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상(無常)2019. 7. 29. 18:45
§(537) 동서고금 모든 역사가 물거품 같은 것 / 정치·사업도 자비와 지혜로써 불보살 원력으로 해야 / 참나를 깨닫는 최상승법에 우리 몸과 마음을 바쳐야.
 
세상에 나가서 출세하려고 발버둥치기보다는 차라리 그러한 빈부귀천과 명예와 권리와 모다 그러한 데 휩쓸리지 않고 살아가는 길이 없을까? 정말 남을 해롭게 하지 아니하면서 자기의 영원한 행복을 추구하는 길은 없는 것인가? 산승(山僧)이 어렸을 때 철없는 생각에도 그런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태어나서 할 것은 참나를 깨닫는 이 최상승법, 이것밖에 없습니다. 이것 말고는 우리가 목숨 바칠 곳이 없습니다.
자기 자신의 행복, 가정의 행복, 사회 국가의 행복, 인류의 행복을 위해서는 이 참나를 찾는, 이 최상승법을 제외하고는 더이상 좋은 법은 없다고 감히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송담스님(No.537)—1994년 10월 첫째일요법회. (용537)
 

약 19분.

 

동서고금에 역사를 보면 원나라를 세워서 태조가 된 징기스칸이나 또는 인도를 갖다가 통일해서 전륜성왕(轉輪聖王)이 된 아쇼카 왕이나 또는 불란서에서 난 영웅 나폴레옹이나 다 자기의 정치적 야욕, 야망을 채우기 위해서 크고 작은 많은 전쟁을 치러 가지고 많은 인명(人命)을 살상(殺傷)을 했습니다.
 
아쇼카 왕도 처음에 형을 죽이고 자기가 왕이 될 때 백 명이 넘는 형제와 친척과 왕족을 무참하게 다 죽여 가지고 왕이 되었고 또 수없는 나라와 사람을 죽여 가지고 인도의 영토를 넓히기 위해서 무참한 살생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참회를 하고 불법(佛法)에 귀의(歸依)해서 정말 불법에 의한 그러한 정치를 해 가지고 오늘날까지 참 전륜성왕(轉輪聖王)으로 칭송을 역사적으로 받고 있지만, 정말 부처님이나 불보살의 높고도 큰 자비의 눈으로 본다면 그런 일을 꼭 잘했다고 칭찬할 수도 없습니다.
 
조카를 죽이고 임금이 된 수양대군 세조, 그것을 도운 한명회 일당들이 참 무자비한 방법으로 충신을 모다 죽이고 권력을 누렸으나 그런 것도 썩 칭찬할 만한 일이 못되는 것이고 또 풍신수길이 임진왜란을 일으켜 가지고 한국에 피바다를 만드는 일, 6·25 동란에 김일성이가 남침을 해 가지고 많은 동포를 그렇게 무참하게 죽게 했습니다.
이라크의 쿠웨이트를 침공해 가지고 무참한 전쟁을 일으킨 일하며, 우리나라도 홍경래 난(亂)이라든지, 이괄의 난이라든지 그밖에 수없는 크고 작은 난이 있었지만, 이러한 일들이 수없이 동서고금에 되풀이되면서 오늘날까지 역사를 꾸며 왔습니다.
 
산승(山僧)이 어렸을 때 고향에서 마루에서, 비 오는 날 마루턱에 앉아서 그 초가집을 이은 처마에서 물이 주르르르 하니 처마끝에서 물이 떨어진 것을 보고 있었는데, 큰 물방울이 떨어지면 작은 물방울은 그 물방울로 인해서 없어지게 돼.
물방울이 뚝 떨어지면 동그란 버큼이 일어가지고 1, 2초 또는 오래 간 것은 3초 동안 있다가 또 위에서 다음 물방울이 떨어지면서 그것이 없어지기도 하고, 저절로 꺼지기도 하고, 그런 것을 보는데.
 
이 세상에 영웅달사와 크고 작은 모든 사람들이 태어나 가지고 서로 권력 다툼, 세력 다툼, 부자—온갖 종류의 사람들이 나서 다 자기의 야망을 성취하기 위해서 일생을 싸우다가 죽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고, 성공하기도 하고 실패하기도 하고 그러는데, 이것이 하나의 물방울과 같은 것이다.
내가 대학을 나오고 그래서 벼슬을 하고, 판검사가 되고, 정치인이 되고, 큰 갑부가 된들 저런 물방울의 신세와 무엇이 다를 것이 있는가!
 
그걸 보고는 세상에 나가서 출세하려고 발버둥치기보다는 차라리 그러한 빈부귀천과 명예와 권리와 모다 그러한 데 휩쓸리지 않고 살아가는 길이 없을까? 정말 남을 해롭게 하지 아니하면서 자기의 영원한 행복을 추구하는 길은 없는 것인가? 철없는 생각에도 그런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물방울이 꺼지고 또 다른 물방울을 꺼지게 하면서 자기는 또 다른 물방울에 꺼짐을 당하면서 그 처마밑에 물이 흐르고 흘러서 개천을 이루고, 개천과 개천이 모여서 큰 강이 되고, 그 강이 흘러 흘러서 바다에 간다 말이여.
그렇듯이 인생이 서로 남을 뺏기고 빼앗기고, 죽이고 죽임을 당하면서 동서고금의 모든 역사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사람에 따라서는 큰 업적을 남기고 인류에 공헌한 그런 사람도 있습니다. 아쇼카 왕이 그렇게 많은 사람을 죽이고 그랬지만 그것을 참회(懺悔)하고, 불법에 귀의해서 전륜성왕이 되어 가지고 불법에 의한 자비의 정치를 해 가지고 그런 큰 업적을 남겼습니다.
그분은 주로 도덕적인 교육에 힘을 썼습니다. 그런 법을 제정을 해 가지고 석벽이나 암굴 또는 석주(石柱)를 세워서 그것을 조각을 해 가지고 일반 백성이나 정치하는 사람들에게 큰 목표가 되도록 그렇게 했습니다.
그것이 오늘날 역사학자들에 의해서 그것이 다 발견이 되어 가지고 옛날 그 비문(碑文)을 다 판독을 하게 되었습니다마는.
 
정치를 하거나 무슨 사업을 하거나 그 아쇼카 왕처럼 반드시 불법에 의해서 자비와 지혜로써 한다면 그것이 바로 불보살 화현(化現)이 아닌가 싶습니다.
마땅히 정치를 하려면 불보살 화현이 나타나 가지고 왕이 되어서 정치를 하고, 부자도 불보살 화현이 나타나 가지고 그 부력(富力)을 가지고 많은 사람들을 갖다가 긍휼히 여기는 자비 보시를 행하는 그렇게 되어야 하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러려면 이 자리에 모이신 사부대중 여러분은 마땅히 십선대계(十善大戒)를 몸소 믿고 실천해서, 그리고 최상승법(最上乘法)에 의해서 자성(自性)을 깨달아 가지고 지혜와 자비의 권화신(權化身)으로서 세세생생(世世生生)에 출현을 한다면 바로 불보살의 화현이라고 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기 전에는 함부로 정치를 할 것이 아니고, 큰 재산도 가질 것이 못 됩니다.
그러한 능력과 원력을 갖지 못한 사람이 쓸데없이 탐욕심과 야욕심과 허영심을 가지고 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권리를 획득을 하고 또는 재산을 획득해서, 짓느니 못된 짓만 하게 되고 많은 사람을 죽이고 탄압을 해서 무간지옥(無間地獄)에 갈 죄를 짓는 것밖에는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십선대계를 받은 그리고 불명(佛名)을 받고 화두(話頭)를 타신 분들은 기왕 그러한 원력(願力)을 가지고 꾸준히 정진을 하시기를 간곡히 부탁합니다.
 
 
최상승법은 대단히 힘이 들고 고행이라 할 수가 있겠으나 사실은 대안락지법문(大安樂之法門)이라고 고조사(古祖師)는 말했습니다.
 
처음에는 앉기도 힘이 들고, 다리도 무릎도 아프고, 허리도 아프고 어깨도 아프고 잠도 마음대로 못 자고 초 단계에서는 힘이 든 것은 사실이나, 올바른 방법으로 자세를 단정히 하면서도 자연스럽게 긴장을 다 풀고 그렇게 몸을 단정히 하고. 그리고 눈은 평상으로 뜨고.
그리고 호흡은 단전호흡(丹田呼吸)을 하되 무리가 있어서는 안 돼. 자연스럽게 자기의 체격에 맞도록 자연스러운 호흡을 하되, 천천히 들어마셨다가 잠깐 머물렀다가 천천히 내쉬면서 '이뭣고?'
 
오늘 시간 관계상 보다 더 구체적으로 말씀을 드릴 수가 없습니다.
그것에 대한 녹음 테이프가 있으니 사무실에서 그것을 구해서 처음으로 참선(參禪)하신 분은 열 번, 스무 번, 오십 번, 백 번을 항상 틀어놓고 집에서 고대로 해 나가면 자연히 단정히 앉는 법, 호흡을 바르게 하는 법을 터득을 하게 될 것이고.
 
몸을 단정히 하고 호흡을 바르게 할 줄 알면 화두를 바르게 들 줄 알아서 불급불완(不急不緩), 너무 급하게 하지도 않고 너무 늘어지지도 않게.
눈에다가, 눈 미간에다가 '내 천(川)'자를 쓰면서 용을 쓰면서 '이뭣고' 이렇게 하는 게 아니야.
 
아주 자연스러운 자세와 자연스러운 호흡으로 불급불완하게 의단(疑團)을 하되, 화두를 배꼽 밑에 단전(丹田)에다 따악 놔두고 알 수 없는 의단으로 그 의심(疑心)을 하되,
여기 앉아서 집을 생각하면 집안이 환하고 또 서울역을 생각하면 서울역이 환하고, 어릴 적에 그 어떠한 광경을 지금 생각하면 환하듯이 그러한 정도의 힘으로 알 수 없는 의심을 관(觀)하는 거여.
그런데 무슨 힘이 들것이냐 그말이여. 해 갈수록 편안하고, 해 갈수록 힘을 덜게 되는 거여.
 
빨리 깨달으려고 그런 조급한 생각을 내지도 말고, 빨리 누가 툭! 터지게 해 주기를 바라지도 말고, 사량분별(思量分別)로 따져 들어가지 말고, 올바른 방법으로 해 나가야 할 것이다.
 
사람이 태어나서 할 것은 이것밖에 없습니다. 이것을 해 놔야, 이것 말고는 우리가 목숨 바칠 곳이 없습니다.
 
나라를 위해서 군인으로 나가 가지고 나라를 위해서 싸워 가지고 나라에게 목숨을 바친 수없는—우리나라 참, 국군묘지에 가면은 군인들의 묘지가 있습니다마는.
이 공부를 하면 나라를 위해서 싸울 필요가 없습니다. 이 나라나 저 나라나 각기 자기 나라 있는 대로 그 나라에서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일해서 서로 이웃나라도 없는 것을 교환하면서 서로 다 잘 살면 되는 것인데 뭐 하러 싸울 것이냐 그말이여.
 
무력으로 이웃을 침공해 가지고 자기 나라를 넓히려고 하는 것은 옛날 얘기고, 지금은 그런 짓을 할 필요가 없고. 그러나 이웃나라에서 호시탐탐 우리나라를 침공하려고 무력을 증강하고 노리고 있다면 마땅히 우리는 그것을 지켜야 할 것입니다마는.
우리의 근본 생각은 항상 농사를 짓는 사람이나, 장사를 하는 사람이나, 학문을 하는 사람이나, 관리나 민간인이나 모두가 다 참나를 깨닫는 이 최상승법에 우리의 몸과 마음을 바쳐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서 농사도 짓고, 장사도 짓고, 그래야만 이 나라 모든 국민이 한마음 한뜻이 되고, 한 가정이 화합이 되고, 이웃과 서로 자비로운 마음으로 만나게 되고, 회사도 남의 회사를 망하게 하고 자기만 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서로 잘되게 하는 방법을 강구하게 되고, 온 나라가 다 화합을 하게 되면 감히 이웃나라도 우리나라를 침공을 하지 못할 것입니다.
백성들이 서로 마음과 마음이 화합이 안 되고, 저만 잘살라고 남을 함부로 짓밟고, 각 가정은 불화가 일어나고, 이렇게 자기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선 물불을 가리지 않고 남을 해코자 하고, 이렇게 되어서는 이웃나라가 침공을 하게 되고, 침공을 해도 그것을 잘 방어하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의 행복, 가정의 행복, 사회 국가의 행복, 인류의 행복을 위해서는 이 참나를 찾는, 이 최상승법을 제외하고는 더이상 좋은 법은 없다고 감히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금생(今生)에 약불종사어(若不從斯語)하면 후세당연한만단(後世當然恨萬端)하리라
나무~아미타불~
 
금생에 이 산승이 간곡히 말씀드린 이 말씀을 믿고 실천하지 아니하면 머지않은 후세에 한(恨)이 만단(萬端)이나 될 것이다.(57분24초~1시간15분53초)(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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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륜성왕(轉輪聖王) ; 산스크리트어 cakravarti-rāja 인도 신화에서, 칠보(七寶)를 갖추고 정법(正法)으로 수미산(須彌山)의 사방에 있는 대륙을 다스리는 왕.
32상(相: 신체의 특징) · 7보(寶)를 갖추고, 무력에 의하지 않고 정법에 의해 세계를 정복·지배한다고 한다.
하늘로부터 받은 윤보(輪寶)를 굴려 모든 장애를 물리친다고 함. 윤보에는 금·은·동·철의 네 가지가 있는데, 금륜보(金輪寶)를 지닌 금륜왕(金輪王)은 네 대륙을 다스리고, 은륜보(銀輪寶)를 지닌 은륜왕(銀輪王)은 세 대륙을, 동륜보(銅輪寶)를 지닌 동륜왕(銅輪王)은 두 대륙을, 철륜보(鐵輪寶)를 지닌 철륜왕(鐵輪王)은 한 대륙을 다스린다고 함.
전통적으로 인도 마우리아왕조의 아쇼카왕[阿育王](BC 3세기)을 세속의 전륜성왕이라고도 말한다.
*아쇼카왕 ; ‘아육왕(阿育王)’. 무우(無憂)라고 번역.
*아육왕(阿育王) ; 산스크리트어 aśoka 팔리어 asoka의 음사. 무우(無憂)라고 번역.
찬드라굽타(candragupta)가 마가다국(magadha國) 난다(nanda) 왕조를 무너뜨리고 세운 마우리야(maurya) 왕조의 제3대 왕으로 인도 남단부를 제외한 전 인도를 통일함. 재위 기원전 270년경 - 230년경.
즉위 8년에 인도 북부 동해안의 뱅골만에 위치한 - 오늘날 오릿사주의 대부분 - 깔링가국과 전쟁을 벌여 승리하였으나, 전쟁으로 인한 사람들의 살육, 사망, 이주의 대 참상을 매우 괴로워하고 비통하게 여겨, ‘무력의 정복’을 버리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근본으로 비폭력과 정의에 기초한 ‘다르마(法)의 정복’으로 전환하였다.
 
아육왕의 주선으로 도읍지인 화씨성(華氏城)의 아육승가람(阿育僧伽藍)에서 천여 명의 비구들이 제3차 결집(結集)을 행하여, 경(經)·율(律)·논(論)의 삼장(三藏)을 정리함.
불교에 귀의하여 수많은 탑과 사원을 세우고, 수많은 사절들을 인도 전역에 파견하여 불교를 전파함. 특히, 자신의 아들 마힌다(mahinda)와 딸 상가밋타(saṅghamittā)를 스리랑카에 파견하여 그곳에 불교를 전함.
왕은 자신의 뜻과 행적을 널리 알리기 위해 암벽(바위)에 또는 석주(石柱 돌기둥)에 칙령(勅令)을 새겨 세웠다. 왕이 죽은 후, 마우리야 왕조는 서서히 분열되어 기원전 180년경에 멸망함.
 
아쇼카의 '다르마(法)' 개념은 직접적인 불교의 특징적 용어들을 사용하고 있지 않지만, 핵심은 윤리적인 바른 삶 ①바른 인간관계 : 웃어른 · 이웃에 대한 존경, 수행자에 관대함, 노예나 종의 바른 처우, 모든 교단의 화합과 비난 금지. ②계행과 바른 삶 : 살생금지, 동물 희생제 금지, 적게 소비. ③다르마의 수행과 백성의 복지 : 출가자나 재가자 모두 7가지의 경전을 듣고 명상하도록 함, 보시와 복지.
곧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고 실천하는 결실을 통해 모든 사람이 현세와 내세의 모든 이익과 행복을 얻기 바라는 부처님의 ‘다르마(法)’를 근본으로 한다.
*귀의(歸依) ; ①부처님의 가르침을 믿고 의지함. ②몰아의 경지에서 종교적 절대자나 종교적 진리를 깊이 믿고 의지하는 일. ③돌아가거나 돌아와 몸을 의지함.
*산승(山僧) ; 스님이 자신을 겸손하게 일컫는 말.
*참회(懺悔 뉘우칠 참/뉘우칠 회) ; ①자기의 잘못에 대하여 깨닫고 깊이 뉘우치며, 다시는 같은 잘못을 짓지 않겠다고 결심함. ②신이나 부처님 또는 대중 앞에서 자기의 죄를 뉘우치고 용서를 구함.
[참고]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156~157 참고. (가로판 p163~164)
有罪則懺悔하고  發業則慚愧하면  有丈夫氣象이요,  又改過自新하면  罪隨心滅이니라.
허물이 있거든[有罪] 곧 참회하고, 잘못한 일이 있으면[發業] 곧 부끄러워할 줄 알면[慚愧] 대장부의 기상이 있다 할 것이요, 또한 허물을 고쳐 스스로 새롭게 하면, 그 죄업은 마음을 따라 없어지느니라.
 
(註解) 懺悔者는  懺其前愆이요  悔其後過라.  慚愧者는  慚責於內하고  愧發於外라.  然이나 心本空寂이라  罪業이  無寄니라
참회(懺悔)란 먼저 지은 허물을 뉘우치고, 뒷날에는 다시 짓지 않겠다고 맹세하는 것이다. 부끄러워한다[慚愧]는 것은 안으로 자신을 꾸짖고, 밖으로는 자기의 허물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은 본래 비어 고요한 것이라, 죄업이 붙어 있을 곳이 없는 것이다.
*화현(化現) ; 부처님이나 보살이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각(各) 중생의 소질에 따라 여러 가지로 모습을 바꾸어 이 세상에 나타나는 것. 화신(化身)이라고도 한다.
*부력(富力) ; ①재산을 지닌 정도. ②많은 재산으로 인하여 생기는 힘.
*십선계(十善戒) ; 몸[身]과 입[口]과 뜻[意]으로 짓는 10가지 죄—살생(殺生), 투도(偸盜), 사음(邪婬), 망어(妄語), 기어(綺語), 악구(惡口), 양설(兩舌), 탐욕(貪慾), 진에(瞋恚), 사견(邪見)를 짓지 않겠다고 결심함.
*십악(十惡) ; 몸[身]과 입[口]과 뜻[意]으로 짓는 열 가지 죄악.
〇몸[身] : ①살생(殺生 살아 있는 생명을 죽임). ②투도(偸盜 남의 재물을 훔침). ③사음(邪婬 삿된 음행).
〇입[口] : ④망어(妄語 거짓말이나 헛된 말). ⑤기어(綺語 진실이 없는, 교묘하게 꾸민 말). ⑥양설(兩舌 이간질하는 말). ⑦악구(惡口 남을 괴롭히는 나쁜 말, 욕).
〇뜻[意] : ⑧탐욕(貪欲 탐내어 그칠 줄 모르는 욕심). ⑨진에(瞋恚 성냄). 사견(邪見 그릇된 견해).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간화선(看話禪) ; 화(話)는 화두(話頭)의 준말이다. 간화(看話)는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을 본다[看]’는 말로써,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이 화두를 관(觀)해서, 화두를 통해서 확철대오하는 간화선을 전강 조실스님과 송담스님께서는 ‘최상승법(最上乘法)’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고 말씀하신다.
*자성(自性) ; ①사물 그 자체의 본성. 본성 ②본래부터 저절로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권화신(權化身) ; 불보살이 중생을 구제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로 변하여 나타난 몸.
*세세생생(世世生生) ; 많은 생애를 거치는 동안. 태어날 때마다. 세세(世世)토록.
*무간지옥(無間地獄) ; 아비지옥(阿鼻地獄)이라고도 함. 아비(阿鼻)는 산스크리트어 avīci의 음사(音寫)로서 ‘아’는 무(無), ‘비’는 구(救)로서 ‘전혀 구제받을 수 없다’는 뜻. 이 지옥에 떨어진 중생은 한 치의 빈틈도 없이 끊임없이 고통을 받기 때문에 무간(無間)이라 한다.
아버지를 죽인 자, 어머니를 죽인 자, 아라한을 죽인 자, 승가의 화합을 깨뜨린 자, 나쁜 마음으로 부처님의 몸에 피를 나게 한 자 등, 지극히 무거운 죄를 지은 자가 죽어서 가게 된다는 지옥.
 
이 지옥에 떨어지는 죄인에게는 필파라침(必波羅鍼)이라는 악풍(惡風)이 있는데 온몸을 건조시키고 피를 말려 버리며 또 옥졸이 몸을 붙잡고 가죽을 벗기며, 그 벗겨낸 가죽으로 죄인의 몸을 묶어 불 수레에 싣고 훨훨 타는 불구덩이 가운데에 던져 넣어 몸을 태우고, 야차(夜叉)들이 큰 쇠 창을 달구어 죄인의 몸을 꿰거나 입, 코, 배 등을 꿰어 공중에 던진다고 한다. 또는 쇠매(鐵鷹)가 죄인의 눈을 파 먹게 하는 등의 여러 가지 형벌로 고통을 끊임없이 받는다고 한다.
*불명(佛名) ; 법명(法名). ①출가하여 절에서 행자(行者)로서 일정 기간 동안 수행한 뒤, 계(戒)를 받을 때 스승이 지어 주는 이름. ②스님이 불법(佛法)에 귀의(歸依)한 남녀신자에게 지어 주는 이름.
[참고] 송담스님(No.470)—92년 4월 첫째 일요법회
불법(佛法)에의 깊은 인연으로, 발심(發心)해서 진리를 향해서 살아가는 부처님의 아들딸로 새로 태어났기 때문에 그런 의미로 불보살(佛菩薩)의 이름을 따서 불명으로 받는다. 더 철저히 말하면 그때마다 불명을 받을 수는 없지만, 참선 수행을 통해서 하루하루 새로 태어나야 하고 시간마다 새로 태어나야 한다.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화두(공안)에는 '이뭣고?' '판치생모' '무자' '정전백수자' 등이 있다.
*원력(願力) : 원(願)하는 바를 이루려는 의지. 본원력(本願力)•숙원력(宿願力)•대원업력(大願業力)•서원(誓願)•행원(行願)이라고도 한다.
*단전 호흡(丹田呼吸) ; 참선 수행에 있어서 호흡법은 우리의 몸을 건강하게 하고, 마음도 안정을 시키고 통일되게 하여 우리가 참선을 해 나가는 데에 중요한 준비, 기초 훈련입니다.
단전호흡을 하게 되면은 혈액순환이 잘되고, 혈액순환이 잘됨으로 해서 몸안에 모든 노폐물이 깨끗하게 밖으로 배설이 되서 몸이 가벼워지고, 건강해지고 따라서 정신이 맑아지고, 정신이 안정이 된다.
주의할 점은 자신의 호흡의 길이에 알맞게 시작하고 자연스럽게 해야지, 절대로 억지로 호흡 시간을 길게 잡아 무리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공양(식사) 후 2시간 지나서 하라.
 
〇 단전호흡 요령.
의식적으로 숨을 저 배꼽 밑에 아랫배 하복부[丹田]까지 숨을 들어마셨다가 잠깐 머물렀다가 조용하니 길게 숨을 내쉬는 호흡.
들어마시는 시간 한 3초, 들어마셨다가 잠깐 머무르는 시간이 한 3초, 내쉬는 시간은 4~5초, 이렇게 해서 내쉬는 시간을 좀 길게 잡아서 내쉰다.
 
들어마시되, 아랫배가 터지도록 잔뜩 들어마시지 말고 한 80%정도만 들어마시고, 80% 들어마신 상태에서 3초 동안 잠깐 머물렀다가 조용히 내쉬는데, 들어마실 때에는 차츰차츰 아랫배가 볼록해지게 만들고, 내쉴 때는 차츰차츰 배를 홀쭉하게 만든다.
그래서 들어마셨다 잠깐 머물렀다 또 내쉬되, 배가 그것에 따라서 볼록해졌다 또 홀쪽해졌다, 배가 나왔다 들어갔다 하도록 의식적으로 호흡을 하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No.118)—80년 동안거해제 법문에서. (1분 32초)
숨을 들어마실 때 ‘코로 들어마신다’고 생각을 하지 말고 ‘저 뒤에서 쭈욱 들어마셔 가지고, 이 궁둥이로 해서 아랫배로 요렇게 들어온다’고 이렇게 생각을 하고 들어마시면 아주 수월하게 할 수가 있습니다.
‘숨을 코로 들어마셔 가지고 아랫배까지 이렇게 집어 넣는다’고 생각하면, 들어마셔 가지고 이 윗배 오목가슴 정도까지 가 가지고 거기서 딱! 맥혀 가지고 아래로 내려가지를 않아서 애를 먹게 됩니다. 그런 상태에서 억지로 하다 보면 가슴이 답답하고 영 시원하지를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코로 들어마신다’고 생각하지 말고 ‘저 뒤에서 궁둥이로 쑤욱 들어마셔 가지고 직선으로 들어와 가지고 아랫배가 볼록해지도록 들어온다’ 이렇게 생각하고 들어마시고, 내쉴 때도 ‘그 자리에서 직선으로 뒤로 쑤욱 내쉰다, 내보낸다’ 이런 기분으로 숨을 내쉬는 것입니다.
그래서 『숨은 직선으로 뒤에서 이렇게 들어마시고 내쉴 때는 직선으로 뒤로 이렇게 내보낸다』 들어마실 때에는 배가 차츰차츰차츰 아랫배가 볼록해지고, 내쉴 때는 차츰차츰차츰 아랫배가 홀쪽해진다. 이렇게 의식을 하면서 호흡을 하는 것입니다.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 왔다.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의단(疑團 의심할 의/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의심(疑心) :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해 ‘알 수 없는 생각’에 콱 막히는 것.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이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수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이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또는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또는 ‘조주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바른 깨달음은 알 수 없는 의단, 알 수 없는 의심에 꽉 막힌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단전(丹田) ; 배꼽 아래로 한 치(寸) 삼푼 되는 곳(위치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아랫배에 해당. '단'은 약(藥)을 뜻하며, '단전'은 인체에서 가장 귀중한 약을 만들어내는 장소로서의 밭[田]이라는 의미. 도가와 한의학에서는 단전을 생명력, 활동력의 원천으로 본다.
*'알 수 없는 의심을 관(觀)하는 거여' ; 의심관(疑心觀). 화두를 거각하여 알 수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그 알 수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觀照)를 하는 것.

 

[참고] 송담스님(세등선원 No.68)—정묘년 동안거 해제 법어(1988.01.17) (5분 59초)
처음에 공부를 할 줄 모르는 사람은 힘을 좀 써야 화두가 들리니까 힘을 좀 써서 하기도 하고, 자꾸 숨을 들어마셨다 내쉴 때마다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한번 하고 한참 있으면 화두가 없어져 버리니까, 부득이 숨을 내쉴 때마다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하고 자주자주 들을 수 밖에는 없지만, 한 철, 두 철, 세 철 이렇게 해 가다 보면 그렇게 자주 들지 안 해도 화두가 잘 들리게 된다 그말이여.
 
들려 있걸랑 화두를 다시 또 거기다 덮치기로 자꾸 들어 쌀 필요는 없는 것이여.
화두가 희미해져 버리거나, 화두가 없어지고 딴 생각이 들어오거나 하면 그때 한번씩 떠억 챙기면 되는 것이지, 화두가 이미 들어져서 알 수 없는 의심이 있는데, 거기다 대고 자꾸 화두를 막 용을 쓰면서 자꾸 들어 싸면 그것은 아주 서투른 공부다.
 
그렇게 순일하게, 화두를 들려고 안 해도 화두가 터억 들려서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걸랑, 그 독로한 의단을 성성(惺惺)한 가운데 묵묵히 그것을 관조(觀照)를 하는 거여. 알 수 없는 의심의 관(觀)이여. 의심관(疑心觀).
 
거기에는 고요하다는 생각도 붙을 수가 없고, 편안하다는 생각도 붙을 수가 없고, 맑고 깨끗하다는 생각도 어떻게 거기다가 그런 생각을 붙일 수가 있냐 그말이여.
고요하고 맑고 깨끗하고 편안한 그런 생각에는 조금도 그런 생각을 두어서도 안되고, 그런 생각을 즐겨서도 안되고, 그런 생각을 집착해서도 안돼.
 
다맛 우리가 할 일은 알 수 없는 의단(疑團)만을 잘 잡드리 해 나가는 거여.
너무 긴하게 잡드리를 해서도 안되고, 너무 늘어지게 해서도 안되고, 긴(緊)과 완(緩) 긴완(緊緩)을 득기중(得其中)을 해야 혀. 그것이 묘한 관(觀)이라 말할 수가 있는 거여.
 
관(觀)이라 하는 것도 일종에 생각이지만, 생각없는 생각을 관(觀)이라 하는 거여.
우리가 참으로 올바르게 화두를 들을 줄 모르는 사람은 부득이 해서 생각을 일으켜 가지고 화두를 참구를 하는데, 일구월심 정진을 해서 참으로 바르게 화두를 참구할 줄 아는 사람은 바로 관(觀)으로 들어가는 거여. 관이란 생각없는 생각으로 생각하는 것을 관이라 그러는 거여.
 
조금도 늘어지지도 않고, 조금도 긴하지도 아니한 ‘묘(妙)한 의심(疑心)의 관(觀)’으로 해 나가야 되는 거여.
 
1분의 백천 분의 1 같은 그런 짧은 시간도 생각을 일으켜서 그 일어나는 잡념을 물리칠라 할 것도 없고, 그렇게 화두가 순일하게 된다 해도 아주 미세한 생각은 이렇게 일어날 수가 있어.
일어나지만 그것을 일어나는 생각을 물리칠라고 생각을 내서는 아니되는 거여. 생각이 일어나더라도 일어난 채로 그냥 놔둬 버리고, 자기 화두만을 잘 관해 나가면 그 생각은 자취없이 스쳐서 지내가 버리는 거여.
 
마치 앞으로 춥도 덥지도 않는 이 봄철이 돌아오겠지마는, 그 봄철에 도량이나 동산에 나가서 그 산책을 하면서 포행을 하면서 정진을 헐 때에 춥지도 덥지도 않는 봄바람이 귓전에 스쳐간다고 해서 그 봄바람 때문에 화두가 도망갈 필요는 없거든.
그냥 귓전을 스쳐서 지내가고 옷자락이 좀 팔랑거리거나 말거나 내버려둬 버리고, 나는 성성적적(惺惺寂寂)허게 그 의심의 관(觀)을 단속해 나가는 것처럼, 일어나는 크고 작은 모든 번뇌가 일어난다 하드라도 그냥 놔둬 버려.
 
끝없이 일어났다가 없어지고 일어났다 꺼져 버리고, 내가 거기에 따라주지만 아니하고, 집착하지만 아니하고, 물리칠라고 하지도 말고, 그러면은 그냥 제 결에 일어났다가 제물에 그냥 스쳐가 버리는 거여. 그까짓 것은 내가 공부해 나가는 데 조금도 방해로울 것이 없는 것이여.
우리 활구참선을 하는 수행자는 승속(僧俗)을 막론하고 그 화두를 올바르게 잡두리 해 나갈 줄만 알면,
어디를 가거나 다 선불장(選佛場)이요, 그게 바로 선방(禪房)이요, 공부처(工夫處)다 그말이여.

 

[참고] 송담스님(No.256)—85년 2월 첫째 일요법회(85.02.03) (5분 57초)
금년 여름에 보살선방에 백여섯 분이 방부를 들여서 항시 칠팔십 명이 그렇게 참 엄격한 규율 속에서 정진들을 모다 애쓰고 계시는데 자세를 바르게 하고, 호흡을 바르게 하고, 나아가서 세 번째 가서는 화두(話頭)를 어떻게 의심(疑心) 하느냐?

이 화두를 의심하는 방법, 이것이 또한 간단하지만 참 이것이 어려운 것입니다.
한 철, 두 철, 세 철, 3년, 5년, 10년을 해도 이 화두를 참으로 올바르게 화두를 참구(參究)하고, 관조한다는 것은 어려운 것입니다. 이것은 한 말로 ‘이렇게 하는 것이 좋다’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법문을 듣고 고대로 또 하고, 고대로 하면서 또 법문을 듣고 해서 스스로 많은 노력, 스스로 그것을 공부해 나가는 요령—급하지도 않고 너무 늘어지지도 아니하며, 그 요령을 스스로 터득을 해야 합니다.
스스로 터득한다니까 선지식(善知識)도 필요 없고, 자기 혼자 어디 돌굴이나 토굴에 가서 막 해제끼면 되냐 하면 그게 아니에요. 반드시 선지식의 지도를 받되, 받아 가지고 하면서도 스스로 그 묘한 의관(疑觀)을 얻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묘한 의심관이라 하는 것은 도저히 어떻게 말로써 설명해 가르켜 줄 수가 없습니다. 자기가 일구월심(日久月深) 항시 면면밀밀(綿綿密密)하게 의심해 가고 관해 가고, 그 자세와 호흡과 화두를 삼위가 일체가 되도록 잘 조정을 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필경에는 그 묘한 의심관인 것입니다. 그 의심관, 관(觀)이라 하는 것도 일종의 생각이지만 ‘생각 없는 생각’을 관이라 이렇게 말할 수가 있는데, 막연하게 어떤 관이 아니라 이 활구참선(活句參禪)은 ‘의심(疑心)의 관’이라야 돼.

옛날에는 해가 떨어지려고 할 때, 서산에 지려고 할 때, 저 수평선에 해가 지려고 할 때에, 그 큰 맷방석만한 해가 땅에 질락 말락 할 때 그 빨갛고 아름다운 거—해가 중천에 있을 때는 눈이 부셔서 볼 수가 없는데, 해가 질 무렵에는 눈이 부시질 않고 그 아름답고 벌건 굉장히 큰 그 해를 볼 수가 있습니다.

그 아름다운 해를 한참 보는 것입니다. 마지막 딱 떨어져서 안 보일 때까지 한 시간 내지 두 시간을 눈이 부시지 아니할 때부터서 그것을 관하기 시작해 가지고 마지막 질 때까지 관찰하고서, 그 다음에는 밤새 그 눈을 감으나 뜨나 그 찬란하고 아름다운 둥그런 해를 관(觀)하는 것입니다.

눈을 감고서도 보이는 것이 그것이 관(觀)인 것입니다. 눈을 뜨나 감으나 상관없이 항시 있는 것이 그것이 관인데, 그것을 갖다가 일관(日觀)이라 그러거든. 해를 관하는 수행법이여.
 
밤새 그 둥근 해를 갖다가 관하고, 그 이튿날 하루 종일 관하다가 또 해 질 때 다시 또 그 관을 해서, 그 관을 다시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또 밤새 관하고, 그 이튿날 관하고 또 해 질 때 관하고 해서 평생 동안을 그렇게 관을 해 나가는데, 이것도 하나의 수행 방법입니다.
이러한 그 일관이라든지 또 달을 관하는 관법이라든지, 아까 백골관이라든지, 여러 가지 관법(觀法)이 있는데, 이 참선도 하나의 ‘의심의 관법’이라 이렇게 말할 수가 있습니다.

성성(惺惺)하고 적적(寂寂)하면서도, 일부러 화두를 들려고 하지 아니해도 저절로 그 의심관이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그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도록, 처음에는 ‘이뭣고?’ ‘이뭣고?’하지만 나중에는 ‘이뭣고?’ 안 해도 알 수 없는 의심이—해가 질 때 봐두었던 그 둥근 해가 밤에도 고대로 보이고, 그 이튿날에도 고대로 환하게 보이듯이, 의심관이 그렇게 되어야 하거든.
 
그렇게 해서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면 일주일을 가지 못해서 공안을 타파(打破)하게 되고, 일체 천칠백 공안을 일관도천(一串都穿)을 해. 자기의 본래면목(本來面目)과 역대조사(歷代祖師)의 면목을 사무쳐 보게 되는 것입니다.
*사량분별(思量分別) : 사량복탁(思量卜度), 사량계교(思量計較)와 같은 말。 생각하고 헤아리고 점치고 따짐。 가지가지 사량분별(思量分別)로 사리(事理)를 따짐。 법화경 방편품(法華經方便品)에 「이 법은 사량분별로 능히 알 바가 아니다」라고 함.
[참고] 『몽산법어(蒙山法語)』 (용화선원刊) 박산무이선사선경어(博山無異禪師禪警語) p155~158 에서.(가로판 p149~151)
做工夫호대  不可在古人公案上하야  卜度하야  妄加解釋이니,  縱一一領畧得過라도  與自己로  沒交渉하리라.  殊不知古人의  一語一言이  如大火聚로다.  近之不得하며  觸之不得이온  何況坐臥其中耶아.  更于其中에  分大分小하며  論上論下인댄  不喪身失命者幾希리라.
 
공부를 짓되 옛사람의 공안에 대하야 헤아려[卜度] 망령되이 해석을 붙이지 말지니, 비록 낱낱이 알아낸다 할지라도 자기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으리라.
자못 고인의 한 말씀 한 말씀이 마치 큰 불덩어리 같음을 알지 못하는도다。 가까이 할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거늘 하물며 그 속에 앉았다 누웠다 하리요? 더구나 그 가운데서 크고 작음을 분별하며 위라 아래라 따진다면, 생명을 잃지 않을 자 거의 없으리라。
 
做工夫人은  不可尋文逐句하며  記言記語니,  不但無益이라  與工夫로  作障礙하야  眞實工夫가  返成緣慮하리니,  欲得心行處絕인들  豈可得乎아
 
 공부 지어 가는 사람은 문구(文句)를 찾아 좇지 말며 말이나 어록을 기억하지 말지니, 아무 이익이 없을 뿐 아니라 공부에 장애가 되어서 진실한 공부가 도리어 망상의 실마리가 되리니, 마음의 자취가 끊어지기[心行處絕]를 바란들 어찌 가히 될 수 있으랴?
 
做工夫호대 最怕比量이니, 將心湊泊하면 與道轉遠하리니, 做到彌勒下生去라도 管取沒交渉하리라. 若是疑情이 頓發的漢子인댄 如坐在*鐵壁銀山之中하야  只要得個活路이니, 不得箇活路면  如何得安穩去리요  但恁麼做去하야  時節이  到來하면  自有箇倒斷하리라
 
 공부를 지어 가되 가장 두려운 것은 비교하여 헤아리는 것[比量]이니, 마음을 가져 머뭇거리면 도(道)와 더불어 더욱 멀어지리니, 미륵불이 하생할 때까지 공부를 할지라도 아무 소용이 없으리라.
만약 의정이 몰록 발한[頓發] 사람일진댄 마치 철벽(鐵壁)이나 은산(銀山) 속에 들어앉아서 다만 살 길[活路]을 찾는 것같이 할지니, 살 길을 찾지 못하면 어찌 편안히 지내가리오? 다만 이와같이 지어 가서 시절이 오면 저절로 끝장이 나리라.
*(게송) ‘금생약불종사어(今生若不從斯語) 후세당연한만단(後世當然恨萬端)’ ;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 ‘자경문(自警文)’ 게송.
〇勸汝慇懃修善道  速成佛果濟迷倫  今生若不從斯語  後世當然恨萬端
너에게 도 닦기를 은근히 권하노니, 어서 빨리 불과(佛果) 이뤄 미혹 중생 건지어라. 금생에 만일 이 말을 안 따르면, 후세에 당연히 한(恨)이 만 갈래나 되리라.
*만단(萬端) ; 수없이 많은 갈래.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