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상(無常)2015.06.23 16:50

§(세등39) (게송)금오출몰촉년광~ / 안수정등(岸樹井藤) / 생사해탈하는데 있어 신도는 스님네보다 몇십 배 간절히 정진을 해야 /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 / 핑계 안돼!

선지식(善知識)의 법문에 의지해서 지혜롭게 공부를 지어 나가야 마장(魔障)이 일어나지 않고 반드시 도업(道業)을 성취하게 되는 것입니다.
부처님 제자에는 머리 깎은 스님네만이 제자가 아니라, 우바새, 우바이, 비구 비구니가 이것이 사부대중(四部大衆)으로 구별을 지어 놓으셨지만 도업(道業)을 닦아 가는데 있어서는 마찬가지여.
생사해탈(生死解脫)을 해야 하는데 있어서는 오히려 스님네보다도 마을에 계신 여러분들이야말로 더 간절히 알뜰히 공부를 해 나가야만 될 것입니다.
스님네보다도 몇 배, 몇십 배 이를 악물고 정진을 해야만 할 것입니다. 그래야 업(業)의 구렁텅이에서 해탈(解脫)하시게 되고, 생사윤회의 구렁텅이에서 해탈을 하시게 될 것입니다.
**송담스님(세등선원No.39)—임술년 하안거 결제 법어(82.04.17)


(1) 약 17분.  (2) 약 10분.


(1)------------------

금오출몰촉년광(金烏出沒促年光)이요  옥토승침최로상(玉兎昇沈催老像)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인수정고어소수(忍受井枯魚少水)허고  영용상핍서침등(寧容象逼鼠侵藤)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금오출몰촉년광(金烏出沒促年光)이요. 태양을 금까마귀[金烏]라 그래.
금까마귀가 나왔다 졌다, 아침에는 동천에서 솟아올랐다가 저녁때는 서산으로 넘어가고, 이렇게 하면서 세월을 재촉을 한다. 금까마귀는 솟았다 졌다 하면서 세월을 재촉을 하고,

옥토승침최로상(玉兎昇沈催老像)이라. 옥토끼[玉兎]는—달을 보고 옥토끼라 하는데, 옥토끼는 떴다 졌다 하면서 늙은 모양을 재촉한다.
하루 해가 떴다 졌다, 내일도 또 해가 떴다 졌다 하면서 1년이 지내가고, 달이 떴다 졌다, 달이 또 떴다 졌다 하면서 우리를 늙게 만든다 이것이여.

하루 해가 떴다 지고서 거울을 쳐다본다고 해서 별로 늙은 줄을 모릅니다마는, 그 하루 하루가 1년이 지나면 1년 동안에 벌써 흰머리가 많이 불어나고 주름살이 지나가고, 1년 사이에 많이 늙어 버리게 된다. 젊을 때에는 1년, 이태 지내도 잘 모르지만, 사십 오십이 넘어가면 1년이 무섭다 그말이여.

젊다고 해서 어찌 늙지 아니하리요마는 눈에 잘 띄지 아니한 것뿐이지 자라고 있는 것 자체가 늙어 가는 것이고, 늙어 가는 것이 바로 죽음을 향해서 걸어가고 있는 것인데, 어찌 등한히 할 수가 있나.

인수정고어소수(忍受井枯魚少水)여, 우리의 인생살이가 마치 무엇과 같은가 하면은 물웅덩이에 물이 그 삼복더위에 가뭄이 계속 될 때에 물웅덩이에 물이 매일같이 바짝 바짝 바짝 밭아 들어가는데,
그 적은 물속에 송사리떼, 크고 작은 그 고기떼들이 펄떡펄떡 펄떡펄떡펄떡펄떡 뛰면서 물은 거의 다 잦아지고 오늘내일 사이에 완전히 말라버리게 생길 때,

송사리란 놈이 그 웅덩이 속에서 팔딱팔딱팔딱팔딱 정식으로 고기가 서지를 못하고 옆으로 이렇게 드러누워서 팔딱팔딱 뛰고 있다가 벌써 한쪽에서는 맥을 못추리고 늘핀하니 죽어가고 있는 그러한 상황이 바로 우리 인생살이다 이것이여.

세계 도처(到處)가 싸움이 일어나고 있고, 싸움이 일어나기 직전에 있고, 우리도 38선을 놔두고 호시탐탐 남침(南侵)을 노리고 있는 이러한 상황 속에서 언제 어떻게 될는지 모르고 있는, 잠시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는 이러한 상황 속에 있는 것이여.


영용상핍서침등(寧容象逼鼠侵藤)이여. 황야(荒野)를 여행을 하다가 성난 코끼리란 놈이 쫓아옴을 만났다. 도망을 치다가 마치 깊은 샘을 하나 만나 그래서 그 샘으로 피신을 하는데, 깊이 들어가자니 저 밑에는 독룡(毒龍)과 독사(毒蛇)가 우글거리고 있고, 그래 마치 언덕에서 등넝쿨이 떠억 뿌리를 박고 거기 있다 그말이여. 그래서 그 등넝쿨을 휘어잡고 매달려 갖고 있다 그말이여.

코끼리란 놈은 그 샘으로 들어올 수가 없어서 밖에서 코를 내두르면서 위협을 하고 있고, 저 밑으로 들어가자니 독룡 독사가 있고, 그런데 팔은 아파 죽겠지만,

그러자 그 칡덩쿨 뿌럭지 있는 데다가 벌이 벌집을 지어놓고, 그런데 그 날씨가 더우니까 그 벌집에서 꿀이 넘쳐 가지고 꿀방울이 똑똑 떨어진다 그말이여.
그래서 그 처음에는 무엇이 입술에 톡 떨어져서 무의식 중에 혀로 입술을 핥으니까 아! 다디달다 그말이여.

조금 있으니까 또 떨어지고 또 떨어지고 해서 그 꿀방울을 입을 벌리고 인자 정식으로 똑똑 떨어지는 것을 받아 먹고 있는 것이 너무 달고 좋은 바람에 코끼리가 바로 기다리고 있는 것도 잊어버리고, 독룡 독사가 저 밑에 자기가 떨어지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마저도 망각을 하고.

그런데 흰 쥐와 검은 쥐 두 마리가 나와 가지고, 칡넝쿨을 검은 쥐가 한번 갉고 나면 흰 쥐가 한번 또 갉고, 흰 쥐가 한번 갉아먹고 나면 검은 쥐가 한번 갉고.

쥐란 놈은 시간만 있으면 무엇을 긁어야 돼. 긁어서 먹기 위해서가 아니라,
안 긁고 가만히 놔두면 송곳니가 길어나 가지고, 웃송곳니는 길어서 아랫턱을 뚫고 내려가고, 아랫 송곳니는 길어나 가지고 웃입바탕을 뚫고 나가가지고 자동으로 죽게 되기 때문에 시간만 있으면 딱딱딱딱 이를 갖다가 갈아야 된다.

그래서 여러분들도 집에서 보면 창고에 공연히 뭘 갉아 가지고 못쓰게 맨들고 하는데 그건 쥐의 자기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또 이가 날카로워야 뭘 또 먹을 수도 있고, 그 본능적으로 그런 건데, 해필 그 칡넝쿨 하나에 매달려 가지고 지금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 그 칡넝쿨을 지금 와서 긁고 있는 그런 못된 쥐가 있다 그말이여.

그런데 이 사람은 그 얼마 안 가면 뚝 떨어지면 죽게 되어 있는데 꿀 받아먹는 재미로 그것마저도 모르고 있다 그말이여.

고대로 가만히 있자니 칡넝쿨이 뚝 떨어지면 죽고, 올라가자니 코끼리란 놈이 기다리고 있고, 내려가자니 독룡 독사가 혀를 널름거리고 있어.


어떻게 하면은 이 사람이 살아갈 수가 있느냐?

이것이 ‘안수정등(岸樹井藤) 기능장구(豈能長久)냐. 언덕 나무에 있는 등넝쿨에 매달려 있는, 이 등넝쿨이 얼마나 오래 가겠느냐?’
‘안수정등(岸樹井藤)’이라고 하는 공안(公案)입니다. 어떻게 하면 여기서 살아갈 수가 있느냐?

이건 불가(佛家)에 뿐만이 아니라 세속에도 이러한 문제가 있고, 동양뿐만이 아니라 서양에도 이러한 이와 똑같은 수수께끼와 같은 이러한 문제가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은 이 칡덩쿨에 매달려 있는 사람이 살아갈 수가 있느냐?

여러분도 심심하면 한번 이 수수께끼를 풀어 보시고, 가정에 돌아가시면 학교에 다니는 아들이나 손자 딸에게도 이 이야기를 해서 ‘어떻게 하면 이 사람이 살아갈 수가 있느냐?’
이건 공안이라 사량분별심으로 따져서 알아지는 것은 아니지만, 너무 너무 이 공안이 재미가 있는, 우리 인생을 고대로 표현한 공안이기 때문에 세속에서 수수께끼로 풀어봐도 재미가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코끼리는 무상살귀(無常殺鬼)를—자꾸 이 죽음을 향해서 짧아져 가고 있는 것을 표현한 것이고, 독룡 독사가 기다리고 있는 것은 우리가 죽어서 숨이 끊어지자마자 염라대왕이, 저승이 기다리고 있는 것을, 축생 아니면 지옥, 육도 생사윤회(六途生死輪廻)가 기다리고 있는 것을 말한 것이고, 달콤한 꿀이 똑똑 떨어진 것은 인생의 오욕락(五欲樂)을 표현한 것입니다.

오욕락은 재산에 대한 욕심, 그 다음에 이성간에 색욕에 대한 욕심, 본능, 그 다음에 맛있는 음식을 먹는 식욕에 대한 즐거움, 그 다음에 명예와 권리에 대한 욕심, 다음에는 즐겁고 편안하게 놀고 쉬는 그러한 즐거움,
이것을 인생의 오욕락이라 하는데, 재(財)·색(色)·식(食)·명(名)·수(睡), 이 다섯 가지의 오욕락에 맛을 붙여서 살기 때문에 하루하루 세월이 지내가는 것을 망각하고,

죽음을 향해서 가고 있는 사실도 망각하고, 무상살귀가 끊임없이 우리를 쫓아오고 있다고 하는 것도 망각하고, 이러다가 뚝 떨어지면은 지옥이나, 아귀나, 축생, 삼악도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도 망각하고 있습니다마는,

아무리 그 오욕락에 맛을 붙여서 우리가 망각을 하고 있다 하드라도, 흰 쥐 검은 쥐는 계속해서 칡넝쿨을 쏠고 있기 때문에 칡넝쿨은 결정코 마침내 끊어져 버리고야만 말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만 여기서 우리가 살아갈 수가 있느냐?


앞으로 석달 동안 정진 할라면, 삼복성념(三伏盛炎)에 앉았을라면 그 땀이 흐르고 흘러서 오금쟁이가 진무르고 궁뎅이에 땀띠가 나서 피부병이 생기고, 앉았으면은 그 땀은 등허리에서 줄줄 흘르고,
아무리 눈을 부릅뜨고 정신을 차릴랴고 해도 혼침(昏沈)이 오고, 그러한 어려운 정진 기간입니다마는, 어렵다고 아니하면 누가 내 대신 공부를 해 줄 것이냐?

날이 더워도 공부는 해야 하고, 아무리 추워도 공부는 해야 하고, 아무리 피로해도 공부는 해야 하고, 아무리 아파도 공부는 해야 하고, 어리석게 하지 말고 지혜롭게 공부를 해 가야 한다. 가행정진, 용맹정진 대단히 좋지만, 어리석게 하면 퇴타(退墮)의 인연이 된다.

선지식(善知識)의 법문에 의지해서 지혜롭게 공부를 지어 나가야 마장(魔障)이 일어나지 않고 반드시 도업(道業)을 성취하게 되는 것입니다.(34분13초~50분43초)


(2)------------------

보살님들도 가정에서 정진을 하시게 되겠습니다마는, 여기 백일기도에 동참(同參)을 하시면 여러 보살님들도 이 안거(安居)에 방부(房付)를 들인 거와 마찬가지입니다.

백일기도에 한 분도 빠지지 말고 동참을 하시고 법회가 있을 때엔 꼭 참석을 하시고,

집에서 가정일 돌보시면서 아들딸 가르키면서, 살림하시면서 앉았을 때나, 섰을 때에나, 일을 하실 때에나, 공양을 하실 때에나 또는 어디를 가실 때 차를 타실 때나 행주좌와 어묵동정간에 항시 한 생각 돌이켜서 화두를 들고, 한 생각 한 생각을 알뜰히 다그쳐 나가시기를 바랍니다.

부처님 제자에는 머리 깎은 스님네만이 제자가 아니라, 재가제자(在家弟子) 우바새, 우바이, 비구 비구니가 이것이 사부대중(四部大衆)으로 구별을 지어 놓으셨지만 도업(道業)을 닦아 가는데 있어서는 마찬가지여.
생사해탈(生死解脫)을 해야 하는데 있어서는 오히려 스님네보다도 마을에 계신 여러분들이야말로 더 간절히 알뜰히 공부를 해 나가야만 될 것입니다.

스님네보다도 몇 배, 몇십 배 이를 악물고 정진을 해야만 할 것입니다. 그래야 업(業)의 구렁텅이에서 해탈(解脫)하시게 되고, 생사윤회의 구렁텅이에서 해탈을 하시게 될 것입니다.


스님네는 여러 신남신녀(信男信女)가 정성스럽게 바친 보시와 공양에 의해서 도를 닦아가야 할 이 소중한 육체를 보전해 나가고, 그러한 여러분의 신심과 공양하는 공덕으로 도업을 잘 닦아서 스스로 깨닫고 나아가서는 많은 중생을 제도해야 할 중대한 책임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물질적으로 정성으로 부처님과 법과 스님네를 잘 공양하고 보호하고 받듬으로서 스님으로부터서는 법(法)의 보시(布施)를 받는 것입니다.
물질을 여러분은 스님네에게 보시하고, 스님네는 수행으로써 여러분에게 법보시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밤낮 보시만 하고, 스님네는 우리한테 무엇을 보시를 해주나? 법을 보시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숙명통(宿命通)을 얻지를 못해서 전생사(前生事)를 잊어버려서 잘 모릅니다마는, 전생에 여러분이 스님이었었고 우리가 신도였었을런지도 모릅니다.
(전생에) 우리가 신도가 되어서, 스님으로 공부하시는 여러분에게 보시를 해서 그 인연으로 금생에는 우리가 출가해서 스님이 되고, 여러분은 세속에서 신도가 되어 가지고 교대해서 여러분이 우리를 또 이렇게 보시를 하고 잘 공양을 해서 우리를 이렇게 공부할 수 있도록 해 주고 있는지도 알 수가 없습니다.

이 가운데 혹 숙명통이 열린 분이 보면 틀림없이 그러한 인연 관계가 있는 것을 볼 수 있으리라고 나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보시를 하되 무주상(無住相)으로 해야 한다. 부처님께서 금강경(金剛經)에 말씀하시기를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야말로 그 공덕이 한량이 없이 크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여러분들도 무주상으로 보시를 하고 대중공양(大衆供養)을 해서 스님네가 어쨌던지 영양보충을 충분히 해서 건강한 육체로 건전한 정신으로 정진을 잘해서 결정코 금생에 대도를 성취하도록 잘해 주시고,

그 공덕으로 여러분 가정에는 항시 신심과 기쁨이 넘쳐 흘러서 모든 재앙은 다 물러 나가 버리고,
크고 작은 소원이 차례로 다 성취가 되어서 부처님 제자로서 만복(萬福)을 성취하고 유루복(有漏福)과 무루복(無漏福)을 갖추어 구족(具足)해서,
위로는 보리(菩提)를 구하고, 아래로는 부처님의 뜻을 받들어서 모든 사람이 자기로 인해서 부처님께 귀의(歸依)할 수 있는 계기가 되고 인연이 되도록 해주시기를 간절히 부탁을 합니다.

오늘도 강영선 보살이라고 하는 신심있는 보살이 대중공양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이 공양을 기쁜 마음으로 받으시고 그 인연으로 ‘법(法)의 기쁨과 선(禪)의 기쁨’, 법희선열(法喜禪悅)을 얻으셔서 세세생생에 그 강영선 보살님과 함께—악도에 떨어지지 아니하고 항시 정법문중(正法門中)에 다시 만나서 대도를 성취할 인연이 되기를 부처님께 축원을 합니다.


금생(今生)에 약불종사어(若不從斯語)하면  후세당연한만단(後世當然恨萬端)하리라
나무~아미타불~

금생(今生)에 약불종사어(若不從斯語)하면, 금생에 만약 이렇게 간절히 일러드리는 말씀을 실천을 하지 아니하면, 후생(後生)에 당연한만단(當然恨萬端)하리라.

후생에 염라대왕(閻羅大王) 앞에 가서 ‘아! 내가 그때 송담 스님이 그렇게 목이 쇠도록 일러준 그 말할 때 공연히 아들 핑계, 딸 핑계, 살림 핑계, 무슨 핑계, 뒤로 미루고 그럭저럭 지내가지고 내가 이런 일을 당하는구나. 어째서 내가 그때 열심히 공부를 안했던가!’
염라대왕 앞에 가서, 저승에 가서 아무리 후회하고 한탄을 해봤자 그때는 이미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참선해 나가는 구체적인 법문에 대해서는 아까 조실 스님께서 녹음을 통해서 너무너무 고구정녕(苦口叮嚀)하게 해주셨기 때문에 생략을 하고 하좌하겠습니다.(50분44초~60분37초)(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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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금오출몰촉년광~’ ; [관음예문(觀音禮文)] (용화선원刊)에 있는 ‘무상게(無常偈)’ p35, p64 참고.
刹那生滅無常法  聚散循環有漏因  金烏出沒促年光  玉兎昇沈催老像
忍受井枯魚少水  寧容象逼鼠侵藤  覩玆脆境早修行  勤念彌陀生極樂

한 찰나에 생하고 멸하는 것이 무상한 법이며, 모였다 흩어지고 흩어졌다 모이는 것은 번뇌(有漏)의 원인이네. 해는 떳다 지면서 세월을 재촉하고, 달은 떳다 지면서 내 늙음 재촉하네.
우물이 말라 물이 적은 것 물고기는 어찌 참으며, 미친 코끼리에게 쫓기고 쥐는 등넝쿨을 갉나니, 이같이 위급함을 절실히 알아 속히 수행을 하고, 부지런히 아미타 부처님 염(念)하여 극락왕생하세.
*밭다 ; (무엇이) 바싹 졸아서 물기가 거의 없어지다.
*잦다 ; (액체가)졸아들어 밑바닥에 깔리다.
*늘핀하다 ; ‘늘펀하다(여기저기 널려있는 모양)’의 사투리.
*도처(到處 이를 도/곳 처) ; 여러 곳. 이르는 곳.
*38선(三八線) ; 제2차 세계 대전의 전후 처리 과정에서 1945년 8월15일 맥아더가 발표한 ‘일반명령 제1호’에 의해 한반도의 38도선 이북의 일본군의 항복은 소련이, 이남의 일본군의 항복은 미국이 접수한, 미·소 양국의 한반도 분할점령 군사분계선.
38선은 1953년 6 · 25 전쟁이 끝나고 정전협정에 따라 설정된 현재의 군사분계선과 다르지만, 현재까지도 흔히 군사분계선을 삼팔선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호시탐탐(虎視眈眈 범 호/볼 시/노려볼 탐) ; 범이 눈을 부릅뜨고 먹이를 노려본다는 뜻으로, 남의 것을 빼앗기 위하여 기회를 노리고 형세를 살피는 모양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황야(荒野 거칠 황/들 야) ; 버려진 채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아 거칠게 된 들판.
*뿌럭지 ; ‘뿌리’의 사투리.
*다디달다 ; 매우 달다.
*해필(奚必 어찌 해/반드시 필) ; ‘다른 경우도 있을 텐데 어찌하여 꼭’이라는 뜻으로 마음에 맞지 않거나 서운할 때 쓰는 말.
*안수정등 기능장구(岸樹井藤 豈能長久) ; ‘언덕 위의 나무와 우물가의 등(藤)나무가 어찌 오래 갈 수 있겠는가’
[참고] [치문경훈(緇門警訓)] 《위산대원선사경책(潙山大圓禪師警策)》에서.
夫業繫受身 未免形累  稟父母之遺體 假衆緣而共成 雖乃四大扶持 常相違背 無常老病 不與人期  朝存夕亡 刹那異世 譬如春霜曉露 焂忽卽無 岸樹井藤 豈能長久 念念迅速  一刹那間 轉息 卽是來生 何乃晏然空過

대저 업(業)에 얽매여 받은 이 몸은 형상의 더러움을 면치 못한다. 부모가 내려주신 유체(遺體, 父精母血)를 받아 여러 인연을 임시로 빌려 함께 이루었다.
비록 다만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四大)가 모여 견디어내나 항상 서로 어기고 등져 무상(無常)한 노병(老病)이 사람으로 더불어 때를 정하여 약속하지 않아서, 아침에 있다가 저녁에 죽어 찰나에 세상을 달리하게 된다.
비유하면 봄서리 새벽이슬과 같아 갑자기 없어지며, 언덕 위의 나무와 우물가의 등(藤)나무가 어찌 오래 갈 수 있겠는가. 순간 순간 빠르고 빨라서 일찰나 사이에 숨이 떨어지면 곧 내생이니, 어찌 편안히 헛되게 지내리요.
*위산(潙山) : (771 – 853) 법명은 영우(靈祐), 속성은 조(趙)씨。당나라(唐) 대종(代宗) 때에 복건성(福建省) 복주부(福州府) 장계(長鷄)에서 났다。열 다섯 살에 출가하고, 스물 셋에 백장선사(百丈禪師)의 법회에 가서 공부하였다.
추운 겨울에 밤늦도록 방장실(方丈室)에 올라가서 문법(問法)하는데, 화상이 『화로에 불이 있느냐?』고 묻기에, 대강 뒤져보다가 불이 없다고 대답하였다。화상은 친히 화로 속을 깊게 뒤져서 작은 불덩이 하나를 집어 들고 『이게 불이 아니고 무엇이냐?』하는 데서 크게 깨쳤다.
그 뒤에 호남성(湖南省) 담주(潭州) 장사부(長沙府)에 있는 위산에 새로 절을 짓게 되자, 그곳에 가서 사십여 년 교화하여 종풍(宗風)을 크게 떨쳤다。회중이 항상 일천 오백 명을 넘었고, 입실(入室)하여 법을 이은 제자가 사십 일 명이었다。당나라 선종(宣宗) 7년에 입적하니 나이 83세, 법랍이 64세。그의 제자 중에서 앙산(仰山) • 향엄(香嚴) • 영운(靈雲) 등이 뛰어났다。저술로는 <위산경책(潙山警策)> 그 밖에 <어록(語錄)>등이 많다.
*공안(公案) : 화두(話頭)。①정부 관청에서 확정한 법률안으로 백성이 준수해야 할 것。②선종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이것을 화두라고도 하는데 문헌에 오른 것만도 천 칠백이나 되며 황화취죽 앵음연어(黃花翠竹鶯吟燕語) — 누른 꽃, 푸른 대, 꾀꼬리 노래와 제비의 소리 등 — 자연현상도 낱낱이 공안 아님이 없다.
화두에 참구(叅句)와 참의(叅意)가 있다。이론적으로 따져 들어가는 것이 참의요 사구(死句) 참선이며, 말길 뜻길이 끊어져서 다만 그 언구만을 의심하는 것이 참구요 활구(活句) 참선이다.
*무상살귀(無常殺鬼) ; ‘무상(無常)’이라고 하는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귀신(鬼神)이라는 뜻. ‘인간존재가 무상하다’는 것의 무서움을 비유한 말.
*육도 생사윤회(六途生死輪廻) ; 육도윤회(六途輪廻, 六道輪廻). 선악(善惡)의 응보(應報)로 육도(六途 ;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의 고락(苦樂)을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것.
*오욕락(五欲,五慾,五欲樂) ; ①중생의 참된 마음을 더럽히는 색,소리,향기,맛,감촉(色聲香味觸)에 대한 감관적 욕망. 또는 그것을 향락(享樂)하는 것. 총괄하여 세속적인 인간의 욕망.
②불도를 닦는 데 장애가 되는 다섯 가지 욕심. 재물(財物), 색사(色事), 음식(飮食), 명예(名譽), 수면(睡眠).
*삼복(三伏) ; ①일 년 중에서 여름철의 가장 더운 기간. ②초복(初伏), 중복(中伏), 말복(末伏)을 아울러 이르는 말.
*성염(盛炎 성할 성/불꽃·더울 염) ; 매우 심한 더위. 또는 최고조에 달한 더위.
*혼침(昏沈 어두울 혼/잠길 침) ; 정신이 미혹(迷惑)하고 흐리멍덩함.
*퇴타(退墮 물러날 퇴/떨어질·게으를 타) ; 어떤 경지로부터 물러나 되돌아 오는 것. 퇴전(退轉)이라고도 한다.
*선지식(善知識) ; 부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지도자. 좋은 벗.
*마장(魔障 마귀 마/장애 장) ; 귀신의 장난이라는 뜻으로, 일이 진행되는 과정에 나타나는 뜻밖의 방해나 헤살을 이르는 말. [참고]헤살;남의 일이 잘 안 되도록 짓궂게 방해함.
*도업(道業) ; 도(道)는 깨달음. 업(業)은 영위(營爲-일을 계획하여 꾸려 나감). 불도(佛道)의 수행. 진리의 실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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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참(同參) ; ①어떠한 일에 함께 참여함. ②스님와 신도가 한 법회에 같이 참석하여 불도(佛道)를 닦는 일.
③같은 스승 밑에서 함께 공부하는—동문수학하는 '도반(道伴)'과 같은 말. 동학(同學)이라고도 한다.
*안거(安居 편안할 안/있을 거) ; (산스크리트) varsa 원뜻은 우기(雨期). ① 인도의 불교도들은 4월 15일(또는 5월 15일)부터 3개월 간 우기(雨期)때에 외출하면 풀이나 나무,작은 곤충을 모르고 밟아 죽일까 두려워 했고 그래서 동굴이나 사원에 들어가서 수행에 전념했다. 이것을 우안거(雨安居)라고 한다.
② 선종(禪宗)에서는 음력 4월 15일부터 7월 15일까지를 하안거(夏安居), 10월 15일부터 다음해 1월 15일까지를 동안거(冬安居)라고 해서 각각 90일간 사원에 머물르면서 외출을 금지하고 오로지 좌선을 중심으로 한 수행에 전념한다. 처음을 결제(結制), 끝을 해제(解制)라 한다.
*방부(房付)를 들이다 ; 수행자가 절에 머물며 공부할 것을 인사드리고 허락을 구해 결제(結制)에 참가하다.
*재가제자(在家弟子) ; 집에 있으면서 스님처럼 도를 닦는 사람.
*사부대중(四部大衆) ; 불문(佛門)에 있는 네 가지 제자. 곧 비구(比丘), 비구니(比丘尼), 우바새(優婆塞), 우바이(優婆夷)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참고] 우바새-upasaka의 음역. 속세에 있으면서 불교를 믿는 남자.(같은 말=靑信士,靑信男,信男,信士,居士,近事男,近善男,善宿男) 원래의 말뜻은 모시는 사람. 받들어 모시는 사람. 출가수행자를 모시고, 신세를 지므로 이렇게 말한다.
우바이-upasika의 음역. 속세에 있으면서 불교를 믿는 여자. (같은 말=靑信女,近事女,近善女,近宿女)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를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것.
*업(業) : [범] karma [파] Kamma 음을 따라 갈마(羯磨)라고 하며, '짓다(作)'의 뜻이다。중생들이 몸으로나 말로나 뜻으로 짓는 온갖 움직임(動作)을 업이라 한다.
개인은 이 업으로 말미암아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모든 운명과 육도(六道)의 윤회(輪廻)를 받게 되고, 여러 중생이 같이 짓는 공업(共業)으로 인하여 사회와 국가와 세계가 건설되고 진행되며 쇠퇴하거나 파멸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처음에는 악업(惡業)을 짓지 말고 선업만 지으라고 가르치다가, 필경에는 악과 선에서도 다 뛰어나고, 죄와 복에 함께 얽매이지 말아서 온갖 국집과 애착을 다 버리도록 하여, 부처님의 말씀에까지라도 걸리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
*구렁텅이 ; ①깊고 험하게 땅이 움푹 팬 곳. ②헤어나기 어려운 나쁜 환경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해탈(解脫) : [범] Vimoksa ; Vimukta ; mukti  [파] Vimokha ; Vimutta ; Vimutti  음을 따라 비목차(毘木叉) • 비목저(毘木底) • 목저(木底)라고 한다.
모든 번뇌의 속박을 끊어 버리고 온갖 고통에서 벗어난다는 뜻이므로, 도탈(度脫) 혹은 자유자재(自由自在)라고도 한다。또는 열반(涅槃)의 딴 이름으로도 쓰인다.
열반은 불교 구경(究竟)의 이상으로써 여러가지 속박에서 벗어난 상태이므로 곧 해탈이라고도 할 수 있다.
*법보시(法布施) ; 남에게 부처님의 가르침이나 불서(佛書)를 베풂.
*법(法) ; (산스크리트) dharma, (팔리) dhamma의 한역(漢譯). ①진리. 진실의 이법(理法). ②선(善). 올바른 것. 공덕. ③부처님의 가르침. ④이법(理法)으로서의 연기(緣起)를 가리킴. ⑤본성. ⑥의(意)의 대상. 의식에 드러난 현상. 인식 작용. 의식 작용. 인식 내용. 의식 내용. 마음의 모든 생각. 생각.
*보시(布施) : [범] dana  음을 따라 단나(檀那)라고도 쓴다。남에게 베풀어 준다는 뜻이다.
재물로써 주는 것을 재시(財施)라 하고, 설법하여 정신의 양식과 도덕의 재산을 풍부하게 하여 주는 것을 법시(法施)라 하고, 계를 지니어 남을 침해하지 아니하며 또는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게 하여 주는 것을 무외시(無畏施)라 한다.
*숙명통(宿命通) : 수행으로 갖추게 되는 여섯 가지의 불가사의하고 자유 자재한 능력인 육신통(六神通)의 하나로, 나와 남의 전생을 아는 자유 자재한 능력.
*전생사(前生事) ; ①'전생(이 세상에 태어나기 이전에 살았던 삶)'에 있었던 일. ②'마음에 담아둘 필요가 없는 이미 지나간 일'을 일컫는 말.
*무주상(無住相) ; 집착함이 없는 모습. 집착함이 없는 상태.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 ; 대승불교도들의 실천덕목 중 하나. 상(相)에 머뭄(住)이 없는(無) 보시. 집착 없이 베푸는 보시를 의미한다. 보시는 불교의 육바라밀(六波羅蜜)의 하나로서 남에게 베풀어주는 일을 말한다. 무주상보시는 ‘내가’ ‘무엇을’ ‘누구에게 베풀었다.’라는 자만심 없이 온전한 자비심으로 베풀어주는 것을 뜻한다.
[참고]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105~106에서.
貧人이  來乞이어든  隨分施與하라.  同體大悲가  是眞*布施니라.
가난한 이가 와서 구걸하거든 분을 따라 나누어 주라。한몸같이 두루 어여삐 여기는 것이 참 보시니라.
(註解) 自他爲一曰同體요,  空手來空手去가  吾家活計니라.
나와 남이 둘 아닌 것이 한 몸이요,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이 우리들의 살림살이니라.

[참고] [금강경오가해] 묘행무주분(妙行無住分) (무비 역해 | 불광출판부) p141~145, [금강경오가해 설의 - 육조스님 금강경] (원순 옮김 | 도서출판 법공양) p101~104.
復次  須菩提  菩薩  於法  應無所住  行於布施  所謂 不住色布施  不住聲香味觸法布施
須菩提  菩薩  應如是布施  不住於相  何以故  若菩薩  不住相布施  其福德  不可思量
또 수보리야, 보살은 법(法)에 응당히 머문 바 없이 보시를 할지니, 이른바 색(色)에 머물지 않고 보시하며 성향미촉법(聲香味觸法)에도 머물지 않고 보시해야 하느니라. 수보리야, 보살은 응당 이와 같이 보시하여 상(相)에 머물지 않아야 하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만약 보살이 상(相)에 머물지 않고 보시하면 그 복덕은 가히 헤아릴 수 없느니라.

(육조 스님 해의解義)
부차(復次)라 한 것은 앞을 이어서 뒷말을 일으키려는 것이니라.
범부(凡夫)의 보시는 다만 아름다운 외모와 오욕의 쾌락을 구하는 고로, 그 과보가 다하면 곧 삼악도(三惡途 지옥,아귀,축생)에 떨어지므로, 세존께서 크나큰 자비로 ‘어떠한 것에도 집착이 없는 무상보시(無相布施)’를 행하도록 가르치시니,
아름다운 외모나 오욕(五欲)의 쾌락을 구하지 않고, 다만 안으로는 인색한 마음을 없애고 밖으로는 일체 중생을 이익케 하기 위함이니, 이와 같이 상응(相應)하는 것이 ‘색에 머물지 않는 보시(不住色布施)’이니라.

무상(無相)의 보시를 한다는 것은, '보시한다'는 마음도 없고, 베푸는 물건도 없으며, 받는 사람도 분별하지 않는 것이니 이것을 '상에 머물지 않는 보시(不住相布施)'라 하느니라.
보살이 보시(布施)를 행할 때 마음으로 바라는 것이 없으면 그 얻는 복이 시방(十方)의 허공과 같아서 가히 헤아릴 수 없느니라.

일설에 '보(布)'란 '普(넓다)'요, '시(施)'란 '散(사방에 흩어버린다)'이니, 가슴 가운데 있는 모든 망념·습기·번뇌를 널리 흩어버려 사상(四相)도 끊어지고 마음에 전혀 쌓여 있지 않는 것이 '참 보시(眞布施)'라 하며,
또 일설에는 '보(布)'란 '普'니 육진 경계(六塵境界)에 머물지 않으며 유루(有漏)의 분별도 하지 않아 오직 항상 청정한 데 돌아가서 만법(萬法)이 공적(空寂)함을 요달함이니라.
만약 이 뜻을 요달하지 않으면 오직 온갖 업(業)만 더하므로 모름지기 안으로 탐애(貪愛)를 없애고 밖으로 보시를 행해서 안밖이 상응하여야 무량한 복을 얻게 될 것이니라.

다른 사람들의 악행을 보아도 그 허물을 보지 않아서 자성(自性) 가운데 분별을 내지 않음이 '이상(離相)'이 되느니라.
가르침에 의해 수행해서 마음에 능소(能所)가 없는 것이 곧 선법(善法)인 것이라. 수행인이 마음에 능소가 있으면 선법이라 할 수 없고, 능소심(能所心)이 멸하지 않으면 마침내 해탈치 못하니, 순간순간 항상 반야지혜를 행하여야 그 복이 무량무변한 것이니라.

이같은 수행에 의지하면 일체 인천(人天 사람과 하늘신)의 공경하고 공양함이 따르니 이것을 복덕(福德)이라 하도다.
항상 부주상보시(不住相布施 어떠한 것에도 집착이 없는 보시)를 행하여 널리 일체 모든 중생들을 공경하면 그 공덕이 끝이 없어서 가히 헤아릴 수 없느니라.
*대중공양(大衆供養) ; ①수행자에게 음식을 올리는 일. ②대중이 함께 식사하는 일.
*만복(萬福) ; 온갖 복.
*유루복(有漏福) ; 평범한 범부 중생이 지은 복(福)—부귀영화, 명예, 권리, 오욕락 따위의 복으로, 유루(有漏)—샘이 있는, 번뇌 또는 고를 더욱 증장시키는—의 복이어서 한도(限度)가 있어 영원성이 없고 영원히 믿을 것이 못된다.
하늘에다 쏘아 올린 화살이 아무리 힘이 센 장사가 활을 당겨서 활을 쐈다 하드라도 올라갈 만큼 올라가면 결국은 다시 땅으로 떨어지고 마는 것처럼, 아무리 큰 복을 쌓는다 하드라도 그 복이 인천(人天)에서 제일가는 부자가 된다 하드라도 자기가 지은 복만큼 다 받아버리면 다시 또 타락하게 된다.

그래서 옛날 성현들은 인간 세상의 그 유루복(有漏福)이라 하는 것은 그 복을 얻으면서 죄를 짓고 또 얻어가지고 누리면서 죄를 짓고, 또 그 얻었던 것을 결국은 다 없애면서 그 죄를 짓는다. 그래서 『인간의 유루복은 삼생(三生)의 원수다』 이렇게 표현을 한 것이다.

그러나 세상을 살아가려면 유루복도 있기는 있어야 하므로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을 해서 구해야 하고,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을 해서 얻은 복은 그래도 나를 그렇게까지 큰 죄를 짓지 않게 하고, 언젠가 떠나더라도 나를 그렇게 크게 해롭게는 하지 않고 곱게 떠나는 것이다.
유루복이라도 좋은 방법으로 구하고 보시(布施)와 같은 또 좋은 방향으로 잘 사용을 하는데, 보시도 무주상(無住相) 보시를 해야 같은 재보시(財布施)를 해도 결과로 돌아오는 복은 한량이 없다.

참선하는 것이 바로 나를 무심(無心)한 상태로 이끌게 만들고, 무심한 상태에서 재보시, 법보시, 무외보시(無畏布施)를 하면 그것이 바로 무주상 보시가 되는 것이어서, 무주상(無住相)으로 하면 그것이 무루복과 연결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항상 참선하는 마음으로 살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돈도 벌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보시도 한다면, 유루복과 무루복을 겸해서 닦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No.565) - 1996년 설날통알 및 설날차례(1996.02.19)에서.
유루복은 삼생(三生)의 원수다. 왜 그러냐?
유루복은 복을 짓느라고 죄를 지으니 그것 때문에 내가 삼악도(三惡道)에 가게 되니까 그래서 그 유루복은 원수이고, 또 하나는 지어놓은 복을 그놈을 지키고 사용하느라고 또 죄를 짓게 되니까 그래서 또 원수고, 마지막에는 언젠가는 유루복은 나의 몸과 마음과 가정을 갖다가 갈기갈기 짓밟고 찢어 놓고서 떠나기 때문에 또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유루복일망정, 유루복이 없어갖고는 정말 세상을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유루복이 삼생의 원수라 하더라도 그것이 없어갖고는 당장 어찌 해 볼 도리도 없고, 사람노릇 할 수도 없고, 생활도 할 수도 없고, 자식교육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유루복도 있기는 있어야 하는데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을 해서 구해야—힘들고 일확천금(一攫千金)은 안 되지만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을 해서 얻은 복은 그래도 나를 그렇게까지 큰 죄를 짓지 않게 하고, 언젠가 떠나더라도 나를 그렇게 크게 해롭게는 하지 않고 곱게 떠나는 것입니다.
부당한 방법으로 억지로 남을 해롭게 하고, 나라의 법을 어기면서까지 무리한 방법으로 취득을 해 놓으면 그것은 머지않아서 큰 재앙을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루복이라도 좋은 방법으로 구하고 또 좋은 방향으로 잘 사용을 하는데, 그것을 사용을 할 때에는 보시를 하는데, 무주상(無住相) 보시를 해야 같은 재보시(財布施)를 해도 결과로 돌아오는 복은 한량이 없는 것이고,

남에게 금전이나 어떤 재산을 보시하면서 내가 이것을 했다고, ‘너한테 보시를 했으니 나한테 너는 응당 고맙게 생각해야 하고, 나한테 그 은혜를 갚아야 한다.’ 그래 가지고 그 과보(果報)를 바래.
공투세를 해 가지고 과보를 바라면 그것이 유주상(有住相)의 보시가 되어서 상대방에 정신적으로 많은 부담감을 주어가지고, 내것 보시하고서 주고받는 사이가 서먹하게 되고, 나중에는 결국 원수가 되는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시는 하되 무주상(無住相)으로 해야 한다.

무루복(無漏福)은 어떻게 짓느냐? 물론 재보시, 법보시, 무외보시(無畏布施)를 하되, 무주상(無住相)으로 하면 그것이 무루복과 연결이 되고,
그 무루복을 참으로 더 훌륭하게 크게 깊게 심으려면 우리 자신이 항상 정법을 믿고, 최상승법에 입각해서 참선(參禪)을 열심히 함으로써, 참선하는 것이 바로 나를 무심(無心)한 상태로 이끌게 만들고, 무심한 상태에서 보시를 하면 그것이 바로 무주상 보시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항상 참선하는 마음으로 살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돈도 벌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보시도 한다면, 유루복과 무루복을 겸해서 닦게 되기 때문에 우리는 살아서부터 도솔천 내원궁이나 극락세계에 갈 수 밖에 없는 그러한 복을 심고 종자(種子)를 심기 때문에, 우리는 도솔천 내원궁에 가는 것은 걱정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무루복(無漏福) ; 번뇌가 없는 더러움이 없는 복. 영원히 끝장이 나지를 않고 아무리 쓰고 또 써도 바닥이 나지를 않고 다할 날이 없는 복(福) 그것이 무루복입니다.
무루복이라 하는 것은 참선법(參禪法)에 의해서 내가 내 마음을 닦아 가지고 생사해탈하는 이것만이 영원히 생사를 면하는 무루복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참선하는 마음으로 살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돈도 벌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보시하고, 다른 사람에게 「내가 나를 깨닫는 정법」을 믿도록 권고하고 인도하고, 자기도 열심히 닦으면서 남도 같이 닦게 하여 무루복(無漏福)과 유루복(有漏福)을 겸해서 닦아야, 남도 좋고 나도 행복할 수 있는 길을 가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구족(具足 갖출 구/충족할 족) ; 빠짐없이 두루 갖춤.
*보리(菩提) ; ‘bodhi’의 음사(音寫). 각(覺)•지(智)•도(道)라고 번역. 모든 집착을 끊은 깨달음의 지혜.
*귀의(歸依) ; ①부처님의 가르침을 믿고 의지함. ②몰아의 경지에서 종교적 절대자나 종교적 진리를 깊이 믿고 의지하는 일. ③돌아가거나 돌아와 몸을 의지함.
*법희선열(法喜禪悅) ; 부처님의 가르침[法]을 듣고 따르는 기쁨[喜]과 선정(禪定)에 드는 기쁨[悅].
*정법문중(正法門中) ;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을 따르는 집안.
*(게송) ‘今生若不從斯語  後世當然恨萬端’ ;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 ‘자경문(自警文)’ 게송.
勸汝慇懃修善道  速成佛果濟迷倫  今生若不從斯語  後世當然恨萬端
너에게 도 닦기를 은근히 권하노니, 어서 빨리 불과(佛果) 이뤄 미혹 중생 건지어라. 금생에 만일 이 말을 안 따르면, 후세에 당연히 한(恨)이 만 갈래나 되리라.
*염라대왕(閻羅大王) : 죽어서 지옥에 떨어진 인간의 생전에 행한 선악(善惡)을 심판하여 벌은 주는 왕.
*고구정녕(苦口叮嚀 괴로울 고/말할 구/신신당부할•정성스러울 정/간곡할 녕) : 입이 닳도록(입이 아프도록) 정성스럽고(叮) 간곡하게(嚀) 말씀하심(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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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싼또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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