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문 듣는 법2014. 3. 21. 18:50

 

 

§(세등08) 법문을 옳게 들어야. / 화두는 의심(疑心)이라. / 참선은 다 쏟아 버리는 공부 / 썩은 나무둥치.

 

법문은 많이 들어서 머리 속에다 넣어 놓고 많이 알고 있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법문을 듣고서 그 동안에 보고 듣고 알고 있는 일체 지식·알음알이를 놔버리고, 다못 자기 본참화두에 대한 대의단(大疑團)이 현전해야만 그것이 법문을 옳게 들은 것이다.


천 번, 만 번을 법문을 듣고 해도 다만 알 수 없는 한 생각 뿐이라야 된다.


**송담스님(세등선원No.08)-병진년 동안거 결제 中 법문(1976.12.17)에서. (세등08)

 

약 10분.

 


금방 전강 조실스님께서 무자십절목(無字十節目) 법문 설하신 것을 들었는데, 조사 공안이 천칠백 공안이나 되는 가운데에 이 조주(趙州)의 무자(無字)는 옛날부터 가장 많이 논란되고, 또 많은 스님네들이 무자를 통해서 정진을 허고 무자를 통해서 많은 깨달은 분들이 나왔는데, 그만큼 이 무자는 공안 가운데에서도 힘을 얻어간 그런 공안이라.

그래서 이 몽산 스님께서도 이 무자에 관해서 이렇게 자세히 설을 허셨지마는, 우리 정진하는 참선학자의 분상에서는 이렇게 10가지 조목으로 자세히 말씀해 놓으신 것이 잘 들으면은 약이 될 수도 있고, 잘못 들으면은 오히려 긁어서 부스럼을 내는 그러헌 위험성도 있는 것입니다.

선지식(善知識)에게 화두를 타 가지고 무조건하고 거두절미(去頭截尾)하고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이렇게만 해 가면 아무 병폐가 없는 것이여.

유(有)니 무(無)니, 이 선지식은 이렇게 말씀허시고, 저 선지식은 저렇게 말씀허시고, 그러니 어떤 것이 옳으냐 마냐 하고, 여기 가서 물어보고, 저기 가서 물어보고, 이렇게도 해봤다, 저렇게도 해봤다,
이렇게 해서 공연히 분별심을 내 가지고 자기 선지식으로부터 지도받은 고대로 해 나가지를 않고, 공연히 이리저리 따져보고 의심하고 분별심을 내고 거기에서 화두에 병(病)은 생기는 것이다.

오늘 아침 들은 이 법문도 옳게 들으면은 그러헌 분별내지 아니하고 거두절미하고, 다못 「어째서 무라 했는고?」 또는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어째서 무라 했는고?」 이렇게만 해 나가라고 이렇게 자세히 법문허신 것이지, 여기에 나오는 10가지 조목으로 자세히 말씀허신 거, 그것을 낱낱이 무슨 듣고 외와서 따지라고 허신 법문이 아니다 그말이여.

이렇게 법문을 듣고서 다못 자기의 본참공안(本參公案)에 대한 의심이 돈발(頓發)을 해서, 꽉 맥혀 가지고, 맥힌 그 의심 하나만이 현전(現前)을 한다고 하면은 그 사람은 법문을 참 옳게 들은 것이고, 그렇지를 못허고 이리저리 분별하고 사리상량을 붙여서 따지고 이런다면은 그것은 법문을 옳게 들은 사람이 못되는 것이여.

화두는 의심(疑心)이라, 자기가 과거에 경을 보았거나 또는 어떠한 법문을 들었거나, 보고 듣고 알고 있는 것, 그러헌 지식·교리·상식 그러헌 것을 동원을 해 가지고, 이렇게 따져보고 저렇게 생각해 보고 이리 분석하고 저렇게 종합하고 이래 가지고서, 그런 것으로 살림을 삼고, 또 이 선지식한테 법문을 듣고 가서 이러쿵저러쿵, 저 선지식한테 들은 것과 비교해 가지고 이러쿵저러쿵 이런 식으로 공부를 삼는다고 허면은,
그 공부는 미륵불(彌勒佛)이 하생(下生)할 때까지 공부를 해도 점점 중생 알음알이만 더 조장이 될 뿐, 깨달음이라고 하는 것은 영원히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이말이여.

법문은 많이 들어서 머리 속에다 넣어 놓고 많이 듣고 많이 알고 있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법문을 듣고서 자기에 그 동안에 보고 듣고 알고 있는 일체 지식·알음알이를 놔버리고, 다못 자기 본참화두에 대한 대의단(大疑團)이 현전해야만 그것이 법문을 옳게 들은 것이다.

천 번, 만 번을 법문을 듣고 해도 다만 알 수 없는 한 생각 뿐이라야 된다 그말이여.

세상의 공부는 많이 듣고 알고 있어서 많이 기억을 하고 머리 속에 많이 알고 있어야 그 사람이 유식허다 그러고 참 훌륭한 학자라고 그러지마는 이 참선 공부는 많이 알고 있는 그런 것은 오히려 병(病)이요, 공부가 옳게 되어가는 것이 아니다.

비유를 해서 말하자면은 세속의 공부는 병 속에다가 많은 것을 담는 공부라 하겠지마는 이 불법(佛法)의 참선 공부는 이미 들어있는 것도 다 쏟아 내버려야, 될 수 있으면 싹 쏟아서 추호(秋毫)도 냄새까지도 나지 않을 정도로 깨끗이 부셔내는 공부다 그말이여.

그래서 고인네가 말씀허시기를 ‘불조(佛祖)가 나와서 설법을 해도 깨닫자 생각도 아니하고, 염라대왕이 잡으러 와도 두려워 할 중도 모르고, 철두철미(徹頭徹尾) 똥멍청이·천치·바보가 된다면은 - 깨달을 중도 모르고 죽인다고 해도 두려울 중도 모르고 그렇게 철저히 바보가 된다면은 - 내가 너를 인가(印可)하리라’ 이렇게까지 말씀허신 일이 있습니다.

다 썩은 나무둥치가 되아 가지고 - 썩지 아니한 나무둥치는 나무꾼이 불을 때기 위해서 끌텅을 캐가기라도 하지만, 완전히 버근버근 썩어 문드러져 버린 그러헌 나무둥치는 나무꾼도 그것을 돌아다보지도 않고 아무 쓸모없는 물건이다 그말이여.

그러헌 쓸모없는 물건이 되야 가지고 오직 자기 본참화두에 대한 의심만을 간절(懇切)히 지어가야, 그래야 그 사람에게는 깨달을 분이 있는 것이다 그말이여.

잘난 척하고, 똑똑한 척하고, 유식한 척하고, 이런 것은 우리 공부를 해 나가는 데 있어서 장애가 될 뿐이지 아무 이익이 없는 것이여.
깨닫지 못한 분상(分上)에 무엇을 잘난 척하고, 유식한 척하고, 말 잘한 척하고, 그것이 다 쓸데없는 일이다 그말이여.(처음~10분15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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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자십절목(無字十節目) ; [몽산법어 蒙山法語]의 ‘몽산화상무자십절목(蒙山和尙無字十節目)’을 말함.
‘몽산화상무자십절목(蒙山和尙無字十節目)’은 조주 스님의 ‘무자(無字)’ 화두를 가지고,
참선 수행에 있어서 본참공안에 대해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수 없는 의심을 일으켜 화두 참구를 하지 않고, 사량분별·알음알이로 공부를 삼는 잘못된 병폐를 10가지로 정리하여 그 병폐를 알고 극복해 올바른 활구참선을 하기 위한 몽산 스님의 법문.
*공안(公案) ; 또는 화두(話頭)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조주(趙州) : (778 – 897) 이름은 종심(從諗)이고 속성은 학(郝)씨인데, 산동성(山東省) 조주부(曹州府)에서 났다. 어려서 출가하여 남전(南泉) 보원선사(普願禪師)의 법을 받고, 그 문하에서 이십 년 동안 있었다.
팔십 세까지 각처로 돌아다니다가(行脚) 비로소 조주(趙州)의 관음원(觀音院)에서 학자들을 제접(提接)하기 사십 년. 당나라 소종(昭宗) 건녕(乾寧) 4년 백이십 세에 입적하였다.
<어록(語錄)> 3권이 남았고, 그의 교화가 참으로 커서 '조주 고불(趙州古佛)'이라고 일컬었다.
*무자(無字) ; 분류 ‘화두(공안)’ 참고.
*선지식(善知識) ; 부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지도자. 좋은 벗.
*거두절미(去頭截尾) ; 어떤 일의 요점만 간단히 말함.
*분별(分別) ; ①대상을 차별하여 거기에 이름이나 의미를 부여함. 대상을 차별하여 허망한 인식을 일으키는 인식 주관의 작용. ②구별함. ③그릇된 생각.
*본참공안(本參公案) : 본참화두(本參話頭).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돈발(頓發 갑자기 돈,일어날•나타날•밝힐 발) 일정한 단계를 밟지 않고 직접적, 비약적으로 일어나는. [참고] 頓 - 直頓의 뜻, 곧바로.
*현전(現前) ; 앞에 나타나 있음.
*미륵불(彌勒佛) ; Maitreya. 번역하여 자씨(慈氏). 인도 바라나국의 바라문 출신으로 석가모니의 교화를 받고, 미래에 성불하리라는 수기를 받아, 도솔천에 올라 천인(天人)을 위해 설법•교화하고,
석가모니 입멸 후 56억 7천만 년을 지나 다시 이 사바세계에 하생(下生)하여 화림원(華林園) 안의 용화수(龍華樹) 아래서 성불(成佛)하고, 3회의 설법으로써 석가모니세존의 교화에 빠진 모든 중생을 제도한다고 한다. 석가모니세존의 업적을 돕는다는 뜻으로 보처(補悽)의 미륵이라 한다.
*알음알이 ; ①어떤 인식대상에 대해 마음 또는 마음작용이 가지는, 그 인식대상에 대한 형상 즉 이미지를 아는 것을 말한다. ②마음이 번뇌에 덮여있는 상태, 말하자면 거울에 때가 낀 상태에서 가지는 이러한 앎을 깨달음[무루혜 無漏慧-모든 번뇌를 해탈(解脫)한 성자(聖者)의 지혜]과 구분하여 알음알이라 한다.
*의단(疑團의심할 의, 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추호(秋毫 가을 추•가는 털 호) ; 가을에 짐승의 털이 매우 가늘어지는 데에서 가을 털끝만큼 ‘매우 조금’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철두철미(徹頭徹尾) ; 처음부터 끝까지 빈틈없고 철저하게.
*인가(印可 도장 인,옳을•인정할 가) 스승이 제자의 깨달음을 인정함.
*간절(懇切 간절할•정성스런 간,정성스런•절박할 절) ①지성(至誠)스럽고 절실(切實)함 ②정성이나 마음 씀씀이가 더없이 정성스럽고 지극함 ③마음속에서 우러나와 바라는 정도가 매우 절실함.
*분상(分上 분수 분,윗 상) ; 자기의 신분이나 처지에 알맞은 입장.
[참고] 〇분(分) : ①분수(分數-자기 신분에 맞는 한도. 자기의 신분이나 처지에 알맞은 한도)
〇-상(上) : ①‘그것과 관계된 입장’ 또는 ‘그것에 따름’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 ②‘추상적인 공간에서의 한 위치’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
(예) 정진하는 분상에는 ---> 정진하는 수행자에 알맞은 입장에 따르자면."

Posted by 닥공닥정
법문 듣는 법2013. 11. 22. 09:39

<아래 법문은 위 유튜브 법문에서 14분 16초부터 들으시면 됩니다>

 

§(024) 어떠한 법문(法門)을 들을 때라도 그 법문에 의지해서 바로 본참화두를 드는 것이 가장 현명한 것 / 일상 모든 생활 속에 화두 의심이 한덩어리가 된다면 그 사람이야말로 누구보다도 제일 법문을 잘 들은 사람.

 

어쨌든지 듣던 말 또 듣고, 듣던 말 또 듣더라도 자주 자주 법회에 참석해서 본참화두가 타성일편이 될 때까지는 선지식의 법문을 소홀히 들어서는 아니되겠습니다.

약 6분.

**송담스님(No.024)—1976년(병진년) 동안거 결제(76.10.15.음) (용024)


우리는 어떠한 법문(法門)을 들을 때라도 그 법문에 의지해서 바로 본참화두(本參話頭)를 드는 것이 가장 현명한 것입니다. 어떤 법문을 들으면 항시 그 반대쪽 상대되는 말을 연상(聯想)을 하는 것이 우리 중생의 버릇입니다.

부처님 설법, 큰스님네의 설법을 들어도 그 설법을 듣는 가운데에 바로 자기에 본참화두를 들을 줄 아는 사람이 법문을 옳게 듣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어떠한 법문을 듣더라도 그 법문에 의해서 그다음 생각, 그다음 생각으로 차츰 추리해 들어가는 그러한 법문을 듣는 태도는 영리한 사람이긴 하지마는, 법문을 참으로 옳게 들을 줄 아는 사람이라고는 할 수가 없습니다.

어떠한 법문을 듣더라도 그 법문을 듣자마자, 들음과 동시에 자기가 들고 있는 본참화두에 대한 의심(疑心)이 분명해질 때, 소소영령(昭昭靈靈)해질 때 그 법문은 참으로 우리에게 받아들여졌다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한 바르게 법문을 알아들을 줄 아는 사람은 꼭 법당에만 들어와서 어떠한 법사님의 법문을 들어야만 되는 것은 아닙니다.


법문을 바로 알아들을 줄 아는 사람은 하늘을 보고도 산을 보고도 물을 보고도, 개 짖는 소리를 듣고도, 소와 말이 지나가는 소리를 듣고도, 차가 지나가는 소리를 듣고도, 기차가 지나가는 소리를 듣고도, ‘이놈 저놈’하고 욕지거리 하는 소리를 듣고도, 누가 나한테 어리석은 억울한 욕을 퍼붓고 달라드는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나의 목에 칼을 댈려고 하는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그 찰나 찰나에 자기에게 주어진 본참공안(本參公案)을 들 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도록 까지는 우리는 이러한 전강 조실 스님의 법문을 자주자주 들을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법문을 듣고서 그 시간에 들은 법문을 졸졸졸졸 한마디도 잊어버리지 않고 조르르 옮기는 그러한 영리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그 법문을 듣는 동안 잠깐도 귀를 팔지 아니하고, 한눈을 팔지 않고서 열심히 들은 증거입니다.

그러나 법문을 듣고 돌아서서 한마디도 옮길 수 없지마는 들을 때나, 법문이 끝나고 나서 집으로 돌아가는 걸음걸음이 자기에게 주어진 본참화두가 분명히 들려서 알 수 없는 의심이 골똘해진 그 사람. 그 사람에게 비교할 때에 뒤에 사람이 앞에 사람의 몇천 배, 몇만 배 법문을 잘 제대로 들은 사람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제가 이제까지 해 드린 말씀을 통해서 '법문(法門)은 어떻게 듣는 것이 옳다'

또 법문은 법당 안에서만 잘 듣는 것이 아니라, 우리 가정에 돌아가서 사회에 나가서 어디서 무엇을 보던지 듣던지, 무엇을 느끼던지, 어떠한 사건을 당하던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아니하고 언제라도 간절(懇切)한 마음으로, 깊은 신심(信心)으로, 불같은 의심(疑心)으로, 분심(憤心)을 일으켜서 자기의 본참(本參)을 들고 또 들고 해서, 우리의 일상 모든 생활 속에 화두에 대한 의심이 한덩어리가 되도록,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어가지고 순일무잡(純一無雜)하게 된다면 그 사람이야말로 누구보다도 제일 법문을 잘 들은 사람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만일에 법문을 한 번 듣고서 하루, 한 달, 석 달, 일 년, 계속해서 그러한 상태로 나아갈 수 있다면 구태여 법문을 자주 들을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만일에 그렇게 되지 못한 사람이면 법회 때에 빠져서는 아니되겠습니다.어쨌든지 듣던 말 또 듣고, 듣던 말 또 듣더라도 자주 자주 법회에 참석해서 본참화두가 타성일편이 될 때까지는 선지식의 법문을 소홀히 들어서는 아니되겠습니다.(14분10초~19분37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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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문(法門 부처님의 가르침 법/문 문) ; 불법(佛法)을 문(門)에 비유한 말.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門)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본참화두(本參話頭) ; 본참공안(本參公案).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연상(聯想 뒤를 이을 련/생각 상) ; 하나의 관념이 다른 관념을 불러일으키는 현상. '기차'로 '여행'을 떠올리는 따위의 현상이다.
*의심(疑心) :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해 ‘알 수 없는 생각’에 콱 막히는 것.‘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이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수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이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또는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또는 ‘조주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바른 깨달음은 알 수 없는 의단, 알 수 없는 의심에 꽉 막힌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소소영령(昭昭靈靈) ; 밝디 밝고 신령하다는 말. 번뇌와 망상에 물들지 않은 마음의 본성을 묘사한다. ‘소소’는 밝게 아는 작용, ‘영령’은 대상의 변화에 잘 응하는 영활(靈活)을 뜻한다. 또는 마음의 본체(소소)와 보고 듣는 등의 신령한 작용 전체(영령)를 나타낸다.소소영령이라는 말에 현혹되어 이것과 상응하는 자아가 있다는 망상을 견제하는 말도 선문헌에 적지 않게 보인다.
[참고] 『임제록』
道流 儞欲得作佛 莫隨萬物 心生種種法生 心滅種種法滅 一心不生 萬法無垢 世與出世 無佛無法 亦不現前 亦不曾失 設有者 皆是名言章句 接引小兒 施設藥病 表顯名同 且名句不自名句 還是儞目前 昭昭靈靈 鑒覺聞知照燭底 安一切名句
도를 배우는 이들이여. 그대들이 부처가 되고자 한다면 일체 만물을 따라가지 말라. 마음이 나면 온갖 법이 나고 마음이 멸하면 온갖 법이 멸하니, 한 마음 나지 않으면 만법에 허물이 없다. 세간과 출세간에 불(佛)도 없고 법(法)도 없어서 현전하지도 않고 잃은 적도 없다.설사 무엇이 있다 하더라도 모두 언어의 구절이어서, 어린아이를 달래기 위해 병에 따라 약을 준 것이며 무엇을 표현하는 이름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언어의 구절은 그 자체로 언어의 구절이 되는 것이 아니라, 다름 아닌 그대들 눈앞에서 밝디 밝고 신령하게[昭昭靈靈] 살피거나 느끼거나 듣거나 알거나 비추는 바로 그것이 모든 언어의 구절을 붙이는 것이다.
*찰나(刹那 절·짧은시간 찰/어찌 나) ; ①지극히 짧은 시간. 75분의 1초에 해당한다. ②어떤 일이나 현상이 이루어지는 바로 그때. 刹과 剎은 동자(同字).
*귀를 팔다 ; 귀를 딴 데로 돌리어 잘 듣지 않다.
*한눈 ; 마땅히 볼 데를 보지 않고 딴 데를 보는 눈.
*한눈을 팔다 ; 해야 할 일에 마음을 쓰지 않고 정신을 딴 데로 돌리다.
*걸음걸음이 ; 걸음을 걸을 적마다.
*골똘해진--->골똘하다 ; (사람이 한 가지 일에)온 정신을 쏟아 딴생각이 없다.
*신심(信心) : ①‘내가 바로 부처다’ 따라서 부처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요, 일체처 일체시에 언제나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공, 이 소소영령한 바로 이놈에 즉해서 화두를 거각함으로써 거기에서 자성불(自性佛)을 철견을 해야 한다는 믿음. ②‘올바르게 열심히 참선을 하면 나도 깨달을 수 있다’는 믿음. 진리에 대한 확신. ③‘내가 바로 부처다’라는 믿음. 그러기 때문에 ‘끊어야 할 생사도 없고, 버려야 할 번뇌도 없다’고 하는 믿음.
*불같은—> 불같다 ; 정열이나 신념, 감정 따위가 뜨겁고 강렬하다.
*분심(憤心, 忿心, 奮心 분하다·원통하다·성내다·힘쓰다·떨치다·분격하다) : 억울하고 원통하여 분한 마음.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도인들은 진즉 확철대오를 해서 중생 제도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왜 여태까지 일대사를 해결 못하고 생사윤회를 하고 있는가. 내가 이래 가지고 어찌 방일하게 지낼 수 있겠는가. 속에서부터 넘쳐 흐르는 대분심이 있어야. 분심이 있어야 용기가 나는 것이다.
*타성일편(打成一片) : ①‘쳐서 한 조각(덩어리)을 이룬다’. 참선할 때 화두를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화두가 들려서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일체처 일체시에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疑心)만이 독로(獨露)한 순수무잡(純粹無雜) 경계.②차별대립을 여읜 경지. 이분법적이고 상대적인 것이 융화 · 용해되어 하나가 되는 것.
*순일무잡(純一無雜 순수할 순/하나 일/없을 무/섞일 잡) ; 대상 그 자체가 순일(純一)해 전혀 이질적인 잡것의 섞임[雜]이 없음[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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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600 개가 넘는 ‘(참선) 법문’이 있습니다.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 있습니다.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600 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