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2014. 9. 21. 17:19

>>> 용화선원 법문 유튜브에서 보고 듣기 --->유튜브로 바로가기


 

 

§(111) 경절문(徑截門) 기도법—원인과 결과가 동시 / (게송)좌간백운청수성~ / 대오선(待悟禪) / “찾다가 저 죽는다” / 육도법계가 바로 청정법신 비로자나불.

깨달음도 역시 마찬가집니다. 우리는 진묵겁(盡墨劫) 전에 이미 깨달음, 진여불성(眞如佛性)을 부처님과 조끔도 차별 없는 진여불성을 우리도 원만구족(圓滿具足)해 있는 것입니다.
이미 구족해 있는 것이기 때문에 바로 한 생각 딱 돌이키면—어디서 깨달음이 오는 것도 아니요, 누가 깨달음을 가져다 주는 것도 아닌 것입니다. 그 곳에 이미 있는 것입니다. 원만구족하게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강 조실 스님께서 항시 말씀하시기를 “찾다가 저 죽는다” 이런 너무나도 간결하고 송곳으로 찌르듯 하는 그러헌 법문을 해 주신 것입니다.


언제 어디에라도 진여불성 아닌 것이 없고 법신불(法身佛) 아닌 것이 없건만, 왜 볼려고 허면 볼 수가 없고, 들을려고 허면 들을 수가 없느냐? 우리 모두에게 진묵겁 전부터서 원만구족해 있으면서 왜 우리는 그것을 보지 못하고 깨닫지를 못하고 육도윤회(六道輪廻)를 하고 있는 것이냐?
육도법계(六道法界)가 바로 청정법신(淸淨法身)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이시기 때문에 육도(六道)를 여의고 적광토(寂光土)는 따로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뭣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빠르고 요긴한 길은 오직 이 한마디 밖에는 없습니다.


**송담스님(No.111) - 79년 동지 법회(79.12.22) (용111)

 

(1) 약 19분.

 

(2) 약 6분.


(1)------------------

법요식을 맞아서 전강 조실 스님의 폭포수가 쏟아져 내리듯 한 그리고 사자의 부르짖음과 같은 종횡무진한 활구(活句)법문을 우리 사부대중은 들었습니다.

이 법문을 경건한 마음으로 위법망구(爲法忘軀)로 듣는 그것만으로써 이 자리에 모인 우리 사부대중은 무량겁 업장(業障)이 찰나간에 다 녹아 없어졌습니다.
무량겁 업장이 녹아 없어졌기 때문에 동지 법회에 참석하신 동참하신 여러분은 크고 작은 모든 소원을 성취하시게 될 것입니다.

앞으로 장차 성취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성취된 것입니다.
법문(法門)을 듣자마자 업장이 소멸이 되고, 업장이 소멸됨과 동시에 모든 소원은 그 자리에서 당장 성취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소원을 앞으로 차츰차츰 쪼끔씩 성취되어 간다고 생각하실 일이 아닙니다. 이미 성취가 다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경절문(徑截門)에 있어서의 기도법인 것입니다. 경절문은 비약적인 것이요 점진적인 것이 아닌 것입니다.

무엇을 듣고 이해를 해 가지고 차츰차츰 알아 들어가는 것—그것은 점진법이고 점진적인 것이고,
한 생각에 한 걸음도 옮기지 아니하고 바로 여래지(如來地)에 도달하는 것은 이것이 바로 경절문인 것입니다.

경절문은 시간과 공간이 없습니다. 원인과 결과가 동시(同時)인 것입니다.
어떠한 원인이 있어 가지고 어떤 시간을 거쳐서 열매를 맺는 것이 아니라, 원인이자 동시에 그것이 결과인 것입니다.

그래서 활구참선(活句參禪)을 허신 분은—‘참선을 해 가지고 언젠가 내가 깨달으리라’ 하루바삐 깨닫기를 바래고 바래는 마음으로 화두를 들고, 그것이 아닌 것입니다.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간에 딱! 화두 한번 거각(擧却)할 때 그곳에는 버려야 할 중생도 없고, 새로 깨달라야 할 부처도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화두를 들더라도, 한 번을 들더라도 그렇게 들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한 생각 한 생각을 단속해 나간다면 졸음이 어디에서 오며, 망상이 어디에 일어날 것이 있는 것입니까?

 


좌간백운청수성(坐看白雲聽水聲)허니  도로성색본가풍(都盧聲色本家風)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일륜상월만공산(一輪霜月滿空山)한데  한안여천향북비(寒雁唳天向北飛)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좌간백운청수성(坐看白雲聽水聲), 앉아서 흰구름을 보고 물소리를 들으니,
도로성색(都盧聲色)이 본가풍(本家風)이로구나. 모든 눈으로 보는 것, 귀로 들을 수 있는 모든 경계가 본래 가풍이로구나.

일륜상월(一輪霜月)이 만공산(滿空山)한데, 한 바퀴 서릿달이 공산(空山)에 가득한데,
한안(寒雁)이 여천향북비(唳天向北飛)로다. 차운 기러기가 하늘에 울며 북쪽을 향해서 날아가는구나.

우리는 깨닫기를 위해서 참선을 합니다. 누구를 막론하고 깨닫기를 위해서 참선을 하고, 어떠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기도를 합니다.

그래서 지금 하고 있는 일과 장차 자기가 바래는 일과의 사이에는 거리가 있습니다. 시간적인 거리, 공간적인 거리가 있습니다.

벌써 거리를 두고 기도도 하고 참선을 하고 그러기 때문에 그 거리로 인해서 장벽이 가로막혀 가지고, 현재 하고 있는 그 자체도 정말 올바르게 해 가지를 못하고,
올바르게 해 가지를 못하기 때문에 소원성취가 어렵고 목적지에 도달허기 어려운 것입니다.

시간적인 거리와 공간적인 거리를 자기가 만들어서 딱 가로막아 놓고서 아무리 갈려고 발버둥을 친들 그것이 될 것이냐 이 말씀입니다.

참선허는데 있어서 제일 몹쓸 병이 깨닫기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대오선(待悟禪), 「어서 깨달랐으면...」

깨닫기를 바래는 그것이 설사 밤잠을 안 자고 용맹정진을 해서 화두가 제법 일여(一如)하게 들린다 하더라도, 모든 번뇌와 망상이 다 없어지고, 맑고 고요하고 깨끗한 경지에 이르렀다 하더라도,

찰나간이라도 「어서 깨달랐으면..」, 「이럴 때 어떤 선지식이 와서 탁 나로 하여금 깨닫게 해 주셨으면..」
이러헌 생각을 먹게 된다면 이것은 바로 애써서 99%까지 올라갔다가 그 한 생각으로 인해서 다시 저 천길 만길 깊은 구렁텅이로 떨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깨닫기를 바래는 마음, 「어서 속히 어떠헌 목적을 성취했으면..」 그런 생각은 허지 말고,
오직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이 무엇고?」
공부가 잘 되어갈수록 「이 무엇고?」 조끔도 잘 된다고 좋아하는 생각도 내지 말고 또 잘 안 된다고 번뇌심이나 짜증도 내지를 말고,

오직 한 생각 한 생각, 산을 보든지, 물소리를 듣던지, 새소리를 듣던지, 기차 소리를 듣던지, 애 우는 소리를 듣던지, 문닫는 소리를 듣던지,
무엇을 보거나 무엇을 듣거나 한 생각 한 생각 바로 거기에서 본참화두(本參話頭)를 거각하는 것입니다.

「관세음보살」이나 「옴마니반메훔」을 부르는 그러헌 수행을 하시는 분은 누워서도 「관세음보살」, 앉아서도 「관세음보살」, 차를 타면서도 「관세음보살」, 기쁜 일을 당해도 「관세음보살」, 슬픈 일을 당해도 「관세음보살」, 속이 상한 일을 당해도 「관세음보살」,
이렇게 염념불망(念念不忘)으로 일여(一如)하게 정진을 해 간다면 아무리 업장이 두터운 업보(業報) 중생이라 할지라도 거기에서 시간과 공간의 거리가 없이 바로 그 자리에 소원성취가 갖추어져 있는 것입니다.

깨달음도 역시 마찬가집니다.
우리는 진묵겁(盡墨劫) 전에 이미 깨달음, 진여불성(眞如佛性)을 부처님과 조끔도 차별 없는 진여불성을 우리도 원만구족(圓滿具足)해 있는 것입니다.
이미 구족해 있는 것이기 때문에 바로 한 생각 딱 돌이키면—어디서 깨달음이 오는 것도 아니요, 누가 깨달음을 가져다 주는 것도 아닌 것입니다. 그 곳에 이미 있는 것입니다. 원만구족하게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조실 스님께서 항시 말씀하시기를 “찾다가 저 죽는다” 이런 너무나도 간결하고 송곳으로 찌르듯 하는 그러헌 법문을 해 주신 것입니다.

다못 알 수 없는 꽉 맥힌 의심, 「이 무엇고?」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망상이 일어나고 안 일어나고 그것도 상관이 없습니다. 앉았거나 누웠거나 그것도 상관이 없습니다.
죄가 많고 적은 것도 상관이 없습니다. 몸이 아프거나 괴롭거나 쓰리거나 그것도 상관이 없습니다.

아프다고 가려 내놓고, 바쁘다고 그 시간은 가려 내놓고, 망상이 일어난다고 그 시간은 가려 내놓고,
잠잘 때라고 가려 내놓고, 속상헌다고 가려 내놓고, 기쁘다고 가려 내놓고,
이리저리 다 가려 내놓으면 언제 공부를 해야 할 때냐?

중생은 단 한 생각 동안이라도 생각 없는 시간이 없습니다.
생각 없는 편안하고 고요하고 그러헌 때를 찾어서 공부를 할려고 하면 일생 동안 공부할 시간이 없는 것입니다.

눈을 통해서는 보아야 하고, 귀를 통해서는 들어야 하고, 코를 통해서는 냄새를 맡아야 하고, 숨쉬어야 하고, 입을 통해서 맛보고 말을 해야 하고, 손과 몸을 통해서는 따뜻하고 차웁고 딱딱하고 부드러운 거 그런 것을 다 감각을 해야 합니다.

잠시도 육근(六根)을 쉬고 일 없는 시간이 없습니다. 언제나 끊임없이 자동적으로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육근은 활동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활동하는 시간을 없이 하고 참선을 헐랴고 한다면 그 사람은 영원토록 그 사람이 생각하는 참선은 헐 기약이 없습니다.

진여불성(眞如佛性)은 너무나도 크고, 너무나도 위대하고, 너무나도 맑고 깨끗하고 영특해서, 일체처 일체시 시간과 공간에 언제나 어디에나 두루하지 아니헌 곳이 없습니다.

그 표현이 바로 우리가 눈을 통해서 볼 수 있는 모든 것이요. 귀를 통해서 들을 수 있는 모든 것입니다. 육근을 통해서 느낄 수 있는 모든 것이 바로 진여불성의 표현입니다.
그것을 통해서 우리는—눈으로 볼 수 없고, 귀를 통해서 들을 수 없고, 손을 통해서 잡을 수 없는 진여불성을 우리는 깨달라야 합니다.

왜 눈으로 코로 귀로 육식(六識)을 통해서 볼 수 있는 모든 것이 진여불성의 표현인데,
어째서 눈으로 볼랴고 하면 보이지 아니하고, 귀로 들을랴고 하면은 들리지 아니하고, 손으로 잡을랴고 하면은 잡히지를 않는 것이냐?

우리는 목숨 바쳐서, 이것을 깨닫기 위해서 목숨을 바쳐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언제 어디에라도 진여불성 아닌 것이 없고 법신불(法身佛) 아닌 것이 없건만, 왜 볼려고 허면 볼 수가 없고, 들을려고 허면 들을 수가 없느냐?
우리 모두에게 진묵겁 전부터서 원만구족해 있으면서 왜 우리는 그것을 보지 못하고 깨닫지를 못하고 육도윤회(六道輪廻)를 하고 있는 것이냐?

육도법계(六道法界)가 바로 청정법신(淸淨法身)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이시기 때문에 육도(六道)를 여의고 적광토(寂光土)는 따로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뭣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빠르고 요긴한 길은 오직 이 한마디 밖에는 없습니다.

한 생각 돌이켜서 ‘이뭣고?’ 할 때, 불이 펄펄 타오르는 지옥으로 느껴졌던 것이,
한 생각 돌이킨 곳에 바로 그것이 천당이 되고, 극락이 되는 그 묘한 방법이 바로 참선법, 활구참선법 ‘이 무엇고?’ 뿐인 것입니다.(처음~19분3초)

 

 

 



(2)------------------

동지(冬至)는 일년 중에 밤이 제일 긴 날입니다. 하지(夏至)는 일년 중에 낮이 제일 긴 날이고, 동지는 밤이 제일 긴 날입니다.

그래서 동지에는 저 옛날부터 중국의 당나라 때부터 500명, 1000명, 1500명, 1700명, 이렇게 참선하는 대중 스님네가 많은 그런 선방에서도 이 동짓날에는 다 법회를 갖고, 또 선망부모의 천도를 해 드리고,
도량(道場)의 모든 수호신들에게도 다 공양을 해서, 앞으로 새로 다가오는 새해에 모든 업장이 소멸이 되고 모든 소원이 성취되기를 바래는 그러헌 법요식을 거행해 왔는 것이 기록에 나와 있습니다.

그래서 조실 스님 계실 때도 항시 동지에는 여러분들이 모다 팥도 가지고 오시고, 찹쌀도 가지고 오시고 그렇게 해서 동지 팥죽공양을 올리고 법요식을 가졌습니다.
중국이나 우리나라에서도 옛날부터 동지에는 팥죽을 쑤어서 선영(先塋)에 모다 제사(祭祀)도 잡숫고, 차례(茶禮)도 잡숫고 헌 풍속이 예절이 지금까지도 전해오고 있습니다마는,

동지 법요식을 맞아서 어떻게 허는 것이 정말 우리의 선영을 천도(薦度)해 드리는 것이 되며, 어떻게 허는 것이 도량 신장(神將)을 안위하는 길이 되며, 어떻게 허는 것이 우리 자신들의 업장을 소멸하게 되는 것이며,
어떻게 하는 것이 우리의 모든 소원을 성취허는 것이냐? 하는 것에 대해서 조실 스님의 법문과 제가 말씀드린 말씀을 통해서 잘 이해하셨을 줄 생각합니다.

묵은 한 해를 청산하고 돌아오는 새해를 발전적으로 살아가기 위해서 우리는 새로운 각오를 해야할 줄 생각합니다.

일파유조(一把柳條)를 수부득(收不得)하야  화풍탑재옥난간(和風塔在玉欄干)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한줌, 한아름 버들가지를 거두어 잡지 못해서,
화풍탑재옥난간(和風搭在玉欄干)이라. 바람에 맡겨서 옥난간(玉欄干)에다가 걸어두노라.

버들가지는 바람에 일렁일렁해서 아무리 잡을라야 잡을 수가 없어. 그래서 바람 부는대로 바람과 함께 옥난간에 걸쳐있게 놔둔다. 이런 내용의 게송(偈頌)입니다.

참 법문은 입을 통해서 설(說)할 수 없고, 귀를 통해서 들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러헌 게송을 읊어 보았습니다.(처음~24분18초)(끝)

 

 

 



------------------(1)

*위법망구(爲法忘軀) ; 법(진리)를 구하기 위해 몸(軀) 돌보는 것을 잊는다(忘).
*업장(業障) ; 전생(前生)이나 금생(今生)에 행동•말•마음(신구의,身口意)으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이 세상에서 장애(障礙)가 생기는 것.
*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 법,문 문) :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경절문(徑截門 지름길 경,끊을 절,문 문) ; 지름길문. 경절(徑截)이란 ‘바로 질러 간다’는 뜻.
교문(敎門)의 55위 점차를 거치지 않고 한 번 뛰어서 여래의 경지에 바로 들어가는 문.
다시 말하면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활구 참선법(活句參禪法). 즉 일체의 어로(語路), 의리(義理), 사량 분별의 길을 거치지 않고 직접 마음의 본체에 계합함을 일컫는다.
*여래(如來) : 부처님 10호의 하나。 범어 Tathagata의 역(譯).
여(如)는 진여(眞如)의 뜻이니 곧 진여로부터 나타나 오신 각자(覺者)의 뜻。 또 여거여래(如去如來)의 뜻으로서 여여부동(如如不動)하게 사바세계에 오셔서 중생의 근기에 응하신 까닭에 여래(如來)라고 함.
금강경에는 좇아온 곳이 없고 또한 돌아갈 곳이 없으므로 여래라고 이름한다 했음.
*여래지(如來地) ; 불지(佛地). 부처의 지위(地位)·경지(境地). '부처의 상태를 이루었다'는 뜻의 성불(成佛)과도 같은 뜻.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1700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거각(擧却 들 거,어조사 각) ; 화두를 든다.
*대오선(待悟禪 기다릴 대,깨달을 오,고요할 선) ; 참선허는데 있어서 깨닫기(悟)를 기다리는 것(待).
이 「깨닫기를 기다리는 것」은 화두를 참구하는데 10가지 병(病)의 하나로, 수행자는 이런 생각없이 일체처 일체시에 오직 알 수 없는 의심으로 본참화두를 들어야 한다.
[참고] [몽산법어(蒙山法語)] (용화선원刊) '박산무이선사선경어(博山無異禪師禪警語)'에서.
“做工夫호대  不得將心待悟어다.  如人이  行路에  住在路上하야  待到家하면  終不到家니  只須行하야사  到家오  若將心待悟하면  終不悟니  只須逼拶令悟요  非待悟也니라”


공부를 짓되 마음을 가져 깨닫기를 기다리지 말라.  마치 사람이 길을 가매 길에 멈춰 있으면서 집에 이르기를 기다리면 마침내 집에 이르지 못하나니, 다만 모름지기 걸어가야 집에 도달하는 것과 같아서, 만약 마음을 가져 깨닫기를 기다리면 마침내 깨닫지 못하니, 다만 모름지기 애써서 깨닫게 할 뿐이요, 깨닫기를 기다릴 것이 아니니라.”(p163-164)

“做工夫호대  着不得一絲毫別念이니  行住坐臥에  單單只提起本叅話頭하야  發起疑情하야  憤然要討箇下落이니라.  若有絲毫別念하면  古所謂雜毒이  入心하야  傷乎慧命이라하니  學者는 不可不謹이니라”


“공부를 짓되 털끝만치라도 딴 생각[別念]을 두지 말지니, 가고 멈추고 앉고 누우매 다못 본참화두(本叅話頭)만을 들어서 의정을 일으켜 분연히 끝장 보기를 요구할 것이니라. 만약 털끝만치라도 딴 생각[別念]이 있으면 고인이 말한 바 「잡독(雜毒)이 마음에 들어감에 혜명(慧命)을 상한다」하니, 학자는 가히 삼가지 않을 수 없느니라.”

“余云別念은  非但世間法이라  除究心之外에  佛法中一切好事라도  悉名別念이니라.  又豈但佛法中事리요  於心體上에  取之捨之  執之化之가  悉別念矣니라”


“내가 말한 딴 생각[別念]은 비단 세간법만 아니라 마음을 궁구하는 일 외에는, 불법(佛法)중 온갖 좋은 일이라도 다 딴 생각[別念]이라 이름하느니라.
또 어찌 다만 불법중 일뿐이리오?  심체상(心體上)에 취하거나[取], 버리거나[捨], 집착하거나[執], 변화하는[化] 것이 모두 다 딴 생각[別念]이니라.” (p164-166)

“做工夫호대  不得求人說破이니  若說破라도  終是別人底요,  與自己로  沒相干이니라.  如人이  問路到長安에  但可要其指路언정  不可更問長安事니  彼一一說明長安事라도  終是彼見底요,  非問路者의  親見也이니라.  若不力行하고  便求人說破도  亦復如是하니라”


“공부를 짓되 다른 사람이 설파(說破)하여 주기를 구하지 말지니, 만약 설파(說破)하여 주더라도 마침내 그것은 남의 것이요, 자기와는 상관이 없나니라.
마치 사람이 장안으로 가는 길을 물으매 다만 그 길만 가리켜 주기를 요구할지언정 다시 장안의 일은 묻지 말지니, 저 사람이 낱낱이 장안 일을 설명할지라도 종시(終是) 그가 본 것이요, 길 묻는 사람이 친히 본 것은 아니니라. 만약 힘써 수행하지 않고 남이 설파하여 주기를 구하는 것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p180-181)
*일여(一如) ; 완전히 하나가 되어 나눌 수 없음.
*본참화두(本參話頭) :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옴마니반메훔 ; 자비의 화신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의 성스러운 자비(慈悲)를 나타내는 진언(眞言)으로 ‘오! 연꽃 속의 보석이여!’라는 뜻이다. 여기서 보석은 자비의 상징이고, 연꽃은 지혜·깨달음의 상징이다.
산스크리트어 oṃ maṇi padme hūṃ  육자대명왕진언(六字大明王眞言), 육자진언(六字眞言)이라 한다.
이 진언을 외우면 관세음보살의 자비에 의해 번뇌와 죄악이 소멸되고, 온갖 지혜와 공덕을 갖추게 된다.
*업보(業報) ; 자신이 행한 선악(善惡)의 행위에 따라 받게 되는 과보(果報).
*진묵겁(塵墨劫) ; 티끌이 쌓여 먹(墨)이 될 만큼의 오랜 시간.
*진여(眞如) ; ①차별을 떠난,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②궁극적인 진리. ③모든 분별과 대립이 소멸된 마음 상태. 깨달음의 지혜. 부처의 성품. ④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청정한 성품.
*불성(佛性) ; ①모든 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부처가 될 수 있는 소질·가능성. ②부처 그 자체. 깨달음 그 자체.
*원만구족(圓滿具足) ; 모자라거나 결함이 없이 완전히 모두 갖추어져 있음.
*법신불(法身佛) ; 절대적 지혜의 지고한 상태, 즉 진리 그 자체를 가리키는 부처님(佛).
*육도윤회(六途輪廻, 六道輪廻) ; 선악(善惡)의 응보(應報)로 육도(六途-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의 고락(苦樂)을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것.
*육도법계(六道法界) ; 육도(六道)의 세계. 육도(六道).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 ; 비로자나(毘盧遮那)는 vairocana의 음사(音寫). 부처님의 몸에서 나오는 빛과 지혜의 빛이 세상을 두루 비추어 가득하다(光明遍照,遍一切處,日)는 뜻.
①진리 그 자체인 법신(法身)을 형상화한 것. 비로자나 법신불(毘盧遮那 法身佛)
②대일여래(大日如來)와 같음.
*적광토(寂光土) ; 상적광토(常寂光土). 상적광(常寂光). 법신불(法身佛)이 머무르는 정토(淨土).
상적광토는 이상(理想)과 현실(現實), 정(靜, 寂)과 동(動, 光)의 본래(本來, 常) 일체(一體)인 세계로 그것은 여기와 저기, 차안(此岸)과 피안(彼岸)을 넘어 체득되는 참된 절대계(絕對界)이고, 법신불의 상주(常住)의 정토(淨土)이다.

 

 

 



------------------(2)

*도량(道場) : [범] bodhimandala 도를 닦는 곳이란 말이다。습관상 「도량」으로 발음한다.
*선영(先塋) ; 조상의 무덤. 또는 조상의 무덤이 있는 곳.
*제사(祭祀) ; 신령이나 죽은 사람의 넋에게 음식을 바치어 정성을 나타냄. 또는 그런 의식.
*차례(茶禮) ; 음력 매달 초하룻날과 보름날, 명절날, 조상 생일 등의 낮에 지내는 제사.
*천도(薦度) ; 불교 의례의 하나. 망자의 넋을 부처님과 인연을 맺어 주어 좋은 곳으로 가게 하는 일.
*신장(神將) ; 불법(佛法)을 보호하는 신장. 또는 《화엄경》을 보호하는 신장.
*(게송) ‘一把柳條收不得  和風塔在玉欄干’ ; [가태보등록(嘉泰普燈錄)] 제23권 황정견(黃庭堅)거사 게송 참고.
*게송(偈頌) ; 시(詩), 게(偈)와 송(頌) 모두 불교의 가르침을 싯구로 나타낸 것.

Posted by 닥공닥정
법회(초파일)2014. 4. 25. 19:32

§(389) 부처님의 생애 / 등(燈)공양의 공덕 / 제석천왕의 설화 / ‘이뭣고?’할 때 ‘진리의 등불’을 켜는 것, 자성중생(自性衆生)을 제도하는 것 / 선지식(善知識), 불보살의 화현.

등 공양의 공덕 - 이 몸뚱이 있는 채로, 진리를 향해 우리는 부처님께서 탄생하시듯이 우리도 오늘 새로 태어나야 할 것입니다.


‘이뭣고?’ 한마디 화두를 거각(擧却)할 때, 마음속 ‘진리의 등불’을 켜는 것이고, 자성중생(自性衆生)을 제도하는 것.


우리가 신심(信心)으로서 보면은 날마다 불보살의 화현을 친견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마는, 탐진치 삼독이 가득찬 그 눈으로는 날마다 불보살을 친견하면서도 그 불보살인 줄 모르고 지나쳐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이뭣고?’ - ‘한 생각’ 돌리는 것이 소신연비(燒身燃臂), 위법망구(爲法忘軀)의 신심인 것입니다.


**송담스님(No.389) - 89년(기사년) 부처님오신날 법어(89.05.12)에서. (용389)

 

(1)약 22분.

 

(2)약 20분.

 

 

(1)--------------------

 

오늘은 불기 2533년 기사년 사월초파일, 부처님오신날입니다.
부처님 열반(涅槃)하신 해를 1년으로 해 가지고 금년이 2533년이니까, 부처님께서는 80세에 열반을 하셨으니 거기에 80을 더하면 2613이 됩니다. 부처님이 탄생하신 지는 2613년이 되는 것입니다.

 


〇<석가모니의 생애.>

 

인도 가비라(迦毘羅) 왕국 - 지금의 네팔입니다마는, 그 가비라 왕궁의 정반왕을 아버님으로 마야 왕비를 어머님으로 해서 태자로 태어나셨습니다. 그 이름이 싯다르타(siddhartha)입니다, 실달(悉達)태자.


우리 중생의 눈에는 인간 실달태자 밖에는 보이지를 않습니다.
자기가 성문(聲聞), 연각(緣覺)이냐? 또는 보살(菩薩)이냐? 또는 부처님이냐? 자기의 깨달은 경지에 따라서, 태어나신 실달태자를 인간 실달태자로 보기도 하고, 화신불(化身佛)로 보기도 하고, 보신불(報身佛)로 보기도 하고, 또 법신불(法身佛)로 볼 수도 있는 것입니다.

오늘은 일단 우리 중생의 눈에 역사적으로 볼 수 있는 인간 실달태자의 역사를 잠깐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16세에 결혼을 하셨습니다. 야수다라라고 하는 아주 예쁜 덕을 갖춘 미인과 결혼을 하셨습니다. 그래가지고 라후라라고 하는 아들을 탄생을 하셨습니다. 경전에 따라서는 출가하신 날 탄생하셨다고 이렇게 적혀있는 경전도 있습니다마는 그래가지고 29세에 출가를 하셨습니다.

29세에 출가하셔 가지고 히말라야 설산에 들어가셔서 6년 간을 하루에 삼씨 한 개와 곡식 한 알씩만을 잡숫고서 무서운 고행(苦行)을 하셨어. 그래가지고 피골(皮骨)이 상접(相接)했습니다. 그토록 무섭게 용맹정진을, 고행을 하셨지마는 깨달음을 얻지를 못하셨어.

그래서 ‘이 몸뚱이만을 괴롭히는 고행을 위한 고행을 가지고서는 깨달음에 이를 수가 없구나.’ 그것을 알으시고서, 니련선하(尼連禪河)에 내려가셔서 목욕을 하시고, 그때 수자타라고 하는 마을 처녀가 바치는 유미(乳米)죽을 받어 잡숫고,
깨끗한 몸뚱이와 쇄락(灑落)한 정신으로써 갠지스강 중류 남쪽에 있는 우루벨라촌 - 나중에는 거기를 붓다가야(buddhagayā)라고 지금은 부릅니다마는 - 그 우루벨라촌 보리수(菩提樹) 나무 밑에서 정진을 하셨습니다. 그 보리수 나무 밑에서 명상에 들어가셨습니다. 그래가지고 견성성불(見性成佛)을 하셨어.

12월 초팔일(初八日) 동천(東天)에 떠있는 샛별을 보시고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셨습니다.

소승(小乘) 경전에는 그때 무슨 진리를 깨달으셨느냐? '초저녁에는 사제법(四諦法)을 깨달으시고, 중야(中夜)에는 12인연법을 깨달으셨다' 이러한 기록이 있습니다마는, 한마디로 말해서 아까 조실 스님 법문에도 설하신 바와 같이 ‘생사 없는 도리’를 깨달으셨어.

그래가지고 진리를 깨달으시고서, 베나레스 교외에 있는 녹야원(鹿野苑)으로 가셔서 교진여(憍陳如) 등 다섯 비구를 교화하셨습니다. 그 5비구가 부처님의 법문을 듣고 사제법(四諦法)을 깨달랐어. 고집멸도(苦集滅道) 사제(四諦)의 성제(聖諦)를 깨달랐어.
그래가지고 그 제자들로 하여금 한 길을 둘이 가지 말고, 따로따로 동서남북으로 흩어져 가서 이 불법(佛法)을 펴도록, 그 뒤로 많은 제자들이 불어났습니다. 항상 천이백오십의 상수제자가 부처님을 따랐습니다.

열반하실 때까지 8만4천 법문(八萬四千法門)을 설하셨어.
주로 부처님께서는 여름 그 우기(雨期)에는 다니실 수가 없으니까 정사(精舍)에 모여서 그 우기를 피하시고, 우기가 지난 다음에는 일 년 내내 계속 유행(遊行)을 하시면서 인연 있는 중생을 제도하셨는데,
주로 교화 중심지는 마갈타국 수도인 왕사성(王舍城)에 있는 죽림정사(竹林精舍)와 또 부처님 고향에 가까운 사위성(舍衛城)에 기원정사(祇園精舍)를 근본 교화 중심지로 해서 8만4천 법문을 설하셨어.

최초에 12년 간은 아함경을 설하시고, 그다음 8년 간은 방등경을 설하시고, 그다음 21년 동안에 걸쳐서 반야경, 지금 우리가 독송을 하는 금강경도 그 반야경에 소속된 경전입니다마는 그 반야경은 진공의 진리를 설하신 거고, 그리고 마지막 8년간은 법화경•열반경을 설하셨어. 그래서 8만4천 법문을 49년 동안에 설하셨다.

그래가지고 80세를 일기로, 열반에 드시기 전에 마지막 그 파바 마을에 사는 금속공인 춘다가 올린 그 공양을 잡숫고 중병을 얻으셔서 마침내 구시나가라에서 열반에 드셨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수자타가 바친 유미죽을 잡숫고 도를 깨달으시고, 춘다가 바친 공양을 잡숫고 열반에 드셨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수자타가 바친 유미죽을 먹고 깨달음을 얻은 그 공덕이나, 춘다가 바친 그 공양을 잡숫고 열반에 드셨으나 그 춘다의 공양의 공덕은 조금도 다름이 없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무량 중생의 공양을 받으셨고, 그리고 무량 법문을 설하셨습니다.

 


〇<등 공양의 공덕 - 이 몸뚱이 있는 채로, 진리를 향해 ‘새로 태어남.’>

 

오늘도 이렇게 ‘부처님 오신날’을 기해서 우리 수천 명의 불제자들이 이렇게 오색이 찬란한 정성어린 등불로써 부처님께 공양(供養)을 올렸습니다.

우리 정성어린 이 한 개의 등(燈)을 부처님께 올린 그 공덕 - 수자타가 바친 유미죽의 공덕이나, 춘다가 바친 그 버섯국의 공덕이나, 금일 우리 신남신녀(信男信女)가 바친 이 한 개의 등 공양은 그 공덕에 있어서 추호도 다름이 없을 것입니다.

우리 사부대중 신남신녀가 바친 이 하나의 등 공양의 그 공덕(功德)이 과연 무엇이겠습니까?

2613년 전에 부처님이 탄생하신 그날을 봉축(奉祝)한 그러한 뜻으로 등을 올렸습니다. 그 공덕으로 우리는 부처님께서 탄생하시듯이 우리도 오늘 새로 태어나야 할 것입니다.

등을 올리고 부자가 되게 해 주십시오.’ ‘업장이 소멸되게 하십시오.’ ‘아들이 대학에 합격하게 하십시오.’ ‘우리 회사가 잘되게 해 주십시오.’ 그러한 일도 물론 인간 세상에 있어서 필요하고 중요한 일이기는 하지만, 우리는 새로 태어나는 법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오늘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온 세계가 민주주의를 부르짖고, 우리나라는 조국통일을 부르짖고, 세계평화를 구호로 부르짖고 있습니다마는, 어떠한 민주주의도 조국통일도 세계평화도 개개인의 자각 없이는 이루어질 수가 없습니다.

그 자각(自覺)이라고 하는 것이 무엇이냐? ‘새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이 몸뚱이가 죽어야 새로 태어날 것이 아니냐?’ 그렇지 않습니다. 새로 태어난 것은 이 몸뚱이 고대로 두고-뱃속에 똥과 오줌과 피와 고름 고대로 둔 채 또 우리의 가슴에 심장의 맥박은 발딱발딱 뛰고 있는 고대로 놔둔 채, 우리는 새로 태어나는 길이 있는 것입니다.

 


부처님 당시에, 제석천왕(帝釋天王)이 터억 자기 자신을 생각해보니까 자기가 죽어서 반드시 당나귀 뱃속에 태어날 것을 알았어.
제석천왕도 다 32상(三十二相)을 갖춘 참 복많은 그러한 하늘나라 신 가운데 최고로 높고 거룩한 왕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다 신통(神通)이 자재해. 그래서 자기 자신을 돌아보니까 자기가 죽어서 과거에 지은 업(業)으로 인해서 당나귀 새끼로 태어날 것을 알았다 그말이여.

일개 제석천왕으로서 사주(四洲) 세계의 복과 죄를 한 몸에 권한을 쥐고 있는 그러한 천왕(天王)으로서 당나귀 뱃속으로 들어가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기가 맥히다 그말이여. 그래서 날이면 날마다 근심 속에 사로잡혀 있어.

그러다가 퍼뜩 생각이 떠오르기를 『이 문제는 오직 부처님만이 해결해 주실 수가 있을 것이다. 부처님께 가서 여쭈어 봐야만 이 해결책을 알 수가 있을 것이다. 삼계(三界)의 대도사(大導師)요, 사생(四生)의 자부(慈父)이신 진리를 깨달으신 성인 가운데 성인이신 부처님만이 이 문제를 열어주실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들어서 부처님 앞에 나아가서 오체투지(五體投地)로 절을 했어.
있는 정성을 다해서 오체투지로 부처님 발 아래 엎드렸다 그말이여.

아직 일어나기 전에 엎드린 그 상태에서 그 몸뚱이를 떠났습니다. 그 몸뚱이를 끌고 다니는 그 제석천왕의 영혼이 그 몸뚱이를 떠났어. 떠나 가지고 저 사바세계(娑婆世界)의 어느 그릇을 굽는 도공(陶工) 집에 당나귀 뱃속에 들어갔어.
그런데 그 당나귀가 굴레가 벗겨져 가지고, 굴레와 고삐로 묶여있던 당나귀가 그 어떻게 해서 그 굴레가 벗어지니까 그놈이 너무 좋아서 그랬던지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해 가지고 정성들여서 맨들어 놓은 많은 그릇을 갖다가 산발산발 다 발길질을 해서 다 깨뜨려 버렸습니다.

그러니까 그 그릇을 굽는 도공이 그 정성들여서 맨들어 놓은 그릇을 다 깼으니 얼마나 화가 났느냐 그말이여. 그래서 몽둥이로 사정없이 당나귀를 뚜드려 팼습니다. 당나귀는 그 주인의 몽둥이를 맞고 밴 새끼를 낙태를 했습니다.
낙태를 하자마자 당나귀 뱃속에 태어났던 그 제석천왕의 영혼은 다시 부처님 앞에 엎드려 있는 그 몸뚱이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부처님께서 엎드려있는 그 제석천왕에게 말씀을 하시기를 『그대가 운명하기 직전에 여래(如來) 앞에 오체투지로 절을 함으로써, 있는 정성을 다해서 귀의(歸依)한 그 공덕으로 그대의 전생의 죄업은 다 소멸이 되었느니라.』
제석천왕은 부처님의 그 한 말씀을 듣고서 확철대오를 했어. 그래가지고 수다원과(須陀洹果)를 증득을 한 것입니다.

이 설화(說話)를 통해서 우리가 죽어서 새로 태어난 것이 60년이나 70년을 살고 병들어 몸부림치다가 죽은 뒤에사 비로소 새로 태어나지 않고, 이 몸뚱이 있는 그 상태에서도 얼마든지 새로 태어날 수 있다고 하는 사실을 우리는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에는 불법(佛法)을 만나기 전에는 흥망성쇠와 희로애락 속에서 날마다 번뇌와 근심 속에 몸부림치고, 차라리 자살을 할려고 한 마음까지도 냈던 사람, 그런 분이 불법을 만나고 법문을 들음으로 해서 새로운 희망을 가지고 새로 태어난 분도 이 가운데는 많이 계실 것입니다.
불법을 믿은 지 수십 년이 됐으나 활구참선법 정법의 법문을 듣고 또 새로 태어난 분도 있을 것입니다.

언제나 우리는 ‘한 생각’ 일어날 때 새로 태어나고, 원래 중생의 번뇌심(煩惱心) ‘한 생각’ 일어날 때 새로 태어난 거고, 그 번뇌가 꺼질 때 또 죽는 거고, ‘우리의 생각의 일어났다 없어졌다’한 것이 바로 생사(生死)인 것입니다.(3분22초~24분53초)

 

 

 

 


(2)------------------

 

언제나 우리는 ‘한 생각’ 일어날 때 새로 태어나고 - 원래 중생의 번뇌심(煩惱心)‘한 생각’ 일어날 때 새로 태어나는 거고, 그 번뇌가 꺼질 때 또 죽는 거고, ‘우리의 생각의 일어났다 없어졌다’한 것이 바로 생(生), 사(生)인 것입니다.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한 거, 그것이 원인이 되어서 생사윤회를 하는 것은 인과법칙으로 그건 틀림이 없는 것이고,
‘이 몸뚱이 살아있으면서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하는 거 그 자체가 바로 생사심(生死心)이요, 생사심이 바로 생사윤회(生死輪廻)인 것이여. 이렇게 볼 때에 번뇌심(煩惱心)으로 태어나가지고 번뇌심으로 죽고, 또 번뇌심으로 태어나서 번뇌심으로 죽어가면 이것은 영원한 생사윤회.

 

새로 태어나되 삼악도(三惡道)에 태어나면 새로 태어난 보람이 무엇이 있습니까?
중생의 흥망성쇠와 희로애락 속에서 끝없는 생사윤회는 - 하나도 참 보잘 것 없는, 거듭거듭 할수록에 고통만 더하는 그러한 생사윤회,

그런데 우리 불법(佛法)을 믿는 사람은, 최상승 법문을 믿는 우리 불제자(佛弟子)는, 새로 태어날 때보다 더 나은 곳에 태어나야 하고, 새로 태어날 때마다 진리의 눈을 뜰 수 있는 그러한 ‘새로 태어남’이어야 할 것입니다. 저 제석천왕이 나귀 뱃속에 태어났다가, 다시 태어날 때에 수다원과를 증득하듯이.

우리는 하루에도 수천 만의 생각이 일어났다 없어지고, 생각이 일어났다 없어집니다.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을 모르는 사람은 죽었다 깨어날 때마다 업(業)만 더하고, 점점 깊은 고통이 심한 그러한 윤회를 거듭할 것입니다마는, 활구참선법을 믿는 사람은 생각이 일어날 때 ‘이뭣고?’거든.

‘이뭣고?’ 한마디에 업장(業障)도 소멸이 되고, 진리를 향해서 한 걸음 나아가게 되니 이 활구참선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가를 우리는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언제나 새로 태어나는 사람’은 지나간 과거에 얽매일 것이 없고, 앞으로 다가오지도 않는 미래에 대해서 치달을 필요도 없고, 현재 우리가 닥쳐있는 현실 경계에도 집착을 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슬픈 일을 당해도 ‘이뭣고?’, 기쁜 일을 당해도 ‘이뭣고?’, 사업이 흥해도 ‘이뭣고?’, 사업이 침체해도 ‘이뭣고?’,
팔풍(八風) 경계(境界)와 오욕(五欲) 경계에 부닥칠 때, 우리의 마음은 항상 해와 같고 달과 같이 가져라. 그러면 천당•지옥에 끌려가지 아니할 것이다.

어떻게 하면 팔풍 경계와 오욕 경계를 당해서 마음을 해와 같이 찬란히 빛나는 태양과 같이, 휘양창 밝은 달과 같이 우리의 마음을 가질 수가 있을 것인가? ‘이뭣고?’입니다.
‘이뭣고?’ 한마디에 흥망성쇠에 끄달리지 아니하고 희로애락의 노예가 되지 않기 때문에 천당•지옥에 포섭되지를 않는 것입니다.

 


〇<‘이뭣고?’할 때 마음속 ‘진리의 등불’을 켜는 것이고, 자성중생(自性衆生)을 제도하는 것.>

 

우리는 오늘 「부처님 오신날」을 맞이해서 등(燈) 하나를 켭니다마는, 우리 눈으로 볼 수 있는 등 하나지만 그 속에는 우리의 정성이 담겨있습니다.
왜 등을 켜는 그러한 준례가 생겨났을까요? 우리의 마음속에 ‘부처님의 진리의 등’을 켜도록 하기 위해서 등불을 켜는 것입니다. 이 등불을 켜면 어두운 밤이 밝아지듯이 ‘마음속의 등을 켜라.’

‘마음속의 등(燈)을 무엇으로 켜?’ ‘이뭣고?’입니다.
‘이뭣고?’ 한마디 화두를 거각(擧却)할 때, 우리의 마음속에 탐진치(瞋痴) 삼독(三毒)을 물리치고 오욕 경계를 물리치는 등불을 켜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언필칭(言必稱) '부처님이 이 세상에 탄생하신 것은 한량없는 중생(衆生)을 제도(濟度)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부처님이 나오셨다' 다 그렇게 말합니다.
중생 제도를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물에 빠져 있는 사람 건져내듯이 중생을 그렇게 건질 수가 있을까요?

'부처님께서 한량없는 중생을 제도하시되, 실지 한 중생도 제도를 받은 사람이 없다'
그 까닭이 무엇입니까? 불보살은 생각 생각으로써 중생을 삼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에서 끊임없이 온갖 생각이 퍼 일어나는데 그 한량없는 생각을 바로 중생을 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생각은 그 체(體)가 공(空)한 거여. ‘끊임없이 일어나는 그 생각의 본체는 무엇이냐?’하면은 공(空)이거든. 확실히 그 생각의 본체가 진공(眞空)이라고 하는 사실을 요달(了達)한 것이 그것이 바로 한량없는 중생을 제도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 공적(空寂)의 이치를 이미 깨달라 버리면 실로 한 중생도 제도받은 자가 없다. 이것이 바로 보살이 중생을 제도하는 도리인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자성중생(自性衆生)이거든. 자성중생서원도(自性衆生誓願度)여. 우리는 최상승법을 믿는 불제자이기 때문에 모두가 다 자성중생(自性衆生)을 제도하는 도리를 터득을 해야 하는 것이여.

불법의 근본 뿌리는 중생심으로부터 나온 것이여. 그래서 중생심, 거기서 무량 부처님도 출세(出世)하셨고, 팔만사천 보살도 거기서 출세하셨어.

‘우리 끊임없이 일어났다 꺼졌다’하는 그 일념(一念), 그 ‘한 생각’은 진여불성으로부터 일어나는 하나의 버큼이요 하나의 물결인데,
그 일어나는 최초의 그 ‘한 생각’을 딱 돌이켜서 ‘이뭣고?’할 때에 팔만사천의 묘행(妙行)이 그 속에 다 갖추어져 있는 거여. 팔만사천 경에 쓰여 있는 법문의 뜻도 그 속에 들어있는 거여.
그래서 이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을 최상승법(最上乘法)이라 하는 것입니다.

많은 관법(觀法)이 있고, 많은 부처님의 법문이 있지만 가장 근원적이고 가장 최고의 높고 거룩한 법문이요, 거룩한 관법은 이 활구참선법이라.

 


〇<신심(信心)으로 보면은 우리 집안에서, 모든 중생들 속에서 불보살의 화현신을 친견할 수 있어.>
중생은 무량 억겁의 무명(無明) 번뇌로 말미암아서 원래 갖추어져 있는 그 지혜의 눈이 가리워져 있어. 그러기 때문에 반드시 선지식(善知識)의 힘을 빌리지 않고서는 그 지혜의 눈을 바로 뜰 수 있는 길을 스스로 터득하기가 매우 어려운 것입니다.

그래서 친근선우(親近善友), 선우(善友) 착한 벗, 모든 불조(佛祖)와 모든 선지식이 모두 이 선우(善友)에 해당이 됩니다, 널리 보면. 그 ‘선지식과 선우를 공경하고 섬기기를 부처님과 같이 하라.’ 그러셨어.

삼천년 전에 탄생하신 석가모니 부처님은 80세를 일기로 열반에 드시고, 다음 미륵불(彌勒佛)이 출생하실 때까지는 56억7천만 년이라고 하는 세월을 우리는 기다려야 합니다. 그러나 한량없는 보살들이 보살로써 우리 앞에 화현신(化現身)으로 출현을 하신 것입니다.

그 ‘보살 화현신이 어떠한 모습을 하고 우리 앞에 나타나시냐?’하면은 시부모로도 나타나고, 남편으로도 나타나고, 아내로도 나타나고, 효자로도 나타나고 불효자로도 나타납니다. 친구로도 나타나고 도둑놈으로도 나타나고 거지로도 나타나는 것입니다. 어떠한 별(別)의 별별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 중생을 제도하시기 위해서는, 그 중생으로 하여금 발심하고 그 중생으로 하여금 깨달음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서는, 한량없는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나신 것입니다.
우리가 신심(信心)으로서 보면은 날마다 불보살의 화현을 친견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마는, 탐진치 삼독이 가득찬 그 눈으로는 날마다 불보살을 친견하면서도 그 불보살인 줄 모르고 지나쳐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법문(法門)을 듣고 참으로 발심(發心)을 할 때에 우리 집안에 보살 화현이 함께 사신 줄을 알 것이고, 우리가 날마다 만나고 스쳐가는 모든 중생들 속에 불보살의 화현신이 계시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〇<‘이뭣고?’ - ‘한 생각’ 돌리는 것이 소신연비(燒身燃臂), 위법망구(爲法忘軀)의 신심인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의 법문, 선지식의 법문이 아니고서는 우리는 발심하기도 어렵고 진리의 눈을 뜨기도 어렵기 때문에, 옛날에 부처님이 인행(因行) 때에, 설산에서 그 고행을 하고 계실 때에, 제행무상(諸行無常) 시생멸법(是生滅法) 생멸멸이(生滅滅已) 적멸위락(寂滅爲樂)이라.
‘생멸멸이(生滅滅已) 적멸위락(寂滅爲樂)’이라고 하는 반 구절 게송을 듣기 위해서, 설산동자(雪山童子)는 나찰귀신(羅刹鬼神)을 향해서 그 소중한 몸뚱이를 던지셨던 것이며,

부처님께서 향성(香城)에서 반야경을 설하실 때 상제보살(常啼菩薩)은 그 부처님의 법문을 듣고 깨달음을 얻고서, 너무도 부처님의 법문이 감사하고 고마워서 무엇으로 공양(供養)을 올리고 싶은데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어.
그래서 그 공양을 올리지 못한 그 한이 사무쳐 있을 때에 마침 성안에 어떤 부자가 병을 얻었는데 「산 사람의 뼈골 속에서 뽑은 그 골수(骨髓)를 넣어서 만든 약을 지어 먹어야만 그 병을 낫을 수가 있다. 그래서 누구든지 그 골수를 가져 온 사람에게는 많은 돈을 주겠다.」 이런 광고를 했어.

마침 상제보살이 그 광고를 보고서 자기의 골(骨)을 빼가지고 그 골을 두들겨서 골속에 들어있는 골수를 팔았습니다. 그 장자한테 팔아가지고 돈을 구해서 꽃과 향을 사가지고 부처님께 공양을 올린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분골쇄신(粉骨碎身)인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법을 위해서 몸뚱이를 잃어버린 위법망구(爲法忘軀)의 신심인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여러분 가운데에 혹 경제사정이 여의치 못해가지고 부처님과 절에 공양을 올리기 위해서 행여나 골을 빼가지고 골수를 빼려고 하시지는 마십시오.
비록 설산동자는 몸뚱이를 나찰귀신에게 던지셨고, 상제보살은 골수를 빼서 장자에게 팔았지만 우리는 그 부처님의 법문을 들으면 그 법문이 과연 ‘그 법문의 요지(要旨)가 그 진의(眞意)가 무엇인가’를 우리는 바로 그것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소신연비(燒身燃臂), ‘소신연비를 해야 깨달음을 얻을 수가 있다.’ 경전에 그런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뭣한 사람은 손가락을 둘씩 셋씩 넷씩 태워서 연비(燃臂)를 한 그러한 참 뜨거운 신심을 가진 수행자를 요새도 가끔 볼 수가 있습니다.
또 연전에는 장작불을 펴 놓고 그 자기의 몸뚱이를 사룬 ‘등신불(等身佛)’이라고 하는 그러한 드라마도 있습니다마는 그런 분이 실지로 과거에 있습니다. 그 몸뚱이를 잃어버리는 - 그 손가락 하나를 태우고 팔을 하나 태우고 몸뚱이를 태우는 것이, 얼마나 하기 어려운 것인가는 잘 압니다.

그 뜨거운 신심은 백만금(百萬金)을 주고라도 우리는 사야 할 것입니다마는, 소신연비•분골쇄신의 참뜻은 - 우리가 여기 있는 대중들이 날마다 손가락을 태우고 몸뚱이를 태우라고 나는 강요하지 않습니다.

그러한 신심을 가지고 정말 탐진치 삼독심을 찰나 간에 돌이켜서 ‘이뭣고?’를 들으시라 이것입니다. ‘이뭣고?’ 「‘한 생각’ 돌리는 것」이 손가락 한 개•두 개 태우는 것에다가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슬플 때도 ‘이뭣고?’, 괴로울 때도 ‘이뭣고?’, 기쁠 때도 ‘이뭣고?’, 즐거울 때도 ‘이뭣고?’인 것입니다.

‘한 생각’ 돌이킨 것이 바로 ‘한 생(生)’을 돌이키고 ‘한 목숨’을 돌이킨 것과 맞먹는 것입니다.


‘몸뚱이의 생사(生死)’만을 생사(生死)로 아는 사람은 범부(凡夫) 중생(衆生)이고, 최상승법(最上乘法)을 믿는 사람은 이 몸뚱이는 본래 공(空)한 것이여. 본래 공한 것이여.

‘한 생각’ 돌이킬 줄 알 때에, 비로소 최상승법을 믿는 사람이라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24분25초~43분59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1)

 

*열반(涅槃) ; 산스크리트어 니르바나(nirvāṇa) 팔리어 nibbāna의 음사. 멸(滅)·멸도(滅度)·적멸(寂滅)·적정(寂靜)·적(寂)·안온(安穩)이라 번역. 불어서 끈 상태라는 뜻.
① 불어서 불을 끄듯, 탐욕〔貪〕과 노여움〔瞋〕과 어리석음〔癡〕이 소멸된 심리 상태. 모든 번뇌의 불꽃이 꺼진 심리 상태. 사제(四諦)에서 집(集), 곧 괴로움의 원인인 갈애(渴愛)가 소멸된 상태. 모든 번뇌를 남김없이 소멸하여 평온하게 된 상태. 모든 미혹의 속박에서 벗어난 깨달음의 경지. 번뇌를 소멸하여 깨달음의 지혜를 완성한 경지.
② 석가모니의 죽음.  ③스님의 죽음을 수행을 통해 해탈(解脫)에 이르게 됨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
*가비라(迦毘羅) 왕국 ; ‘석가모니(釋迦牟尼, Śākyamuni)’의 아버지 슈도다나왕(Śuddhodāna ; 淨飯王)이 다스리던, 인도와 지금 네팔 남쪽 국경 근처에 있던 석가족의 카필라바스투(Kapilavastu ; 迦毘羅) 나라를 말함. 실달다(悉達多) 태자(太子) 곧 석존(釋尊)이 태어난 곳.
*싯다르타(siddhartha) ; 목적을 달성한다는 뜻. ‘석가모니(釋迦牟尼, Śākyamuni)’가 출가하기 전 태자(太子) 때의 이름. 음역어는 ‘실다(悉多)’, ‘실달(悉達)’, ‘실달다(悉達多)’이다.
*성문(聲聞) ; 부처님의 음성(聲)을 들은(聞) 사람이라는 뜻. 산스크리트어 śrāvaka, 팔리어 sāvaka.
①부처의 가르침을 듣고 사제(四諦)의 이치를 깨달아 아라한(阿羅漢)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 수행하는 자. ②자신의 깨달음만을 위해 부처의 가르침에 따라 수행하는 자.
*연각(緣覺) ; 산스크리트어 pratyeka-buddha  팔리어 pacce ka-buddha
홀로 연기(緣起)의 이치를 관찰하여 깨달은 자. 가르침에 의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깨달은 자. 자신의 깨달음만을 위해 홀로 수행하는 자. 독각(獨覺)·벽지불(辟支佛)이라고도 함.
*보살(菩薩) ; 산스크리트어 bodhi-sattva의 음사인 보리살타(菩提薩埵)의 준말.
bodhi는 깨달음, sattva는 살아 있는 존재, 곧 중생을 뜻하므로-보살은 깨달을 중생, 깨달음을 구하는 중생, 구도자(求道者)라는 뜻.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각유정(覺有情) 등으로도 불린다.
① 깨달음을 구하면서 중생을 교화하는 수행으로 미래에 성불(成佛)할 자. 자신도 깨달음을 구하고 남도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자리(自利)와 이타(利他)를 행하는 자.
② 보살승(菩薩乘)의 준말. ③ 수행자. ④ 고승(高僧)에 대한 존칭. ⑤ 여자 신도를 일컫는 말.
*법신불(法身佛) ; 절대적 지혜의 지고한 상태, 즉 진리 그 자체를 가리키는 부처님(佛).
*보신불(報身佛) ;부처가 전생에 보살로 있을 때 세운 서원(誓願)과 수행의 과보(果報)로서 받은 몸. 모든 부처가 법신·보신·화신을 동시에 갖추고 있지만 대표적인 보신불에는 아미타불(阿彌陀佛)과 약사여래(藥師如來) 등이 있다.
*화신불(化身佛) ;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 여러 가지 형상으로 변화하는 불신(佛身).
*고행(苦行) ; 어떤 경지에 이르거나 소원을 성취하기 위해 육신을 극도로 괴롭히는 수행.
*쇄락(灑落 물뿌릴 쇄,떨어질 락) ; 기분이나 몸이 상쾌하고 깨끗함.
*붓다가야(buddhagayā) ; 우루벨라(uruvelā) 마을의 네란자라(nerañjarā) 강변에 있는, 붓다가 깨달음을 이룬 곳.
*보리수(菩提樹) ; 산스크리트어 bodhi-vṛkṣa  원래 이름은 아설타(阿說他, 산스크리트어 aśvattha)이며, 그 열매를 필발라(畢鉢羅, 산스크리트어 pippala)라고 하는 데서 이 나무를 필발라수(畢鉢羅樹)라고도 하고, 붓다가 이 나무 아래에서 깨달음을 성취였으므로 보리수라고 함. 상록 교목으로, 잎은 심장 모양이며 끝이 뾰족함.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 보아 깨달아 부처가 됨.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소승(小乘) ; ①기원 전후에 일어난 불교 개혁파들이 스스로를 대승(大乘)이라 하고, 전통의 보수파들을 낮추어 일컬은 말.
②기원전 5세기에서 기원전 2세기 사이에 분열된 불교 교단의 여러 부파, 곧 부파 불교(部派佛敎)를 말함.
③자신의 깨달음만을 구하는 수행자, 성문(聲聞)•연각(緣覺) 또는 그들에 대한 붓다의 가르침.
☆승(乘)은 중생을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붓다의 가르침이나 수행법을 뜻함.
*사제(四諦) ; 제(諦)는 ‘sacca’의 번역으로 진리를 뜻함. 고(苦-괴로움)를 소멸시켜 열반에 이르는 네 가지 진리. 사성제(四聖諦-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라고도 함.
①고제(苦諦,苦聖諦). ‘고(苦-괴로움)’라는 성스러운 진리. “태어남이 고다. 노쇠가 고다. 죽음이 고다. 슬픔•비탄•괴로움•근심•절망이 고다. 즐거운 것과 갈라짐이 고요, 싫은 것과 같이 함이 또한 고다. 요컨대 집착과 연관된, 존재의 다섯 쌓임(五取蘊)이 고다”(상응부)
②집제(集諦,集聖諦). ‘고의 원인’이라는 성스러운 진리.  몹시 탐내어 집착하는 갈애(渴愛)가 고(苦)가 일어나는 원인이라는 진리.
③멸제(滅諦,㓕聖諦). ‘고의 멸’이라는 성스러운 진리. 갈애가 남김없이 소멸됨으로써 고(苦-괴로움)가 소멸되어 고의 끝남, 열반에 이른다는 진리.
④도제(道諦,道聖諦). ‘고의 멸에 이르는 길’이라는 성스러운 진리. 팔정도(八正道)-정견(正見,바른 이해)•정사유(正思惟,바른 생각)•정어(正語,바른 말)•정업(正業,바른 행위)•정명(正命,바른 생계)•정정진(正精進,바른 노력)•정념(正念,바른 마음챙김)•정정(正定,바른 집중)-는 갈애를 소멸시켜, 고의 멸에 이르는 길이다.
*십이인연(十二因緣) ; 십이연기(十二緣起). 진리에 대한 무지(無知)한 무명(無明)을 근본 원인으로 하여 중생으로서의 인간의 괴로운 생존이 12가지 요소의 순차적인 상관관계에 의한 것임을 설명한 것.
무명(無明)---> 행(行)---> 식(識)---> 명색(名色)---> 육입(六入)---> 촉(觸)---> 수(受)---> 애(愛)---> 취(取)---> 유(有)---> 생(生)---> 노사(老死).
◎ 무명(無明)을 조건으로, 의도적인 행위와 업을 구성하는 형성(行)이 생겨난다.
◎ 형성(行)을 조건으로, 의식(識)이 생겨난다.
◎ 의식(識)을 조건으로, 정신물리적인 현상인 명색(名色)이 생겨난다.
◎ 명색(名色)을 조건으로, 안•이•비•설•신•의 6가지 감역(六入)이 생겨난다.
◎ 감역(六入)을 조건으로, 감각적, 정신적 접촉(觸)이 이루어진다.
◎ 접촉(觸)을 조건으로, 감수(受)가 생겨난다.
◎ 감수(受)를 조건으로, 갈애(愛)가 일어난다.
◎ 갈애(愛)를 조건으로, 집착(取)이 일어난다.
◎ 집착(取)을 조건으로, 존재(有)가 생겨난다.
◎ 존재(有)를 조건으로, 태어남(生)이 생겨난다.
◎ 태어남(生)을 조건으로, 늙고 죽음(老死)가 생겨난다.
☆ 무명(無明)이 사라지면 의도적인 행위와 업을 구성하는 형성(行)이 사라지고, 형성(行)이 사라지면 의식(識)이 사라지고........마침내 태어남(生)이 없으면 늙고 죽음(老死)가 사라진다.
*연기(緣起) ; 세상의 모든 사물이나 현상들이 무수한 원인(因)과 조건(緣)의 상호 관계를 통하여 일어남을 이르는 말.
“만약 이것이 있으면 곧 저것이 있고(若有此則有彼),
  만약 이것이 생겨나면 곧 저것이 생겨난다(若生此則生彼).
  만약 이것이 없으면 곧 저것이 없어지고(若無此則無彼),
  만약 이것이 소멸하면 곧 저것이 소멸한다(若滅此則滅彼).” (중아함경)
*녹야원(鹿野苑) ; 석가(釋迦)가 35세에 성도(成道)한 후 최초로 설법을 개시한 곳이며, 이때 교진여(僑陳如) 등 5명의 비구(比丘)를 제도(濟度)하였다.
갠지스 강 중류, 지금의 바라나시(Varanasi, 베나레스 Benares)에서 북동쪽 약 7㎞ 지점에 있는 사르나트(Sarnath)의 유적이 곧 녹야원의 터. 사슴동산(녹야원), 즉 사르나트(Sarnath)는 산스크리트어로 ‘사슴의 왕’을 뜻하는 ‘사란가나타(Saranganatha)’가 줄어든 말이다.
붓다가 깨달음을 이룬 우루벨라(uruvelā) 마을의 붓다가야(buddhagayā)에서 녹야원까지는 직선 거리로 약 200㎞됨.
탄생(誕生:룸비니) ·성도(成道:붓다가야) ·입멸(入滅:쿠시나가라)의 땅과 더불어 불교(佛敎) 4대 성지의 하나.
*팔만사천(八萬四千) : 중생의 망상이 벌어져 나가는 것을 자세히 분석하면 팔만 사천 갈래가 된다고 한다. 그러므로 망상을 따라 일어나는 악마의 수효도 팔만 사천이요, 망상을 다스리는 법문도 팔만 사천이다.
인도에서는 많은 수효를 말할 때에는 이 말을 쓰는 수가 가끔 있다. 줄여서 팔만이라고만 하기도 한다.
*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 법,문 문) :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우기(雨期) ; 비가 계속해서 많이 내리므로 안거(安居)를 행하는 음력 4월 16일부터 7월 15일까지, 또는 음력 5월 16일부터 8월 15일까지의 3개월 동안. 이 기간에 고대 인도의 수행자들은 동굴이나 사원에서 수행에만 전념하였는데, 이를 우안거(雨安居)라고 함.
*정사(精舍) ; vihara. 수행승들이 머물면서 불도(佛道)를 닦는 집. 사원. 절.
*유행(遊行) ;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수행함. 행각(行脚).
*죽림정사(竹林精舍) ; 마가다국(magadha國)의 왕사성(王舍城) 부근에 있던 불교 최초의 사원. 붓다가 깨달음을 이루고 왕사성을 찾았을 때, 칼란다(kalanda) 장자(長者)가 붓다에게 기증한 죽림 동산에 빔비사라(bimbisāra) 왕이 지어 붓다에게 바친 정사.
*기원정사(祇園精舍) ; 기수급고독원(祇樹給孤獨園)정사의 약어(略語). 중인도 코살라국(國)의 수도 사위성(舍衛城:슈라바스티) 남쪽 1.6 km 지점에 있던 기타태자(祇陀太子) 소유의 동산에 지은 절.
이는 ‘기타태자의 동산에 수달(須達:給孤獨長者)이 지은 승원’이라는 뜻인데, 급고독장자(給孤獨長者)란 ‘고독한 이들에게 보시를 많이 한 부자’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구시나가라 ; 산스크리트어 쿠시나가라(kuśinagara). 지금의 네팔 남쪽에 인접해 있던 말라국(malla國)의 도읍지로, 붓다가 입멸한 곳.
*공양(供養) ; ①불(佛)•법(法)•승(僧)의 삼보(三寶)에 음식•옷•꽃•향 등을 바침. ②공경함. 찬탄함. 칭송함. 예배함. ③봉사함. ④절에서 음식을 먹는 일.
*공덕(功德) ; ①복, 복덕 ②좋은 과보를 받을 선행(善行).
*봉축(奉祝) ; 공경하는 마음으로 축하함.

*제석천왕(帝釋天王) ; 불법(佛法) 지키는 수호신. [天神]들의 제왕[] 샤크라〔釋〕라는 . 제석(帝釋), 석제(釋帝), 제석천(帝釋天), 제석왕(帝釋王), 제석태자(帝釋太子), 천주(天主)라고도 한다.

산스크리트어 이름은 샤크라 데바남 인드라(Śakra-devānām Indra). 석제환인다라(釋提桓因陀羅) · 석가제환인다라(釋迦提桓因陀羅) · 석가제바인다라(釋迦提婆因陀羅) · 석가제바인달라(釋迦提婆因達羅) 등으로 음역하고 줄여서석제환인(釋提桓因, 釋帝桓因) · 제석천(帝釋天)이라 한다.

『법화현찬(法華玄贊)』에서는 범어 석가제바인달라(釋迦提婆因達羅)에서 석가 ()씨이며 ()이라 한역하고, ‘제바 ()’이라 한역하며, ‘인달라 ()’ 한역하니  능천제(能天帝)’ 한다 뜻으로 보면 석가(능히) 제바(하늘의) 인달라(제왕)’

 

불교의 세계관에 의하면 세계의 중앙에 수미산이 있는데  수미산 정상에 있는 도리천의 왕으로, 사천왕(四天王)32() 통솔하면서 불법(佛法) 불제자를 보호한다. 도리천에는 33신이 있는데, 제석은  중앙에 있는 선견성(善見城) 안의 수승전(殊勝殿)이라는 궁전에 살고, 나머지 32신은  () 밖의 궁전에서 각각 산다.

제석천은 본래 인도 성전 《리그베다》에 등장하는 천신  벼락을 신격화한 가장 강력한 힘을 지닌 신이었으나 불교에수용되어서는 범천(梵天) 함께 호법선신 역할을 맡게 되었다. 그리하여 항상 부처님의 설법 자리에 나타나 법회를수호하고 사바세계 인간의 번뇌와 죄를 다스리는 역할을 담당한다.

 

한국에서는 단군의 할아버지를 석제환인(釋提桓因)이라고 하여 하늘의 주인과 제석천을 동일시하여 숭배하였다. <잡아함경>에는 제석천이 본래 사람이었으나 수행자에게 음식과 재물향과 와구(臥具등불을 베푼 인연으로 제석천이 되었다고 한다. 제석천왕은 신중탱화(神衆幀畵)  손에 금강저(金剛杵) 들고 머리에 보관(寶冠) 쓰는 모습으로 많이 등장한다.

*삼십이상(三十二相) ; 부처님이 갖추고 있다는 32가지의 뛰어난 신체의 특징. 몸이 금빛이다, 손가락이 길다, 두 눈썹 사이에 흰 털이 있다, 발바닥에 두 개의 바퀴 모양의 무늬가 있다 등등.
*신통(神通 불가사의할 신,통할 통) : 수행을 통(通)하여 도달하는 걸림없는 초인간적인(神) 능력.
*사주(四洲) ; 불교의 우주관에 의하면 세계의 중심에 높이 솟은 거대한 수미산(須彌山)의 사방에 있다는 네 대륙.
①남섬부주(南贍部洲) ; 남쪽의 섬부주(贍部洲). 섬부(贍部)는 산스크리트어 jambu의 음사. 잠부(jambu) 나무가 많으며, 우리 인간들이 사는 곳이라 함. 여러 부처가 나타나는 곳은 네 대륙 가운데 이곳뿐이라 함.
②동승신주(東勝身洲) ; 동쪽의 승신주(勝神洲). 이곳에 있는 인간들은 신장이 뛰어나다고 하여 승신(勝身)이라 함.
③서우화주(西牛貨洲) ; 서쪽의 우화주(牛貨洲). 여기에서는 소를 화폐로 사용한다고 하여 우화(牛貨)라고 함.
④북구로주(北俱盧洲) ; 북쪽의 구로주(俱盧洲). 구로(俱盧)는 산스크리트어 kuru의 음사로, 종족 이름. 네 대륙 가운데 가장 살기 좋은 곳이라 함.
*삼계(三界) ; 불교의 세계관으로 중생이 왕래하고 거주하는 세 가지 미혹한 세계. 중생이 태어나서 죽어 윤회하는 영역으로서의 세개의 세계. 중생의 마음과 생존 상태를 세 단계로 나눈 것. 욕계(欲界), 색계(色界), 무색계(無色界)를 이른다.
*삼계도사(三界導師) : 삼계(三界)의 중생을 열반(涅槃)로 인도(引導)하는 위대한 사람. 부처님을 말함.
*사생(四生) ; 중생이 윤회하는 세계인 육도(六途)에서의 네 가지 생(生),네 가지 태어나는 방식. 태생(胎生), 난생(卵生), 습생(濕生), 화생(化生)을 이른다.
*오체투지(五體投地) ; 신체의 다섯 부위를 땅에 닿게 하는 절. 먼저 두 무릎을 꿇고 두 팔을 땅에 댄 다음 머리가 땅에 닿도록 한다.
*사바세계(娑婆世界) ;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이 세계. 현실의 세계.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교화하는 세계. 인토(忍土)•감인토(堪忍土)•인계(忍界)라고 한역.
*여래(如來) ; 여래 십호(如來十號)의 하나. ‘진여(眞如)의 세계, 곧 열반에 다다른[來] 사람’이라는 뜻으로 ‘부처’를 달리 이르는 말이다. 다타가타(tathāgata)의 번역어이다.
*귀의(歸依) ; ①부처님의 가르침을 믿고 의지함. ②몰아의 경지에서 종교적 절대자나 종교적 진리를 깊이 믿고 의지하는 일. ③돌아가거나 돌아와 몸을 의지함.
*수다원(須陀洹) ; 산스크리트어 srota-āpanna 팔리어 sota-āpanna의 음사(音寫). 예류(預流)·입류(入流)라고 번역. 욕계·색계·무색계의 견혹(見惑)을 끊은 성자. 처음으로 성자의 계열에 들었으므로 예류·입류하고 함. 이 경지를 수다원과(須陀洹果)·예류과(預流果), 이 경지에 이르기 위해 수행하는 단계를 수다원향(須陀洹向)·예류향(預流向)이라 함.
소승불교에서-성문(聲聞)으로서-해탈하는 길은 ‘성문사과(聲聞四果)’라고 하여, 수다원(須陀洹)·사다함(斯陀含)·아나함(阿那含)·아라한(阿羅漢)의 4단계를 설정하고 있다.
[견혹(見惑)-①사제(四諦)를 명료하게 주시하지 못함으로써 일어나는 번뇌. 이 번뇌에는 유신견(有身見)·변집견(邊執見)·사견(邪見)·견취견(見取見)·계급취견(戒禁取見)·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가 있음.
② 유식설에서, 후천적으로 습득한 그릇된 지식에 의해 일어나는 번뇌, 곧 분별기(分別起)를 말함.]
*번뇌(煩惱 번거러울 번,괴로워할 뇌) ; ①마음이 시달려서(煩) 괴로워함(惱). 나쁜 마음의 작용. 번요뇌란(煩擾惱亂)의 뜻. 몸과 마음을 번거롭게 하고 괴롭히는 정신작용. 근원적 번뇌로서 탐냄(貪)•성냄(瞋)•어리석음(癡)이 있다. ②나라고 생각하는 사정에서 일어나는 나쁜 경향의 마음 작용. 곧 눈 앞의 고(苦)와 낙(樂)에 미(迷)하여 탐욕•진심(瞋心)•우치(愚癡)등에 의하여 마음에 동요를 일으켜 몸과 마음을 뇌란하는 정신 작용.

 

 

 



------------------(2)

 

*‘우리의 생각의 일어났다 없어졌다’한 것이 바로 생사(生死)인 것입니다. ;
[참고] [몽산법어(蒙山法語)] (용화선원刊) p103~105.
〇*普濟尊者示覺悟禪人(보제존자시각오선인)-보제존자가 각오선인에게 보이심.
念起念滅을  謂之生死니  當生死之際하야  須盡力提起*話頭호리니  話頭가  純一하면  起滅이  卽盡하리라
起滅卽盡處를  謂之寂이라하니  寂中에  無話頭하면  謂之*無記요  寂中에  不昧話頭하면  謂之靈이라하나니  卽此空寂과  靈知가  無壞無雜하야  如是用功하면  不日成之하리라

“생각이 일어나고 생각이 멸함을 생사(生死)라 이르나니, 생사(生死)의 즈음을 당하야 모름지기 힘을 다하야 화두(話頭)를 들지니, 화두가 순일하여지면 일어나고 멸하는 것이 곧 다하리라.
생각이 일어나고 멸함이 곧 다한 곳을 이르되 고요함[寂]이라 하나니 고요한 가운데 화두가 없으면 무기(無記)라 함이요, 고요한 가운데 화두를 매(昧)하지 아니하면 영(靈)이라고 이르나니, 이 공적(空寂)과 영지(靈知)가 무너짐도 없고 섞임도 없어서 이와 같이 공부를 하면 며칠 안 가서 성취하리라”

(역주)
*보제존자(普濟尊者) : (1320 ~ 1376) 나옹혜근(懶翁惠勤). 고려 스님. 분류 ‘역대 스님 약력’에서 참고.
*화두(話頭) ; 화두에 참구(叅句)와 참의(叅意)가 있다。 이론적으로 따져 들어가는 것이 참의요 사구(死句) 참선이며, 말길 뜻길이 끊어져서 다만 그 언구만을 의심하는 것이 참구요 활구(活句) 참선이다.
*무기(無記) : [범] Avyaksita 선(善)•악(惡)•무기(無記) 3성의 하나。 온갖 법의 도덕적 성질을 3종으로 나눈 가운데서 선도 악도 아닌 성질로서, 선악 중의 어떤 결과도 끌어오지 않는 중간성(中間性)을 말한다。 이 무기에는 바른 지혜의 발생을 방해하는 유부(有覆) 무기가 있고 순수해서 방해하지 않는 무부(無覆) 무기가 있다。 온갖 생각이 끊어져 공적(空寂)한 상태에 있을지라도 깨달음에 이른 것이 아니므로 공적한 가운데서도 화두가 성성(惺惺)해야 한다.
*생사윤회(生死輪廻 날 생,죽을 사,바퀴 윤,빙빙돌 회) : 사람이 어리석음(無明)으로 인한 번뇌와 업에 의하여 삼계육도(三界六道)에서 났다가(生) 죽고(死) 났다가 죽는 것이 바퀴(輪)가 돌듯이(廻) 반복함.
*삼악도(三惡道) ; 악인(惡人)이 죽어서 간다는 세 가지 괴로운 세계. 곧 지옥도(地獄道), 축생도(畜生道), 아귀도(餓鬼道)를 가리킨다. 지옥도는 중생이 죄를 지어 죽은 뒤에 태어날 지옥세계이며, 축생도는 중생이 죄를 지어 죽은 뒤에 짐승의 몸이 되어 괴로움을 받는다는 길이고, 아귀도는 먹으려고 하는 음식은 불로 변하여 늘 굶주리고 매를 맞는 아귀들이 모여 사는 세계이다.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스승)으로부터 화두•공안(公案)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공안)을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공안 또는 화두(話頭)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업(業) ; (산스크리트어:karma카르마) ①몸과 입과 마음으로 짓는 행위와 말과 생각, 일체의 행위.
②행위와 말과 생각이 남기는 잠재력. 과보를 초래하는 잠재력.
③선악(善惡)의 행위에 따라 받는 고락(苦樂)의 과보(果報).
④좋지 않은 결과의 원인이 되는 악한 행위. 무명(無明)으로 일으키는 행위.
*이뭣고? ; 분류 ‘이뭣고 화두’ 참고.
*이뭣고? (이 무엇고 是甚麼 시심마,시삼마) : ‘이 무엇고? 화두’는 천 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 무엇고?」(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업장(業障) ; 전생(前生)이나 금생(今生)에 행동•말•마음(신구의,身口意)으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이 세상에서 장애(障礙)가 생기는 것.
*팔풍(八風) : 우리의 마음을 흔들어서 움직이게 하는 여덟 가지 현상을 말한다.
내 뜻에 맞고(利), 내 뜻에 어기는 것(衰), 나 안 보는 데서 나를 찬미하는 것(譽), 나 안 보는 데서 나를 비방하는 것(毀), 면전에서 찬미하는 것(稱), 면전에서 비방하는 것(譏), 몸과 마음을 괴롭히는 것(苦), 몸과 마음을 즐겁게 해 주는 것(樂) 등이다. 팔풍은 간단히 나누면 순경계(順境界)와 역경계(逆境界)이다.
*오욕(五欲,五慾,五欲樂) ; ①중생의 참된 마음을 더럽히는-색,소리,향기,맛,감촉(色聲香味觸)에 대한-감관적 욕망. 또는 그것을 향락(享樂)하는 것. 총괄하여 세속적인 인간의 욕망. ②불도를 닦는 데 장애가 되는 다섯 가지 욕심. 재물(財物), 색사(色事), 음식(飮食), 명예(名譽), 수면(睡眠)을 이른다.
*경계(境界) ; ①어떤 영역끼리의 한계. 또는 영역끼리의 사이, 접점. ②인식 또는 어떤 세력이 미치는 범위.
*거각(擧却 들 거,어조사 각) 화두를 든다(들다).
*언필칭(言必稱) ; 말을 할 때면 항상 일컫기를.
*중생(衆生) ; ①생존하는 것. 목숨이 있는 것. 산것. 살아있는 것. 특히 인간. 사람들. 세상 사람. 유정(有情)이라고도 함. ②번뇌에 얽매여 미혹한 모든 존재. ③부처가 될 수 있는 요소. 본질.
*제도(濟度 건널 제,건널 도) ; 중생을 미혹의 큰 바다(생사의 고해苦海)로부터 구하여(濟) 생사 없는 피안(彼岸,깨달음의 언덕)에 이르게 하는(度) 것. 제(濟)는 구제(救濟). 도(度)는 도탈(度脫).
[참고 : 구제(救濟 건질 구,건널 제) 어려움이나 위험에 빠진 사람을 돕거나 구하여 줌. 도탈(度脫 건널 도,벗을 탈) 속세의 속박이나 번뇌 등에서 벗어나 근심이 없는 편안한 경지에 도달함.]
*요달(了達 마칠•완전히 료,통달할 달) ; 통달해 마침. 완전히 통달함.
*출세(出世) : ①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것 ②태어나는 것. 법을 체득한 사람이 중생교화를 위해서 세상에 나오는 것 ③세간을 초월하는 것. 출세간(出世間)의 준말. 삼계(三界)를 나오는 것.
*버큼 ; '거품'의 사투리.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스승)으로부터 화두•공안(公案)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공안)을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공안 또는 화두(話頭)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무명(無明) ; 모든 현상의 본성을 깨닫지 못하는 근본 번뇌. 사제(四諦)에 대한 무지로서, 모든 괴로움을 일으키는 근본 번뇌. 본디 청정한 마음의 본성을 가리고 있는 원초적 번뇌.
*선지식(善知識) ; 부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지도자. 좋은 벗. 선우(善友).
*미륵불(彌勒佛) ; Maitreya. 번역하여 자씨(慈氏). 인도 바라나국의 바라문 출신으로 석가모니의 교화를 받고, 미래에 성불하리라는 수기를 받아, 도솔천에 올라 천인(天人)을 위해 설법•교화하고,
석가모니 입멸 후 56억 7천만 년을 지나 다시 이 사바세계에 하생(下生)하여 화림원(華林園) 안의 용화수(龍華樹) 아래서 성불(成佛)하고, 3회의 설법으로써 석가모니세존의 교화에 빠진 모든 중생을 제도한다고 한다. 석가모니세존의 업적을 돕는다는 뜻으로 보처(補悽)의 미륵이라 한다.
*화현(化現) ; 부처님이나 보살이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각(各) 중생의 소질에 따라 여러 가지로 모습을 바꾸어 이 세상에 나타나는 것. 화신(化身)이라고도 한다.
*발심(發心) ; ①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②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원어)發起菩提心발기보리심, 發菩提心발보리심.
*인행(因行) ; 수행. (부처가 되기 위한) 인(因)이 되는 행(行). 깨달음을 여는 근본이 된다.
*제행무상(諸行無常) 시생멸법(是生滅法) 생멸멸이(生滅滅已) 적멸위락(寂滅爲樂) ; 제행무상게(諸行無常偈), 설산게(雪山偈)라고 한다. 번역하면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무상하니, 이것이 나고 죽는 법이로다. 생과 멸이 다하면은(생멸심이 끊어지면), 적멸이 낙이 되느니라.’
열반경에 부처님 과거 인행(因行) 때에 설산에서 설산동자로 고행을 하고 계실 때, 앞의 두 구절 「제행무상(諸行無常) 시생멸법(是生滅法)」을 들은 후에, 나머지 게송을 듣기 위해 나찰귀신으로 변한 제석천왕(帝釋天王)에게 몸을 바친 전생담에서 나온 게송.
*나찰(羅刹) : 신속하게 땅이나 공중으로 다니면서 사람을 잡아 먹는다는 무서운 악귀(惡鬼). 나중에 불교의 수호신(守護神)이 되었다.
*상제보살(常啼菩薩) ; 중생을 근심하고 염려하여 늘 울고 있는 보살이다. 산스크리트로는 사다프라루디타(Sadaprarudita)를 음역하여 살타파륜(薩陀波倫)이라 하고, 의역하여 상제보살(常啼菩薩)이라 한다.
보자보살(普慈菩薩)·상비보살(常悲菩薩)이라고도 한다. 부처가 없는 세계, 즉 말법(末法) 세상에 태어나 중생에 이익을 주기 위해 불도를 추구하고 텅 빈 숲속에서 안타까운 마음으로 운다.
《대지도론》에는 ‘살타’는 ‘상(常)’, ‘파륜'은 '제(啼)’를 뜻한다고 되어 있다. 어려서부터 울기를 좋아하여 상제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중생이 나쁜 길에 빠지거나, 가난하여 굶주리고, 늙고 병들거나, 근심하고 염려하는 모습을 보면 이를 가여워하여 슬피 운다. 《지도론》에는 이 보살을 《반야경》의 수호자로 등장하고, 《반야바라밀다경》에는 ‘반야바라밀다를 들으면 그 생각으로 환희에 가득 차 엉엉 소리를 내어 운다’고 나와 있다.
*분골쇄신(粉骨碎身) ; 뼈를 빻고 몸을 부순다는 뜻으로, 자기 몸을 돌보지 않고 지극한 정성으로 있는 힘을 다한다는 말.
*위법망구(爲法忘軀) ; 법(진리)를 구하기 위해 몸(軀) 돌보는 것을 잊는다(忘).
*요지(要旨) ; 말이나 글 따위에서, 핵심이 되는 중요한 뜻.
*진의(眞意) ; 참된 의도나 마음. 또는 진짜 의도.
*연비(燃臂) ; 불교에서 수행자가 계(戒)를 받을 때, 팔뚝에 향이나 심지로 불을 놓아 뜨는 의식 또는 그 자국.
*소신연비(燒身燃臂) ; 소신공양(燒身供養). 자기 몸을 태워 부처님 앞에 바침. 또는 그런 일.
*범부(凡夫 무릇•보통 범,남편•사내 부) ; 번뇌(煩惱)에 얽매여 생사(生死)를 초월하지 못하는 사람.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