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1) (게송)면문출입견환난~ / 망상을 발판으로 화두를 들어라 / 적극적 요중선(鬧中禪) / 상근 중근 하근 / 경계에 속지 말아라.
〇전강 조실 스님께서 세간(世間)에 살면서 행주좌와 어묵동정, 인간 세상에 모든 희로애락과 흥망성쇠 속에서 바로 그 생활 속에서 화두를 들고 정진을 해 나가는 것이 그것이 바로 요중선(鬧中禪)이고 적극적 임운선(任運禪)이라 하셨는데, '이것은 상근인이 할 수 있는 참선이다. 그 적극적(積極的) 요중선(鬧中禪)이야말로 참으로 훌륭한 참선이다' 이리 말씀을 하셨습니다.
**송담스님(No.321) — 1987년 2월 첫째 일요법회(87.02.01) (용321)
(1) 약 12분.
(2) 약 9분.
(1)------------------
면문출입견환난(面門出入見還難)한데 무위진인지척간(無位眞人咫尺間)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거로일신경사엽(去路一身輕似葉)한데 고명천고중여산(高名千古重如山)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오늘 정묘년 2월 첫째 일요법회를 맞이해서 사부대중이 이렇게 운집(雲集)한 가운데에 전강 조실 스님의 최상승 활구참선(活句參禪) 법문을 들었습니다. 오늘 녹음 법문(錄音法門)은 음질이 명확해서 한 분도 빠짐없이 잘 들으셨을 줄로 생각을 합니다.
‘이뭣고?’, 내가 나를 찾는 ‘이뭣고?’ 이 참선을 아주 구체적으로 누구나 알아듣기 쉽게 그렇게 분명하게 그리고 간략하게 구체적으로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이뭣고?’
보통 참선(參禪)하지 아니할 때에는 망상(妄想)이 일어난 줄도 모르고 그냥 지내는데 떠억 앉아서 화두(話頭)를 들려고 하면 유별나게도 이 생각 저 생각이 퍼일어나는 것을 아주 느끼게 됩니다.
그 끝없이 퍼일어나는 그 망상 번뇌, 그 일어나는 것을 조금도 개의치 말고, 일어나는 것을 탓하지 말고, 두려워하지 말고, 그 일어나는 대로 그냥 내버려둬 버리고 거기에 신경도 쓰지 말고 그 일어나는 망상을 따라가지를 말아라.
망상이 일어난다고 해서 걱정하지도 말고, 망상 일어나는 것을 따라가지도 말고, 그냥 일어나면 일어난 대로 그냥 고대로 놔둬 버리고, 나는 화두만을 자꾸 챙기라. ‘이뭣고?’
뿌리 없는 데로부터서 일어났기 때문에 그냥 내가 따라가지만 안 하고 화두만 들어버리면 그 망상은 저절로 없어져 버리는 것입니다.
일어나는 망상을 없앨라고 한다든지, 일어난다고 짜증을 낸다든지, 그 일어나는 데를 내가 참견을 하면 그 망상은 점점 더 가지가 뻗고 잎이 피어서 더 커지는데.
일어나거나 말거나 그냥 놔둬 버리고 나는 처꺽 화두를 들고 ‘이뭣고?’ ‘ 「이」 하는 이놈이 뭣고?’ 이렇게만 한결같이 간절히 거각(擧却)을 해 나가면 그것이 일어나는 망상을 처치하는 가장 지혜스러운 방법인 것입니다. 망상 처치하는 방법만 안다면 망상 일어나는 것을 겁낼 필요도 없고 짜증을 낼 필요도 없습니다.
그 망상이라 하는 것이 어디서 일어나냐 하면은 내나 진여불성(眞如佛性)에서부터서 일어난 것이거든.
우리는 진여불성이 어떻게 생겼는지, 어디가 있는지, 도저히 알 수도 없고 그 불성을 볼 수도 없지만, 그 진여불성으로부터 일어나는 망상은 하루 종일 끊임없이 우리는 느낄 수가 있습니다.
우리에게 진여불성이 없다면 망상도 일어날 필요가 없겠지만, 진여불성이 있는데 과거로부터 한량없는 업(業)을 지었기 때문에 그 지어 놓은 업으로 인해서 끊임없이 그 망상의 물결이 일어나고 있어.
그 일어나는 물결을, 그 일어나는 망상을 계기로 해서 화두를 들어버리면 그 일어나는 망상이 발판이 되어서 나로, 나의 자성자리로 돌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최상승법(最上乘法)입니다.
최상승법은 일어나는 망상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왜 그러냐?
그놈을 발판으로 해서 나로 돌아올 수가 있기 때문에 그것을 무서워할 것도 없고, 미워할 것도 없고, 짜증을 낼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아까 전강 조실 스님께서 세간(世間)에 살면서 행주좌와 어묵동정, 인간 세상에 모든 희로애락과 흥망성쇠 속에서 바로 그 생활 속에서 화두를 들고 정진을 해 나가는 것이 그것이 바로 요중선(鬧中禪)이고 적극적 임운선(任運禪)이라 하셨는데, '이것은 상근인이 할 수 있는 참선이다. 그 적극적(積極的) 요중선(鬧中禪)이야말로 참으로 훌륭한 참선이다' 이리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는 그러면 전부가 상근인(上根人)이냐 하면은, 상근인도 더러는 있지마는 대부분은 중근, 하근이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중근, 하근이라도 자기가 처해 있는 그 자리에서 바로 화두를 들고 일체 희로애락과 흥망성쇠의 일을 당했을 때 그리 따라가지 아니하고, 그리 말려들어 가지 아니하고 바로 화두를 들고 또 들고 이렇게 해 나가서 그런 세간의 흥망성쇠에 내가 끌려 들어가지만 않으면 그것이 바로 상근인이 되는 것입니다.
원래부터 상근이 따로 있고 하근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상근인다웁게 모든 일에 임해서 피하고 도망가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속에서 그놈을 디디고 극복을 하고 자기로 돌아오는 공부를 할 수 있다면 바로 그것이 상근의 가풍(家風)인 것입니다.
머리를 깎고 출가해서 스님이 되어 가지고 도를 닦는다고 하는 것은 이 공부를 위해서 고향과 부모형제를 다 버리고서 오직 이 하나만을 위해서 몸과 목숨을 바치겠다고 하는 그러한 특별한 생각을 발심(發心)을 가진 사람이 되는 것인데,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꼭 하근이냐 하면 상근도 그러한 철저한 신심이 있다면 할 수가 있는 것이고,
하근(下根)도 그렇게 출가해 가지고 일대사(一大事) 하나만을 위해서 일생을 바친다면 하근도 자기를 깨달라서 불조(佛祖)의 혜명(慧命)을 이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상근도 닦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으셨고, 하근・중근, 하근도 공부해서 도를 이룰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으신 것입니다.
도(道) 자체에 가서는 조금도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니지만 우리의 근기(根機) 따라서 취향하는 방법에 가서 차이가 있을 뿐인 것입니다. 목적지에 도달하고 보면은 무슨 차별이 있겠습니까.(처음~11분46초)
(2)------------------
맨 처음에 게송(偈頌)을 읊었습니다마는 임제 스님은 이 활구참선을 체계화한 대도사이십니다. 달마 스님으로부터 육조 스님, 육조 스님으로부터 이 임제 스님에 이르러서 이 화두를 가지고 확철대오(廓徹大悟)하는 이 활구참선을 체계화한 대도인인데.
임제 스님께서 대중에서 법을 설하시기를, "유일무위진인(有一無位眞人)하니, 한 위가 없는—지위(地位)! 지위가 없는, 계급이 없는—지위가 없는 참사람이 여기에 있으니, 상종여등제인(常從汝等諸人) 면문출입(面門出入)하되, 항상 너희들 여러 사람의 면문(面門)으로조차 출입을 해" 들랑거린다 그말이여.
면문(面門)이라 하는 게, 너희들 눈 ・ 코 ・ 입 ・ 귀 이게 면문(面門)이거든. 너희들 얼굴 면문으로부터 그 무위진인이 나왔다 들어갔다 한다 그말이여.
그러니 이 무위진인(無位眞人)을 확실히 증거(證據)치 못한 자는, 확실히 깨닫지 못한 사람은 간간(看看)하라. 잘 살펴볼지니라. 어떠한 것이 무위진인(無位眞人)인가 잘 살펴보란 말이야.
여러 대중 낱낱이 무위진인이 있는데, 그 무위진인이 어디로 드나드냐 하면은 각자의 얼굴 문으로부터 면문(面門)으로부터 드나든다 이거거든.
그렇게 설법을 하시니까, 그때 한 승(僧)이 나와서 묻기를 "여하시무위진인(如何是無位眞人)잇꼬? 어떤 것이 무위진인입니까?"하고 그 (임제) 스님한테 터억 질문을 했습니다.
임제 스님께서 법상에서 터억 내려와 가지고, 그 질문한 스님의 멱사리를 턱! 거머쥐고서 "도도(道道)하라. 일러라" 그러니까.
그 스님이 뭐라고 이를려고 머뭇머뭇 그러니까, 냅다 갖다가 멱사리를 놓으면서 미트러 처내버리면서 이르기를 "무위진인(無位眞人)이 시심마(是甚麽)오? 무위진인이 이 무엇이냐?" 그렇게 되물으시고서 "간시궐(乾屎橛)이니라. 마른 똥막대기니라"
이 마른 똥막대기, 이것도 하나의 공안입니다.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나, 무자(無字)나, 부모미생전(父母未生前) 본래면목(本來面目)과 마찬가지로, 이 마른 똥막대기니라.
"어떤 것이 무위진인인고? 마른 똥막대기니라" 이렇게 자문자답을 하셨습니다.
그 게송에 대해서 고인(古人)이 게송을 읊으시기를,
면문출입견환난(面門出入見還難)이요, 면문으로 출입하는 것을 보기가 어렵다. 면문으로 출입하는데 면문으로 출입한 그 무위진인을 보기가 대단히 어렵다 그말이여.
무위진인(無位眞人)이 지척간(咫尺間)이니라. 그렇게 볼라야 볼 수 없지마는 그 무위진인이 지척간(咫尺間)이여. 바로 거기에 있다 그말이여. 멀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가까이에 있다 그말이여.
거로일신경사엽(去路一身輕似葉)이요, 가는 길에는 한 몸뚱이가 이파리처럼 가벼운데,
고명천고중여산(高名千古重如山)이다. 그 높은 이름은 천고(千古)에 무겁기가 산과 같도다.
이렇게 게송을 읊으셨습니다. 산승(山僧)이 법상에 올라와서 맨 처음에 읊은 게송(偈頌)이 바로 이 게송입니다.
이 ‘무위진인(無位眞人)이 간시궐(乾屎橛)이다’ 이것은 무서운 공안으로써 오늘 여러분께 말씀을 드린 것은 이 공안을 가지고 천착(穿鑿)을 하고 분별심으로 따지라는 것이 아니고, 이 공안에 콱 맥혀서 알 수가 없거든 이 공안은 그냥 놔두고.
여러분이 이미 가지고 계신 ‘이뭣고?’ 또는 '무자(無字)',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 여러분이 이미 가지고 계신 그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해서 간절히 거각을 하고 의심을 해서 공부에 박차를 가해 간다면, 어느 때 자기의 면목(面目)을 깨닫게 될 때에 이 공안도 의심 없이 풀리게 될 것입니다.
이 법회가 끝난 다음에 화두 타실 분, 또 불명(佛名)을 타실 분, 또 오계(五戒)를 받으실 분에 대한 간단한 법요식(法要式)이 있게 되겠습니다. 화두와 불명과 계를 신청하신 분은 이 법회가 끝난 다음에 이 법당에 질서 있게 남아 주시기를 부탁을 드립니다.
오늘은 ‘경계(境界)에 속지 말아라’
한 생각 경계에 속아 가지고 무간지옥(無間地獄)에 가지 말고, 그 한 경계로 인해서 퍼뜩 화두로 돌이켜 가지고 해탈도(解脫道)로 나아간다고 하는 것은 우리 불자(佛子)가 마땅히 가야할 최상승(最上乘)의 길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새해에는 그러한 마음으로 한 생각 한 생각을 단속하시고, 하루하루를 그렇게 살아가시고, 그렇게 해서 365일을 그렇게 단속하고 그렇게 살아가신다면, 여러분은 일 년 동안에 무량겁 윤회하던 윤회의 길이 거기에서 녹아 없어질 것이며, 영원히 누리고 남을 행복을 얻으시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신수기도 중입니다마는 기도 성취는 내년 신수기도 할 필요도 없을 만큼 모든 소원을 다 성취하시고 말 것입니다.(50분17초~58분45초)(끝)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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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면문출입견환난~' ; 『선문염송(禪門拈頌)』 (고려 진각혜심眞覺慧諶 선사 편찬) 617칙 '무위(無位)'
*운집(雲集 구름 운/모일 집) ; 구름[雲]처럼 모인다[集]는 뜻으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듦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본참공안]를 받아서,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전강선사 녹음법문(錄音法門) ; 전강 스님께서 후학을 위해 참선법(參禪法)을 핵심으로 설한 법문이 칠백여 시간 분량이 녹음되어 있다. 이 중에는 『전강선사 일대기』 『몽산법어』 『초발심자경문』 등이 있다.
눈부신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이제는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 천육백여 개의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 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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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뭣고(是甚麼 시심마) :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 왔다.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망상(妄想 망령될 망/생각 상) ; ①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는 것으로 상정하고 집착하는 의식의 작용. 분별(分別), 망상분별(妄想分別), 허망분별(虛妄分別), 망상전도(妄想顚倒) 등으로도 한역한다. ②이치에 맞지 아니한 망령(妄靈)된 생각[想]을 함, 또는 그 생각. 잘못된 생각.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하다고 잘못 생각하는 것.
*번뇌(煩惱 번거러울 번/괴로워할 뇌) ; ①몸과 마음을 번거롭게 어지럽히고[煩亂, 煩勞, 煩擾] 괴롭혀 고뇌케[逼惱, 惱亂] 하므로 번뇌(煩惱)라 표현. 근원적 번뇌로서 탐냄(貪)•성냄(瞋)•어리석음(癡) 등이 있다.
②나라고 생각하는 사정에서 일어나는 나쁜 경향의 마음 작용. 곧 눈 앞의 고(苦)와 낙(樂)에 미(迷)하여 탐욕•진심(瞋心)•우치(愚癡)등에 의하여 마음에 동요를 일으켜 몸과 마음을 뇌란하는 정신 작용.
불교는 중생의 현실을 혹·업·고(惑·業·苦)의 삼도(三道)로 설명한다. 즉 번뇌[惑]에 의해 중생이 몸과 마음의 행위[身口意 三業]를 일으키게 되면, 이로써 3계 6도의 생사윤회에 속박되어 고통[苦]의 과보를 받게 된다.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화두(공안)에는 '이뭣고?' '판치생모' '무자' '정전백수자' 등이 있다.
*거각(擧却 들 거/어조사 각) ; 화두를 든다. ‘화두를 든다’ ‘화두를 거각한다’는 말은 자신의 본참화두를 들 때 알 수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그 알 수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觀照)하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 세등선원(No.09)—병진년 동안거 결제중 법어(76.12.26)에서.
〇화두를 먼저 이마로 의심을 하지 말고, 이 화두를—호흡하는데 배꼽 밑[丹田]에 숨을 들어마시면은 배가 볼록해지고 숨을 내쉬면은 배가 홀쪽해지는데, 그 배가 빵빵해졌다 홀쪽해졌다 하는 거기에다가 화두를 들고 ‘이뭣고~?’ ‘알 수 없는 생각’ 관(觀)하는 그것이 화두를 드는 것이여.
*진여불성(眞如佛性) ; 진여(眞如)인 불성(佛性).
*진여(眞如) ; ①차별을 떠난,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②궁극적인 진리. ③모든 분별과 대립이 소멸된 마음 상태. 깨달음의 지혜. 부처의 성품. ④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청정한 성품.
*불성(佛性) ; ①모든 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부처가 될 수 있는 소질·가능성. ②부처 그 자체. 깨달음 그 자체.
*업(業) ; (산스크리트어 : karma 카르마) ; ①몸과 입과 마음으로 짓는 행위와 말과 생각, 일체의 행위.
②행위와 말과 생각이 남기는 잠재력. 과보를 초래하는 잠재력.
③선악(善惡)의 행위에 따라 받는 고락(苦樂)의 과보(果報).
④좋지 않은 결과의 원인이 되는 악한 행위. 무명(無明)으로 일으키는 행위.
⑤어떠한 결과를 일으키는 원인이나 조건이 되는 작용. 과거에서 미래로 존속하는 세력.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간화선(看話禪) ; 화(話)는 화두(話頭)의 준말이다. 간화(看話)는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을 본다[看]’는 말로써,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이 화두를 관(觀)해서, 화두를 통해서 확철대오하는 간화선을 전강 조실스님과 송담스님께서는 ‘최상승법(最上乘法)’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고 말씀하신다.
*세간(世間) ; (산스크리트어 loka) 세(世)는 파괴·변화·흐른다는 시간의 뜻이 있고, 간(間)은 가운데·간격·틈새라는 공간의 뜻이 있다.
① 변하면서 흘러가는 현상계. ② 생물들의 세계. ③ 생물들이 거주하는 자연 환경, 곧 산하대지. ④ 세상. 이 세상. 세속. ⑤ 산스크리트어 saṃsāra 미혹한 세계. ⑥ 육내입처(六內入處), 또는 십이처(十二處)를 말함.
*요중선(鬧中禪 시끄러울 뇨/가운데 중/참선 선) ; 시끄러운 가운데 하는 참선. 동중선(動中禪)라고도 한다. 조용한 가운데 하는 참선은 정중선(靜中禪)이라 한다.
*임운(任運 맡길·마음대로 할 임/옮길·움직일·운수 운) ; 그대로, 자연스럽게. 자연스럽게 일어남. 아무런 조작이나 인위적인 힘을 첨가하지 않고, 법이(法爾), 여연(如然), 자연(自然), 으레히라는 뜻.
*상근(上根 위 상/뿌리 근) ; 상근기(上根機). 부처님의 가르침을 알아듣고 실천할 수 있는 매우 뛰어난 소질과 능력, 또는 그러한 소질과 능력을 지닌 사람.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을 일으킴[發].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보리심은 모든 부처님이 부처님이 될 수 있었던 바탕이 되는 종자이고 청정한 법이 자라날 수 있는 좋은 밭이기 때문에 , 이 마음을 발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면 속히 위없는 보리를 증득한다.
*일대사(一大事) ; 매우 중요하거나 아주 큰 일. 삶과 죽음, 즉 생사(生死)의 일.
①부처님이 중생구제를 위해 세상에 나타난다고 하는 큰 일. 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목적. ②가장 중요한 일이란 뜻. 수행의 목적. 깨달음을 얻는 것. 인간으로서의 완성.
『법화경』 방편품에 ‘諸佛世尊, 唯以一大事因緣故, 出現於世 모든 부처님은 오직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 때문에 세상에 출현한다’라고 한 것에서 유래.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한 목적은 깨달음을 얻기까지의 과정을 보이고, 지혜를 발휘하여 모든 중생을 깨닫게 하고 구제하는 것’이다.
*불조(佛祖) : 부처님과 조사(祖師), 불(佛)은 삼세제불(三世諸佛), 조(祖)는 역대(歷代)의 조사를 말함.
*혜명(慧命) ; ①지혜를 생명에 비유하는 말. 대도정법(大道正法)의 명맥(命脈). ②법신(法身)은 지혜가 생명이 된다는 뜻.
*도(道) ; ①깨달음. 산스크리트어 bodhi의 한역. 각(覺). 보리(菩提)라고 음사(音寫). ②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그 방법. ③무상(無上)의 불도(佛道). 궁극적인 진리. ④이치. 천지만물의 근원. 바른 규범.
*근기(根機 뿌리 근/베틀 기) ;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는 중생의 소질이나 근성. 보통 근기의 차등을 상근기, 중근기, 하근기로 구분한다. 근기(根器), 또는 줄여서 기(機)라고도 한다.
[참고] 송담스님(No.88)—(참선법A) 법련사 불교학생회 청법 법문(1978.10.1)에서.
〇‘중생 말세다, 중생 근기가 미약하다, 그러니까 참선법 가지고는 안되고 아미타불을 불러야 한다’ 이러한 것을 주장하는 분들이 있습니다마는, 말세라고 하는 것은 편의에 따라서 정법 시대, 상법 시대, 말법 시대 이렇게 해서 말씀해 놨지만은 최상승법을 믿고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이면, 그 사람은 하근기가 아니라 상근기(上根機)인 것입니다.
아무리 부처님 당시에 태어났으되 이 법을 믿지 아니한 사람은 하근기인 것이고, 지금 삼천 년이 지난 오늘날에 태어났어도 이 활구참선법을 믿고 열심히 실천에 옮긴 사람이면, 그 사람은 바로 정법 시대 사람이요, 그 사람은 상근기라고 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참선법을 배우고자 하고, 참선에 의해서 자아를 깨닫고자 하는 마음을 냈을 때 여러분은 이미 정법 시대를 만나 것이고, 여러분은 상근기인 것입니다. 조금도 그런 염려를 마시고 열심히 공부를 해서 결정코 금생에 ‘참나’를 자각하도록 도업을 성취하기를 간절히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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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偈頌) ; 시(詩), 게(偈)와 송(頌) 모두 불교의 가르침을 싯구로 나타낸 것.
*달마스님, 육조스님, 임제스님 ;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에서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무위진인(無位眞人) ; '무위(無位)'란 상하 · 귀천 · 범성 · 미오 등 어떤 지위나 차별도 없다는 말. 또는 지위에도 얽매이지 않고 마음대로 오간다는 뜻. 곧 '무위진인'이란 궁극적인 경지를 깨달아 모든 지위에 얽매이지 않게 된 참사람(절대자유인)을 가리킨다.
*미틀다 ; ‘밀뜨리다(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이나 사물을 갑자기 세차고 힘있게 밀어 버리다)’의 사투리.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 ; 화두의 하나. 조주선사(趙州禪師, 778-897)에게 한 스님이 와서 묻기를, “어떤 것이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 (如何是祖師西來意)”라고 했을 때, 조주선사가 대답하기를, “뜰 앞에 있는 잣나무니라”라고 한 데서 유래한 화두이다.
*무자(無字) : 화두. 어느 스님이 조주(趙州) 스님께 묻되 「개도 불성(佛性)이 있읍니까 없읍니까?」하니, 조주 스님이 답하되 「무(無)」라 하시니 「준동함령(蠢動含靈)이 다 불성이 있는데 어째서 무(無)라고 했는고?」하는 참선할 때 참구(參究)하는 천칠백 공안 중의 하나.
[참고] 『언하대오(言下大悟)』 (전강선사 법어집 | 용화선원刊) p52~53.
〇‘무자’ 화두하는 학자들이여, 조주 스님의 “무”라고 하신 그 의지가 “무”에 있는 것이 아니다. 기실(其實) 엉뚱한 곳에 있는 것이니 제발 조주 스님의 뜻을 찾으려고 애쓸지언정 ‘무자(無字)’에 떨어져서 광음을 헛되이 보내지 않기를 재삼 부탁하노라.
이 ‘무자’ 화두 지어감에 좋은 비유 설화가 있으니 옛날 중국 당나라에 천하일색인 양귀비가 있었는데 당 현종의 애첩으로 궁성에 살고 있었다. 이 양귀비와 정부 안록산은 서로가 보고 싶어 못 견딜 지경이었다.
빈호소옥무타사(頻呼小玉無他事)라 지요단랑인득성(只要檀郞認得聲)이로다
자주 소옥이를 부르는 것은 다른 일이 아니라 다못 낭군에게 소리를 알리고자 함이로다.
양귀비는 자기의 종인 소옥을 아무 할 일 없이 큰 소리로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자꾸 부른다. 왜 양귀비는 소옥을 그렇게 부를까? 다만 낭군에게 자기의 음성을 들리게 하기 위함이다.
양귀비의 뜻이 소옥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소옥을 통해서 자기의 음성을 안록산에게 알리는데 본 뜻이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무자’ 화두는 ‘무자’ 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무” 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에게 뜻이 있는 것이니, ‘무’라는 말을 천착(穿鑿)하지 말고 “무” 라 말씀하신 조주 스님의 의지를 참구할지니라.
*부모미생전본래면목(父母未生前本來面目) ; 부모로부터 태어나기 이전의 본래면목. 자기 본분의 소식, 궁극적인 진실을 가리키는 선종의 화두이다. 부모미생전면목(父母未生前面目), 부모미생면목(父母未生面目)이라고도 한다.
[참고] 『선문염송·염송설화(제15권)』 (5) (동국역경원) 제597칙 ‘일격(一擊)’ p375~378.
『전등록(제11권)』 (동국역경원) ‘등주 향엄 지한 선사’ p718~720.
〇대혜(大慧)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향엄(香嚴) 화상이 백장(百丈) 스님 문하에 있을 때 총명 영리하고 본 것, 들은 것이 많았으나 여러 해를 참선(參禪)해도 이루지 못했다. 백장 스님이 천화(遷化)하고 나중에 위산(潙山)으로 가니, 위산 스님이 묻기를 ‘듣자 하니 그대는 백장의 회상에 있을 때 하나를 물으면 열을 대답하고, 열을 물으면 백을 대답했다는데, 이는 그대의 지식과 상념(想念)일 뿐이다. 그대의 부모에게서 태어나기 전의 일로써 한 구절 대답해 보라[父母未生時 試道一句看]’ 하였다.
선사는 위산의 이 한 물음을 받자 당장 앞뒤가 막막해져서 곧장 방으로 돌아가 평소에 읽었던 문자를 뒤적이면서 대답거리를 찾았으나 한 구절도 알맞은 대답거리를 구하지 못해 끝내 스스로 탄식하되 ‘그림 속의 떡은 주린 배를 채울 수 없구나[畵餠不可充飢]’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자주 위산에게 설파(說破)해 주기를 청했는데 위산은 ‘내가 만일 그대에게 설파해 준다면 그대는 뒷날 나에게 원망을 할 것이다. 그러므로 설파해 줄 수 없다(전등록 : 내가 말하면 나의 견해일 뿐이니, 그대의 안목에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고 하였다.
하는 수 없어 평생에 모은 문자와 서적들을 끌어내다가 불사르고 다시는 불법도 배우려 할 것 없이 되는 대로 지내기로 하고, 이에 위산에게 하직을 고하고 곧장 남양(南陽)으로 가서 충(忠) 국사의 유적에 참배하고 거기에 머물렀다. 어느날 초목을 베다가 기와 조각을 주워 던진 것이 대나무에 맞아 소리가 나자, 자신도 모르게 부모가 태어나기 전의 콧구멍을 만났다.(깨달은 뒤에 다음과 같이 송했다)
一擊忘所知 更不假修治 動容揚古路 不墮悄然機 處處無蹤跡 聲色外威儀 諸方達道者 咸言上上機
한번 쳐서 알든 바를 잊으니 다시는 닦고 다스리지 않게 됐네.
행동하는데 옛길을 드날리니 초췌한 처지가 되지 않는다.
곳곳에 자취가 없고 빛과 소리 밖의 위의(威儀)로다
제방(諸方)의 도를 아는 이들은 모두가 최상의 근기라 하네.
그때의 경지는 마치 어두운 데서 등불을 만난 것 같고, 병든 이가 의원을 만난 것 같으며, 가난한 이가 보물을 얻은 것 같고, 아기가 엄마를 만난 것 같았다.
마침내 목욕 분향(焚香)하고 멀리 위산 쪽을 향해 절을 하면서 찬탄하되 ‘화상의 대비하신 은혜가 부모보다 낫습니다. 그때 만일 제게 설파해 주셨다면 어찌 오늘의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하였다.”
*산승(山僧) ; 스님이 자신을 겸손하게 일컫는 말.
*천착(穿鑿 뚫을•궁구할 천/뚫을 착) ; ①깊이 살펴 연구함. ②공연히 이치에 맞지 않게 이러쿵저러쿵함.
*본참화두(本參話頭) ; 본참공안(本參公案).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면목(面目 낯 면/눈 목) : 본래면목(本來面目 본래의 얼굴·모습).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의 성품.
*본래면목(本來面目 밑 본/올 래/낯 면/눈 목) ; ①자기의 본래(本來) 모습(面目). ②자신이 본디부터 지니고 있는,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의 성품.
본지풍광(本地風光), 본지고향(本地故鄉), 본분전지(本分田地), 고가전지(故家田地), 천진면목(天眞面目), 법성(法性), 실상(實相), 보리(菩提), 부모에게서 낳기 전 면목(父母未生前面目), 부모에게서 낳기 전 소식(父母未生前消息) 등이 모두 같은 맥락에서 쓰이는 말이다.
*불명(佛名) ; 법명(法名). ①출가하여 절에서 행자(行者)로서 일정 기간 동안 수행한 뒤, 계(戒)를 받을 때 스승이 지어 주는 이름. ②스님이 불법(佛法)에 귀의(歸依)한 남녀신자에게 지어 주는 이름.
[참고] 송담스님(No.470)—92년 4월 첫째 일요법회
〇불법(佛法)에의 깊은 인연으로, 발심(發心)해서 진리를 향해서 살아가는 부처님의 아들딸로 새로 태어났기 때문에 그런 의미로 불보살(佛菩薩)의 이름을 따서 불명으로 받는다. 더 철저히 말하면 그때마다 불명을 받을 수는 없지만, 참선 수행을 통해서 하루하루 새로 태어나야 하고 시간마다 새로 태어나야 한다.
*오계(五戒) ; (산스크리트어 pañca-śīla) 재가(在家)의 신도가 지켜야 할 다섯 가지 계율.
①불살생(不殺生). 살아 있는 생명을 죽이지 말라.
②불투도(不偸盜). 주지 않은 것을 빼앗지 말라.
③불사음(不邪婬). 삿된 음행을 하지 말라.
④불망어(不妄語). 거짓말을 하지 말라.
⑤불음주(不飮酒). 취기(醉氣)가 있는 것에 취(醉)하지 말라.
*법요식(法要式 부처님의 가르침·불도佛道 법/요긴할·원할·얻을 요/법·제도·의식 식) ; ①법요(法要 : 법法의 요체要諦, 부처님 가르침의 핵심)를 닦아 익히는 법식(法式). ②불사(佛事 : 재齋, 법회 따위의, 불가佛家에서 행하는 모든 일)의 의식. 법회(法會 : 불법을 강설하거나 불보살과 스님들에게 공양을 올리는 행사 모임).
*경계(境界) ; ①산스크리트어 viṣaya 구역을 나눈다(疆域分劃)는 뜻. 줄여서 경(境). 곧 감각기관[根] 및 인식작용[識]의 대상이나 인식이 미치는 범위를 말한다.
인과(因果)의 이치(理致)에 따라서 자신이 부딪히게 되는 생활상의 모든 일들, 생로병사, 빈부귀천, 부모형제, 희로애락, 시비이해, 삼독오욕, 춘하추동, 동서남북 등이 모두 경계에 속한다. 곧 인간은 경계 속에서 살고 있고, 경계가 삶의 내용이다.
②내용이나 각자의 능력 등이 분명한 한계지어진 범위 · 영역 등을 말한다. 부처님과 중생이 인지하는 능력의 범위가 구분되는 것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화엄경』 입법계품(入法界品) ‘此佛境界 一切衆生 及諸菩薩 所不能知 이것은 부처님의 경계로 모든 중생과 보살들은 알 수 있는 경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③금계(禁戒 부처님께서 제정한 나쁜 행위를 금하고 경계하는 계율)를 깨뜨리는 인연이 되는 것과 그것의 어떤 환경을 뜻한다. 예를 들어 자신의 마음에 들어맞어 마음이 따르는 환경을 순경계(順境界), 자신의 마음에 어긋나서 마음이 언짢은 것을 역경계(逆境界)라고 한다. 경(境)에는 본래 차별이 없으나 중생의 마음이 미혹됨으로 말미암아 언짢거나 수순하는 구별이 있다.
*무간지옥(無間地獄) ; 아비지옥(阿鼻地獄)이라고도 함. 아비(阿鼻)는 산스크리트어 avīci의 음사(音寫)로서 ‘아’는 무(無), ‘비’는 구(救)로서 ‘전혀 구제받을 수 없다’는 뜻. 이 지옥에 떨어진 중생은 한 치의 빈틈도 없이 끊임없이 고통을 받기 때문에 무간(無間)이라 한다.
아버지를 죽인 자, 어머니를 죽인 자, 아라한을 죽인 자, 승가의 화합을 깨뜨린 자, 나쁜 마음으로 부처님의 몸에 피를 나게 한 자 등, 지극히 무거운 죄를 지은 자가 죽어서 가게 된다는 지옥.
이 지옥에 떨어지는 죄인에게는 필파라침(必波羅鍼)이라는 악풍(惡風)이 있는데 온몸을 건조시키고 피를 말려 버리며 또 옥졸이 몸을 붙잡고 가죽을 벗기며, 그 벗겨낸 가죽으로 죄인의 몸을 묶어 불 수레에 싣고 훨훨 타는 불구덩이 가운데에 던져 넣어 몸을 태우고, 야차(夜叉)들이 큰 쇠 창을 달구어 죄인의 몸을 꿰거나 입, 코, 배 등을 꿰어 공중에 던진다고 한다. 또는 쇠매(鐵鷹)가 죄인의 눈을 파 먹게 하는 등의 여러 가지 형벌로 고통을 끊임없이 받는다고 한다.
*해탈도(解脫道) ;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가르침이나 수행.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난 경지.
*불자(佛子) : 부처님의 자녀라는 뜻이다. 불법(佛法)을 믿는 이면 모두 불자가 된다. 그것은 부처님 법에서 새로운 생명을 얻었기 때문이며 부처님의 혜명(慧命)을 이어가고, 법(法)의 집과 법(法)의 재산을 상속받게 되는 까닭이다.
또한 모든 중생을 다 불자라고 하는데, 그것은 어떤 중생이나 모두 부처의 성품(佛性)이 있어서, 그것이 부처의 씨가 되고, 지혜는 어머니가 되며 부처님은 아버지가 되어, 필경에는 반드시 성불(成佛)하게 된다.
<섭대승론석(攝大乘論釋)>에는 불자에 다섯 가지 뜻이 있다고 하였다. ①믿음이 종자가 되고 ②지혜는 어머니가 되고 ③선정은 태(胎)가 되고 ④자비심(慈悲心)은 유모가 되고 ⑤부처님은 아버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