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심 팔풍 경계대처'에 해당되는 글 31건

  1. 2015.03.09 §(세등10) 환(幻) / 순행보살(順行菩薩)과 역행보살(逆行菩薩) / 결제 때의 공부를 해제 때도 이어가야.
  2. 2015.01.12 §(112) ‘딴 생각[別念]’ 안됨 / 공부가 순일하게 된 때에 잘 다잡이 해야 / 참선은 바른 스승의 지도를 받아야 / 새옹지마 / 밝아지면 어두운 것은 찰나에 없어진다.
  3. 2015.01.06 §(616) (게송)남북동서무정착~ / 장판때 / (게송)이인유밀불수저~ / 수행자는 코뿔소의 뿔처럼 외롭게 지내라 / 자각(自覺) 각타(覺他) 각행원만(覺行圓滿)—수행자목표.
  4. 2014.07.08 §(455) (게송)수류상출몰~ / 정념(正念), 화두 놓치면 삿된 생각 / 증애심, 무연자비(無緣慈悲) / 탐진치의 불 / 아상을 승화해 세계를 한 식구로 만드는게 불법(佛法).
  5. 2014.06.19 §(246) 도고마성(道高魔盛) / 참선하는 사람은 그 '한 생각'을 무섭게 단속을 해야 / 자가철주(自家鐵柱) / (게송) 출가수도배~ / 도(道) 닦으면 다 출가(出家) 수도인.
  6. 2014.06.05 §(326) (게송) 역지즉노순지환~ / 환희마(歡喜魔), 번뇌마(煩惱魔) / (게송) 견색비간색~ .
  7. 2014.05.30 §(198) (게송) 득수반지미족기~ / ‘짜게 먹은 사람이 물을 켠다’ / ‘보소(寶所)가 재근(在近)이다’ / ‘물로써 물을 씻지 못할 곳을 향해서 눈을 부딪치라’
  8. 2014.05.28 §(198) (게송) 득지재심응재수~ / 일상생활이 바로 정진(精進)-번갯불에 콩 구어 먹는다 / 사바세계에 태어나야만 도를 이룰 수 있는 것이다 / 소신통과 대신통.
  9. 2014.03.30 §(521) (게송) 돈오심원개보장~ / 조실 스님 법문에 ‘참선(參禪)해서 내 마음자리를 깨닫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극히 간단하고 지극히 쉬운 것이다.’
  10. 2014.01.18 §(582) 선방에 나온 수행자라면 말을 많이 해서는 안 됩니다 / 입차문래(入此門來) 막존지해(莫存知解) / (게송) ‘종조난설인장단~’

§(세등10) 환(幻) / 순행보살(順行菩薩)과 역행보살(逆行菩薩) / 결제 때의 공부를 해제 때도 이어가야.

 

착하고 거룩하고 위대한 모습으로 나타난 화신(化身)은 순행보살(順行菩薩)이고, 마왕 파순이나 조달이나 나찰 귀신으로 나타난 불보살은 역행보살(逆行菩薩)인 것입니다. 순행보살 보다는 오히려 역행보살로 나타나 가지고 나의 육체와 정신에 자극을 주고 충격을 주어서 대발심(大發心), 대분심(大憤心)을 일으키게 해 준 경우가 훨씬 더 효과적인 것입니다.

 

마음 하나를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서, 불보살의 화현을 원수를 만들고 자기는 따라서 삼악도(三惡途)에 떨어지느냐, 금생에 대도(大道)를 성취해서 부처님의 혜명(慧命)을 이을 수 있는 대자유인이 되느냐는 내 마음 하나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고봉 선사(高峰禪師)가 확철대오를 해서 부처님의 혜명을 잇기에는 3년 동안의 피나는 정진, 죽음을 걸고 용맹정진(勇猛精進)을 해서 3년이 하루 같이 지낸 데에서 마침내 대도를 성취하신 것입니다.

 

**송담스님(세등선원No.10)—병진년 동안거 해제 법어(77.1.17)에서. (세등10)

 

약 11분.

 

공부를 해 지어 가는 가운데 부처님이 나타난다든지, 관세음보살 모습이 나타난다든지, 어떠한 신기한 것이 나타난다 하더라도 그것은 환(幻)입니다.

실상(實相)이 아니라 환이기 때문에 그런 것은 두 번 다시 눈여겨볼 필요도 없고, 생각을 거기다가 쏟을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어떠한 것이 나타나건, 어떠한 것이 보이건 ‘이뭣고?’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이렇게 자기 본참화두(本參話頭)로 돌아와서, 들고 또 들고 이렇게 간절히 공부를 지어 간다고 하면은, 시비에 걸려서 속상할 까닭도 없고, 계행(戒行)에 어긋나는 일이 일어날 까닭도 없는 것이고, 그 가운데에 그 화두를 들고 또 들고 단속하는 가운데에 무량겁 업장(業障)은 거기에서 소멸이 돼.

 

앞으로 그렇게 공부를 지어 가는 사람에게 무슨 삼재팔난(難)이 있을 까닭이 있습니까? 있을 경우는 불보살(佛菩薩)의 화현(化現)이 나타난 경우가 있습니다.

 

불보살은 화현으로 나타날 때에 마냥 거룩한 모습으로만 나타나는게 아닙니다.

나찰(刹) 귀신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마왕(魔王) 파순(波旬)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조달(調達)이와 같은 그러한 무도(無道)한 사람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그래 가지고 수행인으로 하여금 용기를 북돋게 하고, 신심(信心)을 일어나게 하고, 분심(憤心)을 일어나게 해서 해태(怠)로부터 벗어나고 하루빨리 보다 더 크게 대도를 성취할 수 있도록 그렇게 화현하신 수가 너무 많습니다.

 

착하고 거룩하고 위대한 모습으로 나타난 화신(化身)은 순행보살(順行菩薩)이고, 마왕 파순이나 조달이나 나찰 귀신으로 나타난 불보살은 역행보살(逆行菩薩)인 것입니다.

순행보살 보다는 오히려 역행보살로 나타나 가지고 나의 육체와 정신에 자극을 주고 충격을 주어서 대발심(大發心), 대분심(大憤心)을 일으키게 해 준 경우가 훨씬 더 효과적인 것입니다.

 

바른 신심이 있는 사람은 거기에서 정말 발심을 해서 대도를 성취하는 것이고, 바른 신심이 없는 사람은 거기에서 중생심, 탐진치 삼독심이 일어나 가지고 그 불보살이 주는 약을 바로 소화를 시키지 못하고 꺼꾸러져 가지고 무간(無間) 악도(惡途)에 떨어지는 것입니다.

 

어떠한 것이 역행보살로 나타난... (녹음 끊김) 불보살의 역행으로 나타난 화신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부처님 인행(因行) 시에 나찰 귀신이 나타나 가지고 부처님을 깨닫게 해 주신 열반경(涅槃經)의 설화를 잘 아실 것이고, 조달이가 10생(十生)을 따라다니면서 부처님을 음으로 양으로 직접 간접으로 부처님을 해롭게 함으로 해서 부처님으로 하여금 보다 더 빨리, 보다 더 크게 대도를 성취할 수 있도록 해주신 것이 바로 조달입니다.

 

조달이는 역행으로 나타나신 불보살의 화현인 것입니다.

 

만일에 부처님이 나찰 귀신이라 해 가지고 미워하고 배격을 함으로 해서 법문을 듣지 아니 했다든지, 10생을 따라다니면서 해꼬자하는 조달이를 미워하고 원수로서 상대를 하셨다면은 부처님은 대도를 성취하시기 커녕은 악도에 떨어질 길 밖에는 없을 것입니다.

 

다행히 부처님은 그 나찰 귀신에게 몸을 바쳤어.

‘제행무상(諸行無常) 시생멸법(是生滅法) 생멸멸이(生滅滅已) 적멸위락(寂滅爲樂)이라’ 이 반 구절을 듣기 위해서 몸을 바치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해서 대도를 성취하신 것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가정에, 여러분 이웃에 여러분을 험담하고, 여러분을 해롭게 하고, 여러분의 돈을 가져다 쓰고 갚지 아니하고, 갖은 방법으로 여러분을 해꼬자한 사람을 원수로서 상대하지 말고 그것을 계기로 해서 더욱 발심을 하시고 신심을 내서 ‘이뭣고?’를 하십시오.

 

그러면은 여러분을 해꼬자한 그 마구니들은 마구니가 아니라 불보살의 화현으로서 여러분의 훌륭한 스승이 되어 줄 것입니다.

그러한 마음가짐으로 나간다면은 이 세상에 나의 원수는 없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나를 채찍질해 주는 선지식(善知識)이요, 불보살 화현이 되는 것입니다.

 

마음 하나를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서, 모든 사람을 - 불보살의 화현을 원수를 만들고 자기는 따라서 삼악도(三惡途)에 떨어지느냐, 금생에 대도(大道)를 성취해서 부처님의 혜명(慧命)을 이을 수 있는 대자유인이 되느냐는 내 마음 하나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오늘은 석 달 안거가 끝나는 해제일로서 앞으로 석 달 동안은 산철이 됩니다.

석 달 동안 외출을 금지하고 결제(結制)를 하는 것은 앞으로 돌아오는 자유롭게 지내는 산철 동안을 철저히 공부가 잘되게 하기 위한 기본 수련기간입니다.

 

석 달 동안 외출을 끊고 구속된 제한된 규칙 내에서 정진을 한 그 기초 공부를 자유기간 동안에 훌륭히 활용을 할 수 있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의 도업(道業)을 하루속히 성취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해제(解制)했다'고 해서 여기저기 싸다니면서 구경으로 한 철을 보내고, 히히닥거리고 시비(是非)로써 세월을 보낸다고 하면은 그동안 애써서 석 달 동안 닦아 놓은 공부가 다시 쑥대밭이 되고,

 

그렇게 해서 쪼끔 병이 나을 듯 하다가 함부로 조리(調理)를 잘못해 가지고 팍! 악화가 되고, 또 그다음 석 달 동안 쪼끔 치료를 해서 나을 성 하다가 또 다시 해제가 돌아오면 조리를 잘못해 가지고 팍! 악화가 되고, 그러다가 종내(乃) 병을 낫으지를 못하고 한(恨) 많은 일생을 마치는 그런 환자가 있다면은, 여러분은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하겠지마는,

 

결제 동안에 쪼끔 공부를 애써서 하다가 해제가 되면은 뿔뿔거리고 돌아다니고, 시비와 탐진치 삼독을 불태우면서 그럭저럭 지내다가 또 그다음 결제가 돌아오면 또 결제에 앉어서 공부한 척 하다가, 이러한 식으로 공부해 가지고 도업(道業)을 성취한 선지식은 없습니다.

 

고봉 선사(高峰禪師)가 확철대오를 해서 부처님의 혜명을 잇기에는 3년 동안의 피나는 정진, 죽음을 걸고 용맹정진(勇猛精進)을 해서 3년이 하루 같이 지낸 데에서 마침내 대도를 성취하신 것입니다.

 

여기에 모이신 수좌(首座) 스님네들 그리고 청신사, 청신녀 여러분. 오늘을 기해서 더욱 마음을 가다듬어서 열심히 정진을 하셔서 금생에 결정코 대도를 성취하시기를 간절히 빌고 오늘은 이만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금생(今生)에 약불종사어(若不從斯語)하면  후세당연한만단(後世當然恨萬端)하리라

나무~아미타불~

 

금생에 이렇게 말씀해 드린 이 말씀을 명심해서 듣지 아니한다면은 후생(後生)에 지옥고(地獄苦)에—지옥에 떨어져서 하루에 만 번 죽고, 만 번 살아나서 한없는 고통을 받을 때 그때 후회한들 무슨 소용 있겠습니까.(49분38초~60분16초)(끝)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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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幻) ; ①허깨비. 모든 사물은 여러 가지 인연(因緣)이 모여서 생긴 것으로 실체가 없는 것에 비유함.

환(幻)을 실(實)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중생의 미혹한 생각임. 환(幻)을 무(無)라고 생각하는 것은 이승(二乘-聲聞,緣覺)의 공(空)에 얽매인 견해, 단공(但空-단지 空만을 집착하는 것)임.

환(幻)은 또 화(化)와 거의 같은 뜻이므로 환화(幻化), 꿈과 비슷하므로 환몽(幻夢)•몽환(夢幻)이라고도 한다.

②신기루, 아지랑이 같은 것.

*실상(實相) ; ①모든 현상의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②궁극적인 진리. 변하지 않는 진리. ③집착을 떠난 청정한 성품.

*본참화두(本參話頭) ; 본참공안(本參公案).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계행(戒行) ; ①계(戒)를 지켜 수행하는 것. ②계율과 도덕.

*삼재팔난(三災八難) ; 사람의 태어난 해(十二支)에 따라 9년 주기로 돌아온다는 3가지 재난과 깨달음으로 향하는 청정한 수행에 방해가 되는 여덟 가지 난관.

삼재(三災) : ①대삼재(大三災)라 하여 물(水災), 불(火災), 바람(風災)에 의한 재난을 의미하기도 하고,

②도병(刀兵-서로 흉기를 갖고 살해함), 기근(饑饉-기근이 일어남), 질역(疾疫-큰병이 유행함)을 뜻하기도 하며,

③자연 현상으로 입은 세 가지 재해(災害) 즉 곡식이 익지 않는 기(飢), 채소가 익지 않는 근(饉), 과일이 익지 않는 황(荒)을 가리키기도 한다.

삼재의 첫해를 입삼재(入三災, 들삼재)이라고 하며 두 번째 해는 침삼재(枕三災, 눌삼재·앉은삼재)를, 마지막 해를 출삼재(出三災, 날삼재)라고 한다.

 

팔난(八難) : 깨달음으로 향하는 청정한 수행에 방해가 되는 여덟 가지 난관.

①지옥(地獄). ②아귀(餓鬼). ③축생(畜生). ④장수천(長壽天). ⑤변지(邊地). ⑥맹롱음아(盲聾瘖瘂). ⑦세지변총(世智辯聰). ⑧불전불후(佛前佛後).

①,②,③은 고통에 시달려 수행할 수 없기 때문,

④는 색계(色界)·무색계(無色界)의 여러 천(天)으로, 수명이 길고 편안하여 불법(佛法)을 구하지 않기 때문,

⑤는 북구로주(北俱盧洲)로서, 사주(四洲) 가운데 가장 살기 좋은 곳이기 때문,

⑥은 눈이 멀고 귀먹고 말 못하기 때문,

⑦은 세속의 지혜는 있어도 그릇된 견해에 빠져 바른 가르침을 구하지 않기 때문,

⑧은 가르침을 설할 부처님이 안 계시기 때문임.

*화현(化現) ; 부처님이나 보살이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각(各) 중생의 소질에 따라 여러 가지로 모습을 바꾸어 이 세상에 나타나는 것. 화신(化身)이라고도 한다.

*나찰(羅刹) : 신속하게 땅이나 공중으로 다니면서 사람을 잡아 먹는다는 무서운 악귀(惡鬼). 나중에 불교의 수호신(守護神)이 되었다.

*마왕(魔王) 파순(波旬) ; 천마(天魔). 욕계(欲界)의 제육천(第六天) 곧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의 임금은 곧 마왕(魔王)이니, 그 이름이 파순(波旬)이다。그는 항상 불법을 파괴하려고 애쓰고 있다.

그것은 불도를 공부하는 이가 있으면 그의 궁전이 흔들리기 때문이라고 한다。그러므로 누구나 불법을 공부하겠다는 생각을 낼 때에 곧 천마가 따르는 것이다。다시 말하면 한 생각 일어나는 그것이 곧 천마다.

*조달(調達) ; 제바달다(提婆達多 산스크리트어, 팔리어 devadatta의 음사).

부처님의 사촌 동생으로, 출가하여 그의 제자가 됨. 부처님에게 승단을 물려줄 것을 청하여 거절당하자 500여 명의 비구를 규합하여 승단을 이탈함. 여러 번 부처님을 살해하려다 그 과보로 살아서 지옥에 떨어졌다고 한다.

*무도(無道)이나 행동 인간으로서 지켜야  도리 어긋나서 막됨.

*신심(信心) : ‘내가 바로 부처다’ 따라서 부처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요, 일체처 일체시에 언제나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공, 이 소소영령한 바로 이놈에 즉해서 화두를 거각함으로써 거기에서 자성불(自性佛)을 철견을 해야 한다는 믿음. ‘올바르게 열심히 참선을 하면 나도 깨달을 수 있다’는 믿음.

*분심(憤心) : 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도인들은 진즉 확철대오를 해서 중생 제도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왜 여태까지 일대사를 해결 못하고 생사윤회를 하고 있는가. 내가 이래 가지고 어찌 방일하게 지낼 수 있겠는가.

속에서부터 넘쳐 흐르는 대분심이 있어야. 분심이 있어야 용기가 나는 것이다.

*해태(懈怠 게으를 해,게으를 태) : 게으름(행동이 느리고 움직이거나 일하기를 싫어하는 태도나 버릇).

*순행(順行) ; 거스르지 아니하고 행함.

*역행(逆行) ; 보통의 방향과 반대 방향으로 거슬러 나아감.

*역행보살(逆行菩薩) ; 그릇된 짓의 나쁜 과보를 남에게 보여 주기 위해 일부러 그릇된 짓을 하는 보살.

*무간(無間) ; ①곧. 즉시. 끊임없이. ②무간업(無間業)의 준말. ③무간지옥(無間地獄)의 준말.

*악도(惡道) ; 악한 짓을 한 중생이 그 과보로 받는다고 하는 괴로움의 생존. 지옥•아귀•축생 등의 세계. 삼악도(三惡道).

*인행(因行) ; ①수행. (부처가 되기 위한) 인(因)이 되는 행(行). 깨달음을 여는 근본이 된다.

②수행에 방해가 되는 외부의 요인에 흔들리지 아니하고 오롯이 수행정진하는 것. 보살이 인행(因行)을 닦아서 깨달음의 과보(果報)를 얻는 것을 수인감과(修因感果)라고 한다.

*제행무상(諸行無常) 시생멸법(是生滅法) 생멸멸이(生滅滅已) 적멸위락(寂滅爲樂) ; 제행무상게(諸行無常偈), 설산게(雪山偈)라고 한다.

번역하면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무상하니, 이것이 나고 죽는 법이로다. 생과 멸이 다하면은(생멸심이 끊어지면), 적멸이 낙이 되느니라.’

열반경에 부처님 과거 인행(因行) 때에 설산에서 설산동자로 고행을 하고 계실 때, 앞의 두 구절 「제행무상(諸行無常) 시생멸법(是生滅法)」을 들은 후에, 나머지 게송을 듣기 위해 나찰귀신으로 변한 제석천왕(帝釋天王)에게 몸을 바친 전생담에서 나온 게송.

*해꼬자 ; 해꼬지. 해코지(害코지)—남을 해치고자 하는 짓.

*마구니 ; 마(魔).  [범] mara 음을 따라 마라(魔羅)라 하고, 줄여서 마(魔)라고만 한다. 장애자(障礙者)• 살자(殺者)• 악자(惡者)라 번역.

목숨을 빼앗고 착한 일을 방해하며 모든 것을 파괴하는 악마를 말한다。그러나  「마」는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에서 생기는 것이다.

*선지식(善知識) ; ①정직하고 덕(德)이 있는 벗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말하여 다른 이로 하여금 고통의 세계에서 벗어나 이상경(理想境)에 이르게 하는 이.

②남녀•노소•귀천을 가리지 않고 모두 불연(佛緣)을 맺게 하는 사람.

③지식(知識)•선우(善友)•친우(親友)•선친우(善親友)•승우(勝友)라고도 함.

*혜명(慧命) : 지혜를 생명에 비유한 말.

*산철(散철) ; 본철(本철-하안거,동안거)가 아닌 시기.

*결제(結制 맺을 결,만들•법도 제) ; 참선 수행하는 안거(安居)에 들어감. 하안거는 음력 4월 15일에 결제하며, 동안거는 음력 10월 15일에 결제한다. 

*해제(解制 풀 해,만들•법도 제) ; ①(안거)를 마침. ②재계(齋戒)하던 것을 그만두고 풂.

*도업(道業) ; 도(道)는 깨달음. 업(業)은 영위(營爲-일을 계획하여 꾸려 나감). 불도(佛道)의 수행. 진리의 실천.

*시비(是非) ; ①옳으니 그르니 하는 말다툼. ②이러니저러니 좋지 않게 트집을 잡아서 말함. ③옳고 그름.

*조리(調理)건강 회복되도록   보살핌.

*종내(乃) ; ①까지 내내. ②마지막 드디어또는 끝판 가서는.

*고봉 선사(高峰禪師) ; 분류 ‘고봉스님(선요)’ 참고.

*용맹정진(勇猛精進) ; 두려움을 모르며 기운차고 씩씩한 그리고 견고한 의지로 한순간도 불방일(不放逸)하는, 열심으로 노력하는 정진.

*수좌(首座) ; ①선원(禪院)에서 좌선하는 스님 ②수행 기간이 길고 덕이 높아, 모임에서 맨 윗자리에 앉는 스님 ③선원에서 좌선하는 스님들을 지도하고 단속하는 스님.

*(게송) ‘금생약불종사어 후세당연한만단’ ;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 ‘자경문(自警文)’ 게송.

 

Posted by 닥공닥정
하심 팔풍 경계대처2015. 1. 12. 13:25

§(112) ‘딴 생각[別念]’ 안됨 / 공부가 순일하게 된 때에 잘 다잡이 해야 / 참선은 바른 스승의 지도를 받아야 / 새옹지마 / 밝아지면 어두운 것은 찰나에 없어진다.

 

조금도 ‘딴 생각[別念]’을 해서는 아니됩니다. 겁을 내지도 말고, 걱정도 내지도 말고, 좋아하지도 말고, 다못 자기의 본참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생각 ‘이뭣고?’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그뿐인 것입니다.

 

참선을 하게 되면 첫째, 지혜의 눈을 뜨게 되거든. 지혜의 눈을 떠서 깨닫기 이전에 참선을 시작할 때부터서 벌써 지혜인이 되는 것이여. 참선을 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감정적인 그러한 생각이 자연히 쉬어지기 때문에, 어리석은 생각이 쉬어지면 그것이 지혜로운 거여. 꾸정물이 따로 있고, 말간 물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그 찌꺼기가 가라앉으면 맑아지거든.

 

밝은 것과 어두운 것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밝아졌다 하면은 어두운 것은 찰나에 그냥 없어지는 것이지, 밝은 것이 오니까 어두운 것이 그냥 꼼짝을 못하고 저 마루 밑구멍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에요.

 

**송담스님(No.112)—79년 11월 관음재일 법어(79.11.24) (용112)

 

(1) 약 19분.

(2) 약 18분.

 

(1)------------------

 

여러 가지 공안이 있지만 반드시 선지식(善知識)으로부터 지도 받은 한 공안에 일여(一如)하게 참구(參究)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처음에는 곧 잘되어 갑니다. ‘이대로 해 가면 얼마 안 가면은 득력(得力)을 할 수 있겠거니’ 이리 생각하고,

한 철, 두 철을 지내다보면 영 옛날보다도 훨씬 더 공부가 잘 안되고 화두가 잘 안 들리고, 번뇌 망상이 더 잘 퍼일어나고 영 자리가 잡히지를 않고 이렇게 해서 애를 먹게 됩니다.

 

그러한 경우라 하더라도 조금도 번뇌심을 내지 말고 심호흡을 하면서 착실히, 착실히 공부를 다져나가면 그렇게 해서 한 고비를 넘기면은 다시 또 수월하게 공부가 되어가는 것입니다.

 

수월하게 공부가 화두가 잘 일여하게 들리고 잘되어간다 하더라도 조금도 기뻐하는 생각을 내지 말 것입니다.

기뻐하는 생각 내면 벌써 그것은 이미 화두가 아니기 때문에, 기뻐하는 그러한 번뇌심에 끌려들어가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기뻐하지도 말고 또 잘 안된다고 해서 번뇌심(煩惱心)도 내지 말 것입니다. 이것이 공부를 지어나가는데 있어서 아주 요긴한 것이 되는 것입니다.

 

공부를 잘 애를 써서 밀밀면면(密密綿綿)하게 성성적적(惺惺寂寂)하게 공부를 다잽이를 해나가면 화두를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들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그렇게 들려고 해도 금방 도망가고, 금방 딴 생각이 들어오고 그랬던 것이,

자꾸자꾸 해가면은 나중에는 헐려고 안 해도 화두가 떠억 들어지게 되면서 시간이 한 시간, 두 시간이 언제 지내간지 모르게 시간이 지내가고,

 

그때는 다리가 저린 것도 없고, 몸이 괴로운 것도 없고, 가슴이 답답한 것도 없고, 정신도 깨끗하고 자기가 지금 어디에 앉아있다고 하는 그것마저도 모르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의 몸뚱이마저도 의식을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무어라고 표현할 수 없이 깨끗하고 조용하고 편안하고 싱그럽고 이것은 말로써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서 화두는 그런 가운데 너무 조용하고, 너무 깨끗하고, 너무 편안해서, 까딱하면 화두를 그때 망각(却)을 하는 수가 있습니다. 절대로 그러한 경지에서 화두를 망각해서는 안됩니다.

그렇게 고요하고 깨끗하고 맑고 한 그 가운데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이뭣고?’ 알 수 없는 의단(疑團)이 깨끗하게 독로(獨露)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곳에서 잠깐이라도 화두를 놓쳐버리고 ‘아! 좋구나. 이러한 경지로서 계속해서 나갔으면, 이럴 때 어떤 선지식이 툭 깨닫게 해주셨으면, 이러다가 빨리 깨달았으면’ 이러한 생각을 해서는 아니됩니다.

‘이러다가 내가 까딱하면 미치면 어찌할고’ 별별 쓸데없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중요한 고비에서 그 천길만길 되는 길을 간신히 간신히 올라가 가지고, 발 한번 삐끗해 가지고 천길만길 낭떠러지에 떨어지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조금도 ‘딴 생각[別念]’을 해서는 아니됩니다. 겁을 내지도 말고, 걱정도 내지도 말고, 좋아하지도 말고, 다못 알 수 없는 생각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그뿐인 것입니다.

 

 

이러한 경지에서 정진을 하면은 옆에 사람들도 다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아하! 저이가 지금 공부가 순일(純一)하게 되어가는구나’ 알게 되기 때문에 대중 가운데에 그렇게 공부가 되어가는 사람이 있으면 입승(立繩) 스님을 비롯해서 좌우에서 서로서로 잘 보호를 해줘야 합니다.

 

대중 가운데에는 혹 ‘지가 공부한 척 하고 그런다’고 아주 뒤에서 수근수근하고 이런 경우도 있습니다만은 이것은 남의 일이 아닙니다. 내가 언제 그렇게 공부가 또 순일하게 되어 갈 때가 있을런지를 모르는 것입니다.

이렇게 공부가 순일하게 되어 갈 때 주위에서 잘 보호를 해주고, 자기도 그럴 때에 아주 조심스럽게 그 공부를 잘 보호해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하루 이틀 사흘 나흘 닷새 엿새 이렇게 나가면 나중에는 일어서도 화두가 고대로 있고, 밥을 먹을 때도 화두가 고대로 있고, 똥을 눌 때도 고대로 있고,

천만 명이 우글거리는 시장 속에 들어가도 조금도 화두가 흐트러지지를 아니하고, 딴 생각을 일부러 좀 할려고 해도 딴 생각이 되지를 않고 이러한 경지에까지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거기에서 머지않아서 칠통(桶)을 타파(打破)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공부가 그렇게 순일하게 된 때에 잘 다잡이를 해야지,

그때에 조심성 없이 또 좌우에서 방해를 친다든지 보호를 안 해가지고 그러한 경지(地)가 깨져버리면 나중에는 1년, 2년, 3년을 애를 써도 여간해서 다시 또 그러한 경지가 돌아오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그래서 반드시 여법(如法)하게 알뜰히 정진을 하면 누구라도 반드시 그러한 경지가 오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가 오면 사람에 따라서는 가만히 앉았어도 ‘아, 지금 조계사에 어떠한 일이 일어나는구나. 선학원에 어떤 큰스님이 왔구나. 아, 어디 절에서는 누가 죽었구나’ 이런 것이 환히 보이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 ‘내일, 아하 누가 오겠구나’ 그런 것도 환히 알아지기도 하고.

 

그러나 이것이 설사 무엇이 알아지고, 무엇이 여기 앉아서 몇백 리 밖에 것이 환히 보이고 한다고 해서 그것이 공부가 잘되어 간다고 생각해서는 아니됩니다.

 

이건 너무 식(識)이 맑아지고 깨끗해지니까 그런 것이 혹 보이는 수가 있습니다. 이러한 경우를 능엄경(楞嚴經)에 부처님께서는 오십 가지에 대한 그런 경지를 낱낱이 자상하게 설명을 해 놓으셨습니다.

 

그러한 경지가 자기에게 나타났을 때에 그거 나타난다고 해서 좋은 것도 아닌 것이고 또 꼭 그것을 나쁘다고 할 것이 없습니다.

그러한 것이 나타남으로써 ‘아! 그이가 공부가 잘한다’ 이렇게 말할 수 없습니다. 또 그러한 신기한 경지가 나타나지 아니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또 공부를 잘못한 것도 아닙니다.

 

요(要)는 사람에 따라서 혹 나타나기도 하고, 안 나타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떠한 사람이 그런 것이 나타나느냐? 능엄경에 말씀하시기를 평소에 공부할 때 ‘그런 것이 좀 나타났으면’하고 바램을 가졌던 사람은 그런 것이 혹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면 그런 것이 이미 나타났을 때에는 어떻게 대처해 나가느냐?

‘조금도 두려워하지도 말고, 싫어하지도 말고, 좋아하지도 말고, 그냥 고대로 놔 버리고서 자기의 본참 수행을 여법하게만 해가면 그것이 조금도 해로울 것도 말 것도 없는 것이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화두를 들고 참선하는 사람은 혹 그런 것이 보이거나 나타나거나 하더라도 조금도 좋아하거나, 겁을 내거나, 그것을 물리치려고 하지를 말고 그냥 고대로 나둬 버려.

전혀 대꾸를 말고 다못 심호흡을 하면서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또는 이뭣고를 하신 분은 ‘이뭣고?’ 무(無)자 화두를 하신 분은 ‘어째서 무라 했는고?’ 이렇게만 나아가면 그런 것이 아무 병이 될 것이 없습니다.

 

그렇게 하지를 못하고 그런 나타나는 것을 보고 신기하고 기뻐서 자꾸 거기에다 관심을 쏟고 그것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그 사람은 벌써 마구니[魔]에 끌려가게 되어가지고, 잘되어봤자 점쟁이나 무당 밖에는 아니된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누구를 만나면 ‘아, 너 석 달 후에 죽겠다. 석 달 후에 니 남편이 죽겠다’ 이런 겁나는 소리를 푹푹 합니다. 해가지고 아! 정말 석 달 뒤에 보면, 딱 딱 들어맞거든.

 

그러니까 모르는 사람들은 그 사람이 큰 도인이요, 도사라고 그 사람 앞에 벌벌 메고,

‘돈을 내라’하면 돈을 내고, ‘쌀을 내라’하면 쌀을 내고, ‘절을 지으라’하면 절을 지고, ‘큰 대종을 시주해라’하면 시주하고, 아주 그 사람 앞에는 벌벌 멥니다, 아주. ‘목숨까지 바치라’고 하면 바칠 정도로 그럽니다.

 

그래 가지고 그 사람은 자기 생각에도 그런 것을 잘 알고, 신도들이나 사람들이 그 사람 앞에는 장관도 무릎을 꿇고 벌벌 떨고, 장군들도 그 사람 앞에는 아주 벌벌 떱니다.

그래 가지고 톡톡히 도인(道人) 노릇을 하고, 많은 사람을 모다 제자로 삼아가지고 모다 그런 사람 가끔 있습니다, 있는데.

 

그래 가지고 그 사람이 끝까지 명예도 탐하지 아니하고, 재산도 탐하지 아니하고, 깨끗이 계율을 지키면서 그리 지내는 사람은, 그리고 그 사람 자신도 불법을 믿고 많은 사람에게 보시를 하게 하고 착한 일을 하도록 이렇게 지내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별것이 없지만은, 거기서 처음에는 그렇게 지내다가 차츰차츰 욕심이 생기고, 삿된 생각에 불이 붙어가지고 못된 짓을 계속하게 되면 머지않아서 깜깜해져가지고 그전에는 그렇게 환히 다 보이고 알았던 것이 전혀 몰라지게 됩니다.

 

그래 가지고 혹 맞기도 하고, 혹 안 맞기도 하고 이렇게 됩니다.

 

그래도 계속 사람들이 자기를 따라다니고 묻고 그러는데, 인자 ‘내가 몰라졌다’고 하기가 챙피하니까,

계속 아는 척을 하고 큰소리를 치다가 영 안 맞는 소리를 해가지고 망신(身)을 하고, 남을 갖다가 망하게 만들고, 나중에는 남한테 맞아 죽거나, 쇠고랑을 차게 됩니다.

 

그이가 도인인 줄 알고 따라다니는 제자들도 같이 망신을 하고, 같이 쇠고랑을 차고 그렇게 되고, 죽어서는 물어 볼 것도 없이 무간지옥(無間地獄)에 쏜살같이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다 그런 사람들이 염불을 하거나 기도를 하거나 또는 주력을 하거나 때로는 참선을 자기 나름대로는 목숨을 바쳐서 했던 사람들이 대부분 많습니다.

그러다가 한 생각 잘못해 가지고 그러한 외도 마구니가 되어가지고 자기도 망하고, 남도 망하고, 불법까지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참선은 바른 스승의 지도를 받고 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눈으로 보고 가는 길도 처음 가는 길은 가다가 보면 두 갈래, 세 갈래, 네 갈래 길이 나오는데 어느 길로 가야 할것인지 어떻게 알 것이냐?

 

그럴 때 길을 잘 아는 사람한테 물어서 가야 하는데, 가다가 길을 물어보면 요새는 자기도 잘 모르면서 ‘이리 가시오. 저리 가시오’ 대고 일러줘 버린다 그말이여.

‘나는 잘 모릅니다’ 이러면 될 텐데 ‘모른다’고 하기가 창피하거든. 그러니까 알지도 못하면서 ‘이리 가시오. 저리 가시오’  그 사람은 뭣도 모르고 한참 가다보면 얼토당토않는 데에 도착을 하게 된다.

 

눈으로 보고 가는 길도 그렇거든, 눈으로 보이지 아니한 마음으로 닦아가는 이 참선법에 있어서 너도 모르고 나도 모르고 피차 모르는 길을 가는데 바른 스승의 지도 없이 어떻게 바르게 해 갈 수가 있느냐 그말이여. 

 

해 가다가, 옛날에 맛보지 못한 고요하고 맑고 깨끗하고 싱그러운 그런 경지가 나타나면 천하없이도 ‘아! 참 좋구나. 바로 이것이 바로 그 경지인가 보다.’

 

그러다가 무엇이 이상한 신기한 경지가 나타나서 방안에 앉아서도 벽 밖에가 환히 보이고, 큰 산이 막혀 있어도 산너머 일이 환히 보이고, 이백 리 삼백 리 떨어진 서울이나 부산의 일이 환히 보이고 하면 누가 거기에서 안 미칠 사람이 누가 있느냐. ‘야! 내가 이제 도통(道通)을 했나보다’

 

세상 사람들은 아는 사람한테는 기가 맥히거든, 훤히 아는 사람한테는.

20년 30년 불법을 믿고 다녔던 사람도 답답하면 무당 점쟁이한테 쫓아가서 여지없이 한마디만 탁 맞혔다하면,

그때부터서는 불법(佛法)은 저 꽁무니로 돌려 버리고 이제부터서는 무당을 조실스님으로 모시고, 무당 말이라고 하면 천하없이도 절대 복종을 하고.

 

알아맞혀 가지고 설사 무당 말대로 무엇이 잘되고, 못되고 그렇게 해서 자기의 팔자(八字)가 고쳐지는 것이 아닙니다. 전혀 어떻게 될지 몰라도 자기가 지은 업(業)이 있으면 잘되기도 하고, 못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미리 석 달 전이나, 넉 달 전에 미리 알았다고 해서 자기의 업이 면(免)해지지를 않습니다.(9분50초~28분8초)

 

 

 

 

 

(2)------------------

 

어떤 사람이 그 관상(相)을 보니까 호랭이한테 호식(食)을 당할 그런 팔자다 그말이여.

그러면은 언제쯤 호랭이한테 물려가겠느냐? 자세히 사주(四柱)를 봐가지고 뽑아보니까 몇살 때 아무 날 아무 시에 호랭이에 물어가겠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되겠느냐? 방안에다가 큰 항아리를 갖다놓고 그 항아리 안에 탁 들어앉았고, 온 마을 사람들을 갖다가 수백 명을 초청을 해서 몇 겹으로 싸고 장사(士)를 시켜서 그 밖으로 하고,

또 온 마을에 있는 소를 갖다가 빙 둘러서 다 소로 갖다가 담을 치고 이리해가지고는 모닥불을 피면서 호랑이 범접(接)을 못하게 밤새 지켰다 그말이여.

 

그런데, 그렇게 하고서 날이 샌 다음에 항아리 뚜껑을 열어보니까 아! 처녀가 죽어갔고 있다 그말이여.

 

그 이상하거든. 그래서 보니까 귀에다가 귀 파는 귀후지개를 갖다가 귀에다 꽂고는 죽었다 그말이여. 그래서 그 귀후지개를 가만히 보니까 호랭이 뼉다구로 깎아서 만든 귀후지개였다 그말이여.

그래서 귀를 파다가 잘못해 가지고 귀창이 터져서 죽었는데, 호랭이 뼉다구에 찔려서 죽었다.

 

호랭이한테 물려갈 업을 지은 사람은 아무리 몇백 명을 동원을 해서 막고, 항아리 속에다 담아 놔도 결국은 호랭이 뼉다구에 찔려서 죽는다.

이건 하나의 일화에 지나지 못하지만 그래서 ‘독안에 들어가도 자기의 업은 면하지를 못한다’ 이런 속담도 있습니다.

 

 

점쟁이한테 가서 아무리 미리 합격을 할 것이... (녹음 끊김)

실력을 양성을 하고 자기의 실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마음을 안정하는 법을 알아가지고,

시험장에 나가서 따악 긴장을 풀고서 초조한 마음, 불안한 마음 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시험을 볼 수 있는 그러한 방법을 어디 가서 묻는다면 좋은 일이지만.

 

그것이 중요하거든. 시험을 보러가기 전에 너무 전날 한 장이라도 더 본다고 잠을 설치지 말 것이며,

시험 볼라면은 원기를 회복해야 한다고 잔뜩 고기를 갖다가 삶아 먹여가지고는 배탈이 나가지고 그런 일이 없어야 하는 것입니다.

음식 조심해야 하고 또 ‘잘 봐야 한다. 잘 봐야 한다’고 자꾸 족치면 아니되는 것입니다. 오히려 더 못쓰는 것입니다

 

인자 니가 그동안 열심히 공부를 했으니 그저 편안한 마음으로 부담없이 가서 시험을 보도록 해야지,

‘이제 너는 떨어지면 너는 인자 그만이여, 인자’ 자꾸 족치거든 귀에다 대고. 그러면 더 시험을 못 볼 것이 아니냐 그말이여.

 

그리고 일러줄 것은 「심호흡을 하는 법」을 알아야 됩니다, 학생이.

시험장에 들어가기 전에 부터서 계속 단전호흡을 하다가, 시험장에 들어가서 책상에 앉아서도 계속 허리를 쭉 펴고 심호흡을 계속하면서 해야 합니다.

 

그러면은 그 가슴이 두근두근 두근두근하고 그냥 그 초조하고 불안하고 손이 떨리고 한 거—이거 시험을 봐본 사람은 다 아실 것입니다만은 심호흡을 해야 그 불안한 생각이 이렇게 안정이 되는 것이여.

 

마음만 차분하고 안정이 되고 평탄한 마음으로 시험을 보게 되면 자기 알고 있는 것은 하나도 빼놓지 않고 죽죽죽죽.. 써나가거든. 이 마음이 긴장을 하고 불안하고 초조하고 하면 아는 것도 못쓰게 되거든.

 

무당한테 가봤자 그것은 없애주들 못한다 그말이여. 그러헌 것을 알아가지고, 자기의 실력을 발휘를 하고 자기가 있는 실력껏 쓰면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그 시험에 우선 봐서는 꼭 합격하는 것이 좋지만은 일생을 두고 볼 때에는 그 시험에 꼭 합격했다고 해서만이 좋은 것이 아닌 것입니다.

거기에 합격을 했기 때문에 오히려 결과적으로는 안 좋게 되는 수도 있는 것이고, 그때는 그 시험에 떨어져서 모다 섭섭해 했지만은 나중에 두고 보니까 그때 떨어진 것이 차라리 무방(無妨)하게 된 경우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중국에 새옹(翁)이라고 하는 노인이 있었는데, 하루는 어디서 말 한 마리가 좋은 말이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온 마을 사람들이 ‘하! 재수가 있어서 좋은 말이 들어왔다’고 그렇게 모다 부러워하고 모다 치하를 했습니다. 그러니까 그 새옹이라는 사람이 ‘두고 봐야 알지 뭐.’ 그랬거든.

 

그런데 그 집 아들이 그 말을 타고 계속 좋아서 경마(馬)를 하고, 말을 달리고 하다가 떨어져서 다리가 대깍 부러졌어. 온 마을 사람들이 ‘아휴, 다리를 다쳐서 참 안되었다’고 모다 걱정들을 하는데, ‘두고 봐야 알지’

 

얼마 안 있다가 큰 난리가 났는데 마을에 모다 남자들은 전부다 그 전쟁에 끌려가 가지고 다 죽었는데, 그 집은 다리가 부러진 병신이라 끌려가지를 않고, 그 집안의 대를 이어갔다.

 

그래서 얻었다고 해서 좋아하지 말고, 잃었다고 해서 슬퍼하지 말아라. 이것을 새옹지마(翁之馬)라. 새옹의 성(姓)이 새(塞) 씨에요. 「새(塞) 씨라고 하는 할아버지[翁]의 말[馬]」이라 하는 그런 말이 있습니다.

 

 

제가 잘 아는 저 광주에 어떤 사람이 있었는데 아들을 독자(子)를 하나 낳았습니다. 그놈을 하나 잘 가르켜서 출세를 시키기 위해서 죽을 고생을 하면서 돈을 벌었습니다.

 

그래가지고 그 아들이 하여간 어릴 때부터서 영특(英特)해 가지고 ‘일고(光州一高)에만 합격을 꼭 시켜야만 되겠다’ 이겁니다.

일고에 합격하기 그것만 하기 위해서 참 모든 물심양면으로 애를 써가지고 거기를 목표로 해서 공부를 시키는데.

 

장님 점쟁이가 있습니다. 그 장님한테 가서—그이는 쪽집게 점쟁이라고, 가서 물어봤다 하면 백발백중입니다. 가서 ‘합격을 하겠습니까? 못하겠으니까?’ 사주를 딱 넣으니까, 한참 괘(卦)를 뽑아 보더니 ‘되기는 꼭 되는데, 되면! 당신 집안은 망해요.’

 

‘그 무슨 말씀이오. 나는 죽어도 좋으니까 얘는 일고에다 기어이 넣어야만 되겠소. 되면 좋지, 왜 되면 집안이 망한다 말이 뭔 말이요. 그건 말도 안되는 소리요.’

그래가지고 ‘그런데 안되야만 당신 집안이 잘되지, 이 애가 만약 일고에 합격만 했다하면 당신 집안은 망하는데,  큰일이오!’

 

아! 말이 통하질 안해서, 계속해서 그냥 장님 말은 무시해 버리고 일고를 시험을 보였는데, 얘가 발표하는 날 가서 보니까 딱 자기가 들어있거든.

그래서 이 소식을 아버지한테 알려드려야겠다고 그냥 그 자리에서 주먹을 쥐고 자기 아버지 있는 데로 뛰어갔습니다. 뛰어가다가 교통신호도 무시하고 그냥 막 뛰어가다가 탁 교통사고가 나가지고 직사(直死)를 했거든.

 

그 소식이 자기 아버지한테 가 가지고 아버지가 와서 그 현장을 보고 미쳤습니다. 미쳐가지고는 그냥 펄펄뛰고 그냥 돌아다니다가 그 아버지도 죽었습니다.

아버지가 죽은 걸 보고 할머니가 ‘자식 죽고, 영감 죽고, 내가 무슨 재미로 사느냐’ 약을 먹고 죽어 버렸습니다.

 

이것은 웃을 일이 아니고 실화(實話)입니다. 이것은 실화로서 이러한 예(例)가 얼마든지 우리 주변에 있습니다.

 

그 일고에 들어가도, 그 사람이 참선을 한 사람이었다면 들어가면 들어가는대로 담담히 ‘이뭣고?’를 하고,

또 떨어졌으면 떨어진대로 담담한 마음으로—그럼 그 다음으로 떨어진 다음에 어떻게 해야 할 길이 반드시 또 이차적으로 있는 것이니까.

 

이차적으로 또 후기를 본다든지, 재수를 한다든지, 학교를 좀 낮추어서 한다든지, 대학보다는 차라리 전문학교에 가서 기술을 익혀가지고 한다든지.

 

꼭 명문대학만 들어가야만 한다고 하는 그러한 생각은 버려야 합니다. 그 유명학교, 명문대학, 명문대학 해가지고 얼마나 많은 아들과 딸들의 신세를 망치게 되는 것입니다. 집안까지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그러한 생각을 말고 그 학생의 성적과 또 소질과 가정 형편과 그런 것을 두루두루 감안해서 담임선생과 잘 본인과 부모가 의논을 해가지고 여러 가지를 고려해가지고 적당한 데에 보낸다면,

다 자기의 적성에 맞추어서, 형편에 맞추어서 가 가지고 다 무난하게 공부도 잘하고 성공도 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을 무리해가지고 공부도 잘 못하는 놈을 일류에만 넣는다고 가정교사를 대가지고 족쳐 가지고는 얘가 정신 노이로제에 걸려가지고 공부고 뭣이고 다 소용없고 그래가지고 탈선을 하게 되고,

 

한번 떨어지면 그 다음엔 조금 잘 알아서 해야 할 텐데, 두 번째 또 거기를 기어이 넣으려고 하다가 또 떨어지고,

두 번 세 번 떨어지다 보면 시간 다 가버리고 애는 학교도 가기도 전에, 해보기도 전에 벌써 못쓰게 되는 것 아닙니까. 이러한 어리석은 일을 해서는 아니된 것입니다.

 

좋은 대학에 갔다고 해서 그 사람이 꼭 출세한 것도 아니고 또 학교에서 성적이 꼭 좋다고만 해서 그 사람이 나중에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닌 것입니다.

왕왕이 학교에서는 1등을 해가지고 일등으로 졸업을 해가지고 수재라고 이름났던 사람이 사회에 나가서 별로 볼 일 없는 사람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학교에 다닐 때에는 좀 어리석고 좀 티미하고 그러던 사람이 사회에 나가서 굉장히 성공을 하고 참 그런 사람도 얼마든지 있는 것이니까,

공부를, 학교에서 모다 영어나 수학은 잘 못해도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은 그림을 하게끔 해주고 또 음악을 잘하는 사람은 음악을 하게 해주고,

 

또 무슨 자기의 소질 따라서 그것을 살려나가면 그것이 부모도 좋고, 자식도 좋고, 학교 선생님도 좋고 다 두루두루 좋은 것입니다.

 

이런 말을 왜 말씀을 드리는고 하면은 지금 한참 학교의 합격 관계로 해서 부모님이나 학생 다 그저 마음을 놓지를 못하고 불안하고 초조해 계시는 분들이 많기 때문에 참고로 말씀을 드린 것입니다. 제 말씀을 잘 듣고 지혜있게 처리를 해 나가시기를 바랍니다.

 

 

삼도고본인하기(三途苦本因何起)요  지시다생탐애정(只是多生貪愛情)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삼도(三途)—지옥, 아귀, 축생 그 삼도의 고(苦)를 받는 근본원인이 어디에서 일어나는 것이냐?(三途苦本因何起)

 

지시다생탐애정(只是多生貪愛情)이다. 다못 이 다생(多生)에 탐심과 애정 때문에 삼도의 고를 받게 되는 것이다. 탐심, 애정, 이것이야말로 자기를 갖다가 지옥 구덩이로 몰아넣는 낚수밥이 되는 것입니다. 

 

자기 자식이라고 해서 덮어 놓고 성적도 생각지 않고 좋은 학교에다가 넣으려고 하는 것도 탐심입니다.

 

그러한 어리석은 그 탐심과 애정은 어디에서 일어나느냐 하면 어리석은 데에서 일어나거든.

지혜롭게 관찰을 하고, 지혜롭게 판단을 하고, 지혜롭게 처리를 한다면 그러한 괴로움을 미연에 방지를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 지혜롭게 되는 길이 바로 이 참선(參禪)입니다.

 

참선을 하게 되면 첫째, 지혜의 눈을 뜨게 되거든. 지혜의 눈을 떠서 깨닫기 이전에 참선을 시작할 때부터서 벌써 지혜인이 되는 것이여.

 

참선을 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감정적인 그러한 생각이 자연히 쉬어지기 때문에, 어리석은 생각이 쉬어지면 그것이 지혜로운 거여.

 

꾸정물이 따로 있고, 말간 물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그 찌꺼기가 가라앉으면 맑아지거든.

 

밝은 것과 어두운 것이—밤이 따로 있고, 낮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밝은 것과 어두운 것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밝아지면 어두운 것은 없어지는 것이여.

 

불 켜버리면 방안이, 캄캄했던 방이 환해지거든. 그러면 어두운 것이 어디 병속으로 들어가거나, 두지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에요. 어디로 가고 오는 것이 없는 것이여.

 

밝아졌다 하면은 어두운 것은 찰나에 그냥 없어지는 것이지, 밝은 것이 오니까 어두운 것이 그냥 꼼짝을 못하고 저 마루 밑구멍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에요. 아궁이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에요.

 

참선을 하면 바로 그 어리석은 생각이 없어지는 것이여, 그 지혜이거든.(28분9초~45분37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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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구(參究 헤아릴 참,궁구할 구) ; ①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드는 것. ②참선하여 화두(공안)을 꿰뚫어 밝히기 위해 집중함. 화두 의심을 깨뜨리기 위해 거기에 몰입함.

*득력(得力) ; ①의심을 할려고 안 해도 저절로 의심이 독로(獨露)하게 되는 것. ②수행이나 어떤 기술•운동에서 자꾸 되풀이해서 하면, 처음에는 잘 안되던 것이 할라고 안 해도 저절로 잘 되어질때 득력(得力)이라 표현.
수월하게 되어 힘이 덜어지는 것을 다른 표현을 쓰면 그것을 ‘힘을 얻었다(得力)’하는 것.
*번뇌(煩惱) : 망념(妄念)이라고도 하는데, 몸과 마음을 괴롭히고 어지럽히는 정신작용의 총칭이나, 이곳에서는 화두에 대한 의심 이외의 모든 생각을 말함.
*밀밀면면(密密綿綿) : 면밀(綿密)이란 말을 거듭하여 뜻을 강조한 것으로 길게 계속해서 끊어지지 않는 것。 정밀하게 이어져서 끊어지지 않는 모습.
*성성적적(惺惺寂寂) ; 정신이 고요하면서도 깨끗하고 또록또록 한 상태.
*다잽이 ; 다잡이. 늦추었던 것을 바싹 잡아 죔.
*의단(疑團 의심할 의, 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독로(獨露 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홀로(獨) 드러나다(露).
*딴 생각 ; 별념(別念).  [몽산법어] (용화선원刊) 박산무이선사선경어(博山無異禪師禪警語)에서.
“做工夫호대  着不得一絲毫別念이니  行住坐臥에  單單只提起本叅話頭하야  發起疑情하야 憤然要討箇下落이니라.  若有絲毫別念하면  古所謂雜毒이  入心하야  傷乎慧命이라하니  學者는 不可不謹이니라”
 
“공부를 짓되 털끝만치라도 딴 생각[別念]을 두지 말지니, 가고 멈추고 앉고 누우매 다못 본참화두(本叅話頭)만을 들어서 의정을 일으켜 분연히 끝장 보기를 요구할 것이니라. 만약 털끝만치라도 딴 생각[別念]이 있으면 고인이 말한 바 「잡독(雜毒)이 마음에 들어감에 혜명(慧命)을 상한다」하니, 학자는 가히 삼가지 않을 수 없느니라.”
 
“余云別念은  非但世間法이라  除究心之外에  佛法中一切好事라도  悉名別念이니라.  又豈但佛法中事리요  於心體上에  取之捨之  執之化之가  悉別念矣니라”
 
“내가 말한 딴 생각[別念]은 비단 세간법만 아니라 마음을 궁구하는 일 외에는, 불법(佛法)중 온갖 좋은 일이라도 다 딴 생각[別念]이라 이름하느니라. 또 어찌 다만 불법중 일뿐이리오?  심체상(心體上)에 취하거나[取], 버리거나[捨], 집착하거나[執], 변화하는[化] 것이 모두 다 딴 생각[別念]이니라.” (p164-166)
 
“做工夫호대  不得將心待悟어다.  如人이  行路에  住在路上하야  待到家하면  終不到家니 只須行하야사  到家오  若將心待悟하면  終不悟니  只須逼拶令悟요  非待悟也니라”
 
“공부를 짓되 마음을 가져 깨닫기를 기다리지 말라.  마치 사람이 길을 가매 길에 멈춰 있으면서 집에 이르기를 기다리면 마침내 집에 이르지 못하나니, 다만 모름지기 걸어가야 집에 도달하는 것과 같아서, 만약 마음을 가져 깨닫기를 기다리면 마침내 깨닫지 못하니, 다만 모름지기 애써서 깨닫게 할 뿐이요, 깨닫기를 기다릴 것이 아니니라.” (p163-164)
 
“做工夫호대  不得求人說破이니  若說破라도  終是別人底요,  與自己로  沒相干이니라.  如人이  問路到長安에  但可要其指路언정  不可更問長安事니  彼一一說明長安事라도  終是彼見底요,  非問路者의  親見也이니라.  若不力行하고  便求人說破도  亦復如是하니라”
 
“공부를 짓되 다른 사람이 설파(說破)하여 주기를 구하지 말지니, 만약 설파(說破)하여 주더라도 마침내 그것은 남의 것이요, 자기와는 상관이 없나니라. 마치 사람이 장안으로 가는 길을 물으매 다만 그 길만 가리켜 주기를 요구할지언정 다시 장안의 일은 묻지 말지니, 저 사람이 낱낱이 장안 일을 설명할지라도 종시(終是) 그가 본 것이요, 길 묻는 사람이 친히 본 것은 아니니라. 만약 힘써 수행하지 않고 남이 설파하여 주기를 구하는 것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p180-181)
 
*입승(立繩) ; 선원(禪院)에서 선원의 규율과 질서를 다스리는 직책, 또는 그 일을 맡은 스님.
*칠통(漆桶 옻 칠,통 통) ; ①옻칠을 한 통 ②중생의 마음은 무명이 덮여서 어둡고 검기가 옻을 담은 통 속과 같은 상태 또는 그런 상태의 사람. ③무명(無明).
*칠통(桶)을 타파(打破) ; ‘참나’를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
*여법(如法 같을·같게 할·따를·좇을 여, 부처님의 가르침·불도佛道 법) ; 부처님의 가르침에 맞음.
*식(識) ; 오온(五蘊)의 하나. 식별하고 판단하는 마음 작용. 인식 작용. 인식 주관.
*능엄경(楞嚴經) 변마장(辨魔障) ; 능엄경 조도분(助道分)에 있는, 수행도상에 있어 나타날 수 있는, 오음(五陰-색수상행식 色受想行識)이 녹아 없어질 때에 나타나는 50가지 마장(魔障)을 밝혀, 수행자들이 사특한 길에 떨어지지 않게 한 부처님 가르침.
*마구니 ; 마(魔). [범] mara 음을 따라 마라(魔羅)라 하고, 줄여서 마(魔)라고만 한다。장애자(障礙者)• 살자(殺者)• 악자(惡者)라 번역。목숨을 빼앗고 착한 일을 방해하며 모든 것을 파괴하는 악마를 말한다. 그러나  「마」는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에서 생기는 것이다.
 
[참고] 마(魔)란 생사를 즐기는 귀신의 이름이요, 팔만사천 마군이란 중생의 팔만사천 번뇌다.
마가 본래 씨가 없지만,수행하는 이가 바른 생각을 잃은 데서 그 근원이 파생되는 것이다. 중생은 그 환경에 순종하므로 탈이 없고, 도인은 그 환경에 역행하므로 마가 대들게 된다。그래서 「도가 높을수록 마가 성하다」고 하는 것이다. 선정 중에 혹은 상주(喪主)를 보고 제 다리를 찍으며 혹은 돼지를 보고 제 코를 쥐기도 하는 것이, 모두 자기 마음에서 망상을 일으켜 외부의 마를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마의 온갖 재주가 도리어 물을 베려는 것이나, 햇빛을 불어 버리려는 격이 되고 말 것이다。옛말에 「벽에 틈이 생기면 바람이 들어오고, 마음에 틈이 생기면 마가 들어온다」고 하시니라. —선가귀감(용화선원刊) p64.
*도인(道人) ; 깨달은 사람.
*망신(亡身) ; 말이나 행동 잘못하여 자기 지위, 명예, 체면 따위 손상함.
*무간지옥(無間地獄) ; 아비지옥(阿鼻地獄)이라고도 함. 아비(阿鼻)는 산스크리트어 avīci의 음사(音寫)로서 ‘아’는 무(), ‘비’는 구()로서 ‘전혀 구제받을 수 없다’는 뜻. 고통이 끊임없으므로 무간(無間)이라 함.
아버지를 죽인 자, 어머니를 죽인 자, 아라한을 죽인 자, 승가의 화합을 깨뜨린 자, 부처의 몸에 피를 나게 한 자 등, 지극히 무거운 죄를 지은 자가 죽어서 가게 된다는 지옥.
이 지옥에 떨어지는 죄인에게는 필파라침(必波羅鍼)이라는 악풍(惡風)이 있는데 온몸을 건조시키고 피를 말려 버리며 또 옥졸이 몸을 붙잡고 가죽을 벗기며, 그 벗겨낸 가죽으로 죄인의 몸을 묶어 불 수레에 싣고 훨훨 타는 불구덩이 가운데에 던져 넣어 몸을 태우고,
야차(夜叉)들이 큰 쇠 창을 달구어 죄인의 몸을 꿰거나 입, 코, 배 등을 꿰어 공중에 던진다고 한다. 또는 쇠매(鐵鷹)가 죄인의 눈을 파 먹게 하는 등의 여러 가지 형벌로 고통을 끊임없이 받는다고 한다.
*천하없이(天下없이) 세상에 그런 예가 다시없을 정도.
*도통(道通) ; ①사물의 이치를 깨달아 훤히 통함. ②깨달음.
*팔자(八字) ; 사람의 한평생의 운수. 사주팔자에서 유래한 말로, 사람이 태어난 해와 달과 날과 시간을 간지(干支)로 나타내면 여덟 글자가 되는데, 이 속에 일생의 운명이 정해져 있다고 본다.
*업(業) ; (산스크리트어:karma카르마) ①몸과 입과 마음으로 짓는 행위와 말과 생각, 일체의 행위.
②행위와 말과 생각이 남기는 잠재력. 과보를 초래하는 잠재력.
③선악(善惡)의 행위에 따라 받는 고락(苦樂)의 과보(果報).
④좋지 않은 결과의 원인이 되는 악한 행위. 무명(無明)으로 일으키는 행위.
⑤어떠한 결과를 일으키는 원인이나 조건이 되는 작용. 과거에서 미래로 존속하는 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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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상(觀相)수명이나 운명 따위와 관련이 있다고 믿는 사람의 김새얼굴 모습또는 사람의 얼굴을 보고 의 운명성격수명 따위를 판단하는 .
*호식(食)사람 에게 잡아먹힘.
*사주(四柱) ; 사람이 태어난 연월일시의 네 간지(干支). 또는 이에 근거하여 사람의 길흉화복을 알아보는 방법.

*장사(壯士)기개  아주  사람.

*범접( 범할 범,접할 접) ; 가까이 다가가 함부로 건드리거나 접촉함.

*귀후지개 ; ‘귀이개(귓구멍   때, 귀지를 파내는 도구)’의 사투리.

*뼉다구 ; ‘뼈다귀’의 사투리.

*귀창 ; ‘귀청(귓구멍 안쪽에 있는 타원형의 반투명한 로, 공기의 진동을 속귀 쪽으로 전달하여 들을 수 있게 하여 준다)’의 사투리.

*족치다 ; (어떤 사람 다른 사람) 견딜 정도 몹시 괴롭히거나 다그치다.

*인자 ; ‘이제(바로 이때, 지금부터—지나간 와 단절된 느낌을 준다)’의 사투리.

*무방(無妨)하다[연결 어미 ‘-어도 함께 쓰여](사람 어찌하여도)거리낄  없이 괜찮다.

*독자(子) ; ①다른 자식 없이  하나 아들. ②형제자매 없는 사람.

*영특(英特)하다 ; (사람)남달리 똑똑하고 영리하다.

*일고(一高) ; 광주제일고등학교(光州第一高等學校). 광주일고(光州一高)로도 불리우는 호남 지역의 전통 명문 고등학교.

*쪽집게 ; ‘족집게(어떤 사실 정확하게 지적하여 내거나  알아맞히는 능력 가진 사람)’의 사투리.

*괘(卦) ; 점괘(占卦, 을 쳐서 나오는  를 풀이하여 길흉을 판단한다).

*직사(直死) ; 즉사(卽死, 그 자리에서 바로 죽음).

*실화(實話)실제로 있었던  대한 이야기.

*(게송) ‘三途苦本因何起  只是多生貪愛情’ ;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 ‘자경문(自警文)’ 게송.

*낚수 ; ‘낚시’의 사투리.

*낚수밥 ; 낚시 미끼.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꾸정물 ; 구정물(무엇 빨거나 씻거나 하여 더러워진 물).

*말갛다 ; ①(무엇)산뜻하게 맑고 깨끗하다. ②()맑고 생기 있다. ③(액체)진하지 않고 매우 묽다. ④(정신이나 의식)분명하고 또렷하다.

*두지 ; ‘뒤주’의 사투리.  따위의 곡식 담아 두는 세간(집안 살림 쓰는 온갖 물건) 하나. 나무 궤짝같이 만드는데,  기둥 짧은  있으며 뚜껑 절반 앞쪽  된다.

Posted by 닥공닥정

§(616) (게송)남북동서무정착~ / 장판때 / (게송)이인유밀불수저~ / 수행자는 코뿔소의 뿔처럼 외롭게 지내라 / 자각(自覺) 각타(覺他) 각행원만(覺行圓滿)—수행자목표.


도 닦는 참선의 기쁨을 먹고 사는 것이 수좌의 음식이다.

수행자는 항상 냉정하고 쌀쌀하고, 무슨 명예나 이끗이나 이양(利養)이나 재색(財色)에 그런 데에 솔깃하게 넘어가서는 안된다.

부처님 말씀에 ‘스스로의 자기의 깨달음을 얻지 않고서는 다른 사람을 깨닫게 할 수 없는 것이고, 자기 자신을 깨닫는 공부를 게을리 하고서는 부처님의 혜명(慧命)을 전통해 갈 수가 없는 것이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송담스님(No.616)—98년(무인년) 동안거결제 법어(98.12.03)


약 22분.


남북동서무정착(南北東西無定着)하고  생애지재일지공(生涯只在一枝筇)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설두세작연하미(舌頭細嚼烟霞味)하고  직입천봉갱만봉(直入千峰更萬峰)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남북동서무정착(南北東西無定着)하고  생애지재일지공(生涯只在一枝筇)이다.

동서남북 정착한 데가 없어. 겨울에는 남쪽 선방(禪房)에 가서 지내고, 여름에는 저 북쪽 선방으로 가고, 동쪽으로 갔다, 서쪽으로 갔다, 남쪽으로 동쪽으로 갔다.


선지식(善知識)을 찾아서 도반(道伴)을 찾아서 또 지내기 좋은 도량(道場)을 찾아서, 동서남북으로 일정하게 딱 정착한 데가 없듯이 계절 따라서 왔다갔다 하는데,


생애지재일지공(生涯只在一枝筇)이다. 수좌(首座)의 일생애(一生涯)라 하는 것이 오직 이 한 가지 주장자(拄杖子)에 달려 있다 그말이여.


설두세작연하미(舌頭細嚼烟霞味)하고, 혀끄터리는 다못 안개와 연기, 연하(烟霞)의 맛을 가늘게 씹는 것이다 그말이여.

연하를 씹으면서 연하의 맛을—무슨 맛있는 고량진미(味), 산해(山海)의 진미를 먹고 사는 게 아니라 연하의 맛을 씹으면서,


그 연하(烟霞)의 맛이라는 게 무엇이냐? 법희선열(法喜禪悅)이요, 선열(禪悅)로 위식(爲食)하는 겁니다. 도 닦는 참선의 기쁨을 먹고 사는 것이 수좌의 음식이다 그말이여.


연하의 맛을 씹으면서 직입천봉갱만봉(直入千峰更萬峰)이다. 바로 천봉(千峰) 다시 만봉(萬峰)을 향해서 들어가더라.


‘천봉 그리고 또 다시 거기서 더 만봉을 찾아서 들어간다’ 그 말은 아까 조실스님의 법문 가운데에 활구참선이라 하는 것은 이론적으로 따져서 말 길[語路]을 더듬어서 알아들어가는 공부가 아니여.


해 갈수록 알 수가 없는 그 본참공안(本參公案)을 향해서 바로 의심관(疑心觀)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들어갈수록 깊고, 들어갈수록 알 수가 없기 때문에 천봉만봉갱만봉(千峰萬峰更萬峰)을 향해서 들어간다고 이렇게 표현을 한 것입니다.



오늘 동안거 결제를 맞이해서 비구·비구니·청신사·청신녀 형제자매 도반들이 여기에 모다 운집(雲集)을 했습니다.

각자 자기가 지내는 처소에서 결제를 해도 되겠지만은 조실스님의 최상승법문(最上乘法門)을 뜻을 같이한 도반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그 법문을 듣기 위해서 여기에 오셨습니다.


그 선방에도 다 녹음테이프가 있어서 거기서 들어도 충분하리라고 생각이 되는데 여기에 와서 지내는 데에는,

도반들 같은 도반들을 여기서 만나서 입을 벌려서 말은 안 하지만은 한번 눈과 눈이 마주칠 때, 마음과 마음이 마주침으로서 한 목표를 향해서 활구참선(活句參禪)을 해 나가는 선후배 도반이 만나는데 뜻이 있는 것이고,


석 달 동안을 알뜰히 정진을 하고 해제 때 또 다시 만나자고 하는 말 없는 가운데에 거기서 깊은 말이 오고가는 것입니다.


방금 조실스님의 녹음법문에 활구참선, ‘여하시 조사서래의(如何是祖師西來意)이냐?'하는데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이 조실스님의 법문 속에 결제 법문은 분명히 그리고 충분히 법문을 들었습니다.


(법문을) 들어서 산승이 결제 법문이라고 할 필요가 없습니다마는 도반들이 이렇게 모이셨으니 석 달 동안을 무장무애하게 그리고 알뜰하고 짬지게 지내기를 바래는 마음에서 몇 가지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해마다, 철마다 여름이면 여름 결제, 겨울이면 겨울 결제 하는데, 처음에 첫 철에 나갈 때에는 엄섬하고 경건하고 아주 근신(謹愼)하는 마음으로 방부를 들이고 한 철을 지냅니다.


두 철이 또 지나가고 세 철, 네 철 지내다 보면 엄섬하고 경건한 그러한 기분은 차츰 사라지고 모다 아무 근신하는 마음가짐이 차츰 해이(弛)해져서 그럭저럭 한 철 지내고,


또 거기서 해제를 하면 또 다른 선방에 가서 지내고 해서 ‘장판때’만 반들반들 묻어 가지고,

철저한 신심으로 정진하는 기운이 자기도 모르는 가운데 해이해지는 그런 경향이 있다고 옛날 스님네들은 그 ‘장판때’라는 말을 많이 사용을 했습니다.


여기에 모이신 도반들은 결단코 그러한 일은 없으리라고 생각하지만 만에 하나라도 그러한 말이 해당이 된다면 안 되겠다고 하는 도반으로서의 노바심(老婆心)에서 나오는 말씀을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인유밀불수저(利刃有蜜不須舐)하고  고독지가수막상(蠱毒之家水莫嘗)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시비해리횡신입(是非海裏橫身入)하고  표호군중자재행(豹虎群中自在行)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이인유밀불수저(利刃有蜜不須舐)요, 날카로운 칼날에 꿀이 묻어있는데 어리석은 사람은 그 꿀을 핥아먹다가 혀를 베게 되는 것이니 설사 칼끝에 꿀이 묻었다 하더라도 그 꿀을 핥아먹지를 말아라 이것입니다.


고독지가(蠱毒之家)에 수막상(水莫嘗)이여. 고독지가(蠱毒之家)라 하는 것은 그 흉가(家)—샘에 독이 풀어져 있는 집의 물은 아무리 목이 마른다 하더라도 그 물을 먹지를 말아라 이것입니다.


무엇이 칼날 위에 꿀이고 고독지가에 물이라는 게 무엇이냐?


수행자는 명예나 이끗이나 재색(財色)이나 이양(利養)이나 모다 이러한 것들이,

누가 나한테 따뜻하게 잘 해주고, 잘 보시를 하고, 좋은 옷을 해주고, 약을 지어주고, 명예를 주고, 어떤 권리를 주고, 내 마음을 즐겁게 해주고 그러한 것들이 다 칼날 위의 꿀이고 고독지가(蠱毒之家)의 물이라 하는 것입니다.


수행자는 항상 냉정하고 쌀쌀하고, 무슨 그러한 이끗이나 이양이나 재색(財色)에 그런 데에 솔깃하게 넘어가서는 안된다 이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수행자는 코뿔소의 코뿔처럼 외롭게 지내라’ 그러셨습니다.

다른 모든 짐승은 뿔이 두 개씩인데 코뿔소는 코끝에 뿔이 하나가 딱 있는데, 그 하나만을 앞세우고 일생을 사는데 ‘그렇게 외롭게 살아라.’


이끗과 명예 모다 그런 데에 부합을 하지 말고, 그런 데에 넘어가지 말고,

돈 많이 주는 데 찾아당기고, 맛있게 해 주는 데 찾아당기고, 그런 데에 휩쓸리지를 말고, 먹고 잘 먹고 못 입는 것은 그것은 인연에다 맡겨.


가난한 데에 검박하고 그래도 수행하는데 도움이 되는 그런 데를 찾아가야지,

돈을 생각해서 찾아가고, 맛있게 잘 받들어 주는 데만 찾아다니면 결과적으로 남은 것은 칼끝의 꿀을 빨아먹다 혀를 짤리는 거고, 고독지가에 물을 먹다가 결국은 목숨을 잃게 된다 그 말입니다.


시비해리(是非海裏)에 횡신입(橫身入)이요. 옳다 그르다 하는 시비(是非)의 바다 속에 몸을 비켜서 들어가.

도처가 간 곳마다 시비가 끊어지는 데가 없고, 어디를 가나 크고 작은 시비는 있기 마련이고, 그런 시비에 말려 들어가지 말고 그 시비 속에서도 몸을 비켜서 나가는 거고.


표호군중자재행(豹虎群中自在行)이다. 표범과 호랑이가 득실거리는 그런 속에 자재(自在)하게 행해야 한다 그 말인데, 여러분들도 다 아시다시피 종단이 퍽 시끄럽습니다.


총무원, 조계사 모다 전국승려대회도 일어나고, 이 파 저 파 해 가지고 천여 명씩이 모아서 온갖 불상사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것은 다 어떻게 하면 종단을 잘해 나갈까? 자기가 나가야 이 종단을 잘해 나가겠다. 피차 그런 마음에서 하다보니까 충돌이 생기고, 외부에서 볼 때에는 대단히 참 가슴 아픈 사건이 벌어지고 있습니다마는,

그 분은 그런 나름대로 종단을 걱정하고 불교의 장래를 걱정해서 자기가 나가야만 되겠다고 하는 그런 끓는 용기와 원력으로 모다 그렇게 하지 않는가 생각이 됩니다마는,


그것이 진정코 종단을 위하는 일인가? 불교를 위하는 일인가? 그것은 생각하는 사람, 보는 사람의 관점에 달려 있을 것이고, 일양으로 매도할 일도 못되고, 누구 편을 들기도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불법은 자각(自覺) 각타(覺他) 각행원만(覺行圓滿)이 수행자로서 불자로서 목표를 삼고 나가야 하는 것인데,


대발심(大發心)을 해서 대지혜와 대자비로 실천 수행하는데 있어서 각자 자신의 원력과 또 자기 믿는 선지식의 지도에 따라서,


경(經) 공부를 하는 사람 또 주력(呪力) 공부를 하는 사람, 염불을 하는 사람 또 나름대로 자기가 터득한 부처님의 말씀을 포교하는 데에다가 관점을 두고 또 그렇게 해 나가는 사람,

육바라밀(六波羅密)을 수행을 해야겠다 또는 어떤 사람은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사념주관(四念住觀), 비파사나(Vipassanā)라고 하는 신·수·심·법(身受心法)을 향해서 수행하는 사람,


여러 가지 방편(方便)이 다 있어서 나름대로 열심히 그렇게 수행을 하고 있는데, 각자 그 근기와 수준에 따라서 이것이 그 단계에 따라서 이렇게 수행하는 사람, 저렇게 수행하는 사람, 여러 가지 길이 있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자리에 모이신 여러 도반들은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에 의해서, 직절근원(直截根源)하는 이 활구참선에 의해서 일대사(一大事) 문제를 해결한다고 하는 그러한 마음으로 이 자리에 모이신 것입니다.


종단이 이렇게 시끄러울수록에 우리 이 자리에 모이신 도반들은 각자 다른 철보다도 훨씬 더 자가(自家) 중심(中心)을 탁 세우고서 정말 알뜰하고 짬지게 이 한 철을 잘 지내주시기를 부탁을 드리는 것입니다.    


부처님 말씀에 ‘스스로의 자기의 깨달음을 얻지 않고서는 다른 사람을 깨닫게 할 수 없는 것이고, 자기 자신을 깨닫는 공부를 게을리 하고서는 부처님의 혜명(慧命)을 전통해 갈 수가 없는 것이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금년 삼동(三冬) 안거는 다른 안거 때보다도 더욱 마음을 가다듬고 그 선원의 청규(淸規)를 잘 지키면서 조용하게 말없는 가운데에 알뜰히 정진을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처음~21분30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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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남북동서무정착~’ ; [청허당집(清虛堂集)] (서산휴정 著,朴敬勛 역, 동국대학교 역경원) p162 ‘혜총선자(慧聰禪子)를 보내며’ 게송 참고.

*선방(禪房) ; ①참선(參禪)하는 방. 선실(禪室)과 같은 말. ②‘선방에 간다’라는 말은 ‘참선하러 절에 간다’ 또는 ‘참선에 들어간다’라는 표현이다.

*선지식(善知識) ; 부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지도자. 좋은 벗.

*도반(道伴) ; 함께 불도(佛道)를 수행하는 벗. 불법(佛法)을 닦으면서 사귄 벗.

*도량(道場) : [범] bodhimandala '도를 닦는 곳'이란 말이다。습관상 「도량」으로 발음한다.

*수좌(首座) ;①선원(禪院)에서 좌선하는 스님. ②수행 기간이 길고 덕이 높아, 모임에서 맨 윗자리에 앉는 스님. ③선원에서 좌선하는 스님들을 지도하고 단속하는 스님.

*주장자(拄杖子 버틸 주,지팡이 장,접미사 자) ; 수행승들이 좌선(坐禪)할 때나 설법(說法)할 때에 지니는 지팡이.

*혀끄터리 ; 혀끝( 앞쪽  부분). '끄터리'는 '끄트머리(  부분)'의 사투리.

*고량진미( 기름 고,기장 량,보배 진,맛 미) ; 기름진 고기 좋은 곡식으로 만든 맛있는 음식.

*산해진미(山海珍味) ; 산과 바다 온갖 진귀한 산물  갖추어 차린매우  좋은 음식.

*법희선열(法喜禪悅) ; 부처님의 가르침[法]을 듣고 따르는 기쁨[喜]과 선정(禪定)에 드는 기쁨[悅].

*선열(禪悅)① 선정(禪定)에 드는 기쁨. ② 참선할 때 가슴에 잔잔히 사무치는 기쁨.

*본참공안(本參公案) :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운집(雲集 구름 운,모일 집) ; 구름(雲)처럼 모인다(集)는 뜻으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듦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1700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판치생모(板齒生毛) ; 화두(공안)의 하나.

어떤 스님이 조주 스님께 묻되, “어떤 것이 ‘조사서래의’입니까?  (如何是祖師西來意)”하니 답하시되,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하셨다.

즉, 「어떤 것이 달마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판치에 털이 났느니라.」라고 하는 화두.

그러면 조주 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을까?  이 화두도 ‘무자’ 화두와 같이 ‘판치생모’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판치생모” 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께 뜻이 있는 것이니, 학자들은 꼭 조주 스님의 뜻을 참구해야 한다. “어째서 ‘무’라 했는고?” 하는 것과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하는 것은 조금도 다름이 없는 것이다. [언하대오(言下大悟)에서] (용화선원) p53.

*짬지다일하는 솜씨 여물고 깐깐하다.

*근신(謹愼 삼갈 근,삼갈 신) ; 말이나 행동, 마음가짐을 삼가고 조심함.

*해이하다(弛-- 풀 해,느슨할 이) ; (마음가짐이나 태도 따위)긴장 풀어져서 슨한 상태이다.

*노바심(老婆心) ; 노파(老婆)가 자식·손자를 애지중지 하듯이, 스승이 수행자에게 나타내는 자비심. 친절심(親切心). 파심(婆心)이라고도 함.

*(게송) ‘利刃有蜜不須舐  蠱毒之家水莫嘗’ ; [선문염송] (혜심 지음) ‘제1권 1칙 도솔(兜率)’ 대혜고(大慧杲) 게송 참고.

*(게송) ‘是非海裏橫身入  豹虎群中自在行’ ; [선문염송] (혜심 지음) ‘제1권 1칙 도솔(兜率)’ 죽암규(竹庵珪) 게송 참고.
*고독(蠱毒 벌레·害毒 고,독 독) ; 지네두꺼비  (). 또는  독이 들어 있는 음식 먹어서 생기는 복통이나 가슴앓이토혈(), 하혈( 증상 나타난다.
*이끗(利끗) ; ①이익이 되는 실마리. ②잇끝(말리 末利)—지말(枝末), 지엽(枝葉)적인 이익. 작은 이익.
*재색(財色) ; 재물(財物)과 타인의 몸(色).
*이양(利養) ; ① 산스크리트어 lābha  이익(利益). 이득(利得). 획득한 물(物 : 특히 출가자에 대하여 말함). 남에게서 물건을 받는 등 실질적인 이득(利得)을 말함.
② 이익(利益)을 얻어 자기몸을 보양하는 것. 재물을 탐하여 자신을 살찌우는 것.
③ 산스크리트어 satkāra 존경. 존중. 공경. 공양.
*솔깃하다(사람 어떤 )마음 끌리다.
*발심(發心) ; ①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②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원어)發起菩提心발기보리심, 發菩提心발보리심. 
*포구발심(怖懼發心 두려워할 포,두려워할 구,일어날 발,마음 심) : 끝없이 되풀이 되는 육도윤회(六途輪廻)에서 받을 생사(生死)가 정말 무섭구나. 그 생사의 고통을 매우 두려워(怖懼)하여, 두려운 마음으로 생사를 벗어나는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菩提心)을 일으킴(發).
*주력(呪力) ; 진언(眞言)·다라니(陀羅尼)로 하는 기도. 진언(眞言)·다라니(陀羅尼)의 효과.
*육바라밀(六波羅蜜) ; 바라밀(波羅蜜)은 산스크리트어 pāramitā의 음사로, 도피안(到彼岸)·도(度)·도무극(度無極)이라 번역. 깨달음의 저 언덕으로 건너감, 완전한 성취, 완성, 수행의 완성, 최상을 뜻함.
보살이 이루어야 할 여섯 가지 완전한 성취.
①보시바라밀(布施波羅蜜). 보시를 완전하게 성취함. 보시의 완성.
②지계바라밀(持戒波羅蜜). 계율을 완전하게 지킴. 지계의 완성.
③인욕바라밀(忍辱波羅蜜). 인욕을 완전하게 성취함. 인욕의 완성.
④정진바라밀(精進波羅蜜). 완전한 정진. 정진의 완성.
⑤선정바라밀(禪定波羅蜜). 완전한 선정. 선정의 완성.
⑥지혜바라밀(智慧波羅蜜). 분별과 집착이 끊어진 완전한 지혜를 성취함. 지혜의 완성.

*사념주관(四念住觀) ; 깨달음을 실현하도록 도와주고 장엄하는 37보리분법(菩提分法) 또는 37조도품(三十七助道品) 가운데 하나이다.

사념처관(四念處觀)·사의지(四意止)·사념(四念)이라고도 한다.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念處]. 네 종류의 수행방법. 네 가지의 관상법(觀想法). 네 종류의 마음이 고요해지는 내관(內觀).


염(念, sati, 마음챙김)은 ‘마음을 챙김’으로, 구체적인 의미는 ‘마음이 대상을 챙김’이다.

“여기서 마치 송아지 길들이는 자가 [송아지를] 기둥에 묶는 것처럼,

자신의 마음을 염(念, sati, 마음챙김)으로써 대상을 굳게 묶어야 한다” 『디가 니까야 주석서』에서.


염(念, sati, 마음챙김)의 대상인 몸과 느낌과 마음과 법[身·受·心·法]에서 그들을 각각 더러움[不淨], 괴로움[苦], 무상(無常), 무아(無我)라고 파악하면서, 또 깨끗함, 행복, 항상함, 자아라는 인식을 버리는 역할을 성취하면서 일어나기 때문에 네 가지로 분류된다. 그러므로 사념주(四念住, 四念處)라고 한다.

*비파사나(팔리어 vipassanā, 산스크리트어 vipaśyanā) ; 비바사나(毘婆舍那)·비발사나(毘鉢舍那)로 음역.
능견(能見)·정견(正見)·관찰(觀察)·관(觀)이라 번역.
비파사나(위빳사나)는 ‘분리해서vi  보는 것passanā’이라는 문자적인 뜻 그대로,
대상[유위제법(有爲諸法)—오온(五薀)·십이처(十二處)·십팔계(十八界)]을 나타난 모양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명상하고 관찰하여 법(法)의 무상(無常)하고 고(苦)이고 무아(無我)인 특성을 통찰하는 수행.

비파사나는 마음[心]·마음부수[心所]·물질[色]로 구분되는 71가지 구경법들 가운데 하나를 통찰하는 수행인데 이처럼 법을 통찰해 들어가면 제법의 무상이나 고나 무아를 철견(徹見)하게 된다.
무상·고·무아를 통찰하는 비파사나의 힘으로 탐·진·치의 뿌리를 멸절시켜야 영원히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 되며 그래야 해탈·열반을 실현하게 된다.
비파사나는 무상·고·무아를 통찰하는 것 그 자체이지 결코 특정한 수행기법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 「초기불교 이해」 (각묵 스님, 초기불전연구원) 참고.
*방편(方便 방법·수단 방,편할 편) ; ①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일시적인 수단으로 설한 가르침.중생 구제를 위해 그 소질에 따라 임시로 행하는 편의적인 수단과 방법. 상황에 따른 일시적인 수단과 방법.
②교묘한 수단과 방법.
*직절근원(直截根源) ; 근원(根源)을 바로 꺾었다(다스리다). 근원에 몰록 들어갔다.
*일대사(一大事) ; ①부처님이 중생구제를 위해 세상에 나타난다고 하는 큰 일. 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목적 ②가장 중요한 일이란 뜻. 수행의 목적. 깨달음을 얻는 것. 인간으로서의 완성.
*자가(自家) ; ①자신의 집. ②자기 자체.
*중심(中心) ; ①중요하고 기본 되는 부분. ②사물이나 일정한 장소 가장 가운데 되는 . ③ 잡은 마음또는 확고한 생각 태도.
*혜명(慧命) ; ①지혜를 생명에 비유하는 말. 대도정법(大道正法)의 명맥(命脈). ②법신(法身)은 지혜가 생명이 된다는 뜻.
*청규(淸規) ; ①선종(禪宗)의 사원에서, 여러 스님들이 늘 지켜야 할 규칙. ②참되고 바른 규칙이나 법도.


Posted by 닥공닥정

§(455) (게송)수류상출몰~ / 정념(正念), 화두 놓치면 삿된 생각 / 증애심, 무연자비(無緣慈悲) / 탐진치의 불 / 아상을 승화해 세계를 한 식구로 만드는게 불법(佛法).

삿된 생각이 따로 없어. 무슨 외도(外道)한테 빠져 가지고 외도 짓을 하는 것만 그것이 삿된 생각이 아니라, 불법을 믿고 선방에서 참선을 하고 있어도 화두 놓쳐 버리고, 오고 가고 일체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黙動靜) 간에 화두를 놓치면 그것이 벌써 삿된 생각에 떨어진 것이다.
한 생각 퍼뜩 시비심·취사심·차별심이 일어났다 하면은 정념을 놓치게 되고, 정념을 놓치면은 사심(邪心)에 떨어지고, 사심에 떨어지면 바로 집착을 하게 된 것이다.


미운 생각이 일어나면은 단전호흡을 하면서 화두를 들어. 정진을 여법하게 해가다 보면 차츰차츰 증애심이 담박(淡泊)해지고 결국은 증애심이 없어. 증애심이 없어야 무연자비(無緣慈悲)를 행할 수가 있는 것이여.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의 끝없이 타고 있는 불 때문에 육도윤회를 하고 있는 것.


부처님의 지혜와 자비의 사상에 의해서 살아가고 다스려가지 않고서는 세계평화는 이루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정법(正法)에 의지해서 열심히 도를 닦아야 합니다.


**송담스님(No.455) - 91년 9월 첫째일요법회(91.09.01)에서. (용455)


약 15분.

 


수류상출몰(隨流常出沒)하되  불체왕래종(不滯往來蹤)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두두무취사(頭頭無取捨)하고  처처절소친(處處絶疎親)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수류상출몰(隨流常出沒)하되  불체왕래종(不滯往來蹤)이다.
흐름을 따라서 인연을 따라서 항상 나고 들어오되, 가고 오고 나오고,

이 선방에서 지내고 또 해제하고 저 선방에를 가는 것도 항상 이렇게 출몰(出沒)하는 것이고,
문밖에 나가고 방안으로 들어오는 것도 출몰이고,
금생에 인연이 다해서 이 몸을 버리고 다음 생에 다시 또 새 몸을 받아 난 것도 이것도 출몰하는 것이고,

한 생각이 일어났다 또 그 한 생각이 꺼지고, 다시 한 생각이 또 새로 일어났다가 그 생각이 없어지고 한 것도 이것도 상출몰(常出沒)이다 그말이여.
아침에 일어났다가 밤에 자는 것도 상출몰(常出沒)이요.
끼니가 되면 밥을 먹고 때가 되면은 화장실에 가고 하는 것도 이것도 상출몰(常出沒)이여.

일체처 일체시에 오고가고 하는 것이 다 출몰인데 그런 것은 인연(因緣) 따라서 해.
결제 때는 결제 때대로, 해제 때는 해제 때대로 인연 따라서 하되,

불체왕래종(不滯往來蹤)이여. 오고 가고 앉고 서고 하는 그 발자취에 막히지 말아라.
'막힌다'고 하는 것은 집착을 하는 것을 말하는 거여. 집착을 하는 데에서 정념(正念)을 놓치게 되는 것이여.
삿된 생각과 바른 생각이 있는데, 집착을 하거나 자기가 들고 있는 본참화두(本參話頭)를 놓쳐버린 것이 그것이 바로 삿된 생각에 떨어진 것이다 그말이여.

삿된 생각이 따로 없어.
무슨 외도(外道)한테 빠져 가지고 외도 짓을 하는 것만 그것이 삿된 생각이 아니라, 불법을 믿고 선방에서 참선을 하고 있어도 화두 놓쳐 버리고, 오고 가고 일체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黙動靜) 간에 화두를 놓치면 그것이 벌써 삿된 생각에 떨어진 것이다 그말이여.

일체 경계(境界)에 집착하면 나쁜 생각에 떨어져도 삿된 생각이지만, 좋은 일 계행(戒行)을 지키면서도 그 계상(戒相)에 집착하면 벌써 그것이 삿된 생각이다 그말이여.

그것이 왜 그러냐 하면은 화두를 들고 정진하는 사람이 화두 놓쳐버리면은 그것이 바로 삿된 생각이요. 모든 것에 집착을 하면 그것이 바로 맥히는 것이여.
무슨 나쁜 음식을 먹고 배탈난 것만 병이 아니라, 좋은 음식을 먹고도 체하면 그것이 병이거든. 맹물을 마시고도 그것이 잘못 마시면 그것이 체하면 약이 없다는 것이여.

정법(正法)을 안 믿는 사람에게는 나쁜 짓을 하지 말라고 가르키지만, 아! 정법 믿는 사람은 나쁜 짓을 하라고 해도 안 해.
그러면 정법을 믿는 사람에게는 무엇이 잘못된 것이냐 하면은, 일체 생각에, 일체 일에 사물에 집착한 것이 바로 그것이 삿된 생각이다 그말이여.

두두무취사(頭頭無取捨)여. 머리머리 모든 사물에 대해서 취사(取捨)를 하지 말아라. 취하고 버려.
제 마음에 든 것은 취하고, 제 마음에 안 든 것은 버리고, 그 취사심은 바로 차별심에서 일어나는 것인데 그 취사심·차별심으로 인해서 온갖 시비가 거기서 일어나고,

한 생각 퍼뜩 시비심이나 차별심이 일어났다 하면은 정념을 놓치게 되고, 정념을 놓치면은 사심(邪心)에 떨어지고, 사심에 떨어지면 바로 집착을 하게 된 것이다 그말이여.

처처절소친(處處絶疎親)이라. 중생들은 자기 마음에 든 사람하고는 가까이하고 친하고 싶고, 자기 비위에 안 맞고 자기 뜻에 안 맞은 사람은 그 사람은 미워하고 멀리하는 것이다 그말인데, 이 정법을 믿고 참선하는 사람은 친하고 친하지 않고 하는 생각이 끊어져 버려야 해. 누구나 다 평등해. 특별히 친할 것도 없고, 특별히 미워할 것도 없고.

증애심(憎愛心)이 강한 사람은 도 닦아 가는데 참 어려운 것이여. 그래서 보조(普照) 스님의 그 법문을 보면은 자기의 수행이 얼마만큼 되어갔는가를 스스로 증험하는 방법으로 증애심이 어떠한가로써 점검을 해 보라 그랬어.

증애심이 강한 사람은 그 사람은 도를 제대로 닦고 있는 사람이 아니여. 도를 열심히 닦는 사람은 증애심이 없어.
우리가 부처님이 다 되기 전에는 증애심이 완전히 없을 수는 없어. 그러나 퍼뜩 미운 생각이 일어나면은 단전호흡을 하면서 화두를 들어. 정진을 여법하게 해가다 보면 차츰차츰 증애심이 담박(淡泊)해지고 나중에 결국은 증애심이 없어.

증애심이 없어야 무연자비(無緣慈悲)를 행할 수가 있는 것이여.

우리가 ‘자비심(慈悲心)이다’ ‘자비심이다’해 가지고 마음에 든 사람에게는 무엇을 많이 주고 잘 주고, 자기가 미운 사람에게는 자기 뱃속에서 나온 자식도 미운 놈한테는 재산도 많이 안 줄라고 그러거든. 이러한 증애심이 마음속에 농후하게 있는 사람은 세상 살아가는데 원결(怨結)이 많고, 도를 닦아가는 데에도 장애가 많아.

그래서 취사심(取捨心)이 일어나면 그놈을 떼어 내버릴라고 하지 말고 바로 화두를 들고, 또 증애심(憎愛心)·친소심(親疎心)이 일어나더라도 퍼뜩 그 증애심을 돌이켜서 화두를 들어나가면, 취사심을 띨려고 하지 안 해도 저절로 취사심이 담박(淡泊)해지고, 증애심을 억지로 띠어 내버릴려고 안 해도 저절로 증애심이 담박해지는 법이여.

부처님께서 성불을 하셔가지고 녹야원(鹿野苑)으로 가셔서 교진여(橋陣如) 등 다섯 비구를 제도하시고, 그리고 차츰차츰 그 다섯 비구들에 의해서 제자들이 자꾸 불어나고 그랬는데, 한 천 명 가량 제자가 되었을 때 부처님이 도(道)를 이루시던 정각산(正覺山)에 한번 가셨습니다.

가서 천 명의 제자와 더불어 그 산봉우리에 올라가지고, 당신이 공부하시던 곳-그 사위성(舍衛城)·왕사성(王舍城) 모다 그런 도시를 보시면서 그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 『온 세계가 불 훨훨 타고 있구나. 그 불이 훨훨 타 들어오는구나. 그 불이 무슨 불이냐 하면은 탐욕(貪慾)의 불이요, 진심(瞋心)의 불이요, 어리석음의 불이 이렇게도 훨훨 타 들어오는구나.』 이러한 법문을 하셨습니다.

그 산상(山上)의 법문이라 해서 참 널리 알려진 법문인데, 우리가 육도윤회(六道輪廻)를 하는 것도 이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의 끝없이 타고 있는 불 때문에 육도윤회를 하고 있는 것이고,

지금 온 세계가 무서운 군사 무력을 증강을 하면서 도처에서 전쟁이 일어나고, 역사 이래로 끊임없이 전쟁이 일어나고, 지금도 언제 전쟁이 일어날지 모르는 이러한 상황, 옛날에는 화살이나 칼로 싸우고 창으로 싸웠지만은 중간에 총이 나오고, 이제는 원자탄·수소탄 무슨 광선으로 눈 한번 깜박할 사이에 많은 생명을 앗아갈 수 있는 무서운 무기가 생겨나고, 이 지구덩어리도 가루를 만들어 버릴 수 있는 그런 무서운 무기들을 모다 마련해 가지고 지금 있는데,

이러한 전쟁이 그 원인을 살펴보면 결국은 탐진치 삼독 때문에 그렇다 그말이여.

개인적으로는 ‘내’라고 하는 아상(我相), '내 몸이다, 내 재산이다, 내 식구다, 내 집이다', ‘나’라고 하는 그 생각 때문이고, 그 생각이 결국은 자기만 잘 살라고 하는 생각, 자기만 편할라고 하는 생각,그것 그 생각 때문에 우리가 생명도 유지해 나가고 있기는 하지만 그 생각이 승화(昇華)되어서 모두가 잘 살 수 있는 길로 마음을 써야 할 텐데, 남이야 죽거나 말거나 자기만 잘 살려고 하는 그런 생각 때문에 결국은 그것이 사회적으로 국가적으로 이렇게 범위가 넓어지고 보면 좁게는 식구끼리 싸우고, 크게는 이웃 간에 싸우고, 회사끼리 싸우고, 더 커지면은 국가와 국가끼리 싸우게 됩니다.

그러한 생각을 승화(昇華)시켜서 온 세계를 한 나라로, 한 식구로 이렇게 만드는 길이 바로 부처님의 법(法)입니다.
부처님의 법에 의지해서, 부처님의 지혜와 자비의 사상에 의해서 살아가고 다스려가지 않고서는 세계평화는 이루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정법(正法)에 의지해서 참 열심히 도를 닦아야 합니다.(22분26초~37분21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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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隨流常出沒  不滯往來蹤’ ; [천성광등록(天聖廣燈錄)] 卷25, 처인선사(蘄州靈泉山處仁禪師) 참고.
*(게송) ‘頭頭無取捨  處處絶疎親’ ; [가태보등록(嘉泰普燈錄)] 제17권, 월암선과선사(潭州大溈月庵善果禪師) 참고.

*인연(因緣) ; ①어떤 결과를 일으키는 직접 원인이나 내적 원인이 되는 인(因)과, 간접 원인이나 외적 원인 또는 조건이 되는 연(緣). 그러나 넓은 뜻으로는 직접 원인이나 내적 원인, 간접 원인이나 외적 원인 또는 조건을 통틀어 인(因) 또는 연(緣)이라 함. ②연기(緣起)와 같음.
*집착(執着) ; 허망한 분별로써 어떤 것에 마음이 사로잡혀 헤어나지 못함. 그릇된 분별로써 어떤 것을 탐내어 그것에서 벗어나지 못함.
*정념(正念) ; 바른 생각. 선종(禪宗)에서의 바른 생각이란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하는 한 생각(叅究一念).
*본참화두(本參話頭) ; 본참공안(本參公案).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외도(外道) ; 불교 이외의 다른 종교의 가르침. 또는 그 신봉자.
*경계(境界) ; ①인과(因果)의 이치(理致)에 따라서, 자신이 부딪히게 되는 생활상의 모든 일들. 생로병사•희로애락•빈부귀천•시비이해•삼독오욕•부모형제 춘하추동•동서남북 등이 모두 경계에 속한다.
②나와 관계되는 일체의 대상. 나를 주(主)라고 할 때 일체의 객(客). ③시비(是非)•선악(善惡)이 분간되는 한계.  경계(境界)에는 역경(逆境)과 순경(順境), 내경(內境)과 외경(外境)이 있다.

*계행(戒行) ; ①계() 지켜 수행하는 . 계율에 정해진 규칙을 성실하게 실천수행하는 . ②계율과 도덕.

*계상(戒相) ; ①계를 설명하기 위해 사용하는 4가지 분류[계사별 戒四別],  계법(戒法) · 계체(戒體) · 계행(戒行) · 계상(戒相) 하나. 계율을 실천하고 수행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여러 가지 차별 있는 행동 양상. () 지키거나[持戒] 범한[破戒] 상태, 또는 계를 범한 경우 그에 대한 죄의 가벼움과 무거움 등의 차별된 상.

②계() (). 계율에 대한 생각.  계상(戒相) 청정성, 집착의 여부는 그것을 일으키는 주체에 따라 달라진다. [참고] 『화엄경』 60권본 10 14 명법품(明法品)(대정장9. p.460c)  계를 지킨다는 () 일으키지 않으므로 계에 집착함이 없다. 이것을 청정시바라밀이라 한다. 不生持戒相故  於戒無著  是名淸淨尸波羅蜜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시비(是非) ; ①옳으니 그르니 하는 말다툼. ②이러니저러니 좋지 않게 트집을 잡아서 말함. ③옳고 그름.
*증애(憎愛) ; 사랑과 미움. 애증(愛憎).
*보조(普照) 스님 ; 분류 ‘역대 스님 약력’에서 '보조국사' 참고.
*보조(普照) 스님의 법문 ; [참고] 『진심직설(眞心直說)』 '眞心驗功 (진심 공부의 점검)'에서.
소를 치는 공부.
或曰 眞心現前 如何知是眞心 成熟無礙也.
어떤 이가 물었다. “진심(眞心)이 현전(現前)할 때, 어떻게 그 진심이 성숙하여 걸림이 없음을 압니까?”

曰 學道之人 得眞心現前時 但習氣未除 若遇熟境 有時失念.
나는 답하였다. “도를 배우는 사람이 진심(眞心)이 앞에 나타났을(現前) 때에 아직 습기(習氣)를 완전히 제거하지 못하고 익숙했던 경계를 만나면 때로는 생각을 잃는 수가 있다.

如牧牛 雖調到牽拽隨順處  猶不敢放了鞭繩 直待心調步穩 赶趁入苗稼中 不傷苗稼 方敢撒手也. 到此地步 便不用牧童鞭繩 自然無傷苗稼.
그것은 마치 소를 치는 것과 같다. 즉, 비록 길이 잘 들여져서 이끄는 대로 따르게 되었더라도, 아직은 감히 채찍과 고삐를 풀지 않고, 좀더 기다려 마음이 잘 다스려지고 그 걸음이 순해져서 혹 곡식밭에 들어가더라도 곡식을 해치지 않게 되어야 비로소 손을 놓는 것과 같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목동이 채찍과 고삐를 쓰지 않더라도 자연히 곡식을 해치지 않을 것이다.

如道人得眞心後 先且用功保養 有大力用 方可利生.
그와 같이 도인(道人)이 진심(眞心)을 얻은 뒤에 먼저 공(功)을 들여 보호하고 길러 큰 힘을 쓸수 있을 때, 비로소 중생을 이롭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사랑하고 미워하는 마음이 일지 않는가?
若驗此眞心時 先將平生所憎愛底境 時時想在面前  如依前起憎愛心 則道心未熟  若不生憎愛心 是道心熟也.
만약 이 진심(眞心)을 점검하려면 먼저 평상시에 미워했거나 사랑하던 대상을 가져다 때때로 면전(面前)에 있다고 생각해 보라. 만일 여전히 '미워하고 사랑하는 마음(憎愛心)'이 일어나면 도의 마음(道心)이 아직 성숙하지 못한 것이요, 만일 '미워하거나 사랑하는 마음'이 나지 않으면 그것은 도의 마음이 성숙한 것이다.

雖然如此成熟 猶未是自然不起憎愛  又再驗心 若遇憎愛境時 特然起憎愛心 令取憎愛境界 若心不起 是心無礙 如露地白牛 不傷苗稼也.
그러나 그렇게 성숙(成熟)하였더라도 그것은 아직도 '미워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저절로 일어나지 않은 것은 못된다. 또 다시 마음을 점검하되, 만일 미워하고 사랑하는 대상을 만났을 때, 특히 '미워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일으켜 그 대상을 취하게 하여도 그래도 마음이 일어나지 않으면 그 마음은 걸림이 없어, 마치 '한데에 놓아둔 흰 소[露地白牛]'가 곡식을 해치지 않는 것과 같은 것이다.

古有呵佛罵祖者 是與此心相應  今見纔入宗門 未知道之遠近 便學呵佛罵祖者 太早計也.
옛날에 부처를 꾸짖고 조사를 꾸짖은 사람들은 이 마음과 상응(相應)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요즘에 보면, 겨우 종문(宗門)에 들어온 사람들이 아직 도의 멀고 가까움도 모르면서 곧 부처를 꾸짖고 조사를 꾸짖는 것만 배우는 것은 아주 잘못된 것이다.”
---『참마음 이야기(진심직설 강의)』 (지눌 저, 강건기 강의 | 불일출판사) p241~253.  『땅에서 넘어진 자, 땅을 짚고 일어나라-보조국사어록』 (김달진 옮김 | 동화출판사) p138~139, 155 참고.
*진심(眞心) ; 허망을 여읜 것을 참[眞]이라 하고, 신령스럽게 밝은 것을 마음[心]이라 한다.(離妄名眞 靈鑑曰心) 우리 본래의 참 마음, 참 모습.
*담박(淡泊)하다 ; (사람이)욕심이 없고 순박하다.
*무연자비(無緣慈悲) ; 무조건의 자비(慈悲). 상대의 어떤 것도 묻지 않고, 일체 평등으로 구제하는 자비심. 일체 평등의 이치를 깨달아 상대의 상(相:모습)을 가리지 않고 행하는 자비. 무연(無緣)이란 진여평등(眞如平等)의 이치를 깨달아 중생의 본체(本體)가 허망하다는 것을 알고 일으키는 자비.
*자비(慈悲) : [범] maitri  자비는 사랑하는 것과 불쌍히 여기는 것인데, 네 가지 끝없는 마음(四無量心) 가운데 두 가지이다。모든 중생에게 실제로 즐거움을 주는 것을 「자(慈)」라 하고(慈能與樂), 중생의 고통을 실제로 덜어 주며 근본적으로 그 근심 걱정과 슬픔의 뿌리를 뽑아 내어 주는 것을 「비(悲)」라고 한다(悲能拔苦).
*원결(怨結 원망할 원,맺을·번뇌 결) ; 원망(怨望)의 마음이 얽혀 풀리지 않는 것을 말함.
*녹야원(鹿野苑) ; 석가(釋迦)가 35세에 성도(成道)한 후 최초로 설법을 개시한 곳이며, 이때 교진여(僑陳如) 등 5명의 비구(比丘)를 제도(濟度)하였다.
갠지스 강 중류, 지금의 바라나시(Varanasi, 베나레스 Benares)에서 북동쪽 약 7㎞ 지점에 있는 사르나트(Sarnath)의 유적이 곧 녹야원의 터. 사슴동산(녹야원), 즉 사르나트(Sarnath)는 산스크리트어로 ‘사슴의 왕’을 뜻하는 ‘사란가나타(Saranganatha)’가 줄어든 말이다.
붓다가 깨달음을 이룬 우루벨라(uruvelā) 마을의 붓다가야(buddhagayā)에서 녹야원까지는 직선 거리로 약 200㎞됨.
탄생(誕生:룸비니) ·성도(成道:붓다가야) ·입멸(入滅:쿠시나가라)의 땅과 더불어 불교(佛敎) 4대 성지의 하나.
*산상(山上)의 법문 ; [참고]  『잡아함 시현경(示現經)』에서.
"비구들아, 모든 것이 불타고 있다. 모든 것이 불타고 있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른바 눈(眼)이 불타고 있고, 물질(色)과 안식(眼識)과 안촉과 안촉을 인연하여 생기는 느낌, 즉 괴로운 느낌·즐거운 느낌·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도 또한 불타고 있다.

귀·코·혀·몸도 마찬가지이며, 이와 같이 뜻(意)도 불타고 있고, 법(法)과 의식(意識)과 의촉과 의촉을 인연하여 생기는 느낌, 즉 괴로운 느낌·즐거운 느낌·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도 또한 불타고 있다.

무엇에 의해 불타고 있는가? 탐욕의 불로 불타고 있고, 성냄의 불로 불타고 있으며, 어리석음의 불로 불타고 있고, 태어남·늙음·병듦·죽음·근심·슬픔·번민·괴로움의 불로 불타고 있느니라."
*탐(貪) ; 자기의 뜻에 잘 맞는 사물에 집착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진(瞋) ; 자기의 마음에 맞지 않는 것에 대하여 분하게 여겨 몸과 마음이 편안하지 못하게 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치(癡) ; 현상이나 사물의 도리를 이해하지 못하여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는 번뇌를 이른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삼독(三毒) ; 사람의 착한 마음(善根)을 해치는 세 가지 번뇌. 욕심, 성냄, 어리석음(貪,瞋,癡) 따위를 독(毒)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육도윤회(六途輪廻, 六道輪廻) ; 선악(善惡)의 응보(應報)로 육도(六途-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의 고락(苦樂)을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것.
*아상(我相) ; 산스크리트어 ātma-saṃjñā 나라는 관념·생각.  자아(自我)라는 관념·생각.  자의식.  남과 대립하는 나라는 관념·생각.  실체로서의 자아가 있다고 생각하는 망상.
*승화(昇華) ; 어떤 현상이 한 단계 더 높은 영역으로 발전함.

Posted by 닥공닥정
하심 팔풍 경계대처2014. 6. 19. 11:21

§(246) 도고마성(道高魔盛) / 참선하는 사람은 그 '한 생각'을 무섭게 단속을 해야 / 자가철주(自家鐵柱) / (게송) 출가수도배~ / 도(道) 닦으면 다 출가(出家) 수도인.

화두를 들고 참선하는 사람은 그 '한 생각'을 무섭게 단속을 해야 해.
모든 순경계(順境界), 모든 역경계(逆境界), 일체 팔풍(八風)계를 당해서 그 '한 생각' 미끄러지는 것을 무섭게 단속을 해야만 그런 마군이의 권속에 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몸이야 속가에 있건 산중에 가 있건, 도심(道心)을 내서 도를 닦아 가면 모두가 다 출가 수도인인데, 출가 수도인이 가장 주의할 것은 재물(財物)과 색(色)이다.


마음은 고삐 없는 소와 같애서 잠깐! 방심을 해버리면 이놈이 밭으로도 들어가고, 논으로도 들어가고, 곡식 밭에도 가고, 채소 밭에도 들어가서, 다 그저 짓밟고 쥐어 뜯어먹고 해서 망가트려 버리는 거여.
우리의 마음, 고삐가 없는 소와 같아서 항시 단속을 하지 아니하면 눈 한번 깜박할 사이에 천리만리를 왔다갔다 하고, 갈디 못 갈디, 생각할 거 안 할 거, 볼 거 안 볼 거, 참 그것을 표현을 헐 수가 없을 정도여.


**송담스님(No.246) - 84년(갑자년) 추계산철결제 법문(84.08.27)에서. (용246)


약 22분.

 


일심으로, 무엇이고 일심(一心)으로 허면 안정이 되고, 안정이 되면 맑아지고, 맑아지면 거기에는 온갖 마장(魔障)이 거기에 붙게 되는 것입니다.

능엄경(楞嚴經)에 보면 색(色)·수(受)·상(想)·행(行)·식(識).
색음(色陰)이 스러져서 없어지면, 색(色)이라 하는 것은 육체(肉體)를 말하는 것인데,
안(眼)·이(耳)·비(鼻)·설(舌)·신(身)·의(意)-

그 육체(肉體)의 모든 기관이 안정이 되고, 안정이 되면 조용해지고, 조용허면 맑아지는 것인데, 그 색음이 맑아지면은 여러 가지 신기한 경계가 나타나는 수가 있습니다.

또 수(受)·상(想)·행(行)·식(識). 수상행식(受想行識)은 정신 작용인데 그 정신 작용이 안정이 되면 맑아지고, 맑아지면 거기에 여러 가지 종류의 신기하고도 묘한 경계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맑아지면은 그러헌 마장(魔障)이 일어나냐’허면, 이 우주법계에는 여러 가지 종류의 신기한 능력을 갖춘 마귀(魔鬼)가 있습니다.
그런 마귀는 다 전생에 도를 닦다가 공부가 잘못되어 가지고, 공부는 지극정성으로 해서 거의 깨달음에 가까울 지경에 이르도록 그렇게 지극정성으로 도를 닦다가,
'한 생각' 잘못한 탓으로 삿된 경계에 떨어져서 바른 깨달음을 얻지 못한 그러한 중생, 그런 것이 귀신의 몸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온갖 신통이, 오신통(五神通)이 다 나 가지고, 참 그러한 귀신이 많이 있는데,
누구라도 도를 닦은 사람이 있으면 그 귀신이 시기가 나 가지고 그것을 온갖 수단과 방법을 써 가지고 방해를 치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이 바른 깨달음을 얻지 못했기 때문에 누가 도만 열심히 닦을랴고만 허믄, 그것을 시기·질투가 나 가지고 그걸 방해를 치게 되는 것입니다. 방해를 치기 위해서 항시 주변을 맴돌고 있어.
육근문두(六根門頭)에 그것을 엿보고 있다가 조금이라도 틈만 있으면 그 틈을 타서 침범해 들어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옛날부터 ‘도고마성(道高魔盛)’이다. ‘도가 높으면 높아질수록 마군(魔軍)이는 무장 더 성해진다’하는 말이 있는 것은 바로 그러헌 까닭인 것입니다.

그래서 도 닦은 사람은 '한 생각' 단속하기를 무섭게 단속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진정계중자일념(眞淨界中纔一念)이, 진정계(眞淨界) 가운데에 겨우 이 '한 생각'이,
염부조이팔천세(閻浮早已八千歲)다. 염부(閻浮)에 있어서는 벌써 팔천 세(八千歲)가 된다 그말이여.

정진을 해서 오음(五陰)이 맑아지면 맑아질수록 눈 한번 깜박하는 그 찰나 간의 '한 생각'이 이런 무서운 마귀를 자기 마음속에 불러들이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 생각 삐끗한 그 '한 생각' 단속을, 마치 화약고를 지키는 파수병(把守兵)이 불조심 허듯이,
잠깐 실수로 담뱃불 하나 실수하면 그 어마어마한 화약이 터져서 그 많은 화약을 다 손실하고 거기에 있는 많은 사람의 생명을 앗아가고 동시에 자기의 목숨까지 잃게 되는 거와 마찬가지입니다.

화두를 들고 참선하는 사람은 그 '한 생각'을 무섭게 단속을 해야 해.

성이 날 때, 슬플 때, 억울할 때, 근심 걱정이 있을 때, 기쁠 때, 좋을 때, 모든 순경계(順境界), 모든 역경계(逆境界), 일체 팔풍(八風)계를 당해서 그 '한 생각' 미끄러지는 것을 무섭게 단속을 해야만 그런 마군이의 권속에 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숙세(宿世)에 이 정법(正法)에 인연이 있어서 우리가 이런 최상승법을 만나서 듣고 이것을 실천을 허게 된 것까지는 매우 다행한 일이나,

그 의지력이 견고허지 못해 가지고 반신반의(半信半疑)를 해서 조금 해 보다가 말다가, 조금 이 마음을 가다듬고 조금 헐라고 하면 무슨 일이 생기면 그것 또 와르르 무너져 버리고,
이렇게 허는 둥 마는 둥, 허다가 말다가, 이 핑계 저 핑계 이렇게 해 가면 도(道)의 마음은 점점 생소해지고, 세속적인 그런 생각은 날이 갈수록 얽히고설켜서 그럭저럭 안 헌 것도 아니요, 헌 것도 아니요,

이렇게 해 가면, 56억 7천만 년 뒤에 미륵불(彌勒佛)이 하생(下生)헐 때까지 공부를 해도 도를 이룰 기약은 막연헐 수 밖에는 없을 것입니다.

오늘 산철 결제일을 맞이해서 다시 한번 우리가 다짐을 허기 위해서 이러헌 법요식을 갖게 된 것입니다.

시간은 이렇게 말을 허고 있는 이 동안에도 계속 쉬지 않고 흘러가고 있습니다. 한 생각 한 생각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고 1초 1초가 이렇게 지내가고 있는 동안에 우리의 수명은 죽음을 향해서 달려가고 있습니다.

이 사실을 명심헌다면, 우리는 한 생각 단속하는 일 이외의 다른 일에는 단 1분 1초도 시간을 허비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고인은 ‘죽을 사(死)’자를 이마에다 써 붙이고 공부를 허기도 하고,
송곳을 턱 밑에다가 받쳐 놓고 공부를 허기도 하고,
잠을 잘 때에는 둥글둥글하게 목침을 깎아 가지고 그래 가지고 비고 자다가, 삐끗하면 퉁! 머리가 방바닥으로 떨어지는 바람에 깜짝 놀래서 일어나서 정진을 하고,
또 말을 허다 보면 한마디가 두 마디 되고, 두 마디가 열 마디 되아서 그렇게 말허다 보면 생각을 놓치고 화두를 놓칠까, 그래서 말을 아니 허면서 정진을 하고,
또 밥을 많이 먹다 보면은 또 식곤증(食困症)이 나서 졸음이 올까봐, 그래 밥을 한 끼씩만 먹고 허기도 하고.
이렇게 모든 방법을 다 써 가면서 애를 쓰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여러 스님네께 ‘밥을 한 끼만 먹어라’, ‘말을 허지 말고 묵언(默言)을 하라’, 또 ‘송곳을 깎아서 턱 밑에다 괴아라’ 이런 것을 내가 권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럴만한 의지력과 각오를 가지고 정진을 해 나간다면,
말을 일부러 묵언을 허지 아니해도 저절로 하루에 한마디 허거나 말거나, 이틀에 한마디 허거나 말거나 하면, 일부러 묵언을 안 해도 저절로 묵언이 되아져야 그 묵언이 진짜 묵언이 될 것이고,

하루에 세 때를 먹더라도 한 알갱이도 씹은 바가 없다면 하루 세 그릇 먹는다고 해서 무엇이 방해로울 것이 있는가.
다만 과식만 허지 않도록 잘 저작(咀嚼)을 해서 소화만 잘 시킨다면, 세 그릇 먹어도 한 알갱이도 씹지 않는 도리가 그 속에 있으니, 무엇을 걱정헐 것이 있느냐 그말이여.

9시에 자고 3시에 일어나면 6시간인데, 그 동안에 한 시간쯤 더 안 자고 5시간만 자고 정진을 헐 수도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6시간을 자되 잘 때에 든 화두가 꿈 속에서도 화두가 들린다면, 6시간을 잔다고 해서 무엇이 또 방해로울 것이 있습니까.

산철 동안 춥지도 덥지도 않고 그러니 그 기간을 자가철주(自家鐵柱)를 세워서 다른 사람의 타율적인 그런 견제로 인해서 규칙을 지킬려고 헐 것이 아니라,
일심으로 정진을 허다 보니 저절로 모든 것이 법도에 맞고 규칙에 맞아서 한 달이 하루와 같이, 두 달이 하루와 같이 이렇게 정진을 해 가신다면 반드시 이 산철 동안에 공안을 타파해서 본래면목을 깨닫게 되실 것이 의심이 없으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출가수도배(出家修道輩)여  재색최선금(財色最先禁)이니라
나무~아미타불~
군거수구신(群居須口愼)하고  독거요방심(獨居要防心)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출가수도(出家修道)한 선객(禪客)들이여, 재색(財色)이 최선금(最先禁)이니라.
재물과 색이 가장 먼저 금(禁)할 것이니라.

출가 수도인(出家修道人)이라 하는 것은 문자 그대로 집을 나와서 머리를 깎고 먹물 옷을 입은 스님네를 말하는 바지마는, 출가(出家)라고 허는 뜻이 넓게 본다면, 넓은 의미에서 출가를 해석을 헌다면,
몸뚱이에 기준을 둘 것이 아니라, 마음에다 기준을 두어야 더 옳다고 생각을 허는 것입니다.

머리를 깎고 안 깎고, 먹물 옷을 입고 안 입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마음에 도심을 발(發)하면, 도 닦을 마음을 내면 머리가 있고 속복을 입어도 그게 출가인(出家人)이고,
설사 머리를 깎고 먹물 옷을 입었다 해도 도심(道心)이 없이 속심(俗心)이 가득 차 있다면 그건 출가인이라고 헐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몸도 출가하고 마음도 출가한 출가인도 있고, 몸도 마음도 속가에 있는 사람도 있고, 몸은 속가에 있으면서 마음은 출가한 사람도 있고, 이 네 가지로 출가·재가를 이렇게 설명을 헐 수가 있는 것입니다.

몸이야 속가에 있건 산중에 가 있건, 도심(道心)을 내서 도를 닦아 가면 모두가 다 출가 수도인인데, 출가 수도인이 가장 주의할 것은 재물(財物)과 색(色)이다.

재물(財物)은 모든 재산이나, 명예나, 권리나, 먹을 것이나, 입을 것이나 이런 것들이 모두 재산에 해당이 되고, 색(色)이라 하는 것은 비단 남녀 간의 문제뿐만이 아니라 일체 색상(色相)을 통해서 마음에 욕심을 내면 그것이 다 색에 해당이 되는 것이다.

도 닦는데 그것을 금(禁)해야 한다 그랬는데, 그것을 멀리허고 금(禁)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무량겁(無量劫)을 통해서 익히고 익힌 바라, 유심·무심을 통해서 항시 그것이 본의 아니게 우리의 눈에도 그것이 걸리고, 귀에도 걸리고, 코에도 걸리고, 입에도 걸리고, 몸에도 걸리고, 생각에도 그것이 걸려든다 그말이여.
걸려드는 그 찰나에 바로 그 생각을 버릴랴고 허지 말고, 그 생각에 즉해서 화두를 거각(擧却)을 헌다면 이것이 바로 최상승법을 실천하는 사람의 수행 방법이라 할 것입니다.

군거수구신(群居須口愼)이요, 여럿이 살 때에는 입을 조심을 해라.

혼자는 말을 못허는 것이고, 두 사람 세 사람 이상 열 사람, 스무 사람, 그게 인자 군거(群居)인데,
여러 사람이 모이면은 자연히 입이 벌어져서 말이 나오는데, 입을 벌려서 말을 허다 보면은 좋은 말보다도 쓸데없는 말을 많이 허고, 쓸데없는 말을 허면은 시비가 일어나서 내 속상하고 남의 속상하고 화두는 달아나 버리고, 그래 가지고 싸움이 일어나기 마련이니 그래서 입을 조심을 해라.

그 다음에는 혼자 있을 때에는 방심(放心)을 조심을 해라[獨居要防心]. 방심(放心)은 마음을 놓아 버리는 거여. 마음을 단속하는 것을 조심을 해라.

마음은 고삐 없는 소와 같애서 잠깐! 방심을 해버리면 이놈이 밭으로도 들어가고, 논으로도 들어가고, 곡식 밭에도 가고, 채소 밭에도 들어가서, 다 그저 짓밟고 쥐어 뜯어먹고 해서 망가트려 버리는 거여.
우리의 마음, 고삐가 없는 소와 같아서 항시 단속을 하지 아니하면 눈 한번 깜박할 사이에 천리만리를 왔다갔다 하고, 갈디 못 갈디, 생각할 거 안 할 거, 볼 거 안 볼 거, 참 그것을 표현을 헐 수가 없을 정도여.

그러다 보면은 1시간 2시간이 속절없이 지내가고 하루 이틀이 속절없이 지내가니 혼자 있을 때에는,
이 ‘혼자’라 하는 것은 육체적으로 자기 혼자 있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남이 모르는, 자기 속에서 일어나는 그것을 여기서 ‘홀로 독(獨)’자 ‘혼자’라, 이렇게 보면은 이 참선하는 사람은 그것이 더 해당을 하는 것입니다.

이미 그 생각이 얼굴로 나타나고 행동으로 나타나면은 이것이 인자 모든 사람이 보게 되니까 모든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이고,
아직 그 생각이 말이나 얼굴이나 행동으로 표현이 되기 이전에 자기 혼자만 알 수 있는, 그 겨우 가는 생각이 탁! 일어날 그 순간, 이것을 ‘혼자 있는 때’라고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 혼자 있는 바로 그때를 탁! 돌이켜서 그 생각이 얼굴로 표현이 되기 전에, 말로 나타나기 전에, 행동으로 나타나기 이전에 '한 생각' 일어나자마자 바로 그 때의 생각을 잘 단속을 해 버려.
그때 탁! 돌이켜서 화두를 들어버려야 할 것이다.

이렇게 단속을 하고 정진을 해 가시기를 거듭 당부를 하고 스스로 다짐허면서 반산림의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43분12초~64분25초)(끝)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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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장(魔障 마귀 마,장애 장) ; 귀신의 장난이라는 뜻으로, 일이 진행되는 과정에 나타나는 뜻밖의 방해나 헤살을 이르는 말. [참고]헤살;남의 일이 잘 안 되도록 짓궂게 방해함.
*능엄경(楞嚴經) ; 본이름은 대불정여래밀인수증료의제보살만행수릉엄경(大佛頂如來密因修證了義諸菩薩萬行首楞嚴經). 10권. 당(唐)의 반자밀제(般刺蜜帝) 번역.
마음은 어디에 있는가에 대한 세존과 아난(阿難)의 문답으로 시작하여 깨달음의 본성과 그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설하고 여래장(如來藏)이 무엇인가를 밝힘.
깨달음으로 들어가는 가장 쉬운 방법은 관음신앙이라 하고 능엄다라니(楞嚴陀羅尼)를 설한 다음, 보살의 수행 단계, 중생이 수행하는 과정에 일어나는 여러 가지 번뇌에 대해 그 원인과 종류를 밝힘.
*색음(色陰) ; 색온(色蘊)의 구역(舊譯). 오음(五陰)의 하나.
*색온(色蘊) ; 오온(五蘊)의 하나. '물질'이라는 집합. 색(色)은 스스로 생멸변화하고, 또 다른 것을 장애한다. 온(蘊)은 모여서 뭉친 것으로 화합하여 한덩어리가 된 것.
*마(魔) : [범] mara 음을 따라 마라(魔羅)라 하고, 줄여서 마(魔)라고만 한다。장애자(障礙者)• 살자(殺者)• 악자(惡者)라 번역。목숨을 빼앗고 착한 일을 방해하며 모든 것을 파괴하는 악마를 말한다. 그러나  '마'는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에서 생기는 것이다.

 

[참고] “마(魔)란 생사를 즐기는 귀신의 이름이요, 팔만사천 마군이란 중생의 팔만사천 번뇌다. 마가 본래 씨가 없지만,수행하는 이가 바른 생각을 잃은 데서 그 근원이 파생되는 것이다。중생은 그 환경에 순종하므로 탈이 없고, 도인은 그 환경에 역행하므로 마가 대들게 된다。그래서 '도가 높을수록 마가 성하다'고 하는 것이다.
선정 중에 혹은 상주를 보고 제 다리를 찍으며 혹은 돼지를 보고 제 코를 쥐기도 하는 것이, 모두 자기 마음에서 망상을 일으켜 외부의 마를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마의 온갖 재주가 도리어 물을 베려는 것이나, 햇빛을 불어 버리려는 격이 되고 말 것이다。옛말에 '벽에 틈이 생기면 바람이 들어오고, 마음에 틈이 생기면 마가 들어온다'고 하시니라.” (선가귀감 十九, p64에서)
*오신통(六神通) ; 보통 사람으로서는 헤아릴 수 없는 것을 헤아림을 신(神)이라 하고, 걸림 없는 것을 통(通)이라 한다. 다섯 가지 불가사의하고 자유 자재한 능력.
*육근문두(六根門頭) ; 육근(六根-眼耳鼻舌身意)의 문 앞. 육근과의 경계.
*(게송)진정계중자일념(眞淨界中纔一念)  염부조이팔천세(閻浮早已八千歲) ; 중국 당나라 동안상찰(同安常察) 스님(872-961)이 마음의 현묘한 이치를 10가지 대목으로 말씀한 게송 [십현담(十玄談)]의 5번째 '연교(演敎)'의 끝 구절.
*진정계(眞淨界) ; 참되고 깨끗한 세계.
*염부(閻浮) ; 염부제(閻浮提). 남염부제(南閻浮提). 섬부주(贍部洲). 남섬부주(南贍部洲).
산스크리트어 jambu-dvīpa의 음사. 염부(閻浮), 섬부(贍部)는 jambu의 음역어이며, 제(提)와 주(洲)는 dvipa의 각각 음역어 및 의역어이다. jambu는 나무 이름.
불교의 우주관에 의하면 세계의 중심에 높이 솟은 거대한 수미산(須彌山)의 사방에 네 대륙(四洲)이 있는데, 염부라는 이름은 여기에 자란다는 점부(jambu)에 유래하며, 남방에 있기 때문에 남섬부주(南贍部洲)라고 한다. 우리 인간들이 사는 곳이라 하며, 여러 부처님이 나타나는 곳은 사주(四洲) 가운데 이곳뿐이라 함. 불전에서는 인간세계의 전체를 의미하는 말로서 사용되고 있다.
*오음(五陰) ; 오온(五蘊)의 구역(舊譯).
*오온(五蘊) : 온(蘊)은 무더기•모임•집합•더미를 뜻함. 인간을 구성하는 다섯 가지의 요소의 무더기-물질적 요소인 색온(色蘊)과 정신요소인 4온(수·상·행·식)을 합쳐 부르는 말.
①색온(色蘊):몸이라는 무더기. 몸의 감각 무더기.
②수온(受蘊):괴로움이나 즐거움등, 느낌의 무더기.
③상온(想蘊):대상에 이름을 부여하고, 다양한 개념을 지어내는 생각•관념의 무더기.
④행온(行蘊):의도(意圖)하고 지향하는 의지•충동•의욕의 무더기.
⑤식온(識蘊):식별하고 판단하는 인식의 무더기.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파수병(把守兵) ; 주변을 경계하여 지키는 병사.
*순경계(順境界) ; ①자기의 마음에 들어맞어 마음이 따르는 경계. ②모든 일이 뜻대로 잘되어 가는 경우나 형편.
*역경계(逆境界) ; ①자기의 마음에 반대되어 마음이 언짢은 경계. ②일이 순조롭지 않아 매우 어렵게 된 처지나 환경. 역경(逆境), 위경(違境)이라고도 한다.
*팔풍(八風) : 우리의 마음을 흔들어서 움직이게 하는 여덟 가지 현상을 말한다。
내 뜻에 맞고(利), 내 뜻에 어기는 것(衰), 나 안 보는 데서 나를 찬미하는 것(譽), 나 안 보는 데서 나를 비방하는 것(毀), 면전에서 찬미하는 것(稱), 면전에서 비방하는 것(譏), 몸과 마음을 괴롭히는 것(苦), 몸과 마음을 즐겁게 해 주는 것(樂) 등이다.
*반신반의(半信半疑) ; 한편으로는 믿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의심스러워함.
*미륵불(彌勒佛) ; Maitreya. 번역하여 자씨(慈氏). 인도 바라나국의 바라문 출신으로 석가모니의 교화를 받고, 미래에 성불하리라는 수기를 받아, 도솔천에 올라 천인(天人)을 위해 설법•교화하고,
석가모니 입멸 후 56억 7천만 년을 지나 다시 이 사바세계에 하생(下生)하여 화림원(華林園) 안의 용화수(龍華樹) 아래서 성불(成佛)하고, 3회의 설법으로써 석가모니세존의 교화에 빠진 모든 중생을 제도한다고 한다. 석가모니세존의 업적을 돕는다는 뜻으로 보처(補悽)의 미륵이라 한다.
*저작(咀嚼 씹을 저,씹을 작) ; 음식물을 입에 넣고 씹음.
*자가철주(自家鐵柱) ; 자기 스스로 정한 규칙을 쇠기둥(鐵柱)을 세워 놓은 것과 같이, 움직임없이 지켜나감을 이르는 말.
*(게송) ‘출가수도배~’ ; [청허당집(清虛堂集)] (서산휴정 著,朴敬勛 역, 동국대학교 역경원) p145 ‘명감(明鑑)·상주(尙珠)·언화(彥和)의 여러 문도(門徒)에게’ 게송 참고.
*도심(道心) ; 불도(佛道)를 행하고 믿는 마음.
*속심(俗心) ; 세상의 명예나 이익을 구하고자 하는 속된 마음.
*색상(色相) ; 육안(肉眼)으로 볼 수 있는 모든 물질의 형상.
*거각(擧却 들 거,어조사 각) ; 화두를 든다.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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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6) (게송) 역지즉노순지환~ / 환희마(歡喜魔), 번뇌마(煩惱魔) / (게송) 견색비간색~ .

공부가 잘되어도 지나치게 좋아하는 생각을 내면, 환희심을 내면 환희(歡喜)라고 하는 마군(魔軍)이가 벌써 마음속으로 들어오게 되고, 잘 안된다고 번뇌심을 내면 번뇌(煩惱)의 마군이가 벌써 마음에 들어와있거든. 마군이는 ‘환희의 마군이’도 마군이고, ‘번뇌의 마군이’도 마군이거든.


**송담스님(No.326) - 1987년 3월 첫째일요법회(87.03.01)에서. (용326)


약 15분.

 


역지즉노순지환(逆之則怒順之歡)헌대  천하인정몰양반(天下人情沒兩般)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긍신순궁환역지(肯信順窮還逆至)하면  안개휴파자심만(眼開休把自心瞞)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역지즉노(逆之則怒)요 순지환(順之歡)이다. 자기의 마음에 거슬리면 성을 내고, 자기 마음에 순(順)하면 기뻐하는데 이것은 세속 생활을 해 나가는 데에서도 그렇고,
일체처에서 무엇이든지 자기 마음에 들면 다 사람들은 기뻐하고, 자기 마음에 거슬리면 다 성을 내는 것입니다.

천하인정(天下人情)이 몰양반(沒兩般)이여. 천하 모든 사람이 이 두 가지-성내지 아니하면 기뻐하고, 기뻐하지 아니하면 성내고.
왜 그러냐? 모든 것이 역경계(逆境界) 아니면 순경계(順境界)거든.

긍신순궁환역지(肯信順窮還逆至)하면, 순경계가 다하면 다시 역경계가 돌아온다고 하는 사실을 긍정하면 그것을 믿으면,

안개휴파자심만(眼開休把自心瞞)이여. 바로 모든 인간의 흥망성쇠와 희로애락과 모든 인연법(因緣法)에 눈을 뜨게 되어. 눈을 뜨게 되어가지고 스스로 속지 않게 된다.

이 세상에 흥망성쇠(興亡盛衰)와 모든 생노병사가 전부 역경계, 순경계로 이렇게 새끼 꼬아지듯이 꼬아지면서, 그렇게 해서 성립이 되었다가 그놈이 또 무너지고 무너졌다가 다시 또...
오른손에 쥐었던 새끼와 왼손에 쥐었던 새끼가 번갈아가면서 서로 바뀌면서 이렇게 새끼가 꼬아지는데,

우리의 무량겁(無量劫) 지내온 것이 그렇게 꼬아졌고, 앞으로도 그렇게 해서 순경계·역경계, 생(生)과 사(死), 기쁨과 슬픔이 그렇게 해서 이루어지면서 무량겁을 또 그렇게 갈 것입니다.

언제까지나 기쁨만 있으라는 법도 없고, 언제까지나 슬픔만 있으라는 것이 없고, 언제까지 부자가 되어라 하는 법도 없고, 언제까지도 가난한 사람은 가난하란 법이 없어요.

가난해졌다 부자되고, 부자가 되었다 가난해지고, 친해졌다가 친한 사람이 웬수가 되고, 웬수가 다시 풀어지면 또 친해지고, 그러한 변화무쌍한 참 믿을 수가 없는거, 허망한 거,

그러한 것에 우리가 말려 들어갈 것이 없고 그런데에 속지를 말고 그런데에 집착을 하지 말고,
바로 거기서 ‘참나’로 돌아와야, 그 속에 살면서 거기에 빠지지 않고 거기에 속지 말아야, 우리가 참다운 인생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성내고 기뻐하는거, 그래서 뭔 사업이 좀 잘되어도 너무 좋아서 못 견디지 말고. 그렇게 좋아서 훌훌 뛰고 야단을 칠 것이 못되어. 그러다 보면 금방 언짢은 일이 툭 생기거든.
사업이 여의치 못하고 어려운 일을 당했다 해서 그렇게 의기소침(意氣銷沈)이 되고 비관하고 아주 그럴 필요도 없어.

그럴수록에 오히려 더 정신을 가다듬고 부처님 믿는 마음으로 ‘이뭣고?’를 하고, 자기에게 주어진 모든 여건을 최대한으로 잘 살려서 노력을 하다보면 반드시 밝은 길이 또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잘되었다고 뭔 일이 성공을 했다고 지나치게 좋아서 훌훌 뛰고 하면 그것이 또 병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나치게 좋아할 것도 없고 지나치게 비관할 것도 없어요.

공부가 잘되어도 지나치게 좋아하는 생각을 내면, 환희심을 내면 환희(歡喜)라고 하는 마군(魔軍)이가 벌써 마음속으로 들어오게 되고, 잘 안된다고 번뇌심을 내면 번뇌(煩惱)의 마군이가 벌써 마음에 들어와있거든.
마군이는 ‘환희의 마군이’도 마군이고, ‘번뇌의 마군이’도 마군이거든.
그래서 우리 공부하는 사람이 어찌 그런 환희마(歡喜魔)나 번뇌마(煩惱魔)를 갖다가 우리 안으로 불러들일 필요가 있느냐 그말이여.

번뇌마도 좋은 것이 아니지만 환희마도 못쓰는 것이여. 환희마가 들어오면 벌써 그게 바르게 공부가 되어간 것이 아니거든. 마군이가 딱 차지하고 있는데 무슨 공부가 될 것이냐.

공부는 방부(房付)를 들이고 공부하시는 스님네나 또 보살님네나, 또 방부를 들이지 아니한 분이나, 언제 어디서나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방부를 안 들인 사람도 세 때 밥을 먹고, 방부를 들인 분도 세 때 밥을 먹고, 똥 누고, 걸어가고, 씻고 그게 바로 인간 생활인데 그 생활을 여의고 따로 얻은 공부해야 할 것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여.


견색비간색(見色非干色)이요  문성불시성(聞聲不是聲)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색성불애처(色聲不礙處)면  친도법왕성(親到法王城)이니라
나무~아미타불~

견색비간색(見色非干色)이요. 눈으로 모든 색상(色相)을 보되 그것이 그 색상이 관계치 않어. 색상이 색상이 아니다 그말이여.

문성불시성(聞聲不是聲)이다. 귀로 무슨 소리를 듣되, 이 소리가 소리가 아니여.
참선 공부를 아니한 사람은 무엇을 보면  붉다, 노랗다, 저것은 푸르다, 저것은 산이다, 저것은 자동차다. 떡 보는 순간부터서 둘째 생각, 셋째 생각이 계속해서 연달아서 막 가지가 번져 나가는 거여.

또 귀로 무슨 소리를 들으면 새소리가 들리면 새에 관해서 두 번째 세 번째 생각이,
새소리를 들으면 ‘아유, 봄이 왔구나. 봄이 오면 얼마 안 있으면 또 꽃이 피겠지. 그러면 밭에 또 채소 씨를 심어야겠다. 농사지을 준비를 해야겠구나. 작년에는 농사가 시원찮았으니까 금년에는 잘 지어야겠지’
한 생각이 두 생각, 두 생각에서 세 생각으로 막 번져나가.

참선하는 사람은 눈으로 무슨 색상을 보되 색상이 아니여. 색상에 관계를 하지 않고 바로 ‘이뭣고?’거든. 바로 자기로 돌아와 버려. ‘이뭣고?’ ‘이뭣고?’
귀에 무슨 소리가 들려도 그리 따라가지 말고, 두 번째 생각이 일어나는 겨를도 없이 ‘이뭣고?’ 이렇게 돌아와버리면 소리가 소리가 아니다 그말이여.

눈으로 보는 색상, 귀로 듣는 소리 거기에 걸리지 아니하면(色聲不礙處), 그것이 바로 법왕이 계신 곳에 도달하는 길이다(親到法王城). 법왕(法王), 진리로 돌아가는 곳이다 그말이여.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눈을 뜨면 무엇인가 보게 되어 있고, 귀는 항상 열려 있으니까 무슨 소린가 듣게 되어 있어.
눈으로 볼 때마다 ‘이뭣고?’ 귀로 무슨 소리를 들을 때마다 ‘이뭣고?’
우리 생각에는 살아있는 동안에는 무슨 생각인가는 끊임없이 일어나게 되어있어. 생각이 일어날 때마다 ‘이뭣고?’

이렇게 해 나가면 소리가 소리가 아니요, 모든 색상이 색상이 아니요, 모든 잡념이 잡념이 아니야.
전부가 다 ‘함이 없는 진리’로 돌아가는 길목이요 발판이 되어줄 것입니다.

오늘은 경묘년 3월 첫째 일요법회입니다. 그리고 어제가 바로 봄철 산철 결제(結制)날이었습니다.
오늘 사부대중(四部大衆)은 다시 새로 결제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일초일초를 한생각 한생각을 빈틈없이 단속을 하셔서 어린 소년이 발심을 해가지고 그렇게 알뜰히 정진을 해가지고 그어린 나이에 확철대오하신 조실스님의 법문을 항상 마음에 새겨서,

우리라고 해서 그렇게 못 할 바가 없습니다.
우리도 그렇게만 한다면 한 사람도 빠짐없이 다 도업(道業)을 성취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부디 열심히 정진을 하시기를 바랍니다.(41분23초~56분7초)(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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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역지즉노순지환~ ; 중봉명본 스님의 '天目中峯和尙廣錄卷第三十'에서 '警世卄二首' 게송 참고.
*역경계(逆境界) ; ①자기의 마음에 반대되어 마음이 언짢은 경계. ②일이 순조롭지 않아 매우 어렵게 된 처지나 환경. 역경(逆境), 위경(違境)이라고도 한다.
*순경계(順境界) ; ①자기의 마음에 들어맞어 마음이 따르는 경계. ②모든 일이 뜻대로 잘되어 가는 경우나 형편.
*인연(因緣) ; ①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분 또는 관계.  ②어떤 상황이나 일, 사물과 맺어지는 관계(연줄).
③인(因)과 연(緣)을 아울러 이르는 말. 곧 결과를 만드는 직접적인 힘(因)과 그를 돕는 외적이고 간접적인 힘(緣).
*무량겁(無量劫) ; 헤아릴 수 없는 오랜 시간이나 끝이 없는 시간. 劫과 刧는 동자(同字).
*의기소침(意氣銷沈) ; 기운이 없어지고 풀이 죽음.
*이뭣고? ; 분류 ‘이뭣고 화두’ 참고.
*환희(歡喜) ; ①기쁨. 종교적으로 만족했을 때 일어나는 신심(身心)을 모두 바친 기쁨을 말함. 또, 기뻐하는 것. ②몸의 즐거움과 마음의 기쁨을 통틀어 이르는 말. 자기의 뜻에 알맞은 경계를 만났을 때의 기쁨. ③정토종(淨土宗)에서 사후(死後) 극락왕생(極樂往生)을 미리 기뻐하는 것.
*마(魔) : [범] mara 음을 따라 마라(魔羅)라 하고, 줄여서 마(魔)라고만 한다。장애자(障礙者)• 살자(殺者)• 악자(惡者)라 번역。목숨을 빼앗고 착한 일을 방해하며 모든 것을 파괴하는 악마를 말한다。그러나  「마」는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에서 생기는 것이다.
[참고] 마(魔)란 생사를 즐기는 귀신의 이름이요, 팔만사천 마군이란 중생의 팔만사천 번뇌다. 마가 본래 씨가 없지만,수행하는 이가 바른 생각을 잃은 데서 그 근원이 파생되는 것이다.
중생은 그 환경에 순종하므로 탈이 없고, 도인은 그 환경에 역행하므로 마가 대들게 된다. 그래서 「도가 높을수록 마가 성하다」고 하는 것이다.
선정(禪定) 중에 혹은 상주를 보고 제 다리를 찍으며 혹은 돼지를 보고 제 코를 쥐기도 하는 것이, 모두 자기 마음에서 망상을 일으켜 외부의 마를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마의 온갖 재주가 도리어 물을 베려는 것이나, 햇빛을 불어 버리려는 격이 되고 말 것이다. 옛말에 「벽에 틈이 생기면 바람이 들어오고, 마음에 틈이 생기면 마가 들어온다」고 하시니라.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64에서.
*마군(魔軍) ; 악마의 군세(軍勢).
*방부(房付 방•거처 방,줄•부탁할 부) ; 수행자가 절에 머물며 공부할 것을 인사드리고 허락을 구하는 일.
*(게송) 견색비간색(見色非干色)~ ; [금강경오가해] 장엄정토분, 야부 스님 게송 참고.
*색상(色相) ; 육안(肉眼)으로 볼 수 있는 모든 물질의 형상.
*법왕(法王) : [범] dharmaraja  부처님은 진리 곧 법을 가장 밝게 깨치시고, 법을 걸림 없이 쓰시고 법을 널리 가르쳐서 법에 있어 제일 높은 어른이므로, 「법의 임금」이라고 존칭한 말이다.
또한 모든 세속 임금들에게도 큰 스승이 되고, 온갖 성인들 가운데서도 으뜸이 되므로 법왕이라 한다.
*결제(結制 맺을 결,만들•법도 제) ; 참선 수행하는 안거(安居)에 들어감. 하안거는 음력 4월 15일에 결제하며, 동안거는 음력 10월 15일에 결제한다.
*사부대중(四部大衆) ; 불문(佛門)에 있는 네 가지 제자. 곧 비구(比丘), 비구니(比丘尼), 우바새(優婆塞), 우바이(優婆夷)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참고] 〇우바새 : upasaka의 음역. 속세에 있으면서 불교를 믿는 남자.(같은 말=靑信士,靑信男,信男,信士,居士,近事男,近善男,善宿男)
원래의 말뜻은 모시는 사람. 받들어 모시는 사람. 출가수행자를 모시고, 신세를 지므로 이렇게 말한다.
〇우바이 : upasika의 음역. 속세에 있으면서 불교를 믿는 여자. (같은 말=靑信女,近事女,近善女,近宿女)
*도업(道業) ; 도(道)는 깨달음. 업(業)은 영위(營爲). 불도의 수행. 진리의 실천.

Posted by 닥공닥정
하심 팔풍 경계대처2014. 5. 30. 11:23

§(198) (게송) 득수반지미족기~ / ‘짜게 먹은 사람이 물을 켠다’ / ‘보소(寶所)가 재근(在近)이다’ / ‘물로써 물을 씻지 못할 곳을 향해서 눈을 부딪치라’

‘짜게 먹은 사람이 물을 켠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그렇게 몸과 목숨을 바쳐서 1분 1초를 알뜰히 정진해 나가고, 역경계(逆境界)와 순경계(順境界) 속에서 1분 1초도 등한히 하지 아니하고 애를 써 나간다면 반드시 대도를 성취하게 될 것입니다.

 

**송담스님(No.198)-83년 4월 첫째 일요법회(83.04.03)에서. (용198)


약 16분.

 


득수반지미족기(得樹攀枝未足奇)하고  현애살수장부아(懸崖撒手丈夫兒)니라
나무~아미타불~
수한야랭어란멱(水寒夜冷魚難覓)한디  유득공선재월귀(留得空船載月歸)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득수반지미족기(得樹攀枝未足奇)요, 나무를 얻어서 그 가지를 붙들고 떨어지지 아니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은 이것은 족히 기특한 것이 되지를 못하고,

현애살수장부아(懸崖撒手丈夫兒)니라. 그 낭떠러지에 그 붙잡고 있던 그 나뭇가지에 대롱대롱 매달려 가지고 안 떨어지려고 매달려 있던 그 손을 용기와 신념을 가지고 탁 놓아 버릴 때 바로 대장부라 할 수가 있는 것이다.

‘낭떠러지에서 떨어질까 두려워서 나무가지를 붙잡고 그 안간힘을 쓴다’하는 것은 무엇을 표하는 말이냐 하면, 한 마음-일심을 얻어가지고 그 일심을 놓치지 아니하려고 그 안간힘을 쓰는 데에다가 비유를 한 것이여.

화두를 들고 참선을 하거나, 관세음보살을 부르거나 또는 옴마니반메훔이나 그러한 주력을 하거나 그 어떠한 자기 나름대로 적적(寂寂)하고 요요(寥寥)한 어떤 한 경계를 맛보아 가지고,
그 경계를 놓치지 아니할려고 그 안간힘을 쓰는데, 쪼끔 시끄러우면 신경질을 내고, 쪼끔 복잡하면 그걸 피하려고 하는 이유가 한 마음 경계를 얻어가지고...

그 시끄럽고 고요한 것, 복잡하고 편안한 것, 그러한 경계에 그러한 것에 집착을 하거나 피하려고 하지 말고 용감하게 그놈을 놓아버려. 그 한 곳마저도 놓아 버릴 때에 대장부라 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말이여.

수한야랭어란멱(水寒夜冷魚難覓)이여. 물은 차고, 밤은 냉랭(冷冷)해서 고기를 찾기가 어려워. 고기란 놈이 저 깊은 물 밑 속에 가서 가만히 숨어 버렸기 때문에 고기를 찾을 수가 없다 그말이여.

유득공선재월귀(留得空船載月歸)로구나. 빈 배에는 달만 가득 싣고 돌아오더라 그말이여.

‘참선하는 사람은 일체 경계(境界)에 집착을 해도 못쓴다. 또 경계를 버리려고 하지도 말아라.’
‘어떠한 경계를 다달았어도 화두를 놓치지 않도록 해라.’ 이렇게 법회 때마다 그렇게 강조를 하고 주장을 하고 설교를 해왔는데, 한 마음마저도 놓아 버려야 한다.

‘그러면 화두를 들지 말고 놔 버리란 말인가?’
알 수 없는 의단(疑團)이 들려고 하지 아니해도 저절로 들려지면, 어찌 화두에 집착할 것도 없는 것이다 그말이여.

공부가 안 되고 공부를 바른길을 찾지 못하니까,
자꾸 일체 경계에 다다러서 ‘그 경계를 즉해서 화두를 들어라.’ ‘화두를 놓치지 말라.’ 이렇게 말을 할 수 밖에는 없었지만, 그렇게 애를 쓰고 온갖 정성과 노력을 다하게 되면,

마침내는 화두를 들려고 아니해도 저절로 의단이 현전(現前)을 해서,
앉아서나 서서나, 일을 할 때나, 밥을 먹을 때나, 경계가 시끄럽거나 편안하거나, 조용하거나, 복잡하거나, 전혀 그러한 것에 상관이 없이 순수무잡(純粹無雜)하게 의단이 독로(獨露)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때 가서야 무엇을 집착을 하며, 무엇을 피하며, 무엇을 싫어하고 미워할 것이 있느냐 그말이여.

그렇게 될 때 까지는 온갖 정성을 다하고 온갖 노력을 다해서, 법문도 열심히 듣고 화두를 올바르게 거각(擧却)을 해서 의심을 관조(觀照)하도록 할 수 밖에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한 피나는 노력 없이 어떻게 그러한 경계가 올 것이냐 이말이여.

‘짜게 먹은 사람이 물을 켠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그렇게 몸과 목숨을 바쳐서 1분 1초를 알뜰히 정진해 나가고, 역경계(逆境界)와 순경계(順境界) 속에서 1분 1초도 등한히 하지 아니하고 애를 써 나간다면 반드시 대도를 성취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죽비(竹篦)를 치고 잠시 입선(入禪)을 하겠습니다.

반가부좌(半跏趺坐)를 하십시오. 오른다리를 밑으로 잡어댕기고 그 위에다가 왼다리를 올려놓고,
그리고 그 발 위에 배꼽 앞에다가 오른손 손바닥을 위에로 해서 놓고 그리고 왼손바닥을 그 위에다가 포개놓고 엄지손을 이렇게 배를 맞대셔.
그러고 몸을 좌우로 서너 번 흔들어서-뜰썩뜰썩 이렇게 흔들어서 한 가운데에다가 딱 안정을 시키고,
몸을 단정하게 청량골을 세우되 어깨나 목의 힘을 다 빼고, 어금니는 지그시 물고, 혀는 위로 꼬부려서 입천장에다 혀 끄트리를 갖다 대고, 눈은 평상으로 뜹니다. 이것이 자세를 바르게 하는 것입니다.

자세를 바르게 한 다음에는 호흡을 바르게 하는데, 호흡을 바르게 하는 것은 단전호흡을 하는 것이여.
단전호흡에 들어가기 전에 3번 ‘준비 호흡’을 하는데, 준비 호흡은 될 수 있으면 빨리 그리고 가뜩 가슴이 그득하도록 숨을 들어마시는 것입니다. 들어마시세요.
가뜩 들어마셨으면 숨을 딱 정지를 해가지고 한참동안 참는 거여.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데까지 참았다가 입을 조끔 벌리고 입으로 ‘후~’하고 숨을 다 내쉬는 겁니다. 내쉬세요. 가슴속에 한 점도 없이 다 내쉬어.(1번)

다 내쉬었으면 다시 한 번 또 코로 들이마셔. 어깨를 좀 드는듯 하면서 가슴이 미어지도록 들어마십니다. 가뜩 들어마셔 가지고 딱 정지를 해, 한참 참았다가 입으로 ‘후~’하고 내쉬는 거여.(2번)
다 내쉬었으면 또 한 번 코로 가뜩 들어마셔. 정지. 입으로 또 ‘후~’하고 다 내쉬어요.(3번)
이것이 준비 호흡이 끝났습니다.

다 내쉬었어-완전히 다 내쉰 다음에,
조용하게 코로 들어마시되, 가슴으로 들어마시는 게 아니라 코로 들어 마시되, 불룩하기는 배꼽 밑에 아랫배가 볼록해지도록 들어마시는 거여. 들어마시면서 아랫배를 불록하게 만들면 되는 거여 의식적으로.

아까 (준비 호흡때) 가슴으로 들어마실 때는 가뜩 들어마셨지만, 이제는 준비호흡이 아니고 정식으로 단전호흡에 들어갔기 때문에 그렇게 가뜩 들어마시는 게 아니에요. 8부(八部) 쯤만 들어마시는 거여.

약 8부 쯤만 들어마셔. 아랫배가 1~2cm 쯤 약간 볼록해진 듯 이렇게만 하면 되는 거여. 들어마셨으면 약 3초 동안 정지했다가 조용하니 내쉬는데, 입으로 내뿜는 게 아니라 입은 다문 채 코로 내쉬어요.
코로 내쉬면서 아랫배가 차츰차츰 차츰 차츰 홀쭉해지도록 그렇게 하면서 내쉬는 거여.

다 내쉬었으면 또 스르르 코로 들어마시면서 아랫배가 또 차츰차츰 차츰차츰 볼록해지도록 하면서 마시는 거여.  8부쯤 들어마셔.
들어마셨으면 또 약 3초 동안 정지했다가 조용하게 또 내쉬는데, 내쉬는 시간은 약 4초나 5초쯤 들어마신 시간보다 쪼금 더 길게 내쉬는 거여.

내쉴 때 ‘이뭣고?’, 속으로 그렇게 화두를 생각하면서, 화두를 들면서 숨을 내쉬는 거여.
숨을 내쉴 때에 배는 차츰차츰차츰 홀쪽해지도록 의식적으로 그렇게 하는 겁니다.

이것이 단전호흡과 화두를 함께하는 가장 묘(妙)한 방법입니다.

죽비를 치세요.
(입선 入禪...)

같이 입선을 한 이 공덕으로 세세생생(世世生生)에 정법문중(正法門中)에서 한 사람도 낙오됨이 없이 모두가 대도(大道)를 성취해서 부처님의 혜명(慧命)을 잇게 되기를 축원(祝願)합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보소(寶所)가 재근(在近)이다. 보배 곳이 가까이에 있다’ 하셨습니다.
또 조사께서 말씀하시기를, ‘물로써 물을 씻지 못할 곳을 향해서 눈을 부딪치라’ 하셨습니다.

보배 곳이 가까이에 있다. 보배 곳, 영원히 평생 동안 쓰고도 남을 소중한 보배. 영원한 보물. 그 보배 곳, 보배 곳이 가까이에 있다 하셨습니다.
물로써 물을 씻지 못할 곳을 향해서 눈을 부딪쳐라.(27분21초~43분27초)(끝)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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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득수반지미족기~ ; [금강경오가해(金剛經五家解)] 정신희유분(正信希有分) 야부도천 게송 참고.
*경계(境界) ; ①인과(因果)의 이치(理致)에 따라서, 자신이 부딪히게 되는 생활상의 모든 일들. 생로병사•희로애락•빈부귀천•시비이해•삼독오욕•부모형제•춘하추동•동서남북 등이 모두 경계에 속한다.
②나와 관계되는 일체의 대상. 나를 주(主)라고 할 때 일체의 객(客). ③시비(是非)•선악(善惡)이 분간되는 한계.  경계(境界)에는 역경(逆境)과 순경(順境), 내경(內境)과 외경(外境)이 있다.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순수무잡(純粹無雜 순수할 순,순수할 수,없을 무,섞일 잡) 대상 그 자체가 순수(純粹)해 전혀 이질적인 잡것의 섞임(雜)이 없음(無).
*의단(疑團의심할 의, 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독로(獨露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홀로(獨) 드러나다(露).
*거각(擧却 들 거,어조사 각) 화두를 든다.
*관조(觀照) ; 참된 지혜의 힘으로 사물이나 이치를 통찰함.
*역경계(逆境界) ; ①자기의 마음에 반대되어 마음이 언짢은 경계. ②일이 순조롭지 않아 매우 어렵게 된 처지나 환경. 역경(逆境), 위경(違境)이라고도 한다.
*순경계(順境界) ; ①자기의 마음에 들어맞어 마음이 따르는 경계. ②모든 일이 뜻대로 잘되어 가는 경우나 형편.
*죽비(竹篦 대나무 죽,빗치개•통발 비) 예불이나 참선 정진할 때 이 죽비를 손바닥에 쳐서 소리를 내어 시작과 끝을 알리는데 쓰는 불교 용구.
*입선(入禪) ; 참선 수행(좌선)에 들어가는 것, 좌선(坐禪)을 시작하는 것. 참선(좌선)수행.
*반가부좌(半跏趺坐) ; 부처님의 좌법(坐法)으로 좌선할 때 앉는 방법의 하나. 한쪽 다리를 구부려 다른 쪽 다리의 허벅다리 위에 올려놓고 앉는 자세이다.
*8부(八部)쯤만 ; 보통 호흡하는 양의 80% 정도 만큼.
*세세생생(世世生生) ; 많은 생애를 거치는 동안. 태어날 때마다. 세세(世世)토록.
*정법문중(正法門中) ;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을 따르는 집안.
*혜명(慧命) ; ①지혜를 생명에 비유하는 말. 대도정법(大道正法)의 명맥(命脈). ②법신(法身)은 지혜가 생명이 된다는 뜻.
*축원(祝願) ; 어떤 일이 희망하는 대로 이루어지기를 불보살(佛菩薩)께 간절히 원하고 빎.

〇보소(寶所)가 재근(在近)이다 ;
[참고]
비구들아, 만일 여래(如來)가 열반할 때가 되면, 또 대중들이 청정할 뿐 아니라 믿고 이해함이 견실하여 모든 것이 공(空)하다는 이치를 환히 알며 깊은 선정을 성취하게 되면, 여래는 이를 알고 곧 성문과 보살들을 모아 이 가르침을 설한다.
세상에 이승(二乘-성문과 연각)으로 멸도하는 일은 없나니 오직 일불승(一佛乘)으로써만 멸도(滅度)할 수 있다.
비구들아, 알라. 나는 중생들의 성품을 꿰뚫어 보아 그들이 소법(小法)을 즐기며 오욕에 깊이 집착함을 알았기에 방편으로 열반을 설했고, 중생들은 내 말을 듣고는 곧 믿고 받아 지녔다.

예를 들어, 아주 험난한 데다 사람마저 살지 않아 무시무시하며, 길이가 5백 유순이나 되는 나쁜 길[惡道]이 있는데, 어떤 사람들이 진귀한 보물 있는 곳에 가기 위해 그곳을 지나려 한다고 하자.
그때 그들 가운데 한 길잡이[導師]가 매우 총명하여 그 길의 형세를 환히 다 알고 있었기에, 무리들을 이끌고 그 무서운 곳을 지나가고자 했다.
그러나 무리들은 얼마 가지 않아 귀찮고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생겨 길잡이에게 말했다.
‘우리들은 너무나 피곤한 데다 무서워서 도저히 더이상 갈 수가 없소. 게다가 갈 길도 아직 멀으니 이제 그만 돌아가고 싶소.’

그러자 갖가지 방편(方便)을 지니고 있는 길잡이는 이렇게 생각했다.
‘이 사람들 참 딱하도다. 어째서 큰 진귀한 보물을 포기하고 돌아가고자 하는가?’ 그리고는 방편을 써서 그 길의 3백 유순 되는 지점에 신통력으로 성(城) 한 채를 만들어 놓고서 무리들에게 말했다.
‘여러분, 두려워 마시오. 그리고 돌아갈 생각도 하지 마시오. 여기 이렇게 큰 성이 있으니 들어가서 마음껏 지내시오. 이 성에 들어가면 편안히 지낼 수 있고, 또 앞으로 더 나아가면 보물이 있는 곳[寶所]에 다다를 수 있소’
그러자 지쳐 있던 무리들은 매우 기뻐하며 기적 같은 일[未曾有]이라고 찬탄하며 말했다.
‘이제 이 험한 길[惡道]에서 벗어나 편안함을 얻었도다.’
그리고 그들은 신통력으로 만들어진 성[化城]으로 들어가, 이미 험한 길 다 벗어났고 편안하다고 생각했다.

그때 길잡이[導師]는 그 사람들이 휴식을 취한 뒤 피로가 다 풀린 줄 알고는, 신통력으로 만든 성[化城]을 없애 버리고 무리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 어서 갑시다. 보물 있는 곳이 멀지 않소(寶處在近). 예전에 있던 큰 성은 그대들을 쉬도록 하기 위하여 내가 신통력으로 만든 것이었소.’

비구들아, 여래 또한 이와 같아서 그대들을 이끄는 큰 스승(大導師)이다. 그래서 모든 생사 번뇌와 악도(惡道)가 험난하고도 하염없이 긴 것을 알고 또 응당 떠나고 건너야 할 것임을 안다.
그러나 만일 중생들이 단지 일불승(一佛乘)의 가르침만 듣는다면, 부처님을 보려고 하지도 않고 가까이하려 하지도 않을 것이기에, 또 ‘부처님 되는 길은 멀고도 머니 오래도록 노력하여야 성불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할 것이기에, 또 부처님께서 중생들이 겁 많고 약하고 하열(下劣)함을 알기에 중도에 쉬게 하기 위하여 방편으로 두 가지 열반을 설했다.

그리고 만일 중생들이 이 두 경지에 안주하면 여래는 곧 다시 이렇게 설한다.
‘그대들이 머물고 있는 경지는 부처님의 지혜에 가까운 경지일 뿐이니, 그대들이 해야 할 일은 아직 다 끝나지 않았다. 그대들이 얻은 열반을 잘 관찰하고 헤아려 보라. 그것은 진실한 열반이 아니요. 다만 여래가 방편으로 일불승을 분별하여 삼승(三乘)으로 설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는 마치 저 길잡이가 무리들을 쉬게 하기 위하여 신통력으로 큰 성을 만들고, 다시 충분히 쉬었음을 알고는 ‘보물이 있는 곳은 가깝소. 그리고 이 성은 진짜가 아니라 내가 신통력으로 만들어 낸 것일 뿐이오’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 『법화경』 제7 화성유품(化城喩品)에서.
『법화경』 (청량사 | 조인도철 역해), 『법화경』 (시공사 | 이연숙 옮김) 참고.

*일불승(一佛乘) ; 산스크리트어 eka-buddha-yāna 승(乘)은 중생을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뜻함. 부처의 경지에 이르게 하는 오직 하나의 궁극적인 가르침. 모든 중생을 성불하게 하는 부처님의 유일한 가르침.

*'물로써 물을 씻지 못할 곳을 향해서 눈을 부딪쳐라'수불세수(水不洗水).  '물로 물을 씻을 수 없다'는 말. '금으로 금을 교환할 필요가 없다[金不博金]'과 같은 비유이며 대구(對句)로 쓰인다.

이 비유는 모든 사람이 불성(佛性)을 가진 부처이기 때문에 동등한 가치를 가지고 있으며, 그 자체로 합일해야지 대상화하여 이분(二分)하거나 자기 밖에서 추구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참고 ❶] 『금강경오가해(金剛經五家解)』 제6 ‘정신희유분(正信希有分)‘
『금강경』 是故 不應取法 不應取非法
이러한 까닭으로 응당 법을 취하지도 말고, 법 아닌 것을 취하지도 말아야 한다.

【야부(冶父)】 金不愽(博)金 水不洗水
금으로 금을 살 수(교환할 필요가) 없으며, 물로써 물을 씻지 못한다.

【함허(涵虛) 설의(說誼, 이치를 설함)】 只是一般金 豈分能愽所愽 只是一般水 豈分能洗所洗 恁麽 則法則一味 見有二取 二取相亡 一味方現
다만 이 똑같은 금인데, 어떻게 팔 금과 살 금을 나누며, 다만 똑같은 물인데 씻는 물과 씻어지는 물을 어떻게 나누겠는가. 이러한즉 법은 한맛인데 보는 것에 두 가지 취함이 있으니, 두 가지 취함이 서로 없어져야 비로소 한맛이 나타날 것이다.

【야부(冶父)】 得樹攀枝未足奇 懸崖撒手丈夫兒 水寒夜冷魚難覓 留得空般載月歸
가지 잡고 나무에 오르는 것은 대단한 일이 아니요, 벼랑에서 손을 놓아야 비로소 장부로다. 물도 차고 밤도 추워 고기 찾기 어려우니 빈 배에 달빛만 가득 싣고 돌아오도다.

【함허(涵虛) 설의(說誼, 이치를 설함)】 得一心存未是奇 一處亦亡是丈夫 到這裡 凡情脫盡 聖解亦亡 但將無私照 却來是非場
일심을 얻어 간직함이 대단한 게 아니라, 그 한 곳마저도 없어야 대장부라 할 수 있다. 여기에 이르면 범부의 망심도 다 떨어지고 성인의 앎도 없으며, 다만 사심 없는 비춤을 가지고 시비의 마당에 다시 올 뿐이다.

[참고 ❷] 『종용록(從容錄)』 제51칙 '법안선륙(法眼舡陸)'
水不洗水 金不博金 佛不求佛 法不說法
물로 물을 씻지 못하고 금으로 금을 바꿀 수 없으며 부처가 부처를 구하지 못하고 법으로 법을 설할 수 없다.

Posted by 닥공닥정
하심 팔풍 경계대처2014. 5. 28. 13:46

 

 

§ (게송) 득지재심응재수~ / 일상생활이 바로 정진(精進)-번갯불에 콩 구어 먹는다 / 사바세계에 태어나야만 도를 이룰 수 있는 것이다 / 소신통과 대신통.

‘공부하는 뜻을 바로 아는 사람’은 모든 기회(機會)와 경계(境界) 위에서 잡아가지고 쓸 수가 있다.
눈으로 무엇을 볼 때에는 바로 거기서 잡아 낚아채야 하고, 귀로 소리를 들을 때에는 듣는 그 찰나에 퍼뜩 잡아서 써야해. 속담에 “번갯불에 콩 구어 먹는다.”는 말이 있는데, 번갯불 번쩍하는 그 번갯불에다가 콩을 구워 먹어.


이 사바세계는 내 마음에 합당한 일도 있고, 기쁘고 편안한 일도 있으려니와 슬프고 괴롭고 내 마음에 거슬리는 일도 있어서 우리가 분심(憤心), 발심을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가 있는 것이여. 그래서 이 사바세계에 태어나야만 도를 이룰 수가 있는 것입니다.
참으로 발심을 해서 진정으로 대도를 성취하고자 하는 사람은, 나에게 주어진 모든 경계-슬픈 일이나 기쁜 일이나 괴로운 일이나 즐거운 일이나, 어떠한 순경계(順境界)나 역경계(逆境界)를 만났을지라도 바로 그 기회와 그 경계를 단 1분, 1초라도 놓치지 말고 바로 되잡아 써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송담스님(No.198) - 83년 4월 첫째 일요법회(83.04.03)에서.(용198)

 

(1) 약 22분.

 

(2) 약 6분.

 


(1)------------------

득지재심응재수(得之在心應在手)하고  설월풍화천지구(雪月風花天地久)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조조계향오경제(朝朝鷄向五更啼)한데  춘래처처산화수(春來處處山花秀)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오늘은 4월 첫째 일요법회 날입니다.

득지재심응재수(得之在心應在手)하고, 이것을 마음에 얻어. 이것을 얻되, 마음에 있어서 이것을 얻는다.
그리고 응재수(應在手)라. 응하는 데에는 손으로 응(應)을 한다.

설월풍화천지구(雪月風花天地久)로구나. 눈달, 겨울에는 눈이 펑펑 쏟아지고 그 눈이 쏟아지는 속에 달이 뜨며, 봄이 돌아오면 그 봄바람 속에 꽃이 피어.
겨울에는 눈이 내리고 눈 내리는 속에 달이 뜨며, 봄이 돌아오면 동풍이 부는데 그 동풍이 부는 속에 꽃이 피어난다 그말이여.

우리가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를 통해서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의 육진(六塵)이 우리의 마음에 비추어졌을 때 그게 마음에 얻는다.
마음에 그러한 육진이 비추어지면 그것을 상대하게 될 때에는 손으로-글씨를 쓰게 될 때는 글씨를 쓰고, 일을 하게 될 때에는 일을 하고, 그것이 응할 때에는 손으로 그것을 응하게 된다 그말이여.

우리 일신상(一身上)에는 그러려니와 우주 법계에 자연계에 있어서는 겨울에는 눈이 내리고, 가을에는 휘황창 달이 밝고, 봄이 오면 동풍이 불고 꽃이 피는 것이다.
이렇게 하기를 몇억만 겁(劫)을 그렇게 해 내려왔다 그말이여.

조조계향오경제(朝朝鷄向五更啼)하는데, 새벽이 돌아오면 아침마다 닭은 오경(五更)이 되면 울고,
춘래처처산화수(春來處處山花秀)로구나. 봄이 돌아오면 곳곳마다 산이나 들이나 집이나 골짜구니마다 울긋불긋 꽃이 피더라.

방금 조실 스님께서 녹음 법문을 통해서 활구참선을 하는 법문을 해 주셨습니다.

부처님이나 삼계(三界)의 대도사(大導師)이신 부처님이나, 대도(大道)를 성취하신 역대 조사(祖師)나, 육도윤회를 하고 있는 모든 중생들이 조금도 차별이 없는 것인데,
부처님이라고 해서 더 할 것도 없고, 중생이라고 해서 모자랄 것도 없는데, 왜 부처님은 해탈도를 증득을 해서 성불(成佛)을 하셨고, 우리 중생은 왜 깜깜해서 생사윤회(生死輪廻) 속에서 헤매고 있느냐?

우리가 부처님보단 우리의 본성(本性)·자성(自性) 자리에 있어서 모자라거나, 부처님이 우리 중생보다 더 나아서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는 그 뜻을, 내가 나를 깨닫지를 못해서 오직 그 하나 때문에 우리는 중생의 탈을 벗지를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달이 법회를 열고 무슨 말을 할 말이 있느냐? 무슨 기특하고 재미있는 이 얘기 거리가 있는 것이냐?
무슨 할 말이 있어서 법상에 올라오며, 무엇을 듣기 위해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불원천리(不遠千里)하고 이렇게 법보전(法寶殿)에 이렇게 모이시는 것이냐 그말이여.

왜 과거의 모든 불보살(佛菩薩)과 성현들은 이 문제를 해결했는데, 우리는 무엇 때문에 오늘날까지도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동서 사방으로 방황을 하고 있는 것인가.

천 번 만 번 법문을 듣고 서울로 지방으로 법회를 법문을 들으러 다녀도 깨닫지 못하는 것은 마냥 마찬가지여.
법문을 들을 때에는 가슴이 좀 후련하고 무엇인가 얻은 바가 있는 것 같다가, 한 시간 두 시간 지내고 하루 이틀이 지내면 도로 답답하고 방황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말이여.

공부해 나가는 그 근본 뜻을 바로 알아버리면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바로 정진(精進)이요. 수도(修道)요. 공부를 해가는 것인데,
그 공부해 나가는 그 요점을 바로 알지를 못하기 때문에 ‘행여나 무슨 좋은 말씀을 들을까?’ ‘오늘은 무슨 재미있는 법문을 들을까?’ 밤낮 들어봐도 들을 때 뿐이고 공부는 조금도 나아가는 것이 없다 그말이여.

일용 생활, 우리 일상생활(日常生活)-앉고, 서고, 눕고, 밥 먹고, 옷 입고, 세수하고, 오줌 누고, 똥 누고, 걸어 다니고, 차 타고, 하는 이러한 일상생활,
일상생활을 여의고 따로 특별한 수행을 찾는다면 이것은 영원히 찾아도 깨달음에 이르기가 어려운 것이여.

여의고 그놈을 떠나서 눈으로 무엇을 보고, 귀로 무엇을 듣고, 코로 냄새 맡고, 혀로 맛보고, 손으로 만지고 잡고, 발로 걸어 다니고, 마음으로 무엇을 생각하고, 슬퍼하고, 기뻐하고, 그놈을 버리고,
그놈을 떠나서 나의 자성(自性) 자리가 있다면 백 번 천 번이라도 그놈을 버리고 찾겠지만, 그놈을 떠나서는 세상없이도 없어.

‘바로 거기에 있기 때문에 그놈을 버리고 찾아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그말이여.

공부하는 뜻을 모르는 사람은 항시 마음만 급하고 마음만 바뻐.
‘내가 이렇게 공부를 안 해서 어떻게 하나!’
‘오늘도 이렇게 그럭저럭 하루가 지냈구나!’
‘이러한 모다 그 이러한 복잡한 일 때문에 내가 공부를 못한다.’
남편 때문에 못하고, 자식 때문에 못하고, 살림살이 때문에 못하고, 병 때문에 못하고, 그러한 것 때문에 못한다고 핑계를 대고 마음만 조급하다 그말이여.

마음이 조급하니까 짜증만 내고 신경질만 내고 일체 생활에 안정을 잃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불평과 불만이 가뜩 차있어. 그러니 무슨 일을 한들 그 일이 제대로 되며, 무슨 공부가 될 것이냐 그말이여.

「공부하는 뜻을 바로 아는 사람」은 모든 기회(機會)와 경계(境界) 위에서 잡아가지고 쓸 수가 있다 그말이여.
기회, 모든 시간, 모든 장소, 모든 기회와 경계상에 그놈을 여의지 않고 바로 그때 그 자리에서 턱 잡어서 써 버려야 하는 것이다 그말이여.

눈으로 무엇을 볼 때에는 바로 거기서 잡아 낚아채야 하고, 귀로 소리를 들을 때에는 듣는 그 찰나에 퍼뜩 잡아서 써야해.

속담에 “번갯불에 콩 구어 먹는다.”는 말이 있는데, 번갯불 번쩍하는 그 번갯불에다가 콩을 구워 먹어.

번갯불 번쩍할 때 바로 그때를 이용해서 바늘귀를, 바늘에다 실을 폭 뀌듯이, 그 찰나를 잘 잡아 쓸 줄 아는 사람, 이 사람이야말로 공부하는 바른 길을 터득한 사람이라 할 수가 있는 것이여.

선방에 3년, 10년, 20년, 30년을 다녀도 그러한 기회와 경계를 여의고 따로 공부를 지어 나가려고 그러고, 그놈을 여의고 공부를 할려고 헌 사람은 아무리 애써봤자 공부에 진취가 있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쪼끔 시끄러우면 파르르 신경질을 내고, 쪼끔 복잡하면 도망할 궁리를 하고, 경계와 기회를 피하고 도피해 가지고 따로 공부를 찾아서는 아니 되는 것입니다.

내 마음에 맞는 일, 내 마음에 맞는 사람, 내 마음에 맞는 장소, 모든 일이 내 마음과 내 마음에 순(順)하는, 내 마음대로 되는, 쪼끔도 내 마음을 거슬리지 아니한 그러한 곳은 저 천상에 하늘나라 천당에 가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 천당에 가면 모든 일이 내 마음대로 되고, 모든 즐겁고 기쁘고 편안하기는 하지만, 거기서는 도를 이룰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과거의 모든 성현들이 도(道)를 이루기 위해서 이 사바세계(娑婆世界)에 오신 것입니다.

천당(天堂)은 좋고 기쁘고 편안한 일만 있어서 그러한 상태에서는 발심(發心)을 할 수가 없어.
축생(畜生)이나 지옥(地獄)은 모든 일이 괴로움만 있어서 괴로움이 지나치기 때문에 그 속에서는 우리의 근기(根機)로 그것을 이겨 나갈 수가 없어.

오직 이 사바세계에 태어나야-이 사바세계는 내 마음에 합당한 일도 있고, 기쁘고 편안한 일도 있으려니와 슬프고 괴롭고 내 마음에 거슬리는 일도 있어서 우리가 분심(憤心), 발심을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가 있는 것이여. 그래서 이 사바세계에 태어나야만 도를 이룰 수가 있는 것입니다.

과거의 모든 성현들은 일부러 무상(無上)의 대도(大道)를 성취하기 위해서, 대도를 성취해서 영원한 해탈도를 증득하기 위해서 일부러 이 사바세계에도 오셨는데,
우리는 과거의 무슨 수승한 인연이 있어서 다행히 금생에 이 사바세계에 왔습니다.

이 사바세계가 좋다고 하는 것은 기쁨과 슬픔, 괴로움과 즐거움이 섞여져 있기 때문에 이 사바세계가 좋다는 것이여.

그런데 내 마음에 거슬리는 일을 피하고 슬픈 일은 피하고 기쁜 일만을 찾고, 괴로운 일을 피하고 즐거운 일만을 찾고, 시끄러운 것을 피해서 조용한 것만을 찾고,
벌써 시끄러운 것을 버릴려고 할 때에 그르쳐 버렸고, 다시 편안하고 즐거운 곳을 찾을 때에 두 번째 어긋나 버리는 것입니다. 계속 어긋나고 그르치기만 해 가지고 언제 바른 길을 한 걸음이라도 갈수가 있느냐 이말이여.

공부하는-참으로 발심을 해서 진정으로 대도를 성취하고자 하는 사람은, 나에게 주어진 모든 경계-슬픈 일이나 기쁜 일이나 괴로운 일이나 즐거운 일이나, 어떠한 순경계(順境界)나 역경계(逆境界)를 만났을지라도 바로 그 기회와 그 경계를 단 1분, 1초라도 놓치지 말고 바로 되잡아 써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21분24초)

 

 

 



(2)------------------

이렇게 이러한 마음가짐으로 공부를 지어간다면 우리가 있는 장소는 그 장소가 어디가 되었건, 그 시간이 어느 시간이 되었건, 어떠한 일을 만나건, 어떠한 사람을 상대하건,
우리는 곳곳마다 최상의 선방(禪房)이요, 바로 부처님 회상(會上)이요, 닥치는 일마다 부처님이요, 불보살을 친견한 것이요, 선지식을 친견한 것이 될 것입니다.

이렇게 공부를 지어가면 모든 소리는 나를 칭찬하는 소리나, 나를 비방하고 욕하는 소리나, 새가 우는 소리나, 닭이 우는 소리나, 개가 짓는 소리나, 자동차 소리나, 모든 소리는 바로 부처님의 소리요, 부처님의 법문(法門)이 될 것이며,

내가 나의 눈으로 볼 수 있는 모든 색상은 저 해와 달은 말할 것도 없고 흘러가는 구름과 물, 겨울에 내리는 눈이나, 봄에 피는 꽃이나, 나를 도와주는 사람이나, 나를 해롭게 하는 사람이나, 모든 것이 다 부처님의 몸이 불신(佛身)이 되어 질 것입니다.

그래서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육근(六根)을 통해서 접촉하는 상대하게 되는,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 육진(六塵)이 바로 육바라밀(六波羅蜜)이 되고, 바로 그것이 최상의 육신통(六神通)으로 되는 것입니다.

소신통(小神通)은 내일 일을 알고, 여기서 서울 일을 알고, 앞으로 다가올 10년 20년 뒷일을 알고, 여기서 눈 한번 깜박할 사이에 서울도 왔다갔다 축지법을 하고, 이러한 것은 소신통이라 하는 것이여. 조그마한 신통이라 하는 것이고,
참으로 최상의 대신통(大神通)이라 하는 것은, 부르면 대답하고, 배고프면 밥 먹고, 대간하면 한숨 자고, 이것이 바로 대신통이라 하는 것이여.

삿된 사람은 소신통이 대신통인 줄 착각을 하는 거고,
참으로 불법(佛法)을 이 최상승법을 옳게 인식한 사람은 바로 배고프면 밥 먹을 줄 알고, 부르면 대답할 줄 알고, 때리면 아픈 줄 알고, 바로 이것이 신통 중에 최고로 크고 높은 대신통이라 하는 것이여.

대신통을 착각을 해 가지고 소신통을 추구한 사람은 공부해 나가다가 사견(邪見)에 빠지기가 쉽고 마군(魔軍)이의 권속으로 끌려가서 미치거나 삿된 경계에 빠지는 것이고,

소신통에 집착을 하지 아니하고, 참으로 대신통의 위대함에 눈뜬 사람은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일체처 일체시에 항시 부처님을 친견하게 되고 항시 부처님의 설법을 들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찌 대도(大道)를 성취하지 못하겠습니까.(처음~27분18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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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득지재심응재수~ ; [금강경오가해] 이상적멸분(離相寂滅分) 야부도천(冶父道川) 게송 참고.
*오경(五更) ; ①하룻밤을 초경(初更)에서 오경(五更)까지 다섯으로 나눈 시각을 아울러 이르는 말.
②하룻밤을 다섯 시기로 나누었을 때의 다섯째 부분. 새벽 3시부터 5시 사이이다
*삼계(三界) ; 불교의 세계관으로 중생이 왕래하고 거주하는 세 가지 미혹한 세계. 중생이 태어나서 죽어 윤회하는 영역으로서의 세개의 세계. 중생의 마음과 생존 상태를 세 단계로 나눈 것. 욕계(欲界), 색계(色界), 무색계(無色界)를 이른다.
*삼계도사(三界導師) : 삼계(三界)의 중생을 열반(涅槃)로 인도(引導)하는 위대한 사람. 부처님을 말함.
*조사(祖師) : 부처님의 바른 종지(宗旨) 곧 조사선법(祖師禪法)을 전하는 스승을 말함이니 종사(宗師)와 같다.
*생사윤회(生死輪廻) ; 육도윤회(六途輪廻). 선악(善惡)의 응보(應報)로 육도(六途-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의 고락(苦樂)을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바퀴(輪)가 돌듯이(廻) 반복함.
*본성(本性), 자성(自性) ; 본래부터 저절로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불원천리(不遠千里) ; 천리(千里)를 멀다고 여기지 않음.
*법보전(法寶殿) ; 법보전은 용화선원의 주(主) 법당(法堂)으로 ‘진리(法寶)의 전당’이라는 뜻.
그래서 진리 그 자체를 가리키는 법신불(法身佛)을 형상화한 비로자나불(毗盧遮那佛)을 모셨고, 그 좌우에 부처님 경전과 전강 조실스님의 진영을 봉안하였다. 그리고 많은 유주·무주의 영가 천도를 위하여 만년위패를 봉안하여 놓았다.
*정진(精進) ; ①정성을 다하여 노력해 나아감. ②잡념을 버리고 불법(佛法)을 깨우치기 위해 수행에 힘씀.
*기회(機會) ; ①어떠한 일이나 행동을 하기에 가장 좋은 때나 경우. ②겨를이나 짬.
*경계(境界) ; ①인과(因果)의 이치(理致)에 따라서, 자신이 부딪히게 되는 생활상의 모든 일들. 생로병사•희로애락•빈부귀천•시비이해•삼독오욕•부모형제•춘하추동•동서남북 등이 모두 경계에 속한다.
②나와 관계되는 일체의 대상. 나를 주(主)라고 할 때 일체의 객(客). ③시비(是非)•선악(善惡)이 분간되는 한계.  경계(境界)에는 역경(逆境)과 순경(順境), 내경(內境)과 외경(外境)이 있다.
*도(道) ; ①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그 방법. ②깨달음. ③가르침. ④궁극적인 진리. ⑤이치. 근원.
*사바세계(娑婆世界);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이 세계. 현실의 세계.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교화하는 세계. 인토(忍土)•감인토(堪忍土)•인계(忍界)라고 한역.
*천당(天堂) ; ①극락세계(極樂世界)인 정토(淨土). ②하늘 위에 있는 궁전.
*축생(畜生) ; 삼악도(三惡道) 또는 육도(六道)의 하나로, 죄업 때문에 죽은 뒤에 짐승으로 태어나 괴로움을 받는 세계.
*지옥(地獄 땅 지,감옥 옥) ; ①고통이 가득찬 세계. 현세에 악업(惡業)을 행한 자가, 사후 그 보답을 받는 곳. ②아주 괴롭거나 더없이 참담한 환경이나 형편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근기(根機 뿌리 근,베틀 기) ;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는 중생의 소질이나 근성.
*발심(發心) ; ①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②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원어)發起菩提心발기보리심, 發菩提心발보리심.
*순경계(順境界) ; ①자기의 마음에 들어맞어 마음이 따르는 경계. ②모든 일이 뜻대로 잘되어 가는 경우나 형편.
*역경계(逆境界) ; ①자기의 마음에 반대되어 마음이 언짢은 경계. ②일이 순조롭지 않아 매우 어렵게 된 처지나 환경. 역경(逆境), 위경(違境)이라고도 한다.

 

 

 



-----------------(2)


*회상(會上) ; ①대중이 모인 법회. ②설법하는 모임. 설법을 듣기 위해 사람들이 모인 자리.
*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 법,문 문) :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육근(六根) ; 육경(六境-色•聲•香•味•觸•法)을 인식하고 판단하기 위한 능력이 있는 기관. 눈, 귀, 코, 혀, 몸, 뜻(眼,耳,鼻,舌,身,意)을 이른다.
*육진(六塵) ; 육경六境. 중생의 마음을 더럽히는 여섯 가지. 색(色), 성(聲), 향(香), 미(味), 촉(觸), 법(法)을 말한다.
*육바라밀(六波羅蜜) ; 바라밀(波羅蜜)은 산스크리트어 pāramitā의 음사로, 도피안(到彼岸)·도(度)·도무극(度無極)이라 번역. 깨달음의 저 언덕으로 건너감, 완전한 성취, 완성, 수행의 완성, 최상을 뜻함.
보살이 이루어야 할 여섯 가지 완전한 성취.
①보시바라밀(布施波羅蜜). 보시를 완전하게 성취함. 보시의 완성.
②지계바라밀(持戒波羅蜜). 계율을 완전하게 지킴. 지계의 완성.
③인욕바라밀(忍辱波羅蜜). 인욕을 완전하게 성취함. 인욕의 완성.
④정진바라밀(精進波羅蜜). 완전한 정진. 정진의 완성.
⑤선정바라밀(禪定波羅蜜). 완전한 선정. 선정의 완성.
⑥지혜바라밀(智慧波羅蜜). 분별과 집착이 끊어진 완전한 지혜를 성취함. 지혜의 완성.
*육신통(六神通) : 보통 사람으로서는 헤아릴 수 없는 것을 헤아림을 신(神)이라 하고, 걸림 없는 것을 통(通)이라 한다。이 신통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로 말하지마는 흔히 여섯 가지로 말한다.
1. 신족통(神足通)은 공간에 걸림 없이 왕래하며 그 몸을 마음대로 변화할 수 있는 것.
2. 천안통(天眼通)은 멀고 가까움과 크고 작은 것에 걸림 없이 무엇이나 밝게 보는 것.
3. 천이통(天耳通)은 멀고 가까움과 높고 낮음을 가릴 것 없이 무슨 소리나 잘 듣는 것.
4. 타심통(他心通)은 사람뿐 아니라 어떤 중생이라도 그 생각하는 바를 다 아는 것.
5. 숙명통(宿命通)은 자기뿐 아니라 육도(六道)의 모든 중생의 전생•금생•후생의 온갖 생애를 다 아는 것.
6. 누진통(漏盡通)은 번뇌 망상이 완전히 끊어진 것이다.
제일통으로부터 제오통까지는 그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마음을 고요히 가지기만 힘쓰는 유루정(有漏定)을 닦는 외도(外道)나 신선(神仙) • 하늘 사람(天人) • 귀신들도 얻을 수가 있고, 약을 쓰든지 주문(呪文)을 읽어도 될 수 있다.
그러나 누진통만은 아라한(阿羅漢)이나 불•보살만이 능한 것이다. [선가귀감](용화선원) p94-95 참조.
*사견(邪見) : ①잘못된 견해. 틀린 생각 ②인과(因果)의 이치를 부정하는 잘못된 생각 ③올바로 자신의 마음의 실상을 알수가 없는 것.
*마군(魔軍) ; 악마의 군세(軍勢). 마(魔)란 생사를 즐기는 귀신의 이름이요, 팔만사천 마군이란 중생의 팔만 사천 번뇌다. 마가 본래 씨가 없지만,수행하는 이가 바른 생각을 잃은 데서 그 근원이 파생되는 것이다.

Posted by 닥공닥정
하심 팔풍 경계대처2014. 3. 30. 14:19

§(521) (게송) 돈오심원개보장~ / 조실 스님 법문에 ‘참선(參禪)해서 내 마음자리를 깨닫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극히 간단하고 지극히 쉬운 것이다.’

 

‘그 모든 사람들이 이 몸뚱이를 끌고 다니는 그 주인공(主人公)은 부처님이나 우리나 다 똑같다’고 부처님이 말씀하셨어.


**송담스님(No.521)-1994년 1월 첫째일요법회(94.01.02)에서.(용521)


약 11분.

 


돈오심원개보장(頓悟心源開寶藏)하면  연생식득본래신(緣生識得本來身)하리라
나무~아미타불~
연화근발어니리(蓮花根發淤泥裏)하니  각소거진불염진(卻笑居塵不染塵)하리라
나무~아미타불~

돈오심원개보장(頓悟心源開寶藏)하면 연생식득본래신(緣生識得本來身)하리라.
우리의 마음자리를 몰록 깨달라서 우리의 몸 속에 있는 영원히 써도써도 끝이 없는 보물을 계발을 하면,
우리가 인연으로 이 세상에 태어났다가 생로병사 속에서 몸부림치다가 끝없는 생사윤회(生死輪廻)를 하고 있는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본래면목(本來面目)을 깨닫게 될 것이다.

연화근발어니리(蓮花根發淤泥裏)한데 그 연꽃을 보라. 그 연꽃이 그렇게 이파리도 때가 묻지 않고 깨끗할 뿐만 아니라 그 꽃도 그렇게 곱고 아름다운데, 대관절 그 연꽃이 어디에서 나왔는가?
차츰차츰 그 밑에로 줄기로 내려가 보면 더러운 흙탕물 흐리 속에다가 뿌리를 박고 있다.

저 높은 산간에 깨끗한 석간수(石間水)에는 연꽃이 살들 못해.
연꽃은 저 들녘으로 내려가서 하수도 물이 내려가고 더러운 시커먼 흐리 속에 뿌리를 박고 있다. 그 뿌리를 그렇게 더러운 데다가 박고 있으면서도 그 잎과 꽃은 그렇게 깨끗할 수가 없다.

아까 조실 스님 법문에 ‘참선(參禪)해서 내 마음자리를 깨닫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극히 간단하고 지극히 쉬운 것이다’고 말씀하셨어.

‘아무개야!’ 그러면 ‘예’하고 대답할 줄 알고, 욕하면 성낼 줄 알고, 배고프면 밥먹을 줄 알고, 추우면 더운 옷을 입을 줄 알고, 눈으로 모든 색상을 볼 줄 알고, 귀로 모든 소리를 들을 줄 아는,
어린애로부터서 노인에 이르기까지 지식이 있건 없건, 남녀노소와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누구나 다 그럴 줄 안다 그거거든.

그놈이 온갖 성도 낼 줄도 알고, 탐심도 낼 줄 알고, 희로애락 모든 의식이 거기서 나오는데, 그럴 줄 아는 그놈이 어디에서 나오느냐?
눈으로 꽃을 보고 『저게 곱다』 하는데, 꽃을 보는 놈이 눈이 아니야.
눈으로 보는 것이지. 눈이 보는 것이 아니거든. 눈이 아무리 있어도 다 보는 것이 아니여.
속에서 눈으로 보는 놈이 눈을 통해서 보는 것이지. 눈 자체가 보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생각으로 다른 일에-몹시 골똘하게 다른 일을 생각하는 데에 골몰하고 있을 때에는, 앞에 사람이 왔다갔다 해도 하나도 안 보이는 거여. 뭐라고 말을 하고 갔어도 그 소리도 잘 안 들리는 거여.
다른 일에 골몰하고 있을 때에는 무엇을 먹어도 맛을 잘 모르는 거여.

대답도 다 해놓고는 나중에 와서 말하면 ‘나 언제 그런 말 했냐?’고 완전히 아주 뚝 잡아떼는데, 들을 때에 듣는 놈이 딴 짓을 하고 있을 때에는 들어도 들리지 않어.
봐도 분명 보는 그놈이 딱 봐야 제대로 보이는 것이지, 생각은 딴 데에 있고 그냥 눈은 뜨고 있어도 하나도 안 보이는 거다 그말이여.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살고 있어도 제대로 살고 있는 게 아니여. 뒤죽박죽으로 하루를 사는 거여.
봐도 제대로 보는 것이 아니고, 들어도 제대로 듣는 것이 아니고, 먹어도 제대로 먹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생각을 해도 제대로 생각하는 게 아니여.

마치 뱀, 여우, 악어, 새.. 그런 여러가지 다섯 마리의 짐승을 묶어서 한 군데에다 묶어 놓은 거와 같아서,
이놈은 이리 갈라고, 저놈은 하늘로 날아갈라고, 한 놈은 땅구녁으로 들어갈라고, 한 놈은 물로 들어갈려고 그러고, 한 놈은 산으로 도망갈려고 하듯이 뒤죽박죽이거든.
우리는 그러한 상태에서 태어나 가지고 오늘날까지 살아가고 있다 그말이여.

그래 가지고 그것을 인생을 바로 살았다고 할 수가 없고, 한 가지도 제대로 할 수가 없고, 그러한 사람들이 모인 곳이 이 사바세계(娑婆世界)라.

물론 그중에는 훌륭한 사람도 많고 훌륭한 인격자도 있겠지만 대부분이 다 차이는 있을지언정 다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그말인데,
‘그 모든 사람들이 이 몸뚱이를 끌고 다니는 그 주인공(主人公)은 부처님이나 우리나 다 똑같다’고 부처님이 말씀하셨어.

그런데 똑같은 우리의 본래 주인공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우리는 엉망으로 살아가고 있다.
탐진치 삼독(三毒)으로 살아가고 있어. 오욕락(五慾樂)을 위해서 살아가고 있는데, 깨끗한 꽃이 더러운 진흙 속에 뿌리를 박고 있는 것처럼 그렇게 살고 있어.

그러나 그런 더러운 곳에 때 묻지 않는 연꽃처럼, 우리 자신이 활구참선(活句參禪)을 통해서 일체처 일체시에서 항상 ‘이뭣고?’를 해.
무엇을 눈으로 볼 때도 ‘이뭣고?’ 귀로 무슨 소리를 들었어도 그 듣는 소리 쪽으로 따라가지 말고, 듣자마자 즉각 ‘이뭣고?’로 돌아오라.

할려고 마음을 먹어도 경계(境界)가 닥치면은 금방 깜박 잊어버리고 그리 따라가는데, 그런다고 해서 중단을 하지 말고, 그런다고 해서 짜증도 내지 말고 포기를 해서는 안 돼.
또 챙기고 또 챙기고 자꾸 챙기다보면 차츰차츰 그것이 되풀이해서 똑같은 일을 하면 습관이 되고, 습관이 되면은 할려고 안 해도 저절로 되어질 때가 오는 것이다 그말이여.(32분11초~42분44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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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돈오심원개보장(頓悟心源開寶藏)~' ; 無異元來禪師廣錄 第十九 에서 '示余愼爾居士'.
*생사윤회(生死輪廻 날 생,죽을 사,바퀴 윤,빙빙돌 회) : 사람이 어리석음(無明)으로 인한 번뇌와 업에 의하여 삼계육도(三界六道-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에서 났다가(生) 죽고(死) 났다가 죽는 것이 바퀴(輪)가 돌듯이(廻) 반복함.
*본래면목(本來面目 밑 본,올 래,낯 면,눈 목) ①자기의 본래(本來) 모습(面目). ②자신이 본디부터 지니고 있는,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의 성품.
*흐리 ; 수렁의 뜻을 가지고 있다. 늘 물이 고여있어 발을 디뎠을 때 푹푹 빠지는 논의 흙이나 방죽의 바닥에 오랫동안 쌓인 무른 흙을 의미하는 전라도 사투리.
*석간수(石間水) ; 바위틈에서 나는 샘물.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골똘하다 ; (사람이 한 가지 일에)온정신을 쏟아 딴생각이 없다.
*골몰(汨沒)하다 ; (사람이 한 가지 일에)정신을 다 기울여 다른 생각을 하지 않다.
*사바세계(娑婆世界) ;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이 세계. 현실의 세계.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교화하는 세계. 인토(忍土)•감인토(堪忍土)•인계(忍界)라고 한역.
*주인공(主人公)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청정한 부처의 성품을 나타내는 말.
*삼독(三毒) ; 사람의 착한 마음(善根)을 해치는 세 가지 번뇌. 욕심, 성냄, 어리석음(貪,瞋,癡) 따위를 독(毒)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오욕락(五欲,五慾,五欲樂) ; ①중생의 참된 마음을 더럽히는-색,소리,향기,맛,감촉(色聲香味觸)에 대한-감관적 욕망. 또는 그것을 향락(享樂)하는 것. 총괄하여 세속적인 인간의 욕망.
②불도를 닦는 데 장애가 되는 다섯 가지 욕심. 재물(財物), 색사(色事), 음식(飮食), 명예(名譽), 수면(睡眠).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스승)으로부터 화두•공안(公案)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공안)을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공안 또는 화두(話頭)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
*이뭣고?(이 무엇인고? 是甚麼 시심마,시삼마) : ‘이뭣고? 화두’는 천 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경계(境界) ; ①인과(因果)의 이치(理致)에 따라서, 자신이 부딪히게 되는 생활상의 모든 일들. 생로병사•희로애락•빈부귀천•시비이해•삼독오욕•부모형제춘하추동•동서남북 등이 모두 경계에 속한다.
②나와 관계되는 일체의 대상. 나를 주(主)라고 할 때 일체의 객(客). ③시비(是非)•선악(善惡)이 분간되는 한계.  경계(境界)에는 역경(逆境)과 순경(順境), 내경(內境)과 외경(外境)이 있다.

Posted by 닥공닥정
하심 팔풍 경계대처2014. 1. 18. 14:08

§ 선방에 나온 수행자라면 말을 많이 해서는 안 됩니다 / 입차문래(入此門來) 막존지해(莫存知解) / (게송) ‘종조난설인장단~’

 

**송담스님(No.582) - 1997년 성도재 법회(96.12.08)(65분)에서. (용582)

 

약 10분.

 


우리가 가장 주의할 것은 말을 많이 하지 말아야 해.

아무리 신심이 있고 정진을 하려고 해도 말을 많이 하다보면 정진하는 마음이 흐트러지게 마련이고,
화두가 성성적적(惺惺寂寂)하고 밀밀면면(密密綿綿)해서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해서 타성일편이 된 그런 경지에서 무슨 말이 잡담(雜談)이 나오며,
잡담하면서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었다고 한다면 그 사람은 사람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니 걸망을 지고 선방에 나온 수행자라면 수행자답게 말을 많이 해서는 안 됩니다.

뿐만이 아니라 자기 혼자만 있는 것이 아니고, 자기보다 앞서가는 선배도 있을 것이고, 자기보다 뒤따라오는 후배도 있을 것이니,
첫째는 자기 자신을 위하고 선배에 대한 도리를 생각해서도 그렇고, 후배를 위해서라도 말을 많이 해서는 안 됩니다.

잡담으로 세월을 보내고, 우리 선방에서는 교리를 가지고 따지는 곳이 아니고, 무슨 조사 어록(祖師語錄)을 가지고 따지는 곳이 아니고,
하물며 인도 불교가 어떻고, 티벳트 불교가 어떻고, 무슨 불교 뭐 그런 것을 이론적으로 토론하는 세미나가 열리는 그런 곳도 아닌 것입니다.

따라서 자기가 불교 경전에 대해서 많이 알고 있건, 조사 어록에 대해서 많이 알고 있건, 무슨 인도 불교나 티벳트 불교에 대해서 일본 불교에 대해서 많이 알고 있다 해도, 그러한 것을 여기서 말하는 단계가 아니여.

자기가 포교사(布敎師)가 되어 가지고 어느 절에 가서 신도들을 모여 놓고 설교를 하는 마당에서는 그런 세계 각국의 불교에 대해서 또는 각 종파에 대해서 얼마든지 웅변을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마는,

용화선원에 와서는 “입차문래(入此門來)된 막존지해(莫存知解)니라.” “이 문중에 들어와서는 지해(知解)를 두지 말아라.”

일단 들어왔으면 전강 조실스님의 녹음법문을 듣고 그 법문에 의지해서 묵묵히 바보가 되어서,
몸은 냄새가 안날 만큼 씻고, 옷도 냄새가 안날 만큼 깨끗이 씻어서 입고, 그리고서는 공양은 인연 따라서 공양을 들고, 그리고 그분 속에는 바보인지, 천치인지, 농판인지 아무도 알 수가 없다.

똑똑한 체하고 잘난 체하려면 세속에 나가서 국회의원도 나가고, 도의원도 나가고, 도지사도 허고, 장관도 하지 이 문중에 들어와 가지고,
부모와 형제와 고향과 가정을 다 버리고 청춘을 버리고 이 도(道) 문중에 들어와 가지고,
어디 가서 잘난 체하고 똑똑한 체 할 때가 없어서 여기에 들어와서 입을 벌려 함부로 그러냐.

그래서 어느 선방에 가면 득도자출(得道者出)이다. ‘도를 얻은 자는 나갈지니라.’ 딱 써 붙인 데도 있어.
깨달았으면 중생 교화하러 나가지, 뭣하러 남의 선방에 댕기면서 다른 사람 공부하는데 방해를 치느냐.

절에 들어와서 선방에 들어와서 똑똑한 체 하고 잘난 체 한 사람은 그게 진짜 똑똑한 것이 아니여.

똑똑할 때 가서 똑똑한 체 해야 남이 알아주고 얻어먹을 것도 생기는 것이지,
선방에 와서 똑똑한 체 해 가지고 무슨 이익이 있으며, 누구를 위해서 똑똑한 체 하느냐 그말이여.


종조난설인장단(終朝亂說人長短)타가  경야혼침낙수면(竟夜昏沈樂睡眠)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여차출가도수시(如此出家徒受施)하면  필어삼계출두난(必於三界出頭難)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종조난설인장단(終朝亂說人長短)타가 경야혼침낙수면(竟夜昏沈樂睡眠)이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쓸데없는, 누가 잘하고 못하고, 무엇이 옳고 그르고 그런 잡담을 하다가 밤이 되면 잠에 떨어져.

이렇게 출가해 가지고 공연히 시주것만 소모하면(如此出家徒受施),

필어삼계출두난(必於三界出頭難)이다. 반드시 삼도 고해(苦海)에서 해탈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우리 선방, 비구선방이나 보살선방이나 시민선방에 그러한 사람이 있어서 내가 이런 말을 한 것이 아닙니다.

모두가 다 열심히 정진하신 그런 참 좋은 도반(道伴)들이 이렇게 모여서 지내기 때문에 원장(院長)으로서는 항상 기쁜 마음과 감사한 마음으로 살고 있습니다.

행여나 보통 어느 선방이든지 납월 팔일 용맹정진(勇猛精進) 기간이 지내면 벌써 한철이 다 지나간 것처럼 생각이 해이해져 가지고 해제(解制)가 빨리 돌아왔으면, 해제가 돌아오면 어디를 가야겠다, 어디 절에를 가야겠다.

제주도를 갈까, 설악산을 갈까, 오대산을 갈까, 그러한 생각으로 걸망 귀신이 들썩들썩 한다고 그런 말이 옛날부터서 있어 왔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남은 해제까지의 기간을 지내온 기간보다도 훨씬 더 정신을 차리고 마음을 가다듬어 가지고 거의 묵언을 하면서 가행정진(加行精進)으로서 이 삼동(三冬) 안거를 알뜰하게 정진해 주실 것을 부탁하는 마음으로 이렇게 말씀을 드린 것 뿐입니다.

이것으로서 납월 팔일에, 원장으로서 여러 형제 자매 도반들에게 노바심(老婆心)에서 우러나와서 간곡한 말씀을 드리고 내려갑니다.(54분41초~64분36초)(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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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성적적(惺惺寂寂) ; 정신이 고요하면서도 깨끗하고 또록또록 한 상태.
*밀밀면면(密密綿綿) : 면밀(綿密)이란 말을 거듭하여 뜻을 강조한 것으로 길게 계속해서 끊어지지 않는 것。 정밀하게 이어져서 끊어지지 않는 모습
*의단독로(疑團獨露의심할 의,덩어리 단,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가  홀로(獨) 드러나다(露)
*타성일편(打成一片) : 참선할 때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만이 독로(獨露)한 경계.
*포교사(布敎師) ; 불교의 교법을 널리 세상에 알리는 스님이나 신도.
*입차문래(入此門來) 막존지해(莫存知解)
[참고]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220 참고.
〇 神光이  不昧하야  萬古徽猷로다  入此門來에  莫存知解어다
 거룩한 빛 어둡지 않아 만고에 밝고나. 이 문 안에 들어오매 알음알이를 두지 말지어다.

.....(중략) 知解二字는  佛法之大害故로  特擧而終之하니  荷澤神會禪師가  不得爲曹溪嫡子者는 以此也라
지해(知解) 두 글자는 불법에 큰 해독이 되므로 특별히 들어서 끝을 마치니 하택신회선사가 조계의 적자가 못 됨은 이 때문이다.

*지해(知解) ; 참선 수행을 통해 최상의 지혜를 깨달으려 하지 않고, 불교를 이론적으로 연구하거나 지식으로 해석하는 것.
*천치(天癡, 天痴) ; ①어리석고 못난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②선천적으로 정신 작용이 완전하지 못하여 어리석고 못난 사람.
*농판 ; ‘멍청이(아둔하고 어리석은 사람을 놀림조로 이르는 말)’의 사투리(전남).
*(게송) ‘종조난설인장단~’ ; [초발심자경문]의 ‘자경문(自警文)’ 게송.
*고해(苦海) ; 중생이 태어나서 죽어 윤회하는 영역으로서의 세개의 세계, 삼계(三界-욕계欲界•색계色界•무색계無色界)에서 생사의 괴로움이 무한하므로 바다에 비유함.
*도반(道伴) ; 함께 불도(佛道)를 수행하는 벗. 불법(佛法)을 닦으면서 사귄 벗.
*걸망 ; 물건을 담아서 등에 질 수 있도록 만든 자루 모양의 큰 주머니.
*용맹정진(勇猛精進) ; 견고한 의지로 열심으로 노력하는 정진.
*해제(解制 풀 해,만들•법도 제) ; ①(안거)를 마침. ②재계(齋戒)하던 것을 그만두고 풂.
*가행정진(加行精進) ; 어떤 일정한 기간에 일상생활보다도 좌선정진(坐禪精進)의 시간을 늘리고, 수면도 매우 단축함.
*납월 팔일(臘月八日) ; 음력 12월 8일. 석가모니 성도일(成道日).
*삼동(三冬) ; 겨울철의 석 달.
*노바심(老婆心 노파심) ; 노파(老婆)가 자식·손자를 애지중지 하듯이, 스승이 수행자에게 나타내는 자비심. 친절심(親切心). 파심(婆心)이라고도 함.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