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精進) 수행2020. 3. 16. 11:22

 

 

§(533) (게송)만법유래공리화~ / 진각국사(眞覺國師)의 좌우명(右銘) / 우리는 무엇을 하기 위해서 출가를 했던가? / (게송)사시순환난부한~ / 한 생각 일어나고 꺼지는 것이 생사(生死) / 생사는 호흡지간에 있다. 『사십이장경(四十二章經)』 / (게송)흉중하애부하증~.

 

오욕락이라 하는 것은 마음대로 구해봤자 잘 구해지기도 어렵지마는 설사 구해졌다하더라도 그것이 영원성이 없는 것이고, 그걸 구하다가 알게 모르게 크고 작은 죄업(罪業)을 지어서 끝없는 육도윤회(六道輪廻)가 거듭될 뿐이다. 그런데 끝없이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를 통해서 그 오욕락을 추구하느라고 겨를이 없어.

 

일어나는 그 생각을 돌이켜서 탁! 화두(話頭)를 거각(擧却)하고 정진을 해 나가면 그것이 바로 확철대오(廓徹大悟)해서 '생사해탈 하는 길'로 나아가는 것이지만, 바로 그 한 생각을 돌이키지 못하고 바깥 경계로 나가면 그 생각이 옳건 그르건, 좋건 나쁘건 그것은 '죽음의 문으로 가는 길'이더라.

 

한 생각 속에 생사가 있다. 그래서 그 한 생각을 잘 단속(團束)하면 한 생각 속에도 생사해탈(生死解脫) 할 수 있는 길이 있다.

 

**송담스님(No.533)—1994년(갑술년) 하안거결제 법어(94.05.25) (39분) (용533)

 

(1) 약 21분.

 

(2) 약 18분.

 

(1)------------------

 

만법유래공리화(萬法由來空裏花)헌디  기의도산해중사(豈宜徒算海中沙)리오

나무~아미타불~

단종철벽은산거(但從鐵壁銀山去)호되  불문여하우약하(不問如何又若何)니라

나무~아미타불~

 

만법(萬法)이 원래로 허공(虛空) 속에 꽃이다.

온 법계(法界)에 일월성진(日月星辰)과 삼라만상(森羅萬象)과 두두물물(頭頭物物)과 산천초목과 일체(一切) 만법(萬法)이 다 허공 속에 핀 꽃이여.

 

허공 속에 무슨 꽃이 있는가?

눈병을 앓지 않는 사람이 볼 때에는 허공은 맑아서 아무것도 없는데, 눈병이 난 사람의 눈에는 허공 속에 온갖 꽃이 피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거여.

실지는 없는 것인데, 눈병 난 사람에게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바로 허공 속의 꽃이다.

 

기의도산해중사(豈宜徒算海中沙)리오. 어찌 쓸데없이 모래, 바다 가운데 모래를 세고 있느냐?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그 몸뚱이 자체도 지 · 수 · 화 · 풍(地水火風) 사대(四大)로 뭉쳐진 허망한 것이고, 이 가죽 주머니 속에는 피와 똥과 오줌과 고름이 가득차 있는 더럽고도 추하고, 허망하고도 보잘 것 없는 그런 몸뚱이로 태어났으면서.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를 통해서 눈으로 보고 · 귀로 듣고 · 코로 냄새 맡고 · 혀로 맛보고 · 몸으로 느끼고 · 생각으로 온갖 것을 '좋다' '나쁘다' 판단하고는.

그런 것들이 다 바다 가운데 있는 모래를 얼마나 되는가 세어 보고, 모래 속에 있는 이쁘게 생긴 조개껍질 같은 것을 주워가지고 '이것이 좋다' '저것이 좋다' 서로 그것을 취(取)할려고 싸우고, 일평생 동안 탐진치(貪瞋癡) 삼독심(三毒心)을 가지고 오욕락(五慾樂)에 빠져서 그것을 자기가 취(取)할려고 싸우는 것들이 허공 속에 있는 꽃인 줄 모르고, 바다 가운데에 있는 모래를 세고 있는 것에다가 비유를 하신 것이여.

 

확실히 그것이 영원성(永遠性)이 없는 것이고 허망(虛妄)한 것인 줄 알고, 쓸데없는 것인 줄 확실히 안다면 이 더러운 몸뚱이 속에 소소영령(昭昭靈靈)한 주인공(主人公)을, 그놈을 찾는 일밖에는 인생(人生)으로서 할 일이 없는 것이다 그거거든.

 

단종철벽은산거(但從鐵壁銀山去)여. 은산철벽(銀山鐵壁), 선지식으로부터 받은 본참공안(本參公案)을 참구(參究)하되 다맛 꽉 맥힌 의심(疑心)으로 '이뭣고?', '어째서 판치생모(版齒生毛)라 했는고?'

앞이 콱 맥혀 앞으로 나아갈 수도 없고 뒤로 물러설 수도 없고, 오직 본참공안에 대한 의심이 은산철벽처럼 그렇게 일념만년(一念萬年)으로 지어가는 것밖에는 길이 없다 이거여.

 

'이 공부를 해서 내가 정말 깨달을 수 있는 것인가, 깨달을 수 없을까?' '정말 내가 깨달을 만한 그러한 근기(根機)가 있는가, 없는가?' 그런 것도 따질 것이 없어.

 

불문여하우약하(不問如何又若何)여. 여하약하(如何若何)를 묻지를 말아라.

 

이 몸뚱이는 비록 허망(虛妄)하다 하더라도 이 몸뚱이를 끌고 다니는 소소영령(昭昭靈靈)한 주인공은 삼세제불(三世諸佛)과 조끔도 다름이 없는 거여. 진여불성(眞如佛性)은.

그래서 '올바른 방법으로 열심히만 하면 나도 깨달을 수가 있다'고 하는 철저한 신념(信念)을 가지고 이 목숨 다할 때까지 해 나갈 뿐이다.

 

 

방금 전강 조실(祖室) 스님의 녹음법문(錄音法門)을 통해서 오늘 갑술년(甲戌年) 4월 15일 결제법문(結制法門)을 우리는 다 같이 들었습니다.

산승(山僧)이 더이상 여러 도반(道伴)들과 형제자매를 위해서 더이상 결제에 법문을 해 드릴 것은 없지만, 기왕 이렇게 여러 선원에서 도반들이 많이 왔고, 또 용화선원에 방부(房付)를 들이고 공부하시는 스님네와 보살님 그리고 시민선원의 거사님네들이 이렇게 운집(雲集)을 하셨으니 불가불(不可不) 이 갑술년 여름안거 구순(九旬), 90일 동안을 정말 알뜰하게 정진(精進)을 하기 위해서 「진각국사(眞覺國師)의 좌우명(右銘)」을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보살자(菩薩子)  보살자(菩薩子)여.

우리 진각국사는 후래(後來)의 우리 모든 불자(佛子)들을 보살자(菩薩子), '자(子)' 자는 어조사로도 볼 수가 있고, 우리가 '새끼 보살'이다 그런 뜻으로도 해석을 해도 상관이 없을 것입니다.

 

보살자(菩薩子)  보살자(菩薩子)여.

상자마두심유이(常自摩頭深有以)다. 항상 스스로 자기의 머리를 이렇게 만지면서 깊이,

마두인득심사량(摩頭因得審思量)이라, 머리를 만지면서 깊이 생각하는 바가 있어야 할 것이다 그말이여. 무엇을 생각하는가?

 

출가본의도하사(出家本意圖何事)오. 출가(出家)한—부모를 여의고, 형제자매와 가정을 여의고, 청춘(靑春)을 버리고, 온 세상을 다 버리고 출가한 그 본의(本意)가 무엇이었던가? 무엇을 하기 위해서 출가를 했던가?

자기가 자기 머리를 만지면서 항상 그것을 생각하라.

 

승기상모속기심(僧其相貌俗其心)  가불참천이괴지(可不慚天而愧地)라.

겉모양은 승려(僧侶)의 모양을 하고 그 마음은 속심(俗心)을 가지고 있다면, 하늘에 부끄럽지 아니하고 땅에 부끄럽지 않느냐.

 

추행광언임여위(麤行狂言任汝爲)  확탕노탄하회피(鑊湯爐炭何廻避)리오.

행동은 머트럽고 말은 뻘소리, 미친 소리를 니 하고 싶은 대로 한다면, 펄펄 구리쇠물이 끓고 쇠물이 펄펄 끓는 그런 지옥을 어찌 피할 수가 있겠느냐.

 

진각국사(眞覺國師)가 우리 후배들, 모든 불자(佛子)들에게...

이것은 자기 자신의 일생동안 따악 자기 거처하는 방 앞에다가 써 붙여 놓고 스스로 자기가 자기를 채찍하는 좌우명이었습니다마는, 오늘날 우리는 이 「진각국사(眞覺國師)의 좌우명(右銘)」을 다 앞에다 써 붙여 놓고 날마다 이 좌우명(右銘)을 읽으면서 우리의 머리를 만져 볼 필요가 있으리라고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다맛 능히 떨어진 옷을 입고 거칠은 음식을 먹으면서, 출가본의(出家本意), 자기의 본래의 그 참된 마음을 잘 지켜가면서, 겉으로는 어리석어서 바보가 되아가지고 말귀도 못 알아듣는 것처럼,

인간의 무엇이 옳고 그른 시비(是非)와, 어떻게 하면 유익(有益)하고 어떻게 하면 해(害)롭고, 흥망성쇠(興亡盛衰) 시비곡절(是非曲折)의 그런 것도 전혀 판단할 줄도 모르고 말귀도 못 알아듣는 거짓 바보가 되아가지고 그렇게 살면서 오직 속으로는 '이뭣고?' 하나만을 철저히 해 나가라 이거거든.

 

이렇게 살아가야 외부로부터의 모든 경계(境界)에 끄달리지 않게 되고, 다른 모든 사람들로부터 내 공부해 나가는데 방해를 받지를 안해. 가장 공부에 열중할 수 있는 그러한, 그리고서도 공부에는 가장 효과적이다 이거거든.

이렇게 살아가야 바로 이것이 대정진인(大精進人)이다 그거여. 크게 정진을 할 수 있는 사람이다 이거거든.

 

잘난 체하고 똑똑헌 체하고 무슨 그러한 마음을 가지고 살면 선방(禪房)에 걸망을 지고 댕겨도 자기 공부해 나가는데 많은 시간을 뺏기고, 정신을 뺏기고 공부하는 데는 막대한 지장이 있는 것이다 그말이여.

 

똑똑한 체하고 잘난 체하고 모든 것을 잘한 척할라면 세속(世俗)에서 살지, 뭣하러 머리를 깎고 중이 되아가지고—오직 일대사(一大事) 그 하나만을 위해서 몸과 목숨을 다 바치려고 들어온 것이 바로 승단(僧團)이요 그 가운데에서도 선방(禪房)이다 그말이여.

부모형제를 버리고, 청춘을 버리고, 모든 인생을 다 버리고 들어와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 이거거든.

 

오늘날처럼 우리가, 우리 출가인(出家人)이 이 「진각국사(眞覺國師)의 좌우명(右銘)」을 정말 우리의 좌우명으로 해야 할 때가 왔다고 나는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이 자리에 모이신 형제자매 모든 도반들은, '갑술년(甲戌年) 하안거(夏安居)는 다시는 두 번 다시 우리에게 돌아와 주질 않는 것입니다'

 

형식적(形式的)으로 결제(結制)하고 오늘도 그럭저럭 내일도 그럭저럭 지내다보면 또 여름 석 달이 지내갈 것입니다.

그러나 갑술년 여름철은 다시는 돌아오는 법이 아닙니다. 영원(永遠)을 두고도 다시는 돌아오지 않습니다. 내년에 다시 여름은 돌아오지마는 내년 여름은 갑술년의 여름이 아니고 을해년(乙亥年)의 여름이여.

 

 

사시순환난부한(四時循環暖復寒)헌디  미후심련육화촌(獼猴深戀六華村)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이성안색증무가(耳聲眼色曾無暇)헌디  염념나지시사문(念念那知是死門)이리오

나무~아미타불~

 

사시순환난부한(四時循環暖復寒)이여. 춘하추동(春夏秋冬) 사시(四時)가 돌고 돌아서 더웠다 추워지고 추웠다가 또 더워지고, 이렇게 세월(歲月)이 돌아가는데.

미후심련육화촌(獼猴深戀六華村)이여. 잔나비는 깊이 육화촌(六華村)을 그리워하는구나.

 

우리의 심 · 의 · 식(心意識), 마음 · 뜻 · 식.

제8 아뢰야식(第八 阿賴耶識)은 '마음'이고, 제칠 말라식(第七 末那識)은 '뜻'이고,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육근(六根)은 '의식(意識)'인데, 우리의 의식을 갖다가 심의식(心意識)을 원숭이에다가 비교해, 잔나비에다 비교했는데.

 

그 원숭이란 놈이 안이비설신의를 통해서—눈[眼]으로 보고 뭐 좋은 거 있으면 그것 그리 쫓아가고, 귀[耳]로 뭔 소리가 나면 그리 쫓아가고, 코[鼻]로 뭔 좋은 냄새가 나면 그리 쫓아가고, 혀[舌]로 무슨 맛있는 것을 만나면 그리 쫓아가고, 몸뚱이[身]로 부드럽고 좋고 시원하고 그러면 그리 쫓아가고, 생각[意]으로 이 좋은 것을 쫓아가고 이래가지고,

원숭이가 육화촌(六華村)에 좋은 맛있는 음식을 탐내서 그걸 쫓아다니고 그리워하듯이 우리의 의식(意識)도 항상 오욕락(五欲樂)을 추구한다 그말이여.

 

오욕락이라 하는 것은 마음대로 구해봤자 잘 구해지기도 어렵지마는 설사 구해졌다하더라도 그것이 영원성이 없는 것이고, 그걸 구하다가 알게 모르게 크고 작은 죄업(罪業)을 지어서 끝없는 육도윤회(六道輪廻)가 거듭될 뿐이다 그 말이거든.

 

끝없이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를 통해서 그걸 추구하느라고 겨를이 없어.

한 생각 일어났다 꺼지고, 한 생각 일어났다 꺼짐으로 해서—그 한 생각 한 생각이 무엇이냐 하면은 죽음의 문을 향해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간 것이더라 이거거든.

 

일어나는 그 생각을 돌이켜서 탁! 화두(話頭)를 거각(擧却)하고 정진을 해 나가면 그것이 바로 확철대오(廓徹大悟)해서 '생사해탈(生死解脫)하는 길'로 나아가는 것이지만,

바로 그 한 생각을 돌이키지 못하고 바깥 경계로 나가면 아무, 그 생각이 옳건 그르건, 좋건 나쁘건 그것은 '죽음의 문으로 가는 길'이더라 이거거든.(처음~21분24초)

 

 

 

 

(2)------------------

 

이 지구가, 지구뿐만이 아니라 이 세계가 성주괴공(成住壞空)을 통해서 결국은 언젠가는 이 세계도 무너져서 없어질 때가 돌아오는 것이여.

이 몸뚱이가 생로병사를 통해서 결국은 죽어서 없어지듯이 이 세계도 성주괴공(成住壞空)이 있어.

 

과거장엄겁(過去莊嚴劫), 현재현겁(現在賢劫), 미래성숙겁(未來星宿劫)이 있는데, 그 장엄겁(莊嚴劫)에도 성주괴공이 있고, 현겁(賢劫)에도 성주괴공이 있고, 미래 성숙겁(星宿劫)에도 성주괴공이 있는데,

 

이 겁(劫)이라 하는 것은 소겁(小劫)이 있고 중겁(中劫)이 있고 대겁(大劫)이 있는데, 사람의 목숨이 제일 많이 살 때가 팔만사천 세(歲)고, 제일 수명이 짧을 때가, 인수(人壽) 정명(定命)이 짧을 때가 십 세인데,

 

팔만사천 세에서 백년 지나면은 한 살 씩이 줄어져. 또 백년이 지내면 한 살이 줄어지고 또 백년이 지내면 한 살이 줄어지고 해가지고 열 살 때까지 내려와. 그것을 '감겁(減劫)'이라 그러고.

열 살까지 내려오면 그다음의 백년이 지내면은 사람 목숨이 한 살씩이 더 불어나. 또 백년이 지내면 열두 살, 또 백년이 지내면 열세 살, 해서 십 세로부터 팔만사천 세까지 올라가는 거여. 그것을 '증겁(增劫)'이라 그러는데.

 

한 번 감해져가지고 십 세까지 갔다가 또 다시 백년만에 한 살씩 불어나서 팔만사천 세까지 가는 것을 증겁(增劫).

감겁(減劫), 증겁(增劫) 합해서 이것을 '일소겁(一小劫)'이라 하는데, 일소겁(一小劫)이 스무 번을 되풀이를 하면 이것을 '(일)중겁(一中劫)’이라 하는 거여.

 

그러면 성주괴공(成住壞空)에 있어서 성(成), 이 세계가 이루어지는데 20소겁(小劫)이 걸리게 되는 거고.

또 20소겁이 되면은 주겁(住劫)이 되는 거여. 머무르는, 세계가 이루어져가지고 그러한 상태로 이렇게 머물렀다가, 그다음 20소겁 동안에 차츰차츰 무너지고[壞], 그다음 20겁은 완전히 텅 빈 상태[空]에서 20겁이 지내는 거여.

 

그래서 성주괴공(成住壞空), 20겁이 네 번이 되면은 이것이 80소겁인데, 이것을 '일대겁(一大劫)'이라 그러는 건데.

 

과거장엄겁(過去莊嚴劫) 동안에 천불(千佛)이 출세(出世)했는데 주겁 동안에, 성주괴공에 주겁(住劫) 동안에 출세를 하셨어.

그리고 현재 석가모니 부처님은 현겁천불(賢劫千佛)에—주겁(住劫) 동안인데, 현겁천불에 네 번째 부처님으로 태어나신 거여.

이다음 56억 7천만 년 후에 미륵불(彌勒佛)이 하강(下降)을 하시는데, 그리고 그다음에 차츰차츰 해서 마지막 부처님이 누지(樓至) 부처님이 출현을 하신다 그말이여.

 

이렇게 해서 현겁천불(賢劫千佛)이 출현하신 다음에는 미래성숙겁(未來星宿劫) 부처님이 또 천불(千佛)이 출세하셔.

미래성숙겁 천불도 성주괴공의 이 사기(四期)에 걸쳐서 해 가지고 이렇게 출현을 하시는데.

 

우리는 다행히 이 현재현겁(現在賢劫) 제4 부처님이신 석가모니 부처님이 출현을 하신 세상에 출현하셨는데, 석가모니 부처님은 인수(人壽) 백세(百歲) 정명(定命) 때 출현을 하셨는데, 지금 2천5백34년이 되아, 이천육백년 대 지금이 되었으니까 지금은 인수(人壽) 정명(定命)이 약 74세 정도야.

 

지금 사람의 평균수명이 70세 남짓 되니까 얼추 맞아 들어가는데, 앞으로 태어난 사람은 차츰차츰 사람 목숨이 짧아진다고 이 추측이 되는데.

과학이 발달함으로써 요새 사람의 평균수명이 길어지고 있다고 하지만, 앞으로 전쟁이 나고 그래가지고 원자탄이니 수소탄이니 화학무기가 발달하면 사람이 어떻게 죽어갈는지 몰라.

그래서 평균수명이 꼭 앞으로도 계속해서 줄어(길어)진다고 보장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을 꼭 육체(肉體)를 가지고 말을 하지만, 정말 사람의 생사(生死) 문제는 육체에다 기준을 둘 수가 없고.

우리의 생각이, 한 생각이 일어나면 새로 태어나고 그 생각이 생주이멸(生住異滅)을 거쳐서 꺼지면은 그것을 죽음이라고 보는 것이 훨씬 더 핍진(逼眞)한 생각이다 그말이여.

 

이 육체도 역시 뱃속에서 태어나가지고 오늘날까지 살아오면서 수백억만 번의 변화를 거쳐서 이렇게 오고 있으니까 어제의 내가 오늘의 내가 아니여.

다 '아무개가 몇 해에 몇 년도에 태어나가지고 몇 년도에 죽었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은 어제의 내가 오늘의 내가 아닌 거여. 완전히 딴 사람이 되아가지고 있는 거여. 어제의 나는 죽고,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내가 아니여.

 

예를 들어서 촛불을 하나 켰을 때, 그 촛불이 처음에 탁 불을 댕길 때 그때의 초가, 그때의 그 불이 한 시간 쯤 있다가 그 타고 있는 그 '불'과 한 시간 전의 '불'이 같은 불이 아니여. 초도 그 초가 아닌 거여.

 

그렇게 시시각각으로 몸뚱이도 변(變)해 가고 우리의 생각도 변해 가고 있어서, 이 우주법계에 가득차 있는 삼라만상(森羅萬象)이 항상 그때의 그것이 아니여. 태양도 계속 불이 타고 있는 불덩어리인데, 어제의 불덩어리가 오늘의 불덩어리가 아닌 거여.

 

그래서 확실히 그렇게 '변(變)해 가고 있고 고대로 있는 것이 없다'고 하는 것을 깨달은다면, 우리도 마음 놓고 '아직도 내가 젊으니까 앞으로 몇 해는 더 살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의 공부를 미룰 수는 없는 일이다 그거거든.

 

 

그래서 부처님께서 제자들에게, "생사(生死)에 대해서, '죽음'에 대해서 각각 자기의 생각을 말해보라"

 

한 사람은, "하루 동안에도 우리가 죽음은 올 수가 있습니다"

"너 공부 못하겠다"

 

"한 식경(食頃)에도 죽음이, 밥 먹을 동안에도 죽음은 올 수가 있습니다"

"너도 공부 못하겠다"

 

"한 생각(호흡)에도 죽음이 올 수가 있습니다"

"음, 너는 공부하겠다"

 

이러한 말씀이 아마 『사십이장경(四十二章經)』에 있는 말씀이라고 생각이 되는데.

 

우리는 '그 한 생각 속에 생사가 있다. 그래서 그 한 생각을 잘 단속(團束)하면 한 생각 속에도 생사해탈(生死解脫) 할 수 있는 길이 있다'고 하는 것을, 그러한 희망을 가지고 어쨌든지 그 한 생각을 알뜰하게 야무지게 단속하기를 간절히 부탁을 드리는 것입니다.

 

다시 한 번 말씀을 드리거니와 갑술년, 2538년의 갑술년은 다시 오지 않고 영원히 오지 않는다고 하는 것을 명심(銘心)을 하시고, 이 「진각국사(眞覺國師)의 좌우명(右銘)」을 항상 마음속에 새기고 알뜰하게 이 한 여름을 잘 정진(精進)을 해 주시기를 부탁을 합니다.

 

보살선방(菩薩禪房)에 방부(房付)를 들이신 보살님들이나 시민선방(市民禪房)에 방부를 들이는 거사님들이나 또 가정에서 정진을 하시는 백일기도에 동참(同參)하신 분, 전국 여러 선방에서 정진하시는 사부대중(四部大衆) 여러분들도 정말 알뜰하게 정진을 하시기를 부탁을 드립니다.

 

 

흉중하애부하증(胸中何愛復何憎)이리오  자괴인전백불능(自愧人前百不能)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제차현성공안외(除此現成公案外)에  차무불법계전등(且無佛法繼傳燈)이니라

나무~아미타불~

 

흉중(胸中)에 하애부하증(何愛復何憎)이리오. 마음 가운데 무엇을 사랑하고 무엇을 미워할까 보냐.

미워하고 이뻐하고 하는 것도 잠깐 동안이고, 잠깐 동안에 꿈에 일어난 일들인데 무엇을 그렇게 사랑하는데 집착하고, 무엇을 그렇게 미워하는데 집착할 것이 있느냐 그말이여.

 

다 놓아 버려. 다 석방(釋放)해 버려.

 

미웁다고 그놈을 웬수를 맺고 꼭꼭 묶어매 놓고 그놈을 가둬 놓고, 마음속에다 가둬 놓고 산들 무엇이 그렇게 좋을 것이 있어. 마음속에서 다 놔 보네.

이쁘다고 그놈을 붙잡고 늘어져 본들 그것이 무엇이 거기서 나오며, 몇 조금 갈 것이냐 그말이여.

 

자괴인전백불능(自愧人前百不能)이여.

'나는 바보다. 아무것도 제대로 남 앞에 내놓을 것이 없다'고 하는 바보라고 생각하고, 똑똑한 체하는 것을 오히려 부끄러워하고 스스로 바보가 되어서 산다면 얼마나 마음이 편하고 자기의 시간을 가질 수가 있어서 좋으냐.

 

어리석은 사람은 똑똑한 체하고 잘난 체하고, 그러니 거기에서 남의 지탄(指彈)을 받고 남에게 오히려 미움을 받고 경계(警戒)를 당하는 것이다 그말이여.

탁! 까놓고 바보로 해버리면 그날부터 다리를 뻗고 자. 온전히 자기 시간을 가지고 공부를 할 수가 있다 그말이여.

 

제차현성공안외(除此現成公案外)에, 한 생각 돌이켜서 '이뭣고?' '이뭣고?' 자꾸 자기의 본참공안(本參公案)을 들고 또 들고 이 공안을 참구(參究)하는 이것 외(外)에는,

차무불법계전등(且無佛法繼傳燈)이여. 부처님의 법등(法燈)을 계승(繼承)해 나가는 이것밖에는 불법(佛法)이 없다 그 말이거든.

 

 

개혁운동(改革運動)도 좋고, 다 이 총무원에서 잘못된 종법(宗法)을 고치고 어쨌든지 새로 개혁을 해가지고 잘하자고, 잘 해 나가자고 하는 그런 원력보살(願力菩薩)도 좋지. 또 그런 사람도 있어야지.

 

그러나 이 자리에 모이신 도반(道伴)들은 바보가 되아가지고, '철저한 바보'가 되아가지고 오직 자기의 본참공안에 몰두(沒頭)해서 은산철벽(銀山鐵壁)으로 나간다면,

서울에서 개혁운동하는 그러한 보살화현(菩薩化現)과 바보가 되아가지고 선방(禪房)에서 '이뭣고?'하는 그러한 나한(羅漢)들과 서로 하나가 장단을 치면은 그 장단에 맞춰서 춤을 추는, 그래서 오히려 그것도 좋지 않느냐 이거여.

 

우리까지 나서서 거가서 떠들기보다는 바보로서, 탁! 바보로서 '이뭣고?'를 해야만, 서울에서 개혁을 위해서 목숨을 걸고 나선 보살화현들의 그 애쓴 보람에 보답(報答)하는 길이 여기에 있지 않는가.

 

나는 바보이기 때문에 바보 같은 그런 생각을 가지고 살고, 또 그러한 생각을 여러 도반들에게 말을 하니까,

그 바보의 말도 정말 '나 같은 바보한테는 그게 좋겠다' 이렇게 생각이 드신다면은 올 금년 한 여름을 그렇게 한번 살아보시고, 그것이 좋으면 또 다음 겨울철도 그렇게 살아가서 바보 속에, 개천에서 용 나듯이 '바보 속에 확철대오(廓徹大悟)'한 그러한 부처님의 법등(法燈)을 이어받을 사람이 나오리라고 나는 확신을 하는 것입니다.(21분29초~39분21초)(끝)

 

 

 

 

------------------(1)

 

*(게송) '만법유래공리화(萬法由來空裏花)~' ; 『사명당대사집(四溟堂大師集)』 제5권. 「선게(禪偈)」 '贈圓沙彌求頌' 게송 참고.

*만법(萬法 일만 만/법 법) ; 모든 존재 · 사상(事象 관찰할 수 있는 사물과 현상). 여기에서의 법은 사상 · 사물의 뜻이다. 일체법(一切法) · 제법(諸法)이라고도 한다.

*'허공(虛空) 속에 꽃' ; 공리화(空裏花). 공화(空花).

*공화(空花, 空華) ; 환(幻). 공안화(空眼花). 공중(空中)의 꽃. 눈의 장애로 말미암아 생기는 허공의 꽃.

실재하지 않는 것을 있는 것으로, 관념을 실재하는 객관 대상으로, 고유한 실체가 없는 것을 실체가 있는 것으로 보는, 번뇌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망상(착각·환상·편견 등)을 말한다.

 

[참고 ❶]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 용화선원刊) p88~89. (가로판 p92~94)

衆生이  於無生中에  妄見生死涅槃이  如見空花起滅이니라.

 

중생이 나는 것 없는[無生] 가운데서 망령되게 생사와 열반을 보는 것이, 마치 허공에서 꽃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는 것을 보는 것과 같느니라.

 

(註解) 性本無生故로  無生涅也요  空本無花故로  無起滅也라  見生死者는  如見空花起也요  見涅槃者는  如見空花滅也니라  然이나  起本無起요 滅本無滅이라  於此二見에  不用窮詰이니  是故로  *思益經云, 諸佛出世가  非爲度衆生이요  只爲度生死涅槃二見耳라 하시니라.

 

(주해) 성품에는 본래 남이 없으므로 생사(生死)와 열반(涅槃)이 없고 허공에도 본래 꽃이 없으므로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는 것이 없는 것이다。생사가 있는 줄로 아는 것은 허공에 꽃이 나타나는 것을 보는 것과 같고, 열반이 있는 줄로 아는 것은 허공에 꽃이 사라지는 것을 보는 것 같다.

그러나 나타나도 나타남이 없고, 사라져도 사라짐이 없는 것이므로 이 두 가지 견해에 대하여서는 더 따질 것이 없다。그러므로 『사익경』에 이르기를 「부처님이 세상에 나오신 것이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생사와 열반의 두 가지 견해를 건지기 위해서다」라고 하시니라.

 

[참고 ❷] 송담스님 법문 (No.521)  (No.636) 에서.

눈이 멀쩡한 사람은 허공 속에 아무것도 없이 깨끗한데, 눈병이 난 사람은 허공에 이상한 꽃이 피어있는 것처럼보이고 그러는데, 눈병만 고치면은 허공에 피어있던 꽃이 안 보인다.

그래서 눈병이 났던 사람은 ‘허공에 있던 꽃이 있다가 없어졌다’고 하지마는, 허공의 꽃은 있다가 없어진 게 아니라 원래 없던 것이다. 눈병이 낫으나, 안 낫으나 허공의 꽃이란 것은 본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육근(六根)을 통해서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 육경(六境)을 만나면 육식(六識, 眼識·耳識·鼻識·舌識·身識·意識)이 생기는데, 그 육식(六識)에 포착되는 모든 것들을 이름과 모양—명상(名相)이라 하는데, 명상이라는 것은 우리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그림자요, 메아리, 환(幻)인 것이다.

자기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명상(名相) 그것을 ‘있는 것’으로 집착을 함으로 해서, 모든 탐진치 삼독심이 일어나 생사윤회의 업을 짓는데, 마음 하나만 공(空)해 버리면 일체 명상(名相)은 동시에 다 공(空)해 버리는 것이다.

 

원래는 이 세상에 우주보다도 먼저 있었고, 이 우주 법계가 다 가루가 되어서 없어진다 하더라도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우리의 ‘참나’라고 하는 이 불성(佛性)은 생사(生死)가 없는 것입니다.

 

그 ‘생사가 없는 이치’를 깨닫지를 못하고 있으니까 분명히 생사(生死)로 우리에게는 보이는 것이지 생사는 본래 없다 이것입니다. 눈병이 낫으나 안 낫으나 허공의 꽃이란 것은 본래 없는 것이다 이거거든.

우리의 생사(生死)도 역시 그와 마찬가지여서, 그 ‘생사 없는 도리를 깨닫는 방법’이 ‘참선(參禪)’이라 하는 것입니다.

 

(3분 44초)

[참고 ❸] 송담스님(No.366)—88년(무진년) 칠석차례 법문에서.

우리 최상승법을 믿는 사람은 ‘생사는 본래 없는 것이다. 번뇌 망상은 본래 없는 것이다’

‘본래 번뇌의 자성이 없는 것이다. 생사는 본래 생사의 자성이 없는 것이다. 한 생각 일어나되 일어나는 한 생각 일어남이 없는 것이다. 그 자체가 본래 없는 것이다’하고 그렇게 딱! 믿어 버리는 것이여.

있는 것으로 인증을 하고 그놈을 끊을라고 발버둥을 치는 것이 아니라 ‘본래 없는 것’이라고 그렇게 믿어버리는 거여.

 

왜 있는데 없다고 믿을 수가 있느냐?

분명히 번뇌가 일어나고 망상이 일어나고 이렇게 몸뚱이를 받아 나면은 아프고 늙어서 병들어 죽고, 아무리 이 몸뚱이 없다고 하지만 꼬집어보면 아픈데 어떻게 하느냐? 도저히 믿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눈병이 든 사람은 허공에 아무것도 없는데 무슨 꽃이 피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눈에 병이 없는 사람은 이 맑은 허공을 보면 아무것도 없는데, 눈병이 있는 사람은 이상하니 무슨 꽃이 이글이글이글 꽃이 피어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말이여.

저 더운 날 강변에 가면 모래사장에 아지랑이가 이글이글이글 타오르듯이, 그 허공에 아무것도 없는데 분명히 허공에 꽃이 피어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말이여.

 

그러면 아무리 그 허공에 꽃이 없는 것이라고 말해도 눈병이 없는 사람은 안 보이는데, 눈병이 있는 사람의 눈으로 보면 보인다 그말이여. 그러나 잘 생각해 보라. 허공에 무슨 꽃이 피어있겠느냐 그말이여. 눈병만 고쳐 버리면은 허공의 꽃은 없어져 버리는 거여.

 

그러면 눈병이 있는 사람에게 보인다고 해서 실지로 허공에 꽃이 있느냐 하면은 없는 것이거든.

그래서 눈병이 없는 사람이 ‘없다’고 하면, ‘없다’고 믿으면 되는 거여. 실지로 자기 눈에 보인다 하더라도 보이는 것은 눈병으로 인해서 헛것이 보이는 것이라고 그렇게 믿으면 못 믿을 것도 없다 그말이여.

 

번뇌와 망상이 그 자성이 없다’고 하면 실지로 자기에게는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부처님이 ‘없다’고 하시고, 성현들이 ‘없다’고 하시고, 선지식(善知識)이 ‘없다’고 하면 그 말을 안 믿고 무엇을 믿을 것이냐 그말이여.

분명히 이 몸뚱이를 타고난 이상 늙어서 병들어 죽는 고통이 있지만 부처님과 모든 성현이 『생사는 본래 없는 것이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으니 그 성현의 말씀을 안 믿고 누구의 말을 믿을 것이냐 그말이여.

 

성현의 말을 고냥 고대로, 액면 그대로 ‘그냥 없다’고 딱! 믿어버려.

믿어 버리면 참 그게 그렇게, 당장 그 자리에서 대안락(大安樂)을 얻을 수가 있다 그말이여.

 

*법계(法界) ; ①모든 현상, 전우주. ②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③진리의 세계.

*삼라만상(森羅萬象) 두두물물(頭頭物物) ; 우주 사이에 벌여 있는 온갖 사물과 현상.

*소소영령(昭昭靈靈) ; 밝디 밝고 신령하다는 말. 번뇌와 망상에 물들지 않은 마음의 본성을 묘사한다. ‘소소’는 밝게 아는 작용, ‘영령’은 대상의 변화에 잘 응하는 영활(靈活)을 뜻한다. 또는 마음의 본체(소소)와 보고 듣는 등의 신령한 작용 전체(영령)를 나타낸다.

소소영령이라는 말에 현혹되어 이것과 상응하는 자아가 있다는 망상을 견제하는 말도 선문헌에 적지 않게 보인다.

[참고] 『임제록』

道流 儞欲得作佛 莫隨萬物 心生種種法生 心滅種種法滅 一心不生 萬法無垢 世與出世 無佛無法 亦不現前 亦不曾失 設有者 皆是名言章句 接引小兒 施設藥病 表顯名同 且名句不自名句 還是儞目前 昭昭靈靈 鑒覺聞知照燭底 安一切名句

 

도를 배우는 이들이여. 그대들이 부처가 되고자 한다면 일체 만물을 따라가지 말라. 마음이 나면 온갖 법이 나고 마음이 멸하면 온갖 법이 멸하니, 한 마음 나지 않으면 만법에 허물이 없다. 세간과 출세간에 불(佛)도 없고 법(法)도 없어서 현전하지도 않고 잃은 적도 없다.

설사 무엇이 있다 하더라도 모두 언어의 구절이어서, 어린아이를 달래기 위해 병에 따라 약을 준 것이며 무엇을 표현하는 이름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언어의 구절은 그 자체로 언어의 구절이 되는 것이 아니라, 다름 아닌 그대들 눈앞에서 밝디 밝고 신령하게[昭昭靈靈] 살피거나 느끼거나 듣거나 알거나 비추는 바로 그것이 모든 언어의 구절을 붙이는 것이다.

*주인공(主人公)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청정한 부처의 성품을 나타내는 말. 주인옹(主人翁).

*은산철벽(銀山鐵壁) ; 철벽은산(鐵壁銀山). 은과 철은 견고해서 뚫기 어렵고 산과 벽은 높아 오르기 어려움을 나타낸 것. 은(銀)으로 만든 산이요, 쇠로 만든 벽에 사방이 꽉 막힌 것처럼 앞뒤가 다 끊어져 버린 절박한 상황에 직면(直面)하여 아무것도 사량분별(思量分別)이 거기서 있을 수가 없는 것을 가리킴.

 

수행자에게 이 은산철벽은 내 몸과 목숨을 다해서 뚫고 들어갈 수밖에는 없는 관문(關門)으로, 자기 본참공안(本參公案)에 마치 모기가 쇠로 된 소 등어리에 올라타고서 그 입부리를 소 등에다가 처쑤셔박는 것처럼, 여하약하(如何若何)를 막론(莫論)하고 입부리와 머리와 몸을 압량해서, 합해서 처박고 돌격을 해 들어가야 한다.

자기의 근기(根機)도 따질 것도 없고, 자기의 건강도 따질 것도 없고, 자기의 어리석고 영리한 것도 따질 것도 없고, 남녀노소도 따질 것도 없고, 유식 무식도 따질 것이 없다.

 

‘어떻게 하면 될 것인가?’를 생각할 겨를도 없이 자세를 바르게 하고, 단전호흡(丹田呼吸)을 하면서 간절한 마음으로 하되 불급불완(不急不緩), 너무 용을 쓰고 몰아붙여도 안 되고 너무 늘어져 처져도 안 되고 성성(惺惺)하면서도 적적(寂寂)하게 자기의 본참공안을 들어야 한다. 공부가 되고 안 되고 하는 것도 따질 것이 없다.[송담스님(No.577) 96년 11월 첫째일요법회 법문에서]

 

[참고] 『몽산법어(蒙山法語)』 (용화선원刊) 박산무이선사선경어(博山無異禪師禪警語) p157~158 에서.(가로판 p150~151)

做工夫호대 最怕比量이니, 將心湊泊하면 與道轉遠하리니, 做到彌勒下生去라도 管取沒交渉하리라. 若是疑情이 頓發的漢子인댄 如坐在*鐵壁銀山之中하야  只要得個活路이니, 不得箇活路면  如何得安穩去리요  但恁麼做去하야  時節이  到來하면  自有箇倒斷하리라

 

 공부를 지어 가되 가장 두려운 것은 비교하여 헤아리는 것[比量]이니, 마음을 가져 머뭇거리면 도(道)와 더불어 더욱 멀어지리니, 미륵불이 하생할 때까지 공부를 할지라도 아무 소용이 없으리라.

만약 의정이 몰록 발한[頓發] 사람일진댄 마치 철벽(鐵壁)이나 은산(銀山) 속에 들어앉아서 다만 살 길[活路]을 찾는 것같이 할지니, 살 길을 찾지 못하면 어찌 편안히 지내가리오? 다만 이와같이 지어 가서 시절이 오면 저절로 끝장이 나리라.

*본참공안(本參公案) : 본참화두(本參話頭).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참구(參究 헤아릴 참/궁구할 구) ; ①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드는 것. ②선지식의 지도 아래 참선하여 화두(공안)을 꿰뚫어 밝히기 위해 집중함. 화두 의심을 깨뜨리기 위해 거기에 몰입함.

*의심(疑心) :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해 ‘알 수 없는 생각’에 콱 막히는 것.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이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수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이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또는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또는 ‘조주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바른 깨달음은 알 수 없는 의단, 알 수 없는 의심에 꽉 막힌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시삼마) :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이냐?' ‘이것이 무엇인고?’

불교(佛敎)의 목적은 「깨달음」입니다. '불(佛)'이라 하는 말은 인도(印度) 말로 'Buddha'란 말인데 우리말로 번역하면 '깨달음'입니다. 「깨달음」. 「깨달은 어른」.

'불교(佛敎)'하면 깨달은 가르침, 깨닫는 가르침. '불도(佛道)'하면 깨닫는 길, 깨닫는 법.

 

깨닫는 것이 불교의 목적입니다. 무엇을 깨닫느냐?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혀로 맛보고, 몸으로 차고 더운 것을 느끼고, 생각으로 과거 현재 미래의 일을 생각하고, 때로는 슬퍼하고 때로는 기뻐하고 때로는 성내고,

착한 마음을 낼 때에는 천사와 같다가도 한 생각 삐뚤어지면은 찰나간에 독사와 같이 악마가 되는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놈이 있습니다.

 

소소영령한 주인공이 그렇게 여러 가지로 작용을 할 수 있는데, '대관절 그러한 작용을 일으키는 이놈이 무엇이냐? 이뭣고?' 이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바로 나의 근본을 깨닫는 것입니다.

모든 화두에 가장 기본이고 근본적인 화두는 내가 나를 찾는 ‘이뭣고?’가 첫째 기본이요 핵심적인 화두입니다. 무슨 공안을 가지고 공부를 해도 깨닫는 것은 나를 깨닫는 것이지, 저 무슨 우주의 무슨 그런 게 아닙니다.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왔다.

 

*판치생모(板齒生毛) ; 화두(공안)의 하나. 版과 板은 동자(同字).

[참고] 『선문염송(禪門拈頌)』 (고려 진각혜심眞覺慧諶 선사 편찬) 475칙 ‘판치(版齒)’

(古則) 趙州因僧問 如何是祖師西來意 師云版齒生毛.

조주 스님에게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선사가 대답하였다.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投子靑頌) 九年小室自虛淹 爭似當頭一句傳 版齒生毛猶可事 石人蹈破謝家船

투자청이 송했다.

9년을 소림에서 헛되이 머무름이 어찌 당초에 일구 전한 것만 같으리오.

판치생모도 오히려 가히 일인데 돌사람이 사가(謝家)의 배를 답파했느니라

 

[참고] 『언하대오(言下大悟)』 (전강 선사 법어집 | 용화선원刊) p53~54.

어떤 스님이 조주 스님께 묻되, “어떤 것이 ‘조사서래의’입니까?(如何是祖師西來意)”하니 답하시되,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하셨다. 즉, 「어떤 것이 달마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 「판치에 털이 났느니라」라고 하는 화두.

 

그러면 조주 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을까?  이 화두도 ‘무자’ 화두와 같이 ‘판치생모’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판치생모”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께 뜻이 있는 것이니, 학자들은 꼭 조주 스님의 뜻을 참구할지어다.

“어째서 ‘무’라 했는고?”하는 것과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하는 것은 조금도 다름이 없는 것이다.

 

*조실(祖室) ; 선원의 가장 높은 자리로 수행인을 교화하고 참선을 지도하는 스님. 용화선원에서는 고(故) 전강대종사(田岡大宗師)를 조실스님으로 모시고 있다.

*전강선사 녹음법문(錄音法門) ; 전강 스님께서 후학을 위해 참선법(參禪法)을 핵심으로 설한 법문이 칠백여 시간 분량이 녹음되어 있다. 이 중에는 『전강선사 일대기』 『몽산법어』 『초발심자경문』 등이 있다.

 

눈부신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이제는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 천육백여 개의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 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전강선사 및 송담스님의 모든 법문이 저장된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방부(房付)를 들이다 ; 수행자가 절에 머물며 공부할 것을 인사드리고 허락을 구해 결제(結制)에 참가하다.

 

*'다맛 능히 떨어진 옷을 입고 거칠은 음식을 먹으면서, 출가본의(出家本意), 자기의 본래의 그 참된 마음을 잘 지켜가면서, 겉으로는 어리석어서 바보가 되아가지고 말귀도 못 알아듣는 것처럼' ; 오조 홍인(五祖弘忍) 스님의 『최상승론(最上乘論)』에서.

經云衆生若情誠不內發者 於三世縱値恒沙諸佛無所能爲 經云衆生識心自度 佛不能度衆生 若佛能度衆生者 過去諸佛恒沙無量 何故我等不成佛也

 

경(經)에 이르되 중생이 만약 정성(情誠)스러운 마음이 안으로부터 돈발(頓發)하지 아니한 자는 삼세(三世)에 비록 항하사의 모든 부처님을 만난다 하더라도 무소득(無所得)이니라. 어찌할 바가 없느니라.

또 경에 말씀하시기를 중생이 마음을 스스로 깨달아서 자기가 자기를 제도(濟度)해야지 부처님이 중생을 제도할 수는 없는 것이다. 만약 ‘부처님이 능히 중생을 제도할 수가 있다’고 한다면 과거의 모든 부처님이 항하사 무량의 수없는 부처님이 계셨는데 무슨 연고로 우리들은 아직도 성불(成佛)을 못했을 것이냐.

 

只是情誠不自內發 是故沈沒苦海 努力努力 勤求本心勿令妄漏 過去不知已過未來亦不及 今身現在有遇得聞妙去 分明相勸決解此語 了知守心是第一道

不肯發至誠心求願成佛受無量自在快樂 乃始轟轟隨俗貪求名利 當來墮大地獄中受種種苦惱 將何所及 奈何奈何 努力努力

 

다못 이것은 정성이 안으로부터서 돈발하지 못한 연고로 생사고해에 침몰한 것이니 노력하고 노력해서 부지런히 본심을 깨달라서 잠깐 동안도 한눈을 팔지 말지니라.

과거는 이미 지나가 버렸고 미래는 아직 돌아오지 아니했어. 다못 지금 우리가 현재 이 묘법(妙法)을 만났으니 분명히 서로 권고해서 결정코 내가 이제 말한 이 법을 깊이 이해해 가지고 확실하게 자기의 본심을 지킬 줄을 알아야 할 것이니 이것이 바로 제일의 도(道)니라.

 

지극한 정성스런 마음을 발하지 못해 가지고 막연하게 성불하기를 바라고 자재해탈(自在解脫)을 얻고자 한다면 이것은 될 일이 아니고, 그럭저럭 속심(俗心)을 버리지를 못하고 명예나 이끗을 탐구해서 그렇게 그럭저럭 지낸다면은 당래(當來)에 대지옥에 떨어져서 가지가지 고통을 받게 될 것이니 그때 가서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노력하고 노력할지니라.

 

但能着破衣飱麤飱 了然守本眞心 佯癡不解語 最省氣力而能有功 是大精進人也 世間迷人不解此理 於無明心中 多涉艱辛廣修相善 望得解脫 乃歸生死苦 了然不失正念而度衆生者 是大力菩薩

 

다만 능히 해어진 옷을 입고 거친 음식을 먹으면서 요연히 근본 참마음을 지키면서 거짓으로 말귀를 못 알아듣는 바보처럼 하는 것이 가장 힘은 적게 들이면서 공부하는 데는 가장 효과적이니 이 사람이야말로 대정진인이니라.

세간(世間) 사람은 이러한 이치를 아지를 못하고서 무명심(無明心) 가운데에 갖은 고통을 겪으면서 널리 상(相)에 나타나는 그러한 선(善)을 닦음으로 해서 해탈도(解脫道)를 바래니, 그러다가 결국은 생사고(生死苦)에서 벗어날 기약이 없느니라.

요연히 바른 생각을 잃지 아니하고 중생을 제도하는 것만이 이것이 대력보살(大力菩薩)이라.

 

*일대사(一大事) ; ①부처님이 중생구제를 위해 세상에 나타난다고 하는 큰 일. 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목적 ②가장 중요한 일이란 뜻. 수행의 목적. 깨달음을 얻는 것. 인간으로서의 완성.

*(게송) ‘사시순환난부한~’ ; 중봉명본 스님의 『천목중봉화상광록(天目中峯和尙廣錄)』 卷第三十' '警世二十二首' 게송 참고.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화두(공안)에는 '이뭣고?' '판치생모' '무자' '정전백수자' 등이 있다.

*거각(擧却 들 거/어조사 각) ; 화두를 든다. ‘화두를 든다’ ‘화두를 거각한다’는 말은 자신의 본참화두를 들 때 알 수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그 알 수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觀照)하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 세등선원(No.09)—병진년 동안거 결제중 법어(76.12.26)에서.

화두를 먼저 이마로 의심을 하지 말고, 이 화두를—호흡하는데 배꼽 밑[丹田]에 숨을 들어마시면은 배가 볼록해지고 숨을 내쉬면은 배가 홀쪽해지는데, 그 배가 빵빵해졌다 홀쪽해졌다 하는 거기에다가 화두를 들고 ‘이뭣고~?’ ‘알 수 없는 생각’ 관(觀)하는 그것이 화두를 드는 것이여.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2)

 

*정명(定命) ; ①날 때부터 정하여진 운명. ②전생의 인연에 의하여 정하여진 목숨. 증겁(增劫)과 감겁(減劫)에 의하여 수명에 차이가 있는데, 나이가 팔만 살부터 100년마다 한 살씩 줄어 열 살 까지 줄었다가[減劫], 다시 100년마다 한 살 씩 늘어 팔만 살까지 이른다[增劫]고 한다.

*핍진하다(逼眞-- 가까이하다 핍/참 진) ; ①실물[眞]과 아주 가깝고[逼] 비슷하다. ②(사정이나 표현이) 진실하여 거짓이 없다.

* 『사십이장경(四十二章經)』 ‘제38장’

佛問沙門 人命在幾間 對曰數曰間 佛言 子未知道 復問一沙門 人命在幾間 對曰飯食間 佛言 子未知道 復問一沙門 人命在幾間 對曰呼吸間 佛言 善哉子知道矣

 

부처님께서 사문에게 물으셨다. “사람의 목숨이 얼마 사이에 있는가?” 대답하기를 “며칠 사이에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너는 아직 도를 모르는구나”

다시 한 사문에게 물으셨다. “사람의 목숨이 얼마 사이에 있는가?” 대답하기를 “밥 먹을 사이에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너도 아직 도를 모르는구나”

다시 한 사문에게 물으셨다. “사람의 목숨이 얼마 사이에 있는가?” 대답하기를 “호흡 사이에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훌륭하다. 너는 도를 아는구나”

*(게송) ‘흉중하애부하증~’ ; 중봉명본 스님의 『천목중봉화상광록(天目中峰和尙廣錄)』 卷第二十九 ‘山居十首’ 게송 참고.

*법등(法燈) ; 부처님의 가르침. 미(迷)한 세계의 캄캄한 마음을 없애는 것을 등불에 비유한 것.

*원력보살(願力菩薩) ; 중생구제의 원력으로 실천행을 하는 보살(수행자).

*화현(化現) ; 부처님이나 보살이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각(各) 중생의 소질에 따라 여러 가지로 모습을 바꾸어 이 세상에 나타나는 것. 화신(化身)이라고도 한다.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