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살선방 법문2014.04.06 15:43

§ 보살선방에서 하신 법문(보살님들의 여러 질문에 대한 말씀). / 영아행(嬰兒行).

이뭣고?’를 챙기는 것은 무량겁 흘러내려온 생사윤회(生死輪迴)의 그 흐름을 거스르는 거여.
거슬러 가지고 그 뿌리로 돌아가려는 운동이거든 이게. 그러니까 힘이 들 수 밖에 없어.
힘이 들고 어렵지만 이것을 해야만 영원한 생사윤회의 고해(苦海)에서 벗어날 수가 있다. 이러한 부처님의 법문(法門)을 믿고 조사의 법문을 믿고서 우리가 참선 공부를 하게 되는 것이다.
힘이 드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 생각하고, 바른 자세와 호흡으로 여법하게 화두를 들고 계속 참구(參究)하면 결국은 성성적적(惺惺寂寂)하고 순일무잡하게 될 때가 오는 것이다.
**송담스님(No.524) - 94년 동안거결제 중 보살선방에서 하신 법문(94.02.06)에서.

약 21분.


정진(精進)을 하다보면 한없이 환희심이 나기도하고, 한없이 슬픈 생각이 나기도 하고, 한없이 아주 죽어버리고 싶은 그런 생각이 날 때도 있고, 한없이 외로운 생각이 날 때도 있고, 밥을 먹다가도 하염없이 눈물이 줄줄 흐르는 수도 있습니다.
정진을 하다가 보면 그러한 경계가 있을 수가 있어요, 사람에 따라서.

그러나 그러한 경지에 집착(執着)을 하면 안 돼. 그러한 경지가 나타나더라도 항상 정심(正心)으로 생각을 가다듬고, 자세를 바르게 하고 단전호흡을 하면서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를 떠억 들어나가야 하는 거여.

그런 경지에 자기에 모르는 새에 빠져 들어가서 거기에 집착을 하면, 그 정진하는 사람의 마음가짐이 아니다 그말이여.
어떤 경지가 나타나더라도 퍼떡 정신을 차려서 자세가 비틀어졌으면 자세를 바르게 하고, 몸에 긴장이 들어서 굳어 있으면 그 긴장을 풀고, 단정한 자세와 단전호흡으로 바르게 호흡을 하면서 화두를 떠억 들어가면, 금방 그런 경지가 다 사라지고 다시 정상적으로 돌아오게 되는 것이여.

‘왜 이렇게 참선이 안 되는지 답답하다.’ ‘도대체 될 건지 안 될 건지 모르겠다.’ ‘어떻게 해야 공부가 잘 될까?’ 이건 정진하려고 애쓴 사람에게는 누구나 이러한 생각이 들 때가 있는 것입니다.

처음부터서 모든 것이 잘 되어서 순일무잡(純一無雜)하게 잘 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안 된다고 답답하고 한심스럽고 원망스러운-공연히 부처님을 원망하고 모다 조주 스님을 원망하고, 조사를 원망하고 심지어는 이 세상에 나를 낳아 준 부모가 원망스럽고, 이런 생각을 하다보면 한이 없습니다.

안 되는 것은 당연해.
왜 그러냐 하면 무량겁을 업(業)을 지어서 업을 받고 또 업을 지어서 업을 받으면서, 물 흘러가듯이 이렇게 생사윤회(生死輪迴)의 흐름 속에 살아오다가,

‘이뭣고?’를 챙긴 것은 그 흐름을 거스르는 거여.
거슬러 가지고 그 뿌리로 돌아가려는 운동이거든 이게. 그러니까 힘이 들 수 밖에 없어.

먹고 싶은 대로 먹고, 하고 싶은 대로 하고, 그 업(業)으로 인해서 새로운 과보를 받아서 또 그렇게 살아가면, 울다가 웃다가, 좋아하다가 괴로워하다가, 그렇게 그냥 살아가면 별일이 없어.
지옥에 가면 지옥고(地獄苦)를 받고, 천당에 가면 천상락(天上樂)을 받고, 지은 업 대로 받으면 그냥 별일이 아닌데, 이것을 우리는 ‘이래서는 안 되겠다!’

이렇게 해서 영원히 생사윤회를 해 가지고서는 끝이 없으니까 이 생사윤회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려 가지고, 근본-우리의 진여불성(眞如佛性) 자리로 돌아가려 하니까 힘이 들고 어려운 것은 너무나 당연한 거야.

힘이 들고 어렵지만 이것을 해야만 영원한 생사윤회의 고해(苦海)에서 벗어날 수가 있다.
이러한 부처님의 법문(法門)을 믿고 조사의 법문을 믿고서 우리가 참선 공부를 하게 되는 것이다 그말이여.

힘이 드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 생각하고 바른 자세와 바른 호흡으로 여법하게 화두를 들고 참구(參究)하다 보면 계속해서 하다보면,
결국은 화두를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들려지고, 망상(妄想)을 물리치려고 안 해도 저절로 망상이 일어나지 않고 해서 성성적적(惺惺寂寂)하고 순일무잡하게 될 때가 오는 것이다 그말이여.

이것은 본인이 그런 신심(信心)과 분심(憤心)과 중단하지 않고 게으름부리지 않고 꾸준한 노력을 통해서 이것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앞으로 잘 될 거냐 안 될 거냐, 내가 견성을 할 거냐 못 할 거냐, 확철대오를 하냐 안 하냐, 그런 것을 지금 따지고 앉았을 시간이 없다 그말이여.

‘단전호흡이 잘 안 된다.’ ‘몸이 앞뒤로 흔들린다’ 그런 것은,  단전호흡도 하는 방법을 잘 알아 가지고 자연스럽게-무리하게 하려고 하지를 말어.
억지로 시간을 오래 끌어서 억지로 하려 하지 말고 자기에게 가장 알맞고 적당한 길이로-3초에 들이마셨다가 3초 동안 머물렀다가 한 3~4초 동안에 조용히 내쉬고.
이 시간은 한번 들어마셨다가 내쉴 때까지 한 10초나 12초 그런 정도로 하면 누구나 괜찮은데, 자꾸 하다보면 조금씩 조금씩 길어지면 길어진 대로 하고,

그때 상황에 따라서 자기의 체질에 맞도록 자연스럽게 해야지, 억지로 10초씩 해서 30초씩 하자, 억지로 25초씩 해 가지고 1분 동안 하리라, 이렇게 무리하게 하면 안 되는 거여.

‘자식들이 전부 성당에 나가서 걱정이다’하는데, 기왕이면 부모님 종교를 따라서 불법(佛法)를 믿고 정법(正法)을 믿게 되면 천만다행한 일이나, 무슨 인연으로 이렇게 성당에 나가게 된다면 참 그걸 억지로 못가게 날마다 큰 소리를 치고 그럴 수도 없는 거고, 성당에 나가되 바른 마음으로 잘 믿으면 다행한 일이고,

이것을 돌리는 방법은 ‘불교를 믿어라, 믿어라.’ 강요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고,
스스로 불교로 돌아오게 하는 방법은 여러분 자신이 정말 여법(如法)하게 정법을 믿고 여법하게 참선하셔서,

마음가짐이나 말씀하는 것이나 행동하는 것이 자녀들의 눈에, ‘야! 우리 어머니는 정말 불교를 믿으시더니 정말 훌륭하시다!’ 또 어머니를 통해서 불교의 말씀을 듣고 ‘정말 불교는 참 좋은 종교로구나!’ 이렇게 스스로 느껴서 불교로 돌아와야 되는 것이지,

어머니가 자녀들이 보기에 여법하지 못하고, 어머니를 통해서 불교가 별로 좋은 종교가 아니라고 생각이 든다면 돌아올 가망성은 없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입으로 강요하지 말고, 마음가짐으로 행동으로 불교의 좋은 것을 자녀들이 자연히 보고 느끼도록, 그러면 돌아오지 말라고 해도 저절로 돌아오게 될 가망이 있을 것입니다.

‘참선을 하니 몸이-등에서 일어나기 시작해 가지고 온 몸에서 열이 나고, 몸뚱이가 주먹만 하게 이렇게 조여진 것을 느낀다.’고 하는데.
단전호흡을 계속해서 하다보면 이 단전에서 열이 나 가지고 그 열이 차츰차츰 몸으로 번져서 등으로도 이렇게 열이 올라가는 것을 느끼게 되는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도 나쁜 것이 아닙니다.

주천화후(周天火候)라고, 단전호흡을 계속해서 하면 그렇게 되는 것은 순리이고 당연한 것이고,
그래서 밤에도 모다 그 단전호흡을 주로 하는 그런 수행자들은 한데에서 밤을 지샐 때, 단전호흡을 하면 전신에 그렇게 열이 돌기 때문에 추움을 이길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건 하나도 나쁜 것이 아닌데.
‘주먹만 하게 몸이 조여진다’고 한 것은 그 자기의 느낌이겠지요.

열이 나건 그런데 너무 집착하지 말고 자기의 본참화두를 항상 놓치지 않도록 망각하지 않도록 그걸 잘 잡드리 해 나가면 그런 것을 벗어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앉았을 때에 옆구리가 결린다’하는 것은 아마 그 부분이 내부에 좀 좋지 않은 대목이 있어 가지고 아마 그런 것을 느끼는 경우도 있고, 또 뭐 일을 조금 심하게 해 가지고 결릴 수 있을는지도 모릅니다.
아주 심하면-옆구리가 결려서 호흡하기도 어려우면, 파스 같은 것을 붙여 보시기도 하고 그래도 안 되면 병원에 가서 문의를 하실 수밖에 없으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원장스님께 자꾸 물어보기..  몇 말씀을 여쭤보겠습니다.
제가 그러니까 큰 스님 계실 적에, 그 전에도 인제 어딜 가면 산에 같은데 가면 무슨 그 글씨 같은 게 떠오르고 그러는데.... 몰랐습니다. 그랬는데 이 근년에는 이게 마음이나 행동이 모두가 이 삼척동자(三尺童子)도 아주 철모르는 어린네 행동이 되있어요 제가.
그리고 이 우주가 말이에요. 우주가 이 공 같은, 축구공 같은 그런 기분에서 이거 이렇게 놀리고 댕긴다는 그런 기분 하에서 허황심에 항상 기쁜 거예요. 그리고 이제 모든 행동이 아이들 같은 거-뭐 먹고 입고, 엄마가 걱정이 무슨 걱정이 있건 없건 그거 아무것도 모르는 거예요. 이거 그런 경지를  어떻게 담아야 될까요?”

“지금 연세가 어떻게 되셨습니까?”
“연세가 지금 일흔 셋 이지요.”

보살님은-아마 보살님 뿐만이 아니라 불법을 믿고 참선을 열심히 하면 점점 어린애가 되어갑니다. 그 세속에도 연세가 80, 90이 되면 아주 어린애처럼 되어 가지고 그런 분을 더러 볼 수가 있는데,
참선을 열심히 하면 그냥 순수한, 아주 순진한 어린애처럼 마음이 그렇게 깨끗해지니까, 말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이나 행동하는 것이 그렇게 어린애처럼 된 것은 대단히 좋은 증상이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늙어가면서 심술이 뒤룩뒤룩하고 탐심이 꽉 차 가지고, 행동과 언어에 남을 찍어서 삐뚤어서 긁어 잡아당기는 그런 말이 입에서 튀겨져 나오고, 마음에는 탐심이 꽉 절어가지고 닥치는 대로 긁어 담아 가지고 한번 들어가면 나올 줄을 모르고 이렇게 되어서는 아니되는 것입니다.

참선을 정말 올바르게 해 가면 그렇게 마음이 깨끗해져서 욕심도 없어지고, 탐심도 없어지고, 진심도 잘 안나고 어린애처럼 되어 가지고 그렇게 순진하게 된다면 대단히 좋은 것입니다.

도인(道人)의 81행(行)이 있는데, 81행 가운데 영아행(嬰兒行)을 최고로 치는 것입니다.
영아행이라 한 것은, 인자 철없는 한두 살 어린애처럼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기독교 성경에도 ‘어린애처럼 되어야 천당에 갈 수가 있다.’ 그런 말도 있습니다마는, 불교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천진한 어린애처럼 그렇게 마음이 순수하고 깨끗해진다면 그건 대단히 좋은 증상이고 그건 걱정하실 것이 없습니다.

그리고 우주를 가지고-손에다 공 가지고 놀듯이 그런다는데, 사실 우주가 이 태양계를 중심으로 한 이러한 세계가 동서남북 시방으로 무한대(無限大)로 많습니다. 마치 이 공중에 먼지가 날으듯이 우리 현재 천문학에서 발견한 별이 수없이 많지마는 그 몇억 만 배의 별들이 이 무한한 허공 속에는 꽉 차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불교의 진리에서 보면 ‘그런 것들이 다 우리 콧구멍으로 들어갔다 나왔다 한다’고 그런 것입니다. 손으로 맘대로 가지고 놀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정진하는 분상(分上)에는 그런 생각도 가질 필요가 없고, 평범한 마음으로 살아가고 평범한 가운데에 화두를 들고 이렇게 모든 생활을 해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삼매(三昧)에 들 때에는 눈을 뜨고 드느냐, 감고 드느냐’ 이런 질문을 하신 분이 있는데, 우리가 참선 공부해 나갈 때에는 눈을 감고하는 것 보단 눈을 평상(平常)으로 뜨는 것이 좋습니다.

초학자(初學者)는 눈을 뜨면 모든 것이 보여 가지고 그리 정신을 빼앗기기 때문에, 눈을 감고하는 것이 오히려 정진이 잘 된다고 그렇게 느껴지는 수가 있습니다마는, 처음에 습관을 들일 때부터 눈을 평상으로 뜨고 해야 좋습니다.
눈을 감고 하면은 조용하니 공부가 잘 된 것 같지마는 까딱하면 혼침에 빠질 수도 있고 여러 가지로 안 좋으니까 눈을 평상으로 뜨게 하고.

조실스님 녹음법문을 들어보면 ‘판치생모(板齒生毛)’에 대한 말씀을 많이 하셨는데,
‘이뭣고?' 화두를 타 가지고 하면 조실스님 법문에 ‘판치생모’ 법문이 나오더라도 자기의 본참화두인 ‘이뭣고?’를 꾸준히 해 나가는 것이 좋습니다.

맨 처음에 ‘판치생모’ 화두를 타셨다면 아무리 ‘이뭣고?’ 법문을 듣더라도 자기의 본참공안인 ‘판치생모’를 들어야 하는 것이고,
또 어디서 ‘무자(無字)’ 화두를 타셨다면 아무리 어떤 큰 스님네가 ‘이뭣고?’나 다른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 화두 법문을 하시더라도 자기의 본참공안인 ‘무’자 화두를 쭈욱 들어가야지,

이 법문 들었다고 해서 화두를 그리 바꾸고, 저 법문 들었다고 해서 그리 바꾸고, 자꾸 이렇게 바꿔서 하면 안 좋은 것입니다.

그리고 호흡을 들어마셨다가 잠깐 머물렀다가 내쉬면서 ‘이뭣고~?’하라고 제가 말씀을 했는데,
‘이뭣고?’한 그 알 수 없는 의심의 여운이-들어마셨다가 다음에 머물 때까지 그 여운이, 그 때까지 알 수 없는 의심이-그 때까지 있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또 내쉴 때 ‘이뭣고?’

처음에는 숨 내쉴 때마다 이렇게 하지만, 나중에는 꼭 숨 내쉴 때마다 ‘이뭣고?’ ‘이뭣고?’ 안 해도 상관이 없어요.
알 수 없는 의심이 있으면 호흡은 몇 번을 하더라도 한번 화두 든 고대로, 알 수 없는 의심을 관(觀)해 나가야 되는 것이여.
그러다가 의심이 희미해지거나 화두가 없어져 버리면 다시 그때 또 내쉬면서 ‘이뭣고?’를 챙기고 이렇게 하는 거야.

아침에 새벽에 떠억 화두를 한번 들었는데 알 수 없는 의심이 고대로 있다면, 호흡이야 그 동안에 수없이 하거나 말거나 그거 상관이 없고, 공양을 잡술 때도-공양을 이렇게 들면서도 화두 의심이 고대로 있게 되어야 하거든.
공양이 끝나고도 고대로 있어야 하고, 화장실에 가더라도 고대로 있어야 되서,
그래 가지고 성성적적하게 한번 든 화두가 종일토록 있다면 그건 아주 공부가 아주 순숙(純熟)해진 증거니까, 꼭 화두를 숨 내쉴 때마다 자꾸 안 해도 상관이 없다.
화두가 없어지면 다시 또 챙기는 거고.(18분20초~38분49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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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착(執着,執著) ; 어떤 일에만 마음이 쏠려 떠나지 아니함. 사물이나 도리를 고집하여 그것을 버리지 못하는 것. 사로잡힘. 꽉 쥐다.
*정심(正心) ; 바른 마음, 또는 마음을 가다듬음.
*본참공안(本參公案) : 본참화두(本參話頭).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화두(話頭) :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순일무잡(純一無雜 순수할 순,하나 일,없을 무,섞일 잡) ; 대상 그 자체가 순일(純一)해 전혀 이질적인 잡것의 섞임(雜)이 없음(無).
*업(業) ; (산스크리트어:karma카르마) ①몸과 입과 마음으로 짓는 행위와 말과 생각, 일체의 행위.
②행위와 말과 생각이 남기는 잠재력. 과보를 초래하는 잠재력.
③선악(善惡)의 행위에 따라 받는 고락(苦樂)의 과보(果報).
④좋지 않은 결과의 원인이 되는 악한 행위. 무명(無明)으로 일으키는 행위.
⑤어떠한 결과를 일으키는 원인이나 조건이 되는 작용. 과거에서 미래로 존속하는 세력.
*생사윤회(生死輪廻) ; 육도윤회(六途輪廻). 선악(善惡)의 응보(應報)로 육도(六途-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의 고락(苦樂)을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것.
*진여(眞如) ; ①차별을 떠난,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②궁극적인 진리. ③모든 분별과 대립이 소멸된 마음 상태. 깨달음의 지혜. 부처의 성품. ④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청정한 성품.
*불성(佛性) ; ①모든 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부처가 될 수 있는 소질·가능성. ②부처 그 자체. 깨달음 그 자체.
*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 법,문 문) :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참구(參究 헤아릴 참,궁구할 구) ①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드는 것. ②참선하여 화두(공안)을 꿰뚫어 밝히기 위해 집중함. 화두 의심을 깨뜨리기 위해 거기에 몰입함.
*망상(妄想 망녕될 망,생각 상) ; 이치에 맞지 아니한 망녕된(妄) 생각(想)을 함, 또는 그 생각.
*성성적적(惺惺寂寂) ; 정신이 고요하면서도 깨끗하고 또록또록 한 상태.
*신심(信心) : ‘내가 바로 부처다’ 따라서 부처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요, 일체처 일체시에 언제나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공, 이 소소영령한 바로 이놈에 즉해서 화두를 거각함으로써 거기에서 자성불(自性佛)을 철견을 해야 한다는 믿음.
*분심(憤心) : 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도인들은 진즉 확철대오를 해서 중생 제도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왜 여태까지 일대사를 해결 못하고 생사윤회를 하고 있는가. 내가 이래 가지고 어찌 방일하게 지낼 수 있겠는가. 속에서부터 넘쳐 흐르는 대분심이 있어야. 분심이 있어야 용기가 나는 것이다.
*여법(如法) ; 부처님의 가르침에 맞음.
*주천화후(周天火候) ; 단전에 모여 있는 신기(神氣)를 따뜻하게 하여 아래에서부터 위로 퍼지게 하고 그래서 온몸이 열기로 가득 차게 하는 도가 수련법.
*한데 ; 사방, 상하를 덮거나 가리지 아니한 곳. 곧 집채의 바깥. 노천(露天).
*잡드리 ; ‘잡도리’의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그 대책.
*삼척동자(三尺童子) ; 키가 아직 석 자밖에 자라지 않은 아이라는 뜻으로, 철모르는 어린아이를 이르는 말.
*도인(道人) ; 깨달은 사람.
*영아행(嬰兒行) ; 젖을 먹을 나이의 어린아이의 행동.
*정진하는 분상(分上)에는 ; 정진하는 수행자에 알맞은 입장에 따르자면.
*평상(平常) ; 특별한 일이 없는 보통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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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싼또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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