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화선원2015.03.15 14:06
§(280) 용화선원의 가풍—불조(佛祖)와 같이 되지 못한 이상에는 완전히 초학자의 마음가짐으로 정진을 하자.

**송담스님(No.280)—85년(을축년) 동안거 결제 법어(85.11.26)

 약 4분.



이 용화선원(龍華禪院), 물론 어느 선원이나 다 마찬가지지만, 용화선원의 특이한 노선(線)이라고 할까? 가풍(家風)이라고 할까? 용화선원에서 바라는 용화선원의 특성을 구태여 말을 하자면,


‘불조(佛祖)와 같이, 불조가 깨달으신 바와 같이 그러한 철저한 깨달음을 얻기 전에는 설사 조그마한 견처(見處)가 있다 하더라도 스스로 그런 것을 인정을 하지 말아라.


'알았다'고 하는 소견(所見), '깨달았다'고 하는 소견, 한철 두 철 하다보면 어떤 지견(知見)이 생길 수가 있는 것입니다마는 불조(佛祖)의 친증처(親證處)에 바로 이르르지 못하면 자기가 깨달았다고 하는 생각을 갖지 말아라.


깨닫지 못하면 차라리 말지언정 깨달았다 하면은 불조와 같이 불조의 친증처에 이르러야 한다’ 이러한 각오를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체중현(體中玄) 도리, 여래선(如來禪) 도리, 공견(空見)을 봤다 하더라도,

그러한 ‘보았다’고 하는 소견을 속에 가지고 있으면, 그러한 지견을 속에 지니고 있으면 공부는 아무리 정진을 한다고 해도 그 이상 진취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언제나 완전히 백지(紙) 상태—10년, 20년을 정진을 했다 하더라도 완전히 초학자(初學者)의 마음, 순수한 초학자의 그러한 마음가짐으로 정진을 하자」 이것입니다.


「누구를 막론하고 이 도량에 일단 방부(房付)를 들이고 같이 정진하게 되면, 너나 할 것 없이 불조(佛祖)와 같이 되지 못한 이상에는 완전히 초학자의 그러한 마음가짐으로, 그러한 사상으로 정진을 하자」 이것입니다.(14분14초~17분47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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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선(線)개인이나 조직단체 따위 일정한 목표 향하여 나아가기 위해 따르는 활동 방침.

*가풍(家風) ; 한집안에서 오래 지켜 온 생활 습관이나 규범.

*불조(佛祖) : 부처님과 조사(祖師), 불(佛)은 삼세제불(三世諸佛), 조(祖)는 역대(歷代)의 조사를 말함.

*견처(見處) ; 자기 나름대로 얻은 어떤 생각이나 입장, 견해.

*소견(所見) ; 어떤 일이나 사물을 살펴보고 가지게 되는 생각이나 의견.

*지견(知見) ; 배워서 얻은 지식과 보고 들어 쌓은 분별력을 아울러 이르는 말.

*친증처(親證處) ; 친히 증(證, 수행으로 진리를 체득하다)한 곳.

*체중현(體中玄) ; 임제 의현(臨濟義玄)선사가 학인을 제접하는 데 사용한 수단인 삼현(三玄-體中玄•句中玄•玄中玄)의 하나.

[참고] 선가귀감(용화선원 刊) p207, p212 에서.

[三玄]삼현

體中玄은  三世一念等이요  句中玄은  徑截言句等이요  玄中玄은  良久棒喝等이라

삼현 : 체 가운데 현(體中玄)은 삼세가 한 생각이라는 따위들이고, 구 가운데 현(句中玄)은 지름길 말들이며, 현 가운데 현(玄中玄)은 양구와 방망이와 할 같은 것들이다.


삼현(三玄) : 임제 의현(臨濟義玄)선사가 학인을 제접하는 데 사용한 수단이다.

체중현(體中玄)은 진공(眞空)의 이치를 보는 것이라 학인이 이 이치를 보았다 하더라도 신위(信位)를 여의지 못했으므로 자유의 분(分)이 없다.

구중현(句中玄)은 뜻길이 없는 말로써 그 말에 걸리거나 막히지 않고 도리를 바로 봄을 말함.

현중현(玄中玄), 사(事)에 걸림이 없는 묘유(妙有) 곧 현중현(玄中玄)의 도리를 보아야 인가(印可)를 하는 것이다. 현중현을 용중현(用中玄)이라고도 한다.


*체중현(법문에서)

[참고 ❶] 송담스님 법문(No.337)—정묘년 칠석차례(87.07.07.음)에서.

체중현(體中玄)으로 보면, 공(空)의 이치에서 보면 어떠헌 공안을 묻되 할(喝)을 해 버려도 맞고, 방(棒)을 해 버려도 맞고, 양구(良久)를 해 버려도 맞고, 닥치는 대로 막 잡아서 아무것이라도 일러도 다 맞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현중현(玄中玄) 도리에 있어서는 아무렇게나 일러도 맞지를 않습니다. 그 공안에 여지없이 이(理)와 사(事)에 탁! 맞아떨어지게 일러야 하는 것입니다.


참선 한 철, 두 철 열심히 허다 보면 어지간한 사람이면 다 그 공의 이치를 보게 됩니다.

그 공의 이치, 그게 체중현(體中玄)인데, ‘체(體) 가운데에 현(玄)’-체의 이치를 보게 되면 그것이 바로 공(空)인데, 공의 이치를 보게 되면 경(經)을 봐도 모두가 그 소식입니다.

조사어록을 봐도 모두가 다 그 도리고, 조금도 맥힐 것이 없어. 환하고.


그런데 현중현(玄中玄)에서는 그렇지를 않거든.

체(體)의 이치를 본, 겨우 그 이치만 보고 현중현을 못 본 사람은 된장이나 똥이나 마찬가지여.

선과 악이 마찬가지고, 크고 작은 것이 마찬가지고, 부처와 중생이 다를 것이 없고, 내 마누라나 형수가 다 똑같고, 그저 거지나 임금이 다 똑같고, 생과 사가 똑같고, 그러니 오직 쾌활하냐 그말이여.


그러나 그것 가지고서는 부처님과 조사가 인가(印可)를 허지를 않았습니다. 그것 가지고서는 진리를 바로 봤다고 헐 수가 없어. 그것은 바른 견성(見性)이 아니여.


그래서 조사(祖師)는 현중현이라고 허는 관문(關門)을 시설을 해 가지고, 현중현 도리를 보지를 못허면 바로 보았다고 인가를 헐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현중현 도리는 선지식이 아니면은 그것을 가려내지를 못해.


[참고 ❷] 송담스님 법문(No.282)—86년 1월 첫째일요법회(86.01.05)에서.

공안은 그 열쇠가 아니면은 도저히 그 열 수가 없는 아주 이 자물통과 같아서 도저히 그렇게 일러 가지고서는 인가(印可)를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물속에·진흙 속에 들어가서 무엇이 발을 찔렀는데, ‘뭣이 찔렀다.’ 이래 가지고서는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 찌른 것이 뾰족한 돌멩이냐, 그렇지 않으면 무슨 나무 꼬타리냐, 사금파리냐, 또는 쇠꼬치냐, 분명하게 딱! 말을 해야 하는 것이지, 막연하게 ‘뭣이 찔렀다.’ 이렇게만 말한 거와 같아서,


아! 찌른 거야 사실이지, 사실 아닌 것은 아니여.

그러나 분명하게 쇠꼬치면 쇠꼬치, 사금파리면 사금파리, 돌멩이면 돌멩이를 분명히 말을 해야 알 수가 있는 거와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그 학자가 공부를 하다가 자기 나름대로는 반드시 견처(見處)가 있어서 온 것은 사실이나,

불조(佛祖)와 같이 깨닫지 못하면 체중현(體中玄)·구중현(句中玄)·현중현(玄中玄), 현중현 도리를 바로 보지 못하면 스스로 그것에 만족을 해서는 아니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활구문중(活句門中)에 있어서의 납자(衲子)의 지조(志操)라 할 것입니다.


[참고 ❸] 송담스님 법문(No.466)—92년 보살 선방에서 하신 법문(92.02.02)에서.

구경의 깨달음이 아닌—공부해 나가다가 조금 느껴지는 그런 편안함이나 맑음이나 또는 시원함, 그런 소견이나 경계 그런 거,

구경의 깨달음이 아닌 중간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그런 경계에 ‘나도 한 소식 했다. 나도 깨달았다. 이것이 깨달음이 아닌가’하고 거기에 머물러 버리면 그 사람은 거기서 끝나는 거죠.


큰 깨달음을 얻지 못하고, 예를 들어서 저 지방에서 서울을 향해 가는데 대전이나 수원이나—시골 산중에 있던 사람이 거기에 나오면은 굉장하거든, 차도 많고 높은 건물도 많고 하니까 여기가 서울이구나! 하고 주저앉은 거나 마찬가지여.

서울을 향해서 가는 사람은 중간에 좀 볼만한 데가 도시가 있다고 해서 그것이 서울로 착각한 거나 마찬가지여.


서울로 가서 중앙청을 갈라면 중앙청까지 딱 가서 대통령을 만나든지 장관을 만나든지 해야지,

저 중간에 가 가지고 조금 높은 건물이 있다고 해서 그것을 갖다가 서울이라고 착각한다면 그거 되겠습니까? 그와 마찬가지입니다.


구경(究竟)의 깨달음이 아니면 확철대오해서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경지가 아니면 중간에 체중현(體中玄) 도리, 중간에 나타나는 보이는 그런 경계는 탁! 스스로 부정을 해 버리고 부인을 해 버리고 거기에 빠져서는 안 돼.


탁! 치워버리고 언제나 초학자와 같은 그런 심경으로 바른 자세와 바른 호흡법으로 자기의 본참공안만을 향해서 한결같이 정진을 다그쳐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참고 ❹] 송담스님 법문(No.112)—79년 11월 관음재일 법어(79.11.24)에서.

가끔 조실 스님 법문 가운데에는 공안에 대한 조리(條理)에 대해서 말씀을 하신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히 공안에 있어서 이 학자가 깨달은데 있어서 체중현(體中玄) 도리를 보는 사람,

체중현 도리를 보아 가지고 그것으로써 득소위족(得少爲足)하는—조그마한 소견을 가지고 ‘아! 내가 깨달았다’고 하는 이러한 잘못된 생각을 가질까봐,


『절대로 이 공안이라 하는 것은 현중현(玄中玄) 도리를 바로 봐야만 그것이 바로 확철대오(廓徹大悟)다.』

그러한 것을 우리에게 깊이 납득을 시키고 철저하게 명심을 하기 위해서 가끔 공안에 대한 말씀을 구체적으로 해주신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러한 법문을 듣고, 어떠한 공안에 대해서 자기 나름대로 이렇게도 따져보고, 저렇게도 일러보고 해서 ‘혹 이런 것이 아닌가. 저런 것이 아닌가’ 이렇게 공부를 지어가서는 아니된 것입니다.


이 공안은 마치 체중현 도리에서 보면 아무렇게 일러도 맞지 아니한 것이 없는 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은 공견(空見)에 빠진 사람, 공견에 빠져가지고 그러한 입장에서 볼 때에는 고함을 치나, 욕을 하나, 호령을 하나, 손을 들거나, 발을 구르거나, 무엇이 어떻게 이르건 다 안 맞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은 이 현중현 도리를 본 사람이 아니고, 그렇게 봐가지고서는 불법을 바로 깨달았다고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현중현 도리는 마치 자물쇠통에 꼭 제 열쇠가 아니면은 열리지 아니한 것처럼, 바로 깨달은 사람만이 바로 이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래선(如來禪)생각과 알음알이가 아주 끊어지지 않아서 말의 자취가 있고 이치의 길이 남아 있는 선.

*공견(空見) ; 공(空)에 집착하여 일으키는 그릇된 견해. 공(空)을 허무론적인 견해로 이해하는 것으로, 이에 따르면 인과(因果)의 도리를 비롯한 모든 것의 존재가 부정된다.

*초학자(初學者) ; ①처음 배우기 시작한 사람. ②배워 익힌 지식이 얕은 사람.

*방부(房付)를 들이다 ; 수행자가 절에 머물며 공부할 것을 인사드리고 허락을 구해 결제(結制)에 참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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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
참선 (목적)2014.01.04 14:23

§(287) 교외별전(敎外別傳) 선지(禪旨) / 깨달을려면 조사(祖師)의 경지에 이르러야. / <사진작가의 ‘참선’ 질문에 대한 ‘풍선’ 법문>

차라리 깨닫지 못하면 말지언정, 깨달을려면 한번 깨달라서 조사(祖師)의 경지에 이르지 아니하면, 차라리 알았다고 하는 생각을 가져서는 아니 되는 것입니다.

참선, 이 깨달음이라 하는 것은 가부좌를 하고 심호흡을 하면서 화두를 들고 이것이 현재 한국에서 지도하고 있는 하나의 그 체계적인 양식이기는 하지만,
깨달음이라 하는 것은 그러한 반드시 일정한 양식이 있어야만 되는 것이 아니고, 진리는 일체처 일체시에 충만해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 역대 조사와 선지식의 수단과 능력에 따라서 어떠한 방법으로 지도할 수도 있는 것이다.
참선은 초학자(初學者)를 위해서, 물론 책에 있는 그런 자세와 호흡하는 법과 화두를 참구하는 그러한 아주 기초적인 것부터서 잘 지도를 받아서 하는 것은 물론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참선이라고 하는 것이 워낙 범위가 넓고 자유스러운 것이어서, ‘그렇게 해야만 된다’고 생각해서는 아니 되는 것입니다.
**송담스님(No.287) - 1986년 2월 첫째일요법회(86.02.02)(63분)에서.

 약 18분.


오늘은 2월 첫째 일요법회 날입니다. 방금 전강(田岡) 조실스님의 녹음 법문을 사부대중이 잘 들었습니다.
이 용화사 법보선원에서는 조실(祖室) 스님께서 15년간을 이곳에 머무르시면서 많은 납자(衲子)를 제접(提接)하시면서 항상 활구참선법, 최상승법을 선양(宣揚)을 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 이 사바세계(娑婆世界)에 출현하셔서 80세를 일기로 열반하실 때까지, 성불을 하셔 가지고 49년 동안을 팔만사천 법문을 설하시는데 그 8만4천 법문을 교(敎)라 한다면,
그 교(敎) 밖에 따로 마음을 전하신 것이 그것이 교외별전(敎外別傳) 선지(禪旨)라 이렇게 말하는데, 그 교외별전 선지가 바로 이 최상승법(最上乘法)이요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입니다.

아까 조실 스님께서도 잠시 언급하신 바와 같이, 육조(六祖) 스님 이전에는 ‘화두(話頭)’라 하는 말이 없었습니다마는 물론 그러한 체계화된 간화선(看話禪)은 없었지만,
부처님 때부터서 그 부처님의 설법과 중생을 교화하는 그 팔만사천 법문 가운데에는, 일정한 모양이 없는 가운데에 그 법(法)이 자유자재로 구사(驅使)되었던 것입니다.

그랬던 것이 세상이 흐름에 따라서 중생의 근기가 차츰 약해지고 또 영리한 마음은 점점 늘어나 가지고 순박성을 잃어가고, 그러기 때문에 차츰차츰 그 중생의 근기에 맞추어서 역대조사(歷代祖師)가 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끄는 방편을, 중생의 근기 따라서 마련하실 수 밖에는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육조 스님께서도 ‘화두’라고 하는 말은 거기에 붙이지 아니했지만,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느냐?’
내게 한 물건이 있는데 밝기는 태양과 같고 검기는 옻칠과 같은데, 항상 우리 동용(動用)하는 가운데 있으되 동용(動用)하는 가운데 거두어 얻지 못하니 이놈이 무엇이냐?’ 이렇게 제자들에게 물으신 것입니다.

‘화두’라고 하는 말은 안 붙였지만 화두선(話頭禪), 화두를 가지고 참선하는 이 간화선(看話禪)이 체계화되기 시작한 근원을 바로 거기다가 두는 것입니다.

하택신회 선사는 그 물음에 대해서 ‘제불지본원(諸佛之本源)이며 신회지불성(神會之佛性)이로소이다. 모든 부처님의 근원이며 저 하택의 불성입니다.’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뭐라고 이름을 붙일라야 이름 붙일 수도 없고, 뭐라고 모양을 그릴라야 그릴 수도 없는데 어찌 네가 모든 부처님의 근본이니 신회의 불성이니, 그것이 벌써 이름이 아니냐, 이름이 없다고 그랬는데 왜 이름을 붙이느냐?’ 이렇게 꾸짖으시고서,
‘네가 나중에 열심히 공부를 해서 일가를 이룬다 하더라도 너는 지해종도(知解宗徒) 밖에는 되지 못하겠구나. 사량으로 따지고 이론적으로 따지는 강사와 같은 그러한 무리 밖에는 못되겠구나.’ 이렇게 점검을 하신 것입니다.

그 뒤에 남악회양(南嶽懷讓) 선사가 육조 스님을 뵈러 와서는 절을 하니까  ‘십마물(麽物)이 임마래(恁麽來)오?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는고?’ 이렇게 물으셨습니다.


남악회양(南嶽懷讓) 선사는 그 물음에 몸 둘 바를 몰랐습니다.
뭐라고 대답을 할 수도 없고 대답을 안 할 수도 없고, 꽉 막혀서 어쩔 줄을 모르고 물러 나와서 8년 동안을 ‘대관절 이 무슨 물건이냐?’
앉어서나, 서서나, 일을 할 때나, 밥을 먹을 때나, 똥 눌 때나, 일체처 일체시에 오직 ‘대관절 이 무슨 물건인고~?’하는 그 의심이 꽉 찼던 것입니다.

일부러 ‘이뭣고?’ ‘이뭣고?’ 형식적으로 하고, 또 할 때는 잠시 알 수 없는 생각이 있다가 금방 돌아서면 의심이 없어지고 그러는 것이 아니라,
육조 스님의 그 물음 뒤끝에 꽉 막힌 그 의심이 잊어버릴래야 잊어버릴 수 없고, 안할 라야 안할 수가 없고, 저절로 그 알 수 없는 의심이, 꽉 막힌 그 의심이 차오르는데 뭐라고 말로 표현을 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신심(信心)과 분심(憤心)과 의심(疑心)이 한목 퍼 일어났던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8년 동안을 그러한 상태에서 하루하루가 지나갔던 것입니다. 8년 만에사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했던 것입니다.

활구참선이라는 것은 바로 이러한 것입니다.

뭘 이러 저리 좀 하다가, 무슨 경계가 나타난다고 ‘아! 알았다. 내가 알았다.’ 이런 생각을 내고서 무슨 공안을 갖다가 자기 사량분별심으로 따져서 뭐라고 이를라고 하고.
차라리 깨닫지 못하면 말지언정, 깨달을려면 한번 깨달라서 조사(祖師)의 경지에 이르지 아니하면, 차라리 알았다고 하는 생각을 가져서는 아니 되는 것입니다.

누구나 애써서 한 철 두 철 하면 ‘일체가 곧 하나요, 하나가 일체다. 전체가 바로 나요, 나 밖에 이 세계가 어디가 있느냐? 하늘을 보나 땅을 보나 산을 보나 들을 보나 돌을 보나 그것이 모두가 딴 것이 아니고 바로 이것이 내 면목이다.’
이러한 체중현(體中玄)의 그런 공견(空見)이라 하는 것은 한 철 아니면 두 철이면 누구나 그러한 경계는 다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한 것을 가지고 자기가 깨달랐다고 하는 소견을 내고, 그러한 소견을 가지고 살림을 지어간다면 그 사람은 조그만한 그릇을 하나 만들어 가지고 그것을 자기 그릇으로 평생을 수용하다 가는 것입니다.


<사진작가의 ‘참선’ 질문에 대한 ‘풍선’ 법문>

작년에 세계적인 그 사진작가가, 그분은 우리나라 6.25동란 때 전쟁고아로서 미국에 양자를 가 가지고 그래 가지고 미국에서 학교를 다니고, 그 사진을 연구를 해서 세계적인 작가가 되었는데, 그이가 한번 어느분의 소개로 찾아왔습니다.

이 참선에 대해 항시 관심을 가지고 있는데, “참선이란 게 대관절 어떠한 것이며, 어떻게 하는 것이며, 참선을 해 가지고 구경(究竟)으로 도달하면 어떻게 되는 것이냐?” 이러한 질문을 해 왔습니다.
그 사람은 한국 사람이면서 한국말을 전혀 하지를 못하고 겨우 자기 이름만을 한글로 서투르게 쓸 정도였습니다. 너무 어려서 갔기 때문에 그런 거 같습니다.

그래서 그 말도 잘 못 알아듣는 사람에게 통역을 통해서 그 짧은 시간에 참선에 대한 설명을 해 주기도 어렵고, 그래서 풍선을 하나의 예로써 얘기를 했던 것입니다.

참선, 이 깨달음이라 하는 것은, 가부좌를 하고 심호흡을 하면서 화두를 들고 이것이 현재 한국에서 지도하고 있는 하나의 그 체계적인 양식이기는 하지만,

깨달음이라 하는 것은 그러한 반드시 일정한 양식이 있어야만 되는 것이 아니고, 진리는 일체처 일체시에 충만해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 역대조사와 선지식의 수단과 능력에 따라서 어떠한 방법으로 지도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세계적인 사진작가니까 그 사진을 찍고, 또는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그림을 그리고, 글씨를 쓰는 사람은 글씨를 쓰고, 또 쇠를 만드는 그러한 그 제철공장에서 일하는 사람은 그 쇠를 녹여서 좋은 쇠를 만드는 그 가운데, 또 백정이 소를 잡는 데에는 소를 잡는 바로 거기에도 참선이 있을 수가 있고 깨달음이 있을 수가 있다고 하는 것을 얘기를 하고,

그래서 사람마다 각기 자기 나름대로 하나의 풍선을 불고 있다.

금방 그 풍선을 잘못 불면 처음에 조금 훅 불다가 어문 가운데서 툭 터져 가지고 실패해 버린 사람도 있을 것이고, 상당히 클 때까지 분 사람도 있을 것이고,
그러나 개중(個中)에는 이 우주의 법계에 가득 찰 만큼 그러한 큰 풍선을 불어 가지고 그래 가지고 더 이상 커질 수 없을 만큼 커 가지고 터트릴 수 있는, 그렇게 풍선을 불 수 있다면 그 사람이야말로 이 우주, 동서고금에 가장 크고도 좋은 풍선을 분 사람이라고 할 수가 있지 않겠느냐?

그래서 지금 우리는 승려로서 우리 나름대로의 가장 좋은 풍선을 불려고 목숨을 바쳐서 노력을 하고 있지만, 당신은 사진작가로서 당신의 풍선을 잘 불어야 할 것이다.

그런 얘기를 했더니 그 사람이, 예술가도 상당한 수준 이상으로 올라가면 이런 도(道)나 법(法)에 관해서 얘기를 하면은 서양 사람이나 동양 사람이나 이해를 잘 하는 것을 경험을 했습니다.
그래서 몇달 후에 그이가 인편에 쪽지를 써서 보냈는데, ‘지금도 풍선을 열심히 불고 있다.’고 하는 그러한 그 전단을 보내왔었습니다.

참선을, ‘꼭 가부좌를 하고 단전호흡을 하고 화두를 타서 화두를 참구하는 것이다.’ 이러한 참선에 관한 고정된 관념을 가져서는 아니 되는 것입니다.
그런 고정된 생각을 가지면 '참선이라고 하는 것이 어려운 것이다. 지루한 것이다. 장소가 없으면 못하고 시간이 없으면 못하고 어떠한 특별히 혜택 받은 사람이 아니면 참선은 못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참선 자체를 경원시(敬遠視)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억지로 할려고 하니까 지루하고, 다리가 저리고, 허리가 아프고, 나중에는 졸음이 오고, 아무리 해도 재미가 없으니까, ‘하! 이거 화두가 나에게 맞지 않는 것이냐?’ 또는 내가 공부를 잘못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

심지어는 나는 참선하고는 인연이 없는 것이 아니냐? 내 근기가 참선을 할 만큼 미치지 못한 것이 아니냐? 차라리 이렇게 아무리 해 봤자 재미도 없고 별 성과도 없는 참선을 이렇게 한다고 해 봤자 허송세월만 하는 것이 아니냐?
그러니 경(經)을 읽어볼까? 염불(念佛)을 할까? 주력(呪力)을 할까? 그래 가지고 경을 읽다가 염불을 하다, 주력을 하다, 그러다가 보면 또 다시 참선을 하고 싶어서, 또 참선을 하다가 말다가 참 이러한 분을 상당히 많이 겪어봤습니다.

이 참선은 초학자(初學者)를 위해서, 물론 책에 있는 그런 자세와 호흡하는 법과 화두를 참구하는 그러한 아주 기초적인 것부터서 잘 지도를 받아서 하는 것은 물론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참선이라고 하는 것이 워낙 범위가 넓고 자유스러운 것이어서, ‘그렇게 해야만 된다’고 생각해서는 아니 되는 것입니다.

'망상(妄想)이 일어나서 못한다.' 그러는데, 망상이 일어나고 안 일어나고 한 것이 전혀 상관이 없는 것이고, 또 망상이 일어남으로써 오히려 참선을 잘할 수도 있는 그러한 면도 있는 것입니다.(2분7초~20분18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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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田岡) 선사 ; 법명은 영신(永信). 호는 전강(田岡).
선사는 1898년 11월 16일(음) 전남 곡성군 입면 대장리에서 정해용(鄭海龍)을 아버지로, 황계수(黃桂秀)를 어머니로 태어나셨다.
16세에 인공(印空) 화상을 득도사로, 제산(霽山) 화상을 은사로, 응해(應海) 화상을 계사로, 해인사에서 출가하여 경을 보다가 도반의 죽음으로 무상함을 느끼고 선방으로 나가 용맹정진하여 23세에 견성하셨다.
당시 유명한 육대 선지식 혜월•혜봉•한암•용성•보월•만공 선사와 법거량을 하여, 모두 인가를 받으시고 25세에 만공 선사의 법맥을 이으셨다.
33세의 젊은 나이로 통도사 보광선원 조실로 추대된 이래 법주사 복천선원•경북 수도선원, 도봉산 망월사•부산 범어사•대구 동화사 등 여러 선원의 조실을 두루 역임하시고 말년에는 천축사 무문관•인천 용화선원•용주사 중앙선원의 조실로 계시다가 1974년 12월 2일(음) 인천 용화선원에서
“여하시생사대사(如何是生死大事)인고?  억! 九九는 번성(翻成) 八十一이니라.”하시고 앉아서 열반에 드셨다.
그리고 후학(後學)을 위한 700여 개의 육성 법문테이프를 남기셨다.
세수(世壽) 77세, 법랍(法臘) 61세.
*조실(祖室) ; 선원의 가장 높은 자리로 수행인을 교화하고 참선을 지도하는 스님. 용화선원에서는 고(故) 전강대종사(田岡大宗師)를 조실스님으로 모시고 있다.
*납자(衲子 옷을 꿰맴 납/사람 자) ; 남이 버린 헌 옷이나 베 조각들을 기워서 만든 옷을 입은 수행승. 흔히 참선을 하는 스님(禪僧)이 자신을 가리킬 때 사용.
*제접(提接 이끌 제/응대할•가까이할 접) ; (수행자를) 가까이하여 이끌다.
*사바세계(娑婆世界);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이 세계. 현실의 세계.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교화하는 세계. 인토(忍土)•감인토(堪忍土)•인계(忍界)라고 한역.
*교외별전(敎外別傳) : 부처님께서 말씀으로써 가르친 바를 모두 교(敎)라 하는데, 교 밖에 따로 말이나 글을 여의고(不立文字) 특별한 방법으로써 똑바로 마음을 가리켜서 성품을 보고 대번에 부처가 되게 하는(直指人心 見性成佛) 법문이 있으니 그것이 곧 선법(禪法)이다. 교는 말로나 글로 전해 왔지마는, 선법은 마음으로써 전하여 왔으므로 이른바 삼처전심(三處傳心) 같은 것이다”
*선지(禪旨) : 선(禪) : [범] dhyana 음을 따라 선나(禪那)• 타연나(駄衍那)라 쓰고, 고요히 생각함(靜慮), 생각하여 닦음(思惟修), 악한 것을 버림(棄惡) 또는 공덕림(功德林) 등으로 번역한다.
진정한 이치를 궁리하고 생각을 안정하게 하여 산란치 않게 하는 것을 말한다.
중국에서는 가섭존자가 전한 선법이 널리 퍼지지 못하고 교법만이 유포되었었는데, 달마대사(達摩大師)가 건너온 뒤로부터 선법이 크게 발달되어 이른바 '조사선(祖師禪)'이 완성되었다. 이 글에 말하는 선법은 조사선만을 가리키는 것이다.
*조사선(祖師禪) ; 교외별전(教外別傳) • 불립문자(不立文字)로서 말 자취와 생각의 길이 함께 끊어져, 언어와 문자에 의하지 않고 직접 스승으로부터 제자에게로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깨우치는 것을 전하고 있기 때문에 조사선이라 한다.
[참고] 선가귀감(용화선원 刊) p28, p34에서.
(5)世尊이  三處傳心者는  爲禪旨요  一代所説者는  爲教門이라. 故로  曰,  禪是佛心이요  教是佛語니라
세존께서 세 곳에서 마음을 전하신 것은 선지(禪旨)가 되고, 한 평생 말씀하신 것은 교문(教門)이 되었다。그러므로 선(禪)은 부처님의 마음이요, 교(教)는 부처님의 말씀이니라.
(6)是故로  若人이  失之於口則拈花微笑가  皆是教迹이요. 得之於心則世間麤言細語가  皆是教外別傳禪旨니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말에서 잃어버리면, 꽃을 드신 것이나 빙긋이 웃은 것(拈花微笑)이 모두 교의 자취(教迹)만 될 것이요. 마음에서 얻으면, 세상의 온갖 잡담이라도 모두 교 밖에 따로 전한 선지(教外別傳禪旨)가 되리라.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스승)으로부터 화두•공안(公案)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공안)을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공안 또는 화두(話頭)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구사(驅使 몰 구,부릴 사) ; 말이나 수사법, 기교, 수단 따위를 자유자재로 다루어 씀.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육조(六祖), 하택신회(荷澤神會), 남악회양(南嶽懷讓) ; 분류 ‘역대 스님 약력’에서 참조.
*삼요(三要) : 참선하는데 갖추어야 할 세 가지 요건. 첫째는 큰 신심(大信心)이요, 둘째는 큰 분심(大憤心)이요, 세째는 큰 의심(大疑心)이다.
*신심(信心) : ‘내가 바로 부처다’ 따라서 부처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요, 일체처 일체시에 언제나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공, 이 소소영령한 바로 이놈에 즉해서 화두를 거각함으로써 거기에서 자성불(自性佛)을 철견을 해야 한다는 믿음.
*분심(憤心) : 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도인들은 진즉 확철대오를 해서 중생 제도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왜 여태까지 일대사를 해결 못하고 생사윤회를 하고 있는가. 내가 이래 가지고 어찌 방일하게 지낼 수 있겠는가. 속에서부터 넘쳐 흐르는 대분심이 있어야. 분심이 있어야 용기가 나는 것이다.
*의심(疑心) :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이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수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이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자기의 본참화두에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조사(祖師) : 부처님의 바른 종지(宗旨) 곧 조사선법(祖師禪法)을 전하는 스승.
*체중현(體中玄) ; 임제 의현(臨濟義玄)선사가 학인을 제접하는 데 사용한 수단인 삼현(三玄-體中玄•句中玄•玄中玄)의 하나.
[참고] 선가귀감(용화선원 刊) p207, p212 에서.
[三玄]삼현
體中玄은  三世一念等이요  句中玄은  徑截言句等이요  玄中玄은  良久棒喝等이라
삼현 : 체 가운데 현(體中玄)은 삼세가 한 생각이라는 따위들이고, 구 가운데 현(句中玄)은 지름길 말들이며, 현 가운데 현(玄中玄)은 양구와 방망이와 할 같은 것들이다.
삼현(三玄) : 임제 의현(臨濟義玄)선사가 학인을 제접하는 데 사용한 수단이다.
체중현(體中玄)은 진공(眞空)의 이치를 보는 것이라 학인이 이 이치를 보았다 하더라도 신위(信位)를 여의지 못했으므로 자유의 분(分)이 없다.
구중현(句中玄)은 뜻길이 없는 말로써 그 말에 걸리거나 막히지 않고 도리를 바로 봄을 말함.
현중현(玄中玄), 사(事)에 걸림이 없는 묘유(妙有) 곧 현중현(玄中玄)의 도리를 보아야 인가(印可)를 하는 것이다. 현중현을 용중현(用中玄)이라고도 한다.
*공견(空見) ; 공(空)에 집착하는 그릇된 견해.
*개중(個中) ; 여럿이 있는 그 가운데.
*경원시(敬遠視) ; 겉으로는 가까운 체하면서 실제로는 멀리하고 꺼림칙하게 여김.
*망상(妄想) ; 이치에 맞지 않는 허황된 생각을 함. 또는 그런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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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

§(414) 공부는 간단하고 쉬운 . 언제 어디서든 항상 화두를 잡드리해야. 우주는 우리의 생각 일어남으로 해서 벌어진 . (게송)춘유백화추유월~.


우주법계(宇宙法界) 우리의 생각일어남으로 해서 벌어진 것입니다.극락세계(極樂世界) 자기의 생각으로 인해서 극락세계가 존재하게 되는 것이고, 무서운 지옥(地獄) 자기의 생각으로 인해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니 지옥을 만들어서 지옥으로 들어가서 () 받는 것도 자기의 생각을 어떻게 단속하느냐에 달려 있는 거고, 천국을 건설을 해서 천국에서 유희를 하는 것도 자기의 생각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송담스님(No.414)—1990 4 첫째 일요법회 법문.


약 11분.


공부는 복잡한 것이 아니고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천하 간단하고 쉬운 것입니다.


초학자(初學者) 불가불 장소가 필요하고 시간이 필요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나, 자꾸 버릇 하면 장소도 상관이 없고 시간도 상관이 없습니다.

앉아서도 하고, 서서도 하고, 차를 타고 가면서도 하고, 일하면서도 하고, 설거지 하면서도 하고, 누워서도 하고, 잘려고 잠자리에 누웠서도이뭣고~?’


숨을 깊이 들어마셨다가 머물렀다가 내쉬면서이뭣고~?’ 이렇게 하면서 언제 잠든 모르게 잠이 들어. 꿈속에서도 화두(話頭) 그대로. 이튿날 아침에 눈을 뜨면 엊저녁에 들던 화두가 그대로 들어 있게 되거든.


때와 장소를 가리지 말고 항상 잡드리를 하시면, 그렇게 공부가 결국은 색을 보되 색이 아니요(見色非干色), 소리를 듣되 소리가 아니요(聞聲不是聲). 성색(聲色) 걸림이 없이(色聲不礙處), 그래서 법왕성(法王城) 도달할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親到法王城).


우주법계(宇宙法界) 우리의 생각일어남으로 해서 벌어진 것입니다.

극락세계(極樂世界) 자기의 생각으로 인해서 극락세계가 존재하게 되는 것이고, 무서운 지옥(地獄) 자기의 생각으로 인해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니 지옥을 만들어서 지옥으로 들어가서 () 받는 것도 자기의 생각을 어떻게 단속하느냐에 달려 있는 거고, 천국을 건설을 해서 천국에서 유희를 하는 것도 자기의 생각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한 생각이 무량겁이요, 무량원겁(無量遠劫) 즉일념(卽一念)』이라고 법성게(法性偈)에도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 가운데는 법화경도 읽어 보시고, 화엄경도 읽어 보시고, 원각경, 금강경, 경이란 경은 읽어 보신 그런 분도 있을 것입니다마는,

경을 참으로 뜻을 옳게 알고 읽으셨다면 일념(一念) 속에 육도법계(六途法界) 있는 것이고, 생각 단속함으로 해서 불국토를 건설하느냐, 지옥을 만드느냐는 달려 있는 도리를 이해하실 것입니다.



춘유백화추유월(春有百花秋有月)하고  하유청풍동유설(夏有清風冬有雪)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약무한사괘심두(若無閑事掛心頭)하면  변시인간호시절(便是人間好時節)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춘유백화추유월(春有百花秋有月)이요, 봄에는 가지 꽃이 있고 가을에는 휘황찬 밝은 달이 있구나.

하유청풍동유설(夏有清風冬有雪)이로다. 여름에는 맑은 바람이 있고 겨울에는 하얀 눈이 있구나.

약무한사괘심두(若無閑事掛心頭)하면, 만약 부질없는 일이 마음에 걸려 있지 아니하면,

변시인간호시절(便是人間好時節)이다. 문득 이것이 인간의 좋은 시절이더라.


약무한사괘심두(若無閑事掛心頭), 부질없는 일이 마음에 걸려 있지 않는다. 무엇이 부질없는 일인가?

지나간 일에 대한 쓸데없는 생각, 아직 닥쳐오지 않은 장차 미래 일에 대해서 이러쿵 저러쿵 댕겨서 걱정하고 근심하는 . 현재 보고 듣고 하는 일에 대해서 그리 끌려가 가지고 생각 생각 하는 .


과거의 마음, 미래의 , 현재 닥쳐 있는 모든 귀와 눈을 통해서 제출되는 모든 일들에 대해서 사량(思量) 분별(分別) 따지고, 이래 가지고 이러쿵 저러쿵, 그래 가지고 스스로를 들볶는 것입니다.


그러면 목석(木石)이나 되면 모를까, 지나간 일도 생각이 나고, 앞으로 일도 생각 걱정도 하고, 현재 닥친 일도 생각하기 마련인데, 어떻게 지나간 일도 생각하지 말고, 앞으로 일도 생각하지 말고, 현재 닥치는 일에 대해서도 아무 생각도 하지 말아라.

그럼 목석(木石) 되란 말인가? 그게 아니거든.


살아 있으니까 지나간 일도 불현듯 생각날 것이고 앞으로 일도 무엇인가 필요해서 생각을 수가 있고, 현재 눈으로 보고 듣고 하다 보면 무슨 생각이 일어날 수도 있겠지마는, 살아 있으니까.


무슨 생각이 나자마자 화두(話頭) 돌리는 , 천하에 묘한 법이거든. ‘이뭣고~?’


아무 생각 할려고 한다고 해서 해지는 것이 아니예요. 할려고 하는 생각도 또한 생각이기 때문에, 할려고 하지도 말고 쫓아낼려고 하지도 말고이뭣고~?’ 챙기거든.

이런 간단하고도 쉽고도 묘한 법이 그래서 이것을 최상승법(最上乘法)이라.



이제 겨울이 지내가고 입춘, 우수, 경첩, 춘분, 이제 개나리가 피고, 산에는 진달래가 피고, 목련이 도처에 피고, 그래도 조석으로는 꽃샘추위로 춥기는 허지만, 이제 봄이 무르익어 가고 있습니다.

이러헌 좋은 때에 나라는 정치적으로는 시끌사끌하고 국제적으로도 복잡하고 모다 그렇지만, 우리 최상승법을 하는 사람은 이러한 중요한 때일수록 우리가 있는 일은 열심히 정진을 해서참나 깨달라야만 앞으로 우리나라가 통일이 것이고 세계평화도 것입니다.


앞으로 십여 , 열흘 후에는 음력 316 법보재(法寶齋)일입니다. 여러분께서도 아시겠지만 법보단(法寶壇) 만년위패(萬年位牌) 봉안한 여러 영가(靈駕), 우리의 선망부모(先亡父母) 원근친척과 유주무주(有主無主) 법계 고혼(孤魂)까지도 천도(薦度)하는 대법요식이 거행되는 날입니다.


법보재에 들으신 분은 말할 것도 없고, 법보재에 들으신 분들도 서로서로 권고해서 법보재에 들으시도록 권고를 하시고, 분도 빠지시지 말고 모두 그날 참여하셔서 우리의 선망부모와 원근친척의 영가들을 천도하는 중대한 법요식에 빠지지 않도록 부탁을 드립니다.

설사 부득이한 사정이 있어서 참석을 하신다 하더라도 법보영가들을 천도하는 데에는 차질이 없겠습니다마는 기왕이면은 참석을 하시면은 영가들도 기쁜 마음으로 좋은 곳으로 가서 왕생을 하시게 것입니다.(6213~738)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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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드리 ; ‘잡도리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대책.

*법왕(法王) ; 부처님을 찬탄하는 . () 가장 수승하고 자재하다는 . 부처님은 법문(法門) 주인이며 중생을 교화함에 자유자재한 묘용(妙用) 있으므로 이렇게 이름.

*법성게(法性偈) ; 통일 신라 시대에, 의상대사가 중국에서 화엄경을 연구하고 경의 핵심을 추려서 지은 7 30(210) 게송.

*(게송) 춘유백화추유월~’ ; [무문관(無門關)] 19 '평상시도(平常是道)' 무문혜개(無門慧開) 게송 참고.

*부질없다 ; (사람의 언행이나 일의 형편이)공연하여 쓸모가 없다.

*쓸데없다 ; (무엇이)아무런 쓸모나 값어치가 없다.

*닥쳐오다 ; (일이나 시일이 무엇에)빠르게 가까이 다가오다.

*닥치다 ; 어떤 일이나 대상 따위가 가까이 다다르다.

*사량(思量) ; 생각하여 헤아림. 사유하고 판단함.

*분별(分別) ; ①대상을 차별하여 거기에 이름이나 의미를 부여함. 대상을 차별하여 허망한 인식을 일으키는 인식 주관의 작용. ②구별함. ③그릇된 생각.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열가지 병이 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 무엇고(是甚 시심마,시삼마) : ‘ 무엇고? 화두 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무엇고하고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찾는 것이다.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법보재(法寶齋) ; 매년 음력 3 16일에 용화사 법보재자(法寶齋者) 법보전 만년위패에 모신 선망부모 영가들과 인연 있는 영가들의 무량겁으로부터 지은 업장을 참회 소멸하고, 정법(正法) 귀의하여 도솔천 내원궁이나 극락세계에 왕생하시고, 재자와 영가 모두 진리의 세계에 나아가도록 하기 위해 전강 조실스님께서 개설(1963)하신 합동 천도재(薦度齋).

*법보단(法寶壇) ; 용화선원의 () 법당(法堂) 법보전(法寶殿) 안에 위패를 모신 ().

*만년위패(萬年位牌) ; 전강 조실스님께서 우리들의 선망부모와 유주·무주의 영가 천도를 위해서 만들어 놓으신 제도.

영가에게 법보전에 편안한 거처를 마련하여 법보전에서 좋은 도반들과 가족이 되어, 용화선원이 있는 계속 매일 예불시 축원하고 법회 때나 평소에 법문(法門) 들려드려,

영가가 원한심을 내려 놓고 모든 업장을 소멸하여 도솔천 내원궁이나 극락세계에 왕생하시거나, 다시 인간으로 환생하더라도 정법(正法) 귀의하여 스스로 깨닫고 모든 중생을 제도 있도록 하기 위하여, 전강선사께서 만드신 제도.

*영가(靈駕) ; 돌아가신 이의 영혼을 높여 부르는 . () 정신의 불가사의(不可思議)함을 의미하는 것으로 정신 자체를 가리키고, () 상대를 높이는 경칭(敬稱)이다.

*선망부모(先亡父母) ; 금생에 돌아가신 부모 뿐만 아니라 과거 우리의 모든 부모.

[참고] 1984(갑자년) 칠석차례(No.243) 송담 스님 법문에서.

선망부모는 사람의 선망부모가 나의 선망부모와 같은 것입니다.

영가(靈駕) 수천만 몸을 바꾸면서 나의 조상이 되었다, 김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가, 박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가, 이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 왔다갔다 하기 때문에,

부모가 바로 사람의 부모고, 사람의 부모가 부모여서, 부모를 소중히 아는 사람은 바로 다른 노인들을 소중히 여기게 되고, 자식이 사랑스런 사람은 다른집 아기들도 아껴주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동체대비(同體大悲) 하는 것입니다.

*유주무주(有主無主) ; ①주인(영가를 인도해 줄만한 인연있는 사람) 있거나 없는. ②제주(祭主) 있거나 없는.

*고혼(孤魂)문상(問喪) 사람이 없는 외로운 .

*천도(薦度) ; 불교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생전에 지은 () 따라 다음 생을 받게 되는데, 유족들이 불보살(佛菩薩) 모신 법당(法堂)에서 돌아가신 영가를 청해 모시고, 지극한 마음으로 불보살의 가피를 기원하고 또한 영가에게부처님의 가르침(法門)’ 들려줌으로써,

영가가 두려움에서 벗어나고 지혜의 눈을 밝혀 삶의 무상을 깨달아 이승에 대한 애착과 미련을 끊고, 보다 좋은 곳으로, 나아가 육도윤회를 벗어나 극락왕생·해탈의 바른 길로 건너가도록 하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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