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산무이선사선경어(博山無異禪師禪警語) (9/18) 박산무이선사의 선경어.

**전강선사(No.380)—박산무이선사 선경어(9) (갑인.74.01.23.새벽) (전380)

 

약 29분.


청원연우리(靑原煙雨裏)에  비진기쇠의(費盡幾衰衣)요
나무~아미타불~
낙양춘색다(洛陽春色多)하고  가무만창시(歌舞滿窓時)니라
나무~아미타불~

청원연우리(靑原煙雨裏)다. 푸른 언덕 연기와 빗속에서,
비진기쇠의(費盡幾衰衣)냐. 힘을 허비해서 얼마나 옷과 삿갓을 찢기고 그 천신만고(千幸萬苦)를 겪었느냐.

우리 학자(學者)가 고향, 부모처자 다 이별해 버리고 도(道)를 닦으러 나서서 고향땅은 생전 인자 멀어져 버리고 버려 버리고, 타향 객리(客裏)에 나와서 도(道) 닦는다고 댕기면서, 밥도 빌고 저 별별 짓 다하면서 그 고행 다해 가면서 얼마나 삿갓을 찢기고, 머리에 쓴 모도 의관을 찢기고, 옷을 모도 떨어진 옷을 입은 놈도 모도 다 쇠진해 버리고 파(破)해 버리고 그 얼마나 고진(苦盡), 고진 괴로운 짓을 다했느냐 말이여.

참선해서 도 닦는 도학자의 그 고생, 괴로운 고행이여. 이걸 한번 생각해 봐라.
보통, 좋은 집에서 좋은 밥 먹고 아주 그 무슨 편안하게 안락하게 진락(趁樂) 좋은 낙(樂), 그 좋은 즐거운 낙, 일기진락(一期趁樂)이 고인(苦因)이냐? 그 낙 받고 좋은 고놈이, 먹고 놀고 광음(光陰)을 소비허고 시주것 먹고 그럭저럭 지내고 노는 놈이 그놈이 그대로가 무간지옥(無間地獄)인 줄을 왜 깨닫지 못하냐? 그대로 지옥이여. 지옥밖에 갈 것 없고.

중 되면은 고진(苦盡), 고(苦)를 다하고. 애를 무척 써서 그 백억천만 겁(劫)에 보지 못했던 알지 못했던 나를 내가 찾을라고 나서서 그 어떻게 그 먹여 주어야 하니, 이놈 목숨을 구해 주어야만 허니 먹여 주기 위해서 밥도 빌면서 그 이놈 공부를 헐라매, 그 얼마나 괴로운...
고행(苦行)에 발도심(發道心)이고, 괴로운 것을 행하는 데서 도(道) 마음이 발(發)하고, 아소심(我所心)이 모도 없어지는 곳에서 도가 되는 것이여. 고행이 아니면은 아소심이, '내가 제일이다' 하는 마음이 즐거운 데서 항상 떠나지 않고 아소심(我所心)이 길어나는 법이여.

그 고행을 막 하고, 천행(賤行)을 막 하는 데서 무슨 놈의 아소심(我所心)이 길어나겠느냐? 항상 하심(下心)만, '내가 아무것도 아니다'는 하심만 항상 길어난다. 그게 그게 도학자(道學者), 도행자(道行者)다.
아주 호귀(豪貴), 호걸스럽고 귀여운 것이 도학자여? 거 도학자 아니여. 멀쩡헌 것이여, 그건. 아무것도 아닌 것이여. 호귀 속에는 아무것도 여망(餘望)이 없어. 호활스럽게 잘 먹고 잘 입고 호사하고 놀고 지랄하는 것은 지옥고(地獄苦)밖에 갈 것이 없어. 아무것도 여망이 없는 거여.
괴롭고 그 모도 난행(難行) 능행(能行)하는 것이, 어려운 행(行)을 능히 행(行)하고 그것이 그 도(道)가 그 속에 들어 있고, 그 속에서 지지망(至之望)이, 도를 이룰 그러헌 참 여유가 그러헌 원력이 그 있는 것이지.

낙양춘색호(洛陽春色好)다. 낙양(洛陽)에는 춘색(春色)이 좋구나. 그 그렇게 터억 공부를 해 들어갈 것 같으면은 어렵고 또 어려운 지경에 이르러서 한번 고비를 넘겨서 툭! 깨달라 놓고, 확철대오(廓徹大悟)를, 대오를 해 놓고 보아라. 그 경계가 어떻드냐? 낙양춘색다(洛陽春色多)다. 낙양에는 춘색이 많구나. 봄빛이 많다.
낙양, 낙양(洛陽)이라 하는 것이 어디냐? 내 근본 고향, 내 깨닫지 못했던 근본 고향에 들어가 봐라. 춘색(春色)이 많으니, 춘색 많은 가운데에는 봄빛에 일체 화발(花發), 꽃도 피고 잎도 피고 새도 울고 얼마나 좋은 시절이냐. 그 좋은 시절 가운데에 얼마나 그 풍요한 건설적이냐 말이여. 아무것도 부족한 것이 없이 모도 갖추어져 있는 춘광(春光), 춘색다(春色多)다. 봄빛이 많다.

가무만창시(歌舞滿窓時)니라. 그 가무(歌舞)! 참 그대로 춤추어. 춤을 추면서 아무, 일 마쳤으니 뭔 일이 있나? 생사(生死) 일이 제일 무서운 일인디 생사 일을 마쳤으니, 죽고 사는 일을 마쳤으니 뭔 일이 있나? 아무 일 없다. 그저 검무나 일 없는 춤이나 추고, 그 가무만창시(歌舞滿窓時)다. 노래 부르고 춤추는디 명월(明月)은 창(窓)에 가득한 때로구나.
얼마나 부귀(富貴)며, 얼마나 그 부귀가 보통 부귀냐? 보통 행락(行樂)인가? 아! 이러헌 시절이 확철대오할 것 같으면은 저절로 도래해서 생사 없는 시절이 온다 말이여. 그러니 도 안 닦고 뭘할 것이냐?


주공부(做工夫)허되, 공부를 짓되 최요긴절(最要緊切)이다. 가장 신심 가운데에서 긴절(緊切)이 있어야 한다. 최요긴(最要緊)이다. 그 절대 믿는 가운데에서 긴절(緊切)헌 것이 있어. 아주 기가 맥히게 그 친절(親切)헌 것이 있어.

시개절자(是個切字)다. 그 친절이라는 것은 뭐냐? ‘간절 절(切)’ 자다. 간절(懇切)한 것이 있어야 한다. 간절허다.
내 자식을 어린것을 내가 낳아 가지고서는 어따 두고서 애미 찾는 걸 두고서 뚝 떼 버리고 나왔는데, 한시도 그것이 눈앞에 보이어 그 마음이 떠나지 않고 간절하다, 보고 싶은 마음이. 불쌍하고 처량한 마음이. 내가 낳아 놓고 그걸 떼놓고 왔으니 간절한 마음이 항상 거가 붙어 있다. 어린 자식 생각나는 마음.

그러헌 화두 역시, 내가 날 찾는 ‘이뭣고?’가 ‘이뭣고?’ 헌 이 화두가 그와 같이 간절해야 할 것이다. 항상 어린 자식 떼어놓은 것처럼 간절한 마음이 복장에 우회(憂懷)해서, 복장에 가서 그만 맺혀져 있어서, 풀어버릴래야 풀어버릴 수 없는 지경이 그게 간절한 지경이다. 간절(懇切)한 마음이 있어야만 그것이 공부허는 사람에 갖추는 마음이다.

절자(切字)가 최유력(最有力)하다. 그 ‘간절 절(切)’ 자는 가장 힘이 있는 것이다. 잠도 그놈이 쳐 없애 번지고, 망상도 그놈이 쳐 없애 번지고, 일체 해태심(懈怠心)도 쳐 없애 버리는 놈이다. 모도 해태심과 그 망상심과 잠이 어디서 오냐?
절(切)자 없는 디서—생사(生死) 무서운, 그 험악한 무서운 죽고 사는 생사(生死), 그놈을 두고서는 그럭저럭, 그저 그만 그럭저럭 시주것이나 마음대로 그만 먹고 싶은 대로 잔뜩 퍼먹고는 잠이나 잘라고, 구석구석이 잠이나 잘라고. 그것이 어디서 오는 것이냐? 게을고 ‘간절 절(切)’ 자 없는 디서 오는 것이다.

‘간절 절(切)’ 자가 있고 참말로 생사가 두렵고 무서워 봐라. 그 감옥이 무서워 봐라. 그놈의 감옥은 지옥 감옥이라는 것은 이 현대 감옥과 얼매나 그 거리가 있나 말이여. 기가 맥히지. 그러헌 무서운 감옥이 네 눈감으면, 영 눈감아 번지면, 송장 되아 버리면은 그놈의 감옥 속에 들어갈 걸 생각해 봐라.
송장 이까짓 놈의 것은 몸뚱이 내던져 번지고 송장 끌고 댕기는 주인공, 네 보든 놈, 눈깔로 보든 놈. 눈깔이 봤나? 내가 봤지. 그놈이 감옥에 들어가서 다시는 나올 기약이 없이 갇혀 가지고서는, 그저 죄고(罪苦)만 받을 것을 한번 생각해 봐라. 어찌 ‘간절 절(切)’ 자가 없을 것이며, 어찌 해태심(懈怠心)이 날 것이냐?

해태(懈怠)가 생즉(生則), 그러헌 ‘간절 절(切)’ 자가 없으면은 게으른 마음이 난 즉은 방일종의(放逸縱意)허다. 방일허는 법이며, 그럭저럭 노는 법이며, 뜻을 놓아버리고 여기저기 돌아댕김서 그저 얘기나 하고 그럭저럭 지내는 법이다. 틀림없다.
그놈 ‘간절 절(切)’ 자가 없기 따문에 그런 거다. 아주 바로 믿어서 진절(眞切)이 없기 따문에 그런 것이다. 그저 그만 꺼떡 그만 어디 백지(白地) 돌아댕김서 그만 아무 일도 없이 어디 갈라고나 하고, 밤낮 그 마음뿐이지, '어디를 갈꼬?' 휙휙 돌아댕겨.
‘간절 절(切)’ 자로 도 닦을 사람은 행여나 어디 갈까 싶지? 뭣허러 가냐 말이여? 거 앉어서 그저 되파야지!

서불휴(誓不休)지. 이놈을 깨닫지 못하고 그럭저럭 방일(放逸)혀? 종의(縱意)를 혀? 뜻을 놓아 버려? 절대 안 된다. 미소부지(靡所不至)지. 인자 그래 가지고는 그만 방일종의(放逸縱意)할 것 같으면은 절(切) 자, ‘간절 절(切)’ 자가 없기 따문에 무소부지(無所不至)여.
돌아댕김서 그저 이럭저럭 지내는 거기에, 씨잘데없이 이놈의 그 절지, ‘간절 절(切)’ 자, 긴절(緊切) 자, 긴절헌 ‘간절 절(切)’ 자 그놈 그놈이 없기 따문에 무소부지(無所不至)여. 안 간 곳이 없이 돌아댕김서 종의(縱意)를 허고 놀기나 하지.

약용심(若用心)이 진절(眞切)즉, 만약 화두허는 마음이 간절헌즉, 그 간절해서 알 수 없는 마음, 내가 나 깨닫지 못헌 그 참 그 마음 하나가 우회(憂懷)를 해 가지고서 화두가 따악 품에 들어와서 있으면은, 방일해태(放逸懈怠)가 하유득생(何繇得生)가? 무엇이 어디 어디 날 것이냐, 어디부터 나? 어디서 나와? 놀기나 허고 해태심이 어디서 나올 것이냐 그 말이여.

당지(當知) 절지일자(切之一字)는, 마땅히 알거라, 간절헌 이 한 글자는 불수부도고인전지(不愁不到古人田地)니라. 고인전지(古人田地)에 이르지 못할까 두려워허지 말아라.
고인전지(古人田地)라는 건 깨달은 곳인디, 깨닫지 못할까 두려워허지 말아라. 네 ‘간절 절(切)’ 자만 가지고 항상 공안만 자꾸자꾸 거각(擧却)해 봐라. 생각해 봐라. 어디를 가는가? 고인전지(古人田地)밖에는 갈 곳이 없어. 여래지(如來地)밖에는 갈 곳이 없어. 확철대오허는 그것밖에는 없다 말이여.

왜 그걸 그렇게 한바탕 안 하고, 그럭저럭 그럭저럭 방일(放逸)허고 종의(縱意)를 허느냐 말이여. 그 헐 배냔 말이여? 그놈의 방일종의(放逸縱意) 따문에 그 어디 가고 싶고, 가면 꺼떡허면 그 나가고, 꺼떡하면 가고 싶고 그저 마음을 놓고 지내고 그만 그러다 보니 일생 휙 가버리지.
탄식 밖에는 나올 거... 마지막 안광낙지지시(眼光落地之時)에, 눈 광명 땅에 떨어질 때 탄식밖에는 없어. 그놈의 탄식 뭐 헌들 소용이 있나? 묶어가고 잽혀가고 끌려가고 쇠꼬쟁이에 쇠갈구리에 끌려가지 뭐 소용이 있나? 염라국(閻羅國) 밖에는 갈 게 제가 어디 있어? 살인강도 헌 놈이 잽히면 그만 감옥 밖에 갈 것 더 있어?
살인강도 해 놓고는 한때도 마음 쉴 때가 없이 가슴 가운데 공포, 안 잽힐라고 두근두근 두근두근 뛰고 있지. 그런 거, 그런 고생을 헌다 그 말이여. 그러헌 살인강도켕이는 살인강도를 살릴 마음이 항상 있는 어진 사람은 간 곳마다 그저 그 안락(安樂)하지. 뭐, 뭐 두려울 것이 뭔고?

불수생사불파(不愁生死不破)니라. 생사를 파(破)하지 못헌 것을 근심허지 말아라. 절지일자(切之一字)만 가지고 간절히만 해 나갈 것 같으면 고인전지(古人田地)에 이르러, 바로 고인전지에 이르며, 생사를 두려워헐 것이 뭐가 있나? 뭐 생사가 있어야지? 어찌 그러헌 도를 왜 안 닦을까 보냐?
왜 그런 도를 닦지 않고 일순간(一瞬間)인들, 한 일향간(一餉間)인들, 잠깐 동안인들, 해태심(懈怠心) 그 방일종의(放逸縱意)헌 마음을 가지고 그래 지내갈 것이냐? 한바탕 금옥(金玉) 같은 광음(光陰)을 그놈을 참 조금도 허비허지를 말고 한바탕 해봐라. 꼭 그렇게 해야 할 것이니라.


『초심(初心)』을 좀 모도 해 줄라 하니 아직 기운이 부대껴서 못허겄어. 『초심(初心)』을 알아야 혀. 초심행(初心行)을 알아야 혀. 처음부텀 들어오면은 이 행자(行者)들이 초심행을 알아야 하는디, 『초심(初心)』을 가르키도 않고 막 그만 더러 세워 놓으니까, 그것을 모르면은 안 되아.
그저 그만 도문(道門)에 들어올 것 같으면은 들어옴서부텀 그 최상, 이 최상설이거든 이게 최상승설(最上乘說)이여. 최상 설법, 참선(參禪)허는 법이여. 참선부텀 배워 알려 놓고 차츰차츰 행자 행은 그 가운데... 그 어서 왜 그러냐?
아! 생사(生死)가 급한디 생사가... 행자는 안 죽나? 금방 난 놈이 금방 난 어린아는 안 죽나? 금방 난 어린 자식이 금방 낳았지마는 금방 죽을 수 있으니, 그거 도부텀, 알릴 거부텀 알려 놔야 하지, 별수없단 말이여.

이 참선법은 검은 것, 흰 것만 알면은 참선허는 법인디, 그 뭐 행자인들 못 가르킬 게 뭐 있나? 요새 행자라는 것은 모두 배울 것 다 배워 가지고는 아! 모도 대학까장 졸업해 가지고 들어왔는데. 뭐 그런 대학생 같은, 뭐 말해서 못 알아들을 것이 뭣이 있으며, 가르켜 주면은 못 닦을 것이 어디 있는가 말이여. 그런게 대번에 그만...
저 인도(印度)도 그렇데. 인도도 가사(袈娑)가 무슨 차별 없어. 대종사 가사가 있고, 비구승 가사가 있고, 25조가 있고, 그거 하나도 없데. 그대로 오조가사(五條袈裟), 오조뿐이여. 오조뿐이고, 또 무슨 차별 차등 없어. 계(戒)도 5계뿐이고. 250계니 500계 그것도 없고. 그대로 따악 되어 있다 그 말이여.

모도 중간에 나와서 모도 그만 이놈의 법식이 천 가지 만 가지 모도 변경되어 가지고 한국에 와서는 '무당 불법'이 되어 가지고는, 그만 그저 재(齋)나 재법(齋法)헌다고, 재 들면은 재(齋)한다 하고는...
부처님 당시에 우전왕(優塡王)이 불상(佛像)은 조성했는데, 불상 조성해 놓고는 다맛 부처님께 절했지, 거다 뭐 채려놓고 뭣헌 것 있나? 부처님은 참 부처님은 저 사왕천에 가서 어머니 제도허러 올라갔는데, 사왕천에 가 계시니까 당최 부처님을 뵐 수가 없으니까 하도 보고 싶으니까, 우상(偶像)을 조성, 나무로 조성을 해 놓고 부처님 앞에 절을 했어. 그것이 불상(佛像)을 조성헌 법이고.

당시에 무슨 부처님 당시에 뭐 채려놓고 무슨 음식 맨들어 놓고 그것도 없고, 없어. 돌아가신 뒤에는 우상(偶像)은 숭배를 했는데, 우상 앞에 무슨 갖다가 놓는 건 있되, 정성으로 갖다가 쌀이면 쌀, 돈이면 돈, 그대로 놓아. 그대로 놓으면은 그 돈을 그대로 갖다가서 사중(寺中)에 쌀 내루아다가 밥해서 그 대중이 먹고 도(道)를 닦아. 그것이 재공(齋供)이고 재미(齋米)여.
그래야 공(功)이 된다는 거여. 공덕이 한량없어. 기도 들어오면 기도 돈 그놈 갖다가서 쌀 팔아서 대중이 먹고 도 닦고. 그럼 복이 기가 맥히지.

또 돈 그놈을 갖다가서 부처님 모시는 집 같은 디, 어디 떨어지면은 기왓장도 이고 우새(雨塞)도 허고. 비 새면 비도 못 새게 맨들고 벽도 바르고, 그러니 그것이 한량없는 복이여. 땅도 사 가지고는 절 땅 모도 맨들아서 거다가서 건설허고 그것이 공덕이여.
철물(鐵物)이 없으면은 그런 그릇 같은 거 모도 사서, 철물 같은 거 사면은 유기철물(鍮器鐵物)은 신견고(身堅固)다. 철물을 모도 사서 들여서 부처님 앞에 쓰면은 세세생생(世世生生)에 몸뚱이 병이 없이 견고헌 몸을 받는다고 그랬어.
창호도배(窓戶塗褙)는 면팔난(免八難)이다. 창호(窓戶), 종이를 사다가서 벽을 모도... 기도 돈 가져온 놈 그 성금 가져 온 놈을 가지고는 애껴서 창호지를 종이를 사다가서 벽지를 모도 바르면은 면팔난(免八難)이다. 8가지 난(難)을 면한다. 밖에 바람이 모도 못 들어오게 모도 막아 잘 발라 놓았으니 그 공덕으로써 창호도배(窓戶塗褙)는 면팔난(免八難)이다.

아! 그 바로 모도 말씀을 해 놓았거든. 그런데 공연히 이건 무슨 일시에 무슨 갖다가 과자나 뭐 떡이나 뭐 사다가 그냥 벌려 채려놓았다가 나눠 먹는 것을 그것을 불공법(佛供法)인 줄 안다 말이여. 그걸 기도법인 줄 알고. '잘 차려놓았다' 하고. 이렇게도 까마득 모르는 놈의 그 사람들을 갖다 속이는 것이지, 그 무엇이여?
잔뜩 퍼 채려놓고는, 왼통 부께미를 모도 채려서 늘어놓고는 그래 놓고는, “으 아~ 뚱땅 뚱땅” 절이나 하고 춤추고, 건달바(乾闥婆)가 한 거. 중이 어디 그런 거 헌 건가?

가만히 갖다 올려놓고서, 가져 온 대로 갖다 올려. 쌀이면 쌀, 배차(배추)면 배차, 가지면 가지 같은 거 농사지은 것이니께 갖다 논다고 갖다 놔. 갖다 놓으면 그놈 그대로 내루아다가, 반찬을 장만하고 밥을 지어서 대중이 먹고는 그 대중이 도(道)를 닦아.
그 대중이 도(道)도 닦지 않고 허송방일(虛送放逸)이나 허고, 그럭저럭 그만 돌아댕기면서 놀기나 하고, 시주것이나 씨잘데없이 모도 그만 허비허고는 돌아댕김서 죄나 퍼짓고, 그런 것은 그건 절대 참 아무것도 아니지!

그러기 따문에 참선방 참선허는 그 원융대중(圓融大衆)에 모도 공양(供養)할라고 애쓰지. 의미가 그런 것인디 그런 것부텀 알아 가지고 신도가 되어야 하고. 또 그 그러헌 법을 절에서 그 잘 알아서 모도 복(福)을 지어 주어야 한다 그 말이여. 시주(施主)를 복을 지어 주어야 한다 그 말이여.
그렇게 창호도배(窓戶塗褙)와 유기철물(鍮器鐵物)과 우새(雨塞)허는 법, 아! 이렇게 모두 잘 써 주고, 그 돈을 갖다 남을 것 같으면 남은 돈을 또 갖다 인자 보시바라밀(布施波羅蜜)도 허고, 방생바라밀(放生波羅蜜)도 생명도 살리고, 이러니 그 기도 복이 한량없다는 것인디, 그 돈을 갖다 그렇게 써 주는 것이 복이 무진장(無盡藏)이여. 세세생생에 그만 군왕(君王) 대신(大臣)도 되고 허지마는.

군왕 대신 같은 거, 임금 같.. 뭐, 그런 부귀 백만장자 부귀만 되면은 그것은 복진타락(福盡墮落)이여. 복 많이 지어 가지고 복 받다 도로 타락이 있으니까 무루복(無漏福)을 지어야 하는 것이거든. 이건 무루복이거든!
부처님 정법문중(正法門中)에 들어와서 도 닦는 도학자한테 공양을 올렸고, 부처님 집을 모도 중수(重修)허고, 땅을 사게 만들고, 창호도배를 허게 되었으니, 이거는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니 그 무주상보시라는 건 타락이 없어. 복을 한번 지어 놓을 것 같으면은 끝없이 타락 없이 그만 정법을 해탈(解脫)하는 무루복이여.

아! 여그 오늘 기도님, 따님 기도를 드리시더니, 고불궁이 또 인자 당신 기도를 드린다는 것이 그 기도 의미가 그런 것이여. 그 오늘 아침, 어저께 입재(入齋)해 놓고 오늘 아침에 정식 기도를 한번 이래 드린 거, 일원일배(一願一拜)지. 뭐 밤낮 뚜들면 뭣혀?
이러고는 인자 기도 드린 대중은 아! 나가서 인자 도(道) 닦을 것 아니여? 지금 늘 화두(話頭) 허니까. 어째?

내일 회향(廻向)헌다고 허지마는 설판(說辦)을 해 놓았으니 인자 여름 공부에 항상 아침마다—인자 설판재주(說辦齋主)니까 ‘법보재자(法寶齋者) 정법문중(正法門中) 신심견고(信心堅固) 영불퇴전(永不退轉) 화두순숙(話頭純熟) 의단독로(疑團獨露) 확철대오(廓徹大悟) 광도중생(廣度衆生)’ 아! 그래 주면 그거 그게 복이 안 될까? 그렇게 알으셔야 한다 그 말이여. (처음~28분33초) (끝)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