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회(화두불명수계)2019. 7. 25. 11:06

 

 

§(537) (게송)백년지시잠시간~ / 이 송담(松潭)은 모든 화두에 근원적이고 최초의 화두인 '이뭣고?'를 주로 많이 권장하고 있습니다 / (게송)허비광음진가석~.

다못 이 소소영령한 이 우리의 진여불성(眞如佛性) 이것이 나의 주인공이고, 그것이 바로 자성불(自性佛)이고, 우주의 주인이다.
연비(燃臂) 하는 뜻은 알게 모르게 무량겁 이래로 금생에 이르기까지 지은 크고 작은 모든 죄를 참회(懺悔)하고, 다시는 범하지 않겠다고 부처님께 서원하는 것.

**송담스님(No.537)—1994년 10월 첫째일요법회.(화두·불명·십선계수계) (용537)

 

(1) 약 21분.

 

(2) 약 16분.

 

(1)------------------

수계증명육사(受戒證明六師)

경청 석가모니불 예위화상아사리(敬請 釋迦牟尼佛 詣爲和尙阿闍梨)
경청 문수대지사 예위갈마아사리(敬請 文殊大智士 詣爲羯磨阿闍梨)
경청 당래미륵불 예위교수아사리(敬請 當來彌勒佛 詣爲敎授阿闍梨)
경청 시방제여래 예위증계아사리(敬請 十方諸如來 詣爲證戒阿闍梨)
경청 시방제보살 예위동학반려중(敬請 十方諸菩薩 詣爲同學伴侶衆)
경청 석범제천중 예위옹호장엄중(敬請 釋梵諸天衆 詣爲擁護莊嚴衆)

(원장 스님께 삼배 올리겠습니다)

(모두 자리에 앉아 주십시오. 오늘 수계 제자는 호궤합장 하십시오. 오늘 화두 불명 십선계 수계자는 무릎을 꿇고 합장해 주십시오)


백년지시잠시간(百年只是暫時間)이라  막파광음당등한(莫把光陰當等閒)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약요불경염노안(若要不經閻老案)인댄  직수참투조사관(直須參透祖師關)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백년지시잠시간(百年只是暫時間)이야. 인생이 백년을 산다한들 다맛 이 잠깐 동안에 불과하다 그말이여.
막파광음당등한(莫把光陰當等閒)이다. 광음(光陰)을 잡아서 마땅히 등한히 하지 말아라. 시간을 함부로 그럭저럭 지내지 말어라.

약요불경염노안(若要不經閻老案)인댄, 만약 염라대왕(閻羅大王) 앞에 가서, 염라대왕 책상 앞에 끌려가서 취조를 받지 않걸랑은, 받지 않고자 하거든,
직수참투조사관(直須參透祖師關)이다. 곧 모름지기 조사관(祖師關)을 참(參)하여 뚫을지니라.

오늘은 10월 첫째 일요법회 날로써 불명(佛名)과 화두(話頭)와 십선대계(十善大戒)를 받는 날입니다. 불보살(佛菩薩)로 증사(證師)를 모시고 십선대계를 설하고자 합니다.

첫째, 산목숨을 죽이지 말아라.
둘째, 남의 것을 훔치지 말라.
셋째, 사음을 하지 말라.

넷째, 거짓말을 하지 말라.
다섯째, 음탕하고 상스러운 말을 하지 말라.
여섯째, 이간하는 말을 하지 말라.
일곱째, 악한 말을 하지 말라.

여덟째, 탐욕심을 내지 말라.
아홉째, 성을 내지 말아라.
열째, 어리석고 삿된 견해를 갖지 말라.

왜 산목숨을 죽이지 말라 하면은, 모든 사람이나 짐승이나 미물에 벌레에 이르기까지 꿈적꿈적한 생명체를 가지고 있는 것은 다 불성(佛性)을 가지고 있고, 또 과거에 무량겁 윤회(輪廻)의 인연을 살펴보면 선망부모(先亡父母)가 아님이 없어.
그러니 어찌 짐승이나 벌레도 함부로 죽여서는 아니되거든, 하물며 나와 똑같은 인격을 가진 생명을 가진 사람을 죽일 수가 있겠느냐.

산목숨을 죽이면 그 죄가 선망부모를 죽이는 죄가 되고 또 자기 자신에 자비심(慈悲心)을 손상하게 돼. 그러니 산목숨을 죽이지 아니할 뿐만 아니라 죽어 가는 생명을 오히려 살려 주어라.

둘째, 남의 것을 훔치지 말라. 내게 가지고 있는 것을 널리 베풀어서, 궁핍한 사람들을 긍휼(矜恤)히 여길지언정 어찌 남의 물건을 훔칠 수가 있겠느냐.
남의 물건을 훔치면은 그 죄가 마땅히 지옥에 떨어지고, 지옥에서 한량없는 고통을 받다가 다시 사람으로 태어난다 하더라도 평생에 가난한 과보(果報)를 받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남의 물건을 훔치지 말아라.

셋째에 사음(邪淫)을 하지 말지니, 사음을 한 죄로 스스로 자기의 몸과 마음을 더럽힐 뿐만 아니라 인륜의 도덕을 어기는 것이 되고, 지옥에 떨어져서 한량없는 고를 받다가 다시 사람으로 태어난다 해도 부정한 아내나 바람 잘 피는 남편을 맞이해서 좋은 남편과 현숙한 부인을 만나기가 어려운 것이다 그말이여.

넷째에 거짓말을 하지 말지니, 거짓말을 하면 당장 그 사람을 아무도 믿어주질 안 해.
믿어 주지 아니하기 때문에 무슨 일이고 일이 성취가 되지 못하고 존경을 받지 못해. 고대로 살아 있는 채로 매장된 그러한 신세가 될 것이여.

다섯째, 불기어(不綺語)니, 음탕하고 상스러운 말을 해 버릇하면 습관이 되어서 아무데서라도 입만 벌렸다 하면 상소리를 하고 그러고 남을 웃기고 그러는데, 이것은 불자(佛子)로서 그러한 언행을 가져서는 안 될 것이다.

여섯째에 불양설(不兩舌)이니, 이간(離間)하는 말, 여기 와서 이 말하고 저기 가서 해 가지고 서로 이간을 시켜서 불화를 하도록 만드는 그러한 비인격적인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좋은 말로 서로 화합을 부칠지언정 이간질을 해 가지고 불화하도록 하는 죄는 불자로서 그래서는 안 될 것이다 그말이여.

일곱째에 악한 말을 하지 말지니, 사랑하는 아들이나 친구, 남에게 입에 담을 수 없는 악한 욕을 하는 것은 대단히 옳지 못하다 그말이여. 사람의 입에서 나온 말은 한마디도 한데에 떨어진 것이 아니고 그 과보가 무서운 것이여.
어려서부터 '저놈 몹쓸 놈이다. 저놈 사람 못된 놈이다. 저거 버린 놈이다' 이런 말을 자꾸 하고 '죽일 놈'이니, '호랑이 물어 가는' 이런 못된 소리 해 버릇하면 그 말이 바로 그 사람을 저주하는 말이 되기 때문에 저주하면 그 저주를 받는 사람이 해로울 뿐만 아니라, 저주하는 사람이 먼저 악한 과보를 받게 되는 것이여.

그래서 저주하는 그런 악한 말을 하지 말아라. 하지 말고 오히려 착하고 부드럽고 진실된 말로 사람을 격려할지언정 악한 욕을 하지 말아라.

아홉(여덟)째는 탐욕심을 내지 말아라.
자기 분(分)이 아닌 것을 지나치게 욕심을 내 가지고 남의 물건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제 것을 만들려고 그러고, 심지어는 나라의 공금, 세금 그런 것을 횡령하고 빼돌려서 그런 짓을 할 수가 있느냐.
어려서부터 조그마한 그런 욕심을 부리고 훔치는 버릇이 나중에 소도둑이 된다는 속담도 있거니와, 탐욕을 내지 말아라.

아홉째는 진심(瞋心)을 내지 말아라.
탐욕을 내서, 무엇이든지 욕심을 부려 가지고 제 마음대로 얻어지지 아니하면 성을 내는 것이 중생의 나쁜 버릇이다 그말이여. 이거는 물건만을 탐한 것이 아니라, 명예나 권리나 지위나 그런 것도 역시 마찬가지여.

분에 넘치게 그래서 탐욕을 부려 가지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아니해 가지고 그것을 도모하려고 하다가 다행히 그것이 된다 하더라도 머지않아서 다 들통이 나는 거고,
그것이 뜻대로 이루어지지 아니하면은 성을 내가지고 막 남을 그 부해풀이를 하고 험담을 하고 그러니, 어찌 불자로서 그런 행위를 할 수가 있느냐.

열 번째, 어리석고 삿된 견해를 갖지 말아라.
불사견(不邪見)은, 그 삿된 견해가 많지마는 가장 대표적인 것이 인과(因果)의 원리를 믿지 아니하고 그 인과법을 부인하는 것이여. 인과법을 부인을 하기 때문에 마구잽이 함부로 말을 하고, 함부로 행동을 하고, 함부로 모든 삿된 소견을 주장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말이여.

인과법을 여실(如實)하게 이해하고, 여실하게 믿고, 여실하게 실천하는 사람은 자연히 살생을 하지 않게 되고, 도둑질도 하지 않게 되고, 사음도 하지 않게 되고, 망어 · 기어 · 양설 · 악구도 하지 않게 될 것이며, 탐욕심과 진에심(瞋恚心)도 내지 않게 될 것이다 그말이여.

불자는 마땅히 이 사견심을 갖지 말아라.

이 열 가지 계율은 대승법을 믿는 불자로서 마땅히 잘 믿고 지켜야 할 바니, 능히 잘 지키겠는가? 능지(能持).
이상 설한 대승십선계는 불자로서 마땅히 잘 지켜야 할 바니, 능히 잘 지키겠는가? 능지.
이상 설한 대승십선계는 불자로서 도업(道業)을 성취하고, 나아가서는 일체 중생을 제도하려는 대원(大願)을 가진 불자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바니, 능히 잘 지키겠는가? 능지.

연비(燃臂)

지심참회 원멸 사생육도 법계유정 다겁생래 법보제자(至心懺悔 願滅 四生六途 法界有情 多劫生來 法寶齋者)

탐심중죄 금일참회(貪心重罪 今日懺悔)
진심중죄 금일참회(瞋心重罪 今日懺悔)
치심중죄 금일참회(癡心重罪 今日懺悔)

아석소조제악업(我昔所造諸惡業)
개유무시탐진치(皆由無始貪瞋痴)
종신구의지소생(從身口意之所生)
일체아금개참회(一切我今皆懺悔)

참회진언(懺悔眞言)  ‘옴 살바 못자 모지 사다야 사바하’

죄무자성종심기(罪無自性從心起)
심약멸시죄역망(心若滅時罪亦亡)
죄멸심망양구공(罪滅心亡兩俱空)
시즉명위진참회(是卽名爲眞懺悔)

자종금신지불신(自從今身至佛身)
견지금계불훼범(堅持禁戒不毁犯)
유원제불작증명(唯願諸佛作證明)
영사신명종불퇴(寧捨身命終不退)

원이차공덕(願以此功德)
보급어일체(普及於一切)
아등여중생(我等與衆生)
개공성불도(皆共成佛道)


대승십선대계를 받고, 참회진언을 외우면서 연비를 마쳤습니다.
이 연비(燃臂) 하는 뜻은 알게 모르게 무량겁 이래로 금생에 이르기까지 지은 크고 작은 모든 죄를 참회(懺悔)하고, 다시는 범하지 않겠다고 부처님께 서원(誓願)하는 의식을 거행했습니다.(처음~21분28초)

 

 



(2)------------------

그러므로 이 자리에 참석한 법보제자는 과거의 죄를 참회했으므로 몸과 마음이 깨끗해졌습니다. 다시 말하면 과거에 악업을 다 참회하고 새로운 마음을 가졌으므로 오늘 새로 태어남과 같은 것입니다.
새로 불명을 받고 그리고 십선대계를 받고, 나아가서 최상승법(最上乘法)인 활구참선(活句參禪)을 하기 위해서 화두까지 타게 되니 부처님 아들, 부처님 딸로 오늘 새로 태어난 것입니다.

화두와 계첩(戒牒)은 이 법회가 끝난 다음에 순서 있게 다 노나 드릴 것입니다.

오늘 일요법회 날에 산승(山僧)이 여러분에게 하고 싶은 말은, 이렇게 십선대계를 받았으니 어떻게 하면 그 계를 잘 지키면서 불자(佛子)로서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어떻게 공부를 해 갈 것인가? 계율만 잘 지키면 그것으로써 부처님 제자로서 할 일을 다했다고 할 것인가?

우리는 이렇게 십계를 받고 참회를 하고 연비를 받았지만, 숙세에 무량겁을 두고 익혀 온 습기(習氣)가 있어서 일어나는 생각—수없는 생각이 일어났다 꺼지고, 그 생각이 일어나면 그다음 생각으로 또 전개되어서 그것이 말로 표현이 되고, 그것이 얼굴로 표현이 되고 행동으로 옮겨져서 본의 아니게 크고 작은 업(業)을 짓게 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끊임없이 일어났다 꺼지는 모든 행동과 언행의 근본인 우리의 생각을 다스려 나갈 것인가? 그 생각을 다스리지 못하면 본의 아니게 계율에 어긋나는 말이 튀겨져 나오고, 계율에 어긋나는 행동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행동과 말은 바로 우리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생각으로 인해서 발전이 되는 것이므로 그 우리의 생각을 잘 다스릴 줄 알면 저절로 말로 짓는 죄, 몸으로 짓는 죄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억지로 참는다고 해서 잘 되는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참아야 하겠지만 참는 것보단 끊임없이 일어나는 생각을 최상승법에 의해서 그때그때 잘 돌려서 깨달음으로 향해 나가도록 스스로를 단속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 방법이 활구참선법인 것입니다.

활구참선하면 굉장히 어려운 것 같이 느껴지겠지만 이 세상에 제일 쉽고, 제일 간단한 것입니다.

큰 화재가 조그마한 성냥불로 인해서 일어나고 담뱃불로 인해서 일어나 가지고 엄청난 산림을 다 태우듯이, 일어나는 그 한 생각을 단속을 못하면 국가와 민족과 인류를 손상하는 엄청난 큰 죄를 범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뭣고?' 이것은 화두(話頭)이고, 공안(公案)인 것입니다.
문헌에 오른 것만 해도 천칠백 공안이 있지만, 문헌에 오르지 않은 공안은 숫자로 헤아리지 못할 만큼 많습니다. 그러나 그 천칠백 공안 중에 가장 근원적이고 가장 최초에 나온 화두가 '이뭣고?'입니다.
시삼마. 시심마(是甚麼), 시삼마인데.

그렇다고 해서 「'이뭣고?'가 모든 공안 중에 가장 좋다, 그러니 누구라도 참선을 하려면은 '이뭣고?' 화두를 가지고 해야 한다」고 그렇게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자기가 어떤 선지식(善知識)을 친견해 가지고 '무자(無字)' 화두를 탔거나, '마삼근(麻三斤)'을 탔거나 또는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를 탔거나, '부모미생전(父母未生前)'을 탔거나 무슨 화두를 탔던지 일단 탔으면 그 화두 하나로써, 자꾸 화두를 이리 바꾸고 저리 바꾸고 하지 말고, 한 화두를 가지고 확철대오(廓徹大悟)할 때까지 한결같이 참구(參究)를 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송담(松潭)은 모든 화두에 근원적이고 최초의 화두인 그리고 누구나 하기가 쉽고, 말을 바꾸어서 말하면, 안 하려야 안 할 수가 없는 저절로 되어지는.
불법이 무엇인 중도 모르고, 화두가 무엇인 중도 모르고, 참선이 무엇인가도 모르는 사람도 태어나면서부터 태어나서 철이 들면서부터 저절로 하고 있는 「대관절 이 ‘내’라는 게 무엇이냐? 인생이라는 게 무엇이냐?」 괴로울 때나 슬플 때나 저절로 되어 지는 화두가 바로 이 '시삼마' 화두요, '이뭣고?'인 것입니다.

그래서 산승은 '이뭣고?'를 주로 많이 권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미 다른 화두를 하고 있는 분은 계속해서 그 화두를 가지고 열심히 바르게 참구를 하시기를 바랍니다.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이냐?'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혀로 맛보고, 몸으로 차고 더운 것을 느끼고, 생각으로 과거 현재 미래의 일을 생각하고, 때로는 슬퍼하고 때로는 기뻐하고 때로는 성내고, 착한 마음을 낼 때에는 천사와 같다가도 한 생각 삐뚤어지면은 찰나간에 독사와 같이 악마가 되는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놈이 있단 말이여. 소소영령한 주인공이 그렇게 여러 가지로 작용을 할 수 있다 그말이여.

'대관절 그러한 작용을 일으키는 참나는 대관절 무엇이냐?' 이거거든.
슬플 때도 '이뭣고?' 기쁠 때도 '이뭣고?'

사람이 미웁거나 원망스러울 때도 계속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점점 스스로 괴롭고 어떤 행동을 저질을 줄 모른다 그말이여.
정법을 믿고 이 최상승법을 믿고 행하는 사람은 그러한 지경에서도 냉큼 생각을 돌이켜서 '이뭣고?' 이렇게 참구해 나가는 것입니다.

이 생각 저 생각, 하면 할수록 괴로움만 더하고, 원한심만 더 일어나고.
그런데 이 활구참선 하는 사람은 두 번째 생각으로 번지기 전에 즉각 '이뭣고?' 숨을 깊이 들어마셨다가 내쉬면서 '이뭣고?'
자꾸 되풀이해서 샘에서 물이 끊임없이 솟아오르듯이, 향로에서 향불 연기가 끊임없이 일어나듯이, 면면밀밀(綿綿密密)하고 밀밀면면하게 자꾸 참구, 일어나는 생각을 돌이켜서 그 생각 일어나는 곳을 찾는 거여.

무슨 어려운 화엄경이나 법화경이나 무슨 그런 어려운 책을 연구하는 것이 아니고, 무슨 깊은 철학을 연구하는 것이 아니고.
다못 가만히 있어도 눈으로 볼 때, 귀로 들을 때 끊임없이 생각이 일어나거든. 좋은 생각도 일어나고 나쁜 생각도 일어나고, 걷잡을 수 없는 번뇌와 망상이 일어나는데, 일어나자마자 '이뭣고?' 이렇게 돌리는 것이여.

무슨 힘이 크게 드는 것도 아니고, 무슨 높은 학식이 있는 사람만이 하는 것이 아니어.
일자무식도 상관이 없어. 불경을 한 페이지도 읽어보지 않은 사람도 상관이 없어.

「다못 이 소소영령한 이 우리의 진여불성(眞如佛性) 이것이 나의 주인공이고, 그것이 바로 자성불(自性佛)이고, 우주의 주인이다」 한 것만을 믿고 그것을 스스로 참구하되, 주의할 것은 지식이나 무슨 이론적으로 사량분별심(思量分別心)으로 그것을 이리 따지고 저리 따지고 해서 알아 들어가는 공부가 아니어, 이것은.

무조건하고 거두절미(去頭截尾)하고 '이뭣고?' '이뭣고?'
'지금 이뭣고? 하고 있는 바로 이놈이 뭐냐?' 이거거든.
'이뭣고?'할 때는 앞뒤 생각이 딱 끊어져 버리는 거여.

차츰차츰 알아 들어가는 것이 있고 더듬어 들어가는 것이 있고, '아하, 이것이로구나!' 이렇게 알아 들어가는 그런 식으로 공부하는 것이 아니여. 그건 참선을 잘 못하는 것이고.
10년, 20년 내지 미륵불(彌勒佛)이 하생(下生)할 때까지 사량분별로 따져서는 바른 깨달음을 얻을 수가 없는 것이여.

'이뭣고?' 해 갈수록 알 수 없어야 하고, 꽉! 막힌 의심으로 관조해 나가야 하는 거여.
빨리 깨달으려고 성급한 생각을 내지도 말고, 다못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이뭣고?' 알 수 없는 의단(疑團)을 거각(擧却)해서 그것을 관조해 나가는 의관(疑觀)이거든.


허비광음진가석(虛費光陰眞可惜)인데  세간인로시비중(世間人老是非中)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불여단좌포단상(不如端坐蒲團上)에  근주공부계조풍(勤做工夫繼祖風)이니라
나무~아미타불~

허비광음진가석(虛費光陰眞可惜)이여. 광음(光陰), 세월, 시간을 허비한 것이 참으로 가석(可惜)다 그말이여.
일분일초, 한 생각 한 생각이 바로 우리는 죽음의 문을 향해서 걸어가고 있는데, 세간(世間) 사람은 '옳다 그르다. 네가 그르고 내가 옳다' 그런 시비 속에서 그 아까운 시간을 다 보내고 죽음을 향해서 늙어가고 있구나 그거거든.

명예와 권리와 재산을 모이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직접 간접으로 남을 해롭게 하면서 그것을 획득하려고 몸부림치는 것이 어찌 포단상(蒲團上)에 단정히 앉어서 '이뭣고?' 화두를 해 가지고 생사 없는 도리를 깨달아서 영원한 행복을 누리는 이 조사(祖師)의 가풍을 계승하는 것만 같을 것이냐.(21분29초~37분49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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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백년지시잠시간~’ ; 『나옹화상가송(懶翁和尙歌頌)』 ‘경세오수(警世五首)’ 참고.
*광음(光陰 빛 광/응달 음) ; 햇빛[光]과 그늘[陰], 즉 낮과 밤이라는 뜻으로, 시간이나 세월을 이르는 말.
*염라대왕(閻羅大王) : 염마왕(閻魔王). 염라왕(閻羅王). 명후(冥侯). 사후세계의 지배자로, 망자(亡者 죽은 사람)를 재판하는 자. 죽어서 지옥에 떨어진 인간의 생전에 행한 선악(善惡)을 심판하여 벌은 주는 왕.
*조사관(祖師關) ; 조사의 경지에 이르는 관문(關門), 곧 화두(공안)을 말함. 관문(關門)은 옛날에 국방상으로나 경제상으로 중요한 곳에 군사를 두어 지키게 하고, 내왕하는 사람과 수출입하는 물건을 검사하는 곳이다. 화두는 이것을 통과하여야 견성 성불하게 되는 것이므로 선종(禪宗)의 관문이 된다.
*참(參) ; 참구(參究).
*참구(參究 헤아릴 참/궁구할 구) ; ①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드는 것. ②선지식의 지도 아래 참선하여 화두(공안)을 꿰뚫어 밝히기 위해 집중함. 화두 의심을 깨뜨리기 위해 거기에 몰입함.
*불명(佛名) ; 법명(法名). ①출가하여 절에서 행자(行者)로서 일정 기간 동안 수행한 뒤, 계(戒)를 받을 때 스승이 지어 주는 이름. ②스님이 불법(佛法)에 귀의(歸依)한 남녀신자에게 지어 주는 이름.
[참고] 송담스님(No.470)—92년 4월 첫째 일요법회
불법(佛法)에의 깊은 인연으로, 발심(發心)해서 진리를 향해서 살아가는 부처님의 아들딸로 새로 태어났기 때문에 그런 의미로 불보살(佛菩薩)의 이름을 따서 불명으로 받는다. 더 철저히 말하면 그때마다 불명을 받을 수는 없지만, 참선 수행을 통해서 하루하루 새로 태어나야 하고 시간마다 새로 태어나야 한다.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화두(공안)에는 '이뭣고?' '판치생모' '무자' '정전백수자' 등이 있다.
*불보살(佛菩薩) ; 부처님과 보살을 아울러 일컫는 말. 불(佛)은 불타(佛陀)의 준말. 각자(覺者)라 번역한다. 보살은 성불(成佛)하기 위하여 수행에 힘쓰는 이의 총칭이다.
*증사(證師) ; 법회(法會)를 증명할 임무를 맡은 법사(法師).
*불성(佛性) : 부처를 이룰 수 있는 심성(心性)으로 사람사람에게 본래 갖춰져 있는 자성(自性)을 말함。불타나 중생이나 심지어 꿈적거리는 미물(微物)에 이르기까지 그 자성에 있어서는 차등이 없다.
*윤회(輪廻) : 세상의 온갖 물질과 모든 세력(勢力)은 어느 것이나 아주 없어져 버리는 것이 하나도 없다。오직 인과(因果)의 법칙(法則)에 따라 서로 연쇄 관계(連鎖關係)를 지어 가면서 변하여 갈 뿐이다。마치 물이 수증기가 되고 구름이 되고 비가 되어, 다시 물•수증기••• 이와 같이 모든 것은 돌아다니는 것이다。그러므로 우리의 업식(業識)도 육체가 분해될 때에 아주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모든 중생들은 온갖 생각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므로, 쉴 새 없이 번민과 고통 속에서 지내다가 육신이 죽으면 생전에 지은 업(業)을 따라 지옥 · 아귀 · 축생 · 수라 · 천상 또는 다시 인간으로 수레 바퀴 돌듯 돌아다니게 된다。그러나 성품을 깨쳐서 생각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바가 없게 되면 윤회는 끊어지는 것이다.
*선망부모(先亡父母) ; 금생에 돌아가신 부모 뿐만 아니라 과거 우리의 모든 부모.
[참고] 1984년(갑자년) 칠석차례(No.243) 송담 스님 법문에서.
선망부모는 저 사람의 선망부모가 곧 나의 선망부모와 같은 것입니다.
영가(靈駕)는 수천만 번 몸을 바꾸면서 나의 조상이 되었다, 김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가, 박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가, 이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 왔다갔다 하기 때문에, 내 부모가 바로 저 사람의 부모고, 저 사람의 부모가 다 내 부모여서, 내 부모를 소중히 아는 사람은 바로 다른 노인들을 다 소중히 여기게 되고, 내 자식이 사랑스런 사람은 또 다른집 아기들도 아껴주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동체대비(同體大悲)라 하는 것입니다.
*자비(慈悲) ; 자(慈)는 ‘우정, 친애의 생각’라는 원의(原義)로, 남에게 즐거움을 준다는 뜻, 비(悲)는 ‘연민, 동정’을 원의(原義)로, 남의 괴로움을 덜어준다는 뜻. 불보살이 중생을 불쌍히 여겨 고통을 덜어 주고 안락하게 해주려는 마음.
*긍휼히(矜恤- 불쌍히 여길 긍/불쌍할 휼) ; 불쌍하고 가엾게.
*과보(果報 열매 과/갚을 보) ; 인과응보(因果應報, 전생에 지은 선악에 따라 현재의 행과 불행이 있고, 현세에서의 선악의 결과에 따라 내세에서 행과 불행이 있는 일).
*불자(佛子) : 부처님의 자녀라는 뜻이다. 불법(佛法)을 믿는 이면 모두 불자가 된다. 그것은 부처님 법에서 새로운 생명을 얻었기 때문이며 부처님의 혜명(慧命)을 이어가고, 법(法)의 집과 법(法)의 재산을 상속받게 되는 까닭이다.
또한 모든 중생을 다 불자라고 하는데, 그것은 어떤 중생이나 모두 부처의 성품(佛性)이 있어서, 그것이 부처의 씨가 되고, 지혜는 어머니가 되며 부처님은 아버지가 되어, 필경에는 반드시 성불(成佛)하게 된다.
<섭대승론석(攝大乘論釋)>에는 불자에 다섯 가지 뜻이 있다고 하였다. ①믿음이 종자가 되고 ②지혜는 어머니가 되고 ③선정은 태(胎)가 되고 ④자비심(慈悲心)은 유모가 되고 ⑤부처님은 아버지가 된다.
*분(分) : 분수(分數 - 자기 신분에 맞는 한도. 자기의 신분이나 처지에 알맞은 한도).
*부해풀이 ; 분하고 노여운 마음(부아)을 말이나 행동으로 드러내어 표현하는 것.
*부해 ; ‘부아(분하고 노여운 마음)’의 사투리.
*인과(因果) ; ①원인과 결과. 현상을 생성시키는 것과 생성된 현상. ②원인이 있으면 반드시 결과가 있고, 결과가 있으면 반드시 그 원인이 있다는 이치. ③선악의 행위에는 반드시 그 과보가 있다는 도리.
*여실(如實)히 ; 사실과 꼭 같게.
*진에(瞋恚 성낼 진/성내다·분노하다·성·화·분노 에) ; 자기 뜻이 어그러지는 것에 대해 노여워하는 것을 말한다. 진심(瞋心).
*능지(能持 능할 능/가질·지킬 지) ; ①법을 마음에 머물게 하여 잊지 않는 능력. ②계단(戒壇 : 계를 주는 의식이 이루어지는 단壇)에서 계법(戒法 : 불제자가 받는 계)을 받을 때 전계화상(傳戒和尙 : 계를 내려주는 스승)이 수계자(受戒者)에게 그 계의 조목을 하나 하나 설명한 뒤 “그대는 능히 이 계를 받아 굳게 지키겠느냐”라고 물을 때 수계자가 “능지(能持 : ‘능히 받들어 지키겠습니다’)”라고 대답하는 것을 말한다.
*도업(道業) ; 도(道)는 깨달음. 업(業)은 영위(營爲 : 일을 계획하여 꾸려 나감). 불도(佛道)의 수행. 진리의 실천.
*연비(燃臂 불이 타다·불사르다·불을 붙이다 연/팔·팔뚝 비) ; ①불교에서 수행자가 계(戒)를 받을 때, 팔뚝에 향이나 심지로 불을 놓아 뜨는 의식 또는 그 자국. ②팔[臂]을 태우는[燃] 고행. 고행의 한 방법으로 팔뚝을 향불로 지지는 일.
연비(然臂 · 煉臂)로도 쓴다. 발원(發願) · 입서(入誓) · 고행(苦行) · 희사(喜捨)의 등의 뜻으로 행한다.
*참회게(懺悔偈)
아석소조제악업(我昔所造諸惡業)  이제까지 제가 지어온 모든 악업
개유무시탐진치(皆由無始貪瞋痴)  모두가 비롯됨 없는 탐·진·치로 말미암았네
종신구의지소생(從身口意之所生)  몸과 입과 생각으로 지었으니
일체아금개참회(一切我今皆懺悔)  제가 지금 그 모든 것을 참회합니다
*참회진언(懺悔眞言) ; 죄업(罪業)을 참회하는 진언. '옴 살바 못자모지 사다야 사바하'.
*참회(懺悔 뉘우칠 참/뉘우칠 회) ; ①자기의 잘못에 대하여 깨닫고 깊이 뉘우치며, 다시는 같은 잘못을 짓지 않겠다고 결심함. ②신이나 부처님 또는 대중 앞에서 자기의 죄를 뉘우치고 용서를 구함.
[참고]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156~157 참고. (가로판 p163~164)
有罪則懺悔하고  發業則慚愧하면  有丈夫氣象이요,  又改過自新하면  罪隨心滅이니라.
허물이 있거든[有罪] 곧 참회하고, 잘못한 일이 있으면[發業] 곧 부끄러워할 줄 알면[慚愧] 대장부의 기상이 있다 할 것이요, 또한 허물을 고쳐 스스로 새롭게 하면, 그 죄업은 마음을 따라 없어지느니라.

(註解) 懺悔者는  懺其前愆이요  悔其後過라.  慚愧者는  慚責於內하고  愧發於外라.  然이나 心本空寂이라  罪業이  無寄니라
참회(懺悔)란 먼저 지은 허물을 뉘우치고, 뒷날에는 다시 짓지 않겠다고 맹세하는 것이다. 부끄러워한다[慚愧]는 것은 안으로 자신을 꾸짖고, 밖으로는 자기의 허물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은 본래 비어 고요한 것이라, 죄업이 붙어 있을 곳이 없는 것이다.
*죄무자성종심기(罪無自性從心起) 심약멸시죄역망(心若滅時罪亦亡)
죄라는 것은 본래 실체가 없는데[無自性] 마음으로 좇아서 일어나는 것이므로, 마음이 소멸되면 죄 또한 없어진다.

죄멸심망양구공(罪滅心亡兩俱空) 시즉명위진참회(是卽名爲眞懺悔)
마음도 없어지고 죄도 없어져서 그 두가지가 함께 공(空)해져서 없어져버릴 때, 이것이야말로 진짜 참회이다.
*자종금신지불신(自從今身至佛身) 제가 지금 이 몸으로부터 부처의 몸에 이를 때까지
견지금계불훼범(堅持禁戒不毁犯) 금하는 계율 굳게 지켜 훼범하지 않으리니
유원제불작증명(唯願諸佛作證明) 바라옵건데 모든 부처님께서 증명해 주소서
영사신명종불퇴(寧捨身命終不退) 목숨은 차라리 버릴지라도 마침내 물러나지 않겠습니다
*원이차공덕(願以此功德) 원컨대 이 공덕으로써
보급어일체(普及於一切) 일체 중생에게 널리 미쳐서
아등여중생(我等與衆生) 나와 내 가족 그리고 모든 중생들이
개공성불도(皆共成佛道) 모두 함께 불도를 이루어지이다
*서원(誓願 맹세할 서/원할 원) ; 원(願)을 세우고, 그것을 이루고자 맹세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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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

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간화선(看話禪) ; 화(話)는 화두(話頭)의 준말이다. 간화(看話)는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을 본다[看]’는 말로써,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이 화두를 관(觀)해서, 화두를 통해서 확철대오하는 간화선을 전강 조실스님과 송담스님께서는 ‘최상승법(最上乘法)’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고 말씀하신다.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본참공안]를 받아서,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계첩(戒牒 삼가할 계/증명서 첩) ; 계(戒)를 받았다는 증명서.
*산승(山僧) ; 스님이 자신을 겸손하게 일컫는 말.
*습기(習氣) ; ①과거의 온갖 업(業)—생각, 행위, 경험, 학습 따위로 말미암아 아뢰야식(阿賴耶識)에 남긴 기운, 잠재력. 종자(種子)와 같음. ②번뇌로 인해 남아 있는 습관적인 기운. 습(習), 번뇌습(煩惱習), 여습(餘習), 잔기(殘氣)라고도 한다.
*업(業) : [범] karma [파] Kamma 음을 따라 갈마(羯磨)라고 하며, '짓다(作)'의 뜻이다。중생들이 몸으로나 말로나 뜻으로 짓는 온갖 움직임(動作)을 업이라 한다。개인은 이 업으로 말미암아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모든 운명과 육도(六道)의 윤회(輪廻)를 받게 되고, 여러 중생이 같이 짓는 공업(共業)으로 인하여 사회와 국가와 세계가 건설되고 진행되며 쇠퇴하거나 파멸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처음에는 악업(惡業)을 짓지 말고 선업만 지으라고 가르치다가, 필경에는 악과 선에서도 다 뛰어나고, 죄와 복에 함께 얽매이지 말아서 온갖 국집과 애착을 다 버리도록 하여, 부처님의 말씀에까지라도 걸리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 왔다.
*천칠백 공안(千七百 公案) ;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에 천칠백일 명의 인물들이 보여준 기연어구(機緣語句, 깨달음을 이루는 기연에 주고받은 말과 경전·어록의 글)를 수록하고 있는 것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
*선지식(善知識) ; ①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좋은 지도자. 훌륭한 지도자. 바르게 이끄는 사람. ②좋은 벗. 마음의 벗. 선우(善友).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참구(參究 헤아릴 참/궁구할 구) ; ①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드는 것. ②선지식의 지도 아래 참선하여 화두(공안)을 꿰뚫어 밝히기 위해 집중함. 화두 의심을 깨뜨리기 위해 거기에 몰입함.
*소소영령(昭昭靈靈) ; 한없이 밝고 신령함. 소소(昭昭)도 영령(靈靈)도 함께 밝은 뜻. 밝은 모양. 진여(眞如), 법성(法性), 불심(佛心)을 의미하는 말.
[참고] 『임제록(臨濟錄)』
〇道流 儞欲得作佛 莫隨萬物 心生種種法生 心滅種種法滅 一心不生 萬法無垢 世與出世 無佛無法 亦不現前 亦不曾失 設有者 皆是名言章句 接引小兒 施設藥病 表顯名同 且名句不自名句 還是儞目前 昭昭靈靈 鑒覺聞知照燭底 安一切名句

도를 배우는 이들이여. 그대들이 부처가 되고자 한다면 일체 만물을 따라가지 말라. 마음이 나면 온갖 법이 나고 마음이 멸하면 온갖 법이 멸하니, 한 마음 나지 않으면 만법에 허물이 없다. 세간과 출세간에 불(佛)도 없고 법(法)도 없어서 현전하지도 않고 잃은 적도 없다.
설사 무엇이 있다 하더라도 모두 언어의 구절이어서, 어린아이를 달래기 위해 병에 따라 약을 준 것이며 무엇을 표현하는 이름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언어의 구절은 그 자체로 언어의 구절이 되는 것이 아니라, 다름 아닌 그대들 눈앞에서 밝디 밝고 신령하게[昭昭靈靈] 살피거나 느끼거나 듣거나 알거나 비추는 바로 그것이 모든 언어의 구절을 붙이는 것이다.
*면면밀밀(綿綿密密) ; 면면(綿綿)하고 밀밀(密密)하게. 면밀(綿密)이란 말을 거듭하여 뜻을 강조한 것으로 '끊어지지 않고 아주 빈틈없이 빽빽하게 죽 잇따라 들어차 있다'는 말. 끊이지 않고 빈틈없이 행하는 것을 말한다.
*면면(綿綿 솜·이어질·연속할 면) ; 끊어지지 않고 죽 잇따라 계속 이어지는 것.
*밀밀(密密 빽빽할·촘촘할 밀) ; 빈틈없이 빽빽히 들어찬 것.
*진여불성(眞如佛性) ; 진여(眞如)인 불성(佛性).
*진여(眞如) ; ①차별을 떠난,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②궁극적인 진리. ③모든 분별과 대립이 소멸된 마음 상태. 깨달음의 지혜. 부처의 성품. ④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청정한 성품.

*불성(佛性) ; ①모든 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부처가 될 수 있는 소질·가능성. ②부처 그 자체. 깨달음 그 자체.

*주인공(主人公)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청정한 부처의 성품을 나타내는 말. 주인옹(主人翁).
*자성(自性) ; ①사물 그 자체의 본성. 본성 ②본래부터 저절로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사량분별(思量分別) : 사량복탁(思量卜度), 사량계교(思量計較)와 같은 말.
생각하고 헤아리고 점치고 따짐。 가지가지 사량분별(思量分別)로 사리(事理)를 따짐。 법화경 방편품(法華經方便品)에 ‘이 법은 사량분별로 능히 알 바가 아니다’라고 함.
*거두절미(去頭截尾) ; 말이나 사건 등의 부차적인 설명은 빼어 버리고 사실의 요점(要點)만 말함.
*거각(擧却 들 거/어조사 각) ; 화두를 든다. ‘화두를 든다’ ‘화두를 거각한다’는 말은 자신의 본참화두를 들 때 알 수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그 알 수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觀照)하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 세등선원(No.09)—병진년 동안거 결제중 법어(76.12.26)에서.
화두를 먼저 이마로 의심을 하지 말고, 이 화두를—호흡하는데 배꼽 밑[丹田]에 숨을 들어마시면은 배가 볼록해지고 숨을 내쉬면은 배가 홀쪽해지는데, 그 배가 빵빵해졌다 홀쪽해졌다 허는 거기에다가 화두를 들고 ‘이뭣고~?’ ‘알 수 없는 생각’ 관(觀)하는 그것이 화두를 드는 것이여.
*의단(疑團 의심할 의/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의심(疑心) :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해 ‘알 수 없는 생각’에 콱 막히는 것.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이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수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이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또는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또는 ‘조주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바른 깨달음은 알 수 없는 의단, 알 수 없는 의심에 꽉 막힌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의관(疑觀) ; 의심관(疑心觀). 화두를 거각하여 알 수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그 알 수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觀照)를 하는 것.

 

[참고] 송담스님(세등선원 No.68)—정묘년 동안거 해제 법어(1988.01.17) (5분 59초)
처음에 공부를 할 줄 모르는 사람은 힘을 좀 써야 화두가 들리니까 힘을 좀 써서 하기도 하고, 자꾸 숨을 들어마셨다 내쉴 때마다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한번 하고 한참 있으면 화두가 없어져 버리니까, 부득이 숨을 내쉴 때마다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하고 자주자주 들을 수 밖에는 없지만, 한 철, 두 철, 세 철 이렇게 해 가다 보면 그렇게 자주 들지 안 해도 화두가 잘 들리게 된다 그말이여.

들려 있걸랑 화두를 다시 또 거기다 덮치기로 자꾸 들어 쌀 필요는 없는 것이여.
화두가 희미해져 버리거나, 화두가 없어지고 딴 생각이 들어오거나 하면 그때 한번씩 떠억 챙기면 되는 것이지, 화두가 이미 들어져서 알 수 없는 의심이 있는데, 거기다 대고 자꾸 화두를 막 용을 쓰면서 자꾸 들어 싸면 그것은 아주 서투른 공부다 그말이여.

그렇게 순일하게, 화두를 들려고 안 해도 화두가 터억 들려서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걸랑, 그 독로한 의단을 성성(惺惺)한 가운데 묵묵히 그것을 관조(觀照)를 하는 거여. 알 수 없는 의심의 관(觀)이여. 의심관(疑心觀).

거기에는 고요하다는 생각도 붙을 수가 없고, 편안하다는 생각도 붙을 수가 없고, 맑고 깨끗하다는 생각도 어떻게 거기다가 그런 생각을 붙일 수가 있냐 그말이여. 고요하고 맑고 깨끗하고 편안한 그런 생각에는 조금도 그런 생각을 두어서도 안되고, 그런 생각을 즐겨서도 안되고, 그런 생각을 집착해서도 안돼.
다맛 우리가 할 일은 알 수 없는 의단(疑團)만을 잘 잡드리 해 나가는 거여. 너무 긴하게 잡드리를 해서도 안되고, 너무 늘어지게 해서도 안되고, 긴(緊)과 완(緩) 긴완(緊緩)을 득기중(得其中)을 해야 혀. 그것이 묘한 관(觀)이라 말할 수가 있는 거여.

관(觀)이라 하는 것도 일종에 생각이지만, 생각없는 생각을 관(觀)이라 하는 거여.
우리가 참으로 올바르게 화두를 들을 줄 모르는 사람은 부득이 해서 생각을 일으켜 가지고 화두를 참구를 하는데, 일구월심 정진을 해서 참으로 바르게 화두를 참구할 줄 아는 사람은 바로 관(觀)으로 들어가는 거여. 관이란 생각없는 생각으로 생각하는 것을 관이라 그러는 거여.

조금도 늘어지지도 않고, 조금도 긴하지도 아니한 ‘묘(妙)한 의심(疑心)의 관(觀)’으로 해 나가야 되는 거여.

1분의 백천 분의 1 같은 그런 짧은 시간도 생각을 일으켜서 그 일어나는 잡념을 물리칠라 할 것도 없고, 그렇게 화두가 순일하게 된다 해도 아주 미세한 생각은 이렇게 일어날 수가 있어.
일어나지만 그것을 일어나는 생각을 물리칠라고 생각을 내서는 아니되는 거여. 생각이 일어나더라도 일어난 채로 그냥 놔둬 버리고, 자기 화두만을 잘 관해 나가면 그 생각은 자취없이 스쳐서 지내가 버리는 거여.

마치 앞으로 춥도 덥지도 않는 이 봄철이 돌아오겠지마는, 그 봄철에 도량이나 동산에 나가서 그 산책을 하면서 포행을 하면서 정진을 헐 때에 춥지도 덥지도 않는 봄바람이 귓전에 스쳐간다고 해서 그 봄바람 때문에 화두가 도망갈 필요는 없거든.
그냥 귓전을 스쳐서 지내가고 옷자락이 좀 팔랑거리거나 말거나 내버려둬 버리고, 나는 성성적적(惺惺寂寂)허게 그 의심의 관(觀)을 단속해 나가는 것처럼, 일어나는 크고 작은 모든 번뇌가 일어난다 하드라도 그냥 놔둬 버려.

끝없이 일어났다가 없어지고 일어났다 꺼져 버리고, 내가 거기에 따라주지만 아니하고, 집착하지만 아니하고, 물리칠라고 하지도 말고, 그러면은 그냥 제 결에 일어났다가 제물에 그냥 스쳐가 버리는 거여.
그까짓 것은 내가 공부해 나가는 데 조금도 방해로울 것이 없는 것이여.
우리 활구참선을 하는 수행자는 승속(僧俗)을 막론하고 그 화두를 올바르게 잡두리 해 나갈 줄만 알면,
어디를 가거나 다 선불장(選佛場)이요, 그게 바로 선방(禪房)이요, 공부처(工夫處)다 그말이여.

 

[참고] 송담스님(No.256)—85년 2월 첫째 일요법회(85.02.03) (5분 57초)
금년 여름에 보살선방에 백여섯 분이 방부를 들여서 항시 칠팔십 명이 그렇게 참 엄격한 규율 속에서 정진들을 모다 애쓰고 계시는데 자세를 바르게 하고, 호흡을 바르게 하고, 나아가서 세 번째 가서는 화두(話頭)를 어떻게 의심(疑心) 하느냐?
이 화두를 의심하는 방법, 이것이 또한 간단하지만 참 이것이 어려운 것입니다. 한 철, 두 철, 세 철, 3년, 5년, 10년을 해도 이 화두를 참으로 올바르게 화두를 참구(參究)하고, 관조한다는 것은 어려운 것입니다. 이것은 한 말로 ‘이렇게 하는 것이 좋다’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법문을 듣고 고대로 또 하고, 고대로 하면서 또 법문을 듣고 해서 스스로 많은 노력, 스스로 그것을 공부해 나가는 요령—급하지도 않고 너무 늘어지지도 아니하며, 그 요령을 스스로 터득을 해야 합니다.
스스로 터득한다니까 선지식(善知識)도 필요 없고, 자기 혼자 어디 돌굴이나 토굴에 가서 막 해제끼면 되냐 하면 그게 아니에요. 반드시 선지식의 지도를 받되, 받아 가지고 하면서도 스스로 그 묘한 의관(疑觀)을 얻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묘한 의심관이라 하는 것은 도저히 어떻게 말로써 설명해 가르켜 줄 수가 없습니다. 자기가 일구월심(日久月深) 항시 면면밀밀(綿綿密密)하게 의심해 가고 관해 가고, 그 자세와 호흡과 화두를 삼위가 일체가 되도록 잘 조정을 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필경에는 그 묘한 의심관인 것입니다. 그 의심관, 관(觀)이라 하는 것도 일종의 생각이지만 ‘생각 없는 생각’을 관이라 이렇게 말할 수가 있는데, 막연하게 어떤 관이 아니라 이 활구참선(活句參禪)은 ‘의심(疑心)의 관’이라야 돼.

 

옛날에는 해가 떨어지려고 할 때, 서산에 지려고 할 때, 저 수평선에 해가 지려고 할 때에, 그 큰 맷방석만한 해가 땅에 질락 말락 할 때 그 빨갛고 아름다운 거—해가 중천에 있을 때는 눈이 부셔서 볼 수가 없는데, 해가 질 무렵에는 눈이 부시질 않고 그 아름답고 벌건 굉장히 큰 그 해를 볼 수가 있습니다.
그 아름다운 해를 한참 보는 것입니다. 마지막 딱 떨어져서 안 보일 때까지 한 시간 내지 두 시간을 눈이 부시지 아니할 때부터서 그것을 관하기 시작해 가지고 마지막 질 때까지 관찰하고서, 그 다음에는 밤새 그 눈을 감으나 뜨나 그 찬란하고 아름다운 둥그런 해를 관(觀)하는 것입니다.

 

눈을 감고서도 보이는 것이 그것이 관(觀)인 것입니다. 눈을 뜨나 감으나 상관없이 항시 있는 것이 그것이 관인데, 그것을 갖다가 일관(日觀)이라 그러거든. 해를 관하는 수행법이여.

밤새 그 둥근 해를 갖다가 관하고, 그 이튿날 하루 종일 관하다가 또 해 질 때 다시 또 그 관을 해서, 그 관을 다시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또 밤새 관하고, 그 이튿날 관하고 또 해 질 때 관하고 해서 평생 동안을 그렇게 관을 해 나가는데, 이것도 하나의 수행 방법입니다.
이러한 그 일관이라든지 또 달을 관하는 관법이라든지, 아까 백골관이라든지, 여러 가지 관법(觀法)이 있는데, 이 참선도 하나의 ‘의심의 관법’이라 이렇게 말할 수가 있습니다.

 

성성(惺惺)하고 적적(寂寂)하면서도, 일부러 화두를 들려고 하지 아니해도 저절로 그 의심관이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그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도록, 처음에는 ‘이뭣고?’ ‘이뭣고?’하지만 나중에는 ‘이뭣고?’ 안 해도 알 수 없는 의심이—해가 질 때 봐두었던 그 둥근 해가 밤에도 고대로 보이고, 그 이튿날에도 고대로 환하게 보이듯이, 의심관이 그렇게 되어야 하거든.
그렇게 해서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면 일주일을 가지 못해서 공안을 타파(打破)하게 되고, 일체 천칠백 공안을 일관도천(一串都穿)을 해. 자기의 본래면목(本來面目)과 역대조사(歷代祖師)의 면목을 사무쳐 보게 되는 것입니다.
*(게송) '허비광음진가석~' ; 『부휴당대사집(浮休堂大師集)』 권4, '경세(警世)' 참고.
*세간(世間) ; (산스크리트어 loka) 세(世)는 파괴·변화·흐른다는 시간의 뜻이 있고, 간(間)은 가운데·간격·틈새라는 공간의 뜻이 있다.
① 변하면서 흘러가는 현상계. ② 생물들의 세계. ③ 생물들이 거주하는 자연 환경, 곧 산하대지. ④ 세상. 이 세상. 세속. ⑤ 산스크리트어 saṃsāra 미혹한 세계. ⑥ 육내입처(六內入處), 또는 십이처(十二處)를 말함.
*포단(蒲團) : ①좌선할 때 깔고 앉는 방석(方席). ②부들풀로 만든 둥근 방석. 근래에는 이 포단 대신 '좌복(坐服)'이라는 말을 주로 사용하고 있다.
*조사(祖師) : 부처님의 바른 종지(宗旨) 곧 조사선법(祖師禪法)을 전하는 스승을 말함이니 종사(宗師)와 같다.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