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강선사 일대기2017. 11. 27.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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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강선사 일대기(田岡禪師 一代記) (제5호) 어묵동정, 경허스님 오도송 점검.
 
**전강선사(No.012)—전강선사 일대기 제5호(경술1970년 12월 8일 새벽.음)
 

(1/2) 약 21분.

 

(2/2) 약 12분.

 

(1/2)----------------
 
일침객잔몽(一枕客殘夢)이다  공중비과조(空中飛過鳥)니라
나무~아미타불~
낙화승선정(落花僧禪靜)이다  문자시조박(文字是糟粕)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중이 되아 가지고 경(經)을 한 40년 동안 읽었다. 그 경, 부처님 그 49년 설법해 논 그 경을 한 40년 동안을 참 쉴 새 없이, 눈코 한번 뜰 새 없이 경만 읽었다.
읽다가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 ‘아, 글만 밤낮 읽고 보니 경서(經書)만 읽고 보니, 내가 해야 헐 것인디—도 닦으란 말이고, 저 깨달으란 말인디, 어찌 저는 깨닫지 못허고 도는 깨달지 못허고 그 부처님 일생에 그 도 닦는 문서만 가지고 밤낮 읽고 있으니, 거 참 어리석다’
 
여간 그 어리석은 일이 아니거든. 어찌 40년 동안을 글만 읽고 있단 말이냐. 경만 읽고 있단 말인가.
 
일침객잔몽(一枕客殘夢)이로구나. 한 베개를 베고 그 잠 곤(困)허게 올 때에 객몽(客夢)이여.
객(客)으로 돌아댕기다가 어디 베개 베고 잘 때가 있나. 다행히 그 객이 어디 잠자리 하나 좋은 자리 얻어 만나서 그 곤헌 객몽을 꾸는디, 그 객이라는 것이 그 인자 일침객잔몽(一枕客殘夢)이라는 것은 한 베개[一枕] 객(客)의 잔몽(殘夢)이다.
 
객의 쇠잔(衰殘)헌 꿈이라는 것은 우리가 시방 다 일침객잔몽이여. 한 베개 베고, 객의 잔몽을 꾸고 있어.
우리가 객 아닌가. 어디가, 우리가 우리 고향을 가 봤는가? 우리가 본고향(本故鄕) 한번 가 봤어?
 
고향은 아득허니 미(迷)해 버리고 지금 이렇게 삼악도(三惡途)에 도니, 삼악도에 돌고 있다가 지금 남섬부주(南贍部洲)에 와서, 요까짓 놈의 사대(四大) 색상(色相) 몸뚱이 하나 얻어 가지고는 이것이 내 보배라고.
요게 내 보배고, 요게 참말로 내 몸뚱이여? 내 본래 몸뚱이여?
 
어림도 없다. 내 본집에, 내 본고향에, 내 본래 몸뚱이라는 건 꿈에도 아니다. 속지 말어라!
요까짓 놈의 이 더러운 사대추신(四大醜身)을 가지고 내 몸이라고 허느냐? 객잔몽이다. 객의 잔몽(殘夢) 꾸고 있는 것이다.
 
공중비과조(空中飛過鳥)니라. 공중에 한번 날라간 새와 같으느니라. 우리가 지금 날라간 새여. 비조(飛鳥)여. 어디 쉬도 못헌 새여.
 
다행히도 화락승선정(花落僧禪靜)이로구나. 어찌 다행히도 우리 부처님의 정법(正法)을 척 만났다. 정법 만난 것이 천하에 다행허다! 만고(萬古)에 경행(慶幸)허니라.
 
어디가 정법이 있느냐? 참 정법 만나기 어렵다.
까딱허면 사견(邪見)에 꺼꾸러져서, 내가 사견종자(邪見種子)가 되아 가지고는 사견종자를 안 심어 줄 수가 없는 것이다.
 
한번 사견에 꺼꾸러지고 사도(邪道)에 엎어질 것 같으면은 나만 엎어지고 나만 꺼꾸러지는 것이 아니다.
일체 사람을 다 끌고 들어감서 누겁(累劫)을 그놈의 인연을 지어 주는 것이니, 왜 그러한 허망헌 농사를 지어 주며, 왜 그런 헛된 사도를 이루어 줄 것이냐. 그 삿된 도를 자꾸 전통해 줄 것이냐.
우리 중생을 점점 점점 더 악몽을 꾸게 맨들고, 악견(惡見)으로 들어가게 맨들고, 삼악도로 집어넣는 것이 아니냐!
 
어쨌든지 그 정법을 바로 믿고 바로 찾고. 그와 같은 그 정법으로 사종(邪宗)을 버려 버리고 내 믿었던 그 과거 잘못 찾았던 사종을 턱 버려 버리고 귀정(歸正)허는 것, 정법으로 돌아가는 것이 그것이 천하에 제일이니라.
우리 정법문중(正法門中)에서 무여시사(無如是事)다. 이와 같은 사종에 엎어지지 말고, 사종에 꺼꾸러지지 말고, 사종에 인연 맺어 두지 말아라!
 
만약 거다가 인연을 두고 그 사종(邪宗) 인연을 떼지 못헐 때, 이 미래제(未來際)가 다허도록 내가 똑 그리 돌아오고, 그 사연(邪緣)이 자꾸 끌고 돌아오는 법이니,
정법이 있는 다음에는 꼭 사법(邪法)이 있어 가지고는 정법을 사법이 자꾸 치는 법이다. 고것이 마장(魔障)이다. 정법을 때려 치는 마업(魔業)이니라.
 
학자(學者)는 불가불신(不可不愼)이냐. 학자는 어찌 가히 삼가치 않을까보냐.
여까지 올라온 송구(頌句), 오늘 아침에 밝히고.
 
 
오늘은 납월팔일(臘月八日), 우리 부처님이 도(道) 깨달은 납월팔일인디, 납월팔일 아침에 우리 부처님 도 깨달은 역사를 말씀을 해야 옳을턴디.
오늘은 납월팔일이기 따문에 참, 성도재(成道齋)여. 성도재인디, 오늘 오후 오늘 아마도 12시에 시작하면 한 2시경까지 또 법문이 있겠으니 그때에 성도 법문은 헐 요량하고.
 
저번에 뭐 일대기에 가서, 저 용성 스님 회상(會上)에 가서 용성 스님께 제일귀(第一句) 문답해서 제일귀 문답 마치고, 그 다음에 말후구(末後句) 문답 마치고. 거기에 또 문답이 있거든.
저번에 그걸 내가 안 했구만. ‘한암 스님한테 간다’는 이렇게까장만 하고는 그 용성 스님께 마지막 문답(問答) 안 했어.
 
고 문답을 마자 해야지. 그 내 기이(旣已) 과거에 공부헌 역사기 따문에 조꼬만헌 것이라도 빼놓을 수가 없고. 쪼옥 역사라는 것이 꼭 그것은 그대로 똑 해놓아야 허는 게 역사니까.
조끔이라도 거기에 위조가 있다면은 그 미래 학자한테 거짓말로 속여 놓은 거 아닌가? 그 죄를 어떻게 헐 텐가. 죄보담도 정법문중에서 어찌 그렇게 꾸며대는 말이 어디 있을 건가?
 
 
내가 거기에는, 인자 용성 큰스님께 묻는 말이여. 내가 들은 법문이거든. 과거에!
용성 큰스님께서—만공 스님이 서울을 올라오셨는디. 서울 선학원(禪學院)에 오셔서 계시는데,
용성 스님이 만공 스님께 묻기를 “어묵동정(語默動靜)을 여의고 이르십시오” 그랬거든.
‘어묵동정을 여의고 이르십시오. 어묵동정을 여의고 어떻게 이를 것입니까’ 어묵동정(語默動靜), 말씀 어(語)자, 어묵 묵(默)이라는 건 말 없는 경계를 묵(默)이라 하지 않소.
 
“어(語)와 묵(默)과 동(動)허고 정(靜)허는 거 여의고 한마디 일러주십시오” 그러니 어묵동정을 여의고 그 이르라고 했네.
그러니깐 만공 큰스님께서 아무 말이 없어. 그 말 없는 경계를 양구(良久)락 햐. 가만히 있었다 그말씀이여. 일체 말도 않고, 동도 않고, 정도 않고, 가만히 말만 없이 계셨다.
 
용성 큰스님께서 “양구(良久)시오?” 그랬다. “양구십니까?”
아무 말이 없는 도리가 양구니까. 어묵동정을 여의고 한마디 일러달락 하니까 아무 말씀이 없이 계시니 “그 양구십니까?” 이렇게 또 물었다.
만공 스님, 또 아무 말이 없다. 아무 말이 없으셨어. 아, 그러고 말았네.
 
 
내가 그때에 그 ‘자네가 전신(轉身)을 못했네’ 그걸 내가 전신구(轉身句) 답헌 뒤에 그걸 물었어.
 
용성 큰스님이 만공 큰스님께 “어묵동정을 여의고 일러라”
아무 말씀이 없으니까 “양구십니까?”—오! 또 아무 말 없는 게 아니라, 또 “양구십니까?” 그러니께,
“아니요” 이랬다. 고렇게 했어, 인자 끝에. 그러고 말았어.
 
“세상에 용상대덕(龍象大德)이 두 분이, 두 어른네가 법문을 해놓으신 이 법이, ‘어묵동정 여의고 이르십시오’ 아무 말이 없으니까, ‘양구요?’
‘아니요!’ 이래 놓았으니, 학자의 눈을 멀려 놓고 만 짓이제, 이렇게까장 허실 수가 있겠습니까?
두 어른네가 멱사리을 잡고 같이 진흙 구덩이에 빠져버리고 말았지. 거 학자 죽인 도리가 아니고 무엇입니까”
내가 이랬다. 이 조잔헌 것이. 허, 이거 참!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 이랬다 그말이여.
 
황송허기야 짝이 없고 감히 어디가서 그런 큰스님네 앞에 그렇게 법을...
두 큰스님네가 멱사리을 붙잡고 한 흙탕 속에 빠지고 말았지, 어디 학자의 눈을 띄울 수가 있읍니까? 타니대수(拖泥帶水)입니다. 진흙을 뿌리고 물에 들어갔읍니다. 물속으로 빠진 거여.
 
허지마는 내가 아무리 조잔하고 내가 아무리 학자지마는 학자가 어른 앞에 어디 감히 그렇게 함부로 입을 열어서 경망헌 행동을 허리요마는, 법체(法體)에 들어가서는 헐 수 없어. 시비헐 건 시비해야 하는 것이지, 안 헐 수가 있어?
 
아, 비단 그뿐 아니라 어떻게 아구지가 세고 쬐끄만헌 아무것도 아닌 것이 막 들어서제. 막 덤벼. 아, 이런 꼴이 있는가?
나도 그런 줄 알지마는 별 도리 없어! 이 참선 도리야 어쩔 수가 있는가?
 
천상천하(天上天下)에 역사에 없는 우리 부처님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이신데, 갬히 그 앞에 몇백 년 뒤일지언정 손자 중, 손자도 아니고 아무 저 밑에 천삼백 년 후에 나온 운문승(雲門僧)이 우리 부처님한테 그만 그 법문 좀 봐.
“아유당시(我有當時)면, 내가 만약에 그때 당시에 있었으면, 일방타살(一棒打殺)하야 여구자긱(與狗子喫)이다. 한 방맹이로 타살(打殺)해 죽여서 개를 준다”
어찌 그 말을 헐 것이냐!
 
이건 헐 수가 없어. 요런 도리를 썼다. 운문긱구자(雲門喫狗子).
 
요렇게 썼닥 해서 아무라도 그렇게 써? 그 운문 눈이래야 바로 보고 쓰지!
운문선사는 그대로 써 놓은 말인디, 그건 부처님의 그 무슨 체면과 무슨 우리 부처님의 무슨 천상천하에 거룩헌 명예에 무슨 떨어져서, 그것 소용 없어. 그건 막 보고 쓴 법문인데.
 
사자굴중(獅子窟中)에 무이수(無異獸)요. 사자굴 가운데에는 다른 짐승이 범틀 못헌 법이고. 불입호혈(不入虎穴)이면 쟁득호자(爭得虎子)제. 호랭이 구럭에 들지 아니허면 호랭이 새끼를 어떻게 얻을 것이냐? 선(禪)의 도리라는 것은 헐 수가 없드라 그말이여.
 
그런 바른 눈이 있을 것 같으면 큰스님 앞에 별 도리라도 쓸 수 있어!
허지마는 눈도 없는 것이 그따구 짓 했다가는 어째? 참말로 못된 것이고, 참말로 건방진 것이고, 참말로 무간지옥(無間地獄)에 활살같이 떨어지는 법이여. 못 허고, 또 허들 못 혀!
 
뭔, 내가 그러면은 ‘나는 그런 눈이 있어서 그랬다’ 그 말같지마는,
눈이 있으면은 그 말같다고 해서, 내가 거기에 무슨 뭐 뭣을 내가 두고 머물거릴 것이여?
 
뭐 거그서는 한번 아주 건방질 수도 있는 것이고, 막 들어서는 자리다 그말이여. 안 헐 수 있어?
아무리 큰스님네지마는, 흙탕 속에 바로 떨어진 것 아닌가 말이여!
 
“어묵동정을 여의고 일러라”
“어묵동정을 여의고 무엇을 이르라는 말입니까?”
 
“그러면 영신이는 어떻게 이를테냐? 우리 둘이는 만공 큰스님과 용성 스님은 한 흙탕 속에 그대로 빠졌다면, 자네가 하나 일르소. 자네는 어묵동정을 여의고 어떻게 이를테냐?”
 
나는 거그서 반문(反問)을 했어. 반문.
좀 여러 여그 모이신 우리 대중이 자서히 들어보라 그말이여! 벌로 듣지를 말고.
건방진가 안 건방진가 좀 봐. 참인가 아닌가도 좀 보고! 간택을 허라 그말이여! 거그서.
 
“어묵동정을 여의고 무엇을 이르란 말씀입니까?” 이렇게 물었어.
양구(良久), 그 말 묻는데 내가 떨어지지 않고 어(語)니, 묵(默)이니, 동(動)이니, 정(靜)이니, 그러헌 데 다 떨어지지 않고, “어묵동정을 여의고 무엇을 이르란 말입니까?”
 
그 문(問)이, 한번 묻는 것이 그 무슨 문(問)이여? 응, 그 무슨 문이냔 말여?
아무리 금소(설)가 수귀(金屑雖貴)다마는, 금가루가 그렇게 좋다마는 낙안성예(落眼成翳)니라. 눈에 떨어지면은 가리가 되는 법이다.
 
거그서 제일구(第一句)를 일러? 거그서 불불불상견(佛佛不相見)을 일러? 거그서 본분(本分)을 추켜 들어 일러? 비심비불(非心非佛)이요, 도역가명처(道亦假名處)를 일러?
천하 없는 것을 이를라고 이치를 잡아 찾으면은 저 죽는 것이다 그말이여.
 
어묵동정을 여의고 무엇을 이르란 말이냐. 한번 보라 그말이여!
‘찾다가 죽는다’는 말이 무슨 말인가 말이여.(처음~21분7초)
 
 
 
(2/2)----------------
 
“자네는 어떻게 이를텐가?”
“어묵동정을 여의고 무엇을 이르란 말씀입니까?” 공경히 허니 어쩔 것이냐 그말이여, 거그서.
 
다시 그대로, 그대로 거그서, 뭐 그대로 그만 말 없는 곳에서 그대로 인가여! 뭐, 두말헐 것 없어.
그 전국에 다, 내 그 다 해놓은 거 전국에 다 있는 것이여. 고놈 마쳤다 그말이여.
건방지게 어디 했지. 건방진 걸 봐, 거그서. 참말로 내가 못된 것인가? 여지없지.
 
거그서 문답 한번 해봐. 답 한번 해봐!
“어묵동정을 여의고 무엇을 이르라는 말씀입니까?”
 
‘어묵동정을 여의고 일러라’한 그곳에 나아가서, 얼마나 큰스님이 그 무거운 방맹이를 짊어졌는지 거두(擧頭) 못 혀.
바로 거그서 바로 살피지 못허면은, 바로 거그서 그 활살 피허지 못허면은 안 되아.
 
내가 모도 그 다 법문허는디 다 설해 놓았지마는 이 법문을 잘 들어두라 그말이여.
녹음 잘될 것이고 뭐 기위 이 내의 무슨 그 역사를 말해 달락하니 요 법문헌 것이여.
 
내가, 이것은 뒤에 또 나오는 법문이지마는 여다가 한마디 넣을 것은 글씨 또 내가 만공 큰스님, 용성 큰스님 그때에 그 인자 그 어른 제자라도 보월 스님, 돌아가신 고봉 스님, 금봉 스님 쏵 그 호서(湖西) 대중이 다 모인 그 대덕(大德) 가운데에서, 그 큰 용상(龍象) 큰스님네 밑에서—아, 또 보소! 또 내가. 경허 큰스님 오도송이 있어! 오도송(悟道頌).
 
그런 경허 큰스님 같은 오도송이 아, 얼마나 참말로 거룩헌 큰스님의 오도송인디, 거다가 갬히 내가 또 쎗바닥을 대아? 허지마는 댈 건 대야제, 어쩔 것인가.
 
홀문인어무비공(忽聞人語無鼻孔)허고, 홀연히 소 콧구녁 없단 말을 듣고, 돈각삼천시아가(頓覺三千是我家)다. 몰록 삼천세계(三千世界)가 내 집인 줄 깨달랐다.
유월연암산하로(六月燕岩山下路)에 야인(野人)이 무사태평가(無事太平歌)니라.
 
요렇게 해놓으셨는디, 내가 거그다가 인자 오도송에다 갖다가 허물을 떡 끄집어낸다.
 
“소 콧구녁 없단 말씀을 듣고, 삼천세계가 내 집인 줄을 깨달랐다? 유월연암산하로에 야인이 무사태평가다.
‘콧구녁 없다’는 도리나, ‘삼천세계가 다 내 집인 줄을 깨달랐다’는 각견(覺見)과 ‘유월연암산하로에 야인무사태평가라’ 그것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응! 천하에 큰스님의 아무리 큰스님의 법문일지언정, 뭐 어디 큰스님 법문이라고 어떻게 때꼽재기를 파내고 씻거야지, 어찌 그대로 둘 수가 있겄습니까? 이것이 다 탁마(琢磨)인디.
“무비공(無鼻孔) 도리와 삼천세계가 내 집이다고 깨달은 각견과 유월연암산하로에 야인무사태평가, 도저히 될 수 없습니다” 아, 그러니까...
 
그것도 ‘그 천하에 경허 스님 송(頌), 오도송 잘 되았지’ 아, 이래 싸서 내가 거다 입을 벌렸다 그말이여.
 
“그러면 그 무비공 도리와 각견과 무사태평견을, 그놈을 자네는 여의고 한마디 어디 말해 보소. 어떻게 해야만 그놈을 여의고 말을 허겠는가?”
 
“예. 그러면 무비공 도리, 각견 도리, 거 다 큰스님 허신 대로 그대로 두고, ‘홀문인어무비공허고 돈각삼천시오가라. 유월연암산하로에’ 거까장만 그대로 그만 큰스님 법문 오도송대로 두고, 고 끝에 한 귀(句)만 제가 참으로 황송헙니다마는 한마디 일러보겠습니다”
 
“응, 일르게” 만공 스님이 “일르게”
그 선지식과 50명 학자가 꽉 찬 디서 내가 조실방 앞에서 헌 것입니다. 우리 보살님네도 잘 들으란 말이여. 이놈 잘 들어야 허는 것이여. 언하대오(言下大悟)지.
 
유월연암산하로(六月燕岩山下路)에  야인무사태평가(野人無事太平歌)라.
유월 달에 그 연암산 밑에 모 심구는 그때여, 때가.
유월연암산하로에, 유월 연암산 밑에 야인이 무사태평가란 건, 들사람이 일없이 태평가 한다는 것은 모 심구는 모도 노래를 부르고 있는 거여. 그걸 보고 이르는 건디.
 
불법(佛法)이란 것이, 우리 부처님의 법이라 하는 것이 어디 무슨 무사태평(無事太平)이니, 무슨 본래각(本來覺)이니, 무슨 뭐 소 콧구녁 없는 도리니, 그러헌 그 거가서는 말후(末後), 부처님의 그 우리 선법에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해가지고 확철대오헌 지경에 가서 꺼꾸러지지 않는 거여. 확철대오 지경에 가서 꺼꾸러지고 처백히면은 못쓴 것이여.
 
각(覺)이니, 무비공(無鼻孔)이니, 무사태평가(無事太平歌)니... 인자 그 제삼구(第三句)로, 그 도인이 오도송에 그 쓸 수 있는 말이제. 쓰는 법이제, 안 쓰는 것 아니여.
‘허공(虛空)이다. 역무허공지량(亦無虛空之量)이다.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이니, 역무일물지해(亦無一物之解)니라’ 이렇게 또 들어가야 되지, 그걸 안 허고는 안되는 법이여.
 
불행방초로(不行芳草路)면 난지낙화촌(難至落花村)인데, 그것을 여의고 헐 수가 또 있나.
허지마는 티를 뜯고 학자가 한번 눈을 파는데는 헐 수 없어!
 
‘유월연암산하로(六月燕岩山下路)에 야인(野人)이 무사태평가(無事太平歌)니라’
내 거그 글 한 귀(句) 딱 떼고 해놓은 송(頌)이 뭐냐 허면 이겁니다.
 
유월연암산하로에서 들사람이 모 심구는디, 모 심구는 내가 그 경계여.
유월연암산하로에 거까장 두고는, 거다가서 “여여~ 여여로~ 상사뒤여~”(곡을 붙여서) 이놈을 내가 하나 불렀드라.
응, 유월연암산하로에 그 모 심구는 곡조다. 다른 게 아니여, 그게. 농군들 노래여!
 
이놈 하나 딱 부르니까 만공 스님이 척 계시다가 “그 여여로 상사뒤여 의지(意旨)가 여하(如何)오?”
내가 그때는 또 춤을 또 추었네 인자, 또 더군다나 “여여~ 여여로~ 상사뒤여~”
 
“적자(嫡子)가 농손(弄孫)이로구나! 적자가 손자를 희롱허는구나!” 그게 점검이여.
그 경허 큰스님의 오도송일지언정 어디어디 거가서 그대로 뭐 보이는 때꼽재끼를 놔두어?
 
그래 가지고 거그서 보월 스님도 그때에사 “경허 큰스님의 오도송이 삼구에서 허셨제. 제삼구(第三句)로 허셨제” 이랬고. 운문도 역시 부처님의 출세에 그렇게도 긱구자(喫狗子)를 썼다 그말이여.
 
나 역시 아무리 두 어른네가 해 놓았기로이 보이는 것을 안 헐 수가 있나?
 
“어묵동정을 여의고 일러라”
“어묵동정을 여의고 무엇을 이르란 말씀입니까?”
 
손만 내밀고, 할(喝)만 허고, 방(棒)만 허면 제일인가?
법문이라는 것은 항상 그 참, 단진범정(但盡凡情)이여. 범정(凡情)은 다 깨달라 다 없다마는 성해(聖解)에 가서, 성해에 가 주(住)허지 말아라. 성해에 떨어지면 또 되는 겐가?
그러니 그 각견(覺見)같은 것을, 불견(佛見)같은 것을, 법견(法見)같은 것을 척척 잡아내서 이게 탁마여.
 
여그서 그놈 척! 허고서는 내가 그다음에 가서 또 인자, 또 그건 아침에 날이 치워서(추워서) 거까장 맺어줄 수가 없어.
 
요것은 뭐냐하면 늘 듣는 법문이고 요새 헌 법문이지마는, 그 꿀 딱! 먹을 때, 꿀 딱 받아먹을 때, 어저께도 그 안 일렀나. ‘어떻게 했으면 살아가겄느냐?’ 고거 있지.
요놈이 있지마는 전편이 좀 해야, 소소허게 전편을 다시 해가지고 내가 일러야겄어.
 
고놈을 한마디 일러놓고 내가 전국 육대선지식(六大善知識)한테 한목 인가(印可) 받은 것이여. 한목.
하나도, 그런 놈이 나와야 되제. 배 벌로 ‘내가 인가 받았다. 내가 견성했다’ 그러고 나와. 그거 안되는 말이여. 딱딱 그 증거가 나와야 하제.
 
오늘 아침에 치워 여까장 허고 내려가겄어. 오늘은 12시에 법문이 있겄오.(21분9초~33분3초) (일대기 5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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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일침객잔몽~’ ; 『청허당집(淸虛堂集)』 (서산 휴정 | 박경훈 역 | 동국대학교 역경원) ‘송암도인(松巖道人)‘ p83 참고.
*곤하다(困-- 곤하다·가난하다·기운이 빠지다 곤) ; ①기운이 없어 나른하다. ②(사람이) 잠든 상태가 매우 깊고 편안하다.
*객몽(客夢 손·손님·나그네·여행·객지 객/꿈 몽) ; 나그네가 객지(客地)에서 꾸는 꿈.
*잔몽(殘夢 남을 잔/꿈 몽) ; ①잠이 깰 무렵에 꾸는 꿈. ②잠이 깬 후에도 마음속에 어렴풋이 남아 있는 꿈.
*쇠잔하다(衰殘-- 쇠하다·약하다 쇠/남을 잔) ; (힘이나 세력이) 차차 줄어서 매우 약해지다.
*본고향(本鄕) ; 본향(本鄕). 고향. 태어나고 자란 본래의 고향. 이 뜻에 기초하여 사람이 본래 갖추고 있는 심성[本性], 부처의 성품 또는 청정한 불국토라는 뜻으로 쓰인다.
*미(迷) ; 미혹(迷惑), 미망(迷妄), 미집(迷執)의 준말. 진리에 어두움. 마음이 흐리고 혼란함. 깨달음(悟)의 반대. 무명번뇌로 인하여 사리를 밝게 깨치지 못하고 전도몽상(顚倒夢想, 바르게 사물을 볼 수 없는 미혹함)하는 것.
*삼악도(三惡途) : 삼악취(三惡趣)라고도 하며 지옥, 아귀, 축생을 말한다。죄악을 범한 결과로 태어나서 고통을 받는 곳으로 즉 지옥의 고통과, 아귀의 굶주림과, 축생의 우치에서 방황하게 된다는 것이다.
*남섬부주(南贍部洲) ; 수미산(須彌山 : 불교의 우주관에서 세계의 중심에 높이 솟은 거대한 산)의 사방에 있다는 사주(四洲 : 네 대륙)의 하나. 섬부(贍部)는 산스크리트어 jambu의 음사(音寫)로 잠부(jambu) 나무가 많다고 하여 이와 같이 일컫는다.
수미산 남쪽에 있으며, 우리 인간들이 사는 곳이다. 여러 부처님이 나타나는 곳은 사주(四洲) 가운데 이곳뿐이라고 한다. 염부제(閻浮提), 염부주(閻浮洲)와 같음.
*사대(四大) ; 사람의 몸을 이르는 말. 사람의 몸이 땅, 물, 불, 바람(地,水,火,風)의 네(四) 원소(大)로 이루어졌다고 보는 데에서 연유하였다.
*색상(色相) ; 육안(肉眼)으로 볼 수 있는 모든 물질의 형상.
*사대추신(四大醜身) ; ‘네 가지 요소[四大]로 구성된 더러운[醜] 몸[身]’ 사대색신(四大色身)과 같은 말.
*사대색신(四大色身) ; 지 · 수 · 화 · 풍(地水火風) 사대로 이루어진 몸.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경행(慶幸) ; 경사스럽고 다행(多幸)한 일.
*사견(邪見) : ①잘못된 견해. 틀린 생각 ②인과(因果)의 이치를 부정하는 잘못된 생각 ③올바로 자신의 마음의 실상을 알 수가 없는 것.
*사도(邪道) ; 올바르지 않은 삿된 길. 부처님의 가르침에 어긋나는 길.
*누겁(累劫 묶을·포갤·쌓을 누/겁·오랜 세월 겁) ; 여러 겁이 쌓여서 이루어진 기간. 곧 한없이 길고 오랜 시간.
*겁(劫) ; (산) Kalpa 음을 따라 갈랍파(羯臘波) 또는 겁파(劫波)라 하고, 다시 줄여서 겁(劫)이라고만 한다. 인도에서의 가장 긴 시간단위. 지극히 긴 시간. 무한히 오랜 세월을 가리키는 말이다.
[참고] 겁(劫)의 무한히 긴 시간을 개자겁(芥子劫)•반석겁(盤石劫)으로 비유한다.
개자겁(芥子劫) : 가로•세로•높이가 각각 1유순(由旬,약 8km)인 성(城) 안에 겨자 씨를 채워, 100년에 한 알씩 집어내어 겨자 씨가 다 없어진다 해도 1겁이 끝나지 않는다고 한다.
반석겁(盤石劫) : 가로•세로•높이가 각각 1유순(由旬,약 8km)인 큰 반석(盤石)을 부드러운 천으로 100년에 한 번씩 쓸어 반석이 다 닳아 없어진다 해도 1겁이 끝나지 않는다고 한다.
*악견(惡見) ; 올바르지 않은 견해. 그릇된 견해. 불법(佛法)에 위배되는 견해. 선견(善見 : 있는 그대로, 진실 그대로 보는 것. 정견正見)에 장애가 되는 견해.
*사종(邪宗) ; 외도(外道). 외도가 주장하는 삿된 종지(宗旨).
*정법문중(正法門中) ;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을 따르는 집안.
*미래제(未來際 아닐·미래 미/올·미래 래/끝 제) ; 미래의 변제(邊際 : 시간이나 공간, 정도程度 따위에서, 그 이상 더는 없는 한계限界). 미래는 끝이 없으므로 미래제라는 말은 다시 말해 영원한 미래, 영원과도 같은 오랜 시간을 뜻한다.
*사연(邪緣) ; 삿된 인연. 올바르지 않고 좋지 않은 조건을 뜻하는 말로서 정연(正緣)의 대칭어이다.
*사법(邪法) ; 삿된 법. 이치에 맞지 않고 잘못된 길로 이끄는 부정한 가르침. 외도(外道)의 가르침.
*마장(魔障 마귀 마/장애 장) ; 어떤 일에 장애가 생기는 것. 불도(佛道) 및 선법(善法)의 수행에 장애가 생기는 것.
*마업(魔業 마구니 마/업·일·선악의 소행所行 업) ; 마구니[魔]의 행위[業]. 마구니의 직접적인 행위 뿐만 아니라, 번뇌, 게으름, 미혹 등을 포함해 불도(佛道) 및 선법(善法)의 수행을 장애하는 모든 것을 통틀어서 마업이라고 한다.
*학자(學者) ; 학인(學人). ① 아직 번뇌가 남아 있어, 아라한(阿羅漢)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더 수행해야 하는 견도(見道)·수도(修道)의 성자. ② 수행승. 선(禪)을 닦는 수행승. ③ 배우고 익히는 과정에 있는 스님.
*납월팔일(臘月八日) ; 납월(臘月)은 음력으로 한 해의 맨 마지막 달을 이르는 말. 음력 12월 8일.
석가모니가 35세의 12월 8일 중인도 마갈타국 니련선하(尼連禪河)가에 있는 보리수 아래에서 샛별[明星]이 뜰 무렵 별을 보고 불도(佛道)를 이루던 날. 부처님의 성도일(成道日). 납팔(臘八)이라고 줄여 쓰기도 하고, 성도회(成道會) · 성도절(成道節) · 성도재일(成道齋日) 등이라고도 한다.
이 석가모니의 성도를 기념하기 위해 선원에서는 초하루부터 팔일 새벽까지 밤낮으로 잠을 자지 않고 용맹정진(勇猛精進)을 한다.
*도(道) ; ①깨달음. 산스크리트어 bodhi의 한역. 각(覺). 보리(菩提)라고 음사(音寫). ②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그 방법. ③무상(無上)의 불도(佛道). 궁극적인 진리. ④이치. 천지만물의 근원. 바른 규범.
*성도재(成道齋) ; 매년 12월 8일(납월 팔일 臘月八日), 석가모니가 성도(成道)한 날에 행하는 법회.
*성도(成道) ; 깨달음. 진리를 깨달아 부처가 됨.
*회상(會上) ; ①대중이 모여서 설법을 듣는 법회. 또는 그 장소. ②대중들이 모여서 수행하는 공동체 및 그 장소. ③‘회상(會上)’이란 말은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은 후, 영취산(靈鷲山)에서 제자들에게 설법을 하면서 함께 모인 것을 ‘영산회상(靈山會上)’이라 부른 데에서 유래한다.
*제일구(第一句) ; ①‘처음 한마디 말’이니 불교의 핵심도리를 드러내는 첫번째 말. ②말로써 표현할 수 없고 생각으로 개념 지을 수 없는,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하는(以心傳心) 진리를 가리키는 말.
[참고] *용성 스님과 제일구(第一句) 법문답(法問答) ; 『언하대오(言下大悟)—전강대종사 법어』 (용화선원刊) p19~20 참고.
〇같은 해에 대각사에 계신 용성 스님을 배방하였다.
용성 스님이 나에게 묻기를, “어떤 것이 제일구냐? (如何是第一句)” 나는 높은 음성으로 “예?” 하니 용성 스님께서 또 묻기를, “여하시 제일구여?” 나는 박장대소 하였더니 용성 스님께서 “아니다.” 라고 하셨다.
 
내가 여쭙기를 “그러면 어떤 것이 제일구입니까?” 하였더니 용성 스님이 부르시기를 “영신아!”  “예.” 하고 내가 대답하였더니 용성 스님은 즉시 “제일구니라.” 하셨다.  나는 또 박장대소 하였다.
용성 스님께서 “자네가 전신(轉身)을 못했네.” 하시기에, 나는 “그러면 전신구를 물어주십시오.” 했더니 “어떤 것이 전신구인가?” 내가 답하되, “저녁놀은 따오기와 더불어 날으고 가을물은 하늘과 함께 일색입니다.(落霞與孤鶩齊飛 秋水共長天一色)” 하고 물러 나왔다.
수일 후에 용성 스님께서 대중에게 공포하시기를, “허!  내가 영신이에게 속았구나!” 하셨다.
이 말을 전하여 들은 만공스님은 “속은 줄을 아니 과연 용성 스님일세.” 라고 하셨다.
*말후구(末後句) ; ①말후(末後)는 구경(究竟), 필경(畢竟), 구극(究極), 지극(至極)의 뜻. 구(句)는 언구(言句), 어구(語句), 문구(文句)란 뜻. 크게 깨달아 구경에 이르러서 하는 말. 지극한 글귀. 말후일구(末後一句). ②문장의 맨 끝의 말. ③임종의 말.
*마자 ; ‘마저(남김없이 죄다. 또는 마지막까지 다)’의 사투리.
*기이(旣已) ; 기위(旣爲 : 이미. 벌써).
*선학원(禪學院) ; 서울 종로구 안국동에 있는 절. 1921년 남전(南泉)·도봉(道峰)·석두(石頭) 등 3인을 중심으로 지었다.
선학원은 당시에 일본이 우리나라를 병합하고 사찰령(寺刹令)을 반포하여 한국 불교를 일본 총독부의 관할 아래에 다루게 되었을적에, 일본 불교의 영향으로 우리나라 승단이 급속도로 세속화되어 가는 것을 개탄, 불조(佛祖)의 정맥을 굳게 계승하기 위하여 창설된 선종의 중앙기관이다. 사찰령의 지배를 받지 않기 위하여 절(寺, 庵)이란 이름을 쓰지 않고, 선학원이라 하였다.
그 후부터 한국 불교 선종의 책원지(策源地)로서 은연한 가운데 선객들을 통솔하였으며, 1934년 12월 5일에 재단법인 조선불교중앙선리참구원(朝鮮佛敎中央禪理參究院)으로 발족하여 초대 이사로 만공·한암·적음·남전·성월 스님이 선임되었다. 해방된 뒤에는 재단법인 선학원으로 정관을 고쳤다.
*어묵동정(語默動靜) ; 말하고[語] 침묵하고[默] 움직이고[動] 쉬는[靜] 등 일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언행(言行)을 총괄한다. 행주좌와(行住坐臥)와 하나의 짝으로 쓰이기도 한다.
*양구(良久) : 한참 말이 없이 침묵하고 있는 것인데, 그 첫 기록으로는 어떤 외도(外道)가 부처님께 묻기를 『말씀하지도 말고 말씀 안 하지도 말고 진리를 가르쳐 주소서』하는데, 부처님은 양구하였다。그러자 그 외도는 깨치고 나서 부처님을 찬탄하였다.
또 유마경에 둘 아닌 법(不二法)에 대하여 여러 보살들이 제각기 말하는데, 유마힐은 양구하여 여럿의 칭찬을 받았다。그 뒤로 종문(宗門)에서 법담(法談)하는데 이 특별한 수단을 많이 쓴다.
[참고] 『선문염송 · 염송설화(禪門拈頌 · 拈頌說話)』 제1권. (혜심, 각운 지음 | 김월운 옮김 | 동국역경원) p114 참고.
〇제 16칙. 「양구(良久)」
世尊因有外道問 不問有言 不問無言 世尊良久 外道讚歎云 世尊 大慈大悲 開我迷雲 令我得入 外道去後 阿難問佛云 外道有何所證 而言得入 佛言如世良馬 見鞭影而行
 
세존께 어떤 외도가 물었다. “말 있음으로도 묻지 않고 말 없음으로도 묻지 않겠습니다”
세존께서 양구(良久)하셨다. 그러자 외도가 찬탄하여 말하였다. “세존께서 대자대비하시어 저의 미혹의 구름을 걷어 주셔서 저로 하여금 깨달아 들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물러갔다.
 
외도가 떠난 뒤에 아난이 부처님께 물었다. “외도가 무엇을 증득했기에 ‘깨달아 들었다’ 하였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세간의 좋은 말[馬]은 채찍의 그림자만 보고도 달리는 것과 같으니라”
*전신(轉身) ; ①심성(心性, 여래장如來藏)의 완전한 현시(顯示, 드러내 보임). 더러워져 감추어져 있던 심성이, 더러움을 씻어 버리고 약여(躍如 생기 있게 뛰어노는 모양. 눈앞에 생생하게 나타나는 모양)로서 현현(顯現 뚜렷이 나타남)하는 상태를 이른다. 전의(轉依). ②선문(禪門)의 말. 미혹함의 경지에서 깨달음의 경지로 전입하여 안주하는 것.
*용상대덕(龍象大德) ; 용[龍]은 물에서, 코끼리[象]는 지상에서 가장 힘이 세기에 이를 비유하여 ‘덕행을 구족한 걸출한 수행자’를 가리킨다.
*멱사리 ; ‘멱살(사람의 멱 부분의 살. 또는 그 부분. 사람의 멱이 닿는 부분의 옷깃)’의 사투리. *멱 : 목의 앞쪽.
*조잔하다 ; ‘사람의 마음 쓰는 폭이 좁다(속이 좁다)’라는 뜻의 사투리.
*타니대수(拖泥帶水 끌·끌어당길 타/진흙 니/띠·꾸미다·두르다 대/물 수) ; ①진흙을 묻히고 물에 젖는다. 흙탕물을 뒤집어 쓴다. 입니입수(入泥入水), 화니화수(和泥和水), 화니합수(和泥合水), 타니섭수(拖泥涉水)라고도 한다. ②상대의 눈높이에 맞게 가르치다. 선가(禪家)에서 가르침을 펼 때. 방편으로 언어를 사용하여 가리켜 주는 경우를 말한다. ③선문(禪門)에서 구두선(口頭禪 : 말이나 글로 해석하고 설명하는 선)을 경시하여 가리키는 말.
*법체(法體) ; ①법의 본체. 법 그 자체. 법의 본질. 유위와 무위의 모든 법의 체성(體性). ②일체 만유의 본체. 실체 ③사물. 존재. ④정토종에서는 아미타불의 명호나 염불을 말한다.
*아구지가 세다 ; 하는 말이 세다(강하다). *아구지 ; ‘아가리(‘입’을 속되게 이르는 말)’의 사투리.
*천상천하(天上天下) ; 하늘 위와 하늘 아래라는 뜻으로, 온 세상을 이르는 말.
*석가모니(釋迦牟尼) : 샤카족의 성자(聖者)•현인(賢人)이라는 뜻. 불교의 교조(敎祖). 과거칠불(過去七佛)의 일곱째 부처님. 석가모니세존(釋迦牟尼世尊)•석존(釋尊)이라고도 한다.
아버지는 지금의 네팔 지방의 카필라성의 정반왕과 어머니는 마야 왕비. B.C 623년 룸비니 동산 무우수(無憂樹) 아래에서 탄생하셔서, 어머니가 그를 낳은 지 7일 만에 세상을 떠나자 이모 마하프라자파티가 그를 양육하였다.
 
17세에 야소다라와 결혼하여 아들 라훌라를 낳고, 29세(혹 19세)에 출가하여 여러 선인(仙人)을 만나 6년 고행한 끝에 고행•금욕(禁欲)만으로는 아무 이익이 없음을 알고, 네란자라 강변에 있는 붓다가야의 보리수(菩提樹)아래에서 단정히 앉아 사유(思惟)하여 마침내 35세에 깨달음을 성취하여 붓다(buddha)가 되었다.
녹야원(鹿野苑)에서 다섯 수행자에게 처음으로 설법한 것을 시작으로 교단을 이루어, 45년 간 갠지스 강 중류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설법하다가 80세에 쿠시나가라의 사라쌍수(沙羅雙樹) 아래에서 열반에 드셨다. B.C 544년 2월 15일. 입적 후 그의 가르침이 경전으로 모아져 세계로 전파되었다.
*운문(雲門) : ( ? – 949 ) 법명은 문언(文偃), 속성은 장(張)씨。절강성(浙江省) 가흥(嘉興)에서 났다。어려서 출가하여 처음에는 율종(律宗)을 숭상하였다。목주(睦州)에 갔더니, 진 존숙(陳尊宿)이 그의 멱살을 잡고 『말해라 !  말해라!』하는데 대답하지 못하므로 문 밖으로 밀쳐서 내쫓고 문을 닫을 때, 그의 발이 문틈에 끼어서 발가락이 끊어졌다。그 바람에 깨쳤다.
그 뒤에 설봉 의존(雪峰義存) 화상에게 가서 더욱 크게 깨쳐 그의 법을 이었다。운문산 광태선원(光泰禪院)에서 오래 교화하니, 입실(入室)한 제자가 88인이나 있었다.
 
어떤 날 설법하기를 『빛을 꿰뚫지 못하는 데 두 가지 병이 있다。온갖 곳에 밝지 못하고 눈앞에 무엇이 있는 것이 한 가지 병이고, 가령 온갖 법이 빈 이치를 뚫어 알았더라도 어렴풋이 무엇이 있는 듯한 것은 또한 완전히 뚫은 것이 못된다.
법신을 뚫는데도 또한 두 가지 병이 있는데, 법신 경계에까지 갔더라도 법에 대한 국집(法執)을 잊어버리지 못하고, 「나」의 소견이 아직도 가시어지지 못하여 법신 갓에 머물러 서게 되는 것이 한 가지 병이고, 설사 법신을 꿰뚫어 나갔다 하더라도 자세히 검찰하여 본다면, 어떤 숨 기운(氣息)이 아직 남아 있는 것이다。그것이 또한 병이니라』하였다.
*운문 선사의 방(棒) : 운문긱구자(雲門喫狗子).
석가여래께서 출생하면서 바로 「하늘 위나 하늘 아래에 오직 내가 가장 높다(天上天下唯我獨尊)」하신 말씀이 있는데, 이에 대하여 여러 조사 스님들이 해석도 하고 칭송도 한 바가 많지마는, 운문 문언선사는 말하기를 『내가 그 당시에 있었더라면, 한 몽둥이로 때려 잡아서 주린 개나 주어 씹혔으면 세상을 태평케 하였겠다! (我當時若見․ 一棒打殺․ 與狗子喫却․ 媿圖天下泰平)』라고 하였다.
이 말을 들은 여러 선지식들은 『아! 운문이야말로 참으로 「유아독존」의 뜻을 잘 설명하였다。부처님의 제자답다』하고 모두 칭찬하였다.
*무간지옥(無間地獄) ; 아비지옥(阿鼻地獄)이라고도 함. 아비(阿鼻)는 산스크리트어 avīci의 음사(音寫)로서 ‘아’는 무(無), ‘비’는 구(救)로서 ‘전혀 구제받을 수 없다’는 뜻. 고통이 끊임없으므로 무간(無間)이라 함. 아버지를 죽인 자, 어머니를 죽인 자, 아라한을 죽인 자, 승가의 화합을 깨뜨린 자, 부처의 몸에 피를 나게 한 자 등, 지극히 무거운 죄를 지은 자가 죽어서 가게 된다는 지옥.
 
이 지옥에 떨어지는 죄인에게는 필파라침(必波羅鍼)이라는 악풍(惡風)이 있는데 온몸을 건조시키고 피를 말려 버리며 또 옥졸이 몸을 붙잡고 가죽을 벗기며, 그 벗겨낸 가죽으로 죄인의 몸을 묶어 불 수레에 싣고 훨훨 타는 불구덩이 가운데에 던져 넣어 몸을 태우고,
야차(夜叉)들이 큰 쇠 창을 달구어 죄인의 몸을 꿰거나 입, 코, 배 등을 꿰어 공중에 던진다고 한다. 또는 쇠매(鐵鷹)가 죄인의 눈을 파 먹게 하는 등의 여러 가지 형벌로 고통을 끊임없이 받는다고 한다.
*낙안성예(落眼成翳 떨어질 낙/눈 안/이룰 성/가릴·흐릴·눈이 흐림 예) ; ‘눈에 떨어지면 병[가리움]이 된다’
[참고] 『임제록(臨濟錄)』 ‘감변(勘辨)’
〇金屑雖貴 落眼成翳 금가루가 비록 귀하지만 눈에 떨어지면 눈을 흐리는 병이 된다.
*가리 ; ‘가루[분(粉), 분말(粉末)]’의 사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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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두(擧頭 들 거/머리 두) ; ①머리를 듦. ②머리를 숙이는 일 없이 떳떳하게 남을 대함. ③중한 병이 조금 차도가 있어 머리를 들 정도가 됨.
*호서(湖西) ; ‘호수의 서쪽’으로 오늘의 ‘충청남도’와 ‘충청북도’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대덕(大德) ; 덕이 있는 사람. 덕행이 있는 자의 의미. ①장로, 부처님, 보살, 고승 등에 대한 경칭. ②수행자에 대한 호칭. ③스님에 대한 경칭.
*용상(龍象) ; 용과 코끼리. 또는 용이나 코끼리 하나를 가리키는 말. 용[龍]은 물에서, 코끼리[象]는 지상에서 가장 힘이 세기에 이를 비유하여 세상에서 가장 탁월한 인물인 부처님만 가리키거나 보살의 용맹한 능력을 비유하는 말이기도 하다. 확장하여 걸출한 인물이나 뛰어난 수행자를 가리킨다.
*만공 스님, 경허 스님 ;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오도송(悟道頌) ; 불도(佛道)의 진리를 깨닫고 그 경지 또는 그 기쁨을 나타낸 게송.
*쎗바닥 ; ‘혓바닥(①혀의 윗면. ②‘혀’를 속되게 이르는 말)’의 사투리.
*삼천세계(三千世界) ;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 온갖 세계. 수없이 많은 세계. 하나의 우주 전체. 다할 수 없이 넓은 우주. 하나의 삼천세계(三千世界)가 하나의 부처님이 교화하는 범위라 한다.
*때꼽재기 ; 때가 여러 겹으로 엉겨붙은 조각이나 부스러기.
*탁마(琢磨 쫄 탁/갈 마) ; ①학문이나 덕행 따위를 닦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②옥이나 돌 따위를 쪼고 갊. ③옥을 갈고 돌을 닦듯이 한결같이 정성껏 애써 노력하는 것. ④선지식에게 자기의 공부하다가 깨달은 바를 점검 받는 것.
*심구다 ; ‘심다’의 사투리.
*말후(末後) ; ①구경(究竟), 필경(畢竟), 구극(究極), 지극(至極), 궁극(窮極), 최후의 뜻. ②생명이 끝날 때.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삼구(三句) ;
[참고] [三句] 삼구 —[선가귀감(禪家龜鑑)] (용화선원刊) p207 참고.
第一句는  喪身失命이요  第二句는  未開口錯이요  第三句는  糞箕掃箒라.
삼구 : 첫째 구는 몸 죽고 목숨 잃는 것이요, 둘째 구는 입을 열기 전에 그르쳤고, 세째 구는 똥삼태기와 비이니라.
[참고] [임제록(臨濟錄)]
山僧今日見處  與祖佛不別  若第一句中得 與祖佛爲師  若第二句中得 與人天爲師  若第三句中得 自救不了.
산승의 견처(見處)는 불조(佛祖)와 다르지 않다. 제1구에 깨달으면 불조(佛祖)의 스승이 되고, 제2구에 깨달으면 인천(人天)의 스승이 되고, 제3구에 깨달으면은 제 몸도 구제하지를 못한다.
 
上堂  僧問  如何是第一句  師云  三要印開朱點側  未容擬議主賓分  問如何是第二句  師云  妙解豈容無著問  漚和爭負截流機  問如是第三句  師云  看取棚頭弄傀儡  抽牽都來裏有人  師又云  一句語須具三玄門  一玄門須具三要  有權有用  汝等諸人  作麼生會  下座
 
임제 스님이 법상에 오르니, 한 스님이 여쭈었다. “무엇이 제일구(第一句, 처음 한마디 말)입니까?”
임제 스님이 말했다. "三要印開朱點側  未容擬議主賓分"
 
문(問), “무엇이 제2구(第二句, 다시 설명하는 말)입니까?
임제 스님이 말했다. "妙解豈容無著問  漚和爭負截流機"
 
문(問), “무엇이 제3구(第三句, 예를 들고 비유를 들어가면서 설명하는 말)입니까?
임제 스님이 말했다. "看取棚頭弄傀儡  抽牽都來裏有人"
 
스님은 또 말씀하셨다. “한 구절[一句]에는 반드시 3현(三玄)의 문이 갖춰져 있고, 한 현[一玄]의 문에는 반드시 3요(三要)가 갖추어 있어서 방편도 있고 활용도 있다. 그대들은 어떻게 이해하느냐?” 그리고는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問如何是眞佛眞法眞道。乞垂開示。師云。佛者心淸淨是。法者心光明是。道者處處無碍淨光是。三卽一皆是空名。而無實有。如眞正學道人。念念心不間斷。自達磨大師從西土來。祇是覓箇不受人惑底人。後遇二祖。一言便了。如知從前虛用功夫。山僧今日見處與祖佛不別。若第一句中得。與祖佛爲師。若第二句中得。與人天爲師。若第三句中得。自救不了。
 
문(問), “어떤 것이 진불(眞佛)이며, 진법(眞法)이며, 진도(眞道)인지 스님의 가르침을 내려주소서”
임제 스님이 말했다. “부처[佛]는 마음이 청정한 것[心淸淨]이 그것이고, 법(法)은 마음이 밝게 빛남[心光明]이 그것이고, 도(道)란 곳곳에 걸림없이 청정하게 빛남[處處無碍淨光]이 그것이다.
그런데 셋이 곧 하나이니 이것도 모두 빈 이름 뿐이고, 실(實)이 있는 것도 아니다. 진정한 학도인은 잠간도 마음이 간단(間斷)하지 않다.
달마대사가 인도에서 오신 이후 오직 남의 유혹을 받지 않을 사람을 찾았다. 뒤에 이조(二祖)를 만났는데, 한마디에 깨닫고 이전에 하던 공부가 쓸데없는 것이었음을 알았다. 오늘 산승의 견처(見處)도 불조(佛祖)와 더불어 다르지 않다. 제1구에 깨달으면 불조(佛祖)의 스승이 되고, 제2구에 깨달으면 인천(人天)의 스승이 되고, 제3구에 깨달으면은 제 몸도 구제하지를 못한다.
*불행방초로(不行芳草路) 난지낙화촌(難至落花村) ; ‘우거진 풀밭길 걷지 않으면 꽃이 지는 마을에 가긴 어려워.’ 『선가귀감(禪家龜鑑)』 (용화선원刊) p166 참고.
*농군(農軍 농사 농/군사 군) ; ①농민(農民). 농사짓는 일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 ②농민으로 조직된 군대.
*적자(嫡子 정실·맏아들·대를 이을 사람 적/아들·자식·남자·사람 자) : ①정실(正室, 본처本妻)이 낳은 아들. ②스승의 법을 바르게 이어받은 제자. 정통제자. 사법(嗣法)제자.
*단진범정(但盡凡情) 별무성해(別無聖解) ; ‘다만 범부의 생각이 다할지언정, 따로 성인의 알음알이가 없는 것이니라’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용화선원刊) p83.
〇修行之要는  但盡凡情이언정  別無聖解니라
수행의 요결은 다만 범부의 생각이 다할지언정, 따로 성인의 알음알이가 없는 것이니라.
 
(註解) 病盡藥除하면  還是本人이니라
병이 없어지고 약까지 쓰지 않는다면, 앓기 전 그 사람이니라.
*범정(凡情 무릇·보통 범/뜻 정) ; 범부(凡夫 번뇌에 얽매여 생사를 초월하지 못하는 사람)의 생각. 또는 범부의 망상분별을 말한다. 깨닫지 못한 이들이 근거 없이 범상한 알음알이로 헤아리는 것. 범심(凡心)과 같은 말.
*불견(佛見) ; ①부처님의 견해. 부처님의 경지에 도달하여 생기는 진정한 견해. 곧 모든 법의 실상을 관조하여 아는 지견을 말한다. 불지견(佛知見)과 같은 말이다.
②부처에 집착하는 견해. 부처에 대한 견해나 법에 대한 견해[法見]는 모두 집착을 촉발하는 근거가 되므로 부정해야 할 대상으로 본다. 모든 견해에 대한 집착을 부정하는 선종의 입장을 반영한다.
*법견(法見) ; 법에 대한 견해. 법에 집착하는 견해 또는 법이라는 관념에 집착하는 것은 정견(正見)이 아니며, 법에 대한 집착이 없는 견해라야 정견이라 한다.
불법은 모든 속박을 벗어나 해탈에 이르기 위한 것인데, 그 법에 집착하여 반대로 또 하나의 속박을 초래하는 것을 경계하는 용어로 쓰인다. 부처님의 경지에 집착하는 견해인 불견(佛見)과 함께 쓰이는 경우가 많다.
*인가(印可 도장 인/옳을·인정할 가) ; 스승이 제자의 깨달음을 인정함.
* ; ’아주, 매우’의 옛말.
*벌로 ; ‘건성으로. 함부로. 멋대로’의 사투리.

 

 

Posted by 닥공닥정
전강선사 일대기2017. 11. 22. 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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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강선사 일대기(田岡禪師 一代記) (제4호) 제산스님 행장, 용성스님과 법거량.

 

(1/4) 약 21분.

(2/4) 약 21분.

(3/4) 약 21분.

(4/4) 약 17분.

 

 

**전강선사(No.011)—전강선사 일대기 제4호(경술1970년 12월 3일 새벽.음)

(1/4)----------------

상량시귀굴(商量是鬼窟)이요  문자시조강(文字是糟糠)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약문하자시(若問何者是)오  방행여우적(棒行如雨滴)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상량(商量)은 시귀굴(是鬼窟)이다. 상량선(商量禪)이라는 게 못써.
공연히 앉어서 공부헌닥 하면서 참으로 의심을 허지 않고, 상량선을 하고 앉었거든.

요리 한번 생각해 보고 조리 한번 생각해서, 그 상량이 붙도록 화두를 든다 그말이여. 상량선!
자꾸 그 무슨 이치를 찾고, 거다가 이상스럽게 모도 무슨 별별 도리를 끄집어다가 붙여서.

판치생모(板齒生毛)면 판치생모, 알 수 없는 의심만 딱 들고서는 ‘어째서 판대기 이빨에 털이 났닥 했는고?’
판대기 이빨에 털 난 걸 알 수가 없으니, 알 수 없는 그것이 조주(趙州)의 뜻이고, 판대기 이빨에 털 난 그 뜻이란 말이여.
그 알 수 없는 놈 하나뿐이지 거가서 무엇이 있을 것이여. 상량(商量)해서, 사량(思量)해서 붙여 봤던들 되냔 말이여.

상량(商量)은 시귀굴(是鬼窟)이다. 상량이란 건 귀신굴이여.
귀신(鬼神)이라는 게, 이 몸뚱이 내버리면 귀신인디.
또 귀신이 뭐, 따로 있나? 이 사람이 사람 몸 가지고 있다가 사람 몸 버리면 귀신이지.

귀신이라는 것은 그거 또 더 이상스럽게 사람 몸뚱이 가져 있을 때보담도 사람 몸뚱이 내버린 뒤에는 귀신의 상량이라는 것은 말로 못 혀.
이놈이, 귀신 상량이라는 것은 당초에 그건 뭐 어따가 비유헐 수 없이, 그 번뇌(煩惱) 망상(妄想)! 그놈뿐이여.

숭악헌 근원도 없이 퍼일어난 놈이, 내 근본 정신도 없이 그만 일어나는 놈이 그 귀신 생각인디, 그걸 귀신 상량이라, 귀굴리(鬼窟裏)라 그려. 그래서 상량선이라는 것은 귀굴리선(鬼窟裏禪)이라 그런다 그말이여.

그러니 제일 주의헐 것이 상량선이여.
안 헌닥허지마는 상량선을 허기 따문에 타성일편(打成一片) 지경이 오들 않고, 화두일념(話頭一念) 지경이 오들 않고, 고 상량 따문에 망가(亡家)헌다. 집을 잊어버리고 실업(失業)한다. 업(業)을 잊어버리는 법이다.

상량이 아닐 것 같으면은 화두(話頭)라는 것이 그대로 의단독로(疑團獨露)가 올 것이며, 어디 그 헛된 선(禪)인가? 참, 옳은 선(禪)이지.

공연히 따진다. 어서 깨달을라는 마음을 다 붙이기도 허고, 그놈이 그 무슨 이치를 찾아 붙인다. 아, 이런 놈의 꼴 봐라.
아무리 해봐도 이치는 아니여. 천하 없는 이치를 다 붙여봐. 그 이치가 무슨 이치가 참선인가. 아니거든.

‘깨달랐다’ 허니까, 뭐 깨달을 것 같으면 무엇이 뭐, 물건이 무엇이 하나가 있는 줄 알고.
어쩠던지 상량선은 안 해야 옳아. 그거 귀신 참선인디, 귀신 참선은 참선이 아니여.
그 까달(까닭) 따문에 타성일편 지경이 의심 하나가 그저 의단독로해서 주삼야삼(晝三夜三)에 밤이나 낮이나 그 덩어리가 뭉쳐져 가지고, 알 수 없는 의심이 꽉 뭉쳐져 가지고는 독로(獨露)가 되지를 못혀.

문자(文字)는 시조박(是糟粕)이다. 문자라는 것이 조박(糟粕)이여.
일체 문자선, 문자 참선도 그 못써. 그 무슨 글귀를 집어대고 들어대고 해서 그 모도 문자 인증을 헌다 그말이여.
문자 중 인증이 모도 그것이 조박—고인이 술 짜, 옛사람들이 술 짜 먹어 버린 술 찌꺼리인데, 그 찌꺼리 그것을 자꾸 내가 먹을라고, 술 찌꺼리를 먹어 보니 그 무엇이여. 아무 소용없지.

문자도 소용없는 법이여. 참선에는 문자도 소용이 없어. 그러헌즉 참선학자라는 것은 그만 불구문자(不拘文字)다. 문자에 얽히들 안 혀.
사교입선(捨敎入禪)이다. 배운 그 교(敎)를, 문자를 버려버리고 선(禪)에 들어온 것이다.
참선 허는데 무슨 문자여? 무슨 교(敎)란 말이여 거가서. 소용없다.

화두 하나, 의심 하나 딱 참, 귀재의정(貴在疑情)이다. 귀헌 것이 의심이다.
화두 해 나가는 법! 내가 언제든지 올라와 화두 해 나가는 법을 이렇게 말해 주지 않어! ‘어째서 판대기 이빨에 털이 났다고 했는고?’

“어떤 것이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인고?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이냐?”
“판대기 이빨에 털 났느니라”

‘어째 판대기 이빨에 털 났닥 했노? 아, 판대기 이빨에 털 난 놈, 알 수가 없구나’
그 판대기 이빨에 털 난 놈, 고것이 조주 뜻이여. 뭐 다른, 따로 조주 스님 뜻을 가 찾아?

‘해보니까 조주 스님 뜻이 다르고, 판대기 이빨에 털 난 그 의지가 다르고 아, 두 가지로 자꾸 생각이 나간다’고 요러고 앉었어. 그 무슨 그런 참선을 허고 앉었어.
‘어째 판대기 이빨에 털 났닥 했는고...?’ 그 판대기 이빨에 털 난 놈이 알 수가 없으니, 그 그놈 찾는 것 아닌가.

아, 그러면 그런 거 찾기는 찾되 의심 다르고, 거기에 따진 것 달라. 상량 달러.

인자 불 꺼버려라. 여그 올라오면 후끈혀서 그만...

참, 이 이상 더, 천상천하에 어디 무슨 뭐 별별 세계에 다 없는 참선법(參禪法)이 우리 사는 이 남섬부주(南贍部洲), 이 세계에 있단 말여. 남섬세계에 가서 남부세계에 가서 있거든.

세상에 이 세계는, 그저 인생이 나면 죄만 퍼짓고, 그저 인생이 나오면은 살래야 살 수 없고, 그저 나오다가 죽기도 허고, 이것 좀 살다가 죽기도 허고, 맨 놈의 남섬부주 죄짓는 세상인디, 아! 이 세계에 와서 있다. 이 참선법이! 생사 없는 법이!

그 세상에 다 있제. ‘나’는 다 있고. 누가 주인공이 없어?
‘나’는 다 있고. 주인공은 다 있지마는 어째 남섬부주에 꼭 난 사람이래야 꼭 주인공, 내가 나를 찾는 이 참선법이 있어. 그것 묘하다!

사바세계(娑婆世界)를 여의고는 없거든. 그러허니 불불(佛佛)이 성불(成佛)을 해가지고는 이 사바세계를 오신단 말이여. 사바세계에 내려오셔서 사바세계 중생을 제도헐려고 내려오신다 그말이여.
그러니 부처님이 대도(大道)를 이루어 가지고는, 불과(佛果)를 증(證)해 가지고는 오실 디가, 출세(出世)헐 디가 여그밖에 없어.

부처가 되아 가지고 불과를 증해 가지고는 가만히 중생교화도 않고 있을 수가 있나. 제일 큰 일이 중생교화(衆生敎化)인디.
중생을 교화 안 헐 것 같으면은 어찌 될 것이냐, 뭐가 될 것인가? 이 중생은 전부 생사고(生死苦)만 받고 있게.
부처님도 석일(昔日)에 우리와 같은 동아(同我), 똑같은 범부(凡夫)인데 그렇게 생사고를 같이 받아 오시다가 먼첨 성불을 했으니 어서 속히 중생을 위해야 헐 것 아닌가.

중생 때, 불과(佛果) 증허기 전 중생 때, 부처님도 우리와 같이 생사고를 받았으며, 모도 미(迷)헌 우리 중생, 사바세계에서 같이 부모형제가 되았으며,
그 인연 깊은 인연을 천만 겁 중에 같이 해 나왔는데 모도가 부모형제인데, 그 사바세계에서 생사고를 받고 있는 그 중생을 제도(濟度) 안 허고 무엇을 헐 것인가?

부처님이 불과를 이룰 것 같으면은 곧 당장에 그만 사바세계에 인자 하강(下降)허셔 가지고는 중생교화를 허는 것이여.

참선법! 참선법밖에는 생사를 해탈허는 법이 없는디, 무엇을 헐 것이여!

약문하자시(若問何者是)냐? 그럼 묻노니 어떤 것이 옳느냐?
음, 세상에 상량(商量)도 귀신굴이요, 문자(文字)도 고인조박(古人糟粕)밖에는 안되아. 짜먹어버리고 내버린 찌꺼리밖에 안된다.
약문허노니 내가 돌이켜 묻노니 하시(何是) 시(是)냐? 어떤 것이 그러면 참선법, 옳은 선법이냐?

방행여우적(棒行如雨滴)이다. 방맹이를 때리되, 방맹이로 막 치되 방맹이가 하나가 아니라 우적(雨滴)이니라. 빗방울이니라 했다.
그러니 어디 어떤 것이 참선이라고, 어떤 게 옳은 것이냐고 참선 도리를 묻거드면은 방맹이로 빗방울처럼 막 뚜드려 팬다 그말이여. 그러니 어디 어디 그 뭔 이치를 가르켜 놓았어? 참선이 요런 것이다 가르켜 놓았어?

‘참선 이치가 요런 것이다’ 딱! 가르켜 놓을 것 같으면은 그것은 선이 아니여.
무엇이라고 딱 손가락처럼 착 나오면은 그거 참선법도 아니고 상견(相見)도 아니고 그거 아무것도 아니여. 그렇게 허들 못혀.

게송(偈頌)으로 여까지.


내 과거 공부헐 때, 여그저그 댕기면서 선지식(善知識) 친견허는 그때 그 행각(行脚)헐 때 그 실기(實記)를 좀 말해 달락 해서 시방 설허는 도중에,
혜월 스님을 모시고 와서 김천 직지사에다가 조실 스님을 모시고 크게 선방을 한번 해 볼라고 하다가, 모시고 와 놓으니 또 직지사에는 제산(霽山) 큰스님이 계시고,
그 제산 큰스님이 계셨지마는, 제산 큰스님은 그 계행(戒行)이 참 청정허시고—한국에 계행으로 제일 청정헌 어른이 누구냐? 김제산 스님이여.

여기에 인자 제산 스님 역사 잠깐 좀 말씀을 해야 허겄구만.

제산 스님도 발심(發心)허시기 전에는 사판(事判)중으로서, 그때 사판중이 있거든. 사판중으로써서 술도 자시고 어육주초(魚肉酒草)를 그저 마음대로 자시고. 사판중 노릇은 그때 누룩이나 디뎌서 팔고, 그것이 사판중들이여.
참선법은 영 모르고. 없었으니까 그때도. 그래 계시다가 사판중 노릇허는 법밖에는 모르제.

합천 해인사 현당에서 사판중 노릇을 허고 있는데 그때에 나이, 제산 스님 나이 한 30살 잡솼는데, 뜻밖에 ‘경허(鏡虛) 스님이 오셨다’ 소문을 들었거든. ‘경허 스님은 아주 참, 한국 도인(道人)으로는 다시 없다’ 소문이 났는데.

‘그러면 경허 큰스님을 좀 가 뵈야 허겄다’고, 현당에 사판중으로 그래 있다가는 그 마음 난 것도 이상하지. 그런 도인 한번 뵈야겄다고 척 올라갔다.

올라가 보니, 머리는 숭났어 그 어른 머리가. 내 방에 그 경허 스님 사진 있제. 머리도 숭나고, 얼굴은 여가 덥텁헌 양반이 조실에 척 와 앉았어.
처억 보니까 눈이 다른 이보담도 더 쭉 째지고 아주 그런 어른이 앉었는디, 탁자(卓子)의 부처님보담도 훨씬 더 숭배심이 나.

탁자의 부처님은 의호(宜乎)이 아침 저녁에 예불(禮佛)하고, 이렇게 그저 중이 왔으면은 그저 등상(等像)께 예불한갑다 뿐인디.
아, 이 경허 스님은 척 보니 산 부처님이시다. 어떻게 숭배심이 나는지, 굉장혀 그 마음이 믿어지기를.
이렇게 마음이 믿어져야사 도는 닦는 것이지. 믿음이 없으면 된 법이 없어.

그만 그 경허 스님을 보고는 얼마나 믿어졌던지—뭐, 경허 스님도 똥싸고 오좀 싸고 밥 먹고, 오히려 저 나쁜 행은 보통 사람보담 더 많이 가져 계시네.
그런디 그것이 도모지 눈앞에 하나 안 보이고, 어떻게 믿어지는지 한량없이 믿어져.

앞에 가서 참, 망구(忘軀) 배(拜)를 허고. 여지(餘地)없이 가서 절을 허고.
내가 중 되기 전에는 물론 아무것도 몰랐지마는, 중이 되아 가지고도 사판중이 되아 가지고 삼십이 넘도록까지 부처님의 정법(正法)을 모르고, 내가 나 찾는 법을 모르고 이렇게도 망칙허게 망허게 살아 나왔단 말이냐. 날마당 술이나 퍼먹고, 날마당 그저 누룩 장사나 중이 허고, 이따구 짓만 허고 지내고 있단 말이냐.

‘탁! 믿어 가지고 경허 큰스님께 도 배워 가지고 도를 닦아야겄다’ 결심을 딱! 하고 나가서 여지없는 위법(爲法), 법을 위해서 내 몸뚱이를 갖다 바쳤다 그말이여.(처음~21분5초)


 

 


(2/4)----------------

절을 척 허니깐, “하구래(何求來)냐. 네가 무엇을 구해서 왔느냐?” 물으신다 그말이여.
“큰스님께 법을 배우러 왔습니다”

“무슨 법을 배우러 왔단 말이냐?”
“참선, 참선법을 배우러 왔습니다”

“허, 그래야. 좋은 말이다. 참선법을 배울라면은, 참선법 배울 학자가 첫번에 인자 법을 배울라면은 이물표신(以物標信)이 있어야 하는 법이다. 물건으로써 신(信)을 표해야 하는디. 내 좋아허는 걸 네가 해 주어야 할 것 아니냐.
내가 다른 걸 좋아허는 것 아니다. 첫째, 내가 술을 그렇게 좋아헌다. 평생에 술을 내가 좋아해서 술을 끊지 못허고, 또 술먹을 때는 주효(酒肴)라니, 술에는 안주가 있어야 하는 법이니, 안주허고 술허고 네가 사오너라. 내가 술을 한잔 먹고 네가 사온 안주를 내가 먹고, 술 한잔 먹고 나서 너한테 참선 화두를 일러주마.
화두 타는 법이 그렇게 쉬워서는 못쓰느니라. 네가 값이 있이 타야 허는 법이니, 네가 네 신심(信心)으로써 술허고 그 닭 한 마리, 내가 닭고기를 좋아허니 닭 한 마리 삶어서 가지고 오너라”

아, 그 퇴설당(堆雪堂) 그 조실에 앉어 계셔서 바로 거가 팔만대장경을 모시고 있는 그 퇴설당인디, 그 퇴설당에 조실에 앉어 계셔서 그런다.

내가 지금 녹음해 넣는 법문인디, 녹음해 넣는 법문을 위조로 혀? 그거 아녀. 똑 사실이여. 제산 스님 실기(實記)여.

한 말씀 듣고는 그대로 나왔어.
‘도인이라고 허는 이가, 경허 스님 도인이라고 나는 도인인 줄만 알았더니 조실(祖室)에 앉어서 술 사오고, 살생—닭은 살생을 해야 하니, 닭 모가지 삐틀쳐 죽여서 내가 그놈을 삶아가지고 가지고 와?’
그러헌 마음이 나기가 처꺽 쉬울 것인디, 없어! 그런 마음이 어디가 있어.

응, 조꼼도 그런 마음이 없고, 그 위법망구(爲法忘軀) 속에서 그만 그대로 바로 내려가서, 각사 십 리(十里)나 내려가서—당신이 뭐 어떻게 손수 닭이야 잡을 수가 있나?
그러고 그때 또 사판중으로 계시니까, 그런 것 뭐 닭 모가지 짤르고 이런 거 뭐 죄이니 뭣이니도 없지마는 내려가서, 각사라는 데 내려가서 그 어디 아는 집에, 다 절에 그 십 리 동구(洞口)에 있으니깐 아는 집이 있제. 내려가서.

“나 닭 한 마리 잡아서 수증기로 잘 삶아서 줄 수 없겠느냐?”
“왜 못 해 드려요. 해 드리지요” 의호이 해 주지. 뭐, 안 해주어? 돈 받고 하는디.

그놈을 삶고, 홍류동 찹쌀막걸리 그 밥튀가 동동 뜬 놈 잘해서 그 청주로 떠놓은 홍류동 찹쌀막걸리, 옌장 술 잘 먹는 이는 비우 동(動)허겄네, 술 먹고 싶어서. 나도 동허는구만, 그 말을 헌께.

허! 아, 나도 글쎄 대구서 그 칠곡 넘어가는 그 잿말랑에 올라가다가 목은 컬컬헌데 아, 나이 또 그때 나도 스물 몇 살 먹었을 때니 술도 잘 먹을 때고 헌디,
아, 그 노인이 찹쌀술을 해놨다고 “한잔 잡수고 가시오” 그려. “아, 그래요!” 그것 잘 먹겄당.

오목식기로 하나 뚝 떠 주데. 아, 이놈의 술을 먹어 보니 입이 짝짝 들어붙으면서 참, 맛이라는 건 그 위에 더헐 수 없네. 찹쌀막걸리 그놈 잘되아 놓으면 맛 좋거든, 옛날 누룩으로. 지금은 그런 것 없구만. 암만 정종 그 같은 것 암만 좋아도 소용없구만.
한 독식기를 먹었네. 처 철렁, 기분이 좋고 하나도 취기는 없고. 또 한 접시를 한 오목식기를 먹었네. 둘 먹었제. 아, 그런게 또 인자 참 더 먹고 싶네. 셋을 먹었네, 큰 놈! 그 자리에 앉어서 다섯을 먹었어, 오목식기로. 그래도 아무 일 없어.

다섯을 척 먹고서는 그 재를 넘어서 도더기재를 올라가는디, 그 재 밑에 까장은 알았어. 온 줄 알았어.
재 밑에 와서는 어떻게 된지를 몰라. 그 뒤에라도 잉!
아, 그랬는데 그도 어떻게 찾아갔든지 넘의 묏등을 찾아갔어. 묏등! 나는 평생에 안 잊히는구만. 묏등에 올라...

참, 별놈의 역사를 내가 내 입으로 다 말허네.
이래야사 그게 내가 지은 죄가 화반탁출(和盤托出)이 되제. 이런 청정 대중에 못 떨어 내놓고 어따 떨어 내놓을 것인가.

감추면 그 죄가 되고, 탁! 떨어 내버리면은 오히려 죄가, 좀 지은 죄를 받기야 받지마는 발로참회(發露懺悔)가 되아.
내가 그래서 이렇게 그 문둥이 지랄 같은 짓헌 걸 내가 다 까바쳐 놓는구만. 대중에 다 내가 다 까바쳐.

남의 묏등에 들어가서는, 묏등 밑에 가서 잤단 말이여. 그냥 꺼꾸러져 몰라 버렸어.
자다가 보니 하늘에 별이 총총 나고 그 산은 어떻게 험악헌 그 대구 칠곡, 그 산 모도 산천 험악헌 디는 그 도덕산 그 다 알지. 정공, 다 환히 알지, 몰라?

그 산은 뒷산은 칙칙헌디, 호랭이란 놈이 거그 살다가 밤낮 마을에 내려와서 개를 가져가고 헌 그런 놈의 디여. 아, 그런 놈의 디인디 거가서 자도 호랭이란 놈은 안 왔더구만.
거 실컷 자고 나서 총총헌디 아, 밤이 얼마나 되았는지 시계도 나 그때 없었고.
아, 헐 수 할 수 없어, 추워서 살 수가 없어. 술이 인자 깨든 거여.

그래 그 마을을 찾아 들어가니까 깜깜 모도 불 다 꺼번지고, 전기도 없는 딘데 아, 문에 가서 뭐 누구를 찾으니 누가 나오나?
그 밤이 그렇게 한 한두 시나 세 시나 되았는가 어쨌는가. 그래 그만 ‘동네 사람, 사람 좀 살리라’고 고함을 질렀더니 아, 누가 듣고 ‘웬 사람이냐?’고 나와서,
‘아 여보시오. 내가 술을 먹고 그만 어디 가다 취해서 자고 아, 인자사 내가 일어나니 추워 죽겠어서 인가를 찾아온디 날 좀 구해 주시오. 추워 죽겄오’
‘아, 그러냐’고, 문을 열고 뜨거운 방으로 나를 안내해서 들어가서 자고 아침 거그서 얻어먹고 그 참 나온 일이 있었어.

그놈의 찹쌉술 좋다고 그 말헐라다가, 홍류동 술맛 좋다고 그 말헐라다가 여까지 했구만. 고놈은 또 인자 거그서 그만두고.


아, 그래 제산 큰스님도 홍류동을 떡 올라오셔서 그 찹쌀막걸리를 잘 그냥 뜬 놈을 사르르 받쳐 가지고는 병에다 넣어 가지고 수증기로 삶은 닭 한 마리하고... 그 알겠제, 들어서 알겠제 잉. 아까 있는 디를 알아야제.

그래 가지고 올라와서 정성껏 바쳤다. 누구한테 바쳐? 경허 큰스님한테 바쳤다 그말이여.
퇴설당 옆에 있는 조실방에 갖다 바치고는 참으로 절을 기가 맥히게 헌 뒤에 “잡솨 주십소사”허고는, 그러제.

척 큰 대접에 하나 쭈욱 잡숫더니, 닭 그놈 그 자리에서 떡 그 뼉다구 추켜들고 쭉쭉 “거, 잘 삶았구나. 맛이 있다” 그러시고는.
아, 그저 젊을 때시고 뭐 뼉다구 그놈 막 들고는 그저 막 그저 깨문 놈도 있고 뼉다구 뱉은 놈도 있고. 척 추려서 척 잡수고는 손수건 입 썩 닦으시고. 그까짓 닭 한 마리 그냥 얼른 잡솨 버린다 말이여.

이런 법문 듣고는 안 자올으셔야 헐턴디, 자꾸 눈을 그저 알로 감는다. 겉으로는 참선헌 체 허지만 속으로는 잠자고 계신다.
내가 다 안디. 눈을 깜아도 설법 듣는 거, 설법 안 듣고 자는 것, 내 다 안단 말씀이여. 그 뭔 참말로 내가 아니께 안닥 하제 뭐.

졸지 말어야 돼요. 법문같이 소중헌 게 없거늘, 참선허는 학자가 법문 들을 때 자는 법이 어디 있다? 그건 없어.
내가 여태까지 법문 들을 때 자꾸 슬며시 눈 감고 자는 것을 보고도 암말도 안 했지마는, 인자는 뭐 금년 동(冬) 산림이, 삼동 산림이 얼마 안 남았는디 가만두어 되야?
못 자게 해야 하고, 좀 그렇게 조으는 것을 내가 좀 꼬쟁이로 푹푹 쑤셔 줘야지, 그냥 둘 수가 없어.

자지 마시오. 누구를 위해서 허는 법문인디 자냐 그말이여. 그만큼 잤으면 무던허지.


광겁장도(曠劫障道)에는 수마(睡魔)가 막대(莫大)니라
나무~아미타불~

광겁장도(曠劫障道)에는 수마(睡魔)가 막대(莫大)니라. 너룬 겁으로 오면서 여태까장 도(道)를 못 닦게 허고 여태까장 도문(道門)에 들어오지 못헌 원인이 어디 있느냐? 잠, 그놈이 제일 큰 놈이다.
여러 가지 나를 방해허고, 나를 도 못 닦게 헌 것이 많이 있다마는 잠보담 더 큰 놈이 없구나. 잠 마구니란 놈 따문에, 이렇게 도를 이루지 못허고 도를 닦지 못허고 여태까장 있는 것이다.

그러니 그 못된 잠 그놈! 화두를 한번 추켜들면은—화두는 참, 금강보검(金剛寶劍)같은 것인디, 금강같은 좋은 쇠로써 보검(寶劍)을 맨든 고런 칼같은 것인디 어디가 그놈 잠이, 그놈이 어디가 제가 도를 못 닦게 마구니 행동을 헐 것인가? 허니 그 잠을 좀...

법문 들을 때도 또 자? 법문이라는 것은 언하(言下)에 대오(大悟)가 있는 것인디.
이런 말이 대꼬쟁이로 모두 쑤신 것이여. 잠 그놈 못 자게, 못 자올게 쑤셔 드린 거 아니여?


그래 술허고 닭고기허고 잡순 후에 그래 설법을 해 주셔. 그 참, 그 조실에서 그렇게 막 아무 거침없이 잡순다. 잡수고는 그 자리에서 ‘오냐!’
그 벌써 거까장 가 술 사오고 닭까장 가서 맨들어 올 때에는 그 사람의 신심이 여간 아니여. 그 신심이. 발써 그 신심을 봤거든. 그만헌 신심 가운데에서 일러주는 것이여.

그래야사 도 배우는—똑 그래 내가 뭔 술 사오고 뭐 닭 삶아 오라고 요런 소리 헌 것 같여? 내가 그렇게 삶아 오고 술 받아 오라는 게 아니라, 그랬다 그 말씀인데,
또 갖다가 나를 갖다 손그락질 허면서 ‘술 사오고 닭 잡아 오라고 저러는구만’ 그러지 말란 말씀이여. 그렇게 거다가 찢어서 해필 왈 갖다 내 허물을 둘러씌우지 말란 말씀이여.

잡숫고는 화두 설법을 해 주시는데, 화두를 타 가지고 나오는디, 아무 흔적 없는 것이요 말 한마디언만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니라” 일러주셨어.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를 물으니까 ‘뜰 앞에 잣냉기’라고 했으니, ‘뜰 앞에 잣냉기, 어째서 뜰 앞에 잣냉기라고 했는고?’ 이놈을 해라”해서,
그 화두를 받아 가지고 나오는데, 어떻게 걸음을 걸어서 나온지를 몰라. 어떻게 기가 맥히고 좋던지! ‘이런 경허 큰스님한테 화두를 탔다’

화두 타 가지고 그날부텀 정전백수자 화두를 허는데, 뒷방에서 스님을 모시고 살림살이 허는 중인데, 살림살이고 무엇이고 하나 허다가 눈앞에 아무것도 안 보이고,

인자 그때부텀은 ‘이 몸은 죽는구나. 내 이 몸은 사형선고를 받은 아주 기한 딱 정해놓은 몸뚱이다. 죽을 사형 무대밖에는 없는 이 몸뚱이! 이놈 사형선고는 받았다마는 오늘인지 내일인지 시간이나 좀 알았으면 쓰겄는디, 이놈의 사형선고 기간이라는 것은 알 수가 없구나. 내가 서른 한 살 먹어 갈라는가 원, 사형을 집행해 갈라는가, 스물 둘에 갈라는가, 이건 원 당최 알 수가 있나.
허니 참, 시각이 급허고, 참말로 내가 이 참선을 해서 생사 없는 대도를 깨달라 얻지 못허고 내가 이 목숨을 내버리고 가다니. 이 목숨 있을 적에 해야겄구나!’

그만 그대로 발심(發心)이 척 되는디, 아무것도 안 보인다. 뭣이 보이여?

그렇게 그 참, 사판중으로 들어와서 여러 가지 돈도 많이 벌라고 남 모도 이자도 놓기도 허고, 사판중은 그렇거든. 누룩 디뎌서 모도 팔아 가지고는 사방 모도 논 살라고 계획해 놓았던 그런 것 저런 것 받을 것이 꽉 찼고.
허지마는 하나도—또 그 모도 집안이 부자 집안에 중이 되았으니까—하나도 정리고 무엇이고, 뭐 요리조리 모도 써 놓았던 계약서 받을 거 이거 불 탁! 질러 쏵 질러버리고는.

상좌 하나 들여서, 들인 것도 뭣도 없지마는 어른이 그렇게 참 노래(老來)에 또 시봉허다 나오니까 어디로 이리저리 의탁해 번지고 그러고는 선방에 척 나왔습니다.
경허 큰스님한테 화두 하나 타 가지고 다만 화두만 묶어 짊어지고는 나왔지. 아무것도 없고.

그대로 선방에 앉어서 지독허게 공부를 허셨습니다.
제산 큰스님께서 공부 한번 험서 그날부텀 그렇게 술도 자시고 헌 것 쏵 끊어 번지고는, 계행이 청정허기를 그렇게 청정헌 어른이 없고, 수행이 당최 참선해서 한번도 밥 먹을 사이도 없이 화두를 다루어 나간 어른은 그 어른밖에 없어. 기차제.

그러지마는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해서 그 인가(印可)를 얻은 데가 없어.
인가를 누구한테 얻었어야제. 인자 제산 스님은 그저 그렇게 도만 잘 닦아 오셨제, 인가 얻은 데는 없었으니까 학자(學者)는 제접(提接)을 못 혀.
아, 보통 참선허는 학자야 왜 제접 못 헐까마는 계행이 청정허고 하도 거룩허시니까 인자 보통 학자들은 가 많이 지내야. 뭐 보통 지내는 게 아니지마는, 대도를 통헌 분은 제접을 못 혀.

누가 “하암” 그랬어? 내 그런 ‘하암’은 참, 법상(法床)에서 듣기 싫다.
헤헤, 이거 세상에 “하암” 그려? 그 어디서 나와?

내 법문도 “하암”허면서 한번 허까?
그런 시원찮은 행동은 그만 좀 톡톡히 해버리지, 왜 그렇게 시지부지 헐까?(21분5초~42분22초)


 

 


(3/4)----------------

그래도 그런 ‘하암’ 한번이 대단히 좋은 것이여.
여러분이 그 ‘하암’ 한번 헌 바람에 내가 이렇게 허니까 그 ‘하암’헌 이는 부끄러울 것이지마는 한번 해 논 바람에 내가 그놈을 가지고 그냥 그만 한번 광고를 헌 바람에 여러 모인 대중들이 듣고는 정신채리거든.
옆에서 ‘하암’을 헐 이도 안 허거든. ‘하암’헐 이도 안 혀. 그러니 그 이익을 많이 준 것이다 그말이여. 그러니 부끄럽게 생각허시지 마시오.

법상에서 조실 스님이 법문허다가 그런 걸 한번 알려 주는 바람에 그게 정절(程節)에 들어가는 것이여. 반다시 인자 이담에는 그러지 안 헐 것이고. 그러니 그런 좋은, 그 좋은 설법이제.


그래 가지고는 제산 큰스님이 그렇게 깨끗허게 청정허게 오래오래 화두를 조금도 밥 먹을 사이도 틈이 없이 공부를 잘 허셨기 따문에 ‘제산스님’헌 이름이 나서 학자는 많이 그 어른 밑에 지낸다 그말이여. 그때는 또 더군다나 그리 선지식(善知識)이 귀혔고.

그래 가지고는 합천 해인사에서 하도 오래 지내—경허 큰스님은 인자 거그서 좀 계시다가, 조실에 계시다가 딴 디로 가셨고—합천 해인사에 들어오셔서 오래오래 계시니깐 그대로 제산 스님이 합천 해인사 조실 스님으로 계셔.
뭐 학자들 뭐 그렇게 눈을 띄워 주든 못허는 그러헌 스님이시지마는 그래도 원청 수행이 참 존중허시니까 조실 스님으로 계시는데.

그때 마침 학자가 한 30여명 있는데, 그때 주지(住持)는 누구든고 하니 이회광(李晦光) 스님이여. 이회광 스님이라고 굉장헌 이가 있었소.
시방 그저 ‘이회광 스님’이면 그이 얼굴을 본 이가 있는가 없는가는 몰라 그러허되, 이회광 스님이 주지인디.

이회광 스님이 첫 주지로 인자 되아 가지고, 합천 해인사 큰 법당에서 주지가 되아 가지고 주지된 후에 진산식(晉山式)에 대중이 인자 그 삼백 명 대중이 주지 스님으로 모셔 가지고는 그 법상에 올라오셔서 설법을 척 헌다.

아주 그때는 처음 와서 주지가 되아 가지고 설법상(說法床)에 올라가서 설법을 척 허는데, 그때 제산 큰스님 회상에 수좌(首座) 하나가 누가 있는고 하니 보택(寶澤)이, 택수좌가 있어.
보택이, 택수좌라는 스님은 누군고 허니 석두(石頭) 스님이여, 임석두 스님인디. 임석두 스님은 누군고 허니 돌아가신 종정스님, 효봉(曉峰) 스님의 은사스님이여.

그 스님 이름이 보택이, 택수좌인디. 보택이 택수좌로 그때 그 제산 스님 회상에 참선을 허고 있다가, 이회광 스님 주지가 되아가지고 진산식 설법허는디 그 법회에 참례해서 법을 듣는데, 그 회광 스님도 수좌로 공부를 허고 댕기다가 해인사에 들어와서 주지가 되았거든.
인자 진산식 설법에 회광 스님이 법문을 허시는데, 그 법문을 들어 보란 말이여.

인유(因由)를 다 말해야 되는 것이여. 그래서 여까장 말허는 것이여.
부처님 법문에도 인유분(因由分)이 있거든, 인유분. 그 주욱 얘기를 해 가지고는 인자 딱 헌다, 이런 인유가 있어. 무조건 툭 허고만 나오면 되아?

그래 해인사 큰 법당에 이회광 스님 인자 진산식 설법허러 올라가서 진산식으로 법상에 올라가 설법헐 땐디. 얼마나 그 법보종찰(法寶宗刹)에 참, 주지가 되아 가지고는 산중이 다 모였는데 삼백 명 대중이 모았어.
그리고 또 서울서 그 소문이 난 이회광 스님이기 따문에, 서울 상궁(尙宮)들이 다 믿은 스님이기 때문에 천상궁 이하에 그 상궁들이 수백 명이 내려왔어. 상궁이 꽉 차고 산중 스님네가 한 삼백 명이 차고 뜰까장 꽉 찼는데.

그 큰 법당에 법상에 올라가서 설법을 허는데—지금 설법을 지금 헐 판이지, 올라갔지.
턱 앉었는데, 회광 스님 참 인물이 잘났거든. 그 이상 더 잘날 수 없지. 틀이 잘 생겨가지고 올라가 법문허는디, 주장자를 추켜들고. 이게 법문이여!

“산하대지(山河大地)와 만상삼라(萬象森羅)와 정여무정(情與無情)과 금일대중(今日大衆)이 산승(山僧)의 입으로 나왔느니라” 그랬네.

아, 그래 놓으니깐 불가불 물을 수밖에 없지.
효봉 스님 은사스님 보택이 택수좌, 그 스님이 척! 나와서 앞에 와서 척 공경허게 절을 한 자리 딱—그 묻는 법이 그려. 다 그래야지.

절을 딱 허고는 합장하고 척 서서 “산하대지와 만상삼라와 금일대중은 스님의 입으로 나왔거니와 회광 스님의 입으로 나왔거니와, 화상(和尙)은 종하처출(從何處出)고? 화상은 어느 곳으로써 나왔습니까?” 물었네.

그 대답헐 자신(自信) 있는가? 자신 있는가?
바로 보여야 하지, 못허는 것이여! 거, 어름해 가지고는 못 헌다니까 그래.
요리조리 생각허다가는 허들 못 하고 더군다나 말헐 것 없지마는, 바닥이 툭 드러나지 않고는 못 혀.

고놈 한마디 해 놓으면은 그 밖에 더 무서운 답이 나오네. 문답이 그 밖에가 더 있어.
그 하나 해 볼 수 있으면 해 보제. 어디 여그 우리, 또 우리 저 모도 먼 디서 모도 온 보살님네도 한마디 대답해 보고.

많이 선방에 댕김서 공부허신 어른들이 여기 시방 모도 계신디, 원 체면만 채려도 못써.
툭! 견성해 가지고는 또 애끼기만 허는구만. 애껴 놓으면 뭣 혀. 푹 나와야지.

한마디씩 모도 허면은 나도 한마디 헐 터이지마는, 정말 법문을 들을라면은 한마디씩 해 볼 것이지마는, 밑천이 짤러 가지고는 못 햐. 고놈 한마디 겨우 답해 놓고 나면 어쩌라고. 큰일나제.

다 제 방맹이에 죽느니라. 제 방맹이에 저 죽고마는 것이여.

그러니까 그만 그 보택이 택수좌님이 아, 거그서 그만 들나지 않게 은근하게 한마디 잘 이르고 나오면은 그 좋을 것이다 그말이여.
세상에 그... 헌디 아, 옷을 벗어서 장삼(長衫)을 척 벗어서 어깨에다가 척 걸쳐 메고는 “분허다!” 쳐다보고, 법상에 앉었는디 “분허구만! 속한(俗漢)이 놈한테 내가 절헌 것이 분혀!”
아, 이러고는 그냥 장삼을 메고는 불수변거(拂袖便去)를 해버렸네.

그러니 그 위신(威信)이 그 무엇이여.
그렇게 큰 대중이 다 모이고 서울서 상궁 대중이 다 모이고, 비구니 대중이 다 모이고 그런디 그렇게 헐 수가 있어?

허, 이거 참, 어쩔 것이여 그거, 회광 스님으로서 어쩔 것이여. 참 기가 차제!
법문을 헐래야 헐 수가 있소? ‘속한이 놈한테 절했다고 분허다’고 나가 놓으니.

아, 그랬다더니. 아, 이번에 내가 또 들었구만. 나 인자 이번에 들었구만.
수련대회 학생이 송광사로 갔드랴. 간디, 그 대회에 따라온 이가 누군고 하니, 요새 그 왜 처사님이 견성했다고 헌 이가 있는데. 백봉처사라고 허나? 그 처사가 요새 그랬다는데.

여그 이 자혜 수좌가 잘 알고 와서 얘기해서 들었구만.
아, 거그에 창영 수좌가 있다 하나? 창영 수좌인가 누가 있었는디, 가서 그만 법문을 가만히 듣다가는 무슨 법문에 그 졸가리가 나왔드만, 나 그건 모르겄구만. 나 인자 들어.

탁! 채고 물으니께 그만 어름어름 말대답을 못 하니까, “요까짓 것들이 다 어느 곳에서 와서 견성했다고 입을 벌려? 당장 여가 어디인디, 16국사 도량인디 여그 와서”
아, 그래 가지고 거그서 헐 수 없어 그만, 그 냅대 그만 법방(法棒)을 냅대 내리는 바람에 도망갔대아. 도망가지. 도망가 버렸대 그냥. 마누라까장 데리고 왔다가.

아, 그랬다고, 여그 조그만헌 자혜 수좌가 그 소리를 해서 내가 그저껜가 들었구만.
그 그런 것이란께. 아, 그 어떤 처사인지 모르지마는 그 참, 그 우세 그 큰 우세여. 함부로 입 벌릴 수 없는 것이여.

아, 그렇게 점잖은 이가 그래도 거그서 그만 바싹 절단나 버려. 살림살이 푹 베져 버리고. 못 하네, 그거.
자, 그만 그래 그만 법문헐 수가 있는가? 법문을 해야 헐턴디 법문을 못 혀, 그 정도면.

그만 그길로 법문 못 허고 내려와서는 가만히 그만 주지실에  있다가, ‘이놈의 주지를 내가 공연히 왔구나, 이러헌 산중에 이러헌 놈의 우세가 어디 있노’ 우세 안 헐 수밖에 없제.

위신이 암만 점잖하고 암만 학식이 넉넉헌들 이 법은, 이 일착자(一着子) 도리는 헐 수 없어.

대체 ‘산하대지와 만상삼라와 정여무정과 금일대중까장이라도 내 입에 나왔느니라’ 자기가 해 놓았으니, 자기는 어디서 나온 걸 바로 일러야 할 것 아닌가? 저 나온 걸 일러야 헐 것 아니여?
이런 도무지 아, 그놈을 못 일러 놓았으니, 대갈빡이만 있고 몸뚱이 없는 것이제, 뭣이여?

법문 못 혀. 내려와서는 그날 밤 잠 한숨 못 자고는 주지실에 띄우고는 그 이튿날부텀은 달리 어떻게 헐 수 없으니까, ‘합천 해인사 그 퇴설당을 못 파라, 못을 파라’ 그 이유는? 왜 못을 파라느냐?
‘못 파라’는 것은 장경각(藏經閣)에 불을 꺼야 허겄으니깐 못을 파라 이거여.

인자 쫓아내는 것이지. ‘수좌, 쏵 가거라’
주지니까, 주지 직권이니깐, 헐 수 있어? ‘못을 팔 터이니 나가거라’

헐 수 없어서 그때 쫓겨나는데, 보택이 택수좌님 따문에 온 대중이 다 쫓겨나는데, 헤 기차제!
그때만 해도 주지 권리가 참 무섭다.

불통령 재를 넘어서... 목통령(木通嶺) 재가 불통령(不通嶺)일세. 이 정공은 잘 알거네.
목통령이 거 불통령이여. 왜 불(목)통령인고 허니 ‘아니 불(不)’자 대각빡이 올라간께 목(木)자가 됐어. 갖다가 불통령을 목(木)자로 목통령(木通嶺)으로 된 거여. 그래 목통령인디.

목통령 재를 넘어서 김천 직지사를 오셨네, 제산 스님이.
그래 가지고 그 김천 직지사에 가서 그 어른이 와 계시면서 또 선객(禪客)이 한 사오십 명 모아서 살기 따문에 직지사가 그 참, 한국에 제일가는 선방이 되았었구만.

여까지, 내가 이 말허니라고 여까지 헌 것이여. 그 인유를 얘기허니라고 여까장 헌 것이다 그말이여.

그전에는 볼 것 없는 군막사찰(軍幕寺刹)인디.
또 옛날에는 선산 도리사가 초창, 옛날에는 금릉군인디 금릉 직지사가 이창, 상당한 절인디 이창인데, 천불(千佛)을 모도 모시고 다 그랬거든.
그 큰 대찰인데 중간에 가서는 숭악한 폐사(廢寺) 되아 가지고는 모도 그저 그만 장사하는 그런 (조금 더 키우제 불을) 그러헌 직지사입니다.

그런 직지사인디 그런 직지사에다가 제산 큰스님도 참 계덕(戒德)이 훌륭허고 청정허시고 그런 어른이지마는,
좀 일구(一句)를 막 다루아서 견성 도인을 막 투드러 나게 맨드는 혜월 큰스님을 좀 모셔다가 놓고 한국에 제일가는 사자 도인 그냥 이런 그만 그 대선원을 만들아 볼 생각이 있어서 내가 그 어른을 모시고 참 올라와서 선방을 헐라 한디, 통도사에서 그만 기어니 뭐 모셔가는디 어떻게 혀.

안산 내원까장 막 들여놓고 왼통 그만 그때 신도가 돈을 만 원을, 그때 돈 만 원이면 큰 돈이여.
만 원을 모도 거두어서 아, 그 큰스님 모도 수좌 양식(糧食) 허라고 그만 갖다가 돈방석을 만들아 깔아 드리는디 어떻게 뭐 내가 거그서 어떻게 헐 도리가 있어야제.

나는 그때 그만 벌써 그만 수좌로서 조고만헌 것이 글쎄 참 견성인지, 그릇 견성인지 ‘견성했다’고 내 딴에 그만—머냐 다 얘기했지—막 오도송(悟道頌)을 짓고,
그래가지고 더군다나 그 혜봉 스님한테 가서 척 인가를 아, 여지없이 혜봉 스님이 나를 인가해 주어. 두 말 헐 것도 인가를 해주니 그 어떻게 헐 거여, 내가.

그 인가해 준디 말이여, 저번에 내가 얘기했지마는, 지금 절대 내가 ‘그건 아니다’ 그말이여.
아닌데! 아, 그 어른 아니라도 그것 터꺽! 다 그대로 알게 됐제! 되아 버렸어. 공안이 그놈이 그 이상혀.

‘거년 가난은 가난이 아니어서 송곳 꽂을 땅이 없더니, 금년 가난은 시(是)가난이여, 참 가난해서 추야무(錐也無)다. 송곳도 없다.
송곳도 없다고 했는디, 거기에 점검을 고인이 허기를 여래선(如來禪)밖에는 안된다 허니 어떻게 일렀으면, 송곳까장 없어졌다 했으니 여래선밖에는 안되니 어떻게 조사선(祖師禪)을 이르겄느냐?’ 헌디,

내가 답허기를 ‘능각첨첨불사타(菱角尖尖不似他)여. 능각은 첨첨헌디 타와 같지 않다’ 아 이렇게 일러놨네. 그게 그렇게 일러 꼭 될... 인가허지, 허지마는 나는 지금 그렇게 않겄다, 도저히.
그거 내가 답헌 소리인디 능각첨첨... 그때 답 안 혀. 인자 못 혀. 아니다.

그러면 어떻게 답을 헐 것이냐?
내 답이 시방 여그 탁! 있어. 탁 있지마는 이 답을 내가 어따가 써 놓들 못 혀.
내가 확철대오헌 선객이 있다면은 답 딱! 허지. 거그밖에는 해 줄 도리가 없어.

저번에 허든 놈 내가 끝을 여그다 또 요렇게 좀 맞추니라고 요렇게 해놓고. 저번에도 그렇게 했든가 몰라?(42분25초~63분31초)

 

 



(4/4)----------------

혜월 스님을 모셔다가 직지사에다가 어떻게 헐라고 헌 것도 내가 수좌, 납자(衲子)로 댕긴 사람이 무슨 능술(能術)이 있어서 그려.
허지마는 발써 그만 혜봉 스님한테로 와서 거그서 인가 탁! 받고 척 넘어왔다는 것, 다 벌써 말이 머냐 들어와 직지사 제산 스님 귀에까지 다 들어왔으니 제산 큰스님께서도 아주 그만 뭐, 그 뭐 여지없이 그만 참, 그만 그 어른은 그대로 그만 종(從)해 버려. 그대로 그만.

그 내가 와서 그 현구(玄句)를, 조사관(祖師關)을 물으니까 대답은 못 허시고 “내가 탁마(琢磨)를 못 해봐서 이러네” 그려.
그때 내가 첫 철 거그 지내고 갔은게 다 오직, 그 어른 시봉도 내가 허고 했은게, 오직 다 무간(無間)혀.
“나는 탁마를 못 해서 그러네”

그러고는 날 갖다가서 첫 철에 들어올 때에 “일념미생전(一念未生前)을 봐라” 가르켜 준 스님인디 그 뭐, 말헐 게 있어?
아, 그래 가지고 돌아와서 아, 그만 그 어른의 ‘일념미생전을 보라’한 거기에 그만, 뭐 그대로 그 어른의 얼굴이 그만 참 말헐 수가 없제.

내가 그걸 자꾸 “큰스님, 그거 일념미생전을 보면은 벌써 일념미생전을 보는 놈이 한 놈이 일어나 가지고는, 그 일어나기 전을 보고 앉었으니 거, 어떻게 헐 것입니까?”하고 무척 말을 했제.
내가 뭐 말 못 헐 게 뭐 있나? 탁마상성(琢磨相成)인디.
당신도 내 입을 막지 못허실 줄 알고 “내가 탁마를 못 했어” 이렇게 말문이 맥혀 버렸어.

제산 큰스님은 우리 은사스님이란 말이여. 내가 은사(恩師)를 그리 해서 은사스님이거든.
은사스님이라고 해서 법(法) 모르는 걸 알았다 허고 제일이라 햐? 그건 못 혀.
내 아버지라도 못 허는 것이고, 헌 법이 없어. 그래야 헐 것 아닌가?

그러니 내가 그 회상에서 혜월 큰스님을 모시고 선방—그저 그때 그 다 말허니께 퇴운 스님도 좋아 하시고 또 그 제산 큰스님도 조끔도 당신이 조실이라고 해서 그런 큰스님이 오는 것을 반대헐 어른이 아니거든.
‘내 자리인디, 어찌 그 어른이 와?’ 없어!

“좋다”고. 그 뜻을 얻어 가지고는 갖다가 모시자고 했는디 뭐 내가 자발로 헌 건 아니지마는, 발써 그만큼 그만 내 말이 그만 그렇게 권리가 있어. 말 한마디 허면 모두 세워 주고.

또 법을 ‘정영신(鄭永信)이 벌써 혜봉 스님이 다 인가했다’ 아, 이거 소문이 나니 어쩔 꺼여. 또 ‘혜월 스님한테 그 안에 가서 다 벌써 공적영지, 영지 공적영지, 등지 다 일렀다’ 소문나 놓으니께 뭐 어쩌.
그만 퇴운 스님도 말로 헐 수 없이 좋아하고, 제산 큰스님도 그만 내 말을 여지없이 참 신용하고.
아, 그래서 직지사에 모실라고 딱 했는데, 당최 그만 통도사에서 막 모셔 갈라고 하는디, 허는 수가 없어서 기어이 못하고는.

‘아이고, 헐 수 있나. 어라, 나는 내 목적이나 달성헐 수밖에 없다. 불가불 내가 용성 큰스님을 찾아가 또 내가 한번 또 인가도 받고. 물으면 내가 답(答)도 하고 탁마상성(琢磨相成)을 해 보리라’ 그러고는 용성 큰스님 회상으로 올라갔다 그말이여.

대번 올라오니까, 소문이 앞에 가서 턱 ‘발써 정영신이가 혜봉 스님한테로 댕겨서, 혜월 스님한테로 댕겨서 올라왔다’ 머녀(먼저) 그렇게 알았다는 것도 다, 법담(法談)했다는 것도 다 듣고 있고.
또 ‘왔다’ 소문이, 그래 ‘정영신이가 왔다’헌 말이 벌써 용성 큰스님 귀에 먼첨 들어갔네.

아, 그러니깐 대번에 그만 나오시더니 “정영신이가 여그 왔다는디” 그래 쫓아 들어가서 절을 헌께 “오! 네가 정영신이로구나”
“예, 그렇습니다”

“응, 너 글안해도 내가 만나고저 했더니 왔구나. 자, 그려 척 만났으니 너와 나와 서로 법거량(法擧揚)을 한번 해 보자”
“죄송헙니다. 황송헙니다” 그러니깐,

“여하시제일구(如何是第一句)냐?” 그때 한참 제방(諸方)에 제일구가 퍼졌을 때라.
그래서 제일구 문답이 어디서부텀 시작되았는고 하니 동화사에서 시작되아. 동화사 금당(金堂)에서 시작이 되았어.

그때 금당에 누가 있었든고 하니 무렴 스님이라고 있었는디, 무렴 스님이 답을 했는디 제일 옳게 답을 했닥 하는 제일귀(第一句) 답이 있어.
내가 그 무렴 스님 답헌 제일귀 답을 듣고, “흥, 아무리 제일귀 답을 무렴 스님이 옳게 했다고 판단은 났다마는 아니니라!” 내, 그래버린 거여.

그러면 그 제일귀 답은 어떻게 일렀는고 허니, “여하시제일구냐?” 물으니까,
답이 “하불문제일구(何不問第一句)냐?” 요렇게 나왔어. “어찌 제일구를 묻지 못하느냐?” 이렇게 나왔어. 그 답이 제일이라고 했거등.

“아니니라” 해 버렸어.

그렇게 해서 모도 인자 제방에 제일귀 답이 많이 모도 있을 때인디, 나한테 용성 큰스님께서 제일귀 답을 묻거든. “여하시제일구(如何是第一句)냐?” 묻길래, 내 답을 좀 보란 말이여, 응.

또 저번에 다 해놓은 놈이지마는 이번에는 그 이걸 내 그저 과거 모도 역사를 저렇게 야(얘)들이 깨끗이 잘혀. 이번에는 아주 그대로 결집을 허는구만.
모도 결집해서 저 일러 주는 것 다 봤지만 어저께 그 청암거사도 아주 듣고는 공찬(公讚)을 혀. ‘그 참 잘했다’고. ‘어저께 일대기(一代記) 중에서 뭐 얼매를 일렀는데 참 좋다’고.

아, 나는 녹음기에다 내가 넣어 놓고 들을라니, 듣기 싫어!
맨 놈이 법문이, 모도 그만 내 법문이 그려. 모도 그만 그 사투리에 뭣에 잉, 듣기 싫어! 내가 해 놓고도.

그런디 인자 야(얘)는 그대로 써 가지고, 인자 그대로 읽으니깐 아, 그런 게 없드구만.
아, 그런데 그 나는 잘 듣는구만. 야가 읽으면 잘 들어, 끝까장. 안되아 버리면 그만 안 듣는디.

용성 큰스님께서 “여하시제일구냐?”
영신 : “예?”(높은 음성으로)
그 왜 대답이 그려? ‘예’허든지 그러지, “예?” 그려. “예?” 「”예?”는 왜 여가 “예?” 그려」
그것 좀 잘...
「왜 “예?” 그려」 참, 그거. 언하대오(言下大悟)다. 세상에...

“예?” 그런게, ‘여하시제일구여?’ 또 묻거든. “여하시제일구여?”
영신 : (손뼉을 치며) “허허!” 내가 그랬다. 응. 그 어른 답 가운데 좀 불싸스럽지마는 헐 수 없어, (손뼉을 치며) “허허!” 그러니깐,

용성 : “아니다, 아니니라” 용성 큰스님께서 그래서,
영신 : 다시 절을 척 허고서는 “큰스님 일러 줍소사, 큰스님 일러 줍소사. 여하시제일구입니까?”

용성 : “영신아!”
영신 : “예” 그때는 “예”지. “예”
“예?” 그것 아니여 잉. “예” 그런게,

용성 : “제일구를 일러 마쳤느니라”
영신 : 내가 또 (손뼉을 치며) “허허!” 이랬다 그말이여.

세상에 법전에, 큰스님 앞에 요렇게 했다는 것을, 그 대중이 그때 오십 명 대중(大衆)이여. (서울 종로구) 봉익동 대중이. 봉익동이여. 고때가 봉익동 시방 2번지인데, 1번지인가 그려. 거그 계셨는디.

그러니깐 내가 또 박장가가대소(拍掌呵呵大笑)를 했는데 그건 그만두고,

용성 : “네가 전신(轉身)을 못 했느니라. 전신을 못 했구나” 전신(轉身)—‘구를 전(轉)’자, ‘몸 신(身)자.

“전신을 못 했느니라” 몸뚱이를 전(轉)허지, 몸뚱이를 옮기지 못했느니라 그말이여. 구르지 못 했느니라.
영신 : “그러면 전신구(轉身句)를 물어 줍소사”

용성 : “응 그러제. 여하시제일구냐?” 거기에 내가 답허기를... 어? “전신구냐?” 전신구여! 전신구를 물어 내가 답허기를,
영신 : “낙하(落霞)는 여고목제비(與孤鶩齊飛)허고 추수(秋水)는 공장천일색(共長天一色)입니다.(저녁놀은 따오기와 더불어 날으고 가을물은 하늘과 함께 일색입니다)

그러고는 더니깐 그 끝에 그 큰스님 말씀은, 귀방장(歸方丈), 방장(方丈)으로 들어가셨거든. 그냥 돌아가셔.
뭐 인가(印可)야, ‘옳다’야, 가부여하(可否如何) 없고는 가셨다 그말이여.

그러면 뭐 ‘옳다, 그르다’헌 것을, 내가 무슨 뭐 인가를 맞으러 갔다고 하지마는 내가 인가(印可)해 주기를 뭐, ‘옳다, 그르다’헌 걸 바래는 법인가?
법문만 딱 해 놓으면 거그서 인자 까달(까닭)이 나는 것이지!

그대로 나는 나왔지. 나와 버렸는데, 사흘 되든 날이여. 그 뒤 사흘 되든 날이여.
3일 되던 날에 가서, 대중께 공포(公布)를 했어. “아! 내가 영신이한테 속았다!” 대중께다가.

그때 대중 입승(立繩)은 경봉 스님인디, 시방 양산 통도사 경봉이 아니여. 또 그때 노인 경봉이 있었어, 눈 하나 미영씨(무명씨) 백히고. 그때인디.

“아! 내가 영신이한테 속았다” 그러니까, “아, 영신이가 그 뭘 어떻게 일렀다고 속았다고 하십니까?” 하동산 스님은 그랬다 그말이여.
동산 스님은 “아, 영신이가 뭐 어째서 그래 속았다고 그런 말씀허십니까?”
그 어른 말이 “자네가 영신이 이른 도리를 알겠는가?” 이랬다 그말이여.

나는 못 들었는디, 대중에 그랬다고. 그때 그 대중에는 누가 있었느냐 허면은 장설봉도 있었고, 저 죽은—다 죽었구만, 둘 다 다 인자. 윤세호라고 있었어.
갑장사 많이 지낸 윤세호가 있었는데, 윤세호가 그 소리를 듣고 만공 스님한테 내려와서 그 말을 했어.

“아, 제일귀 답에 영신이한테 속았다고 큰스님께서, 용성 스님께서 대중께 공포했답니다”
“허! 속은 줄을 아시니까 용성 스님일세” 만공 큰스님이 그랬다 그말이여.

나 떠나 버린 뒤에 인가헌 것이여! 그게 다, 속은 줄을 알고, 속은 것이 인가(印可)지 무엇이여!
어디, 꼭 옳다는 게 인가인가? 방맹이 맞고 방맹이 맞은 줄 아는 것이 인가고, 꼼짝 못헌 것이 인가여. 속은 줄 알았다, 이거여.

대중께 공포를 안 했으면은 그 안 되아. 공포를 했기 때문에 벌써 척 당신이 속은 줄 알어. 학자한테는 속지 않나? 허, 이거.
거그서 내가 그 문답을 턱 마쳤어.

그러면 저 윤세호가 가서 만공 큰스님한테 그런 말을 전허니깐, 만공 스님은 거그서 듣고 “당신이 속은 줄을 아셨으니 용성 스님일세”
그 내가 거가서 직접 들은 게 아니라, 고 뒤에 그러고 갔는디 거그 확 그 말이 팍 퍼져 버렸제. 뭐 다 퍼진 것이제 어디.

시방 내가 이렇게 ‘견성했다’하고 돌아댕기면서지만, 선지식을 이렇게 친견해 나가는데 용성 스님까장밖에 시방 안 했다 그말이여.
그러고는 지금 인자 만공 스님은 아직 안 봤거든. 안 봤는디 고놈이 먼첨 벌써 다 들어가서 환히 알고 계신다 그말이여.

여그서는 어디로 가냐 허면은 인자 금강산으로 가. 금강산 한암 스님 한테로 가.

얼매나 시간이 걸리나? 한 시간 했제? 한 시간 5분, 한 시간 됐어. 5분 되아. 20분 되아? 테이프 그놈 맞나? (63분34초~1시간20분15초) (일대기 4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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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상량시귀굴~’ ; 『청허당집(淸虛堂集)』 (서산휴정 | 박경훈 역 | 동국대학교 역경원) p63 ‘일선자(一禪子)에게’ 참고.
*조강(糟糠 지게미 조/겨 강) ; ①지게미(술을 짜낸 찌꺼기)와 쌀겨라는 뜻. ②가난한 사람이 먹는 변변하지 못한 음식(飮食). ③조강지처(糟糠之妻 : 가난할 때 고생을 같이 하던 아내)의 준말.
*조박(糟粕 술지게미 조/지게미 박) ; 고인조박(古人糟粕). 옛날부터 내려오는 성인들의 저서와 말은 모두 찌꺼기란 뜻으로, 무릇 참된 도는 말과 글로 전달될 수 없으므로 현재 전하는 모든 것은 술지게미에 불과하다는 뜻.
*상량(商量 헤아릴 상/헤아릴 량) ; 알음알이. 지해(知解).
*알음알이(知解) : 참선은 연구하는 것이 아니다。생각으로써 이리저리 따져서 아는 것은 깨친 것이 아니다。참선하는 데 가장 꺼리는 것이 이 알음알이이다。그러므로 『이 문 안에 들어오려면 알음알이를 내지 말라(入此門內莫存知解)』라고 크게 써서 절 문에 붙이는 것이 이 까닭이다.
*사량(思量) ; 생각하여 헤아림. 사유하고 판단함.
*번뇌(煩惱 번거러울 번/괴로워할 뇌) ; ①몸과 마음을 번거롭게 어지럽히고[煩亂, 煩勞, 煩擾] 괴롭혀 고뇌케[逼惱, 惱亂] 하므로 번뇌(煩惱)라 표현. 근원적 번뇌로서 탐냄(貪)•성냄(瞋)•어리석음(癡) 등이 있다.
②나라고 생각하는 사정에서 일어나는 나쁜 경향의 마음 작용. 곧 눈 앞의 고(苦)와 낙(樂)에 미(迷)하여 탐욕•진심(瞋心)•우치(愚癡)등에 의하여 마음에 동요를 일으켜 몸과 마음을 뇌란하는 정신 작용.
불교는 중생의 현실을 혹·업·고(惑·業·苦)의 삼도(三道)로 설명한다. 즉 번뇌[惑]에 의해 중생이 몸과 마음의 행위[身口意 三業]를 일으키게 되면, 이로써 3계 6도의 생사윤회에 속박되어 고통[苦]의 과보를 받게 된다.
*망상(妄想 망령될 망/생각 상) ; ①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는 것으로 상정하고 집착하는 의식의 작용. 분별(分別), 망상분별(妄想分別), 허망분별(虛妄分別), 망상전도(妄想顚倒) 등으로도 한역한다. ②이치에 맞지 아니한 망령(妄靈)된 생각[想]을 함, 또는 그 생각. 잘못된 생각.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하다고 잘못 생각하는 것.
*숭악하다 ; ‘속이 응큼하다(겉으로 보이는 것과 달리 엉뚱한 욕심을 품고 있거나 음흉陰凶하다)’ ‘흉악凶惡하다(성격, 언행이 모질고 악랄하다)’의 사투리.
*귀굴리(鬼窟裏) ; 귀신 굴 속. 수행자가 시끄러운 것을 피하고 고요한 것만 취해서 화두가 성성(惺惺)하지 못하고 눈을 감고 혼혼(昏昏)한 경계에 취해서 묵조(默照)나 정식분별(情識分別)에 잠겨 있는 상태를 비유한 말.
*타성일편(打成一片) : ‘쳐서 한 조각을 이룬다’. 참선할 때 화두를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화두가 들려서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일체처 일체시에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만이 독로(獨露)한 순수무잡(純粹無雜) 경계.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의단독로(疑團獨露 의심할 의/덩어리 단/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공안,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가 홀로[獨] 드러나다[露].
*찌꺼리 ; ‘찌꺼기’의 사투리.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 : 중국 선종(禪宗)의 초조(初祖) 달마대사가 인도에서 중국으로 와서 불교의 대혁명을 일으켰는데, 경(經)이나 모든 글이 소용없다 하여 「불립문자(不立文字)」를 표방하였고, 계율이나 염불이나 송주(誦呪)를 죄다 부인하고 오직 「마음을 지키는 한 가지 공부에 모든 법이 들어 있다(觀心一法總攝諸行)」하고, 「바로 마음을 가리켜서 대번에 성품을 보고 부처가 되게 한다(直指人心見性成佛)」고 하였다.
실로 그의 문하에서 많은 성인이 나왔었다. 그리하여 사람마다 다투어 묵은 불교를 버리고 이 새 법, 참선법(參禪法)을 배우려고 하였다. 그러므로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이란 것은 달마조사가 전하여 온 특별한 법, 비밀한 이치 곧 「불법의 똑바른 이치(佛法的的大意)」란 말과 같은 말이다.
*참선법(參禪法) ; ①선(禪) 수행을 하는 법.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법.
*남섬부주(南贍部洲) ; 수미산(須彌山 : 불교의 우주관에서 세계의 중심에 높이 솟은 거대한 산)의 사방에 있다는 사주(四洲 : 네 대륙)의 하나. 섬부(贍部)는 산스크리트어 jambu의 음사(音寫)로 잠부(jambu) 나무가 많다고 하여 이와 같이 일컫는다.
수미산 남쪽에 있으며, 우리 인간들이 사는 곳이다. 여러 부처님이 나타나는 곳은 사주(四洲) 가운데 이곳뿐이라고 한다. 염부제(閻浮提), 염부주(閻浮洲)와 같음.
*사바세계(娑婆世界) ;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이 세계. 현실의 세계. 인토(忍土) · 감인토(堪忍土) · 인계(忍界)라고 한역.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중생들을 교화하는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가 모두 사바세계이다.
*성불(成佛 이룰 성/부처 불) ; ①세상의 모든 번뇌를 끊고 해탈하여 불과(佛果)를 얻음. 곧 부처가 되는 일을 이르는 말이다. ②석존이 붓다가야에서 깨달음을 연 것. ③올바른 깨달음을 얻은 것. 혹은 분명하게 완전히 깨달은 것이라는 뜻.
*불과(佛果) ; 불인(佛因 : 부처님이 되기 위한 인因. 즉 모든 선근공덕善根功德)의 대응어. 불도수행의 결과. 불위(佛位). 부처라고 하는 궁극의 결과. 결과로서 부처로 된 상태. 깨달음.
*출세(出世) : ①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것. ②태어나는 것. 법을 체득한 사람이 중생교화를 위해서 세상에 나오는 것. ③세간을 초월하는 것. 출세간(出世間)의 준말. 삼계(三界)를 나오는 것.
*생사고(生死苦) ; 생사(生死)라는 고통[苦]. 가장 근원적인 고통이며, 이것에서 벗어나야 해탈을 얻는다.
*석일(昔日 옛날 석/날 일) ; 옛적(이미 많은 세월이 지난 오래전 때).
*범부(凡夫 무릇•보통 범/남편•사내 부) ; 번뇌(煩惱)에 얽매여 생사(生死)를 초월하지 못하는 사람. 이생(異生) 또는 이생범부(異生凡夫)라고도 한다.
*중생(衆生) : 참 성품을 잃어버리고 망녕된 온갖 생각이 분주하게 일어났다 꺼졌다 하기 때문에, 온갖 세계에 돌아다니면서 났다 죽었다 하는 무리들, 곧 정식(情識)이 있는 것들을 모두 중생이라 한다. 그러므로 사람뿐 아니라 모든 동물과 귀신들과 하늘 사람들까지 합쳐서 하는 말인데, 유정(有情) • 함령(含靈) • 함식(含識) • 군생(群生) • 군맹(群萌) • 군품(群品) 같은 여러 가지 말로도 쓴다.
부처님은 구제의 대상을 인류(人類)에게만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와 같은 중생 전부를 가르치고 건지시는 것이다.
*미(迷) ; 미혹(迷惑), 미망(迷妄), 미집(迷執)의 준말. 진리에 어두움. 마음이 흐리고 혼란함. 깨달음(悟)의 반대. 무명번뇌로 인하여 사리를 밝게 깨치지 못하고 전도몽상(顚倒夢想, 바르게 사물을 볼 수 없는 미혹함)하는 것.
*제도(濟度 건널 제/건널 도) ; 중생을 미혹의 큰 바다(생사고해 生死苦海)로부터 구하여[濟], 생사없는 피안(彼岸, 깨달음의 언덕)에 이르게 하는[度] 것. 제(濟)는 구제(救濟). 도(度)는 도탈(度脫).
*구제(救濟 건질 구/건널 제)—어려움이나 위험에 빠진 사람을 돕거나 구하여 줌.
*도탈(度脫 건널 도/벗을 탈)—속세의 속박이나 번뇌 등에서 벗어나 근심이 없는 편안한 경지에 도달함.
*고인조박(古人糟粕 예 고/사람 인/술지게미 조/술지게미 박) ; 옛날부터 내려오는 성인들의 저서와 말은 모두 찌꺼기란 뜻으로, 무릇 참된 도는 말과 글로 전달될 수 없으므로 현재 전하는 모든 것은 술지게미에 불과하다는 뜻.
*상견(相見) ; 상(相)이 있다는 견해.
*선지식(善知識) ; ①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좋은 지도자. 훌륭한 지도자. 바르게 이끄는 사람. ②좋은 벗. 마음의 벗. 선우(善友).
*행각(行脚) : ①수행자가 일정한 주소를 갖지 않고 스승이나 벗을 구하여, 자기의 수행이나 교화를 위해 곳곳을 편력하는 것。 ②스승의 슬하(膝下)를 떠나서 선(禪) 수행을 위해 훌륭한 선승(禪僧)이나 좋은 벗을 구하여, 마치 떠도는 구름과 흐르는 물과 같이 발길 닿는 대로 여러 곳을 편력하는 것。 이것을 행하는 자를 행각승(行脚僧) 또는 운수(雲水)라고 함.
*실기(實記 열매·내용·행적 실/기록할 기) ; 사실(事實)을 있는 그대로 적은 기록(記錄).
*계행(戒行) ; ①계(戒)를 지켜 수행하는 것. 계율에 정해진 규칙을 성실하게 실천수행하는 것. ②계율과 도덕.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을 일으킴[發].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사판중(事判- 일 사/판단·맡을 판) ; 사판승(事判僧). 절의 모든 재물과 사무를 맡아서 처리하는 스님.
*어육주초(魚肉酒草) ; 어육(魚肉)은 생선과 짐승의 살코기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고, 주초(酒草)는 술과 담배.
*누룩 ; 술을 빚는 데 쓰는 발효제. 밀이나 찐 콩 따위를 굵게 갈아 반죽하여 덩이를 만들어 적당한 온도에 띄워서 누룩곰팡이를 번식시켜 만든다.
*디디다 ; ①발을 올려놓고 서거나, 발로 내리누르다. ②누룩(술을 빚는 데 쓰는 발효제)이나 메주의 반죽을 보자기에 싸서 발로 밟아 덩어리를 짓다. ③어려운 상황을 견디어 내거나 이겨 내다.
*경허(鏡虛) 스님 ;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도인(道人) ; ①불도(佛道)를 수행하여 깨달은 사람. ②불도(佛道)에 따라 수행하는 사람.
*탁자(卓子) ; ①물건을 올려놓기 위하여 책상 모양으로 만든 가구를 통틀어 이르는 말. ②불상(佛像) 앞에 붙박이로 만들어 두고, 공양물(供養物) · 다기(茶器) 따위를 차려 놓는 상.
*의호(宜乎 마땅할 의/오조사 호) ; 마땅하게.
*예불(禮佛) ; ①경건한 마음으로 부처님에게 절함. ②절에서 아침·저녁 두 차례에 걸쳐 불·보살(佛·菩薩)에게 예배하는 의식.
*등상(等像) ; 등상불(等像佛 : 나무, 돌, 흙 등으로 만든 사람의 형상으로 만든 부처님).
*오좀 ; ‘오줌’의 옛말.
*여지(餘地)없다 ; (무엇이)달리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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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효(酒肴 술 주/안주 효) ; 술과 안주(按酒)를 아울러 이르는 말.
*위법망구(爲法忘軀) ; 법(法, 진리)를 구하기 위해[爲] 몸[軀] 돌보는 것을 잊는다[忘].
*각사 ; 해인사 입구에 있는 마을 이름.
*동구(洞口) ; ①마을로 들어서는 어귀(드나드는 목의 첫머리). ②절로 들어서는 산(山)의 어귀.
*찹쌀막걸리 ; 찹쌀로 빚어서 담근 막걸리.
*옌장 ; 실망의 뜻을 나타낼 때 욕으로 하는 말.
*비우 ; ‘비위(脾胃)’의 사투리.
*비위(脾胃) ; ①어떤 음식을 먹고 싶거나 어떤 일에 대하여 하고 싶은 마음. ②음식을 잘 삭여 내는 능력. ③이니꼽고 탐탁지 않은 일이나 싫은 것을 견디어 내는 성미. ④지라와 위를 아울러 이르는 말.
*잿말랑(잿말랭이) ; ‘잿마루(재의 맨 꼭대기)’의 사투리. *재 ; 길이 나 있어서 넘어 다닐 수 있는, 높은 산의 고개. 영(嶺).
*찹쌀술 ; 찹쌀로 빚어서 담근 술.
*오목식기(--食器) ; ‘오목주발(--周鉢 : 놋쇠로 둘러[周] 만든 속이 오목한 밥그릇[鉢])’의 비표준어.
*묏등 ; 무덤의 윗부분.
*화반탁출(和盤托出 화하다 화/소반·쟁반 반/맡기다·밀다 탁/나다·드러내다 출) ; ‘얻은 밥을 밥상까지 전부 다른 사람에게 내어 준다’는 말이며, ‘일체 남기지 않고 있는 대로 다 털어놓다’는 뜻이다.
*발로참회(發露懺悔 드러내다·밝히다 발/드러내다 로/뉘우칠 참/뉘우칠 회) ; 죄나 허물을 숨기지 않고 사실 그대로 드러내어 참회하는 것. 발로백불(發露白佛), 발로참제(發露懺除)라고도 한다.
*참회(懺悔 뉘우칠 참/뉘우칠 회) ; ①자기의 잘못에 대하여 깨닫고 깊이 뉘우치며, 다시는 같은 잘못을 짓지 않겠다고 결심함. ②신이나 부처님 또는 대중 앞에서 자기의 죄를 뉘우치고 용서를 구함.
[참고]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156~157 참고.
〇有罪則懺悔하고  發業則慚愧하면  有丈夫氣象이요,  又改過自新하면  罪隨心滅이니라.
허물이 있거든[有罪] 곧 참회하고, 잘못한 일이 있으면[發業] 곧 부끄러워할 줄 알면[慚愧] 대장부의 기상이 있다 할 것이요, 또한 허물을 고쳐 스스로 새롭게 하면, 그 죄업은 마음을 따라 없어지느니라.

(註解) 懺悔者는  懺其前愆이요  悔其後過라.  慚愧者는  慚責於內하고  愧發於外라.  然이나 心本空寂이라  罪業이  無寄니라
참회(懺悔)란 먼저 지은 허물을 뉘우치고, 뒷날에는 다시 짓지 않겠다고 맹세하는 것이다. 부끄러워한다[慚愧]는 것은 안으로 자신을 꾸짖고, 밖으로는 자기의 허물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은 본래 비어 고요한 것이라, 죄업이 붙어 있을 곳이 없는 것이다.
*까바치다 ; (어떤 사람이 비밀을 다른 사람에게)속속들이 들추어내어 일러바치다.
*총총 ; 총총히(촘촘하고 많은 별빛이 또렷또렷한 모양).
*(게송) ‘曠劫障道 睡魔莫大’ ;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 ‘자경문(自警文)’ 참고. ‘오랜 겁에 도에 방해되는 일은 수마(睡魔)보다 큰 것이 없다’
*수마(睡魔) ; 참선할 때 어느새 잠이 와 졸음이 쏟아지면 정신 차려 정진하기가 매우 어려우므로 ‘졸음·잠(睡)’을 수마(睡魔)로 일컫는다.
*도문(道門) ; ①도에 이르는 문. 부처님의 가르침. ②불문(佛門). 부처님의 법문(法門). 불교(佛敎)라는 문. 부처님의 가르침에 들어서는 문. 깨달음으로 들어서는 문.
*마구니 ; 마(魔). [범] mara 음을 따라 마라(魔羅)라 하고, 줄여서 마(魔)라고만 한다。장애자(障礙者) • 살자(殺者) • 악자(惡者)라 번역。목숨을 빼앗고 착한 일을 방해하며 모든 것을 파괴하는 악마를 말한다. 그러나  마(魔)는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에서 생기는 것이다.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용화선원刊) p64에서.
마(魔)란 생사를 즐기는 귀신의 이름이요, 팔만사천 마군이란 중생의 팔만사천 번뇌다. 마가 본래 씨가 없지만,수행하는 이가 바른 생각을 잃은 데서 그 근원이 파생되는 것이다.
중생은 그 환경에 순종하므로 탈이 없고, 도인은 그 환경에 역행하므로 마가 대들게 된다。그래서 ‘도가 높을수록 마가 성하다’고 하는 것이다. 선정 중에 혹은 상주(喪主)를 보고 제 다리를 찍으며 혹은 돼지를 보고 제 코를 쥐기도 하는 것이, 모두 자기 마음에서 망상을 일으켜 외부의 마를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마의 온갖 재주가 도리어 물을 베려는 것이나, 햇빛을 불어 버리려는 격이 되고 말 것이다。옛말에 ‘벽에 틈이 생기면 바람이 들어오고, 마음에 틈이 생기면 마가 들어온다’고 하시니라.
*금강보검(金剛寶劍) ; 금강(金剛 : 다이아몬드)으로 만든 견고하고 예리한 보배로운 검. ①모든 번뇌를 자유자재로 끊어 없애는 지혜를 비유한 말. ②진리를 꿰뚫는 선지식의 날카로운 마음 작용을 비유한 말.
*언하(言下) ; [주로 ‘언하에’의 꼴로 쓰여]말이 떨어진 바로 그때. 또는 말을 하는 그 즉시.
*노래(老來 늙을 노/올 래) ; ‘늘그막’을 점잖게 이르는 말.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인가(印可 도장 인/옳을·인정할 가) ; 스승이 제자의 깨달음을 인정함.
*학자(學者) ; 학인(學人). ① 아직 번뇌가 남아 있어, 아라한(阿羅漢)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더 수행해야 하는 견도(見道)·수도(修道)의 성자. ② 수행승. 선(禪)을 닦는 수행승. ③ 배우고 익히는 과정에 있는 스님.
*제접(提接 이끌 제/응대할•가까이할 접) ; (수행자를) 가까이하여 이끌다.
*법상(法床) ; 법을 설하는 자리. 또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설법하는 스님이 올라앉는 상.
*톡톡히 ; ①구실이나 역할 따위에 충실히. ②비판이나 대가의 정도가 심하게.
*시지부지 ; ‘흐지부지(확실하게 하지 못하고 흐리멍덩하게 넘어가거나 넘기는 모양)’의 사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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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절(程節) : ①길목. 길가는 데 종요로운 어귀. ②공부해 나가는 데 중요한 고비.
*이회광(李晦光) ; 1862-1933 경기도 양주 출신으로 19세에 설악산 신흥사로 출가하였다. 이회광은 역대 고승들의 행적을 적은 『동사열전(東師列傳)』에 조선의 마지막 대강백으로 기록되었을 만큼 명망이 높은 승려였으나 1908년에 친일 성향의 불교 교단 원종(圓宗)을 성립한 이래 1910년 조선불교를 일본 조동종과의 예속적 연합을 추진하였으나 이회광은 ‘불교계의 이완용’으로 불리며 많은 반대에 부딪쳤다.
1911년 조선총독부는 조선 불교에 대한 행정 통제를 강화하고 식민지 지배 구조에 불교를 예속시키기 위한 규제 일변도의 악법인 조선사찰령(朝鮮寺刹令)을 발포하고 이회광이 추진한 조동종과의 연합은 부결하였으나, 총독부는 그를 해인사의 주지로 임명했다. 사찰령 이후에도 계속하여 30본산 연합체제를 주도하면서 1920년에는 역시 일본 임제종과의 병합을 추진하였으나 또 다른 친일 승려 강대련과의 갈등으로 반대에 부딪쳐 실패하고 해인사 주지에서도 밀려났다.
*진산식(晉山式 나아갈 진/뫼 산/법 식) ; 절의 주지가 새로 취임하여 거행하는 의식.
*설법상(說法床) ; 법상(法床 : 법을 설하는 자리. 또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설법하는 스님이 올라앉는 상).
*수좌(首座) ; ①선원(禪院)에서 좌선하는 스님. ②수행 기간이 길고 덕이 높아, 모임에서 맨 윗자리에 앉는 스님. ③선원에서 좌선하는 스님들을 지도하고 단속하는 스님.
*인유(因由 인하다·인연·유래 인/말미암을·까닭 유) ; 일의 내력(來歷)이나 까닭.
*법보종찰(法寶宗刹) ; 불 · 법 · 승(佛法僧) 삼보(三寶) 중 부처님의 가르침을 모두 모아 놓은 팔만대장경판인 법보(法寶)를 봉안하고 있는 절. 우리나라에서 합천 해인사가 법보종찰이다.
*상궁(尙宮) ; 조선 시대에, 내명부(內命婦 궁중에서 여러 벼슬자리에 대하여 매기던 등급인 품계品階를 받은 여인을 통틀어 이르는 말)의 하나인 여관(女官)의 정오품 벼슬.
*어름하다 ; 어떤 상황을 대강 짐작으로 헤아리는 데가 있다.
*짤르다 ; ‘짧다’의 사투리.
*장삼(長衫) ; 스님의 웃옷. 길이가 길고 품과 소매를 넓게 만든다.
*속한(俗漢 풍속·세상 속/사내 한) ; 세속에 속한 이. 속인(俗人)을 뜻하는 말.
*불수변거(拂袖便去) ; 소매를 떨치고 문득 가버리다.
*위신(威信) ; 지위나 신분에 따른 위엄(威嚴 위세가 있어 의젓하고 엄숙한 태도나 기세)과 신망(信望 믿고 기대함. 또는 그런 믿음과 덕망).
*졸가리 ; ①잎이 다 떨어진 나뭇가지. ②사물의 군더더기를 다 떼어 버린 나머지의 골자.
*냅대 ; 냅다(몹시 빠르고 세차게. 또는 그런 모양으로).
*우세 ; 남에게서 놀림이나 비웃음을 받음. 또는 그 놀림이나 비웃음.
*일착자(一着子) ; 일착(一着). ①(바둑에서) 한 수 두다. 일수(一手)와 같음. 선승이 불교의 교리나 수행에 대해 한마디로 말하는 것을 비유하여 한 말. ②본래면목(本來面目). 본래의 마음자리를 뜻한다.
*장경각(藏經閣) ; 장경각은 해인사에 있는, 고려 고종 때 만들어진 고려대장경 경판(經板)을 보관하는 해인사 장경판전(海印寺 藏經板殿)을 말한다. 남쪽의 수다라전(修多羅殿)과 북쪽의 법보전(法寶殿)이 있으며, 서쪽과 동쪽에는 작은 서고가 있어서, 전체적으로 긴 네모형으로 배치되어 있다. 국보 제52호로 정식 명칭은 ‘합천 해인사 장경판전’이다. 퇴설당은 장경각 옆 동쪽에 위치하고 있다.
*군막사찰(軍幕寺刹) ; 스님들로 조직된 군대의 승장(僧將), 또는 의승대장(義僧大將)이 승병(僧兵)을 양성하며 머무르던 절.
*폐사(廢寺) ; 폐(廢)하여져 스님이 없는 절.
*계덕(戒德) ; 계율을 엄격하게 지킨 공덕(功德).
*일구(一句) ; 진리를 표시하는 한 구절. 상대적 언어를 넘어선 한마디의 말이나 글. 이것을 깨달은 사람이 견성오도(見性悟道)한다. 일구도득(一句道得), 말후일구(末後一句), 투관일구(透關一句) 등을 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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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자(衲子 기울·옷을 꿰맴 납/사람 자) ; 남이 버린 헌 옷이나 베 조각들을 기워서 만든 옷을 입은 수행승. 흔히 참선을 하는 스님(禪僧)이 자신을 가리킬 때 사용.
*능술(能術 능력·재능 능/재주·방법 술) ; 재능(才能)과 기술(技術).
*조사관(祖師關) ; 조사의 경지에 이르는 관문(關門), 곧 화두(공안)을 말함. 관문(關門)은 옛날에 국방상으로나 경제상으로 중요한 곳에 군사를 두어 지키게 하고, 내왕하는 사람과 수출입하는 물건을 검사하는 곳이다. 화두는 이것을 통과하여야 견성 성불하게 되는 것이므로 선종(禪宗)의 관문이 된다.
*탁마(琢磨 쫄 탁/갈 마) ; ①학문이나 덕행 따위를 닦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②옥이나 돌 따위를 쪼고 갊. ③옥을 갈고 돌을 닦듯이 한결같이 정성껏 애써 노력하는 것. ④선지식에게 자기의 공부하다가 깨달은 바를 점검 받는 것.
*무간하다(無間--) ; 서로 허물없이 가깝다.
*탁마상성(琢磨相成 쫄 탁/갈 마/서로 상/이룰 성) : 서로 탁마해서 공부를 완성한다.
*은사(恩師) ; ①가르침을 받은 은혜로운 스승. ②자기를 출가시켜 길러 준 스승.
*법(法) ; (산스크리트) dharma, (팔리) dhamma의 한역(漢譯). ①진리. 진실의 이법(理法). ②선(善). 올바른 것. 공덕. ③부처님의 가르침. ④이법(理法)으로서의 연기(緣起)를 가리킴. ⑤본성.
*글안해도 ; ‘그렇지 않아도. 그렇지 아니해도’의 사투리.
*법거량(法擧揚 법 법/들 거/나타낼•밝힐 량) ; ①스승이 제자의 수행 상태를 점검하기 위해 주고받는 문답. ②선(禪) 수행자들 사이에 주고받는 선(禪)에 대한 문답.
*제일구(第一句) ; ①‘처음 한마디 말’이니 불교의 핵심도리를 드러내는 첫번째 말. ②말로써 표현할 수 없고 생각으로 개념 지을 수 없는,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하는(以心傳心) 진리를 가리키는 말.
*제방(諸方) ; ①모든 지방 ②모든 종파의 스님.
*공찬(公讚 공평할·드러낼 공/기리다·칭찬함 찬) ; 드러내어 칭찬함.
*불싸스럽다(불쌀시롭다) ; ‘불손하다(不遜-- : 말이나 행동 따위가 버릇없거나 겸손하지 못하다)’의 사투리.
*전신(轉身) ; ①심성(心性, 여래장如來藏)의 완전한 현시(顯示, 드러내 보임). 더러워져 감추어져 있던 심성이, 더러움을 씻어 버리고 약여(躍如 생기 있게 뛰어노는 모양. 눈앞에 생생하게 나타나는 모양)로서 현현(顯現 뚜렷이 나타남)하는 상태를 이른다. 전의(轉依). ②선문(禪門)의 말. 미혹함의 경지에서 깨달음의 경지로 전입하여 안주하는 것.
*방장(方丈) ; ①선원(禪院)의 운영을 주관하는 최고 책임자 스님, 또는 그가 거처하는 방. ②선원(禪院)·강원(講院)·율원(律院)을 모두 갖추고 있는 총림(叢林)의 가장 높은 스님.
*가부여하(可否如何) ; 옳고 그름[可否]이 어떠한가(어떻다)[如何].
*까달 ; ‘까닭(어떤 일이나 현상의 원인 또는 조건)’의 사투리.
*입승(立繩) ; 선원(禪院)에서 선원의 규율과 질서를 다스리는 직책, 또는 그 일을 맡은 스님.
*미영씨 ; ‘무명씨(목화木花의 씨)’의 사투리. ‘명씨’라고도 한다.
*눈 하나, 미영씨 박히다 ; 미영씨는 목화의 씨를 말하는데, ‘미영씨 박히다’는 말은 눈병 때문에 눈동자에 하얀 점이 생겨 시력을 잃게 되었다는 뜻이다.

 

Posted by 닥공닥정
전강선사 일대기2017. 11. 10. 18:59

>>> 용화선원 법문 유튜브에서 보고 듣기 --->유튜브로 바로가기


 

•§• 전강선사 일대기(田岡禪師 一代記) (제3호) 혜월스님과 법거량.

**전강선사(No.008)—전강선사 일대기 제3호(경술1970년 12월 1일 새벽.음)

(1/3) 약 42분.

 

(2/3) 약 43분

 

(3/3) 약 20분.


(1/3)————————----------

모산촉공우(暮山促笻雨)요  기립원강풍(欹笠遠江風)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모산(暮山)에 촉공우(促笻雨)다. 저문 날에 작대기가 급허고 그 걸음이 바쁘다.
그건 무슨 말인고 하니 모산(暮山)에, 날은 저물었는데 발도 바쁘고 작대기도 급허고 비는 오는구나.

거, 우리가 이렇게 참 온 곳이 하도 무량겁(無量劫)이요, 하도 과거요, 하도 구원겁(久遠劫)이요. 말로 할 수 없다. 저물었다 그말이여. 이렇게 이렇게 저물도록 왔구나.
뭘 했느냐? 여때까지 뭘 했어, 대관절.

오늘이 경술년 동짓달 보름 지나고 섣달 초하룻날 반산림(半山林)이로구나. 발써 금년 삼동(三冬)도 반산림이 되았다. 여태까지 오면서 오늘 섣달, 음력 섣달 초하룻날 반산림까지 왔구나.
그게 모산(暮山)이요, 저문 산이요. 작대기가 급허고 발자취가 급허다. 비는 오는구나.
비가 와, 비가 와. 이렇게 저문 산에 그 바쁜 가운데 비는 온다.

우중(雨中) 속에 비 가운데 있는, 비가 오니 비 온 속에 들었으니, 우중에 있으니 깜깜한 우중에 있어. 여태까장 깨달지 못했구나. 여태까장 날 밝은 비 안 오는 하날(하늘)을 보지 못했구나.
비 안 온 하날을 봐야 할턴디. 이 비 가운데서 이렇게도 발자취도 급하고, 작대기도 급허고, 산은 저물었구나.

기입원강풍(欹笠遠江風)이냐. 또 거다가 비는 오니까 삿갓을 뒤집어썼는데 그놈의 그 산풍이 냅대 불어 제끼니 작대기가(삿갓이) 벗거지면 왼 몸뚱이에 비를 맞게 되었구나.

이게 무슨 짓이냐. 중생의 버르정머리가 여차(如此)허구나.
원, 강풍에 삿갓은 벗어지제, 비는 냅대 오제, 저 발자취는 급허제, 산은 저물었제, 이 지경이로구나. 아, 이렇게 지경이 됐으니 어쩔 꺼나.

처억 한번 거 비바람 없는 곳, 한번 쾌청헌 날빛. 아, 그 툭! 한번 터져보지 못헐 꺼나?

한번 툭 깨달라버린 지경이 있을 텐디, 반다시 비 갠 하날이 있을 텐디, 구름 안개가 다 벗겨지고 환헌 화창헌 천일(天日)이 있을 텐디. 없을까?


장천척안몰(長天尺雁沒)이요  추공한영락(秋空寒影落)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장천(長天)에는 척안몰(尺雁沒)이요, 긴 하날에는 재질을 허는 기러기가 빠졌고,
추공(秋空)에는 한영락(寒影落)이로구나, 가을 하날에는 차운 그림자가 떨어진다. 그건 무슨 말인고?

장천에는 재질을 허는 기러기가 빠진다.
아, 이놈 저 창공 장천(長天)에 구름이 벗겨지고 만리청천(萬里靑天)에 확! 거 구름 한 점 일점무운(一點無雲)헌데, 외기러기란 놈은 재질을 해서 간다. 훌훌 날아가는 게 시방 재질 헌 거 아닌가. 허공 재질을 혀.
처억 그저 그러다가 빠진다. 빠진 것은 멀리 가버리니 빠졌지. 없지. 허공 속에 풍 빠져 버리드라.

추공(秋空)에 한영락(寒影落)이다. 거 뭐가 있나?
가을 하날에 차운 그림자가 떨어진다. 그 바로 갖춘 놈 아닌가. 바로 조사관(祖師關) 바로 갖춘 놈 아닌가. 그놈 봐버리면 아! 그만 그 문제 해결이지.

장천(長天)에 척안몰(尺雁沒)이요, 진(긴) 하날에는 재질해 가는 기러기가 빠졌어.
추공(秋空)에는 한영락(寒影落)이다. 가을 허공에는 차운 그림자가 떨어졌느니라. 아, 그 그...


오늘은 경술년 동안거 반산림이다. ‘내가 견성(見性)을 했다’
허, 인자 또, 또 인자 또 천하에 못된 자찬(自讚), 제 자랑은 천하에 못된 것이라는구만.

마누래 자랑 반 미친 이고, 온 미친 이라 하드나? 온 미친 이고. 자식 자랑 그 반 미친 이고.
자찬(自讚), 제 자랑은 그건 못 쓴다는구만, 그녀러 건. 암작에도 못 쓴대야.

반만 미쳤으니 그래도 그 뭐 좀 쓸모가 있고. 다 미쳤드래도 그래도 그 미친놈이라도 그래도 그 등거리는 남아 있고. 자찬은 못 써, 그녀러 거. 버려버려.
허지마는 독찬, 자찬이란 것도 그것도 어디 꼭 못 쓸데만 갖다 붙일 것 뭐 있나. 그것 쓸디다가 붙여 보지.

바로만 견성을 했고, 바로만 일 마쳤으면 그대로 참, 이상 더 있어?
견성을 잘 못했으면 영 못쓴 것이고, 옳게 했다면 영 쓰는 것이고, 남 찬(讚)을 바랠 것도 없고 자찬도 능히 할 수 있는 문제지.

내가 견성을 해 가지고—몰라 인자 참 했는지, 그릇했는지 내가 견성을 내가 했다 이게니깐.
다 인자 그, 인자 참, 선지식(善知識)들이 다 시험을 해 보아야 하고 시험에 합격이 되아야 하는 것이지, 제 자랑, 제 찬, 제 견성은 소용없다 그말이여.

나는 내 견성을 했드라 그말이여. 그래 가지고선 그 오도송(悟道頌)을 척 그날 저녁에, 뭐 그대로 나와.
참 견성인지, 거짓 견성인지 그건 분간할 것 없고, 그대로 나와.

산 넘어 태안사를 들어가서 뜰에 턱 거닌디 그날 밤의 달은 환허다.
나온 것이 견성—내가 언제 글 지어 봤나. 뭐, 글을 한바탕 해 봤나. 아, 그런 그 경계가 척 들어오면서 나온다 그말이여.

그때 진 것은, 요새는 내가 그걸 조금 그냥 거다가서 떼어 버렸지만 그때 진 놈은 그대로여.
거그 좀 가닥을 추켜들어서 머냐(먼저) 헌 놈을 다시 해야사 분단이 있으니까 그래서 헌 거여.


작야삼경월만루(昨夜三更月滿樓)요  고가창외노화추(古家窓外蘆花秋)니라
나무~아미타불~
불조도차상신명(佛祖到此喪身命)이요  암하유수과교래(岩下流水過橋來)니라
나무~아미타불~

작야삼경(昨夜三更)에 월만루(月滿樓)다. 어젯밤 삼경 달도 누(樓)에 가득찼다.
작야(昨夜)를 넣었어. 오늘밤인데, 오늘밤 밝은 다락 누(樓) 앞에서 지은 글이 작야(昨夜)를 넣었다 그말이여. 어젯밤 삼경 달, 다락에 그득 찼다.

고가창외(古家窓外)는 노화추(蘆花秋)로구나. 옛집 창밖에는 갈대꽃 가을이로구나. 그때 가을이제. 뭐 다른 말 썼나? 아무 다른 말 없어.
달빛에 보니 거 턱 태안사 그 밑에, 그 모두 그 인자 경계, 옛집 창밖에는 갈대꽃 가을이로구나.

불조(佛祖)도 도차상신명(到此喪身命)인디, 부처님과 조사도 여기에 이르러서는 상신실명(喪身失命)을 했는데, 상신실명은 거다가 붙일 것 없어.
상신(喪身)과 실명(失命) 왜 둘을 놓았는고? 상신도 몸 죽은 것이고, 실명도 명 잃었는데.

암하(岩下)에 유수(流水)는 과교래(過橋來)로구나. 바위 아래 흐르는 물은 다리로 지내오는구나. 이놈을 했지.
그 경계가 어떻게 설향수(說向誰)오, 누구로 더불어서 그 경계를 말을 헐 것인고.

그러고 나서 아침에, 저번에 했지마는 아침에 그만 아무데나 갔다 오줌을 싸버리니까 그 원주(院主)란 놈이 나오더니—그 경계를 알 수가 있나.
그 오줌도 못 가렸으니 나는 거그서 쫓겨나야 옳고, 아침도 못 얻어먹어야 옳지. 그 옳은 일이여. 허지마는 저 원주, 저는 그 경계를 모른다 그말이여.

나는 미친 행동을 했으며 쫓겨난 짓을 했거니와 그 감원 원주는 제가 선방 원주를 허지마는 그 도리(道理)를 알 수가 있나. 아무데나 오줌 퍼싼 것을 저는 보들 못혀.

허지만 또 거다가 “어디가 이놈 오줌 눌 곳이냐. 진대지(盡大地)가 부처의 전신(全身)인디 어따가 눌 것이냐?” 한바탕 또 물었다. 그것 뭐 물어 보니 쌩댕이가 뭐 뭔 말이 있나.
아침에 밥도 안 주고 쫓겨났네. 그래 가지고 마곡사를 갔다 그말이여.

마곡사 혜봉 스님이 계시니까, 혜봉 스님한테를 가서 다짜고짜 뭐 절 한 자리 턱 해부치고는—패철(佩鐵) 차고 댕겨. 도인(道人)이 풍수(風水), 산에 묏자리 잡는 패철 차고 댕겨.

머리도 안 깎아서 이렇게 흘러내려와 가지고는 그냥 영감탱이로 아들, 큰 아들 작은 아들 둘이 있고,
마누라는 그 혜봉 스님 부인은 천하에는 그렇게 못난 분은 어디 시집갈 데 없을 거여. 어디로 시집갈 수가 있나, 그렇게 못난 이가.
눈도 홱 비틀어지고 볼 아래 뽈따구는 하나도 없고 그 이상해. 다 얘기 헐 수가 없어. 그렇게 생긴 인데, 아마도 그분은 어디 시집갈 데가 없겄드구만. 아무디 시집갈 데 없을 꺼여.

허니, 혜봉 큰스님 그 도인 스님이라 누가 하나 거둬 둘 이가 없을 것 같으니까 마누라를 했든가 부여. 그러니까 그런 못난 부인을 살제. 초가집에서.
아들은 참 잘 나놨어. 그렇게 얼굴이 못난 이라도 아들은 잘났단 말이여. 둘이 다, 다 잘났제.

지금도 혜봉 스님 아들이 큰아들이 다 있고, 어머니 잘 못났단 말 들으면은 섭섭할 터이지마는 또 거다가서 ‘아들 잘 낳았다’하니 들으면 좋아할 터이지. 그거 그저 그 내 사실대로만 허니까.

그래 가지고는 뭔 인자 머리는 기다큼헌 참 촌노인처럼 된 이가 나이는 그때 한 50살, 거지반 50살 되었는데 패철을 딱 찼어. 묏자리 잡는 동서남북 가르키는 패철 차고 그러고 계셔.(20분18초)


가서 절 한 자리 턱 하고. 수좌(首座) 옷 입었으니까 그 뭐 수좌인 줄은 알 터이고.
절을 척 허니까, 나를 척 쳐다봐.

나도 한번 쳐다보고서 합장을 허고서 “무자(無字) 반(半)만 일러주십시오” 그저 간단허게, 뿐이지.
“무자 반만 일러주십시오. 무자의지(無字意旨)를 반만 요구합니다. 일러주십시오”
“무(無)”

“그거 반 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면 수좌가 이르게. 어떤 것이 무자의지(無字意旨) 반인가?”

내가 합장을 허고 “무” 이렇게 했지.

“고인이 이르되, 고인 법문에 ‘거년(去年) 가난은 비(非)가난이다. 거년 가난은 가난이 아니다. 무입추지지(無立錐之地)여. 송곳 꽂을 땅이 없어. 금년 가난은 시(是)가난이여. 금년 가난이 참으로 가난해서 추야무(錐也無)다. 송곳도 없다’했으니 수좌는 어떻게 이를 텐고? 조사선(祖師禪)을 이르게” 저번에 여까장 했겄다.

법문(法門) 들을 때에는 화두를 혀. 내 본참화두(本參話頭)를 혀. 본참화두를 딱! 헌 가운데에서 법문도 안 들어와. 그 지경 좋지.
법문도 귀에 안 들어온디, 내 참선은 내 화두 허느라고 법문도 안 들어온디, 거 뭐 뭐 다시 그 경계 외에 뭣을 구헐 것이여. 뭣을 바랠 것이여. 법문은 들어서 뭣 헐 것이여. 화두 의단(疑團)만 독로(獨露) 했는데.

그러면 화두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한 가운데에서 이 법문도 안 듣킨가? 법문도 통 귀에 들어오지 않고 화두 의단독로만 나오는가?

법문, 법문이 딴 것이 아니라 그 화두 고놈의 대의(大意)여. 큰 의정(疑情)의 근본 뜻이여.
언하(言下)에 대오(大悟) 할 수 있는 것이여. 언하에 대오를 허는 법이여.

참선 화두 그대로 역력(歷歷)허면서, 법문 대의는 그대로 낙구(落臼)라. 그대로 척 들어오는 것이여. 헌디, 화두 독로 했다고 법문이 안 듣켜? 다 듣고도 능히 화두는 그대로 독로 헌 것이여.

저 조인광중중(稠人廣衆中)에, 조인(稠人)이라는 것은 모지라질 조자인디, 사람이 수천 명이 꽉 콩나물처럼 섰는 디가 조인이여.
우묵허니 조인광중중에 여러 조인(稠人)들이, 여러 사람들이 그저 떠들고 대고 잡화(雜話)하고 뭐 와각 와각 그런 것은 소용없어.

의단독로에 뭐가 들어와? 뭔 말, 그 같은 게 들어올 게 뭐 있어?
아무리 시끄럽게 아니라, 아무리 무슨 천지를 뒤집는다 하드래도 화두학자한테는 안 들어와.

허지마는 이런 공안 법문이 화두 역력허면서 그 법문은 그대로 낙구(落臼)가 척척 되아.
낙구(落臼)라는 것은 뭐냐? 문을 척 열면 제대로 가서 탁 맞는 것을 낙구라 하고, 방아 찧으면은 올려 놔두면 제대로 툭 떨어진 게 낙구여. ‘구(臼)에 떨어진다[落]’ 그말이여.

뭐 들을라고 해서 들어지나. 화두 헌 학자가 그래도 법문이 그만 그 제일구(第一句) 법문 턱턱 들어온 거지. 그래서 언하대오(言下大悟)여, 언하에 대오다. 말 아래 크게 깨달는다.

‘공부, 참선 화두, 화두 허니라고 언제 법문 들을 겨를이 있느냐?’ 이런 말도 들었지마는,
그렇게까장 공부를 헐 것 같으면은, 화두 허니라고 법문도 안 듣키면은 그 지경—그 화두가 그것이 그 법문도 안 듣킨다 허는 그 지경이 반 쪼가리밖에는 안되는 것이여.

화두를 들고 역력헌 가운데에 이러헌 공안(公案) 법문을 들을라고 듣는 것이 아니라 낙구가 된다 그말이여, 내 말은.

이런 말을 잘 들어! 부처님 설법을 족 설법헐 때에는 그 뭐락 했어? 뭐라고.
‘허공이 되아가지고 들을지니라. 다 비워라! 다 비워 놓아 버려라. 안 마음, 바깥 경계 툭 놓아 버려라’
뭐 놓을 것이 뭣이 있나? 처컥 귀 들고 들으면은 그 놓고, 안 놓은 게 어디 있는가? 여여독문(如如獨聞) 이지.


‘거년 가난은 참으로 가난해서 송곳 꽂을 땅이 없다’ 그 뭔 말이여?
‘금년 가난은 참말로 가난해서 추야무(錐也無)로구나. 송곳도 없다’ 뭐 그런 말을 못 알아들을 이치가 있으며, 거가서 낙안성예(落眼成翳)가 될 것이 뭣이 있나.
밝은 눈이면 다 볼 수 있지. 왜 그 밝은 눈에 가시가 될 것이 뭣이 있어. 그 밝은 눈깔에 티끌 될 것이 뭐냔 말이여.

‘거년 가난은 비(非)가난이여 송곳 꽂을 땅이 없더니, 금년 가난은 참말로 가난해서 송곳까장 없구나’
그 어떻게 했으면은—거그서 고인(古人)이 점검하되 ‘여래선(如來禪) 밖에는 네가 몰랐느니라 했으니, 어떻게 했으면은 조사선을 옳게 이르겄는가?” 무섭게 잡드린 말이제.

혜봉 스님, 패철을 타고(차고) 묏자리나 잡고 지나셨지마는 참 도인이여. 참으로 도인은 툭! 깨달라 버리니 그것 뭐 어디 가서 무슨 뭐 인연도세(因緣度世)를 헐 것이제. 인연(因緣) 따라서 도세(度世) 헐 것이제. 별것 뭐 있나.

그때 어디 가서 조실(祖室) 스님이 되아 가지고 학자를 제접(提接)했으면은 대단히 좋으련만, 또 그 혜봉 스님의 그때 사정이 형편이 그렇게 못 되아서 그랬을런지 모르제.
허지마는 속가에 가서 패철을 차고 천하에 못난 마누라 얻어 가지고 아들 둘 턱 나 놓고 요요자재(了了自在)하게 자재요요하게 그렇게 지내드란 말이여.

거그서 말이여, 그것 참.
내가 답을 허되, 대답을 했단 말이여. “능각(菱角)은 첨첨불사타(尖尖不似他)입니다. 능각은 첨첨해서 타(他)와 같지를 않습니다” 아, 이랬다 그말이여.

그러니 그 어른이 그때 ‘아니다’ 이 말 한마디만 해주었으면, 내 거그 안 떠나. 세상없어도 안 떠나!
내가 그 어른 밑에서 불을 때주고 내가 심바람 해주고 마당을 쓸어주고 패철을 내가 가지고 대니면서, 산에 대니면서 내가 시봉(侍奉)을 헐지언정 안 떠나.

옳단 말도 없고! 거 학자를 그렇게 잡드리해서는 안 되겄드구만.

‘옳다’고 헌 말도 없고, ‘그르다’고 헌 말도 없고, 그만 그대로 그 뒤가 그만 아무 말씀도 없고, 그 말씀 없는 태도도 그렇게 부인(否認), ‘아니다’ 소리 아니여.
그래서 ‘아니다, 기다’할 것도 없고 맞으니께 그런가 보다. 옳다든지 그르다든지 그런 말이 없이 태연허니 그래서, 옳다! 인가(印可)를 허신 것이로구나. 이렇게 알았다 그말이여. 여그는 그래 두거든 내가.

능각첨첨불사타(菱角尖尖不似他)가 절대 아니여, 지금은. 지금은 아니다 그말이여. 아, 이런 놈의 꼴 좀 보소.
그 뒤에 내가 아닌 걸 발견했거든. 내가 스스로 발견을 다 한 거여.

그만 거그서 뚝 떠나 가지고는 지리산으로 들어왔다. 지리산 쌍계사(雙磎寺) 위에 동방장(東方丈)이라고 있어. 아, 학자들이 다 봤을 터이제.

동방장에 그때 누가 있었드냐 하면 허태오라는 스님이 있어. 허태오.
허태오인디 이름은 태오인디, 그 다음에는 당호 누구한테... 그 당호(堂號)를 허운송이여. 운송(雲松), 구름 운자, 솔 송자, 허운송 스님이여.

운송 스님이 그때는 허태오라고 했제, 운송 스님이라고 안 했는디.
동방장에 계시는데, 동방장 조실(祖室)로 있는 것도 아니고—언제 그분이 나와서 조실 살림 헌 일도 없고 동방장 뒷방에 가만히 이래 앉어 공부헌 분인데.
누데기는 누데기는 한국에서 그런 누데기는 없어. 참 진짜 누데기인데. 무풍 스님보담 더 혀.

왜, 옛날에 만공 큰스님 다 계시고 헐 때 무풍 스님이 있었거든. 무풍 스님은 누데기로 누데기로 유명한 분인데, 이 허태오 스님은 그 무풍 스님 계통도 아닌데, 그렇게 누데기를 입었어.
굉장하니 전부 실이제, 바늘로 꾸맨 실뿐이제, 베 자체라는 건 하나도 없어. 고렇게 집어서 입고.

음식은 잡숫되, 솔잎을 따다가서 빻아서 그 가리를 바리때에다 넣어가지고는 물에다 타서 자시고. 그밖에는 없제. 아무것도 먹는 게 없어. 거 무슨 콩가리 조금씩 먹는다 하드구만.

세상에는, 그러헌 누데기에다가 송엽 빻아서 가리, 콩가루에다 묻혀서 그 물에 좀 타서 자시고 그러고 앉었는 걸 보니 참, 세상에 도인의 아무리 참 탈속(脫俗)헌 도인의 생활이라고 헌다 헐지라도 그 이상은 더없어. 참 고상허고 깨끗허고 기맥히게 해가지고는 딱 지내는데.

마침 그 스님 책상 위에다가서 법문을 하나 써 붙여 놨는디. 그 또 책도 그 뭔 책을 많이 그 법문을 해서 모도 지어 놓고 책상에다가 걸어 놨는디.

그 법문이 월조(月照) 스님 찬(讚)이여. 달 월자, 비출 조자, 월조선사찬(月照禪師讚)이여. 영찬(影讚).
‘월야할(月也喝)이요, 월에도 할이고. 조야할(照也喝)이요, 조에도 할이요. 월조니까. 월도 할, 조도 할. 비월비조(非月非照)라도 역할(亦喝)이니라. 월도 아니고 조도 아니드래도 또한 할이다’
요렇게 딱 해 놨어. 월조 스님 영찬에다가.

내가 묻기를, 거가서 인자 보고 절 한 자리 하고는 앉었다가 내가 묻되 “월도 할이요, 조도 할이요, 비월비조라도 역할이라 했으니”
그 할도 빈할(賓喝)도 있고, 주할(主喝)도 있고—빈은 ‘손 빈(賓)’자, 손에 대해서 할도 있고, 주인에 대해서 할도 있고, 빈할도 있고 주할도 있으며 타할(他喝)도 있고 자할(自喝)도 있을 터이제. 다른 이한테 할도 있고 나, 내 자할도 있을 터이제. 그러지마는 이건 내가 헌 소리고.

‘빈할 주할 타할 자할도 있을 터이제. 그러니 월도 할이요 조도 할이요 비월비조도 할이다 하는 것이 그렇게 다 할 수가 있겠다’ 내가 짐작을 딱 하고서는,
“그래 그러면 월(月) 조(照) 비월비조(非月非照) 다 할(喝)을 했다면은 그 할은 어따가 하는 것입니까?”

불가불 할로 들어갈 밖에 없제. 빈할 주할 타할 자할 다 툭 떼 번지고 인자 불가불 바로 들어갈 수 밖에 있나. “할(喝)은 어따가 허는 것입니까?” 고런디 가서...

잔 사람은 나가! 눈깔 감고 잔 사람은 나가!
고런 놈의 심리를 가지고 선방에 들어와서 밥 도둑질 말어! 공연히 씨잘데 없이 밥 도둑질이나 해 먹고 앉아서 그렇게 지낼라고 말아!
시주것 함부로 없앨 수 없고. 제 죄 퍼짓고. 고래 가지고 무슨 되나 말이여.

그런디 그 바로 보이면은 답 하나 해야 혀. 그 바로 보이지 않고는 답 못혀. 왜 못 허냐?
왜 그렇게 어리석게 해가지고 어쩔라고? 응, 더듬허니 의심이 나 가지고는 그...
자기를, 내 경계를 내가 살펴 봐. 그래 가지고 해 되야? 바로 보이거든 해 봐.

아, 그래야 될 것 아닌가, 우리가 서로 탁마(琢磨)인디. 탁마상성(琢磨相成) 해야 하는디.
그 묻는 것 그런 거, 벌써 척 헌 데 가서 처컥 보면 왜 못혀.

허태오 스님이, 그때 허태오 스님이어. 그 말 대답을 나한테 통쾌하게 한마디를 못 일러 주었겄다.
다 알면서도, 나한테 그랬던지 어쨌든지 법을 애꼈든지 안 해 주었어.
나 안 해 준 줄만 알지, ‘몰랐다, 못 봤다, 못 깨달랐다’ 그런 말 안 해아. 나 고때 그 지경만 얘기했지.

또 그런 것을 그렇게 탈속하게 참 도를 닦고 계신 분한테 내가 함부로 거다가서 뭐 방맹이—요새 꺼떡 허면 무슨 방맹이 준다고. 제가 무슨 뭐 방맹이, 무슨 갖춘 방맹이나 있나?
쫓아 들어가서 선지식 방맹이부터 줄라고? 고렇게 평생 고런 것이 있어. 거, 천하 그런 것 천하 참 때려잡기 천하 쉽네.

그놈이 참말로 눈깔 가진 놈이야 아! 그것 무슨 뭐 편영이행(鞭影而行)이제. 말헐 것이 있나.
발써 남 방맹이 줄라고 고런 것 엿보고 댕기는 것은 가짜인 것이여. 틀렸어.(처음~41분33초)





(2/3)————————-----

내가 뭐 들으니 어저께 여그 무슨 자혜 수좌 한테 들었나?
자혜가 통 묵언허고 들입대 공부를 해제끼는디 하! 가당(可當)토 안 혀. 지금 이 대중에서 응, 압도(壓倒)구만. 압도적이여.
그 밖에 나가서도 그만 그 공부를 허는 것 보면 냅대 버티고 허며 아! 한바탕 그래야제. 저 담 밖에 댕긴 걸 봐도 화두를 꽉 붙잡고 그 들입대 참 용맹 참 정진이여.

그런디 저 먼첨은 원청 여그가 그려. 원 돌아설 디도 없어. 방이 좀 넉넉한 방이 아! 여그저그 좀 있어야 헐턴디.
저 저짝 방, 선객 스님네 지금 지내는, 우리 대중 지내는 선방 쬐끄만헌 디서 밥을 먹고 거그 잠자고, 거그서 서서 왔다갔다 하고, 원 이것 당최 원청 복잡햐.
고런 것이 그만헌 방이라도 어디 서너 개나 있어야 헐 텐디, 원 없어. 개복실(改服室)도 있어야 하고 좀 허리 펴는 디도 있어야 헐 것인디.

아! 뒷방은 쬐깐헌 것 메주를 거다가 시방 띄우느라고 두고. 거, 부인 손님 오시면은 그 방에서 밥을 잡숫게 하고, 원 당최 꼼짝헐 수가 없어.

어디 뒷방이라도 넉넉한 방이 있으면은 같이 큰방에서 정진허고 나와서, 그 뒷방에 와서 용맹정진을 헐 생각이 꽉 차고.
거 그런 숭악헌 방에라도 들어가면 그만 정진을 허고 있고. 아, 어떻게 했으면 참 쓰련만 당최 뭐 용납헐 수가 없어.
그래 가지고는 당최 마음대로 제 양대로 한바탕 도를 닦아 봐야 하겠는디, 그 양대로 못해 봅니다. 자연 모도 걸리게 되고.

그래 내가 말을 허되, “자, 천 경계 만 경계가 내게 있으니 그 좀 복잡허고, 그 좀 처소가 방연(尨然)치 못허드래도 어쨌든 그런 데서 한번 참, 인행(忍行)을 허소. 참는 행을 허고. 약무인행(若無忍行)이면 만행(萬行)은 불성(不成)이여. 참는 행이 없으면 만행을 이루지 못혀.
집도 절도 없어 바위 틈새기 가서도 도를 닦고, 거 다 고인(古人)네가 다 옛날 고인네가 토굴터, 산중에 들어가서 토굴터 잡아 가지고 방을 맨들되 둘도 못 앉게 맨들어 가지고 눕도 못허고 다맛 앉어서 다리도 못 펴고 꼼짝없이 들어앉아서 공부헌 도인도 있어.

역부러 그렇게 방을 지어. 발 뻗고 허면은 눕고 싶기도 허고, 그런게 이리 앉어도 당최 뭐 몸뚱이 돌이킬 곳이 없이 혼자 몸뚱이 꽉 찌어 앉게 요렇게 해 가지고 도(道)도 닦았으매, 한 철 넉넉헌 방이 없고 그러드래도 불끈 참고 산림(山林) 중에 휘딱 달아나고 그러지를 말고.
다 똑 도 닦는 스님네니까, 도 닦는 스님네가 모여서 서로서로 찡겨서 그 용납할 길이 없다 하드래도 다 도 닦는 스님네니 그러헌 디서 넉넉헌 마음을 품고 화두(話頭)를 잘 잡드리허고 좀 지내고 잘 지내소.

모든 경계(境界)가 내게 있고, 삼라만상 일체 외경(外境)이 바깥 경계가 내 한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이지.
분다헌 것이라든지, 시(是)와 비(非)라든지, 일체 추헌 경계와 만경(萬境)이 내 자심소현(自心所現)이니, 내 마음에서 일어난 것이니 그 마음을 단속하고 어쩠든지 도를 한번 참아, 그 참아 가면서 닦아 보소”

그래서 내가 가서 인자 대중 큰방에서 묵언도 허고 좀 잘 좀 닦아 달라고 부탁하고, 그래서 그동안에 공부를 알뜰이 잘 허더니 또 엊저녁에 또 다시 와서 묵언(默言)을 트고—나한테 와 또 틀 밖에 없지.

묵언을 트고 말을 허되 “스님네는 참 그렇게 공부를 알뜰히 잘 허십니다. 허신 가운데 저도 좀 그 가운데 들어서 참아 가면서 잘 닦았으면 좋겠는디, 늘 그 가운데 공부는 허느라고 딴에는 애를 씁니다.
허지마는 양껏 못 해서, 양대로 좀 못 해서, 아! 우리 스님한테 ‘그 용(茸)을 좀 보내 달라’했더니 용을 보내 주어서 그놈을 달여서 먹고는 기운도 나고 앉어서 정진허기도 좋고 아, 그래서 양대로 좀 해 보고 싶은디 뒷방이 하나가 있으면은 한바탕 거그서 했으면 좋겠는데.

아, 모도 공부허시는 방에 나 혼자 부셔대고 나 혼자 잠을 안 자고, 다 주무시는디 혼자 부스럭 대고 거그서 잠 오면 또 일어나기도 허고, 또 잠 안 오면 앉기도 허고, 일어났다 앉었다 허는 가운데도 제 좀 그 양대로 한바탕 해 볼 마음이 납니다.
그러헌디 아, 뒷방 하나가 없고 허니까 양껏 못 해서 이것 큰일나고, 반산림은 다 되아 가고 또 금년 삼동에 일을 마추지 못헐 것을 생각하니 참 근심이 됩니다” 아, 이려!

아, 거 인자 나이도, 뭐 나이가 있을까마는 5세에 견성도인도 있는 것인데, 나이 18세니 뭐 넉넉허지마는 그때를 여의고 언제 있겄는고 말이여. 아! 그 참 기특허다 그말이여.

“오냐, 정 그렇다면은 내가 네 허는 짓을 보니 그래 애쓰는 것이 보인다. 그거 참 퍽 기특하다. 나는 아무것도 없고 그것밖에는 바라지 않는다.
여기에 와서 그저 내 이 처소도 아닌디 토굴도 아닌디, 이런 데 오셔서 모도 고생허고 계신 그것은 내가 미안키도 허고, 허지마는 그 가운데에 참말로 그렇게 용맹정진 헌 것이 보인다면은 자기 일이고 당신네 일이... 자기네 일이기 따문에 내가 고마운 것이여. 누가 나 해달락 하나? 무척 고마운디.

오냐, 그렇다면 방 하나를 들여 만들아 줄 수가 있나. 어디 여그서 방 하나를 치워 줄 수도 없고. 그러헌즉 용주사로 가거라.
용주사도 내가 조실로 있고 내가 거그 중앙선원(中央禪院)이라고 허고 있으니 거그는 방이 많다마는 원청 경제 곤란으로 큰방만 불 딱! 너 놓고는 ‘큰방에 모여서 삼직(三職)이고 누구고 아무도 거그는 도 닦을 사람이면 다 들어오니라’해 가지고는 사미(沙彌), 지금 저 사미가 아니라 행자(行者)라도 다 내려와서 도를 닦고 있어. 거그 들어가서 한번 해봐라.

방이 원청 넓찍허니 큰디 그 방이 훈훈허니 좋다. 저 한쪽에 앉아서 제 마음대로 해도 누가 시비 헐 사람도 없지마는 눈에 어디 뭐 원청 큰게 아무 걸림 없다.
그러고 또 다른 방은 모두 안 때아. 다 그 꼭다리만 열어 놓으면은 곧 훈훈허지마는 기름 관계로써 기름을 한 달에 10만원 어치나 가량 때아.

그러니 그렇게 경제가 없기 따문에 큰방 하나만 때면은 불과해야 돈 몇만 원만 가지면 때니까, 그런 데 가서—그래 뒷방 하나 불 때 달라고 해서 하나를 떡 가지고 있을 수는 없을 것이다. 없을 것이나, 지대방도 또 있으니깐 어떻게 그렇게 어떻게 한번 해 봐라”했더니 참 좋은 생각을 가지고 “그러면 그래 보겄습니다” 여까장 했어.

내가 오늘 법상(法床)에서 법문 겸해서 그런 어린 사람이 발심(發心)해서 도 닦는 것이 참 찬탄헐만하고 그래서 내가 여까장 말한 것이니 대중은 그렇게 알고, 오늘 반산림이니까 반산림 법문 듣고 그렇게 그리 가도록, 내나 해야 한 산림, 한 산림, 한 중앙선원이니까 그렇게 대중이 다 알아주어.


그래 또 연속해서 ‘거년 가난은 가난이 아니어서 송곳 꽂을 땅이 없더니 금년 가난이 참말로 가난해서 추야무(錐也無)로다. 송곳도 없도다’
그래 우리 도인은 참선법(參禪法)은, 참선 도리는 그 가난헌 법이여. 이렇게 가난혀.
돈과 쌀과 뭐 그런 것이 없어서 가난이 아니라 우리 참말로 가난헌 도리가 있어.

생사(生死)가, 죽고 사는 것이 없으니 발써 가난하제. 사는 것도 없다. 죽는 것도 없다. 생사가 우선 없으니 퍽 무척 가난하지 않는가.

흉중무물(胸中無物)이라, 가슴 가운데 물건이 없다. 고인도 ‘흉중무물이니라, 가슴 가운데 물(物)이 없느니라’ 무슨 물건이 있어? 아무것도 없제.

그 의리(義理)로 거, 저 수수께끼처럼 그 ‘흉중무물이라, 가슴 가운데 물건이 없느니라. 아주 가난해서 생사가 없느니라’
그러면 흉중무물 가운데에 참말로 그 ‘가슴 가운데 물(物)이 없다’한디,
그런데 가서 ‘흉중무물이다. 가슴 가운데 물이 없느니라, 물건이 없느니라. 또 생사가 없느니라’ 고런 것은 비유해서 말허자면 서식묘아반(鼠食猫兒飯)밖에는 안 되거든. 쥐가 괴(고양이)밥 먹었다. 그밖에는 안 되아.

반기이파(飯器已破)가 있어. 밥그릇은 이미 깨졌느니라. 고 어디가 들어맞는 말일까?
이것 이렇게 무척 가깝고, 내가 자꾸 바탕을 울려준디 이렇게도 모도 멍청헌가.
멍청허단 말 들어야제. 멍청이 소리 들어야제. 어째 할 수 없제.

어째 반기이파(飯器已破)일까? 응, 모두가 공안이라는 것도 경계요, 비유인디.

아! 뭐 공안이 뭣인가?
여하시조사서래의(如何是祖師西來意)인고?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다. 바로 경계 아니여. 그놈 갖다 막 잡아 썼지, 뭐여.
그놈을 바로 봤다면은 다른 공안이 왜 맥혀. 천칠백(공안)이 왜 맥혀. 맥힐 거가 뭐여. 하나면 똑 같은디.

흉중무물이다. 가슴 가운데 물(物)이 없느니라. 그런 데가 인자 조사관(祖師關)이 딱딱 백혀야 되아.
생사가 없느니라. 생사가 없는 데 거가 조사관이 꽉꽉 들어가서 탁! 탁! 장엄을 해버려야 되아.
반기이파가 그놈이 있어야 되거든.

격외(格外)로 볼 게 따로 있제.
서식묘아반 반기이파는 격외로 봐도 안 되거든. 거 격외로 보면 되아? 큰일나지. 안 되아.
모도 그만 격외로만 보면 될꺼여? 평상화(平常話)로만 보면 될 꺼여? 되지 않아.


허태오 스님한테 가서 그 법문을 딱 내가 인자 물었어. 답이 없었고.
여까장 허다가 지금 모도 별상(別相)에 가서 여태까지 있었어.

내가 하룻밤 자고 떠나올 적에 또 물었다. 이것 천천히 해야 되는 법문이여.
한참 내가 견성했다고 미쳐 가지고 지금 인자—왜 미쳐 미치기야 행각(行脚), 활발헌 행각이지.
아침 하룻밤 자고, 나는 그래도 밥을 얻어먹었어. 공양주가 밥—다른 사람 다 밥을 먹으니까. 허태오 스님만 뒷방에서 그렇게 지내지.

아침에 떠나올 적에 물었어. 고봉 스님 사구게(四句偈).

해저이우함월주(海底泥牛啣月走)허고  암전석호포아면(岩前石虎抱兒眠)이라
바다밑에 진흙소는 달을 물고 달아나는디 바위 앞에 돌 호랭이는 아이를 안고 조는구나.

철사찬입금강안(鐵蛇鑽入金剛眼)이여. 쇠뱀이는 금강눈을 뚫고 들어가는디,
곤륜기상노사견(崑崙騎象鷺鷥牽)이여. 곤륜산이 쾨코리(코끼리)를 타니 해오라비란 놈이 말 마부가 되어 가지고 이끈다.

사구내(四句內)에, 이 네 글귀 가운데 유일구(有一句)한디, 한 글구가 있는디, 능살(能殺)이요 능히 죽이고. 능활(能活)이여 능히 살리고. 능종(能縱)이요 능히 주고. 능탈(能奪)이요 능히 뺏고.
그러헌 글구가 있으니 고놈만 가려내면 네가 견성했다고, 일 마쳤다고 허락해 주마.

“그런 공안, 그런 글귀가 있으니 그 글귀 하나를 일러 줍소사” 공경히 묻제.

‘뭐 속도일구래(速道一句來)하라’ 뭐 어쩌고 그려? 건방진 녀러(놈의) 녀석들. 제가 견성해 가지고 요렇게 일구래(一句來)라 하는가?

공경히, 참 그 이상 더 공경(恭敬)이 어디 있어. 공경히 묻제.
허니까, “해저이우함월주에, 혜월 스님이 해저이우...” 그이는 평생에, 허태오 스님은 혜월 스님을 제일 믿어. 그때 알았어, 또 믿은 것도.

“혜월 큰스님께서는 해저이우함월주라고 했다드라”고. 이려. 대답이 아니라 혜월 스님한테 핑계를 대서 그렇게 말을 햐.
“아, 거 혜월 스님께서는, 혜월 큰스님께서는 해저이우함월주라고 그렇게 일렀다 하시드라도 아, 스님 바로 일러 주신 말 한마디 요구헙니다. 한마디 일러 줍소사” 그러니, 그 말 한마디뿐이고는 어름혀.

내가 그때에 가서 허태오 스님의 그 살림살이를 그대로 다 봐 버렸제. 틀림없어.
뭣 헐라고 바로 봤으면은 바로 한마디를 일러 주든지, 못허면 못허든지, ‘혜월 스님은 해저이우함월주라고 했다’고. 될 수가 있나.

그러고, 해저이우함월주가 될 리가 있는가? 생각해 봐.
살림살이 다—그만 그저 “예”허고는 나는 물러났지. 더 말헐 필요가 없어.

살림살이 보기가 그렇게도 쉽고, 벼락이여.
억지로는 도인 노릇 못허는 것이고, 억지로는 천하 없이 해도 그렇게 겉으로 참 없어. 도인인 체허고 암만 채리고 앉었어야 소용없는 거여.

도만 있다면 척! 세상에 초부아동(樵夫兒童)이 되드래도, 나무 베는 아이가 되고 별 천하에 걸객(乞客), 비는 걸인이 된다 하드래도 천하에 그건 거그 있지.
누구 어떻게 속이고 어떻게 헐 것이냐 이말이여. 허지마는 아무리 채려야 소영없어. 묘허제.

내가 거그서 떠나와서 그 다음부터는 그 허태오 스님이 나와서 용성 큰스님 밑에 와서 제자가 되아 가지고는 ‘제2세 교주다’ 나오드구만.
‘2세 교주(敎主)다’ 나와 가지고는 대구를 들어와서 대구에서 참선을 가르킨다고 있어.

허지만 나는 다 알아 버렸은게 소용없지. 나와 태오 스님과는 거리가 참 퍽 멀어져 버렸지.
방장(方丈)에서 떡 하룻밤 자고 허태오 스님과 그와 같이 문답을 헌 후에는.(63분9초)


거그는 외산(外山)이제, 쌍계사는. 그래 그 그때 참 내가 옳게도 지내왔구만.
거기서 쌍계사에서 안산(安山)으로 넘어왔다. 그 쌍계사에서 넘어오제? 그 재를 뭐 벽소령(碧宵嶺)을 넘어오나? 하도 오래되서, 아마 벽소령 재를 넘어와야제? 거 아는 사람 다 있제? 없는가 보다.

그 벽소령 재를 넘어서 영원사(靈源寺)를 들려 와 가지고는 영원사에서 상무주(上無住)를 올라갔다 그말이여.
상무주를 올라가니께 그때 하혜일(慧日) 스님이여. 하혜일 스님이 누군지 모르제? 하혜일이여. 하동산이다 그말이여. 동산 스님.
하동산 스님이 그 상무주 계셔. 그래서 하동산 스님은 그때 의학전문학교 댕기시다가 졸업은 못 허고 들어오셨나, 졸업은 했나? 그건 내 잘 몰라.

들어와 도를 닦고 계시는디 아주 청정하게 참, 도를 닦고 계셔. 그럴 때 당신이 뭐 견성했느니, 안 했느니 그런 말은 전혀 없을 때고. 또 뭐 견성했다, 안 했다 그러고 지내시도 안 허고, 탈속(脫俗)허니 깨끗허니 그래 가지고 거그서 지내셔.
그래 또 거그서 하룻밤 자고. 별 도담(道談) 해 본 일은 없고, 할 재료도 없고 서로 뭐 문답(問答)도 없었고.
그 성질이 또 그 어른은 원청 청정하고 까끄라와서 뭔 말 함부로 해 봤던들 뭐 별 용맹도 없고, 잠깐 거그 다녀서 김천 직지사, 내 첫 철 지낸 직지사를 척 왔지.

제산 큰스님이 떡 계셔. 거기에서 나를 처음에 가르킬 때에 일념미생전(一念未生前)을 봐라. 일념미생전을 보라고 허는 그 화두를 내가 안 허고 조주 무자(趙州無字)를 그때 헐 땐디, 무자 허다가 그만 병이 그렇게 나 가지고는 피를 흘리고 피덤뱅이가 되어 가지고 그만 있다가,
해제를 헌 뒤에 꼭 죽게 된 몸뚱이 그저 어쩔 수 없지, 뭐 죽게 된 몸뚱이가 석장(錫杖)을 날렸제. 내가 뭐 거그 오래 있을 수도 없고 석장하춘풍(錫杖下春風)으로 그만 그때 나섰제 뭐.

그랬는디 다시 휙 둘러 북회우동류(北廻又東流)를 해 가지고는 인자 척 거그를 들어가서 아주 그만 인자 내가 견성헌 체를 허고 굉장했다. 뭐 뭐 거 가서 그만 뭐 내 요요한 경계를 턱 야단이제.

그러나 그 어른은 뭐 조실방 벽안당에 딱 앉아서 도 닦으면 도 닦고 계시제. 조끔도 뭐 그런 거 견성했다 어쨌다 해야 그런 것은 뭐 알은 체도 안 허고, 네가 견성했냐 말았냐 그럴 것도 없고, 가서 자꾸 인자 그 큰스님께...
그 어른이 참, 만화 스님한테 계를 받았고 만화 스님이 거다 전계(傳戒), 제산 스님한테 전계를 해서 한국에 그 전계 율사(律師)로 유명헌 이로구만. 그 어른한테서 다 계가...

그런 그 어른이 계를 받아가지고는 학자를 제접하고 있는데, 견성은 아마도 그 어른이 견성했다고는 모도 안 해 주어.
그 참, 행(行)은 그렇게 고상하고 또 조실방에 앉어서 공부를 허되 늘 일념미생전을 보고 앉어 계시는가. 그냥 참, 정진은 눈 한번 깜짝거릴 사이도 없이 해아. 그렇게 장하게 해 나가지마는 제방(諸方)에서 그렇게 알아주지는 안 해아.

그런게 거그서 오래오래 있을 것도 없고 얼매 또 있다가, 있을래야 있을 수가 없어.
혼자 견성했다는 생각이 막 나가지고는 그저 그만 선지식(善知識)만 있으면 어디—목구녕에 피는 늘 토험서도 그러고 그랬어. 그래 그런 데 가서 구애(拘礙)도 없어.

그래 가지고는 거그서 그만 혜월 스님한테를 갔다 그말이여.

혜월 스님한테를 척 가니까, 통도사 극락암에 계시는데 소를 두 마리를 길러 키워. 큰 황소를 키움서 밤낮 소꼴 베다가서 소 주고, 소 요리저리 모두 옮겨 매고 그러고 계시어.
학자(學者)는 뭐 몇 안되고. 학자 그저 그 스님, 그 어른 믿고 있는 학자 불과해야 한 2-3인 될까 시봉 겸해서, 뭐 그 어른이 시봉도 안 시키고 그저...

그런데 소를 멕이는 것은 그 통도사 그 극락 평전(平田) 그 밑에 모도 산비탈 극락평전을 논을 쳐서 농사지어가지고 수좌 멕인다고 그 소를 사논 거여.
아! 그 산비탈을 언제 땅을 파서 어디 물을 잡아 넘겨서 그 헐 것이여. 편편하기는 허니까.

아! 그래 가지고는 그저 그만 앉으면 법문, 서면 법문, 가면 법문허기 때문에 그 어른을 모시고 따라 댕기면서 법문을 들어.
들은데, 오늘 들으나 내일 들으나 열흘을 들으나 똑같은 법문이여. 헌 놈 또 했지, 딴 놈이 없어.

평생 그 가운데 무슨 법문을 허냐 하면 “우리 큰스님이 나를 여지없이 인가했다” 이말이 처음 나와. 당신 자랑이란 건 말헐 수가 없어. “우리 큰스님이 나를 인가했다” 꼭 그려.

언제든 눈꼽재기 여가 여 둘이 달렸어. 허연 놈이 달려 가지고. 말만 허면 입에서 침이 튀튀튀튀튀 튀어 나와, 이렇게.
그래가지고 앉어서 여 앉어서 이렇게. 하도 들을 수가 없어, 오래 들으면 듣기 오죽헌게 살며시 밖으로 나가면—하도 오래 있어 나가야제. 나가면 혼자 그러고 앉었어, 혼자.
아주 한참 (법문)허다가 “어디 갔나? 응, 갔어? 갔구나” 이런 어른이라.

다시 뭔 세상에 무슨 인사(人事), 뭐 그런 것 없어.
“아, 저 스님, 군수가 큰스님 뵐라고 왔읍니다. 인사헐락 합니다”
“군수가 왔어? 응. 군수가 어디 있나? 내가 보제” 아따 가만히 계시라니 “그 내가 봐야지, 오라고 혀”

아, 이래가지고 “군수 응, 군수 군수여? 어디 군수여? 응” 그 어른은 평생에 반말이제, 온말 헐 줄 몰라.

“밥 채려! 밥해! 군수 밥해” 밥을 시켜 놓고는 “찬 놨나?” 찬 논디 가서 요것도 좀 집어서 잡숫고, 요것도 집어서 잡숫고 “짜냐, 싱겁냐?” 짜고 싱거운지도 몰라.
참 도인이제. 참 도인이여. 꾸며 대고 억지 없제.

아, 그러고 댕기니께 군수겉은 사람이 이렇게 보면은 어쩔 것이냐 그말이여. 그런게 가리와. 중이 있다가 가리와. 스님 못 보게 가린다.
또 거그 못 오게 허면 “왜 그래?” 아, 원 홰를 내고 야단인게 못혀. 참 세상에는.

그러고 조끔 있다보면 없어. 아! 조실 스님 어디 가셨는고 허면, 그 앞에 가서 저 솔방울 따네.
망태 하나 요만한 것, 망태 쬐끄만한 것 하나 턱 짊어지고 올라가서 솔방울 따네. 불 땔라고 솔방울 따.

천하에 도인이란 행은, 도행(道行)은 81행이 있닥 하지마는 그런 행이 없어. 그 천진행(天眞行) 영아행(嬰兒行), 그 영아행을 제일 쳤거든.

도인행이 광행(狂行)이나 미친 행, 광행. 광행이나.
또 그렇다 해서 도인행(道人行)이 광행(狂行)이고, 모도 그러헌 천진행이고, 그러헌 영아행 어린아 행이니까 도인행 헌다고 해 봐. 그녀러 건 참 못 본다.

그 위조로 나와서 해 봐. 견성도 못헌 것이, 도인도 아닌 것이 해 봐.
그런 똥을 콧구녁에다 붙여 가지고 대니지, 고놈의 더러운 냄새는 못 맡네. 보도 못허고.

천진행과 영아행이라는 것은 꾸며서 된 법이 없어. 억지로 된 법이 없어. 조태가 나타나기 따문에 안되야.
혜월 스님은 그게 안 나타나. 아무리 볼래야 소용없어. 꾸미도 않고 뭣도 소용없어. 뭐 그대론게 소용 없어.

그래 가지고는 법문을 해 주시되, 내가 그래 중방내까지 따라갔구만. 법문 들을라고. 그런 법문이라도 들을라고 거그 따라갔어.
경허 큰스님이 천하 도인이니까 ‘다시는 도인밖에 없다’고 그 믿음이 내 모가지까장 차올랐으니.

뭐 소용 있나? 소용없어.
뭐 눈에 눈꼽재기가 드글드글허거나 말거나, 뭐 허는 행은 당최 어따 비유헐 수 없는 아, 글쎄 어린아 행이라니까.
어린아가 그 뭐 서너살 먹은 놈이 애비상이 있고, 할아버지상이 있고 뭐, 뭐이고 소용 있어? 밥상에 올라가 똥을 싸고 그러지 뭐, 소용 있어?

그 영아행이라는 것은 미친놈도 그래도 말귀는 알아듣지마는, 영아(嬰兒)라는 건 말귀도 못 알아들어. 그 영아행을 제일 쳤어.
바로 옳은 도인 같으면은 옳은 영아행을 헌디 그건 위조가 없어, 위조 못햐.
참, 진짜지. 우리나라에서 혜월 스님같이 진짜 영아행이 없어.

그래 가지고는 턱 법문을 헐땐 처음, 처음 시작헐라면 그게여.
“우리 큰스님이 나를 여지없이 인가했지. ‘북으로 관세음보살이 향(向)헌 의지(意旨)가 여하(如何)냐?’ 우리 큰스님이 물어 내가 대답했지. 아, 우리 큰스님이 인가했제!” 평생 그려.

틀림없거든, 뭐 틀림없어. 그 뭣 헐라고 감춰. 감추면 뭣혀.

그래 가지고는 학자가 오면은 인자 법문부터 물어. 그 자주 묻는 것도 좋은 것이여.
“공적영지(空寂靈知)를 이르라”
공적영지를 대답하면, “영지에 공적영지를 일러라”
또 그놈 대답하면, “공적영지 등지(等持)를 일러라”

등지(等持), 같을 등자, 가질 지자, 고놈을 일러야사 인가를 혀. 그건 참, 참! 기가 맥힌 공안이제.

당신이 이렇게 맨들아 묻는 것인디, ‘관세음보살이 북으로 향한 의지를 일러라’ 고놈 묻고, 공적영지를 묻고, 영지에 공적영지를 묻고, 공적영지 등지를 대답해야사 인가를 혀.
그것! 참, 내가 대답했지. 나도 역시 혜월 스님 타겠구만. 내가 대답했어.

공적영지 물어 딱! 대답헌게, “영지에 공적영지를 일러라” 대답 착, 고 둘만 대답하면 그 밑 등지는 바로 있는 것 아닌가.
“등지를 일러라” 그놈 척 일러 논게, “아따야! 이 우리 한국에, 우리 한국에 참 이 큰 도인 났다. 이런 도인이 나!” 아! 이러고는 대찬(大讚)을 허는디,
“누가 공적영지 등지를 이를 사람이 있느냐?” 아, 이래 가지고는 대찬을 했네.


그래 놓고는 일러 놓고는 ‘자, 내가 큰스님을 좀 좋은 디다 모셔야겄구나’ 그런 마음이 난다.
‘그래 가지고는 학자가 스님 밑에서 모도 나야겄구나’ 이 마음이 나 가지고는 거그서 하직허고 직지사(直指寺)를 또 올라왔네. 또 올라와 가지고는 직지사에 와서 대중께 공포(公布)를 허고.

직지사로 말하면 산중이 크고 한국에 제이창이여. 규모는 이창이고, 선방도 천불전(千佛殿)은 조그만 허지마는 도량은 크고 그 어른이 오셨으면은, 그 국내(局內)가 널직허고 그때에 토지도 많고 거다가 모셨으면 좋을 듯 해서 아! 내가 그때 그 운동을 했네.

그러면 제산 큰스님은 벽안당에 조실로 계시는디, 가만히 조실로만 앉어 계시제 학자 눈을 띄울 수가 없으니까. 하나도 일구(一句) 법문을 해 준 법도 없고.
아, 그러니 아무리 생각해도 혜월 큰스님이 여그 와 계셔야만 도량이 참말로 불일증휘(佛日增輝)가 되고 법륜상전(法輪常轉)이 되겄어.

부처님의 정법(正法)이 여그서 한번 크게 휘황찬란허게 될 듯 허고 이래서 “혜월 큰스님을 직지사 조실로 한번 모셨으면은 어떻겠습니까?”하고는 내가 인자, 그때쯤 벌써 인자 소문이 나 가지고는 ‘정영신(鄭永信)이...’ 해가지고 이름이 났어.
내 말 한마디—공부헐 때 원청간 다잽이를 기가 맥히게 했기 때문에 그 애를 써 가지고는 견성했다 해 노니까 소문이 다 나 버렸거든 인자.

아, 다 날 것 아닌가. 그만 벌써 혜봉 스님한테로 해서, 허태오 스님한테로 해서, 하혜일 스님한테로 해서, 그 다음에는 인자 공부 잘헌다는 스님네는 다 찾아댕긴다 인자. 방방곡곡이고 어디고 다 가지.

혜월 스님한테를 척 가서 공적영지, 영지 공적영지, 등지를 대답 딱! 했다고 소문이, 뭐뭐 소문이 앞을 서.
소문이 나 가지고 직지사에 와서 대중께 공포허고, 제산 스님한테 가 그런 말씀을 허니 ‘아! 선방에서 다 도 닦는 공부허는 스님네가 아, 그런 큰스님이 오셔서 그 조실로 계시면은 좀 좋겄나’

다 그런 마음 뿐이지. 그때 모도 인자 선방에 그 스님네 이름 다 잘 모르겄구마는.
아, 그래 공포를 헌게 좋다고, 아주 좋다고.

그래 내가 또 들어갔어. 가서 “큰스님, 김천 직지사에서 아주 큰스님을 청해서 거가 큰 선불장(選佛場)이 되도록 이렇게 모두 대중이 기다리고 있고 헌게 가셔야 겄습니다”
“그리야, 갈꺼나” 뭐 두 말도 헐 것도 없고 “가 볼꺼나” 아, 그래 나섰어요.

그래 모시고서는, 내가 그만 모시고서는 올라오다가 너무 밤에 갈 수가 없고 해서 김천에 내려서, 그때 그 김천에 경상북도 김천 역전(驛前)에 대화여관이라고 있어.
대화여관에 들어가서 하룻밤 모시고 자고서는 아침에 올라갈라고 자시는디, 요런 놈도 거다 집어넣어야 되겄구만.

여관 주인이 그 아침 진지를 해 드렸는데 “아! 당최 고기도 안 잡숫고 허니까, 청정허게 마늘겉은 거 넣지 말고 깨끗하게 그래 좀 해 주십시오”
아, 그랬더니 여관에서 어디 무슨 뭐, 저 따로 된장을 찌질 수가 있나. 된장을 그놈을 잘 지졌는디 모두 손님상에 놀라고 지졌는디 거다가는 파 마늘도 넣고, 소고기를 다져서 소고기 좋은 놈을 잘 다져서 그 무슨 그놈이 그 된장도 아니고 찌개처럼 맨들은 거여. 찌개로 맨든 것이여.

잘 지져서 요런 냄비, 쪼그만 냄비에다가 찌개를 딱 놨네. 아, 이놈을 떠억 잡순디, 한참 잡솨. 아주 잘 잡솨.
한참 잡숫더니 고기 덤벵이가 그놈이 좀 씹히든 것이여. 하나도 없이 잘 쫒다가 씹히든 것이여.
근게, “이거 뭐냐?” 맛있은 게 씹힌게, “이거 뭐냐, 괴기냐?”
“된장이요”

“된장 아니다. 괴기다. 맛있다, 맛있어” 괴기로 발견허고는 안 잡솨. 그래 놓고는.
아! 그 잡솨 버리지 잡솨지, 그녀러 것을 뭐 해필 또 그럴게 뭐 있냔 말씀이여, 그러지만 또 그래도 안 잡솨. 그거 잡술리야 없지마는 아, 그것들이 그렇게 나와서 잡솼다.

잡숫고는 그날 그만 모시고 올라와서 대중 공포를 허고, 큰스님께서 여그 와서 조실로 계셔서 광도중생(廣度衆生) 허시도록 이렇게 대중 결의를 했지.(41분34초~1시간23분52초)





(3/3)————————------

아, 통도사에서 또 안 된다고, 또 저 중방내 토지 뭐 그런 것 저런 것을 전부 인자 여그 조실 스님이 모두 농사짓고 어쩌고 해서 선객(禪客) 기룬다고 허면서, 거그서 초청이 다시 뭐...
아, 이래 가지고 여그 모실라 거그 모실라 야단스럽게 헌디. 그때에도 벌써 동부산(東釜山) 신도가 꽉 차 가지고는 그 큰스님, 저 무슨 계? 그 어른 모신다는 계(契)를 모두 조직했네.

계를 조직해 가지고 그때쯤 수도든가, 계(契)를 떡! 조직해 가지고는 그 계금(契金) 만 원을 갖다 가서 그 어른을 드렸네. 내나 그 어른 위허는 계니까, 그 어른 갖다 드리면은 알아서 범연히 잘 허리야고는 돈 만 원을 올려 놓고.
이렇게 부산서 왼통 신도들이 야단친디, 모시고 올라니 될 수 있나? 뭐, 뭐 어떻게 헐 수가 있어야지.

돈 만 원, 그래 그 계를 모아가지고 계금이니까 큰스님께 맽긴다고 갖다가 맽긴 모냥이지.
돈을 한푼이나 헛돈 써 뭣혀. 조실 스님 갖다 드리면은 당신이 무슨 뭐 어따 쓸 것이여. 학자 위해 쓸 것이지.

그래 그만 갖다 드렸든가. 이놈을 가지고는 논을 친닥 하면서 논 나락 한 다발이나 두 다발, 그걸 가을에 가면은 한 다발 두 다발도 안 나오는 놈의 논을 그놈을 쳐 가지고.
가을에 한 거다가 몇십 원을, 그때 몇십 원인가? 몇십 원을 들여서 고까짓 놈의 논, 고것 쳤자 뭐 그 일 원어치도 안되는 놈의 것을 몇십 원을 주고 모도 쳐 가지고는,
가을에 나락 한 다발 나면, “봐라, 이 나락이 어디서 나오냐? 이거 봐라” 든 밑천은 하나도 안 생각하고.
그런 양반이라 무슨 그 획량이 있어? 그런 그 무슨 계획량이 어디 있어? 요것만 보시제. 돈 많이 들어간 것은 못 봐.

그래 가지고서는 아, 이 만 원 돈을 막 집어써 버리네. 이놈도 달라면은 ‘그래’ 저놈이 달라면은 ‘그래’ 아! 이렇게 써 버린다 그 말씀이여. 아! 그러니 그 못 쓰게도 못하고 이것 참 큰일났제.
그래 가지고 되야 있는 형편, 만 원을 모두 모아 드린 그런 것이 모두 있제, 저런 것이 있제, 어디 가 있을 도리가 있어야제. 당신 못 있어. 본래 또 그저, 여까장 해 놓고.


본래 그 저 견성해 가지고는 ‘관세음보살이 북으로 향한 의지가 여하냐?’ 대답 턱! 허니까—그 본래 견성헌 공안은 그건 아니여. 견성헌 후에 고놈 물어 대답했지.

이것이 나와야 되겄는디 나올란가 모르겄네. 역사 법문인게 내 이런 걸 다 집어넣어야겄다 그말이여.
‘단지불회면...’ 저 혈맥론에 가서, 혈맥론(血脈論)에 있나?
그 무슨 그 위에는 다 내가 다 외울 수 없고 ‘단지불회(但知不會)면 시즉견성(是卽見性)이니라. 단지불회면 시즉견성이다’ 거그서 견성을 했어.
그 언하대오(言下大悟)여, 그 뭐. 단지불회면 시즉견성이니라. 거그서 견성을 했어.

그만 견성해 가지고는 그만 그만, 그 또 그 어른이 글쎄 어린아같은 양반이 거 뭐 앞뒤 무슨 뭐 조리 여하약하(如何若何)가 뭐 있나. 나온대로 막 해버리는디.
아, 그러니깐 경허 큰스님이 묻기를 “관세음보살님이 북으로 향한 의지가 여하냐?” 대답 탁! 허니까 거기에 인가를 어떻게 한고 하니, 이거 다 중요하거든. 나 밖에 몰라. 아무도 모르는 거여.

“염득분명(拈得分明)이여 등등상속(燈燈相續)이니라” 이거 꼭 여그 시방 혜월 스님한테다 인가한 것이여. 그런 인가가 있어야 하는 거여, 꼭.
염득분명(拈得分明)이여, 잡아 얻은 것이 분명하다. 등등상속(燈燈相續)이니라, 등등(燈燈)이 상속헐 것이니라. 네 깨달은 도리를 또 상속해라. 인가한 것이여.

그래 가지고 그만 그 정혜사에서 견성헌 후에는 그만 뭔 산하석벽(山河石壁)이 불응장애(不應障碍)요, 산하석벽이 어디가 장애가 있으며. 녹수(綠水)가 하구여청산(何拘與靑山)가, 녹수가 어찌 청산에 걸릴까보냐.
그만 그길로 나가서 아무 참, 무애(無礙)라. 무애여. ‘걸림이 없다’ 그말이여.

그 무애라는 것은 법체(法體)에 걸림이 없다 그말이지, 무애에 가서 술 먹고 고기 먹고 마음대로 헌 무애 그것인가, 어디? 잘못 알면 큰일나, 그런 것 다. 소용없어.
술 먹을디 술 안 먹는 것이 그것이 걸림이 없는 도리고. 잡행(雜行), 못된 행실 안 헐 것을 않는 것이 그것이 무애지.

막 무애 잡행(雜行), 막 음주식육(飮酒食肉)이 무방반야(無防般若)고, 막 떨어져 거꾸러지고 그것이 무애가 아니여. 잘못 알면 못써, 학자들이.
술 안 먹을 걸 꼭 안 먹어야 하고, 계행(戒行) 지킬 걸 꼭 지켜야 그것이 곧 자체가 무애지.

술 그까짓 것 막 먹고, 그저 괴기도 막 먹고, 그저 질도 막하고, 질도 여러 가지여. 도둑질도 있고 음행질도 있고, 무슨 뭐 질도 막하고 그것이 무애 아닌 것이여. 그것 고약한 짓이제.
왜 처음에 내가 그 동리(桐裏山)에서 왜 견성했다 해 가지고 마당 앞에다 갖다 뜰에다 오줌을 싸고는 그게 옳다고 그려? 고런 것이 그 못쓴 것이다 그말이여. 어디가 있을 것이여.

탁자에 부처님을 모셔 논 것을 ‘저걸 뭐 부처냐?’고 가서 쿡 밀어 버리고, 그게 무애여? 그게 거 도통(道通)헌 짓이여?
숭악한 그거는 무애가 아니라 못된 사마외도행(邪魔外道行)이다 그말이여. 이걸 잘 들어야 허는 것이여.

그만 그대로 무애여. 아무 거침없다. 어디가서 뭘 허든지 거침없다. 도행이다.
길가에, 홍성 나가다 길가에 숭악한 집이 있는디, 그 숭악한 집 그것 다 떨어져 엎어진 그런 집이 인자 누가 내던져 버려서 살 사람도 없고 헌 것을 꼬쟁이로 겨우 괴우고, 작대기로 괴우고 거그를 쓸고서는 뭔 짚다발 갖다가 우게다(위에다) 이어 놓고서는 신을 삼아.

그 어른이 어릴 때, 뭐 어릴 때 교육이 저 속가 저 마을 촌가에서 교육을 받았어.
혜월 스님도 역시 어릴 때에 무슨 거 부모 밑에서 따뜻허게 교육 받고 커나지 않은 어른이거든. 그래 아주 무식해. 무식헌 어른인디, 또 육조 스님 뭐 무식허데끼 다 그렇지 뭐.

그 천박허게 마을에서 날처럼 커나든 안 했지만, 나같이 무슨 서모 밑에 커나든 안 했겠지마는 그 어른도 역시 글 하나 못 배우고 커났으니까 알아볼 지경이지 뭐. 그래 가지고 국문(國文)도 잘 모르시는 어른이니까.

당신이 평생에 아는 것이 신 삼는 것이여. 신 그걸 삼아서 알아.
‘신을 삼아서 벌어먹고 살아야겄다. 견성을 했으니까 보림(保任)을 해야 허겄다’
보림을 헌 지경인디 거그서 그런 찌그러진 집 하나를 어떻게 가다가 줏어 가지고는 거그 들어앉아서 신을 삼고 있는디, 그때 나이 그렇게 많지 않으시고 헌게 마누라를 하나 얻었다 그말이여. 마누라를 얻어야지, 혼자는 있을 수가 있나. 고독해서.

그러니 그 마누라도 무슨 뭐 부귀헌 그런 마누라 얻을 수 없는 것이고, 그이도 역시 가난헌 그런 마누라를 하나 얻어 가지고서는 내외간에, 그 큰스님은 신을 삼는다.
그러면 그 여자는 신 수장을 혀. 요렇게 뀌어서 옛날에 짚세기같은 거 뀌어서 모도 그 수장을 해서 신도록 만드는 거여. 골 치고.

아, 이렇게 해서 하루 다섯 커리썩 삼을 때가 있고, 네 커리썩 삼을 때가 있고, 밤까장 삼으면 다섯 커리씩 삼고 요렇게 해서 그 이튿날은 홍성장에 가서 팔아 와.
팔면은 그 몇 냥 받으면은 쌀팔고 해가지고 먹고, 두 분이 혜월 큰스님은 신 삼고 그 부인은 신 삼으면은 수장 다 해가지고 갖다 팔아서 양식 사다가서 참, 생애가 족혀.

그래 먹고 살았는데 ‘혜월 스님 견성해서 경허 큰스님이 인가했다’는 말씀은 확 났고.
그때에는 한국의 수좌가 몇 못 되아. 얼매 없어. 전부 다 보탰자 수좌라고 공부헌 이가 몇 안되아.
그러지마는 견성한 이는 썩 귀헐 때거든.

경허 스님 마침 계셔 가지고 인자 경허 스님 밑에 제일 수제자 하나 났는데, 그 다음에 만공 스님이지마는.
그래 그만 그대로 떡 견성해 가지고는 그만 마을에 저 나가다 어디 길가에서 떨어진 집, 무너진 집 하나 얻어 가지고 신 삼아 팔고 사는데.

없어, 선객이. 인자 이렇게 많이 모두 선(禪)이 자꾸 발전되제. 앞으로 인자 참선 참 크게 발전되는구만.
저 범어사도 미국 사람이 시방 와서 여그서 배워 가지고 나가 즈그 나라에 선(禪) 편다고 있다구만.
아! 여그 이 녀석은 나가더니 그 어디 붙잽혔다는구만, 인자 들은게. 아주 붙잽혀서 아(兒)들 가르키기 겨를이 없다는구만. 영어 가리키고 막 반하제, 모두 배울라고.

아, ‘혜월 큰스님이 홍성 노변(路邊)에서 그렇게 신 장사허고 계신다’ 그말 듣고는, 그때 인자 차츰 그때도 선이 좀 발전되든 때인디,
아, 젊은 선객이 한 몇 있다가는 ‘아! 그럴 수가 있겠냐’고 ‘모시러 가야겄다’고. 그래 사방 찾아서 인자 큰스님을 모시고.

아! 와 보니까 홍성 노변에서 이리저리 참 찾다 보니 거기에서 신 장사를 허고 계시는디 참, 형편없네.
그렇게 바쁘니까 언제 무슨 뭐 그릇 치울 겨를도 없고, 밥 먹으면 밥그릇 숟구락 치우도 않고 고대로 놔두고, 또 된장도 떠먹다가 씻도 안 허고 고대로 놔두고, 고러고는 앉어서 두 내외가 신 삼으면 수장허느라고 정신없어. 그러 안혀. 반찬이고 뭐 아무것도 없고 깨진 솥.

아, 그래 가서 “큰스님 모시러 왔습니다”
“모시러 와야? 어디서 왔냐?”

“저 통도사에서 왔습니다”
“그려? 나 봐라. 신 삼고 나 우리 마누라허고 산디 내가 어찌 가야?”

“아따, 가셔야 합니다. 마나님이랑 가시지요. 가셔야 합니다”
“못 간다. 안 된다”

“아, 가셔야 된다”고, 아! 그만 대들어서, 서넛이 가서 대들어서 뒤에서 밀고 그만 앞에서 스님을 업고, 업고 밀고 아! 이러고는 가자고 헌게.
업힘서 말여 “아이고, 아이고, 우리 마누라 어쩌라고 이러냐”

“아따 가셔요, 마누라...”
“아이고, 우리 마누라 어쩌란 말이냐, 아아아!” 아, 이럼서 그만 업혀 가네.

그때 참 기가 맥혀. 돌아보고 울고 돌아보고, 기어니 업혀가 간게. 남에 업힌게 떠방치는 못허고 가시기는 가시면서도 돌아보면서 울어. ‘불쌍하다’고. 허허.
마누라도 문턱에서 문가에서 울고. 그래 거그서 아! 이렇게 작별을 시켰오.

자, 도인은 여차(如此)하거늘, 이와 같이 참, 노변에 신 삼고 그러고 계시는 그런 큰스님을 그렇게 모시러 가는데.
세상에, 시방은 도인이라고 허면 숭부텀 볼락 하네. 어디 도인, 도인이면 무슨 도인은 구름 속에서나 사는 줄 알고, 어디 저 무슨 탁자에 부처님보담 더 높은 줄 알고. 이런 꼴 좀 봐.

그렇게 믿겄오, 누가? 누가 믿어?

그것 저것을 불구허고 도 배울 욕심으로 학자들은 가서 업고 그만 나와 가지고는 그 어른을 모셔다가 놨오 그려.
모셔다 놓고는 절을 턱 허고는, 산중이 모도 큰스님 모셔 왔다고 절을 헌게, 응 절 딱 받고는 또 그냥 마누래 생각은 꿈도 없네. 거, 뭐 마누래 그까짓 녀러 것, 뭐 또 그때뿐이제. 아무 소용없어.

“아 큰스님, 거 거그 그 모도 집안 생각 안 납니까?”
“뭔 집이야? 아따 뵈기도 싫다, 인자. 그 뵈기도 싫다” 그러고는 인자 논 친다고 그러고 계셨다 그 말씀이여.
그러니 도인이 그런 영아행같은 그런 도인을 그래 인자 참 믿을 줄 알아야 하고, 모실 줄 알아야 하고. 위법망구(爲法忘軀)를 헐 줄 알아야 혀. 그래야제.

넨장칠 것! 정전강 조실 스님이요, 정전강이 큰스님 스님이라고 턱 해 가지고 여그서 6년 동안이나 앉어서 도(道) 가르키고 요러고 앉었는디, 밤낮 내가 요렇게 6년 동안 설법허되 꼭 참선법밖에는 설해 드리들 않고 아! 이러고 있는디.

밤낮 그 내 모두 숭만 봐내지, 뭐 누가 한 번이나 참말로 법을 배울 줄 알어?
내 참말로 가만히 앉어서 내 혼자 우는구만. 나 혼자 울어.

세상에 내게도 이러헌 법이 있건만, 혜월 큰스님도 나한테 인가를 했고, 이게 자랑이여. 별수없어.
없는 걸 내가 있다고—내게 답이 다 있어. 그놈 답 다 해놔야 되지만 학자한테 해로워. 그래 내가 안 혀.

“공적영지를 일러라” 대답했지. “영지에 공적영지를 일러라” 대답했지. “등지를 일러라. 공적영지 등지를 일러라” 대답했지.

그놈을 내가 여그서 턱 해 놓으면 좋지. 하지마는 학자한테 해로워서 그래 내가 안 혀.

그래도 죽백천추(竹千秋)에, 인자 여 오늘 설법이 지금 기재(記載)를 헌다니까 여그 다 들어 가가지고 이 다음엔 결집(結集)을 해 놓으면은 거그 다 나올 터이니, 학자가 모도 그런 걸 봐 가지고서는 대단히 해로워. 그래서 내가 그건 않고 인가를 받았단 말만 해 놔.

고 가다가 그 제일귀 답 같은 것도 있어. 용성 스님한테. 그런 것은 답을 바로 해 놔. 바로 그놈이 해서 그놈 공포된 놈이니께 그리 해 논다 말이여.

이것도 혜월 큰스님한테 헌 것도 그때 당시에 다 알아. 다 알지마는 그거는 너머 갖다 그만 드러나 버려서, 그런게 인자 저놈 모도 헌 놈은 내가 다 해 놓지마는 요것은 헐 수가 없어.
내가 먼첨 헐 때는 그걸 갖다 해 놨어. 그놈을 가서 어디 해 논 것을 들어보고 찾아보고 그러지 말어. 알 필요가 없어.

부중선사(不重先師)의 도덕(道德)이요, 선사(先師)의 도덕이 중헌 게 아니여. 불위아설파(不爲我說破)다. 나를 위해서 설파치 말어라. 이것이 참으로 진면목(眞面目)이요, 참말로 도가(道家)에 가서는 여차(如此)헌 법이다 그말이여.
그 해석을 기달치 말고, 그러헌 데 법문을 알라고 말어. 학자한테 해로워.

그렇게 혜월 큰스님 어른을 갖다 모셔 놓고는 그 당시에 동래 범어사와 그때 당시에 학자가 혜월 큰스님을 어떻게 모셨냐 그말이여.
인자 선지식 모시는 법을 여까장 말씀했지마는 여그서 이어서 또 인제 더 헐 것이여. 많이 헐 것이여.

오늘 법문 아침에 마쳤어. 반산림 법문을 여까장 마쳤어.
왼통 못 견디는구만. 모도 법문 듣느라고 되아서. 응, 세 시에서 네 시, 다섯 시 삼십 분인데.

올 삼동에 법문 무척 헌다 인자.
이 법문을 옳게 들어서 양을 채와야 하는 거여. 법량(法量)을 채와야 혀. 법밖에 없는 거여.

들을 때는 싫으면 되아? 귀찮으면 되아? 듣기 싫어서 왼통 야단이다. 궁딩이를 드리 받치고 무릎도 꿇고. 에이고, 나 참말로.(1시간23분54초~1시간43분58초) (일대기 3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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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모산촉공우~’ ; 『청허당집(淸虛堂集)』 (서산 휴정) ‘송원선자지관동(送願禪子之關東) - 원선자(願禪子)를 관동(關東)으로 보내며’ 참고.
*무량겁(無量劫) ; 헤아릴 수 없는 오랜 시간이나 끝이 없는 시간. 劫과 刧는 동자(同字).
*구원겁(久遠劫) ; 아득하게 멀고 오랜 옛날.
*반산림(半山林) ; 안거 기간의 중간.
*냅대 ; ‘냅다(몹시 빠르고 세차게. 또는 그런 모양으로)’의 사투리.
*제끼다 ; 제치다(동사의 연결어미 ‘-어’ 뒤에 쓰여, 어떤 동작이 신나고 거침없음을 나타내는 말).
*버르정머리 ; ‘버르장머리(‘버릇’을 속되게 이르는 말)’의 사투리.
*날빛 ; 햇빛.
*반다시 ; ‘반드시(틀림없이 꼭)’의 사투리.
*천일(天日) ; ①하늘과 해를 아울러 이르는 말. ②하늘에 떠 있는 해. 또는 그 햇볕.
*조사관(祖師關) ; 조사의 경지에 이르는 관문(關門), 곧 화두(공안)을 말함. 관문(關門)은 옛날에 국방상으로나 경제상으로 중요한 곳에 군사를 두어 지키게 하고, 내왕하는 사람과 수출입하는 물건을 검사하는 곳이다. 화두는 이것을 통과하여야 견성 성불하게 되는 것이므로 선종(禪宗)의 관문이 된다.
*견성(見性) : ‘성품(性品)을 본다[見]’는 말인데 ‘진리를 깨친다’는 뜻이다。자기의 심성을 사무쳐 알고, 모든 법의 실상인 당체(當體)와 일치하는 정각(正覺)을 이루어 부처가 되는 것을 견성 성불이라 한다.

*그녀러 ; ‘그따위(그러한 부류의. 낮잡아 이르는 말이다)’의 사투리.
*암작 ; ‘아무짝(‘아무 데’를 비하하여 이르는 말)’의 사투리.
*선지식(善知識) ; ①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좋은 지도자. 훌륭한 지도자. 바르게 이끄는 사람. ②좋은 벗. 마음의 벗. 선우(善友).
*오도송(悟道頌) ; 불도(佛道)의 진리를 깨닫고 그 경지 또는 그 기쁨을 나타낸 게송.
*머냐 ; ‘먼저’의 사투리.
*진대지(盡大地 모든·전부의 진/클 대/땅 지) ; 모든 대지. 이 땅 전체를 가리키는 말.
*패철(佩鐵 차다·휴대하다 패/쇠 철) ; 묏자리를 정할 때 풍수설에 따라 묏자리의 좋고 나쁨을 가려내는 지관(地官)이 썼던 나침반(羅針盤)이다. 『주역(周易)』에 기초한 오행과 십이간지 및 육십갑자가 표시되어 있고 방위도 세세하게 구분되어 있다.
*도인(道人) ; ①불도(佛道)를 수행하여 깨달은 사람. ②불도(佛道)에 따라 수행하는 사람.
*묏자리 ; 뫼(사람의 무덤)를 쓸 만한 자리. 또는 쓴 자리.

*수좌(首座) ; ①선원(禪院)에서 좌선하는 스님. ②수행 기간이 길고 덕이 높아, 모임에서 맨 윗자리에 앉는 스님. ③선원에서 좌선하는 스님들을 지도하고 단속하는 스님.
*조사선(祖師禪) ; 교외별전(教外別傳) • 불립문자(不立文字)로서 말 자취와 생각의 길이 함께 끊어져서 이치나 일에 걸림이 없는 선. 언어와 문자에 의하지 않고 직접 스승으로부터 제자에게로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깨우치는 것을 전하고 있기 때문에 조사선이라 한다.
*법문(法門 부처님의 가르침 법/문 문) ; 불법(佛法)을 문(門)에 비유한 말.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門)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본참화두(本參話頭) ; 본참공안(本參公案).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의단(疑團 의심할 의/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독로(獨露 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홀로[獨] 드러나다[露].
*의정(疑情) ; 의심(疑心).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해 ‘알 수 없는 생각’에 콱 막히는 것.
*언하(言下) ; [주로 ‘언하에’의 꼴로 쓰여]말이 떨어진 바로 그때. 또는 말을 하는 그 즉시.
*역력(歷歷 겪을·지낼·수를 셀·가릴 력) ; ①뚜렷한 모양. 분명한 모양. 똑똑한 모양. ②사물이 질서정연하게 늘어선 모양.
*조인광중(稠人廣衆) ; 빽빽하게 모인 많은 사람.
*조인(稠人 빽빽할 조/사람 인) ; 많은 사람.
*낙구(落臼 떨어질 락/절구·곡식을 찧는 기구·찧다 구) ; ‘절구[臼]에 떨어진다[落]’는 말로 ‘백발백중(百發百中)‘, ’틀림없는 결과’의 뜻을 나타낸다.
[참고] 『선요(禪要)』 (고봉화상 | 조계종출판사) ‘7. 示衆‘ p65 주석에서.
추문낙구(推門落臼) : 문을 여닫을 적에 문이 암돌짝[臼 : 절구처럼 구멍이 패인 곳]을 벗어나지 않고 자유롭게 열리고 닫히는 상태로서, 백발백중(百發百中)이라는 말과 같다.[臼是門開閉之處也 開門之時 亦發於臼 閉門之時 亦落於臼 猶言百發百中].
*제일구(第一句) ; ①‘처음 한마디 말’이니 불교의 핵심도리를 드러내는 첫번째 말. ②말로써 표현할 수 없고 생각으로 개념 지을 수 없는,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하는(以心傳心) 진리를 가리키는 말.
*낙안성예(落眼成翳 떨어질 낙/눈 안/이룰 성/가릴·흐릴·눈이 흐림 예) ; ‘눈에 떨어지면 병[가리움]이 된다’
[참고] 『임제록(臨濟錄)』 ‘감변(勘辨)’
金屑雖貴 落眼成翳 금가루가 비록 귀하지만 눈에 떨어지면 눈을 흐리는 병이 된다.
*여래선(如來禪) ; 생각과 알음알이가 아주 끊어지지 않아서 말의 자취가 있고 이치의 길이 남아 있는 선.
*잡드리 ; ‘잡도리’의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그 대책. ③아주 요란스럽게 닦달하거나(단단히 윽박질러서 혼을 내다) 족침(견디지 못하도록 몹시 급하게 몰아치다).
*도세(度世 건널 도/인간 세상 세) ; 생사윤회하는 고통의 세계를 벗어나 열반의 경지에 도달하는 것. 또는 중생을 구제하여 해탈하게 하는 것.
*조실(祖室) ; 선원의 가장 높은 자리로 수행인을 교화하고 참선을 지도하는 스님. 용화선원에서는 고(故) 전강대종사(田岡大宗師)를 조실스님으로 모시고 있다.
*제접(提接 이끌 제/응대할•가까이할 접) ; (수행자를) 가까이하여 이끌다.
*요요(了了 마칠·깨달을·분명할 요) ; 뚜렷하게. 분명하게. 분명하게 알고 있거나 뚜렷이 드러나는 경계를 수식하는 말이다.
*세상없어도(世上---) ; 어떠한 일이 생기더라도 반드시.
*심바람 ; ‘심부름(남이 시키는 일을 하여 주는 일)’의 사투리.
*시봉(侍奉 모실 시/받들 봉) ; ①제자가 스승을 받들어 섬기는 것. 지위가 높은 스님을 가까이 모시고 시중드는 일. ②부모를 모셔 받듦. ③제자.
*인가(印可 도장 인/옳을·인정할 가) ; 스승이 제자의 깨달음을 인정함.
*당호(堂號 집 당/이름 호) ; 당호(幢號)라고도 한다. 출가한 스님으로서 사미나 소비구(小比丘 : 젊은 비구) 시절에는 휘(諱)인 법명(法名)을 사용하지만, 법랍(法臘 :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고 부터의 햇수)과 도덕이 높아지면 남들이 감히 그의 이름을 부르기를 기피(忌避 : 諱)한다.
그러므로 종사(宗師)와 법을 거량(擧揚)하여 종사로부터 인가를 받고 그를 법사로 하여 입실건당(入室建幢)의 전법식을 가질 적에 당호와 가사, 장삼, 전법게(傳法偈) 등을 받는다. 당호란 주로 그가 살고 있는 절 이름, 또는 지명, 그가 거처하던 집 이름 등을 취하여 호를 삼는 예가 많았다.
*누데기 ; ‘누더기(누덕누덕 기운 헌 옷)’의 사투리.
*집다 ; ‘깁다(떨어지거나 해어진 곳에 다른 조각을 대거나 또는 그대로 꿰매다)’의 사투리.
*가리 ; ‘가루[분(粉), 분말(粉末)]’의 사투리.
*바리때 ; 절에서 쓰는 스님의 공양(식사) 그릇. 나무나 놋쇠 따위로 대접처럼 만드는데, 나무에는 안팎에 칠(漆)을 한다. 발우(鉢盂)ㆍ발우대ㆍ응기(應器)ㆍ응량기(應量器)라고도 한다.
응량기(應量器)란 법에 응하는 또는 1명의 식량에 마땅한 그릇이니 먹을 만큼의 분량을 담는 그릇이고, 또 남의 공양을 받기에 마땅한 수행과 덕을 갖춘 성현(聖賢)이 사용하는 그릇이란 뜻이다.
*찬(讚, 贊) ; ①남의 훌륭한 행적이나 서화 따위를 기리어 칭찬하는 글. ②서화(書畵)에 쓰는 시문(詩文)을 통틀어 이르는 말.
*영찬(影讚) ; 어떤 사람의 초상화를 보고 찬양하여 지은 글.
*씨잘데 없이 ; ‘쓸데없이. 소용없이(아무런 쓸모나 득이 될 것이 없이)’의 사투리.
*시주것(施主것) ; 절이나 스님에게 조건없이 베푼 물건.
*탁마(琢磨 쫄 탁/갈 마) ; ①학문이나 덕행 따위를 닦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②옥이나 돌 따위를 쪼고 갊. ③옥을 갈고 돌을 닦듯이 한결같이 정성껏 애써 노력하는 것. ④선지식에게 자기의 공부하다가 깨달은 바를 점검 받는 것.
*탁마상성(琢磨相成 쫄 탁/갈 마/서로 상/이룰 성) : 서로 탁마해서 공부를 완성한다.
*편영이행(鞭影而行) ; ‘여세양마(如世良馬) 견편영이행(見鞭影而行), 세간의 좋은 말[馬]은 채찍의 그림자만 보고도 달리는 것과 같으니라’
[참고] 『선문염송 · 염송설화(禪門拈頌 · 拈頌說話)』 제1권. (혜심, 각운 지음 | 김월운 옮김 | 동국역경원) p114 참고.
제 16칙. 「양구(良久)」
世尊因有外道問 不問有言 不問無言 世尊良久 外道讚歎云 世尊 大慈大悲 開我迷雲 令我得入 外道去後 阿難問佛云 外道有何所證 而言得入 佛言如世良馬 見鞭影而行

세존께 어떤 외도가 물었다. “말 있음으로도 묻지 않고 말 없음으로도 묻지 않겠습니다”
세존께서 양구(良久)하셨다. 그러자 외도가 찬탄하여 말하였다. “세존께서 대자대비하시어 저의 미혹의 구름을 걷어 주셔서 저로 하여금 깨달아 들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물러갔다.

외도가 떠난 뒤에 아난이 부처님께 물었다. “외도가 무엇을 증득했기에 ‘깨달아 들었다’ 하였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세간의 좋은 말[馬]은 채찍의 그림자만 보고도 달리는 것과 같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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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입다 ; 세차게 마구.
*가당하다(可當-- 옳을·정도·가히 가/마땅·필적하다 당) ; ①대체로 이치에 맞다. ②능력이나 수준 따위가 비슷하다.
*용맹정진(勇猛精進) ; 두려움을 모르며 기운차고 씩씩한 그리고 견고한 의지로 한순간도 불방일(不放逸)하는, 열심으로 노력하는 정진.
*당최 ; 도무지(아무리 해도, 이러니저러니 할 것 없이 아주). 영.
*원청 ; 원청강(워낙, 두드러지게 몹시).
*개복실(改服室) ; 옷을 갈아입는 방.
*큰방 ; 스님들의 본업인 수행을 행하는 장소. 예불과 공양시간을 제외한 모든 시간을 참선만을 행하는 선원(禪院)에서 대중이 한 자리에 모여 참선수행하는 방(房)을 '큰방'이라 한다.
*방연하다(尨然-- 삽살개·높고 크다 방/그럴·~이다 연) ; 두툼하고 크다.
*약무인행(若無忍行) 만행불성(萬行不成) ; ‘만약 참는 행이 없다면 만 가지 행이 이루어지지 못하리라’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 용화선원刊) p107~108.
若無忍行하면  萬行不成이니라.
 만약 참는 행이 없다면 만 가지 행이 이루어지지 못하리라.
    
(註解) 行門이  雖無量이나  慈忍이  爲根源이니라  古德云,  忍心은  如幻夢이요 辱境은  若龜毛라 하시니라.
수행하는 길이 한량없지만 자비와 인욕이 근본이 되느니라. 고덕이 이르되 「참는 마음이 꼭둑각시의 꿈이라면, 욕보는 현실은 거북의 털 같으리라」 하시니라.
*고인(古人) ; ①불보살(佛菩薩)님을 비롯한 역대조사(歷代祖師), 선지식을 말한다. ②옛날 사람. 옛날 선승(禪僧).
*산림(山林) ; 안거(安居).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경계(境界) ; ①산스크리트어 viṣaya 구역을 나눈다(疆域分劃)는 뜻. 줄여서 경(境). 곧 감각기관[根] 및 인식작용[識]의 대상이나 인식이 미치는 범위를 말한다.
인과(因果)의 이치(理致)에 따라서 자신이 부딪히게 되는 생활상의 모든 일들, 생로병사, 빈부귀천, 부모형제, 희로애락, 시비이해, 삼독오욕, 춘하추동, 동서남북 등이 모두 경계에 속한다. 곧 인간은 경계 속에서 살고 있고, 경계가 삶의 내용이다.
②내용이나 각자의 능력 등이 분명한 한계지어진 범위 · 영역 등을 말한다. 부처님과 중생이 인지하는 능력의 범위가 구분되는 것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화엄경』 입법계품(入法界品) ‘此佛境界 一切衆生 及諸菩薩 所不能知 이것은 부처님의 경계로 모든 중생과 보살들은 알 수 있는 경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③금계(禁戒 부처님께서 제정한 나쁜 행위를 금하고 경계하는 계율)를 깨뜨리는 인연이 되는 것과 그것의 어떤 환경을 뜻한다. 예를 들어 자신의 마음에 들어맞어 마음이 따르는 환경을 순경계(順境界), 자신의 마음에 어긋나서 마음이 언짢은 것을 역경계(逆境界)라고 한다. 경(境)에는 본래 차별이 없으나 중생의 마음이 미혹됨으로 말미암아 언짢거나 수순하는 구별이 있다.
*한마음 ; 일심(一心). 궁극적 근저(根底 사물의 밑바탕이 되는 기초. 사물이 생기는 본바탕)로서의 마음. 만유(萬有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의 실체진여(實體眞如)를 말함. 모든 현상의 근원에 있는 마음. 우주 사상의 기본에 있는 절대적인 진실.
*용(茸) ; 녹용(鹿茸 : 새로 돋은 사슴의 연한 뿔). 녹용은 양기(陽氣)를 보하며 심장, 근골(筋骨)을 강하게 하기 때문에 보약으로 쓰인다.
*삼직(三職) ; 주지(住持)를 돕는 세 직책. 곧 총무, 교무, 재무를 말함.
*사미(沙彌) ; 산스크리트어 śrāmaṇera 팔리어 sāmaṇera의 음사. 근책(勤策)·구적(求寂)이라 번역. 출가하여 십계(十戒)를 받고, 구족계(具足戒)를 받아 비구(比丘)가 되기 전의 남자 수행자.
십계는 살생·도둑질·음행·거짓말·음주뿐만 아니라, 때가 아닌 때에 식사하는 것, 춤과 노래를 보고 듣는 것, 향수를 바르고 몸을 단장하는 것, 높고 큰 평상에 앉는 것, 금은 보물을 지니는 것 등을 금지하는 10가지이다.
*행자(行者) : ①수행자. 불도(佛道)를 수행하는 사람 ②계(戒)를 받기 전에 일정 기간 동안 절에 있으면서 여러 소임 밑에서 일을 돕고 있는 사람.
*법상(法床) ; 법을 설하는 자리. 또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설법하는 스님이 올라앉는 상.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을 일으킴[發].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내나 ; ①다름이 아니라. ②결국에 가서는.
*참선법(參禪法) ; ①선(禪) 수행을 하는 법.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법.
*들어맞다 ; 정확히 맞다.
*서식묘아반(鼠食猫兒飯), 반기이파(飯器已破) ; ‘쥐가 고양이 밥을 먹었습니다’, ‘밥그릇은 이미 깨졌습니다'

[참고] *송담스님(세등선원No.24) - 기미년 동안거결제 법문(79.10.17)에서.(4분18초)
‘참 법문’이라 하는 것은 설할래야 설할 수가 없는 것이여. 따라서 들을라야 들을 것 없는 도리를 알아야 되는 것이여.

아까 조실 스님 법문에 ‘서식묘아반(鼠食猫兒飯)이다. 쥐가 고양이 밥을 먹었다’ 쥐는 바로 고양이의 밥인데, 고양이는 쥐를 먹고 사니까 쥐가 바로 고양이 밥인데, ‘쥐가 쥐를 먹었다’ 이러한 풀이를 해 주셨습니다.
서식묘아반(鼠食猫兒飯)이라 일러 가지고 인가(印可)를 받지 못했기 때문에 그러한 풀이를 해 주셨습니다.

공안(公案)이라 하는 것은 미제(美製) 자물쇠통과 같아서 아무리 것으로 보기에는 똑같이 생겼어도 제 번호가 아니면은 열리지를 않습니다.

체중현(體中玄) 도리에서 본다면 손을 한번 드나, 고함을 한번 치나, 발을 한번 구르거나, 좌복을 한번 들었다가 내동댕이를 치거나, 빰을 한 대 올려붙이거나, 눈을 한번 감았다 뜨거나, 일거수 일투족이 다 맞지 아니한 것이 없습니다. 방귀를 한번 뀌거나, 부처라고 하거나 똥이거나, 일체가 다 한 소식입니다. 한 맛입니다.

그러나 이 공안은 그러한 체중현 도리, 일체가 텅 빈 도리, 한 맛인 도리로 보아 가지고서는 바로 깨달았다고 할 수가 없는 것이여.

‘쥐가 고양이 밥을 먹었다’ 이렇게 일러 가지고서는 구경(究竟)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할 수가 없는 것이여.
여러분들이 어떠한 공안을 가지고 ‘쥐가 고양이 밥을 먹었다’하는 그러한 식으로 따져서 어떠한 결론을 얻을라고 해서는 그것은 공연한 헛수고인 것입니다. 얻었다고 해봤자 그것은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여.

“쥐가 고양이 밥을 먹었습니다” “맞지 아니하니 다시 일러라”
“반기이파(飯器已破)입니다. 밥그릇은 이미 깨졌습니다”

쥐가 고양이 밥을 먹는데, 무슨 밥그릇이 어떻게 깨져? 이 도리는 우리가 아무리 따져 봤자 알 수가 없는 도리여. 가르켜줄 수도 없고 배울 수도 없는 도리여. 반기이파(飯器已破) 도리.

여러분이 가지고 하는 판치생모, 또는 정전백수자, 또는 시삼마 이런 모든 공안은 알래야 알 수 없고, 따질라야 따질 수 없고, 꽉 맥힌 상태에서 ‘어째서 판치생모(版齒生毛)라 했는고?’ 알 수 없는 꽉 맥힌 상태에서 그 의심을 관조해 나가야지,
‘쥐가 고양이 밥을... 밥...,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 뜰앞에 잣나무 잣나무......’ 이런 식으로 해서 이렇게 따지보고, 저렇게 따져보고, 이러한 참선은 이건 ‘죽은 참선’이여. 절대로 그런 참선을 해서는 아니 됩니다.
덮어놓고 무조건하고 ‘어째서 정전백수자라 했는고?’ 숨을 깊이 들어마셨다가 3초 동안 머물렀다가 조용하게 내쉬면서 '이뭣고?'(67분13초~71분33초)
*천칠백 공안(千七百 公案) ;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에 천칠백일 명의 인물들이 보여준 기연어구(機緣語句, 깨달음을 이루는 기연에 주고받은 말과 경전·어록의 글)를 수록하고 있는 것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
*조사관(祖師關) ; 조사의 경지에 이르는 관문(關門), 곧 화두(공안)을 말함. 관문(關門)은 옛날에 국방상으로나 경제상으로 중요한 곳에 군사를 두어 지키게 하고, 내왕하는 사람과 수출입하는 물건을 검사하는 곳이다. 화두는 이것을 통과하여야 견성 성불하게 되는 것이므로 선종(禪宗)의 관문이 된다.
*격외(格外 격식 격/바깥 외) ; 규정되고 고체화된 세간적(世間的)인 척도를 초월하는 것. 즉 분별로는 헤아릴 수 없는 것. 불가사의(不可思議)한 실상을 가리키는 말이다. 격(格)은 격식(格式) · 규격(規格) · 법칙 · 규정 등을 말하지만 넓은 뜻으로는 세간(世間)의 척도라는 뜻이다.
*행각(行脚) : ①수행자가 일정한 주소를 갖지 않고 스승이나 벗을 구하여, 자기의 수행이나 교화를 위해 곳곳을 편력하는 것。 ②스승의 슬하(膝下)를 떠나서 선(禪) 수행을 위해 훌륭한 선승(禪僧)이나 좋은 벗을 구하여, 마치 떠도는 구름과 흐르는 물과 같이 발길 닿는 대로 여러 곳을 편력하는 것。 이것을 행하는 자를 행각승(行脚僧) 또는 운수(雲水)라고 함.
*쾨코리 ; ‘코끼리’의 사투리.
*해오라비[鷺鷥 노사] ; ‘해오라기(왜가릿과의 새)’의 사투리.

*백로(白鷺) ; 왜가릿과의 새 가운데 몸빛이 흰색인 새를 통틀어 이르는 말.
*속도일구래(速道一句來) ; ‘속히 일러 보시오’
*녀러(-녀러) ; ‘~놈의’를 뜻하는 단어.
*어름하다 ; 어떤 상황을 대강 짐작으로 헤아리는 데가 있다.
*초부(樵夫 나무할 초/지아비·사내 부) ; 나무꾼(땔나무를 하는 사내).

*외산(外山) ; 바깥쪽에 멀리 있는 산.
*안산(安山) ; 주산(主山 : 도읍, 집터, 무덤 따위의 뒤쪽에 있는 산).
*도담(道談) ; 도(道)에 관한 이야기.
*도(道) ; ①깨달음. 산스크리트어 bodhi의 한역. 각(覺). 보리(菩提)라고 음사(音寫). ②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그 방법. ③무상(無上)의 불도(佛道). 궁극적인 진리. ④이치. 천지만물의 근원. 바른 규범.
*탈속(脫俗 벗을·벗어날·나올 탈/풍속·관습 속) ; ①부나 명예와 같은 세속적(世俗的)인 관심사로부터 벗어남. ②스님이나 수도자가 되어 속세(俗世, 일반 사회)를 떠남.
*석장(錫杖) ; 스님이 짚고 다니는 지팡이. 비구스님이 거처를 떠나서 돌아다닐 때 휴대하는 도구(道具)이다. 성장(聲杖), 지장(智杖), 덕장(德杖), 금석(金錫) 등이라고도 한역한다.
석장 윗부분에 큰 고리가 있고, 그 고리에 작은 고리를 여러 개 달아 움직이면 서로 부딪쳐 소리가 나게 하여, 원래는 독사나 해충을 쫓아내거나 걸식할 때 석장을 울려서 멀리서도 들리게 하려는 실용적인 목적으로 지니고 다녔지만, 후세에 법기(法器, 수도修道를 돕는 기구) 중 하나로 바뀌었다.
*전계(傳戒) ; 보살계(菩薩戒 : 대승계大乘戒)를 전수(傳授 전하여 줌), 또는 전해 받는 것.
*율사(律師) ; 계(戒)와 율(律)에 능통한 스님. 일반적으로 계행이 청정한 수행자를 가리키는 말로 쓰이기도 한다.
*제방(諸方) ; ①모든 지방 ②모든 종파의 스님.
*구애(拘礙 잡다·거리끼다 구/거리끼다·장애가 되다 애) ; 거리끼거나 얽매임.
*소꼴 ; 소에게 먹이는 풀.
*학자(學者) ; 학인(學人). ① 아직 번뇌가 남아 있어, 아라한(阿羅漢)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더 수행해야 하는 견도(見道)·수도(修道)의 성자. ② 수행승. 선(禪)을 닦는 수행승. ③ 배우고 익히는 과정에 있는 스님.
*평전(平田 평평할 평/ 밭 전) ; ①높은 곳에 있는 평평한 땅. ②평야에 있는 좋은 밭.
*오죽하다 ; 정도가 매우 심하거나 대단하다.
*영아행(嬰兒行) ; 젖을 먹을 나이의 어린아이의 행동.
*조태 ; 자태(姿態). ①어떤 모습이나 모양. ②몸가짐과 맵시(아름답고 보기 좋은 모양새).
*영아(嬰兒 어린아이·갓난아이 영/아이·아기·젖먹이·나이가 어린 사람 아) ; 젖먹이. 젖을 먹을 나이의 어린아이.
*타기다 ; ‘닮다’의 사투리.
*대찬(大讚 큰 대/기릴·찬양할 찬) ; 크게 칭찬함. 또는 큰 칭찬.
*공포(公布 공개·공적인 것·널리 공/펼·드러낼 포) ; 일반 대중에게 공개적(公開的)으로 널리 알림[布].
*국내(局內 판·마을·방·구획 국/안 내) ; ①묘지나 절의 구역 안. ②관청이나 회사에서 부서(部署)의 하나인 국(局)의 안.
*일구(一句) ; 진리를 표시하는 한 구절. 상대적 언어를 넘어선 한마디의 말이나 글. 이것을 깨달은 사람이 견성오도(見性悟道)한다. 일구도득(一句道得), 말후일구(末後一句), 투관일구(透關一句) 등을 말함.
*불일증휘(佛日增輝) 법륜상전(法輪常轉) ; ‘부처님의 지혜 광명이 더욱 빛나고, 법의 수레바퀴가 항상 구르다(불법의 교화가 끊임없이 이루어진다)’
*불일(佛日) ; 모든 중생을 구제하는 부처님의 지혜[佛]를 태양[日]에 비유한 말. 부처님의 지혜로 중생의 허망한 집착을 부수는 것을 태양의 광명으로 어둠을 없애는 것에 비유한 것.
*원청간 ; ‘워낙(두드러지게 몹시)’의 사투리.
*다잽이 ; 다잡이. 늦추었던 것을 바싹 잡아 죔.
*선불장(選佛場) ; 부처[佛]를 뽑는[選] 장소[場]라는 뜻. 부처님을 만들어 내는 장소라는 뜻. 선원에 있어서 수행자가 좌선하는 곳. 승당(僧堂). 선방(禪房).
[참고] 중국 고봉 스님의 《선요禪要》의 ‘개당보설(開堂普說)’에 방거사(龐居士)의 게송이 다음과 같이 있다. ‘十方同聚會 箇箇學無爲 此是選佛場 心空及第歸’
‘시방세계 대중들이 한 자리에 모여, 저마다 함이 없는 법(無爲)을 배우나니, 이것이 부처를 선발하는 도량(選佛場)이라. 마음이 공(空)해 급제하여 돌아가네.’ [고봉화상선요•어록] (통광 스님 역주) p37, 46에서.
*역전(驛前 역·역참·정거장 역/앞 전) ; 역의 앞쪽. ‘역 앞’. 정거장 앞.

 

 

 

 

 

---------------------(3/3)

*선객(禪客 참선 선/손님·사람 객) ; 참선 수행을 하는 사람.
*계(契) ; 주로 경제적인 도움을 주고받거나 친목을 도모하기 위하여 만든 옛날부터 전해 오는 상부상조의 민간 협동 조직.
*계금(契金) ; 곗돈(契-). ①계에 들어서 내는 돈. ②계를 부어 찾는 목돈. ③계에서 가지고 있는 돈.
*집어쓰다 ; 돈 따위를 닥치는 대로 쓰다.
*단지불회 시즉견성(但知不會 是卽見性) ; [참고] 『수심결(修心訣)』 (보조지눌 스님)
問 作何方便 一念廻機 便悟自性
答 只汝自心 更作什麼方便 若作方便 更求解會 比如有人 不見自眼 以謂無眼 更欲求見 旣是自眼 如何更見 若知不失 卽爲見眼 更無求見之心 豈有不見之想 自己靈知 亦復如是 旣是自心 何更求會 若欲求會 便會不得 但知不會 是卽見性


(문) 어떤 방편을 지어야 한 생각 기틀을 돌이켜서 곧 자성을 깨달을 수 있습니까?
(답) 다만 너의 스스로의 마음인데 다시 무슨 방편을 지으려 하는고. 만일 방편을 지어서 다시 알기를 구한다면, 비유컨대 어떤 사람이 자기 눈을 보지 못하고서는 ‘눈이 없다’고 하여 다시 보려고 하는 것과 같다. 이미 자기의 눈인데 무엇을 다시 보리오. 만일 잃지 않은 줄 알면 곧 눈을 본 것이다. 다시 보려는 마음도 없거니 어찌 보지 못한다는 생각이 있으리오.
자기의 영지(靈知)도 또한 이와 같아서, 이미 자기의 마음인데 어찌 다시 알려고 하는가. 만일 알려고 한다면 곧 알지 못할 것이니, 다만 알지 못할 줄 알면 곧 성품을 본[見性] 것이니라.
*여하약하(如何若何) ; 이러쿵저러쿵. 이러하다는 둥 저러하다는 둥 자꾸 말을 늘어놓는 모양.
*등등상속(燈燈相續) ; 등(燈)은 중생의 무명(無明)을 밝히는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진리를 등(燈)에 비유한 말, 이 진리의 등(燈)을 스승이 그 제자로 해서 계속 면면히 이어짐을 일컬음.
*무애(無礙, 無碍) ; 산스크리트어 apratihata 의 한역어(漢譯語). 무애(無閡), 무장애(無障礙), 무가애(無罣礙)라고도 한다.
①물질적으로 공간의 일부를 차지하지 않는 것. 다른 것을 거부하지 않는 것. 장애를 주지 않는 것.
②막힘이나 걸림이 없음. 거침없음. 거리낌없음. 신체적, 정신적 능력이 매우 뛰어나 어떤 것에도 장애를 받지 않고 자유 자재함.
*법체(法體) ; ①법의 본체. 법 그 자체. 법의 본질. 유위와 무위의 모든 법의 체성(體性). ②일체 만유의 본체. 실체 ③사물. 존재. ④정토종에서는 아미타불의 명호나 염불을 말한다.
*잡행(雜行 섞이다·천하다 잡/다닐·행할 행) ; ①잡스러운(순수하지 아니하고 천하고 교양이 없는) 행실. ②스님이 계율을 범하는 행위.
*음주식육(飮酒食肉) 무방반야(無防般若) ; ‘술 마시고 고기 먹는 일이 반야에 방해되지 않는다’라는 삿된 소견.
*계행(戒行) ; ①계(戒)를 지켜 수행하는 것. 계율에 정해진 규칙을 성실하게 실천수행하는 것. ②계율과 도덕.
*도통(道通) ; ①사물의 이치를 깨달아 훤히 통함. ②깨달음.
*사마외도(邪魔外道) ; 불법(佛法)에 어긋나는 가르침을 주장하는 외도. ‘사마’란 삿된 마구니라는 뜻으로 불도(佛道)를 성취하기 위한 수행을 장애하는 모든 것을 통틀어서 일컫는 말인데, 외도 중 삿된 견해로써 불도 수행자를 어지럽히는 자를 사마외도라 한다.
*외도(外道 바깥 외/길 도) ; ①불교 이외의(外) 다른 종교(道)의 가르침. 또는 그 신봉자. ②그릇된 가르침, 그릇된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
*국문(國文 나라 국/글월 문) ; 나라 고유의 글자. 또는 그 글자로 쓴 글.
*삼다 ; 짚신이나 미투리 따위를 결어서(겯다 : 대, 갈대, 싸리 따위로 씨와 날이 서로 어긋매끼게 엮어 짜다) 만들다.
*짚신 ; 볏짚으로 삼아 만든 신.
*미투리 ; 삼[麻]이나 노(실, 삼, 종이 따위를 가늘게 비비거나 꼬아 만든 줄) 따위로 짚신처럼 삼은 신.
*보림(保任) ; 오후보림(悟後保任). 선종(禪宗)에서 깨달은 뒤에 선지식을 찾아 인가를 받고, 다시 숲속이나 토굴에 들어가 다생(多生)의 습기(習氣)를 제하고 도(道)의 역량을 키우는 보임(保任) 공부.
'보임'은 보호임지(保護任持)의 준말로서 ‘찾은 본성을 잘 보호하여 지킨다’는 뜻이다. 또는 ‘保其天眞 任其自在, 그 천진함을 보전하고 그 자재함을 따른다’는 뜻이다. 한자 독음상 ‘보임’이지만 관습적으로 ‘보림’이라고 읽는다.
*골 치다 ; 골로 물건의 모양을 바로잡다. * : 만들고자 하는 물건의 일정한 모양을 잡거나, 잘못된 물건의 모양을 바로잡는 데 쓰는 틀.
*커리 ; ‘켤레(신발, 버선, 방망이 따위의 두 짝을 한 벌로 하여 세는 단위를 나타내는 말)’의 사투리.
*다섯 커리썩 ; ‘다섯 켤레씩’ *-썩 : ‘-씩’의 사투리.
*쌀팔다 ; 쌀을 돈주고 사다.
*위법망구(爲法忘軀) ; 법(法, 진리)를 구하기 위해[爲] 몸[軀] 돌보는 것을 잊는다[忘].
*넨장칠 ; 네 난장(亂杖)을 칠 만하다는 뜻으로, 못마땅할 때 욕으로 하는 말.
*난장(亂杖) ; ①고려 · 조선 시대에, 신체의 부위를 가리지 아니하고 마구 매로 치던 고문. ②몰매(여러 사람이 한꺼번에 덤비어 때리는 매).
*선사(先師) ; 돌아가신 스승.
*부중선사도덕(不重先師道德) 불위아설파(不爲我說破) ; ‘부중선사도덕(不重先師道德) 지중선사불위아설파(只重先師不爲我說破) 스님의 도덕을 중하게 여기는 것이 아니고, 다만 스님이 나에게 설파하여 주지 않은 것을 중하게 생각한다’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용화선원刊) p171.
本分宗師의  全提此句는  如木人唱拍하며  紅爐點雪이요  亦如石火電光이니 學者實不可擬議也니라  故로  古人이  知師恩曰,  不重先師道德이요 只重先師不爲我說破라 하시니라

본분 종사가 이 구를 온전히 들어 보이심이 마치 장승이 노래하고 불 붙는 화로에 눈 떨어지듯 하며, 또한 번갯불이 번쩍이듯 하니 배우는 자가 참으로 어떻다고 헤아리거나 더듬을 수가 전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옛 어른이 그 스승의 은혜를 알고 말씀하기를 「스님의 도덕을 중하게 여기는 것이 아니고, 다만 스님이 나에게 설파하여 주지 않은 것을 중하게 생각한다」고 하시니라.
*법량(法量) ; ①법의 분량. 법의 크기. ②불상(佛像)을 조성할 때 불상의 크기를 정하는 것.

 

 

Posted by 닥공닥정
전강선사 일대기2017. 11. 2. 08:14

 

 

•§• 전강선사 일대기(田岡禪師 一代記) (제2호) 곡성 동리산 대오, 혜봉스님과 법거량.

**전강선사(No.005)—전강선사 일대기 제2호(경술1970년 11월 21일.음)

(1/4) 약 20분.

 

(2/4) 약 17분.

 

(3/4) 약 16분.

 

(4/4) 약 14분.


(1/4)----------------

나를 좀 모두 쳐다 봐.

왜 우리 부처님께서 정각(正覺)을 이루서, 시성정각(始成正覺) 허셔 가지고는 영산회상(靈山會上)에 오셔서 설법하실 적에 왜 이랬어? 첫번이야. 처음, 왜 이래.

이게 삼세제불(三世諸佛)의 면목(面目)이고,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의 본 생명이고, 역대조사(歷代祖師)의 명근(命根)이고, 금일 대중의 생명, 전 생명, 근본 몸뚱이, 본래 몸뚱아리여.

그러기에 이놈이, 이 주장자(拄杖子)가 뭐 주장자만 되나?
천하에 다 붙여봐. 천하에 명상(名相) 있는 대로 다 붙여봐. 그대로요. 다 붙지.

허공도 여가(여기에) 붙고, 대지도 여가 붙고, 삼라만상도 붙고, 제불열반처(諸佛涅槃處)도 붙고, 제불출신처(諸佛出身處)도 붙고, 최초구(最初句)도 붙고, 말후구(末後句)도 붙고.
뭣이 제일구(第一句)도, 제이구(第二句)도, 제삼구(第三句)도 여가 갖춰져 있고. 그렇지 않아?

그런데, 여의고 보라 그말이여. 여의여 봐.
주장자도 이놈 한번 여의여 보고, 다 붙어 있는 허공대지도 여의여 보고, 일체 삼세제불 역대조사도 여의여 보고, 다 한번 여의여 봐라. 거가 뭣이 붙어 있나?

그러면 한번 그놈 여의고 일러 보라 그말이여. 일러 볼 수가 있지.
못 일러? 언하(言下)에 이를지언, 언하에 이를지언정 못 일러?

불 좀 꺼, 인자. 열이 딱 찼으니까.

기본축말(棄本逐末)을 말고 한번 일러 봐. 이렇게 해도 못 일러?


고와한단침(高臥邯鄲枕)이요  주류만년성(周流萬年城)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고와한단침(高臥邯鄲枕)하고 주류만년성(周流萬年城)이로구나. 무슨 말인고 허니.
고와한단침(高臥邯鄲枕)이다. 높이 누워서, 높이 누웠다. ‘높이 누웠다’는 것은 한량없이 고귀헌 지위, 높고 저 높은 부귀영화. 거, 임금님이던지 호걸 부귀 모도 그 고와(高臥), 높이 누워서 잠자는 것이 오직 좋은가. 편안허니 잠잔다. 한단침(邯鄲枕) 베고, 좋은 단침을 베고 잠을 자고 있다.

아주 한량없이 즐거운 낙 받고 부부지간의 좋은 단침, 한단침을 베고 푸근허니 잠자고 좋은 아들 낳고, 그 옥식금의(玉食錦衣) 속에서 이렇게 산다.

한번 그렇게 산다마는 주류만년성(周流萬年城)이니라. 사방 성(城)은 한량도 없이 높이 싸여 있는 그런 놈의 철위산(鐵圍山) 속에, 악도 지옥 속에 나올래야 나올 수 없는 성 속으로 들어가서 만년 죄고(罪苦)를 받니라.
그 한단침 베고 그 속에서 좀 잠깐 좀 살다 보니 맨 시은(施恩)과 악업(惡業)만 짓고 죄업만 지었느니라.

가는 곳이 어디냐? 그놈의 만년 성 속에 떨어져 들어가서—그 만년이지, 이름이 만년(萬年)이지, 만년인가?
만년 지내면 또 만년이 오고, 또 만년 지내면 또 뒷 만년이 있는데. 만년만 지내고 나오면사 좋게.

잠깐 한평생, 이놈의 평생, 인생 평생이라는 게 거그서 잠깐 동안 한단침 베고 내외, 그 자식 낳고 고것이 악연이여, 숭악한 악연(惡緣)이여.

그 진로(塵勞) 속에서 그 형탈(逈脫)치 못한 이 숭악한 사대색신(四大色身) 사대가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인디. 사대 몸뚱이 고놈이 사사(四蛇)여. 독사 네 마리여.
눈으로 보고 모두 색별(色別)을 내서 욕심 · 탐심을 눈으로 보고 턱 모도 거두어들이고 죄업 짓고, 그놈의 뱀이 독사란 놈이 보면 잡아, 팔딱만 뛰어도 잡아먹을라는 마음뿐이다.

이 몸뚱이도 역시 그러허다. 눈으로는 봐서 도둑해 오고, 이놈 몸뚱이로는 가서 몸뚱이로 집어 오고, 욕심 내고 아! 이거, 이뿐이야.

이렇게 잠깐 나와서 악업 속에서 죄업만 지어서 저 만년 성 속에 들어가서 이런 죄고 받는 것만 중생이란 것은 있느니라. 생각해 보아라.


체연개일몽(遞然開一夢)허라  잔월반루명(殘月半樓明)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체연개일몽(遞然開一夢)하라. 참으로 출가한 학자들이여. 향당(鄕黨)도 여의고, 어머니 아버지도 여의고, 장가들지 않고 척! 한번 끊어 버리고 과연 단신으로 이렇게 척 나와서 부처님의 제자가 되어 가지고 도를 닦는 학자들이여.
학자들아, 한번 꼭 이 꿈을 깨라. 이 인생몽(人生夢)을 한번 깨라. 왜 이렇게 깨지 못하느냐?

한번 깨버리면은 본각명(本覺明)이리라. 네 본래면목 해탈광(解脫光)이 그대로 밝아 버리리라.
거가서 뭣이 있겠나. 무슨 생사가 있으며 무슨 만년성이 왜 네 몸뚱이를 얽어 집어넣겠느냐. 왜 염라대왕이 너를 처박어 넣겠느냐. 무슨 죄업이 너한테 있느냐.

깨달라라.
이만큼 홀몸이 되고, 단신(單身) 몸이 되고 그렇게 깨끗한 몸이 되아 가지고 도를 닦으러 들어와서 한바탕 못 닦는다는 말이냐?


금강산에 계시는 추천원 스님이, 추천원 스님이 곡성 동리산(桐裏山)에서 여름 산림을 허고는 해제 후에 곡성 그 태안사(泰安寺) 뒷산을 넘어오는데 산말랭이를 척 넘어오니까, 그 산말랭이가 별로 높지도 않거든. 넘어오니깐 큰 대호(大虎)란 놈이—비린내가 산에 올라오니 왈칵 난다 그말이여.

또 오늘 아침 법문도 또 그저 이렇게 상하(上下)도 없고 아무때나 또 나온 대로 헌다 그말이여.
뭣을 생각해 놨자 법문이 생각헌 대로 안 나와. 늙은 연고인지 웬 연고인지 이렇게 잘 나오들 않으니깐 나온 대로 허는 거여.

재를 넘어오니깐 비린내가 왈칵 나.
아이고, 웬 냄새가 이렇게 나는고 싶어서 아! 이래 사방을 살펴보니까 호랭이란 놈이 큰 황소만헌 놈이 누워서 자빠져 자.
아, 저런 큰 놈이 어째 저렇게 누워 자빠져 자는고 싶어서 그 옆에를 가만히 보니까 사람을 하나 잡아 다가서 다 먹어 버리고 머리빡하고, 손허고 다리허고 사족(四足)만 남겨 놓고는, 머리허고 그것만 냉겨 놓고는 다 먹어 버리고는 똥창사 냉겨 놓고는 그 잔다 그말이여.

그래 가만히 그걸 보니 참 무서운 것도 없고—추천원 스님이라고 도를 여간 닦은 이고 몸이 그렇게 큰 어른이고, 대단히 보통 담대허도 않고.
설사 도를 닦아서 어떠헌 무외(無畏), 무포외(無怖畏) 지경에 갔닥 하드래도, 포외(怖畏) 없는 지경에 갔닥 하드래도 그런 걸 보면은 포외심이 나고 안되는 것이제.

허지마는 그 어른은 무슨 뭐 대오 확철대오 해서 무외를 증하도 못한 이지마는 그만큼 담대하고, 그까짓 그런 것을 보기를 뭐 그저 보통으로 보고 이런 인데.

아! 가서 그걸 보니 그 시체가 처녀여. 하도 얼굴은 깨끗하게 예쁜 처녀인디 머리채를 가조런히 딴 머리채 그대로 있고, 손도 깨끗허니 해가지고 발도 깨끗허니 딱 두고는 이놈이 먹었다 그말이여.
아, 그것을 보니 어떻게 그만 괘씸허고, 그놈을 그냥 그 당장에서 뭣이라도 있으면 때려 모가지를 찔러 패서 죽여 버리고 싶다 그말이여. 저런 악한 놈이 저런 짓을 했으니.

그러지마는 뭐 손에 쥔 것도 없지마는, 그런 큰 대호 무지한 놈을 함부로 건드렸다가 그놈한테 상헐 것이고.
멀찌맥이 나와서 서서, 높은 데 서서—호랭이는 저 높은 디를 무서워 혀. 저보다 높은 걸 무서워 하기 따문에 의심이 많은 놈이기 따문에 골짜구로 안 댕기고, 언제든지 봉대기로 이렇게 산봉대기로 댕기는 것인디.

역부러 그놈 벌써 호랭이 그 심리를 미리 아신 어른이고, 높은 바위 위에 올라서서 작대기 이런 놈을 하나 짚고는 서서 “너 이놈! 고약한 놈 같은 이놈! 요놈 저런 놈을 산신님이 그냥 둔단 말이냐고 저놈을 당장 죽여 달라”고 아, 고함을 냅다 친게.
아, 이놈이 대가리를 툭 털고 들고 보더니, 쳐다보더니 벌떡 일어나더니 착 보고 가더니 쳐다보고는 ‘아함!’ 그러고 입을 딱 벌림서 고함을 지름서 ‘아함!’ 그러거든.

“저놈이 어디서 저런 놈을 저놈을 당장” 고함을 지른게, 눈을 이리 슬므시 감더니 그냥 고개는 들고는 산으로 올라간단 말이여. 이래 돌아보면서 눈을 조끔도 다른 데 팔지 않고 이리 돌아보며 쓱 올라가거든.
아, 그만 기를 안 애끼고 서서 “저놈이 어디로 갈까보냐”고 호령을 헌게 아, 그놈이 산으로 올라 얼마 올라가더니 산봉대기에서 휘딱 자취를 감춰. 간데없어.

그래 거그서 얼마 내려와서 마을집에 가서—응, 거그서 그 당신의 속옷을 이리저리 모두 벗어서 웃옷을 벗어서 그 머리를 두골을 싸고, 수족을 이래 다 손은 손대로 인자 위에다 가운데 놓고, 발은 제일 밑에다 놓고. 그리고 창자는 그만 그 자리에 다 어떻게 해서 끌어 묻고는.

거두어 가지고는, 잘 싸가지고 흔적없이 싸가지고는 한참 그 재를 내려와서 재 밑에 와서 그 조그만한 토굴에, 저 촌사람 그 집, 산촌 산가(山家)에 들어가서 “내가 잠깐 쓸 일이 있으니 그 괭이 좀 빌려 주시겄오” 그런게,
“뭣 하실라고 그리 가시다가 노장님이 그걸 괭이를 달락 하느냐”
“예 나 잠깐 쓸 일이 있으니 좀 빌려 주십시오. 내가 몰리 가져 가지 않을 것이고, 내 보퉁이 여기 좀 두고 좀 봐 주십시오. 내가 산에 뭣 좀 캘 일이 있어서 약(藥) 하나 캘라고 그럽니다”

“그렇게 하시라”고 빌려 주어서 한참 올라가서 파기 좋은 데를 파서, 한 자쯤 두어 자쯤 파고는 그대로 잘 묻어서 꽉꽉 밟아서 그래 묻어 주고는 혼백을 청혼(請魂)을 불러서, “아무쪼록 그저 이고득락(離苦得樂)하라”고 “그 못된 놈한테 과보 당한 줄 알라”고 그러고서는 내려왔다고,
금강산 지장암서 우리가 여름에 지내는디 거기 와서 같이 지낼 때 그런 얘기를 해서 들었습니다.

그 천원 스님이라고 허는 분은 거짓말도 헐 줄 모르고 뭐 그대로...
그 거짓말이나 잘헌 사람 같으면은 그 말을 누가 곧이 듣겄오마는 그대로 참된 이이기 따문에 대중이 다 옳게 들었제.(처음~19분55초)

 

 




(2/4)----------------

내가 그 재를 넘어가는 산밑에서, 고 재를 지금 넘어가는 산 밑에 노지(징검다리)가 이렇게 있어. 그 다리를 이렇게 건네. 내가 여까장 했제, 엊저녁에.

내가 두 철을 그렇게 공부를 허고.
두 철 공부라는 거, 세상에 제 공부 잘했다고 자랑하는 것을 그거 누가 인격적으로 들을 것인가. 발써 그 인격부텀 박멸헐 터이지마는 허거나 말거나 나는 그대로 말한다 그말이여. 틀림없어.

옳게 들으면 옳게 듣고, 자기 자랑헌다고 안 들으면 안 들을 터이제. 내가 거기에 무서워서 무슨 뭐 못혀.
내가 어제 아침 법문할 때 뭐라고 했냐 그말이여. 내 어릴 때부텀 벌써 서모 밑에서 배운 기술이 도둑질이라고 안 했어. 도둑질을 잘했으니 ‘했다’ 하제, 어떡헐 거냐 이말이여.

일곱 살 먹어서 서모 밑에 있어서 그 도둑질, 는 것이 도둑질.
그 도둑질이 무슨 내가 그렇게 넘의 쌀궤 가서 내오고 돈 내온 거 아니라, 서모 밑에서 아! 어찌 살다가 보니 그대로 그 주는 음식만 먹어도 될 턴디 어짠지 그 음식같은 것을 어따 두면은 그만 기어이 돌라먹어, 요런 거.
쌀같은 것도 다 내먹어, 요런 짓. 콩같은 것도 내가 다 구워 먹어, 요런 짓. 그래 놓고는 뒤지게 뚜드려 맞아. 안 먹을락 해도 버릇이 그리 된다 그말이여, 그 이상해야. 그런 짓 했다 그말이제.

아, 뭐 그렇게 천하게 커 나왔다는 거, 그것 무슨 뭐 그 무슨 감출 것이 또 뭐 있나?
그러헌 것도 내가 다 그대로 말을 했는데, 내 잘난 것을 말 안 해? 잘난 것은 더 말하고, 잘한 것은 내가 더 말하지. 안 할 게 뭐 있냐.

척 나와서 첫 철 공부를 그렇게... 내가 말했지.
그 다음에, 첫 철 공부에 그렇게 했는데 왜 그러헌 못된 병, 뱃속에서 막 그러헌 뭐 있는 대로 피가 다 넘어오게 공부를 했냐 그말이여.

왜 내가 그때에 좀 지혜가 있었으면 그러리요마는 대번 처음 나와서 그저 그만 화두(話頭)를 허되 힘써서 허면 된 줄만 알았거든.
그만 억지로 그만 창자가 기어오르게 막 ‘어째서 무(無)‘라고 들입대 해놓으니 육단심(肉團心)이 안 동(動)할 수가 있어야지, 생전 안 허든 놈의 공부를 갖다가 그렇게 해 놓으니까.

하나도 힘 안 들고 요만큼도 육단이 동치 않게, 피같은 것 뭐 이런 것 넘어오지 않게 그 참 잘헐 수 있는 그러헌 도 닦는 데 그러헌 묘방(妙方)이 있고, 그것을 몰랐드라 그말이여.

아, 그 큰스님을 그때 믿고, 그 큰스님 시킨 대로만 했으면은 다시 일이 없을 터인디, 그 큰스님 제산 큰스님이 그 시킨 대로 내가 안 했다 그말이여. 왜 그때 그 20살, 한 20살 먹은 것이 나와서 왜 그 조실 스님을 안 믿었든고.

믿을 수가 없어. 왜 믿을 수가 없나?
들어보면 알아. 암만 처음 나온 사람이라도 가르킨 것 들어보면 안다 그말이여. 그것을 몰라?
발써 그 경중(經中) 가운데, 그 모두 그 몽산 스님의 가르키는 화두법 가운데, 간화결의(看話決疑) 같은 것 가운데, 그런 것 내 그때 다 보지 않았지마는 다 듣고도 알 수 있었는디.

그러면 대의지하(大疑之下)에 필유대오(必有大悟)니라. 크게 의심(疑心)헌 데서 깨달으니라. 불의언구(不疑言句)가 시위대병(是爲大病)이니라. 언구 의심 않는 것이 큰 병이니라.
그저 참선은 큰 대의지하에 큰 대오가 있다. 의심을 허라고 했지. 의심밖에는 다 못 쓰느니라.

의심 밖에 거 무슨 무중무(無中無)를 본다든지, 비유비무(非有非無)를 본다든지, 허무유견(虛無有見)을 본다든지, 그건 다 아무리 광명장(光明藏)을 들여다 보고 아무리 천지미분전(天地未分前)을 들여다 봐도 그것은 다 묵조사선(默照邪禪)이니라. 죽은 참선이니라. 묵조(默照), 묵묵히 비추는 죽은 참선이니라. 다 모도 말 안 해 놨어?

그런디 큰스님께서 화두를 가르키시되 “천지미분전을 보아라” 벌써 틀렸거든. 그 화두를 믿을 수가 있나.
허니, ‘대의지하(大疑之下)에 필유대오(必有大悟)다. 큰 의심 아래 깨달느니라’했으니 ‘어째서 무라고 했는고?’ 알 수 없는 의심을 일으키다 보니, 척 이놈 일으키기만 일으키제,
거기에 참, 묘법(妙法)이 있는 줄을 화두에 묘관(妙觀)이 있는 줄을 몰랐다 그말이여. 첫 철에 나와서.

그러면 그 스님 말씀은 믿지 않고 들입대 ‘어째 무라고 했노’ 이놈만 어떻게 힘을 써 했든지 그냥 기운이 막 드리 올라와 가지고는 그 코로 입으로 피를 그리 쏟았던 것이여.
그래도 그 철에 그렇게 애를 쓰되 뭐 보통 내가 다 어제 아침 말을 다 했으니 더헐 것 없지.

새로 오신 법안성 보살님이 계시니 어제 아침에 했던 것을 다시 했으면 허련만 여기 다 갖춰져 있고, 본래 또 내가 말을 다 들어 알 수 없고.
법안성 어저께 말씀이 “내가 여러 간디 그 교(敎)에도 모도 들어가 봤고, 또 중간에 내가 그 어느 또 불교라도 들어가 봤고, 그런 데가 다 가르킨 디 가서 내가 들어서 다 알았습니다. 대번에 보니 모도 가르키는디 벌써 말 한마디 한마디 들어보면은 어떤 것이 사(邪)다 정(正)이다 하는 것이 분간이 나드라”고.
그러기 따문에 그렇게 분간헐 줄 알기 따문에 정법문중(正法門中)으로 바로 들어온 것이란 말씀이 틀림없거든.

내가 그 말을 들었어. 용하다 그 말씀이여. 그것이 아니면 들어온 법 없제. 그게 참말로 정견(正見) 학자거든.

그 정견 학자가 이 다음에 그 참, 혹 또 세상에 입태(入胎)에 가서 매(昧)하지 않지마는, 주태(住胎)에 가 매해 가지고 또 출태(出胎)에 가서 매하는 수가 있어. 매(昧)해, 출태에 정법학자가.
출태에 가 매하드래도 더 후래(後來)에 몸을 받아 척 나와서 대번에 벌써 아무리 제견 외도(外道)에, 사견(邪見) 외도에 가서 외도법을 가서 어떻게 배워 보고 다 알고 다시 정견으로 확 들어오는 것이여.

우리 부처님 역시 사바세계 시현(示現)으로 나오셨지마는 설산(雪山)에 들어가서 그 외도를 만나 가지고 벌써 들어보니 알았거든. 틀림없지. 그걸 정견 학자라고 해.

아! 또 다시 말이여. 또 다시 왜 이런 말을 안 해. 왜 이런 말을 안 헐까 보냔 말이여. 왜 감출 것이냔 말이여.

부처님 그 경전 가운데 들어와 ‘어떤 그렇게 상(相)을 내지 말어라. 보시상을 내지 말어라. 네가 보시를 했닥 하드래도 보시상이 있으면은 보시가 아니니라’ 왼갖 말씀 금강경에 다 해 놨지마는 또 보시상을 나툰 디는 또 굉장하네.

‘유기철물(鍮器鐵物)은 신견고(身堅固)요’ 왜 그런 소리를 혀.
‘불양헌답(佛糧獻畓)은 복무변(福無邊)이요. 논을 드리고 밭을 드린 건 복이 한량이 없느니라’ 얼마나 말씀을 했어.
‘창호도배(窓戶塗褙)는 면팔난(免八難)이니라’ 왼통 이렇게 다 나투어 놓고 또 그런 말씀을 했지.

보살님이 이번에 참—이것 뭐 당최, 나 일절 내가 무슨 뭐 ‘얼마 했느니 말았느니 뭘 했느니’ 내 안 했어. 헌 법 없었어, 내 입으로. 허다가 어쩌다가 은근히 그저 알았지만.

이 참 이 처음 시작할 때, 이 집이 이거 시작헐 때 기가 맥힌 집입니다.
내가 여기에 평생에 이렇게 자무반전푼(自無半錢分)으로, 내 돈 한푼 없이 입을 달고 돌아댕기는 나로써서 아, 여기에 와서 어떻게 어떻게 허다가서 아, 여기 무슨 잠깐 잠연이 있어서 있다가 어쩌다가 이 법당 하나를 지을라고 할 때. 아! 이 어떻게 짓냔 말여.

보살님한테 말을 했더니 대번에 그 어떻게 해 주어서 그만 그놈을 가지고 시작해 가지고 이 집을 지었는데, 지어 놓고 나니 이 산꼭대기에 물이 있나. 또 물을 말했드니 모두 수도를 이렇게 어떻게 척 나오게 해 주셨어. 그 인연이 적지 않지.
그 다음에는 이놈 땅이 남의 땅이니 이걸 어찌해야 할까 보냐고 떡 했드니 또 그 땅 사게 되았제. 이런 시은(施恩)이 깊다.

그 다음에는, 이번에는 이거 이래 놨겄당 어떻게 어떻게 허든지 이것을 재단법인(財團法人)을 좀 만들었으면 쓰겄는디, 원 재원(財源)이 그 모지라서 이걸 가지고 이사(理事)를 꾸밀 수가 없어.

어쩌고 어쩌고 했더니 아, 그 보살님께서 그 뭣이 있나? 아무것도 별 것 없지마는 아, 그 무슨 토지를 좀 근근히 좀 장만해 놓은 것을 여가 작고 많은 건 불고허고 그 재단법인에다 붙여서 재단이 되도록 해 가지고,
“적어도 이 말세일수록에 우리 부처님의 정법이 유통되어야 할 터이니 내의 이 몸뚱이는 잠깐 그저 머물다 갈 몸뚱이뿐이여. 어쩠튼지 그런 한 몸뚱이 재원이라도 뭘 재단을 만들어서 정법을 유통허도록 허는 것이 참 좋겠습니다’고,
아, 이렇게 저렇게 원력(願力)을 발해 가지고서는 아! 그 인자 뭐 재단법인이 되도록 이렇게 떡 해놨겄다.

그런디 허나 못 허나 여기 댕김서 불명(佛名)도 받고, 불명도 지었다는 신도가 말허기를 “왜 그런 허망한 짓을 헐까 보냐”고. “왜 그렇게 애써 헌 그런 토지를 부자도 아니고 왜 거그다가 그리 다 드릴까 보냐”고. 아, 내가 그랬다는 말을 듣고 가만히 생각을 해 보았어.

그러헌 디 속지 않고, 그러헌 말에 넘어가시지 않고 더욱 더 “아직 그 불법을 모르는구나. 정법을 못 믿는구나” 오히려 개탄(慨歎)을 했다고, 그런 사람의 그 정신을 개탄을 했다고.
아, 내가 이 말씀을 듣고 참 느꼈소. 그래서 여까장 말허는 거요.

그 얼마나 호사(好事)에 다마(多魔)요. 내 할 일을 내가 했느냔 말이다. 그 내 할 일이 어떠헌 일이여?

죽백천추(竹帛千秋)에, 그래도 자 이만큼 그래도 시작해 주셨는디 여가 똑 선방이 되아서 다맛 그 열 명이고 스무 명이고 20명이고 30명이고—대본산, 큰 재원이 뭉텅 있는 데도 학자 몇 데리고 지내도 못하고 빚이 있느니 뭣 허니 야단치지마는,
자 여기에 그저 몇십 명씩 와서 턱 이래 공부를 허고 계시고, 또 보살님도 이렇게 와서 떡 와서 이래 다 공부허시고, 보살님네 당신네 양식 잡순다 하지마는 아, 그 당신네 양식을 잡수드래도 이런 처소가 없으면 되야?

이렇게 불학(佛學)을 배우는, 생사해탈법을 배우는 이 정법 이 법보선원 그 어떻게 죽백천추에 이러헌 선원을 참 창건허리요. 창건해서 유통허겠느냐 그말이여. 그것을 가만히 한번 생각해 봐야 할 것 아닌가. 그런 생각이 그 보통 누가 날 것인가마는 말이제.

참으로 ‘호향차시(好向此時)하야 명자기(明自己)다. 좋다, 이때를 향해서 너를 깨달라라’ 이런 말씀도 있지마는.
‘호향차시(好向此時)하야 명작복(明作福)하라’ 이러헌 때를 당하지 아니할 것 같으면 그러헌 무루(無漏) 해탈복을 지을 수가 없다.

이거 그것 저것 조금이라도 어떻게 이렇게 안 해 준다면은 이걸 꾸며낼 수가 없고 이걸 전통 헐 수가 없고, 못하거든.

여까장 어쩌다 보니 말이 나오게 되았습니다. 왔다갔다 아무때나 한다니까. 내 법문이 그렇다 그 말씀이여. 시(始)도 없고 종(終)도 없고 무시무종(無始無終).

우리 부처님은 그렇게 안 설했나? 우리 부처님의 화엄경이 그렇게 설한 경이여.
그런데 그 경이, 화엄경이 우리 부처님 경은 그만 그대로여. 무시(無始)요, 무종(無終)이요 일사천하미진수품(一四天下微塵數品)이거든.
‘가는[微] 티끌[塵] 수(數) 품’ 그대로 한 품도 설하지 않고 품수(品數) 그대로 딱 되겄다.

화엄경에다가 내가 내 법문을 대해서, 또 좀, 그 좀, 대단히 좀, 그 미안하요. 인격상 좀 불안하요.
허지마는 그대로 내가 설헐 수 밖에 없제.(20분2초~36분38초)

 

 




(3/4)----------------

내가 첫 철을 그렇게 한바탕 공부를 하고, 그 다음 두 철에 와서 죽게 된 몸뚱이 불구허고 떡 공부를 허다가,
인자 거그 와서는 다시 인자 큰스님한테 의심난 고 화두허는 법, 의심을 다루어 나가는, 의심을 거각(擧却)해 나가는 화두를 잘 간택해 가지고 큰스님을 믿고 공부를 턱 해나가는데.

죽거나 살거나 불구허고 그렇게 해나가다가, 중간의 ‘견성했다’고 한번 들어가서 하! 해놓고는 그렇게 대방(大棒)을 맞고 해제를 마치고 떠나 가지고는. 산철이제, 인자 두 철 만에 산철.
죽게 되았거나 걸음도 못 걷고 그만 그 뭐 파리가 날라가도 자빠지게 됐지마는 원청 강한 신심이 백혀 있으니깐 그것 상관 없드구만.

호서를 내려가면서 어느 집에 들어가서 저녁밥 얻어먹고, 하룻밤 자고 아침 얻어먹고 그러고 척 불탄산고수활(不憚山高水濶) 허고 척 나가다가,
아까 그 곡성 동리, 곡성 태안사 너머로 호랭이 사람 잡아먹은 산밑에를, 그 재를 넘어갈라고 산밑에를 가는디 물 건너는 노지(징검다리)가 있다.

그 노지를 척 아! 건너 한 발 뛰고 두 번 건너뛸라고 허는데.

자지 마시오, 자지 말어, 응. 법문 들을 때 왜 자요. 법문 들을 때 자러 왔어? 법문 들으러 왔지.

한 발대죽 뛰고 또 발대를 건너뛸라고 헐 때인디, 화두는 내 화두는 허면서도—가면서 왜 화두를 안 혀.
앉었을 때만 화두를 허고 누울 때는 화두 못허고 그러는가? 밥 먹을 때는 화두 내버리고 먹고, 왜 똥 눌 때 화두를 내버리고 똥 누어?
이거 무슨 소리여. 화두 좀 해보란 말이여.

화두 허다, 좌선 허다가 척 누워서 화두를 추켜들고 누워 봐. 그대로 화두가 온당허게 자리가 잽혀 가지고는 그거 뭐 알 수 없는 놈만 딱! 나온다. 바로 누우나 옆으로 누우나 화두는 고대로.
잠을 딱 자고 뚝! 깨봐. 잠은 자기는 잤는데 화두는 고대로 나온다.

이것 무슨 소리들이여.
화두를 그 허다 말다가, 조끔 허다가 말다가, 조끔 있다가 없고 말허다가도 없고 쫓아댕기다 없고, 똥 쌀 때는 그대로 싸고 이래 가지고는 10년 20년 미륵하생(彌勒下生)까장 해 봐라. 틀림이 있는가. 소용없는 거여.

두 발대죽을 턱 내딛으면서 처꺽 그 ‘운무중(雲霧中)에 소를 잃었으니 어떻게 해야 소를 찾겠느냐?’
‘구름 벗어지면 소 찾지’ 대방(大棒)을 내루아 버리고는 그 학자한테 나한테 물어라.

‘운무중에 소를 잃었으니 어떻게 해 소 찾겄읍니까?’
‘담 너머에 가서 외 따 오니라’

아, 그 법문이 그만 화두를 해 나가다가 훅 들어오면서 툭!
내가 그래서 법문에 언하대오(言下大悟)라고 논 것이 그거여. 그 언하(言下)에 그만 대오(大悟)를 했네. 내가 대오를 했다 그말이여. 주제 넘게 헌말이여 이것이.
참말로 대오인지 아닌지 알 택이 있냐 그말이여. 나는 대오 했으니께.

척! ‘차시(此時)에 유인(有人)이 문아서래의(問我西來意)하면, 이때에 어떤 사람이 나한테 서래의(西來意)를 묻거드면은 녹수(綠水)는 각하(脚下)에 암전거(岩前去)로구나. 흐르는 물은 내 다리 밑에, 내 발 아래에 흐르는 물은 다리 앞으로 가는구나’
이 말 한마디 턱 일러 놓고는 곡성 그 재를 넘어갔네.

어떻게 넘어간지 모르고, 호랭이가 물어 간 재인지 뭔 이건 모르는 소리고, 내가 그 재를 지금 넘어갔기 따문에 고 이야기를 하나 해놓은 것이여.
뭐 소설도 그렇게 다 현대소설 「해왕성」 같은 거 보란 말이여. 다 그렇게 안 나왔는가.

그 재를 넘어서 태안사를 척 들어갔다. 그때 가서 오도송(悟道頌)을 지어 놨는디 내 오도송 좀 들어봐.
오도송, 밤낮 해 논 놈, 저 내 방에 써 걸어 놨으니 다 알지, 뭐 모를 건 없으되 그놈을 내가 좀 고쳐서 지금은 해 놨지.

자칭 내가 지금 내 오도송이라 한다. 어째 오도송, 나는 도통(道通)을 했으니 오도송이지. 남이야 비웃거나 말거나 나 혼자만 견성했지, 인자 잉. 그렇게 들어 두란 말이여. 그때 처음이니까.
그래도 내가 아직 오도송, 그때 고친 놈 그 글자만 몇 떼 버렸지 그대로여.

그날 밤이여. 그 재를 넘어가서 그날 밤에 태안사를 들어가서 뜰 앞에 떡 그 앞에 누(樓)가 있고, 뜰 앞에 거닐면서 이놈을 진 것이다 그말이여.
내가 무슨 놈의 글을 질 줄 아나. 내가 뭔 글을 얼마나 배우다가 나왔는디, 무슨 놈의 글.

일곱 살 먹어서 우리 어머니 돌아가시기 전, 울 아버지 계실 때에는 나도 참 참말로 그런 귀동자가 없었대. 우리 어머니가 나 첫아들 낳아 가지고, 늦게 낳는데 얼마나 그만 사랑하고 예삐 키웠든지 소문이 들썩 나버렸어.
허지마는 우리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서모 하나 들어오신 바람에 우리 서모 밑에서 그런 천둥이는 당최 만고(萬古) 천둥이는 없었다 그말이여.

그래 그 어릴 때 그때, 그 뭐 하늘 천, 따 지, 감을 현, 누르 황, 뭐 배운 것은 그때 배웠지마는 서모 들어오면서부터는 다시 글 한 자 뭐 배워 보지도 못했고는 서모 밑에서 어떻게 나는—서모가 그 뭐 참 괜찮다고 하지마는 그렇게 못되어지데, 사람이.

그러고 나와서는 또 뭐, 그 내가 아까 그러지 않어? 글도 얼마든지 절에 들어와 배울 턴디, 그 같은 친구 동무, 아이 하나 미쳐 죽어서 화장해 버린 뒤에 그것 다 태워가지고 연기는 빙 돌아 떠버리고, 그 응해 스님 글 하나 한 귀(句)에 그만 발심(發心)이 되아버렸어.

수행(修行)은 막대빈모반(莫待鬢毛斑)하라. 뭐 참선을 헐라매 머리터럭 희기를 기다리지 말아라.
호리신분개소년(蒿裡新墳皆少年)이다. 쑥대 속에 새 무덤이가 소년 무덤이다.

인신일실기시환(人身一失幾時還)이며, 사람의 몸뚱이 한번 잃으면 어느 때 돌아오며,
지옥시장기등한(地獄時長豈等閑)가. 지옥 때가 기니 어찌 등한히 노느냐. 지옥 한번 들어가면 때가 길다. 못 나온다. 어찌 등한히 노느냐. 하는 송구(頌句)에 그만 발심이 되아 가지고는 어릴 때, 통 글이란 건 읽을 수가 없어. 그까짓 놈의 글 배우다 죽어 버리면 뭣이냐.

또 사람이 수명 수한(壽限)이, 죽는 한(限)이 그놈이 때가 정해져 있으면은 어느 때까장 글 배우고 그 다음에는 참선 허겄다마는, 20년을 산다 하면 10년 글 배우고 10년은 공부하겄다마는 조석(朝夕)에 생명을 잃어 버릴 수가 있고, 숨 한 번 들이쉬고 내쉴 때에 잃어 버릴 수가 있는데 어떻게 내가 그 글을 읽고 있어.

허송(虛送), 그놈의 글 읽는다고 허송을 헐 수가 있어?
망후를 혀. 내일 헌다, 모래 헌다 후(後)를 기달라. 어찌 후기(後期)를 내가 만들아.

당체 못 하겠어. 그래 버렸는디 뭐 소용이 있나. 뭔 놈의 그래 글 하나 못 배와 못 읽었어.
쪼금 그 읽는다고 읽었자 뭐 그것 무슨 뭐, 그때 나올 때 놀이 글자 좀 알고, 한 글자 새길 수도 없어. 몰라. 그런 것이 무슨 놈의 글을 질 것인가 말이여.

허지마는 척! 가서 글이 한 수(首)가 나오는디 그 멋지게 나온다 그말이여.
글이라는 것은 염(簾)도 보고 운(韻)도 맞추고 다 이렇게 지은 것이지마는, 염(簾)이야 운(韻)이야 그런 걸 내가 해 보지 않았는데 그건 상당한 글이 있어야 하지, 어떻게 알 것인가.

허지마는 이 글이 염도 좀 맞았네, 염도. 들어 봐.
글이 원청 될 것 같으면 염도 운도 맞는데야. 12염에는 다 안 맞는다는구만. 12번 그 염 보는 데는.

그날 다리를 건너뛰다가 인자 그 견성 했다고 그날 밤에 태안사 청중에 거닐다가 떠억 허니 하나 지은 것이여.


작야삼경월만루(昨夜三更月滿樓)허고  고가창외노화추(古家窓外蘆花秋)니라
나무~아미타불~

작야삼경월만루(昨夜三更月滿樓)다. 어젯밤 삼경(三更) 달은 이 다락에 가득했구나. 내나 그 앞에 어젯밤 삼경 달 이 다락에 가득했구나.
고가창외(古家窓外)에는 노화추(蘆花秋)로구나. 저 밑에 저 옛 고가(古家) 창밖에는 갈대꽃 가을이로구나. 갈대꽃이 모도 피어서 일렁일렁해. 대(對)도 맞았네. 명월과 갈대꽃 대도 맞았어.

벌로 듣지 말어. 무식한 내가 글 진 걸 봐! 견성 했는가, 안 했는가 보라 그말이여.
고렇게 첫 귀는 빠졌다.

어젯밤 삼경 달은 다락에 가득했는데 옛집 창밖에는 갈대꽃 가을이니라.
이것은 최초구(最初句)니, 말후구(末後句)니 붙이들 말고 봐라. 거다가 최초구니 말후구니 여하약하(如何若何)오. 강사들 모도 있은게 강사 지견(知見)을 붙여보라 말이여.

고 밑의 구(句)여.


불조(佛祖)가 도차상신명(到此喪身命)이다  암하유수과교래(岩下流水過橋來)니라
나무~아미타불~

그 후구(後句)여.
불조(佛祖)가 도차상신명(到此喪身命)이니라. 부처님도 불조도 여기에 이르러서 상신실명(喪身失命) 했느니라.
암하유수과교래(岩下流水過橋來)니라. 바위 아래 흐르는 물은 다리로 지내오는구나.

그게 이제 뭣이여.
거기다 오도송을 거다가 붙이는 것이 방(棒) 짊어지고 했지마는, 삼세제불이 누가 방 짊어지지 않고 어디 법담(法談) 허는 수가 있나?

그렇게 척 나 혼자 했다. 설향수(說向誰)오. 누구로 더불어서 말을 할 것인고.
누구, 산이나 더불어 말할까? 뭐 청풍명월(淸風明月)로 대해서 말할까? 할 사람 누가 있나.
독보건곤(獨步乾坤)이제. 수반아(誰伴我)오. 홀로 나 혼자 한번 한 것이지, 누가 그 곁에 뭔 사람이 있나.(36분40초~52분16초)

 

 




(4/4)----------------

척 들어와서 그날 밤을 거그서 어떻게 좋은가 어쩐가, 당최 그 경계는 말할 것 없다. 절을 해도 그 경계. 그 경계는 뭐라고 내가 말해 놓지 못하고 혀.
밥을 먹어도 그 경계, 산을 봐도 그 경계, 어디 절을 해도 그 경계. 절을 해도 절헐 것도 없네. 아, 이것 봐.

날이 겨우 샜는데 아, 이놈의 대중은 인자 겨우 감원(監院)이 일어나서 일찍 일어나서 인자 뭐 갔다왔다 정중(庭中)에 허는데, 그까짓 감원이 있든지 말든지 지랄하든지 아, 그냥 뜰 앞에,
그 정중에 그만 뜰 앞에 오줌간도 아니고, 거다가 오줌을 그냥 철철철철 누어 버린다. 내가. 아! 이런 꼴 좀 봐라.

“아, 저런 세상에 어디서 저런 미친놈이 와서 저런 법당 뜰에다 갖다 오줌을 싸. 저런 놈이 있어?”
내가 그만 “야, 이놈의 중아. 거 오줌 눌 데를 하나 가르켜 내라. 비로자나(毘盧遮那) 전신체(全身體)요. 전체가 모도 불체(佛體)인디, 모도 부처님 몸뚱이 불체인디 어느 곳에다 오줌을 누란 말이냐? 말해!”

아, 이러고 대든게, “아, 이놈의 중, 수좌놈들이라니 이런 건방진 저놈들 보소. 아따 저런 것이 중놈으로서 저게 주인인가. 에이 녀석”
아, 그 싸워 노니까 밥도 못 얻어먹었네. 밥이나 얻어먹을 걸. 아, 이런 꼴 좀 보소. 밥을 못 얻어먹어.

인자 그때부터 나는 미쳐 버렸지. 내가 미친 사람이지, 산 사람 아니여.

그런 놈의 그런 경계가 있으니, 사람이 왜 좋게 하고 그 오줌단지 가서 오줌 누고, 상하(上下) 다 알아서 처리하고, 행주좌와(行住坐臥)가 분명하고 그려야 할 턴디,
왜 그러면 어째서, 해필 왈 갖다가서 진대지(盡大地) 땅은 땅으로 본 것이 옳을 턴디 왜 땅을 갖다 부처로 보고, 왜 갖다가 그만 아무데나 오줌을 싸고. 그거 되아? 그 미친 놈이지, 뭣이여.
그 미친놈 아니여? 허지마는 그놈의 경계가 참 당해 놓으면 별 도리 없네.

아! 아침밥도—밥을 주어야지. 아침밥도 얻어먹지 못허고 그냥, 밥을 안 준게 어째.
“허 그놈들, 호래아들놈들. 도인을 몰라보고 밥도 안 주는구나, 이 호래아들놈들. 네 이놈들 좀 겪어 봐라 이놈들” 한바탕 냅대 고함을 지른게 나는 미친놈 되아 버렸네.

그래서 그대로 그만 밥도 못... 오히려 쫓겨나다시피 쫓겨났네.
쫓겨나와 가지고는 배도 고프지마는, 배 고픈지 뭔지 그건 소용 없드구만. 그 미친 사람이 달리 어떻게 생리적으로 미쳐도 배고픈 줄 모르는가 보드구만.
참말로 나는 그 생리적으로 멀쩡하고 법으로만 미친 것이여. 법광(法狂)이 되었어.

아, 그 송(頌) 진 것 좀 봐. 그 송을 오늘날까지 큰스님네가 다 찬(讚)헌 송이여. 뭐 두말 할 것 없어.


그래 가지고는 거그서 척 ‘어라, 나는 이길로 갈 데가 어디냐? 불가불 여그서 제일 가까운 곳이 마곡사다. 동리산서 마곡사밖에 가까운 데가 없다. 마곡사를 갈 밖에 없구나. 마곡사에 큰스님이 계시니까 거그를 갈 수밖에 없다’

혜봉 스님, 마곡사에 혜봉 스님이 지혜는 제일 밝다고 소문난 이고, 견성(見性) 헌 후에 마을에 가서 마누라 얻어 가지고 아들 둘 낳고 산닥 하지마는. 그래 가지고 또 패철(佩鐵)을 차고 산에 올라 댕기면서 묏자리나 찾고 이러고 살아.

견성 도인이라도, 견성 척! 헌 후에 아무 한바탕 뭐 견성헌 속에서 보니 아, 중생(衆生)의 환화(幻化)가 개시묘법(皆是妙法)이니, 견성헌 분상에는 마누래 얻어 가지고 아들 낳고 사는 것이 무슨 하구녹수여청산(何拘綠水與靑山)고. 녹수가 청산에 걸릴 법이 어디 있으냐.

그래서 그만 마을로 가서 그대로 사는 수가 있어. 학자나 제접(提接)허고 가만히 청산(靑山) 한림(寒林) 속에서 아, 이렇게 또 계신 이도 있고.

그것 내가 관계헐 것이 뭣이 있느냐. 마누라 얻어서 아들 낳고 사는 것이 그것이 무슨 내게 무슨 걸릴 것이냐 그말이여.
법당 앞에 저 뜰 앞에다가 오줌도 철철 싸버렸는디, 그것 뭐 마누라 데리고 산다고 거기에 내가 걸려?
거 마누래 얻었다고 도인(道人)이 아니고, 마누래 없다고 도인이여? 고렇게 내가 상견(相見) 학자인가? 일없어.

척! 그만 하나도 무슨 뭐 그건 추호도 없고, 대번에 그만 혜봉 스님을 찾아갔지.
얼마를 걸어서, 그때는 뭐 어디 무슨 탈 것도 없고 내가 또 뭐 돈이 있나, 뭣이 있나. 누더기 하나 입고 가는데.

아, 그 등정(登程)을 해서 얼마를 걸어서, 운수(雲水) 등정을 해서 구공리를 척 당도해서 “혜봉 큰스님이 어느 집에 계시냐?” “저 감나무 집에 계시다”고.
아침에 척 들어—어떻게 좋든지 그 큰스님이 계신다 허니까 척 들어서니까 밑에 실에, 밑에 당신 계신 방 하나 맨들아 놓고 초가에 계시드구만.

척 들어서 가지고서는 혜봉 큰스님이 턱 나오길래 절을 한 자리 척... 어따가 절 할 것인가. 그런 큰스님네한테 절 했지.
내가 절 하다니. 아만(我慢)이 생겨 그런 건 아니지마는 참말로 그렇지.

잠 와? 잠 오면 나도 그만 잠이 와, 눈이. 그만 설(說)헐까?
잠 와요, 모도. 그만 설헐까? 여까지만 둬?
왜 암말도 없어. 자꾸 졸고 남의 법문 신심을 타락시켜. 나는 여그 다 보이거든.

여하약하(如何若何) 말이 없는 걸 보니까 조끔 더 설하라는 말이로구나.
듣기 싫어서 그만 설했으면 싶어서 암말도 안 헌게, 암말도 안 허니까 미워서 좀 더 설한다 그말이여. 밉상맞어서.

게을러 가지고 듣기 싫어서, 어서 가 좀 더 가만히 앉아서 좀 졸고 그랬으면 싶어서.
소용 없어. 소용 없어. 내가 그런 디는 더 설(說)혀, 미워서.


여기에는 참말로 들어야 한다 그말이여. 이게 정말 법문(法門)이니까.
들을 줄 모른 사람은 잠은 더 오고, 마구니 있는 사람은 그놈 마구니가 싫어서 듣기 싫어서 죽어. 그건 마구니 따문에 그려.

척 들어서 가지고는 혜봉 스님한테 법담을 허되, “제가 스님께 무자의지(無字意旨)를 물으러 왔습니다”
“거 그럼, 물어 보시오”
이것 나는 그 사미중이지마는 처음에는 큰스님도 “물어 보시오” 그러더군.

“조주무자의지(趙州無字意旨)를 반(半)만 일러 주십시오”
반만 일러 달라는 것도 벌써 거 그런 말이 없어. “다는 요구허지 않습니다. 반만 일러 주십시오” 허니까,

나를 척 한번 이래 바로 이렇게 눈을 떡! 떠 보더니 “무(無)” 그런다 그말이여.
그래서 “반이 될 이치가 있겠습니까”

“그 나는 반을 못 일렀어. 돌려 묻노니, 수좌(首座)한테 돌려 묻노니 수좌가 무자 반만 한번 일러 보오” 똑 말이 그러시드구만.
나이 그 어른은 한 오십 글썽글썽 허고, 나는 인자 한 스물한 살인가, 두 살인가, 나는 연조도 잘 모르는구만. 지내간 연조 하나도 몰라.

“스님이 물어 주십시오” 또 다시 두 번 그래. “무자 반만 일러 주오”
“무(無)” 내가 이랬다 그말이여.

턱, 참 엄연헌 태도로 나한테 다시 한마디를 묻기를,
“고인의 법문에—고인, 옛 고인 스님, 큰스님의 법문에 ‘거년(去年) 가난은 비(非)가난이다. 지나간 거년 해 가난은 가난이 아니다. 무입추지(無立錐地)니라. 송곳 꽂을 땅이 없었느니라. 금년 가난은 시(是) 가난이여. 금년 가난은 참 가난이다. 추야무(錐也無)로구나. 송곳까장 없구나’허니,
점검을 허되 ‘여래선(如來禪)밖에는 안된다’ 그랬으니, ‘여래선밖에는 안된다’했으니 수좌는 거기에 어떻게 일러사 조사선(祖師禪)을 이르겄느냐” 이놈을 묻는다 그말이여.

무서운 말이여. 선지식(善知識)이 학자 잡드리허는 걸 좀 보아! 무서운 말이여.
여간 견성해서 뭐 오도송 짓고, 뭐 대지가 산하대지(山河大地) 전체 보이는 것이 견성이라도 그런 데 가서 그 공안에 가서 눈이 멀어 버려.

응, 이- 허면 죽는다. 발써 찾으면 죽는다. 무슨 이치냐 죽는다.
고렇게 물을 때 어떻게 답허겄느냐?
어디 살림살이 있으면 하나 내놔 보쇼. 응, 보살님네도 다 살림살이 내놔 봐.
좀 내놔 보란 말이여. 어디 좀 내놔 봐.

아침에 여까장.

내가 이것, 내 인자 사방 돌아 법담 딱! 딱! 해 가지고, 인가(印可) 딱! 딱! 맞은 놈을 내가 탁탁 해놀턴게 보란 말이여.
어디서 아무때나 저 혼자 도 좀 닦다가 나와서 뭐 학자를 속이고 저 죽어? 멋대로 나와서 혀? 우리 부처님 정법이 그러고 말어? 안되아.(52분17초~66분24초)(일대기 2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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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각(正覺) ; ①깨달음. 부처님의 깨달음. 바른 깨달음. 진리를 깨닫는 것. ②부처님. 여래(如來). 진리를 깨달은 사람. 정등각(正等覺). 등정각(等正覺). 정등보리(正等菩提).
*영산회상(靈山會上) ; ①석가모니께서 영취산(靈鷲山)에서 설법하던 때의 모임. 또는 그곳에서 법화경을 설하던 때의 모임. ②선종의 삼처전심(三處傳心) 중 하나로 부처님과 가섭이 이심전심으로 주고받은 염화미소(拈花微笑)의 회좌(會座).
*삼세제불(三世諸佛) ; 삼세(三世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부처님[諸佛].
*면목(面目 낯 면/눈 목) : 본래면목(本來面目 본래의 얼굴·모습).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의 성품.
*본래면목(本來面目 밑 본/올 래/낯 면/눈 목) ; ①자기의 본래(本來) 모습(面目). ②자신이 본디부터 지니고 있는,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의 성품.
본지풍광(本地風光), 본지고향(本地故鄉), 본분전지(本分田地), 고가전지(故家田地), 천진면목(天眞面目), 법성(法性), 실상(實相), 보리(菩提), 부모에게서 낳기 전 면목(父母未生前面目), 부모에게서 낳기 전 소식(父母未生前消息) 등이 모두 같은 맥락에서 쓰이는 말이다.
*석가모니(釋迦牟尼) : sakya-muni의 음역. 샤카족의 성자(聖者)•현인(賢人)이라는 뜻. 불교의 교조(敎祖). 과거칠불(過去七佛)의 일곱째 부처님. 석가모니세존(釋迦牟尼世尊)•석존(釋尊)이라고도 한다.

아버지는 지금의 네팔 지방의 카필라성의 정반왕과 어머니는 마야 왕비. B.C 육백이십삼년 룸비니 동산 무우수(無憂樹) 아래에서 탄생하셔서, 어머니가 그를 낳은 지 7일 만에 세상을 떠나자 이모 마하프라자파티가 그를 양육하였다.
17세에 야소다라와 결혼하여 아들 라훌라를 낳고, 29세(혹 19세)에 출가하여 여러 선인(仙人)을 만나 6년 고행한 끝에 고행 금욕(禁欲)만으로는 아무 이익이 없음을 알고, 네란자라 강변에 있는 붓다가야의 보리수(菩提樹)아래에서 단정히 앉아 사유(思惟)하여 마침내 35세에 깨달음을 성취하여 붓다(buddha)가 되었다.
녹야원(鹿野苑)에서 다섯 수행자에게 처음으로 설법한 것을 시작으로 교단을 이루어, 45년 간 갠지스 강 중류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설법하다가 80세에 쿠시나가라의 사라쌍수(沙羅雙樹) 아래에서 열반에 드셨다. B.C 오백사십사년 2월 15일. 입적 후 그의 가르침이 경전으로 모아져 세계로 전파되었다.
*역대조사(歷代祖師) ; 석가세존(釋迦世尊)으로부터 불법(佛法)을 받아 계승해 온 대대의 조사(祖師).
*명근(命根) ; 목숨과 생명의 근본.
*주장자(拄杖子 버틸 주/지팡이 장/접미사 자) ; 수행승들이 좌선(坐禪)할 때나 설법(說法)할 때에 지니는 지팡이.
*명상(名相) : 모든 물건이나 일이 다 이름과 형상이 있는 것이다。우리는 그 이름만 들으면 그 사물의 형상을 생각하게 되는데, 형상이란 것은 바탕과 모양이 있고 없고를 막론하고 공간적으로 있는 형용과 체적(體積) · 질량(質量)뿐 아니라, 시간적으로 나타나는 나고 머물고 늙고 죽는 것이나, 시작되고(成) 진행하고(住) 쇠퇴하고(壤) 파멸하는(空) 것도 형상이며, 오관(五官)으로 감촉하게 되는 열도(熱度) · 소리(音響) · 빛(色) · 냄새(香) · 맛(味)같은 것도 또한 형상이다.
그러나 이 이름이나 형상은 그 자체가 본래 확실히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망녕된 생각이 지어낸 빈 이름이며, 한 때의 인연을 따라 생겨난 거짓 형상인 것이다.
*출신처(出身處) ; 큰 깨달음을 얻어, 그 깨달음의 편집(偏執 편견을 고집함)이 끊어진 자유의 경지.
*최초구(最初句) ; 최초의 한마디 말. 본래부터 타고난 본성(本性)의 진여(眞如) 나타낸다.
*말후구(末後句) ; ①말후(末後)는 구경(究竟), 필경(畢竟), 구극(究極), 지극(至極)의 뜻. 구(句)는 언구(言句), 어구(語句), 문구(文句)란 뜻. 크게 깨달아 구경에 이르러서 하는 말. 지극한 글귀. 말후일구(末後一句). ②문장의 맨 끝의 말. ③임종의 말.
*기본축말(棄本逐末 버릴 기/근본 본/쫓다·구하다 축/끝·지엽 말) ; 근본은 버리고 지엽의 끄트머리를 구하다.
*(게송) ‘고와한단침(高臥邯鄲枕) 주류만년성(周流萬年城)’ ; 『청허당집(淸虛堂集)』 (서산 휴정) ‘몽각(夢覺 꿈에서 깨어나)’ 참고.
*한단침(邯鄲枕) ; 한단지침(邯鄲之枕). 한단지몽(邯鄲之夢). 여옹침(呂翁枕). 여공침(呂公枕). 인생의 덧없음과 영화(榮華)의 헛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중당(中唐, 七六六~八三五) 대 전기소설의 대표작인 ‘침중기(枕中記 : 베개 속 이야기, 심기제作)’에 나오는 이야기로, 과거시험에 낙방한 노생(盧生)이 한단(邯鄲)의 여관에서 도사(道士) 여옹(呂翁)을 만나 자기의 곤궁한 신세를 한탄하였더니 여옹이 청자로 만든 베개를 그에게 건네주어, 노생이 그 베개를 베고 잠이 들었다. 이때 여관 주인은 노란 기장을 솥에 삶고 있었다.
노생은 그 베개를 베고는 곧 잠이 들었는데 꿈속에서 미인에게 장가들고 과거에 급제하여 고관대작의 부귀영화를 한껏 누리다 그의 나이 80에 병들어 죽게 되자 깜짝 놀라 잠에서 깨어 보니 그 모든 것은 꿈이었고, 여관 주인이 삶던 노란 기장은 아직 익지 않고 있었다. 인간 욕망의 부질없음을 깨달은 노생은 여옹에게 감사드린다.
*옥식금의(玉食錦衣 구슬·훌륭하다 옥/밥·음식 식/비단 금/옷 의) ; 금의옥식(錦衣王食). 흰쌀밥(맛있는 음식)과 비단옷이라는 뜻으로, 호화스럽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이르는 말.
*철위산(鐵圍山) ; 철륜위산(鐵輪圍山)이라고도 함. 불교의 세계설에서는 수미산(須彌山)을 중심으로 네 대륙과 9개의 산이 있고, 산과 산 사이에 8개의 바다가 있는데, 그 아홉 번째 가장 바깥쪽의 철(鐵)로 된 산을 말한다.
*시은(施恩) ; ①시주(施主)에게서 받은 은혜. ②은혜를 베풂.
*악업(惡業) ; 나쁜 결과의 원인이 되는 나쁜 행위. 또는 전생(前生)의 나쁜 행위.
*악연(惡緣) ; ①나쁜 결과를 가져오는 인연. 또는 맺어서는 안 되는 잘못된 인연.  ②나쁜 일을 하도록 유혹하는 주위의 환경.
*진로(塵勞 티끌·속세 진/근심할 로) ; ①마음이나 몸을 괴롭히는 노여움이나 욕망 따위의 망념(妄念), 마음의 티끌. 번뇌(煩惱)를 말한다. 중생의 마음을 더럽히고 생사에 유전(流轉 끊임없이 이어짐)시켜 피로하게 하는 것. ②생사(生死). 생사윤회(生死輪廻).
*형탈(逈脫 멀다·아주 형/벗다·벗어나다 탈) ; 멀리[逈] 벗어나다[脫].
*사대(四大) ; 사람의 몸을 이르는 말. 사람의 몸이 땅, 물, 불, 바람(地,水,火,風)의 네(四) 원소(大)로 이루어졌다고 보는 데에서 연유하였다.
*색별(色別 빛 색/나누다·구별 별) ; ①각각의 색 하나하나. 색을 구별함. ②종류에 따라 구별함.
*(게송) ‘체연개일몽(遞然開一夢) 잔월반루명(殘月半樓明)’ ; 『청허당집(淸虛堂集)』 (서산 휴정) ‘몽각(夢覺 꿈에서 깨어나)’ 참고.
*향당(鄕黨 시골·마을·고향 향/마을·향리鄕里 당) ; 자기가 태어났거나 살고 있는 시골의 마을. 또는 그 마을 사람들.
*본각(本覺) : 일체 중생에게 본래 갖춰져 있는 각성(覺性)의 뜻으로서 청정한 심성(心性)을 말함.
이 심성은 허명(虛明)해서 인연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도 아니요 또 자연적인 것도 아니며, 본래 중생의 상념(想念)을 떠나서 법계에 두루 가득 차 있는 것이다。 따라서 미망(迷妄)과 깨달음에 관계 없는 절대적인 경위(境位)이다.
*한바탕 ; 크게 한판(한 번 벌이는 판). 한판 크게.
*산말랭이 ; ‘산마루(산의 등줄기의 가장 높은 곳)’의 사투리.
*무외(無畏 없을 무/두려워할 외) ; ①자신감을 가지고 가르침을 설하므로 누구에게도 두려움이 없음. 진리에 대한 확신으로 어떠한 장애도 두려움이 없음. ②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나 두려움도 불안도 없는 평온한 마음 상태. 무소외(無所畏)라고도 한다.
*포외(怖畏 두려워할 포/두려워할 외) ; 두렵고 무서움. 화엄경에서는 ①생활의 두려움. ②명예를 잃을 두려움. ③악도(惡道)에 떨어질 두려움. ④죽음의 두려움. ⑤대중 앞에 나섬에 대한 두려움 따위의 다섯 가지 두려움을 이른다.
*봉대기 ; ’봉우리(산봉우리)’의 사투리.
*청혼(請魂) ; 설법할 때에, 영가(靈駕 죽은 사람의 영혼)를 그 자리에 모시는 일. (같은 말)거량(擧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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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지(노디) ; '징검다리(개울이나 물이 괸 곳에 돌이나 흙더미를 드문드문 놓아 만든 다리)'의 사투리.
*쌀궤(-櫃) ; 뒤주(쌀 따위의 곡식을 담아 두는 세간의 하나). *세간 : 집안 살림에 쓰는 온갖 물건.
*어짠지 ; ‘어쩐지(어찌 된 까닭인지)’의 사투리.
*어따 ; 어디에다. 어디에.
*돌라먹다 ; 훔쳐먹다(몰래 가져다 먹다). ‘속여먹다(속여 이익을 얻다)’의 사투리.
*뒤지다 ; ‘뒈지다(‘죽다’를 속되게 이르는 말)’의 사투리.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들입다 ; 세차게 마구.
*육단심(肉團心) : [범] Hrdaya  4심의 하나。 심장을 말함。 8판(瓣)의 육엽(肉葉)으로 되었다 한다。 의근(意根)이 의탁한 곳.
*묘방(妙方) ; ①기묘한 방법. ②신묘하고 효험이 뛰어난 처방(處方).
*간화결의론(看話決疑論) ; ‘간화선(看話禪)에 대한 의심을 풀어주는 글’. 고려의 보조 지눌(普照知訥) 스님 지음. 화두(공안)에 대한 하나의 큰 의심을 깨트려 곧바로 부처의 경지에 이르는 간화선(看話禪)의 뛰어남을 밝힌 저술.
*대의지하(大疑之下) 필유대오(必有大悟) ; ‘큰 의심 끝에 반드시 큰 깨달음이 있다’
[참고] 『몽산법어』 (용화선원刊) ‘몽산화상시총상인(蒙山和尙示聰上人)’ p52-53.
當於本叅公案上(당어본참공안상)에 有疑(유의)호리니  大疑之下(대의지하)에  必有大悟(필유대오)하리니  千疑萬疑(천의만의)를  倂作一疑(병작일의)하야  於本叅上(어본참상)에  取辦(취판)호리라
若不疑言句(약불의언구)가 是爲大病(시위대병)이니라  仍要盡捨諸緣(잉요진사제연)하고  於四威儀內(어사위의내)와 二六時中(이륙시중)에  單單提箇話頭(단단제개화두)하야  廻光自看(회광자간)호리라

바로 모름지기 본분을 의지하야 법다이 하야사 비로소 옳으리라。 반드시 본참공안상에 의정을 두리니 큰 의심 끝에 반드시 큰 깨달음이 있으리니, 천의만의(千疑萬疑)를 아울러 한 의심을 지어서 본참상에 판단할지니라.
만약 언구(言句, 화두)를 의심하지 않으면 이것이 큰 병이니라。 반드시 모든 인연을 다 버리고 사위의(四威儀)와 열두 때 가운데에 다만 화두를 잡아 빛을 돌이켜 스스로 볼지니라.
*의심(疑心) :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해 ‘알 수 없는 생각’에 콱 막히는 것.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이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수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이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또는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또는 ‘조주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바른 깨달음은 알 수 없는 의단, 알 수 없는 의심에 꽉 막힌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본참화두(本參話頭) ; 본참공안(本參公案).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묵조사선(默照邪禪) ; 화두에 대한 의심이 없이, 그냥 조용한 경계만을 묵묵히 지켜 나가는 그러한 공부. 이것은 깜깜한 귀신굴(鬼神窟) 속에서 살림살이를 하는 것이라 해서 영원히 깨달을 분(分)이 없는 것이다.
*묘한 관(觀) ; 묘관(妙觀). 묘(妙)한 의심(疑心)의 관(觀). 화두를 거각하여 알 수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그 알 수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觀照)를 하는 것.

 

[참고] 송담스님(세등선원 No.68)—정묘년 동안거 해제 법어(1988.01.17) (5분59초)

처음에 공부를 할 줄 모르는 사람은 힘을 좀 써야 화두가 들리니까 힘을 좀 써서 하기도 하고, 자꾸 숨을 들어마셨다 내쉴 때마다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한번 하고 한참 있으면 화두가 없어져 버리니까, 부득이 숨을 내쉴 때마다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하고 자주자주 들을 수 밖에는 없지만,
한 철, 두 철, 세 철 이렇게 해 가다 보면 그렇게 자주 들지 안 해도 화두가 잘 들리게 된다 그말이여.

들려 있걸랑 화두를 다시 또 거기다 덮치기로 자꾸 들어 쌀 필요는 없는 것이여.
화두가 희미해져 버리거나, 화두가 없어지고 딴 생각이 들어오거나 하면 그때 한번씩 떠억 챙기면 되는 것이지, 화두가 이미 들어져서 알 수 없는 의심이 있는데, 거기다 대고 자꾸 화두를 막 용을 쓰면서 자꾸 들어싸면 그것은 아주 서투른 공부다 그말이여.

그렇게 순일하게, 화두를 들려고 안 해도 화두가 터억 들려서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걸랑, 그 독로한 의단을 성성(惺惺)한 가운데 묵묵히 그것을 관조(觀照)를 하는 거여. 알 수 없는 의심의 관(觀)이여. 의심관(疑心觀).

거기에는 고요하다는 생각도 붙을 수가 없고, 편안하다는 생각도 붙을 수가 없고, 맑고 깨끗하다는 생각도 어떻게 거기다가 그런 생각을 붙일 수가 있냐 그말이여.
고요하고 맑고 깨끗하고 편안한 그런 생각에는 조금도 그런 생각을 두어서도 안되고, 그런 생각을 즐겨서도 안되고, 그런 생각을 집착해서도 안돼.

다맛 우리가 할 일은 알 수 없는 의단(疑團)만을 잘 잡드리 해 나가는 거여.
너무 긴하게 잡드리를 해서도 안되고, 너무 늘어지게 해서도 안되고, 긴(緊)과 완(緩) 긴완(緊緩)을 득기중(得其中)을 해야 혀. 그것이 묘한 관(觀)이라 말할 수가 있는 거여.

관(觀)이라 하는 것도 일종에 생각이지만, 생각없는 생각을 관(觀)이라 하는 거여.
우리가 참으로 올바르게 화두를 들을 줄 모르는 사람은 부득이 해서 생각을 일으켜 가지고 화두를 참구를 하는데, 일구월심 정진을 해서 참으로 바르게 화두를 참구할 줄 아는 사람은 바로 관(觀)으로 들어가는 거여. 관이란 생각없는 생각으로 생각하는 것을 관이라 그러는 거여.

조금도 늘어지지도 않고, 조금도 긴하지도 아니한 ‘묘(妙)한 의심(疑心)의 관(觀)’으로 해 나가야 되는 거여.

1분의 백천 분의 1 같은 그런 짧은 시간도 생각을 일으켜서 그 일어나는 잡념을 물리칠라 할 것도 없고, 그렇게 화두가 순일하게 된다 해도 아주 미세한 생각은 이렇게 일어날 수가 있어.
일어나지만 그것을 일어나는 생각을 물리칠라고 생각을 내서는 아니되는 거여. 생각이 일어나더라도 일어난 채로 그냥 놔둬 버리고, 자기 화두만을 잘 관해 나가면 그 생각은 자취없이 스쳐서 지내가 버리는 거여.

마치 앞으로 춥도 덥지도 않는 이 봄철이 돌아오겠지마는, 그 봄철에 도량이나 동산에 나가서 그 산책을 하면서 포행을 하면서 정진을 헐 때에 춥지도 덥지도 않는 봄바람이 귓전에 스쳐간다고 해서 그 봄바람 때문에 화두가 도망갈 필요는 없거든.
그냥 귓전을 스쳐서 지내가고 옷자락이 좀 팔랑거리거나 말거나 내버려둬 버리고, 나는 성성적적(惺惺寂寂)허게 그 의심의 관(觀)을 단속해 나가는 것처럼, 일어나는 크고 작은 모든 번뇌가 일어난다 하드라도 그냥 놔둬 버려.

끝없이 일어났다가 없어지고 일어났다 꺼져 버리고, 내가 거기에 따라주지만 아니하고, 집착하지만 아니하고, 물리칠라고 하지도 말고, 그러면은 그냥 제 결에 일어났다가 제물에 그냥 스쳐가 버리는 거여. 그까짓 것은 내가 공부해 나가는 데 조금도 방해로울 것이 없는 것이여.
우리 활구참선을 하는 수행자는 승속(僧俗)을 막론하고 그 화두를 올바르게 잡두리 해 나갈 줄만 알면,
어디를 가거나 다 선불장(選佛場)이요, 그게 바로 선방(禪房)이요, 공부처(工夫處)다 그말이여.

 


[참고] 송담스님(No.256)—85년 2월 첫째 일요법회(85.02.03) (5분57초)
금년 여름에 보살선방에 백여섯 분이 방부를 들여서 항시 칠팔십 명이 그렇게 참 엄격한 규율 속에서 정진들을 모다 애쓰고 계시는데 자세를 바르게 하고, 호흡을 바르게 하고, 나아가서 세 번째 가서는 화두(話頭)를 어떻게 의심(疑心) 하느냐?

이 화두를 의심하는 방법, 이것이 또한 간단하지만 참 이것이 어려운 것입니다.
한 철, 두 철, 세 철, 3년, 5년, 10년을 해도 이 화두를 참으로 올바르게 화두를 참구(參究)하고, 관조한다는 것은 어려운 것입니다. 이것은 한 말로 ‘이렇게 하는 것이 좋다’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법문을 듣고 고대로 또 하고, 고대로 하면서 또 법문을 듣고 해서 스스로 많은 노력, 스스로 그것을 공부해 나가는 요령—급하지도 않고 너무 늘어지지도 아니하며, 그 요령을 스스로 터득을 해야 합니다.
스스로 터득한다니까 선지식(善知識)도 필요 없고, 자기 혼자 어디 돌굴이나 토굴에 가서 막 해제끼면 되냐 하면 그게 아니에요. 반드시 선지식의 지도를 받되, 받아 가지고 하면서도 스스로 그 묘한 의관(疑觀)을 얻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묘한 의심관이라 하는 것은 도저히 어떻게 말로써 설명해 가르켜 줄 수가 없습니다. 자기가 일구월심(日久月深) 항시 면면밀밀(綿綿密密)하게 의심해 가고 관해 가고, 그 자세와 호흡과 화두를 삼위가 일체가 되도록 잘 조정을 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필경에는 그 묘한 의심관인 것입니다. 그 의심관, 관(觀)이라 하는 것도 일종의 생각이지만 ‘생각 없는 생각’을 관이라 이렇게 말할 수가 있는데, 막연하게 어떤 관이 아니라 이 활구참선(活句參禪)은 ‘의심(疑心)의 관’이라야 돼.

옛날에는 해가 떨어지려고 할 때, 서산에 지려고 할 때, 저 수평선에 해가 지려고 할 때에, 그 큰 맷방석만한 해가 땅에 질락 말락 할 때 그 빨갛고 아름다운 거—해가 중천에 있을 때는 눈이 부셔서 볼 수가 없는데, 해가 질 무렵에는 눈이 부시질 않고 그 아름답고 벌건 굉장히 큰 그 해를 볼 수가 있습니다.

그 아름다운 해를 한참 보는 것입니다. 마지막 딱 떨어져서 안 보일 때까지 한 시간 내지 두 시간을 눈이 부시지 아니할 때부터서 그것을 관하기 시작해 가지고 마지막 질 때까지 관찰하고서, 그 다음에는 밤새 그 눈을 감으나 뜨나 그 찬란하고 아름다운 둥그런 해를 관(觀)하는 것입니다.

눈을 감고서도 보이는 것이 그것이 관(觀)인 것입니다. 눈을 뜨나 감으나 상관없이 항시 있는 것이 그것이 관인데, 그것을 갖다가 일관(日觀)이라 그러거든. 해를 관하는 수행법이여.

밤새 그 둥근 해를 갖다가 관하고, 그 이튿날 하루 종일 관하다가 또 해 질 때 다시 또 그 관을 해서, 그 관을 다시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또 밤새 관하고, 그 이튿날 관하고 또 해 질 때 관하고 해서 평생 동안을 그렇게 관을 해 나가는데, 이것도 하나의 수행 방법입니다.

이러한 그 일관이라든지 또 달을 관하는 관법이라든지, 아까 백골관이라든지, 여러 가지 관법(觀法)이 있는데, 이 참선도 하나의 ‘의심의 관법’이라 이렇게 말할 수가 있습니다.

성성(惺惺)하고 적적(寂寂)하면서도, 일부러 화두를 들려고 하지 아니해도 저절로 그 의심관이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그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도록,
처음에는 ‘이뭣고?’ ‘이뭣고?’하지만 나중에는 ‘이뭣고?’ 안 해도 알 수 없는 의심이—해가 질 때 봐두었던 그 둥근 해가 밤에도 고대로 보이고, 그 이튿날에도 고대로 환하게 보이듯이, 의심관이 그렇게 되어야 하거든.

그렇게 해서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면 일주일을 가지 못해서 공안을 타파(打破)하게 되고, 일체 천칠백 공안을 일관도천(一串都穿)을 해. 자기의 본래면목(本來面目)과 역대조사(歷代祖師)의 면목을 사무쳐 보게 되는 것입니다.
*드리 ; ‘마구(아주 세차게, 매우 심하게, 앞뒤를 따지지 않고 아무렇게나 함부로)’의 옛말.
*정법문중(正法門中) ;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을 따르는 집안.
*정견(正見) ; ①팔정도(八正道)의 하나. 바른 견해. 연기(緣起)와 사제(四諦)에 대한 지혜. ②있는 그대로 봄. ③바르게 자신의 참모습을 앎.
*팔정도(八正道) ; 깨달음과 열반으로 이끄는 수행의 올바른 여덟 가지 길. 정견(正見), 정어(正語), 정업(正業), 정명(正命), 정념(正念), 정정(正定), 정사유(正思惟), 정정진(正精進). 팔성도(八聖道)를 이른다.
*정견 학자(正見學者) ;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을 알고 바르게 수행하는 이.
*입태(入胎) ; 모태(母胎)에 들어가는 것.
*주태(住胎) ; 모태(母胎)에 머물러 있는 것.
*출태(出胎) ; 태어나는 것.
*매(昧)하다 ; (지혜가)어두워지다. 사리를 분별하지 못하다. 잊어버리다. 모른다. 어둡다.
*후래(後來) ; ①뒤에 오거나 뒤져서 옴. ②장차 오게 되는 앞날.
*외도(外道 바깥 외/길 도) ; ①불교 이외의(外) 다른 종교(道)의 가르침. 또는 그 신봉자. ②그릇된 가르침, 그릇된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
*사견(邪見) : ①잘못된 견해. 틀린 생각 ②인과(因果)의 이치를 부정하는 잘못된 생각 ③올바로 자신의 마음의 실상을 알수가 없는 것.
*시현(示現 보일 시/나타날 현) ; 그때마다 적절하게 몸을 나타내[現] 보이는[示] 불보살의 작용. 현시(顯示), 현현(顯現)과 같은 뜻이다.
불보살이 중생을 교화하기 위하여 중생의 수만큼 많은 갖가지 몸으로 변화하여 나타나는 시현의 대표적인 예는 부처님의 32상 80종호나 관세음보살의 33신 등이 있다.
*설산(雪山) ; 인도 북부에 솟아 있는 히말라야 산맥을 가리키는 말. 눈[雪]을 품은 곳이란 뜻. 설령(雪嶺) · 동왕산(冬王山) · 대설산(大雪山) 등이라고도 한다. 부처님의 탄생지인 카필라바스투 역시 설산의 기슭에 위치하고 있다. 석가모니가 수도한 산.
*유기철물(鍮器鐵物)은 신견고(身堅固)요 ; 유기(鍮器) 철물(鐵物)을 올린 시주(施主), 몸이 견고하여지이다.
*불양헌답(佛糧獻畓)은 복무변(福無邊)이요 ; 불전(佛前)의 공양 위해 논이나 밭을 올린 시주, 복이 무량하여지이다.
*창호도배(窓戶塗褙)는 면팔난(免八難)이니라 ; 창호하고 도배한 시주, 팔난(八難)을 면해지이다.
*시은(施恩) ; ①시주(施主)에게서 받은 은혜. ②은혜를 베풂.
*원력(願力) : 원(願)하는 바를 이루려는 의지. 본원력(本願力) • 숙원력(宿願力) • 대원업력(大願業力) • 서원(誓願) • 행원(行願)이라고도 한다.
*개탄(慨歎, 慨嘆 슬퍼할 개/탄식할 탄) ; 어떤 일이나 현상에 대하여 못마땅하거나 분하게 여기어 한탄함.
*호향차시명자기(好向此時明自己) 백년광영전두비(百年光影轉頭非) ; ‘당장 이 때에 마음을 애써 밝히소, 백 년 세월도 순식간에 글러지느니’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161 게송 참고.
*무루복(無漏福) ; 번뇌가 없는 더러움이 없는 복. 영원히 끝장이 나지를 않고 아무리 쓰고 또 써도 바닥이 나지를 않고 다할 날이 없는 복(福) 그것이 무루복입니다.
무루복이라 하는 것은 참선법(參禪法)에 의해서 내가 내 마음을 닦아 가지고 생사해탈하는 이것만이 영원히 생사를 면하는 무루복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참선하는 마음으로 살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돈도 벌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보시하고, 다른 사람에게 「내가 나를 깨닫는 정법」을 믿도록 권고하고 인도하고, 자기도 열심히 닦으면서 남도 같이 닦게 하여 무루복(無漏福)과 유루복(有漏福)을 겸해서 닦아야, 남도 좋고 나도 행복할 수 있는 길을 가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일사천하미진수품(一四天下微塵數品) ; 법장현수(法藏賢首) 스님의 『화엄경탐현기(華嚴經探玄記)』에 보면, 용수보살(龍樹菩薩)이 용궁(龍宮)에 가서 대부사의경(大不思議經=화엄경)을 보았는데, 상본·중본·하본 3가지 본(本)이 있었다.
그 중에 상본(上本)이 십삼천대천세계미진수(十三千大千世界微塵數)게송 일사천하미진수품(一四天下微塵數品)이었다 한다. 중본(中本)은 49만 팔천팔백 게송 천이백 품(品)이고, 하본(下本)은 10만 게송 38품이었다 한다.

용수보살이 상본과 중본은 사바세계 사람들 마음의 힘으로서 능히 가질 수 없으므로 전하지 않고, 하본(下本)을 외어 세상에 전하였고 또 그것을 간략히 한 약본(略本)이 80권 본, 60권 본이 되었다 한다.
일사천하미진수품(一四天下微塵數品)은 ‘미진수(微塵數 셀 수 없는 무한수)’의 품(品)으로 우주 사이에 벌여 있는 온갖 사물과 모든 현상—삼라만상(森羅萬象) 전부가 그 화엄경을 이루고 있으며, 곧 비로자나(毘盧遮那) 전신체(全身體)로 우리 개개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을 말한다.(전강선사 법문 275번 참고)

 


[참고] 전강선사(No.18)—전강선사 일대기 8호(경술년 12월 13일)(1971년 1월 9일)에서.
그 참선 공부, 세상에 참선 공부 같이 쉬운 것은 없어.
그렇게 쉽건마는, 낯 씻다가 코 만지기요. 얼굴 씻글 때 코 안 만져지나? 그대로 코 만져지는 것인디. 얼굴 씻글 때 코 만지는 것이여. 허! 그것 참!

천하에 그렇게 쉬웁건마는 어째도 그렇게 모도 안 된다고 야단들이고, 망상 따문에 못 허겄다고 야단이고,
망상 그놈 따문에 참선을 하는 것이고, 망상 따문에 화두가 그놈이 있는 것이지, 망상 없으면 무슨 화두가 있나? 화두가 없어. 망상 그놈 따문에 화두가 딱 그놈이 인자 있지.

그래서 화두 그놈은 망상을 다루는 놈이여. 망상을 잡드리 하는 놈이여. 화두 그놈이 아니면은 망(妄)을 대체 주체할 수가 없어. 일어나는 전체가 망이니까.
깨달지 못했으니 망(妄)이지. 깨달랐으면 전부 그놈이 각(覺)인디. 깨달으면은 망이 없는 것이 아니여. 망(妄) 그놈이 각(覺)이여 그만!
낱낱이 각(覺)이지, 조끔도 뭐 여읠 것도 없고—망상을 여의고 각이 있는 것이 아니라, 망상 자체가 각이여! 그대로가 각(覺)이여.

수은(水銀)을 한 뭉치 내던졌다. 이놈이 천 쪼가리—그놈이 조그만한 덩어리가 모도 갈라져서 만 덩어리가 되고 몇만 덩어리가 되아. 쓸어 모으면은 한 덩이여.

망(妄) 역시 그 깨달지 못해 중생 때에는 전부 망(妄)이더니, 깨달라 놓고 보니 그놈이 낱낱이 다 각(覺)이다. 그러니깐 미진수(微塵數) 법계(法界)지. 가는 티끌 수 법계라.
화엄경에 일사천하미진수품(一四天下微塵數品)이지! 화엄경 품수(品數)가 일사천하미진수품이여. 화엄이란 화엄도리는 다 각인데... 낱낱이 각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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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각(擧却 들 거/어조사 각) ; 화두를 든다. ‘화두를 든다’ ‘화두를 거각한다’는 말은 자신의 본참화두를 들 때 알 수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그 알 수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觀照)하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 세등선원(No.09)—병진년 동안거 결제중 법어(76.12.26)에서.
화두를 먼저 이마로 의심을 하지 말고, 이 화두를—호흡하는데 배꼽 밑[丹田]에 숨을 들어마시면은 배가 볼록해지고 숨을 내쉬면은 배가 홀쪽해지는데, 그 배가 빵빵해졌다 홀쪽해졌다 허는 거기에다가 화두를 들고 ‘이뭣고~?’ ‘알 수 없는 생각’ 관(觀)하는 그것이 화두를 드는 것이여.
*방(棒) ; 몽둥이. 또는 주장자(拄杖子). ‘방망이 봉’자이지만 불교에서는 덕산방(德山棒) 등의 용례에 따라 ‘방’으로 읽는다.
*방할(棒喝) ; 선가(禪家)에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직접 체험의 경지를 나타날 때, 또는 수행자를 점검하며 꾸짖거나 호통칠 때, 방망이나 주장자(拄杖子)를 세우거나 그것으로 수행자를 몽둥이질하는 것을 방(棒)이라 하고, 그러한 때 크게 소리를 내지르는 것을 할(喝)이라 한다.
덕산선감(德山宣鑑)은 방으로 가풍(家風)을 삼았으며, 임제의현(臨濟義玄)은 할로써 지도방법을 삼았다. 이것을 두고 ‘덕산방(德山棒)’, ‘임제할(臨濟喝)’이라 한다.
*산철(散철) ; 본철(本철 - 하안거,동안거)가 아닌 시기.
*원청 ; 원청강(워낙, 두드러지게 몹시).
*불탄산고수활(不憚山高水濶) ; 높은 산 깊은 물도 꺼리지 않고. 憚(꺼릴 탄). 濶(넓을 활).
*미륵(彌勒) : 대승보살. 번역하여 자씨(慈氏).
인도 바라나국의 바라문 집에 태어나 석가모니의 교화를 받고 미래에 성불하리라는 수기를 받아, 도솔천에 올라가 있으면서 지금 그 하늘에서 천인(天人)들을 교화하고,

석가모니 입멸후 56억 7천만 년을 지나 다시 이 사바세계에 출현—하생(下生)하여, 화림원(華林園) 안의 용화수(龍華樹) 아래에서 성불(成佛)하고 3회의 설법으로써 석가모니의 교화에서 빠진 모든 중생을 제도한다고 한다. 이 법회를 용화삼회(龍華三會)라 한다.
도솔천에서의 생을 마치면 인간으로 태어나 성불하여 석가모니불의 자리[處]를 보충(補充)한다는 뜻으로 보처(補處)의 미륵이라 하며, 현겁(賢劫) 천 불의 제5불(佛).
*운무중(雲霧中 구름 운/안개 무/가운데 중) ; 구름[雲]과 안개[霧]의 속[中].
*언하(言下) ; [주로 ‘언하에’의 꼴로 쓰여]말이 떨어진 바로 그때. 또는 말을 하는 그 즉시.
*서래의(西來意) ;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 중국 선종(禪宗)의 초조(初祖) 달마대사가 인도에서 중국으로 와서 불교의 대혁명을 일으켰는데, 경(經)이나 모든 글이 소용없다 하여 「불립문자(不立文字)」를 표방하였고, 계율이나 염불이나 송주(誦呪)를 죄다 부인하고 오직 「마음을 지키는 한 가지 공부에 모든 법이 들어 있다(觀心一法總攝諸行)」하고, 「바로 마음을 가리켜서 대번에 성품을 보고 부처가 되게 한다(直指人心見性成佛)」고 하였다.
실로 그의 문하에서 많은 성인이 나왔었다. 그리하여 사람마다 다투어 묵은 불교를 버리고 이 새 법, 참선법(參禪法)을 배우려고 하였다. 그러므로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이란 것은 달마조사가 전하여 온 특별한 법, 비밀한 이치 곧 「불법의 똑바른 이치(佛法的的大意)」란 말과 같은 말이다.
*오도송(悟道頌) ; 불도(佛道)의 진리를 깨닫고 그 경지 또는 그 기쁨을 나타낸 게송.
*도통(道通) ; ①사물의 이치를 깨달아 훤히 통함. ②깨달음.
*천둥이(賤둥이) ; ①‘천더기(賤-- : 업신여김과 푸대접을 받는 사람)’의 사투리. ②’천한 둥이’의 준말. 조실부모한 고아나 남의 손에 길러진 아이를 일컫는다.
*만고(萬古 일만·클 만/옛날·예 고) ; ①매우 먼 옛날. ②아주 오랜 세월 동안. ③세상에 비길 데가 없음.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을 일으킴[發].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수행막대빈모반~ ; [치문경훈(緇門警訓)] '잡록(雜錄)'에서 '굉지선사시중(宏智禪師示衆)'
宏智禪師示衆(굉지 선사가 대중에게 보임)
蒿里新墳盡少年  修行莫待鬢毛斑  死生事大宜須覺  地獄時長豈等閒
道業未成何所賴  人身一失幾時還  前程黑暗路頭險  十二時中自着奸

쑥대밭에 새 무덤이 다 소년의 무덤이니, 수행(修行)하는데 귀밑을 희기를 기다리지 말아라. 생사대사(生死大事)를 모름지기 깨달아야 하니, 지옥 고통 길고 기니 어찌 등한히 하겠는가.
도업(道業)을 못 이루면 그 무엇에 의지하며, 사람 몸 한 번 잃고 언제 다시 돌아오리. 앞길이 캄캄하고 가야 할 길 험하구나. 하루 어느 때나 마음을 다잡아 도(道)를 구하여라.
*수한(壽限 목숨 수/한정 한) ; 타고난 수명(壽命 생물이 살아 있는 연한)의 한도(限度). 타고난 목숨의 한도.
*후기(後期 뒤 후/기약하다·약속하다·기간 기) ; ①어떤 기간을 둘, 또는 셋으로 나누었을 때, 맨 나중의 시기. ②뒷날의 기약.
*염(簾) ; 한시(漢詩)를 지을 때, 글자의 음의 높낮이를 맞추는 방법. 형식이 여러 가지인데, 가새염이 가장 보편화되었다.
*운(韻) ; ①소리와 음조가 비슷한 시행(詩行)의 끝부분. ②한시(漢詩)에 운(韻)으로 다는 글자.
*여하약하(如何若何) ; 이러쿵저러쿵. 이러하다는 둥 저러하다는 둥 자꾸 말을 늘어놓는 모양.
*상신실명(喪身失命) ; ‘몸 죽고 목숨 잃다’
*법담(法談 부처의 가르침 법/말씀·말할 담) ; 불교의 도리에 관하여 나누는 이야기. 또는 그러한 설법(說法). 선사(禪師)들이 본분(本分 : 근본 깨달음本覺)에 대하여 서로 묻고 대답하는 것. 법화(法話)와 같은 말.
*독보건곤(獨步乾坤) ; 건곤(乾坤)에, 천지에 홀로 걸어가는 것. 도리(道理)를 증득하여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것을 나타내는 말.
[참고①] 『무문관(無門關)』 ‘무문혜개(無門慧開) 스님의 서문’에서.
大道無門 千差有路 透得此關 乾坤獨步
대도에 문이 없다. 천 갈래 길은 있으니 이 관문을 꿰뚫으면 천지에서 홀로 걸으리.

[참고②] 『태고집(太古集)』 (雪栖 편, 김달진 역주 | 세계사) p228. 229. ‘석가 출산상(釋迦出山相)‘ 참고.
巍巍落落兮赤洒洒 密密恢恢兮淨裸裸 春風爛漫水悠悠 獨步乾坤誰伴我 若也山中逢子期 豈將黃葉下山下

높고 높음이여 아무것도 없고, 넓고 깊음이여 있는 그대로네. 봄바람은 난만하고 물은 흘러가는데, 건곤에 우뚝하여 누가 나를 짝하랴.
만일 산중에서 종자기(種子期)를 만났던들, 어찌 누른 잎 갖고 산을 내려왔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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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원(監院) ; 한 절의 사무를 총괄적으로 감독하는 소임. 또는 그 일을 맡은 스님.
*비로자나(毘盧遮那) ; 부처의 몸에서 나오는 빛과 지혜의 빛이 세상을 두루 비추어 가득하다(光明遍照, 遍一切處)는 뜻으로, 부처의 진신(眞身)을 이르는 말. 비로자나는 진리 그 자체인 법신을 형상화한 것.
*비로자나(毘盧遮那) 전신체(全身體) ; 전신(全身)은 '본질 그대로' '여래진신(如來眞身)'의 뜻으로 ‘비로자나 전신체’는 우리 개개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을 말한다.(조실스님 법문 275번 참고)
*해필(奚必 어찌 해/반드시 필) ; 하필(何必 : 다른 방도를 취하지 아니하고 어찌하여 꼭).
*진대지(盡大地 모든·전부의 진/클 대/땅 지) ; 모든 대지. 이 땅 전체를 가리키는 말.
*호래아들 ; 호래자식(배운 데 없이 막되게 자라 교양이나 버릇이 없는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
*냅대 ; 냅다(몹시 빠르고 세차게. 또는 그런 모양으로).
*법광(法狂) ; 수행의 과정에서 어떤 경계가 나타나서 제 정신을 차리지 못하여 언행의 절제가 사라져 미친 것과 같은 상태. 식광(識狂)이라고도 한다.
*송(頌) ; 게송(偈頌). 시(詩), 게(偈)와 송(頌) 모두 불교의 가르침을 싯구로 나타낸 것.
*찬(讚)하다 ; (...을) 칭찬하거나 찬양하다.
*견성(見性)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品)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음. 미혹을 깨뜨리고 자신의 청정한 본성을 간파하여 깨달음.
*패철(佩鐵 차다·휴대하다 패/쇠 철) ; 묏자리를 정할 때 풍수설에 따라 묏자리의 좋고 나쁨을 가려내는 지관(地官)이 썼던 나침반(羅針盤)이다. 『주역(周易)』에 기초한 오행과 십이간지 및 육십갑자가 표시되어 있고 방위도 세세하게 구분되어 있다.
*묏자리 ; 뫼(사람의 무덤)를 쓸 만한 자리. 또는 쓴 자리.
*중생(衆生) : 참 성품을 잃어버리고 망녕된 온갖 생각이 분주하게 일어났다 꺼졌다 하기 때문에, 온갖 세계에 돌아다니면서 났다 죽었다 하는 무리들, 곧 정식(情識)이 있는 것들을 모두 중생이라 한다.
그러므로 사람뿐 아니라 모든 동물과 귀신들과 하늘 사람들까지 합쳐서 하는 말인데, 유정(有情)• 함령(含靈) • 함식(含識) • 군생(群生) • 군맹(群萌) • 군품(群品) 같은 여러 가지 말로도 쓴다. 부처님은 구제의 대상을 인류(人類)에게만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와 같은 중생 전부를 가르치고 건지시는 것이다.
*환화(幻化) ; 환(幻). ①허깨비. 모든 사물은 여러 가지 인연(因緣)이 모여서 생긴 것으로 실체가 없는 것에 비유함.
환(幻)을 실(實)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중생의 미혹한 생각임. 환(幻)을 무(無)라고 생각하는 것은 이승(二乘 : 聲聞, 緣覺)의 공(空)에 얽매인 견해, 단공(但空 : 단지 空만을 집착하는 것)임.
환(幻)은 또 화(化)와 거의 같은 뜻이므로 환화(幻化), 꿈과 비슷하므로 환몽(幻夢)•몽환(夢幻)이라고도 한다.
②신기루, 아지랑이 같은 것.
*제접(提接 이끌 제/응대할·가까이할 접) ; (수행자를) 가까이하여 이끌다.
*한림(寒林) ; ①겨울의 낙엽이 진 숲. ②시다림(尸陀林 : 인도 라자그라하의 북쪽에 있던 시체를 버려두는 숲).
*도인(道人) ; ①불도(佛道)를 수행하여 깨달은 사람. ②불도(佛道)에 따라 수행하는 사람.
*일없다 ; ①필요가 없다. ②걱정하거나 꺼릴 것이 없다.
*등정(登程 오를 등/노정 정) ; 노정(路程)에 오름[登]. 길을 떠남. 등도(登途).
*운수(雲水) ; ①구름과 물을 아울러 이르는 말. ②떠가는 구름이나 흐르는 물같이 정처(定處 : 정한 곳. 또는 일정한 장소) 없음. ③운수납자(雲水衲子 : 여러 곳으로 스승을 찾아 도(道)를 묻거나 수행을 하러 여러 곳으로 다니는 스님을 머무름이 없는 구름[雲]과 물[水]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 ④탁발승(托鉢僧 : 탁발하는 스님)을 멋스럽게 이르는 말.
*아만(我慢 나 아/거만할·게으를 만) ; ①오온(五蘊 :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의 일시적 화합에 지나지 않는 아(我)를 실체라고 생각하는 그릇된 견해에서 일어나는 교만. 자아가 실재한다는 교만. ②우열의 관점에서 남과 나를 차별하여 자신을 높이고 남을 업신여기는 자아관.
안으로 자아를 대상으로 삼아[攀緣] 집착하는 제7 말나식(末那識)의 네 가지 번뇌[我癡, 我見, 我愛, 我慢]의 하나.
*밉상맞다 ; 밉상(-相)은 ‘마음에 들지 않고 거슬리는 데가 있는 미운 모습’을 이르는 말이고, ‘-맞다’는 부정적 의미를 갖는 일부 명사나 어근 뒤에 붙어, ‘그러한 상태에 처해 있거나 그러한 태도를 지니고 있음’의 뜻을 더하여 형용사를 만드는 말.
*법문(法門 부처님의 가르침 법/문 문) ; 불법(佛法)을 문(門)에 비유한 말.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門)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마구니 ; 마(魔). [범] mara 음을 따라 마라(魔羅)라 하고, 줄여서 마(魔)라고만 한다。장애자(障礙者) • 살자(殺者) • 악자(惡者)라 번역。목숨을 빼앗고 착한 일을 방해하며 모든 것을 파괴하는 악마를 말한다. 그러나  마(魔)는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에서 생기는 것이다.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용화선원刊) p64에서.
마(魔)란 생사를 즐기는 귀신의 이름이요, 팔만사천 마군이란 중생의 팔만사천 번뇌다. 마가 본래 씨가 없지만, 수행하는 이가 바른 생각을 잃은 데서 그 근원이 파생되는 것이다.
중생은 그 환경에 순종하므로 탈이 없고, 도인은 그 환경에 역행하므로 마가 대들게 된다。그래서 ‘도가 높을수록 마가 성하다’고 하는 것이다.
선정 중에 혹은 상주(喪主)를 보고 제 다리를 찍으며 혹은 돼지를 보고 제 코를 쥐기도 하는 것이, 모두 자기 마음에서 망상을 일으켜 외부의 마를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마의 온갖 재주가 도리어 물을 베려는 것이나, 햇빛을 불어 버리려는 격이 되고 말 것이다。옛말에 ‘벽에 틈이 생기면 바람이 들어오고, 마음에 틈이 생기면 마가 들어온다’고 하시니라.
*수좌(首座) ; ①선원(禪院)에서 좌선하는 스님. ②수행 기간이 길고 덕이 높아, 모임에서 맨 윗자리에 앉는 스님. ③선원에서 좌선하는 스님들을 지도하고 단속하는 스님.
*여래선(如來禪) ; 생각과 알음알이가 아주 끊어지지 않아서 말의 자취가 있고 이치의 길이 남아 있는 선.
*조사선(祖師禪) ; 교외별전(教外別傳) • 불립문자(不立文字)로서 말 자취와 생각의 길이 함께 끊어져서 이치나 일에 걸림이 없는 선. 언어와 문자에 의하지 않고 직접 스승으로부터 제자에게로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깨우치는 것을 전하고 있기 때문에 조사선이라 한다.
*선지식(善知識) ; ①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좋은 지도자. 훌륭한 지도자. 바르게 이끄는 사람. ②좋은 벗. 마음의 벗. 선우(善友).
*잡드리 ; ‘잡도리’의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그 대책. ③아주 요란스럽게 닦달하거나(단단히 윽박질러서 혼을 내다) 족침(견디지 못하도록 몹시 급하게 몰아치다).
*인가(印可 도장 인/옳을·인정할 가) ; 스승이 제자의 깨달음을 인정함.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