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精進) 수행'에 해당되는 글 95건

  1. 2021.02.17 §((208)) (게송)입해산사도비력~ / 『비유경』에 있는 말씀 / 정신차려 공부해라 / (게송)기회윤회문래단~ / 마구니의 유혹 / 극기추상(克己秋霜) 대인춘풍(對人春風).
  2. 2021.01.30 §((587-2)) (게송)산월투창백~ / 결제 해제 / 자자(自恣)는 더욱 정진하자는 뜻 / 『선교석(禪敎釋)』 『최상승론(最上乘論)』 법문 / 송담스님의 10년 묵언.
  3. 2021.01.07 §((479)) (게송)자소내내관원방~ / 남이 억지로 시켜서는 못할 일. 생사 무상한 줄 깨닫고, 일대사문제를 위해서 신심 분심으로 몸과 목숨을 바치는 정진.
  4. 2020.12.22 §((145)) (게송)창출무생일곡가~ / 하루하루 죽음의 문으로 걸어간다 / 정말 훌륭한 정진인 불방일(不放逸)은 바로 '한 생각' 단속해 의단독로 하는 것.
  5. 2020.12.15 §((004)) 참선은 어렵지 않다. 일어나는 그 생각을 돌이켜서 화두를 들면 그만 / 쥐로 모든 쥐를 잡는 법 / '이뭣고?' 화두 / 우리는 생명 바쳐 할 일은 참선.
  6. 2020.12.07 §((405)) (게송)산당정야좌무언~ / “별을 보고 깨달은 것이 아니라 별을 보는 것이다” / (게송)천척사륜직하수~ / 깨달음이란 척! 보는 것이지 아는 것이 아니다.
  7. 2020.11.30 §((558)) (게송)화종목출환소목~ / 도하지(道下地) / 앉은뱅이와 장님의 시주 / 자기의 본성을 닦는 공부를 하면 행복한, 보람 있는 인생을 살 수가 있다.
  8. 2020.11.15 §(세등31) 나는 철저하게 정진(精進)을 했는가? / 염념불망, 간절하게 화두를 거각하면서 신심과 분심과 의단이 한목 독로해야 이것이 바로 용맹정진.
  9. 2020.09.23 §((178)) 참선은 좌(坐)에 있는 것이 아니지만 또한 좌를 여의어서도 안된다 / (게송)몽리명명유육추~, 환몽(幻夢) / 활구참선법은 교외별전 / 불방일(不放逸).
  10. 2020.09.18 §(세등64) '오무기 왕자' 이야기, 『본생경(本生經)』 / 수행인은 큰 결심, 인내, 용기를 가져야 한다 / 나를 가장 위한 척하는 마구니 / 도는 바로 자성(自性)을 깨닫는 것.
정진(精進) 수행2021. 2. 17. 08:40

§((208)) (게송)입해산사도비력~ / 『비유경』에 있는 말씀 / 불법(佛法)은 이 허망한 몸뚱이 속에 있는 주인공을, 무상한 속에서 영원을, 이 사바세계에서 극락정토를 찾는 길 / 지끔 이만큼 할 때 정신차려 공부해라 / (게송)기회윤회문래단~ / 한 생각 애정으로 흐르지 말고, 한 생각을 돌이켜 생사해탈해라.
풍신수길(豐臣秀吉)과, '이시까와 고에몽' / 부처님 탁발 때, 마구니의 유혹 / 모든 생활에 있어서 용기(勇氣)와 지혜(智慧)로 자기의 바른 길을 취해야 / 극기추상(克己秋霜)이요 대인춘풍(對人春風)이다.

**송담스님(No.208)—1983년 8월 첫째일요법회 (용208) (정진)

 

(1) 약 21분.

 

(2) 약 17분.


(1)------------------

입해산사도비력(入海算沙徒費力)허고  구구미면주홍진(區區未免走紅塵)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쟁여운출가진보(爭如運出家珍寶)하야  고목생화별시춘(枯木生花別是春)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입해산사도비력(入海算沙徒費力), 바다에 들어가서 그 모래를 세어.
바닷가에 가 가지고 그 많은 모래를 몇 개나 되는가 하나하나 세어 봤자 힘만 소비하고 피로만 하지, 바다 모래를 몇 개 된 줄 세어서 무엇을 할 것이냐 그 말이여. 다 셀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세어 봤자 무엇을 할 것이냐 그 말이여.
구구미면주홍진(區區未免走紅塵)이라. 죽을 때까지 바다 모래를 세어 봤자 결국은 아무짝에도 쓸 것이 없고, 몸은 땀에 젖고 피로해졌고 그래 가지고 지쳐서 쓰러져 버릴 것이다 그 말이여.

쟁여운출가진보(爭如運出家珍寶)하야, 내 집에 있는 보배를 끌어내 가지고, 고목에서, 죽은 고목나무에서 아름다운 꽃이 피게 한 것만 어찌 같을 것인가.

우리 중생(衆生)은, 우리의 중생 몸뚱이는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四大)로 뭉쳐졌어. 한 번 태어나면 결정코 한 번은 또 가게 되는데, 태어났다가 죽고 태어났다가 죽고 그 허망한 몸뚱이 그걸 보면 아무짝에도 쓸 것이 없는, 속에는 똥과 오줌과 피와 고름이 가득찬 하나의 그런 더러운 가죽 주머니에 지내지 못하고 결국은 죽어서 썩어져 없어질 것이기 때문에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고목나무 덩어리와 마찬가지라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정법(正法)에 귀의(歸依)해서 선지식(善知識)으로부터 내 마음 닦는 방법을 지도를 받아서 일상생활 속에서 열심히 내 마음을 닦아 가면, 이 똥주머니 오줌주머니 속에 영원히 쓰고 남을 진귀한 보배를 찾아낼 수가 있는 것입니다.

『비유경(譬喩經)』에 보면, 어떤 사람이 죽었는데, 그 죽어서 그 시체(屍體)를 딱 갖다가 뉘어 놓고 홑이불로 덮어 놓았는데, 생전 보지 못한 사람이 와 가지고 그 시체를 홑이불을 걷어 제끼고 발길로 차고 주먹으로 때리고, 몽둥이로 시체를 막 그냥 뼈가 으서지도록 시체를 뚜르러 팬다 그 말이여.
옆에 사람이 '아, 어떤 미친놈이 와 가지고 여그 시체를 팬다. 무슨...' 그래서 막 말려도 워낙 기운이 세고 날래고 해서 가까이 범접(犯接)을 못해. 가까이만 갔다 하면은 막 발길로 걷어차고 주먹으로 치고 몽둥이로 때리고 한 통에 그 죽은 사람의 자손도 달라들덜 못해. 달라들었다가는 모조리 다 한 대씩 맞고 꺼꾸러져서 맥을 못 추는 거여.

그래서 "대관절 당신이 누구관데 우리 아버지를 이렇게 뚜드러 팹니까?" 말을 하니까,
"나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이 사람의 전생(前生)에 난데, 바로 이 사람의 전생의 주인(主人)이 바로 난데, 내가 이놈 때문에... 이놈이 살아 있을 때에 지집질하고 도둑질하고 사기치고 온갖 못된 짓은 가려가면서 해 가지고 그 과보(果報)로써 내가 악도(惡道)에 떨어져 가지고 한량없는 죄(罪)를 받다가 간신히 틈을 타서 지금 나왔는데, 내가 이렇게 그동안 말로써 형용할 수 없는 이 고통을 받는 것은 이놈이 전생에도 그런 못된 짓을 하다가 금생(今生)에도 또 그런 못된 짓을 했는데, 진즉 와서 이놈을 아주 죽여서 가루를 만들어 버리려고 했는데 내가 얽매어서 나오지를 못하다가 오늘에사 잠시 틈이 나서 내가 쫓아왔다"고.
그러면서 분(憤)을 풀지를 못해 가지고 펄펄 뛰면서 시체를 아주 그냥 작살을 냈다 그 말이여. 이건 『비유경』에 있는 말씀인데.

이 『비유경』에 있는 말씀을 검토해 보면, 이 몸뚱이로 인해서 이 몸뚱이를 잘 맥이고 잘 입히고 편안하게 거처(居處)하게 하고 또 아름답게 꾸미기 위해서 일생 동안 한없는 죄(罪)를 짓게 됩니다.
그러나 이 몸뚱이는 아무리 잘 입히고 잘 맥이고 편안하게 거처하고, 아름답게 꾸민다 하더라도 세월이 지내가면 주름살이 잡히고 흰머리가 나고, 허리가 꼬부라지고 사지(四肢)가 힘이 없어지고, 오장육부(五臟六腑)가 고장이 나서 버근버근해지고, 더이상 버티지 못할 만큼 되면은 결국은 죽게 되는데, 죽으면 흙으로 불기운으로 물기운으로 바람 기운으로 다 썩어서 없어지고, 이 몸뚱이를 끌고 다니는 업식(業識)은 이 몸뚱이 때문에 지은 그 죄(罪)로 인해서 한량없는 고통을 받게 됩니다.

혹은 지옥(地獄)에도 가고, 축생(畜生)으로도 떨어지고, 귀신(鬼神) 되고, 다행히 좋은 일을 하고 착한 일을 하면 혹 천상(天上)에 태어난 수도 있지만, 천상에 태어나 봤자 자기가 지은 죄만큼 받으면 다시 또 떨어지고 마는 것이라,
그러니 이 몸뚱이 있을 때 정법(正法)을 믿고 참나를 닦아서 깨달르면 가(可)하거니와, 정법을 믿지 못하고 오욕락(五欲樂)에 빠져서 바른 길을 행(行)하지를 못하면 내생(來生)에 가서 후회를 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며, 틈을 타서 자기의 전생(前生)에 자기(自己)였던 그 시체를 와서 가루를 만든들 무슨 소용이 있느냐 이 말씀이여.

불법(佛法)은 이 허망한 몸뚱이를 타고났을 이때에 이 허망한 몸뚱이 속에 있는 이 주인공(主人公)을 찾고, 무상(無常)한 속에서 영원(永遠)을 찾고, 선(善)과 악연(惡緣)이 엉크러진 이 사바세계(娑婆世界)에서 극락정토(極樂淨土)를 찾는 길인 것입니다.
이러한 좋은 법을 만나 가지고서도 신심(信心)이 박약(薄弱)하고 끈기가 부족하고 용기(勇氣)가 없어서, 마냥 귀로는 좋은 말을 들으면서도 행동으로는 옮기지 못하고, 또 하려고 마음을 먹었다가도 사흘이 못 가서 배시시 흩어져 버리고.
우선 공부는 하려고 하면은 다리 아프고 허리 아프고 졸리고 맛이 없고, 무슨 좋은 음식은 먹기 좋고 좋은 음악은 귀에 듣기 좋고, 그저 눈에 귀에 편할 대로 몸뚱이에 편할 대로 구경도 다니고 그럭저럭 지내면은 썩 지낼 만하다 그 말이여.

「우선 먹기는 곶감이 달다」고, 밤낮 그러한 이 몸뚱이 업식(業識)의 입맛에만 좋도록 그럭저럭 지내다가 하룻밤 꿈을 깨고 나면 천당도 간 곳이 없고, 금덩어리도 간 곳이 없고, 청란(靑鸞)새도 간 곳이 없는 그러한 신세가 우리 앞에 돌아올 것을 지끔 이만큼 건강할 때, 이만큼 젊었을 때 뼈아프게 느끼고 정신(精神)을 차려야 할 것입니다.

이 삼복더위에 산이나 바다로 놀러가시면 참 더위를 잊을 수 있고 재미있게 지내실 텐데, 그러한 모든 계획을 다 물리치고 이 더웁고 답답한 이 법당(法堂)에 모이신 여러분들은 내가 이러한 말씀을 할 필요도 없이 이미 발심(發心)을 하셨기 때문에 여기에 이렇게 많은 사부대중(四部大衆)이 오신 걸로 생각이 됩니다. 너무너무 감사하고 너무너무 기특하고 신통하고, 거기다 대고 천배(千拜) 만배(萬拜)를 해도 만족이 되지 아니할 만큼 감사하게 생각을 합니다.
더운 것은 잠깐 동안의 괴로움이고, 참선(參禪)을 해서 참나를 깨닫고 보면 영원한 행복을 얻을 것이요, 입에 임시 달고 몸에 잠깐 편안한 것은 잠깐 동안의 즐거움이지만, 지끔 닦지 않고 공부해 놓지 아니하면 영원한 괴로움이 우리 앞에 다가올 것입니다.
이 문제는 승속(僧俗)이 없고, 남녀(男女)가 없고, 빈부귀천(貧富貴賤)이 없습니다. 부자일수록에 더욱 이 점에 대해서 깊이 깨달은 바가 있어야 하고, 가난한 사람은 가난할수록에 더 이 문제에 대해서 깊이 깨우쳐야 할 것입니다.


기회윤회문래단(幾回輪廻問來端)허고  지리여하가자만(至理如何可自瞞)이리오
나무~아미타불~
일점애원상적력(一點愛源常滴瀝)하야  만심욕해정미만(萬尋欲海政瀰漫)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몇 번이나 윤회(輪廻)를 했으며 무엇 때문에 윤회를 했는가? 그 무량겁(無量劫)으로부터 금생(今生)에 올 때까지 그 수없는 생사윤회를 해 왔는데 그 까닭을 물어보자 이거여.
지리여하가자만(至理如何可自瞞)이리오. 지극한 이치를 어떻게 스스로 속일까 보냐.

한 점, 일점애원(一點愛源)이 상정력(常滴瀝)하야, 한 방울 한 방울 그 한 점에 애정(愛情)의 물방울이, 애정의 근원(根源)에서 한 방울 한 방울 계속해서 그 애정의 물이 흘러 가지고 떨어져 흘르고 흘러서 만 길이나 되는 오욕락(五欲樂)의 바다, 고해(苦海)의 바다가 갈수록 점점 넘쳐서 흐르는구나.

무량겁의 생사윤회(生死輪廻)는 그 원인이 한 생각의 그 애정(愛情) 때문에 그렇다.
남녀 간의 애정, 부모자식 간의 애정, 친구 간의 애정, 그러한 그 한 생각의 애정(愛情)으로 인(因)해서 그 한 생각 한 생각의 애정이 점점점점 흘르고 흘러 가지고 천길만길이나 되는 끝없는 깊은 바다가 되고 마는 것이다 그 말이여. 결국은 한 생각 돌이키지 못해 가지고 무량겁(無量劫)의 생사윤회가 전개되는 것이다 그 말씀이여.
과거에 모든 불보살(佛菩薩)과 모든 선지식들은 그 한 생각을 돌이켜 가지고 생사해탈(生死解脫)을 해서 영원(永遠)의 세계(世界)로 들어가셨고, 우리 중생(衆生)은 그 한 생각을 돌이키지 못해 가지고 무량겁 고해(苦海)에 빠져서 신음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더울 때 추울 때 고단할 때, 눕고 싶지만 '누우까? 마까? 한숨 자까?' 그 자고 싶은 생각, 눕고 싶은 생각이 나오지만, '아니다. 내가 조끔 괴롭다고 내가 눕게 되면 금방 한 시간 두 시간이 지내가니, 그래도 내가 일어서서 포행(布行)을 해서라도 잠을 깨 가지고 정진(精進)을 해야겄다'
그 한 생각으로 자 버린 사람, 한 생각을 이겨 가지고 포행을 하면서 화두(話頭)를 챙긴 사람, 그 조그마한 일이지만 계속해서 편안한 것을 추구해 나가는 사람은 결국은 고해(苦海)로 들어가는 것이고,
지끔은 좀 괴롭지마는 그놈을 참고 이겨 가지고 정진(精進)으로 나아간 사람은 그렇게 해서 하루하루를 쌓아가고 한 달 한 달을 쌓아가고 일 년 일 년을 그렇게 다잽이를 해 나간 사람은 결국은 정진(精進)에 득력(得力)을 해서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게 된 것입니다.(13분52초~34분50초)




(2)------------------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이 누가 부모에 대한 애정이 없으며, 누가 그 자녀에 대한 애정이 없으리오마는, 그리고 누가 재산이라든지 명예라든지 권리에 대해서 생각이 없으리오마는, 그 한 생각을 돌이키는 데에 '북쪽으로 가느냐, 남쪽으로 가느냐' 출발하기 전에는 똑같은 한 자리에 있어도 북쪽을 향해 출발한 사람은 하루 뒤에는 백 리(百里)를 북쪽으로 가 있고, 남쪽을 향해서 출발한 사람은 하루 뒤에는 벌써 백 리(百里), 두 사람의 거리는 2백 리(二百里)의 차이가 나게 되는 것입니다.

한 생각 방향을 어디로 두느냐에 따라서 한 시간 뒤에 다르고, 하루 뒤에 다르고, 한 달 뒤에 다르고, 일 년, 일생 뒤에는 한 사람은 극락세계(極樂世界)에 가 있는데, 한 사람은 끝없는 지옥(地獄)으로 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극락과 지옥이 멀다 하지마는 최초에 이별(離別)하는, 갈라지는 곳은 한 장소에 있었던 것입니다.

어려서 한 마을에서 태어나 가지고 한날한시에 태어났는데, 두 아이가 차츰 어릴 때부터서 소꿉장난을 하면서 자랐는데 두 아이가 절로 놀러갔습니다.
칠석날이나 초파일날과 같이 손님들이 많이 오시는 날 절로 구경을 하러 갔는데, 가서 보니까 좋은 신들이 수십 커리 수백 커리가 주욱 놓여져 있다 그 말이여. 두 아이가 그 속에서 제일 좋은 신으로 한 켜레 씩을 골라잡어 가지고 옷 품속에다가 숨겨 가지고 집에로 돌아갔습니다.

한 아이의 어머니는, "어머니, 이 좋은 신을 가지고 왔..."
"어디서 왔느냐?"

"저 어디 갔더니 좋은 신이 있어서 가지고 왔습니다"
"당장 그걸 갖다 주라!"고 호통을 해서 쫓아 보냈습니다.

또 한 아이는, "어디 길에서 이 좋은 신이 떨어져 있어서 줏어 왔다"고 그러니까,
훔쳐 왔다고 하면 어느 부모가 좋아라고 할 이 없겠지요? 줏어 왔다고 하니까, "아 그래, 줏어 왔어? 거 참 좋다" 아주 그것을 반갑게 그것을 받았다 그 말이여.

그 뒤로 이 두 아이는, 하나는 다시는 그런 그 줏어 오거나 훔쳐 온 버릇을 아니했고, 한 아이는 계속해서 그 절로 가 가지고, 법회 때마다 가 가지고 좋은 신을 훔쳐 왔다 그 말이여.
차츰차츰 자라 가지고 하나는 그 나라를 통치하는 통치자(統治者)가 되었고, 한 아이는 그 나라에서 제일가는 도둑놈에 괴수(魁首)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일본에 그 한 사람은 풍신수길(豐臣秀吉)이가 되었고, 한 아이는 이시까와 고에몽이라고 하는 일본에 제일가는 도둑에 괴수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실화(實話)로서 어렸을 때에 한날한시에 태어나서 아마 사주(四柱)를—무엇이 되었건 그 나라에서 제일가는 사람이 될 사주를 타고난 모냥인데, 부모를 잘 못 만나 가지고 그것을, 그 신 한 켜레로 인해서 하나는 통치자(統治者)가 되었고, 하나는 도둑에 괴수가 되었다 이 말인데, 이러한 예는 우리 주변에도 얼마든지 있을 수가 있는 일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자녀 교육상으로도 그러려니와 우리 자신의 한 생각도 그와 같은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어느 날 그 장자(長者) 그 신도(信徒) 댁에서 대중공양(大衆供養)을 청(請)해서 밤낮 부처님을 위수(爲首)로 해서 부처님만 가시게 되니까, "오늘은 내가 집을 볼 테니 너희들이 갔다 오너라, 너희들끼리만 갔다 오라" 해서 제자(弟子)들만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그 장자(長者) 집으로 공양(供養)을 받으러 안 가시고 그 근처의 마을에 혼자 가셨습니다.
가니까 집집마다 사람이 없습니다. 왜 없나 하니까, 그날은 우리나라 같으면 추석날과 같은 명절날로서 온 마을 사람들이 동산에 모여 가지고 자기가 평소에 좋아하는 사람에게 선물을 주고받는 날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러한 축제가 있어서 다 가버려서, 일곱 집을 차례차례 탁발(托鉢)을 하셨지만 한 집에서도 공양거리를 얻을 수가 없었습니다.

계율(戒律)에 많이 얻건, 적게 얻건 또는 아주 못 얻건, 일곱 집을 차례로 탁발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많이 얻어도 일곱 집, 적게 얻어도 일곱 집, 도저히 한 숟갈도 얻지를 못해도 일곱 집 이상은 얻지 못하게 불교에 그 계율이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일곱 집을 다 돌았지만 밥을 조끔도 얻을 수가 없었어. 그래서 빈 발우(鉢盂)를 가지고 절로 돌아오시는데, 마왕(魔王)이 뒤에 바짝 따라오면서, "부처님, 지금쯤은 다시 돌아가면 사람들이 다 축제가 끝나 가지고 집에 돌아왔을 테니 지금쯤 가면 얼마든지 좋은 음식을 얻을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어서 돌아가서 다시 탁발을 하십시오"
"아니다, 계율에 일곱 집 이상은 못 걷게 되어 있는데, 내가 어찌 하루의 배고픔을 참지를 못하고 계율을 어길 수가 있겠느냐?"

그리고 계속해서 절을 향해서 걸어오시니까, 마구니는 또 부처님을 유혹(誘惑)을 했습니다.
"지끔 돌아가지 아니하면 24시간을 굶을 일을 생각해 보십시오. 하루에 한 끼밖에 공양을 안 하시면서 오늘 사시공양을 안 하시면 24시간을 어떻게 배가 고픔을 견디시겠습니까? 연세가 많아 가지고 공양을 못 잡수면 기력(氣力)이 떨어지실 텐데, 어떻게 제자들을 가리키시며 어떻게 정진(精進)을 하시겠습니까? 지금쯤 다시 마을에 가시면은 좋은 음식을 얻을 수가 있을 것입니다"

두 번 세 번을 유혹을 했지만, "내가 규칙(規則)을 지키므로... 하루 동안 배가 고프더라도 법도(法度)를 지키는 것이 옳지, 하루 배고픔을 참지 못해 가지고 법도를 어긴다면 어찌 내가 많은 제자의 스승이라 할 수가 있겠느냐? 내가 먼저 솔선해서 법도를 지키고 규율을 지켜야지, 하루의 배고픔을 못 참고 설사 제자들이 없다고 해서 내가 그런 법도를 어긴다면은 내가 어찌 성현(聖賢)이라 할 수가 있겠느냐?"
이래 가지고 끝까지 마귀(魔鬼)에 유혹을 뿌리치고 돌아오셨다고 하는 말씀이 경전에 전해집니다.

인도에 표현방식으로, 부처님 자신이, '아 지금쯤 가서, 다시 가서 밥을 얻을까, 말까?' 이렇게 그러한 생각이 나시고, 또 한편으론 '아니다. 내가 배가 고프더라도 참자'
이렇게 부처님 자신 속으로 '이렇게 허까, 말까?' 스스로 이렇게 망설이고 주저하시는 그것을, 그 부정적(否定的)인 면(面)을 마귀를 등장을 시켜서 표현을 한 걸로 현대 그 학자들은 분석을 합니다마는, 어떻게 되었던지 우리는 크고 작은 일에 있어서 항시 '이렇게 허까? 저렇게 허까?' 그러한 경우를 많이 당하게 됩니다.

정진(精進) 문제에 있어서도 그렇고, 어떠한 이끗을 취하는 일에 있어서도 그렇고, 가정에 있어서 어떠한 문제도 그렇고, 친구 간이나 이웃을 상대할 때에도 그렇고, 어떤 사업을 할 때에도 그렇고, 반드시 '갑(甲)이냐 을(乙)이냐? 어느 것을 선택하느냐?' 하는 그러한 문제를 당할 때에, 우리는 그러한 마귀에 유혹은 용기(勇氣)와 지혜(智慧)로써 뿌리치고 자기의 바른 길을 취해야 할 것입니다.
그 마귀의 유혹은 한 번만 하고 마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방법으로 온갖 수단으로 끈질기게 유혹의 손을 뻗쳐 오기 때문에, 지혜와 용기로써 자기를 무장(武裝)하지 아니하면 십상팔구(十常八九) 넘어가고만 마는 것입니다.


한 생각을 어떻게 단속(團束)하느냐?
그래서 고인(古人)이 말씀하기를, '극기추상(克己秋霜)이요 대인춘풍(對人春風)이다, 내 마음 내 몸을 이기는 것은 추상(秋霜)과 같이 그렇게 혹독하게 취급을 하고, 다른 사람을 상대할 때에는 봄바람처럼 부드럽고 따뜻하게 해 주어라' 이런 말입니다.

그런데 보통 너나 할 것 없이 자기 자신에게는 봄바람처럼 부드럽게 처리를 하고, 다른 사람에게는 조그마한 잘못도 용서(容恕)를 하지 아니하고 추상(秋霜)과 같이 다루는 경향이 있는 거 같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부부 간에도 크고 작은 충돌이 일어나고, 부모자식 간에도 또 그러한 일이 있을 수가 있고, 특히 친구 간이나 이웃 간에나 직장에 있어서의 상하 관계나 동료 간에도 극기추상(克己秋霜)을 하지 아니하고, 극기(克己)에는 춘풍(春風)과 같이 하고 대인(對人)에는 추상(秋霜)과 같이 하는 데에서 많은 문제점이 생기리라고 생각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부터 우리 불자(佛子)들은 자기(自己)를 다스리는 데에는 추상(秋霜)과 같이, 서릿발과 같이 그렇게 혹독하게 다루고, 다른 사람을 상대(相對)할 때에는 봄바람과 같이 이해해 주고 용서하고 그렇게 한다면 우리는 불자로서 정말 스스로 나날이 향상(向上)해 가고 모든 사람으로부터 존경을 받게 될 것입니다.

오늘은 일요법회이기 때문에 날씨가 더웁지만 이러한 더운 것도 우리의 정진을 향상(向上)시키는 좋은 계기(契機)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원래 고행, 인도에서 모든 수행인들은 고행(苦行)을 위주로 수행을 해 왔습니다마는, 그 고행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을 가리켜서 그 고행이라고 하냐 하면은 인도는 더운 지방이기 때문에 '그 더위를 참고 이겨 나가면서 수행을 게을리하지 아니한다' 한 더위와의 관계에 대해서 그 고행(苦行)이란 말이 생겨났다고 그럽니다.
이 더운 때를, 내일이 입추(立秋)고 모레 글피가 인자 말복(末伏)입니다마는, 이 더운 때에 우리 천여 명 대중이 한 10분간 같이 정진(精進)을 하는 것도 좋은 인연(因緣)이 될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34분52초~51분35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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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600 개가 넘는 ‘법문(法門)’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 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 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그리고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도 있습니다.

참선법 A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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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600 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정진(精進) 수행2021. 1. 30. 08:36

§((587-2)) (게송)산월투창백~ / 결제 해제, 하안거 동안거, 기원 / 자자(自恣)는 해제 중에 결제 중보다도 더욱 마음을 가다듬고 정진을 하자는 뜻.

서산 스님의 『선교석(禪敎釋)』, 오조 홍인대사의 『최상승론(最上乘論)』 법문 / 송담 스님의 10년 묵언.


알 수 없는 의심, 콱! 맥혀서 알 수 없지마는 그 의심으로 나가다 보면 어떠한 찰나간에 통 밑구녘 빠지듯이 탁! 의심을 타파하게 된다 이거거든. 사량분별로는 절대로 그런 경계가 오는 것이 아니고,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나갈 때 터져.


요연수본진심(了然守本眞心)하야, 요연(了然)히는, 확실하게 근본 참마음을 지켜라 그거거든. 근본 참마음이 무엇이냐? 우리의 마음은 본래청정(本來淸淨)한 것이고, 더 보태고 뺄 것이 없는 진여불성(眞如佛性)이 내게 있다고 하는 것을 확실히 믿어야 하는 거여.

그 '근본 마음을 확실히 지킨다'고 하는 것은 참선 하는데 대단히 중요한 요건이 되는 것입니다. 그 마음이 있기 때문에 이 최상승법(最上乘法)을 믿게 되고, 선지식(善知識)을 찾게 되고, 선지식의 말 한마디로 그것을, 그 화두(話頭)를 가지고 생사해탈(生死解脫)할 때까지 그걸 밀고 나가는 것이여.


**송담스님(No.587-2)—1997년 동안거 해제 법어(97.02.22) (용587-2)



(1) 약 12분. (2) 약 14분.

(1)------------------


산월투창백(山月投窓白)이요  계성입호명(溪聲入戶鳴)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욕식구년묵(欲識九年默)인댄  수향차중명(須向此中明)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산월(山月)이 투창백(投窓白)인데,  계성(溪聲)이 입호명(入戶鳴)이로구나.

산 달이 창에 비추어 흰데, 시냇물 소리가 방안으로 들어와 울리는구나.


욕지구년묵(欲知九年默)인댄, 달마대사(達摩大師)가 9년 동안 소림굴(少林窟)에서 묵묵히 앉아 계신 그 뜻을 알고자 할진대는, 수향차중명(須向此中明)이라. 모름지기 이 가운데를 향해서 밝힐지니라.


이 가운데가 무엇이냐?

산월(山月)이 투창백(投窓白)이요, 계성(溪聲)이 입호명(入戶鳴)하는 바로 그 가운데를 향해서 달마대사 9년 묵무언(默無言) 하신 뜻을 밝힐지니라. 서산대사(西山大師)의 게송입니다.



오늘은 정축년(丁丑年) 정월 대보름날인데, 병자년(丙子年) 삼동안거(三冬安居) 해제일(解制日)이고 또 백일기도 회향 법회날입니다. 병자년 해제일을 맞이해서 대중은 조실(祖室) 스님, 전강선사(田岡禪師)의 법문(法門)을 녹음을 통해서 경청(敬聽)을 했습니다. 해제 법문은 조실 스님의 법문을 통해서 충분히 들었습니다.

산승(山僧)이 올라와서 해제 법문을 하러 올라온 것이 아니라 여기에는 여러 선원에 도반들, 선배 후배들, 여러 스님네 선객(禪客)들이 참석을 하셨고, 또 용화사 대중과 시민선원 · 보살선방 대중을 비롯해서 여러 신남신녀(信男信女) · 형제자매들도 참석을 하셨습니다. 원장으로서 몇 마디 조도(助道)의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해제(解制)라 하는 것은, 원래 인도(印度)에서는 여름에는 비가 많이 오기 때문에 우기(雨期)가 아닌 때에는 나무 밑에나 돌 위나, 모다 인연 따라서 모다 흩어져서 각자 걸식(乞食)을 하면서 정진(精進)을 하다가, 비가 오는 장마철이 되면은 한데에서 기거(起居)를 할 수가 없으니까, 기원정사(祇園精舍)라든지 죽림정사(竹林精舍)라든지 또는 모다 그런 여러 군데 정사(精舍)에서 비를 피하느라고 결제(結制)를 했고,

중국에 와서는 기후가 겨울철에는 추우니까 어쩔 수 없이 그 설한(雪寒)을 피하기 위해서 겨울철 결제도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도 역시 마찬가지로 여름 석 달 · 겨울 석 달을 하안거(夏安居) · 동안거(冬安居)를 이렇게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해제(解制)날에는 자자일(自恣日)이라 해서, '스스로 자(自)' 자, '방자할 자(恣)' 자, 방자(放恣)하단 말은 '뜻대로' '마음껏' 그런 뜻인데, 스스로 무엇을 마음껏 하느냐?

석 달 동안 지내는 동안에 규칙(規則)에 위반되는 언행이 있던가, 법규(法規)에 어긋나는 행동이 있으면 그것을 자기 스스로 마음속으로 참회(懺悔)할 뿐만 아니라, 대중한테 "내가 지난 석 달 동안 지내면서 잘못된 점이 있으면 자비(慈悲)로써 기탄없이 지적을 해 주십시오" 전부 한 무릎을 땅에다 대고 한 무릎은 세우고서 합장하고서 대중한테 자청(自請)을 했던 것입니다.


그것이 '자자(自恣)'인데, 그것을 부처님은 안 하시고 가만히 계시고 대중만 시키시는 것이 아니고, 부처님 자신부터서 맨 먼저 이 자자(自恣)를 하셨습니다.

그러면 그 대중 가운데에 제일 부처님 다음으로 윗자리에 앉은 가섭 존자(迦葉尊者)라든지 또는 수보리 존자(須菩提尊者)나 목련 존자(目蓮尊者)와 같은 제일 웃자리에 앉은 부처님 제자가 부처님을 일으켜 드리면서 "세존(世尊)께 무슨 잘못이 있겠사옵니까?"

그렇게 해서 부처님 다음으로 또 가섭, 다음 부처님 제자가 그와 같이 대중에게 물으면 아무 대답이 없으면 지적할 것이 없으니까 다음 분으로 넘어가고, 잘못이 있으면 자비로써 잘못을 지적을 하면서 대중이 많이 모일 때는 자정(子正)이 넘도록 그러한 법요식이 매우 경건하고 엄숙하게 진행이 되었던 것입니다.


원시경전(原始經典)에 보면은 너무도 엄숙하고 경건해서 가슴이 벅차고 콧잔등이 시큰허도록 그렇게 엄숙하게 이 자자(自恣) 법요식(法要式)이 진행이 되었습니다.

오늘날에도 아마 총림(叢林)에서는 이런 법요식이 진행이 되고 있으리라고는 생각이 됩니다마는, 왜 그런 자자 법요식을 거행을 했냐 하면은 석 달 동안 여러 대중들이 그렇게 모여서 지내니 크고 작은 문제점이 있을 수가 있었겠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자기 스스로도 반성(反省)하고, 대중이 지적을 해 주면 바로 그 자리에서 조끔도 숨김없이 감사한 마음으로 대중 앞에 자기의 잘못을 참회하고, 발로참회(發露懺悔)를 하고 새로운 결심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석 달 동안 잘못이 있었어도 그것을 덮어놓고 우물쭈물 그럭저럭 지낸 것이 아니고, 반드시 이 자자회(自恣會)를 통해서 지적할 것은 도반들이 자비심으로 지적을 해 주고, 그것을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들여서 참회를 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조그만한 잘못을, 큰 잘못을 그 철 해제날 깨끗이 참회를 하고 새로운 마음으로 또 정진(精進)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결제(結制) 해제(解制)라고 하는 것이 특별한 뜻이 있어서 결제 해제를 한 것이 아니고, 기후 관계로 해서 더위와 비와 눈, 추위를 피하기 위해서 그 공부하는 과정상 그런 결제 해제를 한 것뿐이지, 우리 정진(精進)해 나가는 내용에 있어서는 결제 해제가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결제 동안에는 부처님을 위시(爲始)한 모든 부처님 제자들이 한군데서 모여서 지내니까 그래도 언행을 조심하고 모다 규칙에 의해서 엄숙하니 지내다가 해제를 하면 각자 인연(因緣) 따라서 흩어져 가지고 동서남북으로 흩어지고, 흩어지게 되니까 자칫 잘못하면 그럭저럭 산만하게 지낼 우려가 있기 때문에 이 자자회를 통해서 참회를 하고 새로운 마음으로 발심(發心)을 해서 공부를 하자는 뜻이지, '해제 했으니까 걸망 지고 아무데나 자유롭게 지내자' 이것이 아닙니다.

훨씬 더 결심을 다지고 분심(憤心) 발심(發心)을 해 가지고 결제 중보다도 더욱 마음을 가다듬고 정진을 하는데 이 해제(解制)의 자자(自恣) 법요식이 꼭 필요했던 것입니다.(처음~11분49초)





(2)------------------


서산(西山) 스님의 『선교석(禪敎釋)』, 선(禪)과 교(敎)를 비교해서 판단하는 글이 있는데, 그것이 『선교석(禪敎釋)』이라 한 글입니다.

거기에 보면, 학자소참활구(學者所參活句)는, 선학자(禪學者)가 참구(參究)하는 그 활구(活句), 화두(話頭)는 여일단화(如一團火)하야, 한 무더기 불덩어리와 같애서, 근지즉요각면문(近之則燎却面門)이라. 섣불리 잘못 가까이하다가는 얼굴을 확! 태워 버리게 된다 이거거든.

활구공안(活句公案)에는 무불법조착지처(無佛法措着之處)라. 불법(佛法) 도리(道理)도 거기에다가는 어리댈 수가 없는 것이고, 지유대의(只有大疑)하야 여열염긍천(如烈焰亘天)이라. 다못 알 수 없는 큰 의심(疑心)만이 있어서 마치 훨훨 타는 맹렬한 불덩어리가, 불꽃이 하늘을 찌를 것 같아야 할 것이다.


아까 전강 조실 스님 법문 가운데에도 아주 간곡히 말씀을 해 주셨지마는, 활구참선(活句參禪)은 사량분별(思量分別)과 복탁(卜度)으로 이리저리 의리(義理)로 따져서 알아 들어가는 공부가 아니여. 거두절미(去頭截尾)하고 콱 맥혀야, 알 수 없는 맥힌 의심(疑心)으로 정진을 해 나가야 하는 것이여.

알 수 없는 의심(疑心) 이외의 생각은 『화엄경』에 말씀, 『법화경』 『금강경』에 말씀이라도 그런 불교의 교리(敎理)나 도리(道理)를 가지고 이게 비교하고 분석하고 따져서 적용을 하고 그런 것이 아니여. 다못 알 수 없는 의심으로만 나가야 그 공부가 옳게 되어가는 것이다.


그렇게 해 가다 보면 처음에는 온갖 망상(妄想)이 일어나고 혼침(昏沈) 산란(散亂)이 일어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성성적적(惺惺寂寂)하게 자기의 본참공안(本參公案)에 대한 의심으로, 의심을 거각(擧却)해 나가면, 언젠가는 들지 않아도 제절로 화두가 터억 독로하게, 의심(疑心)이 독로(獨露)하게 된다 이거거든.

순일무잡(純一無雜)해서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어서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에도 일여(一如)하게 되고, 몽중(夢中)에서도 그 순일무잡한 의단(疑團)이 계속이 되면은 머지않아서 어떠한 찰나에 의단을 타파(打破)하게 된다 그 말이여. 홀약타파칠통(忽若打破漆桶)하게 된다 그말이여. 알 수 없는 의심, 콱! 맥혀서 알 수 없지마는 그 의심으로 나가다 보면 어떠한 찰나간에 통 밑구녘 빠지듯이 탁! 의심을 타파하게 된다 이거거든.


사량분별로는 절대로 그런 경계가 오는 것이 아니고,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나갈 때 터져. 풍선을 불 때 머리카락 바늘구녕만 있어도 아무리 불어도 그 풍선은 빵빵해지지도 않고, 빵빵해지지 않기 때문에 팡! 하고 터지는 수가 없어. 꽉 맥힌 풍선이라야 불고 불고 더 불어서 더이상 커질 수 없을 때 그 풍선이 터진 것과 비슷하다 그 말이여.

이로(理路)가, 이치 길이 있고 말 길이 있고 더듬어 들어갈 것이 있는 그러한 참선은 의리선(義理禪)이요 사구선(死句禪)이라 영원히 깨달을 분(分)이 없는 것입니다. 알 수 없는 의심(疑心).

그래서 고인(古人)이 말씀하시기를, 「소의지하(小疑之下)에 소오(小悟)하고, 의심이 작으면 작은 깨달음을 얻고, 큰 의심하에 대의지하(大疑之下)에 대오(大悟)라, 큰 의심 밑에 크게 깨달음이 있다 하시고, 무의지하(無疑之下)에 무오(無悟)라, 의심이 없는 공부는 깨달음이 없다」고 하신 것이여.


타파칠통(打破漆桶)을, 홀연히 타파칠통을 하면은 기네 아니네 붙일 수가 없어. 백천법문(百千法門)과 무량묘의(無量妙義)를 불구이원득(不求而圓得)이니라. 백천법문(百千法門)과 한량없는 묘(妙)한 진리를 구하지 않아도 원만(圓滿)하게 깨닫게 된다. 『선교석』에 그러한 법문이 있고.



오조(五祖) 홍인대사(弘忍大師)의 『최상승론(最上乘論)』이라고 하는 법문에 보면은 '수행하는 사람은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수행을 해 나가야 하느냐?' 아주 구체적으로 말씀을 해 놓으셨습니다.

단능착파의(但能着破衣)하고, 다맛 능히 헤어진 옷을 입고, 누데기 옷이죠. 누데기 옷이라 하니까 헌옷도 찢어서 헝겊을 대 가지고 조작으로 누데기 옷을 만들어라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새 옷을 입지 말라'고 하시고, 새 옷을 누가 해 오면 거기다가 괴색(壞色) 물을 들여 가지고 쪼가리, 헌 쪼가리를 어느 옷 끝에다가 그것을 기우라 하셨습니다. 그것은 헌옷이라고 하는 표식(表式)이죠.

무명옷이면 무명옷, 기지옷이면 기지옷, 새 옷이면 새 옷, 인연 따라서 생긴 대로 입어야 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무슨 천이 되었건 먹물 옷을 들여서 그렇게 입고.

손추손(飱麤飱)하며, 밥은 거칠은 음식을 먹어라. 꼭 맛있고 좋은 그런 음식만을 취할 것이 아니라, 보리밥이면 보리밥, 잡곡밥이면 잡곡밥, 밥이면 밥, 죽이면 죽, 국수면 국수, 식단이 나온 대로 그냥 그것을 먹으라 그거거든. 입는 것과 먹는 것에 대한 말씀을 그렇게 하시고.


마음가짐은 요연수본진심(了然守本眞心)하야, 요연(了然)히는, 확실하게 근본 참마음을 지켜라 그거거든. 근본 참마음이 무엇이냐?

우리의 마음은 본래청정(本來淸淨)한 것이고, 더 보태고 뺄 것이 없는 진여불성(眞如佛性)이 내게 있다고 하는 것을 확실히 믿어야 하는 거여.

그 '근본 마음을 확실히 지킨다'고 하는 것은 참선 하는데 대단히 중요한 요건이 되는 것입니다. 그 마음이 있기 때문에 이 최상승법(最上乘法)을 믿게 되고, 선지식(善知識)을 찾게 되고, 선지식의 말 한마디로 그것을, 그 화두(話頭)를 가지고 생사해탈(生死解脫)할 때까지 그걸 밀고 나가는 것이여.


양치불해어(佯癡不解語)하면, '거짓 양(佯)' 자, '어리석을 치(癡)' 자.

속은 환-하지. 뭐 바보가 아니고 멀쩡하니까 환하겠지만, 거짓 어리석은 척하라 말이여. 바보 노릇을 하라 그거거든. 말귀도 못 알아들은 것처럼 바보가 되라 그 말이여.


어디 가서, 참선 선방(禪房)에 가서 똑똑한 체하고, 잘난 체하고, 유식한 체하고, 수완이 있는 것처럼 뽐내고 그러란 것이 아니고, 방부(房付)를 들이고 정진을 들이면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목탁 치면 가서 아무 말없이 공양하고, 목탁 치면 가서 소지(掃地)하고 운력하고, 속이 있는지 없는지, 바보인지 천치인지, 무식한지 유식한지, 전혀 옆에 사람도 모르게 완전히 숙맥(菽麥)이 되라 이거거든.

그렇게 지내는 것이 최생기력이능유공(最省氣力而能有功)이라. 가장 기력(氣力)은 덜면서도 능히 공(功)이 있다. 가장 힘은 덜 들이면서도 수행을 철저하게 하고 큰 깨달음을 얻는 데는 가장 효과적이다 이거거든.


세속(世俗)에서는 유식한 척하고, 잘난 척하고, 똑똑한 척해야 남이 알아주고, 높은 자리에 벼슬도 하고 좋은 데에 취직도 하고 벌어묵고 살고 남이 알아줘야 하겠지만, 출가(出家)해서 도(道)를 닦는 마당에는 돈을 벌기 위해서 똑똑해야 합니까? 명예와 지위 · 부귀 · 권리를 얻기 위해서 똑똑해야 하는 것이냐 그말이여.

바보 천치가 되어서 열심히 정진하면 가는 곳마다 밥이 있고. 공부하다 얼어 죽은 사람 없어요. 이왕 출가해서 도(道)를 닦을 바에는 청춘도 버리고 인생도 버리고, 이 세상에 안 태어난 셈 치고 오조 홍인대사의 『최상승론』의 법문과 같이 그렇게 해야 과연 정진(精進)하는 사람이라고 할 것이다 이것입니다.



산승(山僧)이 처음에 출가(出家)할 때, 규정에 의해서 일주일 만에 고암(古庵) 스님과 전강 조실 스님을 모시고 계(戒)를 받고, 계를 받고 며칠 동안 '도량석(道場釋), 천수(千手)는 외어야 하고, 예불(禮佛)드리는 것은 외어야 한다'고 그래서 그것을 며칠 동안에 그것을 외우고, 목탁 치는 법도 조실 스님한테 나주(羅州) 다보사(多寶寺) 나한전(羅漢殿)에서 일주일간을 기거하면서 그걸 대충 다 배웠습니다. 그걸 배워는 놓고는 한번도 불공(佛供) 한번도 해 보지도 않고 바로 묵언(默言)을 했습니다.


뭐 '군대 안 갈라고 묵언(默言)했다'고 무슨 불교신문엔가 그런 말이 났는데, 그때는 병역법(兵役法)이 없었습니다. 군인에 간 사람은 국방경비대(國防警備隊)라 해 가지고 자원한 사람에 한해서 갔지 병역법이 없었어요. 훨씬 몇 해 뒤에사 병역법이 생겼는데.

나는 그때 묵언(默言)을 시작한 것은 아주 일생 동안을 바보 천치 농판이 되어 가지고 안 태어난 셈 치고 그저 조실 스님 모시고 그렇게 일생을 지낼라고 마음을 먹었었는데, 조실 스님의 명령에 의해서 한 10년 그러다가 묵언을 텄습니다마는, 지금 생각으로서는 조실 스님 명령을 안 하시고 이런 원장(院長)이라고 하는 직책도 맽기시지 안 했으면 저는 훨씬 더 좋았으리라고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11분54초~25분55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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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
정진(精進) 수행2021. 1. 7. 08:53

 

 

§((479)) (게송)자소내내관원방~ / 남이 억지로 시켜서는 못할 일. 생사(生死)가 무상(無常)한 줄 깨닫고, 일대사(一大事) 문제를 위해서 대신심(大信心)과 분심(憤心)으로 몸과 목숨을 바치는 정진.

 

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모든 조사(祖師)와 선지식(善知識)들과 우리의 선배들이 다 그렇게 가행정진(加行精進) 용맹정진(勇猛精進)을 해서 본래면목(本來面目)을 다 깨달으신 것입니다.

그러한 피눈물 나는, 피땀 흘리는 정진이 아니고서는 어떻게 무량겁(無量劫)으로 쌓이고 쌓인 새카만 업보(業報)를 녹이고 자기(自己)의 면목(面目)을 볼 수가 있겠습니까?

 

**송담스님(No.479)—1992년 하안거 해제(92.08.13) (용479)

 

479(1992년 하안거해제:약13분).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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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13분.

자소내내관원방(自少來來慣遠方)타가  기회형악도소상(幾廻衡岳渡瀟湘)고

나무~아미타불~

일조답착가향로(一朝踏着家鄕路)하야  시각도중일월장(始覺途中日月長)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자소내내관원방(自少來來慣遠方), 젊어서부터 주욱 저 먼 타관(他官)으로 타관으로 방황을 하는데 아주 익숙해졌어.

기회형악도소상(幾廻衡岳渡瀟湘)고, 몇 번이나 형산(衡山)을 돌고, 몇 번이나 소상강(瀟湘江)을 건넜던가. 저 타관으로 타관으로 젊어서부터 타향살이로, 나그네로 방황을 하면서 몇 번이나 형산을 돌고 몇 번이나 소상강을 건넜더냐 이거거든.

 

'젊어서부터'라고 하는 말은 저 무량겁(無量劫) 이전부터 오늘날까지 본심왕(本心王)을 등지고, 자기 마음의 고향을 등지고 육도윤회(六道輪廻)를—천상(天上)에 갔다가, 인간세(人間世)에 왔다가, 축생도(畜生道)에 떨어졌다가, 아귀도(餓鬼道)에 떨어졌다, 지옥고(地獄苦)에 떨어져서 무량겁을 그렇게 육도를 돌고 돌면서 얼마나 많은 고초를 겪으면서 오늘날까지 왔더냐 이거거든.

 

일조답착가향로(一朝踏着家鄕路)하니, 하루아침에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을 밟으니,

시각도중일월장(始覺途中日月長)이다. 비로소 그 타향살이로, 타향으로 돌고 도는 그 세월이 길고 긴 것을 알게 되었더라 그거거든.

 

무엇 때문에 부모형제가 있는 고향을 떠나게 되었는가?

'좀 더 돈을 좀 벌어 볼까, 무슨 공부를 좀 해 볼까, 남부럽지 않게 좀 잘살아 볼 수 있는 길은 없을까' 하고 조그마한 이양(利養)을 구하기 위해서 부모가 계신 고향을 떠났더라 그거거든.

그래 가지고 타향으로 가니 낯설고 기반이 없어 놓으니 발붙일 곳이 마땅치 안 해. 그래서 또 다른 데로 가고, 가서 보니 또 마땅찮으면 또 다른 데로 가고, 이리 갔다 동서남북을 그렇게 해매면서 저 끝없는 타향살이로 타향살이를 하면서 수없는 고초를 겪은...

 

그러다가 문듯 좋은 친구를 만나. 어진 선배를 만나 가지고 직장도 구하고 살길을 얻어.

그것이 바로 무엇에다가 비유했냐 하면은 육도윤회를 하다가,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과 오욕락(五欲樂)을 구하기 위해서 육도(六道)를 돌고 돌다가 다행히 어느 날 불법(佛法)을 만났더라 이거거든.

어느 선지식(善知識)을 만나서 법문을 듣고, 어느 도반(道伴)을 만나서 소개를 받고, 그래 가지고 정법(正法)을 믿게 되어서 그래서 자성(自性)을 깨닫는 참선(參禪)을 하다가 보니 정말 그동안 생사고뇌(生死苦惱) 속에서 헛되이 많은 세월을 보낸 것을 깨닫게 되었더라.

 

 

오늘 임신년(壬申年) 7월 15일 백중날을 맞이해서 용화사 법보선원 대중, 보살선방 대중, 시민선방에 모다 대중과, 용주사 중앙선원 대중, 회룡사 의정부 회룡사선원 대중, 대전에 세등선원 대중, 저 전주에 위봉선원 대중들, 그리고 멀고 가까운 사암(寺庵) 토굴에서 정진하는 도반들, 각 가정에서 분 따라서 정진(精進)하는 노소 신남신녀(信男信女) 여러분. 이 해제일(解制日), 백종일을 맞이해서 이 도량(道場)에 가뜩 운집(雲集)을 하셨습니다.

 

그동안에 그 삼복성염(三伏盛炎)에 그 더위를 이기면서 등어리에는 참 땀이 줄줄 흘러내리고, 그러한 가운데에서도 본참화두(本參話頭)를 거각(擧却)하고 그 대의단(大疑團)이 독로(獨露)하도록 잡드리하느라 더운 줄도 모르고 석 달 구순안거(九旬安居)가 그렇게 석 달이지만 어떻게 지냈는 줄도 모르고 그렇게 지냈습니다.

 

정말 남이 억지로 시켜서는 못할 일이여. 이것은 스스로 생사(生死)가 무상(無常)한 줄 깨닫고, 일대사(一大事) 문제를 위해서 몸과 목숨을 바친 대신심(大信心)과 분심(憤心)이 아니고서는 이 삼복성염에 두 시간씩 세 시간씩 죽비를 치고 정진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석 달을 지내고 나면 휘청거리고—아무리 외호(外護)를 잘해서 대중공양(大衆供養)이 들어와서 잘 먹고 지냈다 해도 골(骨) 속이 비어서 휘청거리고, 앉었다 일어서면 앞이 캄캄하고, 오줌을 누면은 발등에 가서 떨어져.

 

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모든 조사(祖師)와 선지식(善知識)들과 우리의 선배들이 다 그렇게 가행정진(加行精進) 용맹정진(勇猛精進)을 해서 다 면목을, 본래면목(本來面目)을 다 깨달으신 것입니다.

그러한 피눈물 나는, 피땀 흘리는 정진이 아니고서는 어떻게 무량겁(無量劫)으로 쌓이고 쌓인 새카만 업보(業報)를 녹이고 자기(自己)의 면목(面目)을 볼 수가 있겠습니까?

 

오늘은 그러한 형제자매 도반들을 위해서 전강 조실(祖室) 스님의 법문을 녹음을 통해서 들었습니다. 산승(山僧)이 그러한 도반들을 위해서 몇 마디 격려의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오늘 해제(解制)를 하면 석 달 동안 정진하던 선원(禪院)을 모다 이 걸망을 지고 또 모다 떠나시게 됩니다. 어디를 가던지 또는 다시 그 선원에 머물러서 산철 결제를 하던지, 앞으로는 더위도 가시고 차츰 서늘해질 거이니 그동안에 더위 때문에 시달렸던 몸과 마음을 다시 가다듬고 정말 알뜰하게 착실하게 정진을 해 주시기를 부탁을 드립니다.(처음~12분34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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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
정진(精進) 수행2020. 12. 22. 13:40

§((145)) (게송)창출무생일곡가~ / 하루하루가 바로 죽음의 문을 향해서 가는 것 / 고인들의 정진 모습 / 무서운 지옥고를 생각해 등한히 지내지 말아라 / 정말 훌륭한 정진인 불방일(不放逸)은 바로 '한 생각' 단속해 의단독로 하도록 하는 것.

 

최상승법(最上乘法), 이 참선(參禪)을 하는 사람은 제일 두려워할 것이 '한 생각'을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한다. 한 생각. 그 한 생각이 삐끗하면 바로 그 삐끗한 그 자리가 천만 길 떨어지는 무간지옥(無間地獄), 무간지옥에 떨어지는 것이다.

 

**송담스님(No.145)—1981년(신유년) 하안거 결제(81.05.18) (용145)

 

약 19분.

 

창출무생일곡가(唱出無生一曲歌)헌데  대천사계용금파(大千沙界涌金波)로구나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황앵상수일지화(黃鶯上樹一枝花)요  백로하전천점설(白鷺下田千點雪)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창출무생일곡가(唱出無生一曲歌)하니, 무생곡(無生曲) 한 곡을 불러내니. 한 곡에 무생곡, 생사 없는 도리를 읊은 무생곡을 한바탕 읊으니,

대천사계용금파(大千沙界涌金波)로다.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에 금물결이 출렁이는구나.

 

황앵(黃鶯)이 상수(上樹)하니 일지화(一枝花)요. 노란 꾀꼬리가 나무에 오르니 한 가지 아름다운 꽃이요.

백로하전천점설(白鷺下田千點雪)이다. 흰 해오라비가 논에 내리니 천 점에 눈송이더라.

 

때는 바야흐로 첫 여름에 접어들었습니다.

산천(山川)에 모든 나무에 잎은 피어서 나날이 푸르러 가고 있고, 그 푸른 나뭇가지에 노란 꾀꼬리가 이 가지에서 저 가지로, 저 가지에서 이 가지로 노래를 부르며 날아가는데, 그 노란 꾀꼬리가 나무에 떠억 올라앉으니까 그게 바로 한 가지에 노란 꽃송이더라.

하얀 해오라비, 백로(白鷺)가 논에 내려앉으니까 천 송이의 눈이 내린 거와 같다.

 

노란 꾀꼬리가 나무에 오르고 하얀 백로(白鷺) 떼가 논에 내려앉는 거, 이것이 바로 무생곡(無生曲)을 읊어서 대천세계,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에 금물결이 일어나는 도리입니다.

 

 

오늘은 신유년(辛酉年) 4월 15일, 하안거(夏安居) 결제(結制)날입니다. 해마다 4월 15일이 되면 여름 결제를 합니다마는, 과연 그 결제가 연례행사(年例行事)로 끝나 버려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4월 15일이 되면 결제(結制)하고 7월 15일이 되면 해제(解制)를 하고, 하루하루는 이 세상에 태어난, 이 사바세계(娑婆世界)에 태어난 모든 중생들이 하루하루 지내는 것이 바로 죽음의 문을 향해서 하루하루 걸어가는 것이여.

해는 어제도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고, 오늘도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져 가지만, 그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진 그 24시간 동안이 다름 아닌 우리가 죽음에 문을 향해서 하루씩을 다가서 가는 것이다.

 

물론 참나를 깨달라 확철대오(廓徹大悟)해서 생사 없는 도리에 계합(契合)한 사람에게는 동쪽에서 해가 떠서 서쪽으로 지는 것이, 그것이 바로 진리(眞理)를 표현하는 것이고, 그것이 바로 『화엄경(華嚴經)』에 도리(道理)요 부처님 열반(涅槃)의 경지지만, 깨닫지 못한 사람에게는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는 것이 바로 우리로 하여금 사형장(死刑場)을 향해서 하루를 다가가는 것이 될 것이다 그 말이여. 그러니 어찌 하루를 그럭저럭 한만히 지낼 수가 있겠느냐.

 

그래서 고인(古人)들은 하루 죽도록 정진(精進)을 하고 해가 넘어가면 다리를 뻗고 통곡(痛哭)을 한 분도 계시고, 그 졸음이 오면 송곳으로 무릎을 찌르면서 졸음을 쫓고 공부를 하려고 애를 쓴 스님도 계시고, 저녁에 잘 때에는 나무를 동글동글하니 깎어서 둥글둥글한 목침(木枕)을 비고 자다가 삐끗하면 머리가 방바닥에 툭! 내려져서 깜짝 놀랜 바람에 눈을 떠 가지고 다시 또 정진을 하고, 밤에 잠을 안 자기 위해서 무거운 돌덩어리를 짊어지고 밤새 이 산에서 저 산으로, 저 산봉우리에서 이 산봉(山峰)으로 걸어다니면서 용맹정진(勇猛精進)을 한 스님도 계셨습니다.

 

오늘부터 90일간, 석 달 동안 하안거(夏安居)를 하는데, 아직 요새는 추웁도 덥지도 않고 참 좋지만, 불과 한두 달이 지내면 오뉴월 삼복(三伏)이 돌아와서 앉아 있으면 오금쟁이에 땀이 줄줄줄줄 흘르고 땀띠가 솟고, 등어리에는 물을 끼얹은 것처럼 소금물이 줄줄 흐르고, 그렇게 견딜 수 없을 만큼 더위가 돌아옵니다마는,

숨 한번 내쉬었다 들어마시지 못하면 바로 내생(來生)이요, 금생(今生)에 도업(道業)을 성취하지 못하고 염라대왕(閻羅大王) 앞에 끌려가면 자기가 지은 업(業)에 따라서 축생(畜生)으로 떨어지기도 하고 무간지옥(無間地獄)에 떨어지기도 하는데, 그 무간지옥에 떨어졌을 때를 생각해.

 

무간지옥에 그 펄펄 끓는 가마솥에 하루에 만 번 들어갔다 만 번 나오고, 구리쇠 물을 먹고, 무거운 돌로 눌러서 죽이기도 하고, 톱으로 위에서 밑으로 썰기도 하고, 칼이 삐쭉삐쭉한 산에 굴림을 당하기도하고, 말로써는 형용할 수 없는 그 무서운 지옥고(地獄苦), 그것이 금생에 몸뚱이 받았을 때 도(道)를 닦지 아니하고 도업(道業)을 성취하지 못하면 그 지옥고가 남의 일이 아니다.

그러한 지옥고를 생각할 때에 우리는 단 한 시간도, 단 일 분도, 일 초도 등한(等閑)히 시간을 보낼 수가 없을 것입니다.

 

불방일(不放逸), 방일을 하지 않는다.

 

방일(放逸)이라 하는 것은 '놓아 지내지 않는다' '해태(懈怠)를 하지 않는다'

정진, 용맹정진(勇猛精進) 가행정진(加行精進)하면 꼭 송곳으로 무릎을 찔러야만 하느냐, 꼭 똥글똥글한 목침을 비어야만 하느냐, 꼭 해가 넘어가면 다리를 뻗고 울어야만 하느냐, 꼭 무거운 돌덩어리를 짊어지고 밤새 왔다갔다해야만 하느냐? 그것이 아닙니다.

 

정말 훌륭한 정진은, 방일(放逸)하지 아니한 것이 그것이 가장 훌륭한 정진(精進)이더라.

 

어떤 것이 방일하지 않는 것인고?

밥을 먹을 때에도 ‘이 무엇고?’ 세수를 할 때에도 ‘이 무엇고?’ 앉았을 때에도 ‘이 무엇고?’ 섰을 때에도 ‘이 무엇고?’ 눈으로 파랗고 노란 색상을 볼 때에도 ‘이 무엇고?’ 다맛 꽉 맥혀서 알 수 없는 의단,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한 것 그것이 바로 방일을 하지 않는 것이다.

 

아무리 묘(妙)한 이치가 떠오르고 교리와 부합되는 어떠한 결론에 이르렀다 하더라도, 법견(法見) 불견(佛見)에 떨어지면 그 찰나에 벌써 그것은 마섭(魔攝)이 되는 것이여. 그것이 바로 방일(放逸)이다 그 말이여. 한 생각 삐끗해 가지고 벌써 몇 겁(劫)의 과보(果報)가 거기에서 나타난 것이다.

 

이 최상승법(最上乘法), 이 참선(參禪)을 하는 사람은 제일 두려워할 것이 '한 생각'을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한다. 한 생각. 그 한 생각이 삐끗하면 바로 그 삐끗한 그 자리가 천만 길 떨어지는 무간지옥(無間地獄), 무간지옥에 떨어지는 것이다.

그 한 생각을 어떻게 단속(團束)을 해야 하느냐? 여기에 불방일이 있고, 가행정진이 있고, 용맹정진이 있는 것이여.

 

밤에 잠을 덜 자고 한다고 애를 쓰면서 낮에는 그럭저럭 잡담(雜談)으로 세월을 보내고, 밤잠을 안 자고 애를 쓰면서 낮에는 온통 입선(入禪) 시간이고 할 것 없이 꾸벅꾸벅 맑은 정신은 하나도 없이 졸기만 하고, 목에 묵언패(默言牌)는 찼으면서도 온갖 의사 표시는 손으로 몸짓으로 다하고, 온갖 시비(是非)에 다 참견을 하고 '니가 잘했다 내가 잘했다' 시비를 가리고, 이렇게 수행을 해 가지고서는 미륵불(彌勒佛)이 하생(下生)할 때 까지 정진을 한다해도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출가한 스님네, 특히 선방(禪房)에 방부(房付)를 들이고 정진하는 분상에는 하나에서 열까지, 하나에서 백까지 오직 해야 할 일은 이 한 생각 단속(團束)해서 알 수 없는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도록 그렇게 채찍질하는 일 밖에는 없는 것이여.

오직 그 한 일 충실하면 그 가운데 온갖 계율(戒律)도 그 가운데 다 지켜질 것이고, 육바라밀(六波羅蜜)도 그 가운데 다 갖추어져 있는 것이고, 삼천위의(三千威儀)와 팔만세행(八萬細行)이 그 가운데 다 갖추어져 있어서 모든 지혜(智慧)와 모든 복(福)을 성취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근원적(根源的)인 일 하나에 충실하면 지엽적(枝葉的)인 것은 제절로 그 가운데에 다 따라온 것이요, 다 갖추어진 있는 것이여. 그래서 이것을 최상승법(最上乘法)이라 하는 것이여.

어리석은 사람은, 방편(方便)에 떨어져 있는 사람은 지엽적(枝葉的)인 것에 집착(執著)을 해가지고 자기 딴은 애를 써서 한다고 하는 것이 결과적으로는 뿌리는 썩어간 줄 모르고 저 잔가지나 이파리에 매달려 가지고 그러고 있다 그 말이여.(처음~18분22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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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600 개가 넘는 ‘(참선) 법문’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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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600 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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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
정진(精進) 수행2020. 12. 15. 10:38

§((004)) 참선은 어렵지 않다. 일어나는 중생심으로, 중생심 일어나는 곳을 찾기 때문에 밖에서 구한 것이 아니다. 일어나는 그 생각을 돌이켜서 화두를 들면 그만 / 쥐로 모든 쥐를 잡는 법 / '이뭣고?' 화두 드는 법 / 우리는 생명 바쳐 할 일은 참선밖에는 없다.

 

참선법이란 게 바로 쥐 한 마리 길러 가지고, 그 쥐로 하여금 모든 쥐를 다 잡어먹는 이치와 비교해서 얘기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선지식으로부터 지도 받은 화두(話頭)는, 그 화두가 내나 우리 중생심으로 들기 때문에 중생심 가운데에 한 생각인 것은 틀림이 없습니다마는, 그 중생심은 선지식으로부터 지도 받은 중생심이 화두여. 마치 훈련을 잘 시켜 놓은 쥐와 마찬가지다.

이 화두 하나만 가지고 일체처 일체시에서 일어나는 생각—성이 나거나 웃음이 나오거나, 기쁘거나 외롭거나, 천하 없는 번뇌와 망상이 퍼일어난다 하더라도 화두를 거각함으로써 일어났던 그 중생심은 자취 없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래가지고 이 온 세상이 화두에 대한 의심 덩어리로 꽉! 찼을 때, 항아리에다가 간장을 가뜩 넣어 놓고, 메갱이로 그 항아리를 팡! 쳤을 때 그 항아리는 쩍! 갈라지면서 간장이 와그르르 쏟아질 겁니다.

이 온 내 마음속, 가슴속뿐만이 아니라 모든 곳 모든 것, 일체시 일체처에 이 세계에 화두가 가뜩찼을 때, 그때에 그 화두 한 뭉텡이가 툭 터진 날에는 무량겁으로 오면서 지어온 우리의 한없는 다생(多生) 업(業)이 거기에서 찰나간에 녹아 없어질 것이며, 나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송담스님(No.004)—1975년 동안거 결제 (75.11.17) (용004)

 

약 16분.

 

참선이라 하면 덮어놓고 '어렵다. 속가에 살면서는 도저히 하기가—좋은 줄은 알지마는 하기가 어렵다' 이리 생각하시지마는.

'그리고 하려고 하면은 졸음이 오고 그렇지 않으면 번뇌 망상이 일어나서 도저히 근기(根機)가 약하고, 아무래도 정법에 인연이 희박하고 업장(業障)이 두터워서 우리는 참선은 못합니다' 아마 그렇게 생각하신 분이 혹 계실는지 모르지마는, 이 참선법은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왜 그러냐?

중생심을, 한도 끝도 없이 퍼일어나는 그 중생심을 다 띠어 버리고, 그리고 난 다음에 참선을 해야 된다고 한다면은 그것은 어렵습니다.

중생심을 버리고 나를 찾는 것이 아니라, 일어나는 중생심 속에서 일어나는 중생심으로, 중생심 일어나는 곳을 찾기 때문에 밖에서 구한 것이 아니라 내가 하루에면 열두 때 24시간 보고, 듣고, 느끼고, 성내고, 웃고 하는 그 물 끓듯, 불타듯 일어나는 중생심 속에서, 그 중생심으로 찾는 것이기 때문에 이건 남녀노소와 유식 무식이 상관이 없습니다.

 

오히려 성낼 중도 모르고, 웃을 중도 모르고, 좋아할 중도 모르고, 골낼 중도 모른, 또 아무 욕심도 없고 그러한 사람은 차라리 이 공부에도 역시 박력이 없기 때문에 공부에 진취가 별로 보이지 않을런지 모르지만,

욕심 많고, 심술궂고, 신경질 잘 내고, 불칼 같은 성미를 가지고 있는 그러한, 다른 일반 사람들이 볼 때에는 '사람 못되었다'고 그러한 핀잔을 받을 만한 성격의 소유자일수록에 그 생각만 바로 돌이켜서 화두를 열심히만 거각(擧却)한다고 하면은 오히려 그 사람이 누구보다도 빨리 도업(道業)을 성취할 수 있다 생각합니다.

그래서 번뇌가, 망상이 많이 일어난다고 해서 짜증을 낼 게 아니라, 일어나는 그 생각을 돌이켜서 화두를 들면 그만입니다.

 

 

어떤 사람이 집에 쥐가 너무나도 쥐가 번식을 해 가지고, 쥐 때문에 살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딜 갔더니 어떠한 사람이 그 쥐 잡는 법을 가르켜 주었습니다.

 

어떻게 하냐 하면은 쥐 한 마리를 다치지 않게 잡아 가지고, 그 쥐를 항아리에다 담은 다음에 한 2~3일 굶겨라. 굶긴 다음에 다른 쥐를 쥐덫으로 잡어가지고 쥐 살을 조끔씩 띠어 가지고 그 항아리 속에 있는 쥐를 멕여라 그랬습니다.

그 쥐가 배고프니까—처음에는 쥐고기 넣어 줘도 잘 안 먹더니, 배고프니까 그놈을 먹기 시작했다. 날마다 쥐고기를 넣어 주고, 넣어 주고 하다가 나중에는 쥐 통채로 새끼 한 마리를 넣어 주었습니다. 그러니까 그 쥐새끼 한 마리를 먹었습니다. 다음에는 산 쥐새끼를 넣어 주었습니다. 산 쥐새끼도 처음에는 이리저리 놀리다 결국은 다 잡아먹었습니다. 나중에는 큰 쥐도 넣어 주니까 다 잡아먹었습니다.

이제 아주 쥐고기 잡아먹는데 대단히 아주 숙달이 되어서 아주 주식(主食)이 쥐가 되었습니다. 그런 다음에 그 쥐를 항아리에서 내 주었습니다. 당장 그전에 자기가 다니던 쥐구녁으로 들어가서, 쥐 앵긴 대로 그놈이 다 잡아먹었습니다.

 

고양이가 아무리 쥐를 참 잘 잡는다 하지마는, 구멍에서 나온 놈밖에는 잡을 수가 없고 또 고양이 소리만 나면은 쥐는 미리 도망가기 때문에 고양이로서는 도저히 쥐를 다 잡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쥐를 훈련을 시켜 가지고, 쥐를 놓아서 쥐로 하여금 쥐를 잡게 하니까 못 갈 데가 없단 말이여. 구녁, 구녁이 다니면서 늙은 쥐고, 젊은 쥐고, 새끼 쥐고, 에미 쥐고, 닥치는 대로 다 잡어먹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그 주인은 마지막에 그 쥐 한 마리를 잡았습니다. 그렇게 해서 그 집에 쥐를 다 멸종을 했다고 하는 우화가 있습니다.

 

참선법이란 게 바로 쥐 한 마리 길러 가지고, 그 쥐로 하여금 모든 쥐를 다 잡어먹는 이치와 비교해서 얘기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선지식으로부터 지도 받은 화두(話頭)는, 그 화두가 내나 우리 중생심으로 들기 때문에 중생심 가운데에 한 생각인 것은 틀림이 없습니다마는, 그 중생심은 선지식으로부터 지도 받은 중생심이 화두여. 마치 훈련을 잘 시켜 놓은 쥐와 마찬가지다 그말이여.

이 화두 하나만 가지고 일체처 일체시에서 일어나는 생각—성이 나거나 웃음이 나오거나, 기쁘거나 외롭거나, 천하 없는 번뇌와 망상이 퍼일어난다 하더라도 화두로써, 화두를 거각함으로써 일어났던 그 중생심은 자취 없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래가지고 이 온 세상이 화두에 대한 의심 덩어리로 꽉! 찼을 때, 항아리에다가 간장을 가뜩 넣어 놓고, 메갱이로 그 항아리를 팡! 쳤을 때 그 항아리는 쩍! 갈라지면서 간장이 와그르르 쏟아질 겁니다.

이 온 내 마음속, 가슴속뿐만이 아니라 모든 곳 모든 것, 일체시 일체처에 이 세계에 화두가 가뜩찼을 때, 그때에 그 화두 한 뭉텡이가 툭 터진 날에는 무량겁으로 오면서 지어온 우리의 한없는 다생(多生) 업(業)이 거기에서 찰나간에 녹아 없어질 것이며, 나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위대한 수행이 결코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어렵다고 미리 겁을 집어먹고 열심히 아니하고, 또 하려고 해도 바른 선지식의 지도를 받지 못하고 잘못하기 때문에 그렇고, 또 지도는 옳게 받아도 정말 골똘히 하지 아니한 데에서 공부가 늦어지는 것이지,

첫째, 바른 선지식의 지도를 받아 가지고 나도 꼭! 깨달을 수 있다고 철저히 믿고, 과거에 모든 성현들은 진즉 이 진리를 깨달라서 생사해탈, 생사에 자재한 그러한 성현이 되었는데, 나는 무엇 하느라고 오늘날까지 중생으로서 육도윤회를 하고 있는가? 생사에 자재 못하고 있는가? 그것을 이를 악물고 분한 마음을 내며, 그래가지고 선지식으로부터 지도 받은 화두에 대한 의심이 철저하고 간절하게 거각해 나가진다고 하면은 그 사람 공부는 빠르면 사흘이요, 글안으면 일주일이요, 늦어도 삼 년.

'삼 년을 여법(如法)하게 그렇게 생명 바쳐 알뜰히 해서 깨닫지 못하면 내가 거짓말한 죄로 세세생생(世世生生)에 혀를 빼서 쟁기질하는 지옥에 갈 것이다. 그러나 만약 이렇게 간절히 일러줌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믿지 아니하고 공부를 열심히 아니한다면은 너는 세세생생에 호랭이 밥이 될 것이다' 4조 도신 스님은 이렇게 간곡히 말씀하셨습니다. 이 법문을, 고려 시대 보조국사는 이 법문을 듣고 너무나도 감개무량해서 가슴이 벅차서 눈물을 글썽거렸다고 하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꼭! 나도 하면 된다고 믿고, 나는 무엇 때문에 오늘날까지 뭣 하느라고 이 문제를 해결 못했던가? 하는 이를 악물고 분을 내는 그 마음으로 화두를 들어 가십시오.

 

화두는 '이뭣고?'

대관절 지금 제가 말씀을 하고 있는데 이걸 듣고 계신 여러분은 귀가 듣는 게 아닙니다. 귀를 통해서 우리는 들을 뿐입니다. 대관절 무엇이 듣느냔 말이여.

들을 줄 알고, 눈으로 보면 희다 검다 알고, 꼬집어 뜯으면 아픈 줄 알고, 듣기 싫은 욕하면은 썽낼 줄 알고, 배고프면 밥 먹을 줄 아는 그놈이 대관절 무엇인가? '이놈이 무엇인고?' '이놈이 무엇인고?'

 

때와 장소를 가리지 말고 앉았을 때나 누웠을 때나, 집에서 빨래를 하거나 소지를 하거나 밥을 짓거나, 때와 장소를 가리지 말고 '이놈이 무엇인고?' '이- 이것이 무엇인고?'

'이것이 무엇인고?'하면 일곱 자인데,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뭣고?' 이렇게. 경상도 사투리지마는 간단하고 뜻은 그 가운데 다 들어 있기 때문에 참선 공부를 할 때는 '이뭣고?' '이뭣고?'

나중에 썽도 안 나고 무슨 아무 일이 없을 때에는 현재 이 '이뭣고?'할 때 '이- 하는 놈이 무엇인고?'하는 뜻으로 '이- 뭣고?' 이렇게.

 

간절히 간절히 화두를 들고 공부를 하시면은—처음에는 잘 안되고 '이뭣고?'하면서도 번갯불 치듯 지내간 일들이 스쳐가고, 얼투당투않는 일이 생각이 떠오르지마는, 버쩍! 깜짝 놀래서 다시 '이뭣고?'

아무 재미도 없고, 맛도 없지마는 자꾸 하고 또 하다 보면은 그 가운데 신심이 나고, 분심이 나고, 의심이 더욱 간절해져서 나중에는 하려고 안 해도 제절로 화두가 들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공부를 해 나가다가 가장 주의해야 할 것은 무엇이냐? '아! 공부가 잘되는구나. 참 좋다' 이러한 생각 갖지 말 것.

또 아무리 하려고 해도 화두가 들리지는 않고 가슴은 답답하고 몸은 괴롭고 영 화두가 잘 들리지는 않고, 그러한 때가 옵니다. 그러더라도 조끔도 번민심을 내지 말고, 썽내지 말고, 잘 그 마음을 돌이켜서 심호흡하고 또 산책도 하고 좀 거닐어서 정신이 개운해지면 다시 와서 또 '이뭣고?' 이렇게 해서 마음을 그렇게 잘 돌릴 줄 알아야 합니다.

 

썽낼 때에도 그놈을 돌이켜서 '대관절 무엇이 이렇게 썽낼 줄 아나?' 썽내는 마음으로 일을 처리하시지 말고, 썽내는 마음을 돌이켜서 '이뭣고?' 이렇게 화두를 한번 떡 들고서 그 썽내는 일을 처리를 하시게 되면은 일이 감정적으로 처리가 되는 게 아니라, 아주 냉정한 이성으로 일을 처리하게 되기 때문에 우리가 생활을 해 나가는 데에도 이 참선을 하게 되면은 대단히 유익한 것입니다.

 

하물며 열심히 하면 영원히 생사해탈(生死解脫)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생명 바쳐 할 일은 이것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불법(佛法)이라 하는 것은 이것 하나 하자고 있는 것이지, 그 밖에 것은 이것을 하기 위한 방편(方便)들입니다. 배라고 하는 것은 물을 건너가기 위해서 배가 필요한 것이여.

불법에 팔만사천 가지 모든 방편은 내가 '나' 깨닫기 위한 방편들입니다. 그 방편 중에서도 이 화두참선, 활구참선, 활구참선(活句參禪)이야말로 최고의 방법입니다.

 

아까 전강 조실 스님께서 정법, 활구참선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마는—'이뭣고?' 또는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고 했는고?' '어째서 무(無)라고 했는고?' 이렇게 어떠한 큰스님네나 다 화두를 다 그렇게 일러 주십니다. 그러나 똑같은 화두를 지도 받아서 하면서도 하는 사람에 따라서는 바르게 하지 못한 사람이 있고, 바르게 한 사람이 있습니다.

 

바르게 하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이 바르게 하느냐?

거두절미하고 다못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천 번이고, 만 번이고 다못 밑도 끝도 없이 그렇게만 들어 가는 사람, 그것이 활구참선(活句參禪)입니다.

 

사구참선(死句參禪), 죽은 참선은 어떻게 하느냐? 또 삿된 참선은 어떻게 하는 것이 삿된 참선이요, 죽은 참선이냐 하면은 이론으로 자기가 그동안에 보고 듣고 한—경전을 보았던지, 선지식의 또는 어록을 보았던지, 어떤 큰스님네 법문을 들었던지, 자기가 보고 듣고 느끼고 한 불교에 대한 지식, 상식, 교리 이러한 것을 동원해 가지고 이리저리 따져 보고 연구해 보고 비교해 보고 또 분석… (15분24초~30분47초) (끝)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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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600 개가 넘는 ‘(참선) 법문’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 있습니다.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600 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정진(精進) 수행2020. 12. 7. 16:21

§((405)) (게송)산당정야좌무언~ / “별을 보고 깨달은 것이 아니라 별을 보는 것이다” / (게송)천척사륜직하수~ / 깨달음이라하는 것은 척! 보는 것이지 아는 것이 아니다 / 하루 하루를 바로 용맹정진해야 / 딴생각[別念] 하면 마구니가 침범 / 비로자나 법신불의 체(體), 비로자나 법신불의 설법.

 

왜 부처님께서는 그 납월 8일 별을 보고 확철대오를 하셨는데, 왜 우리는 납월 8일 새벽 하늘의 별을 보고도 깨닫지를 못하고, 밤마다 번쩍거리는 수없는 별을 보고도 왜 깨닫지를 못할까요? ‘별을 보고 깨달았다’고 하는 생각 때문에 별을 보고 깨닫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전강 조실 스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별을 보고 깨달은 것이 아니라 별을 보는 것이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깨달음이라 하는 것은 사량분별(思量分別)로 따져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여. 척! 보는 것이지 아는 것이 아니다.

 

화두(話頭)에 대한 의단(疑團) 이외의 어떠한 생각도 다 마구니를 불러들일 틈이 되는 것이다.

 

어찌 하필 부처님처럼 별에 국한된 것이 아니여. 삼라만상(森羅萬象) 두두물물(頭頭物物)이 다 비로자나 법신(法身)의 체(體)고, 부는 바람 소리, 흐르는 물소리, 개 짖는 소리, 차 지나가는 소리, 일체가 다 비로자나 법신불(毘盧遮那 法身佛)의 설법(說法)이여.

그러니 무엇을 볼 때나, 무엇을 들을 때나 일체처 일체시, 두두물물 삼라만상이 다 우리가 자아를 깨달을 수 있는 때요, 곳이다.

 

의단이 독로해서 순일무잡한 경지로 나아가야 그 언젠가 탁! 의단을 타파(打破)하게 되는 것이지, 화두를 놓쳐 버리고 사량분별에 떨어진다던지, 눈으로 무엇을 보는 데에 끄달린다든지, 귀로 무엇을 듣는데 끄달리고 있는 한은 그러한 경지에서는 깨달음을 얻을 수가 없는 거야.

그래서 항상 화두를 잡드리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고, 우리가 해야 할 정진이여. 경전도 볼 것이 아니고, 어록도 볼 것이 아니고, 일체처 일체시가 행주좌와 어묵동정 사위의(四威儀)에서 화두만 성성적적(惺惺寂寂) 하게 잡드리해 갈 뿐이여.

 

**송담스님(No.405)—1989년(기사년) 성도재 법회(90.01.04) (용405)

 

(1) 약 22분.

 

(2) 약 20분.

 

(1)------------------

 

산당정야좌무언(山堂靜夜坐無言)한데  적적요요본자연(寂寂寥寥本自然)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하사서풍동임야(何事西風動林野)한데  일성한안여장천(一聲寒雁唳長天)고

나무~아미타불~

 

산당정야좌무언(山堂靜夜坐無言)한데, 산당(山堂) 고요한 밤에 말없이 앉았는데,

적적요요본자연(寂寂寥寥本自然)이로구나. 적적(寂寂)하고 요요(寥寥)해. 적적하고 고요한 본자연이로구나.

 

하사서풍동임야(何事西風動林野)한데, 무슨 일로 서풍이 임야를 흔드는데,

일성한안여장천(一聲寒雁唳長天)고, 한 소리 차운 기러기는 긴 하늘에 우는고.

 

 

오늘 기사년 납월팔일(臘月八日) 성도재(成道齋)를 맞이했습니다. 방금 17년 전, 임자년 납월팔일에 전강 대선사(田岡大禪師) 조실 스님께서 설하신 납월팔일 법문을 녹음을 통해서 경청을 했습니다.

 

삼천년 전 우리 부처님께서 왕궁의 부귀를 헌신짝처럼 버리시고 유성출가(踰城出家)해서, 설산에 들어가셔서 6년 고행(苦行)을 하셨습니다. 그 고행은 일찍이 과거 · 현재 · 미래의 모든 부처님도 우리 석가모니 부처님처럼 그렇게 무서운 고행을 하시지를 않았습니다.

그러한 피골(皮骨)이 상접(相接)해서—하루에 삼씨 한 알, 좁쌀 한 알 그런 정도로 곡식 알갱이 하나씩 이렇게 잡숫고 6년을 지내셨으니 완전히 고목사회(枯木死灰)처럼 되었어. 완전히 해골(骸骨)만 남았어.

 

그러시다가 ‘이렇게 고행을 위한 고행만이 참다운 정진이 아니다’ 그렇게 생각을 하시고 그 자리에서 일어나서 강가로 내려가셔서 맑은 물에 목욕을 하셨습니다. 목욕을 하고 나오시니까 수자타라고 하는 마을에 청신녀가 유미죽(乳糜粥)을 쒀 가지고 올라왔습니다. 부처님께 바치니까 부처님께서 그것을 받아 잡수셨습니다.

 

그것을 보고 부처님을 보호하면서 같이 정진하던 정반왕(淨飯王)이 보낸 다른 다섯 사람들, 실달 태자(悉達太子)와 같이 서로 약속을 하기를 '깨달음을 얻기 전에는 결단코 고행을 쉬지 않고 용맹정진을 하자'고 약속을 해 가지고 6년을 고행을 하셨는데, 실달 태자가 수자타가 바친 죽을 받아 잡수신 것을 보고 “아하! 고행을 견디지를 못하고 너무 배가 고프니까 저렇게 죽을 받아 자시니 저런 의지가 박약하고 약속을 깨트리는 사람과 우리가 같이 있을 수가 없다” 그렇게 말을 하고서 교진여(憍陳如) 등 다섯 사람은 녹야원(鹿野苑)으로 떠나 버렸습니다.

 

그러고 난 뒤에 우리 부처님께서는 자리를 옮겨서 깨끗하고 쇄락(灑落)한 그리고 참 오랜만에 유미죽을 공양을 하시니 한결 기운이 좋다 그말이여. 맑고 깨끗하고 생기가 도는 그러한 몸과 마음으로 정진을 하셨어. 그러시다가 납월팔일 새벽에 별이 반짝거리는 것을 보시고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셨습니다.

 

밤마다 별은 반짝거립니다. 구름이 꽉 낀 날은 안 보이지만 그렇지 않은 밤이면 언제나 별은 반짝거립니다. 삼천년이 지난 오늘도 역시 밤에는 별이 빛납니다. 빛나는 번쩍거리는 그 별을 보고, 삼천년 동안에 아니 수억만 년을 내려오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별을 봅니다. 번쩍이는 별을 보지마는 별을 보았다고 해서 다 확철대오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부처님께서는 그 별빛을 보시고 확철대오를 하셨어.

 

해마다 제방(諸方)에서는 섣달 초하루부터 납월팔일 새벽까지 만 7일간을 용맹정진(勇猛精進)을 합니다. 그것은 우리 부처님께서 납월팔일에 별을 보시고 확철대오를 하셨기 때문에 그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그 뜻깊은 날을 기념하기 위해서 또 그 뜻깊은 날을 우리가 그냥 범연(泛然)히 지낼 수가 없어. 그래서 선방에서는 용맹정진을 해. 7일 동안 옆구리를 땅에 대지 아니하고 완전히 앉은 채 그렇게 용맹정진을 합니다.

 

왜 부처님께서는 그 납월팔일 별을 보고 확철대오를 하셨는데, 왜 우리는 납월팔일 새벽 하늘에 별을 보고도 깨닫지를 못하고, 밤마다 번쩍거리는 수없는 별을 보고도 왜 깨닫지를 못할까요?

‘별을 보고 깨달았다’고 하는 생각 때문에 별을 보고 깨닫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전강 조실 스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별을 보고 깨달은 것이 아니라 별을 보는 것이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별을 보고 깨달아? 별을 보고 무엇을 깨달아?

“바로 그 별을 보는 것이다” 이 간단한 한 말씀 속에 삼천년 전에 부처님께서 별을 보고 깨달으신 바로 그 도리를 단적(端的)으로 설파(說破)하신 것입니다.

 

 

천척사륜직하수(千尺絲綸直下垂)한데  일파자동만파수(一波纔動萬波隨)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야정수한어불식(夜靜水寒魚不食)하야  만선공재월명귀(滿船空載月明歸)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천척사륜직하수(千尺絲綸直下垂), 천 자나 되는 긴 낚싯줄을 똑바로 드리우니,

일파자동만파수(一波纔動萬波隨)여, 그 낚시가 물에 떨어지자마자 한 물결이 일어나니 일만 물결이 따라서 일어나더라.

 

야정수한어불식(夜靜水寒魚不食)하야, 밤은 고요하고 물이 차와서 고기가 그 낚시를 물지를 않아.

만선공재월명귀(滿船空載月明歸)로구나. 가득한 배에는 달빛만 가득 싣고 돌아오더라.

 

우리 부처님께서 사바세계(娑婆世界)에 출현하셔서 별을 보시고 확철대오를 하셔가지고, 49년 동안을 팔만사천 법문을 설하셨어. 무량 중생을 제도하셨다.

부처님께서 확철대오 하신 그 법을 가섭 존자에 전하시고, 가섭 존자는 아란 존자, 아란 존자는 상나화수 이렇게 해서 28대를 달마 조사까지 전하고, 달마 조사가 중국으로 오셔서 6조 스님까지, 6조 스님 이후로 5종 가풍이 벌어져서 전강 조실 스님까지 77대를 전해 내려왔습니다.

 

'볼라야 볼 수 없고, 알라야 알 수 없고, 설할라야 설할 수 없고, 들을라야 들을 수 없는 이 도리를 깨닫고 또 그것을 전하고 받아서 오늘에 이르렀다' 꼭 깨달을 것이 있고, 꼭 전할 것이 있고 또 전해 받을 것이 있는 것처럼 그렇게 말이 됩니다.

 

‘깨달을 것이 있고, 전할 것이 있고, 받을 것이 있다’고 그렇게 그 말을 따라서 그렇게 인식하고, 또 자기도 깨달으려고 생각을 하고. 이러한 말에 떨어져서 그렇게 인식하는 사람은—마치 배를 타고 가다가 그 갑판 위에서 칼을 가지고 무엇을 하다가 그 칼을 잘못 놓쳐 가지고 바닷물에 빠트렸습니다.

그 사람이 ‘바로 이 뱃전에서 칼을 잃어 버렸다’해 가지고, 나중에 그 잃어버린 칼을 찾기 위해서 그 장소를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그 뱃전을 쪼아 가지고 그 표(標)를 해 놨습니다. 언제라도 그 뱃전 그 자리에서 떨구었으니까, 그 뱃전에다가 표를 해 놔야 그 뱃전 밑으로 내려가면은 그 밑바닥에 칼이 있을 것이다 이거거든.

 

또 어떤 사람은 산에서 어느 나무 등걸 밑에서 토끼를 한 마리 보았는데, 그 토끼를 놓쳐 버렸습니다. 그래가지고 그 나무 등걸에서 토끼를 발견했다가 놓쳤으니까, 항상 그 나무 등걸에 가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여기서 토끼가 달아났으니까 여기 가 있으면 그 토끼가 오려니.

 

그렇게 이야기하면 여러분들은 칼을 잃어버리고 뱃전에다가 표를 한 사람이나, 토끼를 놓치고서 나무 등걸 옆에서 토끼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을 퍽 어리석고 바보같은 사람이라고 생각을 하시겠지만, ‘부처님께서 별을 보고 깨달으셨으니까 행여나 나도 납월팔일 날 새벽에 하늘에 뜬 그 별을 보면 혹 깨달을란가?’ 이리 생각하고 추운데 새벽에 나가 가지고 그 동쪽에 가장 크게 빛나는 별을 새벽부터 쳐다보고 있다면 어떻겠습니까?

 

그래서 전강 조실 스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별을 보고 깨달은 것이 아니라 바로 별을 보는 것이니라. 보는 놈이니라”(처음~21분43초)

 

 

 

 

(2)------------------

 

깨달음이 별로부터 오겠습니까?

 

저 먼산에 연기가 나는 것을 보면 ‘거기에 불이 났구나’ 뻘건 불은 보이지 않지만 하얀 연기만 일어난 것만 보고도 ‘아! 저기에 벌써 불이 났구나’ 한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또 담 밖에 담 너머로 뿔만 지나간 것을 보아도 ‘아! 저 담 밖에 소가 지나갔구나’ 한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소 몸뚱이는 담에 가리어서 보이지 않고 뿔 끄터리만 보여도 담 밖에 소 가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말이여.

 

영리한 사람은 척! 연기만 보고 불인 줄 알고, 뿔만 보고도 소인 줄 알아.

 

어리석은 사람은 연기를 보고 불인 줄을 모르고, 그놈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저것이 무엇인가? 뿔 끄터리를 보고 벌써 소인 줄 알아야 할 텐데, 저것이 뾰족한 것이 무엇인가? 저것이 말인가? 개인가? 사람인가? 지게인가? 이러쿵저러쿵 따진다 말이여.

깨달음이라 하는 것은 사량분별(思量分別)로 따져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여. 척! 보는 것이지 아는 것이 아니다.

 

용화선원에서는 납월팔일 용맹정진을 그렇게 행사로써 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개인 개인이 각자 자기의 신심과 분 따라서 7일 동안을 다른 때보다는 좀더 마음과 몸을 가다듬고 가행정진(加行精進)을 하셨으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하기는 어찌하여 반드시 납월팔일뿐이리오? 결제(結制)한 날부터서 오늘날까지 하루 하루를 바로 용맹정진 가행정진으로 그렇게 정진을 해 오고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날마다 용맹정진이요, 날마다 가행정진인데, 특별히 의식적으로 납월팔일을 기해서 그런 의식적인 행사로써 안 했을 뿐인 것입니다.

 

정진을 열심히 하다 보면 앉아서나 서서나, 밥을 먹을 때나, 화장실을 갈 때나, 세면장에를 가거나, 소지를 하거나, 빨래를 하거나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일체처 일체시에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해서 화두가 순일무잡(純一無雜) 하게 되어.

그러면 걸어가되 가는 중도 모르고, 앉았으되 내가 앉았다는 생각도 없고, 밥을 먹되 밥맛도 모르고, 반찬을 먹되 짠지 싱거운 줄도 모르고, 시간이 한 시간이 지나갔는지 반 시간이 지나갔는지, 오늘이 몇월 며칠인지 시간 날짜 가는 줄도 모르고, 마침내는 이 몸뚱이가 이 세상에 있는 것도 몰라. 다맛 의단이 독로해서 순일무잡 해.

 

정진을 애써서 한 사람이면 다 그러한 고비에 이르른 것입니다. 그러한 고비에 이르렀을 때에 항상 육근문두(六根門頭)에는 팔만사천(八萬四千) 마구니가 떠억 엿보고 있는 것입니다. 엿보고 있다가 한 생각만 삐끗 '딴생각[別念]'을 일으켰다 하면 바로 그 즈음을 타 가지고 들어오는 것입니다. 침입(侵入)해 들어와!

마치 호위병이, 간수나 수위가 성문을 지키고 있는데 잠깐 한눈을 팔거나, 그 자리를 잠깐 비우면 그 틈을 타서 도둑이나 적이 들어온 거와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그 순일무잡하고 성성적적(惺惺寂寂)한 그러한 경지에서 무슨 마음을 일으키던지 그 일으키는 마음에 따라서, 그 어떠한 마음을 내는가에 따라서 마구니가, 팔만사천 마구니 가운데에 어느 마구니가 침범해 들어와.

 

어떤 수좌는 저 남해에서 참! 정진을 애써서 하는데, 어떤 거룩하게 생긴 모습을 한 사람이 나와 가지고 설법을 하는데 장경(藏經), 경전에 있는 말씀과 똑같고, 경전에 있는 말씀보다도 더 한 걸음 나아간 그러한 심오한 그런 설법을 막 설한다 그말이여.

그리고 나서 ‘네가 정말 견성성불 하려면은 네 이마를 이 기둥에다가 부딪쳐라’ 막! 그냥 그 법문 끝에 막 그렇게 강요를 하니까 거기에 따르지 아니할 수가 없어서 막 기둥에다가 머리빡을 들이받아 가지고 유혈이 낭자해.

 

그러다가 또 어느 날에는 ‘네가 참으로 견성성불 하려면은 네 고추를 끊어 버려라. 그놈 때문에 무량겁을 두고 생사윤회를 하고 도를 이루지 못했는데 금생이라도 네가 결정코 도업을 성취하려면 고추를 잘라 버려라’

그 법문을 설하고 나서 막 그것을 짜르라고 하니까 그 말을 안 들을 수가 없어. 그 법문에 감동이 되어 가지고 있고, 도업 성취할 그 생각밖에 없기 때문에 그 말을 듣고 안 끊을 수가 없어서 고추를 잘라 버렸어. 유혈이 낭자해 가지고 참 어렵게 수습을 했다 그말이여.

 

이 정진을 애써서 하다 보면 특히 혼자 저 섬이나, 깊은 산중이나, 토굴에 들어가서 혼자 공부하다가 흔히 이런 경계(境界)가 나타나는 거여.

그래서 옛날부터 이 공부는 선지식(善知識) 밑에서 좋은 도반(道伴)들과 같이 정진을 해야지, 선지식이 없는 곳에 또 좋은 도반이 없는 곳에 혼자 가서, 아직 득력(得力)을 하지 못한 분상(分上)에 혼자 가서 한다는 것은 항상 이런 위험성이 수반(隨伴)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것을 모다 경계(警戒)를 했습니다.

 

대중처소(大衆處所)에 살면 모두 대중(大衆)의 규칙을 따라야 하고 또 여러 다른 대중을 위해서 항상 조심해야 하고 신경을 써야 하고, 그러니 자기의 성질에는 안 맞아도 대중의 뜻을 따라야 하고, 대중을 조심해야 하니까—자기 혼자 있으면 그러한 공연히 신경 쓰고 그럴 것이 없이 마음껏 잠도 안 자고 공부하려면 공부하고, 밥도 그저 먹고 싶으면 먹고 안 먹고 싶으면 안 먹고, 그저 뭐 정진도 4시간이고 5시간이고 꼼짝 않고 하려면 하고, 잠도 안 자고 하려면 하고, 마음껏 할 수가 있겠다.

그러니 대중처소에서 하니까 그런 것을 마음대로 못하고, 더 좀 공부하고 싶어도 시간되면 자야 하고 또 조금 늦게 일어나고 싶어도 시간 되면 일어나야 하고, 밥도 먹기 싫어도 대중과 같이 발우공양(鉢盂供養)을 해야 하고, 그러한 폐단을 피해서 토굴(土窟)에 들어가서 실컷 좀 공부하기 위해서 토굴을 찾고 토굴을 마련하고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마는.

 

공부에 득력을 하지 아니한 사람이 토굴에 들어가서 하다 보면 까딱하면은—참 그 정진을 애써서 계행을 철저히 지키면서 열심히 정진하다 보면 삐끗하면 이상한 경계가 나타나. 관세음보살이 나타나기도 하고, 뭐 부처님이라 해 가지고 나타나기도 하고. 그래가지고 아까 저 남해에 가서 공부하던 그 수좌처럼 그러한 경계가 나타나기도 하고, 때로는 능엄경(楞嚴經) 50상(相) 변마장(辨魔障)에 있는 그러한 경계가 나타날 수도 있다 그말이여.

이러할 때 좋은 도반이 옆에 있거나 선지식이 있으면 몰라도, 그렇지 않으면 백이면 백 다 그러한 마(魔)에 섭(攝)하게 되고, 사견(邪見)에 떨어지게 되고, 까딱하면 정신이상(精神異常)에까지 걸려서 도저히 수습할 수 없는 단계에까지 이르를 수가 있는 것이여.

 

그런데 그 순일무잡한 경계에서 행여나 빨리 깨닫기를 바란다든지, 누가 와서 자기를 깨닫게 해 주기를 바란다든지 또는 어떠한 조사의 공안을 가지고 이리저리 분별하고, 분석하고, 따져서 복탁(卜度)을 한다든지 또는 무슨 신통이 나기를 바란다던지, 그러한 화두(話頭)에 대한 의단(疑團) 이외의 어떠한 생각도 여기에 이르러서는 다 마구니를 불러들일 틈이 되는 것이다. 이 말씀입니다.

 

과거에 부처님께서는 별을 보고 확철대오를 하셨고, 또 어떤 도인은 복숭화 꽃이 활짝 피어 있는 것을 보고 깨닫기도 하고, 또 어떤 분은 비로 땅을 쓸다가 돌이 와서 부딪치는 소리를 듣고 깨닫기도 하고, 또 어떤 도인은 발을 걷어 올리다가 깨닫기도 하고, 또 어떤 분은 시장에서 장꾼들이 싸우는 소리를 듣고 깨닫기도 했다 그말이여.

어찌 하필 부처님처럼 별에 국한된 것이 아니여. 삼라만상(森羅萬象) 두두물물(頭頭物物)이 다 비로자나 법신(法身)의 체(體)고, 부는 바람 소리, 흐르는 물소리, 개 짖는 소리, 차 지나가는 소리, 일체가 다 비로자나(毘盧遮那) 법신불(法身佛)의 설법(說法)이여.

 

그러니 무엇을 볼 때나, 무엇을 들을 때나 일체처 일체시, 두두물물 삼라만상이 다 우리가 자아를 깨달을 수 있는 때요, 곳이다 그말이여. 언제 어디서 무엇을 보다가, 무엇을 듣다가 깨달을는지 그것은 알 수가 없어.

그래서 어떠한 중대한 뉴스를 방송을 한다 할 때, 시간을 잘 모를 때에는 항상 다이얼을 맞춰서 딱 놔두고 기다리듯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깨달을 줄을 모르기 때문에 항상 우리는 화두를 의단이 독로하도록 잡드리해 나가야 한다 그말이여.

 

의단이 독로해서 순일무잡한 경지로 나아가야 그 언젠가 탁! 의단을 타파(打破)하게 되는 것이지, 화두를 놓쳐 버리고 사량분별에 떨어진다던지, 눈으로 무엇을 보는 데에 끄달린다든지, 귀로 무엇을 듣는데 끄달리고 있는 한은 그러한 경지에서는 깨달음을 얻을 수가 없는 거여.

그래서 항상 화두를 잡드리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고, 우리가 해야 할 정진이여. 경전도 볼 것이 아니고, 어록도 볼 것이 아니고, 일체처 일체시가 행주좌와 어묵동정 사위의(四威儀)에서 화두만 성성적적(惺惺寂寂) 하게 잡드리해 갈 뿐이여. 밥을 먹을 때도 그렇고, 똥을 눌 때도 그렇고, 오줌을 눌 때도 그러고, 앉아서도 그러고, 서서도 그러고.

 

이렇게 잡드리해 가지고 안 되는 법이 없어.

고조사(古祖師)들이 ‘그렇게 잡드리해 가지고 안 된다면 내가 너희들을 대신해서 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이렇게 아주...

 

부처님께서는 ‘무엇 무엇이 안 하면 내가 어쩌리라’고 함부로 그러한 막담을 짓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고인(古人)네는 우리 후인(後人)들을 위해서, 그렇게도 무서운 그러한 맹세를 우리를 위해서 하신 것입니다.(21분46초~41분48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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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600 개가 넘는 ‘(참선) 법문’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 있습니다.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600 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정진(精進) 수행2020. 11. 30. 11:13

§((558)) (게송)화종목출환소목~ / 도하지(道下地), 도(道) 아래에서 피난을 해라 / 탐진치(貪瞋癡)로 인해 일체 재앙이 거기서 다 일어난다 / 심원사 설화(앉은뱅이와 장님) / 자기의 본성(本性)을 닦는 공부를 하면 훌륭한, 행복한, 보람 있는 인생을 살 수가 있다 / 자녀들에게 바르게 사는 법, 정법(正法)을 가르켜야.

 

도하지(道下地), 도(道)라고 하는 것은 진리와 내가 하나가 되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내 마음속에 참부처를 찾는 거여. 그럼으로써 진리와 내가 하나가 되어야 거기에서 참다운 행복이 거기에 있는 것이고, 영원한 행복이 거기에 있는 것인데, 중생들은 말세가 될수록 탐심과 진심과 어리석음은 점점 더 깊어지고 더 치성해진다 그말이여. 거기에서 일체 재앙이 거기서 다 일어나는 것이다.

 

「바른 마음으로 망령된 것을 관한다[正心觀妄]」고 하는 것은 어떠한 경계(境界)를 당하거나 그때 그 경계에 따라가지 말고 탁! 그놈에 즉(卽)해서 마음을 돌이켜서 화두를 드는 게, 그것이 바른 마음으로 망령된 것을 관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은 그것이 바로 지혜가 되는 거여.

 

그러니 이 화두 하나가 신심(信心)과 분심(憤心)과 의심(疑心), 이 삼요(三要)가 갖추어짐으로 해서 똥만 가득찬 이 중생이 확철대오(廓徹大悟)해서 생사 없는 해탈도를 증득하니 이것이 부사의(不思議) 도리가 아니고 무엇이냐.

 

**송담스님(No.558)—1995년 11월 일요법회 및 추계산철해제(95.11.05) (용558)

 

(1) 약 20분.

 

(2) 약 11분.

 

(1)--------------

 

화종목출환소목(火從木出還燒木)하고  지인정기각제정(智因情起却除情)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정심관망명위지(正心觀妄名爲智)하고  지능입각부사의(智能入覺不思議)니라

나무~아미타불~

 

아까 가산난리는 집안에 있어야 피난을 하고, 임진왜란 때에는 솔 아래 있어야 피난을 한다. '송하지(松下地)다' 그런데.

중국에서 이여송(李如松)이가 와 가지고 우리나라를 도우러 왔는데, 그 이여송이 부대 가까이 있는 사람들은 왜적이 함부로 달라들지 못해서 피난을 했고, 사명대사(四溟大師)의 호(號)가 송운대사(松雲大師)인데, 사명대사가 계신 근처에 있는 사람은 피난을 했어. 그래서 송하지가 그렇게 해서 맞았고.

 

앞으로 되야지, 도하지(道下地)는—명예나 권리나 재산이나 그러한 것을 탐착하면 피난을 못해. 이래 죽고 저래 죽고 다 죽어.

6.25동란 때에도 명예가 권리가 높고, 재산이 많고 한 사람들은—정말 미리 부산이나 외국으로 도망간 사람은 살았을는지 모르지만, 대체적으로 돈 많은 사람들이, 재산 많은 사람들은 '지주다. 반동분자다'해 가지고 굉장히 곤욕을 당했는데, 현재나 미래도 명예 · 권리 · 재산 많은 것이 사실은 그게 썩 좋은 것이 아니어.

 

인간이 살아가는 데 그것이 없어서도 못 살지마는 그것이 있어야 그래도 기를 펴고 살고, 어깨에다가 힘을 주고 살고 또 사람 살 맛도 있고, 사람 구실도 하고 사실 그러기는 하나, 대부분 사람들은 필요 이상에 욕심에 한(限)이 없어 가지고 더 높게 더 많이 탐욕을 낸다 그말이여.

그것이 결국은 참다운 행복과 연관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하루도 편안하게 잠도 못 자고, 편안하게 밥도 못 먹고, 온갖 근심,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많은 고통과 고민 속에서 결국은 행복한 삶을 살지 못하고, 살아서 쇠고랑 차거나 죽어서 지옥에 가기가 십상팔구인데.

 

도하지(道下地), 도(道)라고 하는 것은 진리와 내가 하나가 되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내 마음속에 참부처를 찾는 거여. 그럼으로써 진리와 내가 하나가 되어야 거기에서 참다운 행복이 거기에 있는 것이고, 영원한 행복이 거기에 있는 것인데,

중생들은 다생겁래(多生劫來)로 오면서 익힌 습기(習氣)로 말미암아서 탐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자기 마음대로 안 되면 진심(瞋心) 내는 것이 아주 습관이 들고, 한 번 두 번 경험을 해 봐서 '아! 탐욕과 진심이라는 게 나를 불행하게 만든 것이고, 나를 지옥으로 끌고가는 것이로구나' 그렇게 알아차리고 그 탐심과 진심을 돌이켜서 내 마음 닦는, 자기의 분(分)을 알아서 자기 마음 닦는 쪽으로 마음을 돌려야 할 텐데, 그러지 못하는 것을 '어리석다' 그러는 거여.

 

탐진치(貪瞋癡)라고 하는 것을 삼독심(三毒心)이라 그러고, 그 탐진치 삼독심을 고치면은 그것이 삼학도(三學道)가 되는 건데, 말세가 될수록 탐심과 진심과 어리석음은 점점 더 깊어지고 더 치성해진다 그말이여. 거기에서 일체 재앙이 거기서 다 일어나는 것이다 그말이여.

 

지금 여러분도 뉴스를 통해서 잘 아시겠지만, 전(前) 대통령들이 모다 지나친 부정한 재산을 많이 모아가지고 저렇게 되었으니, 아무리 생각해 봐도 해결할 길이 없어.

그렇다고 해서 자살해 버릴 수도 없고, 도망갈 수도 없고, 이리저리 버티고 거짓말해 봤자 그것이 통하는 것이 아니여. 본인도 그렇고, 가족도 그렇고, 정부도 덮어둘 수도 없고, 어떻게 해 볼 수가 없는 것이다.

 

이 국민들은 여기서 저기서 모다 데모를 하고, '잡아넣으라' 그러고, '엄벌에 처하라' 그러고, '뭘 밝히라'고 야단인데, 이게 죽인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도 아니고, 감옥에 처넣는, 법적으로는 당연히 감옥에 넣어야 하고, 엄벌에 처한다 하지마는 외국에서 우리나라를 볼 때 어떻게 볼 것이냐 그말이여.

지존파니 무엇이니, 그러한 몇 사람이 범죄를 저지른 것과는 본질이 달러. 국민을 대표한 상징적인 대통령이 이렇게 했으니, 그 사람 한 사람만 매도(罵倒)한다고 해서 이것이 해결될 문제가 아니고, 우리 국민 전체, 우리 국가 민족의 전체의 체면이 달려 있다 그말이여.

 

우리나라가 좋은 점도 많은데 좋은 점으로 세계에 이름이 나야지, 대통령이 저런—물론 미국도 워터게이트(Watergate사건)니 뭐 해가지고 닉슨이 대통령에서 쫓겨나고, 일본도 다나까 수상이 뇌물 관계로 해서 징역도 살고 그런 일도 있지만, 그것이 강 건너 불로 우리는 생각했다 그말이여.

그런데 우리나라 대통령이, 우리 손으로 뽑았던 대통령이 이렇게 되었으니 이걸 욕할 수도 없고, 비난할 수도 없고, 매도할 수도 없고. 이게 탐진치 삼독심 때문에 이것이 이렇게 된 거여!

 

 

옛날에 저 강원도 철원, 보개산 심원사라고 하는 절이 있는데, 내가 이 이야기를 지금부터 10여 년 전에도 이 문제에 대해서 말씀을 한 바가 있는데, 그 절에서는 종(鐘)이 없고 또 절이 퇴락(頹落)해서 중수(重修)도 해야겠고, 그래서 인자 그 주지 덕문대사라고 하는 스님이 화주승(化主僧)이 나와 가지고 여기저기 다니면서 종 시주(施主)도 받고, 법당 모다 중수 시주금도 받고 그러는데.

그 한 마을에 한 사람은 앉은뱅이고, 한 사람은 눈이 안 보이는 장님이고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다 살림도 하고, 일도 하고, 돈도 벌고 해서 다 분 따라서 시주를 모다 하는데, 그 앉은뱅이가 무슨 수로 돈을 벌며, 일도 못하고, 눈이 어두운 콱 아무것도 안 보이는 장님이 무슨 수로 무슨 돈이 있어서 시주를 할 것이냐 그말이여.

 

그래서 두 친구가 서로 만나서 참 한탄을 하고 그러다가 한 꾀를 하나를 냈어.

"자네는 다리는 못 쓰지마는 눈이 밝고, 나는 눈은 없지마는 다리는 성하니까, 다리가 성한 내가 자네를 업고 다니면서 쇠붙이, 무엇이고 필요할 만한 그런 것을 줏어 모아가지고 그걸 많이 모아다가 절에다가 갖다가 주면 그것으로 종을 만드는 데 그것을 보태서 쓰면 되지 않겠는가?"

"대체, 그러면 그렇게 하세"

 

그래가지고 날마다 온 마을을 다니고 이웃 마을을 다니고 앉은뱅이를 업고 장님이—장님, 눈은 안 보이지마는 앉은뱅이가 '이리 가, 저리 가' 이렇게 해서 업혀 다니면서 그래가지고 골짝 골짜구니 다니면서 고철을 줏어 모았어.

그래가지고 절에다 갖다 주고 해서 3년 동안을 그렇게 해서 많은 고철, 쇠붙이 뭐 숟가락몽둥이, 젓가락 부러진 거, 닥치는 대로 줏어서 다 갖다가 주었어.

 

그래가지고 드디어 종을 지어 붓고 또 법당도 중수를 하고 하는데, 그래서 인자 마지막 그 회향 타종식(打鐘式), 준공식과 타종식을 겸해서 회향(廻向) 법회를 하는데, 그래서 인자 자기네들도 장님이 앉은뱅이를 업고 가는데 그 절에 오색광명(五色光明)이 일어나는데 그 광명 속에 찬란한 불보살(佛菩薩)이 탁! 나타나거든.

 

그 앉은뱅이가 업혀서 보니까, "야! 저 부처님 봐라! 부처님 봐! 부처님!"

그러니까 "에이, 무슨 부처님이 있어?" 아, 그러면서 눈을 뚝! 떴다 그말이여. 심봉사가 그 심청(沈淸)이 공덕으로 눈 뜨듯이 눈을 뚝! 떴어.

그게 심원사에 내려오는 역사가 지금도 내려오는데, 그래서 '그 큰 빛이 거기서 났다'해서 '대광(大光)'이라고 하는 마을이 지금도 있고, 또 '부처님을 봤다'해서 불견령(佛見嶺)—'부처 불(佛)’자, '볼 견(見)’자, '마루 령(嶺)’자, 불견령이 지금도 그 철원에 가면 있어.

 

이 심원사 설화를 내가 말씀을 한 까닭은 우리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생긴 것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고, 소질도 다릅니다. 그러나 마음과 마음을 합치면 어떠한 어려운 일이라도 다 이룰 수가 있고, 좋은 여건을 가지고 태어났지마는 서로서로 마음을 합하지 아니하면은 되는 일이 없는 것입니다.

 

지금 머지않아서 대학입시 문제로 또 학부모 여러분들이 가슴을 조이는 시기가 돌아옵니다마는 일류 대학 그것만 찾을 게 아니라, 자기의 아들과 딸이 어떠한 방면에 소질이 있는가? 어떤 방면으로 가면은 그 소질을 살려서 기쁜 마음으로, 보람 있는 마음으로 공부를 할 수가 있는가? 그렇게 해서 과를 선택하고 학교를 선택을 해야지, 덮어놓고 일류 대학만 가려고 하는 생각은 옳지 못한 생각입니다.

 

앉은뱅이는 눈이 보이니까 그 눈을 활용을 하고, 장님은 다리가 성하니까 그 다리를 활용해서, 앉은뱅이와 장님이 두 사람이 합해서 한 사람 구실을 하니까 그 어려운 종 불사(佛事)를 성취를 해서 그 종을 떵떵 쳐가지고 그 종소리를 들은 모든 중생이 고통을 면하고, 보리심(菩提心)을 발하고, 그 종소리가 지옥에까지 들리면은 지옥에 고(苦) 받는 중생들이 그 고통을 쉬는 것인데, 어떻게 앉은뱅이 혼자 그런 일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장님 혼자 힘으로 그 종을 만들 수가 있겠습니까? 그 불구자 두 사람이 합치니까 그런 훌륭한 불사를 성취했다 그말이여.

 

그래서 옛날에는 법과 대학만 가야 제일이고, 판검사만 되어야 제일 좋다고 그렇게 사람들이 생각을 했었습니다. 법과, 별로 그렇게 좋은 것이—그것도 가야 하기는 하겠지만, 별로 그게 좋은 것이 아닙니다.

무엇이고 자기의 소질, 자기의 성격, 자기에게 맞는 과를 선택하면 어느 과나 다 좋은 것입니다. 대학도 서울 대학만 제일 좋은 것도 아니고, 서울 대학 아니라도 사립 대학도 좋고, 지방 대학도 좋은 것입니다. 자기의 거시기에 맞춰서 가면 다 좋은 것입니다.

어느 과를 가든지 불법을 믿고 자기의 본성(本性)을 찾고, 본성을 닦는 공부를 하면 어느 과를 가더라도 훌륭한, 행복한, 보람 있는 인생을 살 수가 있는 것이거든.

 

두 사람이 마음을 합하지 아니하면 끝내 죽을 때까지 불구자에 그치는 것입니다. 무슨 일을 하겠습니까? 불구자가. 그러나 두 사람이 마음을 합한 데에서 성한 사람도 이루지 못한 위대한 불사(佛事)를 성취한 거여.

 

그래서 우리는 지금 국가적이고 민족적인 이러한 수치스러운 일을 당해서 '때려죽이라'고 고함을 친다고 해서 그거 좋은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여기서 마음에 깨달은 바가 있어야 합니다.

앞으로 이 자리에 모이신 분의 가족, 자녀, 손자손녀 가운데 대통령이 나올 수도 있고, 장관이 나올 수도 있고, 수많은 인재가 나올 수가 있습니다. 그 자녀들에게, 후손들에게 재산을 많이 물려주려고 할 것이 없습니다. 바르게 사는 법, 정법(正法)을 믿는 법을 가르켜야 하는 것입니다.

 

마음만 바로잡고 올바르게 사는 길만 알면 부자가 되어도 좋고 높은 벼슬해도 좋지만, 마음을 바르게 쓰고 정법을 믿는 사람이 아니면 돈을 많이 가지면은 그 돈은 자기를 지옥으로 끌고가는 올가미에 지나지 못한 것이고, 높은 권리와 지위를 줘 놓으면 그것을 악용해 가지고 죄를 지어서 결국은 살아서 쇠고랑 차고 죽어서 지옥에 밖에는 갈 길이 없다 그말이여.(17분15초~36분32초)

 

 

 

 

(2)------------------

 

화종목출환소목(火從木出還燒木)이라. 불은 나무에서 나와 가지고 결국은 나무를 다 태우는 거여.

지인정기각제정(智因情起却除情)이다. 지혜는 정(情)으로부터 나와. 눈으로 볼 줄 알고, 들을 줄 알고, 성낼 줄도 알고, 기뻐할 줄도 알고, 배고프면 밥 먹을 줄도 알고 하는 우리의 감정에서, 그놈을 여의고 지혜가 나온 것이 아니라 그놈을 돌이키면, 그놈을 돌이켜서 나의 본심을 찾으면은 거기서 지혜를 얻는 거여.

그래가지고 그 지혜는 자기의 번뇌와 망상, 모든 정(情)을 갖다가 제(除)할 수가 있는 거여. 참 이게 간단한 말이지만 바르게 공부해 나가는 방법이 이 속에 다 들어 있어.

 

정심관망명위지(正心觀妄名爲智), 바른 마음, 바른 마음으로 망령(妄靈)된 것을 관(觀)하면은—망령된 거라는 게, 중생은 눈으로 봤다 하면은 망견이요, 듣고 보고 무슨 생각이 일어나고 행동하는 것이 전부가 다 망령된 번뇌 망상이여!

부처님, 그 소중한 부처님 경전을 읽어도 중생의 망령된 생각으로 읽으면 그 주옥같은 부처님의 진리의 말씀이 전부 망상(妄想)이여, 그게 다. 백년을 두고 연구하고 따져봤자 망상이여.

 

향나무로 불상(佛像)을 조성(造成)을 하거나, 돼지를 조성을 하거나, 소를 조성을 해도 그 냄새를 맡아보면 향내가 풀풀 나지마는, 고약한 구리고 고린 그러한 물건으로 만들어 놓으면 아무리 거룩한 불상을 만들어놔도 맡아보면 구릉내, 고린내가 나는 거여.

그래서 정법을 믿고 최상승법(最上乘法)에 의지해서 공부하는 사람과 정법을 믿지 않는 사람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여. 똑같은 짓을 하고, 같은 밥 먹고 살아도 다른 거야!

 

여러분의, 현재 여러분들도 포함해서 여러분들의 자녀를 잘 가르키려면은, 바르게 사는 길을 가르키려면은 여러분 자신들이 입으로 "정법을 믿어라, 최상승법을 믿어라, 절에 가서 법문을 들어라" 강요한다고 해서—물론 부모 말씀을 듣고 학생 법회에도 나오고, 그런 착하고 효심이 있는 자녀들도 있습니다마는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습니다. 문제는 그렇지 못한 사람이 문제거든.

강요해서 되는 일이 아니고, 부모님이 열심히 법문도 듣고, 그 법에 의해서 말과 행동과 마음가짐을 지혜와 자비로써 살아가도록 모범을 보이셔야 합니다. 그러면 강요하지 않아도 저절로 자녀들이 따라올 것입니다.

 

「바른 마음으로 망령된 것을 관한다[正心觀妄]」고 하는 것은 어떠한 경계(境界)를 당하거나 그때 그 경계에 따라가지 말고 탁! 그놈에 즉(卽)해서 마음을 돌이켜서 화두를 드는 게, 그것이 바른 마음으로 망령된 것을 관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은 그것이 바로 지혜가 되는 거여.

그렇게 한 번, 두 번, 하루, 이틀, 한 달 열흘, 일 년, 십 년 해 가다보면 그것이 습관이 되어서 하려고 안 해도 저절로 화두가 성성(惺惺)하게 현전(現前)을 하게 되는 거여.

 

지능입각부사의(智能入覺不思議)여. 그래서 그 지혜가 깨달음으로 나를 끌고가는 거여.

그러니 이 화두 하나가 신심(信心)과 분심(憤心)과 그 철저한 화두에 대한 의심(疑心), 이 삼요(三要)가 갖추어짐으로 해서 똥만 가득찬 이 중생이 확철대오(廓徹大悟)해서 생사 없는 해탈도를 증득하니 이것이 부사의(不思議) 도리가 아니고 무엇이냐.

 

 

탐착몽중일립미(貪着夢中一粒米)타가  실각금대만겁량(失却金臺萬劫糧)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무상찰나실난측(無常刹那實難測)한데  호불맹성급회두(胡不猛省急回頭)오

나무~아미타불~

 

탐착몽중일립미(貪着夢中一粒米)타가, 꿈 가운데에 한 알갱이 쌀을 탐착하다가,

실각금대만겁량(失却金臺萬劫糧)이다. 금대, 저 천상의 금대(金臺)에 만겁 동안 먹을 수 있는 양식을 잃어버리게 된다. 그 잉어가 수십 년 내지, 백년을 커 가지고 머지않아서 용이 되어 갈 텐데, 밥티 하나가 낚시에 걸려서 앞에 와서 아른아른하니까 그놈 덜커덕 채 먹다가 낚시에 걸려서 죽게 되거든.

 

정법을 믿고 자기에게 주어진 소임을 열심히, 자기의 직업에 충실하고 열심히 하고 부정한 데에 마음을 쓰지 말고 열심히 하고서 정다운 월급을 받고, 그것을 검소하게 분 따라서 분상에 맞도록 검소하게 살면서 그저 열심히 참선하고 살면, 또 전생에 지은 복이 있으면 그렇게 살아도 차츰 부자가 되는 것이고, 아무리 부정한 짓해서 그 사기 협잡하고 그래가지고 돈을 모아 봤자 그런다고 부자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바르지 못한 방법으로 재산을 일확천금하고 부정한 짓해서 모아 봤자, 자식이 그 아버지가 돈 모이는 것을 환히 보거든. 어떻게 해서 그 돈을 모이는가 봐가지고, 그렇게 모인 돈은 자식이 아껴 써 주지도 않고 마구잡이 막 갖다 쓸라고 그러거든.

'자동차를 사 내라, 무엇을 사 내라, 무엇을 사 내라'하고 막 쓰고, 안 주면은 막 부모한테 불효하고 소리소리 지르고, 가출하고, 온갖 못된 짓 다하고, 그놈이 커서 장가보내고 살림 모아주면 탁! 때려먹고 쇠고랑 차. 절대로 부정한 방법으로 돈을 모아서 자손한테 물려줄 생각하지 마세요.

 

무상찰나(無常刹那)라 실난측(實難測)이여. 우리의 목숨은 젊다고 안 죽는 것도 아니고, 언제 죽을 줄 몰라. 눈 한번 감았다 뜨지 못하고, 숨 한번 내쉬었다 들어마시지 못하면 내세(來世)여.

호불맹성급회두(胡不猛省急回頭)오. 어찌 뼈아프게 반성을 해서 자기의 마음을 돌리지를 못하느냐 이거여.(36분37초~47분16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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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600 개가 넘는 ‘(참선) 법문’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 있습니다.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600 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정진(精進) 수행2020. 11. 15. 10:30

§(세등31) 나는 얼마만큼 철저하게 정진(精進)을 했는가? / 염념불망(念念不忘), 생각 생각 잊지 않고 간절하게 화두를 거각하면서 신심 · 분심 · 의단이 한목 독로(獨露)해야 이것이 바로 용맹정진.

 

과거에 많은 선지식(善知識)들이 참 일생 동안을 그렇게 가행정진(加行精進) · 용맹정진(勇猛精進), 애써서 정진한 스님네도 마지막 열반(涅槃)하실 때에는 한결같이 '내가 일생 동안 실컷 정진을 못하고 가는 것이 참 한스럽다'고 이러한 말씀을 남기시고 열반에 드신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송담스님(세등선원No.31)—경신년 동안거 반결제 법어(80.11.22) (세등31)

 

약 8분.

 

오늘이 동짓달 그믐날 가져야 할 법회를 땡겨서 오늘 스무 이튿날 반살림 법회를 갖게 되는데, 벌써 경신년 삼동안거(三冬安居)가 벌써 절반이라고 하는 세월이 지나갔다.

하루하루, 그 1분 1분이 지내서 한 시간이 지내가고, 한 시간 한 시간이 지내서 하루해가 지내고, 하루하루가 지내서 한 달이 지내고, 그렇게 해서 석 달 90일 동안이라고 하는 기간이 길다고 하면 길지만, 잠깐 새다 그말이여.

 

벌써 절반이 지내갔는데 과연 지나간 반살림 동안 얼마만큼 철저하게 정진(精進)을 했는가? 오늘 한번 각자 반성을 해 볼 것이며, 과연 지난 반살림 동안을 알뜰하게 철저하게 정진을 했나 못했나?

철저하게 정진을 한 사람은 앞으로 남은 반살림을 더욱 철저하게 정진을 할 것이고, 반성을 해 본 결과 '아무래도 내가 실다웁게 정진을 못했다, 알차게 공부를 못했다'고 반성이 된 사람은 그 부족한 점을 돌이켜서 정말 철저히 공부를 해야 할 것입니다.

 

과거에 많은 선지식(善知識)들이 참 일생 동안을 그렇게 가행정진(加行精進) · 용맹정진(勇猛精進), 애써서 정진한 스님네도 마지막 열반(涅槃)하실 때에는 한결같이 '내가 일생 동안 실컷 정진을 못하고 가는 것이 참 한스럽다'고 이러한 말씀을 남기시고 열반에 드신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듣자하니 이 세등선원은 한철 한철, 철을 거듭할수록 좋은 수좌(首座) 스님네들이 모다 모여서 그 정진을 애써서 정진을 한단 말을 항시 듣고 흐뭇하게 생각한 바지만, 과연 이 정진이라 하는 것이 어떻게 하는 것이 정말 알뜰하게 공부를 하는 것인가?

 

앞으로 한 열흘이 지나면 납월팔일(臘月八日) 용맹, 가행정진 하는 때가 오는데, 원래 인천 용화사에서는 전강 조실 스님 생존 시부터 납월팔일 용맹정진을 하지를 못하게 하시고, 평상시와 같이 사분정진(四分精進)으로 정진을 하되 방선(放禪) 시간이라 하드라도 잡담을 하지 말고,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간에 항상 일여하게 알뜰하게 정진을 하도록 이렇게 권장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조실 스님 열반하신 뒤에도 용화사에서는 가행정진이나 용맹정진을 하지를 않고 있습니다마는, 여기 세등선원은 그전에부터 11시나 12시, 평상시보단 두서너 시간 늦게 자고 또 3시에 일어나고, 일어나서 정진을 하되 입방선(入放禪) 없이 죽 묵언하고 정진을 하도록 이렇게 죽 해왔는데.

 

잠을 안 자고 옆구리를 땅에 대지 아니하고 그리고 앉아서만 배기는 것이 과연 그것이 가행정진이며, 용맹정진이냐? 또는 아주 무언(無言)을 하고, 오후불식(午後不食)을 하고, 일종(一種)을 하고 때로는 단식을 하고 그러한 것이 과연 용맹정진이냐?

 

잠을 안 자는 것이 용맹정진이라면 불면증(不眠症)이 걸린 사람은 참으로 용맹정진을 잘할 것이고, 옆구리를 땅에다 대지 아니한 것이 용맹정진이라면 앉은뱅이는 나면서부터서 용맹정진을 할 것이 아니냐?

말을 아니한 것이 용맹정진이라면 벙어리는 참으로 공부를 잘할 것이고, 밥을 한 끼니나 두 끼니를 굶는다든지 안 먹는 것이 용맹정진이라면 소화가 안되어서 밥을 못 먹는 사람은 참으로 공부를 잘하게 될 것이 아니냐?

그래서 잠을 안 자고, 옆구리를 땅에 안 대고, 밥을 안 먹고, 말을 안 한 것이 절대로 그것이 그것만으로 용맹정진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여.

 

먹을 때 먹고 잠을 잘 때는 자되,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항시 간절한 마음으로 일여(一如)하게 본참화두를 들고 거각(擧却)을 하고, 염념불망(念念不忘), 생각 생각이 잊지 않고 간절하게 화두를 거각하면서 그 신심(信心)과 분심(憤心)과 의단(疑團)이 한목 독로(獨露)해야 이것이 바로 용맹정진이다.(16분39초~24분2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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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동안거(三冬安居) ; 삼동(三冬, 겨울철의 석 달)에 하는 동안거(冬安居, 음력 10월 15일부터 다음해 1월 15일까지)를 말한다.

*정진(精進) : [범] Vīrya  음을 따라 비리야(毘梨耶, 毘離耶) • 미리야(尾利也)라고도 쓴다. 보살이 수행하는 육 바라밀(六波羅蜜)의 하나.

순일하고 물들지 않는(純一無染) 마음으로 부지런히 닦아 줄기차게 나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닦는 생각(能)과 닦는 것(所)이 있어서는 안 된다. 함이 없이 하는 것이 정진이다.

 

[참고]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 (마명보살馬鳴菩薩 지음. 진제 삼장眞諦三藏 한역漢譯) '수행신심분(修行信心分)'

【論】 云何修行進門 所謂於諸善事 心不懈退 立志堅强 遠離怯弱 當念過去久遠已來 虛受一切身心大苦 無有利益 是故應勤修諸功德 自利利他 速離衆苦

 

정진문(進門)을 어떻게 수행하는가? 소위 모든 선(善)한 일에 대하여 마음으로 게으르거나 물러남이 없어서, 뜻한 바가 굳세고 강하여 겁약(怯弱)을 멀리 여의고, 마땅히 과거의 아주 오래된 이래로 헛되이 일체의 몸과 마음에 큰 고통을 받아 아무런 이익이 없었음을 생각하여야 한다. 이러한 고로 마땅히 모든 공덕을 부지런히 닦아 자리이타를 행하여 속히 모든 고통을 여의어야 한다.

 

復次若人雖修行信心 以從先世來多有重罪惡業障故 爲邪魔諸鬼之所惱亂 或爲世間事務種種牽纏 或爲病苦所惱 有如是等衆多障礙 是故應當勇猛精勤 晝夜六時 禮拜諸佛 誠心懺悔 勸請隨喜 迴向菩提 常不休廢 得免諸障 善根增長故

 

또한 어떤 사람이 비록 신심(信心)을 수행할지라도 선세(先世)로부터 중죄와 악업의 장애가 많이 있는 까닭에 삿된 마구니와 여러 귀신의 뇌란(惱亂)을 받기도 하며, 혹은 세간의 사무 때문에 이리저리 끄달리고 얽매여 끌려다니며 혹은 병고로 괴로움을 당하는 것이니,

이러한 여러 많은 장애들이 있는 까닭에 응당 용맹히 정근하여 주야로 여섯 번[六時] 모든 부처님께 예배하여, 성심(誠心)으로 참회하며, 법사에게 법문을 청하고[勸請] 다른 사람의 선행에 따라 기뻐하며[隨喜], 깨달음의 지혜[菩提]를 회향하기를 항상 쉬지 아니하면 모든 장애에서 벗어나고 선근(善根)이 더욱 증장하는 까닭이다.

*선지식(善知識) ; ①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좋은 지도자. 훌륭한 지도자. 바르게 이끄는 사람. ②좋은 벗. 마음의 벗. 선우(善友).

*가행정진(加行精進) ; 별도의 노력을 기울여서 하는 정진. 어떤 일정한 기간에 좌선(坐禪)의 시간을 늘리고, 수면도 매우 단축하며 정진하는 것.

*용맹정진(勇猛精進) ; 두려움을 모르며 기운차고 씩씩한 그리고 견고한 의지로 한순간도 불방일(不放逸)하는, 열심으로 노력하는 정진.

*열반(涅槃) ; ①타고 있는 불을 바람이 불어와 꺼 버리듯이, 타오르는 번뇌의 불꽃을 지혜로 꺼서 일체의 번뇌나 고뇌가 소멸된 상태. ‘니르바나(nirvāna)’의 음역어로, 불가(佛家)에서 흔히 수행에 의해 진리를 체득하여 미혹(迷惑)과 집착(執着)을 끊고 일체의 속박에서 해탈(解脫)한 최고의 경지를 이르는 말이다. ②스님의 죽음을 수행을 통해 해탈(解脫)에 이르게 됨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

*수좌(首座) ; ①선원(禪院)에서 좌선하는 스님. ②수행 기간이 길고 덕이 높아, 모임에서 맨 윗자리에 앉는 스님. ③선원에서 좌선하는 스님들을 지도하고 단속하는 스님.

*납월팔일(臘月八日) ; 납월(臘月)은 음력으로 한 해의 맨 마지막 달을 이르는 말. 음력 12월 8일.

석가모니가 35세의 12월 8일 중인도 마갈타국 니련선하(尼連禪河)가에 있는 보리수 아래에서 샛별[明星]이 뜰 무렵 별을 보고 불도(佛道)를 이루던 날. 부처님의 성도일(成道日). 납팔(臘八)이라고 줄여 쓰기도 하고, 성도회(成道會) · 성도절(成道節) · 성도재일(成道齋日) 등이라고도 한다.

이 석가모니의 성도를 기념하기 위해 선원에서는 초하루부터 팔일 새벽까지 밤낮으로 잠을 자지 않고 용맹정진(勇猛精進)을 한다.

*사분정진(四分精進) ; 참선이나 기도를 하루 네 번(새벽, 오전, 오후, 저녁)씩 시간을 정해 정진하는 것.

*방선(放禪) ; 좌선을 하거나 불경을 읽는 시간이 다 되어 공부하던 것을 쉬는 일. 몸을 쉬는 가운데서도 마음은 항상 본참화두를 들고 있어야 한다.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 사람이 일상적으로 하는 일체의 행위.

*오후불식(午後不食) ; 정오(正午), 낮 열두 시가 지나면 먹지 않는 것. 오전에만 걸식(乞食)으로 공양하도록 하고, 오후에는 씹을 수 있는 음식은 먹지 않는 것.

*일종(一種) ; 일종식(一種食). 하루에 한 끼만 먹는 것.

*본참화두(本參話頭) ; 본참공안(本參公案).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거각(擧却 들 거/어조사 각) ; 화두를 든다. ‘화두를 든다’ ‘화두를 거각한다’는 말은 자신의 본참화두를 들 때 알 수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그 알 수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觀照)하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 세등선원(No.09)—병진년 동안거 결제중 법어(76.12.26)에서.

화두를 먼저 이마로 의심을 하지 말고, 이 화두를—호흡하는데 배꼽 밑[丹田]에 숨을 들어마시면은 배가 볼록해지고 숨을 내쉬면은 배가 홀쪽해지는데, 그 배가 빵빵해졌다 홀쪽해졌다 하는 거기에다가 화두를 들고 ‘이뭣고~?’ ‘알 수 없는 생각’ 관(觀)하는 그것이 화두를 드는 것이여.

*염념불망(念念不忘) ; 생각 생각에 잊지 않음. 자꾸 생각이 나서 잊지 못함.

*신심(信心) : ①‘내가 바로 부처다’ 따라서 부처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요, 일체처 일체시에 언제나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공,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바로 이놈에 즉해서 화두를 거각(擧却)함으로써 거기에서 자성불(自性佛)을 철견을 해야 한다는 믿음.

②‘올바르게 열심히 참선을 하면 나도 깨달을 수 있다’는 믿음. 진리에 대한 확신.

③‘내가 바로 부처다’라는 믿음. 그러기 때문에 ‘끊어야 할 생사도 없고, 버려야 할 번뇌도 없다’고 하는 믿음.

④일체처 일체시에 자신의 본참공안(本參公案)으로 자가철주(自家鐵柱)를 세워 ‘이것 밖에는 내가 할 것이 없다! 오직 이것만이 내가 바로 살아가는 길이고 나의 생사 문제를 해결하는 길이고 이것만이 영원을 살아가는 길이다!’라고 하는 철저하고 확실한 믿음.

*분심(憤心, 忿心, 奮心 분하다·원통하다·성내다·힘쓰다·떨치다·분격하다) : 억울하고 원통하여 분한 마음.

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도인들은 진즉 확철대오를 해서 중생 제도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왜 여태까지 일대사를 해결 못하고 생사윤회를 하고 있는가. 내가 이래 가지고 어찌 방일하게 지낼 수 있겠는가. 속에서부터 넘쳐 흐르는 대분심이 있어야. 분심이 있어야 용기가 나는 것이다.

*의단(疑團 의심할 의/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의심(疑心) :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해 ‘알 수 없는 생각’에 콱 막히는 것.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이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수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이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또는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또는 ‘조주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바른 깨달음은 알 수 없는 의단, 알 수 없는 의심에 꽉 막힌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독로(獨露 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홀로[獨] 드러나다[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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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600 개가 넘는 ‘(참선) 법문’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 있습니다.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600 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정진(精進) 수행2020. 9. 23. 13:29

§((178)) 참선은 좌(坐)에 있는 것이 아니지만 또한 좌를 여의어서도 안된다 / (게송)몽리명명유육추~ / 환몽(幻夢) / 활구참선법은 교외별전(敎外別傳) / 불방일(不放逸)이 용맹정진 / 대승계, 최상승계 / (게송)진로형탈사비상~.

 

진짜 정진을 할 줄 아는 사람의 참다운 용맹정진이라 하는 것은 불방일(不放逸)이라 하는 글자 석 자를 벗어나지를 않습니다.

 

모든 불법의 근본인 '한 생각'을 돌이켜서 활구참선을 여법(如法)하게 해 나가면, 계(戒)의 지키는 상(相)이 없이 저절로 모든 계가 지켜져 버리면 이것을 바로 최상승계라 하는 것입니다.

 

이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은 교외별전(敎外別傳)이여. 팔만대장경을 완전히 한데 뭉쳐서 삶아서, 거기에 아주 그걸 농축을 해 가지고 뽑아낸 거여.

 

**송담스님(No.178)—1982년(임술년) 하안거 해제(82.08.04) (용178)

 

(1) 약 19분.

 

(2) 약 21분.

 

(1)------------------

 

'오늘 해제를 하면 걸망을 짊어지고 어디로 갈 것인가? 오대산을 가느냐, 설악산을 가느냐 또는 남해를 가느냐?' 이렇게 걸망 귀신이, 벌써 반살림 지나면 걸망 귀신이 들썩들썩한다고 옛날부터 그런 말이 전해 내려오고.

겨울철에는 납월팔일(臘月八日) 용맹정진(勇猛精進)이 끝나면 벌써 그때부터서는 걸망 귀신이 동요가 되아 가지고 정진할 마음은 벌써 들떠버린다고 그런 말이 있어 왔습니다마는.

 

우리 용화사 법보선원에서는 반살림이 지내면서부터 더 열심히 정진들을 하시고 해제에 임박해서는 더 모다 가행정진(加行精進)들을 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또 회룡사나 망월사, 원효사 그 밖에 강진 백련사 그런 데서도 여러 대중들이 많이 오셨습니다마는 거기서도 각각 못지않게 정진들을 잘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 정진(精進)이라 하는 것은 누구를 위해서가—다른 사람을, 물론 깨달은 뒤에는 일체 중생을 위해서 한다고 하지만,

일체 중생을 참으로 위하려면은 우선 자기가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자기의 생사해탈, 자기의 자유를 위해서 절대적으로 이것은 필요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강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기가 자기를 위해서 자발적으로 고행 정진을 하게 된 만큼, 오늘 해제한 뒤에 참으로 마음을 가다듬고 더욱 열심히 정진을 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그동안에 석 달 동안은 삼복더위 중이라 대단히 정진하기가 어려웠을 줄 생각합니다. 그러한 더위 속에서도 정진을 늦추지 아니하고 그렇게 알뜰히 정진을 하셨거든 하물며 앞으로 넉 달 반이라고 하는 기간이 있습니다.

겨울 결제를 할 때까지는 넉 달—다른 해에는 석 달밖에 없었는데 금년은 윤달이 들어있었기 때문에 넉 달 반이라고 하는 시간이 있는데, 그 기간은 춥지도 않고 더웁지도 않는 그러한 좋은 계절입니다. 어쨌든지 그 긴 좋은 기간을 알뜰하게 정진을 해 주시기를 부탁을 합니다.

 

 

그동안에 여기서 저기서 모다 정진하고 오신 스님네들로부터서 여러 가지 그 정진에 관한 문의를 해 왔는데, 정진이란 게 '화두(話頭)를 어떻게 단속(團束)해 나가느냐?' 한마디로 말해서 화두 하나만을 잘 잡드리할 줄 안다면 그 밖의 것은 저절로 다 따라오는 것인데.

사실 정진이 문제가 되는 것은 ‘화두를 어떻게 단속을 하고 어떻게 거각(擧却)하느냐’ 그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참선(參禪)은 앉아서만 하는 것이 아니고, 행주좌와(行住坐臥)에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간에 참선은 되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앉아서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해서, 그러면 서서 종일 일을 하고, 종일 말을 하고, 종일 서성거려도 상관이 없느냐 하면, 앉은 데에만 있는 것은 아니지마는 또한 좌(坐)를 여의어서도 안 된다 이것입니다.

 

참으로 ‘앉아서만 하는 것이 아니라 또 좌(坐)를 여의어서도 안 된다’고 하는 참뜻을 안다면, 종일 앉아서 한다 해도 상관이 없는 일이요, 종일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黙動靜) 간에 언제 어디에서 무엇을 한다 하더라도 정진은 여일(如一)하게 될 수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지금 ‘좌(坐)에 있는 것이 아니지만 또한 좌를 여의어서도 안 된다’한 이 뜻을 잘 못 이해한 사람은 ‘좌(坐)에 있지 않다’ 그 말에만 잘못 집착을 하면, 공연히 서서—정진은 진짜 속으로는 되지도 아니하면서 공연히 미친 사람처럼 나부대고 설쳐 대는 데에 가까웁게 될 것이고.

또 ‘좌(坐)를 여의지 않는다’한 그 말에만 집착을 한다면, 너무 앉은뱅이처럼 앉아서만 하는 것만이 공부라고 해서 좌에 국집(局執)하는 그러한 잘못된 정진에 떨어지고 말 것입니다.

 

그래서 ‘좌(坐)에 국집하지 아니한다’해 가지고 공연히 설쳐 대서도 아니 될 것이고, 또 ‘좌를 여의지 아니한다’해 가지고 너무 좌(坐)에만 국집하는 것도, 그것도 올바른 정진이 아닐 것이다.

 

이 두 가지 뜻—‘좌에 국집하지도 아니하고 또한 좌를 여의지도 아니한다’고 하는 이 두 가지 뜻을 참으로 올바르게 인식을 한다면 행주좌와 사위의(四威儀)가 다 좌(坐) 아님이 없을 것이고.

이 도리를, 이 두 가지 뜻을 잘 이해를 못한다면 비록 좌(坐)를 여의지 아니한다 해도 참다웁게 좌선(坐禪)을 못한 사람이 되고 말 것입니다.

 

앞으로 넉 달 반에, 그 긴 좋은 기간 동안에 좌(坐)에 국집하지도 말고 또한 좌(坐)를 여의지도 아니하면서 정진을 알뜰히 해 주실 것을 부탁을 하는 것입니다.

 

그동안에 혹 어느 선지식(善知識)을 친견하러 갈 분도 있을 것이고 또는 어느 좋은 도반(道伴)을 찾아갈 분도 있을 것이고 또는 어느 성지(聖地) 도량에 순례차 떠날 분도 있을 것이고 또는 건강상 휴양차, 건강을 위해서 어느 의원을 찾아가거나 또는 약을 먹기 위해서 어느 장소를 찾아가거나 또는 모래찜을 하기 위해서 강변이나 해변을 찾아가시는 도반도 계실 줄 생각을 합니다.

 

어디를 가시건, 누구를 만나러 가시건, 어데 가서 무엇을 하건, 사람이 살아 있는 이상은 가야 할 데도 있고, 만나야 할 곳도 있을 것이고, 만나 해야 할 말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한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그때 그 장소에서 자기의 본참공안(本參公案)을 여의지 아니한다면 어데 간들 무슨 상관이 있으며, 누구를 만난들 무슨 상관이 있으며, 어데를 가서 강에 몸을 담그거나 모래 속에 몸을 묻거나, 흐르는 시냇물에 발을 담그거나 또는 어느 계곡 어느 봉우리를 발로 등산을 하고 거닌다 하더라도 무슨 해로울 것이 있겠습니까.

 

문제는 우리의 한 마음, 한 생각에 있을 것입니다.

 

 

몽리명명유육취(夢裏明明有六趣)한데  각후공공무대천(覺後空空無大千)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몽리명명유육취(夢裏明明有六趣)러니, 꿈을 꾸고 있을 때에는 분명하게 육도(六道)가 있더니—천당도 있고, 지옥도 있고, 축생도 있고, 아귀도 있고, 희로애락이 있고 생로병사가 있고.

분명히 그 꿈속에서는 그러한 육도가 있더니, 각후(覺後)에는 공공무대천(空空無大千)이로구나. 깬 뒤에는 비고 비어서 대천세계(大千世界)가 없어져 버렸다 그말이여.

 

꿈속에 돈 뭉탱이를 주섰다. 하! 이런 보배 뭉탱이를 주섰다.

'이러한 좋은 보배를 평생에 갖고 싶었는데 어떻게 이것을 내가 얻었던가!' 그렇게 기쁘고 흐뭇하고 어쩔 줄을 모르다가, 꿈을 딱! 깨고 보니까 그렇게 좋아하고 만지작거렸던 그 보물이 간 곳이 없더라.

꿈속에 그 독사란 놈이 물려고 쫓아와서 그 진땀을 흘리고 두려운 공포에 떨었었는데 탁! 눈을 뜨고 보니까 그 혀를 널름거리고 달라들었던 독사가 간 곳이 없더라.

 

천당과 지옥도 중생의 환몽(幻夢)—환상(幻想)의, 환각(幻覺)의 꿈을 꾸고 있을 때 천당이 있었고 지옥이 있었고 축생이 있었지만, 중생의 그 환몽을 깨버린다면 천당도 간 곳이 없고 지옥도 간 곳이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출세(出世)하셔 가지고 왕궁의 부귀를 버리시고 설산에 들어가서 6년의 그 피나는 고행을 하셔서, 마침내 납월팔일(臘月八日) 동천(東天)에 뜬 샛별을 보시고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셨는데, 확철대오를 하셔 가지고 49년 동안 팔만사천(八萬四千)의 법문을 설하셨는데, 깨달으신 것이 무엇을 깨달렀냐?

환몽(幻夢)을 깨신 것이고, 설하신 것이 무엇을 설하셨냐 하면 그 환몽을 깨는 방법을 설하신 것이여.

 

처음에는 바로 그 환몽(幻夢)을 깨는 법을 설하셨지만, 중생의 근기(根機)가 하열(下劣)해서 아무도 알아듣지를 못하니까 알아듣기 쉬운, 행하기 쉬운 방편(方便)을 설하시다가 마지막에 가서 바로 이 깨는 법을 여지없이 설하셨다 그말이여.

 

이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은 교외별전(敎外別傳)이여.

팔만대장경을 완전히 한데 뭉쳐서 삶아서, 거기에 아주 그걸 농축을 해 가지고 뽑아낸 거여.

 

바로 이 활구참선은 팔만대장경 속에는 없어요. 물론 깨달은 분이 보면은 글자마다, 한 말씀마다 바로 활구참선 아닌 것이 없지만, 그것은 깨달은 눈으로 볼 때 그런 것이고 깨닫지 못한 사람의 눈에는 활구참선법은 팔만대장경 속에는 없는 것이고.

 

용궁(龍宮)에는 부처님께서 설하신 모든 법이 한 자(字)도 빠짐이 없이, 한마디도 빠짐이 없이 전부 다 용궁에는 그것이 다 용왕에 의해서 그것이 다 보관이 되어 있지만, 그 용궁에 있는 경전 속에도 이 활구참선법은 없다 이것입니다.

교외별전(敎外別傳)이라, 이것은 교외별전이기 때문에 경전에는 없는 것이다 이 말씀이여.

 

그 교(敎), 경(經) 중 가운데에는 없는 이 활구참선법이 달마대사(達摩大師)에 의해서 천오백 년 전에 중국에 전해졌고, 이조 혜가(二祖慧可), 삼조 승찬(三祖僧璨), 사조 도신(四祖道信), 오조 홍인(五祖弘忍), 육조 혜능(六祖慧能) 선사를 거쳐서 오늘날에까지 그 면면밀밀(綿綿密密)하게 등등상속(燈燈相續)으로 이 활구참선법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그 활구참선법이라는 게 그렇게 어렵고 복잡한 것이 아니여.

 

"어떤 것이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입니까?"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판치에 털이 났는니라"

 

"개도 불성(佛性)이 있습니까, 없습니까?"하고 묻는데, 조주 스님이 대답하기를 "무(無)" 했으니, ‘어째서 조주는 무(無)라고 했는고?’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문헌에 오른 공안(公案)만 해도 천칠백(千七百) 공안이여. 천칠백 화두인데, 어느 공안이나 좋고 나쁘고 한 것이 없어.

그러나 자기가 믿는, 자기가 믿을 수 있는 선지식(善知識)으로부터 간택을 받았으면 공부가 잘되건 못되건 따지지 말고, 그 한 공안상에 대의단(大疑團)을 일으켜서 그 의단 하나만을 간절히 거각(擧却)해 나간다면 결국은 화두를 들지 아니해도 저절로 들어진 단계가 오고야만 마는 것입니다.(12분3초~31분)

 

 

 

(2)------------------

 

이 공부는 너무 간단하고 너무 쉬웁고 너무 가까와서 그래서 하기가 어렵고, 잘되어도 잘된 줄을 모르고 이미 화두가 들어져 갖고 있어... (녹음끊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공부는 바로 가르켜 줄 수 있는 스승을 자주 만나지 않고서는 올바르게 할 수가 없습니다.

 

애써서 공부를 해 가지고 중대한 고비에 이르렀음에도 불구하고 그 고비를 잘 단속해 나갈 줄을 모르고, 공연히 거기서 스스로 분별심을 내 가지고 공연히 주저하고 망설이고 갈팡질팡하고 스스로 혐의심(嫌疑心)을 내 가지고 아까운 고비를 헛되이 지내버리는 예가 종종 있습니다.

 

『서장(書狀)』에 대혜(大慧) 스님의 법문을 보면, 화두를 들어도 잘 들리지 아니하고 가슴이 답답하고 시간이 지루하고 몸부림이 처지고, 나귀를 끌고 우물로 들어가는 거와 같고, 앞도 맥히고 뒤도 맥히고 좌우도 끊어져서 어찌할 바를 모르는 그러한 복잡하고 어려운 고비, 이러한 경계에 도달한 것이 이것이 공부가 잘못 되어서 그런 것이 아니다. 앞으로 크게 깨닫게 될 그 이전의 경계다.

 

그러기 때문에 이러한 경계에 도달했을 때에 번뇌심을 내지를 말고 짜증을 내지 말고, 두려워서 ‘이것이 내가 이거 잘못 될라고 그런 것이 아닌가’하고 두려운 마음으로 물러서지를 말고 그러한 고비에서 지혜스럽게 잘 단속을 해서 그 고비를 넘겨라.

‘절대로 물러서거나 공부를 놓아버리지 말고, 잘 그 고비를 넘겨야 한다’고 하는 말씀을 누누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공부를 지어가는 것이 그 고비를 잘 넘기는 것이냐?’하면, 무릎이 아프고 허리가 아프고 어깨가 쩌 눌리고 가슴이 답답하고 터질 것 같고, 이 오목가슴에 무슨 뭉텅이가 생겨 가지고 올라가지도 않고 내려가지도 않고 소화도 잘 안되고, 화두를 들어도 머리는 먹먹해 가지고 영 애를 먹을 때에,

그럴 때에는 앉아서 억지로 바울라고 하기보다는 조용하게 일어나서 적당한 장소에 일직선으로 딱 정해 놓고서, 한 4~50미터를 일직선으로 코스를 딱 정해 놓고 왔다갔다하면서, 단전호흡을 하면서 왔다갔다하면서 그 가운데 화두를 떠억 들어보라 이 말씀이여.

 

그러면은 그 답답하고 복잡하고 하는 것이 스르르르~ 하니 그것이 없어지면서 속이 시원해지는 것을 느낄 것이다 이 말이여.

그렇게 한 5분 내지 10분을 그렇게 포행을 하고서 시원해지거든 다시 또 자기 자리로 돌아가서 허리를 쭈욱 펴고 극히 자연스럽게 단전호흡을 하면서 화두를 떠억 들어보라 이 말씀이여. 아주 개운하고 시원하게 화두가 들릴 것이다 그말이여.

 

또 얼마 동안 잘되어 가다가 다시 또 답답해지면 또 그 앉아서 단전호흡을 몇 번을 하면 또 시원해지면 고대로 시간을 끌고 나가고, 그렇게 해도 또 공부가 안 되면은 또 조용하게 나가서 포행을 하고.

하기는, 여러 대중이 꽈악 짜고 정진하고 있는데 그렇게 들랑날랑하면 옆에 분들이 미안해서 차마 그럴 수가 없지요. 차마 그럴 수가 없어서 억지로 앉아서 그 죽비(竹篦) 칠 때까지 기다리다 보면 참 대단히 거북하고 어렵습니다.

 

그래서 옆에 분에 방해가 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그렇게 허리가 아프던지, 그렇게 정진이 답답해서 가슴이 미어질라고 하면 조용하게 나가서 지혜롭게 정진을 해 가지고 이 고비를 넘긴다면, 그러고 그 고비를 넘기고 나면 한결 정진이 수월하게 된다 그말이여.

그래서 공부가 한 단계 힘을 덜게 되는데, ‘그 힘을 덜게 되는 것[省力]이 바로 정진에 힘을 얻는 것[得力]이 된다’ 이 말씀입니다.

 

앞으로 산철 동안에는 그러한 규칙에 그렇게 크게 얽매이지 않는 계절인 만큼, 지금 산승(山僧)이 일러드린 말씀을 십분 참작해서 그 여름 더운 동안에 못다 한 공부를 이 산철 동안에 정말 알뜰하게 정진을 해서 그 봉을 빼도록 노력을 해 주시기를 부탁을 합니다.

 

 

이 정진(精進)은 한마디로 말해서 불방일(不放逸)인 것입니다. 불방일(不放逸). '아니 불(不)'자, '놓을 방(放)'자, '편안할 일(逸)'자. ‘방일(放逸)하지 않는다’

‘방일한다’고 하는 것은 ‘놓아 지낸다’ 그말이여. ‘그럭저럭 놓아 지낸다’ 그말인데, 그럭저럭 놓아 지내지 아니한 것이 그것이 '참정진'이다 이 말씀이여.

 

‘정진을 한다’하면은 꼭 아주 그 가행정진 · 용맹정진, 그 정진상(精進相)을 지어서 막! 이 몸을 갖다가 얽어매고 알날신심(遏捺身心)한 것을 갖다가, 몸과 마음을 억지로 구속하고 얽어매 가지고 몸을 못살게 구는 것을 갖다가 가행정진이다 또는 용맹정진이라 이렇게 일반적으로 생각합니다마는.

진짜 정진을 할 줄 아는 사람의 참다운 용맹정진이라 하는 것은 불방일(不放逸)이라 하는 글자 석 자를 벗어나지를 않습니다.

 

불방일만 한다면,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바로 화두가 성성(惺惺)하고 적적(寂寂)해서 순일무잡(純一無雜)하게 화두가 들린다면 앉아서도 정진이요 서서도 정진이요, 24시간 간단없이.

장차(將次)는 참으로 정진이 익숙해지면 꿈속에서도 화두가 순일하게 들릴 것이고, 꿈도 없고 그 깊은 잠에 들었을 때에도 화두가 순일무잡하게 떠억 들린다면 이보다 더 훌륭한 용맹정진이 어디에 있을 것이냐 이 말씀이여.

 

그렇게 될라면은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할 것입니다마는 그래도 우리 수행인은 거기에다 목표를 두고 계속해서 정진을 다져 나가야 할 줄 생각합니다.

 

이러한 마음으로 정진을 다져 간다면 무슨 파(破)해야 할 계율이 있으며, 다시 또 무슨 지켜야 할 계율이 어디가 있으며, 무슨 따져야 할 시비가 있으며, 무슨 부족함이 있겠습니까.

죽이면 죽, 밥이면 밥, 떡이면 떡, 국수면 국수 그때그때 공양 시간이 되면 공양하고, 잘 시간이 되면 자고, 울력 시간이 되면 울력을 하고, 소지(掃地) 시간이 되면 소지를 하고, 또 빨래를 할 시간에는 빨래를 하고.

 

언제 어데서 무엇을 하던지 간에 한 생각 한 생각만을 알뜰하고 간절하게 단속해 나간다면, 비구 250계(戒), 비구니 348계, 또는 보살의 십중대계(十重大戒)와 삼천위의(三千威儀)와 팔만세행(八萬細行)이 의식적으로 지킬려고 안 해도 저절로 모든 계율이 지켜져 버리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대승계(大乘戒)요, 최상승계(最上乘戒)라 하는 것입니다.

 

모든 불법의 근본인 '한 생각'을 돌이켜서 활구참선을 여법(如法)하게 해 나가면, 계(戒)의 지키는 상(相)이 없이 저절로 모든 계가 지켜져 버리면 이것을 바로 최상승계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육조(六祖) 스님께서는 『법보단경(法寶壇經)』에 자심(自心), 그 마음 그름이 없는 것이 자성(自性)의 계(戒)요, 마음 어지러운 것 · 산란한 것 없는 것이 자성(自性)의 정(定)이요, 마음에 그름 · 허물이 없는 것이 바로 이것이 자성(自性)의 혜(慧)라, 이렇게 설파를 하신 것입니다.

 

오늘은 백일기도 회향일인데, 백일기도에 동참하신 분들은 바로 용화사 법보선원에 방부(房付)를 들이고 정진하는 보살님과 그 근본에 있어서는 조금도 차이가 없는 것입니다.

백일기도에 들었기 때문에, 그 백일기도에 들은 그 정성에 의해서 이 용화선원이 잘 운영이 되었기 때문에 여러 스님네들이 정진을 잘할 수가 있었습니다.

 

여러분의 정성으로 이 선원이 잘 운영되어 가는데 여러분이 무슨 마음을 가지고 그동안에 살았겠느냐 그말이여.

법회 때 나와서 법문(法門)을 듣고, 법문을 듣고 가셔서 댁에서 이 활구참선법, 참선을 댁에서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한 생각 한 생각을 단속해서 참선을 하셨으니 어찌 그것이 이 용화선원에 방부를 들인 것이 아니겠느냐 그말이여.

 

바로 이 백일기도에 동참하신 분은 복(福)과 지혜(智慧)를 쌍(雙)으로 닦으신 분들이다 그말이여. 복을 지어서 선원을 잘 운영해 나갔으니 한량없는 무루복(無漏福)을 닦은 것이고, 또 여러분도 가정에서 참선을 열심히 했으니 최상승법을 닦아서 무루혜(無漏慧)를 닦은 것이 된다 그말이여.

 

‘이 세상에서 어느 분이 복(福)과 혜(慧)를 가장 원만히 구족하신 분이냐?’하면은 바로 부처님입니다. 부처님이야말로 천상천하에서 복과 혜, 복혜(福慧)를 원만구족(圓滿具足)하신 어른이다.

 

그래서 삼귀의(三歸依)를 할 때에 ‘귀의불 양족존(歸依佛 兩足尊), 두 가지가 족[兩足]한 최고의 높으신 어른께 귀의합니다’

'두 가지가 구족하다'하는 것은 바로 ‘복(福)과 혜(慧), 두 가지가 구족하다’ 이 말씀입니다.

 

우리는 불법을 믿고 불법에 의해서 닦아 가는 불제자로서 그 두 가지를 구족하도록 노력을 하고 정진을 한다면 우리의 정진은 결단코 삿된 데에 떨어지지 아니할 것입니다. 그 백일기도 회향이 바로 오늘입니다.

 

‘백일기도가 끝났으니까 인자 나는 뭐 닦아야 할 복도 없고, 닦아야 할 혜도 없다’ 그리 생각하지를 말고 산철 동안 열심히 정진을 해서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를 하고, 상(相)에 떨어지지 않는 정진을 해 나가시면, 또 다시 음력 10월 15일이 들면 그때 또 백일기도에 동참을 하시고, 또 가정 형편이 허락이 되면 또 여기에 정식으로 방부를 들여서 이 용화사 법보선원에 오셔서 정진을 해 주시기를 부탁을 드립니다.

 

이 백일기도에 동참하신 분은 그 공덕으로 여러분의 마음속에 있었던 크고 작은 소원이 반드시 성취가 되었으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진로형탈사비상(塵勞逈脫事非常)이라  긴파승두주일장(緊把繩頭做一場)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불시일번한철골(不是一飜寒徹骨)인댄  쟁득매화박비향(爭得梅花撲鼻香)고

나무~아미타불~

 

진로형탈(塵勞逈脫)이 사비상(事非常)이여. 진로형탈(塵勞逈脫)—티끌 수고로운 거, 생사진로(生死塵勞) 생사해탈하는 것이 이 일이 조그만한 보통 일이 아니다.

긴파승두주일장(緊把繩頭做一場)이니라. 긴밀하게 승두(繩頭)를 잡아서—화두를 놓치지 말고 잡아서 한바탕 공부를 지을지니라.

 

불시일번한철골(不是一飜寒徹骨)인댄, 한바탕 이 추위가 뼛골 속에 사무치지 아니할 거 같으면,

쟁득매화박비향(爭得梅花撲鼻香)이냐. 어찌 매화꽃 향기가 코를 침을 얻을 것이냐.

 

되게 강추위를 한 뒤끝에 핀 매화라야 코를 치는 그러한 향내가 진동을 하는 것이다 그말이여. 겨울 날씨가 이상(異常) 기온이 되어가지고 뜨뜻해서 강추위를 아니하면 그런 끝에 핀 매화는 향취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매화꽃이 그러듯이 우리가 정말 간절(懇切)한 마음으로 뼛골에 사무치는 그러한 간절하고도 알뜰한 정진을 하지 않고서 어찌 고불조(古佛祖)와 같은 확철대오를 할 수가 있을까 보냐 이 말씀이여.

 

이 게송은 황벽 스님께서 우리 후래(後來) 불자를 위해서 일러주신 게송입니다. 수행 납자(衲子)가 하루 한때라도 잊어서는 안될 그러한 좋은 좌우명(座右銘)이라고 생각이 됩니다.(31분1초~51분49초)(끝)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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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600 개가 넘는 ‘(참선) 법문’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 있습니다.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600 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정진(精進) 수행2020. 9. 18. 04:12

§(세등64) '오무기 왕자' 이야기, 『본생경(本生經)』 / 수행인은 정진을 하다 죽어도 중단하지 아니할 만한 큰 결심, 인내, 용기를 가져야 한다 / 나를 가장 위한 척하고 나를 멸망을 시키는 그런 마구니야말로 정말 무서운 마구니 / 도는 바로 자성(自性)을 깨닫는 것.

 

우리의 자성 따로 있고, 우리의 몸뚱이 따로 있고, 또 이 세계 따로 있고, 우주법계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전부가 한 뿌리에서 벌어진 것이고, 우리의 자성을 내놓고는 우주법계는 존재하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화엄경(華嚴經)』에 「약인욕료지(若人欲了知) 삼세일체불(三世一切佛) 응관법계성(應觀法界性) 일체유심조(一切有心造)」다. 이 말씀은 바로 현상 그대로요, 진리 그대로를 읊어 논 말씀인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내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고는 가정의 행복을 도모할 수 없고, 내가 내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고는 사회 · 국가가 평화를 가져올 수가 없고, 세계의 평화도 한 사람의 마음 평화 없이 이루어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송담스님(세등선원No.64)—1987(정묘)년 하안거 해제 법어(87.07.17) (세등64)

 

약 20분.

 

옛날에 오무기(五武器)라고 하는 왕자가 있었는데, 그 왕자는 대단히 부처님을 믿는 신심이 돈독했습니다. 그런데 워낙 무술을 좋아했습니다.

옛날에 임금이 될라면 몸도 건강하고 무술에 뛰어나야 자기의 왕위를 지키고 또 그 나라를 지키고, 온 백성의 우두머리가 되어 가지고 나라를 다스릴 수가 있었기 때문에 왕이 될라면은 첫째, 뛰어난 무술을 가져야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유명한 스승을 찾아가 가지고 다섯 가지—그 활 쏘는 법, 칼 쓰는 법, 또 방(棒)을 가지고 자기를 지키고 공격하는 법, 또 창(槍)을 가지고 자기를 지키고 상대방을 공격하는 법, 또 모(鉾)라고 하는 무기가 있는데, 그것도 창과 비슷한 것인데 그런 것을 쓰는 법, 이 다섯 가지 뛰어난 무술을 그 스승으로부터서 다 배와 가지고, 그래 가지고 왕궁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그 광야를 지나게 되었는데, 그 광야에서 참 그 지모(脂毛)라고 하는 괴물을 만났습니다. 키는 야자수만큼 하늘에 뻗지르고, 눈은 큰 아주 쟁반같이 큰 부리부리한 눈을 가지고 있고, 아금니는 독수리와 같이 날카로운 아주 나찰 귀신같은 그런 무서운 아금니를 가지고 있고, 온 몸에는 기름진 터럭이 아조 전신에 나 가지고 있는데.

그런 무서운 지모라고 하는 괴물이 터억~ 앞을 떡! 가로막으면서 "내가 지금 배가 고프니 너를 잡아먹어야겠다"

 

이 오무기란 왕자는 그 다섯 가지 무술을 익혀서 여러 해에 걸쳐서 피나는 고행을 하면서 그 스승한테 배웠기 때문에, 맨 먼저 등어리에서 활을 뽑아 가지고는 그놈에다 갖다 가슴팍을 향해서 활을 쏘아댔습니다.

틀림없이 가슴 한복판에 꽂혀서 넘어질 줄 알았는데 어떻게 그 기름진 털이 두텁게 튼튼하게 입혀져 있던지, 그 털 속으로 화살이 딱! 붙어 가지고는—그냥 그 털을 뚫고 살 속으로 들어가기커녕은 털에 딱 붙어 가지고 아무 매카리가 없어.

 

그래서 칼을 뽑아 가지고 냅대 쳐들어갔는데 그 칼도 그 터럭에 탁! 닿으니까, 털을 뚫고 살을 들어가지를 못하고 털에 붙으니까 칼날이 무슨 물 묻은 바가지에 깨 들어붙듯이 들어붙어 갖고 아무 소용이 없어, 껍데기에.

그다음에 창을 가지고 찔러 들어가는데, 창도 그 지모(脂毛)의 털에 붙어버리니까 뚫고 들어가지를 못하고, 빼도 떨어지지도 않고 박아도 들어가지도 않고.

봉을 가지고 해도 안 되고, 모를 가지고 해도 안 되고. 다섯 가지 무기를 있는 힘을 다 썼지마는 그 지모의 몸뚱이에 붙어버리니까 아무 용맹이 없다 그말이여.

 

그래서 이 몸뚱이를 가지고 그냥 육박전을 했다. 육탄(肉彈)으로 그냥 몸을 날려서 뛰어들어가니까, 아! 몸뚱이가 그 지모의 터럭에 딱! 붙어 가지고 아무 소용이 없다. 그래서 몸뚱이가 달랑달랑하니 들어붙어 갖고 떨어지지도 않고.

그래서 인자 머리를 가지고 힘을 다해서 가슴에다 갖다가 헤딩을 갖다가 했는데, 머리빡도 거기에 딱! 붙어 갖고 아무 소용이 없어. 몸뚱이 손발이 다 붙어 버리고, 머리까지 붙었으니 아무 소용이 없게 되었어.

 

지모란 놈이 껄껄 웃으면서 "어디, 또 재주가 더 있으면 부려 봐라. 이제는 니가 내 입으로 들어갈 순서다"

 

그러니까 왕자가 오히려 껄껄 웃으면서 "먹고 싶으면 먹어 봐라. 니 눈에는 안 보이지마는 내게는 금강(金剛 : 智慧劍)이라고 하는 무기가 있어. 니가 나를 삼키면은 뱃속에 들어가서 그 금강이란 무기로 니 밥통 오장육부를 샅샅이 찢고 찌르고 해 가지고 결국은 내가 니 속에 들어가서 너를 갖다가 죽이고 뚫고 나올 것이다" (此是菩薩指身中之智慧劍而言 : 그 칼이란 보살의 몸안에 있는 지혜의 칼을 말한 것이라 한다)

 

아, 그러니까 지모란 귀신이 깜짝 놀랬어.

세상에 이런, 여태까지 수없이 많은 사람도 잡아먹고, 별별 짐승도 다 잡아먹어 봤지마는 세상에 이놈처럼 이렇게 해서 꼼짝달싹 못하게 되었는데도 조금도 겁나는 기색이 없고 무서워하지를 않고, 마침내는 뱃속에 들어가서 금강이라는 무기로 자기를 죽인다 하니 '이거 참, 이거 잡아먹었다가는 뼈다귀도 못 추리겠구나'

 

그래 가지고는 오무기 왕자를 턱 떼어서 놓고는 그 등치가 큰 그 지모 귀신이 무릎을 꿇고 사죄를 했습니다. "내가 사람을 잘못 알아봐서 죄송합니다. 과연 당신은 큰 왕이 될 만한 참 왕자의 그릇입니다. 내가 항복을 하니 나를 제자를 삼아 주시오"

그래 가지고 항복을 하고서 그 왕자를 따라서 불법(佛法)을 믿게 되었습니다.

 

 

이건 부처님 경전에 나오는 한 설화지마는 우리 도를 닦는 사람이 이만한—죽어도, 정진을 하다가 죽어도 중단하지 아니할 만한 큰 결심과 인내와 용기를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이 참선(參禪)이라고 하는 것이 천하에 방법이 간단한 것이고, 한 생각 돌이켜서 간절하게 의단을 일으켜 가지고, 그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도록 참, 한 생각 한 생각 단속해 나가는 하나도 어려울 것도 없고 복잡할 것도 없지마는 그것이 그렇게 간단한, 그렇게 호락호락한 것이 아닙니다.

 

그럭저럭 그저 형식적으로 조금씩 하면서 방선(放禪) 시간에는 잡담이나 하고, 해제(解制)하면은 여기저기 구경이나 다니고, 또 결제(結制) 때가 되면은 들어가서 한 철씩 또 시간 맞춰서 사분정진(四分精進) 하고. 그리고 뭐 대중공양 들어오면 그저 옆구리가 터지도록 먹고.

그럭저럭 지낸다면 그러한 참 별로 어려울 것도 없고, 참 이게 아까 전강 조실 스님은 오입이란 말을 쓰셨는데, 이거 출가해 가지고 요령껏 잘하면 이 세상에서 제일 참 좋은 오입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지내다가는 금생에 생사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죽어서 지옥에 갈 길밖에는 없습니다. 또 지옥에 안 간다 하드라도 그 시주(施主)의 은혜를 갚기 위해서 한량없는 소의 몸을 받기 십상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 정진을 조금 분심(憤心)을 내 가지고 애써서 하려고 한즉슨은 가지가지 장애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몸이 어디가 아프고, 그렇지 않으면 소화가 안되고, 그렇지 않으면 상기가 일어나고. 몸이 병이 안 나면은 참 이상한 좋지 못한 모다 인연이 나타나 가지고 나의 공부를 방해를 하는 것입니다.

 

공부를 애써서 하고 조금 공부가 될 만하면은 가지가지 장애가 일어나. 왜 그러냐?

 

그건 그럴 수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도가 차츰차츰 도를 이루게 되면은 제일 배 아프고 그것을 싫어하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은 마왕(魔王) 파순(波旬)이인 것입니다.

마왕 파순이는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도인이 나오면 당장 마구니가 설 땅이 없어지고 마궁(魔宮)이, 마구니의 궁전이 무너져서 결국은 마왕 파순이를 비롯한 그 수없는 마구니의 백성 군졸들이 멸망을 하게 되기 때문에 마구니가 제일 두려운 것은 도 닦는 사람이고, 도를 닦아서 도를 이루려고 할 때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아니하고, 그 도를 못 닦게 하는 것입니다.

 

부처님도, 그 팔상성도(八相成道) 가운데에 수하항마상(樹下降魔相)이라고 이 팔상 가운데 하나 있지마는, 여러분이 잘 아실 것입니다. 성불을 하실려고 할 때에 얼마나 그 마왕 파순이가 방해를 놨습니까?

팔만사천(八萬四千) 가지의 방법으로 그 방해를 쳤습니다. 미인계를 써서 방해를 하고, 또 그래 가지고 안 되니까 총칼과 갖은 무기를 써서 방해를 하고. 그래도 부처님께서는 마침내 그것을 다 이겨내시고 성불을 하신 것입니다.

 

우리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몸뚱이 병나는 것, 또 도를 닦으면 나를 가장 위한 척하고 나를 멸망을 시키는 그런 마구니야말로 정말 무서운 마구니인 것입니다.

마구니가 머리에 뿔을 이고 무서운 아금니를 가지고 그래 가지고 나한테 핍박해 온다면 어떠한 방법을 가지고도 내가 막아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나를 가장 위하는 그러한 모습을 가지고 접근을 해 올 때에는 백 명이면 백 명, 천 명이면 천 명, 그놈에 속아 넘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세속에 세상이 어지러울수록에 모다 사기꾼들이 날뛰지만, 그 사기꾼이 처음에 어떤 사람을 사기를 칠 때에, '내가 사기꾼이다'하고 달라든 사기꾼은 없습니다.

가장 선량한 모습으로 신사적으로 접근해 와 가지고, 나를 가장 큰 이익을 줄 것처럼 그렇게 접근해 가지고 자기를 믿게 한 다음, 나중에는 송두리째 그놈을 꼴딱 삼켜버린 것입니다.

 

마구니가 역시 수행인을 멸망을 시킬 때 역시 그러한 것이고, 지금 우리나라가 경제적으로 많이 발전을 하고 수출을 많이 해서 외화 획득을 해서 일인당 소득이 삼천 불(弗)에 이르렀고, 앞으로 수년 뒤에는 오천 불에 이르를 것으로 우리나라는 말할 것도 없고, 외국에서도 모두 다 그렇게 인증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러한 상황을 제일 무서워하고 싫어하는 사람이 누구냐 하면은 김일성인 것입니다.

 

세계 사람이 우리나라 잘된 것을 겉으로는 찬양한 것처럼 하지마는 사실은 일본 사람도 싫어하고, 미국 사람도 싫어하고, 모든 나라가 다 서로 상대가 되기 때문에 싫어하기는 하지만, 제일 싫어하고 두려워한 것이 바로 공산당이고 김일성인 것입니다. 무슨 방법을 써서라도 이것을 갖다가 방해를 치고, 못하게 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김일성이 입장에서는.

 

노사 분규가 순수한 노동자들이 임금을 더 달라고 요구를 하고, 대우를 잘해 달라고 요구를 한 것은 하나도 잘못이라 할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만에 하나라도 공산당의 그런 마수가 뻗쳐서 그 마수에 놀아나 가지고 노사 분규를 일으켜서 이러한 이 험악한 지경에 이른다면은 이것은 참 큰일날 일인 것입니다.

순수한 노동자들은 정당한 방법으로 자기네들의 요구를 주장을 하고 이래야 할 것입니다. 더욱 일을 열심히 하면서 공장이 회사가 더욱 잘되도록 하면서 정당한 방법으로 요구를 한다면 마땅히 주인은 그 요구를 들어줘야 할 것이고, 그렇게까지 요구하기 전에 미리 알아서 다 잘해 줘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정당한 방법이 아니고 파괴와 온갖 이 옳지 못한 방법으로 요구를 한다면 그것은 용납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국가에서도 용납할 수 없을 것이고, 모든 국민들도 그것을 용납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왜 그러냐?

공장을 때려 부수고, 사람을 해롭게 하고, 일을 아니하고 이래 가지고 결국은 그 회사는 망하게 될 것이고, 회사가 망하면 우리나라의 경제가 파탄에 이를 것이고, 온 나라가 잘살게 되기커녕 삼천 불(弗)커녕은 천 불도 못 가고, 계속 적자가 되어가지고 외국으로부터 신용은 떨어지고 해서 이렇게 되면 올림픽도 다 허사가 되고, 우리나라는 결국은 38선(三八線)이 툭 무너지는 날 간단하게 공산화가 되고 말아버릴 것입니다.

 

한 국가 문제나, 회사 문제나, 일신상의 문제나, 우리 수행자의 문제나, 전부가 냉정히 살펴보면은 하나도 다를 것이 없는 것입니다.

 

이 도를 닦아 가는, 그래서 이 도(道)라고 하는 것은 만법(萬法)에 근원인 것입니다.

도는 바로 자성(自性)을 깨닫는 것인데, 그 자성으로부터 벌어진 것이 이 가정이요, 사회요, 국가요, 온 세계요, 우주법계(宇宙法界)인 것입니다.

이 우주법계, 삼라만상(森羅萬象) 두두물물(頭頭物物)이 우리의 자성으로부터 벌어진 것입니다. 자성이라고 하는 뿌리로부터 벌어져 가지고 천 가지 만 가지 가지가 뻗고, 잎이 피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는 것, 그것이 바로 요 우주법계인 것입니다.

 

우리의 자성 따로 있고, 우리의 몸뚱이 따로 있고, 또 이 세계 따로 있고, 우주법계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전부가 한 뿌리에서 벌어진 것이고, 우리의 자성을 내놓고는 우주법계는 존재하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화엄경(華嚴經)』에 「약인욕료지(若人欲了知) 삼세일체불(三世一切佛) 응관법계성(應觀法界性) 일체유심조(一切有心造)」다. 이 말씀은 바로 현상 그대로요, 진리 그대로를 읊어 논 말씀인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내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고는 가정의 행복을 도모할 수 없고, 내가 내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고는 사회 · 국가가 평화를 가져올 수가 없고, 세계의 평화도 한 사람의 마음 평화 없이 이루어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10분2초~29분54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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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무기 왕자' 이야기 ; 『본생경(本生經)』 제6장 원망품(願望品) '55 오무기태자(五武器犬子)'

 

 

 

**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600 개가 넘는 ‘(참선) 법문’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 있습니다.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600 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