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회(신수기도)2015.02.17 10:52

§(324) (게송)조화무사부사력~ / 기도는 정성이 제일 / (게송)송백천년취~ / 참선, 기도가 둘이 아니다 / 의심관(疑心觀) / ‘관세음보살’하는 자기 음성을 자기가 관(觀)해.


몸과 마음이 한결같고 청정하고 정성스러우면 기도 시작할 때 이미 목적은 달성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일주일 동안 기도(祈禱)하는 그 경건하고, 엄숙하고 간절한 그 마음을,

앞으로 살아가시는 1년 내내 하루도 퇴타함이 없이 방심함이 없이 그렇게 경건하게 엄숙하게 그리고 청정하고도 간절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생활 속에서 참선(參禪)하는 참선 기도로 살아 주시기를 부탁을 합니다.

화두가 알 수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그 알 수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그것을 관조(觀照)를 할 줄 알아야 돼. 의심관(疑心觀).

그러다가 그 의심이 희미해져서 없어져 버리거나, 딴 생각[別念]이 들어오면 그때 ‘이뭣고?’하고 또 챙기는 거여. 없어지면 챙기고 또 끊어지면 챙기고, 이리 되어야 하거든.

‘관세음보살’ 부를 때에는 음성을 고르게 하되, 자기가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하는 자기의 그 음성을 자기가 관(觀)하면서 해야 돼.

**송담스님(No.324)—87년 신수기도 회향(87.02.06)


(1) 약21분.  (2) 약 21분.


(1)------------------


조화무사부사력(造化無私不思力)이요  일일청청세한색(一一靑靑歲寒色)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장단대소재목전(長短大小在目前)한데  가소시인회부득(可笑時人會不得)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조화무사부사력(造化無私不思力)이요. 자연의 조화, 천지의 조화가 사사로움이 없어. 사사로움이 없는 그 부사의력(不思議力)이다 그말이여.

불가사의(不可思議)한 알 수 없는 그런 위대한 힘이, 일일청청세한색(一一靑靑歲寒色)이다.  낱낱이 푸르고 푸르러서 세한(歲寒)의 빛이여. 누가 사람의 인조(人造)로 인력(人力)으로 그렇게 할 수가 없어.


아무도 인공(人工)으로 손을 대지 아니하는데, 자연의 이법(法)에 의해서, 불가사의한 그 힘에 의해서 소나무는 푸르고, 대나무도 푸르고, 산천에 초목이 각자 그 종류에 따라서 여러 가지 빛깔을 나투는데,


장단대소(長短大小)가 재목전(在目前)하건만, 어떤 것은 길고, 어떤 것은 짧고, 어떤 것은 크고, 어떤 것은 작아서 형형색색으로 우리의 눈앞에 조금도 숨김없이 펼쳐져 있건마는,

가소시인회부득(可笑時人會不得)이다. 우습다, 모든 사람들이 그 숨김없는 적나라(裸)한 그 도리를 알지를 못하는구나.



오늘은 정묘년 정월 초아흐레 신수기도 회향일을 맞이했습니다. 그동안에 여러분께서는 7일 동안을 정말 정성껏 기도에 동참하시고 또 직접 기도에 참석을 하셔서 정성을 다해서 목이 쉬도록 정근(精勤)을 하셨습니다. 


기도 입재 때 말씀드린 바와 같이 기도는 정성(誠)이 제일인데, 정성이라 하는 것은 말로써 ‘이러 이렇다’ 이렇게 표현을 할 수는 없지만 구태여 말하자면,

첫째, 몸과 마음을 청정히 하고 그리고 한결같아야 하고, 그리고 참된 그 마음으로 해야 한다고 하는 것을 말씀을 했습니다.


이미 몸과 마음이 한결같고 청정하고 정성스러우면 시작할 때 이미 목적은 달성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많은 시간을 3일이라든지 7일이라든지 또는 백일이라든지 천일기도, 만일기도 그렇게 기도 날짜를 많이 잡은 것은 우리의 마음이 그렇게 되지 아니하기 때문에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것입니다.

많은 시간을 억지로라도 참고 견디면서 노력을 하다보면 그 어느 땐가는 청정하고 일여하고 참된 생각에 부합(合)이, 계합이 되는 것입니다.  


자고(自古)로 기도를 정말 위법망구(爲法忘軀)적으로 간절히 해서 성취한 예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런데 요새 어려운 일을 당해서, 중대한 일을 당해서 많은 분들이 기도를 여기서 저기서 모다 하시지만 기도했다고 해서 자기가 바라는 만큼 그때에 바로 성취 되냐 하면은 혹 된 사람도 있고, 안된 사람도 있고 혹 될 때도 있고 안될 때도 있고,

그 사람과 그 성취하고자 하는 목적과 모다 그런 여러 가지 경우에 있어서 한결같이 다 되지를 않는 것을 우리는 보고 또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어째서 그런데 그렇게 정성스럽게 했는데 기도가 성취되기도 하고, 안되기도 하느냐?

첫째는 자기의 정성이 어딘가 부족한 점이 있었기 때문에 그렇지 않냐, 그렇게 볼 수도 있고 또 정성에는 조금도 부족함이 없었지만 그것이 성취되는 것이 차라리 안되는 것보다 못하기 때문에 그래서 이루지 못한 경우도 있습니다.


그 기도를 자기 목적을 성취함으로써 오히려 안된 것보다 더 해로울 때에는 그 기도 성취가 되지 않는 경우도 있는 것이고 또 기도를 열심히 했는데 자기가 원하는 대로 목적을 이루기커녕은 생각지도 않는 견디기 어려운 여러 가지 고통이 한목 몰아닥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것은 앞으로 금생, 내생, 저 내생까지 계속해서 그 좋지 못한 과보를 받을 수 밖에 없는, 말하자면 전생에 그러한 업(業)으로 그렇게 많은 고통을 받게 되어있는 삼생(三生)에 걸쳐서 받을 죄를,

금생에 신심껏 기도를 하고 그 공덕으로, 기도를 한 공덕으로 삼생에 걸쳐서 받을 것을 금생 일생 동안에 다 몰아서 다 받아 버리고 그리고서 이 다음 생에는 정말 큰 원을 성취하도록 그렇게 될 경우에 바로 그렇습니다.


그래서 코앞에 조그만한 원(願)을 세워서 목이 쉬도록 기도를 했다가 그것이 이루지 못한다고 해서 불평을 하고 ‘그 기도해 봤자 소용이 없다. 나도 기도해 봤지만 그거 이루지도 못하더라’ 이러한 반감심(感心)을 갖고 불신을 하고 퇴타심(退墮心)을 낸다면 그 사람이 기도할 때 정성스러운 그 정도가 과연 어느 정도였었다고 하는 것을 짐작할 만하는 것입니다.


작은 것을 원했다가 큰 것을 바라지도 안 했는데 성취되는 수도 있고, 큰 것을 원했는데 조그만한 것이 우선 코앞에 이루어진 경우도 있고,

코앞에 전혀 이루지도 않고 그저 담담하니 별로 소원을 이룬 것 같지도 않은데, 살아가면서 점점 신심이 돈독하고 모든 일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잘 풀려나가고 그러한 수도 있고 여러 가지 경우가 있어서,


그래서 이 기도라 하는 것은 청정한 몸과 마음 그리고 한결같은 마음,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기도를 하되 기도가 회향(廻向)을 했다고 해서 인자 빨리 자기 목적한 것이 돌아오기만을 급급하게 기다릴 것이 아니라,

기도가 끝난 뒤에도 그 기도 때와 같은 그 정성스러운 행동,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한결같이 ‘이뭣고?’ 참선을 하면서 계속 정성스러운 마음이 흩어지지 않도록 몸과 마음을 다져 나간다면 그것이 바로 기도 성취할 수 있는 마음가짐이요,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그러한 것을 받을 수 있는 그 자세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송백천년취(松栢千年翠)로되  불입시인의(不入時人意)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모란일일홍(牡丹一日紅)한대  만성공자취(滿城公子醉)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송백(松栢)은 천년취(千年翠)하되, 소나무와 잣나무는 천년 동안을 푸르르되,

불입시인의(不入時人意)요, 세상 사람들의 뜻에는 들지를 안 해. 별로 그렇게 소나무, 잣나무 그렇게 '좋다'고 '아름답다'고 별로 안 그런다 그말이여.


목단(牧丹), 모란(牡丹)은 하루 피었다가 시들어 버리는 하루 동안 밖에는 붉지를 않는데,

만성공자취(滿城公子醉)요. 모든 사람들은 그 목단이 꽃 가운데 왕이라고 그렇게 모다 좋아하고 칭찬을 하고 거기에 모다 반하더라 그말이지.


송백은 무루법(無漏法), 무루복(無漏福), 영원한 복에다가 비유한 것이고, 모란은 유루복(有漏福)에다가 비유한 게송(偈頌)입니다.


영원한 우리 생사해탈법은 한번 깊이 믿고 실천을 하면 당장 금생에부터 모든 업장(業障)을 소멸하고, 영원한 행복을 얻고, 확철대오(廓徹大悟)해서 생사윤회(生死輪廻)에서 벗어나는 그러한 참 좋은 것인데 그것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별로 그렇게 마음에 들어하지를 안 해.


물론 특수한 신심이 있는 사람은 모르되, 대부분의 사람은 별로 그것에 관심이 없고,

유루복(有漏福)—당장 부자가 된다든지, 높은 벼슬자리 벼슬을 한다든지, 부귀영화 모다 이런 해봤자 별 수 없고 또 뜻대로 얻어진다고 해도 영원성이 없는 그런 재산이나 명예, 권리 모다 그런 것에는 세상 모든 사람들이 그것을 못 얻어서 야단이고 그것을 얻으면 거기에 빠져서 헤어날 줄을 모르고, 그렇다는 것입니다. 


이번에 기도에 동참하신 여러분들은 과연 무루(無漏)의 복(福)을 원하셨는가? 또는 영원성이 없는 유루복만을 목적에다 두고 기도를 하셨는가?

또 저 궁극적 목표는 무루복에다 두되, 우선 당장 급해서 그래서 유루복에 원도 세우시고 하시는 분도 많이 계시리라고 생각합니다.


인생이 살아가는 것은 우선 당장 급한 것은 재산이요, 명예요, 권리요, 가족의 행복이요, 아들딸의 대학에 들어가는 일이요, 아무리 생사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참선을 한다 해도 당장 코앞에 그 문제가 절박할 수 밖에는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러한 원을 이루기 위해서 기도하신 것을 절대로 나쁘다고 할 수가 없습니다. 이런 1년에 한 번 있는 신수기도에 동참을 해 가지고 정성을 다해서 기도를 하는 것도 참 뜻깊은 일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우리 어머니, 우리 할머니는 참선 밖에는 모르고 자식들이 대학에 가고 못한 것은 관심이 없다’ 이러한 인상을 주어서도 안 되고, 또 할머니, 어머니, 아버지가 자기 아들딸의 학교 문제에 관심이 없을 수가 없고, 우선 나중에야 어떻게 될망정 우선 대학에는 들어가 놓고 봐야 하는 것이고, 그놈이 대학엘 못 들어가면 어떻게 될 것이냐 그말이여.


그래서 기도를 일주일 동안 목이 쇠도록 그렇게—그 날씨가 상당히 강추위 했는데 그 눈을 뒤집어쓰면서 새벽기도부터서 모다 참석을 하시고, 대단히 참 감동을 했습니다.


그러한 이 신수기도 때와 같은 그러한 간절한 마음, 열렬한 마음, 그 추위도 무서워하지 않고, 편안히 자고 싶은 잠을 깨고 새벽에 날마다 이렇게 참석하신 그럴 수 있는 그런 정성이면 내가 나를 찾는 참선 공부에도 응당 그렇게 할 수 있는 저력(底力)이 있다고 하는 것을 나는 믿습니다.(처음~21분13초)



(2)------------------


부디 일주일 동안 기도(祈禱)하는 그 경건하고, 엄숙하고 간절한 그 마음을 앞으로 살아가시는 1년 내내 하루도 퇴타함이 없이 방심함이 없이 그렇게 경건하게 엄숙하게 그리고 청정하고도 간절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생활 속에서 참선(參禪)하는 참선 기도로 살아 주시기를 부탁을 합니다.


그 동안에 일주일 간은 기도 참선을 하셨는데 앞으로 일 년간은 참선 기도—참선하면서 바로 그 참선이 기도가 되도록, 그 동안에는 ‘기도의 참선’을 했는데 ‘참선의 기도’를 하시라 그말이여.


그러면은 참선과 기도가 둘이 아니거든. 절대로 참선과 기도가 둘일 수가 없습니다.

참선을 하는 데에도 청정한 몸과 마음, 정성스러운 마음, 한결같은 마음이 요구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기도만 그런 것이 아니라 참선도 역시 그러한 마음가짐은 절대로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를 정성껏 할 수 있는 사람은 참선도 또한 그렇게 할 수가 있고 또 평소에 참선을 열심히 하신 분은 기도 때가 되면 기도도 또한 그렇게 하실 수가 있는 것입니다.


속담에 ‘국수할 줄 아는 사람이 수제비 못 끓여 먹겠느냐’ 그런 말이 있듯이 참선하나 제대로 할 줄 알면 기도고, 주력(呪力)이고, 경을 읽는 것이고, 경우에 따라서 필요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참 훌륭하게 해 낼 수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만리장공우제시(萬里長空雨霽時)에  일륜명월영청휘(一輪明月映淸輝)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부운엄단천인목(浮雲掩斷千人目)한데  득견항아면자희(得見姮娥面者稀)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만리장공우제시(萬里長空雨霽時)에, 저 만 리나 된 넓고도 긴 저 하늘에 비가 갰어.

일륜명월(一輪明月)이 영청휘(映淸輝)다. 한 바퀴 밝은 달이 밝고 맑게 빛나는데, 비가 오고 운무가 끼었을 때에는 그 달이 떠도 보이지를 않고 컴컴하니 그러다가 비가 쫙 개 가지고 그 새파란 하늘에 밝은 달이 휘영청 밝았다 그말이여.


부운엄단천리목(浮雲掩斷千人目)이여. 뜬구름이 한덩어리가 날아와 가지고 달을 가리워 버리니까, 모든 사람의 눈에 그 밝고 맑은 달의 얼굴을 보기가 어려워. 구름이 가리워 버리니까 그 달을 보기가 어렵더라.


사실은 우리의 그 본성(本性) 마음자리는 부처님의 마음자리와 둘이 아니고 비로자나 법신불(毘盧遮那 法身佛)과 둘이 아니어. 우주의 진리와 둘이 아니기 때문에 무엇이든지 마음에 원하면 그것은 반드시 이르러 와서 얻어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원하고 원해도 잘 이루어지지 아니한 것은 일념(一念)이 되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나의 참된 마음과 그 어두운 부정적인 생각에 가로막혀서 장애를 받아가지고 원이 이루어지는 것을 가로막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가로막는 것만 없으면 바로 원하는 대로 바로 그것이 이루어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눈앞에 장벽만 없다면 몇백 미터고 저 앞을 다 볼 수 있지만 앞에 종이 한 장만 가로막혀 있어도 밖이 보이지 않는 거와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기도와 참선 공부가 내나 서로 상통한 것이고 둘이 아니라’하는 말씀을 했습니다마는 정말 기도를 목이 쇠도록 큰 소리로 정근만 하면 그것이 정성을 다한 것이냐?

참, 기도가 쉬운 거 같아도 정말 이 기도가 참선과 똑같이 어려운 것입니다. 그 목청을 돋아서 한 시간, 두 시간 내지 네 시간을 불러대면 되냐?


어떻게 해야 기도를 참 정말 훌륭하게 하는 것이 되는 것이냐?


‘관세음보살’ 부르면서도, 입으로는 ‘관세음보살’ 부르고 목이 터지도록 부르면서, 그렇게 부르는 속에도 우리의 생각은 계속 집안일도 생각하고, 과거 일도 생각하고, 어릴 적 일도 생각하고, 이일 저일 할 것은 다 합니다.

그 ‘관세음보살’ 부를 때는 오직 관세음보살만을 불러야 되겠는데, 입으로는 관세음보살 외치면서 속으로는 온갖 잡념 망상이 조금도 거침없이 왔다갔다 왔다갔다 왔다갔다 하거든. 기도를 해 보면서 가만히 자기 스스로를 이렇게 관조해 보면 알 수가 있고, 그것을 경험을 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또 기도를 하면서 탁자 위에 촛불이라든지, 향이라든지 또는 청수 그릇이라든지 또는 탁자 위에 모신 부처님 눈, 코, 입이라든지 이런걸 보면서, 입으로는 외치면서도 그 눈으로 보이는 그런 것들에 계속 우리의 생각이 그런 데로 다 돌아다니는 것입니다.

촛불이 크게도 보였다, 작게도 보였다, 자기 앞으로 가까이도 보였다, 멀리도 보였다, 부처님 얼굴도 이렇게 우러러 보면서 정근을 하면 부처님 얼굴이 이리 변했다, 저리 변했다, 가까이 왔다, 멀어졌다 야단이거든. 단 1분 1초도 정말 망상이 없이, 번뇌가 없이 깨끗하게 정진이 되어 가기가 어렵다고 하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기도할 때 눈으로 보이는 부처님 얼굴에다가 집중을 하는 것이 좋으냐? 훨훨훨 타고 있는 촛불에다가 눈을 대고 하는 것이 옳으냐? 무엇을 어디다가 우리의 눈을 고정하며, 어떻게 해야 하느냐?


대단히 이것도 참선할 때에 덮어놓고 ‘이뭣고?’ ‘이뭣고?’ ‘이뭣고?’ 계속 그렇게 하는 것을 그 참선을 잘한다고 할 것이냐?

‘참선을 어떻게 해 나가야 올바르게 하느냐?’한 것과 똑같이, ‘기도도 어떻게 해야 올바르게 하는 것이냐?’하는 것도 똑같이 중요하고 어려운 것입니다.


참선은 그저 ‘이뭣고?’ ‘이뭣고?’ 이뭣고?... 아주 그 관세음보살 부르듯이 ‘이뭣고?’를 계속 끊임없이 찾고 또 찾고, 찾고 또 찾고, 물론 처음에 시작한 사람은 그렇게 할 수 밖에는 없고 그렇다고 하되 한 달, 두 달, 석 달, 일 년을 가면서는 그렇게 화두를 염불하듯이 그렇게 자꾸 들먹이는 것이 아니에요.


‘이뭣고?’한 그 알 수 없는, ‘이뭣고?’했을 때 그 알 수 없는 의심, 그 의심이 있을 때에는 그 의심을 성성(惺惺)하고 적적(寂寂)하게 그 의심을 관(觀)해 나가야지,

거기다 대고 이미 화두가 없어지지 않고, 화두에 대한 의심이 있는데도 거기다 대고 자꾸 ‘이뭣고, 이뭣고, 이뭣고’ 그래 하는 것이 아니에요. 그러면 어린애, 애기 잠재울 때 잠 막 잘라고 한 놈을 더 잘 자라고 가슴을 턱! 턱! 때리는 거와 마찬가지거든 그게.


그러니 화두가 알 수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그 알 수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그것을 관조(觀照)를 할 줄 알아야 돼. 의심관(疑心觀).

그러다가 그 의심이 희미해져서 없어져 버리거나, 딴 생각[別念]이 들어오면 그때 ‘이뭣고?’하고 또 챙기는 거여. 없어지면 챙기고 또 끊어지면 챙기고, 이리 되어야 하거든. 그래서 그 관(觀)이, 의심관(疑心觀)이 그것이 공부해 나가는데 아주 중요한 것이여. 


이 관세음보살도 목이 터지도록 막 부를 것이 아니라 적당한 음성으로,

물론 여기서 목탁을 치면서 여러 사람이 정근할 때에는 자기도 소리를 내어서 같이 그 음성과 음성이, 내 음성과 다른 사람 음성이 혼연일치(致)가 되어서 전체 동참 대중이 한마음이 되어야 하거든.

자기 혼자 어디 가서 한 것 보단 여러 사람이 모여서, 여러 사람의 마음이 정성도 하나요, 그 정근하는 음성도 그 목탁에 맞춰서 하나가 되어야 하거든.


어떤 사람은 (음을 아주 낮게)‘관세음보살’하는데, 어떤 사람은 (음을 고음으로)‘관세음보살’ 이래 가지고 한 사람은 크게 하고 작게 하고, 한 사람은 더디게 하는데, 한 사람은 늘어져 쳐지게 하고 도저히 그래서는 안되거든.

목탁을 치면은 그 목탁 소리에 저 법당에 가득한 그 동참제자가 한마음 한뜻이 되고, 음성도 같이 이렇게 나가야 되거든.


우리가 남북통일을 바라는데 한 사람이 바란 것 보다는 전 국민이 한마음 한뜻이 되어 가지고 통일을 염원하고, 통일을 위해서 물질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이 혼연일치가 될 때에 우리의 생활도 달라지고 나라에 대한 충성도 달라지고 모든 면에서 다 나날이 새로워질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마침내 통일 성업도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칠일 동안의 기도도 모든 점에 있어서 전 동참재자가 한마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 한마음이 되게 하기 위해서 입재 법요식도 하고 또 시간도 맞추고 또 병법(秉法) 스님이 나서서 목탁도 치면서 같이 하고, 이것이 바로 전 동참제자로 하여금 한결같은 마음, 한덩어리가 되게 하기 위해서 그런 것입니다.


여러분이 기도를 구태여 추운 새벽같이 오시지 않고 집에서 해도 기도가 안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원근에서 그 바쁘고, 춥고 하는 데도 불구하고 나오신 것은 여러 사람이 같이 마음을 합해서 하는 데에서 몇백 배의 효과가 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래서 ‘관세음보살’ 부를 때에는 음성을 고르게 하되, 자기가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하는 자기의 그 음성을 자기가 관(觀)하면서 해야 돼.

생각은 딴 데 가 있고, 눈은 눈 앞으로 보는 데에 제멋대로 요리 갔다 저리 갔다 하고, 목소리만 크게 불렀지 조금도 그것이 경건성이 없이 부른 것은 그 목만 쉬었지 정말 기도의 참된 경계에 들어가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목소리를 참 경건하고 엄숙한 저 뱃속에서 부터서 울려 나오는 그 정성스러운 음성 소리로 해야 하거든. 그래 가지고 자기의 목소리를 자기가 관(觀) 해.


다른 사람 목소리를 들을 것이 아니고 ‘아이고, 저 사람 목소리도 되게 크다’ 다른 사람 목소리를 듣지 말고, 자기의 음성을 들어야 되요.

자기의 음성을 들으면서 ‘관세음보살’하면 눈을 떴으되 딴 것이 보이지를 않고, 귀가 열렸으되 다른 소리가 들리지를 않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일주일을 한결같이 한다면 가장 여법(如法)한 기도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목탁은 너무 늘어지게 쳐도 힘이 들고 그렇다고 해서 너무 빨리 쳐도 숨이 가빠서 따라갈 수가 없고, 그런데 처음에는 느릿느릿 쳐도 점점 10분, 20분, 30분 이렇게 해 가다보면 열기가 올라가지고 약간은 빨라질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지나치게 빨리 하는 것은 너무 숨이 가쁘고 그러기 때문에 될 수 있으면 처음이나 중간이나 끝이 대체적으로 한결같은 것이 좋은데, 하다보면 좀 빨라져요.


그렇게 해서 하여간 일주일 동안을 내가 법당에 올라와서 참석은 안 했지만 계속해서 나도 그 기도에 참석을 했고, 기도 정근하는 소리와 목탁 소리를 계속 나도 거기에 마음을 합해 왔습니다. 그래서 그 동안에 기도가 얼마만큼 정성스럽게 잘 진행이 되었는가를 잘 알고 있습니다.  


이번에 기도에 동참하신 분은 반드시 크고, 작은 여러분 각자의 소원이 성취가 되실 것이고, 또 그런 유루의 복은 말할 것도 없고, 나아가서 무루의 대원(大願)까지 연결이 되어서 기도 성취는 정말 원만히 성취가 되시리라고 나는 확신(信)을 합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확신을 하십시오. 그 원이 빨리 이루어지고 더디 이루어지고 하는 차이는 있을지언정, 확신한 사람에게는 반드시 그 목적이 달성이 되는 것입니다. 


앞으로 또 정월 대보름이 한 오륙일 남았습니다. 대보름에 해제 법요식과 백일기도 회향 법회가 있습니다. 그때까지 계속해서 경건한 마음으로 기도하시는 분은 기도를 하시고 또 참선기도 하시는 분은 참선을 열심히 하셔서 백일기도 회향 때 또 해제 법회도 참석을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21분15초~42분17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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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조화무사부사력~’ ; [선문염송(禪門拈頌)] (혜심 지음) 제11권 421칙 ‘백수(栢樹)’ 진정문(眞淨文) 게송 참고.

*부사의(不思議) ; 불가사의(不可思議). 불보살의 해탈, 지혜, 신통력이 헤아릴 수 없다는 말.

*불가사의(不可思議)말로 표현하거나 마음으로 생각할 수 없는 오묘한 이치 또는 가르침을 뜻하며,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놀라운 상태를 일컫기도 한다.

*세한(歲寒) ;  전후  추위라는 으로 심한 한겨울 추위 이르는 .

*적나라(裸)하다(실상이나 감정)있는 그대로  드러나 더이상 숨김 없다.

*정근(精勤) ; ①쉬거나 게으름 피우지 않고 이나 공부 아주 부지런히 노력하는 것. 힘써 일하는 것. ②기도를 할 때 별념(別念)이 없이 일심으로 불보살의 명호를 염불하는 것.

*자고(自古)로로부터 내려오면서.

*위법망구(爲法忘軀) ; 법(法, 진리)를 구하기 위해[爲] 몸[軀] 돌보는 것을 잊는다[忘].

*퇴타(退墮 물러날 퇴,떨어질·게으를 타) ; 어떤 경지로부터 물러나 되돌아 오는 것. 퇴전(退轉)이라고도 한다.

*회향(廻向) ; 회전취향(回轉趣向)의 뜻. ①방향을 바꾸어 향하다. ②자신이 쌓은 공덕을 다른 이에게 돌려 이익을 주려하거나 그 공덕을 깨달음으로 향하게 함. ③자신이 지은 공덕을 다른 중생에게 베풀어 그 중생과 함께 정토에 태어나기를 원함.

*이뭣고(是甚麼) ; 「이뭣고」 화두는 천 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를 찾는 것이다.

*(게송) ‘송백천년취~’ ; [선문염송(禪門拈頌)] (혜심 지음) 제11권 421칙 ‘백수(栢樹)’ 묘지곽(妙智廓) 게송 참고.

*모란(牡丹)작약과의 낙엽 활엽 관목높이는 2미터 정도이고 가지는 굵고 이 없으며은 크다.

늦봄에 붉고  이 피는데 꽃빛은 보통 붉으나 개량 품종에 따라 흰색붉은 보라색검은 자주색누런복숭앗빛을  흰색 따위의 여러가지가 있다.

*목단(牧丹) ; 모란(牡丹).

*무루법(無漏法) ; 번뇌의 더러움에 물들지 않은 마음 상태, 또는 그러한 세계. 번뇌와 망상이 소멸된 상태. 분별을 일으키지 않는 마음 상태. 사제(四諦) 가운데 깨달음의 결과인 멸제(滅諦)와 그 원인인 도제(道諦)에 해당하는 모든 현상.

*유루복(有漏福) ; 평범한 범부 중생이 지은 복(福)—부귀영화, 명예, 권리, 오욕락 따위의 복으로, 유루(有漏)—번뇌 또는 고를 더욱 증장시키는—의 복이어서 한도(度)가 있어 영원성이 없고 영원히 믿을 것이 못된다.

하늘에다 쏘아 올린 화살이 아무리 힘이 센 장사가 활을 당겨서 활을 쐈다 하드라도 올라갈 만큼 올라가면 결국은 다시 땅으로 떨어지고 마는 것처럼, 아무리 큰 복을 쌓는다 하드라도 그 복이 인천(人天)에서 제일가는 부자가 된다 하드라도 자기가 지은 복만큼 다 받아버리면 다시 또 타락하게 된다.

그래서 옛날 도인들은 인간 세상의 그 유루복(有漏福)이라 하는 것은 그 복을 얻으면서 죄를 짓고 또 얻어가지고 누리면서 죄를 짓고, 또 그 얻었던 것을 결국은 다 없애면서 그 죄를 짓는다. 그래서 『인간의 유루복은 삼생(三生)의 원수다』 이렇게 표현을 한 것이다.


그러나 세상을 살아가려면 유루복도 있기는 있어야 하므로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을 해서 구해야 하고,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을 해서 얻은 복은 그래도 나를 그렇게까지 큰 죄를 짓지 않게 하고, 언젠가 떠나더라도 나를 그렇게 크게 해롭게는 하지 않고 곱게 떠나는 것이다.

유루복이라도 좋은 방법으로 구하고 보시(布施)와 같은 또 좋은 방향으로 잘 사용을 하는데, 보시도 무주상(無住相) 보시를 해야 같은 재보시(財布施)를 해도 결과로 돌아오는 복은 한량이 없다.

참선하는 것이 바로 나를 무심(無心)한 상태로 이끌게 만들고, 무심한 상태에서 재보시, 법보시, 무외보시(無畏布施)를 하면 그것이 바로 무주상 보시가 되는 것이어서, 무주상(無住相)으로 하면 그것이 무루복과 연결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항상 참선하는 마음으로 살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돈도 벌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보시도 한다면, 유루복과 무루복을 겸해서 닦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No.565) - 1996년 설날통알 및 설날차례(1996.02.19)에서.

유루복은 삼생(三生)의 원수다. 왜 그러냐?
유루복은 복을 짓느라고 죄를 지으니 그것 때문에 내가 삼악도(三惡道)에 가게 되니까 그래서 그 유루복은 원수이고, 또 하나는 지어놓은 복을 그 놈을 지키고 사용하느라고 또 죄를 짓게 되니까 그래서 또 원수고, 마지막에는 언젠가는 유루복은 나의 몸과 마음과 가정을 갖다가 갈기갈기 짓밟고 찢어 놓고서 떠나기 때문에 또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유루복일망정, 유루복이 없어갖고는 정말 세상을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유루복이 삼생의 원수라 하더라도 그것이 없어갖고는 당장 어찌 해 볼 도리도 없고, 사람노릇 할 수도 없고, 생활도 할 수도 없고, 자식교육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유루복도 있기는 있어야 하는데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을 해서 구해야-힘들고 일확천금(一攫千金)은 안 되지만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을 해서 얻은 복은 그래도 나를 그렇게까지 큰 죄를 짓지 않게 하고, 언젠가 떠나더라도 나를 그렇게 크게 해롭게는 하지 않고 곱게 떠나는 것입니다.
부당한 방법으로 억지로 남을 해롭게 하고, 나라의 법을 어기면서까지 무리한 방법으로 취득을 해 놓으면 그것은 머지않아서 큰 재앙을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루복이라도 좋은 방법으로 구하고 또 좋은 방향으로 잘 사용을 하는데, 그것을 사용을 할 때에는 보시를 하는데, 무주상(無住相) 보시를 해야 같은 재보시(財布施)를 해도 결과로 돌아오는 복은 한량이 없는 것이고.

남에게 금전이나 어떤 재산을 보시하면서 내가 이것을 했다고, ‘너한테 보시를 했으니 나한테 너는 응당 고맙게 생각해야 하고, 나한테 그 은혜를 갚아야 한다.’ 그래 가지고 그 과보(果報)를 바래.
공투세를 해 가지고 과보를 바라면 그것이 유주상(有住相)의 보시가 되어서 상대방에 정신적으로 많은 부담감을 주어가지고, 내것 보시하고서 주고받는 사이가 서먹하게 되고, 나중에는 결국 원수가 되는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시는 하되 무주상(無住相)으로 해야 한다.

무루복(無漏福)은 어떻게 짓느냐? 물론 재보시, 법보시, 무외보시(無畏布施)를 하되, 무주상(無住相)으로 하면 그것이 무루복과 연결이 되고,
그 무루복을 참으로 더 훌륭하게 크게 깊게 심으려면 우리 자신이 항상 정법을 믿고, 최상승법에 입각해서 참선(參禪)을 열심히 함으로써 참선하는 것이 바로 나를 무심(無心)한 상태로 이끌게 만들고, 무심한 상태에서 보시를 하면 그것이 바로 무주상 보시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항상 참선하는 마음으로 살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돈도 벌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보시도 한다면 유루복과 무루복을 겸해서 닦게 되기 때문에 우리는 살아서부터 도솔천 내원궁이나 극락세계에 갈 수 밖에 없는 그러한 복을 심고 종자(種子)를 심기 때문에, 우리는 도솔천 내원궁에 가는 것은 걱정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무루복(無漏福) ; 번뇌가 없는 더러움이 없는 복. 영원히 끝장이 나지를 않고 아무리 쓰고 또 써도 바닥이 나지를 않고 다할 날이 없는 복(福) 그것이 무루복입니다.
무루복이라 하는 것은 참선법(參禪法)에 의해서 내가 내 마음을 닦아 가지고 생사해탈하는 이것만이 영원히 생사를 면하는 무루복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참선하는 마음으로 살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돈도 벌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보시하여, 무루복(無漏福)과 유루복(有漏福)을 겸해서 닦아야, 남도 좋고 나도 행복할 수 있는 길을 가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게송(偈頌) ; 시(詩), 게(偈)와 송(頌) 모두 불교의 가르침을 싯구로 나타낸 것.

*업장(業障) ; 전생(前生)이나 금생(今生)에 행동•말•마음(신구의,身口意)으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이 세상에서 장애(障礙)가 생기는 것.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생사윤회(生死輪廻) ; 육도윤회(六途輪廻). 선악(善惡)의 응보(應報)로 육도(六途-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의 고락(苦樂)을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것.

*저력(底力)으로 간직하고 있는 밑바탕 든든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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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祈禱) ; 불보살(佛菩薩)의 가피(加被, 중생을 이롭게 하는 불보살의 자비)를 받들어 재앙을 피하고, 복(福)을 더하도록 기도하는 것.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주력(呪力) ; 진언(眞言)·다라니(陀羅尼)로 하는 기도. 진언(眞言)·다라니(陀羅尼)의 효과.

*(게송) ‘만리장공우제시~’ ; [선문염송(禪門拈頌)] (혜심 지음) 제11권 421칙 ‘백수(栢樹)’ 불감근(佛鑑勤) 게송 참고.

*본성(本性) ; 상주불변한 절대의 진실성. 본래의 모습. 본체. 불성(佛性)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 ; 비로자나(毘盧遮那)는 vairocana의 음사(音寫). 부처님의 몸에서 나오는 빛과 지혜의 빛이 세상을 두루 비추어 가득하다(光明遍照,遍一切處,日)는 뜻.

①진리 그 자체인 법신(法身)을 형상화한 것. 비로자나 법신불(毘盧遮那 法身佛)

②대일여래(大日如來)와 같음.

*일념(一念) ; 

*번뇌(煩惱) : 망념(妄念)이라고도 하는데, 몸과 마음을 괴롭히고 어지럽히는 정신작용의 총칭.

*성성적적(惺惺寂寂) ; 정신이 고요하면서도 깨끗하고 또록또록 한 상태.

*현전(現前) ; 앞에 나타나 있음.

*딴 생각 ; 별념(別念). [몽산법어] (용화선원刊) 박산무이선사선경어(博山無異禪師禪警語)에서.

“做工夫호대  着不得一絲毫別念이니  行住坐臥에  單單只提起本叅話頭하야  發起疑情하야 憤然要討箇下落이니라.  若有絲毫別念하면  古所謂雜毒이  入心하야  傷乎慧命이라하니  學者는 不可不謹이니라”

“공부를 짓되 털끝만치라도 딴 생각[別念]을 두지 말지니, 가고 멈추고 앉고 누우매 다못 본참화두(本叅話頭)만을 들어서 의정을 일으켜 분연히 끝장 보기를 요구할 것이니라.

만약 털끝만치라도 딴 생각[別念]이 있으면 고인이 말한 바 「잡독(雜毒)이 마음에 들어감에 혜명(慧命)을 상한다」하니, 학자는 가히 삼가지 않을 수 없느니라.”


“余云別念은  非但世間法이라  除究心之外에  佛法中一切好事라도  悉名別念이니라.  又豈但佛法中事리요  於心體上에  取之捨之  執之化之가  悉別念矣니라”

“내가 말한 딴 생각[別念]은 비단 세간법만 아니라 마음을 궁구하는 일 외에는, 불법(佛法)중 온갖 좋은 일이라도 다 딴 생각[別念]이라 이름하느니라.

또 어찌 다만 불법중 일뿐이리오?  심체상(心體上)에 취하거나[取], 버리거나[捨], 집착하거나[執], 변화하는[化] 것이 모두 다 딴 생각[別念]이니라.” (p164-166)

*혼연일치(致)완전히 하나 일치함.

*병법(秉法 잡을 병,법 법)사찰에서 의식의 진행을 담당하는 직책, 또는 그 일을 맡은 스님.

*여법(如法 같을·같게 할·따를·좇을 여, 부처님의 가르침·불도佛道 법) ; 부처님의 가르침에 맞음.

*확신( 굳을 확,믿을 신) ;  믿음또는 그러 신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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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