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구참선 최상승법'에 해당되는 글 51건

  1. 2021.09.01 §((128)) 용화사는 오직 최상승법만을 선양 / 모든 업(業)의 근원인 마음을 다스리는 최상승법 / 사구선(死句禪)은 깨달음은 없고 생사윤회로 떨어지는 참선.
  2. 2021.08.11 §((세등51)) 달마 조사가 전해준 직지인심 견성성불하는 활구참선법 / 관심일법(觀心一法) 총섭제행(總攝諸行) /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 방편설.
  3. 2021.07.26 §((292)) (게송)운주천무동~ / 이 사바세계에 와야 깨달음을 얻을 수가 있다 / 불법은 괴로운 일에서 오히려 발심을 할 수가 있도록 한다 / (게송)일파유조수부득~. 1
  4. 2021.05.29 §((160)) 이 육신(肉身)이 진리의 법신(法身) / 호귀(豪貴)에 득도난(得道難) / (게송)귀래좌허실~ / 1초 동안 화두를 들면 1초 동안에 부처님이다.
  5. 2021.04.11 §((066)) 강을 건넜으면 배[방편]는 버려라 / '한 생각' 단속이 참선 / 삼요(三要) / 불법(佛法)은 마음에 모든 생각을 버리는 것. 빨리 버리는 방법은 「이뭣고?」.
  6. 2021.04.07 §((244)) (게송)주지경행수선우~ / 착한 벗이란? / 최상승법에 있어서는 일체 삼라만상 두두물물이 선지식 아닌 것이 없고, 불보살 아닌 것이 없어.
  7. 2021.03.20 •§•((119)) 말 도둑 이야기. 구두선(口頭禪), 의리선(義理禪)은 우리의 생사해탈과는 하등(何等)에 관련이 없다 / 여구두연(如救頭燃)의 간절한 마음.
  8. 2021.02.19 §((054)) 활구참선과 사구참선 / 보고, 듣고, 느끼는 그것을 발판으로 '이뭣고?' / 착상구불(着相求佛) / 선지식께 받은 본참화두 하나를 일여하게 밀고 나가야.
  9. 2020.12.25 §((145)) (게송)불원공명단원산~ / 견성성불한 것이 영원히 죽지 않는 법 / 관심일법 총섭제행 / 소원성취는 업(業)을 소멸해야. 업을 소멸하려면 '이뭣고?'.
  10. 2020.12.16 §((155)) (게송)유시독립묘고봉~ / 지옥 문전(門前)에서 울고 있는 지장보살 / 생사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와 하나가 되는 것이 바로 참선법, 불법(佛法).
활구참선 최상승법2021. 9. 1. 06:25

§((128)) 용화사에서는 오직 비로자나부처님 한 분만을 모시고 오직 최상승법만을 선양 / 최상승법은 그물에 있어서 벼릿줄 / 모든 업(業)의 근원인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이 바로 이 최상승법 / 참으로 살아 있는 적극적인 참선방이 바로 가정이요, 직장이요, 사회이다 / 마정수기(摩頂受記) / 최상승법은 몸을 숙이지 아니해도 경건한 마음으로 한 생각 화두(話頭)를 들면 그것이 바로 비로자나불께 올리는 불공이요, 공양.

이리저리 따져 참선하는 것을 구두선(口頭禪). 이것을 의리(義理)로 따져서 한다 해서 의리선(義理禪)이라 한다. 구두선은 '죽은 참선'이라 해서 사구선(死句禪)이다. 깨달음은 없고 생사윤회로 떨어지는 참선 / 영 공부가 잘 안되어 갈 때 그때야말로 한 고비 넘으려고 하는 중요한 고비. 그러한 어려운 고비를 잘 넘길 줄 아는 사람이야말로 반드시 도(道)를 성취할 사람이다.

**송담스님(No.128)—1980(경신)년 칠석법회 법문(80.08.17) (용128) (최상승법)

 

 

(1/3) 약 5분.

 

 

(2/3) 약 15분.

 

 

(3/3) 약 14분.

 


(1/3)----------------

우리 용화사에서는 오직 부처님 한 분, 비로자나(毘盧遮那) 부처님 한 분만을 모시고 그리고 팔만사천(八萬四千) 법문(法門)을, 팔만사천 방편을 하나로 녹여 뭉쳐서 오직 최상승법(最上乘法)만을 선양을 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이 최상승법은 오직 관심일법(觀心一法), 내가 내 마음, 한 마음을 관하는 이 법으로써 일체법(一切法)을 다 포섭을 하는 것입니다.
마치 여러분이 고기를 잡는 그물을 보면 그 벼리가 있습니다. 벼리는 그물의 그 손잡이입니다. 그것을 벼릿줄이라 그러는데 그 그물에 벼릿줄을 팍! 잡고 끌어 잡아당기든지 추켜들면 수십만의 그물코가 전부 다 따라오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벼릿줄만 탁! 추켜들면 그물이 아무리 크고 코가 많은 눈이 많은 그물이라 하더라도 한 번에 가지런히 탁! 들어지는 것입니다.

바로 이 최상승법은 그 그물에 있어서 벼릿줄과 같은 것입니다. 벼릿줄 하나만 들면 그 큰 그물이 대번에 가지런하게 탁! 추려지는 것입니다. 벼릿줄과 연결되지 아니한 그물은 없습니다. 모든 그물의 코는 전부가 벼릿줄에 연결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 최상승법 하나만을 선양을 하고 여러분들도 이 최상승법을 철저히 믿고 실천해 옮기면 팔만사천 방편, 팔만사천 법문이 바로 그 속에 다 포섭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만약에 벼리를 버리고서 낱낱이 그 수십만이나 있는 그 그물의 코를 낱낱이 들려고 하면 그 그물은 흔틀어져서 어찌해 볼 수 없게 되어질 것입니다.
옷을 들 때에도 옷깃을 들면 소매와 옷소매라든지 도련이라든지 모든 옷이 가지런하니 들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소매 끝을 잡고 옷을 든다든지 또는 옷에 섶의 끝을 들고 추켜든다든지 하면 그 옷은 꺼꾸러져서 도대체가 옷인지 걸레인지 분간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불법(佛法)을 믿어도 이 최상승법을 믿어야 전체의 불법이 무엇인가를 올바르게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최상승법을 믿는 사람은 믿는 그날부터 정말 올바르게 불법을 믿고 실천할 수가 있습니다.
최상승법을 모르고 저 팔만사천 방편 가운데에 저 어느 하나를 아무리 열심히 믿고 따른다 하더라도 마치 그물을 들 때 있어서 저 그물의 어느 구석지 한 코를 추켜든 거와 같아서 아무리 이리 뒤적거리고 저리 뒤적거리고 이리 뒤집어 놓고 저리 뒤집어 놓고 해도 도대체 이 그물이 어떻게 생긴가를 모르고 뒤적거릴수록 점점 혼란해지고 복잡해질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 있어서 지금 이 칠석날 용화사 법보선원에 오신 분은 정말 선택된 불자(佛子)라고 나는 생각을 합니다.(10분2초~14분46초)





(2/3)----------------

오늘 칠석날, 여러분은 각기 크고 작은 소원들을 가슴에 품고 오셨을 줄 생각합니다. 다른 절에서는 오늘 칠석날 새벽부터 불공을 하고—독불공(獨佛供)을 하고, 동참 불공(同參佛供)을 하고 계속 하루 종일 목탁을 치면서 불공을 드리고 기도를 드리고 또 축원을 하고 모다 그럴 것입니다. 그런 절에도 많이 가보셨을 줄 생각합니다.
그런데 오늘 하필 아침부터 비가 주룩주룩 내려서 그 쏟아지는 빗속에 이 주안 용화사를 여러분들은 찾아오셨습니다. 그래 가지고 '빨리 불공을 했으면, 빨리 우리 아들 축원을 해 주었으면' 혹 그러한 생각을 가지신 분도 계실는지 모르지만 아까 말씀드린 바와 같이 우리 용화사는 최상승법(最上乘法)을 선양을 하는 도량입니다.
여러분들이 들어오시자마자 전강 조실 스님의 법문을 한 시간에 걸쳐서 들었습니다. 법문 내용은 재미있는 이야기가 아니라 최상승법, '어떻게 하면 참선을 바르게 하며 바로 깨닫을 수가 있느냐?' 이러한 아주 고준한 법문을 해 주셨습니다.

왜 우리 절에서는 불공과 기도를 하지 아니하고 하필 오늘 칠석날 이러한 참선 법문을 해 드리느냐? 이것이야말로 정말 여러분의 소원을 성취할 수 있도록 해 드리는 가장 좋은 방법이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아무개 보체(保體), 아무개 보체' 낱낱이 축원을 안 해도 여러분이 접수만 해 놓으셔도 부처님께서는 환히 다 알고 계십니다. 낱낱이 이름을 불러야 알고, 부르지 아니하면 모른다면 그러한 부처님께 뭐 갖다가 올릴 것이 또 뭣이 있습니까? 벌써 여러분이 한 생각 정성스러운 마음을 가지고 오셨을 때 부처님께서는 이미 다 알고 계신 것입니다.

또 이 법문(法門)이 끝난 다음에 또 간략하지만 정성스럽게 예경(禮敬)을 올리고 또 축원(祝願)을 해 드립니다. 축원은 낱낱이 여러분의 식구의 이름을 부르지 않지만 '칠석법회 동참발원재자(同參發願齋者)' 이러면 여러분은 다 그 안에 다 포함이 되는 것입니다.
학생들 이름을 1학년부터서 다 부르지 안 해도 '서울대학교 학생 일동' 그러면 그 학교에 학적이 있는 학생은 다 그 속에 다 포함이 된 것입니다. 낱낱이 이름을 부르다가 빠지면 그것은 큰 손해를 보겠지만 '서울대학교 학생 일동' 그러면 자기 이름을 특별히 불러 주지 안 해도 자기도 그 속에 여지없이 틀림없이 포함이 되는 것입니다.

'동참발원재자(同參發願齋者) 각각등보체(各各等保體)' 하나도 빠짐없이 부처님께서는 다 알고 계시고 여러분들은 반드시 소원을 성취합니다. 왜 소원을 성취하느냐?
불교의 최고의 법인 최상승 법문을 들었거든. 그리고 그 최상승 법문을 듣고 거기서 신심을 내고 그것을 실천을 할려고 결심을 다지시고 또 현재 실천을 하고 계시고 그러니 여러분들이 만약에 학생이라면 가장 최고의 점수를 가진 우등생과 마찬가지다 그 말이여. 무엇이 걱정이 되겠느냐 이 말씀입니다.
팔만사천 법문 가운데 최고의 근본법이요, 최고로 높은 이 법을 듣고 그것을 실천을 하기 때문에 복을 빌고 소원을 빌고 한 것은 자연히 그 가운데 다 포함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복이라든지 재앙이라든지 이것이 하느님이 맥없이 우리한테 복을 주고 까닭 없이 우리한테 벌을 주고 그런 것이 아니라, 그 복을 받을 수 있는 또는 재앙을 받을 수 있는 그 원인이 전부 내 자신에게 있는 것입니다. 내가 복을 받을 만한 원인을 지었으면 내게 복이 돌아오는 것이고, 내가 재앙을 받을 수밖에는 없는 그러한 원인을 지었으면 내게 재앙이 돌아오는 것입니다.
하느님이 공연히 나를 미워서 나에게 벌을 주고, 신장님이 아무 까닭도 없이 내가 미워서 나에게 급살(急煞)을 내리고 절대로 그럴 리가 없는 것입니다. 반드시 자기가 지어서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자작자수(自作自受)인 것입니다.

무엇으로 짓느냐?

몸으로 짓고, 입으로 짓고, 마음으로 짓습니다. 이것이 신(身) · 구(口) · 의(意), 삼업(三業)입니다. 삼업(三業)인데 근본은 우리의 마음입니다. 우리 마음에서 한 생각이 일어나서 그것이 입을 통해서 표현이 되고 몸을 통해서 그것이 표현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업(業)의 근원은 우리의 마음인 것입니다.
그 근원을 잘 다스리면.... (녹음 끊김) 파 뒤집으면 또는 독한 약을 뿌리에다가 치면 그 많은 가지와 잎은 저절로 시들어 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또 그 큰 아름드리나무도 뿌리에다가 적당한 비료와 적당한 수분을 공급을 하면 그 수십만 수백만 개의 가지와 이파리는 저절로 싱싱하게 자랄 것입니다. 그 나무를 죽일 수 있는 것도 뿌리에 달려 있고, 그 나무를 살리는 데에도 뿌리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선악(善惡), 일체 재앙과 일체 복록이 그 근원인 우리의 마음을 어떻게 다스리고 어떻게 복돋우느냐에 따라서 복을 받게도 할 수가 있고, 재앙이 돌아오게 할 수도 있고 재앙이 돌아오지 않게도 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 근원을 다스리는 방법이 바로 이 최상승법(最上乘法)인 것입니다.
이 최상승법, 부처님은 어떠한 불교를 믿는 불자(佛子)가 와서 공을 들이고 기도를 하고 주력을 하고 염불을 하고 할 때 부처님은 환히 다 보고 계시는 것입니다. 절에 와서 하건, 자기집에서 하건, 직장에 가서 하건, 어디 기차간을 기차를 타고 가면서 하건, 어디서 · 언제 · 무엇을 하고 있던지 간에 부처님은, 우주의 가득차 계신 부처님께서는 환히 다 보고 계시고 불법를 옹호하는 제석천왕도 환히 다 보고 계시고, 복을 받을 사람, 복을 받지 못할 사람, 있는 복도 떠날 수밖에는 없을 사람, 지금은 가난하지마는 하는 싹수가 머지않아서 부자가 될 사람, 환히 다 보고 계시거든.

어떤 분은 절에 왔을 때만 목욕재계하고 아주 마음도 경건한 마음으로 오지만, 일단 집에 가면 말과 행동과 마음가짐을 마구 함부로 해서 아들과 손자, 며느리로부터 '불법(佛法)을 믿는 분이 그럴 수가 있느냐?'고 이러한 공격을 받는 분이 적잖이 계시지 않는가? 나는 그렇게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가정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절만이 마음을 닦는 곳이 아니라 참으로 가정에서 살아 있는 수도원, 살아 있는 적극적인 참선방이 바로 가정이요, 직장이요, 사회인 것입니다.

자기가 불교 신자라고 하는 것이 알려지지 아니한 타관에서건, 기차나 자동차를 타고 가건 언제 어디서라도 우리 부처님을 믿는 불제자는 항시 부처님이 자기 안에 계신 줄 믿고 항시 자기 머리 위에서 자기를 보고 계신 줄 믿고 한 생각, 한마디 말, 일거수일투족(一擧手一投足)에 이르도록 언제 어디서라도 경건한 마음으로 행동하고, 거룩한 어진 마음으로 생각하고 사람을 상대하고 일을 처리해 나간다면 이것이야말로 복을 받을 사람이요, 부처님으로부터 우리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항시 마정수기(摩頂受記), 마정수기는 우리의 이마를 어루만져 주시면서 우리의 장래에 대해서 약속을 해 주시는 것입니다.
마치 아들이나 손자가 착하고 귀여울 때에는 이마를 만져 주면서 칭찬해 주듯이, 우리는 언제나 우주에 꽉 차 있는 부처님으로부터 마정수기를 받도록 노력을 해야 할 것입니다. 부처님으로부터 마정수기를 받으면 일체 업장(業障)이 다 소멸이 되고 반드시 소원을 성취하게 되는 것입니다. 허는 짓은 죄 받을 짓만 하면서 어쩌다 한 번씩 불공만 들이면 소원을 성취하리라고 생각한 것은 조금 어리석은 생각인 줄 압니다.

불공(佛供)은 꼭 이 법당에서만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시간과 공간에 걸림이 없이 꽉 차 있는 부처님, 동서남북이 관계없이 언제 어디서라도 친견할 수 있는 부처님, 그 부처님 그 법신불(法身佛)께 공양을 올리는 법이 바로 이 최상승법인 것입니다.
최상승법은 몸을 숙이지 아니해도 한 생각 화두(話頭)를 들면—경건한 마음으로, 엄숙한 마음으로, 청정한 마음으로 화두를 한 번 들면 그것이 바로 청정법신(淸淨法身)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께 올리는 불공이요, 공양인 것입니다.

'돈이 없어서 절에 못 간다' '법회에 나오고 싶어도 돈이 없어서 가진 것이 없어서 못 간다' 이러한 말씀을 하시는 분을 가끔 뵙니다마는 최상승법을 믿는 사람은 그러한 말이 입에서 나와서는 아니됩니다.
부처님께 올리는 공양, 또는 불사(佛事)에 바치는 시주금 이러한 것은 자기의 형편에 따라서 많고 적고건 간에 정성이 다 꽉 차 있으면 그것으로써 족한 것입니다. 백 원이면 백 원, 만 원이면 만 원, 십만 원이면 십만 원, 백만 원이면 백만 원, 자기 형편껏 성의껏 하면 되는 것입니다. 단돈 백 원도 없으면 경건한 마음으로 청수(淸水) 한 그릇을 올려도 족한 것입니다. 물이 없으면 한 생각 경건한 마음으로 '이뭣고?' 화두 한 번 들면 되는 것입니다.
형편이 어려워서 못낸 것을 부처님은 미워하거나 섭섭하게 생각하시지를 않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오직 그 사람에 정성스러운 마음, 경건한 마음, 청정한 마음 그것을 보시는 것입니다.(39분10초~54분17초)





(3/3)----------------

참선을 해 나가는 데 있어서 구두선(口頭禪), 아까 전강 조실 스님께서 구두선이라 그런 말씀을 하셨고 '구두선은 사구선(死句禪)이다'

구두선이라 하는 게 무엇이냐 하면 입으로 따져서 하는 것이다 이 말이여. 입으로 '그것은 이러쿵저러쿵, 체(體)다 용(用)이다, 법신이다, 여래다, 뭣이다' 해 가지고는 참선을 입으로 이래이래이래 따져 가지고 답을 알아맞히고, 또 제자들에게 참선을 가르치기를 무슨 수수께끼를 푸는 데에 있어서 힌트를 주는 것처럼 살살 가리켜서 힌트를 주어 가지고,
'아! 이것이 아닙니까?'
'오! 옳다 옳다. 아! 그것 참 어지간하다'

또 다른 공안을 내줘 가지고 '이걸 오늘 해 전에 이것을 알아 오너라'
이렇게 저렇게 이렇게 저렇게 따지고 그냥 골치가 아플 정도로 하루 종일 따져 가지고는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 가지고 쫓아가서 '알았습니다. 이것이 아닙니까?'
'아니다. 그 조금 틀렸다'

다시 또 이리저리 따져 가지고는 '이것이 아닙니까?'
'아! 인제 되았다'

이러한 식으로 참선을 가리키고, 이러한 식으로 참선을 배우는 것을 이것을 갖다가 구두선(口頭禪)이라, 이것을 의리(義理), 의리로 따져서 한다 해서 의리선(義理禪)이라 그러고.

이렇게 따져서 알아 들어가는 참선은 아무리 그럴싸하게 따져서 모든 공안을 다 풀이를 했다 하더라도 마침내 중생의 분별심(分別心)을 여의지를 못하고, 따질수록에 중생의 분별심만 더욱 치성하게 한 결과가 되기 때문에 분별심이 일어나고 있는 동안에는 그것은 깨달음이 아니여. 점점 생사(生死)의 불에 섶을 더한 것에 지내지 못한 것이라, 더욱 생사의 번뇌에 분별의 불은 치성하게 탈 수밖에는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참선은 생사윤회의 주검으로 떨어지는 참선이여. 그래서 이것을 '죽은 참선' 이라 해서 사구선(死句禪)이라 그러는 것이거든.

그러면 '어떠한 것이 활구선(活句禪)이요, 바른 참선이냐?' 하면 '분별심, 이론으로 따지는 버릇을 쓰지를 말아라. 이건 유(有)다, 무(無)다, 비유(非有)다, 비무(非無)다, 이것은 허공이다, 허공 같으되 허공도 아니다, 이러한 이론을 쓰지를 말아라 이 말이여'

'화두는 이론으로 풀 수 없는 것이여. 이론으로 따지지도 말고 이론으로 풀 수도 없는 것이다' 이 말을 듣고서 '그렇다면은 왜 화두를 드느냐? 아마 이것은 모든 번뇌와 망상을 싹 쓸어버리기 위해서 이 화두는 드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화두는 바로 쇠로 맨든 빗자락과 같은 것이다. 일체 번뇌 망상을 다 쓸어버리는 빗자락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이론으로 사용하지 말고 다맛 이뭣고? 만 하라는 것이로구나'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공부를 하고 있는 사람이 있는데, 그러한 생각도 잘못된 생각이다.
물론 화두를 들면 번뇌와 망상이 해결되는 것은 틀림이 없지만 그러기 위해서 화두를 든다고 하는 생각은 갖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마치 장님들이 모여 가지고 코끼리를 갖다가 생전 처음 코끼리를 만나서 '대관절 코끼리란 말만 들었지 한 번도 보지를 못했다, 우리가'
그래서 각기 코끼리를 모다 달려들어서 만지는데, 코를 갖다가 이리저리 더듬어 본 장님은 '코끼리 코끼리 하더니 구렁이 같이 생긴 거로구나' 또 한 장님은 배를 갖다가 만져 보고 '아! 코끼리라는 게 벼람박 같이 생긴 것이다' 코끼리 다리를 만져 본 사람은 '코끼리라는 게 기둥 같이 생긴 것이다' 각기 자기가 만져본 대로 얘기를 하고 자기가 코끼리의 전체를 파악을 했다고 생각을 하는 사람과 같은 것입니다.


참선을 해 나가는 데, 화두를 자꾸 드는 데 있어서 모든 망상이 처음에는 더 치성하게 일어나지만 그래도 한결같이 화두를 들고 복식(腹式) 심호흡(深呼吸)을 하면서 화두를 들고 또 들고 해 나가면 번뇌와 망상이 일어날 겨를이 없게 되고, 일어나도 금방 화두를 들므로써 간 곳이 없어지니까 쇠빗자락과 같은 역할을 하는 그런 면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 '화두를 갖다가 쇠빗자락과 같은 것이다'
'코끼리는 구렁이 같은 것이다' 이러한 장님과 같은 견해에 지나지 못한 것입니다.

또 '계려궐(繫驢橛), 나귀를 매는 말뚝이다' 나귀를 매놓지 않고 놔두면 그 나귀란 놈이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왔다갔다해서 밭도 밟고 곡식도 밟고 막 함부로 할 텐데, 그 나귀의 고삐를 갖다가 말뚝에다 콱 매놓으니까 그 나귀가 먼 곳을 가지 못하고 그 말뚝 주변에만 뱅뱅 돌게 되니까,
화두만 자꾸 들므로 해서—화두를 안 들면 이 생각, 저 생각, 번뇌 망상, 희로애락 모다 그러한 생각으로 우주법계가 좁다하고 이리저리 돌아칠 텐데, '화두를 착 들므로써 잠깐 뭔 생각이 났다가도 금방 이뭣고? 이뭣고? 하니까 마치 나귀를 말뚝에다 매놓은 거와 같다. 화두란 게 바로 그러기 위해서 화두를 드는 것이로구나' 이러한 견해를 가진 사람이 있는데, 그러한 견해도 화두에는 혹 그러한 면이 없는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화두가 바로 그런 것이다'고 하는 것은 코끼리의 다리를 만져 보고 기둥과 같다고 하는 견해와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이러쿵저러쿵하는 분별심을 하지를 말고, 다못 화두만을 들되 슬플 때도 '이뭣고?' 기쁠 때도 '이뭣고?'—그 말은 '슬퍼한 놈이 무엇인고?', 기쁠 때는 '기뻐한 놈이 무엇인고?' 배가 아플 때는 '배가 아픈 놈이 무엇인고?' 이렇게 하라는 것이 아니에요.
배가 아플 때도 나는 '이뭣고? 이- 하는 이놈이 뭣고?' 이렇게 하라는 것이지, 배가 아플 때는 '배 아픈 놈이 무엇인고?' 똥 눌 때는 '똥 누는 놈이 무엇인고?' 세수할 때는 '세수하는 놈이 무엇인고?' 낱낱이 그렇게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세수할 때도 '이뭣고?' 똥을 눌 때도 '이뭣고?' '지금 이- 하는 이놈이 뭣고? 이뭣고?' 이렇게 하라 이 말씀이에요.
낱낱이 '세수하는 놈이 무엇인고?' 저거 차 소리가 나면 '차 소리 나는 놈을 듣는 놈이 무엇인고?' 손님이 오면 '손님이 온 맞이한 이놈이 무엇인고?' 밤낮 그때그때 그렇게 하라는 것은 아니에요. 그럴 때에도 화두를 잘 챙겨서 들어나가라 그런 말씀입니다.

이렇게 공부를 해 나가면, 처음에는 심호흡을 하면서 화두를 들면 곧잘 되는 것 같이 느껴집니다. 그러나 해 가면 차츰차츰 계속해서 쭉 잘되어 가면 참 이거 뭐 어려울 것이 없고 참 좋겠는데, 얼마 동안 해 가다 보면 마치 나귀나 소를 갖다가 우물로 끌고 들어갈려고 한 것처럼 아무리 끌어 잡아당겨도 끌어 잡아당길수록 뒤로 버티고 뒤로 물러서려 그러고, 뒤에서 억지로 몰아넣어서 우물로 밀어넣을려고 해도 그럴수록에 이놈이 더욱 뒤로 버텨서 안 들어갈려고.

화두를 들고 좀 성성(惺惺)하고 적적(寂寂)하게 좀 할려고 하면 그럴수록에 더 가슴이 먹먹하고 영 머리가 띵하고 망상이 더 퍼일어나고, 몸이 괴롭고 시간이 지루하고 이래서 때로는 냉랭하고, 때로는 열열하고, 때로는 그 번뇌와 망상이 일어나고, 때로는 번뇌와 망상이 겨우 좀 가라앉을 만하면 자꾸 혼침(昏沈)에 떨어지고, 이렇게 해서 영 공부가 진취가 없는 것처럼 느껴져서 '이래 가지고 내가 견성성불(見性成佛)을 할 수가 있을 것인가? 이것이 참으로 공부를 옳게 하는 것인가? 공부를 잘못하기 때문에 이런 것이 아닌가?' 이렇게 해서 번민을 하고 괴로워하게 되는 때가 오는 것입니다.
공부를 꼭 잘 못해서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공부를 옳게 해 나가도 때에 따라서 그러한 여러 가지 종류의 현상이 나타날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그럴 때에는 어떻게 하느냐?
일어나서 한 5분 내지 10분간 좀 포행(布行)을 해서 정신을 깨끗이 한 다음 다시 또 자리에 떠억 앉아서 숨을 깊이 들어마셨다가 약 3초 가량 머물렀다가 조용하니 내쉬면서 '이뭣고?' 이렇게 또 화두를 들면 한결 가슴이 시원하고 후련하면서 또 얼마 동안 공부가 잘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공부는 잘되어 간다 할지라도 좋아하는 생각을 내지 말 것이며 또 영 공부가 잘 안되어 가고 지루하고 괴롭고 잘 안되어 간다고 느껴질 때라도 번민(煩悶), 번뇌심을 내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잘 안되어 갈 때, 영 공부가 잘 안되어 갈 때 그때야말로 한 고비 넘으려고 하는 그러한 중요한 고비가, 거기가 바로 중요한 고비라고 하는 사실인 것입니다. 그래서 그 고비를 지혜롭게 잘 넘기면 바로 공부가 한결 수월하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 중대한 고비를, 좋은 중대한 고비인 줄을 모르고 거기서 번뇌심을 내 가지고 '에이! 이거 공부는 못할 것이다. 이거 차라리 아미타불이나 부르다가 죽어서 극락이나 가지, 근기가 약해서 참선은 도저히 안 된다고 하더니 정말 이거 안 될려나 보다' 이렇게 해서 포기를 하면 그 높은 태산준령을 걸어서 걸어서 올라가다가 조금만 더 올라가면 고개를 넘을 텐데 거기서 포기를 하고 내려와 버린 거와 마찬가지여. 그러한 어려운 고비를 잘 넘길 줄 아는 사람이야말로 반드시 도(道)를 성취할 사람인 것입니다.

오늘 이 칠석 법회 이렇게 아침부터 비가 쏟아짐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많이 모다 참석을 해 주셨습니다. 그 정성 하나만으로도 여러분은 반드시 소원을 성취할 것입니다. 성취할 것을 나는 깊이 믿고 의심하지 않으며 반드시 성취되시기를 간절히 축원을 하는 것입니다.(54분23초~67분37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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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
활구참선 최상승법2021. 8. 11. 09:50

§((세등51)) 달마 조사가 직지인심(直指人心), 바로 사람에 마음을 가리켜서 견성성불(見性成佛)케 하는 이 활구참선법을 전해 주셨다 / 최상승법(最上乘法)은 어떻게 닦아 가느냐? 관심일법(觀心一法)이 총섭제행(總攝諸行)이여 / 부처님께서 설하신 49년 동안에 법(法)이 바로 그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 방편설에 떨어져 있다면 어리석고 가엽다.

**송담스님(세등선원No.51)—1984(갑자)년 하안거 해제 법어(84.07.17) (세등51) (활구참선,최상승법)

 

 

 

약8분.

 

 


우리가 해야 할 나아갈 일은—달마 스님! 우리가 이 사바세계(娑婆世界)의 교주(敎主)는 석가모니 부처님이시지만, 우리 활구참선(活句參禪)을 하는 이 최상승법에 있어서는, 부처님으로부터 28번째 법등(法燈)을 전수하신 달마 조사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달마 조사가 140세의 고령으로 인도를 떠나서 중국으로 오셔 가지고 이 직지인심(直指人心), 바로 사람에 마음을 가리켜서 견성성불(見性成佛)케 하는 이 활구참선법을 전해 주시지 안 했다면, 우리는 계율이나 지키고 경전이나 연구하는 그러한 불법에 빠져서 확철대오(廓徹大悟)하는 그러한 묘(妙)한 문(門)이 있는 것을 모르고 말았을런지도 모릅니다.

달마 스님을 인해서 우리는 참으로 부처님이 위대하시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 달마 스님의 법(法)은 선정, 선정(禪定)을 닦아서 신통을 얻고 그러한 불법이 아닙니다. 물론 참선하는 데에 계율도 지켜야 하고, 선정도 닦아야 하고, 교리에도 밝으면 좋고, 불법에 한 법도 버릴 법은 없으나, 그 근원 그 핵심이 무엇인가를 바로 파악을 해 가지고 그 중심을 바로잡아서 수행을 해 나가야만 되는 것입니다.
가뜩이 근기(根機)는 약해서 자기 몸 하나도 추단해 나가기 어려운 그러한 처지에 있으면서 이것저것 잔뜩 좋다고 하는 것은 다 해 보고 싶어 한다면, 까딱하면 근본은 잊어버리고 지엽(枝葉)에 걸려서 평생을 그르치는 그러한 오류를 범하게 될 것입니다.

출가 수행인이 계율을 지키지 말라는 것이 아니여. 당연히 계율을 또 지켜야 하고. 육바라밀(六波羅蜜)을 닦지 말라는 것이 아니여. 당연히 육바라밀을 닦어야 하고. 팔만세행(八萬細行)을 다 갖추어야 하고. 그러나 계율을 지키기 위한 계율을 지키고, 육바라밀을 지키기 위한 육바라밀을 지키고, 팔만세행을 갖추기 위한 팔만세행을 갖추어서는 그것은 이 몸을 가지고 해낼 도리가 없는 것이여.

이 최상승법(最上乘法)은 어떻게 닦아 가느냐? 관심일법(觀心一法)이 총섭제행(總攝諸行)이여.

마음을 관하는 한 법! 화두를 참구(參究)해서 생각생각이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해서 순일무잡한 경계에 들어가면 계행(戒行)을 지키려고 하지 안 해도 제절로 계행이 지켜져 있고, 육바라밀을 닦을려고 안 해도 바로 행하는 것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몸으로 행하고, 생각으로 생각하는 모든 것이 제절로 육바라밀이 지켜지 버리게 된다. 팔만세행도 역시 일부러 갖추려고 안 해도 제절로 갖추어지게 되는 것이다.
의단이 독로해서 화두가 순일한 사람이 어찌 살생을 할 마음을 내며, 어찌 도둑질할 마음을 내며, 어찌 간음을 할 생각을 낼 것이냐 그 말이여. 한 마음 단속해서 화두가 순일하게 나아가면 일체 행(行)이 바로 거기에 다 제절로 갖추어지는 거여. 이것이 바로 달마 스님께서 주창하신 관심일법(觀心一法)이 총섭제행(總攝諸行)이라 하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설하신 오계(五戒)와 팔만사천 법문이 낱낱이 다 묘한 문이어서 어느 문으로 들어가도 마침내는 깨달음에 이르러 다 문이 열려져 있는 부처님의 묘법(妙法)이지만, 그 묘한 법을 잘못 이해하고 그 방편문(方便門)에 국집(局執)해서 얽매이게 되면, 그것은 마치 달 가르키는 손가락을 잘못 이해를 해 가지고, 그 손가락을 인해서 하늘에 있는 달을 봐야지, 달은 보지 아니하고 그 손가락만 국집해서 들여다보고 있다면 그 사람은 언제 달을 볼 수가 있겠습니까?
이제 겨우 돌이 지내갈락말락한 어린아이에게 '저 하늘에 달을 보라' 하고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킵니다. 그러면 어린아이는 그 손가락을 통해서 하늘에 달을 보지 아니하고, 손가락만 자꾸 쳐다보고 있다 그 말이여.

부처님께서 설하신 49년 동안에 팔만장경이, 법(法)이 바로 그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그 경(經)에는 온갖 방편설이 있지만 그런 방편설에 떨어져 가지고, 바로 가리키는 자기의 마음을, 자기의 본자성(本自性)을 보지 않고서 방편에만 떨어져 있다면 그 사람은 참 어리석고 가엽기가 그지없는 것입니다.(15분13초~23분6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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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활구참선 최상승법2021. 7. 26. 06:43

§((292)) (게송)운주천무동~ / 이 사바세계에 와야 도를 바르게 닦고 깨달음을 얻을 수가 있는 것 / 불법(佛法)은 슬픔에서, 괴로운 일에서 오히려 발심을 할 수가 있도록 한다 / (게송)일파유조수부득 화풍탑재옥난간.

**송담스님(No.292)—1986년 동안거 해제 법어(86.02.23) (용292) (활구참선,최상승법)

 

 

(약 14분)

 


운주천무동(雲走天無動)이요  주행안불이(舟行岸不移)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본시무일물(本是無一物)인디  하처기환비(何處起歡悲)리오
나무~아미타불~

운주천무동(雲走天無動)이요  주행안불이(舟行岸不移)로다.
구름이 달아나되, 구름이 계속 바람에 날려서 구름이 달아난 것이지 하늘이 움직인 것이 아니여. 그런데 어떻게 잘못 보면 구름이 가는 것이 아니라, 하늘이 계속 움직인 것처럼 보인다 그 말이여.
하늘에 달이 떴는데, 구름이 막 바람에 지내가는데 구름이 지내가는 것처럼 보이지 않고 달이 계속 달아난 것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또 배가 강(江)에서 강을 타고 막 지내가면, 어떻게 잘못 보면 배가 가는 것이 아니라 양쪽 언덕이 기슭이 계속 달음박질을 친 것처럼 보이거든.
구름이 달아나되 하늘이 움직인 것이 아니고, 배가 달릴지언정 양쪽 언덕이 움직인 것이 아니여.

본시무일물(本是無一物)이여. 본래 한 물건도 없거니,
하처기환비(何處起歡悲)리오. 어느 곳에 기쁘고 슬플 것이 있느냐.

사업이 흥(興)하고 또 새 아들이나 손자가 태어나고 또 모다 그렇게 되면 모다 다 기뻐서 모다 어쩔 줄을 모르다가, 사업이 여의치 못해서 손해를 보거나, 또 사람이 아퍼서 죽거나, 내가 소원한 바가 이루어지지 못하면 모다 슬퍼하는데, 이건 사람으로서 당연한 것이죠.
기쁜 일을 당하면 기뻐하고, 슬픈 일을 당하면 슬퍼한 것 그 자체가 꼭 그것이 나쁜 일이라 한 것도 아니고, 기쁜 일을 당하는데 슬퍼하고, 사람이 죽어서 야단인데 거기서 손뼉을 치고 웃고 그러라는 것은 아닙니다마는, '좋다 나쁘다' '슬프다 기쁘다' 한 것은 어디까지나 그것이 자기 자신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객관적(客觀的) 상황이기는 하지만, 좀더 근원(根源)에 돌아가서 보면 모든 것이 다 그 주관(主觀)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모든 생사(生死)의 현장에서, 모든 생멸(生滅)의 상황 속에서 근본의 이치(理致)로써 관조(觀照)하면 그것이 봄 되았다 여름 되았다 가을 되았다 겨울이 되고, 겨울이 되았다가 다시 또 새봄이 돌아온 것과 같애서, 거기에 무슨 슬퍼할 것도 기뻐할 것도 조끔도 없는 것이지마는, 근본을 떠나서 현상에만, 일어나는 모든 현상계에만 치우쳐서 생각하면 참 이 사바세계(娑婆世界)는 너무너무 슬프고 괴로운 일이 너무너무 많은 것입니다.

그러나 도(道)는 이 사바세계에 와야 도를 바르게 닦고 깨달음을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주변에 일어나는 모든 슬픔과 괴로움, 그리고 모든 언짢은 그런 일들에서 우리는 그 슬프고 괴로운 일에 빠져 가지고 몸부림치고 괴로워하는 데에만 근치지 말고, 거기에서 발심(發心)을 하고 자기로 돌아올 수 있는 계기(契機)로 삼아 나가고, 그런 계기로 우리가 해서 향상(向上)되어 갈 수 있는 발판으로 삼는다면, 우리가 말세(末世)라 하고 그거 생사고해(生死苦海)라고 하는 이 사바세계가 정말 도처(到處)가 선지식(善知識)이고, 도처가 불보살(佛菩薩)이고, 도처가 살아 있는 수도에 도장이 될 것입니다.

오늘 해제와 백일기도 회향을 맞이해서 지난 석 달, 지나간 석 달을 회고(回顧)해 보고 스스로 부족하고 미흡한 점은 잘 반성을 해서 오늘 이후의 자기의 생활과 정진에 그것을 반영을 해서 새로운 발전과 향상이 되도록 그렇게 살려 나가게 되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정말 불법(佛法)은 슬픔에서 오히려 발심을 하고, 괴로운 일에서 오히려 보리심(菩提心)을 발(發)할 수가 있도록, 그렇기 때문에 불법은 참 좋은 거 같습니다.
이 불법을 모르는 사람은 조그마한 슬픔을 통해서 큰 슬픔으로 빠지게 되고, 조그마한 괴로움과 노여움을, 그것을 거기에서 돌이키지 못하고 그것으로 해서 큰 재앙을, 스스로 재앙의 구뎅이를 만들어 가지고 거기에 빠져서 더욱 불행하게 되어 가는데,
이 불법을 믿는 사람은, 이 최상승법을 믿고 참선을 하는 사람은, 명두래명두타(明頭來明頭打) 암두래암두타(暗頭來暗頭打), 밝은 놈이 오면 밝은 놈에서 어두운 놈이 오면 어두운 놈에서, 일체처 일체시에서 그놈을 막 잡어서 쓰고, 어떠한 역경계(逆境界)에서도 거기에 넘어지지 않고 바로 거기서 새로운 지혜와 용기를 얻어 나갈 수가 있어서, 그래서 이 최상승법(最上乘法)은 참 좋은 거 같습니다.

여러분께서도 이 최상승법을 믿음으로 해서 인생의 그 지긋지긋한 슬픔과 괴로움의 구렁텡이에서 용케도 거기에 붙잽히고 거기에 빠지지 않고 거기서 뛰쳐나와 가지고 새로운 행복을 누릴 수가 있게 되신 분이 상당히 많이 계시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시면 우리는 아무것도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어떠한 역경(逆境)이라도 두려울 것이 없고, 오히려 거기를 잘 살려 나갈 수 있게 되니,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살아가고 이렇게 닦아감으로 해서 자기만 행복을 얻을 뿐만 아니라, 자기를 아는 모든 가족과 이웃과 친구들까지도 모두 다 말 없는 가운데에 포교(布敎)를 하시게 되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새로 맞이한 이 병인년을 맞이해서 지난 한 해보다도 훨씬 더 큰 비약과 발전이 있기를 바라고, 이 백일기도 회향에 여러분의 과거에 모든 업장(業障)이 다 소멸(消滅)이 되시고 또 소원을 성취하시기를 빌면서 말씀을 마치고자 합니다.


일파유조(一把柳條)를 수부득(收不得)하야  화풍탑재옥난간(和風搭在玉欄干)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일파유조(一把柳條)를 수부득(收不得)이여. 한 움큼 버들가지를 거두어 잡지 못해서,
화풍탑재옥난간(和風搭在玉欄干)이다. 바람과 함께 옥난간에다 걸어 둔다.

수영버들이, 그 실 수영버들이 여러 가지가 해가지고 바람에 자꾸 휘날리니까, 그것을 어떻게 이렇게 거두어 잡지를 못해서 그냥 옥난간에, 바람과 함께 옥난간(玉欄干)에다가 걸어 둔다. (26분5초~39분32초)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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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
활구참선 최상승법2021. 5. 29. 16:56

§((160)) 정법을 믿고 한 생각 한 생각을 올바르게 간절하게 다져나가면 이 추한 육신(肉身)이 진리의 법신(法身)으로 대광명(大光明)을 놓게 될 수 있다고 믿는 것이 신심(信心)입니다 / ‘호귀(豪貴)에 득도난(得道難) / 우리의 한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곳에 바로 육도윤회가 거기에 있다.
(게송)귀래좌허실~ / 1초 동안 화두를 들면 1초 동안에 부처님이다. 하루를 여법(如法)하게 단속을 하고 정진을 하면 하루 동안에 성불이다. 이렇게 믿어야 합니다.

**송담스님(No.160)—1982년 신수기도 회향 법문(82.2.2) (용160) (활구참선. 최상승법)

 

 

약 17분.

 


지난 삼동(三冬) 대단히 추웠습니다. 그렇게 추워서 너무너무 추워서 이렇게 계속해서 추우면 얼어죽을 것 같지만 벌써 새해를 맞이해서 모레면 임술년 입춘(入春)을 또 맞이하게 됩니다.
‘입춘이 지나고 우수(雨水)가 돌아오면 대동강 물도 다 풀린다’ 그럽니다마는, 언제 어떻게 풀린 줄 모르게 동풍(東風)이 불어오고 화신(花信)이 전해오면 여기저기 또 진달래가 피고 산에 산에는 개나리가 벌겋게 피게 될 날이 머지않았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고생스럽다 하더라도 정법(正法)을 믿고 ‘이뭣고?’를 하면서 하루하루를 착실하게 보람있게 살아가노라면 금방 봄소식과 함께 우리의 가정에도 하나씩 둘씩 우리의 소원대로 되는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인생은 어피차 꿈과 같은 것이라고 과거에 모든 성현들이 다 말씀을 하셨습니다. 잘살아도 꿈이요 못살아도 꿈이요, 허망한 꿈이지만 정법을 믿는 사람은 그 허망한 속에서 허망하지 아니한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무상(無常)하고 허망한 속에서 진실한 것을 발견을 하게 됩니다.

허망한 일생 동안을 영원하게 살 수 있는 길을 찾는 것이 불법(佛法)이요, 최상승법입니다.

우리의 몸뚱이는 피와 오줌과 고름, 이런 지수화풍(地水火風)의 추(醜)한 것들로 구성이 되었지만 이 몸뚱이를 주재(主宰)하는 마음자리는 삼세(三世)의 모든 부처님의 그것과 조금도 차이가 없습니다.

정법을 믿고 한 생각 한 생각을 올바르게 그리고 간절하게 다져나가면 피와 오줌과 똥과 고름이 가득차 있는 이 추한 육신(肉身)이 진리의 법신(法身)으로 대광명(大光明)을 놓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될 수 있다고 믿는 것이 신심(信心)인 것입니다.
우리는 바다와 같이 깊고, 산과 같이 동(動)함이 없는 그러한 굳은 신심을 가져야만 되는 것입니다. 굳은 신심을 갖는다면 우리의 큰 소원은 의심 없이 이룰 수가 있는 것이며, 세속에 있어서의 조그마한 소원들도 어김없이 성취가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호귀(豪貴)에 득도난(得道難)이라, 호강하고 귀한 데에서는 도를 얻기가 어렵다’ 부처님께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선 배부르고 등 뜨시고, 호강하고 귀하니 아무것도 부러울 것이 없고 그러기 때문에 구태여 신심도... (녹음 끊김) ...견성성불이니 하나도 필요로 하지를 않는 것입니다.

벌집에서 한 방울 두 방울 떨어지는 그 꿀방울을 빨아먹는 동안에는 꿀의 단맛에 취해 가지고, 시시각각으로 자기가 매달려 있는 그 칡덩쿨이 흰 쥐, 검은 쥐에 의해서 계속 끊겨 들어가고 있다고 하는 사실을 망각하게 되는 것이고, 그 줄이 끊어지면 천길만길 우물 바닥에 떨어지면 그 우물 속에서는 독룡과 독사가 입을 벌리고 떨어지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하는 사실도 망각한 채 꿀물만을 빨아먹고 있는 그러한 형상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가난과 굶주림 속에서 오히려 도 닦을 마음을 발(發)하는 수가 많다 이것입니다. 우리의 마음대로 뭔 일이 잘될 때보다는 우리의 마음대로 잘되지 아니하고 정신적인 육체적인 물심양면으로 장애에 부딪치고 내 뜻과 같이 아니 될 때, 그때 발심(發心)해서 정법을 굳게 믿을 수 있는 기회를 삼는다면 그 사람이야말로 최상승법에 깊은 큰 인연을 심고 이 땅에 태어난 사람이라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물며 모든 부귀와 호강을 갖추면서도 그러한 데에 빠지지 아니하고 겸허하고 청정한 마음으로 정법을 믿고 최상승법을 실천한 사람이야 더 말할 나위가 없을 것입니다.

지옥에 떨어질 수 있는 함정은 도처에 도사리고 있습니다. 좋은 일에도 지옥의 함정은 있고, 나쁜 일에도 지옥의 함정은 있고, 동서남북 멀고 가까운 모든 곳에 지옥에 떨어질 수 있는 함정도 있고 천당에 올라갈 수 있는 계단도 있습니다.
우리의 한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곳에 바로 육도(六道)의 윤회(輪廻)가 거기에 있다고 하는 것을 이 최상승법에서는 강조하고 있습니다.


귀래좌허실(歸來坐虛室)헌디  석양재오서(夕陽在吾西)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수류원입해(水流元入海)요  월낙불리천(月落不離天)이니라
나무~아미타불~

귀래좌허실(歸來坐虛室)하니, 산으로 들로 가시밭길로 물로 동서사방으로 타향 객지(客地)로 돌아치다가 집으로 돌아와 텅 빈방에 앉았으니,
석양(夕陽)은 재오서(在吾西)로구나. 석양의 해, 저 서산 너머로 해는 여울여울 넘어가고 있구나.

무량겁을 두고 육도윤회를 하면서 오늘에 이르는 것이 바로 고향을 떠나서 타관(他官) 객지로 갖은 피눈물 나는 고생을 하면서 돌아다닌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다가 겨우 금생에 이 불법을 만나서 최상승법(最上乘法)에 돌아왔는데 해는 서쪽에 서산에 걸쳐 있구나.
벌써 나이 들고 몸은 늙어서 기운이 없고, 생각뿐이요 공부를 할려고 하면 자꾸 허리가 아프고 팔다리가 쑤시고 몸이 말을 안 듣고 자꾸 졸리고 온갖 망상은 퍼일어나고.

그러나 수류원입해(水流元入海)요  월낙불리천(月落不離天)이여.
물은 흘러서 흘러 흘러서 바다로 들어가고, 아무리 그 달이 천 개, 만 개의 물에 달이 떨어져 비추되 원래 그 달은 하늘을 여의고 떨어진 것이 아니더라.

아무리 죄가 많고, 아무리 육도윤회를 하고 갖은 업(業)을 짓고 고생을 하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하더라도 정법을 만나서 한 생각 한 생각을 잘 단속(團束)하고 잡드리해 가면 결국은 깨달음의 바다에 들어가고 말더라. 아무리 깊은 산중에서 조그마한 물줄기라 하더라도 끊임없이 흘르고 흘르면 차츰 강물에 도달하고 작은 강에서 큰 강으로, 큰 강에서 마침내는 바다에 도달하고 마는 것이여.

월낙불리천(月落不離天), 하늘에 비친 달이 천 개, 만 개의 물에 비춘다 해서 그 하늘의 달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요, 작아지는 것도 아니요, 광명이 줄어든 것도 아니여. 언제나 하늘에 있는 달은 고대로 있는 것이여.
달이 설사 떨어져 안 보인다 하더라도 하늘에서 떨어져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눈에서 보이지 아니할 따름인 것처럼, 중생의 육도윤회, 일념지간(一念之間)에 구백생멸(九百生滅)이 있는 그 번뇌망상 속에서도 조금도 물들지 아니하고 변함이 없는 진여불성(眞如佛性)의 자리.
우리는 그 도리를 보고 깨달아 증득하기 위해서 한 생각 한 생각을 허수히 보내지 말고, 허수히 하지 말고 그 한 생각을 돌이켜서 화두(話頭)를 거각(擧却)할 따름인 것입니다.

1초 동안 화두를 들면 1초 동안에 부처님이다.
1분 동안 화두를 단속해서 화두를 들면 1분 동안에 성불(成佛)이다.
하루를 여법(如法)하게 단속을 하고 정진을 하면 하루 동안에 성불이다.
이렇게 믿어야 합니다.

한 생각 잘못 먹으면 쏜살같이 지옥으로 떨어지는 것이고, 한 생각 탁! 돌이켜서 화두를 들면 바로 부처님이 된다고 하는 그 엄청난 사실을 우리는 잠시도 망각하지 말아야 되겠습니다.(26분43초~43분28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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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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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700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활구참선 최상승법2021. 4. 11. 16:13

§((066)) 기도 · 염불 · 독경 · 주력, 어느 문(門)이라도 내가 나를 깨닫는 정법(正法)으로 들어가는 좋은 방편(方便) / 강을 건넜으면 배[방편]는 버려라. 사교입선(捨敎入禪) / '한 생각' 단속이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는 중요한 열쇠 / '한 생각' 단속해 나가는 법이 바로 참선 공부.

관심일법(觀心一法) 총섭제행(總攝諸行) / 참선을 함으로써 지혜의 힘을 얻는 것, 그 지혜를 바탕으로 육바라밀(六波羅蜜)을 닦아야.
참선은 가장 간단하고도 쉬웁고도 누구라도—지식 유무(有無), 남녀노소, 빈부귀천도 상관없이—언제 어데서라도 공부할 수 있는 방법 / 무슨 생각이든, 일어나는 생각 바로 그놈을 가지고 「이뭣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라도 누구라도 할 수가 있다. 그런데 이 공부에 몸과 목숨을 다 바칠 만큼 절실해야 한다.

삼요(三要), 신념, 분심, 의심 / 선의(善意)의 경쟁을 하라 / 활구참선(活句參禪)과 사구참선(死句參禪) / 불법(佛法)은 무엇을 많이 따 담는 공부가 아니라, 그 마음에 모든 생각을 버리는 데에 있는 것. 빨리 버리는 방법은 「이뭣고?」 이 한마디뿐.
「이뭣고?」 이 한마디가 팔만사천 마구니, 팔만사천 번뇌를 굴복 받고, 마구니와 번뇌를 한 생각에 돌려서 팔만사천 묘법문(妙法門)을 만든다.

**송담스님(No.066)—1978년(무오년) 신수기도 회향(78.01.09.음) (용066) (활구참선)

 

 

(1/3) 약 11분.

 

(2/3) 약 15분.

 

(3/3) 약 10분.

 


(1/3)----------------

기도라든지, 염불이라든지 또는 경을 읽는다든지, 주력을 한다든지 이러한 것이 전부 내가 나를 깨닫는 정법(正法)으로 들어가는 좋은 방편(方便)의 하나입니다. 염불 · 독경 · 기도 · 주력, 어느 문(門)이라도 진실한 마음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반드시 정법으로 들어갈 수 있는 좋은 인연을 만나게 되고, 마침내는 정법에 들어가서 나를 깨달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부처님께서는 팔만사천 가지나 되는 많은 법(法)의 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중생이 각기 자기의 근기(根機) 따라서 어느 문으로 들어오든지 걸려들기만 하면은 드디어 정법 문안에까지 도달할 수 있도록 차례차례 층계를 놔 놓으셨습니다.
다행히 이 자리에 모이신 여러 신남신녀 여러분께서는 부처님께서 열어 놓으신 그 문에 들어오셔 가지고 들어오시자마자 금방 정법에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을 듣고 참선을 하실 수 있는 그러한 선택된 부처님 제자가 되신 것을 나는 진심으로 환영하고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정법을 만나지 못하고 계속 그 방편문에만 걸려 가지고 3년, 5년, 10년 내지 일생을 헤어 나오지를 못하고 그 방편의 단계에서 머물러서 계속 눈앞에 조그마한 복(福), 오욕(五慾)을 충족시키는, 탐진치(貪瞋癡) 삼독심(三毒心)을 충족시키는 그러한 데에 머물러서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는 그러한 가엾은 그러한 신도들이 아직도 한량없이 많이 있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금강경』에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 설한 이 법은 강을 건널 때 사용하는 떼배와 같느니라"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떼배라 하는 것은 강을 건너는 데 꼭 없어서는 안 될 그러한 소중한 기구입니다. 그 배가 없으면은 그 넓은 강을 건널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 배는 필요한 것이지마는 일단 그 강을 건너고서는 그 배를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강을 건너고 나서도 그 배를 계속 버리지를 못하고, '그 배로 인해서 내가 이 강물을 건넜으니까 얼마나 고마웁고 소중한 것이냐, 그러니 나는...' 이 배를 버리지를 못하고 계속 육지를 다니면서도 그 배를 짊어지고 육지를 돌아댕기는 그런 사람이 있다고 한다면은 우습고도 어리석은 사람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기에 계신 어느 불자(佛子)라도 전부 오늘 이 자리에 오시기까지는 그러한 작은 배, 조끔 더 큰 배, 한량없이 여러 개의 배를 타고 또 물을 건너고 또 타고 물을 건너고 해서, 오늘 이 자리에 까지 오셨습니다. 이 자리는 배를 짊어지고 걸어 다니는 그러한 장소가 아니라, 그 많은 배들을 깨끗이 그 강가에다가 버리고서 아무것도 손에 든 것이 없이 맨몸으로 이 자리에 나오셔야 됩니다.

그릇 속에 물건을 담을 때, 그 그릇 속에 어떠한 물건이라도 그릇 속에 채워져 있으면 그 그릇은 다른 좋은 것이 있다 하더라도 담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릇은 담기 위해서 만들어졌지만, 필요할 때 담고 또 그것을 바로 비워 놓아야 그다음에 더 좋은 것을 또 담을 수가 있는 거와 같습니다.

참선은 자기가 그동안에 보고, 듣고, 그리고 알고 있는 모든 지식, 모든 살림살이 모든 얻은 바를 깨끗이 버림으로써 바른 참선에 들어갈 수가 있습니다. 수십 권, 수백 권의 경(經)을 다 읽어서 능히 해설할 수 있다 하더라도 그러한 힘을, 그러한 능력을 속에다 지니고 있는 동안에는 그 사람은 바른 참선을 할 수가 없습니다.
팔만대장경을 육두 백판으로 다 외우고 다 능히 해설할 수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중생심(衆生心)으로 알고 있는 것이지, 그것이 바로 나의 생사 없는 도리를 깨달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마치 금가루가 그렇게 소중한 것이지마는 그 금가루를 눈에다 집어넣었을 때에는 그 눈은 병을 앓게 되는 것입니다.

밥이 아무리 소중하다 하더라도 있을 자리 가 있어야지, 밥이 기도(氣道)로 콧구먹으로 들어간다든지 눈 속에다 집어넣어 가지고서는 배가 부른 것이 아닙니다.
부처님 설하신 팔만대장경이 한 말씀 한 말씀 다 참된 말씀이고 소중한 말씀이지마는, 그것은 근기(根機)에 따라서 잠깐 강을 건너는 데 사용하고 바로 버려야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고인(古人)이 말씀하신 사교입선(捨敎入禪)입니다. '교(敎)를 버리고서 선(禪)에 들어간다'는 말씀입니다.

아까 순치황제가 중국에 천자(天子)로 19년 동안이라고 하는 세월을 참 훌륭하게 나라를 잘 다스렸습니다. 그러한 천자가 하루아침에 행방불명이 되었습니다.
그 순치황제의 출가하셔가지고 읊으신 시(詩)를 전강 조실 스님께서 그 일부를 말씀을 하셨습니다마는, 그 순치황제는 전생에 인도(印度)에서 도를 닦던 한 참선하는 스님이 어쩌다가 '한 생각' 잘못 먹어가지고 중국에 천자로 태어났습니다.

도를 닦은 사람뿐만 아니라 어떠한 사람이라도 '한 생각'이라고 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한 생각 자칫 잘못 먹어가지고 일생을 망치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한 생각 잘 먹어가지고 일생을 행복하게 살아가는 사람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래서 이 한 생각이라고 하는 것은 우습게 알고 그럭저럭한 한 생각을 우습게 알고 그럭저럭 그렇게 해서 일생을 지내가고 있는 것, 이것이 바로 우리 중생의 생애이지마는 제일 소중하고 무서운 것은 이 '한 생각'인 것입니다.

금은보화, 산더미 같은 금은보화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심결에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그 '한 생각'을 어떻게 잘 단속을 해 나가느냐? 하는 그 문제야말로 우리의 무량겁을 두고 윤회(輪廻)해 내려오는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고, 가깝게 봐서 일생 동안을 행복하게 살 수도 있고, 불행하게 살 수도 있는 그러한 중요한 열쇠가 되는 것입니다.(2분8초~12분34초)




(2/3)----------------

달마스님 『혈맥론(血脈論)』에 “관심일법(觀心一法)이 총섭제행(總攝諸行)이라. 마음을 관(觀)하는 한 법이 모든 행을 다 섭(攝)한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마음을 관(觀)한다' 하는 것은 바로 참선을 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참선만 하면은 일체 행(行)이 그 가운데 다 제절로 갖추어진다는 말씀입니다.

대승(大乘)은 육바라밀(六波羅蜜)을 닦는 것이 대승보살의 과제입니다마는 그 육바라밀이 첫째, 보시(布施)를 할 것, 둘째, 계율(戒律)을 지킬 것, 셋째에 인욕(忍辱)을 할 것, 넷째에 정진(精進)을 할 것, 다섯째에 선정(禪定), 마음을 고요히 할 것, 여섯째, 지혜(智慧)를 닦을 것. 이렇게 육바라밀, 여섯 가지 저 언덕에 건너가는 좋은 법입니다.
그 여섯 가지 중에 무엇이 제일 소중하냐? 전부가 다 하나도 버려서는 안 될 소중한 것이지마는 그중에 가장 근원적인 것은 맨 끝에 있는 지혜바라밀(智慧波羅蜜)입니다.

지혜는 어디로부터 나왔느냐? 참선(參禪)을 함으로써 지혜의 힘을 얻는 것입니다.
참선을 해서 지혜를 얻어서 그 지혜를 바탕으로 한 보시라야 그 보시는 옳은 보시가 되는 것이고, 그 지혜를 바탕으로 한 계율이라야 그 계율은 참으로 옳은 계율이 되는 것이여. 그 지혜를 바탕으로 한 인욕이라야 그 인욕이 참 바른 인욕이며, 지혜를 바탕으로 한 정진이라야, 지혜를 바탕으로 한 선정이라야 다 옳은 법이 되는 것입니다.

지혜가 없는 어리석은 마음으로 보시를 했댔자 그것은 유루복(有漏福)에 지내지 못한 것이고, 계율을 지켜도 지혜가 없이 지킨 계율은 천상에는 태어날 수 있지마는 금방 복(福) 다 받으면 다시 떨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인욕도 지혜 있는 인욕이라야지, 어리석게 억지로 참기만 위주로 해서 한다면 단박 가슴이 아프고 목이 아프고, 골치가 아프고, 가슴앓이 속병이 생겨가지고 결국은 병만 쳐주고, 그 억지로 참은 것이 한 번, 두 번, 세 번, 열 번, 스무 번 일생 동안을 억지로 참다 보면 나중에 여러 번 참다가 그놈이 축적이 되어가지고 터질 때는 무서운 위력을 내가지고 자기 신세 망치고, 집안을 쑥대밭을 맨들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은 환자가 되어가지고 늙발에 한숨으로 세월을 보낼 수밖에는 없게 되는 것입니다.

지혜를, 우리에게 급(急)한 것은 그 지혜가 제일 급한 것입니다.
그 지혜를 얻는 가장 간단하고도 쉬웁고도 누구라도 언제 어데서라도 공부할 수 있는 방법이 바로 참선법입니다. 참선은 지식의 유무(有無)도 상관이 없고, 남녀와 노소와 빈부귀천도 상관이 없습니다.

참선(參禪)이라 하면은 '꼭 절에 와서 그래가지고 조용하니 죽비(竹篦)를 치고 앉아야만 참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렇지 못하면 참선은 못하는 것이다. 집안에서는 일이 많아서 참선은 못 합니다' 이렇게 노상 그 말씀을 하시는 분이 있습니다마는 참선은 일이 많고 적고 그것도 상관이 없고, 차 속이나 또는 시장 바닥이나 가정이나 또는 절이나 어디서라도 상관이 없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참선은 앉고 눕고 또는 서서 걸어 다니고 그러한 위의(威儀)에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누웠어도 생각은 일어났다 꺼졌다 하고, 앉었을 때에도 생각은 이 생각 저 생각이 번갈아 드나들고, 걸어 갈 때도 이 생각 저 생각이 일어났다 꺼졌다 한 만큼 그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그 생각—그 생각이 좋은 생각이건, 악한 생각이건, 과거 생각이건, 무슨 슬픈 생각이건, 괴로운 생각이건, 무슨 생각 이건 상관이 없습니다.
그 일어나는 생각 그놈을, 바로 그놈을 가지고 「이뭣고?」 이렇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라도 누구라도 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괴로운 생각, 억울한 생각, 슬픈 생각 그러한 생각이 속에 꽉 차 가지고 그 생각을 없애야만 참선이 될 텐데, 그런 생각이 있기 때문에 못한다' 이리 말씀하시는데, 그것은 아직 참선하는 법을 잘 모르시기 때문에 하시는 말씀입니다.
슬픈 생각이 일어나더라도 그 무엇이 들어서 그 슬픈 생각을 하는가? 「이뭣고?」
몸이 아파도—'몸이 아파서 공부를 못합니다'—몸이 아픈 줄 아는 놈이 무엇이냐? 그 말이여. 무엇이 그렇게 아픈 줄을 아는가? 그 아픈 줄 아는 생각만 있으면은 그 사람은 참선을 할 수 있는 충분한 힘과 자격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외롭고 괴롭고 슬프고 노여움이 잠시도 쉬지 않고 일어나고 있는 그 사람이야말로 가장 참선을 잘할 수 있는 선택된 사람이라고 나는 단언을 합니다.
슬픈 생각도 없고, 괴로운 생각도 없고, 억울하고 분한 생각도 없는 목석(木石)처럼 그러한 사람은 참선을 할 수가 없습니다. 아무 생각이 없어가지고 그런 사람은 정신병원이나 갖다 놓을까, 아무 쓸데가 없죠?

그러나 욕하면 썽낼 줄 알고, 신경질도 잘 내고, 슬픔에 가슴이 꽉 차서 어쩔 줄을 모르고, 이 세상에 태어나서 정말 행복이 무엇인 중을 모르고, 육체적으로 온갖 병이 들어 있고 정신적으로 많은 충격을 받아가지고 정말 정신과 육체가 한목 병들어서 죽을 길밖에는 없다고 이렇게 인생을 포기하는 그런 사람일수록에 이 정법(正法)에 귀의(歸依)해서 바른 스승을 만나가지고 죽을 셈 치고 대들기만 한다면 오히려 그러한 사람이 훨씬 더 도(道)를 깨닫기가 쉬웁고 좋은 것입니다.
그만한 인생을 전부를 아주 포기할 그러한 막바지에 도달한 그 사람은 한번 이 문에 들어와서 정법을 만났다 하면 다시는 다른 데에 정신을 빼앗길 필요가 없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이것이 이렇게 누구라도, 어떠한 사람이라도 하면 될 수 있는 것이고, 할 자격이 있는 것이지마는 정말 이 몸과 목숨을 다 바치고 다시는 딴 데 한눈을 팔지 아니할 만큼 그만큼 절실한 사람이 아니면 아니 됩니다. 그 점이 하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공부를 할려면은 첫째, 나도 하면, 나도 옳은 법을 배워 가지고 옳은 방법으로 열심히만 하면 금생에 결정코 깨달을 수가 있다. 내가 지금 울 줄도 알고, 성낼 줄도 알고, 웃을 줄도 알고, 눈으로 볼 줄도 알고, 괴로워할 줄도 아는 바로 이놈이 나의 불성(佛性)이요, 나의 마음자리다. 이것은 모든 불보살(佛菩薩)의 마음과 조끔도 차등이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오늘날까지 육도윤회(六途輪廻)를 하고 있는 것은 그 법을 바로 만나지 못했거나 만났더라도 열심히 도를 닦지 않기 때문에 오늘날까지 이렇게 생사(生死)에 윤회를 하고 있는 것뿐이다. 나는 다행히 이 법을 알았으니 이제 어디에 이 몸과 목숨을 바칠 곳이 있는가? 오직 나는 이 한 법을 위해서 이 목숨과 이 몸을 다 바칠 수가 있다. 나는 금생에 결정코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다고 하는 이러한 굳센 신념(信念)을 가져야 됩니다.

여러분은 오늘 이 자리에서 아직도 그 신념이 투철하지 못한 분은 이 자리를 기해서 철석(鐵石)같이 그 신념을 가지실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또 그러한 신념을 가지시기를 저는 간곡히 빌어 마지않습니다. 그 신념이 있은 위에라야 우리의 공부는 바로 들어갈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서 둘째로 필요한 것은 분심(憤心)입니다.
과거에 도인(道人)들, 과거에 부처님과 많은 성현들은 진즉 이 법에 의지해서 생사 문제를 해결을 하셔가지고 중생 교화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어찌 그러한 불보살과 성현들과 똑같은 마음자리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이렇게 생사의 고해(苦海)에서 맴돌고 있는가? 이러한 점에 대해서 분심을 낼 줄을 알아야 합니다.

어린 국민학교 학생들도 자기보다 공부를 잘하는 사람을 보면은 분이 나서 집에 와가지고 울면서 숙제를 하고 그래가지고 밤잠을 안 자면서 공부를 해가지고 그다음에 시험 볼 때는 더 잘할려고 발버둥을 치거든, 벌써 아들과 딸을 둘씩, 셋씩, 다섯씩, 여섯씩 나서 키워 가지고 어머니,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어 가지고 내가 내 생사 문제를 해결하는 문제를 만나가지고 분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은 이것은 말이 안 되는 것입니다.
돈, 이웃집은 돈을 잘 벌고 자기는 잘 못 버는 그런 것을 보고는 입을 삐쭉빼쭉하고 시기를 낼 줄 알면서 내가 나의 영원한 행복을 얻는 이 참선에 대해서 그러한 분심을 느낄 줄 모른다면 이것은 가엾기 그지없는 일인 것입니다.

이 참선은 언제나 저는 선의(善意)의 경쟁을 하도록 권고하고 있습니다. 선방에 방부(房付)를 들이고 공부하시는 보살님네들, 한 분이 잠을 조끔이라도 덜 자고 공부하려고 애를 쓴 분이 있으면 자기도 따라서 공부를 하려고 애를 써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의의 경쟁을 하는 데에서 반드시 공부에 힘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또 가정에서 생활하시는 여러분들도 자기의 친구, 이웃, 아는 분들이 시간을 아껴서 그 시간을 쪼개서 정진하려고 애쓰는 분이 있으면 그이를 헐고 뜯고 미워할 것이 아니라, 거기에서 샘을 좀 내서 '나도 그 사람에게 지지 않고 더 공부를 잘하리라' 하는 이러한 선의의 경쟁심을 내고, 서로 충고하면서 보다 더 공부에 유익하도록 충고하고 노력을 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21분7초~35분40초)




(3/3)----------------

첫째, 신념. 둘째, 분심. 그리고 셋째에 가서는 선지식(善知識)으로부터 받은 화두(話頭), 화두에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한 간절하고 철저한 의심 덩이[疑團]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참선에는 활구참선(活句參禪)과 사구참선(死句參禪), 두 가지로 노나서 가려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경을 많이 보고, 설교를 많이 듣고 하는 또 다른 또 학식이 있고 그런 사람은 노상 어떠한 문제를 당했을 때 자기가 가지고 있는 상식과 지식을 총동원해 가지고 이리저리 분석해서 그럴싸한 결론을 내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렇게 결론을 따져서 결론을 내려야만 결론을 얻어야만 시원함을 느낍니다. 그러나 이 참선은, 활구참선은 이론적으로 따져서 어떠한 결론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이 참선을 다른, 사회의 어떤 수수께끼나 어떠한 문제들과 같이 이론적으로 따져서 결론을 지을려고 하고 그러한 방법으로 참선을 해 나가고 있는 사람은 활구참선이 아니라 사구참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구참선(死句參禪)이라 하는 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아무리 따져서 훌륭한 해답을 얻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깨달음이 아니라 중생(衆生)의 알음알이에 불과한 것입니다. 중생의 알음알이는 아무리 좋은 그럴싸한 알음알이라 하더라도 생사윤회(生死輪廻)에 원인이 되는 것뿐인 것입니다.

참선은 쉬웁게 말해서 무엇을 많이 읽고, 많이 듣고, 많이 생각해서 많이 속에다가 따 담는 공부가 아니라, 이미 자기 마음속에 들어 있는 모든 좋은 생각, 나쁜 생각, 심지어 불교의 교리까지 다 경전에 있는 말씀까지도 깨끗이 내쏟아 버려야 됩니다. 내쏟아 버려야만 그 마음이 정말 청정(淸淨)해지기 때문에 청정한 마음으로 참선을 해야 깨달음에 도달한 것입니다.

아까 말씀드린, 금가루도 눈에 집어넣으면 안질(眼疾) 병이 생기는 것뿐인 것입니다. 아무리 부처님 말씀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마음속에다 넣고 이리저리 중생심으로 그것을 따둑거리고 이리저리 뒤적거리고, 분석하고 종합하고 있는 동안에는 중생의 경지, 중생심을 한 걸음도 벗어나지를 못한 채 죽음을 맞이하고, 그러한 사람은 두고두고 육도윤회를 할 길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하루빨리 생사의 고해(苦海)에서 해탈(解脫)하고자 하시는 분은 이론적으로 따지는 버릇을 놔야 합니다.

다못 「이뭣고?」

슬플 때도 「이뭣고?」 기쁠 때도 「이뭣고?」 괴로울 때도 「이뭣고?」 몸이 아플 때도 「이뭣고?」 앉았을 때나, 섰을 때나, 누웠을 때나, 걸어갈 때나, 차를 탈 때나,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아니하고 다못 「이뭣고?」 이렇게 한 생각 한 생각을 단속해 나간다면,
슬픈 그 마음도 나로 하여금 깨달음에 이르게 하기 위한 하나의 발판이 되어 주는 것이고, 썽내는 마음이 불같이 일어나는 그 찰나에 바로 그 생각으로 「이뭣고?」 이렇게 단속해 나갈 때 불같이 일어났던 그 썽내는 그 한 생각이 나로 하여금 해탈도로 들어가는 하나의 발판이 되어 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한 생각, 한 생각을 단속해 나간다면 일구월심(日久月深), 날이 가고, 달이 감에 따라서 그 사람은 차츰차츰 마음이 착해지고 마음이 비워져서, 바로 속에 똥과 오줌과 피와 고름이 가뜩 들어있는 채, 불보살의 경지에 가까와가고 있는 것입니다.

불법(佛法)은 무엇을 많이 따 담는 공부가 아니라, 자기에게 있는 것을 자꾸 버리는 데 있는 것입니다.

보시(布施)라고 하는 것을 보통 내게 있는 돈과 물질을 남에게 베풀어 주는 것이 보시라고 이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마는 그것은 '참보시'가 아닙니다. 참보시에 들어가는 껍데기 보시, 초보적인 보시에 지내지 않은 것입니다.
참보시는 물질적인 것보다도 그 마음에 모든 생각을 버리는 데에 있는 것입니다.

물론 말 한마디라도 남에게 잘 말을 해서 그 사람으로 하여금 마음에 편안함을 얻게 하고, 부처님의 말씀 한마디라도 아는 대로 일러주어서 그 사람으로 하여금 발심(發心)할 수 있는 동기가 되도록 해주는 그런 것도 역시 보시가 됩니다.
그러나 근원적인 보시는 내 마음속에 끊임없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좋은 생각, 나쁜 생각, 일체 과거 · 현재 · 미래의 모든 생각을 버리는 데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생각을 버릴려고 한다고 해서 버려지는 것이 아닙니다. 왜 그러냐?
버릴려고 하는 그 생각 또한 중생의 마음이기 때문에—호수에 물결이 일어나는 물결을 고요하게 만들려면 그 일어나는 물결을 없애려고 손을 대서는 아니 됩니다. 손대면은 다시 새로운 물결이 일어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에 모든 물결을 빨리 없애는 방법은 「이뭣고?」 이 한마디뿐인 것입니다. 이것은 삼천년을 내려오면서 역대조사(歷代祖師)와 성현들이 부처님의 팔만사천 묘법문(妙法門)에 의지해서 닦고 닦아서 오늘에 전해진 가장 훌륭한 법인 것입니다.
이 법(法), 한 법에 충실히 철저히 믿고 간절한 마음으로 노력을 해 간다면 육바라밀도 그 속에 갖추어 있는 것이고, 팔만대장경을 독파한 읽고 또 읽고 한 그 공덕도 그 속에 바로 갖추어 있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좋은 법을 만나가지고서도 믿지 아니하고 계속 여러 가지 방편, 크고 작은 낡아빠진 배들을 짊어지고 팔도를 돌아다니고 60, 70년 동안을 그 썩어 낡아진 배를 짊어지고 돌아다니는 분이 계시다면은 당장 이 자리에서 그 배를, 그 무거운 짐을 벗어 놓으십시오. 벗어 놓고 간단한 「이뭣고?」 하나를 터억 마음에 간직하고 하루하루를 살아가 보십시오.
이 「이뭣고?」 이 한마디가 우리의 팔만사천 가지의 마구니를 항복 받고, 팔만사천의 번뇌를 굴복 받고, 마구니와 번뇌를 한 생각에 돌려서 팔만사천 묘법문(妙法門)을 맨들아서 우리는 이 육신으로 대해탈도를 증득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을 오늘 이 자리를 빌려서 부처님과 많은 성현과 전강 조실스님을 증명으로 모시고 단호히 여러분 앞에 말씀을 드리는 바입니다.(35분43초~45분41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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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
활구참선 최상승법2021. 4. 7. 07:47

§((244)) (게송)주지경행수선우~ / 어떤 것이 착한 벗이던가? / 최상승법에 있어서는 일체(一切)가, 일체 삼라만상(森羅萬象) 두두물물(頭頭物物)이 선지식 아닌 것이 없고, 불보살(佛菩薩)이 아닌 것이 없어.

**송담스님(No.244)—1984년 8월 첫째 일요법회(84.08.05) (용244) (최상승법)

 

 

약 6분.


주지경행수선우(住止經行須善友)하고  신심결택거형진(身心決擇去荊塵)이니라
나무~아미타불~
형진소진통전로(荊塵掃盡通前路)하면  촌보불리투조관(寸步不離透祖關)하리라
나무~아미타불~

주지경행수선우(住止經行須善友)라. 머물러 있거나 또는 거닐으거나, 오고 가거나 행주좌와(行住坐臥) 간에 항상 선우(善友), 착한 벗, 좋은 벗을 항시 가까이 해라 그 말이여.
가까이 해 가지고, 신심결택거형진(身心決擇去荊塵)이니라. 몸과 마음에 가시와 가시덤불과 띠끌을 갖다가 깨끗이 씻어 버려라 그 말이여.

형진소진통전로(荊塵掃盡通前路)하면, 가시덤불과 띠끌을 다 쓸어 버리면은 앞길이 툭 트여. 도 닦아갈 앞길이 저절로 환히 열려서,
촌보불리투조관(寸步不離透祖關)하리라. 한 걸음도 옮기지 아니하고 바로 조사관(祖師關)을 뚫어버릴 것이다.

가시덤불과 띠끌이 무엇이던고?
버릴라고 하는 생각, 취(取)할려고 하는 생각이 바로 가시덤불이요 띠끌이다 그 말이여.

어떤 것이 착한 벗이던가?
광범위하게 말하면 부처님도 우리의 착한 벗이요, 역대조사와 삼세제불과 모든 선지식(善知識)도 착한 벗이요, 청정한 계율(戒律)을 지키고 수행하는 스님네들도 착한 벗이요, 다 같이 세속에 살면서도 불법을 믿고 훌륭한 마음을 가진 사람도 착한 벗이다.

어찌 그것만 착한 벗이겠는가?
나를 해꼬자 하는 웬수도 착한 벗이요, 이 세상에 모든 삼강(三綱)과 오륜(五倫)을 저버리는 나쁜 사람도 착한 벗이라. 왜 그것을 착한 벗이라고 하냐?
나쁜 짓 하고 나를 해꼬자한 사람을 보고 그대로 따라서 배우라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보고 '나는 그렇게 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한다면 그것도 배우는 것이요, 그것을 보고서 무상(無常)을 깨달아도 착한 벗이요, 그러한 것을 보자마자 화두(話頭)를 떠억 든다면은 어찌 그것들이 모두 착한 벗이 아니겠느냐?

최상승법에 있어서는 그래서 일체(一切)가—눈으로 보는 것, 귀로 듣는 것, 코로 냄새 맡는 것, 혀로 맛보고 손으로 만지고 뜻으로 아는 것, 일체 삼라만상(森羅萬象) 두두물물(頭頭物物)이 선지식 아닌 것이 없고, 불보살(佛菩薩)이 아닌 것이 없어.
그래서 버리고 취(取)할 것 없는 것이 바로 띠끌과 가시덤불을 쓸어버리는 도리(道理)여. 거기에 조사관(祖師關)이 어찌 안 열릴 것인가.


환갑 기념, 생일 기념, 모다 그런 기념으로 공양(供養)을 올리니, 맛있게 공양을 하시고 마음에 양식을 취해서 도업(道業)을 성취하시기를 다시 한번 축원하고. 보시자(布施者)의 모든 소원이 성취하시고, 이 자리에 참석하신, 앞으로 이 경전을 손에 드는 모든 사람의 소원도 다 함께 이루어지기를 축원하고 말을 마치고자 합니다.

못다 한 말을 주장자에게 맽기고 내려갑니다.(1시간14분16초~1시간19분55초)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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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700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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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
활구참선 최상승법2021. 3. 20. 13:49

•§•((119)) 말 도둑 이야기. 구두선(口頭禪), 의리선(義理禪)은 우리의 생사해탈과는 하등(何等)에 관련이 없다 / 여구두연(如救頭燃)의 간절한 마음으로 정진하라.

이 일이 결정코 어떠한 부처님의 입을 통해서 얻는다든지, 선지식이 어떠한 것을 준다든지 가르켜 준다든지, 천불(千佛)이 출세(出世)하시더라도 이 문제를 가르켜 줄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고 허는 사실, 결국은 내가 오늘 아침에 세수를 허고 밥을 먹고 이리 걸어 왔는데, 그 가운데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열쇠가 그 가운데 있는 것이지, 결코 남한테 배워서 알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허는 사실.

조실 스님께서 언젠가 법문하시기를, "농부는 쟁기를 지고 밭으로 가고, 숟갈을 들고 밥을 뜬 것이 밥으로 들어간다"고 허신 말씀은 지극히 평범(平凡)한 말씀이지마는, 우리가 그 평범한 한마디 말씀에서, 정말 그 평범한 일을 옳게만 본다고 한다면은 3천년 전에 납월팔일에 부처님께서 별을 보신 일이나, 농부가 쟁기를 지고 밭에 간다고 허는 일이 조끔도 차이가 있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전강선사(No.119)—1972년(임자년) 1월 관음재일 법문(송담스님, 전강선사 두 분 법문) (임자72.01.24) (전119) (활구참선최상승법)
**전강 조실 스님께서 송담스님에게 법문을 하라고 명령을 하셔서 말씀하신 법문.(법상에 올라가시지 않고 서서 법문하심)

 

 

약 13분.

 


<송담 스님 법문>

어느 책을 읽으니까 이런 얘기가 써졌어요.

어떤 사람이 아주 좋은 말을 한 마리 기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그 말을 도둑을 맞었어요. 그래서 그 근처를 모다 찾고, 이웃 마을로 모다 수소문을 해서 자기 말, 혹 자기 말이 어디 있는가 하고 백방(百方)으로 찾아보았습니다마는 전혀 알 길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말은 꼭 한 마리를 사야만 또 먹고살게 되겠기에 말 장(場)에를 갔습니다.
가서 보니 여기저기 검은 말, 붉은 말, 흰 말, 크고 작은 많은 말들이 수백 마리가 나와 있고, 또 말을 팔러 온 사람, 사러 오는 사람, 흥정꾼, 거간쟁이 모다 해서 득실거리고 있는데, 자기도 좋은 말을 한 마리 고르려고 이 갓에서 저 갓으로 왔다갔다허면서 보다가 보니 자기가 기르던 도둑맞은 말이 있어요.

그래서 반개해 가지고 "이게 내 말!" 이라고 허니까, 그 말을 끌고 온 사람이 "여보시오, 당신 눈이 멀었소? 이 말은 내가 10년이나 기른 말인데 무슨 잠꼬대 같은 소리 허냐?"고, "무슨 피랭이 쓴 놈은, 무슨 장바닥에 피랭이 쓴 놈은 전부 당신 할아버지요?" 허고 따지고 달라들어서 입장이 퍽 곤란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까딱하면 그 남의 말을 생으로 뺏을라고 허는 그런 그 도둑놈으로 되몰리게 되었어요. 그래서 그 사람이 한참, 잠깐 꾀를 냈습니다.

갑자기 그 말의 두 눈을 두 손으로 가리우면서 "당신이 이 말을 10년이나 길렀다면은 이 말에 대해서는 잘 알 터이니, 그러면 이 말은 눈이 좋지 못해요. 눈이 멀어가지고 잘 안 보이는데 이 말의 왼쪽 눈이 나쁘요? 오른쪽 눈이 나쁘요?" 하고 물었거든요.
물으니까 그 사람이—아, 그 엊그제 저녁에 도둑질해다가 지금 파는데 눈이 좋고 나쁜 것을 알 턱이 없잖습니까? 그러나 '모른다'고 허면은 안 되게 생겼고, 그래 그냥 덮어놓고 그냥 "왼쪽 눈이 나쁘요" 허고 대답을 했단 말이여.

만약에 맞으면 다행이고, 안 맞으면 또 달리 변통을 헐 폭 대고 "왼쪽 눈이요" 허니까, 그 사람이 "아니요, 이 말은 왼쪽이 나쁜 게 아니라 실지는 오른쪽이 나쁘요" 그렇게 허니까는 그 말 도둑놈이 "아! 참 오른쪽이요, 내가 잠깐 착각을 했지, 오른쪽이요" 허니까는,
그 말 주인이 "아니요, 사실은 오른쪽도 나쁘지가 않소. 이 말은 두 눈 다 멀쩡합니다" 허고 두 손을 딱 떼네니깐 거그 모다 구경꾼들과 말 도둑놈이 보니까 두 눈 다 멀쩡허거든요.

그러니깐 뭐라고 변명할 길이 없어서 그냥 사람 틈을 빠져나가서 도망칠라고 하다가 옆에 사람들이 "저놈! 말 도둑놈 잡어라" 해 가지고 붙잡아서 관청에다 인계를 했습니다. 그래 가지고 그 사람은 그 자기 도둑맞은 말을 감쪽같이 찾아 가지고 집으로 돌아온 일이 있습니다.
제가 이 말을 왜 하는고 하니는, '부처님께서 납월팔일(臘月八日)에 별을 보고 견성오도(見性悟道)를 허셨다' 이렇게 과거로부터 그렇게 전해 내려오고, 우리들도 다 역시 그렇게 믿고 알고 있고,
'부처님의 성도(成道)는 새벽에 그 동천(東天)에 떠오르는 샛별을 보시고 깨쳤다'고 허는 것은 경전마다 또 구전(口傳)으로 이렇게 전해 내려오고, 역대 고인(古人)들이 거기에 대해서 모다 게송(偈頌)을 모다 읊으시고 모다 그래 내려왔습니다.

따라서 우리도 그 성도재일(成道齋日)엔 모다 선방마다 용맹정진(勇猛精進)을 허고, 뜰에 나가면은 '부처님이 보고 깨치신 별이 저 별인가? 나도 그 별을 보고 나도 이러다가 혹 깨치지 않을라나' 이러한 희망도 품게 되고 그렇게 되는데.
부처님이 출현허신 뒤로 3천년 동안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부처님의 법(法)과 조사 스님네의 법에 귀의(歸依)를 해 가지고 그 말씀 한마디에 의해서 생사해탈허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참 먹는 거, 입는 것을 다 불고(不顧)하고, 잠자는 것도 불고하고,
그래 가지고 자나깨나 이 눈을 뜨기 위해서 몸부림을 치고, 사서 고생을 허고 나아가서는 청춘과 일생과 모든 재산과 처자권속까지도 전부 다 팽가치고 머리를 깎고 산중에서 일생을 고생을 사서 하면서 홀애비 독신으로 이렇게 평생을 참 기가 맥히게 그렇게 보내고.

그리고도 그 생에 해결이 안 되면 '다시 내생(來生)에 또 몸을 받아 가지고 또 이것을 허리라' 해 가지고 결국은 미륵불이 출현, 56억 7천만년 후에 미륵불(彌勒佛)이 출현허실 그때까지라도 기어니 이 문제를 해결해야만 내가 말지, 그렇지 않고서는 천하 없는 것이 내 앞에 어리대더라도 '눈 한 번 거들떠보리라' 허는 그런 생각이 없이 이렇게 지내고 있고.
또 마을에 계신 청신사 청신녀께서도 모다 부부와 자녀와 일가친척과 가정에 모든 운영, 경영 문제, 갖은 복잡한 일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여기까지 다달이 한 달이면 몇 번씩 이렇게 선지식(善知識) 스님네 법문(法門) 한마디 듣기 위해서 이렇게 오신 것도 역시 출가해서 일생을 지내는 그런 스님네와 그 마음에 있어서는 역시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이 일이 결정코 어떠한 부처님의 입을 통해서 얻는다든지, 선지식이 어떠한 것을 준다든지 가르켜 준다든지, 천불(千佛)이 출세(出世)하시더라도 이 문제를 가르켜 줄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고 허는 사실,
결국은 내가 오늘 아침에 세수를 허고 밥을 먹고 이리 걸어 왔는데, 그 가운데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열쇠가 그 가운데 있는 것이지, 결코 남한테 배워서 알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허는 사실.

조실 스님께서 언젠가 법문하시기를, "농부는 쟁기를 지고 밭으로 가고, 숟갈을 들고 밥을 뜬 것이 밥으로 들어간다"고 허신 말씀은 지극히 평범(平凡)한 말씀이지마는,
우리가 그 평범한 한마디 말씀에서, 정말 그 평범한 일을 옳게만 본다고 한다면은 3천년 전에 납월팔일에 부처님께서 별을 보신 일이나, 농부가 쟁기를 지고 밭에 간다고 허는 일이 조끔도 차이가 있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말 도둑 얘기를 아까 했습니다마는, 자기가 10년이나 길르지 않는 말, 남의 말을 훔쳐 온 말, 다시 말하면 그 말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은 두 눈을 가리우고 물어보면 '왼쪽 눈이 멀었다'고 했다가, 그것도 아니다고 허면 '오른쪽 눈이 멀었다'고 했다가, 도저히 말 말이 허는 소리가 점점 책잽히고 도둑놈이 드러나는 일밖에는 없지 않겠습니까?
정말 10년을 길러서 말을 잘 길르고 있다, 그 말을 잘 아는 사람이라면은 그 말을 보지 않고라도 그 말에 대해서는 소상하니 다 알 것이고, 눈을 가리웠거나 안 가리웠거나 어느 눈이 좋고 나쁘고 헌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한마디, 두 마디, 스님네한테 또는 경전을 통해서 불법의 이치나 교리적인 거, 또는 참선하는 무슨 선문(禪門) 중에 법담(法談), 이런 것을 한마디, 두 마디 들어서 알아 가지고 그런 것으로써 살림을 삼는다고 헌다면은 아까 말장수처럼 '왼쪽 눈이 나쁘다' 했다, '오른쪽이 나쁘다' 했다, 그것도 '아니다'고 하면은 도둑 도망갈 길밖에는 없지 않습니까?

도대체 배워서 알고, 들어서 알고, 보고 듣고 허는 것을 자꾸 많이 모아 가지고 자기의 살림을 삼는다고 하는 것은 영원히, 영원히 점점 진짜 참 공부와는 멀어지는 길밖에 없는 것이니,
그러한 보고 또는 듣고 또 귀동냥해 가지고 그래 가지고 불교에 대한 교리나, 선(禪)에 대한 선문답(禪問答), 이런 것을 많이 듣고 아는 것으로써 살림을 삼는 이 문제는 사부대중 전체, 또 저 자신에게도 해당되는 말이라고 생각하고 말씀을 드립니다.

그러한 태도로 공부를 해 가지고서는 결국은 이것은 구두선(口頭禪)이요, 의리선(義理禪)에 지내지 못한 것이라 우리의 생사해탈과는 하등(何等)에 관련이 없고, 오히려 점점 참길에서 멀어질 따름이라고 하는 사실을 우리는 다 같이 명심(銘心)을 해야겠습니다.
법문을 많이 듣고 자주 듣는 것도 우리 수행하는 데 퍽 요긴하리라고 생각하지마는,
조실 스님께서 일러주신 '판치생모(板齒生毛)' 그 화두 한마디 위법망구(爲法忘軀)적으로, 법을 위해서 내 몸뚱이를 잊어버리는 그러헌 신심과, 수염에 불 덩근 여구두연(如救頭燃), 머리나 수염에 불 덩근 사람이 무슨 다시 더 다른 것을 생각할 겨를이 있겠습니까? 천하 없는 일이, 부모가 돌아가셨다 허더라도 우선 수염의 불부텀 꺼야지, 어떻게 헙니까?

그러한 철저한 무상(無常), 금방 우리가 한 숨 내쉬었다가 한 호흡 들어마시지 못하면은 그것이 내생(來生)이니, 수염에 불 끄듯이 그렇게 간절한 마음으로 정진을 하셔서 어쨌든지 조실 스님 생존하셨을 때에 정말 조실 스님을 흐뭇하게 해 드릴 수 있는 진실한 제자가 되시기를 간절히 부탁합니다.(박수) (10분11초~22분39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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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 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 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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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
활구참선 최상승법2021. 2. 19. 14:31

§((054)) 활구참선이 정법(正法), 사구참선은 사법(邪法). 사구참선은 깨달을 기약이 없다 / 활구(活句)와 사구(死句) /보고, 듣고, 느끼는 그 찰나에 보고, 듣고, 느끼는 그것을 발판으로 해서 '이뭣고?'로 돌아와야.

착상구불(着相求佛), 무엇을 바래고 구하는 상(相)에 착(着)한 수행은 방편에 얽매인 것 / 무위심내기비심(無爲心內起悲心), 응무소주이생기심(應無所住而生其心) / 선지식께 받은 본참화두 하나를 일여하게 밀고 나가야 / 화두 하나 제대로 들고 올바르게 단속해 나갈 줄 알면은 참선은 문제가 없다.

**송담스님(No.054)—1977년 9월 관음재일(77.09.24) (용054)

 

약 21분.


참선이라고 해서 다 정법이 아닙니다. 일체의 방편, 부처님의 설법 가운데 참선법이 제일이지마는 그 참선도 정법과 사법이 있습니다. 정법은 활구참선(活句參禪)이 이것이 정법(正法)이고, 사구참선(死句參禪)은 이것은 사법(邪法)인 것입니다.

어떠한 것이 활구(活句)며, 어떠한 것이 사구(死句)냐?

'살 활(活)' 자, 활구참선. '죽을 사(死)' 자, 죽은 사구참선, 활구참선은—이론과 어떠한 이로(理路), 어로(語路), 이론적으로 교리적으로 또는 철학적으로 따져서 알아 들어가는, 이리저리 따져 보고 비교해 보고 그러한 참선은 이것은 아무리 밤잠을 안 자고 한다 해도 그러한 참선은 활구참선이 아니고 사구참선입니다.
사구참선은 죽을 때까지 무량겁을 해도, 56억 7천만 년 뒤에 미륵불이 출세하실 때까지 앉아서 용맹정진을 한다 해도 그것은 깨달을 기약이 없는 것입니다. 단 일 분을 하고, 단 한 시간을 하더라도 참선을 할 바에는 활구참선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론적으로 따지지 말고, 자기가 아무리 『금강경』, 『법화경』, 『화엄경』, 『능엄경』 모든 경전을 종횡으로 육두 백판으로 외우고 교리적으로 환히 안다 해도 이 참선하는 데 있어서 그 알고 있는 교리적인 지식, 상식 그러한 것을 이 참선에다가 끌어들여 가지고 이용을 해서는 아니 됩니다.
그러한 것을 동원해 가지고 이 화두를 이리저리 분석해 보고 따져 보고, 비교해 보고, 그래가지고 '아하! 그렇구나. 바로 이러한 뜻이로구나!' 이렇게 알아 들어가는 참선이 아니라, 그러한 교리 이론 따지는 그것을 놔 버리고 다못 알 수 없는 생각, 꽉 맥힌 생각으로 선지식(善知識)으로부터 지정 받은 화두 '이뭣고?'
'이뭣고?'면 '이뭣고?' 또는 '무자(無字)' 화두를 하는 분은 '무자' 화두, 또는 '부모미생전본래면목(父母未生前本來面目)'을 화두로 타신 분은 그 화두, '판치생모(板齒生毛)'를 하신 분은 '판치생모' 무슨 화두가 되었건 천칠백 공안(千七百公案) 가운데에 한 가지를 선지식으로부터 받아 가지고 그 화두 하나만을 다못 알 수 없는 생각으로 '이뭣고?'

비단 앉었을 때만 하는 것이 아니라, 서서 걸어 다닐 때, 밥 먹을 때, 똥 눌 때, 소지할 때, 빨래할 때, 또는 차를 탈 때, 어데서 언제 무엇을 하고 있건 간에 일어나는 어떠한 생각, 어떠한 생각이 일어나건—슬픈 생각이 일어날 때도 '이뭣고?' 기쁜 생각이 일어날 때도 '이뭣고?' 불같은 울화가 치밀어 올라 올 때도 퍼뜩 돌이켜서 '이뭣고?'
눈으로 어떤 꽃을 보거나, 나무를 보거나 또는 사람이 지나간 것을 보거나, 산을 보거나, 구름을 보거나, 새가 날아가는 것을 보거나 또는 귀를 통해서 새가 우는 소리를 듣거나, 차가 지나가는 소리를 듣거나, 어린아이가 고함을 지르고 우는 소리를 듣거나, 어떠한 것을 보건 듣던 간에 그때 그때마다 퍼뜩 생각을 돌이켜서 '이뭣고?'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공부를 하지 아니한 사람은, 이 참선 수행을 하지 아니한 사람은 눈으로 무엇을 보면은 당장 그 보는 데에 따라갑니다. 그래가지고 공연히 이 생각, 저 생각. 귀로 뭣을 들으면은 그 듣는 일로 해서 바로 나는 '이뭣고?'로 돌아와야 할 텐데 그러지를 못하고, 듣는 그 건으로 해서 이 생각, 저 생각, 10년 전으로 올라갔다가, 5년 전으로 내려왔다가 그러다가 공연히 속이 활딱 뒤집어졌다가, 혼자 웃었다가, 썽났다가 이렇게 해서 하루하루를 그러한 식으로 망상(妄想) 위에다가 또 망상의 가지를 피우고 그 망상 위에 또 망상의 꽃을 피우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입니다.

그러면은 그 이 생각 저 생각하고, 그 이 생각 저 생각하다가 골냈다가 웃었다가 그러다가 그 지나간 일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한 생각 한 생각했던 그것이 하나도 딴 데로 없어지지 아니하고 고대로 차곡차곡 우리의 마음자리, 제팔식(第八識) 속에 고대로 녹음(錄音)이 되는 것입니다.

녹음이 되고, 그 저장이 되어가지고 그것이 종자(種子)가 되고 원인(原因)이 되어서 앞으로 무량겁 윤회가 그 종자로부터서 그 원인으로부터서 윤회(輪廻)가 계속이 되는 것입니다.
한 생각이 한 행동으로 표현이 되고, 한 행동으로 해서 다시 또 생각이 거기에 이어지고, 생각과 행동이 서로—새끼가 왼손에 쥐었던 짚이 오른손으로 건너가고, 오른손에 잡았던 짚이 왼손으로 건너가고 그래서 이렇게 그 손이 움직여짐에 따라서 새끼가 꽈지듯이,
한 생각이 행동으로, 행동에서 또 다른 생각이 일어나고 그렇게 해서 무량겁 윤회의 원인이 되는 업(業)을 짓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공부를 하지 아니한, 참선을 하지 아니한 범부 중생의 생활이 되는 것입니다.

정법에 의지해서 참선을 하는 사람은 살아 있기 때문에 눈을 통해서 무엇인가 봐야 하고, 귀를 통해서 무엇인가 듣기 마련이고, 보고 들음으로 해서 무엇인가 느낄 수밖에는 없습니다.
그러나 참선하는 사람은 그 보고, 듣고, 느끼는 그 찰나에 보고, 듣고, 느끼는 그것을 발판으로 해서 '이뭣고?'로 돌아올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수행한 사람과 아니한 사람의 차이인 것입니다.

무엇인가 보던지, 무엇을 듣던지, 무엇을 생각하던지 간에 바로 둘째 생각, 셋째 생각으로 생각이 번져 나기 이전에 한 생각 일어나자마자 그것을 발판으로 해서 '이뭣고?' 이렇게 돌아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나로, 자아로 돌아오는, 나의 근본 마음으로 돌아오는 길이요, 나 자신으로 돌아오는 길이요, 부처님 나라로 돌아오는 길인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하루하루를 이렇게 살아가고 한 달, 한 달을 이렇게 살아가고 일 년, 일 년을 이렇게 단속해 나가면서 살아갈 때에 나에 몸안에 있는 자성불(自性佛)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견성성불(見性成佛)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이 바로 불법이요, 정법인 것입니다.

이 법을 충실히 이 법을 본업(本業)으로 해서 열심히 살아간 사람에게는 계율을 지키는 일, 또는 염불을 하는 일 또는 주문(呪文)을 외우든, 또는 기도를 하건, 어떤 경전을 반야심경을 외우건 또는 천수를 하건, 그 밖에 부처님께 예경을 올리건, 또는 오후불식이나 일종을 하건, 또는 방생을 하건, 또는 불쌍한 사람들에게 보시 공덕을 하건, 또는 노인이나 또는 일선 장병에 위문을 가건, 그 모든 것들이 하나도 버릴 것이 없는 좋은 조도(助道)가 되는 것입니다.

내 마음 닦는 참선을 하지 아니하고 정법을 닦지 아니하고 계행(戒行)만을 위주해서 닦음으로써 일생 수행을 삼는다던지, 염불을 해 가지고 극락 가기만을 바래 가지고 일생을 염불만을 한다던지, 또는 어떤 주문을 외워 가지고 어떠한 목적을 달성을 하기 위해서, 주문에 의지해 가지고 날이면 날마다 전전긍긍을 한다던지, 기도를 해 가지고 아들딸 잘되고, 사업이 잘되고, 아들이 대학에 합격하기를 바래고 그러한 물질적인 것, 모냥이 있는 것에 얽매어 가지고 계속 기도에 미쳐 가지고 돌아댕기는 그런 분.

절을 많이 하면은 업장이 소멸하고, 소원이 성취된다 해 가지고 삼천배, 사천배 절하는 것으로써 불법을 삼는다던지, 하루에 오후불식(午後不食)을 하면은 세세생생에 부자로 살고, 업장이 소멸하고, 죽어서 극락에 간다니까 평생에 오후불식하는 것으로써 불법을 삼는다던지, 일종(一種)을 하면 좋다니까 일종을 하는 것으로써 불법을 삼는다던지, 이렇게 해서 그러한 모냥이 있는 착상구불(着相求佛), 착상 수행, 상(相)에 착(着)해 가지고, 모냥에 착해 가지고 무엇을 바래고 구하는 그러한 불법을 믿는 사람, 이것은 모두가 다 방편에 얽매어 가지고 방편의 올개미에서 벗어나지 못한 그러한 불법인 것입니다.

그러한 방편에 얽매어 가지고 벗어나지 못한 불법(佛法)은 설사 그 사람이 삿된 고약한 마음을 가지고 있지 않다 해도, 그것이 정법이 아니기 때문에 그것은 사법(邪法)이 되는 것입니다. 방편에 얽매어 가지고 일생을 벗어나지 못한 사람은 아무리 그 사람이 마음이 선량하고, 정직하고, 점잖하고, 그 말할 수 없이 착하다 하더라도 언젠가는 그 사람은 사도(邪道)의 함정에 빠지고 마는 것입니다.

정법(正法)에 의지한 사람은 상(相)이 없는 가운데에 일체 선법(善法)을 닦을 수가 있는 것이고, 모든 선법이 그 사람에게는 다 선방편(善方便)이요, 정법의 조도(助道)가 되는 것입니다. 보조 수단이 되는 것이여.
그래서 똑같이 계율을 지키고, 똑같이 염불을 하고, 똑같이 주문을 외우고, 기도를 하고, 부처님께 절을 하고, 보시 공덕을 쌓고 방생을 한다 하더라도 정법에 의지한 사람이 하는 것과 사법에 의지한 사람이 하는 것과는 결과적으로 하늘과 땅의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제가 '염불을 하지 말아라. 천수를 외우지 말아라. 『반야심경』을 외우지 말아라. 『금강경』을 독송하지 말아라. 방생을 하지 말아라. 또는 일선 장병에 위문을 하지 말아라. 또는 노인에 보시 공덕 하지 말아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일들을 형편 닿는 한에 있어서 최선을 다해서 하시라는 겁니다.
하되 정법(正法)에 의지해서 참선(參禪)을 열심히 하면서 하는 그 마음으로 「무위심내기비심(無爲心內起悲心)」 함이 없는 마음 가운데에 자비심을 일으켜야 하는 것이고, 「응무소주이생기심(應無所住而生其心)」 뻑뻑이 머무른 바 없이 그 마음을 낸다. 이것이 바로 참선하는 마음으로 일체 보시, 선행을 행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행하는 그 자체는 남이 보기에는 똑같이 보이지마는, 그렇게 하늘과 땅의 차이가 있다고 하는 사실을 우리는 다 같이 명심을 하셔야 합니다.


활구참선(活句參禪)과 사구참선(死句參禪).

활구참선은 이리저리 따져서 알아 들어가는 것—이론적으로 따지고, 경전에 있는 교리를 등용을 해서 따지고, 자기가 어떤 스님한테 들은 법문을 듣고 이리저리 비교하고 따져서 '아하! 이것이로구나! 이렇구나! 아!' 그렇게 납득하고 고개를 끄덕끄덕하고 알아 들어가는 것은 마침내 그것은 아는 것이지, 깨닫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한 참선은 사구참선(死句參禪), 죽은 참선이기 때문에 영원히 해 봤자 깨달을 기약이 없는 것이라고 하는 것을 명심을 하시고.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어째서 무라고 했는고?' 또는 '이뭣고?'
아까 전강 조실 스님 녹음법문 가운데 '화두(話頭)는 어떠한 책이나 잡지나 신문, 그러한 데에서 보아 가지고 자기 나름대로 어떠한 화두를 선택하지 말고 반드시 선지식에게 딱! 하나를 받아 가지고 해야 한다'

자기 나름대로 어디서 지내가는 말로 듣거나, 책에서 봐 가지고 자기 나름대로 선택을 한 화두는 해 나가다가 '이것이 옳은 것인가, 그른 것인가? 이 화두가 좋은가, 나쁜가?' 자꾸 스스로 그것을 혐의를 하고 의심을 해 가지고 중간에 갈팡질팡을 하게 되기 때문에 공부가 크게 장애를 받게 돼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가 믿을 수 있는, 또 믿어지는 선배로부터 화두를 딱! 지정을 받아 가지고 한 번 받았으면은 다시는 그것을 변경을 하지 말고 확철대오(廓徹大悟) 할 때까지 일여(一如)하게 밀고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어떠한 사람이라도 어떠한 화두라도 처음부터 순일무잡(純一無雜)하게 되어 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처음에는 곧 잘될 것 같다가 얼마 동안 해 가면 영 답답하고 화두가 잘 들리지를 아니하고, 점점 화두가 들리지 아니하면서 그 애를 먹는 경우가 얼마든지 있는 것입니다.
그러더라도 딴생각을 내지 말고, 잘 그 마음을 써서 한 생각 한 생각, 일 분 일 분을 법(法)답게 간절히 공부를 지어 나간다고 하면은 반드시 그렇게 애를 먹고 답답하고 몸부림치도록 애를 먹혔던 그 화두가 들려고 안 해도 정말 제절로 화두가 들리면서 순일무잡하게 정진이 되어가는 때가 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 간다 해도 좋아하는 생각을 내지 말아야 합니다. 좋아하는 생각 '아! 인자 되었다. 참! 좋다. 앞으로 계속 이렇게 되었으면' 이러한 생각을 먹게 되기 마련입니다마는 그 생각이 고약한 망상 중에는 최고 가는 고약한 망상인 것입니다.

보통 때, 이 생각 저 생각 떠오른 것은 뿌리 없는 생각이기 때문에 언젠가는 제절로 없어지지마는, 공부가 한참 잘되어 갈 고비에 이르러서 '아! 참 좋다. 아! 이렇게 계속 잘되었으면' 아, 이러한 생각을 낸 것은 고비를 넘을려고 한 판에 뒷걸음질을 쳐서 천길만길 구렁텅이로 빠져 버린 것과 같애서 그 공부가 순일하게 잘되어 갈 때에 그러한 생각 내는 것은 아주 타당한 것 같지마는, 실지에 있어서는 최고로 고약한 망상이라고 하는 것을 우리는 잘 알아 둬야 하는 것입니다.

공부가 잘 안되어도 짜증을 내지 말고, 공부가 잘되어 가도 좋아하는 기쁜 마음을 내지 말고, 계속 한결같이 이 화두를 들고 나가되, 잘 안되어갈 때—가슴이 답답하고 몸부림이 쳐지고 몸이 뒤틀리도록 괴롭고 지루하고 이럴 때에는 가만히 일어나서 직선으로 따악 길을 정해 놓고 그 길을 왔다갔다하면서 포행(布行)을 하는 가운데에 화두를 든다고 하면은 마음이 후련해지면서 고요해지고 깨끗해지면 다시 또 방석에 가서 또 정진을 하시는데.

이 화두를, 화두 하나 제대로 들을 줄 알고 올바르게 단속해 나갈 줄 알면은 참선은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 간단한 한마디요, 쉬운 한마디지마는 그 화두를 옳게 단속하기라 하는 것은 대단히 쉬운 가운데 어렵습니다.
그래서 가끔가끔 법회 때 나와서, 듣던 말이지마는 또 듣고 또 듣고 함으로 해서 자기가 알고 있는 또 자기도 모르는 여러 가지 버릇을 하나하나 고쳐 나감으로 해서 멀리 삐뜰어지기 전에 바른길로 돌아선다고 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입니다. 그래서 법회 때에는 꼭 빠지지 마시고 참예를 하시라고 하는 것입니다.(24분17초~44분53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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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600 개가 넘는 ‘(참선) 법문’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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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구참선 최상승법2020. 12. 25. 19:52

§((145)) (게송)불원공명단원산~ / 확철대오해서 견성성불(見性成佛)한 것이 영생(永生)하는 법(法)이다 / 관심일법(觀心一法)이 총섭제행(總攝諸行).

 

소원성취는 내가 지은 업(業)을 소멸(消滅)하는 것이 가장 첩경(捷徑), 업을 소멸하려면 '이뭣고?' / '이뭣고?' 한 번 하는 것이 관세음보살이나 아미타불 육백만 번 하는 공덕보다 더 수승하다.

 

**송담스님(No.145)—1981년(신유년) 하안거 결제(81.05.18) (용145)

 

약 12분.

 

불원공명단원산(不願功名但願山)하야  산중채락기년간(山中採藥幾年間)인고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심심송라연하리(深深松籟烟霞裏)에  일곡지가만경한(一曲芝歌萬境閑)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불원공명단원산(不願功名但願山), 세상에 명예와 권리와 재산, 그러한 세간(世間)에 공명(功名)을 원하지를 아니하고 오직 산에, 산중 청산(靑山)만을 바래가지고 산중(山中)에 살기를 바래서,

산중채락기년간(山中採藥幾年間)인가. 산중에서 약(藥)을 캐기 그 몇 해나 되었던가. 산중에 산다니까 약도 캐서 먹어야 하고 솔이파리도 썰어서 먹어야 하고 그러니까, 산중(山中)에서 약(藥)을 캐서 살기를 몇 해 동안이나 되었던가.

 

심심송라연하리(深深松籟烟霞裏)에, 깊고 깊은 솔바람 불고 안개가 자욱한 속에,

일곡지가만경한(一曲芝歌萬境閑)이라. 한 곡조 지초 노래, 지초(芝草) 캐는 노래 한 곡조(曲調)에 일만경계(一萬境界)가 한가하더라.

 

이 ‘세상을 버리고 산중에서 약을 캔다’ 이 말은, 약(藥)이라 하는 것은 장생불사(長生不死)하는 약이거든. 장생불사. 어떤 것이 장생불사인가?

참나를 깨달라서 생사 없는 도리 깨달른 것, 확철대오(廓徹大悟)해서 견성성불(見性成佛)한 것이 이것이 영생(永生)하는 법(法)이다. 영원히 죽지 않는 법이여.

이것이 바로 영원히 죽지 않는 도리를 깨닫기 위해서 참선(參禪)하는 것이 장생불사하기 위해서 약(藥)을 캐 먹는 거와 같은 것이다 그 말이여.

 

'이 뭣고?'

 

솔바람 불고 안개가 자욱한 그 깊고 깊은 산중(山中). 지리산이나 태백산, 오대산이나 설악산, 이런 깊은 산중에만 들어가야만 이 참선을 하는 것이 아니라, 도회지(都會地) 자동차 소리가 나고,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나고, 온갖 소음 잡음이 나고, 공해로 인해서 공장에서 나오는 이 시커먼 연기가 자욱한 그러한 곳이라도, 한 생각 돌이켜서 ‘이 뭣고?’ 하면 바로 그 자리가 솔바람 불고 그 안개가 자욱한 깊은 산중이나 조끔도 다른 것이 없는 것이여.

 

아무리 깊은 산중에 들어가서 앉었어도 한 생각을 돌이켜서 화두(話頭)를 드는 참선(參禪)을 하지 않는 사람은 그 속에서, 산중 속에서 물소리 바람소리가 귀에 듣기 싫고 그 속에 앉어서 아들 생각 손자 생각, 명예 권리 재산 생각한다면 그 산중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

그 한 생각 돌이켜서 화두를 드느냐, 화두를 들지 아니했느냐에 따라서 지옥(地獄)이 천당(天堂)이 되기도 하고, 천당이 지옥이 되기도 한다. 이것이 바로 최상승(最上乘)에 있어서 이 세간(世間)을 보는 눈이다 그 말이여.

 

이 최상승(最上乘)을 닦은 사람은, 실천하는 사람은 육도(六道)를 자기가 육도윤회(六道輪廻)에 끌려 다니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지옥을 천당으로 만들 수도 있고 천당을 지옥으로 만들 수도 있고, 눈 한번 깜박할 사이에 천당으로 가고 싶으면 가고 지옥으로 가고 싶으면 가고 마음대로 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 말이여.

 

그래서 달마 스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관심일법(觀心一法)이 총섭제행(總攝諸行)이다' 마음을 관하는 한 법이, 화두를 들고 참선하는 이 한 법이 총섭제행(總攝諸行)이여.

육바라밀(六波羅蜜) · 십중대계(十重大戒) · 삼천위의(三千威儀) · 팔만세행(八萬細行) 일체법(一切法), 일체 좋은 법을 한 생각 돌이켜 닦는 데에서 다 갖출 수가 있는 것이다.

 

일곡지가만경한(一曲芝歌萬境閑)이다. 한 곡조 지초(芝草) 캐는 노래에 일만 경계가 한가하다. 한 생각 돌이켜서 화두 한 번 드는 곳에 무량겁(無量劫) 죄(罪)가 거기에서 다 녹아져.

 

인간 세상에 태어난 사람치고 괴로움이 없는 사람이 없고 걱정이 없는 사람이 없습니다. 건강에 대한 걱정, 재산에 대한 걱정, 남편에 대한 걱정, 자식에 대한 걱정, 딸에 대한 걱정, 외손자에 대한 걱정, 그 많은 걱정 근심 일체장애(一切障礙)가 어디에서부터 일어난 것이냐 하면, 과거(過去)에 우리가 지은 업(業)에 따라서 다 생긴 것이다 그 말이여.

그 업을 녹이지 아니하고 잘살기를 아무리 바래고 아무리 재앙(災殃)이 없기를 바랜다고 해서 그것이 잘 살아진 것도 아니고 그 재앙이 없어진 것도 아니다. 그 재앙을 없애고 내 소원을 성취하려면 내가 지은 업(業)을 소멸(消滅)하는 것이 가장 첩경(捷徑)이다.

 

그 업을 어떻게 소멸하느냐? '이 무엇고?'

 

기도(祈禱)를 하는 것도 대단히 좋은 방법이죠.

기도도 그 이치를 분석을 해 보면, 일심(一心)으로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을 부른다던지, 아미타불(阿彌陀佛)을 부른다던지 또는 나반존자(那畔尊者)를 부른다던지, 지장보살(地藏菩薩)을 부른다던지, 일심(一心)으로 부름으로 해서 내 마음이 청정(淸淨)해져서 부처님 마음과 같이 깨끗해질 때 그때 우리의 소원(所願)을 성취(成就)하는데, 어째서 소원을 성취하냐 하면은 내 마음이 깨끗해짐으로써 우리의 마음속에 내려져 있는 업(業)이 녹아지기 때문에 소원을 성취한 것이다 그 말이여.

 

무슨 병이 있건, 무슨 근심 걱정이 있건 정말 간절한 마음으로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을 부른다든지, 고왕경(高王經)을 독송(讀誦)한다든지 반드시 소원을 성취합니다.

아주 목숨 바쳐서 죽을 것을 각오를 하고 ‘관세음보살’을 부르면 중풍과 같은 그러한 무서운 병도 낫는 것입니다. 꼭 죽을 수 밖에는 없는 그러한 사람도 살아날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물며 최상승법인 이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 이것을 열심히 한다면 더 말할 것이 없어.

 

'이 뭣고?' 한 번 하는 것이 관세음보살이나 아미타불 육백만 번 하는 공덕(功德)에 해당이 된다. 오히려 육백만 번 '관세음보살' 부르는 공덕보다도 더 수승(殊勝)하다.

이것은 최상승법이기 때문에, 가장 빨리 그리고 근원(根源)에서 다스리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부디 시간을 아껴서 정말 무상(無常)을 뼛속 깊이 깨달라서 열심히 공부를 해 주시기 바랍니다.(35분24초~47분46초)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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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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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
활구참선 최상승법2020. 12. 16. 09:43

§((155)) (게송)유시독립묘고봉~ / 지옥 문전(門前)에서 울고 있는 지장보살. 불보살에 행화(行化), 행리(行履) / 중생의 본성(本性)자리는 악(惡)도 아니고 선(善)도 아니다.

 

이 최상승법은 사량분별로 따져서 알 수도 없거니와 사량분별을 여의고도 찾을 수는 없다 / 망상이 일어나면 그냥 일어난 대로 놓아두고 다못 '이뭣고?' 이것이 망상을 물리치는 묘(妙)한 방법(方法).

 

진리의 입장에서 보면 번뇌망상이라 하는 것은 원래 없는 것이고 생사라 하는 것도 원래 있는 것이 아닌 것 / 진여자성(眞如自性)이라고 하는 것이 너무 신령함.

 

생사윤회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와 하나가 되는 것이 바로 참선법, 최상승법, 불법(佛法)인 것입니다 / 쉬웁고 간단한 한마디 ‘이 뭣고?’로써 번뇌를 돌이켜서 지혜해탈(智慧解脫)을 성취할 수가 있다.

 

**송담스님(No.155)—1981년 12월 첫째일요법회(81.12.06) (용155)

 

(1) 약 21분.

 

(2) 약 9분.

 

(1)------------------

 

유시독립묘고봉(有時獨立妙高峯)타가  각래단좌염라전(却來端坐閻羅殿)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견진인간지점두(見盡人間祇點頭)허니  대비수안다방편(大悲手眼多方便)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유시독립묘고봉(有時獨立妙高峯)타가, 어느 때에는 묘고봉(妙高峯), 저 수미산 꼭대기, 이 세계에서 제일 높은 곳이 이 수미산(須彌山)인데 그 수미산 꼭대기에 있다가,

각래단좌염라전(却來端坐閻羅殿)이라. 불현듯 염라전(閻羅殿)에, 염라대왕이 있는 염라전에 와서 떠억 단정히 앉었더라 그말이여.

 

견진인간지점두(見盡人間祇點頭)허니, 인간(人間)에 모든 것을 다 두루 다 보아 다하고서 다못 고개만을 꺼떡꺼떡 허니 점두(點頭)를 허니,

대비수안다방편(大悲手眼多方便)이로다, 대자대비(大慈大悲)한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 손이 천이나 되고 눈이 천이나 되는 천수천안(千手千眼), 그 대비관세음보살은 중생을 제도하는 방편(方便)도 많더라.

 

생사(生死) 없는 도리(道理)를 깨달은, 진리를 깨달은, 진리와 하나가 된 불보살(佛菩薩)은 때로는 중생이 이르지 못하는, 사량분별로 수긍할 수 없는 저 수미산 꼭대기에 가서 홀로 서 있기도 하고, 때로는 육도, 생사윤회(生死輪廻) 하는 그 육도(六道) 속에서 최악의 죄를 범하고 헤어날 기약이 없는 죄 많은 악한 중생(衆生)들이 고(苦)를 받고 있는 염라국에 와서 떠억 앉어 있다.

 

지옥고(地獄苦)를 받고 있는 중생이 너무나 가엽고 불쌍해서, 어떻게 하면 그 중생을 제도할 것인가. 중생이 그 갖인 고를 받으면서 신음을 하고 몸부림치고 있는 그 중생의 괴로움을 자기도 같이 나누면서 눈물을 흘리면서 지옥 문전(門前)에서 울고 있는 지장보살(地藏菩薩). 이것이 바로 불보살에 행화(行化)인 것입니다. 불보살의 행리(行履)인 것입니다.

 

어째서 불보살들은 진리의 세계에만 고요히 앉아계시지 아니하고, 때로는 수미산 꼭대기에서 저 무간지옥(無間地獄)에까지, 오늘은 무간지옥에 계시다가 내일은 수미산 꼭대기에 계시다가, 왜 그러한 것이냐?

착한 일을 해서 그 복(福)을 닦은 공덕으로 한없는 천상락(天上樂)을 받고 있는 중생이나,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극악무도한 죄를 지은 중생이나, 그 근본성품(根本性品) 본성(本性)자리는 악(惡)도 아니고 선(善)도 아니기 때문에 불보살은 선에도 머무르지 아니하고 악을 멀리하지도 아니하고 선악(善惡)에 걸림이 없이 자유자재(自由自在)하게 왕래하시면서 모든 중생을 생사 없는 열반(涅槃)의 언덕으로 인도하시기 위함인 것입니다.

 

금방 이 사부대중(四部大衆)은 녹음법문을 통해서 전강(田岡) 대선사(大禪師)의 법문(法門)을 들었습니다. 오늘 마치 전기가 나가서 상태가 좋덜 못해가지고 법문의 내용을 잘 알아듣기가 어려우셨을 줄 생각합니다. 대단히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어떠한 분은, '그렇게 잘 들리지 않는 법문을 아무리 틀어 보았자 그 청중(聽衆)이 알아듣지 못하면 무슨 효과가 있겠느냐. 차라리 그렇게 잘 들리지 아니한 법문을 틀기보다는 다믄 한마디라도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 좋겠다'고 하는 의견을 여러 분이 말씀하신 것을 들은 바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회(法會)가 열릴 때에는 꼭 조실스님의 법문을 한 편씩 듣는 것은 그럴만한 뜻이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최상승법(最上乘法)은 입으로 설할 수도 없고, 귀로 들을 수도 없고, 사량심(思量心)으로 이해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입으로 설할 수 있는 법(法), 귀로 들을 수 있는 법, 사량분별심으로 알아들을 수 있는 법이라면 벌써 최상승법이 아닌 것입니다.

따라서 조실스님의 법문 내용을 우리 중생의 사량분별심으로 잘 알아듣고 고개를 꺼떡꺼떡하고 이렇게 이해를 한다 하더라도 벌써 조실스님의 참법을 옳게 알아들었다고는 할 수가 없습니다.

 

‘귀로 들을 수도 없고 사량분별심으로 이해할 수도 없는 것이라면 법문은 뭣허러 들을 것이냐? 또 입으로 설할 수도 없다면은 뭣허러 부처님께서는 사십구 년 동안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을 설(說)하시고, 역대조사(歷代祖師)들이 그 많은 법어(法語)를 남기시고, 또 오늘 이 송담(松潭)은 뭣허러 법상에 올라가서 입을 열고 있느냐?’ 이러한 질문을 하시는 분이 계실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법은 입으로 가히 설할 수 없으되 눈썹 떨어지는 것을 아끼지 아니하고 이 도리를 설해야 하고, 귀로 가히 들을 수 없는 법이로되 어떠한 일이 있고 일이 바쁘고 핑계가 있다 하더라도 다 물리치고, 백사(百事)를 다 물리치고 이 법을 위법망구(爲法忘軀)로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설할 수 없는 법(法)이로되 눈썹을 아끼지 아니하고 설(說)해야 하고, 들을 수 없는 법이로되 백사(百事)를 물리치고 이 법을 들어야 한 까닭은 무엇이냐?

'이 법은 사량분별(思量分別)을 여의고 찾는 법도 아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사량분별로 따져서 알 수도 없거니와 사량분별을 여의고도 찾을 수는 없는 것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여기에 이 진리법, 최상승법(最上乘法)은 여지없이 여러분 앞에 확! 헤쳐 놓았습니다. 중생에 분별망상(分別妄想)을 통해서 찾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해서 그놈을 여의고도 찾아서는 아니 된다. 여러분 가운데 지혜(智慧)의 눈이 있는 사람이면, 이 정법(正法)에 조그마한 인연(因緣)이라도 있는 분이면 이렇게 말씀드린 이 말씀의 근본 의도를 마음속에 와 닿는 것이 있을 줄 생각합니다.

 

'참선(參禪)을 하는데 자꾸 망상(妄想)이 일어나서 참선을 할 수가 없습니다' 이러한 호소를 하신 분이 있는데, 망상을 여의고 찾으려고 하는 데에서 그러한 말씀이 나오는 것입니다. 이 참선은 망상을 여의고 찾지도 말고, 망상을 가지고 찾지도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망상이 일어나면 그냥 일어난 대로 놓아두고 다못 '이 무엇고?'

망상을 물리치는 묘(妙)한 방법(方法)입니다.

 

망상, 일어나는 망상을 없애려고 하거나, 누르려고 하거나, 쫓으려고 하면 그 ‘쫓으려고 하는 또 하나의 망상(妄想)’이 일어나기 때문에 벌써 한 생각 딴생각, 다른 또 하나의 생각을 일으킴으로써 공부의 길에서는 천만리(千萬里) 멀어져 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중생(衆生)의 업식(業識), 업식을 통해서 일어나는 천만 가지 번뇌망상이, 깨달은 분에게는 그 망상이 바로, 업식(業識)이 바로 지혜(智慧)가 되는 것입니다. 망상을, 중생의 업식망상(業識妄想)을 여의고 지혜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업식(業識)을 돌려서 굴리면 그것이 바로 그 본질을 바꾸지 아니하고 그것이 지혜(智慧)가 되는 것입니다.

중생의 번뇌망상을 여의고 찾지 말고, 일어나면 일어난 대로 그냥 고대로 놓아두고 떡! 화두(話頭)를 들으면 그것이 바로 망상을 여의지도 아니하고, 망상에 즉(卽)하지도 아니하고서 참나로 돌아가는 길이 바로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생사(生死) 속에서 생사를 버리지 아니하고 열반(涅槃)에 들어가는 길이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최상승법(最上乘法)이라 하는 것입니다.

일어나는 망상을 여의려고 그러고, 우리의 생사(生死)를 버리고서 열반(涅槃)을 찾는 등(等)은 이미 공부에 바른 길을 모르는 사람이요 이것은 최상승법이 아닌 것입니다. 왜 그러냐하면, 진리(眞理)의 입장에서 보면 번뇌망상이라 하는 것은 원래 없는 것이고 생사라 하는 것도 원래 있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16분58초)

 

물거품, 물거품을 없애려고 물을 따둑거린다든지, 그 물거품을 미웁다고 몽둥이로 그 물거품을 친다든지 하면 또 다른 물거품이, 훨씬 더 많은 물거품이 일어나는 것을 우리는 볼 수가 있을 것입니다. 물거품이라 하는 것은 원래 있는 것이 아니요, 원래 있는 것은 물 자체인 것입니다.

 

물거품을 없애려고 하다가 더 많은 물거품을 생기게 한 거와 마찬가지로, 일어나는 망상번뇌는 원래 없는 것이건마는 진여자성(眞如自性)이라고 하는 것이 너무 신령스럽고 너무 가볍고 너무 맑고 깨끗한 것이어서, 때로는 선(善)으로도 나타나고 때로는 악(惡)으로도 나타나고, 눈을 통해서는 보고 귀를 통해서는 듣고 코를 통해서는 냄새를 맡고 입을 통해서는 맛을 보고 말을 하고,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일체처(一切處) 일체시(一切時)에 잠시도 쉴 사이 없이 영롱하게, 신령스럽게 그것은 사방(四方) 팔방(八方) 시방(十方)으로 메아리치고 물결이 치는 것입니다.

 

고요한 호수에 돌 한 개 던지면 그 조그만한 돌 한 개로 인해서 수천만 개의 파도가 일어나듯이, 똥그라미가 퍼져서 저-쪽 호수 가에까지 번져 나가듯이, 우리의 마음도 또한 그와 같애서 한 생각에 천만 가지의 마음에 파도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 파도를 없애려고 그걸 물에다가 손을 대거나 물체를 갖다가 대면 거기서 또 다른 파도가 또 일어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그 파도를 통해서 물에 본질(本質), 물에 본성(本性)을 깨달을 것인가?

 

우리 일어나는, 끊임없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우리의 중생의 번뇌망상 속에서 그 번뇌망상이 원인이 되어서 번져 가는 우리의 생사, 육도(六道) 생사윤회(生死輪廻)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와 하나가 될 것인가. 이것이 바로 참선법(參禪法)이요, 최상승법(最上乘法)이요, 불법(佛法)인 것입니다.

 

금방 전강 조실(祖室) 스님의 녹음법문(錄音法門)이 대단히 상태가 좋지 못해서 그 내용을 거의 알아듣기가 어려웠었지만, 그 법문 설하신 요지(要旨)는 바로 그 ‘생사윤회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는, 생사 없는 진리를 내 마음에 구현시키는 방법’에 대해서 간곡한 말씀이 계셨습니다. 그것이 지끔 이 송담(松潭)이 말씀드리고자 하는 바로 그것인 것입니다.(처음~21분19초)

 

 

 

 

(2)------------------

 

‘이 무엇고?’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노라면 매일같이 속상하는 일을 보게 되고 듣게 되고 생각하게 됩니다. 일신상(一身上) 문제, 가정 문제, 사회 문제, 회사 문제, 보고 듣는 것 생각되는 것이 기쁜 일도 간혹 있지만 거개(擧皆)가 나로 하여금 괴롭게 하는, 나의 마음을 불안하게 만드는 그러한 수없는 일들이 내 앞에 제출이 됩니다.

오늘 하루를 그렇게 지내고 내일 하루를 또 그렇게 지내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들을 지혜롭게 보고 지혜롭게 판단해서 지혜롭게 처리해 나가지 못한다면 우리는 현실 사회에서 낙오자가 되고 마는 것이고, 현실 사회에서 결국은 패병(敗兵)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속이 상할 때 될 수 있으면 빨리 그 속상하는 마음으로부터 헤어 나와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조그마한 속상한 일로 해서 거기서 헤어나지 못하고 점점 더 깊은 수렁에 빠져 들어가서 큰일을 그르치게 되고 자기의 앞길을 그르치고 마는 것입니다.

이 최상승법을 믿고 행하는 사람은 설사 어려운 일을 당하고 괴로운 일을 당한다 하더라도 그것으로 인해서, 그것을 발판으로 해서 깨달음의 세계로 한 걸음 건너뛰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 최상승법(最上乘法)의 묘(妙)한 것이 있는 것입니다.

이 법문을 듣고 그것을 실천하려고 노력한 사람이면 얼마 안 가서 이 최상승법이 그렇게 요긴하고 위대하고 좋다고 하는 것을 새록새록 느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불법은 그 부처님께서 사십구 년 동안 설(說)하신 법문이 팔만사천법문(八萬四千法門)이여. 팔만대장경 그 많은 법문이 산과 같고 바다와 같지만 우리가 그 경책(經冊)을, 한문으로 된 경책을 갖다가 읽어 봐도 잘 알 수가 없고 또 그 많은 책을 다 읽을 수도 없고, 근자(近者)에 번역된 경전이 나오고 있지만 번역된 경전을 읽어 봐도 읽을 때뿐이지 돌아서면 또 그만인 것입니다.

그 많은 경전 속에 가장 핵심, 핵심적인 것. 그 경전을 다 읽고 완전히 소화를 시킨 대도사들. 그 대종사(大宗師)에 지도를 통해서 가장 쉬웁게 가장 빨리 깨달음에 이르는 길, 그것이 바로 이 참선법(參禪法)이라 하는 것입니다.

 

속이 상하면 ‘이 속상하는 이놈이 무엇이냐?’ 어떠한 근심이 일어나건 노여움이 있거든, 눈으로 무엇을 보거나 귀로 무엇을 듣거나, 무슨 생각이 일어나거나 그 생각이 두 번째 생각, 다른 생각으로 변(變)하기 전(前)에 될 수 있으면 빨리 ‘이 무엇고?’ ‘이 속상하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렇게 돌아오는 것입니다.

너무 쉬웁고 너무 간단해서, '뭐 그러한 것이 최상승법이요, 그걸 뭐 불법(佛法)이라고 할 것이 있느냐?'

쉬웁고 간단하다고 해서 가볍게 볼 일이 아닙니다. 이 쉬웁고 간단한 한마디 ‘이 뭣고?’가, 이것이 우리로 하여금 그 무서운 지옥고를 면(免)하게 하고, 생사윤회를 면하게 하는 것입니다.

 

조그마한 성냥개비 하나로 산더미 같은 풀을 갖다가, 그 넓은 들을 다 태울 수도 있고 큰 고층 건물과 그 많은 집들을 다 태워 버릴 수도 있습니다. 작다고 해서 절대로 무시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 뭣고?’ 하나는 성냥불에다 대겄습니까? 이 ‘이 뭣고?’ 한마디로써 팔만사천의 마구니를 다 항복 받을 수가 있고, 팔만사천의 번뇌(煩惱)를 극복할 수가 있고, 중생의 팔만사천 번뇌를 돌이켜서 팔만사천의 지혜해탈(智慧解脫)을 성취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 뭣고?’

 

여러분 가운데에는 많은 좋다고 하는 경전을 읽고 해석을 할 줄 아신 분이 계시겠습니다마는, 불법(佛法)은 많이 알고 해석할 줄 아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차라리 알고 있는 것을 비워 버리는 데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그 많은 경전을 설하셨지만 그 경을 옳게 이해한다면 많이 머릿속에 외워서 담는 데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많은 법문을 통해서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보고 듣고 알고 느낀 모든 것을 다 비워 버리는 거여. 비움으로써 참나를 깨달을 수 있도록 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용화사 이 법보전(法寶殿)에서는 최상승법, 이 활구참선법을 전강 조실스님 계실 때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한결같이 이 최상승법(最上乘法)을 선양(宣揚)을 하고 있습니다.(21분19초~30분21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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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600개가 넘는 ‘(참선) 법문’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 있습니다.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600 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