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없음...2022. 5. 5. 06:35

용화선원 부설 <용화유치원> 6~7세반 어린이들이 그린 '내 마음속 부처님'입니다. ^^ (2)

 

 

 

 

 

Posted by 닥공닥정
분류없음...2022. 5. 2. 21:34

용화선원 부설 <용화유치원> 6~7세반 어린이들이 그린 '내 마음속 부처님'입니다. ^^ (1)

 

 

 

 

 

 

 

 

 

 

 

Posted by 닥공닥정
분류없음...2017. 1. 21. 06:16
분류없음...2015. 8. 14. 13:10

§ 야야포불면(夜夜抱佛眠)  조조환공기(朝朝還共起)  욕식불거처(欲識佛去處)  지자어성시(只這語聲是).

 

 

약 1분.


야야포불면(夜夜抱佛眠)이요, 밤마다 부처님을 안고 자고, 조조환공기(朝朝還共起)다. 아침 아침마다 도리어 함께 일어나니,

욕식불거처(欲識佛去處)인댄, 그 저녁마다 안고 자고 아침마다 함께 일어나는 그 부처님 가신 곳이 어디냐? 그것을 알고자 할진대는, 지자어성시(只這語聲是)다. 지금 이렇게 말하고 있는 이 말소리 이것이다. 그말이지.(2015년 7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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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송담스님(No.098)—79년 입춘 법회(79.02.04)에서.

 

약 4분.


‘야야포불면(夜夜抱佛眠)이요.’ 아까 조실스님께서 읊으신 ‘밤마다 밤마다 부처를 안고 자고, 아침마다 또한 같이 일어난다[朝朝還共起]. 밤에 잘 때에는 부처님을 떠억 끌어안고 자다가 아침에는 그 부처님하고 같이 일어난다.’

‘욕식불거처(欲識佛去處)인댄’ 네가 지금 그 어젯밤에 끌어안고 자고, 아침에 일어날때 같이 일어났던 그 부처님 간 곳을 알고자 할진대는, ‘지자어성시(只這語聲是)니라. 지금 이 말하는 이놈이니라.’

이 게송(偈頌)은 지극히 쉬운 글이지만, 이 쉬운 한마디의 게송을 똑바로 마음에 얻는다면 바로 자기의 부처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견성성불(見性成佛)한다. 견성성불’ 누구나 입에 거는 말이지만 ‘성품(性品)을 보고 성불(成佛)을 한다’

중생심(衆生心)을 떠나서는 성품을 볼 수가 없는 것이고, 중생심을 떠나서는 성불할 기약이 없는 것입니다.
천하 없이도 희로애락(喜怒哀樂)·탐진치(貪瞋癡)·오욕락(五欲樂) 이것이 모다 전판 다 중생심으로 이루어진 중생심의 표현이지마는 그 중생심 여의고는 견성(見性)할 도리도 없는 것이고, 성불(成佛)할 기약도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잠시도 여일 수가 없는 것이 바로 중생심입니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혀로 맛보고 말하고, 손으로 글씨 쓰고 일하고, 발로 걸어 다니고, 성냈다, 웃었다, 울었다 하는 이것이 전부 중생심의 발로(發露)인데 그 중생심 떠나서 ‘참나’ 찾을 길은 없는 것입니다.

바로 그 중생심 버리지 아니하고, 중생심에서 중생심으로 나를 보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견성입니다.

그 가장 단적이고 가까운 것이 ‘부처 간 곳을 알고자 할진대는 바로 이 말하는 이놈이니라.’
어찌 하필 말하는 놈일 뿐이겠습니까. 귀로 듣는 놈, 눈으로 보는 놈, 손으로 만지는 놈, 발로 차고 걷는 놈, 성내고 웃고 우는 놈, 일체처 일체시가 바로 부처님 계신 곳이요,

바로 그 도리 보는 가장 가까운 방법이 ‘이뭣고?’ ‘이뭣고?’
‘이뭣고?’ 한번 드는 곳에 팔만사천 마구니가 물러가는 것이요, 소멸하는 곳이요, 일체 재앙(災殃)과 액난(厄難)이 소멸되는 때인 것입니다.(15분48초~19분46초)


[참고] **송담스님(No.758)— 2013(계사년) 법보재(04.25)에서.

 

약 6분.


야야포불면(夜夜抱佛眠)이요, 밤이면 밤마다 부처님을 안고 자고
조조환공기(朝朝還共起)다. 아침이면 아침마다 그 부처님과 함께 일어난다
욕식불거처(欲識佛去處)인댄, 부처님 간 곳을 알고자 할진댄
지자어성시(只這語聲是)다. 다못 이 말소리 이놈이다, 이것이다.

우리는 밤마다 부처님을 안고 자는데 자면서도 부처님을 안고 자는 줄을 모르고, 하루 지나간 일을 이 생각 저 생각 걱정하다가 잠든 줄 모르게 잠이 들고 밤에 꿈도 꾸다가,
아침에 일어나면 부처님과 함께 일어난 줄을 인식을 못하고 그냥 자고 일어나는 것 뿐인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우리 안에 반드시 자성불(自性佛)이 계신 것을 확실히 믿어야 하고 인식을 해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자리! 우리의 본성(本性)자리는 얼굴이 잘생겼거나 못 생겼거나, 지식이 있거나 없거나, 늙었거나 젊었거나 일단 사람으로 태어나면 그 몸안에는 자성(自性)을 가지고 태어나는데,
그 자성이라는 것이 그것이 자기의 마음자리고, 그것이 자기를 지켜주고 살아가는 자기의 부처님인 것입니다.

그 부처님을, 잘 때 따악 부처님과 함께 잠에 드는 거고, 아침에 일어날 때는—이 육체는 송장인데 육체가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이 육체 속에 있는 부처님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일어나는데 부처님이 어디 계시냐?
눈으로 볼래야 볼 수도 없고, 손으로 만져 볼래야 만져 볼 수 없습니다.

그 부처님은 지금 내가 말하고 있는 이것이 나의 부처님이고, 이 말을 듣고 있는 그것이 바로 여러분 자신의 부처님인 것입니다.
그러면서 항상 보다가 놓쳐버리고, 듣다가 놓쳐버리고, 골을 내다가 놓쳐버리고, 걸어가다가 잊어버리고.

그런데 행주좌와 어묵동정간에 항상 ‘이뭣고~?’ ‘대관절 이놈이 무엇인가?’
생하는 놈도 이놈이요, 죽은 놈도 이놈이다.

그러니 이놈이라는 게 우리는 눈으로 볼 수도 없고 손으로 잡을 수도 없고 아무리 우리의 마음으로 찾아봤자 그것은 ‘아, 이것이로구나!’ 이렇게 알기는 어려운 것이고,

항상 ‘이뭣고~?’ 자꾸 그렇게 잊어버리면 또 챙기고, 잊어버리면 또 챙기고 하다보면 나중에는 챙기지 안 해도 항상 알 수 없는 ‘이뭣고~?’한 의문이 마음속에 끊어지지 않게 됩니다.

이것은 열심히 한 사람에게는 언제 오더라도 그 경계(境界)가 오는 것이고,
그 경계가 와서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고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어서 일체처 일체시에 의심이 끊어지지 않고, 그 의단이 성성적적(惺惺寂寂)하게 유지가 되어가면 반드시 그 사람은 자기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불법을 믿는 것은 이러기 위해서 불법을 믿는 것이고, 부처님께서 나오셔서 49년 동안 팔만사천 법문을 설하신 것은 오직 이 하나를, 이 한마디를 우리 중생들에게 일러주시기 위해서 탄생을 하신 것입니다.

오늘 법보재를 맞이해서 우리의 법보 영가의 재사를 모시면서 우리는 다같은 한 가족으로서 일생 동안을 이러한 마음으로 같이 살고,

세세생생(世世生生)에 또 이러한 정법 문중에서 다시 만나서 또 이 정법에 의해서 ‘참나’를 깨닫고, 이 깨닫는 법을 일체 중생에게 전달을 하고,
그래서 온 우주법계가 깨달은 부처님으로 가득 찰 때까지 우리는 한 형제요, 가족으로 이렇게 살게 되기를 바라면서 법상에서 내려가고자 합니다.(박수)(24분46초~30분33초)

Posted by 닥공닥정
분류없음...2015. 4. 6. 19:03

 

 

 

§(115) (게송)상월만공산(霜月滿空山)  고안여천비(孤雁唳天飛)  비직향하수(鼻直向下垂)  안횡재상방(眼橫在上方).

 

**송담스님(No.115)—79년 12월 관음재일 법어(79.12.24)(용115)

 

약 3분.

 

상월만공산(霜月滿空山)한대  고안여천비(孤雁唳天飛)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비직향하수(鼻直向下垂)한대  안횡재상방(眼橫在上方)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상월(霜月)이 만공산(滿空山)한대  고안(孤雁)이 여천비(唳天飛)라.

서리 달이 빈산에 가득한데, 서리 친 밤에 밝은 달이 공산(空山)에 가득한데, 외로운 기러기는 하늘에 울며 날으는구나.

 

비직향하수(鼻直向下垂)하고, 사람 얼굴에 있는 코는 세로, 바로 박혀 가지고 아래를 향해서 드리워져 있는데, 안횡재상방(眼橫在上方)이다. 두 눈은 옆으로 가로 위에 붙어 있구나.

 

고인(古人) 언구에 ‘안횡비직(眼橫鼻直)’이라 한 말이 있습니다. ‘눈은 가로 박혔고 코는 길이로 붙어 있다’ 그런 말씀입니다.(처음~3분3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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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霜月滿空山  孤雁唳天飛’ ; 송담 스님 오도송(悟道頌) 1,2구.

송담 스님 오도송.

‘霜月滿空山(상월만공산)  孤雁唳天飛(고안여천비)  何事枉費力(하사왕비력)  蟾津大江流(섬진대강류)’

‘서릿달이 공산(空山)에 가득한데 외로운 기러기는 울며 하늘을 날아 가는구나. 무슨 일로 헛되이 힘을 허비했던고 섬진(蟾津) 대강이 흐르는구나’

 

*(게송) 鼻直向下垂  眼橫在上方’ ; [금강경오가해(金剛經五家解)] 대승정종분(大乘正宗分) 함허득통 설의(說誼) 참고.

*안횡비직(眼橫鼻直) ; ‘눈은 가로 박혔고 코는 길이로 붙어 있다’ ‘모든 사상(事象)이 그대로 진리를 나타내고 있다’는 뜻. 유록화홍(柳綠花紅)이라고 하는 것과 동일.

[참고] [금강경오가해(金剛經五家解)] 화무소화분(化無所化分) 함허득통 설의(說誼) 참고.
十類生與十方佛  一時成道,  十方佛與十類生  同日涅槃,  生佛相  本寂  能所度  亦寂。
能所度  旣寂  我人相  何有。 伊麽則  釋迦眼橫鼻直  人人亦眼橫鼻直,  同居常寂光土  共受無生法樂。

시방세계 온갖 중생이 시방의 부처님들과 더불어 일시에 도를 이루고, 시방의 부처님들이 시방세계 온갖 중생과 같은 날 열반(涅槃)하니 중생과 부처님의 상(相)이 본래 공적(空寂)하고, 능도(能度, 제도하는 이)와 소도(所度, 제도받는 이)도 또한 공적(空寂)이로다.
제도하는 이(能度)와 제도받는 이(所度)가 이미 공적한데 아상(我相)과 인상(人相)이 어찌 있으리오.
이런즉 석가(釋迦)도 안횡비직(眼橫鼻直, 눈은 가로 박혔고 코는 길이로 붙어 있다)이요, 사람사람도 또한 안횡비직이니 상적광토(常寂光土 법신불이 머무르는 정토)에 함께 머물러 무생법락(無生法樂 생멸이 없는 법의 즐거움)을 같이 받도다.

 

Posted by 닥공닥정
분류없음...2015. 3. 13. 15:45
>>> 용화선원 법문 유튜브에서 보고 듣기 --->유튜브로 바로가기



§ 영원히 젊어라!

**송담스님 축사 — 불기 2557년(2013년) '부처님오신날' 기념 경연대회 ‘용화스타 Y’에서.





예, 오늘 경연(競演)하는 청년회 학생이나, 이 자리에 모이신 사부대중(四部大衆) 여러분.

영원히 젊어라 !


Posted by 닥공닥정
분류없음...2015. 1. 13. 13:11

 

 

 

§(112) (게송)불출문정이삼보(不出門庭二三步)  간진강산천만중(看盡江山千萬重) / (게송)일편백운강상래(一片白雲江上來)  기조녹수암전거(幾條綠水岩前去).

 

**송담스님(No.112)—79년 11월 관음재일 법어(79.11.24) (용112)


약 4분.


불출문정이삼보(不出門庭二三步)하고  간진강산천만중(看盡江山千萬重)이로다
나무~아미타불~

불출문정이삼보(不出門庭二三步)하고, 문밖에 두서너 걸음도 나가지 아니하고, 문밖에 한 걸음도 나아가지 아니하고,
간진강산천만중(看盡江山千萬重)이다. 강산(江山) 천만 중(重)을 다 구경해 마친다.

강산 구경을 할라면 문밖에 나가서 산을 넘고, 물을 건너고 해서 수백 리 수천 리를 돌아댕겨야 구경을 할 텐데 어떻게 해서 문밖에 한두 걸음도 나가지 아니하고 천하 강산(天下江山)을 다 구경을 할 수가 있느냐?

한 걸음도 나가지 아니하고 천하 강산 구경하는 방법이 무엇이냐?

터억 앉아서, 허리를 쭉 펴고 가부좌(跏趺坐)를 하고 앉아서 ‘이뭣고?’
이것이 바로 한 걸음도 문밖에 나가지 아니하고 천하 강산을 구경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길입니다.

한 걸음도 나가지 아니하고 천하 강산을 구경하는 이러한 방법이 있다면 그건 아마 대단히 누구라도 한번 해 봄직한 일이겠습니다.

앉아서 구경하면은 경치가 어떻더냐?

일편백운강상래(一片白雲江上來)헌데  기조녹수암전거(幾條綠水岩前去)로구나
나무~아미타불~

한 조각 흰구름은 저 강 위로 떠오는데, 몇 가닥 푸른 물결은 바우 앞으로 지내가는고.(45분38초~48분58초)(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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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不出門庭二三步  看盡江山千萬重’ ; [고문진보(古文眞寶)] 오융(吳融)의 ‘화산수가(畵山水歌)’ 참고.
*강산(江山) ; ①강과 산이라는 뜻으로, 자연의 경치를 이르는 말. ②나라의 영토를 이르는 말.
*천하 강산(天下江山) ; 하늘 아래 온 세상의 경치.
*가부좌(跏趺坐 책상다리할 가,책상다리할 부,앉을 좌) ; 좌선할 때 앉는 방법의 하나.
*이뭣고(是甚麼) ; 「이뭣고」 화두는 천 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를 찾는 것이다.
*바우 ; ‘바위’의 사투리.
*지내가다 ; '지나가다'의 사투리.

Posted by 닥공닥정
분류없음...2014. 11. 15. 14:48

§ 암이 말기에 든 한 수좌스님의 간절한 참회와 병중 공부 질문.

**송담스님 말씀—2014년 5월 13일 화요일 (갑오년 하안거 결제일에)


약 7분.


질문


스님, 저기... 이 어리석은 제자한테 법명 주셔서 감사합니다 먼저.
감사드리구요, 스님. 그리고 오늘 친견을 청한 이유는요. 스님, 두 가지인데요.

첫째는 제가 다겁생래로 지어온 업장(業障)을 참회(懺悔)드리구요, 또 출가해서도 공부한다고 선방에 있으면서도 알게 모르게 지은 업장과 열 가지 죄를 큰스님 전에 참회 드리고 싶어서였구요.

두번째는 스님, 종전에도 말씀드렸지만은 그 삼독심이 너무 심해서 그런지 병중(病中)에-지금 제가 병중인데, 병중에 공부 지어 나가기가 쉽지 않습니다, 스님.
그거에 대해서 한 말씀 내려주실 것을 청할려고 이렇게 친견을 청했습니다.

 



송담스님 말씀


생로병사(生老病死)는 모든 사람이, 동서고금의 모든 사람이 태어날 때 생로병사 과정을 겪어서 일생을 사는데 사람에 따라서 연조(年祚)가 좀 길기도 하고 짧기도 하고 그럴 뿐이지, 아무도 생로병사는 못 면하고.

그러나 그 생로병사의 과정을 겪으면서 일반 사람들은 다 오욕락 속에 빠져서 그것을 쟁취하기 위해서 몸부림치다가 마음대로 이루는 사람도 있고 이루지 못하는 사람도 있고, 이루는 듯 하다가 안되는 사람도 있고 그렇게 일생을 마쳐 가는데,

그 많은 사람 가운데에 출가해서 머리를 깎고 수행의 길로 접어드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는데, 그렇게만 된 것만으로도 참 다행한 일이고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행복하게 생각하고 금생에 성의를 다해서 수행을 하고.

그렇다고 해서 안 죽는 것은 아니여.
죽기는 죽으나, 다른 사람이 죽는 것은 몸부림치다 죽는데, 수행을 하는 사람은 죽는 것 그 자체도 하나의 수행의 한 과정인 거여.

지금 의사는 뭐라고 진단을 나름대로 하겠으나 전적으로 거기에 매달릴 필요는 없어.

숨쉬는 동안, 육체가 있는 동안에는 먹어야 하고, 먹으면서 항상 자기 본참공안(本參公案)을 가지고 수행을 하고,
앞으로 1년을 살거나 2년을 살거나 앞으로 5년을 살거나 그것은 사는 날까지 사는 거여, 누구던지.
그것이 맘대로 안되는 거여.

그래서 그런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면 건강이 의사 말하는대로 꼭 되는 것은 아니고, 자기가 어떻게 지혜롭게 관리하느냐에 따라서 의사가 말한 것보다도 더 오래 살 수도 있는거고.

죽음은 기다리지 않아도 언젠가는 오는데 두려워할 것이 없어.
우리가 정법을 믿고 정진하는 사람은 죽음을 그렇게 무서워 할 필요가 없어.

열심히 먹고, 열심히 자고, 열심히 정진을 하다 보면은 언젠가는 (죽음이) 올 때가 되면 가는 거고.

가도 어디로 가느냐는 우리는 알 수가 없어. 천당에 갈런지, 다시 인도환생(人道還生)을 할런지.
되어지는대로 사는 거지, 맘대로 천당에 가고 싶다고 천당에 가고 맘대로 안되지마는 정진을 하는 사람은 되야지는대로 사는 거여.

건강을 위해서 지혜롭게 관리는 할지언정 너무 집착하지마.

(네, 스님. 감사합니다. 명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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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하신 수좌스님께서는 2014년 8월 1일 입적하셨습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분류없음...2014. 10. 24. 11:19

§(219) (게송) 약인정좌일수유  승조항사칠보탑  보탑필경쇄위진  일념정진성정각.

 

**송담스님(No.219)—83년 11월 첫째일요법회(83.11.06)에서. (용219)


약 4분.


약인정좌일수유(若人靜坐一須臾)하면  승조항사칠보탑(勝造恒沙七寶塔)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보탑필경쇄위진(寶塔畢竟碎爲塵)이어니와  일념정진성정각(一念精進成正覺)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만약 사람이 잠깐 동안 떠억 정좌(靜坐)를 하고 ‘이뭣고?’를 하면, 참선(參禪)을 하면, 그 공덕이 얼마만큼 훌륭하냐하면,
칠보(七寶)—금•은•유리•호박•자거•마노, 이러헌 칠보로써 탑을 항하사(恒河沙) 인도의 갠지스 강가에 있는 그 모래수 알과 같은 그만큼 많은 칠보 탑을 조성해 모신 공덕보다도 더 수승을 하다.

왜 그러냐하면 아무리 훌륭한 칠보 탑이라 하더라도 언젠가는 천재지변이나 또는 전쟁으로 인해서 그것이 파괴되어 버릴 때가 있어.

그러나 잠깐 동안 정진한 그 공덕으로는, 그 인연공덕으로는 언젠가는 견성성불(見性成佛)할 때가 있기 때문이다 이것입니다.

잠깐 동안 ‘이뭣고?’한 공덕으로도 언젠가는 성불(成佛)을 하거든, 하물며 밤잠을 안 자고 목숨을 바쳐서 참선을 한다면 금생에 결정코 도업(道業)을 성취할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것입니다.(50분35초~53분58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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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약인정좌일수유~’ ; 보조 지눌(普照知訥) 스님의 [진심직설(眞心直說] 진심공덕(眞心功德) 장(章)에서 ‘古頌’으로 인용한 게송 참고.
--『참마음 이야기(진심직설 강의)』 (강건기 강의 | 불일출판사) p228 참고.
*이뭣고(是甚麼 시심마,시삼마) : ‘이뭣고? 화두’는 천 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왔다.
[참고] 이뭣고? 이것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렇게 의심을 해 나가되, 이런 것인가 저런 것인가 하고 이론적으로 더듬어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다못 “이···뭣고······?” 이렇게만 공부를 지어나가야 됩니다. 여기에 자기의 지식을 동원해서도 안되고, 경전에 있는 말씀을 끌어 들여서 “아하! 이런 것이로구나!” 이렇게 생각해 들어가서도 안됩니다.
화두(공안)은 이 우주세계에 가득 차 있는 것이지마는 문헌에 오른, 과거에 고인(古人)들이 사용한 화두가 1700인데, 이 ‘이뭣고?’ 화두 하나만을 열심히 해 나가면 이 한 문제 해결함으로 해서 1700공안이 일시(一時)에 타파가 되는 것입니다.
화두가 많다고 해서 이 화두 조금 해 보고, 안되면 또 저 화두 좀 해 보고, 이래서는 못 쓰는 것입니다. 화두 자체에 가서 좋고 나쁜 것이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한 화두 철저히 해 나가면 일체 공안을 일시에 타파하는 것입니다.(76분34초~78분22초) [ ‘참선법 A’ 에서]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항하사(恒河沙) ; 인도 ‘갠지스 강(Ganges江)의 모래’라는 뜻으로, 무수히 많은 수량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정진(精進) ; ①정성을 다하여 노력해 나아감. ②잡념을 버리고 불법(佛法)을 깨우치기 위해 수행에 힘씀.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아 부처가 됨[成佛].
*도업(道業) ; 도(道)는 깨달음. 업(業)은 영위(營爲-일을 계획하여 꾸려 나감). 불도(佛道)의 수행. 진리의 실천.

Posted by 닥공닥정
분류없음...2014. 9. 14. 09:15

 

 

§(172) (게송)천강동일월~ / 타 종교인을 위한 법문 / 어느 종교든 옳게 믿어야 / 종교 화합 / (게송)안비천말적유사~.

믿어지기만 헌다면, 천주교나 예수교의 교리가 스스로 믿어지기만 헌다면, 불교를 안 믿을 바에는 그 종교를 열심히 믿어야 헌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그 대신 ‘바로 믿어야겠드라.’


불교는 불교를 잘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이 비방한 것처럼 그러헌 미신(迷信)이 아니고 우상숭배(偶像崇拜)가 아닙니다. 불교는 ‘참나’를 깨닫는, 참사람 되는 길인 것입니다.


우리는 어느 종교를 믿든 참되게 믿고 참되게 실천해서 스스로 자기 종교끼리 화합을 해야 하고, 다른 종교와 공통점을 찾어서 서로 헐고 뜯고 비방하는 일이 없어야 할 뿐만 아니라 종교와 종교 사이에 손을 잡고 서로 도우면서 인류 평화에 이바지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송담스님(No.172) - 한병호 영가 49재 천도법어(타 종교인을 위한 법어) (82.06.15) 43분.(용172)

 

(1) 약 22분.

 

(2) 약 22분.


(1)------------------

천강동일월(千江同一月)요  만호진봉춘(萬戶盡逢春)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종일주홍진(終日走紅塵)타가  실각자가진(失却自家)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천강동일월(千江同一月)이요, 만호진봉춘(萬戶盡逢春)이라.
일천(一千) 강에, 모든 강물에는 한 달이 비추고 있드라.  하늘에 달 하나가 떠 있는데, 땅에 있는 모든 강물에는 함께 그 하늘에 떠 있는 하나의 달이 강물마다 다 비추고 있드라.

만호진봉춘(萬戶盡逢春)이다. 입춘(入春)이 지나고 우수(雨水)가 지내면 집집마다 온 천하가 모두가 함께 봄을 맞이허게 되드라 그말이여.

하늘에 떠 있는 달이 어느 강물에는 비추고, 어느 강물에는 안 비추고 헌게 아니라, 강에 물만 있으면 모든 강물마다 달이 비추고,
봄이 돌아오면 어느 집에는 봄이 오고, 어느 집에는 봄이 아니오고 헌 것이 아니라,
봄이 왔다하면 가난한 집에도 봄이 오고, 잘사는 집에도 봄이 오고, 집집마다 봄바람은 불어오고 봄소식은 전해오고 그렇더라 그말이여.

종일주홍진(終日走紅塵)타가  실각자가진(失却自家)이다.

종일토록 홍진을 달리다가, 붉을 홍(紅)자 • 티끌 진(塵)자—홍진(紅塵)이라 하는 것은
사바세계(娑婆世界)에 탐진치 삼독(三毒)과 오욕락(五欲樂)으로 ‘참나’를 망각해 가지고 밖으로 밖으로 내달아 허매이는 것이 그것이 바로 홍진 속에 달음박질허는 것이여.

명예를 위해서, 권리를 위해서, 재산을 위해서 불같은 욕심을 가지고 저만 잘 살라고 삼독심을 치성히 허면서 몸부림치는 것이 바로 이 홍진 속에 달음박질허는 것이여.

밖에 있는 오욕락을 불같은 욕심으로 추구하다가 자기집 보배를 잃어버리드라 그말이여.

세계에 유교·불교·천주교·기독교·마호멭교 그 밖에도 수없는 종교가 있고 유사 종교(類似宗敎)가 있고 그러는데, 그 종교가 사교(邪敎)가 아니라면 반드시 그 중요한 점에 있어서 공통점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그 공통점이라 하는 것은 궁극의 공통점은 ‘나를 버려라.’

불교는 ‘탐진치 삼독심·오욕락을 추구하는 그러헌 마음을 버려라.’
그러헌 마음을 버림으로써 마음이 청정해지고 공해지면 그 관문(關門)을 지나서 ‘참나’를 깨닫게 된다.

천주교나 예수교나 ‘나는 무능한 존재요, 나는 하느님의 피조물이요, 나는 죄 많은 존재요’
그러기 때문에 내 것이라고 허는, 나라고 허는 것은 하나도 믿을 것이 못되니, 몸과 목숨과 너희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 다 바쳐버리고 오직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만 살아라.
마치 갓난애기와 같은 그러헌 마음으로 돌아가서 온전히 하나님의 품에 안기고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만 살아라. 그때 너는 하나님으로부터 구제를 받을 것이다.

불교는 자력 수행교(自力修行敎)라면 예수교나 천주교는 절대 유일신을 신하는 타력 신앙교(他力信仰敎)라 이렇게 종교학적으로 분리할 수가 있는데, 자력(自力)과 타력(他力)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나를 버려라’ ‘나라고 하는 존재를 버려라’허는 점에서는 공통점을 찾을 수가 있습니다.

믿어지기만 헌다면, 천주교나 예수교의 교리가 스스로 믿어지기만 헌다면, 불교를 안 믿을 바에는 그 종교를 열심히 믿어야 헌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그 대신 ‘바로 믿어야겠드라.’

불교도 잘못 믿으면 무당인지, 불교인지, 미신인지, ‘참나’를 깨닫는 정법(正法)인지 분간을 허지 못합니다.
덮어놓고 절에만 다닌다고 해서 그 사람이 참다운 불교를 믿는 사람이라 헐 수가 없듯이,
기독교나 천주교를 믿고 교회를 부지런히 다니고 교회에다가 그 돈을 많이 바치고 헌다고 해서 다 참다운 기독교인이라 할 수가 없습니다.

불교도 믿을라면 정법을 바로 믿고 바로 실천을 해야 하고, 천주교나 기독교를 믿드라도 참으로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알고 바로 믿고 바로 실천해야지,
천주교나 기독교를 잘못 믿으면 정말 부지런히 교회는 다니면서 큰 죄를 짓고 하나님의 참다운 아들이 되지를 못하고 그 벌로 무간지옥(無間地獄)에 들어가기 십상팔구(十常八九)인 것이여.

불교도 덮어놓고 절에만 다니고 절만 많이 한다고 해서 참다운 불자(佛子)가 아니여.
불교를 잘못 믿으면 정말 사도(邪道)에 떨어져서 큰 죄를 지어서 지옥에 가기 십상팔구인 것이여.

어느 종교가 좋다, 어느 종교가 나쁘다, 이 자리에서 말헐 필요가 없습니다마는 기왕 믿을라면은 옳게 믿어야 겠드라.
기독교나 천주교 믿는답시고 다른 종교를 공연히 헐뜯고 비방을 헌다든지—자기의 종교를 철저하게 옳게 믿는 것이 급하지, 남의 종교를 비방하고 헐뜯는 일이 급한 것이 아닌 것입니다.

하늘에 뜬 달은 김씨네 집에도 비추어 주고, 이씨네 집에도 비추어 주고, 부자 집에도 비추어 주고, 가난한 집에도 비추어 주고, 착한 사람 집에도 비추어 주고, 도둑질하는 사람의 집에도 달은 한결같이 비추어 주고 있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착하고 훌륭한 사람만을 사랑하신 것이 아니라 제도하신 것이 아니라, 죄 많은 중생일수록 부처님은 더 불쌍히 여기시고 먼저 손을 쓴다면 죄 많고 불쌍한 사람 먼저 손을 뻗쳐주실 것입니다.

역시 하나님도 마찬가지라고 생각이 됩니다. 99마리의 양을 버리고 한 마리의 길 잃은 양을 찾어 나선다고 하는 구절이 성경에 있습니다. 죄 많은 중생일수록에 더 자비가 필요한 것이고 구제가 필요한 것입니다.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을 사탄(Satan)이라 비방(誹謗)하고, 다른 종교를 핍박(逼迫)하고, 다른 종교에 신앙을 짓밟고, 심지어는 법당을 파괴하고, 법당 안에 모셔진 불상을 파괴하고, 다른 종교 믿는 사람을 사탄이라 규정해 가지고 비방을 하고,
이래 가지고서는 어찌 하나님의 뜻을 바로 믿고 바로 실천하는 사람이라 할 수가 있겠느냐.

불교는 불교를 잘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이 비방한 것처럼 그러헌 미신(迷信)이 아니고 우상숭배(偶像崇拜)가 아닙니다.
불교는 ‘참나’를 깨닫는, 참사람 되는 길인 것입니다.

부처님은 나무나 돌이나 쇠로 조각한 등신불(等身佛)이—우리가 추구하는 부처님께서 설하신 참부처가 아니라, 등신불은 인류에 스승이신 진리를 체달하신 부처님의 모습입니다.
그 부처님의 모습, 부처님의 사진을 통해서 참부처님을 우리는 존경하게 되고, 참부처님을 우리의 마음속에 새기게 되고, 참부처님을 우리의 마음 속에서 깨닫게 허기 위한 방편(方便)인 것입니다.

돌아가신 스승이나 돌아가신 부모를 추모하는 뜻으로 그 사진을 모시듯이, 삼천 년 전에 열반하신 부처님의 모습을 조각해서 모시고 그 모습을 그림으로 그려서 모시고,
그 앞에 설 때마다 경건한 마음, 정성스런 마음으로 추모를 할 때에 우리는 그날 하루를 그럭저럭 지낼 수가 없고, 알뜰하게 도를 닦아 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헌 종교상의 의식을 가지고 그 의식의 참뜻을 이해를 못하고, ‘미신이다, 우상숭배다’ 비방을 하는 것은 너무 너무 어리석고 경솔한 태도라 아니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아인슈타인은 세계적인 철학자요, 과학자요, 종교인이지만 그분은 일찍이 불교를 평하기를 우주 종교(cosmic religion)라 했습니다.

지구상에 어떠헌 일부 민족만이 신앙할 수 있는 또는 지구상에 인류만이 믿을 수 있는 그러헌 범위가 좁은 종교가 아니라,
한량없는—우리가 살고 있는 이 태양계와 같은 세계가 백억 세계도 넘고 무량·무수의 세계가 있지만,
그 우주에 가득 차 있는 모든 종류의 영혼들이 모두가 함께 믿을 수 있는 그러헌 한량없이 깊고, 한량없이 넓고, 한량없이 큰 그러헌 종교다. 이러헌 뜻에서 불교를 가리켜서 우주 종교라 했습니다.

조그마한 볍새는 이 나무가지에서 저 나무가지로 파르르 날아가고, 산중에 조그만한 개천 이쪽 언덕에서 저쪽 언덕으로 파르르 날아갔다, 저쪽에서 이쪽 언덕으로 파르르 날아오고,
그래서 그 산에 사는 볍새들의 생각에는 ‘물이라 하는 것은 조그마한 계곡이다, 이 계곡보다 더 큰 물은 없다’ 이리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황새는 큰 강물에서 이쪽 강 언덕에서 저쪽 강으로 날아갔다가, 저쪽 강에서 이쪽 강으로 날아왔다 해서 큰 강물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황새가 볍새 보고 ‘너 이까짓 산중에 조그마한 계곡이 물이냐, 진짜 압록강과 같은 강도 있고 중국에 가면 양자강과 같은 황하와 같은 그런 큰 강이 있다’하면, 볍새는 믿지를 안헙니다.
그런 큰 강물은 한번도 본 일이 없거든.

참으로 제비나 오리 같은 그러헌 새는 수십만 리 바다를 건너가고 바다를 건너왔습니다.
그래서 이까짓 양자강이나 압록강 이런 것은 문제가 되지 아니하고 진짜 태평양과 같은 그런 큰 바다가 있다고 말을 허면 볍새는 미친 소리헌다고 펄쩍 뛰고 곧이를 듣지 않을 뿐만 아니라, 황새도 그런 바다는 가보지 아니했기 때문에 황새마저도 그걸 믿지를 않습니다.

불교는 바다와 같은 종교요, 허공과 같은 종교라서 어찌 황새나 볍새 따위에게 설명을 해봤자 미친 소리 헌다고 믿지를 않을 것은 뻔헌 것입니다.

불교는 불교를 30년 40년 내지 평생을 믿고 불공을 드리고 염불을 하고 경을 읽어도 불교의 참뜻은 짐작조차도 할 수가 없어.

확철대오(廓徹大悟)해서 견성성불(見性成佛)허지 않고서는 참으로 불교의 위대하고 심오한 것을 짐작조차도 할 수가 없거든,
하물며 믿지도 아니하고 듣지도 아니한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이 어찌 감히 불교의 위대함을 알 수가 있겠습니까.(처음~21분35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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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지 못하면 입을 다물고 자기의 종교만이라도 착실히 믿으면 죄는 안 지을텐데, 믿지도 아니하고 알지도 못하면서 다른 종교를 함부로 헐뜯고 비방하고 파괴하고 핍박헌다고 허는 것은 진리의 세계에서는 말헐 것도 없고 평범한 인간의 상식으로서도 용납될 수 없는 일이라 할 것입니다.

오늘 사십구재(四十九齋)를 맞이한 한병호 영가(靈駕)께서는 일생 동안을 참다웁게 사시고, 나라를 위해서 성실하게 일하고 민족을 위해서 모든 사람을 위해서 착한 마음으로 남을 많이 도우면서 한평생을 76년간 성실허게 사신 분입니다. 그분은 복과 덕을 갖추어서 육남삼녀 9남매(男妹)라고 하는 많은 자녀를 두셨습니다.
전생으로부터 복을 닦고 금생에도 착한 마음으로 참되게 살았기 때문에 그렇게 좋은 아들과 좋은 딸과 좋은 손자들을 많이 두셨습니다. 그 아들들이 모두 착하고 부지런해서 사회에 모다 중견 인물이 되었습니다.

오늘 그 49재를 맞이해서 효심을 가진 아들과 며느님들이 이렇게 용화사 법보전에서 명복을 빌 뜻으로 천도재(薦度齋)를 봉행하게 되었습니다.
한병호 영가는 대단히 흐뭇하게 생각하고 평소에 당신이 불교를 철저히 믿은 불자라,
그 아들과 며느리들이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부처님 앞에서 사십구재 법요식을 거행해 받들어 모신데에 대해서 너무너무 흐뭇하고 기쁜 마음으로 환생을 허시리라 생각헙니다.

산승(山僧)이 그 유족들에게 부탁하고자 하는 것은 자녀를 많이 두다 보시니까 일부는 그 아버님의 뜻을 받들어서 불교를 성실히 믿는 분도 있고 민주주의 시대가 되어서 종교는 자유라, 각자 자기의 자유의사에 따라서 다른 종교를 믿는 자손도 있는 거 같습니다.
다른 종교를 믿는 것을 나쁘다고는 생각허지 않지마는 기왕이면 그 아버님께서 믿으시던 그 종교를 그 아들과 며느님들도 모두가 한마음 한뜻이 되어서 불교를 성실히 믿어 주셨드라면 훨씬 더 좋았을 것을 그렇게 안타깝게 생각을 합니다.

이 세계가 역사가 있어온 이래로 민족 간에 부족 간에 끊임없는 싸움이 있어 왔습니다.
처음에는 땅을 차지하기 위해서 싸웠고, 근자에 와서는 사상—자유 민주주의다, 공산 사회주의다 해 가지고 사상적으로 싸움을 허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종교의 전쟁이 일어나 가지고 많은 사람이 죽게 되고 많은 시설들이 파괴되리라 합니다. 이미 종교 분쟁이 세계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고 우리나라에도 그러헌 징조가 보이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물질을 추구하고 욕심을 내는 싸움을 허지 말으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누구냐 하면 모든 종교를 창도(唱導)한 성현들이요, 종교 지도자들이요, 모든 종교의 바로 교주(敎主)이신 것입니다.
그러헌 성인의 가르침을 받들어서 마음과 행을 닦고 실천을 해서 인류의 행복을 도모하는 사람들이 누구냐 하면 세계 모든 종교인들인 것입니다.

종교인의 본분은 스스로 자기의 종교를 창도한 교주의 말씀을 의지해서 법을 의지해서 스스로 교주 마음과 자기의 마음이 하나가 되고, 나아가서는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와 같이 되고 교주와 같이 되도록 허는 데에 목적이 있습니다.
그러헌 목적과 사명을 가진 종교인이 스스로 자기 종교인끼리 싸우고 있고, 나아가서는 다른 종교인을 핍박하고 싸움을 일으키고 있다고 허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우리는 어느 종교를 믿든 참되게 믿고 참되게 실천해서 스스로 자기 종교끼리 화합을 해야 하고,
다른 종교와 공통점을 찾어서 서로 헐고 뜯고 비방하는 일이 없어야 할 뿐만 아니라 종교와 종교 사이에 손을 잡고 서로 도우면서 인류 평화에 이바지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오늘 사십구재를 맞이한 한병호 영가의 유족들께서도 기왕이면 아버님께서 믿으시던 그 종교로 통일을 해서 한 종교를 믿으신 것이 바람직하고, 부득이해서 그러지 못한다면 각자 자기의 종교를 참되게 믿고 ,
다른 종교를 믿는 형제자매를 비방하고 헐뜯고 욕허지 말고 자기의 종교를 소중히 여기듯이 다른 이가 믿는 종교도 소중히 여길 줄 알아야 그 집안이 앞으로 정말 복 받은 집안이 될 것이라 생각을 합니다.

한 집안에서 종교가 각각 달라서 상대방의 종교를 헐고 뜯고 화목을 허지 못한다면 그 집안은 머지않은 장래에 파멸을 초래할 것입니다.
한 집안이 파멸이 되고 한 나라가 파멸이 되어서 어찌 세계의 평화를 바랠 수가 있겠습니까.
세계 평화를 바래기 전에 한 나라가 화합을 해야 하고, 한 나라의 평화를 바랜다면은 한 가정이 평화를 가져와야 할 것입니다.

불교는 삼천 년의 역사를 가졌고 우리나라에 들어온지 1600년의 역사를 가져왔습니다.
신라·고려 때 불교가 국교로써 숭앙받을 때 그 나라들은 번창을 했고, 이웃나라에서 감히 침범을 해오지 못했습니다. 침범을 해 왔어도 그것을 불교를 믿는 신앙심으로 다 물리쳤습니다. 그래서 나라를 빼앗기지 아니했습니다.

이조(李朝)에 와서 불교를 배반하고 불교를 핍박하고 자기네끼리는 당파싸움을 하고 그러든 끝에 임진왜란의 치욕을 당해서,
그때도 서산대사와 사명대사, 뇌묵대사와 같은 그러헌 대도인(大道人)들이 나서서 승병을 일으키지 안 했다면 우리는 그때 일본 나라에 예속되었을런지도 모르는 것입니다.
다행히 그러헌 위대한 도인들이 나와서 왜놈을 쫓아내고 사명대사는 일본에 들어가서 일본을 항복을 받고 끌려갔던 많은 포로들을 다 우리나라로 데려왔습니다.
지금도 일본에 가면 사명대사를 모신 절들이 많고 사명대사를 부처님과 똑같이 숭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조에 와서 불교를 핍박하고 끝끝내 나라를 왜놈에게 뺏기고 말았습니다.

지금 우리나라 백성이 정신차리지 못하고 불교를 믿지 아니하고 비방하며 진리를 배반하고 ‘참나’를 닦는 수행을 게을리 해 가지고,
나라 사람들이 화목을 못하고 나라안에 종교로 인해서 싸움이 벌어진다면 우리나라는 파멸하게 될 것입니다. 세계도 파멸이 되고 말 것입니다.
지금 무기가 발달되어 가지고 광선을 한번 번쩍 허기만 허면 몇천만 명도 삽시간에 몸뚱이 그대로 가지고 있는 채 재가 되어버리거든.

그러헌 싸움이 어디에서 일어나냐 하면 서로 사랑하는 마음이 없이 남을 미워하고 헐고 뜯고 마음과 마음이 분열될 때에 싸움은 일어나게 되고 싸움이 일어나면 너도나도 파멸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이 자리에 모이신 분들은 이와 같은 산승의 말씀을 마음속 깊이 새겨들으시고,
불교를 믿는 분은 철저하게 참되게 닦아서 기어코 진리를 깨달라서 실천을 해서 나와 남이 없는 경지에 들어가고, 나아가서 모든 사람이 진리를 중심으로 해서 하나가 되도록 하실 것이며,

불교를 믿지 않고 다른 종교를 믿는 분—될 수 있으면 우리 조상 때부터서 믿어온 우리 동양의 종교, 우리의 풍속과 우리의 몸과 우리의 핏속에 녹아있는 불교를 믿어 주시기를 부탁을 하고,
정 그렇지 못한다 하드라도 최소한 불교를 잘 이해하지 못하면서 불교를 비방하고 불교를 믿는 사람을 핍박하는 일이 없이, 자기의 종교를 성실히 믿으며 자기 종교를 사랑하듯 남의 종교도 애껴 주시고 큰 죄를 짓지 않게 되시기를 부탁을 드립니다.

이렇게 허신 것이 돌아가신 한병호 영가의 마음을 편안케 해드리고 유족으로서의 효도를 다하는 가장 좋은 길이라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안비천말적유사(雁飛天末迹留沙)하고  인거황천명재가(人去黃名在家)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안비천말적유사(雁飛天末迹留沙)하고, 기러기는 저 하늘갓으로 날아가 버렸는데 기러기가 놀다 간 모래밭에는 기러기 발자죽이 남아 있고,

인거황천명재가(人去黃名在家)라. 사람은 벌써 저 황천(黃)으로 갔는데, 황천으로 가버린 사람의 이름만 집에 남아 있드라.


오늘 돌아가신 한병호 영가만 이렇게 가신 것이 아니라 과거에 우리의 모든 조상들도 이렇게 갔으며,
현재 지금 이 세계에 살고 있는 우리 모두들도 40억 인구 모두들도 한평생 꿈결같이 살다가 결국은 이렇게 가고야만 말 것입니다.

죄 지은 사람은 지옥에 갈 것이고 착한 일 많이 한 사람은 천당에 갈 것이고, 천당에 갔다고 해서 영원히 천당에 사는 게 아니라 자기가 지은 복만큼 복을 받으면 다시 또 떨어지게 되고,
지옥에 가서도 수백만 겁 동안을 갖은 고초를 받다가 자기가 지은 만큼 다 받으면 다시 축생으로도 태어나고 다시 또 사람으로 태어날 수도 있습니다. 그 기약이 한량이 없지만.

그래서 육도(六途)를 윤회(輪廻)를 해 왔고 앞으로도 육도를 윤회해 갈 것입니다.

그 육도윤회를 무엇 때문에 허느냐?
자기가 지은 업(業) 때문에 윤회를 허기 때문에 그 업을—과거에 지은 업을 소멸을 하고, 앞으로는 그런 업을 짓지 아니헌다면 육도윤회는 허지 않게 된다.

어떻게 허면 업을 짓지 않느냐?
‘참나’를 깨닫는 공부를 열심히 하면 자연히 업을 짓지 않게 될 것이다.

‘참나’를 깨닫는 법이 무엇이냐 하면,
참선법(參禪法)—불교에 여러가지 수행법이 있지만 그 여러가지 수행법 가운데 참선법이라 하는 최고의 수행 방법이 있는데,
그 수행 방법인 참선을 허면 과거의 업을 소멸하고 새로 업을 짓지 않게 되기 때문에 결국은 ‘참나’를 깨달라서 영원한 행복을 얻을 수가 있다. 견성성불(見性成佛)을 헐 수가 있다.

한병호 영가는 평생에 불법을 독실히 믿고 또 자손들의 정성으로 우리 용화사 법보전에 만년위패(萬年位牌), 이 법보단에 모시게 되었습니다.
살아있는 사람이 법문을 들을 수 있듯이 돌아가신 영가도 소소영령(昭昭靈靈)해서 법문을 더 잘 들으실 수가 있습니다.

오늘 조실스님 법문을 듣고 또 산승에 이와 같이 간곡히 말씀드린 말씀을 잘 들으셨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법문을 설헐 때마다 영가도 이 법문을 들으시고, 확철대오해서 진리와 하나가 되실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사십구재를 맞이해서 유족을 위해서 영가의 원하는 바를 산승이 대신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영가의 말씀—영가가 여러 유족들에게 산승이 지금 허고자 헌 말을 그렇게 해 주고 싶을 것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깊이 명심을 하시고 영가의 못다 푼 한을 풀어드리기 위해서 산승의 말씀을 실천해 주실 것을 간곡히 부탁을 드리고 사십구재 법어를 마치고자 합니다.(처음~42분57초)(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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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千江同一月  萬戶盡逢春’ ; [오등회원(五燈會元)] 제13권 '용광인(龍光諲)선사' 참고.
*(게송) ‘終日走紅塵  失却自家 ; [인천안목(人天眼目)] 제1권 '빈주문답(賓主問答)'에서 분양선소(汾陽善昭) 말씀 참고.

*사바세계(娑婆世界) ;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이 세계. 현실의 세계.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교화하는 세계. 인토(忍土)•감인토(堪忍土)•인계(忍界)라고 한역.
*삼독(三毒) ; 사람의 착한 마음(善根)을 해치는 세 가지 번뇌. 욕심, 성냄, 어리석음(貪,瞋,癡) 따위를 독(毒)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오욕락(五欲,五慾,五欲樂) ; ①중생의 참된 마음을 더럽히는-색,소리,향기,맛,감촉(色聲香味觸)에 대한-감관적 욕망. 또는 그것을 향락(享樂)하는 것. 총괄하여 세속적인 인간의 욕망. ②불도를 닦는 데 장애가 되는 다섯 가지 욕심. 재물(財物), 색사(色事), 음식(飮食), 명예(名譽), 수면(睡眠)을 이른다.
*유사종교(類似宗敎) ; 종교와 비슷하나 사회 일반의 상식으로는 종교로서 인정하기 어려운 것.
*관문(關門) ; 다른 영역으로 나아가기 위하여 꼭 거쳐야 할 단계. 또는 중요한 고비.
*자력(自力) ; ‘내가 본래 부처다’는 믿음을 갖고, 스스로의 힘으로 수행(修行)하여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일.
*타력(他力) ; 자신의 힘이 아닌 불·보살(佛菩薩)의 본원력(本願力)과 가피력(加被力)에 의지하여 극락왕생을 원하거나 깨달음을 구함.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무간지옥(無間地獄) ; 아비지옥(阿鼻地獄)이라고도 함. 고통이 끊임없으므로 무간(無間)이라 함.
아버지를 죽인 자, 어머니를 죽인 자, 아라한을 죽인 자, 승가의 화합을 깨뜨린 자, 부처의 몸에 피를 나게 한 자 등, 지극히 무거운 죄를 지은 자가 죽어서 가게 된다는 지옥. 살가죽을 벗겨 불 속에 집어넣거나 쇠매〔鐵鷹〕가 눈을 파먹는 따위의 고통을 끊임없이 받는다고 함.
*십상팔구(十常八九) ; 열에 여덟이나 아홉 정도로 거의 예외가 없음.
*사탄(Satan) ; <기독교>  적대자라는 뜻으로, 하나님과 대립하여 존재하는 악(惡)을 인격화하여 이르는 말.
*등신불(等身佛) ; 사람의 키만 한 정도로 만든 불상.
*방편(方便 방법·수단 방,편할 편) ; ①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일시적인 수단으로 설한 가르침.중생 구제를 위해 그 소질에 따라 임시로 행하는 편의적인 수단과 방법. 상황에 따른 일시적인 수단과 방법.
②교묘한 수단과 방법.
*볍새 ; ‘뱁새’의 옛말.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아 부처가 됨[成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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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십구재(49재, 四十九齋) ; 사십구일재(49일재, 四十九日齋) 또는 칠칠재(7 · 7재, 七七齋).
죽은 사람의 명복을 빌면서 또 영가에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들려주어(천수경, 무상계, 반야심경, 장엄염불, 금강경 등), 한 생각 돌려 무상을 깨달아 윤회를 벗어나 해탈의 길로 들어서도록 하기 위해 죽은 날로부터 7일마다 7회에 걸쳐 행하는 영가를 위해 베푸는 법회의식.
불교의 내세관(來世觀)에서는 일반적으로 보통 사람이 죽어서 다음 생을 받을 때까지의 49일 동안을 중음(中陰)이라 하는데, 이 기간 동안에 과보를 받을 다음 생이 결정되므로, 이때 부처님의 가르침을 들려주어 영가가 죄업을 참회하고 지혜의 눈을 밝혀 해탈의 길을 가도록 이 재(齋)을 지냄.
특히, 염라대왕의 심판을 받는 날이 죽은 지 49일째 되는 날이라고 하여 7회째의 재(齋)를 중요시함.

불경(佛經)에서 설한 바에 의하면 사람의 존재 상태를 4가지로 구분하는데, 그것은 ①생유(生有: 태어나는 순간) ②본유(本有: 生에서 死까지 생애) ③사유(死有: 죽는 그 순간) ④중유(中有, 中陰: 이생에 죽어서 다음 生까지를 말함)이다.
이들 중 네 번째의 중유(中有, 中陰)의 상태의 정상적인 기간이 49일이다. 즉 사람이 죽은 뒤에는 일반적인 경우 49일이면 중유(中有)가 끝나고 다음 생(生)이 결정된다. 그러므로 다음 생이 결정되기 전인 48일째에 정성을 다하여 영혼의 명복을 비는 것이 49일재이다.
*영가(靈駕) ; 망자의 넋을 높여 부르는 말. 영(靈)은 정신의 불가사의함을 의미하는 것으로 정신 자체를 가리키고, 가(駕)는 상대를 높이는 경칭(敬稱)이다.
*천도재(薦度齋) ; 불교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생전에 지은 업(業)에 따라 다음 생을 받게 되는데, 유족들이 불보살(佛菩薩)을 모신 법당(法堂)에서 돌아가신 영가를 청해 모시고, 지극한 마음으로 불보살의 가피를 기원하고 또한 영가에게 ‘부처님의 가르침(法門)’을 들려줌으로써,
영가가 두려움에서 벗어나고 지혜의 눈을 밝혀 삶의 무상을 깨달아 이승에 대한 애착과 미련을 끊고, 보다 좋은 곳으로-더 나아가 육도윤회를 벗어나 극락왕생·해탈의 바른 길로-잘 건너가도록 하는 불교의식.
*창도(唱導) ; 교법(敎法)을 먼저 베풀어 사람들을 가르치고 인도함.
*교주(敎主) ; 어떤 종교나 종파를 처음 세운 사람.
*이조(李朝) ; 근세조선(近世朝鮮)을, 임금의 성을 좇아 ‘이씨 조선(李氏朝鮮)’이라는 뜻으로 이르는 말.
*(게송) ‘雁飛天末迹留沙  人去黃名在家’ ;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136 게송 참고.

*황천(黃泉) ; 저승(사람이 죽은 뒤에 그 혼이 가서 산다고 하는 세상).
*육도윤회(六途輪廻, 六道輪廻) ; 선악(善惡)의 응보(應報)로 육도(六途-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의 고락(苦樂)을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것.
*업(業) : [범] karma [파] Kamma 음을 따라 갈마(羯磨)라고 하며, 「짓다(作)」의 뜻이다。중생들이 몸으로나 말로나 뜻으로 짓는 온갖 움직임(動作)을 업이라 한다.
개인은 이 업으로 말미암아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모든 운명과 육도(六道)의 윤회(輪廻)를 받게 되고, 여러 중생이 같이 짓는 공업(共業)으로 인하여 사회와 국가와 세계가 건설되고 진행되며 쇠퇴하거나 파멸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처음에는 악업(惡業)을 짓지 말고 선업만 지으라고 가르치다가, 필경에는 악과 선에서도 다 뛰어나고, 죄와 복에 함께 얽매이지 말아서 온갖 국집과 애착을 다 버리도록 하여, 부처님의 말씀에까지라도 걸리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
*참선법(參禪法) ; ①선(禪) 수행을 하는 법.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법.
*만년위패(萬年位牌) ; 전강 조실스님께서 우리들의 선망부모와 유주·무주의 영가 천도를 위해서 만들어 놓으신 제도.
영가에게 법보전에 편안한 거처를 마련하여 이 법보전에서 좋은 도반들과 한 가족이 되어, 용화선원이 있는 한 계속 매일 예불시 축원하고 법회 때나 평소에 법문(法門)을 들려드려, 영가가 원한심을 내려 놓고 모든 업장을 소멸하여 도솔천 내원궁이나 극락세계에 왕생하시거나, 다시 인간으로 환생하더라도 정법(正法)에 귀의하여 스스로 깨닫고 모든 중생을 제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전강선사께서 만드신 제도
*소소영령(昭昭靈靈) ; 한없이 밝고 신령함. 소소(昭昭)도 영령(靈靈)도 함께 밝은 뜻. 밝은 모양. 진여(眞如)•법성(法性)•불심(佛心)을 의미하는 말.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