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精進) 수행2020. 12. 15. 10:38

§((004)) 참선은 어렵지 않다. 일어나는 중생심으로, 중생심 일어나는 곳을 찾기 때문에 밖에서 구한 것이 아니다. 일어나는 그 생각을 돌이켜서 화두를 들면 그만 / 쥐로 모든 쥐를 잡는 법 / '이뭣고?' 화두 드는 법 / 우리는 생명 바쳐 할 일은 참선밖에는 없다.

 

참선법이란 게 바로 쥐 한 마리 길러 가지고, 그 쥐로 하여금 모든 쥐를 다 잡어먹는 이치와 비교해서 얘기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선지식으로부터 지도 받은 화두(話頭)는, 그 화두가 내나 우리 중생심으로 들기 때문에 중생심 가운데에 한 생각인 것은 틀림이 없습니다마는, 그 중생심은 선지식으로부터 지도 받은 중생심이 화두여. 마치 훈련을 잘 시켜 놓은 쥐와 마찬가지다.

이 화두 하나만 가지고 일체처 일체시에서 일어나는 생각—성이 나거나 웃음이 나오거나, 기쁘거나 외롭거나, 천하 없는 번뇌와 망상이 퍼일어난다 하더라도 화두를 거각함으로써 일어났던 그 중생심은 자취 없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래가지고 이 온 세상이 화두에 대한 의심 덩어리로 꽉! 찼을 때, 항아리에다가 간장을 가뜩 넣어 놓고, 메갱이로 그 항아리를 팡! 쳤을 때 그 항아리는 쩍! 갈라지면서 간장이 와그르르 쏟아질 겁니다.

이 온 내 마음속, 가슴속뿐만이 아니라 모든 곳 모든 것, 일체시 일체처에 이 세계에 화두가 가뜩찼을 때, 그때에 그 화두 한 뭉텡이가 툭 터진 날에는 무량겁으로 오면서 지어온 우리의 한없는 다생(多生) 업(業)이 거기에서 찰나간에 녹아 없어질 것이며, 나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송담스님(No.004)—1975년 동안거 결제 (75.11.17) (용004)

 

약 16분.

 

참선이라 하면 덮어놓고 '어렵다. 속가에 살면서는 도저히 하기가—좋은 줄은 알지마는 하기가 어렵다' 이리 생각하시지마는.

'그리고 하려고 하면은 졸음이 오고 그렇지 않으면 번뇌 망상이 일어나서 도저히 근기(根機)가 약하고, 아무래도 정법에 인연이 희박하고 업장(業障)이 두터워서 우리는 참선은 못합니다' 아마 그렇게 생각하신 분이 혹 계실는지 모르지마는, 이 참선법은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왜 그러냐?

중생심을, 한도 끝도 없이 퍼일어나는 그 중생심을 다 띠어 버리고, 그리고 난 다음에 참선을 해야 된다고 한다면은 그것은 어렵습니다.

중생심을 버리고 나를 찾는 것이 아니라, 일어나는 중생심 속에서 일어나는 중생심으로, 중생심 일어나는 곳을 찾기 때문에 밖에서 구한 것이 아니라 내가 하루에면 열두 때 24시간 보고, 듣고, 느끼고, 성내고, 웃고 하는 그 물 끓듯, 불타듯 일어나는 중생심 속에서, 그 중생심으로 찾는 것이기 때문에 이건 남녀노소와 유식 무식이 상관이 없습니다.

 

오히려 성낼 중도 모르고, 웃을 중도 모르고, 좋아할 중도 모르고, 골낼 중도 모른, 또 아무 욕심도 없고 그러한 사람은 차라리 이 공부에도 역시 박력이 없기 때문에 공부에 진취가 별로 보이지 않을런지 모르지만,

욕심 많고, 심술궂고, 신경질 잘 내고, 불칼 같은 성미를 가지고 있는 그러한, 다른 일반 사람들이 볼 때에는 '사람 못되었다'고 그러한 핀잔을 받을 만한 성격의 소유자일수록에 그 생각만 바로 돌이켜서 화두를 열심히만 거각(擧却)한다고 하면은 오히려 그 사람이 누구보다도 빨리 도업(道業)을 성취할 수 있다 생각합니다.

그래서 번뇌가, 망상이 많이 일어난다고 해서 짜증을 낼 게 아니라, 일어나는 그 생각을 돌이켜서 화두를 들면 그만입니다.

 

 

어떤 사람이 집에 쥐가 너무나도 쥐가 번식을 해 가지고, 쥐 때문에 살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딜 갔더니 어떠한 사람이 그 쥐 잡는 법을 가르켜 주었습니다.

 

어떻게 하냐 하면은 쥐 한 마리를 다치지 않게 잡아 가지고, 그 쥐를 항아리에다 담은 다음에 한 2~3일 굶겨라. 굶긴 다음에 다른 쥐를 쥐덫으로 잡어가지고 쥐 살을 조끔씩 띠어 가지고 그 항아리 속에 있는 쥐를 멕여라 그랬습니다.

그 쥐가 배고프니까—처음에는 쥐고기 넣어 줘도 잘 안 먹더니, 배고프니까 그놈을 먹기 시작했다. 날마다 쥐고기를 넣어 주고, 넣어 주고 하다가 나중에는 쥐 통채로 새끼 한 마리를 넣어 주었습니다. 그러니까 그 쥐새끼 한 마리를 먹었습니다. 다음에는 산 쥐새끼를 넣어 주었습니다. 산 쥐새끼도 처음에는 이리저리 놀리다 결국은 다 잡아먹었습니다. 나중에는 큰 쥐도 넣어 주니까 다 잡아먹었습니다.

이제 아주 쥐고기 잡아먹는데 대단히 아주 숙달이 되어서 아주 주식(主食)이 쥐가 되었습니다. 그런 다음에 그 쥐를 항아리에서 내 주었습니다. 당장 그전에 자기가 다니던 쥐구녁으로 들어가서, 쥐 앵긴 대로 그놈이 다 잡아먹었습니다.

 

고양이가 아무리 쥐를 참 잘 잡는다 하지마는, 구멍에서 나온 놈밖에는 잡을 수가 없고 또 고양이 소리만 나면은 쥐는 미리 도망가기 때문에 고양이로서는 도저히 쥐를 다 잡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쥐를 훈련을 시켜 가지고, 쥐를 놓아서 쥐로 하여금 쥐를 잡게 하니까 못 갈 데가 없단 말이여. 구녁, 구녁이 다니면서 늙은 쥐고, 젊은 쥐고, 새끼 쥐고, 에미 쥐고, 닥치는 대로 다 잡어먹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그 주인은 마지막에 그 쥐 한 마리를 잡았습니다. 그렇게 해서 그 집에 쥐를 다 멸종을 했다고 하는 우화가 있습니다.

 

참선법이란 게 바로 쥐 한 마리 길러 가지고, 그 쥐로 하여금 모든 쥐를 다 잡어먹는 이치와 비교해서 얘기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선지식으로부터 지도 받은 화두(話頭)는, 그 화두가 내나 우리 중생심으로 들기 때문에 중생심 가운데에 한 생각인 것은 틀림이 없습니다마는, 그 중생심은 선지식으로부터 지도 받은 중생심이 화두여. 마치 훈련을 잘 시켜 놓은 쥐와 마찬가지다 그말이여.

이 화두 하나만 가지고 일체처 일체시에서 일어나는 생각—성이 나거나 웃음이 나오거나, 기쁘거나 외롭거나, 천하 없는 번뇌와 망상이 퍼일어난다 하더라도 화두로써, 화두를 거각함으로써 일어났던 그 중생심은 자취 없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래가지고 이 온 세상이 화두에 대한 의심 덩어리로 꽉! 찼을 때, 항아리에다가 간장을 가뜩 넣어 놓고, 메갱이로 그 항아리를 팡! 쳤을 때 그 항아리는 쩍! 갈라지면서 간장이 와그르르 쏟아질 겁니다.

이 온 내 마음속, 가슴속뿐만이 아니라 모든 곳 모든 것, 일체시 일체처에 이 세계에 화두가 가뜩찼을 때, 그때에 그 화두 한 뭉텡이가 툭 터진 날에는 무량겁으로 오면서 지어온 우리의 한없는 다생(多生) 업(業)이 거기에서 찰나간에 녹아 없어질 것이며, 나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위대한 수행이 결코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어렵다고 미리 겁을 집어먹고 열심히 아니하고, 또 하려고 해도 바른 선지식의 지도를 받지 못하고 잘못하기 때문에 그렇고, 또 지도는 옳게 받아도 정말 골똘히 하지 아니한 데에서 공부가 늦어지는 것이지,

첫째, 바른 선지식의 지도를 받아 가지고 나도 꼭! 깨달을 수 있다고 철저히 믿고, 과거에 모든 성현들은 진즉 이 진리를 깨달라서 생사해탈, 생사에 자재한 그러한 성현이 되었는데, 나는 무엇 하느라고 오늘날까지 중생으로서 육도윤회를 하고 있는가? 생사에 자재 못하고 있는가? 그것을 이를 악물고 분한 마음을 내며, 그래가지고 선지식으로부터 지도 받은 화두에 대한 의심이 철저하고 간절하게 거각해 나가진다고 하면은 그 사람 공부는 빠르면 사흘이요, 글안으면 일주일이요, 늦어도 삼 년.

'삼 년을 여법(如法)하게 그렇게 생명 바쳐 알뜰히 해서 깨닫지 못하면 내가 거짓말한 죄로 세세생생(世世生生)에 혀를 빼서 쟁기질하는 지옥에 갈 것이다. 그러나 만약 이렇게 간절히 일러줌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믿지 아니하고 공부를 열심히 아니한다면은 너는 세세생생에 호랭이 밥이 될 것이다' 4조 도신 스님은 이렇게 간곡히 말씀하셨습니다. 이 법문을, 고려 시대 보조국사는 이 법문을 듣고 너무나도 감개무량해서 가슴이 벅차서 눈물을 글썽거렸다고 하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꼭! 나도 하면 된다고 믿고, 나는 무엇 때문에 오늘날까지 뭣 하느라고 이 문제를 해결 못했던가? 하는 이를 악물고 분을 내는 그 마음으로 화두를 들어 가십시오.

 

화두는 '이뭣고?'

대관절 지금 제가 말씀을 하고 있는데 이걸 듣고 계신 여러분은 귀가 듣는 게 아닙니다. 귀를 통해서 우리는 들을 뿐입니다. 대관절 무엇이 듣느냔 말이여.

들을 줄 알고, 눈으로 보면 희다 검다 알고, 꼬집어 뜯으면 아픈 줄 알고, 듣기 싫은 욕하면은 썽낼 줄 알고, 배고프면 밥 먹을 줄 아는 그놈이 대관절 무엇인가? '이놈이 무엇인고?' '이놈이 무엇인고?'

 

때와 장소를 가리지 말고 앉았을 때나 누웠을 때나, 집에서 빨래를 하거나 소지를 하거나 밥을 짓거나, 때와 장소를 가리지 말고 '이놈이 무엇인고?' '이- 이것이 무엇인고?'

'이것이 무엇인고?'하면 일곱 자인데,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뭣고?' 이렇게. 경상도 사투리지마는 간단하고 뜻은 그 가운데 다 들어 있기 때문에 참선 공부를 할 때는 '이뭣고?' '이뭣고?'

나중에 썽도 안 나고 무슨 아무 일이 없을 때에는 현재 이 '이뭣고?'할 때 '이- 하는 놈이 무엇인고?'하는 뜻으로 '이- 뭣고?' 이렇게.

 

간절히 간절히 화두를 들고 공부를 하시면은—처음에는 잘 안되고 '이뭣고?'하면서도 번갯불 치듯 지내간 일들이 스쳐가고, 얼투당투않는 일이 생각이 떠오르지마는, 버쩍! 깜짝 놀래서 다시 '이뭣고?'

아무 재미도 없고, 맛도 없지마는 자꾸 하고 또 하다 보면은 그 가운데 신심이 나고, 분심이 나고, 의심이 더욱 간절해져서 나중에는 하려고 안 해도 제절로 화두가 들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공부를 해 나가다가 가장 주의해야 할 것은 무엇이냐? '아! 공부가 잘되는구나. 참 좋다' 이러한 생각 갖지 말 것.

또 아무리 하려고 해도 화두가 들리지는 않고 가슴은 답답하고 몸은 괴롭고 영 화두가 잘 들리지는 않고, 그러한 때가 옵니다. 그러더라도 조끔도 번민심을 내지 말고, 썽내지 말고, 잘 그 마음을 돌이켜서 심호흡하고 또 산책도 하고 좀 거닐어서 정신이 개운해지면 다시 와서 또 '이뭣고?' 이렇게 해서 마음을 그렇게 잘 돌릴 줄 알아야 합니다.

 

썽낼 때에도 그놈을 돌이켜서 '대관절 무엇이 이렇게 썽낼 줄 아나?' 썽내는 마음으로 일을 처리하시지 말고, 썽내는 마음을 돌이켜서 '이뭣고?' 이렇게 화두를 한번 떡 들고서 그 썽내는 일을 처리를 하시게 되면은 일이 감정적으로 처리가 되는 게 아니라, 아주 냉정한 이성으로 일을 처리하게 되기 때문에 우리가 생활을 해 나가는 데에도 이 참선을 하게 되면은 대단히 유익한 것입니다.

 

하물며 열심히 하면 영원히 생사해탈(生死解脫)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생명 바쳐 할 일은 이것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불법(佛法)이라 하는 것은 이것 하나 하자고 있는 것이지, 그 밖에 것은 이것을 하기 위한 방편(方便)들입니다. 배라고 하는 것은 물을 건너가기 위해서 배가 필요한 것이여.

불법에 팔만사천 가지 모든 방편은 내가 '나' 깨닫기 위한 방편들입니다. 그 방편 중에서도 이 화두참선, 활구참선, 활구참선(活句參禪)이야말로 최고의 방법입니다.

 

아까 전강 조실 스님께서 정법, 활구참선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마는—'이뭣고?' 또는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고 했는고?' '어째서 무(無)라고 했는고?' 이렇게 어떠한 큰스님네나 다 화두를 다 그렇게 일러 주십니다. 그러나 똑같은 화두를 지도 받아서 하면서도 하는 사람에 따라서는 바르게 하지 못한 사람이 있고, 바르게 한 사람이 있습니다.

 

바르게 하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이 바르게 하느냐?

거두절미하고 다못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천 번이고, 만 번이고 다못 밑도 끝도 없이 그렇게만 들어 가는 사람, 그것이 활구참선(活句參禪)입니다.

 

사구참선(死句參禪), 죽은 참선은 어떻게 하느냐? 또 삿된 참선은 어떻게 하는 것이 삿된 참선이요, 죽은 참선이냐 하면은 이론으로 자기가 그동안에 보고 듣고 한—경전을 보았던지, 선지식의 또는 어록을 보았던지, 어떤 큰스님네 법문을 들었던지, 자기가 보고 듣고 느끼고 한 불교에 대한 지식, 상식, 교리 이러한 것을 동원해 가지고 이리저리 따져 보고 연구해 보고 비교해 보고 또 분석… (15분24초~30분47초) (끝)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

 

**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600 개가 넘는 ‘(참선) 법문’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 있습니다.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600 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