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회(입춘기도)2015. 12. 21. 13:41

 

 

§(010) 태전 선사 이야기 / (게송)십년불하축융봉~ / 업장소멸과 깨달음을 만드는 활구참선법 / 심호흡과 수식관 / 삼요—대신심, 대분심, 대의심.

항시 이 용화선원에서 조실 스님께서 십 년 동안을 그렇게 간절히, 고구정녕(苦口叮嚀)하게 말씀해 주시던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 ‘이뭣고?’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이 방법은 무량겁으로 내려오는 그 죄업의 열매를 녹여서 깨달음의 과일을 만드는 방법이고, 거기 그 열매로부터 가지가 뻗어 나와 이 세계에 가득차도록 가지가 번지고 번져서 한량없는 죄의 종자가 주렁주렁 열려 있는 그놈마저도 눈 한번 감았다 뜬 사이에 그놈을 소멸을 해서, 그놈을 돌려 가지고 깨달음이 되도록 만드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큰 신심(信心)이라 하는 것이 무엇이냐? 절에다가 돈 많이 가져오고 부처님 앞에 절 많이 하고 그것이 아니라 ‘나도 아무리 내가 여자고, 아무리 내가 말세에 태어났고, 아무리 내가 몸이 병이 있고 약하다 하더라도 옳은 방법으로 옳게만 공부를 하면은 나도 틀림없이 도업(道業)을 성취할 수 있다’고 믿는 것, 그것이 대정신(大正信)입니다. 바른 믿음입니다.


오직 될 수 있으면 빨리 시간을 단축하고 그리고 바르게 깨달으려면은 무조건(無條件), 무이로(無理路), 무어로(無語路), 무모색(無摸索)—더듬어 들어가지 말 것이며, 따져 들어가지 말 것이며, 이리저리 비교하고 분석하고 종합하고 해서 지해(知解)와 사리상량(邪理商量)으로 알려고 하지 말 것입니다.
다못 거두절미하고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해 갈수록 알 수가 없고, 해 갈수록 답답하고 꽉 맥힌 것, 그것이 공부가 가장 잘되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암만 해도 답답하기만 하고 아무 것도 안 되니, 이 공부가 잘된 것입니까, 공부가 잘못된 것입니까?’ 이렇게 와서 묻는 분들이 종종 계시는데, 갈수록 알 수가 없고, 꽉 맥히는 그분이야말로 가장 올바르게 공부를 하고 계시는 분이고, 그렇게 해 나가야, 갈수록 그 알 수가 없이 꽉 맥혀야 그분은 깨달을 수 있는 분입니다.
솔솔 따져 들어가고, 무엇이 알아 들어가는 것이 있고, 더듬어 들어갈 것이 있어서 재미를 거기다 붙여 가지고 무엇을 들여다보고 앉았고 이런 사람은—그건 참, 도저히 그런 공부는 차라리 공부 안 한 것만 못합니다. 그냥 아들딸 잘되라고 관세음보살 부르는 게 훨씬 낫습니다.


**송담스님(No.010)—76년 입춘법회 법문(76.02.04)(60분) (용010)


(1/3) 약 19분.

 

(2/3) 약 22분.

 

(3/3) 약 21분.


(1/3)----------------

녹음기 사정으로 조실 스님 법문을 계속 듣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대충 그전에 조실 스님께 법문 들은 것을 기억나는 대로 간단히 말씀드리겠습니다.

그 축융봉(祝融峰)에 태전 선사(太顚禪師)가 떠억 머물러 계시는데, 그때 민가에 소문이 나기를 도술을 부리고 그런 요승(妖僧)이 축융봉에 도사리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비가 삼 년이나 오지 않아서 농사를 짓지 못하고 이런다.
그래 가지고 소문이 나니까 그때 원님이 그 말을 듣고—유가(儒家)에서는 요승이라고 했지마는 그때 불가(佛家)에서는 큰 도사라고 아주 모든 신도로부터서 신임을 받고 존경을 받고 명망이 높았습니다.

그러나 유가의 입장, 선비의 입장에서는 불교의 도인(道人)이 그렇게 계신 것을 대단히 못마땅하게 생각해 가지고 ‘무슨 트집을 잡어서라도 이 스님을, 태전 선사를 큰 벌을 내려 가지고 없애서 불교가 흥왕하는 것을 방지를 해야겠다’

이렇게 벼르고 있던 차에 마치 비가 이렇게 오지 아니하고 그러니까, 그것을 조건을 잡기 위해서 홍련(紅蓮)이라고 하는 기생을 시켜서—그 홍련이는 그때 당시 중국 천하에서 제일 미인이라고 소문이 났습니다.
천하일색으로써 아직 한번도 정조(貞操)를 뺏긴 일이 없이 고대로 그 정조를 지키면서 글 잘하고, 시 잘 짓고, 노래 잘 부르고, 춤 잘 추고 그런데다 천하의 일색이라 그 홍련이를 시켜 가지고,
“너 백일 동안의 말미를 줄 테니, 태전 선사한테 가서 태전 선사를 무슨 수단을 써서라도 기어이 파계(破戒)를 시켜라.” 원님한테 그러한 특명을 받고서 비밀리 그 축융봉을 올라갔습니다.

올라갈 때에 처음에는 아주 태전 선사를 신(信)하는 신도로 가장을 해 가지고, 아주 가서 절을 석 자리를 하고, 입으실 것, 잡술 것, 향에다가 과일에다 갖은 정성 들인 음식, 기타 모든 물건을 마련을 해 가지고 가서 갖다 바치고 그야말로 생명이라도 바칠 것 같이 온갖 정성을 다 드렸습니다.

그래서 며칠 동안 그렇게 정성을 들여 가지고는 차츰차츰 그 스님 가까이 해 가지고 ‘법문을 해 주시라’고 이렇게 해 가지고는, 낮에 그러다가 나중에는 밤에도 그 방에 드나들고, 차츰차츰 익혀 가지고 한 달, 두 달, 석 달 해서 백일이 거의 다 차갔습니다.
그래도 조금도 그 태전 선사는 눈 한번 거들떠본 일이 없고, 처음이나 중간이나 백일이 차도록 조금도 다른 기색이 보이지를 안 해.

그래서 이 홍련이라고 하는 기생은 만약에 백일 동안에 태전 선사를 파계를 시키지 못하면은 자기는 원님한테 쥐도 새도 모르게 사형을 당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백일 마지막이 되었습니다. 온갖 아양을 떨고 마지막에는 아주 노골적으로 아양을 떨고, 야수를 떨고, 꼬리를 치고 해도 어림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마지막 날 새는 날 밤에는 울면서 “저를 살려 달라”고 하소연을 했습니다.

“대관절 그대가 신심으로써 불법을 배울라고 왔다고 해 놓고 무슨 속에 그러한 한이 있어서 살려 달라고 그러느냐?”
“다름이 아니라 저는 기생으로서 원님의 특별 비밀 명령을 받고서 스님을 파계 시킬려고 왔습니다. 만약에 오늘 스님을 파계를 시키지 못하면 저는 이 길로 가서 죽게 됩니다”
“그래, 그렇다면 좋다”

그런데 그 홍련이의 팔에는 앵혈(鶯血)이라고—만약에 살에다가 앵혈이라고 하는 앵무새의 피를 묻혀 가지고 있으면은 정조를 뺏기면은 그 피가 변해 버립니다. 정조를 뺏기지 아니하면 그 피가 빨간 피빛깔이 변하지 않고,
그래서 앵혈을 묻혀 가지고 온 것을 보이면서 “이것을 보십시오. 제가 이대로 가면은 이 핏빛이 변하지 아니함으로 해서 제가 아무리 거짓말로 스님을 파계시켰다고 해도 이것은 소용이 없습니다”

그렇게 울면서 사정을 하니까, 태전 선사가 “그러면 좋다. 내가 글 한 수(首)를 써줄 테니, 이것을 갖다가 원님한테 보이면은 네 생명은 살 것이다”

‘십년불하축융봉(十年不下祝融峰)’  십 년 동안을 축융봉을 내려가지 아니했는데,
‘관색관공즉색공(觀色觀空卽色空)’이라. 관색관공즉색공—보통 새기기를 ‘색을 보고 공을 관(觀)하니 곧 색(色)이 공(空)했더라’ 이렇게 새기지마는, ‘색(色)을 보는 관(觀)이 공(空)했으니 곧 색(色)이 공(空)했다’ 이렇게 새겨야 하는 것입니다.
십 년을 축융봉을 내리지 아니하니, 색(色)을 보는 관(觀)이 공(空)했으므로 색(色)이 곧 공(空)했더라.

‘여하조계일적수(如何曹溪一適水)’가, 어찌 조계(曹溪)—육조(六祖) 스님이 조계산에 계셨기 때문에 육조 스님의 법을 이어받은 모든 도인들은 조계 후손입니다.
그래서 어찌 육조 스님의 법통을 이어받은 이 조계(曹溪)의 한방울 물이 ‘긍타홍련일엽중(肯墮紅蓮一葉中)’이냐. 어찌 홍련이의 한 이파리 속에 떨어질까 보냐.

다시 말하자면은 이 육조 스님의, 달마 스님 이래로 내려오는 이 조계의 법통을 가진 나의 한방울 물이 홍련이 너 같은 기생의 몸에 어찌 떨어질 수가 있겠느냐. 어찌 내가 너한테 파계를 할 수가 있겠느냐 그런 뜻이지요.
그러한 글을 써서 홍련이의 옷에다가 그것을 죽죽죽죽 써 가지고, 그것을 네가 갖다가 바쳐라.

그래서 홍련이는 태전 선사를 파계 시킬 그런 목적으로 왔었지마는 백일 동안을 법문을 들으면서 갖은 아양을 떨었지마는 마침내 태전 선사를 극복을 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태전 선사의 그 덕행과 법력과 도력에 감화를 입어서 정말 안팎이 고대로 진실한 제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거기서 백배사죄(百拜謝罪)를 하고 태전 선사가 적어주신 그 글을 갖다가 원님한테 갖다 바쳤습니다.

원님이 그 글을 턱 보고는 그길로 태전 선사한테 와 가지고 사죄를 하고, 태전 선사의 제자가 되어서 철저히 신(信)하고 그 지도하에 공부를 해 가지고 큰 도인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역사에 분명히 전해 내려오고 전등록에 적혀 내려오는 사실입니다.
조실 스님이 이 법문을 하셨으면은 좀 더 실감있게 여러분에게 잘 말씀하셨을 텐데, 제가 간단히 요약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오늘 입춘을 기해서 마침 정월 신수기도 도중이지마는 우리나라의 모든 불교를 믿는 분이나 불교를 안 믿는 분이나, 입춘을 기해서 입춘 불공(佛供)을 함으로써,
일 년 모든 관재구설(官災口舌)과 사백사병(四百四病), 팔만사천 재앙을 전부 물리치고, 모든 소원을 성취하고, 사대(四大) 강건하고 육근(六根)이 청정(清淨)해서 소원을 성취하기 위해서 입춘 불공을 하는 준례가 오늘날까지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방방곡곡의 모든 큰 절, 작은 절에서는 입춘 마지(摩旨)라 해 가지고 아주 새벽부터서 시간을 맞춰서 모다 불공을 하고 그래 내려오고 있습니다마는,
우리 절에서는 새벽에 들었거나 또는 저녁에 들었거나 항시 부처님 마지 올리는 사시(巳時)를 기해서 이렇게 조실 스님의 법문을 듣는 것으로써 모든 법요식을 거행해 내려오고 있느니 만큼 오늘 사시를 기해서 이렇게 입춘 법회를 거행하고 있습니다.

조실 스님의 태전 선사에 대한 법문 말씀이—불법을 망하게 하기 위해서 기생을 보내 가지고, 기생으로 하여금 갖은 아양을 떨게 해 가지고, 큰스님을 파계를 시킴으로써 불법을 아주 송두리째 뿌리를 뽑아서 아주 종자를 없앨 양으로 했던 것이,
그 태전 선사의 거룩한 덕행과 법력으로써 오히려 그 기생과 원님을 감화를 시켜 가지고, 그 지방에 불법을 융숭하게 한 그러한 역사를 들어서 말씀을 하시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서화담, 황진이, 또 박연폭포’해서 이걸 ‘개성삼절(開城三絶)’이라 해 가지고 이 황진이 이야기가 나오면은—황진이가 서화담을 그렇게 파계를 시킬랴고 갔다가 서화담은 종래에 극복을 못하고, 서화담은 끝끝내 황진이한테 넘어가지 않았는데,
불교의 지족 선사한테 가니까 지족 선사가 단박 황진이한테 넘어갔다고 하는 그러한 소설도 내려오고, 또 영화로도 모다 그러한 이야기가 만들어져 갖고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고려 때 너무나도 불법을 국교로 모시고 임금으로부터서 일반 백성에 이르기까지 불교를 그렇게 돈독히 신하고,
왕자, 임금님의 아들이나 또는 고관대작, 대신들의 아들은 말할 것도 없고 일반 서민들도 그 가문이 좋고, 삼 형제를 낳으면 그 삼 형제 중에 제일 잘난 아들로 골라서 스님이 되도록 부처님께 바치고, 이렇게 해서 온 나라가 참! 속속들이 불교를 그렇게 깊이 신해 내려오다가,

고려 운이 다 가고 이조가 들어서게 되자, 이조에 있어서는 유교를 국교로 해 가지고 유교를 숭상하는 그러한 정책을 쓰게 되니 만큼,
그러기 위해서는 종래 모든 백성들이 불교를 그렇게 신해 오던 터이라, 고대로 두고 유교를 암만 포교를 하려고 해도 잘 되지 않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지 불교를 없이하고, 불교를 아주 좋지 못한 걸로 일반 백성들한테 이해를 시키고 납득을 시켜 가지고,

그래 해야만 불교에 대해서는 차츰차츰 신심이 떨어져야 유교 정책을 쓰기에 편리하게 되기 때문에 온갖 못된 이야기를 만들고, 조그만한 일도 굉장히 크게 잘못한 것처럼 모다 악선전(惡宣傳)을 하고 퍼뜨려 가지고, 그렇게 해서 일반 사람들에게 불교에 대한 인식을 아주 좋지 않게 그렇게 퍼뜨렸던 것입니다.

그리해서 신돈(辛旽)이의 역사라든지, 그것도 일양으로 신돈이란 사람이 그렇게 나쁜 사람이 아니었고, 내용은 그분의 공로도 굉장히 컸었지마는 말경(末境)에 가서 조그만한 잘못도 크게 잘못한 것처럼 그렇게 모다 선전을 해서 전해 내려오고,

또 지족 선사에 대한 이야기도 ‘없는 얘기’를 그렇게—유교 선비인 서화담은 그렇게 훌륭한 분으로 내세우고, 불교의 지족 선사는 그렇게 나쁜 사람으로 선전하기 위해서 황진이를 떠억 내세워서 이야기를 재미있게 꾸며 가지고 소설도 내놓고, 모다 그래 가지고는 방방곡곡에 그 이야기를 퍼뜨렸던 것입니다.

그것이 오늘날에는 아주 실화처럼 되어 가지고 영화에까지 모다 나오고 그래서 모르는 사람이 없이 모다 그런 얘기들을 알고 계십니다마는,
참으로 이 불교의 도인들이 얼마만큼 그러한 위경(危境)에 처해 있을 때, 그런 유혹에 처했을 때 그런 것을 물리치는데 있어서 어찌 마을의 선비에 질 까닭이 있겠습니까?
혹, 그런 지족 선사니 서화담이니 그런 말씀이 어디서 나오더라도 이것은 정책상 유교 선비들이 불교를 말살하기 위해서 만들어 가지고 그렇게 퍼뜨렸다고 하는 것을 여러분들께서 잘 아시고, 그렇게 대응을 하시기를 바랍니다.(처음~18분18초)

 

 

 



(2/3)----------------

오늘 입춘을 기해서 이 법회를 거행하게 되었습니다마는 우리는 비단 이 입춘뿐만이 아니라 하루하루를 모든 재앙을 소멸하고, 일체 소원을 성취하기 위한 기도로 알고 하루하루를 지내가야 될 줄 압니다.

입춘 하루 불공을 올렸다고 해서 무량겁(無量劫)으로 내려오면서 지은 자기의 죄가 다 소멸이 될 까닭이 없습니다. 왜 그러냐?
우리는 한 생각 일어났다 꺼질 때 벌써 육도윤회(六途輪廻)할 수 있는 종자(種子)를 심고 있기 때문에 그럽니다.

그 종자를 우리 마음 속에 심으면서 동시에 자기 속에 그동안에 심어 놓았던 싹은 밖으로 터 나오게 됩니다. 그 싹이 터 나오면서 동시에 또 하나의 종자가 우리 마음 속에 심어지게 됩니다.
싹이 한쪽으로 트면서 동시에 종자는 거두면서, 종자 거두면서 또 싹은 터 나오고 해 가지고,

한 생각, 일념지간(一念之間)에 구백생멸(九百生滅)이 있습니다마는, 그 일념 속에 구백생멸—그 생멸이라 하는 것은 생각이 일어났다 꺼졌다,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것이 전깃불보다도 더 빠릅니다.
그 구백생멸(九百生滅) 속에 얼마나 많은 종자가 심어지며, 그 종자 심으면서 얼마나 많은 싹이 또 터 나오느냐 그말이여. 그것이 전부 육도윤회할 수 있는 죄업(罪業)이요 다른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은 한번 입춘 마지에 불공을 했다고 해서—계속 그 종자를 심고 있고, 그 종자에서는 계속 그 죄의 싹이 터 나오고 있는데—그것으로써 무량겁 죄가 다 녹아졌다고 안심할 수가 없다 이 말씀이여.

그러기 때문에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걸어갈 때나 또는 가만히 서 있을 때나, 또는 앉았을 때나 누웠을 때나, 말하고 있을 때나, 말 안하고 묵묵히 있을 때나 또는 활동을 하고 있을 때나 또는 조용한 상태로 있을 때나—어떠한 시간과 공간을 막론하고 우리는 우리의 죄업을 소멸할 수 있는 그러한 방법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비단 꼭 절에 와서 부처님 앞에 불공을 드리고 절 할 때 그때 뿐만이 아니라 어느 때, 어느 장소를 막론하고 우리 마음에서 일어나는 모든 죄의 싹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고,
이미 우리 마음 속에 심어져 있는, 우리의 팔식(八識)에 보관되어 있는 그 씨가 죄의 싹으로 트지 않고 바로 거기에 깨달음의 과실(果實), 보리과(菩提果)가 여물도록 하는 그러한 방법이 우리에게는 필요한 것입니다.

그 방법이 무엇이냐?
쉴 새 없이 금강경이나 반야심경이나 법화경이나 화엄경 같은 그런 경전을 읽는 그러한 길도 있겠고, 또는 관세음보살이나 아미타불이나 지장보살이나 이러한 불보살의 이름을 부르는 그런 염불 방법도 있겠고, 또는 옴마니반메훔이나 그 밖의 어떠한 준제진언이나, 그런 능엄주나 그런 주문을 외우는 방법도 있겠고,

또는 절에—낙산 홍련암이나, 강화 보문사나, 저기 남해 보리암 같은 그런 성지(聖地)에 가서 기도하는 그러한 방법도 있겠고, 여러 가지 그런 방법이 있겠습니다마는 우리는 1년 내 그런 성지에 가서 있을 수도 없는 것이고, 일 년 내 손에서 경을 떼지 않고 경만 읽을 수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하면은 잠깐만 쉬어도 그 쉬는 시간에 죄가 막 퍼일어나고, 퍼일어나면서 또 종자는 계속 우리의 마음에 저장이 되고, 저장되었던 그 종자에서는 계속 싹이 터 나오고,
보고 듣고 느끼는 쪽쪽 그것이 벌써 마음에 저장되어 있는 그 종자에 비가 내리는 것이요, 거기에 태양빛이 비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이 바로 우리 마음속에 저장되어 있는 그 종자에 거름 주고, 물 주고, 온도를 가해 주는 거예요. 그러기 때문에 저장되어 있던 그 종자로부터서는 계속해서 그 싹이 터 나옵니다.
그 싹이 터 나오면서 거기에서는 또 죄업의 열매가 영글어져 가지고 그것은 또 마음에 저장이 되어서, 계속 무량겁을 두고 내려오면서 그 쟁여 놓은, 저장된 그 종자가 수없이 많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증험을 해 보시면 당장 이해가 갑니다. 잠깐이라도 아무 생각도 안 하고 있으려고 마음을 잡숴 보시란 말이에요.
시간을 보고 10분을 딱 작정을 해 놓고 ‘내가 이 10분 동안에 아무 생각도 안 하고 한번 있어 봐야겠다’ 해 가지고 한번 있어 보란 말이여. 아무 생각도 과연 안 일어나는가?

아마 10분 동안에—오히려 그러한 것을 마음을 먹지 않고, 아무 생각 없이 가만히 있으면은 별로 아무 생각도 안 나겠지마는, 일부러 10분이나 30분 시간을 정해 놓고 ‘이 시간만큼은 내가 아무 생각도 안 하리라’ 마음을 먹으면 별 뚱딴지 같은 생각이 더 일어날 거예요.

그것이 왜 그러냐 하면은 우리의 마음속에 무량겁으로 지어 내려오면서 저장해 놓은 그 죄업의 종자가 가득 쌓아 있기 때문에 그럽니다.
물질로 된 종자 같으면은 창고가 가득차서 그 이상 더 들어갈 데가 없어서라도 저장을 못하겠지마는 이 업의 종자는 물질이 아니기 때문에 이 우주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에 가득차고도 남을 만한 종자를 갖다 쟁인다 해도 가득차는 법이 없습니다.

다시 바꿔서 얘기하면은 무량겁을 두고 내려오면서 육도윤회하는 그 많은 중생들이 죄를 퍼지어 가지고 지옥에 들어가서 고(苦)를 받고 있는데,
만약에 그 지옥에 이러한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로 이루어진 육신을 가진 중생이 몸뚱이로 지옥에 가게 된다면 지옥은 벌써 만원(滿員)이 되어 가지고 들어갈 데가 없어서—요새 20세기에 태어난 사람은 지옥이 만원이 되었기 때문에 들어갈 데가 없어서, 그냥 죄 지어도 안 잡아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지옥에 가는 것은 육신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눈으로 볼래야 볼 수 없고, 귀로 들을래야 들을 수도 없고, 만져 볼래야 만져 볼 수도 없는 업(業)으로 된 몸뚱이이기 때문에 아무리 많은 중생이 들어가도 지옥이 만원되는 법은 없습니다.
그 말이 곧 우리의 마음속에 죄업의 종자! 종자가 가득찬다 해도 가득차서 들어갈 데 없을 까닭은 없다 이 말씀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많은 죄업을 어떻게 해야 소멸을 할 수가 있느냐? 또 어떻게 해야 앞으로 그 죄의 종자가 들어가지 않도록 하며, 들어간 종자는 싹이 터 나지 않고 거기서 바로 보리(菩提) 종자가 되게 만드느냐?
이 방법은 아까 여러 가지 방법을 말씀드린 가운데에 제일 누구라도 할 수 있고, 어디서라도 할 수 있고, 아파서 죽은 그 찰나에서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간해서 경은 정신 없으면 읽을 수가 없고, 나이가 많아서 늙어지면 눈이 보이지 않아서 읽을 수가 없고, 기운이 없으면 읽을 수가 없고, 바쁘면 읽을 수가 없고, 반드시 경을 읽으려면 그만한 장소와 그만한 시간과 그만한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경을 읽을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경을 잠시라도 안 읽으면 계속 생각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그 짬을 타서 우리의 마음속에는 무서운 죄의 종자가 저장이 되고, 저장된 종자에서는 계속 죄의 가지가 뻗어 나오게 됩니다. 그래 가지고 가지가 뻗어 나왔다 하면은 또 거기서 죄의 열매가 열려서 또 마음에 저장이 되는 것이에요. 

그러기 때문에 항시 이 용화선원에서 조실 스님께서 십 년 동안을 그렇게 간절히, 그렇게 고구정녕(苦口叮嚀)하게 말씀해 주시던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 ‘이뭣고?’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이 방법은 무량겁으로 내려오는 그 열매를 녹여서 깨달음의 과일을 만드는 방법이고,
거기 그 열매로 부터서 가지가 뻗어 나와 가지고 이 세계에 가득차도록 가지가 번지고 번져서 한량없는 죄의 종자가 주렁주렁 열려 가지고 있는 그놈마저도 눈 한번 감았다 뜬 사이에 그놈을 소멸을 해서, 그놈을 돌려 가지고 깨달음이 되도록 만드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이 방법을 이렇게 간절히, 자세히 일러 줌에도 불구하고 믿지 않거나 이것을 실천하지 아니하는 사람은 그 사람은 세세생생에 후회막급일 것이다.
또 어떤 도인은 이렇게 말해 준 것을 믿지 아니한 사람은...(녹음 끊김)....고마운 말씀인가! 우리가 신심으로써 그 말씀을 받아들인다면은 그렇게 뼈 아프게 받아들일 수 있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 스님은 ‘내가 만약에 거짓말로 이런 말을 한다면은 나는 세세생생에 너희들을 대신을 해서 무간지옥(無間地獄)에 가겠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말씀을 해줌에도 불구하고 믿지 않거나 행하지 아니 한다면 너희들은 세세생생에 호랑이 밥이 될 것이고, 내가 이렇게 말한 것이 추호라도 거짓말이라면은 내가 무간지옥에 갈 것이다’ 이렇게 말씀하셨는데,

‘호랑이 밥이 된다’는 말을 그렇게 기분 나쁘게만 들을 일이 아닙니다. 호랑이 밥이 문제가 아닙니다. 이 말을 믿지 않고 행하지 아니한다면은 갈 곳이 어디냐? 이 말씀이어요.
호랑이 밥은 그것은 육체만 물려 간 것이니까 금방 태어나면 그만입니다. 그까짓 놈의 것, 호랑이가 물어 가지 않아도 몇 해 살다가 다 가기 마련이지, 누가 안 가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건 문제가 아니고,

이 말을 이렇게 간곡히 말씀을 해 드림에도 불구하고 믿지 않고, 행하지 아니한 사람은 무량겁을 두고 무간지옥에 떨어진다고 하는 사실은 우리는 부인(否認)을 못합니다.
깨닫지 못하고 죄업 퍼지으면은 갈 곳이 무간지옥 밖에 더 있습니까? 그러기 때문에 그 말이 거짓말도 아니고, 공연히 협박하고 무슨 위협을 주는 말도 아니에요, 사실대로 말씀하신 것이지!


‘바빠서 못한다’  ‘시간이 없어 못한다’ 이런 말씀은 발심(發心)을 못했기 때문에 하시는 말씀이여. 바쁠수록에 할 것은 이것 밖에는 없습니다. 바쁠수록에 할 수 있는 것은 이것 뿐입니다. 

바쁘고 시간이 없으면은 경(經)은 혹 못 읽는다 해도 그것은 납득이 가는 얘기고, 다른 어디의 성지에 가서 기도하는 것은 바쁘면 못 가는 것이고, 그것도 납득이 가는 얘기입니다.
또 시간이 없거나 바쁘거나 또는 정신을 차릴 여유가 없으면은 다른 것은—혹 '관세음보살'이나 '옴마니반메훔'이나 '아미타불'이나 그런 것은 혹 못한다고 해도 납득이 갑니다.
그러나 바쁠 때일수록에 할 수 밖에는 없고, 해야만 하고, 또 가능한 것은 활구참선입니다.

가령 누가 나한테 억울한 소리를 해 가지고, 간장이 활딱 뒤집어져 가지고 도저히 참을래야 참을 수가 없고, 막 욕이라도 퍼붓고 무엇이라도 때려 부셔야 하고, 쥐어뜯고, 물어뜯어야만 할 만큼 그렇게 격분을 하고, 성이 났다 하더라도,
‘그 성나는 놈이 대관절 이놈이 무엇인고?’  그렇게 한번 생각할 줄 알아야 참! 부처님 제자라고 자부할 수 있고, 또 활구참선을 한다고 자부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부처님의 제자가 아니고, 활구참선 한 사람이 아니면 그것을 억지로 참어지지도 않고, 억지로 참으려고 하면은 그것은 당장 혈압이 오르거나, 위장병이 생기거나, 눈이 껌껌해지거나, 무슨 육체적인 병으로 돌아지고 마는 것입니다.
억지로 속상한 것을 참는 것은 대단히 안 좋은 것입니다. 그것은 반드시 육체적인 병으로 돌아서고만 말아요.

그러기 때문에 성이 나면은 욕도 하고, 때려 부수기도 하고, 물어뜯기도 하시라는 것은 아닙니다.
왜 그러냐 하면 그렇게 하고 나면은 조금 후련하기는 하지마는 그 뒷수습이 대단히 어렵게 되지 않습니까? 또 다 때려 부수고 나서 생각해 보면 창피하기가 말로 할 수가 없다 이 말씀이에요.
억지로 참으면 병이 나고, 그놈을 부회풀이대로 하면은 잠깐은 시원하지마는 돌아서서 참 아랫사람 보기도 안 되었고, 웃사람 보기도 안 되었고, 그러면 어떻게 하느냐? 

성이 되게 날 때에 심호흡을 하시란 말이에요. 흡~ 들어마셔 가지고 후~.

아마 속이 되게 상하고 가슴이 답답하면 이 참선법이 무엇인 줄도 몰라도, 흡~ 후유~, 흡~ 후유~ 자동으로 그 호흡이 나올 것이다 이 말이에요.
그것은 배우지 않아도 후~ 하고 그 깊은 숨을 들어마셨다, 내쉬었다 함으로써 그 툭 터질라고 하는—그렇지 않으면 중풍이 툭 터지거나, 고혈압이 툭 터지거나 할 것도 그렇게 호흡을 함으로써 그것이 방지가 되는 겁니다.

무의식 중에 배우지 않아도 자동적으로 그렇게 되어 있는 거예요. 그러한 것을 감안해서 아주 오랜 세월을 두고 연구하고 개발을 한 것이 조실 스님께서 항시 참선할 때에 심호흡을 하라고 가르켜 주신 그 방법입니다.

그 방법이 인도 오천 년 전부터서 내려오고, 중국에 수천 년 전부터서 내려오는 장생불사(長生不死)—이 몸뚱이의 모든 병을 소멸을 하고, 마음속의 온갖 복잡한 번뇌 망상을 깨끗이 쉬게 안정을 시켜서 몸과 마음을 맑게 해서,
그래 가지고 이 몸뚱이를 가지고 오래오래 살려고 하는 그러한 신비스러운 방법으로 연구 개발되어서 오늘날까지 전해 내려오는 방법입니다. 참선하는 데에도 이 방법은 꼭 필요합니다. 

첫째, 참선을 할라면은 몸이 건강해야 하고 정신이 건전해야—건강한 몸, 건전한 정신으로 정진(精進)이 되어 질 때에 비로소 이 공부가 중간에 탈선이 안 될 뿐만 아니라, 딴 좋지 못한 증상이 일어나지 아니하고 고대로 우리의 마음을 깨달을 수 있을 때까지 시간을 단축을 시켜주는 것입니다.

몸을 단정히 가지고, 그리고 호흡은 깊이 그리고 조용히 내뿜도록.
이렇게 하는데 맨 처음에는 호흡을 할려고 하면은 요 밑(단전)에까지 기운이 내려가지를 않고 오목가슴까지 밖에는 호흡이 들어가지 안 해 가지고, 답답하고 영 어깨쭉지가 쪄 눌리면서 잘 안된다 이 말씀이에요, 잘되는 분도 있지마는.

그래서 이것을 하면은 가슴이 답답하고 소화가 잘 안되고, 영 애를 먹고 그러한 분도 더러 있는데, 그것은 아직 숙달이 잘 안되어서 그런 것이니까, 그럴 때는 어떻게 하느냐 하면은—이 가운데에는 잘 아시는 분도 있지마는 여기 나오신지 얼마 안 되어서 자세히 모르는 사람이 있어서 그래서 말씀을 드리는 것이니까,
잘 아시는 분은 그대로 잘 들으시고, 잘 모르시는 분은 잘 귀담아서 집에 가셔서 당장 아침, 저녁으로 시간을 내어서 10분 내지 30분씩 이렇게 해서 열심히 열심히 해보시라 이 말이여.

(심호흡을) 하시면은 소화 안되는 분은 소화도 잘되고, 또 신경질을 잘 내고 그러한 성미를 가진 분은 그런 신경질을 안 내고서 아주 마음 편히 살 수 있어서 아랫사람한테는 존경을 받고, 웃어른한테는 귀여움을 받고,
남편하고도 사소한 일에 모다 서로 애들 보는 데에서 주거니 받거니 싸움한 것처럼 그래 가지고 집안을 시끄럽게 하고, 위신 떨어지고 그러한 일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18분19초~39분35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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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해서 이러한 방법을 열심히—아주 방법은 간단하고 어디서나 누구라도 할 수 있는 그런 방법이기 때문에 문제는 열심히만 하면 되요.
‘아하! 그런 좋은 방법이 있구나. 그럼 나도 꼭 해야겠다’ 이리 결심을 하고 열심히 하면은 처음에는 잘 안되는 것 같아도 차츰차츰 숙달이 되어서 잘될 때가 꼭 오는 것이니까.

그렇게 되어서 자기 몸 가볍고 건강해지고 마음 편해지고, 온 집안이 화목해지고 그렇게 된다면은 얼마나 참! 불교를 믿게 되어서, 이 활구참선을 배움으로부터서 정말 얼마나 일신상으로나 가정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그렇게 보람 있고 행복해질 수가 있느냐 이 말씀이에요.

그것이 지극히 간단하고 쉬운 말이지마는 열심히 하는 사람은 그만큼 효과가 있어서 보람을 참 느낄 것이고,
듣고 ‘시간이 없다’ ‘바쁘다’ ‘나중에 나이 좀 더 먹거든 천천히 하지’ ‘아들딸 학교 다 보내 놓고, 장가 들여 놓고 그때 하리’ 이러다가 보면은 결국은 종내(終乃) 이러한 좋은 약을 받아 가지고도 먹지 않고 서랍 속에다 넣어 놓고 계속 병을 앓으며 고생하는 사람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앞으로 칠십 세까지 살지, 오십 세까지 살지, 팔십 세까지 살지, 그것은 모르지 않습니까?
지금 이 자리에서부터서 하는 사람이라야 앞으로 다가올 자기의 죽음에 대해서 대비가 되는 것이지,
그렇지 않고 뒤로 미루다가 금방 우리 앞에 '섣달 그믐날'이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때에 ‘아이고! 내가 그때 그 용화사에서 그때부터 내가 공부를 했으면 내가 이렇게 안 되었을 걸!’ 염라대왕 앞에 끌려가 가지고 ‘아이고! 내가 그때 좀 그때 열심히 했으면 염라대왕이 나한테 이렇게 무섭게 안 할 텐데’ 그때 그래야 그것은 소용 없습니다.


호흡이 잘 안되고, 여기가 막혀 가지고 있을 때에는 누워서 처음에 연습을 좀 해 보세요.
편안하게 누워서 배꼽 밑에 아랫배에다가 두툼한 책 한 권을 딱 얹어 놓고, 숨을 떠억 들어마셔요.
들어마셔 가지고 처음에 가슴에 찬 놈을 다시 쑤욱 아랫배까지 들어마셔서 들어밀면은 아랫배가 불룩하니 이렇게 올라간단 말이에요.
올라가면은 배 위에 올려놓은 그 책도 약 3cm, 한 치 가량이 쑤욱 이렇게 올라가게 되요.

더이상 올라가지 못할 때, 또 조용하니 숨을 내쉬면은 아랫배가 밑으로 이렇게 내려가며 책도 따라서 내려간다 말이에요. 그 책이 더이상 내려갈 곳이 없을 때까지 다 호흡을 내뱉은 다음에, 또 스르르~ 하니 호흡을 들어마셔.
들어마셔서 아랫배까지 불룩하니 들이밀으라 말이에요. 밀면은 책이 또 3cm 가량 쑥 올라가요. 다 올라가 가지고 한참 있다가 또 조용하니 또 숨을 내쉬면은 그 책이 차츰차츰 밑으로 내려가서 등어리 가서 딱 붙게 돼.

들어마실 때는 비교적 스르르~ 하니 좀 쉽게 들어마시고, 내뿜을 때는 아주 아껴서 조용하게 내뿜도록.
들어마실 때는 한 3, 4초 걸려서 들어마시고 내뿜을 때는 한 10여초 걸려서 내뿜도록 이렇게 해서 책이 올라갔다 내려갔다, 그것이 바로 숨을 들어마셨다 내뿜었다 한 것과 마찬가지 얘기인데.

눈을 가만히 감고서 책이 한번 올라갔다 다시 쑥 내려오면 ‘하나’
또 한번 쑤욱 들어마셔 가지고 책이 올라갔다가 또 책이 조용하니 밑으로 내려오면 ‘둘’
또 들어마셨다가 내뿜으면 ‘셋’ 해서, '열'까지 세어 보시란 말이여.

열까지 세어 갖고는 그 다음에 열하나로 가지 말고, 그 다음에 아홉, 여덟, 일곱, 여섯... 해서 하나까지 내려오고,
또 하나까지 내려왔으면 다시 또 하나, 둘, 셋... 해서 열까지 올라갔다가 또 아홉, 여덟, 일곱... 해서 하나까지 내려오고 해서, 열까지 올라갔다 내려오고, 올라갔다 내려오고, 몇 번을 해도 계속 딴 생각이 일어나지 않고.

중간에 ‘내가 여섯, 다섯까지 했던가? 여섯까지 했던가?’ 그렇게 딴 생각하다가 잊어버리게 됩니다. 그 때에는 무조건 ‘에이! 그냥 일곱인가 보다’ 해 가지고 일곱, 여덟 하지 말고, 다시 쏴악 씻어 버리고 하나에서부터 다시 해야 합니다.

하나, 둘, 셋, 넷 하다가 또 딴 생각이 금방 들어오거든. 몇까지 했던고? 모르면 다시 하나서부터서 다시 해서,
무난히 두 번이고, 세 번이고, 네 번이고, 다섯 번이고, 열까지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오고 무난히 되면은 그 다음에는 하나에서부터 스물까지 올라갔다가 열아홉, 열여덟... 해서 하나까지 내려오고,

또 스물까지 그렇게 올라갔다 내려왔다 몇 번을 해도 아주 실수가 없이 잘되면은 그 다음에는 서른까지 하고, 그 다음에는 사십, 오십... 해서 백까지 올라갔다가 아흔아홉, 아흔여덟, 아흔일곱, 아흔여섯... 해서 하나까지 내려오도록.

한 번도 실수 없이 조르르 하니 올라갔다가 하나까지 딱 내려오게 된 사람은, 그 사람은 그렇게 하는 동안에 어지간한 병은 나아 갖고 있고,
그이는 그때 화두를 떠억 들고 한번 해보면은—그전에는 그렇게 번뇌와 망상이 들끓던 사람이 이 백까지 올라갔다 내려오는 과정을 수료를 해서 졸업을 한 다음에 하면은—기가 맥히게 공부가 잘된다 그 말이예요.

그렇게 된 사람은 공부하다가 무슨 상기병(上氣病)이 생기고 공부하다가 무슨 딴 병이 생기거나 위장병이 생기거나 그러한 법이 없습니다. 이 방법은 참선을 잘하고, 몸과 정신을 건강하고 건전하게 만드는 데에 아주 요긴한 방법입니다.

제가 삼십 년을 두고 증험을 해 보니까 이 이상 더 요긴한 방법이 없다 이 말씀이에요.

처음부터 화두를 일러 주고—이 호흡에 대한 기초적인 것을 자세히 일러 주지 않고, 화두만 일러 주고 보니까, 상기병이 일어난다는 둥, 뭐 어쨌다는 둥, 아주 말이 많고 중간에 제대로 한 사람이 아주 드물어요.

그런데 이 방법을 먼저 일러 주어서 잘 훈련시킨 다음에—화두는 아직 일러 주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 방법만 열심히 석 달 이상이 되니까 벌써 그 사람이 성격이 개조가 되고, 벌써 몸 갖는 것이 의젓하고, 어디다 내놓더라도 훤출한 장부의 기상이 보인다 그말이여.

부인들도 이 방법을 한 석 달 이상 지극히 한 사람을 보니까 그 말이 많고, 잠시도 입을 쉴 줄 모르고 지껄이던 그 사람이 말이 없어져 버리게 되고,
말말이 신경질을 부리고 남 험담을 많이 하던 사람도 이것을 하면서 부터서는 차츰차츰 남 험담하는 법도 없어지고, 시시비비에 들지도 않고—벌써 셋만 모이면 그 사람하고 싸움이 일어나기 마련인데 싸움도 안 하게 되고, 그 조용하고 차분해진 것이 완전히 성격이 개조가 되더라 이 말씀이에요.

그런 다음에 화두를 떠억 일러 주니까 기가 맥히게 정진을 잘하더라 그 말이에요.
그러니까 이미 이러한 방법을 잘 알아서 이 호흡법과 화두를 겸해서 잘하시는 분은 계속 그렇게 하시고, 아직 화두 공부에 들어가시지 아니한 분, 또 시작한 지가 얼마 안 되어서 암만 해도 자리가 잡히지 않고 잘 안되시는 분은 이 호흡법부터 좀 관심을 가지시고 열심히 좀 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해서 호흡이 잘된 다음에 화두(話頭)를 드시되, 절대로 이 화두는—우리의 마음을 어떻게 단속하느냐?—마음 단속하는 데 가서 인제 이 화두가 필요한 것인데,

화두를 들려면은 첫째, 큰 신심(信心)이 있어야 하고 둘째, 큰 분심(憤心)이 있어야 하고, 셋째에 가서는 큰 의심(疑心)이 있어야 합니다.

큰 신심(信心)이라 하는 것이 무엇이냐? 절에다가 돈 많이 가져오고 부처님 앞에 절 많이 하고 그것이 아니라,
‘나도 아무리 내가 여자고, 아무리 내가 말세에 태어났고, 아무리 내가 몸이 병이 있고 약하다 하더라도 옳은 방법으로 옳게만 공부를 하면은 나도 틀림없이 도업(道業)을 성취할 수 있다’고 믿는 것, 그것이 대정신(大正信)입니다. 바른 믿음입니다.

바른 믿음!
부처님 앞에 절을 많이 하고, 불공을 많이 하고, 돈을 많이 가지고 오시고, 그것도 참 좋은 일이죠. 그것도 큰 공덕이 있고 대단히 좋은 일이고, 이호이 신도라고 하면은 스님네한테 대중공양도 형편 따라서 올리고, 부처님께도 불공을 올리고, 기도도 하시고, 절도 많이 하셔야죠.
당연히 그것도 참 그것은 그것대로 공덕이 대단히 말로 할 수 없이 큰 것이지마는 ‘내가 나를 옳게 닦아서 나도 성불할 수 있다’고 믿는 이 믿음이야말로 온갖 믿음 중에서는 최고 가는 믿음입니다.

‘나도 하면 된다’고 믿고 ‘반드시 할 수 있다’고 믿고서 해야 되는 것이지, ‘난 여자니까, 말세니까, 근기가 약하니까, 나는 바쁘니까, 이리저리 해서 그저 인연이나 맺지’ 이런 생각으로 해 가지고 무슨 효과가 날 까닭이 있습니까? ‘꼭 나도 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이것이 대신심이여.

둘째에 가서 대분심(大憤心)이 있어야 해. 아무리 신심이 있어도 분심이 없으면 안 됩니다.
분심(憤心)이 뭐냐? 과거의 모든 부처님과 모든 보살님과 모든 성현들은 진즉 이 일을, 이 일대사 인연(一大事因緣)을 마쳐서 다 생사해탈을 하고 나아가서 모든 중생을 제도하고 계시건만, 무엇 때문에 나는 이 무량겁을 두고 육도윤회를 하면서 이 고생을 받고, 이 해탈을 못하고 있는가?

이것에 대해서 아주 분심이 나야 합니다. 몸을 부르르 떨고 입을 악물고 하는 이러한 분심이 속에서 솟구쳐 올라야 하는 것입니다. 그 분심이 나야 용기가 솟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분심이 없고 용기가 없이 다 늘어져 빠져 가지고 게을러서 하다가 말다가, 남이 하면 좀 하는 척하다가 그렇지 않으면 말다가, 이래 가지고는 이 문제는 해결이 나지 않는 것입니다.

솥에 어떤 질기고 딱딱한 것을 고을 때에 불을 화력(火力)을 높여서 계속해서 때야지, 지푸라기 하나 둘 때다가 말다가, 때다가 말다가—지푸라기 같은 것 하나 둘 때다 말다 또 계속 때되 지푸라기 하나씩 하나씩 때 가지고 그 무슨 속에 뼉따구 사각 같은 것이 푹 무를 이유가 있겠습니까?

이 공부도 계속 화력을 돋구면서—화력을 돋구어도 솥단지가 떡 갈라지도록 그렇게 무섭게 불을 때면 안 됩니다, 이 공부도. 적당하게 때야지.
때되 최선을 다해서 가장 필요한 열량만큼은 계속 그것이 지속이 되어야 속의 것이 물씬하니 물러서 약이 다 고아지는 거와 마찬가지로,

이 공부도 조금씩 하다 말다 형식적으로 그래 갖고는 삼십 년, 백 년을 해도 마냥 죽 떠먹은 자리입니다. 한 숟갈 떠먹으나 마나 마냥 그대로 있지요? 어쨌든지 분심, 용맹심을 내 가지고 지속적으로 공부를 지어 나가야 하고.

셋째에 가서 대의심(大疑心).
‘나도 하면 될까 말까?’ 그것을 의심하는 게 아니라, ‘어째서 무(無)라고 했는고?’ ‘이것이 무엇인고?’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자기에게 주어진 이론으로써는 풀 수도 없고 풀려고 해서도 안 되는, 그 알 수 없는 공안(公案)에 대한 불같은 의심(疑心)!

다른 문제에 관한 의심은 이리저리 따져도 봐야 하고, 이 책 저 책도 떠들어 보고 사전도 펼쳐 보고, 모두 여러 사람한테 물어서도 배우고 모두 다 그렇지마는,
이것은 책을 떠들어 갖고도 소용이 없고, 어떤 경전을 보아 가지고도 소용이 없고, 이리저리 자기가 그 동안에 보고 듣고 한 모든 지식을 동원해서 연구하고 따져 가지고도 소용이 없습니다. 오히려 시간만 연장을 시키고, 오히려 공부 길만 나쁜 길로 빠질 뿐이지 아무 이익이 없는 것입니다.

오직 될 수 있으면 빨리 시간을 단축하고 그리고 바르게 깨달으려면은 무조건(無條件), 무이로(無理路), 무어로(無語路), 무모색(無摸索)—더듬어 들어가지 말 것이며, 따져 들어가지 말 것이며, 이리저리 비교하고 분석하고 종합하고 해서 지해(知解)와 사리상량(邪理商量)으로 알려고 하지 말 것입니다.

다못 거두절미하고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해 갈수록 알 수가 없고, 해 갈수록 답답하고 꽉 맥힌 것, 그것이 공부가 가장 잘되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5년, 십 년을 해도 아무것도 알아진 것이 없고, 밤에 눈을 감고 있어도 아무 것도 보이는 것도 없고—"뭣한 이는 밤에 떠억 눈을 감고 앉았으면 부처님이 나와서 뭔 이야기도 하고, 훤하니 무엇이 보이기도 하고 그런다는데, 암만 해도 답답하기만 하고 아무 것도 안 되니, 이 공부가 잘된 것입니까, 공부가 잘못된 것입니까?" 이렇게 와서 묻는 분들이 종종 계시는데,
갈수록 알 수가 없고, 꽉 맥히는 그분이야말로 가장 올바르게 공부를 하고 계시는 분이고, 그렇게 해 나가야, 갈수록 그 알 수가 없이 꽉 맥혀야 그분은 깨달을 수 있는 분입니다.

솔솔 따져 들어가고, 무엇이 알아 들어가는 것이 있고, 더듬어 들어갈 것이 있어서 재미를 거기다 붙여 가지고 무엇을 들여다보고 앉았고 이런 사람은—그건 참, 도저히 그런 공부는 차라리 공부 안 한 것만 못합니다. 그냥 아들딸 잘되라고 관세음보살 부르는 게 훨씬 낫습니다, 그리 아시고요. 

알 수 없는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또 ‘이뭣고?’ 하시는 분은 ‘이! 하는 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성날 때도 ‘이뭣고?’ 슬플 때도 ‘이뭣고?’ 집안에 근심 걱정이 있어도 ‘이뭣고?’ 일체처 일체시에 ‘이뭣고?’ 하되 그때 호흡은 계속해서 되어져 있어야 합니다.

들어마시면 아랫배가 볼록하니 나오고, 숨을 내쉬면 배가 홀쪽해지고, 배가 나왔다 들어갔다 하는 거기다가 알 수 없는 화두를 거기다가 놓고 ‘이뭣고?’ 이렇게 공부를 지어 가시라 이 말씀이에요.
이렇게 해서 몸을 단정히 가지고 심호흡을 계속하면서 그 가운데 알 수 없는 화두가 항시 성성(惺惺)하게 드러나도록.
어디를 가거나 무엇을 하거나, 그 알 수 없는 화두가 떠억 우리의 눈 앞에 항시 그놈이 앞서도록, 이렇게 참선을 생활화 할 때에 모든 생활은 바로 부처님과 같이 생활하고 있는 것이 됩니다.

왜 그러냐? 이 화두를 놓쳐 버리고 온갖 번뇌 망상하고 있을 때에는 마구니들 하고 같이 어울려서 마구니 판에서 살림을 하고 있는 것이 되고,
어떠한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그때그때 화두를 추켜들고 화두로써 모두 생활이 되어갈 때에는 바로 그 자리는 불보살과 같이 생활하시는 곳이기 때문에, 무엇이든지 소원대로 이루어질 수 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불보살 계시는 데에 무슨 마구니가 거기에 어리댈 까닭이 있습니까? 극락세계나 또는 천당이나 지옥이 우리가 죽어서만 가는 게 아니라, 우리 살아서는 우리의 마음속에 고대로 그 지옥과 천당이 다 들어 있는 것입니다.

화두 놓쳐 버리고 그래 가지고 감정에 사로잡혀서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에 휩쓸려 넘어갈 때에는 바로 마구니 지옥에 떨어져 있는 것입니다.
어떠한 분이 나고 성이 나고, 속이 활딱 뒤집어지더라도 그때 턱! 생각을 돌이켜서 화두를 떠억 들어 보시란 말이여. 삽시간에 불같이 일어나던 그 생각이 스르르 꺼지면서 나의 본심으로 돌아가게 되는 만큼, 금방 1초 전의 지옥이 천당으로 변하는 것이요, 극락으로 변하는 도리가 바로 이 활구참선법입니다. 

오늘 입춘을 기해서 무량겁.... (39분36초~60분41초)(끝)

 

 

 



----------------(1/3)

*요승(妖僧) : 정도(正道)를 어지럽히는 요사스러운 승려.
*유가(儒家) : 공자의 학설과 학풍 따위를 신봉하고 연구하는 학자나 학파.
*파계(破戒) ; 계(戒)를 받은 사람이 그 계율을 어김.
*야수 ; ‘여우’의 사투리.
*불공(佛供 부처 불/이바지할·바칠 공) ; 부처님 앞에 향(香)·등(燈)·꽃·음식 따위를 바치고 기원함.
*관재구설(官災口舌) ; 관가로부터 재앙을 입는 일(官災)과 남이 나를 비방하거나 헐뜯어서 해를 입는 일(口舌)을 아울러 이르는 말.
*사백사병(四百四病) ; 인체에 일어나는 병을 통틀어 이르는 말로, 사람의 몸을 구성하는 사대(四大)—지(地)·수(水)·화(火)·풍(風)의 부조화로 각 요소에 대해서 101가지 병이 있다고 한다.
지(地)와 화(火)에서 일어나는 열병(熱病)이 202가지, 수(水)와 풍(風)에서 일어나는 냉병(冷病)이 202가지로 구별하기도 하는데, 경전에 그들에 대한 설명이나 해석이 일정하지 않다.
*사대(四大) ; 사람의 몸을 이르는 말. 사람의 몸이 땅, 물, 불, 바람(地,水,火,風)의 네(四) 원소(大)로 이루어졌다고 보는 데에서 연유하였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이 경계(六境)를 인식하는 경우 그 소의(所依)가 되는 여섯 개의 뿌리. 대경(對境)을 인식하게 하는 근원적 요소. 곧 심신을 작용하는 여섯 가지 감각기관으로서, 눈(眼根)·귀(耳根)·코(鼻根)·혀(舌根)·몸(身根)·뜻(意根)의 총칭이다.
산스크리트어 ṣaḍ-indriya 근(根)은 기관·기능을 뜻함. 육입(六入), 육처(六處), 육적(六賊), 육문(六門)이라고도 한다.
*마지(摩旨) ; 부처님께 올리는 밥. 부처님께 올리는 밥은 대부분 사시(巳時), 즉 오전 9시에서 11시 사이에 올린다. 이것은 생전에 부처님이 하루에 한 번 그 시간에 밥을 먹은 데서 유래한다.
사시에 부처님께 올리는 공양을 ‘마지 올린다’고 하는데, 한자를 풀이하면 (摩指, 摩旨, 磨旨) ‘손으로 만들어 올린다 혹은 정성스럽게 만든 공양을 올리오니 제 뜻을 감읍하여 주시옵소서’라는 뜻을 담고 있다.
*사시(巳時) ; ①지난날에 쓰던 십이시(十二時)가운데 여섯 번째 시(時). 오전 9시부터 11까지를 말한다. ②지난날에 쓰던 이십사시(二十四時)가운데 열한 번째 시(時). 오전 9시 반부터 10시 반까지를 말한다.

 

 

 



----------------(2/3)

*무량겁(無量劫) ; 헤아릴 수 없는 오랜 시간이나 끝이 없는 시간. 劫과 刧는 동자(同字).
*육도윤회(六途輪廻, 六道輪廻) ; 선악(善惡)의 응보(應報)로 육도(六途-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의 고락(苦樂)을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것.
*종자(種子) ; ①씨앗 ②무엇인가를 낳을 가능성 ③아뢰야식에 저장되어 있으면서 인식 작용을 일으키는 원동력. 습기(習氣)와 같음 ④밀교에서, 상징적 의미를 가지는 하나하나의 범자(梵字).
*구백생멸(九百生滅) ; 《佛說仁王般若波羅蜜經》 (제2 관공품觀空品) '九十剎那爲一念 一念中一剎那經九百生滅' '90찰나가 한 생각이 되고, 한 생각 가운데 1찰나에 구백생멸이 지난다’
*죄업(罪業) ; 자신과 남에게 해가 되는 그릇된 행위(身)와 말(口)과 생각(意). 괴로움의 과보를 초래하는 악한 행위. 좋지 않은 결과의 원인이 되는 악한 행위.
*팔식(八識) ; 유식설(唯識說)에서 분류한 8가지 마음 작용. 인간의 모든 마음 활동을 8가지로 분류한 것이 8식(八識)이다. 곧,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의식(意識)·말나식(末那識)·아뢰야식(阿賴耶識).
8식(八識) 가운데 앞의 5가지 식(識), 곧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을 전5식(前五識)이라 하고, 그리고 第六 意識(제6의식), 第七 末那識(제7말나식), 第八 阿賴耶識(제8아뢰야식)이라 한다.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 ; 줄여서 삼천세계(三千世界)라고도 함. 온갖 세계. 수없이 많은 세계. 하나의 우주 전체. 다할 수 없이 넓은 우주. 하나의 삼천세계(三千世界)가 하나의 부처님이 교화하는 범위라 한다.
*보리(菩提) : [범] bodhi  도(道) • 지(智) • 각(覺)이라 번역。불교 최고의 이상인 부처님이 깨달은 지혜。곧 불과(佛果)를 말하며, 또는 불타(佛陀) 정각(正覺)의 지혜를 얻기 위하여 닦는 도(道), 곧 불과에 이르는 길을 말한다。범어의 음대로 쓰면 「보디」라고 하겠지만, 우리 말의 관습상(ㄷ —> ㄹ) 「보리」로 읽는다。따라서 「보제」나 「보데」로는 읽지 않아야 할 것이다.
*고구정녕(苦口叮嚀 괴로울 고/말할 구/신신당부할·정성스러울 정/간곡할 녕) : 입이 닳도록(입이 아프도록) 정성스럽고(叮) 간곡하게(嚀) 말씀하심(口).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1700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무간지옥(無間地獄) ; 아비지옥(阿鼻地獄)이라고도 함. 아비(阿鼻)는 산스크리트어 avīci의 음사(音寫)로서 ‘아’는 무(無), ‘비’는 구(救)로서 ‘전혀 구제받을 수 없다’는 뜻. 고통이 끊임없으므로 무간(無間)이라 함. 아버지를 죽인 자, 어머니를 죽인 자, 아라한을 죽인 자, 승가의 화합을 깨뜨린 자, 부처의 몸에 피를 나게 한 자 등, 지극히 무거운 죄를 지은 자가 죽어서 가게 된다는 지옥.


이 지옥에 떨어지는 죄인에게는 필파라침(必波羅鍼)이라는 악풍(惡風)이 있는데 온몸을 건조시키고 피를 말려 버리며 또 옥졸이 몸을 붙잡고 가죽을 벗기며, 그 벗겨낸 가죽으로 죄인의 몸을 묶어 불 수레에 싣고 훨훨 타는 불구덩이 가운데에 던져 넣어 몸을 태우고, 야차(夜叉)들이 큰 쇠 창을 달구어 죄인의 몸을 꿰거나 입, 코, 배 등을 꿰어 공중에 던진다고 한다. 또는 쇠매(鐵鷹)가 죄인의 눈을 파 먹게 하는 등의 여러 가지 형벌로 고통을 끊임없이 받는다고 한다.
*호랑이 밥 ; [최상승론(最上乘論)] (5조 홍인대사 弘忍大師)에 나오는 구절.
若有人依文行者即在前成佛. 若我誑汝當來墮十八地獄. 指天地爲誓. 若不信我世世被虎狼所食.

만약 어떤 사람이 있어 이 글(最上乘論)에 의지해 수행하면 곧 성불하게 될 것이다. 내가 만약 너를 속인다면 다음 세상에 십팔지옥(十八地獄)에 떨어지리라. 하늘과 땅에 맹세하노라. 만약 나를 믿지 아니하면 세세생생에 호랑이 밥이 되리라.
*최상승론(最上乘論) ; 1권. 5조 홍인대사(弘忍大師)의 저술.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청정한 불성(佛性)을 확인하여 잘 지키는 수심(守心)을 강조한 저술.
돈황 출토본 중에 「기주인화상 도범취성 오해탈종 수심요론(蘄州忍和尙導凡趣聖悟解脫宗修心要論)」이 이것과 같은 것으로, 제목은 다르나 기주 인화상이 곧 홍인대사이며, 「수심요론」이 우리나라에서 「최상승론」이라는 제목으로 전해왔음을 알 수 있다.
*발심(發心) ; ①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원어)發起菩提心 발기보리심, 發菩提心 발보리심.
*장생불사(長生不死 길 장/날 생/아니 불/죽을 사) ; 오래도록(長) 살고(生) 죽지(死) 않음(不).
*정진(精進) ; ①정성을 다하여 노력해 나아감. ②잡념을 버리고 불법(佛法)을 깨우치기 위해 수행에 힘씀.
*오목가슴 ; 복장뼈(가슴의 한복판에 세로로 있는 뼈) 아래 한가운데 오목하게 들어간 곳.

 

 

 



----------------(3/3)

*종내(終乃) ; 끝까지 내내.
*섣달 그믐날 ; 납월삼십일(臘月三十日). 납월(臘月)은 음력 섣달, 음력으로 한 해의 맨 마지막 달. 섣달 그믐날은 납월삼십일, 일 년의 마지막 날로 곧 생애의 마지막 날을 뜻한다.
*상기병(上氣病 오를 상/기운 기/병 병) ; 화두를 머리에 두고 여기에 속효심(速效心)을 내어 참구하다가, 모든 열기(氣)가 머리에 치밀게(上)되어 생기는 머리 아픈 병(病).
상기병이 생기면 기운이 자꾸 위로 올라와서, 화두만 들면 골이 아파서 공부가 지극히 힘이 들고 심하면 머리로 출혈이 되며 몸이 쇠약해짐. 상기병의 예방과 치료로 단전호흡과 요료법(尿療法, 오줌을 이용하여 질병을 치료하는 민간 요법의 하나)이 사용된다.
*훤출하다 ; 훤칠하다. ①(어떤 대상이)길고 미끈하다. ②(모습이)깨끗하고 시원스럽다.
*말말이 ; 한마디 한마디의 말마다.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도업(道業) ; 도(道)는 깨달음. 업(業)은 영위(營爲-일을 계획하여 꾸려 나감). 불도(佛道)의 수행. 진리의 실천.
*신심(信心) : ①‘내가 바로 부처다’ 따라서 부처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요, 일체처 일체시에 언제나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공, 이 소소영령한 바로 이놈에 즉해서 화두를 거각함으로써 거기에서 자성불(自性佛)을 철견을 해야 한다는 믿음.
②‘올바르게 열심히 참선을 하면 나도 깨달을 수 있다’는 믿음. 진리에 대한 확신.
*분심(憤心) : 억울하고 원통하여 분한 마음.
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도인들은 진즉 확철대오를 해서 중생 제도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왜 여태까지 일대사를 해결 못하고 생사윤회를 하고 있는가. 내가 이래 가지고 어찌 방일하게 지낼 수 있겠는가. 속에서부터 넘쳐 흐르는 대분심이 있어야. 분심이 있어야 용기가 나는 것이다.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 ; ①깨달음과 중생제도의 중대한 부처님의 임무. ②부처님이 이 세상에 나타난 가장 중요한 인연. ③부처님이 정도, 능력이 다른 사람들을 여러가지 방편으로 이끌어, 모두 구한다고 하는 중대한 인연. 일단인연(一段因緣)이라고도 한다.
'법화경' 방편품에 ‘諸佛世尊, 唯以一大事因緣故, 出現於世間. 모든 부처님은 오직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 때문에 세상에 출현한다.’ 라고 한 것에서 유래.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한 목적은 “깨달음을 얻기까지의 과정을 보이고, 지혜를 발휘하여 모든 중생을 깨닫게 하고 구제하는 것”이라고 한다.
*지푸라기 ; ①짚의 부스러기. ②또는 낱개의 짚.
*의심(疑心) : 알 수 없는 생각에 콱 막히는 것.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이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수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이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또는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또는 ‘조주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바른 깨달음은 알 수 없는 의단, 알 수 없는 의심에 꽉 막힌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사리(邪理) ; 그릇된 이치나 생각.
*상량(商量 헤아릴 상/헤아릴 량) ; ①상인이 물품을 판매할 때, 서로 그 가치를 재서 결정하는 것. ②따지고 헤아리는 알음알이.
*마구니 ; 마(魔). [범] mara 음을 따라 마라(魔羅)라 하고, 줄여서 마(魔)라고만 한다。장애자(障礙者)• 살자(殺者)• 악자(惡者)라 번역。목숨을 빼앗고 착한 일을 방해하며 모든 것을 파괴하는 악마를 말한다. 그러나  '마'는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에서 생기는 것이다.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용화선원刊) p64에서.
마(魔)란 생사를 즐기는 귀신의 이름이요, 팔만사천 마군이란 중생의 팔만사천 번뇌다. 마가 본래 씨가 없지만,수행하는 이가 바른 생각을 잃은 데서 그 근원이 파생되는 것이다. 중생은 그 환경에 순종하므로 탈이 없고, 도인은 그 환경에 역행하므로 마가 대들게 된다。그래서 '도가 높을수록 마가 성하다'고 하는 것이다.


선정 중에 혹은 상주(喪主)를 보고 제 다리를 찍으며 혹은 돼지를 보고 제 코를 쥐기도 하는 것이, 모두 자기 마음에서 망상을 일으켜 외부의 마를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마의 온갖 재주가 도리어 물을 베려는 것이나, 햇빛을 불어 버리려는 격이 되고 말 것이다。옛말에 ‘벽에 틈이 생기면 바람이 들어오고, 마음에 틈이 생기면 마가 들어온다’고 하시니라.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