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精進) 수행'에 해당되는 글 89건

  1. 2019.11.02 §(321) (게송)면문출입견환난~ / 망상을 발판으로 화두를 들어라 / 적극적 요중선(鬧中禪) / 상근 중근 하근 / 경계에 속지 말아라.
  2. 2019.10.08 §(619) (게송)정종소식몰자미~ / 심우도(尋牛圖) / 과거에 '관세음보살'을 하신 분은, 앞으로는 '이뭣고?'를 열심히 하시기를 부탁.
  3. 2019.05.31 §(394) (게송)작일지두개난만~ / 활구참선이야말로 확철대오 하는 데에 가장 지름길이다 / (게송)견색비간색~ / 황벽스님의 "계급' 법문 / 무상함을 철저히 느껴 시간을 아껴 정진하라.
  4. 2019.03.24 §(531) (게송)본참공안몰심사~ / 내비두는 것이 망상 다스리는 법 / 일체 경계가 법문 / 한 생각 단속하는 곳은 언제나 정법시대 / (게송)한산정상월륜고~ / 세 천사, 노·병·사(老·病·死).
  5. 2018.10.21 §(427) (게송)권군수립장부지~ / 생사호흡지간 / 내가 깨달을 수가 있겠습니까? / 우리는 부처님과 도반 /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불보살 화현.
  6. 2018.02.15 §(356) 정진을 시작하면 귀머거리, 벙어리가 되야 / 일념삼천 / 바른 스승의 지도 / 능소(能所) / 도문(道門)의 첫 단계 / (게송)겁화소해저~ / 인생은 한바탕 꿈, 빨리 보리심을 발해야.
  7. 2017.06.26 §(715) 우리 자신이 생사해탈해야 부모에 대한 최고의 효도 / 참선하는 스님께 대중공양 / 시주것이 무서운 줄 알아 열심히 정진하라 / 스님, 신도 모두 한 형제자매 / 의심을 관(觀)하라.
  8. 2017.06.16 §(663) (게송)한산정상월륜고~ / 단지불회 시즉견성 / 이 공부 만나 실천할 수 있음에 항상 감사해야 / (게송)오주차암오막식~ / 한 생각 단속에 무상 속에 영원을 사는 길이 거기에 있다.
  9. 2017.06.08 §(627) (게송)만의도취일의단~ / 모든 의심을 전부 자기 본참공안에 대한 하나의 의단에다 몰아붙이라 / 올바르게 열심히만 하면 될수 있다 / 황룡탕 / 여법하게 열심히 도 닦으면 정법시대.
  10. 2017.05.21 §(650) (게송)천척사륜직하수~ / 이 공부는 알 수 없는 의단(疑團)만을 거각해 나갈 따름 / 파수공행(把手共行) / 올바르게, 열심히 닦았으면 부끄러울 것이 없다 / (게송)진로형탈사비상~.
정진(精進) 수행2019. 11. 2. 22:50

 

 

§(321) (게송)면문출입견환난~ / 망상을 발판으로 화두를 들어라 / 적극적 요중선(鬧中禪) / 상근 중근 하근 / 경계에 속지 말아라.

 

전강 조실 스님께서 세간(世間)에 살면서 행주좌와 어묵동정, 인간 세상에 모든 희로애락과 흥망성쇠 속에서 바로 그 생활 속에서 화두를 들고 정진을 해 나가는 것이 그것이 바로 요중선(鬧中禪)이고 적극적 임운선(任運禪)이라 하셨는데, '이것은 상근인이 할 수 있는 참선이다. 그 적극적(積極的) 요중선(鬧中禪)이야말로 참으로 훌륭한 참선이다' 이리 말씀을 하셨습니다.

 

**송담스님(No.321) — 1987년 2월 첫째 일요법회(87.02.01) (용321)

 

(1) 약 12분.

 

(2) 약 9분.

 

(1)------------------

 

면문출입견환난(面門出入見還難)한데  무위진인지척간(無位眞人咫尺間)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거로일신경사엽(去路一身輕似葉)한데  고명천고중여산(高名千古重如山)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오늘 정묘년 2월 첫째 일요법회를 맞이해서 사부대중이 이렇게 운집(雲集)한 가운데에 전강 조실 스님의 최상승 활구참선(活句參禪) 법문을 들었습니다. 오늘 녹음 법문(錄音法門)은 음질이 명확해서 한 분도 빠짐없이 잘 들으셨을 줄로 생각을 합니다.

‘이뭣고?’, 내가 나를 찾는 ‘이뭣고?’ 이 참선을 아주 구체적으로 누구나 알아듣기 쉽게 그렇게 분명하게 그리고 간략하게 구체적으로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이뭣고?’

 

보통 참선(參禪)하지 아니할 때에는 망상(妄想)이 일어난 줄도 모르고 그냥 지내는데 떠억 앉아서 화두(話頭)를 들려고 하면 유별나게도 이 생각 저 생각이 퍼일어나는 것을 아주 느끼게 됩니다.

그 끝없이 퍼일어나는 그 망상 번뇌, 그 일어나는 것을 조금도 개의치 말고, 일어나는 것을 탓하지 말고, 두려워하지 말고, 그 일어나는 대로 그냥 내버려둬 버리고 거기에 신경도 쓰지 말고 그 일어나는 망상을 따라가지를 말아라.

 

망상이 일어난다고 해서 걱정하지도 말고, 망상 일어나는 것을 따라가지도 말고, 그냥 일어나면 일어난 대로 그냥 고대로 놔둬 버리고, 나는 화두만을 자꾸 챙기라. ‘이뭣고?’

뿌리 없는 데로부터서 일어났기 때문에 그냥 내가 따라가지만 안 하고 화두만 들어버리면 그 망상은 저절로 없어져 버리는 것입니다.

 

일어나는 망상을 없앨라고 한다든지, 일어난다고 짜증을 낸다든지, 그 일어나는 데를 내가 참견을 하면 그 망상은 점점 더 가지가 뻗고 잎이 피어서 더 커지는데.

일어나거나 말거나 그냥 놔둬 버리고 나는 처꺽 화두를 들고 ‘이뭣고?’ ‘ 「이」 하는 이놈이 뭣고?’ 이렇게만 한결같이 간절히 거각(擧却)을 해 나가면 그것이 일어나는 망상을 처치하는 가장 지혜스러운 방법인 것입니다. 망상 처치하는 방법만 안다면 망상 일어나는 것을 겁낼 필요도 없고 짜증을 낼 필요도 없습니다.

 

그 망상이라 하는 것이 어디서 일어나냐 하면은 내나 진여불성(眞如佛性)에서부터서 일어난 것이거든.

우리는 진여불성이 어떻게 생겼는지, 어디가 있는지, 도저히 알 수도 없고 그 불성을 볼 수도 없지만, 그 진여불성으로부터 일어나는 망상은 하루 종일 끊임없이 우리는 느낄 수가 있습니다.

 

우리에게 진여불성이 없다면 망상도 일어날 필요가 없겠지만, 진여불성이 있는데 과거로부터 한량없는 업(業)을 지었기 때문에 그 지어 놓은 업으로 인해서 끊임없이 그 망상의 물결이 일어나고 있어.

그 일어나는 물결을, 그 일어나는 망상을 계기로 해서 화두를 들어버리면 그 일어나는 망상이 발판이 되어서 나로, 나의 자성자리로 돌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최상승법(最上乘法)입니다.

 

최상승법은 일어나는 망상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왜 그러냐?

그놈을 발판으로 해서 나로 돌아올 수가 있기 때문에 그것을 무서워할 것도 없고, 미워할 것도 없고, 짜증을 낼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아까 전강 조실 스님께서 세간(世間)에 살면서 행주좌와 어묵동정, 인간 세상에 모든 희로애락과 흥망성쇠 속에서 바로 그 생활 속에서 화두를 들고 정진을 해 나가는 것이 그것이 바로 요중선(鬧中禪)이고 적극적 임운선(任運禪)이라 하셨는데, '이것은 상근인이 할 수 있는 참선이다. 그 적극적(積極的) 요중선(鬧中禪)이야말로 참으로 훌륭한 참선이다' 이리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는 그러면 전부가 상근인(上根人)이냐 하면은, 상근인도 더러는 있지마는 대부분은 중근, 하근이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중근, 하근이라도 자기가 처해 있는 그 자리에서 바로 화두를 들고 일체 희로애락과 흥망성쇠의 일을 당했을 때 그리 따라가지 아니하고, 그리 말려들어 가지 아니하고 바로 화두를 들고 또 들고 이렇게 해 나가서 그런 세간의 흥망성쇠에 내가 끌려 들어가지만 않으면 그것이 바로 상근인이 되는 것입니다.

원래부터 상근이 따로 있고 하근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상근인다웁게 모든 일에 임해서 피하고 도망가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속에서 그놈을 디디고 극복을 하고 자기로 돌아오는 공부를 할 수 있다면 바로 그것이 상근의 가풍(家風)인 것입니다.

 

머리를 깎고 출가해서 스님이 되어 가지고 도를 닦는다고 하는 것은 이 공부를 위해서 고향과 부모형제를 다 버리고서 오직 이 하나만을 위해서 몸과 목숨을 바치겠다고 하는 그러한 특별한 생각을 발심(發心)을 가진 사람이 되는 것인데,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꼭 하근이냐 하면 상근도 그러한 철저한 신심이 있다면 할 수가 있는 것이고,

하근(下根)도 그렇게 출가해 가지고 일대사(一大事) 하나만을 위해서 일생을 바친다면 하근도 자기를 깨달라서 불조(佛祖)의 혜명(慧命)을 이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상근도 닦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으셨고, 하근・중근, 하근도 공부해서 도를 이룰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으신 것입니다.

도(道) 자체에 가서는 조금도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니지만 우리의 근기(根機) 따라서 취향하는 방법에 가서 차이가 있을 뿐인 것입니다. 목적지에 도달하고 보면은 무슨 차별이 있겠습니까.(처음~11분46초)

 

 

 

 

 

(2)------------------

 

맨 처음에 게송(偈頌)을 읊었습니다마는 임제 스님은 이 활구참선을 체계화한 대도사이십니다. 달마 스님으로부터 육조 스님, 육조 스님으로부터 이 임제 스님에 이르러서 이 화두를 가지고 확철대오(廓徹大悟)하는 이 활구참선을 체계화한 대도인인데.

 

임제 스님께서 대중에서 법을 설하시기를, "유일무위진인(有一無位眞人)하니, 한 위가 없는—지위(地位)! 지위가 없는, 계급이 없는—지위가 없는 참사람이 여기에 있으니, 상종여등제인(常從汝等諸人) 면문출입(面門出入)하되, 항상 너희들 여러 사람의 면문(面門)으로조차 출입을 해" 들랑거린다 그말이여.

면문(面門)이라 하는 게, 너희들 눈 ・ 코 ・ 입 ・ 귀 이게 면문(面門)이거든. 너희들 얼굴 면문으로부터 그 무위진인이 나왔다 들어갔다 한다 그말이여.

 

그러니 이 무위진인(無位眞人)을 확실히 증거(證據)치 못한 자는, 확실히 깨닫지 못한 사람은 간간(看看)하라. 잘 살펴볼지니라. 어떠한 것이 무위진인(無位眞人)인가 잘 살펴보란 말이야.

여러 대중 낱낱이 무위진인이 있는데, 그 무위진인이 어디로 드나드냐 하면은 각자의 얼굴 문으로부터 면문(面門)으로부터 드나든다 이거거든.

 

그렇게 설법을 하시니까, 그때 한 승(僧)이 나와서 묻기를 "여하시무위진인(如何是無位眞人)잇꼬? 어떤 것이 무위진인입니까?"하고 그 (임제) 스님한테 터억 질문을 했습니다.

임제 스님께서 법상에서 터억 내려와 가지고, 그 질문한 스님의 멱사리를 턱! 거머쥐고서 "도도(道道)하라. 일러라" 그러니까.

 

그 스님이 뭐라고 이를려고 머뭇머뭇 그러니까, 냅다 갖다가 멱사리를 놓으면서 미트러 처내버리면서 이르기를 "무위진인(無位眞人)이 시심마(是甚麽)오? 무위진인이 이 무엇이냐?" 그렇게 되물으시고서 "간시궐(乾屎橛)이니라. 마른 똥막대기니라"

 

이 마른 똥막대기, 이것도 하나의 공안입니다.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나, 무자(無字)나, 부모미생전(父母未生前) 본래면목(本來面目)과 마찬가지로, 이 마른 똥막대기니라.

"어떤 것이 무위진인인고? 마른 똥막대기니라" 이렇게 자문자답을 하셨습니다.

 

그 게송에 대해서 고인(古人)이 게송을 읊으시기를,

면문출입견환난(面門出入見還難)이요, 면문으로 출입하는 것을 보기가 어렵다. 면문으로 출입하는데 면문으로 출입한 그 무위진인을 보기가 대단히 어렵다 그말이여.

무위진인(無位眞人)이 지척간(咫尺間)이니라. 그렇게 볼라야 볼 수 없지마는 그 무위진인이 지척간(咫尺間)이여. 바로 거기에 있다 그말이여. 멀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가까이에 있다 그말이여.

 

거로일신경사엽(去路一身輕似葉)이요, 가는 길에는 한 몸뚱이가 이파리처럼 가벼운데,

고명천고중여산(高名千古重如山)이다. 그 높은 이름은 천고(千古)에 무겁기가 산과 같도다.

 

이렇게 게송을 읊으셨습니다. 산승(山僧)이 법상에 올라와서 맨 처음에 읊은 게송(偈頌)이 바로 이 게송입니다.

 

이 ‘무위진인(無位眞人)이 간시궐(乾屎橛)이다’ 이것은 무서운 공안으로써 오늘 여러분께 말씀을 드린 것은 이 공안을 가지고 천착(穿鑿)을 하고 분별심으로 따지라는 것이 아니고, 이 공안에 콱 맥혀서 알 수가 없거든 이 공안은 그냥 놔두고.

여러분이 이미 가지고 계신 ‘이뭣고?’ 또는 '무자(無字)',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 여러분이 이미 가지고 계신 그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해서 간절히 거각을 하고 의심을 해서 공부에 박차를 가해 간다면, 어느 때 자기의 면목(面目)을 깨닫게 될 때에 이 공안도 의심 없이 풀리게 될 것입니다.

 

 

이 법회가 끝난 다음에 화두 타실 분, 또 불명(佛名)을 타실 분, 또 오계(五戒)를 받으실 분에 대한 간단한 법요식(法要式)이 있게 되겠습니다. 화두와 불명과 계를 신청하신 분은 이 법회가 끝난 다음에 이 법당에 질서 있게 남아 주시기를 부탁을 드립니다.

 

오늘은 ‘경계(境界)에 속지 말아라’

한 생각 경계에 속아 가지고 무간지옥(無間地獄)에 가지 말고, 그 한 경계로 인해서 퍼뜩 화두로 돌이켜 가지고 해탈도(解脫道)로 나아간다고 하는 것은 우리 불자(佛子)가 마땅히 가야할 최상승(最上乘)의 길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새해에는 그러한 마음으로 한 생각 한 생각을 단속하시고, 하루하루를 그렇게 살아가시고, 그렇게 해서 365일을 그렇게 단속하고 그렇게 살아가신다면, 여러분은 일 년 동안에 무량겁 윤회하던 윤회의 길이 거기에서 녹아 없어질 것이며, 영원히 누리고 남을 행복을 얻으시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신수기도 중입니다마는 기도 성취는 내년 신수기도 할 필요도 없을 만큼 모든 소원을 다 성취하시고 말 것입니다.(50분17초~58분45초)(끝)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1)

 

*(게송) '면문출입견환난~' ; 『선문염송(禪門拈頌)』 (고려 진각혜심眞覺慧諶 선사 편찬) 617칙 '무위(無位)'

*운집(雲集 구름 운/모일 집) ; 구름[雲]처럼 모인다[集]는 뜻으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듦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본참공안]를 받아서,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전강선사 녹음법문(錄音法門) ; 전강 스님께서 후학을 위해 참선법(參禪法)을 핵심으로 설한 법문이 칠백여 시간 분량이 녹음되어 있다. 이 중에는 『전강선사 일대기』 『몽산법어』 『초발심자경문』 등이 있다.

 

눈부신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이제는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 천육백여 개의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 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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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뭣고(是甚麼 시심마) :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 왔다.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망상(妄想 망령될 망/생각 상) ; ①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는 것으로 상정하고 집착하는 의식의 작용. 분별(分別), 망상분별(妄想分別), 허망분별(虛妄分別), 망상전도(妄想顚倒) 등으로도 한역한다. ②이치에 맞지 아니한 망령(妄靈)된 생각[想]을 함, 또는 그 생각. 잘못된 생각.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하다고 잘못 생각하는 것.

*번뇌(煩惱 번거러울 번/괴로워할 뇌) ; ①몸과 마음을 번거롭게 어지럽히고[煩亂, 煩勞, 煩擾] 괴롭혀 고뇌케[逼惱, 惱亂] 하므로 번뇌(煩惱)라 표현. 근원적 번뇌로서 탐냄(貪)•성냄(瞋)•어리석음(癡) 등이 있다.

②나라고 생각하는 사정에서 일어나는 나쁜 경향의 마음 작용. 곧 눈 앞의 고(苦)와 낙(樂)에 미(迷)하여 탐욕•진심(瞋心)•우치(愚癡)등에 의하여 마음에 동요를 일으켜 몸과 마음을 뇌란하는 정신 작용.

불교는 중생의 현실을 혹·업·고(惑·業·苦)의 삼도(三道)로 설명한다. 즉 번뇌[惑]에 의해 중생이 몸과 마음의 행위[身口意 三業]를 일으키게 되면, 이로써 3계 6도의 생사윤회에 속박되어 고통[苦]의 과보를 받게 된다.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화두(공안)에는 '이뭣고?' '판치생모' '무자' '정전백수자' 등이 있다.

*거각(擧却 들 거/어조사 각) ; 화두를 든다. ‘화두를 든다’ ‘화두를 거각한다’는 말은 자신의 본참화두를 들 때 알 수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그 알 수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觀照)하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 세등선원(No.09)—병진년 동안거 결제중 법어(76.12.26)에서.

화두를 먼저 이마로 의심을 하지 말고, 이 화두를—호흡하는데 배꼽 밑[丹田]에 숨을 들어마시면은 배가 볼록해지고 숨을 내쉬면은 배가 홀쪽해지는데, 그 배가 빵빵해졌다 홀쪽해졌다 하는 거기에다가 화두를 들고 ‘이뭣고~?’ ‘알 수 없는 생각’ 관(觀)하는 그것이 화두를 드는 것이여.

*진여불성(眞如佛性) ; 진여(眞如)인 불성(佛性).

*진여(眞如) ; ①차별을 떠난,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②궁극적인 진리. ③모든 분별과 대립이 소멸된 마음 상태. 깨달음의 지혜. 부처의 성품. ④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청정한 성품.

*불성(佛性) ; ①모든 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부처가 될 수 있는 소질·가능성. ②부처 그 자체. 깨달음 그 자체.

*업(業) ; (산스크리트어 : karma 카르마) ; ①몸과 입과 마음으로 짓는 행위와 말과 생각, 일체의 행위.

②행위와 말과 생각이 남기는 잠재력. 과보를 초래하는 잠재력.

③선악(善惡)의 행위에 따라 받는 고락(苦樂)의 과보(果報).

④좋지 않은 결과의 원인이 되는 악한 행위. 무명(無明)으로 일으키는 행위.

⑤어떠한 결과를 일으키는 원인이나 조건이 되는 작용. 과거에서 미래로 존속하는 세력.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간화선(看話禪) ; 화(話)는 화두(話頭)의 준말이다. 간화(看話)는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을 본다[看]’는 말로써,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이 화두를 관(觀)해서, 화두를 통해서 확철대오하는 간화선을 전강 조실스님과 송담스님께서는 ‘최상승법(最上乘法)’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고 말씀하신다.

*세간(世間) ; (산스크리트어 loka) 세(世)는 파괴·변화·흐른다는 시간의 뜻이 있고, 간(間)은 가운데·간격·틈새라는 공간의 뜻이 있다.

① 변하면서 흘러가는 현상계. ② 생물들의 세계. ③ 생물들이 거주하는 자연 환경, 곧 산하대지. ④ 세상. 이 세상. 세속. ⑤ 산스크리트어 saṃsāra 미혹한 세계. ⑥ 육내입처(六內入處), 또는 십이처(十二處)를 말함.

*요중선(鬧中禪 시끄러울 뇨/가운데 중/참선 선) ; 시끄러운 가운데 하는 참선. 동중선(動中禪)라고도 한다. 조용한 가운데 하는 참선은 정중선(靜中禪)이라 한다.

*임운(任運 맡길·마음대로 할 임/옮길·움직일·운수 운) ; 그대로, 자연스럽게. 자연스럽게 일어남. 아무런 조작이나 인위적인 힘을 첨가하지 않고, 법이(法爾), 여연(如然), 자연(自然), 으레히라는 뜻.

*상근(上根 위 상/뿌리 근) ; 상근기(上根機). 부처님의 가르침을 알아듣고 실천할 수 있는 매우 뛰어난 소질과 능력, 또는 그러한 소질과 능력을 지닌 사람.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을 일으킴[發].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보리심은 모든 부처님이 부처님이 될 수 있었던 바탕이 되는 종자이고 청정한 법이 자라날 수 있는 좋은 밭이기 때문에 , 이 마음을 발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면 속히 위없는 보리를 증득한다.

*일대사(一大事) ; 매우 중요하거나 아주 큰 일. 삶과 죽음, 즉 생사(生死)의 일.

①부처님이 중생구제를 위해 세상에 나타난다고 하는 큰 일. 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목적. ②가장 중요한 일이란 뜻. 수행의 목적. 깨달음을 얻는 것. 인간으로서의 완성.

『법화경』 방편품에 ‘諸佛世尊, 唯以一大事因緣故, 出現於世 모든 부처님은 오직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 때문에 세상에 출현한다’라고 한 것에서 유래.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한 목적은 깨달음을 얻기까지의 과정을 보이고, 지혜를 발휘하여 모든 중생을 깨닫게 하고 구제하는 것’이다.

*불조(佛祖) : 부처님과 조사(祖師), 불(佛)은 삼세제불(三世諸佛), 조(祖)는 역대(歷代)의 조사를 말함.

*혜명(慧命) ; ①지혜를 생명에 비유하는 말. 대도정법(大道正法)의 명맥(命脈). ②법신(法身)은 지혜가 생명이 된다는 뜻.

*도(道) ; ①깨달음. 산스크리트어 bodhi의 한역. 각(覺). 보리(菩提)라고 음사(音寫). ②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그 방법. ③무상(無上)의 불도(佛道). 궁극적인 진리. ④이치. 천지만물의 근원. 바른 규범.

*근기(根機 뿌리 근/베틀 기) ;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는 중생의 소질이나 근성. 보통 근기의 차등을 상근기, 중근기, 하근기로 구분한다. 근기(根器), 또는 줄여서 기(機)라고도 한다.

[참고] 송담스님(No.88)—(참선법A) 법련사 불교학생회 청법 법문(1978.10.1)에서.

‘중생 말세다, 중생 근기가 미약하다, 그러니까 참선법 가지고는 안되고 아미타불을 불러야 한다’ 이러한 것을 주장하는 분들이 있습니다마는, 말세라고 하는 것은 편의에 따라서 정법 시대, 상법 시대, 말법 시대 이렇게 해서 말씀해 놨지만은 최상승법을 믿고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이면, 그 사람은 하근기가 아니라 상근기(上根機)인 것입니다.

 

아무리 부처님 당시에 태어났으되 이 법을 믿지 아니한 사람은 하근기인 것이고, 지금 삼천 년이 지난 오늘날에 태어났어도 이 활구참선법을 믿고 열심히 실천에 옮긴 사람이면, 그 사람은 바로 정법 시대 사람이요, 그 사람은 상근기라고 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참선법을 배우고자 하고, 참선에 의해서 자아를 깨닫고자 하는 마음을 냈을 때 여러분은 이미 정법 시대를 만나 것이고, 여러분은 상근기인 것입니다. 조금도 그런 염려를 마시고 열심히 공부를 해서 결정코 금생에 ‘참나’를 자각하도록 도업을 성취하기를 간절히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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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偈頌) ; 시(詩), 게(偈)와 송(頌) 모두 불교의 가르침을 싯구로 나타낸 것.

*달마스님, 육조스님, 임제스님 ;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에서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무위진인(無位眞人) ; '무위(無位)'란 상하 · 귀천 · 범성 · 미오 등 어떤 지위나 차별도 없다는 말. 또는 지위에도 얽매이지 않고 마음대로 오간다는 뜻. 곧 '무위진인'이란 궁극적인 경지를 깨달아 모든 지위에 얽매이지 않게 된 참사람(절대자유인)을 가리킨다.

*미틀다 ; ‘밀뜨리다(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이나 사물을 갑자기 세차고 힘있게 밀어 버리다)’의 사투리.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 ; 화두의 하나. 조주선사(趙州禪師, 778-897)에게 한 스님이 와서 묻기를, “어떤 것이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 (如何是祖師西來意)”라고 했을 때, 조주선사가 대답하기를, “뜰 앞에 있는 잣나무니라”라고 한 데서 유래한 화두이다.

*무자(無字) : 화두. 어느 스님이 조주(趙州) 스님께 묻되 「개도 불성(佛性)이 있읍니까 없읍니까?」하니, 조주 스님이 답하되 「무(無)」라 하시니 「준동함령(蠢動含靈)이 다 불성이 있는데 어째서 무(無)라고 했는고?」하는 참선할 때 참구(參究)하는 천칠백 공안 중의 하나.

[참고]  『언하대오(言下大悟)』 (전강선사 법어집 | 용화선원刊) p52~53.

‘무자’ 화두하는 학자들이여, 조주 스님의 “무”라고 하신 그 의지가 “무”에 있는 것이 아니다.  기실(其實) 엉뚱한 곳에 있는 것이니 제발 조주 스님의 뜻을 찾으려고 애쓸지언정  ‘무자(無字)’에 떨어져서 광음을 헛되이 보내지 않기를 재삼 부탁하노라.

이 ‘무자’ 화두 지어감에 좋은 비유 설화가 있으니 옛날 중국 당나라에 천하일색인 양귀비가 있었는데 당 현종의 애첩으로 궁성에 살고 있었다. 이 양귀비와 정부 안록산은 서로가 보고 싶어 못 견딜 지경이었다.

 

빈호소옥무타사(頻呼小玉無他事)라 지요단랑인득성(只要檀郞認得聲)이로다

자주 소옥이를 부르는 것은 다른 일이 아니라 다못 낭군에게 소리를 알리고자 함이로다.

 

양귀비는 자기의 종인 소옥을 아무 할 일 없이 큰 소리로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자꾸 부른다.  왜 양귀비는 소옥을 그렇게 부를까?  다만 낭군에게 자기의 음성을 들리게 하기 위함이다.

양귀비의 뜻이 소옥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소옥을 통해서 자기의 음성을 안록산에게 알리는데 본 뜻이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무자’ 화두는 ‘무자’ 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무” 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에게 뜻이 있는 것이니, ‘무’라는 말을 천착(穿鑿)하지 말고 “무” 라 말씀하신 조주 스님의 의지를 참구할지니라.

 

*부모미생전본래면목(父母未生前本來面目) ; 부모로부터 태어나기 이전의 본래면목. 자기 본분의 소식, 궁극적인 진실을 가리키는 선종의 화두이다. 부모미생전면목(父母未生前面目), 부모미생면목(父母未生面目)이라고도 한다.

[참고] 『선문염송·염송설화(제15권)』 (5) (동국역경원) 제597칙 ‘일격(一擊)’ p375~378.
『전등록(제11권)』 (동국역경원) ‘등주 향엄 지한 선사’ p718~720.
대혜(大慧)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향엄(香嚴) 화상이 백장(百丈) 스님 문하에 있을 때 총명 영리하고 본 것, 들은 것이 많았으나 여러 해를 참선(參禪)해도 이루지 못했다. 백장 스님이 천화(遷化)하고 나중에 위산(潙山)으로 가니, 위산 스님이 묻기를 ‘듣자 하니 그대는 백장의 회상에 있을 때 하나를 물으면 열을 대답하고, 열을 물으면 백을 대답했다는데, 이는 그대의 지식과 상념(想念)일 뿐이다. 그대의 부모에게서 태어나기 전의 일로써 한 구절 대답해 보라[父母未生時 試道一句看]’ 하였다.

선사는 위산의 이 한 물음을 받자 당장 앞뒤가 막막해져서 곧장 방으로 돌아가 평소에 읽었던 문자를 뒤적이면서 대답거리를 찾았으나 한 구절도 알맞은 대답거리를 구하지 못해 끝내 스스로 탄식하되 ‘그림 속의 떡은 주린 배를 채울 수 없구나[畵餠不可充飢]’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자주 위산에게 설파(說破)해 주기를 청했는데 위산은 ‘내가 만일 그대에게 설파해 준다면 그대는 뒷날 나에게 원망을 할 것이다. 그러므로 설파해 줄 수 없다(전등록 : 내가 말하면 나의 견해일 뿐이니, 그대의 안목에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고 하였다.

하는 수 없어 평생에 모은 문자와 서적들을 끌어내다가 불사르고 다시는 불법도 배우려 할 것 없이 되는 대로 지내기로 하고, 이에 위산에게 하직을 고하고 곧장 남양(南陽)으로 가서 충(忠) 국사의 유적에 참배하고 거기에 머물렀다. 어느날 초목을 베다가 기와 조각을 주워 던진 것이 대나무에 맞아 소리가 나자, 자신도 모르게 부모가 태어나기 전의 콧구멍을 만났다.(깨달은 뒤에 다음과 같이 송했다)

一擊忘所知  更不假修治 動容揚古路 不墮悄然機 處處無蹤跡 聲色外威儀 諸方達道者 咸言上上機

한번 쳐서 알든 바를 잊으니 다시는 닦고 다스리지 않게 됐네.
행동하는데 옛길을 드날리니 초췌한 처지가 되지 않는다.
곳곳에 자취가 없고 빛과 소리 밖의 위의(威儀)로다
제방(諸方)의 도를 아는 이들은 모두가 최상의 근기라 하네.

그때의 경지는 마치 어두운 데서 등불을 만난 것 같고, 병든 이가 의원을 만난 것 같으며, 가난한 이가 보물을 얻은 것 같고, 아기가 엄마를 만난 것 같았다.
마침내 목욕 분향(焚香)하고 멀리 위산 쪽을 향해 절을 하면서 찬탄하되 ‘화상의 대비하신 은혜가 부모보다 낫습니다. 그때 만일 제게 설파해 주셨다면 어찌 오늘의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하였다.”

*산승(山僧) ; 스님이 자신을 겸손하게 일컫는 말.

*천착(穿鑿 뚫을•궁구할 천/뚫을 착) ; ①깊이 살펴 연구함. ②공연히 이치에 맞지 않게 이러쿵저러쿵함.

*본참화두(本參話頭) ; 본참공안(本參公案).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면목(面目 낯 면/눈 목) : 본래면목(本來面目 본래의 얼굴·모습).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의 성품.

*본래면목(本來面目 밑 본/올 래/낯 면/눈 목) ; ①자기의 본래(本來) 모습(面目). ②자신이 본디부터 지니고 있는,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의 성품.

본지풍광(本地風光), 본지고향(本地故鄉), 본분전지(本分田地), 고가전지(故家田地), 천진면목(天眞面目), 법성(法性), 실상(實相), 보리(菩提), 부모에게서 낳기 전 면목(父母未生前面目), 부모에게서 낳기 전 소식(父母未生前消息) 등이 모두 같은 맥락에서 쓰이는 말이다.

*불명(佛名) ; 법명(法名). ①출가하여 절에서 행자(行者)로서 일정 기간 동안 수행한 뒤, 계(戒)를 받을 때 스승이 지어 주는 이름. ②스님이 불법(佛法)에 귀의(歸依)한 남녀신자에게 지어 주는 이름.

[참고] 송담스님(No.470)—92년 4월 첫째 일요법회

불법(佛法)에의 깊은 인연으로, 발심(發心)해서 진리를 향해서 살아가는 부처님의 아들딸로 새로 태어났기 때문에 그런 의미로 불보살(佛菩薩)의 이름을 따서 불명으로 받는다. 더 철저히 말하면 그때마다 불명을 받을 수는 없지만, 참선 수행을 통해서 하루하루 새로 태어나야 하고 시간마다 새로 태어나야 한다.

*오계(五戒) ; (산스크리트어 pañca-śīla) 재가(在家)의 신도가 지켜야 할 다섯 가지 계율.

①불살생(不殺生). 살아 있는 생명을 죽이지 말라.

②불투도(不偸盜). 주지 않은 것을 빼앗지 말라.

③불사음(不邪婬). 삿된 음행을 하지 말라.

④불망어(不妄語). 거짓말을 하지 말라.

⑤불음주(不飮酒). 취기(醉氣)가 있는 것에 취(醉)하지 말라.

*법요식(法要式 부처님의 가르침·불도佛道 법/요긴할·원할·얻을 요/법·제도·의식 식) ; ①법요(法要 : 법法의 요체要諦, 부처님 가르침의 핵심)를 닦아 익히는 법식(法式). ②불사(佛事 : 재齋, 법회 따위의, 불가佛家에서 행하는 모든 일)의 의식. 법회(法會 : 불법을 강설하거나 불보살과 스님들에게 공양을 올리는 행사 모임).

*경계(境界) ; ①산스크리트어 viṣaya 구역을 나눈다(疆域分劃)는 뜻. 줄여서 경(境). 곧 감각기관[根] 및 인식작용[識]의 대상이나 인식이 미치는 범위를 말한다.

인과(因果)의 이치(理致)에 따라서 자신이 부딪히게 되는 생활상의 모든 일들, 생로병사, 빈부귀천, 부모형제, 희로애락, 시비이해, 삼독오욕, 춘하추동, 동서남북 등이 모두 경계에 속한다. 곧 인간은 경계 속에서 살고 있고, 경계가 삶의 내용이다.

②내용이나 각자의 능력 등이 분명한 한계지어진 범위 · 영역 등을 말한다. 부처님과 중생이 인지하는 능력의 범위가 구분되는 것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화엄경』 입법계품(入法界品) ‘此佛境界 一切衆生 及諸菩薩 所不能知 이것은 부처님의 경계로 모든 중생과 보살들은 알 수 있는 경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③금계(禁戒 부처님께서 제정한 나쁜 행위를 금하고 경계하는 계율)를 깨뜨리는 인연이 되는 것과 그것의 어떤 환경을 뜻한다. 예를 들어 자신의 마음에 들어맞어 마음이 따르는 환경을 순경계(順境界), 자신의 마음에 어긋나서 마음이 언짢은 것을 역경계(逆境界)라고 한다. 경(境)에는 본래 차별이 없으나 중생의 마음이 미혹됨으로 말미암아 언짢거나 수순하는 구별이 있다.

*무간지옥(無間地獄) ; 아비지옥(阿鼻地獄)이라고도 함. 아비(阿鼻)는 산스크리트어 avīci의 음사(音寫)로서 ‘아’는 무(無), ‘비’는 구(救)로서 ‘전혀 구제받을 수 없다’는 뜻. 이 지옥에 떨어진 중생은 한 치의 빈틈도 없이 끊임없이 고통을 받기 때문에 무간(無間)이라 한다.

아버지를 죽인 자, 어머니를 죽인 자, 아라한을 죽인 자, 승가의 화합을 깨뜨린 자, 나쁜 마음으로 부처님의 몸에 피를 나게 한 자 등, 지극히 무거운 죄를 지은 자가 죽어서 가게 된다는 지옥.

 

이 지옥에 떨어지는 죄인에게는 필파라침(必波羅鍼)이라는 악풍(惡風)이 있는데 온몸을 건조시키고 피를 말려 버리며 또 옥졸이 몸을 붙잡고 가죽을 벗기며, 그 벗겨낸 가죽으로 죄인의 몸을 묶어 불 수레에 싣고 훨훨 타는 불구덩이 가운데에 던져 넣어 몸을 태우고, 야차(夜叉)들이 큰 쇠 창을 달구어 죄인의 몸을 꿰거나 입, 코, 배 등을 꿰어 공중에 던진다고 한다. 또는 쇠매(鐵鷹)가 죄인의 눈을 파 먹게 하는 등의 여러 가지 형벌로 고통을 끊임없이 받는다고 한다.

*해탈도(解脫道) ;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가르침이나 수행.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난 경지.

*불자(佛子) : 부처님의 자녀라는 뜻이다. 불법(佛法)을 믿는 이면 모두 불자가 된다. 그것은 부처님 법에서 새로운 생명을 얻었기 때문이며 부처님의 혜명(慧命)을 이어가고, 법(法)의 집과 법(法)의 재산을 상속받게 되는 까닭이다.

또한 모든 중생을 다 불자라고 하는데, 그것은 어떤 중생이나 모두 부처의 성품(佛性)이 있어서, 그것이 부처의 씨가 되고, 지혜는 어머니가 되며 부처님은 아버지가 되어, 필경에는 반드시 성불(成佛)하게 된다.

<섭대승론석(攝大乘論釋)>에는 불자에 다섯 가지 뜻이 있다고 하였다. ①믿음이 종자가 되고 ②지혜는 어머니가 되고 ③선정은 태(胎)가 되고 ④자비심(慈悲心)은 유모가 되고 ⑤부처님은 아버지가 된다.

 

Posted by 닥공닥정
정진(精進) 수행2019. 10. 8. 04:14

 

 

§(619) (게송)정종소식몰자미~ / 심우도(尋牛圖) / 과거에 '관세음보살'을 하신 분은, 앞으로는 '이뭣고?'를 열심히 하시기를 부탁.

 

**송담스님(No.619)—99년 2월 첫째일요법회(99.02.07) (용619)

 

약 14분.

 

정종소식(正宗消息)은 몰자미(沒滋味)라  불용여하우약하(不用如何又若何)니라

나무~아미타불~

타파은산철벽거(打破銀山鐵壁去)하면  차시방도사생하(此時方渡死生河)니라

나무~아미타불~

 

정송소식(正宗消息)은 몰자미(沒滋味)여. 바로 정법(正法),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은 해 갈수록에 아무 재미가 없다 그말이여. 해 갈수록 알 수 없는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해서, 그러니 무슨 재미가 거기 있을 것이냐 그말이여.

알아 들어가는 것이 있고, 보이는 것이 있고, 얻어지는 것이 있어야 거기에서 자미(滋味)를 느낄 텐데, 해 갈수록 꽉 맥혀서 의단이 독로할 뿐이니 거기에 무슨 재미 붙일 것이 있느냐 그말이여.

 

불용여하우약하(不用如何又若何)다. 여하약하(如何若何)가 필요가 없단 말이여.

잘되느니 못 되느니, 무슨 망상이 일어나느니 혼침이 오느니, 어제는 쪼끔 되더니 오늘은 안 되느니, '화두(話頭)가 나한테 안 맞는가? 내가 참선을 아직 근기(根機)가 아직 약한가?' 이런 소리 저런 소리 다 쓸데가 없다 그말이여.

늙었다느니, 무식하다느니, 여자느니, 전혀 그러한 여하약하를 여기다가 생각을 대서는 안된다 그말이여.

 

타파은산철벽거(打破銀山鐵壁去)하면, 알 수 없는 의단이 독로하도록 앉아서도 '이뭣고?' 서서도 '이뭣고?' 밥 먹으면서도 '이뭣고?' 속이 상할 때도 '이뭣고?'

일체처(一切處) 일체시(一切時)에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를 통해서 어떠한 경계(境界)가 나타나더라도 그 경계에 따라가지 말고, 바로 그 경계에 즉(卽)해서 화두를 떠억 거각(擧却)하되 은산철벽(銀山鐵壁)처럼 가거라.

 

앞에 은(銀)으로 된 산(山)이 콱! 앞을 가로막고, 좌우를 봐도 철벽(鐵壁)이 탁! 막혀 있고, 뒤로 물러서자니 거기에도 철벽이 있어서 갈 수도 없고 알 수도 없고, 오직 알 수 없는 의단 하나만이 독로하도록.

잘된다고 좋아하지도 말고, 잘 안된다고 번뇌심(煩惱心)을 내지도 말고 오직 그렇게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도록.

 

해 가다 보면은 화두를, 처음에는 화두를 들 때는 있는 듯하다 금방 딴생각[別念]이 들어오고 그러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내버려 두고 오직 한결같이 단정히 앉아서 심호흡을 하면서 알 수 없는 의단으로 화두를 거각해 나가면 은산철벽처럼 꽉 맥혀서,

거기에서도 이러다가 툭 깨지기를 바라거나, 누가 이럴 때 나를 깨닫게 해주기를 바라거나, 그런 생각을 해서는 아니 된다. 빨리 깨닫기를 바라서도 안 된다 말이여.

 

은산철벽처럼 해 가다가 어떠한 기연(機緣)에 그놈이 툭 터지게 돼. 의단이 타파(打破)가 될 때 바로 자기의 면목(面目)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말이여.

그래서 차시방도사생하(此時方渡死生河)다. 생사, 이때가 바로 생사의 강을 건너가는 때니라. 고조사(古祖師)의 게송(偈頌)을 읊고 해석해 드렸습니다.

 

 

방금 우리 형제자매, 법보제자(法寶弟子) 여러분은 전강 조실 스님의 법문(法門)을 녹음을 통해서 들었습니다.

여러분께서 들으신 바와 같이 심우도(尋牛圖), 소를 찾는 그림, 소를 찾는 게송에 대한 법문을 들었습니다.

 

이 게송은 처음에 자기도 본래 부처님과 똑같은 불성(佛性)을 가지고 있고, 조끔도 조사(祖師)와 다름이 없는 불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 무명(無明)으로 인해서 그리 막혀가지고 자기 본성을 잃어버리고 살았는데,

그 잃어버린 자기의 본성을 찾는 공부를 소에다가 비유해가지고 소를 찾으러 나가는 데에다가 비유해서 참선(參禪)해 나가는, 도(道)를 닦아 나가는 과정을 열 가지 단계로 설명을 한 것입니다.

 

처음에 소를 찾으러[①尋牛] 나갔다가 얼마만큼 가면 소를 발자취를 보고[②見跡], 발자취를 따라가다 보니 소가 보이고[③見牛],

소가 보이니까 살살 다가가서 그 소를 얻고[④得牛], 소를 잡아가지고는 그놈을 살살 먹여. 먹여가지고 길을 들여가지고[⑤牧牛] 그 소를 타고 집으로 돌아온다.[⑥騎牛歸家]

 

집으로 돌아와서 소는 잊어버리고 자기, 사람만 딱 있고[⑦到家忘牛], 거기서 더 나아가면 소도 사람도 다 잊어버려[⑧人牛俱忘].

그래가지고 아홉 번에 단계에 가서는 반본환원(⑨返本還源)이여. 정말 그 본태평(本太平)자리에 돌아온 것이다 그말이여.

 

그것이 인자 자기 수행의 구경처(究竟處)에 온 건데, 우리 수행이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정말 자비심을 일으켜가지고 중생 교화하는 데에 나아가는 것이 열 번째 입전수수(⑩入鄽垂手)의 단계다 그 말입니다.

 

이 십우도(十牛圖)는 중국에 어떤 선지식(善知識)이 읊은 게송인데, 전강 조실 스님께서 방금 조실 스님 자신의 수행의 경험을 거기에다가 비추어 가면서 우리에게 그 심우도 법문을 해 주셨습니다.

 

사람마다 이 열 가지 단계를 얼마만큼 빨리 가느냐?

몇 번째 단계에서 애를 먹다가 그다음에는 또 수월하게 가다가 모다 그런 차등이 있을 것입니다마는, 빨리 빠르게 건너거나 천천히 건너거나 사람에 따라서는 첫 철에 툭 터지기도 하고, 삼 년 걸리기도 하고, 십 년 내지 삼십 년 걸리기도 하고 또 기운이 성숙하지 못하면 평생을 걸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마는.

 

꼭 빨리 목적지에 도달할 그런 속효심(速效心)을 내서도 안 되고, 빨리 얻어지지 않는다고 마음이 변해가지고 이리 갈까, 저리 갈까 갈팡질팡해서도 아니 되는 것입니다.

늦게 가더라도 소걸음처럼 착실히 걸어가면 결국은 목적지에 도달한다고 하는 깊은 굳은 신념을 가지고 정진을 해가야 할 것입니다.

 

오늘 일요법회는 너무너무 전강 조실 스님의 녹음법문이 우리에게 적절한 법문을 해주셨습니다.

산승(山僧)은 그 선방에 스님네 몇 분과 시민선방(市民禪院)에 여러분과 청년회 법회 회원들이 화두를 타기를 원해서 간략히 전강 조실 스님을 대신해서 화두를 일러 드리고자 합니다.

 

아까 조실 스님의 법문 가운데에도 그 화두에 대한 법문이 있었습니다마는, '이뭣고?' 이미 '이뭣고?'를 타고 가지고 공부하는 분은 다른 화두로 바꾸려고 하지 말고 '이뭣고?'를 하시고.

은사 스님으로부터 '무자(無字)' 화두를 탄 분은 은사 스님이 그 당신의 상좌(上佐)의 근기(根機)를 잘 알아서 '무자' 화두를 일러 주신 것이니까 그대로 '무자' 화두를 하되, 화두 드는 법에 대해서는 조실 스님의 법문을 잘 들으면 그 (화두) 드는 적절한 요령을 아시게 될 것입니다.

 

'어째서 무(無)라고 했는고?'

그 '무자(無字)'를 가지고 이리 따지고 저리 따지고 한 것이 아니라 '어째서 무라고 했는고?' 그 '어째서'에다가 의심의 눈을 거기다가 초점을 대야 하는 것입니다.

'어째서 무라 했는고?~' 그렇게 해 나가면 되고.

 

'이뭣고?'는 '이뭣고?'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이냐? 이뭣고?'

'이뭣고?'하다가 나중에 가서는 「지금 '이뭣고?'하는 이놈이 뭣고?」 이렇게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다그쳐서 든다면은 더욱 절묘할 것입니다.

 

알 수 없는 의심으로 해 나가되 미간(眉間), 눈과 눈썹 사이에다가 거기다 너무 힘을 주고 머리로 하다 보면 상기(上氣)가 오는 것이니까, 단전호흡(丹田呼吸)을 서서히 하면서 화두를 배꼽 밑에 단전에다 두고 관조(觀照)를 그렇게 하도록 하고.

구체적인 것은 '참선법문[참선법 A·B·C·D·E]'이라고 하는 녹음테이프가 있으니까 댁에 가셔서 그 녹음테이프를 열 번, 스무 번, 백 번을 틀면서 하시면 자연히 아주 자상하고 구체적인 공부하는 방법을 터득을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아까 조실 스님 법문에도 '판치생모(板齒生毛)' 화두를 말씀하시다가—이제 '판치생모'를 들었으니까 '이뭣고?' 내동댕이쳐 버리고 '판치생모' 해야겠다. 그러시지를 말고 조실 스님이 '판치생모'에 대한 법문을 하셨지만 그전에 '이뭣고'를 주욱 하시던 분은 계속해서 그 '이뭣고?'를 하셔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동안에 어느 스님한테 '관세음보살'을 부르라 하고 그렇게 법문을 듣고 '관세음보살' 해 왔는데, 하다가 여기 와서 '이뭣고?' 화두를 탔다 그말이여.

그런데 지난번 언젠가 산승이 "우물을 파되 한 우물을 파야지 이 화두하다, 저 화두하다 그러면 못쓴다"고 그런 말씀을 드렸는데, 그 말씀을 듣고 그전에 어느 스님이 관세음보살 부르라고 했으니까 "에이! '이뭣고?' 내동댕이쳐 버리고 관세음보살만 해야겠다" 선방에 앉아서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부르려면 여까지 오실 게 없잖아요.

그래서 과거에는 '관세음보살'을 했지만, 인자 '관세음보살'로써 신심과 수행해 나가는 기본을 잘 다졌다고 생각하시고 앞으로는 '이뭣고?'를 열심히 하시기를 부탁을 드립니다.(처음~13분59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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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정종소식몰자미~' ; 『사명당대사집(四溟堂大師集)』 (권6) '贈淳長老' 사명대사 게송 참고.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본참공안]를 받아서,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의단독로(疑團獨露 의심할 의/덩어리 단/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공안,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가 홀로[獨] 드러나다[露].

*의심(疑心) :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해 ‘알 수 없는 생각’에 콱 막히는 것.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이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수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이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또는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또는 ‘조주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바른 깨달음은 알 수 없는 의단, 알 수 없는 의심에 꽉 막힌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자미(滋味 불을·증가할·맛있을 자/맛 미) ; ①좋은 맛[味]을 불어나게 함[滋]. ②맛. ③재미. ④기분. 심정. 감정.

*여하약하(如何若何) ; 이러쿵저러쿵. 이러하다는 둥 저러하다는 둥 자꾸 말을 늘어놓는 모양.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화두(공안)에는 '이뭣고?' '판치생모' '무자' '정전백수자' 등이 있다.

*근기(根機 뿌리 근/베틀 기) ;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는 중생의 소질이나 근성. 보통 근기의 차등을 상근기, 중근기, 하근기로 구분한다.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 왔다.

*일체처(一切處) 일체시(一切時) ; 모든 곳 모든 때에. 언제 어디서나.

*육근(六根) ; 육식(六識)이 경계[六境]를 인식하는 경우 그 소의(所依)가 되는 여섯 개의 뿌리. 대경(對境)을 인식하게 하는 근원적 요소. 곧 심신을 작용하는 여섯 가지 감각기관으로서, 눈(眼根) · 귀(耳根) · 코(鼻根) · 혀(舌根) · 몸(身根) · 뜻(意根)의 총칭이다.

산스크리트어 ṣaḍ-indriya 근(根)은 기관 · 기능을 뜻함. 육입(六入), 육처(六處), 육적(六賊), 육문(六門)이라고도 한다.

*경계(境界) ; ①인과(因果)의 이치(理致)에 따라서, 자신이 부딪히게 되는 생활상의 모든 일들. 생로병사•희로애락•빈부귀천•시비이해•삼독오욕•부모형제•춘하추동•동서남북 등이 모두 경계에 속한다.

②나와 관계되는 일체의 대상. 나를 주(主)라고 할 때 일체의 객(客). ③시비(是非)•선악(善惡)이 분간되는 한계.  경계(境界)에는 역경(逆境)과 순경(順境), 내경(內境)과 외경(外境)이 있다.

*즉해서(卽-- 곧·즉시 즉) ; 곧. 곧바로. 당장. 즉시(卽時 : 어떤 일이 행하여지는 바로 그때). 즉각(卽刻 : 일이 일어나는 그 순간 바로. 당장에 곧).

 

(9분 10초)

[참고] 송담스님(No.434)—1991년 2월 첫째 일요법회(91.02.03)에서.

이 세상에 태어날 때 그놈이 딱 이 몸뚱이 속에 어머니 뱃속으로 들어가 가지고, 부모에게 이 몸뚱이를 받아서 그래서 태어나 가지고 젖 먹고 밥 먹고 해서 이렇게 컸는데. 이 몸뚱이는 맛있는 음식, 밥 반찬 모다 그런 것을 먹고 영양을 섭취해서 이 몸뚱이는 자라고 건강하고, 또 잘못 먹고 과식하고 그러면은 또 병이 나기도 하지마는.

 

그런데 이 몸뚱이를 끌고 다니는 우리 주인공은 무엇을 먹어야 그놈이 잘 자랄까? 그건 보약을 먹는다고 해서 그놈이 잘되진 않아. 돈이 많다고 해서 그놈이 잘되지도 않고, 명예와 권리가 높아진다고 해서 그놈이 잘되지는 않아.

 

그놈은 발심(發心)을 해서 도(道)를 닦아야, 도 닦는 것이 다른 게 아니라 우리의 마음자리 자성(自性)을 갖다가—그걸 쉽게 말해서 우리의 영혼이라 그러는데,

영혼과 우리의 자성과는 엄격히 구별을 하면은 뜻이 차이가 있겠으나 알기 쉽게 그저 보통 사람들이 육체와 영혼 다 그렇게 생각을 해서 보통 사람의 말을 따라서 영혼이란 단어를 쓰는데.

 

영혼은 물질로써 그놈이 훌륭해지지를 안 해. 경을 읽는다던지, 염불을 한다던지, 주력을 한다던지, 무슨 계행을 닦는다던지, 여러 가지 다 조도(助道) 하는 방법이 있겠으나 가장 효과적인 가장 좋은 방법은 참선법(參禪法)이거든. ‘이뭣고?’거든.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가?’

 

이놈은 경을 많이 읽고, 많이 해석할 줄 알고, 많이 외우고 그러므로 해서 이것이 닦아지는 것이 아니라, 물론 안 읽는 사람보다는 마음이 좋아질 수도 있고 또 간혹 경을 읽으므로 해서 또 이 지혜의 눈을 뜨는 사람들도 있지마는, 누구에게나 가장 하기 쉽고 간단하고 할 수 있는 방법은 ‘이뭣고?’거든.

무엇을 볼 때나 무엇을 들을 때나, 무슨 생각이 일어날 때나—번뇌 망상이 일어나건, 진심이 일어나건, 슬픈 생각이 일어나건, 외롭고 괴로운 생각이 일어나건, 억울한 생각이 일어나건, 미운 생각이 일어나건, 어떠한 생각이 일어날 때라도 그 생각을 버릴라고 할 것 없이 그 생각에 즉(卽)해서 ‘이뭣고?’거든.

 

'즉(卽)한다'고 한 것은 버리고 여의고 띠어 내던진다는 것이 아니라, 고냥 고대로 놔둔 바로 그 자리에서 ‘이뭣고?’거든. 이것이 바로 최상승법(最上乘法) 하는 법이여.

 

소승법(小乘法)에서는 그런 생각을 자꾸 없애고 버리고 띠어 내버리고 그래 가지고 열반을 증득을 할려고 그런 것인데, 그래 가지고 멸진정(滅盡定)에 들어가는데. 이 최상승법은 그게 아니거든. 버리고 띠어 번지는 것이 아니라, 바로 거기에서 딱! 화두(話頭)만 들면 되거든. ‘이뭣고?’

 

하나도 어려울 것이 없거든.

어려운 것은 과거에 무량겁을 두고 오늘 이 금생까지 오면서 수없는 생을 거듭하고, 수없는 업을 쌓아온 습기(習氣)가 있어서 끝없이 업이 발동이 되어. 그러나 그놈을 버릴려고 그러고, 누를려고 그러고, 띠어 낼라고 한다고 해서 버려진 것도 아니요, 띠어 내지지도 않는 거여.

 

그놈에 즉(卽)해서 화두만 들면, 화두에 드는 생각이 뚜렷하고 간절하면 어떠한 업 발동도 거기에서 그냥 찰나간에 이렇게 바뀌어지거든. 왜 그러냐?

‘이뭣고?'하는 놈이나, 업 발동하는 놈이나 근본은 내나 우리의 진여불성(眞如佛性)에서 일어났기 때문에 그놈에 즉해서 화두만 들면 되는 것이지 띠어 내고 자실 것이 없거든.

 

파도가 물에서 일어났는데, 파도가 일어난다고 해서 그 파도가 일어난 부분을 자꾸 퍼낸 그런다고 해서 파도가 가라앉는 것은 아니여. 그 파도에서 바로 물을 봐 버려야 하는 거여.

파도 여의고 물이 있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큰 착각이고, 영원히 파도를 없앨 수가 없는 거여. 건들릴수록 파도는 일어나는 것이니까.

 

그 파도를 여의지 않고 그 파도가 바로 물인 줄 봐야 하는 것처럼 번뇌 망상을 여의고 진여를 찾으려고 하지 말고 거기에 즉해서 화두만을 들어.

 

화두라 하는 것은 백 가지, 천 가지의 좋은 약초를 갖다가 고아 가지고 그놈을 삶아서 물을 내어 가지고 그놈을 계속해서 대리면은 이렇게 고(膏)가 나온 것처럼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을 그렇게 해서 뽑아 낸 것이 ‘시삼마(是甚麼, 이뭣고?)’거든. 그래서 ‘시삼마’ 한 번 하는데 팔만대장경 한 번 읽은 거와 마찬가지여.

오히려 그보다도 백 가지 풀을 그놈을 다 먹으면 배만 터지지 무슨 약이 그것이 되겠습니까? 몇날 며칠을 그놈을 먹어야 하겠습니까? 그놈을 삶아서 고(膏)를 내서 먹으면 먹기도 좋고 약 효험도 빠를 거다 그말이여.

 

팔만대장경 구구절절이 다 부처님의 묘법(妙法)이시지만 그걸 우리가 어떻게 그걸 다 읽으며, 읽은들 그 참뜻을 어떻게 알 수가 있느냐 그말이여. 읽어봤자 한문이 어렵고 번역을 한 거 읽어봤자 많이 읽다 보면 무슨 소리인 줄도 모르는 거고.

과거에 도(道)를 깨달은 조사(祖師)들이 그 팔만대장의 뜻을 무루 읽도록 다 터득을 해 가지고는 확실히 그 근본의 진리를 깨달은 도인(道人)이 탁! ‘시삼마’ 화두를 이것을 참구함으로써 팔만대장경의 뜻 뿐만이 아니라 우주 법계의 진리를 탁! 깨달을 수 있도록 해 논 것이 바로 이 활구참선이고 화두거든.(44분3초~53분14초)

*거각(擧却 들 거/어조사 각) ; 화두를 든다. ‘화두를 든다’ ‘화두를 거각한다’는 말은 자신의 본참화두를 들 때 알 수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그 알 수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觀照)하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 세등선원(No.09)—병진년 동안거 결제중 법어(76.12.26)에서.

화두를 먼저 이마로 의심을 하지 말고, 이 화두를—호흡하는데 배꼽 밑[丹田]에 숨을 들어마시면은 배가 볼록해지고 숨을 내쉬면은 배가 홀쪽해지는데, 그 배가 빵빵해졌다 홀쪽해졌다 허는 거기에다가 화두를 들고 ‘이뭣고~?’ ‘알 수 없는 생각’ 관(觀)하는 그것이 화두를 드는 것이여.

*은산철벽(銀山鐵壁) ; 철벽은산(鐵壁銀山). 은과 철은 견고해서 뚫기 어렵고 산과 벽은 높아 오르기 어려움을 나타낸 것. 은(銀)으로 만든 산이요, 쇠로 만든 벽에 사방이 꽉 막힌 것처럼 앞뒤가 다 끊어져 버린 절박한 상황에 직면(直面)하여 아무것도 사량분별(思量分別)이 거기서 있을 수가 없는 것을 가리킴.

 

수행자에게 이 은산철벽은 내 몸과 목숨을 다해서 뚫고 들어갈 수밖에는 없는 관문(關門)으로, 자기 본참공안(本參公案)에 마치 모기가 쇠로 된 소 등어리에 올라타고서 그 입부리를 소 등에다가 처쑤셔박는 것처럼, 여하약하(如何若何)를 막론(莫論)하고 입부리와 머리와 몸을 압량해서, 합해서 처박고 돌격을 해 들어가야 한다.

자기의 근기(根機)도 따질 것도 없고, 자기의 건강도 따질 것도 없고, 자기의 어리석고 영리한 것도 따질 것도 없고, 남녀노소도 따질 것도 없고, 유식 무식도 따질 것이 없다.

 

‘어떻게 하면 될 것인가?’를 생각할 겨를도 없이 자세를 바르게 하고, 단전호흡(丹田呼吸)을 하면서 간절한 마음으로 하되 불급불완(不急不緩), 너무 용을 쓰고 몰아붙여도 안 되고 너무 늘어져 처져도 안 되고 성성(惺惺)하면서도 적적(寂寂)하게 자기의 본참공안을 들어야 한다. 공부가 되고 안 되고 하는 것도 따질 것이 없다.[송담스님(No.577) 96년 11월 첫째일요법회 법문에서]

 

[참고] 『몽산법어(蒙山法語)』 (용화선원刊) 박산무이선사선경어(博山無異禪師禪警語) p157~158 에서.(가로판 p150~151)

做工夫호대 最怕比量이니, 將心湊泊하면 與道轉遠하리니, 做到彌勒下生去라도 管取沒交渉하리라. 若是疑情이 頓發的漢子인댄 如坐在*鐵壁銀山之中하야  只要得個活路이니, 不得箇活路면  如何得安穩去리요  但恁麼做去하야  時節이  到來하면  自有箇倒斷하리라

 

 공부를 지어 가되 가장 두려운 것은 비교하여 헤아리는 것[比量]이니, 마음을 가져 머뭇거리면 도(道)와 더불어 더욱 멀어지리니, 미륵불이 하생할 때까지 공부를 할지라도 아무 소용이 없으리라.

만약 의정이 몰록 발한[頓發] 사람일진댄 마치 철벽(鐵壁)이나 은산(銀山) 속에 들어앉아서 다만 살 길[活路]을 찾는 것같이 할지니, 살 길을 찾지 못하면 어찌 편안히 지내가리오? 다만 이와같이 지어 가서 시절이 오면 저절로 끝장이 나리라.

*번뇌(煩惱 번거러울 번/괴로워할 뇌) ; ①몸과 마음을 번거롭게 어지럽히고[煩亂, 煩勞, 煩擾] 괴롭혀 고뇌케[逼惱, 惱亂] 하므로 번뇌(煩惱)라 표현. 근원적 번뇌로서 탐냄(貪)•성냄(瞋)•어리석음(癡) 등이 있다.

②나라고 생각하는 사정에서 일어나는 나쁜 경향의 마음 작용. 곧 눈 앞의 고(苦)와 낙(樂)에 미(迷)하여 탐욕•진심(瞋心)•우치(愚癡)등에 의하여 마음에 동요를 일으켜 몸과 마음을 뇌란하는 정신 작용.

불교는 중생의 현실을 혹·업·고(惑·業·苦)의 삼도(三道)로 설명한다. 즉 번뇌[惑]에 의해 중생이 몸과 마음의 행위[身口意 三業]를 일으키게 되면, 이로써 3계 6도의 생사윤회에 속박되어 고통[苦]의 과보를 받게 된다.

*타성일편(打成一片) : ①‘쳐서 한 조각(덩어리)을 이룬다’. 참선할 때 화두를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화두가 들려서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일체처 일체시에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疑心)만이 독로(獨露)한 순수무잡(純粹無雜) 경계.

②차별대립을 여읜 경지. 이분법적이고 상대적인 것이 융화 · 용해되어 하나가 되는 것.

*별념(別念) ; '딴 생각' 『몽산법어』 (용화선원刊) 박산무이선사선경어(博山無異禪師禪警語)에서.

做工夫호대  着不得一絲毫別念이니  行住坐臥에  單單只提起本叅話頭하야  發起疑情하야 憤然要討箇下落이니라.  若有絲毫別念하면  古所謂雜毒이  入心하야  傷乎慧命이라하니  學者는 不可不謹이니라

 

공부를 짓되 털끝만치라도 딴 생각[別念]을 두지 말지니, 가고 멈추고 앉고 누우매 다못 본참화두(本叅話頭)만을 들어서 의정을 일으켜 분연히 끝장 보기를 요구할 것이니라. 만약 털끝만치라도 딴 생각[別念]이 있으면 고인이 말한 바 「잡독(雜毒)이 마음에 들어감에 혜명(慧命)을 상한다」하니, 학자는 가히 삼가지 않을 수 없느니라.

 

余云別念은  非但世間法이라  除究心之外에  佛法中一切好事라도  悉名別念이니라.  又豈但佛法中事리요  於心體上에  取之捨之  執之化之가  悉別念矣니라

 

내가 말한 딴 생각[別念]은 비단 세간법만 아니라 마음을 궁구하는 일 외에는, 불법(佛法)중 온갖 좋은 일이라도 다 딴 생각[別念]이라 이름하느니라. 또 어찌 다만 불법중 일뿐이리오?  심체상(心體上)에 취하거나[取], 버리거나[捨], 집착하거나[執], 변화하는[化] 것이 모두 다 딴 생각[別念]이니라. (p164-166) (가로판 p157~158)

 

做工夫호대  不得將心待悟어다.  如人이  行路에  住在路上하야  待到家하면  終不到家니 只須行하야사  到家오  若將心待悟하면  終不悟니  只須逼拶令悟요  非待悟也니라

 

공부를 짓되 마음을 가져 깨닫기를 기다리지 말라.  마치 사람이 길을 가매 길에 멈춰 있으면서 집에 이르기를 기다리면 마침내 집에 이르지 못하나니, 다만 모름지기 걸어가야 집에 도달하는 것과 같아서, 만약 마음을 가져 깨닫기를 기다리면 마침내 깨닫지 못하니, 다만 모름지기 애써서 깨닫게 할 뿐이요, 깨닫기를 기다릴 것이 아니니라. (p163-164) (가로판 p156~157)

 

做工夫호대  不得求人說破이니  若說破라도  終是別人底요,  與自己로  沒相干이니라.  如人이  問路到長安에  但可要其指路언정  不可更問長安事니  彼一一說明長安事라도  終是彼見底요,  非問路者의  親見也이니라.  若不力行하고  便求人說破도  亦復如是하니라

 

공부를 짓되 다른 사람이 설파(說破)하여 주기를 구하지 말지니, 만약 설파(說破)하여 주더라도 마침내 그것은 남의 것이요, 자기와는 상관이 없나니라.

마치 사람이 장안으로 가는 길을 물으매 다만 그 길만 가리켜 주기를 요구할지언정 다시 장안의 일은 묻지 말지니, 저 사람이 낱낱이 장안 일을 설명할지라도 종시(終是) 그가 본 것이요, 길 묻는 사람이 친히 본 것은 아니니라. 만약 힘써 수행하지 않고 남이 설파하여 주기를 구하는 것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p180-181) (가로판 p171~172)

*기연(機緣 기틀·기회·작용·때 기/인연·이유·연줄 연) ; ①시기인연(時機因緣)의 준말. 어떠한 기회 또는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되는 계기·동기. ②중생의 소질이나 능력이 부처님 또는 스승의 가르침을 받을 만한 인연, 조건이 되는 것. ③가르침을 주고받게 된 스승과 제자의 인연.

*타파(打破) ;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그 화두(話頭)에 대한 의심(疑心)을 관조(觀照)해 나가는 것, 알 수 없는 그리고 꽉 맥힌 의심으로 그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그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더 이상 그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더 이상 의심이 커질 수 없고, 더 이상 깊을 수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내 가슴속이 가득 차고, 온 세계가 가득 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눌 때에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탈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잘 때에는 꿈속에서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에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큰 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그 항아리를 큰 돌로 내려치면은 그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를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참선법 A’ 에서]

*면목(面目 낯 면/눈 목) : 본래면목(本來面目 본래의 얼굴·모습).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의 성품.

*본래면목(本來面目 밑 본/올 래/낯 면/눈 목) ; ①자기의 본래(本來) 모습(面目). ②자신이 본디부터 지니고 있는,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의 성품.

본지풍광(本地風光), 본지고향(本地故鄉), 본분전지(本分田地), 고가전지(故家田地), 천진면목(天眞面目), 법성(法性), 실상(實相), 보리(菩提), 부모에게서 낳기 전 면목(父母未生前面目), 부모에게서 낳기 전 소식(父母未生前消息) 등이 모두 같은 맥락에서 쓰이는 말이다.

*게송(偈頌) ; 시(詩), 게(偈)와 송(頌) 모두 불교의 가르침을 싯구로 나타낸 것.

*법보제자(法寶弟子) ; [참고] 89년 설날차례(89.02.06) 법요식에서.

여기 (용화선원 대웅전 법보단) 만년위패에 우리의 조상 여러 영가와 원근 친척의 인연 있는 영가들을 모신 이 자리에 참석하신 모든 여러분은 법보가족이라고 말을 할 수가 있습니다. 한 가족입니다.

조상의 영가를 한 법당(대웅전 법보단, 舊 법보전)에 모셨으니 우리가 한 가족인 것입니다. 더군다나 우리는 정법(正法)에 의지해서 도를 닦는 또 이 도반(道伴)이면서 또 한 가족인 것입니다.

*전강선사 녹음법문(錄音法門) ; 전강 스님께서 후학을 위해 참선법(參禪法)을 핵심으로 설한 법문이 칠백여 시간 분량이 녹음되어 있다. 이 중에는 『전강선사 일대기』 『몽산법어』 『초발심자경문』 등이 있다.

 

눈부신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이제는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 천육백여 개의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 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전강선사 및 송담스님의 모든 법문이 저장된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심우도(尋牛圖) ; 십우도(十牛圖). 목우도(牧牛圖). 우리의 마음자리를 '소'에다가 비유해서, 소를 찾아서 길들이는 과정을, 수행자가 보리심(菩提心)을 발(發)해 가지고 견성(見性)해서 보림(保任)을 다 완성을 한 다음에 중생을 교화하러 나가는 데까지 10단계로 구분하여 상징적으로 나타낸 그림. 게송으로 읊은 것을 심우송(尋牛頌), 십우송(十牛頌)이라 한다.

 

이 심우도(십우도)는 여러 종류가 있다. 가장 잘 알려진 것이 보명(普明) 선사의 목우도(牧牛圖)와 곽암(廓庵) 선사의 십우도이고, 송(宋) 나라 때의 청거(淸居) 선사의 십이목우도(十二牧牛圖), 불국유백(佛國惟白) 선사의 팔목우도(八牧牛圖)가 있다. 곽암 선사의 십우도는 청거 선사의 십이목우도를 참조하여 만든 것이다.

 

[참고] 『십우도송(十牛圖頌)』 ; 곽암 선사 십우도(十牛圖)의 제목[題]과 송(頌).

①심우(尋牛 잃어버린 소를 찾아 나서다) ; 忙忙撥草去追尋 水闊山遙路更深 力盡神疲無處覓 但聞楓樹晩蟬吟

②견적(見跡 소의 발자취를 보다) ; 水邊林下跡偏多 芳草離披見也麼 縱是深山更深處 遼天鼻孔怎藏他

③견우(見牛 소를 발견하다) ; 黃鸝枝上一聲聲 日暖風和岸柳靑 只此更無回避處 森森頭角畵難成

④득우(得牛 소가 보이니까 살살 다가가서 그 소를 얻다) ; 竭盡神通獲得渠 心强力壯卒難除 有時纔到高原上 又入烟雲深處居

⑤목우(牧牛 소를 잡아 살살 먹여가지고 길들이다) ; 鞭索時時不離身 恐伊縱步惹埃塵 相將牧得純和也 羈鎻無拘自逐人

⑥기우귀가(騎牛歸家 소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다) ; 騎牛迤邐欲還家 羌笛聲聲送晚霞 一拍一歌無限意 知音何必鼓唇牙

⑦망우존인(忘牛存人, 到家忘牛 집으로 돌아와서 소에 대한 생각은 잊어버리고 사람만 있다) ; 騎牛已得到家山 牛也空兮人也閑 紅日三竿猶作夢 鞭繩空頓草堂間

⑧인우구망(人牛俱忘 사람과 소를 다 잊어버리다) ; 鞭索人牛盡屬空 碧天寥廓信難通 紅爐焰上爭容雪 到此方能合祖宗

⑨반본환원(返本還源 본래의 자기, 본태평本太平 자리에 돌아오다. 열반의 경지에 들어가다) ; 返本還源已費功 爭如直下若盲聾 庵中不見庵前物 水自茫茫花自紅

⑩입전수수(入鄽垂手 저잣거리로 들어가 중생 교화를 위해 자비의 손길을 내밀다) ; 露胸跣足入廛來 抹土塗灰笑滿腮 不用神仙眞秘訣 直敎枯木放花開

*불성(佛性) : 부처를 이룰 수 있는 심성(心性)으로 사람사람에게 본래 갖춰져 있는 자성(自性)을 말함。불타나 중생이나 심지어 꿈적거리는 미물(微物)에 이르기까지 그 자성에 있어서는 차등이 없다.

*탐(貪) ; 자기의 뜻에 잘 맞는 사물에 집착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진(瞋) ; 자기의 마음에 맞지 않는 것에 대하여 분하게 여겨 몸과 마음이 편안하지 못하게 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치(癡) ; 현상이나 사물의 도리를 이해하지 못하여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는 번뇌를 이른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삼독심(三毒心) ; 사람의 착한 마음(善根)을 해치는 세 가지 번뇌. 욕심·성냄·어리석음(貪瞋癡) 따위를 독(毒)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만(慢) ; 남을 업신여기고 자신을 높이는 마음 작용.

*의(疑) ; 인과(因果)의 진리를 의심하는 마음 작용.

*악견(惡見) ; 올바르지 않은 견해. 그릇된 견해.

*무명(無明) : [범] avidya 「어리석은 마음」 「어두컴컴한 마음」을 이름.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에는 이것을 두 가지로 나누어, 법계(法界)의 참 이치에 어둡게 된 맨 처음 한 생각을 근본무명(根本無明)이라 하고, 이 근본무명으로 말미암아 가늘거나 거칠거나 한 온갖 망녕된 생각이 일어나는 것을 지말무명(枝末無明)이라 하였다.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도(道) ; ①깨달음. 산스크리트어 bodhi의 한역. 각(覺). 보리(菩提)라고 음사(音寫). ②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그 방법. ③무상(無上)의 불도(佛道). 궁극적인 진리. ④이치. 천지만물의 근원. 바른 규범.

*본태평(本太平 근본·본래 본/클 태/평평하다·편안하다 평) ; 본래 태평(마음에 아무 근심 걱정이 없음)함.

*선지식(善知識) ; ①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좋은 지도자. 훌륭한 지도자. 바르게 이끄는 사람. ②좋은 벗. 마음의 벗. 선우(善友).

*속효심(速效心 빠를 속/효과 효/마음 심) ; 빨리[速] 효과[效] 나기를 바라는 마음[心].

*산승(山僧) ; 스님이 자신을 겸손하게 일컫는 말.

*시민선원(市民禪院) ; 직장인, 학생, 주부 등과 같은 하루 종일 시간을 낼 수 없는 분들이 언제든지 시간 나는 대로 와서 정진할 수 있도록 용화선원에 개설되어 있는 신도 선원.

*무자(無字) : 화두. 어느 스님이 조주(趙州) 스님께 묻되 「개도 불성(佛性)이 있읍니까 없읍니까?」하니, 조주 스님이 답하되 「무(無)」라 하시니 「준동함령(蠢動含靈)이 다 불성이 있는데 어째서 무(無)라고 했는고?」하는 참선할 때 참구(叅究)하는 천칠백 공안 중의 하나.

[참고]  『언하대오(言下大悟)』 (전강선사 법어집 | 용화선원刊) p52~53.

‘무자’ 화두하는 학자들이여, 조주 스님의 “무” 라고 하신 그 의지가 “무” 에 있는 것이 아니다.  기실(其實) 엉뚱한 곳에 있는 것이니 제발 조주 스님의 뜻을 찾으려고 애쓸지언정  ‘무자(無字)’에 떨어져서 광음을 헛되이 보내지 않기를 재삼 부탁하노라.

이 ‘무자’ 화두 지어감에 좋은 비유 설화가 있으니 옛날 중국 당나라에 천하일색인 양귀비가 있었는데 당 현종의 애첩으로 궁성에 살고 있었다. 이 양귀비와 정부 안록산은 서로가 보고 싶어 못 견딜 지경이었다.

 

빈호소옥무타사(頻呼小玉無他事)라 지요단랑인득성(只要檀郞認得聲)이로다

자주 소옥이를 부르는 것은 다른 일이 아니라 다못 낭군에게 소리를 알리고자 함이로다.

 

양귀비는 자기의 종인 소옥을 아무 할 일 없이 큰 소리로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자꾸 부른다.  왜 양귀비는 소옥을 그렇게 부를까?  다만 낭군에게 자기의 음성을 들리게 하기 위함이다.

양귀비의 뜻이 소옥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소옥을 통해서 자기의 음성을 안록산에게 알리는데 본 뜻이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무자’ 화두는 ‘무자’ 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무” 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에게 뜻이 있는 것이니, ‘무’라는 말을 천착(穿鑿)하지 말고 “무” 라 말씀하신 조주 스님의 의지를 참구할지니라.

*상좌(上佐 윗 상/도울 좌) ; 윗사람을 도운다는 뜻. 곧, 한 스승의 제자를 일컬음.

*상기(上氣) ; ①[한의] 피가 뇌로 몰리는 현상. 얼굴이 붉어지고 열이 나며, 발한, 두통, 이명(耳鳴), 현기증 따위가 일어나기도 한다. ②얼굴이 흥분이나 수치감으로 붉어짐.

*단전 호흡(丹田呼吸) ; 참선 수행에 있어서 호흡법은 우리의 몸을 건강하게 하고, 마음도 안정을 시키고 통일되게 하여 우리가 참선을 해 나가는 데에 중요한 준비, 기초 훈련입니다.

단전호흡을 하게 되면은 혈액순환이 잘되고, 혈액순환이 잘됨으로 해서 몸안에 모든 노폐물이 깨끗하게 밖으로 배설이 되서 몸이 가벼워지고, 건강해지고 따라서 정신이 맑아지고, 정신이 안정이 된다. 주의할 점은 자신의 호흡의 길이에 알맞게 시작하고 자연스럽게 해야지, 절대로 억지로 호흡 시간을 길게 잡아 무리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공양(식사) 후 2시간 지나서 하라.

 

단전호흡 요령.

의식적으로 숨을 저 배꼽 밑에 아랫배 하복부[丹田]까지 숨을 들어마셨다가 잠깐 머물렀다가 조용하니 길게 숨을 내쉬는 호흡.

들어마시는 시간 한 3초, 들어마셨다가 잠깐 머무르는 시간이 한 3초, 내쉬는 시간은 4~5초, 이렇게 해서 내쉬는 시간을 좀 길게 잡아서 내쉰다.

 

들어마시되, 아랫배가 터지도록 잔뜩 들어마시지 말고 한 80%정도만 들어마시고, 80% 들어마신 상태에서 3초 동안 잠깐 머물렀다가 조용히 내쉬는데, 들어마실 때에는 차츰차츰 아랫배가 볼록해지게 만들고, 내쉴 때는 차츰차츰 배를 홀쭉하게 만든다.

그래서 들어마셨다 잠깐 머물렀다 또 내쉬되, 배가 그것에 따라서 볼록해졌다 또 홀쪽해졌다, 배가 나왔다 들어갔다 하도록 의식적으로 호흡을 하는 것이다.

 

(1분 32초)

[참고] 송담스님(No.118)—80년 동안거해제 법문에서.

숨을 들어마실 때 ‘코로 들어마신다’고 생각을 하지 말고 ‘저 뒤에서 쭈욱 들어마셔 가지고, 이 궁둥이로 해서 아랫배로 요렇게 들어온다’고 이렇게 생각을 하고 들어마시면 아주 수월하게 할 수가 있습니다.

‘숨을 코로 들어마셔 가지고 아랫배까지 이렇게 집어 넣는다’고 생각하면, 들어마셔 가지고 이 윗배 오목가슴 정도까지 가 가지고 거기서 딱! 맥혀 가지고 아래로 내려가지를 않아서 애를 먹게 됩니다. 그런 상태에서 억지로 하다 보면 가슴이 답답하고 영 시원하지를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코로 들어마신다’고 생각하지 말고 ‘저 뒤에서 궁둥이로 쑤욱 들어마셔 가지고 직선으로 들어와 가지고 아랫배가 볼록해지도록 들어온다’ 이렇게 생각하고 들어마시고, 내쉴 때도 ‘그 자리에서 직선으로 뒤로 쑤욱 내쉰다, 내보낸다’ 이런 기분으로 숨을 내쉬는 것입니다.

그래서 『숨은 직선으로 뒤에서 이렇게 들어마시고 내쉴 때는 직선으로 뒤로 이렇게 내보낸다』 들어마실 때에는 배가 차츰차츰차츰 아랫배가 볼록해지고, 내쉴 때는 차츰차츰차츰 아랫배가 홀쪽해진다. 이렇게 의식을 하면서 호흡을 하는 것입니다.

*관조(觀照) ; ①지혜의 힘으로 사물이나 이치를 통찰(洞察 : 예리한 관찰력으로 사물을 환히 꿰뚫어 봄)함. ②지(智)로써 사(事 모든 차별의 모양. 현상계. 차별 현상. 사물)와 이(理 모든 사물의 본체. 진리)를 관(觀)하여 바르게 아는 것.

[참고] 『돈황본 육조단경』

用智慧觀照 於一切法 不取不捨 卽見性成佛道

지혜로써 보고 비추어[觀照] 온갖 법에 취하지도 않고 버리지도 않나니, 곧 성품을 보아 불도(佛道)를 이루느니라.

 

[참고] 『권수정혜결사문(勸修定慧結社文)』 (보조국사 지눌 스님)

如或世間事務 種種牽纏或病苦所惱 或邪魔惡鬼所能恐怖 有如是等 身心不安 則於十方佛前 至心洗懺 以除重障 禮念等行 消息知時

 

만일 세상의 일에 가지가지로 얽매이거나 병으로 아프거나 삿된 악마나 귀신에 의해 공포에 떠는 등 이런 일로 몸이나 마음이 불안함이 있거든, 시방세계의 부처님 전에 지극한 마음으로 참회하여 무거운 업장(業障)을 제거해야 한다. 예불과 염불을 아울러 행하고, 업의 장애를 없애고 생각을 비우는 일을 때를 알아서 하라.

 

動靜施爲 或語或默 一切時中 無不了知 自他身心 從緣幻起 空無體性 猶如浮泡 亦如雲影 一切毀譽是非音聲 喉中妄出 如空谷響 亦如風聲

 

움직이고 그치고 말하고 침묵하는 모든 시간에 나와 남의 몸과 마음이 인연을 따라 허깨비처럼 일어난 것으로 공(空)하여 체성(體性)이 없음이 마치 물에 뜬 거품과 같으며 또한 구름이나 그림자와 같아서, 일체 비방하고 칭찬하며, 옳다 그르다는 음성이 목구멍에서 망령되이 남[出]이 빈 골짜기의 메아리와 같고 또한 바람 소리와 같은 것임을 환히 안다.

 

如是虛妄自他境界 察其根由 不隨傾動 全身定質 守護心城 增長觀照 寂爾有歸 恬然無間

 

그와 같이 나와 남이 모두 허망한 경계에서 그 근본 원인을 살펴, 치우친 행동을 따르지 않고, 온 몸은 안정하여 마음의 성(城)을 굳게 지키어 비추어 보는[觀照] 힘을 증장하면 고요히 돌아갈 곳이 있고 편안하여 끊임이 없을 것이다.

 

當是時也 愛惡自然淡薄 悲智自然增明 罪業自然斷除 功行自然增進

 

그때에는 사랑하고 미워하는 마음이 저절로 엷어지고 자비와 지혜가 저절로 더욱 밝아지며 죄업은 저절로 끊어져 없어지고 공덕의 행[功行]은 저절로 더욱 나아갈 것이다.

 

煩惱盡時 生死卽絕 生滅滅已 寂照現前 應用無窮 度有緣衆生 是爲了事人分上 無漸次中漸次 無功用中功用也

 

그리하여 번뇌가 다할 때에는 생사가 곧 끊어지고 생멸이 멸하면 적(寂)과 조(照)가 앞에 나타나 응(應)해 씀이 무궁하여 인연 있는 중생을 제도하리니 이것이 이른바 일 마친 사람의 분상(分上)에 점차(漸次) 없는 가운데 점차며, 공용(功用) 없는 가운데 공용이 되는 것이다.

*참선법(參禪法) A,B,C,D,E ; 전강 조실스님과 송담 스님께서 하신 모든 법문은 참선법을 핵심으로 설하신 법문입니다. 그 가운데 ‘참선법 A~E’라고 하여 처음 참선하는 분을 위해 송담스님 법문 중에 5개를 선정하여 놓은 법문.

*녹음 테이프(錄音tape) ; 소리를 기록하는 테이프. 카세트(cassette)라고 하는 녹음기에 간편하게 장착하여 녹음을 하거나 녹음된 것을 재생하는 카세트테이프(cassette tape : 전용 플라스틱 케이스에 들어 있는, 종이나 플라스틱으로 된 얇고 긴 띠 위에 자성을 띤 가루를 입힌 자기 테이프)를 말한다.

 

소리나 영상[음성법문, 영상법문]을 재생하는 방식이 녹음 테이프에서 CD(compact disk)를 거쳐 눈부신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이제는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 천육백여 개의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전강선사 및 송담스님의 모든 법문이 저장된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판치생모(板齒生毛) ; 화두(공안)의 하나. 版과 板은 동자(同字).

[참고] 『선문염송(禪門拈頌)』 (고려 진각혜심眞覺慧諶 선사 편찬) 475칙 ‘판치(版齒)’

(古則) 趙州因僧問 如何是祖師西來意 師云版齒生毛.

조주 스님에게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선사가 대답하였다.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投子靑頌) 九年小室自虛淹 爭似當頭一句傳 版齒生毛猶可事 石人蹈破謝家船

투자청이 송했다.

9년을 소림에서 헛되이 머무름이 어찌 당초에 일구 전한 것만 같으리오.

판치생모도 오히려 가히 일인데 돌사람이 사가(謝家)의 배를 답파했느니라

 

[참고] 『언하대오(言下大悟)』 (전강 선사 법어집 | 용화선원刊) p53~54.

어떤 스님이 조주 스님께 묻되, “어떤 것이 ‘조사서래의’입니까?(如何是祖師西來意)”하니 답하시되,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하셨다. 즉, 「어떤 것이 달마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 「판치에 털이 났느니라」라고 하는 화두.

 

그러면 조주 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을까?  이 화두도 ‘무자’ 화두와 같이 ‘판치생모’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판치생모”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께 뜻이 있는 것이니, 학자들은 꼭 조주 스님의 뜻을 참구할지어다.

“어째서 ‘무’라 했는고?”하는 것과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하는 것은 조금도 다름이 없는 것이다.

 

Posted by 닥공닥정
정진(精進) 수행2019. 5. 31. 16:37

 

 

§(394) (게송)작일지두개난만~ / 활구참선이야말로 확철대오 하는 데에 가장 지름길이다 / (게송)견색비간색~ / 황벽스님의 "계급' 법문 / 무상함을 철저히 느껴 시간을 아껴 정진하라.

 

불법(佛法) 가운데에는 참선(參禪)이 제일 수승한 법이고, 참선 가운데에도 활구참선이야말로 확철대오(廓徹大悟)하는 데에 가장 지름길이다.

 

참선하는 사람은, 수행하는 사람은 색상을 보되 거기에 끌려가지 말고 ‘이뭣고?’ 온갖 소리를 듣되 거기에 분별심을 내거나 집착하지 말고 바로 그 소리를 듣자마자 ‘이뭣고?’ 화두를 거각(擧却)한다.

 

어디에서부터 오느냐 하면 우리의 생각, 「생각이 일어났다 꺼졌다」하는 데에서 우리의 생사윤회는 일어나는 것입니다. '일어났다 꺼졌다'하는 그 생각을 단속하는 것이 우리의 생사윤회를 해결 짓는 유일한 방법인 것입니다.

 

**송담스님(No.394)—1989년 7월 첫째일요법회. (용394)

 

(1) 약 13분.

(2) 약 14분.

 

(1)------------------

 

작일지두개난만(昨日枝頭開爛漫)터니  금조지면낙분분(今朝地面落紛紛)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영인차석번생괴(令人嗟惜飜生愧)하니  영욕무심숙사군(榮辱無心孰似君)고

나무~아미타불~

 

작일지두개난만(昨日枝頭開爛漫)터니  금조지면낙분분(今朝地面落紛紛)이로구나.

어제 가지 끝에 그렇게도 곱게 피어 있던 꽃이 오늘 아침에는 벌써 땅바닥에 송이송이 떨어져 있구나.

 

영인차석번생괴(令人嗟惜飜生愧)하고, 사람으로 하여금 그 떨어진 꽃을 아까워하다가 도리어 부끄러운 생각을 나게 하는구나.

영욕무심숙사군(榮辱無心孰似君)고. 흥망성쇠에 무심(無心)하지 못해. 흥망성쇠에, 그 화려하게 피었다가 떨어져 버려도 조금도 마음에 동요가 없는 것이 어찌 그대와 같을 수가 있겠는가. 누가 그대와 같이 무심할 수가 있겠는가.

 

꽃은 그렇게 화려하게 아름답게 향그럽게 곱게 피어 있으면서도 ‘나는 지금 곱게 화려하게 피어 있다’하고 조금도 자랑하는 마음도 없고,

그렇게 화려한 꽃이 하룻밤 새에 그렇게도 떨어져 버려도 조금도 꽃 그 자신은 꽃이 떨어졌다고 해서 조금도 가슴 아파하거나 아까워하는 생각이 없어. 피어 있을 때도 무심하고, 꽃이 진 뒤에도 무심하다 그말이여.

 

그런데 그 꽃을 감상하는 사람은 피어 있을 때는 '곱다'고 '아름답다'고 야단하다가, 그 꽃이 져 버리면 그렇게도 애석하게 생각해.

 

거기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은 돈이 잘 벌리거나 높은 자리에 영전을 하거나 하면 온통 집안에 경사가 났다고 좋아하고 참 야단이다가, 재수가 없어서 살림이 망하거나 높은 자리에서 떨어져서 파면을 당하거나 하면 그냥 밥을 못 먹고 잠을 못 자고 그렇게 속을 상한다.

그러니 사람이 만물 가운데 영장(靈長)이라고 하지마는 식물인 저 꽃만도 못하구나. 이러한 고인(古人)의 게송(偈頌)을 읊었습니다.

 

 

방금 전강(田岡) 조실 스님의 녹음법문을 통해서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 최상승법(最上乘法)인 활구참선법에 대한 간곡한 법문을 들었습니다. 그 조실 스님의 법문(法門) 그 한 대목만 들으면 다시 오늘 무슨 더한 법문을 들으실 것이 없을 것입니다.

 

불법(佛法) 가운데에는 참선(參禪)이 제일 수승한 법이고, 참선 가운데에도 활구참선이야말로 확철대오(廓徹大悟)하는 데에 가장 지름길이다 그말이여.

 

활구참선을 해 나가는 데는 화두(話頭), 공안(公案)을 참구(參究)해 가지고 공안을 타파(打破)해 버려. 의단(疑團)을 타파함으로써 자기의 본래면목(本來面目), 자기의 마음자리를 깨달라 버리는 것인데.

화두 하나만을 제대로 참구할 줄 알면 그것이 바로 참선을 바르게 하는 길이다. 그래서 법회 때마다 그 화두를 참구하는 법에 대해서 항상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화두(話頭)는 공안(公案)이라고도 하는데, 이론이나 지식이나 분별로 따져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여.

그러기 때문에 화두를 자기가 가지고 있는 무슨 철학적으로 이론적으로 또는 경전에 있는 부처님의 교리로 온갖 지식과 상식을 동원을 해서 이렇게도 따져 보고 저렇게 따져 보고 그래 가지고서는 깨달음, 참다운 깨달음에 이를 수가 없는 것이여. 공안을 타파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량분별(思量分別)을 사용하지 않고 그 공안을 참구해.

그것이 참 아까 조실 스님 말씀과 같이 천하에 간단하고도 쉬운데, 실지로 해 나가는 것을 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분별을 하고 있고 따지고 있다 그말이여.

그래 가지고 무슨 그럴싸한 해답을 얻으면 '이것이 바로 깨달은 것이 아닌가' 스스로 착각을 하고 그러한 경우가 왕왕 있습니다.

 

이 공부를 해 나가는데 있어서는 기본자세, 가부좌(跏趺坐)나 반가부좌(半跏趺坐)를 하고 죽비(竹篦)를 치고서 입선(入禪)을 들이고 떠억 결제 때에는 선방에서 그렇게 정진을 하지만, 참선이 꼭 죽비 치고 앉아서만 하는 것이 아니여.

 

물론 그것은 기본자세라 시간이 있을 때마다 따악 가부좌를 하고, 반가부좌를 하고 하는 것이 참 좋기는 좋지만,

꼭 앉아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서서도 하고, 누워서도 하고, 의자에 걸터앉아서도 하고, 걸어가면서도 하고, 일하면서도 하고, 차 타고 가면서도 하고, 심지어는 진심(瞋心), 속이 상할 때도 하고, 슬플 때도 하고, 기쁠 때도 하는 것이다 그말이여.

 

 

견색비간색(見色非干色)하고  문성불시성(聞聲不是聲)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색성불의처(色聲不疑處)고  친도법왕성(親到法王城)이니라

나무~아미타불~

 

견색비간색(見色非干色)이요. 온갖 울긋불긋한 온갖 색상을 보되 그 색(色)에 간여하지 아니해. 간섭하지 아니하고. 그 색에 집착하거나 그 색상으로 인해서 분별심을 내지 않는다.

 

문성불시성(聞聲不是聲)이다. 온갖 소리를 듣되—기차 소리, 자동차 소리, 비행기 소리, 공장에서 기계 돌아가는 소리, 이웃에서 모다 떠들고 잡담하는 소리, 어린아이들이 소리소리 지르는 소리, 음악 소리, 새 우는 소리, 바람 부는 소리, 온갖 소리를 듣되 이 소리가 아니여. 그 소리에도 끄달리지 않는다 그말이여.

 

색성불의처(色聲不疑處)에, 온갖 색성(色聲), 색상과 온갖 소리에 의심 없는 곳이면 바로 그것이 친도법왕성(親到法王城)이다. 법왕(法王)이 계신 궁성에 도달한 것이다.

 

우리 중생은 눈으로 온갖 색상을 보면 거기에 끄달려 끌려가서 온갖 분별심이 거기서 일어나고 번뇌 망상이 일어나거든.

무슨 소리를 들으면 그 소리로 인해서—칭찬하는 소리, 욕하는 소리, 새소리, 음악 소리, 차 소리, 시끄러운 소리, 그 소리로 인해서 온갖 분별심을 내고 짜증을 내고, 때로는 기쁜 마음을 내고 슬픈 마음을 낸다 그말이여.

 

참선하는 사람은, 수행하는 사람은 색상을 보되 거기에 끌려가지 말고 ‘이뭣고?’ 온갖 소리를 듣되 거기에 분별심을 내거나 집착하지 말고 바로 그 소리를 듣자마자 ‘이뭣고?’ 화두를 거각(擧却)한다.(처음~13분11초)

 

 

 

(2)------------------

 

황벽(黃檗) 스님께 여쭙기를 “어떤 것이 계급(階級)에 떨어지지 않는 도리입니까?”

 

계급. 그 계급이라 하는 것은 소리를 귀로 듣거나, 온갖 색상을 눈으로 보거나, 우리의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를 통해서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 육진(六塵)을 상대할 때에 좋은 소리, 나쁜 소리, 고운 빛깔, 보기 싫은 빛깔, 온갖 그 차별 경계 그것을 여기서는 계급이라 그러는 거여.

 

“일체 차별 경계에 끄달리지 아니하고 거기에 떨어지지 않는 도리가 무엇입니까?” 이렇게 여쭈니까,

황벽 스님께서 이르시기를 “다맛 종일 밥을 먹되 한 알갱이 쌀도 씹은 바가 없고, 종일 행하되 종일 걸어가되 한 조각 땅도 밟은 바가 없어”

 

‘밥을 먹되 한 알갱이 쌀도 씹지 않는다’ 그 말은, 밥을 먹되 '맛이 있다 없다, 밥이 질다 되다’ 이러한 그런 생각이 벌써 일어나면 벌써 쌀을 씹고 있는 거여.

그런데 밥을 먹되 '질다 되다' 그런 생각도 없고, 맛이 있고 없는 분별심도 생기지 아니하고 다못 이 깨닫지 못한 경지에서는 화두의 의단(疑團)만이 독로(獨露)하도록.

 

종일 걸어가되 한 쪽, 조그만 한 쪽의 땅도 밟지를 안 해.

어떻게 걸어가는데 땅을 밟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땅을 밟고 걸어가되 ‘땅이 평편하다 울퉁불퉁하다’ 그러한 일체 분별심이 일어나지 아니하면, 그러면 그것이 '종일 걸어가되 한 조각 땅도 밟지 않는다' 그말이여.

 

이러할 때에 무인아상(無人我相)이여.

‘내’라 하는 생각, '내가 지금 걸어간다'는 생각도 없고, '내가 지금 밥을 먹고 있다'는 생각도 없어. 이것이 인아상(人我相)이 없어.

 

종일불리일체사(終日不離一切事)하되 불피재경혹(不被諸境惑)이여.

종일토록 일체 사물을 여의지 아니해. 일체사를 여의지 안 하되 일체 경계에 현혹되지 않는다. 이것을 이름해서 「자재인(自在人)」이라고 한다 그말이여.

 

소리가 시끄럽다고 해서 귀를 막고, 모든 모양이 뵈기 싫다 해서 눈을 막고 그런 것이 아니라, 눈을 뜨고 다 보고 귀를 막지 않고 귀를 열어 놓되, 보되 본 바가 없고 듣되 들은 바가 없어. 다맛 화두에 대한 의단만이 독로하도록 자꾸 잡드리를 해 나가는 거여.

종일토록 일체 일을 여의지 아니하되 일체 경계에 현혹된 바가 없어. 이렇게 되어야 이것을 바로 「자재인(自在人)」이라고 한다 그말이여.

 

우리는 완전한 자재인이 될 수는 없어.

깨달음을 얻기 전에는 완전한 자재인은 될 수 없지만 자꾸 화두를 거각하고 또 화두를 거각하고, 깜박 잊어 버리면 또 챙기고, 놓쳐 버리면 또 챙기고, 자꾸 챙기고 챙겨서 챙기다 보면 나중에 화두를 들지 아니해도 저절로 화두가 독로하게 된다 그말이여.

 

이렇게 하면 이것이 바로 일체, 밥을 먹을 때가 되면 밥을 먹고, 똥을 누게 되면 똥을 누고, 어디를 가야할 일이 있으면은 걸어가기도 하고 차를 타고, 일이 있으면 밭도 매고 빨래도 하고 이러되, 그러한 가운데에도 화두가 독로해서 의단이 독로하도록 잡드리해 나가면 경계에 흔들림을 받지 않게 된다.

 

시시때때로 생각 생각이 일체상(一切相)을 보지 마라. 일체상을 보지 말고 과거 · 현재 · 미래, 이 삼제(三際)를 인증하지 말아라.

앞으로 지나간 과거도 가는 것이 없고, 현재에 이르러서도 현재에 대해서도 주착(住着)함이 없고, 미래에 대해서도 오는 것을 생각하지 마.

 

뭐하러 지나간 과거를 생각하고, 또 앞으로 다가올 일을 미리 당겨서 생각하고, 현재 닥쳐 있는 일에 무엇을 거기에다가 집착을 해서 생각을 할 것이냐 그말이여.

지나간 일도 생각할 것 없고, 아직 다가오지 않은 미래에 대해서도 생각할 필요가 없고, 현재 닥쳐 있는 모든, 닥치고 있는 모든 일에 대해서도 거기에 생각을 두지 말고, 오직 화두만을 거각해라 이거여.

 

그래 가지고 안연단좌(安然端坐), 편안히 단정하니 앉아서 임운불구(任運不拘)여. 일체 것을 터억 다 놔 버려. 긴장도 다 풀어.

마음의 긴장도 다 풀어 버리고, 몸뚱이의 긴장—어깨의 긴장도 다 풀어 버리고, 목에도 힘을 주지 말고, 눈에도 힘을 주지 말고, 다못 지긋이 어금니를 물고 입을 ‘한 일(一)’자로 따악 다물고, 눈은 평상으로 뜨고. 그리고서 ‘이뭣고?’ ‘이뭣고?’ ‘이뭣고? 한 이놈이 뭣고?’

 

이렇게 생각 생각이 단속을 해서 행주좌와(行住坐臥), 걸어갈 때나, 머물러 있을 때나, 앉아 있을 때나, 누워 있을 때나, 어묵동정(語默動靜), 무슨 필요가 있어서 말을 할 때나, 또 말을 안 할 때나, 몸뚱이를 움직일 때나, 또는 움직이지 않고 고요히 있을 때나,

일체처 일체시에 한 생각 한 생각을 간절히 간절히 단속을 해서 의단이 독로하도록 그렇게 하루 하루를, 한 시간 한 시간을, 1분 1분을 그렇게 단속을 하고 노력을 해 갈 것이다.

 

이 불법 문중(佛法門中)에서 천 사람 만 사람이 참선을 한다고 다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겨우 그 천 명, 만 명 가운데 겨우 세 사람이나 다섯 사람, 서너 사람, 그런 정도 밖에는 도(道)를 깨달은 사람이 없다. 왜 그러냐?

 

안 한 것이 아니라 하기는 하되 아까 말한 바와 같이 그렇게 간절히 알뜰히 노력을 하지 않고 형식적으로 조금 하다가 말다가 그렇기 때문에 한다고 해도 정말 도를 이룬 사람은 그렇게 극소수에 지내지 못한다 이거여.

 

이 공부가 어려워서 그런 것도 아니고, 이 공부가 복잡해서 그런 것도 아니여. 또 공부할 수 있는 힘이 없어서 그런 것도 아니요, 능력이 없어서도 아니여.

다못 그 한 생각이 간절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렇다 그말이여.

 

간절하지 못하기 때문에 하다가 말다가, 조금 할라고 마음먹었다가도 금방 딴 생각[別念]이 나면 그리 끄달려 가 버리고, 조금 무슨 일이 있으면 그리 끄달려 버리고,

앉어서 ‘이뭣고?’하다가 서면서 잊어 버리고, 금방 화두를 들고 있다 무슨 소리 들으면 거기에서 화두가 놓쳐 버리고.

놓치자마자 또 챙기고 또 챙기고 해야 할 텐데 놓치면은 놓친 데에서 그냥 그리 끌려가 버리고, 경계에 끄달려 버리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그말이여.

 

황벽 스님은 정말 이 공부를 할려고 마음을 먹으면 정말 여기에다가 몸과 목숨을 바치고 정말 간절하게 그렇게 해야지, 공부한답시고 그렇게 간절한 마음이 없이 그렁저렁하면은 수앙(受殃)이 유일재(有日在)다. 재앙이, 곧 재앙이 닥쳐온다.

 

어떻게 닥쳐오냐?

지금 이만큼 건강할 때, 이만할 때 철저히 해 놓지 아니하면 금방 늙어서 병들어서 곧 죽게 된다 그말이여.

 

죽게 되었을 때, 그때 그 생사(生死)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이여?

눈 한번 감으면 내생(來生)인데, 숨 한번 내쉬었다 들어마시지 못하면 내생인데, 그때 염라대왕(閻羅大王) 앞에 끌려가서 ‘내가 참선을 했습니다’ 감히 그렇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참선을 그렇게 했으면은 그 깨달은 도리를 일러 봐라. 생사 없는 도리를 한번 일러 봐라’할 때 뭐라고 대답할 것이냐?

그러기 때문에 금생에 이 생사 문제를 결정코 요달(了達)을 할 것이니라.

 

금생에 자기의 생사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누가 대신해서 그 생사윤회(生死輪廻)의 고통을 대신해 줄 사람이 누가 있겠느냐?

 

부처님을 비롯한 역대조사(歷代祖師)들은 진즉 이 문제를, 이 생사 문제를 해결을 해 가지고 생사해탈(生死解脫)을 하시고 일체 중생을 제도하고 계시는데, 한결같이 하신 말씀이 '생사, 생사, 생사는 무상(無常)한 것이다'

어쨌든지 무상함을 철저히 느끼고 시간을 아껴서 정진을 하도록 간곡히 부탁을 하신 것입니다.

 

생사는 어디에서부터 오느냐 하면 우리의 생각, 「생각이 일어났다 꺼졌다」하는 데에서 우리의 생사윤회는 일어나는 것입니다.

'일어났다 꺼졌다'하는 그 생각을 단속하는 것이 우리의 생사윤회를 해결 짓는 유일한 방법인 것입니다.(13분12초~26분43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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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작일지두개난만~' ; 『조계진각국사어록(曹溪眞覺國師語錄)』 (진각혜심) '낙화(落花)' 참고.

*무심(無心) ; 모든 마음 작용이 소멸된 상태. 모든 분별이 끊어져 집착하지 않는 마음 상태. 모든 번뇌와 망상이 소멸된 상태.

*영장(靈長) ; 영묘(靈妙)한 능력을 가진 우두머리[長]. 인간을 다른 생물과 대비하여 이른다.

*고인(古人) ; 불보살(佛菩薩)님을 비롯한 역대조사(歷代祖師), 선지식을 말한다.

*게송(偈頌) ; 시(詩), 게(偈)와 송(頌) 모두 불교의 가르침을 싯구로 나타낸 것.

*전강선사 녹음법문(錄音法門) ; 전강 스님께서 후학을 위해 참선법(參禪法)을 핵심으로 설한 법문이 칠백여 시간 분량이 녹음되어 있다. 이 중에는 『전강선사 일대기』 『몽산법어』 『초발심자경문』 등이 있다. 용화선원(녹음실)에서 전강선사 및 송담스님의 모든 법문을 mp3 파일로 구할 수 있습니다.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본참공안]를 받아서,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간화선(看話禪) ; 화(話)는 화두(話頭)의 준말이다. 간화(看話)는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을 본다[看]’는 말로써,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이 화두를 관(觀)해서, 화두를 통해서 확철대오하는 간화선을 전강 조실스님과 송담스님께서는 ‘최상승법(最上乘法)’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고 말씀하신다.

*법문(法門 부처님의 가르침 법/문 문) ; 불법(佛法)을 문(門)에 비유한 말.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門)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불법(佛法) ; 부처님이 깨달은 진리(法). 부처님의 교법(敎法). 부처님이 설한 법. 부처님의 가르침.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화두(공안)에는 '이뭣고?' '판치생모' '무자' '정전백수자' 등이 있다.

*참구(參究 헤아릴 참/궁구할 구) ; ①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드는 것. ②선지식의 지도 아래 참선하여 화두(공안)을 꿰뚫어 밝히기 위해 집중함. 화두 의심을 깨뜨리기 위해 거기에 몰입함.

*타파(打破) ;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그 화두(話頭)에 대한 의심(疑心)을 관조(觀照)해 나가는 것, 알 수 없는 그리고 꽉 맥힌 의심으로 그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그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더 이상 그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더 이상 의심이 커질 수 없고, 더 이상 깊을 수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내 가슴속이 가득 차고, 온 세계가 가득 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눌 때에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탈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잘 때에는 꿈속에서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에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큰 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그 항아리를 큰 돌로 내려치면은 그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를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참선법 A’ 에서]

*본래면목(本來面目 밑 본/올 래/낯 면/눈 목) ; ①자기의 본래(本來) 모습(面目). ②자신이 본디부터 지니고 있는,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의 성품.

본지풍광(本地風光), 본지고향(本地故鄉), 본분전지(本分田地), 고가전지(故家田地), 천진면목(天眞面目), 법성(法性), 실상(實相), 보리(菩提), 부모에게서 낳기 전 면목(父母未生前面目), 부모에게서 낳기 전 소식(父母未生前消息) 등이 모두 같은 맥락에서 쓰이는 말이다.

*깨달음 ; 각(覺). 법(法)의 실체와 마음의 근원을 깨달아 앎. 지혜의 체득.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법(法) ; (산스크리트) dharma, (팔리) dhamma의 한역(漢譯). ①진리. 진실의 이법(理法). ②선(善). 올바른 것. 공덕. ③부처님의 가르침. ④이법(理法)으로서의 연기(緣起)를 가리킴. ⑤본성. ⑥의(意)의 대상. 의식에 드러난 현상. 인식 작용. 의식 작용. 인식 내용. 의식 내용. 마음의 모든 생각. 생각.

*사량분별(思量分別) : 사량복탁(思量卜度), 사량계교(思量計較)와 같은 말。 생각하고 헤아리고 점치고 따짐。 가지가지 사량분별(思量分別)로 사리(事理)를 따짐。 법화경 방편품(法華經方便品)에 「이 법은 사량분별로 능히 알 바가 아니다」라고 함.

[참고] 『몽산법어(蒙山法語)』 (용화선원刊) 박산무이선사선경어(博山無異禪師禪警語) p155~158 에서.(가로판 p149~151)

做工夫호대  不可在古人公案上하야  卜度하야  妄加解釋이니,  縱一一領畧得過라도  與自己로  沒交渉하리라.  殊不知古人의  一語一言이  如大火聚로다.  近之不得하며  觸之不得이온  何況坐臥其中耶아.  更于其中에  分大分小하며  論上論下인댄  不喪身失命者幾希리라.

 

공부를 짓되 옛사람의 공안에 대하야 헤아려[卜度] 망령되이 해석을 붙이지 말지니, 비록 낱낱이 알아낸다 할지라도 자기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으리라.

자못 고인의 한 말씀 한 말씀이 마치 큰 불덩어리 같음을 알지 못하는도다。 가까이 할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거늘 하물며 그 속에 앉았다 누웠다 하리요? 더구나 그 가운데서 크고 작음을 분별하며 위라 아래라 따진다면, 생명을 잃지 않을 자 거의 없으리라。

 

做工夫人은  不可尋文逐句하며  記言記語니,  不但無益이라  與工夫로  作障礙하야  眞實工夫가  返成緣慮하리니,  欲得心行處絕인들  豈可得乎아

 

 공부 지어 가는 사람은 문구(文句)를 찾아 좇지 말며 말이나 어록을 기억하지 말지니, 아무 이익이 없을 뿐 아니라 공부에 장애가 되어서 진실한 공부가 도리어 망상의 실마리가 되리니, 마음의 자취가 끊어지기[心行處絕]를 바란들 어찌 가히 될 수 있으랴?

 

做工夫호대 最怕比量이니, 將心湊泊하면 與道轉遠하리니, 做到彌勒下生去라도 管取沒交渉하리라. 若是疑情이 頓發的漢子인댄 如坐在*鐵壁銀山之中하야  只要得個活路이니, 不得箇活路면  如何得安穩去리요  但恁麼做去하야  時節이  到來하면  自有箇倒斷하리라

 

 공부를 지어 가되 가장 두려운 것은 비교하여 헤아리는 것[比量]이니, 마음을 가져 머뭇거리면 도(道)와 더불어 더욱 멀어지리니, 미륵불이 하생할 때까지 공부를 할지라도 아무 소용이 없으리라.

만약 의정이 몰록 발한[頓發] 사람일진댄 마치 철벽(鐵壁)이나 은산(銀山) 속에 들어앉아서 다만 살 길[活路]을 찾는 것같이 할지니, 살 길을 찾지 못하면 어찌 편안히 지내가리오? 다만 이와같이 지어 가서 시절이 오면 저절로 끝장이 나리라.

*가부좌(跏趺坐 책상다리할 가/책상다리할 부/앉을 좌) ; 결가부좌(結跏趺坐)의 줄임말. 좌선할 때 앉는 방법의 하나. 가(跏)는 발바닥을, 부(趺)는 발등을 가리키는 말인데, 두 다리를 교차시켜 양쪽 발바닥이 위로 드러나게 앉는 좌법(坐法). 가부(跏趺) · 가좌(跏坐)라고도 한다.

오른발을 왼편 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은 뒤, 왼발을 오른편 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아 양쪽 발바닥이 드러나게 앉는 항마좌(降魔坐)와, 왼발을 오른편 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은 뒤, 오른발을 왼편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아 양쪽 발바닥이 위를 향하게 하여 앉는 길상좌(吉祥坐)가 있다.

*반가부좌(半跏趺坐) ; 부처님의 좌법(坐法)으로 좌선할 때 앉는 방법의 하나. 한쪽 다리를 구부려 다른 쪽 다리의 허벅다리 위에 올려놓고 앉는 자세이다.

*죽비(竹篦 대나무 죽/빗치개·통발 비) ; 예불이나 참선 정진할 때 이 죽비를 손바닥에 쳐서 소리를 내어 시작과 끝을 알리거나, 공양할 때 공양순서를 알리는데 쓰는 불교 용구.

*입선(入禪) ; 참선 수행(좌선)에 들어가는 것, 좌선(坐禪)을 시작하는 것. 참선(좌선)수행.

*(게송) '견색비간색~' ; 『금강경오가해』 장엄정토분(莊嚴淨土分), 야부 게송 참고.

*법왕(法王) : [범] dharmarāja  부처님은 진리, 곧 법을 가장 밝게 깨치시고, 법을 걸림 없이 쓰시고 법을 널리 가르쳐서 법에 있어 제일 높은 어른이므로, 「법의 임금」이라고 존칭한 말이다。또한 모든 세속 임금들에게도 큰 스승이 되고, 온갖 성인들 가운데서도 으뜸이 되므로 법왕이라 한다.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 왔다.

*거각(擧却 들 거/어조사 각) ; 화두를 든다. ‘화두를 든다’ ‘화두를 거각한다’는 말은 자신의 본참화두를 들 때 알 수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그 알 수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觀照)하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 세등선원(No.09)—병진년 동안거 결제중 법어(76.12.26)에서.

〇화두를 먼저 이마로 의심을 하지 말고, 이 화두를—호흡하는데 배꼽 밑[丹田]에 숨을 들어마시면은 배가 볼록해지고 숨을 내쉬면은 배가 홀쪽해지는데, 그 배가 빵빵해졌다 홀쪽해졌다 허는 거기에다가 화두를 들고 ‘이뭣고~?’ ‘알 수 없는 생각’ 관(觀)하는 그것이 화두를 드는 것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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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휴와 황벽 스님의 문답 ; 『전심법요(傳心法要)』 (당唐의 배휴가 황벽 스님의 법문을 편집한 책)

問, 如何得不落階級.

師云, 但終日喫飯, 未曾咬著一粒米. 終日行, 未曾踏著一片地. 與麼時, 無人我等相, 終日不離一切事, 不被諸境惑, 方名自在人.

 

“어떻게 하여야 계급(階級 : 차별 경계)에 떨어지지 않겠습니까?”

“다맛 하루 종일 밥을 먹되 한 톨의 쌀알도 씹은 바가 없고, 하루 종일 걷되 한 조각의 땅도 밟은 바가 없다. 이러한 때에 아상(我相)·인상(人相)등의 견해(相)는 없고, 하루 종일 모든 일을 하면서도 그 경계에 현혹(眩惑)되지 않아야 비로소 ‘자재한 사람(自在人)’이라고 하는 것이다.

 

更時時念念不見一切相, 莫認前後三際. 前際無去, 今際無住, 後際無來. 安然端坐, 任運不拘, 方名解脫. 努力努力.

 

다시는 때마다 생각 생각에 일체상(一切相)을 보지 말고, 앞뒤의 삼제(三際 과거·현재·미래)를 인정하지 말라. 과거는 이미 지나갔으며, 현재는 머물지 않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다. 편안하고 단정하게 앉아 주어진 상황에 되는 대로 맡겨 얽매이지 않아야 비로소 ‘해탈(解脫)’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노력하고 노력하라.

 

此門中千人萬人, 祇得三箇五箇. 若不將爲事, 受殃有日在. 故云, 著力今生須了却, 誰能累劫受餘殃.

 

이 불법 문중(佛法門中)에서 천인(千人)·만인(萬人)이 있지만 겨우 서너, 너댓 사람만이 깨달음을 얻는다. 만약 이 도 닦는 일을 않는다면, 재앙을 받을 날이 있으리라. 그러므로 말하기를 ‘힘을 다하여 금생에 반드시 끝내야 한다. 그러면 누가 오랜 세월(累劫) 남은 재앙을 받겠는가?’라고 하였다”

*계급(階級) ; ①사물을 대립적으로 분별하는 망상. 인·아(人我), 유·무(有無), 선·악(善惡) 등으로 분별하는 의식을 말한다. ②수행의 점차적 단계. 선종에서는 점수(漸修)를 뜻하며, 반대로 계급이 없음은 돈오(頓悟)를 말한다.

*육진(六塵) ; 육경(六境). 육근(六根)의 대상 경계인 색(色)·성(聲)·향(香)·미(味)·촉(觸)·법(法)을 말함. 이것은 마음을 더럽히므로 육진(六塵)이라 한다. 산스크리트어 ṣaḍ-viṣaya 경(境)은 대상을 뜻함.

①색경(色境). 눈으로 볼 수 있는 대상인 모양이나 빛깔. ②성경(聲境). 귀로 들을 수 있는 대상인 소리. ③향경(香境). 코로 맡을 수 있는 대상인 향기. ④미경(味境). 혀로 느낄 수 있는 대상인 맛. ⑤촉경(觸境). 몸으로 느낄 수 있는 대상인 추위나 촉감 등. ⑥법경(法境). 의식 내용. 관념.

*의단독로(疑團獨露 의심할 의/덩어리 단/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공안,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가 홀로[獨] 드러나다[露].

*인아상(人我相) ; 나와 남을 갈라놓고, 나를 소중히 여기고 남을 경시하는 마음.

*자재인(自在人) ; ①부처님을 말한다. 부처님은 8대자재(八大自在 : 8종의 부처님의 신비한 힘)의 덕을 갖추고 있으므로 이 이름이 붙었다. ②아미타불.

*잡드리 ; ‘잡도리’의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그 대책. ③아주 요란스럽게 닦달하거나(단단히 윽박질러서 혼을 내다) 족침(견디지 못하도록 몹시 급하게 몰아치다).

*별념(別念) ; '딴 생각' 『몽산법어』 (용화선원刊) 박산무이선사선경어(博山無異禪師禪警語)에서.

做工夫호대  着不得一絲毫別念이니  行住坐臥에  單單只提起本叅話頭하야  發起疑情하야 憤然要討箇下落이니라.  若有絲毫別念하면  古所謂雜毒이  入心하야  傷乎慧命이라하니  學者는 不可不謹이니라

 

공부를 짓되 털끝만치라도 딴 생각[別念]을 두지 말지니, 가고 멈추고 앉고 누우매 다못 본참화두(本叅話頭)만을 들어서 의정을 일으켜 분연히 끝장 보기를 요구할 것이니라. 만약 털끝만치라도 딴 생각[別念]이 있으면 고인이 말한 바 「잡독(雜毒)이 마음에 들어감에 혜명(慧命)을 상한다」하니, 학자는 가히 삼가지 않을 수 없느니라.

 

余云別念은  非但世間法이라  除究心之外에  佛法中一切好事라도  悉名別念이니라.  又豈但佛法中事리요  於心體上에  取之捨之  執之化之가  悉別念矣니라

 

내가 말한 딴 생각[別念]은 비단 세간법만 아니라 마음을 궁구하는 일 외에는, 불법(佛法)중 온갖 좋은 일이라도 다 딴 생각[別念]이라 이름하느니라. 또 어찌 다만 불법중 일뿐이리오?  심체상(心體上)에 취하거나[取], 버리거나[捨], 집착하거나[執], 변화하는[化] 것이 모두 다 딴 생각[別念]이니라. (p164-166) (가로판 p157~158)

 

做工夫호대  不得將心待悟어다.  如人이  行路에  住在路上하야  待到家하면  終不到家니 只須行하야사  到家오  若將心待悟하면  終不悟니  只須逼拶令悟요  非待悟也니라

 

공부를 짓되 마음을 가져 깨닫기를 기다리지 말라.  마치 사람이 길을 가매 길에 멈춰 있으면서 집에 이르기를 기다리면 마침내 집에 이르지 못하나니, 다만 모름지기 걸어가야 집에 도달하는 것과 같아서, 만약 마음을 가져 깨닫기를 기다리면 마침내 깨닫지 못하니, 다만 모름지기 애써서 깨닫게 할 뿐이요, 깨닫기를 기다릴 것이 아니니라. (p163-164) (가로판 p156~157)

 

做工夫호대  不得求人說破이니  若說破라도  終是別人底요,  與自己로  沒相干이니라.  如人이  問路到長安에  但可要其指路언정  不可更問長安事니  彼一一說明長安事라도  終是彼見底요,  非問路者의  親見也이니라.  若不力行하고  便求人說破도  亦復如是하니라

 

공부를 짓되 다른 사람이 설파(說破)하여 주기를 구하지 말지니, 만약 설파(說破)하여 주더라도 마침내 그것은 남의 것이요, 자기와는 상관이 없나니라.

마치 사람이 장안으로 가는 길을 물으매 다만 그 길만 가리켜 주기를 요구할지언정 다시 장안의 일은 묻지 말지니, 저 사람이 낱낱이 장안 일을 설명할지라도 종시(終是) 그가 본 것이요, 길 묻는 사람이 친히 본 것은 아니니라. 만약 힘써 수행하지 않고 남이 설파하여 주기를 구하는 것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p180-181) (가로판 p171~172)

*염라대왕(閻羅大王) : 염마왕(閻魔王). 염라왕(閻羅王). 명후(冥侯). 사후세계의 지배자로, 망자(亡者 죽은 사람)를 재판하는 자. 죽어서 지옥에 떨어진 인간의 생전에 행한 선악(善惡)을 심판하여 벌은 주는 왕.

*요달(了達 마칠·완전히·밝을 료/통달할·이룰 달) ; ①통달해 마침. 완전히 통달함. 밝게 통달함. ②깨달음에 도달하다.

*생사윤회(生死輪廻 날 생/죽을 사/바퀴 윤/빙빙돌 회) : 사람이 어리석음(無明)으로 인한 번뇌와 업에 의하여 삼계육도(三界六道)에서 났다가(生) 죽고(死) 났다가 죽는 것이 바퀴(輪)가 돌듯이(廻) 반복함. 육도윤회(六途輪廻).

*역대조사(歷代祖師) ; 석가세존(釋迦世尊)으로부터 불법(佛法)을 받아 계승해 온 대대의 조사(祖師).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를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것.

*제도(濟度 건널 제/건널 도) ; 중생을 미혹의 큰 바다(생사고해 生死苦海)로부터 구하여[濟], 생사없는 피안(彼岸, 깨달음의 언덕)에 이르게 하는[度] 것. 제(濟)는 구제(救濟). 도(度)는 도탈(度脫).

*구제(救濟 건질 구/건널 제)—어려움이나 위험에 빠진 사람을 돕거나 구하여 줌.

*도탈(度脫 건널 도/벗을 탈)—속세의 속박이나 번뇌 등에서 벗어나 근심이 없는 편안한 경지에 도달함.

*무상(無常) ; 모든 현상은 계속하여 나고 없어지고 변하여 그대로인 것이 없음. 온갖 것들이 변해가며 조금도 머물러 있지 않는 것. 변해감. 덧없음. 영원성이 없는 것.

세상의 모든 사물이나 현상들이 무수한 원인(因)과 조건(緣)의 상호 관계를 통하여 형성된 것으로서 그 자체 독립적인 것은 하나도 없고, 인연(因緣)이 다하면 소멸되어 항상함[常]이 없다[無].

 

Posted by 닥공닥정
정진(精進) 수행2019. 3. 24. 10:40

 
 
§(531) (게송)본참공안몰심사~ / 내비두는 것이 망상 다스리는 법 / 일체 경계가 법문 / 한 생각 단속하는 곳은 언제나 정법시대 / (게송)한산정상월륜고~ / 세 천사, 노·병·사(老·病·死).
 
불법(佛法)이라 하는 것이 부처님과 조사와 모든 보살들이 우리를 위해서 그 자신들은 뼈아픈 육체적, 정신적 고통 고행을 극복하면서 터득한 길을 우리에게 남겨 주셨다 그말이여. 우리는 남겨 주신 그 법(法)에 의해서 그 법을 진실로 믿고 열심히만 하면 되는 것이다.
 
이 몸뚱이는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四大)로 뭉쳐진 똥 주머니요, 오줌 주머니요, 피 주머니요, 고름 주머니여. 해부를 해서 보면 피와 오줌과 고름과 똥으로 가득차 있어. 그러나 그 속에 불생불멸한 영원한 보배가 들어 있다. 우리는 그것을 확실히 믿어야 하는 것이여.
 
**송담스님(No.531)—94년 5월 첫째일요법회 (용531)

(1/3) 약 19분.

(2/3) 약 16분.

(3/3) 약 15분.

 

(1/3)----------------
 
본참공안몰심사(本參公案沒心思)하면  철벽은산백부지(鐵壁銀山百不知)니라
나무~아미타불~
의래의거의무간(疑來疑去疑無間)하면  고목개화만고지(枯木開花滿故枝)니라.
나무~아미타불~
 
본참공안(本參公案)에 몰심사(沒心思)하면,
무(無)자 화두를 하는 사람은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판치생모 화두를 하는 분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이뭣고 화두를 하신 분은 「이뭣고?」
이렇게 해서 자기의 본참공안에 철두철미 의심(疑心)을, 의관(疑觀)을 해서 완전히 온갖 마음 생각하는 바가 아주 끊어져.
 
철벽은산백부지(鐵壁銀山百不知)여. 그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해 가지고 타성(打成)이 일편(一片) 되어가는 것이 일체 사량(思量)과 복탁(卜度), 따지고 분석하고 적용하고 더듬고 하는 그런 것이 없는 그 상태가 은산철벽(銀山鐵壁)이여.
깨뜨리고 나갈래야 나갈수록 콱! 맥히기를 은산철벽처럼 되어 가지고 다맛 알 수 없는 의단뿐이다 그말이거든.
 
의래의거의무간(疑來疑去疑無間)이여.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일체처(一切處) 일체시(一切時)에 오직 자기의 본참공안에 대한 의심으로 가고 의심해 와. 그래 가지고 의심이 끊어짐이 없어.
더이상 간절할 수가 없고, 더이상 의심이 커질 수가 없어. 그렇게 해서 의단이 독로해서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면 어느 찰나에 어떠한 경우에 의단을 타파(打破)하게 돼.
 
의단을 타파하면 마치 고목나무가, 봄이 돌아오면 죽어 있는 것처럼 보이던 나무에 꽃이 만발해서 가지마다 그 아름다운 꽃이 가득하듯이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해서 자기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을 깨닫게 된다 이거거든.
 
 
오늘은 갑술년 5 1 첫째 일요일날인데 방금 우리는 전강 조실스님께서 계축년에 설하신 법문을 경청을 했습니다. 법문 내용이 순전히 활구참선을  가는데 우리의 마음가짐, 공부해 나가는데 있어서 구체적인방법을 설해 주셨습니다.
요새 참선을 할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고  열심히 할려고 하는  많지마는 그 방법이 바르지 못하면 애만 썼을 뿐이지 바른 깨달음을 얻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선지식(善知識)으로부터 받은 자기의 본참화두는 사량분별(思量分別)로 따져서 아는 것이 아니고, 의리(義理)로 따져서 아는 것도 아니여. 다맛 꽉 혀서   없는 의심으로, 의관(疑觀)으로 참구(參究)를 하는 것이여.
'참구한다' 그러니까, 자기가 알고 있는 온갖 불교의 교리라든지 이론이라든지 철학적으로 이것을 분석하고 따지고 더듬어 들어가서 '아! 이것이로구나'하고 이렇게 알아 들어가는 것이 아니여.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어째서'라고 하는 데에 의심의 초점을 거기다가 두어야 .
「어째서?」 「어째서 () 했는고?  갈수록  막혀서  수가 없어야지,  가면서 차츰차츰 더듬어 들어갈 것이 있고, 알아 들어가는 것이 있고, '아하! 이것이로구나' 이렇게 아는 것이 아니여, 참선(參禪)이라 하는 것은.
 
온갖 경전을  해석할  알고,  외우고 안다하더라도 참선해 나가는 데에는 그런 것이 도무지 소용이 없어. 그런 것을 가지고  화두를 참구하는 것이 아니여.
  버리고 오직   없는, ! 맥혀서   없는 의심으로 「어째서 () 했는고? 이렇게만  나가는 거여.
 
 
비불비심비시물(非佛非心非是物)이라  만로피대긱신산(謾勞皮袋喫辛酸)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현전경색청여세(現前境色淸如洗)하야  일일위군세지진(一一爲君細指陳)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비불비심비시물(非佛非心非是物)이여. 이것이 부처라고 해도 아니요, 마음이라 해도 아니요, 어떤 물건이라 해도 아니다 그말이여.
만로피대긱신산(謾勞皮袋喫辛酸)이여. 쓸데없이 이 가죽푸대, 육체를 괴롭혀. 그래 가지고 그 쓰라린 고생만을 한다 그말이여.
 
참선을 하기 위해서 단식을 한다, 생식을 한다, 묵언을 한다, 장좌불와(長坐不臥)를 한다, 오후불식(午後不食)을 하고 일종(一種)을 한다, 산중에 들어가서 벽곡(辟穀)을 한다. 심지어는 저 인도나 네팔이나 태국 같은 데 그런 데에 가서 온갖 고생을 하면서 정진을 할려고 애쓰는 분도 있다 그말이여.
 
어떻게 했으면 부처님 6년 고행(苦行)해서 피골이 상접하시듯이 할 수 있는,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갖은 고통을 사서 하면서 바른 깨달음을 얻을까?
물론 목숨을 거기다 바치고 청춘을 바치고 인간으로서의 모든 욕락을 다 바치고서 오직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 온갖 고생을 사서 하는 그 신심은 충분히 훌륭한 것이고 찬양을 할만 하지만, 육체를 괴롭히고 갖은 그 육체를 괴롭히고 자기의 모든 자유로운 것을 제한을 하면서 그렇게 한다고 해서 깨달음을 빨리 얻은 것은 아니여.
 
정진을 하되, 어쨌든지 몸에 긴장을 풀고 단정하게 앉되 어깨에 힘을 빼고 목에 힘을 빼고 지극히 자연스러운 호흡을 하면서 알 수 없는 의심관(疑心觀)을 해 나가야지, 몸뚱이를 못살게 구는 데에다가 주력을 해서는 안 된다 이거거든.
 
현전경색(現前境色)이 청여세(淸如洗)여. 우리 눈앞에 나타나 있는 모든 경색(境色)—산, 물, 나무, 돌, 바람, 산천초목(山川草木) 두두물물(頭頭物物)이 씻은 듯이 깨끗하다 청청하다 그말이여.
 
요새 자연이 모다 오염이 되어서 공기 자체가 더럽고 물이 더러워지고 그래 가지고 옛날과 같지는 않지만 그 자체는 낱낱이 다 청정한 거여. 그 자체가 '더럽다, 깨끗하다' 그런 생각이 없는 거여.
우리가 사람이 들어서, 내가 들어서 더럽느니 더럽지 않느니 하고 거기다가 분별심을 내는 것이지, 그 자체는 더럽느니 깨끗하느니 그런 생각이 없어. 그래서 있는 그대로 그 자체는 깨끗한 거다 그말이여.
 
일일위군세지진(一一爲君細指陳)이여. 산이면 산, 물이면 물, 바위면 바위, 나무면 나무, 그 자체가 낱낱이 우리를 위해서 자상하게 법을 설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공부를 해 나가는댄 육체를 너무 지나치게 편하니 해 줄려고 그러고, 너무 잘 먹이고 잘 입히고 편안하게 해 줄라고 할 것도 없고, 너무 지나치게 육체를 달달 볶고 고통을 주고 그래서도 안 된다.
 
인연 따라서 수용하고, 잘 시간이 되면 너무 지나치게 잠을 많이 자도 안되지만 최소한도로 잘 만큼은 자 주어. 먹는 것도 그렇고, 자는 것도 그렇고, 입는 것도 그렇다 그말이여.
지나치게 호의호식(好衣好食), 호강하는 것도 수행자로서 맞지 않는 거고, 지나치게 너무 가혹하게 하는 것도 공부를 하는데 지장을 초래하는 원인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모든 것은 그 선방, 그 사찰의 형편 따라서 인연 따라서 수용을 하되 한 생각 일어날 때, 눈으로 어떠한 색상이 눈에 들어올 때, 귀에 어떠한 음성이 들어올 때, 코로 어떠한 향내가 들어올 때, 몸에 무엇이 부딪힐 때, 바람이 불고 새가 울고 물이 흐르고 자동차 소리가 나고, 아이들 떠드는 소리가 들릴 때,
나를 누가 칭찬하거나 나를 누가 비방하거나 일체처 일체시에 바로 그 크고 작은 모든 사건들과 내가 부딪쳤을 때, 바로 거기에서 두 번째 생각으로 옮겨 가지 말라 이거거든.
 
바로 그 찰나에 자기의 본참공안(本參公案)으로 돌아오라 이말이여. 「이뭣고?」
일체 시비 선악과 흥망성쇠에 내가 왜 거기에 말려 들어갈까 보냐. 「이뭣고?」
 
그렇게 해 나가다 보면 반드시 화두를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들어지게 돼. 알 수 없는 의단이 독로하게 될 때가 온다 그말이여.(처음~18분25초)
 
 
 
(2/3)----------------
 
처음에는 암만 망상을 안 할려고 해도 망상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아무리 화두를 간단없이 들려고 해도 1분도 안 가서 딴 생각[別念]이 들어오고 끊어지고, 그러지만 끊어지면 또 들고, 끊어지면 또 들고 망상이 일어나는 것은 내버려 둬 버려. 내버려 두는 것이 망상을 다스리는 법이여.
지나간 생각이 일어나거나 미래 생각이 일어나거나, 좋은 생각이 일어나거나 나쁜 생각이 일어나거나 그냥 일어난 그 찰나에 그냥 고대로 놔두어 버리고 자기 본참공안을 터억 거각을 해 나가. 「이뭣고?」
 
앉아서도 「이뭣고?」 서서도 「이뭣고?」 걸어가면서도 「이뭣고?」 밥을 숟가락으로 떠 넣으면서도 「이뭣고?」 씹으면서 「이뭣고?」 삼키면서 「이뭣고?」
그렇다고 해서 「이뭣고, 이뭣고」 자꾸 횟수를 따질 것이 없어.
 
한번 「이뭣고?」 했으면, 알 수 없는 의심이 있는 동안에는 거기다 덮치기로 자꾸 들을 필요가 없어. 들어있는 그 의심을 떠억 관(觀)해 나가는 거여. 의심, 의심으로 관해. 그 의심이 끊어지면 그때 다시 「이뭣고?」
 
밥을 계속 먹으면서도 그 의심이 항상 현전(現前)하도록 밥이 맛이 있건 없건, 국이 짜건 싱겁건, 반찬이 싱겁거나 짜거나 맵거나, 밥 넣고 저분으로 반찬을 입에 넣고 씹으면서 「이뭣고?」뿐인 거여, 그저.
그래서 밥을 먹되 한 알갱이 쌀도 씹은 바가 없고,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육근(六根)을 통해서 온갖 경계에 부딪치되 눈으로는 본 바가 없고, 귀로는 들은 바가 없어.
 
그래서 아침에 들었던 화두가 점심 먹을 때까지, 점심 먹을 때 들었던 화두가 저녁 먹을 때까지, 저녁에 잘려고 누워서 떠억 들었던 화두가 새벽에 눈뜨자마자 고대로 들어 있어. 이 타성일편(打成一片).
하루를 그렇게, 이틀 사흘 나흘 닷새 엿새 가다보면 의단이 툭 터지게 되는 거여.
 
빨리 깨닫기를 바라지도 말고, 그래서 이 활구참선 최상승법을 여지없이 믿고 정진해 나가는 사람에게는 산도 법문이요, 흐르는 물도 법문이요, 하늘에 떠 있는 구름도 법문이요, 부는 바람도 다 법문이요, 개 짖는 소리도 법문이요, 애들이 떠드는 소리도 다 법문(法門)인 거여.
일체 경계에 부딪혔을 때 바로 내가 화두를 드니까, 나로 하여금 본참화두를 들게 해 주니 그것이 법문이 아니고 무엇이냐 말이여.
 
이렇게 한철을 공부하고 두 철을 공부하고, 일 년을 공부하고 이태 삼년을 그렇게 하면 반드시 깨닫게 된다고 모든 선지식이 다 한결같이 보증을 하셨어.
 
 
백세광음여과극(百歲光陰如過隙)이라  하능구주재인간(何能久住在人間)이리요
나무~아미타불~
의수강건수근주(宜隨强健須勤做)하라   생사임시부자한(生死臨時不自閑)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백세광음(百歲光陰)이 여과극(如過隙)이여. 인간이 오래 살아봤자 백년 미만인데, 그 백년 미만의 한평생이라는 것이 조그마한 틈 사이로 말 지나간 것을 보는 거와 같애. 창문 틈으로 말이 달려가는 것을 보면, 잠깐 지나간다 그말이여.
하능구주재인간(何能久住在人間)이요. 어찌 능히 인간에 오래오래 머물 수가 있느냐?
정말 젊었을 때 어렸을 때가 엊그제 같은데 어떻게 살아왔는지 벌써 육십이요 벌써 칠십이다 그말이여.
 
의수강건수근주(宜隨强健須勤做)하라. 마땅히 이만큼 건강할 때 모름지기 부지런히 정진을 해라 그거거든.
생사임시부자한(生死臨時不自閑)이라. 아직도 살 날이 넉넉하다고 믿고 그럭저럭 지내다가는 금방 죽음이 닥쳐오면은 그때 가서 늙고, 병들고, 죽음이 가까 오면 '아! 내가 젊었을 때 왜 그렇게 정진을 좀 열심히 안 했던고?'
 
그때 가서사 애써서 할려고 하면 여기저기 아프고, 머리 아프고, 소화가 안되고, 가슴이 아프고, 허리가 아프고, 다리가 아프고 마음대로 안 돼. 그래서 지금 이만큼 건강할 때 정말 열심히 정진을 하시라 이거거든.
이게 다 고인(古人), 고조사(古祖師)들이 다 겪어 본 나머지 우리에게 게송으로써 설해 주신 법문이다 이겁니다.
 
불법(佛法)이라 하는 것이 부처님과 조사와 모든 보살들이 우리를 위해서 그 자신들은 뼈아픈 육체적, 정신적 고통 고행을 극복하면서 터득한 길을 우리에게 남겨 주셨다 그말이여. 우리는 남겨 주신 그 법(法)에 의해서 그 법을 진실로 믿고 열심히만 하면 되는 것이다.
 
지금은 거성시요(去聖時遙)해서, 부처님 열반하신 지가 벌써 삼천 년이 되어서 성현이 가신 때가 멀다 그말이여. 그러니 지금은 언필칭 '말세(末世)'라, 말세가 되어서 투쟁견고(鬪諍堅固)의 시대가 되었다.
정법시대(正法時代)는 모두가 다 언하(言下)에 모다 대오(大悟)를 한 도인들이 많이 나오고, 상법시대(像法時代)에는 절을 짓는다, 탑을 세운다, 그러한 것으로써 불사(佛事)를 삼았고, 말세에는 투쟁 싸움으로써 일을 삼는다. 그런 말도 있지만.
 
그런 시간에 관계해서 정법 · 상법 · 말법이 있다고 보지 않는 시각도 있다[佛法流行不關時] 그말이여.
즉심변시기성쇠(卽心便是豈盛衰)리요. 곧 마음이 바로 이놈이라. 어찌 성쇠(盛衰)가 있을까 보냐.
 
비록 석가모니 부처님이 열반하신 지 삼천 년이 되었다 하더라도 우리 낱낱이 사대오온(四大五蘊), 이 몸뚱이 속에 있는 소소영령(昭昭靈靈)한 한 물건이 바로 한 생각을 돌이켜서 「이뭣고?」 할 때에는 거기에 무슨 정법 상법 말법이 있느냐 그말이여. 그 자리는 생사가 없는 곳이요, 흥망성쇠가 없는 곳이요.
 
한 생각 돌이켜서 우리 본참공안을 드는 곳에는 말법이 아니여.
한 생각 돌이켜서 본참공안을 거각(擧却)을 해서 그렇게 해서 의단이 독로하도록, 타성일편이 되도록 잡드리해 나가는 곳에는 말세 따질 것이 없다 그말이여.
 
아무리 총무원에서 사건이 일어나고 도처에서 싸움이 일어나고 세계 도처에서 싸움이 일어난다 하더라도 정법을 믿고 한 생각 단속하는 곳에는 말세가 없어. 언제나 정법시대여.
조제화락진소식(鳥啼花落眞消息), 새가 울고 꽃이 피었다 지는 바로 거기에 참소식이 있는 것이다 그말이여. 정법을 믿고 정진한 사람에게만 생사 속에 생사가 없는 도리가 있는 것을 믿을뿐이여.
 
지자희이(只自熙怡)언정 설향수(說向誰)오. 다못 스스로 기뻐하고 즐길지언정 누구를 향해서 이 소식을 설할까 보냐.
우리는 이 시대에 태어난 업(業)을 같이한 도반(道伴)들입니다. 나라가 여러 가지로 어려운 일을 거듭거듭 만나고 세계 도처에서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종교적으로 온갖 시비와 분쟁이 일어난다 하더라도 정법을 믿고 최상승법을 실천해 나간다면 생사 속에 영원을 우리는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 몸뚱이는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四大)로 뭉쳐진 똥 주머니요, 오줌 주머니요, 피 주머니요, 고름 주머니여. 해부를 해서 보면 피와 오줌과 고름과 똥으로 가득차 있어.
그러나 그 속에 불생불멸한 영원한 보배가 들어 있다. 우리는 그것을 확실히 믿어야 하는 것이여.
 
우리는 죽으면 땅에 묻으면 흙이 되어 버리고, 화장을 하면 재가 되고 그렇지만 그 몸뚱이 속에 불에 넣어도 타지 않고 물에 넣어도 젖지 않고 하는 그러한 값없는 보배가 있다 이거거든.(18분26초~34분2초)
 
 
 
(3/3)----------------
 
한산정상월륜고(寒山頂上月輪孤)한디  조견청공일물무(照見晴空一物無)로구나
나무~아미타불~
가귀천연무가보(可貴天然無價寶)가  매재오음익신구(埋在五陰溺身軀)로구나
나무~아미타불~
 
한산(寒山) 꼭대기에 밝은 달이 휘영청 외로이 떠 있는데,
조견청공일물무(照見晴空一物無)라. 그 맑은 갠 하늘을 비추어 보니 한 물건도 없어.
 
가귀천연무가보(可貴天然無價寶)여, 정말 귀하고 귀하구나, 이 천연의 값없는 보배가.
매재오음익신구(埋在五陰溺身軀)다. 사대(四大) 오온(五蘊)으로 뭉쳐진 이 몸뚱이 속에 묻혀 있구나.
 
한산시(寒山詩)에 나오는 게송(偈頌)입니다.
 
'인간이 귀하다'고 하는 것은 이 몸뚱이 속에 있는 값없는 보배가 있어서 그것을 개발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그것을 개발을 함으로써 생사 속에 생사를 해탈하는 거여.
그것을 개발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이 바로 수행자고, 그러기 때문에 수행자는 오욕락(五欲樂), 온통 세상에 모든 사람들이 오욕락이 인간의 목표이고 목적인 것처럼 그놈을 서로 더 많이 누릴려고 싸우고 일생 동안을 그 오욕락을 쟁취하는데 다 바친다 그말이여.
 
다행히 우리 불자(佛子)는, 법보가족은 숙세(宿世)에 깊은 법에 인연이 있어서 이 최상승법을 믿고 활구참선을 하게 되었다.
이 몸뚱이 속에 있는 돈을 주고도 살 수 없고, 영원히 쓰고도 남고 할 그러한 값없는 보배가 있는 것을 믿기 때문에 가난하게 살아도 불행하지 않고, 부자로 살다가 사업이 여의치 못하다고 해서 그것 때문에 불행해질 수도 없고, 벼슬이나 관작(官爵) 하다가 그 인연이 다하면 그만두고 나온다 하더라도 그까짓 것 아무 미련이 없어.
 
인간의 흥망성쇠는 춘하추동과 같아서 봄이 오면 봄에 맞도록, 여름이 오면 여름에 맞도록, 가을이 오면 가을에 맞도록 살아가는 거여. 겨울이 와서 눈이 내리고 산천이 다 꽁꽁 어는 시기가 오면 또 겨울에 맞춰서 살아가는 거여.
부귀영화도 마찬가지여. 자기가 주어진 인연대로 부자는 부자에 맞춰서 살고, 가난하면 가난한 데에 맞춰서 살고.
 
흥망성쇠와 춘하추동이라는 게 면할 수가 없어. 그러한 상황에 내가 적응을 하고 거기에 얽매이지 않고 거기에 맞춰서 살아가되, 자기의 본참공안을 철저히 단속해 나가면 어떠한 고통이라도 그런대로 다 이겨 나갈 수가 있어.
그래서 그 사람은 보통 다른 사람과 같이 생겼지만 인생을 살아가는 내용이 다른 거여. 남처럼 그렇게 고급스러운 옷을 안 입고 수수하게 입었어도 하나도 창피할 것도 없고, 형편이 넉넉해서 잘산다 해서 남을 업신여기는 법도 없어.
 
부자굴부자고(不自屈不自高)야.
수행자의 마음가짐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목에다 힘을 주고 아만(我慢)을 부리고 남을 업신여기고 그런 법도 없고, 자기가 어떠한 상황에 처해 있다 하더라도 비굴하게 굴(屈)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모든 것은 형편 따라서 살아가는 거여.
 
 
『기세경(起世經)』에 '세 사람의 천사가 이 세간(世間)에 와 있다. 집집마다 그 천사가 와서 계시다'
이른바 세 천사라 하는 것은 노(老), 병(病), 사(死), 병들어서 늙어서 죽는 것이 그것이 우리에게 와 있는 천사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중생이 악업(惡業)을 지으면 죽은 뒤에 삼악도(三惡途)에 떨어지는데,
염라왕(閻羅王)이 그것을 보고 불쌍해서 가책(苛責)을, 꾸짖으시기를 '네가 옛날에 인간 세상에 있을 때 세 천사를 보았을 텐데 어찌 그 천사를 푸대접을 했느냐? 천사가 너희 집에 그렇게 갔는데도 그 천사를 못 본 체했느냐? 그 천사라 하는 것이 바로 네가 늙었고, 병들고, 죽었을 때, 그 노(老) · 병(病) · 사(死)의 현상이 바로 너에게 가신 천사니라'
 
그 천사가 일부러 찾아갔거늘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그럭저럭 지냈어. 다른 사람 집에 다른 사람한테 천사가 가서 늙어서 병들어 죽은 것만 그렇지, 자기에게 천사가 올 줄은 모르고 있었다.
그래 가지고 몸으로 입으로 마음으로 모든 오욕락 속에 빠져가지고 그것을 즐기느라고 천사가 일부러 와 주신 뜻을 망각해 버렸다.
 
여러분 가정에, 또 여러분 한 분 한 분에게도 이 천사가 이미 와 계실 것이고,
'아직은 나는 병도 없고 건강하니까 천사가 아직 안 왔다. 그러니까 마음껏 즐기고 마음껏 먹고, 하고 싶은 것 좀 해 봐야겠다' 그렇게 생각하실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천사는 미리 전화나 통고를 하지 않고 돌연히 찾아오는 것입니다. 찾아왔으되 왔다는 말도 안 하고 가만히 계시거든.
 
천사가 간으로 오기도 하고, 콩팥으로 오기도 하고, 신장으로 오기도 하고, 머리로 오기도 하고, 배로 오기도 하고, 팔다리에 오기도 한다.
와서는 가만히 있어. 나중에 조금씩 조금씩 나타나는데, '내가 천사'라는 말은 안 하거든.
 
속이 엷은 사람이 조금 재산이 생기면은 그것을 남에게 보이고 싶어하고, 조금 무슨 힘이 있으면 남 앞에 그것을 과시하고 싶어하고, 조금 무슨 권리가 있으면 그것을 목에다 힘을 주고 그러지, 진짜 큰 재산, 큰 권리, 큰 학식을 가진 사람은 아무 구태여 남이 알아주기를 바라지도 않고 밖에다 과시할려고 하는 법이 아니여.
 
그러니 여러분은 기세경에 있는 이 세 천사는 정말 나로 하여금 깨달음을 얻게 해 주기 위해서—이 육체는 무상한 것이다. 믿을 수가 없는 것이다. 태어날 때부터 죽을 날을 받아 놓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믿고 어쨌든지 천사가 이미 왔더라도 그 천사를 미워하기보다는 오히려 거기서 지혜의 눈을 뜨고 무상(無常)을 깨닫고 「이뭣고?」를 더 열심히 해서 생사해탈을 하도록 정말 알뜰하게 정진을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참선을 하신 분에게 부탁을 드릴 것은 열심히 정진을 하다 보면 자기 나름대로 어떠한 소견(所見)이 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구경(究竟)의 깨달음이 아니면 언제라도 그러한 소견을 버려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조사(祖師)와 같은, 부처님과 같은 구경의 깨달음이 아니면 정진을 하다 조그만한 지견(知見)이 나고 소견이 났다 하더라도 그것이 구경의 깨달음이 아니면 스스로 그것을 뿌리쳐 버려 버리고 꽉 본참공안을 잡드리해 나가는 그러한 정진을 해야 해.
 
하다가 누구라도 무엇이 알아지기도 하고, 능엄경 53변마장(辨魔障)에 보면 온갖 경계가 나타날 수가 있어.
설사 그런 경계가 아니라도 그건 다 마경(魔境)이지만, 그런 경계가 아니라도 무슨 경을 보면 옛날에는 무슨 뜻인지 몰랐었는데 환히 짐작이 가고 또 공안을 보면 옛날에는 잘 몰랐었는데 자기 나름대로 수긍이 가고, 가슴이 답답했었는데 후련하니 자기 나름대로 깨달은 것같이 느껴지는 경우도 있다 그말이여.
 
그러나 정말 실참실오(實參實悟), 실다웁게 정진을 해서 실다운 깨달음을 얻어 불조(佛祖)와 같은 경지가 아니면 어떠한 소견 지견이라도 스스로 부인을 해 버리고 구경의 깨달음을 얻을 때까지는 정말 알뜰하게 정진을 해야 할 그러한 지조가 수행자에게는 있어야 하는 것이여.(34분3초~49분18초)(끝)

 

Posted by 닥공닥정
정진(精進) 수행2018. 10. 21. 18:10

§(427) (게송)권군수립장부지~ / 생사호흡지간 / 내가 깨달을 수가 있겠습니까? / 우리는 부처님과 도반 /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불보살 화현.

 

**송담스님(N0.427)—90년 10월 첫째일요법회(90.10.07) (용427)

 

(1) 약 16분.

(2) 약 6분.

 

(1)------------------

 

권군수립장부지(勸君須立丈夫志)하고  안리막착황금설(眼裏莫着黃金屑)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인생수시구장생(人生誰是久長生)고  가련부명재호흡(可憐浮命在呼吸)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권군수립장부지(勸君須立丈夫志), 여러분께 권고하느니 모름지기 장부(丈夫)의 뜻을 세워.

 

장부(丈夫)의 뜻이 무엇인가?

「나도 부처님처럼 역대조사(歷代祖師)처럼 결정코 확철대오(廓徹大悟) 할 수가 있다. 원래 우리 자신도 부처님이었고, 현재도 우리 안에는 비로자나 법신불(毘盧遮那 法身佛)이 우리 몸을 주재하고 계시기 때문에 바른 방법으로 열심히만 닦으면 반드시 자성불(自性佛)을 깨달을 수 있다고 하는.

나이가 많거나 적거나, 남자거나 여자거나, 학식이 있거나 없거나, 빈부귀천도 따질 것이 없고, 머리가 좋고 나쁜 것도 따질 것이 없고, 나도 깨달을 수 있다고 믿고 바른 법에 의해서 도를 닦아 가는 사람」이면 그 사람은 장부여.

 

그러니 그 장부의, 대장부의 뜻을 확고하게 세워서 안리막착황금설(眼裏莫着黃金屑)이다. 눈 속에 황금 가루를 넣지 말아라.

 

무엇이 황금 가루인가?

황금이라 하면은 이 세상에 제일 좋은 것이고, 황금만 많이 있으면은 이 세상에 무엇이 부러울 것이 없이 하고 싶은 대로 다 할 수 있다고 모다 생각을 합니다마는, 그렇게 황금 가루가 다 보물에 칠보(七寶)에 하나에 들어가고 황금 덩어리를 벌기 위해 온갖 참 아주 이 일평생을 바치고 물불을 가리지 아니하고 폐침망찬(廢寢忘餐)하고 모다 이 고생들을 하는데,

아무리 황금 가루가 칠보라 하지만 그 황금 가루를 눈에다 집어넣어서는 안 된다 그말이여.

 

우리 도학자(道學者)에 있어서 황금 가루는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부처님의 경전에 있는 말씀, 조사어록(祖師語錄)에 있는 말씀, 자기 나름대로 3년, 5년, 10년 닦아서 자기 나름대로 어떠한 반딧불만한 소견(所見) 난 것, 그런 것들이 아무리 애를 써서 자기 나름대로 어떤 한 소견이 났다 하더라도 그것이 불조(佛祖)의 경지가 아니면 그것을 가지고 얻었다는 생각을 딱 가지고 있으면 그것이 바로 황금 가루를 눈에다 집어넣고 있는 거여.

 

여지없이 버려 버려야지 그걸 짊어지고 자기 살림을 챙기고 있으면 더이상 공부가 나아가지를 않거든. 그러니 깨끗이 놓아버리고 항상 백지 상태로 돌아가야 해.

 

인생수시구장생(人生誰是久長生)인고, 인생이 이 세상에 태어나는 모든 인간이 누가 죽지 않고 천년만년 사는 사람이 누가 있냐 그말이여.

가련부명재호흡(可憐浮命在呼吸)이다. 참 가련하구나! 이 뜬 목숨이 호흡지간에 있구나.

 

뉴스에, 날이면 날마다 뉴스에 이래 죽고 저리 죽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어 갑니까. 60년, 70년 내지 8, 90세 살다가 가도 죽을 때는 마찬가진데, 한참 피어나는 고등학생, 대학생 그 어렵게 공부하고 세속에 나가서 겨우 어떻게 좀 살아 볼라고 하다가 교통사고로 죽고, 이리 죽고 저리 죽고.

지금 우리 이렇게 살아있지마는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릅니다. 강도 절도, 유괴범 요새는 아주 학생들이 또 온갖 범죄를 저지르는 그런 청소년 학생 불량배들, 거침없이 사람 목숨을 죽여 가는데, 전화 걸다가 죽고, 전화 기다리다가 죽고.

 

'죽을 사(死)'자를 이마에다 써 붙이고 참선을 하라고 이 『몽산법어(蒙山法語)』에 보면 그런 말씀이 있는데, 일부러 써서 붙일 것도 없고, 아주 관을 짜서 짊어지고 댕겨야 할 판이여.

언제 어떻게 죽을지 모르니까 관을 짜 가지고 댕겨야 거기다 담아야 하게 생겼으니, 이 세상이 얼마나 참 그렇지 않아도 허망한 것인데 나날이 이렇게 사람의 목숨이 하루살이만도 못하게 되어간 것이 여실히 증명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 자리에 모이신 사부대중은 정말 '생사(生死)가 호흡지간(呼吸之間)에 있다'고 하는 것을 철저하게 믿고 정진을 해 주시기 바랍니다.

 

부처님께서도 제자들을 보고, '생사가 어디에 있느냐? 각기 자기 나름대로 일러 보라'하니까,

한 제자는 '생사는 하루 동안에도 있습니다. 오늘 하루 언제 죽을는지 모릅니다'

'너는 공부하기 어렵겠구나'

 

또 그다음 한 제자는 '생사는 일향간(一餉間)에 있습니다. 밥 한 끼 먹는 사이에도 있습니다'

'너도 공부하기 틀렸다'

 

또 다른 제자는 '호흡지간에 있습니다. 숨 한번 내쉬었다가 들어마시지 못하면 바로 내생입니다'

그러니까 '되었다. 너는 공부하겠다'

이러한 부처님께서 하신 이런 말씀이 있었습니다.

 

정말 생사는 호흡지간에 있다면 관을 짜 가지고 댕긴다고 해서 해결될 일도 아니고, 자가용 승용차에다가 관을 넣고 관속에 누워서 차를 타고 댕긴다 하더라도 그런다고 해서 생사 문제가 해결될 일도 아닙니다. 과연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항상 화두(話頭)를 들어야 하는 거여. '이뭣고?'

화두만 챙기고 또 챙기고 해서, 들지 안 해도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도록 그래가지고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도록 잡드리를 한다면, 생사 속에서 생사에 즉(卽)해서 의단이 독로하다면 죽은들—사고가 나서 죽건, 병이 나서 죽건, 명이 다해서 죽건, 그까짓 거 죽음이 무슨 상관이 있느냐 그말이여.

정거장에서 죽거나, 차를 타고 가다 죽거나, 뭐 길에서 죽거나, 자기집에서 죽거나, 어디서 죽은들 무슨 상관이 있어. 그까짓 놈의 것, 언젠가는 죽을 건데.

 

그러기 때문에 이 활구참선(活句參禪)에 입각해서 항상 의단이 독로하도록 잡드리를 해 간다면 당장 지금부터 죽음에 대해서는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화두를 들지 아니하고 정진하지 아니한 사람은 아무리 보약을 먹고, 영양 있는 것을 먹고, 관을 짜 가지고 짊어지고 댕겨봤자 소용이 없습니다.

보약 먹는다고 안 죽습니까? 교통사고 난다고 그렇다고 해서 차 안 타고 집에만 있을 수도 없는 거고, 뭐 집에 있는다고 또 안 죽습니까? 평지낙상도 하는 거고, 밥 한 숟갈 잘못 먹고, 떡 한 조각 잘못 먹으면 체해서 저녁 잘 먹고 그러고 죽는 사람도 얼마든지 있고, 이래 죽고 저래 죽고 죽는 것은 마찬가진데.

 

그 죽는다 해봤자 몸뚱이, 그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四大)로 뭉쳐진 몸뚱이 가는 것이니까 신심(信心), 정법(正法)에 의지해서 정법을 믿고, 정법에 의지해서 도를 닦는다면, 생사 속에서 생사 없는 영원을 살아가는 길이고 그렇게 닦아 가는 사람은 언젠가는 확철대오 할 수밖에는 없는 거고.

확철대오 한다면은, 원래 생사는 없는 것으로 믿고 우리는 살고 있는데 뭐. 정법을 믿는 사람에게는 생사 속에서 영원을 살아가는 삶을 살아가기 때문에 사실은 말이 필요 없는 것입니다.

 

요새 더위도 갔고 아직 추위도 오지 안 했으니, 옛날에 학문을 하는 사람은 등화가친(燈火可親), 등불을 가까이 할 때다, 독서를 하기 좋은 때다 했습니다마는 우리는 펴 봤자 한 글자도 없는 경을 읽는 거여.

 

알 수가 없는 의단이 독로하도록만 잡드리한다면, 걸어가면서도 '이뭣고?' 차를 타면서도 '이뭣고?'

세수하고 양치질 하면서도 '이뭣고?' 누워서도 '이뭣고?' 앉아서도 '이뭣고?'

 

해 갈수록 뭣이 환히 알아지는 것이 아니라, 알 수 없는 의단이 독로하도록만 잡드리해.

 

인간에는 생노병사가 있고, 세상에는 흥망성쇠가 있고, 이 지구도 앞으로 백만 년 후에는 뭐 없어진다던가? 지구도 틀림없이 없어집니다. 이 세상에 생겨난 것은 결국은 언젠가는 없어지고 마는 것이니까.

우주 이 세계나 우리의 몸뚱이나 결국 없어지는 것인데, 그 없어진 것 가지고 그놈에 붙잡고 늘어져 봤자 아무 소용이 없는 거고.

 

언젠가는 없어질 줄 알았다면 그 속에서 영원을 살아가는 길을 우리는 발견을 했으니 그 길에 벗어부치고 대든다면 우리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내가 금생에 깨달을 수 있을 것인가, 없을 것인가? 확실히 깨달을 수 있겠습니까?'

뭣한 사람은 그것이 궁금해서 나한테 '확실히 깨달을 수 있다'고 한 말을 듣기를 원합니다.

 

'내가 깨달을 수가 있겠습니까? 깨달을 수 없다면 공연히 이 아까운 인생을 거기다 바치면 허송세월 할 것이고, 그러니 깨달을 수 있다면 내가 마음놓고 공부를 하겠습니다'

아! 거 대단히 대답하기가 어렵습니다.

 

나는 그 사람에게 뭐라고 대답하냐 하면은 '깨달을 수는 틀림없이 있는데, 앞으로 3년 후에 깨달을지, 10년 후에 깨달을지, 30년 후에 깨달을지, 마지막 숨 딱 질 때 깨달을지, 금생에는 못 깨닫고 내생에 깨달을지, 그것은 내가 알 수가 없으나,

그 언제 깨달을 것이냐 하는 것은 본인이 첫째, 과거에 어떻게 닦아 왔느냐 그것도 무시할 수가 없을 것이고 또 금생에 얼마 만큼 바른 법에 의해서 전력투구를 하느냐, 금생에 얼마만큼 여법(如法)하게 닦느냐 그것에 달려 있는 것이다' 이렇게 말을 해 주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언제 깨달을 것인가?' 자꾸 미리부터 그것에 신경쓰실 것은 전혀 없습니다. 그것 따질 시간이라도 화두를 들어야 그만큼 시간은 단축 된다 이것입니다.(30분15초~46분15초)

 

 

 

 

 

(2)------------------

 

올올무사대청산(兀兀無事對靑山)하니  안고사해천마공(眼高四海天魔拱)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세간시비도불관(世間是非都不管)하고  일여청류소명월(日與淸流掃明月)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올올무사대청산(兀兀無事對靑山). 오똑이 일 없이 청산을 대(對)하니,

안고사해천마공(眼高四海天魔拱)이다. 우리의 눈은 사해에 높아서, 사해(四海)는 천상천하(天上天下)거든. 사해에 높아서 천마(天魔), 하늘나라의 온 마구니가 다 팔짱을 끼고 물러서.

 

정법을 믿고 활구참선을 해 나가. 그걸 갖다가 올올무사대청산(兀兀無事對靑山)이라. 그러니 이 세상에 무엇이 두려울 것이 있으며, 뭣이 부러울 것이 있으며, 무슨 미련이 있느냐 그말이여.

그러니 그러한 장부의 기개를 가지고 나아가는데 정법을 닦아 가는 사람에게는 모든 천마(天魔) 외도(外道)가 손을 비비고 뒤로 물러설 수밖에는 없다.

 

세간시비(世間是非)를 도막관(都莫管)하고, 세간에 무엇이 옳고 그르다, 네가 옳다 내가 옳다, 흥망성쇠와 시비곡절, 다 불관(不管)해 버려. 불관(不管)해 버리고,

일여청류소명월(日與淸流掃明月)이다. 날마다 청정한 도반들과 더불어—우리는 모두가 다 부처님도 선배 도반이고, 조사도 우리의 선배 도반이고, 모든 불과(佛果) 성인들도 과거는 깨닫기 전에는 다 우리와 똑같은 범부(凡夫)였었어. 그러니 우리보다 먼저 깨달은 도반(道伴)들이여. 그런 청류(淸流)와 더불어 명월(明月)을 쓸자. 밝은 달을 쓸어.

 

우리의 진여불성(眞如佛性)은 밝은 달이여. 구름이 끼어서 어둡게 보일지언정 그 달 자체는 구름이 낄 때나 안 낄 때나 똑같은 거여.

우리의 자성불 진여불성은 미(迷)했을 때나, 우리가 범부로 있을 때나, 축생으로 있을 때나, 언제나 부처님의 경계인 거여, 그것은. 우리가 잠시 깜빡 미(迷)했을 뿐이니까.

그 밝은 달을 우리가 쓸어 봤자 무엇이 더 밝아질 것도 없고, 안 쓴다고 해서 더 어두울 것도 없는 거여 그 달 자체는.

 

그래서 우리는 불조(佛祖)와 우리의 모두가 다 넓은 의미에 있어서는 우리의 도반이여. 선후배 도반들이여, 다 동창생이다 그말이여.

 

그러니 바른 도반을 의지해야 우리는 게으름을 부릴라야 부릴 수가 없고, 사견(邪見)에 떨어질라야 떨어질 수가 없어.

이 법당(法堂)에 이렇게 불상(佛像)을 모신 것도 그러한 의미에서 불상을 모신 거여. 또 결제(結制)를 해서 우리가 모여서 이렇게 정진을 한 것도 그런 도반을 가까이 해서 도반과 더불어 공부를 하기 위해서 그런 것이다 그말이여.

 

또 넓은 의미에서 보면 가정에서 직장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 거리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 일생동안에 만났다 헤어졌다 내 마음에 든 사람, 마음에 안 든 사람, 미운 사람 예쁜 사람이 전부가 다 도반이여. 전부가 다 도반이요 전부가 다 불보살 화현(化現)이거든.

그렇게 믿고 그렇게 자기 눈에 비추어진다면 그야말로 정말 발심(發心)을 한 사람이고, 그렇게 발심을 해야 우리는 이 사바세계(娑婆世界)에 정말 사바세계가 우리가 가장 빨리 가장 훌륭하게 도(道)를 닦고 도를 성취할 수 있는 좋은 도량(道場)이 될 것입니다.(46분32초~52분47초)(끝)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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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권군수립장부지(勸君須立丈夫志) 안리막착황금설(眼裏莫着黃金屑)' ; 『태고화상어록(太古和尙語錄)』 (上) '示可禪人(가선인에게 보임)'

勸君須立丈夫志 此生了報大師恩 如今正法將欲墜 早續明燈度迷津 踏碎天下群邪綱 切須要見明眼人 眼裏莫着黃金屑 心田頓拔煩惱根 苦海常泛般若艇 二利功業日日新 丈夫功業只如是 如是之義誓不容易

 

그대는 모름지기 장부의 뜻을 세워 이 생에서 부처님[大師]의 은혜를 갚으시오. 지금에 바른 법이 끊어지려 하나니 빨리 등불[明燈 지혜]을 이어 미혹의 나루[迷津 삼계三界·육도六途]를 건너시오. 천하의 삿된 그물을 모두 찢어 버리고 부디 눈 밝은 사람[明眼人 明眼宗師, 선지식]을 찾아 보시오.

눈 속에는 황금 가루를 넣지 말고 마음밭[心田]의 번뇌의 뿌리를 다 뽑아서 고해(苦海)에 항상 반야의 배를 띄우면 자리이타(自利利他)의 공업(功業 功德業 선근공덕을 쌓는 일)이 날로 새로워질 것이오. 장부의 공업은 다만 이러하지만, 이 도리가 결코 쉬운 것이 아니오.

 

*(게송) '인생수시구장생(人生誰是久長生) 가련부명재호흡(可憐浮命在呼吸)' ; 『태고화상어록(太古和尙語錄)』 (上) '示祥禪人(상선인에게 보임)'

汝初依吾落髮時 雙親感歎便垂泣 父母恩愛重如山 放汝出家情何及 汝知如是父母恩 勤修精進如火急 汝求名利踈道行 便是無間黑業習

人生誰是久長生 可憐浮命在呼吸 是以於我本師尊 捨其王位出城邑 入山苦行示六年 蛛網於眉雀巢肩 蘆芽穿膝任從容 有甚毫氂利名顚 汝今依師學此行 雙親九族必生天 汝違師敎還作無髮俗 自累師親同墮無間獄

 

그대가 내게서 머리를 깎을 때에 양친은 슬퍼하며 눈물을 흘리었소. 부모의 은애(恩愛)는 산처럼 중하거니 그대를 놓아 보낼 때에 그 심정이 어떠했겠소. 그대는 이와 같은 부모의 은혜를 알았거든 부지런히 정진하고 닦되 불난 것처럼 급히 하시오. 그대가 명리(名利)를 구해 도를 소홀히 하면 그것은 무간지옥에 떨어질 악업(惡業)을 짓는 것이오.

 

인간으로서 그 누가 오래 천년만년 살 것인가. 가련하구나, 뜬 목숨이 호흡 사이에 있소. 그러므로 우리 본사 세존께서는 왕의 지위를 버리시고 왕궁을 떠나 산에 들어가 6년을 고행할 때에 거미는 눈썹에 거미줄을 쳤고 새는 어깨에 둥지를 틀었소. 갈대 싹이 무릎을 뚫었으나 조용했으니 털끝만큼인들 명리에 엎어졌으랴.

그대 지금 스승께 의지해 그런 행을 배우면 양친과 구족(九族)이 천상에 날 것이나, 그 스승의 가르침을 어기어 머리털 없는 속인[無髮俗]이 되면 스스로 스승과 부모를 안고 무간지옥에 함께 떨어질 것이오.

*장부(丈夫 어른·존칭 장/사내·일꾼 부) ; ①건장하고 씩씩한 사나이. ②대승의 근기를 가진 수행자. 불법의 수행이 원숙한 사람. 불성(佛性)의 이치를 깨달은 사람.

*역대조사(歷代祖師) ; 석가세존(釋迦世尊)으로부터 불법(佛法)을 받아 계승해 온 대대의 조사(祖師).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비로자나 법신불(毘盧遮那 法身佛) ; 비로자나(毘盧遮那)는 vairocana의 음사(音寫). 노사나(盧舍那)·자나(遮那) 등으로도 음사한다. 부처님의 몸에서 나오는 빛과 지혜의 빛이 세상을 두루 비추어 가득하다는 뜻에서 광명변조(光明遍照, 日), 허공과 같이 드넓은 세계에 거처하며 그 공덕과 지혜가 청정하다는 뜻에서 광박엄정(廣博嚴淨), 시공간적으로 어떤 한계도 없이 일체법과 모든 중생으로부터 떨어져 있지 않는다는 뜻에서 변일체처(遍一切處) 등이라 한다.

①진리 그 자체인 모든 곳에 편재(遍在)하는 법신으로서의 비로자나 부처님. ②대일여래(大日如來)와 같음.

*칠보(七寶) : [범] Sapta - ranta 일곱 가지의 보배。즉 금(金), 은(銀), 유리(琉璃), 파려(玻瓈), 또는 매괴(玫瑰), 차거(硨磲), 산호(珊瑚), 마노(瑪瑙) 등을 말한다.

*폐침망찬(廢寢忘餐 폐할 폐/잘 침/잊을 망/밥 찬) : 자는[寢] 것을 폐(廢)하고 밥 먹는[餐] 것을 잊으며[忘] 일에 심혈을 기울임.

*도학자(道學者) ; 도(道)를 닦는 사람. 수행자(修行者).

*도(道) ; ①깨달음. 산스크리트어 bodhi의 한역. 각(覺). 보리(菩提)라고 음사(音寫). ②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그 방법. ③무상(無上)의 불도(佛道). 궁극적인 진리. ④이치. 천지만물의 근원. 바른 규범.

*조사어록(祖師語錄) ; 선종(禪宗)에서 부처님의 바른 종지(宗旨)를 전하는 조사(禪師)나 귀의나 존경을 받을 만한 선승(禪僧)의 가르침, 문답, 언행을 모은 글, 또는 그 책.

*소견(所見) ; 어떤 일이나 사물을 살펴보고 가지게 되는 생각이나 의견.

*몽산법어(蒙山法語) ; 원(元)나라 「몽산 스님의 법어」로 참선 수행의 구체적인 길을 자상하게 제시한 법어집. 용화선원에서 번역 간행한 『몽산법어』가 있다.

*생사재호흡지간(生死在呼吸之間) ; ‘생사(生死)가 한 호흡지간(呼吸之間)에 있다.’ 생사라 하는 것은 멀리 잡을 것이 아니라 하루도 멀고, 한끼도 멀고, 한 호흡 사이에 있다고 하는 것. 그렇게 무상하고 기약할 수 없는 것이 우리의 생사인 것이다.

*호흡지간(呼吸之間) ; 한 번 내쉬고[呼] 들이쉬고[吸] 할 사이[間]라는 뜻으로, 아주 짧은 시간을 이르는 말.

[참고] 『사십이장경(四十二章經)』 ‘제38장’

佛問沙門 人命在幾間 對曰數曰間 佛言 子未知道 復問一沙門 人命在幾間 對曰飯食間 佛言 子未知道 復問一沙門 人命在幾間 對曰呼吸間 佛言 善哉子知道矣

 

부처님께서 사문에게 물으셨다. “사람의 목숨이 얼마 사이에 있는가?” 대답하기를 “며칠 사이에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너는 아직 도를 모르는구나”

다시 한 사문에게 물으셨다. “사람의 목숨이 얼마 사이에 있는가?” 대답하기를 “밥 먹을 사이에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너도 아직 도를 모르는구나”

다시 한 사문에게 물으셨다. “사람의 목숨이 얼마 사이에 있는가?” 대답하기를 “호흡 사이에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훌륭하다. 너는 도를 아는구나”

*일향간(一餉間 한 일/식경食頃·밥 한 끼 먹을 정도의 짧은 시간 향/사이 간) ; ‘한 밥 먹을 사이’로, ‘짧은 시간 동안’을 뜻한다.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 왔다.

*의단독로(疑團獨露 의심할 의/덩어리 단/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공안,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가 홀로[獨] 드러나다[露].

*타성일편(打成一片) : ‘쳐서 한 조각을 이룬다’. 참선할 때 화두를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화두가 들려서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일체처 일체시에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만이 독로(獨露)한 순수무잡(純粹無雜) 경계.

*잡드리 ; ‘잡도리’의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그 대책. ③아주 요란스럽게 닦달하거나(단단히 윽박질러서 혼을 내다) 족침(견디지 못하도록 몹시 급하게 몰아치다).

*즉해서(卽-- 곧·즉시 즉) ; 곧. 곧바로. 당장. 즉시(卽時 : 어떤 일이 행하여지는 바로 그때). 즉각(卽刻 : 일이 일어나는 그 순간 바로. 당장에 곧).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본참공안]를 받아서,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사대(四大) ; 사람의 몸을 이르는 말. 사람의 몸이 땅, 물, 불, 바람(地,水,火,風)의 네(四) 원소(大)로 이루어졌다고 보는 데에서 연유하였다.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우리는 펴 봤자 한 글자도 없는 경을 읽는 거여' ; '我有一卷經 不因紙墨成 展開無一字 常放大光明' '내게 한 권의 경(經)이 있으니 종이나 먹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펴보면 한 글자도 없건만 항상 큰 광명을 놓는구나' 서산대사의 『운수단가사(雲水壇謌詞)』 [부록(附錄)] '거량(擧揚)'에 있는 게송.

*뭣한 ; 뭣하다(무엇하다). 형용하기 어렵거나 그것을 표현할 말이 생각나지 않을 때 암시적으로 둘러서 쓰는 말. 주로 '거북하다' '곤란하다' '난처하다' '딱하다' '미안하다' '쑥쓰럽다' 따위의 느낌을 나타낼 때 쓴다.

*여법(如法 같을·같게 할·따를·좇을 여/ 부처님의 가르침·불도佛道 법) ; 부처님의 가르침에 맞음.

 

 

 

 

 

------------------(2)

 

*(게송) '올올무사대청산(兀兀無事對靑山) 안고사해천마공(眼高四海天魔拱)' ; 『태고화상어록(太古和尙語錄)』 (下) '무외(無畏)'

*(게송) '세간시비도불관(世間是非都不管) 일여청류소명월(日與淸流掃明月)' ; 『태고화상어록(太古和尙語錄)』 (下) '은계(隱溪)'

*천마(天魔) : 욕계(欲界)의 제육천(第六天) 곧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의 임금은 곧 마왕(魔王)이니, 그 이름이 파순(波旬)이다。그는 항상 불법을 파괴하려고 애쓰고 있다。그것은 불도를 공부하는 이가 있으면 그의 궁전이 흔들리기 때문이라고 한다。그러므로 누구나 불법을 공부하겠다는 생각을 낼 때에 곧 천마가 따르는 것이다。다시 말하면 한 생각 일어나는 그것이 곧 천마다.

*불과(佛果) ; 불인(佛因, 부처님이 되기 위한 인因. 즉 모든 선근공덕善根功德)의 대응어. 불도수행의 결과. 불위(佛位). 부처라고 하는 궁극의 결과. 결과로서 부처로 된 상태. 깨달음.

*범부(凡夫 무릇·보통 범/남편·사내 부) ; 번뇌(煩惱)에 얽매여 생사(生死)를 초월하지 못하는 사람. 이생(異生) 또는 이생범부(異生凡夫)라고도 한다.

*도반(道伴) ; 함께 불도(佛道)를 수행하는 벗. 불법(佛法)을 닦으면서 사귄 벗.

*진여불성(眞如佛性) ; 진여(眞如)인 불성(佛性).

*진여(眞如) ; ①차별을 떠난,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②궁극적인 진리. ③모든 분별과 대립이 소멸된 마음 상태. 깨달음의 지혜. 부처의 성품. ④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청정한 성품.

*불성(佛性) ; ①모든 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부처가 될 수 있는 소질·가능성. ②부처 그 자체. 깨달음 그 자체.

*미(迷) ; 미혹(迷惑), 미망(迷妄), 미집(迷執)의 준말. 진리에 어두움. 마음이 흐리고 혼란함. 깨달음(悟)의 반대. 무명번뇌로 인하여 사리를 밝게 깨치지 못하고 전도몽상(顚倒夢想, 바르게 사물을 볼 수 없는 미혹함)하는 것.

*사견(邪見) : ①잘못된 견해. 틀린 생각 ②인과(因果)의 이치를 부정하는 잘못된 생각 ③올바로 자신의 마음의 실상을 알수가 없는 것.

*화현(化現) ; 부처님이나 보살이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각(各) 중생의 소질에 따라 여러 가지로 모습을 바꾸어 이 세상에 나타나는 것. 화신(化身)이라고도 한다.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을 일으킴[發].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보리심은 모든 부처님이 부처님이 될 수 있었던 바탕이 되는 종자이고 청정한 법이 자라날 수 있는 좋은 밭이기 때문에 , 이 마음을 발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면 속히 위없는 보리를 증득한다.

*사바세계(娑婆世界) ;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이 세계. 현실의 세계. 인토(忍土) · 감인토(堪忍土) · 인계(忍界)라고 한역.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중생들을 교화하는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가 모두 사바세계이다.

*도량(道場) : ①붓다가 깨달음을 이룬 곳, 곧 붓다가야의 보리수(菩提樹) 아래를 말함. ②불도(佛道)를 닦는 일정한 구역. 수행하는 곳. ③사찰. -‘도장’으로 읽지 않고 습관상 ‘도량’으로 발음한다.

[참고] 송담스님(No.582)—1997년 성도재 법회(96.12.08)에서.

보살선방 또는 비구선방, 시민선방 또 후원, 사무실 각자 자기 있는 처소에서 자기 분(分) 따라서 모다 열심히 정진을 하고 계시고, 가정에서도 터억 화두를 들고 정진을 하면 가정이 바로 자기의 선방(禪房)입니다. 차를 타고 갈 때는 차 안이 바로 선방인 것이고, 화장실에 가면 화장실이 바로 선방인 것입니다.

일체처 일체시, 시간과 공간에 따질 것 없이 언제나 한 생각 돌이키면은 바로 그 자리가 활구참선 도량(道場)이여.(53분52초~54분41초)

 

Posted by 닥공닥정
정진(精進) 수행2018. 2. 15. 23:55
§(356) 정진을 시작하면 귀머거리, 벙어리가 되야 / 일념삼천 / 바른 스승의 지도 / 능소(能所) / 도문(道門)의 첫 단계 / (게송)겁화소해저~ / 인생은 한바탕 꿈, 빨리 보리심을 발해야.
 
참선(參禪)이라고 하는 것이 사람으로 태어나서는 반드시 해야 하고—종교를 믿건, 안 믿건 심지어는 불교를 믿건, 안 믿건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참나’를 깨닫기 위해서 참선을 해야 할 것이다.
바른 스승의 지도를 받아서 바른 방법으로 그리고 위법망구적으로 열심히만 한다면 백 명이면 백 명 다 백발백중으로 깨달음에 이를 수가 있다고 하는 것을 역대조사(歷代祖師)가 다 증명을 하셨습니다.
 
**송담스님(No.356)—88년 4월 첫째일요법회(1988.04.03) (용356)

 

(1) 약 12분.

(2) 약 12분.

 

(1)------------------
 
한번 화두(話頭)를 타고, 불명(佛名)을 타고 화두를 타서 정진을 시작을 하면 귀로 모든 소리를 듣되 벙어리와 같고, 귀는 열려 있지마는 귀는 열려 있어서 무슨 소리가 들린다 하더라도 귀머거리와 같고, 입은 열려 있어서 부득이해서 무슨 말을 한다 하더라도 속으로는 아주 벙어리와 같이, 이렇게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어째서 귀머거리가 되고 벙어리가 되어야 허냐 하면, 들을 소리 다 듣고 거기에 온갖 분별을 다 내고, 입이 열려 있다고 해서 온갖 말참견 다 하고 온갖 잡담으로 세월을 보내고, 그래 가지고 그러면서 어느 겨를에 화두를 들며, 들다말다 귀로는 온갖 시비에 다 참견하고, 입으로는 온갖 시비 다 참견하고 그러면서 어떻게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될 수가 있겠느냐 그말이여.
 
신기하고도 묘한 것이 우리의 그 일념(一念) 속에는 십법계(十法界)가 갖추어져 있어. 그리고 일법계(一法界) 속에 또 다시 십법계가 갖추어져 있기 때문에 일념(一念) 속에 백법계가 갖추어져 있는 것이 되는 것이여.
그런데 그 일법계 속에는 30종의 세간(世間)이 들어 있는데, 따라서 백법계에는 삼천 종의 세간이 들어 있다 그말이여.
 
결론적으로 일념 속에 삼천 가지의 세간이 들어 있다. 그러니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가 바로 일념 속에 들어 있다 그말이거든.
그 일념 속에 삼천대천세계가 들어 있는데 하루에 몇 생각이 일어나냐 그말이여.
 
눈뜨자마자 끝없는 생각이 일어났다가 얼마동안 딴 생각으로 이렇게 발전을 하다가 결국은 그 생각이 또 변해서 또 꺼지면은 꺼지자마자 또 따로 새 생각이 일어나고, 거의 단 1분 1초도 쉴 사이 없이 끊임없이 생각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데 그 생각 속에 삼천 가지, 삼천 종의 세간이 갖추어져서 같이 휘몰아친다 그말이여.
그렇게 살아오기를 무량겁을 살아왔으니 그 생각을 안 할려고 한다고 해서 안 해질 수가 없는 것이여.
 
공부를 올바르게 할 줄 모르는 사람은 그 생각을 안 일어나게 하기 위해서 애를 쓰고, 그래도 생각이 일어나면은 짜증을 내고 그러는데.
그 생각을 없앨려고 한다고 해서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누를라고 헌다고 해서 눌러지는 것도 아니고 무장 더 일어나는 것이여.
 
그 생각을 어떻게 다스려 나가야 하느냐?
‘이뭣고?’
 
좋은 생각이 일어나도 ‘이뭣고?’ 악한 생각이 일어나도 ‘이뭣고?’ 슬픈 생각이 일어나도 ‘이뭣고?’ 원망하는 생각이 일어나도 ‘이뭣고?’ 오직 ‘이뭣고?’
생각 일어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이뭣고?’ 빨리 챙기는 것에다가 정성을 쏟으라 그말이여.
 
하루를 그렇게 살고, 이틀을 그렇게 살고, 열흘을 그렇게 살아. 한 달 두 달을 해도 조금도 공부가 더 나아진 것 같지 않아. 석 달 열흘을 살아도 공부가 더 나아간 것 같지도 않아. 일 년, 이태, 삼 년을 한다고 해도 공부가 그렇게 썩 그렇게 순일하게 잘된 것 같지 않다 그말이여.
그래도 그 짜증을 낼 일도 아니고 또 포기를 해서도 안 된다 그말이여.
 
번뇌(煩惱)와 망상(妄想)이 일어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것이지, 안 일어나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다 그말이여.
 
당연한 것을 당연한 걸로 받아들이고 바르게 대처만 해나가면 될 것을 자꾸 그 일어난 것을 갖다가 성화를 내고 짜증을 내고 ‘내가 이 공부를 잘못해서 그런 것이 아니냐? 내가 참선을 헐 복이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니냐?’하고 한탄을 하는데 그것은 아무 소용이 없는 일입니다.
 
자꾸 화두를 들어.
 
전강 조실 스님께서도 그렇게 무섭게 했는데, 허실 때에 그 어릴 때 같이 크던 친구가 이게 참, 병으로 허망하게 죽은 것을 보고 그렇게 무상(無常)을 깨닫고,
또 꿈에 지옥을 구경을 허셨는데 그 지옥고 받는 참혹한 그 광경을 보고 아주 몸서리치면서 꿈을 깨고서, 그래서 경을 배우다가 경을 덮어버리고 그 어린 나이로 선방(禪房)에 나가셨다 그말이여.
 
그때에 그 공부하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잘 지도를 받어서 불급불완(不急不緩)하게, 너무 급하게 하지도 않고 너무 늘어지게 하지도 않고 해서 잘 잡드리를 해 나가셨으면 아무 그런 병환이 나시지 않고 대도를 성취했을텐데,
너무, 어린 마음에 워낙 철저하게 발심(發心)을 해 가지고 무상을 깨닫고 분심이 솟구쳐 오르니까 물불을 가리지 아니하고 그 막 해 제꼈다 그말이여.
 
그래 놓으니 상기(上氣)가 되아 가지고, 상기가 될수록에 점점 더 공부를 늦꾸지 아니하고 막 몰아붙였다 그말이여.
그래 놓으니까는 눈이 벌게지기 시작하면서 눈알, 그냥 눈이 핏기가 들어서 벌게지고, 목구녕에서는 피가 막 넘어왔다 그말이여.
 
이 참선(參禪)이라고 하는 것이 사람으로 태어나서는 반드시 해야 하고—종교를 믿건, 안 믿건 심지어는 불교를 믿건, 안 믿건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참나’를 깨닫기 위해서 참선을 해야 할 것이다 그말이여.
그렇게 참사람 되는데 있어서, 참나를 찾는데 있어서 이보다 더 좋은 길은 없지만, 잘못하면 깨달음에 이르기 전에 그런 중병(重病)을—그런 중병, 상기병과 같은 무서운 병을 얻을 수도 있고, 또 바르게 공부를 못하면 미친 병이 걸리기도 하고, 또 사견(邪見)에 떨어지기도 하고 이러헌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달마 스님께서도 「혈맥론」에 ‘불급심사(不急尋師)면 공과일생(空過一生)이다. 급히 스승을 찾지 아니하면 일생을 헛되이 보내리라’ 이렇게 말씀하시고.
또 ‘무사자오자(無師自悟者)는 만중희유(萬中希有)다. 스승 없이 깨달은 사람은 만 명 가운데에도 드물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조실 스님께서도 항상 ‘바른 스승을 만나서 바르게 해야 바른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허는 법문을 항상 말씀을 하셨지마는.
이 참선이 그렇게 좋은 것이로되, 바르게 허지 못하면은 이 바른 깨달음에 이르지 못할 뿐만 아니라 육체적인 병, 정신적인 병까지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른 방법으로, 바른 스승의 지도를 받아서 바른 방법으로 그리고 위법망구적으로 열심히만 한다면 백 명이면 백 명 다 백발백중으로 깨달음에 이를 수가 있다고 하는 것을 역대조사(歷代祖師)가 다 증명을 하셨습니다.
 
 
오조(五祖) 스님의 말씀에 이렇게 바른 법으로 열심히 이렇게 해서 깨닫지를 못하면,
‘이렇게 일러주는 것을 믿지 아니하면 세세생생(世世生生)에 호랑이의 밥이 될 것이고, 내가 만약에 추호라도 거짓말을 한다면 내가 거짓말한 죄로 무간지옥에 떨어지리라’ 이렇게 참 간곡한 말씀을 하시고.
또 몽산 스님도 「몽산법어(蒙山法語)」에 ‘이렇게 여법(如法)하게 3년을 해서 안 되면 내가 너희들을 대신해서 지옥에 간다’고 이렇게도 말씀을 하셨습니다.
 
기왕 불법을 믿을 바에는 최상승법(最上乘法)을 믿고, 기왕 참선을 할 바에는 이 활구참선(活句參禪)을 해서 결정코 이 몸을 가지고 금생에 확철대오(廓徹大悟)를 기약을 해야 하리라고 생각이 됩니다.(44분14초~55분58초)
 
 
 
(2)------------------
 
 
우리가 아무리 똑똑하고 잘난다고 한들, 그리고 아무리 부귀를 겸전(兼全)한 그런 이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는 그런 부귀를 누리고 권세를 누린다고 한들 이것이 모두가 다 꿈속에서 있었던 일인 것입니다.
원효대사의 그 꿈이라고 하는 소설은 그 「삼국유사」에 나오는 설화를 갖다가 소설화해서 영화로 꾸민 것이지마는, 그것이 하나의 전설이나 일화에 지내지 아니한 것이 아니라 현실 자체가 틀림이 없는 것입니다.
 
확실히 이 세상의 오욕락(五慾樂)이라고 하는 것이 이것이 무상하고 헛된 것이라고 하는 것을 깊이 명심하고 이해를 한다면은 피아(彼我)의 상(相)이 없어져 버려.
‘내다, 내 것이다, 내가 잘났다’ 아상(我相)과 인상(人相)이 거기서 떨어져 버리는 거고, 능소심(能所心)이 다 떨어져 버리는 거여.
 
능소(能所), 능(能)이라 하는 것을 주관이란 말이고, 소(所)라 한 말은 객관이란 말인데,
주관 · 객관, 내가 이렇게 보는 놈이 있고 나에 의해서 보여지는 상대 이것이 바로 주관과 객관이요, 이것이 능소(能所)인데, 능소심이 끊어져 버려야 하거든.
 
능소심이 끊어진 것은 바로 아상과 인상이 무너진 것이여.
아상, 인상의 그 능소심이 끊어져야 무념지(無念智)가 나타난다. 생각 없는 지혜, 무념의 지혜가 현전을 헌 것이고. 평등! 평등의 이치가 나타난다 그랬거든.
 
‘내가 잘났다’는 생각, ‘내가 권리가 높다’는 생각, 내가 참 부자라고 하는 생각, 그런 아상과 인상. ‘내가 불법을 더 많이 믿고 참선을 더 많이 했다’고 하는 생각,
무엇이든지 그러헌 아상과 인상이 있기 때문에 그놈 때문에 도문(道門)의 첫 단계를 들어가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 능소심이 끊어져버리고 아상과 인상이 무너져 버릴 때에 도(道)에 첫 단계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에 바로 눈으로 무엇을 보고, 귀로 무엇을 듣되 분별심이 일어나지를 않은 거여. 비록 입을 벌려서 말을 하고 혀를 움직인다 하더라도 분별이 나지를 않아.
대중 법도에 따라서 밥을 먹고, 대중 법도에 따라서 예불을 하고 십악참회를 하고, 대중 법도에 따라서 소지(掃地)를 하고 운력(運力)을 한다 하더라도 그 가운데에 의단(疑團)만이 독로(獨露)할 뿐, 일체 분별이 나지를 아니하는 것이다. 그러한 상태를 갖다가 귀머거리와 같고 벙어리와 같다고 말을 하는 것입니다.
 
평상 일상생활을 그렇게 하면서도 완전무결한 벙어리가 되고, 완전무결한 귀머거리가 될 때에 깨끗하게 닦은 거울과 같아서 그 거울 앞에는 무엇이고, 빨간 것이 오면은 빨간 것이 나타나고, 파란 것이 오면은 파란 것이 나타나고.
빈 골짜구니에 소리를 지르면 “아!”하면 저 골짜구니도 “아!”하고 메아리를 치고, “어!”허면 “어!” 소리가 메아리쳐 오듯이 그렇게 되는 것이다 그말이여.
이래 가지고 치연(熾然)히 비추고 치연히 응하되 응한 바가 없어.
 
 
겁화소해저(劫火燒海底)하고  풍고산상격(風鼓山相擊)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진상적멸낙(眞常寂滅樂)이요  열반상여시(涅槃相如是)니라
나무~아미타불~
 
겁화소해저(劫火燒海底)요. 겁화(劫火)가 일어나가지고 이 세계의 모든 것을 다 태워버리고, 심지어는 저 바다 밑바닥까지 다 태워버리고,
그리고 바람이 불어가지고 산과 산이 무너져서 서로 맞부딪쳐. 설악산과 오대산이 맞부딪치고 백두산과 한라산이 맞부딪쳐서 다 부서져서 가루가 되어 버린다 하더라도.
 
진상적멸낙(眞常寂滅樂), 진상의 적멸한 낙은—귀머거리가 되고 벙어리가 되어서 일체처 일체시에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어가지고 순일무잡해서 그래가지고 그 공안을 타파(打破)해 가지고 확철대오를 해버리면,
불이 일어나서 온 대천세계를 다 태워버리고 바다밑에까지 다 태워버리고 산과 산이 맞부딪쳐서 가루가 되어서 부서져 없어진다 하더라도 적멸락, 진상(眞常)한 그 적멸락(寂滅樂)은 그 열반(涅槃)의 상(相), 열반상은 바로 여여(如如)할 것이다 그말이여.
 
이 세계가 앞으로 팔백억 년 가면은 이 세계가 부서져 없어지리라고 과학자들은 말을 합니다. 그 안에 부서져 버릴는지도 모르고 그 이상 더 가서 부서질란가 그것은 두고 봐야 알겠지마는 언젠가는 이 세계가 부서져 없어지고 말 때가 오는 것입니다.
 
연수(年數)로 따지면은 몇억 년 이렇게 말하지만 그것이 그렇게 썩 긴 것도 아닌 것입니다.
지내놓고 보면은, 억 년이나 천 년이나 백 년이나 십 년이나 지내놓고 보면 마찬가지 한바탕 꿈에 지내지 못한 것입니다.
 
10년을 살다가 죽으나 50년을 살다가 죽으나 백 세를 살다 죽으나, 죽는 마당은 다 똑같은 것이여.
죽은 마당에 이르러서 일생을 돌이켜보면 천자(天子)로 일생을 살았거나 평민으로 일생을 살았거나 국왕으로 일생을 살았거나 거지로 일생을 살았거나, 죽는 그 마당에서는 그 일생이 바로 한바탕 꿈에 지내지 못하는 것입니다.
 
꿈에 지내지 못한 그 일생을 그렇게 값어치 없이 탐진치(貪瞋癡)와 오욕락 속에 끌려서 얽혀서 그렇게 몸부림치다 죽어갈 것은 없는 것입니다.
죽는 마당에 이르기 전에 하루라도 빨리 보리심(菩提心)을 발해서 생사 없는 경계에 산다고 하는 것은 사람으로 태어나서 참 보람 있는 일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오늘 무진년 4월 첫째 일요법회를 맞이해서 활구참선을 해 나가는데 있어서 어떠헌 마음가짐으로 우리가 정진을 해야 하느냐? 부처님의 인행(因行) 때의 열반경에 설화를 한마디 말씀을 드렸고.
 
앞으로 한 달 뒤에 5월 첫째 일요법회날은 바로 이 법보재날과 겹쳐 있습니다. 그래서 오후 2시에 있는 일요법회를 법보재 법요식과 합해서 오전 11시 반에 법회를 거행하기로 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아시고 착오가 없으시기를 바랍니다.(56분6초~67분58초)(끝)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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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불명(佛名) ; 법명(法名). ①출가하여 절에서 행자(行者)로서 일정 기간 동안 수행한 뒤, 계(戒)를 받을 때 스승이 지어 주는 이름. ②스님이 불법(佛法)에 귀의(歸依)한 남녀신자에게 지어 주는 이름.
[참고] 송담스님(No.470)—92년 4월 첫째 일요법회
불법(佛法)에의 깊은 인연으로, 발심(發心)해서 진리를 향해서 살아가는 부처님의 아들딸로 새로 태어났기 때문에 그런 의미로 불보살(佛菩薩)의 이름을 따서 불명으로 받는다. 더 철저히 말하면 그때마다 불명을 받을 수는 없지만, 참선 수행을 통해서 하루하루 새로 태어나야 하고 시간마다 새로 태어나야 한다.
*타성일편(打成一片) : ‘쳐서 한 조각을 이룬다’ 참선할 때 화두를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화두가 들려서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일체처 일체시에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만이 독로(獨露)한 순수무잡(純粹無雜) 경계.
*일념삼천(一念三千) ; 일념삼천이란, 우리의 일념(一念) 가운데 삼천(三千)의 세계가 갖춰진다는 천태사상의 세계론이다.
[참고] 『마하지관(摩訶止觀)』 (隋天台智者大師說 | 門人灌頂記) 제5권(上)
夫一心具十法界 一法界又具十法界百法界 一界具三十種世間 百法界卽具三千種世間 此三千 在一念心 若無心而已 介爾有心卽具三千
 
일심이 십법계를 갖추고, 하나의 법계에는 또한 십법계를 갖추어 백법계가 되며, 백법계 중 하나의 법계가 각각 30종류의 세간(五陰 · 衆生 · 國土 등 3세간에 각각 十如是가 갖추어져 있어 30세간이 된다)을 갖추므로 백법계는 3천종의 세간(世間)을 갖춘다. 이 삼천세간이 한 생각하는 찰나의 마음에 달려 있다. 마음이 없다면 그만이지만 조금이라도 마음이 있다면 삼천세계를 갖춘다.
 
*일념(一念) ; 범부가 현실의 일상생활에서 일으키는 아주 미세한 미혹으로서 생각하는 마음을 뜻한다. 따라서 이 일념은 진여심(眞如心)이 아니라 중생심(衆生心)의 일념이다.
*십법계(十法界) ; 열 가지 법계. 십계(十界)라고도 한다. 세계를 중생의 미혹과 깨달음의 정도에 따라 10종으로 분류하여, 지옥 · 아귀 · 축생 · 수라 · 인간 · 하늘[天]의 미혹한 세계[迷界:六途]와 성문 · 연각 · 보살 · 불(佛)의 깨달음의 세계[悟界]로 나눈 것이다.
*십계호구(十界互具)란 십계 속에 또 각각 십계가 갖춰져 있다는 사상이다. 말하자면 인간계 가운데, 지옥계에서 부처님[佛]의 세계까지 내재해 있다는 것이다.
즉, 아무리 훌륭한 인간이라도 선한 마음과 악한 마음이 내재해 있고, 아무리 악한 사람이라도 악한 마음과 동시에 착한 마음이 있다는 뜻이다. 가능성으로서 모든 세계는 그 내면에 모든 다른 세계를 갖추고 있으며, 다만 그 많은 세계 가운데 인간 혹은 다른 한 세계가 현실에서 우위를 차지하고 있을 뿐이다.
*삼세간(三世間) ; 세 가지로 분류한 세간. 삼종세간(三種世間)이라고도 한다. 중생의 색과 마음 등 모든 법을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 오온이 이루는 세간인 오온세간(五蘊世間, 五陰世間)과 중생이 의탁하고 사는 국토인 국토세간(國土世間), 그리고 중생세간(衆生世間)은 오온으로 이루어진 가명의 중생들이 각각 차별된 특성을 가지는 세간을 가리킨다.
*세간(世間) ; (산스크리트어 loka) 세(世)는 파괴·변화, 간(間)은 가운데·간격을 뜻함.
① 변하면서 흘러가는 현상계. ② 생물들의 세계. ③ 생물들이 거주하는 자연 환경, 곧 산하대지. ④ 세상. 이 세상. 세속. ⑤ 산스크리트어 saṃsāra 미혹한 세계. ⑥ 육내입처(六內入處), 또는 십이처(十二處)를 말함.
*십여시(十如是) ; 제법의 실상을 상(相) · 성(性) · 체(體) · 역(力) · 작(作) · 인(因) · 연(緣) · 과(果) · 보(報) · 본말구경등(本末究竟等) 등 10가지 범주로 나타낸 것. 다르지 않으므로 여(如)라고 하며, 어긋남이 없으므로 시(是)라고 한다. 부처님의 세계에서 지옥까지의 10가지 세계[十法界] 각각에 십여시가 갖춰져 있다.
①여시상(如是相) : 표면에 나타난 모양. ②여시성(如是性) : 변함 없는 내면의 바탕. ③여시체(如是體) : 바탕과 모양을 갖추고 있는 주체. ④여시력(如是力) : 주체 내면에 잠재한 힘. ⑤여시작(如是作) : 내면적 힘이 밖으로 나타난 작용. 조작. ⑥여시인(如是因) : 작용에 필요한 직접적인 제일원인. ⑦여시연(如是緣) : 인(因)을 도와 과(果)를 낳게 하는 간접적인 보조 원인. ⑧여시과(如是果) : 인연으로 말미암아 맺어진 결과. ⑨여시보(如是報) : 과(果)에 의해 일어나는 갚음[報]. 여시본말구경등(如是本末究竟等) : 상(相)부터 보(報)까지의 9여시(九如是)가 모두 동등한 실상이어서 궁극[究竟]에는 평등(等)하다는 뜻을 나타낸다.
 
삼천의 세계가 나오게 된 자리가 마음이 없다면 모르되 티끌만큼이라도 마음이 있다면 순간의 일념에도 반드시 삼천의 세계를 갖추며, 그 삼천의 세계가 그대로 미혹한 세계도 되고 깨달음의 세계도 된다는 것이 곧 일념삼천설(一念三千說)이다.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 ; 줄여서 삼천세계(三千世界)라고도 함. 온갖 세계. 수없이 많은 세계. 하나의 우주 전체. 다할 수 없이 넓은 우주. 하나의 삼천세계(三千世界)가 하나의 부처님이 교화하는 범위라 한다.
*무장 ; ‘더욱, 한사코’의 사투리.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 왔다.
*번뇌(煩惱 번거러울 번/괴로워할 뇌) ; ①몸과 마음을 번거롭게 어지럽히고[煩亂, 煩勞, 煩擾] 괴롭혀 고뇌케[逼惱, 惱亂] 하므로 번뇌(煩惱)라 표현. 근원적 번뇌로서 탐냄(貪)•성냄(瞋)•어리석음(癡) 등이 있다.
②나라고 생각하는 사정에서 일어나는 나쁜 경향의 마음 작용. 곧 눈 앞의 고(苦)와 낙(樂)에 미(迷)하여 탐욕•진심(瞋心)•우치(愚癡)등에 의하여 마음에 동요를 일으켜 몸과 마음을 뇌란하는 정신 작용.
불교는 중생의 현실을 혹·업·고(惑·業·苦)의 삼도(三道)로 설명한다. 즉 번뇌[惑]에 의해 중생이 몸과 마음의 행위[身口意 三業]를 일으키게 되면, 이로써 3계 6도의 생사윤회에 속박되어 고통[苦]의 과보를 받게 된다.
*망상(妄想 망령될 망/생각 상) ; ①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는 것으로 상정하고 집착하는 의식의 작용. 분별(分別), 망상분별(妄想分別), 허망분별(虛妄分別), 망상전도(妄想顚倒) 등으로도 한역한다. ②이치에 맞지 아니한 망령(妄靈)된 생각[想]을 함, 또는 그 생각. 잘못된 생각.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하다고 잘못 생각하는 것.
*무상(無常) ; 모든 현상은 계속하여 나고 없어지고 변하여 그대로인 것이 없음. 온갖 것들이 변해가며 조금도 머물러 있지 않는 것. 변해감. 덧없음. 영원성이 없는 것.
세상의 모든 사물이나 현상들이 무수한 원인(因)과 조건(緣)의 상호 관계를 통하여 형성된 것으로서 그 자체 독립적인 것은 하나도 없고, 인연(因緣)이 다하면 소멸되어 항상함[常]이 없다[無].
*선방(禪房) ; ①참선(參禪)하는 방. ②선원(禪院).
*잡드리 ; ‘잡도리’의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그 대책. ③아주 요란스럽게 닦달하거나(단단히 윽박질러서 혼을 내다) 족침(견디지 못하도록 몹시 급하게 몰아치다).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을 일으킴[發].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보리심은 모든 부처님이 부처님이 될 수 있었던 바탕이 되는 종자이고 청정한 법이 자라날 수 있는 좋은 밭이기 때문에 , 이 마음을 발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면 속히 위없는 보리를 증득한다.
*상기병(上氣病 오를 상/기운 기/병 병) ; 화두를 머리에 두고 여기에 속효심(速效心)을 내어 참구하다가, 모든 열기[氣]가 머리에 치밀게[上] 되어 생기는 머리 아픈 병(病).
상기병이 생기면 기운이 자꾸 위로 올라와서, 화두만 들면 골이 아파서 공부가 지극히 힘이 들고 심하면 머리로 출혈이 되며 몸이 쇠약해짐. 상기병의 예방과 치료로 단전호흡과 요료법(尿療法, 오줌을 이용하여 질병을 치료하는 민간 요법의 하나)이 사용된다.
[참고] '요료법'에 관한 책. ①『기적을 일으키는 요료법』 (김정희 저 | 산수야). ②『요료법의 기적』 (나까오 료이치 | 산수야). ③『의사가 권하는 요료법』 (이영미 | 산수야). ④ 『요료법의 기적』 (건강신문사 편집부).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사견(邪見) : ①잘못된 견해. 틀린 생각. ②인과(因果)의 이치를 부정하는 잘못된 생각. ③올바로 자신의 마음의 실상을 알수가 없는 것.
*혈맥론(血脈論) ; 달마대사 혈맥론(達摩大師血脈論)이라고도 한다. 중국 선종의 초조(初祖) 보리달마(菩提達摩 Bodhidharma)의 저술로 전해지고 있다.
문답형식으로 즉심시불(卽心是佛 : 마음 그대로가 곧 부처), 심외무불(心外無佛 : 마음 밖에 부처가 없다), 성불수시견성(成佛須是見性 : 부처를 이루려면 반드시 성품을 보아야 한다) 등의 말씀이 있다.
혈맥(血脈)은 사자상승(師資相承)이라고도 하며, 스승으로부터 제자에게로 주고받아서, 정법(正法)을 상속하는 것. 신체의 혈맥이 서로 연결되어 끊어질 수 없는 것에 비유해서 말함.
*불급심사 공과일생(不急尋師空過一生) ; ‘급히 스승을 찾지 아니하면 일생을 헛되이 보내리라’
중국 선종의 초조(初祖) 보리달마(菩提達摩 Bodhidharma)의 저술로 전해지는 『달마대사 혈맥론(達摩大師血脈論)』에 있는 말씀.
[참고] 『선문촬요 禪門撮要 上 血脈論』 (경허성우 鏡虛惺牛 엮음)에서.
若不急尋師空過一生 然卽佛性自有 若不因師終不明了 不因師悟者萬中希有.
급히 스승을 찾지 아니하면 일생을 헛되이 보내리라. 불성은 스스로 가지고 있으나 스승을 인연하지 않으면 끝내 분명히 알지 못하니, 스승을 의지하지 않고 깨닫는 이는 만에 하나도 드물다.
*역대조사(歷代祖師) ; 석가세존(釋迦世尊)으로부터 불법(佛法)을 받아 계승해 온 대대의 조사(祖師).
*지옥에 가겠다(떨어지리라) ; 
[참고 ①] 「최상승론(最上乘論)」 (5조 홍인대사 弘忍大師 六O二 ~ 六七五)
若有人依文行者即在前成佛. 若我誑汝當來墮十八地獄. 指天地爲誓. 若不信我世世被虎狼所食.
 
만약 어떤 사람이 있어 이 글(最上乘論)에 의지해 수행하면 곧 성불하게 될 것이다. 내가 만약 너를 속인다면 다음 세상에 십팔지옥(十八地獄)에 떨어지리라. 하늘과 땅에 맹세하노라. 만약 나를 믿지 아니하면 세세생생에 호랑이 밥이 되리라.
 
[참고 ②] 몽산화상시중(蒙山和尙示衆—몽산화상이 대중에게 보이심) ; 『몽산법어』 (몽산화상 一二三一 ~ 一二九八 또는 一三O八) (용화선원刊) p97-99.
若有來此(약유내차)하야  同甘寂寥者(동감적료자)인댄  捨此世緣(사차세연)하며  除去執着顚倒(제거집착전도)하고  眞實爲生死大事(진실위생사대사)하야  肯順菴中規矩(긍순암중규구)하야 截斷人事(절단인사)하고  隨緣受用(수연수용)호대  除三更外(제삼경외)에  不許睡眠(불허수면)하며 不許出街(불허출가)하며  不許赴請(불허부청)하며  未有發明(미유발명)이어든 不許看讀(불허간독)하며  非公界請(비공계청)이어든  不許閱經(불허열경)이니
 
만약 이에 와 고요함을 같이 즐기려는 이는, 이 세상 인연을 다 여의며 제 고집과 애착과 모든 거꾸러진 생각을 다 버리고, 참으로 생사의 큰일을 위하야 절의 규칙을 잘 지키고 인사(人事)를 끊고 먹고 입는 것을 되어가는 대로 하되, 밤 삼경 외에는 자지 말고 거리에도 나가지 말며 오라는 데도 가지 말고 깨치기 전에는 글도 읽지 말며 예식 때가 아니거든 경도 보지 말지니
 
如法下三年工夫(여법하삼년공부)호대  若不見性通宗(약불견성통종)인댄 山僧(산승)이  替爾(체이)하야  入地獄(입지옥)호리라
법다이 삼 년 동안 공부해 만약 견성하여 종지(宗旨)를 통달하지 못하면, 산승(山僧)이 너희들을 대신하여 지옥에 들어가리라.
*여법(如法 같을·같게 할·따를·좇을 여/ 부처님의 가르침·불도佛道 법) ; 부처님의 가르침에 맞음.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간화선(看話禪) ; 화(話)는 화두(話頭)의 준말이다. 간화(看話)는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을 본다[看]’는 말로써,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이 화두를 관(觀)해서, 화두를 통해서 확철대오하는 간화선을 전강 조실스님과 송담스님께서는 ‘최상승법(最上乘法)’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고 말씀하신다.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본참공안]를 받아서,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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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욕락(五欲,五慾,五欲樂) ; ①중생의 참된 마음을 더럽히는—색,소리,향기,맛,감촉(色聲香味觸)에 대한—감관적 욕망. 또는 그것을 향락(享樂)하는 것. 총괄하여 세속적인 인간의 욕망.
②불도를 닦는 데 장애가 되는 다섯 가지 욕심. 재물(財物), 색사(色事), 음식(飮食), 명예(名譽), 수면(睡眠).
*아상(我相) ; 산스크리트어 ātma-saṃjñā ①오온(五薀,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으로 형성된 아(我)를 실체라고 잘못 생각하는 것. ②나라는 관념·생각.  자아(自我)라는 관념·생각. 남과 대립하는 나라는 관념·생각.  타자와 구분짓는 자의식 또는 그것을 형성하는 온갖 관념의 집합.
*인상(人相) ; 사람은 고귀하므로 지옥 중생이나 축생들과 다르다고 집착(執着)하는 견해.
*능소(能所) ; 어떠한 동작이나 행위, 인식이나 사건의 주체적인 측면을 능(能)이라 하고, 객관적인 측면을 소(所)라 한다. 능동(能動)과 피동(被動), 주체와 객체 또는 주인과 손(賓) 같은 말로도 표시된다.
대상을 반연하여 인식하는 주체가 능연(能緣) · 능식(能識)이라면, 반연되고 인식되는 객관은 소연(所緣) · 소식(所識)인 것이다. 또 보는 주체는 능견(能見)이고 보이는 것은 소견(所見)이다.
귀의(歸依)하는 주체인 중생이 능귀(能歸)라면 귀의의 대상인 삼보(三寶)는 소귀(所歸)이고, 교화하는 주체인 부처님이 능화(能化)라면 교화되는 대상인 중생은 소화(所化)이다. 어떠한 내용을 지시하는 언어, 곧 문장이나 어구가 능전(能詮)이라면 그 말이 가지고 있는 내용은 소전(所詮)이 된다.
 
이와 같은 대립(對立)이 있게 되면 상대가 끊어진[絶對境] 참 이치[眞理]에 들어가지 못하므로 불교에서는 이와 같은 대립을 넘어서는 것을 지향한다.
인식하는 대상과 인식하는 주체가 둘이 아닌 하나의 상태, 주객일치(主客一致)와 능소일여(能所一如)의 상태가 바로 무분별지(無分別智)이고, 귀의하는 중생과 귀의의 대상인 부처님이 둘이 아닌 것을 능소일체(能所一體)라 한다.
 
[참고] 『금강경오가해(金剛經五家解)』 (무비 역해 | 불광출판부) 제28 ‘불수불탐분(不受不貪分)‘ p491~493.
須菩提 若菩薩 以滿恒河沙等世界七寶 持用布施 若復有人 知一切法無我 得成於忍 此菩薩 勝前菩薩 所得功德
수보리야, 만약 보살이 항하(恒河, 인도 갠지스강)의 모래수와 같은 세계에 가득찬 칠보를 가지고 보시하더라도 만약 또 어떤 사람은 일체법이 아(我)가 없음을 알아서 인(忍, 여실한 진리. 확실한 앎)을 얻어 이루면 이 보살은 앞의 보살이 얻은 공덕보다 수승하리라.
 
【육조(六祖)】 通達一切法 無能所心者 是名爲忍 此人 所得福德 勝前七寶之福也
일체법을 통달하여 능소심이 없는 이를 이름하여 인(忍)이 된다 하니 이 사람의 얻는 바 복덕은 앞의 칠보를 보시한 복보다 수승한 것이니라.
 
【야부(冶父)】 耳聽如聾 口說如啞
귀로 들어도 귀머거리 같고 입으로 말하여도 벙어리와 같도다.
 
【함허(涵虛) 설의(說誼, 이치를 설함)】 知法無我 則彼我相 泯 得成於忍 則能所情 忘 能所情 忘則無念智 現 彼我相 泯則平等理 現 到伊麼時 眼見耳聞 分別不生 開口動舌 分別不生 不生不生 何啻如聾若啞
법(法)이 아(我)가 없음을 알면 곧 피아상(彼我相, 너다 나다 하는 생각)이 없어짐이요, 인(忍)을 얻어 이루면, 곧 능소(能所, 주관과 객관)의 정(情, 생각)을 잊을지니 능소의 정이 없어지면 무념지(無念智, 무념의 지혜)가 나타나고 피아상(彼我相)이 없어지면 평등의 이치가 나타남이라. 이런 경지에 이르러서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들어도 분별이 생기지 않음이요, 입을 열고 혀를 움직여도 분별이 생기지 않음이니, 생기지 않는다는 생각까지도 나지 않으면 어찌 귀머거리 같고 벙어리와 같을 뿐이리오.
 
直如明鏡照物 空谷應聲 熾然照應 而無照應 所以 道 常應諸根用 而不起用想 劫火燒海底 風鼓山相擊 眞常寂滅樂 涅槃相如是
이는 곧 밝은 거울이 사물을 비춤과 같고 빈 골짜기가 소리에 응함과 같아서 치연히 비추고 응하되 비추고 응한다 함이 없으리니, 그러므로 말하되 「항상 모든 근[六根]에 응하여 쓰되 그 쓴다는 생각을 일으키지 않음이라. 겁화(劫火)가 바다밑까지 태우고 바람이 몰아쳐 산이 무너져 내리더라도 ‘참답고 항상한 적멸의 즐거움’인 열반의 모습은 이와 같다」 (육조단경 ‘參請機緣’) 하시니라.
*무념지(無念智) ; 무념(無念)의 지혜.
*무념(無念) ; ①망념이 없는 것. 정념(正念)을 말한다. ②모든 법을 보면서도 마음에 물들고 집착하지 않는 것.
[참고] 『육조단경(六祖壇經)』 (德異本) ‘제1 오법전의(悟法傳衣, 법을 깨닫고 가사를 전해 받다)’에서.
善知識 智慧觀照 內外明徹 識自本心 若識本心 卽本解脫 若得解脫 卽是般若三昧 卽是無念
선지식들이여, 지혜로 비추어 보면 안팎이 밝게 사무쳐서 자기의 본심을 아나니 만일 본심을 알면 곧 본래 해탈이며, 만일 해탈을 얻는다면 곧 그것이 반야삼매(般若三昧)며 또는 이것이 무념(無念)이니라.
 
何名無念 若見一切法 心不染着 是爲無念 用卽徧一切處 亦不著一切處 但淨本心 使六識 出六門 於六塵中 無染無雜 來去自由 通用無滯 卽是般若三昧 自在解脫 名無念行
어찌하여 무념이라 이름하는가? 만일 모든 법을 보더라도 마음에 물들고 집착하지 않는 이것이 무념이니, 작용을 일으킨 즉 일체처에 두루 하되 일체처에 집착하지 않고, 다만 본심을 깨끗이 하여 육식(六識)으로 하여금 여섯문(六門)을 나오더라도 육진(六塵) 가운데 물들고 뒤섞임이 없어서, 오고 감에 자유롭고 널리 쓰되 걸림이 없으므로 이것이 곧 반야삼매며 자재해탈이고 그 이름이 무념행이니라.
 
若百物 不思 當令念絶 卽是法縛 卽名邊見 善知識 悟無念法者 萬法盡通 悟無念法者 見諸佛境界 悟無念法者 至佛地位
그러나 만일 백가지를 다 생각하지 아니하고 아주 생각을 끊는 이것은 법에 얽매인 것이며 한쪽에 치우친 견해[邊見]이라 이름하느니라.
선지식아, 무념(無念)의 법(法)을 깨달은 이는 만법에 걸림없이 통하며, 모든 부처님의 경계를 보며, 부처님의 자리에 이르느니라.
*도문(道門) ; ①도에 이르는 문. 부처님의 가르침. ②불문(佛門). 부처님의 법문(法門). 불교(佛敎)라는 문. 부처님의 가르침에 들어서는 문. 깨달음으로 들어서는 문.
*소지(掃地 쓸 소/땅 지) ; ①마당(땅)을 쓺. 또는 그 일을 맡은 사람. ②청소.
*운력(運力) ; '함께 힘을 기울인다'는 의미. '많은 사람이 구름같이 모여서 일을 한다'는 의미로 운력(雲力)이라고도 하며, '여러 사람들이 힘을 합하여 하는 일'이란 우리말 '울력'과 같다. 의미와 관계없이 운력(運力)은 사찰에서 대중들이 모여 육체적인 노동을 함께 한다는 뜻.
*의단독로(疑團獨露 의심할 의/덩어리 단/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공안,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가 홀로[獨] 드러나다[露].
*치연(熾然) ; ①매우 왕성한 상태. ②번뇌의 다른 이름—결(結)·박(縛)·전(纏)·취(取) 등등—가운데 하나이다.
치(熾)는 ‘성하다(盛--, 기운이나 세력이 한창 왕성하다), 맹렬하게 일어남, 횃불이 활활 타오름, 불을 붙여 이글이글 피게 함’의 뜻. 연(然)은 상태를 나타내는 접미사(接尾辭).
*(게송) ‘겁화소해저~’ ; 『육조단경(六祖壇經)』 ‘參請機緣(청법의 기연)’ 게송 참고.
*겁화(劫火) ; 세계가 파괴되는 시기(壞劫)에 들면 세계를 허물어트리는 3가지 큰 천재지변이 생기는데, 화재(火災) 풍재(風災) 수재(水災)가 그것이다. 이때에 화재가 욕계(欲界)를 불태우고 색계(色界)의 초선천(初禪天)까지 불태운다고 한다.
*타파(打破) ; 공안(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그 화두(話頭, 공안)에 대한 의심(疑心)을 관조(觀照)해 나가는 것, 알 수 없는 그리고 꽉 맥힌 의심으로 그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그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더 이상 그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더 이상 의심이 커질 수 없고, 더 이상 깊을 수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내 가슴속이 가득 차고, 온 세계가 가득 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눌 때에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탈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잘 때에는 꿈속에서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에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큰 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그 항아리를 큰 돌로 내려치면은 그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를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참선법 A’ 에서]
*진상(眞常) ; 진여상주(眞如常住)라는 뜻으로, 깨달음(열반)의 경지라는 뜻.
*적멸(寂滅 고요할 적/다할•끊어질 멸) ; ①번뇌의 불을 완전히 꺼버린, 탐욕(貪)과 노여움(瞋)과 어리석음(癡)이 소멸된 마음의 궁극적인 고요함. 적정(寂靜)으로 돌아가 일체의 상(相)을 여의고 있는 것. ②열반, 부처님의 경지, 깨달음.
*열반(涅槃) ; 산스크리트어 니르바나(nirvāṇa) 팔리어 nibbāna의 음사. 멸(滅)·멸도(滅度)·적멸(寂滅)·적정(寂靜)·적(寂)·안온(安穩)이라 번역. 불어서 끈 상태라는 뜻.
① 불어서 불을 끄듯, 탐욕〔貪〕과 노여움〔瞋〕과 어리석음〔癡〕이 소멸된 심리 상태. 모든 번뇌의 불꽃이 꺼진 심리 상태. 사제(四諦)에서 집(集), 곧 괴로움의 원인인 갈애(渴愛)가 소멸된 상태. 모든 번뇌를 남김없이 소멸하여 평온하게 된 상태. 모든 미혹의 속박에서 벗어난 깨달음의 경지. 번뇌를 소멸하여 깨달음의 지혜를 완성한 경지.
② 석가모니의 죽음.  ③스님의 죽음을 수행을 통해 해탈(解脫)에 이르게 됨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
*여여(如如) ; ①모든 법의 평등한 자성 또는 이치를 나타내는 말. 법이(法爾)와 같은 의미이다. 자성에서 같다[如]는 뜻이지만 온갖 차별된 법이 모두 그렇기 때문에 복수의 뜻으로 ‘여여’라 한다. 법계무차별의 바탕으로서 평등 부동(不動) 부전도(不顚倒) 등의 취지가 수반된다. ②분별이 끊어져, 있는 그대로의 대상이 파악되는 마음 상태. ③진실한 경계. 그렇게 있음. 차별을 떠난, 있는 그대로의 모습.
*한바탕 ; 크게 한판(한 번 벌이는 판). 한판 크게.
*탐(貪) ; 자기의 뜻에 잘 맞는 사물에 집착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진(瞋) ; 자기의 마음에 맞지 않는 것에 대하여 분하게 여겨 몸과 마음이 편안하지 못하게 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치(癡) ; 현상이나 사물의 도리를 이해하지 못하여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는 번뇌를 이른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만(慢) ; 남을 업신여기고 자신을 높이는 마음 작용.
*의(疑) ; 인과(因果)의 진리를 의심하는 마음 작용.
*악견(惡見) ; 올바르지 않은 견해. 그릇된 견해.
*보리심(菩提心) ; ①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 ②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
*인행(因行) ; ①수행. (부처가 되기 위한) 인(因)이 되는 행(行). 깨달음을 여는 근본이 된다.
②수행에 방해가 되는 외부의 요인에 흔들리지 아니하고 오롯이 수행정진하는 것. 보살이 인행(因行)을 닦아서 깨달음의 과보(果報)를 얻는 것을 수인감과(修因感果)라고 한다.

 

Posted by 닥공닥정
정진(精進) 수행2017. 6. 26. 09:44

§(715) 우리 자신이 생사해탈해야 부모에 대한 최고의 효도 / 참선하는 스님께 대중공양 / 시주것이 무서운 줄 알아 열심히 정진하라 / 스님, 신도 모두 한 형제자매 / 의심을 관()하라.

 

우리 자신이 생사해탈을 해야 진실로 중생도 제도(濟度)할 수가 있는 것이고, 참다운 부모에 대한 효도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머리를 깎고 스님이  분이나 머리는  깎았어도 신도로 있는 있는 분이나 수백 생을 하면서 우리가 서로서로 다시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몸을 바꿔  때에는 신도가 스님이  수도 있고, 스님이  신도가  수가 있으니, 우리는  같은 불자(佛子)요 형제간이요, 자매간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뼈빠지게  돈을 갖다가 수행하는 스님에게 공양도 올리게 되는 거고, 우리는   공양을 받아서 수행을 하면서 항상 신도들을 축원을 해 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가족이고,  형제간입니다.

 

화두는 무엇이 가장 중요한 요점이냐 하면은 의심입니다.   없는 의심. ‘이뭣고, 이뭣고하는 글자 석 자가 문제가 아니라 이뭣고?’    없는 의심,  의심을 관하는 것입니다.

 

**송담스님(No.715)—2007년(정해년) 동안거결제 법어(07.11.24)(용715)

 

약 17분.

 

화두(話頭)를 옳게 든다고 하는 것은조실 스님께서 아까 판치생모(板齒生毛)’ 화두에 대해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조실 스님께 화두를  분은 계속해서 판치생모 화두를  것이고, 아직 화두를   분은 이뭣고?’ 산승(山僧)은 권하고 있습니다.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공안(千七百 公案)의 근본 화두라고  수가 있습니다. 어느 화두 공안을 가지고 참선을 해도 궁극에 깨닫는 것은 이뭣고?’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몸뚱이 끌고 다니는 , 말할 줄도 알고, 배고프면  먹을 줄도 알고, 부르면 대답할 줄도 알고, 욕하면 성낼 줄도 아는 , 그러한 주인공이 우리 사람마다  있습니다.

 

 육체는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四大)로 뭉쳐진 송장과 같은 것입니다.  몸뚱이를 끌고 다니는 주인공이 있기 때문에 살아있다고  수가 있고 사람이라  수가 있습니다.

자성(自性)이라고도 하고, 마음이라고도 하고, 성품(性品)이라고도 하고, 불성(佛性)이라고도 합니다마는  불성이라 하는 것은 짐승이나 지옥중생이나 벌레도  가지고 있다고 그렇게 성현들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다행히 우리는 지옥에 가지 안했고, 축생이 되지 않고 아귀에 떨어지지 않고 사람 몸을 금생에 받아났습니다. 금생에 사람 몸 받아난 것만 해도 우리는 너무 행복하고 다행한 일이며 부모에게 감사를 해야  것입니다. 부모님이 아니였으면  육체는  세상에 태어날 수가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부모의 은혜를 우리는 갚어야 합니다. 세속에서 효자로서 장가가고 아들딸 낳아서 살면서 부모에게 효자 노릇을 하는 길도 있겠습니다마는  자리에는  부모와 가정과 인생을 버리고 출가를  몸입니다.

 

우리가 부모에게 효도하는 방법은 보시 돈이 모이면 부모에게 갖다 드리고 맛있는 것을 사다 드리고 그러한 효도는 우리는 허락되지 아니했습니다.

우리가   있는 효도는 어쨌든지 지혜롭게 건강을 관리하면서 일념 단속(一念團束)을 해서 철저하게 정진하는 것뿐인 것입니다.

 

물질적으로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은 조그만한 좁쌀만한 효도가  것이나, 우리가  생각 신심(信心)과 분심(憤心)으로 본참공안(本參公案)에 대한 철저한 의단(疑團)을 단속을 해서 수행해 나가는 것은 확철대오(廓徹大悟) 하고 안 하고는 나중 문제고, 그렇게 단속해 나간 것이 효도 중에서 최고의 효도가  것입니다.

 

 그러냐 하면은 부모에게 물질적으로 옷이나 음식을 해 드린 것은 그것은 잠시 편안하게 해 드린 것뿐이나 우리가 일념 단속을 해서 철저하게 수행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 생사해탈(生死解脫)하는 최고의 법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 자신이 생사해탈을 해야 진실로 중생도 제도(濟度)할 수가 있는 것이고, 참다운 부모에 대한 효도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목련존자가  어머니가 지옥에 떨어져서 고통을 받고 있을  온갖 방법을 다해도  어머니를 제도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 여쭈니까 해제날 대중공양(大衆供養) 해라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해제날 공양을 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냐 하면은 아무때나 스님네에게 공양한 것도 좋으나,

 닦는 스님네께 공양하는 일체 욕심을  버리고, 온갖 생각을  버리고서 오직 일념 단속해서  일념 단속하는  수행자,   내내  공부를   수좌(首座)에게 대중공양을 해라

그래가지고 목련존자가 탁발을 해가지고 해제날 대중공양을 해가지고  공덕으로 지옥에 떨어져서 고통 받고 있는 어머니, 청제(靑提)부인을 지옥을 벗어날  있도록 해 드린 것입니다.

 

절에 법당을 짓도록 부처님을 모신다 하면 서로서로 시주금(施主金)을 많이 냅니다. 그러나 그것도  좋은 일입니다. 절을 지어서 법당을 짓고 부처님을 모셔야 도 닦는 스님네가  거기서  수행을  수가 있기 때문에 그게  정성껏 시주하는 것이  좋은 일이나, 참선 수행하는 스님네께 공양을 올리는 것도  못지않게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 수행하는 사람은   있으면 시은(施恩)을  지려고 노력을 합니다. 그것을 갚을려면은 시주것만 잔뜩  먹고 입고  먹고 도업(道業)을 성취하지 못하면은 그것을 갚어야 하니 그것을좁쌀 서너  때문에 버섯이 되어가지고  은혜를 갚고.

 

부처님 말씀이, 제자들을 거느리고 소떼가 가는데  소가 무엇인줄 아느냐? 왕년에 중들이 저렇게 소가 되었느니라 이런 말씀이 경전에 있습니다.  소가 되냐 하면은 소가 되어야  은혜를 빨리 갚을 수가 있기 때문에 그럽니다.

 

소가 되어야 몸이 성할 때는 일을 해가지고 갚고, 살아서 똥을 누면은  똥을 비료로 갚고, 죽게 되면은 가죽은 벗겨서 옷이나 신발이나 그런 것을 만들고, 고기는 오장육부를 다 해서 사람들에게 먹여서 갚고.

그러기 때문에 출가한 스님네가 도를 철저히  닦고 도업을 이루지 못하면 소가 되어서,  생(生)으로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죽으면  ,    빚을  갚을 때까지 수십 생, 수백 생을 소가 되어서 갚어.

 

그래서 중은 시주것을 독약보다도  무섭게 생각하라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자리에 모이신 분은 절대로 소가  그런 분은  분도 없으리라고 생각하고 만에 하나라도 시주것을 참으로 무서운  안다면  먹거나  먹거나 먹는 것에 대해서 너무 그렇게 신경쓰지 말고.

무엇이, 보리밥이 들어오거나 찰밥이 들어오거나 국수가 들어오거나 들어온 대로 감사한 마음으로 화두를 놓지 말고 열심히 정진하면서 그것을 맛있게 공양하고,  공양을  때에는 그것을 시주한 신도님들에 대한 간단한 축원(祝願)을 하면서 공양을 드시기를 바랍니다.

그러한 마음으로 공양을 드시면 소화도 잘될 것이고 음식에 대한 불평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지나 원주(院主) 도감(都監) ・ 별좌(別座) ・ 공양주(供養主) ・ 채공(菜供) 그런 소임을 맡으신 스님네들은 수행하는 도반(道伴)들을 위해서 정성을 다해서  마련을 해야 것입니다.

 

 그러냐 하면은 지금 그런 소임을 맡고 있어도 자기도 참선을 하는 분이고  다음 철이나 그다음에는 자기도  선방(禪房)에 들어가서 수행을  것이고, 금생에 안 하더라도 내생에  출가해서  참선하게  것이니.

우리는 서로서로 혼자만 밤낮 하기가 어려우니까 금생에는 내가 공양주 사마 다음 생에는 지금 수행을 하시는 분이 내생에  원주도 살고, 주지도 살고 서로 교대해 가면서 하게 됩니다.

 

그러니 금생에  나만 이렇게 어렵게 공양주를 살고, 어떤 사람은 큰방에 가만히 앉아서 잘만 먹고 편안히 한가? 그런 철없는 생각을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머리를 깎고 스님이  분이나 머리는  깎았어도 신도로 있는 있는 분이나 수백 생을 하면서 우리가 서로서로 다시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몸을 바꿔  때에는 신도가 스님이 수도 있고, 스님이  신도가  수가 있으니, 우리는  같은 불자(佛子)요 형제간이요, 자매간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뼈빠지게  돈을 갖다가 수행하는 스님에게 공양도 올리게 되는 거고, 우리는   공양을 받아서 수행을 하면서 항상 신도들을 축원을 해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가족이고,  형제간입니다.

 

그래서 나는 형제자매 도반 여러분’이라고 하는 말을  쓰기를 좋아하는데, 머리를 깎은 스님네도 전부 선배나 후배나  뱃속에서 나온 형제간이고, 머리는  깎고 청신사 청신녀 신도 여러분도 비록 멀리 가까이 살고 있어도   뱃속에서 나온 형제간이요, 자매간인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결제날을 기해서 법당 안이나 법당 밖에 많은 형제자매 여러분들이 모이셨습니다.

 

자세를 바르게 하고, 호흡을 바르게 하고, 그다음에 화두가 정말 참선하는 데에 껌껌한 밤에 가는 등불과 같은 것입니다. 화두를 자기가 정말 믿는 선지식(善知識)한테 화두를 타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러냐 하면, 자기가 책을 보고 화두를 간택할 수도 있고  아무한테라도 화두를  수가 있습니다. 무엇이 문제냐? 화두 자체는 별것이 아니나,  나가다가 잘못되면 자기가 믿는 선지식이 아니면 가다가  바꾸게  우려가 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화두는 자꾸 바꿔싸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다른 것은 마음에  맞으면 바꿀 수가 있으나 화두는  되거나  되거나  화두로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누구나  화두 가지고 하다 보면 처음부터 끝까지  그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다가 보면은  화두가   들리기도 하고 영판 그럴 수가 있습니다마는 그렇다 하더라도 심호흡을 하면서  화두 하나를  잡드리해 나가는데 그래서 전강 조실 스님 법문을 녹음을 통해서라도 자주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화두를 녹음법문을 듣다 보면 공부해 나가다가 애로점, 문제점이 있는 것이 그때 가서 바로 잡아지는 것입니다.

 

화두는 무엇이 가장 중요한 요점이냐 하면은 의심입니다.   없는 의심, ‘이뭣고?’

 

이뭣고, 이뭣고하는 글자 석 자가 문제가 아니라 이뭣고?’    없는 의심,  의심을 관하는 것입니다.

이뭣고?’하는 것은  의심을 나게 하는 것이고,  이뭣고?’함으로써 나온  의심을 떠억 ()하는 것입니다. ‘관()한다’고 하는 것은 생각 없는 생각으로 생각한다’는 것을 ()한다’고 표현을 하는 건데.

 

 화두는 혼침(昏沈)이 오고 그럴 때에는 미간(眉間)에다가 두고 관하고, 혼침이   때에는 배꼽밑에 단전(丹田)에다가 화두를 두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니 초학자가 너무 미간에다가 화두를 들고 ()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상기(上氣)가  수가 있으니, 어쨌든지 숨을 들어마실  아랫배가 볼록해지고,  들어마셨으면 한참 머물렀다가 내쉬면 아랫배가 홀쪽해진 것을 느끼면서 이뭣고?’

 

화두를  때에는 기왕이면 들었다가 내쉴  이뭣고?’ 초학자는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마는 나중에 익숙해지면 호흡에 상관없이 항상   없는 의심이 단전에  있도록 호흡은 무심(無心) 속에 항상 단전호흡을 하도록 이렇게 해 나가면 되는 것입니다.(2441~4113)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고 ①] 『선가귀감(禪家龜鑑)』 (용화선원刊) p142~145. p147. 참고.

 

(63)於戱라  *佛子여  一衣一食이  莫非農夫之血이요  織女之苦어늘  道眼이  未明하면  如何消得이리요.

 ! 불자여。그대의   옷과  그릇 밥이 농부와 직녀의 피와  아닌 것이 없거늘, 도의 눈이 밝지 못하다면 어떻게 소화하리요 !

 

(註解) 傳燈에  一道人이  道眼이  未明故로  身爲木菌하야  以還信施하니라.

전등록에 옛날 어떤  닦는 사람이 도의 눈이 밝지 못한 탓으로 죽어서 나무버섯이 되어 시주의 은혜를 갚았다 하니라.

 

(64)故로   要識披毛戴角底  卽今에  虛受信施者是어늘  有人은  未飢而食하며  未寒而衣하니  是誠何心哉아  都不思目前之樂이  便是身後之苦也라 하시니라.

그러므로 말씀하시되 털을 쓰고 뿔을 이고 있는 것을 알고자 하느냐? 그것은 지금 신도들이 베푸는 것을 헛되이 받은 자가 이것이어늘, 어떤 사람은 배고프지 않아도 먹고, 춥지 않아도 입으니  진실로 먹고, 춥지 않아도 입으니  진실로 무슨 마음일까? 눈앞의 쾌락이 바로 후생의 괴로움인 줄을 도무지 생각지 않는구나! 하시니라.

 

(註解) 智論에  一道人이  五粒粟으로  受牛身하야  生償筋骨하고  死還皮肉하니  虛受信施가  報應如響이니라.

*지도론 이르기를  수도인이 다섯  좁쌀 때문에  몸을 받아, 살아서는 뼈가 휘도록 일해 주고, 죽어서는 가죽과 살로써 빚을 갚았다하시니 헛되이 시주  받은 응보가 메아리와 같으니라.

 

(66)故로   道人은  進食을  如進毒하고  受施를  如受箭이니  幣厚言甘은  道人所畏라 하시니라.

그러므로 이르시되 도를 닦는 사람은 음식 먹기를 독약을 먹는 것같이 하고시주를 받을 때에는 화살을 받는 것과 같이 할지니, 두터운 대접과 달콤한 말은 도를 닦는 사람의 두려워할 바라 하시니라.

    

(註解) 進食을  如進毒者는  畏喪其道眼也요  受施를  如受箭者는  畏失其道果也니라.

음식 먹기를 독약을 먹듯 하라는 말은 도의 눈을 잃을까 두려워해서이고시주 받기를 화살을 받듯 하라는 말은 도의 열매를 잃을까 두려워함이니라.

 

 

 

[참고 ] (1) 『불조직지심체요절(佛祖直指心體要節) 권상(卷上) 백운화상초록(白雲和尙抄錄 | 원조각성 번역·해설 | 현음사) p111~112. (2) 『전등록(傳燈錄) 1 15 가나제바迦那提婆’ (김월운 옮김 | 동국역경원) p110 참고.

 

〇迦那提波尊者得法  後至毗羅國  彼有長者  名梵摩淨德  一日園中  樹生大耳如菌  味甚美  唯長者與第二子羅睺羅多  取而食之  取已隨長  盡而復生  自餘他人  皆不能見  時尊者知其宿因  遂至其家  長者問其故  尊者曰  汝家昔曾供養一比丘  然其比丘道眼未明  虛沾信施故  報爲木菌  唯汝與子精誠供養  得以享之  餘卽否矣  又問  長者年多少  答曰七十有九  乃說偈曰  入道不通理  復身還信施  汝年八十一  其樹不生耳

 

가나제바 존자께서 용수 대사에게 법을 얻으시고  뒤에 비라국에 가시었다. 그곳에 장자가 있으니 이름은 범마정덕이었다.

어느  정원 가운데 나무에  귀가 생기되 버섯과 같고 맛은 매우 좋았다. 오직 장자와 그의  번째 아들 라후라다가 따다 먹었는데 따고 나면 다시 자라고, 없어진 다음에도 다시 생겼다.  밖의 다른 사람들은 모두 보지 못했다.

 

  가나제바 존자께서  전생의 인연을 아시고 드디어  집에 가셨다. 장자가  까닭을 물으니 가나제바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대들은 전생에  비구를 공양했다. 그러나  비구는 도안(道眼) 밝지를 못해서 헛되이 신심으로 시주한 것을 받았기 때문에  과보로 나무의 버섯이 되었다. 오직 너와 너의 둘째 아들만이 정성껏  비구에게 공양을 올렸기 때문에 누릴  있을  다른 사람들은 그러하지 못한 것이다  물으시되 장자의 나이가 얼마냐?” 장자가 답하기를 “79세입니다 가나제바께서 이에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도에 들어가 진리를 통달하지 못하면 몸을 바꾸어 시주의 것을 갚아주나니, 너의 나이가 81세가 되면  나무에서 버섯이 나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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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판치생모(板齒生毛) ; 화두(공안) 하나.

어떤 스님이 조주 스님께 묻되, “어떤 것이 조사서래의입니까?  (如何是祖師西來意)”하니 답하시되,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하셨다. , 「어떤 것이 달마조사가 서쪽에서  뜻입니까?, 「판치에 털이 났느니라.」라고 하는 화두.

그러면 조주 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 했을까?   화두도 무자 화두와 같이 판치생모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판치생모 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께 뜻이 있는 것이니, 학자들은  조주 스님의 뜻을 참구해야 한다. “어째서  했는고?” 하는 것과 어째서 판치생모 했는고?” 하는 것은 조금도 다름이 없는 것이다. [언하대오(言下大悟)에서] (용화선원) p53.

*이뭣고(是甚 시심마, 시삼마) : ‘이뭣고? 화두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자리)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 일곱 ()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 ,   ()이다. ‘이뭣고?(이뭐꼬)'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뜻은  속에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왔다.

*산승(山僧) ; 스님이 자신을 겸손하게 일컫는 .

*천칠백 공안(千七百 公案) ;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에 천칠백일 명의 인물들이 보여준 기연어구(機緣語句, 깨달음을 이루는 기연에 주고받은 말과 경전·어록의 ) 수록하고 있는 것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

*사대(四大) ; 사람의 몸을 이르는 . 사람의 몸이 , , , 바람(,,,) () 원소() 이루어졌다고 보는 데에서 연유하였다.

*일념단속(一念團束) ; ‘ 생각 단속’. 무슨 생각이든지  생각 났다 하면  생각이 뿌리를 내려 싹이 트고 잎이 피어 결국은 과보(果報) 받는데,  생각 일어나자마자 즉각 자신의 본참공안(本參公案)으로 돌리는 .

마음 속에  생각 일어난 것이 결국 말로 나타나고 행동으로 나타나서   생각 단속을 잘하면 극락에도 가고 부처도   있는데,   생각 단속을 잘못해서 죄를 지어 축생도 되고 지옥에도 가게 되는 것입니다.

*신심(信心) : 내가 바로 부처다 따라서 부처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요, 일체처 일체시에 언제나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공,  소소영령(昭昭靈靈) 바로 이놈에 즉해서 화두를 거각(擧却)함으로써 거기에서 자성불(自性佛) 철견을 해야 한다는 믿음.

올바르게 열심히 참선을 하면 나도 깨달을  있다 믿음. 진리에 대한 확신.

내가 바로 부처다라는 믿음. 그러기 때문에 끊어야  생사도 없고, 버려야  번뇌도 없다 하는 믿음.

④일체처 일체시에 자신의 본참공안(本參公案)으로 자가철주(自家鐵柱) 세워 이것 밖에는 내가  것이 없다! 오직 이것만이 내가 바로 살아가는 길이고 나의 생사 문제를 해결하는 길이고 이것만이 영원을 살아가는 길이다!’라고 하는 철저하고 확실한 믿음.

*분심(憤心) : 억울하고 원통하여 분한 마음.

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도인들은 진즉 확철대오를 해서 중생 제도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여태까지 일대사를 해결 못하고 생사윤회를 하고 있는가. 내가 이래 가지고 어찌 방일하게 지낼  있겠는가. 속에서부터 넘쳐 흐르는 대분심이 있어야. 분심이 있어야 용기가 나는 것이다.

*본참공안(本參公案) : 본참화두(本參話頭).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의단(疑團 의심할 /덩어리 ) ; 공안(화두) 대한   없는 의심(疑心) 덩어리[].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 깨달음.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

*제도(濟度 건널 /건널 ) ; 중생을 미혹의  바다(생사고해 生死苦海)로부터 구하여[], 생사없는 피안(彼岸, 깨달음의 언덕) 이르게 하는[] . () 구제(救濟). ()도탈(度脫).

[참고] *구제(救濟 건질 /건널 )—어려움이나 위험에 빠진 사람을 돕거나 구하여 .

*도탈(度脫 건널 /벗을 )—속세의 속박이나 번뇌 등에서 벗어나 근심이 없는 편안한 경지에 도달함.

*대중공양(大衆供養) ; ①수행자에게 음식을 올리는 . ②대중이 함께 식사하는 .

*수좌(首座) ; ①선원(禪院)에서 좌선하는 스님. ②수행 기간이 길고 덕이 높아, 모임에서  윗자리에 앉는 스님. ③선원에서 좌선하는 스님들을 지도하고 단속하는 스님.

*시주(施主 베풀 /주인 ) : ①스님에게 혹은 절에 돈이나 음식 따위를 보시하는 . 또는 그런 사람. ②남에게 가르침이나 재물을 아낌없이 베푸는 사람. 단월(檀越 dana-pati)이라고도 .

*시은(施恩) ; ①시주(施主)에게서 받은 은혜. ②은혜를 베풂.

*시주것(施主것) ; 절이나 스님에게 조건없이 베푼 물건.

*도업(道業) ; () 깨달음. () 영위(營爲 일을 계획하여 꾸려 나감). 불도(佛道) 수행. 진리의 실천.

*축원(祝願) ; 어떤 일이 희망하는 대로 이루어지기를 불보살(佛菩薩) 간절히 원하고 .

*주지(住持) ; 절이 잘 유지(維持)되도록 모든 일을 총괄적으로 책임지고 관리하는 소임.

*원주(院主) ; 후원(後院, 절에서 부엌을 일컫는 ) 책임지는 소임. 또는  일을 맡은 스님.

*도감(都監) ; 사찰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감독하는 소임.

*별좌(別座) ; 절에서 식사·의복·방석·이부자리 등을 담당하는 직책, 또는  일을 맡은 스님.

*공양주(供養主) ; 절에서 밥을 짓는 소임, 또는  일을 맡은 스님.

*채공(菜供) ; 절에서 반찬을 마련하는 소임, 또는  일을 맡은 스님.

*도반(道伴) ; 함께 불도(佛道) 수행하는 . 불법(佛法) 닦으면서 사귄 .

*참선(參禪) ; ①선() 수행을 하는 .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큰방 ; 스님들의 본업인 수행을 행하는 장소. 예불과 공양시간을 제외한 모든 시간을 참선만을 행하는 선원(禪院)에서 대중이  자리에 모여 참선수행 () 말한다.

*불자(佛子) : 부처님의 자녀라는 뜻이다. 불법(佛法) 믿는 이면 모두 불자가 된다. 그것은 부처님 법에서 새로운 생명을 얻었기 때문이며 부처님의 혜명(慧命) 이어가고, ()집과 () 재산을 상속받게 되는 까닭이다.

또한 모든 중생을  불자라고 하는데, 그것은 어떤 중생이나 모두 부처의 성품(佛性) 있어서, 그것이 부처의 씨가 되고, 지혜는 어머니가 되며 부처님은 아버지가 되어, 필경에는 반드시 성불(成佛)하게 된다.

<섭대승론석(攝大乘論釋)>에는 불자에 다섯 가지 뜻이 있다고 하였다. ①믿음이 종자가 되고 ②지혜는 어머니가 되고 ③선정은 () 되고 ④자비심(慈悲心) 유모가 되고 ⑤부처님은 아버지가 된다.

*선지식(善知識) ; ①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좋은 지도자. 훌륭한 지도자. 바르게 이끄는 사람. ②좋은 . 마음의 . 선우(善友).

*잡드리 ; ‘잡도리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대책.

*전강선사 녹음법문(錄音法門) ; 전강 스님께서 후학을 위해 참선법(參禪法) 핵심으로 설한 법문이 칠백 시간 분량이 녹음되어 있다.  중에는 『전강선사 일대기』 『몽산법어』 『초발심자경문』 등이 있다. 용화선원(녹음실)에서 전강선사  송담스님의 모든 법문을 mp3 파일로 구할  있습니다.

*혼침(昏沈 어두울 /잠길 ) ; ①정신이 미혹(迷惑)하고 흐리멍덩함. ②좌선할  정신이 맑지 못하여 잠에 빠지거나 무기공(無記空) 떨어진 상태.

*단전(丹田) ; 배꼽 아래로  () 삼푼 되는 (위치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아랫배에 해당. '' () 뜻하며, '단전' 인체에서 가장 귀중한 약을 만들어내는 장소로서의 []이라는 의미. 도가와 한의학에서는 단전을 생명력, 활동력의 원천으로 본다.

*상기(上氣) ; [한의피가 뇌로 몰리는 현상얼굴이 붉어지고 열이 나며발한두통이명(耳鳴), 현기증 따위가 일어나기도 한다. ②얼굴이 흥분이나 수치감으로 붉어짐. (용715)

 

Posted by 닥공닥정
정진(精進) 수행2017. 6. 16. 21:45

§(663) (게송)한산정상월륜고~ / 단지불회 시즉견성 / 이 공부 만나 실천할 수 있음에 항상 감사해야 / (게송)오주차암오막식~ / 한 생각 단속에 무상 속에 영원을 사는 길이 거기에 있다.


해제를 했다고 해서 우리가 우리의 정진하는 데에 무엇이  끝나고 그런 것이 아니고, 해제날 정식으로 다시 우리의 자신을 반성하고, 잘못된 점이 있으면 참회(懺悔) 하고 그리고 해제날 다시 우리의 마음을 가다듬고 정진을 다시 시작하는 그런 각오가 있을 뿐인 것입니다.

  없는 의단이 독로하고,   없는 의심으로 의관(疑觀)으로 나가야 올바르게 정진을 하는 것이고, 올바르게 정진을 해야 바로 깨달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생각으로 인해서 그것이 무량겁이 되고, 우리의   생각을 어떻게 갖느냐에 따라서 도솔천에도 가고 극락세계도 가고  육도도 윤회하게 되는 것인 만큼 해제 동안에 정말 단속을 잘해서 정진을 잘해야 우리는 분명 목적을 달성하게  것입니다.

**송담스님(No.663)—2002 동안거해제 법어(02.02.6)

(1) 약 13분. (2) 약 17분.

(1)------------------


한산정상월륜고(寒山頂上月輪孤)하야  조견청공일물무(照見晴空一物無)로구나

나무~아미타불~

가귀천연무가보(可貴天然無價寶)  매재오음익신구(埋在五陰溺身軀)로구나

나무~아미타불~


한산정상월륜고(寒山頂上月輪孤)  조견청공일물무(照見晴空一物無). 한산(寒山) 산봉우리에 외로운 달이 밝았는데, 맑은 하늘에 비추되  물건도 없구나.


가귀천연무가보(可貴天然無價寶), 가히 귀(貴)엽다 천연의 값없는 보배가,

매재오음익신구(埋在五陰溺身軀). 오음(五陰)으로 뭉쳐진  육체 속에 파묻혀 있구나.


밝은 달이 한산(寒山) 봉우리에 둥그랗게 떠있는데,  달이  허공을 비추되  물건도 없다 그거여.

우리 육체 속에 소소영령(昭昭靈靈) 주인공이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  육체 속에    없는 소소영령한 주인공이 묻혀 있다.   물건이  법계(法界)를 두루 비추고 있건마는  우리의 주인공을  수가 없다 이거거든. 한산(寒山) ()입니다.


방금 해제일을 맞이해서 전강 조실 스님의 간곡한 법문을 경청을 했습니다. 해제날인데 결제 법회 때에 들을 만한 그러한 법문을 경청을 했습니다.

마땅히 해제(解制)에는 해제 법문을 선택할 것이 결제(結制)  들을 만한 법문을 들은 것은,   동안 결제를 해서 안거(安居) 했으되 해제 ・ 결제라 하는 것은우기(雨期), 여름철에 우기에   안거를 하고,  겨울철에 추울 때는 그래서 겨울 안거를 하겠지마는그것은 부득이해서 기후에 따라서 결제 ・ 해제가 있을  우리의 정진을 하는 데 있어서는 결제 ・ 해제가 있을 수가 없습니다.


해제를 했다고 해서 우리가 우리의 정진하는 데에 무엇이  끝나고 그런 것이 아니고, 해제날 정식으로 다시 우리의 자신을 반성하고, 잘못된 점이 있으면 참회(懺悔) 하고 그리고 해제날 다시 우리의 마음을 가다듬고 정진을 다시 시작하는 그런 각오가 있을 뿐인 것입니다.

그래서 조실 스님의 녹음법문을 초학자(初學者)가 마땅히 들어야  만한 그리고 새로운 마음으로 정진을 시작하는 그런 마음으로 듣기 위해서 그런 법문을 선택을 했습니다.


아까 마지막 무렵에 조실 스님의 법문에 정진을 해서   없는 의단(疑團) 독로(獨露)해야  사람이 올바르게 정진을  것이지. 정진을  가지고 무엇이 알아진 것이 있다든지, 무엇이 나타난 것이 있다면 정진을 바로  것이 아니다 그런 말씀을 우리는 들었습니다.

 갈수록   없는 의단이 독로해야 옳게 정진하고 있는 것이고, 해제를 하고 나서도 정말   없는 의단이 독로해야  사람이  철을 올바르게 정진한 것이다. 이런 말씀입니다.


분명히  몸뚱이 속에 소소영령(昭昭靈靈) 주인공이 밤낮없이 그놈이 작용을 하고 있고, 활동을 하고 있고, 눈을 통해서 온갖 것을 보고, 귀를 통해서 온갖 소리를 듣고, 앉고 서고 눕고 거닐고  그러한 소소영령한 놈이 있건마는 찾아보면은 눈으로  수도 없고, 귀로 들을 수도 없고  손으로 잡을 수가 없습니다.

 갈수록  수가 없을 뿐이지. ‘! 이것이로구나하고 알아진 것이 있고, 보이는 것이 있다면은  사람은 공부가 빗나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고인의 말씀에 단지불회(但知不會) 시즉견성(是卽見性)이다’

다맛   없어. ‘다맛   없는 것이 이것이 자기의 성품을 보는 이라고 하는 그런 말씀을 하신 법문도 있습니다.


  있는 것이고 보이는 것이라면 그것은 바로 자기를 보는 것이 아니고, 바로 자성(自性) 보는 것이, 깨닫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모양이 있고 색상이 있는 것이라면 응당 눈으로  수가 있겠고 손으로 만져볼 수가 있겠으나 본래 모양이 없는 것이고 색상이 없는 것이라 그릴 수도 없고 표현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없는 의단이 독로하고,   없는 의심으로 의관(疑觀)으로 나가야 올바르게 정진을 하는 것이고, 올바르게 정진을 해야 바로 깨달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근기(根機) 약하고 그래서  갈수록 어렵고 참지 못해 가지고 몸부림을 치게 됩니다마는, 그래도 숙세(宿世) 정법에 대한 인연이 있고 그래서 우리는  어렵고  갈수록 재미가 없는 길을 우리는 목숨을 걸고 취택(取澤)을 했습니다.

최상승법(最上乘法) 대한 숙세의 선근 종자(善根種子) 없다면 아무나  공부를 믿게 되기도 어렵고   공부에 착수를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도 우리는 숙세의 깊은 선근을 심었기 때문에  공부를 믿게 되고   공부를 하겠다고 착수를 했고, 그래서   이태    년을 우리는 오직   길을 향해서 정진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만으로도 우리는 다행한 일이고,  사바세계(娑婆世界) 태어난  자체를 우리는 원망하는 바가 없고,  사바세계에 태어나서  공부를 만나게 되고  법을 실천을   있게  것을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겸허하게 생각할 따름인 것입니다.


설사 공부를 하다가 힘이 들고 지쳐서 몸을 가누기가 어렵다 해도 우리는  길을 포기할 수가 없는 것이고, 설사 병이 나서 꿍꿍 앓게 되더라도 우리는 앓는 가운데에서도 생각만큼은  화두(話頭)에 대한  생각을 놓을 수가 없는 것이고, 심지어는 꿍꿍 앓다가 숨을 거둔  찰나에도 우리는 화두를,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 들면서 눈을 감게 되는 것입니다.

그만큼 철저한 신심이 아니고서는  최상승법을 믿고 나아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처음~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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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주차암오막식(吾住此庵吾莫識)인데  심심밀밀무옹색(深深密密無壅塞)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함개건곤몰향배(函蓋乾坤沒向背)하야  부주동서여남북(不住東西與南北)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오주차암오막식(吾住此庵吾莫識)이다. 내가  절에 머물고 있으되,  암자(庵子) 머물고 있으되 나도 또한  수가 없구나. 내가  여기에 머물고 있는가를  수가 없다 이거거든.

심심밀밀무옹색(深深密密無壅塞)이여. 깊고 깊고 밀밀해서 옹색(壅塞)함이 없다. ‘옹색함이 없다’고  것은 아무 부족하고 부자유한 것이 없다 이것입니다.


함개건곤몰향배(函蓋乾坤沒向背). 하늘과 땅이 앞과 뒤가 없고,

부주동서여남북(不住東西與南北)이다. 동서남북에 주착한 바도 없다.


 게송은 태고보우(太古普愚) 선사가 당신이 주석하고 계시었던 태고암에서 태고암가(太古庵歌)’라고 하는 시를 읊은  구절입니다.

여기에 표현한 암자(庵子)라고 하는 것은 태고암에 대한 말이겠으나, 산승이  게송을  때에는 우리가 머물고 있는  사바세계가 자기의 암자요, 우리가 머물고 있는  대한민국이 자기의 암자요, 우리가 삼동(三冬) 지냈던 자기의  선원 그곳이 바로 자기의 암자요, 가깝게 말하면 우리가 머물러 입고 있는  육체가 각자 자기의 조그마한 암자가  것입니다.


 암자에  자기가 지금  육체를 짊어지고 다니며,    철에 자기의   동안 지낸  선방에 지내게 되었는가? 물론 이래저래 해서 이러한 인연으로 거기에 산다고 말은  수가 있겠으나 사실은  수가 없습니다.

 금생에  몸뚱이를 뒤집어쓰고 나왔는가?  조그만한 육체의 암자를 가지고 태어났는가?  생각  생각이    생각, 생각 자체를 우리는 암자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없는 생각이 끊임없이 일어나되  생각이 밀밀(密密)하고 깊고 깊어서,  생각이 일어나는 생각을 어떻게 자기가   생각이 지금 일어나고 있는가를 모릅니다. 그래도 아무 걸림이 없이 생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생각    초가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고, 우리의 육체도  생각으로 인해서  육체를 받아났으나,  육체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갈는지 모릅니다.


물론 분석을 하면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四大)로 뭉쳐졌고  죽게 되면은 지수화풍 사대로 돌아가겠으나, 지수화풍  자체를 우리는  모릅니다.

우리의 생각이 일어나는 생주이멸(生住異滅)  수가 없고, 육체를 이루고 있는 지수화풍도 사실은  자체를 모르기 때문에 모르는 것입니다. 모르지마는 우리는  이렇게 하루하루를 살고 있고    초를 그렇게 살고 있는 것입니다.


하늘은 머리 위에 있고 땅은 다리 밑에 있으나, 어디를 두고 앞이라고 하고 어디를 보고 뒤라고 하겠으며, 동서남북을 우리는 나침반을 통해서 알고 있습니다마는 동서남북은 원래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편의상 경도(經度)다, 위도(緯度)다  가지고 동서남북을 지도상에 그려 놓고 있습니다마는 이름이 ()이고, 이름이 (西) 원래 동서남북은 없는 것입니다. 그러한 속에서 우리는  오늘을 살고 있고,  시간  시간을 지내고 있습니다.


우리가 만일 불법을 만나지 못하고  정법을 만나지 못해서 화두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지 않다면은 우리는 나침반 없는 조각배로  태평양 속에 던져져 있는 거와 같은 신세일 것입니다.

 끝없는 우주법계 속에  몸뚱이는 태어났으며,  속에서 끊임없이 희로애락 속에서 우리는 물거품처럼 떠돌다가 언제 꺼져버릴는지도 모를 것입니다마는 우리는 다행히 불법을 만났고  정법을 만나서 우리는 우리의  길이 있습니다.


  없는 의심, 의관(疑觀)이라고 하는 화두를 가지고 우리는 분명히 목표가 있고,  목표를 향해서  하루를 살아가고 있어서, 정처 없는 무주고혼(無主孤魂) 신세로 일생을 살다가 육도(六途)  윤회(輪廻)하게  그러한 처절하고도 외로운 영혼이 우리는 아닙니다.


우리는 분명히  곳이 있고 분명히 목표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비록 보잘  없는  중생이라 하더라도 우리는 뚜렷이 목표가 있고, 우리 몸뚱이 속에 비로자나 법신(毘盧遮那法身)이 상주하고 계신  법을 믿기 때문에,

우리는 설사 말세에 태어났고,  세계가 성주괴공과 흥망성쇠 속에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으로 싸우고 있고, 언제 불바다가 될는지도 모르는  사바세계에 살지마는 우리는 결단코 그러한 생사 속에 영원을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우리는 다행하고 행복한 존재들이면서 동시에 우리는 행복하고 경행(慶幸) 그러한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정녕 영원히 행복하게 살고 영원히 바르게 살려면은 우리는  생각 속에 화두를 놓치지 않도록 단속하는 길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해제일을 맞이해서 우리는 조실 스님의 법문을 한 편을 듣고, 산승은 우리 형제자매 도반 여러분들을 향해서 이러한 다행한 인연을 만난 것에 대한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비록   동안에 용화사  중앙선원  인제 법보선원   전주의 위봉사 선원  승련사 선원, 대전에   복전암 선원  세등선원, 방방곡곡에서 정법을 믿는 목숨을 걸고 수행하던 정진하던 도반들이 모였으니 두서없이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마는 우리가  것은 오직   생각을 단속하는  뿐입니다.


 생각으로 인해서 그것이 무량겁이 되고, 우리의   생각을 어떻게 갖느냐에 따라서 도솔천에도 가고 극락세계도 가고  육도도 윤회하게 되는 것인 만큼 해제를 했다고 해서다음 산철결제  여름결제를 우리는  결제를 하게 됩니다해제 동안에 정말 단속을 잘해서 정진을 잘해야 우리는 분명 목적을 달성하게  것입니다.



파사노년(怕死老年) 친석가(親釋迦)하니  두상광음전두비(頭上光陰轉頭飛)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제득혈루무용처(啼得血淚無用處)  불여함구과잔춘(不如緘口過殘春)이로다

나무~아미타불~


파사노년(怕死老年) 친석가(親釋迦)로다. 죽음이 두려운 노년(老年)에사 석가(釋迦) 친했다. 억만 겁을 윤회를 하다가 겨우 금생에사 이렇게 불법을 만나게 되었다 이것입니다.

그런데 두상광음(頭上光陰) 전두비(轉頭飛). 머리 위의 광음(光陰), 세월은 번갯불처럼 지내가고 있다.


제득혈루(啼得血淚)라도 무용처(無用處). 밤새도록 울고 울어서 피눈물이 난다 하더라고  곳이 없구나. 불여함구과잔춘(不如緘口過殘春)이다. 입을 다물고 남은 봄을 지낸 것만 같지 못하다. 이런 고인의 시를 읊었습니다.


비록 우리가 부처님 열반하신지 삼천년이요  말세에 태어났고, 무량겁을 유전(流轉)을 하다가 금생에 이렇게 불법을 만났는데, 그런데도 세월은 번개처럼 흘러가서 엊그제가 젊었을 때인데 벌써 흰머리가 희끗희끗 나고 얼굴에는 주름살이 잡혔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우리는, 생사는 늙었다고만 해서 금방 죽는 것도 아니고, 젊다고 해서  앞으로   년을 산다고 아무도 보증을  수가 없습니다.


무상(無常)하지마는 우리는  생각 단속한다면  무상 속에 영원을 사는 길이 거기에 있고,

무상할수록에 더욱 우리는 정신을 가다듬고    초를 소중히 여기고 그리고 정진을  것을 다짐하면서 법상에서 내려가고자 합니다.(1249~2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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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한산정상월륜고~’ ; 『한산자시(寒山子詩)』에서 한산(寒山)의 시.

*오음(五陰) ; 오온(五蘊). () 무더기모임집합더미를 뜻함. 인간을 구성하는 다섯 가지의 요소의 무더기, 물질적 요소인 색온(色蘊) 정신요소인 4(···) 합쳐 부르는 .

①색온(色蘊) : 몸이라는 무더기. 몸의 감각 무더기. ②수온(受蘊) : 괴로움이나 즐거움등, 느낌의 무더기. ③상온(想蘊) : 대상에 이름을 부여하고, 다양한 개념을 지어내는 생각관념의 무더기. ④행온(行蘊 : 의도(意圖)하고 지향하는 의지충동의욕의 무더기. ⑤식온(識蘊) : 식별하고 판단하는 인식의 무더기.

*소소영령(昭昭靈靈) ; 한없이 밝고 신령함. 소소(昭昭) 영령(靈靈) 함께 밝은 . 밝은 모양. 진여(眞如), 법성(法性), 불심(佛心) 의미하는 .

*법계(法界) ; ①모든 현상, 전우주. ②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③진리의 세계.

*한산(寒山) ; 중국 당나라 때 사람. 성명은 알 수 없고, 천태(天台) 당흥현(唐興縣)의 서쪽 70리에 한암(寒巖)이라는 바위가 있는데, 대개 그 바위굴 속에 있었으므로 ‘한산’이라 하고, 때로는 국청사(國淸寺)에 가기도 했다.

몸은 바싹 마르고, 꼴은 거지와 같고 보기에 미친 사람 비슷한 짓을 하며, 국청사 절 부엌에서 일을 하고 있는 습득(拾得)에게 대중이 먹고 남은 밥을 얻어서 댓통에 넣어가지고 한산으로 돌아가곤 하였다. 미친 짓을 부리면서도 하는 말은 불도(佛道)의 이치에 맞으며 또 시를 잘하였다.

어느날 태주자사(台州刺史) 여구윤(閭丘胤)이 사람을 보내 한암(寒巖)에 찾아가서 옷과 약 등을 주었더니, 한산은 큰 소리로 “도적놈아! 이 도적놈아!”하면서 바위굴로 물러났고 “너희들에게 말한다, 각각 노력해라!”하면서 바위굴로 들어간 뒤에는 그 소식을 알 수 없었다 한다. 세상에서 한산, 습득, 풍간(豊干)을 3성(聖)이라 부르며, 또 한산을 문수보살, 습득을 보현보살 화현이라 한다. 『한산시』 3권이 있다.

—[참고] 여구윤(閭丘胤)의 ‘한산자시집서(寒山子詩集序)’

*해제(解制  /만들·법도 ) ; (안거) 마침. ②재계(齋戒)하던 것을 그만두고 .

*결제(結制 맺을 /만들·법도 ) ; 참선 수행하는 안거(安居) 들어감. 하안거는 음력 4 15일에 결제하며, 동안거는 음력 10 15일에 결제한다.

*안거(安居 편안할 /있을 ) ; (산스크리트) varsa 원뜻은 우기(雨期).  인도의 불교도들은 4 15(또는 5 15)부터 3개월  우기(雨期)때에 외출하면 풀이나 나무,작은 곤충을 모르고 밟아 죽일까 두려워 했고 그래서 동굴이나 사원에 들어가서 수행에 전념했다. 이것을 우안거(雨安居)라고 한다.

 선종(禪宗)에서는 음력 4 15일부터 7 15일까지 하안거(夏安居), 10 15부터 다음해 1 15까지를 동안거(冬安居)라고 해서 각각 90일간 사원에 머물르면서 외출을 금지하고 오로지 좌선을 중심으로  수행에 전념한다. 안거의 처음을 결제(結制), 끝을 해제(解制) 한다.

*참회(懺悔 뉘우칠 /뉘우칠 ) ; ①자기의 잘못에 대하여 깨닫고 깊이 뉘우치며, 다시는 같은 잘못을 짓지 않겠다고 결심함. ②신이나 부처님 또는 대중 앞에서 자기의 죄를 뉘우치고 용서를 구함.

[참고]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156~157 참고.

有罪則懺悔하고  發業則慚愧하면  有丈夫氣象이요,  又改過自新하면  罪隨心滅이니라.

허물이 있거든(有罪)  참회하고, 잘못한 일이 있으면(發業)  부끄러워할  알면(慚愧) 대장부의 기상이 있다  것이요, 또한 허물을 고쳐 스스로 새롭게 하면(改過自新),  죄업은 마음을 따라 없어지느니라(罪隨心滅).

(註解) 懺悔者는  懺其前愆이요  悔其後過라.  慚愧者  慚責於內하고  愧發於外라.  然이나 心本空寂이라  罪業이  無寄니라

참회(懺悔) 먼저 지은 허물을 뉘우치고, 뒷날에는 다시 짓지 않겠다고 맹세하는 것이다. 부끄러워한다(慚愧) 것은 안으로 자신을 꾸짖고, 밖으로는 자기의 허물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은 본래 비어 고요한 것이라(心本空寂), 죄업이 붙어 있을 곳이 없는 것이다(罪業無寄).

*전강선사 녹음법문(錄音法門) ; 전강 스님께서 후학을 위해 참선법(參禪法) 핵심으로 설한 법문이 칠백 시간 분량이 녹음되어 있다.  중에는 『전강선사 일대기』 『몽산법어』 『초발심자경문』 등이 있다. 용화선원(녹음실)에서 전강선사  송담스님의 모든 법문을 mp3 파일로 구할  있습니다.

*의단(疑團 의심할 /덩어리 ) ; 공안(화두) 대한   없는 의심(疑心) 덩어리[]. 

*독로(獨露 홀로·오로지 /드러날 ) ; 홀로[] 드러나다[].

*단지불회 시즉견성(但知不會 是卽見性) ; [참고] 『수심결(修心訣) (보조지눌 스님)

  作何方便  一念廻機  便悟自性

  只汝自心  更作什麼方便  若作方便  更求解會  比如有人  不見自眼  以謂無眼  更欲求見  旣是自眼  如何更見  若知不失  卽爲見眼  更無求見之心  豈有不見之想  自己靈知  亦復如是  旣是自心  何更求會  若欲求會  便會不得  但知不會  是卽見性

() 어떤 방편을 지어야  생각 기틀을 돌이켜서  자성을 깨달을  있습니까?

() 다만 너의 스스로의 마음인데 다시 무슨 방편을 지으려 하는고. 만일 방편을 지어서 다시 알기를 구한다면, 비유컨대 어떤 사람이 자기 눈을 보지 못하고서는 눈이 없다 하여 다시 보려고 하는 것과 같다. 이미 자기의 눈인데 무엇을 다시 보리오. 만일 잃지 않은  알면  눈을  것이다. 다시 보려는 마음도 없거니 어찌 보지 못한다는 생각이 있으리오.

자기의 영지(靈知) 또한 이와 같아서, 이미 자기의 마음인데 어찌 다시 알려고 하는가. 만일 알려고 한다면  알지 못할 것이니, 다만 알지 못할  알면  성품을 [見性] 것이니라.

*자성(自性) ; ①사물  자체의 본성. 본성 ②본래부터 저절로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의관(疑觀) ; 의심관(疑心觀). 화두를 거각하여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觀照) 하는 .

[참고] 송담스님(세등선원 No.68)—정묘년 동안거 해제 법어(1988.01.17)

처음에 공부를   모르는 사람은 힘을  써야 화두가 들리니까 힘을  써서 하기도 하고, 자꾸 숨을 들어마셨다 내쉴 때마다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한번 하고 한참 있으면 화두가 없어져 버리니까, 부득이 숨을 내쉴 때마다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하고 자주자주 들을  밖에는 없지만, 한 ,  ,   이렇게  가다 보면 그렇게 자주 들지  해도 화두가  들리게 된다 그말이여.


들려 있걸랑 화두를 다시  거기다 덮치기로 자꾸 들어  필요는 없는 것이여. 화두가 희미해져 버리거나, 화두가 없어지고  생각이 들어오거나 하면 그때 한번씩 떠억 챙기면 되는 것이지, 화두가 이미 들어져서   없는 의심이 있는데, 거기다 대고 자꾸 화두를  용을 쓰면서 자꾸 들어 싸면 그것은 아주 서투른 공부다 그말이여.


그렇게 순일하게, 화두를 들려고  해도 화두가 터억 들려서 의단(疑團) 독로(獨露)하걸랑,  독로한 의단을 성성(惺惺) 가운데 묵묵히 그것을 관조(觀照) 하는 거여.   없는 의심의 ()이여. 의심관(疑心觀).

거기에는 고요하다는 생각도 붙을 수가 없고, 편안하다는 생각도 붙을 수가 없고, 맑고 깨끗하다는 생각도 어떻게 거기다가 그런 생각을 붙일 수가 있냐 그말이여. 고요하고 맑고 깨끗하고 편안한 그런 생각에는 조금도 그런 생각을 두어서도 안되고, 그런 생각을 즐겨서도 안되고, 그런 생각을 집착해서도 안돼.


다맛 우리가  일은   없는 의단(疑團)만을  잡드리  나가는 거여. 너무 긴하게 잡드리를 해서도 안되고, 너무 늘어지게 해서도 안되고, () () 긴완(緊緩) 득기중(得其中) 해야 . 그것이 묘한 ()이라 말할 수가 있는 거여.


()이라 하는 것도 일종에 생각이지만, 생각없는 생각을 ()이라 하는 거여.

우리가 참으로 올바르게 화두를 들을  모르는 사람은 부득이 해서 생각을 일으켜 가지고 화두를 참구를 하는데, 일구월심 정진을 해서 참으로 바르게 화두를 참구할  아는 사람은 바로 ()으로 들어가는 거여. 관이란 생각없는 생각으로 생각하는 것을 관이라 그러는 거여.


조금도 늘어지지도 않고, 조금도 긴하지도 아니한 () 의심(疑心) ()’으로  나가야 되는 거여.


1분의 백천 분의 1 같은 그런 짧은 시간도 생각을 일으켜서  일어나는 잡념을 물리칠라  것도 없고, 그렇게 화두가 순일하게 된다 해도 아주 미세한 생각은 이렇게 일어날 수가 있어.

일어나지만 그것을 일어나는 생각을 물리칠라고 생각을 내서는 아니되는 거여. 생각이 일어나더라도 일어난 채로 그냥 놔둬 버리고, 자기 화두만을  관해 나가면  생각은 자취없이 스쳐서 지내가 버리는 거여.


마치 앞으로 춥도 덥지도 않는  봄철이 돌아오겠지마는,  봄철에 도량이나 동산에 나가서  산책을 하면서 포행을 하면서 정진을  때에 춥지도 덥지도 않는 봄바람이 귓전에 스쳐간다고 해서  봄바람 때문에 화두가 도망갈 필요는 없거든.

그냥 귓전을 스쳐서 지내가고 옷자락이  팔랑거리거나 말거나 내버려둬 버리고, 나는 성성적적(惺惺寂寂)허게  의심의 () 단속해 나가는 것처럼, 일어나는 크고 작은 모든 번뇌가 일어난다 하드라도 그냥 놔둬 버려.


끝없이 일어났다가 없어지고 일어났다 꺼져 버리고, 내가 거기에 따라주지만 아니하고, 집착하지만 아니하고, 물리칠라고 하지도 말고, 그러면은 그냥  결에 일어났다가 제물에 그냥 스쳐가 버리는 거여. 그까짓 것은 내가 공부해 나가는  조금도 방해로울 것이 없는 것이여.

우리 활구참선을 하는 수행자는 승속(僧俗) 막론하고  화두를 올바르게 잡두리  나갈 줄만 알면, 어디를 가거나  선불장(選佛場)이요, 그게 바로 선방(禪房)이요, 공부처(工夫處) 그말이여.

[참고] 송담스님(No256)—85 2 첫째 일요법회(85.02.03)

금년 여름에 보살선방에 백여섯 분이 방부를 들여서 항시 칠팔십 명이 그렇게  엄격한 규율 속에서 정진들을 모다 애쓰고 계시는데 자세를 바르게 하고, 호흡을 바르게 하고, 나아가서 번째 가서는 화두(話頭) 어떻게 의심(疑心) 하느냐?

 화두를 의심하는 방법, 이것이 또한 간단하지만  이것이 어려운 것입니다.  ,  ,  , 3, 5, 10년을 해도  화두를 참으로 올바르게 화두를 참구(參究)하고, 관조한다는 것은 어려운 것입니다. 이것은  말로 이렇게 하는 것이 좋다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법문을 듣고 고대로  하고, 고대로 하면서  법문을 듣고 해서 스스로 많은 노력, 스스로 그것을 공부해 나가는 요령급하지도 않고 너무 늘어지지도 아니하며,  요령을 스스로 터득을 해야 합니다.

스스로 터득한다니까 선지식(善知識) 필요 없고, 자기 혼자 어디 돌굴이나 토굴에 가서  해제끼면 되냐 하면 그게 아니에요. 반드시 선지식의 지도를 받되, 받아 가지고 하면서도 스스로 묘한 의관(疑觀) 얻어야 하는 것입니다.


 묘한 의심관이라 하는 것은 도저히 어떻게 말로써 설명해 가르켜  수가 없습니다. 자기가 일구월심(日久月深) 항시 면면밀밀(綿綿密密)하게 의심해 가고 관해 가고,  자세와 호흡과 화두를 삼위가 일체가 되도록  조정을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필경에는  묘한 의심관인 것입니다.  의심관, ()이라 하는 것도 일종의 생각이지만 생각 없는 생각 관이라 이렇게 말할 수가 있는데, 막연하게 어떤 관이 아니라  활구참선(活句參禪) 의심(疑心) 이라야 .


옛날에는 해가 떨어지려고  , 서산에 지려고  ,  수평선에 해가 지려고  때에,   맷방석만한 해가 땅에 질락 말락    빨갛고 아름다운 해가 중천에 있을 때는 눈이 부셔서  수가 없는데, 해가  무렵에는 눈이 부시질 않고  아름답고 벌건 굉장히   해를  수가 있습니다.

 아름다운 해를 한참 보는 것입니다. 마지막  떨어져서  보일 때까지  시간 내지  시간을 눈이 부시지 아니할 때부터서 그것을 관하기 시작해 가지고 마지막  때까지 관찰하고서,  다음에는 밤새  눈을 감으나 뜨나  찬란하고 아름다운 둥그런 해를 ()하는 것입니다.


눈을 감고서도 보이는 것이 그것이 () 것입니다. 눈을 뜨나 감으나 상관없이 항시 있는 것이 그것이 관인데, 그것을 갖다가 일관(日觀)이라 그러거든. 해를 관하는 수행법이여.

밤새  둥근 해를 갖다가 관하고,  이튿날 하루 종일 관하다가     다시   관을 해서,  관을 다시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밤새 관하고,  이튿날 관하고    관하고 해서 평생 동안을 그렇게 관을  나가는데, 이것도 하나의 수행 방법입니다.


이러한  일관이라든지  달을 관하는 관법이라든지, 아까 백골관이라든지, 여러 가지 관법(觀法) 있는데,  참선도 하나의 의심의 관법이라 이렇게 말할 수가 있습니다.


성성(惺惺)하고 적적(寂寂)하면서도, 일부러 화두를 들려고 하지 아니해도 저절로  의심관이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의단(疑團) 독로(獨露)하도록, 처음에는 이뭣고?’ ‘이뭣고?’하지만 나중에는 이뭣고?’  해도   없는 의심이해가   봐두었던  둥근 해가 밤에도 고대로 보이고,  이튿날에도 고대로 환하게 보이듯이, 의심관이 그렇게 되어야 하거든.

그렇게 해서 타성일편(打成一片) 되면 일주일을 가지 못해서 공안을 타파(打破)하게 되고, 일체 천칠백 공안을 일관도천(一串都穿) . 자기의 본래면목(本來面目) 역대조사(歷代祖師) 면목을 사무쳐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근기(根機 뿌리 /베틀 ) ;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있는 중생의 소질이나 근성. 보통 근기의 차등을 상근기, 중근기, 하근기로 구분한다.

*숙세(宿世 지날·묵을 /세상·시대 ) ;  세상에 태어나기 이전[宿] 세상[].

*취택(取擇 가질 /뽑을 ) ; 택취(擇取). 여럿 가운데서 필요한 것을 ()하여 골라 뽑음[].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선근(善根) ; 좋은 과보를 받을 만한 착한 (행위. 온갖 () 낳는 근본. 청정한 행위를  근성.

*사바세계(娑婆世界) ;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세계. 현실의 세계. 인토(忍土) · 감인토(堪忍土) · 인계(忍界)라고 한역.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중생들을 교화하는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 모두 사바세계이다.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본참화두(本參話頭) ; 본참공안(本參公案).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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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오주차암오막식~’ ; 『태고집(太古集) (雪栖 , 김달진 역주 | 세계사) ‘태고암가(太古庵歌)’ p90 참고.

*밀밀(密密 빽빽할·촘촘할 밀) ; 빈틈없이 빽빽히 들어찬 것.

*사대(四大) ; 사람의 몸을 이르는 . 사람의 몸이 , , , 바람(,,,) () 원소() 이루어졌다고 보는 데에서 연유하였다.

*생주이멸(生住異滅) ; 모든 사물이 생기고(), 머물고(), 변화하고(), 소멸함(). 또는 그런 현상.

*무주고혼(無主孤魂) ; 이름없는 또는 천도주체가 없는 외로운 영혼. 천도(薦度)  시식(施食) 행할  () 올려주는 생존하는 인연주체가 없는 영가(靈駕) 일컫는다. 이에 대하여 천도재를 모시는 주체가 있는 영혼을 유주혼(有主魂)이라 한다.

*육도(六途, 六道) ; 중생이 선악(善惡) (:의지에 기초한 행위) 의하여 생사 윤회하는 여섯 가지의 세계. 지옥도(地獄道), 아귀도(餓鬼道), 축생도(畜生道), 아수라도(阿修羅道), 인간도(人間道), 천상도(天上道) 있다.

*비로자나(毘盧遮那) ; 비로자나(毘盧遮那) vairocana 음사(音寫). 노사나(盧舍那자나(遮那) 등으로도 음사한다. 태양처럼 일체법을 비추어 관조하는 광대무변한 지혜를 지닌 부처님.

한역어로는 부처님의 몸에서 나오는 빛과 지혜의 빛이 세상을 두루 비추어 가득하다는 뜻에서 광명변조(光明遍照, ), 허공과 같이 드넓은 세계에 거처하며  공덕과 지혜가 청정하다는 뜻에서 광박엄정(廣博嚴淨), 시공간적으로 어떤 한계도 없이 일체법과 모든 중생으로부터 떨어져 있지 않는다는 뜻에서 변일체처(遍一切處) 등이라 한다.

*법신(法身) : []  dharma - kaya   이란 말인데, 법불(法佛) · 이불(理佛) · 실불(實佛) · 법신불(法身佛) · 법성신(法性身) · 자성신(自性身) · 진여불(眞如佛) · 법계성(法界性) 같은 말들이 모두 한뜻이며, 「선가귀감」 첫머리에 있는 한물건이란 것도 이것이다.

진리  자체, 또는 진리를 있는 그대로 드러낸 우주  자체, 진여의 청정한 법계를 가리키며, 비로자나불과 대일여래가 여기에 해당한다.

진리  자체를 가리키는 것으로 진여의  바탕(眞如本體)’ 이름이니, 중생에 있어서 부족할 것이 없고 부처님이라고  특별할 것이 없어, 본래 깨끗하고 빛나고 두렷하여 무한한 공간과 무궁한 시간에   있으되,  가지 말로도 설명할  없고(離四句)  가지 아닌 것으로도 옳게 가르칠  없으며(絕百非), 무엇으로나 형용하여  수가 도저히 없는 것이다.

*말세(末世  /세상 ) ; ①도덕, 풍속, 정치 등의 모든 사회 질서와 정신이 매우 타락하고 쇠퇴하여 끝판에 이른 세상. ②석존입멸후 오백년을 정법(正法) 세상,  다음 천년을 상법(像法) 세상,  후의 일만년을 말법(末法) 세상이라고 한다. 구체적인 시기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삼독() ; 사람의 착한 마음(善根) 해치는  가지 번뇌. 욕심·성냄·어리석음(貪瞋癡) 따위를 ()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경행(慶幸) ; 경사스럽고 다행(多幸) .

*(게송) 怕死老年親釋迦  頭上光陰轉頭飛’ ; [참고]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161~162.

怕死老年  親釋迦로다.  好向此時明自己어다  百年光影이  轉頭非로다.

죽음이 두려운 늙으막에야 부처님을 가까이 함이로다. 당장  때에 마음을 애써 밝히소,   세월도 순식간에 글러지느니.

*파사노년(怕死老年) : ()나라 소강절(邵康節) 글에 이름 구할 젊을  공자님만 따랐고, 죽기 싫은 늙으막 부처님께 나가네(求名少日慕宣聖 怕死老年親釋迦)라고 하였다.

*(게송) 啼得血淚無用處  不如緘口過殘年 ; [선문염송(禪門拈頌)] (혜심 지음) ‘ 1 1 도솔(兜率)’ 취암열상당거차화운(嵓悅上堂擧此話云) 참고.

[참고] 송담스님(No.385) 89 3 첫째일요법회(89.03.06)에서.

제득혈루무용처(啼得血淚無用處). 피눈물이 나오도록 울고 울어도 아무 소용이 없구나. 입을 다물고 남은 봄을 보낸 것만 같지 못하구나.(不如緘口過殘春)

어느 고인(古人) 중생들을 위해서 목이 쇠도록 그렇게  생사문제를 해결하라 그렇게 간곡히 고구정녕하게 일러주어도 중생은 들을  뿐이고, 돌아서면 탐심이요, 진심이요, 치심이요. 그러니 차라리 입을  다물고 여생을 남은 봄을 지낸 것만 같지 못하다 한탄하는 그러한 고인의 ()입니다.


지금  자리에 모이신 사부대중은  고인의 게송을 통해서 우리는  시각부터 정말 철저한 신심과 분심과 대의심이 독로하도록 잡드리를  가실 것을 간곡히 부탁을 합니다. 법회 때마다 말씀을 드린 것입니다. 본래 산중에 사는 사람이기에 항상 산중 얘기를 하기를 좋아하더라.(6240~6424)

*유전(流轉)생사유전(生死流轉). 깨달음(붓다)의 지위에 도달하지 못한 중생이 무명, 번뇌에 의하여 생사 인과가 단절되지 않고 끊임없이 하나의 존재에서 다른 존재로 삼계육도(三界六道) 계속해서 윤회하는 . 윤회(輪廻)라고도 한다.

*무상(無常) ; 모든 현상은 계속하여 나고 없어지고 변하여 그대로인 것이 없음. 온갖 것들이 변해가며 조금도 머물러 있지 않는 . 변해감. 덧없음. 영원성이 없는 .

세상의 모든 사물이나 현상들이 무수한 원인() 조건() 상호 관계를 통하여 형성된 것으로서  자체 독립적인 것은 하나도 없고, 인연(因緣) 다하면 소멸되어 항상함[] 없다[].

Posted by 닥공닥정
정진(精進) 수행2017. 6. 8. 11:01

§(627) (게송)만의도취일의단~ / 모든 의심을 전부 자기 본참공안에 대한 하나의 의단에다 몰아붙이라 / 올바르게 열심히만 하면 될수 있다 / 황룡탕 / 여법하게 열심히 닦으면 정법시대.

 

자기가 원래 부처였고, 자기 안에 있는 것을 자기가 찾는 것이기 때문에 올바른 방법으로 그리고 여법(如法)하게 열심히만 하면   있다고 하는 것을 부처님과 역대조사(歷代祖師)가—‘이것이 만약에 거짓말이고  된다면 내가 너희들을 대신해서 지옥에 가겠다’고 보증을 서셨어.

 

‘정법이다, 말세다하는 것은 우리가 마음을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서 되는 것이고, 지옥 천당도 우리 마음속에 있다고 한다면은 우리가 한마음 한뜻이 되어서 정법을 믿고 열심히  닦고 모든 생활을  나간다면은 우리는  21세기를 진짜 정법시대로 돌릴  있다고 확신을 합니다.

 

**송담스님(No.627)—99 6 첫째 일요법회(99.06.06) (용627)

 

약 14분.

 

만의도취일의단(萬疑都就一疑團)하고  의거의래의자간(疑去疑來疑自看)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수시나룡타봉수(須是拏龍打鳳手)하야  일권권도철성관(一拳拳倒鐵城關)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만의도취일의단(萬疑都就一疑團)이여. 만 가지 의심을 모두   의심 덩어리로  그리 몰아붙이라 이거여.

우리는 살다 보면은 여러 가지 의심이 있을 수가 있습니다. 경전에 대한 의심, 공안에 대한 의심, 세속의 모든 일에 대한 의심, 정치 경제 모든 의심, 학교의 과학 학문에 대한 의심, 모든 의심이 있을 수가 있으나,  모든 의심을 전부 다 이뭣고?’ 자기의 본참공안(本參公案)에 대한  하나의 의단(疑團)에다  몰아붙이라 이거거든.

 

의거의래의자간(疑去疑來疑自看)이여. 의심해 가고 의심해 오며, 이뭣고?’ 의심을 스스로  다시 되돌이켜 관하는 거여. ‘이뭣고?’

 

이뭣고?’ 자기의 본참화두인데, 이뭣고?’

이뭣고?’  -’  -하는 이놈이 뭣고?’ 이것이 의자간(疑自看)이여.

 

의심나는 것을 물어서, 다른 사람한테 물어 가지고 그걸 해결하려고 하지 말고, 무슨 의심이 나던지 바로  의심을 즉(卽)해 가지고 자기의 본참화두 이뭣고?’ 돌아오라 이거거든.

 

수시나룡타봉수(須是拏龍打鳳手), 모름지기 용을 때려잡고 봉(鳳)을 잡는 그러한 용기와 수단을 가진 사람이라야,

일권권도철성관(一拳拳倒鐵城關)이다. 한주먹으로 철성관을 쳐서 꺼꾸러뜨릴 수가 있을 것이다. ‘쇠[鐵]로 만든 성(城)에 관문(關門)’이라 한 것은 조사관(祖師關)을 말한 것입니다.

 

우리가 참선(參禪)을 하는 것은  조사관을 깨뜨려야 하거든.   없는  의심관, 조사관, 이놈을 !...

 

이뭣고?’ 자꾸 하다 보면 처음에는 잊어버리고 딴 생각[別念]이 들어오고 하지만 잊어버리면  이뭣고?’

딴 생각이 들어오면  생각 버리고 하려고 하지 말고 바로  자리에서 이뭣고?’ 자꾸자꾸 하다보면 나중에는 습관이 되어가지고 화두를 들려고  해도 저절로 들어지게 되거든.

 

그래가지고 아침에 들었던 화두가 점심까지, 점심에 들었던 화두가 저녁까지, 저녁에 누워서 이뭣고?’하면서 들고 있는 화두가 아침에 일어나면 고대로 들어져 갔고 있거든. 이것이 타성일편(打成一片)이거든.

오매(寤寐)가 일여(一如)하고 순수무잡(純粹無雜)해서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게 되면 머지않아서 !  의단을 타파(打破)하게 되는 것이여.

 

열심히 열심히 하고, 자기 근기(根機)도 따지지 말고 아무것도 따질 것이 없어. 철저한 신념을 가지고  나가면 반드시 되는 것이 바로 이거여.

세속의 사업은 열심히 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여. 되기도 하고 실패하기.. 실패율이  많고. 이것은  빠르고 늦은 차이는 있어도  되고만 마는 것이 바로 이것이여. ?

 

자기가 원래 부처였고, 자기 안에 있는 것을 자기가 찾는 것이기 때문에 올바른 방법으로 그리고 여법(如法)하게 열심히만 하면   있다고 하는 것을 부처님과 역대조사(歷代祖師)가—‘이것이 만약에 거짓말이고  된다면 내가 너희들을 대신해서 지옥에 가겠다’고 보증을 서셨어.

 

우리가 모든 인연에 따라서, 아까 조실 스님 말씀에 빠르면은 7일이요, 늦으면은 3년이요 이렇게 말씀하셨지마는,  기한은 전혀 우리가 따질 필요가 없어.

빨리 되어도, 빨리 공안을 타파해도 그것에 끝난 것이 아니고, 더디 되어도 더디 되었다고 해서 허송세월 것이 아니어.

 

여법하게 그리고 열심히만 하면 빨리 공안을 타파할 수도 그리고   일이 얼마든지 있는 것이고, 부처님과 같이 삼십이상(三十二相)과 팔십종호(八十種好)와 삼천위의(三千威儀)와 팔만세행(八萬細行)을 원만구족(圓滿具足)하려면은 깨달은 뒤에도 계속해서 우리는 닦아 가야 하는, 닦을  없이 닦아 가야 하는 길이 있는 것이여.

 

그래서 우리는 비록  사대(四大)로 뭉쳐진 허망하고 더러운  몸뚱이지만  속에 법신불(法身佛)이 계시다고 하는 것을 철저히 믿는다면  몸뚱이를 지혜롭게 관리해야 하는 거고.  몸뚱이를 소중히 여기고.

애착심을 가지고 집착(執着)하라는  아니고, 지혜롭게  관리를 해야 공부도  수가 있게 되고.

 

그러기 때문에 비록 검소하게 먹고 할지언정,  고기만 많이 먹고  영양가 있는 것만 많이 먹는다고 해서  건강이 좋은 것만도 아니라고 나는 믿습니다.

나물에 검소하게 이렇게 먹어도, 보리밥에 잡곡밥에 이렇게 먹어도  씹어서 먹고 감사한 마음으로 먹고, 저작(咀嚼)을 하면서도 항상 이뭣고?’ 하면서 먹으면 고기에다가 진수성찬에   먹더라도 건강은 유지된다고 생각을 합니다.  대신 황룡탕(黃龍湯)을  잡순 것을 내가 권고를 하고.

 

황룡탕은  몸에서 나온 것을 내가 다시 섭취하는데, 그것이 전혀 더러운 노폐물이 아니고 우리 몸안에 있는 피와 거의 같을 정도로 여러 가지 영양이  속에  들어있고.

의사들이  조사를 해보면 전혀 균이 없는 무독지제(無毒之劑)라고 하는 것이  밝혀지고 있습니다. 동양의학대사전에도 보면 무독(無毒)’이라고  나와 있고 여러 가지 병에 좋다고 하는 것도 옛날 성현들이  말씀을 하셨고.

 

오죽하면 부처님께서도 걸식(乞食)을  것이며, 분소의(糞掃衣)를 입을 것이며, 수하(樹下) 나무 밑에서  것이며, 그리고 약은 예약(穢藥)을 써라. 예약이라 하는 것은 대변이나 소변으로 만들어진 , 병이 나면 소변을 먹으라고 하신 것을 분명히 말씀하셨기 때문에 자신 있게 이렇게 말씀을 드리고.

혈압이 높으신 분도 좋고, 각종 암도 좋고, 요새 모다 발표한 것을 보면 에이즈와 같은 무서운 병도 소변을 장기적으로 복용을 하면 낫을  있다고 하는 글을 읽었습니다마는.

 

이뭣고?’ 하면서 황룡탕을 먹으면서 잡곡밥을 먹으면서 이렇게 열심히 산다면, 그리고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충실히 한다면  세상이 비록 오탁악세(五濁惡世)요, 말세(末世)라고 해도 그렇지 않습니다.

여법하게 정법을 믿고 열심히 도를 닦으면 말세를 다시 정법시대(正法時代)로 다시 돌릴  있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정법이다, 말세다하는 것은 우리가 마음을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서 되는 것이고, 지옥 천당도 우리 마음속에 있다고 한다면은 우리가 한마음 한뜻이 되어서 정법을 믿고 열심히  닦고 정법을 믿는 마음으로 모든 생활을  나간다면은 우리는  21세기를 진짜 정법시대로 돌릴  있다고 확신을 합니다.

 

우리 앞마당에는 대장경 전산화 불사(佛事)를 하기 위해서 동참불자(同參佛子)를 받는 대장경연구소 분들이 책상을 놓고 계십니다. 신청하신 분들은 지로를 통해서  성의껏  하고 계신다는 보고를 받고 있습니다마는.

 

우리 용화사에서  불사에 좋은 촉매가 되고, 탄력을 가질  있게 되었다고 모다 감사한 인사를 듣고 있습니다마는, 드신 분은 열심히 다달이 보내시고  들으신 분은 인연 따라서,  따라서 모다 동참을 하신다면, 그리고 요새  나오는 책을 보니까 전국 모두 여러 사찰들에서도 모다  동참하자고 하는 그런 법회를 모다 여기서 저기서 가지신 걸로 봤습니다.

 

대단히 좋은 현상이고, 이러한 국가적으로 세계적으로 어려울  이러한 불사를 우리 불교도들이 한마음 한뜻이 되어가지고  대장경 불사를 한다면 틀림없이 불보살(佛菩薩)의 가피(加被)를 입어서 우리나라도 잘되고 세계평화에 크게 이바지할 좋은 공덕이 되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앞으로, 오늘이 입하 · 소만 · 망종일이고, 얼마  있으면  하지에다 소서 · 대서 하면은 삼복성염(三伏盛炎)이  돌아옵니다. 날씨가 더워질  모다 몸조심 하시고 건강한 몸과 건전한 마음으로 열심히 이뭣고?’ 하시기를 다시 부탁 말씀을 드리면서 말을 맺고자 합니다.(4629~608)()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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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만의도취일의단~’ ; [사명당대사집(四溟堂大師集)] (5) '贈蘭法師' 게송 참고.

*이뭣고(是甚 시심마) : ‘이뭣고? 화두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자리)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 일곱 ()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 ,   ()이다. ‘이뭣고?(이뭐꼬)'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뜻은  속에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왔다.

*본참공안(本參公案) : 본참화두(本參話頭).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의단(疑團 의심할 /덩어리 ) ; 공안·화두에 대한   없는 의심(疑心) 덩어리().

*의심(疑心) :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 대해   없는 생각  막히는 .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또는 어째서 () 했는고?’ 또는 조주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 했는고?’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바른 깨달음은   없는 의단,   없는 의심에  막힌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즉해(- ·즉시 ) ; . 곧바로. 당장. 즉시(卽時 : 어떤 일이 행하여지는 바로 그때). 즉각(卽刻 : 일이 일어나는  순간 바로. 당장에 ).

*조사관(祖師關) ; 조사의 경지에 이르는 관문(關門),  화두(공안) 말함. 관문(關門) 옛날에 국방상으로나 경제상으로 중요한 곳에 군사를 두어 지키게 하고, 내왕하는 사람과 수출입하는 물건을 검사하는 곳이다. 화두는 이것을 통과하여야 견성 성불하게 되는 것이므로 선종(禪宗) 관문이 된다.

*참선(參禪) ; ①선() 수행을 하는 .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별념(別念) ; ‘ 생각[몽산법어] (용화선원刊) 박산무이선사선경어(博山無異禪師禪警語)에서.

做工夫호대  着不得一絲毫別念이니  行住坐臥에  單單只提起本叅話頭하야  發起疑情하야 憤然要討箇下落이니라.  若有絲毫別念하면  古所謂雜毒이  入心하야  傷乎慧命이라하니  學者는 不可不謹이니라

 

공부를 짓되 털끝만치라도  생각[別念] 두지 말지니, 가고 멈추고 앉고 누우매 다못 본참화두(叅話頭)만을 들어서 의정을 일으켜 분연히 끝장 보기를 요구할 것이니라. 만약 털끝만치라도  생각[別念] 있으면 고인이 말한  「잡독(雜毒) 마음에 들어감에 혜명(慧命) 상한다」하니, 학자는 가히 삼가지 않을  없느니라.”

 

余云別念은  非但世間法이라  除究心之外에  佛法中一切好事라도  悉名別念이니라.  又豈但佛法中事리요  於心體上에  取之捨之  執之化之가  悉別念矣니라

 

내가 말한  생각[別念] 비단 세간법만 아니라 마음을 궁구하는  외에는, 불법(佛法) 온갖 좋은 일이라도   생각[別念]이라 이름하느니라.

 어찌 다만 불법중 일뿐이리오?  심체상(心體上) 취하거나[], 버리거나[], 집착하거나[], 변화하는[] 것이 모두   생각[別念]이니라.” (p164-166)

 

做工夫호대  不得將心待悟어다.  如人이  行路에  住在路上하야  待到家하면  終不到家니 只須行하야사  到家오  若將心待悟하면  終不悟니  只須逼拶令悟  非待悟也니라

 

공부를 짓되 마음을 가져 깨닫기를 기다리지 말라.  마치 사람이 길을 가매 길에 멈춰 있으면서 집에 이르기를 기다리면 마침내 집에 이르지 못하나니, 다만 모름지기 걸어가야 집에 도달하는 것과 같아서, 만약 마음을 가져 깨닫기를 기다리면 마침내 깨닫지 못하니, 다만 모름지기 애써서 깨닫게  뿐이요, 깨닫기를 기다릴 것이 아니니라.” (p163-164)

 

做工夫호대  不得求人說破이니  若說破라도  終是別人底요,  與自己로  沒相干이니라.  如人이  問路到長安에  但可要其指路언정  不可更問長安事니  彼一一說明長安事라도  終是彼見底요,  非問路者의  親見也이니라.  若不力行하고  便求人說破도  亦復如是하니라

 

공부를 짓되 다른 사람이 설파(說破)하여 주기를 구하지 말지니, 만약 설파(說破)하여 주더라도 마침내 그것은 남의 것이요, 자기와는 상관이 없나니라.

마치 사람이 장안으로 가는 길을 물으매 다만  길만 가리켜 주기를 요구할지언정 다시 장안의 일은 묻지 말지니,  사람이 낱낱이 장안 일을 설명할지라도 종시(終是) 그가  것이요,  묻는 사람이 친히  것은 아니니라. 만약 힘써 수행하지 않고 남이 설파하여 주기를 구하는 것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p180-181)

*타성일편(打成一片) : ‘쳐서  조각을 이룬다 참선할  화두를 들려고  해도 저절로 화두가 들려서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일체처 일체시에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만이 독로(獨露) 순수무잡(純粹無雜) 경계.

*오매일여(寤寐一如 잠이  /잠잘 /하나 /같을 ) ; 자나깨나 언제나 완전히 하나가 되어 나눌  없음.

*의단독로(疑團獨露 의심할 /덩어리 /홀로오로지 /드러날 ) ; 공안화두에 대한   없는 의심(疑心) 덩어리() 홀로() 드러나다().

*타파(打破) ;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화두(話頭) 대한 의심(疑心) 관조(觀照) 나가는 ,   없는 그리고  맥힌 의심으로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이상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이상 의심이 커질  없고, 이상 깊을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가슴속이 가득 차고,  세계가 가득 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때에도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때도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때에는 꿈속에서도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 확철대오(廓徹大悟) 하게 되는 것입니다.  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항아리를  돌로 내려치면은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참선법 A’ 에서]

*근기(根機 뿌리 /베틀 ) ;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있는 중생의 소질이나 근성. 보통 근기의 차등을 상근기, 중근기, 하근기로 구분한다.

*여법(如法 같을·같게 ·따를·좇을 / 부처님의 가르침·불도佛道 ) ; 부처님의 가르침에 맞음.

*역대조사(歷代祖師) ; 석가세존(釋迦世尊)으로부터 불법(佛法) 받아 계승해  대대의 조사(祖師).

*부처님과 역대조사(歷代祖師)가—‘이것이 만약에 거짓말이고  된다면 내가 너희들을 대신해서 지옥에 가겠다’고 보증을 서셨어 ; 

 

[참고] *몽산화상시중(蒙山和尙示衆) ; 몽산화상이 대중에게 보이심. 『몽산법어』 (용화선원刊) p97-99.

若有來此(약유내차)하야  同甘寂寥者(동감적료자)인댄  捨此世緣(사차세연)하며  除去執着顚倒(제거집착전도)하고  眞實爲生死大事(진실위생사대사)하야  肯順菴中規矩(긍순암중규구)하야  截斷人事(절단인사)하고  隨緣受用(수연수용)호대  除三更外(제삼경외)  不許睡眠(불허수면)하며  不許出街(불허출가)하며  不許赴請(불허부청)하며  未有發明(미유발명)이어든  不許看讀(불허간독)하며  非公界請(비공계청)이어든  不許閱經(불허열경)이니

 

만약 이에  고요함을 같이 즐기려는 이는,  세상 인연을  여의며  고집과 애착과 모든 거꾸러진 생각을  버리고, 참으로 생사의 큰일을 위하야 절의 규칙을  지키고 인사(人事) 끊고 먹고 입는 것을 되어가는 대로 하되,  삼경 외에는 자지 말고 거리에도 나가지 말며 오라는 데도 가지 말고 깨치기 전에는 글도 읽지 말며 예식 때가 아니거든 경도 보지 말지니

 

如法下三年工夫(여법하삼년공부)호대  若不見性通宗(약불견성통종)인댄  山僧(산승)  替爾(체이)하야  入地獄(입지옥)호리라

 

법다이   동안 공부해 만약 견성하여 종지(宗旨) 통달하지 못하면, 산승(山僧) 너희들을 대신하여 지옥에 들어가리라.

*삼십이상(三十二相) ; 부처님이 갖추고 있다는 32가지의 뛰어난 신체의 특징. 몸이 금빛이다, 손가락이 길다,  눈썹 사이에  털이 있다, 발바닥에  개의 바퀴 모양의 무늬가 있다 등등. 
*팔십종호(八十種好) ; 부처님과 갖추고 있는 80가지의 작은 특징. 얼굴 빛이 화평하여 웃음을 머금 , 목이 둥글고 아름다운  등등.

*삼천위의(三千威儀) ; 비구(출가한 남자 스님) 일상 행동에서 지켜야  계율이 250종이어서 이를 비구 250라고 한다. 일상생활은 크게 (((()나누기 때문에   가지에 250 곱하면 천이 된다. 이를 다시 과거·현재·미래의 삼세(三世) 곱하면 3천이 된다.

*팔만세행(八萬細行) ; 부처님의 모든 행동은 원만하여 모자라거나 넘침이 없다는 . 팔만 가지 세세한 행동들이 전부 부처님의 위의(威儀, 훌륭한 행위) 어긋남이 없다는 뜻이다.

*원만구족(圓滿具足) ; 모자라거나 결함이 없이 완전히 모두 갖추어져 있음.

*사대(四大) ; 사람의 몸을 이르는 . 사람의 몸이 , , , 바람(,,,) () 원소() 이루어졌다고 보는 데에서 연유하였다.

*법신불(法身佛) ; 절대적 지혜의 지고한 상태,  진리  자체를 가리키는 부처님().

*집착(執着) ; 허망한 분별로써 어떤 것에 마음이 사로잡혀 헤어나지 못함. 그릇된 분별로써 어떤 것을 탐내어 그것에서 벗어나지 못함.

*저작(咀嚼 씹을 /씹을 ) ; 음식물을 입에 넣고 씹음.

*황룡탕(黃龍湯) ; 황탕(黃湯), 용탕(龍湯)이라고도 한다. 약용으로써 저장한 인간과 가축의 대변과 소변을 말한다. 질병을 치료하는 방법으로써 이용하는 오줌을 말함. 요료법(尿療法).

*걸식(乞食 ·구할·청할 /·음식 ) ; ①빌어서 얻어먹음. ②수행자가 수행을 위해 육신을 지탱하고자 일정한 법도에 따라 남에게 음식을 받는 .

*분소의(糞掃衣  /버릴 / ) ; 똥이나 먼지구덩이 속에 버려진 낡은 옷과 찢어진 헝겊 조각을 깨끗이 씻은 다음 조각조각 기워서 만든 가사(袈裟). 납의(衲衣), 백납의(百衲衣) 등이라고도 한다.

*예약(穢藥) ; 부란약(腐爛藥). 대변, 소변등의 배설물로 만든 약. 넓은 의미에서는 사람들이 버려서 아무도 쓰지 않는 재료로 만든 약도 포함한다.

악취가 나고 부패한 것이라는 뜻에서 부란약이라 하고, 버려진 것이라는 뜻에서 진기약(陳棄藥), 잔기약(殘棄藥) 등이라고 한다. 수행자가 지켜야 할 네 가지 행법[사의법 四依法 : 乞食, 糞掃衣, 樹下住, 陳棄藥] 중 하나와 관련된 것으로, 수행자는 병이 들었을 때 부란약을 제조하여 사용하도록 하였다.

*오탁악세(五濁惡世 다섯 /흐릴 /악할 /세상 ) ; 명탁(命濁), 중생탁(衆生濁), 번뇌탁(煩惱濁), 견탁(見濁), 겁탁(劫濁) 다섯 가지 더러운 것으로 가득찬 죄악의 세상.

[참고] ①명탁(命濁) 말세가 다가와 악업(惡業) 늘어감에 따라 사람의 목숨이 점차 짧아져 백년을 채우기 어려움을 이른다. ②중생탁(衆生濁) 중생이 죄가 많아서 올바른 도리를 알지 못하는 것을 이른다. ③번뇌탁(煩惱濁) 번뇌로 인하여 마음이 더럽혀지는 것을 이른다. ④견탁(見濁) 그릇된 견해나 사악한 사상이 만연해지는 것을 이른다. ⑤겁탁(劫濁) 기근과 전쟁과 질병 등의 재앙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시대.

*말세(末世  /세상 ) ; ①도덕, 풍속, 정치 등의 모든 사회 질서와 정신이 매우 타락하고 쇠퇴하여 끝판에 이른 세상. ②석존입멸후 오백년을 정법(正法) 세상,  다음 천년을 상법(像法) 세상,  후의 일만년을 말법(末法) 세상이라고 한다. 구체적인 시기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불사(佛事) ; ①불법(佛法) 알리는 . 법회, 불공(佛供), () 봉행, 경전의 간행과 유통, 사찰의 중창과 전각 중수, 불상·탱화·불구(佛具가사(袈裟) 조성 등의, 불가(佛家)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가리킨다. ②부처님께서 중생을 교화(敎化)하시는 .

*불보살(佛菩薩) ; 부처님과 보살을 아울러 일컫는 . () 불타(佛陀) 준말. 각자(覺者) 번역한다. 보살은 성불(成佛)하기 위하여 수행에 힘쓰는 이의 총칭이다.

*가피(加被 더할·베풀 /입을·두를 ) ; 불보살(佛菩薩)에게 위신력(威神力) 받는 . 불보살이 중생에게 불가사의한 힘을 부여해서 이익을 주는 . 가호(加護) 같음.

*삼복(三伏) ; ①일  중에서 여름철의 가장 더운 기간. ②초복(初伏), 중복(中伏), 말복(末伏) 아울러 이르는 .

*성염(盛炎 성할 /불꽃·더울 ) ; 매우 심한 더위. 또는 최고조에 달한 더위.

Posted by 닥공닥정
정진(精進) 수행2017. 5. 21. 15:40

 

 

§(650) (게송)천척사륜직하수~ / 이 공부는 알  없는 의단(疑團)만을 거각해 나갈 따름 / 파수공행(把手共行) / 올바르게, 열심히 닦았으면 부끄러울 것이 없다 / (게송)진로형탈사비상~.

 

보는 시각에 따라서는 제도할 중생도 없고, 제도할 부처도 없고, 제도 받을 중생도 없다고 하는 것이 사실이다 이렇게 말할 수도 있는 거고. 또한 시각을 달리해서 보면 부처님의  지혜와 자비로써 한량없는 중생이 제도 받았다 이렇게도 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공부는 다른 세속의 공부, 학문 그런 거와 달라서 얼마만큼 하면 뭣이 나타나고, 뭣이 얻어지고 그럴  있는 공부가 아닙니다. 해 갈수록  수가 없고, 아무것도 보인 것이 없고, 아무것도 나타난 것도 없고, 아무것도 얻어지는 것이 없어야 참으로  활구참선을 올바르게 해 가는 수행자라고 생각을 합니다.

 

동쪽으로 기울어진 나무는 언제 넘어져도 동쪽으로 넘어질 것이고, 불법을 믿고 올바르게 정진을  사람은 언제 깨달아도 확철대오를  수밖에는 없다.

 

 공부는 공연히 육체만을 들볶는 고행(苦行)을 위한 고행을 하는 것은 올바른 정진이 아니라고 부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건강도 지혜롭게 관리하고, 정진도 지혜롭게 정진을 해야 중간에 퇴타(退墮) 인연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법당에서 일어나시더라고 항상 결제(結制) · 해제(解制) 상관 말고, 입선 · 방선 상관 말고 알뜰히 정진하시기를 부탁을 드립니다.

 

**송담스님(No.650)—2001 동안거해제  백일기도 회향(01.02.07) (32분)용650

 

(1) 약 18분.

 

(2) 약 15분.

 

(1)------------------

 

천척사륜직하수(千尺絲綸直下垂)하니  일파자동만파수(一波纔動萬波隨)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야정수한어불식(夜靜水寒魚不食)하야  만선공재월명귀(滿船空載月明歸)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천척사륜직하수(千尺絲綸直下垂)  일파자동만파수(一波纔動萬波隨).

천 척(千尺)이나 되는 낚싯줄을 똑바로 내리어서, 낚시질하기 위해서 낚싯줄을 내리는데,  물결이 일어나자마자 일만 물결이 따라서 일어나는구나.

 

야정수한어불식(夜靜水寒魚不食)하야, 밤은 고요하고 물은 차워서 고기가 물지를  .

만선공재월명귀(滿船空載月明歸). 가득한 배에는 밝은 달만 싣고 돌아온다.

 

천 척(千尺)이나   낚싯줄을 드리우는데 고요한 물에 낚싯줄을 드리워 내리니까,  물결이 일어나자마자 일만 물결이 따라서 일어나는데, 밤은 고요하고 물이 차와서 고기가 낚시를 물지를  .

고기를  마리도 잡지를 못해가지고, 가득한 배에는 공연히 밝은 달만 가득 싣고 돌아온다.  게송(偈頌)은 고인(古人) 게송입니다. 

 

여러분들도  게송을  외우고 알고 계시겠지만  전경(全景),  게송의 뜻을 가만히 생각해보면 부처님께서 중생(衆生) 교화(敎化) 하시기 위해서 도솔천내원궁(兜率天內院宮) 계시다가  사바세계(娑婆世界) 탄생을 하셔가지고 일체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서 팔십 세를 일기로 팔만사천(八萬四千) 법문(法門)을 설하셨고.

 

 결과 얼마나 많은 중생을 제도(濟度)하셨느냐? 정말  부처님의  많은 법문을 듣고 얼마나 많은 중생들이 제도를 받고 해탈도(解脫道) 증득했느냐?

 중생도 제도 받은 사람이 있었더냐? 원래 제도할 부처도 없고, 제도 받을 중생도 없는 것이 그것이 사실이 아니냐?

 

보는 시각에 따라서는 제도할 중생도 없고, 제도할 부처도 없고, 제도 받을 중생도 없다고 하는 것이 사실이다 이렇게 말할 수도 있는 거고.

또한 시각을 달리해서 보면 부처님의  지혜와 자비로써 한량없는 중생이 제도 받았다 이렇게도 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동안 겨울 안거(安居) 해서 전국 방방곡곡에서 많은 비구・비구니・청신사・청신녀들이 가행정진(加行精進), 용맹정진(勇猛精進) 했습니다.

 

 정진하는 모습이 마치 고요한 바다에  길이나 되는 낚싯줄을 드리워서, 고기를 잡으려고 드리우는데  물결이 일어나자마자 일만 물결이 따라서 일어난 거와 같다.

고요한 밤에 물이 차와서 고기가 물지  해가지고 가득한 배에는 공연히 달빛만 싣고 돌아오는 그런 광경에다가 비유할 수도 있을  같습니다. 

 

과연 지난 삼동,   동안에 밤잠을  자고, 그저 가행정진을 했는데 과연 얻은 바가 무엇이냐?  동안에 확철대오(廓徹大悟)를  사람이  사람이나 되느냐?

 

‘나는 이러이러한 것을 얻었다, 이런 것을 깨달았다, 이런 것이 보였다 여러 사람 가운데에는 나름대로 무엇인가 얻은 바가 있고,  바가 있고, 깨달은 바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마는,

사실은 아무것도 얻은 바가 없었다. 보이는 것도 없었다. 얻은 바가 없고 보인 바가 없고,   동안이 언제 어떻게 지내간 줄을 모르고 오늘 해제를 맞이했다 산승(山僧)은 그분이야말로   동안을 정말 올바르게 수행을  분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뭣이 보였다든지 뭣이 나타났다든지 뭣을 얻었다든지 했다 하면은  정진(精進) 마장(魔障) 일어난 것이고. 그런 것을 얻었고 보였고 나타났다고 해서 좋아한 생각을 냈고,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은 참다운 활구참선(活句參禪)  분이 아니라고 나는 생각을 합니다.

 

 그런 것이 나타나고 보였다 하더라도 없었던 걸로 하고 전혀 그런데 집착을 하지 아니하고, 자기의 본참공안(本參公案)만을  거각(擧却)을 해서   없는 의심만을 가지고 잡드리하고 싸웠다면은 그분이야말로 정진을 올바르게 하려고 노력을  분이다.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공부는 다른 세속의 공부, 학문 그런 거와 달라서 얼마만큼 하면 뭣이 나타나고, 뭣이 얻어지고 그럴  있는 공부가 아닙니다.

해 갈수록  수가 없고, 아무것도 보인 것이 없고, 아무것도 나타난 것도 없고, 아무것도 얻어지는 것이 없어야 참으로  활구참선을 올바르게 해 가는 수행자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지나가는 과거를 붙잡지도 말고,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 대해서 어떠한 꿈도 꾸지 말아라. 그리고 오직 현재  순간에 너의 마음을 집중하라 하셨습니다.

순간에 무엇에다 집중을 하느냐?   없는 자기 본참공안(本參公案),  의심에 자기의 마음을 집중하는 것입니다. ‘집중한다’는 말은 부득이해서 하는 말이고,  없는 의단(疑團)만을 거각해 나갈 따름인 것입니다.

 

 

얻어질 것도 없고, 보일 것도 없고, 나타날 것도 없습니다. 무슨 재미로 그런 짓을 하고 있느냐? 무엇을 하기 위해서 그것을 하고 있단 말이냐?

 달을 하고,  달을 하고,  달을 하고,  년을 하고,  년을 해도 아무것도 얻어지는 것이 없고 나타난 것이 없는데  때문에 그런 짓을 하고 있느냐?

 

 공부는 마음길이 끊어져야 하고 자기의 본참공안에 철저하게 몰입을 해서, 다맛 그렇게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다못 그렇게 실참(實參)해 갈 따름인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나무가 동쪽으로 기울어져 있으면  나무는 언제 넘어져도 넘어질 때에는 동쪽으로 넘어간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와 같이 불법을 믿고 최상승법을 믿고 최상승법에 의지해서  믿음 속에서 한결같이 정진을  나가면  사람은 언제 죽어도 부처님의 청정국토(淸淨國土)에 태어날 것이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부처님의 청정국토라 하는 것은 우리의 청정한 진여불성(眞如佛性)이요, 나의 마음자리일 것입니다. 다맛 올바르게 그리고 열심히  것만이 우리가 닦아갈 길인 것입니다.

 

이렇게 해 나가는 사람은 설사   내지   내지  , 삼십 년이 걸려서도 깨닫지 못했다 하더라도 조금도 조급한 생각을  필요가 없고,

설사 마지막 숨을 거둘 때까지 마지막 죽음에 다다랐서도   없는 본참공안에 대한 의단이 독로(獨露)한  상태에서 숨을 거둔다 하더라도 후회할 것이 없을 것입니다.

 

마음에 허덕이는 마음이 없고, 구하는 것이 없고 다맛 철저하게 최상승법을 믿고 자기의 본참공안이  의단이 독로해서 순수무잡(純粹無雜)한다면 바로  경계는 깨달음의 바로 이웃에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깨달음을 구하는 생각이 없지만 본참공안에 의단이 독로해서 조급한 생각도 없고 깨달으려고 하는 생각도 없고, 후회도 없고 순수무잡한 의단이 독로한 상태에 도달해서 타성일편(打成一片) 된다면 그것이 우리 수행자가 목숨 바쳐 나아갈 길이요, 우리가 그런 상태에서는 삼세제불(三世諸佛)과 파수공행(把手共行) 자리일 것입니다. 파수공행(把手共行)이라 하는 것은 부처님과 손을 맞잡고 함께 걸어간다는 말입니다.(처음~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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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리에 모이신 형제자매 도반 여러분들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보니 과연 그렇게 지난 한철을  정진하신 분들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아까 전강 조실 스님께서도 중국의 천목산 고봉(高峰) 스님의 「선요(禪要)」에 있는 법문에 잠깐 언급을 하셨습니다마는,

 

죽비(竹篦) 치면 형식적으로 입선(入禪)을 하고, 입선 중에는 혼침(昏沈)에 빠지거나 그렇지 않으면 산란심(散亂心)에 그렇게 지내다가, 방선(放禪) 죽비를 치면 금방 머리를 모아서 한화잡담(閑話雜談) 하고, 온갖 시비를 하고 그러다가  입선 시간이 되면 입선을 하고,  죽비 치면 방선하고.

혼침과 산란과 잡담과 시비로써 그럭저럭 그렇게 지낸다면 만만천천(萬萬千千)을 타살(打殺)을 한들 무슨 죄가 있겠느냐. 이런 말씀을 하셨는데.

 

과연 혼침, 산란에 시달리지 아니하고 한화잡담과 시비쟁론을 하지 아니하고,    분을 헛되이 지내지 아니하고,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본참공안 하나만을 거각하면서 한결같이 하루를 그렇게 지내고, 열흘을 그렇게 지내고,  달을 그렇게 지내고,  , 백일을 그렇게 지내면서 일념(一念) 만년(萬年)토록 그렇게 지낸 분이 과연  사람이나 되는가?

 

그럭저럭 한화잡담으로 형식적으로 정진하고 지낸다면 그건  공양주(供養主) ・ 채공(菜供)에게도 부끄러울 일이고, 원주(院主)와 별좌(別座) 스님에게도 부끄러울 일이고, 시주 단월(檀越)들에게도 부끄러울 일이고, 나를 낳아주신 부모와 스승에게도 부끄러울 일이고, 도량 신장(神將)에게도 부끄러울 일이고, 삼세제불께도 부끄러울 일일 것입니다.

 

우리가 수행자가 먹고 입고 살고 있는 모든 시설과 재산은 석가모니(釋迦牟尼) 부처님께서 사십  동안 수용하실  유산을 우리 말세(末世)의 제자들에게 남겨 놓으신  덕으로 우리는 걱정없이 먹고 입고 이렇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재산은 목숨 바쳐서 정진하는 제자들을 위해서 남겨주신 재산이지, 그럭저럭 한가하게 그럭저럭 먹고 편안히 놀고 한화잡담하고 지내면서 살으라고 남겨주신 유산이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소떼가 지내가니까  소떼들을 아느냐? 당면에 철저하게 수행을 하지 아니하고, 철저하게 도를 닦지 아니하고 그럭저럭 지낸 그러한 중들이 소가 되었느니라 이렇게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인연 따라서 죽이면 , 밥이면 , 국수면 국수, 찰밥이면 찰밥, 그날 그때 나온 대로 경건한 마음으로 공양을 하고 공양을 하면서도 화두를 들고,

입선 중에는 말할 것도 없고 방선 중에도  운력(運力)을  때에도, 소지(掃地) 하고 화장실에  때도, 포행(布行)  때도 한결같이 화두를 거각하고  생각을 단속해서 정진한 사람은 설사 금생에 확철대오을 못하고 그랬다 하더라도 그렇게 지낸 사람은 부끄러울 것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냐 하면, 동쪽으로 기울어진 나무는 언제 넘어져도 동쪽으로 넘어질 것이고, 불법을 믿고 올바르게 정진을  사람은 언제 깨달아도 확철대오를  수밖에는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사람의 전생에 닦아온 것과 금생에 닦은 그러한 것이 복합적으로 해서  일만에 깨닫기도 하고,  달만에 깨닫기도 하고, 삼십 년만에 깨닫기도 하고  그렇게 애써서 정진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금생에 확철대오를 못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얼마나 바르게 그리고 얼마나 열심히 도(道)를 닦았느냐 그것이 중요한 것이지, 누가 먼저 깨달았느냐 그것은 크게 문제 삼을 것이 없다고 생각을 합니다. 올바르게 그리고 열심히 닦았으면 우리는 후회할 것도 없고 부끄러울 것이 없을 것입니다.

 

 자리에는 수원 용주사 중앙선원 선객(禪客)들, 그리고 대전 세등선원, 전주 위봉사 비구니 스님들  남원 승련사  의정부 회룡사, 각처에서 공부하다가 토굴(土窟)에서 공부하던 그런 납자(衲子)들도 오셨습니다. 그리고 용화사 법보선원, 인제 용화사 법보선원에서 정진하신 도반(道伴)들도  자리에  모이셨습니다. 그리고 선원에서 공부한 청신사(清信士) ・ 청신녀(清信女)들도  자리에 모였습니다.

 

지난   동안 열심히 정진하다가 오신  증거가 여기 둘러보니,  역력히 가행정진 용맹정진 알뜰하게 정진하신 모습이 역력합니다. 그리고  정확한 것은 여러분 자신들이   동안을 과연 내가 어떻게 정진을 해 왔는가  검토를 해보면 더 잘 아시게  것입니다.

 

 공부는 공연히 육체만을 들볶는 고행(苦行)을 위한 고행을 하는 것은 올바른 정진이 아니라고 부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건강도 지혜롭게 관리하고, 정진도 지혜롭게 정진을 해야 중간에 퇴타(退墮) 인연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진로형탈사비상(塵勞逈脫事非常)이라  긴파승두주일장(緊把繩頭做一場)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불시일번한철골(不是一飜寒徹骨)인덴  쟁득매화박비향(爭得梅花撲鼻香)이리요

나무~아미타불~

 

진로형탈(塵勞逈脫)이 사비상(事非常)이다. 생사 진로(塵勞) 멀리 벗어나는 일은 보통 일이 아니어.

긴파승두주일장(緊把繩頭做一場)이다.  승두(繩頭)를 잡아서 한바탕 정진을 해야 한다.

 

한번  추위가 뼛골에 사무치지 않는다면 어찌 매화꽃 향기가 코를 침을 얻으리오.

겨울에 되게 강추위를  뒤끝에 피어야  매화꽃 향기가 유난히 진동을 한다 그런 말씀이 있습니다. 겨울에 이상 난동으로 날이 뜨뜻한 뒤끝에 매화꽃이 피면 별로 향기가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있는 일은, 해야  일은 오직 스스로 부끄럽지 않게 알뜰히  생각을 단속해 나가는  밖에는 없을 것입니다.

 

아직도 산과 들에는 허옇게 눈이 남아 있습니다. 입춘이 지나고  우수가 돌아오는데 여기서 저기서 매화꽃이  때가 왔습니다. 다니시다가 매화꽃을 보시거든  향내가 얼마나 좋은가 한번 맡아보시고, 과연 자신도 향내 나는 매화꽃처럼 열심히 정진을 해야겠다고 다짐을 하시기 바랍니다.

 

지난   동안 정진하시느라고 애쓰고   외호(外護)하느라고 원주, 별좌, 공양주, 채공 그러신 분들 모두 그런 형제자매 도반 여러분께 원장으로서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다시  이다음 철에 건강한 모습으로  만나서 정진하기를 기약을 하고,  법당에서 일어나시더라고 항상 결제(結制) · 해제(解制) 상관 말고, 입선 · 방선 상관 말고 알뜰히 정진하시기를 부탁을 드립니다.(1740~3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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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천척사륜직하수~’ ; [금강경오가해(金剛經五家解)] 지견불생분(知見不生分) 야부도천 게송 참고.

*게송(偈頌) ; (), () () 모두 불교의 가르침을 싯구로 나타낸 .

*고인(古人) ; 불보살(佛菩薩)님을 비롯한 역대조사(歷代祖師), 선지식을 말한다.

*교화(敎化) ; 가르쳐 이끌다. 사람을 일깨워 고통받는 자를 편안히 하고, 의심하는 자를 믿게 하고, 잘못을 저지르는 사람을 바른 길로 돌아가게 . 설교. 교도감화(敎導感化) 준말.

*도솔천내원궁(兜率天內院宮) ; 욕계 육천(欲界六天) 넷째 하늘. 불교의 우주관에 따르면 우주의 중심은 수미산(須彌山)이며,  꼭대기에서 12 유순(由旬) 위에 도솔천이 있는데 이곳은 내원(內院) 외원(外院)으로 구별되어 있다.

내원은 내원궁(內院宮)으로 불리기도 하며 석가모니가 보살일 당시에 머무르면서 지상에 내려갈 때를 기다렸던 곳이며, 오늘날에는 미래불인 미륵보살(彌勒菩薩) 설법하면서 지상으로 내려갈 시기(석가모니가 입멸한  56 7천만  뒤에) 기다리고 있는 곳이고, 외원은 수많은 천인(天人)들이 오욕(五欲) 충족시키며 즐거움을 누리고 있는 곳이다. 도솔(兜率) 뜻은 지족(知足).

*사바세계(娑婆世界) ;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세계. 현실의 세계. 인토(忍土) · 감인토(堪忍土) · 인계(忍界)라고 한역.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중생들을 교화하는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 모두 사바세계이다.

*팔만사천(八萬四千) : 중생의 망상이 벌어져 나가는 것을 자세히 분석하면 팔만 사천 갈래가 된다고 한다. 그러므로 망상을 따라 일어나는 악마의 수효도 팔만 사천이요, 망상을 다스리는 법문도 팔만 사천이다.

인도에서는 많은 수효를 말할 때에는  말을 쓰는 수가 가끔 있다. 줄여서 팔만이라고만 하기도 한다.

*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 / ) :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 들게 하는 문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 진리에 이르는 .

*제도(濟度 건널 /건널 ) ; 중생을 미혹의  바다(생사고해 生死苦海)로부터 구하여[], 생사없는 피안(彼岸, 깨달음의 언덕) 이르게 하는[] . () 구제(救濟). () 도탈(度脫).

*해탈도(解脫道) ; ①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가르침이나 수행.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난 경지. ②사도(四道) 하나.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나 해탈하는 단계.

*안거(安居 편안할 /있을 ) ; (산스크리트) varsa 원뜻은 우기(雨期).  인도의 불교도들은 4 15(또는 5 15)부터 3개월  우기(雨期)때에 외출하면 풀이나 나무,작은 곤충을 모르고 밟아 죽일까 두려워 했고 그래서 동굴이나 사원에 들어가서 수행에 전념했다. 이것을 우안거(雨安居)라고 한다.

 선종(禪宗)에서는 음력 4 15일부터 7 15일까지 하안거(夏安居), 10 15부터 다음해 1 15까지를 동안거(冬安居)라고 해서 각각 90일간 사원에 머물르면서 외출을 금지하고 오로지 좌선을 중심으로  수행에 전념한다. 안거의 처음을 결제(結制), 끝을 해제(解制) 한다.

*가행정진(加行精進) ; 별도의 노력을 기울여서 하는 정진. 어떤 일정한 기간에 좌선(坐禪) 시간을 늘리고, 수면도 매우 단축하며 정진하는 .

*용맹정진(勇猛精進) ; 두려움을 모르며 기운차고 씩씩한 그리고 견고한 의지로 한순간도 불방일(不放逸)하는, 열심으로 노력하는 정진.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 깨달음.

*산승(山僧) ; 스님이 자신을 겸손하게 일컫는 .

*정진(精進) : [] Virya  음을 따라 비리야(毘梨耶  毘離耶) • 미리야(尾利也)라고도 쓴다。보살이 수행하는  바라밀(六波羅蜜) 하나。순일하고 물들지 않는(純一無染) 마음으로 부지런히 닦아 줄기차게 나아가는 것이다。그러나 닦는 생각() 닦는 () 있어서는  된다。함이 없이 하는 것이 정진이다.

*마장(魔障 마귀 /장애 ) ; 귀신의 장난이라는 뜻으로, 일이 진행되는 과정에 나타나는 뜻밖의 방해나 헤살을 이르는 . [참고]헤살 : 남의 일이   되도록 짓궂게방해함.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막힌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본참공안(本參公案) : 본참화두(本參話頭).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거각(擧却  /어조사 ) ; 화두를 든다. ‘화두를 든다’ ‘화두를 거각한다 말은 자신의 본참화두를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觀照)하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 세등선원(No.09)—병진년 동안거 결제중 법어(76.12.26)에서.

〇화두를 먼저 이마로 의심을 하지 말고,  화두를호흡하는데 배꼽 [丹田] 숨을 들어마시면은 배가 볼록해지고 숨을 내쉬면은 배가 홀쪽해지는데,  배가 빵빵해졌다 홀쪽해졌다 허는 거기에다가 화두를 들고 이뭣고~?’     없는 생각 ()하는 그것이 화두를 드는 것이여.

*의단(疑團 의심할 /덩어리 ) ; 공안·화두에 대한   없는 의심(疑心) 덩어리().

*의심(疑心) :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 대해   없는 생각  막히는 .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또는 어째서 () 했는고?’ 또는 조주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 했는고?’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바른 깨달음은   없는 의단,   없는 의심에  막힌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실참(實參) ; 실참실수(實參實修). 실답게 참구(參究)하고 실답게 수행하는 . 공안(화두) 이론으로 분석하고 따지는 것이 아닌 선지식의 지도 아래 다못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드는 것을 말한다.

*청정(清淨 맑을 /깨끗할 ) ; 허물이나 번뇌가 없이 깨끗함.

*청정불국토(淸淨佛國土) ; 청정불토(淸淨佛土). 청정토(淸淨土). ①청정한 행위에 의해 느끼는 정토. 불지(佛智) 의해 깨끗해진 국토(國土). ②진여불성(眞如佛性). 나의 마음자리.

*진여불성(眞如佛性) ; 진여(眞如) 불성(佛性).

*진여(眞如) ; ①차별을 떠난,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②궁극적인 진리. ③모든 분별과 대립이 소멸된 마음 상태. 깨달음의 지혜. 부처의 성품. ④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청정한 성품. 
*불성(佛性) ; ①모든 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부처가   있는 소질·가능성. ②부처  자체. 깨달음  자체.

*의단독로(疑團獨露 의심할 /덩어리 /홀로오로지 /드러날 ) ; 공안화두에 대한   없는 의심(疑心) 덩어리() 홀로() 드러나다().

*순수무잡(純粹無雜 순수할 /순수할 /없을 /섞일 ) ; 대상  자체가 순수(純粹) 전혀 이질적인 잡것의 섞임[] 없음[].

*타성일편(打成一片) : ‘쳐서  조각을 이룬다’. 참선할  화두를 들려고  해도 저절로 화두가 들려서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일체처 일체시에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만이 독로(獨露) 순수무잡(純粹無雜) 경계.

*삼세제불(三世諸佛) ; 삼세(三世 과거와 현재와 미래) 모든 부처님[諸佛].

*파수공행(把手共行 잡을 파/손 수/함께 공/갈 행) ; ‘손[手]을 맞잡고[把] 함께[共] 간다[行]’는 말. ‘같은 경지에 들어가다’는 뜻. ‘같은 자리에 서다’ ‘같은 입장이 되다’

 

[참고 ①] 『수심결(修心訣)』 (보조지눌 普照知訥 一一五八 ~ 一二一O)

又僧  問歸宗和尙  如何是佛  宗云  我今向汝道  恐汝不信  僧云  和尙誠言  焉敢不信  師云  卽汝是  僧云 如何保任  師云  一翳在眼  空花亂墜  其僧  言下有省

 

또 어떤 스님이 귀종화상에게 묻기를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귀종화상은 대답하기를 “내가 지금 그대에게 말해 주고자 하나 그대가 믿지 않을까 걱정이다”

“화상의 성실한 말씀을 어찌 감히 믿지 않겠습니까?”  “그대가 바로 부처이니라”

“어떻게 보림 해야 합니까?”  “한 티끌이 눈에 있으면 허공 꽃[空花]이 어지러이 떨어진다” 그 스님은 이 말을 듣고 곧 깨달은 것이다.

 

上來所擧古聖  入道因緣  明白簡易  不妨省力  因此公案  若有信解處  卽與古聖  把手共行

 

위에 든 옛 성인들의 도에 드신 인연이 명백하고 간단하여 수고를 덜기에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공안으로 말미암아 믿어 아는 곳[信解處]이 있으면 바로 옛 성인들과 더불어 손을 잡고 함께 갈 것이다.

 

[참고 ②] 『선종무문관(禪宗無門關)』 (무문혜개 無門慧開, 一一八三 ~ 一二六O) 제 1칙 ‘조주구자(趙州狗字)’

趙州和尙因僧問  “狗子還有佛性也無”  州云  “無”

 

조주 스님께 한 스님이 물었다.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조주 스님이 대답하기를 “무(無 없느니라)” 하였다.

 

無門曰  參禪須透祖師關  妙悟要窮心路絶  祖關不透  心路不絶  盡是依草附木精靈  且道如何是祖師關  只者一箇無字  乃宗門一關也  遂目之曰禪宗無門關  透得過者  非但親見趙州  便可與歷代祖師把手共行  眉毛廝結  同一眼見  同一耳聞  豈不慶快

 

무문이 평한다.

참선은 모름지기 조사관(祖師關)을 꿰뚫어야 하는 것이요, 묘하게 깨치는 것은 마음길이 끊어져야 하나니, 조사관을 뚫지 못하고 마음길이 끊어지지 못하면 모두 풀에 의지하고 나무에 붙은 도깨비일 따름이리라. 일러 봐라, 어떤 것이 조사관인가?

다못    무자(無字) 종문(宗門)중의  관문이다. 이를 일러 선종무문관이라 한다.  관문을 뚫고 지나간 자는 친히 조주를  뿐만 아니라,  역대조사와 손을 잡고 같이 가고[把手共行] 눈썹을 함께 하여 같은 눈으로 보고, 같은 귀로 들을 것이니  어찌 경쾌하지 아니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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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요(禪要)『선요』는 중국 송대 말기에서 원대 초기의 고봉원묘(高峰原妙, 1238~1295) 선사의 법어집으로 대중과 개인을 위한 법문과 편지글  스님 자신의 수행 과정을 직접 말씀한 편지글을 포함해 29단락의 법어로 구성되어 있다.

내용은 참선 수행인이 생사 일대사(生死 一大事) 해결을 위하여 간절하게 화두 참구해야  것을 말씀하셨다.

*죽비( 대나무 /빗치개·통발 ) ; 예불이나 참선 정진할   죽비를 손바닥에 쳐서 소리를 내어 시작과 끝을 알리거나, 공양할  공양순서를 알리는데 쓰는 불교 용구.

*입선(入禪) ; 참선 수행(좌선) 들어가는 , 좌선(坐禪) 시작하는 . 참선(좌선)수행.

*혼침(昏沈 어두울 /잠길 ) ; ①정신이 미혹(迷惑)하고 흐리멍덩함. ②좌선할  정신이 맑지 못하여 잠에 빠지거나 무기공(無記空) 떨어진 상태.

*산란(散亂 흩을 /어지러울 ) ; 혼침(昏沈) 반대인데 도거(掉擧)라고도 한다. 정신을 흐트러 어지럽혀 다른 곳으로 달아나게 하는 정신작용. 마음이 흐트러져 정리되어 있지 않은 . 마음이 어지러운 .

*방선(放禪) ; 좌선을 하거나 불경을 읽는 시간이  되어 공부하던 것을 쉬는 . 몸을 쉬는 가운데서도 마음은 항상 본참화두를 들고 있어야 한다.

*한화잡담(閑話雜談) ; 심심풀이로 한가롭게 얘기를 나누거나[閑話], 쓸데없이 지껄이는 [雜談].

*‘타살만만천천(打殺萬萬千千)인들  유십마죄과(有甚麽罪過)리오 ; ‘천이면 , 만이면  모두 때려죽인들 무슨 죄가 되랴

[참고] 『고봉선요(高峰禪要) 시중(示衆 其二)’ (통광 역주 | 불광출판부) p52, 58 참고.

若是此念이  輕微하야  志不猛利하야  [-+][-+][-+][-+]하며  魍魍魎魎하야  今日也恁하고  明日也恁인댄  說使三十年二十年用功이라도  一如水浸石頭相似하야  看看逗到臘月三十日하면  十箇有五雙이  懡㦬而去하야  致令晚學初機  不生敬慕하리니  似者般底漢이  到高峰門下인댄  打殺萬萬千千인들  有甚麽罪過리오

 

만일  생각(참선하려는 뜻과 소원) 흐지부지하여 시원찮고, 뜻이 맹렬하고 날카롭지 못하여 조는 개처럼 멍하거나 도깨비처럼 산란하여 오늘도 그럭저럭 내일 그럭저럭 지낸다면 설령 20 30년을 공부하더라도 마치 물이 돌의 표면만 적시는  같아서,

어느덧 섣달 그믐이 되면 열에 다섯 쌍이 모두 창피한 꼴이 되어 늦게 배우는 이와 처음 출가한 이들에게 존경심을 내지 않게  것이다. 이와 같은 놈이 고봉의 문하에 온다면 천이면, 만이면  모두 때려죽인들 무슨 죄가 되랴.

*일념만년(一念萬年) : ‘ 생각이 만년(萬年) 가도록 뜻으로 한결같은 마음 나타낸 .

*공양주(供養主) ; 절에서 밥을 짓는 소임, 또는  일을 맡은 스님.

*채공(菜供) ; 절에서 반찬을 마련하는 소임, 또는  일을 맡은 스님.

*원주(院主) ; 후원(後院, 절에서 부엌을 일컫는 ) 책임지는 소임. 또는  일을 맡은 스님.

*별좌(別座) ; 절에서 식사·의복·방석·이부자리 등을 담당하는 직책, 또는  일을 맡은 스님.

*단월(檀越) ; 시주(施主). dana-pati  음역. ①스님에게 혹은 절에 돈이나 음식 따위를 보시하는 . 또는 그런 사람. ②남에게 가르침이나 재물을 아낌없이 베푸는 사람.

*신장(神將) ; 불법(佛法) 보호하는 신장. 또는 《화엄경》을 보호하는 신장.

*석가모니(釋迦牟尼) : [] Sakyamuni 한문으로는 음대로 써서 석가모니(釋迦牟尼) 또는 석가문(釋迦文)이라 하고, 줄여서 석가(釋迦) 한다。뜻으로 번역하여 능인적묵(能仁寂默) 또는 능적(能寂)•능유(能儒) 한다。Sakya 종족(種族) 이름이고, muni 존칭이니,  석가 종족에서 나신 거룩한 어른이란 뜻이다.

 

서력 기원전 565(<중성점기衆聖點記> 표준한 연대) 중인도 가비라(迦毘羅 Kapila-vastu) 성주 정반왕(淨飯王) 태자로 나시었다。난    만에 어머니 마야 부인(摩耶夫人) 잃고 이모인 파사파제(闍波提)에게 자랐다。어릴  이름은 교답마(喬答摩 Gautama;Gotama) 혹은 실달다(悉達多 Siddhartha) 하였다.

어려서 온갖 학문과 무예를 고루 배워서 정통하고,  일곱 살에 선각왕(善覺王)  야수다라(耶輸陀羅) 결혼하여  아들을 두었다. 그 나라의 제도에 종교와 학문을 차지한 바라문족과, 정치와 군사를 차지한 왕족과,  다음으로 평민과 노예족의  가지 계급이 있었으므로, 이것을 개혁할 뜻을  품고 있었다.

 

하루는 농부들이  가는 것을 보고,  같은 사람으로 어떤 이는 불볕에 죽도록 일하고, 어떤 이는 놀기만 하는 것이 옳지 못한 것과,사람이 동물을 학대하는 참혹한 일을 아프게 생각하여, 모든 것이 평등하고 싸움과 슬픔이 없는 세상을 만들려고 국가와 사회 문제에 대하여 번민하였다

다시 인간에는 살아가고 늙고 병들고 죽는  고통이 있음을 느껴, 누구나 다같이 참다운 행복을 누리게  도리를 찾고 있었다。그리고 우주의 온갖 것에 대하여 생각하여 갈수록 의문 아님이 없었다.

 

그리하여  모든 문제들을 해결하려고, 드디어  아홉에 왕궁을 뛰쳐나와 산중으로 갔다。처음   동안은 바라문 교도들이 하는 대로 심한 고행(苦行) 하다가, 육체를 괴롭히는 것만이 바른 길이 아님을 깨닫고, 몸을 보살펴 가면서 마음을 닦아 설흔 살에 비로소 우주의 진리를 크게 깨쳐서 마침내 부처님이 되었다.

  사십   동안   없이 돌아다니면서 묘한 법을 가르쳐 한량없는 중생을 건지시고, 여든 (기원전 486) 그의 육신은 세상을 떠났다.

*말세(末世  /세상 ) ; ①도덕, 풍속, 정치 등의 모든 사회 질서와 정신이 매우 타락하고 쇠퇴하여 끝판에 이른 세상. ②석존입멸후 오백년을 정법(正法) 세상, 다음 천년을 상법(像法) 세상,  후의 일만년을 말법(末法) 세상이라고 한다. 구체적인 시기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운력(運力) ; '함께 힘을 기울인다' 의미. '많은 사람이 구름같이 모여서 일을 한다' 의미로 운력(雲力)이라고도 하며, '여러 사람들이 힘을 합하여 하는 '이란 우리말 '울력' 같다. 의미와 관계없이 운력(運力) 사찰에서 대중들이 모여 육체적인 노동을 함께 한다는 .

*소지(掃地  / ) ; ①마당() . 또는  일을 맡은 사람. ②청소.

*포행(布行) ; 참선(參禪) 하다가 잠시 방선(放禪) 하여 몸을 푸는 뜻으로 자신의 본참화두를 들면서 조용히 뜰을 걷는 .

*() ;  ①깨달음. 산스크리트어 bodhi 한역. (). 보리(菩提)라고 음사(音寫). ②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방법. ③무상(無上) 불도(佛道). 궁극적인 진리. ④이치. 천지만물의 근원. 바른 규범.

*선객(禪客 참선 /손님·사람 ) ; 참선 수행을 하는 사람.

*토굴(土窟) ; 사전적인 원래의 뜻은 땅을 파고 위에 거적 따위를 얹고 흙을 덮어 추위나 비바람만 가릴 정도로 임시로 지은 이나, 근래에 절에서 쓰이는 의미는 대중이 함께 거주하는 사찰()’ 대비되는 의미로, 어떤  형태와는 관계없이 스님의 개인의 수행 거처 말함.

*납자(衲子) : (衲)’은 누더기옷이란 말인데, 도를 닦는 이는 어디까지나 검박하게 입어야 한다。본래 가사(袈裟) 쓰레기에서 주어서 깨끗이 빨아 가지고 누덕누덕 기워서 만드는 것이므로, 분소의(糞掃衣) 또는 백납(百衲)이라고 한다。그래서 참선하는 이를 납자라고 하는 것이다.

옛글에 『誰知百衲千瘡裡 三足金烏徹天飛』란 것이 있다。곧 『뉘 알랴, 누더기에 밝은 해가 숨은 줄을 ! 』이것이 누더기 입은 도인,  납자의 본색을 말하는 것이다.

*도반(道伴) ; 함께 불도(佛道) 수행하는 . 불법(佛法) 닦으면서 사귄 .

*청신사(清信士) ; 출가하지 않고 재가(在家)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남자 신도,  우바새(優婆塞).

*청신녀(清信女) ; 출가하지 않고 재가(在家)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여자 신도,  우바이(優婆夷).

*고행(苦行) ; 어떤 경지에 이르거나 소원을 성취하기 위해 육신을 극도로 괴롭히는 수행.

*퇴타(退墮 물러날 /떨어질·게으를 ) ; 어떤 경지로부터 물러나 되돌아 오는 . 퇴전(退轉)이라고도 한다.

*(게송) 진로형탈사비상~’ ; [황벽단제선사완릉록(黃檗斷際禪師宛陵錄)] 황벽희운(黃檗希運) 선사 게송 참고.

*진로(塵勞 티끌·속세 /근심할 ) ; 마음이나 몸을 괴롭히는 노여움이나 욕망 따위의 망념(妄念). 번뇌(煩惱). 생사(生死). 생사윤회(生死輪廻).

*승두(繩頭) : () 목수가 쓰는 직선을 긋는 노끈이고 () 어조사다。 불조의 계법(戒法) 규칙. 화두.

*한바탕 ; 크게 한판(  벌이는 ). 한판 크게.

*외호(外護) ; 불법(佛法) 세상에 널리 퍼뜨리는데 힘이 되도록 수행하는 사람을 보호하는 것을 말한다. ((() 보호하는 것을 내호(內護)라고 한다. 내호와 외호를 합하여 이호(二護)라고 한다.

*결제(結制 맺을 /만들·법도 ) ; 참선 수행하는 안거(安居) 들어감. 하안거는 음력 4 15일에 결제하며, 동안거는 음력 10 15일에 결제한다

*해제(解制  /만들·법도 ) ; (안거) 마침. ②재계(齋戒)하던 것을 그만두고 .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