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산무이선사선경어(博山無異禪師禪警語) (1/18) 박산무이선사의 선경어.

**전강선사(No.367)—박산무이선사 선경어(1) (갑인.74.01.10) (전367)

 

약 34분.


족천천간수(足穿千澗水)허고  신파만산운(身破萬山雲)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상사귀거로(想師歸去路)요  계자낙분분(桂子落紛紛)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도학자(道學者), 우리 도 닦는 도학자, 참 고행자(苦行者)다. 고(苦)를 행(行)한다.
그 좋은 고향 · 부모 · 형제 · 친척 · 벗들을 다 이별해 버리고 여의어 버리고 홀로 척 나와 사방 그 모도 운산(雲山) 첩첩한 산으로 이렇게 댕기면서 집도 절도 없이 족답천간수(足踏千澗水)허고, 천간수(千澗水)를 모도 밟아.
신파만산운(身破萬山雲)허고, 몸뚱이로는 만산(萬山) 구름을 모도 헤치고 이러고 댕기면서 도를 닦는다.

어디 무슨 티끌만 한 것도, 고향에 무슨 뭐 부모 은혜 무슨.. 모인 것이 그것이 뭣이여? 부모니 처자니 자식이니 그것, 이 몸뚱아리 이것 모도 모아져 가지고는 생사죄업(生死罪業)만 짓는 놈의 악연(惡緣)이여. 그 수악한 놈의 악연 속에서 그 안 여읠래야 안 여읠 수가 없어. 살아 보면은 저절로 그만 악연이여. 그것이 악연이라.
어머니니 아버지니 자식이니 손자니 친구니 뭣이니 맨 그저 모아 봤던들, 세상에 그저 모도 그만 죄업만 퍼 짓는 놈의 악연이여. 그놈을 안 여윌래야 안 여읠 수가 있나? 그거 한번 헤쳐 여의어 버리고 척 나서서 만산운(萬山雲)을, 몸뚱이로 만산 구름을 헤치면서 도학자(道學者), 닦아 나가는 도학자. 천상천하에 어디 걸리며, 그 얼마나 참 청빈(淸貧), 가난한 것을 즐거워하면서 도를 닦는 학자다.

심사귀거로(尋師歸去路)다. 스승을 찾아서, 나를 위해서 도(道) 바로 일러줄 스승을 찾아서 사방 댕긴다.
그래, 스승 찾아댕기는 것은 몰라 그러허되, 도학자가 스승도 안 찾고 돌아댕기면서 제멋대로 댕기면서 그 소용없어. 뭣허는 것이여? 쓰잘데없이 산중(山中) 그 투한(偸閒) 생활을, 한가한 것이나 도둑질허고 한가한 것이나 모도 오입허고 그러고 댕기면 그 뭣할 것이냐 그 말이여. 항상 갔다왔다한 곳에 나를 위해서 정법(正法)을 일러주는 스승, 참 꼭 찾아야 한다.

계자낙분분(桂子落紛紛)이다. 그 스승은 또 그러헌 학자, 제자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어쨌든지 옳은 학자, 옳은 제자 만나기를 참 기가 맥히게 기다리고 있다. 철두철미하게 도를 믿어서 도 배우러 나온 학자, 자연히 서로 그러헌 옳은 스승을 만날 수 있는 것이다.
스승 못 만나면은 큰일이여. 스승 없이 허는 참선은 아니여. 여지없는 스승을 찾아서 스승께 배워야 활구학자(活句學者), 활구는 확철대오를 허지. 못혀. 암만 자기 혼자 그렇게 애를 써봤자 그거 안 되야. 활구(活句)라는 것이 이상스러워.
그래서 만고(萬古) 역사 유래(由來)로 스승 없이 깨달은 자는 생이지지(生而知之)는 있지마는 스승 없이 활구참선(活句參禪) 깨달은 자는 없어.

그 뭐 스승 없이 저 혼자 해 들어가다가 그 뭐 처백혀서, 모도 그 공(空)에 떨어져서 해 들어가는 것은 제가 모두 작가하고 집을 짓고 앉아서, 그 또 의리(義理)에 떨어지고, 사선(邪禪)에 떨어지고, 묵조(默照)에 떨어져서 그건 선(禪)이 아니여. 생사해탈도 못허고 각(覺)도 없고 안 되는 법이다 그 말이여. 되는 것을 된다 하지, 안 된다고 헐 것이여?

어림도 없어. 중 되어 가지고서는 걸망이나 짊어지고, 운파천간수(雲破千澗水) 해 나가면서 무슨 돌아댕김서 이럭저럭 지내면 그것 같이 이것 참 헛된 허두한(虛頭漢)이라 했어. 허한(虛漢)이여, 그거 쓸데없는 것이여. 공송세월(空送歲月)을 허며, 시은(施恩)만 지으며. 오히려 고향 부모 여의고 떠난 것이 잘못이여.
뭣이여 그거? 차라리 부모나 모시고 있는 것이 옳고, 세상에서 자식이나 낳아서 세상 전통해 주는 것이 옳지, 혼자 몸뚱이 척 나와 가지고는 그만 산수(山水) 간에 돌아댕김서 그럭저럭 그럭저럭 뭣할 거여? 그게. 그것 참 크게 주의해야 할 것이다.

이것도 좀 설(說)해 보고 저것도 좀 설(說)해 봐야지, 한 가지만 가지고 헐 수 없어.
시처(施處)라, 여러분들이 이렇게 모여 있는디, 근기(根機)가 다 달른디 한 가지만 확철대오(廓徹大悟)헌 법만 가지고 설할 수 없어서 이번 또 법문은 거 무슨 순치황제 모도 중된 거, 뭐 이럭저럭헌 거, 횡설수설 가지고 했지마는, 오늘 아침에는 똑 참 도학자에게 적절한 법문이여. 도 닦는 도학자에게는 적절헌 법문을 좀 헌다 그 말이여.


선경어(禪警語)라! 선(禪)을, 확철대오(廓徹大悟)하게 헌, 깨우쳐 주는 법문이다. 참선에 중요헌 설법이다 그 말이여.

공부를 짓되, 참선 공부해 나가는 사람이 참선법문 들어야지, 참선법문 밖에 뭘 들을 것인가? 인과(因果) 등어(等語)가 뭣이여 그거? 죄 지으면 죄 받고, 선(善) 지으면 선(善) 받고, '장차 부자 된다' 소리만 허면 뭣혀? 그녀러 것. 그것 가지고는 어디 뭔 아무 소용이 있어야지.
죄 짓는 사람은 '죄 지으면 못쓴다'는 말 듣고 죄 안 지으니까 착한 일을 허니까 무척 참 좋지마는, 착한 일 좀 해 가지고서는 선과(善果)를 받으면은 선업을 받으면은 그거 무슨 그거 구경법(究竟法)이래야지, 필경에 선보(善報) 받고는 또 타락하는디. 복보(福報) 받고는 복 다 받고 타락하는디. 그 소용이 없어.

똑! 타락 없는 법은 참선법 밖이여. 그러기에 참선 설법을 많이 들어놔사 타락이 없는 법이여. 견성(見性)은 못허드래도 참선 설법을 잘 들어. 옳게만 들으면은 그만 그 참선법 언하(言下), 듣는 데서 중생업이 다 녹아져 버려. 그거 뻘로 들으면 안 된다 그 말이여. 잠이나 스르르르 자면서, 설법 들으러 와서 잠 잘라고 설법 듣냐 그 말이여. 참, 설법 들을 때 자울지 말란 말이여.

공부(工夫)를 짓되, 최초(最初)에 요개파생사심(要箇破生死心)이니라. 생사심을 파(破)하기를 요구헐 것이니라. 생사심(生死心).
이 몸 꼭 죽어서 생사가 아니라, 이 몸뚱이 가지고도 밤낮 생사심 뿐이여. 난 것은 생(生)이고, 멸(滅)헌 것은 죽는 것이여. 내 마음이 났다가 없어졌다 한 것이 그것이 생사(生死)여.

이까짓 몸뚱이가 무슨 생사가 있나? 아! 몸뚱이는 송장인디, 아! 물질 물건인디, 이까짓 몸뚱이가 무슨 뼉따구 살이 어디 죽었다 살았다 한가?
이 몸뚱이 가지고 댕기는 주인공, 주인공이, 그 내 자성(自性)이, 내 마음이, 그놈이 뭔 마음이 일어나든지 일어날 때는 생(生)이고, 또 일어날 때는 멸(滅)헐 근본이 없어지는 것은 사(死)다 그 말이여. 그 생사심(生死心)이 파(破)해지기를 요구할 것이다.
그놈의 마음 따문에, 중생 생사심 따문에 무척 한량없는 죄를 퍼 짓고, 생사죄를 퍼 짓고, 생사 악취(惡趣)에 떨어지는 것이다 그 말이여.

견경(堅硬) 간파세계신심(看破世界信心)이, 굳게 굳게 세계와 신심이—이 세계, 모두 나열된 건설된 이 세계, 하늘과 땅과 우주만물 삼라만상 건설 세계, 또 그 가운데에 내 마음 몸뚱이, 내 몸뚱이가 있고 내 마음이 있지 않는가, 그 세계 우주 속에.
그 우주 세계에 일체 산하대지와 만상삼라(萬象森羅)와 정여무정(情與無情) 다 전부 합하고, 그 가운데 내 몸뚱이 그 전체가 실시가연(悉是假緣)이다. 그 거짓된 것이다. 그대로 그 거짓 모도 이루어진 것이다.

색(色)과 상(相)으로써 이렇게 이루어져 있다마는 어디 그 본래 있는 것이냐? 거다가 상(相)으로 보고 색(色)으로 모도 빛깔로 보고 애착을 허는 것이 중생이다. 어디가 그 모양다리가 본래 있는 것이며, 거가서 무슨 빛깔이 푸르다 누르다 흰 것이 있다 한들 어디 그 본래 있는 것이냐? 본래 그대로 봐라, 어디 있나? 아무것도 없는 가연(假緣)이다. 거짓된 것이다 그것이.

무실주재(無實主宰)다. 주재(主宰)가 없어. 영원불멸한 주인공이 없어. 몸뚱이니, 내 마음이니 헌 것도 그 무슨 그것이 어디 무슨 실재가 있어?
마음도 이놈 일어난 놈, 멸한 놈, 일어났다 멸했다 일어났다 멸했다 어디 그 자취도 어디 있어? 일어났다 멸했다 허는 것이 어디 있어? 이 몸뚱이는, 이거 사대색신(四大色身)은 어디 뭣이 있어? 본래 있어? 없지. 왜 그대로 못 봐?

그대로 척 본래 없는 것을 척 보는 놈은 그놈이 무슨 놈이여? 그놈도 없는 놈인가?
왜 그놈이 응, 전연 없어. 무상(無相)까장도 없는 놈이여, 그놈도.

허지마는 제법개공지처(諸法皆空之處)에, 일체법이 다 공(空)헌 곳에 가서 영지불매(靈知不昧)라는 것이, 그 영지불매라는 게 그게 신령스럽게 아는 놈이, 아! 그놈이 무엇이냐 말이여?
'없다'고 영원이 없다고 볼 수 있나? 또 어디 '있다' 하니 거 뭣이 어디가 있어? 상(相)이 있어? 뭣이 빛깔이 있어? 원 참!
그러니 있는 놈도 거기는 붙들 못허고, 없는 놈도 붙들 못혀. 있고 없는 그 중간도 거가 다 거다 붙이들 못혀. 일체 제상(諸相)을 여의고 떼고도, 여의고 뗀 상(相)도 거그는 없어.

아! 그러니 그 자체가 무슨 자체냔 말이여? 허공 자체인가? 허공도 역무허공지양(亦無虛空之量)이지. 허공이 어디 허공이란 양(量)이 있나? 텅 빈 허공도 허공지양(虛空之量)이 없지.
허공 자체에 들어가 보지. 우리가 들어서 '허공'이라고 '비었다'고 거다가서 무슨 이름을 지어 붙였지. 허공 자체에 가서 그 무엇이 붙어 있나?

'허공'이라고 벌써 터억 허는 그 주인공은 그것은 유(有)도 아니요, 무(無)도 아니요, 뭐 상(相)도 아니요, 비상(非相)도 아니요, 거 덧붙일 것도 없고.
묘(妙)가, 그 영묘(靈妙) 진각묘성(眞覺妙性)이 그놈이 '없다'고 헐 수가 있나? 그놈이 '있다' 하니 어디가 있나? 묘(妙)하지. 거 각(覺)이 있드라 그 말이여. 제9백정식(第九白淨識) 각(覺)이 있어. 그놈을 깨달라 증(證)해야 되지, 증(證)치 못하면 설사 깨달랐다 해도 그거 소용없네.

이 근본 도리, 내 본래불성, 부증생(不曾生) 부증멸(不曾滅) 도리, 그걸 본구(本具)락 햐.

본래 갖춰져 있는 본구(本具) 대리(大理)를 깨닫지 못한즉, 그 내 본래불성, 내 견성, 내 성품을, 내가 나를 깨닫지 못한즉, 생사심(生死心)이 불파(不破)니라. 생사의 마음이 파(破)한 법이 없어. 그게 중생(衆生)이지. 생전 깨닫지 못허니깐 생사심밖에 없지. 금방 났다 멸했다 났다 멸했다 이것밖에 더 있는가?

생사심(生死心)이 불파(不破) 즉, 생사심이 파하지 못한즉, 우리 중생이 이 생사심만 가지고 이렇게 있은즉 말이여. 무상살귀(無常殺鬼)가 염염부정(念念不停)이다. 이 떳떳함이 없는 무상한 귀신이, 사람 잡아가는 귀신이, 염라대왕 귀신이 염염부정(念念不停)이다. 생각생각이 머물러 주지 않고 내 뒤를 쫓는다. 잡아갈라고.

죄만 퍼 진 중생이, 아! 이놈의 죄 안 지을 수도 없고, 중생이면 죄 짓기 마련인디 그 어떻게 해? 안 잡혀갈 수가 있나?
기가 맥히지. 그것 참! 중생 이놈의 사건 기맥혀. 우리 뒤에는 창칼을 가지고 창검을 가지고 쫓아와. 곧 찍어갈라고 잡아갈라고. '너 이놈 죄만 퍼 지었으니 너 갈 데는 어디냐? 염라대왕국(閻羅大王國)에 가서 심판 받아 가지고 지옥, 아비지옥(阿鼻地獄) 밖에는 들어갈 곳 없다' 아! 이러고 시방 뒤에 쫓아와.
참! 기가 차지. 헐 수 없어. 면부득(免不得)이여.

이걸 생각해 본다면 이까짓 허망한 몸뚱이 하나 얻어 가지고 일순간인들 헛되이 보내는 것, 참 기가 맥힐 일이여. 어떻게 허송(虛送)할 수가 있나? 그 허송한 속에서는 그럭저럭 지내고 모도 놀고 지내는 것뿐인데, 그 속에서 얼마나 그 유한(有限) 속에서 시은(施恩)과 업(業)과 죄(罪)만 퍼 짓냐 그 말이여.

응, 안 갈 수 있어야지? 도둑놈이 사람 죽이고 돈을 몇천만 원 뺏어 갔으면은 그놈 잡을라고 뒤에 순사가 워~ 일어나듯기. 안 일어나?
그러면은 우리 중생이 중생심으로써 그 놀고먹고 그럭저럭 지내고 모도 그만 그 죄업 짓는 데는 없어? 살인강도 마찬가지지.

그 죄를 짓고 있으니 그 죄는 염라국에서 담당이거든. 십대왕(十大王)이 앉아 가지고는 '인간에 아무개 놈 잡아오니라, 아무개 놈 잡아오니라' 차례가 다 있어서, 이렇게 무상살귀(無常殺鬼)가 뒤를 따라. 염염부정(念念不停)허다. 생각생각이 머물러 주지 않는다.
'너 죄를 지었으니 이놈 어서 가자' 하고 창검으로써 뇌통을 찍어서 끌고 가지. 면(免)해주들 없어. 그건 피할래야 피할 수도 없고.
어떻게 피하나? 못 피허지. 환허니 그 죄업, 업력(業力) 중생이 피헐 곳이 있어야지? 살인강도는 어디가 어떻게 피해서 용케 허지마는, 그 못 피해.

여하배견(如何排遣)이냐? 그때를 당해서 너 어떻게 배견(排遣)을 헐래? 배척을 헐래?
잡으러 온 그 숭악한 무상귀신을, 살귀(殺鬼)를, 죽이는 귀신을 네가 어떻게 대접해서 보낼래? 안 잡혀갈래? 안 잡혀가고 안 끌려갈래? 소용없어.

장차일념(將此一念)해야, 이 한 공안(公案) 일념을 가져서 참선해 나가는 법, 그 내가 나 찾는 법.

“여하시조사서래의(如何是祖師西來意)냐?”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판치(板齒)에, 판때기 이빨에 털 났느니라”

그 판치가 뭣이여? 그 판치에 털 났다? 그거 원 천하에 도무지...
뭐 생각할 것이나 뭐가 있어? 벌써 찾으면은 찾는 것은 아닌디. 판치생모(板齒生毛)라고, 글쎄 뭔 이견(異見)을 붙일라고 허면 안 되아.

'어째서 판치생모라고 했는고?' 헌 것은 화두 의단독로(疑團獨露)인디, 의심은 어쩔 수가 없어. 그놈은 의단독로가 되어야 되니까. 하지만 거다가서 '오! 그것이 무슨 도리' 라고 따져서 분석허면 틀려. 안된 법이여. 무조건 여하약하(如何若何)하고 알 수 없는 의단(疑團)만 갖춰라.
'어째 판치생모라고 했는고?' 이 한 생각을 가져서, 화두 일념을 가져서 작개고문와자(作個敲門瓦子)해라. 낱 문 두드리는 기왓장이 되어라.
아주 일체 상량(商量)을 붙이지 않는—저 문 두드리는 기왓장이, 문에 들어갈라면 기왓장을 달아 놓고 그 기왓장만 탁 때리면은, 그 기왓장이 문을 툭 두드리면은 문을 열어주는 무슨 그런 법이 있는가 부여. 그 문 두드리는 기왓장이 '내가 문 두드리는 기왓장이다. 내가 문을 두드린다' 뭐가 있어?

아무것도 없는 그러헌 그 무심, '도무심(道無心)이 합인(合人)이다. 도(道)가 무심(無心)해서 사람에게 합(合)한 도리가 있고. 인무심(人無心)이 합도(合道)라. 사람이 무심해서 작개왈(作箇曰) 그 기왓장 같으면은, 도에 또 합한 법도 있어.
욕식개중의(欲識箇中意)인댄, 이 소식을 알고저 헐진댄 일로(一老)요 일불로(一不老)니라. 하나는 늙고 하나는 늙지 안 했느니라' 허는 그런 도리가 있어.

고문와자(敲門瓦子)처럼 아주 일체 뭔 따지는 분석허는 마음이 없어야 그 화두 해 나가는 학자다.

그래 가지고도 여좌재열화염중(如坐在烈火焰中)해라. 저 열화염중(烈火焰中) 가운데, 맹렬히 사방에 불이 타 들어오는 그 불 가운데 있는 것 같다. 그러 안혀? 무상고화(無常苦火)가 중생의 고화(苦火)가 사면에 붙어 오지 않어?
우리가 지금 이만큼 살아 있으니깐 아주 제법 뭐... 아무 뭐 편안하고 태평하고 무척 참 안락한 세계 같지마는 이 사바세계(娑婆世界)에 사방 지금 불 타 들어오는 것이여. 우리 중생의 고화(苦火)여. 중생의 고통 불이 사면에서 붙어 온다. 어느 문이 불 안 붙어 오는 문이 없어. 동서남북 사유사방(四維四方)이 다 불이 붙어 들어와.
뭐여, 가만히 있어도 광음(光陰)은 자꾸 가니 늙고, 또 이놈 적환(賊患)이 있고, 화재가 있고, 삼재팔난(三災八難)이 있고, 관재구설(官災口舌)이 있고, 뭔 세상에 등등 모도 여러 가지 전체가 위험허기 불 가운데 있는 몸이여.

그 불 가운데에서 구출상사(求出相似)다. 불 가운데에서 나갈라고 허는 것이다. 불 가운데 나갈라는 것이 뭣이여? 이 중생 고통 속에서 일체 번뇌망상과 일체 모도 위험한 이 세계에서 뛰어나가는 곳이 그 맹렬히 타 들어오는 불 가운데니, 그 불 가운데에서 나가는 도리가 무슨 도리냔 말이여?
그놈의 불무더기를 헤치고 나가는 도리는 참선법(參禪法)이다 말이여. 생사해탈법(生死解脫法)이여. 생사해탈법이 아니고는 그 불을 뚫고 나갈 도리가 없어. 몸뚱이도 그 불에 들어가면 타고, 뭐 영혼이나 마음이나 안 탈까? 그 몸뚱이 그까짓 녀러 것 타 버리니 어떻게 불속을 뚫고 나갈 거 있나?

몸뚱이니 마음이니, 중생심이니 번뇌니 일체가 본래 없는 곳을, 불도 없는 곳을 바로 깨달라야사 아! 그거 생사해탈하는 거 아닌가? 그 불 속에서 사바세계 이 고통세계에서 척 공안을 깨달라야사, 그 방편 없는 도리, 부처님이 바로 들어가 깨달은 도리, 아! 부처님이 그것 밖에는 바로 안 보였건마는, 엉뚱한 데가 모도 떨어져 가지고는 그만 팔만사천 다라니문(陀羅尼門)에 거꾸러지고, 거 모도 상견(相見)에 찾고, 사견(邪見) 중생이기 따문에 그런 것을 부처님이 모도 중생심 맞춰서 설(說)허는 것이, '내가 가설(假說)을 했다. 내가 느그를 위해서 거짓 설한 것이 모도 실(實)답지 못하다' 부처님이 말씀 다 했지.

'권이미실(權而未實)이요, 권(權)이 실답지 못하고 추위미묘(麤而未妙)다. 더러운 것이 묘(妙)하지 못했다' 저 마지막 『법화경』에 가서 '급호제분(及乎諸糞)을 기제(旣除)허고, 및 똥 같은 거 더러운 걸 이미 다 제(除)해 번지고, 느그들이 다 인자 믿은 뒤에사 심상체신(心相體信)커사, 네가 네 마음을 참 믿은 뒤에사, 내시실상(乃示實相)이라. 이 내가 인자사 느그를 이 실상(實相)을 보인다'
생사 없는 참선법, 화두법, 공안법을 느그한테 인자 보인다. 안 그랬어? 없어? 그 무슨 품(品)인가? 품도 잃어 버렸구마는, 그거 다 있는 말을...

그 불무더기 속에서 난행일보부득(亂行一步不得)이며, 한 걸음도 나갈 수 없어 불무더기 속에, 어떻게?
정지일보부득(停止一步不得)이며, 가만히 있자니 안 타나? 자꾸 타 들어오는디. 타져 죽지.
별생일념부득(別生一念不得)이며, 별 마음 다 내 봤던들 나갈 수 없어. 그놈의 불무더기.
망별인구부득(望別人救不得)이며, 옆에 어떠헌 사람이 구해 주기를 기달라 봐. 어떻게 구해 줘? 그 누가 들어와서 날 끄집어내 줄 것이냐 그 말이여? 거가서.

당임마시(當恁麽時)에, 이러헌 때를 당해서 어떻게 헐 것이냐 그 말이여? 맹화(猛火)도 소용없고, 그 맹렬스런 불도 타 들어오는 놈 그놈을 어떻게 헤치고 나가며, 신명(身命)이 그만 거기서 타져 죽는디 어떻게 나갈 거냔 말이여?
사람이 구해 주기도 소용없고, 일념도 얻을 수가 없고, 잠깐 머물 수도 없어. 그러니 이때를 당해서 어떻게 해야 하겠느냐? 사방 불무더기 막 타 들어오는 데는 어떻게 해야만 그 면(免)하겄냐? 이걸 면해야 할 거 아닌가?
우리가 지금 어디 있느냐 그 말이여? 우리가 이러헌 불무더기 속에 처해 있는디, 어디 있는 줄 알어? 아주 뭐 요만큼 배부르고, 요만큼 살고, 몸뚱이가 요만큼 있으니깐 아주 '내 세상이다'고 까불고 돌아댕기고, 뭐 고갯짓하고 돌아댕기고, 어쩌고.

뭣이여? 뭐 말할 것이 뭣이 있어? 틀림없는 것이거든.
어떻게 할 테여, 한번 어디 일러봐. 거기서 어떻게 해야 되아?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해뻔지면은 뭐가 있나? 뭐 불이니, 무슨 뭐 삼계화택(三界火宅)이니, 무슨 뭐 생사니, 뭐가 있어? 이 면(免)허는 법이, 이것 면허는 법이 공안(公案) 깨달은 법밖에는 없어. 그 공안 깨달은 법밖에 없으니 공안 하나 깨달은 도리를 일러봐. 하나 못 일러?

확철대오를 해서 생사가 없는 도리, 참선법, 이 도리 밖에 어디 있느냐?
이러헌 법을, 이러헌 참선법을 믿는 학자야, 어찌 철두철미하게 안 믿으며, 어찌 용맹심이 없으며, 어찌 한 일순간이라도 그 용맹 가용맹(加勇猛)허고, 정진 부정진(復精進)해서 확철대오를 어서 해야 하지.
어찌 이럭저럭 이럭저럭 저럭저럭 이럭저럭 이렇게 임마(恁麽) 일생을 해서야, 이렇게 그렇게 일생을 해서야 어찌 되겄느냐? 주의할지어다. 「선경어(禪警語)」... 한 대문.. (처음~34분9초)(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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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족천천간수~’ ; 『청허당집(淸虛堂集)』 (서산휴정 著, 朴敬勛 역, 동국대학교 역경원) p76 ‘혜기장로(慧機長老)를 이별하면서’ 게송 참고

*선경어(禪警語) ; 「박산선경어(博山禪警語)」, 「참선경어(參禪警語)」라고도 한다.
박산무이 선사(1575~1630)가 참선 할 때 생길 수 있는 문제와 그 대치방법 그리고 선학자(禪學者)를 경책(警策)하기 위하여 지은 글을 성정(成正) 스님이 엮은 것이다. 상하 2권.
용화선원 간행 [몽산법어(蒙山法語)] 부록에 있는 ‘박산무이선사선경어(博山無異禪師禪警語)’는 상권에 있는 ‘示初心做工夫警語’에서 중요한 부분을 정리한 것.

*무심(無心) ; 모든 마음 작용이 소멸된 상태. 모든 분별이 끊어져 집착하지 않는 마음 상태. 모든 번뇌와 망상이 소멸된 상태.
[참고] 『선문염송·염송설화』 (혜심·각운 지음 | 월운 옮김) 제 699칙 ‘무심(無心)’
洞山云 道無心合人 人無心合道 欲識箇中意 一老一不老

동산(洞山)이 말하였다. “도(道)가 무심(無心)해서 사람에 합하고, 사람이 무심해서 도에 합한다. 그 속의 뜻을 알고자 하는가? 하나는 늙고 하나는 늙지 않느니라”

*권이미실(權而未實)이요 ~ 내시실상(乃示實相) ; 이 구절은 구마라집이 번역한 『묘법연화경』에 해설을 덧붙인 중국 송나라의 계환(戒環) 스님이 1126년에 저술한 『묘법연화경요해妙法蓮華經要解』에 나오는 구절.
[참고] 妙法蓮華經要解卷第一
... 但以衆生垢重根器未純 先說三乘假名引導 故權而未實麤而未妙 及乎諸糞旣除心相體信 乃示實相會歸一乘 則妙而無麤矣 諸佛能事終畢於是也...

Posted by 닥공닥정