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6) 사리불 두 제자의 백골관, 수식관 수행 / 부처님의 혜안(慧眼) / (게송)법왕권실영쌍행~ / 도(道)는 자기가 자기를 사무쳐 버리는 것.

달마 스님께서 혈맥론(血脈論)에 ‘이 도를 닦고자 할진대는 먼저 급히 바른 스승을 찾아야 할 것이다’
바른 스승만 만나서 그 앞에 위법망구(爲法忘軀)적으로 몸과 목숨을 다 바칠 수 있는 그러한 바른 스승만 우리가 만난다면 도(道)는 걸어서 가는 것이 아니라. 바로 거기에 다 도를 이룬 것이나 마찬가지여.
선지식(善知識)이 무엇을 많이 가르쳐주고, 말을 많이 해주고 그런 것이 아닙니다. 선지식이 무엇을 할 말이 있겠습니까? 이 도(道)라고 하는 것은 자기 안에 있는 것을 자기가 한 번 탁! 봐 버리면 되는 것이지,
무슨 어려운 이론을 연구하고 무슨 그러한 공부가 아니라, 자기가 자기를 사무쳐 버리는 것이기 때문에 철저하게 믿지 않고서는 이것은 이룰 수가 없는 것입니다.
**송담스님(No.256)—85년 2월 첫째 일요법회(85.02.03)


 약 19분.



그 부처님의 왼팔과 같은 사리불(舍利弗) 존자가 두 제자를 가르키는데, 한 제자에게는 이 백골관(白骨觀)을 하도록 가르키시고, 한 제자에게는 수식관(數息觀)을 하도록 지도를 하셨습니다.

백골관 ‘흰 백(白)’자, ‘뼈 골(骨)’자, 백골관이라 하는 것은 공동묘지에 가 가지고, 그 인도는 풍장(風葬)이라 해가지고 사람이 죽으면 땅에 묻지 아니하고 그냥 저 숲속에다 그냥 놔둡니다.
놔두면 독수리란 놈들이 달라들어서 삽시간에 그 눈알도 다 빼먹고 살도 다 뜯어먹고 뼈만 앙상하니 내놓습니다.

그래서 뼈가 풍마우습(風磨雨濕)에 닳고 닳고 얼고 불고 해 가지고는 나중에는 그것이 다 없어지는데,
처음에 시체를 갖다 놓으면 차츰차츰 썩어 들어가 가지고는 피부가 문드러져서 다 없어지고, 그 다음에 뼛골만 앙상하게 남아서 달아져 없어질 때까지 매일 가서 밥만 얻어다 먹으면 계속 그 시체 옆에서 계속 관찰을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관찰하면서 거기서 정진하는데 그것을 백골관이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수식관(數息觀)이라 하는 것은 숨을 들어마셨다가 잠시 머물렀다가 또 조용히 내쉬고, 또 들어마셨다가 머물렀다 내쉬고 해서, 한 번 들어마셨다 내쉬고 ‘하나’ 또 들어마셨다 내쉬고 ‘둘’,
그렇게 해서 셋, 넷, 다섯, 여섯... 해서 ‘열’까지 세어 올라가면 또 그 다음에는 아홉, 여덟, 일곱, 여섯... 해서 거꾸로 세어 내려오고, 또 하나까지 내려오면 하나에서 열, 열에서 하나,

계속 올라갔다 내려갔다 그러면서 그것이 잘되면 그 다음에는 하나에서 스물까지 세어 올라가고, 또 스물에서 열아홉, 열여덟, 열일곱... 해서 거꾸로 세어서 하나까지 내려오고,
중간에 딴 생각이 나거나 몇 가지 세었는가를 잊어버리면 다시 또 하나에서 시작하고,

이러기를 서른, 마흔, 쉰... ‘백’까지 세어 올라갔다가 ‘백’에서 아흔아홉, 아흔여덟, 아흔일곱... 해서 하나까지 거꾸로 세어 내려옵니다.

계속 새벽부터 저녁, 저녁부터 새벽까지, 날이면 날마다 그 자기의 호흡을 세는 것입니다. 이것을 수식관이라 하는데,

이 백골관이나 수식관이 우리 수행해 나가는데 대단히 요긴한 하나의 수행 방법이 될 것입니다마는,
그런데 그 두 제자가 주야불철(晝夜不撤)하고 그렇게 철저히 정진을 10년, 20년, 30년 이렇게 했습니다. 했는데 깨달음에 이르지를 못했습니다. 못하니까,

‘열반(涅槃)이니, 무루지법(無漏之法)이니, 그따위 것이 어디가 있어? 그러한 것이 있었다면 왜 내가 견성성불(見性成佛)을 못했을까?
그런 것이 없기 때문에 우리가 못했지, 그러한 참으로 깨달음이란 것이 있고, 무루지법이라는 것이 있다면 우리는 벌써 깨달음을 얻었어야 할 거다. 우리가 못한 것으로 봐서는 틀림없이 그런 것이 없어.
괜히 그런 것이 있다고 속여 가지고 우리로 하여금 나가지 못하게 하려고 그런 것이다’

‘왜 그런 것이 있다면 깨달을 텐데, 없기 때문에 깨닫지 못할 것이다’하는 생각을 하냐 하면은
‘오계, 십계, 내지 250계, 계율을 하나도 어김없이 철저히 지키고, 새벽부터 저녁, 저녁부터 새벽까지 1분 1초를 게으름을 부리지 아니하고 이렇게 살이 다 마르고, 피골이 상접하도록 이렇게 하는 데도 깨닫지를 못합니까?
그렇다면야 열반이니, 견성이니, 성불이니 이런 것이 없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그런 말을 스스로도 생각하고, 다른 사람들한테도 이렇게 분개해 가지고 막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그 말씀을 들으시고서 사리불과 백골관과 수식관을 한 사람을 불러다 놓고서,
“사리불아! 네가 두 제자를 지도하는데 있어서 방법이 거꾸로 되었느니라.
한 사람은 세탁업을 하던 사람이고, 한 사람은 쇠붙이를 다루는 성냥간을 하는 사람인데,
쇠붙이를 다루는 성냥간 하는 사람에게는 응당 호흡을 세는 수식관을 시켜야 옳고, 세탁업을 하던 사람에게는 백골관을 시켜야 할 것인데,

너는 꺼꾸로 성냥간하는 쇠붙이 다루는 사람에게는 백골관을 시켰고, 또 세탁소업을 하는 사람에게는 수식관을 시켰어.
꺼꾸로 시켰기 때문에 그 수행 방법과 그 사람과의 인연이 맞지 아니해서 그렇게 피골(皮骨)이 상접(相接)하도록 정진을 했건마는 도업(道業)은 성취하지 못하고 마침내 사악(邪惡)한 소견을 일으켜서 정법을 비방하게 만들었느니라”

그렇게 사리불을 꾸짖으시고, 그 두 백골관하던 사람과 수식관하던 사람에게 이런 설법을 해서 언하(言下)에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수행을 해 나가는 데는 ‘관세음보살’을 부른다던지, ‘아미타불’을 부른다든지 또는 백팔참회(百八懺悔)를 한다든지, 삼천배 예배를 한다든지, 또는 단식을 하고, 묵언을 하고, 또는 장좌불와(長坐不臥)를 하고, 이러한 여러 가지 수행법이 있고,
또 주력(呪力)을 한다든지, 경을 외운다든지 또는 화두를 참구해서 참선을 한다든지 여러 가지 수행법이 있습니다. 있는데 주력을 해서는 안 될 사람도 있고, 또 참선을 시켜서는 안 될 사람도 있는 것입니다.

주력이나 참선을 해서 안 될 사람에게 이것을 시켜 놓으면 얼마 안가서 미친병이 생기기도 하고, 헛것을 보고 자꾸 정신이 미치고 그래가지고 바르게 닦아가지를 못할 뿐만 아니라,
정법(正法)에 누(累)를 끼치고 사람들로 하여금 회의심을 품게 하는 그런 결과를 가져오기도 하고,

그래서 사람의 근기(根機) 따라서 때로는 금강경이나, 반야심경 내지 고왕경과 같은 그런 경(經)을 외우게 하기도 하고,
때로는 ‘관세음보살’이나 ‘아미타불’이나 ‘지장보살’ 같은 염불(念佛)을 하게 할 수도 있고,
때로는 ‘옴마니반메훔’이나 그 밖에 무슨 ‘능엄주(楞嚴呪)’라든지 그런 주력을 시킬 수도 있고,

대뜸 처음부터서 ‘이뭣고?’ 화두를 주어서 화두(話頭)를 참구(參究)하는 이 참선법(參禪法)을 해야 할 사람도 있는 것이어서,
또 화두도 ‘시심마(是甚麼)’ 라든지, ‘무자(無字)’ 화두라든지,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라든지, 그 사람에게 적합한 화두를 간택을 해서 그 사람에게 맞도록 공부를 지어가도록 지도를 해야 할 경우가 있는 것입니다.

무엇을 하더라도 괜찮은 사람도 있고, 그 사람에 한해서는 주력을 해서는 안 될 그런 사람도 있는 것입니다.

눈밝은 그러한 선지식(善知識)이라야 능히 중생의 근기를 거울 속 들여다보듯이 보고서 거기에 맞춰서 지도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까 말씀드린 사리불이 두 제자—쇠붙이를 다루는 성냥간 하던 사람이나, 세탁업을 하던 사람,
그 두 사람을 갖다가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이 사람에게 백골관을 시키나, 저 사람에게 백골관을 시키나, 누구나 수식관은 하면 다 좋을 것이고, 누구나 백골관 하면 다 좋을 것 같이 느껴질 것입니다마는,

부처님의 혜안(慧眼)으로 볼 때에는 그 조그마한 터럭 끝만 한 차이로서 도를 깨닫고, 깨닫지 못하고,
때로는 마침내는 사견까지 발동을 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 오리라는 것을 꿰뚫어 보시게 되는 것입니다.


법왕권실영쌍행(法王權實令雙行)하니  뇌권풍치해악경(雷捲風馳海岳傾)이로구나
나무~아마타불~
벽력일성운산진(霹靂一聲雲散盡)한데  도가원불섭도정(到家元不涉途程)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법왕권실영쌍행(法王權實令雙行), 법왕(法王)의 권(權)과 실(實)이 하여금 쌍(雙)으로 행하게 한다.
대법왕(大法王)은 권(權), 방편(方便)으로—팔만사천 가지의 그 좋은 가지가지 방편으로 중생의 근기에 맞도록 방편법을 쓰시고, 그 근기가 수승함에 따라서 그 방편을 거두시고서 실법(實法)으로서는 제도를 하시는 것입니다.

그 방편법과 실법을 자유자재로 두 가지를 써서, 뇌권풍치해악경(雷捲風馳海岳傾)이여.
이 뇌성벽력(雷聲霹靂) 하는 그 뇌성이 치고, 바람이 치달아서 바닷물이 넘치고 산이 거꾸러진다 그말이여.

법왕(法王)의 권실, 방편법과 실법을 자유자재로 쓰는 그 거동이 마치 번개치고 폭풍이 불고, 바닷물이 넘치고, 그래가지고 산이 넘어지고 하는 그렇게 자유자재하며 변화가 무쌍(無雙)하며,
어떠한 업(業)이 두터운 중생, 어떠한 악한 중생이라도 그 법왕의 권실쌍행(權實雙行)하는 앞에서는 봄눈 녹듯이 다 녹아져 버릴 것이다 그말이여.

벽력일성운산진(霹靂一聲雲散盡)하면, 그렇게 뇌성벽력을 하고—바람이 갖다가 폭풍이 불고 바닷물이 넘치고, 산이 거꾸러지고 이러다가, 천지를 진동하는 벽력 한 소리에 구름은 다 흩어져버리고,
집에 돌아오는데 원래로 길을 걸을 필요가 없다.(到家元不涉途程)

집으로 돌아오는데, 자기의 본고장을 잃어버리고 타향에 방랑객으로서 타향살이를 하다가 고향으로 돌아온 데다가, 이 도 닦아서 자기 본심을, 본 불성(佛性)을 깨닫는 것을 갖다가 고향으로 돌아오는 데다가 비유해서 표현한 건데,

고향집에 돌아오는 데 원래로 길을 걸어서 돌아올 것이 없다. 자기 서 있는 데가 한 걸음도 옮기지 아니하고 바로 자기 고향집이더라. 그런 말씀입니다.


그래서 달마 스님께서 혈맥론(血脈論)에 ‘이 도를 닦고자 할진대는 먼저 급히 바른 스승을 찾아야 할 것이다’
바른 스승만 만나서 그 앞에 위법망구(爲法忘軀)적으로 몸과 목숨을 다 바칠 수 있는 그러한 바른 스승만 우리가 만난다면 도(道)는 걸어서 가는 것이 아니라. 바로 거기에 다 도를 이룬 것이나 마찬가지여.

소를 끌어다가 맑고 깨끗한 물 있는 데다가 대주는 것과 같아서, 소는 주인이 끌어다가 대주면 믿고 꿀꺽 꿀꺽 꿀꺽 양껏 먹으면 되는 것입니다.
주인을 믿기 때문에 주인이 갖다가 끌어다가 대준 물이라면 마음놓고 먹을 수 있듯이, 바른 스승 또 내가 믿어지는 스승이라면 한마디 밖에는 더이상이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여러 말이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한마디가 전부고, 일생의 수도(修道)가, 도 닦는 것이 바로 거기에 다 있는 것입니다.

그 선지식을 참으로 깊이 믿고 목숨 바쳐서 믿을 수 있다면, 입으로 법을 설하지 아니해도 먼빛으로 거동만 봐도 온통 화두(話頭)가 독로(獨露)하게 되고, 신심이 돈발(頓發)하게 되고,
웃거나, 울거나, 방귀를 뀌거나, 똥을 싸서 뭉게거나 그것이 하나도 허물로 보이지 아니하고 다못 신심이 돈발하고, 경건하고 엄숙한 분위기에 온통 몸과 마음이 한덩어리가 되어버린 것 뿐인 것입니다.

선지식(善知識)이 무엇을 많이 가르쳐주고, 말을 많이 해주고 그런 것이 아닙니다. 선지식이 무엇을 할 말이 있겠습니까?

이 도(道)라고 하는 것은 자기 안에 있는 것을 자기가 한 번 탁! 봐 버리면 되는 것이지,
무슨 어려운 이론을 연구하고 무슨 그러한 공부가 아니라, 자기가 자기를 사무쳐 버리는 것이기 때문에 철저하게 믿지 않고서는 이것은 이룰 수가 없는 것입니다.(33분7초~52분1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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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리불(舍利弗) ; 산스크리트의 샤리푸트라(śāriputra), 팔리어(語) 샤리푸타(Sāriputta)의 음역(音譯)이며, 추자(鶖子) ·사리자(舍利子)라고도 한다. 원명 우빠띳사.
인도 중부의 마가다왕국 수도 왕사성(王舍城) 근처의 바라문 출신으로, 인근 마을의 목건련과 친하여 어느 날 바라문교의 축제를 구경하다가 인생의 허무함을 느끼고 깨달음을 얻기 위해 스승을 찾아나서 라자가하(王舍城)의 유명한 회의론자 산자야 문하로 들어갔으나 완전한 마음의 평화를 얻지는 못하던 중에,
라자가하의 거리에서 탁발을 하던 부처님의 제자 앗사지(馬勝)를 만나 들은 “일체는 원인이 있어 생기는 것 / 여래는 그 원인을 설하시네 / 그리고 또 그 소멸까지도 / 위대한 사문은 이와 같이 가르치네”라는 연기(緣起)의 가르침을 듣고 깨달아 목건련(目犍連) 및 250명의 산자야의 제자들과 함께 부처님께 귀의했다.
부처님도 그를 높이 평가하여, 경전 중에는 부처님을 대신하여 설법한 경우도 적지 않음을 볼 수 있다.
10대 제자 중 수제자로, 지혜가 가장 뛰어나, ‘지혜제일(智慧第一)’로 칭송되었다고 전한다.
부처님이 열반에 드시기 1년 전, 목건련이 그렇게 외도들의 몰매를 맞고 열반에 들려고 하자, 사리불은 자신이 목련보다 먼저 열반에 들겠다고 하고, 부처님께 자신이 부처님보다 먼저 열반에 들 것을 허락받기 위해 부처님이 계시는 기원정사로 갔다.
사리불은 ‘부처님께서 곧 열반에 드실 것을 알기에, 차마 제 눈으로 부처님의 열반을 볼 수 없어 먼저 열반에 들고자 합니다’하고 간청을 하여 허락을 받고, 고향으로 돌아와 마지막으로 어머니를 부처님께 귀의하게 한 후 열반에 들었다.
*백골관(白骨觀) ; 시신(屍身)의 피부와 근육이 모두 없어져 백골(白骨)만 남아 있거나, 흩어져 있는 모습을 관(觀)하여 몸에 대한 집착을 없애고, 인생무상을 깨닫는 관법(觀法). 고골관(枯骨觀)이라고도 한다. 구상(九想)의 하나.
[참고] 구상(九想) ; 구상(九相)이라고도 한다. 탐욕을 제거하고, 혹업(惑業 무명번뇌와 업)을 멀리하기 위해 사람의 시신(屍身)에 대해 수행하는 9종류의 관상(觀相 깊이 생각에 집중하는 것).
부정관(不淨觀)의 9단계를 말한다.
①시신이 부어 팽창하는 것을 관상하는 창상(脹想).
②바람에 날리고, 햇빛에 쪼여 시신의 색이 변하는 것을 관하는 청어상(青瘀想).
③시신이 부패되는 것을 관하는 괴상(壞想).
④부패를 끝내고 혈육이 땅에 스며드는 것을 관하는 혈도상(血塗想).
⑤시체에서 벌레와 고름이 흘러나오고 살이 흩어져 낭자한 모습을 관하는 농란상(膿爛想).
⑥새나 짐승이 와서 시신을 먹는 것을 관찰하는 담상(噉想).
⑦새나 짐승에게 먹혀 근골두수(筋骨頭手)가 분열, 파산되는 것을 관하는 산상(散想).
⑧육신이 이미 다해 백골만 남게 되는 것을 관하는 골상(骨想).
⑨백골이 불에 태워져, 재로 돌아가는 것을 관하는 소상(燒想).
*수식관(數息觀); 출입하는 숨을 세어서 마음을 통일하는 것. 그것에 의해 마음의 산란을 막음. 호흡을 세어서 마음을 집중시키는 수행법.
*풍마우습(風磨雨濕) ; 바람에 갈리고 비에 젖음.
*주야불철(晝夜不撤) ; 불철주야(不撤晝夜). 어떤 일을 함에 있어 밤낮을 가리지 않음.
*열반(涅槃) : [범] nirvana  [파] nibbana  음을 따라 니반나(泥畔那) • 니원(泥洹) • 열반나(涅槃那)라 쓰고, 뜻으로 번역하여 멸(滅) • 적멸(寂滅) • 멸도(滅度) • 원적(圓寂) • 안락(安樂) • 해탈(解脫) 등이라 한다.
번뇌 망상이 일어나고 꺼짐이 없어져, 지극히 고요하고 깨끗하고 밝고 맑은 경지를 말함이니,
소승법(小乘法)에서는 번뇌를 끊어 버리고 생각을 일으키지 말아야 열반에 든다 하고,
대승법으로는 번뇌가 본래 없는 이치를 깨치면 생각이 일어나도 일어나는 것이 아니어서, 사바세계의 어떤 환경에서 무슨 일을 하든지 늘 열반의 즐거움이 되는 것이다.
따로 열반에 들고 나고 할 것 없이 무엇이나 다 열반이며 어느 때나 늘 열반이다。이것이 큰 열반인 것이다.
*무루법(無漏法) ; 번뇌를 끝낸 것. 누(漏)는 누설(漏泄)의 준말로 번뇌를 뜻한다.
번뇌의 더러움에 물들지 않은 마음 상태, 또는 그러한 세계. 번뇌와 망상이 소멸된 상태. 분별을 일으키지 않는 마음 상태. 사제(四諦) 가운데 깨달음의 결과인 멸제(滅諦)와 그 원인인 도제(道諦)에 해당하는 모든 현상.
범부의 지혜를 유루지(有漏智)라 하는 데 비하여 도를 이룬 성자의 지혜를 무루지라 한다.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아 부처가 됨[成佛].
*성냥간 ; ‘대장간(--間, 쇠를 달구어 온갖 연장을 만드는 곳)’의 사투리.
*피골상접(皮骨相接) ; 살가죽[皮]과 뼈[骨]가 맞붙을[相接]정도로 바짝 마름.
*도업(道業) ; 도(道)는 깨달음. 업(業)은 영위(營爲-일을 계획하여 꾸려 나감). 불도(佛道)의 수행. 진리의 실천.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백팔참회(百八懺悔) ; 중생을 괴롭히고 어지럽히는 108가지의 모든 번뇌에 대한, 번뇌·업장소멸과 참회의 뜻으로 108배의 절을 하는 것.
*장좌불와(長坐不臥) ; 밤이 되어도 눕지 않고 늘 앉아서 수행 정진하는 것.
*주력(呪力) ; 진언(眞言)·다라니(陀羅尼)로 하는 기도. 진언(眞言)·다라니(陀羅尼)의 효과.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누(累 괴롭힐·근심 루) ; 남의 잘못이나 남과 관계된 일로 말미암아 받게 되는 정신적인 괴로움이나 물질적인 손해.
*근기(根機 뿌리 근/베틀 기) ;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는 중생의 소질이나 근성.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 ; 대자대비(大慈大悲)의 마음으로 중생을 구제하고 제도하는 보살.
관세음(觀世音)은 산스크리트어 avalokiteśvara의 번역, 보살(菩薩)은 산스크리트어 bodhi-sattva의 음사인 보리살타(菩提薩埵)의 준말.
세간(世間)의 중생이 갖가지 괴로움을 받을 때, 그의 이름을 부르면 그 음성(音聲)을 듣고(觀) 대자비와 지혜로써 자유 자재로 중생을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해 주는 보살. 아미타불(阿彌陀佛)의 왼쪽 보처(補處).
또 자재롭게 보는 이(觀自在者), 자재로운 관찰 등의 뜻으로 '관자재보살(觀自在菩薩)'이라 한다. 또 광세음(光世音)·관세음(觀世音)·관세자재(觀世自在)·관세음자재(觀世音自在) 등으로 쓰며 줄여서 관음(觀音)이라 한다. 관세음보살의 주처는 보타낙가산(補陀洛迦山)이다.
한국에서는 동해에 있는 강원도 양양 낙산사(洛山寺)가 관음 도량으로 유명하다.
*아미타불(阿彌陀佛) ; 대승불교에서 서방정토(西方淨土) 극락세계에 머물면서 법(法)을 설하는 부처님.
<정토 3부경>에 있는 이 부처님의 역사는, 오랜 옛적 과거세에 세자재왕불(世自在王佛 Lokesvararaja-Buddha)의 감화를 받은 법장비구(法藏比丘 Dharmakara)가 2백 10억의 많은 국토에서 훌륭한 나라를 택하여 이상국을 건설하기로 기원하였다.
또 48원(願)을 세워 자기와 남들이 함께 성불하기를 소원하면서 오랜 겁을 수행한 결과 지금부터 10겁 이전에 그 원행(願行)이 성취되어 아미타불이 되었다. 줄여서 미타(彌陀).
의역하면 무량광불(無量光佛 Amitabha Buddha-무한한 공간에 꽉 차 있어서 안팎과 갓이 없는 빛의 부처님), 무량수불(無量壽佛 Amitayus Buddha-무한한 시간에 뻗치어서 끝없는 생명의 부처님).
*지장보살(地藏菩薩) ; 석가모니불의 입멸 후 미륵보살이 성불할 때까지, 곧 부처가 없는 시대에 중생을 제도한다는 보살로, 그는 모든 중생이 구원을 받을 때까지 자신은 부처가 되지 않겠다는 큰 서원을 세운 보살이기 때문에 대원본존지장보살(大願本尊地藏菩薩)이라고 한다.
특히 지옥의 중생을 제도하는 데 중점을 두기 때문에 사찰의 명부전(冥府殿)에 본존(本尊)으로 모신다.
보통 삭발한 스님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한 손에는 지옥의 문이 열리도록 하는 힘을 지닌 석장(錫杖)을, 다른 한 손에는 어둠을 밝히는 여의보주(如意寶珠)를 들고 있다.
지장보살은 고통받는 이들의 요구에 따라 자신의 모습을 바꾸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윤회의 여섯 세계, 즉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에 상응하는 6가지 모습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염불(念佛) ; 부처님의 모습과 공덕을 생각하면서 관세음보살이나 아미타불과 같은 불•보살님의 이름을 외움. 흔히 어떤 일을 기원하며 ‘나무관세음보살’이나 ‘나무아미타불’, ‘나무석가모니불’을 소리 내어 외우는 일을 말한다.
[참고]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112에서.
(52)念佛者는  在口曰誦이요,  在心曰念이니  徒誦失念하면,  於道無益이니라.
염불이란 입으로 하면 송불이요, 마음으로 하는 것이 염불이니 입으로만 부르고 마음으로 생각하지 않으면, 도를 닦는 데 아무 이익이 없으리라.

註解
阿彌陀佛六字法門이  定出輪㢠之捷徑也라.
心則緣佛境界하야  憶持不忘하고,  口則稱佛名號하야  分明不亂이니,  如是心口相應이  名曰念佛이니라.
「나무아미타불」의 육자 법문은 바로 윤회를 벗어나는 지름길이다.
마음으로는 부처님의 경계를 생각하여 잊지 말고, 입으로는 부처님의 명호를 부르되 분명하고 일심불난(一心不亂)해야 하니, 이와 같이 마음과 입이 상응하는 것이 염불이다.
*옴마니반메훔 ; 자비의 화신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의 성스러운 자비(慈悲)를 나타내는 진언(眞言)으로 ‘오! 연꽃 속의 보석이여!’라는 뜻이다. 여기서 보석은 자비의 상징이고, 연꽃은 지혜·깨달음의 상징이다.
산스크리트어 oṃ maṇi padme hūṃ  육자대명왕진언(六字大明王眞言), 육자진언(六字眞言)이라 한다.
이 진언을 외우면 관세음보살의 자비에 의해 번뇌와 죄악이 소멸되고, 온갖 지혜와 공덕을 갖추게 된다.
*능엄주(楞嚴呪) ; 『능엄경』에 있는 427구(句)의 다라니를 말하며, 대불정다라니(大佛頂陀羅尼), 불정주(佛頂呪)라고도 하고 자세히는 『대불정만행수능엄다라니(大佛頂萬行首楞嚴陀羅尼)』라 한다.
이 주문은 큰 영험이 있다고 하여 우리나라에서는 일찍부터 널리 염송되었다.
*대뜸 ; 이것저것 헤아려 볼 새 없이 그 자리에서 바로.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참구(參究 헤아릴 참/궁구할 구) ; ①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드는 것. ②선지식의 지도 아래 참선하여 화두(공안)을 꿰뚫어 밝히기 위해 집중함. 화두 의심을 깨뜨리기 위해 거기에 몰입함.

*참선법(參禪法) ; ①선(禪) 수행을 하는 법.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법.
*시심마, 무자, 정전백수자 ; 분류 ‘화두(공안)’ 참고.
*선지식(善知識) ; 부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지도자. 좋은 벗.
*혜안(慧眼) ; 지혜의 눈. 사물을 바르게 관찰하는 눈이라는 뜻. 진리를 보는 눈.
*(게송) ‘법왕권실영쌍행~’ ; [금강경오가해] 종경 서(宗鏡序) 참고.
*권•실(權•實) : 부처님의 깊은 이치는 보통 사람으로서는 대번에 알기 어렵기 때문에, 일시적으로 방편으로써 처음에는 옅은 이치의 차별법(差別法)을 중•하(中•下) 근기에게 설한 가르침을 권(權)이라 하는데 소승교를 가리킴이요,
나중에는 참된 실상(實相)의 둘 아닌 법(不二法•眞如•平等), 영원히 변함이 없는 구극적(究極的)인 진리법을 설한 가르침을 실(實)이라 하는데 대승교를 가리킨다.
*뇌성벽력(雷聲霹靂) ; 천둥소리와 벼락을 아울러 이르는 말.
*법왕(法王) ; 부처님을 찬탄하는 말. 왕(王)은 가장 수승하고 자재하다는 뜻. 부처님은 법문(法門)의 주인이며 중생을 교화함에 자유자재한 묘용(妙用)이 있으므로 이렇게 이름.
*무쌍(無雙)하다 ; (사람이나 그 실력, 능력 따위가)서로 견줄 만한 짝이 없을 정도로 뛰어나다.
*본고장 ; ①나서 자랐거나 본래부터 살아온 고장. ②어떤 활동이나 생산이 이뤄지는 본래의 중심지.
*혈맥론(血脈論) ; [달마대사 혈맥론(達摩大師血脈論)]이라고도 한다. 중국 선종의 초조(初祖) 보리달마(菩提達摩 Bodhidharma)의 저술로 전해지고 있다.
문답형식으로 즉심시불(卽心是佛-마음 그대로가 곧 부처), 심외무불(心外無佛-마음 밖에 부처가 없다), 성불수시견성(成佛須是見性-부처를 이루려면 반드시 성품을 보아야 한다) 등의 말씀이 있다.
혈맥(血脈)은 사자상승(師資相承)이라고도 하며, 스승으로부터 제자에게로 주고받아서, 정법(正法)을 상속하는 것. 신체의 혈맥이 서로 연결되어 끊어질 수 없는 것에 비유해서 말함.
[참고] [선문촬요 禪門撮要 上 血脈論] (경허성우 鏡虛惺牛 엮음)에서.
〇若不急尋師空過一生 然卽佛性自有 若不因師終不明了 不因師悟者萬中希有.
급히 스승을 찾지 아니하면 일생을 헛되이 보내리라. 불성은 스스로 가지고 있으나 스승을 인연하지 않으면 끝내 분명히 알지 못하니, 스승을 의지하지 않고 깨닫는 이는 만에 하나도 드물다.
*위법망구(爲法忘軀) ; 법(法, 진리)를 구하기 위해[爲] 몸[軀] 돌보는 것을 잊는다[忘].
*양껏(量껏) ; 할 수 있는 양의 가장 큰 한도까지.
*먼빛 ; [주로 '먼빛으로'의 꼴로 쓰여]멀리서 언뜻 보이는 정도나 모양.
*독로(獨露 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홀로(獨) 드러나다(露).
*돈발(頓發 갑자기 돈/일어날•나타날•밝힐 발) 일정한 단계를 밟지 않고 직접적, 비약적으로 일어나는. [참고] 頓 - 直頓의 뜻, 곧바로.
*선지식(善知識) ; 부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지도자. 좋은 벗.
*사무치다 ; ①강하게 느껴지다. ②깊이 스며들거나 멀리까지 미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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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싼또샤
보살선방 법문2014.04.07 11:17

§ 보살선방에서 하신 법문 / 어떤 경계(境界)가 나타나건, 거기에 집착하지 않고 놔둬 버리고, 정신을 챙겨 화두를 들고나가야 돼. / 무기공(無記空).

우리가 추구해야 할 삼매(三昧)는 ‘오직 알 수 없는 의심으로 화두를 참구해 나가는 것’뿐인 것입니다.
‘바른 정(定)’이라 하는 것은 밥 먹을 때 밥을 먹되 한 알갱이 쌀도 씹지 않고, 종일 걷되 한 조각의 땅도 밟음이 없고, 종일 말하되 한마디 말도 한 바가 없어야, 그래야 그것이 진짜 삼매고 바른 정이야.
‘양반 못된 것이 장터에 가서 큰소리 치고, 개 못된 것이 들에 가서 짖는다’는 속담이 있는데, 이 선방에 와서 자기가 잘난 체하고 큰소리 치고 남을 멸시하고 마구잡이 막 행동을 하고 한다면 그건 수행자가 아니어.
**송담스님(No.524) - 94년 동안거결제 중 보살선방에서 하신 법문(94.02.06)에서.

약 16분.


그리고 주력(呪力)을 하거나 기도를 하다보면 의술(醫術)을 배우지 안 했는데 침도 놓고 또 손으로 요렇게 만져서 지압 같은 것도 하고 또 무슨 약처방 같은 것도 이렇게 일러주는 그런 능력이 생기는 수가 있습니다.
그건 전생(前生)에 의술을 공부를 했거나 또는 ‘내생(來生)에는 내가 의술을 통달해 가지고 많은 사람의 병을 고쳐 주리라’하는 그런 원력(願力)을 세웠거나 그런 경우에 금생(今生)에 그렇게 주력을 하다보면, 기도를 하다보면 그런 사람의 병을 고칠 수 있는 능력이 생기는 수가 있습니다.

그걸 꼭 나쁘다고 할 것은 없으나 이 선방(禪房)에 들어와서는 자기 공부 할라고 들어왔지 여기 와서 사람들 병 고쳐 줄려고 온 것이 아니기 때문에, 여기서 만약에 그런 능력이 있어서 이사람 저사람 하다보면 많이 모여 들어가지고 이 선방이 완전히 병 치료하는 병원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니까 결제(結制) 중에는 선방 내에서는 그걸 좀 삼가하시는 것이 자기를 위해서도 좋고, 다른 사람을 위해서도 좋고, 선방을 위해서도 좋을 것입니다.
그래서 정 그런 좋은 능력이 있으면 해제(解制)하고 적당한 자리에서 만나서 병을 치료해 주시는 것은 뭐 좋은 일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리고 참선을 하는데 자꾸 이상스런 어떤 경계(境界)가 나타난다 하면 그 경계가 좋은 경계가 되었건, 무슨 신비한 경계가 되었건 거기에 집착(執着)을 하면 안 돼.
그것은 그대로 놔둬 버리고 정신을 딱 챙겨 가지고 화두를 계속해서 화두를 들어나가야 돼.

천하 없는 신비하고도 묘한 경계가 나타나더라도 거기에 따라가고 거기에 집착하면 그건 공부가 아냐.
그냥 고대로 물리치려고 하지도 말고 그대로 놔둔 채 똑바른 정신으로 화두만 떠억 들고 나가면 계속 그러면 결국은 그 경계는 사라지게 되는 것이여.

공부하는 가운데 환상이 나타나거나, 부처님이 나타나거나, 관세음보살님이 나타나거나 별별 경계가 나타나더라도 그것은 참 경계가 아니야.

그리고 참선하고 있으면 집에서 뭔 일 일어나는 것이 나타나서 미리 알게 되고,
‘집에 누가 죽었다’하면 가서 보면 죽어갔고 있고, ‘누가 올 거다’하면-참선 중에 그것이 그냥 자연히 알아져서-가서 보면 누가 와 있기도 하고 그럴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스스로 식(識)이 맑아지니까, 그 맑아진 식의 능력으로 그것이 알아지는 수도 있고 또 어떠한 잡신(雜神)이 이런 것을 와서 일러 주기도 하고 그런 두 가지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식(識)이 맑아져서 알아졌다 하더라도 그것이 도(道)를 통한 것과는 별개의 것입니다, 그것은.
그게 환히 알아지니까 ‘내가 도통(道通)을 했구나!’ 그렇게 착각을 하시면 안 됩니다. 식(識)이 맑아지면 그런 것이 알아지는 수가 있어요.

그러나 그것은 도(道), 내가 나를 깨달아서 견성성불(見成成佛)하는 것과는 영판 길이 다릅니다 그게.
그것은 공부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것이고 거기에 집착하면 정말 사도(邪道)로 빠지게 되는 것이니까 집착하지 말고, 그냥 고대로-그걸 사용하려고 하지도 말고, 좋다는 생각도 하지도 말고-그냥 없었던 걸로 놔 버려야 합니다.
놔 버리고 자꾸 바른 자세와 바른 호흡으로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만을 꾸준히 들고 나가면 그런 것이 있다고 해서 해로울 것도 없습니다.

화두를 놔 버리고 그런 데에 집착(執着)을 하고 그런 데에 빠져 가지고, 그런 거 아는 소리를 하고 그렇게 되면 그 사람은 정도(正道)하고는 멀어져 버리는 것이고, 잘 되어 봤자 점쟁이 같은 것 밖에는 안 되는 것이니까,
모처럼 이 정법(正法)을 믿고 참선을 하는 사람은 그러한, 말해서 초능력이라고 그렇게 표현할 수도 있겠으나 그런 것은-뭣한 사람은 그런 것을 얻기 위해서 무척 노력한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마는-그건 정도(正道)가 아닙니다. 그렇게 이해하시고.

또 예불(禮佛)을 하러 올라가고 내려가고 또는 밤에 정진할 때, 환히 아주 백촉짜리 불을 켜논 것처럼 환히 모든 것이 비쳐, 다른 사람 눈에는 안 보이는데 자기 눈에는 환히 그렇게 광명(光明)이 보이는 수가 있어.
그런 것도 역시 그런 거를 좋아하는 마음을 내지 말고, ‘머지 않아서 내가 도통하려고 이런가 보다’고 그러한 생각도 하지마. 집착(執着)하지 아니하면 아무 상관이 없어.

그것이 꼭 나쁜 것이다 좋은 것이다 말할 것도 아니고, 문제는 거기에 집착(執着)하면 그것이 나쁜 것으로 변하는 거고,
집착하지 않고 놔둬 버리고 올바르게 정진을 해 나가면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이여. 그렇게 아시기 바라고.

그리고 ‘정진하다 보면 코로 향내가 난다’ 그럴 수가 있습니다. 향내가 날 수도 있고.
그것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언젠가는 그런 것이 없어질 때가 올 것입니다. 향내가 정상적으로 나는 향내라면 다른 사람 코에도 다 그 향내가 나야 할 텐데 자기만 느끼는 것이거든.

그러니까 자기가 그 동안에 어떻게 어떠한 공부를 해 왔느냐?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해 왔느냐? 과거에 어떠한 업을 지었느냐? 그런 것에 따라서 그렇게 향내가 날 수도 있고, 캄캄한 밤에도 환히 모든 것이 다 보일 수도 있고, 여기서 수백 리 떨어진 데에서 하는 소리를 여기서 들을 수도 있고 여러 가지 경계가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능엄경(楞嚴經)에 보면 50가지의 그런 여러 가지 경계에 대해서 소상(昭詳)하게 말씀을 해 놓으신 것이 있는데, 그런 것들이 도(道)와는 별개의 것이여.
그런 경계가 나타났을 때, 거기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 우리 정법을 수행해 나가는 사람의 주의해야 할 마음가짐이다.
그런 신기한 불가사의(不可思議)한 경계가 일어나면-그것에 집착을 했다 하면, 거기서부터 정도(正道)에서는 멀어져 버리는 것이다 하는 것을 확실히 인식하시기를 바라고.

삼매(三昧)와 선정(禪定)은 다른 것이냐 틀린 것이냐? 같은 말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삼매(三昧)는 인도 말이고, 중국 말로는 정(定)이라 그런 것인데 같은 말이죠.

그런데 무엇이고 한 가지-책을 읽는데 거기에 열중하고 골몰해 가지고 시간 가는 중도 모르고 밖에서 떠드는 소리도 안 들리고 한다면 그것은 ‘독서 삼매’가 될 것이고,
글씨를 쓰는데 열심히 글씨를 쓰다보면 자기가 글씨를 쓴다는 생각도 없고, 잘 쓸라는 생각도 없고, 밖에서 아무리 시끄러워도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오직 글씨 쓰는 데만 정신이 통일이 된다면 그것은 ‘글씨의 삼매’가 되는 것입니다.
모든 일도 마찬가지여. 일에도 열중하다보면 시간 가는 중도 모르고 거기에 집중을 하게 되면은 그것은 ‘일의 삼매’가 되는 것입니다.

참선도 ‘이뭣고’가 되었건 또는 ‘옴 마니 반메 훔’이 되었건,  ‘관세음보살’이나 ‘아미타불’이 되었건, 일심(一心)으로 하다보면 그것도 삼매에 들어가는 것이고, 그것도 정에 들어가는 것인데,
정(定)에는 사(邪)의 정, 삿된 정과 바른 정이 있어. 삿된 정에 빠지면 삿된 결과가 오는 것이고 바른 정에 들어가야 바른 결과가 나타나는 것이니까,

우리가 추구해야 할 삼매(三昧)는 ‘오직 알 수 없는 의심으로 화두를 참구해 나가는 것’뿐인 것입니다.
바른 정신으로 바른 신심으로 바르게 화두를 참구해 나가야 더이상 의심이 커질라야 커질수가 없고, 더이상 간절할라야 간절할 수 없는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어야 해.
그래 가지고  순일무잡해 가지고 나가면은 결국에는 의단(疑團)을 타파(打破)하게 되는 것인데, 우리가 가야 할 길은 오직 그 길이다.

그리고 참선하다 보면 정말 시간가는 줄 몰라 가지고, 그런데 그러한 상태에서도 화두에 대한 바른 의심이 성성적적(惺惺寂寂)하게 따악 유지가 되어가야지,
화두에 대한 의심이 없이 그냥 무기공(無記空)에 빠지면 그것은 바른 참선이 아니여.
설사 모든 세상을 훤히 알고 신통술이 나와도 그것은 정법이 아니다 그말이여.

그래서 참선하는 사람은 그러한 무기공에 떨어진 것을 삼매에 들었다고 좋아하고 착각을 하고 남에게 자랑을 하고 그런 생각을 갖는다면, 그 사람은 바르게 정진을 한 사람이 아니다. 그것을 아셔야 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대중이 모여서 선방에 와서 정진을 할 때에는 대중의 법도(法度)에 순응하면서 그 가운데 정진을 잘 잡도리를 해 나가는 것이 좋습니다.

‘나는 몇 시간을 꼼짝도 않고 앉을 수가 있다. 나야말로 이 가운데서 제일 공부를 잘 하는 사람이다.’ 그런 생각을 속으로 가지고 있고, 그렇지 못한 다른 사람들은 ‘별 사람들이 공부를 제대로 한 사람들이 아니다’하고 낮잡아보고 멸시하고 그런 것은 정신이 바르지 못한 사람이여.
24시간을 꼼짝도 않고 앉았다 하더라도 생각이 바르지 못한 사람은 바른 깨달음을 얻을 수가 없는 거여.

40년 동안을 꼼짝 안 하고 장좌불와(長坐不臥)를 한 스님이 있었는데, 자기는 한국에서 제일 정진을 잘한 도인이라고 착각에 빠져갖고 있었어. 마곡사에 그런 스님이 있었는데, 그게 40년이 아니라 억겁 동안을 앉아서 꼼짝않았다 하더라도 그것은 정법이 아니여.

‘바른 정(定)’이라 하는 것은 밥 먹을 때 밥을 먹되 한 알갱이 쌀도 씹지 않고, 종일 걷되 한 조각의 땅도 밟음이 없고, 종일 말하되 한마디 말도 한 바가 없어야, 그래야 그것이 진짜 삼매고 바른 정이야.

여러분은 일단 이 용화선원에 방부(房付)를 들였으면 용화선원의 법도에 순응하면서 여법하게 정진하되, 다른 사람에게 이만큼도 방해를 주지 아니해야 해.

다른 사람에게 방해를 주지 아니하면서 자기 공부를 안으로 착실하게 해 나가야 한다.
자기 공부 잘한 것을 과시하기 위해서, 법도(法度)를 무시하고 다른 사람에게 여러 가지 방법으로 마음을 동요하게 만들고 그렇다면, 그 사람은 벌써 바른 마음가짐이 되어 있질 않거든.

그 점에 대해서 어느 선방에 가더라도 마찬가지여. 그 선방에 가면 그 선방의 법도를 지키면서 다른 분에게는 조금도 방해를 주지 아니하면서 자기 공부를 내부적으로 착실하게 다져 나갈 줄 알아야 해.

그러다 보면 말이 필요가 없는 거여. 말을 많이 하고 큰소리를 치고-선방에 와서 자기가 잘났다고 큰소리 치고, 자기 이외에 누가 나만큼 공부한 사람이 없냐고 그런 생각을 갖는다면 그게 될 거냐 그말이여.

‘양반 못된 것이 장터에 가서 큰소리 치고, 개 못된 것이 들에 가서 짖는다’는 속담이 있는데, 이 선방에 와서 자기가 잘난 체하고 큰소리 치고 남을 멸시하고 마구잡이 막 행동을 하고 한다면 그건 수행자가 아니어.
그 점에 대해서 각별히 명심을 하시기를 바랍니다.(38분54초~54분48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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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력(呪力) ; 진언(眞言)·다라니(陀羅尼)로 하는 기도. 진언(眞言)·다라니(陀羅尼)의 효과.
*원력(願力) : 원(願)하는 바를 이루려는 의지. 본원력(本願力)•숙원력(宿願力)•대원업력(大願業力)•서원(誓願)•행원(行願)이라고도 한다.
*선방(禪房) ; 참선(參禪)하는 방.
*결제(結制 맺을 결,만들•법도 제) ; 안거(安居)에 들어감. 하안거는 음력 4월 15일에 들어가며, 동안거는 음력 10월 15일에 들어간다.
*해제(解制 풀 해,만들•법도 제) ; ①(안거)를 마침. ②재계(齋戒)하던 것을 그만두고 풂.
*경계(境界) ; 산스크리트어 viṣaya ①대상,인식 대상, 여러 감각기관에 의한 지각의 대상. 인식이 미치는 범위 ②경지(境地) ③상태 ④범위,영역.
*식(識) ; ①식별하고 판단하는 마음 작용. 인식 작용. 인식 주관. ②구체적으로 인식된 내용.
*도(道) ; ①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그 방법. ②깨달음. ③가르침. ④궁극적인 진리. ⑤이치. 근원.
*도통(道通) ; ①사물의 이치를 깨달아 훤히 통함. ②깨달음.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 보아 깨달아 부처가 됨.
*본참화두(本參話頭) ; 본참공안(本參公案).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집착(執着) ; 허망한 분별로써 어떤 것에 마음이 사로잡혀 헤어나지 못함. 그릇된 분별로써 어떤 것을 탐내어 그것에서 벗어나지 못함.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예불(禮佛) ; ①경건한 마음으로 부처님에게 절함. ②절에서 아침·저녁 두 차례에 걸쳐 불·보살(佛·菩薩)에게 예배하는 의식.
*능엄경(楞嚴經) ; 본이름은 대불정여래밀인수증료의제보살만행수릉엄경(大佛頂如來密因修證了義諸菩薩萬行首楞嚴經). 10권. 당(唐)의 반자밀제(般刺蜜帝) 번역.
마음은 어디에 있는가에 대한 세존과 아난(阿難)의 문답으로 시작하여 깨달음의 본성과 그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설하고 여래장(如來藏)이 무엇인가를 밝힘.
깨달음으로 들어가는 가장 쉬운 방법은 관음신앙이라 하고 능엄다라니(楞嚴陀羅尼)를 설한 다음, 보살의 수행 단계, 중생이 수행하는 과정에 일어나는 여러 가지 번뇌에 대해 그 원인과 종류를 밝힘.
*소상(昭詳 분명할 소,자세할 상) ; 분명하고 자세함.
*불가사의(不可思議) ; 말로 나타낼 수도 없고 마음으로 헤아릴 수도 없음. 생각이 미치지 못함. 생각할 수도 없는 놀라운 일.
*삼매(三昧) ; 정(定). [범] samadhi  음대로 써서 삼마지(三摩地)•삼마야(三摩耶) 또는 삼매(三昧)라고 한다. 마음이 움직이지 않아서 생각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지 않음을 말한다.
*일심(一心) ; ①대립이나 차별을 떠난 평등한 마음. ②한곳에 집중하여 산란하지 않는 마음. 통일된 마음. ③중생이 본래 갖추고 있는 천정한 마음. ④아뢰야식(阿賴耶識).
*타성일편(打成一片) : 참선할 때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만이 독로(獨露)한 경계.
*의단(疑團의심할 의, 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화두(話頭)를 타파(打破) ;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스승)으로부터 화두•공안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그 화두(話頭)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 하지 아니하고,
오직 꽉 막힌 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을 타파하여 확철대오(廓徹大悟)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고] 화두라 하는 것은 무엇이냐?
공안(公案)이라고도 말하는데, 화두는 깨달음에 이르는 관문이요, 관문을 여는 열쇠인 것입니다.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그 화두(話頭)에 대한 의심(疑心)을 관조(觀照)해 나가는 것, 알 수 없는 그리고 꽉 맥힌 의심으로 그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그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더 이상 그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더 이상 의심이 커질 수 없고, 더 이상 깊을 수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내 가슴속이 가득 차고, 온 세계가 가득 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눌 때에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탈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잘 때에는 꿈속에서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에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큰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그 항아리를 큰돌로 내려치면은 그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를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52분12초~) [‘참선법 A’ 에서]

이뭣고? 이것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렇게 의심을 해 나가되, 이런 것인가 저런 것인가 하고 이론적으로 더듬어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다못 “이···뭣고······?” 이렇게만 공부를 지어나가야 됩니다.
여기에 자기의 지식을 동원해서도 안되고, 경전에 있는 말씀을 끌어 들여서 “아하! 이런 것이로구나!” 이렇게 생각해 들어가서도 안됩니다.

공안은 이 우주세계에 가득 차 있는 것이지마는 문헌에 오른, 과거에 고인(古人)들이 사용한 화두가 1700인데, 이 ‘이뭣고?’ 화두 하나만을 열심히 해 나가면 이 한 문제 해결함으로 해서 1700공안이 일시(一時)에 타파가 되는 것입니다.

화두가 많다고 해서 이 화두 조금 해 보고, 안되면 또 저 화두 좀 해 보고, 이래서는 못 쓰는 것입니다.
화두 자체에 가서 좋고 나쁜 것이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한 화두 철저히 해 나가면 일체 공안을 일시에 타파하는 것입니다.(76분34초~) [ ‘참선법 A’ 에서]

*성성적적(惺惺寂寂) ; 정신이 고요하면서도 깨끗하고 또록또록 한 상태.
*무기공(無記空) ; ①의식이 깨어있지 않고 멍하거나 기억이 없으면서 편안함에 안주하고 싶은 마음상태.
②참선중에 고요함에 매료되어 화두를 망각하고 몽롱한 상태.
*법도(法度) ; 생활상의 예법과 제도(制度)를 아울러 이르는 말.
*장좌불와(長坐不臥) ; 밤이 되어도 눕지 않고 늘 앉아서 수행 정진하는 것.
*방부(房付 방•거처 방,줄•부탁할 부) ; 수행자가 절에 머물며 공부할 것을 인사드리고 허락을 구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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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선 (목적)2014.02.25 13:16

§(152) (게송)‘견색비간색~’ / 참선은 자기가 자기를 찾는 공부이기 때문에 대단히 쉬운 것이다.


아까 조실 스님 법문에서 들으신 바와 같이 참선은 대단히 쉬운 것이다. 왜 쉬우냐?
저 먼 데에 있는 것을 찾는 것도 아니요. 저 높고 깊은 데에 있는 것 찾는 것도 아니요. 무슨 산 속이나 바다 속이나 그런 데에서 찾는 것도 아니고, 오직 자기가 자기를 찾는 공부이기 때문에 그렇게 쉬운 것이다.
‘앞으로 좀 내가 무슨 참선에 대한 책, 불경(佛經)에 대한 번역해 놓은 책이라도 좀 읽어보리라.’ 그러헌 계획을 가지고 계신 분은 그런 책을 읽고 나서 참선을 헐랴고 허는 생각을 쉬어버리시고, 읽기 전에 먼저 참선의 바른 법을 알아 가지고 당장 내가 내 마음을 닦아 가는 공부 먼저 시작을 허시는 것이 가장 올바르고 지혜로운 일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송담스님(No.152) (참선법B)-1981년 10월 첫째일요법회(1981.10.04)에서.

 약 21분.


견색비간색(見色非干色)이요  문성불시성(聞聲不是聲)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색성불의처(色聲不疑處)에  친도법왕성(親到法王城)이니라
나무~아미타불~

견색비간색(見色非干色)이요. 색(色)을 보되 색(色)이 아니다. 색을 관계치 않는다.
문성불시성(聞聲不是聲)이라. 소리를 듣되 이 소리가 아니여.

도(道)를 닦지 아니한 사람은 무슨 색상(色相)을 보면 ‘하! 저 주장자(拄杖子)가 빛깔이 노랗구나.’ ‘주장자가 굉장히 무겁게 생겼다.’ ‘저 주장자에는 용의 모양이 조각이 되어 있구나.’
한 주장자를 보고도 두 가지, 세 가지, 네 가지 한량없는 생각이 거기서 번져 나간다 그말이여.

‘저 주장자는 무슨 나무로 깎아졌을까?’ ‘저 주장자를 깎은 나무는 어디 산에서 비어 왔을까?’ ‘몇 해나 자란 나무일까?’ ‘누가 조각을 했을까?’
이렇게 해서 한 색상을 봄으로 해서 그것이 계기가 되아 가지고 온갖 생각이 거기서 벌어진다 그말이여.

그런데 도를 닦는 사람은 그러헌 색상을 보되 색상이 아니여. 색상에 떨어지지 않는다 그말이여.

문성불시성(聞聲不是聲)이라. 어떠헌 소리를 듣되 소리가 아니다.

도(道)를 닦지 아니헌 사람은 문 열고 닫는 소리를 들으면,
‘아! 저 문은 철로 만든 문이로구나. 도롱태가 고장이 나서 소리가 요란히 나는구나. 저 문은 누가 만들았을까? 언제 만들았을까? 들어오는 사람은 누굴까? 왜 들어 올 때 가만히 들어오지 않고 저렇게 요란스럽게 들어올까?’
이러헌 식으로 해서 하나의 소리를 듣고서 그것으로 인해서 온갖 분별심과 번뇌심과 망상심이 한도 끝도 없이 퍼 일어나게 된다 그말이여.

그러는 가운데에 성을 내기도 하고, 기분을 상하기도 하고, 공연히 지나간 일·얼토당토않은 일이 생각이 나서 속이 뒤집어지기도 하고, 신경질을 내기도 하고,

이렇게 해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잠시도 조용한 시간을 갖지를 못하고, 노상 눈을 통해서 마음의 풍파(風波)가 일어나고, 귀를 통해서 마음의 풍파가 일어나고, 한 생각·한 소리·한 색상을 볼 때마다 마음 속이 요동이 되고 난리가 일어난다 그말이여.

이렇게 하기를 하루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그렇고 달마다 그렇고 해마다 그래서, 마지막 숨이 끊어질 때까지 그러헌 생활이 계속이 되고 그 결과로써 가는 곳은 지옥 아니면 축생 뱃속으로 들어가고, 이리해서 육도윤회(六途輪廻) 생사고해의 윤회가 한이 없이 계속이 되는 것입니다.

색성불의처(色聲不疑處), 친도법왕성(親到法王城)이라. 무슨 색상을 보건, 무슨 소리를 듣건 의심이 없는 곳에 이르면 이것이 바로 법왕(法王)이 있는 곳에 도달한 것이다.

방금 우리는 조실(祖室) 스님께서 활구참선법, 참선허는 법에 대해서 매우 간절(懇切)하게 고구정녕(苦口叮嚀)하게 법문을 해 주신 것을 들었습니다.

오늘은 확성기를 새로 바꿔서 그전에 보다는 좀 잘 들린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 콘크리트 건물은 지어서 얼마 안된 동안에는 울린다고 그럽니다. 조금 불편한 점이 있으시더라도 이해를 하시고, 상태가 좀 안 좋더라도 그럴수록에 더욱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귀를 기울여서 법문을 잘 들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참선법(參禪法), 이 용화사는 참선법을 핵심으로 해서 항시 전강 조실스님께서 설해 주시던 녹음 법문을 다같이 이렇게 듣고, 또 산승(山僧)도 그러헌 조실스님의 뜻을 받들어서 '어떻게 하면 우리 사부대중(四部大衆)이 이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을 올바르게 해서 하루빨리 이 바른 공부길을 잡아서 ‘참나’를 깨닫게 할 것인가' 오직 여기에 온 정성을 기울이고 있는 것입니다.

아까 조실 스님 법문에서 들으신 바와 같이 참선은 대단히 쉬운 것이다. 왜 쉬우냐?

저 먼 데에 있는 것을 찾는 것도 아니요. 저 높고 깊은 데에 있는 것 찾는 것도 아니요. 무슨 산 속이나 바다 속이나 그런 데에서 찾는 것도 아니고, 오직 자기가 자기를 찾는 공부이기 때문에 그렇게 쉬운 것이다.

자기라니?  자기가 무엇이여?  자기가 어디가 있어?
‘내가 나를 찾는다’고 그러니, 내가 어디에 있으며, 어떻게 생겼으며, 내라는 게 무엇인가?

우리는 ‘내’라 하면 이 부모로부터 받어난 이 육신(肉身)을 보통 다 나라고 생각하고, 이놈을 잘 멕일랴고 그러고, 또 잘 입힐랴고 그러고, 깨끗이 씻고 이쁘게 꾸밀랴고 그러고, 아픈 데가 있으면 병을 치료헐랴고 그러고, 누가 때리면 안 맞을려고 그러고,
이 육신이 자기의 전부인 것처럼 알고 그 놈을 그렇게 아끼고 보호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물론 이 몸뚱이도 내가 아닌 것은 아니지만, 이 몸뚱이는 ‘참나’가 아닌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몸뚱이가 아니면 나라고 하는 ‘참나’도 의지헐 곳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몸뚱이 안에 있는 참나는 이 육신을 주재하면서 육신을 운전하면서 한 생 동안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진리에 입각해서 보면 육체와 우리의 마음자리를 따로 갈라놓고 볼 수가 없는 것이지만, 편의상 쉬운 방편(方便)을 빌려서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몸뚱이에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 육체, 생각 - 이 육식(六識), 육근(六根) 여섯 가지 문(門)을 통해서 우리의 마음이 항시 출입을 허고 있는 것입니다.

눈이 있지만 ‘내’라 하는 놈이 없다면, 아무리 눈이 있어도 볼 수가 없는 것이고.
그 증거를 한번 보자면, 뒤에서 무슨 이야기 허는 말을 아주 거기다 전 정신을 집중을 해서 뒤에서 말허고 있는 말을 듣고 있으면, 눈을 뜨고 있어도 앞에 있는 것이 보이지를 않습니다.

책을 펴서 눈앞에다 떠억 들고 있어도 보는 데에 정신을 집중을 해야 책의 글자가 읽어지지, 눈을 뜨고 눈앞에다 책을 갖다가 떠억 펴어 놨어도, 귀를 옆에 방에서 얘기허는 소리에다가 귀를 기울이고 있으면, 눈을 뜨고 있어도 그 책의 글자가 하나도 읽어지지를 않습니다.

이 조그마한 가까운 예를 생각해 보더라도, 분명히 눈을 통해서 보는 놈이 따로 있다고 허는 것을 우리는 알 수가 있습니다.
귀 자체가 듣는 것이 아니라 귀를 통해서 듣는 주인공이 있다고 허는 것을 우리는 짐작을 할 수가 있습니다.

따라서 눈을 통해서 어떠헌 색상을 보되 보는 데에 끌려가지 아니하고, 보는 데에 집착을 허지 아니하고, 보는 데에 생각이 끌려가지 아니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입니다.

벌써 눈을 통해서 보는 밖의 어떠헌 경계(境界)에 나의 정신 나의 의식이 끌려가게 되면, 나는 집을 비워 놓고 외출을 허는 거와 마찬가지여. 이웃집, 저 가까운 집, 먼 집으로 밤낮 나들이만 다니고 있는 거와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귀를 통해서 어떠헌 소리를 들을 때에도, 밤낮 듣는 그 경계에만 정신을 빼앗기고 살면 그것도 역시 내 집은 비워 놓고 밤낮 남의 집으로만 돌아댕긴 거와 마찬가지여.

코를 통해서 냄새 맡은 것도 그렇고, 혀를 통해서 맛 볼 때에도 그렇고, 몸으로 춥고 더운 것을 감촉할 때에도 그렇고, 생각으로 이 생각 저 생각 의식을 헐 때에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육근(六根)을 통해서 육진경계(六塵境界)에 항시 끄달려서 사는 사람은 일 년에 단 하루도 자기 집에 붙어 있는 날이 없고 밤낮 밖으로만 쏘아 다니는 가정주부와 같애서 그 집안 살림은 엉망이 되고 말 것입니다.

겨우 잘 때나 자기 집에 들어오고, 눈만 떴다 하면 밖으로 돌아치면 그거 어떻게 되겠느냐 그말이여.
심지어 잘 때에는 꿈을 통해서 또 밖으로 쏴 다닌다 그말이여.

그래서 우리 참선을 허지 아니한 중생은 이렇게 해서 내 집 살림은 엉망이 되아 가지고, 그놈이 안이비설신의 육근을 통해서 육진경계에 끄달려서 돌아댕기느라고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감촉하고 생각하면서 온갖 죄업(罪業)만 퍼지어서 빚만 잔뜩 지어놓고는,
죽어 갈 때에는 노잣돈 한푼 없이 빚 문서만 짊어지고 염라대왕(閻羅大王) 앞으로 끌려가서 뒈지게 뚜들겨 맞기만 허게 될 것이다 그말이여.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왕궁의 부귀를 버리시고 출가허셔서 중생들에게 모범을 보이기 위해서 출가허셔 가지고 갖은 고행을 허시다가 마침내 바른 수행법을 체득을 허셔 가지고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허셔서 그 깨달은 법을 49년 동안에 걸쳐서 고구정녕하게 중생들에게 그 길을 일러 주신 것입니다.

도를 닦는다. 참선을 한다. 최상승법이라 하니까 굉장히 어려운 것으로 생각하고,
『불교에 대해서는 책 한권, 경(經)도 별로 읽지도 못하고 아무 것도 잘 모릅니다. 참! 더군다나 참선을 어떻게 제가 허겠습니까?』 이렇게 미리 겁을 집어먹고 참선을 허기를 꺼려하고,

『불교 초보자가 읽을 만한 무슨 좋은 책이 없겠느냐?』 『무슨 경전을 읽으면 좋겠느냐?』 이렇게 문의들을 허십니다마는,
불교 초보자가 읽을 만한 무슨 책을 많이 읽고, 무슨 경을 또 많이 읽고, 그래야만 참선을 잘 허게 되냐 허면 그것도 아니고,

또 요새 참선에 관한 여러 종류의 책이 모다 나왔습니다마는, 그러헌 책을 읽어야만 - ‘그래도 참선에 대해서 무엇인가 좀 이해를 하고 좀 알아 가지고 참선을 해야지 아무 것도 몰라 갖고 어떻게 허겠느냐?’ 이런 생각을 하시지만, 절대로 이 책 저 책 읽어봤댔자 책마다 다 말이 다르고,
또 이 참선이라 하는 것은 무슨 이론적으로 배우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무엇을 많이 읽고 알아야만 되는 것이라고 허는 생각을 가지실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오히려 이런 책 저런 책 모다 그런 책을 많이 읽은 사람일수록에 이 참선을 바로 해 가는데 좋지 못한 영향을 받을 염려도 있는 것입니다.

이미 이 책 저 책을 많이 읽으신 분은 그 책에 읽은 내용을 깨끗이 다 놔 버리고 잊어버리시고, 아직 그런 책을 읽지 않고 ‘앞으로 좀 내가 무슨 참선에 대한 책, 불경(佛經)에 대한 번역해 놓은 책이라도 좀 읽어보리라.’ 그러헌 계획을 가지고 계신 분은 그런 책을 읽고 나서 참선을 헐랴고 허는 생각을 쉬어버리시고,

읽기 전에, 먼저 참선의 바른 법을 알아 가지고 당장 내가 내 마음을 닦아 가는 공부 먼저 시작을 허시는 것이 가장 올바르고 지혜로운 일이라고 생각이 됩니다.(처음~20분49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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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견색비간색(見色非干色)~ ; [금강경오가해] 장엄정토분, 야부 스님 게송 참고.
*도(道) ; ①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그 방법. ②깨달음. ③가르침. ④궁극적인 진리. ⑤이치. 근원.
*주장자(拄杖子 버틸 주/지팡이 장/접미사 자) ; 수행승들이 좌선(坐禪)할 때나 설법(說法)할 때에 지니는 지팡이.
*얼토당토않다 ; (일이나 말 따위가)도무지 이치에 맞지 않다.
*육도윤회(六途輪廻, 六道輪廻) ; 선악(善惡)의 응보(應報)로 육도(六途 ;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의 고락(苦樂)을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것.
*법왕(法王) : [범] dharmaraja  부처님은 진리 곧 법을 가장 밝게 깨치시고, 법을 걸림 없이 쓰시고 법을 널리 가르쳐서 법에 있어 제일 높은 어른이므로, '법의 임금'이라고 존칭한 말이다. 또한 모든 세속 임금들에게도 큰 스승이 되고, 온갖 성인들 가운데서도 으뜸이 되므로 법왕이라 한다.
*조실(祖室) ; 선원의 가장 높은 자리로 수행인을 교화하고 참선을 지도하는 스님. 용화선원에서는 고(故) 전강대종사(田岡大宗師)를 조실스님으로 모시고 있다.
*간절(懇切 간절할•정성스런 간/정성스런•절박할 절) ①지성(至誠)스럽고 절실(切實)함 ②정성이나 마음 씀씀이가 더없이 정성스럽고 지극함 ③마음속에서 우러나와 바라는 정도가 매우 절실함.
*고구정녕(苦口叮嚀 괴로울 고/말할 구/신신당부할 정•정성스러울 정/간곡할 녕) : 입이 닳도록(입이 아프도록) 정성스럽고(叮) 간곡하게(嚀) 말씀하심(口).
*참선법(參禪法) ; ①선(禪) 수행을 하는 법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법.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법.
*산승(山僧) ; 스님이 자신을 겸손하게 일컫는 말.
*사부대중(四部大衆) ; 불문(佛門)에 있는 네 가지 제자. 곧 비구(比丘), 비구니(比丘尼), 우바새(優婆塞), 우바이(優婆夷)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참고] 우바새-upasaka의 음역. 속세에 있으면서 불교를 믿는 남자.(같은 말=靑信士,靑信男,信男,信士,居士,近事男,近善男,善宿男) 원래의 말뜻은 모시는 사람. 받들어 모시는 사람. 출가수행자를 모시고, 신세를 지므로 이렇게 말한다.
우바이-upasika의 음역. 속세에 있으면서 불교를 믿는 여자. (같은 말=靑信女,近事女,近善女,近宿女)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스승)으로부터 화두•공안(公案)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공안)을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공안 또는 화두(話頭)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방편(方便 방법·수단 방/편할 편) ; ①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일시적인 수단으로 설한 가르침.중생 구제를 위해 그 소질에 따라 임시로 행하는 편의적인 수단과 방법. 상황에 따른 일시적인 수단과 방법.
②교묘한 수단과 방법.
*경계(境界) ; ①대상,인식 대상, 여러 감각기관에 의한 지각의 대상, 인식이 미치는 범위 ②경지 ③상태 ④범위,영역
*육진(六塵) ; 색(色), 성(聲), 향(香), 미(味), 촉(觸), 법(法)의 육경(六境)과 같음. 이것은 마음을 더럽히므로 진(塵)이라 함.
*죄업(罪業) ; 자신과 남에게 해가 되는 그릇된 행위(身)와 말(口)과 생각(意). 과로움의 과보를 초래하는 악한 행위. 좋지 않은 결과의 원인이 되는 악한 행위.
*노잣돈(路資돈) ; ①먼 길을 오가는 데 드는 돈. ②죽은 사람이 저승길에 편히 가라고 상여 등에 꽂아 주는 돈.
*염라대왕(閻羅大王) : 죽어서 지옥에 떨어진 인간의 생전에 행한 선악(善惡)을 심판하여 벌은 주는 왕.
*확철대오(廓徹大悟) ; 큰 깨달음. 내가 나를 깨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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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싼또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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