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 생활2024. 2. 28. 09:14

§(170) 선방에 와서 결제 또는 가정 생활 속에서 결제 / 기본자세인 좌선을 충실히 해야 생활 속에서도 공부가 잘된다 / 대중의 규칙을 자발적으로 순응하고 인욕해야 / 수도 생활은 배부르고 편안하기 위해서 온 것이 아닌 지혜(智慧)의 눈을 떠서 생사해탈(生死解脫)하는 데에 목적이 있다.

정진(精進)은 장소와 시간이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어서—대중이 모여서 사는 데에는 편의상 시간을 정하고 장소를 정하고 이렇게 해서 질서를 잡아 나가고는 있습니다마는, 실정진(實精進)에 있어서는 시간과 장소와 자세에 얽매일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송담스님(No.170)—1982(임술)년 하안거 결제 법어(82.04.15.음) (용170)

 

약 18분.

 


오늘은 임술년 4월 15일 하안거 결제날입니다. 오늘 결제(結制)에 들어가면 윤달이 안 들었으면 음력 7월 보름날 해제를 하게 됩니다마는 4월에 윤달이 들어서 음력 6월 15일에 해제(解制)를 하기로 했습니다.
석 달 동안 방부(房付)를 들인 스님네와 방부를 들인 보살님네가 이 법보선원에서 정진을 하시게 되겠습니다. 방부를 들이지 아니하고 백일기도에 동참하신 청신사 청신녀 여러분도 역시 이 결제하신 것이 되는 것입니다.
설사 이 선방에 와서 입방선(入放禪)을 안 하신다 하더라도 백일기도에 동참하신 분은 가정에서 생활 속에서 결제를 한 것이기 때문에 그 속에서 한 생각 한 생각을 잘 단속을 해서 정진을 해 주시기를 부탁을 합니다.

오늘은 이 법회에 참석하신 분들이 다른 법회 때보단 수효가 많이 줄어진 것 같습니다마는 꼭 오실 분이 오셨다고 나는 생각을 합니다. 백일(百日) 동안 결제 대중만 알맹이로만 딱 뽑아서 이렇게 오신 걸로 생각을 합니다.

정진(精進)은 장소와 시간이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어서—대중이 모여서 사는 데에는 편의상 시간을 정하고 장소를 정하고 이렇게 해서 질서를 잡아 나가고는 있습니다마는, 실정진(實精進)에 있어서는 시간과 장소와 자세에 얽매일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물론 가부좌(跏趺坐)나 반가부좌(半跏趺坐)를 하고 좌선(坐禪)을 하는 것이 참선하는 데 있어서 기본자세이기는 하지만, 그러기 때문에 기본자세를 시간과 장소가 허락이 되면은 항상 '기본자세에 충실한 것은 대단히 득력(得力)을 하는 데에 요긴(要緊)하다'고 고인(古人)네도 말씀을 하셨고 실지로도 경험을 해 볼 수가 있습니다마는,
그렇다고 해서 좌선 이외의 다니면서 하는 정진, 일하면서 하는 정진, 차를 타면서 하는 정진은 정진이 아니냐 하면은 그게 아니고, 기본자세를 충실히 익히는 것은 응용(應用)에 응용하는 데 도움이 되기 위해서 기본자세를 익히는 것입니다.

좌선(坐禪)을 새벽으로 한 시간 두 시간, 가정에서도 이렇게 착실히 해 놓으시면 그날 하루 동안 살림하면서, 차를 타시면서, 시장에 가시면서 또는 대인잡화(對人雜話)하면서 그런 행동하는 속에서 공부가 잘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기본자세를 충실히 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참선(參禪)이 꼭 절에 와서 결제(結制)만 해야만 하는 것이고, 더 나아가서는 머리를 깎고 스님이 되어야만 하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이 세상에 모든 사람이 스님이 되고 모든 사람이 절에 와서 결제를 할려고 한다면 용화사(龍華寺)와 같은 이런 절이 수십만 개가 생겨도 다 못 당해 낼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도 난리가 나고 말 것입니다.

가정에서 살림을 하면서 생활하면서 충실히 정진을 할 수 있게 될 때에 정말 살아 있는 불법(佛法)이 될 것입니다. 불법(佛法)이 그렇게 될 때에 이 불법으로 인해서 온 나라가 온 세계가 장엄(莊嚴)이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머리를 깎고 오직 정진만을 위해서 일생을 바친 스님네가 계셔야 하고 또 머리는 안 깎았지만 이렇게 절에 와서 방부를 들이고 결제를 하면서 알뜰히 정진을 하는 그러한 보살님도 많이 계셔야만 되는 것입니다.

기왕 방부(房付)를 들이고 정진을 하는 마당에는 대중(大衆)에 규칙이 있는 것입니다. 그 규칙은 형식상으로 볼 때에 대중의 각자의 행동을 구속(拘束)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 구속을 받기 위해서 자발적으로 방부를 들이고 여기에 모이신 것입니다.
그러한 구속(拘束)이 싫다면 구태여 여기에 방부를 들일 필요가 없고 이 도량(道場)에 모이실 까닭이 없는 것입니다. 방부를 들이고 여기 모여서 사는 데에는 그 구속을 스스로 원해서 오시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방부를 들이시면 대중의 규칙을 아무리 자기 개인적으로는 마땅치 않다 하더라도 대중을 위해서, 선방을 위해서, 우리 모두를 위해서 크고 작은 모든 규칙을 신심(信心)으로 환희심으로 자발적으로 그 규칙에 순응(順應)을 해야 하고 솔선해서 모범을 보여야 할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대중이 조용해지고 정말 공부하는 데에 아무 시비와 지장(支障)이 없어지게 될 것입니다.

각자가 규칙을 자발적으로 순응함으로써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 공부 잘되도록 할 뿐만 아니라, 동시에 자기 자신에 공부에도 제일 먼저 도움을 가져오게 될 것입니다.
자기 마음에 안 든다고 해서 불평과 불만을 터트리고, 한 사람 두 사람 세 사람이 앉아서 시비(是非)를 하고 물의(物議)를 일으키고, 이렇게 될 때에 대중 전체가 소란해지고 공연히 속이 상하고 물의가 일어나면 화두(話頭)도 간 곳이 없고, 속을 상하고 기분이 나빠서 정진도 되지도 아니할 것입니다.

자기 한 사람이 입을 함부로 놀려 가지고 여러 사람에게 피해를 주고 심지어는 선방(禪房) 전체의 분위기를 흐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리해서 여기저기 선방이 중간에 보따리를 싸 짊어지고 선방이 깨지기도 하고, 부분적으로 결제 안거 도중에 몇 사람이 떠나게도 되고, 이렇게 해서 여러 사람에게 피해를 끼치고 자기도 안거 동안에 물의를 일으켰다고 하는 낙인(烙印)을 찍히게 되고, 한 번 낙인을 찍히게 되면 간 곳마다 '저 사람이 저이는 아무 데 선방에 지내다가 중간에 보따리 싸 짊어진 사람이다' 이리해서 낙인이 딱! 찍히게 되어서 다른 선방에 가도 방부를 받기를 꺼리게 되는 것입니다.

석 달 동안 좋으나 궂으나 한 번 방부를 들였으면 인욕(忍辱)을 하고 '내가 여기를 무슨 목적으로 여기를 왔는가? 무슨 편안하고 배부르기 위해서 내가 여기에 왔는가? 또는 무슨 명예나 권리를 위해서 여기를 왔는가?'
명예를 위해서 오는 것도 아니요, 무슨 이끗을 위해서 오는 것도 아니고, 누구에게 칭찬을 받기 위해서 온 것도 아니요, 배부르고 편안하기 위해서 온 것도 아니면 무엇을 위해서 내가 여기를 왔어?

편안하기를 바란다면 각자 가정에서 지내면 누가 뭐라고 그래. 고행(苦行)을 사서 하기 위해서 모두 여기에 모이신 것이다 그 말이여.
고행을 하면서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몸이 고단하거나 할 때에도 새벽 3시에 일어나서 예불(禮佛) 젓수고, 참회하고 축원하고 그리고 정진하고. 하루 이틀이라면 모르지만 석 달 동안을 계속해서 그러한 생활을 한다고 하는 것은 정말 이 고행을 극복하고 정진해서 지혜(智慧)의 눈을 떠서 생사해탈(生死解脫)하는 데에 목적이 있기 때문에, 자발적으로 하기 때문에 이것이 가능한 것이지,
만약에 이걸 전혀 할 생각 없는 사람을 강제로 붙들어다가 이런 이 수도(修道) 생활을 시킨다고 하면 정말 이것은 감옥살이에 조끔도 뒤지지 아니할 것입니다.

가고 싶은 데 마음대로 갈 수가 있나, 먹고 싶은 것을 내 멋대로 먹을 수가 있느냐, 하고 싶은 것을 맘대로 할 수가 있나, 하나에서 백까지 규칙에 순응해야 하고, 조끔만 어기면 대중에 지적을 받고 공사(公事)를 당하고 심할 때에는 추방, 쫓겨 축출까지 당하게 된다 그 말씀이여.

그런데 발심(發心)을 해 가지고 자발적으로 할 때에는 그러한 구속과 고행이 조끔도 불편하지를 않고 조끔도 괴롭지 않고, 아무 불평불만이 없고,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너무너무 보람을 느끼고 너무 기쁘고 다행할 수가 없다 그 말이여.

문제는 당인(當人)이 얼마만큼 발심을 했으며, 얼마만큼 신심을 냈으며, 얼마만큼 바르게 정진을 하고 있는가?
발심을 션찮게 했고, 신심 돈발(頓發)이 약하고, 정진에 바른 법을 아지를 못하기 때문에 공연히 트집을 잡고 아무렇지도 않는 일을 가지고 긁어서 부스럼을 내 가지고 불평불만을 하고, 공부에 맛을 모르니까 오히려 좋은 일을 가지고도 트집을 잡아서 풍파를 일으켜서, 자기는 어피차 공부가 하기 싫고 공부 맛도 없고, 아무리 억지로 좀 하려고 해도 되지도 않고 그러니까 공연히 시비를 일으켜 가지고 못 먹는 감 찔러버리는 식으로 내가 공부 안 되니까 남까지 못하게 이리하고, 심한 경우에는 선방을 중간에 깨 가지고 대중을 파괴를 하는 그러한 경우도 있다 이 말씀이여.

죄(罪) 가운데에 무슨 죄가 제일 크냐 하면 대중에 화합(和合)을 깨는 죄, 또 하나는 부처님 몸에 피를 내게 하는 죄, 깨닫지 못하고 깨달랐다고 하고 증(證)하지 못하고 증(證)했다고 하는 죄, 이러한 죄가 대역죄(大逆罪)라, 죄 가운데에는 최고의 대역죄가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 모이신 분 가운데에는 그러한 분이 한 분도 안 계시고, 오직 자발적으로 자기도 공부 잘하고 자기가 공부 잘함으로써 남에게도 좋은 영향을 미칠 그런 모범적인 스님네와 그러한 훌륭한 신도 여러분만이 모이신 걸로 생각이 됩니다.
그러한 분들에게 구태여 이런 말씀을 할 필요가 없지만, 이러한 말씀을 함으로써 각자 명심을 해서 더욱 정진을 잘하시기를 바래는 뜻으로 말씀을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7분50초~25분1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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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제(結制 맺을 결/만들·법도 제) ; 참선 수행하는 안거(安居)에 들어감. 하안거는 음력 4월 15일에 결제하며, 동안거는 음력 10월 15일에 결제한다. 
*해제(解制 풀 해/만들·법도 제) ; ①(안거)를 마침. ②재계(齋戒)하던 것을 그만두고 풂.
*방부(房付 방·거처 방/줄·부탁할 부) ; 수행자가 절에 머물며 공부할 것을 인사드리고 허락을 구하는 일.
*청신사(淸信士) ; 출가하지 않고 재가(在家)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남자 신도, 곧 우바새(優婆塞).
*청신녀(淸信女) ; 출가하지 않고 재가(在家)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여자 신도, 곧 우바이(優婆夷).
*‘한 생각 한 생각을 잘 단속을 해서’ ; 일념단속(一念團束).
*일념단속(一念團束) ; 무슨 생각이든지 한 생각 났다 하면 그 생각이 뿌리를 내려 싹이 트고 잎이 피어 결국은 과보(果報)를 받는데, 한 생각 일어나자마자 즉각 자신의 본참공안(本參公案)으로 돌리는 것.
마음 속에 한 생각 일어난 것이 결국 말로 나타나고 행동으로 나타나서 그 한 생각 단속을 잘하면 극락에도 가고 부처도 될 수 있는데, 그 한 생각 단속을 잘못해서 죄를 지어 축생도 되고 지옥에도 가게 되는 것입니다.
*정진(精進) : [범] Vīrya  음을 따라 비리야(毘梨耶, 毘離耶) • 미리야(尾利也)라고도 쓴다. 보살이 수행하는 6바라밀(六波羅蜜)의 하나.
순일하고 물들지 않는[純一無染] 마음으로 부지런히 닦아 줄기차게 나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닦는 생각[能]과 닦는 것[所]이 있어서는 안 된다. 함이 없이 하는 것이 정진이다.

[참고]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 (마명보살馬鳴菩薩 지음. 진제 삼장眞諦三藏 한역漢譯) '수행신심분(修行信心分)'
【論】 云何修行進門 所謂於諸善事 心不懈退 立志堅强 遠離怯弱 當念過去久遠已來 虛受一切身心大苦 無有利益 是故應勤修諸功德 自利利他 速離衆苦

정진문(進門)을 어떻게 수행하는가? 소위 모든 선(善)한 일에 대하여 마음으로 게으르거나 물러남이 없어서, 뜻한 바가 굳세고 강하여 겁약(怯弱)을 멀리 여의고, 마땅히 과거의 아주 오래된 이래로 헛되이 일체의 몸과 마음에 큰 고통을 받아 아무런 이익이 없었음을 생각하여야 한다. 이러한 고로 마땅히 모든 공덕을 부지런히 닦아 자리이타를 행하여 속히 모든 고통을 여의어야 한다.

復次若人雖修行信心 以從先世來多有重罪惡業障故 爲邪魔諸鬼之所惱亂 或爲世間事務種種牽纏 或爲病苦所惱 有如是等衆多障礙 是故應當勇猛精勤 晝夜六時 禮拜諸佛 誠心懺悔 勸請隨喜 迴向菩提 常不休廢 得免諸障 善根增長故

또한 어떤 사람이 비록 신심(信心)을 수행할지라도 선세(先世)로부터 중죄와 악업의 장애가 많이 있는 까닭에 삿된 마구니와 여러 귀신의 뇌란(惱亂)을 받기도 하며, 혹은 세간의 사무 때문에 이리저리 끄달리고 얽매여 끌려다니며 혹은 병고로 괴로움을 당하는 것이니,
이러한 여러 많은 장애들이 있는 까닭에 응당 용맹히 정근하여 주야로 여섯 번[六時] 모든 부처님께 예배하여, 성심(誠心)으로 참회하며, 법사에게 법문을 청하고[勸請] 다른 사람의 선행에 따라 기뻐하며[隨喜], 깨달음의 지혜[菩提]를 회향하기를 항상 쉬지 아니하면 모든 장애에서 벗어나고 선근(善根)이 더욱 증장하는 까닭이다.
*대중(大衆) ; (산스크리트어, 팔리어) mahā-samgha, mahā-sabhā. 음역하면 마하승가(摩訶僧伽)이다. 많은 사람의 모임이란 뜻으로 참선 수도하는 스님들의 모임 또는 일반적으로 법문을 청하여 듣는 사부대중(四部大衆 비구 · 비구니 · 우바새 · 우바이)을 일컫는다.
*가부좌(跏趺坐 책상다리할 가/책상다리할 부/앉을 좌) ; 결가부좌(結跏趺坐)의 줄임말. 좌선할 때 앉는 방법의 하나. 가(跏)는 발바닥을, 부(趺)는 발등을 가리키는 말인데, 두 다리를 교차시켜 양쪽 발바닥이 위로 드러나게 앉는 좌법(坐法). 전가부좌(全跏趺坐) · 온가부좌(온跏趺坐) · 가부(跏趺) · 가좌(跏坐)라고도 한다.
오른발을 왼편 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은 뒤, 왼발을 오른편 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아 양쪽 발바닥이 드러나게 앉는 항마좌(降魔坐)와, 왼발을 오른편 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은 뒤, 오른발을 왼편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아 양쪽 발바닥이 위를 향하게 하여 앉는 길상좌(吉祥坐)가 있다.
*반가부좌(半跏趺坐) ; 부처님의 좌법(坐法)으로 좌선할 때 앉는 방법의 하나. 한쪽 다리를 구부려 다른 쪽 다리의 허벅다리 위에 올려놓고 앉는 자세이다.
*좌선(坐禪) ; 단정히 앉아서 가부좌(跏趺坐)나 반가부좌(半跏趺坐)를 하고, 단정히 앉아서 선(禪) 수행을 하는 것.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참고] 송담스님(No.793) - 2018년 동안거 결제 법문에서.
우리는 생로병사 속에서 살면서 생로병사가 없는 도리를 깨닫고자 불법을 믿고 참선(參禪)을 하고, 비록 한 생각 한 생각 났다가 꺼지고 또 일어났다가 없어지고, 울다가 웃다가 그러면서 죽음을 향해서 가고 있지마는, 그 죽음을 향해서 가는 속에서 생사해탈(生死解脫)하는 도리가 있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부처님의 법문(法門)을 의지해서 그것을 믿고 생사해탈을 위해서 우리는 참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생사해탈이라 하는 것이 이 육체를 가지고 죽지 않고 백 살, 이백 살, 오백 살, 천 살 살아가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그러한 생사해탈이 아니고 생사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달음으로 해서 생사해탈을 할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불법(佛法)은 생사윤회(生死輪廻)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는 종교인 것입니다. 이론적으로는 설명하기가 대단히 어려우나 부처님으로부터 역대조사(歷代祖師)를 통해서 오늘날까지 경허 선사, 만공 선사, 전강 선사로 해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고자 하는 법문을 우리는 믿고, 이론적으로 따져서 가리키고 배우는 것이 아니라 다맛 간단한 방법으로 그 진리를 깨닫는 법을 우리는 믿고, 그 법에 의해서 참선 수행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행히 우리는 불법을 믿고, 불법 가운데에서도 최상승법(最上乘法)인 활구참선(活句參禪)! 역대조사를 통해서 전수해 온 활구참선에 의해서 무상(無常) 속에서 영원을 살아가는 법을 우리는 믿고 그것을 실천하고 있는 것입니다.
간단하고도 간단한 일이나 이 최상승법 활구참선법을 믿는 사람은 확실히 불법의 근본 진리를 향해서 그것을 우리 몸을 통해서 그 진리를 체달(體達)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득력(得力) ; 수행이나 어떤 기술 · 운동에서 자꾸 되풀이해서 하면, 처음에는 잘 안되던 것이 할라고 안 해도 저절로 잘 되어질때 득력(得力)이라 표현. 수월하게 되어 힘이 덜어지는 것을 다른 표현을 쓰면 그것을 ‘힘을 얻었다[得力]’ 하는 것.
참선 수행에서는 화두에 대한 의심을 할려고 안 해도 저절로 의심이 독로(獨露)하게 되는 것을 ‘득력’이라고 말한다.

[참고] 『서장(書狀)』 (대혜종고 著) ‘증시랑(曾侍朗)에게 답함(여섯 번째)’
苟念念에  不退初心하고  把自家心識이  緣世間塵勞底하야  回來抵在般若上이면  雖今生에  打未徹이라도  臨命終時에  定不爲惡業所牽하야  流落惡道하고  來生出頭에  隨我今生願力하야  定在般若中하야  現成受用하리니  此時決定底事라  無可疑者니라.

참으로 생각생각에 초심(初心)에서 물러나지 말고 자기 자신의 마음이 세간의 번뇌와 반연하는 것을 잡아 돌이켜 반야(般若) 위에 이르게 하면, 설령 금생에 (이 일을) 타개(打開)하여 사무치지 못하더라도 임종시에 결정코 악업(惡業)에 이끌리는 바가 되어 악도(惡道)에 흘러 떨어지는 일은 없을 것이며, 내생에 태어나면 나의 금생 원력에 따라 반드시 반야 가운데에 있어 수용(受用)을 현전 성취(現前成就)할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결정적인 일이라, 의심할 게 없는 것입니다.

衆生界中事는  不著學하야도  無始時來로  習得熟하며  路頭亦熟이  自然取之에  左右逢其原하니  須著撥置니이다.
出世間學般若心은  無始時來로  背違라  乍聞知識의  說著이어도  自然理會不得하나니  須著立決定志하며  與之作頭抵하야  決不兩立이니다.

중생계의 일은 배우지 않더라도 아득한 옛날부터 익혀서 무르익어졌으며, 인생길에도 역시 익어져서 자연스레 취하여 그 중생계의 일 속으로 들어가니, 마땅히 이 습기를 없애 버리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이에) 세간을 나와서 반야(般若)를 배운다는 마음은 시작을 알 수 없는 때로부터 등지고 어겨왔으므로 잠깐 선지식의 설법(說法)을 듣는다 해도 쉽사리 이해되지 않습니다. 모름지기 결정(決定)한 뜻을 세워서 더불어 머리를 맞대고 겨루어 나가야 합니다. (습기와 반야는) 결코 양립되지 않습니다. 

此處에  若入得深하면  彼處는  不著排遣하야도  諸魔外道가  自然竄伏矣니이다.  生處는  放敎熟하고  熟處는  放敎生이  政爲此也니  日用做工夫處에  捉著欛柄하면  漸覺省力時가  便是得力處也니이다.

이 곳[般若心]에 깊이 들어가게 되면 저 곳은 (습기를 굳이) 물리쳐 보내지 않아도 모든 마(魔)와 외도가 자연히 항복해 숨을 것입니다. 설은 곳[生處]은 익게 하고, 익은 곳[熟處]은 설게 함이 바로 이 때문이니, 일용에 공부하는 곳에서 요점을 잡고[欛柄] 차츰 힘이 덜어진다고 느낄 때가, 바로 그때가 힘을 얻는 곳입니다.
*고인(古人) ; ①불보살(佛菩薩)님을 비롯한 역대조사(歷代祖師), 선지식을 말한다. ②옛날 사람. 옛날 선승(禪僧).
*불법(佛法) ; 부처님이 깨달은 진리(法). 부처님의 교법(敎法). 부처님이 설한 법. 부처님의 가르침.
*장엄(莊嚴 엄숙할•삼가할•꾸밀 장/엄할•공경할•꾸밈 엄) ; ①좋고 아름다운 것으로 국토를 꾸미고, 훌륭한 공덕을 쌓아 몸을 장식하고, 향이나 꽃 따위를 부처님께 올려 장식하는 일. ②건립하는 것. 건립. 훌륭히 배치, 배열되어 있는 것. ③장식. 물건을 장식하는 것. 아름답게 장식함. 훌륭한 것. 엄숙하게 장식된 모양, 모습. 장식물.
*도량(道場) : ①붓다가 깨달음을 이룬 곳, 곧 붓다가야의 보리수(菩提樹) 아래를 말함. ②불도(佛道)를 닦는 일정한 구역. 수행하는 곳. ③사찰. [참고] ‘도장’으로 읽지 않고 ‘도량’으로 읽음.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화두(공안)에는 '이뭣고?' '판치생모' '무자' '정전백수자' 등이 있다.
*선방(禪房) ; ①참선(參禪)하는 방. ②선원(禪院).
*인욕(忍辱 참을 인/욕되다·수치스럽다 욕) : [산스크리트어] Kṣānti  욕(辱)되는—부끄럽고 치욕적이고 불명예스러운—것을 견디어 참는 것이다. 육바라밀(六波羅蜜) 가운데 하나.
무슨 곤란이나 역경을 당하더라도, 남을 원망하거나 성내거나 그 고통과 곤란을 피하려고 하지 않고 기꺼이 받으며 참고 견디어 내는 것이다. 참음으로써 마음을 흐트리지 않고 평안하게 하여 자기의 본래면목을 밝혀 해탈에 이른다.

역경(逆境)뿐만 아니라, 중생이 만나는 경계에는 순경(順境)이 있는데, 순경에 대해서도 삼가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이 순경계 · 역경계를 여덟 가지로 분류한 것이 팔풍(八風)인데, 팔풍은 능히 사람의 마음을 흔들어 움직여 중생의 바다에 풍랑을 일으키므로 오직 참음으로써 이겨내야 한다.

[참고 ❶]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저 | 송담선사 역 | 용화선원 刊) p107-108. (가로판 p112)
若無忍行하면  萬行不成이니라

만약 참는 행이 없다면 만 가지 행이 이루어지지 못하리라.
    
(註解) 行門이  雖無量이나  慈忍이  爲根源이니라  古德云,  忍心은  如幻夢이요 辱境은  若龜毛라 하시니라

수행하는 길이 한량없지만 자비와 인욕이 근본이 되느니라. 고덕이 이르되 「참는 마음이 꼭둑각시의 꿈이라면, 욕보는 현실은 거북의 털 같으리라」 하시니라.

[참고 ❷] 『대지도론(大智度論)』 (용수보살 造 | 구마라즙 漢譯 | 석법성 韓譯, 운주사 p338) 제6권, '大智度初品中意無礙釋論(초품 중에 의무애 설명)'
復次有二種忍 生忍法忍 生忍名衆生中忍 如恒河沙劫等 衆生種種加惡心不瞋恚 種種恭敬供養心不歡喜

또한 두 종류의 인(忍)이 있으니, 생인(生忍)과 법인(法忍)이다. 생인은 중생들 속에서 인욕하는 것을 말하니, 갠지스강 모래 수만큼의 겁 동안 중생들이 여러 가지의 악을 가해도 마음은 성냄이 없고, 여러 가지의 공경과 공양을 해도 마음은 기뻐하지 않는 것이다.

復次觀衆生無初 若有初則無因緣 若有因緣則無初若無初亦應無後 何以故初後相待故 若無初後中亦應無

또한 중생을 관해 보면 처음이 없나니, 만약 처음이 있다면 즉 인연이 없는 것이고, 만약 인연이 있다면 즉 처음이 없는 것이다. 만약 처음이 없다면 또한 응당 후(뒤)도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처음과 후(뒤)가 서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만약 처음과 후(뒤)가 없다면 중간도 또한 없어야 한다.

如是觀時不墮常斷二邊 用安隱道觀衆生不生邪見 是名生忍 甚深法中心無罣礙 是名法忍

이와 같이 관(觀)할 때 상(常) · 단(斷)의 두 극단에 빠지지 않고, 안온한 도를 사용하여 중생을 관(觀)하고 삿된 견해가 생기지 않는다. 이를 생인이라 한다. 심심법(甚深法 12인연법 혹은 진법)에서 마음은 걸림이 없나니, 이를 법인이라 한다.

*팔풍(八風) : 팔경(八境). 팔풍경계(八風境界). 팔풍은 세상에서 사랑하거나 미워하는 바로서 능히 사람의 마음을 흔들어서 움직이게 하므로 팔풍(八風)이라 함.
—이쇠(利衰 이로울 리/약할 쇠) : 내 뜻에 맞고(利) 내 뜻에 어기는 것(衰).
—예훼(譽毀 기릴 예/비방할 훼) : 나 안보는 데서 나를 찬미하는 것(譽), 나 안보는 데서 나를 비방하는 것(毀).
—칭기(稱譏 일컬을 칭/나무랄 기) : 면전에서 찬미하는 것(稱), 면전에서 비방하는 것(譏).
—고락(苦樂 괴로울 고/즐거울 락) : 몸과 마음을 괴롭히는 것(苦), 몸과 마음을 즐겁게 해주는 것(樂).
『몽산법어』 (용화선원 刊) p155 (가로판 p148)

*팔풍, 팔세법(八世法, attha lokadhamma) : 세간(世間, 중생의 세계) 특유의 여덟가지 어려움. 이득과 손실(利衰), 좋은 평판과 나쁜 평판(譽毀), 칭찬과 비난(稱譏), 고통과 행복(苦樂)<칠각지 p57, 고요한소리 刊> 팔풍경계를 요약하면 결국 역순경계(逆順境界).

*고행(苦行) ; ①천상(天上)에 태어난다든지 소원을 성취하기 위해 주로 단식(斷食)이나 호흡의 제어와 같이 육신을 극도로 괴롭히는 수행.
②불교 이외의 외도들이 닦았던 수행법으로 깨달음을 얻는데에 목적을 두었지만, 육체에 고통을 줄수록 정신이 더 자유로워진다고 하는 잘못된 믿음에 근거하여 육체에 고통을 줌으로써 본능과 욕망을 끊는 것.
③의식주에 대한 욕심과 집착을 버리고 몸과 마음을 닦는다는 의미. 12두타(頭陀)의 고행이 여기에 상응하며 정진(精進)의 의미를 포함한다.
④중생을 위해서 자신의 몸과 마음을 바치는 것. 또한 이에 상응하는 행하기 어려운 수행을 닦는 것을 말한다.
*예불(禮佛) ; ①경건한 마음으로 부처님에게 절함. ②절에서 아침 · 저녁 두 차례에 걸쳐 불·보살(佛·菩薩)에게 예배(禮拜)하는 의식.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저 | 송담선사 역 | 용화선원 刊) p111. (가로판 p116)
禮拜者는 敬也며 伏也니 恭敬眞性하고 屈伏無明이니라

예배라 하는 것은 '공경하는 것'이며 '굴복하는 것'이니, 참된 성품을 공경하고 무명을 굴복시키는 것이니라.

(註解) 身口意가 淸淨하면 則佛出世니라

몸과 입과 뜻이 청정하면 그것이 곧 부처님이 출세(出世)하신 것이니라.

*젓수다 ; ①궁중에서 ‘잡수다’를 이르던 말. 잡수다-->‘먹다’의 높임말. ②신과 부처님께 소원같은 것을 비는 것. ③(사람이 제사를) 차려 올리다.
*참회(懺悔 뉘우칠 참/뉘우칠 회) ; ①자기의 잘못에 대하여 깨닫고 깊이 뉘우치며, 다시는 같은 잘못을 짓지 않겠다고 결심함. ②신이나 부처님 또는 대중 앞에서 자기의 죄를 뉘우치고 용서를 구함.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저 | 송담선사 역 | 용화선원 刊) p156~157 참고. (가로판 p163~164)
有罪則懺悔하고  發業則慚愧하면  有丈夫氣象이요,  又改過自新하면  罪隨心滅이니라.

허물이 있거든[有罪] 곧 참회하고, 잘못한 일이 있으면[發業] 곧 부끄러워할 줄 알면[慚愧] 대장부의 기상이 있다 할 것이요, 또한 허물을 고쳐 스스로 새롭게 하면, 그 죄업은 마음을 따라 없어지느니라.

(註解) 懺悔者는  懺其前愆이요  悔其後過라.  慚愧者는  慚責於內하고  愧發於外라.  然이나 心本空寂이라  罪業이  無寄니라

참회(懺悔)란 먼저 지은 허물을 뉘우치고, 뒷날에는 다시 짓지 않겠다고 맹세하는 것이다. 부끄러워한다[慚愧]는 것은 안으로 자신을 꾸짖고, 밖으로는 자기의 허물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은 본래 비어 고요한 것이라, 죄업이 붙어 있을 곳이 없는 것이다.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를 벗어나 해탈하였다는 말. 생사의 굴레에서 벗어나 깨달음의 세계, 열반의 경지에 드는 것.
*생사(生死) ; ①생과 사. 살아 있는 것과 죽은 것. ②유전(流轉 윤회의 생존. 생사의 갈림길)의 모습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말. 미혹(迷惑 도리에 어두운 것). 미혹의 세계. 미혹의 모습. 현실 사회의 고뇌. 태어남과 죽음이 번갈아 끊임이 없는 미혹의 세계. 윤회와 같음.
[참고 ❶] 송담스님(No.389)—1989년(기사년) 부처님오신날 법어(89.05.12)에서.
중생의 번뇌심(煩惱心) ‘한 생각’ 일어날 때 새로 태어난 것이고, 그 번뇌가 꺼질 때 또 죽는 것, ‘우리의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 한 것이 바로 생사(生死)인 것입니다.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 한 그것이 원인이 되어서 생사윤회를 하는 것이어서, ‘이 몸뚱이 살아있으면서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거 그 자체가 바로 생사심(生死心)이요, 생사심이 바로 생사윤회(生死輪廻)인 것입니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천 만의 생각이 일어났다 없어지고, 생각이 일어났다 없어집니다.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을 모르는 사람은 죽었다 깨어날 때마다 업(業)만 더하고, 점점 고통이 심한 윤회를 거듭할 것입니다마는, 활구참선법을 믿는 사람은 한 생각이 일어날 때 ‘이뭣고?’ 자신의 본참화두(本參話頭)를 드는 것입니다.
‘이뭣고?’ 한마디 본참화두를 거각(擧却)할 때, 우리의 마음속에 탐진치(貪瞋痴) 삼독(三毒)을 물리치고, 업장소멸이 되고, 진리를 향해서 나아가게 됩니다.

[참고 ❷]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 상권. 동진(東晉) 평양(平陽) 사문(沙門) 석법현(釋法顯) 한역(漢譯). (동국역경원 | 최민자 번역)
爾時 世尊卽說偈言 我欲棄捐此 朽故之老身 今已捨於壽 住命留三月 所應化度者 皆悉已畢竟 是故我不久 當入般涅槃 我所說諸法 則是汝等師 頂戴加守護 修習勿廢忘 汝等勤精進 如我在無異

그때 세존께서 곧 게송을 말씀하셨다. 나는 쇠약하고 늙은 이 몸을 이제 버리려 하네. 지금 이미 목숨을 버렸어야 함에도 수명을 늘려 석 달을 머물려 하네. 교화(敎化)하고 제도해야 할 일을 모두 다 이미 마쳤네. 그러므로 나는 머지않아 반열반에 들 것이네.
내가 말한 모든 법이 곧 그대들의 스승이니 공경하여 받들고[頂戴] 더욱 지키고 보호하여 닦아 익혀 잊지 말고, 그대들은 부지런히 정진(精進)하여 내가 있을 때와 다름이 없어야 하네.

生死甚危脆 身命悉無常 常求於解脫 勿造放逸行 正念淸淨觀 善護持禁戒 定意端思惟 攝情於外境 若能如此者 是則護正法 自到解脫處 利益諸天人

나고 죽음은 매우 위태롭고 몸과 목숨은 모두 무상하니 항상 해탈을 구하여 방일(放逸)한 행동하지 말아야 하네. 바르게 생각하고 청정하게 관하며 금계(禁戒)를 잘 보호하고 지키며, 산란하지 않은 한결같은 마음[定意]으로 바르게 사유하여 바깥 경계로 치달리는 감정을 거두어야 하네.
만약 이와 같이 하면 이것이 곧 정법(正法)을 보호하는 것이니 스스로 해탈처에 이르러 모든 천상 세계와 인간 세상을 이롭게 하리라.
*해탈(解脫) : [산스크리트어] Vimoksa  [팔리어] Vimutti  음을 따라 비목차(毘木叉) • 비목저(毘木底) • 목저(木底)라고 한다. 모든 번뇌의 속박을 끊어 버리고 온갖 고통에서 벗어난다는 뜻이므로, 도탈(度脫) 혹은 자유자재(自由自在)라고도 한다. 열반은 불교 구경(究竟)의 이상으로써 여러가지 속박에서 벗어난 상태이므로 곧 해탈이라고도 할 수 있다.
*공사(公事) ; 대중공사(大衆公事).
*대중공사(大衆公事) ; 사찰에서, 사찰 운영이나 공지 사항 또는 스님의 그릇된 행위에 대한 문책 등이 있을 때, 사찰에 있는 모든 스님들이 모여 서로 의견을 주고받는 일.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을 일으킴[發].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보리심은 모든 부처님이 부처님이 될 수 있었던 바탕이 되는 종자이고 청정한 법이 자라날 수 있는 좋은 밭이기 때문에 , 이 마음을 발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면 속히 위없는 보리를 증득한다.
*당인(當人 맡다·주관하다 당/사람 인) ; 어떤 일에 직접 관계가 있는 그 사람.
*돈발(頓發 갑자기 돈/일어날·나타날·밝힐 발) ; 일정한 단계를 밟지 않고 직접적, 비약적으로 일어나는. [참고] 頓 - 直頓의 뜻, 곧바로.
*‘깨닫지 못하고 깨달랐다고 하고 증(證)하지 못하고 증(證)했다고 하는 죄’ ; 미득위득(未得謂得) 미증위증(未證謂證). 얻음[得]이 없는데 얻었다고 말하고, 증(證)한 것이 아닌데 증했다 말하는 것.
*대역죄(大逆罪 큰 대/거스를 역/죄 죄) ; 예전에, 국가와 사회에서 지켜야 할 도리를 크게[大] 거스르는[逆] 일을 저지른 죄(罪). 왕권을 범하거나 임금이나 부모를 죽이는 큰 죄를 이르던 말. 불교에서는 오역죄(五逆罪)에 해당한다.
*오역죄(五逆罪) ; 다섯 가지 지극히 무거운 죄. 다섯 가지의 내용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으나 대표적인 것은 다음과 같음.
①아버지를 죽임. ②어머니를 죽임. ③아라한을 죽임. ④승가의 화합을 깨뜨림. ⑤부처님의 몸에 피를 나게 함. 이 다섯 가지는 무간지옥(無間地獄)에 떨어질 지극히 악한 행위이므로 오무간업(五無間業)이라고도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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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도 있습니다.

참선법 A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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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