 물결, 버큼 하나 일어남으로 해서 조용했던 넓은 호수에 파도가 좌악 일기 시작한 거와 마찬가지입니다. 물결 일어남으로 해서 일만 물결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본래는 음양도 없지마는 없는 자리에서 음양이 벌어지고, 음양이 팔괘(八卦), 팔괘에서 24, 24괘에서 360도로 이렇게 해서 세계가 벌어지고, 가운데 생로병사(生老病死) 성주괴공(成住壞空) 생주이멸(生住異滅) 벌어져 가지고, 그것을 가리켜서 윤회(輪廻), 결국은 윤회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윤회의 물결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부자가 가난해졌다가 가난한 사람이 부자가 되었다. 부자가 되면 영원히 부자가 것이 아니라, 얼마 동안 가다가 가난해지고 이렇습니다. 한번 부자가 되면 영원히 부자가 되었으면 좋겠지마는 시절인연(時節因緣) 도래(到來)하면은 차츰차츰 차츰 가난해지게 됩니다.

가난해져 가지고 영원히 가난하게 살면은 큰일날 텐데 가난한 사람이 차츰차츰 일어나기 시작하면은 국중(國中) 거부(巨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당대(當代) 일생 동안 부귀를 누리기도 하고 , 가기도 하고, 대를 가기도 하고, 당신 일대에도 채우지 못하고 금방 말년에 고생을 하는 사람도 있고, 가지 각가지인데,

년에 24계절이 돌아가는 , 그것을 보고서인생이라고 하는 것이 무상하다 하는 것을 우리는 깨달라야만 사람은 지혜 있는 사람이라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동지가 돌아오건, 입춘이 돌아오건 그것이 무슨 참선해 나가는데 무슨 상관이 있으리오마는, 그러한 우주의 질서, 천지자연의 섭리를 보고서, 그것을 보고서 생사 없는 도리를 깨닫게 하기 위해서 옛날부터서 그러한 계절의 변화가 있을 때마다 법회(法會) 거행해 것으로 생각합니다.


우주의 변화, 대자연의 섭리 이런 것들이 전부가 뭐라고 표현할 없는 물건 발현인 것입니다. 우리 마음이 물건이라고도 없는 진여자성(眞如自性) 자리에서 파도가 일어나 가지고 가지가 뻗고, 잎이 피고 하는 것이 그렇게 표현된 것이 우주 삼라만상(森羅萬象) 두두물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