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精進) 수행2021. 5. 5. 05:48

 

 

§((252)) (게송)삼계지중분요요~ / 『선관책진(禪關策進)』에 수행에 몸과 목숨을 바친 기록 / 중국 고봉선사의 3년 사한(死限) 용맹정진 / 하루 결제, 하루 정진.

수행도 할 시기가 있다 / 기름 참선 / 선방에서 잡담 금지 / 자기도 공부를 아니하면서 남까지 공부를 못하게 하면 그 죄는 참회(懺悔)할 길이 없다 / 자기 마음에 안 드는 그것에 하심(下心)을 하라 / (게송)한산정상월륜고~ / 우리는 무가보(無價寶)를 가지고 있다.

**송담스님(No.252)—1984(갑자)년 동안거 결제 (84.12.07) (용252) (정진)

 

 

(1/3) 약 16분.

 

(2/3) 약 17분.

 

(3/3) 약 12분.

 


(1/3)----------------

삼계지중분요요(三界之中紛擾擾)한데  지위무명불료절(只爲無明不了絶)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일념불생심징연(一念不生心澄然)하면  무거무래불생멸(無去無來不生滅)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삼계지중분요요(三界之中紛擾擾)한데  지위무명불요절(只爲無明不了絶)이라.
욕계(欲界) · 색계(色界) · 무색계(無色界), 이 삼계(三界) 가운데에 가루 날으듯이 윤회(輪廻)를 하는 것은—지옥으로 떨어졌다, 천당에 올라갔다, 축생(畜生)이 되었다가, 사람이 되었다가, 아귀(餓鬼)가 되었다가, 이렇게 해서 삼계 육도윤회(六道輪廻)를 끊임없이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은 무엇 때문에 그러냐 하면, 다못 무명(無明)을 요달(了達)해 끊지 못해서 그런 것이다.

일념불생심징연(一念不生心澄然)하면, 한 생각 남이 없어서 마음이 맑으면,
무거무래불생멸(無去無來不生滅)이여. 갈 것도 없고 올 것도 없어서 생멸(生滅)이 없는 것이다.

오늘 갑자년(甲子年) 윤(閏) 10월 보름날 동안거(冬安居) 결제일을 맞이해서 도봉산 원효암(元曉庵) 대중과 회룡사(回龍寺) 대중도 용화사 법보선원(法寶禪院) 대중과 함께 이 법요식(法要式)에 참석을 했습니다.
해마다 10월 15일에 동안거 결제를 하는데, 금년에는 윤달이 들어서 본 10월에는 하지 아니하고 윤 10월 15일에 결제를 해 가지고 내년 을축년(乙丑年) 정월(正月) 15일, 지금으로부터 석 달 뒤에 해제(解制)를 하게 됩니다.

여름이 되면 여름 결제, 겨울이 되면 겨울 결제, 연례행사(年例行事)로 해마다 결제를 거듭하고 해제를 거듭하건마는, 마냥 동쪽에서 뜬 해가 서쪽으로 지고 또 동쪽으로 뜨는 해가 서쪽으로 지고 아무 특별한 것이 없어. 아무 특별한 것도 없고 기특한 것도 없는 가운데에 해가 뜨고 해가 지고 하지만, 달라지는 것은 우리가 하루 지내면 하루 지낸 만큼 죽음이 다가오고, 이틀 지나면 이틀 지낸 만큼 죽음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루하루 지내다가 보면 한 달이 지내고, 한 달 한 달이 지내다 보면 일 년이 지내서, 일 년을 지낼 때마다 나이가 한 살씩 불어나는데, 일 년 일 년 지내다 보면 어언 십 년이 가고 이십 년이 가서, 엊그제가 청년, 청년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오십이 되고 육십이 되고 칠십이 되었습니다.
사람이 태어나서 젖 먹고 밥 먹고 학교 다니고 결혼하고 이러는 가운데에 아무것도 마음에 얻은 것은 없고 업(業)만 짓고 나이만 먹으면서 죽음을 향해서 지옥으로 가는 벌이만 하고 있어서야 이것이 될 수가 없는 일입니다.

출가해서 사문(沙門)이 되어가지고 선방에 나와서 참선(參禪)을 하는 출가납자(出家衲子)들도, 철철이 선방에 나와서 결제를 하고 안거(安居)를 하는 것도 대단히 어려운 일이고 힘든 일이지만, 처음에 발심(發心)해서 출가할 때 마음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이완되어 버리고.
그때의 그 열렬한 발심과 분심(憤心)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스르르르르~ 하니 가라앉어 버려서, 그러다가 어쩌다가 생각이 나면 또 용맹심(勇猛心)을 내나 그것이 사흘이 못 가서 또 스르르르르~ 하니 또 꺼져 버리고.
생각은 '이래서는 안 되겠다'고 하면서도 실지로 허리를 쭉 펴고 정진(精進)을 해 보면 혼침(昏沈) 아니면 산란(散亂), 산란 아니면 혼침으로 하루하루를 지내다 보면 퍼뜩 석 달이 지내가게 되는 것입니다.

옛날에 도인(道人)은 잠이 오면 그 잠을 자지 않기 위해서 무거운 바윗돌을 짊어지고 저 지리산을 하룻밤에 백 리(百里) 이상을 걸어 고개와 골짜구니를 넘고 넘으면서 밤새 길을 걷고.
그렇게 해서 그 돌이 반들반들하니 닳아져서 쌍계사(雙磎寺) 육조 스님 정골탑(頂骨塔) 앞에 그 돌이 놓여있는데. 그렇게 애를 쓰고.
자명(慈明) 스님 같은 이는 송곳으로 무릎을 찌르면서 정진을 하고 한, 『선관책진(禪關策進)』에 보면 그 많은 도인들이 혼침과 산란을 이겨내고 해태(懈怠)로부터 벗어나서 정진을 하기 위해서 몸과 목숨을 바친 그러한 사례가 수없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무엇 때문에 혼침과 산란은 번갈아가면서 우리 수행할라는 사람을 괴롭히고 있는가? 그 두 가지 몹쓸 것만 없으면 정진이 저절로 될 것이고 정진하는 데 아무 괴로울 것이 없건마는.
유시(有時)에는 번뇌(煩惱)와 망상(妄想)이 퍼일어나고, 그 번뇌와 망상이 좀 잠잠해질만 하면은 혼침이 와 가지고 눈뚜껑이 천 근이나 무겁게 쪄 누른다 그 말이여. 아무리 눈을 뚝 부릅뜨고 애를 써도 그 눈팅이 내려누르는 힘을 도저히 이겨낼 수가 없어.

그래서 옛날 중국 천목산(天目山)에 고봉 선사(高峰禪師), 고봉 스님은 '내가 삼 년 동안 가행정진(加行精進) 용맹정진(勇猛精進)을 해 가지고 견성을 못하면 자살을 해 버리리라' 이러한 결의를 하고서 정진을 하는데.
역시 그 고봉 스님도 혼침, 어떻게 앉기만 한면 혼침이 와 가지고 밥 먹는 시간, 공양 시간을 제외하고는 마냥 밖에 나가서 포행(布行)을 했습니다. 포행을 해 가지고 조끔 졸음이 달아날만 하면 들어와서 또 앉으면, 앉기만 하면 금방 또 혼침이 와. 그래서 밥 먹을 시간을 제외하고는 앉을 수가 없어.

그렇게 도량을 포행으로 포행으로 애를 쓰는 가운데 3년이란 기한이 어언간 닥쳐오고 말았습니다. 며칠이 안 되면은 3년 기한이 차는데 착잡하기가 말로 할 수가 없어.
장부(丈夫)가 한 번 결심을 했는데, 3년 만에 도(道)를 이루지 못하면 자결(自決)을 해 버릴라고 결의(決意)를 했는데 며칠이 안 남았다 그 말이여. 그래서 날마다 참 착잡한 마음으로 마지막 남은 며칠간을 정진을 하는데, 하룻밤 꿈에 단교(斷橋) 스님이 나타나서 '만법귀일(萬法歸一) 일귀하처(一歸何處)' 그 화두를 떠억 주신다 그 말이여. 꿈에 그 단교 스님으로부터 화두(話頭)를 탔는데 눈을 뜨고 보니 너무 소소(昭昭)하고 영령(靈靈)하다 그 말이여.

그렇게 화두를 들면 들었을 때뿐이지 금방 딴생각이 들어오고, 또 새로 화두를 들면은 일 분도 못 가서 또 딴생각이 들어오고. 그렇게 애를 쓰기를 3년을 했는데.
꿈에 '만법귀일(萬法歸一) 일귀하처(一歸何處)' 화두를 단교 스님으로부터 딱 받고서는 화두를 들라고 안 해도 제절로 터억! 현전(現前)하는데 혼침도 간 곳이 없고, 번뇌 망상 산란심(散亂心)도 간 곳이 없어.
앉아도 화두요, 서서도 화두요, 밥을 먹으나 옷을 입으나 똥 누고 오줌을 누나, 일체처(一切處) 일체시(一切時)에 제절로 화두가 드러나.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는데 말로써 표현할 수가 없어.

이렇게 말씀을 하면 '나도 꿈에 그런 누구한테 화두를 한 번 타 봤으면' 혹 그러한 생각을 하실 분이 있을란가 모른지만, 꿈에 그 화두를 타게 되는 데에는 3년이라고 한 세월을 단 일분일초도 범연(氾然)히 지내지 안 했다 이것입니다.
화두를 들어 가지고 일 분도 못 되어서 화두가 없어져 버리면 또 들고, 일 분도 못 되어서 없어지면 또 들고, 혼침이 오면은 포행하고 산란심이 일어나면 화두를 들고.

그래서 혼침과 산란과 그 두 놈들이 번갈아가면서 들어오는데, 그러한 사이에서도 일분일초도 그냥 혼침에다 맡겨 둔 채 지내지 아니하고, 산란심이 일어난 채 그냥 그놈에다 맡겨 두고 지내지를 안 했다 그 말이여.
그렇게 애를 쓰고 이를 악물고 스스로 채찍질을 가하면서 3년을 하루같이 애를 썼기 때문에 몽중(夢中)에 화두를 타는 데에까지 이르렀다 그 말이여.(처음~15분28초)




(2/3)----------------

백년삼만육천조(百年三萬六千朝)에  반복원래시자한(返覆元來是這漢)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그 고봉 스님이 꿈속에서 단교화상으로부터 '만법귀일' 화두를 타 가지고 정진을 하는데 애써서 할 것이 없어. 제절로 의단이 독로하는데, 그 성성(惺惺)하고 적적(寂寂)하고 그러한 가운데 화두가 드러나는데, 앉으나 서나 누우나 밥을 먹으나 옷을 입으나 조끔도 털끝만큼도 힘을 들일 것이 없고 일부러 지어서 할 것이 없어.
지나간 3년 동안에는 온전히 억지로 지어서 했는데 이제는 지을 것이 없어. 애쓸 것이 없어. 제절로 화두가 독로하는데.

일부러 딴 생각을 좀 해 볼라고 해도 되지를 안 혀. 옆에서 떠들어도 상관이 없고, 옆에서 잡담을 해도 상관이 없고, 사람이 수십 명, 수백 명 있는 대중 가운데에 앉아서도 한 사람도 눈에 보이지를 안 혀. 밥을 먹을 때도 그저 대중 따라서 밥을 먹을 뿐이지, 밥 먹는 것에는 아무 상관이 없어. 다맛 따라서 그저 밥 먹고 그저 똥 마려우면 똥 누고 그러지 화두에는 추호(秋毫)도 관계가 없어. 그렇게 화두가 순일무잡(純一無雜)하고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어서 그러한 상태로 일주일이 갔는데.

일주일 만에 달마(達磨) 스님 제삿날에 탑전(塔殿)에, 대중과 합해서 그 탑전에 올라가서 제사를 지내는데, 그 오조 법연(五祖法演) 화상의 탱화(幀畵)에 '백년삼만육천일(百年三萬六千日) 반복원래시자한(返覆元來是這漢)이다, 백년 삼만육천 일에 반복하는 놈이 원래로 이놈이다' 한 글이 쓰여 있는데 그 글을 보고서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했습니다.
백년이면은 날수로 치면은 삼만육천 일인데, 그 '백년 삼만육천 일에 반복하는 놈, 엎어졌다 뒤집어졌다 하고, 일어났다 꺼졌다 하고, 갔다 왔다 하는 이 반복하는 놈이 바로 이놈이다' 한 그 게송(偈頌)에 화두를 타파(打破)했어. 천칠백 공안(公案)을 어느 공안을 들어봐도 하나도 맥힘이 없어. 자기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을 깨달아 버린 것입니다.

비단 중국에 고봉 선사 뿐만이 아니라 역대조사(歷代祖師)들이 다 대도(大道)를 성취하는 데에는 그만한 목숨을 걸고 용맹정진을 하셨던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 여러분들도 3년을 기한을 정해 놓고 정진을 열심히 하신 것은 좋으나, 3년 지내고도 깨치지 못하면 꺼떡하면 자살 같은 거 하고 그러한 것을 내가 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3년도 길고 하루씩, 항시 전강 조실 스님께서 말씀하시기를 '3년도 길고 석 달도 길어. 하루씩을 작정을 해라' 하셨습니다.
오늘 하루를 딱! 작정을 하고 그날 하루를 짬지게 단속(團束)을 하고 정진을 해서 그날 하루를 딱 결산을 하고. 그 다음날에는 또 하루를 작정을 하고 좀 더 알차게 정진을 하고.
이렇게 해서 하루씩 하루씩을 작정을 해서 여법(如法)하게 해 나가면 열흘이 하루 같고, 한 달이 하루 같고 석 달이 하루처럼 그렇게 단속을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중생은 근기(根機)가 약해서 석 달이나 3년 길게 잡아 놓면, 하루 이틀은 괜찮지만 벌써 사흘째 가면은 자기도 모르는 새에 늘어지게 되고 열흘이 지내가면 더 늘어지거든. 또 정신을 차려도 또 며칠 안 가면 또 풀어지고 이러니까 하루씩을 단속을, 작정을 하고 하면 풀어질 수가 없거든.

농사를 지어 보면 곡식이라고 하는 것이 자랄 때가 있는 것입니다. 모자리를, 봄에 일찍이 모자리를 해서 그 모가 잘 자라면은 그것을 하지(夏至) 전에까지 다 심어야 하는데, 될 수 있으면 하루라도 일찍 심을수록에 수확이 더 늘어나고 좋은 것입니다. 아무리 늦어도 하지가 넘어버린 뒤에 심은 것은 농사가 볼 것이 없는 것입니다.

일찍 심어 가지고 한참 날씨가 뜨겁고 그럴 때에 그때 필요한 만큼 그 벼가 자라게 해 주어야 제대로 수확을 보는 것이지, 그 자라야 할 때에 날씨가 춥거나 너무 오랫동안 비가 많이 와서 햇볕을 보지 못하거나, 또는 너무 비가 오지 안 해서 가물어 가지고 바짝 말라서 논바닥이 갈라지고 해서 수분이 없어서 자라지를 못하거나, 또 비료가 부족해서 자라지 못하거나, 논을 세 번 이상 매 주어야 하는데 논을 매 주지 못해 가지고 잡초 속에 우거져 있거나, 이리해서 자라야 할 그 시기에 자랄 수 있도록 해 주지 아니하면 그 농사는 볼 것이 없습니다.

이 수행(修行)도 발심(發心)을 해서 공부할 때에, 할 그 시기(時機)가 있는 것입니다. 그 시기에 그때에 채찍을 가해서 좋은 도반(道伴)들과 선지식(善知識)의 바른 지도를 받으면서 그 시기에 참 알차게 공부를 해놔야 하는 것이지, 그 시기를 놓쳐 버리면 기름 참선이 되어서 나중에는 늙발에 가서 좀 할라고 해봤자 별 볼 일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공자(孔子)님도 말씀하시기를 '삼십에 서지 아니하면 그 뒤에 아무리 노력을 한다 해도 별로 보잘 것이 없는 것이다'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정진(精進)도 할 시기(時機)가 있어서 그 시기에 발심하고 분심(憤心)이 났을 때 야무지게 단속을 해서 공안을 타파(打破)를 해서 본래면목(本來面目)을 철견(徹見)을 해야지, 처음 발심했을 때 시원찮게 다잽이를 해 가지고 그럭저럭 지내버려 놓으면 10년 20년 그럭저럭 별로 소증처(所證處)가 없이 기름 참선이 되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을 드리면 혹 연세가 많으신 보살님네들은, '하이고! 시기가 있다는데 인자 늙어서 선방에 와 봤자 나도 별 볼 일이 없겠구나' 혹 그렇게 자포자기(自暴自棄)를 하셔서는 아니 됩니다.
젊어서 발심한 사람은 젊어서 발심한 대로 시기가 있고, 연령(年齡)이 많아 가지고 선방에 오셔서 발심한 분은 또 연령이 많은 그날부터서 첫 철이니까 한 살인 것입니다. 오십에 들어오시면 오십 세에 들어온 해가 법(法)의 나이로서는 그날이 한 살이고, 육십에 들어오셨으면 육십 살이 이 법의 나이로서는 한 살이여. 그것을 법랍(法臘)이라 그러는데.

한 살 되었으니 세속적(世俗的)인 나이 많은 것을 여기서 따질 것이 못됩니다. 그날 한 살로 생각하고 정말 나이 많은 것도 잊어버리고, 자기가 세속에서 잘사는 것도 잊어버리고, 지식이 많은 것도 잊어버리고, 지나간 세월에 절에 오래 댕겼다고 하는 것도 다 잊어버리고.
'이 최상승법(最上乘法)에 발심한 그날부터 부처님 제자(弟子)로 새로 태어났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정말 알뜰히 한 생각 한 생각을 단속을 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 이 자리에 모이신 분은 대부분 오래 전부터서 참선법(參禪法)을 믿고 정진하신 분들이 많이 계시고 또 일부는 참선이 좋단 말은 들었지만 실지로 선방에 와서는 한 번도 지내보시지 아니한 그런 분도 계실 줄 압니다.
이 참선은 꼭 선방에 들어와야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정에 계시면서도, 가정생활하면서도 올바른 방법만 알아 가지고 열심히 하면 얼마든지 할 수가 있는 것이고.
또 선방에다 방부(房付)를 들이고 공부를 하시되 시비(是非)나 하고, 사소한 일에 짜증이나 내고, 옆에 사람하고 말다툼이나 하고, 밤낮 앉어서 속 바글바글 썩고 앉어서 제대로 공부를 못하면 참선커녕은 오히려 업(業)만 더 짓게 되는 수도 있는 것입니다.

물론 금년 겨울에 한 팔십여 명이 방부를 들였습니다마는 그분들은 정말 스님네 못지않게, 출가한 스님네 못지않게 이 석 달 동안을 정말 여법(如法)하게 정진을 해주실 줄 생각을 합니다. 그 팔십여 명 가운데에는 칠십을 훨씬 넘은 그런 노보살님네들도 상당수 계신 줄 생각합니다.
칠십 이상 넘어 놓면 몸이 말을 듣지 아니하고, 그 혈압이 높거나 혈압이 너무 낮아서 어지럽기도 하고, 소화도 잘 안되고 귀도 잘 안 들리고 눈도 침침해서 모다 새벽에 일어나서 화장실에 가시고 모다 씻고, 법당(法堂)에 올라오시고 하는데 상당히 어려운 점이 있을 줄 생각합니다.
그래서 여러 대중과 더불어 행동을 같이 하기가 상당히 어려울 줄 생각하지만, 연세가 많다고 누가 나를 위해서 특별히 시봉(侍奉)을 해주는 사람도 없는 것이고, 어쨌든지 몸조심하면서 열심히 정진을 하셔야 할 것입니다.

사중(寺中) 형편이나, 대중의 규칙 생활상으로는 연세가 많으면은 행동을 같이 따라서 하기가 퍽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마는, 연세가 조끔 많다고 해서 방부를 안 받아 놓면 인자 돌아가실 날이 멀지 아니한데, 모처럼 이런 선방에 오셔서 전강 조실 스님 법문을 들으면서 이 청정한 도량(道場)에서 정진할라고 오신 그 갸륵한 신심이 훌륭해서 연세가 좀 많아도 대중과 같이 생활하는 데 크게 불편이 없기만 하면 연령 가지고는 너무 심하게 하지 않도록 그렇게 배려를 해서 방부를 받아들이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 젊은 사람들보다도 노인일수록에 더 정진을 알뜰히 하셔야 하고, 젊은 사람들이 잡담을 하더라도 '나도 그럭저럭 잡담하다 내가 이렇게 늙어버렸소. 그러니 한 살이라도 덜 먹어서 어쨌든지 공부 열심히 하라'고 이렇게 경책(警策)을 해 주신다면 젊은 분들도 거기서 참 발심(發心)을 해서 감동이 되어 가지고 정진을 잘할 줄 생각합니다.(15분34초~31분54초)




(3/3)----------------

여러분이 보시다시피 지금 선방이 옛날 지대방을 털어 가지고 큰 방을 만들고, 지대방은 저 뒤채에다가 해 놨으니, 이쪽 선방에서는 아무 잡담을 할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물론 저쪽 지대방에서라도 잡담을 하라고 그렇게 방을 넓게 만들어 놓은 것은 아닙니다마는, 여기 공부하러 오셨지 잡담하러 오신 것이 아니거든. 그러기 때문에 어디에서나 잡담은 해서는 아니 되려니와 특히 이쪽 선방에서는 전혀 말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방선 시간에, 입선(入禪) 시간에는 말할 것도 없고 방선(放禪) 시간이라도 이쪽 선방에서는 말을 할 필요가 없어요.
떠억 앉어서 방선 시간이라도 각기 앉어서 묵묵히 화두(話頭)를 들고 정진을 하셔야지, '방선했다' 해 가지고는 대고 벌떡벌떡 드러눕고, 옆에 사람하고 수군순수군수군 뭔 얘기를 하고 그래 쌓면, 정진할 마음을 가진 사람도 옆에서 떠들어 쌓는 통에 정진을, 공부를 못하거든.

자기도 공부를 아니하면서 남까지 공부를 못하게 하면 그 죄는 참회(懺悔)할 길이 없어.
남을 거짓말을 하고 속이고, 남 목숨을 해롭게 하는 것도 큰 죄가 되는데, 도 닦는 것을 못 닦게 방해한 죄는 사람을 죽이는 죄보다도 더 크다 말할 수가 있습니다.

사람을 죽여 봤자 육체밖에는 죽일 수가 없어서 다시 뭐 새로 몸 받아나면 그만이고, 자기도 살생(殺生)하는 죄의 죄값만 받으면 되지만, 도(道) 닦는 것을 방해를 쳐 가지고 도를 못 닦게 하면, 그 사람으로 하여금 해탈도(解脫道)를 증득(證得)할 것을 못하게 한 죄가 되고, 그 사람 한 사람만 못하게 한 게 아니라 그 사람이 도를 성취해서 견성성불(見性成佛)하면 한량없는 중생을 제도할 그러한 대도인(大道人)이 되고 부처님이 될 텐데, 그것을 못하게 방해를 쳤으니 사람을 몇천만 명 죽인 죄보다도 더 크다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 어쨌든지 선방에서는 잡담을 하지 말고, 좀 불편한 점이 있더라도 그것을 잘 이해를 하시고 사소한 일에 말다툼하거나 짜증을 내거나 하지를 말고서, 어쨌든지 한 생각 한 생각을 단속해서 석 달 동안이 하루처럼 엄숙하고 경건하게 정진을 하시도록 간곡히 부탁을 합니다.

이 선방에, 스님네 선방도 지대방을 털어서 큰 방을 만들고, 그 옆에 작은 방 두 개를 벽을 허물어서 또 합쳐서 거기를 지대방으로 쓰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정진하는 스님네에게 좀 더—너무 방이 좁아 가지고 불편하기 때문에 지대방을 그렇게 했으니 정진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한 것이니까 그렇게 이해를 하시고.
어쨌든지 스님네도 열심히 정진을 하시되 '다른 선방에서는 이렇게 안 했는데 여기는 이렇게 한다', '다른 선방은 이러는데 여기는 이렇게 안 한다' 이렇게 해 가지고 꼭 다른 선방과 비교해서 다른 점을 자꾸 들춰내 가지고 불평을 하시지 말고, 이 용화사 법보선원은 법보선원 나름대로에 특성이 있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또 다른 선원은 다른 선원 나름대로 그 선방 나름대로에 또 가풍(家風)이 있을 수가 있습니다.

어느 선방이나 모든 것이 다 똑같으란 법은 없습니다. 이런 데는 이런 데를 만나면 그 법도(法度)에 따라서 순응하고 적응하면서 그 속에서 정진을 알뜰히 하고, 또 다른 선방에 가면 그 선방 나름대로 법도가 있으면 그 법도에 순응하면서 거기에 적응하면서 정진을 할 따름인 것입니다.
마치 저 남방(南方)에 더운 데에 가면 더운 데에 따라서 옷을 입고, 저 북방(北方)에 추운 데로 가면 추운 데에 따라서 거기에 알맞는 더운 옷을 입으면서 지내는 거와 마찬가지입니다. 음식도 또한 그렇고 모든 규칙과 법도도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자기 마음에 안 든다고 해서 불평하기 보다는, 그 자기 마음에 안 드는 그것에 하심(下心)을 하고 자기의 마음을 비우고서 거기에 적응할 때에 이(理)와 사(事)가 한목 병진(竝進)해 나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마음의 자세가 그렇게 되어야 어디를 가거나, 동서남북 어디를 가거나 온통 자기 정진에 큰 발전을 가져다 주는 것이고, 마음가짐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아니하면 여러 가지 나를 위해서 좋은 인연을 만나도 거기에서 그것을 발판으로 해서 나아가지를 못하고 오히려 거기서 자꾸 자기는 경계(境界)에 속고 얽매임을 받아 가지고 계속 정진에 손해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한산정상월륜고(寒山頂上月輪孤)헌디  조견청공일물무(照見晴空一物無)로구나
나무~아미타불~
가귀천연무가보(可貴天然無價寶)헌디  매재오음익신구(埋在五陰溺身軀)로구나
나무~아미타불~

한산정상(寒山頂上)에 월륜고(月輪孤)한데, 한산 산꼭대기에 둥근달이 밝았는데,
조견청공일물무(照見晴空一物無)로구나. 저 맑은 하늘에 그 달이 밝게 비추어서 한 물건[一物]도 없구나. 구름 한 점 없는 달이 휘황창 밝으니 무엇이 있느냐.

가귀천연무가보(可貴天然無價寶)가, 귀하고 귀한 그 천연에 값없는 보배가,
매재오음익신구(埋在五陰溺身軀)로구나.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 이 사대(四大)로 뭉쳐진 육신과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으로 얽혀진 우리의 마음, 이 오음(五陰)의 몸뚱이 속에 그 무가(無價), 값없는 보배가 매장(埋藏)되어 있구나.

우리는 쓰고 쓰고 또 써도 한량(限量)이 없고, 퍼도 퍼도 퍼내도 바닥날 줄 모르는 영원히 다함이 없는 그러한 무가보(無價寶)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무가보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잘 활용을 할 줄 모르고, 그것을 발견을 해서 그것을 자유자재로 쓰지를 못하고一그것이 바로 이 육신, 오음색신(五陰色身) 속에, 탐진치 삼독 속에 그놈을 묻어버린 채 끊임없이 업(業)만 짓고 그래 가지고 육도윤회(六道輪廻)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행히 우리는 불법(佛法)을 만나서—부처님 열반(涅槃)하신 지는 삼천년이 되었지마는, 삼천년 동안 역대조사를 통해서, 역대 선지식(善知識)을 통해서—내가 나를 찾는, 그 무가보(無價寶)를 개발을 해서 찾아내는 최상승법을 전해서, 등등상속(燈燈相續)해서 우리는 그 법에 의지해서 공부할 수 있는 인연(因緣)을 가진 것입니다.
금년 삼동(三冬), '어쨌든지 금년 삼동이 첫 철이요, 마지막이다' 이러한 마음을 가지고 하루하루를 열심히 정진해 주시기를 다시 한 번 부탁을 드립니다.(31분55초~44분2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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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700여 개의 ‘참선 법문(法門)’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 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 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그리고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도 있습니다.

참선법 A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B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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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선법 E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700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