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안거 해제, 백종2014.07.23 16:03

§(645) (게송)올올무사대청산~ / 백중(百中)날-우란분(盂蘭盆)-목련경(目連經) / (게송)농계유식탕와근~ / 능엄경 변마장(辨魔障) / (게송)사자굴중무이수~.

우리가 발심(發心)을 해서 열심히 도를 닦을 때 삼세제불의 제도를 받을 수가 있는 것이지, 우리 자신이 열심히 수행을 허지 아니허고서 삼세제불이 억만 번을 출세(出世)하신다 허더라도 우리의 생사 문제는 해결되지 않으리라고 나는 생각을 합니다.
항상 자기를 반성해서 자기의 잘못된 점을 반성을 하고 참괴심(慙愧心)을 가지고, 구경각(究竟覺)을 얻을 때 까지는 항상 초학자(初學者)와 같은 그러헌 겸허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허리띠를 졸라 매면서 여법하게 수행해나가는 그러한 수행자가 되야 한다.
더 늙어가지고 육체가 자유를 잃어버리게 되고, 대소변도 자유롭게 허지 못하고, 행보도 자유롭지 못하고, 음식도 맘대로 먹지 못하고, 말도 자유롭게 못하게 될 그때에 가서 ‘그때 힘 좀 있을 때 정진을 열심히 헐 것을...’ 그렇게 후회해 봤자 한(恨)만 만단(萬端)이나 될 것이다.
**송담스님(No.645) - 2000년 하안거 해제•백일기도 회향•백종법회


(1) 약 20분.  (2) 약 16분.


(1)------------------

올올무사대청산(兀兀無事對靑山)하야  안고사해천마공(眼高四海天魔拱)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세간시비도불관(世間是非都不管)하고  일여청류소명월(日與淸流掃明月)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올올무사대청산(兀兀無事對靑山)하니  안고사해천마공(眼高四海天魔拱)이로다.
올올히 일 없이 청산을 대하고, 올올히 일 없이 청산을 대한단 말은 일체를 도막사량(都莫思量) 하고 세상의 흥망성쇠와 생노병사까지라도 다 놓아 버렸으니 이것이 일 없는 무사(無事) 한도인(閑道人)이거든.
그리고서 청산을 떠억 대하고 앉아서 정진(精進)허는 거동(擧動)을 ‘올올무사대청산’이라고 표현을 헌 것입니다.

석 달 동안을 더위도 잊어 버리고 일체 시비(是非)도 다 끊어져 버리고 오직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허도록 정진을 해서 석 달 해제를 맞이했어.
그러니 그 기상이 안고사해천마공(眼高四海魔天拱)이여. 그 청정하고 의연한 자세가 하늘에 뻗찌르는, 그러고 사해(四海)를 덮고도 남을 만한 그런 기상이다 그말이여.
그러니 천마(天魔)-하늘의 마왕 파순(波旬)이의 권속들이 그런 것들이 다 그 앞에 고개를 들지를 못하고 머리를 숙인다 그말이거든.

세간시비(世間是非)를 도막관(都莫管)하고, 세간에 옳고 그른 것을 다 놔 버리고,
일여청류(日與清流)로 소명월(掃明月)이다. 날마다 흐르는 물이 마치 명월(明月)을 씻은 거와 같이 그렇게,

‘어떻게 흐르는 물이 명월(明月)을 씻느냐’하면은 하늘의 밝은 달이 물에 비추는데,
그 맑은 물이 계속 흘러가니까, 흘러가는 물에 의해서 물에 뜬 달이 씻겨진 것에다가 비유해서,
우리가 정진허고 있는 경지가 마치 흐르는 물에 밝은 달이 씻겨가는 것에다가 비유한 고인(古人)의 게송(偈頌)입니다.

그러헌 마음가짐과 몸가짐으로 석 달 동안을 정진을 허셔서 그리고 해제 법요식에 이렇게 여러 곳 선방에서 운집을 했는데 오늘은 7월 15일 백중날이거든.

‘백중(百中)날’ 이라는 것은 옛날부터 ‘부모의 영가(靈駕)를 천도(薦度)하는 법요식을 거행하는 날’이다.
왜 그러냐 하면은 우란분(盂蘭盆)이라고도 허는데, 인도말로 '우란분'이라고 허는데 '우란분'이란 말을 번역을 허면 구도현(救倒懸)이여. ‘거꾸로 매달린 것을 구제(救濟)헌다.’

선망(先亡) 부모(父母)가 지옥에서 꺼꾸로 매달려 가지고, 갖은 견디기 어려운 고통을 받고 있을 때, (고통을) 받고 있는 그 영가를 구제허는 그래서 ‘구도현(救倒懸)’인데,
그것은 목련경(目連經)에 나오는 설화가-여기서 불가불 이야기 헐 수 밖에 없는데,

목련존자(目連尊者)는 세속에 있을 때부터 효심이 지극했어. 출가허기 전에는 큰 장사를 허고, 그런데 (큰 장사를) 나갈 때 홀로 계신 어머니께 ‘어떻게 어떻게 허고 어떻게 어떻게 허시고 잘 계시라’고 했는데,
그 뜻을 전부 어기고 날마다 정법에도 어긋나고 도덕에도 어긋나는 그러헌 언행으로써 갖은 악한 짓을 허다가 결국은 지옥에 떨어졌어.

지옥에 떨어져 가지고 갖은 고통을 받고 있을 때, 그 목련존자가 출가를 해 가지고 부처님의 십대제자 가운데 신통제일(神通第一)인 그런 큰 아라한과(阿羅漢果)를 증득한 도인이 되었는데,
‘그 지옥에 떨어진 어머니를 어떻게 구제를 헐 것인가?’ 갖은 방법으로 다 구제헐라고 해도 이루어지질 못해서,

그래서 부처님께 ‘지옥고를 받고 있는 어머니를 어떻게 허면 구제헐 수가 있겠습니까’허고 여쭈니까,
‘칠월 해제 때 대중공양(大衆供養)을 허면 석 달동안 열심히 도를 닦은 그 수행자들에게 공양을 올린 그 공덕과 그 수행자들이 정진허는 그 정신으로 작관(作觀)을 하고 그래서 너의 어머니를 구제헐 수가 있을 것이다’

이렇게 말씀을 해 주셔서 목련존자는 탁발(托鉢)을 해 가지고, 부처님과 부처님의 많은 제자들에게 공양을 올려 가지고, 그 어머니를 구제했다고 허는 목련경에 설화가 있습니다마는.

그래서 오늘도 이 해제 법요식에 많은 수행자들이 모다 이렇게 운집(雲集)을 허셨고 또 많은 청신사(靑信士) 청신녀(靑信女)들도 이 자리에 많이 모이셨습니다.
물론 이 용화사 법당안에 모셔진 만년위패 법보영가들의 백중 천도 법요식도 아울러서 행해지겠습니다마는,

신남신녀 여러분께서는 물론 세상을 살아가는데 여러 가지로 어려움도 많고 그러시겠지만,
살아계신 부모님께도 효도를 하고, 돌아가신 부모나 조상 선망부모에게도 이러헌 때에 동참(同參)을 하셔서,
돌아가신 분들이 만에 하나라도 그런 삼악도(三惡道)에서 고통을 받고 계신 분이 있을런지도 모르기 때문에 정성을 다해서 이런 법요식에 참례를 허셨으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천상 사람이 무량겁을 두고 오면서 수없는 생사를 거듭허면서 윤회를 허다가 금생에 여기까지 와서,
우리가 또 이렇게 불자(佛子)로서 도반(道伴)으로서 이렇게 만나게 된 그 인연을 생각해 보면 참 깊고 깊은 인연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서 돌아가신 부모와 선망부모의 천도문제도 중요허지만, 우리 자신들도 과연 그런 삼악도에 떨어지지 아니하고 세세생생(世世生生)에 생사의 윤회(輪廻) 속에 빠지지 않고 해탈(解脫)을 헐 수가 있을 것인가?
이런 때에 냉정히 스스로를 반성을 하고, 그렇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도 깊이 생각해 볼 만한 일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이 자리에 모이신 여러분들 그러고 청신사 청신녀 그러고 비구, 비구니 여러 도반들께서는,
세상이 물질 문명은 점점 발달을 해서 과거에는 생각지도 못헐 그런 세상이 되았습니다. 그렇게 발달이 되아서 살기는 퍽 편리허기는 되았으나,
‘진정으로 우리가 과거보다 훨씬 더 행복허게 되았는가?’하고 생각해보면 물질 문명이 발달헌 만큼 더 행복해진 것은 별로 없다고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세속의 발달에 우리도 발을 안 맞출 수도 없고, 다 버리고 머리를 깍고 스님이 되었다면 세상이야 어떻게 되거나 말거나 오직 인연 따라서 열심히 도만 닦으면 별 것이 아니겠지만,
세속에서는 세속의 모든 흘러감을 외면하고 자기만 혼자 옛날처럼 살기는 퍽 어렵게 되았습니다.
그래서 세상의 흐름을 전적으로 무시는 허지 아니허면서도 항상 불자로서의 자기 마음 닦는 일에는 절대로 등한히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을 합니다.


농계유식탕와근(籠鷄有食湯鍋近)이요  야학무량천지관(野鶴無糧天地寬)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원입송풍나월하(願入松風蘿月下)하야  장관무루조사선(長觀無漏祖師禪)이로다
나무~아미타불~

농계(籠鷄)는 유식탕와근(有食湯鍋近)이요. 닭장 속에 있는 닭은 먹을 것이 있지만 시간 맞춰서 먹이를 후하니 주어서 배불리 먹고 있지만 머지않아서 펄펄 끓는 전골 냄비가 기다리고 있고,

야학(野鶴)은 무량천지관(無糧天地寬)이다. 들에 훨훨 날아다니는 학은 특별히 누가 양식을 주거나 양식을 쌓아 놓은 것은 없지마는 천지에 자유자재로 왔다갔다 자유롭게 살고 있구나.

이것은 세속에서 부·재산을 모이고 명예와 권리를 모여서 남 보매 부귀영화를 누리고 있는 것 같지마는,
그런 것을 모이느라고 죄를 짓고, 그것을 관리허느라고 죄를 짓고, 그것을 쓰느라고 본의 아니게 죄를 지어서 자칫 잘못허면은 그러헌 업(業)으로 인해서 삼악도에 떨어질 우려가 다분히 있고,

그런 것을 다 무상한 것인줄 철저히 깨닫고 그런 것을 다 버리고서 발심해서 도를 닦으면, 그건 마치 들 학과 같이 내 소유라고 허는 것은 땅 한 뙈기도 없고 아무것도 소유물도 없고 명예와 지위 부귀영화도 없지마는,
들 학처럼 걸망 하나 짊어지고 바리때, 장삼(長衫)만 하나 있으면 어느 선방에로 다니면서 도를 닦을 수가 있다.
그래 가지고 생사 요달(了達)을 해서 일체 중생을 제도(濟度) 할 수 있는 경지에까지도 도달 헐 수가 있다.

그러니 원입송풍나월하(願入松風蘿月下)하야 원컨댄 솔바람 불고 칡덩쿨 사이로 달을 보면서,
그 밑에 장관무루조사선(長觀無漏祖師禪)이다. 길이 무루(無漏)의 조사선(祖師禪)을 관(觀)허기를 원하노라. 이런 고인의 시가 있습니다.

여기에 모이신 비구·비구니 도반 여러분은 이러헌 게송을 항상 마음에 간직하고 추위나 더위나 배고프고 고통스러운 모든 그런 것을 신심과 용맹정진(勇猛精進)으로써 극복하면서 열심히 도를 닦어야 할 것이고,

머리는 깎지 않고 비록 세속에 몸을 담아 계신 청신사 청신녀 여러분들도 비록 몸은 세속에 있지마는 그 정신 만큼은 이런 출가한 스님네 못지 않게,
생사속에서, 부귀영화 속에서, 무상(無常)한 속에서 영원을 찾는 정법을 믿고 열심히 수행을 해서 스님네 못지 않게 도업(道業)을 성취헐 각오를 가지고 공부를 허시기를 부탁을 합니다.

이 생사 문제는 과거·현재·미래의 삼세제불(三世諸佛)이 계시지만, ‘삼세제불이 우리를 제도하신다’ 우리는 그렇게 얘기를 허지만,
우리 자신이 정법을 믿고 열심히 수행을 허지 아니허면 삼세제불의 그런 힘으로도 어찌 해 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발심(發心)을 해서 열심히 도를 닦을 때 삼세제불의 제도를 받을 수가 있는 것이지,
우리 자신이 열심히 수행을 허지 아니허고서 삼세제불이 억만 번을 출세(出世)허신다 허더라도 우리의 생사 문제는 해결되지 않으리라고 나는 생각을 합니다.(처음~20분1초)


(2)------------------

부처님께서 사바세계(娑婆世界)에 왕림허셔 가지고 왕궁의 부귀도 버리시고 49년 동안 팔만사천 법문을 설하셨지마는 그 법문이 문자화 된 것이 우리나라 해인사에도 팔만대장경 장경각에 목각(木刻)을 해서 잘 복원이 돼있습니다.
그런데 그 팔만대장경의 법문이 그걸 다 읽기도 어려운 일이고 다 해석해서 다 알기도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이 고인네들은 조사스님네들은 그 안에 있는 요점만을 뽑고 또 뽑아서,
어떠헌 근기(根機)의 중생이라도 그렇게만 해 나가면 팔만대장경에 있는 진리를 내가 깨달을 수 있도록 그 길을 개척을 해서 우리에게 남겨주신 것이 몇 가지가 있지마는,
그 중에 최고의 훌륭한 법, 간단허면서도 지식이 있거나 없거나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승속을 막론하고 누구라도 헐 수 있는 방법이 바로 무엇이냐 하면은 참선법(參禪法)입니다.

참선법 가운데에도 ‘이 무엇고?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이냐?’ 앉아서도 ‘이뭣고?’ 서서도 ‘이뭣고?’
그것이 별 재미도 없고 별로 어려운 말도 아닌데, 정말 무상(無常)함을 철저히 깨닫고 열심히 ‘이뭣고?’를 허다보면 해 갈수록 뭣이 알아지는 것은 없어.
알아지는 것은 없지마는 해 갈수록 신심이 더욱 나오고, 더 무상을 철저히 느끼게 되고, 1분 1초 시간을 아껴서 이 한 일에 철저허게 정진 헐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열심히 정진을 허다 보면은 사람의 근기와 어떻게 정진을 해 가느냐의 그런 차이로 해서 능엄경(楞嚴經) 50상(相) 변마장(辨魔障)에 나오는 거와 같은 그러헌 여러 가지 형상이 나타날 수가 있습니다.
꼭 다 나타나는 것은 아닙니다. 누구나 정진을 허면 다 나타나는 것은 아니나 그런 가지가지의 형상이 나타날 수가 있는데, 나타난다고 해서 꼭 좋을 것도 없고, 그러나 그런 것이 나타나는 수가 있어요.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그런 경지가 나타나면 그것을 ‘아, 내가 이것이 견성(見性)헌 것인가 보다.’ ‘이것이 바로 도통(道通)헌 것인가 보다.’ ‘이것이 앞으로 좋은 징조인가 보다.’
이렇게 착각을 하고 거기에 집착 할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바른 경지냐, 올바르지 못한 경지냐, 그것은 본인이 평소에 선지식(善知識)의 법문(法門)을 많이 들어본 사람이면 스스로도 그것을 점검을 해서 알 수가 있습니다.

법문을 안 들어본 사람은 여태까지 보이지 않는 느껴보지 못한 현상이 일어나니까, 신기하고 묘해서 그것을 무슨 좋은 쪽으로 해석을 하고, 좋아하고 집착을 헐 수가 있을 수가 있을 것입니다마는,
그런 경지를 여기서 50여 가지의 경계(境界)를 낱낱이 얘기 헐 시간은 없고,

대별(大別)을 허면, 공부해 나가는 과정에서 업장(業障)이 소멸되어서 그래 가지고 식(識)이 맑아졌다 하면은 그것을 꼭 나쁜 쪽으로만 생각헐 것은 없습니다.
업장소멸허고 공부가 앞으로 잘 되어가기 위해서 일어나는 경우라면, 거기에 집착을 아니하고 그런 것을 좋아할 겨를도 없고 깨끗이 없었던 걸로 해버리고,
다시 본참공안(本參公案)을 들고 여법(如法)허게 정진을 해 가면 되는 것입니다.

만에 하나라도 그런 것에 집착을 하고 좋다는 생각을 하고, 이것이 뭣이 알아진 것이 있고,
무슨 조사의 어구(語句)나 전등(傳燈)·염송(拈頌)이나 경전을 보면 옛날에는 잘 몰랐었는데, 자기 나름대로 가늠이 가고 그런 수도 있으니까 그걸 보고 ‘아, 내가 한소식 했다’ 이렇게 착각을 헌다면 그 공부는 거기서 중단이 되고 말 것이고,

조금 더 보태서 시(詩)를 짓는다던지 게송(偈頌)을 짓는다던지, 함부로 ‘자기가 한소식 했다’고 떠벌리고 과시를 헌다던지,
또 막행막식을 허고 횡설수설 해 가지고 많은 사람한테 자기가 도를 통한 것처럼 선전을 하고 과시를 허고,
이렇게 되면 자기 자신도 망하는 거고, 불법도 그 사람으로 인해서 망허게 되는 거고, 많은 신도들도 그런 것을 보고 마음에 혼란심을 일으켜서 잘못된 데로 빠지게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수행이라 하는 것이 꼭 해야 하는 것이고 열심히 해야 하는 것은 사실이나,
공부허는 과정에서 이러헌 소견(所見)이 나거나 경계가 일어났을 때, 철저하게 선지식을 믿거나 선지식의 법문을 의지허지 아니한 사람은 까딱허면 잘못된 지경에 말려들어갈 수가 있는 것이니,
이 자리에 모이신 여러분들은 그런 점에 대해서 각별히 주의를 하시고,

자기가 조금 평소에 바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면 어떤 지견이 났다 하더라도 이것이 구경각(究竟覺)이냐 아니냐,
정말 삼명육통(三明六通)과 팔해탈(八解脫)을 다 얻어서 부처님과 조사와 같은 그런 경지에서 오무생사(悟無生死)허고 증무생사(證無生死)해서 용무생사(用無生死)할 지경에 이르지 아니했으면,

득소위족(得少爲足)하는 조금 무슨 지견난 걸 가지고, 자기도 깨달은 것처럼 그런 생각을 속에 품고 있다면은 불조(佛祖)에게도 부끄러울 일이고 도반들에게도 부끄러울 일이고 신도·단월(檀越)네에게도 부끄러운 일일 것이고 그럴 것입니다.

무엇을 해먹을 짓이 없어서 깨닫지 못헌 것을 깨달았다고, 미증(未證)을 위증(謂證)하고 미득(未得)을 위득(謂得)해 가지고 대접을 받을라고 허는 그러헌 짓이 있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항상 자기를 반성해서 자기의 잘못된 점을 반성을 허고 참괴심(慙愧心)을 가지고,
구경각(究竟覺)을 얻을 때 까지는 항상 초학자(初學者)와 같은 그러헌 겸허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허리띠를 졸라 매면서 여법하게 수행해나가는 그러헌 수행자가 되야 한다고 나는 생각을 합니다.

물론 이 자리에 모이신 도반 여러분들은 전부 그러헌 도반들이라고 나는 생각을 합니다

사자굴중무이수(獅子窟中無異獸)하고  상왕행처절호종(象王行處絶狐蹤)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사자굴중(獅子窟中)에 무이수(無異獸)다. 사자굴 가운데에는 다른 짐승이 있을 수가 없어. 사자굴에는 오직 사자끼리만 사는 것이지, 사자굴 속에 어떻게 다른 짐승들이 사자허고 같이 살 수가 있겠느냐 그말이야.

상왕행처(象王行處)에 절호종(絶狐蹤)이다. 코끼리의 왕, 상왕이 터억 떼를 지어서 걸어가는 데에는 여우같은 그러헌 간특한 짐승들이 그 사이에 끼여서 갈 수가 없는 것이다.

철저하게 정법을 믿고 정법에 의해서 발심한 여러 도반들, 바로 사자요 코끼리의 무리와 비교될 수 있을만한 그러헌 도반들이다 그말이여.
그래서 기왕 우리가 머리를 깎고 먹물 옷을 입고서 선방에 나와서 도를 닦는 최상승 학자일진데는 사자와 같이 상왕과 같이 그렇게 수행을 해가야 할 것이고,

청신사 청신녀 여러분들도 기왕 불법을 믿고 참선을 허실라면 사자와 같은, 코끼리의 왕과 같은 그러헌 마음과 그러헌 행동으로 수행을 허시기를 부탁을 드리는 것입니다.

금생(今生)에 약불종사어(若不從斯語)하면  후세당연한만단(後世當然恨萬端)하리라
나무~아미타불~

금생(今生)에 약불종사어(若不從斯語)하면 후생(後生)에 당연한만단(當然恨萬端)하리라.

고인(古人)의 게송(偈頌)에 ‘호향차시(好向此時)하야 명자기(明自己)하다.’
정말 이때를 향해서 자기를 밝혀라. ‘이때’라는 게 ‘바로 지금’입니다.

이 가운데는 팔십 노령의 연세 높으신 그런 분도 계시고 아주 아직 젊으신 분도 많지마는, 바로 우리가 이만큼 건강헐 때에,
나이야 조금 많거나 적거나, 생활이 조금 어렵거나 풍부허거나, 그것도 따질 것도 없고 아직은 우리가 이만큼 이만큼 살 때 철저허게 도를 닦자 이거거든.

백년광영(百年光影)이 전두비(轉頭非)다. 많이 살아봤자 100살 사는데, 백년(百年)이라고 허는 세월도 잠깐 동안에 지나가는 것이니 뒤로 미룰 일이 아니고, 여러 가지 핑계를 대지를 말고.


금생(今生)에 약불종사어(若不從斯語)하면, 금생에 이렇게 간절히 드리는 말씀을 따라서 실천허지 아니하면,
후생(後生)에 당연한만단(當然恨萬端)하리라. 염라대왕 앞에 끌려가서 ‘아! 그때 좀더 열심히 정진헐 것을...’

더 늙어가지고 육체가 자유를 잃어버리게 되고, 대소변도 자유롭게 허지 못하고, 행보도 자유롭지 못하고, 음식도 맘대로 먹지 못하고, 말도 자유롭게 못하게 될 그때에 가서 ‘그때 힘 좀 있을 때 정진을 열심히 헐 것을...’ 그렇게 후회해 봤자 한(恨)만 만단(萬端)이나 될 것이다.(처음~36분18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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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올올무사대청산 안고사해천마공’ ; [태고집(太古集)] (설서雪栖 編, 김달진 역주 | 세계사) p163 ‘무외(無畏)’ 게송 참고.
*(게송) ‘세간시비도불관 일여청류소명월’ ; [태고집(太古集)] (설서雪栖 編, 김달진 역주 | 세계사) p164 ‘은계(隱溪)’ 게송 참고.
*올올(兀兀) ; 움직이지 않는 모양. *올(兀)우뚝하다. 움직이지 않다.
*일체를 도막사량(都莫思量) ; 일체를 모두 사량(思量)하지 말라.
*한도인(閑道人) :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유무애한 경지를 얻은 수행자를 말한다.
‘일 없다(閑)’는 것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놀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보살은 삼천 가지 위의(三千威儀)와 팔만 가지의 미세한 행실(八萬細行)과 여섯 가지 길(六度)을 닦는 데, 자기의 몸과 목숨과 재물을 다 바쳐서 중생을 건지려고 분투 노력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 몸은 무한히 분주하고 골몰하면서도, 마음은 밝은 거울이나 고요한 물과 같이 움직이지 않는다。함이 없이 하는 것(無爲而作)이 도인(道人)이다.
[참고]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37~38 에서.
(7)吾有一言하니  絶慮忘緣하고  兀然無事坐하니  春來草自青이로다
내가 한마디 하고자 하노니, 생각을 끊고 반연을 쉬고 단정히 일 없이 앉았으니, 봄이 오매 풀이 절로 푸르구나.
(註解) 絶慮忘緣者는  得之於心也니  所謂*閑道人也라.  於戱라, 其爲人也가  本來無緣하며  本來無事하야  飢來卽食하고  困來卽眠하며  綠水青山에  任意逍遙하고 漁村酒肆에  自在安閑하야  年代甲子를  總不知하되 春來依舊草自青이로다.  此는  別歎一念*㢠光者니라
【 將謂無人이러니  賴有一個로다

(주해) 생각을 끊고 반연을 쉰다는 것은 마음에서 자득함을 가리킴이니, 이른바 「일 없는 도인」이다。아! 그 사람됨이 본래 얽힘 없고 본래 일 없어, 배고프면 밥을 먹고 고단하면 잠을 자며, 녹수 청산에 마음대로 오고 가며, 어촌과 주막에 걸림 없이 지내 가리。세월이 가나 오나 내 알 바 아니언만, 봄이 오면 예대로 풀이 절로 푸르구나。이것은 특별히 한 생각을 돌이켜 반조하는 자를 찬탄함이라.
【 사람 없을까 했더니 마침 하나 있구나.
*의단독로(疑團獨露 의심할 의,덩어리 단,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가  홀로(獨) 드러나다(露).
*사해(四海) ; 수미산(須彌山-불교의 우주관에 의하면 세계의 중심에 높이 솟은 거대한 산)을 둘러싸고 있는 사방의 바다.
*천마(天魔) : 욕계(欲界)의 제육천(第六天) 곧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의 임금은 곧 마왕(魔王)이니, 그 이름이 파순(波旬)이다。그는 항상 불법을 파괴하려고 애쓰고 있다.
그것은 불도를 공부하는 이가 있으면 그의 궁전이 흔들리기 때문이라고 한다。그러므로 누구나 불법을 공부하겠다는 생각을 낼 때에 곧 천마가 따르는 것이다。다시 말하면 한 생각 일어나는 그것이 곧 천마다.
*게송(偈頌) ; 시(詩), 게(偈)와 송(頌) 모두 불교의 가르침을 싯구로 나타낸 것.
*백중(百中)날 ; 음력 칠월 보름날. 석 달간의 하안거(夏安居)를 마치는 날. 하안거를 마친 수행자들에게 공양을 올리어 그 공덕으로 어머니를 지옥에서 구제한 목련존자의 효심을 기원으로 하는, 우리의 선망부모의 영가를 천도하는 법요식을 거행하는 날(우란분회 盂蘭盆會). 백중(百衆)·백종(百種)이라고도 한다.
불교가 융성했던 신라·고려 시대에는 이날 국가적으로 '우란분회'를 열었으나 조선 시대 이후로 절에서만 여러 가지 음식을 갖추어 재를 올리고, 농가에서는 이날 하루 농번기의 피로를 씻기 위해 머슴을 쉬게 하였다.
*영가(靈駕) ; 망자의 넋을 높여 부르는 말. 영(靈)은 정신의 불가사의함을 의미하는 것으로 정신 자체를 가리키고, 가(駕)는 상대를 높이는 경칭(敬稱)이다.
*천도(薦度) ; 불교 의례의 하나. 망자의 넋을 부처님과 인연을 맺어 주어 좋은 곳으로 가게 하는 일.
*목련존자 ; ‘역대 스님 약력’ 참고.
*아라한과(阿羅漢果) ; 아라한(모든 번뇌를 완전히 끊어 열반을 성취한 성자)의 깨달음의 경지. 곧 소승 불교의 궁극에 이른 성자의 지위로서, 성문 사과(聲聞四果-수다원·사다함·아나함·아라한)의 가장 윗자리이다.
*대중공양(大衆供養) ; ①수행자에게 음식을 올리는 일. ②대중이 함께 식사하는 일.
*탁발(托鉢 밀 탁, 바리때 발) ; 스님이 경문을 외면서 집집마다 다니며 보시를 받는 것.
*운집(雲集 구름 운,모일 집) 구름(雲)처럼 모인다(集)는 뜻으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듦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동참(同參) ; ①어떠한 일에 함께 참여함. ②스님와 신도가 한 법회에 같이 참석하여 불도(佛道)를 닦는 일.
③같은 스승 밑에서 함께 공부하는-동문수학하는 '도반(道伴)'과 같은 말. 동학(同學)이라고도 한다.
*삼악도(三惡途) : 삼악취(三惡趣)라고도 하며 지옥, 아귀, 축생을 말한다。죄악을 범한 결과로 태어나서 고통을 받는 곳으로 즉 지옥의 고통과, 아귀의 굶주림과, 축생의 우치에서 방황하게 된다는 것이다.
*윤회(輪廻) : 세상의 온갖 물질과 모든 세력(勢力)은 어느 것이나 아주 없어져 버리는 것이 하나도 없다。오직 인과(因果)의 법칙(法則)에 따라 서로 연쇄 관계(連鎖關係)를 지어 가면서 변하여 갈 뿐이다.
마치 물이 수증기가 되고 구름이 되고 비가 되어, 다시 물•수증기••• 이와 같이 모든 것은 돌아다니는 것이다。그러므로 우리의 업식(業識)도 육체가 분해될 때에 아주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모든 중생들은 온갖 생각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므로, 쉴 새 없이 번민과 고통 속에서 지내다가 육신이 죽으면 생전에 지은 업(業)을 따라 지옥• 아귀• 축생• 수라• 천상 또는 다시 인간으로 수레 바퀴 돌듯 돌아다니게 된다.
그러나 성품을 깨쳐서 생각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바가 없게 되면 윤회는 끊어지는 것이다.
*해탈(解脫) : [범] Vimoksa ; Vimukta ; mukti  [파] Vimokha ; Vimutta ; Vimutti  음을 따라 비목차(毘木叉) • 비목저(毘木底) • 목저(木底)라고 한다.
모든 번뇌의 속박을 끊어 버리고 온갖 고통에서 벗어난다는 뜻이므로, 도탈(度脫) 혹은 자유자재(自由自在)라고도 한다。또는 열반(涅槃)의 딴 이름으로도 쓰인다。열반은 불교 구경(究竟)의 이상으로써 여러가지 속박에서 벗어난 상태이므로 곧 해탈이라고도 할 수 있다.
*(게송) ‘농계유식탕와근 야학무량천지관’ ; 지공 선사(志公禪師)의 권세염불문(勸世念佛文) 참고.
*(게송) ‘원입송풍나월하 장관무루조사선’ ;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 ‘자경문(自警文)’ 게송.
*업(業) : [범] karma [파] Kamma 음을 따라 갈마(羯磨)라고 하며, 「짓다(作)」의 뜻이다。중생들이 몸으로나 말로나 뜻으로 짓는 온갖 움직임(動作)을 업이라 한다.
개인은 이 업으로 말미암아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모든 운명과 육도(六道)의 윤회(輪廻)를 받게 되고, 여러 중생이 같이 짓는 공업(共業)으로 인하여 사회와 국가와 세계가 건설되고 진행되며 쇠퇴하거나 파멸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처음에는 악업(惡業)을 짓지 말고 선업만 지으라고 가르치다가, 필경에는 악과 선에서도 다 뛰어나고, 죄와 복에 함께 얽매이지 말아서 온갖 국집과 애착을 다 버리도록 하여, 부처님의 말씀에까지라도 걸리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
*걸망 ; 물건을 담아서 등에 질 수 있도록 만든 자루 모양의 큰 주머니.
*바리때 ; 절에서 쓰는 스님의 공양 그릇. 나무나 놋쇠 따위로 대접처럼 만들어 안팎에 칠을 한다. 발우(鉢盂)ㆍ발우대ㆍ응기(應器)ㆍ응량기라고도 한다.
*장삼(長衫) ; 스님의 웃옷. 길이가 길고 품과 소매를 넓게 만든다.
*요달(了達 마칠•완전히 료,통달할 달) ; 통달해 마침. 완전히 통달함.
*제도(濟度 건널 제,건널 도) ; 중생을 미혹의 큰 바다(생사고해 生死苦海)로부터 구하여(濟), 생사없는 피안(彼岸,깨달음의 언덕)에 이르게 하는(度) 것. 제(濟)는 구제(救濟). 도(度)는 도탈(度脫).
*무루(無漏) ; 마음과 몸을 괴롭히는 번뇌에서 벗어남. 번뇌의 더러움에 물들지 않은 마음 상태.
*조사선(祖師禪) ; 교외별전(教外別傳) • 불립문자(不立文字)로서 말 자취와 생각의 길이 함께 끊어져, 언어와 문자에 의하지 않고 직접 스승으로부터 제자에게로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깨우치는 것을 전하고 있기 때문에 조사선이라 한다.
*용맹정진(勇猛精進) ; 견고한 의지로 한순간도 불방일(不放逸)하는, 열심으로 노력하는 정진.
*무상(無常) ; 모든 현상은 계속하여 나고 없어지고 변하여 그대로인 것이 없음. 온갖 것들이 변해가며 조금도 머물러 있지 않는 것. 변해감. 덧없음. 영원성이 없는 것.
*도업(道業) ; 도(道)는 깨달음. 업(業)은 영위(營爲-일을 계획하여 꾸려 나감). 불도(佛道)의 수행. 진리의 실천.
*발심(發心) ; ①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②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원어)發起菩提心발기보리심, 發菩提心발보리심.
*출세(出世) : ①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것 ②태어나는 것. 법을 체득한 사람이 중생교화를 위해서 세상에 나오는 것 ③세간을 초월하는 것. 출세간(出世間)의 준말. 삼계(三界)를 나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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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바세계(娑婆世界);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이 세계. 현실의 세계.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교화하는 세계. 인토(忍土)•감인토(堪忍土)•인계(忍界)라고 한역.
*근기(根機 뿌리 근,베틀 기)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는 중생의 소질이나 근성.
*참선법(參禪法) ; ①선(禪) 수행을 하는 법.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법.
*능엄경(楞嚴經) 변마장(辨魔障) ; 능엄경 조도분(助道分)에 있는, 수행도상에 있어 나타날 수 있는, 오음(五陰-색수상행식 色受想行識)이 녹아 없어질 때에 나타나는 갖가지 마장(魔障)을 밝혀, 수행자들이 사특한 길에 떨어지지 않게 한 부처님 가르침.
*견성(見性) : '성품을 본다'는 말인데 진리를 깨친다는 뜻이다。자기의 심성을 사무쳐 알고, 모든 법의 실상인 당체(當體)와 일치하는 정각(正覺)을 이루어 부처가 되는 것을 견성 성불이라 한다.
*도통(道通) ; ①사물의 이치를 깨달아 훤히 통함. ②깨달음.
*선지식(善知識) ; 부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지도자. 좋은 벗.
*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 법,문 문) :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경계(境界) ; 산스크리트어 viṣaya ①대상,인식 대상, 여러 감각기관에 의한 지각의 대상. 인식이 미치는 범위 ②경지(境地) ③상태 ④범위,영역.
*업장(業障) ; 전생(前生)이나 금생(今生)에 행동•말•마음(신구의,身口意)으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이 세상에서 장애(障礙)가 생기는 것.
*식(識) : 오온(五蘊)의 하나. 식별하고 판단하는 마음 작용. 인식 작용. 인식 주관.
*본참공안(本參公案) : 본참화두(本參話頭).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여법(如法) ; 부처님의 가르침에 맞음.
*막행막식(막行막食) ; 수행자의 분에 맞지 않게, 행동이나 음식을 막 행(行)하고 가리지 않고 막 먹는 것.
*소견(所見) ; 어떤 일이나 사물을 살펴보고 가지게 되는 생각이나 의견.
*구경각(究竟覺) ; 깨달음의 극치. 무명(無眀)이 사라지고 깨달음의 본체가 나타나는 경지.
마음의 본원을 완전히 알지 못하는 단계에서는 결코 구경각(究竟覺)이라고 말할 수 없다. 구경각(究竟覺)은 여래지(如來地) 또는 불지(佛地)를 가리킨다.

*삼명육통(三明六通) ; 부처님이나 아라한이 갖추고 있는 3가지 자유 자재한 지혜와  수행으로 갖추게 되는 6가지 불가사의하고 자유 자재한 능력.
*팔해탈(八解脫) ;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여덟 가지 선정(禪定).
*용무생사(用無生死) ; 생사 없는 경지를 내 마음대로 수용(需用)하는 것.
*단월(檀越) = 시주(施主). dana-pati 의 음역.
*미증위증(未證謂證) 미득위득(未得謂得) ; 증(證)한 것이 아닌데 증했다 말하고, 얻음(得)이 없는데 얻었다고 말하는 것.
*참괴심(慙愧心) ; 허물을 부끄러워 하는 것. 참(慙)은 자기가 지은 죄를 스스로 부끄러워 하는 것. 괴(愧)는 다른 사람들에게 대하여 부끄럽게 생각하는 것.
*(게송) ‘사자굴중무이수 상왕행처절호종’ ; [전등록] 권16 ‘예주(澧州) 악보산(樂普山) 원안(元安) 선사’ 참고.
*(게송) ‘호향차시명자기 백년광영전두비’ ;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161 게송 참고.
*(게송) ‘금생약불종사어 후세당연한만단’ ;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 ‘자경문(自警文)’ 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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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싼또샤
발심,자신(自信)2013.10.04 13:09

§(457) (게송)일주무영수~ / 무슨 생각, 육근을 통해서 무슨 알음알이가 움직일 바로 그때 화두를 들라 / (게송)일종위배본심왕 / 한생각 단속, 회광반조.

**송담스님(No.457) - 1991년 11월 첫째 일요법회(67분)법문에서.

(1) 약 20분.  (2) 약 8분.

(1)------------------

일주무영수(一株無影樹)를  이취화중재(移就火中栽)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부대삼춘우(不待三春雨)라도  홍화난만개(紅花爛漫開)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일주무영수(一株無影樹)를 이취화중재(移就火中栽)다.

한 그루 그림자 없는 나무를 불 속에다가 옮겨 심어서 재배를 했더라.

부대삼춘우(不待三春雨)라도 삼춘(三春)—봄, 삼춘의 비를 기다리지 안 해도 홍화(紅花)가 난만개(爛漫開)다. 붉은꽃이 난만히 피었더라.


나무는 다 그림자가 있기 마련이여. 큰 나무나 작은 나무나 그림자가 다 있는 것인데, 이 한 그루의 나무는 그림자가 없는 나무여. 그 그림자 없는 나무를 땅에다가 심는 것이 아니라 불구덩이 속에다가 심었더라.


그림자 있는 나무를 땅에다 심으면 반드시 비가 내려야 그 수분을 흡수해 가지고 다 자라게 되고 꽃도 피고 그럴텐데, 이 그림자 없는 나무는 땅에다 심지 않고 불구덩이에다 심었어. 그러기 때문에 봄비를 기다리지 아니해도 봄비가 오지 안 해도, 그림자 없는 나무에서 그 붉은 꽃이 곱게 곱게도 피었더라 이거거든.


이 그림자 없는 나무, 이것은 그 나무 모양이 푸른 것도 아니요 노란 것도 아니요 빨간 것도 아니여. 일체 모양이 없는데 어떻게 그 나무를 또 불구덩이 속에다 심느냐 그거거든.


볼래야 볼 수 없고 들을래야 들을 수 없고 잡을래야 잡을 수 없고 아무리 알라고 해도 알 수 없는 이 소소영영(昭昭靈靈)한 그놈을 나무에다가 비유해서 읊은 시(詩)다 그거거든.


그 나무를 왜 하필 불구덩이에다 심느냐 하면, 우리 중생의 몸뚱이는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四大)로 뭉쳐진 이몸뚱이요, 그 몸뚱이 속에는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의 불이 항상 훨훨 타고 있거든. 그 불구덩이 속에, 탐진치삼독에 훨훨 타오르고 있는 그 불구덩이 속에다가 이 그림자 없는 나무를 한 그루를 심었더라.


이 우리의 몸뚱이는 항상 이 몸뚱이 자체는 똥과 피와 오줌 고름 모다 그런 것이 속에 가득차 있는데, 그것을 엷은가죽으로 싸아 가죽 주머니 속에다 그것을 담어놨다 그말이여.

그래서 나오느니 아홉 구멍에서 항상 더러운 것이 꾸역꾸역 기어나와, 매일 같이 아침 저녁으로 씻고 닦고 분을 바르고 향수를 발라봤자 아홉 구멍에서는 끊임없이 더러운 것이 기어나오거든.


그리고 그 더러운 똥주머니속에 탐심과 진심과 어리석은 그 마음의 불—그 탐진치 삼독의 불이 끊임없이 타오르고있거든 훨훨~훨훨훨 타올라.


혹 부처님 경전을 읽거나 이렇게 법문을 들을 때에는 잠시 그것이 꺼진 듯 했다가 금방 돌아서면 도로 타오르거든.


어떻게 하면 이 똥주머니를 좋게 가꾸며 영양을 섭취하고 건강관리를 하고, 그리고 또 예쁘게 옷을 입히고 단장을할까? 거기에는 사람들이 많이 관심을 갖는데,


끊임없이 타오르고 있는 이 탐진치 삼독의 불 그놈을 잡드리하는 데는, 물론 이 자리에 계신 사부대중(四部大衆) 여러분은 참 그 문제 때문에 지금 여기에 오시고 정진(精進)을 할라고 애쓰신 분들이지만 세계 50억 60억 인구가거개가 다 별로 그 그림자 없는 나무를 가꾸는 데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이 몸뚱이는 아무리 잘 먹이고 잘 입혀봤자 숨 한번 내쉬었다가 들어마시지 못하면 금방 무너져 버린거여. 십 분도못 가서 내장부터서 썩어 들어가는 것이야. 그렇게 저를 위해서 참 몇십 년간을 공력을 들여서 봉양(奉養)을 했건만 한 숨에 배신을 해 버려.


그놈 받들다가—속담에 ‘모진놈 옆에 있다가 벼락맞는다’고, 그놈 하나 잘 먹이고 잘 입히고 잘 단속하다가 결국은가는 것은 잔뜩 업(業)을 짓고 결국은 삼악도(三惡道)에 떨어져 버리고 만다 그말이여.


그런데 그림자 없는 나무가 불구덩이 속에 심어져 있는데 그냥 그대로 놔 둬도, 삼춘(三春)의 비를 맞지 않아도 붉은 꽃이 난만(爛漫)하게 필 수가 있을까?


그 타오르는 불속에 있는 그림자 없는 나무를 잘 가꾸어서 거기에서 영원히 시들지 않는 그 아름다운 꽃을 피게 할라면 정말 나의 모든 것, 이 몸뚱이와 우리의 모든 정신을 거기에다 바쳐서 그 일대사(一大事) 문제를 해결할려고노력을 해야 그 그림자 없는 나무에서 꽃을 피우는 것이다.


봄비는 필요가 없어. 봄비가 온다고 해서 불속에 있는 『그림자 없는 나무』가 꽃이 필 리는 없거든. 그래서 봄비는기다릴 것은 없으나,


정말 발심을 해서 철저하게 무상(無常)을 깨닫고 명예와 권리와 재산과 모든 그런 오욕(五慾)이 정말 허망하고 믿을 것이 못된다고 하는 철저한 발심(發心),

그리고 ‘이 문제는 오직 내 자신이 해결해야 한다’고 하는 결심, ‘올바른 방법으로 열심히만 하면 반드시 해결할 수있다’고 하는 신념,


그러한 바탕 위에 선지식(善知識)으로부터 화두(話頭)를 간택 받아 가지고 이 화두에 대한 의심, 아까 전강 조실스님의 임자년 녹음법문을 통해서 여러분은 아주 잘 들으셨을 줄 생각합니다마는,

행주좌와 어묵동정간에 염염상속(念念相續), 오직 인생으로 태어나서 이것 밖에는 할 것이 없다고 하는 철저한 신념만 있다면, 앉아서도 이뭣고? 서서도 이뭣고? 밥 먹으면서도 이뭣고? 똥 누면서도 이뭣고? 일체처(一切處) 일체시(一切時)에.


가만히 있어도 눈을 통해서 모든 것을 보고, 귀를 통해서 모든 것을 듣고, 몸뚱이를 통해서 모든 것을 감각하고, 코를 통해서 냄새 맡고, 생각을 통해서 모든 것을 생각하고, 때로는 성을 내고 때로는 슬퍼하고 기뻐하고, 우리는 아무 그런 생각없이 완전 무념(無念)의 경지에는 단 1분 동안도 있어 보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무슨 생각이 일어나든지 생각이 일어나고, 무엇인가 육근(六根)을 통해서 무엇인가 알음알이가 움직일 것입니다. 바로 그때에 그 곳에서 화두를 드는 것 뿐이여.

망상(妄想)이 일어난다고 조금도 걱정할 것도 없어. 그 망상 일어나는 그 찰나에 떠억 고대로 놔둔 채, 일어나는 망상을 없앨라고 하지 말고 그대로 놔둔 채, ‘이뭣고?’ 화두만 거각하면 되는 것이여.


학식이 있고 없는 것도 상관이 없고, 똑똑하고 안 똑똑한 것도 상관 없고, 남자니 여자도 따질 것도 없고, 출가 재가도 따질 것도 없어.


앉았을 때는 앉아서 ‘이뭣고?’

서 있을 때는 서서 ‘이뭣고?’

슬픈 생각 일어날 때는 슬픈 그 생각에 오래 잠겨 있지 말고 퍼뜩 돌이켜서 ‘이뭣고?’

속이 상할 때도 속상하는 생각에 왜 오래 거기에 머물러 있느냐 그말이여, 속상하는 생각이 일어나자마자 터억 숨을 들어마셔. (그리고) 내쉬면서 ‘이뭣고?’


세상에 이보다 더 간단하고도 쉬운 법이 어디가 있느냐 그말이여, 온갖 괴로움으로부터 그 괴로움을 이기고 괴로움을 없애는 방법이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이 어디가 있느냐.


그렇게 해서 자꾸 거각하고 또 거각하고.

‘화두가 잘 안 들린다, 망상 때문에 화두가 잘 안 들린다, 화두가 타성일편(打成一片)이 안된다’ 안된다고 걱정할 시간이 어디에 있느냐 그말이여, 안되면 다시 들면 그만이고.

망상이 일어난다고 걱정할 것이 뭐 있느냐 그말이여, 일어난 줄 알면 ‘이뭣고?’거든.


‘이뭣고?’ 이 공안, 무자(無字) 화두를 하는 이는 무자,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를 하는 분은 정전백수자, 판치생모(板齒生毛)를 하시는 분은 판치생모,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그 알 수 없는 의단만을 자꾸 거각해서 회광반조(廻光返照)를 해 나가거든.


거기에 무슨 망상이 거기에 붙으며, 붙어봤자 그냥 놔둔 채 화두만 들면 망상은 저절로 자취가 없어져 버리는 건데,

이렇게 정성을 들이고 노력을 하는 것인데 그럼으로써 거기에 의단을 타파(打破) 그래 가지고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는 것이다 그말이여.


이 도리(道理)는 삼세제불(三世諸佛)과 역대조사(歷代祖師)가 몸으로써 경험을 하고 깨달음으로써 우리에게 증명(證明)을 해 주신 것이여.

이 세상에 이것 밖에는 믿을 것이 없고 이것 밖에는 할 것이 없다 이거거든.


자식이 없는 사람은 자식을 낳기를 원하고, 재산이 많지 않은 사람은 많은 재산을 갖기를 원하고, 명예나 권리가 없는 사람은 갖은 수단을 써서 그런 것을 구하지만,

그 마음먹은 대로 다 구해지지도 아니 할 뿐 아니라 설사 뜻대로 이루어졌다 해도 그건 영원성이 없고 잠시 그러다가 또 아쉬움을 남기고 떠나가는 거여.


그런데 이 일대사 문제는 자꾸 하고 또 하고 하면 아무 재미가 없는 것 같지마는 그 속에 신심이 나고 환희심이 나고 분심(憤心)이 나고 더욱 해 갈수록 더 발심이 되는 거여.

‘내가 어쩌다 이런 좋은 법을 만났을까? 내가 만약에 이 법을 안 만났으면 내 신세가 어떻게 되었을까?’ 해를 거듭할수록 이렇게 신심이 굳건해져 가고.


그렇다고 해서 급한 생각을 낼 필요가 없거든. 급한 생각을 낸다고 해서 공부가 더 잘된 것이 아니여.

초심(初心), 초발심(初發心), 처음으로 발심을 해 가지고 참선을 시작한 사람은 그 초발심의 그 강렬한 신심으로 우격다짐으로 막 몰아부칠라고 그러거든.


초발심자가 그만한 분심이 있어야 하고 그만한 열의가 있어야 하기는 하지만 차츰차츰 선지식의 법문을 듣고 여법(如法)하게 해 나가다 보면 그런 만용적인 우격다짐 식의 그런 신심이 차츰 순화가 되고,

그래서 이 몸뚱이와 생각을 알날신심(捺身心)—막 완력으로 몰아붙이고 몸뚱이를 들볶으고 생각을 너무 지나치게 막 몰아대고—하는 그런 것이 차츰차츰 순화가 되어서 정신을 올바르게 가다듬고 나가는 묘한 관(觀)을 스스로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까지는 정말 참 열심히 함으로써 그렇게 되는 것이지, 처음부터서 그럭저럭 하다말다 해 가지고서는 안되는것입니다마는.(처음~19분51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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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종위배본심왕(一從違背本心王)하여  기입삼도역사생(幾入三途歷四生)고
나무~아미타불~
금일척제번뇌염(今日滌除煩惱染)하고  수연의구자환향(隨緣依舊自還鄕)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일종위배본심왕(一從違背本心王)하고, 한번 본심왕을 배반(背反)한 이래로

기입삼도역사생(幾入三途歷四生)이냐. 몇 번이나 지옥 아귀 축생의 삼악도(三惡途)에 들어갔고 태란습화(胎卵濕化) 사생(四生)을 몇 번이나 겪어왔더냐 그말이여.  몇 수십만 번을 짐승이 되었다가 날짐승이 되었다가, 긴짐승이 되었다가, 네발 달린 짐승이 되었다가, 사람이 되었다가 이러면서 돌고 돌아서 금일에까지 왔더냐.

원래는 우리도 비로자나 법신불(法身佛)과 똑같은 조금도 차등(差等)이 없는 본심왕이었다 그말이여.  그 본심의 왕을 배반한 탓으로 해서 우리는 삼악도와 사생을 돌고 돌아서 몇 억만겁을 겪어가지고 오늘에까지 이르렀더라.

금일척제번뇌염(今日滌除煩惱染)하고, 오늘 번뇌에 물든 그 번뇌염을 깨끗이 다 씻어버리고,

수연의구차환향(隨緣依舊自還鄕)이다. 인연 따라서 옛을 의지해서 고향으로 돌아가자.

고향을 떠나서 객지(客地)로 객지로 떠돌아 다니면서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제대로 입지도 못하고 제대로 자지도 못하고 떠돌이 신세로써 참 거러지 신세가 되어 가지고 그렇게 떠돌다가 비로소 자기 고향 갈 길을 찾았다면 그 사람은 얼마나 마음이 기쁘겠느냐.

남북 이산가족들이 몽매지간에도 잊지 못할 가족 상봉, 그것참 그러한 경험이 있으신 분이 많이 계시겠지만 정든 사람과 이별하고, 고향과 가족 친지를 이별하고, 한 나라에 손바닥만한 땅에 있으면서도 만나지 못한 그런 것 생각해보면 참 기가 막히지마는,

그것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내 자신이 원래 본심왕이였었는데 그 왕이 그 본심왕을 갔다가 등져버리고 떠돌이 신세가 되어가지고 삼악도로 육도윤회(六道輪廻)를 돌고 돌면서 갖은 고초를 당하고 금생에까지 무량겁을 겪어 왔을 뿐만 아니라 내생(來生)에도 무량겁(無量劫)을 두고 또 그런 것이 거듭될 그런 신세가,

다행히 불법(佛法)을 만나고 정법(正法)을 만나서 우리가 본심왕의 본위치로 돌아갈수 있게 되었다면 이건 참 50억 인구 가운데 가장 행운아라고 할까, 가장 행복한 삶을 받아났다고 할것입니다.

이 정법 최상승법(最上乘法)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 하는 것이 한 생각 한 생각을 단속하고 한 걸음 한 걸음을 헛되이 지내지 아니하고 본참공안(本參公案) 본참화두(話頭)를 잘 거각하고 단속하고 회광반조(廻光返照)를 함으로써 우리의 본고향(本鄕)으로 가는 것이 아니냐 이거거든.


고향을 모를 때에는 갈 곳도 없고, 가 봤자 별 목적이 없어. 그러니 우선 잘 먹고 보자 우선 잘 입고 보자 나중에 삼수갑산(三水甲山)을 가더라도, 우선 부자로 살아 보자, 좋은 차도 가져 보자, 좋은 집도 가져 보자 하지만,

고향이 있는 것을 알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을 알았다면 한시바삐 고향길을 향해서 계속 걸어야 하거든. 입는 것도 얼어죽지 아니하면 족하고 먹는 것도 굶어죽지 아니하면 족하고,

어쨌든지 한 걸음이라도 빨리 고향을 향해서 게으르지 않게 걸어가는 것 밖에는 어디에다가 시간과 힘을 허비할 것이냐 그거거든.(19분 50초~27분13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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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일주무영수(一株無影樹)~’ ; [소요당집 (逍遙堂集 )-한글대장경 169] (동국대학교 역경원) 37 소요 태능(逍遙太能)일선화(一禪和)에게 답함 둘째 게송 참고. (一株無影木 移就火中栽 不假三春雨 紅花爛漫開)

*사대(四大) ; 사람의 몸을 이르는 . 사람의 몸이 , , , 바람(,,,) 요소로 이루어졌다고 보는 데에서 연유하였다.

*삼독심(三毒心) ; 사람의 착한 마음을 해치는 가지 번뇌. 욕심, 성냄, 어리석음(,,) 따위를 ()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사부대중(四部大衆) ; 불문(佛門) 있는 가지 제자. 비구(比丘), 비구니(比丘尼), 우바새(優婆塞), 우바니(優婆尼)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정진(精進) ; 정성을 다하여 노력해 나아감. [불교] 잡념을 버리고 불법(佛法) 깨우치기 위해 수행에 힘씀.

*봉양(奉養) ; 받들어 모시고 섬기다.

*() ; (산스크리트어:karma카르마) ; ①몸과 입과 마음으로 짓는 행위와 말과 생각, 일체의 행위.

②행위와 말과 생각이 남기는 잠재력. 과보를 초래하는 잠재력.

③선악(善惡) 행위에 따라 받는 고락(苦樂) 과보(果報).

④좋지 않은 결과의 원인이 되는 악한 행위. 무명(無明)으로 일으키는 행위.

⑤어떠한 결과를 일으키는 원인이나 조건이 되는 작용. 과거에서 미래로 존속하는 세력.

*삼악도(三惡道) ; 악인(惡人) 죽어서 간다는 가지 괴로운 세계. 지옥도(地獄道), 축생도(畜生道), 아귀도(餓鬼道) 가리킨다. 지옥도는 중생이 죄를 지어 죽은 뒤에 태어날 지옥세계이며, 축생도는 중생이 죄를 지어 죽은 뒤에 짐승의 몸이 되어 괴로움을 받는다는 길이고, 아귀도는 먹으려고 하는 음식은 불로 변하여 굶주리고 매를 맞는 아귀들이 모여 사는 세계이다.

*난만하다(爛漫-- 빛날 /넘쳐 흐를 ) ; (꽃이)한창 만발하여 성하다. (빛이나 광채가)어지러울 정도로 강하고 선명하다.

*일대사(一大事) ; 매우 중요하거나 아주 . [불교] 삶과 죽음, 생사(生死) .

*무상(無常) ; 모든 현상은 계속하여 나고 없어지고 변하여 그대로인 것이 없음.

*오욕(五慾) ; 불도를 닦는 장애가 되는 다섯 가지 욕심. 재물(財物), 색사(色事), 음식(飮食), 명예(名譽), 수면(睡眠) 이른다.

*발심(發心) ; 불도(佛道=菩提=眞理)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불도를 얻고자 하는 마음을 일으키다. (원어)發起菩提心발기보리심, 發菩提心발보리심.

*선지식(善知識) ; 불교의 바른 도리를 가르치는 사람.

*육근(六根) ; 육식(六識) 경계(六境) 인식하는 경우 소의(所依) 되는 여섯 개의 뿌리. 대경(對境) 인식하게 하는 근원적 요소. 심신을 작용하는 여섯 가지 감각기관으로서, (眼根(耳根(鼻根(舌根(身根(意根) 총칭이다.

산스크리트어 ṣaḍ-indriya () 기관·기능을 뜻함. 육입(六入), 육처(六處), 육적(六賊), 육문(六門)이라고도 한다.

*육경(六境) ; 육근(六根) 대상 경계인 (((((() 말함.

산스크리트어 ṣaḍ-viṣaya () 대상을 뜻함. 육진(六塵)이라고도 한다.

①색경(色境). 눈으로 있는 대상인 모양이나 빛깔. ②성경(聲境). 귀로 들을 있는 대상인 소리. ③향경(香境). 코로 맡을 있는 대상인 향기. ④미경(味境). 혀로 느낄 있는 대상인 . ⑤촉경(觸境). 몸으로 느낄 있는 대상인 추위나 촉감 . ⑥법경(法境). 의식 내용. 관념.

*타성일편(打成一片) : 좌선할 자타(自他) 대립이 끊어져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만이 독로(獨露) 경계.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화두는 이란 뜻인데, () 거저 들어가는 어조사다.

곡식을 보고 땅을 알고, 말을 듣고 사람을 안다 옛말이 있다. () 판단하고 이치를 가르치는 법말참말을 화두라고 한다。또는 공안이라고 하는 것은관청의 공문서 뜻인데, 천하의 정사를 바르게 하려면, 반드시 법이 있어야 하고 법을 밝히려면 공문이 필요하다.

부처님이나 조사들의 기연(機緣), 다시 말하면 진리를 똑바로 가르친 말이나 몸짓이나 또는 어떠한 방법을 막론하고 그것은 모두 이치세계의 바른 법령(法令) 것이다. 그러므로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가지 병이 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의단(疑團 의심할 , 덩어리 ) ; 공안·화두에 대한 없는 의심(疑心) 덩어리().

*거각(擧却 , 어조사 ) ; 화두를 든다.

*회광반조(廻光返照) : 불법은 밖으로 내달으면서 구하지 말고 안으로 나에게서 찾아야 한다。그러므로 생각 일어날 때에 일어나는 곳을 돌이켜 살펴보라. ,, 모두 동자(同字).

[참고] 송담스님(No.524)—94 동안거결제 보살선방에서 하신 법문(94.02.06)에서.

회광반조(廻光返照) 하는 것은, ‘빛을 돌이켜서 다시 비춘다하는 것은, 자기 마음에서 일어나는 생각을 그놈을 밖으로 발산을 해가지고 번째, 번째 생각으로 나가면 그것은 회광반조가 아니고,

무슨 생각이든지 생각 일어나면, 일어나는 생각을 발판으로 해서이뭣고?’ 돌아오고, 일어나는 생각을 돌이켜서 생각 일어나는 곳을-다시 이렇게 참구(參究)하는 것이니까-바로이뭣고?’

눈으로 무엇을 때에도 보는 대로 쫓아가지 말고, 보자마자 바로 생각을 돌이켜서이뭣고?’ 참구하면 그것이 회광반조가 되는 것입니다.

귀로 무슨 소리를 듣던지, 눈으로 무엇을 보든지, 무슨 생각이 일어나더라도 바로 경계(境界)에서 즉각이뭣고?’ 생각을 돌리면 그것이 회광반조(廻光返照) 이거거든.

*타파(打破) ;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화두(話頭) 대한 의심(疑心) 관조(觀照) 나가는 , 없는 그리고 맥힌 의심으로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이상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이상 의심이 커질 없고, 이상 깊을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가슴속이 가득 차고, 세계가 가득 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때에도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때도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때에는 꿈속에서도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 확철대오(廓徹大悟) 하게 되는 것입니다.

큰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항아리를 큰돌로 내려치면은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참선법 A’ 에서]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삼세제불(三世諸佛) ; 삼세(三世 과거와 현재와 미래) 모든 부처님[諸佛].

*역대조사(歷代祖師) ; 석가세존(釋迦世尊)으로부터 불법(佛法) 받아 계승해 대대의 조사(祖師).

*발심(發心) ; ①불도(佛道=菩提=眞理)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 (원어)發起菩提心발기보리심, 發菩提心발보리심.

*우격다짐 ; 억지로 우겨 내몰거나 강요함.

*여법(如法 같을·같게 ·따를·좇을 / 부처님의 가르침·불도佛道 ) ; 부처님의 가르침에 맞음.

*알날신심(遏捺身心  누를 /누를 / /마음 ) ; 몸과 마음을 억누르다.

[몽산법어] '몽산화상시총상인(蒙山和尙示聰上人)' 나오는 구절.

*묘한 () ; 묘관(妙觀). () 의심(疑心) (). 화두를 거각하여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觀照) 하는 .

[참고] 송담스님(세등선원 No.68)—정묘년 동안거 해제 법어(1988.01.17)

처음에 공부를 모르는 사람은 힘을 써야 화두가 들리니까 힘을 써서 하기도 하고, 자꾸 숨을 들어마셨다 내쉴 때마다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한번 하고 한참 있으면 화두가 없어져 버리니까, 부득이 숨을 내쉴 때마다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하고 자주자주 들을 밖에는 없지만,

, , 이렇게 가다 보면 그렇게 자주 들지 해도 화두가 들리게 된다 그말이여.


들려 있걸랑 화두를 다시 거기다 덮치기로 자꾸 들어 필요는 없는 것이여.

화두가 희미해져 버리거나, 화두가 없어지고 생각이 들어오거나 하면 그때 한번씩 떠억 챙기면 되는 것이지, 화두가 이미 들어져서 없는 의심이 있는데, 거기다 대고 자꾸 화두를 용을 쓰면서 자꾸 들어 싸면 그것은 아주 서투른 공부다 그말이여.


그렇게 순일하게, 화두를 들려고 해도 화두가 터억 들려서 의단(疑團) 독로(獨露)하걸랑, 독로한 의단을 성성(惺惺) 가운데 묵묵히 그것을 관조(觀照) 하는 거여. 없는 의심의 ()이여. 의심관(疑心觀).


거기에는 고요하다는 생각도 붙을 수가 없고, 편안하다는 생각도 붙을 수가 없고, 맑고 깨끗하다는 생각도 어떻게 거기다가 그런 생각을 붙일 수가 있냐 그말이여.

고요하고 맑고 깨끗하고 편안한 그런 생각에는 조금도 그런 생각을 두어서도 안되고, 그런 생각을 즐겨서도 안되고, 그런 생각을 집착해서도 안돼.


다맛 우리가 일은 없는 의단(疑團)만을 잡드리 나가는 거여.

너무 긴하게 잡드리를 해서도 안되고, 너무 늘어지게 해서도 안되고, () () 긴완(緊緩) 득기중(得其中) 해야 . 그것이 묘한 ()이라 말할 수가 있는 거여.


()이라 하는 것도 일종에 생각이지만, 생각없는 생각을 ()이라 하는 거여.

우리가 참으로 올바르게 화두를 들을 모르는 사람은 부득이 해서 생각을 일으켜 가지고 화두를 참구를 하는데, 일구월심 정진을 해서 참으로 바르게 화두를 참구할 아는 사람은 바로 ()으로 들어가는 거여. 관이란 생각없는 생각으로 생각하는 것을 관이라 그러는 거여.


조금도 늘어지지도 않고, 조금도 긴하지도 아니한() 의심(疑心) ()’으로 나가야 되는 거여.


1분의 백천 분의 1 같은 그런 짧은 시간도 생각을 일으켜서 일어나는 잡념을 물리칠라 것도 없고, 그렇게 화두가 순일하게 된다 해도 아주 미세한 생각은 이렇게 일어날 수가 있어.

일어나지만 그것을 일어나는 생각을 물리칠라고 생각을 내서는 아니되는 거여. 생각이 일어나더라도 일어난 채로 그냥 놔둬 버리고, 자기 화두만을 관해 나가면 생각은 자취없이 스쳐서 지내가 버리는 거여.


마치 앞으로 춥도 덥지도 않는 봄철이 돌아오겠지마는, 봄철에 도량이나 동산에 나가서 산책을 하면서 포행을 하면서 정진을 때에 춥지도 덥지도 않는 봄바람이 귓전에 스쳐간다고 해서 봄바람 때문에 화두가 도망갈 필요는 없거든.


그냥 귓전을 스쳐서 지내가고 옷자락이 팔랑거리거나 말거나 내버려둬 버리고, 나는 성성적적(惺惺寂寂)허게 의심의 () 단속해 나가는 것처럼, 일어나는 크고 작은 모든 번뇌가 일어난다 하드라도 그냥 놔둬 버려.


끝없이 일어났다가 없어지고 일어났다 꺼져 버리고, 내가 거기에 따라주지만 아니하고, 집착하지만 아니하고, 물리칠라고 하지도 말고, 그러면은 그냥 결에 일어났다가 제물에 그냥 스쳐가 버리는 거여.

그까짓 것은 내가 공부해 나가는 조금도 방해로울 것이 없는 것이여.


우리 활구참선을 하는 수행자는 승속(僧俗) 막론하고 화두를 올바르게 잡두리 나갈 줄만 알면,

어디를 가거나 선불장(選佛場)이요, 그게 바로 선방(禪房)이요, 공부처(工夫處) 그말이여.


[참고] 송담스님(No256)—85 2 첫째 일요법회(85.02.03)

금년 여름에 보살선방에 백여섯 분이 방부를 들여서 항시 칠팔십 명이 그렇게 엄격한 규율 속에서 정진들을 모다 애쓰고 계시는데 자세를 바르게 하고, 호흡을 바르게 하고, 나아가서 번째 가서는 화두(話頭) 어떻게 의심(疑心) 하느냐?


화두를 의심하는 방법, 이것이 또한 간단하지만 이것이 어려운 것입니다.

, , , 3, 5, 10년을 해도 화두를 참으로 올바르게 화두를 참구(參究)하고, 관조한다는 것은 어려운 것입니다. 이것은 말로이렇게 하는 것이 좋다말하기가 어렵습니다.


법문을 듣고 고대로 하고, 고대로 하면서 법문을 듣고 해서 스스로 많은 노력, 스스로 그것을 공부해 나가는 요령급하지도 않고 너무 늘어지지도 아니하며, 요령을 스스로 터득을 해야 합니다.

스스로 터득한다니까 선지식(善知識) 필요 없고, 자기 혼자 어디 돌굴이나 토굴에 가서 해제끼면 되냐 하면 그게 아니에요. 반드시 선지식의 지도를 받되, 받아 가지고 하면서도 스스로 묘한 의관(疑觀) 얻어야 하는 것입니다.


묘한 의심관이라 하는 것은 도저히 어떻게 말로써 설명해 가르켜 수가 없습니다. 자기가 일구월심(日久月深) 항시 면면밀밀(綿綿密密)하게 의심해 가고 관해 가고, 자세와 호흡과 화두를 삼위가 일체가 되도록 조정을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필경에는 묘한 의심관인 것입니다. 의심관, ()이라 하는 것도 일종의 생각이지만생각 없는 생각 관이라 이렇게 말할 수가 있는데, 막연하게 어떤 관이 아니라 활구참선(活句參禪)의심(疑心) 이라야 .


옛날에는 해가 떨어지려고 , 서산에 지려고 , 수평선에 해가 지려고 때에, 맷방석만한 해가 땅에 질락 말락 빨갛고 아름다운 해가 중천에 있을 때는 눈이 부셔서 수가 없는데, 해가 무렵에는 눈이 부시질 않고 아름답고 벌건 굉장히 해를 수가 있습니다.


아름다운 해를 한참 보는 것입니다. 마지막 떨어져서 보일 때까지 시간 내지 시간을 눈이 부시지 아니할 때부터서 그것을 관하기 시작해 가지고 마지막 때까지 관찰하고서, 다음에는 밤새 눈을 감으나 뜨나 찬란하고 아름다운 둥그런 해를 ()하는 것입니다.


눈을 감고서도 보이는 것이 그것이 () 것입니다. 눈을 뜨나 감으나 상관없이 항시 있는 것이 그것이 관인데, 그것을 갖다가 일관(日觀)이라 그러거든. 해를 관하는 수행법이여.


밤새 둥근 해를 갖다가 관하고, 이튿날 하루 종일 관하다가 다시 관을 해서, 관을 다시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밤새 관하고, 이튿날 관하고 관하고 해서 평생 동안을 그렇게 관을 나가는데, 이것도 하나의 수행 방법입니다.


이러한 일관이라든지 달을 관하는 관법이라든지, 아까 백골관이라든지, 여러 가지 관법(觀法) 있는데, 참선도 하나의의심의 관법이라 이렇게 말할 수가 있습니다.


성성(惺惺)하고 적적(寂寂)하면서도, 일부러 화두를 들려고 하지 아니해도 저절로 의심관이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의단(疑團) 독로(獨露)하도록,

처음에는이뭣고?’ ‘이뭣고?’하지만 나중에는이뭣고?’ 해도 없는 의심이해가 봐두었던 둥근 해가 밤에도 고대로 보이고, 이튿날에도 고대로 환하게 보이듯이, 의심관이 그렇게 되어야 하거든.


그렇게 해서 타성일편(打成一片) 되면 일주일을 가지 못해서 공안을 타파(打破)하게 되고, 일체 천칠백 공안을 일관도천(一串都穿) . 자기의 본래면목(本來面目) 역대조사(歷代祖師) 면목을 사무쳐 보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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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생(四生) ; 중생이 윤회하는 세계인 육도(六途)에서의 네 가지 생(生),네 가지 태어나는 방식. 태생(胎生), 난생(卵生), 습생(濕生), 화생(化生)을 이른다.
*육도(六途) ; (=六道) 중생이 선악(善惡)의 업인(業因)에 의하여 윤회하는 여섯 가지의 세계. 지옥도(地獄道), 아귀도(餓鬼道), 축생도(畜生道), 아수라도(阿修羅道), 인간도(人間道), 천상도(天上道)가 있다.
*육도윤회(六道輪廻) ; 선악(善惡)의 응보(應報)로 육도(六道)의 고락(苦樂)을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것.
*내생(來生) ; 죽은 후에 다시 맞이한다는 미래의 삶
*무량겁(無量劫) ; 헤아릴 수 없는 오랜 시간이나 끝이 없는 시간.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스승)으로부터 화두•공안(公案) 하나를 받아서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공안)을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공안 또는 화두(話頭)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본참공안(本參公案) : 본참화두(本參話頭)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회광반조(光返照) : 불법은 밖으로 내달으면서 구하지 말고 안으로 나에게서 찾아야 한다。그러므로 한 생각 일어날 때에 곧 그 일어나는 곳을 돌이켜 살펴보라.

*삼수갑산(三水甲山) ; ‘삼수(三水)’와 ‘갑산(甲山)’은 각각 함경남도 북서쪽과 동북쪽에 있는 오지(奧地)의 지역명이다. 이 두 지역은 특히 날씨가 춥고 산세가 험하여 조선 시대의 대표적인 귀양지로 유명하였다. 이러한 이유로 ‘삼수갑산(三水甲山)’은 ‘춥고 험한 지역’이나 ‘유배지’ 등과 같은 일반적 의미를 띠게 되었다.
*삼수갑산을 가다 ; ‘멀고 험한 곳으로 가다’ ‘매우 어려운 지경에 이르다’의 의미를 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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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싼또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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