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두(공안)2014. 8. 22. 08:19

§(410) (게송)조주공안몰심사  은산철벽백부지  의래의거의무간  고목개화만고지.

 

**송담스님(No.410) - 1990년 2월 첫째일요법회, 신수기도회향, 입춘법회 법문에서.(용410)


약 3분.

 


조주공안몰심사(趙州公案沒心思)하니  은산철벽백부지(銀山鐵壁百不知)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의래의거의무간(疑來疑去疑無間)하면  고목개화만고지(枯木開花滿故枝)니라
나무~아미타불~

조주공안몰심사(趙州公案沒心思)하니, 조주의 공안 ‘무자(無字)’나,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나 그 화두, ‘이뭣고?’도 역시 마찬가지여. 그 화두 하나를 터억 거각(擧却)하면 마음에 모든 생각이 거기서 다 끊어져버려.

은산철벽백부지(銀山鐵壁百不知)여. 은(銀)으로 만든 산이요, 쇠로 만든 벽에 탁! 사방이 꽉 맥힌 것처럼 아무 것도 사량분별(思量分別)이 거기서 있을 수가 없어. 앞뒷이 다 끊어져 버렸거든.

알 수 없는, 의래의거의무간(疑來疑去疑無間)하면, 의심해 가고 의심해 와 가지고는 의심에 사이가 없어, 의심에 간단(間斷)이 없으면,
그래가지고 화두가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고 순일무잡(純一無雜)해서 화두를 들지 않아도 들려 있고 그렇게 되면,

고목(枯木)에 꽃이 피어서 가지마다 꽃이 활짝 피듯이(枯木開花滿故枝),
생사(生死)의 대해(大海)에서 생사를 해탈(解脫)하는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할 것이다.(74분53초~77분53초)(끝)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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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조주공안몰심사~’ ; [소요당집(逍遙堂集)] ‘증도희선인(贈道熙禪人)’ 게송 참고.
*무자(無字),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 이뭣고 ; 분류 ‘화두(공안)’ 참고.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화두는 「말」이란 뜻인데, 두(頭)는 거저 들어가는 어조사다。「곡식을 보고 땅을 알고, 말을 듣고 사람을 안다」는 옛말이 있다. 도(道)를 판단하고 이치를 가르치는 법말 • 참말을 화두라고 한다.
또는 공안이라고 하는 것은 「관청의 공문서」란 뜻인데, 천하의 정사를 바르게 하려면, 반드시 법이 있어야 하고 법을 밝히려면 공문이 필요하다.
부처님이나 조사들의 기연(機緣), 다시 말하면 진리를 똑바로 가르친 말이나 몸짓이나 또는 어떠한 방법을 막론하고 그것은 모두 이치세계의 바른 법령(法令)인 것이다.그러므로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거각(擧却 들 거,어조사 각) ; 화두를 든다.
*사량(思量) ; 생각하여 헤아림. 사유하고 판단함.
*분별(分別) ; ①대상을 차별하여 거기에 이름이나 의미를 부여함. 대상을 차별하여 허망한 인식을 일으키는 인식 주관의 작용. ②구별함. ③그릇된 생각.
*의단(疑團 의심할 의, 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독로(獨露 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홀로(獨) 드러나다(露).
*순일무잡(純一無雜 순수할 순,하나 일,없을 무,섞일 잡) ; 대상 그 자체가 순일(純一)해 전혀 이질적인 잡것의 섞임(雜)이 없음(無).
*고목(枯木) ; 말라 죽어 있는 나무.
*생사대해(生死大海) ; 중생이 태어나서 죽어 윤회하는 영역으로서의 세개의 세계, 삼계(三界-욕계欲界•색계色界•무색계無色界)를—중생이 생사유전하는 세계를 '큰 바다(大海)'에 비유함.
*해탈(解脫) : [범] Vimoksa ; Vimukta ; mukti  [파] Vimokha ; Vimutta ; Vimutti  음을 따라 비목차(毘木叉) • 비목저(毘木底) • 목저(木底)라고 한다.
모든 번뇌의 속박을 끊어 버리고 온갖 고통에서 벗어난다는 뜻이므로, 도탈(度脫) 혹은 자유자재(自由自在)라고도 한다。또는 열반(涅槃)의 딴 이름으로도 쓰인다. 열반은 불교 구경(究竟)의 이상으로써 여러가지 속박에서 벗어난 상태이므로 곧 해탈이라고도 할 수 있다.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Posted by 닥공닥정
화두(공안)2014. 7. 29. 15:52

§(337) 화두 - 본참화두(本參話頭) / 현중현(玄中玄) 도리 - 인가(印可) - 선지식 / 대중처소, 선지식을 여의지 말고 같이 공부해야.

화두의 개념은 ‘이론으로 풀 수 없는 어떠헌 과제’인 것입니다. 문제.


현중현(玄中玄) 도리에 있어서는 아무렇게나 일러도 맞지를 않습니다. 그 공안에 여지없이 이(理)와 사(事)에 탁! 맞아떨어지게 일러야 하는 것입니다.
이 현중현 도리는 선지식이 아니면은 그것을 가려내지를 못해.


좋은 도반이 있는 대중처소(大衆處所)를 여의지 말 것이며, 바르게 지도해 주는 선지식을 여의지 아니해야 바른 깨달음을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송담스님(No.337)-정묘년 칠석차례(87.07.07.음)에서. (용337)


약20분.

 


이 화두라 하는 것은 다른 말로는 공안(公案)이라고도 허는데, '말씀 화(話)자, 머리 두(頭)자' '말머리'다 그러는데,  사실은 '말머리'가 아니라 '말'이라, '머리 두(頭)자'는 어조사(語助辭)로 붙은 것이고 말씀 화(話)자-화(話), 말이라 그말인데,

무엇을 두고 허는 말이냐 허면은, 「이 무엇고?」, 시심마(是甚麽) 또는 조주무자(趙州無字)라든지,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라든지, 마삼근(麻三斤)이라든지, 또는 판치생모(板齒生毛)라든지, 이러헌 것을 갖다가 화두라 그러는데,

첫째 그 화두의 개념은 ‘이론으로 풀 수 없는 어떠헌 과제’인 것입니다. 문제.
그 문제는—분명히 그 문제를 깨달라야 되는데, 세속의 어떠헌 문제는 그것이 국어 문제가 되었건, 역사 문제가 되었건 또는 수학 문제가 되었건,
그런 문제는 자기가 알고 있는 모든 지식을 총동원 해 가지고, 지식과 상식과 자기가 가지고 있는 모든 실력을 총동원 해 이렇게도 따져보고 저렇게도 따져보고 해 가지고 결국은 탁! 그 답을 알아내는 것인데,

참선허는데 있어서 이 화두는 그동안에 자기가 경을 읽고 사회의 어떤 책을 읽고, 그래 가지고 알고 있는 모든 지식과 상식을 동원해 가지고 따져서 아는 것이 아니어요.

무조건 하고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가령 판치생모 화두를 가지고 공부를 허시는 분은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이렇게, 아침부터 저녁까지 오늘도 그렇게 허고 내일도 그렇게 허고,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이렇게 공부를 참구(參究)를 해 나가는 거고,

또 시심마(是甚麽) 「이뭣고?」 화두를 가지고 공부를 허신 분은 「이뭣고?」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뭣고?」 그렇게 허다가, 좀더 가깝게 간절히 다그쳐 해 나갈려면 「'이뭣고'허는 이놈이 뭣고?」 이렇게도 허고,
거기서 더 「이 '이뭣고?'헐 때 '이'허는 이놈이 뭣고?」 이렇게 참구를 해 가는데, 해 갈수록 꽉 맥혀서 알 수가 없어. 알 수 없는 그 의심 「이뭣고~?」 이렇게 해 나가는 것입니다.

이 「이뭣고?」라든지 또는 판치생모(板齒生毛)라든지 또는 무자(無字)라든지 이런 것을 통틀어서 화두(話頭)라 하는 것이여. 또 다른 이름으로는 공안(公案)이라 허기도 하는 것이다.

‘화두가 무엇이냐?’하면은, 「이뭣고?」화두를 탄 사람은 ‘「이뭣고?」입니다’ 또는 한문으로 말헐 때에는 ‘시심마(是甚麽)입니다.’ 그렇게 대답을 허는 거고,
또 ‘판치생모’화두를 탄 분은 ‘화두가 무엇이냐?’ 그러면 ‘판치생모(板齒生毛)입니다.’ 이렇게 대답을 허고,
또 ‘정전백수자’나 또는 ‘마삼근’화두를 타신 분은 ‘화두가 무엇이냐?’허면 ‘마삼근(麻三斤)입니다.’ 또는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입니다.’ 이렇게 대답을 헐 수가 있는 것입니다.

어느 화두를 허든지-어느 화두가 좋고 나쁘고 헌 것은 없고, 자기가 믿는 선지식(善知識)으로부터 어떤 한 화두를 탔으면 공부가 잘되거나 안 되거나 그것도 따질 것이 없고, 오직 그 한번 탄 그 화두 하나만을 꾸준히 참구를 해 가는 것입니다.

「이뭣고?」 화두를 탔는데 허다가 보면 「이뭣고?」가 잘 안되고, 조실스님 녹음 법문을 듣다가 「판치생모」화두에 대한 말씀을 듣고서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그렇게 해 보니까 저절로 의심이 잘 난 것같이 느껴진다 그말이여.

『에이! 「이뭣고?」는 안 되니까 그것 그만 두어버리고 판치생모를 해야겠다.』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하루를 해 봐도 잘되고 이틀을 해 봐도 잘되고, ‘이제 이것으로 결정을 해야것다.’

자기 나름대로 그렇게 마음을 먹고서 한 달·두 달·석 달 해보니까, 아! 다시 또 판치생모가 잘 안되고,
‘이뭣고?’ 또 「이뭣고?」를 허니까 또 공부가 잘된 것같이 느껴진다. 『에이, 그놈의 거 「이뭣고?」를 인자 해야 것다.』 ‘이뭣고?’

「이뭣고?」를 헐라고 마음을 먹으면 판치생모가 생각이 나고, 판치생모를 가지고 해보면 「이뭣고?」가 생각이 나고, 아침에는 「이뭣고?」로 좀 해 보고, 저녁에는 판치생모 좀 해 보고, 이것 입맛이 없으면 비빔밥도 먹다가 또 물에 말아 먹다가 또 그것이 맛이 없으면 수제비도 떠먹다가 라면도 끓여 먹다가, 음식은 그럴 수가 있지만,
화두는 잘된다고 이놈으로 해 보고, 화두를 한 두서너 개를 가지고 입맛대로 요놈 갖고도 해보고 저놈 갖고... 그렇게 해 가지고서는 미륵불(彌勒佛)이 하생(下生)할 때까지 이 참선을 해도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허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속담에 ‘우물을 파되 한 우물을 파라.’
한 1미터나 2미터 파 봐도 물이 안 나오면 ‘에이! 그거’ 때려 묻어 버리고 저만큼 가서 또 파고, 또 몇 자 파 봐도 안 나오면 동쪽에 가서 파 보고, 또 한 길 파 봐도 안 나오면 서쪽에 가서 파고, 그 사람은 혹 물이 한 길이나 두 길 파서 물이 나와 봤자 그 물은 건수(乾水)입니다. 장마철에 꿀꿀꿀 나오니까 ‘에이! 인자 되었다’허고, 장마만 지면 흙탕물이 나오고 가뭄이 되면 물이 안 나온다 그말이여. 그까짓 놈의 물을 어디다 쓸 것이야 그말이여.

한 길 파서 안 나오면 두 길을 파고, 두 길을 파서 안 나오면 석 길·넉 길·다섯 길·여섯 길, 한 열 길 파고 들어가면은 암반이 나와서 ‘아이고 인자 틀렸다’ 그렇게 마음을 먹을 것이 아니라, 바위가 나오면 기계를 동원을 해 가지고 그 바위도 구녁을 뚫어라 그거거든.
바위를 한 길이고 두 길이고 파고 들어가면 물이 막 펑펑 쏟아지는데 그 물은 진짜 지하수거든. 가물어도 줄지도 않고 장마가 들어도 불어나지도 않는 그러헌 물이라야 믿고 먹을 수가 있다 그말이여.

이 참선도 조금 해 봐가지고 잘되고 ‘아아! 이것이로구나’ 그러고는,
‘「이뭣고?」란 게 다른 것이 아니라 바로 이 말허는 놈이고, 성내는 놈이고, 골내는 놈이 이놈이 바로 「이뭣고?」고, 이놈이 바로 불성이고, 이놈이 바로 부처님이지 이놈 말고 무슨 부처가 있어?’
‘에이 이까짓 놈의 거, 깨닫기는 무엇을 따로 깨달을 것이 있어? 본래 깨달을 것도 없고 미(迷)할 것도 없고, 깨달을 부처도 없고 무슨 제도헐 중생도 없다고 그런 법문을 들었는데, 바로 이놈이다. 누가 나보고 욕허면 성내고, 칭찬허면 웃고, 이놈 내놓고 부처가 어디가 있어? 나도 한 소식 분명히 했다. 그러니 무슨 배가 고프면 밥 먹고, 졸리면 잠자고, 무슨 놈의 용맹정진을 따로 허며 참선을 다해. 말키 그거 중생을 속이는 놈의 소리고 미친 놈의 소리다. 내가 여태까지 속은 것이 분하다.’

그래 가지고 막 먹고 싶으면 먹고, 자고 싶으면 자고 맘대로 그래. 참 기가 맥히지. 그래 가지고 그냥 닥치는 대로 그저 욕도 허고 싶으면 허고, 그저 파계(破戒)도 허고 싶으면 허고, 그저 먹고 싶은 대로 허고, 그저 먹고 싶으면 돼야지도 잡아먹고 닭도 잡아먹고 구렁이도 잡아먹고 닥치는 대로 허고,
행동도 그저 닥치는 대로 동서남북에 앵기는 대로 그저 남의 수박도 따다 먹고, 그저 지나가다 호박도 있으면 그냥 따다가 그냥 시장갈 것도 없이 그냥 장바구니에 담아 가지고 오고, 가다가 그저 신도 떨어지면 남의 신도 신어 버리고 닥치는 대로 그렇게 지내니,
그 사람이 인물도 좋고, 구변(口辯)도 좋아서 말도 잘 허고, 학식도 있어서 모르는 것이 없고, 행동을 허면은 그냥 무애도인(無碍道人)이여. 맥힘이 없어. 아따! 그 사람, 진짜 도인은 그분이 도인이다.

누가 무슨 공안을 묻더라도 그냥 고함을 질러 버리고, 가지고 있는 몽둥이로 대갈통을 때려 버리고, 진짜 허는 행동이 맥힘이 없고 걸림이 없어. 어디를 가나 그분은 맥힘이 없고 걸림이 없으니까 욕심이 없어.
돈도 그저 주면 쓰고 그냥 백만 원을 주면 백만 원을 그냥 휘딱 먹어 써 버리고, 택시도 타고 가다가 운전사가 만 원만 달라고 허면 ‘옜다! 여기 있다’ 이만 원 더 줘 버리고. 잘못 보면은 ‘무애 도인이고 맥힘이 없고 이 세상에 도인은 그분이 도인이다.’ 이렇게 생각헐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부처님께서는 그러헌 법을 가르키시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공안(公案)이 필요헌 것입니다.

이 체중현(體中玄)으로 보면, 공(空)의 이치에서 보면 어떠헌 공안을 묻되 할(喝)을 해 버려도 맞고, 방(棒)을 해 버려도 맞고, 양구(良久)를 해 버려도 맞고, 닥치는 대로 막 잡아서 아무것이라도 일러도 다 맞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현중현(玄中玄) 도리에 있어서는 아무렇게나 일러도 맞지를 않습니다. 그 공안에 여지없이 이(理)와 사(事)에 탁! 맞아떨어지게 일러야 하는 것입니다.

참선 한 철, 두 철 열심히 허다 보면 어지간한 사람이면 다 그 공의 이치를 보게 됩니다.
그 공의 이치, 그게 체중현(體中玄)인데, ‘체(體) 가운데에 현(玄)’-체의 이치를 보게 되면 그것이 바로 공(空)인데, 공의 이치를 보게 되면 경(經)을 봐도 모두가 그 소식입니다. 조사어록을 봐도 모두가 다 그 도리고, 조금도 맥힐 것이 없어. 환하고.

그런데 현중현(玄中玄)에서는 그렇지를 않거든.
체(體)의 이치를 본, 겨우 그 이치만 보고 현중현을 못 본 사람은 된장이나 똥이나 마찬가지여. 선과 악이 마찬가지고, 크고 작은 것이 마찬가지고, 부처와 중생이 다를 것이 없고, 내 마누라나 형수가 다 똑같고, 그저 거지나 임금이 다 똑같고, 생과 사가 똑같고, 그러니 오직 쾌활하냐 그말이여.

그러나 그것 가지고서는 부처님과 조사가 인가(印可)를 허지를 않았습니다. 그것 가지고서는 진리를 바로 봤다고 헐 수가 없어. 그것은 바른 견성(見性)이 아니여.
그래서 조사(祖師)는 현중현이라고 허는 관문(關門)을 시설을 해 가지고, 현중현 도리를 보지를 못허면 바로 보았다고 인가를 헐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현중현 도리는 선지식이 아니면은 그것을 가려내지를 못해.

자기 혼자 선지식 없이 공부를 해서 깨달랐다고 허는 사람이 모두가 다 이 체중현 도리를 가지고 허는 것이고, 자기가 본 도리가 체중현 도리 밖에는 안 되기 때문에, 그 체중현 도리 밖에 못 본 사람헌테 어떤 학자가 와서 깨달랐다고 인가를 해 달라고 허면, 체중현 도리만 본 사람은 다 인가를 허게 됩니다.
체중현 도리 밖에 못 본 것을 깨달랐다고 인가를 받게 되면, 자기도 평생 동안 체중현 도리를 가지고 살아가는 거고 또 다른 후배들이 와서 물을 때에도 체중현 도리를 본 사람은 다 옳게 알았다고 인가를 허게 됩니다.

그래서 인가 받기는 참 쉽고 인가 허기는 쉽지만, 그 사람의 일생사가 무엇이 되며, 그 사람과 인연이 있는 학자들이 과연 어떻게 될 것이냐? 불법(佛法)은 바로 여기에서 파멸(破滅)이 되어가는 것입니다.

‘불’이라 허는 것은 인류 역사가 저 원시 시대(原始時代)로부터 석기 시대(石器時代)로 이렇게 해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가장 중요헌 발견이 ‘불’인데, 옛날에는 그 불씨를 굉장히 소중히 여겼어.

부싯돌을 쳐 가지고 불을 맨들기도 허고, 그런데 그 불씨를 없애지 아니 헐러고 참 깊이 잘 간직을 허고, 옛날에는 불씨를 남에게 주지 조차도 잘 안 헙니다. 그러면 복이 달아난다 해 가지고 안 주고, 그 불씨가 몇 대(代)를 물려가고 그러는데, 그 불이라는 것이 그렇게 소중헌데,
그 불을 잘못 가까이 허면은 화상을 입고 타 죽기도 허고 생명을 잃기도 허고 재산을 다 잃어버리기도 헙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 불을 멀리해서 잃어버리면 또 얼어죽습니다.
겨울에 연탄을 때건 또는 기름을 때건 또는 전기를 이용허건, 무엇을 이용허건 간에 그것은 열(熱)이여. 열이기 때문에 그것은 불인데, 그 불을 잘못허면 그 불로 인해서 생명을 잃고 재산을 손실허는 거고, 그 불을 잘 이용을 허면은 그 불로 인해서 자기의 생명을 유지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 불을 어떻게 잘 멀리허지도 아니허고 가까이허지도 아니허냐? 이것은 우리의 생명에 관계되는 일인 것입니다.

범부(凡夫)가 진공(眞空)의 이치, 그 이치를 잘못 보고 그놈에 집착을 허면, 그 공에 떨어지지 아니허고 거기서 바로 나아가 가지고 묘유(妙有) 이치를 깨닫지 못하면, 꽁꽁 얼어붙은 얼음에 얼어 가지고 죽는 것이 되는 거고,
바로 이 공의 이치에서 거기에 떨어지지 아니허고, 거기서 나아가 가지고 정말 현중현(玄中玄) 도리를 바로 봐야, 그것은 선지식이 아니면 그것은 가릴 수가 없는 것이여.

그래서 이 공부는 바른 눈을 가진 선지식의 지시 없이는, 혼자 토굴에 가 가지고 밤잠을 안 자고 일종(一種)을 허면서 또는 생식을 허면서 솔잎이나 약 뿌리를 먹으면서 용맹정진을 헌다 허드라도 기껏 잘 봐봤자 공의 이치를 보는 것이고, 잘못 보면 귀신같은 것이 붙어 가지고 헛소리를 허게 되고, 미친 소리를 허기 십상팔구인 것입니다. 몸뚱이가 병들지 아니허면 정신이 미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좋은 도반이 있는 대중처소(大衆處所)를 여의지 말 것이며, 바르게 지도해 주는 선지식을 여의지 아니해야 바른 깨달음을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도 『좋은 도반, 대중과 같이 공부허는 것은 도를 다 이룬 거나 마찬가지』라고 이렇게 말씀을 허신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16분45초~36분26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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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조사(語助辭) ; 한문에서, 실질적인 뜻은 없으면서 다른 글자의 보조로만 쓰이는 토. ‘焉’, ‘也’, ‘於’, ‘乎’ 따위가 있다.
*시심마(是甚麽), 조주무자(趙州無字),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 마삼근(麻三斤), 판치생모(板齒生毛) ; 분류 ‘화두(공안)’ 참고.
*참구(參究 헤아릴 참,궁구할 구) ①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드는 것. ②참선하여 화두(공안)을 꿰뚫어 밝히기 위해 집중함. 화두 의심을 깨뜨리기 위해 거기에 몰입함.
*선지식(善知識) ; 부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지도자. 좋은 벗.
*미륵불(彌勒佛) ; Maitreya. 번역하여 자씨(慈氏). 인도 바라나국의 바라문 출신으로 석가모니의 교화를 받고, 미래에 성불하리라는 수기를 받아, 도솔천에 올라 천인(天人)을 위해 설법•교화하고, 석가모니 입멸 후 56억 7천만 년을 지나 다시 이 사바세계에 하생(下生)하여 화림원(華林園) 안의 용화수(龍華樹) 아래서 성불(成佛)하고, 3회의 설법으로써 석가모니세존의 교화에 빠진 모든 중생을 제도한다고 한다.
석가모니세존의 업적을 돕는다는 뜻으로 보처(補悽)의 미륵이라 하며 현겁(現劫) 천 불의 제5불(佛).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말키 ; '말끔(조금도 남김없이 모두)'의 사투리.
*파계(破戒) ; 계(戒)를 받은 사람이 그 계율을 어김.
*무애(無碍) ; 막히거나 거칠 것이 없음.
*공안(公案) : 화두(話頭)。①정부 관청에서 확정한 법률안으로 백성이 준수해야 할 것。②선종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이것을 화두라고도 하는데 문헌에 오른 것만도 천 칠백이나 되며 황화취죽 앵음연어(黃花翠竹鶯吟燕語) — 누른 꽃, 푸른 대, 꾀꼬리 노래와 제비의 소리 등 — 자연현상도 낱낱이 공안 아님이 없다.
화두에 참구(叅句)와 참의(叅意)가 있다。이론적으로 따져 들어가는 것이 참의요 사구(死句) 참선이며, 말길 뜻길이 끊어져서 다만 그 언구만을 의심하는 것이 참구요 활구(活句) 참선이다.
*체중현(體中玄), 현중현(玄中玄) ; 임제 의현(臨濟義玄)선사가 학인을 제접하는 데 사용한 수단인 삼현(三玄-體中玄•句中玄•玄中玄)의 하나.
[참고] [三玄] 삼현
體中玄은  三世一念等이요  句中玄은  徑截言句等이요  玄中玄은  良久棒喝等이라
삼현 : 체 가운데 현(體中玄)은 삼세가 한 생각이라는 따위들이고, 구 가운데 현(句中玄)은 지름길 말들이며, 현 가운데 현(玄中玄)은 양구와 방망이와 할 같은 것들이다.
*삼현(三玄) : 임제 의현(臨濟義玄)선사가 학인을 제접하는 데 사용한 수단이다.
체중현(體中玄)은 진공(眞空)의 이치를 보는 것이라 학인이 이 이치를 보았다 하더라도 신위(信位)를 여의지 못했으므로 자유의 분(分)이 없다.
구중현(句中玄)은 뜻길이 없는 말로써 그 말에 걸리거나 막히지 않고 도리를 바로 봄을 말함.
현중현(玄中玄), 사(事)에 걸림이 없는 묘유(妙有) 곧 현중현(玄中玄)의 도리를 보아야 인가(印可)를 하는 것이다. 현중현을 용중현(用中玄)이라고도 한다. ---선가귀감(용화선원 刊) p207, p212 에서.
*이사(理事) ; ①깨달음의 진리와 차별 현상. ②본체와 차별 현상.
*인가(印可 도장 인,옳을•인정할 가) ; 스승이 제자의 깨달음을 인정함.
*조사(祖師) : ①1종1파의 선덕(先德)으로서 후세 사람들의 귀의 존경을 받는 스님。 보통은 1종1파를 세운 스님을 부르는 말。 ②선가에서는 달마스님을 말한다。 ③불심종(佛心宗)을 깨달아서 이를 전하는 행(行)과 해(解)가 상응(相應)하는 도인。
*관문(關門) ; ①다른 영역으로 나아가기 위하여 꼭 거쳐야 할 단계. 또는 중요한 고비. ②다른 지역으로 나아가는 통로가 되는 지점. ③지리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세워 지나가는 사람이나 물품을 조사하는 곳. ④국경이나 요새의 성문.
*범부(凡夫 무릇•보통 범,남편•사내 부) ; 번뇌(煩惱)에 얽매여 생사(生死)를 초월하지 못하는 사람. 이생(異生) 또는 이생범부(異生凡夫)라고도 한다.
*일종(一種) ; 일종식(一種食). 하루에 한 끼만 먹는 것.
*대중처소(大衆處所) ; 많은 승려가 모여 수행하는 절.

Posted by 닥공닥정
화두(공안)2013. 12. 12. 09:23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 무자(無字) / 판치생모(板齒生毛) / 마삼근(麻三斤) /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 / 만법귀일 일귀하처(萬法歸一 一歸何處) / 부모미생전 본래면목(父母未生前本來面目)

*이 무엇고(이뭣고 是甚麼 시심마,시삼마) : ‘이 무엇고? 화두’는 천 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 무엇고?」(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왔다



*무자(無字) : 화두. 어느 스님이 조주(趙州) 스님께 묻되 「개도 불성(佛性)이 있읍니까 없읍니까?」하니, 조주스님이 답하되 「무(無)」라 하시니 「준동함령(蠢動含靈)이 다 불성이 있는데 어째서 무(無)라고 했는고?」하는 참선할 때 참구(叅究)하는 천 칠백 공안 중의 하나.
[참고]  [언하대오(言下大悟)] (용화선원) p52~53 에서.
‘무자’ 화두하는 학자들이여, 조주 스님의 “무” 라고 하신 그 의지가 “무” 에 있는 것이 아니다.  기실(其實) 엉뚱한 곳에 있는 것이니 제발 조주 스님의 뜻을 찾으려고 애쓸지언정  ‘무자(無字)’에 떨어져서 광음을 헛되이 보내지 않기를 재삼 부탁하노라.
 이 ‘무자’ 화두 지어감에 좋은 비유 설화가 있으니 옛날 중국 당나라에 천하일색인 양귀비가 있었는데 당 현종의 애첩으로 궁성에 살고 있었다.
 이 양귀비와 정부 안록산은 서로가 보고 싶어 못 견딜 지경이었다.

    빈호소옥무타사(頻呼小玉無他事)라
    지요단랑인득성(只要檀郞認得聲)이로다

    자주 소옥이를 부르는 것은 다른 일이 아니라
    다못 낭군에게 소리를 알리고자 함이로다.

양귀비는 자기의 종인 소옥을 아무 할 일 없이 큰 소리로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자꾸 부른다.  왜 양귀비는 소옥을 그렇게 부를까?  다만 낭군에게 자기의 음성을 들리게 하기 위함이다.
 양귀비의 뜻이 소옥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소옥을 통해서 자기의 음성을 안록산에게 알리는데 본 뜻이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무자’ 화두는 ‘무자’ 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무” 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에게 뜻이 있는 것이니, ‘무’라는 말을 천착(穿鑿)하지 말고 “무” 라 말씀하신 조주 스님의 의지를 참구할지니라.


*판치생모(板齒生毛) ; 화두(공안)의 하나.
어떤 스님이 조주 스님께 묻되, “어떤 것이 ‘조사서래의’입니까?  (如何是祖師西來意)”하니 답하시되,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하셨다. 즉, 「어떤 것이 달마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판치에 털이 났느니라.」라고 하는 화두.
그러면 조주 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을까?  이 화두도 ‘무자’ 화두와 같이 ‘판치생모’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판치생모” 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께 뜻이 있는 것이니, 학자들은 꼭 조주 스님의 뜻을 참구해야 한다. “어째서 ‘무’라 했는고?” 하는 것과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하는 것은 조금도 다름이 없는 것이다.-[언하대오(言下大悟)] (용화선원) p53 에서.


*마삼근(麻三斤) : 화두의 하나。『어떤 것이 부처님입니까?』하는 물음에 대하여, 운문종(雲門宗)의 동산(洞山) 수초선사(守初禪師)가 대답하기를 『마 삼근(삼 서근)이니라』하였다.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 ; 화두의 하나. 조주선사(趙州禪師, 778-897)에게 한 스님이 와서 묻기를, “어떤 것이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 (如何是祖師西來意)”라고 했을 때, 조주선사가 대답하기를, “뜰 앞에 있는 잣나무니라”라고 한 데서 유래한 화두이다.


*만법귀일 일귀하처(萬法歸一 一歸何處) ; 화두(공안)의 하나.
어떤 스님이 조주에게 물었다. “만법(萬法)이 하나로 돌아가는데 그 하나는 어느 곳으로 돌아갑니까?”
조주는 말했다. “내가 청주에 있을 때 베 장삼을 하나 만들었는데, 무게가 일곱 근이었다.”
僧問。萬法歸一一歸何所。師云。老僧在青州作得一領布衫重七斤。[전등록(傳燈錄) 제10권. 조주선사.
僧問趙州 '萬法歸一一歸何處'  州云 '我在靑州作一領布衫重七斤' [벽암록(碧巖錄)] 제45칙.


*부모미생전 본래면목(父母未生前本來面目) : 위산(潙山) 선사가 향엄(香嚴)에게 이르기를 『평생에 듣고 본 것을 떠나서, 네가 세상에 나오기 전 너의 본래 면목에 대하여 한마디 말하여 보라』하는데,
이리 생각하고 저리 따져서 몇 마디 대답하여 보았으나 모두 아니라고만 하는 것이다.

자기 방에 가서 가지고 다니던 여러 가지 책들을 내어놓고 아무리 찾아보았으나, 듣고 본 것을 여의고는 말할 수가 없으므로 탄식하기를 『그림의 떡으로는 배를 불릴 수 없다』하고 다시 위산에게 가르쳐 주기를 원하였으나,
『내가 말하는 것은 나의 소견이지 너에게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하기에 모든 서적을 다 불살라 버리고, 다시는 불법도 배우려 할 것 없이 되는 대로 지내기로 하고, 울면서 위산을 하직하여 남양(南陽)에 가서 혜충(慧忠)국사의 유적을 보고 거기에 있었다.

하루는 그 산중에서 큰 역사가 있어서 그도 같이 일하는데, 돌멩이를 주워 던진 것이 대숲에 맞아서 「딱」하는 소리를 듣고 크게 깨치고 나서, 목욕하고 향을 사르고 멀리 위산을 바라보면서 절하고 게송을 지었다.
『한 번 치는데 모두 잊었네。더 다시 애써 닦을 것 없네......(一擊忘所知  更不假修治......)』그리고 곧 위산에 가서 법을 받고는, 등주(鄧州)의 향엄사에서 교화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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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두(공안)2013. 11. 28. 11:31

§(264) 화두(話頭)란 무엇인가? / < ‘유리병 속에 들어있는 오리를 꺼내는’ 화두>

 

**송담스님(No.264) - 1985년 4월 첫째일요법회(91분)에서. (용264)

 

약 9분.

 


 이렇게 해서 앉는 자세와 단전호흡을 익힌 다음에는, 정식으로 화두(話頭)를 타서-그 화두라 하는 것은 여러분 잘 아시겠지만, 혹 새로 오신 분도 있고 또 나오신 지가 얼마 안 되는 분이 있어서 간단히 설명을 해드리겠습니다.

화두(話頭)라 하는 것은 공안(公案)이라고도 하는데, 이 화두라 하는 것은 어떠헌 공부해 나갈 때에 우리의 정신을 갖다가 집중하는데 필요한 어떤 문제라고, 과제라고 이렇게 쉽게 얘기를 할 수가 있습니다.
막연허게 이렇게 앉았을 수가 없으니까 무엇인가 생각을 해야 하는데, 그 생각허는 문제인 것입니다.

예를 들자면, 이러헌 화두라 하는 것이 문헌상에 오른 것만 해도 1700개나 되는데, 이 천 칠백 가운데에 가장 우리가 알아듣기 쉬운 한 문제를 말씀을 허겠습니다.

 



< ‘유리병 속에 들어있는 오리를 꺼내는’ 화두>

유리병이 있는데, 그 유리병이 주둥이는 조그만 하고 몸뚱이는 툭 퍼져서 크게 되야 있는 그런 유리병이 있는데, 그 유리병 속에다가 오리 새끼 한 마리를 집어넣었습니다.


오리 새끼가 조그만 하니까 그 주둥이로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거기에다 물도 넣어주고 먹이도 넣어주고 해서 오리를 길렀는데, 그 오리가 제법 그 안에서 잘 먹고 잘 커서 에미가 되았습니다.

그런데 그 오리를 꺼내야겠는데, ‘유리병도 깨지 아니하고 오리도 조금도 상하지 않고서, 어떻게 했으면 그 오리를 꺼낼 수가 있느냐?’ 이러헌 문제인 것입니다.

이러헌 문제면-이것이 어릴 때 하는 수수께끼와 비슷헌 건데,
‘어떻게 허면은 꺼낼 수가 있을 것인가?’ ‘어떻게 허면은 유리병도 깨지 아니하고 오리도 다치지 않게 아주 통채 그 오리를 밖으로 꺼낼 수가 있을 것인가? '

처음에는 자기가 알고 있는 여러 가지 방법을 이렇게도 생각해 보고, 저렇게도 생각해 볼 수가 있을 것입니다마는, 아무리 생각해도 상식적으로는 이 문제의 해답을 얻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병을 깨지 아니하면-오리를 몸을 쪼가리 쪼가리 띠어 내거나, 억지로 철사로 올가미를 넣어 가지고 목아지를 걸어서 잡어당긴다면 몸뚱이가 푹 퍼졌으니 목아지가 떨어져불 것이고-도저히 아무리 생각해 봤자,
그 유리를 갖다가 불에다 녹여서 주둥이를 키워 갖고 낸다면, 이미 병은 다친 것이 되기 때문에 안 맞을 것이고,

자기가 생각해 낼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을 쓸 수가 있을 것입니다만은, 그렇게 해서 한 달을 연구허고 1년을 생각해 봤자 상식적으로는 이 문제는 해결이 안 될 것입니다.

그래서 허다허다 못해서 지치니까 나중에는 「어떻게 꺼낼 수가 있을까?」 오직 이제는 단순허게 그러헌 의심(疑心)만으로 돌아가게 될 것입니다.

앉아서도 「어떻게 허면 꺼낼 수가 있을까?」 「어떻게 하면 꺼낼 수가 있을까?」 밥을 먹을 때도 그렇게 생각하고, 똥을 눌 때도 그렇게 생각하고, 차를 탈 때에도 「어떻게 허면 오리를 꺼낼 수가 있을까?」 일을 할 때도 그렇게 생각하고, 나중에는 잠을 잘 때 꿈에도 그것을 생각허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허다가 한 달을 그렇게 생각하고, 두 달을 그렇게 생각하고, 일 년을 그렇게 생각하고, 이태를 생각하다 보면, 나중에는 일부러 그것을 생각헐라고 안 해도 저절로 그냥 그 생각이 언제나 우리의 마음속에 그 생각이 떠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처음에는 그걸 생각허다가도 다른 일을 듣거나 보거나 하다가 깜박 잊어버리고, 다른 일 생각하다 잊어버리고,
그런데 나중에는 잊어버렸다 하면 또 퍼떡 챙겨서 「어떻게 허면 오리를 꺼낼 수가 있을 것인가?」 이렇게 허고 또 챙기고 또 챙기고 허다 보면, 나중에는 챙길라고 안 해도 항시 자나깨나, 언제 어디서 무엇을 허거나 오직 그 생각뿐이 될 것입니다.

‘그 생각만이 되기를 어떻게 되냐’하면은,
칠십 먹은 할머니가 외아들이 여행을 나가 가지고 돌아온다는 날짜가 여러 날이 지냈는데도 돌아오지 아니 했을 때에, 생각 생각이 아들 생각허듯이 오직 「어떻게 허면은 이 오리를 꺼낼 수가 있을 것인가?」

‘이 문제를 석 달 이내에 해결허지 못하면은 너를 사형 언도를 허겠다’ 또는 ‘1년 이내에 이 문제를 해답을 얻어 오지 못하면 너를 갖다가 귀양을 보내겠다’한 임금님한테 이런 문제가 나와 가지고 생명을 갖다가 걸고서 허게 된다고 헐 때에, 얼마만큼 골똘하게 이 문제를 생각하겠습니까?

 이 유리병 속에 들어있는 오리를 꺼내는 이런 문제는, 흡사 이것도 공안이지만-마치 어린이들한테 수수께끼 문제와 같은 그러헌 종류의 공안이지만-이것은 어른들도 한번 생각해 볼만한 일인데,
여러분에게 그 동안에 허던 ‘이무엇고?’ 화두라든지 또는 ‘무자(無字)’ 화두라든지 또는 판치생모(板齒生毛)’나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 같은, 이미 들고 있는 화두를 내동댕이쳐 버리고, ‘이제부터서는 유리병 속에 오리 꺼내는 화두로 해야겄다’ 이러라는 것이 아닙니다.
혹 ‘그 참! 재미있다’해 가지고 ‘에잇! 오늘부터서 그것을 해야겄다’ 그러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실 필요가 없고, 처음 오신 분을 위해서 그 화두(話頭)라고 하는 것이 어떠헌 것이라고 하는 것을 이해 해드리기 위해서 내가 그 재미있는 화두를 하나 말씀을 드린 것 뿐이지, 절대로 이 화두를 가지고 오늘부터서 허시면 아니 됩니다.

 이것이 수수께끼와 같은 재미있는 화두지만, 사량•분별로 해결헐 수 없다고 하는 것을 이미 말씀 드렸으니까, 수수께끼 풀듯이 이것을 이렇게 따져 보고 저렇게 따져 보고 허는 것은 헛수고에 지내지 못하는 것이니까 그렇게 아시고,(53분6초~61분30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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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안(公案) : 화두(話頭)。①정부 관청에서 확정한 법률안으로 백성이 준수해야 할 것。②선종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이것을 화두라고도 하는데 문헌에 오른 것만도 천 칠백이나 되며 황화취죽 앵음연어(黃花翠竹鶯吟燕語) — 누른 꽃, 푸른 대, 꾀꼬리 노래와 제비의 소리 등 — 자연현상도 낱낱이 공안 아님이 없다。화두에 참구(叅句)와 참의(叅意)가 있다。이론적으로 따져 들어가는 것이 참의요 사구(死句) 참선이며, 말길 뜻길이 끊어져서 다만 그 언구만을 의심하는 것이 참구요 활구(活句) 참선이다.
*통채(통째) ; 나누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덩어리로.
*올가미 ; 노끈이나 철선 따위로, 잡아당겨도 매듭이 풀어지지 않도록 한 가닥을 고리처럼 만들어 짐승을 잡는 기구.
*귀양 ; 고려ㆍ조선 시대에, 죄인을 먼 시골이나 섬으로 보내어 일정한 기간 동안 제한된 곳에서만 살게 하던 형벌.

*이 무엇고(이뭣고 是甚麼 시심마,시삼마) : ‘이 무엇고? 화두’는 천 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 무엇고?」(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를 찾는 것이다.

*무자(無字) : 화두. 어느 스님이 조주(趙州) 스님께 묻되 「개도 불성(佛性)이 있읍니까 없읍니까?」하니, 조주스님이 답하되 「무(無)」라 하시니 「준동함령(蠢動含靈)이 다 불성이 있는데 어째서 무(無)라고 했는고?」하는 참선할 때 참구(叅究)하는 천 칠백 공안 중의 하나.
[참고]  [언하대오(言下大悟)] (용화선원) p52~53 에서.
‘무자’ 화두하는 학자들이여, 조주 스님의 “무” 라고 하신 그 의지가 “무” 에 있는 것이 아니다.  기실(其實) 엉뚱한 곳에 있는 것이니 제발 조주 스님의 뜻을 찾으려고 애쓸지언정  ‘무자(無字)’에 떨어져서 광음을 헛되이 보내지 않기를 재삼 부탁하노라.
 이 ‘무자’ 화두 지어감에 좋은 비유 설화가 있으니 옛날 중국 당나라에 천하일색인 양귀비가 있었는데 당 현종의 애첩으로 궁성에 살고 있었다.
 이 양귀비와 정부 안록산은 서로가 보고 싶어 못 견딜 지경이었다.

    빈호소옥무타사(頻呼小玉無他事)라
    지요단랑인득성(只要檀郞認得聲)이로다

    자주 소옥이를 부르는 것은 다른 일이 아니라
    다못 낭군에게 소리를 알리고자 함이로다.

양귀비는 자기의 종인 소옥을 아무 할 일 없이 큰 소리로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자꾸 부른다.  왜 양귀비는 소옥을 그렇게 부를까?  다만 낭군에게 자기의 음성을 들리게 하기 위함이다.
 양귀비의 뜻이 소옥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소옥을 통해서 자기의 음성을 안록산에게 알리는데 본 뜻이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무자’ 화두는 ‘무자’ 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무” 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에게 뜻이 있는 것이니, ‘무’라는 말을 천착(穿鑿)하지 말고 “무” 라 말씀하신 조주 스님의 의지를 참구할지니라.

*판치생모(板齒生毛) ; 화두(공안)의 하나.
어떤 스님이 조주 스님께 묻되, “어떤 것이 ‘조사서래의’입니까?  (如何是祖師西來意)”하니 답하시되,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하셨다. 즉, 「어떤 것이 달마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판치에 털이 났느니라.」라고 하는 화두.
그러면 조주 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을까?  이 화두도 ‘무자’ 화두와 같이 ‘판치생모’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판치생모” 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께 뜻이 있는 것이니, 학자들은 꼭 조주 스님의 뜻을 참구해야 한다. “어째서 ‘무’라 했는고?” 하는 것과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하는 것은 조금도 다름이 없는 것이다.-[언하대오(言下大悟)] (용화선원) p53 에서.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 ; 화두의 하나. 조주선사(趙州禪師, 778-897)에게 한 스님이 와서 묻기를, “어떤 것이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 (如何是祖師西來意)”라고 했을 때, 조주선사가 대답하기를, “뜰 앞에 있는 잣나무니라”라고 한 데서 유래한 화두이다.

Posted by 닥공닥정
화두(공안)2013. 10. 18. 10:34

 

 

§(세등46) (게송)정체종래절성색~ / 생사대사를 해결하는 열쇠는 오직 화두 / 화두 하나만을 제대로 참구하면 모든 부처님 법이 화두속에 포함되어 있다.

 

생사대사(生死大事), 나서 늙어서 병들어 죽는 생사대사를 위해서 출현을 하셨고 그렇게 법을 설하셨는데, 생사대사를 해결짓는 열쇠는 오직 화두(話頭)•공안(公案)이다.

화두 하나만을 제대로 참구(參究) 알면, 속에 팔만대장경이 들었고, 역대조사와 시방삼세(十方三世) 모든 부처님의 법이 오직 화두 하나 속에 포함이 되어있다. 그래서 화두 하나를 올바르게 참구할 알면 언제나 시방삼세의 모든 부처님과 역대조사를 바로 우리의 생각 속에, 눈앞에 모시고 법문을 듣고 있는 것이나 똑같은 것이다.

 

**송담스님(세등선원No.46)—계해년 하안거해제 법어(1983.07.17) (세등46)

 

약 13분.

 

정체종래절성색(正體從來絶聲色)헌디  멱즉지군불견종(覓則知君不見)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묘봉정상일전신(妙峰頂上一轉身)하면  시방무처불봉거(十方無處不逢渠)니라

나무~아미타불~~

 

정체종래절성색(正體從來絶聲色)헌디, 바로 본체(本體) 본래로부터 소리와 빛이 끊어졌다. 자리는 소리도 없고 색상이 없기 때문에,

멱즉지군불견종(覓則知君不見)이요. 찾은즉 알거라, 그대는 자취를 보지 못할 것이다.

소리가 있어야만 귀로 들을 수가 있을 것이고, 색상(色相) 있어야빛깔이나 무슨 모양이 있다면 자취를 수가 있건마는, 본래 모양도 없고 빛깔도 없는 것이기 때문에 눈으로 볼랴고 하거나, 귀로 들을랴고 하면 벌써 틀려버린다 그말이여.

 

묘봉정상(妙峰頂上) 일전신(一轉身)하면, 묘고봉(妙高峰) 수미산(須彌山)이란 말인데, 최고의 높은 산이여. 이상 올라갈 없을 만큼 올라간 수미산 꼭대기 정상에서 한번 몸을 굴리면백척간두(百尺竿頭) 진일보(進一步), 백척(百尺)이나 되는 장대 위에서 걸음을 내디디면,

 

시방무처불봉거(十方無處不逢渠). 시방세계(十方世界) 그를 만나지 아니한 곳이 없더라.

백척간두에서 행여나 떨어질세라 그놈을 붙잡고 벌벌 떨고 있는 동안에는 그를 만날 수가 없지만, 거기에서 걸음을 내디디면목숨을 버리고 걸음을 내디딜 때에, 온통 눈으로 보이는 것은 전부 바로 그놈이요. 귀로 들을 있는 것은 모두가 그것이 아닌 것이 없어.(55)

 

 

오늘은 계해년 여름 안거를 마치는 해제날입니다. 자리에는 금년 삼하(三夏) 안거(安居) 세등선원에서 지낸 대중과 전국 방방곡곡 선원에서 지낸 운수납자(雲水衲子) 사부대중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우리의 눈으로 있는 대중도 수백 명이려니와 눈에 보이지 않는 대중시방세계(十方世界)에서 모인 우리의 선망부모, 과거에 우리의 수없는 선망부모, 우주 법계에 가득 주인이 있고 없는 모든 영가(靈駕)까지도 현재 도량(道場) 운집(雲集) 했습니다. 영가 가운데에는 수원 백씨 복순 영가도 여기에 초청이 되았습니다.

딸을 부처님께 바쳐서 () 닦게 영가는 공덕으로 해탈도를 증득할 것이며, 칠세(七世) 부모가 천당에 태어나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부처님 말씀에 자식을 출가시키면, 칠보탑(七寶塔) 시방세계에 가득차게 세운 공덕보다도 낫다'하셨습니다.

 

방금 우리는 조실 스님의 녹음 법문을 통해서참선을 하는 사람이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어떠한 방법으로 화두를 참상(參詳) 것인가?’ 대해서 구체적이고 소상하게 법문을 들었습니다.

 

우리 부처님께서 삼천년 전에 왕궁의 부귀를 버리시고 설산에 들어가셔서 6년의 고행(苦行) 다시 6년간의 낙행(樂行) 통해서 대도(大道) 성취하시고 팔만사천 법문을 설하시고, 역대조사(歷代祖師) 번갈아 출세(出世) 하셔서 오늘날에까지 전해 내려오는 () 우리로 하여금어떻게 도를 닦아야 하고 어떻게 수행을 해서 우리 자성(自性) 깨달라야 것인가?’

오직 하나만을 위해서 그렇게 많은 성현(聖賢) 출세를 하셔서 그렇게 많은 법을 설하신 것입니다.(942)

 

생사대사(生死大事), 나서 늙어서 병들어 죽는 생사대사를 위해서 출현을 하셨고 그렇게 법을 설하셨는데, 생사대사를 해결짓는 열쇠는 오직 화두(話頭)•공안(公案)이다 그말이여.

 

화두 하나만을 제대로 참구(參究) 알면, 속에 팔만대장경이 들었고, 역대조사와 시방삼세(十方三世) 모든 부처님의 법이 오직 화두 하나 속에 포함이 되어있다.

그래서 화두 하나를 올바르게 참구할 알면 언제나 시방삼세의 모든 부처님과 역대조사를 바로 우리의 생각 속에, 눈앞에 모시고 법문을 듣고 있는 것이나 똑같은 것이다.

 

팔만겁(八萬劫) () 외우고 삼천세(三千歲) 계율을 지키는 것보단, 생각 돌이켜서 화두를 드는 것이 낫다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팔만겁을 경을 외운다 하드라도 경만을 외우고 자기의 마음을 반조(返照)하지 아니한다면, 경의 뜻을 바로 실천한 것이 못되기 때문이요. 삼천세를 계율을 지킨다 하드라도 바로 우리의 생각을 돌이켜서 우리의 본성(本性) 반조(返照)하지 않는다면은, 계율을 지킨 본의(本意) 모르는 까닭인 것입니다.

 

계율은 우리 출가인이 수행인이 반드시 지켜야 하고, 부처님께서 설하신 법은 우리는 목숨과 같이 목숨 바쳐서 받들어야 하겠지만,

경을 바로 받들고 계율을 바로 지키는 방법이 입으로 경을 외우고 몸으로 형식으로 계율을 지키는데 그쳐 버리고, 우리의 마음에서참나 깨닫는 반조를 하지 않는다면, 이것은 형식에만 얽매이고 근본을 잊어버린 것이 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처음~138)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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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정체종래절성색~’ ; [금강경오가해] 離色離相分 함허득통 설의(說誼) 참고. *(따를 ) *(찾을 ) *(자취 ) *(만날 ) *( 사람 )

*본체(本體) ; 모든 것의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실상(實相). 본래 갖추고 있는 성품.

*수미산(須彌山) ; 수미(須彌) ‘sumeru’ 음역. 묘고산(妙高山)이라 한역함. 불교의 우주관에 의하면 세계의 중심에 높이 솟은 거대한 .

*시방세계(十方世界) ; 세계. 사방(四方 ) 사유(四維 동북동남서남서북) 상하(上下) 있는 무수한 세계.

*참선(參禪) ; ①선() 수행을 하는 . ②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 보기 위해 하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참상(參祥) ; 참구(參究) 같음.

*참구(參究 헤아릴 , 궁구할 ) ①다못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드는 . ②참선하여 화두(공안) 꿰뚫어 밝히기 위해 집중함. 화두 의심을 깨뜨리기 위해 거기에 몰입함.

*낙행(樂行) ; 싯달타(釋尊) 6년의 고행(苦行) , 나이란자나강에서 몸을 씻은 다음 수자타가 올린 유미죽공양을 받은 보리수(菩提樹) 밑에서 선정(禪定) 들어간 것을 말함.

*출세(出世) ; ①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 ②법을 체득한 사람이 중생교화를 위해서 세상에 나오는 .

*시방삼세(十方三世) ; 시방(十方) 사방사유상하. 삼세(三世) 과거현재미래세. 모든 공간시간에 걸쳐서의 .

*반조(返照) ; 회광반조(㢠光返照) : 불법은 밖으로 내달으면서 구하지 말고 안으로 나에게서 찾아야 한다。그러므로 생각 일어날 때에 일어나는 곳을 돌이켜 살펴보라.

 

Posted by 닥공닥정
화두(공안)2013. 10. 11. 21:41

 

 

§(401) (게송) 흉중하애부하증 자괴인전백불능 제차현성공안외 차무불법계전등 // 현성공안

 

**송담스님(No.401) - 1989년 11월 첫째일요법회에서. (용401)

 

약 10분.

 

흉중하애부하증(胸中何愛復何憎)이리요  자괴인전백불능(自愧人前百不能)이로다
나무~아미타불~
제차현성공안외(除此現成公案外)에  차무불법계전등(且無佛法繼傳燈)고
나무~아미타불~

흉중(胸中)에 하애부하증(何愛復何憎)이요. 가슴 가운데에 무엇을 사랑하고 다시 무엇을 미워할 것이 있느냐. 자괴인전백불능(自愧人前百不能)이다. 스스로 사람 앞에 백 가지 능치 못한 것을 부끄러워할 뿐이다.

제차현성공안외(除此現成公案外)에, 이 현성공안(現成公案)허는 일 밖에 이것을 제(除)해 놓고,
차무불법계전등(且無佛法繼傳燈)이다. 무슨 불법의 등(燈)을 계승해서 전해 내려가는 그럴 것이 뭐 있느냐? 오직 현성공안 할 뿐이지, 현성공안(現成公案) 하는데 전심전력을-몸과 목숨을 거기에 다 쏟을 뿐이지, 불법의 등을 전(傳)하고, 안 전(傳)하고 한 거기에 대해서 무슨 생각을 둘 것이 있느냐?

수행자는 애착을 가지고 누구를 사랑할 것도 없고 또 미워할 것도 없어. 미워하는 마음, 사랑하는 마음이 있으면 벌써 생각이 도 닦는데 철저하지 못한 증거고,

또 보조국사의 진심직설(眞心直說)에 보면 자기의 수행의 경지가 얼마만큼 왔는가? 정말 공부가 상당히 깊은 지경에 왔나 안 왔느냐? 그것을 스스로 점검을 해 볼라면 마음속에 미워하고 사랑하고 하는 증애심(憎愛心)이 얼마만큼 심한가, 또는 그것이 완전히 떨어졌는가? 이것을 증험(證驗)을 해보라 그러셨거든.

그러니 수행자가 오직 생사무상(生死無常)함을 요달하고 그 본참공안(本參公案)에 정진해 나가는 사람이 무슨 사랑할 것이 있으며 미워할 것이 있느냐. 다만 부끄러운 마음이..., 자기는 백 가지도 능(能)치 못해. 아무것도 능(能)한 것이 없는 거.

오직 내가 나를 찾는 화두(話頭)에 대한 간절(懇切)한 의심을 거각하는 이외에는 아무것도 헐 줄을 모르고 누구 앞에 내세울 것이 없어야 하는 거야.

그래서 만공 스님께서도 ‘썩은 나무둥치가 되어야 도업(道業)을 성취하느니라’

무엇도 잘하고 이것도 잘하고 저것도 잘하고 능한 것이 많으면 자연히 그런 데에 끄달리게 되고, 그런 데에 끄달리게 되면은 공부하는데 많은 시간을 빼앗기게 되니까,

아무것도 능치 못한 바보 천치 그래서 다못 사람 앞에 부끄러워하는 마음, 무량겁을 내려오면서 과거의 모든 불보살과 성현들은 진즉 이 일대사(一大事)를 요달해 가지고 생사해탈을 해서 중생교화를 하시는데 나는 오늘날까지 왜 도업을 성취 못했던가? 그러한 부끄러움.

그러기 때문에 제차현성공안외(除此現成公案外)에, 이 현성공안, 현성공안(現成公案)이라 하는 것은 지금 공안이라 하면 화두를 공안이라 그러는데, 문헌상에 오른 것이 지금 천칠백 공안이다, 천칠백 화두라, 이렇게 일컬어지지만 문헌에 오르지 않은 공안까지 하면은 몇 만개가 될는지 몇 십만 개가 될는지 모르고,

또 삼라만상(森羅萬象) 두두물물(頭頭物物)이 낱낱이 돌멩이나 한 포기의 풀이나 하늘에 반짝이는 저 수많은 하나하나의 그 별들, 나무의 이파리, 뭐 벌레, 눈으로 볼 수 있는 거, 귀로 들을 수 있는 거,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거, 일체 삼라만상 두두물물이 낱낱이 그 나름대로 하나의 공안이여.

근데 우리 중생은 삼라만상을 볼 때에 그 놈을 보고 눈으로 보면은 그리 끄달려서 집착심을 낸다든지 번뇌 망상이 일어나고, 귀로 무슨 소리를 들으면은 그 듣는 소리로 인해서 벌써 경계에 끄달리고 망상이 일어나고,
그렇지만 정말 귀로 들을 수 있는 자동차 소리, 바람 소리, 개 짖는 소리, 새 우는 소리 하나하나가 전부 나에게 주어진 하나의 공안이여. 사량분별로 따질 수 없는 공안으로 보여야 한다 그 말이여.

깨달은 분상에는 그 자체는 그것이 전부가 진여(眞如)요, 비로자나(毗盧遮那) 법신(法身)이요, 진리요, 깨달음의 경지겠지만,

깨닫지는 못했으나 정법(正法)을 믿고 활구참선(活句參禪)을 하는 수행자의 입장에서는 무슨 소리를 듣던지, 무슨 색상(色相)을 보던지, 무슨 생각이 속에서 일어나던지, 일체 삼라만상 두두물물이 다 공안으로써 현성(現成)이 된다. 현성(現成)된 공안(公䅁)이다.

 

다못 그렇게 나갈 뿐이지. 거기에다 불법(佛法)이다, 무슨 조사의 전등을 계승해야 한다, 그러헌 생각도 이 현성공안하는 이 자리에 와서는 그것도 번뇌요 그것도 망상이여.(처음~9분44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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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흉중하애부하증~’ ; 天目中峰和尚廣錄 卷第二十九 ‘山居十首’ 게송 참고.
*본참공안(本參公案) : 본참화두(本參話頭).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간절(懇切 간절할•정성스런 간/정성스런•절박할 절) ①지성(至誠)스럽고 절실(切實)함 ②정성이나 마음 씀씀이가 더없이 정성스럽고 지극함 ③마음속에서 우러나와 바라는 정도가 매우 절실함.
*나무둥치 ; 큰 나무의 밑동(나무줄기에서 뿌리에 가까운 부분)
*일대사(一大事) ; ①부처님이 중생구제를 위해 세상에 나타난다고 하는 큰 일. 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목적 ②가장 중요한 일이란 뜻. 수행의 목적. 깨달음을 얻는 것. 인간으로서의 완성.
*삼라만상(森羅萬象) 두두물물(頭頭物物) ; 우주 사이에 벌여 있는 온갖 사물과 현상.
*비로자나(毗盧遮那) 법신(法身) ; 절대적 지혜의 지고한 상태, 즉 진리 그 자체를 가리키는 것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스승)으로부터 화두•공안(公案)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공안)을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공안 또는 화두(話頭)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