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6) 만공 스님, 금봉 스님, 고봉 스님 / 임종게(臨終偈), 후사(後事) / 우리 용화사는 영원히 전강 스님을 조실로 모시고 공부를 해가자.
**송담스님(No.436)-91년 입춘기도 법회(90.02.04)에서.


 약 13분.



오늘 신미년 입춘(入春)날입니다.

오늘 입춘날에 조실 스님(故전강스님)의 펄펄 살아있는 사자후(獅子吼)과 같은 그런 활구 법문(活句法門)을 들었습니다.

23세에 확철대오(廓徹大悟)하셔서 제방(諸方) 선지식(善知識)의 인가(印可)를 받으시고 그래가지고 나와서 겪었던 사항에 대한 살아있는 법문을 들었습니다. 방금 정말 조실 스님께서 살아서 이 법상에서 하신 것과 같은 그러한 감동을 받았습니다.

방금 조실 스님 법문 가운데 나오는 금봉(錦峰) 스님은 성씨(姓氏)가 박(朴)씨시고, 조실 스님보다 훨씬 연세가 많으시고, 원래 경상도 김룡사 스님인데 만공 스님께 인가(印可)를 받으신 만공 스님의 수법제자(受法弟子)이십니다.

고봉 스님도 역시 만공 스님께 인가를 받으신 수법제자이고 그러신데, 그 스님들이 다 인가받은 구참(久參)이신데, 조실 스님께서는 그때 아주 어린, 훨씬 밑의 후배이셨습니다.

그런데 그 금봉 스님은 굉장히 성질이 급해서 조용 조용히 대화를 할 수 없을 만큼 그렇게 성질이 급하고 우악하고 그러신 어른인데, 제가 정혜사(定慧寺)에서 2년간, 금봉 스님께서 거기 조실(祖室)로 계실 때에 2년간을 정혜사에서 모시고 지내서 마음으로 참 숭배하고 그러시던 선지식이셨습니다.

그 어른은 정화(淨化) 때 선학원(禪學院)에 와서 얼마동안 머물러 계셨는데 그 선학원에 전국에서 모인 모다 수좌(首座)들 앞에서 항상 하신 말씀이 ‘1, 전강(田岡)이요. 2, 고봉(高峰)이요. 3, 만공(滿空)이다.’ 이런 말씀을 막 터놓고 하셨었습니다.
그리고 ‘전강 스님이 어디 가서 조실(祖室)을 하면 내가 그 밑에 가서 공양주(供養主)를 하겠다’고 이런 말씀도 하셨습니다.

그리고 정혜사 조실로 계시다가 해인사 조실로 추대를 받아서 해인사 조실로 가실 때, ‘내가 해인사 조실로 가는 것은 내가 살면 얼마나 살겠는가? 내가 가서 터를 닦아 놓을 테니, 간 것은 전강 스님을 조실로 모시기 위해서 내가 간다’고 그런 말씀도 하셨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얼마동안 조실로 계시다가 그날 수박 공양을 하시고 그리고 그 여름에 해인사 옆에 맑은 계곡에 가셔서 터억 목욕을 하시고, 그리고는 거기에 앉아서 목욕을 하시고서,

거기 그 관광객이 광주(光州)서 왔다고 그러니까 ‘광주 가면 경양방죽 가에 하꼬방 장수를 하는 참 내가 잘 아는 분이 거기 있으니까, 내가 여기 몇자 적어 줄 테니 광주에 가거든 일부러 경양방죽 가를 찾아가서 이 편지를 전해 달라’고 그렇게 해서 전하고서, 그 계곡 가에서 목욕을 하고서 타악 앉은 채로 열반(涅槃)에 드셨던 것입니다.

그 게송(偈頌)은 무엇이냐? 하면,
“청산(靑山)은 문수안(文殊眼)이요. 수성(水聲)은 관음이(觀音耳)다. 물소리는 관세음보살의 귀다. 금일세연진(今日世緣盡)하니, 오늘 세상 인연이 다하니, 의구수동류(依舊水東流)로구나. 옛을 의지해서 물은 동쪽으로 흘러가는구나.” 이러한 금봉 스님의 임종게(臨終偈)였습니다.

그 임종게를 해인사 대중한테 떠억 내놓고 그리고 임종에 들으셔도 되겠지만, 어째서 그 임종게를 써서 그 인편(人便)에 전강 조실스님께 보냈느냐? 거기에는 반드시 까닭이 있습니다.

고봉 스님께서도 열반하실 때 전강 조실스님을 청했습니다.
고봉 스님께서는 중풍을 앓으셔서 잘 보행도 못하시고 또 말씀도 잘 못했습니다. 그런데 임종이 가까워지자 단식을 하시고 공양을 안 잡수니까, 대중들이 아무리 공양을 하시도록 권고를 해도 안 들으셔서,

또 대중이 전강 조실스님한테 와서 어쨌든지 좀 오셔서 공양을 잡수도록 해 달라고 그렇게 부탁을 해서, 가셔서 또 이렇게 여러 가지로 - 참 서로 법(法)이 통하고,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마음과 마음이 통하는 그러헌 사이시니까 말씀을 드려 가지고 다시 잡수시기도 하고 그런 일도 있다가,

얼마 있다가 고봉 스님께서 정식으로 전강 조실스님을 청했습니다.
청해 가지고 ‘나를 위해서 임종(臨終), 마지막 내가 가는 길에 임종 법문을 설해 달라’고 청을 하셨습니다.

고봉 스님도 확철대오해서 만공 스님께 인가를 받으신 대도인(大道人)이십니다.

그래가지고 기동을 못하시고 그러니까 앉아서 이렇게 청을 하셔서,
‘그래셔서는 안 됩니다. 법상을 차리고 정식으로 법식을 거행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래가지고 부축을 받아가지고 큰방으로 나오시고, 법상을 차려서 조실스님이 떠억 법상에 올라가서 법을 설하시는데,
양쪽에서 부축을 해가지고 간신히 이렇게 나오셔 가지고, 앉으시라고 해 가지고 앉아서 법문을 조실스님께서 설하셨습니다.

이러한 일이나 일맥상통한 바가 있는 것입니다.
후사(後事). 고봉 스님이나 또는 금봉 큰스님께서 열반하신 마당에 만공 스님으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그 법등(法燈)과 그 후사를 유촉(遺囑)하기 위한 그러헌 뜻이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러한 절차가 없이 그냥 열반에 들으시면 고봉 스님을 신(信)하던 제자들이 누구를 의지해서 공부를 하며, 금봉 스님을 의지해서 공부하는 신도나 제자들이 그런 큰스님네가 열반하신 뒤에 누구를 의지해서 공부해야 하는가? 그러한 것을 무언(無言) 중에 유촉을 하시기 위해서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조실스님께서는 그런 받으신 편지를 열어 보니까 그러한 임종게가 쓰여 있어서, 또 49재에 해인사에서 조실스님을 청하고 그래서 일부러 해인사를 가셔서 금봉 스님의 49재 법문을 하셨던 것입니다.

고조사(古祖師)들은 이 일대사(一大事) 문제는 자기 자신 일신상의 문제가 아니고, 부처님으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중대한 문제가 거기에 걸려있기 때문에 여러분께서도 잘 아시는 바와 같이,

사조(四祖) 스님이 오조(五祖) 스님, 그 팔십먹은 노인이 인가를 받으러 오니까 ‘늙어서 전해 봤자 무슨 소용이 있는가’ 그래서 ‘몸을 바꿔 와라’해 가지고, 그 소나무를 심어 놓고 가서 몸을 바꿔가지고 온 재송도인(栽松道人)의 법문을 여러분도 아실 것입니다마는.

이 문제는 대단히 중대한 것입니다. 고인(古人)들은 그렇게 해서 오늘날까지 부처님으로부터 내려오는 정법의 등불이 등등상속(燈燈相續)해서 전해 내려온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용화사는 조실스님의 법문(法門)이 다행히 녹음(錄音)을 통해서 700개나 되는 그 많은 간절한 활구참선 법문이 녹음이 되어있기 때문에 ‘우리 용화사는 영원히 전강 대선사를 조실로 모시고, 우리가 모두가 같이 열반하셨지만 살아계신 조실스님으로 믿고 우리가 공부를 해가자’ 이렇게 생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입춘날을 기해서 조실스님의 사자후를 들음으로 해서 여러 사부대중 여러분은 무량겁으로부터 내려오는 모든 크고, 작은 죄가 일시에 다 소멸이 되었으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저의 기분이 그렇고, 저의 믿음과 감동이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처음~13분6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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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후(獅子吼) ; 부처의 위엄 있는 설법을, 사자의 울부짖음에 모든 짐승이 두려워하여 굴복하는 것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스승)으로부터 화두•공안(公案)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공안)을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공안 또는 화두(話頭)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1700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선지식(善知識) ; 부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지도자. 좋은 벗.
*인가(印可 도장 인,옳을•인정할 가) 스승이 제자의 깨달음을 인정함.
*만공월면(滿空月面) ; (1871~1946) 법명은 월면(月面), 호는 만공(滿空), 속명은 송도암(宋道岩). 속성은 여산(礪山) 송(宋)씨, 아버지는 송신통(宋神通) 어머니는 김(金)씨이다.
전라북도 태인(泰仁)에서 1871년(신미년) 3월 7일 출생하였다.


1884년(갑신년) 14세에 태허 스님을 은사(恩師)로, 경허 스님을 계사(戒師)로 충남 서산 천장암(天藏庵)에서 출가하였다.
그 뒤 계속 천장암에서 지내다, 어른 시봉(侍奉)을 하면서 공부하기란 퍽 힘드는 일이라고 생각이 들어, 온양 봉곡사(鳳谷寺)로 가서 노전(爐殿)을 보며 공부를 계속하다가, 1895년(을미년) 7월 25일에 동쪽 벽에 의지하여 서쪽 벽을 바라보던 중 홀연히 벽이 공(空)하고 일원상(一圓相)이 나타났다.
하룻밤을 지나 새벽 종송(鐘頌)을 할때, ‘응관법계성(應觀法界性)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를 외우다가 깨닫고 오도송(悟道頌)을 읊었다.

공산이기고금외(空山理氣古今外)요  공산의 이기(理氣)는 고금 밖이요
백운청풍자거래(白雲淸風自去來)라  백운과 청풍은 스스로 가고 오는구나.
하사달마월서천(何事達摩越西天)고  달마는 무슨 일로 서천을 건넜는고
계명축시인일출(鷄鳴丑時寅日出)이라  축시에 닭이 울고 인시에 해가 뜨느니라.

그 후 마곡사 근처 토굴에서 공부하다가, 스님 나이 26세 때, 1896년(병신년) 7월 보름날 경허 선사가 오시니, 선사께 지금까지 공부해 온 것을 낱낱이 고백하였다.
경허 선사가 스님에게 묻기를 ‘등(藤) 토시 하나와 미선(美扇) 하나가 있는데, 토시를 부채라고 하는 것이 옳으냐, 부채를 토시라고 하는 것이 옳으냐?’
스님의 대답이 ‘토시를 부채라고 하여도 옳고 부채를 토시라고 하여도 옳습니다.’
경허 선사가 ‘네가 일찌기 다비문(茶毘文)을 보았느냐?’ ‘보았습니다.’

경허 선사가 다시 묻기를 ‘유안석인제하루(有眼石人齊下淚)라 하니 이 참뜻이 무엇인고?’ ‘모르겠습니다.’
선사가 이르되, ‘유안석인제하루(有眼石人齊下淚)를 모르고 어찌 토시를 부채라 하고 부채를 토시라 하는 도리를 알겠느냐?’
선사가 다시 이르되 ‘만법귀일 일귀하처(萬法歸一 一歸何處)의 화두는 더 진보가 없으니 조주 스님의 무자화두(無字話頭)를 드는 것이 옳다.’하고, ‘원돈문(圓頓門)을 짓지 말고 경절문(徑截門)을 다시 지으라.’하고 떠났다.

그 후 정진하던 중 경허 선사를 경모(敬慕)하는 마음이 간절하여 1898년 7월에 선사가 계신 서산(瑞山) 부석사(浮石寺)로 가서 지내다가, 경남 범어사 계명암 선원으로부터 경허 선사께 청첩장이 와서 선사를 모시고 계명선원에 가서 하안거를 마치고, 선사와 배별(拜別)한 후 통도사 백운암으로 갔다.

마침 장마 때라 보름 동안을 갇혀 있던 중 새벽 종소리를 듣고 재차 깨달으니 요사장부(了事丈夫)가 되었다.
31세 때(1901년) 천장암에 돌아와 머무르며 지내다가, 34세 때(갑진년 1904년 2월 11일) 함경도 갑산(甲山)으로 가는 길에 천장암에 들른 경허 선사를 뵙고, 그동안 공부를 지은 것을 아뢰니, 선사가 전법게(傳法偈)를 내렸다.

운월계산처처동(雲月溪山處處同)  구름달 시냇물 산 곳곳마다 같은데
수산선자대가풍(叟山禪子大家風)  수산선자(叟山禪子)의 대가풍(大家風)이여!
은근분부무문인(慇懃分付無文印)  은근히 무문인(無文印)을 분부하노니,
일단기권활안중(一段機權活眼中)  한조각 권세 기틀 안중(眼中)에 살았구나.

1905년 덕숭산에 금선대(金仙臺)라 이름한 초암을 짓고 지내고, 그 뒤 수덕사(修德寺)·정혜사(定慧寺)·견성암(見性庵)을 중창하고 선풍(禪風)을 떨치다가 금강산 유점사(楡岾寺) 마하연(摩訶衍)에 가서 3년을 지내고, 다시 덕숭산으로 돌아와 서산 간월도에 간월암(看月庵)을 중창하였다.

말년에 덕숭산 동편 산정에 전월사(轉月舍)라 이름한 한칸 띳집을 짓고 지내다,
1946년(병술년) 10월 20일에 목욕 단좌(端坐)한 후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고, ‘자네와 내가 이제 이별할 인연이 다 되었네 그려.’하고 껄껄 웃고 문득 입적(入寂) 하였다.
나이 76, 법랍(法臘) 62. 제자들이 스님의 법어를 모은 「만공법어(滿空法語)」가 있다.
[참고] 『만공법어(滿空法語)』 (만공문도회 | 수덕사 능인선원)
*수법제자(受法弟子) ; 스승으로부터 법(法)을 인가(印可) 받은 제자.
*구참(久參) ; 오랫동안 참선한 수행승.
*조실(祖室) ; 선원의 가장 높은 자리로 수행인을 교화하고 참선을 지도하는 스님. 용화선원에서는 고(故) 전강대종사(田岡大宗師)를 조실스님으로 모시고 있다.
*정화(淨化) ; 한국 불교 정화운동. 1910년 일제에 의해 우리나라 국권을 상실한 한일합병조약을 강제로 체결하고 이를 공포한 경술국치(庚戌國恥)이후, 1911년 일제는 한국 불교를 억압하고 민족 정신을 말살하기 위해 사찰령을 제정·공포하였다. 그 후 일제 강점기 동안 일본 불교의 영향으로 우리나라 승단이 급속도로 세속화되었다. 1945년 해방 이후에 불교계를 혁신하고 한국 불교에 남아있는 식민주의 불교, 왜색 불교를 청산하기 위해 1954년부터 1960년대에 걸쳐 일어난 한국 불교 정화운동.
*선학원(禪學院) ; 서울 종로구 안국동에 있는 절. 1921년 남전(南泉)·도봉(道峰)·석두(石頭) 등 3인을 중심으로 지었다. 선학원은 당시에 일본이 우리나라를 병합하고 사찰령을 반포하여 한국 불교를 일본 총독부의 관할 아래에 다루게 되었을적에, 일본 불교의 영향으로 우리나라 승단이 급속도로 세속화되어 가는 것을 개탄, 불조(佛祖)의 정맥을 굳게 계승하기 위하여 창설된 선종의 중앙기관이다.
사찰령의 지배를 받지 않기 위하여 절(寺, 庵)이란 이름을 쓰지 않고, 선학원이라 하였다. 그 후부터 한국 불교 선종의 책원지(策源地)로서 은연한 가운데 선객들을 통솔하였으며, 1934년 12월 5일에 재단법인 조선불교중앙선리참구원(朝鮮佛敎中央禪理參究院)으로 발족하여 초대 이사로 만공·한암·적음·남전·성월 스님이 선임되었다. 해방된 뒤에는 재단법인 선학원으로 정관을 고쳤다.
*수좌(首座) ; ①선원(禪院)에서 좌선하는 스님 ②수행 기간이 길고 덕이 높아, 모임에서 맨 윗자리에 앉는 스님 ③선원에서 좌선하는 스님들을 지도하고 단속하는 스님
*공양주(供養主) ; 절에서 밥을 짓는 소임, 또는 그 일을 맡은 스님.
*하꼬방 ; 판잣집(판자로 허술하게 지은 집). 箱房. 箱(상자)의 일본어 훈독 ‘ばこ(하꼬)’+방(房)이 결합된 말.
*하꼬방 장수 ; 전강 선사와 송담 스님이 광주(光州) 경양방죽 가의 판잣집에서 3~4년 낮에는 판잣집 한편에서 장사를 하고 밤에는 판잣집의 작은 방에서 정진을 하며 지냈다고 한다.
*열반(涅槃) ; ①타고 있는 불을 바람이 불어와 꺼 버리듯이, 타오르는 번뇌의 불꽃을 지혜로 꺼서 일체의 번뇌나 고뇌가 소멸된 상태. ‘니르바나(nirvāna)’의 음역어로, 불가(佛家)에서 흔히 수행에 의해 진리를 체득하여 미혹(迷惑)과 집착(執着)을 끊고 일체의 속박에서 해탈(解脫)한 최고의 경지를 이르는 말이다.
②스님의 죽음을 수행을 통해 해탈(解脫)에 이르게 됨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
*게송(偈頌) ; 시(詩), 게(偈)와 송(頌) 모두 불교의 가르침을 싯구로 나타낸 것.
*임종게(臨終偈) ; 열반게(涅槃偈)·열반송(涅槃頌)·입적게(入寂偈)라고도 한다.
선승(禪僧)이나 고승(高僧)들이 열반에 들어가기 전 자신의 수행을 통해 얻은 깨달음을 후인들에게 전하는 마지막 말이나 글을 말한다. 한시의 오언절구나 칠언절구 형태를 취한다.
*일맥상통(一脈相通) ; 사고방식이나 성질 등이 두 대상 간에 서로 통하거나 비슷해짐.
*후사(後事) ; ①뒷날에 생길 일. ②죽은 뒤의 일.
*법등(法燈) ; 부처님의 가르침. 미(迷)한 세계의 캄캄한 마음을 없애는 것을 등불에 비유한 것.
*유촉(遺囑) ; 죽은 뒤의 일을 부탁함. 또는 그런 부탁.
*사십구재(49재, 四十九齋) ; 사십구일재(49일재, 四十九日齋) 또는 칠칠재(7 · 7재, 七七齋).
죽은 사람의 명복을 빌면서 또 영가에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들려주어(천수경, 무상계, 반야심경, 장엄염불, 금강경 등), 한 생각 돌려 무상을 깨달아 윤회를 벗어나 해탈의 길로 들어서도록 하기 위해 죽은 날로부터 7일마다 7회에 걸쳐 행하는 영가를 위해 베푸는 법회의식.
불교의 내세관(來世觀)에서는 일반적으로 보통 사람이 죽어서 다음 생을 받을 때까지의 49일 동안을 중음(中陰)이라 하는데, 이 기간 동안에 과보를 받을 다음 생이 결정되므로, 이때 부처님의 가르침을 들려주어 영가가 죄업을 참회하고 지혜의 눈을 밝혀 해탈의 길을 가도록 이 재(齋)을 지냄.
특히, 염라대왕의 심판을 받는 날이 죽은 지 49일째 되는 날이라고 하여 7회째의 재(齋)를 중요시함.

불경(佛經)에서 설한 바에 의하면 사람의 존재 상태를 4가지로 구분하는데, 그것은 ①생유(生有: 태어나는 순간) ②본유(本有: 生에서 死까지 생애) ③사유(死有: 죽는 그 순간) ④중유(中有: 이생에 죽어서 다음 生까지를 말함)이다.
이들 중 네 번째의 중유(中有)의 상태의 정상적인 기간이 49일이다. 즉 사람이 죽은 뒤에는 일반적인 경우 49일이면 중유(中有)가 끝나고 다음 생(生)이 결정된다. 그러므로 다음 생이 결정되기 전인 48일째에 정성을 다하여 영혼의 명복을 비는 것이 49일재이다.
*일대사(一大事) ; ①부처님이 중생구제를 위해 세상에 나타난다고 하는 큰 일. 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목적 ②가장 중요한 일이란 뜻. 수행의 목적. 깨달음을 얻는 것. 인간으로서의 완성.
*재송도인(栽松道人) ; 중국 선종(禪宗)의 제4조 도신대사(道信大師 580~651)가 제자를 맞아 인증을 하였지만, 제자가 너무 늙어 스승보다 먼저 이 세상을 떠나게 되면, 법을 이을 사람이 없으니 몸을 바꾸어 오도록 하였다.
이에 몸을 바꾸어 후에 다시 만날 때 증거로 삼기 위해 황매산에 소나무를 심었다. ‘소나무를 심었다’는 뜻에서 ‘재송도인(栽松道人)’이라는 별명을 가진 분이 5조 홍인대사(弘仁大師 602~675)이다.
*등등상속(燈燈相續) ; 등(燈)은 중생의 무명(無明)을 밝히는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진리를 등(燈)에 비유한 말, 이 진리의 등(燈)을 스승이 그 제자로 해서 계속 면면히 이어짐을 일컬음.
*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 법,문 문) :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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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