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 ‘딴 생각[別念]’ 안됨 / 공부가 순일하게 된 때에 잘 다잡이 해야 / 참선은 바른 스승의 지도를 받아야 / 새옹지마 / 밝아지면 어두운 것은 찰나에 없어진다.


조금도 ‘딴 생각[別念]’을 해서는 아니됩니다. 겁을 내지도 말고, 걱정도 내지도 말고, 좋아하지도 말고, 다못 자기의 본참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생각 ‘이뭣고?’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그뿐인 것입니다.

참선을 하게 되면 첫째, 지혜의 눈을 뜨게 되거든. 지혜의 눈을 떠서 깨닫기 이전에 참선을 시작할 때부터서 벌써 지혜인이 되는 것이여.

참선을 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감정적인 그러한 생각이 자연히 쉬어지기 때문에, 어리석은 생각이 쉬어지면 그것이 지혜로운 거여. 꾸정물이 따로 있고, 말간 물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그 찌꺼기가 가라앉으면 맑아지거든.

밝은 것과 어두운 것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밝아졌다 하면은 어두운 것은 찰나에 그냥 없어지는 것이지, 밝은 것이 오니까 어두운 것이 그냥 꼼짝을 못하고 저 마루 밑구멍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에요.

**송담스님(No.112)—79년 11월 관음재일 법어(79.11.24)


(1) 약 19분.  (2) 약 18분.


(1)------------------


여러 가지 공안이 있지만 반드시 선지식(善知識)으로부터 지도 받은 한 공안에 일여(一如)하게 참구(參究)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처음에는 곧 잘되어 갑니다. ‘이대로 해 가면 얼마 안 가면은 득력(得力)을 할 수 있겠거니’ 이리 생각하고,

한 철, 두 철을 지내다보면 영 옛날보다도 훨씬 더 공부가 잘 안되고 화두가 잘 안 들리고, 번뇌 망상이 더 잘 퍼일어나고 영 자리가 잡히지를 않고 이렇게 해서 애를 먹게 됩니다.


그러한 경우라 하더라도 조금도 번뇌심을 내지 말고 심호흡을 하면서 착실히, 착실히 공부를 다져나가면 그렇게 해서 한 고비를 넘기면은 다시 또 수월하게 공부가 되어가는 것입니다.


수월하게 공부가 화두가 잘 일여하게 들리고 잘되어간다 하더라도 조금도 기뻐하는 생각을 내지 말 것입니다.

기뻐하는 생각 내면 벌써 그것은 이미 화두가 아니기 때문에, 기뻐하는 그러한 번뇌심에 끌려들어가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기뻐하지도 말고 또 잘 안된다고 해서 번뇌심(煩惱心)도 내지 말 것입니다. 이것이 공부를 지어나가는데 있어서 아주 요긴한 것이 되는 것입니다.


공부를 잘 애를 써서 밀밀면면(密密綿綿)하게 성성적적(惺惺寂寂)하게 공부를 다잽이를 해나가면 화두를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들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그렇게 들려고 해도 금방 도망가고, 금방 딴 생각이 들어오고 그랬던 것이,

자꾸자꾸 해가면은 나중에는 헐려고 안 해도 화두가 떠억 들어지게 되면서 시간이 한 시간, 두 시간이 언제 지내간지 모르게 시간이 지내가고,


그때는 다리가 저린 것도 없고, 몸이 괴로운 것도 없고, 가슴이 답답한 것도 없고, 정신도 깨끗하고 자기가 지금 어디에 앉아있다고 하는 그것마저도 모르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의 몸뚱이마저도 의식을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무어라고 표현할 수 없이 깨끗하고 조용하고 편안하고 싱그럽고 이것은 말로써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서 화두는 그런 가운데 너무 조용하고, 너무 깨끗하고, 너무 편안해서, 까딱하면 화두를 그때 망각(却)을 하는 수가 있습니다. 절대로 그러한 경지에서 화두를 망각해서는 안됩니다.

그렇게 고요하고 깨끗하고 맑고 한 그 가운데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이뭣고?’ 알 수 없는 의단(疑團)이 깨끗하게 독로(獨露)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곳에서 잠깐이라도 화두를 놓쳐버리고 ‘아! 좋구나. 이러한 경지로서 계속해서 나갔으면, 이럴 때 어떤 선지식이 툭 깨닫게 해주셨으면, 이러다가 빨리 깨달았으면’ 이러한 생각을 해서는 아니됩니다.

‘이러다가 내가 까딱하면 미치면 어찌할고’ 별별 쓸데없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중요한 고비에서 그 천길만길 되는 길을 간신히 간신히 올라가 가지고, 발 한번 삐끗해 가지고 천길만길 낭떠러지에 떨어지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조금도 ‘딴 생각[別念]’을 해서는 아니됩니다. 겁을 내지도 말고, 걱정도 내지도 말고, 좋아하지도 말고, 다못 알 수 없는 생각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그뿐인 것입니다.



이러한 경지에서 정진을 하면은 옆에 사람들도 다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아하! 저이가 지금 공부가 순일(純一)하게 되어가는구나’ 알게 되기 때문에 대중 가운데에 그렇게 공부가 되어가는 사람이 있으면 입승(立繩) 스님을 비롯해서 좌우에서 서로서로 잘 보호를 해줘야 합니다.


대중 가운데에는 혹 ‘지가 공부한 척 하고 그런다’고 아주 뒤에서 수근수근하고 이런 경우도 있습니다만은 이것은 남의 일이 아닙니다. 내가 언제 그렇게 공부가 또 순일하게 되어 갈 때가 있을런지를 모르는 것입니다.

이렇게 공부가 순일하게 되어 갈 때 주위에서 잘 보호를 해주고, 자기도 그럴 때에 아주 조심스럽게 그 공부를 잘 보호해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하루 이틀 사흘 나흘 닷새 엿새 이렇게 나가면 나중에는 일어서도 화두가 고대로 있고, 밥을 먹을 때도 화두가 고대로 있고, 똥을 눌 때도 고대로 있고,

천만 명이 우글거리는 시장 속에 들어가도 조금도 화두가 흐트러지지를 아니하고, 딴 생각을 일부러 좀 할려고 해도 딴 생각이 되지를 않고 이러한 경지에까지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거기에서 머지않아서 칠통(桶)을 타파(打破)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공부가 그렇게 순일하게 된 때에 잘 다잡이를 해야지,

그때에 조심성 없이 또 좌우에서 방해를 친다든지 보호를 안 해가지고 그러한 경지(地)가 깨져버리면 나중에는 1년, 2년, 3년을 애를 써도 여간해서 다시 또 그러한 경지가 돌아오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그래서 반드시 여법(如法)하게 알뜰히 정진을 하면 누구라도 반드시 그러한 경지가 오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가 오면 사람에 따라서는 가만히 앉았어도 ‘아, 지금 조계사에 어떠한 일이 일어나는구나. 선학원에 어떤 큰스님이 왔구나. 아, 어디 절에서는 누가 죽었구나’ 이런 것이 환히 보이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 ‘내일, 아하 누가 오겠구나’ 그런 것도 환히 알아지기도 하고.


그러나 이것이 설사 무엇이 알아지고, 무엇이 여기 앉아서 몇백 리 밖에 것이 환히 보이고 한다고 해서 그것이 공부가 잘되어 간다고 생각해서는 아니됩니다.


이건 너무 식(識)이 맑아지고 깨끗해지니까 그런 것이 혹 보이는 수가 있습니다. 이러한 경우를 능엄경(楞嚴經)에 부처님께서는 오십 가지에 대한 그런 경지를 낱낱이 자상하게 설명을 해 놓으셨습니다.


그러한 경지가 자기에게 나타났을 때에 그거 나타난다고 해서 좋은 것도 아닌 것이고 또 꼭 그것을 나쁘다고 할 것이 없습니다.

그러한 것이 나타남으로써 ‘아! 그이가 공부가 잘한다’ 이렇게 말할 수 없습니다. 또 그러한 신기한 경지가 나타나지 아니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또 공부를 잘못한 것도 아닙니다.


요(要)는 사람에 따라서 혹 나타나기도 하고, 안 나타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떠한 사람이 그런 것이 나타나느냐? 능엄경에 말씀하시기를 평소에 공부할 때 ‘그런 것이 좀 나타났으면’하고 바램을 가졌던 사람은 그런 것이 혹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면 그런 것이 이미 나타났을 때에는 어떻게 대처해 나가느냐?

‘조금도 두려워하지도 말고, 싫어하지도 말고, 좋아하지도 말고, 그냥 고대로 놔 버리고서 자기의 본참 수행을 여법하게만 해가면 그것이 조금도 해로울 것도 말 것도 없는 것이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화두를 들고 참선하는 사람은 혹 그런 것이 보이거나 나타나거나 하더라도 조금도 좋아하거나, 겁을 내거나, 그것을 물리치려고 하지를 말고 그냥 고대로 나둬 버려.

전혀 대꾸를 말고 다못 심호흡을 하면서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또는 이뭣고를 하신 분은 ‘이뭣고?’ 무(無)자 화두를 하신 분은 ‘어째서 무라 했는고?’ 이렇게만 나아가면 그런 것이 아무 병이 될 것이 없습니다.


그렇게 하지를 못하고 그런 나타나는 것을 보고 신기하고 기뻐서 자꾸 거기에다 관심을 쏟고 그것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그 사람은 벌써 마구니[魔]에 끌려가게 되어가지고, 잘되어봤자 점쟁이나 무당 밖에는 아니된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누구를 만나면 ‘아, 너 석 달 후에 죽겠다. 석 달 후에 니 남편이 죽겠다’ 이런 겁나는 소리를 푹푹 합니다. 해가지고 아! 정말 석 달 뒤에 보면, 딱 딱 들어맞거든.


그러니까 모르는 사람들은 그 사람이 큰 도인이요, 도사라고 그 사람 앞에 벌벌 메고,

‘돈을 내라’하면 돈을 내고, ‘쌀을 내라’하면 쌀을 내고, ‘절을 지으라’하면 절을 지고, ‘큰 대종을 시주해라’하면 시주하고, 아주 그 사람 앞에는 벌벌 멥니다, 아주. ‘목숨까지 바치라’고 하면 바칠 정도로 그럽니다.


그래 가지고 그 사람은 자기 생각에도 그런 것을 잘 알고, 신도들이나 사람들이 그 사람 앞에는 장관도 무릎을 꿇고 벌벌 떨고, 장군들도 그 사람 앞에는 아주 벌벌 떱니다.

그래 가지고 톡톡히 도인(道人) 노릇을 하고, 많은 사람을 모다 제자로 삼아가지고 모다 그런 사람 가끔 있습니다, 있는데.


그래 가지고 그 사람이 끝까지 명예도 탐하지 아니하고, 재산도 탐하지 아니하고, 깨끗이 계율을 지키면서 그리 지내는 사람은, 그리고 그 사람 자신도 불법을 믿고 많은 사람에게 보시를 하게 하고 착한 일을 하도록 이렇게 지내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별것이 없지만은, 거기서 처음에는 그렇게 지내다가 차츰차츰 욕심이 생기고, 삿된 생각에 불이 붙어가지고 못된 짓을 계속하게 되면 머지않아서 깜깜해져가지고 그전에는 그렇게 환히 다 보이고 알았던 것이 전혀 몰라지게 됩니다.


그래 가지고 혹 맞기도 하고, 혹 안 맞기도 하고 이렇게 됩니다.


그래도 계속 사람들이 자기를 따라다니고 묻고 그러는데, 인자 ‘내가 몰라졌다’고 하기가 챙피하니까,

계속 아는 척을 하고 큰소리를 치다가 영 안 맞는 소리를 해가지고 망신(身)을 하고, 남을 갖다가 망하게 만들고, 나중에는 남한테 맞아 죽거나, 쇠고랑을 차게 됩니다.


그이가 도인인 줄 알고 따라다니는 제자들도 같이 망신을 하고, 같이 쇠고랑을 차고 그렇게 되고, 죽어서는 물어 볼 것도 없이 무간지옥(無間地獄)에 쏜살같이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다 그런 사람들이 염불을 하거나 기도를 하거나 또는 주력을 하거나 때로는 참선을 자기 나름대로는 목숨을 바쳐서 했던 사람들이 대부분 많습니다.

그러다가 한 생각 잘못해 가지고 그러한 외도 마구니가 되어가지고 자기도 망하고, 남도 망하고, 불법까지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참선은 바른 스승의 지도를 받고 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눈으로 보고 가는 길도 처음 가는 길은 가다가 보면 두 갈래, 세 갈래, 네 갈래 길이 나오는데 어느 길로 가야 할것인지 어떻게 알 것이냐?


그럴 때 길을 잘 아는 사람한테 물어서 가야 하는데, 가다가 길을 물어보면 요새는 자기도 잘 모르면서 ‘이리 가시오. 저리 가시오’ 대고 일러줘 버린다 그말이여.

‘나는 잘 모릅니다’ 이러면 될 텐데 ‘모른다’고 하기가 창피하거든. 그러니까 알지도 못하면서 ‘이리 가시오. 저리 가시오’  그 사람은 뭣도 모르고 한참 가다보면 얼토당토않는 데에 도착을 하게 된다.


눈으로 보고 가는 길도 그렇거든, 눈으로 보이지 아니한 마음으로 닦아가는 이 참선법에 있어서 너도 모르고 나도 모르고 피차 모르는 길을 가는데 바른 스승의 지도 없이 어떻게 바르게 해 갈 수가 있느냐 그말이여. 


해 가다가, 옛날에 맛보지 못한 고요하고 맑고 깨끗하고 싱그러운 그런 경지가 나타나면 천하없이도 ‘아! 참 좋구나. 바로 이것이 바로 그 경지인가 보다.’


그러다가 무엇이 이상한 신기한 경지가 나타나서 방안에 앉아서도 벽 밖에가 환히 보이고, 큰 산이 막혀 있어도 산너머 일이 환히 보이고, 이백 리 삼백 리 떨어진 서울이나 부산의 일이 환히 보이고 하면 누가 거기에서 안 미칠 사람이 누가 있느냐. ‘야! 내가 이제 도통(道通)을 했나보다’


세상 사람들은 아는 사람한테는 기가 맥히거든, 훤히 아는 사람한테는.

20년 30년 불법을 믿고 다녔던 사람도 답답하면 무당 점쟁이한테 쫓아가서 여지없이 한마디만 탁 맞혔다하면,

그때부터서는 불법(佛法)은 저 꽁무니로 돌려 버리고 이제부터서는 무당을 조실스님으로 모시고, 무당 말이라고 하면 천하없이도 절대 복종을 하고.


알아맞혀 가지고 설사 무당 말대로 무엇이 잘되고, 못되고 그렇게 해서 자기의 팔자(八字)가 고쳐지는 것이 아닙니다. 전혀 어떻게 될지 몰라도 자기가 지은 업(業)이 있으면 잘되기도 하고, 못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미리 석 달 전이나, 넉 달 전에 미리 알았다고 해서 자기의 업이 면(免)해지지를 않습니다.(9분50초~28분8초)



(2)------------------


어떤 사람이 그 관상(相)을 보니까 호랭이한테 호식(食)을 당할 그런 팔자다 그말이여.

그러면은 언제쯤 호랭이한테 물려가겠느냐? 자세히 사주(四柱)를 봐가지고 뽑아보니까 몇살 때 아무 날 아무 시에 호랭이에 물어가겠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되겠느냐? 방안에다가 큰 항아리를 갖다놓고 그 항아리 안에 탁 들어앉았고, 온 마을 사람들을 갖다가 수백 명을 초청을 해서 몇 겹으로 싸고 장사(士)를 시켜서 그 밖으로 하고,

또 온 마을에 있는 소를 갖다가 빙 둘러서 다 소로 갖다가 담을 치고 이리해가지고는 모닥불을 피면서 호랑이 범접(接)을 못하게 밤새 지켰다 그말이여.


그런데, 그렇게 하고서 날이 샌 다음에 항아리 뚜껑을 열어보니까 아! 처녀가 죽어갔고 있다 그말이여.


그 이상하거든. 그래서 보니까 귀에다가 귀 파는 귀후지개를 갖다가 귀에다 꽂고는 죽었다 그말이여. 그래서 그 귀후지개를 가만히 보니까 호랭이 뼉다구로 깎아서 만든 귀후지개였다 그말이여.

그래서 귀를 파다가 잘못해 가지고 귀창이 터져서 죽었는데, 호랭이 뼉다구에 찔려서 죽었다.


호랭이한테 물려갈 업을 지은 사람은 아무리 몇백 명을 동원을 해서 막고, 항아리 속에다 담아 놔도 결국은 호랭이 뼉다구에 찔려서 죽는다.

이건 하나의 일화에 지나지 못하지만 그래서 ‘독안에 들어가도 자기의 업은 면하지를 못한다’ 이런 속담도 있습니다.



점쟁이한테 가서 아무리 미리 합격을 할 것이... (녹음 끊김)

실력을 양성을 하고 자기의 실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마음을 안정하는 법을 알아가지고,

시험장에 나가서 따악 긴장을 풀고서 초조한 마음, 불안한 마음 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시험을 볼 수 있는 그러한 방법을 어디 가서 묻는다면 좋은 일이지만.


그것이 중요하거든. 시험을 보러가기 전에 너무 전날 한 장이라도 더 본다고 잠을 설치지 말 것이며,

시험 볼라면은 원기를 회복해야 한다고 잔뜩 고기를 갖다가 삶아 먹여가지고는 배탈이 나가지고 그런 일이 없어야 하는 것입니다.

음식 조심해야 하고 또 ‘잘 봐야 한다. 잘 봐야 한다’고 자꾸 족치면 아니되는 것입니다. 오히려 더 못쓰는 것입니다


인자 니가 그동안 열심히 공부를 했으니 그저 편안한 마음으로 부담없이 가서 시험을 보도록 해야지,

‘이제 너는 떨어지면 너는 인자 그만이여, 인자’ 자꾸 족치거든 귀에다 대고. 그러면 더 시험을 못 볼 것이 아니냐 그말이여.


그리고 일러줄 것은 「심호흡을 하는 법」을 알아야 됩니다, 학생이.

시험장에 들어가기 전에 부터서 계속 단전호흡을 하다가, 시험장에 들어가서 책상에 앉아서도 계속 허리를 쭉 펴고 심호흡을 계속하면서 해야 합니다.


그러면은 그 가슴이 두근두근 두근두근하고 그냥 그 초조하고 불안하고 손이 떨리고 한 거—이거 시험을 봐본 사람은 다 아실 것입니다만은 심호흡을 해야 그 불안한 생각이 이렇게 안정이 되는 것이여.


마음만 차분하고 안정이 되고 평탄한 마음으로 시험을 보게 되면 자기 알고 있는 것은 하나도 빼놓지 않고 죽죽죽죽.. 써나가거든. 이 마음이 긴장을 하고 불안하고 초조하고 하면 아는 것도 못쓰게 되거든.


무당한테 가봤자 그것은 없애주들 못한다 그말이여. 그러헌 것을 알아가지고, 자기의 실력을 발휘를 하고 자기가 있는 실력껏 쓰면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그 시험에 우선 봐서는 꼭 합격하는 것이 좋지만은 일생을 두고 볼 때에는 그 시험에 꼭 합격했다고 해서만이 좋은 것이 아닌 것입니다.

거기에 합격을 했기 때문에 오히려 결과적으로는 안 좋게 되는 수도 있는 것이고, 그때는 그 시험에 떨어져서 모다 섭섭해 했지만은 나중에 두고 보니까 그때 떨어진 것이 차라리 무방(無妨)하게 된 경우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중국에 새옹(翁)이라고 하는 노인이 있었는데, 하루는 어디서 말 한 마리가 좋은 말이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온 마을 사람들이 ‘하! 재수가 있어서 좋은 말이 들어왔다’고 그렇게 모다 부러워하고 모다 치하를 했습니다. 그러니까 그 새옹이라는 사람이 ‘두고 봐야 알지 뭐.’ 그랬거든.


그런데 그 집 아들이 그 말을 타고 계속 좋아서 경마(馬)를 하고, 말을 달리고 하다가 떨어져서 다리가 대깍 부러졌어. 온 마을 사람들이 ‘아휴, 다리를 다쳐서 참 안되었다’고 모다 걱정들을 하는데, ‘두고 봐야 알지’


얼마 안 있다가 큰 난리가 났는데 마을에 모다 남자들은 전부다 그 전쟁에 끌려가 가지고 다 죽었는데, 그 집은 다리가 부러진 병신이라 끌려가지를 않고, 그 집안의 대를 이어갔다.


그래서 얻었다고 해서 좋아하지 말고, 잃었다고 해서 슬퍼하지 말아라. 이것을 새옹지마(翁之馬)라. 새옹의 성(姓)이 새(塞) 씨에요. 「새(塞) 씨라고 하는 할아버지[翁]의 말[馬]」이라 하는 그런 말이 있습니다.



제가 잘 아는 저 광주에 어떤 사람이 있었는데 아들을 독자(子)를 하나 낳았습니다. 그놈을 하나 잘 가르켜서 출세를 시키기 위해서 죽을 고생을 하면서 돈을 벌었습니다.


그래가지고 그 아들이 하여간 어릴 때부터서 영특(英特)해 가지고 ‘일고(光州一高)에만 합격을 꼭 시켜야만 되겠다’ 이겁니다.

일고에 합격하기 그것만 하기 위해서 참 모든 물심양면으로 애를 써가지고 거기를 목표로 해서 공부를 시키는데.


장님 점쟁이가 있습니다. 그 장님한테 가서—그이는 쪽집게 점쟁이라고, 가서 물어봤다 하면 백발백중입니다. 가서 ‘합격을 하겠습니까? 못하겠으니까?’ 사주를 딱 넣으니까, 한참 괘(卦)를 뽑아 보더니 ‘되기는 꼭 되는데, 되면! 당신 집안은 망해요.’


‘그 무슨 말씀이오. 나는 죽어도 좋으니까 얘는 일고에다 기어이 넣어야만 되겠소. 되면 좋지, 왜 되면 집안이 망한다 말이 뭔 말이요. 그건 말도 안되는 소리요.’

그래가지고 ‘그런데 안되야만 당신 집안이 잘되지, 이 애가 만약 일고에 합격만 했다하면 당신 집안은 망하는데,  큰일이오!’


아! 말이 통하질 안해서, 계속해서 그냥 장님 말은 무시해 버리고 일고를 시험을 보였는데, 얘가 발표하는 날 가서 보니까 딱 자기가 들어있거든.

그래서 이 소식을 아버지한테 알려드려야겠다고 그냥 그 자리에서 주먹을 쥐고 자기 아버지 있는 데로 뛰어갔습니다. 뛰어가다가 교통신호도 무시하고 그냥 막 뛰어가다가 탁 교통사고가 나가지고 직사(直死)를 했거든.


그 소식이 자기 아버지한테 가 가지고 아버지가 와서 그 현장을 보고 미쳤습니다. 미쳐가지고는 그냥 펄펄뛰고 그냥 돌아다니다가 그 아버지도 죽었습니다.

아버지가 죽은 걸 보고 할머니가 ‘자식 죽고, 영감 죽고, 내가 무슨 재미로 사느냐’ 약을 먹고 죽어 버렸습니다.


이것은 웃을 일이 아니고 실화(實話)입니다. 이것은 실화로서 이러한 예(例)가 얼마든지 우리 주변에 있습니다.


그 일고에 들어가도, 그 사람이 참선을 한 사람이었다면 들어가면 들어가는대로 담담히 ‘이뭣고?’를 하고,

또 떨어졌으면 떨어진대로 담담한 마음으로—그럼 그 다음으로 떨어진 다음에 어떻게 해야 할 길이 반드시 또 이차적으로 있는 것이니까.


이차적으로 또 후기를 본다든지, 재수를 한다든지, 학교를 좀 낮추어서 한다든지, 대학보다는 차라리 전문학교에 가서 기술을 익혀가지고 한다든지.


꼭 명문대학만 들어가야만 한다고 하는 그러한 생각은 버려야 합니다. 그 유명학교, 명문대학, 명문대학 해가지고 얼마나 많은 아들과 딸들의 신세를 망치게 되는 것입니다. 집안까지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그러한 생각을 말고 그 학생의 성적과 또 소질과 가정 형편과 그런 것을 두루두루 감안해서 담임선생과 잘 본인과 부모가 의논을 해가지고 여러 가지를 고려해가지고 적당한 데에 보낸다면,

다 자기의 적성에 맞추어서, 형편에 맞추어서 가 가지고 다 무난하게 공부도 잘하고 성공도 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을 무리해가지고 공부도 잘 못하는 놈을 일류에만 넣는다고 가정교사를 대가지고 족쳐 가지고는 얘가 정신 노이로제에 걸려가지고 공부고 뭣이고 다 소용없고 그래가지고 탈선을 하게 되고,


한번 떨어지면 그 다음엔 조금 잘 알아서 해야 할 텐데, 두 번째 또 거기를 기어이 넣으려고 하다가 또 떨어지고,

두 번 세 번 떨어지다 보면 시간 다 가버리고 애는 학교도 가기도 전에, 해보기도 전에 벌써 못쓰게 되는 것 아닙니까. 이러한 어리석은 일을 해서는 아니된 것입니다.


좋은 대학에 갔다고 해서 그 사람이 꼭 출세한 것도 아니고 또 학교에서 성적이 꼭 좋다고만 해서 그 사람이 나중에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닌 것입니다.

왕왕이 학교에서는 1등을 해가지고 일등으로 졸업을 해가지고 수재라고 이름났던 사람이 사회에 나가서 별로 볼 일 없는 사람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학교에 다닐 때에는 좀 어리석고 좀 티미하고 그러던 사람이 사회에 나가서 굉장히 성공을 하고 참 그런 사람도 얼마든지 있는 것이니까,

공부를, 학교에서 모다 영어나 수학은 잘 못해도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은 그림을 하게끔 해주고 또 음악을 잘하는 사람은 음악을 하게 해주고,


또 무슨 자기의 소질 따라서 그것을 살려나가면 그것이 부모도 좋고, 자식도 좋고, 학교 선생님도 좋고 다 두루두루 좋은 것입니다.


이런 말을 왜 말씀을 드리는고 하면은 지금 한참 학교의 합격 관계로 해서 부모님이나 학생 다 그저 마음을 놓지를 못하고 불안하고 초조해 계시는 분들이 많기 때문에 참고로 말씀을 드린 것입니다. 제 말씀을 잘 듣고 지혜있게 처리를 해 나가시기를 바랍니다.



삼도고본인하기(三途苦本因何起)요  지시다생탐애정(只是多生貪愛情)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삼도(三途)—지옥, 아귀, 축생 그 삼도의 고(苦)를 받는 근본원인이 어디에서 일어나는 것이냐?(三途苦本因何起)


지시다생탐애정(只是多生貪愛情)이다. 다못 이 다생(多生)에 탐심과 애정 때문에 삼도의 고를 받게 되는 것이다. 탐심, 애정, 이것이야말로 자기를 갖다가 지옥 구덩이로 몰아넣는 낚수밥이 되는 것입니다. 


자기 자식이라고 해서 덮어 놓고 성적도 생각지 않고 좋은 학교에다가 넣으려고 하는 것도 탐심입니다.


그러한 어리석은 그 탐심과 애정은 어디에서 일어나느냐 하면 어리석은 데에서 일어나거든.

지혜롭게 관찰을 하고, 지혜롭게 판단을 하고, 지혜롭게 처리를 한다면 그러한 괴로움을 미연에 방지를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 지혜롭게 되는 길이 바로 이 참선(參禪)입니다.


참선을 하게 되면 첫째, 지혜의 눈을 뜨게 되거든. 지혜의 눈을 떠서 깨닫기 이전에 참선을 시작할 때부터서 벌써 지혜인이 되는 것이여.


참선을 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감정적인 그러한 생각이 자연히 쉬어지기 때문에, 어리석은 생각이 쉬어지면 그것이 지혜로운 거여.


꾸정물이 따로 있고, 말간 물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그 찌꺼기가 가라앉으면 맑아지거든.


밝은 것과 어두운 것이—밤이 따로 있고, 낮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밝은 것과 어두운 것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밝아지면 어두운 것은 없어지는 것이여.


불 켜버리면 방안이, 캄캄했던 방이 환해지거든. 그러면 어두운 것이 어디 병속으로 들어가거나, 두지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에요. 어디로 가고 오는 것이 없는 것이여.


밝아졌다 하면은 어두운 것은 찰나에 그냥 없어지는 것이지, 밝은 것이 오니까 어두운 것이 그냥 꼼짝을 못하고 저 마루 밑구멍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에요. 아궁이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에요.


참선을 하면 바로 그 어리석은 생각이 없어지는 것이여, 그 지혜이거든.(28분9초~45분37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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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구(參究 헤아릴 참,궁구할 구) ; ①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드는 것. ②참선하여 화두(공안)을 꿰뚫어 밝히기 위해 집중함. 화두 의심을 깨뜨리기 위해 거기에 몰입함.

*득력(得力) ; ①의심을 할려고 안 해도 저절로 의심이 독로(獨露)하게 되는 것. ②수행이나 어떤 기술•운동에서 자꾸 되풀이해서 하면, 처음에는 잘 안되던 것이 할라고 안 해도 저절로 잘 되어질때 득력(得力)이라 표현.
수월하게 되어 힘이 덜어지는 것을 다른 표현을 쓰면 그것을 ‘힘을 얻었다(得力)’하는 것.
*번뇌(煩惱) : 망념(妄念)이라고도 하는데, 몸과 마음을 괴롭히고 어지럽히는 정신작용의 총칭이나, 이곳에서는 화두에 대한 의심 이외의 모든 생각을 말함.
*밀밀면면(密密綿綿) : 면밀(綿密)이란 말을 거듭하여 뜻을 강조한 것으로 길게 계속해서 끊어지지 않는 것。 정밀하게 이어져서 끊어지지 않는 모습.
*성성적적(惺惺寂寂) ; 정신이 고요하면서도 깨끗하고 또록또록 한 상태.
*다잽이 ; 다잡이. 늦추었던 것을 바싹 잡아 죔.
*의단(疑團 의심할 의, 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독로(獨露 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홀로(獨) 드러나다(露).
*딴 생각 ; 별념(別念).  [몽산법어] (용화선원刊) 박산무이선사선경어(博山無異禪師禪警語)에서.
“做工夫호대  着不得一絲毫別念이니  行住坐臥에  單單只提起本叅話頭하야  發起疑情하야 憤然要討箇下落이니라.  若有絲毫別念하면  古所謂雜毒이  入心하야  傷乎慧命이라하니  學者는 不可不謹이니라”
“공부를 짓되 털끝만치라도 딴 생각[別念]을 두지 말지니, 가고 멈추고 앉고 누우매 다못 본참화두(本叅話頭)만을 들어서 의정을 일으켜 분연히 끝장 보기를 요구할 것이니라.
만약 털끝만치라도 딴 생각[別念]이 있으면 고인이 말한 바 「잡독(雜毒)이 마음에 들어감에 혜명(慧命)을 상한다」하니, 학자는 가히 삼가지 않을 수 없느니라.”

“余云別念은  非但世間法이라  除究心之外에  佛法中一切好事라도  悉名別念이니라.  又豈但佛法中事리요  於心體上에  取之捨之  執之化之가  悉別念矣니라”
“내가 말한 딴 생각[別念]은 비단 세간법만 아니라 마음을 궁구하는 일 외에는, 불법(佛法)중 온갖 좋은 일이라도 다 딴 생각[別念]이라 이름하느니라.
또 어찌 다만 불법중 일뿐이리오?  심체상(心體上)에 취하거나[取], 버리거나[捨], 집착하거나[執], 변화하는[化] 것이 모두 다 딴 생각[別念]이니라.” (p164-166)

“做工夫호대  不得將心待悟어다.  如人이  行路에  住在路上하야  待到家하면  終不到家니 只須行하야사  到家오  若將心待悟하면  終不悟니  只須逼拶令悟요  非待悟也니라”
“공부를 짓되 마음을 가져 깨닫기를 기다리지 말라.  마치 사람이 길을 가매 길에 멈춰 있으면서 집에 이르기를 기다리면 마침내 집에 이르지 못하나니, 다만 모름지기 걸어가야 집에 도달하는 것과 같아서,
만약 마음을 가져 깨닫기를 기다리면 마침내 깨닫지 못하니, 다만 모름지기 애써서 깨닫게 할 뿐이요, 깨닫기를 기다릴 것이 아니니라.” (p163-164)

“做工夫호대  不得求人說破이니  若說破라도  終是別人底요,  與自己로  沒相干이니라.  如人이  問路到長安에  但可要其指路언정  不可更問長安事니  彼一一說明長安事라도  終是彼見底요,  非問路者의  親見也이니라.  若不力行하고  便求人說破도  亦復如是하니라”
“공부를 짓되 다른 사람이 설파(說破)하여 주기를 구하지 말지니, 만약 설파(說破)하여 주더라도 마침내 그것은 남의 것이요, 자기와는 상관이 없나니라.
마치 사람이 장안으로 가는 길을 물으매 다만 그 길만 가리켜 주기를 요구할지언정 다시 장안의 일은 묻지 말지니, 저 사람이 낱낱이 장안 일을 설명할지라도 종시(終是) 그가 본 것이요, 길 묻는 사람이 친히 본 것은 아니니라.
만약 힘써 수행하지 않고 남이 설파하여 주기를 구하는 것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p180-181)

*입승(立繩) ; 선원(禪院)에서 선원의 규율과 질서를 다스리는 직책, 또는 그 일을 맡은 스님.
*칠통(漆桶 옻 칠,통 통) ; ①옻칠을 한 통 ②중생의 마음은 무명이 덮여서 어둡고 검기가 옻을 담은 통 속과 같은 상태 또는 그런 상태의 사람. ③무명(無明).
*칠통(桶)을 타파(打破) ; ‘참나’를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
*여법(如法 같을·같게 할·따를·좇을 여, 부처님의 가르침·불도佛道 법) ; 부처님의 가르침에 맞음.
*식(識) ; 오온(五蘊)의 하나. 식별하고 판단하는 마음 작용. 인식 작용. 인식 주관.
*능엄경(楞嚴經) 변마장(辨魔障) ; 능엄경 조도분(助道分)에 있는, 수행도상에 있어 나타날 수 있는, 오음(五陰-색수상행식 色受想行識)이 녹아 없어질 때에 나타나는 50가지 마장(魔障)을 밝혀, 수행자들이 사특한 길에 떨어지지 않게 한 부처님 가르침.
*마구니 ; 마(魔). [범] mara 음을 따라 마라(魔羅)라 하고, 줄여서 마(魔)라고만 한다。장애자(障礙者)• 살자(殺者)• 악자(惡者)라 번역。목숨을 빼앗고 착한 일을 방해하며 모든 것을 파괴하는 악마를 말한다.
그러나  「마」는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에서 생기는 것이다.
[참고] 마(魔)란 생사를 즐기는 귀신의 이름이요, 팔만사천 마군이란 중생의 팔만사천 번뇌다.
마가 본래 씨가 없지만,수행하는 이가 바른 생각을 잃은 데서 그 근원이 파생되는 것이다.
중생은 그 환경에 순종하므로 탈이 없고, 도인은 그 환경에 역행하므로 마가 대들게 된다。그래서 「도가 높을수록 마가 성하다」고 하는 것이다.
선정 중에 혹은 상주(喪主)를 보고 제 다리를 찍으며 혹은 돼지를 보고 제 코를 쥐기도 하는 것이, 모두 자기 마음에서 망상을 일으켜 외부의 마를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마의 온갖 재주가 도리어 물을 베려는 것이나, 햇빛을 불어 버리려는 격이 되고 말 것이다。옛말에 「벽에 틈이 생기면 바람이 들어오고, 마음에 틈이 생기면 마가 들어온다」고 하시니라. —선가귀감(용화선원刊) p64.
*도인(道人) ; 깨달은 사람.
*망신(亡身) ; 말이나 행동 잘못하여 자기 지위, 명예, 체면 따위 손상함.
*무간지옥(無間地獄) ; 아비지옥(阿鼻地獄)이라고도 함. 아비(阿鼻)는 산스크리트어 avīci의 음사(音寫)로서 ‘아’는 무(), ‘비’는 구()로서 ‘전혀 구제받을 수 없다’는 뜻. 고통이 끊임없으므로 무간(無間)이라 함.
아버지를 죽인 자, 어머니를 죽인 자, 아라한을 죽인 자, 승가의 화합을 깨뜨린 자, 부처의 몸에 피를 나게 한 자 등, 지극히 무거운 죄를 지은 자가 죽어서 가게 된다는 지옥.
이 지옥에 떨어지는 죄인에게는 필파라침(必波羅鍼)이라는 악풍(惡風)이 있는데 온몸을 건조시키고 피를 말려 버리며 또 옥졸이 몸을 붙잡고 가죽을 벗기며, 그 벗겨낸 가죽으로 죄인의 몸을 묶어 불 수레에 싣고 훨훨 타는 불구덩이 가운데에 던져 넣어 몸을 태우고,
야차(夜叉)들이 큰 쇠 창을 달구어 죄인의 몸을 꿰거나 입, 코, 배 등을 꿰어 공중에 던진다고 한다. 또는 쇠매(鐵鷹)가 죄인의 눈을 파 먹게 하는 등의 여러 가지 형벌로 고통을 끊임없이 받는다고 한다.
*천하없이(天下없이) 세상에 그런 예가 다시없을 정도.
*도통(道通) ; ①사물의 이치를 깨달아 훤히 통함. ②깨달음.
*팔자(八字) ; 사람의 한평생의 운수. 사주팔자에서 유래한 말로, 사람이 태어난 해와 달과 날과 시간을 간지(干支)로 나타내면 여덟 글자가 되는데, 이 속에 일생의 운명이 정해져 있다고 본다.
*업(業) ; (산스크리트어:karma카르마) ①몸과 입과 마음으로 짓는 행위와 말과 생각, 일체의 행위.
②행위와 말과 생각이 남기는 잠재력. 과보를 초래하는 잠재력.
③선악(善惡)의 행위에 따라 받는 고락(苦樂)의 과보(果報).
④좋지 않은 결과의 원인이 되는 악한 행위. 무명(無明)으로 일으키는 행위.
⑤어떠한 결과를 일으키는 원인이나 조건이 되는 작용. 과거에서 미래로 존속하는 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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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상(觀相)수명이나 운명 따위와 관련이 있다고 믿는 사람의 김새얼굴 모습또는 사람의 얼굴을 보고 의 운명성격수명 따위를 판단하는 .
*호식(食)사람 에게 잡아먹힘.
*사주(四柱) ; 사람이 태어난 연월일시의 네 간지(干支). 또는 이에 근거하여 사람의 길흉화복을 알아보는 방법.

*장사(壯士)기개  아주  사람.

*범접( 범할 범,접할 접) ; 가까이 다가가 함부로 건드리거나 접촉함.

*귀후지개 ; ‘귀이개(귓구멍   때, 귀지를 파내는 도구)’의 사투리.

*뼉다구 ; ‘뼈다귀’의 사투리.

*귀창 ; ‘귀청(귓구멍 안쪽에 있는 타원형의 반투명한 로, 공기의 진동을 속귀 쪽으로 전달하여 들을 수 있게 하여 준다)’의 사투리.

*족치다 ; (어떤 사람 다른 사람) 견딜 정도 몹시 괴롭히거나 다그치다.

*인자 ; ‘이제(바로 이때, 지금부터—지나간 와 단절된 느낌을 준다)’의 사투리.

*무방(無妨)하다[연결 어미 ‘-어도 함께 쓰여](사람 어찌하여도)거리낄  없이 괜찮다.

*독자(子) ; ①다른 자식 없이  하나 아들. ②형제자매 없는 사람.

*영특(英特)하다 ; (사람)남달리 똑똑하고 영리하다.

*일고(一高) ; 광주제일고등학교(光州第一高等學校). 광주일고(光州一高)로도 불리우는 호남 지역의 전통 명문 고등학교.

*쪽집게 ; ‘족집게(어떤 사실 정확하게 지적하여 내거나  알아맞히는 능력 가진 사람)’의 사투리.

*괘(卦) ; 점괘(占卦, 을 쳐서 나오는  를 풀이하여 길흉을 판단한다).

*직사(直死) ; 즉사(卽死, 그 자리에서 바로 죽음).

*실화(實話)실제로 있었던  대한 이야기.

*(게송) ‘三途苦本因何起  只是多生貪愛情’ ;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 ‘자경문(自警文)’ 게송.

*낚수 ; ‘낚시’의 사투리.

*낚수밥 ; 낚시 미끼.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꾸정물 ; 구정물(무엇 빨거나 씻거나 하여 더러워진 물).

*말갛다 ; ①(무엇)산뜻하게 맑고 깨끗하다. ②()맑고 생기 있다. ③(액체)진하지 않고 매우 묽다. ④(정신이나 의식)분명하고 또렷하다.

*두지 ; ‘뒤주’의 사투리.  따위의 곡식 담아 두는 세간(집안 살림 쓰는 온갖 물건) 하나. 나무 궤짝같이 만드는데,  기둥 짧은  있으며 뚜껑 절반 앞쪽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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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
인과, 인연2014.04.02 02:46

§ 3능, 3불능 / 정업(定業)은 난면(難免) / 우리가 이 세상에 받는 모든 것들은, 우리 자신이 각본(脚本)을 쓴 것 / 찰나(刹那) 간에 몰록 / 신•분•의(信•憤•疑) 삼요.


우리가 이 세상에 받는 모든 것들은, 우리 자신이 각본(脚本)을 써가지고 그 각본에 의해서 우리가 연극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과거에 지은 업과 금생에 지어가는 업, 그런 것들이 합해 가지고 우리의 미래가 열려 나가는 것이니까, 우리는 이미 과거에 지어버린 것은 어떻게 할 수가 없으나, 그 각본을 우리는 고쳐서 쓸 필요가 있다.
불교는, 인과법은 숙명론(宿命論)도 아니고 운명론(運命論)도 아니다.
명상(名相), 이름이나 모양이라는 것은 환(幻)으로 이루어진 거여. 우리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그림자요, 메아리. 마음 하나만 공(空)해 버리면 일체 명상(名相)은 동시에 다 공(空)해 버리는 것이다. 자기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명상(名相)을 그것을 ‘있는 것’으로 집착을 함으로 해서, 모든 탐진치 삼독심이 일어나는 거여.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을 해서 자기의 주인공(主人公)을 깨닫는 방향으로 나가는 사람은 제외하고는, 그렇지 않는 사람은 착하나 악하나 그놈이 그놈이여. 언제 어떻게 변할른지 모르는 거여.
우선 당장 괴로운 일이 있는데 「이뭣고?」만 할 수 있느냐?
괴로운 일 자체가 꿈에 어디 종기를 앓는 거와 같애. 꿈을 꾸는 동안에는 정말 아프지만 꿈을 깨자마자 꿈에 앓던 종기가 몰록 낫어버리는 거여. 차츰차츰 낫아가는게 아니라, 찰나(刹那)간에 몰록 낫아버리는 것이여.
철저하게 믿고 철저하게 신•분•의(信•憤•疑) 삼요소로 나간다면 누가 못 깨닫게 되느냐 그말이여.
**송담스님(No.521) - 1994년 1월 첫째일요법회(94.01.02)에서.

(1) 약 21분.  (2) 약 18분.


(1)--------------------

새해가 돌아오면 토정비결을 본다든지, 어디 또 만신이나 점쟁이한테 가서 신수도 보고 해서 금년 운수가 어떤가? 뭔 일이 좀 잘될란가?

참 답답해서 가시는 분도 있고, 누가 족집게 점쟁이다 잘맞춘다 하니까 호기심으로 따라가기도 하고, 그러다가 그냥 좋다고 하면은 좋아가지고 복채도 많이 주고 돌아오지만,
‘대주(大住)가 금년에 대단히 안 좋다고.. 굿을 몇 번을 해야 하고, 무슨 몇십만 원 짜리 부적(符籍)을 사서 몸에 지녀야 하고..’ 이거 참 겁나는 소리를 하면 그 말을 듣고는 속이 편틀 못하다 그말이여.

아무리 여기서는 이런 말을 들어도 집에 가서 어쩌고저쩌고 하면 금방 생각을 내신다 그말이여. 이건 지식이 있건 없건 여자분은 여간해서 그런 데에 속지 않기가 어렵다 그말이여.
‘남편한테 해롭고 자식한테 해롭다’하는 데에는 어떠한 일이라도 해보고 싶어하는 어머니의 마음, 나 충분히 이해는 하는데, 그것이 별로 그렇게 효과가 없을 것이다 그말이여. 그거 왜 그러냐?

점쟁이는 혹 지내간 일은 더러 맞추는데, 앞으로 다가올 일에 대해서는 그렇게 잘 못 맞춰. 점쟁이 한테는 삿된 귀신이 잠시 붙어가지고 그 삿된 귀신이 돌아다니면서 봐서 일러주면은 지내간 일은 잘 맞추는데, 귀신도 앞으로 다가올 일에 대해서는 잘 모르거든. 잡귀는 모르거든.

부처님처럼 삼명육통(三明六通)이 나서 육신통(六神通)으로 보신다면은 과거•현재•미래를 손바닥 안에 보듯 환히 아시지만, 점쟁이는 육신통이 난 게 아니여. 잡신(雜神)이 잠시 붙어가지고 그 잡신의 힘으로 지내간 일 뭘 좀 아는 소리를 하는데, 그것 가지고 미래 일까지는 다 모르거든.
혹 맞추기도 하고 안 맞추기도 하고 그러는데, 그러한 말을 믿고 우리가 중대한 일을 추진을 한다고 하는 것은, 그건 정신병자가 운전하는 차를 탄 거와 같아서 그놈이 언제 어디다 꿀어박을지 모르거든.

우리는 아무리 정법(正法)을 믿고 참선을 해도 살다 보면 좋은 일도 만나고, 슬픈 일도 만나고, 괴로운 일도 만나고, 여러 가지 어려운 일도 만날 수가 있습니다.

부처님한테도 3불능(三不能)이 있어. 3능(三能)과 3불능이 부처님한테 있다고 그러는데, 부처님께서 세 가지 능한 것은 무엇이냐?
(첫째는) 일체 상이 다 공(空)해서 그래 가지고 만법의 지혜를 이루시는 것이 부처님이 능하는 일이여.
두 번째는 모든 중생의 성품을 환히 다 알고, 억겁의 모든 일을 다 맥힘이 없이 다 아시는 거여.
세째는 무량 중생을 제도하실 수가 있어. 이것이 부처님이 세가지 능하신 것인데,

그러한 삼명육통과 팔해탈(八解脫)을 증득하신 그러한 부처님도 세 가지 능(能)치 못한 것이 있는데,
당신이 무량겁으로부터서 오시면서 지으신 정업(定業)은 멸(滅)할 수가 없어. 그래 모든 것을 환히 다 아시고 육신통이 자재(自在)하시고 팔해탈이 자재하신데 왜 모든 것을 마음대로 다 하실 수가 있을 것 같은데 정업을 멸할 수가 없다.

두 번째는 인연없는 중생을 제도할 수가 없어.
셋째는 중생계를 다하지 못혀. 이 세상의 한 중생도 없이 다 무량 중생을 제도하실 수는 있으나, 중생계가 완전히 다 없어지도록 하실 수는 없다 그말이여.

그래서 부처님의 그러한 법력(法力)과 도력(道力)과 신통력(神通力)으로서도 부처님의 고국인 가비라(迦毗羅) 왕국이 멸망할 때 그걸 번연히 알고 계셨고 보고 계시면서도 그것을 막을 수가 없으신 것이여.
과거의 삼천불, 현겁 삼천불, 미래 삼천불 삼천(三千)의 부처님이 계셔도 중생계는 다하지 못하는 거여.

부처님의 자비는 인연이 있고 없고 간에 다 똑같이 베풀어지지만, 인연(因緣) 있는 중생이라야 제도가 되는 것이다 그말이여.
그래서 우리는 인연을 부처님과 맺음으로 해서 부처님의 법문을 듣게 되고, 부처님의 법문을 듣고 믿게 되고, 믿고서 실천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말이여.

그런 부처님께도 그런 삼불능(三不能)이 있는데 하물며 우리는 부처님께서 능(能)치 못한 3가지도 우리는 또 마찬가지고, 우리는 그보다도 수수 백만 가지가 능치 못한 것이 너무너무 많은데, 우리가 과거에 지은 그런 정업(定業)을 우리가 점쟁이 말 듣고 그것이 면(免)해질 수가 없어.

방법은, 이미 우리가 지어 가지고 받는 것은 도저히 피할 길이 없는 것이고 받아야 하는데 ‘어떻게 그것을 받아 넘기느냐’ 그것이 중요한 것이여.

공자님이 제자들을 거느리고 중국을 이렇게 유행을 하시는데, 관리한테 붙잡혀 가지고 큰 난을 당했어. 그것은 양호라고 하는 악인이 있었는데, 공자님이 그 양호란 놈하고 얼굴이 비슷하게 생겨 가지고 양호인줄 알고 체포를 당해 가지고 참 억울한 어려운 일을 당하다가 간신히 풀려났는데,

그 제자가 묻기를 ‘성현(聖賢)도 이런 어려운 일을 당할 수가 있습니까?’ 그 제자들은 우리 불자들이 부처님을 숭배하듯이 공자님을 그렇게 숭배하는데, 「어찌 공자님과 같은 성현이 이런 참 어려운 일을 당할 수가 있겠느냐?」 의심이 나서 여쭈어 본 건데,

성현이라고 해서 어려운 일을 안 당하는 것이 아니다.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의 그 마음은 다를지언정 - 중생이나 범부는 어려운 일을 당하면은 당황하고 겁을 내고, 마음이 동요가 되어서 겁에 질려서 자기의 마음을 지닐 수가 없어. 그런데 성현은 당한 것은 마찬가지인데, 당한 때의 마음가짐이 다르다.

범부 같으면 당신의 고국이 그렇게 망할 때 신통력으로 그 적군을 어떠한 방법으로라도 때려 부수고 죽이고 물리치고 혹 그런 마음을 냈을런지도 모르는데, 부처님은 환히 알고 그 광경을 다 보시면서도 그런 적극적인 행동을 하시지 않았어.

신통제일(神通第一)인 목련존자(目連尊者)가 그 고국의 사람들이 아주 멸종이 되게 생겼으니까 5천 명을 골라가지고 바리때에다 담아 가지고 저 높은 하늘나라에다 갖다가 잠시 피신을 시켰어.
부처님께서는 『그래 봤자 뭔 소용이 되겠느냐? 한 번 해 봐라.』 그래서 목련존자가 그렇게 했는데 다 난리가 가라앉은 다음에 가서 바리때 가지러 가니까 속에서 다 죽어갖고 있어. 과거에 죽을 업을 지어 가지고 금생에 그걸 받게 될 때에는 피할 길이 없어.

목련존자도 5백 생을 결국은 타살(打殺)을 당했는데 과거에 업연(業緣)으로 그랬는데, 마지막 5백 생도 결국은 당신이 뭘 잘못해서가 아니라 외도(外道)들이 자꾸 불법(佛法)이 흥왕을 하니까,
‘부처님의 왼팔, 오른팔을 끊어야만 되겠다’ 그래 가지고 목련존자가 숲속에서 턱 이렇게 좌선을 하고 있는데, 거기다가 수백 개의 돌팔매질을 해 가지고 결국은 몸이 부서지게 되었다 그말이여.

목련존자의 같은 고향에서 같이 출가한 도반인 사리불(舍利佛)존자가 『왜 그대는 신통이 제일인데 왜 신통술을 어디다 두고 그렇게 맞었냐?』 그러니까,
『신통의 신(神)자도 생각이 안 나더라』 그렇게 경전에 쓰여 있는 데도 있고,  『내가 불자(佛子)로서 인과법(因果法)을 아는 사람이 피해서 되겠느냐』 또 그렇게 된 데도 있습니다마는 두 가지가 다 맞는 말씀이고.

점쟁이 말 듣고 재앙을 면할려고 해서는 안 돼. 그런데 점쟁이가 가끔은 절에 가서 부처님께 무엇이든지 치성(致誠)을 드리라고 그렇게 보내는 사람도 더러 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와서 절에 와서 천도재도 하고 기도도 하고 그런 분도 있습니다.
부처님께 시주도 하고, 치성도 드리고, 또 조상의 천도재(薦度齋)도 지내고 그것은 좋은 일이라고 생각이 됩니다마는, 천도재를 지내 가지고 집안에 우환이 없어진 그런 경우도 나는 많이 봤습니다.

많이 보기는 했으나, 정업(定業)은 난면(難免)인 것입니다.
받되 정법(正法)으로써 마음이 딱 기둥이 서면 어떠한 어려운 일을 당해도 바른 마음으로, 바른 정신으로, 신심과 원력으로, 지혜와 인내로써 그런 일을 잘 처리해 나가고 그 일을 소화를 시켜 나가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받는 모든 것들은, 우리 자신이 각본(脚本)을 쓴 것>

우리가 이 세상에 받는 모든 것들은, 우리 자신이 각본(脚本)을 써가지고 그 각본에 의해서 우리가 연극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배우나 탤런트는 각본을 쓴 작가가 따로 있고, 그 각본에 의해서 감독이나 연출이 그것을 연출을 해 가지고 배우나 탤런트를 잘 선정을 해서 그 사람들로 하여금 연극을 하게 하는데, 그것은 배우 자신이 어떻게 해 볼 수가 없어.
각본에 의해서 감독의 지시에 따라서 최선을 다할 길 밖에는 없는 것이고, 배우 지 마음대로 이리저리 못하는 것인데,

우리는 우리의 일생을, 무량겁이라고 해도 좋지만 가깝게 금생 일생 이렇게 사는 것만을 우선 생각을 해 보자 이겁니다.
우리가 어느 부모의 자식으로 태어나서 어떻게 어렸을 때를 살고, 어떻게 유치원으로 국민학교•중학교•고등학교•대학을 다녀 가지고, 어떻게 누구와 결혼을 했고, 어떻게 이렇게 살아가고 어떤 자식을 낳았냐? 그리고 일생 동안을 어떻게 살다가 어떻게 죽어갔느냐?

생로병사 일생만을 생각해 본다 하면 그것이 무슨 하느님이나, 부처님이나, 제석천왕(帝釋天王)이나, 또 어떤 뭐 염라대왕이나, 어떠한 다른 사람이 그렇게 시켜갖고 되는 일이 아니여.

전부 우리 자신이 그러한 각본을 썼어. 각본을 써 가지고 자기가 그 각본에 의해서 지금 이렇게 태어나 가지고 마지막 죽어갈 때까지 각본에 의해서 살아가고 있는 거여.
하나도 부모를 원망할 것도 없고, 누구를 원망할 것이 없어. 선생을 원망할 것도 없고, 사회를 원망할 것도 없고, 국가를 원망할 것도 없어. 부부 간에도 남편이 아내를 원망할 것도 없고, 아내가 남편을 원망할 것도 없어.

도둑질하다가 감옥을 가도 검사나 판사를 원망할 것이 없는 거여. 지가 그 죄를 지어 가지고 판결을 받아 가지고 징역을 사는데, 감옥에 들어가서 내나 자기를 잡아넣은 형사를 '내가 나가기만 하면은 그놈의 형사 가만 안 놔둔다'고 이를 갈아붙이는 죄수가 있다면, 그거 어떻게 된 것이냐 그말이여.
자기를 무기 징역을 청구를 하고, 무기를 갖다가 판결을 내리는 검사와 판사를 원망하는 죄수가 있다면 그거 어떻게 된 거냐 그말이여.

가끔 전혀 자기는 그런 죄를 짓지 않았는데 억울하게 징역을 산 사람도 있습니다. 그럴 경우는 자기를 억울하게 그 징역을 살게 하는 형사나 검사나 판사를 정말 중생으로서는 참 원망 안 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깊이 생각해보면 그것도 역시 원망할 것이 없어. 과거에 자기가 그렇게 사람을 억울하게 그렇게 했기 때문에 금생에 또 그런 억울한 일을 당한 것이다 그말이여.

과거가 없는 금생(今生)은 없어. 전부가 금생에 우리가 지은 업과 과거에 지은 업이 다 연관성 있게 우리의 모든 것이 전개되어 가기 때문에 그런 것이여.
그래서 과거에 지은 업과 금생에 지어가는 업, 그런 것들이 합해 가지고 우리의 미래가 열려 나가는 것이니까, 우리는 이미 과거에 지어버린 것은 어떻게 할 수가 없으나, 그 각본을 우리는 고쳐서 쓸 필요가 있다 그말이여.

우리는 텔레비전을 보면은 거기서 전개되어 가는 것을 보고 야단들이여.
자기 마음에 안 맞으면은 작가한테 막 편지질을 하고 전화질 하고 방송국에다 ‘그렇게 죽여서는 안 된다, 살려야 한다’고 야단들인데, 그렇게 하두 전국에서 들어오면은 처음에 작가의 생각은 죽일라고 했다가도 하도 그래싸면 그거 바꾼다고 그래.

그까짓 TV에 나오는 거 죽이면 어떻고 살리면 어떻고 별 것이 아닌데,
우리 자신이 과거에 지은 업이 있어가지고 금생에 이렇게 불행한 일만 당하게 되었다 하면, 그 각본이 다른 사람이 쓴 것이 아니고 내가 썼기 때문에 금생에 각본을 달리 쓸 수는 있다 그말이여.
달리 써 가지고 어쨌든지 좋은 방향으로 요렇게 틀으면 좀 힘은 들랑가 모르지만, 자기가 쓴 각본을 자기가 방향을 바꿔나갈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왜 그러냐? 미래는 꼭 과거에 지은 그놈만 갖고 되는 것이 아니라, 금생에 우리가 해 가는 일까지 합해져 가지고 미래가 열리기 때문에 그래서 이것은 '운명론이다, 숙명론이다' 이렇게 말할 수가 없어, 불교는.

인과법은 숙명론(宿命論)도 아니고 운명론(運命論)도 아니여.(42분45초~63분35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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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는 꼭 과거에 지은 그놈만 갖고 되는 것이 아니라, 금생에 우리가 해 가는 일까지 합해져 가지고 미래가 열리기 때문에 그래서 이것은 운명론이다, 숙명론이다 이렇게 말할 수가 없어, 불교는.


인과법은 숙명론(宿命論)도 아니고 운명론(運命論)도 아니여.

과거에 지은 업도 절대로 무시할 수가 없지만, 금생에 내가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어떻게 노력하느냐에 따라서 그것까지 합해져 가지고 미래가 열려지기 때문에 우리는 각본을 바꿔쓰면 된다 그말이여.

그러면 어떻게 각본을 쓰고 어떻게 노력하느냐에 따라서 방향은 바꿀 수가 있다 그말이여.

인과의 법칙을 정말 올바르게 이해를 하고, 올바르게 활용을 해 나가야 한다.
인과법을 잘못 믿으면 완전히 숙명론•운명론에 떨어져 가지고 그러고, 그렇지 않으면 까딱하면 인과법을 믿지 않고, 발무인과(撥無因果) 『에잇 그까짓 거 소용이 없다고!』

못된 짓을 하면 응당 잘 못살아야 하고 벌을 받아야 하는데, 그렇게 극악무도하고 못된 짓만 하는 사람이 잘사는 사람이 있다 그말이여.
그러고 정직하고 착하고 참 그런데 사사건건이 불운(不運)을 당하고 못살고 억울하게 그렇게 일을 당하는 사람도 있고 그러니, 그런 걸 보면 『그것 인과법 소용 없다고!』 안 믿는 사람도 있는데 그게 아니거든.

금생에 것만 갖고 우리의 앞이 그것에만 있는 게 아니라 과거에 지은 것까지 합해져서 되기 때문에, 과거에 워낙 좋은 복을 지어놓으면 금생에 못된 짓을 해도 우선 괜찮은 사람이 얼마든지 있어요.
금생에 나쁜짓 한 건 또 언젠가는 꼭 받게 되지만, 우선 과거에 지어놓은 것이 워낙 많으면 그것이 금생에 좀 나쁜짓 해도 그럭저럭 잘사는 사람도 있어. 그러나 그것 믿을 것이 못되는 거고.

금생(今生)에 착하고 부지런히 해도 못 당할 일 많이 당하는 것은 전생(前生)에 지은 나쁜 악업이 있기 때문에 금생에 좀 잘해도 별로 좋은 꼴을 못 보는 거여.

그래서 인과의 법칙에 금생에 지어 가지고 금생에 바로 현실적으로 받는 경우가 있고, 금생에 지어 가지고 바로 이 다음 생에 받기도 하고, 금생에 지어가지고 다음 생, 저 다음 생, 몇 생을 건너 뛰어 가지고 가서 받는 수가 있어.
현생보(現生報)•순생보(順生報)•순후보(順後報) 이것이 세 가지 차등이 있기 때문에 그래서 그런 것이지 안 받는 것은 아니여, 언젠가는 다 받게 되는데.

그렇게 지어서 받는 것은 면틀 못한다고 하더라도 이것이 전부 우리의 마음으로 지어서 이렇게 벌어지는 일들이라,

그래서 부처님 말씀하시기를 『마음이라 하는 것은 만법(萬法)의 근원이다.』 이렇게 말씀하시고,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마음에서 일어나는 환상이요 물거품 같은 것이다.』 다 그렇게 말씀하셨어.

그래서 범부(凡夫)는 모든 것이 환(幻)인데 환인 줄을 모르고서 환(幻)의 업(業)에 집착을 해 가지고 거기에 끄달리는 거고.

성문(聲聞)은 모든 환(幻)을 그것을 굉장히 두려워 해. 생로병사를 굉장히 두려워 해가지고 어떻게 하면 - 죽음이 무서우니까, 죽음을 안 당할라면은 태어나지 말아야겠다.
태어나기만 하면 늙어서 병들어서 결국은 고통스럽게 죽어가니까, 죽음이 없을라면은 태어나지 않아야겠다. 그래 가지고 태어나지 않는 방법으로 멸진정(滅盡定)에 들어가는 것을 궁극의 목적으로 삼는다 그말이여.
멸진정은 영원히 아주 정(定)에 들어가 버린 거여. 그러면 태어나지를 않기 때문에 죽음도 없다. 이게 소승(小乘)의 생각이다.

보살(菩薩)은 이 세상의 모든 경계는 환(幻)의 경계여. 본래 없는 것이고 본래 남이 없는 거여.

눈병 든 사람에게 이 허공에 꽃이 피어있는 것처럼 - 우리는 눈동자를 옆에서 요렇게 눌루고 보면 해도 둘로 보이고, 달도 둘로 보이고, 뭔 물건도 둘로 보입니다. 여러분 댁에 가서 시험을 해보세요.
그냥 보면 하나인데, 눈동자를 요렇게 눌러가지고 압력을 가해 가지고 보면은 삐뚤어지게 보이고 둘로 보인다 말이여.

눈이 멀쩡한 사람에게는 허공 속에는 아무것도 없이 깨끗한데, 눈병 난 사람은 뭣이 이상한 것이 이리 왔다갔다 하고, 꽃이 피어있는 것처럼도 보이고, 불이 켜진 것처럼도 보이고 모다 그러는데, 눈병만 고치면은 허공에 피어있는 꽃이 안 보이거든.

눈병이 나기 전에도 없었던 거고, 눈병이 난 뒤에도 허공에는 꽃이 없는 거고,
그러다가 눈병이 나은 뒤에도 - 허공의 꽃은 원래 없는 것인데, 있는 것처럼 눈병 난 사람은 보이니까 그 눈병 난 사람에게는 그 사람은 분명히 있다고 할거라 그말이여. 눈병이 없는 사람에게는 (허공의 꽃이 원래) 없다 그말이여.

그래서 이 세상의 모든 명상(名相), 이름이나 모양이나 그런 것은, 귀로 들을 수 있는 거, 코로 냄새 맡을 수 있는 거, 눈으로 볼 수 있는 거, 안이비설신의 육근(六根)을 통해서 육경(六境)을 만나면 육식(六識)이 생기는데, 그 육식(六識)에 포착되는 모든 것들은 명상(名相)이여 그게. 명상(名相)!

명상(名相)이라는 것은 환(幻)으로 이루어진 거여. 우리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그림자요, 메아리여 그것이. 마음 하나만 공(空)해 버리면 일체 명상(名相)은 동시에 다 공(空)해 버리는 것이다.

자기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명상(名相)을 그것을 ‘있는 것’으로 집착을 함으로 해서, 모든 탐진치 삼독심이 일어나는 거여.

어린애들은 크레용이나 무슨 연필을 가지면 벼람박이고 어디고 마구잽이 막 그려 젖히거든.
철없는 중생이 우리의 마음으로 일체 경계(境界)를 당해서 온갖 것을 정말 미친 사람이 어떠한 연극에 각본을 쓰듯이 종잡을 수 없이 쓰거든.
죽일라고 했다가 살리고, 살릴라고 했다가 죽이고 그저, 도둑놈을 갖다가 착한 사람을 만들고, 착한 사람을 어떤 때는 또 도둑놈으로 만들고 해 가지고는 종잡을 수 없이 계속 끝이 없는 각본을 써가지.

우리 중생이 하는 짓이 바로 미친 정신병자가 연극 각본을 쓴 것처럼 종잡을 수 없이 우리의 무량겁을 그런 각본을 써 왔고,
앞으로 정법(正法)을 믿고 바른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을 해서 자기의 주인공(主人公)을 계발하고 그놈을 깨닫는 방향으로 나간 사람은 제외하고는, 그렇지 않는 사람은 착하나 악하나 그놈이 그놈이여.

언제 어떻게 변할른지 모르는 거여. 그래 가지고 무량겁을 생사윤회를 해 갈 거다 그말이여.

조금 착한 짓 한 사람은 좋은 곳에 태어날 거고, 악한 짓 한 사람은 삼악도(三惡道)에 떨어질 것이고, 천당에 좋은 곳으로 가봤자 받을 만큼 복을 받으면 또 떨어지는 거고, 삼악도에 떨어지면 그 받는 기한이 길고 길어서 언제 나올 기약 있을는지 모르나, 나와 봤자 또 마찬가지여. 언제 무슨 짓을 또 하냐.

그래서 무슨 소리를 듣던지 「이뭣고?」, 무슨 것을 눈으로 보든지 「이뭣고?」, 일체처 일체시에 「이뭣고?」를 하시라 그말이여.

우선 당장 괴로운 일이 있는데 「이뭣고?」만 할 수 있느냐?
괴로운 일 자체가 꿈에 등창을 앓거나 어디 종기를 앓는 거와 같애. 꿈이라 하지마는 실지로 꿈을 꾸고 있는 동안에는 정말 아퍼. 무서운 걸 보면 무섭고, 괴로운 것을 보면 괴롭고, 아플 때는 정말 꿈에도 아퍼요.

아프다가, 그렇게 몸부림을 치고 그러다가, 누가 와서 꿈을 깨거나 잠을 깨주면 눈을 뜨고 보면, 깨고 나서도 한참 아퍼. 아퍼도 정신을 차려서 보면 진짜는 안 아픈 거여 그게.
정말 눈 딱 떠서 정신만 차려버리면 그렇게 아프던 종기가 깨끗이 낫어 버리는 거여. 몰록 낫어, 몰록.

세속의 사전에는 ‘몰록’이란 말이 있는가 어쩐가 모르는데, 이 불가(佛家)에서는 ‘돈오돈수(頓悟頓修)’ 이래서 ‘몰록 깨닫고 몰록 닦는다’는 것이,
전기 스위치를 탁 올리면 찰나(刹那) 간에 탁 켜지고 탁 내리면은 찰나 간에 깜깜해지듯이, 그 꿈에 앓던 몸의 종기가 잠을 깨자마자 몰록 낫어버리는 거여. 차츰차츰 낫어가는 게 아니라.

그래서 방편(方便)•점차(漸次)가 없어. 점차(漸次)라고 하는 것이 없는 거여. 차츰차츰 요렇게 낫아가는게 아니라, 찰나(刹那) 간에 탁! 몰록 낫아버리는 것이여.

이궁어시(理窮於是)다. 모든 이치가 여기에서 다해 버린 거여.
그래서 활구참선이라 하는 것은 차츰차츰 알아 들어가고 차츰차츰 깨달라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계속 「이뭣고?」를 해 가면 자기의 본참공안(本參公案)을 계속 의심으로 참구(參究)를 해 가면, 해 갈수록 꽉 맥혀서 알 수가 없어.

그래 가지고 그 의심이 더이상 커질 수가 없고, 더이상 간절할 수가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면, 우리의 속도 의심으로 가득차고, 온 세계의 무엇을 보나 듣거나 산을 봐도 ‘이뭣고?’뿐이요, 꽃을 봐도 ‘이뭣고?’뿐이요.
‘이뭣고?’를 ‘이뭣고?’들면 있고 놓으면 없어지고 한 게 아니라, 들고 놓고 할 것이 없이 일체처 일체시에 의심이 온 법계에 가득차게 되서 더이상 커질 수가 없을 때는 어떠한 찰나에 툭 터지게 되는 거여.

의단(疑團)을 갖다가 통 밑구녁 빠지듯이 의단이 탁! 터지는 거여. 그러면서 자기 본래면목(本來面目)을 깨닫게 되는 거여.

비록 석 달 만에 깨달은 사람, 3년 만에 깨달은 사람, 30년 만에 깨달은 사람, 마지막 죽을 때까지 못 깨달은 사람도 있을 수가 있으나, 다른 모든 것은 하다가 안 되면 그것은 실패고, 소용이 없는데, 이 공부는 끝까지 이 목숨이 다할 때까지 해도 깨닫지 못했어도 그것이 헛일이 아니여.

바른 방법으로 열심히 해 놓은 것은 고대로 그 공덕이 거기에 다 있어서 금방 새로운 몸을 받아가지고 그 인연이 있기 때문에 젊어서 정법을 만나게 되고, 그 믿어지게 되고 그것을 실천하게 되면 젊어서 툭 3일 만에 깨닫고, 언하(言下)에 깨닫고, 한철 만에 깨닫는 것이 그 까닭이 있는 거여.
전생에 그렇게 하다가 몸을 바꿔났기 때문에 그렇게 쉽게 툭 깨닫게 되는 거여.

그래서 ‘하! 내가 이렇게 아무리 할라고 해도 안 된다’ 아까 조실 스님 법문에도 ‘그것이 왜 그러냐 하면은 믿음이 적기 때문에 그렇다’ 조실 스님은 그렇게 말씀하셨는데.
결국은 철저하게 믿고 철저하게 해야 혀. 반신반의(半信半疑)를 하고, 허다가 말다가 하고, 그래 갖고는 언제 그것이 될 거냐 그말이여.

할 때는 정말 철저하게 믿고, 철저하게 믿은 데에서 열심히 하면은 거기서 또 분심(憤心)이 나고, 분심 있는 곳에 신심이 더욱 깊어지고 해서, 그래 가지고 결국은 대의지하(大疑之下)에 대오(大悟)여. 의심이 크면은 크게 깨닫는다.
신심(信心)과 분심(憤心)과 의심(疑心)이 이것이 삼요소(三要素)인데, 이 삼요소로 나간다면 누가 못 깨닫게 되느냐 그말이여.

새해에 우리의 법보 가족은 대분심(大憤心)과 대신심(大信心)과 대의단(大疑團)으로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黙動靜) 간에 어떠한 종류의 일을 당하거나, 어떠한 종류의 사람을 만나거나, 어떠한 상황에 처하더라도 신분의(信憤疑) 삼요소로서 단속해 나가기를 우리는 1994년의 첫 번째 법회날을 맞이해서 다 같이 다짐을 합시다.(63분10초~81분17초)(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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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주(大主) ; ①무당이, 굿하는 집이나 단골로 다니는 집의 바깥주인을 이르는 말. ②여자가 자기 집의 바깥주인을 이르는 말.

*삼명육통(三明六通) ; 부처님이나 아라한이 갖추고 있는 3가지 자유 자재한 지혜와  수행으로 갖추게 되는 6가지 불가사의하고 자유 자재한 능력.
*육신통(六神通) : 보통 사람으로서는 헤아릴 수 없는 것을 헤아림을 신(神)이라 하고, 걸림 없는 것을 통(通)이라 한다。이 신통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로 말하지마는 흔히 여섯 가지로 말한다
1. 신족통(神足通)은 공간에 걸림 없이 왕래하며 그 몸을 마음대로 변화할 수 있는 것
2. 천안통(天眼通)은 멀고 가까움과 크고 작은 것에 걸림 없이 무엇이나 밝게 보는 것
3. 천이통(天耳通)은 멀고 가까움과 높고 낮음을 가릴 것 없이 무슨 소리나 잘 듣는 것
4. 타심통(他心通)은 사람뿐 아니라 어떤 중생이라도 그 생각하는 바를 다 아는 것
5. 숙명통(宿命通)은 자기뿐 아니라 육도(六道)의 모든 중생의 전생•금생•후생의 온갖 생애를 다 아는 것
6. 누진통(漏盡通)은 번뇌 망상이 완전히 끊어진 것이다.
제일통으로부터 제오통까지는 그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마음을 고요히 가지기만 힘쓰는 유루정(有漏定)을 닦는 외도(外道)나 신선(神仙) • 하늘 사람(天人) • 귀신들도 얻을 수가 있고, 약을 쓰든지 주문(呪文)을 읽어도 될 수 있다.
그러나 누진통만은 아라한(阿羅漢)이나 불•보살만이 능한 것이다. [선가귀감](용화선원) p94-95 참조.
*잡신(雜神) ; 온갖 잡스러운 귀신.
*삼능(三能) 삼불능(三不能) ; 당나라 숭악(崇嶽)의 원규(元珪)가 부처님의 3능(三能)과 3불능(三不能)을 세움.
(1) 3능(三能) - 부처님의 3가지 능한 것.
①일체 상(相)이 공(空)해서 만법을 아는 지혜를 이루는 것.
②모든 중생의 성품을 다 알고, 억겁(億劫)의 모든 일을 막힘이 없이 다 아는 것.
③한량없는 중생(무량중생)을 제도하는 것.
(2) 3불능(三不能) - 부처님의 3가지 능치 못한 것.
①무량겁으로부터서 지은 정업(定業)은 멸하지 못함.
②인연없는 중생을 제도하지 못함.
③무량중생을 제도하실 수는 있으나 중생계를 다 제도하지 못함.
*팔해탈(八解脫) ;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여덟 가지 선정(禪定).
*정업(定業) ; 과거에 지은 업에 따라 현세에서 받게 되는 과보(果報).
*법력(法力) ; ①체득한 달마(法)의 힘. ②가르침의 힘. 불법의 공덕. 불•보살의 위신력(威神力)을 중생에게 떨쳐 이익을 주는 것. 불법수행의 결과 얻은 힘.
*도력(道力) ; ①도의 근본에서 생기는 힘. 도를 얻음에 의하여 나타남. ②지혜의 힘.
*신통력(神通力 불가사의할 신,통할 통,힘 력) : 수행을 통(通)하여 도달하는 걸림없는 초인간적인(神) 능력.
*가비라국(迦毗羅國) ; kapila國(카필라). 석가모니(釋迦牟尼)의 아버님 정반왕(淨飯王)이 다스리던 나라. 실달다(悉達多) 태자(太子) 곧 석존(釋尊)이 태어난 곳.
*석가족의 멸망 ; BC 6세기에 코살라국(Kosals國) 사위성(舍衛城)의 왕인 파사닉왕(波斯匿王)이 석가족 사람과의 혼인을 청해 왔는데, 석가족은 파사닉왕이 낮은 신분 출신의 왕이어서, 왕의 청을 거만하게 생각하여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으나, 파사닉왕의 세력이 워낙 강했으므로 왕족 하녀의 딸을 석가족의 처녀라 속여 파사닉왕에게 보냈다.
이 하녀의 딸과  파사닉왕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유리(琉璃)태자가 8세 때 어머니의 나라인 석가족의 카필라국(Kapila國)을 방문했는데, 석가족의 사람들은 유리태자를 무시하고 ‘종년의 자식’이라 하며 천대하고 모욕을 주었다. 이에 태자는 원한을 품고 보복하려 마음 먹었다.

한 신하의 계략으로 파사닉왕이 죽고 유리태자가 왕위에 오르자,
지난날 석가족에게 당한 모욕을 보복하고자 출병을 하였는데, 그 소식을 듣고 부처님께서는 유리왕(琉璃王)과 그 군사들이 카필라국으로 가는 길목에-말라 죽은 고목 밑에 앉아 계셨다.
유리왕은 부처님의 모습을 보고, ‘부처님께서는 왜 잎이 무성한 나무 아래 앉지 않으시고, 말라 죽은 고목 아래 계십니까?’하고 여쭙자 ‘친족의 그늘은 나무의 잎과 같이 시원하다’고 말씀하시니, 유리왕은 부처님의 뜻을 알고 군대를 돌렸다. 그러나 또다시 석가족에 당한 모욕을 기억하고 카필라국으로 향했다.

이런 중에 부처님의 제자인 목련존자는 석가족을 구하고자 부처님께 나아가 사뢰었다.
‘저의 신통력으로 유리왕의 군대를 타방 세계로 던져버리거나, 카필라국을 허공에다 옮겨 놓거나, 카필라국 위에 쇠그물을 덮을 수 있다’고 하자, 부처님께서 ‘석가족의 전생 인연도 타방 세계에 던져 버릴 수 있겠느냐, 전생 인연도 허공에 옮겨 둘 수 있겠는가, 쇠그물로 전생 인연을 덮을 수 있겠는가’ 되물으시고,
‘지금 석가족들의 전생 인연이 이미 다 익었으므로, 이제는 그 갚음을 받아야 한다.’ 말씀하셨다.
세존께서는 곧 다음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비록 저 허공을 이 땅으로 만들고, 또 이 땅을 허공으로 만들려 해도, 그것은 다 본디 인연에 매었나니, 그 인연은 영원히 안 썩느니라.”
목련존자가 그 석가족 사람들이 아주 멸종이 되게 생겼으니까 5천 명을 골라가지고 바리때에다 담아 가지고 저 높은 하늘나라에다 갖다가 잠시 피신시키려 하자, 부처님께서는 “그래 봤자 뭔 소용이 되겠느냐? 한 번 해 봐라.” 그래서 목련존자가 그렇게 했는데 다 난리가 지나고 나서 바리때 속을 보니 다 죽어 있었다.

이렇게 세 번을 거듭 진군하다 돌아오고 진군하다 돌아왔으나 네 번째에는 부처님이 나타나지 않으셨다.
이리하여 유리왕과 그 군대는 석가족을 잔인하게 짓밟아 죽이는 악행을 저지르고 사위성(舍衛城)으로 되돌아 갔다.

부처님은 비구들과 함께 유리왕과 그 군대가 휩쓸고간 불태워진 카필라국을 보시고 곧 다음과 같은 게송을 읊으셨다.
“모든 현상은 덧없는 것이니, 한 번 나면 반드시 죽음이 있네. 나지 않으면 곧 죽지 않나니, 이 열반이 가장 큰 즐거움이네.”
그리고 부처님께서는 사위성 기수급고독원으로 가셨다. 그 때에 비구들에게 말씁하셨다.
“지금 저 유리왕과 그 군사들은 이 세상에 오래 살지 못하고 지금부터 일주일 뒤에는 다 없어지고 말 것이다.”
과연 유리왕과 그 군사들은 일주일 뒤에 강가에서 밤에 비바람이 몰아쳐 물에 떠내려가 죽어 아비지옥에 떨어졌다. 또 하늘 불이 내려와 궁전을 모두 불살랐다.
부처님께서는 천안(天眼)으로 유리왕과 그 군사들이 지옥에 떨어진 것을 아시고 곧 다음 게송을 읊으셨다.
“악(惡)을 행하되 못내 심한 것, 그것은 모두 몸과 입의 행(行)이다. 지금의 몸으로도 고통 받지만, 타고 날 목숨도 짧을 것이다.  만일 집에서 살게 될 때는 그 집은 모두 불에 살리고, 만일 목숨을 마치게 되면 반드시 지옥에 떨어지리라.”

부처님께서는 석가족과 유리왕의 전생 인연을 말씀하셨다.
“옛날 이 왕사성에 한 어촌이 있었다. 마침 흉년이 들어 사람들은 풀뿌리를 먹었는데, 그 촌에 큰 못이 있었고 또 거기는 물고기가 많았다. 왕사성의 사람들은 그 못에 가서 물고기를 잡아먹었다. 그 물고기중 하나가 `우리는 전에 이 사람들에게 아무 허물이 없는데, 이 사람들은 모두 와서 우리를 잡아먹는다. 다음에 원수를 갚자.`하였다.
그 촌에는 어떤 어린애가 있었는데, 물고기를 잡지도 않고 또 목숨을 죽이지도 않았으나 물고기들이 죽는 것을 보고 매우 재밌어하였다.
비구들이여, 알라. 그 때의 그 왕사성의 사람들이 석가족이고, 그 물고기중 하나가 지금의 저 유리왕이요, 그 때에 죽는 물고기를 보고 웃던 어린애는 바로 나이니라.
그 물고기를 잡아먹은 과보로 무수한 겁을 걸쳐 지옥에 떨어졌고 또 지금에 그 갚음을 받은 것이다. 나는 그 때에 물고기 죽는 것을 보고 웃었기 때문에 지금 머리가 아파 돌로 치는 것 같고 또 머리에 수미산을 인 것처럼 무겁다.
이것이 이른바 `이런 인연으로 말미암아 이런 갚음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몸과 입과 뜻의 행을 잘 단속하고 범행을 닦는 이를 생각하고 공경하고 받들어 섬기도록 하라. 이와 같이 공부하여야 하느니라.”
*번연하다 ; 어떤 일의 결과나 상태 따위가 훤하게 들여다보이듯이 분명하다.
*삼천불(三千佛) ; 과거세(過去世)의 천불(千佛), 현재세(現在世)의 천불, 미래세(未來世)의 천불을 통틀어 이르는 말.
*인연(因緣) ;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분 또는 사람이 상황이나 일, 사물과 맺어지는 관계.
*목건련 (目犍連, 目連) ; 산스크리트어 maudgalyāyana의 음사. 대(大)목건련 또는 마하(摩訶)목건련이라고도 한다. 원명 꼴리따. 부처님 십대제자(十大弟子)의 한 사람.
마가다국(magadha國)의 바라문 출신으로, 인근 마을의 사리불(舍利弗)와 친하여 어느 날 바라문교의 축제를 구경하다가 인생의 허무함을 느끼고 깨달음을 얻기 위해 스승을 찾아나서 라자가하(王舍城)의 유명한 회의론자 산자야 문하로 들어갔으나 완전한 마음의 평화를 얻지는 못하던 중에,
사리불이 라자가하의 거리에서 탁발을 하던 부처님의 제자 앗사지(馬勝)를 만나 들은 “일체는 원인이 있어 생기는 것 / 여래는 그 원인을 설하시네 / 그리고 또 그 소멸까지도 / 위대한 사문은 이와 같이 가르치네”라는 연기(緣起)의 가르침을 사리불한테 듣고는,
사리불과 산자야의 제자 250명과 함께 죽림정사를 방문해 부처님께 귀의했다. 신통력이 뛰어나 신통제일(神通第一)이라 일컬음. 사리불과 함께 불교교단의 중심인물이었다.
붓다보다 나이가 많았고, 탁발하는 도중에 외도(外道)들이 던진 돌과 기왓장에 맞아 고통을 겪는 중에, 사리불이 열반에 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붓다에게 나아가 열반에 들겠다고 말씀 드리고 고향으로 돌아가다 마수촌에서 열반에 들었다.

목련존자의 과거 업연(業緣) ; 먼 과거 전생에 목련(目連)은 늙은 눈먼 부모를 모시고 나이가 들도록 결혼도 하지 않고 부모를 봉양하고 살고 있었는데, 부모는 그것이 안타까워 성화를 하는 바람에 그는 젊은 처녀와 결혼을 하게 되었다.
그에게 시집온 여인은 처음 며칠 동안에는 별 불평없이 눈먼 시부모를 잘 모시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시부모를 보기만 해도 짜증을 내며 같이 살수 없다고 했으나, 그는 아내의 말을 듣고도 모른 척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외출하여 일을 보러 간 사이에 그녀는 일부러 진흙과 쌀겨와 쌀죽의 찌꺼기를 집안 여기저기에 흩뜨려 놓았다.
이렇게 해 놓고 돌아온 남편에게 눈먼 당신의 부모가 이렇게 해 놓았다고, 자기는 이제 시부모와 더이상 같이 못 산다고 하며 계속 들볶자 그는 아내의 말만 믿고 부모를 버릴 결심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딴 곳에 사는 친척이 부모님더러 한번 오라고 한다고 말하고는 수레에 태워 숲속에 깊이 들어가서, ‘아버지, 이 고삐 좀 잡고 계세요. 황소가 길을 잘 알고 있어서 가만 놔두어도 잘 갈 겁니다. 여기는 도둑들이 출몰하는 곳이니 저는 내려서 살펴봐야겠습니다.’하고는 숲속으로 들어갔다.

숲속에 들어간 그는 마치 도둑들이 공격을 해오는 것처럼 소리를 지르니까, 부모는 놀라면서 ‘아들아, 우리는 살 만큼 살았다. 우리는 신경쓰지 말고 너라도 어서 도망쳐라’고 하였다.
아들은 소리를 외치며 도적들처럼 다가와 부모를 죽여 시체를 숲속에 버린 뒤 집으로 돌아왔다.

이 악업으로 그는 무수한 세월동안 무간지옥에서 고통을 받았다. 그러고도 악행의 과보가 아직 다하지 않아서 100생 동안 온몸이 가루가 될 정도로 두들겨 맞아죽었다.

그러나 그는 또한 과거에 수없이 많은 부처님들을 모시고 열심히 수행하면서 서원을 세운 사람이기도 했다. 그 때 그는 미래 세상에 고따마 부처님께서 출현하시면 자기는 그 부처님 밑에서 으뜸가는 제자가 되겠다고 결심하고 많은 공덕 바라밀을 성취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목련존자의 태어남은 이번이 마지막이 되었고, 결국 외도들에 희생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미 아라한을 이룬 성자였기 때문에 중생처럼 단순히 죽은 것이 아니라 윤회의 고통에서 벗어나 완전한 적멸(寂滅)을 실현했던 것이다.

이같이 목련존자의 전생과 그에 따른 과보를 말씀하신 다음 부처님께서는 다음의 게송(법구경 137~140)을 읊으시었다.
“죄가 없고 자신과 남을 해치지 않는 자에게, 폭력를 사용하여 해를 끼치면, 참으로 아주 빠르게 다음 10가지 중 하나에 떨어지리라.
①심한 고통을 당함. ②아주 가난해짐. ③몸의 상해(신체적 절단). ④중대한 질병이나 정신이상을 일으킴. ⑤왕의 노여움을 사 모든 재산을 빼앗김. ⑥재산과 명예를 회복할 수 없는 고소를 당함. ⑦가족이 생명을 잃음. ⑧재산이 천재지변 등으로 파괴됨. ⑨집에 벼락이 내리거나 불에 탐. @그런 뒤 그 어리석은 자는 죽어서 지옥에 떨어져 고통을 당하리.”
[참고] [법구경-담마파다] (전재성 역주 | 한국빠알리성전협회) p451~454, [법구경이야기 2] (무념·응진 역 | 옛길) p 384~390.
*바리때 ; 절에서 쓰는 스님의 공양 그릇. 나무나 놋쇠 따위로 대접처럼 만들어 안팎에 칠을 한다. 발우(鉢盂)ㆍ발우대ㆍ응기(應器)ㆍ응량기라고도 한다.
*업연(業緣) ; 업보(業報)의 인연(因緣). 선업은 낙과(樂果)의 인연을 부르고 악업은 고과(苦果)의 인연을 부른다.
*외도(外道) ; 불교 이외의(外) 다른 종교의 가르침(道). 또는 그 신봉자.
*사리불(舍利弗) ; 산스크리트의 샤리푸트라(śāriputra), 팔리어(語) 샤리푸타(Sāriputta)의 음역(音譯)이며, 추자(鶖子) ·사리자(舍利子)라고도 한다. 원명 우빠띳사.
인도 중부의 마가다왕국 수도 왕사성(王舍城) 근처의 바라문 출신으로, 인근 마을의 목건련과 친하여 어느 날 바라문교의 축제를 구경하다가 인생의 허무함을 느끼고 깨달음을 얻기 위해 스승을 찾아나서 라자가하(王舍城)의 유명한 회의론자 산자야 문하로 들어갔으나 완전한 마음의 평화를 얻지는 못하던 중에,
라자가하의 거리에서 탁발을 하던 부처님의 제자 앗사지(馬勝)를 만나 들은 “일체는 원인이 있어 생기는 것 / 여래는 그 원인을 설하시네 / 그리고 또 그 소멸까지도 / 위대한 사문은 이와 같이 가르치네”라는 연기(緣起)의 가르침을 듣고 깨달아 목건련(目犍連) 및 250명의 산자야의 제자들과 함께 부처님께 귀의했다.
부처님도 그를 높이 평가하여, 경전 중에는 부처님을 대신하여 설법한 경우도 적지 않음을 볼 수 있다.
10대 제자 중 수제자로, 지혜가 가장 뛰어나, ‘지혜제일(智慧第一)’로 칭송되었다고 전한다.
부처님이 열반에 드시기 1년 전, 목건련이 그렇게 외도들의 몰매를 맞고 열반에 들려고 하자, 사리불은 자신이 목련보다 먼저 열반에 들겠다고 하고, 부처님께 자신이 부처님보다 먼저 열반에 들 것을 허락받기 위해 부처님이 계시는 기원정사로 갔다.
사리불은 ‘부처님께서 곧 열반에 드실 것을 알기에, 차마 제 눈으로 부처님의 열반을 볼 수 없어 먼저 열반에 들고자 합니다’하고 간청을 하여 허락을 받고, 고향으로 돌아와 마지막으로 어머니를 부처님께 귀의하게 한 후 열반에 들었다.
*치성(致誠 이룰 치,정성 성) ; 있는 정성을 다함. 또는 그 정성.
*천도재(薦度齋) ; 불교 의례의 하나. 망자의 넋을 부처님과 인연을 맺어 주어 좋은 곳으로 가게 하는 일.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각본(脚本) ; ①[연극][영화] 연극이나 영화, 방송극을 만들기 위해 배우의 대사나 동작, 장면 순서, 무대 장치 등을 구체적으로 적어 놓은 글. ②어떤 일이 일어나도록 사전에 꾸민 계획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제석천(帝釋天) ; 불법(佛法) 지키는 수호신. [天神]들의 제왕[] 샤크라〔釋〕라는 . 제석(帝釋), 석제(釋帝), 제석천(帝釋天), 제석왕(帝釋王), 제석태자(帝釋太子), 천주(天主)라고도 한다.

산스크리트어 이름은 샤크라 데바남 인드라(Śakra-devānām Indra). 석제환인다라(釋提桓因陀羅) · 석가제환인다라(釋迦提桓因陀羅) · 석가제바인다라(釋迦提婆因陀羅) · 석가제바인달라(釋迦提婆因達羅) 등으로 음역하고 줄여서석제환인(釋提桓因, 釋帝桓因) · 제석천(帝釋天)이라 한다.

『법화현찬(法華玄贊)』에서는 범어 석가제바인달라(釋迦提婆因達羅)에서 석가 ()씨이며 ()이라 한역하고, ‘제바 ()’이라 한역하며, ‘인달라 ()’ 한역하니  능천제(能天帝)’ 한다 뜻으로 보면 석가(능히) 제바(하늘의) 인달라(제왕)’

불교의 세계관에 의하면 세계의 중앙에 수미산이 있는데  수미산 정상에 있는 도리천의 왕으로, 사천왕(四天王)32() 통솔하면서 불법(佛法) 불제자를 보호한다. 도리천에는 33신이 있는데, 제석은  중앙에 있는 선견성(善見城) 안의 수승전(殊勝殿)이라는 궁전에 살고, 나머지 32신은  () 밖의 궁전에서 각각 산다.

제석천은 본래 인도 성전 《리그베다》에 등장하는 천신  벼락을 신격화한 가장 강력한 힘을 지닌 신이었으나 불교에수용되어서는 범천(梵天) 함께 호법선신 역할을 맡게 되었다. 그리하여 항상 부처님의 설법 자리에 나타나 법회를수호하고 사바세계 인간의 번뇌와 죄를 다스리는 역할을 담당한다.

한국에서는 단군의 할아버지를 석제환인(釋提桓因)이라고 하여 하늘의 주인과 제석천을 동일시하여 숭배하였다. <잡아함경>에는 제석천이 본래 사람이었으나 수행자에게 음식과 재물향과 와구(臥具등불을 베푼 인연으로 제석천이 되었다고 한다. 제석천왕은 신중탱화(神衆幀畵)  손에 금강저(金剛杵) 들고 머리에 보관(寶冠) 쓰는 모습으로 많이 등장한다.

*인과(因果) ; ①원인과 결과. 현상을 생성시키는 것과 생성된 현상. ②원인이 있으면 반드시 결과가 있고, 결과가 있으면 반드시 그 원인이 있다는 이치. ③선악의 행위에는 반드시 그 과보가 있다는 도리.
*숙명론(宿命論) ; 세상의 모든 일이 사람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운명에 의해 결정된다고 보는 견해나 학설. 같은말-운명론(運命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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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생보(現生報) ; 현세(現世)에서 업(業)을 지어 현세에서 받는 과보(果報)를 이른다. 순현보(順現報). 현보(現報).

*순생보(順生報) ; 지금 세상에서 지은 선악에 따라 다음 세상에서 받는 인과응보를 이른다. 생보(生報), 순차보(順次報).
*순후보(順後報) ; 지금 세상에서 지은 선악에 따라 삼생(三生) 이후에 받는 과보(果報)를 이른다. 후보(後報).
*범부(凡夫 무릇•보통 범,남편•사내 부) ; 번뇌(煩惱)에 얽매여 생사(生死)를 초월하지 못하는 사람. 이생(異生) 또는 이생범부(異生凡夫)라고도 한다.
*성문(聲聞) ; 부처님의 음성(聲)을 들은(聞) 사람이라는 뜻.
① 산스크리트어 śrāvaka, 팔리어 sāvaka. 부처의 가르침을 듣고 깨달음을 구하는 수행자. 부처의 가르침을 듣고 사제(四諦)의 이치를 깨달아 아라한(阿羅漢)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 수행하는 자. 자신의 깨달음만을 위해 부처의 가르침에 따라 수행하는 자. ② 성문승(聲聞乘)의 준말.
*멸진정(滅盡定) ; ①마음[心]과 마음작용[心所]을 소멸[滅盡]시켜 무심(無心)의 상태에 머무르게 하는 선정.
②무소유처(無所有處)의 경지에 이른 성자(聖者)가 모든 마음 작용을 소멸시켜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 닦는 선정(禪定).
멸진정은 무색계의 4천 중 제3천인 무소유처(無所有處)의 번뇌를 이미 떠난 상태에서 닦는 선정이기 때문에, 그 경지가 거의 무여열반(無餘涅槃)의 적정(寂靜)에 비견된다.
멸정(滅定)·멸진등지(滅盡等至)·멸진삼매(滅盡三昧)·상수멸정(想受滅定)·멸수상정(滅受想定)이라 한다.
*보살(菩薩) ; 산스크리트어 bodhi-sattva의 음사인 보리살타(菩提薩埵)의 준말.
bodhi는 깨달음, sattva는 살아 있는 존재, 곧 중생을 뜻하므로 보살은 깨달을 중생, 깨달음을 구하는 중생, 구도자(求道者)라는 뜻.  보살마하살 · 각유정 등으로도 불린다.
① 깨달음을 구하면서 중생을 교화하는 수행으로 미래에 성불(成佛)할 자. 자신도 깨달음을 구하고 남도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자리(自利)와 이타(利他)를 행하는 자.
② 보살승(菩薩乘)의 준말. ③ 수행자. ④ 고승(高僧)에 대한 존칭. ⑤ 여자 신도를 일컫는 말.
*육경(六境) ; 육진(六塵). 중생의 마음을 더럽히는 여섯 가지. 색(色), 성(聲), 향(香), 미(味), 촉(觸), 법(法)을 말한다.
*육식(六識) ; 육근(六根)에 의하여 대상을 깨닫는 여섯 가지 작용. 곧 안식(眼識), 이식(耳識), 비식(鼻識), 설식(舌識), 신식(身識), 의식(意識)의 여섯 가지이다.
*경계(境界) ; ①인과(因果)의 이치(理致)에 따라서, 자신이 부딪히게 되는 생활상의 모든 일들. 생로병사•희로애락•빈부귀천•시비이해•삼독오욕•부모형제•춘하추동•동서남북 등이 모두 경계에 속한다.
②나와 관계되는 일체의 대상. 나를 주(主)라고 할 때 일체의 객(客). ③시비(是非)•선악(善惡)이 분간되는 한계.  경계(境界)에는 역경(逆境)과 순경(順境), 내경(內境)과 외경(外境)이 있다.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스승)으로부터 화두•공안(公案)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공안)을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공안 또는 화두(話頭)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주인공(主人公)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청정한 부처의 성품을 나타내는 말.
*삼악도(三惡道) ; 악인(惡人)이 죽어서 간다는 세 가지 괴로운 세계. 곧 지옥도(地獄道), 축생도(畜生道), 아귀도(餓鬼道)를 가리킨다.
지옥도는 죄를 지어 죽은 뒤에 태어날 지옥세계이며, 축생도는 짐승의 몸이 되어 괴로움을 받는다는 길이고, 아귀도는 먹으려고 하는 음식은 불로 변하여 늘 굶주리고 매를 맞는 아귀들이 모여 사는 세계이다.
*방편(方便 방법·수단 방,편할 편) ; ①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일시적인 수단으로 설한 가르침.중생 구제를 위해 그 소질에 따라 임시로 행하는 편의적인 수단과 방법. 상황에 따른 일시적인 수단과 방법.
②교묘한 수단과 방법.
*점차(漸次) ; 시간이나 차례에 따라 조금씩.
*본참공안(本參公案) : 본참화두(本參話頭).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참구(參究 헤아릴 참,궁구할 구) ①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드는 것. ②참선하여 화두(공안)을 꿰뚫어 밝히기 위해 집중함. 화두 의심을 깨뜨리기 위해 거기에 몰입함.
*의단(疑團의심할 의, 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본래면목(本來面目 밑 본,올 래,낯 면,눈 목) ①자기의 본래(本來) 모습(面目). ②자신이 본디부터 지니고 있는,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의 성품.
*삼요(三要) : 참선하는데 갖추어야 할 세 가지 요건. 첫째는 큰 신심(大信心)이요, 둘째는 큰 분심(大憤心)이요, 세째는 큰 의심(大疑心)이다.
*신심(信心) : ‘내가 바로 부처다’ 따라서 부처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요, 일체처 일체시에 언제나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공, 이 소소영령한 바로 이놈에 즉해서 화두를 거각함으로써 거기에서 자성불(自性佛)을 철견을 해야 한다는 믿음.
*분심(憤心) : 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도인들은 진즉 확철대오를 해서 중생 제도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왜 여태까지 일대사를 해결 못하고 생사윤회를 하고 있는가. 내가 이래 가지고 어찌 방일하게 지낼 수 있겠는가. 속에서부터 넘쳐 흐르는 대분심이 있어야. 분심이 있어야 용기가 나는 것이다.
*의심(疑心) :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이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수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이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자기의 본참화두에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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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