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두(공안)2024. 1. 31. 07:43

§(세등27) 공안(公案) / 공안은 깨닫기 위해서 중요한 열쇠요 나침반, 또 ‘그 사람이 바로 깨달았냐?’를 시험해 보기 위한 좋은 시험 문제 / 공안은 오직 깨달은 사람만이 그 공안의 원리(原理)를 분명하게 볼 수가 있다.
깨달음이라 하는 것은 분별심(分別心)으로 도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 깨닫지 못한 사람은 오직 자기의 본참화두에 대한 의단을 일으킬 따름이다.

어떠한 공안을 큰 스님네로부터 물음을 받았다 하더라도, 자기가 바로 깨닫지 못한 사람이라면 되지 못한 소리를 이를 까닭도 없는 것이고, 다른 고인(古人)들이 답(答)한 흉내를 낸다든지, 어떠한 행동으로써 옛날 스님네가 한 흉을 내서 보인다든지, 이러한 것은 도저히 용납(容納)될 수 없는 대죄(大罪)를 범하고 있는 것입니다.
깨닫지 못한 사람은, 지금 깨닫기 위해서 공부하고 있는 사람의 분상(分上)으로서는 다못 꽉 맥혀서 알 수 없는 대의단(大疑團)을 일으킬 따름인 것이고, 오직 자기의 본참화두에 대한 의단을 일으킬 따름인 것입니다.

**송담스님(세등선원No.27)—1980년(경신년) 하안거 결제(80.04.17.음)(세등27)

 

약 10분.


오늘 조실(祖室) 스님 법문(法門)은 온전히 공안, 공안(公案)에 대한 법문을 해 주셨습니다.


공안이라 하는 것은 공립(公立), 관공서(官公署), 공립학교(公立學校), 그것 '공(公)' 자입니다. 그리고 '안(案)' 자는 안건(案件)이라 해서 공안(公案), 공안을 화두(話頭)라 그럽니다마는.
어째서 공안이라 하냐 하면, 공(公)이란 말은 '관가(官家)'라 그 말입니다. 관청(官廳), 관법(官法). 관청에 법안(法案), 관청에서 직원들이 어떠한 사무를 볼 때에, 일을 처리할 때 반드시 그 법(法)에 의존해서 모든 사무를 처리하게 됩니다. 그 관청에 법(法)과 같은 것이다.

참선(參禪)을 해 나가는 데 있어서 우리가 올바르게 해 나가자면 이 공안(公案)을 참구(參究)해야만 되는 것이고, 그 사람이 바로 깨달랐는가 바로 깨닫지 못했는가를 점검(點檢)해 보려면 이 공안을 갖다가 들여대 가지고 그 공안에 대한 답(答)을 하는 것을 보면은 그 사람이 어떠한 경지(境地)에 도달했는가를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관청에서 어떠한 일을 처리했을 때에 그 일이 바로 되었나, 잘못 처리했는가를 보려면은 그 법률에 비추어서 제 몇 조 몇 항에 비추어서 '이것은 타당(妥當)하다' '이것은 부정(不正)이다' 그것을 아는 거와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이 공안이 문헌에 오른 것만 해도 천칠백 공안(千七百公案)이나 됩니다. 하물며 문헌에 오르지 아니한 것까지 하면 수없이 많은 공안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도 육법(六法)이 있고, 육법은 이미 성문화(成文化)—글로 된, 글로 표시된 법률은 성문, 성문화된 것을 보통 말합니다마는, 불문율(不文律)이라 해서 책에는 육법전서(六法全書)에는 올라 있지 안 해도 우리는 모두가 지켜야 할 일들이 수없이 많은 것입니다. 법률에, 법률(法律) 조항에 오르지 않다고 해서 ‘그 밖에 일은 우리가 어떠한 일이라도 마구잽이 해도 괜찮다’ 이렇게 생각하면 잘못된 것입니다.
영국 같은 데는 헌법(憲法)이 아주 몇백 년 전부터서 불문율로 되어 내려오는 법률이 참 많다고 그럽니다. 그렇게 불문율로 되어 있어도 워낙 민주주의를 실천한 지가 오래고, 민도(民度)가 높아서 모두가 다 법률을 잘 지켜 가지고, 온 백성에 질서가 유지되어 간다고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마는.

문헌에 오른 천칠백 공안 외에도 수없이 많은 공안이 있어서 눈 밝은 대종사(大宗師)는 자유자재(自由自在)로 법(法)을 갖다가 사용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말로써 설할 수 없는 최고에 법을 자유자재로 쓰시고, 또 그 법으로써 학자(學者), 모든 도(道)를 배우려는 수행자들을 눈을 뜨게 하고 경책(警策)을 하고 또 점검(點檢)을 해서 그렇게 교화(敎化)를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공안은 오직 깨달은 사람만이 그 공안(公案)의 원리(原理)를 분명하게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깨닫지 못한 사람, 깨닫지 못한 사람은 아무리 지식이 높고 경전을, 팔만대장경을 종횡으로 읽고 외우고 해설을 한다 하더라도 깨닫지 못한 사람이라면 이 공안의 도리(道理)는 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자기가 그동안에 보고 듣고 연구한 모든 이론을 동원을 해 가지고 이 공안을 분별(分別)을 하고, 천착(穿鑿)을 하고, 분석(分析)을 한다 하더라도 이 공안의 참뜻은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따질수록에 참 진리(眞理)로부터서는 멀어가게 되기 때문인 것입니다.
깨달음이라 하는 것은 분별심(分別心)으로 도달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분별심을 사용하고 있는 동안에는 깨달음에는 도달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공안에 대해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든지, 또는 '마조(馬祖)에 원상(圓相)'이라든지, 또는 서산(西山) 스님의 게송 가운데에 나오는 '어생일각(魚生一角)'이라든지 그러한 공안에 대해서, 세계불교도대회(世界佛敎徒大會)가 한국에서 열렸을 때 그 불교도대회에 참석한 세계에 불교 지도자들에게 이 공안을 물었던 것입니다.
그 가운데에는 세계 각국에 저명한 승려 · 거사(居士) · 불교학자들이 참석을 했지만 아무도 이 공안에 대해서 답을 한 사람이 없었고, 오직 말레이지아(Malaysia) 승정(僧正) 한 분이 '무답(無答)이 시답(是答)이다, 대답 없는 것이 이 답이다' 이렇게 글자 넉 자를 써 놓고 갔다고 합니다.

그 가운데에 능히 이 공안(公案)에 대해서 답(答)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답을 안 했는지, 참으로 아지를 못해서 답을 안 했는지, 그것은 확인할 도리가 없습니다마는, 이 공안은 정말 깨닫지 못했다면 이르려고 할 필요조차도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따져 갖고 이를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척! 이 공안을 접(接)했을 때 바로 이를 수 없으면 다못 의심(疑心)이 돈발(頓發)해서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를 성성(惺惺)하게 거각(擧却)할 따름인 것입니다.

어떠한 공안을 큰 스님네로부터 물음을 받았다 하더라도, 자기가 바로 깨닫지 못한 사람이라면 되지 못한 소리를 이를 까닭도 없는 것이고, 다른 고인(古人)들이 답(答)한 흉내를 낸다든지, 어떠한 행동으로써 옛날 스님네가 한 흉을 내서 보인다든지, 이러한 것은 도저히 용납(容納)될 수 없는 대죄(大罪)를 범하고 있는 것입니다.

깨닫지 못한 사람은, 지금 깨닫기 위해서 공부하고 있는 사람의 분상(分上)으로서는 다못 꽉 맥혀서 알 수 없는 대의단(大疑團)을 일으킬 따름인 것이고, 오직 자기의 본참화두에 대한 의단을 일으킬 따름인 것입니다.(12분30초~21분54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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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실(祖室) ; 선원의 가장 높은 자리로 수행인을 교화하고 참선을 지도하는 스님. 용화선원에서는 고(故) 전강대종사(田岡大宗師)를 조실스님으로 모시고 있다.
*법문(法門 부처님의 가르침 법/문 문) ; 불법(佛法)을 문(門)에 비유한 말.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門)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공안(公案) : 화두(話頭). ①정부 관청에서 확정한 법률안으로 백성이 준수해야 할 것. ②선종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이것을 화두라고도 하는데 문헌에 오른 것만도 천칠백이나 되며 황화취죽 앵음연어(黃花翠竹鶯吟燕語) — 누른 꽃, 푸른 대, 꾀꼬리 노래와 제비의 소리 등 — 자연현상도 낱낱이 공안 아님이 없다.
화두에 참구(參句)와 참의(參意)가 있다. 이론적으로 따져 들어가는 것이 참의요 사구참선(死句參禪)이며, 말길 뜻길이 끊어져서 다만 그 언구만을 의심하는 것이 참구요 활구참선(活句參禪)이다.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참고] 송담스님(No.793) - 2018년 동안거 결제 법문에서.
우리는 생로병사 속에서 살면서 생로병사가 없는 도리를 깨닫고자 불법을 믿고 참선(參禪)을 하고, 비록 한 생각 한 생각 났다가 꺼지고 또 일어났다가 없어지고, 울다가 웃다가 그러면서 죽음을 향해서 가고 있지마는, 그 죽음을 향해서 가는 속에서 생사해탈(生死解脫)하는 도리가 있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부처님의 법문(法門)을 의지해서 그것을 믿고 생사해탈을 위해서 우리는 참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생사해탈이라 하는 것이 이 육체를 가지고 죽지 않고 백 살, 이백 살, 오백 살, 천 살 살아가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그러한 생사해탈이 아니고 생사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달음으로 해서 생사해탈을 할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불법(佛法)은 생사윤회(生死輪廻)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는 종교인 것입니다. 이론적으로는 설명하기가 대단히 어려우나 부처님으로부터 역대조사(歷代祖師)를 통해서 오늘날까지 경허 선사, 만공 선사, 전강 선사로 해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고자 하는 법문을 우리는 믿고, 이론적으로 따져서 가리키고 배우는 것이 아니라 다맛 간단한 방법으로 그 진리를 깨닫는 법을 우리는 믿고, 그 법에 의해서 참선 수행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행히 우리는 불법을 믿고, 불법 가운데에서도 최상승법(最上乘法)인 활구참선(活句參禪)! 역대조사를 통해서 전수해 온 활구참선에 의해서 무상(無常) 속에서 영원을 살아가는 법을 우리는 믿고 그것을 실천하고 있는 것입니다.
간단하고도 간단한 일이나 이 최상승법 활구참선법을 믿는 사람은 확실히 불법의 근본 진리를 향해서 그것을 우리 몸을 통해서 그 진리를 체달(體達)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참구(參究 헤아릴 참/궁구할 구) ; ①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드는 것. ②선지식의 지도 아래 참선하여 화두(공안)을 꿰뚫어 밝히기 위해 집중함. 화두 의심을 깨뜨리기 위해 거기에 몰입함.
*‘참선(參禪)을 해 나가는 데 있어서 우리가 올바르게 해 나가자면 이 공안(公案)을 참구(參究)해야만 되는 것이고, 그 사람이 바로 깨달랐는가 바로 깨닫지 못했는가를 점검(點檢)해 보려면 이 공안을 갖다가 들여대 가지고 그 공안에 대한 답(答)을 하는 것을 보면은 그 사람이 어떠한 경지(境地)에 도달했는가를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 공안은 깨닫기 위해서 중요한 열쇠요 나침반, 또 ‘그 사람이 바로 깨달았냐?’를 시험해 보기 위한 좋은 시험 문제.

 


[참고] 송담스님(No.058)—1977년 동지차례(77.12.22)(3분40초)
참선을 하는 것은 화두를 항시 의심을 해서 깨닫기 위해서 참선을 하는 것이지마는, 정말 바로 말하자면 찾음으로 해서 자기를 잃게 되는 소치인 것입니다.
그렇지마는 우리는 찾아야 합니다. 찾되 선지식의 지도에 의해서 찾아야만, 찾음으로써 잃어버리는 그것을 보게 되는 까닭이 되는 것입니다.

너무 가깝기 때문에 우리는 보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마치 물속에 떠억 앉아서 물을 찾는 거와 같은 것입니다. 물속에 풍덩 주저앉아 가지고 목이 마르다고 물을 찾는 거와 같은 형상인 것입니다.

그래서 화두, 공안은 문헌에 오른 것만 해도 천칠백 공안이요, 천칠백 화두라 합니다마는 그 공안은 깨닫지 못한 사람에게는 깨달음에 이르는 좋은 열쇠요, 나침반입니다.
그러나 무슨 소견이 났을 때에는 그 공안은 바로 '그 사람이 바로 깨달은 사람이냐? 바로 깨닫지 못한 사람이냐?'를 시험해 보기 위한 좋은 시험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깨달랐다' 할 때에 그 사람에게 공안을 하나 턱 물어보면은 그 공안에 대해서 그 사람이 어떠한 표정을 짓느냐?
입 벌리기 전에 벌써 '저 사람은 바로 본 사람이다. 바로 못 본 사람이다. 바로 깨달은 사람이다. 바로 깨닫지 못한 사람이라' 하는 것을 입 벌리기 전에 선지식은 이미 알고 있는 것이고, 그렇지마는 짐짓 입을 벌리게 해 보는 것입니다.

입을 벌려 봤자, 입 벌리기 전에 알고 있는 거와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은 물속에—묻는 사람도 물속에 떠억 앉았고, 깨달랐다고 온 사람도 물속에 같이 들어앉아서 "어떤 것이 물이냐? 물이 어디가 있느냐?" 하고 물어본 거와 같은 것입니다.
그럴 때 그 사람이 물속에 들어앉은 줄을 모르고 물을 찾기 위해서 위로 아래로 두리번거리고 있다면 벌써 그 사람 '아! 이 사람이 물이 무엇인지를 모르는구나' 대번에 알 수 있지 않겠어요?

일체 공안도 역시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벌써 찾으면 저 죽는 것이고, 찾으면 그르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공안이라고 하는 것이 정말 깨닫기 위해서는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자물쇠요, 나침반과 같은 것이다」하는 것을 깊이 인식을 하시고, 화두를 공부하다가 조금 잘 들리지 아니하고, 의심이 잘 들지 않는다고 해서 '화두가 나빠서 그런가 보다' 해 가지고 이 화두, 저 화두 이렇게 화두를 바꿀려고 쌌거나 그래서는 아니된 것입니다. 누구라도 처음부터 한결같이 잘되는 사람은 없는 것입니다.(24분20초~28분)

*천칠백 공안(千七百 公案) ;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에 천칠백일 명의 인물들이 보여준 기연어구(機緣語句, 깨달음을 이루는 기연에 주고받은 말과 경전·어록의 글)를 수록하고 있는 것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
*민도(民度) ; 국민의 생활, 문화, 의식 수준.
*눈[眼] ; 눈[眼]은 법안(法眼)을 가리킨다. 지혜(智慧)의 안광(眼光). 법안(法眼)은 불법(佛法)의 바른 도리를 꿰뚫어 보는 지혜의 눈.
*안광(眼光) ; 눈빛. 시선(視線). 관찰하는 능력. 눈동자 또는 시력. 만법을 밝게 꿰뚫어보는 깨달음의 본성을 비유한다.
*대종사(大宗師 큰 대/마루·근본·우두머리 종/스승 사) ; ①크게 본보기로 삼을 만한 스승. 진리를 체득하여 최고의 경지에 도달한 사람에게 일반적으로 부여하는 존칭이다. ②조계종에서 비구스님에게 수여하는 법계(法階) 중 1급에 해당한다. 세수 60, 법랍 40세 이상 된 스님 중에 특히 뛰어난 이를 가려 특별전형에 의해 수여하며, 바로 아래는 종사(宗師)이다.
*자유자재(自由自在 스스로·저절로 자/말미암을 유/스스로 자/있을·제멋대로 하다 재) ; 무엇에 얽매이지 아니하고, 아무 거리낌이 없이 자기 마음대로인 것.
*자재(自在 스스로 자/있을·제멋대로 하다 재) ; ①자기가 원하는 대로인 것. 생각한 대로. 마음대로인 것. 자유자재로 어떠한 것이라도 할 수 있는 것. 원하는 대로의 경지. ②그 자신에 의해 존재하는 것. ③자유롭다. 자신에게 의존하다. ④독립. ⑤느긋한 심신의 작용. 잡혀지지 않는 것. ⑥불보살에 갖추어진 힘을 말함. 부처님을 자재인(自在人)이라고도 함.
*법(法) ; (산스크리트) dharma, (팔리) dhamma의 한역(漢譯). ①진리. 진실의 이법(理法). ②선(善). 올바른 것. 공덕. ③부처님의 가르침. ④이법(理法)으로서의 연기(緣起)를 가리킴. ⑤본성. ⑥의(意)의 대상. 의식에 드러난 현상. 인식 작용. 의식 작용. 인식 내용. 의식 내용. 마음의 모든 생각. 생각.
*학자(學者) ; 학인(學人). ① 아직 번뇌가 남아 있어, 아라한(阿羅漢)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더 수행해야 하는 견도(見道) · 수도(修道)의 성자. ② 수행승. 선(禪)을 닦는 수행승. ③ 배우고 익히는 과정에 있는 스님.
*도(道) ; ①깨달음. 산스크리트어 bodhi의 한역(漢譯, 舊譯). 신역(新譯)에서는 각(覺)이라 한역하고 보리(菩提)라고 음사(音寫). ②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그 방법. ③무상(無上)의 불도(佛道). 궁극적인 진리. ④이치. 천지만물의 근원. 바른 규범. ⑤취(趣 산스크리트어 gati)의 다른 번역어. 열반을 향하는 길을 가리키는 도(道)에 대해 생사윤회의 길을 가리키는 용어로도 자주 사용된다. 지옥취(地獄趣)—>지옥도(地獄道).
*경책(警策 깨우칠 경/채찍·회초리 책) : ①좌선할 때 졸거나 자세가 흐트러지는 사람을 깨우치는데[警] 사용하는 막대기[策]. ②정신을 차리도록 꾸짖어 깨우침.
*분별(分別) ; 사량분별(思量分別), 사량복탁(思量卜度), 사량계교(思量計較)와 같은 말. 생각하고 헤아리고 점치고 따짐. 가지가지 사량분별(思量分別)로 사리(事理)를 따짐. 법화경 방편품(法華經方便品)에 「이 법은 사량분별로 능히 알 바가 아니다」라고 함.
[참고] 『몽산법어(蒙山法語)』 (몽산화상 저 | 혜각존자 편 | 송담선사 역 | 용화선원 刊) 박산무이선사선경어(博山無異禪師禪警語) p155~158 에서. (가로판 P149~151)
做工夫호대  不可在古人公案上하야  卜度하야  妄加解釋이니,  縱一一領畧得過라도  與自己로  沒交渉하리라.  殊不知古人의  一語一言이  如大火聚로다.  近之不得하며  觸之不得이온  何況坐臥其中耶아.  更于其中에  分大分小하며  論上論下인댄  不喪身失命者幾希리라.

공부를 짓되 옛사람의 공안에 대하야 헤아려[卜度] 망령되이 해석을 붙이지 말지니, 비록 낱낱이 알아낸다 할지라도 자기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으리라.
자못 고인의 한 말씀 한 말씀이 마치 큰 불덩어리 같음을 알지 못하는도다。 가까이 할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거늘 하물며 그 속에 앉았다 누웠다 하리요? 더구나 그 가운데서 크고 작음을 분별하며 위라 아래라 따진다면, 생명을 잃지 않을 자 거의 없으리라。

做工夫人은  不可尋文逐句하며  記言記語니,  不但無益이라  與工夫로  作障礙하야  眞實工夫가  返成緣慮하리니,  欲得心行處絕인들  豈可得乎아

 공부 지어 가는 사람은 문구(文句)를 찾아 좇지 말며 말이나 어록을 기억하지 말지니, 아무 이익이 없을 뿐 아니라 공부에 장애가 되어서 진실한 공부가 도리어 망상의 실마리가 되리니, 마음의 자취가 끊어지기[心行處絕]를 바란들 어찌 가히 될 수 있으랴?

做工夫호대 最怕比量이니, 將心湊泊하면 與道轉遠하리니, 做到彌勒下生去라도 管取沒交渉하리라. 若是疑情이 頓發的漢子인댄 如坐在*鐵壁銀山之中하야  只要得個活路이니, 不得箇活路면  如何得安穩去리요  但恁麼做去하야  時節이  到來하면  自有箇倒斷하리라

 공부를 지어 가되 가장 두려운 것은 비교하여 헤아리는 것[比量]이니, 마음을 가져 머뭇거리면 도(道)와 더불어 더욱 멀어지리니, 미륵불이 하생할 때까지 공부를 할지라도 아무 소용이 없으리라.
만약 의정이 몰록 발한[頓發] 사람일진댄 마치 철벽(鐵壁)이나 은산(銀山) 속에 들어앉아서 다만 살 길[活路]을 찾는 것같이 할지니, 살 길을 찾지 못하면 어찌 편안히 지내가리오? 다만 이와같이 지어 가서 시절이 오면 저절로 끝장이 나리라.

*천착(穿鑿 뚫을•궁구할 천/뚫을 착) ; ①깊이 살펴 연구함. ②공연히 이치에 맞지 않게 이러쿵저러쿵함.
*깨달음 ; 각(覺). 법(法)의 실체와 마음의 근원을 깨달아 앎. 지혜의 체득.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판치생모(板齒生毛) ; 화두(공안)의 하나. 版과 板은 동자(同字).
[참고 ❶] 『선문염송(禪門拈頌)』 (고려 진각혜심眞覺慧諶 선사 편찬) 475칙 ‘판치(版齒)’
(古則) 趙州因僧問 如何是祖師西來意 師云版齒生毛.

조주 스님에게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선사가 대답하였다.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投子靑頌) 九年小室自虛淹 爭似當頭一句傳 版齒生毛猶可事 石人蹈破謝家船

투자청이 송했다.
9년을 소림에서 헛되이 머무름이 어찌 당초에 일구 전한 것만 같으리오.
판치생모도 오히려 가히 일인데 돌사람이 사가(謝家)의 배를 답파했느니라

[참고 ❷] 『언하대오(言下大悟)』 (전강 선사 법어집 | 용화선원刊) p53~54.
어떤 스님이 조주 스님께 묻되, “어떤 것이 ‘조사서래의’입니까?(如何是祖師西來意)”하니 답하시되,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하셨다. 즉, 「어떤 것이 달마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 「판치에 털이 났느니라」라고 하는 화두.

그러면 조주 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을까?  이 화두도 ‘무자’ 화두와 같이 ‘판치생모’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판치생모”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께 뜻이 있는 것이니, 학자들은 꼭 조주 스님의 뜻을 참구할지어다.
“어째서 ‘무’라 했는고?” 하는 것과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하는 것은 조금도 다름이 없는 것이다.

*마조원상(馬祖圓相) 공안 ; 『선문염송(禪門拈頌)』 (혜심 지음) 제5권 165칙 ‘원상(圓相)’ 공안.
馬祖因見僧參  畫一圓相云  入也打不入也打  僧便入  師便打  僧云和尙打某甲不得  師靠却拄杖  休去.

마조 스님에게 어떤 스님이 와서 뵙자, 마조 스님이 원상(圓相), 동그라미를 그려 놓고 ‘입야타(入也打) 불입야타(不入也打), 이 원상에 들어가도 치고 들어가지 아니해도 친다’하고 물으시니, 그 스님이 원상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마조 스님이 주장자로 들어간 그 스님을 한 대 후려치니까, 그 스님이 말하기를 ‘스님께서는 저를 치지 못했습니다’ 그러니까 마조 스님이 휴거(休去)를 했습니다. 아무 말도 없이 가버리셨습니다.

 


[참고] 송담스님(No.282)—1986년 1월 첫째일요법회(86.01.05)에서.(2분19초)
마조 스님이 원상(圓相)을 그려 놓고 ‘입야타(入也打) 불입야타(不入也打) 이 원상에 들어가도 치고 들어가지 아니해도 친다.’ 이 공안을 물은데 어떤 스님이 그 안에 들어갔어.
들어가니까 마조 스님이 주장자로 들어간 그 스님을 한대 후려쳤습니다. 치니까 그 스님이 말하기를 『스님께서는 저를 치지 못했습니다.』 이랬습니다.
그러니까 마조 스님이 휴거(休去)를 했습니다. 아무 말 없이 그냥 방장(方丈)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이 원상 안에 들어가도 치고 들어가지 아니해도 친다’한 그 공안에 그 스님이 턱 뛰어들어가는 도리는 무슨 도리며,
들어가니까 마조 스님이 주장자로 한 방을 후려치니까 그 스님이 그 방(棒)을 맞고서 하는 말이 『스님께서는 저를 치지 못했습니다.』 또 그 스님이 그렇게 말한 데에 마조 스님이 아무 말없이 저리 가버렸으니...
이러한 공안에 확연(確然)히 의심이 없어야 하는 것입니다.

비록 이러한 공안이 문헌상에 오른 것만 해도 천칠백 공안이라 하는데, 이것이 다 부처님과 조사가 씹다가 버린, 먹다가 버린 찌꺼기에 지나지 못한 것이기는 하나, 이러한 공안이 바로 학자(學者)의 소견(所見)을 가려보는 데에는 좋은 시금석(試金石)이 되는 것입니다.
*게송(偈頌) ; 산스크리트어, 팔리어 gāthā 부처님의 공덕이나 가르침을 노래 글귀로 찬미한 것.
게(偈)는 게타(偈陀 gāthā 가타伽陀)의 줄임말, 송(頌)은 그 뜻을 한역(漢譯)한 것으로 게송(偈頌)은 범어와 한어를 병칭(倂稱)한 것이다.
*서산(西山) 스님의 게송 가운데에 나오는 '어생일각(魚生一角)'이라든지 그러한 공안에 대해서 ; 
[참고 ❶] 『청허당집(淸虛堂集)』 (서산대사) ‘贈熙長老(희장로에게 드림)’
십년단좌옹심성(十年端坐擁心城) 관득심림조불경(慣得深林鳥不驚) 작야송담풍우악(昨夜松潭風雨惡) 어생일각학삼성(魚生一角鶴三聲)

십 년 동안을 단정히 앉아서 마음 성(城)을 지켜 왔더니, 깊은 숲에 새가 놀래지 않도록까지 되었다. 고기는 한 뿔다귀가 나고 학(鶴)은 세(三) 소리를 울었다.

 


[참고 ❷] 전강선사(No.218)—몽산시 유정상인(1) (임자72.07.13.새벽) 서산오도송, 반기이파 (전218)(7분45초)
십년단좌옹심성(十年端坐擁心城)이다  관득심림조불경(慣得深林鳥不驚)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십년단좌옹심성(十年端坐擁心城)이다. 10년을 단정히 앉아서 심성(心城)을 옹호했다. 잘 화두를 생각... 단좌(端坐)여 단좌. 단정허게 앉으란 말이여.
이렇게 앉어서는, 앉으면... 이렇게 앉던지, 꾸부리고 앉어서 이거 그거이 참선인가? 그 참선허는 사람들 그 그려? 어떤 기대앉아서 삐딱허니... 내 이놈의 짓 좀 보지. 그 단좌한 사람이 몇 된가 봐.

탁! 이 탁수(卓竪)를 턱 허고 십년단좌옹심성(十年端坐擁心城)이여. 10년을 그렇게 헐 때 못할 리가 있는가? 못헌 법이 있으며? 아! 이놈 이놈인디.
이놈이 뭐 안 나오는 법이 있어? 없는 놈이래야 안 나오지, 분명히 있는데 안 나와? 금(金)도 캐는디.

단정히 앉어서 옹심성(擁心城)을 했다. 관득심림조불경(慣得深林鳥不驚)이다. 넉넉하게 깊은 수풀의 새가 놀래지 않을 만큼 되었구나. 새가 놀래지 않으니까, 새란 놈이 어디 있다가 '바싹' 허면 놀래 달아나고 이런데, 놀래지 않아.

새는 마음이다. 이 내 마음이 망상 번뇌가 안 난다 그 말이여. 화두 일념이 되아서.
10년을 해놓고 난께, 그 새란 놈 휙휙 그 새란 놈이 놀래고 허니께 단좌(端坐)! 딱 그만 일념이 되아서 화두가 뭉쳐서 망상이 다 화두한테 와서 불 타듯기, 냉기 타듯기 타버리고 화두 하나만 따악 있다 그 말이여. 그래 그건 그거 견성헌 건 아니지. 화두 일념 되았단 말이지.

그 밑에 뭐고? 하! 이거 내 다 잃어버려. 십년단좌옹심성(十年端坐擁心城)허니 관득심림조불경(慣得深林鳥不驚)이라

작야송담풍우악(昨夜松潭風雨惡)터니  어생일각학삼성(魚生一角鶴三聲)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좋다! 참 아닌 게 아니라 깨달은 글이지. 봐라.
작야(昨夜)에 송담풍우악(松潭風雨惡)터니, 어젯밤 송담(松潭)에 풍우(風雨)가 악(惡)하더니, 풍우가 악(惡)했은게, 풍우 부니께 바람 붐서 비 온 거여.                                                                                                                                                                          바람 불고 비가 막 들이 떨어지더니, 아침에는 비 쏵 개 버린, 바람 다 자고 풍랑이 쏵 가라앉은 뒤에는 그 송담에, 솔냉기 갓에 모도 있고 담(潭)에, 못에 솔 못에 물이 깨끗허네.

그 인자 물이 비 우후(雨後), 비 후에 빗물이 깨끗한 물이 내려와서 그 송담에 물이 그뜩 차 넘어 가지. 철렁철렁 철렁철렁 넘어간디, 어생일각(魚生一角)이요 학삼성(鶴三聲)이로구나. 괴기 한 뿔따구가 났고, 괴기 한 뿔따구 났고, 학(鶴) 세 소리다.
'학(鶴) 세 소리다' 한 것은, '학 세 소리'라는 것은 그건 그대로 격외(格外)여. 그냥 보통 격외로 보자 그 말이여. 그 안에 어생일각(魚生一角)은 어떻게 봐야 혀? 어떻게 봐야 그게 그게 될까? 고런 것을 봐야 허네.

그 ‘학삼성(鶴三聲)은 격외다’ 하면 격외로만 알아 버렸지, 격외가 뭔지 안가?
격외(格外)는 깨달은 걸 격외라 한디, 깨달은 도리를 격외(格外)인디 그 안가? 말만 '격외다' 하지, 아는가 말이여? 모르지.

그 괴기 뿔따구, 괴기 뿔따구 났느니라. 뿔따구 난 괴기가 무엇인가?
하! 한국에는 운허당이 제일가는 강사라고 헌디, 운허당한테 "아! 그 저 어생일각(魚生一角)이라는 건 그 무슨 도리입니까?" 헌게,
"그 용이, 괴기가 뿔따구가 나면 용(龍)된께 어생일각(魚生一角)인께, '그 괴기가 용 되었다'는 말인게, 중생이 성불헌단 말이라"고. 말은 좋지.

"아! 그러면 저 어생이각(魚生二角)이라고 허지, 어생양각(魚生兩角)이라고 허지, 어찌 어생일각(魚生一角)이라고 썼을까요?"
못해. 말 못햐. 나 똑 사실이여. 나 그 영감하고 〇〇〇나 허지, 못할 리 없어.

그 용이 뿔따구가 둘이든가? 저 하나든가? 그 용은 다 못 봤다 하지만 그림은 봤지?
용 그림 보면 용 뿔따구가 하나든가? 용 뿔따구 둘이지? 아 종성당은 해봐. 삐식 웃지 말고.

공안이란 그래서는 안 되거든? 영 무엇 맛도 없고 되들 안 혀.
어생일각(魚生一角)이야 되거든. 그거 설찬히, 외국 놈도 와 내가 물어본 중에 한 놈도 대답 못했네. 한 놈도 뭐 어생일각에 대하여 대답 못했어. 어디 뭐 그 어디 그거 똑 판치생모, 똑 부사의(不思議) 공안(公案)만 내가 물었구만.(46분49초~54분33초)

*거사(居士) ; ①고대 인도에서 상·공업에 종사하던 부호. ②출가하지 않고 재가(在家)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르는 남자 신도. 출가하지 않고 법명(法名)을 받은 재가(在家)의 남자.
*승정(僧正 중·스님 승/우두머리 정) ; 동아시아에서 불교 스님과 사찰을 통괄하기 위해 임명된 스님의 최고 관직.
*의심(疑心) :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해 ‘알 수 없는 생각’에 콱 막히는 것.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이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수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이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또는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또는 ‘조주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바른 깨달음은 알 수 없는 의단, 알 수 없는 의심에 꽉 막힌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저 | 송담스님 역 | 용화선원刊) p54~55. (가로판 p56~57)
參禪엔  須具三要니  一은  有大信根이요  二는  有大憤志요  三은  有大疑情이니 苟闕其一하면  如折足之鼎하야  終成癈器하리라

참선하는 데는 모름지기 세 가지 요건을 갖추어야 하나니, 첫째는 큰 신심이요, 둘째는 큰 분심이요, 셋째는 큰 의심이니, 만약 그 중에서 하나라도 빠지면 다리 부러진 솥과 같아서 소용없는 물건이 되리라.

註解(주해) 佛云, 成佛者는  信爲根本이라 하시고  永嘉云, 修道者는  先須立志라 하시며 蒙山云, 參禪者는  不疑言句가  是爲大病이라 하고  又云, 大疑之下에  必有大悟라 하시니라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성불하는 데에는 믿음이 근본이 된다」 하시고, 영가스님은 이르기를 「도를 닦는 이는 먼저 모름지기 뜻을 세워야 한다」 하시며, 몽산스님은 이르기를 「참선하는 이가 화두를 의심하지 않는 것이 큰 병이 된다」 하시고, 또 이르기를 「크게 의심하는 데서 크게 깨친다」고 하시니라.

*돈발(頓發 갑자기 돈/일어날·나타날·밝힐 발) ; 일정한 단계를 밟지 않고 직접적, 비약적으로 일어나는. [참고] 頓 - 直頓의 뜻, 곧바로.
*본참화두(本參話頭) ; 본참공안(本參公案).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성성(惺惺) ; ①정신이 맑고 뚜렷함. 정신을 차림. 총명함. 의식이 대상을 진실 그대로 인지할 수 있도록 분명하게 깨어 있는 상태. ②화두에 대한 의심이 또렷또렷한 것.
*거각(擧却 들 거/어조사 각) ; 화두를 든다. ‘화두를 든다’ ‘화두를 거각한다’는 말은 자신의 본참화두를 들 때 알 수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그 알 수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觀照)하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세등선원No.09)—병진년 동안거 결제중 법어(76.12.26)에서.
화두를 먼저 이마로 의심을 하지 말고, 이 화두를—호흡하는데 배꼽 밑[丹田]에 숨을 들어마시면은 배가 볼록해지고 숨을 내쉬면은 배가 홀쪽해지는데, 그 배가 빵빵해졌다 홀쪽해졌다 허는 거기에다가 화두를 들고 ‘이뭣고~?’   ‘알 수 없는 생각’ 관(觀)하는 그것이 화두를 드는 것이여.
*고인(古人) ; ①불보살(佛菩薩)님을 비롯한 역대조사(歷代祖師), 선지식을 말한다. ②옛날 사람. 옛날 선승(禪僧).
*분상(分上 분수 분/윗 상) ; 자기의 신분이나 처지에 알맞은 입장.
[참고] 분(分) : 분수(分數 자기 신분에 맞는 한도. 자기의 신분이나 처지에 알맞은 한도).
상(上) : ①‘그것과 관계된 입장’ 또는 ‘그것에 따름’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 ②‘추상적인 공간에서의 한 위치’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
(예) 정진하는 분상에는 ---> 정진하는 수행자에 알맞은 입장에 따르자면.
*의단(疑團 의심할 의/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의심(疑心) :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해 ‘알 수 없는 생각’에 콱 막히는 것.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이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수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이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또는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또는 ‘조주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바른 깨달음은 알 수 없는 의단, 알 수 없는 의심에 꽉 막힌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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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그리고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도 있습니다.

참선법 A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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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