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두(공안)2021. 3. 22. 17:48

•§•((119)) 주금강(周金剛) 법문 / 주금강이가 금강경소초(金剛經疏鈔)를 태워 버린 그 도리, 용담(龍潭) 큰스님이 촛불을 비춰 줬다가 탁! 꺼버린 그 도리는 그 무슨 도리며, 그거 다 공안(公案) 도리(道理)인데, 하나도 어김이 없이 바로 탁탁 일러야 하는 것이여.

만공스님의 공안 답 편지를 보월스님이 불 태운 일화 / 알 수 없는 화두 의심 하나를 가지고 비비고 나가거라. 뚫고 나가거라. 정진해 나가거라. 이것이 화두에 제일 묘(妙) / 알 수 없는 이것이 참선법(參禪法) / 보월 스님 첫 설법 이야기.

**전강선사(No.119)—1972년(임자년) 1월 관음재일 법문(송담스님, 전강선사 두 분 법문) (임자72.01.24) (전119) (화두공안)

 

 

(1) 약 20분.

 

(2) 약 12분.


(1)------------------

주금강이가, 주금강(周金剛)이라는 거 그 속인 이름을... 주금강이가 중도 아니고 속인인 거지마는, 하여간 옛날에는 중보담도 속인(俗人)이 더 발심(發心)했고, 더 부처님의 정법을 더 바로 믿고.

남방에? 남방에서 '직지인심(直指人心) 견성성불(見性成佛)'?

늘 헌 법문이여. 또 없는 법문인 줄 알고 들우? 뭐 내가 없는 법문, 어떻게 뭣허러 갖다가 없는 법문혀? 이런 법문, 늘 들은 놈을 해사 말길이나 다 알아듣지.

주금강이라는 사람이—거 사람이지 뭐 별거 있나—사람이,
부처님이 설법하시되 부처님 경서(經書) 가운데에는 '삼아승지겁(三阿僧祇劫)을 닦아야사 성불(成佛)하니라'
삼아승지겁이면은 그거 설찬히 역사가 오래다 그말이여. '설찬히 오래다'는 말은 이건 무수겁(無數劫)도 거그는 붙지 못혀. 몇억만 겁도 거다가 붙일 수 없어. 한량없는 참 오래란 말이여.

‘삼아승지겁(三阿僧祇劫)을 닦아야사 견성(見性)해서 성불(成佛)하느니라. 견성해서 부처가 되느니라' 했는데,
견성해서 부처 되면 생사해탈(生死解脫)이니까, 생사해탈을 해사 견성성불(見性成佛)이니까.

생사해탈이라도, 생사해탈 다시 또 또 또 생사(生死)가 있어? 그건 소용없어.
생사해탈했으면은 아주 해 부렀지, 영원히 생사해탈해 부렀지. 그 또 미(迷)해서 범부(凡夫) 되아? 없어. 생사해탈해 버린 것을 부처라 햐.

삼아승지겁을 닦아야사 생사해탈해서 부처가 되어 가지고 출세장부(出世丈夫)라고 했는데, 남방(南方)에서 '직지인심(直指人心) 견성성불(見性成佛), 바로 사람 마음 가르켜서 견성해서 부처 되어 버려?'
그 직지인심(直指人心) 견성성불(見性成佛)이 찰나간(刹那間)에 있다고 햐?
찰나간이라는 건 '잠깐 사이'인데, 찰나(刹那)가 아승지겁(阿僧祇劫)과 대(對)여.

아승지겁이란 하도 원대(遠代)해서 역사(歷史)로 댈 수 없는 것을 아승지겁이라 하고, 찰나(刹那)라 하는 것은, 어떻게 그동안에 찰나라는 건 엇다가 일념도 아니어. 일 분도 아니고 일 초도 아니어. 착! 뭐 없어. 역사도 없어, 그놈 찰나라는 건.

'남방에서는 중생 성불(成佛)이 찰나간(刹那間)이락 해 가지고는 이 선법, 참선법(參禪法)을 가르키고 앉았어? 이놈 외도(外道) 놈들을 항복 받을 수밖에 없다'
항복을 받으러 나오는데, 삼아승지겁이라는 그 경서(經書)를 짊어지고—삼아승지겁이라는 그 경(經)이 어디 있냐 하면 『금강경』에 있거든. 「금강경소초(金剛經疏鈔)」에 있잖아.

금강경을 뚤뚤 말아 짊어지고는 남방에 외도, '찰나 사이에 견성성불한다'는 외도를 항복 받을 수밖에 없다. 나오다가 다 와서 그 용담(龍潭) 스님 회상(會上)에 그 선방(禪房)이 있으니까,
선방에 용담 스님이 그렇게 삼아승지겁을 닦아서 성불한 도리를 갖다가서, '찰나간에 성불해서, 중생 성불해서 생사해탈한다'는, 그 가서 막 '이 마구니들을 이 숭악한 마구니를 때려 부술 수밖에 없다' 하고는 나왔다 그말이여.

나와서 불과해야 얼마 안 된 그 지경에, 그저 잠깐 동안 갈 테이지만 배가 고파서 점심을 좀 사 먹고 가려고, 그 지금 같으면 가다가 무슨 뭐 음식 파는 음식점에 노파가 하나 있으니까 노인한테, "여보, 거 나 점심(點心) 좀 주오. 점심 좀 요기 해야겠소, 좀 주오"

“예, 그 점심(點心)은 드리지요마는, 거 짊어진 건 무엇이기에 그리 조그만한 똘똘 말아 짊어졌소? 아, 그 똥글똥글하네"
"여, 짊어진 건 금강경이요"

"금강경은 왜 지고 오시오?"
"남방에 외도(外道)를 항복 받으러 오지. 중생 성불이 찰나간(刹那間)이라고, 마음만 깨달으면 곧 성불해서 생사가 없다는 그런 놈의 외도들을 항복 받을라고 이 짊어지고 오요. 그 금강경 가운데에... 그러면은 삼아승지겁을 닦아서 성불한다고 바로 부처님이 말씀을 해 놓았는데 부처님 말씀을 어긴 것이 그것이 외도가 아니겠소? 그래서 그래 금강경을 짊어지고 와 증거 댈라고 지고 오지요"

"그래요, 그러면 그 금강경 가운데에 '과거심(過去心) 불가득(不可得), 현재심(現在心) 불가득(不可得), 미래심(未來心) 불가득(不可得), 과거심 현재심 미래심을 통 얻지 못해. 얻지 못한다'고 그렇게 말씀이 있는데, 점마하심(點麽何心), 어느 마음에 점(點)을 칠랍니까?"

금강경에 있는 말이지. '과거심도 얻지 못하고, 현재심도 얻지 못하고, 미래심도 얻지 못하니 그 어떤 마음에 점을 칠랍니까?'
흥, 입이 붙어버렸네. 삼아승지겁을 닦아사 성불한다는 말만 믿었지, 과거심 현재심 미래심이 본래 없는 것은 보들 못했것다.

과거 · 현재 · 미래심이 그 어디 있는가? 우리 시방 한번, 한번 내심(內心), 안 마음으로써 어디 한번 살펴보고 밖으로 또 살펴보십시오.
밖으로 보나 안으로 보나, 어디 가서 '안 마음[內心]'이, 어디 가서 과거심 현재심 미래심이 붙어 있고 어디 가서 뭐가 있어?

없지? 없어.
암만 말은 곧 그만 '과거심이다 현재심이다 미래심이다' 곧 했다마는 없다. 그렇게 한번 바로 들어가서 봐도 찾을 수 없는 것이었다.

대답 못했지.
"여보, 당신 점심(點心)을 내가 줄라고 했더니, '그렇게 과거심 현재심 미래심 가운데, 어떤 마음에 점심을 먹일라고 하느냐?'고 물어도 답 못혀? 여보 당신 나한테 점심 얻어먹기는 틀렸으니 짊어지고 가오" 밥 못 얻어먹었다.


그길로 바로 그 용담(龍潭) 큰스님, 참 조실 스님한테를 척 가서 조실방(祖室房)에 척 들어갔다. 들어가서 그 문답처(問答處)에 가서 꽉 맥혀.
뭔 뭐 뭐 대답 한마디, 뭔 말이 있어? 벌써 거기서 방맹이 맞고 간 사람이.

책도 내놓기 전에 "심마물(甚麽物)이 임마래(恁麽來)냐? 무슨 물건이 왔냐?” 하는데, 다시 무슨 뭐 입 한번 벌린 일이 있어?
무슨 물건이 온지 모르지. 이렇게 막혀 버리고.
뭐가 있어야지. 답할 수가 있나?

인사하고 나갈라 하는데, 밤인데 (용담 스님이) 촛불을 써주었다가, 촛불 불빛에 신을 찾아 신고—주금강이가 신을 찾아 신고, 막 신을 찾아 신고 돌아서려고 할 때, (용담 스님이) 촛불을 탁! 끄는데, 활연대오(豁然大悟)를 했거든. 촛불 탁! 끌 때 활연대오를 했다 그 말이여.

그래 그만 짊어졌던 금강경소초(金剛經疏鈔)를 불 탁! 질러서 탁 태워 버렸지.
금강경, 주금강이가 태워 버린 그 도리는 그 어째서 태웠으며, 촛불을 비춰 줬다가 탁! 꺼버린 그 도리는 그 무슨 도리며, 그거 다 공안(公案) 도리(道理)인데, 하나도 어김이 없이 바로 탁탁 일러야 하는 것이여. 공안이라는 게 그려.

인천서 서울을 갔다 오면은 '정거장이 몇이냐?' 하는데 가서 '일곱이다'
일곱 정거장 가운데, 부평은 어떻게 생겼으며, 소사는 어떻게 생겼으며, 거 주욱 남대문까지 다 고대로 딱딱 말해야 되지. 보도 않고는 할 수 없거든.
공안이라는 게, 화두가 그렇게 되어 있어. 따악 있는데.

주금강(周金剛)이가 법당 뒤에서 탁! 태워 번지고 나와서는 '참! 이렇구나. 불법(佛法)이 여차(如此)하구나!' 하고, 그전 주금강(周金剛)이가 아니어. 바로 주금강(周金剛)이여.

그러면 그 도리를 중간에, 만공(滿空) 스님 회상에서 운암 스님이 지내다가, 정운암(鄭雲庵)이라고 하는 이가 만공 큰스님 밑에 도를 닦고 그러고 있다가 부산으로 내려간 뒤에 그놈이 의심나니까,
그 주금강이가 그 법당 뒤에다가서 금강경소초(金剛經疏鈔) 탁! 태워번지고 대장부(大丈夫) 세력을 지은 그 도리를 물었다 그 말이여.

그 도리가 내나 '점마하심(點麽何心), 금강경 과거심 불가득, 현재심 불가득, 미래심 불가득, 삼세심(三世心) 도불가득(都不可得)이니 어느 마음에 점(點) 칠라느냐?'
고 점(點) 딱! 쳐야, 고거 그 주금강이 확철대오(廓徹大悟)한 도리가 고놈이여. 금강경소초 탁! 태워 버린 고 도리(道理)여.

그러니 만공 큰스님한테는 묻되, '그때에 삼세심(三世心)을 도불가득(都不可得)이니 점마하심(點麽何心)입니까? 하고 물을 때에는 큰스님은 어떻게 답을 하시겠습니까?' 하니까,
만공 큰스님께서 '과거 위음왕불(威音王佛) 이전에 점심요야(點心了也)다. 과거 위음왕불 이전에 점심 먹어 마쳤다' 그렇게 답을 했습니다.

그러니 과거 위음왕불(威音王佛)이 최초불(最初佛)인데, 얼마나 과거 위음왕불은 깊고 오래 되었고 참 역사적입니까. 그 '과거 위음왕불 생기기 전에 점심을 먹어 마쳤느니라' 요렇게 답(答)을 해서 부산 시방 선암사 운암 스님이 묻는데 그놈을 답(答)을 보낼라고 써 놨는데,
그 답을, 우편국(郵便局)에다 부칠라고 가지고 간 놈을 뺏어 가지고는 보월(寶月) 스님이—만공 스님 큰 제자인데, 수제자인데—뺏어 가지고 불을 탁! 질러 버려. 불을 탁 질러서 때려 치워 번지고는 "뉘 눈깔을 멀리시려고 이러헌 답이 있습니까?" 법사 스님한테. 만공 큰스님한테.

벼락이지! 거, 법담(法談)이라는 것은 무슨 참 한번 그릇친다면은 큰일나지.
"뉘 눈깔을 멀릴라고 큰스님께서 이런 답이 계시리까" 앞에서 그래.

깜짝 놀래 가지고는 그때부터 밥을 안 잡숫고는 고놈을 공안해 가지고 '어느 마음에 점 쳤다고 해야사 맞겠나? 과거심 현재심 미래심, 삼세심(三世心) 도불가득처(都不可得處)에서 뭐라고 답을 해야 할까?' 요놈을 가지고는 이레 동안을 금선대(金仙臺)에서 가만히 앉어서 입정(入定) 중에 앉아서 공부를 하시다가 이레 만에 확철대오를 해 가지고는, "보월, 이리 오소. 내 답을 듣소"

보월 스님, 오라고 하는데 안 갈 수 있어? 앞에 척 가서 꿇어 앉아서 "그저 황송합니다"
그 큰스님한테, 과연 큰스님이 그르친 것을 보고, 바로 보시지 못한 것을 보고, 한 말 한번 여쭈었지마는 그건 헐 수 없거든.
제자 지위가 있으니까, "황송합니다" 하고 업드렸으니까, 답을 척 하시는데 참 그런 명답이 없었죠?
그래, 보월 스님이 역시 절을 제대로 무수히... "그렇습니다" 이렇게 답해 마친 일이 있고.

그다음에 응, 고 부산서 답해 놓은 답은 아직 이 만공 스님과 이 답하기 전에 그 안에, 일주일 안에 답을 해 보냈습니다.
그 답을 해 보냈지마는 삼세심(三世心) 도불가득(都不可得), 도불가득 이치를 바로 보지 못하면은 암만 답해 놔야 도저히 안 되는 것이니까.

그 답을 또 좀 들어보십시오. "삼세심(三世心) 도불가득(都不可得)인데 점마하심(點麽何心)고? 어느 마음에 점을 칠라느냐?" 이렇게 떡 물을 거 같으면은, 보월 스님 답이여. 만공 스님 제자, 보월 스님 답이여.

'배호서(背湖西)하고, 호서(湖西)를 등지고' 그 호서(湖西)인께 서(西)인께,
'배호서(背湖西)하고, 호서(湖西)를 등지고, 향영남(向嶺南)은, 영남(嶺南)으로 가는 것은 심중(心中)에 부절여의(不絶餘疑)러니, 마음 가운데에 남은 의심을 끊지 못했더니, 여금(如今)에도 여의(餘疑)를 끊지 못했구나. 견후(見後)에 소각(燒却)하고, 본 뒤에는 소각해 버리고, 태워 버리고 소각, 갱절여의(更絶餘疑)해라, 다시 여의(餘疑)를 남은 의심을 끊어라(背湖西向嶺南 心中不絶餘疑 如今不絶餘疑 見後燒却 更絶餘疑)' 요렇게 보냈어.

그게 그 무슨 답이겄냐 말씀이여. 생각해 보시오.
확철대오한 도리가 그 도리여?

이 '호서(湖西)를 이별하고 영남(嶺南)으로 가 가지고는 여태까장 그 의심(疑心)을 끊지 못했구나. 견후(見後)에 소각(燒却)하고, 본 뒤에는 태워 번지고 다시 남저지(나머지) 의심을 끊어라' 고렇게 답했다 그말이여

이 생사해탈(生死解脫) 도리가, 내나야 아까 내가 오도송(悟道頌)에, 터억 깨달아 가지고 오도송을 짓되, '밝은 달밤에 근촌(近村)에서 젓대 소리가 들리고, 여 가까운 어디 절에 새벽 종소리가 들리는구나'
종소리 들리는 그 도리이고, '밥 먹자, 옷 입자, 가자' 하는 그 도리여. 그 도리를 여의고 있는 것이 아니어.

그런데 천 가지 만 가지 백억 이치를 다 여의고 봐도 점점 진흙 밭에 빠져 들어가 죽으러 가는 골 밖에는 없다.
그래서 헐 수 할 수 없이 '유무지견(有無之見)이니, 있다 없다, 뭐 있고 없는 놈 까장도 없다' 별별 걸 다 여의어 버린 거기에 나아가서 공안(公案)이 있다. 내가 밤낮으로 하는 말씀이 이것 아니요.

공안이 거가 있어.

입으로써서는, '입 열기 전에 그르쳤다. 미개구착(未開口錯)이다' 입 열기 전에 그르친 것이 제이구(第二句)여. 그게 제이구(第二句)여.
입 열기 전에 그르쳤는데, 입도 열기 전에 그르쳤는데 글쎄 무슨 이치를 때려 붙여 옳겄냐 그 말이여.

그래서 세상에 그 모도 선도(仙道)가 있지마는, 그 선(仙)도 비슷비슷하지마는 장자(莊子)의 철학이니 노자(老子)의 철학이니, 장자에 현빈(玄牝)이니 노자의 허무(虛無)니, 그러헌 것 가지고는 될 수 없어.

다맛 우리 부처님 정법문중(正法門中)에는 '심마물(甚麼物)이냐?' 이뿐입니다. 이것 하나뿐입니다.
'무슨 물건인고?' '밥 먹고, 오고 가고 오는 소소영령(昭昭靈靈)한 주인공, 이것이 도대체 무슨 물건이냐?' 알 수 없거든.

지가 무슨 이치를 붙여 죽지 말고, 대답하려고 애쓰지 말고, 알 수 없는 그놈 하나를 가지고 비비고 나가거라. 뚫고 나가거라. 정진해 나가거라. 이것이 화두에 제일 묘(妙)입니다.

그러면은 거기에서 제일(第一) 분심(憤心)을 가져라. 분심이란 건 분(憤)한 마음.
분심이라 하는 것은 '어째서 세상에 말이여. 세상에 내가 나를 몰라? 내가 나를 모르고도 살 건가? 이게 사는 건가? 아이고 참! 기가 막힐 노릇이다'

어머니 뱃속에 들어올 때에 뭐가 왔어? 뭐가 왔어?
뱃속에 들어앉아서 요 몸뚱이 하나를 이걸 이만큼 타 가지고 나왔지마는 몸뚱이 퍼 짊어지고, 싸 짊어지고 나온 물건이 무슨 물건이여?
요까짓 몸뚱이 또 나와서 그 시비해리(是非海裏)에서 횡신입(橫身入)하고, 그 사기 협잡이나 하고 일평생 살다가 또 내던져 버리고 또 가는 놈이 있으니, 뭐가 가냔 말이여? 뭐가 가는데 또 가는 곳은 어디냔 말이여.

이것이 인생의 근본 철학이다. 무슨 또 철학인가? 비철학(非哲學)이여, 철학도 아니여.
'이게 심리학이다' 무슨 심리학이여? 심리학은 무슨 심리학이여?
철학도 아니요, 심리학도 아니요, 종교도 아니요.(34분38초~54분42초)




(2)------------------

'나'도 아니여!
뭐 '내'라는 이름을 때려 붙이면 내 '내'라고 하는 놈이 무엇이여? 내가 내여?
'내'라는 것도 내가 내 이름 때려 붙여서 '내'라고 해 가지고서는, 거다가 별별 무슨 아소심(我所心)을 갖다 때려 붙이는 것이 중생 모도 습기(習氣) 습성(習性)으로써 한 것이지마는, 어디 그게 낸가? 나도 아니지.

비유(非有)여. 유(有)도 아니다. 있는 모양이 어디 있나?
비무(非無)다. '없다'고 상(相)을 붙여봐라. 무슨 또 없나? 이렇게도 있는 놈인데 왜 없어.
내 눈앞에 모도 보이는 것이 유(有)요, 산하대지(山河大地)와 만상삼라(萬象森羅)와 정여무정(情與無情)과 두두물물(頭頭物物) 화화촉촉(化化觸觸)이 뭔가? 이렇게 분명히 있는데 없어?

또 그놈을 '있다'고 해 놓고 보니 '있다'고 한 놈에 그 근본을 찾아 들어가 봐라. '있다'는 놈이 어디가 상(相)이 있나? 어디가 색상이 붙어 있나?
뭐 내가 눈으로 한번 뜰 때에는 우주 삼라만상이 그대로 보인다마는 눈 한번 척 감고 보니 뭐가 있나? 아무것도 안 보이지.

그러니 이놈에 그 무슨 유(有)도 실법(實法)이 아니요, 무(無)도 실법이 아니요, 유무중(有無中)도 실법이 아니다.

자! 도대체 이 천언만담(千言萬談) 구백생명을 조장시키는 내 주인공(主人公)!
일념지간(一念之間)에도, 한 번 마음 내 가지고도 거기에 번식을 해서 별별 놈의 생각, 색상(色相) 장엄(莊嚴)을 해 제키는 이 주인공, 내 마음자리, 도대체 이놈이 뭐냐?

알 수 없는 이것이, 이것이 참선법(參禪法)이여.

왜 내가 몰랐나? 왜 나는 모르고 있나?
과거 제불(諸佛)은 누구인데, 부처님은 벌써 장부(丈夫)가 되어 버렸다. 확철대오(廓徹大悟)해 생사 없는 부처님이 되어 가지고 앉아계신다. 무슨 생사가 있나? 요요장재백운간(寥寥長在白雲間)이지.

왜 우리는 이렇게 생사해탈을 못하고 이 지경 되어 있노? 이게 무슨 지경이란 말이냐?
분(憤)하구나.

자, 이 몸뚱이 하나 받아 와 가지고—이만한 몸뚱이, 건강한 몸뚱이 요만큼 가지기도 솔찬히 어려운 문제이니라.
어머니 뱃속에 들어가서 핏덩어리 같은 몸뚱이 하나 가지고 나와서 그래도 이렇게 죽지 않고 까불까불 살았다고 놀리고, 눈으로 보고 왔다갔다하고 산다마는,
일식불래(一識不來)며, 그놈의 왔던 식(識)이 가 버리면 그만인 거,
고격, 식풍(識風)이 고격(鼓擊)해서, 바람지내가 듯이 그냥 가버리면 그만 인거, 목숨 하나 끊어지면 그만 인거, 또 언제 가서 또 요만한 몸을 장만해 오겄노?

이 몸이 없으면은 이 공부를 못하는 것이니, 자 금생에는 다행히 이 몸을 얻어서 이만큼 건강한 때가 되었구나.
자, 분심을 내야겠다. 분한 마음을 내야겠다. 나는 어찌 못한단 말이냐.

인인개개청풍불(人人箇箇淸風拂)이요, 사람 사람이 발 앞에는 청풍불(淸風拂)이 있고.
왜? 왜 부처는 벌써 장부(丈夫)가 되어서 생사 없는 해탈세계(解脫世界)에 주인공(主人公)이 되어 있고, 우리는 이와 같이 해탈 못하고 이와 같이 되어 있어?

분심도 철저히 내야겠다마는 신심(信心)을 갖춰야겠구나. 신(信), 콱! 믿어야겠구나.
왜 내가 믿지 못하고 여차(如此)하노? 왜 이렇게 지내가?
철저히 믿어 가지고 의정(疑情) 돈발(頓發)이여. 알 수 없는 의심이 몰록 돈발해 가지고 의심을 한 번 때려 부셔야 하겠구나.

‘이뭣고?’ ‘이뭣고?’ 알 수 없는 놈이 의심 아닌가. 의심 하나를 때려 쳐부숴야겠구나.
이놈 하나 대분심(大憤心), 대신심(大信心), 대분지(대의심大疑心) 이 삼요(三要)를 갖춰라. 세 가지 요긴한 것을 갖춰라.


그래 운암(雲庵) 스님한테 보월(寶月) 스님은 그렇게 편지를 척 해서 보내고, 만공(滿空) 스님은 거기에서 크게 깨달라서 참 가가대소(呵呵大笑)를 했어.
그러면 만공 스님이 보월 스님만 못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공안도 그렇게 실수가 있는 공안이 있어. 조주(趙州) 같은 밝은 그런 분도 그 그렇게 세 번 실수한 일도 있거든.

그래서 견성을 해 가지고도 공안(公案)에 탁마(琢磨)를 혀.
잘 견성한 스님한테 가서 탁마도 하고, 또 학자가 더 크게 아는 법은 큰스님한테 또 탁마 시켜 드리기도 하고, 이러헌 것이 탁마상성(琢磨相成) 붕우지은(朋友之恩)이여. 사장지은(師長之恩)이고. 여까지 말씀을 했는데.

보월 스님 같은 그런 밝은 이가 만공 큰스님 밑에 났어.
나서, 공안이 당최 막힐 것이 없고, 일체 공안을 척 들어 대면은 스님보다 더 하니까 뭐 '아이고! 우리 보월밖에 없네' 하고, 당신 좌(座)를 맡겨 드렸어. 아! 그러니 보월 스님이 인자 조실(祖室)이지.


그래도 원청 노장님이 살은 오지게 쩠어. 그렇게 많이 살찐 이는 없어, 남자로서.
머리로써 모가지로써 몸뚱이가 거지반 같어. 똑 깍지동만하게 생겨 가지고 옷을 못 입어. 아무리 해도 여가 벌어져 버리고 인자 옷이 안 맞아.

그래 가지고 항상 이러고 앉아 있으면은, 우는 상(相)이라, 여가 이렇게 붙어 가지고.
볼때기도 뻘-겨. 참 그렇게 못난 이는 천하에 없거든. 뻘-게 가지고는 '헤-' 하고 앉아 있는 노장이여.

아, 만공 큰스님이 법(法)을 그리 전(傳)했으니까, 대중은 잔뜩 모여 있으니까, 와서 설법을 청(請)할 거 아니어.
대중이 모도 그저 인자 참 '보월 큰스님께서 설법해 줍소사' 하고 대중이 합장배례(合掌拜禮)를 했는데 안 올라갈 수가 없으니까, 비구 · 비구니 · 우바새 · 우바이, 사부대중이 꽉 짜서 들어앉았다 그 말이여.

꽉 들어앉았고 또 법당(法堂)이라는 것은 대중만 들어앉아 있는 것이 아니어. 칠부대중(七部大衆)이 모두 와서 있는 거여. 칠부대중이라 하는 것은 비인(非人) 등(等)이 있어. 사람 아닌 등(等)이 있어. 비인(非人) 등(等)이란 모도 귀신, 귀신 등류(等類)가 있거든.
거 부처님 설법한다고 비인(非人) 등이 다 모여 있어서, 거 위엄(威嚴)이 무서운 것이거든. 설법상(說法床)이라 하는 것은 그런 것이란 말씀이여.

아, 그런데 올라가시라고 하니까 인자 올라갔지.
아, 좀 연습이라도 해 보고, 좀 혼자 뒷방에서라도 해 보고 그러고 올라가야지, 그냥 올라가라고 헌다고 생전 안 하다 올라가 논게 뭔 말이 나올 게 있나, 아무 말도.

법(法)이라 하는 건 누가 아나?
이것도 법이고, '억!'도 법이고, '뚝!' 이것도 법이고, '뭣이 어째 이놈!' 이것도 법인데, 아무 거나 쓰면 되지마는 못써. 쓸성 싶어? 안되거든.
어떻게 그놈 턱! 쓰면 그놈 잡아 가지고 패궐(敗闕)을 뒤집어버리면 꼼짝달싹 못한 것이여.

아, 올라가 논게, '설법(說法)해줍소사' 헌께 올라가 가지고는 엉뚱한 넨장—만공 큰스님이 올라가서 설법하면 잘하지, 설법을. 만공 큰스님 설법.
그 한번 설법을 해 놓으면은 그만 중생의, 그 중생의 번뇌 망상이 스르르르르 없어져 번지고 그 법 믿는 마음이 '하, 부처님' 하고, 이 마음이 돌아 나온다 말이여. 음성(音聲) 가운데.

그런 설법을, 게송(偈頌) 읊은 걸 늘 들었으니 '나도 인제 설법(說法)하면 저렇게 한번 하리라' 고 생각은 간절했다 그말이여.
아 그러면 좀 익혀 가지고 해야 할 텐데, 생전 익히지도 않고 올라와서 되나?

또 올라와서는 아, '원공법계제중생(願共法界諸衆生) 자타일시성불도(自他一時成佛道)'를 끝에 설법 다 하고 내려와서 하는 법인데, 아 그냥 올라앉아서 처음에 막 올라앉아 가지고 그놈부텀 내놓는다. 마치고 내려올 놈을 한다 그말이여.

뚱뚱한 노장님이 법상(法床)이 능~청 해 가지고 앉아, "웬갱~ 법계~" 운다 그 말이여. 그냥. 울어 버려.
아, 그러니 보통 사람과 달라서 얼굴이 그래 크고 뚱뚱한 이가, 본래 또 우는 것 같이 생겼는데 '웬갱법계~'를 하고 우는데, 볼 수가 있나? 참 볼 수가 없지.

그럼 바로 그 앞에서 혜성이라고 뚱뚱한 조카 상좌, 한 놈이 있는데, 얼굴도 그놈도 또 뚱뚱혀. 모두 뚱뚱한 것들.. 뚱뚱한 조실 스님 밑에 뚱뚱한 놈도 앉았다가, 이래 보더니 "하하 하하하, 아이고 죽겄네" 하고 그러고 웃어 버렸네. 뚱뚱한 사람이.

아, 그래 놓으니 그만 조실 스님도 올라가서 '웬갱법계~'를 하면서 울었지, 아, 이 혜성이라고 이놈도 보고는 손뼉을 치면서 웃어버린게 노장님이 법문도 못하고 이러고 앉았지.
앉아 있는데, 조해운 스님이라고 그이는 입승(立繩)인데, 또 입승 스님도 그만 혀. 그렇게 크던 않아도 그 뚱뚱하니 그렇게 생긴 이가 입승인데 뒤뿌리라 그랬다. "웃지마라, 웃지마! 히히히히히"
웃지 말라고 해 놓고는 '웃지마라, 웃지마라' 해 놓고는 '히히히히히히' 아! 이래버리네.

아따, 비구니 대중, 그 사부대중이 꽉 모였다가 웃음판이 되아 번지고 말았소. 그러니 보월 큰스님이 그렇게 견성을 크게 해 가지고 설법상에 올라가서 그런 우세를 했다 그 말씀이여. 그 송담(松潭) 스님이 그런 우세할까 싶어서 첫 설법상에 안 올라온 것이여. 아 한번 턱 올라와서 우세를 해야사, 척...

그 그다음에는 한번 우세하고 나서는 생전 게송 한 번 안 읊어. '원공법계' 소리 한마디 한 일 없어. 참 그 평생을 못 들었구만, 그 우세 한 번 하고는 안 혀.

아, 한번 올라와서는 그런 우세를 헐 요량하고 터억 한번 할 것인데, 아 온 대중이 그만 모다 웃고 그런 바람에 아 얼마나—그래도 그 가운데에 모도 발심(發心)은 다 했거든. 다 믿고 더 발심하고, 나중에 보월 큰스님 법상에...
그래 그 뒤에는 법문 못하고 내려왔어. 내려와 앉았다가 조실방(祖室房)으로 내려왔는데 발대죽을 떠 받쳤어.
우세 아니라 더 그랬어도 하나도 소용없고 위법망구(爲法忘軀)여. 법 밖에는 거기에서는 대중이 몰랐어. 그래가지고는 그 큰스님을 모시고 법(法)을 배웠어.

아, 그러니 여기 한번 올라와서 뭐 참 한바탕 그 우스메 소리 한번 해도 좋고, 우세를 잔뜩 해 가도 좋은데, 올라가란게 안 올라가고 서서 그냥 강연식으로 한마디 해 버리니, 우리 대중 모도 여러분들이 기대가 어긋졌어. 이것으로써 오늘 설법은 마치고.(54분42초~66분50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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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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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