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9'에 해당되는 글 12건

  1. 2021.09.27 •§• 보제존자시각오선인(普濟尊者示覺悟禪人) (보제존자가 각오선인에게 보이심) (전강선사)
  2. 2021.09.24 •§• 완산정응선사시몽산법어(皖山正凝禪師示蒙山法語) (완산정응선사가 몽산에게 보이신 법어)
  3. 2021.09.22 •§• 동산숭장주송자행각법어(東山崇藏主送子行脚法語) (5/5) (동산숭장주가 제자를 행각 보내면서 하신 법어) (끝)
  4. 2021.09.20 •§• 동산숭장주송자행각법어(東山崇藏主送子行脚法語) (4/5) (동산숭장주가 제자를 행각 보내면서 하신 법어)
  5. 2021.09.19 •§• 동산숭장주송자행각법어(東山崇藏主送子行脚法語) (3/5) (동산숭장주가 제자를 행각 보내면서 하신 법어)
  6. 2021.09.15 •§• 동산숭장주송자행각법어(東山崇藏主送子行脚法語) (2/5) (동산숭장주가 제자를 행각 보내면서 하신 법어)
  7. 2021.09.14 •§• 동산숭장주송자행각법어(東山崇藏主送子行脚法語) (1/5) (동산숭장주가 제자를 행각 보내면서 하신 법어)
  8. 2021.09.12 §((212)) 네 아내(육신, 재산, 부모형제 처자권속, 마음)의 비유 / 우리의 자성(自性) 본성(本性) 바로 그놈을 제일 애끼고 사랑하고 돌봐줘야.
  9. 2021.09.08 §((212)) (게송)백운아향만리표~ / 육조과 남악회양 / 활구참선. 은산철벽 / 참선은 쉽다(세수하다가 코 만지기), 어렵다(깨 한말을, 한알씩 나무위로 굴려 올리기).
  10. 2021.09.03 §((128)) 우리 선망부모를 천도해 드리는 날, 백중날 / 모든 중생이 다 우리의 선망부모 / 영혼, 영가의 하소연 / 전강스님께서 만년위패 법보단을 창설하신 의의.

 

•§• 보제존자시각오선인(普濟尊者示覺悟禪人) (보제존자가 각오선인에게 보이심) (전강선사)

**전강선사(No.253)—몽산법어부록. 보제존자시각오선인(72.06.07.새벽) (전253)

 

 

(1) 약 17분.

 

 

(2) 약 15분.

 


(1)------------------

가소세간애(可笑世間愛)다  빙소와해시(氷銷瓦解時)니라
나무~아미타불~
은다번극한(恩多飜極恨)이요  환극각성비(歡極却成悲)니라
나무~아미타불~

인간 애착(愛着)을 좀 생각해 봐. 순전히 인간 애착인데. 인생이 생겨남에 그저 나면서부터 어머니 그 젖꼭지를 물고 그저 어머니 품속에 살아 나오는 것이 어머니는 그 자식을 끌어안고 그 애착이 어떠하며, 또 그 자식은 어머니의 애착이 어떠하며, 그렇게 그 애착 속에서 이 몸을 키우고 기르고 떠억 한평생 산다. 그거 세간애(世間愛)락 햐.
그것 일생을 살고 보니 참 빙소와해(氷銷瓦解)지. 빙소와해여, 거 얼음 녹듯 해 번지고 그 아무 그 뭐, 아무것도 아녀, 인생살이.
거 칠팔십 년 산다고 해 봤던들, 무슨 칠팔십 년 산 사람이 몇 되아? 그저 뭐, 그것 뭐 뱃속에서도 그저 떨어지고, 그놈의 목숨 뭐 그거 한 살에도 없어지고 그저, 그 말할 것도 없지.

은다번극한(恩多飜極恨)이여. 그 은혜는, 자식은 어머니의 은혜가 중하고, 그 모두 형제 뭐 친척 그저 그 은혜뿐이여. 은혜가 서로서로 중(重)혀. 은혜는 한량없이 중하지. 그 은혜가 중(重)할수록에 맨 한(恨)뿐이다. 이별밖에 없으니 인자 마지막 이별할 때는 그 한(恨)이 어떠헌고?
그 남편하고 살든 그 은혜 그놈, 저 자식 은혜, 뭔 은혜 그것 다 한번 계산을 해 보지. 그 무슨 소용이 있어. 그놈의 은혜 속에서 짓는 것이 죄업(罪業)만 짓네. 전부 은혜 하나 때문에 짓는 것은 삼악도(三惡途) 죄업밖에는 짓는 게 없거든, 인생사가.
하나도 참 제게 이익이라고는 조금도 없고, 죄업만 잔뜩 퍼 지어 놓고, 한(恨)만 잔뜩 퍼 끌어안고, 이것 뿐이여, 인생사가.

환극각성비(歡極却成悲)니라. 그놈은 또 사는 인생살이, 인생 사는 동안에 그 즐거워. 좋아. 부부지간 좋지. 그 부부지간 그거 모두 자식새끼 낳아 놓고는 좋지. 볼수록 좋지. 그놈이 도리어 그만 전부 인생 비극이 되어 버리네. 마지막에는 그만 그놈 때문에 지옥에 들어가서 저는 저대로 고(苦) 받고, 처자는 처자대로 받고, 자식은 자식대로 받고, 한푼어치도 소용없다. 인간사(人間事)가 이려.


보제존자(普濟尊者)가 그래서 시각오선인(示覺悟禪人)이다. 보제존자가 각오선인이라는 학자를 데리고 도(道)를 일러주는데, 염기염멸(念起念滅)이 위지생사(謂之生死)니라. 생사가 다른 것이 아니다. 이 몸 늙어서 죽는 것이 생사가 아니라, 생각 일어나는 놈이 그놈이 곧 생(生)이요, 나는 것이요. 생각 일어났다가 멸(滅)허는 놈이, 없어지는 놈이 고놈이 죽는 것[死]이니라. 마음이 일어났다가 마음이 멸하는 것을 그것을 생사(生死)라고 볼 수밖에 없다. 멀리 갖다가 붙여 볼 것 없다.

어머니 뱃속에 요까짓 사대색신(四大色身) 몸뚱이 하나 얻어 나온 것을 생(生)이라, 살았다고 하고, '났다'고 하고, 요 몸뚱이 늙어서 늘쿠어서 죽는 지경, 죽는 것을 그걸 사(死)라고 할 것이냐? 그것 소용없는 생사(生死)다. 한 생각이 일어날 때 벌써 생(生)이다. 일어난 놈이 또 멸(滅)할 때가 사(死)다.
그러니 우리 중생이라는 것은 일어났다가 멸헌 것뿐이지. 밤낮 그저 아무것도 아닌 놈의 뭔 염(念)이 일어나 가지고 또 없어지고 또 장만해서 또 일어나 가지고 또 없어지고, 이 노릇 이 지경 허고 있다. 뭣이여?
가만히 앉어서도 앉을 때가 있나? 앉어서 밤낮 그저 뭔 집안에 별것을 다 생각했다가 그놈 또 없어지고 또 뭣이 일어나고, 그거 인생살이..

부처님은 툭 깨달라 버렸으니 모도 각도리(覺道理)인디, 일어나고 멸한 것이 그것이 각도리여. 부처님 가풍이요, 생사 없는 해탈각 도리여. 천만 가지 만상을 아무리 다 이루어 보지, 거가 무슨 생사가 있으며. 그놈이 멸해 보지, 무엇이 그 사(死)가 있는가. 생사가 환멸(幻滅) 그놈이 그대로 그만 생사 그놈 모도 대각(大覺) 가풍이지.

똑 깨닫지 못허고 그 미(迷)해 가지고서는 미(迷)해서 그렇게 생(生)이 되고 멸(滅)이 되어 생사고(生死苦)를 받는구나. 그걸 갖다가 생사(生死)라고 한다.

공부인은 참선허는 사람은 당생사지제(當生死之際)하야, 그 생사의 쫌을 당해라. 일어났다가 멸했다 하는 그 쫌을 가 보아라. 뭐가 어디서 일어나며, 뭐가 어디서 멸허느냐? 일어나고 멸헌 그 근본 당처(當處)를 한번 가서 떠억 보아라. 뭐가 일어나며 뭐가 멸허느냐?
기상(起想)은, 일어나는 그 상은 무엇이며, 멸허는 상은 무엇이냐? 일어나는 상도 없으며, 멸허는 상도 없으며, 무슨 기멸(起滅)이 있나? 기멸 당처 가서 보아라. 그 기멸 당처에, 일어났다가 멸했다가 하는 당처(當處)에 가서 수진력제기화두(須盡力提起話頭)해라.

거기서 다른 생각 아무것도 말고 '여하시조사서래의(如何是祖師西來意)인고?'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판치(板齒)에 판때기 이빨에 털 났느니라' 한 조사공안(祖師公案), 조주(趙州) 공안 그 공안을 한번 '어째 판치생모라 했는고?' 해 봐라.
어디 기(起)가 어디서 그놈이 일어나며, 멸(滅)이 어디서 멸이 거가 일어나? 당장 그만 생사(生死)가 즉절(卽絶)이다. 생사가 그만 거그서 붙지 못한다. 거그서 화두를 한번 일으킬 것이니라.

화두(話頭)가 순일(純一)하면, 그래서 그 화두가 온당하게 '어찌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알 수 없는 의심(疑心) 하나로구나. 의심 하나 그놈 참 좋다.
알 수 없는 그 의심 하나가 일어나는 놈도 그거 그 무슨... 집어 삼켜버리고, 멸한 놈도 집어 삼켜버리고, 무슨 삼킨 입이나 뭐이나 있나? 없어. 화두 하나뿐이다.

그 화두 하나, 그놈 일념(一念) 하나 갖춘 것이 그렇게도 어려우냐? 금방 좀 생각하다 내던지고 또 무엇이 또 들어와 일어나서 또 무엇이 멸하고. 기멸(起滅)이 거기서 도로 그만 기멸, 그것이 무엇이냐?
당념이, 당장 화두 학자라는 거 화두 일념이 전후(前後)가 제단(諸斷)이지. 생(生)이니 사(死)니 어디가 붙어 있어?

그 화두 일념 하나 좋다. 참 그 활구참선 학자다. 살아나가는 곳이다. 그놈 하나 일념 일념을 단속해 보아라. 그 당념(當念)을 단속해라!
조금만 틈이 있으면 그만 화두는 공안은 간 곳 없고, 그만 기멸이 들어온다. 그놈의 기멸상(起滅想) 고약한 것이니라. 기멸상 그놈이 일어났다 멸했다 하는 것이 이것이 원 끝도 없고 갓도 없고 역사도 없이 이렇게 이 지경을 해 나온 것이 그것이 그 기멸상(起滅想), 그것이 생사(生死)다.

왜 이따위 생사죄만 퍼 짓고 있냐? 일어났다 멸했다 일어났다 멸했다, 그저 살생 오욕 그저 십악중죄(十惡重罪)의 별별 념(念)이 다 일어났다 멸했다 일어났다 멸했다, 참 그놈의 기멸상, 중생 죄업이 이놈이 제일 크다. 뭐 몸뚱이로 때려 쳐 죽이고 보담도 천만 배 크다.
거족동념(擧足動念)이 시죄(是罪)라니, 그 생각 일으키고 멸한 것이 이 죄다. 왜 그 당념(當念) 하나를 좀 다스릴 줄, 좀 그놈을 다룰 줄 모르느냐? 그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노?' 활구(活句)다. 대활구(大活句)다.

화두가 순일(純一)하면, 그와 같은 화두가 조금도 사이 없이 순일청정(純一淸淨)허면, 알 수 없는 놈 하나가 들어와서 독로의단(獨露疑團)이면은 기멸(起滅)이 즉진(卽盡)이다. 기멸이 어디 있느냐? 없는 것이여, 그것이. 본래 없는 것이여.
왜 이러노? 어디가 붙어 있고, 어디가 있고, 나온 곳이 어디고? 그 기멸즉진처(起滅卽盡處)를, 기멸이 다해 버린 곳을 화두순일(話頭純一)이라 한다. 착! 일체가 다 그놈의 무엇이 무엇이 붙어 있어? 화두 하나뿐이지. 그 화두 하나, 그놈이 그놈이다. 화두를 순일이라 한다.
그 순일(純一) 가운데—화두가 없으면은 순일이 아니여. 순일(純一)이라 하는 것은 오직 화두 하나뿐인데 화두가 없으면 그 무슨 순일이냐? 중생 번뇌 망식(妄識)이지.

화두가 순일해 버릴 것 같으면 그 순일 의단독로(疑團獨露)뿐이니 그 무슨 무기(無記)냐? 무기라 하는 것이 아무.. 또 그 인자 망상 없는 곳에는 무기인디, 무기라 하는 것은 잠이 들어오는디, 그놈 잠 아니면 무기, 잠도 아니면 그 무엇이여, 그거? 잠도 없으면 그놈 뭐 무기(無記)지. 아무것도 아니지. 제팔뢰야식장(第八賴耶識藏)이나 될까?
제팔뢰야식장에는 아무것도 없지. 화두도 없다. 화두도 뭣도 아무것도 없지. 망상도 번뇌도 아무것도 없지. 잠이 꼭 들어 잠잔 상(想)도 없지. 그 잠 꼭 들어서 잠잔 상(想)도 없을 때, 꿈도 없을 때, 고걸 무기(無記)락 햐.

그 무기라 하는 것은 무엇이여? 그것은 그 무기(無記)라는 건 그건 세세생생(世世生生)에 생전 깨닫지도 못하고 근본식장(根本識藏)에 들어앉었는 것이여.
그 역사도 없이, 영원히 없이, 끝도 갓도 없이 무기(無記)로만 그대로 딱! 되아 번지면은, 그 뭐 그 고(苦)도 없고 뭣도 없고, 아무것도 없고 인생 낙(樂)이고 뭐이고 아무것도 없지. 없지마는 그대로는 되들 안 해, 유정(有情)이라는 것은. 그대로 그 영원히 가들 못혀. 그놈이 도로 나오지. 일체난상(一切亂想)이라는 것이 그 태중에 그건 알 속에 들어앉었다가 폭 터져 나온 고놈이 있지, 없들 안 해.

그러고 그 참 무기(無記) 중에서 거기서 각(覺)이 있는 것이여. 제팔뢰야식장(第八賴耶識藏) 각(覺)이 있는 거여. 깨달라야 되는 거여.(처음~16분59초)





(2)------------------

그 고봉 스님께서, 고봉 스님 그 옛날 그 고봉 스님께서 그렇게 깨달라 가지고, 그 깨달을 동안까지 처음부터 깨달을 동안까지 그 고생 참 무척도 했지, 안 되아서.

'안 된다'는—아! 그거 안 되고 된 것이 없이, 되고 안 되는 것이 없이 화두 하나만 항상 거각(擧却)해서, 알 수 없는 놈만 항상 거각해 독로(獨露)해 가면, 원 힘들 것도 없고 무엇도 없고, 그저 똥 누다가도 그저 '판치생모'다. 옷 입을 때도 '판치생모'다. 요연히.
원 그것을 어디 무슨 일조(一朝)에 무슨 그저 그만 참 언하(言下)에 대오(大悟)도 있지마는, 어서 대오를 기달라 뭣혀? 순일만, 화두만 의단독로만 알 수 없는 놈만 자꾸 챙기지, 그놈만 거각하지, 어서 깨닫기를 거기서 야단을 치고 앉았어? 무슨 놈의 왜 그런 그런 번뇌를 거기다 때려 붙일 것이여?

그렇게 화두가 안 되아 원 별짓을 다했네. 하도 안 되니까.
'원 이렇게도 안 되아?' 그 '안 된다'는 번뇌상(煩惱想)이 퍼 일어나는 것이 그게 모두 식업(識業)이여. 다생(多生)에 모두 업(業)을 지어 식업(識業)이여.

자도, 이놈의 잠만 앉으면 잠만 오지, 서면 망상만 일어나지, 산란(散亂) 아니면 망상(妄想)이지, 망상 아니면 산란이지. 아! 이놈의 것을 가지고는 그 범벅을 치고 있으니, 앉아도 안 되지, 서도 안 되지, 그만 그저 하! 이거.
오직 해야 '에이, 이놈의 것 안 되면 죽어버려야겄다. 그까짓 놈의 거 도(道) 없는 몸뚱이가 살면 뭣허냐? 하루 살면 뭣허고, 이틀 살면 뭣허냐? 일 년을 살면 일 년 죄 짓고, 십 년 살면 십 년 죄만 퍼 짓는 놈의 인생, 중생 몸뚱이, 은혜만 퍼 짓는 놈의 중생 몸뚱이. 그저 모두 부처님 말씀에 볼 것 같으면 「일적지수(一滴之水)가, 한 물방울도 팔만사천 축생이 산다」 했으니 날마당 물 한 방울 뭐 마시는 것도 살생만 하고, 거다가 더군다나 쌀 한 냍기(낱개)가 감할지중(減割之重)이 일미칠근(一米七斤)인디, 쌀 한 냍기가 얼맨디 은혜가. 그놈이나 퍼먹고. 그저 놀아도 죄만 짓고 그저 살생을 안 해도 죄만 퍼 짓는 놈의 몸뚱이인디, 이까짓 놈의 몸뚱이 살아 뭣하냐? 죽어버려야겄다'고 생각을 했다가도.

'그 소중한 몸뚱이, 이 몸뚱이 한번 얻어 가지고는 도(道)를 깨달라야 하지. 얻기 어려운 몸뚱이 얻었으니 몸뚱이 얻은 목적은 도(道)를 통해 도를 깨달라야겠다'는 마음이 또 일어나면, 그 난조지상(難遭之想)이, 만나기 어려운 상(想)이 일어나 가지고는 그 또 또 한바탕 해제끼다가도 그놈의 망상이 또 퍼 일어나면 번복이 되고. 그거 거! 기가 맥혔지.

그 삼년사한(三年死限)을, '3년 만에 내가 만약 못 깨달으면 그때는 죽으리라' 이놈 해 가지고 해 보니 더 안 되네. 더 안 되아. 꼴 좀 보소.
'이것 고인(古人)이 속였지. 부처님부터 역대조사(歷代祖師)가 생사해탈이 있다는 거, 깨달른다는 거, 견성헌다는 것이 거짓말이지. 중생을 속였지, 이게 있을 수가 있나? 이게 있을 수가 있으면은 이렇게 도무지 번뇌 망상이 퍼 일어나면서 안 돼?'
넨장! 자기 짓고 자기 받는 것은 알들 못하고, 자기 미(迷)한 그 칠통(漆桶)은 알들 못하고는 부처님만 원망하네. 그래도 그래도 또 퇴타(退墮)는 안 했네. 죽어도 퇴타는 안 했네. 몇 번을 퇴타할 마음이 일어.

세상에 이 도를 바로 믿고야 퇴타가 어디 있나? 퇴타하는 날에는 그날 그저 그대로 지옥 생함지옥(生陷地獄)하는 것인데, 생함지옥이 뭐...
일시 일시 한 순간인들 화두 없이 지내가는 거 그 무엇이여? 그거 뭐 그 인생이락 햐? 뭣이락 햐? 뭐라고 할 것이여 그것이? 똥 벌거지... 인오미충(人惡尾蟲)이 불변정예(不辨淨穢)지. 똥 벌거지가 똥 속에서 똥 파먹고 있는 거, 우리가 보기 싫어 더러워 추해서 춤 뱉지. 성증사문(聖憎沙門)이 불변정예(不辨淨穢)다. 성현이 우리를 중생이 그렇게 미(迷)해 가지고 저를 찾지 않고 그 헛된 일만 하고 있는 거, 그 죄만 퍼 짓고 있는 거, 기가 맥히지.
그렇게 안 되아도 그 퇴타를 또 '불보살이 거짓말했다 속였다' 하다가도 '그럴 이치가 있나? 부처님으로부터 역대조사가 그래도 딱딱 깨달랐기 때문에 요렇게 딱딱 딱딱 전해 주었는데, 그 인가(印可)해서 전통해 주었는데, 없을 리가 있나?' 다시 믿고 다시 믿고.

허! 그래 가지고 그 참 홀연히 그 수몽(睡夢) 중에, 꿈 가운데 화두를 얻어 가지고는 차차로 의단돈발(疑團頓發)해서 그때부터 하! 그만 의심이 일어나기 시작하더니 아! 그만 뭐 뭐 의단독로(疑團獨露)다. 내버릴라야 내버릴 수 없다. 의단(疑團)이 추역불거(推亦不去)다. 그만 불꽃같이 맹렬하게 일어난 의단이 참 기가 맥히다. 아! 이러헌 지경이, 이러헌 지경이 있는 것을 내가 고인을 원망하고. 허!
하! 이렇게 해 가지고는 불과 일주일이네, 일주일. 활구(活句)라는 거 일주일 넘어간 법 없네. 의단만 옳게만 일어난다면 일주일 넘어간 법이 없어.

그 기연(機緣)에 의지해서 거 무슨 그 깨달을라면은 그 경계(境界)를 보고 깨닫던지, 언하(言下)에 대오(大悟)던지, 그게 다여. 활구(活句)는 있는 법이여.
그대로 무슨 책장 중에서 요리 생각허다 '오! 그리여' 그건 아니여. 그건 소용없다 그 말이여. 어디가 그것이 소용이 있을 것이여, 그것이? 뭐 그 무슨 수수께끼나 하나 생각하다가 '옳다' 고런 거? 고 견성이여? 택없는 소리여.

깨달라 가지고는—또 그 무슨 머리를 들어서 저 건너를 보다가 '반복원래시자한(返覆元來是這漢)'이라는 놈 보고 탁! 깨달라 가지고서는 그놈, 백장야호(百丈野狐)와 구자무불성(狗子無佛性)과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와 마삼근(麻三斤)과 천칠백공안(千七百公案)을 종두밀거험지(從頭密擧驗之)허니, 처억 한번 증험(證驗)을 해보니 무불요요(無不了了)다. 어디 안 깨달은... 어디가 어디가 맥힌 게 있어? 맥힌 게 어디가 맥혔어? 그 제불묘리(諸佛妙理)가 일관도천(一串都穿)이다. 그때에 스승 만나지 못하면 안 되아.

제 혼자 '깨달랐다'고, 자기 혼자 '알았다'고 해 가지고, 챙피스럽게 알아 가지고 어짜고 어짜고 혀? 고것이 있어? 벌써 고것이 중생상(衆生想)이여, 중생심(衆生心)이여. 어쩌? 거그서는 뭐..
깨달라 가지고는 스승을 만나지 못하면은 큰일나지. 번성독약(翻成毒藥)이지. 아무리 옳게 깨달랐다 해도 독약이여. 죽는 약이여. 사약이여.

그때 그 무슨 화상(和尙)인가? 그 화상을 만나지 뭐, 화상이 또 물었지? 하! 요요철증(了了徹證)이라 하도 깨달랐다고 야단을 친께 물었지. 물을 거 아닌가?
“아! 네가 그래 깨달랐으면은, 그래 그 밥 먹을 때에도 그렇게 너 깨달은 도리가 요요(了了)허냐?”
“밥 먹을 때가 뭣이요”

“옷 입을 때도 요요(了了)?”
“예. 옷 입을 때도”

“똥 쌀 때도 요요(了了)?”
“예. 똥 쌀 때도”

“오줌 쌀 때도 요요(了了)?”
“오줌 쌀 때나”

똥이고 오줌이고 밥이고 뭐 뭐, 뭐 삼라만상(森羅萬象)의 일체 경계를 당헌들 무슨 뭐 뭐, 어디 그 요요(了了)가, 깨달은 도리가 어디 사실이지. 어디 가서 없어지고 있어질 것이여? 깨달은 도리가 붙어 있고 무슨 없어지고 혀?

정수착시(正睡着時)에, 정히 잠이 꼭 들었을 때 수착상(睡着想)도 없을 때, 잠 꼭 든 놈이 잠잔다는 게 있나? 몽(夢)도 없고 수착상(睡着想)도 없을 때는 그 요요헌 너 깨달은 그 각(覺)이 어디 있느냐? 그 말이여, 말하자면.
네 일각 주인공(一覺主人公)이 주재심마처(主在甚麽處) 안신입명(安身立命)고? 그 말이 그 말이라, 바로 말하자면. “너 확철대오헌 각(覺)이 어디 있느냐?”
맥혀 버렸네. 왜 맥힐까 거? 거 왜 맥혀 거? 그 맥힐 까닭이 어째 맥히나? 그걸 깨달른 놈이 왜 맥혀?

허! 기가 맥히다.
못 혀? 그 한마디 못허겄어? 눈만 끔쩍거려도 알고.

꺼떡허면 방맹이 쓰러 들어와. 그 어설픈 놈의 방맹이, 그 더러운 놈의 방맹이, 하이고! 추헌 놈의 방맹이. 방(棒)을 짊어지고 들어온 것을 묻는 걸 알어야 혀. 종사(宗師)가 그것 없으면 주장자(柱丈子)가, 종사 주장자가 본분학자(本分學者) 죽이는 주장자인 것이여.

물으면, 방(棒)진 놈 물으러 방맹이 쓰고 들어오지? 저 죽는 것이여.
꽉! 맥혔네. 딱! 맥히면 죽는 것인께 뭐 뭐. 벌써 그건 벌써 거기에 무슨 '찾다 죽는다'고 내 안 혀? '찾다 죽는다'고. 허! 그 죽네.

거그서 맥혀 가지고는 허어! 이거 참! 기가 찰 노릇이지. 다시 3년을 했네. 3년을 다시 혀. 거 다시 할 때 참말로 그 대선사가 아닌가.
거그서 '내가 깨달랐는디, 내가 제일인디 누가 제일이냐'고 이러고 나오네. 그러고 나와. 그 지경 가들 못하고는 그만 툭딱 뭐라고 나와서는 제가 '견성했다'고 야단이네. 응 제가 견성했다고.
거그 안 속을 사람이 다 속네. 기가 맥힌다. 불쌍하다. 속인 놈 못쓸 놈이지마는 거그 속는 중생 불쌍하다. 그 속아 뭣햐? 글쎄! 우리 대학자들 좀 생각해라, 생각. 착! 가서 그 스승부텀 바로 봐야 한다.

3년을 했네, 3년을. 맥혔으니 3년이지 별수 있어? 꽉 맥힌 곳에서.
무몽무상시(無夢無想時)에 주인공이 각(覺)이 어디 있어? 하! 이놈이 그만 의심이 인자 되니 차차로 의정(疑情)이 돈발(頓發)이지. 그전과는 달러. 거 인자 무슨 고 기멸(起滅)에 가서 야단치든 안 해. 그저 누우나 앉으나 가나오나 그놈이 들어와 가지고 3년을 했네. 그것 별수 없지.

3년 만에 자다가, 목침 베고 낮잠을 자다가, 그저 그때는 그저 칠척단전(七尺單前)에 거가 누어서 그저 혹 잠이 와서 그저 기래끽반(飢來喫飯)하고 곤래수면(困來睡眠)하면서 화두 하다가 누웠다. (같이 자던 도반의) 목침 탁! 삐끄러지면서, 자다가 목침 툭 떨어지면서 그 목침 뚝! 떨어진 소리에 활연대오(豁然大悟)다. 흥! 그때는 활연대오여.
그 무엇을 대오(大悟)했을까? 그 공안 그거 대답 못 혀. 묻도 안 혀. 그건 내가 말만 해 놓지 묻도 안 혀. 답 못혀.

화두를 기멸(起滅)에, 일어나고 멸한 디서, 그 쫌사리가 없이 쫌까장 없이 붙지 못하게 그 일념 하나 알 수 없는 놈, 그것이 순일(純一)이여. 화두 순일을 꼭 그대로 닦아라. 그대로 화두를 해 나가라.

네가 한 대문.. 자 너도 조금씩 해야지. 나만 밤낮 하라고. 너는 인자 뭐 너는 안 헐 사람이냐. 네가 인자 해야지. 자..(17분~31분56초)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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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700여 개의 ‘참선 법문(法門)’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 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 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그리고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도 있습니다.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700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 완산정응선사시몽산법어(皖山正凝禪師示蒙山法語) (완산정응선사가 몽산에게 보이신 법어)

**전강선사(No.348)—몽산법어부록. 완산정응선사시몽산법어(계축73.12.20.새벽) (전348)

 

 

(1) 약 20분.

 

 

(2) 약 19분.

 


(1)------------------

어제 아침에 말했지마는 몽산(蒙山) 스님이 그렇게 불법(佛法)을 비방하고 참선허는 걸 반대하다가 그 꿈을 꾸고 꿈에 그 발심(發心)을 얻어서, 꿈 하나 꾸고는 그 발심이 되었단 말이여. 그렇게 비방하다가. 불교를 그 배척허고 비방하고 말로 헐 수 없이 허다가도, 아 원 뜻밖에 그 꿈꾸고 나서 발심을 해 가지고는 완산정응(皖山正凝) 스님을 찾아갔단 말이여.
찾아가니까 완산정응 스님이 따악 조실(祖室)에 계시는데 처음 절을 했습니다. 평생에 중 욕허고 비방하던 몽산(蒙山)이 완산 도사를 찾아가서는 절을 참 그렇게 정성스럽게 헐 수 없이 절을 허니까.

선자문운(先自問云)은, 먼자 물으되 "이환신득급마(爾還信得及麽)?"
'네가 그렇게 불교를 비방하고 반대하는 사람이라는데' 다 알고는 있는 모양이었지. "어째 이렇게 찾아왔느냐? 신득급마(信得及麽)? 네가 불법을 참말로 이 참선, 견성허는 참선법을 믿고 왔느냐?"
몽산(蒙山)이 이르되 "약신불급(若信不及)이면, 만약 선사를 큰스님을 믿지 아니했으면 부도자리(不到這裏)입니다. 여기에 올 이치가 없습니다. 발써 제가 올 때에는 큰스님 말씀을 믿고 왔습니다"

사(師)가 이르되, 완산 스님이 또 말씀하시기를 "십분신득(十分信得)이라도, 열 번 네가 믿어 가지고 왔더래도 갱요지계(更要持戒)다. 다시 계행 가지기를 요구헐 거니라" 믿기만 해 가지고도 안 된다. 정법을 믿기만 해 가지고 안 되니 계행(戒行) 가지기를 요구해라. 이득영험(易得靈驗)이니라.

계행(戒行)이라는 것이 거 생명 죽이지 않고, 도둑질허지 않고, 사음허지 않고, 거짓말 · 꾸며대는 말 · 두 가지 말 · 악헌 말 · 탐심 · 진심 · 치심, 그 열 가지 십악중죄(十惡重罪)를 짓지 않고 계행만 가지는 것이 그것이 구경법(究竟法)은 아니여. 그게 해탈법은 아니여. 생사를 면허는 법은 아니다마는 고 계행을 가져야사 화두가 쉽게 영험을 얻는다. 쉽게 화두가 된다.

계행(戒行)이 없는 몸뚱이에는 화두가 있을 수가 없거든. 그 난잡한 몸뚱이에 도둑질 · 살생 · 사음질, 거 모도 망어 · 기어 · 양설 · 악구, 모략중상이나 때리고 그 그런 사람이 도를 닦을 수 있냐 그 말이여. 저절로 도 닦는 사람은 그것이 없는 법이여. 그러니 억지로 가질 것 없지. 그대로 화두만 하나 떠억 파면은 화두 하나 얻으면은 아! 그 계행은 절로 따라오는 것이여.
화두허는 사람이 뭐 계행이 없어 되아? 그릇이 있어야 물이 담겨 있는 건디. 계행은 물 같은디. 계행이라는 것은 그릇인디. 그 담겨 있는 물은 화두 참선법이란 말이여.

약무계행(若無戒行)이면, 그 계행이 없으면은, 도학자(道學者)가 계행이 없으면은 된 법이 없으니, 화두가 된 법이 있어? 공중(空中)에 누각(樓閣) 슬거헌 거 같다. 공중에다가서 누각을 지으면 되아? 집을 지으면 되냐 그 말이여. 허공 가운데 집 짓는 것 같다. 안 되아.
계행이라는 것이 영원히 생사 없는 해탈법은 아니지마는 계행이 아니면은 참선 영험을 얻들 못혀. 참선해서 도를 깨닫들 못혀. 그러니 공중에 집 짓는 것 같다 그 말이여. 공중에 집을 지으니 지을 수가 있나? 땅이 있어야 짓지. 집터가 있어야 집을 짓지. 집터 없이 공중에다가 집 짓는 것 같으니라.

허니 '그거 무슨 뭐 계행이 있거나 없거나 뭐 관계있나? 참선만 하면 제일이지?' 거 소용없는 소리여. 계행 없는 사람이 참선은 어떻게 혀? 계행(戒行)을 가져야사 도를 닦는 법이다.

"환지계마(還持戒麽)? 네가 다시 계행을 가지겄느냐?" 지금 이렇게 믿어서 왔지마는, 네가 참선허러 왔지마는 계행을 꼭 가지겄느냐? 늦게 들어왔으니 늦게 들어온 사람이 그 계행을 낱낱이 가지고 도를 닦겄냔 말이여. 습기(習氣)가 있어서 그만 닦는닥 해도 몰리 그만 범(犯)헐 수도 있고, 잘 안되거든. 그러니까 이러헌 단속을 허는 것이란 말이여. "계행을 가지겠느냐?"
몽산이 이르되 "견지오계(見持五戒)입니다. 절대로 5계를 가지겄습니다"

다섯 가지 계행, 5계(五戒)! 5계가 원인이거든. 아! 5계면 그만이지. 살생 않고, 도둑질 않고, 사음질허지 않고, 그것 무서운 계행 아닌가? 살생도 여러 가지가 있고, 도둑질도 여러 가지가 있고, 범계(犯戒)도 계행 범(犯)헌 것도 여러 가지가 있는디, 그만 살생만 통 안 해 번지면 그대로 다 가지는 법이고, 도둑질도 안 해 버리면 조그만한 도둑질도 안 허는 법이니 거다 가져져 있고, 사음질도 그 안 허는 법이니 어디 그 무슨 뭐 그대로 다 가졌지 뭐.
그다음에는 거짓말허지 않고, 거짓말도 여러 가지지마는 그 거짓말도 안 허면 다 안 해 버리지 뭐. 그다음에 술 안 먹고, 고 다섯 가지만 계행을 잘 가져도 선학자(禪學者) 계행이여. 5계가 근본이니까.

"반드시 5계를 가지겄습니다"
긍께 완산 스님이 이르되, 그러면 이후에 이렇게 똑 계행을 네가 가지고 이렇게 믿어서 왔으니 "이후에는 지금부터 지금부터 간개무자(看箇無字)허되, 화두를 보되"

인자 여러 가지 그 화두가 다 '이뭣고?'도 있고, 조주무자(趙州無字)도 있고,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도 있고, 마삼근(麻三斤)도 있고, 판치생모도 있고 헌께 거 다 자기 가진 대로 '이뭣고?' 헌 이는 이뭣고, 조주무자 한 이는 조주무자, 정전백수자 한 이는 정전백수자, 그거 다 자기 가진 대로 화두를 허되, '여하시조사서래의(如何是祖師西來意)인고?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이냐?'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판때기 이빨에 털 났느니라' 여기는 모두 판치생모를 허니까.

'판치생모? 판때기 이빨이에 털이 났다' 판자 이빨에 털이 난 도리를, 알 수 없는 도리를—무슨 도(道) 이치가 딴 이치가 있는 게 아니라, 알 수 없는 이치 하나가 있거든.
'알 수 없는 그 이치를 봐라 그랬다' 그 말이여. 간개화두(看箇話頭)하라 그래. 화두를 봐라 그랬거든.
그 보는 놈이 뭐고? 눈을 감아도 보는 놈이 있고, 눈을 떠도 보는 놈이 있고, 그 관(觀)이 있거든. 관(觀)이 없으면 어디 의심(疑心)이 날 수가 있나. 알 수 없는 의심이.

생각만 해 가지고는 그 생각, 염(念)이라는 놈이 그 관(觀)이여. 관(觀) 다르고 염(念) 다른 게 아니여. 벌써 생각하면은 관(觀)은 먼첨 들어가서 따악 있는 것이여. 그러니까 그 화두 관(觀)을 해라.
만약 알 수 없는 놈 밖의 딴것을 관(觀)하면은 모도 묵조(默照)에 떨어지고, 모도 무(無)에 떨어지고, 모도 공(空)에 떨어지고, 유(有)에 떨어지고, 안된 법이여. 그래서 화두를 의심하라는 것이 그것이여.

의심 독로(獨露)다. 알 수 없는 의심이 홀로 있어야지, 의심 있고 또 딴것이 거그 붙어 있으면 화두가 그 못쓸 것이여. 모도 나락 같은 것이, 벼 같은 것이 다른 잡초에 섞여서 벼인가 나락인가, 되도 않고. 맨 잡초가 우~ 난 것 같이 화두가 그렇게 못쓴다 그 말이여.
허니 알 수 없는 놈을 따악 관득(觀得)해라. 관득해 갖고 관(觀)을 얻어라. 관(觀) 얻은 것은 알 수 없는 걸 얻어라. 알 수 없는 그놈이 딱! 화두가 앞에 나타나야 될 것이니라.

이런 것을 잘 듣고 잘 사량을, 잘 간택을 해야 한다 그 말이여.

그렇게 화두를 관(觀)하는데 사량복탁(思量卜度)을 말아라. '요런 것인가? 요런 것인가?' 복탁(卜度)! 복탁은 이놈을 더, 더 사량(思量) 가운데 더 상량(商量)하고 모도 비교허고 따져보고, 뭐 산술처럼—뭐 뭐 그런 것이 아니여. 반복 사량을 허지 말아라.
그 망상도 여러 가지니까. 망상 난 놈을 되풀이해서 또 생각해 보기도 허고, 요리 사량해 보기도 허고, 저리 사량해 보기도 허고, 별별 중생 따지는 염(念)이 그 굉장하지 않는가? 그 반복 계교사량(計較思量)을 말아라. 그 가운데에도 '있는 것인가, 없는 것이 옳은가?' 그러헌 '있는 건가? 없는 건가?' 고런 알음알이도 내지 말아라. 사량 가운데 든 것이지마는.

그다음에, 간교어록(看敎語錄)도 보지 말아라. 어록 같은 거, 책 같은 거, 고런 책참선, '책에 가서 어떻게 모도 말해 놨는가? 책에 말해 논 그 무슨 이치가 서래의(西來意)가 거 붙어 있는가?' 요러헌 그 짓 말아라. 참선 안 허는 사람이 그런 것 허지, 참선허는 사람이 그런 디 떨어지면 될 거냐 그 말이여. 뭐 간교(看敎), 교(敎)를 보고 경(經)을 보고 그런 짓 말아라.

다맛 거기에 참선허는 사람은 뭐가 있나. 지단단제개화두(只單單提箇話頭)해라. 다맛 화두만 딱! 알 수 없는 관(觀)만 가져라.
알 수 없는 관(觀) 그놈 득관(得觀)하면, 관(觀)만 얻으면은 아무리 했자 뭐 그 관(觀)이 흩어진 법도 없고, 물러간 법도 없고, 어디 무슨 뭐 항상 탄랑중(灘浪中) 깨끗헌 물 가운데 물달, 달그림자 같이 백혀 있지. 아무리 바람이 분들 거 그 물속에 달빛이 없어지나? 천만, 별별 번개를 친들 없어진가? 물을 퍼낸들 퍼낼 수 있나? 그걸 달그림자를.
그렇게 되아 있는 거여. 화두가 이렇게 분효(分曉) 분명헌 것이여. 알 수 없는 득관(得觀)이 되어야 그렇게 되거든.

그렇게 된 경계, 오직 아까운가. 오직 중허고. 거다 무엇을 따지고, 거다 무엇을 붙이고 떼고, 여의고 해봐? 소용없어. 홑으로 홑으로 그 알 수 없는 놈만 하나가 딱 나와 있을 것이니라.

고것이 지금 뭐이냐 하면 내가 나를 모르는 도리니까, 화두라는 것이. 공안(公案)이란 게 날 모르는 게 공안이지 뭐 다른 건가? 이놈 하나 몰랐으니, 내가 내 코빼기 내 낯반대기를 내가 몰랐으니 이거 참 큰일 아닌가? 천하에 이 이상 더 정법이 있으며, 천하에 이 밖에 무슨 도(道)가 있는가?
마음 밖에 찾아? 내 마음 밖에 뭘 찾아? 내 마음 밖에 찾아서 뭣 혀? 내 마음 밖에 있는 것은 다 외도법(外道法)이거든. 내가 나 찾는 법이 정법(正法)이여. 그렇게 간단히 해 놨단 말이여.

어십이시중(於十二時中)에, 열두 때 가운데. 십이시(十二時)거든. 지금은 스물네 시지마는. 옛날에는 다, 시방 두 시간이 옛날 한 시간이여. 열두 때지 이십사 시간이 아니여.
십이시 가운데, 열두 때 가운데와 사위의내(四威儀內)에, 사위의(四威儀)는 앉고 눕고 행주좌와(行住坐臥) 행하고, 어디 주(住)해서 있고, 눕고, 앉는 거—행(行) 주(住) 좌(坐) 와(臥), 행(行)하고 주(住)허고 좌와(坐臥) 앉고 눕는 네 가지, 앉고 눕는 네 가지 밖에 있어, 우리 동작이? 우리 동작이 행주좌와밖에 없지.

행주좌와(行住坐臥)와, 때는 열두 때밖에 없으니까, 십이시밖에 없으니께 열두 때 십이시(十二時)와, 고놈을 전부 그 시간을 온당하게 조금도 거그 틈새구니가 없이 틈이 없이 화두만 거각(擧却)해라. 알 수 없구나. 세상에 알 수 없는 아! 그 의단(疑團) 하나 해 나가는 것이 뭐이 그리 힘드냐 그 말이여.

억지로 마음을 써서 '흐이! 무엇인고? 무엇인고?' 그것도 아니고, 가만히 알 수 없는 관(觀)만 해라. 관(觀)허는 디 알 수 없는 놈이 일어나면은 관(觀)이 따악 가서 보고 앉었는디, 그 의심, 알 수 없는 놈이 참 진의(眞疑)가, 참다운 의심이 돈발(頓發)된디 거그서 퍼 일어나는디, 어디 가서 무슨 뭐 무슨 광음(光陰)을 허송허며, 행주좌와 어묵동정을 헛되이 보낼 것인가? 참 자세히 들어야 한다 그 말이여, 해 나가는 화두법.

수요성성(須要惺惺)해야, 그놈을 그때를 허송허지 열두 때를 허송허지 않고, 행주좌와를 헛되이 보내지 않고 화두가 온당하게 독로되게 해 나갈라면은 무슨 방법을 갖춰야 하느냐?
수요성성(須要惺惺)해라. 깨끗 깨끗이 정신을 챙겨라. 보통 챙겨서 될 것이냐? 그 보통 마음으로 도(道)를 닦을 수 있느냔 말이여. 허다 말다, 허까 말까, 해 볼까 말까, 이러고 나서 되아?
참 온전히 출가 발심해서 도문(道門)에, 집에 나와서 이렇게 도학자가 되았거들란 깨끗 깨끗이 정신을 챙겨라. 보통 챙겨서 안 될 일이다.(처음~19분45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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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묘포서(如猫捕鼠)해라. 고양이란 놈이 쥐 잡듯기 그렇게 정성을 들여라. 고양이란 놈이 쥐 잡는 데 쥐구녁 들여다볼 때 그놈이 얼마나.. 고놈 잡아먹을라고. 그놈 잡아먹지 못허면 배고파 죽으니까, 제 생명을 위해서 그놈 쥐를 잡아야 하겄으니까, 잡을라고 따악 꼬누고 있는 마음이 얼마나 정성스러우냐. 우리가 화두를 들여다보는 것이 고양이 쥐 잡듯기 해라.

여계포란(如鷄抱卵)해라. 닭이란 놈이 알 품듯기 해라. 아! 닭이란 놈이 그놈이 알, 새끼 낳을라고 알을 품고 있을 적에, 가만히 한 이십여 일을 품고 있다가 닭 속에서 그놈.. 알속에서 병아리가 나올락 하면은 짜르르 소리가 나면 탁! 쪼사 버려야 톡! 터진다는 것이여. 고렇게 따르르 소리 날 때, 탁! 쪼아주지 않으면 못 나오고 죽어버리거든. 그러니까 잘 듣고 있다가 탁! 쫏는 거여.
열이면 열 개, 스물이면 스무 개, 한 개도 그 소리를 못 듣고 안 쫏는 법이 없어. 그놈이 얼마나 정성스럽게 듣냐 그 말이여. 알속에서 곯아버린 것은 그건 애초에 안 된 것이지마는.

무령단속(無令斷續)이다. 하여금 단속(斷續)이 없이 해라. 화두가 끊어졌다가, 또 있다가 끊어졌다가, 망상 속에 들어갔다가 또 끊어졌다가 이렇게 허지를 말고, 끊어짐이 없이 알 수 없는 의심이 연속해서 거각(擧却)해라. 늘 거각을 해서, 염(念)이란 놈이 들어서 거각을 해야 그게 관(觀)이거든. 알 수 없는 의심뿐이거든.
알 수 없지. 어찌 이렇게도 알 수 없는고? 역사도 없이 낸디, 몇천 년 만년 내가 가지고 있었는가? 몇천 년 만년이면 뭐, 몇억만 년이면 뭐, 역사인가? 역사도 없어. 이 내가 나를 어째서 여태까장 이렇게 미(迷)해 가지고 있느냐 그 말이여. 알 수 없느냐 말이여.

알 수 없어 가지고 되겄는가? 내비두고 그만 내가 나를 찾지도 말고 내비두고 그냥 두고 되겄는가 말이여.
그 뭔가 그것이? 몸뚱이만 사람이지 뭐 그 사람인가? 돼지면 돼지 껍딱 쓰면 돼지고, 개 껍딱 쓰면 개고, 호랭이 껍딱 쓰면 호랭이 되고, 괴기 껍딱 쓰면 괴기 되고. 속 알맹이는 내여. 암만 뒤집어써 가지고 눈깔과 코빼기는 바꽈 가지고 나왔지마는, 나여 그것이. 뭐 조금도 딴... 개 배때기 속에 든 놈이 나지, 딴게 아니여. 그놈만 둘러썼지.

업(業)으로 둘러써, 죄업(罪業)으로만 둘러써, 죄를 퍼 지으면 둘러쓰기 마련이여. 헐 수 없어.
허니 그 알 수 없는 놈, 공안 화두 하나 꼭 깨달라서, 이것 내가 나를 찾아야 할 것 아닌가? 생사해탈(生死解脫)을, 내가 나를 찾아서 생사해탈을 해야 할 것 아닌가? 이걸 생각해 보지. 겨를이 어디 있는가? 무슨 겨를이 있겄는가?

단속(斷續)치 말아라. 끊어졌다가 또 좀 허다가, 삘삘대다 놀다가 또 허다가 하지 말고, 한번 착수했거들랑 앉어서 공부를 허는디, 너무 앉어 좌(坐)에 집착하면은 수마(睡魔)가 대들고 또 망상도 일어날 우려도 있고 헌게, 화두가 잘되다가도 잠깐 사이에 망상이 들어오던지, 또 무기(無記)가 들어와 잠이 들어오던지 허면, 일어나서 수십 보를 행(行)해라.
좀 갔다 왔다 해야 경행(經行)을 해야 잠이 깨이고, 망념이 흩어져 번지고, 무기(無記)가 다 없어지고 화두가 또 들어오느니라. 그렇게 해 가면서 일어났다가 앉았다가, 일어났다가 앉았다가 경행해 가면서 이렇게 혀.
꽉! 좌(坐)에 집착해 가지고는 한 댓시간씩 그게 공부인 줄 알고 알날(遏捺) 극복신심(克服身心)허고 꼼짝도 않고, 그것 못써. 다리는 막 저리고, 똥구녁은 뼈가 모도 아프고, 이런데 그만 들입대 착(着)해 가지고 앉었으면 못써. 애착 집착이라는 것은 화두에 제일 못쓴 것이니까.

미득투철시(未得透徹時)에, 투철히 깨닫지 못헐 때, 어디가 그렇게 쉽게 확철대오(廓徹大悟)가 그렇게 쉽게 있을 수가 또 있는가?
언하(言下)에도 있고, 뭐 뭐 그 말할 사이도 없이 내가 깨달은 사이도 모르게 툭 깨달을 수도 있지마는, 시간 공간도 거다 붙일 수 없는 각(覺)이 있지마는, 그렇게 무슨 급(急)헌, 거 속(速)헌 각(覺)을 기다리지 말고, '어서 안 깨달른가? 안 깨달라지는가?' 한탄하지도 말고, 그런 한탄 왜 해? 그 한탄할 동안에 화두를 관(觀)해야지.

투철히 깨닫지 못허고 의심만 이렇게 일어날 때, 당여노서(當如老鼠)가 교관재상사(咬棺材相似)해라. 마땅히 늙은 쥐란 놈이 쌀궤 뚫는 것 같이 해라. 늙은 쥐란 놈이 쌀궤를 뚫어야 그놈 쌀을 내먹고 살지, 그놈 뚫지 못허면은 쌀은 못 내먹고 굶어 죽을 것 아닌가.
그저 노서(老鼠)란 놈이 늙은 놈이기 따문에 그저 쉴 새 없이 또 물어뜯고 또 물어뜯고, 또 뚫고 또 뚫고. 그 인자 새끼 쥐처럼 조금 따깍 뚫다 말고 뚫다 말고, 때짝때짝 하다 말고 그 두꺼운 송판 그 궤짝을 뚫을 수가 있는가.

늙은 쥐란 놈이 고 자리를 옮기지 않고, 고 자리 뚫은 자리를 그저 뚫고 뚫고. 화두 그 관(觀)허는 놈을 도로 관(觀)하고 도로 관(觀)하고.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어째 판치생모라 했는고? 판치생모? 판치생모?' 아 그놈을 가만히 거각하는 거각 관(觀)이, 그거 거관(擧觀)이여 그만. 붙어 있는 것이여.

그렇게 화두를 또 옮기지 말고. '요놈 좀 하다가 의심이 안 되니 화두를 고쳐야겄다. 에이 또 그놈 좀 해보다가 안 되니 또 고쳐야겄다' 자꾸 화두나 고치고 그거 아무짝에도 못쓰는 것이여. 화두를 고치는 법이 있나?
도학자라니! 참 도학자의 그 정중허고 도학자의 그 옮기지 않는 마음, 철저헌 마음, 그 그대로 정직한 마음, 그 마음으로 화두를 떡 가져야지. 조금 하다가 때짝때짝 하다가 이리저리 하다가 자꾸 그 경거망동(輕擧妄動)해서 안 되아. 된 법 없어.

그래도 공부가 안 되거들랑 시부편기의(時復鞭起疑)해라. 때때로 다시 채찍질을 해서 의심을 또 일으켜라. 아무리 의심이 안 나더래도, 알 수 없는 놈이 안 오더래도 알 수 없는 그 의심이 돈발(頓發) 되도록 자꾸 해라.
그거 그것 그렇게 안 되지마는 될라고 허면 기가 맥히게 되아 버리는 것이여. 어느 때에 화두가 그렇게 되아 버리는지 자신도 알 수가 없는 것이여. 그만 뭐 구름 일어나듯기, 불 일어나듯기 저절로 화두가 일어날 때는 그것 몰라, 자신이. 그럴 때가 오는 것이니, 그 안 될 때는 죽어도 안 될 것 같고 '어떻게 각(覺)이, 깨달을 때가 오랴? 깨달을 때가 있으랴?' 그러헌 모도 미망지심(迷妄之心)이 미득지심(未得之心)이 있지마는 그러지 말아라. 물러가지 말아라.
물러가면 뭣 헐 테냐? 어디로 물러갈 테냐? 네 물러간 곳이 어디냐? 저 뒤를 한번 돌아봐라. 천길만길 백만 길도 더 헌디 뒤로 걸음 걸어갈 수가 있나. 뒷걸음질을 헐 수 없어. 삼악도(三惡途) 길, 지옥 아귀 축생 길밖에 없고. 어디로 물러가?

'여하시조사서래의(如何是祖師西來意)냐? 어떤 게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이냐?'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판때기 이빨에 털 났느니라' 그 의(意)는 자마생(作麽生)이냐? 그 무슨 이치냐 말이야 도대체? 무슨 이치여?

판때기 이빨에 털 난 무슨 이 일이 말이 되어야지, 그 뭔 소리여?
천상천하에 없는 조사의(祖師意)가, 조사의 대의(大意)가 '판치(板齒)에, 판때기 이빨에 털 났다'니, 뭔 소리여 그것이? 무슨 소리가 그런 말이 있어?
알 수 없지. 모르니까. '그 의(意)는 자마생(作麽生)이냐? 무슨 대관절 그 뜻이냐?'

기유의시(旣有疑時)에, 이미 의심이 있을 때에, 그 의단(疑團)이 따악 있을 때에, 의심 그놈 와서 떡 독로(獨露)되아 있을 때에 참말로 깨끗 깨끗이 정성스럽게 조심해야 하네.
고렇게 일어나다가 땍 조금만 틈사구니가 있어서 무슨 별첨이 별념(別念)이 일어나면은 그만 그리 휘익 홱! 그만 나가버리네. 의심허던 그 의단(疑團)이 그만 해산(解散), 확 흩어져 버리고는 그 망상 따라 가버린다 그 말이여. 그것 참 무섭지.

그놈의 중생 망념(妄念)이 무서워. 어째 그런 놈의 중생 망념이 있는고? 그 미진수(微塵數) 티끌 같은 놈의 중생 망상 망념이 그거 분비(粉飛)여. 가리(가루)를 밀가리나 무슨 가리를 공중에 착! 찌끌면은 그렇게 흩어진 것 같애.
그놈이 판치생모 '어째서 판치생모라고 했는고?' 허면 하나도 그놈이 어디 무슨 뭐 일어나고 흩어지고 뭐 있나? 쏴악 어디로 간 종적도 없지. 안개가 일어났다 바람 한번 척! 불면은 공중에 안개가 확! 쓸어지듯기, 알 수 없는 공안(公案) 의심만 하나 떡 돌이켜서 회광반조(廻光返照)를 허면 광(光)을 돌이켜 그 판치생모만 관(觀)허면은, 없어. 그것 그거, 해 봐. 그거 그렇게 안 되는가 해 보란 말이여.

회광자간(廻光自看)이다. 그 조심스럽게 절대적으로써 다맛 알 수 없는 의단(疑團)만, 그 광(光)이라 하는 게 알 수 없는 의단을 광(光)이락 햐. 광(光)을 돌이켜서 스스로 봐라. 보는 놈이, 곧 보는 놈이 그 알 수 없는 놈 뿐이여.
뭐 회광자간이라 하니까 광명(光明)을 보라는 거 아니여. 광(光)을 돌이켜서 그 깨끗허고 신령헌 내 알 수 없는 마음, 알 수 없는 의단을 관(觀)해라.

지자개화두(只這箇話頭)는, 이 낱 화두는, 이 판치생모라는 이 화두는 요식득자기(要識得自己)허며, 제가 저를 깨달르라는 걸.. 제가 저를 깨달른 법이며, 요식득자기(要識得自己)허며 자기를 깨달는 법이며, 제가 저 깨달는 법이여, 다른 법 아니여. 제가 저 깨닫는 정법이여. 세상에 이런 법이 어디 있을 거냔 말이여.
요식득조주(要識得趙州)다. 조주도, 그것을 깨달라 버린다. 조주가 판치생모라고 했지마는 조주(趙州) 뜻을 탁! 깨달라 버려. 나 깨달르면서 조주 뜻도 깨달라 버려. 조주가 판치생모란께 그만 활연대오지. 아! 이런 이런 꼴이 있나?

요착패불조득인증처(要捉敗佛祖得人憎處)다. 불조(佛祖)가 인증처(人憎處) 얻은 것까장도 타파한다. 그건 어려운 말이여. 불조(佛祖)가 사람 미워헌 곳 얻는 걸 감파(勘破)한다. 한문 투로는 이렇게 새겨야 하는디, 이 뜻을 바로 말하자면 불조패궐처(佛祖敗闕處)까장 깨닫는다. 불조패궐처라는 건, 패궐(敗闕)이라는 건 또 뭐냐 하면, 요까장 얘길 다 해줘야 되아. 어록(語錄)까장도 다 분석을 해줘야 된다 그 말이여.

패궐처(敗闕處)라는 것은 부처님도 허물이 있어. 공안 속에 들어가서 깨달랐다 하더래도 '깨달랐다' 허는 각견(覺見)이 있으면은 그 그걸 갖다가서 패궐(敗闕)이락 햐. '깨달랐다'는 각견(覺見)이 있으면은 그것이 벌써 부처님의 때꼽재기, 성현의 때꼽재기, 그 각(覺)의, 깨달은 각(覺)의 누()여! 누. 법누(法)여. 그거 이. 그렇게 말을 해 주면 알겠지? 말은 듣겠지? 그만 그쯤 알아두란 말이여.

그러헌 각(覺) 누()까장도 다 깨달라 버려. 뭐 조그만한 것만 깨달른 것이 아니여. 일체 이치를 깨달라 가지고 '깨달랐다'는 각(覺) 각득(覺得)까장도 다, 그대로 다 깨달라 버린 것이다 그 말이여.
능소(能所)와, 능(能)이니 소(所)니, 그거 뭐 능(能)이 있고 소(所)가 있.. '깨달랐다' 하고 깨달랐다는 바도 없어. '허공이다' 하고 허공지양(虛空之量)도 없다 그 말이여. 툭 터져버렸다 그 말이여.

그거 그 이치를 누가 갖다가서 뭉테기처럼 쥐어다 줄 수가 있나? 이만큼 해두면 제가 인자 필경 그 각해왕양(覺海汪洋)을 하는 법이지. 거기서 툭 깨달라 가지고는 자증자각(自證自覺)하는 법이지.

단신아(但信我) 여차설화(如此說話)해야 맥직주장거(驀直做將去)허면, 내가 오늘 이렇게 너한테, 저 몽산 너한테 이렇게 설해 준 말을 듣고 네 이대로 공부만 꼭 해 들어갈 것 같으면,
인자는 네 양반이니, 네 과거 네 잘살고 무슨 부귀영화하고, 지위 권리 백만 권리 뭐 세상 속가에서 네 살아오든 고 습관성 그까짓 것 다 버려 버리고 인자는 오늘부터 참말로 이와 같은 이 대도(大道)를 믿어서 내 설해 준 공안법을 믿어서 맥직주장거(驀直做將去)허면, 바로만 믿어서 깨달아 갈 것 같으면, 인자 그만 철저해 버려라 말이여.
결정유발명시절(決定有發明時節)허리라. 결정코 너는 앞으로 깨달을 시절이 오리라. 네가 너를 찾아 너를 깨달을 때가 오리라.

단불오이(斷不誤爾)니라. 내가 결단코 너를 속이는 바 아니다. 내가 뭐헐라고 너를 속였겠냐?
너 깨달라서 생사해탈법이 꼭! 앞에 있으니까, 너를 내가 속이지 아니했으니 그리 알아라.(19분49초~38분2초)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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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700여 개의 ‘참선 법문(法門)’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 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 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그리고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도 있습니다.

 

참선법 A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B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C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D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E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A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B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C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D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E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700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 동산숭장주송자행각법어(東山崇藏主送子行脚法語) (5/5) (동산숭장주가 제자를 행각 보내면서 하신 법어) (끝)

**전강선사(No.355)—몽산법어 부록. 동산숭장주송자행각법어 5 (계축73.12.28.새벽) (전355)

 

 

(1/3) 약 19분.

 

 

(2/3) 약 17분.

 

 

(3/3) 약 15분.

 

 

(1/3)---------------

천고무인문(千古無人問)이요  만산공두견(萬山空杜鵑)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목동일성적(牧童一聲笛)허고  기우과석양(騎牛過夕陽)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안 된다'고, '화두가 안 된다'고 공연히 진심(瞋心)이나 내고, 한탄이나 허고, 그래 퇴타심이나 내고 그래? 그래 될 거여? 안 될수록에 허는 것이 공부고, 무슨 별념(別念)이 망념이 퍼 일어날수록에 그놈 그 가만 두어버려.
나건 말건 천겁 만겁에 그놈 가지고 살아왔는데 그놈이 없어질 것인가? 망상을 안 낼라고 헌들 안 날 수가 있나? 거 땅속에서 물 나오듯 헌 놈의 망상(妄想)이 땅속에 물 나온 놈 막으면 물이 안 나오나? 안 날라고 허면 안 나오나? 더 나오지.

나온 놈의 망상, 일어나는 놈의 망상, 그것을 왜 간섭혀, 왜?
두어버리지. 가만 두어버리고 안 될수록에 그 화두는 더 거각(擧却)해야지.

그저 찾어. '어째서 조주 스님은 판치생모(板齒生毛)라고 했는고?'
'판치생모? 판때기 이빨에 털 나?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의심(疑心)이 안 날라니... 의심이 무엇인디? 알 수 없는 놈이 그놈이 의심인데, 알 수 없는 놈 내놓고 따로 무슨 의심을 찾나? 알 수 없는 놈 밖에 무엇이 의심이여?

알 수 없단 말이여. '어따가 내가 놨는고? 내 그 보물을 내가 가지고 댕기다가 어따가 놨는고? 분명히 내가 어따 놨건마는 알 수가 없구나. 어따 놨는고?' 이겐디, 꼭 그건데.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판치생모(板齒生毛)라고 헌 도리가 그놈이 그저 그만 그 자리에 있어. 바로 있어. 바로 있지마는 아! 이놈을 보지 못했단 말이여.

그저 찾아. 그 자리에 있는 놈, 거 찾는 거여. 그것 찾기 천하에 그보담 더 쉬운 것이 없어. 그보담 더 가까운 것이 없고. 거기는 무슨 뭐 공간도 없어. 시간이니 공간이니 없어. 얼마나 가까운지.
'판치생모?' 거 내 낯반대기여. 내 본래 낯반대기. 허! 거, 내 본고향(本故鄕)이여.

이놈을 이렇게 해 들어갈 것 같으면은 일구월심(日久月深)이면, 날이 오래고 달이 깊으면은 되지 안 되아? 얼른 그만 오늘 일언지하(一言之下)에 그만 언하(言下)에 대오(大悟), 그렇게 급한 마음 또 들 건.. 급한 마음은 뭘라고 두어. 깨달을 마음도 두지 말아야지. 각심(覺心)도 두지 말라 했는데.
깨달을 마음도 두지 말고 그저 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그 그것 내놓고 뭘헐 것인가? 무엇을 해야 내 헐 일인가?

참! 천고(千古)에 무인문(無人問)이다. 천고(千古)에 어디 물을 곳도 없다.
어디가 물을 건가? 조사관(祖師關)을 바로 깨달은 그 스승이 어디가 있는가? 참 과연 그 스승 만나기 어렵고, 그러헌 스승이 바로 깨달은 스승이 아니면은 물을 필요도 없고, 물어봤던들 뭣혀? 천구만담(千句萬談)이 다 외도 외담이지 무엇이여 그거? 내게 공연히 쓰잘데 없이 누(累)만 되지 소용 하나 없는 것이여.

차도(此道)에, 이 도문(道門)에 사람 얻기 어렵다. 없어. 물을 곳도 없어.
참으로 옳은 스승을 만났거들란—만난들 알 수가 있나? 그저 '큰스님'이라고 할 것 같으면은 다 소문이 있고. 옛날에는 소문도 못 들어. 지금은 다 소문 들을 수 있고, 반다시 어떤 스님은 도(道)가 있다 없다는 것 다 알 수 있고, 원청 지금은 뭐 별것을 다 알 수 있고, 다 통할 수 있고.

그래 내 눈으로 보고, 내 귀로 듣고, 내 의식으로 찾아 알 수 없으면은, 들어서 어떤 스님이 큰스님이라고 헐 것 같으면은 내가 믿어지거들랑 믿어버려. 아주 믿어버려. 안 믿으면 제 손해지, 그 큰스님 손해 아니여. 여지없이 믿어버릴 것 같으면은 그 큰스님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그만 내 그대로 생사해탈 도(道)여. 안 믿으면은 그 뭐 소용 하나도 없어.

천고(千古)에 무인문(無人問)이지. 사람 만나지 못허면은 어디가 물을 것이며, 만산(萬山)에 공두견(空杜鵑)이니라. 만산(萬山)에 속절없이 두견만 운다. 허, 두견성(杜鵑聲) 뿐이다. 두견성 그놈이 바로 참 제일구(第一句) 도리다. 두견성 소리나 듣고 활연대오(豁然大悟)할까?

목동일성저(牧童一聲笛)인디, 먹이는 동자(童子)는, 소를 먹이는 동자는 젓대를 불고 돌아간다. 그 동자는 일 마친 동자지. 확철대오해서 생사(生死) 없는 대도를 통해 가지고는 아무 일 없이 돌아가는구나. 기우과석양(騎牛過夕陽)이다. 소를 타고 석양으로 돌아가는구나.


공부(工夫)가 미득입수시(未得入手時)에, 공부가 손에 들어오지 못할 때, 안 될 때—어느 때냐 공부허는 때가? 공부가 안 될 때 하는 거여.

그 도무지 헐라해도 그 공부가 입수(入手)치 않고 어디 그만 그 계(견)여입정(牽驢入井)처럼 역수탱주(逆水撐舟)처럼, 말 몰고 물에 들어갈란 것처럼, 말 몰고 나귀를 몰고 물에 들어갈라 하니 들어가나? 나귀가 기운이 더 센디, 나귀란 놈이 들어가? 아무리 댕긴들 물에 들어가지 않지.
흘러 내려가는 급수(急水)에 배가 떠내려간디 끄집어올리니 올라가나? 그놈이 좀체로 안 올라가지. 그놈을 끄집어올린 것처럼. 문자철우(蚊子鐵牛)라. 모기란 놈이 철우(鐵牛)를, 쇠소를 뚫는 것 같이.
그 안될 때에 그렇게 허는 거지. 잘될 때야 무슨 뭐 공부가 저절로 입수(入手)해서 저절로 될 때야 뭐 공부할라고 애쓸 게 뭐 있나? 가만 두어도 아! 순수(順水)에 유주(流舟)처럼 흘러 내려가는 물처럼 제대로 따악 화두가 추역불거(推亦不去)하고, 밀어도 가지 않고 가만히 독로(獨露)가 되어 있는데 그때야 뭐.

안 될 때 하는 것이 그것이 공부여. 그게 중생심 항복 받는 것이고, 중생의 망념이 거기서 그만 절단나는 것이고, 거기서 진취가 있는 것이여. 공부가 되어 가는 것이여.
'안 된다'고 내버리고 '망상 난다'고 그만 진심이나 내고, 성이나 내고, 지랄이나 하고, 방광(放狂)이나 놓고, 그래서는 되아? 점점 해 들어갈수록에 그 단순허고 정직허고 청정허고 깨끗허니 다루어 가야지.

함부로 덤부로 중을 맨들아 놓으니, 그만 아무때나 중 되어 놓으니, 중이 자격부텀 근본지식부텀 없어 놓으니 그만 모도 모아 가지고는 그 지내는, 그 모도 모아 지내는 대중 그 모도 짜여진 것이 잘못되어 가지고는 야단들이여. 지금 뭐 가만히... 그것 뭐, 왜 그래 왜?

딱 서로 그 참 그 도 닦을 도학자가 도를 닦을 마음을 가지고 들어와서 입산을 해서 같이 모아서 도반(道伴)이 되았거든, 서로서로 친절(親切) 정녕(丁寧)하고 서로서로 도반을 위해서 이타주의로 더욱 그 참 한 다발 묶어지고 한 뭉치가 되어 가지고는 뭐 그것 뭐, 한 철이 아깝고 한 철이 언제 간지 모르고 이거 용맹정진(勇猛精進)으로 아! 이렇게 좀 지내가지를 못허고는,
이놈 모아 가지고서는 그저 지내는 정도가 원청 지식이 박약하고 아무때나 모도 되어 놓으니까—그저 돌아댕기면서 깡패질이나 하고 주먹질이나 하고 허다가 그만 중이 되어 놓으니까, 맨 그런 것들이 갈 데 올 데 없으니께 들어와 가지고 중이 되어 가지고는, 모도 모아 지내는 행동 전체가 아무것도 아니여. 대중을 모도 능멸히 여기고 대중 가운데 함부로 덤부로 지내가면서 그저 장난이나 내고, 이 지경이다 그 말이여. 거 도문(道門)이 그런 건가?


공부(工夫)가 입수(入手)치 못할 때 그때에 막생번뇌(莫生煩惱)라. 번뇌를 내지 말아라. '안 된다'고 그만 그 번뇌를 내고 짜증을 내고 그러지 말아라. 공번뇌마(恐煩惱魔)가 입심(入心)이니라. 번뇌마가 마음에 들어올까 무섭다.
번뇌마가 마음에 들어오면은 그만 퇴속한다. '에이! 그놈의 것 공부도 안 되고' 퇴속해 버리고, 그만 대중에도 쫓겨나 버리고. 대중에 있을 수가 있나? 그런 행동을 허니. 어디라고 그런 행동허냐 그 말이여. 도문(道門)에서.

자불수도(自不修道)허고, 저도 닦지 아니하면은 쥐구녁에 찡겨 있듯기, 아무리 공부가 안 되더래도 저 혼자 안 되아 어쩔지언정, 대중에다 갖다가 모도 그만 그러헌 넘을 모도 공부 못하게 모도 번뇌가, 제 번뇌가, 제 망상 번뇌가 대중께 퍼져 가지고서는 도를 닦지 못하게 모도 만들어 놔. 똥 가지고 모도 넘한테 찌끌듯기. 큰일나지. 그 넘 도(道) 못 닦게 헌 죄가 어디냐? 그 말이여.

약각생력(若覺省力)이라도, 만약 공부허다가 그 무슨 견성한 '내가 이만했으면 견성했구나' 그러헌 그 생력(省力)이 있드래도, 공부 득력(得力)이 있닥 하드래도. 좀 깨달랐다 그 말이여. 조그만한 소소득족(小所得足)으로—뭐 바로 깨달랐나?—그 어떤 경계가 나드래도 말이여. 그 이것 나드래도 이것은 망상 경계는 아니고, 좀 생력(省力)이니까 힘이 덜렸으니까.
좀 수월한 경계를 얻었다 하드래도, 불가생환희(不可生懽喜)니라. '아따! 인자 내가 이만 했으면 견성했구나!' 하! 환희혀. 좋아서 그만 뛰고 즐거워서 야단치고 그러지 말아라. 공환희마(恐懽喜魔)가 입심(入心)이니라. 그때는 또 환희마(懽喜魔)가 마음에 들어와서 거기도 타락이 있느니라.

그 조금 어디 조금 얻어 가지고는 저 체중현(體中玄)이나 체중현 도리나 얻어 가지고 강사(講師) 지견(知見), 일체 없는 경계가, 일체 무애(無碍) 경계, 걸림이 없는 경계, 없는 도리가 턱 나오거든.
그 나오면은 그거 없는 도리가, 생각으로써서 '없는 도리다' 한 것 보담도, 내가 보는 경계가 달른 것이여. 바로 그 지경을 보아. 보면 말로 무애지경(無碍之境), 없는 지경(地境)과는 내가 직접 그 보는 경계가 달러.
그런 경계가 날 것 같으면은 환희심을 낸다 그 말이여. '허! 내가 인자 이거 견성을 했구나' 어쩌고 해 가지고는 야단이지. 저 혼자 인자 또 고까짓 걸 가지고는. 도학자가 소소역족(小所得足)으로 그까짓 것 좀 난다한들 거기서 모도 놀아나? 그 미친 것이거든. 환희심을 내지 말아라. 환희마가 마음에 들어오느니라.(처음~18분35초)




(2/3)---------------

종종병통(種種病痛)은, 가지가지 병통은 언지부진(言之不盡)이다. 말로 다할 수가 없다.
그 말로 다할 수가 있나? 비단 그뿐인가? 별별 것이 다 마(魔)인디. 별별 지견이 다 마(魔)고. 무슨 뭐 앉었으면은 자도 않고, 가만히 화두만 들고 있어도 세계가 나타난 법도 있고, 광명이 나타난 법도 있고, 세계가 나타난 법도 있고 별별 지견이 다 나는데, 그것은 아무리 난다한들 그 사견(邪見), 삿된 사견이니까 제 마음에서 나는 것이지, 어디 그 경계(境界)가 들어온 것 아니여. 제 마음에서 모도 종종병통(種種病痛)이 나는 것이지.

그러헌 병통이 나드래도 그건 다 사견(邪見)이니깐, 부처님 말씀에 「약이색견아(若以色見我)커나 색(色)으로 나를 보거나, 음성(音聲)으로 나를 구(求)하면은 행사도(行邪道)라. 삿된 도라」 했거든.
그거 무엇일 것이여? 그까짓 녀러 것이. 그런 것이 나온다고, 세계가 부처님이 장엄을 허고 모도 온다고 거기에 좋아할 것이 뭣이 있으며, 거그 가서 그 사견에 떨어질 것이 뭣이 있어, 도학자가? 별별 병통(病痛)이 다 있다마는 그 말 다할 수 없다.

공중중(恐衆中)에, 대중 가운데에도 큰스님이 없고 바로 확철대오헌 스님이 없다면은 유노성형제판도자(有老成兄弟辦道者)가 있거든, 좀 나이 늙고 또 젊드래도, 늙으나 젊으나 그러헌 분들이 도(道)를 먼첨 좀 증(證)헌 분이 얻은 분이 있거들랑, 천만시시청익(千萬時時請益)해라. 천 번이나 만 번이나 그 도(道) 있는 스님한테 이익을 청해라. 어여 가서 정성스럽게 한마디를 물어도 정성을 다해서 성의를 다해서 깨끗이 가서 참 정직하게 물어라.

법담(法談)헌다고 “여하시(如何是) 뭐냐? 일러라!” 이런 행동하지 말고, “한마디 도득(道得)해라!” 이런 말하지 말고, 발을 들썩들썩허면서 “뭐 천성(千聖)도 불식(不識)인디” 어쩌고 허면서 그러헌 그 추허게 추행(醜行)을 해서 그렇게 묻는 법이 아니다 그 말이여.
어디 자고래(自古來)로 『염송(拈頌)』이라든지 어디 그러헌 디 가서 양구(良久), 방할(棒喝)이 있지마는, 법(法) 쓰는 것이 양구(良久)와 방할(棒喝)이지, 어디 어른 앞에 가령 그 꼭 할(喝)할 말이라도 “억!” 그런가? 그렇게 헌 거 아니여. 정성스럽게 그 허는 법이 있어. 그걸 내가 다 어떻게 이른다는 말은 헐 것 없으되, 견성허면 다 아는 것이지. 법 쓰는 것을 몰라? 용무생사(用無生死)를 몰라?

약무(若無)인대는, 만약 그러헌 큰스님이 없을진대는 헐 수 없어. 장조사(將祖師) 주공부지언어(做工夫之言語)해야, 꼭 도인(道人)네가 공부허다가 자기 당신 깨달은 경계를 말해 논 그런 법어(法語)가 있거든, 그런 법문이라도 잘 취해서 간일편(看一遍)해라. 한 편을 떡 보고. 그걸 밤낮 보지 말고, 고인(古人)의 그 견성해서 써 논 어록(語錄)이라도 한 편 봐 가지고,
선지식(善知識)이 없다고 공부 안 헐 것인가? 선지식이 있으면은 선지식 찾아 만나서 도 닦는 것이야 의호(宜乎)지마는 다시 더이상 없지마는, 없다고 해서 도를 안 닦을 것인가? 만약 인자 도를 이렇게 선지식이 없다고 도문(道門)에 들어와서 도 안 닦고 말아버릴 것인가? 인자 말아버리면은 이놈의 삼악도는 어떻게 허며, 이놈의 중생 몸뚱이는 언제 제도헐 것인가?

앞으로써 인자 삼재(三災)가 닥쳐오니, 그 사람 몸만 똑 받아서 나오드래도 몇 번 못 받아 와서 삼재가 닥쳐오니, 사람 몸뚱이 받았다 하드래도 이 몸 받아 가지고 잘 닦아서.. (녹음 끊김) 하니 뭐 도 닦았으니, 복은 많이 지었으니, 계행 닦았으니, 후세에 가서 좋은 몸뚱이 잘 받았으니, 복을 받을 터이니 그놈의 복 받다가 복진타락(福盡墮落)을 해 버리지. 복(福) 다 받으면 타락하지.
그 복이 그러기 따문에 그놈이 그것이 지혜복(智慧福)이래야 하지, 우복(愚福)은 못써. 지혜복을 받아 지어야지, 우복은 못쓴다 그 말이여. 어리석은 복(福), 복만 지어 놓으면 복 받다가 타락하니까.

아! 복, 복 받다가 내세에 타락해서 그 타락은 인자 삼악도(三惡途)밖에 갈 데 없으니, 복 받니라고 그 살생도 많이 하고 도둑질도.. 도둑질이란 게 어디 무슨 뭐 남의 물건만 돌라야 도둑질인가?
사기 협잡 모두 취재(取財)해서 부자된 것이 그게지? 맨 넘의 것 취재(取財)해서 부자된 것이지 제것이 본래 어디 있나? 제가 맨들어 논 돈이며, 제가 맨들어 논 논이며, 부귀가 제가 맨들어 논 것인가? 모도 제 협잡 속에서 온 것이지? 그러니 간탐(慳貪) 죄업에 떨어져 가지고는 그 죄짓기 마련이니, 죄 그놈 퍼지어 놓으면은 그놈 업(業)이 갈 곳이라고는 삼악도밖에 없어.

지옥 · 아귀 · 축생 밖에는 갈 데 없으니, 지옥 · 아귀 · 축생에 떨어질 것 같으면은 그놈의 일주야(一晝夜)가, 인간 일주야가 몇 겁인디 몇천 년 몇만 년인데, 그놈의 것 받다가 보면은 지옥 중에 가서 삼재를, 인자 앞으로 삼재가 다 닥쳐오는디 그 삼재를 지낼 것이다 그 말이여.
그 지옥 중에 들어가서 삼재(三災)를 받을 것이니 삼재를 만날 것이니 언제 뭐 인취(人趣)에 나오나? 그놈의 그 삼재에 들어갈 것 같으면 삼재 속에서 무척 말할 수 없는 무수겁(無數劫)을 때려 지내야, 인자 또 그놈 받고 나와서는 인취(人趣)를 어디 나올 수 있나? 삼재에 들어간 놈의, 악취에 들어간 놈의 것들이.

그 삼악도에도 그래도 축생취(畜生趣)가 좀 나은디 축생이 제일 나은디, 축생취에만 가드래도 이 축생취에 나와서 축생이 되드래도, 아! 이놈, 대어(大魚)는 중어식(中魚食)허고, 중어(中魚)는 소어식(小魚食)허고, 만날 잡아먹는 것이 살생(殺生)이니 그놈의 살생죄 한량도 없이 지어 가지고는 축생으로 지어 가지고는 축생 그놈이 또 지옥으로 들어가니 어떻게 해?
그 지옥이 어디 무슨 뭐 죄 줄라고 따로 누가 장만해 놓고 있나? 제가 모도 받는 지옥이지? 제 업(業)으로 된 지옥이지?

아! 그러니 축생취에 들어가드래도 또 들어가고 들어가. 새 같은 짐승이 그 한량없는 목숨만 평생 먹고 살았으니, 그 새끼 쳐 놓고 그 물어다가 죽여서 모도 먹이고, 그놈의 죄에 벗들 못하네. 그 보(報)를 벗들 못혀. 한량도 없는 죄만 퍼짓고 또 들어가고 또 들어가고, 언제 그놈이 인취(人趣)에 나와서 사람의 지혜를 가지고 사람만 될락 해도 그렇게 난조(難遭)여. 만나기 어려와. 중생이 부처 되기 어렵듯기.
우리 중생이 터억 업(業)만 깨달으면은, 중생업만 벗어버리면은 곧 부처련마는 못혀. 업 따문에 중생 죄업 따문에 못헌다 그 말이여. 일체 짐승이 살생(殺生) 따문에 도로 들어가. 못 나와. 이렇게 얽혀서 죄고(罪苦)만 받는 중생, 언제 도탈(度脫)을 언제 한번 해탈(解脫)을 할 것이냐 그 말이여.

그러니 금생에 이 몸 만나 이 몸 얻었을 때, 이 몸 가지고 잘 닦아. 참 무수히 작량을 잘해서, 참 아주 지혜로 발심을 단단히 해서 단속해서 정진을 용맹(勇猛) 가용맹(加勇猛) 잘하란 말이다. 잘해서 금생에 결정코 내가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해서 임명종시(臨命終時)에 아무 걸림 없이 장애 없이, 바로 임명종시에. 앞으로 삼재 때문에 무서워서 더.

'에! 또 한번 더 이 세상에, 이 사바세계에 또 한번 나와서 닦아 가지고 나오리라' 그러다가 까딱하면은 후신(後身), 글씨 뒷 몸뚱이가 복진타락(福盡墮落) 되기 쉽다니까.
그러니까 이 몸 가지고 잘 닦아서 확철대오(廓徹大悟)해서, 바로 대오헐 것 같으면은 가고 올 것이 어디 있나? 어디 도솔천(兜率天)이 따로 있나? 하지마는 도솔천이 왜 또 부처님이 항상 모아서 계시다가 하강(下降)한 곳이 있거든. 도솔천으로 떠억 가야 혀.
갈 발이 있나? 뭣이 있나? 영령(靈靈)한 주인공이 발이 없고 뭐 가고 오는 거래종적(去來蹤跡)이 어디 있나? 가만히 그대로 화생(化生)한 것이지. 도솔천내원(兜率天內院) 발원(發願)을 해야 한다 그 말이여.

도솔천발원 내원 도솔천발원, 도솔천만 갈 것 같으면 반야학자니까, 항상 혜학(慧學)을 허는 지혜학(智慧學)을 허는 반야학자니까, 발원만 하면은 그대로 가서 응해 버려. 가서 도솔천에 가 나서 미륵님 받들고 계시다가 거그서 미륵님 친견하고 증(證)해 가지고, 확철대오해서 오증(悟證)해 가지고는 미륵님 하강시(下降時)에 나온다 그 말이여. 하강혀. 내려와서 중생제도해야지.
인자 그때는 권행(權行)으로 내려왔으니까 암만 사바세계 내려오드래도 그때는 뭐 타락한 법이 없어. 한번 깨달라 증(證)해 놓으면 타락 없는 법이 참선법(參禪法)이여. 그때는 여지없지. 그런께 그렇게 원(願)을 꼭 발원(發願)을 혀.
그래서 여그 '영불퇴전(永不退轉)하고 속성대각(速成大覺)하야 광도중생(廣度衆生)하고 임명종시(臨命終時)에 무제장애(無諸障碍) 왕생도솔내원궁(往生兜率內院宮)이라'

또 법보재자(法寶齋者), 우리 법보학자 아닌가? 법보학자들 모도 선망부모(先亡父母)도 도솔내원궁에 나셔서 확철대오(廓徹大悟)허라는 그거 아닌가.
과거에 큰스님네도 모도 도솔발원(兜率發願)을 했어. 내원궁 발원을 다했다 그 말이여. 뭐 우리만 못했을 것인가? 훌륭하신 큰스님네가 다 도솔내원 발원했어.

이렇게 금생에 모도 발원을 야물딱지게 철저히 허고, 화두를 그러나 저러나 생사해탈하는 화두(話頭), 생사 없는 도를 깨달은 이 화두법, 공안법 잘 다루어 나가. 그저 그만 그 듣고 그만 귀로 흘려버리지 말어. 이 정각선사가 아침에 언제 얘기헐 때 말허는 말, 그 좋은 말이여. 법문(法門)을 들어도 한 치 들을 사람이 있고, 인자 한 자 들을 사람이 있고, 한 치 들을 사람이 있고, 한 푼 들을 사람이 있고, 귀에만 부닥치다 말 사람도 있고, 그거 사실이거든. 그런께 한 자쯤이면 한 자면 한 자를 다 들어 버리란 말이여. 한 자를 다 믿어 버리란 말이여.
쬐금씩 듣다 말다, 신(信)허다 말다, 허다 말다, 그럴라면은 있을 필요.. 선방에 있을 필요가 없어. 한 치면 한 치 다 듣고, 한 치면 한 치를 다 믿고, 한 치면 한 치를 공부를 다 해야 혀. 세상에 내 공부 나 한 거, 내가 나 찾는 거, 원 쉽기도 그 이상 없고, 도(道)도 그밖에는 없고.

천만시시청익(千萬時時請益)해라. 천 번이나 만 번이나 회중(會衆) 가운데 공부 잘허는 스님이 있고, 선학자(先學者)가 먼첨 학자가 있거들랑 아주 이익을 청해서 잘 듣고, 없거들랑 조사공안, 도 닦아서 확철대오헌 공안 설법해 논 것을 일편(一遍)을 봐라. 그러면은 공부헐 마음이 자꾸 새로워지고 퇴타(退墮)할 마음이 없어지느니라. 이금차도(而今此道)에 난득기인(難得其人)이다.

꾸뻑꾸뻑 자올지 마라! 나쁜 놈의 자석들. 뭣이여? 왜 해!
자온 놈 나가거라! 이놈의 자식들 같으니, 공연히 대갈빡만 깎고 들어와서 이놈, 선방 밥 먹기 좋은께 퍼먹고는, 법문 들을 때 꾸뻑 자올고 꾸뻑 자올고. 즈그들을 위해서 아침 저녁도 안 먹고 며칠 굶고 앉어서 설법하고 앉었는데.
차라리 빌어를 먹고 댕길지언정 왜 선방에 와서 가만히 앉어서 앉어서 밥을 얻어먹고 도 닦는 놈의 녀석들이 앉으면 꾸뻑 자올고 꾸뻑 자올고 있다. 작대기로 이놈들 대갈빡을 비틀어지게 때려 놀라.(18분36초~35분)





(3/3)---------------

이금차도(而今此道)에 난득기인(難得其人)이다. 이제 이 도문(道門)에 사람 얻기 어렵구나. 선지식 스님은, 조실 스님은 학자(學者) 얻기 어렵고. 그 옳은 학자, 참으로 도(道) 배울 학자, 참으로 도 닦을 학자 만나기가 그렇게도 어렵구나. 왜 이렇게 어려우냐?

맨 그저 그만 이 '정화(淨化)한다'고 그만 정화한 뒤에 맨놈의 이 학자인가, 뭐이 중인가 들어온 것이 맨놈의 깡패여. 그냥 그만 그저 그만 주먹질이나 휙 허고는, '내가 주먹이나 쓴다' 하고는, 제가 쓰면 뭣할 것이여? 그까짓 것. 어따 쓸 것인고? 그놈의 주먹이.
나 그놈들 보면 더 “이놈의 자식, 네 주먹이 그리 세다니 한번 써봐라. 어따 쓸 것이냐?” 나 그러고, "도를 닦아야지! 도학자가 되어야지!"

이 자식들 모도 들어와서 도문에 와서 그런 버릇대기나 하고 맨 그뿐이여. 어디 저 선방에 들어올 것 같으면 장난이나 낼라고 들어와서, 그저 고런 놈들은 고봉(高峰) 스님 그저 법문을, 고봉 스님 규칙을 막 써야 되야. 막 냅대 쫓아버리고 다시는 그놈들 다시 여기 발길 못 들어밀게 해야지. 모도 만학초기(晩學初機)가, 처음 들어온 사람이 경모심(敬慕心)도 내지 않고, 그런 것들 따문에.

여그 인천 나가면은, 아 저 정공(正空)도 거 들었으니 알 것이네. 저 감옥소 포교(布敎)하는 참 진짜 포교, 감옥소 포교하는 대지라고 그 속인(俗人)이, 그 신도가 그 포교헌디 날마다 가서 공일(空日)마다 가서 거 포교하고 헌 사람인데, 당최 '중 사회'를 들여다보면 팍! 썩었다는 게여.
중이라는 게 뭐냐는 것이여. 그저 그만 어디 독살림이나 맡을라고 어디 댕기면, 그저 돌아댕긴 것 봐도 안데. 손을 휘뜩휘뜩 내두르고 거 무슨 영화나 볼라고 들어가서 영화 보고 웃고 '저것 봐라'고 야단이고. 중 모양 볼 것이, 무엇을 볼 것이냐 이기여. 기맥히다 말이여. 말할 것도, 들으라면 귀가 따가와 못 들어.

내가 그래서 헐 수 없어 문답이, 내가 답이 그랬어. “속인이 아무리 중이 별별 행동을 다하고 뭐 뭐 돌아댕기면서 거리에 나와 춤을 춘다 하드래도 중의 허물을 보는 사람은 중만도 못혀. 어디 그런 법이 있겠느냐” 내가 그런 말을 하고.
“도인(道人)이 81행(八十一行)이 있으되 광행(狂行)도 헌 이가 있는데 그런 광행을 헌 이도 보고 믿어야 하는 것이고, 아! 유마거사 같은 거사는 평생 똥을 싸고 누워서 병을 앓았다고, 그래도 가서 거 가서 믿어. 문수보살 같은 이도 가서 거가 법담을 모두 해 가지고 그 거기에 못 당하고 다 그런 일이 있고 헌데, 모양을 보고 그렇게 갖다가 비평 비방을 해서야 쓸 것이냐”고. 내가 어저께 법문을 해주니 아무 말도 못허기는 못했지. 허지마는 그러헌 비평을 듣고 있거든. 이거이 여간 아니여.

이번에 '종회를 열지 안 헌다' 하니까 쫓아와서 나한테 와서 상의하고, 나한테 와 도장을 첫 도장을 받았다 그 말이여. 저번에 말 안 턴가? 도장 찌르라고 그래서 "찔러야제. 그래야 한다"
왜 매년 종회를 열어 가지고서 종회에서 모도 잘못헌 것은 시정하고, 잘한 것은 공찬(共讚)하고 아! 이래 가지고서는 진보가 있어야 하고 아! 그런 것이지, 왜 종회를.. 한국승려대회에서 정해 논 종회를 유보헌 것이 무엇이여? 종정이라고 헌들 종정 혼자 마음대로 혀? 유보허고 그려?

승려대회라는 건, 우리 종교라는 것은 더군다나 불교 종교라는 건 특수종단인디, 어디 무슨 정치가 마음대로도 못할 것이며, 어디 그럴 수가 있어? 도장을 찍고 “승려대회 열어라” 찔러 주었는데, 그 찔러 준 도장을 보고는 경산이 쫓아왔다 그 말이여. 경산이 무슨 그 부장하고 쫓아왔어. 그 사람들이 나한테 쫓아올 때는 그 무슨 마음으로 쫓아왔어?

“도장을 받으러 왔습니다”
“뭔 도장?”

“여기 도장을 찔러야 하겠습니다”
“무슨 도장이여?”

“아! 좀 유보를 해야 되겄고, 종단을 지금 여러 가지로 조금 다시 연구헐 것이 모도 있어서 얼른 종회를 열지 못허고 있기 때문에 그래 찍으러 왔습니다”
“그러면 내가 대회를 열어서 종단을 열라고 대회를 허라고 했는데, 거기다가 도장 찔러 주고 또 내가 도장을 찔러? 열지 말라고 찔러? 이 이거 뭐냐 이거? 여그 찔러 주고 여그 찔러 주고 내가 양쪽에 그래 다 찔러 줘? 종회를 열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면 좀 생각해서 연구해 가지고 얼른 내일모레는 못 열고, 한 달 후라도 그리 열 터니까 찍어 주십시오” 그랬다.
“한 달 뒤고 열흘 뒤고 간에 종단 종회만 연다 하면은, 금번 종회만 연다 하면 내가 찍어 주지. 종회를 연다는디 안 찍어? 종회 연다고 각서를 써라. 각서를 쓰면 내가 찍어 주마”

'종회 연다'는 각서를 맡고 찍어 줬다 그 말이여. 그러니 내가 어디 뭐 그 사람들 종회 열.. 저 사람들은 종회 안 열어주니까 대회 붙인다고 찍었고, 이 사람은 “종회 열어줄 테니 찍어 주시오” 헌께 찍어 줬다 그 말이여. 그랬더니 신문에 났데? 신문에 난 거 봤나? 신문 봤어? 신문 났다 그 말이여, 인제 '종회 연다'고.

그러고 인자 갈 때, 차 탈 때 내 그 말했지? “이렇게 해놓고 각서 써놓고 달리 이용허고 종회를 안 열면, 느그가 나를 한국불교에 대종사라고 해놓고 종사를 이용헌 것이고, 종사 대접을 그렇게 해서는 틀려. 종단이 못써. 그걸 주의허겄어?” 내 주의시켰다 그 말이여. 그 가서 우선간 연다고 했다 그 말이여. 그래 신문에 났데. 신문 안 봐?
인제는 종회 열지 뭐. 요 며칠 한.. 저번 어느 달인가 연다고 했은께 열지. 효과 있지 뭐 효과 없어? 그거 다 잘된 것이지. 지금 생각해 보니 '종회 연다'고 해놓고 각서를 써놨으니 안 열 수도 없는 것이고. 나 하라고 해서 헌 게 아니라, 아! 그놈이 공포될 거 아닌가? 신문도 날 것이고.


그 사람 얻기가 이렇게 어려우니, 그러허니 참 조실 스님은 학자 만나기 어렵고, 옳게 닦고 옳게 믿고 참 사람 얻기가 어렵다 이 말이여. 그저 모도 거짓식으로 들어와서 이래 가지고 되야? 철두철미해야지. 잘허라는 것이여! 내가 흉만 보는 게 아니고 허물만 나툰 게 아니여!
또 학자들은 옳은 스승 만나기 어렵고. 참 만나기 어려와. 천만겁에 만나기 어려운 게 스승이여. 옳은 스승 만나기 어렵고, 옳은 제자 만나기 어려운 것이여.

옳은 스승 만났고 옳은 제자를 얻었으면 백발백중이여. 틀린 법이 아니여, 이건 틀린 법이 없어. 금캐기보담도 쉽... 금은 땅속에서 캐는 것이지. 보배는 바닷속에서 얻는 것이지. 바닷물 다 퍼도 바닷물 퍼 가지고도 그 어려운 바닷물을 다 푸고 보배는 얻을 수 있지마는 참, 사람 만나기 스승 만나기는 그렇게 더 어려와.
그러헌 스승을 만났으면은 학자의 복이 그 이상 더 없고, 옳은 스승은 또 그 옳은 학자를 만났으니 꼭 목적 달성을, 학자 제접(提接)허기 위해서 아! 그 조실 스님이 되아 있으니 학자를 얻어야 할 것 아닌가? 부처님이 사바세계에 출세했으면은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학자가 믿어야 될 것이며, 설법 듣는 제자를 많이 얻어야 할 것 아닌가?

천만향전(千萬向前)하라. 천 번이나 만 번이나 앞을 향해서 부지런히 부지런히 닦아라. 처음 앞을 미래 앞을 한 번 향(向)해 보아라. 금생에 안 깨닫고 어떻게 할래? 미룰 수가 있겠나?
한번 삼악도에 떨어져 보아라. 누가 너를 건지겠느냐? 누가 너를 건져주기를 바라겠느냐? 업력 중생(業力衆生)은 부처님도 구하기 어렵고, 업(業)을 대신 못한다 했는데 어떻게 헐래? 네가 짓고 네가 받는 업을. 앞을 향해서 한 번 향해 봐라. 천 번이나 만 번이나 향(向)해라.

망여(望汝)한다. 내가 너한테 바란다. 일찍이 타파칠통(打破漆桶)해라. 빨리빨리 칠통을 타파해라. 어서 속히 중생 네 캄캄한 칠통(漆桶)을 깨달라! 깨달라 가지고 어서 돌아오니라. 지극히 부탁하고 지극히 부탁한다. 완산정응선사 편 다 되었어.


뭐 여기 처음 들어와서 모도 학자들 모도 들어와 가지고서는 학인들이, 저 행자들이 들어와 가지고서는 법문도 안 듣고, 책장(冊張) 하나 안 배우고, 우두커니 그 참선헌다고 앉어 되아? 헐 수 없으니 내가 시간 있는 대로 올라와서 설법해 주니 잘 들어야 할 것 아닌가?

꾸뻑 자올고, 꾸뻑 자올고, 뭣허러 여기 왔냐 그 말이여. 여기에는 그렇게 온 놈들 다 쫓아내 버린다. 여그 그 밥 안 멕여.
억지로 멕이는 밥이여. 여기 뭐 불공(佛供)이 있나? 뭐 불공을. 불공을 뭐 뭐 암만 불공(佛供)을 온들 '새벽 3시에 헌다'고 헌께 누가 오나? '안 온다' 말은 못 허고, 해 논게 안 와.

또 어저께도 재(齋) 들어온다, 30명이 온다. 재 들어오지, 만년위패(萬年位牌) 모시지, 온다고 기별 왔다 그 말이여. 30명이 와서 '밥해 달라' 하고, 뭐 또 인자 그 헌다고.
만년위패나 모시고, 여기서 밥해 주지 않고—만년위패 받아 가지고 여다 해 놓고서는 그 영가(靈駕) 일년에 제사 지내주고, 아침저녁 축원해 주고 그뿐이지, 밥 먹여주고 무슨 뭣 상 채려주고 그런 짓은 없으니까 만년위패나 모실라면 모시고, 뭐 30명 데리고 와서 뭔 또 쌀을 얼매 가지고 와서 밥해 주고, 아 그런 것은 여관처럼 우리가 받지 않으니까 여기는 허지 않는다고 헌께 안 와 버려. 거 내가 거절해 버렸네.

그래 거절해 버리니, 뭐 뭐 기도 거절해 버리지. 기도!
기도나 밤낮 허고 뭐 무슨 목탁 땅 땅 치면서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그 짓 허고 있는 데 아니여. 다맛 참선허고 있는 덴디. 쏵 그 금(禁)해 버리니 뭐가 있냐 이 말이여. 허지마는 그러 않고 선방이 뭐 되야? 이게 진짜 선방이지.

딱! 근절해 버리고, 그까짓 돈 들어오고 뭣 들어오는 거 얼마 바래고, 근절해 버리고 도 닦고 앉었는 여기에서 식량이 무엇이 있냐 그 말이여. 식량도 없지마는 도 닦을 학자만 있으면은 굶는 법 없어. 아무 문제 없어. 그런 문제 없지마는 도 닦지 않는 학자를, 도 닦지 않는 행자 그런 것들은 기루고 멕일 수 없어.

더군다나 법을 듣는 디는, 종사(宗師)가 승좌설법(陞座說法)이어든, 조실 스님이 법상에 올라와 설법을 허거들랑 여리박빙(如履薄氷)해라. 깊은 물에 엷은 얼음 디디고 있는 것 같이.
그 엷은 어름 그 딱깍 깨지면 풍 빠져 죽는 것이다 그 말이여. 그러헌 지경을, 그러헌 그 위험한 얼음 위에 서서 있는 지경을 그걸 생각해라 말이여. 그렇게 들어라.

측이목이청현음(側耳目而聽玄音)해라. 이목(耳目)을 기울이고 현음(玄音)을 들어서 불람사발(不濫絲髮)이라. 사발(絲髮), 터럭끝 만큼도 어기지 말고 도를 닦아라, 안 했나?
법문 들으면서 꾸뻑 자올고 꾸뻑 자올고, 그런 것들 뭣햐? 그거. 그러고도 들었다 햐?(35분5초~50분10초)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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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700여 개의 ‘참선 법문(法門)’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 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 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그리고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도 있습니다.

 

참선법 A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B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C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D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E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A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B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C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D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E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700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 동산숭장주송자행각법어(東山崇藏主送子行脚法語) (4/5) (동산숭장주가 제자를 행각 보내면서 하신 법어)

**전강선사(No.354)—몽산법어 부록. 동산숭장주송자행각법어 4 (계축73.12.26) (전354)

 

 

(1) 약 15분.

 

 

(2) 약 13분.

 


(1)------------------

취적기우자(吹笛騎牛者)야  동서임자재(東西任自在)니라
나무~아미타불~
산중하사기(山中何事奇)냐  청산백운다(靑山白雲多)니라
나무~아미타불~

취적기우자(吹笛騎牛者)야. 젓대를 불면서 소를 타고, 소를 타고 젓대를 부는 동자야. 동서임자재(東西任自在)로구나. 동서(東西)에 참 임자재(任自在)하다. 네 마음대로 자재하다.
소를 찾아 놨으니, 내가 나를 찾아 놨으니 자재(自在)할 밖에 없지. 뭐 어디 걸릴 데가 있으며 무슨 뭔 사(事)가 있나? 아무 사(事)도 없고 걸림도 없고, 천하에 도무지. 허!

이렇게 우리가 모아서 도 닦는 도학자가 아침마다 예경(禮敬)을 부처님께 허고, 십악참회(十惡懺悔)를 허고 이렇게 지내가도 그 복이 말로 헐 수 없다. 무슨 놈의 삼악도(三惡途)며, 우리가 어디 축생취(畜生趣)가 무엇이여? 이렇게 계행을 지키고, 부처님한테 아침마다 예경하고, 거다가 또 참선(參禪) 도를 닦고 이런데, 무슨 놈의 삼악도며, 무슨 놈의 축생취인가?
이러헌디 하물며 거다가서 깨달라만 놓으면, 툭! 한번 깨달라 놓으면은 동서임자재(東西任自在)지. 어디가 걸리고 어디가 뭐 무슨 일이 있는가? 어따가 비교 비유 비해 보겄는가? 임금 노릇하면 여다가 비유헐 수 있는가? 천하를 다 가지면 뭣 헐 것인가?

참 이렇게 자재한 우리 선학자(禪學者)들 얼마나 무량겁래(無量劫來)에 그 부처님 앞에 선근(善根)을 심어서 금생에 이런 좋은 몸 받아 가지고는 아침마다 이렇게 예경하고 십악참하고 도를 닦는다. 생각해 보면 참 다행하고도 기쁘고, 기쁘고 다행하고 이런 만행(萬幸)한 일이 있나?


이렇게 예불(禮佛)도 허지 않고, 경도 보지 않고, 포단(蒲團)에 올라서는 잠이나 자고, 예경도 허기 싫어서 모도 물러빠지고, 그럭저럭 그럭저럭 도문에 들어와서도 신심 없이 용맹정진 않고 그럭저럭 지낼 것 같으면, 미륵하생(彌勒下生)이 온다 한들 육억칠천만 년이 지내간다 한들 무슨 이익이 있으며, 육억칠천만 년을 지낼 커니는 그만 이 몸 실념허고 이 몸뚱이 수유(須臾)에 실념허고 잃어버린 뒤에는 악도(惡途)에 떨어져서 악보(惡報)나 받을 터이니, 뭐 미륵하생? 무슨 미륵하생 꿈인들 그때까장 지옥취에 들어가서 지옥고 받니라고 그때까장 그저 나오들 못하제.

그러니까 이렇게 출가를 해서 도 닦는 도학자는 첫째, 신심(信心)이 견고(堅固)해야 혀. 신심이 견고해서 영불퇴전(永不退轉)을 해야 혀. 영불퇴전허는 가운데에는 신심이 제일이고, 신심(信心) 가운데에는 분심(憤心)이 있는 법이고, 분한 마음 '어찌 여태까장 이렇게 깨닫지 못했느냐?'
깨닫지 못한 이거 뭐, 인생 이거 뭐 축생이나 똑같지. 축생보담 나을 게 뭐 있나? 소 · 돼지 · 말 그런 것보담도 더 못허지? 신심 없는 거, 도 닦지 못한 것이, 그 소나 말이나 돼지는 주는 대로 먹기나 하고 죄도 안 짓는다마는, 사람은 죄만 퍼 짓는 것이여.

신심이 없어 도를 닦지 않는 것이 뭣 헐 것인가? 전부 짓는 것이 죄업 뿐이지. 뭐 칼을 들고 넘 모가지를 찔러서 죄만 짓는 것이 아니라, 밤낮 그 망상 내는 것도 그놈의 죄업이 한량이 없는데, 먹고 놀고 그럭저럭 이럭저럭 지내는 그 가운데에는 맨 죄업만 짓는 것 아닌가?
그러니 신심견고(信心堅固)해서 영불퇴전(永不退轉)허고 항상 화두로 더불어서, 아! 판치생모(板齒生毛)로 더불어서 그 얼마나 그 참 지중(至重)한 지절(至切)헌 도인가? 이렇게 지내 나갈 것 같으면은 십악중죄(十惡重罪)인들 어디 지을 틈이나 있으며 뭐 지을 염(念) 생각이나, 십악죄 지을 생각이나 어디 일어나는가? 화두(話頭)에, 의단독로(疑團獨露)에?

수시맹착정채(須是猛着精彩)해라. 모름이 이 맹렬스럽게 정신을 부딪쳐라. 깨끗한 정신을 부딪쳐서 시시때때로 그 의단, 의단을 일으켜라. 천하에 쉬운 것이여. 그 어려운 게 아니다 그 말이여. 의심(疑心)만 일으킨다면은 거기에 뭐 무슨 화두에 병(病)이 붙어? 어디가 병이 붙을 디가 있나?

왜 따져서 '조주가 판치생모(板齒生毛)라고 했는디 그 조주 뜻이 뭣이며, 판치생모란 뜻이 뭣이며' 왜 이렇게 따져? 이렇게 분석을 혀?
'판치생모니라' 그게 조주 뜻인디, 알 수 없는 의심인디, 조주 뜻이라기보담도,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라고 하기보담도, 알 수 없는 뜻이 그대로 나온 디. 알 수 없는 게 의심,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아! 이놈 하나 나온 디 가서 앞뒤 전념이 어디가 붙어? 어디 가서 찡겨 있어?
그놈이 흐리터분허니 망상도 아니요, 뭔 화두도 아니요, 이건 뭐 그만 신심이 없이 용맹심이 없이 그대로 턱 앉어 있으니 그런 것밖에 없지.

아무것도 없이 똑 마침 이거 계(견)여입정(牽驢入井)처럼, 말을 몰고 샘에다 집어넣을라고 헌 것처럼 도무지 화두는 찾아봐도 없고, 의심은 어디로 가버리고 없고, 무슨 놈의 화두여? 그렇게 그렇게 자리가 되어도 못쓴다 그 말이여. 그러니 참, 정신을 부딪쳐라. 맹렬스러운 정신을 일으켜라.
왜 그걸 한바탕 못혀? 그 뭐 그 신심이 그렇게 철두철미허게 일어나서 화두가 독로되는 디는 세상에 그렇게 흐리~ 허니 용맹심 없이 지낸 것보담 백 배나 천 배나 더 더 좋고, 괴로운 것도 없고, 그 신심 가운데에 그 맹렬한 마음 가운데에 정(定), 화두정락(話頭定樂)이 기가 맥히다. 어따가 비교를 헐 것인가.

맹렬스럽게 정신을 부딪쳐라. 말만 듣고 말에 그치지.. 말에 생해(生解)를 허지 마라. 한바탕 직접 해봐라. 이 화두 학자라는 것은 바로 화두해 나가는 거, 바로 닦아 나가는 거, 실행이 실수실행(實修實行)이 제일이지. 밤낮 말만 듣고 또 안 허면 뭣혀? 아무 소용없는 것이여. 실행이 없는 것은 소용 하나 없거든.

제기화두(提起話頭)해라. 화두를 잡드리해 일으켜라. 밤이나 낮이나 여타시애(與他厮睚)하라. 밤이나 낮이나 타(他)로 더불어서 겨루워라.
'타(他)로 더불어 겨루라'는 것은 판치생모, '어찌 판치생모라 했는고?' 그놈으로 겨루어라. 들입대 그만 어디로 가지 않게 꼼짝 못허게 콱! 들이 거각(擧却)해서 독로(獨露)해, 홀로 들나게 알 수 없는 의심만 갖추어라.

어째서 '안 된다' 해야? 어째 '화두가 안 된다' 해야? 이렇게 신심과 이렇게 용맹심만 일으키면은 그대로 그만 실수(實修)되고, 바로 그만 실다이 닦아지고, 바로 그게 대학자(大學者) 대승학자(大乘學者)요, 무슨 소승학자인가? 대승학자 그 이상 더 있어? 한량없는 대근기(大根機) 학자지. 당장에 화두가 그렇게 그렇게 의단독로(疑團獨露)가 되어버리는데.
의단독로가 무슨 뭔 사흘 허고, 나흘 허고, 닷새 허고, 이레 허고, 오는 거 아니여. 당장 일념(一念)에 오는 거지. 일념을 그러헌 일념을 갖추어 보란 말이여.

아! 내가 그만 그 이러헌 용단(勇斷) 용맹이 내게 갖추어져 있는데, 왜 그 경계를 내던져 번지고 따지고 분석하고 이러고 앉었어? 한번 시애(厮睚)해 봐라. 그렇게 잡드리를 해봐라. '어째서 그 판치생모라 했나?' 조사관(祖師關) 판치생모가 천하에 거 원 아무것도 아니네. 거 틈이 어디 있나? 거리가 어디 있으며? 원 곧 곧! 그 그놈인데.

불가좌재무사갑리(不可坐在無事匣裏)해라. 고 화두를 허다 화두 없이 분석하고 따지고 그 무사(無事), 아무 화두도 없는 속에 들어 있지 말아라.
화두는 없어 우두커니 앉었지. 거 되야? 우두커니 앉었으면 될 거냔 말이여? 거 뭐가 될 건가?

우불가집재포단상사좌(又不可執在蒲團上死坐)하라. 그 포단(蒲團)에 앉어서 참선은 헌 체허지마는 잠자고 앉었으니께 그 죽어 앉었는 것이다 그 말이여.
사선(死禪)! 묵조사선(默照邪禪), 가만히 일 없는데 들어앉어서 화두도 없이 뭐 그대로 집착, 좌(坐)에만 집착해 가지고 졸고 앉었는 것이여. 꾸벅꾸벅 조는데 그 뒈진 것 아닌가? 거 뒈지고 앉었는 거지 뭣이여 그것이? 그 짓을 헐까 부냐?

수요활롱(須要活弄)이니라. 그 무사갑리(無事匣裏) 속에서 도 닦는다고 활롱(活弄)을 허지 말아라. 왜? 무엇 때문에 공연히 앉어서 도 닦는다고 하면서 꾸벅꾸벅 그 그럴 수가 있냐 그 말이여. 그 무슨 활롱(活弄)을 허냔 말이여 그렇게. 화두가 맹렬히 그 들나, 독로되아 있는 데는 그것이 있을 리가 있나 말이여. 거 못된 그런 무사갑리(無事匣裏)가 어디 있으며, 활롱(活弄)이 어디 있으며, 거기서 무슨 뭐 잡념이 어디 붙어 있어?(처음~15분13초)





(2)------------------

공잡념(恐雜念)이 분비기시(紛飛起時)에, 그 잡념이 일어날 때, 허다가 잡념이 아! 들어오거든. 일어날 때 그때 주의를 혀. 잡념이 들어올 때 그때 주의를 크게 혀. 잡념도 두려워허지마는 만약 잠이 들어올 때, 그놈 무기(無記)가 들어올 때, 또 그놈도 주의해라 그 말이여. 주의를 어떻게 허느냐?

천만불가(千萬不可)... 잡념이 공잡념(恐雜念)이 분비기시(紛飛起時)에, 잡념이 고 못된 잠과 망념이 이렇게 일어날 때에는 천만불가여타시투(千萬不可與他厮鬪)다. 천 번이나 만 번이나 그 잠과 그 망상 고놈으로 더불어 전투치 말아라. 싸울라고 허지 말어. '에 이놈! 잠 안 자야겠다. 에 이놈! 망상을 안 내야겠다. 아! 이놈의 망상이 왜 이리 들어오는고? 왜 이놈의 잠이 이렇게 오는고?' 이러지를 말아라.
그러면은 그 싸운 놈이, 떼버릴라고 헌 놈이, 없애버릴라는 놈이, 하나가 더 생겨 가지고 자꾸 더 일어난다. 그 자리에서 퍼 일어나. 구정물 밑구녁 건들어 놓으면 점점 더 퍼 일어나듯기 흙탕물 건들어 놓으면 일어나듯기 고러헌 중생 번뇌망념이 더 일어난다. 참 고약하다. 그러니 시투(厮鬪)치를 말아라.

전투전급(轉鬪轉急)이다. 그놈을 싸우고 없애고 떼버릴라 하면 점점 더 오고 점점 더 한다. 그 망상 번뇌 염(念)이 그놈이, 고약하지.
다유인(多有人)이, 모도 도 닦는다는 학자들이 재자리(在這裏)하야, 여기 이러헌 디 이러헌 속에서, 그놈 잠 안 잘라고 애쓰고, 그놈 망상 안 낼라고 애쓰고, 그놈 떼버릴라고 애쓰고, 그놈 피헐라고 애쓰고, 이러다가 불식진퇴(不識進退)다. 진퇴를 알들 못하는구나. 도(道)가 손해나는 걸 모르는구나. 그게 기가 맥히게 손해나는 도(道)다. 거기서 닦지 못한 것이다.

해면불하(解免不下)하야, 도무지 그놈의 경계를 여의들 못하고 버리들 못해 가지고는 그 부애가 난께 안되니께 성풍성전(成風成顚)을 한다. 그만 바람을 이루고 전(顚)을 이뤄 가지고는 에잇! 그 귀찮애 공부도 못하고, 밖에 돌아댕기면서 그만 어디 가서 얘기나 할라하고, 또 어디 가서 그저 그만 교담(交談)이나 잡교(雜交)나 할라하고 이렇게 지낸다 그 말이여. 그래 될 거냐?
괴료일생(壞了一生)이로구나. 이렇게 해서 헛되이, 도 닦으러 들어와서 도문에서 이렇게 헛되이 지내는구나. 왜 허생낭사(虛生浪死)를 허느냐?

광음(光陰)은 왜 이렇게 그 기가 맥히게 나를 위해서 이렇게 일월이 항상 비춰주는 그 좋은 광음 시은, 그 시은(施恩) 무섭다. 얼마나 무서운 시은이냐? 훤허게 만들아 주고 밤과 낮에, 밤에는 자게 재워주고, 낮에는 모도 일해서 먹고 살고 활동허게 만들아 주고.
그다음에는 모도 이렇게 농부가 농사지어서 우리 입에 들어오게 만들아 주고, 이러헌 모도 그 시은이 얼마냐? 먹고 사는 물이며, 먹고 사는 그 일체 수용범절(受用凡節) 등절(等節)이 어떠허냐? 이렇게 시은을 짓고 앉어서 괴료일생(壞了一生)한다면, 일생을 헛되이 지낸다면 될 것이냐? 되야?

향분비기처(向紛飛起處)하야, 그 일어나는 번뇌 망상, 그 잠이 들어오는 그 속에서 그 속에서 그놈이 온다 그 말이여. 어쩐지 도를 닦을라면은 퍼 일어나는 게 망상이고, 오는 것이 무기(無記) 잠이고, 이놈 그거 참 막아낼 수 없네. 그 호사(好事)에 다마(多魔)라더니, 호사(好事)에 생사 없는 해탈대도를 깨달라 증(證)할라는 그 좋은 일에 요런 놈의 것이 자꾸 들어온다 그 말이여. 그 못된 마음, 번뇌적(煩惱賊)이 번뇌 도적놈과 무기(無記) 도둑놈이 자꾸 들어온다.
그런 곳을 향해서 정성스럽게 정성스럽게 꼭 정신을 챙겨서 방하(放下)를 해버려라. 간섭 말아라 그 말이여. 내비둬 버려. 일어나거나 말거나, 망상이 오거나 말거나, 뭐 별짓이 다 있다 하드래도 그런 것은 방하(放下)해 버려라. 상관 말아버려라.

타일개(打一箇)하야, 그 일개전신하지(一箇轉身下地)해라. 얼른 일어나거라. 그럴 때 왜 안 일어나느냐? 안 일어나고 있는 것은 그놈 오기를 기다리고, 그놈 받아들이는 것이고, 그놈허고 인자 더불어서 졸고 망상 낼라고 가만히 앉었는 것이다 그 말이여.
왜 그러느냐? 퍼뜩 일어나면 어쩌냐? 그놈을 퇴치하는 데는 일어나면서 화두부텀 얼른 챙겨.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판치생모? 어찌 판치생모인고?' 아! 이놈 하나 거각(擧却)할 것 같으면은 그 뭐 그 간 곳 온 곳 없네.
어느 때 갔는지 온지, 가고 오는 어디 그놈이 거래(去來) 자취가 있나? 그까짓 거 어디서 온 것이냔 말이여? 어디 있는 것이며? 어디 쟁여져 있는 것도 아니고, 어디 한쪽에 어디 있는 것, 어디 있어? 없어.
얼른 전신하지(轉身下地)해라. 몸뚱이를 일으켜. 이것 다 중요헌 편이여, 도 닦아 나가는 데.

행일조(行一遭), 다시 한번 휙 둘러라. 두를 때 두른 것도 그 여가 찝적, 저가 찝적 거 뭐 간섭허고 어쩌고 그러지를 말고 화두 하나를 떠억 상대목전(相對目前) 해 가지고는 그놈을 추켜들고는 '어찌 판치생모라고 했는고?' 그놈만 그저 온당하게 잡드리하면서 정중(庭中)에 갔다왔다하든지, 또 정중이 모도 분다할 것 같으면은 후원(後院)에 어디 조용한 데 왔다갔다하든지, 갔다왔다 수십 보를 이렇게 행해라.
아! 그러면 차츰차츰 그놈 그까짓 거 물러가 버리지 일어나 정신 차리는데 어디 있나? 화두를 또 더군다나 챙기는디, 있나? 화두 안 챙기면 소용없어. 더 눈이 찝찝하고, 더 일어나 선디 더 장애가 되어서 안되야. 화두를 챙겨.

그래서 전신하지(轉身下地)해라. 몸을 떠억 일어나서, 몸을 일으켜서 하지(下地)를 해서 갔다왔다햐. 행일조(行一遭)하고, 한번 떡 두르고 두 번 두르고 몇 번 둘러서 그 청쾌하거들랑, 또 인자 들어와서 내 좌선 좌(座)에 참선허는 좌(座)에 앉어서, 개양안(開兩眼)하고 눈을 감지 말고 뜨고.
눈을 지그시 감네. 이게 인자 처음 들어온 학자가, 처음 들어온 사람들이 눈부텀 감아. 눈 감으면 검은 것만 나오지, 뭐가 있나? 눈 감으면 화두가 보이나? 화두가 독로된 알 수 없는 의단독로가 보이냐? 눈부텀 감는다 그 말이여. 눈을 감지 말어라.

그 견성(見性)을 헌 뒤에야 눈 감고 뜬 것이 무슨 관계 있나? 어디 일예재안(一翳在眼)에 공화난타(空花亂墮)인디, 한 가리움이 눈에 있으면 공화(空花), 허공꽃이 어지러이 떨어진디. 뭐 일념인들 붙어 있어? 견성헌 후에야.
허지만 인자 들어온 사람이 지금 노랑(奴郎)을 불변(不辨)하고 화두, 알 수 없는 놈만 챙기는 사람이 눈 지그시 감으면 껌허니 시커머니 그래 나와 가지고는 잠만 온다 그 말이여. 이거 자꾸 이렇게 잘라고 헌 것이여.

두 눈을 따악 뜨고, 알척번[捏雙拳]해라. 손을 딱! 쥐어라. 따악 쥐고. 이거 쥐는 것은 정념(正念)을, 내 정념, 흩어진 망상을 때려.. 정념을 가지는 것이여. 망상 없는 정념을 딱 가져. 따악 양권(兩拳)을 딱 쥐고는 그 용맹헌 거동이여. 그 뭐 다른 무엇이 있는 게 아니라, 뭐 쥔 디 가서 무슨 다른 이치가 있는 것이 아니라 용맹스러운 거동이여.

수기척량(竪起脊梁)해라. 척량(脊梁)을 턱!—그저 꾸부리고 이러고 앉었어, 참선헌다고.
이런 것도 아지 못허고, 좌선위의(坐禪威儀)도 모르고 선(禪)한다고 혀. 이래 가지고 앉어 이러고 떠억 하고, 참.

터억! 이놈을 펴. 이 '등 량(梁)' 수기(竪起), 등줄기를 펴. 저 궁둥이에서부텀 저 밑에 척추에서부텀 펴져 가지고는 우게까장 딱! 펴라 그 말이여. 따악 펴고. 그놈이 굽어지면 안되니까. 된 법이 없어.

척량(脊梁)을 추켜 떡 세우고, 의전제기(依前提起)해라. 똑 앞에와 같이 망념 없이 화두돈발(話頭頓發) 의단돈발(疑團頓發) 의단독로(疑團獨露)될 그때 같이 해라. 잘될 그때 같이 화두를 추켜들어라. 그래서 그 의전(依前) 그 화두 잘된 그때 경계를 항상 또다시 복구해서 알 수 없는 의단독로만 모도 홀로 들날 것 같으면은 변각청량(便覺淸凉)이다. 그 청량한 법이 깨끗한 법이, 화두에 일체 때가 묻지 않고 일체 진태미가 거기에는 붙지 못하고 깨끗한 금덩어리 마냥으로 한덩어리 화두 하나 뿐이니, 그걸 갖다가 변각청량(便覺淸凉)이라 한다.

깨끗해서, 그 경계를 비유허자면은 물을 끓이는 디 물이 펄펄펄펄펄펄 끓는데 확! 백도 이상 끓는데, 그 끓는 물에는 찬물 한 바가지 떠다가서 붓으면은 스르르르 가라앉어 버린다. 그와 같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쉽게 잡념이 거기에 없어. 오도 않고 없고, 그 자체 화두가 그래 깨끗해져.
그것 시시때때로 갖추면은 한 번 혀, 두 번 혀, 하루 혀, 이틀 혀, 한 철 두 철에 오는 거여. 그 한 철 두 철에 대도견성(大道見性)을 확철대오를 허는 것이다 그 말이여. 그거 오래 가는 것도 아니여.

단여차주공부(但如此做工夫)허면, 이렇게만 잡드리를 해서 애를 써서 공부를 해 나갈 것 같으면, 일구월심(日久月深)허면, 날이 오래고 달이 깊으면은 자유도가시절(自有到家時節)하리라. 결정코 확철대오헐 시절이 있으리라.(15분13초~28분7초)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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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700여 개의 ‘참선 법문(法門)’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 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 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그리고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도 있습니다.

 

참선법 A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B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C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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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선법 A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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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700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 동산숭장주송자행각법어(東山崇藏主送子行脚法語) (3/5) (동산숭장주가 제자를 행각 보내면서 하신 법어)

**전강선사(No.352)—몽산법어 부록. 동산숭장주송자행각법어 3 (계축73.12.24.새벽) (전352)

 

 

(1) 약 21분.

 

 

(2) 약 16분.

 


(1)------------------

차신(此身)이 진여객(眞旅客)이요  만사개부운(萬事皆浮雲)이니라
나무~아미타불~
금조상별후(今朝相別後)에  사군불견군(思君不見君)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우리 이렇게 모인 도학자(道學者)들이여. 도를 배우는 학자여. 여기에 들어와서는 경(經)도 보지 않고. 경 뭐 무슨 경 다 버려버리고 사교(捨敎)허고, 교(敎) 버려버리고 들어왔는데, 무슨 경?
확철대오해서 우리 부처님이 '도 닦으라'고 말씀해 논, 당신 도 잘 닦아서 도 닦았다는 얘기 그 해놓은 거여. 그거 다른 거 아니여.

도(道) 닦을 줄 알고 도를 닦는 법을 배왔으면은 도를 닦고 배운 것이 바로 도 닦는 게 옳지. 밤낮 그 교(敎)만, 도 닦는 것만 배우면 뭣혀. 만날 그 '도를 닦아야겄다, 뭐 어떻게 해야겄다' 그것만 허면 뭣할 거여?
발심(發心)을 해서 도 닦는 학자는 급해서 언제 경 읽고 들어와서 도 닦을 겨를이 있나? 대번 들어와서 도부텀 닦는 것이여. 급허니까. 시시가외(時時可畏)니까.

이 몸뚱이는 진여객(眞旅客)이다. 참으로 참으로 그대로 그만 여객(旅客)이여. 나그네 생활이여. 우리가 지금 객창(客窓)에서 그 객지에서 고향 한번 가보지 못하고 시방 참으로 있는 것이다.

이렇게 모인 우리 도반 도객(道客)이 아침으로 일찍 일어나서 세수허고 다 양치허고 이렇게 깨끗이 씻고는 부처님께 예경(禮敬) 따악 한 후에 예경 후에는 십악참(十惡懺)을, 무량 과거에 한량없는 다겁(多劫)에 지은 놈을 다 아침마다 참회를 하거든. 십중대계(十重大戒)를 해 가지고는 '아석소조제악업(我昔所造諸惡業), 내가 지은 바 모든 악업' 겁(劫)도 없지. 몇 해니 뭐 그런 것 없지. 한량도 없이 지었으니까. 누겁다생(累劫多生)에 지은 죄업 한량없다.

그놈의 죄... 형상이, 죄의 형상이, 죄의 모냥이 없으니깐 그렇지, 그 죄의 모냥이 있다면 바다가 문제 아니여. 바다같이 큰 물도, 큰 깊은 호수, 대양(大洋)도 소용없어, 그 죄에다가는. 우리가 지은 죄.
모도 중생들이 지은 죄 합(合)해서 헌 말 아니여! 낱낱이 우리 따로따로 우리 개인 개인이 지은 죄업이 바다보담 깊고 더 너룹고 크고 그려. 바다보담 더 큰 것이 무엇이여? 바다보담 더 큰 것은 허공이여. 허공보담 더 크다고 했어.

허공 그놈도 한(限)이 있는 놈이지. 그 큰 허공지대(虛空之大)지마는 그놈도 한량(限量)이 있어. 너룹고 길고 크고 헌 양(量)이 있지마는, 우리 중생 지은 죄업은 양도 없고 뭐 갓도 뭐 끝도 없다. 얼마를 처지어 놨던지. 그놈이 허공과 같이 형상이 없어 그렇지, 형상이 있다면 기맥히다. 말로 헐 수 없어.
그 큰 죄로부터 쬐그만헌 죄까지 다 합산해 보지. 중생념(衆生念)이 다 죄업인디, 중생념은 그저 항상 일어났다 멸했다 하는 그 마음 그놈이 죄 짓는 마음이여. 중생심은 순전히 죄 짓는 마음을 중생심이락 해야. 죄업심이여. 기멸(起滅) 전체가 죄업심이여. 맨 기멸이 그저 남 죽일 마음, 남의 것 뺏을 마음, 그저 살생 오입.. 십악오역죄(十惡五逆罪)를 시시때때로 고 범(犯)헌다 그 말이여. 그 마음이.

한 일순간도 잠정되지 않고 있는 놈의 마음이 그저 퍼 일어났다 멸했다, 퍼 일어났다 멸했다 허는 놈의 마음이 맨 그 정법(正法)은 생각할 수도 없고—정법 어떻게 생각햐? 정법이라는 것은 어디 그 부처님도, 부처님 부처님도 서로 보들 못헌 그러헌 정법, 생사 없는 해탈법인디, 그건 어떻게 어떻게 볼 것인가?
거기를 정법, 생사 없는 해탈정법(解脫正法)을 바로 깨달라 버려야사 이놈의 죄라는 거 중생죄가 거기는 붙들 못허고 오들 못허고 일체 업(業)이 구타부득(拘他不得)인디, 생전 그건 어디 꿈인들 뭐 어디, 어디..

하! 그러니 짓는 게 죄업 뿐이니 생겨난 때가 없는 중생심, 중생심이 어디 중생이 생겨난 때가 있나? 그런 놈을 퍼 지어 놨는데 그 죄가 여산해(如山海)다. 오히려 '산과 바다 같다' 했지마는 허공도 모지래야. 허공도 안 되아. 형상이 있다면은 허공 속에다 갖다가 채와도 모지라. 채울 수 없어.
그놈의 죄성(罪性)이 본래 형체가 없고 상(相)이 없기 따문에, 하나 무슨 뭐 그대로 지었어도 어디 뭐 어디 어디다 쟁여논 게 있나? 보이지 않지. 허지마는 낱낱이 그 죄를 다 받네. 지은 죄는 안 받을 수 없네. 정업난면(定業難免)이여. 정업(定業)은, 지어 논 정업(定業)은, 정(定)해 논 업(業)은 면치 못햐.

사람 몸뚱이 하나 받아 나와 가지고 눈깔 하나 곯은 것도 다 전생(前生)에 지어서 눈깔이 곯게 된 것이고, 눈 어디 보지 못헌 것도 전생에 지어서 앞을 보지 못헌 것이요. 앉은뱅이가 일으지 못헌 것도 전생에 지어서 금생에 와서 그 지경 된 거여. 낱낱이 과거 지은 죄 받느니라고 죄 닦음 허니라고. 모도 인생 보지, 사람 보지, 천이면 천, 만이면 만, 다 달르지 어디 똑같은 법이 있나?

확철대오(廓徹大悟)해서 내 자성(自性)을 깨달라서 부처님이 되어 버리면, 불(佛)이 되어 버리면은 생사 없는 대도(大道)를, 생사 없는 이 내 마음을 바로 봐 버리면은 형상을 받아 나와도 불상(佛相)이 되어 나와 똑같여. 삼세제불(三世諸佛)이 똑같여. 눈도 같고 귀도 같고 입도 같고 머리 두상도 같고 똑같여.
석가모니불 다르고 미륵불 다르고 헌 것이 아니라, 부처님은 음성도 원음(圓音)이고 색상도 32상(三十二相)에 80종호(八十種好)고 똑같여. 그건 업이 없으니까, 죄업이 없으니까 똑같다 그 말이여. 그런 참 대도법, 이 참선법, 참선법을 믿어서 닦으러 들어온 우리 도학자여.

경(經)도 보지 않고, 경(經) 그거 그 설식기포(說食飢夫)인디, 밥 말만 해 놓은 건데, 밥 그것 밤낮 말만 하면 소용이 있나? 먹어야지.
당장 먹는 것이여. 당장 화두 터억 하나 탔으면은, 큰스님한테 화두를 받았으면은 화두 하나 보듬고 그저 그저 엎치락 뒤치락 닦아 나가야 한다. 다시 그 화두 내버리고 일순간이라도 지내간 것을 공과(空過)라 한다. 헛되이 지낸다 햐. 그거 헛되이 지내.
천하에 헛되이 지낼 것 아니지. 그 어떻게 그 그 허생(虛生)을, 허송(虛送)을 헐 것인가 말이여. 발심헌 학자, 도학자가 어떻게 허송을 헐 수가 있나? 허송 낭비는 안 해야 할 것이다.

재하포단(才下蒲團)해야, 공부한다고 들어와서 포단상(蒲團上)에 척 올라서, 참선헌 좌(座)에 올라서 참선 좀 한다고 막 앉으면 합수(瞌睡)한다. 잔다.
선상(禪牀)에 올라앉어서 합수(瞌睡)만 해도 그것도 고맙기는 허다. 그 지경도 못허고 오도 못허고 믿도 못헌디, 믿었든지 안 믿었든지 어쨌든지 들어와서 이러헌 도찰(道刹)에 들어와서 도문에서 참선 좌에 한번 앉는 것도 그 참! 장하기는 장하다. 어따 비유할 수가 없어.

아침에 일찍이 이렇게 세수 다 하고 그러고는 몸뚱이 깨끗이 해 가지고는 법당에 들어와서 부처님께 예경(禮敬) 참배를 다 모신 후에 십악참회(十惡懺悔)를, 백억만겁에 지은 죄를 한목 참회허고, 그 원(願), 원이 어때? 기맥히지. '원차심견고 정법문중에 신심불퇴 확철대오 광도중생이라'
그 아침마당 그 어때 그것이? 한마디 원하는디 삼세제불이 공증허고, 또 거다 십악중죄(十惡重罪)를, 늘 과거에 지은 죄를 참(懺)하니 참회문(懺悔門)이라는 게 소중헌 거여. 죄를 지어 가지고는 참회가 없다면 큰일난다 말이여. 그래 참회문이래야 그게 인자 성불(成佛)하는 문(門)인디 이러헌 참회를 허고.

그러고는 여기에 와서 시주것은 참 무섭다. 삼시(三時)로 먹는 것이 중생의 피땀이요, 농부의 피땀이요, 기가 맥혀. 모도 일체중생이 모도 그 농사지을 때 얼마나 목숨을 바쳤으며, 밟혀 죽고, 쟁기 끝에 갈려 죽고, 그 모도 헌 얼마나 그놈 모도 피땀이며, 농부의 피땀이며, 이놈을 먹고 지내니 한량도 없는 시은(施恩)을 짓는다.
그 시은은 짓는다마는 그 도문(道門)에 들어와서 도(道)도 안 닦고 경도 안 읽고, 그 시은만 짓기는 짓는다마는 그래도 여그 들어와서 그 사람이 무슨 사기를 허나, 협잡을 허나, 도둑질을 허나, 무슨 사음질을 허나, 뭣혀? 여기서 우리 대중이 한번 되어 있으면 무슨 사행(邪行)을 어디 범한 일이 있나? 아무 계행(戒行) 그대로 다 가지고 지내지.

그 계행(戒行)만 이렇게 잘 닦는 것도 한량없는 또 공덕(功德)도 있다. 평생에 그렇게 도문(道門)에서 놀고 도는 닦지 않고 지낸다 하드래도 거 대단히 그 가지는 공덕, 계행 닦는 가지는 공덕 그 장하기는 장혀.
허지마는 그까짓 놈의 계행 그놈의 것만 가져 봤던들, 아! 평생 가져 놓으면은 그 한량없는 공덕이 있어서 그 내세에 가서는 부귀장자도 되고 백만장자도 되고 제궁종실(諸宮宗室)도 되고 아! 저 천상락도 받아나고 허지마는 유위법(有爲法)이기 따문에 다하면 타락이 있으니까 유위법이여. 타락법이여. 그러니 못쓴다는 거여.

그래 그것만 가지고는 되야? 그저 '나는 계행 가지고 지낸다'고 그러고, 그렇게만 참선 않고 지내 되야? 어쨌든지 공안(公案) 하나를 깨달라야 되아.
그것은 밥 밥을 먹자면 밥에 밥식기도 밥그릇도 있고 숟가락도 있고 저분도 있고 반찬도 있고 허듯기 밥 그놈 먹을라면 모도 딸려 있는 것이 얼만가? 참선해 나가는 디 부속품이여. 계행 같은 것은 참선해 나가는 디 부속품이라.

참선을 헐라매, 밥을 온당하게 그릇에 담을라매 그릇이 온당해야만 밥을 담지. 참선을 온당허게 헐라면은 계행은 저절로 가져져 있는 것이여. 계행이라 하는 것은 갖춰져 있어. 안 닦는 법이 없어.
계행을 가져야사 되지, 계행이 없이 될 것인가? 그래 계행은 가지지 말라는 것이 아니여. 참선학자라는 것은 계행은 저절로 갖춰져 있어.

그러니 계행 저절로 갖춰져 있어, 십악참 해 나가. 이렇게 거다 공안법 하나를 옳게 다루어 가야, 화두 하나 해 나가는 법을 옳게 해 나가야 할 것 아닌가? 이놈이 인자 참말로 정혜쌍수(定慧雙修)다. 정(定)과 혜(慧)를 쌍수(雙修)허는 법이고, 한목 다루어 갖춰 나가는 것이다 말이여.
'참선허니까 그 같은 거 뭐 계행 상관없고 일체 응, 관심일법(觀心一法)이면 그만이지 그까짓 놈의 계행 다 뭐할 것이냐?' 그럼 술도 먹고 막 먹고 막행하고 그래 되야? 그것이 선객(禪客)이여, 그것이? 어림도 없어.

병이 나면 죽게 된 디는 부처님께서 허락을 했어. 먹고 낫우어서 도 닦아라 했어. 했지마는 오후불식(午後不食)은 허락 안 했네. '오후에는 먹지 말아라'
시방 오후에는 전부 다 먹네. 그건 다 먹으면서 다른 계행 같은 것은 조금만 뭐 중이 담배 하나만 먹어도 그만 '중 담배 먹는다' 막 그리 '파계승이다' 야단이지. 재계(齋戒)에 가서 오후불식 무서운 것이여. 오후에는 밥을 먹지 말어라.

오후 밥을 저녁밥을 안 먹어야사 그 가슴 창자 속에 그러헌 그 무슨 밥 같은 것, 반찬 같은 것, 된장 찌꺼리 같은 거, 뭐 그런 놈이 들어가서 창자 속에 따악 괴와져 속에 담뿍 차 있으면은 당최 화두(話頭)가 들어가들 안 해. 망상만 퍼 일어나지.
밤에 잘 때에 꿈도 어디서 일어나느냐 하면 그 밥 먹은 모도 그 밥이 고여서 채여서 거기에 모도 뭐 뭐 씨락 같은 거, 뭐 같은 거, 된장 찌꺼리 같은 거, 그런 것이 모도 걸려 있어 가지고 그놈이 꿈을 이루는 것이다고 했어.

아주 저녁밥을 안 먹으면 깨끗허고 청쾌해서 밤새드락 도(道) 닦는 거여. 주경야독(晝耕夜讀)인디 밤에 도를 닦지 않고 어떻게 헐 거여? 그것 참! 그 밤, 깨끗한 밤, 고요한 밤, 천지가 도무지 다 만물이 잠들어 버린 그때를 떠억 허니 이용해서 도를 닦아야 하지. 그때 닦아봐. 그 여러 시간을 다 하라는 것 아니고 다맛 가행정진(加行精進)으로 한 시간만 해 봐도 효과가 참 대단히 크지.
거기다가 거기에 그만 나중에 화두가 들어와서 정락(定樂)이, 화두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해서 정락(定樂)이 되면, 정(定)에 낙(樂)이 화두에 고요해서 일체 망념이 딱 없어. 망념이 뭐 그 붙고 떼고 뭐 오고 붙을 게 없어. 화두 하나 독로했으니. 알 수 없는 의단이 독로했으니.(처음~20분59초)





(2)------------------

거 처음에는 그렇게 안된 놈의 의심(疑心)이지마는 자꾸 해 들어가면 또 보태지고 또 보태지고 망상은 생처(生處)는 방교숙(放敎熟)하고, 많이 익혀 논 놈은 차츰차츰 없어지고, 자꾸 의단(疑團) 알 수 없는 놈만 자꾸 거각(擧却)을 하니까, 나중에는 일체 번뇌 망상이 없앨라고 할 것도 말 것도 어디 어디 있나, 그것이? 그놈의 망상이 그렇게도 지독하게 많지마는 종자가 종류가 한량도 없지마는 화두 한번 턱! 돌이켜서 '어째서 조주 스님은 판때기 이빨에 털 났다 했는고? 판치생모라니?'
판치생모, 처음에는 암만 해 봐도 그 원 밑도 끝도 없고 아무 것도 우습지? 허지마는 그렇찮어. 반야묘용(般若妙用)이라는 것은 한량없는 신력이 있기 따문에 내가 나를 찾는 법이 그렇게도 쉬워. '어째 판치, 판때기 이빨에 털 났다 했는고?' 이놈이 안 되다가도 나중에 그만 홀연히 입수(入手)헐 때, 홀연히 들어올 때에는 나도 몰라. 자신도 몰라.

화두가 독로(獨露)할 때가 있어. 거기에는 정락(定樂)이 있어.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한 데는 정락이 있어서 정락은 천하에 도무지 그 어따가 천하없는 즐거운 낙(樂)도 바꿀 것 없어. 뭘로 바꽈? 온당한 정락, 그 본인도 그때는 모르는 것이여, 그 정락이라는 거.
잠 꼭 들었을 때, 잠이 폭 들어서 잠잘 때 한량없는 낙(樂)이 있어. 그것도 그 범낙, 범낙(凡樂)이여. 잠 꼭 들어 제팔식장(第八識藏)에 들어간 것도 범부낙(凡夫樂)이여 그것이. 범낙인디 그곳에 들어가도 몰라, 본인은. 잘 때 잔 경계를 모르지마는 낙(樂)이 한량없는 것이여. 그 잠 잘 자고 나면은 잠잔 경계가 무척 '아따! 내가 잠 잘 잤다' 좋은 음식 먹은 것보담도 더 쾌청하고 세상 없는 좋은 낙을 즐거운 낙을 받은 것보담도 더 즐겁다.

이 화두에 정락(定樂)이라는 것은 망상 번뇌가 붙들 못한, 화두 의단(疑團)에 의심(疑心)에 와서는 붙들 못혀. 의심이라 하는 것은 불 같어. 불! 불 그놈이 뭐 일체 무슨 뭐 준동충(蠢動蟲)도 붙지 못허고 벌거지 무슨 뭐 뭐 일체 짐승도 붙지 못허지마는 낙엽 같은 거, 무슨 나무 같은 거, 거기 어디 불타버리지. 붙들 못하지. 또 거다가서 금속도 돌이나 쇠도 집어넣으면 녹아 버리고 부서져 버리지. 안 탄 것이 없어. 옥석(玉石)도 구분(俱焚)이니깐. 불 같어. 화두라는 것은 불 같어.

세간소유지물(世間所有之物)을 실개투지(悉皆投至)하야도, 세간에 있는 바 일체 물건을 불무더기에다 넣어봐. 점점 불무더기는 더 점점 커지면서 무더기는 더 커져서 말로 헐 수 없는 큰 불무더기가 되야.
우리 화두도 마찬가지여. 일체 망상 번뇌가 차츰차츰 거기 와서는, 화두 의심에 와서는 붙들 못허니까 망상 번뇌 붙지 못헌 놈이 그 중생심, 중생 업장(業障)이 확 타버려. 반야 혜광(慧光)에 다 녹아버려. 그러니 의단만 남아 있는 걸 독로(獨露)라 햐. 의단만 터억 나온 게 독로라 햐.
그 지경 되기가 천하에 쉬운 것이여. 이레 만에도 있고, 사흘 만에도 있고, 일언지하(一言之下)에도 있는 것이여. 그것이 그렇게 멀리 있는 것 아니여. 그놈 아니면은 생사해탈을 못혀. 꼭 그놈을 뚫어내야사 알 수 없는 의심이 툭! 터져.

의심도 그놈이 암만 좋은 것이라도 의심도 그놈이 그거 무슨 제호상미(醍醐上味)가 번성독약(翻成毒藥)이다. 제호(醍醐) 같은 좋은 약이 천하에 없건마는 사람 죽이는 약이 되는 거여, 많이 먹으면은. 보약이라도 많이 먹으면 죽어.
제호상미도 번성독약이여. 의단이 아무리 좋다고 의심이 좋다 하지마는 의심도 그놈 한번 툭! 터져 버려야지, 고걸 고대로 지키고 있으면 소용이 있나? 허지마는 의심이란 건 지키고 있는 것이 아니여. 의심이 돈발(頓發)해서 의심이 한목 다 일어나 버리면 터져 버리지. 그냥 있는 것 아니여.

아! 그러헌 지경이 곧 오는 것인데, 어따가 미뤄? 내일에다 미뤄?
금조상별후(今朝相別後)에, 오늘 오늘 이 몸뚱이 내가 얻어 가지고 나왔다마는 오늘 아침에 이별헐는지, 명조(明朝)에 이별헐는지, 어느 때 이별헐는지 알 수 없는 놈의 요까짓 놈의 몸뚱이를 믿느냐?

사군불견군(思君不見君)이다. 아무리 내 낯반대기를—다시 내 몸뚱이 내가 받아 가지고, 가지고 온 몸뚱이다마는 내 낯반대기를 내가 다시 볼 수 없어. 이놈 받아 가지고 나와서 이별해 버린 뒤에 땅속에 묻어 버리면, 매장해 버리면 썩어 버린 뒤에 그 살 그 낯반대기 다시는 못 만나.
이 후생(後生)에도 또 고 얼굴 가지고 나오들 못허고. 무슨 놈의 낯반대기를 뒤집어쓰고 나올는지, 개 낯반대기를 둘러쓰고 나올는지, 소 배때기를 둘러쓰고 소 대갈빡을 쓰고 나올는지, 뭘 알아? 어떻게 알아? 사군불견군(思君不見君)이여. 아무리 그대 얼굴을, 내 얼굴을 내가 다시 찾았자 못 만나. 만날 수 없어.

허니 미룰 수가 없어. 이 몸 얻어 가지고선 이 정법 만나 가지고 이 도 닦는 도학자들이여. 미루어? 어따 미루어? 이따? 이따 혀? 두었다 혀? 두었다가 먹어? 좋은 음식 두었다 먹어?
허어! 기맥히지. 후생에 혀? 후생에 뭐가 될는지, 그렇게도 만나기 어려운 몸뚱이. 참 어려와. 백천만겁(百千萬劫)에 난조우(難遭遇)여.

아니 우리같이 이렇게 발심해서 도문에 들어와서 계행만 가져도, 참선 이 법 않고 계행만 가져도 후생에 몸뚱이는 얻어 나와. 뭐 못 얻는다고 안 했어. 허지마는 계행만 가진 이도 몇이나 되아? 기개(幾個)인고?
또 어찌 세상에 사람이 이렇게 많이 나왔는데, 그러면 그 사람이 다 계행 닦아 나왔나? 그 사람이 정법문중에 도 닦다 나왔나? 과거에 전겁 전겁에 다 많이 많이 퍼 지어 논 죄 차례로 받다가 다행히 일신(一身) 몸뚱이, 다행히 인신(人身) 몸뚱이 얻어 날 기회가 되어서 나온 몸뚱이인데, 그것 그거 역사를 따져 본다면 다겁다생에 그 '백천만겁(百千萬劫)에 난조우(難遭遇)니라. 백천만겁에 이 몸뚱이 얻어 나오기 어려우니라' 했으니 생각해 봐.

그러면 어떻게 이렇게 종류가 많냔 말이여. 생각해 봐. 미국으로 이 지구 덩어리만 하드래도 얼마냔 말이여, 인종이? 그런디 백억 리를 백천세계 인구는 얼마여. 그게 많허지?
많지 않어. 한국만 하드래도 그 같은 뭐 지금 무슨 우리 사는 우리 여기만 하드래도 무슨 삼천만 명이니 사천만 명이니 허고 있지마는 삼천만 사천만이 그 뭔 숫자여 그거? 그 뭣이여?
아! 짐승을 다 좀 종류가 몇 가지 짐승이 있어? 짐승 종류가 몇 가지여? 천억 백 종류가... 이러헌 법문, 자잘한 법문, 요러헌 법문을 헌 것 같지? 이 송곳이 끝부텀 들어가는 것이고 적은 걸로써 크게 되는 법이지. 이소위대(以小爲大)지. 초생달로써 큰 달 되는 것이지. 적은 걸 몰라서는 못써.

그 바다 속의 짐승, 땅 속에 묻혀 있는 짐승, 공중에 날라댕기는 짐승, 공중에 보이지 않는 그 눈으로 볼 수 없는 현미경 대도 안 보이는 놈의 짐승이 다 있거든. 다 쳐 보지. 그놈 숫자는 얼마겄는가?
일체 동물이 똑같지, 다르다고 안 했어. 소는 소고, 말은 말이고, 개는 개고 험사 하지마는 그러 안 해. 사람도 개 되고, 개가 소 되고, 소도 말 되고 다 이렇게 등류(等類)가 모도 교체를 허는 것인데, 어디 무슨 또 그 몸뚱이만 받나? 소용없어. 그 몸뚱이 받는 거, 그거 모도 받아 나온 거, 그런 거 모도 얘기할라면 한량없는 인과물(因果物)이 있어. 그거 뭐 언제 그런 것 다 얘기할 것 없고.

그러니 인신(人身) 한 번 얻기가 백천만겁에 만나기 어렵다 했으니 이러헌 난조지상(難遭之想), 이러헌 만나기 어려운 행득인신(幸得人身)헌 것을 조석(朝夕)에 항상 생각해라. 항상 염두(念頭)해라. 그런다고 참선도 않고 그것만 생각햐? 항상 무상(無常)한 것을 느껴.
속으로 느껴서 이렇게 계행도 닦고 이렇게 들어와서 소중한 몸뚱이를 잘 가지고 지내가는 여기에서 포단상(蒲團上)에 올라가서 그만 앉어서 한가히 잠이나 자고 있을 수가 있나? 참 그놈 좀 포단상에 올라가면은 그만 변타합수(便打瞌睡)나 하고, 또 죽비 딱 치고 인자 방선허면은 그만 일어나 나와서는 잡교(雜交)하고, 거 어디 가서 잡교나 쓰잘데 없는 얘기나 하고, 그거 잡교여.
또 우차호사난상(又且胡思亂想)하고, 쓰잘데 없는 공상, 무슨 이상스런 그건 꿈에도 그 되도 않을 놈의 거, 무슨 '나도 어디 가서 무슨 뭐 국회의원이나 한번 되아 보까, 장관이나 되아 보까, 뭣이나 한번 해 보까? 나가서 뭐해 보까' 이런 호사난상(胡思亂想)을 또 짓고.

그 도문(道門)이 그렇게도 만나기 어려워, 앉으면은 닦는 화두 하나 다루어 닦아 나가는 거, 어따가 그 지위를 바꿀 것인가? 바꿀 디가 어디여?

이래 가지고는 참선헌다고 앉어서는 미륵하생(彌勒下生)까장 한다. 호사난상(胡思亂想)하다가 잠 합수(瞌睡)허다가, 또 잡교(雜交)허다가, 이럭저럭 이럭저럭 지내는 거여.
이 몸뚱이 계행(戒行)은 있지. 어디 나가 함부로 지내든 안 허니까. 이리 선방은 지내니까. '선방에 누워 잠만 자도 공덕이 한량없다'고 이런 말이 있으니, 그 (공덕이 한량)없지 그거야. 허지마는 글쎄 내생에—그 선방에 그럭저럭 지냈어도 계행은 닦았으니까 내생에 가서 그 무슨 뭐 그 승과(勝果)를 받아 나온다한들 뭐 천당락 천상락도 받고, 부귀장자도 되고, 뭐 뭐 뭐 임금도 되고, 아! 그렇게 된다한들 아! 그 생(生)에 되었다가 타락해 버리면 그만인데, 뭔 소용이 있나 말이여? 그 좀 생각해 봐. 잘 그걸 따져 봐. 해석해서 따져서 봐. 소용 있는가? 마지막 딱! 타락할 때, 아무리 복을 받았다마는 복진타락(福盡墮落) 그때 생각해 봐. 뭣 헐 것인가?

미륵하생이 육억칠천만 년이다. 육억칠천만 년까장 헌들 견성은 못헐 것이니, 견성성불(見性成佛)은 못헐 것이니, 견성성불이래야 그놈이 누진통(漏盡通)인데. 누진통(漏盡通)! 생사 없는 통. 생사가 영원히 없어야! 죽고 사는 게 영원히 없어야!
그 사사무애(事事無碍)를 증(證)해서 신통(神通)도 그 이상 없고, 어따가 뭔 비교헐 비유헐 것도 상대가 없어. 상대방이 없어. 어따가 비유헐 것인가? 독보건곤(獨步乾坤)이요 수반아(誰伴我), 건곤(乾坤)에 홀로 확철대오헌 성불(成佛) 뿐이지 뭐, 거다 뭘 짝헐 것이냐 그 말이여.

아! 그러헌 도리가 이 참선법에 있는데,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하! 이것 기가 맥힌 조사 공안(祖師公案)인데, 왜 왜 그 의단독로허는 그 참선을 용맹정진(勇猛精進)을 허지 않고는 잠자고 또 죽비 치면 나와서는 그만 잡교(雜交)나 하고, 또 호사난상이나 우차호사난상(又且胡思亂想)이나 하고, 이래 가지고는 미륵하생(彌勒下生)까장 헌들 견성(見性)켕이는 못혀. 허들 못혀.

여까장 내가 저번 날 밤에.. 어제 아침에 언제 헌 놈 재설(再說)헌 것이여. 두 번 설했어. 요긴한 편이라. 다음에는 용맹정진헌 편을 헐 것이여.(21분1초~36분51초)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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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700여 개의 ‘참선 법문(法門)’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 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 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그리고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도 있습니다.

 

참선법 A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B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C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D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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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선법 A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B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C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D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E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700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 동산숭장주송자행각법어(東山崇藏主送子行脚法語) (2/5) (동산숭장주가 제자를 행각 보내면서 하신 법어)

**전강선사(No.350)—몽산법어 부록. 동산숭장주송자행각법어 2 (계축73.12.22/74.01.15 새벽) (전350)

 

 

(1) 약 17분.

 

(2) 약 16분.

 


(1)------------------

사병구의원(死病求醫員)이요  영해억모심(嬰孩憶母心)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주공친절처(做工親切處)에  홍일상동령(紅日上東嶺)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사병(死病)에 구의원(求醫員)이요. 죽을병에 다달라서 병이 들어서 꼭 죽게 되았는데 그때에는 다른 마음, 아무 마음 없어. 의원 구하는 마음 뿐이여. “어떠헌 의원이 내 병을 낫아 줄꼬?” 허는 그 마음 뿐이여, 누구나 막론을 허고. 없다고 해도 소용없어. “내 병을 누가 낫아 줄꼬?” 그 마음 하나 뿐이다.

어린아이가, 한 그저 서너 살 먹은 어린아이, 겨우 어머니 알 만한 어린아이가 어머니를 잃고 어머니 생각 뿐이여. 그렇게 깨끗하고 그렇게 단순한 마음으로 공부학자가 되어야 한다. 조금이라도 요사가 있고 그거 무슨 안 되아.
꼭 그와 같이 철두철미한 마음, 죽을병에 의원 구하는 마음, 그 어린아이가 어머니 마음 뿐이여. 생사해탈할 마음 뿐이여. 생사를 두고 곧 그저 죽으면 그만인 놈의 이놈의 몸뚱이 요거 요까짓 걸 가지고 무슨 마음을 가질 것이냔 말이여.

하이고! 꿈같은 놈의, 처자 · 자식 · 명예, 처자 자식을 무슨 뭐 그걸 누가 생각지 말라는 것인가? 그 속에 인자 참으로 더 철저허제. 나도 그와 같이 생사해탈을 할 마음이 있는데 처자 자식은 가만둘 것인가? 그 철저한 마음이 그 간절한 학자야 인자 그 가운데 다 그대로 갖춰져 있지. 처자 자식이고 부모형제고 친척, 다 일체중생이 내 마음과 똑같이 그대로 옴뽁 갖춰져 있지. 나만 똑 떼, 나만 딱 떼서 생사해탈하라는 마음인가?

그렇게 철두철미한 마음이 어디 그 틈새기가 있나? 이 마음 하나 뿐이여. 해탈할 마음. 생사를 두고 이거 이거 이럭저럭 이럭저럭 그럭저럭 그럭저럭, 이거 되겄나 말이여.
참! 이 몸 어쩌다가 얻었는고? 이 좋은 몸뚱이. 이 몸뚱이 없으면은 도(道)도 못 닦는 몸뚱이. 허망한 몸뚱이다마는 무상한 몸뚱이다마는 이 몸뚱이 없으면은 안 되아. 참 이 몸뚱이 하나 받아 가지고 나온... 소중하다.

주공친절처(做工親切處)에, 이러헌 마음밖에 없으니 공부 짓는 데는 얼마나 철저헌 마음이 있을 건가? 거 죽을병에 의원 구헌 거와, 어린아이가 어머니 생각하는 거와, 공부 친절히 허는 마음.
먹으면 그저 먹으면 판치생모(板齒生毛)다. 알 수 없는 놈 하나 뿐이지, 뭐가 있겠나? 무엇을 알며, 무엇 알아서 뭣해? 저 아는 게 뭐여 도무지 내놔 보지, 무엇을 알아? 아무것도.
뭐 세상 밖에 걸 알면 거 아는 거여? 세계 뭔 전 세계에 무슨 두두물물 촉촉화화를 알면 그 아는 거여? 그 뭐여 그거? 아무리 생각해도 어리석은 것이다.

원숭이란 놈이 물달 건질라는 거여. 원숭이 그놈이 물속에 달이 훤허니 박혀 있으니 그놈 건질라고 야단이다. 뭣혀? 쓸데없는 것이여. 유상이, 그러니 유상(有相)이 허망이다. 상(相)이 있는 게 다 허망하다. 상법(相法)이 다 그것이 아니다 그 말이여.
월세계(月世界)를 발견헌들 뭘 허며, 별짓을 다한들 생사(生死)에 무슨 소용이 있나 말이여? 그러면 생사를 딱! 가지고 있으면서 무슨 마음이 있어? 어서 해탈해야지.

이렇게 친절(親切)히 공부하는 곳에 가서 홍일(紅日)이 상동령(上東嶺)이여. 동쪽, 해가 푹 솟아 올라오는 지경이 있다. 동쪽, 해가 올라와서 강산을 비출 때에는 그 얼마나 세계가 그대로 광명세계 아닌가. 그대로 모도 생사 없는 해탈세계가 비유컨댄 밤중에 해 올라온 것 같다 그 말이여. 그러헌 생사해탈 이 참선법 안 허고 뭣혀? 그럭저럭허고 되아? 시시때때로 세월이나 보내버리고 되냔 말이여?

이렇게 저렇게 그럭저럭 지내다가는 아! 그만 다른 날에 염라대왕이 철방(鐵棒)을 가지고 시험헐 테니, “너 이놈! 이 철방을 맞아라” 하고 철방 가지고 쇠까꾸리 가지고 시험혀. “인자 너 이놈 시험 좀 허자. 너 평생에 죄를 얼마나 지었으며, 네 죄업이 얼마나 되는가 근중(斤重)도 좀 달아보고 타산 좀 해 보자” 하고 대든다 그 말이여. 염라대왕님이 인자 그밖에 없어.

기가 맥히지. 그때는 뭐 지은 죄를 어쩌? 정업(定業)은 난면(難免)인데, 지은 죄업은 면하기 어려워. 천하 없는 별 만 탁량(度量)을 다해 봤던들 한번 지어 논 죄는 벗도 못허고 용서도, 어디가 용서를 받아? 죄업을 지어 놨는데. 그 용서 소용없어. 그저 나와서 몸뚱이 빈 몸뚱이 쓸데없는 몸뚱이 아! 이 사대색신(四大色身) 몸뚱이를 받아 가지고는 그만 죄업만 퍼 때려 지어 놨으니 그놈 받니라고 언제 무슨 겨를이 있나?

그 몸뚱이를 받아 왔거들랑 참 무상한 걸 깨달라서 이 몸뚱이를 가지고 허망한 몸뚱이다마는 이 환(幻)으로써 환(幻)을 여의는 법이지. 환(幻)이 환(幻) 몸뚱이로 환(幻) 여읜 법이지, 뭐 환(幻) 없이 환(幻) 여의는 법이 있나?
허망한 이 몸뚱이로 가지고 허망치 않는 진실한 생사 없는 해탈대도를 이루니 그 얼마나 좋은 몸뚱인가? 이환(以幻)으로, 환(幻)으로써 환을 여의는 법이 이 법이란 말이여. 이 허망한 몸뚱이다마는 잠깐 있다 없어진 몸뚱이다마는 잘 이놈을 참 이용을 혀.

어서 속히 해태(懈怠)를 꾸짖고, 게으른 마음 꾸짖어 가면서 정법에 물러가지를 말고 시시발원(時時發願)을, 때때로 발원을 헌다 그 말이여. 시시발원(時時發願)인데 우리는 일일발원(日日發願), 날마다 발원허지.
그 아침마다 이렇게 일찍이 일어나서 우리 부처님 앞에 정례(頂禮) 참회를, 참회 딱 하고 선망부모까장 갖다 여다 모셔놓고 법보재자(法寶齋者), 법보재자 우리 법보재자 아닌가? 불법승(佛法僧) 삼보(三寶)인디 법보재자, 생사해탈법을 확철대오해서 중생교화할 그러헌 법보재자 아닌가?
우리 법보재자가 되아 가지고서는 아! 항상 "정법문중(正法門中) 신심(信心)이 불퇴.. 영불퇴전(永不退轉)허고 속성대각(速成大覺)하야 광도중생(廣度衆生)허게 해 줍소사" 원(願)을 빌고, 그다음에는 "법보재자(法寶齋者) 선망부모(先亡父母) 왕생도솔천내원궁(往生兜率天內院宮) 속성대각(速成大覺) 하강용화(下降龍華) 광도중생(廣度衆生)해라" 아침마다 해준다 그 말이여. 그거 그 얼마나 잘해 놓은 걸 알아?

거다가서 또 도솔천(兜率天) 발원이지? 도솔천 발원이 아니면은 안 되아.
극락세계 발원? 극락세계, 죽어 극락세계 간다. 극락세계 갈 것 같으면은 십만오백십육 국토를 지내가 극락세계가 있는데, 극락세계가 아미타불 설법 듣고 견성해 가지고는 거기서 영원히 죄(복)만 받고 있어? 이 세상에는 하강 않고?
도솔천 내원궁에서는 일체제불이 여기 와서 내원궁에 와서 회집(會集)해 가지고 계시다가 하강(下降)을 하거든. 항상 이 염부제 중생을 제도헐라고 내려오신다 그 말이여. 우리 당장 우리 부처님께서도 도솔천 내원궁 호명보살(護明菩薩)로 계시다 안 내려왔어? 우리 당래 용화교주 미륵존불도 도솔천 내원궁에 계시다 내려온다고 안 했어?

부처님 정법문중에 그대로 있는 대로 해야지? 없는 법을 갖다가 만들어서 모도 교(敎)를 맨들어 놔? 그거는 유사(類似) 교. '부처님도 똑 이래 놨드라' 제가 한 것처럼, 고러헌 외도(外道) 교. 안 된 법이여. '교(敎)는 다 똑같다' 무슨 교가 똑같여? 어림도 없는 소리.
그대로 딱 도솔천 내원궁에 호명보살로 계시다 내려온 건 사실이지. 당래 용화교주 미륵존불이 또 도솔천 내원궁으로 오신다는 건 사실이지. 그거 딱 그 갖다가서는 여기서 법보재자로 해 가지고 우리가 원(願)을 빌어. 원 없이 되는가?

이러헌 원을 빌어야사 임명종시(臨命終時)에 찰라간이라도 옮기고 무슨 가고 오고 허는 무슨 거래(去來)도 없지마는, 어디 거래가 있어? 몸뚱이 육신 몸뚱이 요것이 갔다 왔다 거래(去來)하지, 송장이 갔다 왔다 거래(去來)하지, 이 소소영령한 주인공이 무슨 거래 자체가 있나? 가고 오는 거래가 어디 있어? 그대로...
아! 달이 툭 떠올라오면은 일체 빛이 뭐 오고 가나? 그대로 모도 나타나 버리지. 일체 강수(江水)에 천강월인(千江月印)이 되아 버리지. 그대로 가서 응현(應現)허는 것이여.
아! 우리가 그렇게 원(願)을 세워야 하거든. 이런 원(願)을 세워 가지고 확철대오허면은 대오헌 그곳이 도솔천 내원궁이요. 또 일로써 제5처 도솔천 내원궁이 내나 그곳이지 다른 곳이여? 일체 오온색신(五蘊色身) 속에, 번뇌망상 속에 생사 없는 근본대지(根本大智)가 아! 그게 그 도솔천 내원궁이지 다른 거여? 그대로 응화(應化)한 것이지.

이런 원(願)을 떡 발(發)해 가지고서는 지금 감겁(減劫)에 팔만사천 세에서 차츰차츰 백 년 만에 일 년씩 감(減)해져서, 천 년 만에 십 년 감해져서 이렇게 감퇴해서 점점 인수(人壽)가 감해져서 우리 부처님 하강(下降)하실 때에는 백세정명(百歲定命)이여. 백세 때 되야 사람이 죽어. 지금은 우리 부처님 돌아가신 후가 삼천 년이 지내갔으니 삼십 년 감퇴되았으니 칠십 년이여.
앞으로 인자 육천 년만 지내갈 것 같으면 십세정명이 와. 십세정명(十歲定命)이라는 거는 삼재(三災)인디 이놈의 삼재 속에만 들어가 놓으면 볼일 다 봤네. 이놈의 이번 삼재에 한번 빠져 놓으면 언제 또 다시 증겁(增劫)에 인자 팔만사천 세 올라갈 동안에, 그 내려오는 시간과 똑 같은디 올라가는 증겁도 같여.

백 년에 일 년 증(增)해져 가지고는 천 년에 십 년이 증(增)해지니까 이놈 차츰차츰 올라가서 팔만사천 세까장 올라가는데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팔만사천 세를 내려와서, 팔만사천 세를 내려와서 그때에 미륵님이 나오는디, 지금 잘 닦아서 확철대오해서 도솔천 내원궁에 가 응현해 있어야사 부처님 미륵님 모시고 내려오지. 그러헌 제 실력이 없고야 어떻게 내려올 수가 있나?
그러허니 부지런히 부지런히 얼마나 철저히 닦아야 하겄는가? 좀 닦다 말다가 그럭저럭 허다가 말다가 되겄는가? 그러니깐 근수이불퇴(勤修而不退)를 해야지. 부지런히 닦아서 어서 물러가지 아니해야지.

공연히 도문(道門)에 들어와 가지고 '도문에 들어왔다' 해 가지고는 일생괴각(一生乖角) 처중무익(處衆無益)이다. 괜히 저도 도 닦지 않고는 괴각(乖角)이나 부리고, 대중 도(道) 닦지 못하게 만들고, 소란이나 피우고, 그따구 짓 했다가는 뭣혀? 다 요따구 요런 것들이 도문(道門)에 들어올 것 같으면 타살만만천천(打殺萬萬千千)해. 만만천천을 때려죽인들 유심마죄과(有甚麽罪過)냐? 저도 못 닦고 넘까장 도(道) 못 닦게 만들고.
금일야임마(今日也恁麽) 오늘 이럭저럭, 명일야임마(明日也恁麽) 내일 이럭저럭, 삼십 년 이십 년을 용공(用功)헌들 무슨 소용이 있어? 만학초기(晩學初機)가 경모(敬慕)도 내지 않.. 처음 들어온 사람들이 모도 보고 비방심만 낼 것이고.

허니 이러헌 벌이 있어. 큰 중벌이 있다 그 말이여. 뭐 그까짓 쫓아내는 게 문제인가? 옷 활딱 벗겨번지고는 냅대 그만 타살만만천천(打殺萬萬千千)해도 유심마죄과(有甚麽罪過)냐? 이것 내 말 아니여. 고봉선사 말씀이지. 나는 내 말이라고는 하나도 없어.

요렇게 따악 해 논 도솔천 내원궁 발원해서 도솔천으로 올라간 것이 이것이 원칙이여. 그래서 이 십악참(十惡懺)을 딱 해 놓고, 또 십중대계(十重大戒)를 부처님께서 말씀 딱! 해 놨고, '십중대계를 닦아라' 했으니 이것이 우리 본분학자의 이게 예불 예경하는 법이다 그 말이여. 이렇게 딱 짜 놓고.(처음~16분58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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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놈의 종이 쪼가리에다 모두 발라서 '아무개 보체(保體), 아무개 뭐뭐뭐 자손창성 부귀영화' 요따구 놈의 소리나 해서 시주(施主)나 꾀우고 있어? 그까짓 그런 짓 하나 없어. 돈 가져 왔으면 자기 돈 가져 왔고, 과자나 사탕이나 사 가지고 왔으면 사 가지고 왔으니 갖다 자기가 정성스럽게 부처님께 올리면 그만이지 부처님이 잡숫나, 뭣하나? 시불급승(施佛及僧)이다. 부처님한테 놓으면 그걸 갖다 승(僧)이 먹고, 도 닦는 스님네가 먹고 도 닦으라는 것이여. 뭐 그러니 여그 그렇게 딱 딱 해번졌지.

쌀 갖다가 씻가서, 막 왼통 손 땀내 왼갖 난 걸로 씻거서 밥해서 올려놓으면 부처님이 어디 잡수나? 그런 짓 허게? 떡이나 주물럭거려서 땀내 나는 놈의 손으로 왼갖 디 다 간 놈의 손으로써 주물럭거려서 맨들아 논 것, 그것 그것인가?
그까짓 녀러 식 다 때려치워 번지고 그저 갖다가 그대로 성의로 정성으로 올렸다가 그놈 내루아다가 우리 본분학자(本分學者)가, 도 닦는 학자가 먹고 도 닦는 것이여. 아! 그런께 이렇게 내가 「예경(禮敬)」도 짜 놨네. 똑 고대로 딱 해 놓았지, 내가. 하나도 저짜리 없지.

또 내가 그것도 해 놓은 것인가? 우리 한국에 유명한 합천 해인사 김응해 스님, 지리산에 이남파 스님, 승보(僧寶)에 잡힌 분들인디 그런 분들이 다 맨들어 논 「예경(禮敬)」이지? 그래서 평생에 김제산 스님, 직지사에 김제산 스님, 율사(律師)로는 제일가는 제산 스님 그런 어른 어른이 도솔천(兜率天) 발원(發願) 다 했네. 돌아가신 석두 스님도 도솔천 발원했으며, 돌아가신 효봉 스님도 도솔천 발원 다 했네.
이건 근본 선객들이 다 이렇게 해 나가는 것인디 이 사판중들 '극락세계 뭐 아미타불' 모도 야단스런 놈의 방편에만 떨어져 가지고는 그 다라니문(陀羅尼門)이나 뭐 요런 것이나, 내가 여까장 말을 늘 허지. 뭐 한 번만 하는가?

이러헌 원을 빌고 이러헌 예경을 허고 이렇게 근수이불퇴(勤修而不退)해서, 부지런히 닦아 물러가지 아니할 것 같으면은 아! 뭐뭐 의호이 아침 닥쳐오면은 해는 동쪽에서 턱 떠올라서 떠올라서 아! 일광조요(日光照耀) 삼천세계(三千世界)지. 훤히 제대로 비쳐 버렸네. 도 닦으면 제대로 나와. 어서 이놈을 성취해야지. 어서 깨달라서 증득해야지. 그럭저럭 허다가는 큰일나는구만.
이 무서운 삼재(三災)가 앞에 닥쳐오는디 육천 년 그까짓 거 앞에 남아 있는 거, 육천 년이라도 자꾸 말세가 되니 점점 점점 인수(人壽) 감퇴가 되니, 하근기, 근기가 점점 더 열(劣)해지고 하(下)해져서 이 몸뚱이 받아 가지고 또 다시 바꽈오면 더 하열해지고 더 하열해지고 수명도 자꾸 짧아지고 자꾸 짧아진다 그 말이여.

지금 무슨 뭐 그전보담도 명(命)이 길어서 '그전에는 칠십 뭐 살기가 어렵더니 지금은 팔십 구십 백세라도 산 사람이 있다' 거 어쩌다 그런 것이 있고 그건 인수(人壽) 무슨 증감 밖에 그런 것이 무엇이 있지, 어디 가서 지금 얼마나 많이 소년 죽음이 있어. 맨 지금 죽음 뿐이여. 인생이 하도 많이 생겨나니께 죽음 뿐이여.

인생이 또 많이 생겨난다 한들, 세계적으로 인수(人壽) 좀더 더 생겨난다고 헌들, 그까짓 것이 거 뭐이 인생 목숨 그 뭐 숫자적으로 헌들 그 몇 낱 되냔 말이여. 몇 개 되아? 더 생긴들. 일체 짐승에다가 비유해 보지. 일체 준동연비유(蠢動蜎飛類)에다가 한번 비유해 보지. 무엇인가? 그까짓. 참 기가 맥히지.

백천만겁(百千萬劫)에 이 몸뚱이 하나 겨우겨우 빌어 나 가지고는 그만 잃어버리면 만겁에 만나기 어려운 몸뚱이여. 그렇게 쉽게 되들 못혀. 사람이 자꾸 나오니께 잘 곧 우리도 곧 태어날 성 싶지? 어려워. 난지우난(難之又難)이여. 이때를 당해서 참! 잘 정신채려서 주공(做工), 공부를 지어야 되아. 하루 하루를 그렇게 보내지를 말고 한번 값있게 보내야 되아.

염라대왕이 타산반전(打算飯錢)할 때가 곧 이 몸뚱이 내버리고 닥쳐올 테니 내가 너한테 이렇게 일러주지 아니했다고 이르덜 말아라.

약주공부(若做工夫)인댄, 참말로 공부를 할진댄 수요일일타산(須要日日打算)이다. 참말로 요긴요긴하게 날마다 날마다 타산을 해라. 어느 날은 좀 그럭저럭 지내고, 어느 날은 공부하고 그럴 수가 있느냐?
일일타산(日日打算)해라. 오늘도 참 한번 타산(打算), 공부를 해라. 기가 맥히게 용맹정진을 해서 한 일순간도 망념이 없이 화두를 다루어라.

시시점검(時時點檢)해라. 때때로 화두를 점검해 봐라. '이만 했으면 되겠는가?' 점검해 봐라. 그 점검허는 그 시간이 그것이 무슨 뭐 화두 중에서 화두가 점검하는 것이지, 내놓고 허는 거 아니여.
때때로 점검해라. 화두 내버리고 점검헐 겐가? 화두를 해 나가면서 보면 바로 알 것인디? 그대로 화두가 독로되어 있느냐?

자전고기래(自轉鼓起來)로, 아침에 이렇게 일찍이 모도 규칙을 짜 가지고 일어나서 저녁에 공부할 때까지 공부 마칠 때까지 잘 때까지, 아침에 일어나서 시작해서 저녁에 잘 때까지 언제는 득력처(得力處)며 언제는 부득력처(不得力處)냐? 어느 때는 공부가 좀 되었으며, 어느 시간에는 안 되었느냐? 이것 한번씩 따져도 봐라. 그 공부 중에서!
공부 내놓고 허는 거 아니여. 공부허면서 당장 아는 거여. 어떤 때는 타실처(打失處)며 어떤 때는 불타실처(不打失處)냐? 어쩔 때는 공부가 의단(疑團)이 독로(獨露)되었다가 또 어떤 때는 독로가 되지 안 허고 허송했느냐? 이걸 한번 떡 계산을 좀 해봐라.

약여차주장거(若如此做將去)인댄, 만약 이와 같이 참 지혜학자가 용맹학자가 도를 한번 타산할 줄을 알아. 정유도가시절(定有到家時節)하리라. 결정코 견성할 때가 있으리라. 집에 이를 때가 있으리라.

집에 도가, 누가 우리가 시방 지금 어디 집에 이르렀나? 우리가 내 본집을 찾았나? 나 사는 참다운 집을 찾았어? 생사 없는 집을 바로 찾아야 되지. 이 생사 중에서, 이놈의 이 생사 중에 이 숭악한 놈의 객지(客地)에서 내 집 본집 보도 못허고, 꿈도 한번 꿈에도 보지 못하고 이렇게 시방 객창(客窓) 생활만 하고 있는데.
결정코 견성(見性)헐 때가 확철대오(廓徹大悟)해서 네 본가풍(本家風), 네 본집에 이를 때가 있으리라.

유일반판도지인(有一般辦道之人)이, 요새 도를 판단하는 사람들이, 도(道) 참선(參禪)헌다고 허는 사람들이 경불간(經不看)하고 경도 보지 않고.

부처님의 경설(經說)도 보지 않지. 사교입선(捨敎入禪)인디 무슨 경을 봐? 참말로 사교입선, 교(敎)도 버려버리고 선(禪)에 들어왔는데 그 경에 뭐 뭐 발라 놓은 걸 그걸 보고 앉았어? 그것도 볼 겨를 없이 들어와서—그 참선 안 허는 사람들이 경(經) 보는 것이지, 참선허는 사람이 무슨 경을 봐. 참선허러 들어온 사람들이 선방에서 무슨 글을 배와? 그 배와서 뭣혀?
다른 디 어디 참선허러 오지 않은 사람이면 의호이 글도 배워야 경(經)도 배워야 하지. 그러나 벌써 경(經) 배우고 세월 보낸 사람들은 참선과는 떨어져. 아주 거리가 멀어. 그 참선헐라는 사람들이 아니여. 발심헌 사람들이 아니여.

발심(發心)헌 사람은 도를 닦지 아니하면 마음이 편치 못혀, 못살아. 발심을 해 논 사람은 마음이 뭐 뭐 편헐 겨를이 있나? 도 닦을 마음 뿐인데.

경도 보지 않고 불불예(佛不禮)다. 부처님께 예(禮)도 않는다. 그 경(經)도 보지 않고 예(禮)도 않고 그렇게 되면은 그 얼마나 철저해서 도를 닦는 사람이면은 의단독로허여, 의심이 콱! 대지(大地)에 그만 허공뎀뱅이 대지세계가 의심 한덩어리 뿐이면은 좋지마는, 그러헌 지경이 아니고 말이여—'나는 경도 보지 않고 뭐 예(禮)도 않는다, 도 닦니라고' 괜히 들어와서 닦는 체허고, 거짓 도 닦는 학자여. 거짓뿌렝이 도 닦는 학자여. 공연히 쓸데없이 잡교(雜交)나 하고 한화잡담(閑話雜談)이나 하고, 뭐 한담(閑談)이나 허고, 그저 말이나 할라고 돌아댕기면서 그저, 이리저리 돌아댕김서 그저, 뭐 잡된 행동이나 할라고 그런 짓 허는 것이 그것이 가짜여.

그런 가짜가 들어와서 선방에 들어와 있으면은—그건 차라리 경(經)이나 보고, 어디 가서 부처님한테 예경(禮敬)이나 허고, 부처님께 기도나 하고 그래 지내면 그거 옳다 그 말이여. 참선은 안 허니까, 안 믿은께.
그것도 안 해. 그래 거짓, 참선한다고 들어와서는 거짓, 예불도 않고 경도 보지 않은 것이여. 그래 가지고는 넘이 인자 공부헌다니께 앉네, 나도 같이 가서 앉어. 참선방에 인자 포단상(蒲團上)에 앉어. 포단은 그 참선허는 덴데, 포단에 가 앉어 가지고는 뭐 앉으면 변타합수(便打瞌睡)다. 앉으면 자빠져 자는 것이여. 꾸부덕 꾸부덕.

용맹심 그 철저한 마음이 없는 것이 무슨 놈의 포단에 앉어서 도를 닦을 것인가? 도가 닦아질 것인가? 그만 잠이 오지. 잠 아니면 산란(散亂) 망상(妄想) 오지.
똑 서호, 먼첨 법문했지마는 서호당, 중이 되어 가지고 독(獨)살림허다가 돈만 잔뜩 벌어서 논 사놓고서는 그다음에 주지(住持) 떨어지니께 그 벌어 논 양식 안 먹을라고 선방에 들어와서 공부허고 앉었는데 '아무 들 논 그놈 내가 사면 내년에는 논이 또 얼매고, 아무데 돈 모도 준 놈 받으면 돈이 얼매고' 이놈 숫자 세아리다가 얼른 방선(放禪) 시간이 푹 닥쳐오네. 허! 그러니까 산란(散亂) 뿐이지. 잠 안 오면 그것밖에 안 해.

다른 스님네 공부허니라고 공부허다가 자온 걸 보면 손그락질을 허고 앉었다 그 말이여. '아! 저럴라고 공연히 도 닦으러 들어왔구만? 나는 잠 한숨 안 자는디' 왼갖 무슨 놈의 그 돈, 아무디 들 논, 아무디 들 밭, 요런 것 생각하니라고 무슨 잠이 와?
요렇게 참선해 놓고는 저는 참선헌 체하고, 넘 비방 또 넘 비방을 하네. 공부허다가 어쩔 수 없어 잠이 들어와서 조금 졸면 그걸 손그락질로 흉만 본다 그 말이여. 고러헌 것들, 고거 되아?
고러헌 산란심, 고러헌 모두 그거 그 마음 인자 없어지면 잠 오네. 잠 뿐이여. 잠 아니면은 산란심, 요따구 것 가지고서 도(道) 닦는다고 도문(道門)에 들어와서 넘 참선(參禪)헌디 넘 넘이 앉으니까 나도 앉는다고 돌아앉어서 앉으면 그만 잠이네. 그 잠, 기가 맥히지. 기찰 일이여. 이런 놈의 도 닦는 도학자가 모도 있으면 되냐 그 말이여.

맹렬한 마음이 있어 봐라. 이 목숨 턱 끊어지면서 염라대왕 타산반전(打算飯錢)을 생각해 봐라. 까꾸리로 찍고 총칼로 그 숭악한 감초로 냅대 쳐 가지고 앞에다 놓고는 “네 평생 지은 죄를 보아라” 그 쳐다보니 똑 활동사진 돌아가... 사진 같지 뭐. 삥삥삥 돌아가면서 막 나오는 사진. 제 역사가 거그 그대로 돌아 나오지. 어느 때에 어떻게 된 바늘 끝만큼도 지은 죄업이 다 나오네. 근수(斤數)는 또 그놈의 저울대는 어찌도 그리 정확한지. 칭두(秤頭)에 불허창승좌(不許蒼蠅坐)다. 참 저울대 하나 어림도 없다. 틀림없어. 이러헌 시절이 도래할 것이다 말이여.

겨우 포단에 올라가서는 합수(瞌睡)나 하고 조금 또 깨깟허게 인자 잠이 깨이면은 호사난상(胡思亂想)을 한다 그 말이여. 이러헌 망념, 이러헌 망상, 내 돈, 내 쌀, 내 명예, 내 지위, 뭐 왼갖 요런 것이나 따져 뭣 헐 것이여 그거?
요러고 있으니 재하선상(才下禪牀), 거기다가 인자 죽비 딱딱 치면 선상(禪牀)에 내려와서는 변여인(便與人)으로 또 잡교(雜交) 또 잡교한다. 잡된 말. 어쨌든지 아무 말도 없이 공연히 참선허는 사람도 가 찝쩍찝쩍해서 말을 허게 맨들어 가지고는 잡담 잡교를 헌다 그 말이여. 숭악하니 잡교(雜交)를 허거든.

약여차판도(若如此辦道)인대는, 요와 같애 가지고 '도를 판단한다'고 도 닦는다는 도학자가 도문에 들어와서 빛깔 좋게 참선객이라고, 참! 기가 맥히다.
어따가 비유를 헐 것이냐? 이걸 어따가 말할까? 비유할 곳이 없다. 하도 추잡하고 하도 더러와서 비유할 데가 없어. 요따구 물건들이 도 닦는다고 들어와서 도를 닦는다고 헐진대는 차라리 이것 참, 없어. 오직 해야 타살만만천천(打殺萬萬千千)하라고 했는가?

지미륵하생(至彌勒下生)인들, 미륵하생에 온들, 미륵(彌勒)은 부처님 출세할 때가 미륵인디, 미륵하생에 온들, 미륵하생인들 소용 있어? 육억칠천만 년이 닥쳐온들 소용이 있어? 뭐 진취가 있어? 진취 하나 없다.
야미유입수지시절(也未有入手底時節)허리라. 입수(入手)헐 때가 없으리라. 도를 닦아서 확철대오헐 때가 없어, 무슨 놈의 대오시절(大悟時節)이 있어?
그렇게 쓸데없으니 어쩔 거냔 말이여 그거. 뭣 할 거냔 말이여 그게.(16분59초~33분17초)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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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700여 개의 ‘참선 법문(法門)’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 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 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그리고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도 있습니다.

 

참선법 A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B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C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D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E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A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B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C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D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E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700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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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

 

 

•§• 동산숭장주송자행각법어(東山崇藏主送子行脚法語) (1/5) (동산숭장주가 제자를 행각 보내면서 하신 법어)

**전강선사(No.349)—몽산법어 부록. 동산숭장주송자행각법어 1 (계축73.12.21) (전349)

 

 

(1) 약 17분.

 

 

(2) 약 11분.

 


(1)------------------

천고무인문(千古無人問)인디  만산공두견(萬山空杜鵑)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목동일성적(牧童一聲笛)야  기과석양풍(騎過夕陽風)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천고(千古)에 무인문(無人問)이다. 천고(千古)에 물을 곳이 없어.
무엇을 물을 곳이 없어? 법(法)을 물을 곳이 없다 그 말이여. 법이란 건 생사해탈법, 생사 없는 법. 본래 생사가 없건마는 왜 이렇게 생사죄업(生死罪業)이 중생죄업이 되어 가지고는 이 중생고를 받고 이거.. 이거 뭐여? 생각해 볼수록 이거 인간이란 이거 뭐냔 말이여, 자체가?

원 인간 생활이라고 해 봤던들 무슨 목적이 있어야지. 뭐여? 그거 아무리 오래 산다한들 칠팔십 년 살다가 뒈지는 것밖에 없는데, 죽는 것밖에 없는데, 뭐여 그것이? 무슨 목적을 그 뭐 무엇을 해놔야 목적일까? 뭘 해놔야 되아? 원 아무리 생각해 봐도 뭣 해 놓을 것이 없어, 한 육칠십 년 산다한들.

천고(千古)에 무인문(無人問)이다. 천고에 도(道) 물을 곳이 없어. 똑! 도가 제일인디, 생사 없는 법이 제일인디, 생사 없는 법을 어디 가서 찾으며 어디 가 물어? 아! 이걸 좀 생각해 보란 말이여. 간단히 생각할 문제가 아니여.
만산공두견(萬山空杜鵑)이다. 만산에 저 모도 산속에 속절없이 두견이 우는 것밖에 없다. 뭐 두견새 곧 소짝소짝 우는 것밖에는 안 되아, 그거 뭐 뭣이여 그거?

목동(牧童)이 일성적(一聲笛)인댄, 목동이 먹인 소가, 소를 먹이는 동자(童子)가 젓대를 불고 돌아간다.
소를 먹이는 동자는 거 바로 깨달은 동자, 나를 바로 찾은 동자, 일 마친 동자여. 그 동자는 소를 타고, 소를 찾아서 잡아타고 젓대를 불고 돌아간다. 아무 태평저, 일없는 젓대를 떠억 불면서 돌아가는구나.

기우과석양(騎牛過夕陽)이다. 젓대를 불면서 저 석양에 돌아간다. 해는 넘어가는 석양으로 돌아간다 그 말이여. 그건 일 마친 동자여. 먹이는 동자여. 소를 먹이는 동자, 본래 잃어버렸던 소를 찾아 가지고 타고는 젓대를 불면서 석양으로 돌아가거든. 그건 일 마친 사람이여.


동산숭장주(東山崇藏主)가, 동산숭장주라는 큰스님이 송자행각법어(送子行脚法語)라. 아! 자식을, 제자를 행각허러 보내면서 설법을 해 준 법문이란 말이여. “네가 도를 닦으러 나간다 하니 여차(如此)해라” 하고 일러주는 법문이여.
행각(行脚)은, 도를 닦으러 나가는 것은—벌로? 벌로 도 닦는다고? 아무 때나? 도 닦으러 간다고? 어디로 가? 도 닦으러 간다고 그 나가는 그 도학자(道學者)의 행이 그게 그 보통, "내 도 닦는다" 말만? 그거 안 된다. 참으로 진수학자(眞修學者)가 되어야 한다. 참으로 도를 닦는 학자래야 된다.

수이차도(須以此道)로 위회(爲懷)다. 오직 이 도(道)다. 이 도! 나 찾는 도. 내가 나 찾는 도밖에 없어. 이 정법도(正法道), 이 도로써 회(懷)를 할 것이다. 회(懷)라는 것은 깊이깊이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생각을 회(懷)락 햐. 아주 부모 때려죽이는 원수를 생각하는 회(懷)나, 내 내가 나 찾는 그, 그 각,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주인공, 내 내가 내 이 마음자리 찾는 회(懷)나, 그걸 그런 회(懷)를 회(懷)락 햐.

화두를 공안을 하나 떠억 얻었으면은 탔으면은 그 공안을 화두를 회(懷)락 햐. 그 간절히 간절히 거기에 다 몽쳐 있고, 참으로 깊고도 묘헌 그 의심(疑心)이 거그 다 갖추어져 있고, 그 회(懷)여. 보통 회(懷)가 아니여. 이런 회(懷)로, 이 도(道)로써 그렇게 도로써, 나 깨달은 그 도(道)로써 회(懷)를 헐 것이니... 생각을 할 것이다.

가나오나 어디 가든지 가면은 옷 주고 밥 주고, 모두 밥 먹고 옷 입으니까 배 뜨뜻허고 배 불르고 좋고 '허! 이만 했으면 세상에 한가하고 좋구나' 아무 일 없어. 도문(道門)에 아무 일이 없고, 편안하고, 잠이나 자고, 허! 제기! 그렇게 헌 법 아니다.
철두철미허게, 밥 얻어먹고 옷 입었으면은 밥값과 그 옷값을 분명히 해야 할 것이다. 그 시은(施恩) 갚는 법이다. 시은 갚는 법은 똑 도(道) 생각, 도 한마음 이 닦는 마음, 그놈뿐일 것이다.

번듯이 밥만 먹고 옷만 입고, 밥 해준께 먹고 옷 해준께 입고, 우선 해주니 먹고 우선 입고. 편안하지. 좋지. 번듯이, 뻔뻔하게 먹고 입고 고대로 놀기나 하고 그래서야 될 이치가 있겠느냐. 부지런히 도를 참으로 회(懷)해야 한다. 깊이깊이 생각해서 의단독로(疑團獨露)가 되어야 한다.

등한과일(等閒過日)이니라. 공연히, 공연히 등한히 그럭저럭 헛된 오입이나 하고, 산중(山中)에 중 오입, 돌아댕기면서 얻어먹고 얻어 입고 마음대로 돌아댕기면서 그럭저럭 지내는 고러헌 오입, 그것 참 못쓴다.
진독(進毒)이언정, 차라리 독에 나갈지언정—진독(進毒)이라는 것은, 독(毒)에 나가는 것은 죽는 것이여. 죽는 디 나가는 거여. 사형선고를 받는디 사형 받으러 나가는 거를 진독이라 해야. 모가지 짜르는 데 나가는 걸 진독이락 햐. 진독에 나갈지언정 등한히 그럭저럭 지내면서 공양을, 옷과 시줏밥을 받지 말아라.

열철번신(熱鐵纒身)이언정, 열철(熱鐵)에다가서 몸뚱이를 찌져내야. 볶아내야. 지름 펄펄펄 끓는 디다가서 튀각 튀듯기 사람 몸뚱이를 찌져내는 것을 번철이락 해야. 번철(燔鐵)에다 갖다가 몸뚱이를 찌져낼지언정 시주것을 먹고 그럭저럭 등한(等閒)히 지내지 말아라. 화두 없이 그럭저럭 지내, 이럭저럭 지내, 한 시간 이럭저럭, 그러지 말아라.

시주(施主)라 하니까 시주가 무슨 무엇이 시주여? 전부가 다 시은(施恩)이고 시주지.
일월도 기가 맥힌 시주, 그 햇빛, 햇님이 빛을 주어서 이렇게 밝게 살고, 더운 기운 태양을 주어서 이렇게 더웁게 살고, 저 공산에서 산에서 물이 출출출출 흘러 내려오니까 그 물이 모도 아무 임자 없는 물이요 쓸데없는 쓸데없는 물이니까 그놈 막 먹고 막 쓰고. 그것 기가 맥힌 시은(施恩)이여. 시은 아님이 없어.

이 몸뚱이 받아 나온 것도 시은, 어머니 아버지가 모도 이 모도 시여(施與)해 주신 이 몸뚱이여. 신체발부(身體髮膚)가 모두 부모가 준 이 몸뚱이 아닌가?
무엇이 시은 아님이 없어. 숨쉬는 것도 이 공중에 텅 빈 공중에 숨을 훌훌훌 쉬는 것도 그것도 모도 시은이여. 공중 가운데 공 가운데 허공 가운데 벌레 같은 것이 꽉 차, 박테리아 같은 벌레가 그저 뭐, 뭐 수없이 끓는 놈이 공기 속에 숨 한번 들이쉴 때 막 들어와서 죽고, 한번 내쉴 때 모두 쓸어져 죽고, 맨 시은(施恩)이여.

그러헌 시은을 담뿍 처짊어지고는 공송공과(空送空過)를 혀? 헛되이 공연(空然)히 지내고, 공연히 지내아? 안된다. 등한과일(等閒過日) 못쓴다. 지내놓고 일순간이라도 지내간 광음 헛되이 지내간 광음(光陰)은 다시 되찾을 수 없다. 딸깍 가버리는 시간은 다시 되찾을 수 없으니 그 촌음(寸陰)을 헛척치 말하라. 헛되이 보내지 말아라.

어쨌든지 주삼야삼(晝三夜三)에 여타시애(與他厮睚)다. 밤이나 낮이나 항상 이 화두, 내 허는 화두, '어째서 판치생모락 했나?' 말이 그렇게 쉬운 말 같지마는 참 쉬운 말 아니다. 그 하나 깨달라 놓으면은 아! 생사(生死)가 없는 도리니 말할 것 뭐 있나?
세상사를 환히 아는 것, 그런 것이 도(道)인가? 그런 것은 도 아니여. 백만겁지사(百萬劫之事)를 다 안다한들 알아봐, 뭣 할 것인가? 그 어따 쓰는 건가? 생사 없는 도(道)래야 되아.

수시(須是) 생사이자(生死二字)를 가져라. 생사이자(生死二字)! 이 몸뚱이 나왔다마는 살아왔다마는 죽을 것을 생각해라. 생사 아니냐? 몸은 받아왔다마는 앞으로 죽을 일이 있지 않나. 죽는 지경을 한번 생각해 봐. 그 죽는 지경이 어떤 지경인가 한번 생각해 봐.

요 몸뚱이 얻지 못허고는 도 닦지 못하는 법이니, 요 몸뚱이 잃어버리면 잃어버린 그날부텀은 귀신으로 나타나서 그저 혼백으로 되어 가지고는 혼백이, 뭐 밤낮 이놈의 혼백이라는 건 중무소주(中無所主)해서, 제 정신 하나 없어서, 꿈! 꿈에 봐 꿈에, 꼭 꿈과 같은데 그와는 달라. 식(識)이 좀 다르다 그 말이여. 혼백(魂魄)과 몽식(夢識)과는 좀 달라.
몽식은 더 허망하지? 더 무주(無住)하고? 주(住)함도 없이 그저 그만 중무(中無)해서 뭐 뭐 이럭저럭 이럭저럭 그저 그만 싸우다가 또 어떤 놈허고 무슨 뭐 별짓을 다 해도 요놈의 것이 무슨 뭐 뭐 도무지 중무(中無)여.

아무 무슨 뭔 얼터거리도 없이 그렇게 무상허고 허망한 놈의 것이 귀신이 혼백이 돌아댕기면서 어디 가서 인자 붙어서 중음신(中陰身) 노릇이나 하거나, 글안허면 붙어서 인자 다행히 몸뚱이를 얻지. 그 몸뚱이를 얻으나, 옳은 몸뚱이 사람 몸뚱이를 얻으면 허지마는 혼백이 되기 때문에 어디 그놈이 가 붙은 대로 되지. 가 붙은 대로 되아부러. 개미한테 붙으면 개미가 되고, 뭔 비단 개구리한테 붙으면 비단 개구리가 되고, 벌한테 붙으면 벌이 되아번지고, 이놈의 것은 당초에 그 기가 맥히다 그 말이여.
그 붙는 법이 이상혀. 이 영(靈)이라는 게 모양이 모양 형편도 없으니 가서 그만 들어붙으면 되아번져. 그렇게 수업(隨業)허기가 업(業)을 이루기가 쉽고, 감보(感報)허기가 보(報) 받기가 그렇게 쉽다 그 말이여. 붙는 곳마다 그저 붙어 현신(現身)을, 몸을 얻어.(처음~16분56초)





(2)------------------

그러니 왜 그걸 뭐 언제 내가 법문도 했지마는 그 동래 범어사 명학동지(明鶴同知) 얘기허지 않았어? 명학동지가 그렇게 중이 되어 가지고는 돈만 모아서 큰 백만장자가 장자보담도 부자가 되어 가지고, 아! 그놈 가지고 있다가 죽은 뒤에 그 구렁이가 되어 가지고는 고방(庫房)에 제 돈 쟁여 놓은 고방에 가서 따악 지키고 있다 그 말이여.

상좌(上佐) 하나가 대도(大道)를 닦아 가지고 관(觀)을 해보니까 즈그 스승이 죽어서 구렁이가 되아 가지고 고방을 지키고 있거든. 그래 가서 고방 앞에 가서 “스님! 스님!” 부르니까, 아! 그래도 그 무슨 그 어쩐 일인지 이놈의 구렁이가 그 말을 듣고는 나왔다 그 말이여. 생전 못 나오다가.
업(業)을 받아 가지고는 그 고방 밑에 숨었으니 나오면 죽일까 싶으니까 못 나와. 그 애착이 또 무섭고 큰 방앳고 만헌 구렁이가 되어 가지고는 못 나오고 있으니까, 상좌가 도를 깨달라 가지고 가서 부르니께 나왔다 그 말이여.

그래 그 구렁이를 보고 “스님, 그 몸뚱이를 버리시오”
어떻게 버릴 거냐 그 말이여? 구렁이가 되아 가지고도 애착신이 되아 가지고 그 제 몸뚱이가 제일 소중하고 무서운디 어떻게 버릴 거냔 말이여.

“그 몸뚱이를 버리십시오” 이 몸 어디 버릴 수가 있어야지. “스님 머리를 대갈빡을 아무리 죽기 싫지마는 대갈빡을 그만 돌에다 쳐가 때려 가지고 자살하십시요”
원청 도인이니깐 도력으로 그랬던지 아! 그 말을 듣고는 눈물을 철철 흘리고 울다가는 구렁이란 놈이 대갈빡을 때려 가지고 죽었네. 큰 구렁이가 죽었다 그 말이여. 그 혼백을 따라 가지고는 혼백을 데리고 나섰네. 혼을, 구렁이 끌고 댕기는 구렁이 속에서 꿈적꿈적허고 살던 그 혼을 앞세우고 나섰다 그 말이여.

나서 놓으니 이놈의 혼(魂)이, 구렁이 속에 들었던 혼(魂) 그놈이 몸뚱이는 내번지고 인자 혼 되아 가지고 나왔는데, 아! 그놈이 거 붙을라고 헌디 굉장해. 가다가도 그저 벌만 봐도 붙을라 하고, 개구리만 봐도 붙을라 하고, 어디 안 들어갈라고 헌 데 없다 말이여 당최. 이것 뭐 당초에 뭐 그저 꿈적꿈적헌 동충(動蟲) 연비충(蜎飛蟲)한테 다 붙을락 하네.
그놈을 기어니 못 붙게 때리고 때리고 인자 혼백을 때리는 법이 있었든가, 회초리를 가지고는 때렸다 했지? 못 들어가게 해 가지고는 인도해 가다가는 어느 산촌 산막에 들어가서 두 부부가 사는데 자식이 없어 그리 집어넣었어. 그라고 인자 그만두니까 가 붙지. 그 두 부부지간이 늦게까장 자식을 못 낳고 촌막에 사는디 그리 몰아넣었어. 그리 들어가서 거가서 아들이 되었다 그 말이여. 그래 그 아들을 데려다가서 그 도(道)를 가르킨 일이 있지 않어? 내가 얘기허지 않았어?

긍께 우리가 이 몸뚱이 신령으로 이 몸뚱이 잃어버리면은 혼이 되어 가지고는, 그 혼백이 뭐 안 들어갈라고 하는 데 없어. 그거 기가 맥히게 붙어번져. 그러니 실무(實無)지. 아무 실무가 없지. 그거 소용 있어? 이 몸뚱이를 얻어야사 이 몸뚱이를 가져야사—이 몸뚱이 가지고도 그저 망상은 도무지 뭐 분(粉) 싸라기 흩은 것처럼 일어나지마는, 그래도 이 몸 가져야사 화두(話頭)를 도(道)를 닦는다 그 말이여. 이 몸뚱이 없으면 도를 못 닦아.
그러니 이 몸뚱이를 잊어버려 되야? 될 수 있으면은 잊지 않고 도를 닦아야지. 어쨌든지 이 몸뚱이가 병이 나거들란 약도 잘해 먹고 그저 잘 조심해서 몸을 가져 가지고는 도를 닦어야지.

도 닦지 않은 몸뚱이야 그까짓 놈의 거 소용없지, 죄만 짓는 놈의 몸뚱이니까. 이놈의 몸뚱이 가지고는 구백생멸(九百生滅)이 모도 죄요, 거족동념(擧足動念)이 모도 죄요, 마음만 내도 죄요, 발만 들어도 죄업이요, 죄만 퍼짓는 놈의 몸뚱이거든. 도(道)가 있어야사 인자 참, 도(道)를 닦어야사 그 소중한 몸뚱이요, 참으로 이 귀중한 몸, 이 몸 가지고 도를 닦으니까.

헌디 이 몸이 사(死)가 앞에 있으니, 이 몸이 시방 사형선고를 받고 있으니, 오늘 죽을는지 내일 죽을는지 모르는 무서운 사형선고다. 죄인에 살인 강도를 하고 죄인의 사형은 아무 날 죽인다고 사형헌다고 기한이나 있건마는, 우리의 몸뚱이 사형이라는 것은 기한도 없다. 오늘이냐? 이 시간이냐? 이 뒷 시간인가? 어느 시간이고? 도무지 수유(須臾)를 뭐 앞으로 수유를 머무를 수가 없어. 잠깐 동안인들 안심할 수가 없어.

언제 죽을는지 알 수 없으니 생사이자(生死二字)를 가져라. 나왔다마는 살았다마는 죽을 것을 생각해라. 곧 사자(死字)가 앞에 있다. 금방 죽은 사람만 보고 그 사람은 금방 죽었다마는 나는 안 죽었으니까 오래 살까 싶지? 소용없어. 그 사람이나 내나 똑같어.
생사이자(生死二字)를 가져라. 정재액상(釘在額上)해라. 그 생사이자(生死二字)를 보통 가지지 말고 이 눈 사이에다 눈썹 사이에다 딱! 찍어 두어라, 도장 박듯기. 딱! 찍어라. 그 곧 죽는다.

열두 때 가운데 열전면피(裂轉面皮)해라. 열두 때 가운데 낯 껍데기를 펴지 말어라. '어째서 판치생모락 했는고?' 허면 이거 자연 낯 껍데기가 찡그러지지? 그놈을 생각하니까.
어째 그렇게 힘써서 하라는 건 아니여. '어째 판치생모락 했는고?' 이렇게 성의껏 정성껏 해라.

토개분효(討箇分曉)하야사 시득(始得)다. 확철대오해사 옳다. 공안이란 깨달은... 깨닫지 않은 게 아니다. 확철대오가 있어야 한다, 확철대오가 있어야 하니 분효(分曉)하야사 시득(始得)다. 깨달라야 옳다.
깨닫지 못하고 거가 물고만(묻고만) 있으면 뭐 할 거냐? 천년만년 그만 판치생모만 허고 말 것인가? 확철대오가 있어야 하지. 분명히 허고, 참다이 허고, 철저히 헐 것 같으면은 깨달은 각(覺)이 반다시 앞에 곧 온다.

약지수군축대(若秪隨群逐隊), 만약 느그가 군(群)을 따르고 떼를 쫓아서—그 모도 친구나 찾고, 모도 반연경계(攀緣境界)나 찾고, 그저 어디 놀 경계나 찾고, 화두허다가 안 되니 내던져번지고는 그만 쓸데없이 어디가 얘기나 할라 하고. 타공과시(打空過時)에는, 헛되이 공연히 때를 지낼 때에는, 이렇게 저렇게 그만 그럭저럭 일평생을 그만 지내버린다면 도문(道門)에 나와서.
타시(他時)에 염라노자(閻羅老子)의 타산반전(打算飯錢)할 것이다. 다른 날에 염라대왕이 네 밥값 받을 때, 네 밥값 타산(打算)할 때 어떻게 헐래?

너, 도 닦는다고, 도 닦는다고 말은 허고선 네 평생에 뭣했나? 뭔 도 닦았나? 뭐 있어야지? 염라대왕 철방(鐵棒)을 맞아 갔으니—도 닦는 사람이면 참말로 닦은 사람이면 염라대왕이 철방을 내릴 이치가 있나?
철방으로써 잡아갔으니 염라국에 가서는 밥값 타산할 것이고, 시주것 네 헛되이 먹고 헛되이 보내고 네 무슨 짓 했나? 살생 도둑질 십악중죄(十惡重罪)만 퍼짓고 뭣했나? 이놈을 반전(飯錢)할 때 타산(打算)할 때 어떻게 헐래?

막도(莫道), 내가 너한테 이렇게 말 미리서 안 해 주었다고 원망하지 말아라.

저 동산숭장주(東山崇藏主)가 그 상좌한테 지금 부탁한 법문이여.
내가 너한테 이렇게 설해 주었다고.. 이렇게 설해 주지 아니했다고 허지 말아라. 내가 미리서 이렇게 말해 주지 안 했나? 허니 그렇게 철저히 한번 닦아 나가면서 허송허지 말어라.

많이씩 못허겠구만. 조금씩 허지.(17분2초~28분2초)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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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700여 개의 ‘참선 법문(法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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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
인과 인연 비유2021. 9. 12. 08:21

§((212)) 네 아내(육신, 재산, 부모형제 처자권속, 마음)의 비유 / 우리의 자성(自性) 본성(本性) 바로 그놈을 제일 애끼고 사랑하고 돌봐줘야.

 

**송담스님(No.212)—1983년 9월 첫째 일요법회(83.09.04) (용212) (인연인과비유)

 

 

 

약 21분.

 



옛날에 부처님께서 사위국(舍衛國) 기원정사(祇園精舍)에 계실 때 한 거사(居士)가 있었는데 그때에 그 거사는 네 사람의 아내를 데리고 살았습니다.
네 사람을—그때 당시는 일부다처제로 아마 부인을 첫째 부인, 둘째, 셋째, 넷째 그 사람 능력 따라서 여러 부인을 거느리고 살 수가 있었던지 네 사람의 아내를 데리고 살았었는데,

그 사람은 첫째 부인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앉을 때나 섰을 때나, 잠을 잘 때나 밥을 먹을 때나, 어디 외출을 할 때나 일을 할 때나, 언제 어데서라도 잠시도 그 첫째 부인과 같이 붙어서 살았습니다. 그만큼 그 첫째 부인을 사랑하고 애끼고 좋아하고 그랬습니다.
그리고 먹는 것도 잘 먹이고, 이 세상에서 없는 제일 좋은 것은 다 먹이고 다 입히고, 누가 조금이나 해꼬자 할까 항시 자기 몸 가까이에 놓고 그렇게 사랑하고 이뻐했습니다. 아마 이 세상에 아무리 아내를 사랑한다 하더라도 그렇게까지 사랑하기는 어려웠으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또 둘째 부인도 첫째 부인만큼은 못해도 너무너무 사랑해서 도대체 다른 사람이 그 자기 아내를 볼까 두려워서 항시 가둬 놓고 그 아내를 사랑을 했습니다.
행여나 남이 눈독을 들일까 혹 남이 아내를 훔쳐갈까 이래 가지고 아내는 도저히 어디 밖에 내보내지도 않고, 마당에도 잘 내보내지도 않고, 항시 자기 방이나 특실에다가 딱 넣어 놓고 쇠통을 채워 놓고 그렇게 아내를 사랑을 했습니다.
너무너무 애끼고 사랑을 하고 심지어는 의처증(疑妻症)이라고 할 만큼 그 아내를 밖으로 내놓지를 않고 남이 보는 것을 그렇게 꺼려했습니다.

셋째 부인은—셋째 부인도 애끼는 생각도 있고 사랑하는 생각도 있고 그랬지만, 마음대로 밖으로도 외출하고 싶으면 하게 하고, 그렇게 날마다 보지는 아니하고 가끔 한번씩 보기만 하고 그저 수수허니 그렇게 살았습니다.

넷째 부인이 있었는데, 그 넷째 부인은 항시—자기(거사)는 그렇게 별로 좋아하지도 않고 사랑하지도 않지마는, 넷째 부인은 그렇게 남편을 하녀가 상전 모시듯이 그렇게 잘 따르고 또 명령을 복종을 하면서 그렇게 했습니다마는, 남편은 여간해서 옷 한 벌 명절이 되어도 해주도 않고, 그냥 영 그저 종 비슷하니 그렇게 취급만 했지 별로 그렇게 아끼지도 않고 따뜻하게 봐 주지도 않고, 그렇게 해서 네 아내를 그렇게 거느리고 살았습니다.

그러자 그 장자(長者)는 하룻날 부득이한 사정이 있어서 저 먼 데로 귀양을 가게 되었습니다. 이제 한 번 가면 다시는 돌아오기가 어려울 그러한 참 급박한 상황에서 먼 데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첫째 부인을 보고 "내가 이렇게 인자 가는데 다시 돌아올런지 못 돌아올런지 알 수가 없고, 나는 당신을 여의고는 도저히 살 수가 없어. 그러니 나를 따라서 가자"고 사정을 했습니다.
그러니 큰 마누라는 "내가 평생 동안 당신을 모시고 살았고, 당신도 나를 끔찍이 애끼고 사랑한 것은 사실이나 나는 못 따라가겠다"고.

"그럴 수가 있느냐"고 했지만 "더이상은 죽었으면 죽었지 못 따라가겠다" 하는 것입니다.
그래 할 수 없이 "이런 배은망덕(背恩忘德)한 여자가 있단 말이냐"고 호통을 치고, 그래도 따라가지 못하겠다고 하는 데야 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둘째 부인한테 또 말을 했습니다.
둘째 부인도 "당신이 나를 너무 지극히 사랑해서 평생을 참 문밖을 마음대로 못 나가고 가둬 놓고 키우고 그랬지만 나는 당신을 따라갈 수가 없다" 둘째 부인도 거절을 했습니다.

그래 셋째 부인한테 또 말을 했습니다.
"내가 당신을 그동안에 살면서 첫째와 둘째한테만 내가 주로 사랑을 쏟고 당신한테는 그렇게 내가 사랑을 못 해주고 해서, 내가 이 마지막 가게 될런지도 모른 이 먼 나라를 가는데 같이 가자고 하기가 미안하나, 어디 그래도 첫째 둘째가 저렇게 배은망덕을 해서 안 가니 당신이라도 좀 같이 갈 수가 없겠느냐?" 사정을 하니까,
"평생 동안 괄세를 하고 첫째 둘째한테만 퐁 빠져 가지고 그 돌아본 채도 안 해 놓고서 어째 오늘은 나보고 아주 가자고 하냐"고, "그런 철면피(鐵面皮) 같은 소리를 할 수가 있단 말이냐"고, "나도 그렇게는 못 하겠다"고 딱 잡아뗐습니다.

그래 마지막에 참, 넷째 부인한테 또 부탁을 했습니다. "내가 그동안 당신을 하녀처럼 생각하고 옷 한 벌 변변히 해 준 것도 없고, 손 한번 내가 따뜻하게 만져주지도 않았는데, 저렇게 세 여자들이 저렇게 배은망덕을 하고 안 따라가니 도저히 나 혼자 가기는 도저히 갈 수가 없고 천상 당신이 나를 좀 따라가 줘야 하지 않겠냐?"고 하니까,
넷째 부인이 눈물을 흘리면서 "어피차 나는 일생 동안 당신의 종노릇을 하면서 푸대접을 받아도 그것이 나의 팔자거니 하고 참 세월을 그렇게 살아왔는데, 당신이 살면 얼마나 산다고 내가 기꺼이 내가 따라 모시겠다" 그래 가지고 승낙을 했던 것입니다.

첫째 부인은 '국경까지는 바라다 주겠다', 둘째 부인은 '이 문 방안까지 밖에는 못 가겠다', 또 셋째 부인은 '저 마을 밖에까지 밖에는 못 가겠다'. 이렇게 모다 해서 거절을 당하고 그렇게 인자 마지막 넷째 부인과 길을 떠나게 되었다 이것입니다.


그런데 이 첫째 부인은 무엇이냐 하면은 우리의 육신(肉身)이라 이것입니다. 사람이 그 영혼이 이 세상에 태어날 때 육신을 받아서 태어나게 되고 또 그러기 때문에 일생 동안 그 육신을 떠나서는 살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영혼이 떠나는데 육신이 따라갈 수가 없고, 육신은 결국은 영혼이 떠날 때 육신은 떨어져서 쓰러지면 땅에다 묻거나 불에 태우거나 하지, 육신이 절대로 영혼을 따라갈 수가 없는 데다 비교를 한 것이고.

둘째 부인은 재산(財産)에다가 비교를 한 것입니다. 육신이라 하는 것은 자나깨나 항시 같이 살고 있는 것이지만 재산은 누가 보면 훔쳐갈까, 달라고 할까 두려워서 항시 창고나 궤 속에다 가둬 놓고 쓰기 때문에 둘째 부인은 재산에다가 비유를 한 것이고.

셋째 부인은 부모나 형제나 처자권속에다가 비교를 한 것이어서 가끔 만나면 좋고 그저 든든한 맛으로 그저 형제간은 그렇게 살되, 그 영혼이 죽은다 해서 형제간이 같이 죽어갈 수는 없는 것이죠?

그런데 마지막 넷째 부인은 우리의 마음에다가 비교를 한 것입니다. 우리는 평생 동안 살면서 그 마음에 대해서는 거의 무관심하게 사는 것입니다.

이 몸뚱이라든지, 재산이라던지, 부모 형제에 대해서는 온갖 인정을 쏟고 애지중지하고, 그 어쩔 줄을 모르고 심지어는 그 육신을 위해서는 온갖 음식이다 보약이다 또 좋은 옷이다 화장품이다 해 가지고, 그렇게 온 정성을 쏟아서 그 육체 하나를 갖다가 잘 가꾸기 위해서 평생 동안 보호를 하고 애지중지하지만 먼 데로 떠나는 날에는 완전히 언제 봤던가 완전히 배신을 해 버리고 따라가 주지를 않는 것입니다.

둘째, 재산도 그 재산을 벌기 위해서 그렇게 참 피땀 흘려서 고생을 하고 밤잠을 안 자고 고생을 하고, 그 재산을 모으기 위해서 알고 모르고 지은 죄가 얼마인 줄을 알 수가 없고 그렇지마는 죽어 가는 마당에는 재산도 아무 소용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셋째, 부모라던지 형제간이라던지 처자권속도 내가 희생을 해 가면서 봉사를 하고 그걸 잘 먹이고 잘 입히기 위해서 온갖 정성을 다 쏟고 하지만, 내가 죽어 갈 때에는 부모도 어찌하지 못하고 형제간도 어찌하지 못하고 심지어 처자와 아내와 자식들도 내가 죽어 갈 때에는 나 대신 죽어 줄 수도 없고 내가 죽을 때에 따라 죽어 줄 수도 없는 것입니다.

넷째에 평생에 괄세하고 소박을 했던 넷째 마누라는 바로 우리의 마음자리에다 비교한 것인데, 그 마음자리 마음은 제일 소중하고 애끼고 잘 먹이고 잘 입혀야 할 넷째 마누라인데, 그것을 등한히 했기 때문에 그것을 등한히 하고 첫째 마누라, 둘째 마누라, 셋째 마누라한테만 퐁 빠져 가지고 괄세를 했기 때문에, 그 셋째까지 먹여 살리느라고 죄만 퍼지었지 마지막 가는 마당에는 그 죄만 짊어지고 가게 되고 아무도 따라와 주지 아니한 것처럼.

우리의 본성(本性)을 갈고 닦아서 과거에 지은 업(業)도 소멸하고, 새로 업을 짓지 말아야 극락세계(極樂世界)나 도솔천 내원궁(兜率天內院宮)에 태어나거나 또는 다시 인도환생(人道還生)을 하되 좋은 가문과 좋은 부모와 또 정법을 만날 수 있는 그러한 환경에 태어나서 인물도 좋고 머리도 좋고 인품도 좋게 태어나서 공부도 걸림이 없이 하고 또 이 최상승법과도 인연이 있어서 바르게 살아갈 수 있게 되겠지만, 그것을 괄세를 하고, 불고(不顧)를 하고 그랬기 때문에, 그 마음자리를 괄세를 하고 닦지를 않았기 때문에 악도(惡道)에 떨어져서 그동안에 애끼고 가꾸고 한 육신이나 재산이나 부모 처자권속도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특히 우리나라는 지금 부인을 하나밖에는 갖지를 못하게 법률이 되어 있습니다마는, 그러한 이 네 명의 부인을 갖는다 하는 것은 우리의 육체와 재산과 부모와 형제 처자권속과 또 우리의 본래부터 타고난 그 마음자리와 이 네 가지를 비유를 했을 뿐,
사실 우리는 아직도—불법을 믿고, 도를 닦고 이렇게 와서 법문을 듣지만—첫째 둘째 셋째만 이뻐하고, 넷째 부인은 영 겨우 시간이 조끔 있으면 형식상으로 조끔 들여다본 척하고 실재 마음을 딴 데에가 있고, 이렇게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분이 많이 계시다면 이것은 불법(佛法)의—위태로운 그 썩은 새끼에 매달린 불법이 위태로운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불법을 그렇게 위태롭게 만든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들이 첫째 둘째 셋째, 마지막 가는 길에는 여지없이 배신해 버리고 말아버릴 그러한 (첫째) 둘째 셋째 부인한테만 퐁 빠져 가지고 정신이 하나도 없고, 진짜 나를 따라가 줄 넷째 부인한테는 그렇게 등한히 하기 때문에 마지막 떠나는 길이 그렇게 처량할 수 밖에는 없는 것처럼.
우리의 자성(自性) 본성(本性) 바로 그놈을 제일 애끼고 사랑하고 돌봐줘야 하고 잘 먹이고 잘 입혀야 할 터인데 그것을 괄세를 하기 때문에 우리 자신들의 장래, 우리 자신들의 금생은 말할 것도 없고, 저 내생 무량겁을 두고 처량한 신세로 객지로 육도윤회를 떠돌이 할 수 밖에는 없게 되는 것이며, 그것이 바로 불법의 명(命)을 실오라기처럼 위태로운 지경에까지 몰고 가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이 종단은, 여러분 앞에 종단 이야기를 하기가 대단히 죄송하고 얼굴을 들 수가 없습니다마는, 우리 종단의 일은 스님네만의 일이 아니고 우리 사부대중 전체의 일이기 때문에 우리는 진정한 마음으로 우리 종단이 하루속히 바로잡아지고 안정이 되어서 불법이 나날이 융성해 가고 많은 사람들이 불법에 귀의해서 바른 길을 찾아서, 실오래기 같은 그 불법의 맥이 동아줄보다도 더 크고 아름드리 고목(古木)나무나 강철로 된 밧줄과 같이 아무리 끊어도 끊어질 수 없는 그런 튼튼한 맥이 되도록 우리는 진심으로 기원을 하고 협조를 해야 하리라고 생각이 됩니다.(19분3초~39분33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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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도 있습니다.

 

참선법 A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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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700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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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
이뭣고 화두2021. 9. 8. 09:58

§((212)) (게송)백운아향만리표~ / 육조 스님과 남악회양 선사, 하택신회 선사 / 활구참선. 은산철벽(銀山鐵壁) / 참선은 쉽다(세수하다가 코 만지기), 어렵다(깨 한 말을, 깨 한 알씩을 큰 나무 뿌리에서 굴려서 나무 꼭대기까지 굴려 올릴 만큼)

옛날부터서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도를 닦겠다고 출발을 했지만 중도에서 물러서거나 중도에서 쉬어버리거나 또는 딴 길로 빠지거나 이러기가 십상(十常) 쉽고, 끝까지 나아가서 목적을 달성한 사람은 그렇게 흔치를 못하는 것입니다.
까딱하면 중간에 어떠한 유혹에 빠지기도 하고, 해태심(懈怠心)을 내기도 하고 그래 가지고 한결같이 쉬지 않고 나아가기가 어렵기 때문에 항시 선지식(善知識)을 가까이 모시고 법문(法門)을 들어야 하고, 또 좋은 도반들과 항시 같이 수행을 해 나가야, 내가 혹시 해태심이 나거나 딴생각을 내더라도 도반(道伴)으로부터 경책(警策)을 받고 선지식으로부터 법문을 들어서 그러한 위기를 면하면서 끊임없이 목적지를 향해서 걸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송담스님(No.212)—1983년 9월 첫째 일요법회(83.09.04) (용212) (이뭣고화두)

 

 

 

약 19분.

 

 


백운아향만리표(白雲兒向萬里飄)한데  종래불망청산부(從來不忘靑山父)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내하유자부지환(乃何遊子不知還)허고  장재미도축풍파(長在迷途逐風波)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백운아향만리표(白雲兒向萬里飄)한데  종래불망청산부(從來不忘靑山父)로구나.
백운(白雲)이라고 하는 자식이 만리의 바람에 나부끼는데, 원래 백운은 청산에 의지해서 뭉쳐서 있다가 바람이 부니까 그 바람에 실려서 저 만리 하늘에 나부껴 날아갔다 그 말이여.
종래불망청산부(從來不忘靑山父)여. 그렇게 바람에 불려서 만리 하늘을 떠내려갔지만 그 백운은 항시 그 마음속에는 자기가 본래 놀며 의지하며 살고 있던 그 푸른 산을 마음속에는 잊지를 않고 있더라 그 말이지.

내하유자부지환(乃何遊子不知還)인데, 어째서 무슨 일로 이 백운은 청산으로 다시 돌아올 줄을 모르고,
장재미도축풍파(長在迷途逐風波)로구나. 길이길이 자기 본래 살던 그 청산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타향으로 저 구만리장천(九萬里長天)을 이리저리 바람 따라서 물결 따라서 떠돌이 신세가 되어 있구나.

우리는 본래는 석가모니 부처님이나 관세음보살처럼 본래는 똑같은 본각(本覺)의 경지에 있었습니다. 새로 닦지 아니하고, 닦을 것도 없이 본래 깨달아져 있는 그러한 본각성(本覺性)이었건마는 한 생각 잘못 일어나는 것이 동기가 되어서 풍파에 나부껴 가지고 무량겁을 동서사방 육도(六途)를 돌고 돌면서 오늘에까지 왔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원래 그 부처님과 비로자나 법신불(毘盧遮那 法身佛)과 한 집에서 한 자리에서 기거를 같이 하고 생활을 같이 했건마는 그것을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이렇게 그 본 자리로 돌아갈 줄을 모르고 육도윤회(六途輪廻)를 이렇게 돌고 있는 것입니다.

언제 바람이 그칠런지, 바람이 부는 한에 있어서는 동풍이 불면 서쪽으로 날아가고, 서풍이 불면 동쪽으로 날아가고, 북풍이 불면 남쪽으로 몰려가고, 남풍이 불면 북쪽으로 나부껴서 동서사방 정처가 없습니다.
조끔 착한 일을 하면 천당에 가고, 악한 일을 하면 지옥에 가고, 축생도 되었다 인간도 되었다, 인간으로 태어나되 좀 잘살기도 하고 못살기도 하고, 착한 사람으로 태어나기도 하고 악한 사람으로 태어나기도 하고, 마치 우리의 이 존재가 청산을 떠난 흰구름과 같이 그렇게 비유를 해서 읊은 게송입니다.


부처님께서 삼천년 전에 가비라(迦毘羅) 왕궁에 태자로 태어나서 왕궁의 부귀를 버리시고 출가하셔서 설산에 들어가서 대도를 성취해 가지고 팔만사천(八萬四千) 묘법(妙法)을 설하시고, 그래 가지고 삼처전심(三處傳心)을 해서 현재 등등상속(燈燈相續)해서 그 최상승법(最上乘法)이 오늘날까지 이렇게 면면(綿綿)히 전해오고 있습니다마는,
삼천년이라고 하는 긴 세월 동안에 부처님께서 전하신 그 정법(正法)은 실오라기처럼 위태로운 썩은 사내끼에 매달려 있는 바윗돌과 같이 언제 그 썩은 새끼가 뚝 끊어져 가지고 그 바윗돌이 땅에 뚝 떨어질런지 모른 그러한 위급한 상황 속에 불법이라고 하는 그 맥이 놓여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까지 그 불교가 동양에 여러 나라에 전해 내려오고 그 경전이 오늘날까지 전해 내려오고 또 번역이 되고 많은 사람들이 불교를 믿고 있지마는, 참으로 그 불법에 등등상속해서 내려오는 그 법맥(法脈)이라고 하는 것은 실오라기만큼 그러한 위태로운 상태에 놓여 있다고 하는 것을 생각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금방 전강 조실 스님의 법문을 통해서 육조(六祖) 스님으로부터 법을 이어받은 남악회양(南嶽懷讓) 선사의 말씀을 들었습니다마는 육조 스님께서 대중을 향해서 물으시기를, “여기에 한 물건이 있으니 위로는 하늘을 떠받고 아래로는 땅을 기둥하며, 뭐라고 이름을 붙일 수도 없고 모냥도 그릴 수가 없다. 항상 이 동용(動用)하는 가운데에 있으되 동용하는 가운데에 거두어 얻지 못하니 이것이 무슨 물건이냐?” 이렇게 대중에게 물었습니다.

하택신회(荷澤神會) 선사는 “제불지근원(諸佛之根源)이며 신회(神會)의 불성(佛性)이로소이다. 모든 부처님의 근원이고 이 하택 저 자신의 불성입니다”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육조 스님께서 꾸짖으시기를 “뭐라고 이름을 붙일 수도 없고 모냥도 그릴 수 없다고 내가 그랬거늘 어찌 제불의 근원이니, 하택의 불성이니 하고 이름을 붙이는고? 네가 앞으로 커서 공부를 열심히 해 가지고 설사 네가 큰 스님이 된다 하더라도 너는 마침내 지해종사(知解宗師) 밖에는 못 되것다”

지해종사(知解宗師)라 하는 것은, 이론적으로 불법을 공부하는 학자나 강사 그러한 알음알이로 불법을 해석하고 강론하고 그러한 지해종사 밖에는 못 되것다. 이렇게 점검을 하셨습니다.

그러자 남악회양 선사가 떠억 육조 스님 앞에 와서 절을 했습니다.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는고?" 하고 물으니까, 남악회양 선사는 망지소조(罔知所措)여. 꽉 맥혀 가지고 뭐라고 대답을 할 수도 없고 완전히 몸둘 바를 몰랐습니다.

그래가지고 물러 나와서 8년 간을 ‘대관절 이 무슨 물건인가?’ 그 알 수 없는 의심이 가슴속에 북받치는데 콱 맥혀서 ‘대관절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는가? 무슨 물건인가?’
하루를 그렇게 지내고 이틀을 그렇게 지내고, 한 달을 그렇게 지내고 1년 이태 3년을 그렇게 되아 8년 만에사 탁! 깨쳤는데, 육조 스님 앞에를 갔습니다. “제가 깨달랐습니다”

“깨달랐으면 어디 일러봐라”
“설사일물(說似一物)이라도 즉부중(卽不中)입니다. 설사 한 물건이라고 해도 맞지 않습니다”

“환가수증부(還可修證否)아, 도리어 닦아 증(證)할 것이 있느냐?”
“수증(修證)은 즉불무(卽不無)어니와 오렴(汚染)은 즉부득(卽不得)입니다. 닦아 증할 것은 없지 아니하나 더럽히고 물들인 것은 없습니다. 오렴은 곧 얻을 수가 없습니다”

육조 스님께서 ‘너도 또한 그렇고 나도 또한 그러니라’ 이렇게 해서 쾌히 인가(印可)를 하시고 법(法)을 남악회양 선사에 전했습니다.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 하는 것은 ‘제불의 근원’이니, 무슨 ‘나의 불성’이니 그렇게 이론으로 따지고 말 길이 있고 더듬어 들어가는 것이 있고, 이렇게 공부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공부해서 그럴싸한 결론을 얻었다 할지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알음알이요 사량분별(思量分別)을 떠나지를 못했기 때문에 그것은 깨달음이 아닌 것입니다. 콱 맥혀서 답답해 알 수가 없어야 하는 것입니다.

앞으로 나가자니 은산철벽(銀山鐵壁)이 가로막고 있고, 뒤로 물러서자니 천길만길 절벽이라, 나아갈 수도 없고 물러갈 수도 없고 다못 꽉 맥혀서 알 수 없어.
‘이뭣고....?’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앉으나 서나 밥을 먹으나 옷을 입으나 이렇게 해서 일체처 일체시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간에 화두에 대한 의단(疑團)만이 독로(獨露)하도록 정진을 다져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남악회양 선사 같은 도인(道人)은 다 숙세에 선근종자(善根種子)로 다 전생에부터서 많이 닦으신 그러한 도인이 태어나셨겠지만 그래도 8년이라고 하는 장구한 세월이 걸린 것을 생각한다면, 우리 근기(根機)가 박약(薄弱)한 우리 말세(末世) 중생들은 8년 아니라 80년이라도 지루한 생각을 갖지 말고 목숨을 바쳐서 한 화두(話頭)에 대해서 참구(參究)를 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그만한 공력과 그만한 끈기와 그만한 노력이 없이는 생사해탈(生死解脫)을 어떻게 기약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리해서 이 참선(參禪)이라 하는 것은 ‘세수하다가 코 만진 것보다도 더 쉽다’ 이렇게도 쉬웁기로 말하면 그렇게 쉬웁다고 표현을 하셨지만,
어렵기로 말하면은 깨 한 말을 갖다가—깨 한 알씩을 큰 나무 뿌럭지 있는 데서부터서 굴려서 저 열 길이나 되는 나무 꼭대기까지 굴려서, 그 나무의 몸뚱이에 떨어지지 않도록 하나씩 하나씩을 굴려서 나무 꼭대기에다 올려다 놓고, 다시 또 내려와서 깨 한 알을 갖다가 뿌리에서부터서 굴려서 올려 가지고 저 꼭대기에 갖다 놓다가, 중간에 잘못해서 뚝 떨어지면 다시 뿌리에서부터서 굴려 올리고 그래서 깨 한 말을 굴려 올릴 만큼.

그것이 얼마나 공력을 드려야—그 하나를 평면으로 굴려 올린다면 모르지만, 서 있는 나무에 굴려서 올린다고 하는 것을 생각해 보시라 그 말이여. 그만큼 공력과 끈기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옛날부터서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도를 닦겠다고 출발을 했지만 중도에서 물러서거나 중도에서 쉬어버리거나 또는 딴 길로 빠지거나 이러기가 십상(十常) 쉽고, 끝까지 나아가서 목적을 달성한 사람은 그렇게 흔치를 못하는 것입니다.
까딱하면 중간에 어떠한 유혹에 빠지기도 하고, 해태심(懈怠心)을 내기도 하고 그래 가지고 한결같이 쉬지 않고 나아가기가 어렵기 때문에 항시 선지식(善知識)을 가까이 모시고 법문(法門)을 들어야 하고, 또 좋은 도반들과 항시 같이 수행을 해 나가야, 내가 혹시 해태심이 나거나 딴생각을 내더라도 도반(道伴)으로부터 경책(警策)을 받고 선지식으로부터 법문을 들어서 그러한 위기를 면하면서 끊임없이 목적지를 향해서 걸어가게 되는 것입니다.(처음~19분2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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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
하안거 해제 백종2021. 9. 3. 20:21

§((128)) 우리의 선망부모(先亡父母)를 천도해 드리는 날, 음력 7월 보름날, 백중날 / 이 우주에 모든 중생이 다 우리의 선망부모이다 / 영혼, 영가의 하소연 / 전강 조실 스님께서 만년위패 법보단을 창설하신 의의. 만년위패에 모셔서 법문을 듣고 원한을 다 풀고 여기에서 편안하게 계시다가 인연이 도래하면 좋은 곳으로 태어나시도록 하기 위함.

**송담스님(No.128)—1980(경신)년 칠석법회 법문(80.08.17) (용128) (백종 안내)

 

 

약 13분.

 


앞으로 보름 뒤에는 양력으로 8월 25일이고, 음력으로는 7월 보름날, 백중날입니다. 이 날은 우리의 선망부모(先亡父母)를 천도(薦度)해 드리는 날인 것입니다. 우리의 선망부모라 하면 돌아가신 부모 또는 조부모, 증조부모, 고조부모, 우리 족보에 올라 있는 그러한 조상만이 아니라 일가친척뿐만 아니고 어떠한 사람, 이 우주 간에 가뜩차 있는 모든 사람, 모든 동물, 모든 이 허공계에 가뜩차 있는 주인이 있는 그리고 주인이 없는 모든 영혼들, 심지어는 지옥에서 고(苦)를 받고 있는 수많은 중생들까지라도 다 우리의 선망부모인 것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무량겁을 두고 오늘날까지 윤회를 하면서 올 때에 수수 천백만 번을 새 몸을 받았다가 또 한평생 살다가 또 죽고, 죽었다가 또 다시 새 몸을 받고 할 때에 사람도 되었다, 짐승도 되었다가—소도 되었다, 말도 되었다, 뱀도 되었다, 모기도 되었다, 지렁이도 되었다가, 지옥에도 갔다, 천당에도 갔다, 이러는 동안에 나의 부모 아니었었던 사람은 중생은 한 사람도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모든 것이 다 우리의 선망부모인 것입니다. 언젠가 어느 땐가 한 번은 그 몸을 의지해서 내가 몸을 받아났기 때문에 전부가 다 우리의 선망부모다 이것입니다.

특히 좋은 곳에 계시는 선망부모는 좋지만, 그런 아귀도나 축생도나 지옥도, 이러한 삼악도(三惡途)에서 고(苦)를 받고 계시는 우리의 선망부모, 백중날에 한해서는 그 지옥의 문이 열려서 석방이 되는 것입니다. 가석방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인도나 중국이나 한국, 일본, 불교를 믿는 나라들에서는 이 백중날에 선망부모를 천도하는 경건한 법요식을 거행해 오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부처님 당시에 십대제자(十大弟子) 가운데에 신통제일이신 목련존자가 지옥에 빠져서 고생하고 계시는 어머니, 청제 부인을 그 효성스러운 마음으로 해서 부처님과 부처님 제자들이 감동을 하셔가지고 그 지옥에 고를 받고 계시는 어머니를 구제해 드리는 그것이 최초의 원인이요, 그것을 기념하기 위해서 지옥에서는 그날을 기해서 지옥문을 열어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도 그 준례에 따라서 그날 우리의 선망부모를 경건한 마음으로 백 가지 과일과 곡식으로써 선망부모의 천도를 위해서 부처님과 부처님의 제자들인 스님네께 공양을 올리고 선망부모의 천도재(薦度齋)를 올리는 것입니다. 그날 지옥문, 삼악도의 문이 열려서 이 법문을 듣고 천도를 받기 위해서 자기와 인연이 깊은 절을 우리의 선망부모들은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찾아와서 보니 아무리 그 많은 사람 가운데에 자기의 아들, 자기의 며느리, 자기 딸이 눈에 보이지 아니하면 그 얼마나 섭섭하겠습니까? 귀신의 세계도 인간의 세계나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전생(前生), 금생(今生), 내생(來生)의 구별이—'우리가 죽으면 어떻게 될까? 참으로 죽은 뒤에도 내생(來生)이라는 게 있는 것인가?' 그런 것에 대해서 굉장히 의심을 품고 질문을 하시는 분을 만납니다마는, '우리가 한평생 살다가 죽은 뒤에 우리의 상태가 어떠냐?' 한 것은 눈 뜨고 있다가 잠이 깊이 들어서 꿈을 꾸는 거와 같고 또 꿈꾸다가 잠을 깨는 거와 같은 것입니다. 그러한 정도의 차이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다맛 이 몸뚱이가 고장이 나면 그 몸뚱이를 버려 버리고 다시 또 새 몸을 받게 되는데 새 몸을 받을 때까지 그 중간의 시간을 갖다가 '귀신(鬼神)의 세계'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부모나 또는 남편이나 아내나 자식들이 이승을 하직을 하고 그분의 업(業)에 따라서 새로운 몸을 받게 되는데 49재만에 새 몸을 받기도 하고, 백 일만에 받기도 하고, 소상이나 대상을 지내고 받기도 하고, 또는 10년, 20년 동안 중음신(中陰身)으로, 이 귀신의 세계에서 영혼의 상태로 있다가 그때사 새로운 몸을 받아나기도 하고, 때에 따라서는 백 년 동안도 영혼의 상태로 머물러 있다가 그때사 새로운 몸을 받기도 하고, 그래서 우리보다 한 걸음 앞서간 분들이 지금 새로운 몸을 받았는지 아직은 받지 아니하고 이 귀신의 세계에서 떠돌고 있는지 그것은 우리로서는 참 알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특히 비명(非命)에 가신 분들을 여러분이 보신 바와 같이 이 법보단(法寶壇)에 모셔서 여기서 이 최상승법을 법회 때마다 들을 수 있도록 해 드리고, 그리고 법회 때마다 명절 때마다 천도를 해 드리고, 매년 음력 3월 16일에는 합동으로 대천도재(大薦度齋, 법보재法寶齋)를 봉행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비명(非命)에 돌아가시지 않는 그러한 조상들도 여기에 모시면 더욱 좋고, 특히 비명에 가신 그러한 영가들은 여기다가 모셔 놓으면 집안의 모든 재앙도 쉬어지고, 그러한 비명에 간 영혼이 좋은 곳으로 가지 못하고 원한에 사무쳐서 자기와 가장 인연이 깊은 아들과 딸, 며느리 그러한 주변을 맴돌면서 '나를 좋은 곳으로 천도를 해 달라'고 그렇게 하소연을 하고 호소를 하지만, 살아 있는 사람과 영혼과는 원칙적으로 언어가 통하지를 안 해서 가끔 꿈을 통해서 뜻을 전달하기도 하고 때로는 매개를 통해서 뜻을 전하기도 하고 그럽니다마는.

그런 영혼은 그 해롭게 하기 위해서 그 집안에 떠나지 아니하고 맴도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원한을 풀어 달라'고, '자기를 좋은 곳으로 천도해 달라'고 가서 한 번 해서 안 들으면 두 번, 두 번 해서 안 들으면 세 번, 열 번, 스무 번 이렇게 하다 보면 자꾸 그 영혼이 자기 몸 주변에 와서 가까이하고 자기 집안에 이렇게 가까이하고 하면 그것이 인간과 영혼의 세계는 세계가 다르기 때문에 괴로움을 느끼고 병원에 가서 진단을 해도 아무 병도 없고, 신경성이라고 하는 진단을 받지만 사실은 그러한 원한에 사무친, 나와 인연이 있는 영혼 탓으로 해서 본의 아니게 오랫동안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또는 가정적으로 괴로움을 받게 되는 예가 참 많이 있는 것입니다.

그럴 때 이런 만년위패(萬年位牌)에 모셔서 좋은 법문을 듣고 원한을 다 풀고 여기에서 편안하게 계시다가 인연이 도래하면 좋은 곳으로 태어나시도록 이렇게 하기 위해서 전강 조실 스님께서는 여기에 만년위패 법보단을 창설하셨던 것입니다.

여러분께서 전국 각지에서 수만 명 이렇게 여기에 참석을 하셔서 그 영혼의 탓으로 해서 최상승법을 만나고, 또 여러분과 같은 최상승법을 믿는 사람을 인연해서 그 많은 원한에 사무친 영혼들이 원한을 풀고 좋은 곳으로 가시게 되니 이것이야말로 온전히 부처님의 은혜요, 전강 조실 스님의 자비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생각이 되는 것입니다.

백중날 우리의 선망부모를 위하고, 우리의 가정을 위하고,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그리고 크게는 전 인류를 위해서 다 같이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이 백중 천도재에 참석을 해주실 것을 간곡히 부탁을 드리고, 여기에 위패를 모시지 아니한 분도 오셔서 임시위패를 모실 수도 있고 이 법회에 참석을 하셔서 동참을 하셔도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그날은 여름 경신년 삼하안거(三夏安居), 여름결제가 해제(解制)되는 날이면서 백일기도 회향일까지 겸한 날인 것입니다. 서로서로 권고해서 많이 참석을 해 주셔서 소원을 성취하시기를 간절히 부탁을 드립니다. (1시간7분38초~1시간20분16초)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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